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활명수에 살다 - 전병길 지음/생각비행 |
제목만 보고 활명수에 관련된 미시사 서적이라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요. 최근 이런 식으로 많이 속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하여튼, 저는 활명수 관련된 이런저런 역사 속 이야깃거리를 전해주는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일제 강점기 중심으로 영친왕이 활명수를 먹고 급체가 나았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실제 내용은 동화약방의 창업자 가문인 민씨 가문이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동화약방을 인수한 윤창식 역시 선각자였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화약방 찬양입니다. 활명수는 단지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소품일 뿐이고요.
그나마도 1/3 정도 분량에 해당하는 일제 강점기까지는 괜찮은데, 해방 이후는 짜증날 정도로 억지스럽습니다. 근대사와 동화약품과 활명수를 무리하게 연결시키는 정도가 너무 지나친 탓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폴로 달 착륙에 대해 설명하면서 당시 한국도 관련된 생중계 등으로 열풍이었다, 동화약품도 "파이오니어"라는 단어를 내세워 광고를 했다.'라는 식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에 대해 한참 썰을 풀다가 주인공 덕수가 활명수를 먹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심지어 활명수와 별 상관없는 동화약품의 권투 시합 스폰서 기사까지 가져오는걸 보면, 신문 기사 검색 사이트에서 "동화약품", "활명수"를 입력해서 나온 기사는 모두 수집해 모아 놓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활명수에 대한 미시사적인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1897년의 창업과 창업 후 초창기 동화약방이 어떻게 성장하였는지는 당대의 사료와 함께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됩니다. 활명수 상표권 도용과 등록에 얽힌 이야기, 활명수의 라이벌들인 발매 당시의 활명액과 생명수, 현대의 까스명수, 위청수와의 격돌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활명수의 초창기 가격과 복용 방법, 병 디자인의 변천사 등은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울러 비록 기사 검색에 불과하지만 자유당 부정투표 당시 경찰이 민주당원을 구금한 죄목 중 하나가 활명수 부정 판매였다는 것, 60년대 말 70년대 초 쎄시봉과 통기타 열풍이 불었고 윤형주로 대표되는 CM송도 활성화되었는데 이때 동화약품의 CM송이 1위를 차지했었다는 등 시대상과 관련 있는 내용도 없지는 않고요.
허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실망이 더 컸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격동의 근현대사에 함께했던 제품과 회사를 엮어 풀어내려고 한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래서야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죠. 부채표 동화약품의 사보에 실려서 애사심을 고취시킬 목적이 아니라면 출간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부채표 동화약품 후계자였었는데 지금 뭐 하고 지내는지 좀 궁금하군요. 이름도 까먹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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