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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6

문구의 모험 - 제임스 워드 / 김병화 : 별점 2.5점

문구의 모험 - 6점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어크로스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라는 부제처럼 우리에게 친숙한(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문구들에 대해 조망하는 잡학 서적입니다. 종이 클립에서 시작해서 디지털 시대의 문구까지, 모두 14개의 챕터에서 설명해 줍니다. 특정 항목의 소소한 역사를 다루었다는 면에서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주제별로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해당 문구가 어떻게 고안되어 일상 속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그리고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깊이와 수준이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해당 문구의 역사를 조망하는 미시사적 구성도 탁월하고요. 볼펜과 만년필을 다룬 항목을 예로 들자면,

  1. 이집트에서 검댕과 물로 만든 잉크를 갈대 솔로 찍어 파피루스에 글을 남김
  2. 6세기 이후 깃털 펜 등장. 거친 표면의 파피루스보다 부드러운 양피지 등이 발달하자 가는 선을 그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 진 것. 이후 19세기까지 사용.
  3. 로마시대부터 금속제 펜촉이 등장하였으나 가공이 힘들고 비쌌음. 이후 19세기에 금속제 펜촉으로 교체.
  4. 19세기 후반 워터맨의 만년필 등장
  5. 1945년 미국에서 최초로 볼펜 판매 시작. 이후 볼펜의 문제점을 개선한 다양한 볼펜들 출시.

의 순서로, 볼펜과 만년필이 발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변곡점을 단계별로 상세하게 짚어줍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앞서 '잡학 서적'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관련된 잡학도 충실히 풀어내고 요. 워터맨이 만년필을 발명한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진, 워터맨이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할 때 중요한 계약 시 펜에서 잉크가 새는 바람에 잉크 얼룩이 번져 계약서를 새로 바꾸는 동안 고객이 가 버리고 만 일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부 거짓말이라고 명확하게 짚어주는 식으로요. 이러한 일화, 잡학들 모두 명확한 사료를 통해 검증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인사들이 사용하는 연필들에 대한 소개 - 조지 루카스는 딕슨 타이콘데로가, 스티븐 킹의 "다크 하프" 속 작가 조지 스타크가 쓰는 연필은 베롤 블랙 뷰티, 존 스타인벡이 가장 좋아한 연필은 블랙윙 602(블랙윙의 팬은 많다. 기획자 넬슨 리들 / 작곡가 퀸시 존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품에도 등장 / 만화가 척 존스 등) - , 형광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 일본의 호리에 유키오가 사인펜을 만들고, 카터가 파이버팁 사인펜에 형광 잉크를 적용한 '하이-라이터'를 출시하고, 독일의 슈반호이저가 잉크와 디자인을 개선한 '스타빌로 보스'를 출시 - 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친숙한 제품이 다수 등장하는 것도 반가운 부분입니다. 볼펜은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고민을 통해 개발된 물건인데, 그 중 기존 볼펜의 문제점을 개선한 새로운 볼펜이 바로 BIC 크리스털 펜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그 외의 제품으로는 몽블랑 만년필, 몰스킨 노트, 스타빌로 형광펜 등이 있습니다.

허나 도판이 부실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최소한 소개된 제품의 도판은 빠지면 안 되었을텐데, 극히 일부 제품만 도판이 선보이거든요. 앞서 예를 든 볼펜과 만년필 항목에서도 소개된 도판은 빅 크리스털 볼펜, 파커 만년필에 불과합니다. 비중있게 소개된 다양한 볼펜들(파커 조터, 피셔 우주펜 등)과 몽블랑 만년필 등은 글로만 설명됩니다. 한마디로 표지에 있는 도판이 거의 전부인 셈이지요. 충실한 도판, 혹은 도해와 함께 보다 상세하게 사전적으로 설명하는 구성이었다면 훨씬 마음에 들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정보가 소개됨에도 불구하고, 큰 재미를 느끼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문구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가 아닌 탓이지요. 평범한 일반인이 만년필의 역사나 구조 같은 것에 호기심을 갖기는 힘드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특정 분야에 대해 엄청나게 깊이 파고든 점은 확실히 대단하나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그런 책입니다. 문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필독서일테지만 (그리고 아마도 이미 구입해서 읽어보셨겠죠), 그렇지 않으신 분들께는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2010/11/12

금요일 밤의 미스터리 클럽 - 구지라 도이치로 / 박지현 : 별점 1.5점

금요일 밤의 미스터리 클럽 - 4점
구지라 도이치로 지음, 박지현 옮김/살림

시부야에 있는 니혼슈 전문 바 '숲으로 통하는 길'. 그곳에서 바의 마스터, 경시청 경부 구도, 술을 못하는 범죄 심리학자 야마우치는 자칭 '야쿠도시' 트리오를 이루며 다양한 화제로 수다를 나누다가, 매주 금요일만 나타나는 사쿠라가와 하루코라는 미모의 여성과 어울리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녀는 미궁에 빠진 사건을 듣고 곧바로 해결하는 알리바이 깨기의 명수였다...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과 유사하게, 니혼슈 전문 바를 무대로 한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설정 자체는 매우 고전적이지만, 니혼슈 바라는 공간적 특징을 살려 각 에피소드마다 맛있는 술과 요리, 안주가 등장하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다양한 잡학 지식이 펼쳐지는 부분에서는 "심야식당"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추리 요소를 결합한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특히 술과 요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에피소드를 '...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설정하여 사건을 동화와 연결시킨 점도 나름대로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추리소설로는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트릭이 단순한 탓이 가장 큽니다. 모든 사건이 알리바이 트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대부분 우연과 운에 의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몇몇 트릭 장치는 지나치게 유치했고요. 게다가 '알리바이'만 강조될 뿐, 기타 현장 조사나 탐문 수사는 거의 생략되어 있습니다. 경찰이 보다 철저하게 수사했다면 쉽게 해결될 사건도 많습니다. 즉,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추리 퀴즈'에 가깝습니다.

또한 니혼슈와 다양한 요리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예능, 광고, 가수 등과 관련된 대화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비중이 크고, 이로 인해 사건 자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해집니다. 이러한 잡학 정보가 캐릭터들의 개성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불필요한 요소였습니다.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작가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동화와 사건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억지스러웠습니다. 동화 속 숨겨진 진실을 사건과 엮는 방식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기존에 출간된 "어른들을 위한 그림동화"와 같은 책들에서 다루어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신선함이 부족했거든요.

결론적으로, 읽기 쉬운 짧은 에피소드 구성과 술과 안주, 요리에 대한 묘사, 다양한 잡학 지식이 흥미로울 수는 있지만,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부족합니다. 차라리 요리책으로 나왔다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정말 읽을 책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가볍게 읽어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의 비밀"

등장 요리: 조개구이, 송이버섯구이 (숯불에 구워 간장으로 양념) 

등장 니혼슈: 아즈마이치 (東一), 하루가스미 (春霞) - 아키타현의 향이 풍부한 다이긴조슈 

사건: 도미사와 이시라는 과자 회사 사장이 자택의 간이 소각로에서 타 죽은 채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두 명이지만,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로, 사망 시간을 조작하는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합니다. 트릭 자체는 유치하고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여러 단서가 모여 결말에 이르는 전개는 비교적 탄탄했습니다. 동화의 내용을 사건과 연결하는 방식도 효과적으로 활용되었고요.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빨간 모자의 비밀"

등장 요리: 날치 튀김 (신선한 미야케지마 산 날치와 참마를 다져 튀긴 요리, 레몬즙과 간장을 곁들여 섭취) 

등장 니혼슈: 사쿠라가와 (桜川) - 도호쿠 남부 지방에서 빚은 과일향이 나는 다이긴조슈

사건: 71세의 할머니와 21세의 손녀딸이 살해당했다. 사인은 모두 교살이며, 용의자는 손녀딸 이즈미의 남자친구 미타무라와 이즈미 계모의 애인인 백수 시모이였다. 그러나 시모이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사망 추정 시각의 공백을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범인이 알리바이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즉, 순전히 우연과 경찰의 부주의한 수사로 인해 꼬였을 뿐인거지요. '시각 실인증'이라는 개념은 흥미로웠지만,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브레멘 음악대의 비밀"

등장 요리: 돼지고기 소시지 구이

등장 니혼슈: 아즈마이치 (東一), 오토코야마 (男山), 센주시라뵤시 (千壽白拍子) - 야마다니시키 100%를 원료로 시즈오카 효모로 빚은 술. 첫맛은 깨끗하고, 뒷맛은 산뜻함

사건: 악단 '사계'의 멤버 세 명이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죽었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까지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기에 사고로 여겨지는데...

"명탐정 코난"에서도 사용된 팩스를 이용한 방화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정교하지 못하고, 기화하는 수면제라는 설정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신데렐라의 비밀"

등장 요리: 생굴 (간장과 레몬을 곁들여 섭취)

등장 니혼슈: 시라마유미 (白真弓) - 기후현 히다의 명주

사건: 캐슬 호텔 오너의 아들 조 다쿠야의 애인 요시노 리호코가 절벽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가 추락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기에 사망 시각은 확실했다. 그런데 유력한 용의자 조 다쿠야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고전적인 시체 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부실하게 진행되었고, 알리바이 또한 범인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우연'에 의한 것이기에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백설공주의 비밀"

등장 요리: 애플파이, 자오우 산기슭에서 직송된 화이트치즈 (와사비 간장 소스), 샐러드를 곁들인 호로새 훈제구이 (마요네즈 소스)

등장 니혼슈: 시라유키 (白雪) - 효고에서 생산된 명주. 마쓰오 바쇼, 치카마츠 몬자에몬 등이 즐겨 마셨음

사건: 유키코는 계모 도모미로부터 살충제가 든 애플파이를 선물받았다. 그러나 파이를 먹기도 전에 둔기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차로 1시간, 오토바이로 30분이 걸리는 장소를 순간 이동하듯 이동하는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연에 의지한 알리바이이며, 범인의 행동이 눈에 띌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점이 문제였습니다. 경찰 수사가 조금만 철저했다면 알리바이 없이도 쉽게 해결될 사건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비밀"

등장 요리: 광어회

등장 니혼슈: 메이보 (明眸) - 아이치현 세토산

사건: 채팅 사이트에서 바람잡이로 활동하던 네코다 마사미가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인 가라바는 사망 추정 시간에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공원에서 데이트 중이었다는 알리바이 증명 사진을 경찰에 제출했다.

