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뮤지컬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뮤지컬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08/02/09

뮤지컬 맘마미아 감상

이번 설에 가족들과 함께 본 뮤지컬입니다. 30여년 살아오면서 "전용극장"에서 본 "최초의" 뮤지컬 되겠습니다. 
스토리는 그리스를 무대로 하여 결혼을 앞둔 소피라는 아가씨가 자신의 아버지로 짐작되는 3명 (해리, 샘, 빌)을 결혼식에 초대한 뒤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는데 각본도 무척 재미있고 ABBA의 노래가 잘 어울리는 흥겨운 작품이라, 더구나 개인적으로  ABBA를 무척이나 좋아하기에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도나역이 옛날 가수 "이재영" 씨였는데 노래 정말 잘 하더군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우선 선곡이 아무래도 전문 뮤지컬보다는 약간 뒤떨어지더군요. 노래와 극중 상황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을 준 곡은 "Money Money"와 "Knowing Me, Knowing You" 정도 뿐이었거든요. 최대의 히트곡인 "Dancing Queen"이나 "Honey Honey" 등은 약간 쌩뚱맞게 삽입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주역 중 한명인 "쏘피" 역 배우도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특성 상 좀 어린 목소리를 강조한 느낌이었는데 ABBA의 노래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아주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던건 분명합니다. ABBA 노래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는 강추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도 히트곡 많은 가수를 중심으로 비슷한 시도를 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예를 들면 조용필씨나 나훈아씨 같은 사람을 가지고 말이죠. 아니면 비틀즈나 엘비스의 히트곡을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고요. 그런데 Queen의 히트곡을 가지고 만든 뮤지컬은 평이 별루인걸로 봐서 노래만 좋아서 되는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쨌건 간만의 포스팅이네요. 이 작품 감상을 계기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까 생각도 드는데 뮤지컬을 한편이라도 더 본 다음 고려해 봐야겠습니다.^^

2019/12/08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 - 별점 2.5점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 - 6점
김승구 지음/책과함께

일제 강점기 시절 식민지 조선의 영화에 관련된 미시사 서적입니다. 단순한 '영화사'는 아닙니다. 영화 관련 문화사 서적에 가깝지요. 연대별로 주요 영화나 영화인에 대해 짚어주는게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과 영화의 흥행 방식, 영화 관련 정책과 영화와 관련된 언론 등의 당시 상황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료가 바탕이 된 것은 물론입니다. 1920년대 후반에도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가 널리 퍼져있었다는 근거로 1930년에 발표된 이상의 "십이월 십이일"에서 주인공인 업 청년의 방 안에도 영화 배우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었다는 묘사를 예로 드는 식으로요.

몇 가지 재미있는 기록들도 눈에 뜨이는데, 우선 당시 영화 입장료에 대한 것입니다. 1929년 춘천군청 고원의 월급이 23원인데, 경성 조선극장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80전이었다고 합니다. 영화 구경에 월급의 1/40을 써야 했다는 뜻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고가입니다. 최저 임금을 8,000원으로하고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에 월 4주 근무한다고 치면, 대충 3만원이 넘는 돈이니까요. 물론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먼트 산업으로 지금의 뮤지컬이나 콘서트 급이라고 한다면, 가격 역시 뮤지컬과 콘서트 급으로 책정되는게 딱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초기의 영화관은 여러가지 시설이 미비했는데 특히 냉, 난방이 큰 문제였습니다. 냉, 난방이 완비된 영화관은 1935년에야 세워졌다는데, 1935년 당시 냉방과 난방까지 제공해 주었다면 3만원이라는 입장료는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상영된 영화의 9할 이상이 헐리우드 영화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헐리우드 쏠림이 지금보다도 심하네요. 헐리우드의 대자본 투여 영화와는 지금도 국내 영화가 단순 경쟁이 힘든데, 당시의 한국 영화가 경쟁이 되었을 리가 없었을 테고요. 그러나 일본 영화가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건 좀 의외입니다.
그리고 당시 개봉된 영화 중 "날개"나 "벤허", "빅 퍼레이드"를 당시 식자층의 평론과 함께 소개해주는 글들도 여러모로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나 "벤허"를 카프계 비평가들이 종교가 억압자와 쉽게 타협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의 해독성'을 깨닫게 해 주는 '반동 영화의 전형적 표본' 이라고 평했다는데 아주 독특한 시각이에요. 당시 인기있던 몇몇 배우들의 소개들도 재미있게 읽었고요.

또 영화관 한 곳에서 영화를 독점 상영하며, 지정 좌석제도 아니고 한 번 들어가면 하루 종일 있어도 되었다는 등의 당시 영화관 풍속도는 제가 학생이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해 줍니다. 영화관 한, 두 곳에서 특정 영화를 독점 상영였으며, 지정 좌석이기는 하지만 내가 구입한 회차가 끝나면 계단에 앉아서라도 계속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건 일제 강점기 시절과 별로 다를게 없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그런 내용은 없지만 이러한 흥행 특성 상 - 단관 개봉 - 인기있는 영화를 보려면 일찍부터 가서 줄을 서야 했다는 것도 비슷했을 겁니다. 신문 광고가 주요 홍보 수단이었다는 것도 유사하고요. 즉, 1920~30년대와 80년대까지는 영화 관람 문화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은 셈입니다. 영화 관람 행태가 획기적으로 변한건 멀티 플렉스의 도입,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예매 문화의 활성화 때문이지요. 거의 반 세기를 이어온 특정 문화 소비 행태가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변한 예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이렇게 일제 강점기 시절 영화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도판도 비교적 충실하고요. 그러나 앞에 나온 정보가 뒤에 또 소개되는 등 순서가 잘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은 많이 듭니다. 연대별, 주제별로 내용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영화사, 문화사, 미시사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8/01/21

코코 (2017) - 리 언크리치 : 별점 4.5점



<<아래 리뷰에는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디즈니픽사의 신작. 딸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감상한 작품입니다. 픽사의 전작 <<굿 다이노>>는 이제 이 친구들도 디즈니한테 밀리는구나, 여기까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스러웠는데 (참고로, 이후 이어진 <<도리를 찾아서>>와 <<카 3>>는 모두 후속작이라 전작을 보지 못한 딸 아이 때문에 보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킵니다.

우선 멕시코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 굉장히 잘 먹힐만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대가족으로 조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날이 따로 있으며 이 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한다는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니까요. 또 "죽은자의 날 (제삿날)"에 죽은 조상들 (귀신들)과 어울린다는 기본 얼개 역시 굉장히 친숙합니다. 조상님이 꿈에 나타나서 도와준다던가, 가사 상태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난다던가 하는 흔한 이야기들과 똑같잖아요.

이렇게 친숙한 설정을 토대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아주 감동적입니다. 최근 보기 드문, 가족이 가장 중요하고 가족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는 것을 이렇게까지 잘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물론 중반 정도에 이르면 누구나 델라 크루즈가 진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아니고, 헥터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일 것이라는 반전은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마마 코코의 기억을 노래로 떠올리게 만든다는 마지막 장면도 예상 가능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뻔한 전개를 특별한 신파 없이도 눈물샘을 자극하게 만드는 연출도 아주 대단했습니다. 노환으로 거의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가 기억을 되찾는 장면이 특히 압권이었어요. 아, 저도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가족 이야기가 서구 시장에서도 먹힐까? 하는게 조금 궁금하네요. 굉장히 동양적인 설정으로 보여서 말이죠. 영화가 미국에서도 흥행하는걸 보면 먹힌다 싶기도 하다가도, 그냥 미국 내 라틴 계열 인구 비율이 높아서 흥행이 잘되는건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여튼 그 외에도 픽사스럽지 않은, 디즈니의 DNA가 삽입된 것도 눈에 뜨입니다. 시종일관 흐르는 흥겹고도 즐거운 음악이 화면 및 내용과 어우러지는, 일종의 뮤지컬을 방불케하는 장면들이 대표적이죠. 디즈니 작품들처럼 아예 대사까지 노래로 치환하는 수준은 아직 아니지만, 극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데 음악과 노래가 굉장히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노래들도 좋아요. 제가 어린 시절, 아버님께서 자주 듣던 Trio los panchos의 노래들이 떠오르더군요.

이렇게 장점이 가득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여러가지 설정의 디테일이 좀 부족해요. 죽은 자들의 날에 저주를 받아 끌려왔다는 설정부터 그러합니다. 미겔 말고도 이 날 도둑질 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닐텐데, 미겔을 보고 다들 너무 놀라는게 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죽은 자들의 도시에 대한 설정도 깊이가 없는건 마찬가지에요. 비쥬얼은 휘황찬란하지만 그냥 해골들이 살아갈 뿐, 현대 도시의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구현해 놓은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알레브리헤라 불리우는 일종의 애완동물(?) 들 설정도 설명이 너무 부족하고요.
액션이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뭔가 화려한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것도 조금은 단점이었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가족 영화로 손색없는 걸작입니다. 별점은 4.5점. 아직 보지 못하신 모든 분들께 꼭 한 번 감상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따가 부모님께 전화 한 통화 드려야겠네요.

