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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저지먼트 - 고바야시 유카 / 이영미 : 별점 1.5점

저지먼트 - 4점
고바야시 유카 지음, 이영미 옮김/예문아카이브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XX년, 급증해가던 범죄를 막기 위해 일본에서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가한 폭력이나 가학 행위를 똑같이 형벌로 집행할 권리를 피해자 측에 주는 '복수법'이 제정되었다. 단, 복수법을 선택한 경우 피해자 측이 직접 형벌을 집행해야 한다. 도리타니 아야노는 복수법 집행자를 보호하고, 집행 현장을 감찰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복수 감찰관'으로, 복수 현장을 지켜보면서 복수법의 존재 의미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게 되는데...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으로 일본 신인 작가 고바야시 유카의 데뷔작입니다.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 별로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법률, 그리고 화자가 이 법률을 수행하는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만화 '이키가미'와 비슷한데, 수준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이키가미'에서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주는데 반해, 이 작품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탓입니다. 과연 이런 복수가 정당한지, 그리고 복수 때문에 선량한 집행자들이 살인자가 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묻는데, 등장하는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라서 별로 고민할 게 없거든요.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조선, 평택 아동 암매장 사건의 원영이 부모같은 인간 말종들을 단죄하는게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사이렌'에서 복수가 복수를 낳는 장면도 같은 이유로 전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를 아끼는 어머니가 있어서 자식의 복수를 한다는 건 말이 되지만, 워낙에 지은 죄가 커서 적반하장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범죄자 가족이 판사에게 복수한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서 불합리하기도 하고요.

억지 설정도 많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저지먼트'에서 복수자 하야토가 죽는 게 대표적입니다. 여동생을 아사시킨 부모에게 복수법을 집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여동생을 학대의 희생양으로 내세웠던 자신에게 벌을 가해 굶어 죽는다는 건데, 공공기관에서 소년이 죽어가는 걸 방치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소년의 죽음이 복수법 반대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복수법 반대에 활용하려면, 집행 대상인 범죄자가 사실은 무고한 인물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야 했습니다. 

장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야기마다 약간의 반전이 있는 건 좋습니다. '사이렌'에서 피해자의 아버지도 피해자에 대해 잘 몰랐었다라든가, '앵커'에서 엔도는 피해자 리오와 결혼할 생각을 접었던 상태였다든가, '페이크'에서 피해자의 엄마가 피해자를 학대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이런 반전이 일종의 조사와 추리로 밝혀진다는 전개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특히 어머니를 살해한 딸 엘레나를 어머니가 복수법으로 죽이려 했지만, 알고 보니 딸 엘레나는 가스라이팅당하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고, 이 사실이 밝혀지자 어머니가 유아 퇴행 현상을 일으켰다는 '보더'는 추리적으로, 그리고 결말의 의외성 측면에서 제일 괜찮았습니다. 물론 엘레나의 행동이 친구 나쓰키의 편지 하나로 밝혀진다는 점에서 추리의 여지가 많지 않으며, 할머니의 가스라이팅도 복선은 잘 짜여져 있지만 억지스럽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과대평가가 지나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선한 인간성'을 상징하는 화자 아야노를 내세워 어설픈 휴머니즘 드라마로 만들기보다는, 복수의 쾌감이 느껴지는 하드고어 복수 포르노로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을 겁니다. 아야노 대신 처절한 복수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인물을 등장시켜서요.

2021/04/02

복수의 심리학 - 스티븐 파인먼 / 이재경 : 별점 2.5점

복수의 심리학 - 6점
스티븐 파인먼 지음, 이재경 옮김, 신동근 추천/반니

복수에 대해서 생물학적, 역사적, 사회적 사례들과 함께 설명해 주는 인문학 서적입니다.

생물학적 사례는 책 서두에 설명된 2000년 사우디아라비이아에서 있었던, 비비 원숭이가 인간에게 덤벼들었던게 대표적입니다. 비비 원숭이와 침팬지를 통해 복수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하고요. 삶의 목적이 패권과 짝짓기라면, 이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보복믄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인간 영장류와 다르지 않다네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집단이 훨씬 크고, 삶의 목적과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도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한 개인적 응징은 사라지고, 국가가 공정과 냉철을 원칙으로 대신 복수를 하게 된게 현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법 체계인 것이지요.

뒤이어 종교, 문학, 사법 체계, 여성 대상 범죄 등 여러가지 복수의 역사와 실제 사례가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종교에서 복수는 대체로 신의 것이며, 대부분 종교 교리는 복수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힌두교는 카르마, 즉 업과 윤회가 공통 사상이라서 남을 해치면 내게도 화가 미치게 됩니다. 기조 사상인 아힘사는 비폭력과 불살생을 표방하고요. 그래서 폭력적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불교에서 보복 행위는 적은 남이 아니라 내 속에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에요. 그러나 이 모든 영적 이상은 세속 정치에 의해 엇나갑니다. 사람들은 교리와 경전을 각색해서 복수를 정당화하지요. 종교간, 종파간 분쟁과 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으며,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증오와 분노만 가득한 선동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이 쯤 되면 교리와 경전은 없고, 지도자들 개인의 복수심만 남아 있는 상황이지요. 이 책을 읽으니 종교를 믿을 이유가 없다는 신념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 외에도, 소프클레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가 깊다는 서두에서 시작된 문학에서의 복수에 대한 소개는 흥미로왔습니다. 중세 결투와 종교 재판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 16세기 이후 지역 공동체가 국가 대리인 역할로 법을 집행했던 상황에 대한 설명 등에서, 법 집행이 복수나 보복일 수 있다는 견해도 굉장히 그럴듯했고요. 이와 반대로, 특정 지역 부족간, 가족간 보복이나 명예 살인, 갱단의 보복은 영역과 위상을 지키기는게 전부인 후진적 발상이라는 설명도 와 닿더군요. 여성 대상 범죄와 여성들의 복수는 사회 체제가 미개하고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는 소개에서는, 우리나라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리벤지 포르노와 학교 내 총기 사고. 학교 총기 사건 방지는 교사와 학교 상담사, 학부모 역할이 중요하다. 심리적 위축과 같은 위험 징후들을 경계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답니다. 직장 내 복수 사례에서는 큰 사건은 물론 상대방 커피에 침을 뱉는 류의 자잘한 복수까지 망라하고 있는데. 콜 센터나 식당, 항공사 등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복수 사례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재 정치가 끝나고 복수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르지만 새 정권이 통치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지난 정권 지지층 반발을 피하는데 급급해서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은 뼈 아팠습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경우니까요. 일제 강점기 때 친일 부역자들과 독재자 전두환과 그 일당은 제대로 처벌해서 정의를 바로 세웠어야 했습니다. 책에 나온 스페인 프랑코 정권 피해자가 "화해의 미덕은 믿지만, 반성과 사죄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고 했는데, 말 그대로죠. 사면 따위는 사치였습니다. 정치 보복 역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아왔기에 남 이야기 같지 않더군요. 그 중에서도 "인신 공격은 대중매체가 정치를 사유화하는 경향이 강한 풍토에서 더욱 극성을 떤다. 이 점에서도 미국이 선두다. 토머스 제퍼슨이 애덤스 뒷통수를 친 사건이나 최근의 도널드 트럼프가 좋은 예이다." 라는데, 언론의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기사가 많은 우리나라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언론의 보복이 민주주의 투사들과 맞장을 떠 온 역사도 마찬가지에요. 책에서는 토머스 제퍼슨과 랜돌프 허스트의 언론을 이용한 여론 조작, 그리고 루퍼트 머독이 호주 정치에 개입한 악질적인 사례가 언급되는데, 우리나라 사례를 추가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에요.

하지만 재미있고 인상적인 내용이 많음에도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복수가 필요하다는건 잘 전달하고 있기는 한데, 제목처럼 '복수'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을 잘 담고 있느냐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요. 법 집행을 광의의 복수로 보는 시각도 그럴듯하지만, 이건 심리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심리학적으로 풀려면 피해자와 법 집행에 의해 처벌받는 가해자와의 관계와 그 심리를 보다 자세하게 다루었어야 했어요. 그 외의 이야기들도 사례는 재미있지만 심리학적인 부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책의 부제인 "사람들이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정의도 없습니다. 관련된 사례, 그리고 일종의 교훈?만 존재할 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7/10/02

아름다운 흉기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1.5점

아름다운 흉기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스포츠 의학계의 유명인 센도 고레노리가 살해당했다. 경찰이 현장을 조사하던 중, 누군가 경찰을 죽이고 총기를 훔쳐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녀는 센도가 양성하던 궁극의 운동선수 '타란툴라'로, 센도를 살해한 과거 유명 스포츠 선수 4인방에게 복수하기 위해 도쿄로 향했다. 그리고 4인방을 한 명 씩 차례로 참혹하게 살해해 나가는데...

긴 연휴를 버티기 위한 목적으로 집어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입니다. 얼마전 읽었던 단편집은 별로였지만, 장편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 역시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유는 많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추리 소설이 아닌 탓이 큽니다. 타란툴라가 은퇴한 스포츠 선수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전부이며, 복수는 그녀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에 기대고 있을 뿐이라 별다른 두뇌 게임이나 추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경찰 수사라도 치밀하냐 하면, 그 역시 아닙니다. 무려 키가 190cm 가까이 되는 외국인 여성인 타란툴라가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며 행하는 복수 과정에서 본인을 숨기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녀가 복수를 거의 성공할 때 까지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경찰 여러 명이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는데도 캐릭터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뭐 하는게 있어야 기억에 남지요...

추리적으로 별게 없다면 전개에서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데, 이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타란툴라의 신체 능력이 너무나 압도적이며, 복수도 너무 쉽거든요. 임산부를 보고 갑자기 감성적으로 돌변하여 자멸한다는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 없고요. 

독자로서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기 힘들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복수 대상인 도핑 4인방은 어쨌건 과거 도핑 경력에 더해 센도를 죽인 일당이니 벌을 받아도 싸고, 타란툴라 역시 복수라는 명분은 있지만 아무 죄도 없는 경찰을 살해했으니 선역이라고 볼 수 없으니까요. 결국 악당들끼리 서로 죽이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데, 이래서야 관심이 갈 리가 없지요.

사실 이렇게 특수 능력을 갖춘 킬러가 복수를 진행하고, 경찰이 이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작품은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습니다. "신주쿠 상어" 시리즈 두번째인 "독 원숭이"가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단순히 비교해 보아도 "독 원숭이"에서 복수 대상은 사악한 야쿠자이고, 독 원숭이가 복수를 행하는 이유도 충분히 공감할만해서 독자는 충분히 감정이입할 수 있습니다. 독 원숭이를 쫓는 사메지마의 활약도 충분히 설득력있고 흥미진진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단 한 개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독 원숭이"가 그닥 훌륭한 작품이 아닌데도 도저히 비교가 될 수 없는 수준이에요.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4인방 중 한명인 사쿠라 쇼코가 진정한 흑막이라는 진상, 반전이 대표적입니다. 그녀가 센도를 살해한 총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그 총을 사용하여 타란툴라에게 한 방 먹이고, 히우라 유스케를 살해하여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한다는 계획은 꽤 그럴 듯 합니다. "아름다운 흉기"라는 제목이 타란툴라가 아니라 쇼코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무릎을 치게 만들어요. 아울러 경찰이 진상, 진범을 눈치채게 된 이유가 히우라 유스케에게 총을 쏜 인물의 신장이 160 이하일 것이라는 검시 보고서 때문이라는 전개 역시 합리적입니다.

이과계열 작가다운 독특한 도핑 이론도 눈길을 끕니다. 특별한 스테로이드를 여성에게 장기 투약하여 조기 유산하는 체질로 만들어, 여자를 항상 임신 상태에 있게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임신 상태는 근육이 생기기 쉬운 등 여러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여러모로 실현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했어요. 이 덕분에 타란툴라가 복수하는 이유(아이의 아버지?)도 나름 부각되고요.

