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법의학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법의학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07/03/29

루미놀 - 최상규

루미놀
최상규 지음/청림출판

예전 "지상아" 등으로 법의학 관련 서적을 내 놓았던 청림출판에서 내 놓은 비슷한 기획의 법의학 서적입니다. 지금도 발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월간 수사 연구"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묶은 것으로 국과수에 근무하신 최상규님의 법의학 수사 이야기를 담은 책이죠.

하지만 책 내용은 기대와는 좀 거리가 있더군요. 90%이상이 루미놀과 기타 방법을 이용한 혈흔 확인 및 혈액형 분석, 그리고 친자확인 검사 이야기뿐이며 약 20여년전의 이야기라서 "DNA"분석이 도입되기 이전이기에, 그리고 혈액형 분석 이외의 보다 자세한 분석방법이 등장하지 않아서 답답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미흡한 조사 결과 때문에 대부분의 사건들에서 법의학적인 이야기는 수사의 보조수단으로만 기능하고 있거든요. "혈흔" 만 가지고 증거를 삼기에는 아무래도 많이 부족하니까요. 아울러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상투적인 문체도 흥미를 많이 떨어트리는데 한 몫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몇몇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 예를 들자면 혈흔에서의 혈액형 분석은 "땀"의 존재로 잘못 판단될 수 있다던가, 타액으로 혈액형 분비가 되지 않는 비분비형 사람이 인구의 15%정도 된다던가 하는 재미난 이야기들과, 사건 대부분이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강력사건들이기도 해서 나름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딱 한건을 제외하고는 범인이 모두 잡혔다는 것도 뭔가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고요. "C.S.I"를 기대한다면 당연히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법의학의 한계를 그만큼 명확히 한 "실화집" 이라는 측면에서는 높이 살 만 하겠죠. "C.S.I"도 사실 구라가 대부분이기에...

개인적으로는 추리소설 창작에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해서 구입한 측면도 있는데 도움되는 요소가 몇가지 있었기에 만족합니다. 다름 작품에서는 뭔가 써먹야 봐야 겠네요.^^

2010/12/06

타살의 흔적 - 강신몽 외 : 별점 2.5점

타살의 흔적 - 6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법의관들.강신몽 지음/시공사

현직 법의학자와 법의관들이 집필한 법의학 논픽션입니다. 우에노 마사히코의 "쥐똥나무", "독살", 그리고 브라이언 이니스의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와 유사하게 다양한 법의학 관련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 국내에서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정몽헌 회장 자살 사건, 고속도로 음독 변사 사건, 서래마을 프랑스인 부부 영아 살해 사건, 핸드폰 폭발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례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고속도로 음독 변사 사건의 결과를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추리 소설에서 활용할 만한 독특한 사건들이 등장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서 추락하거나 강한 충격을 받아도 외상이 전혀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자살을 위해 목을 맨 사람이 줄이 끊어지면 사망 직전 순간적으로 얼마간 움직일 수 있다는 점, 물과 소금을 다량 섭취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점 등은 충분히 트릭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한 흥미로운 정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다는 것은 좋지만, 문체가 지나치게 딱딱하고 법의학 용어를 여과 없이 사용하여 읽는 재미가 떨어졌습니다. 또한, 도판이 부족한 점도 아쉬웠습니다. 도판이 있더라면 이해가 훨씬 쉬운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말이지요. 책의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한국 실정에 맞춘 법의학 사례집이라는 점에서는 추천할 만합니다. 다만, 법의학이나 범죄 관련 서적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몰라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2/12/29

지상아와 새튼이 - 문국진 : 별점 2점

지상아와 새튼이 - 4점
문국진 지음/알마

일전에도 소개했던 문국진 교수의 법의학 에세이집. 일전에는 "지상아"만을 읽고 감상문을 올렸었는데, 이어서 이번에 새로 간행된 "새튼이"까지 합본된 책을 구해 새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유는 글들을 개작한 탓입니다. 서문에서 소개하기를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를 펴낸 것이 계기가 되어 현대적으로 개작하여 재출간했다고 하는데, 뭐가 현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건의 경과, 결과도 비교적 상세하게 실려 있던 원작에 비해 주요 사건과 법의학 관련 이야기만 소개하고 있는 등 축약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이건 개작이 아니라 개악이에요.

물론 이러한 축약과 함께 원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저자의 단상 등을 정리하고 법의학에 완전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법의학에만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더 좋을 방향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 법의학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여전하긴 하니까요. 예를 들자면

- 성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사고성 의사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목 부분을 자세히 검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 왜냐하면 같은 장난(?)을 반복했다면 목 부분에 엷은 흉터가 있을 수 있기 때문.
- 50여 년 전의 완전범죄. 한 여대생 살해 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친구가 혐의를 벗는 과정.
- 초기 교통사고에 대한 상세한 법의학적 고찰.
- 삼각팬티와 뒷물로 비롯된 성병.

등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구작 쪽이 훨씬 좋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구작이 절판되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2020/01/09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유성호 : 별점 2.5점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6점
유성호 지음/21세기북스

법의학자 유성호가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해 '죽음'에 대해 서술한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저자가 "미스테리아"에서 연재하고 있는, 실제 사건 속 법의학 이야기를 펼쳐내는 컬럼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터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미스테리아" 연재 컬럼과 비슷한 내용의 책일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책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제 실수지요. 

그래도 다행히 총 3부 구성 중 1부인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는 비교적 기대에 값합니다. 여러가지 실제 사건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법의학 소견과 검시 결과 등이 소개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완전범죄를 꿈꿨던 범행들이 눈에 뜨입니다.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이라던가, '의사 만삭 아내 살인 사건' 처럼 세간에 큰 화제를 불러왔던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를 더하고요.

그러나 2부인 "우리는 왜 죽는가"와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부터는 이런 실제적인 법의학 관련된 글은 없습니다. '죽음'에 대해 역사적, 철학적, 과학적 개념을 다루고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도 2부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뇌사와 연명 의료 지속 여부, 그리고 안락사 이슈에 대해 심도깊게 접근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평상시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주제라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특히 환자 자신이 연명 의료를 받을거라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연명 의료로 생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 결정을 정작 당사자인 환자는 하지 못한다는 이슈는 남 이야기 같지도 않더라고요. 법의학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이러한 이슈에 대해 국내에서 법제화되거나, 법원 판결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생기게 된 1997년의 '보라매병원 사건' 과 2008년 '세브란스 병원 연명의료 판결' 과 같이 실제 사례가 소개된 것도 이해를 돕습니다.
자살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부분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근거를 가지고 접근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잡지 《뉴요커 The New Yorker》가 금문교에서 투신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행히 구출되어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리고 우리나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안용민 교수가 실제 자살 시도자를 진료하면서 들었다는 이야기 및 이를 연구한 내용들에서 자살자들 모두가 막상 죽으려는 순간에는 살고 싶었다고 생각했다던가, 자살의 원인으로 자살 유전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자살 유전자는 세로토닌이라는 뇌 신경화학물질과 관련되어 있다는군요. 물론 아직 명확하게 그 근거를 밝힐 수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자살의 원인 중 70퍼센트는 환경적 요인이고 나머지 30퍼센트는 유전적 요인일 것이라는 정도라고는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변에 자살자가 있는 가족은 보다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설명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3부만큼은 영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한 설명들인데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죽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고, 저 역시 불필요한 연명 치료는 반대하는 입장이긴 하니까요. 하지만 저자의 약력이라던가, 다른 글들에서 기대했었던 실제적인 사건과의 연계라던가, 법의학자로서의 전문성이 묻어나는 글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마지막의 영생 등에 관련된 내용은 지금 시점에서는 많이 앞서간 측면이 없지 않아 보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러모로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제 기대와는 다른 결과물이었습니다. 차라리 "미스테리아" 연재 컬럼이 단행본화되면 좋겠습니다.

2006/03/02

원통함을 없게 하라 - 김호 : 별점 2점

원통함을 없게 하라 - 4점
김호 지음/프로네시스(웅진)
부제인 "조선의 법의학과 <<무원록>>의 세계" 라는 말 그대로 조선시대의 법의학 책인 무원록 (정확히는 신주무원록)을 현대적으로 번역하여 출간한 책입니다. 

일단 기획 자체는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저처럼 추리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정말 구미당기는 그런 내용으로 보였거든요. 그동안 읽어왔던 법의학 서적들은 나름대로 기본적인 재미와 지적인 만족감을 전해주기도 했었고 말이죠. 하여간 출간 소문만 듣고 군침만 흘리고 있던 차에 형이 구입을 했길래 냉큼 집어들고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읽어보니 기대와는 다르게 "무원록"이라는 도서의 현대적인 번역서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물론 조선시대의 법의학적인 절차 등에 대한 내용은 흥미가 가는 소재이긴 합니다만 저에게는 그렇게 와 닿지는 않더군요. 물론 일부 비과학적인 사고방식 (남자는 익사하면 양기가 머리로 모여 무거워서 엎어지고 여자는 음기가 등으로 모여 등이 무거워 얼굴을 위로 하여 눕게 된다는 등) 에 대한 해설과 아주 약간 등장하는 사례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단순히 "자료" 이상의 가치는 느껴지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자료로 쓰기에는 도판이 너무 부족해서 결국 이래저래 중간에 낀 어중간한 책이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한마디로 제가 제돈 내고 안 산걸 고마와 하고 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웅진씽크빅이라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만든 브랜드인 프로네시스 타이틀을 달고 나온 만큼 편집도 괜찮은 편이고 등장하는 삽화도 신경을 제법 쓴 만큼 책의 내용에 있어서도 약간만 보완했더라면, 그래서 재미와 실효를 겸비한 책이 되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저자나 출판사가 다른 법의학 서적들을 조금 참조해서 일반 독자에게도 재미를 줄 수 있는 부분만 의도해서 포커스를 좀 더 맞춘 보완 버젼이 나와 준다면 잘 팔리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TV에서 방영했던 "별순검"이 대박을 쳤더라면 훨씬 좋은 판매를 보였을텐데 저자나 출판사는 좀 아쉽겠습니다.

2018/03/18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 브리짓 허스 / 조윤경 : 별점 4.5점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 8점
브리짓 허스 지음, 조윤경 옮김/동아엠앤비

법의학의 역사를 쉽게 설명해주는 일종의 미시사, 과학사 서적입니다. 통사처럼 '법의학'의 흐름을 일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별다른 과학적인 수사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로, 비소가 특별한 검사법이 없어서 널리 쓰이던 1751년에 영국 여성이 아버지 독살 혐의로 기소되면서 과학 수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사건 소개입니다. 비소는 가열하면 마늘 향을 내뿜는데 용의자 메리의 약갑 속 물질을 가열하니 마늘 냄새가 났다는,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그야말로 과학 수사의 한 걸음을 내딛은 방법이 등장합니다. 이 증거로 메리는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1806년 로제 교수가 '로제 검사법' 이라는 비소 검출법을 고안해 냅니다.

