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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7

여태까지 나만의 존 딕슨 카 작품 순위

Dr. Gideon Fell 존 딕슨 카 작품은 훝어보니 국내 출간된 작품은 거의 다 읽은 듯 합니다. 그래서 리뷰를 올렸던 딕슨 카 작품들 순위를 꼽아보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총 12편 중 10편이 별점 3점 이상이었고, 별점 2.5점의 평작인 단편집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에도 별점 3점 이상의 작품이 무려 5편이나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추리 소설가 중 타율왕에 대해 알아보자"에 대한 글을 올렸던 적이 있는데, 존 딕슨 카는 이후에 7차례 더 타석에 들어섰는데도 빼어난 성적을 올린 진정한 타율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체 작품 평균 별점이 무려 3점이 넘으니까요.

제가 뽑은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공동 1위 : 별점 4점 

공동 5위 : 별점 3점

공동 11위 : 별점 2.5점

리뷰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읽었었던 "황제의 코담뱃갑"과 "밤에 걷다"도 다시 읽고 리뷰를 올려야 겠습니다. 제 기억에는 두 작품 모두 걸작이었으니, 평균 별점은 더 올라갈 것이라 생각됩니다.

2021/12/26

대실 해밋 - 대실 해밋 / 변용란 : 별점 2.5점

대실 해밋 - 6점
대실 해밋 지음, 변용란 옮김/현대문학

하드보일드의 거장 대실 해밋이 쓴,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입니다. 작가 인생 초기작들로 유명한 컨티넨털 탐정사 탐정이 등장합니다. 

대체로 액션 모험 활극에 가까우며,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과도기적인 느낌을 전해줍니다. 몇몇 작품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배신의 거미줄" 

외과의사 에스텝 박사가 죽고 부인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박사가 숨겨왔던 첫 번째 부인이 찾아온 직후 사건이 일어났던 탓이었다. 변호사 리치먼드의 의뢰로 탐정은 의사가 죽기 전 보냈다는 편지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 부인을 미행한 끝에 탐정은 사건 배후에 사기꾼 제이콥 레드위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제이콥을 미행하는 또 다른 인물의 존재를 알아챘는데...

"의심이 든다면 미행해라"라는 말 처럼 미행을 통한 단서 찾기와 그 외 탐정 사무소를 통한 조사 및 다른 탐정들과의 분담과 협력 등 탐정의 진짜 업무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탐정으로 일했던 대실 해밋의 생생한 경험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행 과정을 통해 당대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거리와 풍경들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좋았고요. 이 때부터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종의 "바꿔치기"트릭이 사용된 덕분입니다. 에스텝 박사는 가짜로, 진짜 에스텝 박사의 의사 면허를 제이콥에게서 구입하여 의사 행세를 해 왔던 겁니다. 첫 번째 부인이라며 나타났던건 진짜 에스텝 박사의 부인이었고요. 제이콥은 에스텝 박사를 수십년 동안 뜯어먹다가, 크게 한 탕 저지를 생각으로 사건을 꾸몄던겁니다. 

제이콥의 계획도 괜찮았어요. 그는 거액을 요구하면, 박사가 자살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인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는 유산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의도는 아니었지만, 현 부인이 남편을 살해했다고 인정된다면 유산 전부를요!

그러나 계획을 밝혀내는데 있어서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탐정이 제이콥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단서를 잡은 뒤, 협박해서 그의 입으로부터 진상을 듣는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행과 감시로 진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기는 합니다. 허나 제이콥이 탐정에게 진상을 술술 이야기할 이유는 없었다는게 문제에요. 증거품인 에스텝 박사의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순순히 내 준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탐정과 제이콥 모두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제이콥이 이렇게까지 설설 길 이유는 없잖아요? 도주하던 제이콥이 오가르 경위에게 사살당한다는 마지막 장면도 허무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불탄 얼굴"

탐정은 밴브룩의 두 딸 가출 사건 조사 중 잠깐 만났던 코렐 부인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둘째딸 루스 밴브룩마저 시체로 발견되었고 탐정은 사건들이 다른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을거라 확신했다. 탐정과 팻 형사의 조사 결과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유사했던 여성들이 자살했던 사건들이 여러 건 있었고, 모두 레이먼드 엘우드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는데....

실종되고, 자살했던 여성들 사건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관계된 사건을 모두 조사해 보겠다는 수사 방침에 대한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외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하드보일드라기 보다는, 액션 모험 활극에 가까운 탓입니다. 탐정과 팻 형사가 레이먼드 엘우드가 자주 방문했던 저택에 침입한 이후부터가 특히 그러했습니다. 

저택에서 사이비 종교와 마약에 빠진 여자들이 난교 파티를 벌이던 사진을 찍어서 협박해 왔다는 진상도 허무하며, 탐정이 팻을 설득해서 주요 증거물인 사진을 모두 소각한다는 결말도 낭만적인 모험 활극과 다를게 없습니다. 팻의 백만장자 아내도 사진에 찍혀있었다는 약간의 반전도 충분히 예상 가능했기 때문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중국 여인들의 죽음"

릴리언 샨은 하녀 한 명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취소하고 급작스럽게 귀가했던 날, 낯선 중국인 청년에게 습격당했다. 릴리언은 겨우 살아남았지만 하녀는 죽고 말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은 지하실에서 요리사 완란의 시체도 발견하였다. 탐정은 사건을 의뢰받은 뒤 정보를 캐내다가 사건 배후에 어빙턴 호텔 소유주 코니어스와 차아니타운의 실력자 창리칭이 관계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차이나타운을 무대로 하는데 단지 이국적인 배경에 그치는 건 아닙니다. 중국을 배신하고 한 몫 단단히 잡은 이민자의 딸이 주인공 중 한명이며,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중국인 독립운동가의 무기 밀수에 편승해서 악당들이 한 몫 잡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의 핵심 설정과 전개 모두가 설득력있게 활용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릴리언의 저택은 해변과 맞닿아 있었는데, 밀수를 위해서는 해변과 맞닿아 있는 저택이 필요했다는 진상도 그럴듯했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탐정이 정말로 하는게 별로 없고 전개는 우연과 억지에 의한게 많은 탓입니다. 탐정이 조사원 중 한명이었던 마약중독자 얼이 수상하다는걸 깨닫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걸 알아챈건 순전히 넘겨 짚은 것에 불과하니까요. 동공? 눈빛? 모두 설득력이 약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필요할 때마다 만나서, 필요한 증언을 얻는다는 전개도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휘슬러가 일본군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고 조작했던 사진을 결정적 순간에 주머니에서 꺼내는 장면처럼요. 탐정이 이 사진을 가지고 다닐 이유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의뢰인인 릴리언을 무사히 사건에서 빼내고 휘슬러를 포함한 악당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결말은 전혀 하드보일드스럽지 않더군요. 릴리언은 선량했고 선의에 가득찬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위기에 빠진 공주님을 구해주는 기사가 활약하는 영웅담이자 낭만적인 모험물에 더욱 가깝습니다. 아울러 당시 중국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판타지를 반영한 듯한 창리칭 저택의 복잡한 구조와 기묘한 보디가드들, 은밀하면서도 잔혹한 공격과 미모의 노예 소녀 슈슈에 대한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책을 계속 읽어야 할지 망설이게 만드는 지루했던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쿠피냘 섬의 약탈" 

탐정은 결혼 선물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쿠피냘 섬에서 열린 헨드릭슨 가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날 밤, 폭풍우와 함께 강도단이 섬의 은행과 보석상을 습격했다. 결혼식 하객 중 한명이었던 러시아 공주로부터 이 사건 소식을 들은 탐정은, 선물을 지키는 임무를 헨드릭슨 저택 집사와 운전수에게 맡기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강도단의 도주를 막는데는 실패했고, 헨드릭슨 저택으 복귀 후에 집사와 운전사가 살해당했으며, 결혼 선물은 도난당했다는게 밝혀지는데....

오래 전에 읽었었던 작품인데 내용 자체를 잊어버려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완전 무장한 강도단과 맞서 싸우는 탐정의 활약을 그린 영웅담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정통파 추리물과 하드보일드가 잘 결합되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말이지요. 

특히 합리적인 추리가 볼만합니다. 탐정은 강도들이 외부에서 왔다면 일당과 무기 운반을 위해 자동차나 배가 필요했을텐데, 섬 주민의 자동차와 배를 탈취했던 상황에 주목합니다. 그 외의 여러가지 단서를 조합하여 러시아 장군과 공주 일행이 강도라는걸 알아내고 맙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망명한 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공주 일당의 범행 동기도 시대를 감안해보면 충분히 그럴듯했고요. 이런 추리를 일종의 추리쇼를 통해 선보이는 장면은 정통파 고전 본격 추리물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리고 추리쇼에서 이어지는, 돈 보다 범죄를 해결하는게 더 재미있다며 뱀 같은 공주의 유혹은 무시하고, 심지어 여자를 쏘지 않을거라 믿으며 도망가려는 공주 다리를 쏘아 맞추는 탐정의 모습은 고전 본격 추리물을 넘어선, 하드보일드 장르의 도래를 알리는 명장면이었다 생각됩니다. "난 장애인한테서도 목발을 훔쳤던 사람 아닌가?"라는 말도 희대의 명대사였고요. 구 시대의 화려했던 부르주아들은 모두 현실에 몰락해 버렸고, 이들을 악전고투끝에 살아남은 플로레탈리아가 짓밟는 구성은 시대가 변했음을 잘 느끼게 해 주네요. 마지막에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던 잔챙이 범죄자 플리포를 탐정과 공주가 서로 자기 편으로 만들려 설득하는 클라이막스도 재미있었습니다. 작위적이라는건 부인하기 어렵지만요.

