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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하늘의 공포 - 아서 코난 도일 외 : 별점 2.5점

표제작을 포함한 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직지 프로젝트"의 결과물 중 하나로 구글북스를 통해 무료로 읽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한데, 번역 및 책의 구성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각 단편 서두에 실려 있는 짤막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도 학습 문고 스타일이고요. 예전에는 이런 책들도 이렇게 포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하긴 하네요.

수록된 작품들은 대부분 괜찮지만 이렇게 대상 연령대에 맞추어 가공된 탓에 저 같은 일반인 독자가 읽기에는 여러모로 조금 애매했습니다.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 무료이니 한번 읽어보시고 괜찮다 싶으시면 정식 번역본(비록 많지는 않지만)을 구해 읽어보는게 좋을겁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사나이" H.G 웰즈

지구가 갑자기 멈추면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는 고전적인 과학 지식이 등장하는 유명한 꽁트. 포저린게이가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반전의 묘미가 살짝 있기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작품이죠. 별점은 2점입니다.

"하늘의 공포" 아서 코난 도일

비행기로 고공 기록에 도전할 경우 비행사들이 이상하게 죽는 - 비행기 잔해는 발견되었지만 비행사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든지, 겨우겨우 비행장에 돌아와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다든지, 시체의 머리만 없어진 채 발견된다든지 - 사건에 도전한 영국의 명조종사 조이스 암스트롱의 수기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코난 도일 경도 초창기에는 수기 형식을 굉장히 애용한 듯 싶네요.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처럼요. 이 수기가 몇 페이지가 찢겨져 있다며 궁금증을 자아내는 도입부는 아주 괜찮았어요.

그러나 암스트롱이 "고공밀림"이라 부르는 곳에 도달하여 그곳에 사는 괴물들과 조우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루며 끝나버려 실망스러웠습니다. 딱히 대단한 수수께끼가 있지는 않은 그냥저냥한 크리처물에 불과한 탓입니다. 수기의 마지막 글 "아아 이제 끝장이다"는 여운이 남기기는 하지만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작은 거인" 폴 F 에른스트

1만 미터가 넘는 깊이의 구리 광산 갱도에서 신발을 신은 인간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다. 그리고 난장이들의 유령이 보인다는 설이 퍼지는데...

지하에 거주하는 난장이 인간에 대한 상상력을 펼친 SF입니다. 지하는 기압이 높고 열도 높은 탓에 지하 인간의 몸은 분자구조 자체가 단단하게 되어 콘크리트 같은 물질도 물처럼 유영할 수 있다는 설정은 재미있었습니다. 발자국 화석도 밀도가 높아서 무게로 그냥 땅이 푹푹 파였다는, 설정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였지요(물론 현실성은 없습니다만).

또 지하 인간들이 지성인으로 나름의 과학기술을 갖추고 있지만, 굉장히 호전적이라서 주인공의 친구를 죽이고 표본으로 삼기 위해 시체를 가져가려 한다는 일종의 크리처물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주인공이 지하 인간의 지구 정복이 머지않았다고 절망하는 결말도 나름 괜찮았고요. 

다만 주인공의 걱정을 뒷받침해주는 복선이 약간이라도 등장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벽속의 아프리카" 레이 브래드베리

아이들 방이 가상현실을 투영한 공간으로 바뀌는 고도로 자동화된 세계에서 벌어진 기이한 참극입니다. 섬뜩한 SF의 거장인 레이 브래드베리 (브래드버리)의 솜씨가 잘 발휘된 단편으로,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 수록된 "대초원에 놀러 오세요"와 동일한 작품이지요.

"왜 가상현실의 사자가 현실이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자동화된 기계에 모든 것을 맡겨 극도로 이기적이면서 양심과 도덕에 대해서 둔감해진 아이들에 대한 묘사는 지금 읽어도 섬찟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주 스파이" 필립 K 딕

우주인과 전쟁 중인 지구에 우주인이 지구인과 똑같이 생긴 폭탄을 몰래 잠입시키는데...

"사기꾼 로봇 (Imposter)"라는 제목으로도 유명한 작품이지요. 폭탄 로봇이 살해당한 원래 인간과 똑같은 인격을 지니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바디 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설정도 기발하지만 주인공 올햄이 자신은 로봇이 아니라고 믿으며 진상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사투가 긴박하게 묘사되며 마지막 결말까지 인상적인 걸작입니다. 아동용 축약 버전이 아니라 정식 버전으로 다시 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우주에서 온 거머리" 로버트 셰클리
"불사판매 주식회사"의 저자인 셰클리의 단편으로, 물리적인 모든 것을 흡수하는 바위(거머리)가 등장하여 점점 커져가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거머리보다는 거머리를 배탈나게 하기 위해 굉장히 강력한 물리적 힘(수소폭탄)을 동원하는 멍청이 오도넬 장군의 폭주로 오히려 사건이 커지는 중반부가 인상적입니다. 원폭에 대한 시대적 공포를 반영한 풍자로 보이는데, 오도넬 장군이 억지로 거머리를 폭파시킨 뒤 더더욱 큰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는 결말까지도 완벽한 풍자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예전 "로보트 킹"에서 유탄이 에너지를 흡수하는 적에게 오도넬 장군 마인드로 킹의 모든 에너지를 때려넣어 과부하로 폭파시키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하긴 유탄은 무식한 놈이었지...

2014/09/29

대한민국 독서대전 군포 2014 참관기 (9/26~9/28)

이미 지났지만 토요일 방문하였기에 짤막하게 참관기를 적어봅니다. 제가 군포시 산본동에 살고 있기에 좋은 기회가 되어 방문하게 되었죠.

문제는 제가 4살 된 딸아이와 함께 돌아다녔기 때문에 부스별로 심도 있게 볼 수 없었다는 점... 이런저런 행사도 많이 했는데 딸아이가 겁이 많아서 참석하기 힘들었기에 가운데쪽에 있는 출판사 부스만 주로 보았습니다.

비교적 많은 출판사가 참여하여 자사의 책들을 저렴한 가격에 소개하고 있기는 한데, 사실 인터넷 최저가와 비교했을 때 비슷하거나 더 비싼 책들도 많더군요. 발품을 잘 팔면서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검색을 함께 하지 않으면 괜찮은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겠더라고요. 저야 말씀드린 대로 딸아이와 함께하다 보니 더더욱 그러했고 말이죠.

여튼, 결론 내리자면 특별히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하려는 분들께는 적합한 행사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들고 다니는 수고까지 생각한다면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겁니다.

