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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백은의 잭 - 히가시노 게이고 / 한성례 : 별점 2.5점

백은의 잭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씨엘북스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게쓰 고원 스키장의 스키 시즌이 막 시작한 즈음, 익명의 메일이 도착했다. 스키장에 폭탄을 묻어두었다는 협박 메일이었다. 관리 책임자 쿠라타의 의견과는 다르게, 경영진은 돈을 주고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어쩔 수 없이 협박범과의 거래를 위해 쿠라타는 스키장 패트롤 요원 네즈, 후지사키, 키리바야시의 도움을 얻는걸 허락받고, 3천만엔의 몸값을 건네 주었다. 그러나 몸값을 건네준 뒤에도 범인들의 협박은 계속되는데...

얼마전에 골프를 소재로 한 추리 소설을 읽었었죠. 이번에는 스키장을 무대로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활약하는 작품입니다. 이른바 '설산 3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지요. 

우선,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노보드, 스키장 사랑은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보드에 빠진 경위를 설명하는 에세이를 전에 읽었었는데, 확실히 푹 빠졌구나 싶더라고요. 스키장과 스노보드, 스키 등 동계 스포츠에 대한 묘사가 아주 빼어나거든요.

그러나 단지 취미 생활을 소재로 한 소일거리 작품은 아닙니다. 범죄물로도 아주 괜찮아요. 스키장을 협박하는 범인들의 계획부터 그럴싸하니까요. 경영자 입장에서는 협박받은걸 경찰에 신고하여 영업을 그만두는게 더 큰 손실인건 당연하겠죠.
하지만 이건 그냥 양념에 불과합니다. 뒤에서 밝혀지는, 폭탄을 실제로 묻은건 현재 경영진이라는 진상은 더욱 놀랍습니다. 이유도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스키장 매각을 용이하게 하려고 인기없는 호쿠게쓰 구역을 눈사태를 일으켜 없애버리려는 속셈이었던 겁니다. 일본의 법에 따르면, 스키장을 폐쇄하게 되면 그 지역의 자연을 원상태로 회복해야 하기 때문에, 그 돈을 투자하느니 아예 날려버리는게 낫기 때문입니다.
이는 범인들에게도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범인 중 한 명인 마스부치 히데나리는 인기없는 코스가 엮여 있는 마을 촌장 마스부치의 아들이거든요. 그는 스키장에 매수된 아버지의 비밀을 알고난 뒤, 계획을 저지하려고 스키장 협박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범인들이 여러 차례 돈을 요구하며 협박한 이유도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돈을 손에 넣을 때 마다 스키장 슬로프 일부만 안전하다고 정보를 흘리면서, 국제 스키대회인 크로스 대회를 호쿠게쓰 구역에서 개최하게끔 유도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호쿠게쓰 구역만 일단 안전한게 밝혀지면, 스키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리라 생각한거에요. 

그리고 세 번째 협박이 스키장 경영진의 역습이었다는 아이디어도 기발합니다. 협박을 자작한 뒤 폭탄을 터트리고, 범인들이 협박에 실패하여 벌인 짓이라고 할 속셈이었다는데 이 역시 충분히 말이 되니까요. 여러모로 버블 이후 스키장의 어려움, 그리고 일본의 법을 잘 활용한 멋진 아이디어였어요.

이러한 범인, 스키장이 얽히고 섥혀 서로가 목적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복잡한 이야기를 경찰에게만은 절대로 알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은밀히 네즈에게 범인을 쫓아보라고 말하는 경영진의 석연치않은 행동이라던가, 일부러 네즈가 추격전을 벌일 수 있도록 유도한 세 번째 협박장 등을 통해 잘 드러내는 전개도 빼어납니다. 범인들이 스노보드의 명인들이라서 슬로프에 놓인 돈을 쉽게 회수할 수 있었다는 것도 결말과 잘 연결되고요. 안전보다는 돈을 더 생각하는 스키장 경영진, 이에 반대하는 관리 책임자 쿠라타와 용기있는 패트롤 대원 네즈와 후지사키 캐릭터도 단순하지만 이해하기 쉬워 좋았습니다. 쿠라타와 후지사키의 로맨스, 말괄량이 스노보더 치아키의 발랄함과 활약도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러나 호쿠게쓰 구역에서 일어난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이리에 부자가 폭발에 의한 눈사태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는 마지막 결말 부분은 억지스럽습니다. 이리에 타쓰키의 경우, 전날 그 장소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는데,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 곳에 가고싶다고 이야기한다? 이건 말도 안되죠. 설령 아버지에 끌려 갔다치더라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패트롤의 도움을 받는게 당연하고요.
게다가 신게쓰 고원 스키장을 매입하려는 세이운코사의 회장 부부가 이들 부자와 정말로 우연히 엮여 함께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칩니다. 히요시 씨가 죽다가 살아난 뒤, 그 코스에 더 애착을 느낀다는건 억지 전개와 결말의 화룡정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작위적인 부분을 들어내고, 경영진의 음모와 이를 눈치챈 협박범 정도의 구도로 끌고가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꼭 필요했다면 우연은 범인들이 이리에 부인을 사망케 한 사고를 일으킨 스노보더였다는 정도로 끝내는게 좋았을거에요.

뭐 그래도 시원한 범죄 오락 소설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한 번에 몰입해서 읽게 만드니까요. 스토리텔러로서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능력이 잘 발휘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인기 작가의 괜찮은 오락 소설이니 영상화된건 당연한데, 조사해보니 TV 스페셜 드라마로 2014년에 방영되었더군요. 그런데 쿠라타 역은 와타나베 켄, 후지사키 리오 역은 히로스에 료코, 네즈 역은 오카다 마사키라는 나름 화려한 캐스팅에 놀랐습니다. 캐스팅 때문인지 네즈보다 쿠라타의 비중이 엄청나게 커 보이네요. 뭐 이런 각색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설산에서의 박력있는 활강은 전혀 그려내지 못한 듯 싶어 제대로 볼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2020/03/08

질풍론도 - 히가시노 게이고 / 권남희 : 별점 2점

질풍론도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박하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즈하라는 탄저균을 활용한 생물병기 'K-55'를 비밀리에 개발했지만, 부당 해고당한 뒤 연구소장 도고에 대한 원한으로 K-55를 훔쳐내어 스키장으로 향했다. 코스 밖 너도밤나무 밑에 세균이 담긴 용기를 묻고, 장소를 알아낼 수 있는 표식으로 너도밤나무에 발신기가 넣어진 테디 베어를 걸어 둔 구즈하라는 설산과 테디 베어가 찍힌 사진 두 장과 함께 3억 엔을 요구하는 메일을 도고 소장에게 보냈다. 돈을 보내지 않으면 세균은 방치될테고, 이후 계절이 바뀌어 섭씨 10도 이상이 되면 보관 용기는 깨져서 탄저균에 의한 재앙이 시작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였다.
그러나 곧바로 구즈라하는 급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도고 소장은 K-55를 경찰에 알리지 않고 은밀히 찾아낼 것을 선임 연구원인 구리바야시 가즈유키에게 명령했다. 구리바야시는 스노보드 마니아인 중학생 아들 슈토와 함께 구즈하라의 사진으로 알아낸 유력 후보지인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으로 향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설산 3부작 시리즈답게 "백은의 잭"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네즈가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의 패트롤로, 치아키는 슬럼프에 빠진 프로 선수로 등장하며, 스키, 스노보드와 스키장에 대해 깊은 이해가 동반된 묘사로 가득차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K-55 묻혀있는 스키장을 사진 하나로 찾아낸다던가, 스키장으로 이동하는 방법, 스키 종류에 대해 풀어놓는 부분들 처럼요. 특히 활주에 대한 매력을 풀어내는 장면은 실제로 그런 멋진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쓸 수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의도는 불순하더라도 구리바야시가 아들 슈토와 스키장에 온 후, 점차 부자 관계가 회복되어 가는 묘사도 뻔하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이는 전작의 이리에 부자 이야기와도 어느정도 겹쳐서, 역시 시리즈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또 K-55가 묻혀있는 나무를 나타내는 테디 베어를 찾는 후반부 박진감도 괜찮습니다. 오리구치가 협박으로 병원균이 담긴 용기를 손에 넣지만, 치아키와의 추격전 끝에 네즈에게 빼앗기고, 그러나 카페에서 용기가 실수로 깨진 뒤 바꿔치기 되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세균을 가졌을 유키를 쫓고, 또 바꿔치기하고... 하는 과정이 결말까지 이어지는데 숨돌릴 틈이 없을 정도에요. 이런저런 등장인물들이 총 출동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무슨무슨 대소동'같은 오래전 활극 느낌인데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울러 이 후반부가 제목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질풍은 말 그대로 세게 부는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추격전을, A-B-A-C-A 처럼 어떤 주제로 넘어가더라도 다시 A로 돌아오는 형식의 악곡인 론도는 어떤 의외의 상황, 곁가지 이야기가 펼쳐져도 결국 '탄저균 용기'로 귀결되는 전개를 의미하는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전작보다는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은 정교한 맛을 찾아보기 힘든, 그냥 모험물에 불과한 탓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스키장을 찾아내는 정도만 약간의 추리가 있을 뿐, 테디베어를 찾는건 순전히 발품파는 것 밖에는 없으니까요. 별다른 단서도 없고, 그냥 열심히 찾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는건 결국 어린아이들 소풍 중의 '보물 찾기'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인 셈이죠.

