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연애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연애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08/11/24

연애의 시대 - 권보드래 : 별점 3점

연애의 시대 - 6점
권보드래 지음/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경성탐정록" 참고용으로 구입했던 책입니다.

1920년대를 중심으로 하여 "연애"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는 책으로, 솔직히 사례와 에피소드 중심의 가벼운 책이라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책 자체는 상당히 진지하고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쉽게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더군요. 그래서 읽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렸습니다. 예를 들자면 "연애"라는 말의 어원부터 학술적으로 깊이있게 다루고 있는 것 등이겠죠. 뭐 사실 그다지 인상적으로 읽지 않아서 그다지 쓸 말이 없네요...

그래도 당대의 유행이라던가 연애에 대한 다양한 참고자료 (도서, 음악 등) 을 잘 소개하고 있어서 자료적인 가치는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재미보다는 자료적인 가치가 더 있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에피소드 중심이었던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쪽이 보다 쉽고 재미있었던, 보다 제 취향이었던 책 같네요.

2020/06/21

연애의 행방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연애의 행방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히가시노 게이고설산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단편집입니다. 시리즈 2편 부터의 무대였던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이 주요 무대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단편집이라는 점 외에 다른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추리, 모험, 범죄물이 아니라 일상 연애물이라는 점입니다! 모두 일곱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호텔리어 히다를 큰 축으로, 그의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미즈키와 아키나 커플, 쓰키무라와 마호 커플, 그리고 히다가 프로포즈를 하려 했으나 실패한 미유키와 고타 커플, 마지막으로 히다와 모모미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설산 시리즈답게 이들의 연애가 대부분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에서 이루어지고요. 전작이었던 "눈보라 체이스"가 대학생의 청춘 연애 활극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연애물에 집중한 건데 그 결과물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추리 소설 작가답게 연애물이지만 약간이나마 미스터리 요소를 더하고 있다는게 마음에 듭니다. 고타가 모모미와 불륜을 꿈꾸다가 리프트에서 약혼녀 미유키를 마주한다는 첫 에피소드부터 그러합니다. 고글과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스키장의 특수 상항을 잘 이용하여 불륜남의 긴장감을 코믹하게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이 상황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고타의 얄팍함이 드러나는 반전으로 연결되는 결말로도 이어지는데 역시 괜찮았습니다. 수미쌍관식 구조인 셈인데 이야기아 아주 잘 어울렸어요.
또 히다의 프로포즈 대작전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미즈키의 프로포즈를 위한 작전이었다는 에피소드도 반전의 묘미가 느껴졌으며, 히다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해 모모미가 일부러 슈퍼볼 경기가 있는 날, 사찰 순례 여행을 제안하는 장면 역시 공정한 단서 제공을 통해 쌓아 올린 복선이 설득력있게 쓰여지는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즈키, 고타의 한 없는 가벼움은 영 별로였습니다. 30대의 진중한 연애를 그려주는게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모모미가 고타의 얄팍함을 폭로하는 에피소드가 마지막이라는건 많이 아쉬웠습니다. 히다와 모모미 커플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는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히기는 합니다. 가볍게 읽기에 적당했던 소품들이에요. 누가 죽거나, 부서지거나 하는 것 보다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더 설산에 어울리는 법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더운 여름, 시원하며 유쾌하며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08/10/17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 이철 : 별점 5점!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 10점
이철 지음/다산초당(다산북스)

이 책은 전에 읽었던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같은 시리즈로 제목 그대로 일제 강점기 시대를 중심으로 한 당시 조선의 스캔들(?) 11개를 풀어놓은 책입니다. 그야말로 "경성스캔들" 이죠.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은 읽고나서 실망이 컸지만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두 책의 차이점은 정말로 "충격적이고 몰랐던" 역사를 얼마나 디테일하게 설명하면서도 쉽고 이해하기 쉽게 묘사했는지의 여부입니다. "조선을..."은 일단 읽는 것 자체가 힘들 뿐더러, 너무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아서 실망스러웠는데 이 책은 최소한 재미만큼은 확실합니다. 물론 이 책도 제목과는 다르게 당대에 그다지 충격을 전해주지 않은 스캔들도 몇 건 다루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들도 드라마틱하다는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모든 에피소드가 기대했던 것 만큼의 충분한 재미는 전해 줍니다.

또한 11개의 스캔들 중 익히 알고 있었던 사건이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른바 "사의 찬미" 사건이나 여류화가 나혜석의 사건 두가지 밖에 없었다는 것도 책의 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아울러 이 두 사건 역시 알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자세하게, 당시의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지루한 맛은 전혀 없었다는 것도 탁월하고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친일파 대부호의 아들 장병천과 기생 강명화의 정사 사건이었습니다. 친일파 대부호의 아들과 기생이라는, 그야말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신분, 재력의 차이로 비극으로 끝난 너무나 순정 만화같고 일일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순정파적이고 비극적인 로맨스가 1920년대에 존재했었다는데 놀랐네요. 여러 권의 소설과 영화로도 가공되었을 정도로 당시에 큰 충격을 준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이렇게 유명한 이야기가 지금은 전혀 전해지지 않는 이유도 조금 궁금해 지기는 했습니다. 아마도 해방 후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던 장병천 아버지의 형제인 장택상씨의 권세로 사건을 은폐한게 아닌가 싶은데,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드러나는 친일파들의 행각은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당대 매스컴들과 이른바 "지식인" 들의 편견과 비뚤어진 시각을 보여주는 김명순 사건과 독살미인 김정필 사건도 흥미로왔으며, 유명 공산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이 다수 등장하는 대하 서사시와도 같은 "제4부 - 경성을 붉은색으로 물들인 혁명적 연애 사건"의 이야기들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불꽃같은 삶과 격동의 시대가 잘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조선과 중국, 소련, 해방 후 북한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에 정말로 조선 해방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그들의 삶, 체포와 탈옥, 탈출, 고문 등의 고난의 세월 및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남한에서는 매도되었다는 점과 북한에서는 대부분 숙청되었다는 비극적 종말까지 모두 갖춘 극적인 이야기라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당시의 여러 정사사건, 자유 연애주의자들과 신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동성애자 자살 사건 등 흥미로운 주제가 한 가득입니다. 목차만 읽어도 읽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말이죠.

역시나 "경성탐정록" 자료로서 구입한 책이었지만 의외의 재미와 새로운 역사를 알게되는 재미가 쏠쏠하여 횡재한 기분까지 드는 책으로 별점은 5점입니다. 재미와 더불어 당대의 여러 사료와 문헌을 다수 인용하고 있기에 자료적 가치까지 충분했으니까요. 일제 강점기 시대의 또다른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2005/07/06

연애의 목적 - 한재림 : 별점 1점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어느정도 흥행에는 성공하고 있는 듯 한데... 저는 보는 내내 영화가 불쾌해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언론이나 매체에서 귀엽고 솔직하다고 표현하는 주인공 박해일의 행동은 제가 보기에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한 성추행, 강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에요. 강혜정이 자포자기 상태에서 끌려다니는 것이 당연할 만큼 자신의 권위 (교생의 담당 선생으로 학점 및 졸업과 직결되어 있는)를 철저하게 이용하며 상대를 제압하는 식의 비이성적이며 잔인한 행동이 남발합니다.
이 쓰레기의 직업이 선생이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듭니다. 학교에서 여자 성추행하고 저녁에는 술먹고 하는 것 말고는 도대체 하는 일도 없어요. 선생이 그렇게 편한가?
여기까지면 그나마 이해라도 가지, 강간범과 피해자가 서로 이상한 감정, 절대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불장난 하는 행동은 더욱 황당합니다. 한마디로 막나가는 거죠.

