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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30

세완삼첩기 - 아사리 요시토오 : 별점 3점

"환절기라 어김없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유독 심하네요. 목이 부어서 밤에 자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독서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최근 며칠간입니다."

때문에 가벼운 읽을거리로 선택한 것은 만화, 그 중에서도 아로 히로시의 옛 만화를 다시 읽어본 덕분에 갑자기 그때 그 만화들이 그리워져 옛 작가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포착된 것이 바로 이 작품, 역시나 '아'로 시작하는 작가인 아사리 요시토오의 "세완삼첩기"입니다.

아사리 요시토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로 예전에 "황야의 증기소녀"라는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비교적 최신작으로, '삼엽충'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단편집입니다. 일상계(애완 고양이 대신 삼엽충이 온다면? 혼자 집을 보는 소녀가 삼엽충을 만난다면? 좋아하는 소녀에게 소중한 삼엽충을 선물한다면? 등)에 SF 액션, 기이한 프로레슬링 소재 스포츠물에 마법소녀물과 '요리' 만화, "노인과 바다"의 패러디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황당하지만 독특한 매력이 가득한,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작가의 특징을 가득 느낄 수 있습니다. 작화 + 어두운 암흑 개그에 넘치는 패러디 정신까지 가득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우주가족 갈빈손"의 일상계 개그를 좋아했는데 유사한 분위기의 작품이 몇 편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제일 반가왔습니다.

전형적인 요리 배틀 만화를 패러디한, 삼엽충 요리 승부가 벌어지는 "죠우지의 경우"는 특유의 개그 센스가 빛나며, 대전 히어로의 악역을 주인공으로 하여 "천체전사 선레드"와 조금 비슷한 개그를 선보이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괴인 삼엽충 사나이'의 하루를 통해 일상과 비일상을 조화시키면서도 여운을 남겨주는 서정적인 엔딩이 인상적인 "사토군의 경우"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또 작가의 근작인 "루쿠루쿠"나 "황야의 증기소녀"에서 몸서리치게 느껴지는 어둡고 암울한 세계관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도 좋았던 점입니다. 확실히 어둡고 암울한 것보다는 대중적입니다. 물론 완전히 대중적이라고 보기에는 매니악한 설정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만...

어쨌거나 앞서 소개했던 아로 히로시는 잊혀졌지만 이 작가는 아직도 팽팽한 현역입니다. 이유는 "에반겔리온"의 사도 디자인 덕도 조금 있기는 하겠으나 기본적으로 탄탄한 작화를 갖춘 덕으로, 특히 소녀를 귀엽게 그리기로는 단연 No.1이기 때문이겠죠. 또 어두운 개그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요. "아즈마 히데오"의 현실 적응 버전이랄까요? 그래서 30년이 넘는 동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되네요.

결론내리자면 이러한 아사리 요시토오의 현재를 알 수 있는 좋은 작품으로, 그의 과거를 좋아하는 팬으로 아주 반가웠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국내에 소개가 잘 되지 않는 작가인데, 최근작이라도 잘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2013/09/26

새댁의 위험한 취미 - 아로 히로시 : 별점 2점

"새댁의 위험한 취미 若奥さまのア・ブ・ナ・イ"

방대하고 깊이 있는 리뷰가 많아서 자주 찾는 만보님 블로그에서 알게 된 만화. 만보님 정보대로 J Comic에서 공짜로 볼 수 있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로 히로시는 국내에서는 정말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깊은 인상을 심어준 작가입니다. 왜냐하면 대표작 중 하나인 "유&미"를 일본에서의 단행본 발행과 거의 동시에 실시간으로 접했기 때문이에요. 지금 읽으면 낡아보이고 유치한 스타일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끝장이었었죠. 그야말로 과격 슬랩스틱 싸이코 캐릭터 개그의 결정판이었으니까요. (이 역시 J Comic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유&미"와 같은 캐릭터 개그물로, 2편의 시리즈가 함께 실려 있는 구성의 옴니버스 단편집입니다. 첫 번째 시리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내 아내라면?"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듯한 표제작입니다.

