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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9

초초패미컴 - 타네 키요시 외 / 문성호 : 별점 2.5점

초초패미컴 - 6점
타네 키요시 외 지음, 문성호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이전 읽었던 "초 패미컴"의 후속작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패미컴'으로 발매되었던 여러가지 게임들 중, 특기 할 만한 것들을 소개하는 것이 중심입니다.

많은 게임이 소개되는데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던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당대 유행과 트렌드를 알려주는 작품들입니다. 혼다의 인기 소형차 '시티'가 주인공인 "시티 커넥션", 그리고 "북두의 권"과 "매드맥스"에서 영향을 받은 세기말 황야를 무대로 한 레이싱 게임 "마하 라이더" 등이 대표적입니다.
다양한 당시 컨텐츠를 원작으로 한 게임들도 같은 류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또 물건이 많네요. "스타워즈" 게임에 등장하는 '전갈 베이더', '갸오스 베이더', '크라도스 베이더', '완파 베이더' 등의 악당은 그야말로 대폭소에요. "맛의 달인" 게임의 후짐과 억지스러움도 아주 인상적이고요.
유명인들과 관련된 작품들도 눈에 띕니다. "명탐정 산마"와 같이 당시 유명인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유명 크리에이터들의 활약도 돋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공각기동대" 3인방인 오시이 마모루, 이토 가즈노리, 카와이 켄지가 손잡고 만든 RPG "산사라 나가"는 어떤 게임이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심거리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 내세워 새로운 흐름을 만든 작품들이었습니다. 비키니 여성 전사가 주인공인 "몽환전설 바리스", "아테나"라던가 전투 미소녀 안드로이드 밀리아가 등장하는 "가딕 외전", 소노다 겐이치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던 "갈포스" 등이 대표적인데, 전부 아는 작품들로 옛 추억이 소록소록 떠올라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네요.

조금 자세하게 들여다보자면, "바리스"의 유코는 이 바닥에서 전설같은 존재로 어린 시절 상당히 호감을 가졌던 누님입니다. 그런데 여기 소개되는 패미콤 버젼은 흑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엉망으로 이식되었다고 합니다. '쿠소게'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죠. 

SNK의 아테나는 "아테나"라는 게임으로 첫 등장한 듯 한데 접해보지는 못햇습니다. 하지만 "킹오파" 시리즈로는 잘 알고 있죠. SNK 간판걸로 아직 쌩쌩한 현역이기도 하고요. 패미콤 버젼은 아케이드판을 이식한 것인데 '비키니'가 방어구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방어력 '0'의 물건이라는 합리적(?) 설정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방어력이 중요한 디자인은 아니겠지만요.

"갈포스". 소노다 겐이치의 이름을 알린 작품이죠. 당시 우리나라 잡지 소개 자료에서 보았던 게임도 무척이나 하고 싶었었는데 결국 손대지 못하고 애니메이션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 

"가딕 외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컴파일의 슈팅 게임인데, 비행형으로 변신 가능한 미소녀 휴머노이드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특이하네요. 본편보다 외전이 유명해진 이유는 주인공 밀리아의 존재가 컸던 것 같습니다. 오리지널 "가딕"은 밀리아는 단지 설정 문장에만 존재했는데 "가딕 외전"에서는 도트 그래픽으로 게임 본편에 화려하게 등장한다고 하니까요. 참고로 아래의 밀리아 일러스트는 가토 나오유키 (스튜지오 누에)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렇게 재미난 정보가 많이 있지만 아쉽게도 게임을 잘 모르면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든데, 전작에 비하면 유명한 게임이 별로 없다는 단점도 큽니다. 그나마 아는 게임도 흔해빠진 아케이드 이식작인 "팩맨"이나 "봄버맨", "마계촌", "이카리" 정도거든요. 때문에 재미는 전작보다 못합니다. 

도판도 전작처럼 부실합니다. 제가 앞서 소개해드린 것 같은 특징적인 주인공이나 메카닉 도판 정도는 충분히 소개해줄 만 한데, 글로만 떼우는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었을까요?
아울러 뒷부분에 수록된 "패미컴 헌터, 난부선을 가다!"와 같은 리포트는 오시키리 렌스케가 동참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용과 큰 상관이 없는 단순 추억담에 불과해서 분량 낭비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게임의 역사, 혹은 패미컴 게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거나, 굉장한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즐기기가 어려운 서브컬쳐 분석 자료입니다. 여러모로 추천드리기는 좀 애매하네요. 가격도 비싼 편이고요. 컬러 등으로 도판을 보강하고 보다 멀티미디어 측면을 강화한 e-book 버젼이라면 모를까, 구태여 구입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006/06/19

혈기린 외전 - 좌백 : 별점 2.5점

혈기린외전 2 - 6점
좌백 지음/시공사
<1>
<1>
가난한 청년 왕일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마을의 지주 아들 진가소의 군역을 대신 받아 남만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공을 세워 황보장군의 특명으로 군역에서 해방되어 마을로 돌아오지만 가족이 몰살당하고 하나뿐인 여동생이 진씨 가문에서 농락당하다 녹림채에게 끌려간 것을 알게되고 복수를 결심한다. 그러나 무림인이 속해있던 진씨 가문에서 중상을 입고 도망치던 중 우연히 만난 개방 향주 유곰보의 도움을 받게 되고 그를 통해 서문정이라는 개방 인물을 만나 그의 제자로 독공을 익혀 다시 복수에 나서서 녹림18채 중 하나를 괴멸시키고 동생을 구하게 된다.

<2>병든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비종문이라는 문파의 무사로 지원한 왕일은 여러 인물들에게 농락당한 한으로 동생이 자살하자 자포자기 상태로 절망적인 임무를 맡게 된다. 그것은 군호맹과 제룡련의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무림 4대고수의 한명인 혈기린을 군호맹으로 초대하는 것. 그는 4명의 인물과 조를 짜서 혈기린이 있다는 남만으로 출발한다...
<3>혈기린의 진전을 이은 왕일은 혈기린으로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군호맹을 도와 제룡련과 싸워나가기 시작한다. 군호맹과 제룡련의 양대세력의 피해는 점차 커지게 되고 결국 더이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예 고수들을 선발하여 한판 승부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하는데...

좌백의 신무협 대표작이라 하는 혈기린 외전입니다. 용대운 시리즈를 좀 읽다가 추천을 받아 읽게 되었네요. 좌백님의 작품은 예전에 "대도오"를 읽은 이후 처음이군요.

이 소설은 위의 줄거리처럼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부가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가난한 시골 청년 왕일이 무공은 거의 지니지 못한 상태로 무림인들을 상대로 복수하는 과정의 설득력과 재미가 확실하거든요. 기존 무협지의 룰을 거의 깨는 파격적인 전개가 굉장히 인상적이기도 하고요. 무림 고수나 세력을 상대로 독공을 조금 익히기는 했지만 거의 무공은 의지하지도, 보여주지도 않으며 작전과 활 등에 의존한 "투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2부부터의 기존 무협지와 차이나지 않는 전개는 기대에 많이 못미쳐 실망스러웠습니다. 1부는 안 읽고 2부부터 읽어도 무방할 만큼 따로 놀기도 하지만 무협지의 공식이라고 해도 좋을 별볼일 없는 인물이 기연을 얻어 고수로 거듭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며 그 외에도 여러 고수들의 전투를 가장한 비무 장면 등 뻔한 장면이 난무하는 등 기존 무협지의 정석을 답습할 뿐이었습니다.
또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캐릭터를 후반부에 억지로 되살린다던가, 마달이라는 무의미한 캐릭터가 끝까지 계속 등장한다던가, 남봉황과 혈기린(을 가장한 왕일) 의 사랑이 난데없이 시작한다던가하는 문제는 작가가 너무 무성의한게 쓴 것이 아닌가 의심되기 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결말은 너무나 시시해서 안타까울 정도 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아무래도 3부작으로 나눈 구성이 외려 작품에는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억지로 3부를 써내려가서 완결시킨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도 두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전투"와 같이 대립하는 무림인들의 대결이라는 설정은 특이했고 "독공"과 "암기"의 명수라는 혈기린이라는 캐릭터와 그의 무공, 독공에 대한 설정이나 묘사는 독특해서 좋긴 했지만 독에 의존한 전투이기 때문에 외려 무공을 겨루는 장면에서의 재미 역시 반감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요약한다면 1부 만큼은 인상적이었고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주지만 2부부터는 기대를 저버리는 작품으로 남은 특이한 경우네요. 좌백의 작품은 이 작품 포함하여 두작품밖에는 안 읽어 보았지만 두 작품 모두 용두사미격의 결말이 흐지부지 끝나는 스타일이라 아쉬운데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PS : 그나저나 제목이 왜 "혈기린외전"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2010/07/23

1001초 살인 사건 - 온다 리쿠 / 권영주 : 별점 2점

1001초 살인 사건 - 4점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까멜레옹(비룡소)

총 14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온다 리쿠의 단편집입니다. 온다 리쿠는 최근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인데, 몇권 읽지는 않았지만 저한테는 잘 맞지 않더군요. 그래도 단편집인데다가 추리 소설이 포함되어 있다기에 속는 셈 치고 읽어보게 되었네요.