아울러 이 작품이 픽사의 현재라면, 오프닝 단편 <<올라프의 겨울 여행>>은 디즈니의 현재인데 역시나 대단한건 마찬가지더군요. 행복한 가족 영화의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노래와 장면이 어우러지는 뮤지컬 적 연출, 슬랩스틱적인 개그 등 디즈니의 강점이 모두 발휘된 좋은 작품이었어요. 제 딸은 이 작품을 더 마음에 들어할 정도로 말이죠. 두 스튜디오의 선의의 경쟁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결과를 낳기를 바랍니다.

2014/02/03

겨울왕국 (2012) : 별점 3점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O.S.T. [2CD 디럭스 에디션] - 6점
크리스틴 벨 외 노래/유니버설(Universal)

설 연휴 기간 동안 와이프, 아기와 함께 감상했습니다. 우리 세 가족이 함께 감상한 첫 영화네요.

내용은 익히 잘 아시는 대로 자매의 화해를 다룬 일종의 백합물로, 영상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으며 음악도 아주 좋았습니다. 역대급이라 할 만한 "Let It Go"는 물론이고,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등 대부분의 곡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간의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주제곡 빼고는 귀에 들어오는 곡이 몇 곡 없었는데 ("Under the Sea"와 "하쿠나 마타타" 정도만 기억나네요) 말이지요. 

또 빠른 전개와 연출도 좋습니다. 초반 10분 정도에 음악과 함께 모든 배경 설명을 처리한다든가, 조금 지루할 만하면 등장하는 음악들, 뮤지컬처럼 구현한 씬들의 아기자기한 디테일과 깨알 같은 유머 등도 볼거리였어요.

한마디로 보고 듣고 즐기기에는 최고의 콘텐츠였습니다. 딸 가진 아빠로서 처음 본 남자를 믿으면 안 된다는 괜찮은 교훈을 전해준다는 점에서도 마음에 들었어요. 물론 딸아이는 잘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렇게까지 높은 평가를 받을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연출과는 별개로 각본이 좀 이상했거든요. 안나와 한스가 사랑에 빠진 것이 도화선이 되어 즉위식 날 모든 사건이 터져버리는 급작스러운 상황부터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럴 거면 방구석에 숨어 지내온 십 수 년의 세월은 무의미하니까요. 어차피 며칠 못 참고 들통날 것을... 그러고 보니 트롤이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마법 좀 쓴다고 괴물 취급받는 것도 이상하죠. "X맨"도 아니고.

또 전형적인 디즈니 왕자님인 한스의 돌연한 배신, 흑화도 쉽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스가 안나를 구하러 가서 굉장한 활약을 보인 것과도 배치되고요. 어차피 전권을 위임받았으니 아렌델에 머물러서 기다리는 게 더 합리적이잖아요. 안 돌아오면 일종의 섭정으로 영구히 통치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전형적 디즈니 공주님의 전형인 행동파 왈가닥 안나, 전형적 디즈니 개그 캐릭터 올라프에 비하면 이러한 반전이 더 독특해서 좋기는 했지만요.

아울러 엘사가 "Let It Go"를 부르며 제대로 자신의 능력을 선보이며(닥터 맨하탄?) 살짝 악역 포스를 풍기다가 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본 정보로는 엘사가 원래 악역이었지만 지금의 설정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는데, 차라리 강력한 악역이 되는 게 더 현실적이었을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이러한 중세 봉건국가 시스템에서는 엘사의 마법이야말로 천하의 패권을 쥘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될 텐데 왜 숨기느라 전전긍긍했을까요? 전방위 원거리 공격 마법에 무제한의 눈사람 병사까지 만들 수 있는 직접 타격 능력까지 막강한 능력자가 고작해야 성에 스케이트장이나 만들고 있다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래도 이러한 불만은 제가 나이가 많이 먹은 탓이 클 테고 제 딸아이는 아주 좋아했으니 만족하렵니다. 저 역시 보는 동안은 즐겁게 몰입하면서 관람하였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계속 "공주님 나오는 거"를 찾는 딸아이 때문에 조만간 재관람하게 될 것 같기도 하네요.

2014/06/24

아이스 - 에드 멕베인 / 이동윤 : 별점 2점

아이스 - 4점
에드 맥베인 지음, 이동윤 옮김/검은숲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무용수 샐리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흉기는 조무라기 마약상 로페즈를 살해한 것과 같은 권총임이 밝혀졌다. 카렐라와 동료들은 두 피해자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들 앞에서 차례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87분서 시리즈'로, 1983년에 발표된 시리즈의 36번째 작품입니다. 피니스 아프리카에에서 출간되었던 전작 시리즈와는 달리 검은숲에서 독립적으로 출간되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으로, 조무라기 마약상이자 양아치인 로페즈, 대히트 뮤지컬 "팻백"의 댄서 샐리 앤더슨, 보석판매상 에덜먼이 동일한 권총으로 살해당했는데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왜 차례로 희생되었는지를 밝혀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 와중에 잔인한 폭력배 엔터니 수사와 팻레이드 에마 커플이 마약 거래로 한몫 잡으려 끼어들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본 사건과 무관한 사건들 에서 주로 미끼로 활동하는 여자 형사 아일린의 활약, 버트 클링 형사의 어려운 가정사 등이 복합적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준은 평균 이하였습니다. 책 뒤 소개에서 ‘중기 걸작’이라 칭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설정의 설득력이 거의 없으며, 추리적 요소도 거의 부재한 탓입니다. 로페즈와 샐리가 과거 동거했다는 설정은 처음 등장 시의 묘사만 봐도 상상하기 힘들고, 결국 경찰 수사로 관계가 드러나기 때문에 독자가 추리를 해볼 여지조차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샐리가 성공한 후에도 로페즈와 섹스 파트너로 관계를 유지했다는 설정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진짜 흑막인 티모시의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히 마이애미에서 한 꼬마의 생명을 구하고, 그 대가로 그의 아버지로부터 코카인을 구매해 큰돈을 번다는 황당한 시작부터 엉망입니다. 부유한 의대생이 코카인에 거금을 투자해 돈을 불리려 했다는 설정도 비현실적이고요. 이런게 진상인 작품의 완성도가 높게 느껴지기는 어렵지요. 에마에 의해 난자당하는 티모시의 최후 역시 예상 가능한 전개였고요.

여형사 아일린 버크가 맡은 개별 사건들, 버트 클링 형사가 이혼 후 다시 아일린과 관계를 맺는 과정 등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많이 삽입되어 있는 점도 의아합니다. 카렐라 형사와 테디의 발렌타인 이벤트처럼 본 사건과 큰 연관이 없는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로 보이지만, 이 때문에 분량이 늘어나며 지루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펄프 픽션의 제왕다운 흡입력은 유지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잔혹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는 전개는 몰입감을 줍니다. 아일린이 맡은 세탁소 팬티 도둑이나 간호사 강간범 사건도 그 자체로는 흥미롭고요. "아이스"라는 단어의 중의적인 의미나, 티모시가 권총의 소유주를 속여 핵심 혐의에서 벗어나는 과정 등에는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특히 권총의 실소유자를 피해자로 위장하여 자신이 빠져나간다는 설정은 많이 본 이야기이지만("헤드헌터" 등)잘 써먹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원조인지 여부는 조금 궁금해집니다. 탄도분석이나 탄조흔 검사의 시작 시점을 알면 원조 여부를 추정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또한 "노상강도"에서 사랑에 빠진 클레어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고, 잘나가는 모델과 결혼했지만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이혼하게 되었다는 버트 클링의 파란만장한 연애사 역시 팬으로서는 흥미로운 요소였습니다. 주변 여성들을 모두 자기 곁으로 끌어들이는 옴므파탈로서의 클링의 모습이 빛났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본편 줄거리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팬심으로 점수를 조금 더했지만, 팬서비스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묘사가 가득한 뻔한 펄프 픽션에 불과합니다. 시리즈 최고작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나는 작품이라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드 맥베인의 작품은 역시 초기작 외에는 건질 것이 많지 않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2025/10/03

예스터데이 (2019) - 대니 보일 : 별점 2.5점

전 세계적인 정전이 12초 동안 벌어진 뒤, 무명 가수 잭 말릭은 자기 말고는 아무도 비틀즈를 알지 못한다는걸 깨달았다. 당황도 잠시, 잭은 자신이 기억하는 비틀즈의 곡들을 선보이며 화재를 불러 일으켰고, 세계적인 팝 스타 에드 시런의 눈에도 띄어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르며 명성을 쌓게 되었다. 

그러나 성공을 거둘 수록 양심, 그리고 엘리와의 사랑을 고민하던 잭은 모든 곡들은 '비틀즈'가 썼다는 진실을 고백한 뒤 사랑하는 엘리와 함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

한 때의 귀재 대니 보일이 2019년 발표했던 청춘 로맨틱 음악 코미디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풍성한 비틀즈 음악을 스크린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스터데이", "Let it Be",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I Saw Her Standing There", "Back in the USSR", "Help!" 등의 명곡들이 이어지거든요. 몇몇 곡들은 장면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뮤지컬 같은 느낌까지 줍니다. 엘리가 잭에게 이별, 그리고 개빈과 만나고 있다는걸 고백한 직후 잭이 "Help!"를 열창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Help! I need somebody)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세상에서 비틀즈의 노래가 사라졌는데 나만 알고 있다!는 아이디어는 따지면 이세계 회귀물이나 전생물, 시간 여행물과 다를바 없지만 '음악'이라는 소재 선택이 아주 탁월한 덕분입니다. 만약 피카소의 그림을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발표했다면? 솔직히 성공하기 힘들겠지요. 셜록 홈즈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는 세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홈즈 시리즈도 지금 읽기에는 낡은 이야기들이 많은 탓입니다. 하지만 명곡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비틀즈'의 곡이라는 점에서 다시 성공한다는건 굉장한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음악은 유튜브 등 현재의 플랫폼 환경과 잘 맞아 떨어지기도 하니까요. 당연히 '영화'라는 매체와도 잘 어울리고요.

