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윤덕노 지음/깊은나무 |
윤덕노씨의 음식 문화사 저서.
구작들과 비교해볼때 보다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차이점으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사료들을 통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일단 저자의 박식함에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더군요. <주례>와 같이 유명 서적도 있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책들, 예를 들면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는 임유원의 <임하필기> 등을 인용하는부분은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고문서 중 음식 관련 이야기만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저자만의 DB가 있는 것일까요? 여튼, 덕분에 자료적인 가치는 빼어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허나 저자의 구작들 대비 재미는 조금 처지기는 합니다. 이야기가 딱딱하고 그냥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이전 저서들은 음식 관련 '잡학'에 가까왔다면 이 책은 '미시사' 서적에 가깝다는 형식적인 부분도 지루함에 한 몫 하고 있고요.
게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한성 김치 광고는 정말 깼습니다. 돈주고 산 독자를 모독하는거나 다름없죠. 이게 한두푼짜리 책도 아니고 왜 독자가 광고지가 포함된 책을 돈주고 사서 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비록 한장밖에는 안되지만 충분히 감점요소라 생각되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조금 더 사료적인 것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단순히 사료 기반이 아니라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가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덧붙여, 무려 100개나 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기에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를 요약하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몇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배춧국
북촌 양반의 가을 별미
예전 무교동의 배춧국은 청진동 선짓국 못지않게 서울의 한량들에게 해장국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중 유명했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나온 <해동죽지>라는 책에서 조선 팔도의 별미 중 하나로 꼽은 효종갱이라는 배춧국이다. 지금은 낯선 이름이 된 이 배춧국은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 아랫마을에서 하루 종일 배춧국을 끓여 항아리에 담아서 밤새 한양으로 올려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 북촌의 양반집에 도착하였다고 해서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의 효종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동죽지>에 있는 설명대로의 재료와 레시피는 '배추속대인 노란 고갱이를 주재료로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 소갈비, 양지마러, 해삼과 전복을 넣고 토장을 풀어 하루 종일 끓인다.'
보신탕
한국인은 왜 보신탕을 먹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고대에는 개고기가 좋은 식품이었기 때문. 춘추천국시대 왕과 귀족의 어록을 모아 놓은 <국어>에 따르면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에 복수하려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백성들에게 출산을 장려하였다. 남자아이는 술 두병에 개고기를, 여자아이는 술 두 병에 돼지고기를 출산 장려금으로 지급하였다. 돼지고기보다 개고기를 더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
주나라 때 예법을 적은 <주례>에도 개고기가 말, 소, 양, 돼지, 닭과 함께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고기 중의 하나로 포함돼 있다.
생태찌개
장작더미보다 흔했던 명태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임유원의 <임하필기>라는 문집에는 "함경도 원산을 지나다 명태 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한강에 땔나무를 쌓아놓은 것처럼 많아서 그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적었다. 허나 지금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찾아보기는 어렵다.
마침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민정중이라는 사람이 "지금은 명태가 땔나무처럼 많지만 300년 후에는 이 생선이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정중은 숙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인물로 1692년에 사망했으니 그의 예언이 맞은 셈. 신기하다.
준치
준치를 맛보면 다른 생선은 모두 가짜
"썩어도 준치"의 준치. 준치의 한자 이름은 여럿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진짜 생선이라는 뜻의 "진어"로 맛으로 보면 준치만이 진짜 생선이라는 것, 다름 이름은 물고거 어 변에 때 시자를 쓰는 "시어"로 제철이 명확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
맛이 좋은 데다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생선이니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시어를 고대의 산해진미인 팔진미 중 하나로 꼽았다. 산해진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곰 발바닥, 낙타 등, 사슴 꼬리, 바다제비 집, 상어 지느러미, 시어를 꼽았다.
중국에서는 시어를 미녀에 빗대어 비유하기도 했다. 중국의 4대 미인은 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을 꼽는데 시어는 바로 "물속의 서시"라고 한 것. 생김새가 아닌 맛을 기준으로 꼽은 것인데 황하에서 잡히는 잉어, 이수의 방어, 송강의 농어, 그리고 양자강의 시어다.
중국에서는 양자강의 시어를 최고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강의 시어를 가장 맛있다고 했다.
농어회
역사상 가장 맛있는 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생선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볼 때 아마 농어일 듯.
고향의 농어회가 먹고 싶다며 높은 벼슬마저 팽개치고 낙향을 한 사람 - 4세기 무렵 중국 진나라의 재상이던 장한 - 이 있는가 하면 온갖 진수성찬에 입맛이 길들여진 황제마저 농어를 먹고는 맛있다며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금제옥회. 수나라 양제가 순시 여행 중 쑤저우 근처에서 먹은 요리. 금처럼 빛나는 양념장인 금제와 회로 뜬 농어의 살이 옥처럼 하얗다고 해서 옥회라고 부른 것에서 생긴 이름이다. 사실 수양제가 맛보기 이전부터 있던 요리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금제라는 양념장을 만드는 법이 실려있다.
금제는 여덟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에서 팔화제라고도 하는데 마늘과 생강, 소금, 좁쌀, 멥쌀, 소금에 절인 백매(白梅)를 귤껍질과 함께 장에 버무려 만든다.
횟감이 없으면 쏘가리도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파김치
왜 하필 '파김치가 됐다'고 했을까?
싱싱한 파는 꼿꼿하게 힘이 들어가 있고 다듬어 놓아도 빳빳한데 김치가 되면 축 늘어지기 때문. 고문헌을 찾아보면 늦어도 18세기에는 '파김치가 됐다'는 표현이 보인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피곤한 모습을 파김치에 빗대어 묘사한 표현이 보인다. 18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권상하의 문집 <한수재집>에도 파김치라는 표현이 수록됨.
오이
과년한 딸과 오이의 상관관계
'과년한 딸자식이 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과過년'으로 나이가 들어 혼기를 놓쳤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과년(瓜年)한 딸'로 한창 나이, 결혼 적령기의 딸이라는 뜻이다.
과는 오이라는 한자인데 오이와 여자 나이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과년을 결혼 적령기라고 한 것일까?
오이 '과'라는 한자의 가운데를 칼로 자르듯 반을 자르면 팔(八)과 팔(八)로 나누어진다. 여덟이 둘이니 더하면 열여섯이다. 그러니까 이팔청춘 열여섯 살이 바로 과년이다. 성춘향이 이도령과 사랑을 속삭인 때도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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