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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4

죽음의 사냥개 - 애거서 크리스티 / 정성희 : 별점 2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해문출판사
드디어! 크리스티 여사의 단편집 전권을 완독했습니다.
이 작품집은 11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인데 코난 도일경처럼 말년에 심령현상에 심취했던 여사의 취향을 반영하듯 대부분 심령 호러물로 채워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목차와 쟝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죽음의 사냥개 - 심령 호러 (?)
  2. 집시 - 심령 호러(?)
  3. 등불 - 심령 호러
  4. 아서 카마이클 경의 기묘한 사건 - 심령 서스펜스 (?)
  5. 목련꽃 - 심리 드라마
  6. 개 다음에 - 드라마
  7. 이중 범죄 - 추리
  8. 말벌 둥지 - 추리
  9. 의상 디자이너의 인형 - 심리 서스펜스
  10. 이중단서 - 추리
  11. 성역 - 추리
그런데 호러와 서스펜스를 표방한 대부분의 작품이 21세기 독자의 시각으로는 심심한 편입니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해주지도 않으면서, 공포의 실체조차 두리뭉실 표현하는 점은 역시 빅토리아 여왕 시대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고요. 한마디로 말해 썰렁했어요.
포함되어 있는 4편의 추리물 역시 단편집 전체의 성격을 반영하듯 전체적으로 시시한건 마찬가지입니다. 포와로가 활약하는 "이중범죄"와 "말벌 둥지", "이중단서" 3편 모두 대단한 사건다운 사건없는 영국 시골에서 벌어지는 촌극 느낌이고, 마플양의 "성역" 역시 추리물적인 성격도 적을 뿐더러 마플양 작품 같지도 않거든요.
트릭적으로 본다면 그나마 "이중범죄" 쪽이 제일 본격적인 추리물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닥 신선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으며 "이중 단서"는 로사코프 백작부인이 처음 등장하여 포와로와 대결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줄 만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전체적으로 크리스티 여사의 단편집으로 보기에는 기대 이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차라리 심령 미스터리 쪽으로 가려면 더 화끈하고 더 무섭게 가는 것이 좋았을텐데 말이죠. 단편집을 완독했다는 성취감은 크지만 그 이상의 즐거움을 찾아보기는 어렵군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죽음의 사냥개"
한 수녀의 고대로부터 전해진 일종의 초능력과 그 비밀을 둘러싼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정직하게 흘러가다가 끝나버려서 별다른 반전의 묘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쉽네요.

"집시"
사람의 운명을 예견하는 집시에 대한 이야기. 내용이 별로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갑작스러운 마지막 해피엔딩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등불"
저택에 살고있는 굶어죽은 아이의 유령과 새로 이사온 가족의 이야기. 결국 새로 이사온 가족의 아이가 죽은 다음 유령이 2명이 된다..는 어떻게 보면 섬뜩한 이야기로 그나마 제일 무서웠던 작품입니다. (물론 현대 독자의 시각으로는 많이 썰렁합니다만)

"아서 카마이클 경의 기묘한 사건"
꽤 유명한 작품이지요. 유산 때문에 의붓아들 아서 카마이클 경에게 고양이를 대입시키는 묘한 최면을 거는 계모의 이야기입니다.
줄거리 자체는 상당히 참신하고 결말 또한 제법 설득력 있지만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목련꽃"
일종의 심리 드라마입니다. 한 여자가 남편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했지만, 남편 때문에 배신했던 다른 남자에게 찾아가 남편의 죄를 증명하는 서류를 받아오려 합니다. 그리고 서류를 받던 그 순간, 자신이 남편에게도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는 내용입니다. 
상당히 공감가는 이야기로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개 다음에"
애견때문에 오히려 불행해져가는 한 여성이 개의 자살과도 같은 죽음 직후에 새로운 인생을 되찾게 된다는 드라마인데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심리 묘사는 탁월하지만 글쎄요....

"이중 범죄"
포와로 단편입니다. 포와로가 헤이스팅스와 같이 버스 여행 중 만난 아가씨의 귀중품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소품이지요. 사건이 소박한 만큼 내용도 그다지 멋진 트릭이나 전개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이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본격적인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멍청한 (?) 헤이스팅스를 잘 드러내는 부분만 재미있었지만요...

"말벌 둥지"
케이블 TV에서 이미 영상 버젼으로 감상한 작품으로 어떤 단편인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네요. 한 남자의 자살-살인을 병행하려는 계획을 포와로가 미연에 방지하는 내용으로 영상 버젼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이 무미건조하게, 평이하게 흘러갑니다.

"의상 디자이너의 인형"
의상 디자이너들이 한 벨벳 인형에게 어느날 문득 공포를 느끼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냥 그뿐입니다. "사랑받고 싶었다"라는 결론은 허무할 뿐이고요.

"이중 단서"
포와로가 보석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용의자도 4명뿐이고, 트릭도 러시아어와 영어의 알파벳을 이용한 트릭이라 대단치 않습니다. 그나마 포와로 작품에서 라이벌로 등장하는 백작부인의 첫 등장이라는 점에서만 점수를 줄 만 합니다.

"성역"
미스 마플이 깜짝 찬조 출연하는 작품인데 추리적 요소는 거의 전무합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내용 자체는 도난 당한 보석에 관한 이야기로 소품이기도 하고요. 단서도 의뢰인이 다 찾은 것으로 마플양은 경찰을 부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어드바이저 정도의 역할 뿐입니다. 마플양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처져보치는건 저만 그런걸까요?

2024/07/26

여름맞이, 최고의 호러 컨텐츠 소개 : BRUTUS 2023년 9월 호러 특집

주제 한 가지를 정해 집중 탐구하는 일본 잡지 BRUTUS의 2023년 9월 주제가 '호러' 였었습니다. 여러 기사가 실려 있는데, 메인을 장식한 기사가 호러 순위였고요. 14명의 호러 매니아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괴담, 소설, 만화, 게임, 유튜브에 심지어 폐가까지 호러 컨텐츠 전 분야에 걸쳐 모두 444펀을 선정한 뒤, 1.0점부터 5.0점까지 41단계로 판정하여 순위를 매겼습니다. 이 중 최고점인 별점 5점을 받은 작품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런데 영화 몇 편 빼고는 거의 모르겠네요. 만화의 경우는 굉장히 마이너한 단편 작품만 언급하고 있기도 하고요. '호러 매니아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라는 과시욕이 느껴져서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는게 좋겠습니다.

영화 :
  • 노로이(ノロイノロイ) - 시라이시 코지 / 2005년
  • 다크 앤드 더 위키드 (The Dark and the Wicked) - 브라이언 베르티노 / 2020년
  • 먼고 호수 (lake mungo) - 죠엘 앤더슨 / 2008년
  • 링 - 나카다 히데오 / 1998년
  • 새 - 알프레드 히치콕 / 1963년
  • 텍사스 전기톱 학살 - 토브 후퍼 / 1974년

소설 :
  • 잔예 - 오노 후유미 / 2012년 : 작가인 주인공이 도쿄 교외 맨션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을 쫓는 페이크 다큐 형식의 소설.

만화 :
  • "저주의 초상화 (呪いの肖像画)" - 아오키 토모코 青木智子/ 1996년 : 『학교에 전해지는 무서운 소문 3』 수록작. 미술부 선배를 짝사랑하는 소녀가 사고로 죽고, 그 영혼이 자신이 그린 초상화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그림에 다가간 후배의 몸에 초상화가 감겨 소녀가 빙의한다.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일념으로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소녀가 진정한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 무섭다.
  • 'get lost' - 이노우에 유미いのうえゆみ / 1988년 : 『마이코믹스 호러 오컬트 공모대전 HELP 5』 수록작.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의 충격적인 작품. 아이와 떨어질 수 없는 아버지와 딸의 코믹한 교감이 그려지는 도입부에서부터 상상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구하기 어렵지만, 아버지의 망상이 불러일으키는 최악의 기적을 목격해 보길 바란다.
  • "TVO" 오챠즈케노리 (御茶漬海苔) / 1989년 : 심야에 갑자기 시작되는 「공포의 TVO」. 거기에 비춰지는 것은 인간의 어둠. 인간의 날카로워진 어둠이 깊고 담담하게 그려진 사이코 호러의 걸작. 작가의 초기 작품은 그 표현이 특히 뛰어나서 화면이 고요한데도 소름이 돋는다. 읽으면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다'라는 촌철살인의 문구가 빛을 발한다. (*1권은 무료로 읽을 수 있네요. 그렇게 무서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괴담 :
  • '가엾은 웃음' - 梨 / 2022년. 책 : 괴담 중심으로 활약하는 신세대 괴담 작가 梨의 첫 번째 단독 저서. 자신이 그동안 인터넷에서 수집한 괴담을 바탕으로 쓴 '독자 참여형' 호러큐멘터리로, 작품 속에는 출처로 연결되는 QR 코드가 있는 등 독자를 현실적인 공포 체험에 참여시킨다. "괴담에서 가장 귀를 막고 싶은 주제인 '사람의 악의'를 현대 독자들이 가장 체감하기 쉬운 형태로 소설화했다. 발명이라고 해도 좋다. 책 자체에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 「1㎜의 여인」 / DVD 『사쿠라금조의 TV에서 말할 수 없는 무서운 이야기』 수록 : 무단결근한 친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사쿠라 씨는 그의 집으로 향한다. 그가 가리키는 다다미의 뒷면을 들여다보니 벽과 벽 사이의 불과 1, 2mm 틈새에 여자가 있었다. 사쿠라 씨는 탄탄한 괴담의 명수. 이야기꾼이기에 가능한 이상한 세계 이야기. 이것은 영상화 불가능.
  • 이나가와 준지 「살아있는 인형」 / YouTube에서 시청 가능 (youtub e.com/watch?v=7Bmlfx8iEQo). 18:09경 : 어느 날 밤, 이나가와 씨는 택시 안에서 소녀 같은 인물을 본다. 나중에 좌장으로 임명된 인형극에서 사용할 인형이 소녀와 똑같았다. 관련자들은 연이어 불행을 겪게 된다 ....... 지금도 계속되는 전설의 열여덟 번째.

게임 :
  • 'MADiSON' Steam, Xbox, PS4 PS5 외 / 2022년 / BLOODIOUS GAMES : 16세 소년을 조종해 저택에서 계속되는 사악한 의식을 끝내기 위해 탐험하는 서바이벌 호러.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만큼 공포도 일품이다. 어두운 복도를 카메라 스트로브를 비추며 걷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에 용기가 필요하다. 그야말로 5무의 최강의 공포 작품.

다큐멘터리 :
  • '어둠의 동영상' 감독: 코다마 와다마 감독/토/일/2012년~/프롬노트 : 심령과 오컬트에서 그로테스크한 묘사까지, 온갖 금기에 과감히 도전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축축하고 습한 습도 높은 공포의 영상.

귀신의 집 :
  • '다이바 괴기학교 나고야교' 메이커스피아/아이치현 나고야/평일 휴무/도쿄 다이바 : '다이바 괴기학교'의 계열점. 학교의 참극에서 비롯된 전개는 본교와 같지만, 이쪽이 더 넓고, 더 오래 공포를 즐길 수 있다. 또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무섭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의 연속으로 공간, 이야기, 연출에 있어 가장 무서운 귀신의 집.

유튜브 :
  • "페이크 다큐멘터리 'Q' 제작: 미나구치 다이치, 테라 우치 야스타로 외 / 일 / 2022년 : 봉인된 프로그램 녹화 데이터 등 단편 공포 다큐멘터리 영상을 올리는 채널. "영상에 허구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 무서운 점입니다. 사색에 잠기게 하는 장치도 곳곳에 숨겨져 있어 보면 볼수록 매력과 공포가 더해집니다."

2022/06/25

심야의 손님 - 오쿠라 데루코 / 이현욱 외 : 별점 1점

심야의 손님 - 2점
오쿠라 데루코 지음, 이현욱 외 옮김/위북

잘 모르는, 전전(戰前)세대 일본 추리 작가의 2차 대전 전~후를 아우르는 대표 단편 일곱 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입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나쓰메 소세키,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문하에 있던 작가로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득력 있게 파헤치는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 어쩌구 하는 홍보 문구에 낚여서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나 형편없고 졸렬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아니 제가 읽어왔던 천 권이 넘는 책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졸작이었어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선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전무합니다. 심령 호러와 같은 작품도 있는데, 스릴이나 긴박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서 섬찟한 느낌도 전혀 받을 수 없고요. 홍보 문구에서 이야기하는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있는 인과 관계 역시 단 한 작품에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금 읽기에는 의외성없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로 진행된다는 단점도 큽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읽어볼 가치는 전무합니다. 활동기에도 유명하지 않았으며 지금 시점에서 그 이름이 완전히 잊혀진 작가는 역시나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혹시나 궁금하시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천식"

명문가 후지와라 가문의 후계자 기미타카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등장합니다. 알고보니 후계자 기미타카는 살해되었었고, 범인은 친모였어요. 친모는 후지와라 가문과 어울리지 않는 평민 출신인 탓에 친척들에게 멸시를 당해왔었는데, 기미타카가 성장하면서 범죄자가 되어가자 자신이 질타를 받을 걸 우려하여 살해했다고 하네요.

아니, 아들이 범죄자가 되건 말건 친모가 아들을 살해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살해한 뒤, 아들을 미이라로 만드려고 불상 속에 사체를 집어넣었다는 설정은 또 왜 들어간걸까요? 에도가와 란포를 따라한 유치한 발상에 불과합니다. 설득력이 없다는것도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이러한 진상은 기미타카의 친모가 남긴 편지로 드러날 뿐이라 추리의 여지도 전무합니다. 별점을 주자면 0.5점입니다.

"공포의 스파이"

구 백작 마쓰오카 본가에서 장남 가즈오가 사라집니다. 진상은 동생 가오루가 형수에게 반해서, 형수와 가문을 손에 넣기 위해 형을 납치했다는 겁니다. 가즈오는 시베리아 파병 당시 소련 스파이로 일할 걸 서약했었다는 약점이 있었다는군요. 

소련 스파이 설정도 어처구니가 없지만(전후에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진범을 밝히는 과정도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못합니다. 조사나 추리 없이 그냥 마지막에 "얘가 범인이에요"라는 식이거든요. 이 작가가 추리 소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글을 썼다는 확신이 듭니다. 역시나 별점은 0.5점입니다.

