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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8

최면 - 마쓰오카 게스케 : 별점 2점

최면 2 - 4점 마쓰오카 게스케 지음/룩스북

최면술사로 자칭하며 TV쇼 등에서 사기행각을 일삼는 가짜 최면술사 지츠소지 앞에 엄청난 미인 이리에 유카가 나타나 자신에게 걸려있는 최면술을 풀어줄 것을 요구한다. 거절한 지츠소지 앞에서 갑자기 그녀는 "우주인"으로 탈바꿈하며 독심술과 예지력을 보여준다. 지츠소지는 자신이 근무하던 하라쥬쿠의 "운명의 성"이라는 가게에 그녀를 소개하여 그녀를 "채널러"로 근무하게 하며 엄청난 손님을 끌어모으게 된다.

하지만 TV에 소개된 그녀를 우연히 보게된 도쿄 카운슬링 심리센터의 최면요법과 과장 사가는 그녀가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다중인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녀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지만 오히려 그녀가 받고 있는 이전 직장에서 2억엔이라는 거액의 횡령용의때문에 경찰과 대립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천만부가 넘게 팔렸다는 작품. 개인적으로 일본産 미스테리 스릴러 물을 좋아해서 구입해 보았습니다.

마음에 든 부분은 저자가 실제로 국가자격을 보유한 최면요법 카운슬러인 덕분에 최면요법에 대해서 굉장히 디테일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나간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런 전문가적인 내용을 아주 좋아하기도 하고요. 특히 일반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최면術' 이 아닌 '최면요법'으로 과학적이고 임상병리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소설의 에피소드들과 결합시켜 재미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드네요. 예를 들면 뇌수술 후 갑작스럽게 안면 마비가 온 환자의 치료를 위한 최면 요법, 외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최면 요법 등이 그러합니다, 또한 가위바위보 이론이나 동전 맞추기 트릭, 독심술 등을 실제 응용 가능할 정도로 자세하게 써 놓은 것도 흥미로왔습니다. 특히 가위바위보 이론은 한번 써먹어 볼 만 한 것 같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최면요법이나 독심술 등의 설명을 제외한 실제 소설 내용은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미안할 정도로 재미가 없습니다.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정말 간단해요. "주인공 사가과장이 이리에 유카의 정신분열증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 전부거든요. 미스테리의 요인이 될 수 있는 두가지 요소, 유카의 횡령사건과 다중인격이라는 요소도 횡령사건은 순전히 심증으로 이루어지는 추론으로 해결되고, 다중인격의 치료 역시 앞부분의 장황했던 설정에 비한다면 상당히 간단하게 끝날 뿐이라 실망스러워요.
그 외의 이야기들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최면술이라는 것의 나쁜점만 모아서 가지고 있는 지츠소지라던가 사가의 애인 아사히나의 이야기, 사가의 상관 구라이시의 이야기 등이 있는데 모두 부수적으로 최면요법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할 뿐이라 실제 주 스토리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사족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최면요법을 과학적으로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 티는 무척 많이 나지만 외발자전거를 못타는 소녀에게 실시하는 최면요법처럼 최면요법의 효용을 강조해서 오히려 일반인에게 만병통치약과 같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도 다분히 있다고 보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흡사 최면요법협회에서 홍보용으로 만든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들 자체도 위의 이유로 실제 스토리에 잘 섞이지 못한 것 같아요. 이럴바에야 "여의사 레이카"나 "사이코 닥터" 같은 정신과의사나 카운셀러가 등장하는 옴니버스 단편 만화보다도 격과 재미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마디로,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네요. 초반의 이리에 유카의 다중인격이 발동하는 장면에서의 충격은 약간 있지만 그 이외에는 별달리 언급할 내용도 없습니다. 뭐 그래도 소설 자체로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다양하게 등장해서 그런대로 읽히는 편이기는 하니 절반의 성공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3/10/07

아폴로의 노래 1~3- 데즈카 오사무 : 별점 2점

아폴로의 노래 3 - 4점
데즈카 오사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문란한 어머니탓에 사랑을 불신하게 된 치카이시 쇼고는 사랑을 나누는 동물들을 죽이고 다니다가 경찰에 체포된 뒤 정신과 의사에게 맡겨졌다. 정신과 의사 에이키는 쇼고에게 최면을 걸었고, 최면에 걸린 쇼고는 사랑의 여신으로부터 "사랑을 저주한 죄로 영원한 사랑의 형벌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는데...

데즈카 오사무의 1970년 발표작. 국내에 정발되었지만 광속으로 절판되었었지요. 우연찮게 보게 되었습니다.

주제가 "성과 사랑"이라는 점, 그리고 쇼고가 최면에 걸린 뒤 가상으로 체험하는 사랑의 이야기가 쇼고의 실제 이야기와 병행으로 전개되는 구조가 독특했습니다.

가상 체험의 사랑 이야기는 모두 3개인데 나치 시대에 유대인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짤막한 이야기, 경비행기 조종사로 여류 사진사와 동물들이 서로 공생관계에 있는 기이한 무인도에 표류하는 이야기, 그리고 2030년의 미래를 무대로 합성인의 여왕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가장 긴 이야기입니다. 쇼고의 실제 이야기는 중간에 병원을 탈출한 뒤 와타세 히로미라는 여성에게서 마라토너로서 특훈을 받으며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렵게 구해본 것 치고는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걸작"으로까지 이야기되고 있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이야기에서 두 명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모두 급작스럽고 설득력 없기 때문입니다. 남자를 죽이려는 여자가 같이 석양을 본 뒤 키스를 나누고 사랑에 빠진다, 합성인의 여왕이 천한 인간을 데려다가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는 식이거든요. 작품의 핵심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 김빠진 맥주같은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지요.

또 주제의식이 그닥 효과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사랑이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로 언급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서로 사랑할 수 없는 비극적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만이 첨예하게 부각되는, "로미오와 줄리엣"류의 뻔한 서사가 대부분이니까요.

덧붙이자면 마지막 결말에서 와타세 히로미의 죽음도 황당할 정도로 뜬금없었습니다. 비극으로 몰고가기위한 억지스러운 상황설정이 지나쳤어요. 비장미는 넘치지만 21세기에 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두번째 사랑 이야기에서 동물들이 서로 협조하며 살아가는 무인도의 설정, 세번째 이야기의 합성인 여왕과의 사랑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클론들의 비극적인 모습은 충분히 볼만했고 데즈카 오사무가 그리는 성인풍 극화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역할에는 충실합니다. 차라리 두번째와 세번째 이야기를 따로 따로 정리하여 하나의 단편으로 풀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점. 발표 당시에는 획기적인 부분이 분명 존재했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았네요.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7/10/28

엔드 오브 왓치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엔드 오브 왓치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 컴비 홀리와 함께 사설업체 "파인더스 키퍼스"를 운영하던 빌 호지스는 의사로부터 췌장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편,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드 하츠필드는 재핏이라는 게임기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이동하여 조종하는 능력을 손에 넣었고, 이 능력을 이용하여 세상과 빌 호지스에게 복수하려 했다. 
재핏 게임기와 관련된 기묘한 자살 사건, 특히 제롬의 여동생 바브라에게 닥친 자실 미수 등을 접하며 빌 호지스는 사건의 이면에 브래디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브래디는 담당 의사 배비노의 몸을 빼앗아 도주해 버렸다.
빌 호지스는 브래디의 음모를 막기 위해 생명을 걸고 마지막 승부에 나서는데...

스티븐 킹빌 호지스 3부작(요새 말로 트릴로지) 마지막 편입니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신비한 능력을 얹은 1편의 살인마 "미스터 메르세데스" 브래디 하츠필드가 재등장하여 빌 호지스와 숙명의 대결을 펼칩니다. 결말은 "끝"을 의미하는 제목 그대로고요. 시리즈는 정말 확실하게 끝납니다.

재미만큼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납니다. 그런데 다른 시리즈와 확실한 다른건, 이 작품은 추리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1편은 2015년 에드거상 수상작답게 분명 추리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습니다. 정교하지는 못했지만요. 2편은 빌 호지스 시리즈라고 부르기 민망할 뿐 범죄물로는 괜찮았고요. 허나 이번 편은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장르도 "싸이킥 호러 스릴러"라고 해야 합니다. 브래드가 손에 넣은 특별한 능력 - 염력과 재핏 게임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침투하여 그들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 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니까요.
물론 빌 호지스가 브래디의 능력을 알아내는 과정은 수사 비스무레한 절차를 거치기는 하지만, 브래디의 능력이 상식을 초월했다는 것만 문제지 그의 행방과 음모를 추적하는 과정은 너무 뻔하고 단순해서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합니다. 몇가지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브레디의 담당 의사가 수상하다! 녀석을 쫓아가자! 그냥 이게 전부거든요.

그래도 브래디의 능력은 설득력 있게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지 않은 것을 있음직하게 그려내는 스티븐 킹의 특기가 잘 발휘되어 있지요. 단지 능력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재핏 게임기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침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의 계획도 볼거리입니다.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후 게임기를 확산시켜 자살을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준다는 음모인데, 희대의 IT 전문가이자 정신병자 살인마인 브래디 캐릭터에도 잘 어울리는 설득력 높은 설정이었어요.

또 여러모로 열세였던 빌 호지스가 브레디의 최면 침투를 이겨내고 반격을 가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앞부분에 사용되었던 커다란 벨소리라는 복선이 적절하게 사용된 것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 명장면입니다! 너무나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 엔딩이지만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아,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냥 통증 때문에 침투에 걸리지 않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이를 위한 기지국 복선 역시 적절했고요.

다만 브래드의 음모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문제 투성이이기는 합니다. 왜 최면에 게임기를 반드시 써야 하는지가 가장 의문이에요. 그냥 화면을 들여다보고 탭하는 것으로 최면에 걸릴 수 있다면,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유도하는게 훨씬 빠르고 저렴한 방법이잖아요? 사이트 뿐 아니라 앱 형태로 뿌리면 갯수 제한이 있는 게임기보다 훨씬 넓게, 멀리 확산시킬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임기라는 특정 조건이 꼭 필요한 것으로 설명되지도 못한 탓도 큰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아울러 브레디의 자살 전염, 전파 계획은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좀 허무합니다. 대량 학살을 저지르려 했던 살인마가 개개의 사람들 마음 속 빈틈을 파고들어 자살을 유도 한다는게 너무 소박해 보였던 탓입니다. 피해자들이 주변인들을 죽이게끔 하는 장치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피해자가 고작 서너명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지요.

아울러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제롬의 비중이 등장이 적다는 것도 별로였어요. 이럴바에야 등장하지 않고 그냥 홀리와 빌 컴비의 활약만으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특히 이번 편에서 빌 캐릭터가 너무나 멋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고통도 참아가며, 심지어 마지막에 오줌까지 싸 가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친구와 선한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지금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하는 정말 멋진 올드 히어로거든요. 지금은 멸종해버린 서부영화 주인공인 셈으로, 죤 웨인이 늙어서 형사 역할을 맡는다면 이련 역할이 정말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여튼, 늙은 죤 웨인의 최후의 활약을 뒤로하고 젊고 잘생긴 신예가 마무리를 짓는 결말은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교하지도 않고, 추리물로써의 가치는 낮지만 스티븐 킹은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킬링타임용 책을 찾으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타임슬립이 무엇인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덧붙이자면, 빌 호지스 캐릭터가 정말로 멋지게 그려진 만큼 그의 젊은 시절 활약을 그린 프리퀄이 나와 주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15/11/11

마술은 속삭인다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1.5점

마술은 속삭인다 - 4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마모루는 공무원이었지만 거금을 횡령하고 사라진 아버지 때문에 고향에서 갖은 수모를 당하고 살아왔다. 어머니 사후 이모댁에 얹혀 살며 잠시 평화로운 시기롤 보냈지만, 택시 운전을 하던 이모부가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하고 말았다. 이모 가족을 돕기 위해 특기인 열쇠 따기 기술로 피해자 요코의 방에 잠입한 마모루는 그녀의 죽음에 수상한 흑막이 있음을 눈치채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1989년작 장편소설. 도입부부터 중반 전개까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연쇄적인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그녀들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파헤쳐 나가는 과정이 재미나거든요. 특히나 책 뒤 해설에서도 잠깐 언급되듯, 마모루가 이 사건에 얽히게 되는 계기가 마모루가 얹혀 사는 이모부의 택시에 요코가 추돌한 사고사라는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자연스럽게 두 사건이 만나 마모루가 사건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될 뿐더러, 이 추돌사고로 마모루의 뒤를 봐 주는 요시타케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니까요.

그러나 중반부까지의 흡입력 있던 전개는 뒤로 가면 갈수록 힘을 잃고 맙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핵심 트릭이 하라사와 노인이 구사하는 최면술인 탓입니다. 간단한 암시만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 몇 마디 걸어서 최면을 걸게 만들다니! 누가 봐도 수상합니다. 더군다나 쫓기는 입장이거나 뒤가 켕긴다면 더더욱 말려들지 않으려 할 텐데 당치도 않지요. 어떻게 죽은 여자들에게 최면을 걸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아울러 작중 꽤나 중요하게 언급되는 암시에 의한 서브리미널 효과도 최근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아니, 뭐 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작품 속 내용처럼 뒤가 켕기는 사람들이 삽입된 영상을 보고 폭주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한마디로 - 본 작품의 영상물을 감상하셨다는 각시수련님 말을 빌어 - 요약하자면 "트릭을 양념으로 치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 정도 최면술이면 이미 추리가 아니라 SF라 생각됩니다.

전개 역시도 마모루 시점이라 약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요코의 죽음 이후, 왜 그녀의 가족은 응답 메시지 테이프를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한 번 듣고 평범한 중학생이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았으니, 가족들 역시 간단하게 그녀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었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요?
게다가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간단하게 원격 조종 살인을 범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구태여 남긴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최면술사일 뿐인 하라사와가 다카기 가즈코가 숨은 곳을 알아낸 방법도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대충 쓴 느낌이에요.

또 진짜 사건의 원흉인 다카기 가즈코가 살아남은 뒤 구원을 얻는다는 결말도 석연치 않으며, 마모루의 열쇠 따기 능력이 몇몇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는 합니다만 필살기가 아닌 잔재주 정도에 그치는 것도 아쉽습니다. 마술사와의 한판 승부에서 큰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그냥 개인기 정도에 그치니까요.

아울러 마모루의 아버지가 공금을 횡령하고 바람을 피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자수를 했느냐, 도망을 쳤느냐가 가정에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다 주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과 기다림이 헛되었다는 것 때문에 마모루가 분노했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 매장당해도 싼 인물이이라서 딱히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게다가 어떻게든 마모루를 돌봐주려는 요시타케와 비교하면, 요시타케를 매도하는 하라사와 노인이야말로 사악한 연쇄 살인마인데 뭐 잘났다고 훈계를 늘어놓는지도 도무지 모르겠어요. 복수해야 할 대상인 다카기 가즈코가 아니라 다른 여성들과 취재를 한 것에 불과한 하시모토까지 죽인, 용서의 여지가 없는 악당이잖아요? 그가 말하는 정의나 마모루에 대한 충고 모두가 와닿을 리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모루와 미야시타 요이치의 왕따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고 전형적이라 할 말이 없습니다. 성장기 스타일의 일본 소설들은 왕따 이야기를 빼면 쓸 수가 없는걸까요? 이 정도 시련을 겪지 못하면 어른이 못 된다는 뜻인가? 여튼,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초중반부 전개는 나쁘지 않고 흡입력도 제법입니다. 그러나 엉성한 설정 탓에 잘 짜여진 작품으로 보기에는 무리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낡은 최면 이론을 가지고 너무 진지하게 작품을 쓴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에테르 세계관 시절에 쓰여진 SF가 떠오르고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피하시길 바랍니다.
1989년 일본 추리 서스펜스 대상 수상작인데, 최면술에 대해서 무지했던 시대였나봅니다.