물론 공주가 탐정을 살려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큰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가장 위협이 될 인물이라는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듯 한데 말이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 여명기, 장르의 초석을 다졌을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크게 한탕"

탐정은 어느날 밤 술집에 패디 더 맥스, 블루포인트 밴스, 해피 짐 해커, 빅 버드 레드 오리어리 등 유명한 범죄자들이 모여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시맨스 은행이 습격당할거라는 정보를 전해 준 정보원 비노가 살해당한 다음날 아침, 시맨스 내셔널 은행과 골든게이트 신탁회사가 약탈당했다. 무려 150여명의 프로 범죄자들이 도로를 봉쇄하고 20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현금 수백만달러를 훔쳤고, 경찰 포함 3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던 대참사였다. 그런데 강도 일당 수십 명의 시신이 차례로 발견되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죽은 강도 중 한 명이 '빅 플로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생존자 레드 오리어리를 찾아내 뒤쫓던 탐정은 밴스를 비롯한 다른 강도들의 습격에서 그를 데리고 겨우 탈출했다. 부상당했던 레드 오리어리가 탐정을 이끈 곳은 빅 플로라가 몸을 숨기고 있는 은신처였다....

백명이 넘는 강도단, 수백만 달러의 강탈, 수십명의 죽음 등 어처구니없는 스케일을 보여주는 범죄물. 은신처에 있던 연약해 보였던 노인이 사건의 흑막 파파도풀로스였으며, 경찰에게 은신처가 포위되었기에 무사 탈출을 위해 탐정을 이용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습니다. 탐정사무소 소장인 '영감'이 사건 배후에는 굉장히 머리 좋은 인물이 있을거라고 말했었고, 빅 플로라가 탐정을 죽이지 않았던 이유 등 이런저런 복선이 잘 배치되어 있던 덕분입니다.

하지만 설정에 비하면 내용은 비교적 수수한 편입니다. 탐정도 레드 오리어리를 찾아내 뒤를 쫓는 것 말고는 하는게 없어요. 빅 플로라의 은신처에서 벌이는 목숨을 건 연극도 유치했고요. 빅 플로라가 노인을 하인 대하듯 하는 장면같은 억지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빅 플로라가 우두머리이며 노인은 거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어, 유능한 탐정마저도 속아넘어간 것에 대해 변명거리를 만들 속셈이었을텐데, 속이 너무 빤히 들여다보였어요. 이런 점에서 하드보일드 추리물로 건질만했던건 별로 없었던 작품입니다. 단순 화끈한 마쵸 모험 액션물에 가까운 이야기였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거액을 강탈한 뒤, 공모자들을 죽이고 독차지하려고 했던 계획을 망쳐버린 사랑꾼 빅 레드 오리어리를 징벌하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파파도풀로스 입장에서는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피 묻은 포상금 106,000달러" 

탐정에게 패디 더 멕스의 동생 톰-톰 캐리가 찾아와 파파도풀로스에게 걸려있는 거액의 현상금에 대해 물어보았다. 몇 건의 살인과 습격이 이어진 끝에, 탐정들과 캐리는 백만장자 뉴홀 저택에 은신하고 있던 파파도풀로스를 잡는데 성공하는데...

시원치않았던 전편에서 이어지는 후편인데, 이 작품은 아주 좋았습니다. 탐정의 냉혈한스러운 면모가 빛나거든요. 탐정은 신참 탐정 잭이 파파도풀로스의 꼬임에 넘어가 한 패가 되었다는걸 진작에 눈치챘습니다. 아마도 그리스인 거주지 습격 사건 때 눈치챘겠지요. 그래서 마지막 습격 때 잭을 일부러 대동한 뒤, 모든 진상을 까발려서 잭은 캐리의 손에 의해, 캐리는 다른 탐정이 사살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배신자를 징벌하고 탐정 사무소의 평판을 지켜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 거지요. 이 와중에 탐정 사무소 다른 탐정들을 동원하고, 잭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안배를 하는 꼼꼼함도 볼만했고요. 

잭이 배신하게 된 계기가 빅 레드 오리어리의 연인 낸시가 사실 백만장자 뉴홀의 딸이었다는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반전도 상당한 놀라움을 가져다 준 좋은 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끝판왕격인 파파도풀로스의 허무했던 최후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탐정이 잭의 배신을 언제 눈치챘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것도 설명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거에요. 낸시의 이상했던 시선, 잭의 이상했던 눈빛은 증거가 될 수 없었는데 말이지요. 잭이 별다른 증거도 없는데 스스로 자포자기해서 자백을 한 것도 다소 편의적인 전개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교함과 냉혹함이 잘 살아있는 하드보일드 여명기를 대표할만한 수작이라 생각되네요.

"메인의 죽음" 

메인이 출장을 다녀온 날 새벽, 2인조 강도가 습격하여 그를 죽이고 지갑 안의 2만 달러를 강탈해 사라졌다. 현장 근처에서는 흉기인 권총과, 여성 손수건이 들어있는 지갑이 발견되었다. 메인의 보스 군겐에게 고용된 탐정은 손수건이 군겐의 젊은 아내 것이며, 아내의 하녀가 범죄자와 어울린다는걸 알아낸 뒤, 아내로부터 사건 진상을 고백받았다. 그녀와 메인은 불륜 관계였으며, 2만 달러는 불륜을 저지르던 당일 오후에 강탈당했던 것이었다. 범인은 하녀의 애인이었다.

젊은 아내를 옭아맬 속셈으로 사건 수사를 의뢰한 군겐,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보스의 아내까지 건드리다 파멸한 메인,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당당한 젊은 아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묘사는 재미있었습니다. 이들이 얽히고 섥혀 사건을 복잡하게 만든 건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마음에 들었고요. 불륜 남녀가 돈을 빼앗긴걸 쉽게 털어놓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던 범인들의 잔꾀도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하지만 범인 일당의 부주의한 행동이 미행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진상을 고백받은 형태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탐정 수사' 물인데, 미행으로 진범이 누구인지 바로 밝혀내는건 너무 쉬운 전개였습니다. 메인이 좌절한 나머지 자살했고, 보험금 때문에 메인의 아내가 이를 강도 사건으로 꾸몄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보스에게 사실대로 고백하는게 훨씬 낫다는 점에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메인을 죽이고 강도 살해 당한 것 처럼 꾸몄다는게 더 타당해 보이는데, 왜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메인의 아내를 비롯, 군겐의 아내까지 사건에 관련 여성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일종의 기사도 정신을 발휘했던걸까요? 여튼, 작품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수사물로는 괜찮았던 깔끔한 소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국왕 놀음" 

탐정은 미국인 청년 라이오넬 그랜덤을 찾아 유럽의 소국 모리비아로 향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어머니의 과보호로부터 탈출한 그는, 유럽에서 무려 3백만달러나 되는 돈을 현금화했다. 탐정은 라이오넬이 군대를 장악한 실력자 에이나르손 대령과 함께, 모리비아에 혁명을 일으키고 스스로 왕이 될 생각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3백만 달러는 혁명을 위한 군자금이었다.

유럽 소국 모리비아를 무대로 한 일종의 군웅물이랄까, 여튼 왕이 되려는 사람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 작품. 설정은 기발했고, 왕위를 놓고 여러 세력이 벌이는 암투가 짤막한 분량안에서 잘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많았어요. 일단 에이나르손 대령이 왜 미국인을 끌어들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군대를 장악했고, 인기도 많았다면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서 왕이 되면 그만이었을텐데 말이지요. 3백만 달러는 분명 거액이지만, 일국의 왕이 된다면 그 정도 돈이 문제가 될까요? 

대통령 비서 마흐무드가 에이나르손 대령과 함께 혁명을 모의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현 대통령의 통치를 못마땅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한들,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 비서가 이를 쉽게 포기하고 혁명에 바로 몸을 맡기고 급작스럽게 에이나르손을 암살하려고 한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에이나르손이 군대를 장악하여 기껏 혁명을 성공시켰지만, 탐정의 총에 굴복해서 순순히 라이오넬의 대관식을 치룬 것도 그의 야망과 노력을 생각하면 많이 허무합니다. 최후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낭만적인 중세 시대 모험 활극이라면 모를까, 20세기를 무대로 한 이야기에는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파리잡는 끈끈이" 

뉴욕의 명문가 햄블턴 가문의 막내딸 수는 범죄자와 도망친 후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1년 후, 돈 1,000달러를 요구하는 전보가 날라왔고 탐정은 돈을 가지고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이는 사기꾼 홀리 조의 계획으로 수는 가짜였었다. 