추리, SF, 환상 소설, 패러디, 호러, 순문학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호시 신이찌 스타일의 쇼트쇼트까지 포함되어 있는 수록작들의 폭넓고 풍부한 구성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도서실의 바다"처럼 작품의 편차가 크다는 단점 또한 두드러집니다. 이래서야 잘 하는 한 장르에 집중한 것 보다 못한 결과라 할 수 있겠지요.
특유의 스타일을 어울리지 않는 장르에 무리하게 도입한 티도 많이 납니다. 예를 들자면 "심야의 식욕"은 어두운 복도 구석방에서의 식육? 이미지를 구체화한 전형적이고 뻔한 호러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특유의 뭔가 있어 보이는 애매모호한 묘사로 분위기를 한껏 잡다가, 제대로 이야기를 매듭짓지도 못하고 끝내버립니다. 허무해서 힘이 다 빠질 정도였어요. 
이야기의 맥락은 둘째치고서라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감이 잘 오지 않는, 그냥 화자가 품고 있는 짧은 이미지만 전달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털어놓는다는 식의 작품들도 실려있다는 것 역시 감점 요소였습니다. 심지어 표제작인 "1001초 살인사건"은 제목부터가 무의미한, 별다른 기발함이나 작가 특유의 정교한 이미지도 없는 되는대로 써 내려간 어이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나마 "수정의 밤, 비취의 아침"과 "그대와 밤과 음악과"의 두 작품은 정통 추리의 맛이 잘 살아있는 편입니다.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해, 그리고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낙원에서 쫓겨나"도 괜찮은 작품이어서 점수를 줄 만 하고요.
아울러 "수정의 밤, 비취의 아침"은 작가의 다른 장편의 외전격인데, 구태여 본편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완성된 이야기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래는 당연한건데 이 작가 외전에서는 고마와해야 될 일이더라고요)

하지만 이 두 작품으로 전체 별점을 끌어올리기는 역부족이죠. 그동안 제가 온다 리쿠라는 작가에 대해 안 좋게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물론 이런 분위기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추리에 가까왔던 두 편만 아래에 짧게 소개해 드립니다.
"수정의 밤, 비취의 아침"
장편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외전격인 작품입니다. 감옥같은 학교의 사연많은 학생들이라는 무대에서 '웃음물총새에게는 말하지마'라는 동요에 맞춘 사고가 이어지다가 주인공 요한이 마지막 사고로 죽을 뻔 한 뒤 결국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강력 사건이 등장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탓에 일상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추리의 과정 자체는 일상계스러운 맛이 있는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특히나 '웃음물총새'라는 장난이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는 복선이 괜찮더군요. 평작 수준은 되는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대와 밤과 음악과"
음악 방송을 진행하는 두명의 남녀 DJ의 방송 속 대화로 진행되는 것이 독특한 재미를 가져다주는 작품입니다. 방송국 현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놓여있는 기현상을 청취자들에게 해석해 달라고 요청한 뒤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죠.
방송에서 틀어줬던 노래가 놓여있던 물건과 관계가 있고, 그 노래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연관이 있다라는 식으로 연결되는 전개는 재미있었습니다. 앞뒤 여러가지 복선과 단서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설득력도 높고요.

그러나 왜 이렇게 복잡한 작전을 펼쳐 범인을 옭아매려 했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건 아쉬웠습니다. 자백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였다 하더라도 너무 불확실한 시도니까요. 어차피 '트위드 재킷'이라는 증거를 알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자백을 끌어낼 필요도 없어 보이고요. 게다가 마지막 유령소동은 유치하고 진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6/05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7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7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전통의 시리즈도 40권 째를 향해 가네요. 이번 권에는 총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상계 두 편에 묵직한 이야기 두 편이라는 구성 역시 언제나와 비슷합니다. 특이한건 외전 형식의 근미래 SF가 한 편 있다는 점이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려 전체 별점은 평균하여 2점인데, 앞의 두 편이 심하게 망작인 탓입니다. 뒤의 두 편은 좋았어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길.

"크로스로드" 

악우惡友 요코야리와 친구들이 등장하는 학교 무대 일상계 소품입니다. 미국 뮤지션인 로버트 존슨이 십자로에서 악마와 계약하여 음악 재능을 손에 넣었다는 유명한 전설이 핵심 소재고요. 미술실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미묘하게 바뀐 분위기, 열쇠로 열리지 않는 미술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기름 냄새, 조명이 꺼졌다 켜지지 걸려있던 그림이 모두 바뀐 현상... 이 모든게 미술부원 미치바타의 급작스러운 실력 향상과 엮여 악마와 계약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는 이야기거든요.

미술실 괴담진상은, 미치바타가 실수해서 물감이 많이 튄 탓에 몰래 문을 잠가놓고 청소하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바닥에 튄 물감은 마법진을 그려 감추고, 벽에 튄 물감은 그림과 조각상을 옮겨 가린 것입니다. 악마 그림은 액자 앞 그림이 쉽게 떨어지도록 장치한 뒤, 불이 꺼졌을 때 벽을 울려서 떨어트린 것이고요.

그러나 동기가 무엇일까요? 미치바타가 이렇게까지 해서 괴담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믿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청소하는게 이런 수고로운 작업보다도 훨씬 빨랐을거라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낮고요. 그림 실력이 좋아진건 엄연한 사실인데, 단지 '아름답다고 생각한 무언가(여기서는 신라의 암모나이트 화석)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결말도 허무했습니다. 그림 실력이 이런 급작스러운 계기로 엄청나게 좋아진다는건 솔직히 말도 안됩니다.

무언가 새로운 걸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의 '십자로' 메타포를 가져온 건 나쁘지 않습니다만, 동기와 트릭, 진상 모두 마음에 들지 않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종려나무 동전"

마우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신라와 타츠키를 만났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 반도에서 몇 번이나 습격당하고도 살아남은 마을의 비밀이 숨겨져있다는 고대 그리스 동전의 비밀을 풀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종려나무가 그려진 동전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신라는 그 마을로 향했고, 그 곳 성당에 새겨진 시계 조각을 통해 진상을 깨닫는다.

'발칸 반도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는, C.M.B 다운 현학적 재미를 선사하기 위한 소재로는 지나치게 무거웠습니다. 비밀의 해답이 "용서해라" 라는 메시지였다는 결말도 많이 허무했고요. 이를 알아내는 방법도 너무 뻔했습니다. 성당 시계 조각의 시간과 분을 시계 문자반 성인 이름에 대입한 '마태 복음 18장 22절, 누가 복음 23장 34절'이라는 건데, 암호 트릭이라고 보기에는 함량 미달입니다. 의외성이라고는 전무하니까요.

현학적으로 얻을 내용이 많지 않고, 결말도 의외성 없고 트릭도 수준 이하라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네요. 최근 마우가 나오는 에피소드는 모두 이 모양인데, 안 나오는게 낫겠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광구 A-11"

아무도 없는 소혹성 광구 A-11의 유일한 작업원이 총에 맞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항공우주감사관 나나세는 우주공학박사 신라와 함께 진상 조사를 위해 소혹성으로 향하는데...

2075년을 무대로 한 근미래 SF 추리극입니다. 로봇 외 작업원은 1명 뿐이라는 가혹한 상황에, 가족의 죽음까지 겹쳐 자살한 것이라는 동기도 설득력 높으며, 아시모프의 로봇 공학 3원칙과 소혹성의 특이한 상황을 이용한 과학적인 트릭도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트릭이 특히 돋보이는데, 그냥 우주 공간에 대고 총을 쏜 겁니다. 그러면 탄은 궤도 비행을 하게 되는데, 근처에 있는 달 때문에 가속이 붙어 위력이 더욱 커져서 살상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총알이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오려면 소혹성을 한 바퀴 돌아야 하니, 그 동안 매그너스는 총을 쏜 뒤 그걸 다시 정리해서 창고에 가져다 놓아서 일종의 완전범죄를 만들었고요. 이렇게 모든게 아주 합리적이고 과학적입니다.

로봇 3원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건 현장에 있던 로봇 팔이 매그너스는 왜 죽었는지 말해주지도 않고, 총을 마지막에 창고에 가져다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답할 수 없다는 식으로 진상을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이유도 그럴싸합니다. 매그너스가 자살했기 때문이에요. 자살은 허락되지 않는 행동이라, 그의 생명 뿐 아니라 '존엄'까지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는 거지요. 조금 카톨릭적 발상인데, 뭐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타츠키와 신라의 미래 모습도 재미있었고, 외전으로서 여러모로 충분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다른건 몰라도 트릭만으로도 별점 3점은 너끈해요.

"고양이 꼬리"

일본 어디에나 있는 시골 마을. 특이한건 그곳 출신의 유명화가 이토우 류우카에 관련된 소문으로, 그는 재산을 황금으로 바꾸어 마을 어딘가에 숨겨두었다고 했다. 유일한 단서는 "고양이 꼬리 앞에 있다"는 그의 말 뿐이었다. 초등학생 후루타는 이 소문을 알게 된 후 친구들과 마을의 '네코다 신사'로 향한다. 절벽 위 신사 뒷쪽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 꼬리'라는 말, 절벽 위에 덩그러니 위치한 신사, 보통 육지와 이어져있는 땅을 뜻하는 '에가시라'라는 이름을 가진 신사 앞바다의 섬이라는 단서로 화가가 말한 의미를 밝혀내는 일상계 작품입니다. 신사와 에가시라 섬은 원래 이어져있었는데 지진으로 이어진 지형이 붕괴하여 신사는 올라갈 수 없는 절벽 위에 놓였고, 에가시라는 섬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전 지형으로 생각해야 답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즉, 예전 마을은 멀리서 보면 고양이 모양이었다는게 진상입니다. 네코다 신사의 이름도 고양이 모양의 머리에 위치했던 거에서 유래된거지요. 황금은 화가가 이 말을 한 가을 저녁때에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어요. 곡식과 나뭇잎이 황색으로 물들고, 석양이 강에 반사되어 황금색 고양이가 출현하는걸 의미한 겁니다. 고양이 꼬리 앞은 모두 황금색!

이렇게 민속학적 테마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건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응용해 봄직한 이야기가 충분히 있을듯합니다. 제가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선바위역의 원래 있었던 선바위 위치를 토대로 뭔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초등학생마저도 화가의 말을 들었을 때 "보물은 신사 뒤"라고 생각했지만 보물이 그곳에 없다는게 전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은 살짝 옥의 티입니다. 신사 뒤 동굴은 너무 위험하여 이 곳에 들어갔던 사람은 모두 죽어버린 탓이라는건데, 섬뜩하면서도 기발하기는 합니다만 이게 현대까지 이어진다는건 조금 설득력이 약하지요. 또 화가의 말은 이어져 왔으면서도, 정작 마을이 고양이 모양이었다는 것 역시 구전되지 않은 것도 이상합니다.

그래도 일상계로는 충분한 가치를 가지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2/06

꼭두각시 오데트 (전6권 완결) - 스즈키 주리에타 : 별점 2점

꼭두각시 오데트 6 - 4점
스즈키 주리에타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악마와 돌체"로 먼저 알게된 스즈키 주리에타의 실질적 연재 데뷰작입니다. 천재 과학자가 만든 로봇 오데트가 인간의 감정을 배워가며 사랑을 알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죠.

