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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시가 아키라 / 김성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 6점
시가 아키라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미타는 택시 안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렸는데, 그것을 주운 남자가 폰 속 도미타의 여자친구 아사미에게 반하고 말았다. 남자는 전문 해커이자 연쇄 살인범으로,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아사미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한 편, 인적이 뜸한 야산에서 신원 불명의 여성 변사체가 잇달아 발견되어 경찰은 수사에 나서는데...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최종 수상작입니다. 최근 상당히 화제가 된 듯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SNS는 누구나 쓰는 반면, 해킹에 취약점이 많아서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은 많습니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활용한 작품이 개중 많은 편이고요. 해킹에 촛점을 맞춘다면 찬호께이의 "망내인"이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망내인"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살인이라는 실제 범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때문에 대단한 해킹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현실적입니다. 특히 살인 직전까지 페이스 북 등을 잘 활용하여 피해자를 옭아매는 과정은 설득력이 높아요. 비슷하게 페이스 북을 주로 활용했던 "리얼 라이즈"는 영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었는데 말이지요. 아마 이런 부분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게 된 요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우선 범인은 습득한 도미타의 핸드폰의 비번을 풉니다. 도미타의 생일이 비밀번호였지요. 그런데 이를 알아낸 방식이 기발합니다. 마침 전화를 걸어 온 애인의 이름이 화면에 표시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의 페이스북 가입자를 조사한 뒤 바탕 화면 사진과 일치하는 가입자를 찾아냅니다. 이를 통해 도미타의 페이스북 계정을 알아내어 생일을 확인했던 겁니다.
다음으로는 도미타의 핸드폰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 놓은 후 폰을 돌려줍니다. 페이스 북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도미타, 아사미와 관련된 가짜 페이스북 친구들을 다수 만들어 연결하고요.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아사미에 관련된 정보를 하나둘씩 입수하면서 도미타 폰에 고의로 랜섬웨어 감염을 일으킨 뒤, 친구 소개를 가장하여 보안 전문가로 직접 나타나 도미타와 아사미의 신임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사미에게도 개인 정보 유출과 해킹 등의 사건을 일으키고 해결해 준 뒤, 틈을 타 납치하는데 성공합니다.
페이스 북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건 약점이며, 도미타의 직장 동료로 가장한 고야나기의 질척거림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그럴싸한 현실 속 해킹 수법이라 생각됩니다. 도미타 핸드폰 속 사진의 GPS 정보를 분석하여 아사미의 집이 어디 근처인지를 알아낸다던가 하는 디테일들도 괜찮았으니까요.

여기에 더해 범인이 이미 살해하여 유기한 피해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믿게 만드는 상황도 아주 인상적이에요. 피해자들의 스마트폰만 살려 놓은 뒤 가끔 문자 메시지 연락을 하는 정도인데 이게 아주 잘 먹히거든요. 가족, 친지와 멀어지고 모든 걸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현대 사회이기에 가능했던 속임수이지만, 실제로 아주 그럴듯해 보여서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아사미를 납치하여 살해하려는 실제 범행 쪽 이야기는 아쉽게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우선 아사미에게 누드 사진을 보내는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보안 전문가 우라노로 가장하여 신뢰를 쌓았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범죄면 경찰에 바로 신고할 수도 있잖아요? 다케이와의 불륜을 암시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을 해킹하여 게시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케이의 행동을 컨트롤하는건 불가능한데 다케이가 경찰에 신고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 범행을 통해 다케이를 아사미로부터 떼어 놓는다고 해도 범인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이보다는 작품 자체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리얼 라이즈" 수준 정도의 페이스 북 조작이 더 현실적입니다. 조작한 나의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퍼트려 내 개인의 평판을 망가트리는 정도요. 평판을 망치는 것 외에 페이스 북을 통해 상황을 제어하거나 조작하는건 아무래도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납치는 방심한채 술을 마시는 아사미를 만나 그녀의 술에 약을 타는 고전적인 방식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이럴 생각이었다면 도미타, 다케이를 떼어버리고 차분히 보안 전문가 우라노를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든 뒤 당당히 집에서 납치하는게 정답이었어요. 이미 연쇄 살인 및 사체 유기가 발각되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범행을 서두를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텐더가 분명 아사미와 함께 나가는 범인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사미를 납치한 뒤 그녀가 Siri로 도미타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된다는 결말이 가장 문제입니다. 해킹 전문가인 범인이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어요. 폰이 아이폰이라는걸 명확히 알았는데도 이 기능을 간과한건 납득하기 어려우니까요. 전화를 받은 도미타가 이전 해킹 덕분에 아사미 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해킹과 폰 위치 추적은 별 상관이 없잖아요? 백신을 설치했다면 모를까.

그리고 데뷰작이기 때문이겠지만 소설적인 완성도도 부족합니다. 캐릭터 설정부터 견고하지 못해요. 도미타가 가장 좋은 예입니다. 그는 거의 전편에 걸쳐 아사미에게 의지하는 무능력한 찐따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사미를 구해주고 그녀의 과거마저 모두 이해한다는 대인배로 급작스럽게 거듭납니다. 반면 왠지 모르게 계속 좋은 사람, 훈남으로만 묘사되는 다케이는 반대로 단 몇 줄의 묘사를 통해 불륜을 즐기는 인간 쓰레기로 돌변하여 리타이어해 버리고 말고요.
여기에 더해 아사미가 과거 AV 배우 야마모토 미나요였다는 설정은 왜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와 별 상관도 없을 뿐 아니라 아사미로 가장한 미나요가 아사미의 대학 시절 잠깐의 연애 상대였던 다케이와 다시 만나는 행동은 비현실적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화를 불러올 이유는 없잖아요? 이 과정에서 그녀가 진짜 아사미인 것처럼 심리묘사를 해 가며 독자를 속일 이유 역시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톡톡 튀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닥 기대에 값하지는 않았습니다. 해킹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망내인"을 읽는게 훨씬 낫습니다.

2018/10/26

망내인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2.5점

망내인 - 6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다섯 살 여중생이 인터넷 익명 게시판의 악의적인 소문과 신상 공개를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짓지만 언니 '아이'는 이 사건은 타살이며, 반드시 범인을 찾아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수소문하여 찾아간 유명 탐정은 온라인 사건은 맡을 능력이 없다며 고사했고, 대신에 신비에 싸인 해커이자 '탐정들의 탐정'이라 불리는 '아녜'를 소개해 주었다. 처음에 '너무 쉽고 재미없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문전박대하던 아녜는 며칠 뒤 '예상 외로 재밌는 사건'이라며 의뢰를 받아들였다. 조사가 진행되고 용의자의 범위가 좁혀질수록 몰랐던 동생의 과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중국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7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아이의 동생 샤오원이 자살을 택하게 만든 인터넷 글을 올린 kidkit727을 찾는 전반부만큼은 철야책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좋을만큼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설정부터가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상 공개 때문에 무차별한 비난에 시달린 유치원 여교사가 자살한 사건처럼 현실적인 소재인 덕분입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kidkit727과 탐정 아녜의 현란한 두뇌 싸움도 굉장한 볼거리이며, 이를 친숙한 인터넷 및 각종 기술 용어 설명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동안 용어, 명칭만 알아왔지 실제 기술적인 원리나 내용에 대해서 잘 몰랐던 여러가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최신 기술이 개인 정보 유출, 해킹에 사용되며, 저 역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라서 더욱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해킹이나 첨단 기술에 관련되지 않는 순수한 추리들도 볼만합니다. 아녜의 사회 공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화술과 용의자 분석들도 그럴듯하지만 아이가 아녜의 집을 청소하면서 주요 증거물을 따로 모아 놓는다던가, 모탐정을 보고 아녜에게 어떤 정보가 전달되었을지를 알아내는 장면들 모두 왠만한 정통 추리물 못지 않은 추리적인 즐거움을 가득 전해 줍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용의자가 좁혀진 다음부터는 재미가 한 풀 꺾입니다. 특히 샤오원의 주변 인물 중 iOS 핸드폰을 사용하는 인물이 범인이다! 이후부터요. 용의자도 적고, 그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탐정의 탐문 수사에 불과한 활동이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이후 아녜가 이미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는게 밝혀지는 장면에 이르면 이런 행동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요. 다른건 몰라도 샤오원의 유서를 위조하여 도서관 책에 숨기는 연극은 불필요했습니다. 해킹용 어플리케이션을 심을 수 있었기에 진작에 심어서 정보를 수집했더라면 그만이니까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리리로 자칭한 여학생이 정보를 빼냈다는 증언을 입수했을 때 모탐정을 통해 사진 등으로 그게 누군지 알아냈더라도 게임은 끝나고요. 두쯔위가 증거를 인멸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 복수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그런것 치고는 너무 거창한 연극이었습니다.

또 이어지는 두쯔위에 대한 복수는 전개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아녜가 두쯔위의 와이파이, 스마트폰을 해킹하여 게시판을 위조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작전은 상당히 설득력있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하고, 인터넷 세계에서 무기명으로 무차별한 음해와 신상털기가 자행되며 누구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주제 의식만큼은 빛나지만 두쯔위의 동기가 자신을 모함했던 샤오원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는게 밝혀지는 결말이 문제에요. 너무 작위적이었거든요. 이 진상을 아녜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설정도 당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헛수고 하지 말고 최소한 아이가 복수를 의뢰할 때 알려줬어야 합니다. 그나마 샤오원도 가해자였다는 진상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언니 아이가 샤오원에게 무관심했었다는 부분은 명백한 사족입니다. 어머니와 언니 때문에 샤오원이 자살 결심을 굳혔다는건데 이런 쓸데없는 죄책감을 불러 일으킬 이유는 없어 보이네요. 이렇게 따지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또 샤오원이 자살을 결심한 건 잔혹한 메일 탓이 크고, 메일을 보낸 두쯔위가 아예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에 포인트를 좀 잘못 잡은 느낌도 듭니다.

무엇보다도 분량으로는 1/3 수준인 진범 스중난 파트는 완벽한 사족이자 작위적인 전개의 결정판이라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스중난이 사건의 원인이 된 샤오원 성추행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부터, 원조 교제를 통해 희생양을 물색하는 쓰레기라는 설정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인터넷 세계의 무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면, 스중난이 동생 두쯔위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전문 기술을 활용하여 샤오원을 공격했다 정도가 현실적이고 괜찮았을겁니다. 괜히 절대악으로 포장해서 응징할 필요는 없었어요. 스중난의 파멸을 위한 과정에서 불거지는, 가쉽을 사고파는 사이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처음에만 혹할 뿐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현실성없는 내용이었고, 이 사이트 투자를 미끼로 한 아녜의 작전도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그냥 스중난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동영상만 유포해도 끝날 일인데 쇼맨쉽이 지나칩니다.

