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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 카리야 테츠 / 김숙이 : 별점 2점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 4점
카리야 테츠 지음, 김숙이 옮김/창해

제목만 보면 "맛의 달인"의 엑기스만 모아놓은 책 같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화의 원작자 카리야 테츠가 저술한 음식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맛의 달인"에 수도 없이 등장했던, 여러가지 요리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풀어놓는 식의 이야기들입니다. 지금의 꽁치는 모두 냉동이고 너무 일찍 잡아서 예전의 맛이 나지 않는다, 지금의 닭고기와 돼지고기는 그냥 인공적으로 만든 단백질에 불과하다.. 같은 식으로요. 때문에 일부 글들은 뻔하고 지루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사고방식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독특해서 재미있는 부분도 제법 됩니다. 예를 들자면 돈은 꽤나 번 것 같은데 다 먹어버려서 남은게 없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데 그곳의 진짜 맛있는 두부는 한국인 할머니가 만든다는 등입니다. 도쿄대 출신인 것도 처음 알았고요. 

아울러 "맛의 달인" 원작자 다운 음식 관련한 프로페셔널한 에세이도 괜찮았어요.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우선은 35만엔 짜리 "최고의 라면" 이야기를 꼽겠습니다. 값비싼 중국산 화퇴와 자연산 닭의 칭탕에다가 최고의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국물을 내고 조미료는 당연히 천연 간장에 구슈의 다네가시마 흑돼지 최상급 로스를 숯불 화로에 구워 올린 라면이라고 합니다. 재료비, 교통비를 모두 감안한 가격이 35만엔이라고 하는데 한번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다음으로는 5밀리 정도로 얇게 썬 가지를 넉넉히 참기름을 두룬 팬에 센불로 볶은 뒤 간장으로 마무리하는 가지 참기름 볶음입니다. "맛의 달인" 31권에 나오는, 제 기억으로는 가지 공포증이 있는 나카마츠 반장과 후쿠이 차장 아들에게 먹이던 요리였는데 만화로 볼 때보다도 더 집에서 해먹고 싶은 생각이 이 들게 만든게 의외였습니다. 아무래도 글이 그림보다 분위기, 식감, 느낌을 전달하는데 있어 상상력을 자극할 여지가 더욱 많기 때문인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글을 읽으니 만두만들기도 도전해보고 싶어지더군요. 작가의 가족처럼 피까지 만드는 것은 무리겠지만요. 또 "맛의 달인" 12권에 등장한 중국식 파이 "로빙"이 원래 있거나 유명한 요리가 아니라 순전히 작가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맛의 달인"에서는 뭔가 대단한 중국 전통 가정요리처럼 묘사되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에세이와 연관된 "맛의 달인"에 등장한 그림들이 충실히 실려있을 뿐 아니라 본문에 나온 음식이 맛의 달인 어느 권에 나오는지 부록이 실려있는 등 "맛의 달인" 팬에게는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내용은 딱히 새로운 것은 없으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에세이집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1.05 추가 ----이전에 읽었었던 걸 모르고, 다시 리뷰를 작성했었습니다. 별점과 내용에 대한 인상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개인 아카이브 차원에서 추가합니다.

"맛의 달인"의 원작자 카리야 테츠의 미식 관련 에세이집. 본문 내용은 "맛의 달인"과는 크게 관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맛의 달인"에 소개되었던 요리들이 많이 등장하고, 삽화는 모두 "맛의 달인" 속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어서 아예 떨어트려 놓고 생각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자 카리야 테츠의 생각이나 행동거지가 '우미하라'로 대표되는 "맛의 달인" 이라는 작품에서 특정 음식과 맛을 고집하는 '맛꼰대' 그대로라서 더욱 그런 느낌이 짙어요. 예를 들어 요새 꽁치,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등등 (등장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는 먹을게 못된다, 옛날 친환경으로 길렀던 재료들에 비하면 음식도 아니다라는 주장이 책 전체에 가득하거든요. 좀 더 전문적인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나 때는 말이야~"와 다를바 없는 꼰대스러운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실망이 컸습니다. 게다가 이 주장에 등장하는 브로일러 닭, 응고제 글루코노델타락톤을 사용한 두부가 맛이 없다는건 "맛의 달인"에서도 여러 번 써 먹은 주제라서 딱히 흥미로운 내용도 아니고요. 이럴 바에야 그냥 "맛의 달인"을 보는게 낫죠.

물론 전문가스러운 이야기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버블 시대 방송국 지원으로 완벽한 라멘을 만든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함수 (칸스이 / 감수)를 넣지 않고 밀가루와 달걀만으로 반죽한 뒤 홍콩 전문가를 통해 면을 뽑고, 중국햄 화퇴와 닭으로 상탕을 낸 뒤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일본식 맛을 더하고, 숙성 간장으로 간을 한 뒤 고명으로는 흑돼지를 구워 만든 차슈를 얹어 만들었다네요. 재료는 모두 자연산, 최고급을 사용했기 때문에 한 그릇 만드는 비용은 35만엔!이라고 하고요. 35만엔으로 왜 라면을 먹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두부의 부자가 왜 "썩다"라는 의미의 한자를 썼는지에 대한 고찰도 재미있었습니다. 치즈 만드는 과정과 연결하여 '유부'라는 말에서 유자 대신 콩 자를 붙여 만든 말일 수도 있다는 설인데 꽤 그럴듯했습니다. 관련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질 정도였어요. 사시미의 어원도 충실한 자료 조사를 통해 잘 설명해 주고 있고요. 레시피도 틈틈이 실려있는데 가지 참기름 볶음도 간단해서 해 먹어봄직 하고, 집에서 만두를 만드는 이야기를 하면서 소개하는 '로빙' 레시피도 볼 만 합니다. "맛의 달인" 12권에서도 등장했던 바로 그 요리인데,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언젠가 꼭 도전해 보겠습니다. 만드는 김에 "맛의 달인" 60권에 등장했던 중화식 파호떡도 함께 만들어 보면 좋겠죠.

그러나 이런 류의 이야기는 극소수일 뿐더러, "맛의 달인"에 등장했었던 이야기가 많다는 약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구태여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맛의 달인" 팬을 위한 책이긴 한데, "맛의 달인" 팬이라면 딱히 읽어볼 필요가 없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지닌 책입니다. 2권까지 나왔던데 구입해 볼지 말지가 고민이네요. 어차피 절판되기는 했지만요.

2020/01/23

카레라이스의 모험 - 모리에다 다카시 / 박성민 : 별점 3점

카레라이스의 모험 - 6점
모리에다 다카시 지음, 박성민 옮김/눌와

카레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저자가 카레의 정체를 탐구하고, 뒤이어 일본식 카레와 카레라이스의 형성 과정에 대해 고찰한 음식사, 문화사, 미시사 사적입니다.

읽으면서 "맛의 달인" 24권의 '카레 승부' 편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카레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인도까지 가서 카레가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영국으로 찾아가 카레 가루의 원형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 구조가 완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의 형성 과정을 깊숙히 파고든다는 점은 차이점이지만 스리랑카는 카레에 몰디브 피쉬라는 가다랑어 종류 건어물을 사용한다, 카레의 맛이 부족하면 한방약을 털어서 섞어 먹으면 좋다는 등 "맛의 달인"에도 등장했던 이야기가 뒤에도 계속 등장합니다. "맛의 달인" 24권이 출간된건 1990년이며, 이 책이 언제 출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런저런 카레 서적을 발표하며 '카레왕' 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저자이니, 이 책에 등장했던 전개와 이야기들이 원조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당연히 책이기 때문에 "맛의 달인" 보다 카레에 대한 정보 제공은 훨씬 자세하며 정보의 폭도 넓고 깊습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들도 돋보이고요. 일본에서 시판되는 카레를 조리해서 인도인에게 먹여본다는 도입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실제로 인도인들도 꽤 맛있어 했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인도의 여러 향신료를 조합하여 만든 요리를 '카레'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맛의 달인"에 이미 나왔던 내용이지만, '카레'의 어원은 타밀어에서 무언가 끼얹어 먹는 소스를 의미하는 '카리'에서 왔거나, 힌디어로 향이 강하고 맛있는걸 뜻하는 '터카리'라는 말에서 왔거나, 아니면 옛 인도 북부의 요리 이름인 카디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재미있었습니다. '캥거루' 어원에 대한 전설처럼, 영국 지배 시기에 영국 관리가 인도인들에게 먹는 요리를 물어보았는데 그들이 맛있다고 한 '쿠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던 설은 거짓말이라는 디테일까지 완벽했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한 시기의 이야기라면 18세기 이후 이야기인데, 커리가 처음 영어 문헌에 등장한건 1598년이기 때문이라네요.
그 외에도 인도인들도 카레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던가 - 등장하는 요리사인 쟈인 씨는 국물이 있는 요리라고 하지만 마살라, 즉 향신료를 조합하여 사용하는 요리는 모두 카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 매운 맛의 기본은 특별한 향신료가 아니라 고추와 후추가 중심이며 인도에서 카레를 만들 때 양파를 카라멜라이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등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가득합니다.

이러한 카레의 정체에 대한 탐구 뒤 펼쳐지는 일본식 카레의 형성에 대해 심도있는 고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문화권에 완전히 이질적인 요리가 도입되어 국민 요리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제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맛의 달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우선 소개되는건 일본 카레의 기원입니다. 문헌상 가장 오래된 카레 조리법인 "서양요리지남" 속 카레는 개구리! 카레였으며, 야채로 파를 사용했다는군요. 이 책이 나온 19세기 후반에는 일본식 카레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으며, 양파, 감자, 당근이 생소한 채소였기 때문입니다. 1879년 간행된 "서양과채조리법" 속 파는 “오니언” 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고, 다른 책에는 “아니언”이라는 표기도 있었으며 “뿌리를 식용으로 하며, 겉의 껍질을 벗기고 잘 씻는다”라고 주석이 달린걸 보면 파 역시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던 재료가 아니었을테고요. 이러한 개구리 카레 스타일의 카레 요리법이 1900년대 초반까지 퍼지게 되는데, 지금과 다른 점은 카레 가루를 넣은 소스로 고기를 익힌 요리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인도식과는 다르게 카레 가루를 쓰고, 밀가루로 걸쭉하게 만들었다는게 특징이지요.
지금과 유사한 카레 요리법인 걸쭉한 카레 루에 고기와 함께 양파, 감자, 당근을 함께 넣어 볶고 끓여 만드는 방식은 다이쇼 시대 이후 확립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이러한 레시피로 카레를 조리하여 배식한게 결정적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조리법의 역사와 함께 저자는 카레가 일본의 국민 요리가 된 이유를 추적합니다. 우선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시스템을 받아들여 국가를 개조하던 와중에 육식이 유행하게 됩니다. 대표 요리인 규나베가 널리 퍼진 뒤, 카레가 일본인에게 서양 요리의 입문격 요리로 알려지고요. 이유는 이미 익숙한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고, 고기도 규나베처럼 작게 썰어 넣어 부담스럽지 않았던 덕분입니다.
그 뒤 '1. 레스토랑, 식당 등의 메뉴에 등장한다. -> 2. 잡지, 서적(현재라면 TV)과 같은 미디어에서 요리법 또는 '요즘 이런 요리가 유행'이라는 말 등이 소개된다. -> 3. 일반 가정의 식탁에도 등장하게 된다.' 라는 외부 요리 수용 단계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도입 초기의 소스형에서 스튜형으로 조리법도 바뀌고요. 소스형 카레는 주재료가 고기지만, 가정 요리로는 요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 않도록 고기는 적게, 그리고 밥에 국물을 끼얹어 먹는 식의 음식으로 발상을 전환한게 그 이유입니다.
그 결과가 본래의 서양 요리와는 다른 일본풍의 양식 '카레라이스'인 것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 가루 제조와 카레 루의 판매, 인스턴트화 등을 거친게 현재의 일본 국민 요리 카레라이스입니다.