"요물의 그림자"

비밀 암호를 몸에 지니고 여객선을 타고 이동하던 화자가, 여객선에서 만난 중국인 부녀로부터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내용입니다. 아파보이던 딸은 원래 죽어서 장례까지 치뤘었는데, 하인이 손에 낀 반지를 훔치려 시체 손가락을 자를 때 깨어났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이 중국인 부녀가 약을 써서 화자로부터 암호를 빼앗는 전개로 이어지고요. 

왜 딸이 죽었다가 살아났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 어떻게 암호가 화자에게 있는줄 알고 접근해서 빼앗는지, 그리고 무엇에 대한 암호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 등 이야기의 완성도 자체가 한없이 낮습니다. 그냥 중국인 부녀 이야기만 "공포 특급" 정도에 수록될 짤막한 1~2페이지짜리 괴담으로 풀어내는게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요 괴담만 그나마 읽을만해서 별점은 1점입니다.

"마성의 여자"

특별한 능력으로 남편 혼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알아내는 야스코의 이야기입니다. 혼조는 야스코의 감시와 집착에 질려 그녀를 살해하지만, 야스코의 영혼이 혼조와 하나가 되어 발광한다는 결말입니다. 

자기가 증오해서 죽인 피해자가 '초능력자'여서, 그녀의 영혼이 나의 영혼과 합쳐진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랄까... 하지만 이를 제대로 풀어내지도, 마무리짓지도 못해서 완성도는 낮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심야의 손님"

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부호 아리마쓰 다케오 살해 사건에 엮이는 걸로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아리마쓰 다케오를 죽였던 건 탈옥수인 의적 오고시였고, 그는 다케오의 양녀 미와코를 돕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던 거지요. 다케오가 과거 미와코의 친부 조지를 함정에 빠트렸었는데, 그 당시 상황이 담겼던 레코드가 남아있어서 오고시는 미와코를 도울 결심을 했다고 설명됩니다.

그런데 요코가 하는건 전혀 없습니다. 요코에게 '심야의 손님'인 의적 오고시가 찾아와 진상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왜 사립탐정이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아리마쓰가 이 레코드를 진작에 없애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누군가를 함정에 빠트린 범인이 그 핵심 증거를 집에 잘 숨겨두고 보관해 둔다? 설득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네요. 이 쯤 되면 작가가 도대체 생각이라는걸 하고 글을 쓰는지 의심이 될 정도에요. 별점은 0.5점입니다.

"일본 동백꽃 아가씨"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입니다. 과거 미모로 '일본 동백꽃 아가씨'라고 불리웠던 히가시야마 씨 부인이 실종됩니다. 부인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유명 가수가 제대로 간호받지 못하던 부인을 직접 돌보기 위해 납치했던게 진상이고요. 

다른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추리의 여지는 전무합니다. 히가시야마 씨에게 그렇게 부인을 돌볼거라면 자기에게 맡기라고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범인이었거든요. 이래서야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부인에게서 과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절절했기에, 고풍스러운 로맨스물로서의 가치가 약간 있을 뿐입니다. 별점은 1점 정도?

"사라진 영매"

가쓰다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내가 죽은 뒤 아내의 영혼을 불러오는 영매 레이코에게 푹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과거에 썼던 별거 아닌 편지를 발견한 탓에 폭주하여 레이코를 살해한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이 막장 단편집의 화룡정점입니다. 영매 레이코의 능력, 가쓰다가 폭주한 이유, 사체를 은행 대여금고에 맡겼다는 설정 등 뭐 하나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니까요. 당연히 무섭지도 않아서 심령 호러물로의 가치도 전무합니다. 가쓰다가 아내, 레이코와 화자인 S 부인 모두가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반전이라도 잘 살렸더라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당연히 잘 살리지도 못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0/07/25

흉가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4점

흉가 - 8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 윗집에 살면 안 돼! 지금 당장 도망쳐! (토코의 일기)

초등학교 4학년 쇼타는 아버지의 전근으로 교토 근처 안라 시의 시골 신흥 주택으로 이사왔다. 그러나 쇼타는 어린 시절부터 흉조가 있을 때 마다 느꼈던 불길함을 새 집에서 느꼈고, 집 안에서 유령과 같은 형체들과 조우했다. 다음날 어린 여동생 모모미마저 한 밤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히히코'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말하자, 쇼타는 혼자서 집에 관련된 조사를 나섰다. 그러다가 마을 소년인 코헤이와 친구가 되는데...

납량특집용으로 읽게 된 미쓰다 신조의 공포, 호러 소설입니다. 이른바 '집 시리즈' 중 한 권이지요.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불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집과 관련된 여러가지 묘사에서 시작해서, 이런저런 수수께끼들이 하나씩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대충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 쇼타가 집에서 본 기묘한 형체는 무엇인지?
  • 왜 마을의 대지주였던 타츠미가가 붕괴하고, 일족이 몰살당해 당주인 센 할머니만 정신 이상이 된 채 폐가인 집에 남아 있는지?
  • 산에서 내려온다는 뭔가 안 좋은 것은 무엇인지?
  • 마을 사람들은 왜 산 윗집, 아래 맨션 사람들을 배척하는지?
  • 모모미에게 찾아온 '히히노'와 '히미코'는 무엇이고, 그들은 왜 모두 여섯명인지? 이들은 토코의 일기 속 '도도츠키' 등과 어떻게 다른지?
등입니다.

이에 대한 답도 산에 사는 '뱀신'을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쇼타가 집에서 본 기묘한 형체, 특정 장소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라던가 매달린 끈은 가족들이 모두 목 매달아 자살하는 미래의 모습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타츠미가가 뱀신이 살고 있는 신성한 산을 난개발하려다 뱀신의 저주로 죽었는데, 그 와중에 유일하게 개발된 쇼타네 집이 뱀신을 불러들이는 형태가 되어 뱀신이 씌워진 탓이지요.
산에서 내려온다는 안 좋은 것은 당연히 뱀신이며, 마을 사람들은 산 윗집과 아래 맨션 사람들 모두 뱀신의 저주를 받는다는걸 알고 있어서 멀리 했습니다. 누군가 윗 집에 살고 있는 동안은 괜찮다는 묘사 (센 할머니의 말)가 살짝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일종의 '산제물'로 여겼을 여지도 충분하고요.

이를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섬찟함, 오싹함을 불러 일으키는 묘사는 명불허전입니다. 특히 가장 섬찟했던 건 '히히노' 등의 정체입니다. 뱀신에게 씌워진 아버지, 어머니, 누나 등 쇼타의 가족이거든요. 밤 중에 모모미에 의해 눈을 뜬 쇼타 앞에 아버지가 나타나 "처음 뵙겠습니다. 히히노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어요.
기묘한 이름은 원래 아버지, 어머니 등의 이름 한자를 분해하여 읽은 것이라는 일종의 암호 트릭도 아주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쇼타에게도 '뱀신'이 발현된다는 마지막 말에서 효과적으로 한 번 더 사용됩니다. 쇼타와 여동생 모모미만 남긴채 일가족이 죽어버려 둘은 후쿠오카의 외할머니 댁에서 살게 되는데, 모모미가 쇼타에게 쇼타의 이름을 분해한 누군가가 나타났다고 하거든요. 뱀신의 저주는 산 윗집에서만 효과가 있는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번 저주의 집, 흉가에 머물렀던 가족은 어디에 가서도 그 주박을 벗어버릴 수 없다, 즉 쇼타와 모모미도 곧 자살해버릴거라는 내용인 셈이지요. 놀러온다는 코헤이까지 같이요. 씁쓸하면서도 뱀신의 집요함이 무섭습니다.

핵심 열쇠 중 하나로 등장하는 토코의 일기도 현재의 쇼타 상황과 맞물려 섬찟함을 배가시킵니다. 여러가지 말을 할 줄 알았던 앵무새 구리코가 이사를 마친 뒤, "온다"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특히나 소름돋았습니다.

"화가"에서 처럼 초등학생이 주인공인이라 일종의 모험물 속성도 있어서 관련 묘사도 많은데, 중반에 쇼타가 미친 할머니에게 쫓기는 장면 묘사는 개중 압권입니다. 이전 윗집에 살던 소녀 토코의 일기를 구하러 센 할머니 집에 갔다가 쫓기게 되는데, 박진감이 철철 흘러 넘치는 덕분입니다. 히히노의 정체는 일종의 오컬트, 심령 호러라면 이 쪽은 일종의 크리처물이나 슬래셔 호러물을 방불케합니다. 쇼타와 코헤이가 맨션 이웃집 코즈미 키미로부터 탈출하는 장면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눈에 뜨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전에 세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던, 쇼타네가 살고 있는 윗 집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예' 기사화가 되지 않은 점입니다. 쇼타의 가족이 동반자살한 사건도 온갖 매체에서 기자들이 달려왔다는 설명이 있을 정도인데, 왜 이전 사건은 기사화가 아예 되지 않았을까요? 토코의 일기는 마지막이 훼손되어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람이 죽은건 분명한데 말이지요. 바로 이사를 가서 괜찮았다 치더라도, 이전의 세 가구 모두 무사했을리가 없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랫 맨션에 사는 코즈미 키미가 이상한 색녀가 되었다는 전개도 이상했습니다. 아랫 맨션까지 뱀신의 영향이 미친다는 묘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런 것 치고는 묘사는 과했고 설명은 부족했어요.

무엇보다도 코헤이가 나타나자 '히히노' 등이 자살한 이유는 알 수가 없네요. 코헤이가 오면 6명이 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숫자에 딱히 집착하는 모습은 없었고, 외부에서 온 할머니까지 뱀신에게 씌워진걸 보면 '한가족' 이라는 형태도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고작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이 나타났다고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는건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코헤이가 자주 집을 비우는 등 평범한 소년이 아니라는 암시가 일부 있기는 한데, 다른 시리즈에서도 활약하는지 좀 두고 봐야 될 듯 합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호러, 공포 소설로서의 가치는 높습니다. 충분히 무섭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흥미진진함도 잘 살아있으며 재미도 충분하니까요. 제가 읽었던 미쓰다 신조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 하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더운 여름, 납량 특집용으로 아주 제격인 작품이라 생각되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9/05/20

인체 모형의 밤 - 나카지마 라모 / 한희선 : 별점 3점

인체 모형의 밤 - 6점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일본 작가 나카지마 라모의 단편을 모은 작품집으로, 단편들은 제목처럼 인체모형에 관련된 기괴한 묘사에서 시작되어, 눈-피-코-귀-다리-무릎-배꼽-팔-뼈-위-유방-날개와 성기 라는 인체의 부분을 주제로 하여 쓴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에 읽었던 판타스틱의 원사운드 만화를 보고 구입하게 되었네요.

각 단편별로 분위기가 굉징하 다른 것이 특징인데, 유령이 등장하는 정통(?) 심령 호러물에서 부터 시작해서, 일종의 괴물이 등장하는 스플래터 호러, 심리 스릴러에 더불어 진지한 드라마와 1인칭 시점의 블랙 코미디까지 실려 있어서 굉장히 풍성합니다. 그야말로 색다른 인생을 살아온 작가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방대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품별 수준의 편차가 크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예상 가능한 내용으로 흘러간다는 것이 좀 아쉽네요. 뭔가 한번 정도 더 비틀 수 있는 이야기들인 것 같은데 너무 평범하게 마무리한게 아닌가 싶거든요. 또한 앞서 말했듯 쟝르가 다양해서 호러 소설이 취향이 아니더라도 즐길 작품이 많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외려 정통 호러로 보이는 작품이 별로 없다는 것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단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개인적인 베스트인 "사안"과 "코" 처럼 오싹하면서도 의외성이 있는 작품들이 더욱 많았더라면 좋았을텐데요...

그래도 충동구매에 가까운 구매였는데 다행히 평균 이상은 해 주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제가 워낙 단편집을 좋아라해서 점수가 더 높을지도 모르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품별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프롤로그 : 인체모형의 밤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작품을 한데 묶는 이야기로 별 특기할 점은 없습니다.

사안(邪眼) : 싱가포르를 무대로 한 심리 스릴러물로 스멀스멀 계열의 작품입니다. 일본인 싱가포르 주재원의 아내가 임신하였는데, 현지 고용인인 가정부가 임신한 아이가 "사안"을 지녔다.. 라고 믿는다는 내용으로, 사안이라는 전설과 푸른눈이라는 설정을 잘 결합한 좋은 단편입니다. 진실이 괴담보다 무섭다는 마지막 반전도 톡 쏘는 맛이 아주 좋았고요. 이런 류의 단편으로는 모범답안이 아닐까 싶네요.

세르피네의 피 : 세르피네라는 섬을 그야말로 "낙원" 이라고 믿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사실 "낙원"의 실체는 달랐다.. 라는 반전이 있는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반전에 이르기까지 교묘하게 장치한 복선을 풀어나가는 맛은 괜찮지만 반전 자체가 그다지 와닿지는 않아서 약간은 심심했습니다. 또 "피"를 연관시키기에는 좀 억지스럽기도 했고요.

코 : 조향사인 주인공은 옛 남자친구의 소개로 싼 맨션을 얻어 이사한다. 그러나 이유를 알수없는 물소리와 냄새 때문에 곤란해 하던 차에, 전 세입자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유령이 등장하는 괴담입니다. 뻔하게 흘러가서 뻔하게 끝맺긴 하지만 유령 이야기의 무서운 점, 즉 보이지는 않지만 들려오는 소리와 냄새를 조향사라는 직업의 주인공을 통해 잘 드러냈으며 특히나 "돼지뼈 라면 국물 끓이는 냄새"의 정체가 모골이 송연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전 정말이지 일본 욕탕이 물을 그렇게 데우는 시스템이라는걸 몰라서 마지막에 깜짝 놀랐네요.

굶주린 귀 : 판타스틱의 원사운드 만화를 통해 접한 것이 이 단편의 소개였죠.
옆방을 엿듣는것이 취미인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은 새로 이사온 집 옆집을 엿듣던 중 분명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화인데 여자만 이야기하는 것을 알게됩니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옆집에 인사를 가는 척 하며 여러가지를 물어보던 중에 옆집 여자 남편이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조금은 허무한 마음에 술을 사러가던 주인공은 여자 집을 우연히 올려다 보는데.... "남자 빨래가 하나도 없어!"
이 줄거리만 놓고 보면 굉장히 흥미진진한데, 아쉽게도 결말이 너무 예상 가능한 범위내에 있었습니다. 좀 더 반전다운 반전이 등장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것 같아요. 예를 들면 레즈비언 부부였다던가, 남편이 게이바 사장이나 트랜스젠더였다던가....