그리고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못한 것도 단점입니다. 가난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빼어난 지성을 지닌 의뢰인이자 주인공 아이, 천재 해커 탐정으로 처음에는 비호감덩어리였지만 알고보니 정의의 화신이라는 아녜의 캐릭터 설정부터가 흔해 빠진 일본 추리 만화를 답습하여 식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천재 탐정, 해결사가 첫 의뢰인과 컴비가 된 후 자기 집에 거주하게 하면서 자기 일을 돕게 하는 에필로그는 "시티 헌터" 를 떠오르게 만들고요.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투자자 그룹 SIQ의 2인자로 잘생기기까지 해서 아시아판 리처드 기어로 보인다는 스투웨이가 산발에 평균 이하로 보이는 아녜였다는 반전은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설정의 극치었습니다. 사채꾼 우시지마가 알고보니 정의의 억만장자 토니 스파크였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차라리 은둔하고 있는 천재 이노우에가 아녜였다면 모를까... 이 반전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전체 700여 페이지 중 kidkit727의 정체가 두쯔위였음을 밝혀내는 약 절반 가량의 분량은 별점 3점을 줘도 좋을 만큼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두쯔위에 대한 복수가 진행되는 150여 페이지는 앞서 말씀드렸던 작위적인 결말 때문에 진행 과정은 흥미진진함에도 별점은 2.5점 정도고요. 그러나 나머지 약 200여 페이지에 해당되는 스중난 파트는 총체적인 난국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를 절반 정도로 줄이고, 스중난은 아녜와 같이 조력자의 위치로 하여 마지막 두쯔위 자살 직전에 그녀를 구해주고 개과천선 (?) 한다는 내용이었다면 별점 3점도 충분했을텐데 아쉽네요.

노골적으로 에필로그에서 시리즈임을 어필하는데 앞으로 계속 읽어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20/03/06

식스웨이크 - 무르 래퍼티 / 신해경 : 별점 2.5점

식스웨이크 - 6점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기 2493년, 4백 년 항해 예정의 항성 간 이민 우주선 승무원인 마리아 아레나는 마른 피로 얼룩진 클론 재생 탱크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런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 마리아는 새로 깨어난 클론이 자기뿐만 아니라 여섯 명 승무원 전원임을 깨닫게 되고, 클론 재생실에는 칼에 찔려 죽은 승무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외로운 밀실 우주선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게다가 모든 승무원이 죽었다면 살인자는 누구란 말인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책 소갯글에 혹해서 읽게 된 SF 미스터리 장편입니다. 우주선에 탑승한 여섯 명의 승무원이 서로 죽고 죽여서 전멸한 뒤, 사건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클론으로 재생된다는 설정이 아주 매력적이라 읽게 되었습니다. 누가 살인자인지, 동기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 이보다 더 잘 맞아 떨어질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사건에 대한 추리적인 내용보다는, SF 소설로서의 비중이 훨씬 높거든요. 물론 나쁜건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SF 적인 부분은 아주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클론에 대한 세세한 설정이 아주 돋보입니다. 이 세계의 클론은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철저한 법률에 근거하여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탄탄한 묘사를 통해 설득력있게 설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클론의 존재에 대해 거대한 다툼과 많은 죽음이 발생한 후 이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됩니다. 이를 통해 복수의 클론은 금지되며, 복수의 클론이 적발될 경우 가장 나중에 복제된 클론 외에는 모두 폐기한다, 마인드맵을 저장한 뒤 클론에 그대로 이식하여 기억을 이어나갈 수 있지만 마인드맵을 수정하는 마인드해킹 행위는 엄금한다, 그리고 클론은 생식능력을 제거하며 재산은 그 자신에게 상속된다는 등의 세세한 법안이 제정됩니다.
이는 단지 설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클론에 대한 설정은 승무원들의 과거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주선 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클론을 증오하는 엔지니어 폴이 모두를 살해한게 진상이니까요. 

또 이 사실이 밝혀지는 승무원들의 과거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특히 클론에게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던 오르만 신부가 반대파에게 납치된 후 클론으로 재생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작품 속 등장인물의 과거 에피소드로만 놓기 아깝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과연 클론에게 영혼이 있을까? 부터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해커들이 마인드맵을 해킹하여 대상자의 성격을 비롯하여 모든걸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건, 영혼이 숫자로 치환되어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어서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클론에게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하여 복수심을 불태우는 엔지니어 폴이 복수를 완성한 뒤, 정작 그 자신이 클론으로 복제되어 재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아주 괜찮았어요.

이외에도 현재 시점에서 아직 선장은 죽지 않고 혼수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클론이 이전 선장을 폐기해야만 하는 딜레마, AI 이안은알고보니 원래 인간이었는데 마리야가 마인드맵을 해킹하여 만들어낸 인공지능으로 약간의 조작을 통해 다시 인간으로 클론 복제할 수 있었다라는 반전 등 재미난 디테일이 많습니다. 클론 복제를 음식을 만들어내는 음식 인쇄기를 통해 진행한다는 결말도 복선을 통해 잘 설명되고 있고요.
주인공들이 탄 우주선 도르미레 호의 설정도 그럴듯합니다. 도르미래호는 아르테미스라는 머나먼 별로 떠난 일종의 이민선입니다. 여섯명의 승무원들은 수천명의 냉동 클론을 무사히 아르테미스까지 운송하는 대신, 그들이 지은 중죄를 사면받는 조건으로 승선한 범죄자들이죠. 이렇게 범죄자들이 사면을 조건으로 거대 계획에 종사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나, 이를 SF로 변주한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합니다.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의 실력자 샐리 미뇽이 거대 이민선을 비롯하여 승무원들, 심지어 인공 두뇌까지 관계자들을 투입한 이유부터가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않거든요 '복수' 때문이라고 설명되기는 하는데, 샐리 미뇽은 워낙에 실력자라서 구태여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종의 악취미로 단지 승무원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붕괴하기를 바랬을 수는 있겠지만, 그들 사이에서 사건이 일어나는데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 그리 효율적이라고 볼 수는 없고요.
아울러 협박과 고문 탓이지만 마리아가 볼프강, 히로를 해킹하여 엉망으로 만든건 사실입니다. 이는 충분히 살해 동기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볼프강과 히로가 마리아에게 살의를 품는건 말이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원수로 알고 있는 폴이 마리아 외 다른 사람들도 모두 죽인다는 진상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클론이라서 다 죽일거였다면 20년 동안 참을 이유도 없고요. 게다가 폴은 볼프강에게 대적할 수 없는 체형과 체력의 소유자라는게 이미 설명되기도 했거든요.
그 외에도 어차피 죽일거라면 마리아만 왜 독미나리로 중독시켰는지, 히로는 대체 왜 자살했는지도 그렇게 납득이 가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중 인격이 된 히로가 폭주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결론적으로 처음에 여섯 명 모두가 죽게된건 단지 우연이었을 뿐이며, 그들이 클론으로 되살아난 것 역시 즉사하지 않은 마리아가 재생 버튼을 눌렀을 뿐이라는 작위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마리아가 펼치는 추리쇼 형태 느낌의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딱히 단서가 탄탄하게 뒷받침된게 아니라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복선을 좀 더 치밀하게 짜 두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폴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공정하게 단서를 얻는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도 나쁜 추리물의 전형이고요. 이야기에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 사람이 알고보니 범인! 이라니, 이건 좀 너무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흥미로운 도입부와 여러가지 설정 덕분에 몰입해서 읽을 수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약간은 용두사미 느낌이라 아쉬웠습니다. SF로는 완벽하나 추리적으로는 더 탄탄한 구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이런 류의 장르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5/01

스텝 - 찬호께이, 미스터 펫 / 강초아 : 별점 2.5점

스텝 - 6점
찬호께이.미스터 펫 지음, 강초아 옮김/알마

'사보타주'라고 불리우는, 범죄자 형량을 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결정하는 시스템을 주제로 한 4편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이루는 연작 소설집입니다. "13.76"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중국 추리작가 찬호께이가 타이완의 추리 작가인 미스터 펫과 함께 쓴 작품이지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저' 방식은 아닙니다. 기둥 줄거리와 기본 설정은 함께 생각했을테지만, 미국을 무대로 한 첫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찬호께이가, 일본을 무대로 한 두 번째, 네 번째 이야기를 미스터 펫이 써서 합쳤거든요. 

그래서 각각의 이야기는 분위기와 전개가 사뭇 다른데, 찬호께이가 쓴 작품들은 정교한 구성, 반전 모두 어느 정도 기대에 값합니다. 하지만 미스터 펫의 작품은 별로였습니다. 작위적인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왜 일본을 무대로 했는지도 모르겠고요. 특히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그 수준이 가히 처참한 수준입니다. 미스터 펫이 맡았던 이야기들은 작 중에서 인공 지능의 시뮬레이션 시나리오라고 설명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처지는 완성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어요. 찬호께이가 맡았던 첫 번째 이야기 속 매슈 프레드 범죄극도 마찬가지로 시뮬레이션이지만 범죄물로는 차고 넘치는 좋은 작품이었으니까요. 추리물, 범죄물이 아닌 SF 측면으로도 사보타주 시스템 등 상세 설정도 찬호께이 이야기에서 더 잘 설명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찬호께이 부분은 별점 3.5점, 미스터펫 부분은 별점 1.5점인데 찬호께이가 이야기 전부를 썼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P.1 SA.BO.TA.GE. /찬호께이 : 

미국을 무대로 매슈 프레드라는 범죄자가 저지르는 여러가지 범죄를 그려낸 작품. 이 중 마지막 범죄는 꽤 완성도가 높아요. 술집에서 만난 E와 의기투합해 그의 전처를 응징한다는건데, 아내나 불륜남이 아니라 E를 죽이고 아내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다는 반전이 괜찮았거든요. 매슈 프레드가 저지른 모든 범죄는 사보타주가 시뮬레이션한 내용이라는 큰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E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정비공에게 시세보다 훨씬 큰 돈을 주고 자동차 정비를 맡기는 등 약간의 헛점은 있지만, 이 모든게 시뮬레이션이라면 어느정도 납득할 만 합니다.

EP.2 T&E /미스터 펫 : 

탐정 메이구가 정부 의뢰로 사보타주 시스템을 일본에 이식한 '선인장' 시스템을 해킹한 범인을 찾아낸다는, 일본을 무대로 한 독특한 SF 추리물입니다. 

수사는 미행, 도청, 해킹이 전부라 추리의 여지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메이구가 가진 특수 능력이 무엇인지가 수수께끼의 핵심입니다. 사건 수사를 여러가지로 시도하면서, 실패할 때 마다 사건을 의뢰받은 시점으로 기억과 함께 돌아오는 능력이지요. 실패하지 않아도, 5일이 지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요. 이 능력 덕분에 메이구는 의뢰받은 사건을 5일 안에 밝혀낼 수 있었던 겁니다. 

이야기는 중간에 의뢰인이 사망하는 등의 깜짝 전개를 거쳐, 특수 능력이 밝혀지고 범인이 타케우치라는게 드러나며 타케우치와 메이구의 격투로 끝맺습니다. 지금 전개되는 현실은 메이구가 만들어낸 가상 현실로, 이 가상 현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일종의 열린 결말입니다.

이렇게 일반적인 타임 리프물, 타임 슬립물과는 다른 설정에 더해, 메이구가 리셋할 때마다 료코의 1인칭, 3인칭으로 시점이 변하는 묘사도 독특했습니다. 처음 읽을 때에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생각과는 사뭇 달라서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하려면 료코 뿐만이 아니라 메이구로의 시점 전환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료코만의 시점 변화는 진짜가 아닌 가상 현실이라는걸 보여주기위한 장치로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거든요.

EP.3 E PLURIBUS UNUM /찬호께이 : 

석방된 범죄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최악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본 법무부의 사보타주 시스템 총 책임자인 앤드루 키팅이 범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범인이 누구인줄 알지만, 시스템 비밀을 밝히기 어려워 전전긍긍하는 담당자의 고뇌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범죄 현장에서 마주치는 클라이막스 까지의 전개도 긴장감이 넘치고요, 마지막에 키팅이 읽은건 단순한 시뮬레이션 결과일 뿐, 실제 예측이 아니었다는 반전도 설득력있게 묘사됩니다. 