2021/09/25

좀비 연대기 - 로버트 E. 하워드 외 / 정진영 : 별점 2.5점

좀비 연대기 - 6점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책세상

근대 시기 유명 장르 소설가의 좀비 관련 중단편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작가들의 명성과 장르 문학치고는 고전급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 성격은 유사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낡은 느낌이 강했던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는 다르게, "지옥에서 온 비둘기"라던가 "좀비 감염 지대"같은 시대 초월 명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최초로 '좀비'라는 말을 만들고, 아이티 부두교 좀비 설정을 확립했다는 "마법의 섬"과 같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작품도 눈여겨 볼 만 하고요. 크리쳐 호러물 외에도 저주받은 저택, 호러 모험 액션, 판타지에 SF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장르 스펙트럼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열 두편의 수록작 중 수준 이하 졸작도 제법 됩니다. 발표된지 100여년이 다 되어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요. 그리고 제목에서 기대했던, 우리가 지금 '좀비'라고 하면 떠올릴 몬스터가 등장하는 작품도 없습니다. 아이티 등 열대 섬나라에서 부두교 주술 등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려 노예처럼 부렸다는 초기 좀비 전설에 기반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이게 단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일한 설정을 그대로 반복한 판박이같은 작품이 많다는거지요.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클래식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그런 앤솔러지였습니다. 좀비라는 크리쳐의 창작 초기 설정과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옥에서 온 비둘기" 

그리스웰과 존 브래너는 비둘기 떼가 날아가버린 폐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중에 공포스러운 휘파람 소리에 잠을 깬 그리스웰은 2층으로 올라간 뒤, 도끼에 맞아죽은 브래너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도망쳤다. 도망치던 그리스웰을 구해준 보안관 버크너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수수께끼와 브래너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자 늙은 부두교 주술사를 찾아갔지만, 주술사도 뱀에 물려 죽었다.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버크너와 그리스웰은 흉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지만, 그날 밤 그리스웰은 악령에게 홀려 2층으로 향하는데...

좀비물이라기 보다는, 저주받은 저택 장르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죽은 브래너의 습격, 마찬가지로 사람을 습격해 죽이는 실비아 블래슨빌 모두 시체가 되살아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복수를 위해 부두교 주술로 저주한게 원인이고, 사람을 잡아먹지도 않으니, 저주물에 더 가깝고요.

저주받은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다가 악령에게 습격받는 초반부 묘사는 지금 읽기에는 다소 진부하고 심심했지만, 버크너 보안관 등장 이후부터는 아주 재미있었어요. 특히 버크너가 브래너의 시체를 발견한 뒤의 전개는 추리 소설을 떠올리게 해서 독특했습니다. 상황은 그리스웰이 범인일 수 밖에 없어요. 둘만 있던 흉가에서 한 명이 도끼에 머리를 맞아 죽었으니까요. 그러나 버크너는 그리스웰의 옷에 피가 전혀 튀지 않았던 점, 그리고 그리스웰이 범인이라면 죽은 버크너가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주장을 했을리 없다는 이유로 추가 조사를 벌입니다. 그리고 핏자욱을 따라 2층의 사건 발생 현장으로 이동한 뒤, 무언가 이상한 존재가 얽혀있다는걸 알게 되지요. 단서를 통한 추리,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수사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밀 방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3명의 가족이 목을 메고 죽어 있었다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진상도 오싹했습니다. 사람들을 습격해 죽였던 괴물 '주벰비'가 실비아 블래슨빌을 원망했던 혼혈 하녀 조안이 아니라, 실비아 블래슨빌이었다는 반전도 충격적이었고요. 조안은 주벰비가 되는 검은 술을 자기가 먹지 않고 주인에게 몰래 먹였던 겁니다. 이거야말로 진짜 복수네요.

믿음직하고 용감한 보안관 버크너와 겁 많은 애송이 그리스웰의 조합도 반 헬싱 교수와 조나단 하커 관계와 좀 비슷한데, 전형적이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 딱 맞는 조합이더군요. 무서움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겁쟁이와 사건을 해결하고 악령을 응징하는 용감한 보안관이 조합되니, 두려움과 공포, 액션과 정의의 응징을 다 얻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딱 한 가지, 너무 옛스럽게 쓰여졌다는 건 좀 아쉽습니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여러모로 부족한 묘사가 특히 거슬렸어요. 오래된 폐가, 몰락한 가문, 뱀으로 상징되는 저주의 주술,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령, 도망쳤던 생존자가 남긴 일기 등 모든 면에서 미쓰다 신조의 "흉가"가 떠오르는데, 공포를 자아내는 묘사와 전개는 전혀 미치지 못했거든요. 미쓰다 신조가 같은 작품을 썼다면 훨씬 무섭게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차라리 지금 방식으로 영상화하면 훨씬 대단한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좋은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검은 카난" 

커비 버크너는 고향 카난에서의 긴급 호출을 받고 귀향하다가 혼혈인 마녀의 유혹을 받았다. 최면에 걸렸던 버크너는 운 좋게 정신을 차리고 습격한 거구의 흑인 세 명을 물리쳤다. 마을에 도착한 버크너는 마을 흑인들이 모두 도망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조사를 통해 늪지대에 사는 괴인 솔 스타크가 배후에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조사 중 버크너는 마녀의 최면에 걸려 솔 스타크의 본거지로 본의 아니게 끌려가게 되었고, 친구 브랙스턴이 그를 돕기 위해 따라가는데....

부두교 주술사가 카난이라는 마을을 장악하려 하지만, 마을 지도자 버크너가 이를 물리친다는 호러 액션 활극입니다. 마녀의 최면, 주술로 만든 물고기 인간같은 공포스러운 요소가 등장하지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버크너 시점의 심리 묘사만 있는 탓이 큽니다. 버크너 캐릭터는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쾌남 영웅 스타일이라 공포를 크게 느끼지 않거든요. 공포에 사로잡힌 묘사도 잘 와 닿지 않더군요. 마녀와 괴물들이 총에 맞으면 죽는다는 것과, 최면술말고는 주인공을 크게 위협하지 못한다는 것도 작품이 무섭지 않은 이유이고요.

그래도 모험 활극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주인공 버크너는 전작의 버크너 보안관의 선조, 혹은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은데, 버크너 유니버스도 한 번 제대로 소개되면 좋겠네요.

"천 번의 죽음"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건 아버지와 그 부하들이었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나도 물에 빠져 죽었었지만 아버지의 연구 덕분에 살아났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이고 되살리는 식으로 연구를 계속하는데....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는 SF 호러 범죄물을 잭 런던이 썼다는건 특이했지만, 내용은 평이합나다.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건 "프랑켄슈타인" 에서부터 내려온 고전적인 설정이니까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섬에 틀어박혀 생체 실험을 한다는건 "닥터 모로의 섬"과 똑같고요. 물론 생체 실험의 대상이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로, 그가 반복적인 죽음과 소생을 거듭한다는 설정으로 확실히 차별화되기는 합니다. '폭력에 의하지 않고, 신체 장기에 아무런 훼손이 없는 죽음은 단지 생명의 보류 상태'라며 죽음과 소생을 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점도 독특했어요.

하지만 차별화 요소를 잘 살렸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독약, 질식 등으로 수차례 죽음을 맞는 고통이 잘 그려내지 못한 탓입입니다. 생체 실험의 고통을 극명하게 그려냈다면 호러물로 충분히 값했을텐데 말이지요. 과학적인 설명도 그럴듯해 보일 뿐, 실상 알맹이 없는 서술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갖은 노력 끝에 물질을 원소 상태로 되돌리는 장치를 개발했고, 이를 이용하여 아버지와 그 부하들을 없애고 탈출한다는 결말은 최악이네요. 아버지의 흑인 부하들이 자기 방으로 한 명씩 차례로 들어올 때 마다 없애고, 마지막에는 방에 들어선 아버지를 없앴다는데, 이럴 바에야 그냥 방에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칼로 찌르는게 빨랐을겁니다. 특별한 장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고, 피해자들도 한 명씩 들어와 사라질 정도로 감시가 느슨했는데 왜 진작에 탈출하지 않은건지도 이유를 모르겠고요. SF스럽게 만들기 위한 억지 장치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엄청난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보였던 아버지의 최후라기에는 너무 허무했고요.

유사한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는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호러물로는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가 부족했고, 결말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아이티 호텔에서 머물다가, 호텔에서 일하는 노파 마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지역 주민들과 호텔 직원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과거 아이티 독립 전쟁 당시 '소금을 먹지 마라'는 금기를 어겼다가 시체가 된 연인 트레생에 대해 말해 주는데...

뒤에 수록된 "좀비와 함께 걷다"를 읽어야 설정이 이해가 되는 작품입니다. "좀비와 함께 걷다"에 따르면, 좀비는 소금을 먹으면 자신이 죽었다는걸 깨닫고, 무덤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트래생은 물론 마리도 진작에 죽었던 좀비였다는 뜻이고요. 트래생이 흑인 해방 등의 의식을 가질 정도로 똑똑했던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노예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였다니, 다른 좀비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고 보면 되겠지요.

문제는 이 설정 외의 특별한 내용은 없다는 겁니다. 마리도 좀비였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고요. 죽었다는걸 깨달은 좀비들이 무덤으로 폭주하는 장면 묘사 정도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귀환자들의 마을" 

좀비 전설이 있는 열대 섬마을에 어느날 미모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에게 유혹당한 파파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괴담 소설로 유명한 라프카디오 헌의 단편인데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좀비와 다른, 열대 섬나라 좀비에 대한 설명과 파파가 관련된 이야기가 아예 별개로 진행되어 혼란스럽고, 별다른 내용도 없는 탓입니다. 섬마을의 여러 풍광에 대한 관능적이면서도 상세한 묘사를 걷어내고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한, 두페이지로도 충분했을 이야기입니다. 수록작 중 최악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나트에서의 마법" 

조티크 대륙의 절반이 사막인 나라 지라의 왕자 아다르는 노예 상인 샤라그에게 납치된 약혼녀 달리리를 찾아 여러 왕국을 헤멨다. 그러다 그녀가 향했다는 요로스 왕국으로 가는 상선에 탑승했지만 항해 중 폭풍에 휘말렸고, 상선은 사악한 섬 나트로 표류하다가 침몰했다. 달릴리의 구조로 홀로 살아남은 아다르는 나트의 마법사 우두머리 바카른을 만나, 그녀는 바카른이 되살려낸 익사자라는 걸 알게 되는데....

"코난 더 바바리안"을 연상케 하는 작품. 존재하지 않는 고대 왕국을 무대로 마법사와 영웅이 등장해서 대결을 펼치는 고대 판타지라는 점에서요. 그런데 결말이 예상 외라 놀랐습니다. 영웅 포지션인 아다르가 권력과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바카른의 두 아들 음모에 가담하여 바카른을 죽이려다고 되려 찔려 죽고 말거든요. 그리고 바카른의 아들에 의해 되살아나 좀비가 된다는게 끝입니다. 달릴리와 뭔가 관계가 이루어진다던가, 정의가 이루어진다던가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던 족제비 괴물은 어떻게 되는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이런 이유로 방대한 설정으로 이루어진 긴 서사물의 일부만 수록된 느낌입니다. 최소한 아다르와 달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주었어야 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아이티 공화국 헌법에 좀비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는 말에서 시작해서, 아이티에 진짜 좀비가 있다는 다양한 증언들이 이어지는 작품.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의 파운드 푸티지 영화같은, 페이크 논픽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좀비는 소금을 먹지 않고, 좀비가 소금 맛을 보면 죽었다는걸 깨닫고 열일 제쳐놓고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무덤으로 향한다는 설정에 기반한 경험담이 이어질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화이트 좀비" 

아프리카 엔스와지 지방의 행정관 제프리 에일럿은, 어느날부터 느껴지는 악취 탓에 겁에 질렸다. 안개 자욱한 어느날, 결국 에일럿은 쓰러지고 말았다. 그를 돌봐준 신부는 과거 에일럿과 함께 했던 전우 싱클레어의 미망인이 수상하다고 말했고, 에일럿은 탐문과 잠복 끝에 그녀가 부두교 주술로 시체들을 조종하는 현장을 목격하는데...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아프리카를 부대로 부두교 주술이 등장하는 이색작입니다. 서술은 장황하지만, 정작 내용은 에일럿이 잠복해서 부두교 좀비 축제? 현장을 목격하고, 거기서 싱클레어의 모습을 확인한 뒤 부두교 주술솨를 쏴 죽인다는게 전부입니다. 악취라던가 불길한 안개 등의 설정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신부의 존재도 불필요했어요.

게다가 좀비 사건의 원인, 결과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싱클레어 부인이 부두교 주술에 빠져 시체를 되살렸는지는 아프리카의 심장 운운하며 농장 관리 목적이었다고 소개되지만 명확하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싱클레어를 되살릴 이유도 없었고요. 에일럿이 악취를 느낀 이유 역시 밝혀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딱히 아프리카일 이유를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묘사만으로 작 중 무대가 아프리카처럼 느껴지지도 못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할로 맨" 

한 남자가 아프리카로부터 15년만에 영국으로 찾아왔다. 그는 부두 거리를 헤메다 모모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모모는 자신이 15년 전에 죽여 매장했던 고팍이 자기 식당으로 들어오는걸 보고 경악했다. 고팍은 표범 인간이 자신을 깨웠다며, 자기를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모모가 자신을 죽였기 때문이라면서. 식당에 고팍이 머문 뒤, 식당은 서서히 망해갔고, 딸 버블스마저 고팍에게 홀려 생기를 빼앗기자 모모는 고팍을 또 다시 한 번 죽일 결심을 하게 되는데....

죽은 자가 돌아왔다가, 다시 죽음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는 내용의 작품.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무서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무서운 포인트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단 모모 시점의 심리 묘사가 부족해요. 과거에 저지른 죄로, 손을 씻고 가족과 열심히, 단란하게 살아가던 소시민에게 지옥문이 열린 상황인데, 고팍의 존재를 너무나 쉽게 인정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묘사에서는 절박함이나 어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내용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습니다. 왜 표범 인간이 고팍을 되살렸는지, 고팍이 영국에는 어떻게 왔는지 등이 모두 드러나지 않아요. 버블스의 생기를 빼았는다는 것도 대충대충 넘어가고요. 결말도 허무합니다. 결국 고팍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걸로 마무리되는데, 이럴 거였다면 왜 진작에 없애지 않았는지 의문이에요.

여러모로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만 물씬 났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나는 농부 폴리니스로부터 아이티 지역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 들었다. 다른건 유럽과 흡사했지만, 이 지역에만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좀비였다. 나는 좀비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좀비"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는 작품으로 아이티에서 사람들이 단단한 대리석 무덤에 묻히고 싶어하고, 자기 집 마당에 묘를 만들고, 사람들 왕래가 많은 길가나 도로변에 무덤이 많은 이유로 좀비를 설명하는 등, 좀비를 실존하는 것 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아이티 형법을 증거로 내미는 장면도 그런 장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폴리니스가 해 준 늙은 추장 조제프가 데려온 좀비 이야기는 이 책에 앞서 수록되어 있는 다른 아이티 좀비 이야기들과 똑같습니다. 좀비가 소금기를 접한 뒤 다시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최후까지요. 좀비가 되었던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조제프에게 복수를 했다는 결말 정도만 차이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원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발표 당시에는 굉장히 새롭고, 무서운 이야기였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잘 짜여져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이 작품을 다른 유사 작품들보다 앞서 수록하지 않은 이 책의 문제가 너무 커 보입니다. 지금 책의 구성은, 후대의 아류작으로 원조의 가치가 퇴색되는 셈이거든요.

하여튼, 원조라는 역사적 가치를 더해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투셀의 창백한 신부" 

흑인 부자 마티외 투셀은 스무살은 어린 혼혈 아가씨 카미유와 결혼했다. 그리고 첫 번째 결혼 기념일에 투셀은 카미유를 시체와 함께 하는 파티에 초대했고, 카미유는 미쳐버리는데....