이러한 인간 외의 존재와의 사랑 이야기는 정말 쎄고 쎘습니다. 전설이든 신화든 만화든 영화든 수백개의 예를 들 수 있을 정도죠. 그리스 신화 "피그말리온"에서부터 이어져 온 수 천년 된 컨셉이니까요. 하지만 이 다른 존재가 "인간"으로 화하지 않는다면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쨌건 사람은 나이를 먹고, 죽을 수 밖에 없잖습니까. 그러나 이 만화는 별다른 고민없이 오데트는 결국 로봇일 뿐이다...라는 결론으로 너무 쉽게 끝맺습니다.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비극적 결말을 피하기 위해 상대역인 이사오와의 애정 관계도 애매하게 처리하고 있고요.

오데트라는 무표정한 안드로이트 캐릭터는 잘 잡아내고 있고, 여성 작가 특유의 연애 감정에 대한 심리 묘사, 이사오와의 감정 줄다리기 등의 디테일, 개그 센스와 대사들도 적절해서 재미는 있었지만 발상과 전개 모두 지나치게 쉽게 흘러간 느낌입니다. 첫 연재작이라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아쉬운 부분입니다. 물론 진지하게 흘러가면 흘러갈 수록 "스톱! 히바리군"의 예처럼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정리할 확률이 더 높았겠죠. 그렇지만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해 주었으면 싶었는데 그러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기껏해야 별점 2점정도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5권에 등장한 외전격인 폭탄내장 암살로봇 크리스 10호 에피소드는 깔끔하니 완성도가 높았는데, 역시 이런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이 에피소드만은 별점 3점.

2009/11/06

블랙아웃 (Black Out) - 이세형 그림 / 하오 글... 쓴소리 리뷰 : 별점 2점

블랙아웃 - 4점
이세형 그림, 하오 글/중앙books(중앙북스)

20대 여대생이 엽기적으로 살해되고, 현장으로 출동한 과학수사팀은 발견된 몇 안되는 단서를 토대로 용의자를 좁히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용의자들의 알리바이가 증명되거나 결정적 단서가 없어 수사는 난항에 빠지게 되는데...

"누가 울새를 죽였나" 이후 오랫만에 읽어본 국산 추리만화입니다. 대산초어님 리뷰에서 저를 언급하시기도 해서 서둘러 읽어 보았습니다.^^ 추리만화는 왠만하면 빼놓지 않으려 하는데 이 만화는 정보가 거의 없었기에 대산초어님 아니었으면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를 뻔 했으니 먼저 감사드려야겠네요.

일단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공들여 자료조사를 한 티가 많이 나는 수사과정의 묘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좀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을 정도로 디테일해서 작가 스스로 후기에서 지적한 일부 만화적 과장 및 의도적인 수정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마음에 드네요.

그러나... 이러한 자료조사에 기반한 디테일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좋은 점을 찾기는 좀 어렵더군요.

문제점으로 제일 먼저 들고싶은 것은 캐릭터들입니다. 과거 천재 연쇄살인범과의 모종의 인연으로 이상한 환영을 보는 주인공 오진우 형사가 대표적인데, 왜 이러한 배경 설정이 필요한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그냥 평범한 과학수사팀 형사로 표현하면 어땠을까 싶은데 작품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불필요한 설정 때문에 이야기만 괜히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속편이나 외전을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설정이 계속 이어질정도로 매력적인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외의 캐릭터들은 너무나 뻔한 스테레오 타입이라 별로 언급할 필요도 없고요.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말이지 너무 뻔했어요...)

두번째 문제점은 과도한 화면 효과입니다. 원래 웹툰이라고 하는데 웹툰의 특징 중 하나인 올컬러를 잘 살려 인쇄한 책 자체는 좋지만 지나칠정도로 포토샵 효과 등이 난무해서 제대로 이어서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중요한 장면에서만 컬러나 효과가 강조되었어야 할텐데 이렇게나 대중없이 쓰이니 작품은 일관되게 강약중간약 없이 강강강...으로 전개됩니다. 나중에는 눈이 아플 정도였어요.

마지막 문제점으로는 기대와는 다르게 추리적인 부분에서 실망감이 컸다는 것을 들고 싶네요. 최초의 엽기적인 여대생 살인사건 자체는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이후의 전개가 너무나 기대와는 다르거든요. 별다른 두뇌게임이나 추리는 존재하지도 않고 애초의 범행 동기도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해당 당사자들 대부분이 죽어버린다는 결말은 첫 범행의 당위성마저 희박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이럴거면 아예 처음에 년놈을 다 죽이고 자살하지 왜 이리저리 빙빙 돌렸는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거든요. 이러한 불친절한 전개속에 주인공이라는 녀석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컷만 낭비하고 있으니 재미가 있을리도 없겠죠. 이러한 막장 전개에 비하면 범인의 정체가 역시나 식상한 설정속에 초중반에 예상가능하다는 것은 추리만화로서는 치명적이지만 이 작품에 한해서는 별 문제도 아닌것 같기까지 합니다...

아울러 과학수사 스릴러라는 모토와는 어울리지 않게 과학수사적인 요소는 초반의 검시와 프로파일링같은 현학적인 잔재미를 주는 것 이외에는 사건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다른 추리만화에서도 쉽게 보여짐직한 "혈흔"과 실제 용의자를 만나서 증언의 모순점을 찾아내는 단순 탐문 수사가 사건해결의 주요 단서가 된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두가지 단서는 적절하게 잘 쓰이고 추리만화로서 어느정도 가치를 빛내주기는 하지만 기대와는 많이 달랐으니까요.

물론 척박한 국내 추리 환경에서 이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점은 분명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일개 추리 애호가로서 힘을 보태주지는 못할 망정 단순히 문제점만 지적하기는 미안한 상황일 수도 있고요. 그러나 캐릭터와 그림은 그렇다치더라도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문제점은 너무나 확실하기에 차기작에서는 꼭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쓴소리 가득한 리뷰를 마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4/12/03

오무라이스 잼잼 4 - 조경규 : 별점 3점

오무라이스 잼잼 4 - 6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1, 2, 3권을 모두 구입하기는 했습니다만, 2, 3권은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할인 가격에 구입했었습니다. 그래서 4권도 중고 서점 입고를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도서정가제 이후에는 할인폭이 크지 않을테고 중고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새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이전 권 리뷰에서 '어차피 인터넷에서 모두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을 이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깝다'고 적었었는데, 생각이 바뀌기도 했고요.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2,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450페이지가 넘는 풀컬러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는 괜찮으며, 인터넷과는 다른 아날로그적인 정겹고 따뜻한 맛은 단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내 요리만화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콘텐츠 자체의 가치가 무척 높다는 장점도 큽니다. 지금은 국내에도 요리 만화가 웹툰 중심으로 제법 많아졌지만, 단순히 요리가 등장하고 레시피가 나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유로운 연상과 전개를 통해 요리와 에피소드가 어우러지는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은 여전히 발군입니다. 이번 권 역시 그러합니다. 미국 거주 시절 "인큐버스"라는 밴드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톨리도라는 무척 한적한 도시를 찾아간 에피소드가 대게 이야기로 연결된다든가, 자기와 닮은 Sasa 씨 이야기에서 소보로빵, 멜론빵, 파인애플빵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요리에 대한 그림과 소개 모두 당장 먹고 싶게 만드는 요리 만화로서의 미덕도 충분하고요.
이러한 독특한 매력은 작가 조경규의 이색적인 이력 덕도 클 것입니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중국에서도 수년간 거주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인데, 이시카와 쥰이 "만화의 시간"에서도 이야기했듯, 조금이라도 특이한 인생을 산 사람이 만화가로 유리하다고 하지요. 그 말대로라면 조경규 작가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인생을 산 셈입니다.

또 다양한 음식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부가적인 가치도 큽니다. 츄파춥스의 로고를 살바도르 달리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이나, 달리와 디즈니의 공동작업 애니메이션이 있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네요. 외에도 닭갈비의 유래나 다양한 연근 요리 등 읽을거리가 가득합니다.

총 24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가장 구미가 당기던 음식은 "차계란"이었습니다. 계란 장조림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지만, 소개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라 꼭 한번 따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이전 권들과 동일하게 명확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과 비교한 가치가 얼마나 크냐는 여전히 애매합니다. 이번 권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부록이 특히나 별로입니다. 본편에 소개된 내용의 보강이나 외전 형식의 이야기, 만화로 제작된 레시피 등이 훨씬 가치 있었을 텐데, 정작 수록된 것은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맛집 소개나 재미없는 가족 만화가 대부분이니까요.

또 작가의 가족, 특히 아이들 소재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몇 안 되는 부록 페이지까지 아이들 사진과 그림으로 채워진 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소재 면에서 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발상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책을 구입한 독자를 위한 서비스에도 더 신경 써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작화는 물론 내용과 재미, 소개되는 요리의 가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국내 요리, 음식 만화의 대표작임은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 번 다시 읽었기에 돈이 아깝지도 않고요. 1, 2, 3권 모두 열 번 이상 읽었으니까요. 요리, 음식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이만한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2009/07/20

자칼의 날 - 프레데릭 포사이드 / 석인해 : 별점 4점

자칼의 날 - 8점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석인해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알제리 용병 출신의 우익 테러단체 OAS는 드골 암살이라는 궁극의 목적이 계속 실패하고, 조직의 핵심인물이 체포되어 와해 위기에 빠졌다. 이에 OAS는 최후의 수단으로 조직 외의 인물인 프로 암살자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선택된 영국인 암살자 "자칼"은 거금을 받고 곧바로 행동을 시작했지만, 프랑스 정부 역시 OAS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채고 OAS의 핵심인물인 코와르스키를 납치 고문하여 그들의 계획을 알아냈다. 그리고 최고의 수사관이라 할 수 있는 르베르 총경에게 자칼 수사를 맡기는데...

프레드릭 포사이스(프레데릭 포사이드?)의 대표작이자 암살물의 최고 걸작인 고전중의 고전입니다. 드디어 읽게 되었네요. 오래전 본 영화 탓에(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제가 기억하는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가 어울리지도 않는 자칼로 나온 영화가 아닌 1973년 영화입니다)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동안 손대지 않고 있었는데, 부산으로 여행갈 일이 생겨 집어들었다가 완전 몰입해서 읽어버렸습니다.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네요.