홀리 조로부터 캐낸 수와 베이브의 거처를 찾은 탐정은 그곳에서 수의 시체를 발견했다. 부검 결과 수는 만성 비소 중독으로 죽었다는게 밝혀졌다. 비소는 파리잡는 끈끈이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다시 협잡꾼 홀리 조를 심문해서, 그가 수와 도주할 계획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갑자기 나타난 베이브가 홀리 조를 사살하고 달아나는데....

부잣집 철부지 딸의 비참한 죽음, 얽히고 섥혀 서로를 죽이고 마는 애증 관계가 그려진 정통 하드보일드 작품입니다. 

그런데 탐정이 베이브를 추격해서 사로잡는 부분은 액션 활극 느낌도 강하지만, "누가 수를 죽였나?"라는 후더닛 측면에서도 볼만한 추리물입니다. 일단 홀리 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마찬가지인 수를 죽일리 없었어요. 수와 도망칠 계획이었으니까요. 베이브도 오랫동안 비소를 수에게 먹여 죽일만한 인물은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수가 자살했다고 하기에는, 만성 비소 중독은 여러모로 이치에 맞지 않지요. 그렇다면 진상은? 수는 비소를 오랫동안 조금씩 먹어 내성을 키운 뒤, 한번에 많은 양의 비소를 함께 먹어 베이브를 해치울 생각이었던겁니다. "맹독"에도 나오는 트릭이지요. 콘티넨털 탐정 사무소 소장 영감이 이건 체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비웃는 장면, 그리고 파리잡는 끈끈이가 숨겨져 있던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이 방법이 나와 있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개가 아주 매끄럽지는 않아요. 베이브가 마침 탐정이 심문하던 도중에 나타나 홀리 조를 사살했다는 것도 부자연스러웠고, 애초에 수와 조가 베이브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깔끔하게 사살하는게 나았을겁니다. 비소 내성을 키워 독살하려 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범행을 저지른다고 살인죄가 덮이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추리적인 부분에서 볼만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이전 리뷰에서도 그 부분을 좋게 언급했었지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1/09/03

리처드 매시슨 - 리처드 매시슨 / 최필원 : 별점 3점

리처드 매시슨 - 6점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현대문학

호러, 장르 문학의 거장인 리처드 매시슨의 걸작선. 이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단편집은 거의 모두 읽어볼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라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수록작들 대부분이 좋은 작품들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무려 33편이나 되는 볼륨도 풍성하고요. SF, 호러, 범죄물, 드라마, 서스펜스 스릴러, 심지어 서부극까지 아우르는 장르적인 스펙트럼도 엄청나게 넓습니다. 전부 걸작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별점 5점, 4.5점, 4점의 걸작과 수작도 포함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무슨 기준으로 선정된 작품들인지는 궁금하네요.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이전에 읽었던 작품 중 분명 걸작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빠져있기도 하거든요.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 

흉칙한 무언가가 부모님에 의해 지하실에 쇠사슬에 묶여 갇혀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021년에 읽기에는 많이 뻔합니다. 괴물이 다음 번에는 지하실에서 탈출해서 사람들을 덮친다는 여운을 남기지만, 명확한 결말이 더 낫지않나 생각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감" 

아멜리아는 애인에게 줄 선물로 기묘한 인형을 샀다. 인형을 구속한다는 금줄이 풀리자, 인형은 아멜리아를 죽이기 위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일종의 크리쳐물로 20cm밖에 안되는 나무 인형과 사투를 벌이는 묘사가 압권이에요. 시대가 흘렀어도 여전히 멋집니다. 

하지만 결말과 담고 있는 주제가 제 기억과 사뭇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아멜리아가 처참하게 희생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멜리아가 인형을 처단한 뒤,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는 결말이더라고요. 착각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억과 달라서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사회적인 메시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장성해서 독립한 자녀를 구속하는게 살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시사적이면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을 발표 시점에는 충분히 공포스러웠을 시의적절한 메시지였다 생각되네요. 이런 메시지를 돌직구로, 매력적으로 한 가운데 꽂아넣는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고요.

단, 결말에서 어머니를 죽일 결심을 한 아멜리아가 문의 빗장을 쉽게 연 건 좀 안일했습니다. 인형에게서 도망칠 때에는 여러번 실패했던 걸로 묘사되니까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회파' 크리쳐 호러라는 신경지를 장르 문학 초창기에 개척한 명작입니다.

"마녀 전쟁"

군에서 키우는 일곱 마녀가 쳐들어오는 적군을 마법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마녀들이 각자 특기로 소환한 불과 물, 거대한 암석, 사자 등으로 적을 잔혹하게 몰살시키는 묘사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단지 이런 파괴적인 묘사를 쓰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이외에는 기승전결이 있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파괴 묘사만큼은 확실히 볼 만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판본보다 번역이 훨씬 좋은 덕분이지요. 약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느낌도 드는데, 이런 설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군요.

"깔끔한 집" 

소설가인 나는 아내 루시와 함께 굉장히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왔다. 하지만 얼마 뒤, 아내는 아파트 지하실에 거대한 엔진이 있고, 관리인은 뒷통수에 눈이 달려있다는 말을 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관리인을 미행하여 이 모든게 사실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친한 이웃 필, 마지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함께 아파트가 이륙을 준비할 때 탈출에 성공하는데....

아파트가 로켓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 그리고 마지가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분위기를 풍기다가 그녀가 말했던게 모두 사실이라는게 드러나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던 SF 단편입니다. 서스펜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사실은 블록 전체가 우주선이라서 탈출이 불가능했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고요.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침략하는게 아니라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보디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독특한 설정, 아이디어와 함께 전개에서 긴장감과 흥미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 걸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피의 아들" 

기묘한 아이 쥴스는 드라큘라가 되고 싶다는 망상에 빠졌다. 쥴스는 학교도 그만두고 배회하다가 동물원에서 흡혈 박쥐를 훔쳐내는데...

꽁트에 가까운 짤막한 단편으로, 분량과 흡혈 박쥐가 진짜 드라큘라였다는 반전으로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반전은 뜬금없었고, 리처드 매시슨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는 찾아보기 힘든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이야기는 쥴스가 정신병자인지, 진짜 흡혈귀와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나는 잠에서 깬 뒤, 관에 갖혀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게 적들의 수작이라고 믿은 나는, 관을 탈출하기 위한 갖은 노력 끝에 결국 관 뚜껑을 부수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데...

'나'가 관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이 작가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로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나'는 이미 7개월 전 죽었고, 거울로 본 '나'는 썩은 시체였다는 반전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입니다. "환상특급" 등의 원작으로도 잘 어울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점 전환되는, 그래서 거울 속 모습에 좀비가 보이는 식의 카메라 워크가 곁들여지면 아주 멋지지 않았을까요?

재미와 충격 외에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사소합니다. 얼마 전 읽었었던 좀비물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흔해빠지고 수준 이하였던 작품들 보다는 몇 배 뛰어난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사막 카페"

밥과 진 부부는 여행 중 우연히 사막에 위치한 카페에 들렸다. 진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밥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데...

외딴 마을에서 맞이한, 남편 밥의 실종과 그에 따른 위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여행하던 외지인이 외딴 마을에서 겪는 위기를 그린 작품은 많습니다. 저도 많이 읽어보았고요. 이전 스티븐 킹의 "밴드가 엄청 많더군" 리뷰에서 언급했던 적도 있는데, 보통은 외딴 마을의 기묘한 집단 광기를 그리곤 하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통 범죄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 진의 심리 묘사를 통해 순수한 공포,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희생자를 화장실에서 납치하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범죄인데다가, 보안관 등장 후 별다른 위기없이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장르물이 주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꿰뚫고 제대로 달려주는 수작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위조지폐"

생계에 지쳐 일탈을 꿈꾸던 윌리엄 O. 쿡씨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복제인간에게 온갖 귀찮은 일을 시키고 자신은 놀 생각으로요. 그러나 쿡씨의 복제인간답게, 복제인간도 놀고 싶어해서 결국 복제인간이 급증하게 된다는 블랙 코미디 콩트입니다.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이기도 하고요. 설정은 재미있는데 기계가 폭발하고 복제인간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결말은 시시했습니다. 뭔가 반전이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선" 

로스 선장과 메이슨, 미키는 외계 행성에 착륙했다. 우연히 목격한 인공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추락한 우주선으로 밝혀진 인공물 속에서 발견한 건, 그들 세 명의 시체였다...

일행들이 자기들의 시체를 목격하고 느끼는 공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잘 그려진 SF 단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는 이미 죽었고 시체를 바라보는 자신은 유령이라는 걸 깨닫는다는 결말은, 발표 당시였다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설정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체의 춤" 

대학 신입생 페기는 나쁜 선배들에게 이끌려 법적으로 금지된 루피 춤을 보러 갔다가 충격에 기절하고 마는데...

세기말 감성이 살아있는 독특한 SF. 예전에 읽었던 작품인데, 그 때와 평가는 거의 동일합니다. 페기 시점으로 묘사된 광란의 루피 춤 공연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순진한 신입생이 거부하고 싶은 방탕과 쾌락도 끔찍하게, 그러면서도 잘 그려내고 있고요. 일종의 좀비인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의 발작을 '춤'이라고 이름 붙여 공연한다는 끔찍한 아이디어도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페기도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방탕함에 빠져버린다는 듯한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이 결말이 루피 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페기가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가 되었다던가, 같은 반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호기심으로 좀비를 보러 갔다 왔다. 무서웠다."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몽둥이를 든 남자" 

타임스퀘어에 온 몸이 털로 덮이고 몽둥이를 든 원시인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출동한 경찰이 총을 쏴서 겨우 원시인을 제압했다.