그리고 의사가 검시관이 되는 과정,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라까사뉴가 1881년 리옹에 '법의학 연구소'에 합류하여 부검에 참여하고 여러 제자를 양성하여 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집니다. 특히 유명한 '크리펜 사건' 은 대중에게 라까사뉴와 같은 법의 병리학자의 존재 및 그 유용함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병리학자 스필스베리가 크리펜 자택 지하실에서 발견한 사체가 크리펜의 실종된 아내라고 판단한게 사형 선고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참고로, 최근 조사 결과로는 이 사체는 '남자의 사체' 였다고 합니다. 스필스베리의 추리대로 독살이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총으로 쏘고 사체를 절단하여 유기하는 건 일반적인 독살범 행태와는 다르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이었고요. 하지만 코라 크리펜은 결국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크리펜의 범행은 성공했지만 우연에 의해 정의의 철퇴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여튼 이러한 최근 조사로 스필스베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또 다른 유명 연쇄 살인 사건인 '욕조 속의 신부들' 사건 당시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조사하여 증언한 내용도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 이라는 유사 사건이 있어서인지 더 기억에 남네요. 의사인 주제에 100년전 사기꾼보다도 유치하게 현장을 조작하다니, 사형 선고를 받지 않을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1925년 노먼 쏜 재판에서의 논란으로 스필스베리의 완벽함에 균열이 가고, 대중도 병리학자의 결점과 오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유럽보다 늦은 1918년 법의관 제도가 시작되는데 법의관들의 활약으로 여러 건의 사건이 해결됩니다. 부검이 아니라 정말 탐정 뺨치는 추리로 범인을 밝혀낸 사건도 있습니다. 하숙집에서 노부인이 시체로 발견되어 자연사인줄 알았는데, 현장에 도착한 법의관이 '가정부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문은 안에서 잠겨있었다는 뜻인데, 그럼 열쇠는 어디 있는걸까?'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수사를 이어간 끝에 열쇠를 소지한 범인을 잡는다는 결말인데, 당장 추리 소설에 응용해도 좋은 멋진 추리였어요.

이러한 법의관 제도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과학적인 수사 방법도 상세합니다. 지금은 일반 상식이 된 범죄 현장의 증거를 토대로 한 수사는 1세대 법과학자 에드몽 로카르가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홈즈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에드몽 로카르를 비롯, 오스트리아의 한스 그로스, 프랑스의 빅토르 발타자르, 미국의 벤자민 모건 밴스 등 여러 선구자들의 활약으로 해결된 사건이 연대별로 흥미롭게 소개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과거에는 분석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정보로 현대에는 어떻게 사건이 해결되었는지를 병렬로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를 돕고요.

뒤이어 각종 분석 방법들을 한 챕터씩 할애하여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챕터별 구성은 대동소이합니다. 해당 분석법의 역사와 주요 인물, 그리고 해당 분석법이 활용된 주요 사건이 소개되는 식이죠. '지문'의 경우, 뎁퍼드가 살인 사건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내용은 이전에 읽었던 "지문"에서 더욱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딱히 언급할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도 샤를리즈 테론의 "몬스터"로 잘 알려진 에일린 워노스 사건 소개는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문'을 숨겨야 했던 사건도 재미있습니다. 시체를 자신이 죽은걸로 위장하려고 기도한 사건인데 황당한건 시신의 신원만 위장했지 정작 범인 자신의 신원은 위장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후 다른 사건 사례를 통해 지문의 결함이 있다는 점도 알려주며 마무리됩니다.
이와 함께 베르틸롱(베르티용) 측정법도 함께 실려 있는데, "지문"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베르틸롱 측정법의 심각한 문제인 "쌍둥이는 구분할 수 없다"의 실제 사례는 흥미로왔습니다.

총기 분석에서는 유명한 '사코와 반체티 사건' 에서 최근 분석 결과 사코는 진범이었을 수 있다는 결론. 그리고 알 카포네의 '발렌타인 데이의 학살' 관련 수사가 재미있었어요.

혈흔 분석 챕터에서는 "도망자"의 모델 샘 셰퍼드 의사 부인 살인 사건이 가장 흥미로왔습니다. 혈흔 분석을 통해 재판 결과가 뒤바뀌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최근의 조사 결과와 결론을 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 그리고 결론이 아주 새롭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피해자학(희생자가 살해될 요소가 무엇인지? 를 분석하여 동기, 용의자를 알아내는 기법)'을 토대로 메릴린이 희생자가 될 확률은 오로지 불안정한 결혼 생활 뿐이었다고 단언합니다. 현장이 조작된 증거도 상세하게 실려 있고요.

시신 분석 사건에서는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의 살인 청부업자가 피해자의 시신을 수 년간 냉동한 후 유기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실제 범행은 수년 전이지만 3~4 주 전에 살해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여러가지 증거를 토대로 진상을 밝혀내고 범인을 체포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내용은 흡사 미드 "CSI"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유골 분석은 다른 챕터에 비하면 사례의 재미가 조금 덜한 편입니다. '아나스타샤 사건'으로 법의인류학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정도만 괜찮았어요.

마지막은 프로파일링과 DNA 분석이라는 최신 수사 기법으로 마무리됩니다. 프로파일링은 익히 수많은 책을 통해 접했던 내용의 요약이지만, FBI 행동 과학부의 수사관들이 활약한 사건들은 흥미진진합니다. 사건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의 활용도 잘 설명되고 있고요.
DNA 분석은 이를 통해 해결한 사건보다도 증거가 왜곡된 사건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DNA가 악수 등으로 쉽게 옮겨질 수 있기 때문으로 이를 통해 잘못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물론, '바이트 마크' 와 같이 오류가 있는 증거가 채택되어 발생한 문제 등이 함께 소개되는데 참 무섭더군요. 요새도 증거 조작이나 오인식, 각종 오류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가끔 보도되는데, 항상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법의학, 법과학에 대한 통사적인 이해는 물론, 실제 사건과 연계하여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보는 듯한 재미도 전해주는 좋은 책입니다.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으며, 도판들도 적절한 수준으로 삽입되어 있는 등 전체적인 책의 완성도도 빼어납니다. 한마디로 재미와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보기드문 좋은 책이에요.
분량 상 개략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많으며, 이미 각 분야별로 상세하게 설명한 다른 책들을 통해 제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제법 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2005/11/11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Bodies of Evidence) - 브라리언 이니스 / 이경식 : 별점 3점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 6점
브라이언 이니스 지음, 이경식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증거 수집의 방법에서부터 독극물, 뼈, 벌레, 지문, 피, DNA, 머리카락 및 섬유조직, 총알, 화재와 폭발, 파편과 증거, 목소리, 범인 식별 및 법의학 장비와 모든 조사방법에 대해 자세한 도판, 사례와 함께 잘 요약해 놓은 법의학 및 과학 수사 개론서.

32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책의 판형도 크고 빳빳한 종이의 올 칼라로 구성되어 가격도 만만치 않고 책도 묵직합니다. 
그러나 분량, 가격에 걸맞게 다양한 법의학과 과학 수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자세한 도판과 함께 담고 있고, 수사 방법의 소개로 그치지 않고 각종 범죄에 대해 실제 법의학 및 과학 수사가 적용된 사례를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어서 쉬운 내용 전달은 물론 읽는 재미도 더해줍니다.
사례들로는 보스턴 교살자나 강간범 "폭스", 새디스트 네빌 히스, 비소 마녀 마리 라파즈, 영 포이즈너 그레이엄 영, 팻 맨 존 웨인 게이시, 핸섬가이 테드 번디, 유너바머, O.J 심슨 등 유명한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사건들이 19세기 부터 소급하여 수십 건 요약되어 실려있는데 이 사례들만 따로 모아서 읽어도 될 정도로 읽는 재미가 뛰어납니다.

단점이라면 요약 및 개괄에 가까운 입문 형식의 책이라는 점이겠죠.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상세한 분야의 연구서들이 필요할 것 같긴 합니다. 제가 읽은 몇권의 책들 ("파리가 잡은 범인"이나 "FBI 심리 분석관") 등 도 같이 읽어 주면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뭐니뭐니 해도 C.S.I랑 같이 보는게 최고겠죠. 이 책 자체가 국내에는 C.S.I의 영향으로 출간된 것이 분명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사진 도판이 적나라한 것이 몇개 있어서 지하철에서 읽기에 약간 걸리는 부분도 조금 있더군요.

그래도 책 자체는 괜찮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밝혀 놓으면 앞으로 점점 범죄자를 잡기가 어려워 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약간 무섭네요. 책의 취지는 "어떻게 범죄를 저질러도 증거가 남는다"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 범죄자들이 알면 알 수록 빠져나갈 구멍은 더욱 커 보이거든요....

2025/03/28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 강신몽 : 별점 2.5점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 4점
강신몽 지음/이다북스

국내 ‘법의학의 대부’로 불리는 강신몽 교수의 에세이 집. 15년 전 "타살의 흔적"이라는 책으로 접했던 분이지요.

저자의 생각과 주장을 실제 사례와 엮어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 주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칼에 찔린 깊이나 칼몸의 전체 길이 중 얼마가 들어갔느냐 하는 것은 '힘껏' 찌르거나 '살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피해자 가슴에 칼몸이 25센티미터 박혔다고 5센티미터 들어간 것보다 다섯 배의 힘으로 힘껏 찌르거나 지속적으로 힘을 가한 것이 아니라는 실제 사례를 드는 식입니다. 

의료 처치가 사망 원인을 왜곡할 수 있는 경우도 소개됩니다. 대표적으로는 심폐 소생 중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례 등인데, 이렇게 응급처치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들이 오히려 폭행의 증거로 오해될 수 있고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특정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한 채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를 의미하는 자세성 질식은 새롭게 알게 된 개념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화장실 변기에 앉은 채로 발견되었거나, 놀이기구의 쇠봉에 목이 걸려 있는 상태로 사망한 사례 등으로 겉으로는 타살의 흔적이 없다고 합니다. 추리 소설에 사용될 법한 내용이 아닐까 싶네요.

또한, 20세기 초, 한 남성이 세 명의 아내를 차례로 욕조에서 익사시킨 후 보험금을 타냈던 "욕조 속의 신부들 사건"처럼 법의학이 범죄 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사례도 흥미로왔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단순 익사로 처리될 뻔했지만, 법의학적 검토를 통해 연쇄 살인이 밝혀졌다는군요.