이는 작품 속 악역의 우두머리인 도고 소장이 무식하고 무능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백은의 잭"의 신게쓰 고원 스키장 임원들은 악당이기는 했지만 나름 계획도 세우고, 음모를 꾸미는 정도의 두뇌는 갖췄던 것에 반해 도고 소장은 무리한 지시만 늘어놓는 재수없는 상사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독자가 두뇌 게임을 즐길 여지와 정교한 맛 모두 전무합니다. 도고 소장에 비하면 차라리 죽은 구즈하라, 그리고 소장 뒤에서 암약한 악녀 오리구치 마나미가 더 낫기는 합니다. 특히 마나미는 '독수리는 발톱을 숨긴다'는 명제를 따라 몸을 숨기며 한 탕을 노리는 캐릭터인데 은밀한 흑막에 참 잘 어울린다 싶더라고요. 그녀가 학생일 때 '백 점을 맞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질투를 받거나, 학급임원 일을 떠맡을 뿐'이라며 일부러 몇 개 틀린다는 에피소드가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큰 돈은 한탕 승부를 걸 수 밖에 없다, 그 때가 올 때 까지는 느려터지고 둔해보이도록 위장하여 기회를 기다려야한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된다'는 생각도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렸고요. 인상적인 캐릭터에 비하면 활약과 결말에서의 퇴장도 미약한 편인데, 도고 소장보다는 차라리 마나미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나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도고 소장 옆에서 구리바야시를 도와주는 듯 했지만, 마지막에 구리바야시 뒷통수를 치는 식으로요.

또 은백색의 스키장에서 펼쳐지는 스키와 보드 활주가 너무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슈토의 풋사랑, 네즈와 치아키의 사랑과 고민에 대한 비중이 높은 탓에 위험한 생물병기 탄저균 K-55의 위험이 전혀 와 닿지 않는 전개도 단점입니다. 그냥 보물 찾기에 대한 청춘 모험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습니다. 테디 베어를 아무 상관도 없는 중학생들이 먼저 발견한다는 전개도 그렇고, 처음 네즈가 겨우 입수했던 K-55가 중학생 유키에 의해 후추로 바꿔치기 되었었는데, 결국 찾아낸 진짜 K-55마저도 구리바야시의 아들 슈토에 의해 소시지로 바꿔치기 당햔다는 결말은 좀 지나쳤어요. 이런 요소까지 오래전 '대소동' 류의 이야기를 따를 필요는 없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쑥쑥 읽히는 맛은 있기는 한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아니시라면 꼭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설로 읽기보다는 한바탕 신나는 액션이 신나게 펼쳐지는 코믹 액션 영화로 감상하는게 훨씬 나을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일본에서는 아베 히로시 주연의 코믹 액션 영화로 이미 발표되었던데, 사람들 생각은 다 똑같나 봅니다.

2024/12/20

탈주자 - 리 차일드 / 안재권 : 별점 1.5점

탈주자 - 4점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잭 리처는 시카고에서 우연히 마주친, 다리가 불편한 여성을 도우려다가 그녀와 함께 무장한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 납치된 리처와 홀리가 도착한 곳은 몬태나의 깊은 숲 속 민병대 은신처였다. 민병대 사령관 보우 보켄은 합참의장의 딸이자 대통령의 대녀인 홀리를 이용하여 미국 정부를 압박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잭 리처는 감금 장소에서 탈출한 뒤, 보우 보켄의 진짜 목적을 알아차렸다...

"탈주자"는 리 차일드의 대표작인 잭 리처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제 기준으로는 시리즈 16번째로 읽은 작품이고요.

기존 잭 리처 시리즈와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눈에 뜨입니다. 가버 장군이 직접 총을 들고 나서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팔팔한 모습으로 M16을 능란하게 다루는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시리즈 최고의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는, 리처의 파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도 역시나 존재합니다. 납치범 중 한 명인 운전사 피터 웨인 벨과 민병대 사령관 보우 보켄의 오른팔인 파울러를 제압하는 장면이 그러합니다.

홀리의 행방을 쫓는 수사 과정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199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발표된 초창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각도의 흑백 CCTV 화면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복원하여 다른 각도로 찍혀있던 용의자의 정면 사진을 얻어내는 과학 수사가 등장한건 아주 놀라왔어요. 지금은 아마 가능한 기술 같기는 한데, 이걸 1998년 발표 작품에 써먹었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연방수사국이 불탄 차량을 단서로 납치범들의 은신처를 좁혀나가는 과정도 설득력이 높았고요. 

연방수사국 요원 두 명이 모두 배신자였다는 나름의 반전도 존재합니다. 이 과정에서 밀로셰비치가 배신자임을 드러낸 후, 브로건이 배신자일 것이라는 리처의 추리가 이어지는데, 그 직후 브로건이 민병대에게 잡혀가는 장면으로 전개되고, 마지막에 리처의 기지로 브로건의 정체가 밝혀지는 흐름도 깔끔합니다. 일종의 서술 트릭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헬렌이 납치되었지만 선거 때문에 드러내놓고 헬렌을 구출하지 못하는 상황 역시 현실적이고 설득력 높았습니다.

합참의장의 딸이자 FBI 요원인 헬렌도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심각한 다리 부상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도구를 활용하여 활약하는 모습 덕분입니다. 주체적이면서도 강한, 리처에게 보호받는다기보다는 동등한 관계의 여성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되네요. 실제로 리처의 생명을 한 번 구해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장점들보다 단점이 훨씬 큽니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잭 리처 시리즈의 기존 매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중반부까지는 리처가 시카고에서 홀리의 납치 사건에 휘말려 몬태나 숲 속 민병대 은신처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과정만 반복될 뿐,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 지루합니다. 최초 납치 시, 그리고 이동 중에 탈출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리처의 모습도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몬태나에 도착한 이후의 전개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백 명 이상의 군사 조직이라는 점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잡혀있는 동안, 리처가 감시를 빠져나간건 한 두번이 아닙니다. 너무 쉽게 풀려나고 빠져나가서 긴장감을 느낄 여지가 없을 정도에요. 감시병을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엄청난 화술로 속여서 탈출하는 장면은 신선했지만, 이런 수작은 영 잭 리처답지 않아서 별로였습니다.

사건의 전개도 허술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보우 보켄이 헬렌을 납치한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그의 계획은 몬태나로 모든 이목을 돌린 후 샌프란시스코 연방 준비 은행을 1톤의 다이너마이트로 날려버리는 것이었는데, 이 계획에 헬렌은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독립 국가 선언문을 발표해도 충분히 시선을 끌 수 있었을 텐데, 굳이 헬렌을 납치해 위험을 자초할 이유는 없습니다. 헬렌이 합참의장의 딸이자 대통령의 대녀라 한 들, 그게 미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굳이 몬태나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진주만과 같은 사건을 언급하며 전략적으로 필요했다는 설명이 붙지만, 아무도 그들의 범행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지 의문이 듭니다. 샌프란시스코를 폭파한 후 성명문을 발표하는게 더 논리적인 전개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911' 테러 전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을까요? 그럴리 없지요.

연방수사국 요원 두 명이 배신자라는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게다가 이 두 명만을 선발하여 수사팀을 꾸렸는데 두 명 모두가 배신자였다는건 어처구니가 없어요. 맥그래스 지부장이 정말 유능한 인물인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스팅어 미사일을 훔친 이유 역시 애매합니다. 등장 자체가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스케일만 억지로 키운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아군 공격이 가능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등장하지도 않고요. 설령 아군 공격이 가능했다 한 들, 몬태나에서 농성하며 연방군을 상대할 때 스팅어가 그렇게 강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이보다는 핵폭탄과 같은 강력한 장치가 더 설득력이 높았을 겁니다.

잭 리처 특유의 시원한 복수와 응징이 부족했던 점도 실망스럽습니다. 잭 리처의 파괴력보다는 저격 실력에 대한 묘사가 더 많고, 보우 보켄은 단 한 발의 저격으로 처리되며 이야기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보켄의 잔혹함과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근거없는)카리스마, 이야기에서의 무게감을 고려할 때 이런 결말은 개운하지 못했습니다. 

불필요한 고어스러운 묘사나 총알 발사 과정에 대한 과도한 설명 등도 분량을 늘리기 위한 불필요한 요소로 보입니다. 550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은 이러한 묘사를 줄였다면 100페이지 정도는 줄어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어판 제목인 "탈주자"도 무슨 의미인지 영 알 수가 없네요. 여기서 탈주한 사람은 없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반전과 흥미로운 수사 과정은 돋보였지만, 지루한 전개와 비현실적인 설정이 작품의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린 졸작입니다.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는 최악이었어요.

2020/02/21

미스터리는 풀렸다! - 박광규 : 별점 2.5점

미스터리는 풀렸다! - 6점
박광규 지음, 어희경 그림/눌민

주간 경향에 연재되었던, 계간 미스터리 편집장이셨던 박광규씨의 컬럼을 모은 책으로 추리 소설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재 당시에 대부분 읽은 터라 별도의 단행본을 구입할 생각은 없었는데, 마침 헌책방에 올라와있기에 구입했습니다.

사실 저도 추리 소설이라면 남 못지 않게 읽은 탓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웹 사이트가 아니라 책으로 진득하게 읽으니 이전에 놓쳤던 세세한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클라이브 커슬러의 시리즈 주인공 더크 피트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생환하는지, "스트라이크 살인"탐정역이었던 프로야구 선수 하비는 후속작에서 아예 사립탐정으로 전직했다던지, 제닛 에바노비치기리노 나쓰오가 원래는 로맨스 소설 작가였다던지, 요코미조 세이시는 편집자 시절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을 빌린 대필 작품을 발표했다던지, 체스터튼은 194cm에 135kg의 거구였다던지 등 시시콜콜하면서도 쉽게 알 수 없는 정보들은 다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전해주고요. 펠레, 나브라틸로바, 찰스 바클리가 추리 소설을 발표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읽기는 어려울겁니다. 공저라고는 합니다만.
다카키 아키미쓰"문신 살인사건"을 쓰게 된 이유가 점술사의 권유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심지어 점술사가 대가에게 원고를 보내라고 해서 에도가와 란포에게 보낸 뒤 출간과 성공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보면, 점이라는게 그냥 미신으로 치부할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시시콜콜한 추리소설 관련 뒷 이야기 외에도 '헌사'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와 소설 속 화폐가치를 현재 가치로 치환하여 알려주고, 추리 소설 속에 등장했던 동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제목이 바뀐 작품들의 이유를 알려주는 등의 좋은 분석 자료들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추리 소설 정보서에서 보기 드물게 국내 작품 소개가 많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저도 꽤나 애호가라고 생각하지만 황세연이 1998년 발표한 단편 "떠도는 시체"같은 작품은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요. 박광규씨의 내공의 깊이, 그리고 연륜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요.