건각(健脚)-국도 43호선의 수수께끼 : 전직 드라이버 지망생이었던 주인공과 주인공이 우연히 알게된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령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괴담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이 단편집 안에서 유일하게 희망적인 뭔가를 전해준다는 것 하나가 독특할 뿐 별로 남는건 없는 그냥 홈드라마같은 느낌의 소품이었습니다.

무릎 : "인면창" 이 실제로 그 주인을 먹어버린다! 는 내용의 이종괴물 스플래터 호러 단편입니다. 전개는 한마디로 일직선이라 별로 평할게 없는 평작인데, 주인공의 설정이 독특하고 전개가 어울리지 않게 유머스러워서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그나저나, 인면창이라니 "블랙잭"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인면창이 있는 피해자(?) 가 "블랙잭"을 만났더라면 완치되고 생명을 건지지 않았을까요?^^

피라미드의 배꼽 : 대 부호의 데릴사위인 가난뱅이 학자가 도심 한복판에 피라미드를 건축한다! 는 SF 단편입니다. 피라밋과 피라밋 파워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이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색작으로, 작가가 정말로 다양한 분야에 박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일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역시나 좀 뻔해서 별로 특기할건 없더군요.

EIGHT ARMS TO HOLD YOU : 비틀즈의 존 레논의 미발표 곡을 다룬 작품으로 작가의 방대한 지식세계를 다시한번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음악에 대해서 굉장히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거든요. "비틀즈 4명이 안아준다는" 노래의 제목과, 마지막의 반전이 묘하게 어울리는 것도 좋았고요. 반전이 너무 끼워다 맞추는 것이 지나쳐서 작위적인 느낌이 강한 것은 아쉽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평작 이상으로 생각됩니다.

뼈 먹는 가락 : 1인칭 시점의 공원묘지 판매원을 주인공으로 한 블랙코미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었는데, 이유는 주인공이 왜 당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너무 다양한 내용을 펼쳐만 놓았지 이야기의 맥락이 전무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도 어설퍼서 도저히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수준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유사한 분위기의 작품인 레이 브래드버리의 "장의사" 정도로는 이야기를 끌고가 줬어야 하는데 말이죠....

다카코의 위주머니 : 거식증에 걸린 채식주의자 소녀가 최후의 순간에는 부모에게 살의를 품는다는 이야기로 "채식주의" 에 대한 이야기가 내용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문제는 별다른 공포도, 반전도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겠죠. 그냥저냥 홈드라마 소품입니다. 이게 호러가 되려면 다카코가 마지막 장면에서 배를 가르는 정도는 되어야겠죠. 어쨌건 저는 읽고나니 로스트비프가 먹고싶어질 뿐이었습니다.^^;

유방 : 영매사가 불러온 유령을 거짓이라 치부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품입니다. 짤막한 블랙코미디 꽁트로 약간의 반전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별로 특이하지는 않더군요.

날개와 성기 : 무슨 이야기인지? 성기를 없애고 스스로 "무성", 천사와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는 주인공이 명상을 통해 접한 실존적 존재에 대한 이야기인데 묘사는 현실적이고 와 닿지만 도대체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알 수가 없는 내용이라 평가 자체가 어렵네요....

에필로그 목저택 : 프롤로그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역시나 별로 특기할 것은 없습니다.

2007/03/08

파우스트 Vol.3 -2007 겨울 : 별점 2점

파우스트 2007.겨울
학산문화사 편집부 엮음/학산문화사(잡지)

경성탐정록으로 인연을 맺은 계간지입니다. 두께에 놀라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다가 3일에 걸쳐 겨우 완독하였습니다.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들은 생각은 "과연 이 잡지가 팔리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잡지 전체의 작풍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가 모호했거든요. 호러와 판타지, 추리, SF가 뒤섞여 있는 쟝르문학 잡지이기는 한데 각 작품이 목표로 하는 독자의 타겟과 작풍이 너무나도 달라서 이 두꺼운 분량의, 가격도 만만치 않은 잡지를 소구하는 독자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맛은 별로고, 취향에 따른 일부 재료만 맛있는 잡탕찌게랄까요?

아울러 작품들의 문체나 설정만 놓고 보면 대상 연령층이 상당히 낮아 보이는데 작품들 대부분이 잔혹한 폭력과 섹스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보인다는 것도 아이러니했습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작품들이 "젊은 감성" 이라는 카피를 달고 나오긴 했지만 예전의 기쿠치 히데유키류의 엽기 에로 폭력물(?)의 문체만 약간 바꾼 것에 불과하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기본적인 설정이야 약간 차이는 있지만 제가 보기에 결과물 그 자체로는 결국 똑같아 보였거든요. 작가의 의도와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론적인 부분에서의 고민이 아쉽더군요.

결론내리자면 제 취향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별점은 2점. 경성탐정록을 제외하고 베스트를 꼽자면, 강병융의 "킬킬킬"과 세이로인 류스이의 "성공학 캬라 교수"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 작품들은 그런대로 괜찮은 수준의 작품인데 일본 작품들은 정말로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장르 문학이라 하더라도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만큼 추리면 추리, 판타지면 판타지, 호러면 호러 식으로 특성을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거기에 더해 페이지도 좀 줄이고, 가격도 좀 더 줄인다면 지금보다 더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싶고요. 미스터리 관련 대담을 미루어 볼때 향후의 잡지의 발전 방향이 그쪽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내심 개인적으로 기대해 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신본격 마법소녀 리스카 - 니시오 이신
마법소녀가 등장해서 다른 마법사와 싸움을 벌이는 격투 액션물.. 로 보입니다. 재미있긴 한데 왜 소설로 쓰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캐릭터들도 일러스트로 묘사하고 내용의 대부분이 액션 장면인데 만화 등으로 구현하는 것이 더 임팩트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거든요. 아주 약간의 두뇌싸움이 등장하지만 비쥬얼이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 두뇌 게임이라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2. 제로자키 키시시키의 인간 노크 - 니시오 이신
이것 역시 니시오 이신 작품입니다. "제로자키 일족"이라는 살인 집단과 그들에 대항하는 조직의 짤막한 사투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역시 재미는 있습니다만 "리스카"의 경우 처럼 이 작품도 만화쪽이 훨씬 어울렸을리라 생각합니다.

3. 그녀 집으로 오세요 - 이종호
한국 호러 소설의 중견 작가인 이종호씨의 신작입니다. "분신사바"를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어서 나름 기대했는데 이 작품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주요 설정을 "펫 세메터리"에서 가져온 것은 그렇다쳐도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과 묘사가 진부하기 이를데 없었거든요. 쑥쑥 읽히는 맛은 있기 때문에 다음편에서 좀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4. 킬킬킬 - 강병융
취업난을 가지고 기발하게 써 내려간 단편입니다. 주인공 이름이 "철수"와 "영희"라는 것 부터 기발하고, 여러가지 설정 등이 읽으면서도 참 재치있게 쓴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외모에 대한 반전은 좀 더 복선을 깔아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으며, 마지막 엔딩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데? 라는 의문밖에는 생기지가 않더라고요.

5. 무지개빛 다이어트 코카콜라 레몬 - 사토 유야
여러가지 설정을 가져다 붙이면서 뭐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정신병자입니다.... 내용도 왠지 모르게 뻔했고요. 이외의 평은 생략합니다.

6. ECCO - 타키모토 타츠히코
다중인격 (일지도 모르는) 소녀의 다른 인격 (일지도 모르는) 존재와 교감을 나누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로 소외감이나 외로움 같은 것이 잘 묘사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잔잔하면서도 전해 줄 이야기는 다 전해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무슨 이야기인지는 당쵀 잘 모르겠다는 문제가 있긴 하네요.

7. 이상한 사람들 - 와타나베 코지
짤막한 콩트. 한편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완성도는 높지만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이야기라는 것이 아쉽군요.

8. W*rld meets W*rld - 모토나가 마사키
설정, 묘사, 스토리 모든 것이 한편의 만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 작품입니다. 그런대로 재미는 있지만 만화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9. 호질 - 이선웅
파우스트 소설상 우수상 당선작입니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충분히 깔끔하고 재미 있습니다. 하지만 심사평처럼 너무 서둘러 끝낸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말부가 매끄럽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심령 수사관이 하는 일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것도 좀 황당했고요.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재미나게 읽었기에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10. 성공학 캬라 교수 - 세이로인 류스이
젊은 감각이라면 이정도는 되야죠.^^ 그야말로 파격적인 전개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만화가 내용과 밀결합되어 있는 것도 특이했고요. 하지만 이게 과연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11. 코마츠키 마키코 - 마이조 오타로
한 천재(?) 가 등장하는 소설로 다중인격(?) 같은 무언가를 밀도있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이야기와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이 재미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 기타 칼럼 / 대담 / 만화

2018/02/24

검찰측 증인 - 애거서 크리스티 / 강영길 : 별점 2.5점

이 바닥에서 전설급 명성을 자랑하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이하 "공략")에서의 별점은 무려 5점입니다! 이 정도면 달려가서 구입해야 하는 걸작이지요. 이미 소장하고 있고, 읽어보기도 했지만 너무 오래전에 읽은 탓에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리뷰도 올리지 않았기에 겸사겸사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참고로, 제가 소장한 책은 '동서 추리 문고' 출간본으로 "공략" 에 소개된 수록작은 일치하는데, 뒷부분에 "카리브 해의 수수께끼"가 추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권 값으로 두 권을 읽는 셈이니 이득이죠? "카리브 해의 수수께끼" 은 별도로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단편집의 특징이라면 '정통 추리물' 이 아닌 심령 소재 오컬트 호러물이 많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심령 현상을 '영혼' 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주요 인물로 '정신 의학자' 가 등장한다는 점도 독특했고요. 그런데 정신 의학자가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건 영 와 닿지 않더군요. 종교인이 등장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하여튼, 호러물인데 "공략"에서 언급되는 '지극히 연극적인 전개' 가 가득하다는 여사님 작풍도 한껏 느껴집니다. 표제작부터 그러해요. 레너드 볼이 결정적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되는 이유는 아내 로메인이 벌인 연극이 결정적 역할을 하니까요. 그 외에도 "라디오" 에서는 핵심 트릭이, "푸른 항아리의 비밀" 에서는 이야기 전체에 연극이 활용되며 "붉은 신호등" 이나 "네 번째 남자", "마지막 강령술""SOS"는 설정과 내용이 한 편의 연극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읽기에는 별로 무섭지 않으며, 낡았다 여겨지기까지 한다는 호러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부분은 분명 있지만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한거죠. 솔직히 읽고나서 "공략" 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감소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은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검찰측 증인" 

부유한 노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레너드 볼은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시각에 아내와 함께 있었다는 유일한 알리바이는 아내 로메인에 의해 부정되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변호사 메이헌은 로메인의 증언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데...

유명한 작품이기는 한데 "공략" 에서 몇몇 작품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습니다. 레너드 볼을 무죄로 만들기 위한 로메인의 노력이 너무 어설픈 탓입니다. 당시 시대에서는 위증죄는 큰 죄가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로메인의 위증은 엄밀하게 말하면 살인 미수에 가까운 중죄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을텐데, 왜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중요한 재판에 편지만 증거로 제시될 뿐, 정작 법정에 로메인을 옭아매었다는 노파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도 '일사부재리' 원칙과 배심원 제도의 맹점 등 현대 재판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주제 의식과 아이디어 만큼은 현 시점에도 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레너드 볼이 진범이라는 마지막 로메인의 외침 하나만으로도 읽어볼 만 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붉은 신호등" 

절친 잭 트렌트의 부인 클레어를 연모하는 더못 웨스트는 저명한 정신과 전문의인 백부 앨링턴 경에게 그 사실을 들킨 후 언쟁을 벌였다. 그러나 직후 앨링턴 경이 살해되자 웨스트는 범인으로 체포될 위기에 빠지는데...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위기에 빠진다는 서스펜스 단편입니다. 약간 윌리엄 아이리쉬 느낌도 나는데 서스펜스에 집중하기 보다는 웨스트의 짝사랑, 그리고 제목의 '붉은 신호등' 이라는 웨스트가 지닌 일종의 예지 능력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는게 차이점입니다. 이 능력을 활용하여 최대의 위기를 벗어나는 (경찰이 덥쳤을 때 하인인 척 연기) 장면이 클라이막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궁지에 몰리는 과정에서의 서스펜스를 잘 살리지는 못했으며, 클레어가 아니라 잭 트렌트가 광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이 부분에서 앨링턴 경이 웨스트를 압박하는 이유도 잘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뒤에 영국의 이혼법 등 몇가지 이유가 등장하는데 이국의 독자가 지금 읽기에는 설명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웨스트의 예지 능력 역시 설명이 부족한건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설정으로 윌리엄 아이리쉬가 썼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네번째 남자" 

유명한 변호사, 의사, 종교인이 우연히 밤 기차에 동승했다. 그들 중 의사 캠벨 클라크 박사가 한 집에 사는 여러 사람들처럼 몸 하나에도 여러 개의 영혼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과거 '펠리시 볼' 이라 불렸던 처녀의 다중인격 사례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번째 승객 라울 르타르도는 자신이 알았던 펠리스 볼과 아네트 라블이라는 소녀에 대해 말해주는데...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일종의 심령 호러물. 다른 수록작들은 모두 잊어버린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던 작품입니다. 다중인격에 대한 진상도 흥미로울 뿐더러, 펠리시가 자신의 몸에 침입한 타인을 격퇴한 결말이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딱 한가지, 이러한 펠리시의 격퇴를 좀 더 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점은 좀 아쉽습니다. 이미 그녀가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자살했다는게 밝혀진 후 과거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라울의 회상이 끝난 다음에 나오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울러 다중인격을 여러 '영혼' 이 한 몸에 깃든 탓이라는 설명은 구시대적인 발상이죠.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요.

하지만 지금 읽어도 서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멋진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SOS"

정신 의학의 권위자 모티머 클리블랜드는 우연한 사고로 외딴 집에 살고 있는 딘스머스 씨 가족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딘스머스 가족에게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는데, 이를 눈치챈 클리블랜드는 자신의 침실에서 SOS 신호를 발견했다.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딘스머스를 비롯한 가족들의 묘사, 주변 인가에서 수 km 이상 떨어진 외딴 집이라는 설정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내용은 꽤 깔끔한 추리물입니다. 무엇이 이상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추리하는 일종의 와이더닛 물이죠. 그런데 추리를 위한 단서들이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진상도 납득할 만한,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사님의 비소 사랑도 눈에 뜨이네요.