일단 영화와의 차이점이라면, 영화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는 드골 암살의 배경을 굉장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용병 출신으로 이루어진 우익 무장 테러조직 OAS와 당시 프랑스 정치상황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동기가 보다 잘 드러나며, 상세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하여 설득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저에게는 선악이 모호한 프랑스 경찰과 OAS의 대립 구도가 특히 신선했어요. 양쪽 모두 행하는 방식에 있어 "선"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집단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칼이라 불리우는 암살자의 암살 계획 및 행동 역시 완벽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칼이 계획을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준비를 갖추어 나가는 묘사는 그야말로 암살이라는 장르의 바이블이라 해도 될 정도에요. 급작스럽지 않으면서도 모든 일에 대비하는 프로의 자세가 문장 하나하나에 묻어날 정도이니까요. 예를 들자면 가장 중요한 "총기"의 반입방법이라던가(지금은 전미 (응?)가 다 알 정도의 유명한 장치이지만 처음 영화로 볼때 기발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은 알루미늄 원통!) 다양한 위장 신분의 확보, 기타 계획에 대한 모든 것이 정밀한 설계도처럼 그려집니다.

이러한 뛰어난 킬러에 대적하는 프랑스 경찰 르베르 총경의 활약 역시 만만치 않기에 작품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아 떨어지는 것 역시 높은 점수를 줘야 하는 부분이죠. 얼마 안되는 단서만 가지고 비밀리에 수사를 해야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서서히 자칼을 궁지에 몰아넣는 과정의 흡입력이 대단하거든요. 추리소설사에 길이 남을법한 뛰어난 경찰이자 암살범의 호적수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뒷부분의 정보가 새는 루트를 밝혀내는 부분에서의 포스가 인상적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물론 지금 읽기에는 조금 아쉬운 단점이 있습니다. 제일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자칼이라 불리우는 암살범의 신원을 조사하는 과정인데, OAS의 "돈", 즉 "착수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이 가장 빠르지 않았을까요? OAS 핵심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안에서 훤히 감시하는 프랑스 경찰조직인데 이러한 돈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까닭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자칼을 서서히 궁지에 몰아넣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운"이 개입된다는 것도 조금은 아쉽습니다. 초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영국 경찰의 활약이 결국은 소문에 의지한 "감(感)수사" 일 정도였으니까요. 아울러 자칼의 "최종 목표"를 거의 파악한 단계에서는 아무리 자칼의 운이 좋다고 하더라도 빠져나가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져서 공정한 승부로 보이지는 않더군요.

무엇보다도 프로로서의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인 "자칼"이라는 캐릭터에 푹 빠져서 그의 성공을 기원했기에 (역사를 바꿀 수 없기에 당연한 결말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허무한 최후는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자칼이 성공하는 작전이 등장하는 외전이나 속편이 나오면 좋겠는데 말이죠. 쩝.

그래도 서스펜스와 스릴이 각 문장, 페이지마다 살아서 숨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져들어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부산까지의 거리가 짧을 정도였어요. 이후 등장했던 "피닉스" 등과 같은 아류작, 또는 암살물의 범작에 비해 수준이 다른 내공의 깊이와 재미를 뽐내는 그야말로 고전명작이죠. 21세기인 지금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아날로그적인 향취를 가득 내 뿜으면서 그 당시에서 뽑아낼 수 있는 모든 재미를 뽑아서 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은 작품이기에 저의 별점따위야 중요하지도 않은 작품이긴 하죠. 5점을 줘도 충분하지만 위에 적은 몇몇 안타까운 요소들 더하기 동서출판사의 엉망인 번역으로 1점 감점합니다. 좋은 번역이었더라면 아마도 만점을 받았을지도? 동서판 번역으로 읽은게 후회가 되네요.

2014/09/17

낮비 1~6 - 후루야 미노루 : 별점 2.5점

너무나 외롭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무것도 없는 하루하루에 불만인 주인공 오카다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직장 동료 안도에게 말을 걸고,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안도가 짝사랑하는 유카와의 만남, 그리고 유카를 죽이려는 연쇄살인마이자 고교 동창 모리타의 등장...

후루야 미노루의 우울 + 심각 계열 작품으로 전작인 "시가테라"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루저에 가까운 주인공에게 미모의 여자친구가 먼저 대시한다는 판타지, 고교 동창인 사이코패스와 주변 인물들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이상한 상황에 처한다는 이야기 구조가 거의 판박이거든요. 왕따 이야기 역시 빠지지 않고요.

그러나 "시가테라"와 가장 큰 차이점은 "시가테라"의 주인공 오기노는 왕따 피해자라서 핵심 사건에서 주변에만 있기 힘든 탓에 이런저런 일에 계속 휩쓸리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커플인 오카다와 유카의 연애담과 비일상적인 연쇄살인마 모리타의 살인 행각이 분리되어 교차 전개(물론 나중에 합쳐지지만)된다는 점입니다. 오기노 캐릭터의 평범한 부분과 피해자 부분을 둘로 나눈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오카다와 유카 커플, 그리고 안도가 등장하여 양념을 쳐주는 일상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둘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고집하는 상남자 안도가 상당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나중 탁구부", "그린힐"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개그 센스가 여전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하고요. 안도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이 나와도 참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에 반해 모리타의 폭주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환상을 확실히 깨준다는 측면에서는 성공하고 있으며, 막판까지 사이코 범죄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맛도 있지만 너무나 몰상식한 연쇄살인마로 묘사되기에 과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시가테라" 정도로—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난 꼴통이 살인마더라, 중퇴당한 고교 동창은 야쿠자가 되었더라—마무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아니면 차라리 모리타가 오카다와 유카를 살해하는 데 성공하고 끝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무계획으로 막 나가는 모리타가 유일하게 목표하고 계획한 것이 바로 둘의 살해인데, 다른 우발적인 살인은 잘도 저지르면서 정작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다는 점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입니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풍자한 걸까요?
마지막으로, 모리타가 학생 때 자신이 비정상임을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 그리고 그의 체포로 이어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좀 의아했습니다. 갑자기 '모리타도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메시지가 이 작품에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뜬금없기도 했고요.

그래도 "시가테라"보다는 마무리가 깔끔할 뿐더러 나름 해피엔딩—어쨌든 오카다 커플은 목숨을 건지고, 안도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여성이 생기고, 모리타는 체포되니 만큼—이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로 묶이게 되는 구성도 괜찮았고요. 두 작품의 장점만 하나로 합쳤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오카다와 유카의 미래에 행복만 있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2010/08/17

소년탐정 김전일 Season2 9, 10 : 별점 1.5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9 - 2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0 - 4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이제는 정말이지 관성으로 보는 김전일 시리즈 Season2 9~10권입니다. 중편 길이의 "켄모치 경부의 살인"과 중학생 김전일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2편 - "다이빙 수영장의 악몽", "캠핑장의 괴사건" - 이 실려있습니다.

이 중 마지막 작품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망작에 가깝습니다. 정통 본격 추리 만화에서 일상계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것부터가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만드네요. 정통 본격물로 공정한 트릭과 독자와의 두뇌싸움, 그리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9권은 별점 1점, 그래도 장점이 조금 더 많은 10권은 별점 2점입니다. 

좋은 기억은 사라진지 오래되었건만 잊을만하면 나타나서 쌈지돈을 털어가는 기둥서방같은 느낌인데, 이럴거라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켄모치 경부의 살인" 

3년 전 여고생 사체 유기 사건의 소년범 3명이 차례로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켄모치 경부가 지목되었다. 켄모치 경부는 마지막 소년범 부스지마의 살해 현장이었던 완벽한 밀실 안에서 체포되고 마는데...

과거의 사건에서 비롯된 현재의 연쇄 살인, 가슴 아픈 진상이라는 김전일의 뻔하디 뻔한 테마가 재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까지 발전과 변화없이 시리즈가 이어진다는게 놀라울 뿐입니다. 힘없는 일반인에게 '지옥의 광대' 타카토 요이치가 지혜를 빌려준다는 범죄 코디네이팅 설정까지 그대로고요. 

아무리 지혜를 빌려줬다손 치더라도, 일반인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범인이 현역 경관을 납치하여 혼수 상태로 구금한 뒤 총을 빼앗는다던가, 원격 조종 폭탄을 만드는 등의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도 황당합니다. 범인이 마지막에 죽을 각오였다면 그냥 2명을 총이나 칼로 죽여버리면 됐을텐데, 왜 이렇게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었는지 설명도 전무하고요. 그나마 좀 짧기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길기는 또 왜 이렇게 긴 걸까요... 

딱 한 가지, '바움쿠헨'에서 실마리를 잡는 마지막 부스지마 사건의 트릭 하나만큼은 건질만했습니다. 이 트릭 덕분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다이빙 수영장의 악몽" 

중학생 김전일이 등장하는 일종의 외전입니다. 중학생 김전일이 우연히 목격한 사건 - 다이빙하다가 착수 실패의 충격으로 사망한 미츠요 사건 - 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름만 중학생일 뿐 고교생과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 중학생이라고 이야기를 꾸몄는지 알 수가 없네요. 차라리 긴다이치 후미를 등장시키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트릭 역시 평범한 학생이 꾸미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거대한 장치 트릭이라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짧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캠핑장의 괴사건" 

중학생 김전일이 친구들과 간 캠핑장에서 미유키의 시계와 팬티를 훔쳐간 범인을 찾아낸다는 지극히 일상계스럽고 유머스러운 작품입니다. 앞서 설명드렸듯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괜찮습니다. 충분히 있음직한 사건에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트릭, 그리고 마지막 팬티의 은닉 장소도 만화의 내용과 잘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읽을 수 있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5/06/13

아인 1~17 - 사쿠라이 가몬 : 별점 2.5점

'죽지 않는 인간'이라는 단순한 콘셉트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내용은 꽤 독특한 밀리터리 액션물입니다. 주인공 나가이 케이와 아인 테러리스트 사토 간의 대립이 핵심인데, 사토가 군사 전략과 물리적 전투 능력 모두에 특화된 사이코패스라서 경찰 특공대, 자위대 군대와 교전을 벌이는 연출이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고증에 충실하게 잘 그려져 있는 덕분입니다. 

작품 속 '아인' 설정도 독특합니다. 아인은 단순한 불사의 존재가 아니고, 죽기 전까지는 보통 인간과 똑같기 때문에 마취제나 산소 결핍, 냉동 등으로 제압 가능합니다. 하지만 죽고 나면 놀랍도록 신속하게 부활하며, 이 부활은 원래의 신체 상태를 완벽히 복원함과 동시에 어떠한 물리적 장벽도 무시한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있고요. 이 설정은 이야기 전개에 잘 활용되어 극적 긴장감을 더합니다.