조금 무식하고 무례한 젊은 마초 양아치 1인칭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화자 설정도 진부했고, 결말도 뻔했습니다. 핵심은 원시인이 온 곳이 '미래'였을 수도 있다는 건데, 미래에 문명이 퇴화할 거라는 설정의 이야기는 고전 "타임머신"을 비롯해서 너무 많으니까요. 조금 지적인 노인네를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에서 시대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딱히 건질게 없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버튼, 버튼" 

영화까지 나왔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부부 사이도 서로 모른다'는 걸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기묘한 설정에 더해 서늘하고 섬찟한 느낌과 반전이 있는, '기묘한 맛'류의 쇼트쇼트입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박한 평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기묘한 맛' 류로는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작품이네요. 왜 나쁜 평가를 했었을까요? 별점은 4.5점입니다.

"결투"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영화 데뷰작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 격렬한 카 체이스를 어떻게 글로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다면, 모범 답안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트럭에 쫓기면서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 등이 아주 잘 드러나 있으니까요.

그러나 트럭 운전사의 분노가 잘 이해되지는 않고, 마지막 트럭의 최후가 너무 뜬금없다는게 아쉽습니다. 확실한 급커브였다던가 등 속도를 반드시 줄여야 했다는걸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심판의 날" 

루크는 심부름을 왔다가 목이 잘린 과부 블랙웰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녀의 아들 짐은 시체를 본 뒤, 극심한 공포로 광란 상태였다. 루크의 아버지 샘은 현장 조사를 통해 과부가 아들을 의도적으로 미치게 만들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남편을 죽게 만든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다가 죽었음) 아들을 증오했었다....

과부 블랙웰이 증오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들 짐이 자신이 없으면 미쳐버리도록 차근차근 준비한 뒤,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결말이 놀라운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끔찍한 공포가 짧은 분량 안에 모두 포함되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걸작이에요. 블랙웰 부인이 목을 멘 칼이 어디 갔을지?에 대한 부분이 설명되지 않은건 약간 아쉽지만, 단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이 단편 하나를 읽은 것 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네요.

덧붙이자면, 엄청난 의지로 저지른 자살이라는 설정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걸작 심령 서스펜스 호러물인 "네번째 남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었지요.

"죄수" 

1944년, 비밀 연구소에서 핵분열을 연구하던 핵물리학자 필립 존슨은 폭발 사고 후 눈을 뜨자, 자신이 2시간 뒤 사형당할 1954년의 사형수 존 라일리 몸 속에 들어와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핵폭발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는 SF적인 발상을 담은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과연 필립 존슨이 자신이 사형수 존 라일리가 아니라는걸 2시간 안에 증명할 수 있을까?가 서스펜스의 핵심이고요.

그러나 필립 존슨의 노력은 신부를 한참 설득하다가 아내 전화번호를 주는 것 뿥입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요. 덕분에 긴장감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신부가 그의 아내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애매했습니다. 진짜 필립 존슨의 아내가 없었는지, 아니면 신부가 귀찮아서 거짓말을 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필립 존슨이 모든걸 체념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 별로였습니다. 곧 죽을 상황인데, 어떻게든 발버둥 쳐 봤어야죠..

아이디어, 설정은 좋았지만 끌고가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웨딩 드레스" 

세상을 떠난 엄마 드레스에 푹 빠진 아이가 친구에게 몰래 엄마 방과 드레스를 보여주다가 폭주한다는 내용의, 미치광이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혼란스러운 심리극입니다.

그런데 익히 보아왔던 설정과 내용이라 진부합니다. 더 큰 문제는 여백이 많아서 완성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요. 엄마는 못생겼고 드레스도 피투성이에 총 구멍이 나 있었다는게 살짝 드러나기는 하지만, 아이가 친구를 죽였는지, 엄마 사인은 무엇인지, 아이는 지금 어디 갇혀서 어떻게 된건지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발"

더운 여름날, 조는 기묘한 손님을 맞아 이발을 해 주었다. 손님은 손톱이 계속 자란다는 등 혼잣말을 읆조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손님이 죽은 사람이었다는건 에상 가능했던 결말이었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설정이네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을 때 흙이 떨어진게 아니라, 손은 뼈 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신선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윌슨은 출장을 위해 탑승한 비행기 창문을 통해, 괴물이 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 있는걸 발견했다. 괴물은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숨어버려서 윌슨 눈에만 보였다. 비행기 엔진을 부수려고 시도하는 괴물을 막기 위해서, 윌슨은 비행 중인 비행기 문을 여는데...

영화판 "환상특급" 에피소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공포심, 신경증을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괴물'로 형상화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윌슨이 커튼을 열고, 비행기 창문을 통해 자기를 노려보는 괴물을 처음 보는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압권이에요.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총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등의 묘사에서는 시대를 느낄 수 있고요.

괴물에게 결국 총을 쏜 윌슨이 승객들에게 제압 당한 뒤 비행기 착륙 후 옮겨지는 결말은 다소 시시하지만, 아이디어와 묘사력이 발군이기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례식" 

클루니스 장례식장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에게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찾아와서 최고급 장례식 준비를 요청했다. 그는 고인이 자신이라고 말했고, 장례식 날에는 하인인 곱추 이고르, 마녀, 늑대인간과 다른 흡혈귀들이 찾아 오는데...

드라큘라를 연상케하는 뱀파이어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스스로의 장례식을 치룬다는 블랙 코미디로, 마지막에 다른 괴물 손님이 찾아온다는 반전도 좋아서 '쇼트쇼트'로는 더할나위 없었던 작품입니다. 장례식에서의 소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도 좋았고요.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코미디의 정체성이 잘 살아있어서 놀랐습니다. 거장은 뭘 써도 거장인 법이겠지요? 오래 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역시나 그 때도 좋은 평가를 했었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태양에서 세번째" 

우주 비행사가 세계 멸망을 앞두고, 다른 행성으로 처자식과 이웃 사람들까지 우주선에 몰래 태우고 출발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이었다...

화자인 우주 비행사와 그 가족들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기 전 겪는 마음 속 불안과 혼란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그들이 있던 곳이 지구가 아니라 향한 곳이 지구라는 반전이 등장하는 짤막한 쇼트쇼트. 일종의 서술 트릭물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쇼트쇼트로서는 우수한 수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최후의 날" 

최후의 날을 맞아 음주, 난교, 광기어린 파괴 행위 등을 즐기던 리처드는, 가족의 소중함을 께닫고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려 한다.

리처드가 어머니와 함께 최후의 순간을 맞으며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걸 깨닫는다는 드라마. 여동생 가족이 죽음을 택하기 위해 약을 먹는 장면은 찡하면서도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평이했습니다. 소설보다는 "환상특급"과 같이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 않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거리 전화" 

몸이 불편한 미스 킨에게 어느날 한 밤중, 폭풍우가 불어올 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뒤에도 전화는 계속 걸려왔고, 속삭임과 단조로운 흥얼거림에 이어 상대방으로부터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까지 들려오게 되었다. 전화 회사의 조사 결과 이 전화는 묘지에서 걸려온걸로 밝혀지는데...

정체 모를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지요.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다른 이야기만큼 공포스러운 상황을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미스 킨의 불안부터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간호사의 말대로 전화를 그냥 끊던가, 수화기를 내려 놓던가, 전화선을 뽑아 놓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는 걸 "제가 댁으로 갈게요." 라는 마지막 전화 목소리로 알려주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만, 묘지에서 걸려왔다는게 드러났을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설득력 낮은 진부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행복한 가정의 아빠인 회계사 로버트 카터는 어느날 면도를 하다가 깊숙하게 베였다. 그리고 상처 속 전선과 기계 장치를 보고, 자기가 로봇이라는 걸 깨달았다. 충격에 거리를 배회하던 카터는 도시가 로봇들로 가득차 있었고, 음식들도 모두 기름이었다는 걸 알아 채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통상적인 의미, 즉 이야기를 모두 해결해 버리는 전능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인 "기계 장치의 신"에서 가져온 이야기라는게 독특하네요. 내가 내가 아니라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흔한 설정을 독보적인 로버트 카터의 심리 묘사로 차별화시킨 솜씨도 거장다왔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도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로버트 카터가 진짜 로봇인지, 아니면 죽은 뒤 환상을 보는 건 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열린 결말은 좀 아쉬웠습니다. 보다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고 반전도 있는 결말을 기대했거든요. 물론 로버트 카터가 쓰러지면서 떠올리는 성경 구절 - "하느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의 사람을 만들고..." - 은 그가 기계라는걸 연상케 합니다만, 명확하게 증명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계라고 한다면, 그들을 만든 '하느님'이 누구인지도 설명이 필요해 보였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자신이 기계라고 믿는 주인공 이름이 '로버트'라는게 의미심장하네요. 우리나라로 변주한다면 '노보두 씨' 정도로 부르면 되겠지요?

"기록적인 사건" 

가방끈 짧은 쉰 아홉살의 대학교 건물 관리인 프레드는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깬 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건물 청소 및 수리를 하면서 대학의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되는데....