그나마 막판에 강혜정이 박해일에게 모든 쌓여있는 울분을 토해내며 복수하는 장면 하나만은 볼만하더군요. 나름 감정이입도 되면서 영화 내내 쌓여왔던 짜증이 좀 풀리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물론 엔딩에서 강혜정이 다시 박해일을 찾아가 사랑을 시작한다는 결론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앞서 말한 성추행 건 때문에라도 점수를 줄 수 없는 쓰레기입니다. 짜증나는 영화였습니다. 제가 그다지 특이한 사고방식이나 인생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이 영화의 흥행과 호평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저는 여성 관객들이 남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이 영화로 인해 고정될까 두렵습니다.
아울러 감독에게 묻고 싶네요. 솔직하면 강간해도 되나요? 거기에 영화의 제목이 왜 "연애의 목적"이죠? 이 영화에 정상적인 연애가 등장하기나 하나요? "강간범의 최후"라면 모를까.

2011/02/03

시라노; 연애조작단 (2010) - 김현석 : 별점 2.5점

연애 조작단 '시라노 에이전시'를 만들어 운영하는 병훈과 동료들은 연애에 서툰 의뢰인의 사랑을 이루어주는 데 있어 99%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펀드매니저 상용의 의뢰를 받은 병훈은 혼란에 빠졌다. 상용의 의뢰 대상이 한때 병훈의 연인이었던 희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빅히트를 기록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죠. 설 특선으로 TV로 시청하였습니다. "시라노 드 벨쥬락"에서 따온 설정인 '사랑을 이루어주는 대행사'라는 아이디어는 최고였습니다. 전반적으로 로맨스와 코미디도 적절히 잘 섞여 있었고 말이죠.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시라노 에이전시의 작전도 각본이 치밀해서 한 편의 잘 짜인 '작전물'로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잘 만든 영화로, 과연 히트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결국 이들이 하는 것은 '사기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리 개운치는 않았습니다. 본인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전적인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실제로 영화 내에서도 송새벽의 사랑은 결국 범죄에 가까운 행위였고, 시라노 에이전시는 범죄를 도운 협력자일 뿐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바라보자면 이들의 행위는 혼인빙자 사기 행위와 다를 게 없는 행동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과다지불한 중매 사례비"가 연상될 정도였습니다.

덧붙여, 키와 외모에 직업까지 완벽한 상용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는 건 도저히 와닿지 않더군요. 제가 최다니엘의 키와 외모에 펀드매니저란 직업을 가졌다면 세상을 정말 쉽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게다가 상용이 투자한 돈을 계산해 보면, 고정 직원 4명에 작전 성공까지 약 한 달여의 기간을 가정하고 최저임금 약 4,000원 -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으로 2,816,000원 + 각종 비용 실비 정산했다고 할 때 거의 동등한 비용을 잡아서 약 6백만 원, 마지막 바다에서의 거대한 무대 장치는 고용된 인원 약 30명에 카페 등 각종 임대료만으로도 최소 2백만 원 정도 예상되므로, 세금까지 포함하면 상용은 거의 천만 원에 가까운 돈을 쓴 겁니다. 이 비용만으로도 영화의 현실성은 안드로메다로 가는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아무리 돈을 잘 버는 펀드매니저라 하더라도 정체도 잘 모르는 집단에게 선뜻 지불할 만한 돈은 아니잖아요? 하는 짓거리도 거의 사기에 가까운데... 차라리 희중에게 직접 투자하는 게 훨씬 가성비가 좋았을 겁니다.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앞서 말했듯 잘 만든 영화이고 재미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마음 편히 즐기기에는 제가 너무 나이가 들었고, 추리 애호가의 피가 많이 흐르는게 문제네요.

2009/02/02

연애곡선 - 고사카이 후보쿠 / 홍성필 : 별점 2점

연애곡선 - 4점
고사카이 후보쿠 지음, 홍성필 옮김/파라북스

고사카이 후보쿠라는 전혀 모르는 일본 작가의 단편집입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1920년대에 의학전공자가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추리 소설을 썼다는 소개만 보고 구입했습니다. 제가 워낙 고전을 좋아라 하니까요. 

전부 1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꽁트라 해도 어울릴정도의 굉장히 짤막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반전"에 많이 기대고 있는 "기묘한 맛" 류의 작품들이라는 점, 그리고 의사나 의학지식이 중요한 작품이 많다는 것도 특징이고요.

하지만 아쉽게도 기대에 값하지는 못합니다. 당시에는 충격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읽기에는 낡은 느낌이 너무 간한 탓이에요. 너무 뻔하거든요. 
에도가와 란포의 스승이라는 작가 소개글 처럼 뭔가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란포 수준의, 지금도 먹히는 스멀스멀한, 또는 변태적인 묘사가 하나도 없이 단지 구성만 유사할 뿐 너무 담백해서 싱거워보이기까지 하고요. 반전이 괜찮은 작품이 몇개 있긴 한데 이 담백한 묘사 때문에 빛이 많이 바래는 것 같아요.

이런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평범한, 또는 평범 이하의 자료적 가치밖에 없는 작품집의 번역 소개보다는 좀 더 유명한 작품이 소개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좀더 상세하게 작품별로 설명하자면, (뻔한 내용이 많아 Copy & Paste 신공으로 작업합니다)
보기 드문 범죄 : 3인조 보석 강도일당 중 2명이 보석을 삼키고 죽은 다른 1명의 위장을 경찰에게서 빼내오기 위하여 분투하는 이야기. 지겨울 정도로 뻔하고 설득력도 없지만 반전 하나만큼은 괜찮았습니다. 물론 지금 보면 좀 뻔하기도 하지만요...^^;; (1)

얼간이의 복수 : 자신을 무시한 환자와 선배 의사에게 복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의학전공자 출신다운 의사와 환자를 대상으로 한 복수극으로 당시에는 무척 충격적이었을 것 같은 작품입니다. 물론 지금 보면 좀 뻔하기도 하지만요...^^;; (2)

연애곡선 : 표제작입니다. 란포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광기와 애정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연애곡선" 이라는 이론도 나름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기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죠. 그러나 아쉽게도 반전이 너무 뻔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더군요.

메두사의 머리 : 섣부른 장난이 불러오는 비극에 관한 짤막한 꽁트. 간경병에 대한 증상을 작품에 잘 녹여내고 있다는 점은 좋지만 그 외에 특기할 점은 별로 없네요.

수술 : 식인에 관련된 괴담 꽁트로 반전의 맛이 괜찮았던 작품이죠. 너무 짤막해서 다른 이야기는 할게 없습니다...

죽음의 키스 : 콜레라의 전염에 관련된 이야기로 장황하긴 한데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유전 : 형법학에 따른 꽁트. 형법학의 1조항을 가지고 풀어낸 이야기인데 아이디어가 참 기발해서 마음에 들은 작품입니다.

시체양초 : 여름날 밤 순간적으로 지껄이는 창작괴담 수준의 꽁트입니다. (1)

어리석은 자의 독 : 아비산 중독으로 죽은 노부인 사건에 대한 단편인데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확실하면 그냥 체포하면 될텐데 너무 극적인 무대를 만들려고 억지스러운 설정을 가져다 붙여 놓았거든요. 추리적인 과정은 좋았기에 아쉬움이 더 큽니다.

혈우병 :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혈우병과 인간심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으로 뭔가 2% 아쉽더군요. 150세 먹은 할머니가 피를 흘리게 된 이유같은게 더 설명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안락사 : 반전이 인상적인 꽁트. 물론 지금 보면 좀 뻔하기도 하지만요...^^;; (3)

안마사 : 여름날 밤 순간적으로 지껄이는 창작괴담 수준의 꽁트입니다. (2)

투쟁 : 조금은 독특한 정신분석학 이론을 가지고 전개하는 작품으로 이 작품집의 베스트로 꼽을 만한 완성도 높은 수작 단편입니다. 의학이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물론이고 살인에 대한 동기, 그것을 밝혀내는 과정과 마지막의 암호트릭까지 다양한 장치가 독자를 즐겁게 해 줍니다. 암호트릭이 조금 유치하고 너무 전문적, 설명적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야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이죠.