이렇게 일본 카레라이스에 대해서만 연구한 결과물이라는건 아쉽지만, 카레가 아니라 그 어떤 요리라도 다른 문화권에 흡수될 때에는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런 의미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카레왕께서 추천한 참고 도서인 "카레의 지구사"도 빨리 읽어봐야겠군요.

2010/09/05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 박영봉 / 신한균 : 별점 3점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 6점
박영봉 지음, 신한균 감수/진명출판사

"맛의 달인"의 우미하라(가이바라)의 모델로 유명한, 일본 미식과 도예의 거장 로산진을 다룬 일종의 평전입니다. 전반부에는 현대의 일본 요리를 거의 정립하다시피한 요리인으로서의 료산진과 그의 요리에 대한 생각이, 후반부는 평전 형태로 출생에서부터 사망까지의 일대기를 담고 있습니다.

읽어보니 "맛의 달인"의 우미하라는 로산진 그 자체라는걸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유아독존같은 성격부터 시작해서, 요리사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미각, '요리'와 '예술'에 대한 마음가짐 등이 모두 이 책에 나오는 로산진과 똑같더라고요. 게다가 우미하라의 '미식 클럽' 역시 로산진이 최초로 연 요리요정 '미식 구락부'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고, 실제 구성은 전설의 요리 요정 '호시가오카샤료'를 따 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그 외에도 세세한 에피소드들 - 예를 들자면 프랑스 오리고기 집에서 소스없이 고기만 달라고 하고 개인 양념을 쳐서 먹는다는 등 - 역시 "맛의 달인"에서 언급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마디로 "맛의 달인"은 '로산진'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작품인 셈입니다.

때문에 "맛의 달인"을 좋아하신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예술인으로서의 로산진의 모습도 풍부하게 담겨있어서 요리 외의 즐길거리도 많고요. 로산진이 조선의 자기를 좋아해서 조선에 방문했다던가(1928), 찰리 채플린을 만났다는 등(1932)이 그러합니다 로산진 특유의 도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자료적 가치도 높고요. 책의 성격에 걸맞게 도판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1/27

오로지 일본의 맛 - 마이클 부스 / 강혜정 : 별점 2점

오로지 일본의 맛 - 4점
마이클 부스 지음, 강혜정 옮김/글항아리

영국인 요리사 출신 작가가 쓰지 시즈오의 "일본 요리 : 단순함의 예술"에 깊이 매료된 탓에, 현재 일본 요리를 탐구하고자 3개월 동안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도쿄를 비롯한 일본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가지 다양한 문화를 맛보고 즐긴 경험을 기록한 여행 에세이집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습니다. 여행 목적은 그럴듯했지만 내용이 목적에 딱히 부합하지 않는 탓입니다. 그냥 일본 이곳저곳 여행기와 식도락이 결합된 뻔한 여행기에 불과합니다.
또 색다른 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이색적인 체험을 쓰기는 했는데, 서양인 시각에서만 신기하고 재미있을 만한 체험이라는 문제도 큽니다. 일본에 이웃한 한국인 시각에서 봤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게다가 와패니즈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저자가 지나치게 일본을 맹신하는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본 요리 장인이 만든 튀김을 맛본 후, 엄청난 기술과 맛에 감탄하는 정도는 괜찮아요. 일본 튀김은 저도 좋아하니까요. 그러나 아지노모토사를 방문기를 통해 MSG의 무해함을 강조하며 합성 조미료를 전도하고, 쓰키지 시장 방문 경험의 마지막을 '장기를 팔아서라도 꼭 가봐야 하는 곳' 이라고 마무리 하며, 생 와사비야 말로 슈퍼 푸드로 그 맛에 중독되었다고 묘사하는 식으로 직접 찾아서 경험하고 맛본 모든 요리와 재료에 대해 끝없는 칭찬과 홍보가 지겹게 반복됩니다. 이러한 맛에 대해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일본 내 식문화를 소개하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특별한 내용도 없어요. 예를 들어 튀김이나 와사비, 가쓰오부시 등은 모두 "맛의 달인" 등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것입니다. 튀김의 핵심 비결인 밀가루 대충 풀기, 와사비 농원의 생육 환경과 강판에 가는 법, 가쓰오부시 제조법 및 전용 대패 모두 말이죠. 쓰키지 어시장은 "어시장 3대째"라는 더 길고 방대한 작품이 이미 존재하고요. 이는 일본 요리가 건강식이며 장수에 도움이 된다며 오키나와 요리와 장수의 비결을 탐구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나 "맛의 달인"에서 이미 등장했던 소재입니다. 그나마 오키나와의 새로운 소금 제조법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직접 '비스트로 스맙'을 찾아 가서 기무라 타쿠야 등을 만나고, 스모 연습장을 찾아가 챵코 나베를 직접 먹어 보는 식의 현장감 넘치는 경험담은 좋아요. 그러나 이 역시 방송이나 다른 여러가지 컨텐츠에서 보았던 내용에 반복에 불과하고, 저자가 신기하게 생각한 대부분은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에서는 새롭지 않습니다.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요리사들, 연예인들이 직접 스튜디오에서 요리를 해서 게스트에게 먹이는 등은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고래 고기처럼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고, 맛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도쿄를 벗어나서의 이야기들에서 조금 많이 드러나는 편이에요. 허나 고래 고기는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특유의 풍미가 있다고 언급되어 왔으니 색다를 것도 없고, 도쿄 이외의 장소에서의 에피소드는 음식, 요리 관련 이야기라기 보다는 외국인의 좌충우돌 여행기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비판적 시각은 일부일 뿐, 결국 글은 가이세키 요리나 오사카 패스트푸드를 극찬하는 기승전'일본맛있쪄'로 마무리되니 온전한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일본 최고의 회원제 레스토랑 미부에서의 놀라운 경험이 소개되는 마지막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일본 요리란 무엇인지, 그 진가를 제대로 체험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거든요. 맛을 떠나 일본 요리의 찬양이 반복되는 느낌이라 지루했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일본 여행 목적이기도 했던 일본 요리의 비결은 '재료 본래의 맛을 끌어내는 것' 이라는 것도 로산진 이래로 너무 많이 접한 내용이라 식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요리사다운 시각이 돋보이는 몇몇 디테일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숯불구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비결이 재료를 작게 만드는 혁신 덕분이라는 착안이 대표적이에요. 서구에서 초밥이 진짜 이유를 끌게 된 이유에 대한 주장도 신선합니다. 설탕, 소금, 식초로 이루어진 초밥 양념이 빅맥의 기본 양념과 동일하다는 것이죠.
또 저자의 재기발랄한 글솜씨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큽니다. 예를 들어 성게 맛에 대한 묘사도 제가 본 작품 중 최고로 꼽을 만 해요. 인어들이 바닐라 맛만 있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연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싶다는데, 정말로 멋드러진 발상입니다!

하지만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이 정도의 단편적인 장점만으로 덮을 수는 없습니다. 실망이 컸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책을 읽느니 "맛의 달인" 을 다시 정독하는게 정보와 재미 측면에서 더 나을 겁니다.

2020/01/18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2 - 카리야 테츠 / 김숙이 : 별점 1.5점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2 - 4점
카리야 테츠 지음, 김숙이 옮김/창해

1권을 오래전 읽었었고, 바로 얼마전에도 읽었었습니다. 별점은 2점이고, 딱히 구입해서 읽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게 감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2권 목차가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구입해서 읽어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요. 이미 절판되었지만 많이 팔렸는지 중고로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저를 낚았던 목차부터 소개해드립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1장 | 시드니에 살면서
제2장 | 세계 맛기행
제3장 | 맛의 나라 일본
제4장 | 유명가게를 찾아서
제5장 | 특별요리 강좌
제6장 | 못 다한 이야기
1장이야 그렇다쳐도, 2장은 카리야 테츠가 전 세계를 다니며 맛 본 맛있는 요리를 소개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3장에서는 일본의 맛있는 요리를 소개해주고요. 4장은 유명 가게들에서 맛본 경험담이, 5장은 자신만의 레시피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완벽하게 기대를 벗어났습니다. 2장 "세계 맛기행"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맛 본 요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깊이있는 요리에 대한 소개는 거의 없고 개인적인 경험담이 펼쳐질 뿐입니다. 미국 요리의 대표로 스테이크의 예를 들면서 하는 이야기라곤 미국에서는 레어로 제대로 굽지 않더라, 웰던으로 구워져 나왔을 때 항의하면 제대로 갖다 주라, 일본에서는 항의해봤자 미안하다고만 하지 다시 주지 않더라는게 전부에요. 프랑스 3대 진미 이야기도 푸아그라와 캐비아는 그냥저냥이고 트뤼프는 최고라는, 자신만의 기준에 따른 설명 밖에는 없고요. 다른 모든 이야기가 다 이런 식입니다.
심지어 "유명 가게를 찾아서"는 제목과는 전혀 다릅니다. 진짜 유명 가게가 아니라 자기가 갔을 때 최고였던 가게를 소개하고 있거든요. 니기리즈시라면 '스키야바시 지로' 정도는 나와줄 줄 알았는데, 1975년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우연히 방문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도 모르는 초밥 가게가 나오는 식으로 말이죠.
"특별요리 강좌"는 기대대로 레시피가 소개되기는 하나 로스트 비프는 오븐이 없으니 도전하기 어렵고, 채 선 양배추에 마요네즈를 듬뿍 바르고 간장을 조금 친 뒤 잘 휘젓고 먹으라는 요리, 무를 국물 맛이 배도록 푹 끓인 뒤 튀겨 먹는 요리 등은 별로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게다가 에세이 전체적으로 1권에서도 눈꼴 사나왔던 꼰대 마인드가 지배하고 있는 것도 단점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심한 말을 한 뒤 '너무 극단적인 말이 아니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남에게 실례가 되든 다툼이 일어나든 개의치 않고 뭐든지 말해버리는 정의의 악한이란 말이다'고 본인을 정당화하는데 참 꼴보기 싫습니다. 정의의 악한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요. 나는 저렇게 늙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만 듭니다.

물론 꼰대 마인드라도 마음에 드는 표현이 없는건 아닙니다. 명품을 이해하지 못하며, 유명세에 좌지우지된다는건 그만큼 자신감이 없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에요. 영국의 전통있는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 2층에는 여성 손님 입장이 아직 금지되었다는 말을 듣고 음식이 맛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관습을 전통이라 자랑하는 듯한 인종에게 섬세한 감정이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동의할 수 밖에는 없지요.
음식 전문가로서의 식견이나 경험을 살짝 보여주는 부분들도 간혹 등장합니다. 소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도쿄 토박이들이 소바 끝만 살짝 담구어 먹는 이유는 소바의 향과 맛에 소바 국물의 깊은 맛을 살짝 더해서 먹기 위함이라면서, 이 국물에 대해 "맛의 달인"에서도 등장했던 명점 '나미키 야부'의 인터뷰를 회상하는 내용인데 여러모로 볼 만 했습니다.

그래도 장점은 극히 드물고, 자의식 강한 꼰대의 자기 주장, 경험만 가득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6/09/16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니토리 고이치 / 이소담 : 별점 2.5점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6점 니토리 고이치 지음, 이소담 옮김/은행나무

제목 그대로 아사쿠사 변두리의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의 주인 구리타 진과 수수께끼의 미녀 아오이가 소소한 수수께끼와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의 일상계 중단편집입니다. 모두 3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일하게 화과자점을 주제로 한 일상계 작품인 "화과자의 안"을 이전에 읽어보았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자면, 이 작품이 추리적 요소는 덜하고 로맨스, 인간 드라마가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로맨틱 일상계라는 점에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히트에 편승한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선입견 탓에 그동안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류인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가 명백한 지뢰였던 탓도 컸고요. 하지만 추석 맞이로 가볍게 집어들고 읽어 본 결과, 의외로 만족했습니다.