문제는 전개와 결과가 예상가능했고, 운과 우연에 지나치게 의지한다는 점입니다. 시뮬레이션과 비슷하게 애덤스가 현장에 나타나서 희생된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보타주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데 너무 치중한 결과물이었어요. 키팅이 범인 애덤스를 죽이고 그냥 잡혀갈 생각을 했다는 것도 석연치 않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밝혀지는 두 번째 이야기 속 기묘한 설정만큼은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키팅은 범죄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인공지능이 시뮬레이션 도중 일정 조건이 만족되면 자동으로 특정 시점으로 되돌아가 변수를 변화시켜 시뮬레이션을 계속하는 '가젯'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점을 되돌리는 방식을 인공지능이 학습해 버려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렸고 가젯이 유출되어 해커가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지요. 이렇게 가상 세계 속에서 시간 회귀, 변수 수정, 데이터 기록의 능력을 갖게 되는 '머니퓰레이터' 를 잡기 위해 프로그래머 프랭크는 '에스코트'라는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에스코트는 머니퓰레이터를 확인하면, 소멸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지요. 즉, 두 번째 이야기에서 머니퓰레이터가 메이구, 에스코트는 다케우치였던 겁니다. 이런 점에서 다케우치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시스템만 놓고 보면 다케우치는 백혈구와 같은, 정의로운 존재인데 말이지요. 

그리고 머니퓰레이터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방법은 인공지능 딥 러닝 학습법의 하나인 GAN 모델이 연상되어 더욱 그럴듯하게 여겨졌습니다. GAN 모델은 학습이 필요한 인공 지능을 Discriminator라고 부르며, 여기에 가짜 데이터를 만드는 Generator가 생성한 결과물을 입력하는 방식입니다. Generator의 위조가 정교해 질 수록, 이를 판별하는 Discriminator의 능력도 올라가는 방식이지요. 이 이야기로 따지면 메이구가 이런저런 가상 시나리오를 시도하는 Generator이고, 사보타주 시스템 속 인공 지능이 Discriminator인 셈입니다.

EP.4 PROCESS SYNCHRONIZATION /미스터 펫 : 

두 번째 이야기가 비롯된 원인인, 선인장 시스템에 침입하여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한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면서, 실제 현실의 메이구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완성도가 절망스러운 수준입니다. 완벽한 보안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중앙 처리실에 두 시간 이상 머물려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한 방법에 대한 트릭부터 억지입니다. 뭔가 엄청난 시스템인 것 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그냥 데이터 조작과 별로 다르지 않거든요. 

과거 일본에서 실행되었던, 기억을 조작하는 수술인 HIMIKO 프로젝트도 뜬금없었습니다. 수술을 받았던 메이구가 수술에 대한 비밀 서류를 손에 넣고, 관계자들의 정체를 밝히는 전개는 유치하고 작위적이고요. 아무리 이야기가 모두 시뮬레이션 결과에 불과했다고는 해도, 앞서의 다른 시뮬레이션들보다 현격히 낮은 완성도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에필로그 : 

사보타주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인권을 무시하는 부분이 있어서, 결국 형법 제도가 옛날 방식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인데 솔직히 사족에 불과합니다. 개인적으로 범죄자가 수형 시설에서 교정, 교화가 될 수 있다는걸 믿지 않습니다. 때문에 제대로 반성하지 않으면, 절대로 풀어주지 않겠다!는 정서가 깔린 사보타주 시스템의 형량 결정 시스템이 지금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됩니다.

2015/09/28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4) - 매튜 본 : 별점 3점

올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화제작. 영화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뒤늦게 감상하게 되었네요. 줄거리는 익히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만화 원작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확실히 B급 향취가 가득합니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익숙한 무협지의 전형적인 얼개를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했습니다. 생명의 은인의 아들을 제자로 삼은 무림 고수가 죽은 뒤, 제자가 복수에 나선다는 이야기는 정말 전형적인 구성이지요.
나름 심각한 내용임에도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고 B급 정서를 유지한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 머리가 "폭죽처럼" 터지는 장면, 핀란드 공주의 "뒤로 해줄게" 발언 같은게 대표적입니다.

동네 찌질이였던 에그시가 첩보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대부분 생략하고 철저히 액션에 집중한 감독의 선택도 나쁘지 않습니다. 훈련을 받았다면 뛰어난 실력을 갖췄을 것이라는 가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이야기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오히려 히어로의 성장 서사를 지나치게 강조했던 기존 영화들과는 다른 신선한 발상이라 볼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 이 영화 최고의 매력 포인트는 콜린 퍼스가 연기한 갤러해드 해리 하트 캐릭터입니다. 젠틀맨이 무엇인지 눈빛만으로도 보여주는 인물이었고,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액션도 놀라운 수준으로 선보였습니다. 딘 일당을 쓰러뜨리는 펍 액션도 훌륭했지만, 광기에 가득 찬 교회에서의 살육 시퀀스는 그야말로 황홀한 시각적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최후는 다소 허무했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인상이었어요. 구태여 비교하자면 "스타워즈"의 오비완급 캐릭터였달까요. "스타워즈" 프리퀄처럼 젊은 시절의 해리가 주인공인 프리퀄이 나온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배우가 워낙 마음에 들기에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작전 중 하나만 다뤄도 괜찮을 것 같고요(* 방법은 알 수 없지만 후속편에 콜린 퍼스의 해리를 계속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케인이 킹스맨의 수장 아서로 등장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뼛속까지 영국인 같은 배우들이 젠틀맨을 연기하니 마음에 들지 않을 수가 없네요. 죽기 직전 쌍욕을 내뱉는 장면도 반전 매력을 더했습니다. 이렇게 친숙한 영국 배우들이 등장하니 휴 그랜트도 카메오, 아니면 란슬롯 역으로 출연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또한 첩보영화의 왕도와도 같은 다양한 특수 무기들이 등장한 것도 좋았고, 중간중간 "007" 같은 고전 첩보영화를 언급하는 유머도 고전 팬으로서 반가운 포인트였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멀린의 해킹으로 대부분의 위기가 너무 쉽게 해결된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 해킹에도 대비하지 못한 발렌타인이 무너지는 전개는 너무 허술하게 느껴졌고, 덕분에 해리가 왜 죽어야 했는지도 의문스러웠습니다.

록시의 비중이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꽤 크다 싶었는데, 결말부에 거의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핀란드 공주보다도 비중이 낮아 보였으니, 이 정도면 분량과 캐릭터 모두 낭비된 셈이죠.

허나 장점이 워낙 확실한, 즐거움이 가득한 영화이기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이야기는 헛점 투성이에 유머나 잔혹한 표현도 다소 과하지만, 이상하게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제 취향에는 딱 맞았지요. 인생 뭐 있습니까. 보면서 즐기면 그게 최고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니 아주 기대됩니다.

2025/11/02

일상 감각 연구소 - 찰스 스펜스 / 우아영 : 별점 3점

우리의 오감이 어떻게 일상에 영향을 주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과학, 인문학 서적입니다. 감각은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행동, 관계, 심지어 생산성과 건강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일상의 감각들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해킹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가지 팁들이 가득한데, 특히 실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팁들이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귀마개를 '오른쪽 귀'에 꽂아야 한다는 연구처럼요. 이는 수면 중 좌뇌가 경계 태세를 유지한다는 뇌의 편측성에 근거한 것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꽤 놀라웠습니다. 잠들기 전 발을 따뜻하게 해주는게 수면을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도 기억에 남고요. 자기 전 따뜻한 물로 샤워하거나, 발 밑에 뜨거운 물병을 두는 것만으로도 수면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진다고 하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면 시도해 볼 만 해 보이네요.

또 하나 흥미로웠던건, 운동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탄수화물 음료 헹구기’ 실험이었습니다. 단 몇 초간 입 안에서 단 음료를 헹구는 것만으로도 뇌가 에너지 유입을 예측하며 운동 성과가 향상된다는데, 우리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감각에 영향을 받는 존재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향기 하나, 소리 하나, 피부에 닿는 감촉 하나까지도 우리의 뇌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반응을 달리한다는걸 이만큼 잘 드러내는 실험도 없지 않을까 싶고요.

이렇게 과학적 실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고, 실용적인 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례가 가득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목차가 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은 들고, 도판이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기획, 마케팅 전문가들이 꼭 참고해야 할 도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주제별로 아래와 같이 간략히 정리하여 소개드립니다. 


공간과 감각

- 집의 냄새는 그 공간의 인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며, 바닐라나 커피 향은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반면, 반려동물이나 담배 냄새는 집값을 낮출 수 있다.
- 인간은 진화적으로 개방된 조망과 은신처가 있는 공간을 선호하며, 이는 실내 식물, 곡선 구조, 원형 테이블 등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이유로 설명된다.
- 원형 테이블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테이블보다 협동적 분위기를 만들고, 음악이 흐르면 사람들 간의 거리도 좁아진다.

자연 노출의 효과

- 잠깐의 자연 노출만으로도 기분과 건강, 집중력이 향상되며, 이는 용량 의존적이다.
- 숲 가까이 사는 사람은 실제로 뇌 구조에서 회백질 밀도가 높아지는 변화가 나타났고, 병원 창밖에 자연 경관이 보이는 경우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
- 자연의 시각 자극 외에도 자연 소리나 냄새 등 감각 자극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면과 환경

- 최적의 수면 환경은 조용하고 어둡고 서늘해야 하며, 온도는 16~24도 사이가 이상적이다.
- 잠자기 전 따뜻한 목욕은 심부 체온을 낮추고 수면 유도를 돕는다. 이때 이상적인 수온은 40~42.5도이다.
- 귀마개는 오른쪽 귀에 착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이는 좌뇌가 경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수면 중에는 간단한 학습이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으며, 좋은 수면은 창의성 향상에도 기여한다.
- 낯선 공간에서의 첫날 밤 효과는 진화적 경계 반응으로, 익숙한 향기나 소리로 완화할 수 있다.

소리와 경계 반응

- 운전자의 뒤에서 들리는 경고음이 가장 효과적인 이유는 뇌가 머리 뒤 공간을 감지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 자동차 문 소리, 대시보드 두드림, 방향 지시등 소리까지도 소비자의 감정과 신뢰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무실과 소음

- 개방형 사무실은 생산성과 만족도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으며, 소음이 특히 문제가 된다.
- 갈색 소음은 자연 소리보다 실제로 집중력 향상에 더 효과적이었으며, 자연 소리는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운동과 감각 피드백

- 빠른 템포의 음악은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며, 자신이 음악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면 그 효과가 더 커진다.
- 에너지 음료를 마시지 않고 입 안에서 헹구는 것만으로도 뇌는 에너지를 예측하고 운동 성과를 높인다.