화자가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를 쓴 글 형태로, 화자의 말대로 '흐지부지되었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결말이 없거든요. 투셀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셀이 파티가 연 의도가 무엇인지, 시체들은 누구였는지, 아내에게 1년간 비밀을 지키다가 갑자기 시체 파티에 초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아요. 그렇다고 딱히 무섭지도 않았고요.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는 문제가 많았던 소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점비" 

그랜빌리 씨는 1차 대전에서 폐를 다친 뒤, 서인도 제도 세인트크로이 섬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섬에서 친해진 제프리 다 실바와 럼주 칵테일을 함께 하던 어느날, 그랜빌리 씨는 '점비'에 대해 물었고 다 실바는 자기가 젊었을 때 목격했던 일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신학교를 나온 집사 출신이라는 작가 이력이 특이했던 작품. 이런 이력이라면 좀비가 실제 있는 것 처럼 묘사되는 작품은 쓰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그러나 작품은 작가 이력만큼 특이하지는 않습니다. 다 실바가 친구 이베르센이 죽은 날, 이베르센의 유령을 만나고, 밤길에서 공중에 떠 있는 점비를 목격하고, 이베르센 집에서 개 인간을 만났다는 체험담이 이어질 뿐으로, "내가 했던 무서운 체험" 류의 기승전결없는 괴담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점비'나 개인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없고요.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줄 래야 줄 수가 없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 감염 지대" 

고든 파넘 박사는 아발론 섬에서 불사에 관련된 연구를 하다가, 죽은 시체를 되살리는 혈청을 개발했다. 마침 섬에 닥친 화산 폭발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자, 박사는 혈청을 이용하여 그들을 되살릴 생각을 하는데...

부두교 주술로 되살아난 시체가 아닌, 과학의 힘으로 되살린 좀비가 등장하는SF 호러물입니다. 앞서 잭 런던의 단편과 비슷한 소재이지만, 되살리는 과정을 나름 과학적으로 잘 설명해 주는게 큰 차이점이자 볼거리입니다. 특히 인체는 기계와 같다는 등의 고든 파넘 박사의 생명에 대한 이론이 아주 재미있고 풍성했어요. 이 이론과 박사가 여러 동물로 진행하는 실험으로 이야기 여러 개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예를 들어 '불멸성을 부여받은 실험체들이 번식을 통해 불멸성 유전을 증명했지만, 태어난 실험체들이 태어난 상태를 유지할 뿐이었다'는 이야기는 별도의 단편으로 꾸며도 재미있겠더라고요.

시체가 되살아나지만, 영혼과 두뇌가 없이 본능만 남은 상태라 야수로 돌변한다는 발상도 아주 좋았어요. 이들이 죽지 않는 상태로 군대, 경찰을 휩쓸어버리고, 잘려진 손발이 꿈틀대며 잘린 조각들이 엉망으로 붙어 괴물이 되어버리는 묘사도 일품이었고요. 절대 죽지 않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화산 폭발을 이용하여 우주 공간으로 날려버린다는 아이디어도 신선합니다. 스케일이 정말 남달라요.

물론 화산 폭발을 사람이 제어한다는건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기에,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이 정도 허풍은 충분히 허용범위 안쪽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아니 시대를 초월한 끔찍한 아비규환을 그려낸 SF 좀비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영화로 나와도 아주 근사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20/09/20

심리 조작의 비밀 - 오카다 다카시 / 황선종 : 별점 3점

심리 조작의 비밀 - 6점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황선종 옮김/어크로스

사이비(책 속에서는 컬트 교단이라고 칭함) 종교나 각종 강매 행위가 어떠한 방식으로 심리 조작을 일으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는지를 상세하게 파헤쳐서 알려주는 책입니다.
심리 조작, 세뇌, 최면 등이 소개되는데, '심리학'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지 않고 실제로 심리 조작과 세뇌, 최면을 거는 방법 및 실제 사례들이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어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항상 궁금해왔던 질문에 대한 답도 많고요. 예를 들면 '사이비 종교를 믿는 이유는 폭력적인 남편에게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이를 의심하면, 자기 자신마저도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더 강한 믿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네요.
소규모 집단, 배타적인 작은 팀에서 외부 정보가 차단되면 공동 생활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는 테러리스트 훈련 과정은 왜 시골 마을이 배타적이고 자신들만의 룰을 강요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에 딱 들어맞고요.
또 애착불안이 강한 의존성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자신을 지탱해갈 수 없기에 가까이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게 되기 쉽다고 합니다. 즉, 눈앞에 그 사람이 있을 때는 헤어지는 일은 생각도 못할 정도로 끈끈하게 연결된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눈앞에서 사라지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아주 간단하게 다른 사람에게로 가버리는 거지요. 남자 친구가 군대 간 사이, 여자 친구가 복학생 오빠와 사귀는건 애착불안이 강한 의존성 인격장애일 수 있다는 겁니다!

더블 바인드라는 기법도 눈길을 끕니다. 상대가 무언가 해주기를 바랄 때, 그 일을 할 생각이냐 아니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선택지를 준비해 질문하는 방법으로, 복수의 선택지가 제시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국 같은 결과로 유도됩니다. 자동차를 살까말까 갈등하는 고객에게 "이 장치를 달아놓을까요?” 아니면 "자동차 색깔은 흰색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검은색을 좋아하세요.?"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식으로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다음 선택 사항으로 고객의 관심이 향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는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싶을 때 “국어와 수학 중 어느 쪽부터 할까?”, “숙제를 엄마와 함께 할래? 아니면 혼자서 할래?" 라고 공부를 하는걸 전제로 묻는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합니다. 강하게 저항하리라고 예상되는 경우에는 “숙제를 간식 먹기 전에 할래? 아니면 먹고 나서 할래?”와 같은 식으로 한 발 물러난 제안을 하여 하나를 선택하게 하거나, 반대로 “숙제를 할래? 목욕탕 청소를 할래?”와 같은 식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함께 넣어서 선택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네요.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라는 말을 들으면, 명령받았다고 받아들여 반항심이 생기지만 간접적으로 넌지시 말하거나, 하는 것을 전제로 놓고 말하면 저항감이 생기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놀고 있을 때 공부하라는 독촉은 효과를 보기 어렵지만, “내년 이맘때에는 이렇게 가족이 모두 모여 한가롭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겠네. 대학교는 1학년 때가 가장 바쁘다고 하니 말이야.”와 같이 말하는게 훨씬 효과가 좋다는 뜻이지요.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비난도 명령도 아니기에 마음에 저항이 생기기 어려우니까요. 그럴싸 합니다. 꼭 한 번 써 먹어 봐야겠습니다.

조언은 항상 긍정적으로, 좋은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실제 사례로 설명해 주어서 와 닿았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에릭슨 박사의 이야기로, 어느 날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개선되지 않는 10대 소년에게 에릭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너의 행동이 얼마나 변할지 상상조차 못하겠는데." 이 말은 소년이 변하리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단정 짓지도 않지요. 또 이 말을 들은 소년은 안도감과 함께 자신의 행동이 전문가가 예측조차 못할 정도라고 바뀐다는 것에 자극받아서 실제로 소년의 행동은 변했다고 합니다.
상대가 예스라고 대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방법으로 신뢰성을 높여 최종적인 질문에도 예스라고 대답하도록 이끄는 예스 세트도 같은 원리입니다. "노!" 대신 상대가 “예스!"라고 대답하도록 유도하면, 상대의 저항을 없애고 본심에 다가서거나 결단을 좌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군요. 예를 들면 “그와 헤어지고 싶지 않죠?”라고 묻는 식입니다. 또는 “그와 헤어지고 싶나요? 아니 그럴 리가 없죠.”와 같이 자신이 한 말을 부정하거나요. 이렇게 하면 “아뇨.”라고 부정하고 저항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건 심리 상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표현된 말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문제와 마주 서서 의식화된 경우에 한하거든요. 문제와 마주 서기를 피하고 핑계만 생각할 때는 직접적으로 지적당하면 더욱 강하게 저항하고 부정하게 되는거죠.

생활과 행동을 유형별로 분류해놓고, 다음 행동이나 생각으로 전환시킬 때 신호가 되는 자극을 주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에요. 정해놓은 음악을 틀거나 벨을 울리는 행위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뇌에 대한 굉장히 상세한 이론과 실제 예가 소개되는 부분도 눈길을 끌고요. 이 부분은 내용이 워낙 많아서 제가 요약해서 설명드리기는 거의 불가능한데, 정말 그럴듯해서 와 닿았습니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주제의 반복이 많고, 목차가 조금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 들거든요. '오옴 진리교' 사건 직후 발표된 책인지 오옴 진리교 이야기도 지나치게 많고요. 읽다보면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아요.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한 좋은 책이었습니다. 심리 조작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된 덕분입니다. 제가 소개해드린 부분은 빙산의 일각이니만큼, 이런 류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17/01/23

야간열차 살인 사건 - 케리 그린우드 / 정미현 : 별점 1.5점

야간열차 살인 사건 - 4점
케리 그린우드 지음, 정미현 옮김/딜라일라북스

귀족 영애인 프라이니는 하녀 도트와 함께 밸러랫 행 열차로 여행 중, 일등실 객차에 클로로포름이 뿌려지는 상황에 마주쳤다. 프라이니의 기지로 승객들은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승객 중 한명인 헨더슨 부인이 기차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헨더슨 부인의 딸 유니스는 명탐정으로 이름난 프라이니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프라이니는 기차 승객으로 기억을 잃은 제니까지 떠 맡은 채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데..

귀족영애 탐정 프라이니 시리즈입니다. 어쩌다 보니 세 번째 부터 읽게 되었네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무리 보아도 그 어떤 매력을 찾을 수 없는 졸작입니다. 일단 주인공 프라이니부터 한심합니다. 매력적인 외모와 두뇌, 행동력에 재산까지 갖춘 자유로운 신여성이라는 설정인데 도가 지나쳐서 짜증이 납니다. 비현실적인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요.
그나마 앞선 설정들이야 만화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뻔하디 뻔한 설정이라 쳐도, 남자가 마음에 들면 두 번째 만남만에 정사를 갖는 모습을 자유로운 신여성(?)이라고 포장하는건 무리입니다. 여성 모두를 유혹하는 싸구려 펄프 픽션마초를 빗대어 만든 설정으로 보이는데, 일단 정통파 계보에 드는 탐정들 중에 그런 싸구려는 없으며, 있어도 대체로 그러한 유혹은 사건 해결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사용됩니다. 아니면 상대 여성이 여성의 매력을 이용해서 벌이는 음모이지요. 그러나 이 작품 속 정사는 사건 해결과는 무관한, 순전히 프라이니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심지어 상대방 린지가 숫총각이라는 점에서 '숫총각 사냥하는 선배 누나 혹은 유부녀'가 등장하는 싸구려 성인물에 가깝습니다. 아니,  싸구려 성인물은 성욕 자극이라는 대 명제에 충실한 반면 이 작품은 그렇지도 못하니 더 별로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대단한 분장도 하지 않았는데 앨러스테어가 기차에서 보았던 젊고 핸섬한 승무원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부터 문제입니다. 아무리 클로르포름에 취했어도, 사건 직후 키라던가 얼굴 인상을 그대로 기억하고 하고 증언하는걸 보면 설득력이 낮습니다. 하지만 이건 실종된 헨더슨 부인 살인사건의 진상에 비하면 솔직히 약과입니다.

  1. 기차에서 헨더슨 부인의 목을 밧줄로 묶고
  2. 그 줄을 급수탑으로 던진 뒤
  3. 급수탑을 기어 올라가 밧줄을 잡아당겨 노인을 끌어낸 후
  4. 시체 위로 뛰어내렸다.

라는데, 비록 급수 때문에 3분간 정차했다 하더라도 2~3의 과정을 그 짧은 시간 어떻게 했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헨더슨 부인을 창문에 기대어 놓은 후, 객실 지붕에 올라가서 헨더슨 부인의 목에 밧줄을 걸고 그것을 선로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급수탑에 던진 뒤 10미터를 전력 질주하고 급수탑을 올라간 뒤 밧줄을 잡아당겼다? 이게 3분 안에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가능했다 하더라도 앨러스테어가 클로르포름을 이용하여 객실 승객들을 마취시킨 다음이라면 이러한 복잡한 행동으로 노부인을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도주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어 수사에 혼선을 주지도 못하니까요. 마지막까지 이유가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요. 이럴 바에야 그냥 창 밖으로 내던지는게 훨씬 쉬웠을 겁니다.

또 승무원을 가장한 핸섬한 젊은이가 유력한 용의자이며, 동기와 외모 등을 종합해보면 앨러스테어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그의 유일한 알리바이가 친구 린지에 의해 뒤집혀 버린다는 전개도 시시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리의 여지도 없어서 프라이니가 사건 해결을 위해서 하는 것 역시 전무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동거인의 조사조차 게을리한 경찰의 무능함만 돋보이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기억을 잃은 소녀 제인 사건은 프라이니와 그의 친구들(버트와 세스)의 활약으로 해결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헨더슨 부인 살인사건보다야 낫긴 합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버튼이 최면술로 불쌍한 고아 소녀들이나 납치한 소녀들을 사창가에 팔아 넘긴다는 범행 자체가 문제에요. 최면술을 기억을 완벽하게 없앤다던가,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식으로 무슨 마법처럼 묘사하고 있는 탓입니다. 최면술이 설령 마법과 같은 효과를 발휘했더라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 처럼 30여명 이상에게 모두 성공적으로 최면을 걸거나, 특정한 자극이나 신호 없이 눈빛과 대사만으로 순식간에 최면을 걸고 푸는건 무리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고양이에게 눈을 공격당한 최면술사 헨리 버턴이 그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결말도 후련하지만, 역시 과학적으로 보이지는 않았고요. 하여간 최면술이 등장한 작품치고 제대로 된 걸 못 봤어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책 만듬새도 괜찮고 여성 작가다운 꼼꼼한 묘사에 약간의 점수를 더하나 추리물로서는 그 어떤 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망작입니다. 앨리스테어가 행하는 여자에 대한 막되먹은 행동과 "자고로 여자란 출산 이후엔 전부 쓸모없어지지" 등의 대사를 보면 작가의 의도는 대충 짐작이 가긴 합니다. 유능하고 강력한 여성이 멍청한 남자들을 가지고 놀고 사악한 마초를 응징하는 페미니즘 영웅물을 노골적으로 그리려 한 것이겠지요. 뭐 그 생각이 잘못된건 아니에요. 문제는 그게 뭐든간에 최소한의 완성도는 있어야 했습니다. 2017년 들어 처음 읽은 추리 소설이 이따위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네요.

덧붙이자면 TV 시리즈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역시나 그닥 기대가 안되는군요. 추리보다는 작중 묘사되는 온갖 화려한 의상들이나 세세한 디테일들, 그리고 사창가에서의 격투라던가 마지막 프라이니 집 앞에서 앨러스테어와 벌이는 격투 등 액션의 비중이 높은 추리 속성이 조금 들어간 시대극 액션물이라 생각되거든요. "각시탈" 처럼요! 잠깐 찾아보았는데 프라이니 캐릭터도 딱히 매력적이지도 않고요. 여튼 이 작품에 대해서는 책이든 영상물이든 더 찾아볼 일은 없을 겁니다.

2023/08/26

명탐정의 제물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 2.5점

명탐정의 제물 - 6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상 그리고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 오토야 다카시의 조수 리리코는 민박집에서 일어났던 밀실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뒤, 학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사무실을 떠났다. 귀국 예정일이 지나도 리리코가 돌아오지 않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오토야는 가이아나의 조든 타운으로 향했다. 알고보니 리리코는 짐 조든이 이끄는 종교의 광신도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 조든 타운을 조사하기 위해 찰스 클라크가 조직한 조사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 직후 오토야와 동행했던 저널리스트 노기가 타운의 보안군에게 총살당했고, 뒤이어 클라크 조사단원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불가능 상황에서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리리코는 오토야와 함께 조사를 펼친 끝에 미국 하원의원 라일랜드가 조든 타운을 방문한 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고 불가능 상황이 된 건 신도들의 의지였다는 추리를 밝혔다.
그러나 라일랜드 일행을 타운 보안군이 사살하고 리리코마저 살해당한 날, 오토야는 대규모 자살쇼를 앞둔 조든과 신도들 앞에서 숨겨져 있었던 진상을 폭로하기 시작하는데....

최근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 있는 일본 본격 추리물. 2023년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을 비롯하여 '고노미스',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등 유명 미스터리 어워드 상위권을 휩쓴 작품이지요.