또 이런 류의 책이라면 빠질 수 없는, 읽지 않고 잘 몰랐던 작품들 소개도 빼어납니다. 무엇보다도 스포일러 등 핵심 정보 공개를 최소화하면서 작품을 소개하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핵심 내용이 빠진채 소개되는 작품들도, 그 정도의 소개만으로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니까요. 스티븐 킹의 "죽음의 지대", 딘 쿤츠의 "어둠의 소리", 구라치 준의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등은 꼭 찾아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소개 이후 진상이 너무나 궁금하니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백은의 잭"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줄거리 요약은 저도 배우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일단은 작품들이 고르게 소개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겠죠. 소개되는 작품은 1차대전 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의 황금시대 (골든에이지)와 1990년대 후반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추리 소설 강국이기는 하지만 비중만 놓고 보면 영, 미에 비하기 어려운 일본 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점도 같은 이유로 문제고요.

억지스럽게 가져다 붙인 소재들도 약간은 거슬렸습니다. 무주택자 탐정을 소개하면서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의 지장 스님을 예로 드는게 대표적입니다. 행각승이 집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특이한 캐릭터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에 따른게 아니라, 단지 직업 탓에 집이 없는걸 특이하다고 설명하는건 억지죠. 예로 든 바와 같이 진짜 집이 없는 주인공은 잭 리처 정도면 족했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가 요리를 즐긴다는 것도 딱히 와 닿는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이 역시 "수수께끼가 있는 아침 식사"처럼 요리가 직업인 탐정을 예로 드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정말 큰 문제인데 연재 때에는 풍성했던 여러가지 자료 도판이 전무하다는건 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유명 작가들의 아들, 딸 관련 글에서 작가들 가족 사진같은건 꽤 인상적이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처럼 연재 당시에 이미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또 읽어보실 필요는 없지만, 추리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가볍게 읽을거리로 추천드립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즐길거리가 많은건 분명하니까요.

2017/04/21

아마겟돈 - 프레드릭 브라운 / 조호근 : 별점 3점

아마겟돈 - 6점
프레드릭 브라운 지음, 조호근 옮김/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그동안 유명세만큼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던 거장 프레드릭 브라운의 단편선입니다. 정식 소개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요. 반가운 마음에 바로 구입하였습니다.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 유머, 반전이 살아있는 단편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유일한 단점이라면 국내 소개가 너무 늦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66.... 인데 반올림해서 3점주겠습니다. 늦었지만 번역 출간된 것만 해도 충분히 점수를 줄 만하니까요. 같이 소개된 "아레나"도 빨리 구해봐야겠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마게돈" 

마술사를 꿈꾸는 꼬마가 성수를 담은 물총으로 악마를 퇴치한다는 내용으로, 이전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단편집 ("마술 반지" 였던가요?) 에서 접했던 작품입니다.

악마가 소환되는 과정의 의외성은 돋보이지만, 딱히 대단한 반전은 없습니다. 그냥 저냥한 소품이에요. 솔직히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기는 어려운데 왜 표제작인지 잘 모르겠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스타 마우스"

과학자 헤르 오베르부르커는 직접 만든 로켓에 생쥐 밋키(미키인데 오베르부르커 발음이 이렇습니다)를 태워 달로 보냈다. 소행성 프록슬에 착륙한 밋키는 프록슬인에 의해 지성을 갖게 되었다.
밋키는 쥐들의 지능을 인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지구로 복귀해 쥐들의 나라를 만들 꿈을 꾸었지만, 아내 미니 우리에 설치된 전기 장치 탓에 원래의 생쥐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쥐가 놀라운 지능을 가지게 되지만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은 "앨저넌에게 꽃을"이 떠오릅니다. 앨저넌도 쥐였지요. 

작품은 오베르부르커 시점에서 로켓 계획이 펼쳐지는 전반부와 밋키 시점의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 마지막에 말하는 쥐를 등장시킨 후, 그 이유를 후반부에서 설명하는 연재물같은 구성인데 덕분에 독자의 흥미가 끝까지 유지됩니다. 황당하지만 다소 허풍섞인 글도 매력적이고요. 복선인 미니 우리에 설치된 전기장치도 잘 안배되어 있습니다.

허나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소재임에는 분명합니다. 비슷한 류의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은 탓입니다. 물론 이 작품은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선구자적인 작품일거에요. 시대가 너무 지난 뒤 읽은게 안타깝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자마술" 

두 커플이 더블 데이트를 즐기던 중, 밥이 카드 마술을 선보였는데 월터가 트릭을 말해버렸다. 자존심이 상한 밥은 월터에게 마술을 보여달라고 종용했고, 등쌀에 못 이긴 월터는 모자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묘한 생물을 꺼내어 보여주는데...

10페이지에 불과한 초단편인데 밥과 월터의 신경전으로 긴장을 자아내다가, 월터가 기묘한 생물을 꺼내는 클라이막스로 끌고 가는 과정이 탁월합니다. 

그러나 월터가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안이했어요. 좀 쉽게 간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불합리 행성" 

행성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나'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고 고용 선장인 조니, 아내 , 딸 엘렌과 착륙했다. 행성에 '불합리 행성'(시리우스 1번, 2번 행성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0'번이 되는 궤도의 행성을 발견한 것이므로)이라고 이름 붙인 후, 행성을 탐사하면서 상상하기 어려운 기묘한 생물과 현상을 목격하는데...

행성에 나타났던 기묘한 동물과 거리는 모두 바퀴벌레를 닮은 행성 거주민이 투사했다는 내용의 SF 단편입니다. 이전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질 대신 정신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설정은 꽤 자주 변주되었던 것인데, 이 작품처럼 1940년대부터 인용된 고전적인 소재라는건 몰랐네요. 그만큼 작가가 시대를 앞서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작품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조금 뻔하지만 코믹한 내용에 의외의 반전이라는 작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즐겁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예후디 장치"

'나는 미쳐가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글로 시작되는 단편으로  예후디 장치라는 이름의 - 정식 명칭은 자율 자동암시 교열진동 초가속기' - 기계가 핵심입니다. 사람을 가속시켜 원하는 일을 해 주도록 만들지만, 본인은 자기가 직접 빠르게 움직여 무언가를 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계이지요. 그런데 예후디라는 "이름"을 부르는 탓에 무형의 존재가 실체를 갖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약간 동양적인 설정이죠? 이름을 불러야 의미를 갖는 꽃처럼 말이죠.
덕분에 '예후디'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명령인 "자살이나 하라고"에 따라 자살을 해 버려 동작이 멈춘다는 결말로 이어지는 전개가 아주 깔끔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예후디 장치를 이용해 '나'가 썼다는 마지막 반전도 놀라웠고요.

진으로 만든 칵테일인 '진 벅'이 주요한 소재 중 하나로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칵테일로 먹지만 다음 잔은 진을 7/8 넣어서, 마지막은 진만 따르고 소다수는 건드리지도 않고 먹지요. 하긴 이런 기계를 보고 겪으면 제정신이기는 힘들테니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디테일한 설정에 녹아든 동양 철학적인 사고 방식과 반전까지 잘 갖추어진 좋은 작품입니다.

"웨이버리" 

사자자리 어딘가에서 전파를 쫓아 지구로 온 베이더 (inavader)가 모든 전기를 빼앗은 후를 그린 단편입니다. 

분명 지구가 정복당한 상황인데, 주인공 조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는 결말이 독특합니다. 전기는 없지만 증기기관, 말로 동력을 대체한 뒤 자전거 등으로 더욱 건강해지고, 텔레비젼과 라디오에 시간을 뺏기지 않아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취미 활동을 즐기게 된다는 내용이거든요.
이러한 점에서는 SF라기 보다 풍자극으로 보는게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시사하는 바도 크고요. 현재를 무대로 인터넷을 잡아먹는 침략자가 등장하는 내용으로 변주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하늘의 혼란" 

1945년 작품으로, 무대는 1987년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하늘의 별을 조작하는 기계에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함이겠지요. 

그러나 천문학은 건판 사진기에 의지하고 있고, 라디오가 주요 미디어로 등장하는 등 미래에 대한 상상력만 놓고 보면 보잘 것 없습니다. 또 천문대 연구원 로저 플러터에서 물리학자 밀턴 헤일 박사로 주인공이 이동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습니다. 로저 플러터 없이 헤일 박사로만 이야기를 끌고나갈 수도 있었을텐데 괜히 이야기를 벌인 느낌이에요. 헤일 박사가 택시와 함께 장거리 여행을 하는 묘사도 불필요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분명 걸작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미래에 대한 상상력 자체는 별로지만 미래에 대해 진짜로 통찰력을 발휘한 부분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광고에 대한 것입니다. 하늘의 별들에게 일어난 놀라운 운동이 광고를 위한 것이었다는 반전, 결말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아이이디입니다. 천재 스니블리가 자신의 발명품으로 비누 광고를 하는데 성공하지만, 철자가 틀려 쓰러진다는 결말도 유쾌하고요.

