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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1

그리고, 또 그리고 1~5 - 히가시무라 아키코 / 정은서 : 별점 4점

그리고, 또 그리고 1 - 10점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애니북스

일본의 순정만화가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자전 만화입니다.

저는 만화가가 그린 자기 이야기는 무조건 재미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화의 길"이라던가 거장의 단편 "종이 요새"과 같은 고전은 물론, "아오이 호노오", "만화가 상경기",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 교실" 등 대부분의 작품은 제게 실망을 준 적이 없으니까요. 전기 만화인 "블랙잭 창작 비화", 아니면 만화가가 주인공인 "호에로 펜", "바쿠만"이나 "만화가의 사랑"같은 픽션들도 본전치기 이상은 충분했고요. 

이 작품도 제 지론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입니다.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작입니다.

고등학교에서 미대를 진학하여 졸업하고, 순정만화가로 데뷰하기까지의 삶에서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화실 선생님인 은사 히다카 켄조 선생과의 이야기를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그리는데, 크게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대를 목표로 했던 미야자키 소녀 아키코의 입시 분투기, 대학에서 방탕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며 만화가를 꿈꾸던 시기의 이야기, 만화가로 데뷰한 뒤 켄조 선생이 폐암으로 죽을 때 까지의 이야기로요. 히가시무라 아키코라는 작가가 미대에 진학하여, 만화가를 꿈꾸다가 데뷰하여 만화가가 되는 과정에 중요했던 인생의 변곡점만을 콕 찍어 그려낸 거지요.

이 중 초반부를 담당하는 입시 분투기와 헐레벌레한 대학 생활 이야기는 굉장히 웃겼습니다. 수험 공부가 아니라 문제 푸는 비결을 터득하여 고득점을 기록했다던가, 단지 게가 먹고 싶어서 가나자와 미대에 지원했다던가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이 많은 덕분이에요. 입시 대응 전략은 "수험의 제왕"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제가 미대를 다녔기에 더 와 닿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이야기를 잠깐 풀자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빠져있었던 고등학교 당시의 저는 갑자기 미대 진학을 결심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 겨울 방학에요. 그런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내렸던 충동적인 결정이었지요. 그래서 1년도 안 되는 짧은 미대 입시 준비 기간을 가졌었지만, 정말 운 좋게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바로 입학할 수 있었지요. 평생 운을 거진 다 끌어 쓴 것 같아요. 그러나 정작 대학 입학 후에는 그 꿈을 바로 접었습니다 너무 힘들다는 걸 금방 알아버렀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내내 놀았던 기억 밖에는 없네요. 충동적인 대학 선택과 유흥과 음주밖에 기억에 남지 않은 대학 생활 모두가 이 책에 나오는 히가시무라 아키코와 똑같습니다... 미대에 대해 작가가 말한 아래의 비판은 정확합니다! 미대생 학부형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대학 졸업 이후 나름의 좌절을 겪다가 만화가가 되는 과정은 담담하게, 진지한 톤으로 전개됩니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많은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당시 자기는 핑계만 대며 도망치기만 했다는 아키코의 후회섞인 고백이 특히 그러했어요. 저도 많이 반성하게 만드네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줄 알고 대했던 그림 바보 켄조 선생과, 현실과 타협한 속물인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갈등도 재미 요소였고요. 

사실 미대 진학에 성공한 뒤에도, 켄조 선생이 아키코에게 집착하여 그림을 강요한건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키코가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건 은사 켄조 선생님 덕분인건 분명해요. 수백장, 수천장의 그림을 그렸고, 그림과 만화와 삶에 대한 고민을 어린 나이에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줄 알았던 그림 바보인데, 그 순수함과 열정은 정말 놀랍고, 이런 분을 어린 시절에 만나 좋은 쪽으로 영향을 받은 아키코가 너무나 부럽기만 합니다. 켄조 선생이 폐암으로 별세하면섣, 끝까지 '그려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도 큰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켄조 선생님 장례식까지 담담하게 그려나가다가 마지막에 눈물샘을 터트리는 전개도 효과적이었고요. 죽는다는걸 알고 읽기는 했지만, 정말 뭉클했어요.

켄조 선생이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아키코를 휘둘렀고, 아키코도 지나치게 죄의식이나 후회를 갖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묘사는 다소 아쉽지만, 재미와 성장기 측면에서, 그리고 감동 측면에서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2015년 만화 대상을 수상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별점은 5점입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특히 미술 대학 쪽과 관련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도베르만 형사를 그렸던 하라마츠 신지의 "극도 만화가 이야기"는 제 지론이 틀렸던 실패작이었습니다. 만화가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그려낸 자전 만화인건 분명한데, 뒤로 가면 갈 수록 억지스러운 마쵸 세계관 설정이 삽입된 기묘한 판타지가 되어버렸지요.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졸작으로, 연재도 조기 종료된 듯 한데 다행히 우리나라에 정식 발매되지는 않았습니다.

2023/02/11

만화가족 - 오오시마 토와 : 별점 2점

[고화질세트] 만화가족 (총2권/완결) - 4점
Towa Oshima/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여고생>>의 작가가 만화가 가족인 자기 가족을 소재로 그려낸 일상 만화.

저는 이전 다른 리뷰에서도 말씀드렸었지만 '만화가가 나오는 만화는 모두 재미있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별로 실망한 적이 없었어요. 비교적 최근에 읽었었던 <<극도 만화 이야기>>라는 최악의 실패작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만화는 일상 개그로 유명한 작가가 그린 작품이라 그래도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소재도 굉장히 흥미롭잖아요? 일가족 4명, 아버지와 어머니, 딸 둘 모두가 만화가인 가족 이야기라니! 만화가 부부는 많이 있지만 이 정도로 만화가가 많은 가족이 또 있을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색적인 만화가 가족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지 못한 탓입니다. 오오시마 야스이치가 카와시마 레이코를 처음 만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가족이 아니면 모를 이야기라 재미있었고, 엄마가 만화가를 잠시 은퇴했다가 레이디스 코믹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이야기, 여러가지 도구 사용을 두고 가족끼리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는 이야기는 만화가 가족이라서 알 수 있었던 이야기라 생각되어 만족스럽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는 거에요.
또 저는 <<일격전 (권법소년)>>과 <<바츠 앤 테리>>, <<특종! 사건 현장>>, <<탐정의 아내>> 등을 좋아했던 오랜 오오시마 야스이치 팬이기에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를 바랬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실망스러운 점이었어요. 그나마도 게임에 진심이었다던가, 딸의 만화를 앞에서는 비판해도 뒤에서는 관심깊게 보고 있었다는 류의 잔잔한 내용들 뿐이며 임팩트있는 에피소드는 파티 현장에서 오오시마 야스이치가 쓰러진 이야기밖에는 없었습니다. 레이디스 코믹으로 유명하다는 엄마 카와시마 레이코는 아이를 구타했던 육아 방식이라던가, 레이디스 코믹을 그릴 때의 독특한 만화 창작 방법 등 비중이 더 큰 편이기는 하나, 잘 모르는 작가인데다가 레이디스 코믹은 전혀 관심이 없는 장르라 와 닿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은 4컷 만화만 연재했고, 완전한 프로이자 현역은 아닌 듯 해서 비중도 작고 관련 에피소드도 별로 없어서 언급할게 없네요.
2권은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만화가 오오시마 토와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라 작품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고요. 데뷰 과정과 게임 만화를 그릴 때의 고충들, 에로 만화가로의 각성과 만화 창작 과정의 고뇌를 다룬 에피소드, 그리고 CD와 애니메이션 제작에 얽힌 에피소드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실감나고 재미도 있었습니다만, 이래서야 <<만화가족>>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대단한 재미를 주지도 않고, 내용도 밋밋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0/04/08

굶어죽을 각오 없이 일본에서 만화가 되기 - 배준걸 : 별점은 2점이지만 파이팅!