초패미컴 - 타네 키요시 외 / 문성호, 김영준 : 별점 2.5점

초패미컴 - 6점
타네 키요시 외 지음, 문성호.김영준 옮김/에이케이(AK)

패미콤 시대 유명 게임들을 2~4페이지 정도로 요약하여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희한한 기획의 게임도 많이 소개되는데, 확실히 시대를 지배했던 게임기구나 싶더군요. 예를 들자면 요시다 센샤의 원작을 게임화한 "전염됩니다. 수달, 하와이에 가다" 같은 것이죠. 아무리 원작이 제법 팔렸다더라도 이건 참... 게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알 수가 없네요. 또 쿠소게라던가 황당한 내용의 소개도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대표적인건 당대의 인기작 "터치"의 게임 버전입니다. 타츠야와 카츠야가 미나미를 지키면서 야구와 권투를 베이스로 악당들을 물리치며 진행하는 액션게임이라니!

또 "유명하다"거나 "명작"뿐 아니라, 쿠소게라도 뭔가 의미를 찾을 수 있는걸 패미컴 헌터를 자청하는 게임 전문가 3인이 진지하게 고민하여 리뷰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덕분에 별로 웃기지는 않지만, 쿠소게의 웃기는 리뷰라면 지금이야 AVGN을 따라갈 수 없었을 테니 괜찮은 접근법으로 보입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아서 반가왔는데, 컴파일의 "고르비의 파이프라인 대작전"은 저작권을 개무시하고 과감하게 출시한 게임이다, "다카하시 명인의 모험도" 주인공은 "다카하시 명인"이다 등이 그러합니다. 아울러 '패미컴 탄생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부제에 걸맞게 서두에서 다카하시 - 모리 명인의 배틀을 다룬 패미컴 무비 Game King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등 여러 가지 곁가지 지식도 풍부합니다. 이런 "잡지식"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것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참고로 이 부분은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로 대충 즐기실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 고교 시절 제법 패미컴을 즐겼다 자부하는 저조차도 여기 소개된 게임 중 직접 즐겨보았던 게임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확실히 국내에서 먹히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워 보이네요. 진짜 하드코어한 게이머가 아니면 알만한 게임이 많지 않은 탓입니다. "갤럭시안", "제비우스", "보글보글"과 같이 오락실(?)에서 즐겼던 게임들, 그리고 다른 콘솔이나 PC에서 즐겼던 "로드 런너", "카라데카" 등을 제외하면 제가 순수하게 패미컴으로 즐겼던 게임으로 소개된 작품은 "그라디우스", "레인보우 아일랜드" 정도밖에는 없거든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즐겼었던 "사라만다"라던가 "하드볼"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고요. 또 앞서 이야기했듯, 너무 진지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빵 터지는 맛이 부족하다는 점도 대중적으로 먹히기에는 문제점입니다.
아울러 거의 15,000원에 육박하는 가격인데도 불구하고 컬러 페이지가 거의 없다는 것도 실망스러웠어요. 대표적인 게임 정도는 컬러 도판으로 소개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게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콘솔로 저사양 기기의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 게임산업 초기의 빛나는 기획물들도 가득한 만큼 게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4/09/25

인터뷰 - 루드비코 : 별점 4점

인터뷰 - 8점
루드비코 글.그림/세미콜론

긴 무명 시절을 거친 뒤 단 한 권의 책 "주황색 스카프"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후 깊은 슬럼프에 빠져 아무런 영감을 얻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소설가를 삼류 기자가 찾아왔다. 원래 인터뷰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차기작을 구상하던 중 독자의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던 작가는 구상 중인 소설을 듣고 감상을 말해달라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수락했다. 

"인터뷰"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대화 장면과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이 두 가지 틀로 이루어진 액자식 구성의 만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실과 작가의 이야기는 서로를 반영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버리는데… (알라딘 책 소개 인용)

평상시에 자주 찾아보는 잠뿌리님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된 후 독파한 웹툰.

미국 만화(혹자들이 그래픽노벨이라 칭하는)를 연상케하는 정교한 일러스트풍 작화도 좋지만, 내용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자신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온 기자에게 자신이 창작했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며 평을 요구하는데, "헝가리 사진사", "작은 마을의 요괴", "양목장의 살인자"라는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재미있고 완성도도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양목장의 살인자"는 그냥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잘 만든 호러 스릴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짜여졌더군요.
또 이야기가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현실에서 비롯된 일종의 연작들이며 실화라는 것이 드러나는 전개 역시 굉장히 흡입력 있습니다. 정말이지 숨 돌릴 틈 없이 읽어버렸네요.

허나 하나하나의 이야기 완성도가 높은데 구태여 이걸 묶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는 합니다. 예를 들자면 "양목장의 살인자"가 앞의 "헝가리 사진사"와 이어진다는 마지막 장면은, "양목장의 살인자"라는 하나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완전한 사족이었던 탓입니다.

그래도 이러한 사족(?)도 "인터뷰"라는 작품 전체의 완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확실하며 작화, 내용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완성도 높은 웹툰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추후 유료화되더라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에요. 어울리는 BGM 정도만 제공해 준다면 더욱 좋을 테고 말이죠. 아직 다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니 보지 못하신 분들은 서두르시길.

아울러 루드비코는 개그만화 그리는 엽기토끼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작가였다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을 많이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은 "부조리 만화"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작가가 언급한 "부조리극"은 연극적인 특수성이 강하기에 이 "인터뷰"라는 작품은 결과물만 놓고 보면 부조리극이 아니라 전형적인 스릴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14/09/24

미소년 프로레스!

대부호의 외아들로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지만 병약한 소년이 스스로 GM이 되어 만든 단체(포스터 위쪽 가운데의 빨간 수건을 두른 친구, 뒤의 안경 낀 아저씨는 집사!), 이름하여 미소년 프로레스

아름다움과 품위를 중시하는, 지금까지 없던 단체입니다. 신입 연습생을 모집하여 엄정한 심사를 통해 10명이 합격하여 지금 3회째의 흥행이 준비되고 있으며(위의 포스터), 그 외에도 스토리라인이 있는 듯 한데 전부 공개는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차차 흥행 등을 통해 밝혀지겠죠?

여튼, 웹서핑 중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것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진지한 건지 개그인지도 감이 잘 안 오고 말이죠. 사실 미소년 레슬러 컨셉 자체는 딱히 새롭지는 않은데, 단체 전체를 이렇게 컨셉화한 것은 처음 볼 뿐더러 곳곳에 들어간 나름의 기합은 아주 개그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아무리 봐도 단체 컨셉과 어울리지 않는 괴인들의 면면은 심히 아스트랄합니다. 최소한 에이스 정도는 정말 꽃미남이어야 할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시도 하나만큼은 돋보이는만큼, 앞으로 무운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스포츠는 스포츠이니 스포츠 밸리로.

2014/09/23

익스펜더블 2 (2012) - 사이먼 웨스트 : 별점 2점

익스펜더블 2 - 4점
사이먼 웨스트 감독, 브루스 윌리스 외 출연/데이지 앤 시너지(D&C)

지난 추석 연휴 때 감상했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3편이 얼마 전 개봉했지만 2편도 보지 못했기에 선택하였습니다. 