갑자기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던 소품. 외계인들이 지구의 지식을 손에 쉽게 넣고자 프레드 머릿 속에 대학교 지식을 집어 넣은 뒤 그걸 한 방에 빼 먹은 것이지요. 한마디로 프레드를 일종의 외장 하드로 사용한 셈입니다. 좋은 쇼트쇼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안에서 죽다" 

돈과 베티 부부에게 '돈 타일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돈은 자기는 돈 마틴이라고 주장히먀 화를 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돈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 부부의 집에 침임했고, 돈을 제압한 침입자는 돈이 저질렀던 과거 범죄와 배신에 대해 추궁하는데....

과거 저질렀던 범죄에서 발을 빼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온지 10년 만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서스펜스 범죄물. 돈이 침입자인 심슨과 사투를 벌인 끝에 그를 죽이고, 모든걸 알게 된 아내 베티가 경찰에 빈집털이가 들어와 싸우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하는 결말까지 깔끔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긴장감은 약한 편입니다. 악당 심슨이 침입한 뒤 하는게 없는 탓이에요. 총으로 부부를 위협하고, 과거 이야기를 떠벌이는게 전부거든요. 서스펜스를 끌어올릴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코넬 울리치가 썼더라면 훨씬 멋진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정복자" 

1871년, 그랜트빌 잡화상 주인인 나는 남북전쟁 때 죽은 아들 루와 닮은 젊은 청년과 역마차를 함께 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그랜트빌 최고의 총잡이와 싸울 목적이었다. 라이커라는 청년은 그랜트빌의 총잡이 바스 셀커크를 깔끔하게 사살했지만, 습격해 온 셀커크의 부하들에게 난사당해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느낌이 드는 현실적이면서도 허무한 서부극입니다. 라이커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서부극 총잡이들이 영웅이 아니라 허깨비라는걸 잘 보여주거든요. 어릴 때 부터 총잡이를 동경하여 연습을 거듭한 끝에 빠른 속사와 사격술을 익혔지만, 정신적으로는 애와 다름없는 철부지로, 1대 1 결투에서는 이겼지만 여섯 명의 악당이 습격하자 울며 애원하다가 총에 맞아서 꼴사납게 죽기 때문이지요. 풍자적이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느낌이 좋았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홀리데이 맨" 

데이비드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내키지 않는 출근길에 나선다...

데이비드가 출근을 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그의 직업이 끔찍했던 탓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 지켜보고, 사망자 수를 예측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데이비드의 심리 묘사가 그닥이었고, 업무의 끔찍함도 잘 드러나지 않는게 단점입니다. 이 업무가 아무리 끔찍해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느끼기 어려웠고요. 전개가 밋밋하고 반전도 그닥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예전에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걸 보면 예전에도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뱀파이어란건 없다" 

루마니아에 있는 작은 마을 솔타에 사는 게리아 부인은 어느날 밤, 누군가의 습격으로 목을 물어 뜯겨 피를 빨린채 발견되었다. 게리아 박사는 다음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부인을 지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게리아 박사는 후배 미카엘 바레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크리쳐 호러물로 시작해서 깔끔한 범죄물로 마무리되는 작품입니다. 왜 범죄물이냐 하면, 뱀파이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리아 박사가 커피에 아편을 타서 아내를 재운 뒤, 목에서 피를 뽑아냈던 거지요. 이유는 그녀가 후배 바레스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고요. 마지막은 바레스가 뱀파이어인 것 처럼 꾸민 뒤, 그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을 거라며 마무리됩니다. 

기발한 소재와 불륜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 의외의 반전, 내용은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비교적 짤막한 분량이라는 점 등 전형적인 미국식 쇼트쇼트의 특징을 모두 갖춘 작품입니다. 트릭도 조금 유치했지만, 뱀파이어 전설이 살아있는 루마니아라는 설정이라서 나름 설득력있고요. 너무 전형적이라서 작가 특유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깜짝 선물"

늙은 호킨스 씨는 집 앞을 지나는 어린 소년들을 부르곤 했다. 소년들에게 "땅을 파면 깜짝 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주문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니에게는 주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어디를 파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깜짝 선물이 금괴라고 확신한 어니와 친구들은 그 곳을 파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물이 뭔가 나쁜거라는 짐작은 되지요? 어니가 찾은건 일종의 관이었고, 그 안에서 호킨스 씨가 튀쳐 나온다는게 결말입니다. 그러나 결말의 반전은 약했으며 설득력도 없고, 동기도 불분명한 등 설명까지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니가 땅을 파게 만드는데 까지의 전개는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산타클로스를 만나다" 

켄은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들 리처드와 함께 다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 헬렌은 차에 남겨둔 채였다. 사실 켄은 이 기회를 빌어 헬렌을 죽일 생각으로 살인청부업자에게는 돈을 지급했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가는 동안, 그는 죄책감, 양심 등으로 심하게 갈등하는데...

아내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순간이 되자, 켄이 겪는 극심한 마음 속 갈등과 혼란이 핵심인 심리 스릴러. 심리 묘사가 아주 빼어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심리 묘사야 말로 작가의 특기 중 특기지요. 살인과 극명히 대비되는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특히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받는다'는 산타클로스와의 약속을 결말에서 제대로 써 먹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켄의 삶이 조금 더 비참해 졌다는 결말이니까요. 켄은 선물 (아내의 죽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현실적이기도 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강남길 씨가 아내를 죽이려고 노력하던 TV 단막극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켄과 리처드가 많이 걷지 않아도 되도록 차를 옮겨 놓겠다는 아내의 말에 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장면에서요. 하지만 강남길 씨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켄에게는 지옥이 열릴 거라는 결말은 천지차이이기는 합니다만, 이런게 미국과 한국의 감성 차이인지도 모르겠네요.

"춤추는 손가락"

장거리 버스 여행 중 내 앞에 앉은 여성은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돌보미 여성에게 끊임없이 수화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다가 장애인 여성이 내 자리를 빼앗았고, 어쩔 수 없이 원래 그녀 자리에 앉은 나에게, 옆자리 돌보미 여성이 해준 이야기는 자신과 장애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화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해서, 장애인 여성의 수화 수다로 돌보미 여성이 그녀를 벗어나고 싶어했고, 돌보미를 놓아주기 싫었던 장애인 여성이 괜찮은 남자를 물색해서 노리개로 던져준다는, 일종의 '남자 사냥' 으로 이어가는 전개가 자연스럽고 좋았던 작품.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한 느낌이 드는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남자를 유혹하던 여성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결말이 너무 허무하네요. 남자 사냥은 돌보미를 바꾸기 위함이었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남자를 잡아 먹기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은 기승전까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결이 너무 급작스럽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벙어리 소년" 

시골 마을에 살던 닐젠 부부가 화재로 죽고, 부부의 아들 팔은 보안관 해리와 코라 부부에게 위탁되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말도 못했던 팔을 코라는 사랑으로 돌보고, 죽은 자기 아들 대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코라는 남편이 시도했던 닐젠 부부 지인에게의 연락을 훼방놓았다. 그래서 닐젠 부부가 죽은 뒤 한참 뒤에야 부부의 지인 베르너 교수가 팔을 찾아 왔다. 그러나 그 사이, 학교를 다녔던 팔은 그가 가졌던 독특한 텔레파시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팔은 벙어리가 아니라 부모의 텔레파시 교육을 받았던 텔레파시 능력자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부모는 텔레파시 능력이 훼손될까봐 특정한 이미지, 단어로 설명되는, '말'을 익히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겁니다. 단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한계가 있다는 발상은 꽤나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닐젠 부부의 사고, 코라가 팔을 양자로 들이고 학교에 보낸 것, 베르너 교수의 방문 등 여러가지 사건이 두서없이 펼쳐지는 탓이 큽니다. 닐젠 부부가 죽은 화재 사고의 원인도 결국 밝혀지지 않고요. 또 팔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건 엄연한 아동 학대입니다. 팔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고 아름답다고 포장할 이유도 없어요. 실상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그냥 말 없이 생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게 전부인데, 이러느니 말로 하는게 더 낫잖아요? 근거리에서만 가능한 듯 싶으니 결국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려면 글을 익혀야 하는건 당연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팔을 옭아맸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찬가지 이유로 현실 학교 교육이 팔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묘사도 불필요했습니다. 

팔이 말을 하기 시작해서 텔레파시 능력이 사라졌다는 결말도 맥빠집니다. 어차피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아쉬운 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팔에게는 코라의 사랑이 더욱 필요했으니, 앞으로는 행복해질 일만 남아 있을테고요.

차라리 '사랑은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감정이다'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멋진 설정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팔이 능력의 편린을 유지한채 성인이 되어 여자 마음을 잘 아는 능력자가 된다는 식으로요. 지금은 설정,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충격파" 

교체를 앞둔 교회 오르간이 폭주해서 교회를 파괴한다는 내용의 작품.

