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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

일곱 가지 이야기 - 가노 도모코 / 박정임 : 별점 2.5점

일곱 가지 이야기 - 6점 가노 도모코 지음, 박정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열아홉살 대학생 이리에 고마코는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가 사에키 아야노에게 팬레터를 써서 보냈는데, 마침 자신 주변에서 일어났던 기묘한 사건을 함께 곁들였다. 사에키 아야노는 직접 추리한 결과를 고마코에게 답장으로 보내주는데...

일상계 미스터리로 유명한 가노 도모코단편집입니다. 작가의 다른 단편집은 그동안 몇 권 읽어보았는데 평균적으로 별로였습니다. 이야기도 재미없고 추리적으로도 그닥이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이 책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생각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일단 구성이 독특해요. 제목 그대로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가공의 책에 수록된 이야기 한 개와 주인공 고마코가 만나는 일상계 사건 하나가 조합되는 식인데, 이렇게 엮이는 작품은 거의 처음 본 것 같거든요. 물론 가공의 이야기와 본편이 엮이는 작품이야 제법 있지만, "일곱 가지 이야기" 수록작에 대해 고마코가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한 후 실제 일상 속에서 그 이야기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다는 전개 방식은 독특합니다. 가공의 소설 "일곱 가지 이야기"도 일상계 추리물이고, 고마코가 접하는 사건 역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그야말로 더블 일상계라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고마코가 탐정역인 사에키 아야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의 추리를 답장으로 받는다는 일종의 '서간문 추리소설' 이라는 점도 역시 독특한 점입니다.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지나치게 작위적인 이야기들이 제법 많습니다. 게다가 이게 과연 추리물인가 싶을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해요. 아무리 일상계라 하더라도 요네자와 호노부 등 다른 일상계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민망하다 싶은 수준의 이야기가 많은 탓입니다. 7편의 단편 속 수수께끼가 2개씩이니 모두 14개의 일상계 추리물이 담겨있는데, 추리적으로 깔끔하고 괜찮다 싶은건 한 네 편, 그러니까 30%도 안될 정도입니다.
이럴 바에야 억지로 두 작품을 연결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평범한 대학생 고마코와 동네 오빠 (?) 세오 컴비의 일상계 추리물, 그리고 하야테와 아야메 아가씨의 전원풍 일상계 추리물 두 편으로 나누어 발표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있고 독특한 일상계 작품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각 단편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박 주스의 눈물"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수박 귀신"으로, 하야테 소년이 밤새 수박밭을 지키지만 결국 수박이 도난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수박 귀신"은 이야기 시작으로 나쁘지 않지만, 본편에서 '수박 주스'라는 소재로 "수박 귀신"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여러모로 무리였습니다. 고마코의 친구 미아이네 집에서 키우는 개와 혈흔을 연결시키는 과정도 너무 작위적으로 짜여진 티가 나고요. 좀 긴 이야기였다면 복선처럼 잘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단편이다보니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단서가 드러나더라고요. 아이가 푸딩을 달라는 말로 어머니가 집에 없다고 추리하는 것 역시 비약이 심한 등, 이래저래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모야이의 쥐"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모야이의 쥐"인데 별로였습니다. 금으로 만든 쥐가 가짜였다는 것은 그다지 신선한 내용은 아니었거든요. 독자가 추리할만한 정보도 부족하고요. 

그러나 본편 이야기는 빼어납니다. 독특한 문양 중심의 추상화가 위, 아래가 뒤집혀 전시된다는 진상이 아주 그럴듯했기 때문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 장의 사진"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파란 하늘"로 하야테와 친구들의 파란색 그림물감이 없어진 사건에 대한 진상을, 본편 이야기에서는 고마코의 어린 시절 사진을 훔쳐간 친구가 그것을 돌려준 이유가 무엇인지를 추리합니다. 

두 편 모두 일상계다운 아주 좋은 이야기였어요. 무엇보다도 가족간의 사랑과 추억을 다루고 있는 따뜻한 이야기라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친구가 사진에 찍혔다는 작위적인 우연은 옥의 티지만 단점은 사소합니다. 수록작 중 최고로 별점은 3점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하늘색 나비"로 하야테와 친구들의 열광을 불러왔던 한 친구의 대형 파란색 나비 표본이 사실은 가짜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본편은 기묘한 노부인의 행동을 다루고 있고요.

그런데 두 이야기가 잘 연결되지는 않으며, 노부인이 꽃을 심으려 한다는 것은 쉽게 추리할 수 있는 등 그다지 건질 건 없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1만 2천년 전의 직녀성" 

더위를 피해 천체 투영관을 찾아간 고마코가 전편에서 만났던 남자 세오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일곱 가지 이야기" 속 "대숲이 불탄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전개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 간 오갔던 연애 편지를 찾는 "대숲이 불탄다"는 솔직히 추리물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근처를 찾아보는게 당연하니까요.
본편도 추리적으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장난감 공룡 애드벌룬이 한밤중에 백화점 옥상에서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유치원으로 이동한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인데 당연히 공중에 뜨게 만들어서 날려보낸 것이지요. 의외성이 부족하며 추리의 여지도 없어요. 얼음으로 눌러 놓았다는 등의 디테일은 있지만 대단치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민들레"

친구 후미의 부탁으로 초등학교 여름 캠프에 자원 봉사자로 참여하게 된 고마코가 특이한 아이 마유키를 전담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마유키는 모든 꽃, 심지어 민들레까지 하얀 색으로 칠해버리는 특이한 아이라는 설정이지요.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하야테 아버지 어린 시절 친구가 빌려간 보물 상자와 푸른 수국이 등장하는 내용의 "내일 피는 꽃"이 함께 엮이고요. 

그러나 알루미늄에 반응하여 수국이 파랗게 변하는 것은 "푸른 제라늄" 등에서 익히 많이 사용되었던 소재라서 시시합니다. 추리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이고요. 본편의 핵심 수수께끼는 '하얀 민들레'의 정체에 대한 것으로,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실제로 있다는 것이 진상이므로 이 역시 추리라고 할 게 없네요. 가면 갈 수록 점점 추리물에서 멀어져 가는 듯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일곱 가지 이야기"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고양이 절에서 얻어온 새끼 고양이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으로 모성애를 강조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본편은 마유키를 매개로 사에키 아야노, 일러스트레이터 아소씨 등 관계자 모두가 만나는 대단원이고요. 

마지막 이야기로는 괜찮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유키가 어머니의 양육권 포기를 단념하게 만들기 위한 깜찍한 실종 자작극이 핵심으로 추리의 요소는 거의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5/11/30

화과자의 안 - 사카키 쓰카사 / 김난주 : 별점 3점

화과자의 안 - 6점 사카키 쓰카사 지음, 김난주 옮김/블루엘리펀트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가벼운 일상계 단편집입니다. '키 150cm, 체중 57kg'의 주인공 우메모토 교코가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 백화점 지하에 있는 화과자점 "미쓰야"에서 일하게 된 뒤 만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다룹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으로 충동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괜찮았습니다. 쉽게 읽히는 재미는 물론 추리적으로도 제법이며 잘 몰랐던 화과자에 대한 현학적인 매력도 넘친 덕분입니다.

캐릭터들의 매력과 배분도 아주 적절합니다. 사건 해결은 괴인 츠바키 점장이 맡고, 이야기는 우메모토 교코가 빠른 눈치와 추진력으로 템포 있게 유지시키며, 화과자에 대한 지식은 게이 성향이 있는 화과자 장인 지망 베테랑 아르바이트생 다치바나가 덧붙여 주는 식으로 황금 분할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연산 - 파워 - DB의 3위 일체네요.

허나 화과자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추리를 따라갈 수 있기에 평범한 일반인, 그것도 한국인 독자가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상계이지만 전문가적 지식이 발휘되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나 "명탐정 홈즈걸"과 같은 스타일이지요.
물론 현학적인 재미로 보상해 주는 만큼 단점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갤러리 페이크"가 될 테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추리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야기도 소소하니 따뜻하고 즐거우며 맛있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각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화과자의 안"

회사원 아가씨가 생과자 "오토시부미" 1개에 "투구" 9개를 사간 이유에 대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츠바키 점장은 오토시부미를 특정 인물 1명 앞에 내어 놓을 필요가 있었으며, 그 이유는 "오토시부미"의 사전적 의미 —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쓴 무기명의 문서' — 에 따라 그 과자를 받는 사람은 뭔가 부정이 있다!라고 다도에 박식한 상관에게 넌지시 고하기 위함이라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회사원 아가씨가 과자를 사러 왔을 때에는 사건이 해결된 것을 알아차리고 '액막이용 과자'인 "물의 달"을 바로 내어주었지요.

화과자에 대해 잘 모르면 추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시작으로 캐릭터들의 소개와 더불어 이 작품이 화과자에 대한 일상계 추리물이구나! 라는 것은 충분히 알려줍니다. 현학적인 재미도 넘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데이트"

견우와 직녀가 만난 뒤의 칠석 과자 "까치"를 사러 온 여대생은 대만에 있는 남자친구와 원거리 연애 중으로 비행기를 타야 했고, 단골인 스기야마 할머니가 사 가는 과자는 사실 불단에 올릴 목적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동일한 문제가 여전합니다. 일반인이 추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나마 여대생의 원거리 연애 에피소드는 독자도 추리할 만한 여지가 있긴 했습니다만, 스기야마 할머니 이야기는 정말 무리예요. 특히 할머니의 독특한 복장이 사실은 화과자의 "상제" 색 조합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일반인의 영역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전문가적 지식을 토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캐릭터들이 나름 성장하기도 하고, 츠바키 점장의 개인사도 살짝 엿보이는 등 읽는 재미도 충분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싸리와 모란"

야쿠자가 와서 시비를 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치바나의 사부가 가게의 전문성을 시험하느라 이런저런 전문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는 이야기.

요약된 줄거리 그대로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화과자에 대한 정보 전달이 주인 탓에 일상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갤러리 페이크"에 더 가까워요.

허나 워낙 재미있는 내용들이라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재미있었어요. 화투에 멧돼지와 싸리가 반드시 같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멧돼지 = 보탄(모란) → 모란떡은 오하기 → 하기는 싸리, 그래서 같이 그린다라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인데, 다른 작품에서 접하기 힘들 뿐 아니라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야쿠자스러운 말투와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해서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신 캐릭터인 다치바나의 사부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작품과 잘 어울렸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스위트 홈"

백화점 내 양과자집 "황금사과"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가쓰라자와가 팔다 남은 케이크를 "오빠"에게 가져가는 이유는?

"오빠에게 가져간다"는건 착각이었고 케이크를 "오빠", 즉 나이가 많은, 전날 팔다 남은 케이크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인데 실제 자료 조사가 토대가 된 듯한 일종의 언어유희가 돋보였습니다. 화과자에 대해 몰라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큰 장점이지요.
곁들여 주류 코너에서 일하는 구스다 씨가 떨이 도시락을 사재기한 이유가 함께 밝혀지는 구성도 참 좋았습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아울러 양과자와 화과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양과자와는 다르게 화과자는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이 나라의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 관혼상제를 채색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인데 정말 공감됐습니다. 한천은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는 일종의 화과자 부심(?)도 귀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쓰지우라의 향방"

미쓰야에서 판매한 새해맞이 과자 "쓰지우라" 안에서 이상한 암호문이 나와 그것을 해독한다는 내용으로 암호 해독이 중심인 작품입니다.

종이는 누군가 바꿔치기한 것에 불과하고, 암호문은 일본어로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화과자가 중요하게 사용되지도 않아서 시리즈와 연계성도 조금 떨어지고요.

점장이 기다리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2화에 언급된) 설명되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하지만, 점장의 연인이었던 과자틀 장인 "형풍"이 죽기 전 남긴 과자틀 반쪽을 안짱이 골동품 벼룩시장에서 건진다는건 우연이라도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도 별로고 작위적이라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여러모로 마무리가 약한 느낌입니다.

2016/09/16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니토리 고이치 / 이소담 : 별점 2.5점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6점 니토리 고이치 지음, 이소담 옮김/은행나무

제목 그대로 아사쿠사 변두리의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의 주인 구리타 진과 수수께끼의 미녀 아오이가 소소한 수수께끼와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의 일상계 중단편집입니다. 모두 3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일하게 화과자점을 주제로 한 일상계 작품인 "화과자의 안"을 이전에 읽어보았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자면, 이 작품이 추리적 요소는 덜하고 로맨스, 인간 드라마가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로맨틱 일상계라는 점에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히트에 편승한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선입견 탓에 그동안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류인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가 명백한 지뢰였던 탓도 컸고요. 하지만 추석 맞이로 가볍게 집어들고 읽어 본 결과, 의외로 만족했습니다.