조금만 더 압축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단점이 없었더라면 완벽했겠지만 아이디어와 반전만으로도 최고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노크" 

"지구 최후의 남자가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장 두 개로 이루어진 짧고 훌륭한 공포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단편입니다. 그러나 공포물은 아니고 기발한 SF에요. 주인공 월터는 잔이라 불리우는 외게인들에게 채집된 인간으로, 그 외 다른 인류는 모두 잔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월터는 백 종류에 달하는 무작위 채취된 동물 암수 한 쌍 중 하나로, 잔들의 동물원에 수용된 신세이고요.
거의 불멸에 가까운 수명을 가진 잔은 인간과 동물들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월터는 방울뱀을 이용하여 잔 두명을 죽게 만드는데 성공하여 그들이 떠나게끔 유도합니다. 첫 두 문장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여자, 이브가 될 그레이스가 월터의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고요.

그런대로 재미있지만 허술한 것도 사실입니다. 서두만큼은 괜찮았는데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저 같으면 어떻게 썼을까요? 지구 최후의 남자가 방 안에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과연 문을 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딜레마를 다뤘을 것 같아요. 누가 문을 두드렸는지 너무나 알고 싶어서 혹시 죽을지라도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말이지요. 혹시 내가 지구에 혼자 남은 생명체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과연 문을 두드린 것은 누굴까요? 아, 저도 궁금해지는군요.

"모든 선량한 벌레눈 괴물들이" 

SF 작가 엘모와 아내 도로시 앞에 안드로메다 2에서 온 외계인 5명이 동물들의 몸을 빌어 나타났다.

어딘가에서 봤음직한 내용입니다. 외계인들이 동물들의 모습으로 지구인 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 속 외계인들이 엘모와 도로시 앞에 나타난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딱히 우주선을 고치는데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감시 때문에 사람만 부족해졌을 뿐이에요. 엘모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준다는 것도 창작력을 준 게 아니라 머릿 속에 있는 일종의 장애물을 제거해 주었다는 설정이라 여러모로 애매해보였고요.

그다지 기발하지도 않고 내용도 설득력이 낮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광기에 빠져라" 

조지 바인은 3년전 교통사고로 이전 기억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는데, 어느 날 편집국장 캔들러가 그에게 병을 핑계로 정신병원 잠입 취재를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기억 상실은 핑계일 뿐, 조지 바인은 27세의 나폴레옹이 시공을 초월하여 이식된 상태였다. 조지는 취재 지시의 목적이 자신의 정신병을 몰래 치료하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고 여겼지만 취재에 응해 정신병원에 잠입하는데... 

인간은 실수이고, 기생충이고, 게임의 말일 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백만 개의 행성에는 그 행성의 유일한 지성인 곤충 종족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지성이 한데 모여서 단 하나의 우주적 지성을 만든다. 바로 신을!

개미가 신과 같은 절대자라는 반전이 독특한 작품으로 수록작들 중에서는 가장 긴 작품 중 하나입니다. 70여 페이지에 이르니까요.

초반은 꽤 흥미롭습니다. 정신병원의 비밀도 궁금할 뿐 아니라 조지 바인은 사실 나폴레옹이라는 설정도 꽤 매력적이니까요.

그러나 나폴레옹은 개미들의 게임을 위해 시공을 초월한 것이라는 짤막한 해석 외의 초반 떡밥은 하나도 회수하지 못합니다. 정신병원의 비밀은 무엇인지, 조지 바인을 본인 몰래 정신병원에서 치료하기 위한 음모였는지 아닌지, 나폴레옹을 구태여 조지 바인에게 소환시키면서까지 하려고 한건 무엇인지 등등은 결국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아울러 인간은 별거 아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이 진짜 절대자다라는 설정도 지금 읽기에는 식상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진실탐지기" 

2년 전 실종된 범죄 심리학자 채플 박사와 범죄자들이 거짓말 탐지기를 빠져나간 상황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유능한 탐정 벨라 조드가 사건 해결에 도전한다.

1999년을 무대로 한 SF 범죄물인데, 탐정과 범죄자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범죄는 그다지 비중이 없습니다. 유능하다는 탐정 벨라 조드의 수사도 변장과 함정 수사가 전부고요.

하지만 최면을 통해 기억을 지워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획기적입니다. 사건 자체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하므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건데, 참신하고 대단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어지는 반전도 그럴듯합니다. 거짓말 탐지기 통과를 요청한 범죄자는 모두 중범죄자들인데, 그들의 기억을 지워주면서 선량하게 살게끔 최면을 걸어 결국 범죄 자체가 없어지게 만든다는 것으로 역시나 탁월한 아이디어였어요.

한마디로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프레드릭 브라운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불사조에게 보내는 편지" 

18만년 동안 살아온, 15만배 느리게 사는 남자의 독백으로 핵 전쟁이 일어나 문명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냉전시대의 공포를 희망적으로 설명하는 소품입니다. 불사에 가까운, 15만배 느리게 사는 남자에 대한 설정은 재미있으며, 인류는 역동적이기에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는 희망찬 메시지도 인상적입니다.

허나 배경이 되는 사상과 메시지 모두 지나치게 오래된 것이에요. 때문에 지금 시점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밋키 다시 우주로"

8년만에 다시 쓰여진, 똑똑해진 생쥐 밋키 이야기입니다. 어지간히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이번에는 새로 투입된 흰색 생쥐 화잇티와의 사투를 그립니다. 일종의 모험물이랄까요? 화잇티가 X-19 장치를 조작하여 흰 쥐를 생태계 정점에 놓으려 한다는 악마적인 발상이 눈길을 끌며, 지성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결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앨저넌에게 꽃을"과 역시나 비슷하네요. 앨저넌 이름이 밋키였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녹색의 땅"

붉은 행성 크루거 4에 추락한 우주비행사 맥개리는 이 행성에 추락한 것으로 알려진 우주선 잔해를 찾아 정글을 헤멘다. 트랜지스터 부품을 구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그의 유일한 파트너는 5족 생물 '도로시'. 어깨 위에 올려놓은 도로시는 흡사 여성의 손길 같고, 그런 도로시에게 위안을 느끼며 말을 건넨다. 그러던 중 우주선 하나가 그를 발견한다!

붉은 행성에서 '초록색'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아가는 광인의 이야기입니다.
구하러 온 아처 중위에 의해 도로시는 존재하지도 않고, 4~5년이라고 믿었던 표류 기간이 무려 30년이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 까지는 버틸 수 있었지만 지구가 우주 전쟁으로 파괴되어 초록색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에 결국 정신이 붕괴해버리고 만다는 결말은 섬찟합니다. 붉은 행성 크루거와 그곳의 생태계에 대한 짤막한 묘사도 상상력을 많이 자극하는데, 이 부분은 영상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 역시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은 반전이었어요. 예전에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었기에 더 그러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인격 교환기" 

편집장 맥기에게 괴롭힘당하는 기자 '나'는 발명가 타킹튼 퍼킨스의 신발명 취재를 나선 후, 그가 '연격 교환가'라는 것을 발명한 것을 알게 되는데...

도라에몽스러운 발명품이 등장합니다. 내용도 성인용으로 변주한 도라에몽같고요. 발명품으로 소동이 일어나고, 결국 주인공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은 도라에몽 그 자체이지요. 

하지만 소동 이후 모든게 제자리를 찾는 도라에몽 장치와는 다르게 타킹튼 퍼킨스와 맥기의 몸을 바꾸어서 최악의 파트너들끼리 함께 살게 만든다는 결말은 아주 통쾌했습니다.

평범한 아이디어를 전개와 결말로 보완한 작품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무기" 

그레이엄 박사는 궁극의 무기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로, 그의 유일한 고민은 정신지체아인 아들 해리였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니만트라는 인물이 찾아와 무기 개발을 그만둘 것을 부탁하는데... 

인류가 궁극의 무기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프레드릭 브라운의 답변. 

4페이지밖에 안되는 짤막한 분량이지만 흥미로운 도입부와 캐릭터, 진지한 주제에 놀라운 반전까지 모든 걸 갖춘 걸작입니다. 인류가 궁극의 무기를 갖는건, 백치가 장전된 리볼버를 갖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시각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측면도 있습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카투니스트" 

끔찍하고 흉물스러운 외계인 만화를 그린 후, 빌 개리건은 그가 그린 외계인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의 초대를 받았다. 그들은 만화에 감명해서 개리건을 황실 만화가로 임명하려 했다... 

"외눈박이 나라에 간 두눈박이" 이야기를 변주한 SF입니다. 서로를 끔찍하고 흉물스럽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점이 그러하지요. 그러나 결말은 정 반대입니다. 개리건이 외계인 모습이 된 다음에 익숙해진 후 모든 행복을 거머쥐거든요.

그러나 좋은 결말, 반전이었다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반전의 매력은 부족하며, 여러모로 쉽게 간 느낌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돔" 

'죽음보다는 고독이 나은 법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죽음보다는 나은 법이다.'

카일 브레이든은 핵전쟁이 발발했다는 뉴스를 듣고 구 형태로 완벽한 방어막을 이루는 "역장"을 작동시켰다. 카일은 죽음보다 고독이 낫다는 생각으로 30년을 버텼지만, 결국 홀로 죽기가 두려워 역장을 끌 결심을 하는데... 