우연찮게 보게된 한국인 만화가 지망생의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그린 에세이 만화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 결심한 순간부터 데뷰할때까지의 이야기가 한 페이지에 하나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웹툰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만화로서의 재미는 느끼기 어려웠어요. 만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던가 극심한 생활고와 아르바이트, 어시 생활에서 데뷰까지의 이야기가 정말로! 굉장히! 드라마틱한데도 짤막한 웹툰 형식 탓에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탓이죠. 솔직히 소재가 좀 아까울 정도였어요. 때문에 단지 재미만을 평가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고 싶은 만화가 지망생을 위한 생활 밀착형 정보지 역할에는 충실하기에 관심있으신 분들에게는 별점 이상의 가치를 전달해 줄 것으로 생각되네요. 무엇보다도 정말로 데뷰에 성공하게 된 주인공의 노력과 근성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그나저나 한 10여년전 만났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해서 대학도 일본어학과를 진학하고 요요기 학원으로 유학까지 갔던 옛 동료가 갑자기 떠오르는군요. 그 친구는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2017/01/27

만화의 길 (망가노미치) 1~4 - 후지코 후지오 A : 별점 3점

만화가 후지코 후지오 컴비(그 중에서도 A인 마가 미치오)를 모델로 한 장편 만화입니다. 전 4권짜리 애장판으로, 전체 연재분에서 "입지편", "청운편", "야스나로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권당 9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통해 마가 미치오와 사이노 시게루가 만화가를 꿈꾸다가 데뷰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지만 스스로의 과욕과 실수로 쓰디 쓴 좌절을 맛본 후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과정까지가 치밀하게 그려집니다. 구하기는 오래 전에 구해 놓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올해 들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방대한 양이라 독파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네요.

저는 "만화가가 나오는 만화는 재미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대표격인 "바쿠만", "아오이 호노오" 외에도 개그 만화인 "호에로 펜", "만화가의 사랑", "만화가와 어시스턴트", "월간 순정 노자키군" 등 만화가가 나오는 만화는 뭐 하나 빼 놓기 어려울 만큼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라 히데노리의 "언제나 꿈을"은 조금 취향과 다르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고요.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다른 작품들 못지 않게 재미있습니다! 어린 컴비가 만화가로 데뷰하고 연재작을 이어간다는 부분은 "바쿠만"에 가까운데, 거장의 실제 경험이 뒷받침된 덕에 큰 설득력을 갖추었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이자 장점입니다. 물론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다케시 컴비도 경험이야 있었겠지요. 허나 후지코 후지오 A는 본인 스스로 만화의 거장일 뿐더러 초창기 시절을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 토키와 장을 무대로 과거에 현대 일본 만화 거장들과 함께 활약을 펼쳤던, 만화 역사에서도 특별하면서도 역사적인 인물이니 비교가 어렵습니다.

함께 소개되는 후지코 후지오 컴비 및 토키와장 멤버들의 당시 작품들도 아주 볼만합니다. 특히 후지코 후지오 컴비의 초기작은 집대성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충실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학생 때 습작인 "작은 권총왕", 후지코 후지오 컴비의 단행본 데뷰작 "유토피아 최후의 세계 대전", 최초의 잡지 개제 "서부의 어딘가에", 최초의 의뢰이자 별책인 "3인 형제와 인간 포탄", 최초의 연재 "4만년 표류", 초기 창작 방법을 엿볼 수 있는 "백마가 온다", 상경 전 마지막으로 그린 의뢰작 "선풍도시", 세미 다큐멘터리 터치로 그린 "해발 6천미터의 공포(히말라야의 설인)"와 "남부전선 이상 없다", 상경 이후 최초로 각자 동시 진행한 소년클럽 의뢰작 "콘크리트 정글"(후지코 후지오 A)와 만화 동화 "사자와 꼬마 사슴", 상경 후 첫 정식 연재작 "해저인간 메바루", 처음으로 가혹한 프로의 일정에 도전하게 된 "치비와카마루", "장미와 반지", 이후 연재작 "밤의 왕자님", "세계와 싸운 소년", 땜빵으로 그린 첫 스포츠 만화 "철권의 분노" 등 수많은 작품이 빠짐없이 소개됩니다. 장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편 감상이 가능한 수준이고요.
컴비의 작품 외에도.신만화당 합작물인 "4개의 시계", "도감 시리즈" 등도 충실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작품 자체가 후지코 후지오 컴비의 활동을 다루기에 단순히 소개로 끝나지 않고 작품들이 어떤 과정에서 탄생되고 완성되었는지 자세하게 알려주는데 이 역시 재미있습니다. 마가 미치오의 개인 경험을 토대로 그려내었다는 "꼬마 권총왕", 급작스러운 폭설로 놀랐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살아있는 눈 괴물(?)을 그려낸 "백마가 온다", 영화 "아스팔트 정글"을 감명깊게 본 후 갱스터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여 작업한 "콘크리트 정글" 등 처럼요. 모든 작품 시작 전 관련 노트를 만들고 줄거리와 캐릭터 설정을 적어놓는 창작 과정도 꽤 그럴듯했습니다. 앞으로 저도 따라해 봐야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다른 등장 작가들의 작품도 풍성합니다. 유명 작가의 등장 시 짤막한 소개를 곁들이는 정도가 많지만,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작품도 제법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정글 대제"입니다. 두 컴비가 처음 데즈카 오사무를 만날 때 신연재물로 그리기 시작하고, 후일 마가가 급한 도움 요청으로 마지막화의 어시스턴트로 참여한다는 식으로요. 아마도 실화겠지만, 굉장히 드라마틱한 내용이었다 생각됩니다.

또 "만화 소년", "모험왕", 등등 당대 유수의 잡지들과 출판사, 편집자 들도 다수 등장하여 극의 흐름에 동참하는데, 이러한 점은 "바쿠만"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 속 편집자는 마감 독촉 및 원고 수령 밖에는 딱히 하는게 없다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그리고 짧은 기간 (약 2년?)이지만 마가의 신문사 근무 중 진행한 각종 일러스트와 광고 도안, 만화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림 실력 및 디자인 감각이 정말 빼어나더라고요. 이게 정말 갓 고등학교(작중 중학교)를 졸업한 신입의 솜씨라니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확실히 거장, 천재의 편린이 엿보이는 작업물들이었어요. 만화가 아니라 이쪽, 산업 미술 쪽으로 매진하였어도 충분히 디자인 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당대 (1950~60년대)를 잘 그려낸 여려가지 디테일들도 좋습니다. 영화가 유일한 취미로 보이는 컴비가 감상하는 여러가지 영화들("베라크루즈", "아스팔트 정글", "위대한 환영", "제 3의 사나이", "너의 이름은"....),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출퇴근과 도쿄 상경, 전화가 드문 시절의 전보와 공중전화를 이용한 연락, 산보 등을 통해 보여지는 당시의 거리 풍경들 모두 굉장히 흥미로왔습니다.
당시 두 컴비의 여러가지 일상 생활 묘사도 재미있습니다. 상경 전 학창 생활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시작하여 첫 하숙집 좁은 방에 대한 묘사, 매일매일 프랑스 빵과 우유 등으로 때우는 식사, 가끔 나가는 산책 등 모든 부분이 디테일하면서도 푸근하고 따뜻하게 그려지거든요. 악역은 없이 멘토인 데즈카 오사무와 도키와장의 큰 형님격인 테라오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컴비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난 사람으로 보이는 등 이야기도 모두 푸근하고 따뜻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중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을 들 수 있습니다.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옹호해주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라는 조언을 해 주는 선생님이라니!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첫번째 하숙집의 주인인 마가의 백부도 역시 만화는 잘 모르지만 컴비의 꿈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토키와장의 보증금으로 거금 3만엔을 선뜻 빌려주겠다고 하고요.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조금은 시대 착오적인 작화야 어쩔 수 없다쳐도, 원고 마감에 맞추지 못하는 사고를 치는 장면이 자주 반복되어 지루합니다. 주로 꿈이긴 하지만요.
청춘물이기도 해서 마가의 상대역 여성을 등장시키는데 뭔가 관계가 이루어질 것 처럼 떡밥만 던져놓고 제대로 된 드라마를 그리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이렇게만 등장할거면 분량 낭비에 불과하지요.