물론 "추억의 시간을..."과 마찬가지로 추리적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명확합니다. 과연 이 작품을 일상계 추리물로 부를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러나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던건 제가 "요리"와 "음식"이라는 분야에도 큰 관심이 있는 덕분입니다. 수록작 세 편 모두 "음식의 맛"이 가장 중요한 소재거든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과거의 맛이 현재에 재현되지 못한 이유'가 대표적이며, 다른 이야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화과자를 싫어하는 친구에게 화과자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와산본이 무엇인지 등 "화과자"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가서 음식, 요리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면 즐길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또 첫번째 이야기 "마메다이후쿠" 만큼은 부족하더라도 분명한 일상계 추리물이기도 합니다. 브라질로 출국한 후 20년만에 구리마루당을 찾은 다나베의 말 실수를 토대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는 전개는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죠. 이에 더해 "곶감 맛 자체는 담백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서 수상함을 느낀 이유가 "주인공이 화과자 전문가"였다는 점에서 작품의 특징과 잘 어울리고요. 하기사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맛의 비결이나 레시피를 찾는 이야기 역시 넓게 보면 추리의 영역이지요.

아울러 만화적이기는 해도 캐릭터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구리마루당 3대인 구리타 진이 괜찮았어요. 화과자 가게를 잇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수련을 쌓았지만, 반항기에 한창 엇나가다가 부모님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가게를 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이력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에 위화감 없이 녹아듭니다. 어린 시절의 수련과 재능으로 실력은 나름 확실하나 그에 걸맞는 연륜과 경험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맛의 달인" 지로와 약간 비슷하네요.

컴비로 등장하는 화과자에 정통한 정체불명의 미녀 아오이 역시 설정만큼은 완전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지독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면에 관심 분야에 대한 초인적인 호기심이 부각되어 나름의 매력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 풍경 속 잔잔한 드라마라는 측면에서는 볼만합니다. 단,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록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메다이후쿠"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에 20년 전 신세를 졌다는 다나베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를 주문했지만,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구리마루당 주인 구리타 진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인 카페 마스터가 소개해 준 아오이라는 수수께끼의 미녀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요리만화에 흔히 나옴직한 "추억의 맛을 찾아드립니다." 스타일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답게 구리타 진과 그 주변 인물 관계도 상세하게 설명되고요.

수록작 중 거의 유일한 추리물로 "왜 마메다이후쿠의 맛이 다른지?"에 대한 설명(시부키리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다나베의 "곶감"에 대한 말실수를 "곶감"의 정의를 통해 밝혀 진상을 드러내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망해가는 구리마루당을 살리려는 소꼽친구 유카의 작전이라는 동기도 그럴듯했고요.

다나베가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의 맛과 지금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로 절대 미각의 소유자라는 것은 영 설득력이 없으며, 구리타 진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는 무능한 장인인지 의심스럽다는 약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치고는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라야키"

"이러쿵저러쿵해도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거니까요. 실제 체험에는 절대 못 이겨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지고...... 그렇게 실제로 경험하면 이미지는 간단히 바뀌죠. 말하자면 이미지란 불완전한 정보, 즉 선입견이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구리타의 라이벌인 아사바가 대학 축제에 구리타를 초대했다. 구리타는 아사바가 만든 "베이비 카스텔라"의 맛을 인정했지만, 아사바는 화과자를 싫어한다는 말로 구리타를 자극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오이는 아사바에게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겠다고 약속하는데...

드라마는 별게 없지만 카스테라, 다이나곤 팥과 같은 기본 재료 설명은 물론, 1등 상품인 팥을 구하기 위해 "화과자 퀴즈 대회"에 나가 각종 화과자 관련 상식을 화려하게 펼쳐내는게 특징인 작품입니다.

또 카스테라는 좋아하는 아사바의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기 위해, 카스테라 반죽에 팥소를 더하여 도라야키를 만들어 준다는 결말은 깔끔하며 설득력 높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결!" 된다는 "맛의 달인" 류의 작품에서는 억지스러운 전개가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이 작품 정도면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이게 맛이 없을리가 없을 뿐더러, 맛이라는 것은 작중 아오이의 말 그대로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화과자 관련 이야기로는 최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히가시"

"화과자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고안할 방법은 딱 한 가지. 입으로 말해서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먹여서 알게 해주자고요!"

어린 시절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던 동네 누나 고하루를 오랫만에 만난 구리타는 고하루의 집을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닥에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엿보기를 당한 날짜를 토대로, 범인은 고하루와 거의 의절상태인 친아버지 기라라는게 드러났다. 구리타는 기라를 찾아가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는데....

수록작 중 가장 처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부터가 별게 없는 탓입니다. 엿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그가 남긴 과자 부스러기를 조사하는 것보다 잠복해서 잡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게다가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고 모든 갈등이 눈녹듯 사라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어처구니 없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전개였습니다. "도라야키"에서처럼 설득력 있게 넘어가면 모를까, 갈등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과자를 맛보고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북경오리나 프랑스 요리를 먹어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요?

구리타 진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넘쳐나는 마무리는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11/10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 하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세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하 세트 - 전2권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이후 헤어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각각 다른 이성 친구와 교제하게 되었다. 오사나이와 교제하게 된 신문부 열혈 부원 우리노는 매달 벌어지는 연쇄 방화 사건에 집중하여 사건을 다룬 기사를 교내 신문에 발표했다. 기사를 통해 몇 개월간 다음 방화 장소를 예언하고 맞춘 우리노는 신문부의 손으로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우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일상계 추리물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처음 알림 소시민 시리즈 신간(이라고 하기는 작년에 나와서 좀 어색하지만 제 기준으로는)입니다. 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은 아동용 동화같은 커버 일러스트로 충격을 주었는데, 예쁜 일러스트의 양장본으로 재출간된걸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거의 전작 출간이 되었을 정도의 인기 작가라는걸 여실히 보여주네요. 이런 추리, 미스터리 장르물의 인기에 저도 약간이나마 기여(?) 하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뿌듯하기도 하고요.

하여튼, 이 작품은 시리즈 1편인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보다는 2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 더 비슷합니다. 조금 긴 호흡의 긴 이야기가 핵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요.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거주하는 기라시에 매달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화가 일어나고, 이를 쫓는 신문부 후배 우리노와 이에 얽히게 된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이야기가 시간으로 따지면 2학년에서 3학년까지 거의 9개월에서 10개월 동안 펼쳐지거든요.

그런데 방화사건 쪽 주인공은 우리노이며 그와 교제하게 된 오사나이가 양념처럼 등장할 뿐입니다. 고바토가 다른 여자 친구 나카마루와 교제하며 일상계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어요.
이러한 고바토의 일상계는 다른 일상계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사건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카마루와 함께 데이트를 가던 코바토가 만원 버스에서 누가 버스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추리하고, 나카마루가 이야기해 준 자신의 오빠에게 있었던 기묘한 도난사건에 대해서 추리하고, 헤어지기 직전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하는게 아닌가하고 추리하는 정도입니다. 이 중 버스 이야기는 추리에 비하면 분량이 과할 정도로 길어 별로였고, 토마토 이야기는 정말로 스쳐 지나갑니다. 그래도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나카마루의 오빠가 3일간 여행 갔다 온 후 집에 유리창에 깨져있고, 누군가 침입했지만 없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묘한 도난사건 이야기만큼은 꽤 괜찮았습니다. 그동안 오디오 알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랐다는건 말이 안되고, 설령 이런 일이 생겨도 집 주인을 부르지 무단 침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요. 전부 다 소소하고 심심하지만, 담백한 덕분에 일상계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그런데 연쇄 방화 사건 이야기는 불만입니다. 물론 추리적으로는 나름 번득이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특히 연쇄 방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는 괜찮습니다. 우리노가 다음 번 방화 장소를 추리해 낸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노의 친구이자 범인인 히야가 우리노의 기사를 보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건데 상당히 의외성이 있어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밀정"에서도 등장했었던, 간단한 트릭으로 용의자를 좁히고 진범을 추리해 내는 과정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의 전편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고, 온갖 추리를 펼친 우리노의 마지막 추리쇼를 박살내기 위한 오사나이의 복수극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복수를 위한 오사나이의 공작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해있던 우리노와 통화했을 때 고의로 기차 소리를 들려주어 현장 근처로 오해하게 만들고, 범행 현장 근처에 서점에서 책을 산 영수증을 우리노의 눈에 띄는 곳에 놔 두는 식인데 우리노가 이를 추리해낸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의도가 불분명한 탓입니다. 마지막 순간 추리쇼를 펼친 우리노에게 면박을 주고 재기불능 수준의 창피를 주기 위해서? 복수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모든게 작위적입니다. 또 정통 추리물이라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우리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는 그런 인식이 전무하다는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잘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구리킨톤을 먹으며, 오사나이가 우리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이후라고 추리해내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멋대로 오사나이에게 키스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깔끔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복수를 꾸밀 정도의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또 우리노는 명예욕은 있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좋은 녀석인데, 이쓰카이치의 기사로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전개는 작가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동일한 느낌의 또다른 일상계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였던 듯 합니다. 고바토가 마지막에 추리를 통해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던가, 오사나이는 대단한 행동력과 책략을 갖춘 팜므파탈로 묘사된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요. 소시민을 꿈꾸는 고바토 죠고로와 회색을 신봉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의 캐릭터부터가 완벽하게 겹치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이지요. 아마 시리즈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고바토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펼치고, 오사나이는 추리를 위한 각종 작전을 짜내고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으로 묘사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큰 변화가 작품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바토야 그렇다 쳐도 오사나이 캐릭터 변화가 문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억지스러운 복수극 전개가 모두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한 발자욱 물러나 사건을 추리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만 해서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일상계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구성은 좋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해요. 억지스럽게 설정까지 바꾸어 가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느니 그냥 고전부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08/10/14

카즈는 행복해 - 미유키 노마 / 아이코 우에다 : 별점 3.5점

카즈는 행복해 1 - 8점
미유키 노마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최근 좀 심하게 달린(?) 탓에 포스팅거리가 떨어져 집에 뒹굴고 있는 잊혀진 추리만화를 끄집어 내 보았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베이비시터 카즈의 하트 탐정 첫번째 이야기"로,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베이비시터 되겠습니다.

프로 베이비시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는 제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은 없지만 전문가적인 지식을 나열하는 "프로의 세계" 류의 만화는 아니며 놀랍게도 "추리만화" 라는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라 할 수 있으며, 베이비시터가 탐정역을 맡고 있는 만큼 대부분 일상 밀착형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일상 밀착 정도는 정말 대단해서 일상계 추리물로 잘 알려진 여러가지 작품들("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나선계단의 앨리스",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등)도 이 책과 비교한다면 대하 서사 추리물로 보일만큼 소박하고 담백한 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불륜이 의심되는 아기 엄마의 정체는? 우산에 씌우는 비닐 봉지를 수십장 모아가는 남자의 정체는? 같은 류의 소소한 사건들이 주로 펼쳐집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야말로 일상계 중의 일상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담백한 일상계임에도 불구하고 추리만화로서의 가치는 정통 본격물에 비해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는게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전개와 추리의 과정이 굉장히 합리적이에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한 편이고요. 단편 옴니버스 물이라 이야기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은데도 한편에 이야기를 잘 압축하여 시작부터 결론까지의 설득력도 높습니다. 2권부터 큰 사건(그래봤자 아주 약간이지만요)이 벌어져서 스케일이 커지는 부분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입니다.

아울러 노마 미유키씨의 원작을 동글동글하고 귀엽게 구현한 그림도 마음에 듭니다. 노마 미유키 씨도 만화가이긴 한데 작품은 몇개 찾아보니 확실히 이 만화를 그린 우에다 아이코씨 그림이 훨~씬 귀여우면서도 작품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네요. 일상계 작품이라 그런지 이 작품처럼 귀여운 순정만화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별점은 1권만으로는 별 4점 입니다. 2권까지 포함한다면 별 3.5점이고요. 그나저나, 그다지 인기는 없었던 탓에 단행본은 달랑 2권 나오고 끝났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작가도 잊혀진 듯 이후의 작품은 출간된 것도 없네요(국내기준입니다). 일상계 추리물이라서 이야기가 별로 극적이지 않고, 내용이 너무 소박하여고담백한 탓에 "김전일"로 대변되는 연쇄살인범이 판치는 만화들과 한판 붙기에는 당시 분위기상 무리가 있긴 했을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도 큰 것 같은데 지금 보아도 추리만화로서의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기에 Q.E.D의 소소한 일상 추리가 마음에 드셨던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조사해 보니 현재 절판입니다만,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겠죠.