2012/05/29

완전연애 - 마키 사쓰지 / 김선영 : 별점 2.5점

완전연애 - 6점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마키 사쓰지의 작품으로 (굉장히 낯선 작가인데 꽤나 평이 좋아서 읽게 되었네요. 프로필을 보니 오랜 경력을 지닌 작가라서 좀 놀랐습니다) 일본 서양화의 거장 나기라 다다스 화백, 본명 혼조 기와무를 주인공으로 하여 2차대전 직후, 쇼와 43년(1968), 쇼와 61년(1986) 세 건의 사건을 펼쳐 그리는 대하 장편 추리 연애 드라마입니다. 크게 연애물과 추리물,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이죠.

먼저 연애물 속성부터 살펴보지요. 사랑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여 사건을 저지르고, 복수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러나 혼조의 사랑은 약 칠십여 년에 걸친 그의 일생과 함께 다루어질 정도로 장대하기 때문에 스케일 면에서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득력 부분에서 별로 와닿지 않아서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어도, 최소한 유사 작품들과 차별화는 됩니다. 그리고 제가 연애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딱 한 번의 관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또 다른 주변인의 존재 등은 "노르웨이의 숲" 느낌도 전해주는 등 연애물로서는 제법 괜찮은 수준이 아닌가 싶었어요.
마지막의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마스코가 등장할 것은 예상했지만 KIWAMU => MIWAKU라는 애너그램을 이용한 이름이라는 장치가 꽤 그럴싸했고, 혼조 임종 시의 마지막 말과 그에 얽힌 마스코의 상념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결국 진상이 혼조 혼자만의 착각으로 한 여자만 바라본 것이라는 허무한 결말입니다. 이거 참... 무려 세 건의 범죄가 얽힌 한 대화백의 일대기가 고작 장대한 짝사랑 이야기라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도모네의 밀당에 넘어간 희생자로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여자가 제일 무서운 것 같습니다.

또 낡아 보이는 여러 장치들이 좀 거슬리더군요. 평생 단 한 번 가진 하룻밤 관계로 아이가 덜컥 생겼다는 설정이 대표적이겠죠. 무슨 정자왕도 아니고.... 그 외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하는 관계 설정도 진부했고요.

추리적 속성도 첫 번째 사건은 혼조 기와무의 시선이라서 사건과 동시에 진상이 밝혀지지만, 이후 두 건은 혼조의 제자 미와쿠의 시선이라 마지막 부분에서 진상이 밝혀지는 독특한 전개 방식은 매력적입니다. 첫 번째 사건의 경우, 식칼로 첫 번째 상처를 위장한다는 트릭과 대나무 조릿대 등의 디테일한 소품 및 미 군정 당시 시대 상황, 피해자의 도착증적인 성벽에 대한 증언과 같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잘 맞물리는게 굉장히 좋았고요. 이 사건 하나만큼은 별 네 개가 충분하다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극한의 밀실이라는 두 번째 사건,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이 사용된 세 번째 사건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진상을 너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제가 추리 애호가로 쌓아온 나름의 덕력도 있겠지만, 트릭이 너무 쉽고 의외성이 별로 없어요. 시공을 초월한 단도에 의한 살인과 발자국 하나 없는 밀실이라는 만화 같은 상황 자체가 자살을 반증하는 요소잖아요? 솔직히 경찰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게 더 의외입니다. 별명에 대한 진상 등 디테일한 부분의 장치가 몇 개 눈에 뜨이기는 하나 딱히 특출난 수준도 아니고요.

세 번째 사건은 범인의 오랜 고민과 노력이 투입된 나름 거대한 장치가 사용되었고, 해결에는 여러 관계자 - 미와쿠, 오세키에다가 탐정 마키 사쓰지까지 -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가장 공을 들인 트릭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기부터 문제입니다. 외도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사실을 진짜 남편이 깨달았다고 살의를 품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게다가 트릭을 만들기 위한 억지도 지나쳤습니다. 용의가 갈 수 없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모습을 드러내어 피해자를 유인한다는 발상, 알리바이 트릭을 위해 샴쌍둥이까지 등장시킨 설정은 어이를 상실케 했거든요. "쌍둥이를 등장시키면 안 된다"라는 녹스의 규칙을 딱히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집 가정부에게 증언을 시키기 위한 트릭에 들인 공치고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공정성도 떨어져서, 어렸을 적 자는 모습에 대한 술회라든가 가슴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가 정보를 얻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치였어요. 게다가 3억 엔 사건까지 녹여내려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였습니다.

그래도 혼조라는 인물의 일편단심, 변치 않는 애정을 그리는 장대한 드라마가 당시 일본의 사회상과 얽혀 현실적으로,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그려져 사백여 페이지가 넘어가는 대장편임에도 쉽게 읽히는건 분명합니다. 여러 호평에는 수긍이 가네요. "회귀천 정사"처럼 첫 번째 사건까지만 잘 정리된 중편이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도 드라마와 추리 모두 평작 수준은 충분히 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딘가 긴 여행을 떠나실 때 적절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2010/06/13

이니시에이션 러브 (イニシエ-ション·ラブ / 2004) - 이누이 구루미 / 서수지 : 별점 3점

이니시에이션 러브 - 6점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북스피어

Side-A
시즈오카 대학에 다니는 "나"는 친구가 불러낸 미팅 자리에서 마유코를 보고 한눈에 반해 교제를 시작하게 된다.
Side-B
나는 시즈오카에서 도쿄로 파견된 후, 마유코와 원거리 연애를 계속하지만 사내 동료인 이시마루와 바람을 피우게 되는데...


연애 소설과 미스터리의 완벽한 조화라는 거창한 카피를 달고 있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작가 이름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았고요.

그런데 생각과는 좀 많이 달랐어요. 미스터리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았거든요. 왜냐하면 사용된 "서술 트릭"이 "한번 속여보겠어!" 라는 생각이 지나쳤던 탓입니다.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어요. 서술 트릭은 "화자"와 "시점"의 변경이 대부분이라는걸 이제는 추리 애호가라면 다들 알고 있는 것이라 진부하기도 했고요.

또 교묘한 장치와 단서를 적절히 배치한 것은 좋았지만 해설이 없이는 100%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일본의 1980년대 (정확하게는 1987년) 문화를 기반으로 한 장치가 많기 때문인데, 이렇게 특정 장소와 지역에 국한된 단서라면 공감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죠... 그 외에도 이야기의 핵심인 마유코가 양다리를 걸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 그리고 첫 미팅때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도 공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서술 트릭을 적절하게 연애 소설에 녹여낸 것은 독특했어요. 제목 그대로 통과의례와 같은 가슴 아픈 첫 사랑 이야기로는 완성도가 높고요. 그 외의 자잘한 장치들 - 예를 들자면 옛날 LP판처럼 Side A-B를 구분한 형식과 소제목으로 당시 유행가 제목을 가져다 쓴 것도 작가의 의도였다는 등 - 도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 등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 제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90년대 초반 한국이 무대였더라면, 그래서 추리적으로도 공감할 부분이 많아졌더라면 별점 4점 이상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임에는 확실합니다. 80년대에 청춘을 보냈더라면, 그리고 이 작품 안에 등장하는 장치들을 같이 즐길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은데 그게 좀 아쉬울 뿐이네요.

