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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6

소년탐정 칼레 2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햇살과나무꾼 : 별점 3점

소년탐정 칼레 2 - 6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논장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방학, 붉은 장미군과 흰 장미군의 처절한 (?) 전투가 벌어졌다. 흰 장미군이 빼앗은 붉은 장미군의 보물 '성상'을 지키기 위해 안데스는 에바 로타에게 성상의 위치를 옮겨놓을 것을 지시했고, 명령을 수행하던 에바 로타는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범인은 유일한 증인인 에바 로타를 없애고, 증거인 차용증을 회수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데...

1권에 이어 읽게 된 2권입니다. "녹슨 도르래"에서 도야마 점장이 추천한건 이 2권이기 때문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와 도야마 점장 모두 대단합니다. 제가 아동용 추리 소설 시리즈를 2권이나 사게 만들다니!

그런데 2권은 확실히 추천할만 하더군요. 1권에서 단점이라고 말씀드렸던 '장미 전쟁'이 이 작품에서는 글렌 할아버지 살인 사건의 복선으로 잘 활용되고 있거든요. 에바 로타가 차용증 때문에 다툼이 난 걸 알게된 것 부터 '장미 전쟁' 덕분이에요. 장미 전쟁 중 포로로 잡힌 안데스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글렌 할아버지 집 지붕에 올라가다가 할아버지와 손님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니까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빈 집 지주 저택에서 에바 로타가 범인과 맞닥뜨렸을 때 위험을 알린 방법도 '장미 전쟁'에서 사용된 일종의 암호인 '산적말' 이며, 범인을 지주 저택에 한 개 밖에 없는 열쇠 있는 방에 가두는 데 성공하는 것 역시 '장미 전쟁' 때 한 번 갇혔었기 때문이고요.
에바 로타에게 배달된 초콜릿에 독이 들었다는게 밝혀지는 이유도 '장미 전쟁' 덕분입니다. 안데스가 전쟁의 핵심인 '성상'을 숨기려다가 먹지 않고 남겨두었던 초콜릿을 개에게 주었는데, 개가 다음날 크게 아파서 독을 먹었다는게 밝혀지기 때문이죠. 에바 로타와 칼레가 초콜릿을 왜 안 먹었는지는 설명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복선으로서 두말할 나위 없는 역할을 수행한 셈입니다. 

또 삼총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경찰을 불렀던게 '붉은 장미군'이라는건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칼레가 오줌이 마렵다면서 숲에 들어가, 한창 전쟁 중이라 숲에 숨어있던 '붉은 장미군' 식스텐 삼총사에게 부탁을 해서 경찰이 도착하게 된 것이지요. 주인공 삼총사 외에 다른 지원군은 없을 거라는 맹점을 잘 파고든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고리대금업자가 살해당한다는 강력 사건이 등장하는 탓에 이게 정말 어린아이용 작품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범인이 유일한 목격자인 아이들마저 죽이려는 흉악범이라는 묘사 역시 그닥이었고요. 살인보다는 차용증 절도 정도로 좀 가볍게 (?) 넘어갔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옛날이 이런 부분에서는 아동용이라도 가차없고 과격했던 듯 합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도야마 점장의 추천만큼의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3권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2020/08/07

소년탐정 칼레 1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햇살과나무꾼 : 별점 2.5점

소년탐정 칼레 1 - 6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논장

탐정을 꿈꾸는 13살 소년 칼레는 친구 안데스, 이웃집 소녀 에바 삼총사와 매일매일을 즐겁게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에바 어머니의 사촌 동생 에이나르 아저씨가 찾아오고, 칼레는 수상함을 느껴 개인적인 조사를 해 나가는데...

전설적인 아동 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1942년에 발표한 소년 탐정이 활약하는 모험 소설.

아주 오래전 읽긴 했던거 같은데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지 오래였었습니다. 다시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와카타케 나나미의 <<녹슨 도르래>> 덕분입니다. 작 중에서는 히로토가 살인곰 서점으로 하무라 아키라를 찾아왔을 때 핑계삼아 이 책이 있느냐고 묻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며, 뒤에 부록격으로 수록된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에서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미스터리 팬이라고 자칭할 수 없다.' '아동 대상 도서라고 얕보지 마라, 복선을 깔아놓는 방식이 절묘하다.'고 극찬하고 있거든요. 도저히 구해보지 않고서는 못 배길 찬사죠. 단, 도야마 점장의 소개에 따르면 작 중 등장한 책은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만, 이번에 읽은건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 탓에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읽으면서 조금 놀랐던 건, 1940년대 스웨덴 시골을 무대로 13살 짜리 소년이 해결하는 사건 치고는 상당한 강력 범죄들이 연이어 등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에이나르 아저씨와 그의 일당들 때문에 삼총사는 유적 지하에 감금되어 버리고 마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에이나르 아저씨는 그들을 구해주지 않을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세 명 모두 죽어버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어요. 에이나르 아저씨의 지문을 몰래 뜨다가 권총으로 위협당하고, 마지막 추격 장면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등의 묘사도 아동용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묘사였고요.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 탐정단>> 역시 소년 탐정 고바야시 소년이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많은걸 보면, 확실히 수십년 전은 지금과는 시대가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강력 범죄가 등장하는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추리적인 요소도 몇 가지 있는데,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꽤 그럴듯하게 사용하고 있다는게 돋보입니다. 에이나르 아저씨의 지문을 몰래 채취한 칼레가 보낸 편지 덕분에 스톡홀름에서 형사가 출동하게 된다던가, 악당 차의 타이어를 스케치해 놓았던 덕분에 갈림길에서 악당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아 챈다는 식이거든요. 충분히 있음직하면서도, 아이가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활약으로 눈길을 끕니다. 유적에 써 놓았던 낙서가 지워지고, 진주가 떨어진걸 토대로 유적에 에이나르 아저씨가 몰래 숨어들어 흔적을 지우고 보석을 훔쳤다는걸 눈치채는 장면도 추리적으로도 흥미로왔어요.