그래도 장점에 비하면 단점이 더 눈에 띄며, 킬링 타임용으로 읽기에도 너무나 시시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무리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차라리 추리,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SF 스릴러 측면에서 봤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추리적으로 별 내용이 없고, 강화인간의 복수 과정이 중심이 된 이야기니까요. "블레이드 러너"나 "사일런트 뫼비우스"처럼요. 타란툴라가 스포츠 의학, 도핑을 통해 만들어낸 일종의 강화인간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점은 "윈터 솔져"하고도 좀 비슷해 보입니다. 내용이나 설정을 놓고 본다면, 영화나 만화로 발표되었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군요.

2017/05/07

스나크 사냥 - 미야베 이유키 / 권일영 : 별점 2.5점

스나크 사냥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북스피어

살인자는 하느님에게 기도 같은 걸 하지 않아. - 복수를 다짐한 게이코가 화장실에 숨어 벌벌 떨면서 떠올린 생각

자신을 돈줄로 이용하다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남자에게 복수하려는 세키누마 게이코, 아내와 딸을 강도에게 잃고 복수를 꿈꾸는 오리구치 구니오라는 두 명의 복수귀가 등장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 범죄 소설입니다. 이들을 막으려는 인물들도 게이코를 버린 남자 고쿠부 신스케의 동생 노리코, 오리구치 구니오의 회사 후배로 그를 존경하는 사쿠라 슈지 두 명이고요.
복수를 위해 폭발하도록 조작된 총을 사용하려던 게이코가 복수를 포기하고 집에 돌아올 때, 오리구치에게 습격 당해 총을 도둑맞습니다. 마침 우연찮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슈지와 노리코가 총을 되찾고 오리구치의 복수를 막기 위해 그 뒤를 쫓는다는 내용이죠.
제목은 루이스 캐럴이 쓴, 괴물을 죽이면 스스로도 괴물이 되어버려 결국 모두들 괴물이 되어 사라져 간다는 "스나크 사냥"에서 가져왔다고 하네요. 

그런데 솔직히 제목부터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 괴물이 된다? 괴물도 괴물 나름이지, 오오이와 마스미는 살아서 숨 쉬는 것조차 아까운, 절대악으로 묘사된 죽어도 싼 인간들이라 이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에 의해 스스로를 잃고 괴물이 된다는 건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오리구치의 상황에 놓인다면, 저는 복수를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되겠습니다.

게다가 오리구치는 괴물이 되기는 하는데 정작 복수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괴물 두 마리만 풀어주고 본인은 가미야 다케오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으로써 죽는다는데 이 역시 어처구니 없습니다. 사건만 키우고, 애꿎은 슈지까지 끌어들이고 본인은 개죽음 당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작가의 의도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려면 오리구치가 두 괴물을 사살하고 본인도 괴물이 되어 경찰에게 사살당하는 결말이 되었어야 합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오리구치는 '괴물임을 알고 있었지만, 처단할 가치가 있는지 알기 위해 무리해서 괴물을 소환했다가 괴물에게 죽은 것'이고, 슈지는 '선택받은 용자로서 괴물을 처단한다'는 전형적인 판타지 서사에 불과합니다. 슈지가 총을 든 오오이, 마스미와 맞서는 클라이막스에서 이러한 판타지 서사가 극명하게 드러나고요. 맨몸이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불을 뿜는 용'을 쓰러트린다는 판타지 설정과 다를게 없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막스는 오오이, 마스미의 화끈한 폭주와 슈지의 두뇌 플레이가 합쳐져서 액션만 놓고 보면 인상적이지만 굉장히 작위적이기도 합니다. 산탄총에 맨몸으로 맞서서 살아남는다는게 과연 말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작위적인 부분은 그 외에도 많습니다. 고쿠부 신스케가 게이코를 살해하려고 침입했다가 경찰에게 체포당하는 장면, 말을 잃은 소년이 갑자기 말을 하게 된다는 장면 등등 이야기의 주요 변곡점이 되는 장면들 모두가 그러합니다. 작위적이라면 앞 뒤를 잘 맞춘 치밀한 구성이라도 갖추었어야 할텐데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모험이라 그닥 정교하지도 않고요. 오리구치가 총을 빼앗기 위해 좀 오래 공을 들였다라던가, 슈지가 오리구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 그리고 낚시봉을 이용한 자동차 절도같은 부분이 약간 눈에 띌 뿐입니다.

또 판타지스러운 서사 때문일까요? 캐릭터들도 비현실적이에요. 자신의 일도 아닌데 지나칠 정도로 개입하고 활약하는 슈지부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리구치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들, 자신이 좋다고 고백한 미인을 앞에 두고 뛰쳐나가 사건을 알아보려 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설령 그랬다 치더라도, 게이코가 총을 빼앗긴 것을 알아차렸을 때 경찰에 신고하는게 정상입니다.
슈지야 주인공이고,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용자'로 선택받는다는 판타지 서사 그대로라고 칩시다. 허나 노리코에게는 '완전히 남'에게 일어난 일에 불과한데 그녀가 사건에 뛰어든다는건 더 이해 불가입니다. 게이코를 간호하며 방에 남아있는게 상식이니까요.

나름의 차별화를 위해 살아 있을 필요 없는 진짜 악당이 존재하며, 정당한 처벌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기는 합니다. 허나 이 역시 그다지 새롭지 않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절대 악이 등장하는 작품이야 쎄고 쎘으니 당연하죠. 대부분의 현대 복수물이 정당하게 처벌할 수 없는 악을 응징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사회파 액션물로 포장되어있기는 하지만 실상은 진부한 판타지와 다름없는 작위적 설정의 액션물입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든 건 고쿠부 신스케가 체포되는 것 정도? 추리적으로 무언가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으니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군요.

2026/07/11

악의 등교 - 원작: 산천, 각색: 팀 더 제이, 작화: 시원

김현성은 학폭 피해로 식물인간이 된 뒤, 정신만 남은 채 10년을 버티며 복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사건 발생 직전 시기로 회귀한 뒤, 10년을 준비한 계획에 따른 복수를 시작하는데...

흔해빠진 회귀 복수극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몇 개의 확실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김현성이 10년 동안 복수를 시뮬레이션 해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회귀 후 복수의 과정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집니다. 여기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뉴스와 사회 변화를 기억했다는 설정도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산 지역 건설 회사 후계자와 미래의 대권 후보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배경을 만드는 과정은 제법 치밀합니다. 

두 번째는 복수 자체입니다. 김현성은 가해자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1회성 응징이 아니라 아예 인생 자체를 무너뜨리거든요. 기껏 회귀했는데 복수는 시시했던 다른 회귀 복수물들에 비하면 훨씬 화끈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세 번째는 '대산'이라는 가공의 소도시가 무대라는 점입니다. 워낙 작은 도시라서 중앙의 통제가 잘 먹히지 않고, 지역 최고의 건설 회사가 도시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복수에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괜찮은 재미를 선사해 주는데, 아쉽게도 '골든 서클'과의 대결이 펼쳐지는 후반부는 영 별로입니다. 정재계 최상위층이 속해있는 “골든 서클”은 고등학생이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탓입니다. 그리고 김현성이 10년 동안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골든 서클에 대한건 과거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야기처럼 잘 풀렸으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이는 작품만의 좋았던 차별화 포인트를 내다버린 어리석은 전개입니다.

골든 서클이라는 조직의 설정도 황당합니다. 하는거라곤 학폭을 유도해 타겟의 학교 생활을 지옥으로 만드는 정도입니다. 이걸 국내 최상위 그룹 후계자가 이끈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사건의 증명 역시 학폭 주도자들의 현금 흐름만 추적해도 충분했을테고요. 

싸움 실력은 UFC 선수급이고, 공부는 수능 만점 수준인 김현성의 능력에 대한 설정, 명진건설의 고창범처럼 김현성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인물 설정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등, 그 외의 설정들도 문제는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수 장면만 놓고 보면 꽤 시원하지만, “골든 서클” 사건으로 키우지 말고 대산시 안에서 복수극을 마무리했다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05/08/07

친절한 금자씨 - 박찬욱 : 별점 3점


전작 "올드보이"의 강렬한 기억때문에 오랫만에 극장을 찾아가 감상한 박찬욱 감독의 작품.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하네요.

스토리는 잘 알고들 계실테니 요약은 생략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없는 죄를 뒤집어쓴 금자씨의 복수극입니다. 굉장히 진부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박찬욱의 재기발랄한 연출 덕분에 재미를 안겨다주는 작품으로 거듭났네요. 개인적으로는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의 대 실패로 메이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을 "올드보이"보다 더 실험적이고 과감한 영상이 눈에 많이 들어오더군요. 상당히 잘 만든 오프닝 화면부터 감각적인 느낌이 팍팍 납니다. 물론 너무 오바하는 장면 - 금자씨의 얼굴에서 정말 빛이 난다던가..- 은 약간 거슬렸긴 했지만요.

또 캐릭터가 굉장히 강렬합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영애라는 청순가련, 지적인 미인의 대명사를 활용해 표현해 낸 금자씨가 대표적이죠. 교도소 생활과 출소해서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기간의 전혀 상반된 "친절함"의 표현 및 여러 대사들도 캐릭터의 볼륨을 감칠맛 있게 더해주고 있고요. 이 금자씨의 승리로 끝나는 결말도  마쵸적인 시각을 항상 보여주는 박찬욱 감독 영화치고는 상당히 이색적이더군요.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들 (금자의 교도소 친구들)이 주로 사회적 약자로 묘사되기는 했으나 그간 박찬욱 감독 영화의 여성들이 대체로 피해자나 주변인 역할을 담당해 왔었던 것에 비한다면 많이 달라진, 개선된 모습으로 보아야겠죠.
절대악으로 그려지는 백선생과 결탁한 전도사 캐릭터 역시 대단합니다. 특히나 전도사는 광신과 아집으로 뭉쳐져 있고 선악을 떠나 어떤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 이 땅의 종교단체를 많이 풍자한 듯한 느낌인데 오버하지 않고 딱 적당한, 유쾌한 수준으로 그리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울러 추리매니아로서 즐길 요소가 많았다는 것도 저에겐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복수의 과정같은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것은 물론이고 마지막의 복수장면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연상되는 등 추리적 요소가 상당한 수준이었거든요. 우연에 의지하는 요소가 몇개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맥락이나 완성도를 거의 헤치지 않는 적당한 선이었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최민식이 복수의 대상인 백선생 역을 맡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입니다. 최민식은 물론 한연기 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워낙 "오대수"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자꾸 백선생에게 오대수가 오버랩되더군요. 묶여서 당하고 있더라도 한방 날려줄 것 같은... 그래서 시니컬하고 잔인한, 짐승같은 인물인 백선생의 특징이 잘 살아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사로잡힌 상태에서 금자와 딸 제니의 통역을 맡은 장면에서의 연기는 굉장히 와 닿았지만 목소리만 들릴 뿐이라 구태여 최민식씨를 쓸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더더욱 강했습니다. 비쥬얼 자체만으로 더 기름지며 사악한 다른 중견배우를 썼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그리고 마지막 복수가 끝나고 나서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후반이 많이 늘어지는 것 역시 옥의 티입니다. 물론 박찬욱이 "복수 3부작"을 완료하며 나름대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노력한 티는 물씬 나지만 저에게는 너무 감상적이고 지루하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더군요.

그래도 이름값은 분명히 해 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항상 그래왔지만 음악과 미술은 최고 수준이고 수없이 등장하는 카메오를 보는 재미 및 비장함과 살벌함 속에서 가끔 터져주는 유머 또한 무척 좋았고요. 취향에 따라 엄청 평가가 갈리리라는 생각도 들고, 전작의 엄청난 평가를 뛰어넘기에는 약간 부족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는 무척 재미있게, 즐겁게 감상한 영화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6/10/13

상복의 랑데뷰 - 코넬 울리치 / 김종휘 : 별점 3점

상복의 랑데부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조니와 도로시는 결혼을 앞둔 사이였는데, 어느날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던 도로시가 비행기에서 떨어진 술병에 맞는 사고로 죽고 말았다. 깊은 상심에 빠진 조니는 복수를 위해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쫓기 시작하는데...