전반적으로 띠고 있는 가볍고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도 웃음을 주는 순간과 애틋한 감정을 담은 장면의 균형도 좋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건 캐스팅입니다. 어딘가 찌질하면서도 순수한 주인공 잭과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엘리 등 모든 인물들 캐스팅이 적절해서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을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우선 전체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느껴집니다. 에드 시런의 출연의 경우, 이야기 전개에 꼭 필요하지는 않았는데 차라리 삭제하는게 나았을겁니다. 에드 시런의 도움이 없었어도 비틀즈 음악으로는 성공할 수 있었을테고, 에드 시런이 비틀즈에 대항해 '살리에리' 포지션을 차지하기는 역부족이니까요.
주인공 외에도 비틀즈를 기억하는 인물이 두 명 등장하는 장면, 존 레논과의 만남 장면은 사족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두 장면은 실제로 '비틀즈'가 존재했다는 의미라서 설정과 모순되는 탓입니다.

또 많은 비틀즈의 명곡이 등장하지만, 일부 곡은 선곡이 아쉽습니다. 에드 시런과의 작곡 대결에서 잭이 선보이는 "The Long and Winding Road"이 대표적입니다. 명곡이지만 일반 관객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이보다는 엔딩에 사용된 "Ob-La-Di, Ob-La-Da" 같은 친숙한 곡을 앞세우는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위대한 비틀즈 음악을 현대적인 로맨틱 코미디 속에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음악적 즐거움과 상큼한 러브스토리도 장점이고요.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비틀즈 음악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볼 만한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용필 노래를 모티프로 삼아 리메이크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2005/09/27

라간 (Lagaan: Once Upon A Time In India)- 2001, 아슈토쉬 고와리커 : 별점 2.5점

"저 흰둥이들을 박살내 버리라구!" - 영주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1800년대 인도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 가뭄이 길어져 라간 (세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영주에게 마을 촌장과 주민 대표들이 찾아가 선처를 부탁한다. 하지만 거만한 영국장교 러셀대위가 그들에게 크리켓 게임을 해서 그들이 이길 경우 3년간 라간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는 내기를 제안한다. 마을 청년 부반이 이 승부에 응하고 지루한 설득과 노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힘을 모아 크리켓을 연습하기 시작하며 부반에게 호감을 가진 영국 장교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이들을 돕는다. 시합까지는 3개월. 과연 승부는 어떻게 될까?


TV에서 보게된 인도 발리우드 영화입니다. 처음에 별 생각없이 봤는데 의외로 진지한 스포츠물이라 몰입해서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예전에 정말 낯설게 보았던 "춤추는 무뚜"보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적 문법이 더욱 많이 도입된 편이라 크게 어려움없이 볼 수 있었다 생각되네요.
억압받는 식민지 주민들이 스포츠를 통해 승리와 환희를 느낀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있어왔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는 특히나 우리나라 영화 "YMCA야구단"이 많이 연상되더군요. 하나씩 팀원을 모아가는 과정, 경기 규칙을 가르치는 미녀라는 설정이나 천민과 상위 계급이 대립하지만 평등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장면 같은 것은 정말 똑같다고 보이거든요. 시기상 "YMCA..."쪽이 많이 참고하지 않았나 생각도 되지만 "YMCA..."도 어느정도 실화에 근거한 만큼 유사한 설정에서 오는 공감대가 비슷한게 많았다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어느나라나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한가봐요^^

발리우드 영화답게 중간중간 음악과 춤을 곁들인 뮤지컬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흥겨움을 더해주고요. 개인적으로는 부반과 카오리, 엘리자베스 3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사랑의 세레나데 장면의 편집과 촬영은 베스트로 꼽고 싶군요.

아쉽게도 제가 크리켓을 잘 알지 못해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인 크리켓 시합 장면에서의 몰입이 초반에 약간 힘들었지만 보면서 어느정도 룰도 깨우쳐 가니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영국인들은 크리켓을 "즐기지만" 주민들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완성도와 가치를 더욱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부반역의 아미르 칸은 현재 인도 최고의 스타라는데 그에 걸맞는 마스크와 완벽한 눈빛 연기를 보여주며 영화에 힘을 더 실어줍니다. 다른 조연들의 개성넘치는 연기도 물론 좋고요.

엘리자베스와 부반의 사랑 이야기는 지나친 사족이라 생각되고 거의 4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은 지나치게 길어 중간중간 조금 지루하기도 했었지만 특이하고 이색적인, 이국적인 문화에 더불어 정통 스포츠물로의 가치까지 있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8/03

베이비 드라이버 (2017) - 에드가 라이트 : 별점 2.5점

베이비는 뛰어난 운전 실력으로 박사가 계획한 범죄 계획에 전용 드라이버로 고용되어 왔다. 오래전 박사의 차를 훔쳤던 탓에 빚을 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빚을 다 갚고, 사랑하게 된 데보라와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는데 박사의 협박으로 새로운 범죄 계획에 합류하면서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베이비는 작전을 망쳐버리고 마는데...

음악과 액션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몇 년 전 흥행작이지요. 에드가 라이트 감독 작품입니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음악과 화면의 완벽한 싱크에 있습니다. 베이비가 일종의 장애(귀울음)이 있어서 항상 음악을 들으며 생활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장면이 특정 곡의 리듬에 맞춰 편집되어 있습니다. 총격전, 도주 장면, 걷는 동작 하나하나까지도 음악에 맞춰 조율되어 있으며, 립싱크 장면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액션 영화임에도 마치 뮤지컬처럼 느껴질 만큼, 연출과 편집의 밀도가 높습니다.

제목에 걸맞게 수차례 등장하는 카 체이스 장면들도 일품입니다. 특히 시작과 동시에 펼쳐지는 카 체이스가 압권이에요. 도심을 질주하며 헬기까지 동원한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는 과정을 생생함과 유쾌함, 그리고 약간의 치밀함이 곁들여진 리듬감있는 연출로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청춘 영화적인 감성도 좋습니다. 베이비와 웨이트리스 데보라 사이의 관계를 풋풋하면서도 선명하게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둘이 현실을 박차고 함께 떠나는 미래를 꿈꾸는 구조는 전형적인 청춘 로드무비 구성이고요. 마지막 장면에서 수감 중인 베이비가 데보라의 편지를 받은 뒤 석방되어 데보라와 키스를 나누고 떠난다는 씬은 이런 장르 판타지의 결정판입니다. 현실적으로는 25년형을 선고받은 뒤 최소 10년에서 15년 정도를 복역해야 가석방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장면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가까우며, 그래서 더 아련합니다.

다만 전체적인 서사는 아쉬움이 큽니다. 베이비가 범죄에서 손을 떼려다 계획이 틀어지고, 결국 조직원들과 충돌한 뒤 모두 죽고 베이비만 체포되는게 줄거리의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그래도 범죄가 성공하고 베이비와 데보라의 관계도 잘 이루어지는 중반부까지는 유쾌해서 좋았는데, 후반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급작스럽게 진지하고 무거운 범죄극으로 돌변할 뿐더러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베이비와 버디의 대결도 단순한 육체적 충돌에 불과한 탓입니다. 별다른 전략이나 반전은 등장하지 않아요. 청춘 로맨스와 액션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트루 로맨스"가 떠올랐고, 최소한 그 정도의 드라마나 두뇌 게임을 기대했는데 실망했습니다. 최소한 베이비가 모든 말을 녹음한다는 설정이라도 잘 써먹어 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인물 구성도 단조롭습니다. 베이비와 데보라는 그냥 '아이들'이고, 배츠는 단순무식한 폭력적인 악역이거든요. 버디 정도만 베이비를 따뜻하게 대하는 등 약간 입체적으로 보였는데, 그마저도 애인 모니카의 죽음 이후에는 복수심만으로 움직이는 전형적인 악역으로 퇴화해 버리고 맙니다. 유일하게 제대로 된 어른(?)이자 흑막으로 묘사되는 박사만 개성있게 등장하지만, 마지막에 베이비를 돕고 죽는건 급작스러우며 일관성을 해칩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청춘 감성과 감각적인 연출은 뛰어나지만, 이야기와 인물 구성은 아쉽습니다. 그래도 킬링타임용으로는 충분합니다.