유치해보이는 표지와 부제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화려한 수상 이력이 증명하듯 '본격 추리물'로의 가치가 높다는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무려 4건의 불가능 범죄를 비롯하여, 도입부의 요코야부 요스케 밀실 살인 사건 등 사건도 풍성하고,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단서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며, 오토야와 리리코를 통해 각 사건마다 여러가지 추리가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리리코가 왜 오토야에게 가짜 서명이 되어 있는 <<탐정 교과서>>를 가져왔었는지 등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추리들도 잘 짜여져 있고요.
특히 핵심이 되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불가능 범죄에 대한 트릭과 추리가 기발해서 만족도가 높습니다. 사건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은데요.
  1. 전 FBI 조사관으로 인민교회 간부로 위장한 알프레드 덴트가 밀실인 자기 방에서 칼에 찔려 죽음.
  2. 조든 타운 요리반 멤버들과 티 타임을 갖던 사이비 과학 탐정 조디 랜디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었는데, 차는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들 모두가 같이 마셨음.
  3. 한국인 이하준이 상, 하반신이 토막난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이하준은 가방에 갇혀서 오토야와 리리코의 눈을 피해 빠져나갈 수 없었음.
  4. 묘지에서 리리코를 살해한건 아이였는데,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는 아이는 누구도 묘지에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고 단언함.
여기서 진상은 '조든 타운의 광신도들은 스스로 아무도 질병이나 몸의 이상이 없으며, 사람들을 이상이 없는 완전한 모습으로 바라보지만 외부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현재 그대로 바라본다'는, 오토야의 표현을 빌자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를 통해 밝혀지게 됩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덴트는 이미 칼에 수차례 찔린 채로 방에 들어간 뒤 문을 닫고 밀실을 만든 뒤 죽었습니다. 그러나 방에 가던 덴트를 목격했던 Q는 덴트의 치명상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조든 타운의 신도가 몸에 상처가 있을리 없기에, 기억에 왜곡을 일으켰던 겁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 조디 랜디는 오른 손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의 입이 닿는 부분에 묻혀진 독을 먹고 죽었습니다.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 중 크리스티나는 오른 손이 없었고, 블랑카는 왼손잡이였으며 레이첼은 오른 손가락이 골절되어 오른 손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오른 손으로 차를 마셨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범인은 사전에 레이첼의 오른 손가락을 부러뜨렸지만, 레이첼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도 레이첼이 다쳤다는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사건에서 범인은 감방에서 이하준을 살해한 뒤, 상하체를 토막내어 각각을 간수 프랭클린을 이용해 밖으로 옮겼습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다리가 있다고 믿었기에, 휠체어 하반신 쪽에 설치(?)된 사체 토막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시체를 옮길 때 마다 범인에 의해 기절했던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요. 
네 번째의 리리코 사건은 범인 레이 모튼이 어른이지만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던 탓에 아이같은 외모를 가졌던게 이유였습니다. 오토야는 실제 그대로 어린아이를 목격했지만,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의 눈에 레이 모튼은 정상적인 성인이었기에 상반된 증언에 의한 불가능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광신자 집단의 잘못된 믿음같은 일종의 대규모 집단 최면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기는 했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작품 중에서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이 대표적이지요. 특정 집단 전체에 걸려있는 일종의 최면으로 정보 자체가 왜곡된다는건 동일합니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다카마가하라의 범죄>>는 '현인신은 신이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녀가 조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보초 눈에 보이지 않았다'라는, 종교 단체의 신앙으로 비롯된 현실 왜곡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아예 똑같은 발상일테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과 트릭을 꽤 현실적으로, 설득력있게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정신병자 교주가 주도하여 신도들이 집단 자살했던 가이아나 존스 타운 사건 (인민 사원 사건)을 사건의 바탕으로 삼고있는 덕분입니다. 실제 사건을 본격물로 풀어내어 다채로운 트릭을 선보인 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다소 팩션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게 좋더라고요.

하지만 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 외의 추리들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문제는 큽니다. 리리코의 추리부터 살펴보자면, 그녀는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다고 - 덴트는 밀실에서 실수로 칼에 찔려 죽었고, 조디 랜디는 지병인 협심증으로 사망했으며, 이하준은 간수 프랭클린으로 변장하여 휠체어를 타고 급경사에서 고속으로 도주하다가 와이어에 걸려 토막이 났다 - 생각했습니다. 이를 발견한 조든 타운의 신도들이 '질병도 없고, 사고도 없는 조든 타운'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현장을 조작했다고 추리했고요. 
그런데 협심증이야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칼이 튀어 등에 찔려 죽었다? 고속 휠체어 이동으로 몸이 토막났다? 솔직히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이런 추리에 수긍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물론 이는 사건을 대충 수습해서 무마하기 위해 억지로 풀어낸 추리였다는 전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오토야의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는 더 한심했습니다.
오토야는 덴트의 방을 밀실로 착각하게 만든 열쇠와 조디 랜디에게 다과회 시점에 녹아내리도록 독이 든 캡슐을 낮은 온도에서 녹는 저융점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은 별다른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조든 타운에서도 어떻게든 가공할 수 있는 소재였을 수는 있어요. 문제는 이 합금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았을테고, 원하는 모양으로 딱 맞춰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때 맞춰 녹아내리도록 한다는건 더 말도 안된다는 겁니다. 이건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사용될 수준의 트릭이었어요. 그나마 3일 전 사망했던 오토야의 지인 노기의 사체를 토막내어 이하준 사체로 위장한 뒤 발견되도록 만든 다음에 이하준을 살해했다는 추리 정도만 괜찮았습니다. 이후 이하준 사체를 토막내서 공동묘지 관리 오두막의 노기 사체와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죠.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의 끝이 짐 조든이 범인이라는건 설득력이 더욱 약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을 사용할 수 있고, 이하준의 사체를 빼돌리기 위해 1감옥에 갇혀 있던 오토야와 리리코를 석방시킬 수 있었던건 짐 조든 밖에 없었다는게 근거인데, 애초에 저융점 합금을 사용했다는게 말도 안될 뿐더러, 짐 조든은 앞서 맹인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낮다는게 이미 언급되기에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조든이 카리스마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의 천벌같은 불가능 범죄를 저질렀을거라는 동기도 미흡하기 짝이 없고요. 설령 조든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한들, 직접 범행을 저지를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수족같은 간부나 광신자를 이용하겠지요. 맨슨 패밀리의 찰스 맨슨이나, 오움 진리교의 이시하라 쇼코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애초에 '명탐정' 들이 다수 등장하는 설정부터가 별로에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괴사건 해결 전문 명탐정을 실체 있었던 사건과 결합하여 풀어나가니 괴리감만 크게 느껴집니다. 오토야와 리리코를 사이비 종교 전문가로 설정해서 조든 타운으로 향하게 만드는게 훨씬 좋았을거에요.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기는 하나, 너무 과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느낌도 들게 만듭니다. 대표적인게 덴트 방 옷장의 혈흔입니다. 등에 칼을 찔렸다고 혈흔이 저렇게나 튄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문이 어떻게 열리든 그게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고요.

도입부의 밀실 살인 사건도 그닥입니다. 밀실 안에서 죽은 사람은 유명탐정 요코야부 유스케였고 사체에 남겨진 탄환 감식 결과, 그를 쏜 건 10여년 전 권총을 훔친 뒤 11명을 사살했던 108호 사건의 범인이었다는 사건이지요. 오토야는 추운 날씨인데도 요코야부가 얆은 옷에 난방도 켜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는 범인이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갔으며, 그 이유는 겉옷에 총을 쏜 흔적을 숨기기 위해서였고, 따라서 요코야부는 자살했다, 이유는 요코야부가 108호였기 때문으로, 실수로 권총이 오발된 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창 밖 바다에 총과 겉옷을 버렸고, 그 때 그걸 목격한 거리의 떠돌이 소년을 쏴 죽였으며, 문만 열어두면 침입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여겨졌겠지만 힘이 다해 문을 열기 전에 죽고 말았다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리리코는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간 건 자기보다 큰 재킷을 입고 있었던 거리의 떠돌이 소년이며, 그가 바로 108호였다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요코야부에게 원한을 품은 108호는 요코야부에게 총을 쏜 뒤 오토야의 추리처럼 그를 108호로 몰기 위해 총을 객실에 두고 나왔는데, 기력이 남아있던 요코야부가 창 밖의 108호를 쏴 죽인 뒤 108호로 오인받지 않으려고 권총을 던져버렸다면서요. 108호는 10년 전에도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는데 지금도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이유는, 성인이 되지 못하는 선천성 질환인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경찰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게 됩니다.
오토야와 리리코의 추리는 괜찮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켜지 않는 나방과 입지 않은 외투, 안에서 보기에 열릴 것 처럼 보이지 않는 바다로 향한 창, 다른 객실 투숙객이 들은 물 튀기는 소리 등 단서도 잘 제공되고 있거든요. 
하지만 총을 훔쳐 11명이나 죽였던 범인이 알고보니 성장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었다는게 너무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며,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오토야가 조든 타운 신도들을 모두 독살한 진범이었다는 마지막 진상으로 이어진다는건 해도 너무했습니다. 명탐정 리리코가 고작 세 명을 살해한 잡범에게 살해당했다는걸 인정할 수 없어서 - 요코야부는 11명을 죽인 108호에게 죽었는데! - 수백명을 참살하도록 만들었다는데, 정말 가관이었어요. 일본식 명탐정 허세의 극을 달리는, 정신줄 놓게 만드는 황당한 동기였습니다. "탐정은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탐정의 역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도 옥의 티이고요. <<유리탑의 살인>>도 그렇고, 왜 이렇게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동기야 어쨌건 오토야가 독을 탔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루이스의 유서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요. 신도 중 생존자였던 Q가 루이스가 이상했지만, 당시 조든 타운 신도였기에 이를 몰랐다는 주장을 펴는 것 역시 입증할 증거는 전무하고요. 오토야가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고 체포되어 수감될 이유가 도저히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 실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추리와 결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솜씨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만화같은 불필요한 설정, 그리고 추리에 사족이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건 분명하니, 추리 애호가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3/12/15

"우먼 인 윈도"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우먼 인 윈도" 속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목록입니다. 책 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0월 24일 일요일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도리스 데이 주연, 히치콕 감독이 자신이 1934년 만든 동명의 영화(영국) 를 리메이크한 작품, 휴가를 보내던 가족이 암살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극중에서 도리스 데이가 부른 'Que Sera, Sera'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길다(Gilda)
1946년. 미국. 찰스 비도르 감독, 리타 헤이워스, 글렌 포드 주연, 도박꾼 조니는 카지노 사장의 심복이 된다. 사장의 집에 초대받아간 조니는 사장의 부인이 된 전 애인 길다를 만난다. 두 사람은 강하게 이끌리고 선을 넘는다. 리타 헤이워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이다.

10월 27일 수요일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년, 미국, 자크 투르뇌 감독. 로버트 미첨, 제인 그리어 주연, 왕년의 사설탐정으로, 지금은 은퇴하고 주유소에서 일하는 제프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조용히 살아가려던 그의 앞날에 과거의 위험한 사랑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에어플레인(Airplane)
1980년. 미국. 데이비드 주커, 제리 주커 공동 감독 및 주연, 택시 기사인 테드 스트라이커는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기억 때문에 비행공포증을 앓는다. 어느 날, 비행 승무원인 여자친구 일레인이 결별을 선언하자 테드는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데 식중독으로 기장이 정신을 잃고, 테드가 조종간을 잡게 된다.

10월 29일 금요일
디아볼릭(Les Diaboliques)

1955년, 프랑스,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 시몬 시뇨레, 베라 클루조 주연, 폭력적인 남편인 미셸 때문에 괴로워하는 크리스티나에게 미셸의 정부인 니콜이 찾아와 함께 그를 죽이자고 제안한다.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미셸을 죽이고 시체를 수영장에 던지지만, 그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몰락한 우상(The Fallen Idol)
1948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랠프 리처드슨, 미셸 모건 주연,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 대사관 집사의 아내가 죽고, 유일한 목격자는 어린 소년 필립이다. 유럽 심리 스릴러의 고전.

공포의 내각(Ministry of Fear)
1944년, 미국, 프리츠 랑 감독, 레이 밀랜드, 마조리 레이놀즈 주연, 제2차 세계대전 중 출소한 닐이 뜻하지 않게 첩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0월 30일 토요일
39 계단(The 39 Steps)

193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버트 도넷, 매들린 캐럴 주연, 리처드는 자신이 첩보원이라고 주장하는 애너벨라를 돕는다. 다음 날 새벽, 애너벨라가 공격을 받아 죽고, 살인 혐의를 뒤집어쓴 리처드는 도망자가 된다.

이중배상(Double Indemnity)
1944년, 미국 빌리 와일더 감독, 프레드 맥머레이, 바버라 스탠윅 주연, 보험회사 직원인 월터는 고개인 디트리히슨의 집에 방문 했다가 그의 아내 필리스의 유혹에 넘어간다. 두 사람은 디트리히 슨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보험사는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수사에 들어간다.

가스등(Gaslight)
1944년, 미국. 조지 큐커 감독. 샤를르 보와이에, 잉그리드 버그먼, 조셉 코튼 주연. 폴라는 잘생긴 그레고리와 결혼해 상속받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외출을 막고,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고 간다.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이라는 심리학 용어와 관련이 있다.

파괴공작원(Saboteur)
1942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프리실라 레인, 로버트 커밍스 주연, 공장에서 일하던 배리는 화재로 친한 친구를 잃고 방화범으로 몰린다. 배리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방화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려 한다.

빅 클락(The Big Clock)
1948년, 미국, 존 패로 감독, 레이 밀랜드, 찰스 로튼 주연, 어떤 이를 살해한 언론 재벌 얼은 무고한 남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남자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 한다.

그림자 없는 남자(The Thin Man) 시리즈
1934~1947년, 미국. 윌리엄 파월, 머나 로이 주연, 은퇴한 경찰인 닉 찰스와 그의 아내 노라 찰스가 사건을 풀어가는 코미디 탐정물, 은퇴한 형사인 닉 찰스는 부유한 집안의 딸 노라와 결혼한다. 닉은 느긋하게 은퇴 생활을 누리고 싶어하지만 스릴을 원하는 노라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에 뛰어든다. 대실 해밋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모두 6편이 있다.

도살자(The Butcher, Le Boucher)
1969년, 프랑스, 이탈리아. 클로드 샤브롤 감독, 스테파니 오드런, 장 얀느, 안토니오 파살리아 주연, 시골 학교에 부임한 교사 엘렌은 푸줏간 주인 포폴을 만난다. 포폴은 엘렌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엘렌은 거부한다. 한편 마을은 연쇄 강간, 살해 사건으로 흉흉해지고 엘렌은 포폴을 의심한다. 히치콕을 모방했으면서도 히치콕보다 더 히치콕답다는 평을 받았다.

다크패시지(Dark Passage)
1947년, 미국, 델머 데이브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 로런 바콜 주연, 빈센트는 아내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가까스로 감옥에서 탈옥한 빈센트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하고 그런 그를 아이린이라는 여자가 돕는다.

나이아가라(Niagara)
1953년, 미국, 헨리 해서웨이 감독. 마릴린 먼로, 조셉 코튼, 진피터스 주연.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 온 신혼 부부가 다른 투숙객 부부의 갈등에 휘말린다.

샤레이드(Charade)
1963년, 미국. 스탠리 도넌 감독. 오드리 헵번, 캐리 그랜트 주연, 남편의 재산을 노리는 남자들에게 쫓기는 여자 레지나와 이를 돕겠다고 나선 조슈아가 파리에서 겪는 일을 다룬다.

서든 피어(Sudden Fear)
1952년, 미국. 데이비드 밀러 감독, 조안 크로포드, 잭 팰런스 주연, 상속녀이자 극작가인 마이라는 배우인 레스터를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레스터에게는 아이린이라는 정부가 있었다. 레스터는 아이린과 함께 마이라를 죽이고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
1967년, 미국, 테렌스 영 감독, 오드리 헵번, 알란 아킨 주연, 수지는 최근에 시력을 잃었다. 그녀의 남편은 비행기에서 인형을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인형 속에는 밀수된 마약이 있었고, 악당들은 수지에게 접근해 인형이 숨겨진 곳을 알아내려 한다.

배니싱(The Vanishing)
1988년, 프랑스, 네덜란드, 조지 슬루이저 감독. 버나드 피에르 도나디우, 기니 베르보에츠 주연, 연인인 렉스와 사스키아는 여행을 떠난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사스키아가 실종되고 렉스는 그녀를 찾아 주변을 뒤진다. 그리고 삼 년 후, 렉스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그는 평범한 교사로 보이지만 실은 정신병자였다.