그래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한국에 번역되어 출간될 가능성은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읽다보니 이 때가 축복받은 시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록 먹고 살기는 좀 힘들고 척박한 시기지만 젊은 혈기와 열정은 보답받는, 잡지사에 원고를 보내거나 들고 가면 원고가 실리고, 급하게 땜빵이든 뭐든 어떻게든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시대로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수요에 비하면 공급이 부족해 보였기에 열정만 있다면 어떻게든 데뷰 자체는 좀 쉽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무리 재미있는 만화라 하더라도 데즈카 오사무 혼자 6~7개 잡지 모두에 연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니까요. 두 컴비는 20대 초반, 테라오는 20대 중반, 데즈카 오사무도 20대 후반에 불과한 청년들인데 당대 만화계를 짊어진다는 설정을 볼 때 정말로 만화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시대적인 운으로 둘의 성공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철야 등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꿈과 열정을 잃지 않는 노력, 그리고 결과물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런 정보도, 어시스턴트 한명 없이 한달에 100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스토리부터 전부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만 그려내는 말도 안되니까요. 초기작의 스토리가 영화나 서적에서 따온 것이 많은 이유도 아이디어 구상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는 환경 탓이었을 테고요. 

비슷한 시기 활약했던 다른 신만화당 멤버들이 대체로 잊혀졌지만, 후지코 후지오,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이 거장으로 남은 이유는 결국, 꾸준히 히트작을 내 놓는 실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노력하는 천재가 시기를 잘 만났다'는 것이 정답인 셈입니다.

2018/08/15

해골 서점직원 혼다씨 1,2 - 혼다 : 평균 별점 2.5점

해골 서점직원 혼다씨 1 - 6점
혼다 지음/미우(대원씨아이)
해골 서점직원 혼다씨 2 - 4점
혼다 지음/미우(대원씨아이)

"만화가가 주인공인 만화는 다 재미있다!" 라는, 제가 만든 말이 있습니다. 허언은 아닙니다. 거장 후지코 후지오의 "만화의 길", 지금은 이름조차 잊혀진 쿠스노키 케이의 "만화가의 사랑", 데즈카 오사무의 건투를 그린 "블랙잭 창작비화", 처절한 생존기인 "만화가 상경기", 요절복통 "월간 순정 노자키군", 전설의 막장 만화가 신조 마유의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 교실", 이 바닥의 금자탑 중 하나인 시마모토 가즈히코의 "호에로 펜"과 "푸른 불꽃 (아오이 호노오)", 점프 방식 스타일 만화가 만화인 "바쿠만" 등등 제가 읽었던 대부분의 만화가 만화가 재미있었거든요.
이와 비슷하게 "서점이 무대인 만화는 다 재미있다!" 라는(역시나 제가 만든) 말도 있습니다. 국내 소개는 되지 않았지만 구제 반코의 "엉망진창 서점" 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서점 숲의 아카리" 등도 모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작품은 일본의 모 만화 전문 서점에서 일하는 혼다 씨가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린 일종의 전문가 일상툰 (에세이 코믹)으로 저의 명제에 그런대로 부합하는 작품입니다. 최소한 1권만큼은 기대에 값하거든요.

다른 서점 무대 작품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주인공 혼다씨가 일하는 곳이 "만화 전문" 서점이라는 점입니다. 상당히 크고 유명한 서점인지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오고요. 그래서인지 특별한 작품을 원하는 특별한 손님과의 에피소드가 주요 재미 요소입니다. 초절정 핵미남 외국인이 말도 안되는 성인 동인지를 찾는 에피소드, BL만화를 원하는 외국인 손님들과의 에피소드 등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일본 BL의 파괴력은 정말로 상상 초월이더군요! 외국인들을 묘사한 방식도 독특하면서도 특징을 잘 잡아내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요. 추천을 원하는 쾌활한 외국인에게 "팬티 가면" 을 권해주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소개와 추천, 탐색의 와중에 여러가지 만화에 대한 정보도 넘쳐나는데 동인녀들이 찾으면 소리를 지를 정도의 인기작가라는 오게레츠 타나카 선생님은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그럼 여기서 질문, "감동적인 순정만화", "길어야 3권까지", "40대 남성도 즐길 수 있는" 만화를 찾는 손님이 구입한 작품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베르제르크"입니다! 꺄오! 정말이지 1권은 별점 3점이 아깝지 않아요!

하지만 2권부터는 재미가 덜합니다. 손님과의 에피소드는 야쿠자가 책을 사서 교도소로 배송하는 정도만 재미있었을 뿐 나머지는 서점 안에서 벌어지는 업계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인데, 대체로 좋은 쪽으로만 소개되는 탓입니다. 서점 직원들끼리의 회식을 그린 에피소드에서 재미가 좀 터지나 싶었는데, 역시 ''재미있개 디스하는 능력이 없다'고 빠져나가 버릴 뿐이고요. 책 뒤의 특별 보너스 만화를 읽어보니 1권에서의 "접객 연수" 에피소드 때문에 문제가 생겨 콘티를 점장에게도 사전에 확인받게 되었다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인 듯 싶습니다. 어디나 검열이 문제지요. 

그래서 2권의 별점은 2점도 과하기에 두 권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점장의 사전 검열 절차가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더 구입해 읽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1권만 읽어보셔도 충분하실겁니다.

2023/04/13

도라에몽 이야기 - 무기와라 신타로 / 이은주 : 별점 1.5점

도라에몽 이야기 - 4점
무기와라 신타로 지음, 이은주 옮김/대원씨아이(만화)

'후지코 후지오'는 만화 소년 후지모토 히로시가 절친 아비코 모토오와 함께 만화가 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필명입니다. 이 둘의 데뷰와 파란만장한 연재 생활, 그리고 성공은 <<만화의 길>>과 그 후속작을 통해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후지모토 히로시가 아비코 모토오와의 합작을 중단하고, 후지코 F 후지오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직후부터 그의 어시스트로 일했던 무기와라 신타로가 그린 추억담입니다.

무기와라 신타로는 어린 시절부터 도라에몽과 후지코 후지오를 동경하여 만화가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후지코 후지오 상'이라는 만화상에 입선한 뒤, 대학을 중퇴하고 후지코 프로의 첫 번째 어시스턴트로 입사합니다. 그 뒤 여러가지 만화 작업에 참여하면서 치프 어시스턴트까지 올라가는데, 후지모토는 병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진행 중이던 유작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는 후지코 프로의 전력을 모아 완성하고요. 나머지 원고가 유품에서 발견된 덕분이었죠.
이런 이야기를 치프 어시스턴트답게 도라에몽 작화 그대로 그려낸 만화가 100여 페이지, 그리고 십여 페이지 남짓한 사진 자료가 수록된 구성입니다.