등장인물들도 복잡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빌런 사토의 존재감은 압도적입니다. 냉혹하고 잔인한 사이코패스지만, 단순히 광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투가이며, 리더십마저 갖춘 인물로, 작전의 구상과 실행 면에서 탁월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거든요. 절단된 손을 튀겨 프라이드 치킨으로 위장하여 보안 업체로 보낸 뒤, 자신의 몸을 분쇄기에 갈아서 회사 내부에서 부활하는 침투 장면은 아인의 기묘한 설정 중 하나 - 몸이 조각나면 가장 큰 조각 기준으로 부활한다 - 를 활용하여 극대화한 명장면으로 기억될 만합니다. 공군 기지를 장악한 뒤 군용기를 직접 조종하여 정부 기관을 테러하는 장면도 사토라는 캐릭터가 가진 전략에 있어서 독보적인 창의성, 그리고 아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만들고요.
주인공 나가이 케이 역시 기존 소년 만화 주인공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인물입니다. 이타심이나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그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캐릭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성격이 사토와의 대립 구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둘의 대결은 단순히 강함의 여부가 아니라 심리전과 전략의 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케이와 사토의 대결 구도로 집중된 전개와 결말도 깔끔합니다. 인기에 영합해 불필요한 외전을 덧붙이거나 결말을 늘이지 않고, 처음 구상된 틀 안에서 완결을 짓는 모습은 만화계에서 보기 드문 미덕이라 마음에 드네요.

"기생수"처럼 사회 풍자적 메시지가 곳곳에 녹아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생체 실험에 활용하여 거액을 번 제약 회사가 테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계속 근무하게 만드는 모습, 아인 차별법안을 만든 국회의원이 실제로는 아인이었다는 반전 등은 작품이 단순한 SF나 액션에 머물지 않고 현실 사회의 모순을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아인이 아니지만 테러에 가담한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 소셜 미디어 등을 활용한 무차별적인 메시지 전달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고요.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인이 조종할 수 있는 그림자형 존재 'IBM'은 표지에서도 적극 노출하는 등의 비중에 비하면 활용도가 너무 떨어집니다. 사토의 테러 장면 몇 군데 외에는 그다지 활용되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종의 초능력에 가까운 소년만화적인 발상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밀리터리 액션물인 작품 분위기와도 사뭇 차이를 보이고요. 

케이와 사토의 마지막 대결도 기대에 비해 밋밋합니다. 단순히 몸통 박치기(?)로 함께 물에 빠진 뒤 기절한 사토를 체포하는 식의 마무리는, 치열한 두뇌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이 결말보다는 사토의 잘라진 손을 놓고 벌이는 테러리스트와 케이 측의 대결이 훨씬 볼만했습니다.

이외에도 '플러드 발생', '일반인의 부활' 등 작품 내 여러 떡밥은 끝내 회수되지 않았고, 케이의 친구 카이토가 지나치게 무리하게 행동하는 이유 역시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는 점도 단점이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독특한 세계관과 불사의 존재라는 콘셉트를 잘 활용했고, 무엇보다 강력한 빌런 사토의 존재와 그를 중심으로 한 치밀한 전개는 탁월합니다. 다만 일부 설정과 떡밥 설명이 부족하고 마지막 대결의 맥빠진 마무리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래도 당대의 인기작이었던 이유는 충분히 잘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영화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2010/06/07

분노의 늑대 - 고이케 가즈오 / 고지마 고세키 : 별점 1.5점

원제 "子連れ狼"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아들을 동반한 검객"으로도 잘 알려진 고전 시대극 만화입니다. 주말에 이래저래 집안에만 처박혀 있다가 한번에 읽어버렸습니다.

기본 설정은 당대의 인기작답게, 영화로도 여러편 나왔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아들을 일종의 무기창고이자 방패와 썰매로도 활용하는 만능(?) 유모차에 태우고 전국을 헤메는 사연많은 최강 사무라이와, 그를 잡으려는 일본 막부 배후의 실력자 야규 가문의 승부를 큰 축이지요. 여기에 주인공인 수구류의 오가미 잇토가 의뢰금 500냥으로 벌이는 다양한 자객 활동이 양념처럼 곁들여진 구성입니다. 다양한 장비가 갖추어진 리어카와 주인공의 먼치킨적인 속성, 그리고 어떤 적도 베어버리는 전쟁용 칼 동태관의 존재는 이 작품이 "베르세르크"에 큰 영향을 준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참신한 설정과 비교적 괜찮은 자객 활동 에피소드들에 비하면 전체적인 큰 줄거리는 쓰레기라 해도 될 정도로 함량미달이었습니다. 김성모 화백의 만화를 보는 친숙한 느낌이 들 정도로요.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오가미 잇토가 너무 강하다는 것입니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1:1로 상대가 될만한 인물은 야규 가문의 수장 야규 레츠도 단 1명일 뿐입니다. 그 외에는 수 백명이라 하더라도 모두 칼을 든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심지어는 완전무장한 군대와도 승부를 벌여 이길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
이렇게 강하면 처음부터 집을 습격한 야규 일당을 다 베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레츠도와 승부하면 깔끔했을텐데 왜 4년이나 방랑하며 자객활동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가미 잇토라는 캐릭터도 문제가 많습니다. 본인 스스로는 승리를 위해 3살박이 아들을 이용하는데다가 비밀장치가 숨겨진 유모차로 적들을 학살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싸이코패스인 주제에 명부마도를 걷고있다고 정당화시키니 이거야말로 자기합리화의 극치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에게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을 운운한다니 이런 철면피 같으니라고!
야규 레츠도 역시 뒤로 가면 갈수록 야규가문을 위해 오가미를 모함한 악당에서 어느새 무사도 정신에 투철한 진정한 사무라이로 캐릭터가 바뀝니다. 흥행을 위한 선택인건 분명한데 문제는 악역으로 긴급 투입한 정부의 순역 가이이입니다. 초반의 두뇌파 악당 역할은 잠시일 뿐 곧바로 찌질이 개그캐릭터로 돌변해 버리는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중반부의 결전 이후 "야규봉회장"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야기는 산으로, 달로, 안드로메다로 저 멀리 가버리는 김성모 스타일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제일 웃기는 것은 오가미 잇토가 비밀을 알아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야규봉회장"이 결국 아무 역할도 못한다는 겁니다. 거의 10권 넘는 분량을 무슨 대단한 비밀인양 취급하더니 마지막은 아무 상관없는 그냥 1:1 대결이라니..... 대체 이것때문에 죽어나간 수많은 사람들은 뭐였던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40권이나 되는 분량을 한번에 읽게끔 하는 김성모적인 재미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설정 (예를 들자면 "동반검객")은 마음에 들기에 별점은 쓰레기급에 조금 얹어서 1.5점입니다만, 유명세와 영향력에 비하면 너무 실망이 컸습니다. 야규와의 승부보다 자객활동하면서 벌어지는 잔잔하면서도 의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더 좋았는데 차라리 이런 에피소드 중심의 외전이 나온다면 훨씬 좋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2019/11/29

회색 인간 - 김동식 : 별점 2점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꾸준히 업로드한 글이 인기를 얻은 덕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결과물입니다. 과거 하이텔 시기에나 존재했을 법한 이야기의 재림이네요. 올린 글의 분량만 따지만 거의 "태백산맥"에 육박한다니 그 열정과 노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하이텔 시기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 등과는 명확히 다른 점은, 굉장히 짧은 꽁트, 아니 쇼트쇼트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야기들이 표제작을 포함하여 무려 스물 네 편이나 수록된 단편집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한 편의 이야기로의 완성도가 부족한 탓입니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들이 대체로 비슷하다는 단점도 큽니다. 기묘한 설정, 그리고 그 기묘한 설정 때문에 인간들의 집단 이기주의나 탐욕이 생겨나 결국 파국을 초래한다는 결말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기묘한 설정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지만, 그냥 기묘하다는 상황에만 매몰되어버린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건물이 급작스럽게 식인 괴물로 변하여 밖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식인 빌딩", 인간이 녹았다가 다시 돌아오면 완벽한 컨디션이 된다는 기적의 물 정화수가 대유행한다는 "흐르는 물이 되어"가 대표적이에요.
또 기묘한 설정에 기댈 뿐,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반전도 뻔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아우팅"에서 인류 모두가 인조인간이라는게 밝혀지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차라리 연구소 경비병들만 진짜 인간이었다는 반전이라도 넣어 주었어야 했어요. 그나마 조금 신선한 반전들도 대체로 기존 상식이나 그때까지의 현실을 반대로 뒤집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괜찮아 보여도 읽으면 읽을 수록 식상해 질 수 밖에 없어요.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에서 나이를 먹지 않게 만드는 영원의 구가 사실은 저주였다던가,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에서 좀비 바이러스는 무적의 재생력을 안겨다주는 선물로 사람들은 다시 인간이 되려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피노키오의 꿈"에서 피노키오의 소원이 인간이 되는게 아니라 건강한 소나무가 되는 것이었다는 결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반전이라도 있는 이야기는 조금 나은 편입니다. 특별한 반전 없이 인간미, 감동 쪽에 방점을 찍으려 노력한 이야기들은 더 엉망이에요. 표제작인 "회색 인간"이 대표적입니다. 1만여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납치되어 땅을 파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립니다. 먹을게 부족해서 문화는 사치였지만, 어느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 문화가 생겨난다는 결말입니다. 문화가 사라지면 인간도 아니라는 주제인데, 솔직히 억지스럽죠. 이런 상황이라면 집단이 생기고, 자체적인 법률이 생기는게 타당한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이 그냥 살기 힘든 상황만 길게 묘사되는 것도 지루하고요. 가혹한 노동 환경에서도 추구하는 문화에 대한 욕구와 인간미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외전 반장의 일일 외출록" 에서 훨씬 더 재미있게 잘 그려졌다 생각됩니다.
손가락 여섯개인 신인류를 낳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계획이 비선 실세의 농간으로 밝혀진 후, 손가락 여섯개인 아이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생각이 모든 차별을 없앤다는 꿈같은 이야기도 황당하기 그지 없고요. 괴물이지만 또 인간이기도 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접했었던 설정도 많습니다. 어설픈 풍자, 별 것 아닌 내용을 길게 늘려쓴 이야기도 눈에 거슬렸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답게 반짝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들이 얼마 안 되는 식량을 노인에게 나누어주기를 거부하자 노인이 자신이 부자라면서 통조림을 500만원에 사겠다고 제의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무인도의 부자 노인", 신에게 소원을 빌 당사자로 선택되는 개인에게 닥치는 집단 광기를 설득력있게 보여준 "신의 소원", 노인을 가상 세계에 모신다는 발상이 그럴싸 했던 "디지털 고려장" 등이 그러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후의 전개가 뻔하고 결말의 반전이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이거나 아예 없다는 단점은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