최근에는 고전을 많이 읽게 되네요. 코넬 울리치(윌리엄 아이리쉬)의 유명한 범죄 스릴러입니다. 코넬 울리치 특유의 도회적인 분위기에 남녀 간의 감정 묘사가 섬세하게 더해진 작품으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 작품처럼 특정 사건이 벌어진 뒤 해당 관계자들을 추적하여 복수하는 복수극은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을 겁니다. 심지어 복수의 대상이 직접적인 범인들이 아니라 수수방관하고 있던 "목격자"들에게 복수하는 "살인 곱하기 다섯"이라는 작품까지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만의 차별화 요소는 분명합니다. 일단 복수의 방법부터 이색적이에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안겨다 준다는 것인데 발상이 아주 기발해요. 거기에 더해 내용 전개도 재미있고,  결말에서 밝혀지는 이야기로 사건의 이빨이 전부 들어맞는 치밀한 구성도 좋습니다.
마지막 복수극에서는 제법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는 등 추리적인 요소에 있어서도 기대 이상입니다. 복수극 시나리오도 나름 치밀한 편이에요. 

또한 이 작품은 조니에 대한 서론 부분과 맨 뒤 결말 부분을 뺀다면 5명의 승객에 대한 복수를 "~번째 랑데뷰"라는 제목으로 한 Chapter씩 할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역시 특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랑데뷰" 라는 각 복수극은 전부 주인공이 조니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남자나 사랑에 빠진 여자 등 복수의 대상자들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때문에 각 Chapter 모두 따로 읽어도 좋을 만큼 독립적으로 완성된 단편 느낌을 전해주는데, 무척 신선할 뿐더러 뻔한 1인칭 복수극과는 다른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코넬 울리치 특유의 여성 심리묘사도 전편을 통해 두드러지는데 사랑에 빠진 여성, 진정한 악녀,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 등 인물들이 다양해서 읽을 맛이 나는 것도 좋았어요. 특유의 약간은 닭살스러운 문체도 여전하고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기는 합니다. 조니가 여자를 후리는(?) 방법 등은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며 마지막 체포 부분을 너무 쉽게 넘어가는 등 부실한 부분도 눈에 뜨이긴 하거든요.

그래도 재미와 완성도 면에서 상당한, 그야말로 고전 범죄 스릴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쪽 쟝르의 입문서로 적당할 정도로 말이죠. 특히 코넬 울리치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니 만큼 팬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3/11/10

소년 a 살인사건 - 이누즈카 리히토 / 김은모 : 별점 1.5점

소년A 살인사건 - 2점
이누즈카 리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년 전, 아홉 살 소녀가 살해당한 뒤 안구가 적출당하는 영상이 다크 웹 경매에 올라왔다. 경시청은 영상을 유출한게 경찰 내부 인력이라 생각해서, 감찰부 시라이시 계장에게 조사를 명령했다.
한편 영상 판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당시 미성년자로 간단한 처벌을 받고 풀려났던 범인 "소년 A", 오치아이 세이지의 주간지 인터뷰가 발표되었다. 오치아이가 판매한게 아니라는 기사였다. 하지만 여론은 나빠졌고, 인터넷을 통해 악당들을 사적 제재를 하는 자경단 운영자 야요이와 유튜버 료마 등은 오치아이 세이지의 현재 정체를 폭로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친구를 살해했던 미성년자 소년 A - 사카키바라 사건 말고 다른 사건입니다 - 가 번듯한 변호사가 되었다는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소설.
기본적으로는 복수극이지만, "방황하는 칼날"과 똑같이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미성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옳은지와 사적 제재가 과연 합당한자?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일종의 사회파 소설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극적인 실화 소재라는 것 외에는 건질 부분이 없습니다. 기본 전개부터 엉망이거든요.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야요이는 소년 A에게 살해당했던 소녀 미쓰키의 어머니였습니다. 소년 A의 정체를 까발린건 복수를 위해서였고요. 소년 A가 그냥 히키코모리처럼 살고 있었다면 복수가 될 수 없으니 야요이는 자살한 뒤 소년 A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조작을 추가로 벌였습니다. 
하지만 소년 A인 히토쓰바시는 정체가 드러난 탓에 모든걸 잃고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습니다. 아요이가 죽기까지 하면서 누명을 씌울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누명을 씌우는 것도 비현실적입니다. 히토쓰바시가 범인임이 뻔한 상황에서 야요이를 살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복수를 위해서라고 해도 억지스럽습니다. 히토쓰바시 입장에서는 복수의 대상은 료마니까요. 변호사라면 법적으로 해결했을 거에요. 
동영상이 있고 없고는 정체가 이미 까발려진 히토쓰바시의 현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데, 동영상 원본을 구하러 옛 사건 장소에 찾아갈 이유도 없습니다.

소년 A 사건을 다시 세간의 화제로 만들기 위해 야요이가 다크 웹에 딸이 죽을 때의 동영상을 경매에 올린 것도 부모 입장으로는 납득하기 힘듭니다. 딸이 죽는 장면을 복수에 이용한다는건 말도 안되며, 괜히 경찰의 눈길만 끈 셈이 되어버렸거든요. 동영상이 진짜일까 필요도 없었고요. 게다가 세간에 조금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료마나 에리코와 같은 협력자가 야요이를 도운 것도 여론 때문은 아니었지요. 물론 덕분에 히토쓰바시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 결정적 계기인 주간지와의 인터뷰가 진행되기는 했습니다만 이는 우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료마의 부탁대로 주간지 편집장이 히토쓰바시에게 CD롬을 보낸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애송이 유튜버 말만 듣고 움직인다는 것도 석연치 않지만, 2020년대에 사서함으로 CD롬을 보낸다? 저 같으면 CD롬 안의 파일을 메일로 보내라고 했을 겁니다.

야요이가 완벽하게 신분을 세탁한 후 복수를 시작했다는 설정도 와 닿지 않았습니다. 신분을 유지한채 인터넷 자경단 사이트를 운영하면 안되는 이유부터 떠올리기 힘듭니다. 가족들에게 폐가 될까봐였다고 하는데, 딸이 죽은 뒤 아들은 소아 성애 범죄자가 되도록 방치했던 어머니가 할 말은 아니지요. 이렇게 앞 뒤가 안 맞도록 설정된 인물을 보는 것도 참 오랫만이에요. 하긴 별다른 재주도 없던 40대 아줌마 야요이가 인터넷 자경단 사이트의 운영자가 되어 하나의 세력을 만든다는 설정도 말이 안되신 마찬가지겠지요.
다른 등장인물들 설정도 어설습니다. 가출 고딩이 악당들 정체를 까발리는 특종을 선보이는 유튜버라던가 하는 식이거든요. 그 중에서도 시라이시 감찰 계장 설정은 최악입니다. 감찰 조사 자체가 너무 어설퍼요. 시라이시와 그의 팀은 관계자를 찾아가 증언을 들은 뒤,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식으로 수사를 진행하는데, 왜 이렇게 수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서류 조사부터 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예를 들어 당시 사건 수사를 맡았던 형사가 원래는 미마 무네키 경위였고, 그가 비디오 테이프를 반출했었다는건 가장 기본적인 증거물 출납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마 무네키 경위에 관련된 자료들을 미리 조사하지 않은 탓에 그의 행적을 놓치고 맙니다. 발로 뛰는 수사를 한다면 범인이라도 잘 잡아야 할텐데 그렇지도 못해요. 중요 참고인인 이토 유키오는 쉽게 도망갈 정도였지요. 
복싱 동작을 한 눈에 알아보는 등의 쓸데없는 지식은 과시하지만, 수사와 추리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료마와 시라이시가 엮이는 전개는 작위적인게 지나쳐서 짜증이 날 정도였고요.

이렇게 장점은 찾아보기 어렵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방황하는 칼날"보다 좋았던 점은 복수가 성공한다는 점 뿐입니다.

2022/01/14

디 아더 피플 - C.J. 튜더 / 이은선 : 별점 2점

디 아더 피플 - 4점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이브는 혼잡한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다가 앞 차량에 자기 딸 이지가 납치되어 타고 있는 걸 목격했다. 열띤 추격 끝에 차량을 놓친 게이브는 경찰로부터 아내와 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년 뒤, 장인 해리가 시신을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딸이 죽지 않았다고 믿던 게이브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전단지를 돌리는 삶을 살던 중, 친구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이지가 납치될 때 탔던 차를 기어코 찾아냈다. 차에서 가져온 노트로 응징받아야 할 사람을 대신 응징해 주는 다크웹 '디 아더 피플'의 실체도 알아냈지만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단서를 모두 빼앗겼다. 

한편, 게이브의 단골 휴게소에서 일하던 케이티는 앨리스라는 소녀 전화를 받았다. 케이티 언니 프랜의 딸이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앨리스를 보살피면서 그녀가 바로 이지였다는걸 깨달았다. 그러나 케이티 역시 습격을 받고, 겨우 탈출하는데....

이전 "초크맨"으로 접했던 영국 작가 C.J 튜더의 세 번째 장편입니다. 스티븐 킹 작품의 저열한 카피에 불과했던 "초크맨"에 큰 실망을 했던 터라 더 이상 읽을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리뷰들로 자주 찾는 블로그인 '추리문학쪼개기'에서 이 작품에 대해 호평한 리뷰를 읽고 관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네요.

전혀 모르는 차에 내 딸이 타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도입부는 흥미롭습니다. 극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게이브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 해리가 시체를 확인까지 했는데 이지가 과연 살아있는게 맞는지?라는 수수께끼도 거의 마지막까지 끌고 가면서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어 주고요. 디 아더 피플에 접속하기 위한 암호가 자동차에서 입수했던 성경책과 관련이 있었다던가, 장인 해리가 시신 확인을 하려는 게이브를 막기 위해 약을 썼다는 추리적인 장치들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따지고보면 딸의 납치를 목격한다는 것 부터가 작위적이에요. 우연히 살인 사건을 목격한 탓에 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작위적인걸로 치자면 첫 손가락에 꼽힐 만 합니다. 대체로 '모르는' 사람이 살해당했던 다른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게이브가 복수를 대행하는 디 아더 피플이 사건을 저질렀다는걸 알아낸 이후의 전개는 특히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게이브는 누가 살인을 의뢰했는지 바로 알아챘어야 했거든요. 그의 인생 통들어 이렇게 복수를 당할만한 사건은 어린 시절 음주 운전으로 이사벨라를 식물 인간으로 만들었던 사건뿐인데 이사벨라의 모친 샬럿은 이미 죽었으니, 남는건 오랫동안 이사벨라를 돌봤던 간호사 미리엄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샬럿으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게이브와 가족의 유산을 관리하게 되는 것도 미리엄이니 동기도 확실합니다. 매덕 경위가 이지가 살아있다는걸 납득한 순간, 이 사건을 꾸민게 누구인지 충분히 알려줄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 이 정도는 이후 경찰 수사로도 밝혀낼 수 있었을거에요. 

이렇게 중요한 이사벨라 사건, 그리고 이 사건 때문에 게이브가 거액을 물려받았다는걸 거의 마지막까지 드러내지 않는 전개는 추리물 애호가로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사건의 핵심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꽁꽁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알기 전까지 게이브의 아내가 살해당한 이유는 장인 해리 때문일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마침 해리는 저명한 의사이니, 의료 사고에 관계된 원한이 있을거라고요. 마찬가지로 프랜은 가족과 사이가 안 좋았으니, 아버지에게 성폭행같은걸 당해서 복수 의뢰를 했던거고 그 탓에 게이브 가족 살해를 거들다가 이지를 데리고 달아나게 된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리는 다 헛수고에 불과했어요. 재미 여부를 떠나 반칙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독자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는 탓입니다.