고전적인 트릭인 '시계 앞에서 찍은 사진'을 활용한 알리바이 조작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트릭이 조잡하고 유치한 수준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해당 시간대의 탐문 수사만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쉽게 해결될 사건이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비밀"

등장 요리: 참치와 방어조림

등장 니혼슈: 히카리 백춘 (白春) 다이긴조 - 과일향이 나는 미주

사건: OL 노하라 유메코가 음독 자살했다. 그런데 그녀는 자살 직전까지 중학교 동창인 탤런트 히키다 신지에게 줄 스웨터를 뜨고 있었다.

일종의 원격 살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범죄성이 낮고, 이러한 이유로 사람이 죽을 가능성이 적어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치사량' 개념을 활용한 추리는 흥미로웠지만, 그 외의 요소들은 미흡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의 비밀"

등장요리 : 소 혓바닥 요리, 돼지고기 조림, 수제 로스햄, 흑돼지구이 - 사쓰마 자연 방목 흑돼지 로스를 간장에 절여 숯불에서 구운 것. 양파 슬라이스 곁들임

등장 니혼슈 : 와카다케 (若竹),

고시노칸바이 (越乃寒梅) - 매화의 명소에서 만들어진 니가타의 명주. 지방술 붐의 선두주자.

사건 : 보모 쓰키오리 아즈미 살해사건. 자택에서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직장 동료인 모토야 마사카즈였다.

경찰의 무능함이 부각되는 조잡한 알리바이 트릭입니다. 용의자 핸드폰 통화 내역이나 주변 탐문 수사만 했더라도 뻔하게 드러났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트릭의 핵심이 변장이라는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차라리 1:1 비율의 사진을 오려 붙였다고 하던가... 점수를 주기 힘든 졸작입니다. 구태여 점수를 주자면 1점입니다.

"꼬마 요정과 구둣방 할아버지의 비밀"

등장요리 : 도오바찜 - 돼지고기를 간장, 미린, 설탕을 넣고 푹 끓여 찐 요리. 슈토 (酒盜) - 토사 명물 가다랭이 젓갈. 기본 안주임.

등장 니혼슈 : 덴구마이 (天狗舞) - 이시카와 현의 저온 장기숙성 준마이슈

사건 : 지난 1년간 시부야를 휘저으며 보석만 훔치는 괴도 S89호가 '요정의 구두'라는 100캐럿 다이아몬드를 훔쳤다. 하루코는 S89호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편'이어야 하지만... S89호의 정체도 어이가 없을 뿐더러 증거라고 들이대는 것들도 설득력이 약해 추리 소설로서의 가치가 전무합니다. 그냥 마지막 편이라는 의미 이외의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13/05/12

음식 잡학 사전 - 윤덕노 : 별점 2.5점

음식 잡학 사전 - 6점
윤덕노 지음/북로드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로 접했었던 윤덕노씨의 저서입니다. 2007년에 발표된 초기작이네요. 제목 그대로 여러 가지 음식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해주는 잡학 서적입니다. 크게 여섯 개의 주제로 구분되어 70개의 음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익히 알고 있던 내용도 있지만, 새로운 내용도 아주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 일상계 만화인 "오무라이스 잼잼"의 조경구 씨가 이 책을 참조한 듯한 항목을 몇 개 발견해서 더 반가왔고요. "포테이토 칩", "마파두부", "전가복" 관련 이야기가 그러했는데, 이 책에 실린 또 다른 이야기가 만화로 그려질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내용이나 자료적으로 가치가 있던 내용을 몇 개 적어 보자면,

"북경오리구이"

북경에는 전통 북경오리 전문점이 "편의방", "전취덕" 두 군데가 있음. 방식도 다른데 전취덕 방식은 오리를 직접 장작으로 굽는 직화구이, 편의방은 오리를 화덕에 넣어 굽는 방식임.

"중국의 6대 국수"

쓰촨 딴딴면 / 산시 도삭면 / 광둥 이부면 / 무한 열간면 / 란저우 쇠고기라면

"짬뽕"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 천핑순이 가게에 찾아온 화교들에게 인사 대신으로 "밥 먹었어?"라는 뜻의 "츠판?"을 자기 고향인 푸젠성 사투리로 "샤뽕?"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본인들이 국수의 이름으로 오해해서 "챤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캥거루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해장국"

원래 해장국이 아니라 숙취 정자를 써서 해정국임.

"샥스핀"

중국의 요리 명문가는 담종준 집안과 공자 집안이 있음. 각각 샥스핀 요리의 명품인 담씨 집안의 황민어시, 공씨 집안의 통천어시가 있음.

"떡국"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의 유래. 동국세시기의 떡국 레시피에 흰 떡과 쇠고기, 꿩고기가 쓰이나 꿩을 구하기 힘들면 대신 닭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적혀있는 것 때문임.

* 그러나 이 부분은 이전에 다른 자료에서 12세기 "주례(周禮)"라는 책에 등장한 다른 이유. 즉 ‘폐백(幣帛)’ 선물이 신분에 따라 피백, 염소, 기러기, 꿩, 따오기, 닭의 순서대로 폐백 서열이 정해진 것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하는데 뭐가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군요.

이러한 내용들이 가득한데 이미 다른 매체나 서적을 통해 읽었던 내용들이 제법 많다는 점, 그리고 각 음식별 도판이나 사진이 없는 점은 아쉬우나 음식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꽤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의 판형도 조그마한 게 마음에 들고 한 편 한 편이 짧아서 휴대해서 읽기도 수월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04/09/17

배꼽티를 입은 문화 - 찰스 패너티 / 김대웅 : 별점 2.5점

배꼽티를 입은 문화 - 6점
찰스 패너티 지음, 김대웅 옮김/자작나무
"문화의 171가지 표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일종의 잡학 서적입니다.

목차만 보아도 흥미로운 내용이 무척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면
  • "신부를 약탈하던 풍습"
  • "약탈한 신부를 어디에 숨겼을까?"
  • "비오는 날에만 돈을 건다"
  • "낙타를 타고 온 산타크로스"
  • "향수의 원료는 무엇일까?"
  • "파리의 비키니 수영복 대회"
  • "턱시도의 어원은 늑대"
  • "부채는 계급의 상징"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바셀린 사나이"
  • "한 애처가의 발명품"
등등 역사적인 풍습이나 미신에 관한 유래, 친숙한 발명품이나 상품의 기원과 제조법 등 역사와 문화, 과학, 풍속 등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잡학과 상식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이전에 읽어보았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잡학사전"이나 "책속의 책" 비스무레한 책이랄까요?

워낙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탓에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71가지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책이 구성된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 이런 흥미진진한 내용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죠.
특히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각종 물건의 발명사였습니다. 지퍼나 바셀린, 밴드에이드, 운동화, 아이보리 비누 등등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듯 쓰고 있지만 실제로 그 기원에 대해 잘 몰랐던 여러 상품들의 이면에 있는 발명사가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다만 역사적인 배경이나 유래, 어원 같은 것은 저자의 광범위한 조사에 물론 기인한 것이겠지만 좀 단편적인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유추하는 식의 내용도 상당히 많아서 약간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너무 짤막해서 부실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잖아 있고요.

그래도 재미와 지적인 만족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03/29

마시는 즐거움 - 마시즘 : 별점 2.5점

마시는 즐거움 - 6점
마시즘 지음/인물과사상사

마시즘이라는 필명으로 각종 매체에서 연재되던 글들을 엮은 음료 관련 잡학 문화사 서적. 각 항목별로 해당 주제에 관련된 음료의 역사와 문화, 기타 잡학 상식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음료의 폭도 넓습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커피, 차, 와인, 맥주는 물론 콜라와 환타, 소주, 커피믹스와 갈아만든 배, 심지어 사약에 대한 내용까지 다루고 있으니까요.