뭐 스토리를 요약할 필요는 없겠죠? 그냥 제 또래 헐리우드 키드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액션 스타들이 떼로 몰려나와 악당들을 때려잡는다는, 팬 서비스 무뇌 팝콘 무비니까요.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의 농담거리였던, "코만도랑 람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를 뛰어넘어 코만도와 람보가 한편인데다가 텍사스 레인저 척 노리스, 존 맥클레인에 퍼니셔(돌프), 황비홍, 캡틴 아메리카(랜디 커투어) 등이 함께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저는 이 모든 콘텐츠를 발표 당시 실시간으로 즐겼던 세대이기에 너무나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코미디 영화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유쾌했어요.

아울러 별 의미는 없지만, 1편보다는 스토리적으로도 살짝 나아진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악당 두목으로 유니버셜 솔저이자 어벤져였던 장 끌로드 반담이 나와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점 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반담의 악역 연기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살짝 느끼한 악역을 너무나 잘 소화해서 깜짝 놀랐어요. 한편만으로 리타이어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울 정도로 말이죠.

허나 반담이 마지막 1:1에서 스탤론에게 쉽게 발리는 등 악역다운 강함이 그닥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1편에서와 같이 함께 팀을 구성하는 다른 악당들 - 에릭 로버츠, 돌프 룬드그렌, 스티븐 오스틴, 게리 다니엘즈 - 없이 스콧 앳킨스 한 명에게만 의지하는 건 불쌍하게 여겨졌습니다. 다른 부하들은 연방군의 짐 같은 존재들에 불과하니까요. 그냥 폭죽, 허수아비 수준이거든요.
또 스토리 상 복수극으로 흘러가는 과정은 불만스럽습니다. 왜 애초부터 다 죽이지 않았을까요? 이래서야 "나한테 복수하러 와~"라고 초대장을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공항 액션보다는 초반 중국인 부자 구해주는 액션이 훨씬 볼만했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고요.

물론 이런 부분은 감수하며 보는 영화이니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딱 한 가지, 위난이 맡은 매기 캐릭터는 그야말로 단점 중의 단점입니다! 포지션이 여러모로 어정쩡하기 때문이에요. 러브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총질 잘하는 여자 캐릭터로 보기에는 캐릭터도 굉장히 약했으니까요. 차라리 정의의 올드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의 컨셉대로라면 린다 해밀턴이나 시고니 위버 정도가 나와줬어야죠! 중국 시장을 노린 거라면 이연걸 형님 분량이나 좀 챙겨주던가!

하여튼, 머리로 점수를 주는 영화가 아니라 가슴으로 보고 즐기는 사나이의 영화, 마초들의 액션영화이기에 별점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뇌를 좀 쉬게 해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단, 배우의 연기가 중요하다거나 개연성 있는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절대로 보시지 마세요. 그 쪽으로는 바닥이 아니라 지하실 수준입니다.

2014/09/22

생존 Life 1~3 - 후쿠모토 노부유키 / 가와구치 가이지 : 별점 2.5점

생존 Life 1 - 6점
가와구치 가이지 지음/삼양출판사(만화)

딸은 14년 전에 실종되고, 아내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자신마저 암으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걸 알게된 다케다는 자살을 결심했다. 그런데 목을 메려는 찰나, 실종된 그의 딸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고백"과 마찬가지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원작을 가와구치 가이지 (카와구치 카이지)가 그림을 그려 만든 합작 만화입니다. "제 3의 시효" 리뷰 댓글을 통해 marlowe님이 추천해 주셨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2권에서는 딸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다케다의 모습이 그려지며, 3권에서는 범인과 공소시효를 둘러싼 치열한 두뇌 싸움이 펼쳐집니다. 추적자 다케다의 모습에서는 가와구치 가이지 특유의 인간드라마를, 그리고 마지막 권에서는 후쿠모토 노부유키 특유의 두뇌 배틀을 즐길 수 있으며, '공소시효'라는 것을 아주 효과적인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는게 장점입니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두뇌 배틀은 물론, 다케다의 남은 수명과 사건의 공소시효가 동일하다는 설정이 주는 긴장감은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가능한 끈기 있는 추적만큼은 인상적입니다. 해당 시기에 그곳을 여행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그때 찍었던 사진을 한 장 한 장 확인하여 딸이 등장한 사진을 찾아낸다는게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추적 과정에서 심하게 운이 좋아 보이는 장면이 많다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위의 예를 든 사진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폐차장에서 십수 년 전에 폐차시킨 차를 찾아내는 게 대표적입니다. 솔직히 가능한 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가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는 작위적으로 보이기까지 했고요.

뭐 작위적으로 보자면 마지막 두뇌 싸움이 더 심하긴 합니다. 차 트렁크에 메시지를 남길 시간이 있었더라면 더 자세한 내용을 적을 수도 있었을 테고, 또 평범하게 날짜와 요일, 시간을 적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평범한 사람은 알기도 힘들 주가를 적어 놓았을까요? 주가를 적어 놓더라도 날짜 정도는 같이 적는 게 상식이었을 테고요. '한방'의 임팩트는 있었지만 억지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묵직한 묘사와 공소시효를 핵심 소재로 놓고 전개한 치밀한 전개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작가의 팬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4/09/19

끝까지 간다 (2014) - 김성훈 : 별점 3점



상납금에 대한 감찰 조사 탓에 어머니 장례식 중 급하게 경찰서로 향하던 형사 고건수는 실수로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한 뒤, 급한 나머지 시체를 어머니 관 속에 유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처리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그를 협박하는 괴전화가 걸려오는데...

올여름 시즌 의외로 대박난 한국영화. 당연히 극장에서 본 것은 아니고 IPTV에 떴길래 간만에 감상한 작품입니다. 

처음에 간단한 시놉시스만 보았을 때에는 연이어 닥치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코믹하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했습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처럼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코미디 영화 중 최고작이라 생각합니다). 마침 초반부에 시체를 숨기는 고건수의 모습은 생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웃기면서도 긴박한 상황을 굉장히 잘 그려내고 있더군요. 여러 가지 디테일을 활용하는 솜씨도 제법이었고요.

그런데 시체를 숨긴 뒤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 부분부터는 예상과 다르게 범죄 스릴러로 탈바꿈하는데, 이 역시 대박입니다. 고건수와 협박범 박창민과의 소소한 밀당에서 대체 왜 시체를 찾는지가 드러나는 과정이 빠르면서도 정교하게 전개될 뿐더러, 최 형사의 죽음과 같이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도 많아서 적절한 긴장감과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덕분입니다.

