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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8

문 나이트 Vol. 1 : 광기 - 제퍼 르미어, 그렉 스몰우드, 조디 벨레어 / 임태현 : 별점 2.5점

문 나이트 Vol. 1 : 광기 - 6점
제프 르미어 지음, 그렉 스몰우드.조디 벨레어 그림, 임태현 옮김/시공사(만화)

'문 나이트'라는 히어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최근 영화화가 확정되었다는 소식 정도만 접했을 뿐이죠. 하지만 이 단행행본 에피소드는 어딘가에서 엄청나게 추천하셨기 때문에 관심을 조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알라딘 e-book 쿠폰이 생겨서 겸사겸사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본 결과는 조금 미묘하네요. 이야기 자체는 꽤 그럴듯합니다. 마크 스펙터가 진짜 문나이트인지, 아니면 정신병자인지?에 대해서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가 바라보는 환상과 현실이 겹쳐지는 전개, 그가 진짜 문나이트일 수도 있다는걸 서서히, 기묘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전개 모두 짜임새 있고요. 마크에게 환각처럼 나타나 악신 세트에 맞서 떨쳐 일어날걸 강요했던 콘슈가 사실은 마크의 육신을 빼앗으려는 악신이었고, 이를 거부한 마크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뒤, 성공하고 행복한 영화배우 스티븐으로 다시 눈을 뜨는 결말도 뻔했지만 나쁘지는 않았어요. 이 모든게 꿈인지, 정신병자의 환각인지 끝까지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문제는 결말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호하다는 겁니다. 주인공 마크 스펙터가 히어로 '문 나이트'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거든요. 마크는 힘을 잃고 정신병원에 갇힌 히어로 문 나이트일 수도 있지만, 이집트 신 콘슈에 대한 환각을 보다가 이를 주변 다른 정신병자들에게도 전염시켜(?) 탈출을 감행하는 위험한 정신병자일 수도 있습니다. 허나 이는 결국 끝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별다른 슈퍼 파워 없이, 그냥 맨손 격투로 일관하는 액션 역시 이런 모호함을 가중시키고요. 

또 이 작품을 통해 '문 나이트'라는 히어로에 대해 알아가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독립된 작품으로 친다면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시리즈를 의식한 듯한 모호한 결말 대신, 마크는 정신병자였고, 미쳐서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죽였다는걸 깨닫는 결말이 더 나았을겁니다. 미쳤을 때가 차라리 행복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작화는 빼어납니다. 그러나 환상이 뒤섞일 때 여러 작가들 화풍으로 다른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은 식상했고, 과연 이런 방식이 필요했을지도 의문이 남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화풍이 정해져 있던 걸까요? 그랬다면 나름 좋은 아이디어지만, 독립된 작품으로는 완성되었다고 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목에 "Vol.1"이 있는 만큼, 후속작을 읽으면 평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지금으로는 잘 달려가다가 어정쩡하게 끝난 느낌입니다. 문 나이트 입문작으로는 돌직구 히어로 액션물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16/12/23

화가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2.5점

화가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호러영화 같은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 레나. 코타로가 곧바로 이사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자. 

곧 중학생이 되는 코타로는 할머니와 함께 치바에서 머나먼, 도쿄 근방의 무사시 나고이케라는 낯선 지역으로 이사왔다. 코타로의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로 사망한 탓이었다. 코타로는 새 집에서 왠지모를 기시감을 느꼈고, 집 안에서 온갖 이형의 존재와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코타로는 새 친구 레나와 함께 이유를 밝혀내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고, 오래전 신문을 통해 이사 온 집은 10년 전 일가족이 이웃집 정신병자에게 살해당했던 장소이며, 유일한 생존자는 바로 코타로였다는걸 알게 되었다...

미쓰다 신조의 '집'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화가 (禍家)'는 한국말로 하자면 '재앙의 집' 이겠지요? '집' 시리즈 답게 '집'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자 장치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롭지는 않습니다. 설정부터가 진부한 탓입니다. 몰락한 막장 명문가(수많은 작품들...), 잔인하게 일가족이 살해당했던 과거(수많은 작품들...), 이형의 존재가 지나가는 길이나 궤도에 있으면 죽거나 해를 입는다("귀담백경"의 "방울소리" 라던가 "백귀야행" 등등등), 죽음의 연쇄는 막을 수 없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데스티네이션" 등등등) 등 모두 어디선가 보아왔던 설정들이지요.
뻔한 설정이라도 미쓰다 신조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도 못합니다. 작가의 장기인 일본적인 요괴나 주술, 심령 묘사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역인 시미에의 작전도 허술합니다. 코타로의 양부모를 죽인 것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레나와 친해진 후 코타로와도 격의없이 지내는 과정은 그렇게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코타로와 할머니가 이 곳으로 이사오리라 생각한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 가족이 살해당한 집에 손자를 데리고 다시 이사를 간답니까?

다행히 장점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뻔하지만, 뻔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쓰였다는 뜻이고 많이 쓰였다면 그건 그만큼 효과, 즉 재미가 있다는 의미도 되지요. 이에 더해 극단적으로 말하면 초등학생의 모험물이라 할 수 있는 작품 특징 덕분에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읽히는 편이기도 하고요. 특히 코타로에 대한 묘사가 괜찮습니다. 급작스럽게 닥치는 여러 사건과 사고 속에서 의지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의 힘으로 어려움을 돌파해나가려는 전형적인 '점프식' 주인공인데 작품과 잘 어울린 덕분입니다. 아울러 주인공이 어리고 모험물적인 전개를 갖추어서 작가 특유의 장황하면서 복잡한 묘사가 덜하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시미에가 사실 가미츠케 가의 딸인 시메이로, 오빠의 유지를 받들어 범행을 끝내기 위함이었다는걸 몇몇 디테일로 드러내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면 코로가 화요일, 목요일 낮에 짖은 이유를 가정교사로 레나 오빠의 공부를 봐 주기 위해 오는 시미에의 동선과 일치시키는 식으로요. 물론 개가 짖는다고 지나가는 사람이 다 살인범은 아닐테니, 그렇게 합리적인 설정은 아니기는 하지만요.
마지막 순간에 이러한 디테일들을 통해 시미에의 존재를 눈치챈 두 번의 기지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개 코로까지야 그렇다 쳐도, 레나에게서 받은 부적이 휴대전화였다는 반전은 정말이지 멋졌어요. 

또 정신병자 살인마 카미츠케 군지의 범행은 사당에서 뛰쳐나온 이형 존재의 동선에 위치한 자신의 집 대신, 맞은편 무나카타가를 이용하려는 것이었다는 진상도 나쁘지 않습니다. 정신병자나 할 법한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라도 이에 이르는 과정을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더라도 영적인 무언가에 대한 묘사는 충분히 섬찟합니다. 형태를 그리지 않고 분위기와 소리만으로 공포심을 자아내는 묘사력은 여전히 발군이에요. 이들은 살인범 카미츠케 군지를 제외하면 모두 살해당한 코우타의 가족으로 무언가를 코우타에게 전하기 위해 딱 한번만 나타난 것이라는 반전도 나쁘지 않고요. 
물론 반전이 아주 새롭지는 않고, 이 반전 탓에 이후 이들에 대한 공포가 사라져버린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사당에 관련된 그럴싸한 설정과 묘사 - 여기에 있는 건 구제할 수 없는 절망, 불합리할 정도의 우월감, 끝을 모를 악의, 압도적인 광기, 소름돋는 증오, 너무나도 제멋대로의 살의...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굉장히 무서운 무언가처럼 묘사하다가, 별다른 설명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어 버리는 탓입니다.
군지가 사당을 박살낸 후 무언가 탈출(?) 했다면 사당은 그냥 빈 껍데기가 되었을텐데 이런 부분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레나와 코타로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이(초중반부에 등장했던 정체모를 꼬마 아이로 보이는) 가미츠케 가문의 단 하나남은 소년의 등장으로 마무리 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소설대로라면 결국 코타로는 죽게 될 것 같은데, 레나와 곧 태어날 아이까지 그렇게 될지... 좀 많이 걱정이 되는군요.

하여튼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을 모두 적절히 갖춘 평작입니다. 미쓰다 신조 입문으로는 괜찮습니다.

2010/08/21

정말이야? 1,2 - 안드레아스 슈뢰더 / 이영민 : 별점 3점

정말이야? - 6점
안드레아스 슈뢰더 지음, 이영민 옮김/재승출판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역사속 사기꾼들과 사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논픽션입니다. 총 2권으로 1권에는 17개, 2권에는 11개의 목차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기 중 인상적이었던건 아래와 같습니다.

"모나리자를 훔쳐낸 뒤 다수의 위작을 거액으로 수집가들에게 팔아넘긴 '모나리자 절도사건"
진품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작을 여러개 만들어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진품을 훔쳐낸다는 발상이 기발했어요.

"역사상 최대의 은행 절도 사건인 프랑스의 스파갸리 사건"
1억달러 이상의 금과 지폐, 귀중품 등을 지하 금고실에서 대대적인 작전을 통해 훔쳐낸다는 스케일도 크죠. 그러나 더욱더 인상적인 것인 의외로 금방 체포된 주범 스파갸리가 판사 집무실에서 전직 낙하산병다운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탈출한 뒤 사라져 버렸다라는 후일담이었습니다.

"100만달러의 현금을 탈취한 D.B 쿠퍼 사건"
"프리즌 브레이크"로도 친숙한 D.B 쿠퍼 사건입니다. 미국에서 거의 최초로 비행기 폭파 협박으로 100만달러의 현금을 갈취한 뒤 낙하산으로 도망간 사건이죠. "프리즌 브레이크"에서는 다시 감옥에 수감된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행복하게 살다가 80년대 후반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하는군요. 어쨌건 담대한 싸나이의 '인생은 한방' 철학에 충실한 모험담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돈을 마음껏 농락한 여상 마르트 하나우 사건"
1920년대에 이미 매체를 통한 주가조작이라는 첨단 사기방법을 보여준 여성 마르트 하나우가 등장합니다. 아예 공식적으로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전국 규모의 매체조작으로 주가를 상승시키는 대담함이 돋보이네요.

"미국의 황제 노턴 1세"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자신을 황제라 칭했던 정신병자 노턴 1세의 이야기입니다. 자칭 황제인 정신병자가 정말로 황제로 대접받으며 근사한 말년을 보냈다는 내용인데 이러한 사기 정도는 유머와 여유로 받아주던 19세기 후반의 샌프란시스코가 부럽네요. 혹 여행갈 일이 있다면 책에서 언급한 노턴 1세의 자취를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셰라톤 팔레스 호텔의 식당이름이 황제 노턴실임 / 엠페러 항에는 노턴 1세의 얼굴이 세겨짐 / 피어39 쇼핑센터 앞의 황제 마네킹 등)

"최고의 위작가 엘미르 드 호리"
1920년대 유명 후기 인상파 화가 페르낭 레제의 미술학도로 공부하며 후기 인상파에 대해 모든 것을 꿰뚫게 된 엘미르 드 호리가 막대한 위작을 팔아넘긴 사기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잘 나가다가 결국 체포되어 자살했지만, 사기당했다는 사람들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외려 그의 위작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후일담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니 위작가로서의 능력이 정말 뛰어났던 것 같네요.

"군대를 손아귀에 넣다"
1차대전 당시 프러시아와 2차대전때의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군복을 입고 지위를 사칭하여 주변을 농락한 이야기입니다. 군국주의 파시스트가 판치던 분위기에서 아주 효과적인 사기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아무래도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풍자의 의미가 컸던 탓인지 두 사건 모두 주인공들이 나름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는게 이채롭기도 하군요.

"인류에게 에너지를!"
에테르 엔진을 개발한 미국 발명가 존 킬리, 물에다가 자신이 개발한 약간의 약품을 첨가하면 휘발유를 대체할 수 있다는 엔리히 이야기 2편이 등장합니다. 존 킬리 사건은 너무나 전형적인 장치 설비 사기라서 좀 허탈하기도 하네요. 엔리히 이야기는 결국 그 물질이 뭐였을까?에 대한 답은 없이 끝나는데 뒷날 조사 결과로는 '에탄올'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독일의 원격조종 강도 다고베르트 사건"
90년대 독일을 휩쓸었던 지능범 다고베르트 사건입니다. 직접 개발한 원격 조종 장치 박스안에 현금을 넣고 기차에 부착하라고 지시한 뒤 원격으로 기차에서 떨어지게 조작한다던가, 하수구 뚜껑 위에 직접 만든 모래상자를 놓고 밑에서 현금을 빼낸다던가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였어요. 하수구 뚜껑 위의 장치는 영화 "스피드"가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어쨌건 오랜 기간동안 경찰을 농락하다가 결국 체포되기는 했지만 독일에서 굉장한 화제를 모으고 영화 이야기도 여럿 나왔다고 하니 다고베르트 역시 앞날은 걱정없겠네요. 영화를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이외의 사건들도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료들이라 읽으면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왜 2권으로 분책했냐는 거죠. 조금 두꺼워지더라도 활자 크기를 조정해서 1권으로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어쨌건 별점은 3점입니다. "쿠로사기"와 같은 사기 관련 컨텐츠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적극 추천합니다. 사기의 원점을 둘러보는 의미에서 볼 만 하니까요.