그러나 추리는 양념일 뿐이며, 전체적으로는 전형적인 아동용 모험 소설이라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스웨덴 시골에서 13살 짜리 탐정 지망생 소년이 해결할만한 사건이 그렇게 대단할리 없잖아요? 에이나르 아저씨가 수상하다는건 계속 이야기되고 있어서 별다른 의외성도 없고, 전개도 반전없이 평이한 수준이에요. 오히려 전개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느낌마저 전해 줍니다. 10만 크로네 보석 도난 사건과 사건의 범인인 에이나르 아저씨를 쫓는 칼레의 활약과, 삼총사의 여름 방학 이야기 - 서커스 공연을 하고 식스텐 패거리와 장미 전쟁이라고 이름 붙인 다툼을 벌이는 등 - 가 같은 비중으로 뒤섞여 있는 탓입니다. 물론 식스텐 패거리 때문에 에이나르가 보석을 손에 넣는 시간이 지연된다는 등, 장미 전쟁 자체는 핵심 사건과 나름 엮이기는 하지만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단점은 순전히 제 기준일 뿐으로, 어린 친구들이 재미있게 즐기기에는 무리없는 수준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도 바로 읽어봐야겠어요. 도야마 점장의 소개만큼 대단한 작품인지는 무척 궁금합니다.

2024/08/23

괴물이라 불린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 김지선 : 별점 1.5점

괴물이라 불린 남자 - 4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머스 데커는 미해결 사건을 다루는 FBI 수사팀의 일원이 되었다. 팀의 첫 사건은 데커가 주목한, 고등학교 미식축구 스타 출신 사형수 마스 사건이었다. 멜빈 마스는 20여년 전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집행 당일에 찰스 몽고메리라는 사형수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주장하여 형 집행이 정지되었다.
데커와 수사팀은 몽고메리가 돈을 받고 위증을 했다는 증거를 찾아냈지만, 몽고메리는 사형 집행을 당했고 그의 아내도 폭발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데커는 마스의 부모 사진이 없는 것, 마스가 전국구 스타가 된 뒤 사건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하여 마스의 부모가 증인 보호 프로그램 대상자와 같이 의도적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마스의 아버지 로이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는걸 밝혀내는데...


특이한 능력을 지닌 수사관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수사하다가, 사건 배후에 거대한 국가적인 음모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챈다는 흔해빠진 스릴러.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이어지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 수사관으로 과잉 기억 증후군에 시달리는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입니다.

멜빈 마스 시점에서의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사형 집행 당일, 누군가 자기가 진범이라고 고백해서 살아났는데 그 누군가가 알고보니 진범이 아니었다면, 나는 다시 사형수가 된다는 뜻이니 매 순간 순간이 긴장될 수 밖에 없지요. 20년이나 버려두었다가 사형 집행 당일이 되어서야 그를 구해준 '누군가'의 의도도 흥미를 자아냅니다. 구해줄거면 더 빨리 구해주던가, 아니면 아예 죽게 내버려두는게 맞을텐데 왜 하필 이 시점에?
마스의 어머니가 말기 뇌종양이어서, 남편이 그녀가 편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준 뒤 살해당한 걸로 위장했다는 진상도 괜찮습니다. 원래 아버지 로이는 소싯적에 흑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테러에 가담했다가, 보험삼아 테러 증거물을 훔치고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스가 슈퍼스타가 되어 행적이 노출되자 다시 죽은척 몸을 숨기게 된 겁니다. 이는 마스의 부모님이 전국방송에 등장했던게 사건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추리와도 연결되며, 숨어 지내고 싶었지만 아들의 출세가 발목을 잡고 만 아이러니한 상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스 이야기 외 다른 모든 부분은 모두 기대 이하입니다. 너무 엉망이라서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우선 사건부터 설득력이 없어요. 마스에게 누명을 씌운게 아버지 로이였다는 것부터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약 조직의 성노리개였던 여자를 사랑해서 탈출했는데, 그 여자가 마약 조직 보스의 아이를 임신했었고 그게 마스였다! 더러운 놈에게 복수를 직접 하지 못했으니 그 자식에게 복수하겠다!는 동기인데 황당하기가 그지 없어요. 이걸 추리해내는건 더더욱 말도 안되니, 추리물로 볼 여지도 없습니다. 등장하는 단서라고는 마스의 어머니가 스페인어를 잘했다던가, 집에 은제품이 있었다(조직의 물건을 훔쳐서 나온것)는 정도인데, 이걸로는 턱도 없지요.
마스에게 최면을 걸어 들은 '초차'라는 말을 근거로 로이가 죽은 척 몸을 숨겼다고 추리한 것도 말이 안됩니다. '초차'는 콜롬비아 칼리 지방의 방언으로는 '주머니쥐'이고 주머니쥐는 죽은척한다는 이유인데, 근거도 빈약하고 억지로 가져다붙인 느낌만 전해줍니다. '창녀'라는 명확한 일반 명사가 있는 단어에 전 세계에서 딱 한 지방에서만 쓰는 방언으로 해석한다는건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20년만에 구해준 이유도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의 '아이는 구해달라'는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처구니가 없지요. 병주고 약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과거 마스 사건에서 마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사건 당일, 모텔 직원의 증언으로(나중에 위증일 수 있다는게 밝혀지지만) 마스가 집에 들러 범행을 저지를 시간이 있었다는건 증명됩니다. 그런데 마스가 사건을 저지를 동기는 제대로 증명되지 못합니다. 가정 불화가 특별히 언급되지도 않았는데, 얼마가 될 지도 모르는 미래의 계약금 일부 때문에 부모를 죽인다는게 그렇게 설득력있는 동기인가요? 누가 보아도 마스는 수천만불의 연봉을 받을 슈퍼스타가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어머니 루신다의 혈흔이 마스의 차에 남아있다는건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이전에 코피를 흘리거나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변호사만 잘 선임했어도 마스가 사형선고를 받을 일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로이가 마스에게 누명을 씌우는게 그렇게 철저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야기도 치밀함, 정교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게 만듭니다.

데커가 NFL에서 뛰었던 미식축구 선수였고, 오래전 시합에서 마스와 겨루었다는 과거가 마스와 연결되어 사건이 시작되고, 결국 둘이 친분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데커의 독특한 특기(?)인 과잉 기억 증후군이 이 작품에서 하는 역할은 전무하다는 점에서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정체성을 흐립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팀을 꾸리지만 팀원들이 하는 역할도 없어요. 심지어 동료 대븐포트는 비교적 초반에 납치되어 멤버에서 빠지는데,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에요. 다른 멤버들도 별다르지 않습니다.
동료로 여겼던 마스의 변호사 올리버가 알고보니 과거 테러를 저질렀던 삼총사의 밀정이었다는 반전도 별로입니다. 올리버가 주장하던 마스를 위해 제기했던 소송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삼총사 중 한 명인 매클렐런과 함께 찍은 사진같은 억지 증거는 불필요했습니다.
로이가 소싯적 손재주(?)가 좋아서 폭탄을 만들어 테러에 가담했지만, 70대가 된 현재에도 신출귀몰하며 FBI와 거물 킬러들을 엿먹이는 전문가가 된 경력도 불분명하고, 죽기 전 데커에게 지갑을 남겨 도서관증 --> 대출한 책 --> 금고 열쇠로 이끄는 과정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과거 삼총사가 저질렀던 테러 증거가 황당할 정도로 상세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요. 뭐 하나 제대로 와 닿는게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초반부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질낮은 흔해빠진 헐리우드 스릴러로 마무리됩니다. 인기 요소는 잔뜩 집어 넣었지만 설득력도 낮고 정교함도 떨어지는 탓입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리즈가 이 뒤로도 몇 편 더 이어지는 듯 한데, 더 읽을일은 없겠네요.