특징이라면 깊이있는 역사 전반이라기 보다는, 주로 재미있는 일화나 에피소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방식도 SNS의 형식을 빌린다던가, 유행어를 사용하는 식으로 젊은 감각에 맞추어져 있고요. 덕분에 쉽게 읽을 수는 있습니다. 이런게 요새 트렌드구나!라는걸 느낄 수 있던 것도 좋았고요. 짤막하지만 꽤 괜찮은 정보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몇 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심포지엄 Symposium'이 원래 그리스에서는 '함께 마시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처음 알았네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 '회식'이었던 셈이지요. '많이 마시되 취하지 말라'가 모토였다니 정말 회식 문화와 다를게 없어 보입니다.
럼 Rum의 어원이 '과격한 소동'을 뜻하는 Rumbulion이었다(독해서 마시면 과격한 소동을 일으켰기 때문), 유명한 커피하우스 블루 보틀의 이름은 콜시츠키가 17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에 차렸던 커피 하우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오란씨의 이름은 오렌지와 비타민 C의 결합이다 등 명칭 관련된 정보들은 재미있는게 많습니다.
음료 자체에 대한 정보도 건질만 합니다. 코카콜라의 맛이 국가별로 다르고, 특히 멕시코 코카콜라는 콘시럽대신 사탕수수를 사용해서 더욱 달콤하고 향긋하다는 것처럼요. 무엇보다도 정식품의 베지밀과 같은, 순수 한국산 음료에 대한 정보들은 독보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이야기는 다른 해외 도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당연하게도, 깊이있는 정보는 그닥입니다. 환타 이야기처럼 다른 책들을 통해 이미 접했거나,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았고요. 또 저처럼 기존에 인터넷으로 이미 접했던 독자에게 새롭게 제공되는 부분이 없다는 점 역시 아쉬웠습니다.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가면서 구입해서 읽을 필요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마시즘의 컨텐츠를 읽으실 수 있다면, 책을 별도로 구입해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2019/12/25

도해 고대 병기 - 미즈노 히로키 / 이재경 : 별점 2점

도해 고대병기 - 4점
미즈노 히로키 지음, 이재경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얼마전 "세계의 전투 식량을 먹어보다"가 꽤 괜찮았기에 찾아본 AK 트리비아 북 중 하나입니다. 100개의 꼭지별로 각각 소개 1페이지, 그림 1페이지의 구성으로 여러가지 고대 병기와 병기가 사용된 전쟁 등 '트리바아'라는 말에 걸맞는 여러가지 잡학스러운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 중에서 '도해' 라는 단어가 붙은 시리즈는 모두 동일 시리즈가 원전이라 생각됩니다. 표지, 내지의 디자인과 책의 구성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라면 이 '도해' 시리즈는 영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이유는 책마다 조금 다른데, 우선은 '도해', 즉 정교한 그림으로 설명되는 여러가지 정보를 기대하고 읽었지만 정작 도해 자체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도해 전국무장"이 딱 그런 경우였어요. 제 리뷰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여기 수록된 '도해'는 제대로 된 일러스트나 그림이 아니라 파워포인트 보고 자료 같은 도식화된 그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바로 이 책의 경우로 도해라는 말에 어울리게, 소개하는 고대 병기에 대한 일러스트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정말로 정리되지 않은, '트리비아'라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 잡학적인 지식 전달에만 치중할 뿐이라는 거지요. 일단 고대 병기가 무슨 기준으로 선정되어 소개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분류도 엉망이라서 전차와 공성 병기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그리고 성에 장치하는 뾰족한 나뭇가지인 세르부스나, 성 외곽에 설치한 함정인 리리움을 '병기'라고 소개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러한 기준이라면 '해자'도 병기인 셈이니까요. 에우리알로스와 마사다가 소개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그냥 '요새' 그 자체인데 말이죠. 하긴, '트로이 목마'까지 병기라고 소개되고 있는 판이니 요새가 병기인 것도 당연한 걸까요?
또 문명의 수준에 있어 '고대 병기'를 논하기 어려울 일본의 투석기와 배가 소개되는 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중국의 수, 당나라 시기의 무기라니 다른 기원전 무기들과는 시기 자체도 맞지 않고요. 구태여 소개할 필요없는 사족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료를 먼저 조사하고, 재미있을 법한 내용을 뽑아내어 대충 '고대 병기'라는 제목으로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물론 살라미스 해전의 전법이라던가, 3단 갤리선과 5단 갤리선의 구분 등 도해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투석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적 진보였다는 인장 스프링과 토션 스프링의 차이는 이 책처럼 그림으로 설명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테고요. 글로는 이해하기 힘들었을테니까요. 또 체계적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더라도 한 개, 한 개의 이야기는 읽을만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앞서의 이유로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약간 속았다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거든요. 내용을 세분화하여 '고대 무기', '고대의 공성전' 등으로 보다 상세하게 분류하여 책을 발매하는게 맞았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1/01/31

지도 위의 인문학 - 사이먼 가필드 / 김명남 : 별점 3점

지도 위의 인문학 - 6점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명남 옮김/다산초당(다산북스)

시대 별 중요했던 지도 22개를 선정하여, 그 지도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를 소개해 주는 인문학, 미시사, 잡학 (?) 서적입니다. 각 지도별로 20~30 페이지 정도가 할당되어 자세하게 소개되기 때문에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읽기 전에는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지도들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역사적 흐름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시대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가장 잘 드러낸건 지도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제 생각과는 좀 다르게 역사적 흐름 보다는 '지도' 그 자체에 집중해서 소개해주고 있더군요. 미술 사조에 빗대어 이야기한다면 사실주의 화풍에서 인상파, 입체파 등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훝어주며 대표작과 대표 작가와 함께 화풍이 변한 이유를 설명해 주기를 원했는데, 그냥 대표작만 소개되는 셈입니다.

물론 미대륙이 왜 '아메리카'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설명처럼,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1507년 만들어진 '발트제뮐러 지도'에 '아메리카'라고 명기한 뒤 다른 지도 제작자들이 그 이름으로 대량 생산해서 지도를 유통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는 아메리고가 했던 거짓 주장을 발트제뮐러가 믿었기 때문으로, 발트제뮐러는 고작 3년 뒤 그 선택을 후회하고 아메리고의 이름을 본인 저작물에서는 삭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인거지요.
덧붙이자면,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소개되고 있습니다. 1519년 정복자 코르테스는 멕시코 상륙을 앞두고 선주민 몇 명을 자기 배로 초청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곧 약탈하려는 장소 이름을 그들에게 물었죠. 한 남자가 "마 쿠바 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를 코르테스와 부하들은 "유카탄"이라고 알아듣고 지도에 그렇게 적었고요. 그로부터 정확히 450년이 흐른 뒤 마야어 전문가들 조사 결과 "마 쿠바 단 (Ma c'ubah than)'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라는 뜻이라는걸 밝혀냈다고 합니다. '캥거루' 이야기가 떠오르지요?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지만요.

그 외에도 빈 아프리카 지도를 통해 제국주의의 탐욕을 설명한 내용, 찰스 부스가 런던 시내를 사는 계층으로 구분했던 '런던 가난 지도'도 제 기대에 값하며, 그 양은 많지 않지만, 서구 유럽 뿐 아니라 중세 일본과 중국의 지도가 소개된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12세기 제작된 중국의 '우적도'는 지금 시점으로 보아도 으스스할 정도로 정확하다니, 중국이 얼마나 앞서가는 국가였는지를 또 다시 느끼게 해 주네요.

하지만 이렇게 역사적 흐름을 함께 알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지도 그 자체에 대한 설명에 치중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빈랜드 지도' 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 보면, 제 생각대로의 글이라면 빈랜드 지도를 작성했음직한 1,000년 경, 당시 바이킹들의 항해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분석하여 그들이 정말 미대륙을 방문했을지를 검증하는 내용이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빈랜드 지도를 발견한 사람이 누구이며, 이 지도의 진위여부를 어떻게 검증했는지에 대한 내용 뿐입니다. 재미있는 내용임에는 분명하지만, 제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렇게 지도 자체에 집중한 덕분에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자면, 첫 번째는 매리 애시퍼드 살인 사건 때 사건 현장과 용의자 이동 경로를 자세하게 설명한 '살인 지도' 입니다. 지금은 신문 기사 등에 널리 활용되는 방식이고, 이 매리 애시퍼드 사건 지도가 첫 번째 살인 지도는 아니지만 이를 만든 사람이 영국 우편제도를 혁신한 젊은 시절의 롤런드 힐 경이었다는게 신기했습니다. 콜로라 유행 당시, 식수가 원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지도에 펌프의 위치와 근처 사망자를 함께 나타낸 존 스노의 지도는 말 그대로 '닥터 하우스'를 연상케 했고요. 

보물 지도 이야기도 있습니다. '트리니나드 지도'와 같은 사기극, 보물이 묻힌 장소를 암호화하여 책 "가면 무도회"에 수록해서 발표했던 진짜 보물 지도 이야기 모두 아주 흥미로왔어요. 책에 삽입된 삽화 속 인물들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 시선의 방향을 연결하여 마지막 글자를 이어 붙여 문장을 만들고, 문장 앞 철자만 조합하여 키워드를 뽑아내는 방식인데 그럴듯 하더라고요. 마지막 암호를 풀었다는 사람도 책 저자의 전 여자친구의 증언을 통해 단서를 잡았다는 일종의 반전까지 완벽해서,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도를 만드는 기법에 대한 설명도 상세판 편입니다. 그래서 메르카토르 도법을 발명한 메르카토르와 그의 지도에 대한 설명, 그리고 메르카토르 지도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구"를 "평면"으로 바꾸면 왜곡이 생기는건 당연하지만,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도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건 큰 문제니까요. 당연히 지구본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글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도를 읽는 방법에 대한 소개도 있습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보다 지도를 더 잘 읽는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조사 결과가 아주 재미있었어요. 여자는 광범위한 2차원 공간보다 랜드마크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며, 이는 과거 수렵을 담당했단 남자와 채집을 담당했던 여자 유전자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가설이 등장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있다 생각되었습니다. 채집은 지금도 그렇지만 '어디어디 무슨 소나무 밑' 처럼 지형지물에 의존해야 하니까요.