매력과 진화심리

- 얼굴의 대칭성, 미소, 시선, 목소리, 피부색 변화 등은 모두 진화적 적합성 신호로 작용하며,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 남성은 여성의 엉덩이 움직임에, 여성은 남성의 상체 움직임(특히 오른쪽 무릎)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춤 관련 연구도 있다.
- 빨간색 옷이나 하이힐은 요추 곡률을 강조하며, 남성에게 성적으로 더 매력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

향기와 매력, 마케팅

- 링스 데오도란트처럼 쾌적한 향기는 사진 속 얼굴의 인상까지 바꿀 수 있으며, 뇌의 보상 중추가 활성화된다.
- 다카사고와의 협업 연구에서는 특정 향기가 여성의 나이를 더 젊게 보이게 만든다는 결과도 있다.
- 향기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약한 농도에서 더 효과적이며, 사람의 판단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소비 행동과 감각

- 레스토랑에서는 느린 음악이 손님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소비 금액을 증가시키며, 매장 온도가 낮을수록 제품을 더 고급스럽게 느낀다.
- 소비자가 듣는 음악의 국가 분위기에 따라 와인 구매 선택이 달라지는 등의 사례도 있으며, 감각 자극은 소비 결정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간단한 센스 해킹 방법

- 좋은 냄새가 나는 수건이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 샤워를 좋아한다면 냉수샤워를 해보자. 병가 일수를 줄일 수 있다.
- 주름을 일시적으로 제거하는 페이스 크림의 주요 기능은 향이다.
- 자연의 소리는 평온한 느낌을 주며, 새소리가 많이 들릴수록 더 효과적이다.
- 옆집이 시끄럽다면 같은 소리를 들으면 더 잘 잘 수 있다.
- 가족용 자동차는 스포츠 모드에서 빨간 조명과 엔진음을 키워 성능 향상 느낌을 준다.
- 실내 식물은 사무실 공기 오염을 줄이고, 깨끗한 공기는 업무 생산성을 높인다.
- 여성은 사무실에서 더 추위를 많이 타므로 온도를 높이면 생산성이 증가한다.
- 스트레스를 유발한 회의 뒤에는 다른 냄새를 맡아 정신 상태를 전환해보자.
- 개방형 사무실에서는 하루 평균 86분이 방해받는다. 배경음악을 들으면 생산성이 오른다.
- 패스트푸드점에서 빵 굽는 냄새는 고객의 구매 가능성을 높인다.
- 느린 음악이 흐를 때 쇼핑객은 돈을 더 많이 쓴다.
- 운동할 때 음악 속도를 10퍼센트 빠르게 하면 운동 효과와 즐거움이 향상된다.
- 테니스 경기에서 포효는 실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 관중의 소음은 심판의 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운동 중 웃으면 달리기 효율이 향상된다.
- 운동 중 7~8분마다 탄수화물 맛만 봐도 운동 능력이 증가한다.
- 스포츠 팀의 장비 색상을 검은색으로 하면 승률이 높아질 수 있다.
- 데이트 중엔 스릴러 영화를 보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사람의 나이는 냄새로 알 수 있지만, 성별은 알 수 없다.

2024/07/12

교도관의 눈 - 요코야마 히데오 / 허하나 : 별점 2.5점

교도관의 눈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허하나 옮김/폭스코너

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집.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교도관이 주인공인 범죄 추리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종신검시관"처럼요.
그러나 교도관이 등장하는 작품은 한 편 뿐이며, 추리물보다는 일상계 범죄물이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살인이라는 강력 범죄가 많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등장인물의 심리가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답게 기본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갖추고 있습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교도관의 눈"
야마테초에서 주부 구타니 에미코를 살해하고 시신을 없앤 혐의로 불륜남 야마노이 가즈마가 체포되었다. 그러나 정황 증거 뿐 물증을 찾지 못해 석방되었다. 그 순간 에미코의 남편 구타니 이치로가 가즈마를 살해하려고 덮쳤지만, 반대로 그가 죽고 말았다. 검찰청은 가즈마를 정당방위로 불기소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교도관 곤도는 가즈마가 수상하다는걸 느끼고 조사에 나섰고, 현경 기관지 편집자 에쓰코는 곤도를 만나러왔다가 우연찮게 사건에 휘말리는데...

사람을 죽인 범인은 이글대다가도 씻겨 사라지지만, 곤도가 본 야마노이 가즈마는 날이 갈수록 이글거렸습니다. 이를 통해 곤도는 가즈마가 아무도 안 죽였지만, 유치장을 나가서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던걸로 추리했습니다. 에미코는 공범으로, 에미코는 살해된게 아니라 스스로 몸을 감췄고요. 그리고 가즈마는 에미코를 폭행하던 남편 이치로를 정당방위로 위장하여 살해했던 겁니다. 가즈마가 날이면 날마다 체력 단련에 열중했던 것도 이 추리를 뒷받침해 줍니다.
비록 이치로가 '식칼'을 들고 덤빌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던건 - 그리고 그랬다해도 죽일 수 있었으리라 보장할 수 없었던건 - 단점이지만, 추리는 꽤 기발했습니다. 이를 은퇴를 앞둔 교도관이 꿰뚫어 보았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서의 단점으로 이치로를 죽이는데 실패했더라도, 최소한 에미코는 사라질 수 있었으므로 나름 성공한 계획인건 분명하고요.
결국 진상은 드러나지 않고 여운을 남기는, 그리고 이를 젊은 여성인 에미코 시선으로 해석하여 설명해주는 결말도 좋았습니다.

다만 캐릭터 묘사는 다소 아쉽습니다. 젊은 편집자 에미코와 붙임성없는 나이든 꼰대 곤도 묘사는 전형적이라 식상했기 때문입니다. 에미코에 대한 이런저런 설정도 불필요하다 싶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자서전"
팔리지 않는 방송작가 다다노는 운 좋게 '효도전기'의 회장 효도 고자부로의 자서전 대필을 맡게 되었다. 무려 300만엔짜리 일이었다. 그런데 효도는 자신이 젊었을 때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다다노는 효도가 불륜 관계였던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했다 여기고 효도를 협박하는데...

알고보니 어머니를 살해한건 아버지였다는 결말입니다.
그런데 효도가 다다노를 챙겨줄까?라고 생각하고 과거의 단편을 살짝 알려준 이유가 불분명합니다. 자신 탓에 연인이 죽고 자식이 불행에 빠졌다면, 자식에게는 나중에 금전적 보상을 해 주면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가지고 놀 이유는 없어요.
'원망의 말은 합격, 협박은 불합격'이라는 기준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다다노가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진실이라 여기고 협박(?)하려 했던건 상식적입니다.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효도는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니까요. 복수를 하지 않으면 뭐라도 얻어내는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협박했다고 아웃이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말버릇"
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일하는 세키네 유키에는 이번 이혼 조정 신청 당사자인 기쿠타 요시미가 과거 고등학교 시절, 딸 나쓰코의 등교 거부 원인이었던 동급생이었다는걸 알아챘다. 유키에는 과거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요시미의 경멸하던 눈빛, 그리고 나쓰코가 소중히 모았던 저금통이 사라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요시미를 까칠하게 대했다. 그러나 유키에의 말버릇으로 그녀가 누군지 알아챈 요시미에게서 충격적인 진상을 듣게 되었다...

'악의'가 내포된 드라마적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특히 여성 내면 심리와 일상 속에서의 복잡한 관계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쿠다 미쓰요나 고이케 마리코의 작품이 떠오르지만, 요코야마 히데오 특유의 명확한 반전이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요시미와 이혼 조정 중인 남편 기쿠타는 고등학교 때부터 커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쓰코가 기쿠타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가졌었고, 그 탓에 임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임신한 나쓰코는 모든 돈을 긁어모아 중절 수술을 했고, 그 뒤 등교를 거부했었던 것이지요.
예상치 못한 반전이지만, 앞서 단서를 모두 제공해주고 있어서 잘 짜여진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혼 조정 과정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왔고요. 질투와 분노가 뒤섞여 있는 심리 묘사도 돋보입니다.

그러나 요시미가 이미 다른 남자와 불륜 관계인 듯 보이는데 이렇게 당당한건 이해하기 어렵고, 내용 상 나쓰코의 시점에서의 묘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최고로 꼽을 수 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오전 다섯 시의 침입자"
정보관리과 경부 다치하라가 관리하던 S현 경찰 홈페이지가 해킹당했다. 다치하라는 서둘러 페이지를 내리고 복구한 뒤, 방문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입막음을 하러 나섰다. 해고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자리 보존을 위해 사건을 없던 것으로 덮으려했지만, 경찰관의 본분과 자신이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깨닫는다는 작품. 해킹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아 범죄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해커가 올려놓았던 프랑스어 문장을 통해 범인을 알아내는 부분은 추리물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한국인 독자가 알아채기에는 어려운 단서여서 애매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범죄 수사 과정보다는 주인공의 내면 변화와 성찰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조용한 집"
현민신보의 기자 출신 편집자 다카나시는 오보를 사과하기 위해 사진작가 스가이를 찾아갔다. 그러나 만나지 못해 연락처만 남겼는데, 그날 저녁에 스가이는 전화를 걸어와 정정 기사를 내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열흘 뒤, 스가이의 사체가 발견되었고 다카나시도 주요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다카나시는 그날 자신에게 전화를 건게 스가이가 맞는지 생각해 보는데...

편집부에서 벌어지는 다카나시의 좌충우돌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신문사 내의 긴장감 넘치는 상황은 흥미롭습니다. 여러모로 잔혹한 신문의 세계가 인상적이었어요.
추리물로도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문제는 트릭이 많이 허술해 보인다는 겁니다. 스가이의 불륜 상대 남편이 그를 살해한 뒤, 집을 찾아온 다카나시가 남겼던 명함으로 스가이인척 전화를 걸어 알리바이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열흘 전 사건이라면 사망시간을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확실한 알리바이라고 하기는 무리입니다. 경찰이 범인을 특정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요.

그래도 복선과 단서의 배치는 나쁘지 않고, 완성도도 준수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비서과의 남자"
지사의 신임을 받는 비서과장 구라우치는 지사의 신뢰가 갑자기 떨어진걸 느꼈다. 새롭게 발탁된 젊은 피 가쓰라기의 수작이라 생각했다. 구라우치는 자신에게 돈을 빌리러 온 뒤 자살했던 무카이의 아내를 만나, 무카이의 동생이 무카이와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부풀려 투서를 했다는걸 알아냈다.

질투로 인해 비롯된 일상 속 악의와 인간의 내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의 "말버릇"과 비슷합니다. 차이라면 중년 남성이 주인공이며, 현재를 인정하며 긍정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런 결말이 훨씬 좋네요.
구라우치에 대한 투서를 올린게 하스네였다는 진상도 괜찮았습니다. 질투와 악의를 그려내는데 이만한 진상도 또 없을 듯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건의 핵심인 무카이와 구라우치의 관계입니다. 구라우치 입장으로는 무카이는 잠깐의 대화밖에는 없는 사이입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20만엔'을 빌려주겠다고 한 것은 분명 선행입니다. 무카이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이를 다른 사람이 비하할 수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때문에 지사가 '사람을 잘못봤다'며 구라우치를 내치려 한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투서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탓이 큽니다.
이런 점에서 약간 부족함이 느껴져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03/08

이글루스 약관

[제1장 총 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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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서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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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사는 다음 경우에 대하여 사전 공지나 예고없이 서비스를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중단할 수 있습니다.
- 긴급한 시스템 점검, 증설, 교체, 고장 혹은 오동작을 일으키는 경우
- 국가비상사태, 정전, 천재지변 등의 불가항력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
- 서비스 이용의 폭주 등으로 정상적인 서비스 이용에 지장이 있는 경우
3. 전항에 의한 서비스 중단의 경우 회사는 사전에 공지사항 등을 통하여 회원에게 통지 합니다. 단, 회사가 통제할 수 없는 사유로 발생한 서비스의 중단에 대하여 사전공지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예외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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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손해배상 및 기타사항]


제 19 조 손해배상

1. 회사는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이용과 관련하여 개인정보보호정책에서 정하는 내용에 해당하지 않는 사항에 대하여는 어떠한 손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2. 회사는 회사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회원이나 제3자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회원이 회사에 지급한 이용료의 범위 내에서만 손해를 배상합니다. 예를 들어 회원이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여 수행하는 영업행위와 관련된 손해, 회원이 저장, 전송하는 정보의 가치에 해당하는 손해, 회원이 회사의 서비스를 통하여 입게 되는 회원의 컴퓨터나 기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자료 등의 손상으로 인한 손해 등에 대해서는 회원이 미리 회사에 그 사실을 알렸다 하더라도 회사는 손해배상을 하지 않습니다.
3. 본 서비스로 인해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자 할 때 회원은 손해배상 청구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손해배상 청구사유, 금액, 산출근거를 기재하여 회사에 서면으로 제출하여야 합니다.