2016/08/05

제라르 준장의 회상 - 아서 코난 도일 / 김상훈 : 별점 3.5점

제라르 준장의 회상 - 6점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북스피어

나폴레옹 휘하에서 싸웠던 제라르 준장의 소싯적 모험담이 수록된 연작 단편집입니다. 모두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셜록 홈즈의 아버지 코난 도일 경의 작품으로 "코난 도일을 읽는 밤"에서 마이클 더다가 극찬했던 탓에 관심을 갖던 작품인데, 얼마 전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되어서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극찬받을 만하더군요! 발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정말 발군이었던 덕분입니다. 준장의 생명을 건 모험들의 긴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 손에 땀을 쥐고 읽었습니다.
여섯 명의 펜싱 사범과 결투를 벌였다는 식의 허세 끼 있으면서도, 황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여성들에게 한없이 관대한 매너를 보여주는 제라르 준장도 아주 매력적이고요. 시기적으로 본다면 얼마 전 읽은 "내 방 여행하는 법"의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떠오르는데, 허세는 동급이더라도 유머 감각은 월등합니다. 그래서 모험담도 전반적으로 유쾌해요. 잘난 척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유쾌한 친구인 셈이지요.

아울러 역사 모험물답게 나폴레옹, 네 원수, 탈레랑, 워털루 장군, 뮈라 원수 등 다양한 실존 인물들과 실제 전쟁이 벌어졌던 곳들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좋습니다. 군복을 비롯한 여러 세세한 디테일들과 전투 장면의 묘사 역시 큰 볼거리에요.

결론적으로 추천작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약간 시대는 다르지만 "스카라무슈"나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비교할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후속작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잃어버린 세계"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도일 경은 추리물뿐 아니라 모험물에도 확실히 대단한 역량을 보여주는 작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프랑스 군인의 이야기를 영국 작가가 이렇게나 실감나게 쓴 것도 정말이지 놀라와요. 영국 군인을 지나치게 영웅시하지 않은 것도 신기했습니다.

각 단편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라르 준장, 음울한 성으로 가다"

1807년 2월, 제라르 중위는 연대 본부에 출두하던 중 우연히 경기병 연대 순찰대를 만났다. 순찰대의 지휘관 뒤로크 소위는 아버지의 원수 슈트라우벤탈 남작에 대한 복수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둘은 남작의 계략으로 성에 갇혀버리는데...

제라르 준장의 회고에서 시작되는 모험담의 첫 이야기입니다. 나이 지긋한 인물의 1인칭 방백에서, 본 이야기는 3인칭의 소설로 전환되는 구조인데 예전 "샘 호손의 사건부"와 같은 방식입니다. 이야기의 현실성을 높이는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네요.

시리즈의 시작으로 나무랄 데 없습니다. 지하에 갇힌 후 탈출하는 과정, 그 와중에 남작을 중오하는 의붓딸의 도움, 그리고 남작과의 최후의 결투와 완벽한 해피엔딩 등 모험물로서의 재미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라르 준장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각인될 뿐 아니라, 사악한 남작의 캐릭터도 잘 살아 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아작시오의 자객들을 처단하다"

1807년, 제라르 중위는 퐁텐블로 궁에서 나폴레옹 황제의 밀명을 받았다. 밤 10시에 황제와 함께 어떤 사내들을 상대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코르시카에서 '아작시오 형제단'이라는 단체에 가입했었는데, 그 단체로부터 협박을 받는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등장하는 팩션적 요소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습니다. 황제가 암살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핵심인데, 이미 결과(암살 실패)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재미를 주기 어려운 탓입니다. 검술로는 상대도 안 되는 두 명의 자객과 대결하는게 모험의 전부이기도 하고요.

물론 나폴레옹을 위장한 일종의 가게무샤가 대신 죽었다는 약간의 반전, 그리고 제라르가 궁을 나갈 때 처음 들어올 때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서, 즉 모든 걸 잊고  나가겠다고 하자 나폴레옹이 한 답변 — "그럴 수는 없을걸, 그때 자넨 중위였으니까 말이야. 이제 가서 푹 쉬게, 제라르 대위" — 등 재치 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이 더 크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왕을 잡다"

1810년, 부상으로 후방에 머무르던 제라르 대령은 연대 복귀를 위해 산을 넘다가 게릴라들에게 사로잡혔다. 잔혹한 게릴라 엘 쿠치요에게 사지가 찢길 뻔했던 제라르를 구해준 건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영국군 용기병대였다.
용기병대의 지휘관 바트와 친해진 제라르는 그와 카드 게임 '에카르테'를 벌여 당당하게 탈출할걸 계획하는데...

산적에게 습격받았다가 영국군에 사로잡히고, 마지막에는 웰링턴 장군까지 나오는 드라마틱한 구성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제라르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스페인 산적들의 묘사도 생동감 넘치며, 프랑스인이 영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 카드 게임의 박진감 등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요. 에카르테를 프랑스 전체를 뒤져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이 세 사람이나 될까라는 식의 귀여운 허세도 여전합니다.

마지막 웰링턴의 한마디도 인상적입니다. 급작스럽게 나타난 웰링턴에게 제라르가 하는 말 — "내가 카드 게임에서 이겼다, 약속대로 자유를 달라, 자신은 킹을 잡고 있다" — 에 대한 답변으로 웰링턴이 "자넨 우리 킹에게 잡혔거든" 이라고 하는 장면은 영국적이면서도 재치 있더라고요.

모험물로도 재미있고, 팩션으로도 괜찮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왕, 제라르 준장을 잡다"

1810년, 다트무어 감옥에 수감된 제라르는 탈출을 감행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치밀한 탈출 — 창의 철봉을 뽑고, 벽돌을 빼낸 후 이중 벽을 철봉에 침대보로 만든 밧줄을 묶어 넘음 — 도 재미있지만, 탈출 후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우선 찰스 메러디스의 마차를 우연히 만난 후 그의 외투를 훔칩니다. 그러나 그 사이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을 몰라서 왔던 길을 되돌아와 다시 형무소 근처에 오고 말지요.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말한 방향과 반대로 향했지만, 영국 복싱 챔피언 브리스톨 버슬러를 만나 격투를 벌인 끝에 사로잡힌다는 좌충우돌 행각이 정말 흥미진진한 덕분이에요.
메레디스의 편지로 풀려난다는 반전도 아주 기막히며, 이 와중에 편지를 끝까지 읽지 않는 기사도 정신도 반짝반짝 빛납니다. 메레디스 부인과 나누는 농짓거리도 인상적이었고요.