2017/04/09

파인더스 키퍼스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파인더스 키퍼스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천재 작가 로스스타인의 원고를 훔친 모리스는 흥분 상태에서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는데, 35년만에 가석방되어 돌아왔다. 한편 숨겨진 원고를 찾아낸 피터 소버스는, 원고와 함께 있던 현금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써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돈이 다 떨어지자, 원고 일부를 동생 티나의 사립학교 진학을 위해 팔려고 계획했다. 이 계획을 알게 된 드루 홀리데이는 오히려 피터를 협박하여 원고를 손에 넣으려 하는데...

빌 호지스 3부작의 두번째 작품으로 "미스터 메르세데스" 후속작입니다.

스티븐 킹 작품답게 쉽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려주는 덕분입니다. 숨 쉴 틈 없이 사건이 계속 벌어져서 눈을 떼기 힘들었어요.
묘사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특히 범죄자 모리스 시점 묘사가 아주 대단합니다. 광기어린 집착을 보이는 정신병자의 편향된 사고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굉장히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흡사 포르노나 하드고어 호러물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부분은 전작과 비슷하네요. 집착의 대상이 거장의 미발표 원고라는 점도 왠지 공감이 갔고요. 저 역시 한때(?) 오덕이었으니까요.

인물 설정도 괜찮습니다. 모리스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잘 묘사되어 있으며, 또다른 주인공인 피터 소버스도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평범한 초등학생이라면 대충 처리했을 로스스타인의 원고의 가치를 알아본다는 설정을 학교 수업과 연결하여 소개하는 점이 그 중에서도 백미였어요. 여러분, 학교 수업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빌 호지스 3부작으로 만든건 최악입니다. 호지스 패밀리보다는 모리스와 피터의 대결이 핵심이며, 홀리와 제롬은 그냥 등장한다 싶을 정도로 별다른 활약이 없는 탓입니다. 심지어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벌어진 최후의 대결마저도 빌 호지스는 물론이고 다른 호지스 패밀리는 없어도 됩니다. 피터가 붙인 불로 모리스가 타 죽는 게 끝이니까요. 제롬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설정은 억지로 시리즈로 만들기 위한 사족일 뿐입니다. 하기사 빌 호지스에게 사건이 의뢰된 이유도 피터의 동생 티나가 제롬의 동생 바브라와 친구라는 이유 때문이니 말 다했지요. 과연 이런 일로 탐정에게 사건 의뢰를 할까요?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에게 알리는게 당연하지요. 이것 역시 억지로 시리즈에 끼워 넣었습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 외에도 피트의 아버지가 메르세데스 킬러에게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던가, 메르세데스 벤츠 킬러 브래디가 등장하여 일종의 백치 상태로 살아난 묘사를 그린 부분도 마찬가지에요. 시리즈만 아니었으면 다 빼도 무방한 설정들입니다. 게다가 브래드가 무언가 초능력을 얻었다는 떡박이 던져지는 것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불필요한 설정을 통해 후속작을 암시하다니, 돈독이 올라도 너무 오른게 아닌가 싶더군요.
이보다는 정신병자 모리스 대 여동생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모범생 피터와의 대결로 그리는게 훨씬 나았습니다. 빌 호지스 패밀리는 팬 서비스 수준의 카메오 등장이면 충분했어요.

전개도 열심히 달려주기는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전부 우연입니다. 모리스가 숨겨 놓았던 트렁크를 피터가 발견하는건 전개상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모리스가 원고를 훔치게 된 계기를 만든 드류 홀리데이가 이후 피터의 노트 판매 계획에 엮이는건 우연이라도 너무 지나칩니다. 피터가 원고를 숨긴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심지어 바로 그 장소에서) 최후의 대결이 벌어진다는 것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고요. 스티븐 킹이 나이가 들어 변한건지 모르겠지만 전편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중요성과 해피 엔딩을 강조한 결말도 와 닿지 않았습니다. 피트 어머니가 모리스에게 총을 맞지만 살아난다는 것이 대표적인데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휙휙 읽히는 재미만큼은 명불허전으로 킬링 타임용으로는 최고의 선택이지만, 단점도 명확하기에 감점합니다. 딱히 추천드리기는 어렵네요.

2021/09/11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피터 스완슨 / 노진선 : 별점 1.5점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4점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푸른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조울증 환자인 판화가 헨은 남편 로이드와 함께 교외 전원 주택으로 이사했다. 친해진 이웃 부부의 저녁 초대를 받은 날, 헨은 이웃집 서재에서 더스틴 밀러 살인 사건 현장에서 사라졌던 펜싱 트로피를 발견했다. 이를 통해 범인이 이웃집 남편 매슈라는걸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헨이 정신병 때문에 저질렀던 과거 이력 탓에 경찰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매슈는 진범이 맞았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잔인하게 학대했던 아버지 때문에, 여성을 비참하게 만드는 남자들을 응징해 왔었다. 그는 헨이 경찰에 신고한 뒤에도 밴드 보컬 스콧을 살해했고, 그 현장을 헨에게 들키고 마는데...

이전에 읽었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저자 피터 스완슨의 신작 범죄 스릴러입니다. 

"나는 범인을 알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상황을 이용한 작품은 많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작품 재미요소는, 주인공이 거짓말을 한다고 여겨져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과정, 그리고 이 상황에서 주인공이 벌이는, 자신을 죽여 입막음을 하려는 범인과의 고독한 싸움이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사뭇 다릅니다. 주인공이 범인을 알게 된 뒤, 범인과 주인공이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가 된다는 획기적인 전개로 나아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새로운 발상이 성공적인 건 아닙니다. 헨이 매슈에게 죽을리 없다는게 밝혀진 순간, 스릴이나 서스펜스를 잦을 수 없게 되니까요. 서로간의 비밀을 공유하는, 정신병자 남녀의 기묘한 우정 드라마로 변해 버립니다. 게다가 이를 피하기 위해 작가가 매슈의 동생 리처드를 살인마로 등장시킨 건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원래 A는 B와의 관계로 위협을 받는게 정상인데, A와 B가 사이가 좋아져버리니 C가 등장하는 꼴이지요. 긴 머리 소녀와 단발 머리 소녀 두 명을 동시에 사귀는 일로 괴로워하다가(명백하게 "오렌지로드"의 카스가 쿄우스케!), 새로운 사랑인 안경 소녀를 찾는다는 오래전 "호에로 펜!" 이야기와 똑같지요. 문제는 이건 개그만화였다는거.... 

여자를 괴롭히는 악당 남자만 죽이는 매슈와는 다르게, 리처드는 남자들을 유혹하곤 하는 여자들을 죽이는 살인마라는 설정도 유치하기 짝이 없고 리처드는 사실 매슈의 이중인격이었다!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비슷한 작품을 워낙에 많이 접해보아서 진작에 눈치챌 수 있었어요. 이중인격은 이제 옛날 기억상실처럼 마구 가져다 쓰는 설정인 탓입니다. 

그나마 반전이 설득력있게 제공되지도 못합니다 애초부터 이중인격이었다면, 왜 매슈가 이전에 범행을 저질렀을 때에는 남자를 죽이지 않았던 걸까요? 이전에는 남자를 죽인 뒤 매슈에게 꼬리쳤던 여자가 없었다? 말이 안됩니다. 매슈는 데이트 폭력을 휘두르던 미라의 전 남자친구를 죽인 뒤, 미라와 교제해서 결혼까지 했으니, 꼬리치는 여자를 죽인다면 이 때 미라를 죽였어야 했어요.

매슈가 이중인격 연쇄 살인마가 된 이유가 형제 아버지가 어머니를 가혹하게 학대했었기 때문이라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뻔할 뿐더러 가정 폭력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정신병자 살인범이 된다는 시각을 강요하는 느낌이라서요. 

헨에게 정신병이 있다는 설정도 식상하기 그지 없습니다. 왜 이런 류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들은 모두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걸까요? 헨이 친구를 의심했던 탓에 사고를 일으켜 전과가 생겼다는 과거 역시 그녀의 정신병을 드러내서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걸 당연하게 만드려는 장치에 불과할 뿐입니다.

범죄 스릴러치고는 정교함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매슈가 스콧을 살해한 범행이 대표적이에요. 매슈는 헨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심지어 경찰의 방문 조사를 받은 직후 스콧을 살해합니다. 당장 죽였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범행 역시도 이런저런 도구와 준비를 갖추기는 하나, 결국 우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딱히 정교한 완전범죄로 볼 여지가 없어요. 실제로 헨이 범행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리처드의 범행은 더 엉망입니다. 미셸을 죽이고 헨을 죽이러 왔을 때 모두 범죄를 숨기려는 노력이 전무하거든요. 이중인격이 된다고 해서 바보가 되는건 아닐텐데 말이지요. 여러모로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나마 재미있었던건, 헨의 남편 로이드가 바람을 피웠다는 매슈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는 부분 정도였습니다. 헨이 로이드 옷의 냄새를 확인한 뒤, 친구에게 교묘하게 정보를 빼내어 바람 피운걸 증명하는 과정은 괜찮은 일상계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매슈의 말은 그냥 넘겨짚었던 것에 불과했고, 그 이유도 '모든 남자는 다른 여자랑 자지 못해 안달난 짐승들이다'는 매슈의 개인적인 지론 하나 뿐이라는건, 결국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인 성범죄자나 바람둥이, 아니면 살인자로 바라보는 사고 방식이라 영 별로지만요. 하긴, 이 작품이 마음에 안 드는건 이런 작가의 개인적인 사고 방식을 강요하는 탓도 큽니다. 남자는 대체로 악하고, 여자들은 대체로 마음이 병들어 있고, 가정 폭력이 있는 집 아이는 마음이 병든다는 그런 뻔한 논리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이 주인공인 양산형 여성 시점 스릴러물로 재미도 없고, 새로운 맛도 없으며 범행도 전혀 중요하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차별화할 만한 독특한 요소가 없지는 않으나, 그런 요소들 모두 부정적으로 사용될 뿐입니다. 두 번 다시 이 작가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2021/08/29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 에리카 오크런트 / 박인용 : 별점 4점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 8점
에리카 오크런트 지음, 박인용 옮김/함께읽는책

자연 발생적인 언어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어에 대해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프롤로그를 거쳐 존 윌킨스와 진리의 언어, 루드비크 자멘호프와 평화의 언어, 찰스 블리스와 기호의 언어, 제임스 쿡 브라운과 논리의 언어, 스타트렉의 클링온 등 연대순으로 주요 인공어와 왜 그 인공어를 발명했는지가 발명자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소개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17세기부터 수학에 바탕을 둔 언어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과학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그동안 세계어였던 라틴어의 힘이 약화되면서 벌어진 일이었지요. 때문에 글자를 수 처럼 사용하거나, 말을 숫자로 바꾸거나, 아예 기호화하는 등의 아이디어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중, 언어를 수학화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네요. 예를 들어,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므로, 만약 동물 a가 2이고 이성적이라는 것 r이 3이면, 사람 h는 ar과 같아야 하며, 이 경우 2*3 즉 6이 될 것이다."는 식으로요.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각 항목별 '기본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문제였는데, 이를 진지하게 파고든게 존 윌킨스였다는군요. 윌킨스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모든 단어를 분류하여 계층화하였습니다. 자연 언어에서 '개'는 단순히 외우는 것이고, 그 발음도 임의로 정해진 소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윌킨스 체계를 통해서는 개를 나타내는 단어는 개가 무엇인지를 알려 줄 수 있습니다. 단어가 짐승 > 타원형 두개골 > 순으로 되어있는 계층도 하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 분류도 지극히 임의적이고, 사용자가 개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하는 탓에 사용하기 어려웠으며, 무엇보다도 단어가 아니라 완성된 '언어'로 만들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지요.