딱 한가지, 탐정역을 정신과 의사에게 시켜가며 딘스머스 가족의 별장에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고 분위기를 끌고가는 묘사가 잘 살아나지 못한건 조금 아쉽습니다. 이 부분만 공포스럽게 묘사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아무래도 여사님과 고딕 호러는 잘 맞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도 그 외에는 단점을 찾을 수 없는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죽을 뻔한 의붓딸 샬럿과 가족들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더 궁금합니다. 유산 상속만 되면 영원히 연을 끊고 살겠지만 그 전에 진짜 지옥이 열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비소가 아니라 도끼가 등장할지도?

"유언장의 행방 (라디오)" 

리지웨이 부인의 돈을 노리는 조카 찰스가 라디오로 쇼크사를 일으키는 계획을 실행하는 이야기로, 돌아가신 패트릭 고모부를 가장한게 찰스라는게 너무나 뻔해서 부인이 죽을 때 까지 긴장감은 전무합니다. 솔직히 이대로 끝나는 시시한 이야기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유언장이 사라졌다는 반전이 기가 막힙니다! 덕분에 흔해빠진 범죄물에서 약간 오 헨리 느낌의 블랙 코미디로 작품이 확 살아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청자의 비밀"

회사원 잭 하팅턴 (24)의 인생 유일한 목적은 골프의 핸디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골프장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매일 출근 전 1시간 연습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그는 매일 아침 7시 25분에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이 유령과 감응한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유명 정신과 전문의가 등장하는데, 정신과 의사 배빙턴이 영혼의 치료자로 자칭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뭔가 쎄~한 느낌이 들더군요. 심지어 영매의 존재를 믿기까지 하니까요. 이래서야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안 들기 어렵지요. 그런데 결국 이 모든게 잘 짜여진 사기극이라는 진상으로 넘어가서 잘 맞아 떨어지게 됩니다. 이걸 의도한건 아니겠지만, 시간이 흐른 탓에 오히려 작품과 더 잘 어울리는 모양새가 된 셈이지요.

물론 단편인 탓에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몇 군데 있긴 합니다. 래빙턴 박사가 실제로 유명한 의사라며 등장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잭이 백부의 컬렉션을 잘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죠.

그래도 옥의 티 수준일 뿐, 유쾌하고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집시"

집시 여인을 만나 경고를 받은 후 사망한 친구 사건에 대해 파헤치고자 집시 여인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로 일종의 예지 능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붉은 신호등"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예감이 아니라 핏줄로 전해지는 신비한 능력이라고 포장하고 있다는게 차이점입니다. 합리성을 떠나 최소한 설명을 해 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방향을 잘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탓이 큽니다. 집시 여인을 공포스럽게 조성하는 식으로 캐릭터 공포물처럼 시작하여 공포 분위기를 한껏 잡아나가지만, 불안에 떨던 주인공이 약혼녀 레이첼을 만나자마자 행복함에 휩싸인다는 결말이 뜬금없기 그지 없거든요. '두번 다시 보기 힘들겠다' 는 말 뜻이 주인공이 아니라 집시 여인의 죽음을 뜻했다는 일종의 반전은 신선했으나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램프"

오래 전 굶어죽은 아이의 유령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집으로 이사 온 3대 가족의 손자 조프리가 병으로 죽고, 소년의 유령과 함께 떠난다는 이야기로 이 단편집에 많이 수록된 영혼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어디선가 영화에서 본 듯한 내용이에요. 아이의 눈에만 유령의 실체가 보인다는 설정도 그러하고요.
그런데 별로 무섭지도 않고, 결말도 시시합니다. 전개에 기복이 없고 묘하게 담백한 탓으로 하나 뿐인 손자가 죽었는데도 불쌍한 소년 유령과 함께 떠난 것에 만족하는 할아버지 윈버 씨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냥저냥 잔잔한 평균 이하 소품이랄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카마이클 경의 이상한 사건"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의학박사인 에드워드 카스테아스는 친구 세틀 박사의 부탁으로 아서 카마이클 경의 저택을 방문했다. 준남작 아서 카마이클이 갑자기 백치가 되어버린 증상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회색 고양이와 관련된 기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진상은 카마이클 부인이 의붓 아들과 키우던 고양이와 몸을 맞바꾸었다는 겁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시키기 위해서요. 그녀는 동양의 피가 흐르는 마녀로 흑마술이나 최면술, 혹은 또 다른 기묘한 재주를 지녔다는 설정이고요. 

만화 등에서는 흔히 보아온 것이지만, 이를 상당히 이른 시기에 작품화하여 발표했다는 선구자적인 부분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러나 선구자적 부분 외에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이 단편집 수록작 대부분이 지닌 '설명이 부족하다' 는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탓이 가장 큽니다. 어떻게 정신을 바꾸었는지? 에 대한 설명도 없고, 청산가리로 살해된 고양이의 몸 속에 들어간 아서 카마이클의 정신이 어떻게 다시 본인의 몸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에드워드 카스테아스 1인칭이며, 그가 실제 목격한 내용만 기록되어 있다는 설정으로 부족한 설명을 메꾸고 있지만, 독자는 카스테아스의 비망록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있는 만큼 최소한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합니다. 이래서야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도를 논하기도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날개의 부름" 

부호 사이러스 헤이머가 장애가 있는 거리의 악사의 연주를 듣고 높은 곳으로 향하는 꿈을 꾸지만, 속박으로 인해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한다는 이야기.

장애인 악사가 신의 사자인 "목양신" 이라는 등 판타지 설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내용은 "부" 가 현실적인 속박으로, 모든걸 내려 놓아야 "승천" 할 수 있다는 약간은 동양적인 사고방식으로 흘러가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한마디로 크로스오버인데... 다른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공포나 서스펜스는 전혀 느낄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특별한 반전도 없고요.
무엇보다도 "공략" 에서 코즈믹 호러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굉장히 호기심이 생겼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실망이 컸습니다. 덕분에 "공략" 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감소해 버렸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지막 강령술" 

라울은 결혼을 앞둔 영매 시몬의 마지막 강령술 의식에 참석했다. 그것은 이미 죽은 딸 아메리를 구체화한 영혼을 불러내기 위해 거액을 지불한 마담 엑스를 위한 강령술이었다. 

영매가 불러낸 구체화한 영혼(엑토플라즘?)에 손대면 영매가 죽는다는 설정이 전부입니다. 구체화한 영혼이 진짜가 되었을 때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래서야 이야기가 너무 알맹이가 없지요. "공략"은 논리를 철저히 관철함으로써 발생한 현상이라 무서운 작품이라고 설명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논리' 자체가 딱히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이 논리를 관철하는 이유는 작품 내내 강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의외성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인 반전, 혹은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공략" 신뢰도 감소 2연타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사냥개"

1차 대전 중 벨기에의 한 수도원에서 벽에 검은 사냥개 모양의 화약 흔적만 남긴 채 독일군 부대가 날아가 버렸다. "나" 는 이 사건에 관련된 수녀 마리 앤젤리크를 찾아냈는데, 그녀는 한 과학자의 연구 대상이었다... 

고대 문명 및 그 문명의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을 다룬 이색작입니다. 수녀가 제 2 그리스도, 수정궁의 지도자 운운하는 신성 모독을 서슴치 않는 등 뭔가 있음직한 분위기는 물씬 풍기지만... 다른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내용에서 제대로 설명되는게 거의 없어서 무척 답답했습니다. 수녀가 가진 능력은 무엇인지, 로즈 의사가 어디까지 알아내어 음모를 꾸몄는지 등 뭐 하나 드러나지 않거든요.
"공략"에서는 논리가 부족해서 불안하고 두려운 작품이라고 설명되는데, 논리가 부족한게 아니라 미완성으로 보일 뿐입니다. "공략" 신뢰도 하락 3 콤보 되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25/08/22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 세스지 / 전선영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핫한 모큐멘터리 형식의 호러 장편입니다. 과거 기사와 취재 기록, 독자 투고, 인터뷰, 인터넷 게시글 등 서로 결이 다른 텍스트를 이어 붙여 실존하는 괴이 현상을 추적한다는 실감을 한껏 느끼게 해 줍니다. 한마디로 다큐멘터리와 괴담집이 섞인 느낌이에요.

여러 형식으로 펼쳐지는 작품 속 괴담들은 짧지만 강렬한게 많습니다. 저주받은 아파트에 살던 어머니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기다린건 ‘누군가가 투신하는 순간’이었다는 고백, 그리고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가 점프를 반복하는 이유가 밝혀지는 대목이 특히 섬뜩합니다. 빨간 여자는 자살한 아키라의 어머니였는데, 생전에 나무에 목을 맨 아들을 내려달라며 펄쩍 뛰던 모습이 그대로 남았다는 설명이지요.
묘사도 발군입니다. 특히 ‘저주 스티커’는 굉장합니다. 기괴한 디자인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저기에 붙이고 다니는 이상 행동이 그야말로 섬찟함을 자아내는 덕분입니다.

여러가지 형식으로 괴담과 괴이현상이 소개되기 때문에 신선한 발상도 많습니다. 동영상 때문에 귀신에 씌운 대학원생의 에피소드에서의 공포물 반응을 실험하려고 여러 공포 체험 영상을 짜깁기했다는 설정처럼요. 공포물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되는 실험 결과도 재미있었어요. 인터넷 실황으로 심령 스팟 돌입을 생중계하는 등 새로운 형식도 선보이고요. 이런 독특한 형식은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어 더 소름돋게 만들어 줍니다. 확실히 영화화 되는게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부분이 제법 많아요. 

이렇게 호러물로서 충분한 완성도를 지닌 개별 괴담들이 기사, 인터뷰, 인터넷 글, 독자 투고 등 서로 다른 형식으로 선보이다가, 이야기 전체가 하나로 묶여 완결에 이르는 과정도 꽤 깔끔합니다. 괴담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끝내버리는(원래 있었던 괴이 취급을 하며) 미쓰다 신조 스타일과는 다르게, 어쨌건 괴담, 괴이 현상의 정체는 결말에서 밝혀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제가 파악한 정체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긴키 지방 산속에서 여성을 꾀는 존재 : 과거 노총각 마사루의 원념입니다. 노모를 모시느라 결혼도 못 한 채 인형과 감을 애지중지하던 그는 한 여성을 돌로 때려죽인 뒤 스스로 그 돌에 머리를 박고 죽었습니다. 그 뒤 여자들에 돌에 머리를 박고 죽는 사건이 반복되자 돌은 신사에 모셔졌습니다. 사람들은 인형과 감을 공양했지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잊혀져버리자, 다시 나쁜 짓 - 여자를 꾀어 데려오는 - 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빨간 코트의 여자 : 아키라의 어머니입니다. 아키라는 마사루의 원념이 원하던 ‘여자’의 대역으로 희생되었었지요.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뒤 마사루의 돌을 훔쳐 아들을 닮은 무언가를 되살렸습니다. 아울러 아이 유령 목이 고정되지 않고 흔들리는건, 목을 메다가 부러졌기 때문이겠지요...
  3. 저주 스티커 : 아키라의 어머니가 아들의 ‘먹이’를 찾기 위해 퍼뜨린 장치였습니다. 스티커를 통해 저주에 걸린 사람의 혼은 아키라의 먹이가 되고, 남은 껍데기는 자살처럼 위장된 시체로 발견됩니다. 이 때문에 긴키 지방의 아파트와 댐에서는 자살 사건이 잇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반면 단점도 있습니다. 몇몇 괴담은 반복 패턴이라 신선도가 떨어지고, 서로 다른 형식이 뒤섞인 서술은 때로는 산만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괴담과 괴이 현상의 핵심 정체는 밝혀주지만, 상세한 모든걸 밝혀주지는 않습니다. 편집자는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저주에 씌워진 희생자들이 외우는 기묘한 주문은 무엇인지, 스티커의 의미와 스티커를 눈에 띄는 전면에 붙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궁금한게 많은데 모두 그냥 '저주'로 퉁치고 마는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너무 급작스러웠던 마지막 진상 고백은 다소 아쉽습니다. 앞서의 이야기에서 쌓아올렸던 장치들과 무관한, 빨간 코트의 여자 독백 한, 두페이지로 끝나버리는 탓입니다. 이는 이야기의 완성도를 다소 떨어트립니다. 비유하자면 "링"의 사다코가 TV에서 기어나와 자신의 원한을 한, 두 페이지 독백으로 마무리하는 결말인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매체 텍스트들을 하나의 서사로 묶어내는 방식이 능숙하고, 섬찟함을 유지하는 기술도 좋습니다. 호러 소설, 그중에서도 괴담을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즐기실 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만 서사적 완결성보다는 순간순간 장면의 섬뜩함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2015/09/08

면세구역 - 이영수 (듀나) : 별점 2.5점

면세구역 - 6점 이영수(듀나) 지음/북스토리

얼마 전 소개해드린 알라딘의 "끝내주는 책"에서 소개되었던 책입니다. 읽지 않은 작품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눈길이 가기에 구해 읽었습니다. 방대하고 깊이 있는 리뷰로 존경해 마지않는 게렉터 블로그의 주인이시기도 한 SF 소설가 곽재식 님의 소갯글이 너무나 멋졌기 때문이지요. 제가 읽은 책은 2000년 출간된 책의 개정판입니다. 모두 1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요. 듀나의 평론은 많이 읽어봤지만 소설은 처음이네요. "판타스틱"에서 단편을 하나 읽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드라마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이야기 배경이 되는 설정이나 소재에 휩쓸리거나 적응할 뿐, 맞서 싸우거나 극복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또 몇몇 작품은 재미는 있지만 단편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펜타곤 계획"이 대표적입니다. 작가 스스로 제시한 떡밥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도 설득력이 부족하더군요. 보다 상세하게 설정과 배경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아이디어와 발상 자체는 대단합니다. 10년도 더 전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지금 읽어도 낡았다거나 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이디어를 하나의 작품으로 풀어내는 힘이 부족한 점이 아쉽습니다. 작가적인 실력이 성숙해진 최신작을, 가능하면 장편으로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추천작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작품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면세구역"

사고로 죽은 동생이 찍은 몇 장의 사진에는 서울임이 분명하지만 어디로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이 찍혀 있었다. 그곳은 어디일까?

앞서 말한 ‘드라마가 거의 없다’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죽은 동생의 사진 속 비밀 공간을 찾아내려는 과정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고, 면세구역이라는 아이디어도 좋습니다. 그런데 찾아낸 다음에는? 그냥 그런 곳이 있더라.. 고 끝납니다. 이래서는 한 편의 이야기라고 보긴 어렵죠. 별점은 2점입니다.