한마디로 탈출기로서도, 모험담으로서도 빼어난 수작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밀플뢰르 원수와 맞서다"

1810년, 마세나 원수는 제라르 대령에게 탈주병 출신으로 엄청난 세력의 산적 집단을 만든 밀플뢰르 원수 타도 및 그가 사로잡은 부유한 백작 부인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과 산적의 근거지로 향하던 제라르는 도중에 영국군을 만났다. 다행히 지휘관이 친분이 있던 바트이며, 그도 같은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공동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그러나 산적의 근거지인 수도원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마침 그 수도원에서 쫓겨났다는 수도원장의 말을 듣고, 패잔병을 가장하여 잠입할 것을 모의하는데...

일단 바트의 재등장은 반가웠고 수도원장의 정체가 밀플뢰르 원수였다, 그리고 백작 부인은 원수에게 푹 빠져버렸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허나 중간에 제라르의 목숨을 노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등 전개 면에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영국군을 사로잡은 방법과 똑같이 아침에 제라르를 유인하여 프랑스 군도 일망타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방심을 노렸다 치더라도 밀플뢰르 원수가 직접 나설 이유는 당연히 없습니다. 또 반가운 캐릭터였던 바트가 전사한다는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제라르보다는 밀플뢰르가 더욱 주인공에 가까운 일종의 안티 히어로물로 보는 게 타당할 듯싶네요. 결국 밀플뢰르가 승리하는 결말 역시 그러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왕국을 걸고 도박을 하다"

1812년, 프랑스는 러시아 원정에서 패배한 후 괴멸적 상황에 빠졌다. 때문에 제라르 대령은 프랑스로 복귀하여 부대를 재건할 것을 명받았다.

독일을 가로질러 귀국하는 와중에 제라르는 항상 프랑스와 친밀했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챘고, 협력자를 통해 곳곳에 표시된 기묘한 "T"자 마크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것은 프로이센 상류층의 비밀 결사 투겐트분트의 표식이었다. 

그리고 제라르는 죽어가는 군위대 장교 아르노 후작을 만나 황제의 밀서를 건네받았다. 그의 마지막 부탁은 호프성의 작스-펠슈타인 대공에게 밀서를 전해 독일이 황제에게 거역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그리고 전 유럽이 나폴레옹에게 거역하는 상황의 한가운데 놓인 제라르의 모험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팩션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실상 모험이랄 것은 대단치 않습니다. 대공을 찾아가 이야기하는 게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제라르가 팔로타 백작부인을 자칭한 대공비에게 서류를 뺏기는 과정, 궁지에 몰려도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역사를 거스르지 못하는 제라르의 실패만큼은 인상적이지만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라르 준장, 훈장을 타다"

준장이 된 제라르는 전우 샤르팡티에 소령과 함께 나폴레옹의 부름을 받았다. 황제는 당면한 작전 내용과 밀서를 스페인 국왕인 자기 형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후, 친히 경로까지 정해 주었다. 하지만 그 경로는 프로이센 군 등에 이미 점령당한 상태였다. 제라르는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여 명령을 완수하는데...

태사자가 홀로 북해성 밖의 원군을 청하는 것과 같은, 혈혈단신으로 적진 한복판을 가로지른다는 화끈한 모험이 펼쳐집니다. 태사자처럼 제라르의 기지도 돋보입니다. 시장 저택에서 벌어지는 프랑스군 - 프로이센군 전투, 그리고 이후 프로이센 군에게 다시 점령된 상황에서 코사크 장교 부트킨 백작을 속여 탈출하는 과정은 정말 기가 막히거든요.

게다가 황제의 의도는 그들이 사로잡히게 만들어 거짓 정보를 적에게 노출시키려 했다는 것, 그래서 황제는 사로잡힌 샤르팡티에게 레지옹도뇌르를 수여하고 제라르에게는 특별 명예 훈장을 수여한다는 결말까지도 완벽합니다. "저 친구는 우리 군에서 최악의 돌대가리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용감한 군인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까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요. 그 말 정말이지 정확합니다! 아무래도 제라르는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머리는 타고났지만 좀 더 큰 그림은 볼 줄 모르는 인물인 것 같아요.

여튼 별점은 4점. 모험도 화끈하고 결말까지 완벽하니 더할 나위 없습니다.

"제라르 준장, 악마의 유혹을 받다"

나폴레옹 군대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제라르 준장은 프랑스 군 내에서 최고의 용사로 알려진 다른 전우 2명과 함께 베르티에 원수의 호출을 받았다. 그는 나폴레옹을 적군에 넘기자고 제안했다. 3명 모두 분노와 함께 제안을 거절했지만, 직후 황제가 나타나 그들을 시험했다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그의 후계자를 증명하는 서류와 4천만 프랑에 해당하는 증권을 숨겨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탈레랑의 지시를 받은 악당들에게 서류를 빼앗겼고,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추격과 격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단편집의 아쉽지만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마지막답게 황제 나폴레옹의 최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인트헬레나에서 나폴레옹이 단 한통의 편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는 도입부로부터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었을지 밝히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허나 무려 전우 2명이 죽었음에도 대단한 모험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이 임무를 성공하더라도 나폴레옹에게 내일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좀 맥이 빠고요. 나폴레옹 2세는 결국 한 게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이 서류들이 그의 존재를 어떻게 한 건 아니니까요.