또 전개 도중 스티브가 게이브를 죽이지 않고 노트만 빼앗아 간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게이브는 습격했던 스티브의 얼굴을 봤는데 말이지요. 게이브가 다크웹 패스워드를 알고 있는 한 접속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구태여 힘을 써서 노트 따위를 훔쳐갈 이유는 없었어요. 차라리 패스워드를 바꾸는게 더 합리적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게이브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스티브가 케이티를 죽이려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게이브, 프랜, 케이티, 미리엄, 이지 등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는 전개도 좋다기보다는 혼란스러웠고, 중요 정보를 가리기 위한 꼼수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낯선 승객" 설정을 비공개 커뮤니티로 만든 것에 불과한 다크웹 '디 아더 피플' 설정도 어설픕니다. 친족이 아닌 아무나 디 아더 피플에 복수 의뢰를 할 수 있다? 뭐 그건 있을 수 있다 치죠. 그러나 복수 대상이 범행을 저지른 당사자였던 게이브가 아니라 가족이라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게이브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가 프렌과 이지를 죽이려다가 살해당한다는 것(같은 차를 몰고 있었던 것으로 증명됨)도 마찬가지입니다. 디 아더 피플은 다른 사람의 복수를 회원 누군가가 해 준다는게 기본 조건입니다. 정해진 킬러가 타겟을 해치우는게 아니라요. 그런데 게이브 가족 살인범도 그렇고, 나중에 게이브가 케이티를 스티브라는 동일 인물이 습격한다? 뭔가 잘못된 거지요. 설정 오류에요. 

디 아더 피플이 교도소 안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할 정도로 전능하다는 설정, 이 정도 조직이 신규 회원(?)을 알음알음 구두로 모집하는 설정 등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보다는 "원한 해결 사무소"나 "선악의 쓰레기"같은, 주어진 현실 내에서 맡은바 임무를 가하는 복수 대행업자가 나오는 만화가 더 현실적이라 생각됩니다. 

디 아더 피플에 대해 알고 있는 핵심 관계자 케이트와 게이브가 만났고, 케이트의 언니 프렌이 이지를 데리고 있었으며, 게이브를 돕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프랜의 의뢰로 죽은, 프랜 아버지를 과실치사로 죽게 만든 소년의 아버지였다는 인물 설정과 관계도 비현실적입니다.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은 억지가 지나쳤어요. 일단 그가 게이브에게 접근하여 프랜을 찾으려 했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이브 가족을 죽이는데 프랜이 협조했다는걸 알아낸 방법이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지를 납치했던 차를 찾아낸 방법 역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이지가 이사벨라와 영적 교감을 하다가, 마지막에 염동력(?)을 발휘해서 미리엄을 죽이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런 설정이 대체 왜 필요했던걸까요? 스티븐 킹의 빌 호지스 시리즈같은 싸이킥 스릴러를 생각한 듯 한데, 그만한 설득력도 없고 이야기에도 불필요했습니다. 이런 설정은 아예 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결말도 별로입니다. 게이브가 어린 소녀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죄를 지은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약 2년간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혼 위기였던 아내만 죽었을 뿐 딸은 무사히 돌아오고, 오히려 예쁘고 다정한 케이트와 함께 유산으로 물려받은 대 저택에서 행복한 미래를 살아갈 거라는건 개운하지가 않네요. 이 정도로 제대로 된 죗값을 치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가해자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류의 이야기인데,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읽히는 재미는 있지만 단점도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앞으로 이 작가 책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0/07/05

콜드게임 - 오기와라 히로시 / 신유희 : 별점 1점

콜드게임 - 2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예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3 여름, 복수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중2 때 동급생들이 한 명 한 명 습격당하기 시작하고 결국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다. 범행 예고에서부터 토로요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4년 전, 학급 내 집단 따돌림의 표적이었던 토로요시. 하지만, 전학 간 토로요시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츠야를 비롯해 뜻을 같이 하는 아이들은 ‘기타중학 방위대’를 결성, 토로요시를 찾아 나서는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경악할 만한 반전,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상처로 남을 슬픈 이야기. 고3의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을 그린 오기와라 히로시 스타일의 청춘미스터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오기와라 히로시는 개인적으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다른 그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작가입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기묘할 정도로 유쾌한 분위기와 함께 달릴 때 달려주는 화끈함이 아주 일품이지요. 이 작품은 존재를 전혀 몰랐었는데,,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순전히 작가 이름만 보고 대여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장점만큼은 기대에 값합니다. 입시를 앞둔 중학교 2학년 동창들이 모여, 시덥잖은 농담과 옛 추억담 등을 털어놓고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들은 상황과는 걸맞지 않게 유쾌하며, 토로요시를 쫓는 과정과 마지막 습격과 위기는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화끈하고 박진감 넘치거든요. 토로요시의 타겟이 료타 한 명으로 좁혀지고, 료타와 미츠야가 위기에 처하는 클라이막스로 이어지는 전개도 직구 승부로 일관하고 있어서 화끈함을 더해줍니다. 누군가 습격당하고, 그걸 막기 위해 노력하고, 현장을 목격하고 추격을 벌이지만 실패하고.... 의 반복인데 회를 거듭할 수록 폭력의 수위도 업그레이드 되고요. 오로지 직구로만 승부하는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답더군요. 

마지막 결정구로 토로요시는 이미 죽었고, 그의 부모가 진짜 복수귀였다! 는 반전도 묵직하게 스트라이크로 꽂힙니다.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출만한, 그런 이야기였어요. 이런 장점들 덕분에 읽는 맛 하나만큼은 기대에 값합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삽시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흡입력은 빼어납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소재와 설정이 굉장히 불쾌한 탓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토로요시에게 가해진 왕따 행위는 처참하기 이를데 없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전개에서 그에 대한 반성, 속죄는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왕따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고, 친구의 복수를 하기 위해 '기타중학 방위대' 라는 이름의 친목 자경단(?)을 조직해서 자기들끼리 자경단 놀이를 하는게 내용의 대부분으로 이들에게 닥치는 토로요시의 위협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하는 난관, 토로요시는 최종 보스인거죠. 이래서야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왕따 피해자가 과거의 가해자였던 인간 쓰레기들을 하나씩 쓰러트리면서 최종 보스인 료타를 해치우는 토로요시 시점의 이야기였어야 했는데 말이죠. 최소한 절대악 료타 시점에서 닥쳐오는 복수를 느끼며 두려워하다가 왕따 가해자들이 모두 파멸하는 이야기였어야 했습니다. 

토로요시 부모가 그 집요한 복수의 행각으로 욕을 먹고, 죽다 살아난 료타가 불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일어설 것이다!를 다짐하는 마지막 장면은 불쾌함의 정점을 찍어 줍니다. 피해자는 자살하고, 가족은 몰락했지만 가해자 우두머리는 뉘우침도없이 불사조처럼 살아남아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건데 이건 피해자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악몽일거에요.

아울러 이야기가 미츠야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도 이상합니다. 왕따 가해자는 아니라는 식으로 대충 빠져나가고 있는데,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라 치더라도 피해자 토로요시 시점에서는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악질 가해자와 별다를게 없잖아요? 진솔한 반성의 모습도 드러나지 않고요. 이런 놈이 위험을 딛고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는 성장기처럼 이야기를 포장하고 있으니 참 염치도 없다 싶었습니다. 야구 소년다운 관련 묘사들은 재기발랄하지만 그 뿐이고요.

마지막으로 토로요시의 부모가 아들을 대신해 복수극을 벌였다는 반전도 설득력 측면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무기, 그 중에서 스턴건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평범한 중년 아저씨가 고3 싸움꾼들을 차례대로 손쉽게 제압한다는건 잘 와 닿지 않았거든요. 높은 굽의 구두로 변장한 것 역시 활동성이 떨어지는건 당연할터라 이유를 알기 어려워서 좀 이상했고요. 차라리 원래 미츠야들이 생각했던 것 처럼, "홀리랜드"처럼 토로요시가 급작스럽게 거구가 되었고, 꾸준한 노력으로 힘과 여러가지 기술을 손에 넣었다는 설정이 더 현실적이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입니다. 읽는 재미만큼은 높이 평가하지만, 왕따 가해자 옹호를 위한 작품이 아닌가 싶을 생각이 들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기준으로는 콜드 게임이 아니라 몰수 게임입니다. 왕따라는 소재가 이렇게 소비되는 작품은 두번 다시는 읽고 싶지 않습니다.

2025/02/22

모즈가 울부짖는 밤 - 오사카 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모즈가 울부짖는 밤 - 6점
오사카 고 지음, 김은모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킬러 '모즈'는 타겟 가케히를 죽이려다 가케히가 들고 있던 폭탄이 폭발하는 사고에 휘말렸다. 사고에 휘말려 죽은 피해 여성은 경시청 공안부 형사 구라키의 아내 다마에였다. 담당자였지만 가족이라 사건에서 배제된 구라키는 얻어낸 열흘간의 휴가를 이용해 사건 수사에 나섰다.

한편, 신가이 가즈히코는 호메이 흥업 조직원들에게 살해당했지만, 기억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호메이 흥업이 계속 그의 목숨을 노리는 와중에, 신가이는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분투하여 결국 기억을 되찾았다. 그는 가즈히코가 아니라 동생 히로미이자 킬러 '모즈'였다. 

구라키, 모즈, 그리고 형사 오스기 등의 수사와 추적으로 폭탄 테러는 공안부장 무로이 때문이었다는게 드러났다. 무로이와 구라키의 아내 다마에는 불륜 관계였고, 방일하는 사르도니아 대통령을 테러하기 위해 가케히는 무로이를 협박해서 정보와 폭탄을 손에 넣으려 했었다. 무로이는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이 협박에 흥했지만, 다마에가 폭탄을 이용해 가케히를 죽이려다 폭발에 말려든게 진상이었다...

오사카 고의 '모즈' 시리즈 첫 번째 작품입니다. 1986년에 출간된 작품이지요. 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가가와 데루유키 주연으로 드라마도 제작된 인기작입니다. 우리나라에도 10여년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일본 본격 미스터리 100선'에 선정되어 있어서 이전부터 관심이 가던 차에, 늦었지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기억을 잃은 킬러 신가이 가즈히코와 아내를 잃은 공안 형사 구라키 나오타케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절벽에서 추락해 기억을 상실한 채 발견된 신가이는 아주 사소한 단서들을 토대로 과거를 찾아 나섭니다. 폭탄 테러로 아내를 잃은 구라키 형사는 독단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며 사건의 실체를 쫓고요.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굉장히 빠른 전개로 강한 흡입력을 보여줍니다. 지루함 없이 여러 사건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와중에 폭력과 액션도 넘쳐나서 오락적인 요소도 풍부하거든요. 사람도 여럿 죽어나가고요.

복잡한 이야기들이 얽히지만, 모두 '복수'가 중심이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구라키 형사는 폭탄 테러로 죽은 아내 다마에의 복수를 위해, 신가이(히로미)는 형 가즈히코의 복수를 위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칩니다. 흑막이자 원흉인 공안부장 무로이조차 사르도니아 대통령을 죽이려 했던 이유는 딸과 사위의 복수를 위해서였고요. 이렇게 작품 속 주요 인물들이 각자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며 이야기가 전개되는건 신선했습니다. 

반전들도 인상적입니다. 첫 번째 반전은 기억을 잃은 신가이 가즈히코가 사실은 쌍둥이 동생 히로미였다는 것입니다. 히로미는 남성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트라우마로 인해 여장을 하고 킬러로 살아왔다는데,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은 꽤 설득력 있습니다. 그가 신가이로 오인되는 과정도 합리적인 편이고요.

두 번째 반전은 구라키 형사의 아내 다마에가 사실 폭탄 테러의 범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마에는 공안부장 무로이와 오랜 기간 불륜 관계였고, 이를 가케히에게 들켜 협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로이가 폭탄을 가케히에게 주기로 했었습니다. 무로이는 사르도니아 대통령 에체베리아에게 개인적인 원한도 있어서 가능했지요. 그러나 다마에가 폭탄을 이용하여 협박자였던 가케히를 죽이려다 결국 자신까지 말려들게 되었던 겁니다.