2018/07/15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0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한 때에는 엄청나게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어느덧 손을 놓게 된 C.M.B인데, 오랫만에 본가 방문했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실망스럽네요. 모두 네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일상계 추리물인 "소우야 군의 실종" 외에는 마음에 드는, 평균 이상의 작품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가지고 있던 Q.E.D 쪽에 집중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에 확신만 심어줍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드림 캐쳐"

악몽을 막아주는 '드림 캐쳐'를 만들기 위해 장기 휴가를 내고 떠난 코하루의 남자 친구 다카오가 회사 동료로부터 소송당했다. 거액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코하루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박물관 전단지를 통해 드림 캐처를 아는 듯한 신라에게 도움을 청했다.
신라의 추리를 통해 일행은 알라스카로 향하는데...

주인공이 신라가 아니라 코하루와 다카오라는 전개, 그리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핵심 소재인 알라스카 원주민이 만든다는 부적 드림 캐처라는 소재는 독특합니다. 같은 몽골리안이라 원래 인디언인 다카오를 일본인으로 착각했다는 아이디어도 괜찮고요.

그러나 그 외의 이야기는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기대했던 추리물이 전혀 아닌 탓이 큽니다. 다카오를 찾던 일행이 그리즐리 곰과 맞서 싸운다는 모험물적인 전개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나마 유일한 추리 요소인, 다카오만 열 수 있던 서랍 속 공금이 사라졌다는 사건도 진상이 허무하기 그지 없어요. 망치로 책상의 뚜껑(?)을 땄다는 거라서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국적 풍광의 모험물일 뿐으로 평범 이하의 졸작입니다.

"소우야 군의 실종" 

대학 합격 후 도쿄로 상경한 츠가루에게 소우야라는 친구가 생겼다. 그러나 소우야는 츠가루에게 말도 없이 급작스럽게 사라지는데...

사라진 대학생을 찾아 나서는 일상계 추리물인데, 추리적으로는 여러모로 풍성합니다. 우선 소우야의 실종과 관계 있어보이는 여성 나루토의 행적을 찾는 과정이 괜찮아요.

  1. 그녀가 편의점에 온 이유는? 집이나 학교, 직장이 가까와서. 그런데 항상 정장 차림이었으니 직장이 가까웠을 것이다 
  2. 그런데 5월 이후부터 오지 않은 이유는? 다른 편의점이 근처에 생겨서, 혹은 오기 싫은 이유가 생겨서, 혹은 갓 입사하여 신입 연수를 본사로 왔다가 연수가 끝나 돌아가서 등... 

이렇게 추리가 이어지는데, 비약이 없지는 않지만 만화에는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소우야의 실종은 실종이 아니라 자의적인 것이며, 이는 츠가루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일 뿐이라는 진상도 좋았어요. 자기 중심으로 기준을 정하고 타인을 평가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인데 이를 잘 풀어낸 덕분입니다. 마지막의 하코네 관련 그림 퀴즈도 보너스로서 평균 이상은 하고요.

한마디로 좋은 일상계 청춘 추리물로 이번 권의 베스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Joker"

바르셀로나의 대부호 베르나르도가 결혼식 날 칼에 찔렸다. 현장에 있던 마우는 용의자로 몰리자 신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영국의 미술가 오웬 죤스와 그의 대표작이라는 트럼프 카드 그림이라는, 오랫만에 제대로 된 박물학 소재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오웬 죤스 소재는 이야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추리적으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광대일을 하는 하비가 다른 곳에 계속 있었는데, 베르나르도 결혼식에도 같은 복장의 광대가 있었다는 상황에서 왜 하비와 동생 리카르도의 알리바이만 강조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3의 인물이 개입된게 당연하잖아요? 바르셀로나 경찰은 다 바보인가...

딱 한 가지, 마우가 처음 찾아올 때 일으킨 교통 사고가 중요 단서가 된다는 복선은 괜찮았지만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주는건 무리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피터 씨의 유산"

1억불이 넘는 유산의 행방을 알리지 않고 죽은 피터 씨의 유산을 찾기 위해 마우와 신라가 나선다는 이야기로 피터 씨의 취미, 수집품이 유산과 연결되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피터 씨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도 그런대로 괜찮고요.

하지만 전개면에서는 아쉬움이 큽니다. 우선 색을 내는 재료들로 구성된 수집품이라는 단서는 흑백 만화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비슷한 소재로 쓰여진 요네자와 호노부"북관의 죄인" (in "덧없는 양들의 축연") 과 비교해 보아도 설명이 너무 부족했고요. 만화라면 소설보다 시각적인 단서를 주는게 더 쉬웠을 텐데,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전무하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또 피터 씨 사건의 진상에 대한 추리는 피터 씨가 죽기 직전 심던 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아들 엔조의 증언 하나만이 단서인데, 비약이 너무 심합니다. 그 꽃이 무엇이며, 그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는 건 재판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밝혀졌을 부분으로 시간도 오래 지난 시점에서 이를 가지고 범인 취급하는 건 말이 안됩니다. 빠져나갈 부분은 얼마든지 있었을 거에요. 엔조의 죄책감이 이로 인해 터져나간다는 뒷 이야기도 너무 작위적이었고요.
아울러 피터 씨가 가족들에게 이야기 하나 않고 벌이는 취미 행각도 좋게 보이지는 않더군요. 이래서야 실제로는 가족을 사랑한 것이었다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전혀 와 닿지 않으니까요. 살아있을 때나 잘할 것이지....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과 소재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전개가 아쉬워서 감점합니다.

2009/11/28

시미가의 붕괴 - 기타무라 가오루 / 김해용 : 별점 3점

시미가의 붕괴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김해용 옮김/황매(푸른바람)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작품이 굉장히 유명한, 그래서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추리 독자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입니다. 사실 대표작도 아니고 해서 이 작품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워낙 컸던 탓에 구입하게 되었네요.

일단 이 작품집은 크게 3가지 성향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추리를 기반으로 한 블랙코미디적인 작품, 그리고 일상의 소소함을 디테일하게 추리와 결합시키는 (하지만 추리물은 아닌) 일상계 추리분위기 소품, 마지막으로 인간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린 드라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 블랙코미디 류(類)로는 표제작이기도 한 "시미가의 붕괴"와 "죽음과 밀실", 그리고 "옛날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 수 있을테고 두번째 일상계 소품은 "하얀 아침"과 "주사위, 데굴데굴", "오니기리, 꾹꾹"이 해당되며, 마지막 심리드라마는 "녹아간다"와 "나비", "나의 자리" 가 해당된다 생각됩니다. 이중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소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일상계 미스터리로 유명한 작가답다고나 할까요? 추리적인 요소가 녹아있으면서도 그것이 그야말로 일상과 밀결합되어 있고 내용과 캐릭터들도 너무 귀여워서 읽는 내내 아~주 흐뭇했거든요.

물론 그 외의 대부분의 작품들 역시 추리적인 성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있기에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블랙 코미디 류의 작품군은 조금 더 절제했더라면 동화적인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추리물로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설정이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 약간은 아쉽더군요.

그래도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작가의 작품집이고 작가 특유의 센스가 충분히 느껴지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정통 추리물들도 아니고 작가의 대표작도 아니긴 해도 가볍게 즐기기에 좋아서 추리소설에 거부감을 느끼실 수 있는 초심자분들에게 추천할만 하다 생각되네요.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아울러 이 단편집을 계기로 추후 일상계 소품으로만 묶인 (대표작인 "하늘을 나는 말" 시리즈면 더욱 좋고요) 단편집이 나와준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PS : 최근 너무 바빠서 좀 격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읽은 책이 쌓여가는데 포스팅할 시간이 없네요...
녹아간다
평범한 회사원 미사키의 정신 붕괴과정을 "만화"라는 독특한 매개체를 통해 표현한 심리 드라마입니다. 치밀한 묘사는 볼거리이지만 정신 붕괴, 즉 미쳐가는 과정에 대한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아서 결과물만 놓고 본다면 평범한 수준이라 생각되네요.

시미가家의 붕괴
천재탐정과 그의 조수가 탐정의 친구인 장서수집가 시미가를 방문했다가 시미의 아내 가즈코가 밀실에서 살해된 것을 발견한다.
과장된 동화같은 설정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추리물입니다. 일단 서두의 등장인물 소개가 너무 장황하고 허무맹랑해서 당황스럽더군요. 그냥 천재탐정과 조수였어도 충분했을텐데 조수의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사랑한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탐정의 천재성도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채워놓고 있거든요. 하지만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밀실 살인과 다이잉 메시지트릭을 적절하게 사용한 덕에 그나마 황당한 이야기안에 추리적인 이야기가 깔끔하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에 대한 책 소갯글이 더 예술적입니다. 별거없는 반은 장난같은 이야기를 흡사 고전 전통 트릭 미스터리와 고딕 호러의 결합물 처럼 소개해 놓았더군요.
(탐정에게 사건이란 이미 읽은 책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을 파헤치는 천재 탐정의 놀라운 활약!
완벽히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수집 강박증.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의 경계를 넘어선 그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치명적인 욕망으로 자라나 목숨마저 위협한다. 책 수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장서가 부부에게 어느 날 찾아온 죽음이라는 손님. 책에 대한 무모한 집착이 부른 재앙 앞에서 탐정은 진실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 나가는데…….
아무리 채워도 꽉 차지 않는 서가의 구석에서 발견된 부인의 다잉 메세지. 남편의 가장 깊은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시미가는 마치 꿈처럼 아스라이 붕괴하고 만다.)


죽음과 밀실
노인 추리작가들이 모여사는 공동체 "환상의 정원"에 정말이지 완벽한 밀실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시미가의 붕괴와 연결되는 천재탐정과 조수 이야기로 추리소설의 이상적인 형태를 냉소적으로 비웃는듯한 작품입니다. 추리소설로 보기는 어려운, 추리애호가들을 위한 블랙코미디에 더 가까웠달까요?

하얀 아침
주인공이 과거 소녀였을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로, 청춘드라마같은 깜찍한 사랑이야기가 나름의 추리적 요소 (누가 왜 아버지 차 백미러 성에를 닦아놓았을까?)와 잘 결합된 일상계 소품입니다. 여성작가다운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과연 일상계 미스터리의 거장이구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에서 추리적인 전개를 이끌어내는 것이 놀라운 작품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 중 한편으로 추리물에 대해 별로 내켜하지 않는 지인들에게 따로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주사위, 데굴데굴
출판사 신입사원 치하루씨는 우연하게 한 남자가 떨어트린 십면체 주사위에 관심을 갖는데...
5페이지짜리 이야기로 이정도면 소품이라기 보다도 꽁트라 해도 무방한 분량이죠. 하지만 이야기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주 일상스럽지만 귀여운 발상의 트릭이 깜짝 등장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여간.. 아이들 머리는 정말이지 못 당하겠어요^^

오니기리, 꾹꾹
치하루씨는 회사 선배 미즈마치와 함께 이와테로 현장조사를 나간다...
전편과 같은 주인공 치하루씨 시리즈로 이번엔 분량이 약간 기네요. 하지만 역시나 귀여운 소품답게 이와테로 무대가 옮겨갔어도 여전히 일상스럽고 밝은 이야기입니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그러하고요.

추리의 요소는 두가지로 한가지는 버린 깡통이 어떻게 멀리 있는 계곡까지 굴러가는지와 제목의 오니기리를 만든 결과물에 대한 추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다한 트릭이나 추리는 아니지만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은 역시나 마음에 들었어요.

나비
한 여성의 술자리 잡담이랄까... 심리묘사는 좋은데 두서도 없고 이야기도 없는 단상만 모아놓은 짧은 잡문이랄까요. 언급할게 별로 없네요....

나의 자리
주인공이 평상시와 다른 일상을 통해 누군가의 자리를 빼았는다는 설정도 굉장히 독특하지만 이러한 자신이 느낀 일상속의 불편함이 결국 자기자신과 연결된다는 결과가 굉장히 서늘해서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반전으로 이르는 전개와 묘사도 군더더기 없는, 작가의 필력과 센스를 잘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 두번째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옛날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일본의 전래동화 "카치카치야마" 이야기 (할아버지가 밭일을 하다가 잡아온 너구리로 너구리죽을 만드려 하는데 너구리가 외려 기지를 발휘해서 풀려난 뒤 할머니죽을 만든다는 엽기 이야기?)를 추리물 형식으로 꾸민 내용으로 서두에 지극히 개인적인듯한 느낌의 장황한 옛날 이야기 해석에 대한 이론이 묘사되는 등 작가 스스로의 생각을 대화하듯이 써내려간 형식이 무척 이채로웠던 작품이었습니다. 뭐 달리 이야기하자면 좀 쭉쭉 써내려간 느낌도 들긴 하네요. 왠지 좀 장난스러움이 많이 묻어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어차피 모티브가 된 전래동화가 내용을 잘 모르는 일본 전래동화이기 때문에 몰입하기 힘든 탓도 크겠죠.