물론 "추억의 시간을..."과 마찬가지로 추리적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명확합니다. 과연 이 작품을 일상계 추리물로 부를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러나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던건 제가 "요리"와 "음식"이라는 분야에도 큰 관심이 있는 덕분입니다. 수록작 세 편 모두 "음식의 맛"이 가장 중요한 소재거든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과거의 맛이 현재에 재현되지 못한 이유'가 대표적이며, 다른 이야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화과자를 싫어하는 친구에게 화과자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와산본이 무엇인지 등 "화과자"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가서 음식, 요리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면 즐길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또 첫번째 이야기 "마메다이후쿠" 만큼은 부족하더라도 분명한 일상계 추리물이기도 합니다. 브라질로 출국한 후 20년만에 구리마루당을 찾은 다나베의 말 실수를 토대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는 전개는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죠. 이에 더해 "곶감 맛 자체는 담백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서 수상함을 느낀 이유가 "주인공이 화과자 전문가"였다는 점에서 작품의 특징과 잘 어울리고요. 하기사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맛의 비결이나 레시피를 찾는 이야기 역시 넓게 보면 추리의 영역이지요.

아울러 만화적이기는 해도 캐릭터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구리마루당 3대인 구리타 진이 괜찮았어요. 화과자 가게를 잇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수련을 쌓았지만, 반항기에 한창 엇나가다가 부모님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가게를 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이력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에 위화감 없이 녹아듭니다. 어린 시절의 수련과 재능으로 실력은 나름 확실하나 그에 걸맞는 연륜과 경험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맛의 달인" 지로와 약간 비슷하네요.

컴비로 등장하는 화과자에 정통한 정체불명의 미녀 아오이 역시 설정만큼은 완전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지독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면에 관심 분야에 대한 초인적인 호기심이 부각되어 나름의 매력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 풍경 속 잔잔한 드라마라는 측면에서는 볼만합니다. 단,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록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메다이후쿠"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에 20년 전 신세를 졌다는 다나베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를 주문했지만,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구리마루당 주인 구리타 진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인 카페 마스터가 소개해 준 아오이라는 수수께끼의 미녀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요리만화에 흔히 나옴직한 "추억의 맛을 찾아드립니다." 스타일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답게 구리타 진과 그 주변 인물 관계도 상세하게 설명되고요.

수록작 중 거의 유일한 추리물로 "왜 마메다이후쿠의 맛이 다른지?"에 대한 설명(시부키리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다나베의 "곶감"에 대한 말실수를 "곶감"의 정의를 통해 밝혀 진상을 드러내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망해가는 구리마루당을 살리려는 소꼽친구 유카의 작전이라는 동기도 그럴듯했고요.

다나베가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의 맛과 지금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로 절대 미각의 소유자라는 것은 영 설득력이 없으며, 구리타 진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는 무능한 장인인지 의심스럽다는 약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치고는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라야키"

"이러쿵저러쿵해도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거니까요. 실제 체험에는 절대 못 이겨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지고...... 그렇게 실제로 경험하면 이미지는 간단히 바뀌죠. 말하자면 이미지란 불완전한 정보, 즉 선입견이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구리타의 라이벌인 아사바가 대학 축제에 구리타를 초대했다. 구리타는 아사바가 만든 "베이비 카스텔라"의 맛을 인정했지만, 아사바는 화과자를 싫어한다는 말로 구리타를 자극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오이는 아사바에게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겠다고 약속하는데...

드라마는 별게 없지만 카스테라, 다이나곤 팥과 같은 기본 재료 설명은 물론, 1등 상품인 팥을 구하기 위해 "화과자 퀴즈 대회"에 나가 각종 화과자 관련 상식을 화려하게 펼쳐내는게 특징인 작품입니다.

또 카스테라는 좋아하는 아사바의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기 위해, 카스테라 반죽에 팥소를 더하여 도라야키를 만들어 준다는 결말은 깔끔하며 설득력 높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결!" 된다는 "맛의 달인" 류의 작품에서는 억지스러운 전개가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이 작품 정도면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이게 맛이 없을리가 없을 뿐더러, 맛이라는 것은 작중 아오이의 말 그대로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화과자 관련 이야기로는 최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히가시"

"화과자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고안할 방법은 딱 한 가지. 입으로 말해서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먹여서 알게 해주자고요!"

어린 시절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던 동네 누나 고하루를 오랫만에 만난 구리타는 고하루의 집을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닥에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엿보기를 당한 날짜를 토대로, 범인은 고하루와 거의 의절상태인 친아버지 기라라는게 드러났다. 구리타는 기라를 찾아가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는데....

수록작 중 가장 처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부터가 별게 없는 탓입니다. 엿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그가 남긴 과자 부스러기를 조사하는 것보다 잠복해서 잡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게다가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고 모든 갈등이 눈녹듯 사라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어처구니 없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전개였습니다. "도라야키"에서처럼 설득력 있게 넘어가면 모를까, 갈등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과자를 맛보고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북경오리나 프랑스 요리를 먹어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요?

구리타 진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넘쳐나는 마무리는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6/04/14

로산진의 요리왕국 - 기타오지 로산진 / 안은미 : 별점 2.5점

로산진의 요리왕국 - 6점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안은미 옮김/정은문고

전설적인 "미식가" 로산진이 단코신샤에 연재했던 글들을 중심으로 엮은 에세이입니다. 로산진의 요리 및 미식 철학에 대해 역설하는 전반부, 그리고 식재료와 여러 요리들에 대해 설명하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 에세이, 그 중에서도 딱히 ‘요리’가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도 통용될 수 있는 확실한 원칙과 철학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틀에 박혀 배운 것은 올바를 수는 있어도 반드시 재미있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면 개성있는 것은 재미와 아름다움, 그리고 존엄이 있다. 그런데 몇 차례 실패를 겪으며 스스로 다다른 곳은 틀에 박힌 곳이기 십상이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올바름이다. 개성있는 요리에는 틀, 모양, 규칙뿐만 아니라 저절로 배어 나온 맛과 힘이 있다. 틀부터 시작해도 나쁘지 않지만, 스스로 틀 안에 들어가 만족할까봐 걱정스럽다. 틀을 벗고 뛰어넘어야 한다." 같은 글귀가 대표적입니다. 그게 무엇이든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재료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요리 맛의 9할은 재료다.", "모든 재료는 본맛이 있고 그 맛은 다른 재료로 대체할 수 없다. 요리란 결국 재료의 본맛을 살리는 일이다."라든가, 설탕에 대한 문제를 거의 한 세기 전에 이미 짚은 "설탕만 넣으면 맛있다고 믿는 오늘날 요리는 미각의 저하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질 떨어지는 식품을 속여 넘기는 잔꾀를 설탕은 품고 있다." 같은 문장도 인상적이고요.

"삼시 세끼는 맛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사람의 가치는 자신이 만들고 먹는 것에 드러나기 마련이다."라는 말은 브리아 샤바랭을 연상케 할 정도였습니다. 로산진 정도가 되어야 할 수 있는 말이겠지요.

또 제가 즐겨 읽었던 만화 "맛의 달인"의 우미하라(가이바라) 유우잔의 모델이 확실히 기타로 로산진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는 하지만, "맛의 달인"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던 몇몇 에피소드가 로산진의 글로 등장하니 상당히 반가웠어요.
예를 들어 조리법에 있어 가쓰오부시는 대패로 최대한 얇게 갈아야 하고, 다시마는 잠시 담갔다 빼는 정도로만 해야 한다는건 까다로운 손님이 우미하라인 것을 모르고 지로가 최고의 다시 국물을 내어 요리를 만드는 에피소드에 등장했었지요. 프랑스에서 오리 요리를 먹을 때 소스 없이 지참했던 간장과 고추냉이(와사비)로 소스를 만들어 찍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맛의 달인"에서는 오리 고기를 간장에 찍어 먹는 행동을 비판하거나, 은어 최고의 산지를 이야기하다가 ‘고향의 은어가 최고다’라는 독특한 발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부분도 있기에 ‘표절’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요.

그러나 후반부 식재료 관련 이야기는 별반 재미도 가치도 없어 다소 아쉬웠습니다. 그가 조선을 여행했을 때 먹었던 도미가 최고였다는 등 우리 땅과 관련된 이야기는 눈길이 갔지만, 그 외에는 딱히 건질 만한 부분이 없었습니다. 지나치게 일본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거슬리기도 했고 (일본 재료가 최고라는 근거 없는 자부심),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거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지만 지금 읽기에는 낡고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많아 감점합니다. 하지만 요리와 미식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은 책입니다.

2021/11/21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가라시마 노보루 / 김진희 : 별점 3점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6점
가라시마 노보루 지음, 김진희 옮김, 오무라 쓰구사토 사진, 최광수 감수/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맛의 달인 걸작 에피소드 중 하나인 '카레 전쟁' (24권) 편에서 카레 전문가 교수님으로 출연했었던, 인도 역사 교수가 쓴 식문화사 책입니다. 한방약을 카레에 섞어 먹곤 한다던 그 교수님이지요. 전공 분야라는 인도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다년간의 인도 유학 경험과 학자다운 방대한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인도 요리가 무엇이며, 왜 지역별, 문화별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은 왜 '카레'라는 요리가 생겨났으며,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인도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인도 식문화가 영국에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는건 다른 책들에서도 소개되었던 내용인데, 카레 가루가 생겨난건 영국에 생 스파이스가 없어서였다, 밀가루를 버터로 볶아 만든 루는 볶은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코코넛 크림 등으로 조리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걸쭉함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는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교수님이 등장하셨던 "맛의 달인" 에서도 소개되었던 '커리'의 어원에 대한 추론은 다시 읽어도 흥미로왔어요. 영어 '커리'는 16~17세기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이 기록한 '카릴'에서 유래되었을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칸나다어와 타밀어 커리는 야채와 고기라는 뜻인데, 왜 당시 사람들은 수프를 부어먹는 식사를 인도인들이 '카릴 이라고 부른다고 썼을까요? 저자는 당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인은 수프를 부은 밥 요리 이름을 물었는데, 인도인들은 수프에 들어있는 건더기, 즉 야채와 생선과 고기에 대해 묻는다고 생각해 대답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하지요? '캥거루' 어원 가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는 저자의 추론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도 요리와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찰이 이어집니다. 특징이라면 앞서 '커리'의 어원 추론처럼 어원, 요리 유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북인도의 긴 후추를 피랄리라고 하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 당시 그리스로 가져간게 현재 영어 페퍼의 어원이 되었다는 식으로요. 저자가 역사 학자인 덕분이겠지요. 

각 지방 및 요리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요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확실히 연구자가 썼구나 싶은 부분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도 식문화는 남인도에서 성립된 스파이스를 혼합하여 맛을 내는 '카레 문화'와 우유를 기름, 버터, 요거트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요리에 활용하는 북인도의 '우유 문화'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적절하게 융합되어 구축되었다고 합니다. 근거는 7-8세기 남인도 힌두교 사원에 남아있는 신에게 올리는 식사 관련 글귀에 등장하는 재료 - 밀라구 (후추), 만질 (강황), 지라가 (커민), 시르 카두구 (겨자), 코타말리 (코리엔더) - 목록이고요. 이건 현대 카레에 가장 중요한 스파이스로 꼽는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 후추, 겨자'와 동일합니다. 즉, 당시 남인도에는 커리의 원형이 이미 존재했다는 뜻이지요. 반면 북인도에서는 불교에서 석가에게 우유죽을 공양했던 고사에서 보듯, 우유 식문화가 탄생했고요. 이런 지역에 따른 대립은 카레, 우유 뿐 아니라 밀과 쌀 중 무엇이 주식인지, 재료가 고기인지 생선인지, 논베지테리언인지 베지테리언인지 등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됩니다. 북인도는 밀 생산 지역으로 쌀이 아니라 로티라고 부르는 밀가루 빵이 주식이라는게 대표적인 예이고요. 