그 외에도 지도책을 뜻하는 '아틀라스'라는 말의 유래, 지도에 그래픽적 요소가 도입된 시기, 진정한 '거리 지도'의 시작, 여행용 가이드 맵의 유래 등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며, 아우르고 있는 지도도 게임 속 지도와 지도를 사용했던 보드 게임까지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담고있는 정보의 질과 양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지도가 얽혔던 사건 설명은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도입부인 제 2장, "세계를 팔아넘긴 간 큰 남자들"에 등장하는 '마파문디'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입니다.'마파문디'는 중세에 그려진 세계 지도를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로, 이야기 속 주인공은 1290년대에 영국 헤리퍼드에서 그려진 지도입니다. 하지만 온갖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는 설명 외에는 그 지도를 경매로 팔고자 했던 일련의 과정에 대한 설명이 더욱 자세합니다. 최소한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정도는 설명해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경매 이야기가 딱히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리고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도보다는 기술에 집중하는 듯 한데 지루했습니다. "카사블랑카"와 "인디애나 존스" 등에서 사용된, 지도를 가로지르는 화살표로 등장 인물의 여정과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방식 소개는 재미는 있었지만 이게 지도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었고, GPS는 이미 일상이 되어서 구태여 책으로 설명을 봐야 하는 내용도 아니었거든요. 게임 속 지도에 대한 이야기는 책 방향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지도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도판이 그닥 미려하지 않다는게 큰 단점입니다. 컬러였어야 하지만, 컬러 수록된 지도는 앞뒤 내지에 인쇄된 영국 지하철 노선도밖에는 없습니다. 접는 방식으로 확대 인쇄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못하고요. 책 판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지도 않아서, 세부를 보는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이 책에 수록된 지도들은 대부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큰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특정 항목은 담고있는 정보가 과하거나 심하게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크게 흠잡을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류의 '잡학'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9/12/14

세계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다 - 키쿠즈키 토시유키 / 오광웅 : 별점 3점

세계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다 - 6점
키쿠즈키 토시유키 지음, 오광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굉장히 특이한 주제를 깊숙이 파고드는 AK Trivia book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제목 그대로 세계의 전투 식량과 그 역사, 기타 관련된 정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반에 등장하는 여러 국가들의 현용 전투 식량에 대한 소개부터가 엄청난 수준입니다. 레이션 별 칼로리까지 소개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왠만한 쇼핑몰에서 다양한 국가의 전투 식량을 구입할 수 있어서 특별한 내용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허나 하루의 3끼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등 이 책에서 제공하는 상세 정보를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나름의 가치는 확실합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전투 식량에는 치킨 누들, 즉 라면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전투 식량은 그 맛이 빼어나서 과연 프랑스답다, 스위스 전투 식량은 그냥 민간 시장용 시판물을 패키징한 것에 불과하다는 등의 재미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개된 국가들 전투 식량 중에서는 러시아 것이 가장 탐나네요. 

이러한 현용 전투 식량 소개 외에도 미국 독립전쟁에서부터 다루고 있는 병영식의 역사 등 관련 자료도 풍부합니다. 미국 남북 전쟁부터 통조림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심지어 당시 깡통 통조림을 생산했던 밴 캠프사와 언더우드사는 현재도 건재하며, 당시와 똑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니 한 번 구해서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뒤로는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과 현대의 병영식이 소개되는데 역시나 흥미롭습니다. 병영식, 전투 식량의 발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일람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 전투 식량이 별 차이가 없는게 좀 의외였습니다. 2차 대전 때 어느정도 전투 식량의 형태가 완성된 탓이겠지요?
그리고 병영식은 기본적인 주식 외에도 초콜릿이나 잼, 사탕류와 기타 국가별 특이한 음식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이 외에도 레이션을 구성하는 가열제와 액세서리 백으로 제공되는 각종 액세서리 및 커틀러리와 식기, 조리 도구 등 관련된 아이템들 소개도 빼 놓지 않습니다. 

전투 식량 속 단골 아이템을 꼽아서 언제부터 전투 식량에 포함되어 제공되었으며, 국가별로 어떤 차이를 보내는지를 알려주는 챕터도 흥미로우며, 맨 마지막에 '오래전 야전식을 재현하자!'는 취지로 소개하는 미국 독립전쟁, 남북전쟁과 구 일본 육군 야전식 레시피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딱히 해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요.

아울러 이 모든 내용이 방대한 도판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확실히 일본인들이 뭔가 집요할 정도로 파고 드는건 잘하네요.

그러나 일본인이 쓴 책이라 일본 자위대,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구 일본 육군의 전투 식량과 병영식에 관련된 정보가 많다는 건 아쉽습니다. 자위대 전투 식량은 전 메뉴를 소개하고 있기까지 하거든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래도 대한민국 육군의 전투 식량도 소개되고 있다는게 위안거리겠지요.
그리고 전투 식량 소개와 역사 및 기타 정보가 이른바 선진국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단점입니다. 제 3국이나 아프리카 등의 전투 식량 소개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저처럼 '잡학다식' 쪽 분야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다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책이거든요. 전투 식량도 좀 사 먹어 봐야 겠군요. 러시아, 없다면 프랑스 것이라도요. 또 AK Trivia book 시리즈도 몇 권 더 구입해 보아야겠습니다.

2025/10/24

그거 사전 - 홍성윤 : 별점 3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지만 명칭이나 유래를 잘 알지 못했던 물건들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주는 책입니다. 원래는 매일경제 연재물입니다. 접할 때마다 흥미롭게 읽었는데, 책 한 권으로 묶여 나와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습니다. 

단순한 사물 설명을 넘어, 그것들이 가진 인문학적 의미까지 함께 풀어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집 반찬으로 자주 나오는 자차이를 소개하면서, 중국에서는 자차이의 지역별 판매량이 도시화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소비되는 반찬으로 도시 거주 인구수와 비례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지표 역할을 하는 음식이 놀랍게도 커피라고 하네요. 이처럼 단순한 사물에서 출발해, 관련된 사회적 맥락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성이 돋보입니다.
배달 음식 포장을 벗길 때 사용하는 랩칼을 다루면서는, 우리나라 배달 음식 문화의 역사가 함께 소개되고요. 과거 젓가락으로 그릇과 랩이 닿은 부분을 문질러 벗겨내던 '젓가락 신공' 소개는 저에게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초밥 사이에 넣는 인조 대잎에 대한 설명이 조지 오웰의 소설 "엽란을 날려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저자의 넓은 식견을 느낄 수 있었으며, 상표나 가격이 적힌 꼬리표를 고정하는 택핀 항목에서는 과거 서태지가 유행시키기도 했던, 흑인 문화에서 상표 태그를 떼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문화적 배경 설명도 인상적입니다. 여러가지 설 중에서도 '난 이렇게 대단한 물건을 새걸로 가지고 있다'는걸 자랑하고 과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건 확실히 그럴 듯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자부심의 표현이었다는 것이지요.

도어 스토퍼를 다루며 엘러리 퀸의 "용 조각 문 버팀쇠의 비밀"을 언급한 대목은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반가왔습니다. 참고로, 원래 문 버팀쇠는 여닫이창을 열린 상태로 고정하기 위해 받쳐 세우는 막대를 뜻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오역이라고 하네요. 문이 천천히 닫히도록 하는 현관문 위에 달린 장치는 도어 체크, 혹은 도어 클로저라는 것도 도어 스토퍼 설명에서 소개되고요.

뚫어뻥의 어원은 흥미로운데, 1980년대 백광산업이 출시한 '백광 트래펑'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수구 트랩에 펑크를 내는 도구라는 의미의 '트래펑'에, ‘뚫어’와 ‘뻥’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이 더해진 멋진 네이밍인데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게 오히려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어원이라면 사이펀 펌프로 알고 있던 기름 펌프의 정식 명칭이 '간장 츄르츄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정보입니다. 이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일본의 기발한 발명가 닥터 나카마츠로, 그의 엉뚱하면서도 놀라운 발명 인생에 대한 짧은 소개도 인상 깊었어요.

여러 익숙한 물건들의 명칭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수확입니다. 예를 들자면 중식당 회전 테이블의 '레이지 수잔', 신발끈 끝의 '애글릿', 끈이 통과하는 구멍인 '아일릿', 창문 잠금장치인 '크리센트', 마트 계산대에서 사용하는 막대는 '체크아웃 디바이더', 겨울 가로수에 묶는 볏짚은 '잠복소', 사원증 목걸이 끈은 '랜야드'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신장개업 가게 앞에서 바람에 춤을 추는 풍선 인형에도 이름이 있었는데, '스카이댄서'입니다. 원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인 예술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디어를 낸 예술가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민셜, 하지만 특허는 협업했던 풍선 예술가 가짓이 등록했다고 합니다. 가짓은 유대인이었다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습니다.

그 외에도 과일을 감싸는 포장재인 팬캡이나 과일망이 재활용이 안 된다는 사실, 회 밑에 깔린 천사채의 한자가 '천사(天使)'가 아닌 '하늘이 내린 채소(天賜)'였다는 등 짧지만 밀도 있는 정보가 가득하고, 단순한 설명을 넘어 인문학적인 부분도 전해준다는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핵심이 되는 '그거' 말고는 도판이 부실하다는건 단점입니다. 연재물로 접했던 독자에게 별다르게 새롭게 전해주는 정보도 별로 없고요. '그거' 종류에 따라 분량도 조금씩 다르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인문학, 잡학 서적이라 생각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볍게, 하지만 의미도 있는 독서를 원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4/01/06

필요의 탄생 - 헬린 피빗 / 서종기 : 별점 3점

필요의 탄생 - 6점
헬렌 피빗 지음, 서종기 옮김/푸른숲

냉장고 도입에 따른 가정의 변화를 알려주는 과학사, 미시사, 인문학 서적.