하지만 워낙 개인적인 단상이 많은 글이다보니 실제 기타무라 가오루라는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된 것 같아 흐뭇한 느낌도 들고 추리적으로도 이야기를 잘 구성해 놓아서 감탄했습니다. 전래동화를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추리물로 각색할 생각을 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결과물도 상당한 수준이니 놀라울 따름이죠.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것 같은 작품인데 저에게는 무난한 평작 수준으로 생각되네요.

2023/05/07

우타카타 다이얼로그 1~3 - 이나이 카오루 / 유유리 : 별점 4점

우타카타 다이얼로그 3 - 8점
이나이 카오루 지음, 유유리 옮김/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카타노는 드러그 스토어 와카바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우타가와를 좋아한다.

만화 원작으로 유명한 마사토끼는 콘티 느낌의 자필 만화로도 유명하지요. 자기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주요 소재는 말장난 중심의 개그, 기묘한 경험담과 생각들, 그리고 재미있었던 만화들의 소개입니다.
이 중 만화 소개를 가장 관심있게 보고 있는데, 이유는 마사토끼의 말주변과 생각이 범상치 않고, 워낙 맛깔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기에, 낚여서 구입했지만 실망한 작품들도 많아요. 대표적으로는 <<이 삶을 다시 한번>>과 같은 도다 세이지의 만화, <<시오타 선생과 아마이 양>>등이 있지요. <<산괴담>>도 별로였었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아래와 같이 워낙에 강력 추천하길래 속는 셈 치고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 "대박이다! 간만에 취향을 정통으로 저격한 만화가 나왔네!" 가 맞더군요. 완전 제 취향이었어요.
고등학생 카타노와 우타가와의 귀여운 밀땅을 담담하게, 평범하게, 지극히 일상적으로 그리는데 둘의 대화와 비교적 평범한 행동들 - 쇼핑, 노래방, 사진 촬영, 화장 등 - 만으로도 에피소드가 이루어지는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아래와 같이 우타가와의 별 거 아닌 말에 과하게 반응하는 카타노를 보는 재미가 큽니다. 작화도 치밀하고 잘 짜여져 있어서 만족도가 높고요.


평범하지만 둘의 캐릭터도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불량은 아닌데 금발에 기묘한 패션으로 오해를 사는 카타노도 그렇지만, 냉정해 보이는데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튀어버리는 우타가와야말로 '찐'입니다. 개인기로 '흐미'를 할 줄 아는 여고생이라니,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요?



또 개인적으로는 요리 만화를 좋아하는데, 요리 관련 소재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든 점이었어요. 패밀리 레스토랑 드링크 바에서 제공하는 공짜 음료수를 섞어 만드는 우타가와 블렌드, 구운 떡에 간장 버터를 바르고 김을 말아서 밥 위에 올려먹는 우타가와 찹쌀떡 덮밥, 오무라이스를 만들려다 실패하고 만든 날달걀 밥 플러스 간장 버터 등..... 이에 대한 묘사들도 발군입니다.


군고구마가 사라진 이유를 일상계 추리물처럼 풀어낸 에피소드도 있는데, 이 역시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고요.

3권으로 마무리한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별다른 위기 없이 둘이 서로 사귀게 되는 걸로 끝인데, 정말 딱 좋은 분량과 결말이었어요. 1권에서 고교 데뷰하고 3권에서는 입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는, 1권에 1년씩 시간이 흐르는 것도 최근 만화에서는 보기 드물지만 마음에 들었던 점이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극적 긴장감은 찾아볼 수 않지만, 일상계 개그만화로는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이자면, 일상계 추리물 느낌의 에피소드들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런 감성으로 일상계 추리물을 그려주어도 참 좋겠다 싶네요.

2010/03/26

명탐정 홈즈걸 3 : 사인회 편 - 오사키 고즈에 / 서혜영 : 아주아주 정확한 별점 2.3점

명탐정 홈즈걸 3 : 사인회 편 - 4점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다산책방

세후도 서점을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 시리즈 완결편입니다. 괜찮았었던 1편에 비해 장편인 2편은 별로였지만, 다시 좋았던 단편 시리즈로 회귀한다고 해서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실망이 큽니다. 그다지 주목할만한 이야기나 트릭도 없고 추리적으로도 비약이 심한 탓입니다. 좋았던 시리즈 캐릭터였음에도, 오래 끌고나가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많았던 설정이었습니다. 서점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하니까요.

각 단편별로 짤막하게 소개하고 평가해 보자면,

<이상한 주문>
한 책의 주문을 받는데 연락을 해 보면 당사자 4명 모두 그런 책은 모른다고 한다는 이야기. 발단이 되는 도서 예약 주문 제도에 대한 내용은 신선했지만 사건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설득력이 너무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4명 중 한명이 다른 범죄의 의심을 받는다고 해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 이렇게까지 공작을 해 가면서 얻을 수 있는게 무엇이었을지 도무지 감이 안잡히거든요. 평균이하 별점 2점짜리 이야기였습니다.

<너와 이야기하는 영원>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초등학생이 세후도에 자주 찾아와 교코들과 친해지지만 근처 영아 유괴사건의 범인으로 오해를 받고 가출한다는 내용으로 다행히 1권에서 인상적이었던 일상계 추리물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단 히로키군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설명은 합당하나 가출한 장소를 찾는 단서에 대한 내용은 뜬금없다는 단점은 있긴 합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시리즈의 장점을 잘 이어받은 작품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가나모리군의 고백>
회식자리에서 세후도에서 우연히 만난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것을 고백한 아르바이트생 가나모리군에 대한 이야기. 그야말로 일상계 추리물로서 완벽한 작품입니다. 아무런 강력사건도 등장하지 않고 시종일관 사람과 사람간의 따뜻한 이야기로 전개되거든요. 그러나 가나모리군이 눈썰미 없고 눈치도 없고 둔한 놈이기 때문에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라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것도 좀 우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기에 별점은 2.5점. 조금만 더 손 봤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사인회는 어떠세요?>
인기추리소설가 가게하라 기마의 사인회를 걸고 그의 스토커를 밝혀내는 미션에 돌입한다는 내용으로 일상계로 보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스케일이 큰 작품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일본인들만이 알 수 있는, 그나마도 유치하고 말장난에 가까운 트릭이라는 점은 논외로 치더라도 억지가 너무 심하고 작위적이라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동기 부분에 있어서도 설명되는 것에 비하면 공감하기가 쉽지 않고 말이죠. 이번권에서 가장 길고 비중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가장 처지는 수준의 작품이었습니다. 오로지 건질 것은 사인회의 디테일뿐.... 별점은 2점입니다.

<염소씨가 잃어버린 물건>
단골손님 구라모토씨가 잃어버린 봉투를 찾는 소품으로 <가나모리군의 고백>과 비견할만한 일상계 그 자체인 작품입니다. 서점에서 잃어버린 봉투를 찾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풀어나가다니 놀라울 뿐이죠. 하지만 봉투를 찾는 과정은 썩 잘 짜여졌다 보기 힘들기에 역시나 평균 이하였어요. 별점은 마찬가지로 2점.

이렇게 해서 전체 평점은 2+3+2.5+2+2 나누기 5 해서 정확하게 2.3점입니다. 완결편까지 읽어서 후련하긴 한데 이래서야 작가의 다음 작품이 별로 기대되지는 않네요.

2023/09/27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16 - 이시구로 마사카즈 : 별점 3점


마사토끼 등 여러 리뷰어들에게 낚여서 이런저런 만화책을 구입하곤 했는데, 별로 성공을 거두지를 못해왔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다시 구입하기로요. 그래서 첫 번째로 선택한게 바로 이시구로 마사카즈의 히트작인 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라 선택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천국대마경>>도 재미있게 감상하기도 했고요.

작품은 다시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더군요. 미치오 슈스케의 <<N>> 보다 앞서 시계열을 바꾼 전개를 시도했다는게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띄엄띄엄 발매될 때마다 한 권씩 읽었을 때는 쉽게 알아채지 못했던 부분인데, 한 번에 읽으니 호토리의 헤어스타일 등으로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몰아 읽은 덕분에 대책없는 동네 말괄량이에서 '탐정'으로 성장해나가는 호토리를 비롯하여, 스스로가 쳐 놓은 울타리를 호토리의 도움으로 하나 씩 넘어서는 콘 선배 등 등장인물들의 성장도 눈에 더 잘 들어왔고요.
학원물로도 볼만했습니다. 예전에는 별 생각없이 넘겼는데, 다시 읽어보니 수학여행, 학원제, 운동회, 부활동 등 청춘 학원물의 필수 에피소드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부 합숙 정도만 빠져있는데 이건 등장인물들이 하리바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귀가부' 소속이기 때문인데, 대신 상점가 여행, 그리고 밴드 '메이즈' 활동이 등장하니 엇비슷하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초반의 번역은 아쉬웠습니다. 일본어 말장난을 억지로 한국말로 바꾼 탓에 "사나다 사카나 사라다 (사나다 생선 샐러드)"같은 언어 유희들이 사라져버리고 말았거든요. 후반부처럼 그냥 일본어로 쓰고 해석을 덧붙이는게 훨씬 나았습니다.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학원물, 청춘물, 추리물, 개그물 등 모든 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주니까요.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추리가 핵심인 에피소드만 꼽아보며 글을 마칩니다. 
1권 
<<눈>>
모리아키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그린 기묘한 그림의 정체는?
호토리가 추리력을 발휘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 
가족들이 나눠 가졌다는 그림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2권
<<파자마 천사>>
화창한 날 정해진 시간에 선글라스를 끼고 정해진 장소에 나와 시간을 보내는 환자의 목적은?
일종의 일상계 추리물. 현장 조사만으로 풀 수 있는 수수께끼입니다.

4권
<<아라시야마 보물 조사단>>
시즈카 언니로부터 얻은 보물 지도가 품고 있는 보물은?
지도의 나무 그림과 강 형태가 일치하고, '황금 호수'는 안개에 덮인 마을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진상 등 소소한 재미가 가득했던 작품. <<C.M.B>>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5권
<<시내 설방 이야기>>

타츠미야 시로를 찾는 온나 유키는 누구였나?
일상계라면 일상계, 말장난이라면 말장난.

<<학교 미궁 안내>>
학교 관찰 연못 속 괴수 메시의 수수께끼
경비 아저씨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소문으로 보였지만, 알고보니 진짜 괴물이 있다는 반전.

6권
<<환상의 소년>>

도랑 속 수박을 공으로 바꿔치기한 이유는?
일상계. "탐정 교훈 첫째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놈은 탐정으로서 실격입니다."가 딱 들어맞는 이야기.

8권
<<호토리와 수수께끼 왕국>>

판타지 세계에서 조세핀이 내 놓는 퍼즐을 풀어라!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레이튼 교수>>가 연상되는 판타지 퀴즈물.

<<대괴수 오야 고교에 나타나다>>
영화연구회에서 만든 촬영용 괴수 오야코돈을 부순건 누구?
추리물로 보기는 다소 부족했지만, 후쿠자와가 호토리를 '명탐정'으로 존경하게 되는 에피소드.

9권
<<대량구매 계획>>

베치코 과자는 어디서 만들어서 유통된 것인지?
추리물이라기보다는 SF에 가깝지만 시즈카 언니의 추적 수사는 볼거리.

10권
<<콘 데드엔딩>>

콘 선배가 방에서 살해한 사체를 힘을 합쳐 유기한다!
호토리를 위해 준비한 깜놀 이벤트. 나름의 반전도 좋았다.

<<Detective Girls 2>>
세탁소 아저씨 아라이는 어디로 사라졌나?
호토리의 추리에 탓층이 진심으로 놀라는 (그리고 호토리를 진짜로 인정하게 되는) 에피소드

11권
<<어둠 속에 도사린 목소리>>

옛 구민 센터 자리에서 있을리 없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토리가 타카부라는 별명의 아이를 착각했던게 진상. 
"탐정 교훈 첫째,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놈은 탐정으로서 실격입니다."

<<헌대판 얼룩 띠의 비밀>>
타케루의 친구 맛키가 줄넘기 줄에 다친 날, 친구들과 같이 쓰는 노트에 '긴 줄로 전원 죽인다'는 섬뜩한 문구가 써 있었다.
우연이 겹쳐 일어난 사건.

12권
<<호토리는 탁상 난로 안에서 추리한다>>

호토리 사촌이 취주악부 합숙을 갔는데, 스키장 통나무 집 1층 객실에 있을 남자아이들이 깜쪽같이 사라졌다...
1층이 2층이었다 - 눈에 파묻힌 1층이 있었다 - 는게 진상으로, 호토리 사촌은 2층을 1층으로 잘못 알았던 것. 추리 퀴즈에 가깝다.

13권
<<폐허촌>>

유령이 나온다는 폐촌 스사비 마을 탐험을 떠난 시즈카, 호토리, 콘은 마을에서 기묘한 조각상과 가면을 쓴 사람들을 목격하고 도주한다....
3부작으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모험 추리물. 재미와 흥미 모두를 갖춘 수작.