<<만화의 길>>을 재미있게 읽어서 구입했는데, 솔직히 큰 재미는 없었습니다. 만화가 후지모토 히로시를 영웅처럼 생각하는 제자가 그렸기 때문입니다. 무기와라 신타로와 후지모토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도 모두 미담 뿐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신타로의 원고를 꼼꼼하게 보고 평가를 해 주었다던가, 다양한 세계를 보고 자극을 받으라며 LD로 영화 감상회를 열어준다던가 연극 공연도 데려다 주었다는 등으로요. 후지모토 선생님은 굉장해! 일색인데다가 딱히 극적인 요소가 있는 이야기도 아니라서 별 재미가 없었어요.
도라에몽의 세로 줄무늬는 톤이 아니라 펜선이고, 도라에몽의 세계가 만화가 후지모토의 세계와 어느정도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 - 진구네 집 검은 다이얼 전화가 버튼식 무선 전화로 바뀐 이유는 후지모토 집 전화가 바뀐 덕분 - 는 재미있었지만 극히 일부에 그칩니다. 제가 기대했었던건 솔직히 이런 이야기였는데, 분량이 너무 적었어요. 제목에 낚인 기분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대단한건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도라에몽의 팬이더라도 딱히 권해드릴 만한 만화는 아니었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가격도 비싼 편이니까요,

2014/08/05

만화가 상경기 - 사이바라 리에코 / 김동욱 : 별점 3점

만화가 상경기 - 6점
사이바라 리에코 지음, 김동욱 옮김/에이케이(AK)

처절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개그 만화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성격의 작품입니다. 저자인 사이바라 리에코가 도쿄 상경 후 만화가가 되기 이전까지의 가난하고 비참했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데, 상당히 깨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만화가가 나오는 만화"는 다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생각에 여전한 확신을 갖게 해 줍니다.

성격, 쉽게 그린 듯한(그러나 사실 정말 잘 그린 그림입니다) 작화, 그리고 일상적인 분위기는 "자학의 시"가 연상되는데 차이점이라면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이지요. 같은 성격의 자전적 이야기인 "실종일기"와 비교하면 놓여진 상황이 더욱 처절하고요. 아울러 미니스커트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했던 경험담은 신조 마유의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교실"이 살짝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다만 신조 마유는 화려한 밤문화 생활을 영위했던 것에 반해(지명 넘버 원이었다고 했던가...), 사이바라 리에코는 이보다 더 막장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어렵게 보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요.
하여튼, "만화의 시간"에서 이시카와 쥰이 말했던 '파란만장한 인생 경험은 만화가에게 굉장히 큰 무기'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삶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잠깐 조사해보니 원래 가정도 만만치 않은 환경이었더군요. 학대를 받은게 아니라는건 좀 다행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너무 처절하고 우울하다 보니 개그만화라는데 도대체 어디서 웃어야 할지도 감을 잡기 어려웠고, 어렵던 생활을 청산하는 과정이 너무 쉽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데뷔까지는 어렵지만 일단 작품이 실리기 시작하니 이후는 일사천리였다는 식이라서 앞부분의 강한 임팩트가 희석되는 탓입니다. 이것도 신조 마유와 비슷하네요.

그래서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3점 정도? 작가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아니라면 그림도, 내용도 모든 분들께 어울릴 작품은 아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분들께는 한 번쯤 권해드릴 만합니다.

그나저나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일본에서도 미술 계열로는 명문이라 할 수 있는 "무사시노 미술대학"을 80년대에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데, 거품경제 전성기에 명문 미대를 졸업하고도 먹고살 게 없어서 호스티스를 했다는 점은 좀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혹시 이유를 아시는 분?

2009/11/10

최근 읽은 개그만화들 짧은 감상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교실 - 6점
신조 마유 지음/서울문화사(만화)

전설의 막장 만화가 신조 마유의 만화가 데뷰 일대기를 만화교실 형태로 꾸민 독특한 만화입니다. 사실 학습만화(?) 라고 해도 좋겠지만 신조 마유가 실제로 만화가로 성공하는 내용 자체가 반 이상이 개그라 개그만화로 분류할 수 밖에 없네요. 솔직히 이 작가 작품을 읽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이 만화교실에서 스스로 밝히는 작가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고 신념이 확고해서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물장사라니!!!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은 확실히 뭔가 달라도 다른 법이랄까요? 예전 이시카와 쥰의 "만화의 시간" 이라는 책에서 굴곡많은 인생을 겪은 작가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 글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림과 내용은 대충대충 넘긴 경향이 강해서 만화로서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신조 마유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보는 것 만으로도 그런대로 추천작. 별점은 3점입니다.


햣코 Hyakko 2 - 6점
카토 하루아키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빵빵 터진다기 보다는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작품으로 고교 신입생 여자아이들의 일상을 다룬 담담한 개그만화입니다. 이런류의 만화야 쎄고 쎘지만 이 작품은 독특한 그림체와 더불어 민폐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인 토라코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좌충우돌 행동으로 인기를 모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토모가 주인공인 아즈망가 대왕이랄까요?
그에 더해서 인기를 끌만한 독특한 캐릭터들, 청순파 - 이른바 츤데레 아가씨 - 체육소녀(?) 등등... 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는 점은 왠지 약간 스쿨럼블 느낌도 나더군요. 어쨌건 2권까지는 재미있게, 가볍게 읽기 좋은 만화로 추천할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딸리는지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전개는 왠지 불안감도 가지게 만드는데 3권을 읽어봐야 이후 전개를 조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나비효과 - 4점
박성열/중앙books(중앙북스)

국내산 웹툰으로 "반전"을 강조한 만화이긴 하지만 추리닝이나 트라우마같은 선배격 만화와의 차별화 요소가 많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반전 코믹 웹툰이라는것이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은 구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요사이는 초상식, 몰상식 개그만화로 트렌드가 완전히 이동해 버렸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재미있게 봤었지만 지금 보니 굉장히 웃긴다, 죽인다 뭐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이 작품의 경우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미 웹상으로 너무 많이 접하기도 했고 내용도 지나치게 패러디가 많다던가 (특히 슈퍼 마리오 패러디 등) 동어반복적인 개그가 많은 등 (곰과 호랑이 이야기 등) 알차다고 하기는 어렵기에 책으로 또 읽을 필요를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2/12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4)

[고화질] 만화가 야식연구소 - 6점
무라타 유스케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아이실드 21"로 일세를 풍미했고, 지금은 "원펀맨"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만화가 무라타 유스케가 직접 만들어 먹는 야식을 소개하는 작품입니다. 만화가 생활을 하면서 밤 늦게 사러갈 시간도 없고, 배달도 안될 때 빠르게 만들어 먹던 야식들에 대해 트위터에 소개한게 계기가 되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고 하네요.

등장하는 레시피들은 구태여 이렇게 소개해야 하나 싶은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유튜브 외 이런저런 매체에서 흔히 보는 간단 레시피들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또 손이 제법 많이 가는 튀김류나 제과제빵 류의 레시피는 취지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고요.

그러나 한 편당 5~6페이지 분량으로 레시피 중심의 짤막한 소개가 전부인데도 불구하고, 기승전결이 나름 완벽해서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구성과 전개에서 왜 인기 작가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할머니와의 추억을 그린 양배추 롤 에피소드라던가, 오래 전 불법 체류하던 태국인 이웃의 이야기, 보온기를 쓴 라면 조리처럼 상, 하편으로 이어지는 좀 긴 호흡의 이야기들도 당연히 좋았고요. 레시피도 두부 한 모 (200g)를 으깨어 녹말가루 약 60g 정도를 잘 섞은 뒤 랩을 씌워 전자렌지에 총 4분을 데워 만드는 두부떡같은, 따라해 볼만한 것들도 제법 수록되어 있습니다. 삿포로 소금 라면에 두유를 넣어 만든다는 '두유 라면' 같은 독특한 음식의 등장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대단한 걸작은 아니지만 읽는 재미와 함께, 쉬운 레시피 전달이라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 있습니다.