2004/03/07

8명의 여인들 - 프랑수아 오종 : 별점 2.5점


이 영화는 유명한 프랑수와 오종 감독의 영화로 간략한 줄거리 소개와 설정만 보고 정통 추리물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대 프랑스 한 시골 저택. 크리스마스를 맞아 가족들이 모이지만 그들의 사랑하는 가장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저택은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살인자는 집에 있던 여덟 명의 여인들 중 한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그의 부인이었을까? 노처녀 처제? 욕심 많은 장모? 건방진 가정부 아니면 성실한 가정부? 어쩌면 그의 두 딸들? 깜짝 방문을 한 매력적인 여동생일 가능성은?

내용은 간략한 줄거리 대로 “고립된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전 퍼즐형 추리물의 전형적인 구도인데 예상외로 정통 추리물은 일단 아니더군요. 자세한 현장검증도 없고 알리바이도 제멋대로이며 단서 또한 거의 전무합니다. 살인사건 그 자체는 8명의 여인들의 고민과 복잡한 가정사를 끌어내는 동기일 뿐이며 이야기는 추리적인 구성보다는 복잡한 가정사와 개개인의 사생활을 중심으로 일종의 폭로극 형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영화가 뮤지컬과 코미디가 혼합된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굉장히 연극적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익숙해지니 상당히 유쾌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뭔가 독특하고 이색적인 구성이나 전개방식이 재미있더군요.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들로만 이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코미디 같은 분위기로 끌고나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특히 어머니와 고모의 격투 후 키스장면.. 과 어머니가 할머니를 술병으로 때리는 장면 등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명 배우들로만 포진된 8명의 여인들의 연기도 대단했고요. 특히 이모역의 연기가 정말 압권!입니다.
제 기대대로 정통 추리극은 아니었지만 독특하고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같이 보았던 관객들의 평도 사뭇 여러가지였던 것 같은데, 전 재미있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독특하고 이색적인 작품이라 차마 극장에서 꼭 보시라고 권하지는 못하겠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라는 감독의 작풍이 원래 이러한 것인지, 아니면 연극을 원작으로 해서 지극히 연극적인, 연출 기법보다는 배우 개개인의 연기와 각본에 의존하는 작품을 만든 것인지는 좀 궁금해 집니다. 다른 작품들도 한번 구해 봐야 겠군요.

2010/02/23

500일의 썸머 - 마크 웹 : 별점 3점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헤어지게 된다." 이 영화 줄거리는 그야말로 이게 답니다. 게다가 너무나 소박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인 탓에 보여지는 비쥬얼도 화려함하고는 거리가 멀고요. 주인공 직업이 카드회사 카피라이터니 뭐 대단한 일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러한 극한의 평범한 애정물을 차별화된 요소로 커버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썸머"를 만나고 500일 동안의 사랑과 헤어짐,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뒤섞은 편집이 무척 기발하고 탁월해서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의 심리를 관객이 보다 극대화하여 포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왔습니다.
아울러 톡톡튀는 대사들과 로맨틱 코미디스럽지만 일상적이기도 한 기묘한 상황들을 표현하는 각본도 좋았어요. 예를 들면 헤어진 직후 주인공이 멍하게 접시를 깨는 장면의 연출 같은 부분 말이죠. 톰이 썸머와 사귀게 된 직후 뜬금없이 등장하지만 너무나 이야기와 잘 어울렸던 뮤지컬 군무도 인상적이었고요.

한마디로 말해서 기묘한 일상계 로맨틱 코미디랄까요? 하지만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성장물로의 변신과 해피엔딩은 별로였고 제가 보기에는 너무 "영"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서 별점은 3점입니다. 요새는 영화건 소설이건 쉬운게 좋아지는데 확실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봅니다...

2013/12/17

나의 로라 - 비라 캐스퍼리 / 이은선 : 별점 3점

나의 로라 - 6점
비라 캐스퍼리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모의 유명 여성 카피라이터 로라 헌트가 자택에서 총살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연인 셸비와 결혼을 앞둔 상태였다. 사건을 맡게 된 형사 마크 맥퍼슨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녀에게 빠져드는데...

원제는 "로라(Laura)". 여성 작가 비라 캐스퍼리의 작품입니다. 여성 작가가 쓴 하드보일드물의 대표작 중 한 편입니다.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당당히 선정된 고전으로, 챈들러와 말로우가 모두 소개된 현 시점에서 본다면 국내 출간은 외려 늦어보이기까지 합니다(챈들러 완역은 하루키가 팬이라는 것이 잘 알려진 탓도 클 것 같긴 하지만요).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팜므파탈과 마초 탐정(또는 형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서사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형사 마크는 본인 스스로 무식하다고 여기지만,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이지적인 면을 갖춘 노력가입니다. 여성을 함부로 무시하거나 혐오하지도 않고요. 강렬한 폭력 충동도 보이지 않는 냉정한 인물입니다. 여성 주인공 로라 역시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남자를 농락하고 벗겨먹으려는 악녀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현재의 지위를 차지했고, 남자를 고르는 것도 본인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하는 독립적 여성입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너무 빛나서 주변 남자들이 나방처럼 몰려들고, 그래서 서로가 불행해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궁극의 팜므파탈일 수도 있겠지만, 여튼 이렇게 등장 인물들부터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대적으로 느껴질 정도에요.

또한, 이러한 등장 인물들이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로 그려져 설득력을 더해 줍니다. 영화 각본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상황별로 장면이 연상되는 묘사력도 빼어나며, 등장 인물들에게 딱 들어맞는 명대사가 잘 어우러져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명곡 "Smoke Gets in Your Eyes"가 초연되었던 뮤지컬 "로버타"의 언급 등 당대의 시대상을 알려주는 묘사 역시 깨알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화자가 월도 - 마크 - 로라 순으로 바뀌며 전개되는 것도 좋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서술 트릭같이 이야기를 꼬아놓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확실하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1인칭 시점 덕분에 각 캐릭터들에 대해 독자가 더 깊게, 상세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월도가 얼마나 현학적이고 자기 과시욕으로 똘똘 뭉친 질투의 화신인지, 마초 경찰로 보였던 마크가 피해자로 알았던 로라에 대해 알아갈수록 왜 흔들리는지, 로라는 대체 어떤 여자인지에 대해서 이보다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요. 아울러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동기, 즉 월도 스스로 영원히 조종할 수 있었던 로라가 자신의 품을 벗어나게 되자 격렬한 살의를 품게 되었다는 것도 꽤 그럴듯하게 설명됩니다.

그 외에 셸비가 잃어버린 금담배갑, 그가 산 싸구려 술이 단서가 된다는 복선도 나름 잘 짜여져 있는 등 전체적인 전개도 충실합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사건이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이앤이 로라의 집에 머물게 된 것, 셸비가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 모두 우연입니다. 최소한 경찰 신고만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도 월도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건 어려웠을 거에요. 아울러 로라의 유죄가 강하게 시사되는 상황에서 마크가 아무런 단서도 없이 그녀의 무죄를 믿는다는건, 기존 하드보일드에서 팜므파탈에게 사로잡혀 진실을 망각하는 남성 피해자 역할이 반복되는 것에 불과해 이 작품의 장점을 퇴색시키는 듯하여 아쉬웠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앞서 이야기한 복선 이외에는 별다른 인과관계 없이 사건이 벌어지는 편이라 눈여겨볼 부분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낭비된 복선이 거슬립니다. 예를 들면 꽤나 중요하게 언급되던 왈도의 골동품 사랑이 실상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로라에게 선물한 화병은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졌어야 하는데, 전형적인 맥거핀에 불과해 실망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왈도와의 사투를 다룬 결말도 헐리우드스러워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차라리 본인의 의지는 아니지만 모두가 불행해지는, 운명대로의 결말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점도 확실하고 읽는 재미도 뛰어난 고전임에는 분명합니다. '엘릭시르' 시리즈다운 예쁜 디자인과 일러스트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형적인 남성향 하드보일드물에 식상하신 분들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영화화되어 큰 히트를 치고 하드보일드 영화 걸작선에 이름을 올렸다는데, 영화도 꼭 한번 구해보고 싶어지네요. 호러 영화로 더 알려진 빈센트 프라이스가 잘생긴 매력덩어리 셸비 역으로 출연한다니 더더욱이요!

2024/03/27

비스트 (2022) - 넬슨 딜립쿠마르 : 별점 1.5점

비라는 인도 최정예 경찰 조직 RAW의 최고 요원이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 체포 작전 때 어린 소녀가 사망했던 탓에 조직을 떠난 뒤, 연인 쁘리티가 소속된 경비업체에 취업했다. 그리고 업체 사람들과 업무차 대형 쇼핑몰을 찾았는데, 수십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쇼핑몰을 강탈한 사건에 휘말렸다.
처음에는 방관하려 했던 비라는 곧바로 테러리스트들을 처단하고 인질들을 구출하러 나섰다. 테러리스트들의 요구 사항이 자기가 체포했던 테러리스트 수장 파르쿠의 석방이라는걸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비라의 활약으로 테러리스트들은 괴멸되었지만, 내무부장관이 사전 모의했던 탓에 파르쿠는 석방되고 말았다. 그러자 비라는 단신으로 파키스탄 테러리스트 캠프에 침투하여 파르쿠를 다시 체포해온다...