이외에도 법의학적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한 다양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은건 아래와 같습니다.

  • 공기색전증: 자위행위를 하던 중 질 속으로 공기가 유입되어 혈관을 통해 심장으로 들어가 사망한 사례. 부검을 통해 원인을 밝혀내었음.
  • 건성 익사: 물에 빠졌지만 물을 거의 마시지 않은 채 사망한 사례. 갑작스러운 찬물의 자극이 미주신경을 통해 심장을 멈추게 했을 가능성이 제기됨.
  • 열사병: 핀란드의 ‘사우나 챔피언십’ 참가자가 사우나 안에서 장시간 버틴 후 사망한 사례와, 국내에서 술을 마신 후 찜질방 한증막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례 등을 통해 고온 환경의 위험성을 경고함.
  • 황화수소 중독: 계란 썩는 냄새가 나는 가스에 노출되어 호흡 마비로 사망한 사례. 산업 현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위험할 수 있음을 강조함.

다만 법의학자가 탐정이 아니라는걸 지속 강조하는건 좀 별로였습니다. 법의학자도 부검 결과를 통해 충분히 자신의 의력을 피력할 수 있을텐데, 그건 법의학자의 영역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거든요. 당연히 경찰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겠지만, 반대로 보면 좀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에세이라서 개인 감상이 많이 포함된 점, 사례들은 저자의 주장과 견해를 뒷받침하는 용도로만 인용되어 후일담이나 결말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점도 좀 아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보다 전문적인 법의학 사례집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2012/04/27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 : 별점 3점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6점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알마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이신 문국진 교수 인터뷰집. 사실 인터뷰로만 이루어진 책은 처음 접해보네요. 그래서인지 큰 기대를 가지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왠걸! 서두에 인터뷰어 강창래 씨가 자신과 문국진 교수와의 인연을 말하며 언급하는 81년의 윤노파 살인사건부터 예상외의 재미를 가져다줘서 각 잡고 한 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문국진 교수의 위치, 그리고 경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의 하나로 언급된 것인데 사건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이 부분에 등장하는 박원순 변호사의 "야만시대의 기록", 조갑제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덧붙이자면 조갑제가 '변신'하기 이전에 쓴 책들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통해 문국진 박사가 어떻게, 왜 법의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해서 박사가 관련되었던 다양한 사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함께 하나둘씩 펼쳐지는 본편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만 몇 가지 뽑아보자면,

첫 번째는 "새튼이 무당" 사건. 새튼이라는 귀신과 대화한다고 주장하는 무당이 수사 대상이 되는데, "쏵~ 쏵~" 하는 이상한 소리가 정말로 났다고 합니다. 아무리 조사해도 그런 소리가 날 만한 장치가 없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무당의 치아 구조가 특이했다고 하네요. 결국 알고 보니 특이한 앞니 틈새를 이용해서 소리를 낸 것이었다는데 희한하네요.

두 번째는 중년 부부의 성행위 도중 아내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사건. 박사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새튼이"에 실려 있는 이야기로 영화 "용서는 없다"에도 언급되었다고 하네요. 이유는 남편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는데, 아내가 페니실린 과민성 체질이라 페니실린 쇼크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도 놀랍지만, 이 사건을 클림트의 그림과 함께 엮어 설명하는 것도 아주 좋았어요.

세 번째는 일본 동북지방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Y양이 성폭행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진상은 그녀와 연적이었던 M양이 교살하고 다른 남자의 정액을 바르고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대단한 사건은 아니나 "완전범죄는 없다"라는 명제에 충실한 이야기라 인상적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여대생이 자기 하숙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 그녀의 연인인 의대생 출신 편집자 P군이 유력한 용의자. 그러나 사인이 될 만한 약물의 흔적도 없었고 단지 상·하지에 가벼운 압박 흔이 있는 정도. 결국 문초 끝에 밝혀진 진상은 수면제로 재운 뒤 상지·하지를 고무밴드로 묶었다가 푼 것이라고 합니다. 혈액순환 장애가 오래 지속되면 히스타민양 물질이 생겨 쇼크가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죠.
'문초'라고 점잖게 묘사된 부분은 고문임을 짐작케 해서 수사 과정 자체는 별로지만, 의대생 출신의 의학을 이용한 난생 처음 보는 기발한 트릭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 이야기 뒤로 이어지는, 문국진 교수가 은퇴 후 전념한 북 오톱시 관련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유명인의 사인을 이후 남겨진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분석한 뒤 정확하게 규명한다는 것인데,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사인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집니다. 비슷한 유형인 동서고금의 명화를 통하여 그림 주인공의 병을 설명하는 이야기들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라 예수님의 내장위역증에 대한 이야기나 밀레의 "괭이를 든 사람"은 전형적인 디스크 환자의 모양새라는 것 등의 새롭고 신기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이렇듯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여 정신없이 다 읽었습니다. 법의학 사건집이 아닌 인터뷰이기 때문에 각 사건들이 단지 한 예로만 이야기될 뿐이라 전체적인 과정과 결말이 없는건 아쉬웠지만, 한 분야의 시조이자 거목인 분의 생각을 온전히 접할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박사의 다양한 저작을 빨리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일단 "새튼이"와 "지상아"부터 찾아봐야겠네요.

2006/04/10

독살 - 우에노 마사히코 / 박의우 : 별점 2.5점

독살 - 6점 우에노 마사히코 지음, 박의우 옮김/살림

일본의 저명한 법의학자이며 작가인 우에노 마사히코 박사가 본인이 실제 담당하였던 사건들을 가지고 저술한 책입니다.

일단 전문 법의학 서적처럼 어렵고 자세하게 기술했다기 보다는 일반인도 쉽고 재미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저술한 노력이 돋보입니다. 책도 작고 콤팩트 한 것이 이쁘장하기도 하고요. 또한 일본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들을 훝어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선사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와카야마 현의 마을 축제 카레에 섞인 비소로 67명이 구급차로 실려가 그 중 4명이 사망한 사건이라던가, 전쟁 직후 제국은행 독살 강도 사건, 신주쿠 역 청산가스 사건, 글리코-모리나가 사장 납치 사건, 그리고 유명한 옴 진리교 사린 가스 사건 등 다채로운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또 전문 법의학자의 저서이니만큼 몇몇 사건에서의 추리적인 시각과 전개 과정은 꽤 괜찮았습니다. 자살인 것으로 알았지만 후에 타살로 판명된 사건, 사고사인줄 알았지만 결혼 사기범의 연쇄 살인극이었다는 사건 등이 있는데 개중 독특한 보험금 관련 사건을 하나 소개해 보죠.

"사업에 실패하여 거액의 부채를 짊어진 무역상이 미국 로스앤젤리스의 호텔 4층 발코니에서 혼자 술을 먹다가 떨어져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조사를 통해 그가 일본에서 거액의 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저자는 시체 소견을 통해 난간에 걸터앉아 있다가 실수로 떨어졌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다양한 증거 (상처의 위치등을 토대로 한 떨어질때의 자세 재구성 등)를 제시하여 자살임을 밝혀낸다..."

하지만 너무 쉽게 쓰려한 탓에 전문적인 내용이 희박해지는 단점도 있고 개인의 신변잡기적인 글도 많이 포함되어 있는 부분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전체적으로 법의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개인 수필집처럼 보이기도 해서 전문 도서를 원한 독자라면 실망할 책이기도 합니다. (최소한 저는 실망스러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그래도 CSI 의 인기 이전에 기획되어 국내에 출간되었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반가운 일이기도 하고, 쉽게 쓴 점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도 하니 저자의 다른 전문 서적을 기대해봅니다.

2018/08/19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 D.P. 라일 / 강동혁 : 별점 2점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 4점
D. P. 라일 지음, 강동혁 옮김, 강다솔 감수/들녘

전문의이자 미스터리 작가이기도 한 저자 D.P 라일이 미스터리 작가들을 위해 운영하는 자문 사이트에 올라온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여 모아 놓은 책입니다.

실제 작품에 사용하기 위한, 굉장히 실용적(?) 인 질문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저에게는 '독물'에 대한 정보들이 아주 유용했는데,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사막에서 표류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한 물질은? 이라는 질문에 등장하는 알코올 관련 이야기가 있습니다.

맥주를 예로 들어 알코올은 이뇨제처럼 작용한다고 설명하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라식스' 라는 약을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것이라는 정보와 함께 말이지요.

흰독말풀이 효과적인 독극물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유용합니다. 악취도 심하고 맛도 지독하지만, 먹일 수만 있다면 굉장히 유독하다고 하네요. 술에 섞으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있고요. 비슷하게 쉽게 구하 수 있는 벨라도나, 독미나리, 디가탈리스, 사리풀 등에 대한 정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항상 궁금했던, 수은 온도계의 수은이 정말로 유독한지에 대한 답도 있습니다. 실제로 유독한데, 섭취보다는 증기로 만드는게 더 강력하다는군요. 이런 위험한 물질을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다니!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그 외에도 베타 차단제라는 일련의 약품은 스트레스 반응을 무디게 하여 거짓말 탐지기를 무력화 시킬 수도 있다, 담수 익사와 염수 익사의 구분 방법, 협죽도를 먹으면 고양이가 중독되는지 여부 등 관심이 있다면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쓸만한 정보들이 많습니다. 

독물 외에도 평상시 궁금했던 내용도 가득합니다. 그 중에서도 알코올 섭취로 동사를 막을 수는 없다, 표류 중 소변을 마시는 건 생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가 의외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베개를 이용한 질식 살인이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을테고요. 같은 이치로 다양한 시신 유기 방법에 대한 정보도 읽을만 합니다.

하지만 문제라면 읽으면서 재미를 찾기는 힘들다는 점입니다. 물어보는 사람한테만 궁금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답변도 애초에 원론적인 의학적 정보 기반 내용이라 재미있을리 없는 탓입니다. 내용도 별다른 가공없이 인터넷 사이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고요. 차라리 정보를 기반으로 한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식으로 재미를 더하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요? 이대로라면 작가 지망생을 위한 일종의 자료집에 불과해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정말로 미스터리 작가를 지망한다면, 혹은 사람이 죽는 과정이라던가 방법에 관심이 많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이 많으니까요. 설령 이 책을 읽지 못했다 하더라도 미스터리 작품을 쓰는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의사들만 미스터리 작품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

덧붙이자면, 책의 성격은 굉장히 애매한데 "추리, 호러 관련 독서" 로 분류합니다.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한 일종의 참고서이니까요.