윌킨스의 언어에 비하면 자멘호프의 에스페란토 어는 분명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한다는 목적에 잘 부합했으니까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언어라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세계어가 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오그던이 영어 단어 갯수를 850개로 줄어 제안했던 '기본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동사를 없애고, Get, Put, Take. Come. Go, Have. Give 등의 기본 동사만 사용하는 방식으로, 윈스턴 처칠도 팬이었을 정도로 꽤 인기를 끌었었지만, 실제 사용할 때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니까요. 하긴, 숙어라던가 관용적 표현 없이 언어가 존재하기는 힘들테니 당연하지요.

찰스 블리스의 블리스 기호는 단순한 기호들을 조합하여 여러가지 의미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블리스가 중국 체류 시 배웠던 한자 조어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습니다. 해석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한 등 문제도 많았지만, 아예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장애아들에게 굉장히 효과적이어서 온타리오 장애아 학교 등에서 아주 잘 사용되었습니다. 문제는 찰스 블리스가 자존감이 낮은 정신병자였던 탓에, 지루한 법정 싸움으로 인해 이 기호를 활용한 교습법이 널리 퍼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는 상당히 유용했을테고, 온갖 이모지 사용이 일반화된 지금에 더 잘 먹힐 방식인데 아쉽네요.

제임스 쿡 브라운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할 수 있으므로,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과학적인 객관성을 지닌 언어 '로글랜'을 발표했습니다. 소개된 내용을 보니, 수학과 논리학에 기반을 둔 언어로, 일반 언어라기 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가깝더군요. 그래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일반적인 언어처럼 사용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너무 컸습니다. 로글랜은 창시자 브라운에게서 벗어난, 비영리 단체 논리 언어 집단이 이끄는 '로지반'이라는 언어로 발전해 나갔는데, 어렵기는 별 차이가 없고요.

마지막에는 스타트렉의 '클링온'이 소개됩니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소수의 열광적인 팬들에 의해 생명력을 얻은 언어로, 특별한 목적이 없고, 유용하지 않아도 언어는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입니다. 저자는 클링온의 존재 이유를 '유희' 라고 단정하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아울러 이런 재미 요소가 앞으로는 신규 언어의 필수 조건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드네요.

이렇게 대표적인 인조어 외에도 언어로 여성의 관점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라아단'과 같이 파생된, 관련된 인조어도 조금씩 소개되고 있으며, 수많은 인조어들의 목록과 번역 예로 구성된 부록도 풍성합니다. 저자가 인공어들을 직접 배워서, 그리고 그 인공어들의 학습 코스나 세미나 등에 직접 참석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언어인지에 대해 보다 생생하게 제공해주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고요. 덕분에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그래도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로글랜, 로지반과 같이 지나치게 어려운 언어는 그 사용 방식이 책만 읽어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으며, 찰스 블리스의 블리스 기호는 그 기호에 대한 설명보다는 정신병자 블리스의 인생 이야기가 더 길게 소개되는 등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책이었어요. 회사에서 UX 업무를 담당하는 저에게는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다 생각됩니다. 딱딱하고 어렵게가 아니라 저자의 체험 중심으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게 쓰여져 있기도 하고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상호 작용 (인터랙션) 등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5/03/15

도시전설의 모든 것 - 얀 해럴드 브룬반드 / 박숭서 : 별점 3점

도시전설의 모든 것 - 6점
얀 해럴드 브룬반드 지음, 박중서 옮김/위즈덤하우스

현대의 도시전설,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퍼지며, 사람들의 믿음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해당 이야기들과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사랑니를 빼면 기억력이 감퇴한다',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있는 괴한 이야기', '맥도날드 햄버거에 벌레가 섞여 있다' 같은 익숙한 이야기들이 언제, 어디서 처음 시작되어 널리 퍼졌는지,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분석하여 알려줍니다. 관련된 서브컬처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예를 들자면, '한 남자가 여자와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 차를 세우고 시간을 보내려던 중, 라디오에서 갈고리 손을 가진 탈주범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 겁에 질린 여자가 집에 가자고 강하게 요구해 남자는 화가 난 채로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준다. 하지만 여자가 차에서 내린 순간, 차량 문고리에 갈고리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는 갈고리 괴담을 소개한 뒤,

'이 이야기는 1967년, 인디애나 대학의 한 여학생이 룸메이트에게 들려준 "갈고리남"을 문자 그대로 채록하여 1968년 학술지 인디애나 민간전승 창간호에 실은 것이며, 민속학자 린다 데그 교수는 이 전설이 최소 1959년부터 전해졌고 지역에서 44종의 변형된 버전이 수집되었음을 보고했습니다. 1960년 디어 애비 칼럼에도 소개되었고, 이후 가장 유명한 미국 도시전설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영화 미트볼스(1979)와 캔디맨(1992), 만화 파 사이드 등 다양한 매체에서 다뤄졌으며, 많은 소설가들도 이를 차용했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공포담인지, 늦은 밤 외진 곳에서 위험을 경고하는 이야기인지, 혹은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 안에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는 상황과 자동차 밖에서 갈고리남이 위협하는 구조가 상징적 거세를 암시한다는 해석도 존재합니다.'라는 해설이 이어지는 방식입니다.

자기 것인 줄 알고 쿠키를 빼앗아 먹었는데, 알고 보니 남의 쿠키였다는 이야기는 "포기하기 힘든 유혹" 수록작인 "깨진 습관"이 원전인 줄 알았는데, 영국에서는 1970년대 초부터 "비스킷 봉지(The Packet of Biscuits)"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의 수많은 변형이 존재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과거 수십 년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에 독자 투고로 실린 유머들이 사실은 도시전설의 일환이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였다는 것도 흥미로왔고요.

이처럼 단순한 유머, 재미난 도시전설 소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정보를 함께 전해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인터넷과 미디어가 도시전설의 확산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도시전설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과정에 대한 분석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믿고 있는 이야기들이 실제로는 허구이거나 잘못 전해진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예를 들어 "거룩한 장소(The Holy Place)"라는 도시전설이 있습니다. 어느 성당의 신도들이 측랑의 특정 지점에 가면 항상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었는데,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오래된 신도에게 이유를 물어본 결과, 원래 그 지점에는 벽에서 돌출된 부분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장애물이 사라졌지만, 습관이 남아 무릎을 꿇는 행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볼 만한 내용이 많은데, 분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은 과했습니다. 도시전설이 만들어지고, 퍼지고, 변형되는 과정에 집중하려 했다면, 이렇게 많은 사례를 수록하기보다는 보다 핵심적인 이야기들에 집중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너무 학술적으로 접근한다면 "한국의 학교 괴담"처럼 논문에 가까운 결과물이 될 테니, 어느 정도 균형은 잘 맞춰야 하겠지만요.

그래도 수록된 도시전설들이 흥미롭고, 관련된 서브컬처 정보도 풍부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수록 도시전설 한 가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정신병자와 타이어 너트(The Nut and the Tire Nuts)"

어느 시골길을 달리던 운전자가 갑자기 타이어가 펑크 나 차를 세웠다. 그는 당황했지만 곧 잭을 꺼내 타이어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수로 휠 너트 다섯 개를 모두 흘려버리고 말았다. 어두워지는 길가에서 너트를 찾으려 애썼지만, 결국 하나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낙담한 그때, 근처 정신병원의 울타리에 기대어 있던 환자가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각 바퀴에서 너트 하나씩만 풀어 끼우면 되잖아요. 그러면 적어도 정비소까지는 갈 수 있을 텐데요.”

운전자는 깜짝 놀라면서도 감탄하며 물었다.

“이렇게 똑똑한 분이 왜 정신병원에 계신 거죠?”

그러자 정신병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건 아니니까요.”

2019/10/25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 구라치 준 / 김윤수 : 별점 2점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 4점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작가정신

잘 모르는 작가의 단편집입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모두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이 흥미로와서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기발함, 기묘함이 부족한 탓이 가장 큽니다. 개개의 이야기들 모두 아이디어에 비하면 긴 편이라는 것도 단점이고요. 호시 신이치였다면 10페이지 안 쪽으로 끝냈을, 그런 내용들에 불과하거든요. "사내 연애"와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은 특히 쇼트쇼트 스타일로 쓰여지는게 어울렸을겁니다. 기발한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였다는 점에서요.

물론 쓰고 싶은 글을 느긋하게 썼구나 싶은 작품도 있습니다. "밤을 보는 고양이"는 고양이를 정말 사랑하는 애묘인이구나! 싶은 묘사가 가득하여 읽는 내내 아주 흐뭇했어요.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기발함이 추리적으로 잘 포장된 괜찮은 이야기였고요.

하지만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고 아이디어도 괜찮았지만 약간은 어정쩡한 느낌이 컸기 때문입니다. 호시 신이치 쪽인지, 아토다 다카시 쪽인지를 좀 더 명확히 하면 좋겠네요. 호시 신이치 쪽이라면 더 짧게, 아토다 다카시 쪽이라면 아이디어의 보강과 약간의 엽기성(?)이 추가되어야 할 겁니다.

각 단편별 상세 소개로 리뷰를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ABC

불특정한 희생자를 살해하는 무차별 살인이 벌어지는데, 주인공은 우연히 2 건의 살인 사건이 ABC의 규칙을 따른다는걸 알아내고 C에 해당하는 희생자를 찾아내어 살해하려 했다. 이유는 유산을 노리고 동생을 죽일 계획인데 동생이 'D'에 해당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호그 연속 살인ABC 살인 사건의 결합은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에서도 써 먹은 아이디어입니다. 아마 다른 작품에도 쓰여진 경우가 있을 거에요. 그만큼 유명한 트릭이자 설정이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핵심 아이디어는 범인이 C 사건을 일으킨 뒤, 곧바로 다수의 D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반전입니다. 여러 사람이 연쇄 살인에 편승하여 저마다 모방 범죄를 일으킨 것이죠. 그리고 주인공이 급작스럽게 자신도 D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는걸 깨달으며 마무리됩니다.

반전과 결말 모두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흔해 빠진 서두를 조금 더 줄여서 쇼트쇼트로 발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사내 편애"

인사 관리를 컴퓨터가 전담하게 된 이후, AI 시스템 '마더컴'로부터 편애를 받게 된 주인공이 회사 내에서 이런 저런 황당한 일을 겪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공 지능이 인사 관리를 한다는 아이디어는 새롭지 않지만 '모더레이트 플리커 메소드식 (MFM)' 이라고 불리우는 설정이 아주 기발합니다. 인사 관리를 지나치게 합리적이지 않도록 하는, 인간적인 모호함을 넣은 서브 프로그램으로 덕분에 좀 느슨하고 인간적으로 관리하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도입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인 '공정성'이 훼손되는거라 일부러 이런 오류를 집어넣을 이유는 없지만, 상황 자체는 꽤 그럴듯 했습니다.

이 모호함이 주인공 데라시마에게는 '편애'로 작동하여 일으키는 소동들도 재미있습니다. 전무가 직접 커피를 타다 주고, 상사가 허물을 덮어주는 정도에서 마음에 둔 여사원과 억지로 이어주는 민폐 수준의 도움까지 진화하게 되거든요. 심지어 마음을 고백한 것도 아닌데 주인공의 눈빛 등을 분석하여 이런 억지를 이끌어내니 어떻게 보면 무섭지요.

그러나 결국 지긋지긋해진 주인공이 회사를 그만 두고 다른 회사 면접을 보는데 그 회사 마더컴은 주인공을 그냥 싫어하더라는 결말은 조금 시시했습니다. 조금 더 재미있는 상황을 끌어낼 부분이 많았는데 너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야기를 끝낸 느낌이에요. 별점은 2점입니다.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살해된 피해자 입에 파가 물려있고, 머리 맡에는 케이크가 놓여있는 기묘한 상황을 그린 단편입니다.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데 추리물로 보기는 어려워요. 나카모토 경부의 합리적인 수사를 통해 범인은 아주 쉽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기묘한 범행 현장에 대한 아마치 형사의 추리가 전부인데, 진상이 밝혀지지 않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혼잣말과 비슷한 수준의 이야기라 공허합니다. 아마치 형사 본인 스스로도 마음껏 공상한, 상식 밖의 엉뚱한 생각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니까요.