"스핑크스 아래서"

인터넷으로 장난삼아 "스핑크스 아래서"라는 가상의 영화를 등록했는데, 실제로 그런 영화가 존재했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입니다. 중간까지는 인터넷 루머가 어떻게 확대 재생산되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은유로 보여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결말은 영화가 존재했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짤막하게 끝나 버립니다. 올리비아 에번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궁금한데 설명이 턱없이 부족해 아쉬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나비전쟁"

모든 사물의 인과관계를 꿰뚫고 조작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등장합니다. 이 단편집에서 드물게 주인공이 적극적인 투쟁을 벌이는 작품이지요. 바닥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식의 인과관계 조작 설정은 정말 뛰어납니다. 적도 많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와치맨"의 오지맨디아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딸에게 남긴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설정에 비해 턱없이 짧다는게 좀 아쉽네요. 전설의 요약본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라지는 사람들"

사람들이 서로를 인식할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인데, 주인공의 수동적인 태도와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결말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낡은 꿈의 잔해들"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이 구체화되어 인격체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일종의 도플갱어물입니다. 어떤 영화 예고편을 보고 떠올렸다는 창작 배경은 독특했고, 내가 허구이며 닮았다고 생각한 그 누군가가 진짜 나였다는 진상만큼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너무 직선적으로 드러내어 반전의 맛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단편의 한계일 수 있지만, 보다 깊이 있는 묘사로 결말의 충격을 극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발행동"

무언가 지구로 다가오고, 그 영향으로 지구인들이 성적 흥분에 가까운 트랜스 상태에 빠져 신을 영접하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입니다.

예전 휴거 사태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데, 지구로 다가온 존재가 지구와 짝짓기를 원하는 정체불명의 거대 생물이었다는 결말이 흥미롭습니다. 주인공들이 부르던 노래가 흰긴수염고래의 구애가와 비슷했다는 설정도 좋고요.

다만 주인공이 수동적인 관찰자에 머무르는 점은 단점입니다. 특히 이 작품만큼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3인칭 시점으로 바라봤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타인의 눈"

태어날 때부터 시각 장애를 가진 손녀가 시공간을 초월해 에드 버크먼이라는 남자와 연결되어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SF입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화자가 손녀의 할아버지라는 점입니다. 에드 버크먼에게 일어난 변화와 죽음까지의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이를 제3자가 전해 듣고 전달하는 방식은 몰입을 떨어뜨립니다. 에드 버크먼 시점으로 교차 편집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설정 역시 그다지 신선하지 않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펜타곤 계획"

사고에서 살아남은 5명은 뇌사자의 몸으로 부활한 정보요원인데, 그 중 한 명인 구엔 투 레가 병원에서 탈출해 모두를 죽이려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초반에 5인의 설정을 풀어가는 전개와, 구엔 투 레의 의도를 추리하는 구성이 좋습니다. 특히 그들 모두가 한 사람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5개의 뇌로 나뉘어 부활했다는 진상은 인상적입니다. 설정과 진상만으로도 압도적인 재미를 전해줍니다.

다만 이 훌륭한 설정을 살리기에는 작품이 너무 짧습니다. 원래 육체를 부활시킨 이유나 각 인물의 비밀 같은 떡밥이 회수되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워낙 재미있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기녀기담"

송나라 시대, 기술자 공수반이 모욕을 당한 뒤 기계 인간을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이 배경이라는 점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인간보다 우월한 기계가 나타났을 때의 이야기는 이미 아이작 아시모프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다루었기에 참신함도 부족하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집행자"

호전적인 지성체가 사는 행성에 조난당한 지구 개척단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호전적인 이유가 설득력 있게 설정되어 있고, 이를 존속살인 사건과 연결하는 전개도 뛰어납니다. 우두머리의 아들을 누가 죽였는지 추리하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생존을 위해 아들에게 존속살인을 저지르게 한다는 설정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긴박한 위기가 없는데도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부족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 크고 검은 눈"

거대한 생명체가 분신들을 우주 각지로 보내 지식을 습득한다는 설정의 SF입니다.

화자인 페를리니의 과거 모험담으로서도 흥미롭고, 괴생명체에 대한 추리적 접근이 돋보입니다. 기형 생명체의 디테일한 묘사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빛납니다.

그러나 과거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결말이 시시합니다. 주인공이 거대 생명체를 찾기 위해 장거리 우주 여행자를 찾는다는 결말은 예상 가능하고 긴장감이 없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비잔티움"

비잔티움 행성에 찾아간 상속녀와 후견인이 마주한 행성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로, 행성이 인공 생명체를 키우기 위한 인큐베이터였다는 설정은 빼어납니다. 

그러나 행성의 소유자 에오닌-드-레다가 예술품에 집착한 이유가 부족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집착이 강했다면 별과 함께 파괴되는 길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부분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로렐라이"

전투정 비행사가 자신이 죽인 적에 대한 죄책감으로, 적의 노랫소리가 머릿속에 맴돈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이를 없애려 적의 우주선을 찾아가지만 진짜 위기에 휘말리게 되지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심령 호러물이라 할 수 있는데, 분량이 짧고 반전도 없어서 별로 언급할게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숲의 제단"

우주의 황제가 출생지인 별을 방문했다가 숲에 삼켜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숲을 숭배하는 무속신앙 같은 설정은 "미사고의 숲"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반전 없이 예상 가능한 결말로 마무리되어서 특기할 점이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떠난다"

"숲의 제단"과 비슷하게, 별에 방문한 이주민들이 별에 삼켜져 하나가 된다는 내용으로 너무 짧아 아쉽습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설화를 변주하는 식으로 구성했더라면 더 드라마틱했을 것입니다. 이주민과 원주민의 이후에 대한 언급이 없어 떡밥 회수도 부족하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1/09/03

리처드 매시슨 - 리처드 매시슨 / 최필원 : 별점 3점

리처드 매시슨 - 6점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현대문학

호러, 장르 문학의 거장인 리처드 매시슨의 걸작선. 이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단편집은 거의 모두 읽어볼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라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수록작들 대부분이 좋은 작품들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무려 33편이나 되는 볼륨도 풍성하고요. SF, 호러, 범죄물, 드라마, 서스펜스 스릴러, 심지어 서부극까지 아우르는 장르적인 스펙트럼도 엄청나게 넓습니다. 전부 걸작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별점 5점, 4.5점, 4점의 걸작과 수작도 포함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무슨 기준으로 선정된 작품들인지는 궁금하네요.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이전에 읽었던 작품 중 분명 걸작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빠져있기도 하거든요.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 

흉칙한 무언가가 부모님에 의해 지하실에 쇠사슬에 묶여 갇혀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021년에 읽기에는 많이 뻔합니다. 괴물이 다음 번에는 지하실에서 탈출해서 사람들을 덮친다는 여운을 남기지만, 명확한 결말이 더 낫지않나 생각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감" 

아멜리아는 애인에게 줄 선물로 기묘한 인형을 샀다. 인형을 구속한다는 금줄이 풀리자, 인형은 아멜리아를 죽이기 위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일종의 크리쳐물로 20cm밖에 안되는 나무 인형과 사투를 벌이는 묘사가 압권이에요. 시대가 흘렀어도 여전히 멋집니다. 

하지만 결말과 담고 있는 주제가 제 기억과 사뭇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아멜리아가 처참하게 희생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멜리아가 인형을 처단한 뒤,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는 결말이더라고요. 착각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억과 달라서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사회적인 메시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장성해서 독립한 자녀를 구속하는게 살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시사적이면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을 발표 시점에는 충분히 공포스러웠을 시의적절한 메시지였다 생각되네요. 이런 메시지를 돌직구로, 매력적으로 한 가운데 꽂아넣는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고요.

단, 결말에서 어머니를 죽일 결심을 한 아멜리아가 문의 빗장을 쉽게 연 건 좀 안일했습니다. 인형에게서 도망칠 때에는 여러번 실패했던 걸로 묘사되니까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회파' 크리쳐 호러라는 신경지를 장르 문학 초창기에 개척한 명작입니다.

"마녀 전쟁"

군에서 키우는 일곱 마녀가 쳐들어오는 적군을 마법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마녀들이 각자 특기로 소환한 불과 물, 거대한 암석, 사자 등으로 적을 잔혹하게 몰살시키는 묘사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단지 이런 파괴적인 묘사를 쓰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이외에는 기승전결이 있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파괴 묘사만큼은 확실히 볼 만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판본보다 번역이 훨씬 좋은 덕분이지요. 약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느낌도 드는데, 이런 설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군요.

"깔끔한 집" 

소설가인 나는 아내 루시와 함께 굉장히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왔다. 하지만 얼마 뒤, 아내는 아파트 지하실에 거대한 엔진이 있고, 관리인은 뒷통수에 눈이 달려있다는 말을 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관리인을 미행하여 이 모든게 사실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친한 이웃 필, 마지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함께 아파트가 이륙을 준비할 때 탈출에 성공하는데....

아파트가 로켓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 그리고 마지가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분위기를 풍기다가 그녀가 말했던게 모두 사실이라는게 드러나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던 SF 단편입니다. 서스펜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사실은 블록 전체가 우주선이라서 탈출이 불가능했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고요.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침략하는게 아니라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보디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독특한 설정, 아이디어와 함께 전개에서 긴장감과 흥미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 걸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피의 아들" 

기묘한 아이 쥴스는 드라큘라가 되고 싶다는 망상에 빠졌다. 쥴스는 학교도 그만두고 배회하다가 동물원에서 흡혈 박쥐를 훔쳐내는데...

꽁트에 가까운 짤막한 단편으로, 분량과 흡혈 박쥐가 진짜 드라큘라였다는 반전으로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반전은 뜬금없었고, 리처드 매시슨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는 찾아보기 힘든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이야기는 쥴스가 정신병자인지, 진짜 흡혈귀와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나는 잠에서 깬 뒤, 관에 갖혀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게 적들의 수작이라고 믿은 나는, 관을 탈출하기 위한 갖은 노력 끝에 결국 관 뚜껑을 부수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데...

'나'가 관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이 작가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로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나'는 이미 7개월 전 죽었고, 거울로 본 '나'는 썩은 시체였다는 반전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입니다. "환상특급" 등의 원작으로도 잘 어울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점 전환되는, 그래서 거울 속 모습에 좀비가 보이는 식의 카메라 워크가 곁들여지면 아주 멋지지 않았을까요?

재미와 충격 외에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사소합니다. 얼마 전 읽었었던 좀비물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흔해빠지고 수준 이하였던 작품들 보다는 몇 배 뛰어난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사막 카페"

밥과 진 부부는 여행 중 우연히 사막에 위치한 카페에 들렸다. 진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밥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데...

외딴 마을에서 맞이한, 남편 밥의 실종과 그에 따른 위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여행하던 외지인이 외딴 마을에서 겪는 위기를 그린 작품은 많습니다. 저도 많이 읽어보았고요. 이전 스티븐 킹의 "밴드가 엄청 많더군" 리뷰에서 언급했던 적도 있는데, 보통은 외딴 마을의 기묘한 집단 광기를 그리곤 하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통 범죄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 진의 심리 묘사를 통해 순수한 공포,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희생자를 화장실에서 납치하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범죄인데다가, 보안관 등장 후 별다른 위기없이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장르물이 주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꿰뚫고 제대로 달려주는 수작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위조지폐"

생계에 지쳐 일탈을 꿈꾸던 윌리엄 O. 쿡씨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복제인간에게 온갖 귀찮은 일을 시키고 자신은 놀 생각으로요. 그러나 쿡씨의 복제인간답게, 복제인간도 놀고 싶어해서 결국 복제인간이 급증하게 된다는 블랙 코미디 콩트입니다.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이기도 하고요. 설정은 재미있는데 기계가 폭발하고 복제인간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결말은 시시했습니다. 뭔가 반전이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선" 

로스 선장과 메이슨, 미키는 외계 행성에 착륙했다. 우연히 목격한 인공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추락한 우주선으로 밝혀진 인공물 속에서 발견한 건, 그들 세 명의 시체였다...

일행들이 자기들의 시체를 목격하고 느끼는 공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잘 그려진 SF 단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는 이미 죽었고 시체를 바라보는 자신은 유령이라는 걸 깨닫는다는 결말은, 발표 당시였다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설정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체의 춤" 

대학 신입생 페기는 나쁜 선배들에게 이끌려 법적으로 금지된 루피 춤을 보러 갔다가 충격에 기절하고 마는데...

세기말 감성이 살아있는 독특한 SF. 예전에 읽었던 작품인데, 그 때와 평가는 거의 동일합니다. 페기 시점으로 묘사된 광란의 루피 춤 공연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순진한 신입생이 거부하고 싶은 방탕과 쾌락도 끔찍하게, 그러면서도 잘 그려내고 있고요. 일종의 좀비인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의 발작을 '춤'이라고 이름 붙여 공연한다는 끔찍한 아이디어도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페기도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방탕함에 빠져버린다는 듯한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이 결말이 루피 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페기가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가 되었다던가, 같은 반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호기심으로 좀비를 보러 갔다 왔다. 무서웠다."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몽둥이를 든 남자" 

타임스퀘어에 온 몸이 털로 덮이고 몽둥이를 든 원시인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출동한 경찰이 총을 쏴서 겨우 원시인을 제압했다.

조금 무식하고 무례한 젊은 마초 양아치 1인칭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화자 설정도 진부했고, 결말도 뻔했습니다. 핵심은 원시인이 온 곳이 '미래'였을 수도 있다는 건데, 미래에 문명이 퇴화할 거라는 설정의 이야기는 고전 "타임머신"을 비롯해서 너무 많으니까요. 조금 지적인 노인네를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에서 시대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딱히 건질게 없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버튼, 버튼" 

영화까지 나왔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부부 사이도 서로 모른다'는 걸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기묘한 설정에 더해 서늘하고 섬찟한 느낌과 반전이 있는, '기묘한 맛'류의 쇼트쇼트입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박한 평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기묘한 맛' 류로는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작품이네요. 왜 나쁜 평가를 했었을까요? 별점은 4.5점입니다.

"결투"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영화 데뷰작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 격렬한 카 체이스를 어떻게 글로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다면, 모범 답안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트럭에 쫓기면서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 등이 아주 잘 드러나 있으니까요.