냉장고 도입의 역사는 얼음과 아이스박스에서 시작됩니다. 가정 내에서 얼음을 사용한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되었더군요.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는 귀족들 계층에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일반 가정에도 보급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유명한 19세기 영국의 만국 박람회에 여러가지 제빙기의 등장 후 모든게 바뀌었습니다. 얼음을 언제든지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열리자 저온 유통 체계가 자리잡아서 식료품 공급망에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한 마디로 신선한 식품들이 계절과 지역에 상관없이 전 세계 곳곳에서 값싸게 거래되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가정용 냉장고가 도입된건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유럽보다도 보급은 훨씬 빠르고 광범위 했습니다. 이유는 20세기 초 근교 주택이 성장하여, 미국의 주택 크기가 계속 커진 덕이 큽니다. 그래서 실내에 냉장고를 충분히 설치할 수 있었거든요. 반면 유럽의 주택 크기는 그대로라 냉장고 크기는 작을 수 밖에 없었을 뿐더러, 영국의 경우는 식품 저장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가정 내에 냉장고를 들이기가 여의치 않았다고 하네요. 1953년에도 영국 전체 가구의 5% 정도만 냉장고를 보유했다고 할 정도로요. 그러나 이후 신규 주택 단지에 냉장고가 기본 설치되고, 중앙 난방의 보급으로 식품 저장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등의 이유로 냉장고 보급은 가속화되었습니다. 음식의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한 각종 첨가물이 금지된 것도 한 몫 단단히 했습니다. 건강을 강조한 광고도 이런 분위기를 이끌었고요. 심지어 1950년대 뉴질랜드에서는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은 우유를 파는게 범법행위에 해당하기도 했다니, 보급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겁니다.

그 외에도 냉장고 문 안쪽에 선반을 단 발명 특허는 사장될 뻔 했다던가, 선반 특허를 반격했던 회전식 선반은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사장되었다, 냉장고 소리를 감추기 위해 라디오를 다는 발명도 있었다는 등 소개되는 냉장고 관련 잡학들도 재미있었어요. 그 중 냉장고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발명은 최근에서야 여러가지 센서와 칩으로 가능했을 기술같은데, 이미 1970년대에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이용해서 구현했다는게 놀라왔습니다.

'냉장고'하나만으로 미국과 유럽의 주거 환경, 가정 내 상황, 그리고 미국의 교외화 현상 등을 설명할 수 있다는게 인상적이었던 독서였습니다. 냉장고와 냉동 기술이 핵심 이유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영향을 미쳤다는건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렇게 하나에 대해 깊이 파고 들면, 관련된 다른 것들에 대해 이해하기 쉬워진다는게 미시사의 묘미가 아닐까 싶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6/02/03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윤덕노 : 별점 2.5점

윤덕노 씨의 음식 문화사 책으로 저자의 구작들과 비교해 볼 때 보다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사료들을 통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일단, 저자의 박식함에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네요. "주례"와 같이 유명 서적도 있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책들, 예를 들면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는 임유원의 "임하필기" 등을 인용하는 식이니까요. 우리나라와 중국 고문서 중 음식 관련 이야기만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저자만의 DB가 있는 것일까요? 여튼, 덕분에 자료적인 가치는 빼어납니다.

하지만 저자의 구작들 대비 재미는 조금 처집니다. 이야기가 딱딱하고 그냥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인 탓입니다. 이전 저서들은 음식 관련 '잡학'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미시사' 서적에 가깝다는 형식적인 부분도 지루함에 한 몫하고요.

게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한성 김치 광고는 정말 깼습니다. 돈 주고 산 독자를 모독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이게 한두 푼짜리 책도 아니고 왜 독자가 광고지가 포함된 책을 돈 주고 사서 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비록 한 장밖에는 안 되지만 충분히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조금 더 사료적인 것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단순히 사료 기반이 아니라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덧붙여, 무려 100개나 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기에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를 요약하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건 아래와 같습니다.

배춧국. 북촌 양반의 가을 별미

예전 무교동의 배춧국은 청진동 선짓국 못지않게 서울의 한량들에게 해장국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중 유명했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나온 "해동죽지"라는 책에서 조선 팔도의 별미 중 하나로 꼽은 효종갱이라는 배춧국이다. 지금은 낯선 이름이 된 이 배춧국은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 아랫마을에서 하루 종일 배춧국을 끓여 항아리에 담아서 밤새 한양으로 올려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 북촌의 양반집에 도착하였다고 해서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의 효종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동죽지"에 있는 설명대로의 재료와 레시피는 '배추속대인 노란 고갱이를 주재료로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 소갈비, 양지머리, 해삼과 전복을 넣고 토장을 풀어 하루 종일 끓인다.'

보신탕. 한국인은 왜 보신탕을 먹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고대에는 개고기가 좋은 식품이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왕과 귀족의 어록을 모아 놓은 "국어"에 따르면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에 복수하려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백성들에게 출산을 장려하였다. 남자아이는 술 두 병에 개고기를, 여자아이는 술 두 병에 돼지고기를 출산 장려금으로 지급하였다.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이다. 주나라 때 예법을 적은 "주례"에도 개고기가 말, 소, 양, 돼지, 닭과 함께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고기 중의 하나로 포함돼 있다.

생태찌개. 장작더미보다 흔했던 명태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임유원의 "임하필기"라는 문집에는 "함경도 원산을 지나다 명태 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한강에 땔나무를 쌓아놓은 것처럼 많아서 그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적었다. 허나 지금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찾아보기는 어렵다. 마침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민정중이라는 사람이 "지금은 명태가 땔나무처럼 많지만 300년 후에는 이 생선이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정중은 숙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인물로 1692년에 사망했으니 그의 예언이 맞은 셈. 신기하다.

준치. 준치를 맛보면 다른 생선은 모두 가짜

"썩어도 준치"의 준치. 준치의 한자 이름은 여럿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진짜 생선이라는 뜻의 "진어"로 맛으로 보면 준치만이 진짜 생선이라는 것이다, 다른 이름은 물고기 어 변에 때 시자를 쓰는 "시어"로 제철이 명확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 맛이 좋은 데다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생선이니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시어를 고대의 산해진미인 팔진미 중 하나로 꼽았다. 산해진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곰 발바닥, 낙타 등, 사슴 꼬리, 바다제비 집, 상어 지느러미, 시어를 꼽았다.

중국에서는 시어를 미녀에 빗대어 비유하기도 했다. 중국의 4대 미인은 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을 꼽는데 시어는 바로 "물속의 서시"라고 한 것. 생김새가 아닌 맛을 기준으로 꼽은 것인데 황하에서 잡히는 잉어, 이수의 방어, 송강의 농어, 그리고 양자강의 시어다. 중국에서는 양자강의 시어를 최고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강의 시어를 가장 맛있다고 했다.

농어회. 역사상 가장 맛있는 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선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볼 때 아마 농어일 듯. 고향의 농어회가 먹고 싶다며 높은 벼슬마저 팽개치고 낙향을 한 사람 - 4세기 무렵 중국 진나라의 재상이던 장한 - 이 있는가 하면 온갖 진수성찬에 입맛이 길들여진 황제마저 농어를 먹고는 맛있다며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금제옥회. 수나라 양제가 순시 여행 중 쑤저우 근처에서 먹은 요리. 금처럼 빛나는 양념장인 금제와 회로 뜬 농어의 살이 옥처럼 하얗다고 해서 옥회라고 부른 것에서 생긴 이름이다. 사실 수양제가 맛보기 이전부터 있던 요리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금제라는 양념장을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금제는 여덟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에서 팔화제라고도 하는데 마늘과 생강, 소금, 좁쌀, 멥쌀, 소금에 절인 백매(白梅)를 귤껍질과 함께 장에 버무려 만든다. 횟감이 없으면 쏘가리로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파김치. 왜 하필 '파김치가 됐다'고 했을까?

싱싱한 파는 꼿꼿하게 힘이 들어가 있고 다듬어 놓아도 빳빳한데 김치가 되면 축 늘어지기 때문. 고문헌을 찾아보면 늦어도 18세기에는 '파김치가 됐다'는 표현이 보인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피곤한 모습을 파김치에 빗대어 묘사한 표현이 보인다. 18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권상하의 문집 "한수재집"에도 파김치라는 표현이 수록되어 있다.

오이. 과년한 딸과 오이의 상관관계

'과년한 딸자식이 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과過년'으로 나이가 들어 혼기를 놓쳤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과년(瓜年)한 딸'로 한창 나이, 결혼 적령기의 딸이라는 뜻이다. 과는 오이라는 한자인데 오이와 여자 나이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과년을 결혼 적령기라고 한 것일까?

오이 '과'라는 한자의 가운데를 칼로 자르듯 반을 자르면 팔(八)과 팔(八)로 나누어진다. 여덟이 둘이니 더하면 열여섯이다. 그러니까 이팔청춘 열여섯 살이 바로 과년이다. 성춘향이 이도령과 사랑을 속삭인 때와 동일하다.