착각으로 스스로 고립되어 이방인이 된 남자를 그린 작품으로 주제는 좋습니다. 냉전 시대를 극한까지 그려낸 설정도 볼만하고요. 하지만 홀로 돔 안에 갇히는 것을 선택한 카일 브레이든의 심정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고독보다는 죽음이 나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리고 밖의 세상은 유토피아가 되었다라는 반전도 평이합니다. 차라리 사랑을 고백한 '미라'가 그를 떠나지 않고 둘이서 같이 30년간 늙어가다가 유토피아를 만난다는 설정이 소설적으로는 더 나았을 것 같네요. 만약 그랬다면 미라에 의해서 지옥이 열렸을테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스폰서의 한마디" 

1954년 7월 9일 수요일 오후 8시 30분, 전 세계 라디오에서 기묘한 방송이 들려왔다.
아주 잠시 먹통이 된 후 차분하고 평범한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스폰서의 한 마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1초 후 다른 사람이 말했다. "싸워라."
미국 대통령은 이 방송이 현재 기술로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분석 결과를 전달받는데... 

'인간은 명령을 받으면 반대로 행동한다'는, 신뢰할 수 없는 심리학 설정에 기반을 둔 작품입니다. '밀그램 실험'이 있기 전에 쓰여진 이야기겠지요. 

그래도 과학적, 정치적인 분야에서 시작하여 종교적인 분야까지 전문가들에 의한 분석이 이어지면서, 이 명령은 들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만큼은 꽤 설득력있게 그려집니다. 사탄이 내린 명령이면 당연히 들으면 안되고, 신이 내린 명령이라면 지성과 선의가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신성한 반어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논리인데 그럴듯했어요. 분석 덕분에 여론도 싸우지 않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는 전개도 괜찮았고요.
또 이러한 평범한 냉전 시대를 무대로 한 우화임에도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 요소가 존재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스폰서"라는 단어죠. 대체 우리, 지구, 인류의 스폰서는 누구란 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스폰서가 누군지 모르므로 명령을 들을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작품은 끝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약간 흥미로왔을 뿐 기대에 부합하지는 못했습니다. 결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 큽니다. 별반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무래도 냉전 시대 관련 설정의 작품은 여러모로 뻔하고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소재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나와 플랩잭과 화성인" 

광산을 찾아다니는 나와 당나귀 플랩잭은 어느날 화성인을 만났다. 화성인은 내가 아니라 플랩잭이 지성체라 여겨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의 지구 침공 계획을 털어놓는데... 

이른바 '오해와 착각' 개그물입니다. 나와 플랩잭의 티격태격 묘사가 유쾌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해로 인한 난처한 상황도 볼거리고요. 무엇보다도 플랩잭이 화성인에게 무언가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그들이 지구 침공을 포기하고 돌아가는데, 나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고 플랩잭이 준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결말까지 유쾌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마크 트웨인이 쓴 SF를 읽는 느낌이었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린 양" 

수록작 중 가장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싸이코 스릴러로 "진, 베르무트에 젖은 올리브 색깔"이라는 묘사나 여러 시, 음악, 밤이라는 배경에 대한 묘사는 '코넬 울리치'가 썼다 해도 믿을 정도로 디테일합니다. 아내 램이 살아 있는 것 처럼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그녀는 이미 죽은지 오래라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도 섬찟했고요. 유머러스한 블랙 코미디나 반전이 있는 장르 문학에 강한 작가인줄 알았는데 이런 순문학적인 스릴러에도 능하다니 과연 거장은 거장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날개짓 소리"

15달러에 영혼을 팔려던 무신론자가 급하게 멈추고 15달러를 날린 이유는? 에 대한 짤막한 소품입니다. 주인공이나 독자나 답을 찾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뭐가 껄끄러웠던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특별히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럴 바에야 영혼을 팔고 할아버지가 죽은 뒤 무언가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는 식으로 가는게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거울의 방" 

시간을 되돌리는 일종의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SF로 타임머신에 대한 아이디어와 함께 '50년'을 계속 되돌아가는 주인공에 대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돔"의 주인공은 역장을 끄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 작품의 주인공은 타임머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면 인류가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갖혀 지낸다는 점에서 좀 비슷한데, 냉전 시대의 뻔한 SF인 "돔"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설정도 보다 디테일하고요. 50년 동안 무얼 어떻게 먹고 사는지 등 깊이 들어가면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의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은 모두 1~2페이지짜리 쇼트쇼트입니다. 줄거리 요약은 생략하고 단평만 적겠습니다.

"해답" 두말할 필요 없는 걸작. 별점은 5점.

"데이지" 짤막하지만 담겨야 할 모든 것이 담겨있는 교과서적인 쇼트쇼트. 별점은 4점.

"대동소이" 뻔했음. 별점 2점. 

"예절" 이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을 다룬 유쾌한 소품. 별점은 3점.

"허튼소리" SF 작가의 자조적인 농담으로 보이는 소품. 별점은 2.5점.

"화해" 뻔하고 뻔하도다. 별점 1점.

"탐색"신이 두려워한 사람이 누구인거죠? 주인공 피터의 정체는 신선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2점.

"형기" 과학적인 농담인데 꽤 써먹음직한 반전이 돋보임. 별점은 2.5점.

"유아론자" 이 정도면 신성모독이 아닐까... 여튼 신선한 창조 이야기. 별점은 2.5점.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진정한 소리를 찾는 음악가 둘리 행크스가 우연히 만난 노음악가를 살해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호우보이'라는 악기를 손에 넣은 뒤 맞는 최후에 대한 이야기.
음악에 대한 장황한 묘사가 펼쳐지는 순문학스러운 범죄 판타지로 '하메룬의 피리부는 사나이'로 끝나는 결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7/02/17

네버 고 백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5점

네버 고 백 - 6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잭 리처는 전화 통화로 호감을 느낀 수잔 터너를 만나기 위해 110 특수부대를 찾았다. 110 특수부대는 과거 잭 리처가 부대장이었으며, 수잔 터너가 현재 부대장을 맡고 있는 부대였다. 그러나 잭 리처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16년 전 폭행 치사 사건과 친부 확인 소송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수잔 캐런은 반역죄 혐의로 수감되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 모든게 음모라는걸 깨달은 잭 리처는 수잔 터너와 함께 탈옥한 후,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나서는데...

잭 리처 시리즈는 최근 가장 인기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톰 크루즈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요. 그러나 딱히 끌리지 않아서 읽어보지 않다가, 마침 읽을 책이 없기에 집어 들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신작 영화의 원작인데, 영화화될 정도라면 시리즈 중에서도 재미와 인기가 최고 수준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잭 리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서 전작을 읽어가면서 배경 설명을 익힐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읽어보니 인기가 있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재미만 놓고 보면 어디 내 놓아도 꿀리지 않는 덕이 큽니다. 거대한 음모가 있고, 음모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 그 와중에 닥치는 여러 위기들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되고 있거든요. 하나 씩 단서가 밝혀지며 음모가 드러나는 전개도 괜찮습니다. 16년전 살인 사건과 문란한 생활이라는 누명으로 수감된 후, 수잔 터너와 함께 탈옥하여 이것이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관련된 음모라는 것을 알아내고, 단서를 변호인 설리번과 에드먼즈에게 정당하게 요청하여 하나씩 단서를 수집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결국 음모의 실체에 도달하는 과정이 꽤나 설득력있습니다.
음모의 핵심인 아편 밀수를 ''무기'를 밀거래한 것이 아니라면 미국의 병참부대원들을 데리고 무엇으로 어떻게 장사를 한 것일까?'라는 수수께끼와 함께 주어진 복선(예를 들어 에밀 자드란의 형들이 양귀비를 재배한다는)을 통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이 과정에서 시발점이 되는 탈옥에 대한 묘사도 훌륭합니다. 우연을 적절히 활용하여 당직 대위와 변호사 설리번을 감옥에 가둔 후, 변호사들의 신분증을 이용하여 탈옥하는 과정의 설득력이 높은 덕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작위적인 우연이 겹친 상황인데, 이를 잭 리처 시점에서 동전 던지기를 인용하며 최대한 가능성 있게 설명하는 것도 좋았어요.
음모와는 상관없이 단돈 30달러로 탈주를 이어갈 수 없어서 산속 오지 마약상 빌리 밥 재산 강탈 (ATM?) 설정을 집어 넣었는데 이 과정 역시 볼만합니다. 사만다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나름의 반전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아이 엄마를 알아보지 못함!-도 그럴듯하고요.

잭 리처 캐릭터도 나쁘지 않습니다. 쿨하고 냉소적인 한마리 고독한 늑대 해결사라는건 전형적이긴 합니다. 입담도 특별하지는 않고요. 그러나 엄청난 거구에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최강자라는 독특함을 그럴듯하게 , 생생하게 그려낸게 인기의 비결인 듯 합니다. 옷은 세탁을 하지 않고 버리고, 운전을 잘 못한다는 디테일도 묘하게 캐릭터에 실체감을 더해주는 요소였습니다. 워즈워스의 시를 알고 클럽 '도브 코티지''의 어원을 꿰뚫을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있다는건 좀 오버스러웠습니다만...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왜 처음에 잭 리처를 죽이지 않았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처음부터 해결사를 보낼 때 경고가 아니라 제거를 목표로 움직였어야 해요. 그들 말대로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인물을 뭐하러 경고까지 해 가면서 도망가게끔 유도하나요? 있지도 않은 가짜 사건을 억지로 만드느니 없애는게 깔끔한데 말이지요.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의 미군을 죽이는건 주저하지 않았기에 손을 더럽히기 싫었다라는 이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리처와 수잔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권력을 소유한 악당이 전투력 부족한 단 4명의 인력만으로 잭 리처를 추격한다는 점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리처 표현을 빌면 아마추어급인데 말이지요 . 구태여 LA로 가서 딸로 알려진 아이를 만나려는 설정도 이해하기 어려운건 마찬가지입니다. 본 음모와 하등의 상관도 없고요.

