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읽은 1권에 이어지는 2권. 마찬가지로 e-book으로 읽었습니다. 수록작품은 모두 13편입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화성의 오디세이 A Martian Odyssey" - 스탠리 와인봄 Stanley G. Weinbaum
"헬렌 올로이 Helen O' Loy" - 레스터 델 레이 Lester del Rey
"길은 움직여야 한다 The Roads Must Roll" - 로버트 하인라인 Robert A. Heinlein
"소우주의 신 Microcosmic God" - 테오도어 스터전 Theodore Sturgeon
"보로고브들은 밈지했네 Mimsy Were the Borogoves" - 루이스 패짓 Lewis Padgett
"오로지 엄마만이 That Only a Mother" - 주디스 메릴 Judith Merril
"스캐너의 허무한 삶 Scanners Live in Vain" - 코드웨이너 스미스 Cordwainer Smith
"화성은 천국! Mars is Heaven!" - 레이 브래드버리 Ray Bradbury
"즐거운 인생 It's a Good Life" - 제롬 빅스비 Jerome Bixby
"즐거운 기온 Fondly Fahrenheit" - 앨프리드 베스터 Alfred Bester
"친절한 이들의 나라 The Country of the Kind" - 데이머너 나이트 Damon Knight
"앨저넌에게 꽃다발을 Flowers for Algernon" - 대니얼 키스 Daniel Keyes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A Rose for Ecclesiastes" - 로저 젤라즈니 Roger Zelazny
SF계의 어마무시한 거장, 큰형님들의 대표 걸작이 수록되어 있는 것은 1권과 같습니다. 국내 소개 기준으로는 1권보다 이름값은 조금 떨어지지 않나 싶은데, 로버트 하인라인, 레이 브래드버리, 로저 젤라즈니가 묵직하니 중심을 잡아줍니다.
그런데 SF 작가들의 투표로 선정된 리스트이기 때문일까요? "최고작"을 모았다기보다는 역사적 의미까지 고려하여 선정된 느낌이에요.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가 그러합니다. 좋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명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는 "프로스트와 베타"를 꼽고 싶거든요. 디테일한 과학적인 설정, 냉전시대의 세계관 등 현실이 잔뜩 투영된 그간의 공상과학 소설과는 다른 서정적이고도 종교적인 주제를 미려한 문체로 그려낸, 순문학에 가까운 새로운 SF의 "효시"라는 장르 역사적 의미가 커서 선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에서도 "화성은 천국!"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죠.
위에서 예를 든 작품들을 비롯하여 제 All time best이기도 한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처럼 다른 곳에서 소개된 작품이 많다는 점, 지금 읽기에는 낡은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은 단점인데 이건 걸작선이라는 특징 및 작품 발표 시기를 볼 때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이상할 정도로 읽기 힘들었는데, 원작 자체가 어렵게 쓰이기는 했겠지만 번역하면서 조금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쓰는 배려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저런 감점요소가 제법 있는데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는 강력 추천드립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아래에 짤막하게 리뷰 남깁니다.
"화성의 오딧세이"
열흘간 소식이 두절되었던 화성 탐사대원 자비스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마크 트웨인이 화성을 무대로 한 SF를 쓰면 이런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유머러스한 분위기, 허풍 가득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모험, 거기에 지구인의 탐욕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다는 결말에서의 풍자가 그야말로 마크 트웨인 스타일인 덕분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스타일만 모방한 파스티시가 아닙니다. 함께 생사를 넘나드는 동안 친구가 된 타조 외계인 "트윌"에 대한 묘사 같은 설정의 디테일도 뛰어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길은 움직여야 한다"
모든 도로를 움직이게 만들어 나라 전체를 발전시켰지만, 기술자들이 파업을 일으켜 대형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한 총감독관 게인스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분위기는 하드보일드 범죄물 스타일인데 게인스의 활약이 별다른 게 없으며 전개도 뻔하고, 결말도 허무해서 전체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도로가 움직인다는 황당한 설정에 대한 묘사만큼은 굉장합니다. 도로에 대한 세밀한 설정과 묘사에서 그야말로 거장의 힘이 한껏 느껴집니다. 이런 매력적인 설정을 잘 살리지 못한 이야기는 아쉽습니다만 이 설정 묘사 하나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소우주의 신"
천재 과학자를 이용해 먹는 은행가가 과학자에게 색다른 동력 전송기를 만들게 한 뒤, 그것을 이용해 국가를 협박하고 과학자를 죽이려 합니다. 다행히 과학자에게는 그가 만든 새로운 생명체 네오테릭스들이 있었고, 네오테릭스들이 더 뛰어난 발명을 해서 과학자를 구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이 가득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악덕 기업가는 물론 기이한 피조물까지 생생한 캐릭터 묘사 역시 아주 일품이고요. 흡입력도 대단해서 네오테릭스가 과학자가 요청한 "방어막"을 만든다는 결말까지 손을 떼기 힘들 정도 였습니다. 재미만 놓고 따지자면 1권의 "투기장"과 비교될 만큼 최고였어요. 제 별점은 5점입니다.
"오로지 엄마만이"
방사능으로 돌연변이들이 태어난다는 내용으로 냉전시대 핵공포가 만연했을 때 쓰여진 듯 합니다. 아이가 팔, 다리가 없이 태어난 돌연변이인데, 엄마만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반전은 충격적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뭘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캐너의 허무한 삶"
우주(작중에서 "위와 밖") 여행 시 느끼는 거대한 고통을 잊고,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스캐너라는 전문 직업인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몸의 감각을 없애고 "하버맨" 상태가 되어 우주를 여행할 수 있습니다. "크랜치"라고 불리는 행위를 통해 잠깐이나마 감각을 회복할 수 있고요.
그리고 이들은 고통 없이 우주를 여행하는 방법을 알아낸 애덤 스톤을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들 직업의 위대함이 흔들리게 되니까요. 그러나 스캐너 중 한 명인 마텔이 인류를 위해 그를 구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은 굉장히 간단한데 스캐너, 크랜치 등 작중 나오는 관련 설정이 아주 상세하게, 설득력 있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텔의 활약이 이러한 설정 묘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빈약하며, 결말이 허무할 정도로 시시하고 간단한 해피엔딩이라는건 단점이지만 압도적인 설득력에는 점수를 줄 수밖에 없네요. "길은 움직여야 한다"와 비슷하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즐거운 인생"
조물주급의 초능력을 지닌 아이 앤서니를 중심으로 가족, 마을사람들이 마을 통째로 이세계를 방황한다는 내용의 작품.
SF로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이 "아이"로 태어난다면 그것은 재앙일 것이라는 주제를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앤서니에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고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전전긍긍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신 앞에 비굴한 현대인을 풍자한 것으로 보이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서운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즐거운 기온"
인간에 가까운 다기능 안드로이드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를 추리물 스타일로 풀어낸 작품. 일종의 서술 트릭이 도입된 점도 특징입니다.
하지만 그냥 추리극 형태로만 풀어내는 게 깔끔했을 것 같아요. 밴덜루어와 안드로이드에게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일종의 "투영" 현상이 일어났다는건 이야기에 넣을 필요가 없었거든요.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가 혼란스러워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좀 더 짧고 깔끔하게 전개했더라면 보기 드문 SF 추리물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