다행히 설정도 좋고, 전개도 괜찮으며 결말과 반전도 완성도 높은 보석과도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 재활용" 입니다. 돈만을 위해 살아온 두석구가 딸이 교통사고로 죽자, 13일 내 시체 세 구를 섞어 넣으면 한 명이 부활한다는 주술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생존은 랜덤이라 딸이 살아나지 못하자 두석구는 전 재산을 투자해서 13일 동안 이 주술을 계속 시도하고요.
그런데 영혼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고, 영혼들은 두석구의 딸 부터 영혼을 찢어발긴다는 마지막 반전이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두석구는 딸이 살아날 때 까지 주술을 시도할테니 영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딸부터 처치하는건 당연하니까요. 이를 고통스러워 하는 딸의 마지막 대사도 좋았고요.
쇼트쇼트로는 그야말로 완벽했던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베스트입니다. 이 정도면 호시 신이치의 대표작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 합니다.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도 평균 이상입니다. 정대리가 가진 보물인 쇠구슬은 손을 대면 비가 오게 만듭니다. 김대리는 이를 훔쳐내는데 성공하지만 그가 아무리 손을 대도 비는 오지 않습니다. 아내 역시 흐려지기만 할 뿐이고요. 그런데 아기가 손을 대자 지진이 발생하여 결국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원리는 비가 오는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날이 실현된다는 이야기지요. 기묘한 설정도 좋지만 제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던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 모녀, 한 사내와 협곡에 갇힌 김남우가 극심한 굶주림 끝에 식량으로 희생될 사람을 뽑는 제비뽑기에 참여하는 "협곡에서의 식인"도 기묘한 맛 측면에서는 꽤 괜찮습니다. 김남우의 편인줄 알았던 사내가 놀랍게도 급작스럽게 김남우를 살해하는데, 알고보니 그들 4명은 모두 가족이었던 반전 덕분입니다. 김남우가 가족을 경계하고 오히려 위협할까 두려워 남인척 김남우 편에 섰다가 배신을 했던 거지요. 살아난 가족이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다는 마지막 한 방도 묵직하고요.
아쉬운건 에이즈가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좀 더 '천벌'에 가까운 병에 걸리는게 나았을 거에요. 그런 면에서는 "살인단백질 이야기"에 나왔던 프리온을 활용한 병이 어땠을까 싶네요. 식인으로 전염되고, 치사율 100%이니까요.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도 반전이 좋습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 두석구가 지옥에서 악마들의 부탁으로 죄인들에게 환생을 약속하는 환생교를 만들어 포교합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 통제를 잘 하려는 악마들의 계획으로 생각하고요. 그러나 1년 뒤, 절대자가 강림하여 두석구를 찢어 발기고 죄인들의 희망을 끝냅니다. 죄인들에게 어설프게 희망을 주었다가 큰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말인데 아주아주 그럴 듯 했습니다.

하여튼, 전체 평균해서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 모든 수록작 중 세네 편 정도가 중간 수준, 세 편 정도가 중간 이상, 한 편이 수작이고 나머지가 모두 기대 이하이니 이 정도가 적당해 보입니다. 반 타작도 하지 못한 셈이니 전반적으로 좋은 단편집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하면서, 전문적인 교육도 받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 창작하여 발표한 작가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등단도 한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다음에는 보다 완성도있게 다듬어 발표해 주기를 바랍니다.

2008/10/22

헬보이2 골든아미 - 기예르모 델 토로 : 별점 2점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존재하던 고대의 휴전 협정이 수 천년이 지난 후, 세상을 지배하려는 요괴 세상의 누아다 왕자에 의해 깨어진다. 누아다 왕자는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 수 천년간 잠들어있던 최강의 군단 ‘골든 아미(Golden Army)’ 를 깨운다. 이에 '헬보이'는 불을 다스리는 여자 친구 ‘리즈’, 사람의 마음을 읽는 ‘에이브’ 등,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BPRD 요원들과 함께 누아다 왕자와 골든 아미를 막기 위한 최강의 대결을 시작한다! (네이버영화펌)

제가 너무나 좋아라 하는 만화 원작의 슈퍼히어로 (?) 무비! 감상한지는 좀 됐지만 포스팅꺼리도 없던 차라 몇자 적어 봅니다.

일단 전편과 비교한다면 스케일도 더욱 커졌으며 재미난 신 캐릭터의 등장도 있고 영원히 죽지 않는 무적의 군단 골든아미의 묘사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문제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헬보이의 매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헬보이 특유의 유머나 위트가 제대로 살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에이브와의 술판과 고성방가 정도는 재미있었지만, 영화의 극히 일부분이었을 뿐입니다. 영화에서는 차라리 에이브의 활약이 더욱 돋보이는데 이래서야 헬보이가 아니잖아요. 무슨 외전도 아니고.... 별것도 아닌 이유로 리즈와 티격태격하는 모습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대인배 헬보이가 찌질한 아저씨가 된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헬보이는 진정한 마쵸여야 하는데 말이지요. 역시 여자가 영웅을 약하게 만드는걸까요?
악당들도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이름만 멋진 비련의 공주와 사악한 왕자라는 구태의연한 설정은 둘째치고서라도, 레벨 설정이 엉망이라 결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점은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중간에 등장했던 중간보스들이 훨~씬 강해 보였거든요. 후편을 암시하는 듯한 복선은 쓰잘데 없었고 말이죠.
이야기 전개도 이상하게 맥이 풀리는 것이 배급사에서 무지막지한 가위질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기까지 합니다. 기에르모 델 토로 감독이 직접 각본까지 손댄것에 비하면 영화가 너무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것이 영 미심쩍네요. 뭔가 손발이 안맞아 보이는 것이 델 토로 감독이 상업성과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의 줄타기를 실패한 듯한 느낌도 강하게 들고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영화의 문제도 좀 있겠지만 워낙 전작을 재미있게 봤기에 기대가 컸던 탓이 크겠죠. 그래도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 저는 관대하니까요...

2009/03/18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 - 예니체리 부대의 음모 - 제임스 굿윈 / 한은경 : 별점 3점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 6점
제이슨 굿윈 지음, 한은경 옮김/비채

술탄 마흐무트 2세 치하의 19세기 중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광이 서서히 저물던 시기의 이스탄불에서 제국의 근대적 군대 신위병 장교 4명이 실종되었다. 군대 총사령관 세라스케르는 환관 야심을 불러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야심은 이외에도 궁정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수사도 맡는 등, 쉴틈없는 나날을 보냈다. 
신위병 장교 4명은 한명씩 살해된채 발견되었고, 수사를 진행하던 야심은 이 사건의 배후에 10년전 신위병이 끝장낸 구제국의 유물이었던 전투기계집단 "예니체리"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서서히 사건의 흑막, 본질에 접근하는데....

'19세기 초-중반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무대로 환관 탐정이 활약하는 팩션'이라는 책 소개를 믿고 구입한 책입니다. 제가 추리 소설은 물론 역사물도 좋아하기도 하고, 역사 추리물은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이 책의 장점으로는, 제일 먼저 19세기 초-중반의 이스탄불의 세밀한 묘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책 한권만 읽어도 당시 이스탄불 거리의 정경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당시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정치적 상황같은 국제 정세, 술탄과 귀족들, 거리나 지명과 같은 단순한 정보 이외에도 요리나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 지는 등 그 깊이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 모든건 작가가 원래 오스만 제국에 대한 역사 연구를 계속해 온 학자출신인 덕분입니다. 작가의 애정이 곳곳에서 느껴질만큼 제국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추리 소설 역사에 없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환관탐정" 야심의 캐릭터 역시 독특한 맛이 넘칩니다. 성실하고 똑똑하며 요리 역시 뛰어나지만, 환관이라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는 환관탐정... 멋지지 않나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의 화끈한 친구인 망한 나라 폴란드의 전권대사 팔레브스키 역시 멋졌습니다. 이 친구가 주인공인 스핀오프격 외전이 나와도 재미있겠더라고요.

마지막으로는,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잘 몰랐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황제의 모후 발리데 술탄이라는 인물 같은 경우겠지요. 프랑스 출신의 미녀로 노예시장을 거쳐 술탄을 낳아, 결국 황태후의 자리에 이르르게 된 나폴레옹의 황후 조세핀의 친구이기도 한 여인이라니.. 이 여자 이야기만으로도 소설이 한권이겠어요! 
번역도 깔끔한 편이라 쉽게 쉽게 읽을 수 있고, 책 뒤의 "예니체리" 부대에 대한 자세한 해설 등 책 만듬새도 좋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소설이라는 측면 이외의 "추리"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술탄의 근대적 개혁 칙령 발표 직전에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조사를 중심으로 술탄의 모후인 발리데의 보석 도난 사건, 그리고 하렘에서 일어난 궁녀 교살 사건이라는 사건이 계속 벌어져서 사건 자체는 풍성하지만, 이 모든 사건이 연관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야심의 추리에 의해 해결되는 것 역시 하나도 없습니다. 야심은 충실한 수사관이긴 하지만 그가 수집하여 독자와 공유하는 정보는 대부분 쓰잘데 없는 것들이고, 중요한 정보들은 너무나 작위적인 탓입니다.

게다가 모든 사건의 흑막인 마지막 반전 부분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범인이자 흑막은 사건 자체를 일으키면 안되는 상황이거든요. 은밀하고 조용하게 거사를 진행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어처구니 사건을 벌인다니.... 설득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져요. 그리고 거사가 실패하는 결말 역시 별로 깔끔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흑막자체가 너무나 어설펐다!" 라고나 할까요.... 
아울러 당대 오스만투르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실제 역사와 실제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세계의 판타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약점입니다. 실제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픽션인 "팩션"으로 읽히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웠습니다.