[고화질] 콘다 테루의 합법 레시피(단행본) 01 - 2점
우마다 이스케/시프트코믹스

고등학생 야쿠자 콘다 테루가 조직 생활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며 접하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요리로 해결하거나 해소한다는 내용.

요리의 맛을 야쿠자와 관련된 상황으로 비유하여 소개하는 장면(예를 들면 너무 맛있어서 마음을 빼앗기는걸 경찰에 체포되는 식으로 묘사하는 등), 그리고 콘다와 관련된 상황을 주변 사람들이 야쿠자인걸 몰라서 오해하는 몇몇 장면만 조금 재미있을 뿐이며 그 외에는 건질게 하나 없는 졸작입니다. 소개되는 에피소드들 모두 억지스러우며, 캐릭터의 현실성이 전무한 탓입니다.

고등학생이면서 능력있는 야쿠자,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따뜻한 인물이라는건 아무리 만화라고 해도 용납이 안 됩니다. 등장하는 요리들이 에피소드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으며, 작화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1권 이후는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야쿠자를 미화하는 작품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으면 합니다.

[고화질세트] 행복한 밥 (총4권/완결) - 6점
UNOME Santa/서울문화사/DCW

대사 한 마디 없이 그림만으로 짤막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독특한 작품으로, 조금은 팍팍한 일상을 그리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1권을 예로 들자면 직장에서 혹사당하는 이혼 중년남,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고향 내려갈 여비도 없는 OL, 젊은 나이에 머리가 벗겨져 여자에게 인기 없는 독신남,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전직 식당 주인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이 대사는 없지만 음식 하나로 위안을 얻는 과정이 잘 그려집니다.
음식도 당연히 대단한게 아닙니다. 라면과 고향에서 보내준 감자와 밑반찬, 풋콩에 맥주, 돈가스 덮밥 등이거든요. 그림도 순박하면서도 정성이 듬뿍 담겨 이야기와 잘 어울리고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학교 선생 이야기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듯 하지만 부인 몫의 젓가락이 없는 장면처럼 이야기 뒤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에필로그에서 소개되는 디테일들도 마음에 듭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몇 명의 등장인물들이 반복해 등장하는 것도 재미를 더해주네요.

그러나 포맷과 전개가 길게는 끌어갈 수 없었던건 분명합니다. 후속권이 되면 될 수록 좀 지루해지거든요. 주된 이야기들이 대체로 가족 간의 정, 근면하고 열심히 사는 소박한 삶을 다루고 있어서 비슷비슷한 탓입니다. 변주를 주기 위한 이야기도 있지만 70대 후반 할아버지가 돈가스 푸드 파이팅에 도전한다는 "돈가스 카레"나 은혜갚기 위해 베를 짜는 학을 방치하고 노부부가 모듬 전골을 먹는다는 "모듬 전골" 같은 당황스러운 내용은 등장하지 않으니만 못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빼고 3권 분량으로 발표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최근 보기드문 착한 만화, 순박한 만화라는 점은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3)

2018/10/07

우울증 탈출 - 타나카 케이이치 / 미우 : 별점 2점

우울증 탈출 - 4점
타나카 케이이치 지음/미우(대원씨아이)

타나카 케이이치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애니메이션까지 되었던 데뷰작 개그 만화 "닥터 치치부야마"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체를 똑같이 구사하며 그려낸 개그 만화들이 꽤 마음에 들어서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구루나비 모두의 밥' 사이트에 연재했던 "펜과 젓가락"이 압권이었어요. 유명 만화가 가족과 만화가가 좋아했던 음식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만화로 그렸는데, 해당 작가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했기 때문입니다! 한번 보시면 이해하실거에요. 유사한 류의 작품들은 작가의 SNS (예 : 페이스북) 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고요.
그러나 "펜과 젓가락"은 연재가 끝나서 아쉬웠는데, 이 책이 국내에 작가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어 기쁜 마음으로 구입하였습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팬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생각과는 다르게 개그 만화가 아니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작가 본인의 우울증 투병 이력을 중심으로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이거든요.
'우울증' 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인 이야기는 꽤 괜찮습니다. 저자를 포함한 우울증 환자 17명의 인터뷰를 통해 개인별로 달랐던 원인과 증상, 그리고 극복 방법을 소개해주는 덕분입니다. 우울증은 평생 간다, 우울증은 여러가지(몸과 마음) 무리한 상황에서 견디지 못한 몸이 내보내는 경고 신호이다, 이를 없애려면(극복하려면) 나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 칭찬과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긍정하라 등 여러가지 유용한 정보와 치료 방법, 팁이 등장합니다. 저는 다행히 우울증까지 앓지는 않았지만 가끔 업무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기는 한데, 상대방의 언행을 반대로 생각해 본다던가, 아침에 억지로라도 나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방법은 써먹음직하다고 생각되더군요.
내용이 풀 컬러라는 점은 좀 놀랐습니다. 14,000원이라는 가격에 걸맞는 완성도랄까요? 비싸기는 하지만 풀컬러의 180여 페이지 정도 분량이라면 가격도 어느정도 수긍할만 합니다.

하지만 친숙한 데즈카 오사무 화풍에 오너캐인 양복입은 작가 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다른 작품에서 느꼈던 재미는 찾기 힘듭니다. 개그 만화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실종 일기" 처럼 엄청나게 심각한 이야기라도 개그 센스가 빛날 수도 있었을텐데, 우울증 환자와의 인터뷰 중심으로만 흘러가니까요. 작가 본인에게 우울증은 너무나 심각한 병이라 개그 소재로 고려할 수는 없었던걸가요? 하여튼,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인터뷰도 계속 반복되다 보니 지루했고, 딱히 관심사가 아니라 몰입하기 힘들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우울증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실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별로 구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작가에게 흥미가 가서 구입했지만 딱히 두고두고 읽을 것 같지는 않네요.

2021/09/05

동경 표류일기 - 다쓰미 요시히로 / 하성호 : 별점 3점

동경 표류일기 - 6점
다쓰미 요시히로 지음, 하성호 옮김/북스토리

일본 극화의 창시자 다쓰미 요시히로의 대표작을 모은 단편집으로 아홉 편의 단편과 후기와 연보, 해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은 소년지에 발표되었다는게 믿기지 않는 어둡고 잔혹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데포르메 심한 기존 데즈카 만화 스타일에서 벗어나서,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어두운 이야기를 했다는게 극화의 본질이 아닌가 싶네요. 잘 그렸다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 이런 이야기를 끌고가는데 부족함 없는 작화도 잘 어울렸고요.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다소 진부합니다. 전쟁 직후, 가혹하고 냉정한 현실에서 발버둥치다가 결국 좌절을 맞는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인 탓입니다. 냉혹한 가족간 범죄가 기묘하게 드러나는, 약간 하드보일드 스타일 범죄극인 "지옥", 연애물이라 할 수 있는 "사육", 잔혹한 인간 드라마인 "도쿄 고려장", 터프한 복서가 승승장구하다가 마지막에 패배하고 만다는 스포츠 드라마 "조종" 등 장르는 다양하지만, 이야기 패턴이 대체로 동일하다는 약점도 크게 느껴집니다. 주인공이 좌절을 극심하게 느끼는 순간에 대한 포착과 묘사가 발군이라 이야기 설득력이 높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이 역시 반복되니 식상해 지더군요.

