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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어른의 맛 - 히라마쓰 요코 / 조찬희 : 별점 3점

어른의 맛 - 6점
히라마쓰 요코 지음, 조찬희 옮김/바다출판사

푸드 저널리스트 히라마쓰 요코의 에세이집으로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다츠가 자신의 식도락 생활을 하이쿠가 아니라 일반 수필, 산문 형태로 써 내려간다면 이런 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은근하면서도 섬세한 묘사도 돋보입니다. 특히 "혼자의 맛"은 작가가 리얼 소다츠라는걸 증명하는 글이에요. 자신만의 음식 조합이라던가, 서서 마시는 선술집에서 어른스럽게 술을 마시는 방법, 혼자서 이자카야를 즐기는 법이 실려있는데 각 방법들 모두가 "술 한잔 인생 한 입"의 에피소드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술집에서의 일화나 음식과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글들도 소다츠가 바로 떠오르고요.

그러나 단순한 술꾼, 먹보 미식가의 글만도 아닙니다. 깊은 연륜과 경험이 묻어나는 글들도 인상적입니다. "눈물나는 맛"이라는 제목의 글 구성이 특히나 마음에 듭니다. 글은 와사비 초밥과 고추가 들어간 김치 등 매운 요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다츠가 먹음직한 아귀 간, 가라스미, 슈토 등 다양한 진미를 열거하며 어른이 되어 알고 먹게 된 맛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이어나가지요. 그 뒤는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된 여러가지 맛이 소개됩니다. 찜통에 찐 무화과에 참깨 소스를 얹은 일품 요리와 같은 대표적인 예가 등장하는건 물론이고요. 또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을 다시 맛볼 때 재회의 기쁨도 크다며 곶감, 톳 등의 맛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글의 마무리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렸을 때 먹었던 엄마의 맛입니다. 어른이 조용히 흐느끼게 되는 맛은 바로 그 맛인거지요. 음식에 대한 맛있는 묘사에 살짝의 감동까지 곁들여진 좋은 글이라 생각됩니다.

"깊은 산의 맛"에서 료칸 우쓰오장의 음식을 소개하는 글도 대단합니다. 사진 한 장 없지만, 음식의 형태와 맛이 떠오를 정도로 잘 묘사한 글이기 때문이에요. 산촌의 맛을 표현하면서 '오독오독, 꾹, 섬벅, 바삭, 아삭아삭, 담백, 미끈미끈, 혹은 어떤 것은 쌉싸래하고 어떤 것은 은은히 달고 끈끈하고 아리다.'라고 설명하는 문장처럼요. 이 정도 글 솜씨면 오히려 사진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따라해보고 싶은 레시피도 실려 있습니다. 시금치를 데쳐서 서벅서벅 잘라 물기를 쫙 빼고 으깬 두부와 함께 무친 일종의 나물이 그러합니다. 간은 올리브오일과 소금, 간 후추가 전부라는데 쉽게 따라해 볼 만 하지요. 맛도 좋을 듯 싶고요.
해삼 손질법은 집에서 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억하면 좋겠더군요. 일본 전통 해삼 손질 방법인 '자부리'에 대한 소개인데, 뜨겁게 끓인 녹차에 채썬 해삼을 넣고 재빠르게 휘저어 살짝 데친 뒤 채반에 받치면 됩니다. 녹차 온도는 보통 80도 정도이고요. 이 뒤 유자 식초에 담가 손님에게 내면 됩니다. 이렇게 데치면 오독한 식감이 경쾌해지고 녹차가 해삼 특유의 알싸한 맛을 누그러뜨려 좋다는군요.

간간히 언급되는 음식 관련 정보도 볼만합니다. '로산진의 낫토 먹는 법'은 처음 알았네요. 일단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상태에서 305번, 그 다음 간장 넣고 119번, 이렇게 총 424번을 섞으면 낫토가 가장 맛있다는 설인데 솔직히 말도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저자가 여러 낫토로 실험해 본 결과로는 횟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답니다. 어떤 낫토냐가 더 중요한 거지요.
물의 경도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 이유를 고찰한 "물의 맛"도 흥미롭습니다. 연수는 수용성 성분을 잘 유출하고, 경수는 미네랄 성분이 많아서 가교 결합이 이루어져 소재를 딱딱하게 만들기 때문에 연수는 일본 요리에, 경수는 유럽 요리에 어울린다고 하네요. 유럽에 스튜나 스톡이 많은 이유입니다. 경수라서 미네랄 성분이 소재와 더욱 잘 결합해서 진한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지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재미도 있으며, 음미할만한 글이 많은 좋은 에세이였습니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크고요.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9/07/12

빈볼 관련 단상

어제 SK 송은범 선수가 던진 공을 맞은 진갑용 선수가 아쉽게도 거의 시즌 아웃이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최근 이런 경기가 잦은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전에도 썼지만 미국식 해결책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죠. 우리팀 손시헌이 머리에 공을 맞는다면 나주환에게 헤드샷. 뭐 이런거요. 이런 전략이 모든 팀에게 공통적으로 통했다면 이런 논쟁 자체가 아마 사라졌을거에요.

* 생각과는 전혀 다른 본의 아닌 낚시글이 되어 글을 이동합니다. 이글루스라는 열린 공간에 올리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표현이 많았네요. 삭제할까 했지만 댓글도 소중한 의견들이고 공감되는 것도 많아 삭제하지는 않겠습니다. 아울러 경박한 표현으로 실례를 끼친 특정 구단과 선수분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덧글 금지 설정이 적용이 안되네요.... 이후의 덧글은 윗글에 달아주세요.


프로야구 투수가 몸쪽 던지다가 공좀 맞출 수 있다! 뭐 이런 글도 봤는데 그건 동감입니다. 리오스가 두산 있을때 사구가 많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하지만 리오스 선수 사구 맞고 심각한 부상으로 결장한 선수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네요. 리오스 선수는 약빨이다 뭐다 말은 많지만 제구는 좋았거든요. 
그런 논리라면 제구가 개판인데 주구장창 몸쪽으로 찔러 넣는, 그것도 머리쪽으로 찔러 넣는 또라이가 프로야구 투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죠. 그러고 머리에 정통으로 때려먹이고 미안하다면 단가? 이런 또라이짓이 계속된다면 어쩔 수 없이 보복가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150km 넘는 광속구 이원재를 빨리 콜업해서 이럴때 써먹는게 좋지 않을가 싶기도 하네요. 제구력 안좋은 투수이기도 하니 변명하기도 좋을것 같습니다.

덧붙여, 두산 용덕한이 삼성선수 헤드샷 한건 사과안함? 뭐 이런 글도 어디서 봤는데 그건 삼성과 두산 문제지 두산과 SK 문제는 아닌데 왜 끌고 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잘못한 플레이라 생각하며 앞서 말한 논리대로 당시 용덕한 선수가 공을 몸에 맞던가 했더라도 할 말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글을 쓴 이유는 진갑용 선수의 안타까운 부상때문이지만 애시당초 손시헌 선수 사구에대해 불만이 많았던 지라 글을 적게 된 것이니 만큼 오해하지 말아주시길...)

작금의 상황에 대해 SK팬이라고 해서 무작정 피해의식 느끼지말고 이런 사건이 유독 SK와의 경기에서 최근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많이 나오는 점에 대해서 이유를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할겁니다.

2021/02/08

이글루스에 바랍니다.

제가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개설한 날짜는 2003년 12월 7일로 이글루스 블로그 서비스가 2003년 6월에 시작되었으니, 거의 초창기 유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동안 블로그 서비스를 공짜로 거의 17년간 써 온 것에 대해서는 이글루스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글루스가 한창 인기있고, 유입자도 많았던 호시절이었던 2010년대 초반 역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뭔가 바꾼다고 해서 이용자가 늘어나고, 조회수와 트래픽이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이용자로서 상실감, 문제점을 느끼지는 않도록 지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몇 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언급하고 싶은건 에디터입니다. 글을 작성해서 올려야 하는 블로그에서 가장 중요한 툴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글루스 에디터는 멋대로 폰트 사이즈를 정해버리는 버그, 링크 경로를 멋대로 http를 한개 더 붙여 오류를 일으키는 버그와 같은 다양한 버그를 자랑합니다. 모바일 웹 버젼으로는 에디터 입력도 제대로 안되고요. 그 외에, 쓰지도 않는 포토로그 버튼이 아직도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가끔 싸이월드 공감 버튼이 표시되는 등 정말 기본적인 수정과 업데이트가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더해 에디터에서 광고 플랫폼도 잘 지원해 주면 좋겠어요. 아마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은 대부분 구글 애드센스와 같은 광고 플랫폼 도입을 생각하고 있을텐데, 현재 에디터로는 구글 애드센스를 완벽하게 운영할 수 없습니다. 저만해도 크롬에서 쓰면 구글 애드센스 삽입이 불가하며, 기껏 삽입한 광고도 예전 글에서는 때때로 보이지 않는 등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요. 광고 플랫폼 운영만 반자동으로, 제대로 되도록 개편해도, 이용자가 조금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네요.
마찬가지로 모바일 앱도 지원할거라면 제대로 개발해서 서비스했으면 합니다. 베타라며 나온지 수년이 지나도록 베타라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은 모바일 앱을 설치할 이유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결과물이거든요.

밸리의 인기글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지켜보니 정치 관련 글은 꼬박꼬박, 특히 현재 집권 여당 욕하는 글은 한 번 빼먹지 않고 부지런히 인기글로 올라가더군요. 물론 집권 여당을 욕하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조회수가 높아서 그 글이 인기글로 올라갈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밸리 인기글은 왜 안올라가나요? 제가 주로 이용하는 도서 밸리는 인기글이 선정된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밸리로 카테고리를 구분해 놓았으면, 밸리별로 조회수 높은 글이 자동으로 인기글이 되도록 시스템을 꾸미는게 당연합니다. 밸리 전체를 통틀어 인기글을 뽑기 때문이라면 밸리별로 인기글이 뜨는 기능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도 대충 살펴보니 인기글이 있는 밸리는 손에 꼽네요. 한 때 이글루스의 최대 장점이었던게 밸리인데, 이렇게 망해가니 서글프기까지 하지만 이럴거라면 인기글과 밸리를 아예 구분하는게 맞습니다.
덧붙이자면, 혐오스러운 인기글은 두 번 다시 보지 않도록, 보기 싫은 블로그를 차단하는 기능도 있었으면 합니다. 특정 블로그는 정말이지 썸네일조차 보기가 싫습니다.