제 20조 면 책

1. 회사는 회원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로부터 기대되는 이익을 얻지 못하였거나 서비스 자료에 대한 취사선택 또는 이용으로 발생하는 손해 등에 대해서는 책임이 면제됩니다.
2. 회사 이외의 타 통신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서비스의 장애로 인한 경우에는 책임이 면제됩니다.
3. 회사는 회원이 저장, 게시 또는 전송한 자료와 관련하여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4. 회사는 회원 상호간 또는 회원과 제3자 상호간, 기타 회원의 본 서비스 내외를 불문한 일체의 활동(데이터 전송, 기타 커뮤니티 활동 포함)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제 21 조 분쟁의 해결

1. 회사와 회원은 서비스와 관련하여 발생한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노력을 합니다.
2. 회사는 회원으로부터 제출되는 불만사항 및 의견을 우선적으로 그 사항을 처리합니다. 다만, 신속한 처리가 곤란한 경우에는 회원에게 그 사유와 처리 일정을 즉시 통보해 드립니다.



제 22 조 준거법과 재판권

회사와 회원간에 서비스 이용으로 발생한 분쟁에 대하여는 대한민국국법을 적용하며, 본 분쟁으로 인하여 소송이 제기될 경우 민사소송법상의 관할을 가지는 대한민국의 법원에 제기합니다.


[부칙]
(시행일) 본 약관은 2003년 6월 16일부터 시행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직은 (주) 온네트로 되어 있는 이상 별 문제 없군요. 빨간 글씨 부분에서처럼 어느 순간 약관을 쓱싹 바꾸고 "탈퇴를 안했으니까 동의한거다..."라고 뒤통수를 칠 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2020/01/02

Q.E.D. iff 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4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iff 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1.5점 

전에 읽었던 2, 3권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걱정했는데, 이번 권은 다행히 괜찮았습니다. 수록작 중 "아이디"는 망작이지만 "바다의 무녀"가 꽤 괜찮은 덕입니다. 간만에 힘을 내 주었기에 별점은 2.5점 주겠습니다. 

수록된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바다의 무녀"

이즈 제도 남쪽에 있는 작은 섬 아이가시마에서 리조트 찬성파와 반대파가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와중에 도쿄에서 온 측량사가 살해당했다. 무녀 유나 아오이가 측량사 시체가 묻힌 섬을 예언한 뒤, 경찰은 그녀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유나 가문은 섬의 수리권을 가지고 있고, 리조트에 물을 나누기 힘들어 건설을 반대하고 있던 터라 더욱 의심을 샀다.
유나가 섬을 나간 적이 없다고 확신하는 동생 시오미는 가나와 토마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했다. 토마와 가나가 섬을 방문한 뒤, 유나 가문의 수리권 고용한 변호사, 리조트 회사 직원마저 차례로 시체로 발견되는데...

이야기에 대단한 트릭은 없습니다. 시체가 있는 장소를 무녀가 알아낼 수 있던건 범인이 그녀에게 워드 프로세서로 만든 편지(뒤에 밝혀지지만 이것도 조작)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인 하마치 변호사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동굴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굴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여 공정한 트릭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발자국없는 모래밭 한 가운데에서 시체로 발견된 호시즈나 씨 사건은 나름 트릭으로 값어치가 있습니다. 땅에 묻힌 장대를 진동시켜 발자국을 없앴다는 방법이 꽤 현실적이었거든요. 나뭇가지가 부러진걸 트릭과 연결시킨 과정도 좋았고요. 무녀의 전설에 나오는 초능력 - 하늘을 날고 천리안으로 모든 걸 본다 - 을 범행과 연결시키는 전개도 돋보였어요. 세 건의 사건 모두 사람이 날지 않으면 범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로트카, 볼테르 방정식이라는 수학 이론을 녹여낸 솜씨도 오랫만에 과거 Q.E.D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야기와 이론이 잘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계에 있어 포식자와 피식자의 증감 속도 관계를 표현하여 '조화'를 나타낸 식인데, 조화는 '진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대화가 없어지면 싸움이 일어나고, 그게 싫어지면 대화로 돌아온다는 이 수학 이론은 무녀 유나 아오이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녀는 싸움을 끝내는게 아니라 질릴 때 까지 끌고가는게 목적이었거든요. 물의 양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사람들이 더 이상 수리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상황을 노렸던 겁니다. 심지어 그녀의 동생마저도 섬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다했다는 마지막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조금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간만에 본 역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이디"

맷은 카지노 홈페이지를 해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후, 토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스케일은 거대합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두바이, 벨기에를 오가니까요. 그러나 해커의 두목 크래시의 정체는 물론,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 모두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가나의 변장을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게 영 와 닿지 않네요. 그리고 이전 작품에서 영어도 그리 잘 하지 못하는 걸로 묘사되지 않았었나요? 또 토마의 대학 동창 하산이 토마를 돕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 말이죠.

그렇다면 Q.E.D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라도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해킹을 소재로 한 것 치고는 디도스 공격이 메인이라 너무 흔해빠진 정보만 나오거든요. 해커들이 비트 코인도 아니고 현금을 가지고 거래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맷이 사랑하는 아슈라의 딸 클로에가 전설의 해커 위저드라는 것도 억지스럽고요.

도저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2025/12/28

2025 블로그 리뷰 결산 (스물 두 번째!)

안녕하세요. 어제의 "어차피 곧 죽을텐데"로 올해 블로그 업로드는 마무리하고, 올해 결산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요새 이런저런 플랫폼에서 유행하는 리캡에 편승한건 아닙니다. 제 블로그 연말 결산은 이번이 스물 두 번째이니까요. 

간략한 블로그 통계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리고 2025년 독서 결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올 한 해 읽은 총 책 권수는 82권입니다.

  • 추리 / 호러: 48권
  • 기타: 14권
  • 역사서: 9권
  • 디자인/스터디 : 1권
  • 기타 장르문학: 5권
  • Food / 구루메: 5권

독서량이 작년(110권)에 비하면 30% 가까이 대폭 줄었는데, 영화나 애니메이션 감상이 늘은 탓입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아무래도 쉽게 볼 수 있는걸 선택하게 되네요. 추리 소설은 왠만한 작품으로는 신선함이나 재미를 찾기도 좀 어려웠고요. 그동안 너무 많이 읽었던 탓이지요.

그래도 1년에 100권은 읽어야 책 좀 읽는다고 할 수 있으니, 내년에는 좀 더 힘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카테고리별 베스트, 워스트입니다.


1. 추리 / 호러

베스트: 매미 돌아오다 - 사쿠라다 도모야 : 별점 3.5
- 곤충과 과학, 일상 추리를 결합한 독특함이 인상적이다.

올해 별점 3.5점을 줬던 작품은 이 작품 외에도 오가와 사토시의 "신의 퀴즈"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더 정통 본격 추리물에 가깝고, 수록 단편 중 "반딧불이 계획"은 별점 4.5점의 걸작이라서 올해 베스트로 꼽습니다. 

워스트: 신곡 - 가와무라 겐키 : 별점 1.5
- 범죄 스릴러로의 매력은 전무하다.

올해 별점 1.5점의 망작은 모두 여섯 편이지만, 그래도 다른 망작들은 추리물이기는 합니다. 이 작품은 애초에 추리물이 아니에요. '밀리의 서재'에서 '추리, 스릴러' 카테고리로 분류하지만 않았어도 워스트로 꼽지는 않았을텐데, 뒷통수를 맞은 듯한 배신감이 너무 컸네요.

2. 기타

베스트: 그거 사전 - 홍성윤 : 별점 3
- 가볍지만 의미도 있다.

읽은 책 중 절반에 가까운 여섯 권이 별점 3점을 받아서 한 권을 꼽기가 애매하지만, 재미와 정보 모두 좋았던 이 책을 꼽아 봅니다.

워스트: 세계문학단편선 39 윌키 콜린스 (꿈 속의 여인 외 9편) - 윌키 콜린스 : 별점 1.5
- 2025년에 읽기에는 낡고 지루했던, 재미와 가치 모두 압도적인 워스트. 

3. 역사서

베스트: 미친 항해 - 마이크 대쉬 : 별점 4.0
- 충격적인 실화를 방대한 자료로 치밀하게 재구성한 뛰어난 논픽션. 난파 관련 논픽션은 항상 기대 이상!

워스트: 별점 1점대가 없어서 올해는 선정하지 않습니다.

4. 디자인 / 스터디

베스트: 일상 감각 연구소 - 찰스 스펜스 : 별점 3.0
- 일상 감각을 해킹하는 여러가지 팁이 가득.

이 분야는 올해 한 권만 읽어서 워스트는 없습니다.

5. 기타 장르문학

베스트: 거짓과 정전 - 오가와 사토시 : 별점 4.0
- 독특한 세계관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SF와 만나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워스트: 별점 1점대가 없어서 올해는 선정하지 않습니다. 다 별점 2점이네요.

6. Food / 구루메

베스트: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 사이토 미나코 : 별점 3.5
- 상세하게 알 수 있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식생활.

워스트: 초콜릿어 사전 - Dolcerica 가가와 리카코 : 별점 1.5
- 방향성과 완성도 모두 기대 이해.

2020/08/08

Q.E.D Iff 증명종료 10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Q.E.D Iff 증명종료 10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시즌 2도 대망의 10권째입니다. 그러나 수록작 두 편 모두 수준 미달이라 아쉽네요. 기본적인 재미, 추리의 완성도 모두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11권부터는 예전의 명성을 회복해 주면 좋겠네요.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한 법이니까요.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아웃로스"

떠다니는 카지노인 호화 유람선 킹 마이다스 호에서 '더 아웃로스 쇼'가 개최되었다. 배의 소유주 리치 부어만이 직접 선택한 아웃로 6개팀이 참가하는 게임이었다. 룰은 다음과 같다.

  1. 팀은 각자 한 개 씩 열쇠를 받는다. 6개를 모두 모아야 보검이 있는 금고를 열 수 있다.
  2. 시간 제한은 3시간으로 1시간마다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 검사하고, 열쇠가 없으면 바로 실격한다.
  3. 마지막 시간 종료 때 까지 열쇠 6개를 모아 보검을 손에 넣지 못하면, 남은 팀 중 열쇠를 많이 가진 팀이 이긴다. 

상금은 1억달러! 과연 어느 팀이 승리할 것인가?

아웃로스가 뭔가 했더니 Outlaws더군요. 토마는 무법자는 아니고, 주최자 부어만의 부탁으로 게임에 참가합니다. 부어만은 딸 케이트가 라스베가스에서 사기 도박을 벌이는걸 고칠 목적으로 도박의 무서움을 몸소 체험하게 하게 할 생각이었지요. 