그나마 조금 특이했던건 "사람 있어요"와 "조종"입니다. "사람 있어요"는 그냥 실패하고, 좌절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창작 욕구를 잃었던 주인공 만화가는 진짜 그리고 싶었던건 성인 만화였다는걸 깨닫는다는 전개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결국 좌절을 맞는 - 화장실을 엿보는 변태로 전락한다 - 결말 때문에 이야기가 이상해져 버렸어요. 만화가가 '여자 화장실'에 숨어들었다는 뜬금없는 상황 설정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화장실 벽 낙서에서 따 온 이야기를 성인 만화로 그렸다가 인기를 끌지만, 원작자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런 점에서 다쓰미 요시히로라는 작가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좋아하고, 잘 하는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그리는건 능숙하지만 변주를 만드는 능력은 없어 보였거든요. "조종"은 내용 구성은 다른 작품과 별다를건 없지만, 비교적 현대적인 작화와 80년대 이현세의 "지옥의 링"이 떠오르는게 조금 신기했고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실 역사적인 가치를 생각해서 구입했는데, 이 정도면 재미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덧붙이자면, 뒤의 연표를 보니 수록작들 모두가 1970년 이후 발표되었더군요. 극화의 대부로 잘 알려져 있는 사이토 다카오의 "고르고 13"이 발표된건 1968년입니다. 데즈카 오사무만 해도 이미 이 때에는 이런저런 성인 극화를 그렸을 때이고요. 우리나라도 독재 시절이라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은 없었지만, '성인 만화'라고 부르는 고우영의 만화가 발표된 게 1970년대 초반이지요. 작풍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다룬게 극화라 친다면, 츠게 요시하루의 "치코"만 해도 발표된 게 1966년입니다. 다쓰미 요시히로의 작품들이 시대를 앞서갔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쓰미 요시히로가 설령 "극화"라는 말을 창시했다 하더라도, 이미 존재했던 장르에 이름을 붙였을 뿐인데 '극화의 창시자' 로 추앙받는건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하드보일드 장르의 거장은 해밋이나 챈들러이지, 그런 류의 작품을 하드보일드라고 명명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조금 재평가가 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2013/02/22

블랙잭 창작비화 1~2 : 별점 3점

"이 만화가 대단해! 2012 남성편"에서 1위를 하여 유명해진 작품. 형이 구입했는데 설 연휴를 기회로 얻어 읽게 되었네요. 리뷰가 좀 늦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창작 활동에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실존 인물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다큐같이 소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블랙잭"은 회사의 도산과 슬럼프라는 인생 최악의 시기를 극복하는 상징물에 가깝습니다. 이야기 내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도저히 실재했던 이야기라 믿어지지 않는 황당한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대부분이 작업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가혹한 창작 활동에 대한 것이라 논픽션이 아니라 개그 만화가 연상될 정도였어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호에로 펜" 같았달까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아무데서나 사도 되는 컵라면을 다른 곳에서 사오라고 시켰던 데즈카 오사무의 기행, 그리고 이른바 "데즈카반"이라 불리며 작가 옆에서 상주했던 각 잡지별 데즈카 오사무 담당 편집자들을 다룬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를 좀 놔두라고 부탁해서 한 편집자가 마감만 지켜주면 된다고 하고, 데즈카도 그의 마감을 최우선으로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3회 연속 마감을 지키지 못해 편집자가 짤렸다는...., 그리고 데즈카는 다른 편집자들에게 너희들이 자기들 원고만 챙겨서 그가 짤리게 되었다고 역정을 내었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나가이 고, 마츠모토 레이지 등 당대 거장들의 인터뷰와 증언도 재미있게 읽었고요.

오래된 극화풍으로 살짝 촌티가 나기까지 하는 그림은 취향을 좀 탈 것 같기는 하나, 위와 같은 에피소드들이 가득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지론 중 하나가 "만화가가 주인공인 만화는 다 재미있다"라는 것인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3/12/15

연애 Crown -고우카 윤-

음악과 연극으로 유명한 하쿠오 고등학교의 우상인 히사요시는 수학여행 기차 안에서 우연히 아이돌 후지오 리마를 보고 그야말로 첫눈에 반했다. 리마를 쫓아다니게 된 히사요시를 눈여겨 본 리마의 매니저 이케시바는 히사요시를 스타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케시바에게 스카웃 된 리마는 이케시바의 관심을 받는 히사요시가 못마땅하다.
한편 히사요시는 리마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다가 신간센에서 리마를 도와준 싱고라는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서로 리마를 좋아한다는 것으로 동지의식이 싹튼 싱고와 히사요시. 이케시바는 리마에 대한 히사요시의 감정을 이용해 히사요시를 스카웃하고, 히사요시는 자신을 싫어하는 리마로 인해 고민하는데..

네, 이 만화는 순정만화입니다. 현 시점에서 제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작가 "코우카 윤"의 정말로 몇 안되는 완결된 작품이기도 하죠. 제가 알기로는 첫번째네요.

도입 부분은 일반적인 만화와는 달리 조금 독특합니다. 학교의 우상인 킹카 고교생이 누군가에게 첫눈에 빠져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쫓아 다닌다... 라는 설정이 상당히 새로운 덕입니다. 더군다나 내용이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해서 작품에 나름대로 몰입하게 하는 맛도 있고요.

하지만 독특하고 괜찮았던 부분은 거기까지, 히사요시가 데뷰는 하지만 결국 스타가 되지도 못하고 오히려 리마가 결국 스토커같은 히사요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해피엔딩.... 이것참, 스토커 성공기같은 만화가 되어버렸군요. 젠장 그림이 아깝다.

"토이" 나 "솔져보이" 같은 비슷한 연예계 만화들의 경우처럼, 작가가 히사요시를 리마와 걸맞는 급의 스타로 키운다는 정도의 설정과 그러한 성장과정이 나왔으면 만화가 보다 현실적이고 진지하면서도 재미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주 옛날에 보았던 "천사소녀 새롬이"라는 만화가 생각나네요. 주구장창 쫓아다니던 스토커같은 팬이 성공한다....결국 성공하는것은 근성과 끈기란 말인가?

2014/12/03

오무라이스 잼잼 4 - 조경규 : 별점 3점

오무라이스 잼잼 4 - 6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1, 2, 3권을 모두 구입하기는 했습니다만, 2, 3권은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할인 가격에 구입했었습니다. 그래서 4권도 중고 서점 입고를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도서정가제 이후에는 할인폭이 크지 않을테고 중고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새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이전 권 리뷰에서 '어차피 인터넷에서 모두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을 이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깝다'고 적었었는데, 생각이 바뀌기도 했고요.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2,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450페이지가 넘는 풀컬러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는 괜찮으며, 인터넷과는 다른 아날로그적인 정겹고 따뜻한 맛은 단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내 요리만화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콘텐츠 자체의 가치가 무척 높다는 장점도 큽니다. 지금은 국내에도 요리 만화가 웹툰 중심으로 제법 많아졌지만, 단순히 요리가 등장하고 레시피가 나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유로운 연상과 전개를 통해 요리와 에피소드가 어우러지는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은 여전히 발군입니다. 이번 권 역시 그러합니다. 미국 거주 시절 "인큐버스"라는 밴드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톨리도라는 무척 한적한 도시를 찾아간 에피소드가 대게 이야기로 연결된다든가, 자기와 닮은 Sasa 씨 이야기에서 소보로빵, 멜론빵, 파인애플빵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요리에 대한 그림과 소개 모두 당장 먹고 싶게 만드는 요리 만화로서의 미덕도 충분하고요.
이러한 독특한 매력은 작가 조경규의 이색적인 이력 덕도 클 것입니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중국에서도 수년간 거주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인데, 이시카와 쥰이 "만화의 시간"에서도 이야기했듯, 조금이라도 특이한 인생을 산 사람이 만화가로 유리하다고 하지요. 그 말대로라면 조경규 작가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인생을 산 셈입니다.

또 다양한 음식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부가적인 가치도 큽니다. 츄파춥스의 로고를 살바도르 달리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이나, 달리와 디즈니의 공동작업 애니메이션이 있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네요. 외에도 닭갈비의 유래나 다양한 연근 요리 등 읽을거리가 가득합니다.