인도산 액션영화. "바후발리"를 보고 감명을 받아 인도 영화를 찾다가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설정과 각본입니다. 단순한 스토리를 채워나가는 대사와 캐릭터들 수준이 황당할 정도로 낮거든요. 주인공 바리 외에는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물은 없을 정도라 참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점 - 바보 개그가 어우러지는 액션 - 은 "최가박당"같은 80년대 홍콩 액션 영화를 떠오르게 해 줍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만들어진건 2022년.... 한 마디로 한 40년은 뒤떨어진 각본과 설정입니다.
인도 영화에서 즐거움을 주는 요소인 특유의 뮤지컬스러운 연출도 별로 없습니다. 두어장면 등장하기는 하는데, 영화 본편과는 아예 무관한 일종의 뮤직 비디오처럼 연출되고 있어서 억지스럽더군요. 이럴거라면 빼는게 나았을겁니다.

그나마 인도 영화 특유의 과장과 멋부림(?)이 가득찬 액션 연출은 나름 볼만하지만, 이 역시 그러나 주인공 비라가 무적인데다가, 완력이건 두뇌건 호각을 이룰 라이벌이 없어서 보다보면 지겨워집니다. 마지막에는 전투기까지 조종하니 말 다했죠.
애초에 파키스탄 캠프까지 가서 홀로 파르쿠를 체포해 올 수 있었다면, 처음 작전은 왜 공들였나 싶습니다. 쓸데없이 잔인한건 덤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인도 영화의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 시장에 먹히려면 이보다는 좀 더 각본, 설정에서 고민해야 할 겁니다.

2025/06/21

케이팝 데몬 헌터스 (2025) - 매기 강 : 별점 3점

케이팝 아이돌이 악귀를 사냥하는 퇴마사로 활약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제목만 보면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악귀를 봉인하기 위해 팬들의 열광적인 '팬심'이 필요하다는 설정이 아이돌의 존재 방식과 절묘하게 맞물리며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저승사자들이 결성한 남성 아이돌 그룹 '사자보이스'가 주인공이 속한 걸그룹 헌트릭스와 팬심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도 인상적입니다. 악귀들이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 라이벌 케이팝 그룹으로 데뷔한다는 발상은 정말 천재적이에요.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스, 즉 선과 악의 대결이 단순한 격투가 아니라 음악과 퍼포먼스, 공연을 통해 벌어진다는 점도 독특했고요.

설정에 걸맞게 음악도 뛰어납니다. 헌트릭스의 곡은 물론 사자보이스의 노래들도 실제 케이팝 음악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으며, 뮤지컬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스토리 전개와도 유기적으로 맞물립니다. 단순한 배경 음악 수준을 넘어 극의 감정선을 음악이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깨알같은 개그 코드들도 재미있는게 제법 많았고, 작품 곳곳에 한국적인 요소들이 등장하는 것도 반가운 부분입니다. 서울의 거리, 지하철, 번화가뿐 아니라 진우가 키우는 까치나 민화 속 호랑이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민화 호랑이 캐릭터는 귀엽고 인상적이어서 실제로 인형이 출시된다면 하나쯤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독특한 세계관과 설정을 제외하면 줄거리 자체는 굉장히 뻔해서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그리고 결말의 긴장감이 너무 부족해요. 진우가 루미를 위해 희생하고, 팬들의 목소리가 모여 악귀를 물리친다는 것도 예측 가능했고요. 한국 공연 문화의 대표적 특징인 '떼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더욱 인상적인 피날레가 되었을텐데 좀 아쉽네요.

"데몬 헌터스"라는 제목에 비해 액션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야기는 루미가 악귀 진우와 가까와지고, 자신의 비밀을 멤버들에게 감추다가 들통나는 '인간 관계'에 촛점이 맞춰져 있으며, 애초에 악귀들이 너무 약해서 액션 씬에서 긴장감을 느끼기가 힘든 탓입니다.

캐릭터들의 매력도 부족합니다. 제한된 러닝타임 탓도 있겠지만, 등장인물 대부분이 전형적인 설정에 머무르고 있어 감정적으로 몰입하기 어렵습니다. 주인공 루미가 반은 악귀라는 설정도 익숙한 클리셰에 불과하고요. 오히려 빌런인 사자보이스의 진우가 서사나 캐릭터 구성 면에서 더 풍부하고 입체적이었습니다. 진우의 과거 - 사실 어머니와 여동생을 버리고 부귀영화를 택했다는 - 가 밝혀지는 반전은 꽤 괜찮았거든요.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후속작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예전 "트롤"에서 케이팝이 주요 소재로 나와 감탄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아예 케이팝 스타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 나오다니 정말 격세지감이네요. 심지어 제작이 '소니'라니! 

2017/02/11

모아나 (2016) - 론 클레먼츠, 존 머스커 : 별점 3점

모투누이 섬 족장의 딸 모아나는 죽어가는 섬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놓는 여행을 떠났다. 우선 테 피티의 심장을 훔쳤던 영웅 마우이를 찾아 나서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신작으로 딸아이와 함께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연령 대상 애니메이션이라 하더라도 내용은 개연성이 많이 떨어지더군요. 시작부터 그러합니다. 마우이가 테 피티의 심장을 훔친 직후, 테카와 싸우는 묘사가 연이어지는데 이것은 테피티가 테카가 되었다는 반전을 왜곡시키는 묘사입니다. 게다가 항해 민족이었던 모아나의 부족이 항해를 그만 둔 이유도 대충이며, 항해를 그만 둔게 부정적으로 그려지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착할 땅을 찾은 덕분에 항해할 필요가 없어진건 당연한 상황인데 말이지요.
모아나를 떠난 마우이가 테카와의 최후의 결전 중 모아나에게 돌아온 이유도 설명이 부족하며, 바다가 선택해서 바다가 돌보아주는 모아나가 테카를 넘어서지 못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바다가 방패막이만 해 주었어도 모아나는 아주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단점을 덮어버릴 정도의 강력한 장점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시각적인 쾌감입니다! 완성도, 비쥬얼, 아트웤이 정말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중에서도 바다에 대한 묘사는 정말로 출중해서 이 정도면 이제 실사로 찍을 필요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비스"에서 물 CG를 보고 경악했던게 엊그제같은데 이제 실사보다 더 실사같은 CG의 시대라니 격세지감이네요. 바다 외의 이국적인 열대 섬을 무대로 한 풍광과 디테일들도 좋고요. 겨울 왕국 다음에는 열대 낙원인 셈이지요. 문신을 활용한 전개 등 해당 지역의 문화와 풍습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묘사들도 볼거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가오리가 되어 모아나를 이끄는 장면은 정말이지 울컥하게 만드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오랫만에 '강한 남자'가 등장하는 것도 괜찮았어요. 마우이는 전통적인 디즈니 세계관의 왕자님 캐릭터들과는 다른, 거칠고 무례한 마초적 매력이 넘치면서도 실제로 강한 능력자라는 점에서 독특함을 전해줍니다. 보여주는 액션도 화끈하고요.

디즈니 뮤지컬답게 음악도 역시나 최고 수준입니다. 토속적인 리듬이 살아있는 듯한 곡들이 가득합니다. '렛잇고'처럼 대단한 반응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저는 더 흥겹고 좋더군요. 요새 'how far i'll go'는 하루에 한번 이상 듣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물을 중심으로 한 자연 풍광을 디테일하게 담아낸 점에서 "굿 다이노"와 비교할 수 있는데 저는 이 작품이 훨씬 좋았습니다. 이 정도면 디즈니가 픽사를 넘어선게 아닌가 싶네요.

2019/07/21

귀신나방 - 장용민 : 별점 1점

귀신나방 - 2점
장용민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 열일곱 살 소년을 살해했다. 소년은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흠잡을 것 없던 아이였다. 소년과 살인범은 아무 관계가 없어서 경찰은 살해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목격자 앞에서 소년을 죽인 오토 바우만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사형 집행일을 사흘 앞둔 날 그는 갑자기 특별 면회 요청을 하는데, 상대는 과거 전도유망했던 기자 크리스틴이었다. 갑작스럽게 사형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크리스틴은 바우만으로부터 도무지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국 작가 장용민의 장편 소설입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히틀러의 부활을 다루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한국 작가가 섣불리 손 댈 소재는 아니라 생각했으니까요. 또 히틀러의 부활에 대한 창작물은 굉장히 많아서 차별화를 통한 비교 우위를 가져가기도 쉽지 않을테고요. 예를 들어 히틀러의 머리 (뇌)만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몸에 이식한다는 "모레", 클론을 만든다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있지요.
이 작품에서는 요제프 멩겔레의 뇌이식을 통해 젊은이로 거듭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차별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방법만 조금 다를 뿐, 유대인 생체 실험을 통해 기술을 터득한 멩겔레가 주도하여 히틀러의 부활을 이끈다는 케케묵은 설정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나마 뇌이식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거의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부활까지는 히틀러의 뒤를 쫓는 비밀 조직 아디 헌터와의 악연 등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부활 이후부터입니다. 아담 휘슬러로 새롭게 태어난 히틀러가 미국 정복(?)을 위해 일으킨 사건들과 여러 계획이 펼쳐지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탓입니다.
첫 번째로 아담은 시골 마을에서 6명이 죽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심리 조작을 통해서요. 그런데 이 참극을 통해 그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원래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끼리 다 틀어지게 만든 것도 아니고, 악감정이 있던 두 집안 사이에 불똥을 튀긴 정도니까요. 경제학 서적을 독파해가며 자본주의를 통달한 세기의 악마가 하는 일 치고는, 그리고 사악함을 드러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합니다.