그리고 추가를 원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백업 기능입니다. 글과 댓글까지 모두 일괄 추출하여 저장하는 형태로 백업했으면 하는데 왜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네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글루스 백업을 위해 개인이 만든 툴들이 몇 개 존재하던데, 저는 아쉽게도 백업에 성공하지 못했었습니다. 저처럼 역사가 오래된 사용자라면 누구든 원하는 기능이라 생각합니다. 이 기능을 위해 유료화가 필요하다면, 지불 용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나마 관심있는 연례 행사였던 올해의 블로거는 꾸준히 진행해 주었으면 하고, 줌 인터넷과 연계하여 좋은 글들은 홍보가 좀 되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 운영자가 이 글을 볼 것 같지도 않지만...
마침 엊그제 뉴스를 보니, 줌 인터넷에 새로운 대표가 선임되셨더군요. 이글루스는 줌 인터넷 회사 소개에서조차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그리고 새 대표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는 블로그 서비스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이 기회를 빌어 뭔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2023/03/18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공지.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안내

서비스 종료에 대한 소식은 알고는 있었지만 포스팅이 늦었네요.

2003년 12월 7일에 개설하였던 이 블로그의 수명도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군요. 그나마 다행인건 어느정도 이사가 완료된 상태라는 점입니다. 이미 2010년에 관리자 권한이 다른 사람에게 부여되는 권한 오류 사고 때 의구심을 가졌었고, 2013년 SK에서 서비스가 독립한 이후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토로할 때 고민하면서 블로그 글을 조금씩 옮겨왔거든요. 현재 약 90% 넘게 글을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새 거처는 구글의 블로그스팟이며,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글 내부 deep link를 수정하지 못하는 점, 기존 댓글과 트랙백 등을 가지고 오지 못하는 점 등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원본 글이나마 살려 놓았습니다. 앞으로 제 글은 이글루스 폭파 시점까지 이곳과 블로그스팟 두 군데 모두 올릴 예정이에요. 100% 이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정리 등으로 새로 글을 올리기는 힘들겠지만요.

사실 이글루스의 서비스 종료도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위의 글들은 물론이고, 작년에 이런 글을 썼었지만, 아무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걸 보고 거의 확신했어요. 오래가지 못할거라는걸요. 오히려 제 생각보다는 서비스가 오래 버틴 편입니다.

물론 끝을 예감하고는 있었다고 해도, 섭섭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7천일이 넘는 기간 동안 3천 7백개가 넘는 글을 올린 이 블로그는 그야말로 제 인생의 한 축이나 다음이 없었으니까요. 

블로그를 운영하는 동안, 4개의 회사를 차례로 옮겼고, 결혼도 했고, 소중한 딸 아이도 만났으며, 형과 합작했던 추리소설 "경성탐정록"의 발표와 출간이 있었고, 제 이름으로 된 첫 책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을 펴냈으며, 추리 소설 리뷰도 1,000편을 달성하는 등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글루스의 빅 웨이브였던 이글루땅 열풍 참여처럼 온라인 상으로 나눈 수많은 분들과의 이야기와 함께했던 경험도 소중한 추억입니다. 이전에 썼던 글처럼, 서비스를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해준다면 유료화에도 참여할 생각이 컸는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이미 서비스 종료는 결정된 사항이니 어쩔 수 없지만요(솔직히 일부 지저분한 정치 글을 밸리에서 더 안봐도 된다는 건 좋네요).

이글루스에 둥지를 트셨던 모든 분들께서 모쪼록 이사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EST님이 보내주셨던, 제 이글루스를 대표하는 이글루땅 홈즈 버젼을 올리며 글을 마칩니다.

2015/06/30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 / 이영미 : 별점 2.5점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비채

무라카미 하루키가 온갖 곳에 발표했던 다양한 글을 - 심지어 수상 소감까지! - 모아놓은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잡문집이지요. 본인 스스로도 그닥 가치를 두지 않는 짤막한 요청 원고들에다가 어디에 발표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글들, 여러가지 모종의 이유로 발표하지 못했던 글들이 대부분일 터인데 이런 글들을 모아놓은 책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다시금 탄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잡문이라도 워낙 글솜씨가 뛰어나서 그런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음악, 번역 등 특정 컨텐츠를 소개하는 글들은 인상적이기까지 했어요. 프로작가가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써야 한다는 일종의 기준점이랄까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는 글을 읽으며 바로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어 보고,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인터넷 서점 보관함에 바로 담아 놓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소갯글에서는 작품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일체 설명하지도 않는데 말이죠. 피츠제럴드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멸망의 미학이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는 구원의 확신"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해 지네요. 뒤에 서술한 "밤은 부드러워"는 정말이지 꼭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어떻게하면 이런 리뷰글을 쓸 수 있을지 정말로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꼭 읽어보게 만드는 리뷰를 저도 쓰고 싶네요.

또 읽다가 느낀 것인데 비유가 정말 뛰어납니다. 화려한 문체는 아니지만 비유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독자에게 가장 쉽게 이해시킵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신체균형을 위해 바하의 인벤션을 쳤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요.

일종의 창작론이랄까, 글쓰기에 리듬이 중요하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비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해서 사람들이 읽게 만드는 리듬과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즉 적확한 어휘의 배열, 그리고 어휘들을 지탱해주는 내적인 마음의 울림인 하모니와 자유로이 솟구쳐오르는 이야기의 흐름을 타는 즉흥연주, 그리고 고양된 성취... 뭐 그러하답니다. 따라하기는 힘들겠지만요.

잡문이기에 모든 글들이 빼어나거나 재미있거나 인상적인건 아닙니다. 허나 리뷰, 소갯글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히 가치있는 독서였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06/25

넨도nendo의 문제해결연구소 - 사토 오오키 / 정영희 : 별점 3점

넨도nendo의 문제해결연구소 - 6점
사토 오오키 지음, 정영희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현재 가장 각광받는 일본 디자인 회사 넨도의 오너 디자이너 사토 오오키의 잡재 연재글을 모아 놓은 에세이집입니다. 다양한 내용을 짧은 분량 안에 잘 담고 있으며, 전달하려는 주제가 명확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나 디자인 방법론에 대한 글들 - 어떻게 디자인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떻게 클라이언트와 커뮤니케이션 하는지 등 - 은 사례 중심인데 새겨들을만한 내용이 많더군요. 잘 나가는 디자이너다운 생각들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새로운 콘셉트의 상품개발이라고 해서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을 하겠다는 것은 위험하다.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이상적인 감각은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아직까지는 없었던 것'을 '보충한다'는 정도의 감각이다. 예를 들자면 시력 보호를 위한 '컴퓨터용 안경'이나 '지워지는 볼펜' 같은 것.
  2. 일단 해본다. 할 수 있을까, 없을까와는 별도로 반드시 그 안에 새로운 발견이 있다.
  3. 세계 일류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밀려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기 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영역을 사수하는 것이 일류의 필수 조건이다.
  4. 센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좋아하느냐의 여부이다. 투입한 시간의 양이 해결을 좌우한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연습을 하루 거르면 그것을 회복하는데 3일이나 걸린다고 하지 않은가.
  5. 기회란 기본적으로 여자와 같다. 한눈팔지 않고 하나의 일에 몰두해 있다 보면 질투심 많은 기회는 내가 있는 곳으로 기꺼이 찾아온다. 반대로 늘 기회만 엿보고 있는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6. 디자이너에게는 독창성, 기발한 발상만큼 결단력이 중요하다. 결단의 요령은 '틀려도 괜찮으니 가능한 빠른 결단을 내리는 것.'
  7. 과제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눈 앞에 드러나는 문제보다 애초에 왜 그 문제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아보라.
  8. 디자이너는 누군가가 본 적 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도,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을 만드는 사람도 아닌, 누구나 본 적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다.

실제 사례로 수록된 디자인 작품들도 흥미롭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종이 블록'입니다. 잡지 부록으로 의뢰받았는데 조건이 까다롭더군요. "종이를 사용하여 입체로 조립할 수 있는데, 조립하기 쉽고 조립하기 전에도 지면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의뢰거든요. 결과물은 "평면이지만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종이 블록"입니다. 사진만 보아도 의뢰를 100% 충족시키는 그럴듯한 결과물이더군요! 그 외 코카 콜라 식기라던가 하나로 합쳐지는 젓가락 등도 인상적이었고요.

이러한 내용들을 거만하게 느껴지지 않게 써내려간 글 솜씨도 인상적입니다. 누군가에게 '한수 가르쳐 주겠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디자인의 기본 사상이 확실히 '배려'에 기초해 있구나 싶었어요.

책의 장정, 디자인도 저자와 주제에 걸맞게 괜찮은 편입니다. 사토 오오키와 넨도의 작품 도판이 부족한 것은 좀 아쉽지만요.

사토 오오키라는 디자이너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런 글을 쓰고, 이렇게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라면 분명 좋은 디자이너일 것이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나이 탓인지 디자인 에세이에서는 최고봉인 하라 켄야 만큼의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이런 디자이너와 함께 일할 기회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무 전방위적으로 다작을 하는 것은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만...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얻을게 많으니까요. 현업 디자이너이시라도 마찬가지고요. 저 개인적으로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얻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글, 읽는 독자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을 써 보고 싶네요.

2021/01/02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 김태권 : 별점 3점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 6점
김태권 지음/한겨레출판

"십자군 이야기" 등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김태권이 지은, 육식에 대한 에세이식문화사 서적입니다. 사람이 고기를 먹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왜 다른 생명을 빼앗아 가면서까지 고기를 끊지못하는지? 영양 때문에, 건강해지기 위해서라고 답하지만 사실은 맛이 좋다라는게 진짜 이유라는 작가의 말에는 저도 뜨끔했습니다. 공장식 축산을 하지 않으면 고기값이 엄청나게 비싸져서 서민들은 고기를 거의 못 먹게 될 거라는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글들도 인상적이었고요. 