물론 실제 진상이 드러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를 스토킹하면서 피해자가 파를 싫어하고 케이크를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된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후, 좋아하는 케이크를 먹고 싶어도 싫어하는 파가 입을 막고 있어서 먹지 못해 원통해서 마음 편히 성불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성불을 막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는 추리는 솔직히 억지스러워요. 피해자에게 집착해서 그녀가 죽어서 영원히 손에 닿지 않는 곳에 가면 안되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건데, 누가봐도 정신병자의 행동입니다. 정신병자의 정신나간 행동을 합리적으로 추리한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에요.

때문에 추리 소설로의 가치는 별로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밤을 보는 고양이"

할머니 혼자 사는 시골집에 내려간 주인공 유리에는 할머니의 고양이 미코가 며칠동안 밤에 어딘가를 바라보는걸 알아챈다. 미코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고양이 미코에 대한 묘사가 꽉 채워져 있는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시종일관 느껴져 좋았습니다. 고양이를 쓰다듬고, 만지고, 같이 노는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스러워요.

하지만 고양이가 어딘가를 바라보는 이유가 '냄새' 때문이며, 이는 이웃집 할머니를 아들이 암매장하기 위해 땅을 판 탓이라는 결말은 좀 억지스럽습니다. 고양이의 후각이 예민한건 맞지만, 이웃집에서 땅을 판다고 밤에 자지 않고 그쪽을 쳐다본다는건 좀 이상하잖아요? 땅을 판다고 해서 그렇게 특별한 냄새가 날지도 잘 모르겠고요. 실제로 공사 현장 옆에 산다고 해서 고양이가 그곳을 바라보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고양이 묘사는 좋지만 그 외에는 그냥저냥한 소품이었습니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패전 직전인 1944년 겨울, 나가노 현에 위치한 제국 육군 특수 과학 연구소 2-13호 실험실에서 벌어진 기묘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날카로운 흉기는 하나도 없는 밀실인 실험실에서 피해자가 후두부를 날카로운 흉기로 얻어 맞아 죽은 사건이었다. 언뜻 두부 모서리에 부딪혀 사망한 걸로 보이는데 과연 진상은 무엇일까?

밀실 살인물이자 불가능 범죄물입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마사키 박사가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는 인력 '공간 전위', 즉 일종의 텔레포트 현상을 인력으로 발생시켜 미국에 폭탄을 투하한다는 연구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특무 첩보 기관에서 파견 나온 도네 소좌의 추리는 꽤 기발했습니다. 공간 전위의 첫번째는 공간 역전 현상으로 공간이 뒤집혀 피해자는 거꾸로 떨어졌고, 우연찮게 지금은 움푹 들어간 천장 모서리에 후두부가 찍히게 되었다는 추리입니다. 공간 역전이 일어나면 움푹 들어간 곳은 반대로 튀어나올 테니까요.

하지만 당연히 이런 괴기한 추리는 진상도 뭐도 아니며, 뒤이어 주인공인 이즈카 가쓰오 이등병의 합리적인 추리가 등장합니다. 범인은 도네 소좌이며, 이유는 피해자가 스파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흉기는 벽돌 같은 걸로 범행 후 멀리 던져버렸고, 아침에 문을 열 때 문 앞의 눈이 치워져 있었다는게 증거고요. 밀실은 특무대 소속이면 자물쇠 여는 것 쯤은 식은죽먹기였을거라는 식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이즈카 이등병의 상상일 뿐입니다. 근거도 없고, 진상도 결국 밝혀지지 않아요. 그리고 이즈카 이등병의 상상이 진상이었다 하더라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고를 위장하여 연구에 종사하는 병사들을 죽이는건 별로 어렵지 않다고 이즈카 본인 스스로 이야기하는데, 도네 소좌가 이런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해 가면서까지 가게우라 이등병을 죽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가 스파이라고 생각했다면 사람들 앞에서 총으로 쏴 죽여도 괜찮았을겁니다. 그만큼 미친 시대였지요.

그래도 일본의 전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무식한 특수 과학 실험,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걸 풍자하는 묘사와 내용은 인정할 만 합니다. 공간 전위라는 기묘한 실험에 대한 아이디어와 이를 추리에 응용한 발상도 좋았고요. 차라리 이 추리가 마지막에 진상처럼 드러나고, 결국 진상은 아무도 모르지만 미친 시대에 누가 그런걸 신경이나 쓸까? 라는 형태로 마무리했더라면 훨씬 마음에 들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하마오카는 회사 연구소에 극비 신소재 관련 자료를 가져오기 위해 방문했다. 그런데 마침 그 곳에서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교 선배 네코마루를 만났고, 우연히 연구소 내 산책을 함께 하다가 연구 소장 살인 미수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일종의 불가능 범죄를 다룬 정통 본격 추리물입니다. 그런데 도가 지나친 삼엄한 연구소 경비, 기묘한 연구원과 도저히 알 수 없는 센스의 연구소 마스코트 네코멜론군, 이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기이한 네코마루 선배 등 설정이 만화적이라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건 단점입니다. 네코마루 선배 정도만이었다면 괜찮았을텐데 말이죠. 이래서야 지극히 현실적인 동기 - 극비 신소재에 대한 정보를 빼돌리는 것 - 와 거리감이 커서 영 와 닿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시종일관 장난으로 일관하는 행동과는 다르게 추리 자체는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네코마루 선배의 추리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아무도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으니 이 범행은 소장의 자작극이다! 그리고 물이 가득 든 양동이를 던질 수 없으니 빈 양동이를 던져 부딪혔고 물은 그 전에 쏟아 놓았다!는 추리로 아주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극비 신소재 자료를 빼돌리고 이를 하마오카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다는 동기도 좋았고요. 농담같은 철저한 보안은 구급차를 타고 빠져나감으로써 뚫을 수 있다는 발상 역시 보안이 나름 강한 회사에 다니는 제 입장에서 보아도 설득력이 높아 보입니다. 과연 시리즈 작품에 탐정으로 등장할 만 합니다.

만화적이고 과장된 묘사를 줄이고 좀 더 일상계스러운 작품으로 쓰는게 여러모로 더 나아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9/08/02

죽여 마땅한 사람들 - 피터 스완슨 / 노진선 : 별점 2점

죽여 마땅한 사람들 - 6점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푸른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테드 스버슨은 아내 미란다가 건축업자 브래드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걸 알고 실의에 빠졌다. 그 때 우연히 만난 여성 릴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둘은 죽어 마땅하다며 테드가 직접 행동에 나설걸 촉구했다. 릴리에게 빠져든 테드는 살인 계획을 세웠지만, 브래드가 선수를 쳐서 테드를 살해해 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뉴스로 접한 릴리는 그 둘을 직접 응징하려 하는데... 

이런 저런 곳에서 평이 상당히 좋았던 미국 스릴러입니다. 오쟁이를 진 남편이 살의를 품게 된 계기가 우연히 만난 여성 릴리의 설득 때문이라는 시작은 독특합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낯선 승객"이 살짝 떠오르더군요. 책 뒤 해설을 보니 영향을 받은 듯, 안 받은 듯 모호하게 쓰여져 있기는 한데 최소한 작가도 존재를 알고 있었던건 분명하네요. 첫 만남 당시 릴리가 읽고 있던 작품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 이니까요.

평이 좋은 이유는 일단 잘 알 수 있습니다. 재미만큼은 확실하거든요. 흡입력있는 신선한 전개도 아주 좋고요. 중반부까지 테드와 릴리의 시점을 각각 오가는데 테드의 시점은 릴리를 만난 다음부터의 현재이며, 릴리의 시점은 그녀가 첫 살인을 저지른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옵니다. 그리고 두 시점이 합쳐지는 순간, 테드는 살해당하고 이는 독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줍니다. 그 뒤에도 릴리와 미란다 시점, 미란다가 살해된 뒤에는 경찰 킴볼 시점과의 교차 전개가 계속되는 것도 괜찮았어요. 독자에게 다양한 시각, 알지 못했던 정보를 제공하는 덕분입니다.
이 과정에서 테드에게 살의를 불러 일으키는 릴리에 대한 설정과 묘사도 인상적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죽이는데 주저함이 없는 싸이코패스"나를 찾아줘"의 에이미 스타일인데, 개인의 욕심이나 이기심보다는 제목 그대로 '죽여 마땅한' 사람들만 죽인다는 차이점이 명확합니다.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의 추진력, 결단력 역시 매력적이고요. 그녀를 실존하듯 그려낸 묘사도 일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추리 소설을 - '낸시 드류' 시리즈를 포함해서 - 좋아했던 소녀로 그려져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녀와 대척점에 있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인 미란다와 브래드 설정도 괜찮습니다. 단순히 불륜 관계가 아니라 테드를 살해한다는 전개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킴볼 역시 잘 그려져 있습니다. 시를 쓰는게 취미일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상당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갖추고 있으며 우연히 쓴 음란한 시가 발목을 잡게 된다는 복선도 치밀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릴리가 대학 시절 사귀었던 에릭을 살해한 범행만큼은 돋보입니다. 에릭이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고 견과류가 들어간 인도 요리를 먹인 뒤, 치료제를 숨겨 질식해 사망하게 만드는데 사고사로 보이게끔 다양한 조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견과류는 미리 갈아서 요리에 섞어두었고, 범행 전 에릭의 승부욕을 자극하여 펍에서 열리는 술 먹기 대회에 참여하게 만드는 등의 작전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술에 취한 에릭이 실수로 요리를 먹고, 치료제도 찾지 못해 죽었다고 경찰은 생각하게 되지요.
경찰 킴볼이 의외로 유능해서 릴리와 테드의 관계, 릴리의 거짓말과 여러가지 이상한 행동을 파헤치는 과정도 볼거리입니다. 정말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릴리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경찰력에 상당한 신뢰를 갖게 만들 정도에요.

그러나 다른 범행은 그닥입니다. 릴리가 미란다와 브래드를 살해하는 핵심 범행부터가 그러합니다. 특히 브래드를 설득해서 미란다를 죽이게 만든다는 계획이 최악이죠. 브래드가 미란다에게 역으로 설득당해 릴리를 죽일 수도 있었으니까요.
미란다, 브래드를 살해한 뒤 먼 거리를 이동하여 사체를 유기하는 장면의 묘사도 나쁘지는 않지만 도로의 CCTV에 촬영되거나 도로 요금소에서 목격당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완벽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미국 도로 CCTV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과연 추적이 불가능했을지?에는 의구심이 남습니다.

릴리가 저질렀던 다른 사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 만났던 유아 성애자 챗을 숨겨진 우물에 떨어트려 죽인 뒤 챗의 모든 짐도 같은 장소에 버린 첫 범행부터 문제가 많습니다. 범행 자체의 설득력부터 부족한 탓입니다.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기는 했지만 챗이 우물에서 떨어져 즉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니까요. 지나치게 잘 풀린 느낌이에요. 차라리 뚜껑을 덮고 굶어죽도록 놔 두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또 당장은 살해하는데 성공했더라도 누군가 찾아 나섰다면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도 문제에요.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라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설정으로 대충 넘어갈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릴리가 충동적으로 킴볼을 칼로 찔러 체포되는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백주대낮에 현역 경찰에게 직접 흉기를 휘두르는건 빠져나가기 힘든 범죄니까요. 킴볼을 없애려면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범행을 저질러야 했습니다. 치밀해 보였던 릴리 캐릭터가 막판에 급작스럽게 붕괴되어 버리는데 그래서 얻은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범죄 천재로 보였지만 그냥 어설픈 정신병자에 불과했다는 결말에 불과합니다.

그 외의 범행들도 어설픕니다. 남편을 죽이고 재산을 가로채려던 미란다의 계획? 당연히 실패했을겁니다. 범행 당시 브래드의 인상착의가 목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릴리에 의해 살해되지 않았다면 킴볼 등 경찰의 수사에 의해 진상이 드러나는건 순식간이었을 거에요. 작 중에 등장하는 것 처럼 가짜 증언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과연 그렇게 쉽게 넘어갔을지는 의문입니다.
테드가 충동적으로 릴리가 근무하는 대학 도시 윈슬로를 방문한 것, 릴리가 테드 사망 후 케네윅을 방문해서 숙박한 것 등의 자잘한 실수도 눈에 뜨입니다. 테드의 실수는 릴리를 곧바로 수사 선상에 올리게 만드니까요. 테드가 미란다보다 선수쳐서 범행을 저질렀다 해도 이래서야 완전 범죄가 성공했을 것 같지는 않네요. 테드와 릴리가 서로 끌렸다는 설정은 바람난 아내와 정부를 응징하겠다는 테드의 계획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아니 등장하니만 못했고요.