<<저주받은 비디오>>
오래전 영화 동호회 자료에서 발견된 수수께끼 비디오. 오야 고교의 이상한 풍경이 찍혀 있었다.
오야 고교 7대 불가사의를 찍었던 비디오로, 원래 불가사의였던 우물이 사라지고 화단이 새로 등장한 이유를 밝히는 조사로 이어진다. 세리자와 선생의 고백(?)으로 진상이 밝혀지기 때문에 추리의 맛은 부족하지만, 일상계로는 나무랄데 없다.

15권
<<안경 행방불명 사건의 전모>>

안경을 잊어버렸던 토시코에게 돌아온 안경은 지저분해져 있었다. 수영 보충 수업을 받던 토시코가 사라졌던 사건과 관계가 있었다.
토시코에 빙의(?)한 호토리의 '메소드 추리'가 돋보인다. 일상계로는 나무랄데 없다 (2) 

16권
<<대사건>>
호토리가 협박장을 받았다. 모리아키 선생님과 사귄다고 착각한 누군가로부터였다.
과거 모리아키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여선생이 범인으로, 일상계스러운 추리에 더해 호러블한 작화가 인상적.
<<악>>
모리아키 선생님 할아버지가 남긴 붉은 그림에 블랙 라이트를 비추자 기묘한 그림이 떠올랐다.
1권의 주사위와 조합하여 금고를 여는 방법을 알려주는 암호였다는 내용.
암호도 재미있지만, 할아버지가 연구했던게 '사람을 죽이는 그림'이라는 진상도 이렇게 끝내기에는 아까왔다.

2021/02/26

녹나무의 파수꾼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3점

녹나무의 파수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토는 절도 사건으로 체포되었지만, 집안의 어르신이라는 치후네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치후네는 그 대신 레이토에게 '녹나무 파수꾼' 직을 제의했고, 별다른 방법이 없던 레이토는 녹나무 파수꾼을 맡게 되었다. 레이토는 파수꾼을 하면서 이런 저런 제약과 수수께끼 가득한 녹나무 기원 행사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지만, 치후네는 기원 행사는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며 정보를 주지 않았다. 마침, 기원을 하러 온 아버지 사지 도시아키가 불륜을 저지른다고 의심하여 미행해 온 사지 유미와 만난걸 계기로, 레이토는 녹나무에 얽힌 수수께끼 풀이에 나서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장르물인지 아리송하네요. 사람의 염원을 담았다가, 그 사람의 혈육에게 전해 준다는 녹나무 설정은 분명 판타지입니다. 그런데 녹나무에 소원을 비는 '기념'이 무엇일까? 사지 도시아키가 만났던 불륜녀는 누구이며 그가 열심히 기념하는건 무엇 때문일까? 치후네 할머니가 녹나무 파수꾼 역할을 레이토에게 맡긴 이유와 그녀가 행해왔던 알 수 없던 행동들의 이유는 무엇일까? 와 같은 다양한 수수께끼가 던져지고, 이를 추리하는 전개는 추리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거든요. 

제 견해로는, 이 작품은 판타지 설정이 가미된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추리물로 완성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입니다. 우선, 수수께끼 풀이를 위한 단서 제공이 상당히 공정합니다. 녹나무 기념 행사가 무엇인지는 레이토가 과거 '기념' 기록 데이터를 전산화하는 작업을 시작한 뒤 접한 정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레이토는 기념 행사가 가족간 행사이며, 그믐과 보름에 한해 이루어진다는걸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기념은 가족 중 누군가가 그믐에 염원을 한 걸, 보름에 다른 가족 누군가가 전달받는 행사이며 녹나무는 일종의 '염원 기억 매체'라는걸 레이토가 추리할 수 있었고요.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좀 과했던 추리이기는 했습니다만, 충분히 말은 됩니다. 

또 치후네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었다는건 이런저런 단서 제공과 복선이 많고 확실해서 그야말로 완벽한 일상계 추리물이었어요. 이를 약간 반전처럼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도 좋아요. 이런 부분은 확실히 추리 소설의 거장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줍니다. 그만큼 설득력과 흥미를 동시에 갖춘,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그 외 가족을 증명하기 위해 호적 등본은 부실하다는 말과 유념을 받지 못할걸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오바 소치가 친아들이 아니라는걸 추리하는 등 세세한 추리들도 풍성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사지 도시아키가 기념했던게 무엇인지는 도시아키가 직접 알려주는 탓에 추리의 여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가 몰래 만났던 여자는 불륜녀가 아니라 이미 죽은 형이 염원하여 남긴 곡을 피아노 연주곡으로 구체화해 주던 피아니스트였다는 전개는 재미있었어요. 귀가 먼 작곡가가 머리 속에 작곡되어 있는 '음악'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녹나무의 특별한 힘이 필요했다는 것도 나름 설득력 있었고요. 사지 도시아키가 처음으로 녹나무에서 형 기쿠오가 남긴 유념 속 음악을 받는 장면은 영상화된다면 꽤나 멋질 것 같더군요.

노인 치매에 대해,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것에 대해,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의 결말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가족과 추억은 소중하다는걸 다시금 떠올리게 해 주거든요. 또 작가가 이전에 "붉은 손가락"으로 치매에 대해 다룬 방식과는 다르게 이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 다카코에게 이미 죽은 기쿠오가 작곡한 음악을 들려주는 공연을 펼치는 클라이막스로 극대화하는 전개도 괜찮았어요. 확실히 완숙해진 티가 났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녹나무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지 가족 이야기와 치후네 할머니에 대한 일상계 추리 영역은 하나로 잘 엮여 읽히지 않았던 구성부터가 그러합니다. 별개 에피소드로 보일 정도였어요. 

캐릭터 설정과 배분도 문제입니다. 우선 주인공 레이토의 기본 설정, 그리고 성장기로서의 전개는 너무 뻔합니다. 치후네와 본의아니게 오래 떨어져 있다가, 급작스럽게 녹나무 파수꾼 역할을 맡는다는 배경 설정이 필요했다는건 이해됩니다. 그러나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으로, 도둑질까지 저지르던 말종이라는 스테레오 타입 설정을 가져가야 했을지는 의문이에요. 첫 등장에서는 반쯤 양아치였는데, 작중 시점으로도 얼마 지나지도 않은 마지막 장면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파수꾼으로 나오는 것도 영 와닿지 않았고요. 제대로 된 성장기로 기능하려면, 좀 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여주인공 포지션인 사지 도시아키의 딸 사지 유미의 존재도 애매합니다. 녹나무 기념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녀 없이 레이토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거든요. 오히려 아버지를 엿보는걸 넘어서 도청을 하려하고, 이를 위해 기념에 절대 개입하면 안되는 녹나무 파수꾼 레이토를 설득하여 한 편으로 만드는 과정은 여러모로 거북하기만 했습니다. 딸이 불륜으로 오해한건 가족 문제일 뿐, 파수꾼 레이토가 도시아키 기념을 엿들은건 명백한 사실이라 도시아키가 항의하면 레이토는 해고되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잖아요? 레이토와의 러브 라인도 딱히 드러나지 않아서 그닥 전개에 필요해 보이지 않더군요. 차라리 유미없이 레이토 혼자 과거 기록 정리를 통해 녹나무에 대해 어느정도 알아낸 뒤, 사지 도시아키와 대화를 통해 진상을 풀어내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신파성 드라마도 과한 편입니다. 일본 특유의 한 방(?) 전개도 지나쳐서 기쿠오 작곡 결과물을 들려주는 연주회는 괜찮았지만, 치후네 할머니 고문 은퇴 등이 결정되는 임원 회의와 여기서 레이토가 열변을 토하는건 억지스러웠어요. 야나기사와 호텔이 살아남는다는 결과는 작위적이었고요.

이렇게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괜찮았던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은 작품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노련하고 경력있는 파수꾼 레이토가 기념하러 온 손님들 고민을 들어주면서 사건을 해결해 주는 일상계 추리물로 그려내는게 더 좋았을 것 같지만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영상화 횟수를 보면 영상화될게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사기 기쿠오가 남긴 멜로디가 과연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해집니다.

2014/02/24

비정근 - 히가시노 게이고 / 김소영 : 별점 2.5점

비정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살림

비정근 교사인 주인공이 임시 담임을 맡은 학교와 반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살인사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당연하지요. 초등학교에서 대단한 강력 범죄가 벌어질 확률은 낮으니까요. 허나 평범한 일상 속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는 작가의 능력만큼은 확실히 인정할만 합니다. 별거 아닌데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또 주인공 설정이 괜찮았어요.  뭔가 오래전 "떠돌이 해결사" 느낌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쿨하고 차갑지만 사실은 따뜻한 남자로, 마을의 위기를 해결하고 떠나는 무사같은 느낌이요. 귀찮은 것을 싫어하지만 냉정하고 분석력이 빠르며, 일을 맡기면 똑 부러지게는 하지만 더 이상의 무언가는 절대로 하지 않을 성격도 마음에 들고요. 사건을 겪으면서 조금씩 "선생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맡는 학교마다 크건 작건 사건이 일어나면 비정근 교사로 먹고살기는 점점 힘들어지겠지만....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추리에 동참하거나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 자체는 단점은 아니지만 번역할 때 국내 실정에 맞게 조금 더 신경썼더라면.. 하는 생각은 듭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작가 특유의 몰입감 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무난한 단편집입니다. 일상계스러운 재미는 충분한 만큼,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또 추리소설을 처음 접하시는 초심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주인공이 독특한만큼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6*3"

3개월 한정의 비정근 교사로서 5학년 3반의 담임을 맡게 된 주인공이 기묘한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요 트릭이 다이잉메시지인데 원래의 메시지가 있었더라면 범인이 곧바로 체포되었겠지만, 작위적으로 메시지를 변경하여 이야기를 어렵게 꼬아놓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원래의 메시지가 변경된 이유를 설득력있게 설명하는건 괜찮아서 평작 수준은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1/64"

반 아이들이 나누는 1/64 라는 단어와 반에서 일어난 지갑 도난 사건의 진상을 그린 작품.

평이하고 무난한 일상계지만 아쉬운 것은 "바카도지"라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일본식 암호로 국내 독자가 해석하기에 무리가 따를 뿐더러, 그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두엘기삼" 같은 건데 이게 우연히 단어처럼 보이게 되었다는건 너무 우연이 심해요. 또 요시오카가 돈을 빼앗긴 것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의문입니다. 그게 도박의 증거가 될 수는 없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10*5+5+1"

주인공이 다른 학교 5학년 3반의 임시 담임이 된 뒤 이전 담임 모리모토의 추락사에 대한 진상을 밝힌다는 내용.

나름 무난한 일상계인데 공식의 결과인 56이 모리모토의 체중이었다는게 어머니를 통해 증언되었다면 좀 더 쉽게 풀렸을텐데, 괜히 어렵게 꼰 느낌입니다. 동기 역시도 억지스러웠어요.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다른 해결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으로 보이거든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인간이란 약한 존재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라콘"

이번에는 반도 시키 초등학교의 6학년 2반을 무대로 하여 학생인 나가세 아키호의 투신자살 미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우라콘"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낸다는 내용.

처음으로 제목이 공식이나 숫자가 아니라서 의외였던 작품인데, "우라콘"의 뜻만 알면 진상은 쉽게 드러나지만 뜻을 알아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솜씨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일상계인데 이 솜씨 덕분에 그야말로 미스터리가 됐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일본식 조어인 "우라콘" 입니다. 한국식으로 "뒷담투"와 같이 번역했더라면, 최소한 각주 정도로 표기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무토타토"

이번에는 고린 초등학교 6학년 3반. 수학여행을 중지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장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릭은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지스럽더라도 번역할 때 "이외"라는 한글을 풀어서 "0151"과 같이 표기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래도 야노의 계획에 나카야마가 숟가락을 얹어서 사건이 복잡해진 점, 동생을 활용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찾아낸 발상은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꽤 괜찮은 교사임이 드러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주인공은 주인공다워야하는 법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초등학교 6학년생이 이즈라는 지명을 듣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언급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많은 작품을 읽어봤지만 정작 지명은 잘 모르는데... 국내가 아니라서 뇌리에 깊게 남지 않았다 위안을 삼아봅니다...

"신의 물"

이번에는 롯카쿠 초등학교 6학년 3반. 반 학생이 음독으로 쓰러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

일단 트릭은 "신의물"이라는 페트병에 쓰인 글자가 핵심인데 역시나 일본인만 알 수 있는 트릭입니다. 감점 요소는 아니지만, 아무리 아이들이어도 초등학교 6학년 정도면 음독과 고양이 먹이 주기라는 일의 경중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을텐데 경찰에 진상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네요. 아예 저학년이었다면 모를까...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방화범을 찾아라"

고바야시 류타라는 초등학생이 화자이자 탐정역으로 등장하는 짤막한 단편. 주인공은 물론 등장하는 일종의 밀실 트릭도 순간접착제를 이용했다는 진상은 유치할 뿐더러 잘 됐을 것 같지도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작가가 "명탐정 코난"같은 아동용 추리물에 관심을 가진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만화였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지만 소설로는 영 아니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이 건 전화"

고바야시 류타 화자의 일상계. 반 아이들에게 걸려온 장난전화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이번에는 탐정역으로 동급생 아사쿠라 도모미가 활약합니다.