그러나 트럭 운전사의 분노가 잘 이해되지는 않고, 마지막 트럭의 최후가 너무 뜬금없다는게 아쉽습니다. 확실한 급커브였다던가 등 속도를 반드시 줄여야 했다는걸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심판의 날" 

루크는 심부름을 왔다가 목이 잘린 과부 블랙웰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녀의 아들 짐은 시체를 본 뒤, 극심한 공포로 광란 상태였다. 루크의 아버지 샘은 현장 조사를 통해 과부가 아들을 의도적으로 미치게 만들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남편을 죽게 만든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다가 죽었음) 아들을 증오했었다....

과부 블랙웰이 증오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들 짐이 자신이 없으면 미쳐버리도록 차근차근 준비한 뒤,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결말이 놀라운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끔찍한 공포가 짧은 분량 안에 모두 포함되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걸작이에요. 블랙웰 부인이 목을 멘 칼이 어디 갔을지?에 대한 부분이 설명되지 않은건 약간 아쉽지만, 단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이 단편 하나를 읽은 것 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네요.

덧붙이자면, 엄청난 의지로 저지른 자살이라는 설정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걸작 심령 서스펜스 호러물인 "네번째 남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었지요.

"죄수" 

1944년, 비밀 연구소에서 핵분열을 연구하던 핵물리학자 필립 존슨은 폭발 사고 후 눈을 뜨자, 자신이 2시간 뒤 사형당할 1954년의 사형수 존 라일리 몸 속에 들어와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핵폭발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는 SF적인 발상을 담은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과연 필립 존슨이 자신이 사형수 존 라일리가 아니라는걸 2시간 안에 증명할 수 있을까?가 서스펜스의 핵심이고요.

그러나 필립 존슨의 노력은 신부를 한참 설득하다가 아내 전화번호를 주는 것 뿥입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요. 덕분에 긴장감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신부가 그의 아내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애매했습니다. 진짜 필립 존슨의 아내가 없었는지, 아니면 신부가 귀찮아서 거짓말을 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필립 존슨이 모든걸 체념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 별로였습니다. 곧 죽을 상황인데, 어떻게든 발버둥 쳐 봤어야죠..

아이디어, 설정은 좋았지만 끌고가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웨딩 드레스" 

세상을 떠난 엄마 드레스에 푹 빠진 아이가 친구에게 몰래 엄마 방과 드레스를 보여주다가 폭주한다는 내용의, 미치광이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혼란스러운 심리극입니다.

그런데 익히 보아왔던 설정과 내용이라 진부합니다. 더 큰 문제는 여백이 많아서 완성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요. 엄마는 못생겼고 드레스도 피투성이에 총 구멍이 나 있었다는게 살짝 드러나기는 하지만, 아이가 친구를 죽였는지, 엄마 사인은 무엇인지, 아이는 지금 어디 갇혀서 어떻게 된건지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발"

더운 여름날, 조는 기묘한 손님을 맞아 이발을 해 주었다. 손님은 손톱이 계속 자란다는 등 혼잣말을 읆조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손님이 죽은 사람이었다는건 에상 가능했던 결말이었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설정이네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을 때 흙이 떨어진게 아니라, 손은 뼈 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신선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윌슨은 출장을 위해 탑승한 비행기 창문을 통해, 괴물이 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 있는걸 발견했다. 괴물은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숨어버려서 윌슨 눈에만 보였다. 비행기 엔진을 부수려고 시도하는 괴물을 막기 위해서, 윌슨은 비행 중인 비행기 문을 여는데...

영화판 "환상특급" 에피소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공포심, 신경증을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괴물'로 형상화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윌슨이 커튼을 열고, 비행기 창문을 통해 자기를 노려보는 괴물을 처음 보는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압권이에요.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총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등의 묘사에서는 시대를 느낄 수 있고요.

괴물에게 결국 총을 쏜 윌슨이 승객들에게 제압 당한 뒤 비행기 착륙 후 옮겨지는 결말은 다소 시시하지만, 아이디어와 묘사력이 발군이기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례식" 

클루니스 장례식장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에게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찾아와서 최고급 장례식 준비를 요청했다. 그는 고인이 자신이라고 말했고, 장례식 날에는 하인인 곱추 이고르, 마녀, 늑대인간과 다른 흡혈귀들이 찾아 오는데...

드라큘라를 연상케하는 뱀파이어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스스로의 장례식을 치룬다는 블랙 코미디로, 마지막에 다른 괴물 손님이 찾아온다는 반전도 좋아서 '쇼트쇼트'로는 더할나위 없었던 작품입니다. 장례식에서의 소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도 좋았고요.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코미디의 정체성이 잘 살아있어서 놀랐습니다. 거장은 뭘 써도 거장인 법이겠지요? 오래 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역시나 그 때도 좋은 평가를 했었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태양에서 세번째" 

우주 비행사가 세계 멸망을 앞두고, 다른 행성으로 처자식과 이웃 사람들까지 우주선에 몰래 태우고 출발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이었다...

화자인 우주 비행사와 그 가족들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기 전 겪는 마음 속 불안과 혼란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그들이 있던 곳이 지구가 아니라 향한 곳이 지구라는 반전이 등장하는 짤막한 쇼트쇼트. 일종의 서술 트릭물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쇼트쇼트로서는 우수한 수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최후의 날" 

최후의 날을 맞아 음주, 난교, 광기어린 파괴 행위 등을 즐기던 리처드는, 가족의 소중함을 께닫고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려 한다.

리처드가 어머니와 함께 최후의 순간을 맞으며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걸 깨닫는다는 드라마. 여동생 가족이 죽음을 택하기 위해 약을 먹는 장면은 찡하면서도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평이했습니다. 소설보다는 "환상특급"과 같이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 않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거리 전화" 

몸이 불편한 미스 킨에게 어느날 한 밤중, 폭풍우가 불어올 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뒤에도 전화는 계속 걸려왔고, 속삭임과 단조로운 흥얼거림에 이어 상대방으로부터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까지 들려오게 되었다. 전화 회사의 조사 결과 이 전화는 묘지에서 걸려온걸로 밝혀지는데...

정체 모를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지요.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다른 이야기만큼 공포스러운 상황을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미스 킨의 불안부터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간호사의 말대로 전화를 그냥 끊던가, 수화기를 내려 놓던가, 전화선을 뽑아 놓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는 걸 "제가 댁으로 갈게요." 라는 마지막 전화 목소리로 알려주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만, 묘지에서 걸려왔다는게 드러났을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설득력 낮은 진부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행복한 가정의 아빠인 회계사 로버트 카터는 어느날 면도를 하다가 깊숙하게 베였다. 그리고 상처 속 전선과 기계 장치를 보고, 자기가 로봇이라는 걸 깨달았다. 충격에 거리를 배회하던 카터는 도시가 로봇들로 가득차 있었고, 음식들도 모두 기름이었다는 걸 알아 채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통상적인 의미, 즉 이야기를 모두 해결해 버리는 전능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인 "기계 장치의 신"에서 가져온 이야기라는게 독특하네요. 내가 내가 아니라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흔한 설정을 독보적인 로버트 카터의 심리 묘사로 차별화시킨 솜씨도 거장다왔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도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로버트 카터가 진짜 로봇인지, 아니면 죽은 뒤 환상을 보는 건 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열린 결말은 좀 아쉬웠습니다. 보다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고 반전도 있는 결말을 기대했거든요. 물론 로버트 카터가 쓰러지면서 떠올리는 성경 구절 - "하느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의 사람을 만들고..." - 은 그가 기계라는걸 연상케 합니다만, 명확하게 증명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계라고 한다면, 그들을 만든 '하느님'이 누구인지도 설명이 필요해 보였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자신이 기계라고 믿는 주인공 이름이 '로버트'라는게 의미심장하네요. 우리나라로 변주한다면 '노보두 씨' 정도로 부르면 되겠지요?

"기록적인 사건" 

가방끈 짧은 쉰 아홉살의 대학교 건물 관리인 프레드는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깬 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건물 청소 및 수리를 하면서 대학의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되는데....

갑자기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던 소품. 외계인들이 지구의 지식을 손에 쉽게 넣고자 프레드 머릿 속에 대학교 지식을 집어 넣은 뒤 그걸 한 방에 빼 먹은 것이지요. 한마디로 프레드를 일종의 외장 하드로 사용한 셈입니다. 좋은 쇼트쇼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안에서 죽다" 

돈과 베티 부부에게 '돈 타일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돈은 자기는 돈 마틴이라고 주장히먀 화를 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돈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 부부의 집에 침임했고, 돈을 제압한 침입자는 돈이 저질렀던 과거 범죄와 배신에 대해 추궁하는데....

과거 저질렀던 범죄에서 발을 빼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온지 10년 만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서스펜스 범죄물. 돈이 침입자인 심슨과 사투를 벌인 끝에 그를 죽이고, 모든걸 알게 된 아내 베티가 경찰에 빈집털이가 들어와 싸우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하는 결말까지 깔끔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긴장감은 약한 편입니다. 악당 심슨이 침입한 뒤 하는게 없는 탓이에요. 총으로 부부를 위협하고, 과거 이야기를 떠벌이는게 전부거든요. 서스펜스를 끌어올릴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코넬 울리치가 썼더라면 훨씬 멋진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정복자" 

1871년, 그랜트빌 잡화상 주인인 나는 남북전쟁 때 죽은 아들 루와 닮은 젊은 청년과 역마차를 함께 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그랜트빌 최고의 총잡이와 싸울 목적이었다. 라이커라는 청년은 그랜트빌의 총잡이 바스 셀커크를 깔끔하게 사살했지만, 습격해 온 셀커크의 부하들에게 난사당해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느낌이 드는 현실적이면서도 허무한 서부극입니다. 라이커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서부극 총잡이들이 영웅이 아니라 허깨비라는걸 잘 보여주거든요. 어릴 때 부터 총잡이를 동경하여 연습을 거듭한 끝에 빠른 속사와 사격술을 익혔지만, 정신적으로는 애와 다름없는 철부지로, 1대 1 결투에서는 이겼지만 여섯 명의 악당이 습격하자 울며 애원하다가 총에 맞아서 꼴사납게 죽기 때문이지요. 풍자적이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느낌이 좋았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홀리데이 맨" 

데이비드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내키지 않는 출근길에 나선다...

데이비드가 출근을 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그의 직업이 끔찍했던 탓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 지켜보고, 사망자 수를 예측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데이비드의 심리 묘사가 그닥이었고, 업무의 끔찍함도 잘 드러나지 않는게 단점입니다. 이 업무가 아무리 끔찍해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느끼기 어려웠고요. 전개가 밋밋하고 반전도 그닥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예전에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걸 보면 예전에도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뱀파이어란건 없다" 

루마니아에 있는 작은 마을 솔타에 사는 게리아 부인은 어느날 밤, 누군가의 습격으로 목을 물어 뜯겨 피를 빨린채 발견되었다. 게리아 박사는 다음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부인을 지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게리아 박사는 후배 미카엘 바레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크리쳐 호러물로 시작해서 깔끔한 범죄물로 마무리되는 작품입니다. 왜 범죄물이냐 하면, 뱀파이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리아 박사가 커피에 아편을 타서 아내를 재운 뒤, 목에서 피를 뽑아냈던 거지요. 이유는 그녀가 후배 바레스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고요. 마지막은 바레스가 뱀파이어인 것 처럼 꾸민 뒤, 그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을 거라며 마무리됩니다. 

기발한 소재와 불륜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 의외의 반전, 내용은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비교적 짤막한 분량이라는 점 등 전형적인 미국식 쇼트쇼트의 특징을 모두 갖춘 작품입니다. 트릭도 조금 유치했지만, 뱀파이어 전설이 살아있는 루마니아라는 설정이라서 나름 설득력있고요. 너무 전형적이라서 작가 특유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깜짝 선물"

늙은 호킨스 씨는 집 앞을 지나는 어린 소년들을 부르곤 했다. 소년들에게 "땅을 파면 깜짝 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주문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니에게는 주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어디를 파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깜짝 선물이 금괴라고 확신한 어니와 친구들은 그 곳을 파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물이 뭔가 나쁜거라는 짐작은 되지요? 어니가 찾은건 일종의 관이었고, 그 안에서 호킨스 씨가 튀쳐 나온다는게 결말입니다. 그러나 결말의 반전은 약했으며 설득력도 없고, 동기도 불분명한 등 설명까지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니가 땅을 파게 만드는데 까지의 전개는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산타클로스를 만나다" 

켄은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들 리처드와 함께 다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 헬렌은 차에 남겨둔 채였다. 사실 켄은 이 기회를 빌어 헬렌을 죽일 생각으로 살인청부업자에게는 돈을 지급했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가는 동안, 그는 죄책감, 양심 등으로 심하게 갈등하는데...

아내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순간이 되자, 켄이 겪는 극심한 마음 속 갈등과 혼란이 핵심인 심리 스릴러. 심리 묘사가 아주 빼어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심리 묘사야 말로 작가의 특기 중 특기지요. 살인과 극명히 대비되는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특히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받는다'는 산타클로스와의 약속을 결말에서 제대로 써 먹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켄의 삶이 조금 더 비참해 졌다는 결말이니까요. 켄은 선물 (아내의 죽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현실적이기도 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강남길 씨가 아내를 죽이려고 노력하던 TV 단막극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켄과 리처드가 많이 걷지 않아도 되도록 차를 옮겨 놓겠다는 아내의 말에 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장면에서요. 하지만 강남길 씨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켄에게는 지옥이 열릴 거라는 결말은 천지차이이기는 합니다만, 이런게 미국과 한국의 감성 차이인지도 모르겠네요.