이런 역사와 지역, 문화를 통한 요리 구분이 굉장히 상세한게 큰 장점으로, 심지어 '자이나교 요리'까지도 별도로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이나교는 철저한 불살생으로 베지테리언 요리로 유명한데, 우리도 인도 요리점 요리로 친숙한 '파니르'가 대표 요리더군요. 파니르는 끓인 우유에 식초를 넣어 굳힌 코티지 치즈이고, 이걸 카레 소스로 끓여낸 요리이지요. 여기에 시금치를 넣은게 '팔락 파니르'고요. 

무굴 제국의 궁정 요리도 별도 항목을 할애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정복 세력이 인도로 침입한 것이라, 그 역사적 배경이 다른 인도 요리와는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우선 무굴 요리의 시작은 유목민의 캐러밴 요리로 케밥이 그 원점이라네요. 무굴 제국의 이름도 몽골에서 유래했고, 그들은 원래 아프가니스탄 유목민 출신이니 중앙 아시아 유목민 문화가 그들의 바탕인 건 당연합니다. 여기에 2대 황제가 이란에 망명했던걸 계기로 페르시아의 맛과 정취가 더해졌고요.

특정 지역에 독특한 식문화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 설명도 그 깊이가 남다릅니다. 남인도 케랄라 식문화 소개가 좋은 에에요. 이 곳은 원래부터 후추와 카다몬이 자생하였던 향신료의 천국이었는데, 이후 남서 해상 무역 중계 기지라 남동아시아에서 클로브, 넛맥이, 스리랑카에서 시나몬이 운반되어 향신료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및 서방 지역과도 관계가 깊어서 이미 1세기에 그리스도 포교가 이루어졌고, 유대교 성당인 시나고그도 있었으며, 무슬림도 거주하면서 커피 재배 등에 종사했을 정도로 국제 도시이기도 했고요. 중국배 역시 12세기 경부터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15세기 초에는 정화의 선단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이라면 향신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외부 식문화도 많이 유입된 요리가 생겨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스리랑카 신할족은 북인도 왕자의 후예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언어와 전통은 북인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식문화는 가까운 남인도 카레와 밀착되어 있으며 특징은 매운 맛, 그리고 몰디브 피쉬의 사용, 코코넛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스리랑카의 식문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맛의 달인의 '카레 전쟁'의 스리랑카 요리 소개 부분과 똑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몰디브 피쉬를 절구로 빻는 장면은 사진까지 똑같더라고요!

소개되는 요리들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요리는 빈달루입니다. 어원은 포르투갈 요리 카르니 드 비나달로스의 비냐달로스라네요. 이게 인도식 발음으로 변형되었던 거지요. 16세기 초에 포르투갈이 고아를 점령했을 때 전래되었던 요리라고 합니다. 처트니도 영국식 잼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힌디어로 '다'라는 뜻의 '차트나'가 어원인 인도 요리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외 정 요리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몇몇 요리는 레시피도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칠리,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와 후추가 듬뿍 들어간다는 라삼 파우더로 만든 라삼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을 듯 싶더군요. 타밀어로 '후추 주스'라는 뜻이라니, 매콤한게 딱일거 같아요.

이런 내용들 소개에 이어, 책은 현대 인도 요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됩니다. 인도 요리란 어디까지나 스파이스와 우유를 주요소로 하는 요리의 총칭이며, 원래 다양한 지방에서 자기들끼리만 먹었었지만, 지방 요리가 인도 전체로 퍼져 현대 인도 요리가 된 것이라고요. 이를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라고 말합니다.

카레, 커리 뿐 아니라 '인도 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 준 좋은 책입니다.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라, 근거가 확실한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썼다는 점이 돋보였고요. 목차가 조금 두서가 없다는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하지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커리와 인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글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고요.

그나저나 일본에 좋은 카레 책이 많이 나오는걸 보면, 확실히 카레에 진심인 나라가 맞긴 맞나보네요.

2020/01/31

라멘이 과학이라면 - 가와구치 도모카즈 / 하진수 : 별점 3점

라멘이 과학이라면 - 6점
가와구치 도모카즈 지음, 하진수 옮김/부키

라멘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그 실체를 밝혀나가는 책입니다. 음식 관련 과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이 풀어낸 라멘에 관련된 내용은 크게 아래의 아홉 가지 항목입니다.

  • 1장_무엇이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가?
  • 2장_해장 라멘이 더 맛있는 이유
  • 3장_쫄깃쫄깃 면발의 과학
  • 4장_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라멘의 맛
  • 5장_화학조미료는 라멘의 친구인가, 적인가
  • 6장_기름과 건조 기술의 결정체, 인스턴트 라멘
  • 7장_라멘 명가의 맛을 과학으로 재현하다
  • 8장_라멘은 먹는 소리도 맛있다
  • 9장_사람들이 그 가게 앞에만 줄을 서는 이유

항목별로 간단히 살펴보자면 우선, 첫 번째 장에서는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감칠맛'을 꼽고 있으며, 이 감칠맛의 정체에 대해 상세히 분석해 줍니다. 일본의 맛국물은 보통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함께 사용하는데, 그래야 더욱 맛있어진다는군요. 이는 글루탐산의 단독 사용보다 이노신산과 조합할 경우 감칠맛이 7~8배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가쓰오부시나 다시마의 향 성분은 물에 녹아나서 라멘의 경우, 국물맛이 농후해진다고 하네요.

두 번째 장에서는 음주 후 숙취 해소를 위해 라멘이 땡기는 이유를 탐구합니다. 이 역시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술을 마시면 당을 만드는 원료가 부족해져서 혈당이 떨어지는 탓에 당이 필요해져서 단 것이나 탄수화물을 먹고 싶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알코올이 뇌 신경에 작용하여 공복감을 증가시키기 때문이고요. 과음 후 단 것을 먹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한 기분이 되는데, 술 먹고 라면을 먹으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군요.
당연히 술을 먹고 라멘을 먹으면 몸에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문가가 추천하는 술 마시고 좋은 음식은 스포츠 음료에요. 이유는 당과 소금, 염분 모두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과즙 100% 오렌지 쥬스도 좋다는군요. 수분 섭취에 칼륨도 많아서 과하게 섭취한 나트륨을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으며, 지방과 당 분해를 촉진하는 비타민 B1, B2도 풍부하니까요. 앞으로 저도 음주 후에는 과즙 쥬스를 먹어봐야겠습니다.

세 번째 장은 제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라멘은 자가 제면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소바의 경우 풍미가 바로 날아가므로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만들며, 공장에서 만들 경우 배송 중 향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가게에서 직접 면을 만들어야 하지만 라면은 그럴 까닭이 없다는게 이유입니다. 면의 꼬불꼬불한 정도가 국물 맛이 배는걸 좌우한다는 것도 결국은 호불호에 불과해 보이고요. 게다가 물과 밀가루가 완전하게 섞이는 수화 작용에 시간이 걸려서 충분한 숙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가 제면의 약점이에요. 공장에서 제대로 만든 면을 사용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 '간수'라는 말로 소개되었던 '간스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간스이는 라멘의 맛에 큰 영향을 주지만 단지 취향일 뿐이니, 가게와 손님들이 알아서 고르면 된다고 하네요.
이 장에서 가장 인상적인건 면발 특성에 따른 팁입니다. 라멘을 밥과 함께 먹으려면 면은 부드럽게 삶아달라고 해야 한다네요. 그래야 간스이가 국물에 섞여 들지 않고 면도 퍼지지 않거든요. 면의 삶은 정도가 꼬들꼬들하면 면이 국물을 빨아들이고 국물에는 간스이 맛이 섞이게 됩니다.

네 번째 장은 라멘의 맛에 온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5미(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중 짠맛과 신맛은 온도에 따른 변화가 없지만 단맛, 쓴맛, 감칠맛은 온도에 따라 변화하므로 5미가 조합된 요리는 온도에 따라 맛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짠맛과 감칠맛의 밸런스가 온도에 따라 달라져서 제대로 맛을 느끼려면 적절한 온도로 먹어야 한답니다.

다섯 번째 장은 화학 조미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결론은 화학 조미료를 적당히 써야 맛있는 라멘이 된다는 겁니다. 화학조미료 사용 여부보다 식재료를 듬뿍 사용한 국물인지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는 팁도 좋았고요. 이유는 효모 추출물이나 단백가수분해물과 같은 첨가물은 '식품'으로 인정되어 화학조미료로 치지 않는데, 이런걸 많이 사용하는 가게들이 많기 때문이라네요.
또 라멘은 부족한 영양소가 있으니 제대로 만든 라멘에 무언가를 조금 더하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쇼유 라멘을 먹은 후에 채소주스를, 그리고 돈코츠 라멘의 영양가는 볶은 깨 간 것을 더하는 것만으로 훨씬 높아지고 쇼유 라멘에는 구운 김을 올리면 좋다, 미네랄을 보충하고 싶다면 미네랄이 풍부한 미소 된장으로 만든 미소 라멘이나 탄탄멘을 주문하라는 식입니다.

여섯 번째 장은 인스턴트 라멘이 정말 몸에 좋지 않은지?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지금의 인스턴트 라멘은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염분이 많다고는 하나 국물을 남기면 되고, 기름 열화로 식중독을 일으켰던건 다 옛날 이야기이며 용기의 환경 호르몬 역시 위험성은 오해에 불과했다는 내용이거든요. 이 정도면 앞으로 컵라면을 먹을 때 건강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너무 자주 먹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초인 로크"로 유명한 만화가 히지리 유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구루구루박X"의 외계인들이 컵라면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로 "사람이 먹는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는 작가의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에요.

일곱 번째 장은 유명 가게, 노포의 라멘을 인스턴트로 만들어 제공하는 회사들의 비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탐방 취재 스타일의 리포트입니다. 사실 이런저런 엑기스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최대한 비슷한 맛을 찾아내는게 전부라 딱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라면의 염분 측정 결과가 더 재미있었어요. 돈코츠 라멘의 염분은 1.48퍼센트, 미소 라멘의 염분은 1.35퍼센트인데 소유 라멘의 염분은 1.58퍼센트로 소유 라멘이 가장 높았거든요. 세가지 라멘 중 가장 감칠맛이 적은게 소유 라멘이라는 점에서 맛을 증폭시키는 감칠맛의 효과로 염도를 낮출 수 있다는건 사실이라는 뜻이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도쿄의 새까만 소바 국물과 간사이의 투명한 소바 국물을 비교할 때, 간사이 소바 국물의 염분이 더 높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먹을 때 주로 표현되는 의성어 "즈루즈루"에 대해 탐구합니다. 뭘 이런것까지 조사하나 싶었는데, AI까지 동원해서 의성어의 느낌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데에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후루룩"과의 비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에요. 이 AI를 가지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면 아주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비슷한 툴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 장은 사람들이 라멘 가게에 줄을 서는 이유입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약과 동일하게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모르핀이나 헤로인의 수용체이자 신경 전달 물질인 오피오이드에 작용하게 되거든요. 그러나 실제 마약과는 다르게 보상 회로 자극은 지극히 짧습니다. 그리고 실험 결과, 먹기 전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하네요. 즉 '기다리는 동안', '대기하는 동안' 음식을 곧 먹을거라는 생각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포방터 돈가스집에 줄을 서서 먹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는데, 실제 줄을 서는 과정에서 이런 뇌내 보상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장기간 줄을 서는 것도 한 번쯤은 해봄직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라멘과 관련된 이런저런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재미나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주 유익했습니다. 라멘 그 자체보다는 주변 정보, 지식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많아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난다는건 조금 아쉽습니다만, 재미와 교양 양쪽 측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이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본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2/05/07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10)

남자의 면 - 4점
츠치야마 시게루 지음/미우(대원씨아이)

고 츠치야마 시게루 화백의 먹부림 만화입니다. 면과 라쿠고를 너무나 사랑하는 영업맨 이케다 멘타로가 이런저런 면 요리들을 먹으며 겪는 일화들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소바와 우동, 냉면과 오키나와 소바, 나고야면 (기시면, 녹말소스 스파게티, 타이완 라면, 된장곰탕 우동), 라면, 야키소바 등 평범한 면들이 소개되며 에피소드들도 평범한 직장인들이 마주칠 법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내용도 모든 면은 다 맛있다! 류의 만만세 해피엔딩이 대부분이고요. 대기업 츠카모토 전기 회장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기는 하지만, "맛의 달인"처럼 면 요리로 모두가 하나된다는 결말입니다. 