작위적인 설정도 많습니다. 테드의 아내 미란다가 에릭과 바람이 났던 대학 시절 친구 페이스이며, 우연히 만난 줄 알았던 릴리와 테드의 만남도 어느정도 계획된 것이라는게 밝혀지는 것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냥 우연히 만나서 정말로 범행에 대해 조언을 해 주게 되었다는 식으로 풀어나가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마지막에, 릴리가 시체를 유기했던 초원 지대가 재개발된다는 마무리도 작위적입니다. 이런 류의 개발 계획을 근처에 사는 사람이 몰랐다는게 말이 될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인물 설정 및 묘사, 그리고 전개는 뛰어나지만 범죄물로는 함량 미달이라 감점합니다. 공들여 쌓아올린 천재 여성 범죄자가 별볼일 없는 정신병자라는 결말도 실망스럽고요.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12/25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3.5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8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1권과 동일하게 각종 사건들의 상세한 소개에 더해 수사와 특별히 관계되어 있던 법의학법과학 방식이 소개되는 논픽션.
이번에는 거짓말 탐지기, DNA 분석, 루미놀 시약, 삭흔, 뼈, 법보행 등이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범죄의 종류 - 실종, 도굴 - 이라던가 수사 방식 - 잠복, 공개 수배 -, 범인의 특징 - 싸이코패스, 피해망상 -, 단서로 사용되는 여러가지 요소들 - 자백, 간접증거 - 등 많은 범죄 관련 소재가 언급됩니다. 이건 법의학과 법과학 관련 소재가 떨어졌기 때문이었을걸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사건 쪽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는데, 특기할만한 점 첫 번째는 여러 지능범들의 등장이었습니다. 사체 인멸, 현장 조작에 알리바이 트릭까지 사용하는 놀라운 범인들의 모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기할 점은 범인들이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인면수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범인들의 행태에 대한 언급을 읽으니 사형 제도의 부활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네요.

특정 주제에 맞는 대표적인 사건을 선정하기 쉬웠을 1권보다는 주제부터가 다소 정리되지 않았다는건 아쉽지만, 상세한 사건 정리가 여러 자료와 도판 등으로 뒷받침되는 좋은 범죄 논픽션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두 타석 연속 장타!
마지막으로 앞서 말씀드렸던 범죄 특징들이 잘 살아있는 몇몇 사건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건 몇가지를 아래에 소개해드립니다.

<<아산 노부부 살인 방화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1).
범인은 범행을 저지른 다음날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현장에 다시 침입했습니다. 양초를 이용한 장치로 시간 조작 방화를 일으키려고요. 범인은 집을 비웠던 시간에 영화 다운로드를 걸어 두어서 집에 있는척 했다는 알리바이 트릭까지 써먹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확실히 만화와 다른 법입니다. 범인은 한 달도 더 지난 사건 당일 행적을 너무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운로드했던 영화 제목을 기억하지 못해서 덜미가 잡히고 말거든요. 체포되어서 다행입니다.

<<환경 미화원 살인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2)
추리 소설에서나 봄직했던 정교한 시신 유기가 놀라왔던 사건입니다.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뒤 철물점에서 사온 50리터짜리 검은색 비닐봉투 15장과 이불로 시신을 감싸고 그 위에 100리터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 2장을 덧씌웠습니다. 이불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는 걸로 보이도록요. 그리고 환경 미화원이었던 범인은 자기 담당 구역에 '쓰레기'로 위장한 시신을 미리 가져다 놓은 뒤, 다음날 시신을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함께 쓰레기 수거 차량에 던져 넣었습니다. 시신은 그대로 전주 시내의 한 소각장으로 이동 후 소각 처리되고 말았다는군요. 무섭습니다.

<<거여동 여고 동창 살해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3)
단순 질투로 친구와 친구 아이 두 명을 살해했던, 비상식적인 잔혹함으로 충격을 안겨다 주었던 사건으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손에 목장갑만 꼈어도 덜미를 잡히지 않았을 정도의 지능범으로 방 열쇠를 넣은 핸드백을 방범창 안으로 던져 넣는 식으로 일종의 밀실 트릭까지 사용된, 거의 성공했던 완전범죄였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아이들이 너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손에 현장에는 없었던 종잇조각을 쥐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 현장 수사관들의 식견에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로, 종잇조각은 범행 도구로 준비해왔던 페트병으로 만든 빨랫줄 고정판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네요.
하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을거라고 경찰을 도발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집에 범행 기록을 꼼꼼히 적어둔 일기장을 남겨두었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시욕' 이라는게 있었던걸까요?
아울러 이런 계획 살인의 경우는 당연히 사형 선고를 받았어야 했는데 무기 징역에 그쳤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발 이런 범인은 좀 죽입시다.

<<신혼부부 니코틴 살인 사건>>
범인은 신혼 여행을 떠났던 일본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시신 화장을 서둘러 증거 인멸을 시도했지만 일본 경찰의 부검 감정서로 덜미가 잡힌 경우입니다. 피해자의 사인은 혈관 내 다량 투여된 니코틴에 따른 급성 중독사인데, 시신의 왼쪽 팔에서 두 곳, 오른쪽 팔에서 한 곳, 총 세 곳에서 주사바늘 자국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살인이 입증되었거든요. 처음 주사했을 때 바로 독성이 나타났을터라, 그 다음 나머지 두 곳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아니라면 타인이 주사를 놨다는 것이고, 사망 장소에는 남편밖에 다른 이는 없었으니 범인은 뻔한 셈입니다.
단지 돈 목적으로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살해한 인면수심의 뻔뻔한 살인범이라는 특징도 잘 살아있는 사건으로, 남편이라는 놈은 이 증거가 드러나자 자살 방조라고 우겼다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네요. 이런 놈도 좀 죽입시다....

뻔뻔함이라면 <<포천 암매장 살인 사건>>범인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싸이코패스인 범인이 완벽한 증거 앞에서도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는 가공할만한 뻔뻔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첫 조사에서 "사건 당일 피해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발뺌하더니, 두 사람이 함께 포천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 TV 화면을 제시하자, “함께 갔지만 피해자는 포천이동갈비를 먹으러 갔다"고 바로 말을 바꾼다던가, "함께 어머니 산소에 들렀는데, 피해자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비상식적 변명을 늘어놓는 식이었다네요. 이런 변명이 통할거라 생각한 것도 어이가 없고,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왔어요.

<<미아동 노파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남아시아계라는게 결정적 증거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잠복 중이던 형사가 혼혈로 보이는 어린 형제를 보고 사진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 중 큰 아이가 "아빠다!"라고 외쳐서 범인임을 확신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말 잔인한 행동이었어요.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은 잡아야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혼혈 아이들의 집만 알아내어도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 아빠 신원을 알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요?

<<울주 노인 연쇄살인 사건>>
사건 현장에 범인의 DNA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폐쇄회로 TV 영상도, 목격자도 없었지만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백 진술과 이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는 정황증거가 더해지면서 용의자가 범인이 됐던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자백'이 증거가 되기 위한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고요.
피고인의 자백이 곧바로 유죄 증거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최근에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법적으로도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또는 기망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의심되거나, 혹은 피고인의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땐 자백은 유죄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하고요.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는 조건도 까다롭다네요. 과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강도 살인'처럼 허위 자백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경우가 많은 탓이겠지요.

<<이천 무덤 연쇄 도굴 사건>>
정신병자가 저지른 범행으로 범행 자체는 특기할게 없는데, 피해자가 너무 안타까왔던 경우입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최씨는 부모 무덤이 도굴당한건 자신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믿어서 11년간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친지와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고 하거든요. 정신병자 한 명 때문에 인생이 망가져버렸는데, 이런건 정말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할까요?

<<제주 보육교사 피살 사건>>
미제 사건인줄 알았었는데, 과학 수사를 통해 이전에도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던 택시 운전사가 검거되었더군요. 사건 당시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각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과학 수사를 통해 피해자 사망 시각이 재조정되어 결국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동물 사체를 이용한 실험 결과로,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는 그늘인 데다 바람이 심했고, 사후 일주일이 넘은 뒤에도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걸 확인하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 물증이 없다는 약점이 있어서 경찰은 다시 철저한 재조사에 들어갔는데, 9년 사이 미세 증거물을 증폭해 보는 기술이 발달한 덕에 다행히 추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피해자 옷에서 범인 옷과 동일한 섬유 조각이, 범인의 차에서 피해자 섬유 조각이 수집되었던 것이지요. 섬유 조각이 범인이나 피해자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교차 발견되는게 많아지면 둘이 만났다는 의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겠지요.
이 책에서는 이렇게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구속 기소하는 단계까지만 언급되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용의자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나, 섬유 증거만으로는 증거력이 약하네요. 그 외의 증거들도 용의자가 범인이다! 라고 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쉽습니다. 언젠가 진범이 잡혀 피해자의 원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2010/04/07

도착의 사각 - 오리하라 이치 / 권일영 : 별점 1.5점

도착의 사각 - 4점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서술트릭의 대가로 알려진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입니다. 대표작이기도 한 "도착의 론도"도 그냥저냥이었기에 별로 땡기지는 않았지만 "도착" 시리즈는 한권정도 더 읽어볼 생각이었기에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수준의 작품이더군요.

일단 서술트릭이라고는 하지만 설정과 이야기에 현실성이 전무하고 억지로 짜 맞추었을 뿐입니다. 서술트릭의 기본이 되는 기본 전개가 두 주인공의 정신이상에 근거를 두고 있으니 당쵀 설득력이 있을 수가 없죠. 차라리 정신병원에서 두 정신병자가 침대 양 옆에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고 하는게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정신병과 망상을 글로 써내려 간 것을 진실처럼 포장하는 것도 서술트릭의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중구속"은 걸작이죠) 이 작품에서는 독자를 납득시키는 요소가 전무한, 그야말로 트릭을 위한 설정일 뿐이었어요.
그나마 중심이 되는 서술트릭 자체도 별다른 게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소 -마유미의 정체와 오사와의 범행- 의 대부분이 중간 지점에서 짐작 가능하거든요. 곳곳에 숨겨놓은 단서가 읽다보면 쉽게 드러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이렇게 속일꺼야"라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뻔했으니까요.

덧붙이자면, 마지막의 봉인 페이지는 솔직히 코미디네요. 마유미가 돌아온다는 것과 앞서 연쇄 여성 폭행범에 대한 진상, 편지 왕래에 대한 수수께끼가 밝혀지는 정도인데 뭐가 그리 대단한 반전이라고 이렇게까지 오버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와 손톱" 시대에나 통했음직한 마케팅을 되도않는 작품에 시도한 것 자체가 비웃음거리가 아닌가 싶군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서술트릭의 대가라는 명성을 얻게 된 전작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토해낸 어설픈 결과물로 보이네요. 꼼꼼하게 날짜와 시간대별로 메모하면서 읽게 만드는 재미는 그런대로 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만, 더 이상 이 작가의 다른 작품, 특히 "도착"시리즈는 읽을 생각이 없습니다.

2020/12/18

빨간 리본 - 헨닝 망켈 / 홍재웅 : 별점 2점

빨간 리본 - 4점
헨닝 망켈 지음, 홍재웅 옮김/곰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웨덴의 외딴 마을 헤세발렌에서 열 아홉 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피해자들은 어린 소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을에 오래 살았던 노인들이었다.
이 뉴스를 접한 비르기타 로슬린 판사는 병가 중에 충동적으로 헤세발렌으로 향했다. 돌아가신 어머니 기록들을 통해 피해자 중에 어머니의 양부모가 있다는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비르기타는 미국 네바다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었으며, 경찰이 중요한 정보라고 이야기해 준 빨간 리본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아냈고 간단한 조사로 수상한 중국인 손님이 찍힌 비디오 테이프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정보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라르스 에리크 발프리드손이라는 인물이 범인이라고 자백했던 탓이었다.
그 뒤 휴가를 얻어 친구 카린과 함께 중국으로 향했던 비르기타는 수상한 중국인 손님에 대한 탐문 조사를 벌이다가 당한 강도 사건을 통해 중국 공산당 실력자인 훙취와 알게 되었다. 그러나 훙취는 부정부패를 저질러 왔던 동생 야뤼에게 살해당했고,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가 비르기타에게 전해지는데...

스웨덴 작가 헨닝 망켈 (헤닝 만켈)이 쓴, 5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대장편 범죄 스릴러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창조한 유명 탐정쿠르트 발란더 시리즈는 아닙니다. 비르기타 로슬린이라는 헬싱보리에서 근무하는 여성 판사가 주인공인 작품이지요.