그 외에도 구로키와 다마에 사이에 태어났던 딸이 사실은 무로이의 자식이었고, 무로이의 부하 와카마쓰가 호메이 흥업과 손을 잡은 악당이었다는게 밝혀지는 장면도 꽤 놀라운, 반전이라면 반전입니다. 이렇게 많은 반전들 모두가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합니다. 우선, 이야기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구라키 형사의 수사와 신가이(히로미)의 추적, 그리고 흑막인 무로이 부장의 존재까지는 납득할 만하지만, 여기에 더해 무로이의 부하 와카마쓰 경시가 독단적으로 극우 폭력단 호메이 흥업을 조종했다던가, 감찰부의 쓰키 경시정이 부하 미키를 이용해 내부 감찰을 벌였다는 등의 이야기는 과한 느낌을 줍니다. 이들의 비중있는 등장은 오히려 서사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특히 미키는 정말 불필요해서, 왜 등장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구로키에게 갖게되는 연심도 불필요한 요소였던건 마찬가지고요. 

또한, 이야기 전개도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호메이 흥업이 애초에 신가이를 살해하려 한 이유부터 명확하지 않습니다. 무로이 부장 측이 불륜과 테러의 증거 사진이 신가이에게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 것도 불합리하고요. 피해자인 가케히가 설령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신가이에게 넘겼을리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신가이(히로미)를 두 번이나 생포하여 사진의 위치를 추궁한다?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애초에 불륜 사진 확보 없이 가케히에게 사진과 폭탄을 전해준 것도 말이 안되지요. 외국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폭탄 테러라는 거대한 범죄가 벌어졌을 때, 그에 대한 증거가 되는 사진을 회수하지 못하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건 당연하니까요. 

구로키와 신가이 이야기가 교차될 때, 신가이 시점은 신가이가 살아난 다음부터 시작되지만 구로키 시점은 폭탄 테러 직후라서 시계열이 일치하지 않는데, 왜 이런 방식을 취했는지도 의문입니다.

결말도 아쉬운 점 중 하나입니다. 대단한 증거없이 무로이 부장의 자백으로 마무리되는건 허무하며, 길고 늘어지는 감도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주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대단원에 이르는건 비현실적이었어요. 하긴, 형이 살해당한 그 장소에서 쌍둥이 동생이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고 발견된다는 기본 설정부터 비현실적이긴 합니다만...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도 많지만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강렬한 반전, 그리고 복수를 주제로 한 독창적인 이야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인기를 끌만한 요소는 많아요. 무엇보다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킬링 타임용 작품을 찾는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본격 미스터리 100에 선정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만...

2018/05/19

회랑정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임경화 : 별점 1.5점

회랑정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업가 이치가하라가 죽은 뒤, 유언장 공개에 참석하기 위해 이치가하라가 소유한 여관 "회랑정"에 일족이 모였다. 그런데 이치가하라의 친구 아내로 이 장소에 참석한 70대 할머니 혼마 기쿠요의 정체는, 반년 전 회랑정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연인을 잃고 자살했다고 알려진 기리유 에리코의 변장이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복수를 위해 이치가하라의 유언장 공개 시 반년 전 사건의 진상이 담겨있는 기리유 에리코의 유언장을 공개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 밤 유언장이 사라졌고, 이치가하라의 조카딸 유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국내 한정 일본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 소설입니다.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 작품으로 1991년에 첫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일본 고전 추리물의 형태를 많이 따라가고 있다는 특징이 눈에 뜨입니다. 초기작이라도 '가가 형사 시리즈' 류와는 다른, "십자 저택의 피에로"나 "가면 산장 살인 사건" 과 유사한 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십자 저택의 피에로", "가면 산장 살인 사건" 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추리적으로는 꽤 볼만한 점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못힙니다. 이유는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지나치다 못해 완전히 잘못되어 있는 탓입니다. 우선 초반 기리유 에리코는, 화상에서 죽지 않고 깨어난 후 연인 지로의 사체를 확인하고 오열합니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연인의 떠올리며 복수를 위해 회랑정에 다시 찾아왔다는걸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요. 독자들도 탐정역인 기리유와 함께 진범을 찾기 위해 이치가하라 일족 구성원들의 다양한 동기를 고민하고, 몇 안되는 단서를 조합하여 머리를 싸맵니다. 중반 이후 지로가 이치가하라의 친아들임이 밝혀지면서 부터는 범행 동기가 유산임이 명확해져서 이치가하라 일족은 더욱 의심스러워 집니다. 친아들이 있다면 다른 형제, 친척은 유산을 상속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앞 부분에서 기리유가 확인한 지로는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고, 그녀의 연인으로 알았던 지로가 사실은 진짜 지로를 죽이고 그녀까지 죽이려 했으며, 그 정체는 변호사의 조수 아지사와 히로미라는 것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이 모든게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지로라고 속이고 대신 유산을 상속 받으려는 아지사와 히로미의 음모라는 것인데, 도대체 장황하게 앞 부분에서 복수 운운하며 여러가지 단서와 동기를 던져 놓고 고민한 게 만든 건 뭐였나 싶네요. 게다가 기리유가 자신이 알던 지로가 아지사와 히로미라는 걸 이미 오래전, 이치가하라의 장례식 때 알아챘다고 하는 장면은 정말 넋을 잃게 만듭니다. 흑막이 누구인지 아는데 복수 운운하며 200페이작 넘는 분량 동안 탐정 행위를 한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독자를 속이려고 하는 의도가 지나치다 못해 억지스러워서 짜증스러울 정도입니다. 상식적으로 아지사와 히로미의 정체에 대해 안 시점에서 진범이 누군지 뭐가 중요할까요? 구태여 회랑정에 일족이 모였을 때를 기다릴 필요도 없어요. 변장해서 찾아간 후 복수를 하는 게 당연하죠.

이렇게 이야기를 그려내려면 최소한 앞 부분에서 기리유가 지로의 사체를 확인할 때 굉장히 많이 타서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관 지배인 고바야시 마호가 유카를 살해한 것이 기리유의 추리에 의해 밝혀진 후, 그에 따라 왜 아무런 동기가 없는(즉, 유산 상속과는 무관한) 그녀가 왜 이전에 지로와 기리유를 동반 자살을 위장해 살해하려 했는지? 에 대해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다고 설명한 뒤, 아지사와 히로미가 마지막 순간에 등장했다면 적당히 이야기는 성립됩니다. 여기에 더해 두 명의 화자를 두어(가장 상식인인 나오유키가 적합했을 듯 싶습니다) 탐정 역을 번갈아 하게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테고요.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을 제껴두어도 전개에 있어 동기와 용의자 구성도 정교한 편이 못됩니다. 이치가하라의 유산이 거액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범행 동기가 일족 모두에게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소스케는 국회 의원 출마를 예정 중이라 돈이 필요하다, 요코 남편의 회사가 어려워 돈이 필요하다 등은 모두 추정일 뿐 사실로 밝혀지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일족 모두 그다지 돈에 궁핍하지 않다는 묘사만 있을 뿐입니다. 또 일족은 지로가 이치가하라의 친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 까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입니다.

물론 속도감 있고 흡입력 있는 전개는 괜찮아요. 최소한 저 마지막 황당 장면 전 까지는 아주 흥미롭게 읽은 건 사실이거든요. 경찰이 기리유의 모발을 찾아낸 후 그녀가 점차 궁지에 몰리는 과정의 서스펜스도 좋고요. 추리적으로도 고바야시 마호가 유카를 살해한 범인이며, 과거 사건에서 공범임을 알아내는 장면도 그런대로 쓸만한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숨어 있으려고' 그 방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왜 전혀 고민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이 정도 장점으로 단점을 덮기는 무리입니다. 탐정이 누가 범인인지를 이미 아는 상황에서 공범자를 알아내기 위해 벌이는, 무의미한 사기극에 불과하니까요. 제 별점은 1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시더라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2/27

더 이퀄라이저 2 (2018) - 안톤 후쿠아 : 별점 2.5점

지난 주말, 코로나 바이러스로 도저히 어디 갈 수가 없어서 넷플릭스로 감상한 영화입니다. 예전에 감상했던 1편이 괜찮았기에 2편도 조금은 늦었지만 찾아보게 되었네요.

1편에서의 사건 때문인지 로버트 맥콜은 더 이상 홈센터에서 일하지 않고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데, 단골 서점 주인의 딸을 구하기 위해 터키 악당들을 물리치고, 마약에 취해 성폭행당한 여성의 복수를 위해 파티 주관자들을 응징하고, 동네 마약 판매상들로부터 이웃 청소년 마일즈를 구해낸다는 초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세상의 선과 악을 균등하게 만드는 심판자 "더 이퀄라이져"스럽습니다. 성폭행 파티 참석자들을 응징하고 경찰을 부르면 맥콜이 범인이라는게 쉽게 드러날거라는 문제를 너무 대충 넘기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액션도 볼만하고 이웃간 정도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나 영화의 핵심인, 과거 정보기관에서 일할 때 친구의 복수를 위해 살인 청부업자가 된 옛 팀원들 모두를 죽이는 복수극은 별로였습니다. 일단 너무 뻔한 설정이에요. 과거 잘 나가던 영웅이 은퇴한 뒤, 복수나 다른 모종의 임무를 위해 악을 처단한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니까요. 오히려 로버트 맥콜의 과거를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복수를 위한 수사의 치밀함도 부족해서 유사한 복수극보다도 완성도는 떨어집니다. 범인들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먼저 눌렀다는 정보를 CCTV를 통해 밝혀내는 정도만이 조금 그럴싸 했을 뿐이니까요. 게다가 정작 그 범인들은 사전에 모두 정리되어 버리고요.
맥콜이 진짜 흑막 데이브의 정체를 알아내는건 자신을 습격한 킬러의 휴대폰을 통해서라는 전개는 개연성, 설득력 모두 떨어지는 작위적인 이야기에 불과했어요. 애초에 이럴거라면 뭐하러 킬러를 고용합니까? 자기 정체를 알기 전에 초대해서 몰래 죽이면 되지.... 

또 이 영화의 매력은 평범한 이웃 노인이자 택시 운전사인 로버트 맥콜이 알고보니 악을 모조리 응징해 버리는 응징자라는 것인데, 이 복수극은 로버트 맥콜의 캐릭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복수를 실행할 때의 로버트 맥콜은 인간 흉기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전의 동료들이자, 지금은 살인 청부업을 하는 데이브와 팀원들의 최후도 허무합니다. 4명이나 되는 젊은 살인 전문가들이 팀을 짜서 움직이지만 60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반항도 못하고 나가떨어지는걸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어요. 마일즈를 인질로 잡았음에도 잘 써먹지 못하고, 오히려 태풍이라는 자연재해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데이브를 보면 과연 이놈이 프로가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액션도 여전히 화려하고 멋지긴 하지만 전편에서 눈에 띄었던 근접 격투 장면이라던가, 시작 전 시계를 맞추고 특정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등의 특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역시 매력 포인트였는데 말이죠.