약간의 특징이라면 주인공이 이케다 멘타로이기는 한데,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주체는 면 요리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케다 멘타로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건 초반의 두, 세 개 정도이며, 다른 이야기들은 전부 그냥 면 요리를 먹으면서 이야기가 생겨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장인 정신이 지나친 라면 가게를 '진검 승부' 하는 집이라며 마음에 들어해서 좋아하는 여직원을 데리고 갔지만, 즐겁게 먹는게 더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린다는 이야기처럼요.

하지만 역시나, 다른 요리, 먹부림 만화와 확실히 구분되는 무언가를 찾기 힘들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여섯 편의 에피소드만 남기고 사라졌겠지요. 면 요리 만큼은 정말로 맛있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만으로 넘쳐나는 먹부림 만화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미식가 탐정 료지 1,2" 블랙 잭을 닮은 요리사 아지사와 료헤이가 등장하는 만화 '더 쉐프' 시리즈의 작가 카토 타다시의 작품입니다. 만화 도서관 Z에서 무료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뭐 볼게 없나 하고 뒤져보다가 제목에 호기심이 동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음식과 추리가 결합된, "절대미각 식탐정" 류의 추리물로 생각했었는데 아니더군요. 추리의 비중이 극히 낮습니다. 등장하는 탐정 소재 이야기 중 볼만했던건 부사장파와 전무파가 세력 다툼을 하는 회사에서 전무파의 핵심 인물인 개발부부장 뒷조사를 위해 그의 집에 잠입해서 PC를 열어보는 에피소드 뿐이거든요. 이를 통해 부장이 컬트 (사이비) 교단 핵심 관계자였다는게 드러나게 되지요. 북해도 출신 가출 소녀를 찾을 때, 사투리를 무심코 대답하게 만드는 작전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외에는 탐정 업무로 볼 만했던 내용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불륜 조사로 미행 후 호텔로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정도이며, 그 외에는 아들 결혼 상대에 대한 상세 조사, 데릴 사위에 대한 탐문 조사 등이 전부입니다.

반면 음식, 요리 관련 이야기는 이야기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주인공 탐정 렌죠 료지부터가 일류 요리집 쥬가와의 주인 토가와의 아들로 요리에 굉장히 박식하고 능숙하다는 설정이니까요. 초반부는 그가 조사 및 탐문 과정에서 우연히 먹게 된 요리가 너무 형편없어서 한 마디 했다가 결국 그 요리를 업그레이드시켜준다는 전개가 많고요. 

하지만 이런 전개는 억지의 극치죠. 탐정이 이런 일을 해 줄 이유가 없잖아요? 작가도 억지라는걸 알았는지 뒤로 갈 수록, 탐정업 보다는 요리에 집중합니다. 요리 승부가 계속 펼쳐지는 식으로요. 문제는 흥미를 돋우는 효과는 있지만 작품의 정체성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욱 하는 성격으로 승부를 한다고 해도 한 두번이지, 세 편 연속 요리 승부는 지나쳤어요. 

아울러 렌죠 료지와 그의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는 "맛의 달인"과 흡사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렌죠 료지가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발끈하며 비판하는 모습, 그리고 그의 목표가 아버지로부터 자기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는 등 캐릭터 설정도 "맛의 달인"과 거의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 요리 만화 붐에 편승해서 이런저런 인기있는 소재를 가져다 썼지만 결과물은 영 신통치 않았던 망작입니다. 유일한 장점은 공짜로 봤다는 것 뿐입니다.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9)

2026/05/1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3) 무덤 위 에로그로 식탁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이단자의 사랑"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 시절이던 1934년에 단편 "타원형의 거울"로 데뷔한, 국내 최초의 본격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의 단편입니다. 저는 절판된 지 오래된 단편집 "비밀의 문"을 통해 이 작품을 접했는데, 다행히 최근 복간되어 이제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으니 참고하세요.

의사 김철하는 애련과 약혼했지만, 1년에 한 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녀를 시인 추강에게 양보합니다. 추강이 그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련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추강은 그녀의 묘 위에 복숭아나무를 심습니다. 애련의 살과 피로 자라난 복숭아 열매를 김철하가 보는 앞에서 홀로 독점해 맛보기 위해서였지요. 추강은 김철하가 찾아오는 날마다 복숭아를 따 먹으며 그의 앞에서 자신의 승리를 과시합니다.

이 장면은 추강의 광기 어린 독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묘사가 정말 일품입니다. 탐미적이면서도 에로틱하고, 변태스러우면서도 그 과즙이 입안에 흥건하게 고이는 느낌을 줄 정도로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미녀의 무덤에서 자란 과일로는 복숭아만 한 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복숭아는 원래 미녀를 상징하는 과일이기도 하니까요.

복숭아는 본래 "손오공"에 등장하는 천도복숭아처럼 장수의 상징이자 귀신을 쫓는 신령스러운 과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농밀한 여인의 이미지가 덧붙여졌는데, 복숭아의 특성과 맛 때문일 겁니다. 맛있는 복숭아를 뜻하는 '수밀도'라는 단어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달콤한 맛'이라는 뜻이 미녀와 연결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요. 뜻 뿐만이 아니라, 높은 당도에도 불구하고 저칼로리에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고, 비타민도 많아서 피부 미용에도 좋으며, 피부의 멜라닌 생성을 촉진하는 타이로시나아제라는 성분을 억제해서 피부 미백 효과도 볼 수 있다니, 미인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과일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추강은 한여름 날 복숭아를 따서 껍질째 먹는데, 이 방식이야말로 복숭아를 제대로 먹는 방법입니다. 껍질에 비타민 E 등 유익한 성분이 많고, 높은 온도에서 단맛이 더욱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강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김철하는 복숭아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이 가져온 고래고기 통조림만 먹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래고기의 정체를 알아챈 추강에게 김철하가 "고래고기다!"라고 외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43년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입니다. 당시 고래고기는 가장 싸고 대중적인 고기였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도 전쟁 전후에 고래고기가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자주 언급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전에는 포획량이 많아 흔한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은 포경 금지로 인해 귀하고 비싼 음식이 되었지만요.

고래고기는 육고기와 생선의 중간 맛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회나 수육으로 먹었고 일본에서는 스테이크나 꼬치 요리로도 소비되었습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모비 딕"에서는 스테이크로 먹는 묘사가 등장하고, 아이슬란드에는 고래고기 꼬치가 전통 요리 가운데 하나라고도 하네요.

콜레스테롤 없는 불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온갖 비타민도 골고루 들어 있어 영양가도 뛰어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립니다. 철 성분이 많은 고래의 피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인데, 고래는 죽자마자 바로 피가 부패되기 시작합니다. 육지 동물보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은 탓이지요. 헤모글로빈은 단백질이라 곧바로 썩거든요. 그런데 고래는 정식으로 잡을 수 없어서 그물에 걸려 죽은 경우 등에 한해서만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피를 곧바로 뺄 수 없어서 냄새가 나게 됩니다.

작품에서처럼 통조림으로 만들 때는 냄새가 심한 싸구려 고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한 양념을 사용해 냄새를 잡고 맛을 균일화하는 조림 방식으로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야마토 조림' 고래고기 통조림이 있습니다. 설탕, 생강, 간장 등으로 조린 이 요리는 냄새를 잡고 고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다만 고기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짐작하시듯, 작품 속 고래고기 통조림 속의 고기는 고래고기가 아닙니다. 조리 방식도 장기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뒤 말렸을 뿐이지요.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육포는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 수록작 "지옥"에도 등장합니다. 산적들에게 잡힌 주인공이 구덩이에 갇혀, 산적들이 던져 준 육포로 연명하다가 함께 갇혔던 신혼부부 중 신부가 도망친 날, 신선한 고기가 던져졌다는 내용이 압권이지요. 지옥 구덩이에서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해 산적 일가를 구덩이에 가둔 뒤 벌어진 참상도 상상을 초월하고요. 참고로 야마시로 아사코는 "ZOO"와 "GOTH"의 작가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입니다. 작품도 과연 오츠 이치구나 싶어요.

"이단자의 사랑"은 지금 기준으로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에로그로' 코드가 과도하고,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이 짙으며, 흔한 삼각관계 치정극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시인과 과학자의 대결 구도도 다소 부자연스럽고요. 그러나 반전만큼은 강렬합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약 5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으셨는데도 이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실 정도입니다. 반전을 위해 사용된 복숭아와 고래고기의 대조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복숭아는 농밀하고 탐미적인 에로스를, 고래고기는 거칠고 냉혹한 그로테스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에로그로'라는 키워드를 음식으로 명확하게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통조림이 적합할까요? 저는 골뱅이 통조림을 떠올렸지만, 고기 형태가 너무 달라 쉽게 들통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통조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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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5

한국음식문화박물지 - 황교익 : 별점 2.5점

한국음식문화박물지 - 6점
황교익 지음/따비

한국 음식 컬럼니스트로 유명한 황교익씨의 컬럼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여러 가지 한국 음식을 되돌아보고 그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들로 이것저것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블로그에서 익히 보아왔던 독설들이 가득해서 쉽게 익숙해지지는 않더군요. 저자의 주장도 좀 센 편이고요. 또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진상품 마케팅에 대한 것입니다. 진상품은 수탈의 역사이니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게 못 되며, 조상이 당한 수탈을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서 근대적 시민의식이 없다는 비판입니다. 수탈이건 뭐건 지금은 마케팅 키워드일 뿐인데 그리 큰 의미를 두는게 맞을까요? 이런 논리면 성 같은 문화재도 다 부역으로 만든 것으로 수탈의 역사이니 자랑할 게 아닙니다. 또 진상품이라는 타이틀은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충분한 증거는 됩니다. 가치가 폄하될 이유는 없어요.
또 815콜라가 실패한 이유를 코카콜라의 혼란 마케팅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와닿지 않았습니다. 저도 해태콜라와 815콜라를 다 먹어본 세대인데,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확연히 맛이 없었습니다. 맛보다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아무리 마케팅을 해도 맛이 없으면 안 되는 게 이쪽 시장의 진리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죠. 그렇게나 엄청나게 마케팅해댔던 뉴코크, 체리코크가 지금 없어진 것처럼요. 그 외에 찜닭은 맛이 없다는 것 역시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고요.