실종자(Frantic)
198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해리슨 포드, 베티 버클리 주연, 파리로 여행을 온 부부, 리처드가 샤워를 하는 사이 호텔방에서 부인이 사라진다. 리처드는 아내의 실종이 바뀐 가방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s).
2013년, 미국,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루니 마라, 채닝 테이텀, 주드 로 주연, 우울증 환자 에밀리는 의사인 뱅크스가 처방해준 신약을 복용하고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모든 것이 약의 부작용 때문이라 믿는다.

카사블랑카(Cassablanca)
1942년, 미국, 마이클 커티스 감독,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 모로코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릭은 우연히 옛 사랑인 일자를 만난다.

밤 그리고 도시(Night and the City)
1950년, 미국, 영국. 줄스 다신 감독, 리처드 워드마크, 진 티어니 주연,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는 해리는 은퇴한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를 만나고, 생각지도 못한 음모에 휘말린다.

소용돌이(Whirlpool)
1949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리처드 콘트 주연. 마비 증상으로 고통받는 여자가 최면요법을 시도한다. 하지만, 최면에서 깨어난 그녀는 기억에 없는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고, 용의자가 된다.

안녕, 내사랑 (Murder, My Sweet)
1944년, 미국,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 디 포웰, 클레어 트레버, 앤 셜리 주연, 전직 사기꾼의 여자친구를 찾는 일에 고용된 필립은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미스터리에 빠진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나이트 머스트 폴(Night Must Fall)
1937년. 미국, 리처드 소프 감독. 로버트 몽고메리, 로사린드 러셀 주연, 브람슨 부인은 고립된 저택에 사는 자산가이다. 그녀는 저택을 돌봐달라며 대니를 고용한다. 그녀의 조카 올리비아는 그에게 끌리면서도 그를 의심한다.

로라(Laura)
1944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데이나 앤드루스 주연, 광고회사 디자이너인 로라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고, 한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10월 31일 일요일
현기증(Vertigo)
195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주연, 고소공포증 때문에 은퇴한 경찰 스코티는 사립탐정이 된다.그는 사건을 맡았다가 마들레인이라는 여인에게 연정을 느끼고, 마들레인이 자살한 이후 그녀를 너무나 닮은 주디라는 여인에게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조셉 코튼, 알리다 발리 주연,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삼류 소설가 마틴스가 친구에게 일자리를 얻으려고 비엔나를 방문하지만, 친구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된다.

리피피 (Du Rififi Chez Lex Hommes)
1955년, 프랑스, 이탈리아. 줄스 다신 감독, 진 세바이스, 칼 모너 주연,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토니는 여전히 충성스러운 부하 조를 다시 만난다. 조는 토니에게 보석상을 털자고 제안한다. 이 마지막 한탕을 끝으로 은퇴하자고 말이다.

11월 2일 화요일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고리 펙 주연, 정신병원의 의사로 근무하는 콘스탄스는 새로 부임한 의사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사실 에드워드가 아니었고, 죽은 친구의 이름임이 밝혀진다.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추적을 받는다.

죽음의 항해 (Dead Calm)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 필립 노이스 감독, 니콜 키드먼, 샘 닐주연,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가 요트 여행을 떠난다. 조용할 줄만 알았던 여행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난 한 남자로 인해 흔들린다.

레베카(Rebecca)
1940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런스 올리비에, 주디스 앤더슨, 조앤 폰테인 주연, 수줍은 여자가 부인과 사별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 대저택에 들어가지만, 남자는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1월 3일 수요일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
1951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팔리 그레인저, 루스 로먼 주연, 프로 테니스 선수 가이는 아내를 두고 외도를 즐기며 이혼을 바라고 있다. 어느 날 가이는 기차 안에서 브루노를 만나고, 브루노는 그에게 교환살인을 제안한다. 영화 마지막에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장면이 등장한다.

위커 맨(The Wicker Man)
2006년, 미국, 닐 라부티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고속도로 사고로 죽어가던 모자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경찰관 에드워드는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옛 연인의 편지를 받는다.

로프(Rope)
194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 두대학생이 재미삼아 동급생을 밧줄로 목 졸라 죽인 후 그의 시체를 아파트에 숨긴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위해 친구와 가족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캐리 그랜트, 에바 마리 세인트 주연, 뉴욕의 광고업자가 외국첩보기관에 의해 정부요원으로 오해받아 살해될 위기에 처한다.

숙녀 사라지다(The Lady Vanishes)
193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마가렛 락우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주연, 여행 중인 젊은 여성이 기차에서 한 부인의 도움을 받는다. 두통으로 잠이 들었던 여성은 깨어난 뒤 그 부인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 나선다. "반드리카 초특급"이라는 제목 으로도 알려졌다.

11월 4일 목요일
아담스 패밀리(The Adams Family)
1991년, 미국, 베리 소넨필드 감독, 안젤리카 휴스턴, 라울 줄리 아, 크리스토퍼 로이드 주연, 아담스 가에 이십오 년간 행방불명이던 친척이 찾아온다. 1964년 TV 시리즈로 방영된 동명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스터 에드(Mister Ed)
1961~1966년, 미국, 저스터스 아디스 외(外) 감독. 앨런 영, 코니 하인즈 출연, 미국 C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TV 시리즈. 말하는 말인 에드와 그 주인의 좌충우돌을 다루었다. 이 소설에서 애나가 올리비아에게 언급한 물론(Of course)이라는 말이 주제가에서 말장난으로 반복된다.

11월 5일 금요일
무법자(The Outlaw)
1943년, 미국, 하워드 휴즈, 하워드 혹스 감독. 잭 부텔, 제인 러셀 주연, 서부의 무법자들이 리오 맥도날드라는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제인 러셀이 전형적인 핀업걸 이미지로 등장하는 포스터로 유명하다.

열정(Hot Blood)
1956년, 미국, 니콜라스 레이 감독, 제인 러셀, 코넬 와일드 주연, 열정적인 여성 애니와 정략결혼으로 얽힌 형제 이야기, 집시 스커트를 입고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제인 러셀을 담은 포스터로 유명하다.

11월 7일 일요일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 스릴러,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테레사 라이트, 조셉 코튼 주연, 미국 소도시에 사는 찰리의 단조로운 삶은 이름이 같은 찰리 삼촌이 찾아오면서 활기를 띤다. 그러나 찰리는 삼촌이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진다.

이창(Rear Window)
1954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주연,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가 이웃들을 엿보는 것으로 소일하던 중 한 이웃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확신한다.

11월 8일 월요일
싸인(Sign)
2002년, 미국, 나이트 샤말란 감독. 멜 깁슨, 호아킨 피닉스 주연.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그레이엄은 어느날 원과 선으로 만들어진 복잡하면서도 거대한 미스터리 서클을 발견한다.

로즈메리의 아기 (Rosemary's Baby)
196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아 패로 주연, 새로운 아파 트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고, 부인이 임신한 후에 더욱 심각해진다.

침실의 표적(Body Double)
1984년, 미국.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크레그 워슨, 멜라니 그리피스 주연, 단역배우 제이크는 폐소공포증 때문에 배역을 잃는다. 애인에게서도 버림받은 제이크는 다른 사람의 집을 관리해주기로 하고, 그 집에서 이웃 여자를 훔쳐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에 휘말린다.

욕망(Blow-up)
1966년, 영국,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세러 마일스 주연, 런던의 사진작가가 황량한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던 중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한다.

2017/04/21

아마겟돈 - 프레드릭 브라운 / 조호근 : 별점 3점

아마겟돈 - 6점
프레드릭 브라운 지음, 조호근 옮김/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그동안 유명세만큼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던 거장 프레드릭 브라운의 단편선입니다. 정식 소개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요. 반가운 마음에 바로 구입하였습니다.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 유머, 반전이 살아있는 단편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유일한 단점이라면 국내 소개가 너무 늦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66.... 인데 반올림해서 3점주겠습니다. 늦었지만 번역 출간된 것만 해도 충분히 점수를 줄 만하니까요. 같이 소개된 "아레나"도 빨리 구해봐야겠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마게돈" 

마술사를 꿈꾸는 꼬마가 성수를 담은 물총으로 악마를 퇴치한다는 내용으로, 이전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단편집 ("마술 반지" 였던가요?) 에서 접했던 작품입니다.

악마가 소환되는 과정의 의외성은 돋보이지만, 딱히 대단한 반전은 없습니다. 그냥 저냥한 소품이에요. 솔직히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기는 어려운데 왜 표제작인지 잘 모르겠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스타 마우스"

과학자 헤르 오베르부르커는 직접 만든 로켓에 생쥐 밋키(미키인데 오베르부르커 발음이 이렇습니다)를 태워 달로 보냈다. 소행성 프록슬에 착륙한 밋키는 프록슬인에 의해 지성을 갖게 되었다.
밋키는 쥐들의 지능을 인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지구로 복귀해 쥐들의 나라를 만들 꿈을 꾸었지만, 아내 미니 우리에 설치된 전기 장치 탓에 원래의 생쥐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쥐가 놀라운 지능을 가지게 되지만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은 "앨저넌에게 꽃을"이 떠오릅니다. 앨저넌도 쥐였지요. 

작품은 오베르부르커 시점에서 로켓 계획이 펼쳐지는 전반부와 밋키 시점의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 마지막에 말하는 쥐를 등장시킨 후, 그 이유를 후반부에서 설명하는 연재물같은 구성인데 덕분에 독자의 흥미가 끝까지 유지됩니다. 황당하지만 다소 허풍섞인 글도 매력적이고요. 복선인 미니 우리에 설치된 전기장치도 잘 안배되어 있습니다.

허나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소재임에는 분명합니다. 비슷한 류의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은 탓입니다. 물론 이 작품은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선구자적인 작품일거에요. 시대가 너무 지난 뒤 읽은게 안타깝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자마술" 

두 커플이 더블 데이트를 즐기던 중, 밥이 카드 마술을 선보였는데 월터가 트릭을 말해버렸다. 자존심이 상한 밥은 월터에게 마술을 보여달라고 종용했고, 등쌀에 못 이긴 월터는 모자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묘한 생물을 꺼내어 보여주는데...

10페이지에 불과한 초단편인데 밥과 월터의 신경전으로 긴장을 자아내다가, 월터가 기묘한 생물을 꺼내는 클라이막스로 끌고 가는 과정이 탁월합니다. 

그러나 월터가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안이했어요. 좀 쉽게 간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불합리 행성" 

행성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나'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고 고용 선장인 조니, 아내 , 딸 엘렌과 착륙했다. 행성에 '불합리 행성'(시리우스 1번, 2번 행성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0'번이 되는 궤도의 행성을 발견한 것이므로)이라고 이름 붙인 후, 행성을 탐사하면서 상상하기 어려운 기묘한 생물과 현상을 목격하는데...

행성에 나타났던 기묘한 동물과 거리는 모두 바퀴벌레를 닮은 행성 거주민이 투사했다는 내용의 SF 단편입니다. 이전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질 대신 정신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설정은 꽤 자주 변주되었던 것인데, 이 작품처럼 1940년대부터 인용된 고전적인 소재라는건 몰랐네요. 그만큼 작가가 시대를 앞서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작품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조금 뻔하지만 코믹한 내용에 의외의 반전이라는 작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즐겁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예후디 장치"

'나는 미쳐가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글로 시작되는 단편으로  예후디 장치라는 이름의 - 정식 명칭은 자율 자동암시 교열진동 초가속기' - 기계가 핵심입니다. 사람을 가속시켜 원하는 일을 해 주도록 만들지만, 본인은 자기가 직접 빠르게 움직여 무언가를 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계이지요. 그런데 예후디라는 "이름"을 부르는 탓에 무형의 존재가 실체를 갖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약간 동양적인 설정이죠? 이름을 불러야 의미를 갖는 꽃처럼 말이죠.
덕분에 '예후디'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명령인 "자살이나 하라고"에 따라 자살을 해 버려 동작이 멈춘다는 결말로 이어지는 전개가 아주 깔끔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예후디 장치를 이용해 '나'가 썼다는 마지막 반전도 놀라웠고요.

진으로 만든 칵테일인 '진 벅'이 주요한 소재 중 하나로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칵테일로 먹지만 다음 잔은 진을 7/8 넣어서, 마지막은 진만 따르고 소다수는 건드리지도 않고 먹지요. 하긴 이런 기계를 보고 겪으면 제정신이기는 힘들테니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디테일한 설정에 녹아든 동양 철학적인 사고 방식과 반전까지 잘 갖추어진 좋은 작품입니다.

"웨이버리" 

사자자리 어딘가에서 전파를 쫓아 지구로 온 베이더 (inavader)가 모든 전기를 빼앗은 후를 그린 단편입니다. 

분명 지구가 정복당한 상황인데, 주인공 조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는 결말이 독특합니다. 전기는 없지만 증기기관, 말로 동력을 대체한 뒤 자전거 등으로 더욱 건강해지고, 텔레비젼과 라디오에 시간을 뺏기지 않아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취미 활동을 즐기게 된다는 내용이거든요.
이러한 점에서는 SF라기 보다 풍자극으로 보는게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시사하는 바도 크고요. 현재를 무대로 인터넷을 잡아먹는 침략자가 등장하는 내용으로 변주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하늘의 혼란" 

1945년 작품으로, 무대는 1987년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하늘의 별을 조작하는 기계에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함이겠지요. 

그러나 천문학은 건판 사진기에 의지하고 있고, 라디오가 주요 미디어로 등장하는 등 미래에 대한 상상력만 놓고 보면 보잘 것 없습니다. 또 천문대 연구원 로저 플러터에서 물리학자 밀턴 헤일 박사로 주인공이 이동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습니다. 로저 플러터 없이 헤일 박사로만 이야기를 끌고나갈 수도 있었을텐데 괜히 이야기를 벌인 느낌이에요. 헤일 박사가 택시와 함께 장거리 여행을 하는 묘사도 불필요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분명 걸작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미래에 대한 상상력 자체는 별로지만 미래에 대해 진짜로 통찰력을 발휘한 부분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광고에 대한 것입니다. 하늘의 별들에게 일어난 놀라운 운동이 광고를 위한 것이었다는 반전, 결말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아이이디입니다. 천재 스니블리가 자신의 발명품으로 비누 광고를 하는데 성공하지만, 철자가 틀려 쓰러진다는 결말도 유쾌하고요.

조금만 더 압축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단점이 없었더라면 완벽했겠지만 아이디어와 반전만으로도 최고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노크" 

"지구 최후의 남자가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장 두 개로 이루어진 짧고 훌륭한 공포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단편입니다. 그러나 공포물은 아니고 기발한 SF에요. 주인공 월터는 잔이라 불리우는 외게인들에게 채집된 인간으로, 그 외 다른 인류는 모두 잔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월터는 백 종류에 달하는 무작위 채취된 동물 암수 한 쌍 중 하나로, 잔들의 동물원에 수용된 신세이고요.
거의 불멸에 가까운 수명을 가진 잔은 인간과 동물들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월터는 방울뱀을 이용하여 잔 두명을 죽게 만드는데 성공하여 그들이 떠나게끔 유도합니다. 첫 두 문장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여자, 이브가 될 그레이스가 월터의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고요.

그런대로 재미있지만 허술한 것도 사실입니다. 서두만큼은 괜찮았는데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저 같으면 어떻게 썼을까요? 지구 최후의 남자가 방 안에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과연 문을 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딜레마를 다뤘을 것 같아요. 누가 문을 두드렸는지 너무나 알고 싶어서 혹시 죽을지라도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말이지요. 혹시 내가 지구에 혼자 남은 생명체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과연 문을 두드린 것은 누굴까요? 아, 저도 궁금해지는군요.

"모든 선량한 벌레눈 괴물들이" 

SF 작가 엘모와 아내 도로시 앞에 안드로메다 2에서 온 외계인 5명이 동물들의 몸을 빌어 나타났다.

어딘가에서 봤음직한 내용입니다. 외계인들이 동물들의 모습으로 지구인 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 속 외계인들이 엘모와 도로시 앞에 나타난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딱히 우주선을 고치는데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감시 때문에 사람만 부족해졌을 뿐이에요. 엘모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준다는 것도 창작력을 준 게 아니라 머릿 속에 있는 일종의 장애물을 제거해 주었다는 설정이라 여러모로 애매해보였고요.