물론 이 복수극 와중에서 건질만한 장면이 없는건 아닙니다. 맥콜의 집에 페인트를 칠해주기 위해 방문한 마일즈가 습격한 데이브와 킬러를 피해 비밀 장소에 숨는 장면은 긴장감이 정말로 압도적입니다. 간만에 쫄깃하게 보았네요.
또 캐릭터의 매력은 무뎌졌지만 맥콜의 카리스마만큼은 여전합니다. 마일즈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집 안을 CCTV 모니터링으로 확인한 뒤 데이브에게 전화를 걸어 "오랫동안 귀가하지 않을 예정이니 화분에 물 좀 줘라"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데이브와 옛 팀원을 만난 자리에서 "너희들 모두를 죽일거다. 내 친구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한 번 밖에 죽일 수 없는게 유감이다"라고 말하며 데이브 아내를 도와주는 척 하며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장면은 정말 멋져요. 절대자, 최강자이자 고수의 풍모가 물씬 넘쳐납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전 편보다는 못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흥행 성적을 보아도 3편이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동네 소시민의 "더 이퀄라이져" 스러운 이야기들은 마음에 들었던 만큼, 이런 류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TV 시리즈로 나오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23/05/27

당신의 과녁 - 고태호 : 별점 2점

당신의 과녁 5 - 4점
고태호 지음/3rdpost(써드포스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스무살 청년 최엽은 연쇄 살인범 석규남의 함정에 빠져 누명을 쓴 뒤,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다행히 석규남이 노환으로 죽고, 남은 가족들이 발견한 증거를 제출한 덕분에 17년 후 풀려났다. 
그러나 17년 만에 돌아온 세상은 지옥과 같았다. 연인은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가족은 생업을 잃고 갖은 욕을 먹었으며, 어머니는 무죄를 탄원하는 거리 시위를 하다가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였다. 이에 최엽은 연쇄 살인마의 손녀를 납치해 자기와 똑같이 17년간 감금하기로 결심했다.
죄책감으로 최엽의 협력자가 된 경찰과 당시 기자, 그리고 여동생과 절친 3인방은 최엽의 계획을 알고나서, 17년 감금할 시설 공사를 한다는 핑계로 최엽과 주말마다 어울렸다. 사회의 따뜻함, 가족의 온정 등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엽은 석규남의 손자 - 납치 대상의 남동생 - 으로부터 자기가 무죄라는걸 알고도 그 가족들이 증거 제출을 10년이나 미루었다는걸 알고난 뒤, 납치를 결행했다. 그러나 납치 대상이 여성 연쇄 납치범 일당에 납치당하는걸 목격한 최엽과 일행들은 납치범들을 뒤쫓아 결국 그들을 체포하고 납치 대상을 구해냈다....


간략한 줄거리 소개만 보고 혹해서 보게 된 웹툰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최엽의 심리 묘사입니다. 뎃셍력이 별로라 인물 형태가 계속 깨지며, 모든 묘사에서의 디테일이 부족해서 작화는 등 좋은 편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미묘한 심리 묘사는 놀라울정도로 탁월했습니다. 최엽이 분노하는 장면은 묘사의 달인 윤태호의 <<야후>>를 보는 듯한 섬찟함마저 느껴졌으니까요.
만화의 컷 구성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도 돋보입니다. 엣 연인을 다시 만나 각자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에게 아이가 있다는게 마지막 컷에서 드러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기대했던 복수극으로는 뜨뜻미지근한 탓입니다. 최엽의 복수 외길 전개가 아니라, 최엽이 친구들을 만나 다시 흉금을 터 놓게 되는 과정처럼 주변 인물들과 관계 복원을 이루는 출소자의 사회 적응기, 주변 인물들과 여러가지 즐거운 추억을 쌓는 일종의 일상 시트콤, 거기에 연쇄 부녀자 납치범들과 대결하는 액션 추적극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런 곁가지 이야기들이 비중만 놓고 보면 복수 자체보다 더 커요.
게다가 복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납치하려던 여자를 도리어 구해주게 된 뒤, 최엽이 복수를 포기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더 큰 악을 만나서 그들을 물리치고나니 모든게 허탈해졌다는 건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더 이상 위험에 빠트릴 수 없었던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이 과정에서 석규남 가족의 진심어린 사죄도 없고요.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한 뒤 식물인간이 되었던 어머니가 깨어난다는 말도 안되는 해피엔딩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너무 뜬금없었어요. 최엽이 겪은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이 정도는 줘야지!라는 작가의 의도일까요? 이런 애매한 해피엔딩보다는 차라리 화끈한 복수가 더 맞는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최엽 캐릭터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0cn가 넘는 거구의 근육질로 묘사되는데, 딱히 대단한 전투력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두뇌가 비상한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모은 것도 아니라서 강력 범죄를 계획하는 인물로의 설득력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맨몸 운동을 조금 한 정도로 세상과 맞서 싸우기는 어렵지요. 경찰과 기자라는 조력자, 그리고 죄책감을 느낀 검사의 유산 - 납치범을 가둘 일종의 별장 - 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흥미진진한 전개를 위해서는 최엽이라는 인물에게도 보다 설득력을 부여했어야 했습니다.
납치 계획도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만약 납치에 성공했었더라도 체포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납치가 핵심인 범죄물이 아무리 아니더라도,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기대했던 복수극이나 범죄 스릴러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더 글로리>> 류의 화끈한 복수극을 기대하고 보신다면 실망하실겁니다.

2012/01/19

다잉 아이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1.5점

다잉 아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 '양하'의 바텐더 신스케는 손님에게 습격당해 머리에 중상을 입고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회복한 뒤, 사건의 원인이 자신이 일으킨 1년 반 전의 교통사고에 대한 복수라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들었다. 그러나 신스케는 그 사고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신스케는 어렴풋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물만두님의 리뷰 때문에 읽게 된 책. 

그런데 물만두님의 극찬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물만두님의 극찬 요지는 양심 없는 가해자들에 대한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짙다는 것인데,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범인인 우에하라 미도리는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고, 동승자이자 사후종범인 기우치는 미쳐버린 약혼녀의 뒷치닥거리나 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으니 사는 게 지옥일 텐데, 양심 없이 사는 가해자라는 건 어울리지 않잖아요.

물론 사고를 잊고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던 또 다른 가해자인 신스케와 에지마에게 복수의 철퇴를 내려 경종을 울린다는 해석도 가능하긴 합니다. 그러나 진범이라 할 수 있는 에지마가 걸려든 것은 순전한 우연 - 신스케 살인미수가 루리코의 잠복과 겹친다는 - 에 불과하다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게 아닌가 싶어요. 이래서야 경종을 울린다기보다는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니까요.

또 우연이 많이 개입되어 있고, 무리하고 작위적인 설정이 많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단 죽어가는 피해자의 눈이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는 기본 설정부터 작위적입니다. 게다가 우연찮게 머리를 맞고, 우연찮게 사고 및 사고와 관련된 일들만 잊어버렸다... 참 편한 설정이기는 합니다만 말도 안 되죠.

그 외에도 유니버설 맨션이라는 루리코의 거처를 알게 된 순간 경찰에 신고만 해도 범행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 출동한 형사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출동한 뒤 우연찮게 실종된다는 것과, 왜 경찰은 형사가 실종되었는데 핸드폰 통화 내역과 발신자 조회도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중간에 신스케가 발견한 레이지의 SF 소설 같은 일기, 신스케의 애인 나루미가 남자가 없었다는 증언과 그녀의 실종을 대비시키는 전개 등 작위적인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요.

무엇보다도 루리코가 신스케를 유혹하고 정사를 나눈다는 설정은 정말이지... 뭔지 모르겠습니다. 미모의 여자가 몸까지 바쳐가며 초호화 맨션에서 같이 살 것을 요구한다니! 이런 복수라면 오히려 환영하는 피해자가 더 많을 것 같아요.

그냥 순수한 원한과 복수를 서스펜스 스릴러 형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의도였을까요? 그렇다면 범인보다도 범행을 지켜보기만 했던 목격자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던 "살인 더하기 다섯"처럼, 미나에 사건의 원인인 고용인을 막 다루는 후카미 집안 사람들도 같이 응징했어야 하는 게 더 합리적이었을 것 같은데, 이건 뭐 신스케에 대한 복수극도 아니고 대체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서두의 죽어가는 미나에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와 더불어 '원한의 눈길'이라는 지극히 동양적이면서도 신비한 동기를 서스펜스 스릴러로 포장한 작가의 능력은 인정합니다. 신스케의 사고 - 루리코의 등장 - 나루미의 실종 - 기우치와의 만남 - 감금과 탈출 등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느껴지는 재미도 탁월하고요. 그러나 작가의 장점인 트릭과 플롯의 조화는 사라지고, 작위적인 설정과 우연으로 점철된 전개, 불필요한 자극적인 묘사로 싸구려 펄프 픽션 느낌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네요. 좋게 봐줘도 흔해빠진 서스펜스 스릴러물 정도니까요.

물만두님의 리뷰는 경애하는 바이지만, 이 작품만큼은 분명하게 다른 견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에서는 최악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20/03/06

식스웨이크 - 무르 래퍼티 / 신해경 : 별점 2.5점

식스웨이크 - 6점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기 2493년, 4백 년 항해 예정의 항성 간 이민 우주선 승무원인 마리아 아레나는 마른 피로 얼룩진 클론 재생 탱크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런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 마리아는 새로 깨어난 클론이 자기뿐만 아니라 여섯 명 승무원 전원임을 깨닫게 되고, 클론 재생실에는 칼에 찔려 죽은 승무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외로운 밀실 우주선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게다가 모든 승무원이 죽었다면 살인자는 누구란 말인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책 소갯글에 혹해서 읽게 된 SF 미스터리 장편입니다. 우주선에 탑승한 여섯 명의 승무원이 서로 죽고 죽여서 전멸한 뒤, 사건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클론으로 재생된다는 설정이 아주 매력적이라 읽게 되었습니다. 누가 살인자인지, 동기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 이보다 더 잘 맞아 떨어질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사건에 대한 추리적인 내용보다는, SF 소설로서의 비중이 훨씬 높거든요. 물론 나쁜건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SF 적인 부분은 아주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클론에 대한 세세한 설정이 아주 돋보입니다. 이 세계의 클론은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철저한 법률에 근거하여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탄탄한 묘사를 통해 설득력있게 설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클론의 존재에 대해 거대한 다툼과 많은 죽음이 발생한 후 이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됩니다. 이를 통해 복수의 클론은 금지되며, 복수의 클론이 적발될 경우 가장 나중에 복제된 클론 외에는 모두 폐기한다, 마인드맵을 저장한 뒤 클론에 그대로 이식하여 기억을 이어나갈 수 있지만 마인드맵을 수정하는 마인드해킹 행위는 엄금한다, 그리고 클론은 생식능력을 제거하며 재산은 그 자신에게 상속된다는 등의 세세한 법안이 제정됩니다.
이는 단지 설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클론에 대한 설정은 승무원들의 과거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주선 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클론을 증오하는 엔지니어 폴이 모두를 살해한게 진상이니까요. 

또 이 사실이 밝혀지는 승무원들의 과거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특히 클론에게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던 오르만 신부가 반대파에게 납치된 후 클론으로 재생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작품 속 등장인물의 과거 에피소드로만 놓기 아깝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과연 클론에게 영혼이 있을까? 부터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해커들이 마인드맵을 해킹하여 대상자의 성격을 비롯하여 모든걸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건, 영혼이 숫자로 치환되어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어서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클론에게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하여 복수심을 불태우는 엔지니어 폴이 복수를 완성한 뒤, 정작 그 자신이 클론으로 복제되어 재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아주 괜찮았어요.