결론적으로, 전에 읽었던 "알렉산드로스의 음모" 과 유사합니다. 역사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역사물, 아니 "역사 모험물"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요. 야심부터가 이 작품에서 3번이나 죽을 뻔하고, 스스로도 격투로 사람을 잡고, 죽이고,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등 많은 모험이 담겨 있는데, 이럴 거라면 차라리 "역사모험물"이라고 하는게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저 자신도 추리적인 부분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아서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래도 지루한 역사물로 끝나지 않고 많은 모험과 더불어 나름 추리적 요소가 담겨있는건 사실입니다. 당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매력을 아주아주 재미있게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는 점도 분명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저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이국적인 매력에 푹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추리 매니아로서는 실망한 점이 분명 있기 때문에 시리즈 작품이 더 있더라도 계속 읽어볼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2024/05/18

무너진 세상에서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무너진 세상에서 - 6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리브 바이 나이트"로부터 10여년 뒤, 조는 탬파 일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여전히 조직 최상위 멤버였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조를 노렸던건 거짓말로 모든건 조직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고 했던 부하 리코의 음모였다. 리코는 소문을 통해 조를 조직 거점에서 떼어놓고, 보스 디온을 습격해 죽이려했다. 마지막 순간에 음모를 깨달은 조는 보스 디온을 구해내고, 위원회를 통해 리코마저도 없애버렸지만 디온이 조직원들을 FBI에 팔아먹고 있었던 사실을 알아채서 디온을 죽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 자신도 위원회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리브 바이 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10여년 뒤,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사업가로 보이지만 조직의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거물이 된 조가 누군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걸 알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약 한 달(?) 남짓 기간 동안 조는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파헤치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죽고 마는데, 깔끔하고 명확한 서사 덕분에 빚어진 장점은 명확합니다. 누가 조의 목숨을 노리는지? 조직의 배신자는 누구인지?의 수수께끼를 서로 죽고 죽이는 조직의 암투와 함께 긴장감있으면서도 '빠른(!)' 속도로 펼쳐주기 때문입니다. 암흑가 조직원이 정점에서 신뢰따위는 없는 지옥 구렁텅이로 떨어지면서 믿었던 친구에 자기 생명까지 모두 잃는 결말도 일품이었고요. 깡패가 성공하는 이야기는 필요없습니다. 조폭을 미화하는 작품들은 모두 불에 태워버려야 마땅해요!
또 "리브 바이 나이트"보다는 조의 두뇌를 이용한 활약이 많은 것도 장점이에요. 그 중에서도 '두뇌'를 써서 리코를 옭아매는건 무릎을 칠 만 했습니다. 죽어가는 디온과 함께 탈출하려면 한 시가 급한 상황에서 '위조 전문가'를 수배했는데, 그건 리코의 장부를 위조하기 위해서였던 것이었지요. 위원회와의 담판에서 위조 장부를 이용하여 리코를 없애는데 성공하고요. 과연 '두뇌파'라 부를만한 멋진 계획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별도로 쌓아올리면서 이런저런 곁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많지는 않지만 볼 만 했습니다. 조직의 의사 네드의 아내와 장인 관련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단편 한 편은 뚝딱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흑인 지역의 보수 먼투스 딕스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좋았고요. 프레디 패거리로부터 살아남는 장면도 멋드러지지만, 남자 대 남자로서 조와 면담을 나눈 뒤 이왕이면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경쟁자를 쓸어버리려고 완전무장한채 출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나이' 기운을 뿜어내거든요. 이런 멋진 사나이가 배신자 리코따위에게 폭탄으로 죽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그 설명이 리코의 몇 마디에 그친다는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요. 먼투스 딕스가 주인공인 외전이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는 다르게, 이 책 한 권만으로 충분히 완결이 된다는 점도 분명한 장점입니다. 다만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고 이 작품만 읽어보라고 권해 드리기 어렵긴 합니다. 디온과 조의 관계와 조가 성공한 이유, 작중 자주 언급되는 '학살의 밤' 등은 모두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즉, 두 권을 합쳐서 읽어야 온전한 감상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이 한 권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아울러 워낙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리브 바이 나이트"만큼의 드라마도 없다는 단점도 있고요.

그래도 단순명쾌한 범죄물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 합쳐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04/07

울버린 : 올드 맨 로건 - 마크 밀러, 스티브 맥니븐 / 임태현 : 별점 2점

울버린 : 올드 맨 로건 - 4점
마크 밀러 지음, 스티브 맥니븐 그림, 임태현 옮김/시공사(만화)

로건 아저씨, 정말 그들과 싸우러 가는 거에요? 악당들을 쓰러뜨리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오려는 거에요?

그럴까 해,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마블 코믹스 시리즈입니다. 평도 좋고 색다른 맛이 좋다는 작품이라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알려진대로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빌런들과 히어로들이 최종 결전을 벌인 이후, 빌런들이 지배하게 된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울버린은 최종 결전 직전 미스테리오의 환각에 빠져 동료 엑스맨들을 학살한 탓에, 클로를 봉인하고 '로건'이라는 일반인으로서 살아가며 가족을 꾸린 뒤 늙어가는 상황이고요.

지주인 헐크 패밀리에게 지대를 내야 하지만 돈이 없는 상황에 처한 로건 앞에 호크아이가 나타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호크아이는 미대륙 횡단 여행을 도와주면 돈을 준다고 약속하고, 로건은 싸움도 하지 않고 살인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승낙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1, 2부로 나뉩니다. 1부는 호크아이와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컴비는 여러 히어로들의 잔재와 빌런들이 지배하는 도시를 지나며 숱한 모험을 통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함정이었습니다. 호크아이는 살해되고 말지요. 로건은 레드스컬을 제압하고 겨우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요.
2부에서는 헐크 패밀리가 쳐들어와 가족을 학살한 것을 알게 된 로건이 클로를 꺼내 울버린으로 돌아온 뒤, 헐크 패밀리를 모두 죽이는 복수극이 펼쳐집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잔혹한 복수극이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북두의 권"이 떠올랐습니다. 무조건 몸으로 부딪혀 싸우는 육탄전 중심이라는 점도 비슷했으니까요. 하드 고어라고 불러도 무방할 작화 역시 마찬가지인데, 작화는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마블 코믹스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고 화끈합니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성공했지만, 가족이 죽어버려 복수한다는 이야기 구조는 서부극 느낌도 전해줍니다. "웨스턴 리벤지"와 분위기만큼은 아주 똑같더라고요. 목장이 중심이 된 배경 및 다른 소품들, 등장인물들의 묘사도 이런 느낌을 뒷받침해 주고요.

그런데 이 책 한 권만으로는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미국 만화 특유의 문제점이기는 한데, 히어로들이 어떻게 패배했는지, 헐크가 왜 악당이 되었는지, 그의 패밀리는 왜 식인종 집단이 되었는지 등 기본 설정들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탓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여러 히어로들의 잔재나 호크아이의 딸 이야기도 이야기에 제대로 녹아나지 못합니다. 솔직히 1부에 해당하는 호크아이와 함께한 모험 이야기는 일종의 추억팔이에 불과해요. 차라리 설명을 보강하고 2부 이야기에 치중하는게 이야기의 완성도는 더 높았을 겁니다.

파워 밸런스도 문제입니다. 1부의 최종 보스인 레드 스컬, 2부의 최종 보스인 헐크 브루스 배너 모두 울버린에게 너무 쉽게 제압되기 때문입니다. 2부의 헐크는 울버린을 산채로 잡아먹지만, 힐링 팩터로 부활한 울버린에게 내부부터 파괴되어 패배한다는 설정이라 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최종 보스답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헐크 패밀리와 헐크의 최후가 실망스러운건, 이렇게 허약한 놈들 때문에 울버린이 가족을 잃었다는게 어찌보면 황당하기 때문입니다. 진작에 다 쓸어버렸으면 됐잖아요?

그래서 충격적인 세게관과 꼼꼼하고 완성도 높은 작화를 제외하고는 좋은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종의 평행 우주를 다룬 외전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작화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하지만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26/05/16

사형집행중 탈옥진행중 - 아라키 히로히코 : 별점 1.5점

"죠죠의 기묘한 모험"으로 유명한 아라키 히로히코의 만화 단편집입니다. "사형집행중 탈옥진행중", "돌치 ~ 다이하드 더 캣",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 고해소", "데드맨즈 Q"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 특유의 기묘한 상상력과 불길한 상황 설정을 짧은 이야기 안에 압축한 이야기들로, 인물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던져진 뒤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거나 무너지는지를 주로 보여줍니다. 

감옥인지 호텔인지 알 수 없는 공간, 바다 위 요트에서 사람과 고양이간 벌어지는 기묘한 생존극, 죽은 뒤에도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듯한 인물이라는 소재는 확실히 아라키 히로히코답습니다.
아라키 히로히코 특유의 기괴한 상상력도 돋보입니다. 평범한 공간을 순식간에 불안하고 위협적인 장소로 바꾸는 감각, 인물의 육체를 과격하게 몰아붙이는 작화와 연출, 현실적인 논리보다 불길한 이미지로 독자를 압박하는 방식은 분명 개성적입니다. 또한 "돌치 ~ 다이하드 더 캣"처럼 제한된 상황에서 작은 두뇌 게임을 활용하는 대목도 눈에 띕니다. 작가의 재치를 잘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단점이 더 큽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는 아무리 기묘한 사건이 벌어져도 스탠드라는 설정과 대결의 규칙이 있기 때문에 독자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책 수록작들은 그런 뒷받침 없이 기괴한 상황만 먼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기묘하다는 인상은 강하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은 부족합니다. 결말도 대체로 시시한 편이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1.5점입니다. 별로 추천할 작품은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형집행중 탈옥진행중"

표제작. 한 남자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듯한 방에 갇히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공간은 단순한 감옥이 아닙니다. 음식과 생활 시설은 지나치게 잘 갖춰져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호화로운 호텔 방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의 모든 사물은 죄수를 죽이기 위한 장치처럼 움직이지요. 침대, 욕실, 식사, 창문까지 일종의 함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방 안의 구조를 파악하며 조금씩 탈출 가능성을 찾아갑니다.

이렇게 사형 집행과 탈옥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핵심으로 주인공은 계속 죽음의 위협을 피하면서, 결국 탈옥 직전의 상황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세월 탈옥을 포기한 채 그 안에 머무는 쪽을 택하는게 결말입니다. 