"춤추는 손가락"

장거리 버스 여행 중 내 앞에 앉은 여성은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돌보미 여성에게 끊임없이 수화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다가 장애인 여성이 내 자리를 빼앗았고, 어쩔 수 없이 원래 그녀 자리에 앉은 나에게, 옆자리 돌보미 여성이 해준 이야기는 자신과 장애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화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해서, 장애인 여성의 수화 수다로 돌보미 여성이 그녀를 벗어나고 싶어했고, 돌보미를 놓아주기 싫었던 장애인 여성이 괜찮은 남자를 물색해서 노리개로 던져준다는, 일종의 '남자 사냥' 으로 이어가는 전개가 자연스럽고 좋았던 작품.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한 느낌이 드는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남자를 유혹하던 여성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결말이 너무 허무하네요. 남자 사냥은 돌보미를 바꾸기 위함이었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남자를 잡아 먹기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은 기승전까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결이 너무 급작스럽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벙어리 소년" 

시골 마을에 살던 닐젠 부부가 화재로 죽고, 부부의 아들 팔은 보안관 해리와 코라 부부에게 위탁되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말도 못했던 팔을 코라는 사랑으로 돌보고, 죽은 자기 아들 대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코라는 남편이 시도했던 닐젠 부부 지인에게의 연락을 훼방놓았다. 그래서 닐젠 부부가 죽은 뒤 한참 뒤에야 부부의 지인 베르너 교수가 팔을 찾아 왔다. 그러나 그 사이, 학교를 다녔던 팔은 그가 가졌던 독특한 텔레파시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팔은 벙어리가 아니라 부모의 텔레파시 교육을 받았던 텔레파시 능력자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부모는 텔레파시 능력이 훼손될까봐 특정한 이미지, 단어로 설명되는, '말'을 익히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겁니다. 단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한계가 있다는 발상은 꽤나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닐젠 부부의 사고, 코라가 팔을 양자로 들이고 학교에 보낸 것, 베르너 교수의 방문 등 여러가지 사건이 두서없이 펼쳐지는 탓이 큽니다. 닐젠 부부가 죽은 화재 사고의 원인도 결국 밝혀지지 않고요. 또 팔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건 엄연한 아동 학대입니다. 팔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고 아름답다고 포장할 이유도 없어요. 실상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그냥 말 없이 생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게 전부인데, 이러느니 말로 하는게 더 낫잖아요? 근거리에서만 가능한 듯 싶으니 결국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려면 글을 익혀야 하는건 당연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팔을 옭아맸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찬가지 이유로 현실 학교 교육이 팔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묘사도 불필요했습니다. 

팔이 말을 하기 시작해서 텔레파시 능력이 사라졌다는 결말도 맥빠집니다. 어차피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아쉬운 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팔에게는 코라의 사랑이 더욱 필요했으니, 앞으로는 행복해질 일만 남아 있을테고요.

차라리 '사랑은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감정이다'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멋진 설정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팔이 능력의 편린을 유지한채 성인이 되어 여자 마음을 잘 아는 능력자가 된다는 식으로요. 지금은 설정,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충격파" 

교체를 앞둔 교회 오르간이 폭주해서 교회를 파괴한다는 내용의 작품.

늙고 낡아버려서, 사랑했고 필요로 했던 것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교체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데 딱히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공포를 자아내는 맛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폭주는 상식적인 선에 그쳐서 크리쳐물로 보기도, 재난물로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작품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6/12/23

화가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2.5점

화가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호러영화 같은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 레나. 코타로가 곧바로 이사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자. 

곧 중학생이 되는 코타로는 할머니와 함께 치바에서 머나먼, 도쿄 근방의 무사시 나고이케라는 낯선 지역으로 이사왔다. 코타로의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로 사망한 탓이었다. 코타로는 새 집에서 왠지모를 기시감을 느꼈고, 집 안에서 온갖 이형의 존재와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코타로는 새 친구 레나와 함께 이유를 밝혀내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고, 오래전 신문을 통해 이사 온 집은 10년 전 일가족이 이웃집 정신병자에게 살해당했던 장소이며, 유일한 생존자는 바로 코타로였다는걸 알게 되었다...

미쓰다 신조의 '집'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화가 (禍家)'는 한국말로 하자면 '재앙의 집' 이겠지요? '집' 시리즈 답게 '집'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자 장치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롭지는 않습니다. 설정부터가 진부한 탓입니다. 몰락한 막장 명문가(수많은 작품들...), 잔인하게 일가족이 살해당했던 과거(수많은 작품들...), 이형의 존재가 지나가는 길이나 궤도에 있으면 죽거나 해를 입는다("귀담백경"의 "방울소리" 라던가 "백귀야행" 등등등), 죽음의 연쇄는 막을 수 없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데스티네이션" 등등등) 등 모두 어디선가 보아왔던 설정들이지요.
뻔한 설정이라도 미쓰다 신조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도 못합니다. 작가의 장기인 일본적인 요괴나 주술, 심령 묘사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역인 시미에의 작전도 허술합니다. 코타로의 양부모를 죽인 것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레나와 친해진 후 코타로와도 격의없이 지내는 과정은 그렇게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코타로와 할머니가 이 곳으로 이사오리라 생각한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어떤 어머니가 아들 가족이 살해당한 집에 손자를 데리고 다시 이사를 간답니까?

다행히 장점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뻔하지만, 뻔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쓰였다는 뜻이고 많이 쓰였다면 그건 그만큼 효과, 즉 재미가 있다는 의미도 되지요. 이에 더해 극단적으로 말하면 초등학생의 모험물이라 할 수 있는 작품 특징 덕분에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읽히는 편이기도 하고요. 특히 코타로에 대한 묘사가 괜찮습니다. 급작스럽게 닥치는 여러 사건과 사고 속에서 의지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의 힘으로 어려움을 돌파해나가려는 전형적인 '점프식' 주인공인데 작품과 잘 어울린 덕분입니다. 아울러 주인공이 어리고 모험물적인 전개를 갖추어서 작가 특유의 장황하면서 복잡한 묘사가 덜하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을 테고요.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시미에가 사실 가미츠케 가의 딸인 시메이로, 오빠의 유지를 받들어 범행을 끝내기 위함이었다는걸 몇몇 디테일로 드러내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면 코로가 화요일, 목요일 낮에 짖은 이유를 가정교사로 레나 오빠의 공부를 봐 주기 위해 오는 시미에의 동선과 일치시키는 식으로요. 물론 개가 짖는다고 지나가는 사람이 다 살인범은 아닐테니, 그렇게 합리적인 설정은 아니기는 하지만요.
마지막 순간에 이러한 디테일들을 통해 시미에의 존재를 눈치챈 두 번의 기지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개 코로까지야 그렇다 쳐도, 레나에게서 받은 부적이 휴대전화였다는 반전은 정말이지 멋졌어요. 

또 정신병자 살인마 카미츠케 군지의 범행은 사당에서 뛰쳐나온 이형 존재의 동선에 위치한 자신의 집 대신, 맞은편 무나카타가를 이용하려는 것이었다는 진상도 나쁘지 않습니다. 정신병자나 할 법한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라도 이에 이르는 과정을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더라도 영적인 무언가에 대한 묘사는 충분히 섬찟합니다. 형태를 그리지 않고 분위기와 소리만으로 공포심을 자아내는 묘사력은 여전히 발군이에요. 이들은 살인범 카미츠케 군지를 제외하면 모두 살해당한 코우타의 가족으로 무언가를 코우타에게 전하기 위해 딱 한번만 나타난 것이라는 반전도 나쁘지 않고요. 
물론 반전이 아주 새롭지는 않고, 이 반전 탓에 이후 이들에 대한 공포가 사라져버린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사당에 관련된 그럴싸한 설정과 묘사 - 여기에 있는 건 구제할 수 없는 절망, 불합리할 정도의 우월감, 끝을 모를 악의, 압도적인 광기, 소름돋는 증오, 너무나도 제멋대로의 살의...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굉장히 무서운 무언가처럼 묘사하다가, 별다른 설명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어 버리는 탓입니다.
군지가 사당을 박살낸 후 무언가 탈출(?) 했다면 사당은 그냥 빈 껍데기가 되었을텐데 이런 부분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레나와 코타로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이(초중반부에 등장했던 정체모를 꼬마 아이로 보이는) 가미츠케 가문의 단 하나남은 소년의 등장으로 마무리 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소설대로라면 결국 코타로는 죽게 될 것 같은데, 레나와 곧 태어날 아이까지 그렇게 될지... 좀 많이 걱정이 되는군요.

하여튼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을 모두 적절히 갖춘 평작입니다. 미쓰다 신조 입문으로는 괜찮습니다.

2013/10/01

[소식] 절판본 미스터리 박스(와우북) - 공유드립니다.

[소식] 절판본 미스터리 박스(와우북)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북스피어다운 이벤트군요. 아이디어가 참 괜찮은 것 같아 공유드립니다.
이벤트에 포함된 절판도서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적색은 저도 소장한 작품들입니다)

정말 희귀한 작품도 있지만 고려원과 해문쪽 추리걸작선은 아직 구하려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증명 시리즈나 스카페타 시리즈같이 재간된 책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 <비밀일기>와 같이 전체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추첨에 참여해도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아보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제가 앞으로 출판사를 하게 된다면 꼭 따라해보고 싶은 이벤트네요. 저만의 절판본 리스트라도 만들어서 한번 관리해봐야겠습니다.

참고로 탐나는 작품은 아서 클라크의 "환상특급"과 P.D 제임스 시리즈이며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르라면 "챔피언 시저의 죽음"과 "레이디킬러"를 꼽겠습니다.