이외에도 현재 시점에서 아직 선장은 죽지 않고 혼수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클론이 이전 선장을 폐기해야만 하는 딜레마, AI 이안은알고보니 원래 인간이었는데 마리야가 마인드맵을 해킹하여 만들어낸 인공지능으로 약간의 조작을 통해 다시 인간으로 클론 복제할 수 있었다라는 반전 등 재미난 디테일이 많습니다. 클론 복제를 음식을 만들어내는 음식 인쇄기를 통해 진행한다는 결말도 복선을 통해 잘 설명되고 있고요.
주인공들이 탄 우주선 도르미레 호의 설정도 그럴듯합니다. 도르미래호는 아르테미스라는 머나먼 별로 떠난 일종의 이민선입니다. 여섯명의 승무원들은 수천명의 냉동 클론을 무사히 아르테미스까지 운송하는 대신, 그들이 지은 중죄를 사면받는 조건으로 승선한 범죄자들이죠. 이렇게 범죄자들이 사면을 조건으로 거대 계획에 종사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나, 이를 SF로 변주한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합니다.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의 실력자 샐리 미뇽이 거대 이민선을 비롯하여 승무원들, 심지어 인공 두뇌까지 관계자들을 투입한 이유부터가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않거든요 '복수' 때문이라고 설명되기는 하는데, 샐리 미뇽은 워낙에 실력자라서 구태여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종의 악취미로 단지 승무원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붕괴하기를 바랬을 수는 있겠지만, 그들 사이에서 사건이 일어나는데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 그리 효율적이라고 볼 수는 없고요.
아울러 협박과 고문 탓이지만 마리아가 볼프강, 히로를 해킹하여 엉망으로 만든건 사실입니다. 이는 충분히 살해 동기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볼프강과 히로가 마리아에게 살의를 품는건 말이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원수로 알고 있는 폴이 마리아 외 다른 사람들도 모두 죽인다는 진상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클론이라서 다 죽일거였다면 20년 동안 참을 이유도 없고요. 게다가 폴은 볼프강에게 대적할 수 없는 체형과 체력의 소유자라는게 이미 설명되기도 했거든요.
그 외에도 어차피 죽일거라면 마리아만 왜 독미나리로 중독시켰는지, 히로는 대체 왜 자살했는지도 그렇게 납득이 가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중 인격이 된 히로가 폭주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결론적으로 처음에 여섯 명 모두가 죽게된건 단지 우연이었을 뿐이며, 그들이 클론으로 되살아난 것 역시 즉사하지 않은 마리아가 재생 버튼을 눌렀을 뿐이라는 작위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마리아가 펼치는 추리쇼 형태 느낌의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딱히 단서가 탄탄하게 뒷받침된게 아니라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복선을 좀 더 치밀하게 짜 두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폴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공정하게 단서를 얻는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도 나쁜 추리물의 전형이고요. 이야기에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 사람이 알고보니 범인! 이라니, 이건 좀 너무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흥미로운 도입부와 여러가지 설정 덕분에 몰입해서 읽을 수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약간은 용두사미 느낌이라 아쉬웠습니다. SF로는 완벽하나 추리적으로는 더 탄탄한 구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이런 류의 장르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03/25

신성한 관계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1.5점

신성한 관계 - 4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패트릭 켄지와 안젤라 제나로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거부 프레드 스톤에게 납치되었다. 그는 둘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며, 실종된 딸 데지레를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켄지의 사수이기도 했던 최고 탐정 제이 베커마저도 데지레를 찾다가 실종된 상태였다. 알고보니 데지레는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200만 달러를 횡령한 관계자 제프 프라이스와 도망쳤고, 베커는 그녀를 찾아낸 뒤 사랑에 빠져 사라졌던 것이었다. 그러나 프라이스가 데지레를 살해한 뒤 베커는 프라이스를 죽였다. 베커는 둘에게 데지레를 죽이라고 의뢰했던건 트레버 스톤이라며, 복수를 위해 출발했지만 스톤 부하의 공격으로 죽고 말았다. 겨우 경찰에게서 풀려난 켄지와 제나로의 앞에 데지레가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는데....

데니스 루헤인의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로 직전작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에서 곧바로 이어집니다. 전작에서의 충격으로 켄지와 제나로는 탐정 사무소 문을 닫고, 상실감을 달래고 있던 중이라는 설정이지요.

수사 과정 초기에 불거지는, 슬픔 치유사와 연계된 사이비 종교 집단의 사기 행각은 꽤나 볼만했습니다. '고해 성사'를 협박과 사기를 위해 써먹는게 효과가 큰건 당연할테니까요. 단순 협박 수준에 그치지 않고, 은행 비밀번호와 같은 개인 정보까지 수집한 뒤 이를 교단 내 국세청 직원 등의 전문가를 통해 모든 재산을 장악한다는건 90년대 초반 발표된 작품 치고는 꽤나 앞서가는 발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좋은 설정을 잘 써먹지는 못합니다. 슬픔 치유사들에게서 정보를 빼낸 방법도 강도짓과 부바 등 친구들을 동원해 완력을 써서 캐내는게 전부고요. 이 뒤는 트레버 스톤이 사실 데지레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 그리고 알고보니 데지레가 먼저 트레버 스톤을 불구로 만든 사고를 사주했다는 것 등이 밝혀지며 트레버 스톤과 데지레 스톤, 두 악마가 서로 죽이려는 대결로 바뀌고 맙니다. 데지레가 비련의 천사가 아니라 주위 남자들을 모두 홀린 뒤 써먹다가 죽게 만드는 악녀라는 반전은 나쁘지 않았지만, 억지스러웠어요. 주변 모든 사람들의 죽음과 자신의 이익을 단지 몸 하나를 팔아서 얻어내는데, 남자들이 아무리 섹스에 미친 바보들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유치한 발상입니다.

전개도 억지스럽고 납득하기 어려운 점 투성입니다. 모든 것의 발단인 데지레 실종부터 그러합니다. 그녀는 왜 사라졌을까요? 트레버 스톤이 사고를 사주한게 그녀라는걸 알아냈기 때문에? 그런 묘사는 전혀 없었습니다. 제이 베커의 입을 통해 그녀를 죽이는게 트레버 스톤의 의뢰라는걸 밝히기는 하지만, 이 때만해도 그녀가 악당 흑막이라는건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 애초에 제이 베커에게 이렇게 의뢰했다면, 켄지와 제나로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도 이유가 불분명하고요. 

제이 베커의 죽음도 이상합니다. 그는 데지레의 복수를 한다며 트레버 스톤을 찾아가려다 트레버 스톤 부하의 공격을 받고 죽습니다. 그러나 데지레가 죽었다면 트레버 스톤의 부하들은 제이 베커를 죽일 이유가 없습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까요. 제이 베커의 의도(복수)를 알아챘다면 공격했을 수도 있지만, 그걸 알 수 있었던 방법도 없었습니다. 또 베커가 어떤 길로 가는지 알고 있었는데 도로에서 단순하게 자동차로 밀어버려 죽이려 했다는 것도 너무 어설펐어요. 프로답지도 않았고요. 반대로 데지레가 죽지 않았다는걸 알아챘다면, 제이 베커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았어야 했습니다. 데지레와 가장 가까웠던 인물이니 사로잡아 행적을 캐내는게 당연하잖아요. 그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짜고짜 차로 들이받아 죽이려 한다는건 영 납득하기 어렵더군요. 이는 작가가 화끈한 액션 장면을 넣고 싶어서 삽입한 장면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켄지가 데지레의 정체를 알게된 건, 데지레가 제이 베커에게서 들었다며 '페일세이프'라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페일세이프'는 오래전부터 켄지와 제이 사이에 있었던 암호였습니다. 누군가 '페일세이프'라는 말을 하면서 나타나면 무조건 적이니 박살을 내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즉, 제이 베커는 데지레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켄지와 제나로에게는 말하지 않고, 사랑했던 그녀를 잃은 복수를 해야 한다고 트레버 스톤을 찾아가다가 죽는다는건 영 앞 뒤가 맞지 않아요. 트레버 스톤이 그녀를 죽이려고는 했지만, 정작 죽인건 그 시점에서는 아무 관계없던 프라이스였으니 복수의 대상도 잘못된게 아닌가 싶네요. '페일세이프'를 통해 데지레의 정체를 알아낸 뒤, 켄지와 제나로는 그녀의 뒷통수를 칠 계획을 짜지만 정작 잘 써먹지도 못하고 데지레에게 사로잡혀 위기에 빠진다는 전개도 어이를 상실케 했습니다. 땅에 파묻었던 제나로가 자력으로 탈출해 스톤 부녀를 응징한다는 결말도 너무 대충 수습한 느낌이었고요.

이런 앞뒤 안맞는 급작스럽고 자극적인 전개는 오래전 신문 연재 소설이나 싸구려 펄프 픽션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끌기 위해 무리수를 막 던진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도를 넘는 폭력과 비도덕적인 가족 관계 정도만이 하드보일드스러운 느낌을 전해줄 뿐이며, 추리적으로도 건질건 거의 없었으니까요. 가짜 신분으로 수감된 제이 베커를 찾아가 그가 말한 기묘한 말을 듣고 진상을 풀어내는 정도만 그런대로 탐정스러웠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작가가 자극적인 소재를 끝까지 건드리고 전개 역시 흥미본위로 채워놓은, 노골적으로 흥행을 노린 펄프 픽션에 불과합니다. 전형적인 성인용 헐리우드 액션 범죄물로, 차라리 영화였더라면 더 볼만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시리즈 팬에게는 켄지와 제나로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점, 그리고 "라쇼몽"을 언급한다던가, 막스형제의 고전 영화 "선상 대소동"을 즐겨 본다던가, "페일세이프"를 결정적 단서로 쓰는 등 영화광 켄지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고, 부바의 활약이 미미하지만 여전하다는 아주 약간의 즐길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 외의 가치는 높지 않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시리즈도 이제 그만 읽어야 겠습니다.

2018/10/26

망내인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2.5점

망내인 - 6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다섯 살 여중생이 인터넷 익명 게시판의 악의적인 소문과 신상 공개를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짓지만 언니 '아이'는 이 사건은 타살이며, 반드시 범인을 찾아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수소문하여 찾아간 유명 탐정은 온라인 사건은 맡을 능력이 없다며 고사했고, 대신에 신비에 싸인 해커이자 '탐정들의 탐정'이라 불리는 '아녜'를 소개해 주었다. 처음에 '너무 쉽고 재미없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문전박대하던 아녜는 며칠 뒤 '예상 외로 재밌는 사건'이라며 의뢰를 받아들였다. 조사가 진행되고 용의자의 범위가 좁혀질수록 몰랐던 동생의 과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중국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7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아이의 동생 샤오원이 자살을 택하게 만든 인터넷 글을 올린 kidkit727을 찾는 전반부만큼은 철야책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좋을만큼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설정부터가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상 공개 때문에 무차별한 비난에 시달린 유치원 여교사가 자살한 사건처럼 현실적인 소재인 덕분입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kidkit727과 탐정 아녜의 현란한 두뇌 싸움도 굉장한 볼거리이며, 이를 친숙한 인터넷 및 각종 기술 용어 설명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동안 용어, 명칭만 알아왔지 실제 기술적인 원리나 내용에 대해서 잘 몰랐던 여러가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최신 기술이 개인 정보 유출, 해킹에 사용되며, 저 역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라서 더욱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해킹이나 첨단 기술에 관련되지 않는 순수한 추리들도 볼만합니다. 아녜의 사회 공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화술과 용의자 분석들도 그럴듯하지만 아이가 아녜의 집을 청소하면서 주요 증거물을 따로 모아 놓는다던가, 모탐정을 보고 아녜에게 어떤 정보가 전달되었을지를 알아내는 장면들 모두 왠만한 정통 추리물 못지 않은 추리적인 즐거움을 가득 전해 줍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용의자가 좁혀진 다음부터는 재미가 한 풀 꺾입니다. 특히 샤오원의 주변 인물 중 iOS 핸드폰을 사용하는 인물이 범인이다! 이후부터요. 용의자도 적고, 그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탐정의 탐문 수사에 불과한 활동이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이후 아녜가 이미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는게 밝혀지는 장면에 이르면 이런 행동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요. 다른건 몰라도 샤오원의 유서를 위조하여 도서관 책에 숨기는 연극은 불필요했습니다. 해킹용 어플리케이션을 심을 수 있었기에 진작에 심어서 정보를 수집했더라면 그만이니까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리리로 자칭한 여학생이 정보를 빼냈다는 증언을 입수했을 때 모탐정을 통해 사진 등으로 그게 누군지 알아냈더라도 게임은 끝나고요. 두쯔위가 증거를 인멸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 복수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그런것 치고는 너무 거창한 연극이었습니다.

또 이어지는 두쯔위에 대한 복수는 전개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아녜가 두쯔위의 와이파이, 스마트폰을 해킹하여 게시판을 위조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작전은 상당히 설득력있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하고, 인터넷 세계에서 무기명으로 무차별한 음해와 신상털기가 자행되며 누구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주제 의식만큼은 빛나지만 두쯔위의 동기가 자신을 모함했던 샤오원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는게 밝혀지는 결말이 문제에요. 너무 작위적이었거든요. 이 진상을 아녜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설정도 당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헛수고 하지 말고 최소한 아이가 복수를 의뢰할 때 알려줬어야 합니다. 그나마 샤오원도 가해자였다는 진상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언니 아이가 샤오원에게 무관심했었다는 부분은 명백한 사족입니다. 어머니와 언니 때문에 샤오원이 자살 결심을 굳혔다는건데 이런 쓸데없는 죄책감을 불러 일으킬 이유는 없어 보이네요. 이렇게 따지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또 샤오원이 자살을 결심한 건 잔혹한 메일 탓이 크고, 메일을 보낸 두쯔위가 아예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에 포인트를 좀 잘못 잡은 느낌도 듭니다.