단순한 장난이라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이야기를 이만큼이나 흥미롭고 풍성하게 만든건 작가의 능력이겠지요. 훈훈하고 따뜻한 괜찮은 소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14/01/14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 모리 아키마로 / 이기웅 : 별점 2점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 4점
모리 아키마로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려는 건 미적 추리이고, 그에 따라 나타난 진상이 미적이지 않으면 내 관심은 그 시점에서 소멸될 거야."

'미학'이 주요 테마인 일상계 추리 연작 단편집. 제1회 애거서 크리스티 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네요. 전혀 몰랐던 작품인데, 국내 최고의 추리애호가 사이트인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 중인 "2013년 올해의 추리소설" 이벤트에서 몇몇 분들이 언급하였길래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미학 전공자인 탐정이 등장하여 "미학 강의"를 이야기의 뼈대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를 다른 무언가와 절묘하게 겹쳐서 진행하는 작품은 일상계 연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지만, "미학"이라는 소재는 정말이지 처음 봤습니다.

단지 독특한 수준에 그치지지도 않습니다. 미학 이론을 일상계 추리물 속에 결합하여 잘 녹여내고 있거든요. 화자인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에드거 앨런 포라는 설정이라서 포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미학적 분석과 이론이 등장하는데, 실제 사건이 이러한 이론들과 엮여 나가는 과정이 제법 괜찮습니다. 실제 통하는 이론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속 검정고양이의 미학 이론과 논리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그럴싸하고요. 덕분에 미학 이론에 대한 현학적인 재미만큼은 충분히 전해 줍니다.

아울러 특이한 탐정, 천재 탐정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미학"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 탐정 역시 이 작품이 처음이었어요. 미학 전공이라는 점 외의 탐정에 대한 설정과 묘사는 천재 학자이자 잘난 척 덩어리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시니컬한 대사로 똘똘 뭉쳐 있는 점에서는 임상 범죄 학자 히무라 히데오나 갈릴레오 유가와가 바로 연상되는 탓에 그렇게 차별화되지는 않지만요. 오히려 설정과 묘사보다는 "검정고양이"라는 별명 외에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화자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게 더 특이했습니다. 추후 서술트릭에 써먹으려는 의도였을까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첫 두 편 이외의 나머지 네 편은 추리적으로나 이야기 전개나 모두 미흡하여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미학 이론과 추리가 제대로 조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후의 시리즈가 기대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어요. 독특한 설정을 지속적으로 끌어나가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인 느낌입니다.

그래서 전체 별점은 평균해서 2점입니다. 앞의 두 편은 미학 이론과 추리의 결합이 잘 이루어진 좋은 작품들로 별점 3점 이상은 충분하지만, 뒤의 네 편이 점수를 모두 깎아먹었습니다. 그래도 앞의 두 편만큼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독특한 일상계 추리물을 찾으신다면 정답일 수도 있으니까요. e-book으로도 출간되었는데, 이 작품만큼은 각 단편별로 별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록작 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달과 나의 거리"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나"가 어머니의 정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이한 지도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내용입니다. 

"다케토리 이야기"의 원제는 "다케토리옹 이야기" 였는데, 달과 인간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제목이 바뀌었다던가, 나폴레옹 3세가 고용한 오스만 남작이 파리에 가스등을 전면으로 도입하며 '예술의 학살자'임을 자처한 이유는 달을 대체하여 달의 주민을 파리에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던가하는 등의 눈이 휭휭 돌아갈 정도로 현학적인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거의 강의에 가깝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미학 강의가 무척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거기에 더해 지도의 수수께끼도 대단한건 아니지만 지도에 관계된 두 학자의 전공분야가 앞서 자세하게 설명한 이론과 딱 들어맞고, 진상 역시도 합리적으로 설명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암호로서의 가치가 없는 기이한 지도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징표가 된다는건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짜임새와 완성도는 좋았고 무엇보다도 미학이론과 일상계 추리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잘 구현된 작품입니다. 새로운 시리즈의 도입부로는 차고 넘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벽과 모방"

3년전 "나"와 검은고양이가 처음 만나게 되었던 세미나 팀에서 여름 휴가를 계획했다. 장소는 팀원 중 한명인 세키마타의 가루이자와 별장이었다. 그러나 세키마타는 팀원들이 방문한 날 기이한 행동을 보인 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세키마타의 자살 원인을 분석하는 추리와 작품을 관통하는 바그너와 니체의 "벽" 이론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서양에서는 말하는 벽은 공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 기본 개념의 붕괴- 는 것, "검은 고양이"에서의 벽을 해석하는 이론, "모방"과 "카피"의 차이 - 모방은 정신과 행위에 관한 개념이지만 카피는 완성된 결과만을 지향하는 것 - 를 설명해 주면서 이 개념이 이 사건에 깊게 얽혀있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등 현학적인 이론 소개는 아주 좋았습니다.

다만 세키마타의 모방 행위는 비정상적이라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미학과 추리를 절묘하게 엮어나간 전개는 기존에 알고있던 추리 소설의 상식을 깨는, 멋진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강의가 지나치게 장황하지 않아서 이해하기 쉬우며 적절한 길이로 마무리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물의 레토릭"

연인이 동반자살로 의심되는데 여자가 사용한 향수의 향기가 이후에도 떠돈다는 괴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의 작품. 

그런데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와 사건을 엮는건 무리수였습니다. 물 - 여성의 시체라는 모티브 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학강의와 일상계 추리를 엮는다는 설정에 지나치게 얽매인 느낌입니다. 사건도 오해와 잘못된 증언이 결합된 것일 뿐이라서 사건으로 보기도 어렵고요. 우연과 작위에 의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감점요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숨기면 꽃"

검은 고양이가 이전에 알고 있던 여류학자 이구스가 실종되어 그녀의 행방을 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도둑맞은 편지"와 말라르메의 "주사위 던지기"를 주로 강의하는데, 내용에 비하면 너무 거창하네요. 알맹이는 별거 없는데 포장만 요란한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었달까요. 진상도 딱히 설득력이 없어서 전혀 와닿지 않았고요.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딸을 못 알아볼 부모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눈이 안 좋다고 해도 저같으면 목소리로 알아볼 수 있을거라 자신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두개골 속에서"

5년전 혜성처럼 데뷰했으나 데뷰작 이후 사라져 버린 천재시인 시조 도미아키의 데뷰 5주년 기념 파티에서 그의 신작이 낭독되었다. 그 후 시조와 동일인물이라고 의심받던 영화감독 에즈미가 자살하는데...

"황금충"에서 리그랜드와 황금충이 서로에게 침입했다고 설명하는 미학 강의만큼은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의 이야기들과 같습니다. 이 미학 강의가 시조 도미아키와 에즈미 감독의 죽음을 설명하는데 적절하지 않고, 오히려 억지스럽기만 했다는 점입니다. 사디즘 - 마조히즘의 관계처럼 에즈미는 관능 속에서 생을 긍정하는 반면, 시조는 그로테스크한 모티브 속에서 유머러스하게 죽음을 긍정한다는 정 반대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부연 설명만으로도 이야기 전개는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검은 고양이의 누나 레이카가 제대로 설명만 해 주면 애시당초 사건이 될 수도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역시나 설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무리수를 두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내용보다는 미학강의가 더 좋아서 완벽하게 주객전도된 느낌입니다.

"달과 왕"

한 노교수의 죽음, 그리고 그와 젊은 여류학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단편.

포의 "까마귀"가 그리스 음악적인 시라는 것, 여기서 까마귀의 "Nevermore"는 악기를 의미할 수 있다는 등의 현란한 미학 강의만큼은 여전히 볼거리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그리스 연극 "쫓는 왕"과 작중 사건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전개도 꽤 괜찮았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전혀 건질게 없습니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바로 앞의 사람이 소리를 내는데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골전도"를 응용한 발성법이라는 설정은 불필요한 사족이었습니다. 어치피 말도 안되는 내용에, 선하나 더 긋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선글라스를 끼면 신호등이 푸른달로 보인다는 마지막 이야기도 지나치게 만화적이라 별로였어요.

그래도 직전의 막장 작품들보다는 낫네요. 내용면에서 설득력도 있고, 결말 부분에서 나와 검정고양이 관계의 진전을 암시하는 달달한 전개도 선보인 덕분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7/23

N - 미치오 슈스케 / 이규원 : 별점 2.5점 (2점에 가까운)

N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읽는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고 감상이 바뀐다!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읽게 된 미치오 슈스케의 신작.

수록작들 대부분이 정통 추리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사건이 많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등장한다 해도 전형적인 범죄물이나 추리물과는 거리가 먼 탓입니다. 예를 들어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은 살인, 사체 은닉과 같은 강력 사건이 등장하지만, 내용은 범죄와는 별 관계없는 인간 드라마입니다. 살인범이 체포되지도 않고요.

그래도 드라마들은 괜찮은 편이고 재미도 있습니다. 인간 드라마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 일상계 추리물 (이름 없는 독과 꽃), 성장기 + 청춘물 + 인간 드라마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가족 드라마 + 일상계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등 선보이는 장르의 폭도 넓습니다.
정통 추리물이 아닐 뿐, 추리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특히 <<이름 없는 독과 꽃>>은 작가 명성에 걸맞는, 괜찮은 일상계 추리물이에요. 학교 무대의 가벼운 일상계라는 점에서 요네자와 호노부 느낌이 살짝 들더군요. 결말은 전혀 달랐지만요.

그러나 읽는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고 감상이 바뀐다는 광고는 과장 광고였습니다. 세계관과 무대, 등장 인물들이 겹치는 연작 단편 소설일 뿐이에요. 읽는 순서에 따라 대단히 이야기가 바뀌고 감상이 바뀔 일은 없습니다. 작가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작품이 그걸 잘 반영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기는 힘드네요. 소설이라는 매체에 적합한 아이디어는 아니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읽은 순서대로에요.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고등학교 야구부원 신야는 보결이지만 매일 새벽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형 히데오는 고시엔 진출을 눈 앞에 둔 결승전 직전 무리한 포크볼 연습으로 팔꿈치를 다쳤고, 그 이후 자살했다. 신야는 형에게 악질 DM을 보낸 누군가가 보란듯 형처럼 자기를 망가트릴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죽어 버려"라고 말하는 회색 앵무 리쿠짱과 주인인 소녀 나가미 지나미를 알게되었다. 지나미가 죽고 싶어 한다는걸 눈치챈 신야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한 원양어선 선원 니시키모 씨에게 반 강제로 끌려가서 함께 빛줄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꽃을 보게 되었다.


학원물이자 성장기인 작품. 거대한 꽃을 보았다고 뭐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서로의 속 마음을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곤충 연구원인 나는 버블 붕괴로 전 재산을 잃은 연인 다사카에게 폭행을 당해왔다. 마침내 살해당하기 직전, 갑자기 나타난 니시키모라는 남자가 다사카를 막는 와중에 먼저 다사카를 죽이고 말았다. 니시키모는 원래 자신이 다사카를 죽이려 했다며, 사체 은닉을 도와준 뒤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경찰이 뒤를 쫓는 상황에서 다섯 줄기 박명광선이 만드는 거대한 꽃을 보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 뒤 나는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니시키모는 원래 빈집털이였으며, 다사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는걸 알게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 나를 구해주었던 동네 소꼽친구였고, 주폭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어머니를 떠올려 나를 구해주었던 것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원양어선 선원으로 나왔던 니시키모의 과거와 정체가 드러나는 작품. '나'와 니시키모의 오랜 인연이 함께 소개됩니다.
범죄물이기는 하지만, 주폭에 희생당한 가족의 생존자에 대한 슬픈 드라마라고 하는게 맞겠지요.
 