그다지 기발하지도 않고 내용도 설득력이 낮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광기에 빠져라" 

조지 바인은 3년전 교통사고로 이전 기억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는데, 어느 날 편집국장 캔들러가 그에게 병을 핑계로 정신병원 잠입 취재를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기억 상실은 핑계일 뿐, 조지 바인은 27세의 나폴레옹이 시공을 초월하여 이식된 상태였다. 조지는 취재 지시의 목적이 자신의 정신병을 몰래 치료하려는 음모일 수도 있다고 여겼지만 취재에 응해 정신병원에 잠입하는데... 

인간은 실수이고, 기생충이고, 게임의 말일 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백만 개의 행성에는 그 행성의 유일한 지성인 곤충 종족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지성이 한데 모여서 단 하나의 우주적 지성을 만든다. 바로 신을!

개미가 신과 같은 절대자라는 반전이 독특한 작품으로 수록작들 중에서는 가장 긴 작품 중 하나입니다. 70여 페이지에 이르니까요.

초반은 꽤 흥미롭습니다. 정신병원의 비밀도 궁금할 뿐 아니라 조지 바인은 사실 나폴레옹이라는 설정도 꽤 매력적이니까요.

그러나 나폴레옹은 개미들의 게임을 위해 시공을 초월한 것이라는 짤막한 해석 외의 초반 떡밥은 하나도 회수하지 못합니다. 정신병원의 비밀은 무엇인지, 조지 바인을 본인 몰래 정신병원에서 치료하기 위한 음모였는지 아닌지, 나폴레옹을 구태여 조지 바인에게 소환시키면서까지 하려고 한건 무엇인지 등등은 결국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아울러 인간은 별거 아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이 진짜 절대자다라는 설정도 지금 읽기에는 식상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진실탐지기" 

2년 전 실종된 범죄 심리학자 채플 박사와 범죄자들이 거짓말 탐지기를 빠져나간 상황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유능한 탐정 벨라 조드가 사건 해결에 도전한다.

1999년을 무대로 한 SF 범죄물인데, 탐정과 범죄자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범죄는 그다지 비중이 없습니다. 유능하다는 탐정 벨라 조드의 수사도 변장과 함정 수사가 전부고요.

하지만 최면을 통해 기억을 지워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획기적입니다. 사건 자체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하므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건데, 참신하고 대단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어지는 반전도 그럴듯합니다. 거짓말 탐지기 통과를 요청한 범죄자는 모두 중범죄자들인데, 그들의 기억을 지워주면서 선량하게 살게끔 최면을 걸어 결국 범죄 자체가 없어지게 만든다는 것으로 역시나 탁월한 아이디어였어요.

한마디로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프레드릭 브라운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불사조에게 보내는 편지" 

18만년 동안 살아온, 15만배 느리게 사는 남자의 독백으로 핵 전쟁이 일어나 문명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냉전시대의 공포를 희망적으로 설명하는 소품입니다. 불사에 가까운, 15만배 느리게 사는 남자에 대한 설정은 재미있으며, 인류는 역동적이기에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는 희망찬 메시지도 인상적입니다.

허나 배경이 되는 사상과 메시지 모두 지나치게 오래된 것이에요. 때문에 지금 시점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밋키 다시 우주로"

8년만에 다시 쓰여진, 똑똑해진 생쥐 밋키 이야기입니다. 어지간히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이번에는 새로 투입된 흰색 생쥐 화잇티와의 사투를 그립니다. 일종의 모험물이랄까요? 화잇티가 X-19 장치를 조작하여 흰 쥐를 생태계 정점에 놓으려 한다는 악마적인 발상이 눈길을 끌며, 지성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결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앨저넌에게 꽃을"과 역시나 비슷하네요. 앨저넌 이름이 밋키였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녹색의 땅"

붉은 행성 크루거 4에 추락한 우주비행사 맥개리는 이 행성에 추락한 것으로 알려진 우주선 잔해를 찾아 정글을 헤멘다. 트랜지스터 부품을 구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그의 유일한 파트너는 5족 생물 '도로시'. 어깨 위에 올려놓은 도로시는 흡사 여성의 손길 같고, 그런 도로시에게 위안을 느끼며 말을 건넨다. 그러던 중 우주선 하나가 그를 발견한다!

붉은 행성에서 '초록색'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아가는 광인의 이야기입니다.
구하러 온 아처 중위에 의해 도로시는 존재하지도 않고, 4~5년이라고 믿었던 표류 기간이 무려 30년이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 까지는 버틸 수 있었지만 지구가 우주 전쟁으로 파괴되어 초록색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에 결국 정신이 붕괴해버리고 만다는 결말은 섬찟합니다. 붉은 행성 크루거와 그곳의 생태계에 대한 짤막한 묘사도 상상력을 많이 자극하는데, 이 부분은 영상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 역시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은 반전이었어요. 예전에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었기에 더 그러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인격 교환기" 

편집장 맥기에게 괴롭힘당하는 기자 '나'는 발명가 타킹튼 퍼킨스의 신발명 취재를 나선 후, 그가 '연격 교환가'라는 것을 발명한 것을 알게 되는데...

도라에몽스러운 발명품이 등장합니다. 내용도 성인용으로 변주한 도라에몽같고요. 발명품으로 소동이 일어나고, 결국 주인공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은 도라에몽 그 자체이지요. 

하지만 소동 이후 모든게 제자리를 찾는 도라에몽 장치와는 다르게 타킹튼 퍼킨스와 맥기의 몸을 바꾸어서 최악의 파트너들끼리 함께 살게 만든다는 결말은 아주 통쾌했습니다.

평범한 아이디어를 전개와 결말로 보완한 작품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무기" 

그레이엄 박사는 궁극의 무기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로, 그의 유일한 고민은 정신지체아인 아들 해리였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니만트라는 인물이 찾아와 무기 개발을 그만둘 것을 부탁하는데... 

인류가 궁극의 무기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프레드릭 브라운의 답변. 

4페이지밖에 안되는 짤막한 분량이지만 흥미로운 도입부와 캐릭터, 진지한 주제에 놀라운 반전까지 모든 걸 갖춘 걸작입니다. 인류가 궁극의 무기를 갖는건, 백치가 장전된 리볼버를 갖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시각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측면도 있습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카투니스트" 

끔찍하고 흉물스러운 외계인 만화를 그린 후, 빌 개리건은 그가 그린 외계인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의 초대를 받았다. 그들은 만화에 감명해서 개리건을 황실 만화가로 임명하려 했다... 

"외눈박이 나라에 간 두눈박이" 이야기를 변주한 SF입니다. 서로를 끔찍하고 흉물스럽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점이 그러하지요. 그러나 결말은 정 반대입니다. 개리건이 외계인 모습이 된 다음에 익숙해진 후 모든 행복을 거머쥐거든요.

그러나 좋은 결말, 반전이었다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반전의 매력은 부족하며, 여러모로 쉽게 간 느낌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돔" 

'죽음보다는 고독이 나은 법이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죽음보다는 나은 법이다.'

카일 브레이든은 핵전쟁이 발발했다는 뉴스를 듣고 구 형태로 완벽한 방어막을 이루는 "역장"을 작동시켰다. 카일은 죽음보다 고독이 낫다는 생각으로 30년을 버텼지만, 결국 홀로 죽기가 두려워 역장을 끌 결심을 하는데... 

착각으로 스스로 고립되어 이방인이 된 남자를 그린 작품으로 주제는 좋습니다. 냉전 시대를 극한까지 그려낸 설정도 볼만하고요. 하지만 홀로 돔 안에 갇히는 것을 선택한 카일 브레이든의 심정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고독보다는 죽음이 나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리고 밖의 세상은 유토피아가 되었다라는 반전도 평이합니다. 차라리 사랑을 고백한 '미라'가 그를 떠나지 않고 둘이서 같이 30년간 늙어가다가 유토피아를 만난다는 설정이 소설적으로는 더 나았을 것 같네요. 만약 그랬다면 미라에 의해서 지옥이 열렸을테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스폰서의 한마디" 

1954년 7월 9일 수요일 오후 8시 30분, 전 세계 라디오에서 기묘한 방송이 들려왔다.
아주 잠시 먹통이 된 후 차분하고 평범한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스폰서의 한 마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1초 후 다른 사람이 말했다. "싸워라."
미국 대통령은 이 방송이 현재 기술로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분석 결과를 전달받는데... 

'인간은 명령을 받으면 반대로 행동한다'는, 신뢰할 수 없는 심리학 설정에 기반을 둔 작품입니다. '밀그램 실험'이 있기 전에 쓰여진 이야기겠지요. 

그래도 과학적, 정치적인 분야에서 시작하여 종교적인 분야까지 전문가들에 의한 분석이 이어지면서, 이 명령은 들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만큼은 꽤 설득력있게 그려집니다. 사탄이 내린 명령이면 당연히 들으면 안되고, 신이 내린 명령이라면 지성과 선의가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신성한 반어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논리인데 그럴듯했어요. 분석 덕분에 여론도 싸우지 않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는 전개도 괜찮았고요.
또 이러한 평범한 냉전 시대를 무대로 한 우화임에도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 요소가 존재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스폰서"라는 단어죠. 대체 우리, 지구, 인류의 스폰서는 누구란 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스폰서가 누군지 모르므로 명령을 들을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작품은 끝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약간 흥미로왔을 뿐 기대에 부합하지는 못했습니다. 결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 큽니다. 별반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무래도 냉전 시대 관련 설정의 작품은 여러모로 뻔하고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소재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나와 플랩잭과 화성인" 

광산을 찾아다니는 나와 당나귀 플랩잭은 어느날 화성인을 만났다. 화성인은 내가 아니라 플랩잭이 지성체라 여겨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의 지구 침공 계획을 털어놓는데... 

이른바 '오해와 착각' 개그물입니다. 나와 플랩잭의 티격태격 묘사가 유쾌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해로 인한 난처한 상황도 볼거리고요. 무엇보다도 플랩잭이 화성인에게 무언가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그들이 지구 침공을 포기하고 돌아가는데, 나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고 플랩잭이 준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결말까지 유쾌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마크 트웨인이 쓴 SF를 읽는 느낌이었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린 양" 

수록작 중 가장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싸이코 스릴러로 "진, 베르무트에 젖은 올리브 색깔"이라는 묘사나 여러 시, 음악, 밤이라는 배경에 대한 묘사는 '코넬 울리치'가 썼다 해도 믿을 정도로 디테일합니다. 아내 램이 살아 있는 것 처럼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그녀는 이미 죽은지 오래라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도 섬찟했고요. 유머러스한 블랙 코미디나 반전이 있는 장르 문학에 강한 작가인줄 알았는데 이런 순문학적인 스릴러에도 능하다니 과연 거장은 거장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날개짓 소리"

15달러에 영혼을 팔려던 무신론자가 급하게 멈추고 15달러를 날린 이유는? 에 대한 짤막한 소품입니다. 주인공이나 독자나 답을 찾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뭐가 껄끄러웠던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특별히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럴 바에야 영혼을 팔고 할아버지가 죽은 뒤 무언가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는 식으로 가는게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거울의 방" 

시간을 되돌리는 일종의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SF로 타임머신에 대한 아이디어와 함께 '50년'을 계속 되돌아가는 주인공에 대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돔"의 주인공은 역장을 끄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 작품의 주인공은 타임머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면 인류가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갖혀 지낸다는 점에서 좀 비슷한데, 냉전 시대의 뻔한 SF인 "돔"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설정도 보다 디테일하고요. 50년 동안 무얼 어떻게 먹고 사는지 등 깊이 들어가면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의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은 모두 1~2페이지짜리 쇼트쇼트입니다. 줄거리 요약은 생략하고 단평만 적겠습니다.

"해답" 두말할 필요 없는 걸작. 별점은 5점.

"데이지" 짤막하지만 담겨야 할 모든 것이 담겨있는 교과서적인 쇼트쇼트. 별점은 4점.

"대동소이" 뻔했음. 별점 2점. 

"예절" 이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을 다룬 유쾌한 소품. 별점은 3점.

"허튼소리" SF 작가의 자조적인 농담으로 보이는 소품. 별점은 2.5점.

"화해" 뻔하고 뻔하도다. 별점 1점.

"탐색"신이 두려워한 사람이 누구인거죠? 주인공 피터의 정체는 신선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2점.

"형기" 과학적인 농담인데 꽤 써먹음직한 반전이 돋보임. 별점은 2.5점.

"유아론자" 이 정도면 신성모독이 아닐까... 여튼 신선한 창조 이야기. 별점은 2.5점.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진정한 소리를 찾는 음악가 둘리 행크스가 우연히 만난 노음악가를 살해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호우보이'라는 악기를 손에 넣은 뒤 맞는 최후에 대한 이야기.
음악에 대한 장황한 묘사가 펼쳐지는 순문학스러운 범죄 판타지로 '하메룬의 피리부는 사나이'로 끝나는 결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8/23

괴물이라 불린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 김지선 : 별점 1.5점

괴물이라 불린 남자 - 4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머스 데커는 미해결 사건을 다루는 FBI 수사팀의 일원이 되었다. 팀의 첫 사건은 데커가 주목한, 고등학교 미식축구 스타 출신 사형수 마스 사건이었다. 멜빈 마스는 20여년 전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집행 당일에 찰스 몽고메리라는 사형수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주장하여 형 집행이 정지되었다.
데커와 수사팀은 몽고메리가 돈을 받고 위증을 했다는 증거를 찾아냈지만, 몽고메리는 사형 집행을 당했고 그의 아내도 폭발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데커는 마스의 부모 사진이 없는 것, 마스가 전국구 스타가 된 뒤 사건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하여 마스의 부모가 증인 보호 프로그램 대상자와 같이 의도적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마스의 아버지 로이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는걸 밝혀내는데...


특이한 능력을 지닌 수사관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수사하다가, 사건 배후에 거대한 국가적인 음모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챈다는 흔해빠진 스릴러.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이어지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 수사관으로 과잉 기억 증후군에 시달리는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입니다.

멜빈 마스 시점에서의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사형 집행 당일, 누군가 자기가 진범이라고 고백해서 살아났는데 그 누군가가 알고보니 진범이 아니었다면, 나는 다시 사형수가 된다는 뜻이니 매 순간 순간이 긴장될 수 밖에 없지요. 20년이나 버려두었다가 사형 집행 당일이 되어서야 그를 구해준 '누군가'의 의도도 흥미를 자아냅니다. 구해줄거면 더 빨리 구해주던가, 아니면 아예 죽게 내버려두는게 맞을텐데 왜 하필 이 시점에?
마스의 어머니가 말기 뇌종양이어서, 남편이 그녀가 편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준 뒤 살해당한 걸로 위장했다는 진상도 괜찮습니다. 원래 아버지 로이는 소싯적에 흑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테러에 가담했다가, 보험삼아 테러 증거물을 훔치고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스가 슈퍼스타가 되어 행적이 노출되자 다시 죽은척 몸을 숨기게 된 겁니다. 이는 마스의 부모님이 전국방송에 등장했던게 사건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추리와도 연결되며, 숨어 지내고 싶었지만 아들의 출세가 발목을 잡고 만 아이러니한 상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스 이야기 외 다른 모든 부분은 모두 기대 이하입니다. 너무 엉망이라서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우선 사건부터 설득력이 없어요. 마스에게 누명을 씌운게 아버지 로이였다는 것부터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약 조직의 성노리개였던 여자를 사랑해서 탈출했는데, 그 여자가 마약 조직 보스의 아이를 임신했었고 그게 마스였다! 더러운 놈에게 복수를 직접 하지 못했으니 그 자식에게 복수하겠다!는 동기인데 황당하기가 그지 없어요. 이걸 추리해내는건 더더욱 말도 안되니, 추리물로 볼 여지도 없습니다. 등장하는 단서라고는 마스의 어머니가 스페인어를 잘했다던가, 집에 은제품이 있었다(조직의 물건을 훔쳐서 나온것)는 정도인데, 이걸로는 턱도 없지요.
마스에게 최면을 걸어 들은 '초차'라는 말을 근거로 로이가 죽은 척 몸을 숨겼다고 추리한 것도 말이 안됩니다. '초차'는 콜롬비아 칼리 지방의 방언으로는 '주머니쥐'이고 주머니쥐는 죽은척한다는 이유인데, 근거도 빈약하고 억지로 가져다붙인 느낌만 전해줍니다. '창녀'라는 명확한 일반 명사가 있는 단어에 전 세계에서 딱 한 지방에서만 쓰는 방언으로 해석한다는건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20년만에 구해준 이유도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의 '아이는 구해달라'는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처구니가 없지요. 병주고 약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과거 마스 사건에서 마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사건 당일, 모텔 직원의 증언으로(나중에 위증일 수 있다는게 밝혀지지만) 마스가 집에 들러 범행을 저지를 시간이 있었다는건 증명됩니다. 그런데 마스가 사건을 저지를 동기는 제대로 증명되지 못합니다. 가정 불화가 특별히 언급되지도 않았는데, 얼마가 될 지도 모르는 미래의 계약금 일부 때문에 부모를 죽인다는게 그렇게 설득력있는 동기인가요? 누가 보아도 마스는 수천만불의 연봉을 받을 슈퍼스타가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어머니 루신다의 혈흔이 마스의 차에 남아있다는건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이전에 코피를 흘리거나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변호사만 잘 선임했어도 마스가 사형선고를 받을 일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로이가 마스에게 누명을 씌우는게 그렇게 철저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야기도 치밀함, 정교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게 만듭니다.