감독이 호러 영화도 잘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도 많은데, 특히 폭탄이 곧 터질 것 같은데도 해장국 먹으러 가자고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빼어난 전개 덕분에 마지막 폭탄을 이용한 사건 해결까지는 정말이지 별 4개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마지막에 뜬금없이 박창민이 살아 돌아와 고건수와 대결을 벌인다는 결말부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분명 죽은 줄 알았는데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나타나 맨손 격투를 10분 이상 벌인다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된다 생각되거든요. 인간 이상의, 어떻게 보면 몬스터 같은 캐릭터성을 극대화하여 최종 보스로서의 역할은 확실히 보여주지만 너무 오버였어요. 어떻게 돌아왔는지 정도만 살짝 묘사해 주고 결투 장면을 보다 짧게 편집하였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대박 흥행이 수긍이 가는 제법 잘 만든 스릴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병폐인 뜬금없는 신파가 등장하지 않고, 여전히 속물인 고건수의 모습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도 괜찮았어요.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4/09/18

Q 앤드 A 1~6 - 아다치 미츠루 : 별점 2.5점

[세트] Q 앤드 A 1~6권 세트 (묶음) - 6점
아다치 미츠루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어릴 적 형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전근으로 떠났던 옛 집으로 6년 만에 돌아온 안도 아츠시. 그는 돌아온 날 집에 지박령으로 남아있는 형 히사시(통칭 큐짱)의 유령을 보게 된다...

아다치 미츠루의 최신작입니다. 딱히 찾아보지는 않지만, 눈에 뜨이면 보게 되는 작가이지요. 형제와 옆집에 사는 소꿉친구 여자아이, 그리고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형의 사고사는 작가의 대표작 "터치"의 설정을 그대로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쌍둥이가 형제, 그리고 뛰어났던 쪽이 형이라는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 외 캐릭터들, 성격 모두 기존 작품에서 이리저리 따왔습니다. 안도 아츠시 – 히로(H2) / 오가사와라 이치로 – 닛타 아키오(터치), 세키(러프) / 유후 – 카츠키(카츠), 아오바, 모미지 "크로스게임"... 인 식입니다. 즉, 전형적이고 매너리즘 가득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크로스게임"처럼 야구를 중심 소재로 과거 히트작을 짜깁기한건 아닙니다. 육상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나 그냥 양념처럼 쓰일 뿐, 내용 자체는 그간 아다치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유령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에피소드 중심의 일상계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거든요. 유령이 나오는 하이틴 코미디라는 점에서는 괴작 "유&미"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약간 성인(아저씨) 취향의 개그라든가, 제목도 비슷하네요. 여튼, 덕분에 "크로스게임"에서 정점을 찍었던 진부함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냐 하면 좀 애매합니다. 6권이나 되는 분량으로 끌고 나갈 이야기로는 보이지 않았고, 이야기 전개도 툭툭 튀는 느낌이 강했던 탓입니다. 작가가 스토리 전개에 큰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무의미하게 낭비되는 설정도 많았고요. 대표적인 게 큐짱이 빙의하면 아츠시를 일반인 이상으로 조종할 수 있다는 설정입니다. 귀신 보는 소녀는 왜 등장했는지도 모르겠고요. 그 외 캐릭터들—라이벌이라는 오가사와라 이치로나 귀신 감독 등—도 마찬가지로 낭비되고 있으며, 마지막 타임슬립 비슷한 설정도 사족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류의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이기는 하지만, 아다치 미츠루의 전성기였던 80년대 후반~90년대 스타일이라 요즘에도 통할까 싶은 의문도 들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밝고 순진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니까요. 여기에 바뀌지 않은 작화와 전개 스타일도 더해져 20여 년 전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하나의 스타일이 된 거장의 여유와 유머를 느낄 수 있는 소품입니다. 쉬어가는 의미로는 적절했습니다. "전국대회 1위를 하면 사귀자!"라는 순진한 고백만큼은 매력적이었던 만큼, 복잡한 설정이나 캐릭터는 다 덜어내고 한두 권짜리 단편으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겁니다. "진배"처럼요. 그래도 한번 힘을 뺀 만큼, 후속작 "믹스"에서는 예전의 힘을 다시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2014/09/17

낮비 1~6 - 후루야 미노루 : 별점 2.5점

너무나 외롭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무것도 없는 하루하루에 불만인 주인공 오카다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직장 동료 안도에게 말을 걸고,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안도가 짝사랑하는 유카와의 만남, 그리고 유카를 죽이려는 연쇄살인마이자 고교 동창 모리타의 등장...

후루야 미노루의 우울 + 심각 계열 작품으로 전작인 "시가테라"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루저에 가까운 주인공에게 미모의 여자친구가 먼저 대시한다는 판타지, 고교 동창인 사이코패스와 주변 인물들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이상한 상황에 처한다는 이야기 구조가 거의 판박이거든요. 왕따 이야기 역시 빠지지 않고요.

그러나 "시가테라"와 가장 큰 차이점은 "시가테라"의 주인공 오기노는 왕따 피해자라서 핵심 사건에서 주변에만 있기 힘든 탓에 이런저런 일에 계속 휩쓸리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커플인 오카다와 유카의 연애담과 비일상적인 연쇄살인마 모리타의 살인 행각이 분리되어 교차 전개(물론 나중에 합쳐지지만)된다는 점입니다. 오기노 캐릭터의 평범한 부분과 피해자 부분을 둘로 나눈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오카다와 유카 커플, 그리고 안도가 등장하여 양념을 쳐주는 일상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둘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고집하는 상남자 안도가 상당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나중 탁구부", "그린힐"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개그 센스가 여전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하고요. 안도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이 나와도 참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에 반해 모리타의 폭주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환상을 확실히 깨준다는 측면에서는 성공하고 있으며, 막판까지 사이코 범죄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맛도 있지만 너무나 몰상식한 연쇄살인마로 묘사되기에 과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시가테라" 정도로—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난 꼴통이 살인마더라, 중퇴당한 고교 동창은 야쿠자가 되었더라—마무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아니면 차라리 모리타가 오카다와 유카를 살해하는 데 성공하고 끝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무계획으로 막 나가는 모리타가 유일하게 목표하고 계획한 것이 바로 둘의 살해인데, 다른 우발적인 살인은 잘도 저지르면서 정작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다는 점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입니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풍자한 걸까요?
마지막으로, 모리타가 학생 때 자신이 비정상임을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 그리고 그의 체포로 이어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좀 의아했습니다. 갑자기 '모리타도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메시지가 이 작품에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뜬금없기도 했고요.

그래도 "시가테라"보다는 마무리가 깔끔할 뿐더러 나름 해피엔딩—어쨌든 오카다 커플은 목숨을 건지고, 안도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여성이 생기고, 모리타는 체포되니 만큼—이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로 묶이게 되는 구성도 괜찮았고요. 두 작품의 장점만 하나로 합쳤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오카다와 유카의 미래에 행복만 있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2014/09/16

데어데블 : 본 어게인 - 프랭크 밀러, 데이비드 마추켈리 / 최원서 : 별점 2점

데어데블 : 본 어게인 - 4점
프랭크 밀러 글, 데이비드 마추켈리 그림, 최원서 옮김/시공사(만화)

데어데블의 전 애인 카렌이 마약에 빠져 데어데블의 정체를 킹핀에게 팔아넘겼고, 킹핀은 데어데블 맷 머독을 철저하게 파멸시켰다. 그러나 맷 머독은 불굴의 의지로 재기하여 복수에 나섰다...