잭 리처의 먼치킨 설정도 조금 불만입니다.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지만 위기를 별로 어렵지 않게 뛰어넘어서 가면 갈 수록 긴장이 풀리고 말거든요. 그 중에서도 마지막, '결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쉬라고와의 일기토가 주먹 2방으로 끝나는 묘사는 허무할 정도입니다. 쉬라고가 왜 총을 꺼내지 않았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그리고 단점은 아니지만 같이 도망가는 남녀가 하루만에 눈이 맞아서 위기의 순간에 정사를 벌인다는 미국식 설정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킬링 타임용으로는 충분합니다. 다른 시리즈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2017/05/03

퍼스널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점

퍼스널 - 4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잭 리처는 우연히 주운 '아미타임즈' 광고를 보고 군에 출두한 뒤, 프랑스 대통령 암살 기도범에 대한 수사를 의뢰받았다. 1300미터 밖에서 저격이 가능한 저격수는 전 세계에 몇 명 없는데, 그 중 한 명이 16년전 잭이 잡아 넣은 존 콧트이며 그가 암살범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런던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서 저격이 시도될 수 있는 탓에 암살 계획은 러시아, 영국 정보원들까지 뛰어드는 국제적 스캔들로 비화했고, 잭 리처는 국무부 요원 케이시 나이스, 영국 SAS 요원 벤슨 등과 함께 그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는 존 콧트를 쫓게 되는데...

잭 리처 시리즈 19번 째 작품입니다.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읽고 나니 킬링 타임펄프 픽션으로는 딱이더군요. 대중적 인기가 이해가 갑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었어요. 

이유는 이야기가 굉장히 간단한 덕분입니다. 잭 리처가 누군가를 노리고, 그 누군가를 지키는 악당들과 한판 벌이고, 알고 보니 음모가 있었다는 식인데 복잡한 구석은 하나도 없습니다. 잭 리처부터가 별다른 생각 없이 사건에 뛰어들고, 위기가 닥칠만하면 본인의 격투 능력으로 쉽게 빠져나오기 때문에 정교하지도 않으며 별다른 드라마도 없어요.
이런 점에서는 흔해 빠진 무협지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한 마리 늑대와 같은 유랑 절대 고수 재구리차 (材究利嗟)는 어느날 과거 은인 수메이의 부름을 받았다. 정파 장문인들을 노리는 공전절후의 원거리 비도술 소유자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 한 명이 과거 리차가 뇌옥에 가두었던 조고두였다! 리차는 고두를 쫓아 정파 장문인들이 모두 모이는 태산 비무 대회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을 주름잡는 녹림방 무리와 손잡은 고두를 잡기 위해 녹림방 소굴로 뛰어드는데...'라는 식으로 그냥 번안만 해도 무협지가 될 정도에요.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오히려 생각 없이 쓴 티가 너무 많이 나서 실망스럽습니다. 이야기 앞뒤가 안 맞는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설정도 너무 많으며 여러모로 급조한 티가 많이 나니까요. 오죽하면 싸구려 무협지와 비교하겠습니까.
우선 음모의 핵심인 첫 암살 시도부터 허술합니다. '첫 한 발로 방탄 유리를 깨고, 두 번째 총알로 죽이려 했다'면 당연히 두방을 거의 동시에 쏴야합니다. 첫발로 방탄 유리가 깨지는 것을 확인하고 두번째 발을 쏜다? 1,300미터에서는 총알이 목표에 도착하려면 3초가 걸린다고 이미 설명됩니다. 그런데 작중에서 총알이 확인되고 경호원이 인의 장막을 치는데 걸린 시간은 2초입니다. 애초에 말이 안되는 암살 작전이에요. 이걸 애초에 간파하지 못한 정보 요원들은 모두 얼간이고요.

콧트가 숨어있는 리틀 조이의 집에서 벌어지는 활극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자국에 모인 G8 협상 멤버인 각국의 수뇌들 생명이 위험한데도, 동네 건달 조직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영국 정부의 모습부터가 웃음거리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우리나라에 회의 차 참석한 미국 대통령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암살범을 숨겨주고 있는 범서방파 중간보스를 손대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는건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러한 건달 조직간의 암투에 불필요한 시간을 소모하는 것도 모자라 총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나 되는데 2미터가 넘는 괴력의 네안네르탈인 리틀 조이와 육박전을 벌이는 클라이막스도 황당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잭 리처와 리틀 조이의 일기토를 드라마틱하게 그리려는 흥행 전략에 불과해요. 리틀 조이를 쏘면, 유탄이 동네 다른 주민들에게 맞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기는 하지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저 놈을 죽이지 못하면 모든게 끝나는데 걱정도 팔자지요. 저 같으면 탄창 하나 비울 때 까지 리틀 조이를 쏘고 또 쐈을겁니다.

리틀 조이의 거대한 인형의 집에 들어가서 콧트와 벌이는 밀땅도 어설픕니다. 우선 불구대천의 원수 잭 리처가 몇 백 미터 앞에서 격투를 벌이는데 콧트가 저격하지 않은 이유부터 불분명합니다.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작 중에서도 저격수가 무서운 점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계속 이야기되고, 심지어 파리에서는 천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저격을 시도하는데 왜 런던에서는 가만히 있는단 말입니까?
게다가 이렇게 유능한 저격수가 기껏 여자나 인질로 잡다가 잭 리처에게 총알 한 발로 사살되는 장면도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리틀 조이야 어설프게나마 일기토를 벌이기라도 했지, 진짜 끝판왕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무하고 한심했어요.

그나마 괜찮은 것은 오데이의 음모 정도입니다. 방탄 유리 시연회나 참석하는 신세로 전락한 오데이가 재기를 위해 방탄 유리와 저격범을 활용하려고 했다는 설정 자체는 꽤 그럴듯하니까요. 하지만 전 세계 정보기관이 힘을 모았는데 자금의 흐름 등 뒷 배경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영국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그려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또 이 음모는 잭 리처가 리틀 조이 일당을 몰살시키고 콧트를 죽이는 일련의 행동과는 무관합니다. 오데이가 왜 잭 리처를 불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동안 시간은 잘 가지만,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전형적인 펄프 픽션입니다. 차라리 헐리우드 액션 영화라면 그런대로 즐길만 했을텐데, 소설로 진득하게 읽기에는 좀 별로였어요.

2018/03/31

고양이 발 살인사건 - 코니 윌리스 / 신해경 : 별점 3점

고양이 발 살인사건 - 6점
코니 윌리스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SF 쪽에서는 명성이 높은 코니 윌리스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쓴 작품들을 모아놓은 중단편집입니다.
코니 윌리스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데 아주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을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도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수록작 대부분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갖춘 데다가, 밝고 따뜻하면서 유머러스해서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통 SF라기 보다는 약간의 SF 설정이 가미된 작품들로 일상 - 홈 드라마이자 사회 비판물인 "말하라, 유령", 본격 추리물 "고양이 발 살인사건"과 로맨틱 코미디 첩보물 "절찬 상영중",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SF "소식지", 로드무비 "동방박사들의 여정", 일상 드라마인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로 장르를 구분할 수 있는데 대부분 기본 이상은 해 줍니다. 친숙한 작품들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익숙한 클리셰, 설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장르문학, 컨텐츠 애호가로서 반가왔던 점이에요. 그만큼 볼거리가 아주 풍성합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하지만 아래 상세 리뷰에서 처럼 별점 5점짜리! 작품도 수록되어 있는 만큼, 장르문학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저도 크리스마스 관련된 이야기를 몇 번 써 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수준 차이가 엄청나네요. 반성하게 됩니다.

"말하라, 유령" 

이혼남으로 책이 유일한 취미인 서점 직원 그레이의 유일한 낙은 크리스마스에 딸 젬마와 보낼 시간이었다. 그러나 서점의 사인회와 전처 때문에 딸을 만나지 못하게 된 그레이는 서점 직원으로 임시 채용된 크리스마스의 유령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는데...

딸 아이를 위해 열심히 해 보려고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꾸만 엇나가는 그레이와 사람을 개과천선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유령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약간의 판타지 설정으로 흥미를 자아내며 묘사도 일품입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때 바쁜 백화점 서점에 대한 무시무시한 묘사가 압권이에요. 이래서야 정말 빠져나가기 힘들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으니까요.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해 딸 젬마가 좋아하는 소공녀, 그 외에도 디킨스와 월터 스콧의 작품이 많이 인용되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그러나 완벽한 크리스마스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건 의외였습니다. 마지막에 유령들이 뭔가의 슈퍼 파워로 딸 젬마를 그레이에게 데려다 줄 줄 알았는데 그냥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끝나버리거든요. 돈이 최고고(작 중 표현대로라면 유일한 것), 유령들은 힘도 없고, 크리스마스에 기적 따위는 없다는 결말은 서늘하고 냉소적인 사회 비판 소설에 가깝습니다. 이게 현실적이긴 합니다만 씁쓸하네요. 디즈니 작품과 비슷한 가족 판타지로 위장된 탓에 이런 갭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 않을까 싶군요. 저는 다소 불호입니다. 딸아이 아빠로서 젬마는 최소한 행복해졌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고양이 발 살인사건" 

세계 최고의 탐정 투페는 크리스마스에 친구 브리들링스 대령과 함께 마웨이트 장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사건을 의뢰한 샬롯 발라디 부인이 영장류를 연구하는 인공지능 연구소로 사람의 말이 가능한 고릴라 달타냥, 추리소설도 좋아하는 똑똑한 침팬치 하이디가 하인으로 일하는 등 연구 실적이 빼어난 곳이었다. 그러나 함께 사는 그녀의 동생 제임스는 영장류를 증오하여 자신이 유산 상속을 받으면 모두 쫓아낸다고 공언한 상태. 다행히 그들의 아버지인 억만장자 알리스테어 경은 치매로 난폭한 바보가 되었지만, 앞으로 수년은 더 살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다.
투페 컴비는 다른 손님들, 기자인 루트거스와 폭스양, 지역 경찰 유스티스 경사, 알리스테어 경의 간호사 파치트리 양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고, 이 와중에 의뢰하는 수수께끼가 단지 영장류의 존재에 대한 질문임을 알게 된 투페는 당장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알리스테어 경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모든 정황이 고릴라 달타냥의 범행임을 암시했는데....