2010/07/27

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 속 나체 - 문국진 : 별점 2점


법의학자인 저자가 여러 명화에 대한 법의학적인 의견과 함께 그림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에 대해 짤막하게 쓴 컬럼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그림 속 나체에 대한 법의학적인 의견은 별로 없습니다. 제목과는 다르게 그림 이야기보다는 다른 것들, 예를 들자면 문신, 여성 할례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심리학에 관련된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법의학자로서의 의견도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고요. 전체적으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몇몇 이야기는 재미있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래 귀스타브 쿠르베의 "파도와 여인"에 대한 법의학적 의견이었어요.
그림 속 여성 가슴 유륜의 수축과 충혈, 유두 돌출, 유방 전체의 팽만으로 볼 때 오르가즘 상태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하네요. 그럴듯 하죠? 이런 의견이 책에 좀 더 많이 실려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별점은 2점입니다.

2015/01/19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카렐 차페크 / 정찬형 : 모비딕 : 별점 2.5점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6점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모비딕

카렐 차페크의 단편집. 고전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단편집인데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쇼트쇼트'가 연상되는, 조금 희한한 상상력이 발휘된 초단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호시 신이치보다는 추리적인 색채가 짙다는 차이점이 있지만요.

이런 장르도 좋아해서 즐겁게 읽기는 했지만, 실려 있는 작품들의 완성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전개가 낡고 지루하며 결말의 의외성이 없는 등의 단점은 아쉬웠습니다. 쓰여진 시기를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막 나가는 전개의 몇 작품은 의도인지 아니면 습작들이 이상하게 뭉쳐져 하나의 작품이 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탈영병이 거름더미 속에 몇 달 숨어 있다가 잡혀온 이야기와,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상이용사 연금을 받던 로이지크가 양심 때문인지 정말로 불구가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하나로 묶여 있는 "실종된 다리"가 좋은 예입니다. 어차피 초단편이라면 나누어 수록했어도 될 것 같은데 왜 하나로 묶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쓰여진 시기 탓인지 "양심"에 대한 것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띕니다. 등장인물들이 근본적으로 너무 선해서,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에 의해 갈등을 겪는 내용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좋았던 시기에 착한 사람이 쓴 작품이라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기묘하고 기발한 발상은 좋지만, 지금 읽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수록작 일부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추리물 성향을 지닌 작품부터 소개해 드리자면,

"도둑맞은 선인장"

식물원에서 귀한 선인장이 도난당하자 선인장에 치명적인 질병이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조작하여 발표한 뒤, 약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잠복하다가 범인을 체포한다는 내용입니다. 식물원에서 훔친 방법도 기발한데, 나이든 여자로 변장하고 가슴에 화분을 숨겨 나왔다는 것이죠.

"하르쉬의 실종"

아르메니아인들이 하르쉬를 어떻게 죽이고 시체를 옮겼는지에 대한, 즉 시체의 순간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굉장히 쉬운 트릭이기는 하지만 범행 당일 비가 왔다는 점, 카펫 속에 시체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시체의 기묘한 반점을 연결하는 부분은 괜찮았어요. 명탐정 메이즈리크의 활약도 나쁘지 않았고요.

"도난당한 살인사건"

범인들이 경찰로 위장한 뒤 살인을 저지르고 깜쪽같이 뒷수습한다는 이야기. 목격자는 많았지만 경찰 복장을 한 범인을 보고는 단지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죠. "오터모울씨의 손"이 떠오르는데, 이런 트릭의 원조격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영아 납치 사건"

사라진 영아를 찾기 위한 바르토세크 반장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경찰들에게 아기를 보면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군요. 몇 개월 됐나요?"라고 말하라고 시키고, 그 말에 과민반응을 보인 어머니를 체포한다는 내용이지요. 모든 어머니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심리를 이용한 트릭과 전반적으로 유쾌한, 블랙 코미디스러운 전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정물도 있습니다.

"하브레나의 판결"

기자들이 법정 소식을 실으려고 노력하던 중, 실제 법정에서의 사건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창조하는 하브레나라는 인물에게 창작의 댓가를 지불하고 이야기를 전해받는다. 하브레나는 스스로 법에 대해 통달했다고 여기는데 어느날 그가 창작한 이야기, 즉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자를 볼 때 마다 "화냥년"이라고 말하게 만든 늙은 독신남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가 실제 법조인들에게서 잘못된 판결이라고 공격을 받게 된다. 그러자 하브레나는 자신의 이야기 속 판결이 정당하다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인에게 욕설을 하게끔 만들고 법정에 서게 되는데...

설정부터 흥미롭지만 진행 과정 역시나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법의학물의 선구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바늘"

롤빵 속에 들어간 바늘이 어떻게 들어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국립화학연구소의 우헤르 박사가 빵과 바늘에 대한 모든 상황을 검토한 끝에 롤빵이 만들어진 뒤에야 바늘이 들어갔다는 결론을 내리는 부분, 그리고 바늘을 누가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 빵을 찾기 위해 화학자들이 빵을 수도 없이 만들어본다는 과정에서 법의학물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반전이 괜찮은 작품도 있습니다.

"우표 수집"

한 노인이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하층민인 로이지크와 절친이 되었고, 우표 수집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성홍열로 앓아 눕고 얼마 뒤, 둘만의 비밀 장소에 숨겨둔 우표가 사라지자 로이지크를 의심하여 그와의 우정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도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우표를 숨긴게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는 내용의 작품.

"고해"

너무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탓에 마음이 무거워진 범죄자가 신부, 변호사를 찾아가 죄를 털어놓는다는 이야기. 신부와 의사가 이러한 이야기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죠. 반전은 마지막에 그에게서 고백을 들은 의사가 모르핀 주사 2방을 추가로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게 말이죠.

블랙코미디 스타일의 유쾌한 범죄극도 있습니다.

"여의주와 새"

진귀한 카페트를 훔치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이 엄청난 슬랩스틱으로 묘사된 작품입니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의 연출감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기발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도둑"

도둑이 범행 후 남긴 시가 지역 신문에서 극찬받자,  도둑의 창작욕이 폭발하여 도둑질은 시를 발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풍자와 유머가 돋보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이야기"

영어를 못하는 지휘자가 영국에서 우연히 남녀의 대화를 몰래 듣게 되는데, 그 속에 담긴 범행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는 이야기. '남자의 사악한 말은 묵직한 베이스'같은 식으로 악기의 음색과 범행의 느낌을 연결한 설정이 대단히 인상적으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습니다.

2011/03/06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원은주 : 별점 3.5점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8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원은주 옮김/시공사

귀금속 거래업자인 존 혼비는 자신이 금고에 넣어둔 다이아몬드 원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증거는 금고 바닥 메모지에 선명한 피 묻은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수사 결과, 그 지문의 임자가 혼비 씨의 조카 루벤의 것으로 밝혀져 그는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손다이크 박사는 사건 의뢰를 받은 뒤 루벤의 무죄를 확신하고 친구 저비스, 충직한 하인이자 기술자 풀턴과 함께 독자적인 과학 수사 기법을 활용하여 그를 돕는데...

1907년에 출간된 법의학의 선구자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첫 작품. 국내에는 동서에서 중단편집 "노래하는 백골"이 출간되어 있고, 국일미디어의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에 단편 한 편이 수록되어 있는 정도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인데 이렇게 소개되니 무척 반갑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지문'에 대해 깊게 탐구하고 있으며, 범인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단지 루벤 혼비의 누명을 벗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즉, '트릭' 자체에만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인 오스틴 프리먼의 지론이 "독자는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수사 과정에 더 흥미를 느낀다"였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려 100년도 전에 나온 작품이니 만큼 대단한 추리가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핵심 트릭 자체가 많이 낡은 발상이니까요. 또, 낡은 방식의 뻔한 전개 덕분에 독자는 범인이 누군지 쉽게 짐작하게 된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아울러 화자인 저비스 박사의 애정 행각이 작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전통적인 추리 애호가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무척 재미있었지만요..)

하지만 범인이 쉽게 드러나고 트릭이 별 볼 일 없다고 해서 이 작품이 추리 소설적인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들도 잘 모르는 '지문'에 대한 속성을 이미 이 시기에 작품으로 쓸 만큼 (그것도 재미있게!) 깊게 파고들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거든요. 특히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기초하여 트릭을 파헤친 손다이크 박사가 마지막에 벌이는 법정에서의 반전쇼는 여타의 법정 추리물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했습니다.

게다가 중간에 벌어지는 손다이크 박사 암살 음모에 대한 디테일 역시 대단합니다. 기묘한 총알에 대한 설명, 불시에 날아온 소포의 포장만 보고도 범죄를 예감하는 추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펼쳐지는데, 그 아이디어가 100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중반에 잠깐 등장하는 역장에 대한 추리 역시 당대 셜록 홈즈의 라이벌다운 풍모가 느껴졌고요.

앞서 말한 일부 단점들, 지금 읽기에는 낡은 전개는 감점 요소지만 그래도 이 작품의 장점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며 출간 자체만으로도 기쁜 일이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길.

덧붙여 아주 예쁜 디자인과 판형이라는 점과 함께 충실한 번역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서판은 특유의 일본어 중역 덕분인지 손다이크 박사의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웠는데, 이 작품에서는 과묵하지만 냉철한 지적인 미남자(!) (여기서 제일 놀랐습니다. 왜인지 할아버지 이미지였거든요)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니까요. 과거 불만이었던 "노래하는 백골"도 제대로 된 완역본으로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2021/11/13

노킹 온 록트 도어 - 아오사키 유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노킹 온 록트 도어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우리 탐정 사무소의 현관문에는 인터폰이 달려 있지 않다.
차임벨이나 초인종, 노커 따위도 없다.
따라서 방문자들은 반드시 맨손으로 문을 노크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크하는 방법에 따라서 어떤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지 대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새로운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불가능 전문 고텐바 도리, 불가해 전문 가타나시 히사메, 두 명의 탐정이 함께 운영하는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에서 의뢰받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완벽한 고전 본격물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작품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이 사용되어 있으며, 이를 추리하기 위한 단서들도 독자 시점에서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추리 소설 황금기 시절 대표작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에요. 과연 신세대 본격물로 유명했던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다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배경 본격물의 지닐 수 밖에 없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불가능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대물에 적합할리 없지요. 의뢰를 받기는 하는데, 보수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 모순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트릭들도 마찬가지에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트릭이 많은 탓입니다.

캐릭터도 아쉬웠습니다. 고텐바 도리가 특히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탐정이라는 자의식이 넘쳐나는 캐릭터 묘사 자체가 영 별로였거든요. 우라조메 덴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캐릭터의 독특함과 매력은 훨씬 못 미칩니다. 히사메는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그나마 조금 낫기는 했습니다만, 도긴개긴이었어요.