이 바닥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지요. 킹핀이 맷 머독을 파멸시켜 나가는 초중반부는 명성 그대로! 몰입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흡사 영화를 보는 듯한 구도와 전개가 인상적으로, 만화의 컷 그대로 영화를 찍어도 괜찮다 생각될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최고는 기자 유릭이 전화로 협박받는 장면인데 정말이지... 직접 보시라고밖에는 이야기 못하겠네요.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헬스키친의 수녀원에서 재기하면서 옛 애인 캐런을 보듬는 맷 머독의 모습도 정말 명장면이었고요. 악역 킹핀의 카리스마도 압도적이라 이대로만 갔더라면 제 인생 최고의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완벽하게 말아먹고 맙니다. 킹핀의 목적은 물리적으로 맷 머독을 때려잡는 게 아니라, 그라는 인간을 속한 곳에서 완벽하게 파멸시키는 것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맨손으로 데어데블을 제압할 수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마지막에 뉴크라는 군인을 불러다가 헬스키친을 날려버리는 거대한 사고를 치는걸까요? 이미 초반의 목적은 달성한 거나 다름없는데 말이죠.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 뉴크를 막기 위해 어벤져스, 그 중에서도 캡틴 아메리카가 활약하는 부분은 작품의 정체성마저도 의심케 합니다. 막판에 뉴크가 생포됨으로써 킹핀이 궁지에 몰린다는 설정 역시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차라리 친구인 포기, 애인 카렌, 기자 유릭까지도 모두 킹핀이 파괴하여 발붙일 곳을 잃은 데어데블이 몸을 추스른 뒤, 킹핀에게 홀로 도전한다는 전개가 훨씬 나았을 겁니다. 혹 지더라도, 그리고 맷이 모든 것을 잃었더라도 최소한 자존심은 잃지 않았다 정도의 결말이었다면 충분했을 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전력질주로 1위를 앞둔 우사인 볼트가 결승선 앞에서 쓰러진 시합 같은 느낌이에요. 용두사미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법이겠죠.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덧붙여, 뒷부분에는 본편에 데어데블의 의상 디자이너인 포터가 과거 글레디에이터라는 악당으로 데어데블과 어떻게 엮였는지를 알려주는 단편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꽤 볼만한 작품이기는 한데, 이 작품을 빼고 분량과 가격을 낮추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긴 하네요. 글레디에이터라는 악당이 딱히 비중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2014/09/15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오사카 케이키치 7가지 미스터리 - 오사카 케이키치 / 곽은숙 : 별점 2.5점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 오사카 케이키치 7가지 미스터리 - 6점
<오사카 케이키치> 저, <곽은숙> 역/그래출판

"감방"에서 이 작가의 "세 광인"이 마음에 들었다고 리뷰를 올렸었죠.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았는데, e-book으로 출간되어 있더군요. 퍼블릭 도메인 작품인 덕분이겠지요? 가격도 2,000원으로 착해서 주저 없이 구입했습니다.

참고로 "감방"에서는 오오사카 케이키치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오사카 케이키치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찾아보니 "오오사카" 쪽이 맞는 번역이네요. 그런데 위키를 보니 작가의 인생도 정말 드라마같습니다.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어 출정 전 은사인 고가 사부로에게 장편소설 원고를 맡겼는데, 오오사카는 루손 섬에서 병사했고 고가 사부로 역시 급사해 버린 탓에 원고가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하여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입니다. 일상계 소품 한 편을 제외하고는 고전 황금기 스타일의 정통 본격물들입니다. 

수록작 전체의 별점 평균을 낸다면 2.5점 정도인데, 별점 3.5점 이상의 작품이 두 편이나 있으며 고전 황금기 스타일을 충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독서였습니다. 이런 작품이 전전(1945년 이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본 추리소설의 탄탄한 기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요. 고전 황금기 본격물 애호가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런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보다 많이 소개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 리뷰에서는 항상 그렇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꼭두각시 재판"

20여 년 동안 법정 정리로 일해온 화자가 겪었던, 무려 세 건의 재판에서 핵심 증인으로 활약한 요정 여주인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법정물로 볼 수 있는데 요정 여주인이 사건 피해자나 용의자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으면서도 유·무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증언을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재미있으면서도 설득력 넘치게 그리고 있습니다. 복선 및 단서 제공 역시 적절했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도박을 그린 작품은 본 적이 없는데 너무 가볍게 소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아이디어가 돋보였어요.

조금 낡은 구성과 언젠가는 꼬리가 밟힐게 분명했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야말로 숨어있는 보물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향수 신사"

여고생 구루미가 기차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신사가 은행강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을 알고 벌이는 작지만 용감한 행동을 그린 작품.

거의 대부분이 구루미의 심리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1. 여행 중 앞좌석에 앉은 신사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2. 손가락이 하나 없다는 큰 특징을 알게 된 후 왜 그 사실을 숨길까?를 궁금해한다.
3.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은행강도 사건의 용의자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다.

라는 순서로 전개됩니다.

여고생이다 보니 딱히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된 사촌에게 줄 결혼 선물을 이용하여 명확한 증거를 남긴다는 재치가 돋보이네요. 딱히 대단한 트릭이나 추리가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귀여운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탐정역으로 아오야마 교스케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표제작.

노구치라는 백화점 점원이 교살된 채 추락사한 사건을 가지고 사체의 상태와 범행 현장에서 아래의 단서들

1. 범인은 힘이 셀 것이다.
2. 범행은 옥상에서 일어났다.
3. 흉기는 길고 거친 표면을 가진, 밧줄과 같은 것이다.
4. 동기가 없다.

을 끌어내어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주어진 증거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고전 황금기 시대 본격물 스타일에 충실한 작품이죠. 나름 과학적인 트릭이 사용된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트릭이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애드벌룬 안에 목걸이를 숨길 당위성도 좀 부족하고요. 이렇게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자유로웠다면 범인이 통제 가능한 다른 수를 내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땅에다 파묻던가... 여튼 이래서야 트릭을 떠올리고 억지로 작품을 끼워 맞춘 결과물로 보일 뿐입니다.

전개에 있어서도 피해자 노구치가 목걸이를 훔치지 않았으리라 주장한 귀금속 코너 주임의 증언은 너무 심각한 오류를 독자에게 불러일으키기에 공정해 보이지 않았고요. 아울러 번역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피해자의 사체에서 끌어낸 정보로 추리가 시작되는데 어려운 법의학 용어가 많이 등장할 뿐더러 주요 단서가 되는 특징도 지나치게 직역이라 이해가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조사해보니 작가의 데뷔작이던데, 뭔가 보여주고 싶은 의욕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 기관차"

운행 중 유별나게 역살(사람을 치는 것) 사고가 많은 기관차가 어느 날부터 매주 돼지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키는 이유는?