이런 글들을 "오디세이아", "걸리버 여행기", "단테의 신곡"과 같은 서양 고전, "수호전", "청성잡기", "구지필기", "세설신어"와 같은 동양 고전, 토르 등의 신화,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간, 거기에 피터 래빗,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과 최규석의 만화, 현대 시트콤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고 있어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글도 재미있고 직접 구글 등을 뒤져서 뽑아낸 데이터들도 충실합니다. 또 이야기마다 함께 실려있는 일러스트는 정말 최고입니다. 주제를 잘 나타내면서도 묵직하니, 완성도 높은 그림들이라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주로 공장식 축산과 육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글들이 많지만, 이와는 별개로 고기를 주제로 식문화와 식재료에 대해 다룬 글들도 제법 많습니다. 기독교도들은 사순절에는 고기를 먹을 수 없고 물고기만 먹을 수 있었는데, 17세기 교회가 비버도 물고기라고 이야기하여 캐나다 비버 수가 크게 줄었다는 이야기,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만들 때는 몇 개월동안 닭의 간만 먹었다는 이야기, 일본식 돈가스는 도톰한 돼지고기를 깊은 튀김 그릇에 담가 된 덴푸라처럼 튀겨 내지만, 한국 분식집 돈가스는 재료를 아끼기 위해 프라이팬에 얇은 고기를 튀겨낸게 양국의 차이라는 이야기(증명된건 아닙니다), 고기국수와 돈코츠라멘의 차이, 곱창의 곱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등이 그러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코고'가 무엇인지에 대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시지에 튀김옷과 깍둑썰기 한 감자를 둘러 튀겨낸 감자 핫도그를 이야기하는데, 코고로 불리게 된 이유는 캐나다의 유명한 콘도그 브랜드 이름이 포고이기 때문입니다. 코리안 포고, 즉 코고가 되는 거죠.

방대한 자료 범위 덕분에 좀비가 사람 고기를 먹는 설정과 같이 생각지도 못한 주제도 등장하곤 합니다. 좀비에게 풀린 주술을 푸는 방법이 소금을 먹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소금간을 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인데, 영화에서 한 번 써 먹어 봄 직 해 보이더군요. 

사료를 토대로 한 게 아니라,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도 좋습니다. 미꾸라지와 두부를 끓는 물에 넣고 삶으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들어가 죽는다는 요리법이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처럼요.
우리나라는 베트남 포 (쌀국수)가 익숙하고, 베를린에서는 분짜가 널리 퍼진 이유가 냉전 때문이었다는 것도 경험 기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자가 베를린 유학 시절 분짜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경험에서 글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분짜는 북베트남 음식이었고 포는 남베트남 음식이었는데, 베트남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베트남 청년들이 동베를린으로 유학갔고, 독일 통일 후 그 학생들이 눌러앉아 북베트남 음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 외, 개인적으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24마리의 검은 티티새" 관련된 글이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제가 썼던 책 속에도 소개되었던 작품이라서요. 저와는 다르게 검은 딸기 파이가 아니라 소스에 주목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제 책을 김태권 선생님께 한 권 보내 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졸문이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반성도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저를 민망하게 만든건 구글 검색 키워드 등을 추출하여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해서 결론을 내리는 글들이었습니다. 자료를 찾고, 인용할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자료를 만드는 노력과 열의가 저에게는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거든요. 같은 책을 읽고 주제를 뽑아내었는데도 불구하고 글의 완성도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는건 변명의 여지도 없는 부끄러운 사실이고요.

하지만 공장식 축산과 육식에 대해서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연재물 1회 분량으로 동일 주제를 다루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텐데, 글들을 쪼개지 말고 묶어서, 큰 덩어리로 설득력있게 주장하는게 나았을거에요.
또 당연히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지만 인간이 자연을 잔인하게 대하는건 단지 '식육' 산업에 국한된건 아닙니다. 작게는 애완동물이나 동물원, 넓게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자연을 희생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니까요. 고기에만 집중해서 풀어나갈 필요도 없었고, 그러기에는 너무 비슷한 글들이 많았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글들과 멋진 그림이 함께 하는 좋은 책이지만, 이러한 이유로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점입니다.

2017/11/25

오래된 디자인 - 박현택 : 별점 4점

오래된 디자인 - 8점
박현택 지음/안그라픽스

부제는 박현택의 디자인 예술문화 산책입니다. 저자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근무하시는 디자이너로 동문 선배님이시더군요. 알라딘 등을 통한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바라본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에세이인데,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미적 관점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글재주도 빼어나서 읽기도 편하고요. 읽기 편하다는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는 이 책 맨 앞에 수록된 도올 김용옥의 서두만 읽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도올의 글도 물론 좋아요. 깊이도 있고요. 그러나 읽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서두만 읽었을 때에는 본문도 이렇지 않을까 긴장을 많이 했을 정도인데 무척 다행이었어요.
또 단순한 생활 속 신변잡기 같은 글들 뿐 아니라 복잡하거나 사연있는 디자인이나 미학 이론을 설명하는 글들마저도 쉽게 읽히는건 정말이지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호랑이 요강과 마르셀 뒤샹의 샘" 이라는 글이 좋은 예에요. 요강에서 시작하여 변기로 이르는 과정과 변기가 미술관에 놓인 사연을 통해 "다다이즘"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다다이즘은 "예술품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언제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한 제도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결론은 이렇게 억지스러운 것 보다는 호랑이 요강이 더 정이 가고 좋다!라고 마무리되고요. 삶을 위한 예술은 있어도 예술은 위한 삶은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요약하니 좀 두서가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 글을 한 번 읽어보시면 호랑이 요강과 샘의 차이가 무엇인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세한도를 디자인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에세이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세한도가 왜 뛰어난 그림인지는 관련된 서적을 이전에도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각 디자이너로서 "편집 디자인" 관점으로 분석해서, 세한도는 "그리드"시스템, 모듈 관점에서 보아도 완벽하다는 것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주니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또 명품, 유명 디자이너가 손댄 것들보다도 우리 주변에서 보아왔던 재활용 디자인 등도 중요하다고 서술한 관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싸고 좋은, 유명 디자이너가 손 댄 것이 당연히 좋고 예쁘겠지만 단지 미학적, 디자인적으로 뛰어나다는 관점보다 중요한건 삶과 생명 그 자체라는 논리로 디자이너가 만든 가죽으로 된 이케아 쇼핑백이 수백만원에 팔리는 세상에 경종을 울려줍니다. 저자는 다른 글들에서도 허울뿐인 허례 허식을 비판하면서 "사실 디자인이란 그리 대단한 것도 전문적인 것도 아니다.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상 최대의 화두이며 고도의 전문적인 분야로 취급되고 싶어 할 지 모르지만, 우리 삶 속에서의 디자인이란 조금 다듬어진 상식의 범주일 수도 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저 역시 디자인 전공자이지만 정말이지 와 닿는 말이에요. 이런 글들이 더욱 널리 알려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선민의식은 제발이지 사라졌으면 하거든요.

그 외의 다른 글들 모두 대부분 하나하나 곱씹을 만한 좋은 글들입니다. 도판도 적절하고요. 몇몇 글들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소재와 글이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지 않은 글도 있습니다만 소수일 뿐으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입니다.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최고 수준의 디자인 에세이입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6/03/15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차양현 외 : 별점 2.5점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6점
차양현 외 지음, 서용남 그림/성안북스

딴지영진공 팟캐스트를 글로 옮긴 책입니다. 오랫만에 본가에 방문했는데 있기에 집어왔지요. 왜 있나 했더니 제 형님께서 저자 중 한명이시더군요.
하여튼, 총 8개의 테마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각 테마에 해당하는 영화들에 대해 다양한 저자들의 전문가 수준의 에세이가 실려 있고요. 일종의 영화 평론 에세이집이지요.
수록된 글들은 딴지일보 명성에 걸맞게 모두 기본은 해 줍니다. 저자들 모두가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들인 덕도 큽니다. 개인적으로는 헤비조의 O.S.T에 대한 글들, 짱가의 영화와 심리학을 엮은 글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헤비조의 글은 글로만 읽어도 음악이 듣고 싶게 만드는 대단한 내공의 글솜씨에 해당 분야 전문성이 잘 결합되어 있어 읽으면서 감탄했습니다.

허나 재미라면 무언가에 대해 엄청나게 씹어대는 글들도 빼놓을 수 없겠죠. 수다도 뒷담화가 재미있듯 이런 류의 글들은 기본 재미가 보장되니까요. 대표적인 것은 "theme 2. 거장"입니다. 이 시대의 거장 서세원과 심형래를 다룬 글로, 거의 막장에 가까운 두 사람의 영화 인생과 몰락을 구 딴지일보 스타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작품들도 친숙해서 더 좋았습니다. 서세원의 "납자루떼"를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텐데, 그 중 한 명이 저랍니다! 기억나는 대사는 "보이스 비 엠비셔스! 젊은이여 엠비씨를 보라~!"였다는… (시시하죠?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theme 5. 방화"에서 "대한민국 방화 걸乞작선"이라는 주제로 "천사몽"과 "맨데이트"를 처절하게 뭉개는 글도 아주 즐거웠습니다. 두 작품 모두 실제로 감상은 안 했지만 익히 명성만 들어왔는데, 글만 읽어도 가관이더군요. "주글래 살래"나 "클레멘타인" 같은 전설급 작품들이 언급되지 않은 건 의외였지만요.

하지만 이러한 재미에도 불구하고, 몇몇 글은 현 정권과 엮어 까려는 의도가 지나쳐 조금 짜증났습니다. 슈퍼 히어로 이야기 속 정치적 함의를 찾아내는 글 정도까지는 괜찮았지만, 이후 글들은 억지스러웠어요. 예를 들어 "혹성탈출: 반란의 서막"에서 주전론자 코바를 극우에 빗대며 현 정권의 실책을 이야기한다던가, "겨울왕국"의 엘사 인기를 은둔형 외톨이와 연결하며 일베와 엮는 과정, "괴물"을 세월호와 엮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저도 현 정권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풍자와 억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이야기는 방송 당시 사고가 일어난 시점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글로 옮길 거라면 보다 상세한 설명이 덧붙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전문가들의 영화 관련 에세이라는 점에서, 특히 헤비조의 O.S.T 관련 글만큼은 추천할 만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게다가 이 책을 구해 읽을 정도라면 방송도 들었을 확률이 높은데, 방송 외의 가치는 잘 모르겠습니다.

덧: 살인마를 다룬 영화를 분석하는 글에서 "조디악"을 소설 원작이라고 설명하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사실은 실존했던 조디악 킬러에 대한 영화죠.