총 24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가장 구미가 당기던 음식은 "차계란"이었습니다. 계란 장조림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지만, 소개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라 꼭 한번 따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이전 권들과 동일하게 명확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과 비교한 가치가 얼마나 크냐는 여전히 애매합니다. 이번 권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부록이 특히나 별로입니다. 본편에 소개된 내용의 보강이나 외전 형식의 이야기, 만화로 제작된 레시피 등이 훨씬 가치 있었을 텐데, 정작 수록된 것은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맛집 소개나 재미없는 가족 만화가 대부분이니까요.

또 작가의 가족, 특히 아이들 소재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몇 안 되는 부록 페이지까지 아이들 사진과 그림으로 채워진 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소재 면에서 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발상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책을 구입한 독자를 위한 서비스에도 더 신경 써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작화는 물론 내용과 재미, 소개되는 요리의 가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국내 요리, 음식 만화의 대표작임은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 번 다시 읽었기에 돈이 아깝지도 않고요. 1, 2, 3권 모두 열 번 이상 읽었으니까요. 요리, 음식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이만한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2007/03/02

이젠 제발 끝나줬으면 하는 만화들

1. 맛의 달인 :

맛의 달인 96
카리야 테츠 글, 하나사키 아키라 그림/대원씨아이(만화)

드디어 국내에도 100권을 돌파하는 만화가 나오겠네요. 이제 96권이니.... 하지만 지로와 유우코의 결혼, 우미하라의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모드 돌입 이후에는 애시당초 이 만화가 왜 계속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지루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좋은 음식으로 인간관계, 사업, 결혼 등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간다는 억지스러운 설정의 설득력 역시 제로가 된지 오래이며 이젠 일본 맛기행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6시 내고향" 같은 음식소개 가이드북으로 전락해 버렸을 뿐입니다.
96권까지 관성에 의해 사기는 했지만 이젠 한계인 것 같네요. 제발 끝내주는 것이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2. 오 나의 여신님

오! 나의 여신님 34
후지시마 코스케 지음/대원씨아이(만화)
베르단디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재미는 갈수록 떨어지는, 캐릭터에만 의지하는 알맹이 없는 만화가 되어 버린지도 이젠 꽤 된 것 같군요. 인기가 떨어질 만 하면 새캐릭터가 등장하는 구태의연한 연출도 짜증나고요. 이 작가 역시 끝내야 할 때 끝내는 미덕을 제발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체포하겠어" 연재나 재개하면 좋으련만.

3. 강식장갑 가이버

철인전사 가이버 24
타카와 요시키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이 만화는 다른 만화들처럼 권수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만큼 나오는데 거의 20년 가까이 걸렸을 정도로 굴곡 많은 작품이죠. 아무래도 연재가 이상하게 꼬이다보니 작가가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까먹은 듯 어처구니 없는 전개를 보여주는 요즈음인데 연재가 계속되는 의미를 찾을 수 없어져 버렸습니다. 12신장들은 왜 이다지도 약해 빠져서 픽픽 죽어나가는지도 모르겠고.... 이러느니 솔직히 크로노스가 지구를 정복하는것으로 끝내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어쨌건 대전액션격투만화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된 만큼, 슬슬 기억에서 지워야 할 때로 보이는군요.

2015/12/26

월간순정 노자키 군 1~6 - 츠바키 이즈미 : 별점 3점

월간순정 노자키 군 6 - 6점
츠바키 이즈미 글.그림/학산문화사(만화)

추석 때 본가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형이 강추해서 덥석 빌려온 만화입니다. 읽은지 한 분기가 지났는데, 이제서야 리뷰를 올리네요. 

4컷에 가까운 짤막한 개그가 이어지는 개그 만화입니다. 캐릭터 의존 개그와 오해·착각에 기인한 개그로 나뉘는데, 캐릭터 개그는 이런 류의 만화에서는 정석이라 할 수 있어서 특별히 이야기할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190cm의 장신에 과묵하지만 실상은 월간 연재 순정만화가인 노자키군, 여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미남이지만 실상은 애니메이션 오타쿠에 수줍음 많은 미코시바 등, 비현실적이며 개그 만화답게 과장되게 연출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눈살 찌푸려질 정도로 억지스러운 설정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특히 노자키와 주변 친구들은 뻔하지만, 상식적인 편집자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조합 자체는 "아즈망가 대왕" 시절 이래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대책 없는 어른과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어른 컴비이기는 한데 선생님이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에요.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만화에서 어른 역할로 선생님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은 거의 처음 본 것 같기도 합니다.

평작 수준인 캐릭터 개그에 비해,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 개그는 정말 대박입니다. 사쿠라와 노자키의 첫 만남에서 노자키가 사쿠라를 자신의 팬으로 오해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로렐라이가 유즈키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와자키를 활용한 개그라든가, 동료 만화가 미요코와 노자키의 대화를 듣고 오해하는 미요코의 대학 친구들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6권까지 정말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만화가가 주인공인 만화"는 정말 재미있네요. 제 평생 이 설정이 실패한 적은 없어요. "바쿠만"이나 "아오이 호노오"가 대박 나기 전부터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2009/12/13

暴れん坊本屋さん - 久世 番子


얼마전 읽은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에서 언급했던 서점 직원 출신 만화가 구제 반코 (久世番子)의 만화입니다. 제목을 국내 개그만화식으로 번역하자면 "엉망진창 서점"이나 "요절복통 서점 대소동" 정도 되려나요? ^^ 옴니버스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전 3권으로 완결되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자신이 6년 가까이 근무하며 겪었던 사건들을 재미있게 재 구성한 만화로, 물론 작가 본인이 만화가이기 때문에 벌어진 이야기들도 몇편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서점"과 그에 관련된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걸 "엣세이 코믹"이라고 하나보죠? 어쨌건 서점에서 창피한 책을 사는 상황이나 굉장히 부족하고 잘못된 정보로 책을 찾는 상황같은 고객관련 에피소드, 책의 주문과 발주 및 전시 등 실제 서점에 대한 업무관련 에피소드, 책 포장 (슈링크)나 슬립, 오비 (책 띠) 같은 도서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전해주는 에피소드와 그 외 돌발상황 (서점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 및 반코씨에 관련된 (사인회 등) 에피소드 등 크게 4종류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네요.

하여간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전문가 만화를 굉장히 좋아라 하기도 하고요. 어떻게보면 "도색서점에 어서 오세요" 같은 류라고도 할 수 있는데 "도색서점..."과는 다르게 프로 만화가인 구제 반코의 그림이 좋아서 시너지를 불러 일으킵니다. 뎃셍력도 좋고 캐릭터들도 안정되어 있을 뿐더러 패러디나 묘사도 정말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 등 "만화"로서의 완성도가 충분하거든요.

국내에서는 동네 서점이라는 것이 사멸해가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정서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점과 일본 서점에 특화된 내용들이 많다는 점 때문에 번역출간은 좀 힘들 것 같지만 이러한 문화적, 정서적 이질감만 극복한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뭐 문화적, 정서적 이질감보다는 동네 서점과 출판업계가 아직 탄탄한 일본 문화시장이 부럽고 질투난다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겠지만... 

덧붙이자면, 한때 저도 서점에서 일하는게 꿈이었을 때가 있었는데 이 작품을 읽어보니 확실히 서점에서 일하는게 만만한 일은 아닌거 같아요. 일단 책이라는 존재가 워낙 무게가 나가는 것이니만큼 힘도 필요하고, 작품을 고르는 눈도 어느정도 필요하고, 접객이 잦으므로 서비스 정신도 필요하고, 게다가 휴일은 거의 없다시피하니... 왠만한 사람은 버텨내기 힘들겠더라고요. 에피소드 중 하나가 "사람 뽑기 힘들다"는 것일 정도니까 오죽하겠습니까.^^

2007/12/23

아카쿠치바 전설 - 사쿠라바 가즈키 / 박수지 : 별점 3.5점

아카쿠치바 전설 - 6점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노블마인

렛츠리뷰에 당첨되어 받아 읽은 소설입니다. 사실 작가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제 60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광고 카피에 끌려 신청해서 운좋게 당첨되었네요. 

