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의 노래 -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
시인 보비는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진 시인 M.다스가 아직 살아있고, 캘커타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된 잡지사의 의뢰로 아내 암리타, 젖먹이 딸 빅토리아와 함께 캘커타로 향한다. 목적은 M.다스의 신작 확보와 그에 대한 기사 작성. 보비는 그를 찾아온 조력자 "크리슈나"를 통해 M.다스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의 신작에 얽힌 "칼리" 신을 모시는 신앙과 폭력에 대해 알게 된다.
손에 넣은 M.다스의 신작을 독파한 보비는 반은 협박에 가까운 어거지로 M.다스를 직접 만나게 되지만 이후 다스의 죽음, 카팔리카 교단의 납치와 폭력에 휩쓸리게 되고 크리슈나의 도움으로 간신히 호텔에 돌아오지만 빅토리아가 유괴된 것을 알게 되는데....
장르 소설가 댄 시먼스의 데뷰작. 캘커타를 무대로 범죄 집단의 광기에 휩쓸린 시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세계환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스티븐 킹, 딘 쿤츠 등이 격찬한 공포 소설이라기에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명성이 허언은 아니더군요. 확실히 재미있었어요. 사실 보비의 임무(?)는 별게 없습니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시인의 복귀작을 구해오고, 관련된 기사를 쓰는게 전부니까요.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독자에게 흥미롭게 전달하는 솜씨가 정말 빼어나며, 그 바탕에는 발군의 묘사력이 자리합니다. 캘커타라는 곳에 절대로 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글 솜씨가 가장 돋보여요. 이 작품의 첫 문장부터가 그러합니다. "어떤 장소는 너무나 사악하여 그 존재를 허락할 수 없다. 어떤 도시는 지독히 악랄해서 용납할 수 없다. 캘커타는 그런 곳이다." 작품 내내 이 첫 문장을 그대로 증명하듯 캘커타의 치부와 오점만을 강하게 드러내어 상세하게 그려냅니다. 이러한 캘커타 묘사 덕에 "폐쇄공포증"이라고 불러도 좋을 공포감이 모락모락 생겨나고요. 특정 장소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데 그 장소나 너무나 혐오스럽게 묘사되니 당연한 결과겠죠. 이렇듯 특정 장소에 대한 혐오감과 폐쇄 공포증을 불러 일으키는 위력은 스티븐 킹의 <<아주 비좁은 것>>과 좋은 비교가 될 정도에요. 이러한 곳에서 하나 뿐인 아이가 사라졌다니... 그 공포는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이러한 공포에 감정이입이 가능하도록 묘사가 빼어나서 그 위력이 더욱 배가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외의 묘사들도 대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무크타난다지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카팔리카의 예배 의식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아주 좋은 예입니다. 엄청난 자료 조사가 뒷받침되어 있어 보이는 디테일에다가, 신상이 밟고 있는 시체와 들고 있는 참수된 목을 이용한 아이디어도 아주 공포스러워서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익사한 시체가 다시 살아났다는 장면은 정말이지 압권이었고요. 이국적이면서도 충분히 무섭기에 시각화하더라도 아주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영상화되지는 않은 듯 해서 좀 의외였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한 <<칼리의 노래>>에 대한 아이디어도 아주 좋아요. 일종의 서사시와 현대 문명을 결합하여 설명하는데 번역된 결과물로는 정말 천재 시인의 작품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저는 아이디어만으로도 놀라운 결과물로 느껴졌어요. 현대 문명이 진정한 폭력의 시대라는 것을 광고나 뉴스 기사와의 결합을 통해 (의도한 것이던 아니던) 잘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시 속 표현 그대로 "칼리의 시대가 열렸도다"! 인 것이죠.
그리고 적절하게 등장하는 소소한 액션, 빅토리아를 잃었지만 보비와 암리타 부부는 결국 어둠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 발을 내딛는다는 나름대로의 해피 엔딩도 괜찮았습니다. 제가 해피 엔딩을 좋아하기도 할 뿐더러, 이 정도 고초를 겪었으면 좀 행복해져도 될 것 같거든요.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주요 인물인 보비, 크리슈나의 급격한 심리 변화와 행동들의 이유, 목적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이 큽니다. 보비가 다스를 꼭 만나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이유 - 보비가 원고를 손에 든 시점에서는 M.다스를 만날 이유는 없음 -, 만남 이후 크리슈나가 건네준 권총을 M.다스가 부탁한 시집 속에 숨겨 넣은 이유, 마지막에 보비가 발작적으로 캘커타로 돌아가 닥치는 대로 폭력을 행사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는 등 이야기의 핵심 변곡점 모두가 그러합니다. 크리슈나 즉 산자이의 목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카팔리카가 되고 싶었지만 되고 난 이후에는 왜 보비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를 전혀 모르겠거든요. 칼리 신의 뜻도 아니고, 그 스스로 칼리 신을 거역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을 정도의 실력자로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죠. 만약 크리슈나의 행동이 카팔리카의 목적이라면 M.다스를 죽인 이유도 이해 불가입니다. 그냥 놔 두었어도 어차피 오래 갈 목숨은 아니고, 시의 출간을 막기 위해서라면 보비와의 만남과 죽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요. 이 모든 것이 칼리 신의 안배라고 한다면 최소한 그 안배, 계획이 무엇인지 정도는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이 세상에 폭력의 시대가 돌아왔음을 선언한다... 정도로는 많이 부족했어요.
빅토리아를 납치한 것도 밀수품 운반을 위한 악당들의 음모였는지, 칼리 교도인 카팔리카들의 복수인지도 결국은 증명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악당들의 음모라면 사전의 안배 - 다스의 조카라는 카마키야 브하라티의 존재 - 라던가, 차터지가 M.다스와의 면담을 주선하는 것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카팔리카가 연류되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좀 애매해요. 이렇듯 좀 모호한 이야기가 '환상문학' 스타일이기는 합니다만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보비가 과거 성폭행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등의 짤막한 묘사는 완전히 사족에 불과했어요.
이렇듯 설명은 부족하나 재미도 있고 묵직한, 좋은 장르 문학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만큼 장황하면서도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죠. 별점은 3점입니다. 공포 소설이라고 알고 있는데 생각만큼 무섭지는 않아 조금 감점하지만 추천작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고보니 아주 무섭지는 않지만 환상 문학 쪽으로는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앰브로스 비어스 작품과도 비슷하군요. 여튼, 아직 이 작품을 읽어보지 못하신 장르문학 팬 분들 모두에게 추천드리는 바 입니다.
덧붙이자면, 그 동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 독서로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인도는 절대 가면 안된다는 것을. 댄 시먼스가 캘커타에 대체 왜 이렇게까지 앙심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 생각에는 이 책을 읽은 독자의 대부분은 캘커타라는 곳을 방문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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