2006년 1월, 한 마을에 사는 친족들이 하룻밤 사이에 무려 열 아홉 명이나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도입부는 흥미롭습니다. 왜 이런 잔혹한 살인을 저질렀는지, 동기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보일 뿐이지요.
그러나 비르기타 로슬린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서류를 통해 피해자들이 '안드렌' 집안 사람들이라는게 이유일 거라고 추리합니다. 100년도 더 전에 미국으로 이주했던 네바다의 안드렌 일가도 얼마 전 처참하게 살해된걸 알아내고요. 

여기까지 진행된 뒤, 갑작스럽게 1863년의 중국인 '싼'이 겪는 역정이 그려지는데, 흥미롭기는 뒤지지 않습니다. 속아서 미국으로 끌려간 뒤, 네바다에서 철로를 놓는 노역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동생 두 명을 잃고, 중국으로 귀향한 뒤 선교사들 때문에 결혼할 여자와 뱃속 아이마저 잃어 복수귀가 된다는, 파란만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엄청난 내용이거든요. "황비홍" 1편에서 '금산에 갈 수 있다'고 사람들을 유혹한 뒤 노예로 팔아먹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그리고 비르기타가 빨간 리본의 출처, 에덴 호델 주인의 증언과 피해자 유품인 JA의 일기를 통해 사건 배후에 중국인이 있다는걸 알게 되면서 두 가지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지게 됩니다. 중국인 '싼'의 후예인 냉혈한 야뤼가 철천지 원수인 안드렌 가문에게 복수를 집행했다는게 진상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합친건 아무리 무리수였습니다. 거의 150년 전, 증조 할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철로 노역 감독관 후손들을 죽인다는 동기부터가 전혀 와 닿지 않았으니까요. 어떻게든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싼이 겪은 처절한 고생을 펼쳐놓기는 했지만, 이런 식이면 원수가 아닌 사람이 없을거에요
 물론 복수심을 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후손 일가를 모두 몰살시키는건 억지입니다. 미국 노예의 4~5대 쯤 되는 후손이 복수를 위해 노예선 선장이었던 백인 후손들을 몰살시킨다면, 미국에는 남아날 사람이 별로 없을거잖아요? 

게다가 진범이라고 할 수 있는 야뤼가 등장한 뒤부터는 이야기는 아예 다른 길로 향합니다. 중국 특권층이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을 빈부격차로 분노한 농민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프리카'로 농민들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장황하게 펼쳐지는 탓입니다.
계획에 대한 설명은 그럴듯합니다. 마오 시대부터 이어진 여러가지 정책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곁들여져 설득력이 높거든요. 관련된 자료 조사가 철저했던 듯 싶네요.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장에 대한 이야기도 생생함이 잘 살아 있습니다. 아이를 업은채 50Kg이나 되는 시멘트 포대를 나르는 아낙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아내의 황당무계한 권력욕으로 유명해진 무가베 대통령을 직접 만나는 장면을 통해 설명되는 짐바브웨와 무가베 대통령에 대한 설명도 충실했습니다. 또 이 계획이 식민지 주의의 재현이라며 반대하는 훙취와 야뤼의 대결도 볼만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본편 살인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거였다면 다른 작품에서, 다른 주제로 소개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별 상관도 없는 중국 이야기로 1/3 분량을 할애한 뒤, 누나인 훙취까지 제거한 야뤼가 비르기타를 죽이기 위해 직접 나서고, 훙취의 아들에게 암살당한다는 결말은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작 중에서 야뤼는 전용 비행기까지 있는 거부이자 중국 공산당의 실력자로 등장합니다. 그런 인물이 직접 외국에서 살인을 저지르려고 한다는 발상부터가 현실적이지가 않습니다. 사건을 사주했다는 증거도 없을 외국인 여판사를 중국도 아니고 외국에서 직접 죽인다? 말이 될 리가 없지요.
몰래 커피에 유리 가루를 섞는다는 살해 방법도 불확실합니다. 많이 어설퍼 보였어요. 이보다는 초반부에 벌어진 헤셰발렌 사건을 직접 저질렀다는게 차라리 말이 될겁니다. 그 사건 피해자들은 납득은 잘 돼지는 않아도 가문의 원수라는 이유가 있기는 하니까요. 

전개도 우연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에덴 호텔에서 리우신이 야뤼의 사무실 주소를 적은 팜플렛을 두고 간 것, 마침 중국 베이징 여행을 간 비르기타가 그 건물을 탐문하다가 강도를 당한 것, 그래서 훙취와 만나게 된 것 모두가 우연입니다. 비르기타가 중국 여행만 가지 않았어도 야뤼가 런던에 나타나 죽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덧붙여, 주인공인 비르기타 판사의 행동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선 그녀는 지나치게 경찰을 불신합니다. 그녀가 중국인이 배후에 있음을 알렸음에도 경찰이 무시한건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범행을 자백하고 흉기까지 공개한 용의자가 등장했으니까요. 오히려 사건 담당 경찰 비바 순드베리는 사건 현장에 있던 중요 물건이었던 일기장을 훔친 그녀를 용서해주고 일기장을 빌려주는 등 도움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왜 비르기타는 경찰을 불신할까요? 판사가 경찰을 이렇게까지 불신해도 되는걸까요?

그리고 비르기타가 야뤼의 살의를 눈치채고 런던으로 도주하는 과정은 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녀가 알 수 없는 중국인에게 위협받고 있다는 추상적인 이야기로 경찰이 움직일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에덴 호텔 주인 스튜레 헤르만손이 수상한 중국인 투숙 후 살해된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호텔 투숙객 장부가 없었졌고, CCTV라는 증거도 있고요. 스튜레 헤르만손이 전날 저녁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도 경찰 조사로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수상한 중국인의 다음 목표가 비르기타라는 것도 합리적인 추리일테고요. 이런 상황에서 왜 경찰에게 연락하지 않고, 홀로 정체도 확실치 않은 중국인 여자 말만 믿고 런던으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 외에도, 비르기타가 소싯적 마오 사상에 경도된 극좌였다는 설정도 불필요했고 야뤼가 이렇게 많은 증거를 남기면서 스튜레 헤르만손을 살해할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빨간 리본은 뭘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고요. 살해 현장에 리본을 남길 이유는 나오지 않거든요. 구태여 해석해 보자면, 서구권이 노략질하고 약탈했던 중국이 복수자로서 돌아왔다는 상징적 의미이겠지만, 추리물 기준으로는 있어서는 안 될 단서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제법 빠른 시점에서 중국의 위협을 드러낸 식견은 높이 평가할 만 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가 뒷받침된 드라마도 제법이었고요. 본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디테일들 중에서도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추리물로는 함량 미달이라서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구태여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07/03/08

파우스트 Vol.3 -2007 겨울 : 별점 2점

파우스트 2007.겨울
학산문화사 편집부 엮음/학산문화사(잡지)

경성탐정록으로 인연을 맺은 계간지입니다. 두께에 놀라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다가 3일에 걸쳐 겨우 완독하였습니다.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들은 생각은 "과연 이 잡지가 팔리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잡지 전체의 작풍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가 모호했거든요. 호러와 판타지, 추리, SF가 뒤섞여 있는 쟝르문학 잡지이기는 한데 각 작품이 목표로 하는 독자의 타겟과 작풍이 너무나도 달라서 이 두꺼운 분량의, 가격도 만만치 않은 잡지를 소구하는 독자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맛은 별로고, 취향에 따른 일부 재료만 맛있는 잡탕찌게랄까요?

아울러 작품들의 문체나 설정만 놓고 보면 대상 연령층이 상당히 낮아 보이는데 작품들 대부분이 잔혹한 폭력과 섹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보인다는 것도 아이러니했습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작품들이 "젊은 감성" 이라는 카피를 달고 나오긴 했지만 예전의 기쿠치 히데유키류의 엽기 에로 폭력물(?)의 문체만 약간 바꾼 것에 불과하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기본적인 설정이야 약간 차이는 있지만 제가 보기에 결과물 그 자체로는 결국 똑같아 보였거든요. 작가의 의도와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론적인 부분에서의 고민이 아쉽더군요.

결론내리자면 제 취향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별점은 2점. 경성탐정록을 제외하고 베스트를 꼽자면, 강병융의 "킬킬킬"과 세이로인 류스이의 "성공학 캬라 교수"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 작품들은 그런대로 괜찮은 수준의 작품인데 일본 작품들은 정말로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장르 문학이라 하더라도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만큼 추리면 추리, 판타지면 판타지, 호러면 호러 식으로 특성을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거기에 더해 페이지도 좀 줄이고, 가격도 좀 더 줄인다면 지금보다 더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싶고요. 미스터리 관련 대담을 미루어 볼때 향후의 잡지의 발전 방향이 그쪽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내심 개인적으로 기대해 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신본격 마법소녀 리스카 - 니시오 이신
마법소녀가 등장해서 다른 마법사와 싸움을 벌이는 격투 액션물.. 로 보입니다. 재미있긴 한데 왜 소설로 쓰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캐릭터들도 일러스트로 묘사하고 내용의 대부분이 액션 장면인데 만화 등으로 구현하는 것이 더 임팩트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거든요. 아주 약간의 두뇌싸움이 등장하지만 비쥬얼이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 두뇌 게임이라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2. 제로자키 키시시키의 인간 노크 - 니시오 이신
이것 역시 니시오 이신 작품입니다. "제로자키 일족"이라는 살인 집단과 그들에 대항하는 조직의 짤막한 사투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역시 재미는 있습니다만 "리스카"의 경우 처럼 이 작품도 만화쪽이 훨씬 어울렸을리라 생각합니다.

3. 그녀 집으로 오세요 - 이종호
한국 호러 소설의 중견 작가인 이종호씨의 신작입니다. "분신사바"를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어서 나름 기대했는데 이 작품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주요 설정을 "펫 세메터리"에서 가져온 것은 그렇다쳐도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과 묘사가 진부하기 이를데 없었거든요. 쑥쑥 읽히는 맛은 있기 때문에 다음편에서 좀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4. 킬킬킬 - 강병융
취업난을 가지고 기발하게 써 내려간 단편입니다. 주인공 이름이 "철수"와 "영희"라는 것 부터 기발하고, 여러가지 설정 등이 읽으면서도 참 재치있게 쓴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외모에 대한 반전은 좀 더 복선을 깔아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으며, 마지막 엔딩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데? 라는 의문밖에는 생기지가 않더라고요.

5. 무지개빛 다이어트 코카콜라 레몬 - 사토 유야
여러가지 설정을 가져다 붙이면서 뭐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정신병자입니다.... 내용도 왠지 모르게 뻔했고요. 이외의 평은 생략합니다.

6. ECCO - 타키모토 타츠히코
다중인격 (일지도 모르는) 소녀의 다른 인격 (일지도 모르는) 존재와 교감을 나누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로 소외감이나 외로움 같은 것이 잘 묘사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잔잔하면서도 전해 줄 이야기는 다 전해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무슨 이야기인지는 당쵀 잘 모르겠다는 문제가 있긴 하네요.

7. 이상한 사람들 - 와타나베 코지
짤막한 콩트. 한편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완성도는 높지만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이야기라는 것이 아쉽군요.

8. W*rld meets W*rld - 모토나가 마사키
설정, 묘사, 스토리 모든 것이 한편의 만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 작품입니다. 그런대로 재미는 있지만 만화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호질 - 이선웅
파우스트 소설상 우수상 당선작입니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충분히 깔끔하고 재미 있습니다. 하지만 심사평처럼 너무 서둘러 끝낸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말부가 매끄럽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심령 수사관이 하는 일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것도 좀 황당했고요.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재미나게 읽었기에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10. 성공학 캬라 교수 - 세이로인 류스이
젊은 감각이라면 이정도는 되야죠.^^ 그야말로 파격적인 전개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만화가 내용과 밀결합되어 있는 것도 특이했고요. 하지만 이게 과연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11. 코마츠키 마키코 - 마이조 오타로
한 천재(?) 가 등장하는 소설로 다중인격(?) 같은 무언가를 밀도있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이야기와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이 재미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 기타 칼럼 / 대담 / 만화

2010/07/26

A-특공대 (2010) - 조 카나한 : 별점 2점


간만에 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입니다. 이글루스에서는 "재미있는데 흥행이 시원치 않아 아쉽다"는 의견이 많아서 꽤 기대하고 봤습니다. 과거 TV 시리즈 원작의 팬이기도 했고 말이죠.