2021/03/19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 별점 2.5점

조선의 미식가들 - 6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조선 시대, 음식과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문인과 그들의 글 속 주요 요리를 소개해주는 식문화, 미시사 서적. 당시 음식,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을 '미식가'라 칭하고 있는 셈으로, 모두 15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의 냉면
  •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 "어해 중에서 으뜸이다” 김려의 감성돔식해
  •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전순의의 동치미
  •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아주 좋다” 이시필의 열구자탕
  •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 “지금 엿집에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김유의 엿
  • “먹으면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파했다” 조극선의 두붓국
  •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덕무의 복국
  • “잠깐 녹두가루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쓰나니라” 장계향의 어만두
  •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빙허각 이씨의 강정
  • “갓채는 물을 짤짤 끓여 부으면 맛이 좋으니” 여강 이씨 부인의 갓

주로 선비, 사대부들이 쓴 산문이나 시조, 편지 속에서 음식, 요리를 주제로 쓴 글을 찾아낸 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분석하고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도문대작"을 쓴 허균이나 채소에 대한 시조를 남겼다는 목은 이색 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조선 선비들이 음식에 대해 쓴 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대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또 귀양가서 쓴 글이 많다는게 이채롭더군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귀양가서 험한 음식을 먹다보니, 예전에 먹었던 맛난게 생각나 글로 남긴 경우도 있지만, 귀양가서 처음 보는 먹거리와 음식에 대해 글을 남긴 경우요. 전자의 경우는 허균, 후자의 경우는 조선 후기 김려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 속 글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김려가 현재 마산 지역인 '우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쓴 글로 당시 어떤 생선으로 어떻게 젓갈을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최고의 젓갈이라는 감성돔을 비롯하여 볼락, 삼치에 붕장어까지 젓갈로 만들었다니 신기합니다. 당시 이런 물고기들이 많이 잡혔으며, 어민들도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젓갈을 담궈 시장에서 팔았다는걸 증명하기도 하고요. 꽤 거대했던 산업으로 짐작되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많이 사라진듯 하여 무척 아쉽습니다. 함께 소개된 홍게로 만든 포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귀양지에서 처음 본 먹거리와 음식은 귀양지 특성 상 해산물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귀양지에서 먹는 음식인데 등장하는건 지금은 쉽게 먹기 힘든 고급 재료들이더라고요. 과거 원나라가 고려를 방문했을 때, 원나라에서는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전복 등을 일반 백성들이 쉽게 먹는걸 보고 놀랐다는데, 딱 그 심정입니다. 3면이 바다라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조 때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옥이 남긴 글로는 당시 고추가 널리 전파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옥이 워낙 고추를 좋아해서 직접 심어 먹었을 뿐 아니라, 고추를 많이 먹으면 풍이 들거나 눈에 좋지 않다는 세간 속설을 반박하는 글까지 썼다니 고추 사랑이 정말 어지간했던것 같습니다. 인조 때 조극선이 남긴 글은 '연포회'라는 행사가 성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연포회가 왜, 어떻게, 어디서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연포회에서 먹었다는 두붓국 레시피도 꽤 자세합니다. 지금 만든다면 굴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육수에 연두부를 넣어 먹으면 비슷할거 같아요. 조극선은 닭고기를 써서 만든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선비다움을 유지하라는 '잔소리' 가득한 이덕무의 글은 꼬장꼬장했을 당시 선비들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고요.

잘 몰랐던 당대 요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습니다. 영조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먹었다는 '이중탕'에 대한 소개가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재료는 인삼과 백출, 건강포, 감초인데 영조가 조선조 최대 수명을 자랑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감동적즙이 무엇인지도 소개해 줍니다. 감동즙은 젓갈의 일종으로 국물이 젓갈보다 넉넉하여 즙이라고 불렀으며, 김창업은 감동이 '자하젓'과 같다고 했다네요. 새우젓에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현재 풍습과도 비슷한데,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비슷한 법이겠지요?

현재도 재현 가능할 정도로 레시피 소개도 충실합니다. 목은 이색이 남긴 한시 "새벽에 한 수를 읊다" 를 볼까요? “기름에 두부를 튀겨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고, 여기에 파를 넣어서 향기를보태네, 잘된 멥쌀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깨끗이 닦은 그릇들은 눈에 환히 빛나누나"로, 두부 요리 레시피가 아예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쉬움과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허균과 "도문대작"은 이쪽 분야에서는 너무 많이 접한 소재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미식가를 꼽을 때 허균을 꼽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몇 년 전에 읽었던 "조선의 탐식가"들과 내용면에서도 많이 겹칩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이라던가, 사대부 가문 부인들이 가문의 레시피를 기록했던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는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선정이라 생각되고요. 도판도 그냥저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은 가치있지만 단점도 있어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여기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현재 네이버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관심이 가시더라도 네이버를 통해 먼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6/07/30

디자이너의 문화 읽기 - 스티븐 헬러, 마리 피나모어 엮음 / 장미경

디자이너의 문화 읽기
스티븐 헬러, 마리 피나모어 엮음. 장미경 옮김/시지락


유명한 그래픽 디자인 저널인 "AIGA"에 실렸던 다양한 글들을 주제별로 엮은 책입니다.

목차는
  • 디자인의 차용
  • 미디어의 이해
  • 정체성과 도상
  • 예술과 기술
  • 모던과 기타 사조들
  • 디자인 교육
  • 미래의 충격
  • 사실과 인위
  • 사랑, 돈, 권력
  • 공공작업
입니다.

짧은 글들을 위 목차대로, 주제별로 모아놓았는데 전문적인 글을 비롯하여 유명 작가와의 인터뷰, 가벼운 신변잡기 스타일의 글까지 엄선(?)하여 수록되어 있습니다. 좀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전문적인 글들도 있지만 워낙 글들이 짧기에 충분히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400여페이지가 넘는 분량안에서 워낙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하기에 디자이너나 디자인에 관심있는 일반인들도 흥미거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겠죠.

디자인쪽으로만 본다면 아무래도 프린트 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디자이너들이 많다보니 생각외로 폰트와 타이포, 편집에 관한 글들이 많은 편입니다. 저는 앞부분의 C.I 쪽 글들이 훨씬 관심가는 분야이기 때문인지 뒷부분보다 재미있고 마음에 들더군요. 폰트 디자인은 아무래도 영어권 폰트 (헬베티카, 가라몬드, 유니버스 등...) 쪽 이야기만 나오고 그쪽 역사만 나오다 보니 왠지 와 닿지도 않았고 이슈가 되기에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폰트의 예를 들었지만 전반적인 글들의 내용이 전부 미국쪽에 치중된 것과 다양한 도판이 수록되지 못하여 글 안의 이미지들이 잘 전달되지 않는 점, 그리고 90년대 중후반에 출간된 탓에 현재의 데스크탑에서 이루어지는 디자인 환경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단점도 있지만 외려 당시에 컴퓨터의 진화에 따라 달라지는 디자인 환경을 고민하여 적었던 글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측면도 있었던 것은 의외의 수확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일반인들도 쉽게 디자인 작품을 원하는 디자이너 스타일로 만들 수 있게 해 준다는 가상의 "디자이너 프로그램"에 대한 짧은 글은 정말 굿 아이디어! 라고 생각되거든요. 물론 디자이너에게는 재앙이겠지만...

하여간 두꺼워도 재미있고 유익한 독서였다 생각합니다. 특히 저에게는 맨 앞의 "디자인의 차용"과 "정체성과 도상" 부분이 가장 유익했던 것 같네요. 전문가나 디자인에 평균이상의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나 눈길을 줄만한 책이라 이런 책이 국내에 출간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지만 계속 독자들이 구입해 줘야 비슷한 서적들이 꾸준히 출간될 수 있겠죠? 출판사의 건투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22/01/22

혼밥 자작 감행 - 쇼지 사다오 / 정영희 : 별점 3점

혼밥 자작 감행 - 6점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시공사

일본의 만화가겸 에세이스트 쇼지 사다오의 먹부림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아주 오래전, 이시카와 쥰의 "만화의 시간"에서 넌센스 만화의 제왕으로 접했던 작가지요. "만화의 시간"도 구입한지 20년을 훌쩍 넘어가는데,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니 중고가가 어마무시하게 형성되어 있더군요. 살짝 기뻤습니다.

하여튼, 별 기대없이 심심풀이로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일상 속 소소한 혼술과 혼밥에서 맛있게 먹기 위한 자기만의 디테일과 원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제가 사랑하는 먹부림 만화 "술 한잔 인생 한입"과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와마 소다츠가 에세이를 쓴다면, 딱 이런 글들을 쓸 거라 확신이 들 정도에요. 설견주는 우아와 숭고의 세계이므로, '하아~ 쓰읍~' 하면서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부산스럽게 고기를 구울 수도 없다던거나, 요시노야에서 아침을 먹게 되면 단연코 낫토 정식이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술 한잔 인생 한입"에 그대로 등장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작가 스스로 애정하는 먹거리에 대해서는 고민과 연구를 거쳐 자신만의 레시피를 정립하는 모습도 이와마 소다츠스러웠는데, 200억엔 짜리 레시피라는 '정어리 통조림 덮밥'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립한, 최고의 레시피라는데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먼저 정어리 통조림 뚜껑을 따고, 그 째로 가스 불 위에 올려 데웁니다. 덮밥용 그릇에 뜨거운 밥을 풀고 그 위에 삶은 계란 흰자를 잘게 다져 5mm 두께로 덮고요. 잘게 다진 양파도 같은 식으로 덮은 뒤, 뜨거워진 정어리 캔을 뒤집어 밥 위에 덮습니다. 마지막으로 줄기를 제거한 무순과 잘게 썬 우메보시를 뿌리면 완성이라는데 한 번 따라 해 보고 싶어지네요. 우메보시는 없으니 대신 레몬을 뿌리면 되겠지요? 참치 통조림으로 해도 괜찮을 듯 싶어요. 이외에 버터 간장밥이나 계란프라이 덮밥에 대한 작가만의 레시피라던가 기존에 존재하지만 따라해봄직했던 무채 된장국, 두부 한 모 통째로 덮밥 레시피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이런 요리를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는 점이 이 에세이의 매력 포인트인 거지요.