게다가 한 명은 불가능, 즉 하우더닛 쪽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불가해, 즉 와이더닛 쪽 전문가라는 설정은 최악입니다. 와이더닛 탐정 히사메의 존재는 아무리봐도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 히사메가 '불가해'를 풀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다이얼 W를 돌려라"밖에는 없습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에서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고, "칩 트릭"에서는 트릭을 풀어냈지만 이는 이토기리 미카게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입수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불가능 범죄에 대한 내용이라서 설정상으로는 히사메가 활약하면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반대로 불가해 상황이 등장하는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에서는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진상은 도리가 풀어냅니다. 이 역시 설정에 반하는 작품인 셈이지요. 대체 왜 두 명의 탐정이 필요했던걸까요? 셜록 홈즈와 그 라이벌들의 시대였다면 모를까, 현대물에 가당키나 한 설정도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둘이 있을 때 뭔가 재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종일관 둘의 말다툼이 이어지지만 별다른 재미는 없었어요. 추리를 하면서 둘 사이의 티키타카가 빛났던건 "십 엔 동전이 너무 없다"가 유일했습니다. . 

아울러 악당들을 위해 트릭을 설계해주는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광대 요키치나 "탐정학원 Q"의 케르베로스와 같은 만화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만들며, 경찰 쪽 협력자이자 친구인 우가치 기마리 경위가 막과자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소소한 설정들도 만화적이라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격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런 점들로 볼 때 차라리 만화화 버젼 쪽이 더 나으리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킹온록트도어" 

살해당한 화가 가스미가 히데오의 미망인 미즈에가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화가는 잠긴 작업실에서 등에 칼에 꽂힌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작업실은 밀실이었다. 남겨져있던 화가의 풍경화 여섯 점은 액자에서 꺼내져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고, 그 중 한 점은 온통 새빨갛게 덧칠이 되어 있었다...

두 탐정 및 관련된 모든 설정이 소개되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표제작입니다. 트릭은 그림 여섯 점을 쌓아서 문 앞에 놓고, 카펫으로 덮어놓았던 겁니다. 그 위에 성인 남자 두 명이 서서 문을 열려고 해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지요. 문이 잠겨있던게 아니라요. 그림 두께만큼 카펫 길이가 부족해져서, 맨 위 그림은 카펫 색깔로 덧칠했던게 새빨간 그림으로 남게 되었고요. 

범인은 걸쇠를 열 도구를 가져와 달라는 핑계로, 함께 있던 어머니와 미술상을 아래로 내려보내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그리고 잠겨져 있지 않았던 문을 여는 척 했던 화가의 아들 류지였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본격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트릭의 핵심인 복도의 폭과 레드 카펫의 존재, 그림 크기와 캔버스 두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서였던, 문을 두드릴 경우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얀 페인트 가루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빼 놓지 않고요. 트릭을 파헤친 뒤, 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전개도 합리적이었어요.

그러나 그림을 카펫 바닥에 깔았던 이유는 아버지의 친구인 미술상이 그림을 밟게 만드려는 목적이었다는 히사메의 추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모욕받았다는 동기는 명확했고, 작업실을 밀실로 만들려는 목적도 확실해서 이를 불가해 상황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논리대로라면 밀실은 우연히 발생했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마지막 히사메의 추리가 없었다면, 아니, 히사메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 

사건 중개인 진보가 받아온 의뢰는 극단 "목이버섯"의 리더 젠다 미카 살인 사건이었다. 그녀는 속옷만 입은 채 연습실의 물이 틀어져 있는 욕실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가 짧게 잘린 채였다...

진상은 젠다 미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던 겁니다. 애인 오쿠데라로 변장하기 위해서요. 연습실에서 다투다가 애인 오쿠데라를 목졸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시체를 옮기기 위해 큰 상자 속 짐을 비운 뒤, 그 안에 시체를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연습실에서 시체가 발견되면 젠다 미카가 범인이라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짐은 다른 극단원 니시베를 시켜 옮기고, 자기는 오쿠데라로 변장해서 극장을 방문한 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사라질 속셈이었지요. 그럼 극장을 방문했던 오쿠데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할거라 여긴거지요. 그러나 오쿠데라는 죽지 않았었고, 의식을 회복한 후 그녀를 목졸라 죽였던 겁니다.

이렇게 기묘한 상황을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하는 전개는 좋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본격 추리 소설로는 완벽했어요.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추리도 합리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편보다도 설득력은 약했습니다. 일단 젠다 미카의 계획은, 실제로 일어났다 한들 과학 수사의 벽을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검시가 이루어지면 오쿠데라의 사망 시각은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 이전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찰은 극장으로 옮겨진 커다란 '짐'의 존재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겠죠. 

머리카락을 흉기로 썼을거라는 히사메의 최초 추리도 용의자를 조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목에 남은 흔적으로 흉기가 뭔지는 파악이 가능했을 테거든요. 죽은 줄 알았던 오쿠데라가 일어나사 젠다 미카를 다시 살해했다는 진상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또 불가해한 상황 풀이인데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도리가 진상을 풀어낸다는 전개도 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라면 두 명의 탐정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설득력 높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는 추리 퀴즈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던 작품입니다.

"다이얼 W를 돌려라" 

30분 간격으로 의뢰가 들어왔다. 첫 번째 의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어달라는 나가노사키 히토시의 의뢰였다. 유언장에 남겨진 대로, 금고 위 아래 다이얼을 돌렸지만 금고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의뢰는 한 밤중 산책을 나갔다가 죽은 아버지는 경찰은 사고사로 판단했지만,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며 찾아온 시마즈 나쓰코의 의뢰였다. 두 탐정은 각각 사건을 맡아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결국 두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로 금고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뒤집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이 금고를 뒤집어 놓았던건, 윗면에 할아버지를 죽일 때 피가 묻었기 때문이었고요. 금고가 뒤집혔다는걸 알아낸 히사메의 추리도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실제로 살해당했던 것을 지팡이를 통해 알아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내는 도리의 추리도 좋았습니다. 모처럼 컴비 플레이가 빛났네요. 이를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요.

고작 십만엔 정도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지, 금고가 뒤집힌걸 그렇게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을지, 왜 탐정이 오기 전에 원상태로 복구해 놓지 않았는지 등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칩 트릭"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하나와 스쿨의 핵심 용의자였던 중역 유바시 진타로가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는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평소 서재 창문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던 탓에, 그를 창 밖에서 저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살이 가능하도록 만든 건, 도리와 히사메, 그리고 경찰 우가치의 대학 동기인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였다...

창 밖에서 쏜 총에 유바시가 맞아 죽은건 확실합니다. 입사각도 명확했고요. 그러나 그가 창 바로 앞에 있었던게 아니라면? 서재 중앙 지점에서 발판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높이가 높아졌던 탓에 입사각이 맞아 떨어졌던 거지요.발상 자체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총 한 발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형광등을 가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중심에서 빗나가 있어도 원거리 저격은 성공했을리 없어요. 그리고 메이드 고노에가 해고되지 않기 위해, 시체를 창 밑에 옮겨놓았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해고되는 것 보다, 현장 조작이 더 큰 중죄잖아요? 

또 상황이 이상하다 하더라도, 유바시가 저격당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고, 경찰도 구태여 탐정을 불러다가 불가해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날만 우연히 유바시가 창가에 서게 되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불가해한 상황의, 불가능 범죄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했던 이야기에요.

아이디어는 평가할 만 하지만, 현실성없고 설득력없는 이야기였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 

눈이 쌓인 공터 한 가운데에서 칼에 찔린 가쓰히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까지는 가쓰히코의 발자욱 하나만 남아 있었고, 흉기인 칼에 지문은 없었다.

동생과 싸운 뒤 흥분한 가쓰히코가 갓 세척을 마친 식칼을 들고 동생 집으로 향하다가 실수로 쓰러질 때 칼에 찔려 죽었다는 진상은 합리적이었지만, 흉기에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던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손에 묻었던 눈이 녹으면서 씻겨 나갔다는데, 현실성이 없어 보였거든요. 물 좀 묻는다고 지문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까요? 그렇다면 손바닥에 묻었던 피는 왜 안 지워진 걸까요?

이 진상보다는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가쓰히코 공장 직원 두 명이 공모했다는 도리의 추리가 훨씬 더 나았습니다. 한 명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죽은척 하고, 그 뒤 다른 한 명이 집에서 죽인 시체를 짊어지고 간 뒤, 시체를 내려놓고 공범자를 짊어지고 오면 된다는 추리로 꽤 그럴듯했어요. 최소한 지문이 눈이 녹은 물에 씻겨 나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칼에 대해 잘못 말한건, 그냥 말실수였다고 해도 무방했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십엔 동전이 너무 없다" 

탐정사무소의 여고생 아르바이트 구스리코는 심심해하던 탐정들에게 학교에 가다가 들었던 기묘한 말의 진상에 대해 추리를 부탁한다. 수상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했던, "십 엔 동전이 너무 없어. 다섯 개는 더 필요해."라는 말이었다.

제목과 내용 모두 걸작 단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오마쥬하고 있는 작품으로 두 탐정이 서로 각자 추리를 말하고, 반론하며 서서히 진상에 근접해 나가는 과정의 빌드업이 좋습니다. 탐정이 두 명인게 그나마 긍정적으로 사용된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상한 남자는 꽤 여러 번 공중전화를 사용하여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남자가 공중전화를 사용한 이유가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전 갯수를 어림잡았다는 점과 평일 낮이었던 시간을 근거로 둘은 수상한 남자가 전화번호부를 통해 알아낸 특정 지역에 사는 주부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하려고 했다고 추리합니다.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이야기 특성 상 그냥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았을텐데 추리가 진짜였다는게 드러나는건 좀 별로였어요. 전화번호부와 공중전화가 과연 21세기에 먹힐 이야기는 아닌 듯 싶었거든요. 저만 해도 집에 전화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충분하니까요. 또 수상한 남자의 의도대로 형편좋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 들, 1분 정도의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은 목소리로 그 주부가 누구인지 특정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피해자가 마침 떨어트린 화과자 포인트 카드로 범인들이 그녀가 사는 동네와 성을 알아냈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9마일은 너무 멀다"의 변주로 적당한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추리 놀이는 놀이로만 끝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99퍼센트 확실한 독살" 

중의원 의원이었던 도자마 간조가 독살당했다. 후원회 파티에서 접객 담당 종업원이 날랐던, 똑같은 잔 10개 중 도자마 간조가 무작위로 고른 한 잔에만 독이 들어있었다. 독살 방법은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가 설계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리는 처음에 의원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비서가 샴페인을 마시기 직전에 독을 넣었다고 추리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게 밝혀져 실의에 빠집니다. 다른 작품과는 다른게 히사메는 트릭 담당이 아니라며 위로만 할 뿐이고요. 그래도 위로 덕분인지, 곧바로 도리는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독은 이미 마셨던 것이고, 샴페인 잔이 아니라 의원이 서 있던 위치를 가늠하여 바닥에 독을 발라 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추리와 전개 모두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던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의 착안점이 의원의 유류품이었던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여러가지 약이 있었지만, 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하는데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해 마실 수 있는데, 그걸 항상 상비해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바닥에 미리 발라 놓았던 독이 떨어트린 샴페인 잔 속 내용물과 섞여, 삼페인에서 독이 검출되었다고 오인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지나치게 운에 의지했을 뿐더러, 현대 과학 수사를 너무 우습게 본 걸로 보이니까요.