2005/02/14

중화 요리에 담긴 중국 - 고광석 : 별점 3점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 고광석 지음/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주식회사)

중국 사람들은 개고기의 질을 평함에 있어서 개의 겉모습, 즉 털의 색깔로 등급을 달리한다. 즉 일황, 이흑, 삼화, 사백이 그것이다. 첫째는 누렁이, 둘째는 검둥이며 셋째는 얼룩이, 넷째는 흰둥이다. 필자는 인류에게도 그와 같은 평가가 근거가 있다(?)고 믿는 사람의 하나이다. 독일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빌헬름 2세가 당시 중국의 실권을 쥐고 있던 위안스카이에게 애완용 개 한마리를 선물했다. 얼마 후 위안스카이로부터 답장이 왔다. "맛있게 잘 먹었소이다"

홍콩과 중국에서의 10여년의 생활 경험이 있는 저자가 중국 음식을 4개의 요리 (광동 / 사천 / 상해 / 북경)으로 구분하여 각 요리의 특징은 물론 대표적인 요리와 그 요리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 또 그 지방의 여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쓴 일종의 요리 문화서입니다. 그리고 "궁중요리"와 "요리의 아웃사이더"라는 항목을 뒷부분에 추가하여 4대 요리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잘 알려져 있거나 언급할 만한 요리들을 소개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요리"라는 것에 관심이 많고 이런 좀 잡학스러운 책을 좋아해서 구입해서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개고기 이야기를 비롯해서 저자거리의 돼지고기 장수가 장원급제를 하는 "급제죽"이야기나 뱀고기 이야기, 거지 닭구이 이야기 같은 에피소드나 손씻는 물, 동파육의 유래 등 실제 역사와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비롯하여 실제로 유명한 요리들의 유래, 그 맛에 대한 평가 및 분석, 유명한 가게에 대한 소개 등 실질적 정보까지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제목 그대로 저자가 중국을 크게 4개 지역으로 구분하여 요리와 더불어 각 지방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고 독특한 발상인데 꽤 그럴 듯해서 즐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간접적이고 재미있게 우회하며 접근하는 것이 중국이라는 국가의 지방과 문화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각 요리에 대한 자세한 도판과 조리법이 빠져있는 것은 아쉽지만 (조리법은 아무래도 비밀스러운게 많겠죠?) "맛의 달인"과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상당히 유용하면서도 재미난, 값어치는 충분한 책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 저는 헌책방에서 구입했으니 만족 두배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9/09

만물의 유래사 - 피에르 제르마 / 김혜경 : 별점 1.5점

사물의 기원을 다룬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피에르 제르마가 1980년에 간행한 책입니다.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발견했는데, 잡학 사전류의 책을 좋아해서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수록된 '만물'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백 개 항목에 대해 짧게는 몇 줄, 길게는 한두장 정도로 설명해 주는 구성입니다.
이 중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몇몇 사물들에 대한 정보는 고맙더군요. 비엔나 커피의 유래처럼요. 커피 찌꺼기를 싫어했던 비엔나인을 위해, 커피 찌꺼기를 걸러낸 후 커피액에 우유를 넣은 카페 주인 쿨크지스키의 아이디어였다네요. 익히 알려진 유래와 조금 달라서 기억에 남습니다. 비프 스테이크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전래된 요리로 워털루 전투 이해 유럽 전체에 퍼졌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프랑스 요리가 아니었다니 의외였어요.
이러한 정보들과 함께 하는 클래식한 도판들도 마음에 듭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삽화가 많은 덕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항목들이 관심만 있다면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기는 합니다. 백과사전이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라는걸 다시금 깨닫게 해 주네요. 그나마 그냥 백과사전이라면 한두 장씩 읽는 재미는 있었을텐데, 지나치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술이 더 큰 문제입니다. '라비올리'는 파스타의 한 종류일 뿐인데 구태여 프랑스식 이름을 갖추었다고 따로 항목을 만들어 설명하고, 민들레는 옛날부터 식용이었다는 설명 다음에 '프랑스에서 민들레 재배가 시작된건 18세기 말 부터이다' 등 프랑스에서의 설명만 이어지는 식으로요. 산업디자인의 창시자가 프랑스의 레이몽 뢰이라는 것은 오류를 넘어 왜곡 수준입니다. 이 바닥은 바우하우스가 앞선다는건 기본적인 상식이잖아요.

이렇게 프랑스인이 프랑스를 위해 만든 시대 착오적인 사전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따로 찾아 읽거나 옆에 둘 이유는 거의 없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런 책을 읽느니 그 시간에 네X버 지식 사전이나 뒤져보는게 나을거에요.

2011/12/03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 한국인이 즐겨먹는 거리음식의 역사 - 윤덕노 : 별점 2점

제목과 책 소개만 보면 우리나라의 분식이나 거리 음식들에 대한 역사적 고찰 및 소개를 하는 책으로 생각되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빵과 과자는 물론 해산물과 주식까지 망라하는 포괄적인 음식 칼럼이었습니다.

물론 주제가 많고 방대한게 단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제에 명백하게 '한국인이 즐겨먹는 거리 음식의 역사'라고 적어 놓고, 정작 내용에는 땅콩버터, 오징어 먹물이나 빠에야, 리조또, 꾸스꾸스, 타타르 스테이크 등을 소개하는건 명백하게 독자를 기만한 것이지요. 또한, 각 주제별로 다루는 내용도 딱히 깊이가 없고 단지 유래만 다루거나,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만 곁들여 소개하는 수준이라 얄팍합니다. 단팥빵이나 카스텔라, 단무지, 오뎅처럼 간단하게 인터넷을 검색해도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구태여 소개하는 것도 페이지 낭비고요. 이럴 바에야 그냥 우리나라 거리 음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음식과 관련된 사회적인 분위기와 현상까지 포괄적으로 묶어서 깊이 있게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돈가스의 탄생"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워낙에 방대하고 저자의 아시아 쪽 자료 조사 하나만큼은 확실하기에 생각과는 다르게 건질 만한 자료도 다수 있기는 합니다. 붕어빵의 원조는 1909년 도쿄 아사부의 나니와가 제과점의 도미빵 (다이야끼)이고, 도미빵의 꼬리에 팥을 넣는 것이 좋은지 아닌 것이 좋은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져 1953년 요미우리 신문에서 지상 중계까지 했다는 일화(결론은 꼬리에는 팥을 넣지 말자는 쪽이었다고 합니다. 손가락으로 집어먹기에 좋도록, 또 입가심하기에 좋도록) 등은 흥미로왔습니다. 또한, 소보로빵과 메론빵이 사실 같은 것이며, 메론빵은 1932년 일본 특허청에 실용신안이 등록된 아이디어 상품이었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엿을 소개하면서 조선에 엿장수가 굉장히 많았었다는 점, 그리고 정조 21년 황해도 황주에서 신착실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엿장수 박형대의 엿을 빼앗아 먹고, 엿장수가 엿값으로 두 푼을 달라고 하자 엿장수를 땅에 밀어 넘어뜨렸는데, 하필이면 지게의 뾰족한 부분에 넘어지면서 항문에 지게가 꽂혀 사망한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기억에 남네요.

또한, 문어는 중국 북쪽 지방에서는 잘 먹지 않았는데, 임진왜란으로 어려움에 처한 조선에 파병 온 이여송을 접대하기 위해 정성껏 문어국을 내어놓았다가 명나라 장수들이 먹지 않아서 낭패를 보았고, 반대로 선조에게 명나라 장수가 "계두"를 바쳐서 선조가 당황했다는 고사도 소개됩니다. (계두는 계수나무속에서 자라는 벌레로, 한나라 역사서인 한서 남월전을 보면 남월의 왕이 중국에 공물을 바치면서 비취 40쌍, 공작새 두 쌍을 보낼 때 계두는 한 그릇만 바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음식에 대한 잡학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저는 제목과 책 소개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자료를 접하리라 기대가 컸고, 제 기준으로 이러한 책에 반드시 소개되어야 할 거리 음식 – 닭꼬치, 번데기, 튀김 – 도 빠져 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8/12/08

원더랜드 - 스티븐 존슨 / 홍지수 : 별점 4점

원더랜드 - 8점
스티븐 존슨 지음, 홍지수 옮김/프런티어

"재미와 놀이가 어떻게 세상을 창조했을까" 라는 부제로, 여러가지 대중 오락에 얽힌 역사를 풀어나가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의미있는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냥 재미와 유희, 놀이를 통해 만들어진 무언가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무언가에 이르른 갖가지 사례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재미 외에 특별한 목적이 수반된 경우도 있습니다. 자주색 염료를 만들 수 있는 뮤렉스 달팽이를 찾아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나아갔다는 활동은 명백히 "돈"을 위함이니까요. 책에서는 이 역시 자줏빛 의상이 그것을 걸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지만요. 즐거움을 주는 물건들은 가치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를 상업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신기술을 개발해서 시장을 개척한다는 논리인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네요.

첫번째 단락은 상점을 무대처럼 장식하여 고객을 사로잡고, 구매 행위를 일종의 오락처럼 만드는 과정과 면직물의 유행을 통해 산업 혁명이 촉발된 후 "유행"이 "소비"를 창출하여 "백화점" 이 등장하는 과정, "쇼핑몰"이 도시 계획과 맞물린 후 미래 도시의 비젼을 제시했다는 내용입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로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는 각종 악기의 발전과 오르골 등을 거쳐 로봇 공학과 자동 방직기로 이어집니다. 방직기는 프로그래밍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요.
악기의 발전은 전문적인 공학의 발전과 맞물려야 했기 때문이라는 이유, 그리고 음악 관련 기술의 발전이 현대의 디지털 시대에 이르는 과정 모두가 굉장히 설득력있게 설명됩니다.

유희, 즐거움이라면 미식이 빠질 수 없죠. 향신료 교역이 불러온 갖가지 이야기도 소개되는데, 로마 제국이 후추에 너무나 열광해서 아피키우스의 요리책 조리법의 80%가 후추를 사용한다는 이야기 같은 잡학이 가득해서 마음에 듭니다. 프랑스인 푸아브르가 네덜란드가 독점하다시피 한 정향을 빼돌려 재배에 성공한다는 일종의 산업 스파이 이야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향신료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사치품 지위를 유지한게 바닐라라는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토머스 제퍼슨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조리법을 미국에 도입했다던가, 가루받이가 어려워 퍼지기 어려웠지만 한 노예 소년의 아이디어로 양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이 노예 소년 이야기가 향신료 교역을 상징합니다. "스페인이 지배하는 멕시코에 자생하는 식물을 인도양에 있는 한 섬에서 프랑스인이 재배했고, 프랑스 노예상인들이 그 섬에 데려온 아프리카인의 후손인 한 소년이 그 꽃을 최초로 가루받이 했다" 는 이야기니까요.