그런데 세간의 평과는 다르게 저는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판 제작자들이 원작의 매력 포인트를 잘못 이해한 것 같아요. 작전을 총괄하는 브레인 리더 한니발과 얼굴과 말빨을 담당하는 뺀찔뺀질한 멋쟁이, 파워를 담당하는 BA, 그리고 개그메이커 정신병자 머독이라는 원작 시리즈는 하나의 팀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파티 조합을 선보였는데, 영화에서는 각자의 특성과 매력도 부족하고 각색도 심한 탓입니다. 멋쟁이가 팀의 차세대 리더로 부각되며 브레인은 물론 액션까지 담당한다던가, BA가 별로 강해보이지 않는다던가, 머독이 별로 미친것 같지 않고 특유의 BA 조롱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던가 하는 부분 모두가 감점 요소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A 특공대가 아니라 '멋쟁이와 멋진 친구들' 같아 보였달까요? 이래서야 파티 플레이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각자 솔플하면 되지....

그나마 액션이라도 화려하고 멋있었다면 몰랐겠짐나, 스케일은 분명 큰데 그다지 눈이 즐겁지도 않았습니다. 마지막 멋쟁이의 허술해 빠진 작전 역시 많은 시간을 할애할만큼 정교하지 않아서 실망이 컸습니다.

워낙 어린 시절에 원작을 보았고 때문에 기억속에서 미화가 많이 되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작과 비교한다면 덩치만 큰 뻔하디 뻔한 헐리우드 액션물이었어요. 이래서야 흥행에서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한것도 당연하겠죠.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8/27

마당이 있는 집 - 김진영 : 별점 1.5점

마당이 있는 집 - 4점
김진영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약 회사 영업 사원이던 김윤범이 저수지 속 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윤범은 아내 상은 몰래 회사를 그만둔 뒤 거래하던 의사들을 협박하다가 모르는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했었다. 상은이 발견한, 윤범이 죽기 전 숨겼던 휴대폰에는 수민이라는 아이가 성매매했다는 증거가 저장되어 있었다. 상은은 수민에 대한 정보로 윤범이 의사 박재호를 협박했다고 생각했다.
박재호의 아내 김주란은 판교의 개인 주택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은 뒤, 정원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하지만 박재호는 이를 모두 주란의 망상이라 치부했다. 주란의 증상은 그녀가 상은과 만난 뒤, 남편의 범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가는데....


김태희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한국의 여성향 서스펜스 스릴러. 이용하는 구독형 이북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 있길래 읽어보게 되었네요.

주인공 두 명 - 김주란, 이상은 -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는게 특징입니다. 이상은은 잔혹한 살인범이자 협박범, 김주란은 일방적인 피해자 포지션에 가까운데, 나중에 둘이 일종의 파트너 (?) 관계로 한 팀을 이루게 되는 결말로 향하는 전개가 재미있었어요. 이상은이 임산부라는 설정도 독특했고요. 임산부라서 사람들이 경계심을 잘 푼다는 상황을 잘 써먹은 장면이 두어장면 있기도 합니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괜찮은 트릭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수면제를 먹여 재운 윤범을 운전석에 앉힌 뒤, 상은이 운전석 의자를 뒤로 바싹 밀고 그 위에 앉아 운전했다는 트릭입니다. 이 트릭 덕분에 윤범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내려집니다. 작고 연약한 임산부인 상은이 거구의 윤범을 조수석에서 다시 운전석으로 옮기는건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이지요.
수민이를 죽인건 박재호가 아니라 아들 승재였다는 반전도 신선했습니다. 이를 수민이 찍었던 휴대폰 속 사진으로 드러내는 묘사도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지루했습니다. 이상은과 김주란 모두 심리 묘사 중심의 여성향 스릴러에서 흔히 보아왔던 스테레오 타입이라서 식상했던 탓이 가장 큽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냉소, 혐오와 일종의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여성으로 묘사되거든요. 그동안 제가 읽어왔었던 <<우먼 인 윈도>>, <<걸 온 더 트레인>>,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등의 여성향 스릴러와 비교해 볼 때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게다가 묘사만 보면 김주란은 정신병자에 불과합니다. 작품 속에서 보이는 행동에는 설득력을 느낄 수 없으며, 그동안 자신의 망상으로 많은 사고를 쳐 온걸로 - 강남 아파트에 살 때 윗 층 부부를 살인범으로 오해했던 등 -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전업주부이면서 아들이 방에 여자아이를 숨겨놓았다는걸 며칠동안 눈치채지도 못했다는건 변명의 여지도 없고요. 이웃과 상은, 기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일방적이고 편견 및 망상으로 가득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광적인 심리 묘사와 행적이 이어지니 남편의 표정, 낚시 가방을 빨아 말렸다는 정도로 남편과 시부모님을 살인범 일당으로 모는 과정이 도무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주장이 모두 거짓말이라는게 밝혀져서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결말을 기대하게 만들더군요.
물론 주란의 남편 박재호가 수민의 시체를 정원에 몰래 묻었고, 시체를 처리하러 간 날 집을 비웠던걸 숨긴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작 중 묘사와 행적을 보면, 박재호가 이를 숨긴건 살인을 저지른 아들과 망상증에 걸린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상은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려고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때문에 오히려 주란이 재호를 죽인다는 결말은 황당했어요. 주란이 왜 급발진해서 남편을 죽였을까요?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고, 조종한다는 수십년전부터 차고 넘치던 설정을 가져오려면 남편은 모두 사악하다는 작품 저변에 깔려있는 일방적인 이분법적인 논리 말고 더 그럴듯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비하인드 도어>>처럼 못 봐줄 수준이라도 말이죠.
이런 이분법적 논리로 상은의 살인을 정당화 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상은의 범행에는 남편의 폭력 - 심지어 임신도 남편의 성폭행 탓 - 때문이라는 동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상은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살인을 저지르는건 차원이 다른 중범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다른 유사한 여성향 스릴러와 차별화되기는 커녕, 더 나은 점도 찾기 힘든 억지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리뷰를 남기는게 힘들 정도였어요. 이런 류의 소설은 이제 그만 읽어야 겠습니다.

2017/02/25

뮤지엄 1~3 - 토모에 료스케 : 별점 2점

뮤지엄 3 - 4점
토모에 료스케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자신의 범행을 예술이라 생각하는 쾌락 살인마 기리시마 사나에와 형사 사와무라의 대결을 그린 전 3권짜리 범죄 스릴러 만화입니다. 범행이 엽기적이고 잔혹하게 묘사된 점에서는 "고어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잔인하고 조금은 독특한 범행으로 흥미를 끄는 점 외에는 뻔한 설정이 반복되어 지루합니다. 무언가 잘못한 사람에게 독특한 형벌을 내린다는 설정은 "세븐"이래 흔하게 이어져 왔지요. 범인이 독특한 미학을 지닌 정신병자로, 범행이 이것에 기초한다는 설정도 흔하고요. 배심원 연쇄 살인 사건의 범행 동기인 "어떤 멍청이가 내가 저지른 범인으로 판결되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정 역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보았던 것이에요.

추리적으로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범인 기리시마가 범행을 저지르는 방법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한 것은 물론,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알았을까?" 같은 작 중 의문조차 제대로 풀어주지 않는 탓입니다. 피해자들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이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방법 등 설명되지 않는 내용이 너무 많아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단독으로 행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인 범행들이기도 하고요. 사와무라가 마지막에 동료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기리시마 자택으로 잠입하는 행동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괜찮았던 부분은 사와무라가 범행 현장에 비가 오던 것, 그리고 첫 범인 목격 당시(니시노 살해 당시) 현장에 비가 내리다 그친 것에 범인이 긁적이는 행동과 내뱉은 말을 더해서 범인이 광선과민증이 아닐까?라고 추리하는 부분 정도입니다. 이후 전문 병원들을 순례하여 햇볕에 대한 극도의 병적 조건반사를 지닌 범인 기리시마를 알아낸다는건데 꽤 그럴듯했습니다. 기리시마에 의해 감금된 사와무라가 필사적으로 탈출을 위한 암호를 푸는 장면, 이어지는 기리시마의 잔혹한 음모도 괜찮았던 편이고요. 전 3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지요.

그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3권 말미에 수록된 작가의 단편 "우리는 친구 아니겠냐"가 훨씬 나았습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괴담인데 뺑소니, 시체 유기로 붕괴하는 거짓 우정의 연쇄가 잘 그려져 있는 덕분입니다. 본편도 차라리 더 짧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2021/07/16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2.5점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 6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켄지와 제나로는 정신과 의사 디안드라 워렌의 의뢰를 받았다. 모이라 켄지라는 소녀로부터 그녀 애인 케빈 헐리히가 사람을 죽여 매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협박 전화를 받았고, 3주가 흐른 뒤에는 디안드라의 아들 제이슨을 찍은 사진이 배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켄지와 제나로는 케빈과 그의 보스 잭 루스를 만난 자리에서 그들이 협박범이 아니라는걸 깨달았고, 제이슨의 미행에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던 와중에 켄지도 협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켄지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려던 동네 소녀 카라 라이더가 잔혹하게 살해당한채로 발견되었고, 그녀가 모이라 켄지였다는걸 알게 되는데....

데니스 루헤인이 쓴 켄지 앤 제나로 시리즈. 이 시리즈는 전에 "전쟁 전 한잔"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생각과 사뭇 다르더군요. 이전에 조금이나마 갖추고 있던 하드보일드스러운 면모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잔혹하고 폭력적인 범죄에 더해 냉혹한 범죄자가 등장하고, 주인공들과 범죄자들이 과거의 인연으로 깊숙이 엮여 있다는 점은 하드보일드스럽지만, 자극만을 극도로 추구한,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 펄프 픽션에 불과합니다. 범인의 범행이 아무런 이유가 없는 탓이 가장 커요. 악의 근원, 동기를 아무리 헤집고 찾아봤자 그냥 정신병자였다는게 전부니까요.

그렇다면 재미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범죄자와 탐정의 대결에서 흥미를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그냥 흘러갈 뿐입니다. "나 잡아 봐라~"로 시작해서, "자, 이제 너 죽었어!", 그 다음에 "어이쿠, 내가 잡혔네, 이제 죽었네!" 식으로요. 이 과정에서 정교한 맛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나 잡아 봐라~"에서 범인이 던져주는 단서는 수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거든요, 에반드로의 경우 그의 얼굴을 떠올린 켄지의 기억력 덕분에 신원이 드러났고, 진범 게리 글린도 경찰 수사 결과 증거품에 지문이 남겨졌다는게 밝혀지는 만큼 추리의 여지는 없습니다. 잭 루스를 잡아다가 고문해서 얻은 정보 등 다른 단서들도 사실상 쓸모가 없었던건 마찬가지고요.

70년대 중반, 마을 자경단 EEPA 모임 멤버들의 가족과 친지들이라는 피해자들의 공통점이 드러나는 과정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과거 EEPA가 알렉 하디만과 찰스 러글스톤을 덮친 뒤 고문해서 러글스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과거가 지금 사건의 동기라는건 설득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당시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게리 글린이 EEPA 멤버들을 풀어주고 알렉 하디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뒤, EEPA 멤버들과의 뒷거래로 부자가 되었는데, 20년이 지나서 그 가족을 죽인다? 왜죠? 인간의 고통이야말로 순수의 본질이다는 등의 범인들이 한 말들로 그들이 잔혹한 폭력을 저지른 이유를 설명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무고한 사람들을 수십 명씩 잘 죽여왔는데, 구태여 EEPA 멤버 가족과 친지들을 사진을 보내 범행을 예고하면서까지 죽일 이유는 없습니다.

알렉 하디만과 게리 글린이 손을 잡은 경위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알렉 하디만이 체포되기 전부터 관계가 있었고, 존이 알렉을 '가르치는' 역할을 했다고 치죠. 그렇다면 알렉 하디만에게 게리 글린은 현재 시점에서는 철천지 원수입니다. 자기와 친구를 고문하고, 심지어 친구는 잔혹하게 죽인 범인들과 손을 잡고 자기를 감옥으로 보낸 악덕 경찰이니까요. 그들의 공범 에반드로 아루조가 범행을 저지른 이유 역시 설명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알렉 하디만에 의해 세뇌되었다는 암시 뿐인데, 이 정도로 이런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세뇌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게리 글린이 아니라 알렉 하디만에게 세뇌되었으니 게리 글린을 도와 살인 행각을 벌일 까닭도 없고요. 켄지의 집에 완벽하게 침입해서 메시지를 남긴 방법 역시, 페인트 공으로 변장했다는 정도로 넘어가기에는 허술하고 부실했습니다. 그리 대단한 트릭도 아니고요. 