포와로와 헤이스팅스 컴비를 빼닮은 탐정 컴비가 등장하고, 전형적인 영국 장원을 무대로 하는 클로즈드 써클 미스테리입니다.

일단, 고전 본격물에 대한 높은 이해가 돋보여요. 탐정 컴비의 묘사는 물론 장원에 머무는 사람들 모두가 모두가 동기가 있고 수상쩍은 등 여사님 작품에서 보았었던 그런 느낌으로 묘사되거든요. 패러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전 캐릭터를 쏙 빼 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전형적입니다. 사건과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 역시 고전 본격물 그대로에요. 무엇보다도 추리에 있어서 영장류의 지능이 높다는 설정으로 독특함과 재미를 안겨다 주는 부분이 탁월했습니다. 이 설정이 단지 재미 요소가 아니라 진짜 반전의 핵심 요소인 덕분입니다. 영장류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그들이 알리스테어 경을 살해하고 제임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약간의 SF가 가미된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정통 본격물로 추리와 재미 모두 기본 이상은 해 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고전 본격물 팬이시라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실 거에요. 별점은 5점!입니다.

"절찬 상영중"

"크리스마스 소동" 이라는 고전 영화를 보기 위해 애쓰는 사라와 그녀가 그 영화룰 왜 못 보는지를 설명해주는 전 애인 잭의 이야기입니다.

일단 사라가 방문한 영화관 시네드롬은 온갖 영화 관련 오락거리가 가득차 있는 일종의 테마 파크인데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손님들이 밀어닥친 탓에 난리도 아닌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러한 복잡한 상황 묘사가 대단합니다. 

그리고 사라가 영화를 보지 못한 이유도 아주 그럴듯해요. 영화를 만든다고 사기를 친 뒤 시네드롬에 돈을 좀 쥐어줘서 아무도 못보는 환상의 상영관을 확보한 후 제작비를 쓴 것처럼 꾸미는 제작사의 음모이고, 이는 백 개도 넘는 상영관을 모두 채우는 건 무리였던 시네드롬에게도 필요했던 사기라는 진상인데 생각도 못했네요.

이러한 내용을 소비자 사기국에서 근무하는 잭의 화려한, 영화를 방불케하는 첩보 작전처럼 풀어나가는 것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사라에게 사 준 티셔츠가 카메라 부착형이라는 아이디어 등 디테일도 볼거리이며, "백만 달러의 사랑", "아이 러브 트러블", "위기의 암호명" 등 비슷한 영화들의 장면 장면과 엮이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거든요. 실제로 로맨틱 코미디 첩보극이라는 장르 공식에 굉장히 충실하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지요. 그 외 다수 영화들의 인용, 묘사도 흥미로운데, "디워"가 원작에도 언급되는건지는 좀 궁금합니다.

그런데 망한 영화도 매니아가 따라붙고, 온갖 매체에서 흥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설정같지는 않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잭이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부족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즐겁고 유쾌한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소설보다는 영상물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네요.

"소식지" 

크리스마스를 앞 둔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착해졌다. 이를 처음 눈치챈 건 주인공 "나"의 직장 동료이자 그녀가 흠모하는 이혼남 게리였다. 둘은 곧 착해진 사람들이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다른 악영향없이 착해지기만 한 탓에 이를 밝히고 처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착해진 사람들의 몸 관절이 이상해지는 부작용을 알아낸 주인공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생수를 박멸하고자 직장과 집의 온도를 올렸다(모자를 벗게). 다행히 기온이 올라 이 소동은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로 변주된 "신체 강탈자의 습격 (바디 스내쳐)" 입니다. 기생수의 부작용이 착해지는 거라니 정말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네요. 이변을 눈치채지만 착해지는 게 과연 무슨 문제인지?를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딜레마도 웃음을 자아내고요.

하지만 디테일이 좀 지나쳤습니다. 보다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텐데, 과유불급이랄까요? 제목이기도 한 가족들 간의 '소식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들의 이변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품이기는 하지만 구태여 등장시킬 필요는 없었어요. 지역별 편차가 있고 이유는 기온이다!를 드러내려면 TV나 신문 등의 뉴스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등장인물들도 너무 많은데, 이 역시 주인공과 게리가 잘 되게 만드는 식으로 깔끔하고 단순하게 마무리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별점은 3.5점입니다. 크리스마스에 걸맞는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여정" 

눈보라가 휘몰아쳐 도로가 통제되는 와중에서 자기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계시에 따라 예수를 찾아나선 목사 멜과 친구 BT, 그리고 여행 중 만난 여성 캐시 3인의 여정이 그려진 작품입니다.

한마디로 동방박사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온 일종의 로드 무비(?)입니다. 백인 목사, 흑인 과학자, 전직 영어 교사인 여성 3인이라는 파티 구성도 나름 완벽해서 눈길을 끌고요.

그러나 여정에 대해 상세하게 그린다기 보다는, 실제로 동방박사가 겪었음직한 고뇌(이게 계시가 맞는지? 내가 미친건 아닌지? 와 같은)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드라마적 재미는 별로 없어요. 독백과 종교적 고뇌로 가득찬 작품이 애초에 재미있을 리가 없지요.
게다가 중간, 중간 계시와 유사한 카니발 조명과 예수일지도 모르는 카니발 운전사 등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그 정체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차라리 알 수 없는 계시의 파편을 모아 그것을 토대로 여행의 목적지를 정하는, 일종의 추리 과정이라도 동반되었더라면 나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이야기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아쉬웠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결말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세 명이 카니발을 찾아가 예수(?)를 만나는지, 그들을 방해하는 헤롯왕의 수하들은 누구인지 등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마무리 되는 탓입니다. 이래서야 모험이 시작되자마자 이야기가 끝나는, "반지의 제왕" 1부와 같은 수준의 도입부에 불과합니다.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이야기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완성된 이야기냐는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네요. 수록작 중 개인적으로는 최악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 

책 뒤에 작가가 꼽은 크리스마스를 다룬 최고의 영화, 책, TV 시리즈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 중 최고는 "러브 액츄얼리"를 꼽고 있더군요. 이 작품은 작가가 나름대로 변주한 "러브 액츄얼리" 입니다. 족 모임을 위해 오리를 구우려는 루크, 이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미구엘의 양육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파일러, 남편과 사별하고 멕시코로 여행온 베브, 아내 마진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는 워런, 크리스마스 이브 결혼식을 주장하는 친구 스테이시의 들러리로 여행 온 폴라,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대폭설을 연구하는 네이선 박사와 조수 진성 등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다양한 등장인물이 한 꼭지 씩 이야기를 선보이다가 마지막에 연결되는 결말인데 전개 방식이 똑같거든요. 대부분 해피엔딩이며 감동적인 이야기와 적절한 코미디가 섞여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차이점이라면 이야기들 속 대 소동이 일어나는 원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 폭설" 이라는 SF적인 설정이라는 것 뿐입니다.

모두 재미있고 따뜻하며,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는 가정적인 이야기들입니다. 도저히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어요! 거짓말을 하다가 파멸한 불륜남 워런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아주 속 시원해서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도 대폭설의 원인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이 모여서 일어난 것이라는 어처구니없으면서도 크리스마스다운 발상이 아주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던, 반짝반짝한 작은 소품들이 모인 선물 상자같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도 영화로 꼭 만나보고 싶어지네요

2004/03/04

스쿨 오브 락! - 리처드 링클레이터 : 별점 2.5점


이 영화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서 꽤 인상깊었던 잭 블랙 주연의 영화입니다. 무엇보다도 포스터로 보는 사람을 압박하는 영화죠. 잘 만든 포스터와 여러 영화평들로 사뭇 기대를 가지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락 밴드 단원인 듀이 핀 (잭 블랙 분)은 로커 답지 않게 뚱뚱하고 촌스러운 외모 때문에 밴드에서 쫒겨 난다. 월세가 밀려 집에서도 쫒겨 나게 된 그는 급한 김에 친구 네드의 이름을 사칭하고, 호레이스 그린 초등학교의 대리교사로 취직한다. 수업 첫날부터, 공부를 가르칠 생각은 않고 시간 때울 궁리만 하던 듀이는 기발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앞으로 열릴 락 밴드 경연대회에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참석하려는 것!

클래식기타와 피아노, 첼로, 심벌즈 등의 악기를 다뤄본 애들을 뽑아, 리드 기타, 베이스 기타, 키보드, 드럼을 가르치고, 다른 아이들에겐 백 보컬, 매니저, 코디, 장비 담당 등의 일을 맡긴다. 3주동안, 듀이와 아이들은 여자 교장 멀린스 (조안 쿠삭 분)의 눈을 피해 교실에서 락 음악을 연습하고, 드디어 오디션 접수까지 끝낸다. 마침내, 경연대회가 있던 날, 듀이가 가짜 선생임을 알게 된 학부모들은 멀린스 교장을 앞세우고 대회장으로 쳐들어 오는데…


주연과 포스터, 간략한 영화소개만 보아도 “가짜”인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소재로 한 설정자체는 흔하디 흔한, 누군가 이야기 했지만 "시스터 액트"류의 코미디 물입니다. 그러나 열혈 락커가 일년 학비가 만 오천불이나 된다는 상류층 고급 초등학교 학생들을 락으로 세뇌시키며 진정한 락커로 만든다는 줄거리는 신선하고 유쾌하고 재미있습니다. 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면 조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겠죠. 무엇보다 주인공 듀이역의 잭 블랙의 원맨쇼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진짜배기 락커가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잭 블랙의 노래나 기타도 꽤 마음에 들더군요. 유쾌한 맛이 있어서요. 무엇보다 “스쿨 오브 락”이라는 밴드명으로 참가한 마지막의 밴드배틀 장면은 압권입니다. 역경을 딛고 촌스럽고 유치하지만 자기의 음악을 선보이는 아이들과 듀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죠.