다음에는 만들어진 "환영" 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영화의 전신인 특수 효과 공연과 이 중 가장 유명했던 유령 쇼 "팬태즈머고리아", 풍경을 실제처럼 느끼게 해 주는 파노라마 전시, 활동 사진과 월트 디즈니의 혁신, 이윽고 등장하게 된 "유명인들" 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다양한 도판과 함께 설명됩니다. 이러한 시각 효과를 활용한 오락거리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침투했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고찰이 함께 진행되는데,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게임 또한 빠지지 않습니다. 여기 소개된 단락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인데 체스 게임은 "비유"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도입부부터 신선했고, 이를 통해 인공 지능이 발전되는 과정,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게임이 된 보드 게임 (모노폴리) 등 모든 소개 내용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한 "공 놀이"가 고무라는 혁신적인 물질의 역사로 이어지는 과정과 비디오 게임의 등장이 컴퓨터를 재미로 쓸 수 있다는 혁신적인 발상의 시작이었으며, 덕분에 컴퓨터가 일상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는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은 다양한 놀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인데 선술집에서 시작해서 커피 하우스, 박물관, 동물원, 공원 등의 역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렇게 즐거움, 놀라움을 추구하는 인간이 얼마나 새로운 걸 많이 만들어내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혁신을 하고자 하면 무슨 일이든 재미있게 즐기는 마음가짐이 필수일 듯 합니다. "즐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옛 말은 과연 허언이 아닌거죠. 또 단지 혁신에 대해 되새겨 보는 측면 외에도 다양한 놀거리와 즐길거리에 대한 미시사 서적으로도 탁월해서 만족스럽네요.
글의 내용이 통사적 구분이라기 보다는 주제별로 좀 널뛰는 감이 없잖아 있다는건 단점이지만 장점에 비하면 극히 사소합니다. 도판도 충실한 편이고요. 이렇게 취미에 가까운 놀거리, 즐길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최소한 엉망인 제 리뷰보다 훨씬 좋은 책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참고로 책 뒤 "감사의 말씀"을 보니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든 듯 싶더군요. 책보다는 방송으로 보는 게 훨씬 나은 내용일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방송으로 봤다면 4점 이상도 줬을 것 같습니다.

2008/11/13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 1,2 - 찰스 패너티 / 이용웅 : 별점 3점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 2 - 6점
찰스 패너티 지음, 이용웅 옮김/자작나무

예전에 읽었었던 책인데 최근 읽을 책도 없기에 다시 꺼내어 읽은 책입니다.

전부 1,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900년대 초반에서 50년대 후반까지의 미국의 영화, 도서, 음악, 패션, 춤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유행상품과 문화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이것이 유행했는지" 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정확하게 짚어 주고요.

너무 다양한 방면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낸 탓에, 깊이가 부족하고 주제들이 모두 흥미를 당기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개인적으로 "춤"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탓에 시대별로 유행한 춤 소개 부분은 대충 훝어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은 내용은 2/3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입니다. 좀 더 분야를 축소해서 깊이있게, 디테일하게 파고 들었다면 좋았을텐데 약간 아쉬웠습니다. 도판도 부실하니까요.
또한 "왜 이 것이 유행했나?" 에 대해 짚고 넘어가긴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라는 답도 많아서 좀 황당하기도 하더라고요. 대표적인 것이 "데이빗 크로켓 열풍" 입니다. 단 4회의 미니시리즈 방영으로 전국적인 열풍을 불러온 데이빗 크로켓 현상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못합니다. 유행이라는 것이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많긴 하겠지만, 너무 대충대충 넘어가는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도 잡학 관련 도서를 좋아하기에 읽고나서 만족스러운 점도 많았습니다. 제가 지금 상품기획 일을 하고 있기도 한데,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죠. 정말이지 "유행" 이라고 불리울 만한 모든 것을 집대성 해 놓았기에, 트렌드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자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히트 상품들로는 도서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TV 시리즈로는 "하우디두디 쇼", 상품으로는 "훌라후프" 가 기억에 남습니다. "훌라후프"는 역시나 허드서커 사에서 만든 것은 아니더군요^^

2018/04/08

술상 위의 중국 - 고광석 : 별점 2.5점

술상 위의 중국 - 6점
고광석 지음/섬앤섬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 이라는 책으로 음식과 관련된 중국 문화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알려주었던 고광석 작가가 "술" 을 주제로 삼아 쓴 후속작입니다.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현재 판매되는 중국 현대 술을 망라하여 소개하는 '제 1부 중국의 술', 그리고 술과 관련된 다양한 고사와 일화를 소개해주는 '제 2부 술이 빚어낸 역사', 마지막으로 다양한 안주와 주법, 조리법 등을 소개하는 '제 3부 안주와 주법' 이라는 세 부분으로 크게 구분됩니다. 1, 3 부는 각각 100 페이지, 60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총 340여 페이지의 절반 이상이 제 2부에 속해 있고요.

우선 풀 컬러로 도판과 함께 현대 중국 술을 잘 요약하여 소개하는 1부는 아주 근사합니다. 황주와 백주, 노주 등 종류별 구분 및 각각 상세한 유래 설명도 재미있고, 맛과 향기 등은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기록하고 있어서 굉장히 생생한 덕분입니다. 수십 종의 술들이 소개되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건 '마오타이주'의 유래입니다. 저는 그냥 모택동을 위해 만든 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원래부터 귀주 지역에 있던 향토주로 대장정 직전, 홍군이 귀주에 머물며 향토주를 마시며 혁명 의지를 불태웠던 이후 국가 연회용 술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이름도 모택동에서 따온게 아니라 '모태진'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고요.
반대로 '수정방'은 유명세와는 다르게 비교적 최근인 1998년 수정가 양조 시설 발굴 후 개발된 현대 술이며, '공부가주' 역시 공자 집안과 관계가 없는 현대 술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아, 이래서 공부가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현대 술 말고 이 책에서 소개된 전통주를 더 찾아 마셔봐야겠네요.

그러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2부의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옛 고사에서 술이 등장한걸 무작위로 가져다 쓴 탓입니다. 술이 무엇인지, 안주로는 무엇을 먹었는지는 중요하게 소개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술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이야기까지 소개될 정도에요.
자객 예양이 주군의 복수를 위해 조양자를 죽이려하다 잡힌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술과 관련된 부분은 조양자가 예양의 주군 지백의 두개골을 술잔으로 썼다는 언급이 전부거든요. 이게 술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그 외의 이야기들도 춘추, 전국 시대와 삼국 시대, 한나라까지는 대부분 잘 알려진 일화들이며, 역시 술이 중요한 이야기들은 거의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워낙 분량이 많은 탓에 아예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술 배는 따로 있다" 라는 말은 오대십국 시절 대주가였던 주유약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작은 몸집의 그가 어떻게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는지 왕이 묻자, "술을 위해서 몸 안에 장이 따로 있다" 고 답했던게 유래입니다.
근대로 넘어온 이후의 이야기들도 비교적 새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열국지", "삼국지", "초한지" 등 유명 고전을 벗어난 시점은 잘 모르는 저에게는 중국 근, 현대는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이니까요. 마오타이주를 국빈용 술로 정한 주은래를 소개하면서, 그는 굉장히 꼼꼼하고 확실한 성격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화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아마도'라는 모호한 표현을 싫어했다는데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군 사령관 허세우를 술로 제압하고 주도에 대해 훈계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요. 참고로 이 허세우는 소림사 출신으로 실제 무술 고수였다는데 좀 찾아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독특했습니다.
또 두보와 이백 등 술을 좋아했던 유명 인사들의 소개와 그들이 술을 마시고 술에 대해 쓴 시들도 좋습니다. 워낙 멋드러진 시들이니 당연하겠지요? 개인적인 베스트는 왕안석과 그의 친구 정협 사이에 오간 글입니다. "술이 임자를 만나면 천 잔도 적고, 뜻이 맞지 않으면 반 마디도 많다"는데, 지금 읽어도 확실한 울림을 주는 멋진 글이에요.
아울러 제가 원했던, 술과 관련된 시시콜콜한 역사 속 잡학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두보가 이백을 기려 지은 시 중 '이백은 한 말의 술이면 시 백수를 짓는다' 고 읆었는데 이 한 말이 바로 두주 (斗酒)입니다. 우리도 흔히 쓰는 '두주불사' 의 두주와 같은 말이지요. 한 말, 두주는 열 되와 같은데, 주나라 때는 2리터였지만 당나라 때는 6리터, 청나라 때는 10리터가 되는 등 시대에 따라 변화된 단위입니다. 이백의 주량은 당나라 기준으로 술 6리터, 돗수가 약한 소흥주를 마셨다 쳐도 어마어마합니다. 일찍 죽은게 이해가 됩니다.