하지만 너무 생각대로 뻔하게 흘러간다는건 아쉽습니다. 자기를 한 번 도와준 정체모를 남자에게 푹 빠지고 마는 전문직 여성이라니, 너무너무 뻔하잖아요..... 조폭과 사랑에 빠지는 여의사가 나오는 20여년도 더 지난 신파 멜로물이 떠오르네요. 요새는 일일 드라마도 이것보다는 의외성이 있을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
아일랜드에서 호스피스로 일하는 가즈마는 일러스트레이터 홀리의 터미널케어(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것)를 맡았다. 홀리의 착한 딸 올리아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기 위해 가즈마에게 시 글래스를 찾으러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올리아나와 홀리의 언니 스텔라 모두 시 글래스를 찾았다. 그러나 두 개의 시 글래스 중 한 개는 가즈마가 만들어서 놓아둔 것, 또 하나는 원래 스텔라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시한부 인생, 소원을 비는 아이템 등은 <<마지막 잎새>>와 비슷합니다. 착하디 착한 사람들만 나온다는 것도요. 착하기 그지없는 올리아나에 대한 묘사가 특히 빼어났습니다.
지금 읽기는 다소 낡은 소재이지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미치오 슈스케는 이런 서정적인 작품도 쓸 수 있는 작가라는걸 새삼 깨닫게 해 주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이름 없는 독과 꽃>>
중학교 교사 요시오카 리카는 펫 탐정일을 시작한 남편 요시오카 세이치와 파트너 에조에 마사미와 함께 외딴 섬에 개를 찾으러 갔다가 3학년 학생 이이누마 가즈마를 발견했다. 가즈마는 섬을 찾은 이유는 독 미나리를 캐기 위해서였다. 리카는 가즈마가 어머니의 사고사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허튼 짓을 막기 위해 뒤를 쫓는다.

독미나리를 왜 캤는지?에 대해 조사해나가는 일상계 추리물. 추리 자체는 대단한게 없는데, 중학교 선생과 학생이 얽혔을만한 작은 이야기를 실감나게 풀어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세이치가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결말은 너무 깹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급전개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아울러, 책 뒤 해설에서는 결말에서 사고사한건 펫 탐정들이 찾은 개로 착각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됩니다. 개가 죽었다면 에조에가 리카에게 자책하며 꾸준히 돈을 보낼 이유가 없거든요. 더 결정적인 증거는 '상황을 모두 전해 들은 세이치의 부모도' 나를 벌하지 않았다는 묘사입니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남편 요시오카 세이치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최소한 저는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로 읽는 순서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전대미문의 체험판 소설이라고 광고하는건 무리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
중학교 영어 교사를 하다가 은퇴한 '나'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영어 회화 실력 부족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잔돈을 구걸하는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빼어난 그림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을 매개체로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 어머니가 죽기 전 말했던 무언가에 대해 들었다. 소녀는 '무언가'를 발견해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소녀 몰래 상자를 열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귀국 후 조사하다가 알게된 건 소녀의 죽음이었다. 소녀는 상자 속에 무언가가 없어졌다며 패닉에 빠져 뛰쳐나갔다가 버스에 치였다고 했다.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에서 착하디 착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소녀 올리아나가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 이유도 "아이소어호리브르...."라고 말한걸 "I saw a horrible"이라고 이해했던 영어 교사 -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는 성실한 영어교사 니이마 선생 - 의 무식한 착각 탓이라니 더 입맛이 씁니다. 올리아나는 사실대로 "I saw a holy-blue" 라고 말했을 뿐인데 말이지요. 남의 소중한 상자를 몰래 열어본 행동은 용서가 안되고, 아무리 일본인이라고 해도 - 그것도 영어 교사가 - '리' 발음과 '러' 발음을 헛갈린다는 것도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자 안에 정말 나비가 들어있있는지, 니이마 선생은 보지 못했는데, 올리아나의 믿음에 의한 환각이었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해서 답답했습니다.

본인이 만든 감동을 본인 스스로 무너트리는 이런 작품을 왜 썼는지도 모르겠고,. 이 작품만 읽으면 내용 이해가 힘들다는 점에서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도시에서 50년 만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기자키 부부가 살해당한 현장에서 사라진 개를 찾기 위해 여형사는 펫탐정 에조에를 고용했다. 꼬박 이틀에 걸친 수색 끝에 에조에는 사라진 개 부차티를 찾아냈다. 하지만 개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알고보니 살해범은 이웃집의 히키코모리 청년 게이스케가 수상하다고 했던 부부의 아들 다카야였다. 여형사는 게이스케의 어머니로 아들이 유죄라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개를 찾아 나섰었다....

<<이름 없는 독과 꽃>>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여형사가 아들을 의심한 나머지 증거를 인멸하려고 개를 찾아 나섰다는 동기가 밝혀지는 장면이 마음에 들었어요. 스스로의 실수를 깨닫고 자책하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이런 부분에서 다 큰 어른이지만 의외로 성장기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게이스케와 다카야 증언과 상황이 뒤바뀌는 일종의 반전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헐겁습니다. 다카야가 했던 말이 전부 거짓말이라는걸 에조에가 초반에 눈치채지 못한 이유부터 석연치 않아요. 개와 함께 했던 유년 시절 경험으로 개에 대해 알 수 있는 능력자인데다가, 펫 탐정일을 하면서 쌓아온 경력도 있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마지막 장면을 보면 거짓말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초반에 무의미하게 반대 방향을 돌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범인이건, 개를 없앤다고 증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닐겁니다. 범인이 체포된 이유도 개와는 무관했고요. 평범 이하의 범작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수록작의 시간대별 순서는 아래와 같은데, 이대로 읽는게 가장 좋아보입니다.
  •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 <<이름 없는 독과 꽃>>
  •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
  •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
제가 4를 가장 먼저 읽은 이유는, 에이스였던 형이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도입부에서 <<Touch>>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2016/03/24

안녕 요정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안녕 요정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인 모리야 미치유키, 다치아라이 마치(센도), 시라카와 이즈루, 후미하라 다케히코 4명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유학 온 여학생 마야와 만나 그녀가 떠날 때까지 2개월간 함께 여러 일들을 겪었다. 그러나 2개월 후 전쟁이 일어난 유고슬라비아로 마야는 모두의 걱정을 뒤로 한 채 귀국하고 말았다.
편지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편지는 오지 않았고, 남은 친구들은 그녀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국 중 어디에 머무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힘을 모으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입니다. 긴 호흡의 이야기 속에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는 구성이지요.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놓치지 않고 찾아 읽는 편입니다. 작품들이 대체로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며, 추리적인 면에서도 합격점을 줄 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분야에서는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내놓기도 했고요.

이 작품 역시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그것도 전형적 일상계로, 왕도라고 부를 수 있는 구성이에요. 정말로 있을 법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추리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라면 이즈루의 이름 유래를 알아내는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진위 여부를 알 수 없고, 너무 소소해서 추리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의 이야기도 있다는 겁니다. 허나 지방 소도시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는 이 정도가 딱이겠지요. 오히려 이러한 소소한 이야기를 추리 소설로 만드는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해드리자면, 제일 처음 등장하는건 첫 만남에서 마야가 이야기한 "일본인은 비에 익숙해서인지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펴지 않고 잡고 뛰어간 남자" 사건입니다. 모리야는 '우산은 고장 난 것이고, 남자는 불에 타지 않는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달려나간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경성탐정록"의 "소나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마야가 신사 근처 구 시가지에서 들은 젊은 2인조가 남긴 수수께끼의 대사 "죽을 것 같으니 신사에 가자. 곤란하다. 떡을 만들어 간다 어쩌구"의 의미를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모리야는 2인조의 정체가 끈끈이로 새전함을 털려는 도둑들이라고 추리합니다.
일본식 대화를 가지고 풀어낸 것이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번역이 아쉬웠어요. 일본어의 뉘앙스를 살리기는 힘들었겠지만, 우리 식으로 "먹고 죽을래야 먹을 것도 없고, 끈끈한 떡이나 준비해야지" 정도로 풀어낼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세 번째는 묘지 앞 공물이 홍백 만주와 붉은 샐비어라는 기이한 물건인 이유를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진상은 그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경사였다는 겁니다. 일상계의 왕도라 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떡은 홍백인데 꽃은 붉은 것밖에 없다는 상황을 통해 추가적인 이야깃거리를 뽑아내는게 특히 괜찮았고요. 개인적으로 추리로만 따지면 이 작품 속 베스트 에피소드라 생각됩니다.

네 번째는 마야 이별 파티에서 시라카와의 이름인 "이즈루"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재미 여부를 떠나 일본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 별로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야와의 짧았던 추억담 이후, 현 시점에서 모리야가 그동안 제공된 정보를 종합하여 결국 마야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국 중 어디로 돌아갔는지를 알아내는 것으로 작품 속 추리는 마무리됩니다. 정교하기는 하지만 작품 내에서 전체적으로 흩뿌려진 단서를 모아 결론을 내는 것으로, 추리라고 하기는 조금 어렵지 않나 싶었어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에 가까웠달까요?

이렇듯 소소한 이야기에 소소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으로 심심하다 여겨질 수 있긴 하나 제가 워낙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작자의 다른 유사 시리즈와 비교해 본다면 뚜렷한 차별화 요소나 매력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와는 주인공들이 정반대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모리야는 본인의 에너지를 투자하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인물이거든요. 처음 본 마야를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학교에서의 궁도부 활동, 마야와 함께하는 시간들, 거기에 본인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도서관에 없는 책을 구입해 공부하는 열의까지 모든 면에서 말이지요. 또 다른 주역 센도는 굉장히 차갑고 냉정한, 일종의 "쿨 뷰티"로 성숙한 학급 위원장 느낌이고요.
하지만 "고전부 시리즈"와 "소시민 시리즈"는 의욕 없는 무채색 주인공들이 매력 포인트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모리야는 너무 뻔해서 매력 포인트를 찾기 힘들었어요. 센도 역시 다른 캐릭터들이 수도 없이 연상되는 스테레오 타입이었고요. 마야는 외국에서 왔다는 것을 제외하면 "고전부 시리즈"의 지탄다와 다르지 않습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수시로 메모장을 꺼내어 메모한다는 모습은 "신경 쓰여요~"와 똑같아요.

또 비교적 무거운 내용 역시 이전 두 시리즈와는 다르기는 하나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냥 일상 속 청춘물과 달리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위해 아낌없이 배우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려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힘든 탓입니다. 다치아라이를 통해 밝혀지는 진상, 즉 마야는 이미 죽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지만 허무할 뿐이고요. 청춘의 노력은 무익할 뿐이라는 허망함을 전해주려는 의도였을까요? 도무지 모르겠네요.

아울러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를 작품 속에 녹이기 위해 1992년을 그리는데, 1992년에 대학교 1학년이라면 저와 동갑이라 동질감은 느껴지긴 합니다만, 나이와 시점 모두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딱히 1992년일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역시나 불필요한 설정이었습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 주인공들을 통해 성장기 느낌을 주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지만, 이 역시 어설픕니다. 모리야가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유고슬라비아로 가고자 했던건 젊은 치기에 가깝고, 대학생이 된 후 다시 가려고 하는 것은 오기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추리물이기는 합니다만, 추리의 밀도가 낮고 캐릭터의 매력도 떨어지며 드라마도 재미없기에 감점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이야기에 신경을 쏟지 말고 그냥 "고전부 시리즈"의 에피소드로 써먹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왜 별도의 이야기를 파생시켰는지는 모르겠네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유고슬라비아 홍보대사쯤으로 임명된 뒤 쓴 작품이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2013/12/19

빙과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빙과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회색을 선호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가 누나의 부탁(협박?)으로 가미야마 고교의 특활동아리 "고전부"에 입부한 뒤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을 다룬 일상계 단편 연작집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국내에서 예상외로 사랑받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출간은 순전히 애니메이션으로 더욱 유명해진 덕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없었더라면 작가의 데뷔작일 뿐더러, 무슨 상을 탄 것도 아니기에 딱히 출간될만한 임팩트는 없거든요. 뭐 저 개인적으로야 작가에게 호감이 있는 편이라 국내 출간된 작품은 챙겨 읽는 편이고,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미스터리물이기도 해서 주저 없이 읽어보게 되었지만요.

작품은 기대했던 대로, 그야말로 일상계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일상계 작품이더군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소소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분명히 열려 있던 부실의 문이 잠긴 이유, 매주 금요일에 똑같은 책이 대출되고 반납되는 이유, 고전부의 회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찾아내는 정도의 사건들이니까요. 이후 지탄다의 삼촌이 남긴 말과 33년 전에 학교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지탄다의 삼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추리하는 약간 긴 분량의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역시나 딱히 큰 사건은 아닙니다. 빙과라는 회지의 제목이 삼촌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는 것 정도가 인상적일 뿐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소소한 사건이지만 충분히 우리 주위에서 있었음직한 것들이라 설득력 높고, 사건의 이유와 진상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재미 역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살인범이 넘쳐나는 부동고교가 비정상적인 거지, 고등학교에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건 당연하니까요.