결론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5/26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하마모토 다카시 외 / 노경아 : 별점 1.5점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4점
하마모토 다카시 외 지음, 노경아 옮김/레드리버

제목 그대로 결투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유럽 중심으로 결투사를 개관하고,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발전되었고, 왜 사라졌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책 저자는 근대와 현대의 결투는 '명예 회복을 위한 도전이자 심판'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전쟁에서의 일기토, 검투사들의 싸움은 결투로 볼 수 없다고 하고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결투가 이렇게 '심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게 중세, 근대까지 왕과 귀족의 법을 따르는 '결투 재판'이 주류를 이루게 된 원인이라는 설명은 와 닿았습니다.
결투 재판은 판결의 신뢰성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반면, 기사도가 확산되는 바람에 명예 결투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과정 설명도 그럴싸 했습니다. 기사들은 사회적인 명예가 존재 기반의 하나였으니, 명예 훼손은 그들의 존재를 뒤흔드는 큰 위협이었겠지요. 그래서 당연히 명예 결투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을테고요.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건, 명예 결투의 시작이 이탈리아라는 설입니다. 보통 이런 '귀족'의 '결투'는 프랑스를 떠올리기 쉬운데, 왕의 권위가 막강한 프랑스에서는 쉽게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하네요. 왕이 재판을 하는게 당연하고, 또 그래야 권위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충분히 납득할 만 했어요. 심지어 루이 13세 때 리슐리외 추기경이 결투를 없애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일화는 놀라왔습니다. "삼총사"에서 달타냥이 하루에 세 번의 결투 약속을 잡을 정도로 결투가 일반화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지배 계급은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만약 그랬다면, 리슐리외는 눈의 가시였던 총사대 핵심 멤버들을 모두 사형대로 보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왜 그러지 않았는지 조금 궁금해집니다.
결국 기사도와 관련이 깊은 결투를 아예 막는건 불가능했기에, 결국 유럽 대륙 전체에 결투 문화가 전파되었습니다. 심지어 북유럽을 넘어 그린란드까지요. 그런데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은 결투를 사람들 앞에서 노래 대결로 승부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모욕당한 자는 사람들 앞에서 상대를 비웃는 노래를 불렀고, 혹시라도 가사를 잊어버리면 친구들이 그 대목을 대신 불러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결투 신청을 받은 자가 위트 넘치는 통렬한 가사로 반격했고요. 한 마디로 래퍼들의 디스 프리스타일 랩 배틀인 셈입니다! 

뒤이어 결투가 사라지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사라진 이유는 당연히 왕들이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절대 왕정 군주들은 앞서 설명드린대로 결투가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겼으며, 이후 계몽 군주들은 생명을 중시했기 때문에 결투를 금지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신사도'가 유행하고 신사들이 품위를 중시하면서 결투를 야만적으로 여긴 탓도 있지만, 왕권이 약화된 대신 입헌군주제가 확립되며 근대적인 재판 시스템이 갖추어진 덕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군국주의의 득세로 장교들이 과거의 귀족처럼 특권을 인정받고, 명예를 중시하는 계급이 되었기 때문에 19세기까지 결투가 만연하였다고 하네요. 확실히 군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사회가 무식해지는게 사실인것 같습니다.
이런 결투의 전통은 현대에도 약간의 스포츠 형태로 바뀐 '멘주어'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결론으로 결투의 역사 서술은 마무리됩니다.

이런 결투의 역사적인 큰 흐름 설명은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목차가 통사적으로, 연대순으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의 결투 설명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일화 중심으로 소개되는 등 글의 형식도 통일되지 못했고요. 여러 저자의 글을 모은 탓으로 여겨지는데, 누군가 통일성있게 전체 내용을 정리하고 감수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감수할만한데, 더 큰 문제는 결투와 스포츠를 엮는 후반부입니다. 스포츠는 재미, 오락일 뿐입니다. 오락으로서의 스포츠는 고대에서부터 존재했고요. 그런데 두 개가 어떻게 엮인단 말일까요? "헝거 게임"처럼 나라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시합을 벌인다면야 모를까, 현대의 스포츠를 결투라고 보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언급한다면 칼싸움에서 발전한 펜싱 정도? 하지만 펜싱도 전쟁과 투쟁의 역사를 통해 탄생한 무술일 뿐입니다. 결투라고 보는건 무리에요. 
게다가 앞서 저자는 '심판'의 의미가 없다면 결투가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포츠는 절대로 결투가 될 수 없어요. '결투와 스포츠는 미적 요소뿐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는 특성을 공유하는 표리일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라면서 넘어가는데, 미적,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가 중요한 모든게 다 표리일체의 관계가 되는걸까요? 어림도 없지요. 심지어 스포츠가 사람들의 투쟁심과 승부욕을 흡수해서 결투가 사라졌다!는 주장은 앞서의 본인들의 설명, 즉 근대화와 사회 분위기, 제도의 변화로 결투가 사라졌다는 설명에도 맞지 않습니다. 나치의 올림픽을 이용한 국민 통합(?)과 고양은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고요. 이는 결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책 부제가 '스파르타쿠스는 어쩌다 손흥민이 되었나'인데, 저자들 스스로 검투사들의 싸움은 결투가 아니라고 했고, 축구가 결투일리는 없으니 이 부제는 애초에 이 책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에요. 이 정도면 사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후반부는 완전히 분량 낭비였습니다. 별로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03/06/27

뒤마 클럽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정창 : 별점 2점

뒤마 클럽 - 4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시공사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라는 이름도 어려운 작가의 장편 소설. '제2의 에코'라는 화려한 수식어에서 부터 헐리우드에서 죠니 뎁 주연의 영화까지 나오는 등 잘 팔릴만한 배경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책사냥꾼이라는 특이한 직업의 주인공 코르소를 내세워서 알렉산드르 뒤마라는 거장의 육필원고를 근거로 그 뒷 배경을 파헤침과 동시에 '아홉개의 문'이라는 또다른 희귀본을 가지고 악마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스토리를 한꺼번에 전개하고 있는 작가의 욕심과 방대한 자료조사에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의 스토리가 전혀 맞물리지 못할 뿐더러 삼총사의 주인공에서 빌려온듯한 악녀, 전혀 근거를 알 수 없는 조력자인 '이레네 아들레르'라는 여인 등 유치한 설정이 난무할 뿐 아니라 소설의 내러티브가 뒤죽박죽에 우연투성이이고 이야기의 결말 역시 맥빠지기 이를데 없는 등 작품은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중세 유럽 문학 자료집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 작품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현학적인 교만만이 넘쳐날 뿐이에요. 에코 역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긴 하지만 그의 글은 최소한 스토리라인이라는것이 있는 반면 이 작가는 자료조사능력은 있는것 같지만 스토리를 전개하는 기본적인 작가로서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생각되네요.

색다른 장르와 성격의 책이 국내에 나와준 것은 반가운 일이나 저한테는 시간낭비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또 책값은 왜 이리 비싼지....... 영화쪽은 평이 그나마 괜찮군요. 영화나 한번 봐 줄까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06/04/25

루시퍼의 초대 (알라트리스테 시리즈 1)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김수진 : 별점 3점

루시퍼의 초대 - 6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시공사

마드리드에서 청부 검술사로 연명하는 백전노장 알라트리스테(Alatriste)는 친한 순찰대장 살다냐에게서 은밀한 의뢰를 받고 의뢰인을 찾아간다. 가면을 쓴 의뢰인은 영국에서 오는 2명의 여행객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들의 서류와 짐을 빼앗을 것을 요청하나 직후에 나타난 종교재판소의 최고 책임자 에밀리오 보카네그라 수사는 그 2명을 모두 죽일 것을 명령한다.