과거 도리가 목이 베여 죽을 뻔 했던 적이 있고, 그 사건 때문에 동창 4명의 행보가 갈렸으며 도리는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고집하게 되었다는 과거사도 살짝 선보이지만 이야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만화적이며 과장된 캐릭터 형성에 불과해서 거슬렸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8/25

인계철선 - 리 차일드 / 다니엘 J. : 별점 2점

인계철선 - 4점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 웨스트에서 막노동으로 몇 개월 째 생계를 꾸리던 잭 리처 앞에 그를 찾는 사립 탐정 코스텔로가 나타났다. 리처는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 다른 사람인 척 했는데, 코스텔로가 살해당하자 죄책감을 느끼고 의뢰인을 찾아 나섰다. 알고보니 의뢰인 '제이콥 부인'은 잭 리처가 군 시절 존경했던 상관 가버 장군의 딸 조디였다. 가버 장군은 심장병으로 막 사망한 상태였다. 가버 장군이 최초 리처를 찾으려 했있고,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에 나선 둘은, 사건이 빅터 하비라는 월남전 실종 군인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한편, 뉴욕 세계 무역 센터에 사무실을 둔 사채업자 갈고리 하비는 체스터 스톤의 모든걸 빼앗기 위해 그와 그의 아내 마릴린을 납치했다. 그는 자신을 추적하는 인물들에 대해 알아챈 뒤, 스톤의 재산을 서둘러 가로채 뉴욕을 뜰 생각이었다.


1999년 발표된 잭 리처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초창기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어 전개됩니다. 잭 리처가 조디와 만나 빅터 하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는 부분, 그리고 갈고리 하비에게 납치당한 사람들이 겪는 공포와 탈출을 위해 제한된 상황에서 두뇌 싸움을 벌이는 부분입니다. 잭 리처와 정 반대 시점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건 시리즈 후기작인 "10호실"과 유사합니다. 남자인 체스터가 아니라, 연약한 미모의 중년 여성 마릴린이 두뇌 싸움을 펼치는 핵심 인물이라는 점도요.

추리적으로 볼만한 부분이 제법 됩니다. 잭 리처가 코스텔로의 위치를 알아낸 뒤, 사무실에서 의뢰인 제이콥 부인의 거처를 찾아내는 과정과 빅터 하비의 연로한 부모를 사기친 악당들의 범죄 행위를 밝혀내는 장면처럼요. 
마지막에 헬기 사고 유해를 토대로 빅터 하비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내는 장면은 백미입니다. 유골들에 남은 흔적으로 죽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건 법의학 스릴러 못지 않았으며, 당시 헬기가 긴급하게 수송했던 세 명의 정체에 대한 추리 - 두 명은 헌병이고 한 명은 범죄자였을 것이다 - 와, 범죄자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추리 모두 그럴싸 했습니다. 상관을 살해하는 '조각내기' 수법은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보아 왔지만, 이를 현실감있게 실제 범죄 소설에 녹여낸 작품은 처음 봤습니다. 이 사건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 - 피해자의 영웅적인 죽음이 스캔들이 되므로 - 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하지만 후기작들에 비하면 재미는 사뭇 떨어집니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부족하고요. 갈고리 하비가 빅터 하비의 정체를 찾아나선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사업을 접고 숨을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빅터 하비는 공식적으로는 동료를 살해하고 탈주한 탈영병 신세입니다. 당연히 빅터 하비라는 신분으로 정상적인 사업을 펼쳤을리가 없습니다. 빅터 하비는 그냥 행방불명 상태로 두고, 가지고 있는 거액을 활용하여 다른 신분을 사는게 당연합니다. 왜 빅터 하비의 신분과 그에 대한 조사가 문제가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체스터 스톤의 전재산을 강탈하려는 시도도 억지스럽습니다. 그에게 담보로 잡은 주식을 시장에 풀어 주식 가치를 떨어트리고, 그걸 빌미로 주식 담보 대출을 해 준 은행 채권을 사서 채권자가 된다는 것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그 뒤에 스톤 부부를 납치하고, 경찰을 두 명이나 살해하면서까지 체스터의 주식을 빼앗으려 한다는건 설득력이 낮습니다. 채권만으로도 담보로 잡혀있는, 원래 계획했던 땅을 손에 넣는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채권은 회사 명의이니 자기 이름이 드러날 일도 없고요.
빌런 갈고리 하비가 사악한 인물이라는걸 긴 설명을 통해 독자에게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는 무력으로는 애초에 잭 리처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일기토 장면은 다소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하비 일당은 달랑 세 명 뿐인데다가 특별한 훈련을 받은걸로 묘사되지는 않으니까요. 심지어 하비는 오른손까지 없습니다. 테러리스트 일개 부대를 쓸어버리는 잭 리처의 다른 시리즈를 본 사람들한테는 이건 한입거리도 안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요.

잭 리처 시리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악에 대한 응징도 시시합니다. 쫓기는 공포라던가, 절대적인 무력 앞에서 좌절하게 만드는 사이다 전개는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하비가 인질을 이용해서 주도권을 계속 잡다가, 마지막에 잭 리처가 기습해서 단 한 방으로 끝장내는게 전부거든요. 잭 리처도 중상을 입고 총까지 맞는 등, 다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웠고요. 
이런 나약함(?)을 포함해서, 한 여자에게 진심으로 반한다던가, 가버 장군이 유산으로 남긴 집 때문에 정착과 취직을 고민한다던가 하는 잭 리처스럽지 않은 묘사가 많습니다. 이건 시리즈 팬으로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잭 리처 시리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작가가 잠깐 까먹었나 봅니다.

그래서 별점을 주자면 잭 리처 시리즈로는 1.5점이고, 그냥 범죄 스릴러로 본다면 2점입니다. 피해자 시점 전개에서의 서스펜스는 괜찮았고, 머리를 쓰는 부분도 적지 않다는건 좋은데 잭 리처 시리즈로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2009/08/14

필독 본격 추리 30선

출처는 간만의 "미스터리베스트" 입니다. 원문은 여기서 보세요. 추리소설 연구가라는 "山前譲" 씨가 선정한 리스트라고 하며, 원래는 아유카와 데츠야의 "유리의 집"에 수록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하네요. 2차대전 전부터 소화 30년대까지 쓰여진 일본 본격 추리소설 중에서 선정한 것인데,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작품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올렸던 글인데 뭔가의 실수로 지워져서 다시 업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올립니다.

현재 스코어 저는 읽은 작품이 달랑 6개네요. 공부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번역된 작품은 다 읽은겁니다...

* 2014년 2월 28일 수정. 9개로 늘었네요. 역시나 번역된 것은 다 읽은 것입니다.


殺人鬼 / 浜尾四郎 /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 5 : 제목은 강렬한데 뭘까요...?

船富家の惨劇 / 蒼井雄 /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 12 : 역시나 강렬한 제목.

本陣殺人事件 / 横溝正史 / 角川文庫,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9 : 요코미조 세이시의 "혼진 살인사건"

高木家の惨劇 / 角田喜久雄 /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3 : 예전에는 참극이라는 제목 참 많이 쓰였군요...

蝶々殺人事件 / 横溝正史 / 角川文庫 : 요코미조 세이시의 "나비부인 살인사건".  국내에는 동서판 "혼진 살인사건"에 같이 수록되어 있죠. 솔직히 좀 지루한 작품이었습니다만...

奇跡のボレロ / 角田喜久雄 / 春陽文庫 (未) : 흠... 내용이 궁금해지는 제목입니다.

不連続殺人事件 / 坂口安吾 / ちくま文庫 坂口安吾全集11、角川文庫,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10 : 사카구치 안고의 "불연속 살인사건". 저는 영 별로였는데 평론가들은 무지 좋아하네요.

刺青殺人事件 / 高木彬光 / 光文社文庫, 角川文庫 : 다카키 아키미쓰의 "문신 살인사건". 좋은 작품이죠.

古墳殺人事件 / 島田一男 / 徳間文庫 (未) : 고분이라.. 역사추리일까요?

源氏物語殺人事件 / 岡田鯱彦 / 国書刊行会 "薫大将と匂の宮" (未) : 제목이 그럴듯 하네요. 역시나 역사추리물?

人形はなぜ殺される / 高木彬光 / 光文社文庫, 角川文庫 : 다카키 아키미쓰의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上を見るな / 島田一男 / 光文社文庫 (未) : 전혀 짐작도 안가는 제목입니다. ㅎㅎ

黒いトランク / 鮎川哲也 / 角川文庫 : 아유카와 데츠야의 "검은 트렁크". 국내에도 나온다, 나온다하지만 아직 안나온 작품이죠. 꼭 읽어보고 싶은데...

猫は知っていた / 仁木悦子 / 講談社文庫, 大衆文学館 : 니키 에쓰코의 "고양이는 알고 있다". 귀여운 작품이죠. 걸작인지는 아리송하지만.

屍の記録 / 鷲尾三郎 / 春陽堂書店 : 법의학 추리물인가 싶은 제목이군요.

点と線 / 松本清張 / 新潮文庫 :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

招かれざる客 / 笹沢左保 / 角川文庫 : 사사자와 사호도 항상 들어가네요. 국내에 번역이 좀 되었으면 하는 작가 중 한명인데, 이 작품은 데뷰작이기도 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 입니다.

二人で殺人を / 佐野洋 / 角川文庫 : 사노 요도 친숙한 작가죠. 저도 "금색의 상장"이라는 작품을 읽어봤습니다. 이 작품은 잘 모르겠지만...

りら荘事件 / 鮎川哲也 / 講談社文庫, 角川文庫 ("りら荘殺人事件") : 아유카와 데쓰야의 "리라장 사건"

人喰い / 笹沢左保 / 徳間文庫, 双葉文庫 : 또 사사자와 사호.