데커가 NFL에서 뛰었던 미식축구 선수였고, 오래전 시합에서 마스와 겨루었다는 과거가 마스와 연결되어 사건이 시작되고, 결국 둘이 친분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데커의 독특한 특기(?)인 과잉 기억 증후군이 이 작품에서 하는 역할은 전무하다는 점에서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정체성을 흐립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팀을 꾸리지만 팀원들이 하는 역할도 없어요. 심지어 동료 대븐포트는 비교적 초반에 납치되어 멤버에서 빠지는데,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에요. 다른 멤버들도 별다르지 않습니다.
동료로 여겼던 마스의 변호사 올리버가 알고보니 과거 테러를 저질렀던 삼총사의 밀정이었다는 반전도 별로입니다. 올리버가 주장하던 마스를 위해 제기했던 소송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삼총사 중 한 명인 매클렐런과 함께 찍은 사진같은 억지 증거는 불필요했습니다.
로이가 소싯적 손재주(?)가 좋아서 폭탄을 만들어 테러에 가담했지만, 70대가 된 현재에도 신출귀몰하며 FBI와 거물 킬러들을 엿먹이는 전문가가 된 경력도 불분명하고, 죽기 전 데커에게 지갑을 남겨 도서관증 --> 대출한 책 --> 금고 열쇠로 이끄는 과정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과거 삼총사가 저질렀던 테러 증거가 황당할 정도로 상세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요. 뭐 하나 제대로 와 닿는게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초반부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질낮은 흔해빠진 헐리우드 스릴러로 마무리됩니다. 인기 요소는 잔뜩 집어 넣었지만 설득력도 낮고 정교함도 떨어지는 탓입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리즈가 이 뒤로도 몇 편 더 이어지는 듯 한데, 더 읽을일은 없겠네요.

2010/11/01

가다라의 돼지 - 나카지마 라모 / 한희선 : 별점 3점

가다라의 돼지 - 6점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아프리카 주술 전문가 오우베 교수는 과거 현장 탐사에서 딸 시오리를 사고로 잃은 뒤, 아내 이쓰미와도 마음을 닫은 채 술에 의존하며 방송 출연으로 시간을 보내는 '탤런트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우연히 한 방송의 아프리카 기획에 참여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케냐를 방문하고, 그곳의 주술사 마을에서 죽은 줄 알았던 딸 시오리를 발견했다. 시오리를 구해냈지만, 곧바로 그녀를 자신의 '키시투'(일종의 주술 도구)로 여기는 최강의 주술사 바키리의 복수에 직면하게 되는데...

7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그에 걸맞은 무게감으로, 읽기 전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나카지마 라모의 대장편입니다. 일본 추리작가협회 장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작품은 크게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 : 오우베 교수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아내 이쓰미를 구하기 위해 마술사 미스터 미라클, 제자 도만과 함께 종교의 '기적'을 폭로하는 이야기

2부 : 오우베 교수 일가가 TV 프로그램을 위해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한 후, 케냐 최고의 주술사 바키리로부터 실종된 줄 알았던 딸 시오리를 구해내는 이야기.

3부 : 일본까지 찾아온 바키리와 오우베 일가의 최종 결전.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은 추리 소설보다는,   초능력과 아프리카 주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모험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재미만 놓고 본다면 최고입니다. 1부에서 등장하는 '초능력', 특히 사이비 종교 교주가 공중 부양한다는 '기적'의 실체를 폭로하는 과정은 "신비의 사기꾼들"을 연상시키는 트릭물 같은 재미를 제공합니다. 또한, 2부에서는 케냐의 상세한 묘사와 긴박감 넘치는 탈출 장면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3부에서는 본격적인 주술 대결이 펼쳐지면서 트릭과 긴장감이 조화를 이루어 끝까지 몰입하게 해 주고요. 덕분에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인체모형의 밤"과는 전혀 다른, 블랙 코미디 같은 분위기도 볼거리였고요.
엄청나게 디테일한 자료 조사를 통해 구축된 초능력과 주술에 대한 설명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를 압도하고 조종하는 바키리의 주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특히 후반부 오우베의 각성 이후 펼쳐지는 '초능력 대결'은 너무 과장이 심했어요. 오컬트와 초능력, 주술이 결국 '존재한다'는 식의 결말은, 앞서 철저하게 구축했던 과학과 상식에 기반한 초능력과 주술이라는 테마와도 동떨어진 느낌입니다. 또한, 여러 범행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일본만의 독특한 오컬트 문화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영향이 크겠지만, 이렇다 보니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조차 모호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목을 가져온 '마태복음'의 가다라 돼지 일화처럼 실제로 악령과 주술이 존재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스터 미라클의 말처럼 모두 트릭에 불과한 것인지...

또한, 마지막 방송국에서의 대결은 "서브리미널 광고 효과"와 집단 최면을 너무 과장되게 묘사하면서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봤던 초능력 소년 기요카와와 마술사 미스터 미라클이 너무 일찍 퇴장한 것도 아쉬웠던 부분이고요.

결론적으로, 1부는 작품의 테마와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도입부로서 아주 괜찮은 중편이었고, 2부는 아프리카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주술'이라는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낸 모험소설로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3부는 속도 조절 없이 너무 폭주해버린 느낌이 강합니다. 전형적인 B급 감성이 넘치는 데다가, 3부의 결말만 놓고 보면 이 방대한 작품이 '새로운 영능력 히어로 탄생'의 프롤로그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막 나가는 재미는 있었지만, 1부와 2부처럼 보다 진지하고 과학적인 접근을 유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재미는 있었지만, 모호한 방향성과 후반부의 급전개 때문에 선뜻 추천하기는 애매한 작품입니다. 1부는 별점 3점, 2부는 3.5점, 3부는 2점, 전체적으로는 대략 별점 3점입니다.

2022/12/04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8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국내에서 과학 수사를 통해 해결했던 여러 사건들을 정리한 논픽션. 2부 구성으로 모두 22건의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부는 특정 과학 수사 기법이 해결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해당 수사 기법에 대해 이해를 돕는 구성입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는 물론이고, 비산 혈흔 등 혈흔 형태 분석, DNA 분석, 프로파일링, 법 최면, 지문 감식, 지리 프로파일링 등이 등장하며, 수사 기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에 대한 인터뷰 등 부가 자료들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어서 이해를 돕습니다. 사건도 밝혀진 모든 내용이 소개되고 있으며, 사건 현장 사진과 도해로 구성된 사건 상황 등 도판도 완벽합니다.
2부는 완전 범죄를 노렸지만, 수사관들이 끈질긴 수사로 밝혀낸 사건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소개는 1부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수준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4점. 우리나라 범죄를 다룬 논픽션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여,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첫 번째는 <<마포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입니다. 의사 남편이 만삭 부인을 살해했던 엽기적인 범행으로, 피고인 남편 측에서 캐나다 법의학 전문가까지 증인으로 불러 법정 다툼이 있었던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남편 범행이 확실하더군요. 피해자의 목졸림 흔적과 얼굴과 몸의 멍자국, 저항하다 생긴 것으로 보인 손톱 밑의 남편 DNA 등 현장 증거가 뚜렸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남편 쪽에서 주장했던, "욕조에서 넘어져 죽은 것 같다"는걸 설명할 수 없는, 피해자 몸의 혈흔과 상처가 결정적인것 같아요. 욕조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양양 일가족 방화 사건>>은 무식한 범인이 교과서처럼 단서를 남긴 범행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로 피해자 일가족 시신에서 수면제가 검출되어 누군가 방화를 저지른게 명백하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경찰 진술에서 필요도 없는 말을 해 가며 자살이 맞다고 주장했고, 결국 현장에서 발견된 차용증 등으로 동기마저 드러나버리고 말았지요. 범행 직후 소방차를 따라 다시 현장에 나타난 것까지, 하는 행동 모두가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단순 무식한 범인을 연상케합니다. 아울러 고작 2,0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어린 소녀가 포함된 네 명의 일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에게 무기징역은 너무 관대한 선고였습니다. 능지처참하고 저잣거리에 효수를 했어야....
<<서울 광진구 주부 성폭행 사건>>은 그야말로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DNA 감식을 통해 드러난 범인은 범행 당시 수감 중이었지만, 과학수사관 권경사의 추리 덕분에 진범이 체포되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수감 중인 용의자의 일란성 쌍동이라는 추리였지요.
<<60대 남녀 변사 사건>>은 단순 자연사로 보였지만, 현장 검증을 통해 몇 가지 이상한 정황이 포착되어 살인 사건이라는게 드러난 경우입니다. 현장에서의 구토 흔적과 기묘한 자살 시도 흔적, 그리고 자연사는 이불 한 장만 반듯이 덮고있는게 일반적인데 이불 두 장이 포개져 쌓여 있었던 것, 피해자 옷과 맞지 않았던 방에 떨어져 있던 단추 등이 단서가 되었습니다. 검시 결과도 살인 사건임을 증명해 주었고요. 현장 상황과 시신의 모습 등을 분석하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성 부부 살인 사건>>은 프로파일링이 사건 해결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잔혹한 현장 모습으로 청부 살인이나 원한 살인이 의심되었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 범죄이며, 근처에서 일어났던 침입 사건의 범인과 동일인물일 것이다. 침입이 발각되어 과도한 공격으로 피해자들을 살해했고,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몰린 사람이며, 피해자들은 물론 마을을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일 것이다"는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는 실제 범인 모습과 일치했지요. 어떻게보면 좀 뻔한데, 현실은 픽션과는 엄연히 다르다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양주 전원 주택 살인 방화 사건>>을 통해서 지문은 고온에서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흔적 자체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어서, 화재 현장에서는 '열 사각 지대'에서 집중적으로 지문을 채취한다는 등 실제 현장에서의 지문 감식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었고, <<의정부 연쇄 절도 사건>>은 이름도 생소한 '지리 프로파일링'을 접하게 해 주어 좋았습니다. 범죄가 발생한 장소와 시간을 토대로 범인이 머무는 곳과 다음 범행 장소를 예상하는 과학수사 기법이라는데, <<넘버스>>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던 적이 있지요. 실제 사건을 해결할 정도로 정립된 기법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2부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은 완전 범죄를 노린 3인조 일당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고 전원 주택을 털었던 사건으로, 집에 설치된 폐쇄 회로 TV는 본체까지 뜯어서 들고갔고, 현장에 남긴 담배 꽁초도 어디선가 주워와 일부러 흘리는 등 굉장히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범행 장소를 오간 차량이 없었다는게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원 주택이 산과 가깝다는걸 이용하여, 목표지 인근까지 대포차로 이동한 뒤 야산에서 하루 노숙을 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군요. 현장에 일부러 뿌린 꽁초 중 동일한 DNA가 검출된 탓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지만, 정말로 대단한 지능범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산 교수 부인 살인 사건>>은 한 때 뉴스를 도배했던 사건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범죄 전문가 교수가 경찰과 두뇌 싸움을 벌인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사건 개요를 읽어보니 별다르게 머리를 쓴 부분은 없어서 놀랐습니다. 내세운 알리바이도 엉망이었고, 내연녀를 동원한 시체 유기도 곧바로 경찰에 발각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언변만 빼어날 뿐 일개 잡범 수준에 불과했어요. 차라리 앞서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 범인들 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범인의 직업이 선입견을 만든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이런것도 일종의 미스디렉션이겠지요.

2022/01/30

고쿠 1~6 - 테라사와 부이치 : 별점 2점

[고화질세트] 고쿠 (총6권/완결) - 4점
테라사와 부이치 지음/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걸작 "우주해적 코브라"로 스페이스 판타지의 신기원을 연 작가 테라사와 부이치의 또다른 대표작입니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1987년에는 비교적 먼 미래로 느껴졌을, 2014년을 무대로 한 근미래 SF 액션 스릴러로, 우리나라에는 e-book으로만 소개되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경찰 출신의 사립탐정 후린지 고쿠입니다. 맨 몸에 쟈켓을 입고 목에 넥타이를 메는 다소 충격적인 패션 센스를 가진 남자지요.

고쿠는 첫 번째 사건에서 악당의 최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왼쪽 눈을 찔러 실명하는데, 누군가 그 왼쪽 눈에 소형 컴퓨터 단말기가 장착된 '의안'을 설치해 줍니다. 그 의안은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는 물론, 인공위성까지도 연결하여 제어할 수 있는 물건이었지요. 고쿠는 이른바 '신의 눈'이라고도 하는 이 의안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 누군가가 전해 준 또다른 장비 여의봉(?)을 무기로 악당들과 싸워나갑니다.

여러 면에서 작가의 출세작 "코브라"가 떠오릅니다. 미인들의 부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기본 전개부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로 엄청난 마초인데다가 시니컬하면서도 독특한 유머 넘치는 대사를 내뱉는 고쿠 캐릭터가 완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갖추고 있는 피지컬만으로도 세계관 최강자인데다가, 강력한 무기 '싸이코 건' 까지 소유한 코브라와는 다르게 고쿠는 비교적 평범한 인간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차이도 전능하다고 칭해도 부족하지 않은 왼쪽 눈의 의안 덕분에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의안으로 왠만한 적들은 쉽게 무력하게 만드니까요.

그래도 단순한 자가복제 아류작은 아닙니다. '신의 눈'이라는 아이디어 덕이 큽니다. 모든 단말에 접속하여 조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최소한 10년 이상 시대를 앞서간 것입니다. 인공 위성으로부터 현재의 GPS, 카 네비게이션과 동일한 정보를 전달받아 이를 추격에 활용하는 장면 등은 미래를 보고 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인공 위성과 각종 단말을 조작하여, 악당 하크류 겐지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영상을 건물 전광판으로 표시하는 장면은 능력의 특징을 제대로 선보여준 명장면이었고요.

정보를 장악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탐정'이 주인공인 이야기에도 잘 어울렸어요. Private Eye가 Midnight Eye를 갖게 되니, 금상첨화인 셈이지요.

탐정물답게 놀라운 진상과 반전을 갖춘 이야기들도 꽤 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류는 의붓 아버지에 의해 사이보그로 개조되어 몸에 강력한 보호막을 두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중화제를 투약하지 않으면 미치광이 살인마로 돌변하기 때문에, 여동생 요시코는 고쿠에게 류를 죽여달라고 의뢰했고요. 그런데 알고보니 류는 의붓아버지 젠조의 복제인간으로 창조된지 고작 30일에 불과했던 생명체였습니다. 젠조는 자기 몸에 보호막을 설치하기 위해 류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겁니다. 수정체를 만든 건 여동생인줄 알았던 요시코였고요. "차이나타운"이 떠오르는, 하드보일드스러운 막장 관계를 인공수정, 급속 성장, 기억 이식 등 미래 기술에 녹여낸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슈퍼 스타 시노즈카 레이라가 자기 노래를 표절했다며 죽이려고 하는 지하 록의 여왕 야마가미 리사와 동일 인물이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꽤나 놀라운 진상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4권(일본 기준)으로 끝나버린 이유도 분명합니다. 뒷 부분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암흑의 선녀" 편에서 귀신 '천동녀'의 정체는 쿠키 일족의 정신을 넣은 인공두뇌로 구현된, 일종 에너지 덩어리였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우주해적 코브라"의 사라만다 설정과 똑같죠. 다카르 랠리에 참여한 오토바이 레이서 보니의 문신 속에 마이크로 필름의 정보가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도 "우주해적 코브라"와 유사했고요. 유령 유전자 실험에 자원하여 스스로 생명체의 모든 진화를 구현해 낼 수 있게 된 카산드라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실험 덕분에 생물 진화의 최종 단계로 변신할 수 있었고, 그건 바로 악마였다는건 재미있는 발상입니다만 이는 "코브라"에서 화성의 최종 병기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악마가 고작 금괴를 노린다던가, 그 최후가 녹아버린 뜨거운 금을 뒤집어 쓰는 것에 불과했다는 등 세부적인 이야기 완성도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요. 