게임의 규칙은 위의 지극히 간단합니다. 변수라면 여섯 팀은 각자 변장, 3D 프린팅, 소매치기 등의 특기가 있다는 설정인데 정작 과정은 실망스럽습니다. 간단한 규칙이지만 온갖 변수를 만들어내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카이지"와 같은 박진감은 찾아볼 수 없는 탓입니다. 참가자들이 열쇠를 너무 쉽게 빼앗기기 때문이에요. 약간의 변장, 소매치기 등에 의해 열쇠를 빼앗겨버리니, 이래서야 세계적인 아웃로 어쩌구 하면서 모아 놓은 참가자로는 실격입니다. 특히나 열쇠를 그냥 방에 놔 두었다가 빼앗긴다는 게 제일 황당했어요. 무려 1억불이 걸려있는 열쇠인데,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객실에 완벽한 보안 장치가 가동 중이라더라도요.
또 토마가 객실 열쇠를 훔쳐내는 과정도 억지스럽습니다. 금고털이인 맥거폰 부부의 계획을 눈치채고, 그들이 전기를 차단할걸 예측했다는건데, 주어진 단서라고는 게임 시작 전 물어본 질문밖에 없었으며,  이 질문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추리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게임의 결말도 당황스럽습니다. 마지막 남은 두 팀 중 케이트가 가진 열쇠는 2개이고 토마, 가나 팀은 4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케이트가 3백만 달러를 줄테니 열쇠를 전부 걸고 포커를 하자는데, 상식적으로는 이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상금이 1억불인데, 3%밖에 안되는 돈에 혹해서 확실한 승리를 내팽개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를 수락하고 포커 승부를 펼친 토마에게 필승의 비법이 있다는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다른 동료가 있어도 되는 규칙인데, 딜러가 토마와 한 패였던 거지요. 결국 딜러는 리치 부어만의 변장으로 밝혀지고 딸 케이트와 눈물의 정을 나눈다!는 흔해빠진 신파로 마무리되... 는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반전이 이어집니다. 리치 부어만은 알고보니 게임을 관전하기 위해 참가한 수많은 부자와 스타들의 폰을 해킹하여 정보를 빼돌리려는 사기꾼이었다는 거지요. 폰에서 게임에 배팅하기 위해 접속하는 상황을 이용했다나요?

그런데 그럴거면 구태여 유람선에서 게임을 벌일 이유는 없었습니다. 또 토마를 끌어들일 이유도 없고요. 리치 패거리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잠수함을 타고 나타나는 마지막 장면은 황당함의 정점입니다.아울러 Q.E.D스럽게 수학 이론인 '부동점정리'가 등장하는데,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이 이론이 '나비 효과'와 연결되는 것도 잘 설명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절대 변하지 않는 부동점' 이 항상 있다는건 게임과 아무 관련도 없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게임이면 게임, 사기면 사기,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괜시리 스케일만 크면서 이야기의 설득력은 전무하고, 재미도 없는 어정쩡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일하게 건질건 플레이어 중 한 명인 에멧이 가나로 변장하여 토마를 유혹하듯 다가와 뺨에 키스하는 장면 뿐인 망작이에요.

"다이잉 메시지"

80년대 개발되던 남쪽 섬의 리조트는 버블 붕괴 후 회사가 도산하고 관계자가 도망쳐 30년 넘게 방치되어 '유령 호텔'로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호텔을 철거하기 위해 내부 기둥을 해체하던 중 기둥 속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 유령 호텔 건설 당시, 리조트용 토지를 불법적 수단으로 빼앗긴 피해자들을 대신해 개발 회사를 고소했던 변호사 치아키 실종 사건이 있었고, 30년 전 일이라 유전자 감식은 불가능했지만 경찰은 사체가 그녀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호텔 건설 당시 어둠의 보스라고 불리었던, 호텔 부지 소유와 관련이 있는 원 총무부 부장 스에요시 분지는 건설에 대해서는 당시 건설 책임자 유하마 메이에게 물어보라고만 말했는데, 그녀 역시 30년 전에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메이가 치아키를 살해하고 사체를 호텔 기둥 속에 집어 넣은 것일까? 

조사하던 중 유령 호텔은 내진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지만 여러가지 도움과 돈의 힘으로 개업 허가를 받았다는게 밝혀졌다. 그리고 부동산 업자의 의뢰로 사건을 조사하던 사립 탐정 나카노사토가 중상을 입은 채 유령 호텔 방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방의 입구는 안쪽에 냉장고를 놓아 막아 놓고 창문은 합판을 못박아 놓은 상태의 밀실이었다...

수수께끼는 두 가지입니다. 30년 전 백골 사체 사건의 진상과 현재의 나카노사토 탐정이 발견된 밀실에 대한 것입니다. 

30년 전 백골 사체 사건의 경우, 시체는 기둥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러려면 건물 완성 전에 기둥 안에 시체를 넣어야 하고 유하마 메이는 건물 낙성식에 참석했으니 시체는 치아키일거라는게 경찰과 가나 들의 추리입니다. 그러나 토마의 추리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호텔이 내진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증언을 통해, 낙성식 당시 기둥은 '껍데기만 있는 가짜'였을거라는 거지요.

그리고 현재 유령 호텔의 이상한 기둥 배치를 통해 원래 껍데기만 있는 가짜 기둥에 콘크리트를 담아 굳혀 진짜 기둥을 만들었다고 추리합니다. 이 때 기둥 하나에 시체를 넣고 굳혔던 것이지요. 이 방법을 사용하면 피해자도 치아키가 아니라 유하마 메이가 될 수 있습니다. 낙성식까지는 가짜 기둥이었다는 이야기니까요. 

추리는 대담하고 재미있습니다만 문제는 증거가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짜 기둥은 껍데기만 있었다라는게 핵심인데, 이건 도저히 증명할 수 없어요.
또 미와코로 변장하여 나타난 치아키의 행동도 영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치아키가 호텔 부지를 매입하여 개발에 나선 것 까지는 말은 됩니다. 리조트를 없애고 해안을 원상복구 시키는건 30년 전의 목적이기도 했으니까요. 호텔 해체 작업 시 사체가 발견되고, 옷을 갈아입힌 덕분에 피해자가 치아키로 오인되면 유력한 용의자가 스에요시 분지가 될 거라고 예상한 것 역시 큰 문제는 없고요.
그러나 사체 발견 시 살인 사건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 이유는 석연치 않습니다. 또 탐정이 사건 조사를 시작한건 미와코가 살인 사건 해결없이는 부지 매입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해서, 부동산에서 어쩔 수 없이 고용한게 발단입니다. 나카노사토 탐정에 의해 미와코가 치아키이며 그녀가 범인이라는걸 알아낸 탓에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으니, 한 마디로 긁어 부스럼을 만든거지요. 

아울러 탐정이 진상을 알아냈다 한 들, 스에요시를 옭아매는 계획만 실패할 뿐입니다. 그녀 자신의 범행은 30년 전의 사건이라 공소시효도 이미 끝났을테니까요. 이 진상 때문에 탐정을 습격한다는건 더욱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나이로 보면 상당히 버거울, 빨래 운반 통로를 수직으로 기어올라 탈출하면서까지 밀실을 만들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또 이 두 번째 수수께끼인 밀실 트릭은 추리라고 부르기도 힘든 민망한 내용이에요. 수사를 통해 빨래 운반 통로가 발견되지 않은 것 부터가 이상합니다. 사람이 충분히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다면 밀실은 아닌데 말이지요. 그리고 치아키가 어떻게든 스에요시 분지를 엮어 범인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탐정을 살해했어야 합니다. 단순히 중상을 입힌걸로는 부족했어요. 어차피 탐정이 깨어나면 증언을 통해 모든게 밝혀질테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도 없고요.

마지막으로 미와코가 호텔에 결함이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고 말한게 앞선 대담한 추리 - 사체는 유하마 메이이며 기둥은 원래 가짜였다! - 의 단서가 되었다는 것 역시 설득력이 전무합니다. 토마는 호텔의 결함은 범인만 알고 있을거라 단언하는데, 그 전제부터가 잘못된 겁니다. 근거도 없고요. 게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됩니다. 호텔이 내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부실 건물이라는걸, 건설 반대파를 대표하는 변호사 치아키가 알고 있었다? 고발 등 모든 조치를 동원하여 개업을 방해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즉, 치아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야 하는게 정상입니다. 설령 범행 때 알게 되었다 한들, 유하마 메이를 죽인 뒤 시멘트를 붓는 등의 공작을 혼자서 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런 작업을 혼자서 하는건 절대로 불가능했을겁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완성도는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2023/08/13

로켓맨 1~1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로켓맨 10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중학생 미즈나시 요우는 정보상 R의 일을 돕게 된다. 어린 시절 잊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서였다. 악당인줄 알았던 R은, 알고보니 스스로 로켓을 만들어서 우주로 가려는 꿈을 이루려 정보를 팔아 돈을 모으고 있었다.
R은 자기 사건을 도와준 댓가로 요우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지만, 요우의 과거는 R이 속한 정보조직 T.E의 핵심 비밀 슈타지 파일과 관련된 중요한 비밀이었다. 파일은 오래전, 요우의 어머니가 가지고 사라진 채였다.T.E의 우두머리 아이에네스의 명령으로 R과 싸워 이긴 요우는 R의 로켓을 대신 맡아 완성하는 조건으로 조직에서 일하게 되었다.

Q.E.D로 유명한 카토 모토히로의 초기 옴니버스 연작 단편 모험물.
Boy meet a Rocket man이라는 부제처럼,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가려는 남자 R과 만난 왕따 소년 요우의 모험과 성장이 핵심입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R과 엮여 R이 속한 조직인 T.E의 에이전트가 된 요우가 이런 저런 사건들을 맡아 해결하는 단편 옴니버스물입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추리적으로 괜찮은 에피소드들이 눈길을 끕니다. 특히 밀실 트릭 두어가지는 꽤 잘 만들어졌습니다. 아래와 같이 문이 잠겨진 '느낌'을 전해주는 장치 트릭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안경테의 다리를 쏘았을리 없다는 점에 착안해 일종의 밀실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도 좋았고요.
Q.E.D 작가답게 과학과 트릭을 결합한 이야기도 있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유전 아래에 사는 외딴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한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유전에서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여 배출하다가 의도치않게 유출 사고가 났다는걸 설득력있게 잘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Q.E.D 비슷하게 여러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학습 만화로서의 가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판매하는게 주 업무인 덕분이지요. 그래서 당대 세계 정세 및 주요 사건에 대한 언급도 많습니다. 인상적이었던건 20여년 전 작품임에도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이슈들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그리드 컴퓨팅을 활용한 해킹,수정란 밀매 등이 그러합니다. 무기 상인들의 행각이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요.