이탈리아인 칼잡이 괄테리오 말라테스타와 같이 그들을 습격하여 부상을 입히는데에 성공하는 알라트리스테, 하지만 영국인들의 용기에 감동한 그는 이탈리아인 칼잡이를 제지하여 그들을 살려주고 과거의 전우인 과달메디나 백작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며 그곳에서 두명의 영국인이 영국의 왕세자 찰스와 버킹엄 후작임을 알게 된다.


중대한 음모의 비밀을 알게된 알라트리스테는 곧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데....

몇권 읽긴 했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작가 레베르테의 시리즈 역사 활극 장편. 관심이 1피코그램도 없었지만 간만에 간 헌책방에서 새책이 눈에 띄길래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읽어보니 왠걸! 생각보다는 무척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선 주인공 알라트리스테 대위가 아주 돋보여요. 화자역의 이니고 발보아도 상당한 매력을 뽐내지만 알라트리스테에게 댈건 아니죠. 백전노장이자 현재는 마드리드에서 청부 검술사로 살아가는 퇴락한 군인이라는 설정은 진부할 수 있지만 (크리쉬?)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그러면서도 낭만적인 구시대의 유물스러운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쉽게 보기힘든 존재감을 보여주거든요. 레베르테의 글빨이 제대로 먹혔다고 할 수 있죠.
이러한 멋진 주인공 알라트리스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에 찰스왕세자, 버킹엄 후작, 펠리페 4세와 같은 역사속 실존인물들이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대하 서사극으로도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실존인물과 가공의 인물이 배치되어 펼쳐지는 활극이라면 "삼총사" 시리즈를 빼 놓을 수 없을테고, 이 작품 역시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히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은, 상당한 수준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대단해요. 작가 자신이 즐기면서 썼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전개가 빠르면서도 주인공들이 잘 살아있어서 독자를 매료시키는 것 같습니다.
또 이전 작품에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레베르테의 현학적인 장황한 묘사도 치밀한 자료조사가 덧붙여져 17세기 스페인 마드리드라는 배경에 잘 녹아들고 있기 때문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요소로 사용된 것도 마음에 들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거대한 국가적인 음모로 보여지던 계획이 별볼일 없는 결말을 맞고 흐지부지 끝나다는 점입니다. 좀 더 여러가지 장치를 덧붙였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음모가 그닥 복잡하거나 교묘하지 않아서 약간 실망스러웠거든요.
약간 독자에게 공부(?)를 요하게 하는 전개 역시 답답하긴 했어요. 이럴거라면 당시의 역사와 배경을 부록으로 실어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아쉽다기 보다는 문화적 차이랄까... 등장인물들 이름이 너무 길고 장황해서 기억하기가 무척 힘들었다는것도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캐릭터도 잘 살아있는, 충분히 다음편이 기대되는 작품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협지와 유사하구나 하는 느낌도 오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상당히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전부 5부작이라고는 하는데 한편 한편으로 따지면 분량도 그다지 많지 않으니 차분히 구해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반지의 제왕의 비고 모르텐슨 주연으로 곧 영화도 개봉하는 모양인데 예고편만 봐도 캐릭터가 상당히 근사하게 구현되어 보이는 만큼 영화도 무척 관심이 갑니다.(위의 사진이 포스터입니다)

2017/12/03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미카미 엔, 구라타 히데유키 / 남궁가윤 : 별점 2.5점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6점
미카미 엔.구라타 히데유키 지음, 남궁가윤 옮김/북스피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작가 미카미 엔과 "R.O.D"의 작가 쿠라타 히데유키가 여러가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한 대담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얼마 전에도 읽었던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한 권이지요.
자연스러운 일상생활 속 대화같은 대담이 인상적입니다. '술집 옆자리에서 두 남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더니 꽤 재미있더라'는 책 뒤 소갯글 그대로의 내용이에요. 구라타 스스로도 북 가이드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시시콜콜한 대담까지 책으로 출간되는 일본 출판 시장이 부럽기도 하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 정도로 소모되고 끝날 내용이거든요. 좋게 말하자면 읽기 쉽고 나름 재미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그다지 깊이가 있거나 진지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래도 독서광 작가들이 모여 수다를 떤 내용이라서, 독서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에 있어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되는 저로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순서대로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모던 호러가 주제인 수다에는 스티븐 킹, 딘 쿤츠, 클라이브 바커 등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다만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아요. 모던 호러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이야기할만한 내용이었거든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롱 워크"를 극찬하는 등 저와 취향이 다른 탓도 크고요. 하지만 잭 케첨 소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구라타 히데유키 말에 따르면 "이웃집 소녀"는 구입한 그 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을 정도라니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마침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소니빈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뷔작 "비수기" 와 후일담 "더 우먼"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 두 작품은 아쉽게도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네요.

요코미조 세이시와 에도가와 란포, 야마다 후타로를 소개하는 챕터는 너무 뻔하더군요.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그래도 딱 한 가지, 일본 초등학생이 읽기 힘들어했다는 토로는 색달랐지만요. 구라타 왈,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번역을 잘 한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역사와 과거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일본 초등학생보다는 제가 이해력이 좋기 때문인걸까요?
그래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 작품들이 대체로 저 역시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 만 빼고 말이죠. 그 외 작품으로는 읽어본 적 없는 식인 테마 작품인 "어둠에 꿈틀거리다"가 궁금했습니다. 국내 출간되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그런데 갑자기 야마다 후타로와 "마계전생" 이야기로 넘어가는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야마다 후타로의 대표작이라는 "인법첩" 시리즈도 영화, 만화로 접한게 전부라 딱히 수다에 공감하거나 이해할 내용도 별로 없었고요.