하긴, 범인이 전직 경찰이었던 게리 글린이라는 진상이 가장 뜬금없어서 더 할 말이 없네요. 앞서 등장한 인물들 중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범인이라는 이유 외에 다른 근거는 없어 보였습니다. 알렉과 게리 글린, 둘이 알렉 하디만 구속 이후에도 관계가 있었다면, 이후 FBI 조사에서 게리 글린의 존재가 떠오르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힘들네요.

그 외에도, 지나치게 잔혹한 범행 묘사들도 별로였고, 폭력이 넘쳐나는 거리에 대한 묘사도 과해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솔직히 케빈이라는 살인마 똘아이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돌아다닌다는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거리에서 사람들이 살아간다는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워요. 폭력과 사랑을 대비시키며, 사랑 쪽에 패트릭 켄지와 앤지 제나로 커플을 위치시킨 설정도 진부했습니다.

그래도 아주 싸구려 헐리우드 스타일 펄프 픽션이라고 평가 절하하기는 좀 힘들기는 해요.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한 덕분이지요. 뻔한 소재와 설정들인데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흡입력만큼은 굉장합니다. 특히 에반드로가 켄지와 제나로를 습격할 때, 그리고 켄지가 게리 글린과 대치할 때의 긴장감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에반드로가 섬 폐가에 컴퓨터 모뎀을 설치하고 전화를 연결해서, 공중전화를 세워 위치를 속인 트릭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거리의 공중전화로 걸면 컴퓨터 전화로 추적되도록 한 건데, 90년대 당시라면 충분히 먹혔으리라 생각되네요. 켄지와 제나로의 관계가 완벽하게 정리되는 결말은 팬들에게는 좋은 선물이고요.

하지만 펄프 픽션을 뛰어넘는 무언가냐 하면, 그렇다고 보기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좋은 작가가 쓴 양산형 범죄물일 뿐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 시리즈도 더 이상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2024/12/07

사악한 소년 - 케이트 서머스케일 / 김희주 : 별점 4점

사악한 소년 - 8점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김희주 옮김/클

이 책은 1895년, 런던 이스트 런던의 웨스트햄 지역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13세 로버트 쿰스와 12세 너새니얼 형제가 어머니 에밀리를 살해한 뒤, 열흘 동안 시신과 함께 지내며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이어갔던 사건이지요. 

사건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물론, 에밀리를 살해한 이유, 내티가 범행에 얼마나 관여했는지와 같은 법정 쟁점들이 당시의 보도 자료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변호인이 로버트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며 사형 선고를 막으려 했던 전략은 법정 추리물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을 자아내고요.

사건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 기이하고 끔찍한 사건이 당시 영국 사회에 안긴 충격, 그리고 형제의 재판이 불러 일으킨 여러 논란을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상세하게 알려주는 것도 좋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웨스트햄 지역의 환경에서부터 시작해, 살인 사건이 발생한 장소의 모습, 법정에서의 증언과 공방,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반응은 물론이고, 사건과 관련된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엄청난 수준인 덕분입니다. 예컨대, 로버트의 지능이 뛰어났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초등교육법과 의무교육 체계가 소개되는 식이지요. 이를 통해 19세기 후반 영국은 이미 선진국이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되었네요. 또한, 형제가 탐독했던 저급 출판물 ‘페니 드레드풀’이 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은 현대의 게임 유해론과 연결되어, 시대를 초월한 논쟁의 공통점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의무교육 덕분에 문맹이 적어졌지만, 이들이 저급한 출판물을 탐독하게 된 현실은 뭔가 아이러니가 느껴지네요.

재판 후, 정신 질환이 인정되어 처벌받지 않은 로버트가 수용되었던 브로드무어 정신병원의 진보된 환자 관리 방식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19세기 후반임에도 강력 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들에게 안정적이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했다는게 무척이나 놀라왔어요. 당연히 구속복을 입히고, 엄청나게 통제된 시설에서 가혹하게 환자를 다루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이는 앞서의 교육 체계와 더불어 당시 영국의 진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듭니다.

로버트 쿰스의 이후 인생 역시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재단 기술을 익힌 뒤, 17년 후 서른 살 때 석방되어 호주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1차 대전에 참전하여 갈리폴리와 서부 전선에서 무공훈장을 받을 만큼 인상적인 복무를 기록한 전쟁 영웅으로 변모했거든요. 이 정도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 아닌가 싶네요. 이 때 그가 속했던 대대가 치루었던 전투에 대한 묘사도 괜찮았습니다. 로버트가 군악병이자 들것 운반병이라는 보직을 수행하여 전투를 치루었다는게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갈리폴리 전투는 멜 깁슨 주연의 영화로만 접해 보았었는데, 그런 전투를 겪고도 살아남았다는게 정말이지 대단합니다. 서부 전선의 참호전 역시 마찬가지고요. 책에서는 정신 병원에서 오래 수감된 덕에 가혹한 군 생활에 쉽게 익숙해지고 잘 버텨냈을거라 추측하는데 그럴싸했습니다.

로버트가 남은 여생은 호주 시골 마을에 정착해 살며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이웃 소년의 후견인이 되어 그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은 사건의 비극적 출발과 대비되어 큰 울림을 전해줍니다. 다른 인물들 - 아버지 로버트 쿰스, 동생 내티, 변호사, 검사, 기타 친척들 등 모두 - 대부분의 후일담도 함께 제공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책의 만듬새도 좋습니다. 판형과 디자인 모두 제 취향이고, 도판도 많지는 않지만 충실한 편이에요. 주석 및 출처도 확실합니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로버트가 왜 어머니를 살해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로버트의 증언을 통해 어머니 에밀리가 자식들에게 가혹한 폭행을 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증거는 없는 탓입니다. 이전에도 형제는 어머니를 피해 도망친 적이 있었다고 설명되기에,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이유가 도무지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내티가 사건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범행이 어머니가 내티를 폭행할까 우려해 저질러졌다는 로버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티 역시 공범으로 간주되어야 하지만, 재판에서는 증인 정도로 취급된건 좀 이상하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한 작가의 명확한 결론이나 추측조차 부족해 독자에게 답답함을 남깁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에드가 상 등을 수상하기는 했지만 '범죄 실화 논픽션' 보다는 사건과 사회적 맥락을 함께 알려주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에 가까운 책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6/14

유리병 속 지옥 - 유메노 큐사쿠 / 이현희 : 별점 1점

유리병 속 지옥 - 2점
유메노 큐사쿠 지음, 이현희 옮김/이상미디어

이 책은 데뷰작 "기괴한 북"을 비롯하여 11편의 단편과 단편 모음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시골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모아 짤막하게 소개하는 "시골의 사건"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였다면 섬찟했겠다 싶은 이야기들이 몇 편 있었던 덕분입니다. 못생긴 과부가 딸의 연인을 자신의 것으로 취했다가 파국을 맞는 "오래된 냄비"가 대표적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로 황당무계한 아이디어가 바탕이 된 작품들도 눈에 띕니다. 중국 최고의 진귀한 차 '곤륜차'를 마시는 방법을 장황하게 펼쳐놓는 "미치광이는 웃는다", 사람을 마약으로 취하게 만든 뒤 레코드를 들려주어 그대로 재생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한 "인간 레코드"와 같은 이야기들이 그렇습니다. 로마노프 왕가의 아나스타샤 공주가 살아남아 탈출했다는 설정의 단편 "사후의 사랑"은 나름 시대를 앞서간 느낌을 줍니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가 치정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갱"의 당시 탄광 분위기 묘사와 같은 디테일들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전개가 황당해서 이야기의 완성도가 낮거나, 비슷한 설정과 전개가 반복되는 탓이 큽니다. 정신병자가 나오는 몇 편의 이야기들이 특히 그러했어요. 에도가와 란포의 변격물적 분위기가 짙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대부분으로, 정통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완독하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더 이상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12/08/16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하)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5점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하 - 6점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어쩌다 보니 두 번째 권부터 읽게 된 스티븐 킹의 단편집. 이전의 "스켈레톤 크루"가 80년대 작품 중심이라면, 이 책은 90년대 이후의 비교적 최신작이 실려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L.T.의 애완동물 이론
  • 로드 바이러스, 북쪽으로 가다
  • 고담 카페에서의 점심식사
  • 데자뷰
  • 1408
  • 총알 차 타기
  • 행운의 동전

"1408" 이외의 모든 작품들이 1인칭의 강한 심리 묘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독특합니다. 또한 "스켈레톤 크루"와 같은 예전 작품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이 그려진 뒤, 그 상황이 어떻게든 종료되었던 반면, 여기서는 알 수 없는 상황 그 자체만이 중요한 것으로 묘사된다는 차이가 큽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 상황에 대한 혼란스럽고 복잡한, 강한 1인칭 심리묘사를 통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호러 소설인 줄 알고 읽었는데 교훈적인 주제를 갖고 있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었습니다. - 결혼 생활의 중요성 ("L.T의 애완동물 이론", "데자뷰"), 어른들이 하는 말은 잘 들어야 한다 ("1408"), 어머니 계실 때 잘해라 ("총알 차 타기"), 담배를 끊어라 ("고담 카페에서의 점심식사", "총알 차 타기") 등인데, 우화 같은 느낌을 전해주기도 하더군요.

결론적으로 묘사가 강화되고 주제의식은 깊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호러"라는 측면에서는 예전 80년대 작품들에 미치지 못했어요. 물론 작품성이야 더 좋아졌을 수도 있고, 완성도도 나쁘지는 않으나 막 달려주던 젊은 시절 그의 작품이 제게는 더 취향이네요. 스티븐 킹도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별점은 2.5점. 개인적인 베스트는 "고담 카페에서의 점심식사"입니다.

덧붙이자면, 각 단편 서두에 스티븐 킹이 친절하게 작품에 대한 해설을 붙여 놓았는데 꽤 재미있더군요. 작품 본편보다 해설이 탁월하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L.T의 애완동물 이론"

화자의 동료 L.T가 자기를 버리고 떠난 아내에 대해 떠벌이는 수다가 내용의 거의 대부분인 작품. 결말 부분에 그녀가 연쇄살인범의 피해자가 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끝나기는 하나, 진상이 속 시원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답답한 느낌이 더 큽니다. 그래서 룰루는 어떻게 되었는지? LT가 죽이고 고양이 먹이로 줬다는 이야기? 좀 더 깔끔하게 끝맺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별점은 2점입니다.

"고담 카페에서의 점심식사"

갑작스럽게 의외의 장소에서 정신병자 살인마와 격투를 벌인다는 액션 슬래셔 호러.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이혼을 앞둔 아내와의 디테일한 싸움이 깨알 같은 재미를 전해줍니다. 블랙코미디 느낌도 나더군요. 조금 과장하자면 스크루볼 코미디?

게다가 예상했던 해피엔딩(역경을 헤쳐나간 두 명이 다시 재결합한다는)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개인적인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별점은 3점입니다.

"데자뷰"

두 번째 신혼여행 중인 중년 부부 아내의 1인칭 심리묘사를 통해 그려지는 무간지옥 이야기. 특유의 시각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묘사는 탁월하나,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과 설정이라 딱히 새롭지는 않더군요. 반복의 원인에 대해 뭔가 설정이 한 개 정도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별점은 2점입니다.

"1408"

"유혹하는 글쓰기"에도 소개되었었고, 존 쿠삭 주연의 영화로도 알려진 작품이죠.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읽고 싶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도입부에서 지배인이 귀신 들린 방 1408호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부터 흥미진진하며,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방에 대한 묘사는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등 역시나 만만치 않은 재미를 선사해줍니다.

그러나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결말이 "그래서 어쩌라고" 거든요. 그 방에 귀신이 있다는 게 전부일 뿐이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총알 차 타기"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뇌졸중 발병을 알게 된 대학생 앨런이 히치하이킹으로 고향에 돌아가다가 사신을 만난다는 내용의 중단편.

히치하이킹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더불어 새롭게 창조한 사신 캐릭터는 그럴싸한데,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딱 우리나라 전래동화의 호랑이(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수준입니다. 호러보다는 어머니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주제 의식이 더 강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행운의 동전"

팁으로 받은 25센트 동전에 대한 일종의 망상(?)을 그린 소품.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