기괴한 발상은 인상적이고 중반부의 위기와 탈출 묘사는 흥미롭지만, 갖은 노력을 통해 탈출 직전의 상황을 만든 주인공이 수십 년 동안 그대로 남는다는 결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최소한 몇 년 안에는 결정을 내렸어야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대충 의도는 알겠지만 마무리의 설득력이 약해서 감점합니다.

"돌치 ~ 다이하드 더 캣"

난파한 요트 위에서 남자와 고양이 돌치가 생존을 두고 얽히는 이야기인데, 이 단편집에서 그나마 두뇌게임과 반전의 재미가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단순히 기괴한 상황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상대를 속이거나 유인하는 장면이 들어가는 덕분이지요. 특히 손가락을 이용해 돌치를 낚는 장면에서 아라키 히로히코 특유의 과장된 연출과 잔혹한 아이디어, 일종의 두뇌 게임이 잘 드러납니다. 대단히 정교한 추리나 전략은 아니지만, 짧은 단편 안에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장치로는 꽤 효과적입니다.

다만 이 작품 역시 결말까지 놓고 보면 강렬한 설정에 비해 뒷맛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돌치가 생각보다 엄청난 능력이 있었다는 정도인데 반전도 아니고, 별로 통쾌한 결말도 아닌 탓입니다. 애초에 돌치의 능력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 고해소"

나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내용과 작품 완성도만 놓고 보면 이 책 최고의 수록작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를 통해 이미 접했다는 점입니다. 책 값도 제법 나가는 편인데 중요한 수록작 하나를 이미 접했다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데드맨즈 Q"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4부와 이어지는 성격이 강한 단편입니다. 키라 요시카게가 죽은 뒤의 존재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은 상태에서, 어떤 의뢰나 임무를 수행한다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작품이 독립적인 단편으로 읽기에는 설명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키라 요시카게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탓입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4부를 읽은 독자라면 키라 요시카게라는 인물 자체에서 오는 흥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을 모른다면, 알 수 없는 인물이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알 수 없는 일을 하는 영문모를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어요.

즉, 단독 작품이라기보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을 이미 읽은 독자를 위한 후일담이나 외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07/22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점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 4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이라는 어마어마한 별명의 일본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단편집입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은 트릭과 추리의 과정만큼은 괜찮았던 정통 본격물임에는 분명했습니다. 별명이 허언만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동기, 전개 등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아서 이야기를 충실하게 쌓아올리고 만들어가야 하는 장편보다는 트릭 중심의 단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왔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단편집이 발표되었네요. 작품 해설을 보니 이 단편집으로 가제가오카의 우라조메 탐정 시리즈 1기가 마무리된다는군요.

이전 장편들이 "~관" 시리즈였던 것에 반해 단편들 제목이 상당히 소박한게 눈에 띕니다. 표제작은 엘러리 퀸의 패러디이지만요.
그런데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추리들 모두가 비약이 심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장편에서 긴 호흡으로 쌓아올릴 수 있었던 논리가 단편 분량에서는 효과적으로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전형적인 학원 무대 일상계 청춘물인데,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소시민" 시리즈나 "빙과" 시리즈에 비하면 추리적으로나 캐릭터 측면으로나 모두 미치지 못하는 범작입니다. 시리즈의 팬이시라면 한번 쯤 읽어볼만 하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차라리 빠른 호흡으로, 시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해가며 전개하는게 용이한 만화였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원플러스원 덮밥"

학교 식당에서 금지된 식기 반출을 한 범인이 누군지 찾아낸다는 설정만큼은 학교를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느낌입니다. 정말 있음직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니까요. 우라조메 추리의 댓가가 식권 20장이라는 점도 역시나 일상계스럽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추리보다는 비약에 가까운 탓입니다. 남겨진 트레이에 머리카락이 묻었다? 식판과 식기에 머리카락이 묻을 이유가 있을까요? 머리를 처박고 먹는 것도 아니고... 소스 개봉부를 얌전히 자주 쓰는 손 방향으로 놓아 둘테니 왼손잡이라는 추리도 비약입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거나 옮겨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식욕 때문에 운동계 동아리일 것이다 역시 지나친 비약입니다. 작은 체구의 사나에도 한그릇 뚝딱하는 덮밥이라고 묘사되기도 했고요. 점심 시간에 중요한 회의를 한 동아리를 찾는다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약속일 수도 있고, 정말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만 했을 수도 있어서 이 역시 비약인건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의 진상 - 여자친구가 돈가스 도시락을 주었는데 먹지 못하고 버린 후, 원플러스원으로 좋아하는 것 반, 돈가스 반을 시켜 젓가락만 지저분하게 해서 주었다 - 도 비약입니다. 제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먹던가 아니면 돈가스는 빼고 다 먹었을 겁니다. 왜 도시락을 버리고 구태여 식사를 또 시켰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아울러 키에 대한 추리는 추리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180cm 이상, 아니면 160cm 이하 등 용의자 범위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숫자면 모를까, 180 m이하의 학생이라는 건 가제가오카. 재학생의 90% 이상을 차지할 거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평범한 일상계지만 소설보다는 만화에 더욱 적합한 이야기입니다. 비약이 심한 내용으로 빠르게 전개하기 보다는, 단서가 조금 더 적더라도 정교하게 이야기를 쌓아나갔어야 했습니다.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표제작으로 왜 신사 축제 노점에서 거스름돈을 50엔 짜리로만 주는지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축제를 즐기는 내용이 이야기의 2/3 이상을 차지하며, 추리적인 부분은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잔돈 숫자를 증가시켜 사람들이 분실을 더 많이 하게 만드려는 의도였다는 진상 역시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고요. 일본식 유타카 차림으로는 잔돈을 보관하기 어렵다는, 일본식 사고방식이 깔려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작품 역시나 정보의 제공이 시각적이며 전개와 호흡이 빠른 만화가 더 어울렸을 이야기입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클리셰라 할 수 있는 여름 축제가 무대라 더 그런 느낌이 드네요.

"하리미야 리에코의 서드 임팩트"

전작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던 하리미야 리에코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일상계 청춘 미스터리입니다. 그녀의 남자친구인 귀여운 후배 사오토메가 취주악부에서 왕따를 당하는 듯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우라조메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이야기지요.

유노와 우라조메가 아니라 하리미야 시점의 이야기라는게 독특했던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추리가 펼쳐집니다. 더위와 싸우며 연습하는 상황에 대한 강조, 취주악부 연습실에 널부러진 다양한 쓰레기들, 연습하는 곡과 독주 파트에 대한 언급 등 독자에 대한 정보도 굉장히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또 불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순진한 하리미야 리에코의 성장기 성격도 있고, 이 둘의 사랑을 응원하는 우라조메 덴마의 모습도 상당히 의외의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뭔가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같은 커플이라고 느꼈던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진상, 그리고 결말이 썩 개운치는 않습니다. 취주악부의 야마부키가 자신의 독주 연습을 위해서 사오토메를 일부로 쫓아내고 연습실로 쉽게 들이지 않은 상황은 일종의 왕따라고 해도 무방하니까요, 협주 파트를 모두 함께 열심히 연습하고, 독주 파트는 시간을 정해 따로 연습하자고 하거나, 최소한 선풍기를 빌리려는 시도를 먼저 해 보는게 당연한데 말이죠. 이를 하리미야가 쉽게 납득하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천사들의 늦더위 인사"

5년전 졸업한 시시도 선배의 노트에 적혀있던 두 소녀 소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서두에 유노와 사나에에게 노트에 묘사된, 일종의 백합 연애물같은 포즈를 취하게 하는 개그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이 없는 범작입니다. 너무 작위적인 탓입니다. 

우선, 아무리 학교 일에 관심이 없어도 모두가 대피 훈련을 하는 상황을 몰랐다는 것부터 말이 안됩니다. 우라조메의 추리도 두 소녀의 연극과는 무관하게 9월 1일이라는 날짜에 기인한 것인데, 날짜까지 적은 일기 같은 글에서 정말로 진상을 깨우치지 못한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예전에 매월 15일마다 실시했던 우리나라 민방위 훈련같은 거니까요. 소녀들의 소실은 사다리차를 이용한 탈출 훈련 때문이었다는 진상도 그럴 수 있었겠다 싶기는 하지만 장비에 준비가 필요하고, 탈출 순간의 환성도 있었을텐데 외부 상황을 몰랐다는 건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두 소녀가 껴안는 연극에 대한 유노의 반응은 여러모로 재미있고, 우라조메가 가오리 외에도 연극부 부장 가지와라 같은 지인이 있고 나름 학교 생활을 잘 한다는 묘사도 팬이라면 볼 만 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어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 꽃병에는 주의를"

가제가오카가 아닌, 사립 히텐 학원 중등부를 무대로 우라조메의 동생 교카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일상계 소품으로 복도에 놓인 꽃병을 깬 범인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나름 정교한 무대 설정으로 범인을 특정하고, 왜 범인이 꽃병을 가져왔는지 추리하여 동기를 밝혀내고, 그 결과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는게 괜찮습니다. 특히 "물"의 사용법에 대한 추리 두 가지가 아주 그럴듯했어요. 구태여 생수를 구입한 건 화분이 깨진 장소를 위장하기 위해서!라는 추리에서, 그게 아니라 처음에는 화병의 물이 필요했던 것! 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설득력이 높았던 덕분입니다.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았던 교카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및 범인 야가라스의 논리적인 반박, 비야냥에 분노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성격 등의 디테일도 좋았고요.

문제는 야가라스의 말대로 나카자와와 소프트볼 부 아이들의 증언을 믿을 이유도 없고, 2층 교실에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이렇게 한 방 먹은 다음에 재차 휴지통을 뒤져 폭죽을 찾아내는건 어설펐고,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억지스러운 설정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카의 캐릭터 설정 자체가 굉장히 만화적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백합계 쿨데레? 친구 센도 히메마리도 만화 등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학생회 캐릭터라 너무 뻔했어요. 묘사를 디테일하게 하더라도 이렇게 뻔하면 딱히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정말로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음직한 사건을 다룬 일상계라는 점, 교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 형식의 성격은 마음에 들었지만 중반부 전개와 앞서 말씀드린 전형적인 캐릭터 묘사로 감점합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만화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짤막한 부록은 우라조메와 그의 아버지가 우연하게 사우나에서 마주친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라조메 남매의 추리력은 아버지로부터의 유전임을 드러내는 이야기인데 추리에 있어 비약이 심한건 마찬가지며 워낙에 짧아 점수를 줄 만 한 부분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