영화화된 작품 원작에 대한 수다는 가도카와 하루키가 이끌던 가도카와 문고와 영화 전성 시대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작가 시점에서 아카가와 지로를 나름 극찬하는 - 쉽게 대사를 쓴, 일종의 라이트 노벨 선구자라는 등 - 정도만 눈에 뜨일 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듯한 아카가와 지로가 쓴 크리쳐 호러 소설 "밤"이 그나마 궁금하지만, 최고 걸작이라는 "마리오네트의 덫" 수준을 미루어 본다면 구태여 읽어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좌절본은 읽다가 포기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아예 그 생각이 없었던 작품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챕터로 보통은 어려운 책 - 커트 보니컷의 "제 5 도살장"이나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 등 - 이거나 너무 길어 포기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100권이 넘는 "구인사가", 미완으로 끝났다는 일본의 시대소설 "대보살고개" 등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제 5 도살장" 이 어렵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고 "삼국지" 나 "삼총사" 같이 재미도 있고, 읽기도 쉬운 작품이 좌절본에 포함되어 있는 등 제 생각과는 조금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미카미보다는 구라타 취향이 특히 그런데, 뭐 이런 것이야 말로 개인 취향이겠지요. 허나 오래전 작품이라 요새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반지의 제왕" 은 좌절본이다!라는 의견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런 류의 독서광들 수다라면 빼 놓을 수 없는 진귀한 책, 기이한 책이 이야기도 물론 들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희귀 도서들보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책들 소개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아와사카 쓰마오의 "산 자와 죽은 자 - 명탐정 요기 간지의 투시술" 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페이지가 16 페이지 단위로 봉해져 있어서 그대로 읽으면 25페이지 짜리 단편이지만, 다 읽고 봉한걸 풀면 새로운 장편 소설이 된다는 책으로 여러모로 신기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다 만 게모노기 야세이의 만화 "Palm"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려 30년간 이어진 연재의 설정을 초기에 확립하여 그대로 끌고갔다니 대단해요. 미카미 엔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국내에는 절판되어 말 그대로 진귀한 책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구해보고 싶어 지네요.

추억 속에 깊게 남은 인상적이었던 책도 언급하는데, 구라타를 독서가로 이끈 책은 "투명인간", "우주전쟁" 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SF에 빠졌다가 미스터리로 관심이 이동한 전형적인 장르 애호가 루트를 밟았더군요. 또 다른 추억의 책은 폴란드 아동문학인 "크레크스 선생님의 학교"를 꼽았고요.
미카미 엔은 "마더 구스", 히노 히데시의 만화 "죠로쿠의 기묘한 병"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들은 국내 소개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미카미 엔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집 "에렌디라" 속 수록작인 "단순한 에렌디라 와 무정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 정도만 국내 출간되었을 뿐입니다. 마르케스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일정한 틀의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뭔가를 소설에서 배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미카미의 말이 마음에 들기에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만화 이야기도 하는데, "블랙잭" 이야기에서는 확실히 두 사람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더군요. 미카미 엔이야 블랙잭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한 편에서도 소개되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에 뒤지지 않는 구라타가 참 대단했습니다.
후지코 후지오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더 반가왔어요. "Utopia"도 아마 "비블리아 고서당" 에서 소개되었었죠?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길" 에서 접했기에 더욱 반가왔고요. 어차피 지금은 복간되어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기는 하지만요. "모쟈코"와 "에스퍼 마미"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언급되는게 기뻤습니다. 또 "유혈귀" 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의 내용을 상당히 길게 언급하는데 결말이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으로 만들어서 구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흡혈귀는 신인류고, 구인류는 선량한 신인류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유혈귀였으며 결국 주인공도 신인류?가 되어 즐겁게 살아간다는,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호러물이더군요. "만화의 길" 에서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 다른 거장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누가뭐래도 후지코 후지오 역시 뒤지지 않는 천재임에는 분명해요. 

그리고 소설가로 계속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처음 안 사실은 계속 하는게 정말 어렵다는 점이라는군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쌓아두었던 것을 토해내면 첫 번째 책은 어떻게든 모양은 갖출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뒤로 세 번째, 네 번째 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프로로서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전해줍니다. 데뷰작이 가장 좋은 작가들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지요.

책을 사랑해서 벌어진 에피소드들도 이야기하는데, 주로 재미있는 책을 읽었을 때의 경험들에 대한 수다입니다. 미카미 엔이 코니 윌리스의 "항로" 라는 소설을 읽을 때, 절묘한 부분에서 상권이 끝났지만 한밤중이라 문을 연 서점이 없었다는 이야기처럼요. 저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습니다. "용오"의 복제 예수 에피소드 다음 권을 사기 위해 업무 중 홍대 앞 한양 문고로 뛰어갔던 적도 있고, "불멸의 용병" 이라는 해적판으로 접한 "베르세르크" 의 그리피스 편 다음을 읽기 위해 한 밤중에 도서대여점을 돌아다닌 적도 있으니까요.
페이지를 접거나 메모하는 행동에 대한 대화도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같아 좋았습니다. 저는 둘 다 안합니다만. 책 때문에 담배를 끊고 심지어 하루에 라면 한 개로 버틴다는 이야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의 베스트셀러는 왠지 꺼린다는 미카미와 구라타의 말도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좀 청개구리과라서, 인기가 있다고 하면 그냥 좀 싫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책에 대한 수다가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재미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러나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리뷰에서 적었듯이, 수다 중 언급되는 작품들 중 국내 출간된 작품 정도는 조사하여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하루도 안 걸렸을 것 같은데,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네요.

2006/08/08

밴디다스 (Bandidas) - 조아킴 로엔닝, 이스펀 샌드버그


19세기 멕시코의 한 마을, 미국 은행에 고용된 악당의 농간으로 땅을 잃게 된 마리아 (페넬로페 크루즈), 그리고 마을 은행장의 딸로 유럽에 유학갔다 잠시 귀국한 사라 (셀마 헤이엑) 는 각각 아버지가 살해된 것을 목격하고 마을의 은행을 털어 복수를 꿈꾼다. 한편 사라의 아버지 살해사건 조사를 맡은 미국 경찰요원 퀀틴마저도 그녀들의 정의에 설득되어 같이 강도행각에 나서게 되며 멕시코 총독은 연이은 은행강도 피해 때문에 금괴를 통째로 수송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멕시코의 돈과 땅을 빼앗아가는 미국 강도에 대항한 그녀들의 작은 저항이 성공할 수 있을까?

간만에 본 영화네요. 프랑스, 멕시코, 미국의 합작 제작 영화로 뤽 베송이 각본을 썼습니다. 음악도 에릭 세라가 맡았고요. 무엇보다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서 보게 된 영화입니다.

그런데 3개국 합작이긴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멕시코 자금이 제일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용만 딱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멕시코의 두 젊은 미녀가 악덕 미국 은행의 끄나풀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ViVa Mexico!"라는 주제의 영화거든요. 요새 미국내에서도 급증하고 있는 라틴계 미국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일까요?