필요 없는 에너지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의 소유자이지만 주어진 정보를 조합하여 정확한 결과를 추리해내는 의외의 능력을 갖춘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 오감이 발달해 있고 섬세한 감성을 갖췄지만 의외로 행동파인 지탄다 등의 캐릭터들도 생동감 넘치면서도 현실에 있음직한 고등학생들 그 자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친구들도 감초 역할은 충분히 해 줍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작품 내에서 무리하게 성장기를 그려가는 전형적인 청춘물 느낌을 많이 전해주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고전부에 입부한 뒤 평범한 사건과 소소한 일상을 거치며 약간은 회색에서 물든 오레키 호타로의 변화 정도가 딱 적절했다고 생각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일상계의 단점인 밋밋한 이야기가 도드라지기는 해서 살짝 감점했습니다만, 일상계 추리물의 왕도를 걷는 작품으로 충분히 추천할 만합니다. 책의 장정과 크기 등 만든 모양새도 최근 본 책들 중에서는 최고로 치고 싶네요. 애니메이션도 구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고교를 무대로 한 설정과 소소한 일상 속 사건을 다룬 내용, 거기에 오레키 호타로와 고바토라는 탐정역 캐릭터의 속성까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소시민 시리즈와 굉장히 유사한데 왜 별개의 시리즈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는 궁금합니다. 뭐 하나라도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없기에 하나의 시리즈로 일관되게 끌고가도 충분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2017/10/06

하늘을 나는 말 - 기타무라 가오루 / 정경진 : 별점 3점

하늘을 나는 말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기타무라 가오루의 전설적인 일상계 연작 단편집입니다. "동서 미스터리 100"의 일본편 17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걸작이지요. 오래 전 부터 국내 출간을 기다리던 작품입니다.
사실 국내 소개가 이렇게나 늦어진 것 자체가 굉장히 의외에요. 앞서 말씀드린 "동서 미스터리 100"선 상위 20개 작품 중 국내 미출간 작품은 이 작품과 아유카와 데쓰야의 "검은 트렁크" 두 작품이 유이할 정도거든요. 이 중 "검은 트렁크"는 1950년대 출간된 묵직한 고전이지만, 이 작품은 80년대 발표된 나름 신세대 미스터리 작품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일상계 미스터리는 국내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이나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등으로 제법 인기를 확보하고 있기도 하고요. 온갖 수준 이하의 작품들까지 번역되는 일상계 추리물의 홍수 속에 이 유명 작품이 이제서야 소개된 것 자체가 미스터리같습니다. 무슨 어른의 사정이 있는지 조금은 궁금하네요.

여튼, 그만큼 기대가 컸는데 다행히 재미있었습니다. 작가가 여성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섬세한 묘사들이 가득하여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며, 추리적으로도 정통에 가까운 이야기들인 덕분입니다. 기묘한 이야기가 선보이고, 그것을 엔시씨가 주어진 단서만으로 풀어낸다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인데, 대체로 설득력있고 합리적입니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화자 "나"와 라쿠고가 탐정 엔시 씨 캐릭터도 좋아요. 작가의 섬세한 필치로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있음은 물론, 주인공의 "국문학도" 로서의 전문가적인 지식과 엔시 씨의 "예인"으로서의 특수 능력 - 놀라운 기억력과 라쿠고 연기를 통해 단련한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능력 - 이 이야기와 잘 결합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단점이라면 분량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이 좀 부족하다는 것 정도? 이것은 엔시씨와 나, 그리고 그 외 등장 인물들과 본 편 추리와는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은 탓입니다. 덕분에 캐릭터가 생동감있게 다가오고, 전개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더해진다는 장점은 있습니다만, 추리 부분의 비중이 작아진건 개인적으로 아쉬웠어요. 국내 소개되었던 작가의 다른 단편집 - "시미가의 붕괴" - 등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었기에 의외이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이 작품이 발표된 해가 버블의 정점이었던 1989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여유있고 풍요로왔던 시대에 어울리는 느긋한 분위기가 가득 느껴지니까요.

그래도 숨 넘어갈 것 처럼 달리는 와중에도, 쉬어갈 필요는 있는 법이지요. 단점은 사소할 뿐, 시대를 뛰어넘는 재미를 전해주는 좋은 일상계 소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오리베의 망령" 

"나"는 우연히 대학교 은사 가모 교수의 부탁으로 라쿠고가 엔시씨 인터뷰에 동행했다. 인터뷰 후 회식 자리에서 가모 교수는 어린 시절 꾸었던 기묘한 꿈 이야기를 했는데, 엔시 씨는 이야기만 듣고 진상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증거 보완을 위해 한 달의 시간을 요청하는데...

화자인 "나"와 탐정역인 라쿠고가 엔시씨가 등장하는 기념할만한 시리즈 첫 편입니다. 섬세하면서도 느긋하고, 조금은 할머니 취향인 "나"와, 뛰어난 기억력을 갖추고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엔시 씨가 제대로 소개됩니다. 전통 일본적 소재인 라쿠고와 오리베 자기, 그리고 교수님 꿈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전개도 괜찮고요.

추리적으로도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교수님 꿈의 이유가 된 숙부님이 평소 책을 함부로 대했다는게 핵심이거든요. 물론 교수님이 어렸을 때의 일본 사회 분위기, 당시 경매 제도 디테일 등은 국내 독자로서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일본 한정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리즈 시작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설탕 합전" 

"나"는 어느 날 엔시 씨를 우연히 만나 함께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앞 테이블에 앉은 3인조의 기묘한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되는데...

사소한 것에서 진상을 꿰뚫어보는 엔시 씨의 능력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핵심 추리는 "왜 세 명의 마녀(?)가 설탕 합전을 벌이는가?" 이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 신경쓰는 사람들이 세 명의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녀들이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라는걸 예언하는 등의 소소한 추리도 아주 볼만했습니다. "설탕을 홍차에 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설탕을 꺼내려는 목적이었다"에서 시작되는 핵심 추리의 흐름 및 진상도 충분히 합리적이고요. 변장과 연기(?)로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엔시 씨의 활약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가 무언가 이상한 것(소금)을 넣는 것을, 원래 퍼낸 설탕을 다시 넣는 것으로 착각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다른 용기에 담아온걸 넣었을 텐데, 이걸 착각한다는건 무리니까요. 앙심을 품은 알바생이 너무 자신을 드러내놓고 가게에 출입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시대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아주 좋은 일상계 소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호두 껍데기 안의 새" 

"나"는 친구 다카오카 쇼코와 함께 도호쿠 여행을 떠났다. 엔시 씨의 공연도 보고, 온갖 절경을 감상하며 여행을 즐기던 중, 현지에서 만난 친구 에미의 차 시트가 모두 벗겨진 채로 발견되는데...

분량은 약 90페이지에 가까운데, 80여 페이지에 걸쳐 도호쿠 여행담이 소개됩니다. 아무리 일상계 작품이라지만 이래서 되나 싶을 정도로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아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나"와 친구들 사이의 대화 역시 지나치고요. 

작품 속 추리 역시 억지스럽습니다. 동일 차종의 차 커버를 벗겨 위장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단지 시트 커버만 벗긴다고 차가 비슷해질까요? 그 안의 모든 디테일, 소품이 다를텐데 말이지요. 아울러 이렇게 위장하려고 했던 대상이 어린 여자아이라는걸 쉽게 떠올리는건 너무 심한 비약입니다.

물론 배경 묘사는 아주 근사합니다. 일본 인형 코케시의 고장이라고도 하는 "자오산"의 풍광이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나"가 문학에 대해 정말 조예가 깊다는게 잘 드러나는 점도 좋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있기에 감점합니다.

"빨간 모자"

"나"는 동네 치과에서 우연히 함께 대기실에 있던 "점 여사"로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알고 있는 점 여사의 동창 모리나가 유미코 씨의 집 앞에, 매주 일요일 밤마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다.

전편에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전편의 결과(아이를 버린 어머니)를 궁금해 한 엔시 씨가 "나"를 공연에 초대한 후 이야기를 듣는다는 설정과 본편 이야기가 이혼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에서요.

추리적으로는 무난합니다. "빨간 모자" 이야기는 사실 모리나가 유미코의 창작으로, 점 여사가 찾아온 날 화장실 옆에서 신발장을 정리한게 핵심 단서라는 것은 괜찮았어요. 충분히 일상계스러우면서도,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준 셈이니까요. 그날 목격한 "빨간 모자"는 유미코의 딸일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점 여사의 남편과 모리나가 유미코가 불륜 관계였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인간 관계, 인간 심리를 그려낸 묘사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점 여사의 방자한 태도, 마지막에서 "나"가 사고가 날 뻔한 상황 등에 대한 묘사는 솔직히 불필요했고요. 본 편 추리하고는 동떨어져 있는 모리나가 유미코의 "빨간 모자" 동화 묘사도 지나치게 깁니다. 이러한 점은 한 편당 80여 페이지라는 분량을 맞추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나 의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냥저냥한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늘을 나는 말"

"나"는 집 근처 상점 "모퉁이 집"의 젊은 사장 구니오 씨가 연인과 함께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이후 "나"는 부탁을 받아 유치원 크리스마스 공연 비디오 촬영을 나섰는데, 그 곳에서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구니오 씨를 다시 만났다. 그날 그는 유치원에 가게에 있던 목마를 선물로 기증했다. 그런데 이웃집 며느리로부터, 유치원 마당에 놓여져 있던 목마가 순간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표제작으로 일상계 단편집 마무리에 어울리는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추리적으로 수수께끼 자체는 평이하지만, 다무라씨(구니오씨의 연인)가 날짜를 착각했다는게 잘 설명되고 있는 만큼 즐길거리는 충분합니다. 일상계에 딱 어울리는 정도의 수수께끼였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읽었던 크리스마스용 소품들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나"의 생일이 크리스마스이고, 소재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며, 이야기의 핵심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이만큼 좋은 작품이 또 있을까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더해 별점은 3.5점입니다.

2010/06/30

구적초 - 미야베 미유키 / 김은모 : 별점 2.5점

구적초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북스피어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3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중단편집입니다.

보통 초능력자 SF는 능력자들이 여러가지 무거운 사명을 짊어지고 의문의 조직과 싸워나가는 한편, 자신의 운명과 힘에 대한 두려움같은걸 느끼고 고뇌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에 반해, 이 작품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힘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힘에 대한 대단한 배경설명이 있지도 않고(자연발생적인 것), 힘의 소유자들도 평범한 일반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일상계 초능력 SF물'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그 안에서 대표를 다툴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렇게 쓰면 시시해 보일 수도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글 쓰는 재주 하나만큼은 역시나 반짝반짝 눈이 부실 정도! 읽는 재미도 탁월하고 특유의 심리묘사는 여전히 발군이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추리적으로 조금 더 볼만한 부분이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 그리고 두번째 작품 "번제"가 좀 이질적이라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읽다가 들은 생각인데, 이 책에서처럼 약간의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큰 이득은 없다는 것이 맞는 이야기같아요. 뭔가 예지는 할 수 있지만 그 사건이 일어날때 까지는 뭘 예지했는지 알 수 없는 예지능력, 사람과 접촉해야만 하고 접촉 순간에 얻어지는 단편적인 의미를 조합해야 하는 투시능력 모두 한계도 명확할 뿐더러 이러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별로 쓸데가 없거든요. 혼인빙자 사기범한테는 무척이나 유용한 능력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러질 때까지"
어렸을적 사고로 부모를 잃은 도모코가 유일한 남은 혈육인 할머니의 죽음 이후 집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

비디오 테이프에 찍힌 어린 도모코의 행동과 말은 예지능력이었다는 전개는 흥미진진한데, 실의에 빠진 도모코의 자살 시도라는 뻔한 결말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그냥저냥 무난한 작품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번제"
어린 동생을 말도 안돼는 사고로 잃은 가즈키에게 아오키 준코라는 회사 동료가 접근하여 범인을 죽여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녀는 염화능력자(파이로키네시스) 였고, 자신의 능력을 정당하게 사용하기를 원해왔었다.

이 작품집 속에서 가장 처지는 작품입니다. 아오키 준코가 가즈키에게 접근한 이유부터가 설득력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면 그냥 신문이나 TV 방송에서 죽어 마땅한 인간들을 골라내면 됩니다. 
그리고 아오키 준코는 전형적인 강력한 초능력자이기 때문에 내용이나 전개가 기존의 초능력 SF물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이 작품집의 가장 큰 매력은 '일상계스러운 맛'인데 너무 이질적이며, 뻔했기 때문입니다.
가즈키 동생의 뺑소니 사고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조금 여성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여운을 남기는 묘사는 인상적이지만, 앞서의 단점이 더 크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구적초"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천리안 다카코는 능력을 활용하여 형사가 되지만 서서히 자신의 능력을 잃어간다.

'초능력 일상계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카코의 능력을 통해 단서가 입수된다는 점에서는 '초능력', 공원에 출몰하는 변태 사건과 고사카 미치루 유괴 사건은 '추리물'로서도 출중하고 '일상계'스러운 맛도 잘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카코의 능력이 감퇴해가는 과정과 더불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에서 명확한 이유라도 좀 밝혀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긴박감이 있긴 하지만 영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답답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