늙고 낡아버려서, 사랑했고 필요로 했던 것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교체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데 딱히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공포를 자아내는 맛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폭주는 상식적인 선에 그쳐서 크리쳐물로 보기도, 재난물로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작품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4/08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5. 오뚜기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5. 오뚜기

마이코가 사무실에 나타나자 정체된 방의 공기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마이코는 검은색 정장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검은색 옷은 몸매를 날씬해 보이게 했고, 빨간 스카프가 잘 어울렸다. 마이코는 토시오에게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신문을 읽고 있는 후쿠나가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운석이 차에 부딪히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사고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보도되고 있었다. 사고 조사에는 많은 과학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토모히로의 차를 불태운 것은 틀림없이 운석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현장에서는 무게 13kg, 지름 20cm 정도의 석철 운석이 수습됐다.

"운석이란 유성이 타다 남은 찌꺼기잖아요?"

"유성이 타는 것은 아닙니다."

후쿠나가는 신문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태양계에는 무수히 많은 고체 물질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구에 닿으면 지구의 인력으로 끌어당겨지죠. 물질의 기세가 거세져 초속 수십 킬로미터의 속도로 공기 중으로 돌진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수천 도의 마찰열이 가해져 갑자기 기체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이를 증발이라고 합니다. 이 고온의 가스가 빛을 내는 겁니다. 불이 타오르는 것과는 다르죠."

"시골에 가면 맑은 밤하늘에 유성을 자주 볼 수 있잖아요."

"우다이 씨, 유성은 하루에 몇 개나 떨어진다고 생각하세요?"

"한 시간에 두세 개 정도일까요?"

"육안으로 볼 수 있는건 그 정도겠죠. 하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유성을 포함하면 하루에 지구로 날아오는 별은 대략 수십억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수십억 개라고요?"

토시오도 그 숫자에 조금 놀랐다.

"네. 그런 유성은 그냥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끊임없이 먼지처럼 지상에 떨어지죠. 그래서 지구의 질량은 매년 4백만 톤씩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로 떨어진 유성 먼지의 양은 지표면 3미터를 덮는다고 계산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운석이 되어 지상에 떨어지는 별도 꽤 많다는 얘기군요."

"그런데 또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유성이 되는 물질은 대부분 쌀알 정도, 설탕 한 알 정도 큰 것들만 떨어지거든요. 이건 아까 말했듯이 공기 중에 들어가면 금방 증발해버립니다. 드물게는 큰 물질이 운석이 되어 지상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 수는 극히 적습니다. 한 해에 오백 개 정도라고 하네요."

"그래도 오백 개나?"

"지구의 3분의 2가 바다니까, 지상에 떨어지는 건 백 오십 개 정도일겁니다. 확인된 숫자로 따지면 그보다 더 적고요."

"그중에는 꽤 큰 것도 있겠군요."

"그렇죠. 가장 큰 운석은 서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바 운석. 69톤이나 된다고 하니 대단하지요. 일본에서는 1885년 오쓰(大津)시에서 발견된 다카미(田上)운석이  가장 컸어요. 최근에는 1975년 오후 7시에 보름달의 몇 배나 되는 불덩어리가 세토나이카이로 떨어지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지요. 발견되면 1톤급 운석으로, 다카미시마 앞바다에 떨어져서 다카미시마 오키(高見島沖)운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상태로 현재 조사 중이에요."

"그런 것이 도시에 떨어지면 큰 재앙이 되겠군요"

"석유 공업 단지나 신칸센 열차에 떨어진다면 큰 사고가 나겠죠. 하지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그런 대형사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예전에 이탈리아의 한 신부가 운석의 직격탄을 맞고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1954년 미국 앨라배마주에 떨어진 운석은 사람의 집 지붕을 관통해 그 집에 있던 여성이 부상을 입었고요. 기후에 떨어진 가사마쓰 운석도 사람의 집 지붕을 뚫고 들어갔었어요. 이번 사고도 그렇고, 어쨌든 정말 재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운석에 맞은 사람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걸까요?"

후쿠나가는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사람의 회사, 해바라기 공예는 어떤 회사일까요?"

마이코가 물었다. 후쿠나가는 조금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장난감 제조업이요. 저는 예전에 장난감 업계 신문사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장난감 업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요."

"후쿠나가 씨는 어떤 업계든 잘 아는군요."

마이코가 칭찬한다.

"글쎄,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해바라기 공예는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지만 역사는 꽤 오래됐어요. 뭐, 전통 있는 노포 부류죠. 마와리 가문이 요코하마로 이주해 와서 농사를 짓는 한편 부부가 작은 인형 제작을 시작한 것이 가에이 말기였는데, 마와리 사쿠조(馬割作蔵)라는 남자였습니다. 아내는 요코하마 출신이지만, 사쿠조는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없어요. 마와리 가문에서 출생을 철저히 숨긴 느낌입니다. 나는 업계 인명록을 편집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는데, 해바라기 공예를 창립한 사람은 사쿠조의 아들인 도키치(東吉)였습니다. 나중에 그는 호도(蓬堂)라는 이름을 쓰게 되지요. 하지만 그 전에 아버지 사쿠조가 츠루슈도(鶴寿堂)라는 작은 장난감 가게를 운영했던 것은 확실합니다."

"해바라기 공예에서 선대인 츠루슈도는 소개하고 있지 않나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잘 모르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쿠조 자신과 그의 아들 호도는 사쿠조를 은폐하려 했던 것 같지만요. 내 생각에 사쿠조는 어느 번(藩)의 하급 무사로, 어떤 잘못으로 번에서 쫓겨나서 아내의 생가로 이주한 것 같아요. 그 원인이 뭔가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을테고요. 그래서 숨긴 것이겠죠? 사쿠조는 아내의 땅으로 오자마자 아내의 생가 근처에서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사가 장난감을?"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무사와 장난감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어요. 센다이의 향토 장난감에 츠츠미 인형이라는 것이 있어요. 알고 있나요?"

"아니요."

"도호쿠의 대표적인 도자기입니다. 동북 지방의 풍토를 반영하는 애잔한 아름다움으로 인형 애호가들이 애지중지하고 있지요. 이 인형의 기원은 발꾼의 부업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다테라는 땅은 리쿠우(陸羽) 가도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었지요. 다테 가문에서는 이곳에 하급무사들의 집을 배치했는데, 봉록이 적었던 탓에 부업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도공들과 함께 만든 것이 츠츠미 인형이라고 하고요. 이런 사례는 이 밖에도 있었어요.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여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서 더 많은 궁핍한 무사들이 생겨났고요. 메이지 초년, 이미 무사들이 가진 물건을 팔기 시작했죠.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판다고 하면 뭘 내놓겠습니까?"

"사치품이겠죠."

"그렇죠, 무사의 아내의 혼수품, 값비싼 히나(ひな)인형 등이 거리의 대로변에 진열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사치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습니다. 봉록이 적었던 하급무사들은 팔아먹을 물건도 없었으니까요. 결국 스스로의 손으로 장난감을 만들게 된거지요. 나고야에는 나고야 토인형이라는 향토 장난감이 있어요."

"그것도 무사들이 만들기 시작한 건가요?"

"네. 오와리 도쿠가와번의 무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교토의 후시미 인형 기술을 배웠다는군요. 히나인형과 연극용 인형, 장식용 말과 토종 방울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어요. 메이지 말기에는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최근에는 만드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하네요. 관동지방의 인형으로는 사이타마현 이와쓰키(岩槻)의 이와쓰키가 유명하고요."

"알고 있어요. 히나 인형의 대부분은 이와쓰키에서 생산된 것이지요."

"이와츠키의 인형이 현재처럼 번영하고 있는 것은 메이지 유신 때문이기도 해요. 오쿠라 류지로라는 원래 무사였던 사람이 가문을 버리고 에도에 와서 인형에 손을 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메이지 유신 때 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와쓰키에 피신했는데, 이미 이와쓰키에는 인형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 땅은 닛코 가도의 길목에 있어 닛코 도쇼구(日光東照宮) 건설을 마친 장인들이 이와쓰키에 정착해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하는데, 오쿠라 류지로(大倉留次郎)는 그 곳에서 인형의 옷 입는 기술을 가르쳤고, 오늘날에는 이와쓰키 인형의 공로자로 이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대의 변혁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장난감을 만들어내는군요."

"재미있는건 이번 전쟁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와쓰키에 피난을 오게 된 수많은 장인들이 이와츠키 사람들과 함께 군수 공장에 징용되어 일했는데, 이는 이와츠키의 인형계에는 행운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장인들은 본업으로 돌아갔지만, 이와츠키의 인형 기술은 여기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거든요."

"역사라는 것은 반복되는 것이군요."

"낙오된 무사들이 만들게 된 장난감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로 킨스케마리(金助毬, 금방울)가 있네요. 큰 공이 되면 6, 70센티미터나 되죠. 물론 손으로 잡고 노는 것은 아닙니다. 3월 3일 히나의 날 장식용으로 만들어졌어요. 홍백색 비단으로 꿰매고, 모란에 당사자, 마차, 송죽매 등을 금실과 은실로 수놓습니다. 실로 만든 공 중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것 중 하나입니다. 이 금방울은 가고시마번 하급 무사 부녀자들의 수공예품이기도 하지요. 절기가 다가오면 그녀들은 보라색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금방울을 팔러 다녔고, 이것이 명물이 되었어요."

"연극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네요."