2009/03/08

경성 자살 클럽 - 전봉관 : 별점 3점

경성 자살 클럽 - 6점
전봉관 지음/살림

황금광시대, 경성기담럭키경성에 이어지는 전봉관의 경성 관련 서적 네번째 작품입니다. 출간된지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고 구입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식민지 조선의 경성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고 1부는 "근대 조선의 사랑과 전쟁", 2부는 "근대 조선 잔혹사" 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작들과 비교한다면 재미와 사료적 가치는 좀 떨어진다 생각됩니다.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등 유사 도서에서 이미 접했던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죠. 1부에서 많이 다룬 연인들의 "정사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러한데, 대표적인 것은 윤심덕과 김우진의 현해탄 정사와 평양 명기 강명화 정사사건, 그리고 2부의 홍옥임, 김용주 동성애 정사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또 몇몇 이야기의 경우에는 새롭고 재미있긴 했지만 관련 기사 한두건의 내용을 통하여 이야기를 재조명하고 있기에 탄탄한 느낌이 부족해 보이기도 했고요. 예를 들자면 "상하이 국제 삼각연애 살인사건" 의 경우는 내용 전체가 "개벽" 1934년 12월호 "국제 삼객애의 혈제"에서 발쵀한 내용이더군요.

물론 전봉관씨의 몇 안되는 자료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능력은 여전히 돋보이고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접했던 사건들의 이면을 설명한다던가 - 윤심덕, 김우진 사건의 경우 후일담이라 할 수 있는 "생존설"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 하는 부분은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으며 입시 지옥에 관련된 내용 같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기에 책 자체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그 외에 독립운동에 관련된 이야기도 재미있었고요.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등장하는 것은 경성 관련 도서를 많이 읽다보니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좀 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새롭게 알게된 내용이 많았더라면 4점은 충분히 줄 수 있는 책인데 아쉽네요. 그래도 경성을 무대로 한 창작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군말하기 어려운, 참으로 고마운 책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2009/05/08

Fantastique 판타스틱 2009.봄 - Vol.20 : 별점 4점

Fantastique 판타스틱 2009.봄 - 8점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페이퍼하우스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가이신 김내성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호입니다.

월간일때 몇번 뒤적이긴 했지만 이전에는 쟝르문학 전문이라도 SF 성향이 좀 강해서 별로 눈길이 가지는 않았는데 이번호는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기획된 특집호더군요. 추리소설 애호가로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서 반드시 구입할 예정이였지만 형이 먼저 구입했길래 낼름 빌려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김내성 선생님 특집은 총 4편의 단편 및 라디오 방송 대본, 그리고 김내성 선생님의 아들인 카이스트 교수 김세헌의 짤막한 추모담, 김내성 선생님의 일생을 총 망라한 연표, 재일한국인 리켄지의 김내성 선생님의 데뷰 당시 및 해방 후 한국 문단의 분위기를 통해 선생님의 장르문학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는 역사성 짙은 에세이인 "데뷰시절의 김내성", 마지막으로 전봉관의 경성 스케치 시리즈라 할 수 있는 특집 에세이 "마인 속 경성과 경성문화"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만큼만 해도 팬으로서 굉장히 충실한 기분이 들 정도의 많은 분량 (220여 페이지) 이니 정말 대단하죠. 페이지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계간지의 위력일까요?

그러나 선생님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는 항상 느껴왔던 아쉬움이 남네요. 아울러 추리물도 좋지만 한편 정도는 "비밀의 문" 에 실려있는 류의 변격물 취향 작품을 실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실려있는 작품을 보다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면, 제일 앞에 실려있는 "탐정소설가의 살인"은 일단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된다는 점에서 가치는 충분합니다. 실제 연극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탐정소설가 "유불란"이 직접 극본을 쓴 뒤, 사건 주요 인물들을 주연으로 연극으로 상영하여 진상을 폭로한다는 설정도 충분히 재미있고요. 그러나 공들인 설정에 비해서 트릭이 조잡하고 결말이 너무나 유치할 뿐 아니라 유불란 탐정이 한마디로 ㅂㅅ으로 등장하기에 도저히 좋은 평을 해 줄 수가 없더군요.
두번째 작품인 "타원형의 거울"은 너무 많이 소개된 작품이라 좀 식상하죠. 물론 선생님의 기념비적인 데뷰작이자 대표작이라 빼긴 좀 어려웠겠지만 지도를 새로 그린 것 이외에는 새로운 점이 전혀 없어 지루했습니다.
네번째로 실려있는 "히틀러의 비밀"은 셜록 홈즈 시리즈 "여섯개의 나폴레옹 흉상"을 라디오극으로 번안한 작품인데 창작의 여지는 거의 없이 번안에 머물고 있어 평가하기가 난감하더군요. 약간의 창작이 들어간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 등의 요소는 추리물로 보기 힘들정도로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한마디로 완성도가 낮습니다.
그나마 세번째 작품인 "연문기담"이 올드미스의 결혼을 위한 독특한 연애-사기담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연애편지의 진위에 대한 추리적 요소가 살짝 삽입된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트릭이라 하기에는 어렵지만 경쾌한 작품에 양념역할은 톡톡히 해 주거든요. 오헨리 필도 살짝 나는 것이 그간 알고 있던 김내성 선생님 작품과 분위기가 달라 무척이나 즐겁게 읽었답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품의 수준이야 익히 알고 있었던 작품이고, 사실 이번 특집은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습니다. 방대한 내용 만큼이나 실속있는 내용이 가득하고, 추리소설과 추리소설가를 핵심으로 하는 당대 경성에 대한 자료들이라 경성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특집임에 분명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전봉관의 "마인 속 경성과 경성문화" 가 제일 좋았던 것 같지만, 그 외의 글들 모두가 유익했다 생각되네요.

이번호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김내성 선생님 특집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 중에서 눈여겨 본 것을 꼽아보자면, 먼저 코넬 울리치의 단편 "세시 정각"이 있습니다. 바람난 아내를 징벌하기 위해 아내가 잠깐 집을 비운 틈에 시한폭탄을 장치하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서스펜스의 대가 다운 긴박한 상황의 연출이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말부분이 너무 진부한 편이라 평작 수준에 머물고 말았네요. 이런 류의 단편은 워낙에 많이 있기도 하죠.
문영의 단편 무협소설인 "혈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적도인 "혈도"에 대한 강호의 소문과 그 소문의 원인을 다룬 짤막한 단편인데 의외의 요소가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문을 이용하여 돈을 번다는 시장논리가 처음으로 도입된 무협지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요.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스테레오 타입 -술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절망과 고독밖에 없는 무림 최고의 살수 - 이 아닌가 싶긴 한데, 셜록 홈즈 스타일 추리소설 창작가로서 할 말은 아니겠죠..^^;;
그 외에는 원사운드의 만화가 괜찮더군요. 신간소개 위주의 짤막한 만화로 그야말로 쉽게쉽게 막 그린거 같은데도 요점을 잘 짚고 있어서 빠져드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인체모형의 밤"은 덕분에 구입 예정입니다.

결론적으로, 별 4점은 충분히 줄만한 가치가 있는 특집호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절반 정도는 눈이 잘 가지 않는 연재물이나 기획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과연 다음호를 사게될지는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그나마 잘 나가는 듯 했던 판타스틱이 계간지 전환되었다니 (그리고 지금 보니 절판상태...;;)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추리 문학 전문 잡지의 꿈 역시 저~ 멀리 사라져 가는것 같네요. 1935년 김내성 선생님의 "타원형 거울"에 등장하는 추리잡지 "괴인"이 1만부가 팔리는데, 70여년 뒤의 대한민국은 1만부는 커녕 3천부도 소화하기 힘든 수준의 시장이 되어버렸으니 선생님께 죄송할 뿐입니다.

2004/01/30

롱 바케이션~!