하지만 기대했던것 만큼 웃기진 않았습니다. 각본과 감독이 “비포 선라이즈”라는 달착지근 영화를 만들었던 리처드 링클레이터이고 가족영화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인지 화장실 유머 같은 저질 유머나 슬랩스틱 코미디 대신 락에 빠져가는 아이들과 인간적으로 성숙해 가는 듀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정도 교훈적인 내용도 줍니다. 마지막에 교장, 듀이의 친구와 학부모들도 듀이와 아이들을 이해하며 마무리 하는 해피 엔딩은 너무 전형적이라는 느낌까지 줍니다. 락& 코미디판 “홀랜드 오퍼스”가 정답이겠죠.

그래도 오디션을 통해서 가려 뽑았다는 귀여운 아이들 (특히 베이스 치던 아이… 크면 분명 미인이 될 것 같습니다)과 잭 블랙의 연기를 보는 것, 덤으로 흥겨운 락까지 흐르는 즐거운 영화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볼 만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04/22

배트맨 : 가스등 아래의 고담 - 브라이언 어거스틴 외 / 이한 : 별점 3점

배트맨 : 가스등 아래의 고담 - 6점
브라이언 어거스틴 외 지음, 이한 옮김/세미콜론

스팀 펑크 세계관에 배트맨을 등장시켰다는 전설적인 작품으로 다양하게 미디어 믹스된 바 있고, 얼마전에는 애니메이션도 출시된 표제작 "가스등 아래의 고담", 그리고 동일 세계관 시리즈인 "미래의 주인" 두 편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읽으면서 스팀 펑크 세계관이 아니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왜 스팀 펑크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특히나 "가스등 아래의 고담" 은 그냥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하여 배트맨을 등장시킨, '팩션'이라고 해도 무방할 설정의 작품이었습니다. 실존 인물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브루스 웨인의 스승으로 등장하고, 잭 더 리퍼 사건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전개되는 등 현실과 허구의 혼합이 절묘한 덕분입니다. 고담도 미국이기는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분위기를 자아내며, 배트맨 역시 과학 기술과는 무관한, 순전히 단련된 육체에 의지하는 인물로 그려져서 현실감을 더해 줍니다.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자경단원" 이자 "탐정"으로서의 배트맨이 그려지는 것 역시 현실적이면서 마음에 든 점이고요.

아이디어는 굉장히 탁월하고 작화도 독특하고 좋은데, 아쉽게도 작품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입니다. 브루스 웨인이 잭 더 리퍼로 오인받아 체포되고, 감옥에서 정보를 끌어모아 진범을 알아내는 과정의 긴장감과 이야기의 설득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브루스 웨인에게는 삼촌같았던 변호사 제이콥 패커가 진범임이 드러나는 과정이 특히 그러해요. 단순히 같은 연대 소속이었다는게 범인이라는 증거가 될까요? 또 제이콥 패커는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와 같은 연배인 노인으로 애초에 배트맨과 일기토를 벌인다는 건 불가능해서 최후의 대결에서의 긴장감도 제로에 가깝습니다.

결론적으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걸작이라는 명성에 비하면 실망이 더 큽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차라리 이 작품보다는 함께 실려있는 "미래의 주인" 이 재미면에서는 한결 낫습니다. 우선 빌런 알렉상드르 르루아의 존재감이 출중합니다. 배트맨의 맞수로 부족함이 없어요. 적당히 미치기도 했고, 적당한 능력도 갖추고 있으니까요. 또 르루아가 비행선에 달린 장치를 이용하여 '태양의 불길'을 내리쳐 고담시에서 열리는 박람회를 비롯하여 고담시 일부를 불에 태워 백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음모의 스케일도 크고, 이를 막기 위한 배트맨과의 일기토도 적절하여 재미를 더합니다. 르루아의 파괴는 그와 손잡은 악덕 기업인이 있었다는 진상을 밝혀내는 '탐정' 배트맨의 활약과 그의 정체를 간파한 약혼녀 줄리 캐릭터도 볼거리였고요. 그리고 르루아의 비밀 무기도 "스팀 펑크 세계관의 배트맨" 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소재였어요. 아주 초월적인 무언가는 아니고, 상식선의 무기로 보이긴 하나 적당히 SF적이고 적당히 레트로한게 꽤나 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딱 한 가지, 전형적인 미국 극화체 작화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작화만 "가스등 아래의 고담" 스타일이었다면 별점 5점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그래서 두 작품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유명세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예상치 못한 다른 작품 덕분에 평균 이상의 재미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세계관의 다른 시리즈도 보고 싶어집니다.

덧 1 : 배트맨이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물이지만 분위기는 잭 더 리퍼 사건을 해결하는 범죄 액션 스릴러에 가까우므로 분류는 "추리 - 호러" 로 하겠습니다. 덧 2 : 아무리 풀 컬러지만 120페이지도 안되지만 14,000원은 좀 비싸네요. 한 페이지에 100원이 넘는 셈이잖아요? 이렇게 비싼 이유가 있는걸까요?

2004/05/01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 김경식 : 별점 4점

추리소설을 굉장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대부분 취향에 특화되어 있는 탓에 역사와 전기 문학이 많습니다. 이 책도 이러한 제 취향을 반영한 전기 문학입니다. 미국 독립 영화 제작자이자 흔히 'B급 영화의 제왕'이라 불리는 로저 코먼의 자서전이지요.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서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후, 영화업계에 발을 들여 놓기로 결심하고 폭스 스튜디오 문서 배달사원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부터의 파란만장한 영화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독립 영화사의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1950년대, 10만달러 미만의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다가 직접 감독을 하게 되고, 급기야 스스로 제작사를 차려 배급까지 겸하며 현재까지 그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기인 감독의 일대기이니 만큼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읽고나니 역시나 명불허전! 현재까지도 "코먼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영화계 인맥들 (감독-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죠 단테, 피터 보그다노비치, 론 하워드, 제임스 카메론, 조너선 드미, 존 세일즈..... 배우 : 잭 니콜슨, 찰스 브론슨, 피터 폰다, 로버트 드니로, 실버스타 스탤론, 탈리아 샤이어... 제작-메나헴 골란, 게일앤허드..... 등등등)과의 에피소드와 영화 촬영때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이야기까지, 한눈 팔기 힘들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작품으로 평가한다면, 그가 찍은 영화가 걸작이 많은건 아입니다. 이틀만에 찍은 영화도 있는 만큼 ("Little Shop Of Horrors") 완성도도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을테고요.
하지만 적은 제작비와 일정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보이는 비쥬얼은 최대한으로 끌어낸다는 그의 신념과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독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영화들은 그에게 제목대로 100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손해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또한 비록 싸게 만든, 이른바 "B"급 영화로 돈 (흥행)에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들을 제작하고 만들었지만,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에 아웃사이더들을 다룬다던가, 호러에 코미디를 결합한다던가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그의 영화들은 현재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델마와 루이스"나 "멘인블랙" 등의 영화는 전부 코먼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더라고요. 정말 시대를 많이 앞서간 것 같아요. 이러한 선구자적인 사상에 더해 헐리우드의 큰 세력이자 줄기가 되어버린 이른바 "코먼 사단"까지 아우른다면, 그의 영화 인생은 비록 음지였지만 거장의 인생으로 표현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현재 (2004년 4월) 시점으로 조사해보니 제작을 342편, 감독을 54편 했으며 각본도 5편, 거기에 배우 경력까지 있는 아직까지 팔팔한 현역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니 대단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코먼의 영화 중 본 작품은 거의 없지만 책만 읽어도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에요 . 이런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만든 영화가 재미 없을리가 없죠. 영화를 좋아하거나 전공을 원한다면 필독서이며,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에게도 지적인 흥분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입니다.

덧 1 : 읽으면서 한가지 아쉽다고 생각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대학생때 읽었으면 저의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몰랐다는 것이죠. 저 역시 그동안의 용기 부족으로 이상과 조금 먼 삶을 살아왔거든요. 뭐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만....역시 인생은 철저한 계획과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 그리고 과감성이라고나 할까요?

덧 2 : 제 1회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갔다가 심사위원장이었던 로저 코먼의 싸인을 저희 형이 애써 받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싸인만 보더라도 그는 한푼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수첩의 제일 끝 귀퉁이 약 1/6 크기로 작게 서명한 싸인이었거든요^^

2024/03/15

내가 읽은 '잭 리처' 시리즈 별점 순위

미국 작가 리 차일드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나무위키에서는 하드보일드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저는 추리 요소가 가미된 무협지라고 생각합니다. 잭 리처의 인간 사냥, 무쌍 액션을 보는 재미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무협지도 좋아하고, 악이 철저하게 멸망하는 권선징악 복수극도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 출간작 중 당장 구해볼 수 있는건 대충 다 읽었기에, 제가 읽은 작품들의 별점을 정리하게 되었네요.

현재까지의 제 베스트는 "메이크 미"(별점 3점)이며, 전체 평균 별점은 2점보다 살짝 높네요. 이 정도면 단순 킬링 타임용 액션물치고는 괜찮은 편이겠지요. 최소한 아주 시간 낭비까지는 아니라는 의미니까요. 가볍게 머리를 비우고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2024.08.25. "인계철선" 추가
* 2024.09.28. "어페어"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