후반부 에피소드들에서는 '신의 눈'의 능력도 잘 선보이지도 못합니다. 모든 장치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기본 설정만 답습할 뿐입니다. 이런 능력을 활용하여 악당에게 자신의 경고를 날린다던가, 공장에서 자기만을 위한 특별한 무기를 만든다던가 하는 초반부 에피소드들같은 새로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걸 통제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악당들과 육탄 액션을 펼친다는 설정도 별로였고요. 

또 한국어판 e-book은 에피소드별 제목이 제대로 부여되어 있지 않은 등 편집이 그닥이며, 마지막 권에 '지금 밝혀지는 고쿠의 비밀'이라는 저자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고 소개되는데 정작 수록되어 있지 않은 등 문제가 많아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부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던게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유튜브를 뒤지면 카와지리 요시아키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을 찾아볼 수 있는데, 비교적 수작인 초반부 에피소드를 영상화한 만큼 애니메이션만 찾아서 보시는게 낫습니다.

2004/11/24

죽음의 사냥개 - 애거서 크리스티 / 정성희 : 별점 2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해문출판사
드디어! 크리스티 여사의 단편집 전권을 완독했습니다.
이 작품집은 11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인데 코난 도일경처럼 말년에 심령현상에 심취했던 여사의 취향을 반영하듯 대부분 심령 호러물로 채워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목차와 쟝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죽음의 사냥개 - 심령 호러 (?)
  2. 집시 - 심령 호러(?)
  3. 등불 - 심령 호러
  4. 아서 카마이클 경의 기묘한 사건 - 심령 서스펜스 (?)
  5. 목련꽃 - 심리 드라마
  6. 개 다음에 - 드라마
  7. 이중 범죄 - 추리
  8. 말벌 둥지 - 추리
  9. 의상 디자이너의 인형 - 심리 서스펜스
  10. 이중단서 - 추리
  11. 성역 - 추리
그런데 호러와 서스펜스를 표방한 대부분의 작품이 21세기 독자의 시각으로는 심심한 편입니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해주지도 않으면서, 공포의 실체조차 두리뭉실 표현하는 점은 역시 빅토리아 여왕 시대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고요. 한마디로 말해 썰렁했어요.
포함되어 있는 4편의 추리물 역시 단편집 전체의 성격을 반영하듯 전체적으로 시시한건 마찬가지입니다. 포와로가 활약하는 "이중범죄"와 "말벌 둥지", "이중단서" 3편 모두 대단한 사건다운 사건없는 영국 시골에서 벌어지는 촌극 느낌이고, 마플양의 "성역" 역시 추리물적인 성격도 적을 뿐더러 마플양 작품 같지도 않거든요.
트릭적으로 본다면 그나마 "이중범죄" 쪽이 제일 본격적인 추리물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닥 신선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으며 "이중 단서"는 로사코프 백작부인이 처음 등장하여 포와로와 대결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줄 만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전체적으로 크리스티 여사의 단편집으로 보기에는 기대 이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차라리 심령 미스터리 쪽으로 가려면 더 화끈하고 더 무섭게 가는 것이 좋았을텐데 말이죠. 단편집을 완독했다는 성취감은 크지만 그 이상의 즐거움을 찾아보기는 어렵군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죽음의 사냥개"
한 수녀의 고대로부터 전해진 일종의 초능력과 그 비밀을 둘러싼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정직하게 흘러가다가 끝나버려서 별다른 반전의 묘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쉽네요.

"집시"
사람의 운명을 예견하는 집시에 대한 이야기. 내용이 별로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갑작스러운 마지막 해피엔딩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등불"
저택에 살고있는 굶어죽은 아이의 유령과 새로 이사온 가족의 이야기. 결국 새로 이사온 가족의 아이가 죽은 다음 유령이 2명이 된다..는 어떻게 보면 섬뜩한 이야기로 그나마 제일 무서웠던 작품입니다. (물론 현대 독자의 시각으로는 많이 썰렁합니다만)

"아서 카마이클 경의 기묘한 사건"
꽤 유명한 작품이지요. 유산 때문에 의붓아들 아서 카마이클 경에게 고양이를 대입시키는 묘한 최면을 거는 계모의 이야기입니다.
줄거리 자체는 상당히 참신하고 결말 또한 제법 설득력 있지만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목련꽃"
일종의 심리 드라마입니다. 한 여자가 남편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했지만, 남편 때문에 배신했던 다른 남자에게 찾아가 남편의 죄를 증명하는 서류를 받아오려 합니다. 그리고 서류를 받던 그 순간, 자신이 남편에게도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는 내용입니다. 
상당히 공감가는 이야기로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개 다음에"
애견때문에 오히려 불행해져가는 한 여성이 개의 자살과도 같은 죽음 직후에 새로운 인생을 되찾게 된다는 드라마인데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심리 묘사는 탁월하지만 글쎄요....

"이중 범죄"
포와로 단편입니다. 포와로가 헤이스팅스와 같이 버스 여행 중 만난 아가씨의 귀중품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소품이지요. 사건이 소박한 만큼 내용도 그다지 멋진 트릭이나 전개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이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본격적인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멍청한 (?) 헤이스팅스를 잘 드러내는 부분만 재미있었지만요...

"말벌 둥지"
케이블 TV에서 이미 영상 버젼으로 감상한 작품으로 어떤 단편인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네요. 한 남자의 자살-살인을 병행하려는 계획을 포와로가 미연에 방지하는 내용으로 영상 버젼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이 무미건조하게, 평이하게 흘러갑니다.

"의상 디자이너의 인형"
의상 디자이너들이 한 벨벳 인형에게 어느날 문득 공포를 느끼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냥 그뿐입니다. "사랑받고 싶었다"라는 결론은 허무할 뿐이고요.

"이중 단서"
포와로가 보석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용의자도 4명뿐이고, 트릭도 러시아어와 영어의 알파벳을 이용한 트릭이라 대단치 않습니다. 그나마 포와로 작품에서 라이벌로 등장하는 백작부인의 첫 등장이라는 점에서만 점수를 줄 만 합니다.

"성역"
미스 마플이 깜짝 찬조 출연하는 작품인데 추리적 요소는 거의 전무합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내용 자체는 도난 당한 보석에 관한 이야기로 소품이기도 하고요. 단서도 의뢰인이 다 찾은 것으로 마플양은 경찰을 부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어드바이저 정도의 역할 뿐입니다. 마플양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처져보치는건 저만 그런걸까요?

2016/06/18

매듭과 십자가 - 이언 랜킨 / 최필원 : 별점 1.5점

매듭과 십자가 - 4점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딘버러에서 소녀들을 유괴하여 살해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혼한 전 SAS 특수부대 출신 경사 존 리버스에게 기묘한 협박장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존 리버스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싸우며 사건 수사에 나섰고, 여러가지 단서들을 통해 범인이 정말로 노리는 것이 자신이었다는게 밝혀진다...

"'타탄 느와르의 제왕'이라는 작가 이언 랜킨이 창조한 존 리버스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 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홍보 문구에 더해 적절한 분량과 괜찮은 책 디자인으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인기있는 소재들 몇 개를 나열한 펄프 픽션에 불과한 탓입니다. 우선 주인공 존 리버스부터 살펴보죠. 그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못나가는 경찰, 전직 SAS 출신, 골초, 이혼남, 고독한 늑대, 트라우마..." 이 키워드 몇 가지를 섞어 만든 캐릭터는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을 겁니다. 그냥 현대 하드보일드범죄물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스테레오 타입이니까요. SAS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것으로 관련된 트라우마로 괴로워한다는 묘사가 자주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이 바닥에서 과거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한다는 것 역시 뻔하디 뻔한 설정이고요. SAS에서의 훈련과 경험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도 불만입니다. 차라리 트라우마 없고 군대 경력을 활용하여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마스터 키튼"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그다지 잘생기거나 몸이 좋지도 않고, 다른 매력도 없는데 여자들과의 원나잇이 쉽게 그려지는 것 역시 불만입니다. 이게 영국적인 문화라서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조직 내 동료들끼리 스스럼없이 원나잇을 즐긴다는건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리버스의 전처가 리버스와 티격태격하는 상관 앤더슨의 새파랗게 어린 아들과 사귄다는 막장 설정은 도무지 왜 나왔는지 모르겠고요. 딱 한가지 마음에 드는 설정은 딸바보라는 점 뿐입니다. 특히 딸에게 추파를 던지는 거리의 건방진 수컷들을 하이에나 떼 보듯이 하는 장면만큼은 딸 아이 아빠로서 공감이 가더군요. 그러나 이는 사건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

범죄 스릴러로서의 가치도 형편없습니다. 범인이 지속적으로 존 리버스에 메시지를 보내지만 리버스는 살인마가 SAS 당시의 전우 고든 리브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는게 핵심인데, 이유는 트라우마로 과거의 기억을 봉인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막장 드라마기억 상실증에 버금가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편의적인 설정이 아니었다면 매듭을 통해 고든 리브를 쉽게 떠올렸을 거라는건 자명합니다. 당연히 체포도 손쉬웠을테고요. 최소한 사만다가 유괴되기 전에는 잡을 수 있었겠지요.

게다가 기억을 되찾는 것도 최면술사인 동생 덕분이라니 이 역시 어처구니 없습니다. 그나마 첫 만남에서 동생 마이클이 최면으로 전생도 끄집어낼 수 있다 운운하는 복선을 깔아놓기는 했지만, 절대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어요. 지독히 편의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또 작중 리브스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처의 애인이 죽고, 전처는 중상을 입고 딸까지 유괴당한 후에도 하는건 집에서 술이나 먹는 것에 불과합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자책하는 것은 덤이고요. 범인을 알아낸 것은 앞서 말했듯 동생 마이클의 최면술 덕분이며, 범인의 흔적도 경찰에서 피해 아동들이 같은 도서관(중앙도서관)에 다녔다는 단서를 포착한 것을 토대로 잡아냅니다. 그나마 마지막 추격전에서 아주 약간의 활약을 하기는 하지만 대단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거기에 더해 급작스러운 결말과 두페이지 분량도 채 되지 않는 에필로그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리브스의 트라우마는 극복되었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마이클은 어떻게 되었는지, 앤더슨은 어떻게 되었는지, 질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건지 등등등....

물론 몇가지 건질만한 재미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피해 아동들 이름의 머릿글자를 연결하면 리버스의 딸 사만다의 이름이 표시된다던가, "죄와 벌"에 대한 과거 대화를 언급하며 책 속에서 총을 꺼낸다던가 하는 요소는 제법 괜찮았어요. 기자 짐 스티븐스가 마이클 리버스의 마약 거래를 뒤쫓는 이야기가 병행해서 펼쳐지는 것도 흥미를 자아냅니다.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무대가 되는 에딘버러에 대한 묘사는 특히 좋아요. 유괴 사건에 대한 지루하고 기나긴 탐문, 자료 조사에 대한 끔찍함에 대한 묘사는 놀라운 수준이고요. 모든 내용이 250페이지 안쪽의 짤막한 분량이라는 것도 4~500페이지 짜리 장편이 넘쳐나는 시대에 보기 힘든 미덕이지요. 아울러 출판사 오픈하우스가 새롭게 런칭한 장르문학 전문 브랜드 Vertigo 이름으로 출간되었는데 성격을 확실히 보여주는 장정과 디자인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장점에 비해 단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관심이 가시더라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후속권을 읽을 생각이 없고요. 이런 싸구려 펄프픽션을 뭔가 있어보이게 "느와르"라는 표현을 써가며 홍보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습니다.

2011/08/11

검은 옷을 입은 신부 - 코넬 울리치 / 홍연미 : 별점 2점

검은 옷을 입은 신부 - 4점
코넬 울리치 지음, 홍연미 옮김/페이퍼하우스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켄 블리스는 자신의 약혼 축하 파티장에서 추락사했다. 미첼은 자신이 거주하던 낡은 호텔방에서 독살당했다. 프랭크 모런은 자택 창고에서 질식사했고, 퍼거슨은 화실에서 화살에 찔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네 명의 죽음은 모두 한 여인과 관련이 있었는데...

서스펜스의 거장 코넬 울리치(윌리엄 아이리시)의 대표작입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헐리우드 서스펜스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가죠. 참고로, 저는 오랫동안 제목의 "신부(Bride)"를 "신부(Priest)"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작품을 요약하자면, 연인을 잃은 주인공 줄리의 복수극으로, 성별이 바뀌긴 했지만 사실상 "상복의 랑데뷰"와 동일한 플롯을 가진, 자가 복제 표절작 남매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복의 랑데뷰"보다는 확실히 처집니다. 총 5명의 인물에 대한 복수가 펼쳐지는데, 여자 혼자 별다른 준비 없이 몸으로 부딪히는 느낌이라 긴장감이 떨어졌고, 작가 특유의 서스펜스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엄청난 미모 외에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주인공 줄리의 캐릭터도 평범했고요.

무엇보다도, 결국 엉뚱한 사람들을 오해로 죽여 나갔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게다가 복수의 원인이 된 줄리의 남편 닉 칼린의 죽음이 "동업자가 입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밝혀지는데, 그렇다면 닉 칼린 역시 어느 정도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어 복수 자체가 적반하장으로 느껴졌습니다. "상복의 랑데뷰"가 이 작품 발표 후 8년 뒤에 나왔다는 점을 보면, 작가 스스로도 단점을 깨닫고 보다 정교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했던게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미첼 사건에서 벽에 걸린 사진 등으로 사람을 분석하는 모습이나, 모런 사건에서 아이를 통해 정보를 캐내는 장면, 그리고 선량한 다른 사람들을 용의자로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줄리의 행동, 경찰이 줄리를 쉽게 포착하지 못했던 이유 등은 소소하게 건질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작가 특유의 문체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그들 한가운데에서 그의 얼굴은 깊은 연못 바닥에 가라앉은 흰 조약돌처럼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순백색 베일 아래쪽에는 조그마한 빨간 점 하나가 쉼표처럼 찍혀 있었다. 그녀는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 붉은 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었다. 마침표였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있더라도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동일한 플롯이라면 "상복의 랑데뷰" 한 작품만 읽어도 충분하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2/02/28

미스터리 심리학 - 리처드 와이즈먼 / 김영선 : 별점 3.5점

미스터리 심리학 - 8점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김영선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세상에 알려진 각종 기현상을 파헤치는 내용의 교양서적입니다. 마술의 비법을 밝히고 사기꾼들의 수법을 폭로하는 책들과 유사한데, 저도 전에 "신비의 사기꾼들"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심리학적으로 접근한게 특징이며, "재미있게 쓰여졌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 자체가 상당히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게 구성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어요.

또한, 각종 기현상을 꼭지별로 나누어 역사부터 소개하는 자세한 설명이 좋았으며, 심리학자 등이 전문적 능력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수수께끼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적인 재미도 느껴졌습니다. 이런 류의 책들은 항상 기본 이상의 만족도를 주는 것 같습니다.

실려 있는 모든 내용이 흥미진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매나 점술가의 콜드 리딩을 설명하는 첫 번째 꼭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대를 칭찬하며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듣는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인데, 결국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여러 실험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정말 무릎을 칠 만한 내용이었어요. 이건 단순한 콜드 리딩이 아니라 사기의 기법이기도 하니까요!

이왕이면 동양의 사주팔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사주팔자는 일종의 DB 개념으로 봐야 할까요?)

그 외에도 영화 제목으로까지 사용된 영혼의 무게, 강령술과 테이블 움직임, 위저보드에 대한 해석, 영혼과 유령에 대한 과학적 접근, "오렌지로드" 팬들에게는 익숙한 예지몽의 허구성, 독심술과 최면 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한, 사기는 단순할수록 효과적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기도 했고요.

문체는 좋았지만, 이론적인 설명이 지나치게 직역에 가까워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뒤로 갈수록 주제 면에서 흥미와 몰입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 그래도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