그래도 새롭게 알게 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이천쌀이 유명한 것은 진상품이었기 때문인데 진상된 이유가 맛 때문이 아니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이천 토종쌀 중 자채벼라는 품종이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 수확되는데, 조선 왕가가 처음 수확된 쌀로 제사지내기 위해 종묘에 바친게 이천 진상미의 근원이라거든요. 일종의 보졸레누보 같은 거랄까요? 지금은 재배되지 않는다고 하니 약간 아쉽네요.
그리고 설하멱이라는 조선시대 음식이 불고기의 원형일 수 있는데, 레시피는 고기를 두드려 연하게 한 뒤 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굽다가 구우면서 물에 담그기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겉이 타지 않게 하면서 속까지 익히려는 의도인데, 중국, 중앙아시아의 샤슬릭과 비슷한 것으로 설하멱이 샤슬릭의 음차어일 수도 있다는 발상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한국의 닭은 외래종이 대부분으로 이 닭고기는 구이나 튀김에 맞아 백숙이나 탕 등을 하면 맛이 많이 빌 수 있다는 것도 그럴듯했고요.

무엇보다도 항상 궁금했었던, 한국 달걀이 갈색인 이유를 처음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원래 산란계는 백색과 갈색이 있는데, 한국에서만 유독 갈색 산란계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90년대 업자들이 갈색 달걀을 토종닭 달걀인 듯 홍보한 탓이고요. 생산성이 떨어지면 토종닭이라고 속여 파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백색 산란계가 사료 효율도 좋고 질병에도 강하다 하니 조금 안타까운 현실이군요. 우리의 토종 음식 집착이 이런 비효율적이며 비합리적인 현상을 낳은 것도 씁쓸합니다. 여튼, 이제부터 같은 값이면 흰 달걀을 사야겠습니다.

그 외에도 꿀꿀이죽, 유엔탕이 존슨탕이 된 것은 66년 미국 존슨 대통령의 방한 때문이라는 것, 광고로도 유명한 수미감자가 현재 한국 감자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삶으면 찐득해지는 점질감자라 식감이 떨어진다는 것(어쩐지 옛날보다 삶은 감자가 맛이 없더라니!) 같은 재미난 이야기도 많고,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대중음식으로 누구나 대충 요리해 먹는 음식일 뿐인데 외국물 먹은 요리사들에 의해 허영심이나 채우는 음식으로 전락했다는 수긍할 만한 주장도 좋았습니다. 파스타는 "맛의 달인"에서는 전채일 뿐이라 묘사되고, 얼마 전 읽었던 야마자키 마리의 만화에서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식으로 나오는데 정말 포지셔닝이 오버스럽기는 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너무 강한 주장 탓에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는데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분명한 만큼 한국 음식에 관심 많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4/11

탐식생활 - 이해림 : 별점 2.5점

탐식생활 - 6점
이해림/돌베개

여러가지 재료와 요리에 대한 정보를 멋진 사진, 그리고 맛볼 수 있는 곳이나 전문가가 누구인지 함께 소개하며 알려주는 책입니다. 구성이라던가 문체 등에서 '에스콰이어'나 '지큐' 같은 잡지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보그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있어보이는 문체와 고급진 사진 때문이죠.

그러나 잡지 기사처럼 단순히 특정 가게나 재료, 요리의 홍보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크게 네 개의 주제로 48개의 재료와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름 새로운 정보에 대해 많이 알려줄 뿐 아니라, "만화 고기 스테이크" 처럼 만화 속 고기의 종류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까지 알려주는 재미난 항목도 있는 덕분입니다. 조개를 맛있게 먹는 법이나, 완벽한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한 방법 같은 레시피에 가까운 정보도 좋았고요.
이러한 새로운 정보 중에서는 저지 우유에 대한 소개가 제일 반가왔습니다. 우유의 맛을 결정하는 유고형분 함량이 홀스타인보다 높으며, 실제로 영국에서는 왕실에 납품된다니 그 맛이 무척 궁금해지네요. 조사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우유의 밀크홀 1937에서 구입 가능하고 가격도 일반 우유의 3배 정도라니 기회가 되면 한 번 구입해봐야겠습니다.
그 외에는, 양파가 이 땅에 들어온지는 고작 100여년, 지금과 같은 불고기는 첫 등장이 1960년 대인데 지금은 우리나라 요리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재료와 요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에요. 재료와 요리가 얼마나 파급력, 전파력이 강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 외에도 과메기 제조법의 역사 등 재미난 정보가 많습니다.

레시피 정보로는 맛있는 밥을 짓는 방법이 기억에 남네요. 쌀을 씻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쌀을 보관하고 밥을 지어야 맛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쌀을 과하게 박박 문지르지 말고, 손끝을 세워 한 방향으로 돌리면서 손가락으로 쌀을 씻는다, 이때 물은 쌀이 푹 잠길 정도로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혼탁한 물을 자주 따라 내면서 조금씩 보충하는 식으로 씻는다, 맑은 물이 나오면 쌀에서 나온 여분의 전분이 충분히 제거되었다는 뜻. 불리는 시간은 보통 30분이지만, 30분을 기준으로 잡고 쌀의 상태에 따라 가감한다. 1시간을 넘길 필요는 없다'로 이어지는데,일본 드라마 "협반"에서 알려주었던 방법과 비슷하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특히 쌀을 도정하면, 빠르게 산화하고 변질되어 2주 이상 그 맛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쌀을 쌓아 두던 그 옛날 부잣집들보다 “쌀 한 되(1.8리터) 팔아 오라.”라고 하던 가난한 집들의 쌀 구입법을 따라야 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정보였어요.
아이디어가 바탕이 된 특별한 요리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만화 고기 스테이크 외에는 곰탕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도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지 않나 싶군요. 곰탕 최적의 온도에 대한 고찰, 밥을 미리 말아 넣는 토렴의 과학적 원리(찬 밥에 수분을 더하고 온도를 높이면 전분은 다시 말랑말랑진다)와 적절한 염도에 대한 이야기가 잘 설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 곰탕이 먹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책답게, 재료에 대한 고민도 빠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맛의 달인"에서 지로가 공장식 '브로일러 닭'의 사육 환경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처럼 말이지요. 이 책에서도 닭고기와 달걀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맛있는 달걀은 결국 신선도와 사료 문제라고 하니, 달걀은 비싼 달걀을 10구짜리를 사서 먹는게 가장 맛있다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는 단지 '맛'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가격 차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도 한 집의 가장으로서, 단지 맛 만을 추구하지 못하는 현실은 아픕니다만, 앞으로는 마트에서 저렴한 특가 상품과 친환경 등 생산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생각한 상품 중 어떤 상품을 골라야 할 지 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많고, 어떤 이야기는 특정 업소에 대한 광고에 가깝다는건 감점 요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음식, 요리 관련된 다른 책들을 많이 접해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재미있는 정보를 고급진 사진, 편집과 함께 즐기실 수 있는 만큼,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6/10/03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2 - 니토리 고이치 / 이소담 : 별점 2점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2 - 4점 니토리 고이치 지음, 이소담 옮김/은행나무

전편을 읽고 호감이 생긴 덕에 연이어 읽게 된 후속권입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1권에 미치지 못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런 류의 요리 전문가 이야기에서 가장 최악인 "맛있는 음식 먹고 한 건 해결!"이라는 내용이 수록된 세 편 중 무려 두 편 - "가미나리오꼬시", "사쿠라모찌" - 에서 펼쳐지는 탓입니다. 단절된 부자 관계가 맛있는 오꼬시 과자를 먹은 후 회복되고, 대입 실패 충격으로 거식증에 걸린 아가씨가 모찌떡을 먹고 식욕을 회복한다는데, 인생사가 이렇게 쉽게 풀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1권에서도 마지막 이야기가 이러해서 조금 불안했는데 역시나,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가 않는 걸까요.

물론 즐길거리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화과자 장인이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소소한 드라마를 해결해 나간다는 전개 자체는 나쁘지 않고, 이에 따라 각 이야기별로 등장하는 화과자들은 충분히 볼거리이긴 하거든요. 캐릭터 관계가 1권에 비하면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도 시리즈 독자로서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구리타와 아오이의 관계, 아오이의 성이 호죠라는 것, 그녀가 대단한 집안의 딸이라는 암시 등이 그러합니다(그런데 이 장면은 "맛의 달인" 1권에서 신선한 재료를 위해 목장으로 유우코를 데려간 지로에게 목장 사람이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장면과 똑같습니다... 이 정도면 일종의 클리셰라고 해도 무방할 듯?).

그 외 변두리 오래된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인간관계, 아사쿠사 곳곳을 발로 누비며 쓴 듯한 디테일한 배경 묘사도 여전해서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기에, 그리고 기본적인 재미가 떨어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4권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1권은 그럭저럭, 2권은 실망이라 3권을 읽어야 할지 망설여지는군요. 점수 하락 추세로 보면 그만 읽어야 할 듯 싶은데, 일단 인터넷 리뷰 등 추이를 좀 지켜보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이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가미나리오꼬시"

오코노기라는 남자가 오꼬시 과자를 찾았다. 이유는 아내와 사별한 후 멀어진 아들 가즈야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구리타와 아오이는 이런저런 추리로 즐겨 먹었음직한 가미나리오꼬시 과자 가게를 추천해 주었고, 심지어 직접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들은 강한 거부감만 보이는데...

등장하는 화과자는 아사쿠사의 명물이라는 가미나리오꼬시입니다. 구리타가 직접 만드는 묘사를 통해 재료와 제법까지 자세하게 소개되는데, 묘사와 설명 모두 맛깔집니다. 

"왜 가즈야가 가미나리오꼬시를 싫어하는지?"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도 괜찮습니다. 답은 "오꼬시"라는 화과자가 사실은 두 종류 - 도쿄의 가미나리오꼬시와 오사카의 아와오꼬시 - 라는 것입니다. 화과자에 대한 전문 지식과 수수께끼가 잘 결합되어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이에 대해서 구리마루당을 습격한 가즈야가 오사카 사투리를 쓴다는 묘사로 비교적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좋았고요(물론 한국인 독자에게는 별로 공정치 않았습니다만...).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엇나가기 시작한 아들과의 극심한 갈등이 과자 하나로 해결된다는 전개는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맛의 달인" 에피소드 중 코이즈미 국장이 아들에게 '급제죽'이라는 요리를 해 주고 관계를 회복한다는 이야기와 굉장히 흡사한데, 1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중편 소설이 30여 페이지도 안 되는 만화 단편과 흡사하다는 것부터가 문제죠. 참고로 구리마루당에서 날뛰는 가즈야가 구리타의 눈빛에 제압당하는 묘사도 만화적이라 아주 별로였어요. 덧붙여진 부연 설명도 완전한 사족일 뿐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오꼬시가 사실은 두 종류였다는 소재 자체는 좋았는데, 억지스러운 부자 화해보다 다른 이야기로 쓰는 게 더 나았을 겁니다.

"만주"

구리타와 아오이는 아사쿠사 연예홀로 향했다. 단골 라쿠고가 슌코테이 후쿠미미가 주문한 만주를 배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공연을 감상하던 커플은 후쿠미미의 스승 다이쇼의 호출로 후쿠미미가 급작스럽게 잠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면 유도제가 든 만주를 먹은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세 명의 용의자가 떠오르는데...

나름대로 진지한 범죄가 등장하는 추리물입니다. 엄연히 독(?)을 먹인 것이라 일상계로 보기는 무리니까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내용이 라쿠고 "만주가 무서워"와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만주를 실컷 먹고 "지금은 녹차가 무서워"라고 이야기했다는 라쿠고인데, 이 라쿠고를 공연하려 한 후쿠미미가 만주는 먹었지만 음료수를 먹은 흔적이 없다는 것에 착안한다는 식으로 본편과 이어지는 전개가 꽤 절묘합니다.