무엇보다도 분량으로는 1/3 수준인 진범 스중난 파트는 완벽한 사족이자 작위적인 전개의 결정판이라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스중난이 사건의 원인이 된 샤오원 성추행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부터, 원조 교제를 통해 희생양을 물색하는 쓰레기라는 설정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인터넷 세계의 무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면, 스중난이 동생 두쯔위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전문 기술을 활용하여 샤오원을 공격했다 정도가 현실적이고 괜찮았을겁니다. 괜히 절대악으로 포장해서 응징할 필요는 없었어요. 스중난의 파멸을 위한 과정에서 불거지는, 가쉽을 사고파는 사이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처음에만 혹할 뿐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현실성없는 내용이었고, 이 사이트 투자를 미끼로 한 아녜의 작전도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그냥 스중난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동영상만 유포해도 끝날 일인데 쇼맨쉽이 지나칩니다.

그리고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못한 것도 단점입니다. 가난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빼어난 지성을 지닌 의뢰인이자 주인공 아이, 천재 해커 탐정으로 처음에는 비호감덩어리였지만 알고보니 정의의 화신이라는 아녜의 캐릭터 설정부터가 흔해 빠진 일본 추리 만화를 답습하여 식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천재 탐정, 해결사가 첫 의뢰인과 컴비가 된 후 자기 집에 거주하게 하면서 자기 일을 돕게 하는 에필로그는 "시티 헌터" 를 떠오르게 만들고요.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투자자 그룹 SIQ의 2인자로 잘생기기까지 해서 아시아판 리처드 기어로 보인다는 스투웨이가 산발에 평균 이하로 보이는 아녜였다는 반전은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설정의 극치었습니다. 사채꾼 우시지마가 알고보니 정의의 억만장자 토니 스파크였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차라리 은둔하고 있는 천재 이노우에가 아녜였다면 모를까... 이 반전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전체 700여 페이지 중 kidkit727의 정체가 두쯔위였음을 밝혀내는 약 절반 가량의 분량은 별점 3점을 줘도 좋을 만큼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두쯔위에 대한 복수가 진행되는 150여 페이지는 앞서 말씀드렸던 작위적인 결말 때문에 진행 과정은 흥미진진함에도 별점은 2.5점 정도고요. 그러나 나머지 약 200여 페이지에 해당되는 스중난 파트는 총체적인 난국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를 절반 정도로 줄이고, 스중난은 아녜와 같이 조력자의 위치로 하여 마지막 두쯔위 자살 직전에 그녀를 구해주고 개과천선 (?) 한다는 내용이었다면 별점 3점도 충분했을텐데 아쉽네요.

노골적으로 에필로그에서 시리즈임을 어필하는데 앞으로 계속 읽어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21/06/12

크라바트 -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 박민수 : 별점 2점

크라바트 - 4점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박민수 옮김/비룡소

고아 소년 크라바트는 꿈 속 계시로 방앗간 주인에게 찾아갔다. 그곳에서 마술을 배우며, 다른 직공들과 나름대로 즐거운 삶을 이어가던 크라바트는 친구 톤다가 죽은 뒤, 이는 마술을 배우는 댓가라는걸 깨닫고 방앗간 주인에게 복수를 결심하는데...

"왕도둑 호첸플로츠"의 작가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의 판타지. 1978년에 발표했던 초기작이네요. 2013년에 올렸었던 "왕도둑 호첸플로츠" 리뷰에 난난님이 달아주신 댓글을 통해 구입했던 책입니다. 왠지 손이 잘 가지 않아서 지난 수 년간 묵혀 두고 있었는데, 딸 아이가 이제 이런 두꺼운 책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딸 아이에게 권해줘도 될까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도둑 호첸플로츠"같은 유쾌한 아동용 모험극이 아니라 놀랐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복수극일 뿐더러, 톤다와 미할의 죽음이라던가, 자살을 시도한 메르텐이 목이 부러진채 살아가게 되었다는 등의 잔혹한 설정과 묘사도 너무 많았거든요. 아래의 영화 포스터가 불길함 가득한 잔혹 판타지인 이 작품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뭐 이런 이야기라도 좋은 점이 명확하다면 딸 아이에게 권해주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완성도부터가 미흡했어요. 크라바트가 친구를 죽인 악독한 방앗간 주인에게 복수하는게 핵심인데, 이런저런 디테일이 과했고 기승전결의 배분도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방앗간 주인의 숙적인 품푸트는 왜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직공들이 마법을 써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내용들도 불필요했고요. 직공들이 방앗간 주인으로부터 마법이라는 힘을 얻어서 잘 써먹었다는 뜻이고, 그러면, 주인을 배신하는게 오히려 배은망덕한 행위가 되니까요. 물론 1년에 한 번씩 직공들 중 한 명이 죽기는 하지만, 전능한 힘을 얻기 위한 지불이라고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건 아닙니다. 즉, 크라바트가 마법을 배운 이상, 친구가 죽었다고 복수하는게 좀 애매해지는거지요. 

반대로 이런 이야기보다는 중요할, 방앗간 주인이 모시는 주인은 누구인지, 그의 마법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습니다. 이야기 배분이 이상한건 불필요한 내용보다 중요한 전개 과정을 대충 넘기는 탓입니다. 우선 칸토르카가 왜 크라바트를 위해 목숨을 거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칸토르카가 두려움에 떨던 크라바트를 찾아내는 클라이막스도 단 2페이지로 끝낼 내용은 아니었어요. 멍청한 유로가 사실은 굉장히 똑똑한 조력자였다는 것 처럼 복선과 반전으로 쓸 요소가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잘 써먹지도 못합니다.

이런 점들로 비추어 볼 때, 창작 동화보다는 오래 전 독일 전래 동화를 그대로 글로 옮겨 놓은 느낌인데, 차라리

  • 고아 소년 크라바트가 방앗간을 찾아가서 방앗간과 주인, 그리고 동료들에 대해 알게되고 방앗간의 정식 직공이 되는 '기'
  • 친구 톤다가 죽고, 이는 방앗간에서 마법을 배우는 직공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거래였다는걸 알고나서 복수를 맹세하는 '승'
  • 방앗간 주인을 물리치기 위한 방법을 유로로부터 전해듣고 작전을 짜는 '전'
  • 칸토르카와 함께 방앗간 주인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결'
로 명확하게 정리하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승' 부분에서 암흑의 마법 학교에서 마법을 배우는 댓가와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추가해주고, 마지막 한 판 승부를 지금보다는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면 더할나위 없을테고요.

하지만 지금 결과물은 여러모로 단점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딸 아이에게는 권해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영화는 어떨지 조금 궁금하네요.

2014/07/22

10만 분의 1의 우연 - 마쓰모토 세이초 / 이규원 : 별점 2점

10만 분의 1의 우연 - 4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A신문의 "독자 뉴스사진 연간상"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도메이 고속도로 연쇄 추돌 사고를 촬영한 사진이었다. 약혼녀를 사고로 잃은 누마이 쇼헤이는 사진이 촬영된, 그야말로 '10만분의 1' 상황에 의구심을 가지고 개인적인 조사를 시작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의 81년 발표작입니다. 작가의 후기작들이 대체로 별로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별히 정교한 트릭이 등장하거나 복잡한 서사를 지닌건 아니지만, 그냥 한번 손에 들면 쭉쭉 읽히는 펄프 픽션스러운 재미가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나 제목 그대로 10만분의 1의 상황을 담은 사진이라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이러한 사진은 결코 우연히 찍힐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 피해자의 약혼자가 진상을 파헤치는 전개를 보여주는데 정반대의 설정, 즉 이러한 우연한 상황을 포착한 주인공이 악의 무리에게 쫓긴다는 픽션은 흔했지만("이창") 이런 접근법은 상당히 참신하다 느껴졌거든요. 

아울러 작중 잠깐 언급되기도 하고 미야베 미유키의 권말 해설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사고 현장에서 쓰러져 있을 희생자들을 내버려두고 사진을 찍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가? 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좋았어요. 1994년 수단의 굶어 죽어가는 소녀를 독수리가 노려보는 사진으로 뉴욕 타임즈의 사진상을 수상하였지만 비난 등으로 인해 자살한 사진작가 케빈 카터가 연상되기도 했고요. 

사진이 핵심 소재인 작품답게 사진과 카메라 관련한 디테일한 정보가 가득한 것도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여러가지 렌즈에 대한 설명이나 셔터스피드 이야기, 카메라 기종에 대한 것들이 자세하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진 관련 아이디어와 정보는 괜찮고 수준 이상의 읽히는 재미를 갖추기는 했으나 역시나 항상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후기작답게 완성도 면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누마이 쇼헤이가 개인적인 수사에 나서 사진을 찍은 야마가 교스케를 압박해나간다는 부분까지는 나쁘지는 않고 극초반의 뉴스 스타일 전개에서 쇼헤이 - 교스케로 화자 및 주인공이 바뀌어가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솜씨도 거장답기는 하나 중반 이후의 내용은 너무 쉽게 간 탓입니다.

먼저 쇼헤이가 사진작가인 교스케에게 접근하여 환심을 산 뒤에 피해자의 언니인 야마우치 미요코의 이름을 던져 수상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복수를 하기 위해 진상을 캐는 인물이 기껏 가공의 인물로 나타난 뒤에 곧바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는게 말이나 되나요?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어디까지나 심리적으로 쫓기는 입장인 교스케가 폭주족 촬영을 핑계로 크레인 기계실로 쇼헤이를 유도한다는 것은 더 어이가 없습니다.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복수를 원하는 피해자 가족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부른다'와 거의 같은 이야기인데 전혀 와 닿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러한 장소로 유도하지 않았더라면 대관절 쇼헤이의 복수가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편의적인 전개라 생각되었습니다.
게다가 후루야 구라노스케까지 죽인다? 본의가 아닌 것으로 보인 말실수 가지고 죽이다니 너무 심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사건 자체도 후루야가 대마초 좀 피웠다고 알맞게 높은 곳에 알아서 올라가준 다음에 알아서 떨어져 죽는 것이라 교스케 사건 못지않은 작위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라 마음에 들지 않고요. 만약 후루야가 죽지 않았더라면 다음날 촬영회 등은 어떻게 얼버무릴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이 후루야 사건은 쇼헤이의 복수에 정당성을 실어주기 위해 작가가 쇼헤이의 입을 빌어 불법, 호마 등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장치일 수는 있는데... 지루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만큼 장황해서 작중에서처럼 후루야가 얌전히 듣고 있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후루야가 너무 쇼헤이가 하는데로 움직이는 것도 이해불가인 것은 마찬가지로 저같으면 목욕 후 술까지 먹은 상태라면 뭐가 어찌 되었건간에 한밤중에 산으로 사진 촬영한다고 올라가지는 않을거에요.

추리적으로 볼 때에도 교스케의 사진 촬영에 대한 발언 자체가 현장을 딱 한번 와본 사람이 알아챌 정도로 어설펐다는 것, 트릭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스트로보로 발광 시키고 사진 촬영한 위치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그닥 설득력있게 잘 만들어졌다고 하기는 어렵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사건 현장에 한두번 와봤을 뿐인 쇼헤이가 우연히 발견한 테이프가 단서가 되었다는 점에서 경찰의 현장 조사로 발견될 수 있었으리라 싶은 것도 감점 요소고요.
사진 및 카메라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시간의 습속"과 비교되지만 "시간의 습속" 만큼 잘 고안되지 못한, 장편으로 끌고가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던 트릭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스트로보 불빛을 보았다고 신고하는 장면은 최악의 사족이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 하나만큼은 거장의 명성에 값하는 작품이기는 하나 세세한 완성도면에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군요. 마쓰모토 세이초도 에드 멕베인처럼 초중기작을 골라서 읽어야하는 작가라는 기존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점 정도만 가치가 있었습니다. 작가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서 읽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