"그림이 되지요. 어느 날, 부인이 불쑥 상대의 얼굴을 봅니다. 젊은 날의 연인으로 지금은 가게의 주인이 되었구나. 억지로 시집갔지만 남편은 폐번으로 인해 봉록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이렇게 길거리로 나가 공을 팔아야만 하는 신세. 세상의 이치라고는 하지만 너무도 황당한 이 만남 ......"

"무사들이 만들기 시작한 장난감이 아직 남아 있나요?"

마이코가 말문을 막았다. 후쿠나가가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네, 아직 있어요. 야마가타의 이타지시(板獅子)는 쇼나이(庄内)번의 무사들이 만들기 시작했지요. 시코쿠의 다카마쓰하리코는 다카마쓰번의 가신인 카지가와 마사요시가 창시했고요. 마쓰에 번에서는 아네사마, 도야마 번에서는 흙인형......"

"그래서, 마와리 사쿠조는?"

"아, 그렇죠. 가에이 말기, 오노와에 정착한 사쿠조는 농사를 짓는 한편 작은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쿠조는 금세공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가자시(假裝師)의 하청으로 가쿠라스즈(神楽鈴)와 철제 비야봉 등을 만들었어요."

"비야봉이 뭐예요?"

"10센티미터 정도의 철제 장난감이지요. 머리는 고리 모양이고, 두 개의 다리가 나와 있습니다. 고리를 입에 물고 발을 손가락으로 튕기면 비야봉이라는 소리가 납니다. 분세이 연간에 유행해서 아이도 어른도 모두 비야봉을 가지고 놀았어요. 어른들을 위해서는 은으로 만든 고급품도 등장해 한동안 금지된 적도 있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도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만들어졌어요."

"옛날에는 신기한 장난감이 많았군요"

"네, 그런 장난감은 요코하마의 외국인들의 눈에 들어왔죠. 이국적이고 정교한 일본 장난감은 특히 외국 업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장난감의 수출은 이렇게 해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죠. 죽방울, 수중화, 작은 우산 등이 수출 1호였다고 합니다. 사쿠조도 이런 와중에 '츠루슈도'라는 가게를 만들었습니다. 기우카아가, 코보시, 장난감 기츠키, 판카라쿠리 등이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일부는 해바라기 공예에 그대로 옮겨져 지금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츠루슈도의 장난감은 모두 소품이지만, 고급스러운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기츠키는 용수철 스프링을 사용했고, 도금 기술을 장난감에 도입한 것도 츠루슈도가 가장 빨랐던 것 같아요. 해바라기 공예는 지금도 도금 공장을 가지고 있지요."

"기츠키? 지금도 달그락달그락 새라는 장난감이 팔리고 있어요."

"그건 기츠키를 개량한 거지요. 원래는 모래 같은 건 안 쓰고 그냥 스프링으로만 만들었어요. 이 장난감은 지금의 해바라기 공예 사장인 마와리 데츠바가 아이디어를 더해 부활시킨 거라고 하네요."

"마와리 데츠바는 호도의 손자죠?"

"맞아요, 그 전에 사쿠조의 아이, 도키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순서겠지요. 도키치가 해바라기 공예의 창시자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했듯 도키치는 훗날 호도(蓬堂)라는 호를 쓰게 됩니다. 호도는 일대의 기인이어서 수많은 기행이 남아있습니다. 호도는 장난감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네요.”

"장난감 장사가 장난감을 싫어하면 곤란하잖아요."

"호도는 원래 장난감을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아버지가 한쪽 팔로 낑낑대며 장난감을 만드는걸 보아왔기에, 그에게 장난감은 고통의 상징이 되어버린거지요. 그런 경험이 있기에 본질적으로 장난감을 싫어하게 된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요."

"본업에 열중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 대신에, 돈 장사에 손을 대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돈 장사?"

"당시 멕시코에서 주조된 은화는 품질이 좋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막부에서는 대항 차원에서 양은과 동질의 안세이일분은(安政一分銀)을 주조했습니다. 이 질이 좋지 않은 은을 '도로은(ドロ銀)'이라고 불렀지요. 도로의 시세는 요코하마에서 형성되었는데, 호도는 이 도로 시세꾼으로서의 재주가 뛰어났답니다. 그래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군요. 호도의 기행 중 하나로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텐포센 (천보전)으로 바꾸어 항아리 속에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텐포센이라고 하면 그, 놋쇠로 만든 돈을 말하죠?"

"네, 덴포 6년(1895년)에 처음 주조된 텐포 통보를 말합니다. 가치는 백문으로 당백전이라고도 불렸지만, 실제로는 그 액면 가치는 전혀 없어서 메이지 신통화 체계로는 8리로만 통용되었습니다. 한 푼에 2리 부족하다는 뜻에서 조금 모자란 사람을 텐포센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죠. 그런 가치없는 텐포센을 실제로 모았을리는 없으니, 저축했다기 보다는 텐포센이라고 불릴 만한 행위를 많이 저질렀던게 와전된게 아닌가 싶어요. 그 중 하나로 호도는 오와노 땅에 우스꽝스러운 집을 지었습니다. 서양식도 아니고 일본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형용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나쁜 취향을 가진 건물로, 현지 사람들은 나사 저택이라고 부르지요."

"나사 저택이라니........"

"호도는 어둠의 영역에서는 네지베에(ねじ兵衛 / 나사 아저씨)라고도 불렸기 때문입니다. 네지베에가 만든 뒤틀린 건축물이니 나사 저택인거지요. 현재도 오노와에 남아있고, 데츠바가 살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장난감 사업이 호도에게 적합했다고도 볼 수도 있어요. 즉, 전후의 훌라후프나 닥종이 인형 등의 광기 어린 유행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장난감 업계는 상당히 투기적인 성격이 강하죠. 호도는 그 투기성을 잘 포착할 수 있었어요. 다이쇼(大正)시대에는 도르래를 이용한 장난감이 기록적인 수출을 기록하기도 했고요. 판매 가격이 1달러로 속칭 '원달러 물건'이라 불리며 수출의 꽃이었던 셈입니다. 유명한 독일 라이오넬의 기관차는 당시 가치로 한 대에 천엔이었다고 하니 일본 장난감이 얼마나 저렴했는지 알 수 있을거에요. 호도는 그 흐름을 잘 올라탔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도로은 시세에 정통했다 한들 나사 저택과 같은 자유분방한 집을 지을 수는 없었을거에요."

"호도에게 자식은 있었나요?"

"쇼이치로라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해바라기 공예를 물려받았지만, 호도처럼 될 수는 없었어요. 어쨌든 해바라기 공예는 호도 혼자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호도가 죽으면 쇼이치로가 감당할 수 없었을겁니다. 한편 장난감 업계는 쇼와(昭和)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호황을 누렸고, 양초를 응용한 폼폼마루, 용수철로 걷는 펭귄, 뒤집히는 쥐, 깡충깡충 뛰는 병아리 등 걸작이 속속 등장해 구미의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카니발용으로 활발히 수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해바라기 공예는 한 시대 전의 장난감을 세밀하게 만들어내는 방식을 택했죠. 쇼이치로는 일찌감치 일에서 손을 떼고, 젊은 두 아들이 해바라기 공예를 이어받게 되는데 그게 바로 마와리 데츠바(馬割鉄馬)와 류키치(龍吉) 형제였습니다."

"지금 사장님이신 거군요."

"네, 두 사람은 능력도 있고 일도 잘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어요. 그중에서도 쇼와 13년, 구리, 황동, 철강을 사용한 내수용 완구 제조가 금지된 것이 큰 타격이었지요. 수출액도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참담한 상황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백깨비도 도자기로 대체되고, 셀로판 풍선은 종이로, 고무공마저도 결국 사라졌으며, 두 사람은 군수 공장에 징용되어 종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장난감은 부흥했을텐데..."

"그렇죠, 하지만 수출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환율 변동과 불량 완구 등의 문제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해바라기 공예의 첫 번째 히트작은 달가닥달가닥 새인데, 데츠바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그 전후로 동생 류키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류키치의 하나뿐인 외아들이 이번에 기적과 조우한 토모히로죠"

"후쿠나가 씨의 지식에 놀랐어요. 데츠바를 많이 찾아뵈었나 봅니다."

후쿠나가 씨는 겨우 웃었다.

"아니요, 그 할아버지는 고집불통이라서 좀처럼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뭔가 구멍이라도 찾아볼까 해서 연구 좀 했죠."

"구멍이 있었나요?"

"아니요, 완패입니다. 구멍은 커녕 티끌만한 허점 하나 조차 찾기 힘들었습니다."


마이코는 토시오를 우다이 경제연구회의 모회사로 데려갔다. 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상가 건물로, 1층은 중국 음식점이었다. 건물의 크기는 니시키 빌딩과 거의 비슷한 크기인데, 다이토 흥신소는 4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네, 다섯 명의 남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마이코는 책상을 돌며 한 명 한 명에게 토시오를 소개했다. 모두 50~60대였다. 마이코는 마지막으로 층 안쪽에 앉아 있는 백발의 남자 앞에 토시오를 데리고 갔다. 다이토 흥신소의 요코누마 소장이었다.

요코누마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토시오는 그저께까지의 일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잊어버리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복서였어."

마이코가 대신 말했다.

"호오......."

요코누마는 다시 한 번 토시오를 쳐다보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 이상의 것을 이해한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더 강할까?"