이 드라마는 일본 전통 신부복을 입은 여자가 거리를 달려가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그 여자는 30살의 모델 미나미(야마구치 토모코)입니다. 시간이 다 되어도 신랑이 오지 않자 본인이 직접 신랑이 살고있는 맨션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 하지만 약혼자는 룸메이트인 음악 교실 선생 세나(키무라 타쿠야 분)만 남겨두고 이미 짐을 싸서 나가버린 상태. 어이없는 약혼자의 배신으로 결혼도 못하고 맨션과 저금한 돈을 모두 포함한 결혼 자금까지 털린 미나미는 참으로 넉살 좋게 세나(키무라 타쿠야 분)의 집에 얹혀 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세나도 미나미의 뻔뻔하지만 밉지 않은 태도와 딱한 사정에 동거를 허락하게 되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둘은 동거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 생활 속에서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허풍을 떤 사실도 들키고 서로의 성격 차이로 여러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둘은 이러한 생활 속에서 서로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아가게 됩니다. 그 와중에 세나가 짝사랑하는 료코와 미나미의 남동생 신지, 미나미의 모델시절 팬이었다는 프로 카메라맨 스기사키상이 등장하고 서로의 사랑이 교차하게 됩니다.

하루에 한두편씩 띄엄띄엄 보다가 드디어 다 보게 된 드라마입니다.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죠^^ (트렌디 드라마가 뭔가 하고 찾아보니 “감성적이고 유행에 민감하고 도시인들의 삶과 사랑을 가볍게 풀어낸 드라마” 라고 하더군요.)

내용은 위의 줄거리처럼 7살이나 연상이며 조금은 대책없고 주책없는 연상녀 미나미의 밉지않은 매력과 조금 얼빠지며 순진한, 연애에 쑥맥인 세나라는 연상녀 : 연하남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사랑 이야기입니다. 데뷰 초기의 히로스에 료코와 마츠 다카코도 조연으로 출연하고(재미있는건 히로스에 료코의 극중 이름이 “다카코”이고 마츠 다카코 극중 이름이 “료코”죠) 다케노우치 유타카도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뻔한 내용이지만 상당히 발랄하고 유쾌한 대사들과 상황 설정 (특히 휴대폰이 없던 시대의 아날로그 연애의 맛이란!) 등으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주제가 “LaLaLa Lovesong”의 매력도 역시 빼 놓을 수 없겠죠.
미나미가 홀로 서기를 하는 것 처럼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세나와 결혼하는 것으로 안정을 찾는다는 어거지같은 해피 엔딩은 조금 불만이지만 뭐 드라마니까....^^

하지만 무려 8년전의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그 격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영할 지도 모르겠지만 한번쯤 볼만한 드라마였다고 생각됩니다.

PS : 그나저나…. 미나미에게 청혼하고 자기 아들까지 소개시켜줬다가 딱지맞은 스기사키상이 저는 제일 불쌍합니다. 끝까지 매너를 지키며 행복을 빌어주는 아름다운 중년의 퇴장 모습까지 보여주네요….ㅠ.ㅠ

2013/12/06

오시리스의 눈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이경아 : 별점 3점

오시리스의 눈 - 6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만장자이자 이집트학의 권위자인 존 벨링엄이 친척집에 방문한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실종되었다. 근처에서 실종 당일 몸에 지니고 있었던 스카라베 장식만이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2년 후, 의사 버클리는 왕진 중에 존의 동생 고드프리를 진료하게 된 인연으로 그의 딸 루스와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존의 실종과 그의 기이한 유언으로 인해 궁핍해진 고드프리와 루스를 돕기 위해, 그리고 불거진 유산 문제로 버클리는 은사인 손다이크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뒤이어 늪지대에서 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되는데...

오스틴 프리먼의 명탐정 손다이크 박사가 활약하는 장편. 1911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이 책까지 나오다니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네요.

국내 출간된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작품입니다(그래봤자 서너권이지만...). 대표작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네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미있거든요. 사건은 딱 한 개, 존 벨링엄 실종 사건 뿐인데 복잡한 유언장을 엮어서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두 개의 트릭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트릭 두 개 모두 지금은 널리 알려진 단순한 것이지만 사건에 딱 맞게 적절하게 쓰여 감탄을 자아내고요. 단순해서 설득력도 높습니다. 특히, 제목에서부터 중요하게 언급하는, 고대 이집트 유물을 이용한 기상천외한 사체 은닉 트릭이 볼거리입니다. 지금은 흔한 수법이지만 작품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원조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하여 트릭을 파헤쳐 진상을 밝혀내는, 고전 "정통 본격물"다운 미덕도 장점입니다. 추리의 과정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넘치는 것은 당연하고요. 과학 수사로 유명한 손다이크답게, 시대를 앞서간 증거 수집 방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X선을 이용하여 미라의 내부를 촬영하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니까요.

아울러 중간중간에 버클리와 루스의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가 적절하게 삽입되는 식의 완급조절도 아주 탁월합니다. 이러한 연애이야기는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과도 비슷해요. "붉은.."에서 화자였던 저비스가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격상(?)되었을 뿐, 그의 후배인 버클리가 동일한 역할로 등장하여 읽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애정 행각을 큰 비중으로 펼친다는 점에서요. 저는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적인 면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인데 출간 시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낸 것 같네요.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로, 출간 시대를 고려하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의 동기가 설득력있게 그려지지 않은 점입니다. 유언장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유언장의 맹점을 이용해 거금을 확보할 생각으로 잔꾀를 부렸다는 설정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명되지 않거든요. 그의 말대로 사건의 발단이 애시당초 완전한 우연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유언장의 맹점을 활용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전혀 모르겠어요. 작중 손다이크 등의 입을 빌어 설명되듯 "그의 동생에게 유산을 남겨주기 위한" 목적의 유언장인데 말이죠. 벨링엄을 살해하고 시체를 다른 곳에 숨길 생각이었을까요?

또 이 동기를 독자는 마지막 순간에서나 알 수 있다는 점도 정통 본격물로는 약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동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으니, 독자가 범인을 추리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손다이크 박사의 추리대로 범인은 그 사람일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혐의를 둘만한 설정이 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아울러 이집트 미라 안에 시체를 넣는다는 생각도 기발하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었을것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으로 묘사되는데 그러한 작업을 할 시간과 장소가 있었다면, 다른 식으로 처리하는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었겠죠. 예를 들어 염산같은걸로 녹인다는 식으로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쓰여진 시대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재미를 생각한다면 별점 3점은 충분하죠. 저와 같은 고전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책도 예쁘게 잘 나왔지만 뒤의 해설 역시 꽤 풍성해서 좋네요. 무엇보다도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 연재로 유명한 유영규 기자가 쓴 글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2015/11/30

화과자의 안 - 사카키 쓰카사 / 김난주 : 별점 3점

화과자의 안 - 6점 사카키 쓰카사 지음, 김난주 옮김/블루엘리펀트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가벼운 일상계 단편집입니다. '키 150cm, 체중 57kg'의 주인공 우메모토 교코가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 백화점 지하에 있는 화과자점 "미쓰야"에서 일하게 된 뒤 만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다룹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으로 충동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괜찮았습니다. 쉽게 읽히는 재미는 물론 추리적으로도 제법이며 잘 몰랐던 화과자에 대한 현학적인 매력도 넘친 덕분입니다.

캐릭터들의 매력과 배분도 아주 적절합니다. 사건 해결은 괴인 츠바키 점장이 맡고, 이야기는 우메모토 교코가 빠른 눈치와 추진력으로 템포 있게 유지시키며, 화과자에 대한 지식은 게이 성향이 있는 화과자 장인 지망 베테랑 아르바이트생 다치바나가 덧붙여 주는 식으로 황금 분할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연산 - 파워 - DB의 3위 일체네요.