중, 후반부는 R이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가려는 이유와 T.E라는 조직에 얽힌 수수께끼를 알려주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결국 T.E와 거대 무기 거래 조직 도미니온 재단 사이에서 전면전이 벌어지고요. 그러나 전개와 설정 모두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단 수수께끼부터 살펴보면, 도미니온 재단은 과거 자동 무인 레이저 공격용 위성을 팔려고 했습니다.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는데 말이죠.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던 시점이라 더 늦어지면 판매가 불가능해 질 수 있었기 때문에 도미니온 재단은 사람을 위성에 남겨두고, 자동화 위성인 것처럼 속이는 쇼를 벌였고 그 사람은 다시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R의 부친이었고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큰 스캔들이 될게 뻔하니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전쟁 무기 상인이 한 명의 우주인을 위성에 남겨둔게 뭐가 그리 큰 스캔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유해를 찾기 위해 우주로 가려는 R과 T.E를 저지하기 위해 희생시킨 군인들 수가 훨씬 많아요. 그 희생은 왜 괜찮은걸까요?
이외에도 설득력 부족한 설정은 많습니다. 하긴, 애초에 13살 중학생인 미즈나시 요우가 T.E의 에이전트가 된다는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우니 더 말해 무얼하겠습니까.... Q.E.D의 토마는 MIT를 조기 졸업한 천재이고, 친구 중 한 명은 거대 IT 재벌 총수인 등 인맥도 화려합니다. 본인의 재산도 많다고 설명되고요. 하지만 미즈나시 요우는 학교에서조차 왕따를 당하는 평범 이하의 중학생입니다. 어머니가 T.E의 S급 요원이었고, 요우도 자질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Q.E.D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아동향이라는 티만 물씬 났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도미니온 재단에서 다른 위성을 구입해서 원래 위성에 추돌시킨다는 계획은 참고 보아온 독자의 의식을 아득하게 날려버립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T.E와 전투를 벌일 이유도 없습니다. 진작에 추돌시켜서 위성만 날려버렸으면 됐잖아요? 여태까지의 전투와 작전은 모두 헛짓거리였습니다!
아울러 도미니온 재단이 고용한 3인의 킬러 프랙탈, 제로, 인피니티와 아이에네스를 지키는 수호자 지하에 대한 설정은 지극히 유치했습니다. 프랙탈과 지하가 총기가 널린 전쟁터에서 칼과 기묘한 와이어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이 장면을 포함한 마지막 대결전은 이 작가가 액션 연출과 묘사에는 정말 재능이 없다는걸 깨닫게 해 주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10권 정도로 연재가 마무리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던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절판된 탓에 중고 가격이 어마무시한데, 그 가격에 걸맞는 가치는 없습니다. Q.E.D에서 활용하면 더 좋았을 트릭이 아까울 따름입니다.

2005/05/30

John Doe - 별점 3점

어느날 알몸의 한 사나이가 어딘가를 탈출하여 바다위에 표류하고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가족과 친구는 누구인지에 등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천재이며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자신에 대한 것만 제외하고...
자신을 "John Doe"라 칭한 그는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그 와중에 경찰 헤이즈와의 우정을 맺은 뒤 여러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2002년부터 Fox TV에서 방영했다는 시리즈물. "미스테리 맨"인가 하는 제목으로 e-Channel에서 방영한 모양인데 그때 보지는 못했고, 이후에 추리쪽 성향이 강하다고 해서 어렵사리 구해 본 작품입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재미있더군요.

작품의 핵심은 주인공 John Doe의 경이에 가까운 지적 능력입니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머리에 담고 있는" 능력으로 예를 들자면, MS DOS의 모든 이진법 코드를 외우고, 처음 피아노 앞에 앉아 재즈곡을 연주하고, 사건 현장에서 루미놀 시약을 만들고, 헬기를 타자마자 조종하고, 그 외 검시와 컴퓨터, 외국어, 모든 기계에 통달해 있다는 식입니다. 
"사기"라고 생각될 수 있는 능력인데 극중에서는 상당히 현실감있게 능력을 포장해서 그다지 위화감은 없습니다. 다이잉 메시지나 주소, 단서를 현장에서 한번 쓱 보고 결과를 추론하는 과정은 색다른 재미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요. 
물론 해킹, 인터넷에서의 정보 검색 장면은 확실히 과장된 티가 팍팍 나긴 합니다만, 이런 억지도 나름의 재미는 있었어요.

존 도 역시 매력적입니다. 지적 능력에 수수께끼에 감춰진 존재라는 옵션이 더해져서 시리즈물 탐정역으로는 충분히 독특한 덕분이지요. 이름부터 "아무개"이니 이보다 더 독특하기도 힘들지 않을까요?
달리 생각해 보면 만화 "QED"의 토마와 흡사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고 보니 "QED"에도 "John Doe"라는 캐릭터가 나오는 괜찮은 에피소드가 있었던 기억도 나네요.

추리적으로는 비교적 정통파에 가깝습니다. 현장에 남긴 범인의 단서를 가지고 전체를 추리하는 방식이 대부분으로, 천재의 두뇌에서 발휘되는 지적 추론이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상상력에는 거의 의지하지 않는 것도 좋았어요. 

약간 느끼하게 생긴 주인공은 그냥저냥이었지만, 유머러스하고 행동적인 친구 헤이즈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시콜콜 따지기 좋아하는 여검사 제이미는 스테레오 타입이기는 하나 이야기와는 잘 어울리고요. 이 정도면 등장인물들은 모두 합격점을 줄 만 합니아. 개인적으로는 '조수' 역의 카렌이 굉장히 별로였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다행히도 비중이 팍! 줄더군요.

에피소드는 크게 주인공이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과 그에 관련된, 또는 관련된 것 같은, 또는 전혀 다른 사건들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사건도 유괴, 복수극, 연쇄살인, 보석 도난 등 다양하게 펼쳐져서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 등장하는 맥가이버스러운 장면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주인공의 베일에 싸인 정체와 몸에 새겨진 문신의 의미, 그를 추적하는 수수께끼의 조직 같은 이야기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프로듀서가 조금 실수한것 같아요. 그냥 천재라고 설정해도 됐을텐데, 뭔가 감춰진게 있다는 전개로 진행되다 보니 John Doe의 과거에 대한 미스테리는 X-File 짝퉁같은 느낌까지 주는 식으로 흘러가서 재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가공할 만한 지적 능력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설정되었겠지만, 비현실적인 만화같은 분위기만 느껴져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그래도 정통 추리물로 볼 수 있는 다른 에피소드들은 상당히 흡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유머러스하고 확고한 캐릭터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긴 하지만 한번 정도 보면서 즐길만 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12화까지 밖에 아직 보진 못했지만 차분히 끝까지 즐겨 봐야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4/12/01

숨겨진 건 죽음 - 앤서니 호로위츠 / 이은선 : 별점 3점

숨겨진 건 죽음 - 6점
앤서니 호로위츠 지음, 이은선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명 이혼 전문 변호사 리처드 프라이스가 와인병에 맞아 살해된 채 발견되었고, 현장에는 초록색 페인트로 '182'라는 숫자가 남겨져 있었다. 탐정 호손은 사건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계약한 작가 호로위츠와 함께 수사에 나섰다. 
리처드 프라이스는 직전 맡았던 록우드 이혼 사건으로 록우드의 전처 안노에게 미움을 사고 있었고, 6년 전 동굴 탐험에서 사고사했던 친구 사건도 사건과 관계가 있는게 아닐까 의심되었다.
호로위츠는 사건을 분석하다가 범인은 록우드라고 확신하고 이를 경찰에 제보했지만, 호손은 전혀 다른 사람이 진범이라고 말했다...

"숨겨진 건 죽음"은 앤서니 호로위츠의 전직 형사 호손과 작가 호로위츠 콤비가 등장하는 시리즈입니다. "맥파이 살인사건"이 참 좋았기에 집어들었는데, 두 번째 작품이더군요.

"맥파이 살인사건"처럼 현대를 무대로 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과학 수사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본격 추리 소설의 전통적 요소를 훌륭히 구현하여 독자에게 치밀하게 구성된 스토리와 탄탄한 추리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특히, 이야기 초반부에 제공되는 단서들이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피해자의 이웃 노인이 본 '손전등을 든 남자', 집 앞에 남은 기묘한 흔적, 피해자가 남긴 마지막 말, 그리고 사건 현장에 있던 두 개의 콜라 같은 단서들은 모두 범인을 지목하는 열쇠가 됩니다. 손전등과 흔적은 '자전거'를, 피해자의 말과 콜라는 '미성년자'를 연상하게 하여 범인이 등장인물 중 유일한 소년인 콜린이라는걸 드러내거든요.
마지막에 데이비나가 진범인지, 콜린이 진범인지를 풀어내는 호손의 추리도 참으로 명추리였습니다. 

물론 이를 곧바로 밝히지 않고 호로위츠와 함께 독자도 잘 속입니다. 여러 용의자가 각기 그럴듯한 동기와 함께 등장하는 덕분이지요. 록우드, 안노, 데이비나 등 모두가 사건과 얽힌 비밀을 품고 있어 흥미를 더합니다. 록우드가 수백만 파운드의 와인 컬렉션을 숨겼던 것, 안노는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작가지만 사실 남성 판타지를 자극하는 포르노적 소설로 대박이 났다는 비밀이 있다는 것, 6년 전 동굴 탐험 사고에 대한 진상 등은 모두 사람 한 명은 충분히 죽일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비밀들이기도 하고요.
독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 데이비나가 벌인 연극도 좋았어요. 콜린의 행동에 대해 갑자기 말을 바꾼다던가, 세탁기 앞을 가린 등의 사소한 디테일들인데, 이게 다 이유가 있었다는게 놀랍기도 했고요.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도 눈에 띕니다. 피해자 집 벽에 적힌 '182'는 "주홍색 연구"의 'RACHE'를 연상시키고, 그 외 사건 중 등장하는 여러 설정이 셜록 홈즈의 모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본적으로 '런던을 무대로 작가인 조수와 함께 활약하는 명탐정'이라는 설정과 호손이 사소한걸 토대로 일상 속 진상을 짤막하게 추리해내는 요소 - 대표적인건 서두에 호로위츠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걸 추리해내는 장면 - 도 셜록 홈즈와도 똑같지요. 이는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에게는 더욱 특별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작가 앤서니 호로위츠 본인이 왓슨으로 등장해서 호손에게 농락당하고, 수사에 이리저리 치이는 묘사도 큰 재미 요소였고요.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존재합니다. 우선, 범인 콜린이 남긴 메시지 '182'가 젊은 세대의 표현인 '너를 미워해(I Hate You)'에서 온 것이라는 점은 한국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해석하기는 어렵기에 추리의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또 독자를 속이기 위한 억지 전개가 과한 편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처음 경찰 심문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작가 안노와 편집자 돈이 사건 당시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피해자의 남자 애인이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했다는건 지나치게 부자연스럽습니다. 캐릭터들도 대체로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적이지 못했고요. 근육위축증에 걸린 소년 비벡이 호로위츠의 폰을 해킹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런 불필요한 설정들은 분량 늘리기에 불과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결말도 급작스러운 편이며, 주요 용의자가 몇 명 안되는데 경찰 수사로 이를 밝혀내지 못한 것도 이해하기는 어려운 점입니다. 콜린이 현장에서 그렇게 완벽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울 수 있었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뛰어나고, 유쾌하면서도 흥미로운 전개는 큰 만족감을 줍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시리즈 1편도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2019/07/06