그 뒤 미국 연방 준비 위원회를 손에 넣겠다는 두 번째 계획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무려 800톤이 넘는 금괴의 댓가로 하는게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밀턴의 비서가 되는 것 뿐입니다! 2019년 7월 현 시세로 금 1kg은 6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48조의 현금성 자산으로 2019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20위권이에요. 현금성이라 투자 시 자본 증식과 대출 가능 규모를 감안하면 몇 배가 될 수 있고요. 한마디로 스스로의 돈과 능력으로 세계 금융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고작 비서가 되는게 다라니 이게 말이나 될까요? 비서가 되려는 목적도 루 게릭 병으로 죽어가는 밀턴에게 뇌수술을 알선하는 댓가로 밀턴의 주식을 넘겨받으는건데, 이를 위해서는 구태여 비서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경로건 간에 자신이 히틀러라는걸 증명만 하면 죽기 직전인 밀턴이 알아서 접근해 왔을 테니까요.
게다가 연방 준비 위원회 주식을 소유한다고 그가 미국을 지배하는게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연방 준비 위원회 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이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지배하는 대기업 회장이 되려는 계획이 더 설득력이 높아요. 2019년 현 시점에서 연준 위원장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보다 세계 파워 랭킹 순위가 낮으니까요. 아니면 직접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던가....

세 번째 계획인(두번째 계획에서 이어지는) 케네디 암살에 히틀러가 있었다는건 황당하고 어이없는 픽션의 정점입니다. 일단 케네디 암살의 이유는 그가 은본위의 새로운 화폐계혁을 단행하여 연준을 무력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케네디에게 알려준건? 히틀러입니다! 연준의 권력을 먹으려는게 계획인데, 연준에 괜한 위험을 가하고 그걸 또 스스로 이겨낸다? 이 쯤 되면 이야기의 합리성을 논하는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암살이라는 무모한 계획은 리스크도 너무 크고요.

거기에 더해 무리수 설정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옛 연인 에바 브라운, 그리고 그녀의 전생인 죠안나 이야기는 없으니만 못합니다. 사악한 카리스마만 희석될 뿐입니다. 등장하는 비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하는게 없기도 하고요.
하기사, 죠안나 설정은 그나마 낫지 연쇄살인범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든다는 설정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수부대 출신 킬러들을 불러모아도 시원치않을판에 왠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UFC 파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방법은 한니발 렉터를 표절한 천재 교수의 설명되지도 않는 수학 공식이고, 그들을 자기 부하로 만드는 방법은 히틀러가 혈혈단신 찾아가 말로 설득하는게 전부니 더 말을 해 무얼하겠습니까.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경찰 바우만의 집요한 추적도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고작해아 달라스 경찰서 형사인 그가 온갖 배후 정보에 손을 대 가면서 히틀러를 추적하는 과정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히틀러라고 확신하고 쏴죽인 애덤이 사실 히틀러가 아니라 뇌수술을 받은 밀턴이라는걸 정작 조사를 시작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크리스틴이 밝혀낸다는 이야기도 당황스러워요. 바우만의 반평생은 대체 뭔가 싶거든요.
작위적인 전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케네디 암살 현장에서 모사드 요원이 바우만을 구해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 정도 지켜봤으면 누가 흑막인지 당연히 알아채고 아담을 죽이거나 납치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총 한자루 전해주고 손을 터는건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히틀러는 살아있다는 극적인 진상이 귀신나방 이야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도 실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자신이 살아있는걸 아는 사람을 다 죽여놓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여기자 크리스틴 앞에서 살아있다는 암시를 남기고 떠난다? 그것도 직접 칵테일을 대접하는 등 있는대로 폼을 잡으면서?

이렇게 어디서 본듯한 설득력없는 설정, 전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계획들, 작위적인 수사, 개연성없는 전개라는 환장의 4종 셋트가 모인 망작으로 종이가 아까운 수준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가 희대의 망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를 발표한지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발전한 부분은 전무하네요.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06/03/23

230 삽화와 해설 레미제라블 - 가시마 시게루 / 박노인 : 별점 2.5점

레미제라블 초기 출판때의 유그판 (1879~1882)의 삽화 180매를 기본으로 레미제라블과 당시 프랑스의 시대상황, 저자 빅토르 위고에 대한 이야기까지 전해주는 굉장히 독특한 책입니다.

일단 이 책의 기본이 되는 그림이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귀스타프 브리용의 목판화라고도 하고 다른 삽화가들의 작품도 여럿 실려 있다고 하는데 디테일도 좋지만 기본적인 캐릭터의 설정이나 상황 묘사가 이야기와 딱 맞아 떨어지고 스타일이 고풍스러우면서도 클래식한 맛을 전해주는 것이 이래저래 쓸데가 많을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표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유명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포스터 이미지로 쓰여 유명한 코제트의 초상이 바로 이 책에 원본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근데 저 빨강칠은 뭐냐...)
또한 레미제라블의 기본 줄거리를 따라가면서도 총 230개의 삽화 하나하나의 각 토막별로 당시 도형수라는 죄수들의 상황이라던가 나폴레옹과 워털루 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왕정 복고와 6월 혁명 까지 레미제라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당시 프랑스의 상황을 다이제스트해서 전달해 주고 있는데 내용들도 한 단락당 2페이지 정도로 짧고 이해하기 쉽게 써 내려간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사실 그렇게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고 있었던 내용인데 읽고 나니 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시기였던 것 같네요.

물론 이런 기둥 줄거리와 사회적, 시대적 배경 이야기 말고도 작품에 등장하는 금전적인 가치를 현재 환율로 바꾸어서 설명해 준다던가, 코제트가 갖고 싶어했던 인형이 어떤 것이었을까, 혁명 당시의 시가전과 바리케이트에 대한 상세한 묘사라던가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탈출하는 파리 지하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 등 잔재미도 가득 넘쳐서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자료용으로 샀을 뿐인데 읽다보니 의외의 재미와 가치가 있어서 놀랐는데 역시 일본이 출판 강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드네요. 국내 번역본도 인쇄는 꽤 깔끔해서 소장가치 있습니다. 다만 제본이 부실해서인지 500여 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인데 중간 중간이 떨어져 나가려고 하는게 안타깝네요...

샘플하나 보여드리자면,
도형수로 복역중 무너지는 돌 기둥을 혼자 지탱하고 있는 장발장에 대한 삽화입니다. 원본은 목판화라 선의 느낌이 훨씬 디테일한데 축소하니 선이 좀 뭉개지긴 하지만 대충의 느낌을 보는데에는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당시 시대와 레미제라블에 관련된 상당한 양의 그림이 실려 있어서 그림만 봐도 충분히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2022/09/03

할거 없어서 몰아본, 요새 핫한 넷플릭스 액션 영화 3편

"그레이맨" 

한줄평 : 돈을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다.

넷플릭스에서 사상 최고액 (2억 달러)을 투자하여 제작했다는데, 솔직히 망작입니다.

거대 조직에 의해 킬러로 키워졌지만 그 조직에게 배신당한다는건 너무 흔한 설정이었고, 악의 축이라 할 수 있는 CIA 부문장이 자기 친구이자 사설 용병단 리더인 로이스를 시켜 식스를 뒤쫓게 하는 전개 역시 특별한 반전을 찾아보기 어려운 탓입니다.

전개에서 설명도 많이 부족합니다. 전 팀장이었던 피츠로이가 뒷통수를 한 번 쳤음에도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던가, 자기 경력이 제일 중요했던 미란다가 식스와 갑작스럽게 힘을 합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미란다가 도와줄걸 확신한 것으로 보였던 식스의 행동 - 로이스의 총구 앞에서 신발 사이즈를 묻는 - 도 이해가 되지 않고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돈을 많이 투자했기 때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에서 특별한 설정이나 이야기를 기대하는건 아닙니다. 그러나 액션 장면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시종일관 액션이 이어지기는 하는데, 화끈함과 기발함 모두 평이한 수준입니다.

그나마 도심을 가로지르는 '트램'과 추격하는 자동차들이 겹치는 액션이 펼쳐지는 프라하 도심 추격 씬은 볼만합니다. 복잡한 무대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트램 지붕에 올라간 식스가 트램이 지나가는 건물 유리창을 통해 트램 내부의 적 위치를 인지하고 총으로 쏘는 장면처럼요. 피츠로이와 그 조카를 왜 구하려고 목숨을 거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조카 클로이 앞에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나타나는 모습은 전형적인 클리셰이기는 하나 꽤 멋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머리를 비우고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데,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치게 거대한 제작비를 썼다는 겁니다. 로저 코만이 이야기했던 대로, 2억 달러를 썼으면 2억 달러를 쓴 티가 확실히 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카터"

한줄평 : 액션은 좋은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는지 모르겠다.

"악녀"등의 작품으로 액션 영화의 장인으로 거듭난 한국 감독 정병길의 신작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각본입니다. 너무 욕심을 부렸어요. 카터가 왜 기억을 잃고 소녀를 찾아 나서는지, CIA는 왜 남의 나라에서 무리한 작전을 펼쳐가면서까지 소녀를 확보하려 하는지, 북한 쿠데타 세력의 목적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되는건 하나도 없습니다. 카터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고, 누구랑 왜 싸우는지도 잘 모르겠으니 말 다했지요.