라멘집 사장을 관찰하거나, 카레 국물 부족에 대해 논하는 에세이들도 인상적이었어요. 돈가스 카레를 먹는 올바른 방법에 대한 꽤나 긴 분량의 고찰도 그러하고요. 이런 소재를 이렇게까지 재미나게 풀어낼 수 있다는게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고기 망치와 스테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샬라핀 스테이크'라는 나름 전문성 있는 지식을 풀어놓는 의외의 모습도 볼거리였고요. "오니기리는 속 재료 주변을 밥이 감싸고 있어서 첫 입은 맨밥일 경우가 많아서 정말 싫다"는 글처럼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글도 좋았고, 직접 그려낸 일러스트들도 책에 잘 어울렸습니다. 아래의 돈가스 카레의 종류에 대해 그려낸 그림처럼, 내용에도 딱 들어맞고 이해하기도 쉬운 일러스트들이었거든요.

물론 자신의 주장을 절대 옳다고 우기며 절대로 고치지 않으려는 사고방식은 꼰대스럽기는 합니다. 내 주장이 절대 옳고, 다른 의견은 듣지 않겠다!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탓입니다. 또 사회적인 관계를 아예 드러내지 않는 것도 억지스러웠고요. 이 정도 경력, 나이가 있는 작가가 혼밥, 혼술과 자작을 추구한다는게 쉬이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런 류의 먹부림 에세이 중에서는 재미, 가치 모두 좋았습니다. 자신만의 고집은 "맛의 달인" 원작자 카리야 테츠, 이자카야 술안주 류가 대부분인 소재와 유머스러운 분위기는 "고독한 미식가" 등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를 떠오르게도 하는데, 양 쪽의 장점만 잘 합쳐서 재미나게 구성한 덕분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왜 "술 한잔 인생 한입"처럼 만화로 그리지 않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고전 4컷만화스러운 그림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 내용이었다면 꽤 잘 어울렸을거라 생각되는데 말이지요. 저자도 지금은 만화가보다는 에세이스트로 인지되는 경향이 큰 것 같기는 합니다만...

2019/04/27

소비의 역사 - 설혜심 : 별점 4점

소비의 역사 - 8점
설혜심 지음/휴머니스트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제목 그대로 '소비' 라는 행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소비를 통해 파생된 다양한 산업과 문화를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그냥 단락별로 읽으면 당대 특정 상품과 문화, 유행 등의 역사에 불과해 보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남성보다 뒤떨어지며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성성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와 유색인종과 제 3세계를 비하하면서 서구 중심의 사고 방식이 확립되는 과정이 여러가지 상품과 유행을 통해 비롯되었다는 걸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양복의 탄생 편에서는 '맞춤복'이 '기성복' 으로 전환한 산업 행태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이 중심입니다. 이를 통해 명품을 저렴하게 모방한 복제품이 대거 유통되어 평범한 사람들도 쇼핑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18~19세기 이후 영국 남성복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발전한 덕분이기도 한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여성복은 지나칠 정도로 화려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여성을 성공한 남성의 트로피화 하는 '수수한 남성과 하려한 여성' 개념입니다. 트럼프와 멜라니아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당연한 흐름인데, 문제는 일과는 무관해 보이는 갖가지 화려함을 추구하게 된 여성성을 '사치' 개념과 결합하여 여성들을 정치나 경제 영역에서 배제하는 일종의 사고가 굳혀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여자들이 '생리 증후군' 등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 범죄라고 주장했다는 것도 일종의 차별입니다. 단지 백화점의 탄생으로 도둑이 늘어난 것에 불과한데 말이죠. 그런데 이 개념도 극히 최근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언급 및 인용되어 왔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받아들여 왔었는데 반성해야겠네요.

서구 중심의 사고방식은 '백색성'을 강조하는 비누, 제 3세계를 희화화하고 왜곡하여 정보를 전달한 당대 유행했던 각종 트레이딩 카드들 등을 통해 소개됩니다. 그러나 여성성을 폄하하는 흐름과는 다르게 이 쪽 영역은 책 후반부에서 노예제를 통해 생산된 설탕 불매 운동이라던가, '미시시피 버닝' 등으로 촉발된 흑인의 불매 운동이 함께 소개되고 있어서 답답함이 조금은 덜합니다. 미시시피에 모든 소비자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월마트가 들어선게 긍정적인 변화의 증거로 받아들여진다는 결말은 너무 소박해서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요.

지금도 통용되는 문제가 발생된 이유를 역사적으로 설명해 주는 부분들도 인상적입니다. '과시적 소비' 가 등장한 배경이 그러합니다. 산업화된 공동체에서 명성은 재력에서 나오기 때문으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건 '어디에 사는가' 라고 합니다. 18세기부터 영국에서는 어디에 사는지로 사람을 구별했다는데, 셜록 홈즈 이야기에도 슬럼가, 가난한 동네 이야기는 항상 등장하곤 했었죠. 우리나라에서 휴거 (휴먼시아 거지) 어쩌구하는 행태의 기원이 이렇게나 오래되었다니 여러모로 속상합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가는 행위를 통해 재력을 과시했기 때문에 좋은 옷 한 벌은 필요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번듯한 옷 한 벌과 부츠는 빚을 내서라도 사야 했다는데 이는 1938년 조사에서 노동계급이 가장 큰 돈을 쓰는 항목이 남성복 - 부츠 - 석탄 - 조합 가입비 순이었다는 사실로 증명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경쟁해야 하는 사회가 이미 18세기부터 이어져왔다니 이쯤되면 벗어날 수 없는게 아닌가 싶어 무섭기까지 하네요.

그 외에도 그냥 소재 자체가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히는 이야기들도 많아요. 돌팔이 매약에서 시작된 다양한 특허약들 이야기가 좋은 예겠죠. 당대 (18~19세기) 영국에서 이런저런 특허약 소비가 유행했다며 여러가지 특허약들과 관련 에피소드에 대해 소개해주는 덕분입니다. 가장 유명한 특허약이었던 토머스 비첨의 '비첨스 필'은 어떤 약인지 무척 궁금해지네요. 아울러 영국인에서의 이런저런 약이 유행했다는 말에서는 각종 추리 소설 등에서 이런저런 약을 잔뜩 챙겨먹는 등장인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주로 괴퍅한 노처녀, 노파들이 많았는데 이 역시 여성성을 폄하하는 흐름의 하나였을까요?
재봉틀이 세계 최초로 대량판매되었던 표준화된 기계이자 복잡한 내구재라는 개념도 인상적입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가전기기'의 효시라는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실로 그럴듯하네요. 지금도 가장 유명한 브랜드인 '싱어'가 가장 뛰어난 제품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할부제와 방문 판매제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는건 지금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인터넷 셀럽을 통한 PPL같은게 좋은 예겠지요, 재봉틀에 대한 반대가 고용 문제와 의학 담론 두가지 영역에 나타났는데 이는 지금과 같다는 말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요.
그 외에도 튀르크 옷의 유행이라던가, 저도 궁금했었던 온천의 유행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현대 쇼핑몰의 역사에 대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편 주문 카탈로그가 이미 19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대성공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이런 글들이 400페이지 넘는 분량에 빼곡하게 실려있는데 편집도 최고 수준이고 뒷받침하는 도판들도 최고 수준이라 만족도가 아주 높습니다. 저자인 설혜심 교수님의 글 솜씨도 좋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그랜드 투어" 처럼 읽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거든요. 백화점의 탄생으로 소비 행태가 변화했다는 이야기는 "취미의 탄생" 이라는 책에서 이미 접해본 바 있으며, 영국의 대박람회와 '수정궁'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소개된 등 다른 책, 컨텐츠와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는 단점이 있지만 책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류의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6/02/17

그것이 알고 싶다 - SBS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 : 별점 2점

그것이 알고 싶다 - 4점
SBS그것이알고싶다 제작진/엘릭시르

TV를 그다지 많이 보는 편은 아닌 제가 본방 사수를 하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그것이 알고 싶다"입니다. 인터넷에서 화제인 "그것이 알고 싶다 레전드" 등의 글들은 스크랩해 놓고 가끔 찾아볼 정도로 미제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들을 흥미롭게 보아왔습니다. 추리 애호가인 탓이겠지요. 이런 제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찾아 읽어버린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방송된 에피소드 중 가려 뽑은 충격적인 에피소드들에 대해 소개하는 식의, 앞서 말씀드린 인터넷 상의 "그것이 알고 싶다 레전드"와 같은 글을 기대했습니다. 당연히 추가 취재를 통한 방송 이후의 후일담,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알려줄 거라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책은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방송 소개에 더 가깝습니다. 총 7장의 큰 카테고리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실제 방송된 내용을 요약한 것에 불과하며, 오히려 관련자들이 방송을 어떻게 만들었고 방송이 어떤 파급 효과를 불러왔는지 소개하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심도 깊게 사건에 대해 다시금 되짚어 보는 글들도 적지는 않으나 제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요약된 내용도 대부분 그냥 글로만 정리되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이래서야 인터넷상을 떠도는 글들보다 나을 게 없죠. 일전 읽었던 논픽션 "완전범죄"와 다르지도 않고요.

게다가 뒷부분은 정말로 무가치합니다. "빅데이터로 보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름만 거창할 뿐 왜 실려 있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무엇이며 어떤 단계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나름의 분석으로 설명하는데, 방송 제작에 관심이 있는 PD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온라인 화제 10, 시청률 10, 팬들이 뽑은 레전드 10 목록은 그나마 볼 만했지만 빅데이터와는 관계가 없는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들인 데다 실제 내용도 빅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아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마지막 200페이지 분량의 1,000회 방송 목록 요약도 소용 없기는 마찬가지, 관심 주제에 대한 검색 키워드 제공과 '아 이런 것도 방송했구나'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어요. 목록에서 관심 가는 주제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볼 수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물론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처럼 다시금 묵직한 울림을 주는 내용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에 관련하여 쓰신 인권 운동가 고상만 씨의 글이 참으로 명문이더군요. 이렇게 역사적,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저 개인적으로는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의 무관심을 환기시켜 주는 좋은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인 미제 사건, 흉악한 범죄에 대해서 정리된 '제7장 범죄의 재구성'은 여러모로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그래도 600페이지 가까운 책에서 280여 페이지 ("빅데이터..."와 방송 목록)가 저에게는 무가치했으며 그 외의 내용들도 기대와는 많이 달랐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2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도 감점 요소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1,000회 동안 보여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고 이런저런 긍정적 파급 효과에는 박수를 보냅니다만 노고를 치하하는 책까지 찾아 읽어야 할지는 의문이네요. 방송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아니 팬이라도 찾아볼 필요 없습니다.