허나 화과자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추리를 따라갈 수 있기에 평범한 일반인, 그것도 한국인 독자가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상계이지만 전문가적 지식이 발휘되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나 "명탐정 홈즈걸"과 같은 스타일이지요.
물론 현학적인 재미로 보상해 주는 만큼 단점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갤러리 페이크"가 될 테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추리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야기도 소소하니 따뜻하고 즐거우며 맛있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각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화과자의 안"

회사원 아가씨가 생과자 "오토시부미" 1개에 "투구" 9개를 사간 이유에 대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츠바키 점장은 오토시부미를 특정 인물 1명 앞에 내어 놓을 필요가 있었으며, 그 이유는 "오토시부미"의 사전적 의미 —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쓴 무기명의 문서' — 에 따라 그 과자를 받는 사람은 뭔가 부정이 있다!라고 다도에 박식한 상관에게 넌지시 고하기 위함이라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회사원 아가씨가 과자를 사러 왔을 때에는 사건이 해결된 것을 알아차리고 '액막이용 과자'인 "물의 달"을 바로 내어주었지요.

화과자에 대해 잘 모르면 추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시작으로 캐릭터들의 소개와 더불어 이 작품이 화과자에 대한 일상계 추리물이구나! 라는 것은 충분히 알려줍니다. 현학적인 재미도 넘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데이트"

견우와 직녀가 만난 뒤의 칠석 과자 "까치"를 사러 온 여대생은 대만에 있는 남자친구와 원거리 연애 중으로 비행기를 타야 했고, 단골인 스기야마 할머니가 사 가는 과자는 사실 불단에 올릴 목적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동일한 문제가 여전합니다. 일반인이 추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나마 여대생의 원거리 연애 에피소드는 독자도 추리할 만한 여지가 있긴 했습니다만, 스기야마 할머니 이야기는 정말 무리예요. 특히 할머니의 독특한 복장이 사실은 화과자의 "상제" 색 조합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일반인의 영역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전문가적 지식을 토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캐릭터들이 나름 성장하기도 하고, 츠바키 점장의 개인사도 살짝 엿보이는 등 읽는 재미도 충분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싸리와 모란"

야쿠자가 와서 시비를 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치바나의 사부가 가게의 전문성을 시험하느라 이런저런 전문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는 이야기.

요약된 줄거리 그대로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화과자에 대한 정보 전달이 주인 탓에 일상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갤러리 페이크"에 더 가까워요.

허나 워낙 재미있는 내용들이라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재미있었어요. 화투에 멧돼지와 싸리가 반드시 같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멧돼지 = 보탄(모란) → 모란떡은 오하기 → 하기는 싸리, 그래서 같이 그린다라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인데, 다른 작품에서 접하기 힘들 뿐 아니라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야쿠자스러운 말투와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해서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신 캐릭터인 다치바나의 사부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작품과 잘 어울렸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스위트 홈"

백화점 내 양과자집 "황금사과"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가쓰라자와가 팔다 남은 케이크를 "오빠"에게 가져가는 이유는?

"오빠에게 가져간다"는건 착각이었고 케이크를 "오빠", 즉 나이가 많은, 전날 팔다 남은 케이크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인데 실제 자료 조사가 토대가 된 듯한 일종의 언어유희가 돋보였습니다. 화과자에 대해 몰라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큰 장점이지요.
곁들여 주류 코너에서 일하는 구스다 씨가 떨이 도시락을 사재기한 이유가 함께 밝혀지는 구성도 참 좋았습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아울러 양과자와 화과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양과자와는 다르게 화과자는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이 나라의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 관혼상제를 채색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인데 정말 공감됐습니다. 한천은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는 일종의 화과자 부심(?)도 귀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쓰지우라의 향방"

미쓰야에서 판매한 새해맞이 과자 "쓰지우라" 안에서 이상한 암호문이 나와 그것을 해독한다는 내용으로 암호 해독이 중심인 작품입니다.

종이는 누군가 바꿔치기한 것에 불과하고, 암호문은 일본어로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화과자가 중요하게 사용되지도 않아서 시리즈와 연계성도 조금 떨어지고요.

점장이 기다리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2화에 언급된) 설명되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하지만, 점장의 연인이었던 과자틀 장인 "형풍"이 죽기 전 남긴 과자틀 반쪽을 안짱이 골동품 벼룩시장에서 건진다는건 우연이라도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도 별로고 작위적이라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여러모로 마무리가 약한 느낌입니다.

2006/05/07

달콤, 살벌한 연인 (2006) - 손재곤 : 별점 4.5점!

달콤, 살벌한 연인 (2disc) - 10점
손재곤 감독, 박용우 외 출연/CJ 엔터테인먼트

서른이 넘도록 연애한번 못해본 노총각 대학 영문과 강사 황대우. 우연찮게 다친 허리통증과 짝사랑한 후배와 친구와의 교제를 알게 된 후 외로움에 몸부림 치다가 아래층에 새로 이사온 여인 이미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점차 애정이 깊어질 수록 미나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결국 미나가 미대생이며 독서를 좋아한다고 했던 모든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게되는데 사실 그녀에게는 더욱 큰 비밀이 있었으니...

이 영화는 꽤 유명한 배우인 박용우가 나오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저예산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정된 셋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컬트성 짙은 괴작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사실 "김치냉장고가 다 망쳐놨어" 라는 멘트가 인상적이었던 예고편을 너무 재미나게 봐서 꼭 보고싶었던 차에 연휴를 기회로 보게 되었네요.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은 한마디로 "박용우 최고!" 입니다. 원래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심스러울 정도로 멋없고 지루한 노총각 황대우라는 캐릭터와 정말로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이 영화 전편에 걸쳐 보여지는데 그 캐릭터 재현도는 "올드보이"의 최민식씨와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내 여자친구가 사실은 연쇄살인범"이라는 기본 아이디어 자체가 워낙 탁월하고 그것을 코믹한 구성의 시나리오로 옮긴 솜씨가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보면 심각하고 잔인한 상황이며 전부 4명을 살해한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거부감 없도록 절묘하게 전개하는 구성덕에, 또한 장면장면과 대사가 너무나 웃겨서 영화 보는 내내 정말 즐거웠습니다.
살인이라는 범죄가 등장하고 시체 은닉에 대한 한국적 발상 등 범죄영화적인 측면에서도 볼거리가 많아서 추리 매니아로서 더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추리-스릴러 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완전범죄에 대한 이야기로 허술하긴 하지만 문제가 많지 않게끔 제법 잘 짜여져 있기도 하고요. 하드보일드처럼 하나의 살인이 살인을 부르는 연쇄 구조 역시 친숙하지만 설득력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이미나 역의 최강희씨의 연기가 너무 처져서 몰입이 조금 힘들었던 것과 조금 어설픈 결말과 에필로그 장면이었습니다. 결말은 나름의 해피엔딩을 어떻게든 구현하려는 감독의 의도로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밋밋해서 영화 전편에서 느껴지던 기발하고 신선한 느낌이 많이 퇴색된 것 같고 에필로그는 정말 사족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 같으면 황대우가 신혼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이미나와 조우하고 이미나가 또다른 살인(?)을 암시하는 결말로 찍지 않았을까 싶은데 좀 약하고 아쉽더군요.
그래도 몇몇 결점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본 국내 영화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영화 중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저예산인 티가 좀 나면서 완성도 면에서는 약간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연기로 만들어진 볼만한 영화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 명대사는 :
"운전면허도 없는 년이 사람은 왜 죽여!!"

2008/09/26

간만의 도서 구입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죠. 알라딘에 가지고 있던 중고 도서를 판매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확보한 돈으로 정말 오랫만에 책을 구입했습니다.