그래도 독특한 촬영과 액션은 괜찮았어요.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전체를 하나의 씬으로 찍은 듯한 촬영인데, 중간중간 무리수가 보이기는 해도 아이디어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촬영과 결합된 액션도 화끈하기로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레이맨"보다는 화끈하지만, 더 잔혹하고 더 말이 안됩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 작품이에요.

"R.R.R"

한줄평 : 어이는 없지만 재미는 있었다.

인도산 액션 영화입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를 무대로 인도 독립 운동가 두 명 - 빔과 라주- 의 활약이 그려집니다.

가장 눈에 띄는건 액션입니다. 화끈함을 넘어서 과장이 정말 심하거든요. 초반 불타는 강에서 빔과 라주가 위험에 처한 소년을 구하는 장면을 필두로 하여 기존 상식과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액션이 난무합니다. 단 둘이서 활과 창만으로 영국 총독의 군대를 쓸어버리고 총독부 관저(?를 날려버리며 총독마저 없애는 결말의 액션 장면이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여기에 액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영화 특유의 뮤지컬스러운 노래와 군무가 빠지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말이 안되기는 하는데, 재미있게 보기는 했습니다. 두 친구의 고민도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고, 권선징악이 명확한 이야기 구조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우리나라로 따지만 백범 김구 선생이 각시탈로 나와서 일본군을 쓸어버리다가 마지막에 일본 총독마저 없애버린다는 영화인데 이런게 재미가 없을리가 없잖아요? 어이없는 액션도 흥을 돋우는 요소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누구에게나 권해드릴 수는 없지만 취향이 맞으신다면 꽤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2019/02/03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 안나 캐서린 그린 외 / 위즈덤커넥트 : 별점 2점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 4점
안나 캐서린 그린 외/위즈덤커넥트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고전 단편을 소개하는 e-book 레이블 Mystr 컬렉션 시리즈에서 "럭키팩" 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은 합본집 중 한 권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격 명탐정들이 등장하는 고전 본격물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하기에 읽게 되었네요. 고전 본격물은 영원한 제 favorite이니까요. 대부분 저작권이 만료된 저작권 free 판권물로 보이는데 딱 한 편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품들로 보입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경찰 뮐러라던가, 영국의 사립 탐정 존 벨은 탐정도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일 정도입니다. 희귀하다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지요.

그러나 국내에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이유도 알겠습니다. 그냥 작품의 수준이 기대 이하입니다. 탐정들도 매력적이지 않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그냥 몰랐던 탐정, 몰랐던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가치를 느끼기 힘든 시리즈였습니다. 저렴한 가격 외에는 이 시리즈를 구해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황금 총알 

혼 국장에게 펠너 교수의 집사 요한 더멜이 찾아왔다. 교수가 닫힌 서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혼 국장은 조 뮐러 형사와 함께 교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닫힌 문을 열고 살해된 교수의 시체를 발견했다.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였고, 흉기인 총알은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기묘한 상황에서 조 뮐러는 이 사건이 니에프 부인 자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데...

오스트리아 비밀 경찰국 소속의 자비심 많은 천재 형사 조 뮐러 시리즈 단편으로 밀실 살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지금 거의 잊혀진 시리즈가 된 이유는 명백합니다. 재미와 완성도 모두 평균 이하거든요. 핵심 트릭이라 할 수 있는 밀실 살인 트릭은 열쇠 구멍이 넓어서 빛이 새어나오고 안의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총알도 통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이디어인데, 발상은 신선하지만 대단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야기에 잘 녹아든 것도 아니고, 독자에게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지도 않고요.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뮐러가 이전에 맡았던 니에프 부인 자살 사건과의 관련성이 드러나는 부분 역시 작위적이라 아쉽습니다. '우연히' 옷이 찢어진 밀러가 요한으로부터 '우연히' 옷을 빌려입는데, 그 옷은 '우연하게도' 예전에 펠너 교수가 요한에게 선물한 것 중 하나였고, 그 때 '우연히' 트리스탄이라는 거대한 사냥개가 친근함을 표시한 상황에서 그 개의 주인이 니에프라는걸 알게 된다는 식으로 우연이 한 번은 몰라도 두 번 이상은 너무 많으니까요. 차라리 뮐러의 니에프 부인 자살 사건 수사가 함께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니에프를 찾아갔다가 개가 친근하게 구는걸 알고, 그 옷의 주인이 사냥개와 친했다는걸 알게되었다는 전개가 훨씬 나았을겁니다.

불쌍한 범인 니에프가 자살할 시간을 벌어줄 정도로 자비심이 많다는 뮐러 캐릭터 역시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부치지 못한 편지 

그라우만 부인은 경찰을 찾아와 자신의 조카 알버트가 친구 사이더스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썼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체포된 이유는 사이더스가 살해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며, 그의 권총이 흉기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감옥으로 자신을 찾아온 뮐러에게 알버트는 사이더스가 오래전 큰 돈을 훔쳤던 전과가 있어서 자신이 돌보는 아가씨와의 약혼을 거절했으며, 사건이 일어난 밤 사이더스가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방문했다는 증거를 남기려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알버트가 후견인인 엘레노라는 오히려 알버트가 자신과 결혼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뮐러의 수사를 통해 사이더스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된, 친구에게 쓴 편지가 거짓으로 밝혀진 후 - 그에게 친구가 없었기 때문 - 이 모든 것은 사이더스의 정교한 자살 계획이라는 진상이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조 뮐러 시리즈인데 전편보다도 추리적으로는 더욱 별볼일 없습니다. 현대 독자라면 사이더스가 자살 계획을 꾸몄다는걸 너무나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조 뮐러의 독백은 장황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어요. 게다가 자살자가 자기에게 총을 쏘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총을 멀리 던진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러나 정황 증거만으로 누군가를 유죄로 만드는 사법 체계의 모순, 그리고 전과자가 갱생할 수 없다고 믿는 일반론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고발하는 사회파 추리물로서의 가치는 높은 편입니다. 이런 부분은 오히려 시대를 많이 앞서간 느낌이에요. 사이더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고 했던 검찰청장 구스타프 슈미트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고, 알버트는 심장병으로 결국 몇 개월 뒤 죽는다는 씁쓸한 결말까지도 현대적이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했던 고전 본격 추리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지만, 기대 외의 사회파 추리물적인 가치와 현대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서 이전 작품보다는 좀 더 높이 평가받을만 합니다. 그래도 평균 이하 작품이라는건 변함은 없지만요...

아이비 코티지 살인 사건

예술가 개빈 킹스코트가 그의 저택 아이비 코티지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킹스코트는 머리에 난 상처로 죽었다. 현장을 방문해서 나무를 몇 그루 훔치려 했던 정원사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상황에서 "나"는 사건을 수사한다는 지인 마틴 휴이트와 함께 현장을 찾는데...

셜록 홈즈와 그의 라이벌 시대인 고전 본격 단편물 황금기 탐정 중 비교적 알려진 편인 사립 탐정 마틴 휴이트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킹스코트가 묶었던 하숙집에서 그가 꾸몄던 나무 장식품들을 완벽하게 파괴하고 도망친 하숙인들 사건과 킹스코트 살인사건이 엮이는 전개가 꽤나 깔끔합니다. 하비 찰리트가 다이아몬드를 방에 숨긴 후, 킹스코트가 그 보석을 찾아내었다는 마틴 휴이트의 추리도 그럴싸하고요. 특히 도둑들이 킹스코트가 자고 있지 않을 때 만나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그들이 찾고 있는 건 서랍장 안에 들어갈 만한 작은 물건이었다는 설명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물론 옛 하숙집 주민 중 한 명이 찰리트라는게 밝혀진다면 사건이 쉽게 해결되었으리라는 점, 그리고 하비 찰리트의 급작스러운 등장과 사망은 완성도를 조금 떨어트리는 요소입니다. 그래도 별점은 2.5점은 충분한 무난한 작품이에요. 후대에도 잊혀지지 않은 시리즈와 작품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연쇄 보석 도난 사건