리얼 라이즈 - T.M. 로건 / 이수영 : 별점 1.5점

리얼 라이즈 - 6점
T. M. 로건 지음, 이수영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4살 아들과 살아가는 평범한 30대 가장인 영어교사 죠셉은 어느 날, 우연히 아내가 지인인 벤과 호텔에서 만남을 갖는 걸 목격했다. 아내가 떠난 뒤, 죠셉은 벤과 잠깐 마찰을 빚다가 벤을 밀쳤는데 뒤로 넘어진 벤은 피를 흘린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아들 윌이 천식 발작을 일으킨 탓에 죠셉은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윌에게 약을 준 뒤 다시 호텔 주차장을 찾았지만, 벤과 벤의 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뒤 죠셉은 벤으로 보이는 누군가로부터 온라인상에서 테러를 당했고, 상황 조사 결과 아내와 벤이 불륜 관계였다는걸 알게 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사라진 벤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리고 말았다. 누명을 벗기 위해서는 벤을 직접 잡아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모함을 받아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이를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스릴러입니다. 이런 장르는 얼마나 주인공이 철저하게 위기에 처하는지가 핵심인데, 그 부분은 괜찮은 편입니다. 이를 그려내는 1인칭 시점의 묘사도 탁월합니다. 덕분에 긴장감이 잘 살아나서 끝까지 흡입력을 유지해 줍니다.
"벤과는 대부분 축구 얘기만 했다. 서로 잘 모르는 남자들이 그래도 뭔가에 대해 대화할 수 있도록 발명된 세계 공통어 말이다."와 같은 축구와 펍 대사처럼 남성 취향을 저격하는 부분들도 마음에 듭니다. 남성 작가의 1인칭 서술이라는 장점을 톡톡히 살려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아들 윌에 대한 묘사도 좋습니다. 정말 그 시기 아이의 모습을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위험에 빠졌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와 같은 두뇌 게임이 전무한 탓입니다. 죠셉이 위기에 처한 뒤 벌이는 각종 행동은 모두 무의미한 삽질이에요. 이 과정에서 뭐라도 하나 알아냈다면 좋았을텐데 그런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마지막에 위험을 무릅쓰고 선덜랜드로 이동하여 벌인 조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중요한건 모두 선덜랜드로 이동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며, 설령 몇몇 단서들에 대해 죠셉이 깨달았어도 이는 무의미했습니다. 죠셉은 베스와 앨리스를 구하기 위해 아무런 준비 없이 벤의 저택으로 향해 스스로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죠셉이 알아낸건 멀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 뿐, 결국 베스의 말에 의해 진상을 깨닫게 되지요.
독자는 이미 멀, 그리고 베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상하다는걸 눈치챌 수 밖에 없어서 이러한 전개는 크게 답답했습니다. 베스의 딸인 앨리스의 도움이 없었으면 베스의 계획대로 강간범으로 몰린 파렴치범으로 살해당했을게 뻔합니다.

또 일견 치밀해 보였던 베스의 계획도 결국 돌이켜보면 헛점 투성이입니다. 베스와 멀이 처음에 벤을 살해한 뒤 왜 시체를 숲에다 유기하지 않았을까요? 시체만 발견되었다면 죠셉은 그 날로 구속되어 최소 20년은 교도소에 있어야 했을 겁니다. 구태여 저택으로 시체를 가지고 와서 은닉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반대로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 죠셉이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저택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그렇지, 엄연히 딸이 집에 있는데 총질을 해서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멀과 벤이 호텔에서 만난건 사실이고, 이를 조셉이 목격한 것도 사실인데 왜 멀의 누드 사진을 찍어서 공유하는 불필요한 추가 작업을 했는지도 의문이고요. 그냥 불륜을 저질렀다는 멀의 증언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죠셉이 동기가 있다는걸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고 해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경찰만 알면 되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벤이 살아있는 척 문자와 SNS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폰과 PC를 해킹하여 정보를 빼돌렸다는 설정도 불필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스 북이나 SNS를 이야기에 끌어들여 화려함을 더하는 수단일 뿐,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정보를 남기면 경찰에게 꼬리를 잡힐 수도 있을 뿐입니다. 경찰이 이를 죠셉의 자작극이라 여긴건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심도깊게 수사를 진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지요.

그 외에도 치밀하지 못한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가 너무 많습니다. 첫 만남에서 벤이 죠셉을 밀치다가 우연찮게 쓰러져 기절하고, 갑자기 윌이 천식 발작을 일으키며 주차장에 CCTV가 제대로 없었다는 3중 우연 상황부터가 작위적입니다. CCTV의 경우, 최소한 페이스북이 대세가 된 현대 호텔에서 있음직한 상황은 아닙니다. 
벤이 살아있는 것처럼 죠셉과 독자를 속이지만 벤이 죠셉을 수렁으로 몰고가는 전개도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거대 기업체의 수장이자 백만장자가 자신이 죽은 것 처럼 위장하여 불륜 상대의 남편을 파멸로 몰고 간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영원히 몸을 숨길 상황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잖아요. 돈을 써서 해결사를 고용한 뒤 죠셉을 없애버리는게 상식적이지요. 실제로 벤은 해결사를 통해 경쟁자를 박살낸 경험이 있는걸로 묘사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럴거라면 죠셉에게 메시지 따위를 남길리도 없고 은밀하게, 조용하게 해결하는게 당연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허술함을 감싸는 동기, 베스와 멀이 서로 동성간 사랑 때문에 벌인 범행이었다는 건 작위적이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설정의 극치입니다. 베스가 빈털터리로 쫓겨날게 두려웠다 한들 죠셉을 끌어들여 살인극을 벌일 이유가 뭘까요? "악마같은 여자"처럼 한 번 정도 관계를 더 꼬아 놓는다면 모를까, 급작스럽고 이해하기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흡입력은 있지만 읽고나면 단점만 더 생각나는 그런 책입니다.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2024/02/25

사라진 내일 - 리 차일드 / 박슬라 : 별점 2점

사라진 내일 - 4점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펜타곤에서 일한다는 수잔이 뉴욕 지하철에서 자살했다. 잭 리처는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었는데, 뉴욕 경찰을 비롯한 온갖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미지의 인물들이 잭 리처를 찾아와 수잔에게 무언가 받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잭 리처는 수잔은 협박을 받아 자살했다고 추리하고, 그녀가 받은 협박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존 샌섬 하원의원이 80년대 초반, 델타포스 시절 아프가니스탄에서 빈 라덴과 손을 잡았던 과거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잭 리처는 그 때 찍었던 사진에 문제가 있었을거라 추리했다. 사진 원본이 파기되었기 때문이었다.......

"1030"에서 이어지는 잭 리처 시리즈 13번째 작품. 원제는 "Gone Tomorrow" 입니다. "1030"에서 딕슨의 초대(?)때문은 아니겠지만, 뉴욕을 방문한 잭 리처가 잠입한 알 카에다 조직원들을 박살내는 이야기지요.

잭 리처가 수잔을 폭탄 테러범으로 착각하고 접근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수잔의 자살 이유가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과 연결되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자살자 수잔 마크의 유품에 있어야할게 없다면,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던 잭 리처가 그걸 갖고 있을거다!라고 생각해서 관계자들이 잭 리처에게 몰려든다는 것도 설득력있고요.
수잔 마크가 빼돌릴려고 했던 정보가 오사마 빈 라덴의 치부를 건드리는 사진이었다는 일종의 반전도 그럴듯했습니다. 상원의원, 그리고 추후 대권까지 노리는 샘손 하원의원의 정치 생명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정보로 여겨졌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오사마 빈 라덴에게 위협적인 정보여서 알 카에다가 이를 철저히 없애려 한다는건 확실한 반전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잭 리처 시리즈답게 액션도 화끈합니다. 특이한건 상세한 무장 묘사입니다. 기관단총이 주 무장이라는건 제가 읽어왔던 그간의 잭 리처 시리즈에서는 보기 힘든 설정이었지요. 헤클러 앤드 코흐 MP5SD라는 총인데 좋은 총이라는 찬사와 함께 실전 활약도 멋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떤 총인지 궁금해서 공식 사이트에서 모델을 한 번 찾아보았는데, 리처의 묘사 그대로더군요.
"개머리도 개머리판도 없다. 단순한 손잡이와 방아쇠, 서른 발들이 휘어진 탄창을 곶는 공간, 그리고 이중소음장치 덕분에 한층 두꺼워진 15센티미터 길이의 총신 뿐이다."

'나이프'가 결정적 활약을 한다는 것도 그간 잭 리처 시리즈에서는 보지 못했었던 설정이었습니다. 검은색 기계식 손잡이로 12cm 길이의 양날 칼날이 자동으로 펼쳐지는 '벤치메이드 3300' 모델인데, 찾아보니 역시나 멋지더군요. 어머니 호스를 끝장낼 때의 작중 활약도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점들은 확실히 1인 대 테러 작전을 그리고 있는 작품다왔습니다. 잭 리처의 엄청난 폭력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아프가니스탄 테러범의 잔혹성에 대한 묘사도 과하기는 했지만 괜찮았고요.

테러리스트 일당을 찾기 위해 포시즌 호텔과 그 주변 - 3번로, 59번가...- 을 샅샅이 훝는 등의 상세한 뉴욕 묘사도 돋보입니다. 뉴욕을 가게 된다면 포시즌 호텔은 한 번 둘러보고 싶어질 정도로요. 지도를 보니 위치가 아주 좋네요. 최저가 150만원에 달하는 숙박비가 문제겠지만....
수잔이 버린 USB 메모리가 어디 있을지?에 대한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을 사람 소지품에 휴대전화가 없다면, 그건 어딘가에 버렸고 그렇다면 그걸 버릴 때 USB도 같이 버렸을 거라는건 지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설정에 너무나 명확한 약점이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우선, 오사마 빈 라덴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진은 수잔 마크가 펜타곤 서버에서 파기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건 원본을 복사한 USB 뿐이에요. 그렇다면 모든게 끝났어야 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이 사진을 영구히 없애고 싶어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쓸데없이 복사본을 만들고, 또 그걸 확보하려고 이 고생을 하는걸까요? 지시가 원본의 파기 뿐이었다면, 수잔이 복사했다는걸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지요. 오사마 빈 라덴의 라이벌 조직이 수잔 마크를 협박했어야 말이 됩니다. 
21세기에 사진 한 장이 그렇게 큰 위협이 된다는 것도 와 닿지 않아요. 합성이나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알 카에다가 펜타곤 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었던 시스템 엔지니어 수잔을 딱 맞게 포착해서 협박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녀의 능력과 기술, 약점을 알 카에다는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 더해 교통 체증으로 늦은 수잔에게 그녀의 아들 피터를 산체로 해부하는(?) 동영상을 보냈다는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피터에게 고문을 가할 수는 있지만 그를 죽이는건 말이 안됩니다. 수잔 마크로부터 USB를 넘겨받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잭 리처는 그녀들이 미쳐있었다, 그리고 수잔에게 미행을 붙여 놓았다고 설명하지만, 이 정도로 납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20명이 넘는 조직원을 뉴욕에 잠입시켜가며 수행한 작전을 이렇게 감정적으로 진행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결말부에서 무려 10명이 넘는 테러리스트들이 잭 리처 한 명에게 간단하게 쓸려나가는 것도 허무했고, 호스 모녀가 잭 리처와 일기토를 벌이는 설정은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편 전부를 쓰러트린 키 190cm가 넘는 거인 상대로 총이 있는데 칼만으로 싸운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호스 모녀는 리처가 등에 벤치메이드 3300을 테이프로 붙여놓은걸 놓쳤다가 낭패에 빠졌지만,설령 리처가 맨손이었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될 짓이었어요. 실제로 리처는 마지막에는 칼이 아니라 의자로 상대방의 칼을 떨어트리게 만들었지요.
잭 리처가 테러리스트 일당을 처단하기 위해 출동할 때, 이 모든걸 알고 있던 경찰(테레사 리)과 샘손 의원 측 사람들이 총기 제공 외 다른 협조를 하지 않는 것(테레사 리와 정사를 나누는 것 외에는) 역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포시즌 호텔과 그 주변 등 묘사가 상세한데 이왕이면 지도도 함께 수록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누가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싶어 잠깐 찾아봤는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도입부, 중반부까지는 무척 흥미로왔는데 후반부는 지나치게 흥행(?)을 의식한듯하여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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