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열차 살인 사건 - 케리 그린우드 지음, 정미현 옮김/딜라일라북스 |
귀족 영애 프라이니는 하녀 도트와 함께 밸러랫 행 열차로 여행 중 일등실 객차에 클로로포름이 뿌려지는 상황에 직면한다. 프라이니의 기지로 승객들은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승객 중 한명인 헨더슨 부인이 기차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헨더슨 부인의 딸 유니스는 명탐정으로 이름난 프라이니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프라이니는 기차 승객으로 기억을 잃은 제니까지 떠 맡고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데..
귀족영애 탐정 프라이니 시리즈. 어쩌다 보니 세번째 부터 읽게 되었네요.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무리 보아도 그 어떤 매력을 찾을 수 없는 졸작입니다.
일단 주인공 프라이니부터 한심합니다. 매력적인 외모와 두뇌, 행동력에 재산까지 갖춘 자유로운 신여성이라는 설정인데 도가 지나쳐서 짜증이 났습니다. 비현실적인 것도 정도가 있어야죠.
그나마 앞선 설정들이야 만화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뻔하디 뻔한 설정이라 치더라도, 남자가 마음에 들면 두번째 만남만에 정사를 갖는 모습을 자유로운 신여성(?)이라고 포장하는건 무리였습니다. 여성 모두를 유혹하는 싸구려 펄프 픽션 속 마초를 빗대어 만든 캐릭터라 하더라도 일단 정통파 계보에 드는 탐정들 중에 그런 싸구려는 없으며, 혹여 그렇다 하더라도 대체로 그러한 유혹은 사건 해결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사용됩니다. 아니면 상대 여성이 악당으로 여성의 매력을 이용한 음모의 하나이거나...
그러나 이 작품 속 정사는 사건 해결과는 무관한, 순전히 프라이니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용도이며 상대방 린지가 숫총각이라는 점에서 싸구려 성인물에 가깝습니다. '숫총각 사냥하는 선배 누나 혹은 유부녀' 캐릭터랄까요. 허나 싸구려 성인물은 성욕 자극이라는 대 명제에 충실한 반면 이 작품은 그렇지도 못하기에 더 별로였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의 연속입니다. 대단한 분장도 하지 않았는데 앨러스테어가 기차에서 보았던 젊고 핸섬한 승무원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부터 문제죠. 아무리 클로르포름에 취했었다 하더라도 사건 직후 키라던가 얼굴 인상을 그대로 기억하고 하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설득력이 낮습니다.
하지만 이건 실종된 헨더슨 부인 살인사건의 진상에 비하면 솔직히 약과입니다.
- 기차에서 헨더슨 부인의 목을 밧줄로 묶고
- 그 줄을 급수탑으로 던진 뒤
- 급수탑을 기어 올라가 밧줄을 잡아당겨 노인을 끌어낸 후
- 시체 위로 뛰어내렸다.
가 그것인데 비록 급수 때문에 3분간 정차했다 하더라도 2~3의 과정을 그 짧은 시간 어떻게 했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헨더슨 부인을 창문에 기대어 놓은 후, 객실 지붕에 올라가서 헨더슨 부인의 목에 밧줄을 걸고 그것을 선로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급수탑에 던진 뒤 10미터를 전력 질주하고 급수탑을 올라간 뒤 밧줄을 잡아당겼다? 이게 3분 안에 과연 가능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령 가능했다 하더라도 앨러스테어가 클로르포름을 이용하여 객실 승객들을 마취시킨 다음이라면 이러한 복잡한 행동으로 노부인을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도주에 도움을 주거나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게 하나도 없거든요. 마지막까지 이유가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 이럴 바에야 그냥 창 밖으로 내던지는게 훨씬 쉬웠을 겁니다.
또 승무원을 가장한 핸섬한 젊은이가 유력한 용의자이며, 동기와 외모 등을 종합해보면 앨러스테어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그의 유일한 알리바이가 친구 린지에 의해 뒤집혀 버린다는 전개도 시시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리의 여지도 없기에 프라이니가 이 사건 해결을 위해서 하는 것은 전무하고요. 이 부분에서는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동거인의 조사조차 게을리한 경찰의 무능함도 돋보이고요.
중간에 등장하는, 기억을 잃은 소녀 제인 사건은 프라이니와 그의 친구들 (버트와 세스)의 활약으로 해결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헨더슨 부인 살인사건보다야 낫긴 합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버튼이 최면술로 불쌍한 고아 소녀들이나 납치한 소녀들을 사창가에 팔아 넘긴다는 범행 자체가 문제에요. 최면술을 기억을 완벽하게 없앤다던가,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식으로 무슨 마법처럼 묘사하고 있거든요. 최면술이 설령 마법과 같은 효과를 발휘했더라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 처럼 30여명 이상에게 모두 성공적으로 최면을 건다던가, 특정한 자극이나 신호 없이 눈빛과 대사만으로 순식간에 최면을 걸고 푸는 것은 무리죠. 마지막 순간에 고양이에게 눈을 공격당한 최면술사 헨리 버턴이 그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결말도 후련하기는 하나 이 역시 과학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여간 최면술이 등장한 작품치고 제대로 된 걸 못 봤단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만듬새도 괜찮고 여성 작가다운 꼼꼼한 묘사에 약간의 점수를 더하나 추리물로서는 그 어떤 가치를 찾아볼 수 없는 망작입니다.
앨리스테어가 행하는 여자에 대한 막되먹은 행동과 "자고로 여자란 출산 이후엔 전부 쓸모없어지지" 등의 대사를 보면 작가의 의도는 대충 짐작이 가긴 합니다. 유능하고 강력한 여성이 멍청한 남자들을 가지고 놀고 사악한 마초를 응징하는 페미니즘 영웅물을 노골적으로 그리려 한 것이겠죠. 뭐 그 생각이 잘못된건 아니에요. 문제는 그게 뭐든간에 최소한의 완성도는 있어야 했습니다... 2017년 들어 처음 읽은 추리 소설이 이따위라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네요.
덧붙이자면 TV 시리즈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역시나 그닥 기대가 안되는군요. 추리보다는 작중 묘사되는 온갖 화려한 의상들이나 세세한 디테일들, 그리고 사창가에서의 격투라던가 마지막 프라이니 집 앞에서 앨러스테어와 벌이는 격투 등 액션의 비중이 높은 추리 속성이 조금 들어간 시대극 액션물이 아닐까 싶거든요. <<각시탈>> 처럼 말이죠! 잠깐 찾아보았는데 프라이니 캐릭터도 딱히 매력적이지도 않고 말이죠. 여튼 이 작품에 대해서는 책이든 영상물이든 더 찾아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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