사고가 많은 기관차라는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동기가 결합된 본격물. 돼지 역살 사고가 결국 끔찍한 비극으로 끝나는 전개까지도 어떻게 보면 고전적인 작품이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추리, 진상 모두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단점이 조금 거슬렸습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도구를 이용하여 돼지를 선로에 잡아놓는 범인의 행동에서 범인이 이 도구를 판매한다는 추리를 끌어낸다든가, 범인의 동기가 역살 사고 때 "화환을 사러 오는" 오사센 기관사를 자주 보기 위해서라는 것 등입니다. 첫 번째 추리는 당연히 말도 안 되죠. 누구나 상상 가능한 쉬운 방법이 있는데 손에 넣기 쉽다고 구태여 복잡한 방법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두 번째의 동기도 범인이 스스로 움직여 자살이 가능했다면, 그게 불가능했더라도 아버지가 업고서라도 근처로 나가보는 식으로 오사센의 얼굴을 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테고요.

형식과 전개는 마음에 들지만 이러한 비약 때문에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작가의 대표작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해가 잘 되지는 않습니다...

"꽃다발 속의 벌레"

역시나 전형적인 고전 황금기 스타일 본격물. 한 재산가가 절벽에서 추락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홈즈 스타일의 탐정역인 오츠키 변호사의 활약이 볼거리인데 현장의 발자국을 조사하여 "범인은 여성"이라고 추리하고, 떨어져 있던 사과껍질은 범행 당시 떨어진 것이며 방향이 왼쪽이라 왼손잡이가 깎은 것이라는 것을 밝혀내며, 경찰이 놓친 얇은 조각이라는 주요 증거를 발견하는 식입니다.

또 진짜 수수께끼라 할 수 있는, 체구도 작은 연약한 여성이 어떻게 격투 끝에 피해자를 절벽 밑으로 밀어 떨어뜨릴 수 있었는가?라는 것에 대한 해답이 위의 단서들로 밝혀지는 결말도 아주 좋았습니다. 깎는 위치에 따른 사과껍질의 방향성 같은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농부라는 목격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인데 농부의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언급 정도를 해 주었더라면 더 나았을겁니다. 아울러 동기 역시도 썩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래서야 범인이 너무 명백하니까요. 사실 경찰이 원고 조각을 회수한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지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앞선 두 편의 본격물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합리적인, 추리의 과정과 트릭만큼은 수준 이상의 본격물로 고전 황금기 걸작과 겨룰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칸칸충 살인사건"

아오야마 교스케가 재등장하는 단편.

앞선 작품들에 비하면 추리의 비중이 낮은 단순한 살인극이지만 피해자 키사부로의 시체 상태로 범행 장소는 물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리해내는 교스케의 모습은 명탐정이라 불러도 손색없어 보입니다. 조선소의 구조를 실제 추리에 응용한 디테일도 나쁘지 않았고요.

허나 내용이 워낙 단순해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별로 없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리고 G.Y라는 이니셜이 어떻게 "야마다 히로노스케"의 이니셜이죠? 번역 오류인가... 여튼 세세한 부분이 좀 아쉽네요.

"등대귀"

시오마키 등대의 불이 갑자기 꺼지고 당직인 도모다 간수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 성인 두 명이 들어도 움직이기 어려운 큰 바위를 등대 꼭대기로 옮긴 계획의 진상은?

임해시험소의 아즈마야 소장이 탐정역으로 등장하여 등대의 기계장치를 이용한 트릭을 밝혀내는데, 등대라는 장소의 특수성에 복잡한 장치 트릭이 더해진 것이라서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등대의 구조를 독자가 머릿속에 그리면서 추리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탓입니다. 동기도 정신병적인 것이라 너무 쉽게 간 느낌이고요.

완고한 옛날 사무라이 같은 카자마 간수의 거짓말을 잡아내는 소소한 활약은 좋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4/09/13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 혜문 : 별점 2.5점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 6점
혜문 지음/작은숲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 혜문 스님이 여러 가지 문화재에 대해 쓴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크게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망각의 역사"는 우리가 너무 쉽게 잊은 과거의 비극과 그 유물에 대해 알려주며, 두 번째 "환국의 그림자"는 우리가 되찾은 문화재의 허와 실을 다룹니다. 마지막 "빼앗긴 문화재의 꿈"에서는 꼭 되찾아야 할 문화재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요.

읽기 전에는 부제인 "다보탑의 돌사자는 어디로 갔을까?"처럼 문화재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종의 탐정 소설 느낌의 논픽션이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은 앞서 말해드린 챕터별 주제에 대한 에세이라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다보탑 돌사자 이야기는 제가 이미 알고 있는, 87년 10원짜리 동전 속 애기불상 루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결국 어디로 갔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는 결론이라서 실망스러웠고요.

그래도 문화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는 했습니다. 책의 핵심이자 중심이 되는 세 번째 챕터 대부분이 그런 성격인데, 예를 들어 오쿠라 호텔의 사설 박물관인 오쿠라 슈코칸에 우리의 석탑 등이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과 도쿄 국립 박물관에 소장된 도굴왕 오구라 컬렉션에 대한 내용은 평범한 독자에게도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소설 "꺼삐딴 리"에서 주인공이 미 국무부 직원에게 뇌물을 바치는 장면과 실존 인물인 그레고리 헨더슨의 헨더슨 컬렉션에 대한 소개는 정말 가슴 아픈 근현대사의 장면이었고요. 더불어 한일협정 당시 문화재 반환 언급이 금지되었다는 대목에서는 얼마나 매국적인 협상이었는지를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그나마 반환받은 문화재들도 국보급이 아니라 짚신이나 막도장 같은 어이없는 물품이 많았다는 점도 황당하더군요.

아울러 제가 기대했던 문화재 탐정류의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방향은 달랐지만 기이한 유물이나 문화재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명성황후를 살해한 칼 '히젠도'의 유래나 현재까지 그 칼이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고, 한때 유명했던 '명성황후의 표범 카펫' 이야기를 다시 알게 된 것도 반가웠습니다.

그 외에도 혜문 스님과 관계자들이 백방으로 노력해 환수받은 조선왕조실록에 숟가락만 얹고 언론 플레이만 열을 올리는 서울대의 행태, 다양한 질문에 무성의하게 답하며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대 규장각 등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했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책이라 점수를 매기기엔 애매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로 읽을 책은 아니고, 기대했던 자료적인 가치가 높지 않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우리 문화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14/09/12

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 하시 몬도 외 / 페가나 : 별점 3점

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 6점
하시 몬도/페가나

"심령 살인사건"에 이은 페가나북스의 두 번째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입니다. 건승을 기원한다는 글도 남겼었는데 출간된 지 1년도 더 되었네요. 조금 무안합니다.