하지만 만주와 어울리는 음료수는 우유라고 단정짓는 추리는 비약이 심했습니다. 범인을 끌어내기 위해 쓰레기장으로 향한다는 전개도 어색해고요. 쓰레기장에 우유팩이 한 개만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우유팩이 발견되더라도 범인이 빠져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만주가 도구에 불과할 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단팥빵의 기원이 만주라던가 하는 식으로 화과자에 대한 정보가 펼쳐지기는 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조연 수준도 안 되는 단순한 먹거리에 불과합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인 화과자와 이야기의 조화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어요.

후쿠미미의 강철 체력 때문에 힘들어한 제자 고미미가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동기 정도만 참신할 뿐, 별로 건질만한 내용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사쿠라모찌"

오랜 라이벌 아사바가 대입 실패로 거식증에 걸린 여동생 가에데를 위해 사쿠라모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쿠라모찌의 핵심인 벚나무 잎을 구할 수 없는 계절이지만, 구리타는 장인의 자존심을 걸고 분투하는데...

추리물도 아니고, 음식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된다는 단점만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사쿠라모찌를 만드는 과정이라도 재미있게 풀었어야 했는데 그 역시 영 아니에요. 무엇보다도 구리타의 행동은 영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장인의 자존심을 걸고 벚꽃잎을 얻어오지 않겠다!라고 결심해서 모찌 제작이 벽에 부딪히는 과정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벚꽃잎(화과자의 70%)은 이즈의 한 공장에서 만들어 납품하니까 공장에 가서 벚꽃잎을 받아오자!라는 마무리가 참으로 황당했던 탓입니다. 이럴 거라면 공장에 가서 받아오나 동네 가게에 가서 얻어오나 결국 같은 거잖아요?

앞서 말씀드렸듯 사쿠라모찌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결말도 최악입니다. 거식증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서 나을 수 있는 병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심리적 문제가 크다니 그럴 수 있다 쳐도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작품 속 등장하는 말 - 곤란할 때,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다정한 사람이 옆에 있어준다 - 는 짠하게 와 닿으며, 고토토이라는 지명, 미메구리 신사에 대한 설명 등 아사쿠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여전히 좋습니다. 구리마루당을 살리기 위한 신제품 홍백 사쿠라모찌 설정도 나쁘지는 않고요.

허나 전개가 이래서야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06/15

한국에만 있는 정통 중화요리에 대한 수사보고서 - 최준식 : 별점 2점

한국 문화 전문가인 저자가 한국에만 있는 "중화 요리"가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느 시대의 음식인가를 밝히고 중요 요리와 그 역사,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왜 "중국 요리"가 아니라 "중화 요리" 였는지 여태까지 별 생각이 없었는데, "중화" 라는 단어가 쓰인 이유와 "화교" 라는 말의 유래, 한국의 화교는 어떤 사람들인지 설명하는 등 내용은 아주 본격적입니다.

저자의 질문은 몇 페이지 되지 않아 답이 나옵니다. 화교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한 건 1882년 임오군란 발발 시 중국에서 동원된 청나라 군대를 따라온 40여 명의 청나라 상인들이며, 당시 한국에 온 중국 군대는 산동의 연태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라 이들은 산동에서 온 사람들이었다고 설명됩니다. 그 이후 산동 반도와 인천항 사이 정기선이 오가게 되고, 의화단 사건으로 산동 주민들이 대거 이주했고요. 때문에 우리나라의 중국 음식은 산동 음식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본토와 고립되어 100여년이 지났기에 우리나라의 중화요리는 본토와 달라지게 되었다고 설명되죠. 즉, 우리나라의 중국 음식은 20세기 초의 산동 요리이며, 해삼과 죽순 등 청나라 말기의 식재료를 고집 - 당시 산동 요리가 궁중요리였기에 - 하는 것입니다!

이 다음은 유명한 음식들의 한국화 과정을 소개합니다. 짜장면과 짬뽕이 대표적인데 이 두 음식의 역사, 유래는 이미 다른 많은 컨텐츠에서 접했던 것이라 별로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짜장면의 원조인 중국 산동 "작장면"의 특징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부분은 나름 독특했고, 짬뽕이 아니라 "짬뽕밥"에 대한 소개와 볶음밥에 짜장 소스를 곁들이는 이유는 우리나라 볶음밥이 맛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인상적입니다. 볶음밥 쌀이 인디카 종이어야 잘 볶아지고 맛이 있다는 이유에서인데 굉장히 그럴듯 했어요. "맛의 달인" 의 한 에피소드에 충분히 쓰임직 할 정도로요. 최소한 이 내용을 먼저 알았더라면 "경성탐정록" 의 "소나기" 에피소드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다른 유명 음식들의 이름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난자완스, 유린기 등 몇몇 음식들은 그 설명 자체가 충분히 새로왔을 뿐더러 한국의 중화요리는 그게 무엇이든 굴소스를 잔뜩 넣고 이런저런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며 전분이 많고 오래 찌는 등으로 결국 맛이 비슷비슷하다는 설명도 와 닿습니다. 저도 한국식 "중화 요리"를 좋아해서 자주 먹긴 하지만, 그게 그거라고 생각될 때가 많거든요. 물론 오리지널 중국 요리도 향신료나 향초의 쓰임새가 제 입맛에 맞는다고 하기는 어렵긴 하지만요.

이렇게 요리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을 내용이 많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 스스로 가장 큰 참고가 된 건 산동 출신 제자 마 씨아오루의 도움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로 내용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입니다. 인용되는 사료의 깊이와 넓이 모두가 부족하여 충분한 고증, 연구를 거친 결과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150여 페이지가 안되는 짤막한 분량도 읽는 데에는 좋지만 깊이를 느끼게 하기는 역부족이고요. 여기에 12,000원이라는 가격은 많이 과합니다. 거의 한 페이지에 100원 꼴인데, 그 정도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은 되지 않으니까요. 왜 "중국 요리" 가 아니라 "중화 요리" 인지도 결국은 설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도 있고 여러모로 참고할 점은 많지만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는 결과물은 아닙니다. 가격을 내려 "살림 지식 총서" 의 한 권으로 내 놓았더라면 모를까, 이대로라면 딱히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2013/08/13

스시 장인: 지로의 꿈 - 데이빗 겔브 : 별점 3점

스시 장인: 지로의 꿈 - 6점 데이빗 겔브 감독, 오노 지로 외 출연/아트서비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은, 긴자의 최고급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의 주인인 일본 최고의 스시 장인인 80대 지로와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요시카즈의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이기에 대단한 재미는 없습니다. 전해주는 메시지도 항상 위를 올려다보고 끝없이 노력하라는 구태의연한 것이고요.

그래도 이 메시지를 75년간 한 우물만 판 장인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으며, 촬영과 음악이 아주 뛰어나서 몰입하기는 좋았습니다. 특히나 백미는 지로의 코스를 교향곡 3악장에 비유하며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담아낸 장면이에요.

아울러 "맛의 달인"이나 "미스터 초밥왕" 등 여러 요리 만화에서 보아왔던 것이 얼마나 구라인지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수확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미하라는 담배를 핀 요리사 료지를 쫓아냈었는데, 일본 최고의 스시 장인 지로는 담배를 피웠고 끊은 이유도 단지 건강 문제였다는 사실. 한 번에 적절한 초밥의 양을 덜어내고, 일수법 같은 묘기까지 동원해서 재료가 손에 닿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만화 속 이론과 달리, 일본 최고의 스시 장인은 스시는 양손을 이용하여 여러 번 뒤집어 가며 만들어내더라라는 것 등입니다.

만화 같은 부분은 손님의 성향을 파악해서 왼손잡이면 반대편에 스시를 놓는다든가, 남녀에 따라 초밥 크기를 다르게 해서 먹는 시간을 똑같이 한다는 정도밖에는 나오지 않더군요.

그래도 한 가지, 예전에 지로에게서 수행했던 요리사가 요시카즈가 가게를 이어받는 것에 대해 "아버지와 같은 수준이라도 고객은 떨어져나갈 것이다.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는데, "맛의 달인"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더군요. 유명 요리집의 후계자가 아버지 수준의 음식을 제공하지만 단골들이 아직 멀었다고 질책하는 에피소드였죠. 해답은 메인디시가 아니라 다른 부분을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기억되는데, 요시카즈도 한 번쯤 고려해보면 좋겠네요.

어쨌거나 결론은 추천작. 재미보다는 요리를 좋아하고 스시를 좋아한다면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단, 스시가 강하게 땡긴다는 후유증은 염두에 두시기 바래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제일 저렴한 코스가 3만 엔부터라고 하고, 한 코스를 먹는 데 15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고 하니 제가 평생 먹어볼 일은 없겠죠? 어차피 후쿠시마 이후 일본 스시를 먹을 생각 자체가 사라져버리기도 했지만요. 그러고 보니 후쿠시마 이후 일본 스시계에 위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요시카즈가 소고기 스시 같은 걸 개발하면 먹힐지도?

2014/12/02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박상현 : 별점 3점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6점
박상현 지음/따비

저자가 규슈 지역을 다년간 수차례 방문하여 직접 발로 뛰면서 맛본 다양한 요리들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책입니다. 

요리들의 과거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설명해 주는 부분은 만화까지 망라하는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간략한 미시사, 통사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요리들의 현재는 현재의 맛이 어떠하며, 대표적인 가게는 어디에 있는지가 중심입니다. 때문에 일종의 맛집 탐방기이자 여행기로 읽히기도 하는데, 지금 해당 요리가 해당 지역에서 어떤 의미로 이해되는지를 설명하는 식문화 해설서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특히 요리의 발전 과정에서 일본, 그리고 규슈라는 지역 및 문화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 부분을 짚어내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메밀국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가 '고도의 숙련'이라서 단순한 반복작업에서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에 열광하고, 장인들이 대접받는다는 것입니다. 반복작업이 핵심인 탓에 재료가 천차만별이고 아이디어가 많이 가미될 수 있는 스시나 라멘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까지 소개하니 정말 장인의 메밀국수를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또 새롭게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여러 가지 요리들이나 상품들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요리'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이자 '상품'으로, 저자의 말대로 '스토리'와 '경험'을 파는 것들입니다. 온천 마을에서 명물 음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온타마란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무엇이 되었건 온천 달걀만 올려서 먹을 수 있으면 되는 기획 상품으로, 온타마란돈을 찾아다니는 여행 코스마저 개발되었다는군요. 현대에 새롭게 발굴한 식문화 상품인 셈이지요. "맛의 달인"이나 "신장개업" 등의 만화에 흔히 나오는 단순한 지역 특산 별미 음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제 직업이 일종의 경험 디자인이라 그런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그 외에 문체도 깔끔하고 사진과 편집도 완벽한 수준이라 읽는 재미를 더해주며, 저자가 맥주를 사랑한다는 것이 글 전반에 묻어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면 술 한잔이 빠질 수 없지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맛집 소개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거의 절반 정도의 분량이 평범한 블로거의 일본 맛집 탐방기와 다를게 없거든요. 사진만 봐도 맛있어 보이고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제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돈가스의 탄생"이나 황교익, 주영하의 책들처럼 음식에 대한 통사나 미시사적인 시각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졌지기를 바랬는데 말이지요.

또 제목 그대로 "규슈"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지방에 대한 소개는 부족합니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규슈만 돌아다녀도 일본의 식문화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목부터가 "규슈를 먹다"인데 다른 지방 먹거리가 없다는 단점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일 수 있고요. 하지만 그래도 진짜 맛있는 음식은 도쿄에 많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도 진짜 맛있는 회는 산지가 아니라 서울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또 도쿄 쪽이 실제 방문할 기회나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하고요.