  • 챔피언 시저의 죽음/ 렉스 스타우트/ 이춘열 옮김/ 시공사/ 1995.
  • 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2004.
  • 낙원의 샘/ 아서 클라크/ 정영목 옮김/ 시공사/ 1999.
  • 순간의 적/ 로스 맥도널드/ 김연남 옮김/ 홍원/ 1994.
  • 코스믹 러브/ 로저 젤라즈니 외/ 박상준 엮음/ 사울창작/ 1994.
  • 열흘간의 불가사의/ 엘러리 퀸/ 유명우 옮김/ 1994.
  • 앰버 연대기(1, 2, 3, 4, 5)/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예문/ 1999.
  • 에드가상수상작품집Ⅱ/ 엘러리 퀸 외/ 정태원 옮김/ 명지사/ 1998.
  • 두동강이 난 남과여/ 히가시노 게이고 외/ 봉성기획/ 1999.
  • 세계 심령 미스터리 사이키/ 로버트 실버버그 외/ 박상준 역음/ 서울창작/ 1994.
  • 숏컷/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집사재/ 1996.
  •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 하라 료 외/ 추리작가협회/ 고려원미디어/ 1993.
  • 환상특급/ 아서 클라크 외/ 박상준 엮음/ 서울창작/ 1994.
  • 디바/ 델라코르타/ 안선덕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스노우 크래쉬(1, 2) 닐 스티븐슨/ 김장환 옮김/ 새와물고기/1996.
  • 플레치/ 그레고리 맥도널드/ 정철호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죽어서 지킨 약속/ 러브 크래프트 외/ 한경희 편역/ 문학사/ 1994.
  • 인형의 눈(상, 하)/ 베리 우드/ 정영목 옮김/ 동아출판사/ 1994.
  • 천재들의 게임/ F. 폴 윌슨/ 고영휘 옮김/ 십일월출판사/ 1994.
  • 히치콕 서스펜스 걸작선/ 엘리너 설리번 엮음/ 고려원미디어/ 1994.
  • 결혼해 주세요/ 존 업다이크/ 폴임 옮김/ 밝은세상/ 1993.
  • 죽음의 열립방정식/ 모리무라 세이치/ 정성호 옮김/ 모음사/ 1984.
  • 남아 있는 모든 것/ 패트리샤 콘웰/ 이정환 옮김/ 시공사/ 1994.
  • 두 얼굴의 여자/ 수 크라프튼/ 나채성 옮김/ 큰나무/ 1994.
  • 잔혹한 사랑/ 패트리샤 콘웰/ 정한솔 옮김/ 시공사/ 1993.
  • 검은 휘파람/ 로버트 러들럼/ 홍석연 옮김/ 문지사/ 1998.
  • 호텔 Q의 25시/ 모리무라 세이치/ 정태원 옮김/ 글사랑/ 1995.
  • 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정성호 옮김/ 한겨레/ 2001.
  • 강철군화/ 잭 런던/ 차미례 옮김/ 1989.
  • 영원의 아이(상중하)/ 덴도 아라타/ 김난주 옮김/1999.
  • 샤바케/ 하타케나카 메구미/ 김소연 옮김/ 2005.
  • 인간 쓰레기/ 아이작 싱어/ 박원현 옮김/ 고려원/ 1992.
  • 인생을 훔친 여자/ 미야베 미유키/ 박영난 옮김/ 2000.
  • 재앙의 거리/ 엘러리 퀸/ 정태원 옮김/ 1994.
  • 호러 사일런스/ J. G. 발라드 외/ 김성화 옮김/ 1994.
  • 악마 다리/ 코난 도일/ 조용만 옮김/ 학원출판공사/ 1993.
  • 금요일 옷 벗는 도둑/ 마쓰모토 세이초 외/ 정태원 옮김/ 비전/ 1994.
  • 중국 오렌지의 비밀/ 엘러리 퀸/ 이원두 옮김/ 시공사/ 1994.
  •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김성재 옮김/ 책만드는집/ 1994.
  • 독 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이원두 옮김/ 이성/ 1994.
  • 스나크 사냥/ 루이스 캐럴/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2007.
  • 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2006.
  • 비밀일기/ 스우 타운센드/ 배현나 옮김/ 김영사/ 1986.
  • 야수는 죽어야 한다/ 오오야부 하루히코/ 박영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비밀의 문/ 김내성/ 명지사/ 1994.
  • 트리스트란과 별공주 이베인/ 닐 게이먼/ 김명렬 옮김/ 2000.
  •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마루야마 겐지/ 김춘미 옮김/ 하늘연못/ 2001.
  • 보안관과 도박사/ 엘모어 레오나드/ 이종인 옮김/ 고려원/ 1994.
  • 별을 쫓는 자/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북스피어/ 2008.
  • 유년기의 끝/ 아서 클라크/ 정영목 옮김/ 시공사/ 2001.
  • 유령의 집/ 헨리 제임스/ 이채윤 옮김/ 데미안/ 2003.
  •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아서 클라크/ 김종원 옮김/ 한양출판/ 1994.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로버트 하인라인/ 임창성 옮김/ 잎새/ 1992.
  • 울게 될 거야/ 야마모토 후미오/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2008.
  • 야수들의 밤/ 오시이 마모루/ 황상훈 옮김/ 황금가지/ 2002.
  • 어두컴컴한 물밑에서/ 스즈키 코지/ 윤덕주 옮김/ 씨엔씨미디어/ 1999.
  • 맥널리의 모험/ 로렌스 샌더스/ 이창식 옮김/ 고려원/ 1993.
  •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하인라인/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리더스 다이제스트 걸작추리모음 3/ 존딕슨카 외/ 동아출판사/ 1993.
  • 사이코/ 딘 쿤츠/ 신영희 옮김/ 한뜻/ 1997.
  • 발렌타인의 유산/ 스탠리 엘린/ 고경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태양의 유산(1, 2)/ 아사다 지로/ 한은미 옮김/ 시아/ 2000.
  •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1, 2)/ 마루야마 겐지/ 박은주 옮김/ 책세상/ 2000.
  • A2Z/ 야마다 에이미/ 이유정 옮김/ 태동 출판사/ 2004.
  • 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이주혜 옮김/ 이레/ 2009.
  • 프로페셔널 킬러/ 토마스 페리/ 최인석 옮김/ 모음사/ 1984.
  • 미드나이트 시즌/ 스티븐 킹/ 공경희 옮김/ 대산/ 1999.
  • 나를 기억하라/ 메리 히긴스 클라크/ 임지현 옮김/ 문학사상사/ 1995.`
  • 흔적/ 패트리샤 콘웰/ 조성은 옮김/ 시공사/ 1996.
  • 마지막 대본/ 미키 스필레인/ 정다빈 옮김/ 홍원/ 1993.
  •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김훈/ 문학동네/ 1995.
  • 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홍은주 옮김/ 북하우드/ 2006.
  • 메두사/ 이노우에 유케히토/ 송영인 옮김/ 시공사/ 1998.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문학동네/ 2001.
  • 플레이보이 SF걸작선[1]/ 필립 K. 딕 외/ 황금가지/ 2003.
  • 워터멜론 슈가에서/ 리차드 브라우티건/ 최승자 옮김/ 도서출판 민/ 1995.
  • 무서운 사람들/ 얼 스탠리 가드너/ 강성열 옮김/ 세진출판사/ 1991.
  • 파프리카/ 쓰쓰이 야스타카/ 최경희 옮김/ 영림카디털/ 1994.
  • 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정탄 옮김/ 끌림/ 2008.
  • 고독의 노랫소리/ 덴도 아라타/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05.
  • 소돔의 성자/ 오사와 아리마사/ 이원두 옮김/ 이성/ 1993.
  • 아이스바운드/ 딘 쿤츠/ 안정희 옮김/ 한뜻/ 1996.
  • 불야성/ 하세 세이슈/ 김은아 옮김/ 대원/ 1999.
  • 사요나라 갱들이여/ 다카하시 겐이치로/ 이승진 옮김/ 향연/ 2004.
  • 아내가 마법을 쓴다/ 프리츠 라이버/ 송경아 옮김/ 웅진/ 2007.
  • 어둠(1, 2)/ 제임스 허버트/ 김석희 옮김/ 정신세계사/ 1995.
  • 아웃(1, 2, 3)/ 기리노 나쓰오/ 홍영의 옮김/ 다리미디어/ 1999.
  • 대망(1~10)/ 야마오카 소하치/ 박재희 옮김/ 동서문화사/ 1975.
  • 속삭이는 사람들/ 마가리트 밀러/ 현재훈 옮김/해문/1983.
  • 디미트리오스의 관/ 에릭 앰블러/ 이가형 옮김/ 해문/1986.
  • 판사와 형리/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1988.
  • 부머랭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신용태 옮김/ 해문/ 1988.
  • 서재의 시체/ 애거서 크리스티/ 설영환 옮김/ 해문/ 1989.
  • 연성결(상,하)/ 김용/ 박영창 옮김/ 중원문화사/ 1989.
  •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 애거서 크리스티/ 김석환 옮김/ 해문/ 1989.
  • 중국 황금 살인 사건/ 로베르트 반 훌릭/ 이동진 옮김/ 삼신각/ 1990.
  • 내가 죽인 소녀/ 료 하라/ 박영 옮김/ 청림출판/ 1990.
  • 녹정기(1~11)/ 김용/ 박영창 옮김/중원문화사/1990.
  • 부자연스러운 주검/ P. D. 제임스/ 차근호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1.
  • 피부 밑의 두개골(1,2)/ P. D. 제임스/ 이명성 옮김/ 일시서적출판사/ 1992.
  •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찌/ 이원두 옮김/ 한길사/ 1991.
  • 제3의 사나이/ 그레엄 그린/ 안흥규 옮김/ 문예출판사/ 1991.
  •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 P. D. 제임스/ 박종원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2.
  • 타인의 목/ 조르쥬 심농/ 김수연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2.
  • 열쇠 없는 집/ 얼 비거스/ 유명우 옮김/ 한길사/ 1992.
  • 타이태닉 호의 음모/ 도널드 A. 스탠우드/ 이인복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죽은 자와의 결혼/ 윌리엄 아이리시/ 김석환 옮김/ 해문출판사/ 1992.
  • 미드나이트/ 딘 R. 쿤츠/ 조석진 옮김/ 고려원미디어/1992.
  • 벌거벗은 얼굴/ 시드니 셀던/ 한번웅 옮김/ 신원문화사/ 1993.
  • 컴퓨터의 몸값/ 미요시 도오루/ 권자인 옮김/ 수목출판사/ 1993.
  • 마지막 모험/ 엘모어 레오나드/ 김명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3.
  • 한국 서스펜스 걸작선/ 이상우 외/ 고려원미디어/ 1993.
  • 어스시의 마법사/ 어슐러 K. 르귄/ 윤소영 옮김/ 웅진출판/ 1993.
  • 여형사 K/ 수 그라프톤/ 정한솔 옮김/ 큰나무/ 1994.
  • 쇠못 세 개의 비밀/ 로베르트 반 훌릭/ 이희재 옮김/ 디자인하우스/ 1994.
  • 경마장의 비밀/ 딕 프랜시스/ 이종인 옮김/ 고려원미디어/1994.
  • 레이디 킬러/ 도가와 마사꼬/ 김갑수 옮김/ 추리문학사/ 1994.
  •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미스터리 걸작선 추리특급/ 엘러리 퀸 엮음/ 정성호 옮김/ 제삼기획/ 1994.
  • 종소리를 삼킨 여자/ 로베르트 반 훌릭/ 이희재 옮김/ 디자인하우스/ 1995.
  • SF 시네피아/ 아서 클라크 외/ 박상준 엮음/ 서울창작/ 1995.
  • 죽음의 편지/ 보브 랜들/ 김훈 엮음/ 고려원미디어/ 1996.
  • 유니스의 비밀/ 루스 렌들/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카인의 아들/ 패트리샤 콘웰/ 이창식 옮김/ 시공사/ 1996.
  • 시귀(1,2,3)/ 오노 후유미/ 임희선 옮김/ 들녘/ 1999.
  • 자본론 범죄/ 칼 마르크스/ 이승은 옮김/ 생각의나무/ 2004.
  • 월간 판타스틱 2008/08 Vol.18/ 페이퍼하우스/ 2008.
  • 만연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박유하 옮김/ 고려원/ 2000.
  • 위대한 세월/ 오에 겐자부로/ 김난주 옮김/ 고려원/ 1995.
  • 핀치러너 조서/ 오에 겐자부로/ 허호 옮김/ 고려원/ 1996.
  • 펠리컨브리프/ 존 그리샴/ 정영목 옮김/ 시공사/ 1994.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정계춘 옮김/ 자유문학사/ 1993.
  • 마지막 파티/ 윌리엄 캐츠/ 정태원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복수법정/ 헨리 덴커/ 이상곤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아이라 레빈/ 이일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보안관과 도박사/ 엘모어 레오나드/ 이종인 옮김/ 고려원/ 1994.
  • 죽음의 세레나데/ 유우제/ 고려원미디어/ 1994.
  • 맨해턴 특급을 찾아라/ 클라이브 커슬러/ 이원두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독수리는 날아오르다/ 잭 히긴스/ 박주동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3.
  • 라마(6,7)/ 아서 클라크 & 젠트리 리/ 안정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4.
  • 맥널리의 행운/ 로렌스 샌더스/ 이순주 옮김/ 고려원/ 1992.
  • 맥널리의 비밀/ 로렌스 샌더스/ 이일수 옮김/ 고려원/ 1992.
  • 어둠을 울리는 우울한 종소리/앤드루 박스/ 이창식 옮김/ 고려원미디어/1992.
  •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석양에 빛나는 감(1,2)/ 다카무라 가오루/ 홍영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5.
  • 무죄추정/ 스코트 터로우/ 최승자 옮김/ 대흥/ 1991.
  • 내가 심판한다/ 미키 스필레인/ 황해선 옮김/ 해문/ 1990
  • 거짓 예언자/ 숀 플레네리/ 김갑수 옮김/ 남도/ 1989.
  • 가족사냥/ 텐도 아라타/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03.
  •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김성재 옮김/ 책만드는집/ 1994.
  • 메인 스트리트/ 트리베니안/ 정태원 옮김/ 진음/ 1994.
  • 트럼프 살인사건/ 엘러리 퀸/ 이제중 옮김/ 시공사/ 1995.
  • 어둠의 목소리, 사나이의 목/ 이든 필포츠/ 조르주 심농/ 이가형 옮김/ 하서/ 1981.
  • 두 아내를 가진 남자/ 패트릭 퀜틴/ 심상곤 옮김/ 해문/ 1990.

2018/02/04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시모쓰키 아오이 / 김은모 : 별점 4.5점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10점
시모쓰키 아오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겨레출판

오랜 경력의 평론가가 "왜 크리스티의 작품이 인기가 있고 재미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전부 읽어본 후 평을 기록한 평론집이자 리뷰집입니다.

리뷰의 수준은 최상급입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작품의 핵심을 콕 집어 지적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추리 소설 리뷰의 교과서라 해도 좋을 정도예요.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은 '불순물 하나 없는 본격 추리 소설의 원형'이고, "엔드하우스의 비극"은 '고명에 의존하지 않고 면발과 국물의 감칠맛으로만 승부하는 우동같은 작품'이라는 식입니다.
좋은 작품은 정말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잘 소개하고 있으며,  전문가답게 유사하거나 참고해야 할 다른 작품들도 함께 언급, 소개하는 부분들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트릭면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비뚤어진 집", "구름 속의 죽음" 정도는 저도 알고 있던 것이지만, "골프장 살인 사건" 이 10년 뒤 발표된 역사적 명작과 같은 장치를 사용했다, "블랙커피" 속 장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2" 속 장치와 일맥상통한다, "맥긴티 부인의 죽음" 은 하드보일드 성향이라 우수하다는 등의 정보들은 정말 그 깊이와 수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기억하고 쓰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리뷰가 작품이 발표된 연대별로 이어지는 덕분에 여사님의 발전, 작법의 진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연대기적 구성을 갖추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여사님 특유의 섬세한 인간관계 묘사가 정교하게 쌓아 올려지고, 트릭보다 인간관계와 동기 등 다양한 요소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늘어나는 과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여사님이 얼마나 많은 작품 스타일에 도전했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정통 추리에서 시작해서 모험물, 신본격 스타일 서술 트릭, 스릴러, 법정극, 하드보일드, 오컬트 심령 괴기물, 심지어 코즈믹 호러(!) 까지 장르 문학의 거의 전 범위를 아우르고 있으니까요. 왜 거장인지를 리뷰를 읽으면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매우 낡아빠진 오래전 고전 작가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세번째 여인" 의 경우 1966년 발표된 작품으로 곧 '레드 제펠린' 이 결성될 시점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에서는 시대가 확 와 닿아서 놀랐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읽은 여사님 작품에서 '스푸트니크' 호가 언급되는 장면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지요. 참고로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최첨단 추리 소설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무모한 도전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낸 증거라나요?

이렇게 리뷰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이 리뷰를 통해 작가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는 게 책의 핵심일 뿐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걸작'이기 때문인데, 걸작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지적하지요. 여사님의 걸작들은 요약해서 설명하기가 불가능해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 한게 원인이고요.
즉 작품 전체가 트릭이자, 복선이자, 단서이자, 미스디렉션으로 소설 전체가 속이기 위해 짜여진 플랫폼일 뿐 아니라, 여사님은 트릭에 능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는 본격물에 비하면 그 장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어렵다는 게 최종 결론인데, 여사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리뷰들을 읽어보면 이 의견에 동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리뷰를 통해 여사님의 특징적인 작법을 눈치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유의 스타일은 그녀가 일종의 "연극"처럼 상황을 다룬 것이 비결로, 여사님 작품은 그림이나 동영상, 연극처럼 독자나 관객이 어디를 주목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다의적" 이야기를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해 내는지가 중심이라는 건데 아주 타당해 보였습니다. 제가 읽었던 여사님 작품을 몇 편 떠올려 봐도 저자의 말대로 "여사님 머릿속에 상영되는 연극을 종이 위에 옮겼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 것, 즉 보이는 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겉보기를 만든 후, 겉보기와는 다른 진실에 그 이상의 설득력을 부여한다는 방법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가장 좋은 예는 여행지라는 무대와 신원을 위장한다는 설정인데 정말 그럴싸 하지요? 연극과 같은 상황을 접목하기 좋은건 당연히 일상과 분리된 장소일테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위장하는게 보다 손 쉬운 건 당연하니까요. 아울러 여사님은 독자가 어떤 때 어떤 인물을 의심하고 어떤 때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는지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던 덕분에 독자를 속이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흉내내기 어려운 솜씨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저자 스스로 모든 작품의 별점을 매기고 평가한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물론 평론, 리뷰 및 평가는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사람이 만족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죠. 그러나 전반적으로 별점이 높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걸작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이 많이 부여되고 있어서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제법 많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주 별로였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다섯 마리 아기 돼지" 나 "끝없는 밤" 을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은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 권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로맨스 소설'로 알고 있는 매리 웨스트매콧 명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의아했던 점이에요. 제가 보았을 때에는 정교한 심리 묘사와 '이야기의 다의성' 이라는 항목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슬픈 사이프러스" 등 몇몇 작품은 국내 번역명과 동떨어진 일본식 제목으로 소개되거나, 포와로와 마플 및 기타 장편 외 몇몇 작품들에 대한 국내 출간 여부가 체크되지 않은 점은 옥의 티입니다. 출판사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이자 잘 쓰인 추리소설 리뷰 집으로 완벽에 가까운 책입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든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뛰어가서 사 오시길" 바랍니다. 저도 여사님같은 작품을 쓰지 못할 바에야, 이런 리뷰라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전체 베스트 10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많은데 서둘러, 시간 나는 대로 읽어봐야겠네요.

  1. 커튼
  2. 다섯 마리 아기 돼지
  3. 끝없는 밤,
  4. 주머니 속의 호밀
  5. 봄에 나는 없었다
  6. 백주의 악마
  7. 깨어진 거울
  8.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9. 죽음과의 약속
  10. N 또는 M

그 외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마치고", "할로 저택의 비극", "맥긴티 부인의 죽음", "카리브해의 미스터리", "서재의 시체" 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이것만 해도 올해 여름까지는 충분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