風花島殺人事件 / 下村明 / 桃源社 : 모르는 작가네요.

危険な童話 土屋隆夫 / 角川文庫, 光文社文庫 : 쓰치야 다카오. "호메로스 살인사건"은 좋은 작품이었죠. 이 작품은 불가능범죄 이야기인 듯 한데 기대되는군요.

枯れ草の根 / 陳舜臣 / 講談社文庫 : "얼룩 화필"로 국내에 소개된 진순신의 작품입니다.

変人島風物誌 / 多岐川恭 / 桃源社 (未)

黒いリボン / 仁木悦子 / 角川文庫 (リバイバル) : 니키 에쓰코 여사. 무슨 작품일지 궁금하네요.

弓の部屋 / 陳舜臣 / 角川文庫 (未) : 진순신도 유명 작가이긴 하군요.

時間の習俗 / 松本清張 / 新潮文庫 : 마츠모토 세이초의 "시간의 습속". "점과 선"의 후속작입니다.

陽気な容疑者たち / 天藤真 / 創元推理文庫, 角川文庫 : "대유괴"의 텐도 신. 이 작품도 제목부터 유머스러운게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影の告発 / 土屋隆夫 / 光文社文庫, 角川文庫, 講談社文庫, 双葉文庫

孤独なアスファルト / 藤村正太 / 講談社文庫

2019/07/07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민웅기 : 별점 2점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4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민웅기 옮김/바른번역(왓북)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용 의사로 일하던 저비스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장소로 왕진을 나가서 모르핀 중독으로 보이던 환자 그레이브스를 치료했다. 이후 저비스는 감금되다시피 이동했던 상황, 심상치 않았던 환자의 상태 때문에 사건을 친구 손다이크와 상의했다. 손다이크는 그 집이 어딘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두 번째 왕진에서 저비스는 그레이브스가 거의 사망 직전이라는걸 알고나서 왕진 후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당장은 사건성이 없다며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후 저비스는 고용 의사를 그만두고 손다이크 박사와 일하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 수임한 사건은 기묘한 유언장 사건이었다. 의뢰인은 사망한 제프리 할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게 된 스티븐이었다. 그는 별 것 아닌 삼촌의 유언장 수정으로 거액을 상속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사건을 조사한 손다이크 박사는 이 사건이 저비스가 접했던 기묘한 환자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걸 밝혀내는데...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장편입니다. 저자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풀려서 번역된 것 같네요. 저작권 만료된 작품이 주로 발매되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 '왓북'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당연히 종이책은 없습니다.

읽기 전 기대가 컸습니다.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고전 본격물이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명이었던 손다이크 박사의 장편으로, 이전에 읽었던 손다이크 박사 장편은 모두 괜찮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다운 부분은 전부 장점입니다. 첫 번째는 현장을 방문하여 온갖 쓰레기를 샅샅이 뒤져 단서를 모으는 등 당시의 과학 수사가 치밀하게 펼쳐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초반에 저비스가 철저하게 마차에 가두어진 채로 미지의 장소로 왕진나갈 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경로 추적도를 만드는 장면이 일품입니다. 단순한 나무판에 나침반을 부착하고 수첩을 곁들인 정도지만, 그래도 방향이 바뀔 때의 시간 및 상세한 정보를 수첩에 자세하게 기록하는 방법은 꽤나 유용해 보였습니다. 서명을 분석하기 위해 사진 확대를 이용하는 장면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고요. 

두 번째는 본격 추리물로서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화자 저비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쫓아갑니다. 그래서 탐정과 독자에게 모든 정보와 단서는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디테일도 상당히 좋아요. 바이스 씨는 분명히 독일인이라고 했는데 집에 커피가 없고 차만 있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독일인은 보통 커피를 마시지 차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네요.
물론 몇 가지 단서들(기묘하게 생긴 갈대, 깨진 유리 조각 등) 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정체를 알기 힘들다는 문제는 있지만, 이 정도 단서는 없어도 진상에 이르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세 번째는 당연히 손다이크 박사의 팬으로 즐길거리가 많다는 점이죠. 저비스가 의사를 떼려 치우고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일하게 된 첫 번째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손다이크 박사가 법의학자가 아니라 변호사로 소개되는게 특이했습니다.

그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고 많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진상이 너무 알아차리기 쉬운데, 저비스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점입니다. 당대 독자 수준이 저비스 수준이라 이렇게 썼겠지만 지금 읽기는 너무너무 답답했습니다.
이미 독자는 초반부, 저비스가 왕진나가 진찰했던 환자 그레이브스가 시체로 발견된 제프리라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편에 취해 결국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다는 사인, 그리고 한 쪽 눈에 두드러진 실명에 가까운 증상 등의 단서 때문이지요. 과연 누가 그를 감금하여 살해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당연히 유일하게 이득을 보는 피해자의 형 존이 유력하고요. 그리고 존이 제프리와 꽤 닮았으며 배우로 활동했다는 이력을 듣고나면 그가 제프리로 변장해서 뉴 여인숙에 거주했다는걸 모르면 바보입니다. 설형문자 액자가 뒤집혀 있었다는 증거까지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저비스는 이런 점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저비스라는 인물의 설정에도 문제가 있어요. 초반부 저비스는 분명히 능력이 있는 걸로 묘사됩니다. 홀로 그레이브스에게 왕진갈 때가 좋은 예입니다. 그레이브스 코의 안경 자국을 보고 이건 얼마 전 까지 안경을 쓰고 있다는걸 나타내므로 오랜 기간 혼수상태였다는 바이스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걸 추리해 내거든요. 그러나 두 번째 왕진부터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의식을 찾은 피해자는 저비스가 계속 "그레이브스 씨"라고 말을 걸 때마다 당황해합니다. 누가 봐도 자기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걸 계속 놓칩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표현을 빌겠습니다. "저비스, 자네는 정말 구제불능이군". 단지 바보일 뿐 아니라 제프리 죽음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고 범죄의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그를 죽게 내버려둔 셈이거든요. 손다이크가 악당들의 위치를 알아낼 방법까지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핑계는 단지 바쁘다는 것 뿐이고요.
이래서야 아무리봐도 추리 소설의 사이드 킥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비스를 자신의 파트너로 불러온 손다이크도 언젠가는 크게 후회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추리에 있어서도 헛점이 눈에 뜨입니다. 바이스 박사가 은신처를 떠나면서 편지가 올까 두려워 열쇠를 가지고 자주 왕래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곧바로 다음 세입자가 입주해버리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걸까요?
변장용 안경에 반드시 돗수가 있어야 한다는 추리는 현 시점에서 보면 그닥 일리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안경용도 아니고, 회중 시계용도 아닌 유리의 정체가 범인을 밝혀내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도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위적인 우연, 불필요한 장치도 지나치게 많습니다. 저비스의 왕진이 사건과 겹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저비스가 그레이브스 씨라고 불리운 제프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어떻게 되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덜어내고 추리를 펼치는게 더 완성도는 높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바이스 씨의 부인이 사시였다던가, 바이스 씨와 마부는 동일인물이었다는 등의 장치는 불필요했고요.

마지막으로 사건이 밝혀지는 계기가 된 다시 쓴 유언장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확인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원래 존은 250 파운드만 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바뀐 유언장에 의해 '잔여 재산 수여자' 가 되어서 죽은 고모의 유산 3만파운드를 받는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모든 유산의 수령인은 조카 스티븐인데, 왜 고모의 유산이 잔여 재산이 되어 존에게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너무 쉬운 내용이라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없었고, 특히 저비스의 왕진 부분은 빼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팬이시라면 모를까, 구태여 구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12/04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8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국내에서 과학 수사를 통해 해결했던 여러 사건들을 정리한 논픽션. 2부 구성으로 모두 22건의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부는 특정 과학 수사 기법이 해결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해당 수사 기법에 대해 이해를 돕는 구성입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는 물론이고, 비산 혈흔 등 혈흔 형태 분석, DNA 분석, 프로파일링, 법 최면, 지문 감식, 지리 프로파일링 등이 등장하며, 수사 기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에 대한 인터뷰 등 부가 자료들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어서 이해를 돕습니다. 사건도 밝혀진 모든 내용이 소개되고 있으며, 사건 현장 사진과 도해로 구성된 사건 상황 등 도판도 완벽합니다.
2부는 완전 범죄를 노렸지만, 수사관들이 끈질긴 수사로 밝혀낸 사건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소개는 1부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수준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4점. 우리나라 범죄를 다룬 논픽션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여,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첫 번째는 <<마포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입니다. 의사 남편이 만삭 부인을 살해했던 엽기적인 범행으로, 피고인 남편 측에서 캐나다 법의학 전문가까지 증인으로 불러 법정 다툼이 있었던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남편 범행이 확실하더군요. 피해자의 목졸림 흔적과 얼굴과 몸의 멍자국, 저항하다 생긴 것으로 보인 손톱 밑의 남편 DNA 등 현장 증거가 뚜렸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남편 쪽에서 주장했던, "욕조에서 넘어져 죽은 것 같다"는걸 설명할 수 없는, 피해자 몸의 혈흔과 상처가 결정적인것 같아요. 욕조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양양 일가족 방화 사건>>은 무식한 범인이 교과서처럼 단서를 남긴 범행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로 피해자 일가족 시신에서 수면제가 검출되어 누군가 방화를 저지른게 명백하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경찰 진술에서 필요도 없는 말을 해 가며 자살이 맞다고 주장했고, 결국 현장에서 발견된 차용증 등으로 동기마저 드러나버리고 말았지요. 범행 직후 소방차를 따라 다시 현장에 나타난 것까지, 하는 행동 모두가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단순 무식한 범인을 연상케합니다. 아울러 고작 2,0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어린 소녀가 포함된 네 명의 일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에게 무기징역은 너무 관대한 선고였습니다. 능지처참하고 저잣거리에 효수를 했어야....
<<서울 광진구 주부 성폭행 사건>>은 그야말로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DNA 감식을 통해 드러난 범인은 범행 당시 수감 중이었지만, 과학수사관 권경사의 추리 덕분에 진범이 체포되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수감 중인 용의자의 일란성 쌍동이라는 추리였지요.
<<60대 남녀 변사 사건>>은 단순 자연사로 보였지만, 현장 검증을 통해 몇 가지 이상한 정황이 포착되어 살인 사건이라는게 드러난 경우입니다. 현장에서의 구토 흔적과 기묘한 자살 시도 흔적, 그리고 자연사는 이불 한 장만 반듯이 덮고있는게 일반적인데 이불 두 장이 포개져 쌓여 있었던 것, 피해자 옷과 맞지 않았던 방에 떨어져 있던 단추 등이 단서가 되었습니다. 검시 결과도 살인 사건임을 증명해 주었고요. 현장 상황과 시신의 모습 등을 분석하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성 부부 살인 사건>>은 프로파일링이 사건 해결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잔혹한 현장 모습으로 청부 살인이나 원한 살인이 의심되었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 범죄이며, 근처에서 일어났던 침입 사건의 범인과 동일인물일 것이다. 침입이 발각되어 과도한 공격으로 피해자들을 살해했고,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몰린 사람이며, 피해자들은 물론 마을을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일 것이다"는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는 실제 범인 모습과 일치했지요. 어떻게보면 좀 뻔한데, 현실은 픽션과는 엄연히 다르다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양주 전원 주택 살인 방화 사건>>을 통해서 지문은 고온에서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흔적 자체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어서, 화재 현장에서는 '열 사각 지대'에서 집중적으로 지문을 채취한다는 등 실제 현장에서의 지문 감식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었고, <<의정부 연쇄 절도 사건>>은 이름도 생소한 '지리 프로파일링'을 접하게 해 주어 좋았습니다. 범죄가 발생한 장소와 시간을 토대로 범인이 머무는 곳과 다음 범행 장소를 예상하는 과학수사 기법이라는데, <<넘버스>>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던 적이 있지요. 실제 사건을 해결할 정도로 정립된 기법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2부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은 완전 범죄를 노린 3인조 일당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고 전원 주택을 털었던 사건으로, 집에 설치된 폐쇄 회로 TV는 본체까지 뜯어서 들고갔고, 현장에 남긴 담배 꽁초도 어디선가 주워와 일부러 흘리는 등 굉장히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범행 장소를 오간 차량이 없었다는게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원 주택이 산과 가깝다는걸 이용하여, 목표지 인근까지 대포차로 이동한 뒤 야산에서 하루 노숙을 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군요. 현장에 일부러 뿌린 꽁초 중 동일한 DNA가 검출된 탓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지만, 정말로 대단한 지능범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산 교수 부인 살인 사건>>은 한 때 뉴스를 도배했던 사건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범죄 전문가 교수가 경찰과 두뇌 싸움을 벌인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사건 개요를 읽어보니 별다르게 머리를 쓴 부분은 없어서 놀랐습니다. 내세운 알리바이도 엉망이었고, 내연녀를 동원한 시체 유기도 곧바로 경찰에 발각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언변만 빼어날 뿐 일개 잡범 수준에 불과했어요. 차라리 앞서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 범인들 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범인의 직업이 선입견을 만든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이런것도 일종의 미스디렉션이겠지요.