아울러 가격 역시 쉽게 권해드리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책의 완성도와 만듦새는 훌륭하나, 비례해서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합니다. 조금만 더 저렴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와 의미, 자료적 가치를 모두 포함하는 책이기에 식문화나 음식 역사 관련 서적, 혹은 맛집 구루메 기행과 같은 책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덧 : 이 책을 통해 스시장인 지로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로의 스시를 먹어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4/12/04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 타카기 나오코 / 채다인 : 별점 2.5점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 6점
타카기 나오코 지음, 채다인 옮김/애니북스

알라딘 중고서적 산본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한 타카기 나오코의 구루메 에세이 만화입니다. 이글루스 유저분들께는 채다인님이 번역하신 것으로 더욱 유명하지요.

“처묵처묵 여행만화”라는 다인님 소개 그대로, 에세이 만화가로 유명한 저자가 일본 방방곡곡의 맛을 찾아 여행한 기록 만화입니다. 총 일곱 개 지방의 여행기가 실려 있습니다. 현재의 근거지인 관동의 도쿄와 사이타마, 관서는 작가의 고향인 미에현 근처의 와카야마, 오사카, 그리고 큐슈까지, 그야말로 방방곡곡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이런 곳들에 여행 가서 명물 요리들을 하나씩 전부 먹어보고 품평하는게 내용의 전부로, 아주 약간의 에피소드가 곁들여져 있지만 일상계스러운 것들이라 딱히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훈훈한 구루메 식도락 여행기로도 그런대로 볼 만했습니다. 해당 지역의 명물이 어떤 것이고 어디서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를 쉽게 알려주는 데 충실하거든요. 즉, 이런 류의 만화의 핵심인 정보 제공 측면에 매우 부합하는 만화라 할 수 있습니다. "맛의 달인"의 일본 맛기행인지 뭔지는 환경이나 전통 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과한 시도가 만화를 망치고 있는데, 이 작품은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여행기 분위기라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곱 개 지방의 많은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음식 베스트 3는 아래와 같습니다.

  • 1위 : 사이타마 히가시마츠야마의 닭꼬치. 닭꼬치라는 이름인데 돼지고기가 대부분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뽈살, 간장, 혀 모두 맛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찾아가서 종류별로 전종목 재패를 해보고 싶어집니다. 돼지 생간 + 생파 조합의 꼬치도 있다는데 맛이 죽인다고 하니 이 역시 도전을! (그런데 돼지 생간은 기생충이 있지 않나요?)
  • 2위 : 다른 구루메 만화나 책에서 접했던 쿠마모토의 말고기 요리. 항상 먹고 싶었던 요리입니다.
  • 3위 : 야마가타의 냉메밀국수. 차가운 닭육수 국물이라는데 상상이 잘 안되네요. 식은 닭칼국수가 그렇게 맛있을리는 없을거 같은데... 괴식스럽기도 하지만 기대가 됩니다.

아울러 쉽게 그린 듯하지만 나름 정성이 엿보이는 그림(특히 음식 그림이 꽤 괜찮습니다)과, 뒷부분에 부록 만화와 사진,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의 베스트 음식을 선정하고 있는 구성도 정리 차원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정보"라는 목적에 충실한 만화로, 에세이 만화, 그중에서도 식도락 구루메 탐방기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6/11/19

백미진수 - 단 카즈오 / 심정명 : 별점 4점

백미진수 - 8점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한빛비즈

나오키상 수상작가이자 일본 현대 문단의 원로로 다자이 오사무와 친구이기도 했던, 단 카즈오의 4계절 음식을 다룬 에세이집입니다. 저자가 음식을 정말로 좋아하고, 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재에 깊은 애정이 담겨있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단의 실력자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썼으니 애초에 재미가 없기는 힘들겠죠? 짙은 애정이 묻어나는 재미있고 좋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묘사 역시 빼어납니다.

"바깥 껍질을 벗긴 멍게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오이와 함께 식초로 무쳐 먹으면 후두부를 콕 찌르는 것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와 맛이 난다. 잊고 있던 여름. 잊고 있던 유카타를 입은 여인. 잊고 있던 여인의 색정. 문득 입에서 후두부 언저리에 걸쳐 이런 것들을 까닭도 없이 상기시키는 듯한 희한한 느낌이다.", 예레반이라는 도시의 코냑을 설명하며 "내게 천상의 여인이 아니라 지그시 다가오는 지상의 여인 같은 맛이었다."처럼 공감각적이면서도 소재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그려낸 묘사가 특히 좋았습니다.

요리를 즐겼다는 말에 어울릴만큼 인상적인 레시피도 몇가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몇가지 참고삼아 정리해 봅니다.

"금병매"에 적혀있는 족발 삶는 방법.

'돼지 발의 털을 깨끗이 밉니다. 그리고 긴 땔나무를 하나만 아궁이에 넣고, 기름과 간장을 큰 그릇에 가득 채운 뒤 향신료인 회향과 팔각을 더해 잘 섞은 다음 뚜껑을 꼭 닫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좋은 냄새가 솔솔 올라오면서 다섯 가지 맛이 고루 갖춰지는데, 그러면 이것을 깨끗한 큰 접시에 담아 생강과 마늘을 넣은 작은 접시와 함께 찬합에 넣어...'

본인 스스로 본고장의 맛 (클램차우더?)과 비슷하다는 바지락 차우더.

우선 냄비에 물을 두세 컵 정도 넣어 끓인 뒤 바지락을 집어 넣고 뚜껑을 덮는다. 바지락이 입을 벌리면 바로 불을 끄고 그대로 식힌다. 베이컨은 가능하면 뜨거운 물에 데쳐 작게 조각내고 양파는 잘게 썬 다음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약한 불로 살살 볶는다. 이 때 마늘을 조금 넣고 볶는 편이 더 맛있다.

양파가 반투명한 색이 되면 밀가루를 적당량 넣고 볶다가 밀가루, 베이컨, 양파가 흐물흐물 이겨지면 바지락 맛국물을 붓고 덩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정성껏 섞는다. 다 풀렸다면 약한 불에서 잘 저으면서 우유를 두 통쯤 부으시라. 적당히 걸쭉하다 싶을 때까지 우유나 바지락 맛국물을 보태면서 끓인 다음 소금 간을 하면 수프는 완성이다.

이제 건더기 차례다. 바지락을 껍데기에서 분리해 조금 남은 맛굴물 속에다 헹궈 모래를 제거한다. 바지락은 기호에 따라 잘게 써는 편이 좋을 수 있다. 셀러리도 잘게 썬다. 그 외에 감자를 작게 깍둑썰기 해서 오 분 정도 소금물에 삶아 꺼내놓는다. 그다음 미리 만들어둔 걸쭉한 수프를 불에 올리고 셀러리와 감자를 넣어 한소끔 끓기 시작할 즈음 바지락을 더해주면 끝이다. 싱겁다 싶으면 소금을 치고 너무 되다 싶으면 우유로 묽히고 부드러움이 부족하다 싶으면 버터를 더 녹인다.

중국의 동남참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우선 동남참게를 잘 씻은 뒤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를 실로 묶는다. 따로 자잘한 톱밥을 준비해 이 톱밥 속에 다진 생강, 다진 파, 후추 등을 섞어둔다. 여기에 고급술과 식초를 따라 흠뻑 스며들게 한다. 이제 동남참게의 표면을 톱밥으로 빈틈없이 감싸고, 그 위에다 잘 반죽한 점토를 동그랗게 둘러싸서 굽는다. 점토에 전체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면 재빨리 점토와 톱밥을 치우고 아직 뜨거운 게살을 입맛에 맞는 간장에 찍어 먹는다.

맛의 달인에서 완벽한 찜요리 대결에 나옴직한 독특한 조리법이네요. 뭔가 걸식계도 떠오르고요. 

단순히 음식 이야기 이외의 다른 소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터운 작가의 인맥을 활용한 이야기들, 또 전쟁 당시에는 중국에서 보도반원 생활을 했고, 그 외 해외 여행 경험 등 워낙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기에 담고 있는 소재의 폭도 넓어요. 여기에 본인의 유쾌하면서 대책없고 화끈한 성격이 더해져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베스트 에피소드는 중국 신징 근처 러시아인 부락에서 러시아인 바우스 부부와 1년 정도 함께 살 때의 잼 만들기 에피소드입니다. 보드카를 마시면서 잼 만들기를 하는데 부부가 다른 곳으로 가게되어 단 가즈오가 잼 젓기를 맡았는데, 그들이 돌아올 때 까지 젓기만 해서 결과물이 잼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되었다는 결말입니다. 러시아인과 보드카, 그리고 단 가즈오가 만나서 제대로 시너지를 보여주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즐겁고 재미있으며 때로는 유용한 좋은 에세이집입니다. 최근 읽은 음식, 요리 관련 에세이 중에서도 최고로 꼽고 싶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음식과 요리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두 즐겁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덧붙이자면 "술안주라는 놈만큼 반가운 게 없다. 정말 술꾼에게만 주어진 하늘의 은혜 같다. 마시는 사람이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신의 가호를 많이 받는다니, 술꾼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지 않은가."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대단한 애주가라는게 눈에 띄는데, 이러한 점과 대책없고 유쾌한 성격을 미루어 볼 때 로산진이 우미하라(가이바라)라면, 단 가즈오는 이와마 소다츠같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간만에 준 4점이라는 높은 점수는 제가 "술 한잔 인생 한입"의 광팬인 탓도 클 듯 합니다.

2013/09/09

에도의 패스트푸드 - 오쿠보 히로코 / 이언숙 : 별점 2점

에도의 패스트푸드 - 4점
오쿠보 히로코 지음, 이언숙 옮김/청어람미디어

17~19세기까지의 에도막부 전성기 때의 다양하게 발달한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식문화 및 일종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제목 그대로 포장마차에서 다루었던 다양한 패스트푸드는 물론, 가이세키 요리로 대표되는 요리집 요리까지 당대의 식문화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에도라는 도시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담뿍 포함된 것 역시 매력적이고요.

주제답게 다양한 요리에 대한 소개가 압권인데, 예를 하나 들자면 "맛의 달인"의 두부 승부 편에서도 등장했었던, "두부백진"에 실린 최고등급의 두부요리 "절품"에 대한 것입니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절품 7종 : 아게나가시(튀긴 두부), 매운 맛 두부, 두부 산적, 탕 두부, 유키게메시, 구라마 두부, 신노우동 두부
  • 아게나가시 - 튀긴 두부를 탕 두부처럼 다시마를 우려낸 국물에 조린 것
  • 매운 맛 두부 - 매운 맛은 생강의 매운 맛
  • 두부 산적 - 두부를 2.5센티미터의 네모로 썰고, 다시 두께 1.5센티미터로 썰어 꼬치에 3개씩 꽂아 갈색이 날 때까지 구운 뒤 꼬치를 빼고 뚜껑 있는 도자기 그릇에 담아 겨자, 식초, 된장으로 만든 소스를 뿌리고 겨자 열매를 얹은 것
  • 탕 두부 - 두부를 갈분탕에 따뜻하게 데워서 날간장을 끓이고 가다랭이포를 넣어 걸러낸 뒤 파, 당근 간 것, 겨자 가루를 넣은 요리.

그러나 단점도 확실해요. 너무 재미가 없어요. 좀 재미있게 여러 가지 도판을 곁들여가며 소개해 줄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이른바 4대 패스트푸드인 덴푸라, 니기리즈시, 메밀국수, 장어구이에 대해 소개하는 초반부는 나름 괜찮았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논문 느낌이 들 정도로 학술적인, 그냥 정보의 나열에 불과해서 읽기가 힘들어집니다.

일본의 여러 가지 요리의 역사와 그 발전상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읽으실 가치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미시사 서적으로의 기본적인 재미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