요코누마는 두 사람을 비교했다.

"설마."

마이코가 웃었다.

"마이코는 유도 3단이었지?"

"그만해. 이런 곳에서."

"그런데, 어제 교통과 교도 형사가 전화가 왔다고 하지 않았어? 무슨 일이야?"

"내가 마와리 토모히로를 미행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그 사고와는 상관없겠지?"

"그래. 하지만 교도 씨는 변함없이 끈질긴 사람이야.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하니 앞으로 한번 들러볼 생각이야."

"그래. 만나면 잘 부탁해."

대동흥신소를 나오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마이코는 밥을 먹자며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카레라이스, 어때?"

어제 다방에서와 같은 분위기다. 토시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코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안돼."

토시오는 웃으며 카츠동 덮밥이 좋다고 다시 말했다.

"그럼 됐어."

마이코는 큰 소리로 주문한 뒤 가방을 열고 작은 인형을 꺼냈다.

"마사오의 가방에 들어 있었어."

"그 사람의 가방을 열어 보았어요?"

토시오는 마이코의 행동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래. 마사오는 동네 약국에서 수면제를 살 수 있는 처방전도 가지고 있었어. 나머지는 흔한 물건들이었는데, 이 인형이 특이하더군. 그래서 가져왔어. '마도죠'라는 장난감은 아무래도 이것인 것 같거든."

마이코는 인형을 토시오에게 건넸다. 마사오의 물건을 손에 넣는 것이 꺼려졌지만, 마도죠라는 말에 흥미를 느꼈다.

15센티미터 남짓한 여자아이 인형이다. 눈이 크고 뺨이 부풀어 올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양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빨간 드레스, 빨간 신발. 보기에는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형이었다. 토시오가 의기소침한 얼굴로 인형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이코가 말했다.

"등에 단추가 달려 있어. 그것을 눌러봐."

토시오는 인형의 등을 살폈다. 마이코의 말대로, 등짝의 옷감 아래에 작은 돌기가 느껴졌다. 토시오는 그 버튼에 힘을 주었다.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인형의 목이 빙글빙글 돌면서 뒤쪽을 향했다. 인형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싫다 싫다를 하는 인형이 있었다. 그런 종류일까. 그러기에는 뒤쪽을 향한 모양이 기괴했다. 토시오는 다시 한 번 등쪽의 버튼을 눌러 보았다. 그러자 인형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 얼굴을 보고, 무심코 인형을 떨어뜨릴 뻔했다. 토시오는 소스라치게 놀라 변해버린 인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이 귀까지 찢어지고 긴 독한 붉은 혀가 떨고 있었다. 두 눈이 2센티미터나 튀어나왔고, 게다가 한쪽은 빨갛고 한쪽은 흰 눈이었다. 머리는 대머리, 회색 두개골에 거미줄처럼 생긴 혈관이 거미줄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토시오가 버튼을 눌렀다. 인형이 다시 뒤로 돌아갔다. 계속 버튼을 누르자 원래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위로 향했다.

"악취미같은 장난감이야."

마이코가 비판했다.

"이 인형은 하나의 목에 두 개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 하나는 소녀의 얼굴이고 하나는 해골의 얼굴이야. 해골의 얼굴은 목 밑부분에 아래쪽으로 숨겨져 있고. 처음 버튼을 누르면 소녀의 목이 뒤로 젖혀지지. 다음 버튼을 누르면 목이 위로 올라가고 숨겨져 있던 해골의 얼굴이 위로 향하게 돼. 동시에 여자아이의 얼굴은 아래쪽을 향하게 되어 숨겨져 버리고. 목은 인형의 몸통에서 지지대가 나와서 양 귀에 붙어있는데, 머리카락으로 잘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어 있어."

"마도죠라는 것은 ‘마도녀’를 말했던거군요."

토시오는 인형을 마이코에게 돌려주었다.

"이런 인형, 팔릴 것 같아?" 

"안 팔릴 것 같아요. 모양부터가 보기 싫잖아요. 여자애들이 보면 울음을 터뜨릴 거예요. 기계적으로도 그렇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고요."

"토모히로가 죽기 직전까지 이 인형에 대해 말한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아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인형의 몸 안에 무언가가 들어있을지도…. 인형의 몸 안에 뭔가 소중한 물건이 숨겨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재보의 행방을 기록한 고문서 같은거?"

마이코는 놀란 표정으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재미있겠는데."


에노키마치서에 도착한 마이코는 마치 내 집에 온 듯이 편안한 발걸음으로 교도 형사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교도 형사는 삐뚤빼뚤한 입을 크게 벌리고 마이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이코가 없어진 후로 외로웠다고."

마이코는 여기저기서 경찰관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나한테 반했나 봐."

"뭐야. 그냥 싸움이 부족해졌을 뿐이야. 요코누마 씨는 어떻게 지내?"

"변함없어. 교도 씨를 만나다고 했더니 안부인사 전해달라고 하더군. 어제는 카츠군을 잘 돌봐주었지? 고마와."

"그거 말이야."

교도 형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쪽에서 얘기하자"

그는 일어서서 계단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2층으로 올라가서 한 작은 방 문을 열었다.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허름한 방이었다. 교도 형사는 접이식 의자를 펴서 두 사람에게 권했다.

"마이코는 왜 마와리 토모히로를 쫓아다녔지? 일 때문인가?"

"그런 것도 있지. 하지만 진짜 목적은 그 사건을 명백히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 사건... 마이코가 그만두게 된 그 사건 말인가?"

"그래, 내 뇌물 사건"

교도는 괜찮냐는 듯이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이 사람한테도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알겠어, 그 사건은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어. 에노키마치에서 마이코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를 세웠었지. 그러자 차 안에 있던 남자는 갑자기 너에게 돈을 주고 달아났어. 마이코가 그 돈을 주머니에 넣는 것을 목격한 남자가 소란을 피우며 경찰차를 불렀었고."

"그래, 확실히 나는 돈을 주머니에 넣었어. 남편의 일이 마음에 걸렸던게 사실이었거든."

"우다이 군이 과격파의 돌팔매질로 다리에 부상을 입은 직후였으니까."

"나는 잠시 망설였었어. 망설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거야. 하지만 그 차를 놓칠 생각은 절대 없었어."

"그런데 지나가던 한 남자가 마이코에게 돈을 요구했다며 욕설을 퍼부었지. 마이코는 그 남자와 철저히 맞서 싸웠어야 했어."

"다들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흔들린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어. 나는 그 자리에서 사표를 썼고."

"마이코는 원래 생각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기는 여자였으니까."

"지금은 달라졌어."

마이코는 토시오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아직 고생이 뭔지 몰랐군, 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상태로 두면 안 되겠더라고."

"우다이 군을 위해서도 말이야."

"그래, 왜 그때는 그걸 몰랐을까? 나는 경찰을 불러 신고했던 남자를 만났어. 그 남자가 얼마 전에 교통법규 위반 때문에 벌금을 많이 낸 직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정말인가? 분풀이로 그런 증언을 한 거로군."

"그리고 최근에 우연히도 나에게 돈을 준 남자를 찾았어."

"그거 참 대단한데! 두 사람의 새로운 증언이라면 마이코의 억울한 누명도 깨끗이 벗겨질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게 생겼어. 그 남자가 바로 마와리 토모히로였거든."

"......"

"대동흥신소에서 온 일 중에 토모히로가 의뢰한 신용조사가 있었어. 첫눈에 토모히로가 돈을 주었던 그 남자였다는걸 바로 알아보았지. 에노키마치도 해바라기 공예와 오노와를 잇는 길이었고. 나는 토모히로에게 칼을 들이댈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 조사 보고서를 전달한 후 추궁할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토모히로는 마사오를 데리고 갑자기 떠나려고 했어. 나는 깜짝 놀랐고, 어쨌든 비행장에서 그를 붙잡아 말만이라도 남겨두려고 했지. 그 여행길에 토모히로가 죽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채."

"벌금형에 처해진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불안한데."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구. 사실 다른 증인이 한명 더 있어."

"다른 증인?"

"토모히로의 차 뒷좌석에 한 노인이 타고 있던걸 봤어. 그 노인은 토모히로의 삼촌인 마와리 데츠바가 틀림없다고 생각해."

"노인이 그날 있었던 일을 기억할까?"

"기억하게 만들거야. 몇 번이든 찾아가서라도."

"호오, 오뚜기같군."

"내가 오뚜기라고?"

"이봐,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가나자와의 오뚜기는 미인이야.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신경 안 써. 나는 다시 복직해서 교도 씨와 맞붙을 생각이니까. 각오하라고."

"월급은 싸다구."

"알아. 지금 하는 일도 계속할 생각이야."

교도 형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마이코를 바라보았다.

"조금 만나지 않은 틈에 빈틈없는 여자가 되었네. 그나저나, 어제 사고는 신문에서 읽었어. 그 사고였구나."

"그래."

"오늘 밤이 토모히로의 철야네."

형사는 마이코의 검은 옷을 보았다.

"데츠바를 만나러 가는거야?"

"만날 거야. 하지만 철야 상황에서는 그 사건 이야기를 꺼내진 못하겠지. 그냥 얼굴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해줘."

"교도 씨, 조금 만나지 않은 틈에 인간적인 대사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