2018/03/11

아주 오래된 서점 - 가쿠다 미츠요, 오카자키 다케시 / 이지수 : 별점 4점

아주 오래된 서점 - 8점
가쿠타 미츠요.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이지수 옮김/문학동네

원제는 "古本道場"입니다. 제목에 걸맞게 작가 가쿠다 미쓰요가 헌책 전문가 오카자키 다케시로부터 헌책에 대한 수련을 받는다는 에세이 모음으로, 오카자키 다케시가 지정한 특정 지역 헌책방에서 '미션' 에 따른 헌 책을 구입하는 여덟 번의 '수련'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션에 따른 가쿠다 미쓰요의 헌책방 투어와 그 결과를 평하는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이 한 세트이고요. 

가쿠다 미쓰요와 오카자키 다케시의 에세이들은 모두 재미있게 읽어서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기사,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글을 써 버렸으니 이거 참,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죠.

두 명의 저자 중 오카자키 다케시는 헌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론과 의견을 전해주는 '선생님' 역할이고, 가쿠다 미쓰요는 가르침을 받아 따르는 '학생' 역할입니다. 그래서인지 헌책 관련한 이야기는 오카자키 다케시 쪽 글이 더 기억에 남는 게 많네요.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일단 헌책방에 있는 헌책은 '장서'라는 주장입니다. 일반 서점의 책은 반품이 되지만 헌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인이 한 권 한 권 구입한 그야말로 '남의 책'이라는 의미로요. 여태껏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딱히 신경 써서 책을 다루지도 않았었는데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또 헌책을 가격으로 보지 말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정꾼이 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최우선으로 고르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인데 정말 새겨들어야 할 말이지요. 헌책방 투어를 실제 다녀본 경험으로는 절판된 책이나 비싸게 팔 수 있는 희귀본에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고, 그래서 결국 필요없는 책을 사곤 하니까요. 저도 집에 왠지 귀할 것 같아서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많은데, 이 역시 반성해야 할 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고 싶을 때 안 사면 다음은 없다!' 라고도 하니 결국 사는 사람이 신중하게 생각하여 판단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헌책 관련된 이야기는 아닌데, 사진집을 읽고 소장하는 이유를 설명한 글도 근사합니다. '다양한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더욱 올바르고 깊게 세계를 이해하려는 무한에 가까운 시도다'라는 소설가 겸 사진작가 가타오카 요시오의 글과 함께, 좁은 시야를 넓히기 위한 용도로 산다고 하는데 그럴듯했어요. 물론 이 정도 의도라면 요새는 인터넷으로 보아도 충분할 것 같긴 합니다만.

이러한 정보 중심의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과는 다르게 가쿠다 미쓰요의 글은 헌책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 정보보다는 개인 감상 위주입니다. 그런데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묘하게 정확해서 놀랐습니다. 특히 사물의 본질을 짚어내는 데 능숙해서 확실히 작가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어요.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지만 저 역시 작가를 꿈꾸는 입장에서 참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가쿠다 미쓰요가 구입한 책들도 볼거리입니다. 일본에서도 오래전에 절판된 책들도 많은 등 국내에서 구하기는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국내 출간된 책들도 절판 상태가 많고요. 하지만 소개가 멋진 몇몇 책들은 구해보고 싶어지더군요. 헌책방을 소개한 글에 소개된 헌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져야 한다는 것도 뭔가 낭만적이고요. 가쿠다 미쓰요가 구입한 대충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표시가 제가 찾아본 국내 출간작인데, 8권이 전부입니다).

진보초 - 이구치 분슈의 그림책 2권, 에토 준 "개와 나", *"싫어싫어 유치원", *"꼬마 모모", 다나카 고미마사 "야시의 여행", 노사카 아키유키 "서서 읽으면 안 되는 책", "비록 가와시마 요시코"
다이칸야마, 시부야 - 노미야마 고지 "사백 자의 데셍", "셀피시", *"그레이엄 그린 선집 9 (제 3의 사나이, 떨어진 우상, 패자가 모두 가진다", *콜린 윌슨 "현대 살인 백과", 이토 히로미 & 우에노 지즈코 "노로와 사니와", 다네무라 스에히로 "사기꾼 칼리오스트로의 대모험"
도쿄 역, 긴자 - 팀 오브라이언 "실종", 홋타 요시에 "다리 위의 환상", 무라마쓰 쇼후 "여경", 기시다 리오 "롱 굿바이", 구사카베 엔타 "정말로 사랑했다면", 스다 사카에 "전후 풍속 천일 야화", 쿠사마 야요이 "신주 사쿠라가쓰카"
와세다 - 가이코 다케시 "베트남 전기", 요시다 겐이치 "기묘한 이야기", *하야시 후미코 "삼등 여행기", 단 가즈오 "풍랑의 여행", 고보리 진지 "요괴를 보았다", 다나카 고미마사 "간음문답", 한스 헤니 얀 "열세 가지 으스스한 이야기", *"엘리엇 시집", 가이코 다케시 "시부이", "대화록, 현대 만화 비가"
아오야마, 덴엔초후 - "인민 사원", 도요시마 요시오 "에밀리안의 여행", *앙드레 지드 "여인들의 학교", 기무라 모토노리 "영혼이 고요한 때에", *"타고르 시집", 오야 소이치 "세계의 뒷길을 가다 - 남북 아메리카편"
니시오기쿠보 - 세토우치 하루미 "다무라 도시코", *마르케스 "사랑과 다른 악마들", 다케다 유리코 "말의 식탁", "도시에 널리 퍼진 기묘한 소문", 아유카와 노부오 "시대를 읽다", "하쿠슈 가요집", 나카가미 겐지 "이야기 서울", 다나카 고미마사 "아아, 수면 부족이다"
가마쿠라 - 가이코 다케시 "최후의 만찬", 후카자와 시치로 "고슈 자장가", "브로마이드 쇼와사", 오카베 이쓰코 "부처님과의 대화", 다쓰미 하마코 "손수 기른 나의 요리", 다무라 류이치 "저스트 예스터데이", 나가이 다쓰오 "홍차의 시간", 오사라기 지로 "시인"
다시 한번 진보초 - 미시마 유키오 "무예를 숭상하는 마음", 쇼와 전쟁문학 전집 11 "전시하의 하이틴", 가미사카 후유코 "스가모 프리즌 13호 철문", 요시카와 에이지 "남방기행"
그 외에 확실히 '일반인' 으로서 헌책방을 대하는 시선도 남 같지 않아서 좋았는데, "노라쿠로" 전 권을 사는 노년의 신사를 보며, 늙어서 "유리 가면" 이나 "더 파이팅" 전 권을 한 번에 살 것을 꿈꾸는 장면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일반인 취향이 짙게 느껴져서 더욱 반가왔거든요.

이렇게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고, 무엇보다 헌책방과 헌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일본 도쿄 소재 헌책방을 주로 소개하고 있으며, 소개된 책방들도 지금은 문을 닫은 곳이 많다는 지역적, 시기적 한계와 소개된 책들 대부분이 미 출간작이라는 이유로 약간 감점했지만, 저와 같은 취향의 분들 모두에게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저 역시 한때 결혼 전에는 홍대 입구의 '숨어있는 책'을 비롯한 헌책방 투어를 정기적으로 떠났을 때가 있습니다. 당시 이런저런 보물과도 같은 책을 많이 샀었죠. 지금은 결혼 후 이사도 했고, 근처에 헌책방도 없으며, 그나마 가는 곳도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알라딘 헌책방이 전부라 예전과 같은 보물찾기 느낌이 들기는 힘든데 옛날이 그립기도 합니다.

2020/02/22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에도가와 란포 / 박현석 : 별점 2.5점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전설적인 에세이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오래 전 부터 존재를 알고 있던 책이기도 하고, 저 역시도 추리 소설(요리 중심이지만)에 관련된 에세이를 출간한 경험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책은 1956년에 출간되었으며, 주로 1950년대 "환영성" 등 이런저런 잡지들에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구성입니다. 1953년, 에도가와 란포가 영미 탐정소설에서 예전부터 사용되던 트릭을 800여개 수집하여 쓴 "유형별 트릭 집성"이라는 글이 유래이며, 이 글로부터 여러가지 에세이들이 파생되어 이런저런 잡지들에 수록되었다고 하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이 책의 탄생과정
1. 기발한 착상
2. 뜻밖의 범인
3. 흉기로써의 얼음
4. 특이한 흉기
5. 밀실 트릭
6. 은닉 방법에 관한 트릭
7. 프로버빌리티의 범죄
8. 얼굴 없는 시체
9. 변신 소망
10. 이상한 범죄동기
11. 탐정소설에 나타난 범죄심리
12. 암호기법의 종류
13. 마술과 탐정소설
14. 메이지의 지문 소설
15. 원시 법의학서와 탐정소설
16. 스릴에 대해서

각 주제별로,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이런저런 소설의 예를 충실히 들어가며 설명해 줍니다. 책의 특성 상 당연히 핵심 트릭이 까발려지고요. 노리즈키 린타로"나쁜 놈들은 추리 작가가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고안한 트릭을 쏙 빼다가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녀석들이지. 이쯤 되면 기생충 수준이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생충같은 책인거지요.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은 읽기 힘든, 오래전 잊혀진 작품들이거나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일본 고전들, 아니면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작품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또 미스터리 가이드에서처럼 어떤 작품에서 어떤 트릭이 쓰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두루뭉실, 애매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뭐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리고 거장이 쓴 책 답게, 단순히 트릭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깊이있는 식견을 보이는 글도 많아요. 마지막 16장인 "스릴에 대해서"가 좋은 예입니다. 스릴의 종류를 상세히 분류하여 이를 단계별로 설명하는 내용인데, 실로 이치에 맞고 설명도 적합하여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예로 드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글들도 제법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표된 시점에서 60여년 이상 지난 탓이 가장 큽니다. 대표적인 예는 "이상한 범죄 동기"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미스터리"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일본에는 거의 읽어본 사람이 없는 책이라 특별히 소개했던 모양인데, 지금 상황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암호 기법의 종류"도 마찬가지로, 지금 읽기에는 다른 비슷한 책에 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부실한 편이에요. 메이지 시대 지문을 증거로 삼는 소설이 처음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소개하는 "메이지의 지문 소설"도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였고요.