2022/12/25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3.5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8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1권과 동일하게 각종 사건들의 상세한 소개에 더해 수사와 특별히 관계되어 있던 법의학법과학 방식이 소개되는 논픽션.
이번에는 거짓말 탐지기, DNA 분석, 루미놀 시약, 삭흔, 뼈, 법보행 등이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범죄의 종류 - 실종, 도굴 - 이라던가 수사 방식 - 잠복, 공개 수배 -, 범인의 특징 - 싸이코패스, 피해망상 -, 단서로 사용되는 여러가지 요소들 - 자백, 간접증거 - 등 많은 범죄 관련 소재가 언급됩니다. 이건 법의학과 법과학 관련 소재가 떨어졌기 때문이었을걸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사건 쪽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는데, 특기할만한 점 첫 번째는 여러 지능범들의 등장이었습니다. 사체 인멸, 현장 조작에 알리바이 트릭까지 사용하는 놀라운 범인들의 모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기할 점은 범인들이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인면수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범인들의 행태에 대한 언급을 읽으니 사형 제도의 부활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네요.

특정 주제에 맞는 대표적인 사건을 선정하기 쉬웠을 1권보다는 주제부터가 다소 정리되지 않았다는건 아쉽지만, 상세한 사건 정리가 여러 자료와 도판 등으로 뒷받침되는 좋은 범죄 논픽션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두 타석 연속 장타!
마지막으로 앞서 말씀드렸던 범죄 특징들이 잘 살아있는 몇몇 사건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건 몇가지를 아래에 소개해드립니다.

<<아산 노부부 살인 방화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1).
범인은 범행을 저지른 다음날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현장에 다시 침입했습니다. 양초를 이용한 장치로 시간 조작 방화를 일으키려고요. 범인은 집을 비웠던 시간에 영화 다운로드를 걸어 두어서 집에 있는척 했다는 알리바이 트릭까지 써먹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확실히 만화와 다른 법입니다. 범인은 한 달도 더 지난 사건 당일 행적을 너무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운로드했던 영화 제목을 기억하지 못해서 덜미가 잡히고 말거든요. 체포되어서 다행입니다.

<<환경 미화원 살인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2)
추리 소설에서나 봄직했던 정교한 시신 유기가 놀라왔던 사건입니다.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뒤 철물점에서 사온 50리터짜리 검은색 비닐봉투 15장과 이불로 시신을 감싸고 그 위에 100리터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 2장을 덧씌웠습니다. 이불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는 걸로 보이도록요. 그리고 환경 미화원이었던 범인은 자기 담당 구역에 '쓰레기'로 위장한 시신을 미리 가져다 놓은 뒤, 다음날 시신을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함께 쓰레기 수거 차량에 던져 넣었습니다. 시신은 그대로 전주 시내의 한 소각장으로 이동 후 소각 처리되고 말았다는군요. 무섭습니다.

<<거여동 여고 동창 살해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3)
단순 질투로 친구와 친구 아이 두 명을 살해했던, 비상식적인 잔혹함으로 충격을 안겨다 주었던 사건으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손에 목장갑만 꼈어도 덜미를 잡히지 않았을 정도의 지능범으로 방 열쇠를 넣은 핸드백을 방범창 안으로 던져 넣는 식으로 일종의 밀실 트릭까지 사용된, 거의 성공했던 완전범죄였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아이들이 너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손에 현장에는 없었던 종잇조각을 쥐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 현장 수사관들의 식견에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로, 종잇조각은 범행 도구로 준비해왔던 페트병으로 만든 빨랫줄 고정판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네요.
하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을거라고 경찰을 도발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집에 범행 기록을 꼼꼼히 적어둔 일기장을 남겨두었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시욕' 이라는게 있었던걸까요?
아울러 이런 계획 살인의 경우는 당연히 사형 선고를 받았어야 했는데 무기 징역에 그쳤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발 이런 범인은 좀 죽입시다.

<<신혼부부 니코틴 살인 사건>>
범인은 신혼 여행을 떠났던 일본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시신 화장을 서둘러 증거 인멸을 시도했지만 일본 경찰의 부검 감정서로 덜미가 잡힌 경우입니다. 피해자의 사인은 혈관 내 다량 투여된 니코틴에 따른 급성 중독사인데, 시신의 왼쪽 팔에서 두 곳, 오른쪽 팔에서 한 곳, 총 세 곳에서 주사바늘 자국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살인이 입증되었거든요. 처음 주사했을 때 바로 독성이 나타났을터라, 그 다음 나머지 두 곳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아니라면 타인이 주사를 놨다는 것이고, 사망 장소에는 남편밖에 다른 이는 없었으니 범인은 뻔한 셈입니다.
단지 돈 목적으로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살해한 인면수심의 뻔뻔한 살인범이라는 특징도 잘 살아있는 사건으로, 남편이라는 놈은 이 증거가 드러나자 자살 방조라고 우겼다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네요. 이런 놈도 좀 죽입시다....

뻔뻔함이라면 <<포천 암매장 살인 사건>>범인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싸이코패스인 범인이 완벽한 증거 앞에서도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는 가공할만한 뻔뻔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첫 조사에서 "사건 당일 피해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발뺌하더니, 두 사람이 함께 포천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 TV 화면을 제시하자, “함께 갔지만 피해자는 포천이동갈비를 먹으러 갔다"고 바로 말을 바꾼다던가, "함께 어머니 산소에 들렀는데, 피해자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비상식적 변명을 늘어놓는 식이었다네요. 이런 변명이 통할거라 생각한 것도 어이가 없고,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왔어요.

<<미아동 노파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남아시아계라는게 결정적 증거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잠복 중이던 형사가 혼혈로 보이는 어린 형제를 보고 사진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 중 큰 아이가 "아빠다!"라고 외쳐서 범인임을 확신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말 잔인한 행동이었어요.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은 잡아야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혼혈 아이들의 집만 알아내어도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 아빠 신원을 알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요?

<<울주 노인 연쇄살인 사건>>
사건 현장에 범인의 DNA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폐쇄회로 TV 영상도, 목격자도 없었지만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백 진술과 이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는 정황증거가 더해지면서 용의자가 범인이 됐던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자백'이 증거가 되기 위한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고요.
피고인의 자백이 곧바로 유죄 증거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최근에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법적으로도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또는 기망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의심되거나, 혹은 피고인의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땐 자백은 유죄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하고요.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는 조건도 까다롭다네요. 과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강도 살인'처럼 허위 자백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경우가 많은 탓이겠지요.

<<이천 무덤 연쇄 도굴 사건>>
정신병자가 저지른 범행으로 범행 자체는 특기할게 없는데, 피해자가 너무 안타까왔던 경우입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최씨는 부모 무덤이 도굴당한건 자신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믿어서 11년간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친지와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고 하거든요. 정신병자 한 명 때문에 인생이 망가져버렸는데, 이런건 정말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할까요?

<<제주 보육교사 피살 사건>>
미제 사건인줄 알았었는데, 과학 수사를 통해 이전에도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던 택시 운전사가 검거되었더군요. 사건 당시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각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과학 수사를 통해 피해자 사망 시각이 재조정되어 결국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동물 사체를 이용한 실험 결과로,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는 그늘인 데다 바람이 심했고, 사후 일주일이 넘은 뒤에도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걸 확인하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 물증이 없다는 약점이 있어서 경찰은 다시 철저한 재조사에 들어갔는데, 9년 사이 미세 증거물을 증폭해 보는 기술이 발달한 덕에 다행히 추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피해자 옷에서 범인 옷과 동일한 섬유 조각이, 범인의 차에서 피해자 섬유 조각이 수집되었던 것이지요. 섬유 조각이 범인이나 피해자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교차 발견되는게 많아지면 둘이 만났다는 의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겠지요.
이 책에서는 이렇게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구속 기소하는 단계까지만 언급되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용의자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나, 섬유 증거만으로는 증거력이 약하네요. 그 외의 증거들도 용의자가 범인이다! 라고 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쉽습니다. 언젠가 진범이 잡혀 피해자의 원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