제임스 노리스 경이 마틴 휴이트를 자신의 렌튼 크로프트 저택으로 초대했다. 이유는 저택에서 벌어진 보석 절도 사건의 해결을 위함이었다. 11개월 전 부터 무려 3건의 연쇄 보석 도난 사건이 일어났는데 보석은 창문 외에는 모든 문이 잠긴 방 화장대에서 사라졌고, 남은 것은 불에 탄 성냥 하나 뿐이었다.
경은 방이 어두웠을 때 도둑이 성냥을 켜고 서둘러 화장대를 살핀 후 보석을 훔쳐 달아났을거라고 말했지만, 두 번째 사건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훨씬 귀한 반지를 남겨둔 채 싸구려 브로치가 도난당했다는 모순이 있었다.
그리고 
고가의 브로치가 사라졌던 세 번째 사건에서는 주인이었던 경의 처제가 방을 비운 것은 5분도 되지 않고, 창문은 굳게 닫혀있었으며 문은 열려 있었지만 바로 옆이 경의 딸 방이라 누군가 움직였다면 소리가 들렸어야 했다. 오직 남아있는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타버린 성냥 뿐이라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오래전 하서 추리문고 단편 모음집을 통해 읽었었던 걸작 "렌턴관 도난 사건"과 같은 작품입니다. 거의 밀실에 가까운, 사람은 드나들 수 없는 방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마틴 휴이트의 활약이 정말로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단서는 불에 탄 성냥개비 뿐이고요.
현장은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 불을 밝히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는게 드러난 후 성냥개비의 용도에 주목하여 추리하는 과정도 설득력 높고, 여기서 "앵무새"가 범죄에 사용되었다는 진상도 아주 그럴듯합니다.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 - 약간의 틈을 이용하여 방에 침입할 수 있는 건? 왜 한 번에 하나의 물건만 훔쳤는지? 왜 물건의 가치를 알 지 못했는지? 등등 - 도 상당히 공정한 편이라 이 정도면 홈즈 시대 고전 본격물 단편 중 최상급 수준의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이미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으며, 이런 저런 추리 퀴즈에서 트릭이 소개되어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점인데 이는 시간이 오래 흐른 탓일 뿐 작품의 잘못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틴 휴이트라는 탐정의 매력이 떨어지는게 이 작품이 지금은 많이 잊혀진 이유가 아닐까 싶기는 하군요. 이대로 잊혀지기는 아까운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둥근 방

존 벨은 친구인 변호사 에드콤비로 부터 웬트워스가의 유일한 상속인 아치볼드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진상 조사를 부탁받았다. 

아치볼드가 머물렀던 여관 주인 등의 증언으로 아치볼드의 방에서 유령이 나오며 그는 공포 때문에 죽었다는 소문이 드러났다. 존 벨은 수사를 통해 캐슬 여관에서 세 번이나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는걸 알아냈고, 직접 캐슬 여관에 투숙할 계획을 세웠다. 캐슬 여관 주인 가족은 유령이 나와서 세 명이나 죽었다고 강하게 경고했지만 그는 결국 투숙에 성공했고, 하룻밤을 무사히 버텼다.
다음날 원래 제분소였던 여관 건물을 조사하던 존은 여관 주인 바인드로스와 부딪힌 뒤,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두번째 밤을 보내다가 방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런던의 유명 탐정 존 벨 시리즈입니다. 존 벨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는게 독특합니다. 대부분의 셜록 홈즈의 라이벌 시리즈물은 화자가 별도로 있었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읽다보니 탐정 스스로가 직접 위험에 뛰어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라 1인칭으로 쓰여진게 이해는 되더군요. 무엇보다도 '회전하는 방'에 갖힌 묘사에는 아주 딱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약간은 고전 모험물 느낌도 났습니다. 스케일이 큰 기계 장치 트릭 역시 이런 느낌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고요.

하지만 제분소 건물, 회전하지 않지만 가동 가능한 물레방아 등의 조건이 무언가에 사용되었다는 내용은 좀 뻔했으며 회전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 아무 상처없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고속 회전이라면 원심력으로 어딘가에 부딛혀서 상처가 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작품 속에서처럼 완전 범죄가 가능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또 무언가 조작이 있는 방에서 기묘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이 직접 방에 뛰어들어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내용은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등장하는 이야기라 식상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시대를 뛰어넘을 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말하는 시바신

존 벨은 로리에 박사로부터 시바신에 빠진 에드워드 더시거라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더시거의 조카딸 헬렌은 그가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조카 재스퍼 베그웰과 결혼하려는 이유가 삼촌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이상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더시거가 벌이는 시바 신상 앞에서의 기괴한 의식을 목격한 로리에 박사는 그가 미쳤다는걸 확신한 나머지, 존 벨에게 무언가 음모가 있는게 아닌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강령술사로 변장하여 로리에 박사와 함께 더시거의 저택으로 향한 존 벨에게 베그웰은 더시거 삼촌이 미쳐서 헬렌을 죽이려 한다고 경고했고, 더시거 역시 존 벨에게 시바 신이 자신에게 끔찍한 일을 명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새벽 헬렌은 몰래 존 벨을 만나 재스퍼를 만난 두세달 전 부터 삼촌이 이상해졌다며, 재스퍼가 재산을 노리고 이런 일을 벌인게 아니냐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타원형 회랑에서 소리가 전달되는 구조를 응용한 과학 트릭이 등장합니다. 특정 위치에서 나는 소리가 회랑 반대쪽 특정 위치에서만 들린다는 것으로, 저도 언젠가 기사에서 보고 트릭에 써 먹어야 겠다! 고 생각했었던 내용이라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수십년 전 작품에 사용된지는 꿈에도 몰랐는데,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나 봅니다.

하지만 과학적 트릭이 사용된 것 외의 작품의 완성도, 가치는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소리의 "촛점"이 맞아야만 들린다고 하더라도 더시거 혼자 환청을 들은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이 큽니다. 존 벨이 단 몇 시간의 조사만으로 우연이더라도 이 소리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전개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을 더욱 약화시키고요. 또 설령 환청을 들었다쳐도, 더시거 정도 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광기에 곧바로 사로잡혔다는 것 역시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과학적 트릭 외에는 건질게 없는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저라면 좀 더 이 설정을 잘 활용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소모된게 아까울 뿐입니다.

동굴 속 유령

바이올렛 스트레인지는 뮤지컬을 보다가 특별한 한 명의 남자를 보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 너무나 뚜렷한 우울함이 나타나 그 슬픔이 그녀의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 남자 로저 업존이 바이올렛에게 사건 하나를 의뢰했다. 도박 때문에 가정이 파탄날 위기에 몰려 이혼 절차를 진행하던 중, 아내가 침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죽음의 원인으로는 심장 질환이 거론되었지만, 시체 손목이 멍들어 있던 탓에 로저 업존에게 이런저런 추문이 덧붙여져 그는 거의 사회적으로 매장된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바이올렛에게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털어놓는다. 첫 번째는 아내가 죽은 날 아이의 양육권을 걸고 아내와 도박을 벌였다는 것, 두 번째는 그녀에게 패배한 후 도박을 벌이던 해안 지대 동굴에서 홀로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얼마 전 동굴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아내를 묶어 죽음에 이르게 한 후 시체를 옮겨 놓았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여성 작가가 쓴 작품답게 복잡하고 여성스러운 심리 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정말이지 별로인 작품입니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로저 업존의 증언이 대부분이며 바이올렛은 단 하루, 저택을 방문한게 전부입니다. 현장 검증이나 별다른 수사는 이루어지지도 않아요.
바이올렛의 분장쇼 한 번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도 어처구니 없지만 이 분장쇼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아서 추리물이라고 부르기 민망합니다.

아울러 충직한 아버지의 하인이 진범이었다는 진상도 그렇게 와 닿지 않습니다. 누가 범인이든 어차피 별로 중요한 상황도 아니고요. 솔직히 아버지 로저가 범인이었다 하더라도 이야기 전개와 결말에 별 차이가 있지 않았을겁니다. 곧 죽을 사람이니까요.

탐정이 추리를 하지 않고, 진범이 누군지 중요하지도 않은 작품이 좋은 추리소설일 수 없겠죠. 완벽하게 건질게 없는 워스트 중의 워스트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눈먼 의사, 아내, 그리고 시계

하스브룩 씨는 5년 전 자신의 집 안에서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공격당해 총에 맞아 죽었다. 자기 전 집 안의 블라인드와 셔터는 철저하게 내려졌던 상태였다. 꾸준히 수사를 이어온 사립탐정 "나"는 당시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맹인 의사인 재브리스키가 하스브룩을 죽였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는걸 알아낸다. 그러나 그의 미모의 아내는 그가 망상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결국 재브리스키는 경찰에 출두하지만 동기가 없다는 그의 말과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고, 재브리스키는 스스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걸 경찰에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 뛰어들지만 과녁인 시계를 품은 아내를 쏘고 말았다...

사립탐정인 "나"라는 화자에 의한 사건의 첫 수사 보고서와 바이올렛 스스로 "나"로 지칭하고 쓴 수사 보고서가 혼재되어 전개되는 구조가 독특합니다. 질투에 사로잡힌 재브리스키가 집을 잘못 알고 하스브룩 씨를 쏘아 죽였다는 진상도 괜찮고요. 이를 위해 재브리스키는 맹인이며 사건 당일 극도의 흥분에 사로잡혔다는 묘사를 통해 그가 집을 잘못 찾은 이유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과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도 술에 취했을 때 아파트를 착각해서 다른 아파트 현관문에 먹히지도 않는 비밀번호를 여러번 눌렀던 적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더군요.

하지만 진상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독자에게 제공되는 단서는 거의 없습니다. 재브리스키 부인에게 추근대던 남자가 현관문을 통해 도망쳤다는 정도? 그 외에 아무도 믿지 않는 재브리스키의 주장(권총은 길거리에 버렸는데 누가 주워간 것이다 등)이 사실이었다는건 너무 황당하고요. 또 바이올렛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이래서야 탐정 없이 재브리스키의 1인극으로 그의 자백으로 이야기를 끝맺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좋은 설정, 재미있는 사건을 억지스러운 전개와 탐정 캐릭터의 개입으로 망쳐버린게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