구입한 책은
  • 부랑청년 전성시대 - 소영현
  • 샤라쿠 살인사건 - 다카하시 가츠히코
  • 이누가미 일족 - 요코미조 세이시
  • 커피견문록 - 스튜어트 리 앨런
  • 하얀토끼가 도망친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 사랑이 없어도 먹고살수 있습니다 - 요시나가 후미
  • 연애의 시대 - 권보드래
  • 통곡 - 누쿠이 도코로
  • 사또인다하우스 - 김진태
  • 악마의 정원에서 - 스튜어트 리 앨런
입니다.

"부랑청년전성시대"와 "연애의 시대" 는 경성탐정록 자료 조사차 구입한 책. "커피견문록"과 "악마의 정원에서"는 저의 또다른 취미인 음식문화관련 저서라 구입한 책. "사또인다하우스"는 제가 흠모해 마지 않는 김진태 작가의 신작이라 구입하였으며 나머지는 다 추리관련 도서들입니다. "사랑이 없어도 먹고살수 있습니다"는 중고샵에서 팔길래 반쯤 충동구매한 책이고요. 
거의 30권에 가까운 책을 판매했는데 신간 구입은 10여권으로 그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10월까지는 뿌듯하게 즐길 만한 수량이라 무척 만족스럽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만화책부터 독파해 나가야 겠습니다.

2023/04/02

유럽의 시간들 - 루시 나이즐리 / 김보은 : 별점 2점

유럽의 시간들 - 4점
루시 나이즐리 지음, 김보은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부제는 '스물일곱 뉴요커 루시의 그림 여행 일기.' 얼마전 읽고나서 별점 4점을 주었던 <<맛있는 인생>>의 작가 루시 나이즐리의 유럽 여행기입니다. <<맛있는 인생>>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여행기는 보통 재미있는 법이니까요. <<낢부럽지 않은 네팔 여행기>>처럼요. 그래서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러웠습니다. '만화'로 보기 힘든 책이었던 탓이 큽니다. 기승전결이 없는 개인 일상을 기록했기 때문이에요. 부제처럼 '그림 일기' 인 셈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여행기가 개인 일상입니다. 하지만 '만화'라면 여행에서 있었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중심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냈어야 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도 그런 부분이고요. 그러나 그런 에피소드는 단발성 컷에 그치고, 솔직히 별 재미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여행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스웨덴 남자 헨리크와의 짧은 연애 이야기, 연애 등에서 촉발된 스물일곱 나이로 떠올렸음직한 고민들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결혼은 어떻게 할까, 애는 낳을 수 있을까, 평범한 삶은 무엇일까 등등등.... 하지만 루시 나이의 두배 가까이를 산 제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고민들이라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책 속에 답이 나옵니다. 작 중에 나오는 와인 축제 주최자 데니스는 말합니다. 스물 일곱은 '허락받은 나이'라고요. 경험하고, 실패하고, 여러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는 나이. 게다가 루시는 유럽 만화 축제에서 초대할 정도로 성공한 만화가라는 확고부동한 직업이 있습니다. 본인이 노력한다면 그쪽 일을 찾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거에요. 그래서 솔직히 뭘 고민하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야기는 루시가 나이에 따른 인생의 단계가 있다는걸 깨닫고 끝나는데, 깨달음도 '계획' 보다는 '변화'에 방점을 찍은게 아직 어리다 싶었습니다. 그냥 되는대로 살겠다.... 는 느낌이었거든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별로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2008/10/20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 구드룬 슈리 / 김미선 : 별점 2.5점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 4점
구드룬 슈리 지음, 김미선 옮김/다산초당(다산북스)

다산초당의 "... 뒤흔든... 가지 발견 / 사건" 시리즈의 한권입니다. 이전에"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과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을 읽었었죠. 한권은 대박, 한권은 쪽박이었는데 이 책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단지 제목에 낚이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왜냐면 제목처럼 16개의 발견을 다루고는 있지만 이 중 "세계사를 뒤흔든" 내용은 거의 없기도 하지만 모든 발견이 "우연"에 의한 것들만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제는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아마도 "우연에 의한 16가지 대발견" 이 아닐까 싶군요. 책 제목이 판매에 영향을 주기는 할테지만 이 정도라면 너무 과장광고가 아닌가요? 세계가 아닌 관련 학계를 뒤흔든 정도일텐데...
목차를 보면 더욱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쾰른 대성당 설계도의 발견이나 5000년 전의 인류의 냉동 미이라 발견이 세계사를 뒤흔들었다고 보기에는 무리잖아요. 괴테의 진화론 이야기는 정말 유머러스한 에피소드가 중심이 된 약소한 발견이었을 뿐이고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 정말로 세계사에 영향을 준 발견은 뢴트겐 광선과 뉴튼의 만유인력 정도만 해당될 것 같습니다. 2/16이니 비율로만 따진다면 제목이 과장된 것이 확실하겠죠.

아울러 도판도 좀 문제가 있어서 실제 중요한 발견에 대한 도판은 거의 없습니다. 원저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스맨"을 보고 싶은데 이집트 미이라 관련 도판만 나오는 등 생뚱맞음의 연속이거든요. 뭔가 좀 책을 만들다 만 느낌이었어요. 뒤로 갈수록 나아진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책 자체는 그런대로 재미있는 편이긴합니다. 정말로 "우연에 의해" 발견된 대 발견들이라는 극적 상황이 잘 녹아있는 이야기들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아이스맨" 이야기와 "띠무늬 스타킹을 신은 기린 - 오카피", "실라칸스"의 3개 에피소드가 특히 재미있었어요.
"아이스맨"은 발견 당시 세계적인 화제였다는데 저는 토막기사 몇개 본 것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었나 봐요. 그리고 실라칸스 이야기에서 코모로 제도 원주민들이 실라칸스를 낚아 먹곤 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폭소 였습니다. 이건 개그만화 소재로 써도 좋을거 같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식욕이 땡길것 같지 않은 외계에서 온 듯한 물고기인데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나 재미와는 별개로 개인적 별점은 2점 반입니다. 제목에 낚인 쪽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제목과는 내용이 좀 다른 책이지만 이런 류의 토막 역사 - 상식 서적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 싶긴 합니다.

2004/12/26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


드디어 애인이 생긴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가 이제 연애를 시작한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바로 꿈 속에서나 나의 애인이 되어 줄 것 같은 완벽한 남자 '마크(콜린 퍼스)'. 그의 품에 안겨 달콤한 사랑에 푹 빠져있는 브리짓은 여전히 술과 담배를 사랑하고, 날씬함과는 거리가 먼 아줌마 몸매로 끝나지 않는 살과의 전쟁을 계속한다.

하지만 매력적인 외모에 잘 나가는 변호사인 마크에게 뻗치는 유혹의 손길. '얼짱'에 '몸짱'인 마크의 인턴은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며 그에게 접근한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브리짓은 그녀와 마크와의 관계를 의심하고, 연애 사업은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 그녀의 눈 앞에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인 섹시 가이 '다니엘(휴 그랜트)'가 다시 나타난다. 못 말리는 바람둥이였던 다니엘은 이제 믿음직한 남자가 되겠다며 브리짓의 마음을 또 한번 뒤흔드는데... '완전 모범 남친' 마크와 '초절정 바람둥이' 다니엘 사이에서 고민하는 브리짓. 정말 사랑은 몸 따로 마음 따로 인가?

크리스마스 특집 영화랄까... 3년전처럼 여자친구와 같이 보게 된 속편입니다.

일단 영화 자체는 전작처럼 브리짓 존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다룬 가벼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전작만큼의 웃음과 재미를 가져다 주지는 못하더군요. 르네 젤위거의 원맨쇼는 유쾌하고 에피소드도 재미있는 편이지만 점점 현실성이 떨어져서 마지막 태국의 마약 밀매 사건에 이르러서는 거의 환타지에 가까운 상황전개로 돌변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가 너무 희석된 것 같아 아쉽네요. 1편에서처럼 좀 현실적이고 와닿는 이야기가 적어진 느낌입니다.