마지막 3부는 그냥 유명한 안주거리, 음식 소개와 여러 요리에 쓰이는 한자어 소개로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부록같은 느낌입니다. 한자어 부분만 잘 기억해 두면 중국 여행갔을 때 유용하겠다 싶은 정도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읽는 재미가 아주 없지는 않고 나름 건질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술상 위의 중국' 운운하며 술과 관련된 중국 역사와 문화를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분명 기대 이하고요. 술이나 안주의 정체가 명확하고, 정말로 술이 큰 역할을 한 이야기에 집중해서 더 자세하게 풀어내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중국 술과 요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18,000원이라는 가격은 과한 감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5/05/12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6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연작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 두 번째 권입니다. 이번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두 편은 중학생 소녀의 독후감, 헌책 출장 감정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그리는 전형적인 일상계입니다. 시오리코씨 어머니와 수백만엔에 이르는 책 도난 사건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의 과거편은 단순 일상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현재편은 책을 팔려고 내 놓은 뒤 사라진 손님을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일상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완벽한 일상계 추리물인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고, 독서와 헌책방 역시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시오리코씨 어머니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게 좋았을겁니다. 최종보스 느낌인데 작품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책을 좋아하는 미녀 시오리코씨, 그녀를 흠모하는 근육 알바 고우라 다이스케의 순진무구한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 주변, 동네의 소소한 책 관련 사건으로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다른 시리즈에 비하면 추리적으로 건질게 별로 없다는 단점도 큽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당사자 중 한 명이라서 추리라고 부르기 애매하고, 두 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책을 확인하지 못했던 실수가 더 크게 다가오는 탓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추리적으로는 가장 괜찮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소재와 설정이었고요.

덧붙여, 시리즈 다른 편들과는 다르게 등장하는 책들 중 딱히 읽고 싶은 마음이 든 책이 없다는 점, 그리고 책의 완성도는 좋지만 각 단락별로 추가된 일러스트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책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점도 실망한 부분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만 놓고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아주 좋지도 않은,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중 한권으로는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각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1권에서도 등장했었던 고스가 나오가 자신의 똑똑한 여동생 유이가 쓴 "시계태엽 오렌지"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를 고우라에게 의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라니! 책 관련 추리 소설 중 이 정도까지 사건성을 낮춘 일상계가 있었을까요? 여튼, 소재는 정말이지 참신했습니다. "시계태엽 오렌지" 영화로 잘 알려진 내용은 '불완전판'이며, 원래는 알렉스가 개과천선하여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는 결말이 '완전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사실이 내용과 잘 어우러지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독후감은 상당히 잘 쓴 내용으로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데 외려 주위의 설레발이 너무 심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원칙적으로는 중학생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은 것 부터가 문제가 아닌가 싶은데 왜 그런건 지적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고요.

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과정은 치밀해서 괜찮기는 하지만, 결국 원본은 시오리코씨가 썼다는 일종의 반전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뭐라 이야기할 거리가 없습니다. 결말을 알고 나서 단서를 짜맞추는 방식과 다를게 없으니까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의 왕도를 걷는 점에서는 별점 4점도 충분하지만 추리적 요소가 약해 약간 감점합니다.

후쿠다 데이치 "명언수필 샐러리맨"

고우라 다이스케가 대학교 1학년때까지 사귀었던 옛 동창 아키호로부터, 그녀의 돌아가신 부친의 수집 도서 정리를 의뢰받은 뒤의 이야기.

고우라의 과거사, 그리고 현재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푸근한 이야기로, 첫 시작에서 비블리아 고서당으로 팩스와 전화가 온 사실과 아키호가 출장 감정을 의뢰한 이유가 연결되는 치밀한 구성도 괜찮습니다.
알 수 없는 가족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와 그것을 드러내는 묘사들, 그리고 후쿠다 데이치가 유명작가 시바 료타로의 본명이며, "명언수필 샐러리맨"은 성공 전에 발표한 책이라는 잡학 지식도 좋았고요.

그러나 내용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아무리 엿듣는 사람이 많았고, 부녀가 만날 때마다 싸우는 등 복잡한 가정 사정이 있었다지만, 귀중한 책을 몰래 물려주려 했다는 설정이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려줘봤자 받는 사람이 그 가치를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에피소드가 사건으로 성립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출장 감정을 나선 시오리코가 귀중한 책을 놓쳤다는 것인데, 이건 큰 문제입니다. 아팠다는 설정은 있지만 그래도 그간 보여주었던 책에 관련해서는 너무나 완벽했던 캐릭터성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감기로 인해 시오리코씨는 출장 감정을 나서지 않고 고우라에게 원격으로 지시했기 때문에 책을 놓쳤다... 라는 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아시즈카 후지오 "utopia"

시오리코씨의 어머니 이야기가 첫 등장하는 에피소드.

일단은 시오리코씨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목적에는 충분히 부합하는 이야기입니다. 수상한 손님이 판매를 의뢰한 책만 가지고 주소를 짐작하여 찾아오는 부분에서는 그녀의 뛰어난 추리력을 알려주며, 이후 깨우친 진상을 가지고 협박하여 손에 넣기 어려웠던 휘귀본을 입수한다는 부분에서는 사악함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아울러 "선의의 제삼자"가 되기 위한 교묘한 장치, 즉 장물인 "최후의 세계대전"에 2,000엔이라는 가격표를 붙여 책을 판매, 구입한 것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이 없게끔 안배하는 '악마의 술책' 역시도 돋보였어요.
개인적으로는 만화가 후지코 후지오를 좋아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오리코 씨의 어머니가 이렇게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그야말로 최종보스로 등장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치고는 너무 거창하잖아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훨씬 마음에 들기도 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05/29

음식의 별난 역사 - 이안 크로프턴 / 김시원 : 별점 2.5점

음식의 별난 역사 - 6점
이안 크로프턴 지음, 김시원 번역/레몬컬쳐

'한 권으로 맛있게 즐기는 음식 교양서'라는 부제에 어울리는, 음식에 대한 미시사 서적입니다. 선사시대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역사에 이름을 남긴 다양한 음식들과 음식에 관련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줍니다. 책의 분량이 300여 페이지에 불과해서, 이야기들은 굉장히 짤막하지만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좋았습니다. 음식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음식과 관련된 유명인들의 명언이나 일화, 음식에 대한 다양한 저작물들의 인용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는데다가,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기 힘든 이야기들이 많아서 만족도가 높은 덕분입니다.
저자 이안 크로프턴은 일반인들이 쉽게 참고할 수 있는 도서를 주로 집필했다는데,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요약하는 능력이 탁월해 보입니다. 정리와 요약의 달인이라 생각되네요. 국내 출간된 책은 이 책 포함 3권인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에요.

책에 소개된 일화 중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프렌치 토스트"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1346년 그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군에게 포박된 영국 기사들이 몸값 지급 때문에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후 독일에서 달걀물을 입힌 토스트를 '가난한 기사들'이라는 뜻의 '알메 리터'라 부르기 시작했고, 영국에서는 이를 '독일식 토스트'라고 부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동맹국을 기리는 의미로 "프렌치 토스트"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 콘은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에서 페르시아식 패스추리를 팔던 시리아계 미국인 어니스트 함위가 접시가 떨어진 아이스크림 장수에게 패스추리를 콘 모양으로 말아준 게 시초라고 합니다. 오무라이스 잼잼에서도 등장했었던 이야기인데 이 책을 참고한 것일까요?

저작물에서 인용된 이야기로는 1729년 조너선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이라는 단편 풍자 소설이 인상적입니다. 12만 명의 어린아이들 중 2만 명 정도를 식재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제안인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어린아이 요리는 특히나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영주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요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라는 마지막 줄의 풍자로 마무리됩니다. 지금 제안해도 풍자로서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비슷한 풍자로는 기근에 고통받는 아일랜드 농부들에게 '배가 고프면 뜨거운 물에 커리 가루를 타서 마시면 된다'고 말한 노퍽 공작에 대한 것도 재미있습니다. 런던 비프스테이크 클럽 회원이 "타임스"에 기고한 레시피로 제목은 "노퍽 커리 요리!!!". '멍청한 정도에 관계없이 살이 통통하게 찐 공작을 잡아 후추와 여러 향신료로 뭉근히 끓인다. 농부들이 모이는 날 내어 놓으면 좋은데 누구나 달려들어 이 요리를 자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네요. 재미있죠?

명언들은 신랄한 것들이 많습니다. 1799년 나폴리 대사 프란체스코 카라시올로의 말이 대표적이죠. '영국에는 종교가 60개나 되지만 먹을 만한 소스는 오직 한 개밖에 없다'는 말인데 영국 요리가 형편없음을 알리기 위함으로 보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먹을 만한 바로 그 한 개가 무슨 소스인지도 궁금해 집니다.
1880년 마크 트웨인이 "유럽 방랑기"에서 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인은 라인의 화이트 와인을 아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이 와인과 식초의 차이점이라곤 라벨이 다르다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돌직구 풍자의 대가 마크 트웨인답습니다.
좋은 말도 있습니다. 마티니를 찬양하는 말들이 그러한데 1949년 미국 소설가 버나드 디보토는 "키스보다도 좋은 게 바로 마티니다"라고 했고, 문예비평가 헨리 루이스 멩켄은 "영국 소네트에 견줄 수 있는 미국의 유일하게 완벽한 발명품"이라고 했으며, 동화작가 E.B. 화이트는 "평안함의 묘약"이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소련의 니키타 흐루시초프까지 "가장 치명적인 무기"라고 불렀다네요. 소련에는 보드카가 있으니 좋은 승부가 되었을 텐데 조금 의외군요.

레시피로는 록키 산맥에서 나는 굴,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가 돋보입니다. 당연히 록키 산맥에서 굴이 날 리가 없고, 재료는 바로 황소 고환입니다. 황소 고환을 물에 넣은 뒤 껍질을 벗겨 타원형 모양으로 자르고, 밀가루 + 옥수수가루 + 달걀로 만든 튀김옷을 두른 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뒤 튀겨내는 요리이지요. 닭똥집 튀김과 비슷하리라 예상할 수 있는데 한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완전 맥주 도둑일 듯한 느낌!

그 외에도 벌레나 기묘한 재료들을 먹어본 사람들의 감상평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한데,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도판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주요한 항목이라도 도판을 곁들였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죠. 15,000원이라는 가격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성비가 좋다고 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놓치기 힘든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음식 관련 잡학, 미시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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