하여간 영화는 위의 내용을 가지고 그야말로 공식대로 흘러갑니다. 두 젊은 미녀의 은행강도를 시작하게 된 원인, 그리고 특훈을 거쳐 은행강도계의 떠오르는 별(?)로 부상하고 두 미녀 모두 마음에 드는 전문가 남성을 멤버로 끌어들여 마지막 최후의 한탕... 이라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전개거든요. 2명으로 축소된 미녀 삼총사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도 각본이 뤽 베송인 탓인지 의외의 디테일이 꽤 많아서 뻔한 장면의 연속임에도 크게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두 미녀가 각각 특기가 있다는 것 역시 뻔하지만 (마리아는 말을 잘 다루고 명사수, 사라는 유럽에서 교육을 받고 와서 똑똑하며 단검 던지기의 명수라는 설정)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표현되고 있어서 크게 위화감이 들지는 않거든요. 또한 은행강도 쟝르(?) 영화답게 나름 재미난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있는데 폐쇄된 은행에서의 변장을 통한 잠입과 탈출이라던가 압력 감지장치가 설치된 은행을 돌파하는 장면은 상당히 기발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처음부터 등장해서 뭔가 대단한 변수를 만들어 낼 것 같았던 남자멤버 퀀틴의 활약과 비중이 애매하다는 것은 의아하더군요. 설정과 캐릭터만 본다면 맥가이버같은 활약을 보여줄 것 같았는데 말이죠. 막판에 두 미녀를 놔두고 떠나는 모습 역시 전형을 깬 파격적인 부분이긴 했지만 싱거운 느낌이 더 강하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여성이 주인공인 탓에 액션이 좀 약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미녀로 잘 알려진 두 라틴계 미녀를 더블로 포진시킨것에 비한다면 영화에 섹시함이 거의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뭐 이것저것 따지자면 문제점도 많고 무엇보다도 은행강도들이 조국을 구한다는 말도 안돼는 해피엔딩 등 설득력은 제로에 가까운 스토리라인이지만 한여름 아무생각없이 웃으면서 즐기기에 적당한 영화였다 생각합니다. 대작들 틈바구니 속에서 여름 흥행을 잡기에는 2% 정도(?)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요. 결말에서도 속편을 암시하긴 하지만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PS : 간만에 보는 셈 셰퍼드의 모습은 반가왔습니다만....

2015/11/15

책으로 가는 문 - 미야자키 하야오 / 송태욱 : 별점 2점

책으로 가는 문 - 4점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현암사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와나미 소년문고 (岩波少年文庫) 중 50편의 작품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책.

50편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하는 전반부와 책을 선정한 기준, 이유, 그리고 자신이 뽑은 책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하는 일종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제대로 된 번역으로 오래전부터 출간되었다는 것이 부럽기만 하더군요. 우리의 에이브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우리나라도 요새는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긴 하지만요.
하여튼, 우리 딸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 싶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면 이쪽 바닥에서는 꽤나 믿을 만한 브랜드(?)이기도 하니 나름의 공신력이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었고요.

그러나 저의 목적과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이 책만 읽고는 해당 작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추천사, 의견이 대부분으로 줄거리 소개도 없고 극도로 짤막해서 고르는 데 참고가 될 것 같지 않은 탓입니다.

선정 기준도 애매해서 이와나미 문고가 아닌 다른 곳 (교과서)에서 읽은 작품을 선정한다던가, 이번에 처음으로 읽은 작품을 선정한다던가, 심지어 자신이 읽지도 않았지만 아내가 추천했다고 선정한 ("노르웨이의 농장") 작품도 있을 정도에요. 이래서 거장이 평생 관심을 가져왔던 그의 작품의 원형! 이라고 말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아울러 선정 기준이 명확한 작품의 경우도 그림에 대한 코멘트가 많은데,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좋아하는 그림 그대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점도 아쉬웠던 부분이고요.

그래도 어린이 문학에 대한 신념 — 어린이 문학은 기본적으로 응원이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는. 아이들에게 절망을 말하지 마라 — 만큼은 선명하게 드러나 있긴 합니다. 이런 신념을 가진 사람이 허술하게 작품을 고르지야 않았겠지요.

그래도 별점은 2점입니다. 흥미로운 책 몇 권을 건졌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으나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해서 감점합니다. 읽기 편하고, 분량도 짧아서 쉽게 읽을 수 있으니 간단한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지만 분량에 비해서는 가격도 센 편이라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덧붙여, 소개된 작품 중 딸을 위해 (혹은 저를 위해) 고른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치폴리노 - 모험의 토마토 기사"

그림이 좋다고 극찬하고 있는 작품. 인터넷 서점을 통한 간략한 줄거리 소개만 봐도 꽤나 재미있겠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어 판은 이와나미 문고와는 그림이 다른 듯 싶고 현재 절판이라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겠죠.

2. "독수리 군기를 찾아."

에이브에 수록되었던 "횃불을 들고"로 친숙한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작품. 왠지 기대가 됩니다.

3.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는 작품인데 국내 출간된 버전도 이와나미 문고와 동일한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의 그림이더군요. 꼭 구입해 봐야겠습니다.

4. "우리 이웃 이야기"

애니메이터로 일할 때 녹초가 되어 돌아와 이불 속에서 읽고 문학이란 정말 굉장하구나를 느꼈다는 작품. 짧은 작품 안에 세계가 그려져 있다는데 대체 어떤 작품일지....

5. "하늘을 나는 교실"

"에밀과 탐정들", 두 명의 로테로 유명한 에리히 케스트너의 작품. 어린 시절 읽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래도 기본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 주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5. "한국 민화 모음집"

한국인이라 관심이 간 작품. 삽화도 한국인 김의환 씨더군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파를 심은 사람"이 아주 인상적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 읽어보니, 음... 정말 인상적이긴 했습니다. 애한테 권해주기는 좀 애매합니다만.

6. "클로디아의 비밀"

어딘가 소녀가 숨어 산다는 이야기? 그것도 미술관? 설정만으로도 흥미롭습니다.

7. "작은 백마"

거장이 예순아홉에 읽고 "반짝반짝 빛나는 단단한 알맹이를 품은 책"이라고 극찬을 하다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잖아요. 영화 "문 프린세스"의 원작이라고도 하는데 저부터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작품과 코멘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삼총사" — 모험 활극 그 자체! 맞는 말이죠. 

"셜록 홈즈의 모험" — "명작이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어도 봐서는 안 되고 먼저 꼭 책으로 읽어야 한다." 라고 썼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그 외의 "바보 이반", "보물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저에게 최고의 어린이책 일러스트는 "짐 크노프", "왕도둑 호첸플로츠", "꼬마 니꼴라", "돈 까밀로와 빼뽀네", "무밍"시리즈입니다. "돈 까밀로와 빼뽀네"는 아동용이라고 하기는 어려울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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