아울러 하나의 트릭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서술 트릭이 빠져 있는 등, 현대적인 작품 속 최신 트릭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었더라도, 출판사나 후대의 작가가 증보판을 출간하는 선택지는 없었을까요? 제가 가끔 읽는 'oo의 지구사' 시리즈에 주영하 씨가 한국의 상황에 대해 수록한 글처럼, 다른 작가가 부록 형식으로 뒤에 최신 트렌드를 덧붙이는건 얼마든지 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책의 완성도, 모양새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또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출간되었다면 무슨 제목으로, 어디에서 출간되었는지를 따로 소개해 주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어요. 어차피 추리 소설의 애호가들만 구입할 이런 류의 책에서는 필수적인 정보인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름의 가치는 분명하나 여러모로 지금 읽기에는 낡은 결과물입니다. 책의 완성도도 부족하고요. 추리 소설의 대단한 애호가가 아니라면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즐길 거리가 제법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가 되었건, 누군가가 21세기에 걸맞게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여 개정증보판 형식으로 재출간해 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2018/08/12

마크 쿨란스키의 더 레시피 - 마크 쿨란스키, 탈리아 쿨란스키 / 한채원 : 별점 2.5점

마크 쿨란스키의 더 레시피 - 6점
마크 쿨란스키.탈리아 쿨란스키 지음, 한채원 옮김/라의눈

얼마전 "대구" 라는 책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다양한 음식 관련 저서로 잘 알려진 마크 쿨란스키의 책입니다. 워낙에 좋아하는 작가라 주저없이 구입하게 되었네요.

그런데 구입하기 전에 책 소개를 좀 읽어보고 살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크 쿨란스키의 다른 책들처럼 음식이나 요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재미있게 전달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와 전혀 다른 '레시피 모음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양한 경력을 지니고, 음식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마크 쿨란스키이기에 평범하게 레시피만 실려있는건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 딸 탈리아가 지구본을 돌려 짚은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먹던 가족의 게임에서 시작된 책으로, 해당 나라에서 많이 먹는 음식을 평범한 미국 가정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거든요. 푸드 프로세서와 오븐만 있으면 거의 모든 음식을 만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유럽은 물론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에 우리나라와 몽골까지 포함된 아시아까지 정말로 방대한 종류의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깍둑썰기한 참치에 참깨,다진 파, 카이엔 페퍼, 참기름, 간장을 섞는 하와이 식 애피타이저 '아히 포키', 잘게 자른 토마토와 오이, 양파, 올리브 오일, 민트 잎과 후추로 만드는 이란의 '시라지 샐러드', 이런저런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지만 오븐이나 푸드 프로세서 없는 저도 충분히 만들 수 있어 보이는 독일의 소고기 요리 '사우어브라텐', 새조개를 소금물에 담아 끓인 후 우유와 샐러리를 넣어 만드는 아일랜드의 '새조개 수프', 소고기 슬라이스를 양념에 절인 후 구워 먹는 니카라과의 '니카라관 비프' 등은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또 해당 국가에 대해 짤막하지만 특유의 글 솜씨로 재미있게 소개해 주는 부분도 볼거리입니다. 특히 마크 쿨란스키가 이런저런 이유로 직접 방문했었던 나라의 경우, 본인이 해당 국가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해주는데 이런 글들은 정말로 재미있었어요. 

소개되는 음식을 통해 해당 지역의 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하와이의 대표 음식으로 일본의 타쿠완(다꾸앙)이 소개되는 글을 통해, 일본인들이 하와이에 다이콘(무)을 들여왔다는걸 알게 되는 식으로요.
전문가다운 식견을 보여주는 항목도 있습니다. 일본 요리를 소개하면서 '굴은 일본인들처럼 씻을 필요 없다' 고 하는 부분이 대표적이에요. 소금물로 씻는게 좋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레시피 모음집이고, 저자 가족에게는 즐거움이자 기쁨이었겠지만 독자에게는 딱히 땡기지 않는 나라와 요리들이 포함되어 있는 등 모든 내용이 만족스럽지만은 않습니다. 2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도 비싼 편이고요. 무엇보다도 마크 쿨란스키의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책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몇몇 국가, 혹은 대륙으로 압축하여 해당 국가의 요리와 음식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20/06/13

미스테리아 2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23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엘릭시르에서 출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추리 전문 잡지로 2019년 3월 출간된 과월호입니다. 특집이 "명탐정 코난"이라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알라딘에서 중고를 발견해서 저렴하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에 가깝습니다. 과월호로 산게 다행이다 싶더군요. 특집인 "명탐정 코난"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명탐정 코난"이 "소년탐정 김전일"의 대 히트로 기획되어, 당시 신인 만화가였던 아오야마 고쇼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첫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소개해주고 있는 구성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나무위키 등 인터넷 상에 있는 각종 정보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코난" 속 주요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의 유래에 대한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마다 이 특집 전체 분량만큼을 할애하고 있는 나무위키에 비하면 턱도 없는, 그야말로 기본 정보만 알려줄 뿐이라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만화 속 에피소드를 클로즈드 서클, 밀실, 암호, 다잉 메시지, 독살, 마술사, 알리바이, 미스터리 투어, 물리 트릭의 8종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내용은 더 별로에요. 일단 분류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클로즈드 서클과 미스터리 투어는 이야기의 '상황' 이고, 밀실, 암호, 다잉 메시지, 알리바이, 물리 트릭은 '트릭' 이며, 독살은 방법, 마술사는 직업이라 아무리 보아도 동일한 수준의 분류가 아닙니다. 주요 소재를 끄집어 내었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키워드를 도출한 뒤 관련된 추리 소설 등을 풀어놓는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도 않고요. '마술사'를 이야기하는데 마술사 탐정인 그레이트 멀리니 인용이 없는 등 내용도 부실합니다. 이런건 아무래도 저자 편의에 따른 특집 기사 페이지 보충용 글 뭉치가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듭니다. 저만 해도 이런 키워드에 '변장'이나 '축구' 를 추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건 금방 할 수 있거든요. 변장이 등장하는 범죄물은 수도 없고, 축구는 "파리의 밤은 깊어" 정도만 당장 떠오르지만, 다른 스포츠 물도 인용하면 충분히 한 꼭지 글은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 무의미한 키워드 도출말고 코난에 대해 의미있는 컬럼이나 분석이 실리는게 더욱 좋았을겁니다. 추리 만화계 전반의 흐름과 함께 코난이라는 작품의 위치를 짚어주어도 좋았을테고요. 이 특집은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특집 기사 외에도 책 소개라던가, 드라마 작가인 도현정 작가 인터뷰도 이번 호는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도현정 작가 인터뷰는 두 번째 핵심 기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분량이기는 한데, 드라마들 전부를 보지 못했고 딱히 관심도 없어서, 드라마 중심으로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내용은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재미있는 기사와 글이 없는건 아닙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속 음식들을 작품과 함께 재미나게 소개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은 언제나처럼 포만감을 주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법의학을 통해, 상세한 과학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 과거 사건을 소개해 준다던가, 옛 사건을 기록한 논픽션들도 마음에 드는데 이 중에서도 1950년대 말,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의 화재 사건은 몰랐던 사건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보험금을 노린 고의 방화인지, 정말 실수인지, 누군가의 음모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결말도 재미있었어요.
"겨울 여자"를 쓴 조해일의 범죄 소설 "갈 수 없는 나라"에 대한 글도 인상적입니다. 대중 소설의 1인자가 추리, 범죄 소설의 수법을 차용하여 사회파스러운 작품을 일찌기 발표했었지만, 작가 스스로도 한계를 느낀 범작에 머무른 이유를 비교적 정확하게 서술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해방 후 20세기까지 한국 추리 소설의 한파가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작가 송시우의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는 엄지 척! 입니다. 작가의 단편집에 등장했던 서행물산 총무부 과장 임미숙이 등장하는 시리즈 단편인데 일상 속에서 벌어진 비일상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빚어진 범죄를 일반인 임미숙이 해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행물산의 문제아 신입사원 추예나의 집을 찾아간 임미숙이, 그녀의 집에서 나타난 수상한 남자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추예나의 건방진 전화를 받고 진상을 깨다는 부분이 백미에요. 간단한 암호 트릭인데, 그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득력은 충분했습니다. 다른 시리즈 작품을 꼭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실리아 프렘린의 "정말 필요한 경우"는 오싹, 불쾌하면서도 서늘한 반전이 있는 일종의 '기묘한 맛' 류의 작품입니다. 80이 넘은 독신 노처녀가 공짜 전화를 놓는게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를 그리고 있는데, 앞 부분의 복선과 함께 하는 반전은 꽤 그럴싸 했습니다. 빼어나지는 않아도, 평균은 되는 좋은 작품입니다. 

마지막의 "가스등"은 히치콕 영화로 유명한 작품 시나리오를 3부작으로 나누어 1부를 싣고 있는데, 영화를 한 번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진진하더군요.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서스펜스만큼은 명불허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다른 장점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특집 때문에 구입했는데, 특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음에 들었던 논픽션들만 별도로 출간되기를 기다리는게 훨씬 낫아 보이네요.

2023/04/30

낮의 목욕탕과 술 - 구스미 마사유키 / 양억관 : 별점 2점

낮의 목욕탕과 술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지식여행

<<고독한 미식가>> 원작으로 유명한 구스미 마사유키의 에세이. 제목 그대로 낮에 목욕탕에 갔다가 술을 먹는 10군데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와 장단점은 같은데, 장점은 <<술 한장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타츠를 연상케하는 인생관이 글에 잘 녹아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밝을 때 목욕탕에 갔다가 또 아직 밝을 때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기분 좋고 또 얼마나 맛있을까"라는 그야말로 소다츠스러운 생각이 담뿍 담겨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생각이지만 소다츠라면 그야말로 격렬한 동의를 보일 법한 발상이에요.
맛깔나게 잘 쓴 글이기도 합니다. 특히 비유가 아주 찰집니다. 한낮에 타는 완행 열차를 '어른용 원숭이 열차 (아마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유원지 코끼리 열차겠죠?)'에 비유하고, 목욕탕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들어가는건 '낯선 땅의 야만스러운 공기 속에 나 몰라라 하는 이방인이 되어 몸을 던져 넣는 스릴이 느껴진다'는 식이에요. 이 중에서도 최고는 오래된 목욕탕 안젠탕을 블루스에 비유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폐자재를 때는 목욕탕은 친환경을 이야기하는 현재와 맞지 않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갈 데 없는 괴로움, 끝도 없이 찢어지는 마음을 우스꽝스럽게 절규하는 블루스가 느껴진다는건데 캬,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이 비유가 직접 작사한 가사가 어우러지는데, 이 부분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음식의 군사>>에서 오뎅 먹는걸 제갈량의 진법에 비유하는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니까요.
벚나무들을 스쳐갈 때 차량 전체가 벚꽃색으로 물든다는 등 묘사력도 좋고, 특히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에 대한 묘사가 정말 찰집니다. 이건 소개해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장점, 비유와 묘사력, 그리고 소다츠스러운 감성이 잘 살아있는 명문이기 때문입니다.