또한 전작에 비한다면 너무나 살이 찐 르네 젤위거는 부담 그 자체였습니다. 클로즈업 씬에서는 정말 숨이 막히더군요..... 결과적으로 본다면 영국 남성들의 여성을 보는 취향에 깊은 의심을 가지게 만드는 영화랄까요? 잘나가는 2명의 엘리트 남성이 나이먹은 골빈 뚱뚱한 독신녀에게 반한다는 설정 자체를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혼한다고 과연 그들이 행복할지도 의문이네요.

마크 다시와 다니엘의 격투 장면 등 음악과 화면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장면은 여전히 재미있었고 음악도 역시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듣기 편했지만 전체적으로 전작만큼의 임팩트를 주기에는 굉장히 부족했던 영화입니다. 크리스마스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는 적당하지만 1편의 재미에는 반도 못 미친것 같아 유감이네요. 역시 1편만한 2편은 나오기 힘들다는 정설에 동감할 수 밖에요...

2018/04/20

지금은 더 이상 없다 - 모리 히로시 / 이연승 : 별점 1점

지금은 더 이상 없다 - 2점
모리 히로시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하시즈메의 별장에 약혼녀 마리코와 함께 방문하여 휴가를 보내던 공무원 사사키는 우연히 만난 니시노소노 양에게 푹 빠졌다. 마침 니시노소노 양은 가출 상태로 사에키에게 가까운 역까지 이동을 부탁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폭풍우 탓에 니시노소노 양도 별장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는데, 마침 그날 밤 밀실인 오락실-영사실에서 아사미 자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모리 히로시의 대표작인 사이카와 - 모에 시리즈 8편입니다.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이야기의 대부분이 사사키라는 인물의 1인칭 수기 형태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완벽한 졸작입니다! 이유는 추리적으로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는 탓입니다. 거의 500여 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쌓아 올린 이야기와 설정을 모두 뭉개고 설득력이 전혀 없는 이야기를 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을 살해한 언니가 자살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 칩시다. 그렇지만 구태여 좁은 창을 빠져나가면서 현장을 밀실로 만든 이유, 그리고 아사미 유키코가 동생 아스코에게 가발을 씌우고 옷도 바꿔 입힌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른 가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이 정작 진상에서는 유키코가 흥분 상태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흘러가니 황당할 뿐입니다. 이에 비교하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등장하는, 방을 밀실인 척 할 수 있는 사사키가 범인이다! 라는 추리 퀴즈 수준의 가설들이 진상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또 사사키의 수기 속에 등장하는 니시노소노가 모에가 아니라 모에의 고모 무쓰코였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반전도 사기에 가깝습니다. 보통의 서술 트릭물은 앞부분에서 진상을 눈치챌 수 있는 단서를 던져주는데, 이 작품 속에는 휴대폰이 없고 HAM을 취미로 한다는 정도의 설정 밖에는 없고, 오히려 이름이 "모에" 라는 잘못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리는 등 독자를 속이려는 노골적인 의도가 강해서 괘씸하기 짝이 없네요.

사실 중간까지는 제법 읽을 만 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큽니다. 사에키 1인칭 시점의 모에 홀릭 서술 트릭은 도대체 사이카와는 어떻게 된거지? 라는 독자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며, 폭풍우가 밀어닥쳐 고립된 산 속 별장의 밀실 살인이라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설정도 나쁘지는 않거든요. 또 "둥글둥글해졌다" 는 말은 약한 부분이 없어지고 강한 부분만 남은 강한 형태다, 트럼프나 타로는 자신의 미래를 트집잡으며 기뻐하는 자학적 게임이다는 식의 모리 히로시다운 조금 삐뚤어진 사고 방식이 엿보이는 묘사들도 나쁘지는 않고요. 그러나 이런 요소는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거나 재미를 주지는 못하며, 약혼녀와 여행 온 주제에 18살이나 어린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어떻게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밖에 없는 사사키라는 인간 쓰레기 시점에서 이런 묘사가 많은 탓에 사사키의 비호감도만 상승할 뿐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본격 추리물로는 함량 미달에다가 서술 트릭물로 보기에는 트릭이라는 게 없는 사기극이라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작가 스스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건 추리 소설이 아니라 연애 소설이다, 사사키는 글재주가 없어서 이야기가 완전 별로다, 운운하는 마지막 대단원의 작가 변명은 이 길고 긴 이야기를 읽은 독자를 더욱 허탈하게 만듭니다. 연애 소설이지만 추리 소설로도 완벽한 작품들을 쏟아낸 여사님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 몇몇 설정은 시리즈 독자라면 그런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이 작품만 놓고 보면 일고의 가치도 없기에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단연코 제가 읽은 이 시리즈 중에서는 최악이었습니다.

2025/04/20

사유리 - 오시키리 렌스케 : 별점 2점

[고화질] 사유리 (완전판) - 4점
오시키리 렌스케/대원씨아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 누나와 남동생, 모두 7명으로 이루어진 노리오의 가족은 그동안 꿈꿔왔던 단독주택으로 이사왔다. 그러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 뒤 남동생은 사라졌고, 할아버지도 급사하고 말았다. 누나와 어머니마저 자해, 자살하여 순식간에 노리오와 치매에 걸린 할머니만 남게 되는데...

오시기리 렌스케의 하우스 호러. "하이스코어 걸"이라는 레트로 청춘 연애 코미디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작가는 "미스미소우"로 대표되는 호러물로도 유명하지요. 이 작품도 호러물이고요. 이런 작품이 있다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여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북으로 출간되어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한 권 분량이라 부담도 없었고요.

행복했던 7인 대가족이 꿈에 그리던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온갖 괴현상을 겪으며 한 명씩 죽어나가는 과정은 귀신들린 집(Haunted mantiion) 설정 그대로, 하우스 호러물의 전형대로 진행됩니다. 가족이 이사한 집은 '사유리'라는 소녀가 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암매장된 곳이라, 사유리가 행복한 가족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던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가족들이 차례로 죽고, 자살하고, 사라지는 과정의 묘사는 그렇게 뻔하지는 않습니다. 일견 자연사처럼 보이는 평범한 죽음이 점차 진화해 나가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웠거든요. 누나가 혼자 혀를 물어 뜯는 묘사는 굉장했어요.

그리고 노리오와 치매에 걸렸던 할머니를 제외한 전 가족이 죽은 상황에서, 할머니 정신이 돌아오는 부분부터는 아주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강단있고 행동력 강한 할머니 캐릭터가 굉장히 강렬했기 때문이지요.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모습은 와~ 정말 '핵간지'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더군요. 귀신에게 지지않는 생명력을 갖추고, 오히려 복수를 위해 사유리를 죽인 사유리 가족을 모두 납치해서 죽이려 하는 모습은 광기어리면서도 통쾌했고요.

하지만 사유리가 자기를 죽인 가족도 가족이라고, 그들을 동정해서 약해진 탓에 노리오의 죽은 가족들에게 끌려가 성불하는 결말은 솔직히 영 아닙니다. 너무 급작스럽잖아요. 애초에 자기를 죽인 가족에게 원한을 품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할머니와 사유리의 제대로 된 대결이 펼쳐지지 않은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남편과 아들, 며느리에 손자, 손녀까지 5명이나 죽인 악령을 그냥 놓아준다는게 앞서의 할머니 캐릭터와는 영 어울리지도 않았어요. 죽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서 영혼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전형적인 전개를 특유의 스타일,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로 풀어낸건 좋았는데, 결말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감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