기대와는 다르게 전후부터 현대까지의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를 장대하고 다루고 있는 일종의 대하 소설이라 추리소설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합니다. 장편은 지루하기도 하고, 시간도 없어서 최근에 몰입해서 읽은 기억이 없는데 이 책은 49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하루만에 몰입해서 읽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3대, 특히 여성들만 주인공으로 한 설정의 소설은 그렇게 드물지는 않지만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의 아카쿠치바 만요, 80년대에서 90년대 후반까지의 아카쿠치바 게마리, 2000년부터 앞으로의 아카쿠치바 도코라는 3명의 아카쿠치바 여인들이 워낙 독특했을 뿐더러, 각 세대별로의 자세한 인생과 생각, 고민, 주변인물들을 사진기처럼 묘사하는 묘사력이 좋고, 디테일한 부분에서 발상이 기발해서 신선하게 와 닿았습니다.
세대별로 상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일단 분량으로 따진다면 아카쿠치바 만요의 분량이 제일 많은 편인데, 그녀의 이른바 "천리안"이라 불리우는 예언능력 등은 마르께스의 "100년동안의 고독"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환상적이고 기묘한 느낌이 딱 제 취향이더군요. 여러 묘사나 분위기 역시 당대의 느낌과 만요의 심리를 잘 전해주면서도 작품의 독특함을 잘 드러내고 있고요.

그러나 2대째인 아카쿠치바 게마리 부분은 혼란한 당시 일본 사회상을 반영하기는 했지만 환상적이라기 보다는 만화적이라 기묘하고 재치 넘친다는 느낌은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폭주족 여왕이 당대 최고 인기의 만화가가 된다는 설정은 이시카와 쥰도 이야기 했듯이 경험이 만화가의 제일 큰 무기라는 점에 부합하기는 하나 솔직히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주변인물들, 예를 들어 모모에나 초코같은 캐릭터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어떻게 보면 만화같은 삶이라는 것을 강조한 묘사일 수도 있는데 지나쳐서 되려 부담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실제 화자이기도 한 3대째의 도코 이야기부터는 다시 괜찮아집니다. 작품의 유일무이한 추리적 요소가 부각되는 덕분입니다. 이 추리적 요소, 즉 도코가 만요의 유언, "살인을 한 적이 있다"는 유언을 듣고 그 진상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은 작품 제일 첫 머리의 만요의 환상과도 맥이 닿아 있어서 작품이 순환하는 느낌도 전해 주는 등 나름 잘 짜여졌다고 생각하게 만들고요. 이러한 복선과 순환구조 역시 "100년 동안의 고독"과 유사하지만 독특한 나름의 맛이 잘 살아있습니다. 약간의 반전도 추리 매니아인 저에게는 적지 않은 기쁨이었습니다.

과연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무엇일지, 책에서 이야기하는 미래의 뷰티풀 월드가 과연 있는지 고민하기에는 제 나이도 적지 않은 편이지만 희망과 미래,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게 하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주말에는 꼭 외할머니를 찾아가 인사드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눠 보고 싶네요. 최소한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것 하나만이라도 이 작품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11/03/01

해황기 1~45 : 카와하라 마사토시 - 별점 3점

해황기 45 - 6점
카와하라 마사토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몇 년 전부터 보아오던 작품이 드디어 완결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중세 분위기의 이(異)세계에서 과학문명을 이용한 '숲지기'라는 존재와 그 이면의 흑막에 대해 그려가는 것 같더니, 어느새 장대한 대하 서사 군웅극으로 탈바꿈합니다. 이 중 흔해빠진 이세계 판타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한 초반부의 전개는 별로였습니다. 그러나 '월한'의 카자르 세이 론과 손을 잡고 그를 도와 세계를 정복하는 중후반부부터는 엄청난 재미를 선사합니다. 재미의 가장 큰 요인은 '범선'을 이용한 전략을 설득력 있게 그려가는 데 기인하고요. 이만큼 '범선'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한 만화가 또 있을까요? 상선학교 출신이라는 작가의 배경 덕분으로 생각되는데, 정말로 납득할 만한 멋진 전략들이 가득 펼쳐집니다. 그야말로 해양 액션 - 전투물로는 최고 수준입니다.

또한, 약간 안티-히어로적인 면모를 지닌 주인공 판 감마 비젠의 매력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못하는 게 하나도 없는 엄친아 먼치킨이기는 하지만, 말투와 행동을 장난스럽게 그려 밉지 않은 캐릭터로 완성한 것 같습니다. 그 외의 다양한 인물들 역시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하나씩 어설픈 요소들을 집어넣은 것 같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결말이 약간 시시하기는 하지만, 모든 등장인물의 후일담을 꼼꼼히 알려주고 반전이라면 반전인 의외의 설정을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마지막까지 팬들을 사로잡는 요소는 충분했다 생각되네요.

물론 묘사가 그다지 정교하지 않고 시원한 배경이 대부분이라 작화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는 약점과 함께, 범선 전략 이외의 지상에서의 전략과 전투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점, 그리고 뒤로 갈수록 너무 전형적인 이야기로 흘러간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 창작 서사물로는 보기 드문 흡입력을 갖춘 작품임에는 분명하기에, 대하 서사 군웅극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길이도 적당하고 끝내야 할 때 끝내는 미덕을 갖춘 만화가 최근에는 드문데, 이 작품이 신호탄이 되어 적절하게 매듭짓는 작품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2009/11/21

아톰의 슬픔 - 테즈카 오사무 / 하연수 : 별점 2점

아톰의 슬픔 - 4점
테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문학동네

너무 바빠서 블로깅 하기도 힘드네요. 어쨌건 바쁜 와중에 읽은 아톰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칼럼집입니다. 표제작을 비롯한 30편의 컬럼이 실려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다양한 비화를 비롯하여 2차대전 종전 직후 점령군과 일본인들간의 갈등 같은 소재에서 "아톰"이 탄생하였다던지, 초등학교때 은사의 작문 수업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익혀나갔다던지하는 만화 관련 에피소드, 그리고 전쟁의 참상과 과학문명에 의존하는 현 세태에 대한 날선 비판,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결국 우리들의 미래라는 것과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논하고 있어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악"에 대해서 논하는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악인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 그리고 단순히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하지 말자는 것과 악을 대변하는 이른바 "마이너스 에너지" 라는 발상이 굉장히 독특했거든요.

그러나 너무 어린아이들을 의식해서 쓴 티가 좀 난달까요? 너무 교훈적이고 교육적인 이야기만 가득하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남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또 작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돋보이지만 지금 읽기에는 낡은 이야기들도 많았고 "아톰의 철학" 등 다른 관련도서에 많이 접했던 내용들이라 신선함을 느끼기도 힘들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 만화가의 컬럼집인데도 불구하고 작품의 도판이나 설명이 전혀 없는 텍스트 위주의 책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네요. 유명한 아톰이야 그렇다쳐도 비중있게 언급된 "그링고"라던가 "네오 파우스트", "MW"같은 작품은 일부나마 소개를 해 주는 것이 바람직했을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높은 별점을 주기는 좀 어렵네요. 조금 더 어렸을때, 더 빨리 읽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기대와도 많이 달랐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데즈카 오사무에 대하여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이 책보다도 어린 시절부터의 일대기를 자전적으로 그린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만 읽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은 도판이나 만화관련 자료도 충실하게 실려있어서 소장가치도 높은 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