목을 타고 넘어간 맥주가 이윽고 위 안으로 스며든다.
아, 맛있어.
나는 지금, 온몸으로 맥주를 받아들이고 영혼을 다 바쳐서 맞아들인다.
사랑, 그런 느낌이다.
바보인가, 바보라도 좋아. 아니 바보라서 다행이다.
지혜 따위 필요 없다. 옳고 그른지 따질 것도 없어. 작전도 포기. 내일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뭐.
꼰대 아저씨 주제에, 목욕탕에서 다시 태어나 신제품으로 변신한 내가 전면적으로 맥주를 맞이한다.
지금, 맥주는 내 몸 안으로 무혈입성을 달성했다.
나의 모든 세포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열광한다.
"맥주 만세!" "맥주 만세!" "임금님 만세!" "임금님 만세!"
물론 임금님은 나다. 어리석은 임금. 벌거벗은 채 왕관 하나 달랑 쓰고 당나귀 귀를 쫑긋 세워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백성을 향해 손을 흔든다.
다시 한 모금, 쭈욱 들이킨다.
황금빛 액체가 목을 치달려 내려간다. 이미 길은 닦였다.
취기라는 아련한 벛꽃색 공기가 머리 쪽으로 출렁 흐르기 시작한다.
행복하다. 이것을 행복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한 인생일꼬.

지극히 소다츠스럽지 않습니까? 여기에 더해 "술꾼이란 결국 마시고 만다. 반드시 마신다. 술집이 보이지 않으면 편의점 주류 코너라도 돌진한다."는 말까지 더하면 그냥 소다츠에요. 

목욕에 대한 찬양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반년 만에 목욕을 하게 된다면,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가 눈을 뜨면 빛이 있었다. 악마가 사라진 세계가 수증기 속에 펼쳐진다. 성스러운 탕 안에서 벌거벗은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묘사는 목욕을 부활과 천지창조에 비유한건데, 이거보다 더한 극찬이 있을까 싶네요.
만화가답게 같은 사물을 보아도 독특한 발상으로 풀어내는 것도 재미 요소입니다. 일본식 목욕탕이 옛날 신사 스타일 지붕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일본인에게는 목욕이 종교와 가까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요. 집에서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목욕탕에 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다는데, 그럴듯합니다.

새롭게 알게된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상식들도 있습니다. 긴자에 목욕탕이 있다는 이야기처럼요. 작가가 전설의 만화잡지 <<가로>>에서 데뷰 후 겪었던 편집장 나가이 씨와의 에피소드 - 돈이 없으니 맛있는걸 대접할 수 없다. 그래서 목욕탕으로 먼저 데리고 가서, 싸구려 술집의 맥주를 몇 배 더 맛있게 마시게 하려고 했다 - 도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들겠지요. 물론 원고료도 주지 않으면서도 힘들면 죽어버리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나가이 씨는 영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씁쓸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전 책처럼 자기 생각과 철학이 너무 강하다는 단점도 여전합니다. 지극히 꼰대스러운 사고방식이 넘쳐나는데,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건 목욕탕 손님들을 관찰하며 자기만의 생각을 펼치는 부분입니다. 재미를 떠나서 그들을 폄하하는 듯한 - 예를 들어 '큰 인물이 될 것 같지 않은 느낌, 어딘지 모르게 좀스럽다' -설명을 덧붙여 조롱거리처럼 삼는건 솔직히 불쾌했습니다. 나이 좀 들었다고 남을 폄하할 권리는 없으니까요. 여러모로 배려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스러움 가득한 글이었습니다.
음악 파트너 구리 짱을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로 비유한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리 짱이 이 글을 읽으면 굉장히 불쾌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런 글을 서슴없이 쓴건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본인도 바보로 비하하지만, 자신을 비하한다고 남을 비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기대했던 음식 측면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목욕'에 더 집중하는 탓입니다. 꼬치구이 가게 <<만페이>>의 고기가 들어있지 않다는 소프트 햄버그스테이크만 처음 들은 메뉴라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어육 소시지를 다져 만든 햄버그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한번 쓱 읽기는 괜찮은 에세이이지만 구태여 찾아 읽을만한 글은 아닙니다. 이와마 소다츠가 누군지 모르신다면 아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9/26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고영 : 별점 3.5점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8점
고영 지음/포도밭출판사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이 읽고 먹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대로, 음식문헌 연구자인 저자가 본인이 경험했고, 맛보았던 식문화먹거리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놓은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크게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그리고 "온전한 밥 한 그릇"이라는 세 개의 대 분류로 구분됩니다.
이 중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에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 가치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인 "온전한 밥 한 그릇"은 주로 저자의 '느낌'과 단상이 가득한,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 많고요.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주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식문화,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탓이지요. 단순히 이미 널리 알려져있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가 음식문헌 연구자인 덕분에 본인의 연구가 바탕이 된, 깊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오래전 한시와 옛 문헌의 한 토막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일 첫 글인 "융도, 두 자의 뭉클함"를 보자면, 김려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의 소개와 해설을 토대로 당시 먹거리에 대해 일람하다가 '융도'라는 두 글자에 주목합니다. 융도는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의 접경지대에서 나는 벼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조생종 벼인데, 보리를 먹어 치우고 벼를 수확하기 전 식량의 징검다리 역할과 냉해를 견디는 품종 확보를 목적으로 조선은 세종 때 도입 육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소개합니다. 시 한 구절에서 이러한 전문적인 역사 관련 지식까지 풀어내는 그 식견이 사뭇 놀랍습니다.

이 책 덕분에 옛 문헌 속 이런저런 몰랐던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세종 때의 문헌 "산가요록"을 통해 우리에게는 일찍이 다양한 김치가 있었다는 소개처럼요. 복숭아 김치, 살구 김치, 수박 김치 등이 있었다는데, 그 맛이 사뭇 궁금해지네요.
일본 헤이안 시대 중기 수필집 "침초자"에 소개된 아마즈라와 13~14세기 원나라의 갈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빙수의 원형 이야기, 제빙 기술이 발달하여 1910년대 조선에서도 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나 빙수 먹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빙수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광수 소설 "무정"에서도 빙수를 먹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널리 퍼졌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와인에 대해 최초로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는 1720년 북경 천주당에서 와인을 맛보고 "소림과 대진현이 또 나를 어떤 방으로 이끌었다. 탁자에 수정병이 하나 있는데, 높이는 세 자(약 30.3cm)쯤이고 술이 떠 있는 듯 담겨 있었다.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데 술맛이 감미로우면서도 상쾌하고 이채로운 향이 코를 찔렀다. 마시고 난 다음에는 그저 조금 취기가 오를 뿐이고 취하지는 않았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이기지가 이후 와인 제조법을 물어보아 남긴 기록을 보면, 이 와인은 '포트 와인' 이었습니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북경 천주당의 예수회 신부들이 먼 북경까지 포도주를 옮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설명됩니다. 도수가 높아야 쉽게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꽤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포트 와인은 높으면 도수가 20도를 넘어가는 제법 센 술이라 마시고 나면 취할텐데, 이기지는 술이 꽤 셌나 봅니다. 이 뒤 다른 자리에서 포도주 세 잔을 거푸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글은 뒤에 조선 땅에 상륙한 여러가지 외국 술에 대한 글로 이어집니다. 각 글이 항목별로 분리가 되어 있기는 해도, 와인과 브랜디 등 각종 서양 술, 맥주, 사케와 정종, 청주 등의 일본 술,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등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항목만 따로 떼어 놓아도 충분히 가치있는 술에 대한 미시사 문헌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그만큼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풍성한 사료를 통해 깊이를 더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냉면 먹방"에서 소개되는 냉면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흔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당대 여러 기사들을 통해 냉면 먹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조망해 주기 때문입니다. 단지 '겨울에 평양 냉면'을 먹었다는게 전부가 아닌 것이지요. 1936년 "조선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냉면 미각의 절정은 삼복 (더위) 이전' 임이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매일신보" 1936년 기사에서도 여름 관청, 회사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는 불이 날 지경이라고 소개되었다고 하고요. 그러나 지금과 다른 점은, '경성 냉면은 평양 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으며', '냉면을 주문하면 20분은 기다릴 각오'를 했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패스트 푸드가 아니었던 겁니다.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을 통해 풀어놓는 우리나라 소금 산업의 역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굽는 방식의 제법을 사용하였는데, 일본이 조선 강점 시기에 한국 해안에 대단위 천일 염전을 조성한게 대단위 소금 산업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금을 만드는 염호가 옛부터 고단하고, 노비나 군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 중국 산동 출신 노동자를 대거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네요. 이후 중국 노동자들의 파업, 퇴사 이후 1930년대에는 조선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요. 고되고 힘든데다가 사회적 인식까지 부족한, 지금의 염전 노예 사건의 단초가 이렇게 일본에 의해 강제된 천일염 제조 산업 초창기부터 있었다는게 참 가슴 아픈 사실이네요.

그러나 이렇게 정보 전달 측면에서 우수하며,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글들에 비해 저자의 느낌,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은 좀 별로입니다. 저자의 생각 - 식문화와 먹거리는 빈부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한다 - 도 옛 문헌을 통해 먹거리가 빈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였다는걸 소개하면서, 이런 격차가 그나마 평등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알려주는데 비슷한 주장의 반복이 많은 편입니다. 이러한 격차가 현대에도 이어지는걸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지나치게 과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보 전달 측면의 글들은 별점 4점도 아깝지 않으나, 비슷비슷한 에세이 류의 글로 약간 감점합니다. 저자의 음식 관련 미시사, 문화사 전문 서적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