작가의 명성보다는 추리소설의 형식과 완성도를 기준으로 일본 근대 추리 단편의 걸작을 골라 수록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확실히 그에 걸맞게 좋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나 작품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분량도 적절하고 완성도도 괜찮습니다. 번역도 깔끔하며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요. 최소한 2,000원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다시금 페가나북스의 건승과 함께, 이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기를 기원합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방" - 하시 몬도

전전 홋카이도의 가혹했던 노동 현장(일명 문어방)을 무대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관리가 파견되어 노동자들로부터 고충을 듣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내용입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지하 강제 노역장이 연상되는 독특한 무대가 인상적이며, 발표 시기에는 금기시되었을 듯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현장 묘사도 짧지만 꽤 괜찮은 편이고, 극적 반전—사실은 정부관리가 파견되기 전 불평분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쇼였다—도 좋았고요.

한 번 정도 더 비틀어 주인공 화자가 진짜 정부관리 앞에서 또다시 실태를 증언하고, 그것조차도 쇼인지 아닌지 독자가 고민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깔끔한 단편이라는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덤불 속"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 원작 중 하나. 영화는 소설 "라쇼몽"의 무대 설정에 이 "덤불 속" 서사를 혼합한 구조라고 하죠.

여러 증언을 통해 진상을 밝히려는 전통적 추리물 구조를 갖추고는 있으나,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피해자 타케히로의 마지막 증언—빙의를 통해 전달된—때문에 더더욱 그러하지요. 다른 인물들이 모두 자기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만큼, 피해자의 증언이야말로 진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지기는 하지만요.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독창적 시도였음은 분명하겠지만, 지금의 독자에게는 그 울림이 약합니다. 유명세에 비해 감탄할 만한 요소도 많지는 않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세 광인" - 오오사카 케이키치

이전까지 몰랐던 작가인데 정말 인상적인 본격물이었습니다. 망해가는 정신병원을 무대로 세 명의 정신병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특징을 복선과 트릭에 훌륭히 녹여낸 솜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토록 복잡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인물이 과연 피해자의 주요한 특징을 간과했을까? 라는 의문은 들지만, 워낙 본격물로의 완성도가 높아서 이 단편집 중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을 느끼게 해주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꼭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진동마" - 운노 쥬자

화자인 "나"가 친구 카키오카 아키로의 기묘한 낙태 작전, 그리고 직후 닥친 폐질환에 대해 서술해나가는 이야기.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공명 현상을 이용해 자궁을 진동시켜 낙태를 유도한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매우 참신했습니다. SF 작가다운 상상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카키오카의 폐와 여성의 자궁 크기가 유사하다는 우연, 이를 기반으로 범죄를 계획하는 화자의 전개는 억지스러웠습니다. 또한 탐정이 갑자기 등장해 모든 진상을 설명하는 방식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사망보험금 수령이라는 단서도 억지로 끼워넣은 듯한 느낌입니다.

아이디어는 뛰어났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구성과 전개가 부족한데 전문 추리작가가 썼다면 훨씬 좋은 결과물이 되었을 듯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 - 하마오 시로

아내의 불륜 상대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된 인물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그 차량 운전자가 바로 첫 번째 피해자의 형이었다는 내용으로 치밀한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반전에서 모든 사고가 우연이었음이 밝혀집니다.

다양한 복선(특히 자동차 교체)이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등, 여러모로 모범적인 범죄물 단편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국내에 작가의 장편인 "살인귀"가 번역되어 있다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네요.

2014/09/11

아마추어 괴도 - 어네스트 윌리엄 호넝 / 최혜수 : 별점 1.5점

안녕하세요.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이래저래 바빠서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오랜만에 리뷰를 올립니다.

이 작품은 코난 도일의 매제이기도 한 어네스트 윌리엄 호넝이 발표한 신사도둑 래플스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국내에는 몇몇 앤솔로지에 단편 한두 편이 소개된 것이 전부였지요. 출간된 사실조차 몰랐는데, 우연히 이번 추석 연휴 때 리디북스 가입 후 검색하다가 발견하여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주 이용하는 알라딘에는 등록되지 않아서 놓쳤었습니다. 분량도 적절하고 가격도 저렴하며 번역도 괜찮습니다. 퍼블릭 도메인이 되어 번역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데, 시도 자체만큼은 무척이나 반갑네요.

그러나 작품의 수준은 솔직히 많이 아쉬웠습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이라는 유명세 때문에 기대가 높았던 탓도 있지만, 이 정도로 기대 이하일 줄은 몰랐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적으로 언급할 부분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괴도가 주인공이라 정교한 범죄 계획을 기대했는데, 실상은 래플스가 화자 역할인 버니에게 '기다리라'고만 하고, 막상 범행은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에 의존할 뿐입니다. 범죄의 치밀함은커녕 퍽치기 노상강도보다 못한 수준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당연히 추리적 쾌감도 없어요.

소설로서의 완성도 역시 부족합니다. 전개는 급작스럽고 허술하며, 캐릭터들의 매력도 살리지 못합니다. 예컨대 왓슨 역이라 할 수 있는 사이드킥 버니는 빚에 쫓겨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인데다가 지나치게 수다스러워서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역사적 의미와 함께 선과 악의 경계에 절묘하게 걸친, 겉으로는 크리켓 명수이자 부유한 신사지만 정체는 도둑이라는 래플스의 조금 독특한 설정 외에는 건질 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셜록 홈즈"보다는 "루팡 3세"에 가까운 모험물로,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망작입니다. 시리즈가 더 출간되어도 읽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수록작별 간단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3월 15일"

시리즈의 시작으로 빚에 몰린 버니가 학창시절 선배인 래플스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그의 은밀한 직업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래플스라는 캐릭터가 유일한 장점이고, 그 외 모든 것은 단점입니다. 래플스가 보석을 훔치기 위해 세운 계획은 위층에 방을 얻는 것 뿐이고, 나머지는 범행 당일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전개라 추리적 치밀함은 전무하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참고로,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소개된 것과 같은 작품입니다.

"시대극"

래플스가 미워하는 졸부 루벤 로젠탈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려고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계획도 유치할 뿐 아니라, 계획이 간파당해 체포당할 위기를 맞는다는 실패담입니다. 수모를 당하다 겨우 탈출하는 내용이 전부에요. 별점은 1점입니다.

"젠틀맨과 플레이어"

래플스가 크리켓 선수라는 설정이 부각되는 작품입니다. 보석을 노리는 프로 도둑과 경찰이 등장하는 설정도 흥미롭고요. 무엇보다도래플스 캐릭터만큼은 인상적이라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실제 범행은 우발적이라서 추리적 쾌감은 전무합니다. 

"첫걸음"

래플스의 첫 범죄를 다룬 이야기. 호주에서 무일푼이 된 래플스가 먼 친척을 찾아가던 중 산적과의 오해로 범죄에 휘말리는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단서인 말과 관련된 인물이 진상을 왜 깨닫지 못했는지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낫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고의살인"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장물아비를 살해하려는 래플스의 모습이 그려지는 이색작. 괴도 신사가 냉혹한 살인자로 묘사되는 점이 신선하지만, 우연의 연속으로 내용이 흘러가는 점은 아쉽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법의 경계"

유일하게 합법적 절도를 다룬 이야기. 헐값에 팔린 그림을 되찾기 위한 의뢰지만, 특별한 작전도 없고 내용도 별다른 위기 없이 쉽게 전개됩니다. 다만 래플스가 해결사로 자리매김하는 설정은 꽤 매력적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리턴매치"

"젠틀맨과 플레이어"에서 등장한 프로 도둑 크로셰이가 탈출 후 도움을 청하러 래플스를 찾아온 이야기로 스코틀랜드 야드의 매켄지 경위가 다시 등장해 긴장감을 전해줍니다. 탈출 장면은 기대보다 밋밋하지만, 궁지를 타개하는 래플스의 모습은 볼 만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황제의 선물"

독일 황제의 진주를 훔치려는 일생일대의 작전을 계획하지만, 결국 체포당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래플스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체포 과정이 허무하고, 범죄 계획도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서는 아쉬웠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4/09/03

두산 베어스 20인 예상

올 시즌 마치고 KT를 위해 20인 외 특별 지명이 실시됩니다. 각 구단별로 지정한 20명 외의 선수를 KT가 지명하면 영입이 가능합니다. 이전 NC 창단 때에는 두산에서는 고창성 선수가 지명되었었습니다.

해당 연도 FA 및 군보류 선수는 제외되므로, 이 선수들을 제외한 20명의 보호 선수를 추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반드시 보호할 선수로 꼽은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 투수 (6) - 노경은, 유희관, 오현택, 윤명준, 이용찬, 이현승
  • 포수 (2) - 양의지, 최재훈
  • 내야수 (4) - 오재원, 김재호, 허경민, 최주환
  • 외야수 (3) - 김현수, 민병헌, 정수빈

이 선수들은 누구라도 보호해야 할 선수들이라 생각합니다. 노경은 선수는 올 시즌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지만, 지난 2년간의 성과와 나이, 그리고 남은 서비스 타임을 고려하면 포기하기 어려운 자원이니까요.

다음은 당장 주전급은 아니지만 미래를 보고 보호할 선수 5명입니다.

  • 투수 (3) - 홍상삼, 함덕주, 장민익
  • 야수 (1) - 김재환

홍상삼 선수는 유망주 투수 중 1군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준 거의 유일한 선수이지요. 함덕주 선수는 시즌이 지날수록 성장세가 눈부신 선수이고, 장민익 선수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포텐셜 면에서는 기대해볼 만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니 홍상삼 선수는 올 시즌에 군대를 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생기네요.
야수 중에서는 1군에서 보여준 활약이 가장 많은 김재환 선수를 선택했습니다. 포수도 소화 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 선수니까요.

이렇게 19명을 추리고 나면 한 명이 남는데, 마지막 한 자리는 홍성흔 선수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나이와 포지션 특성상(지명타자)이 특별 지명으로 뽑히기엔 애매하지만 즉전감이라는 점에서는 분명 가치 있는 자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유망주를 보호하고 홍성흔 선수를 풀어도 괜찮다고 보긴 합니다만 이건 선택의 영역이겠지요.

이렇게 20명을 선정해 봤습니다. 그러면 KT에서는 야수보다는 투수를 지명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투수가 금값인 시대니까요. 김강률, 성영훈, 변진수, 정대현 선수나 즉시 전력을 원할 경우는 정재훈 선수를 지명할걸로 보입니다.

아쉽긴 하지만, 과거 선수 유출 사례에 비하면 이번엔 비교적 ‘싸게 막는’ 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구단의 20인 외 명단을 보면 꽤 후덜덜한 선수들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삼성은 정말 엄청나더군요!).

2014/09/02

탐정 취미 - 유재신, 이현진, 박선양 : 별점 1점

탐정 취미 - 2점
유재진.이현진.박선양 옮김/문

"일본의 탐정소설"에 이어지는, 식민지 조선에서 발표되었던 추리 문학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책입니다. 자료로서 꽤 괜찮았던 전작에 기대가 컸고, 기획 의도도 마음에 들어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창작되었던 추리 소설의 수준이 높지 않았으리라는 건 이미 짐작했었지만, 최소한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수준 이하였던 탓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29년 11월에 연재가 시작된 김삼규의 "말뚝에 선 메스"입니다. "김내성""타원형 거울"보다 먼저 발표된 '한국 최초의 탐정 소설'이라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는건 분명하지만 완성도가 심하게 떨어져 한 편의 소설로 보기 어려웠거든요. 의문의 카드, 엽기적인 연쇄살인 등 이야깃거리는 많지만, 전개는 복선도 단서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간 느낌을 주니까요.

조선의 일본인들이 합작 형태로 발표한 "여자 스파이의 죽음"은 진범과 진상이 너무 황당했고, 세 구슬의 비밀"은 러시아 가문의 암투극이라는 설정이 무리였습니다. 그나마 "여자 스파이의 죽음"에서 ‘누드화와 열쇠구멍을 직선으로 연결해 총을 쏘았다’는 독특한 트릭이 흥미로웠고, "세 구슬의 비밀"은 앞선 복선과 인물들로 연결되는 결말만큼은 괜찮았지만 완성도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그 외에 조선에 소개되었던 셜록 홈즈 번안물 두 편, "명마의 행방"과 "의문의 죽음(얼룩끈)"이 실려 있는데, 원작 대비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다. "명마의 행방"은 등장인물과 지명, 설정을 일본식으로 바꿔 놓은게 인상적이긴한데 "진주탑"처럼 시대적 상황을 잘 녹여낸 번안은 아니었고, 단순히 이름만 바꾼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당대 조선의 문인들이 창작하고 발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는 분명 있습니다. 예컨대 당시에 수면제가 널리 쓰였다는 점, 러시아계 여인들이 카페 등에서 일한 것이 그다지 이색적이지 않았다는 사회상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여자 스파이의 죽음"에서의 공산주의자 조직, "세 구슬의 비밀"에 등장하는 종로의 실존 장소들(우미관, 미쓰코시 백화점 등), ‘천 원은 일본인 사무원의 일 년치 연봉’이라는 묘사도 좋았고요. 특히 일본인들이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묘사된 부분이 의외였는데, 조사해 보니 실제로 식민지 조선에 "아파트로 불렸던 건물"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료적 가치를 제외하면 작품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14,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책의 완성도도 심하게 낮고요. 번역이 어려운 단어는 ‘XXXXX’로 처리하는 무성의한 편집도 거슬렸고, 두 장의 페이지가 빠진 채 출간되어 내용 이해에 방해가 되는 점도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저처럼 식민지 시기의 조선 문학이나 추리소설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아니라면 굳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더라도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