사실 요새는 용사, 마왕이라던가 지구정복을 하러 온 괴인, 심지어는 신까지 평범한 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서 설정 면에서는 특이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그러나 발표 시기를 감안한다면 선구자적인 작품일 수 있으며, 남편의 은밀한 취미 부분은 확실히 깼습니다. 또 기묘한 발명품들의 재미도 쏠쏠한 것도 장점입니다. 나름 과학적 근거까지 제시하는 것들도 있고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고도차를 이용한 풍력 발전 이야기가 괜찮더군요. "피스 전기 만물상"이나 "도라에몽"의 성인 버전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잘 짜여진 이야기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인 버전다운 므흣한 장면들도 적절히 삽입된 것도 마음에 든 부분이고요.

그러나 서둘러 대충 끝내고 슈퍼 히어로물의 대사 ("언젠간 또다른 영웅이 나타날 것이다 어쩌구")로 마무리하는 결말은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좀 더 길게 끌고 나갈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시리즈인 미녀 매드사이언티스트가 나오는 "오쿠 치치부 연구소"는 일반적인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충실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전작보다도 더 별로더군요. 조수 사이보그의 "극도로 인간에 가까운 사이보그"라는 설정 개그는 볼 만했고, 바이오 의류와 광물 수집 물고기 이야기는 그럴듯했지만 확실히 전작보다는 깨는 맛이 덜했거든요.

이래저래 별점은 2점. 그래도 저에게 잊혀진 이름과 다름없었던 작가를 다시 떠올리게 한 추억 점수는 값을 매기기 힘들긴 합니다.

그나저나 잠깐 작가의 근황을 조사해보니 "후타바군 체인지" 이후 별다른 작품 없이 잊혀져가다가 요사이는 성인만화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림도 그닥 특출난 것이 없고 개그도 지금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인 캐릭터 개그에 불과할 수 있으나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인데 좀 아련합니다... (물론 본인은 그게 더 행복할지도?)

2013/09/23

전쟁 연대기 1/2 - 조셉 커민스 / 김지원, 김후 : 별점 4점

전쟁 연대기 1 - 8점
조셉 커민스 지음, 김지원.김후 옮김/니케북스
전쟁 연대기 2 - 8점
조셉 커민스 지음, 김지원.김후 옮김/니케북스

제목 그대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주요 전쟁에 대해 기원전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부터 최근의 이란 - 이라크 전쟁까지를 2권 800여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설명해 주는 전쟁사 - 미시사 서적.

개인적으로 역사 서적, 특히 미시사 서적, 그 중에서도 일제 강점기나 전쟁사를 다룬 책들을 좋아해서 많이 읽은 편입니다. 이 책 작가의 전작을 비롯해서요. 그런데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비교를 불허합니다. 주요 "전쟁"에 집중하는 것은 다른 전쟁사 서적과 유사하나 해당 전쟁의 동기와 결과, 그리고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과 병기는 물론 이후 역사가 어떻게 되었는지까지를 1, 2권 800페이지 이상 되는 방대한 분량으로, 다양한 도판과 함께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어서 자료적 가치가 굉장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내용이 알차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항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1권에서는 에스파냐의 멕시코 정복, 임진왜란, 대북방 전쟁이 눈에 들어옵니다.

에스파냐의 멕시코 정복은 몬테수마 왕이 다스리던 멕시카 제국을 정복한 코르테스의 정복전쟁 이야기입니다. 그동안은 신병기의 힘으로 코르테스가 비교적 수월하게 정복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압제에 시달리던 지역민의 협력을 통해 2만 ~ 2만 5천 명이라는 군대를 출력시켜 병력의 우위로 제압한 것이라는 점은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임진왜란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죠. 약간의 오류가 있기는 해도 비교적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핵심 전쟁으로 한산도 대첩을 꼽은 것, 의병의 활동을 중요한 포인트로 잡은 것 등이 좋은 예입니다.

대북방 전쟁은 스웨덴의 카를 왕과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맞붙어 자웅을 겨룬 내용인데, 그야말로 군웅물을 보는 듯한 드라마틱한 이야기였습니다. 대하드라마나 만화의 소재로 사용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2권에서는 태평천국의 난, 영국 - 줄루 전쟁, 멕시코 혁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태평천국의 난에서의 홍수전과 태평천국군의 흥망성쇠는 공부가 부족하여 다른 곳에서 접해 보지 못했었는데, 광신자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느끼게 해 주었어요. 식량이 떨어진 난징에서 홍수전이 "모두 만나를 먹게 해 주겠다"며 잡초를 뜯어먹었다는 것이 그 전형이겠죠. 그리고 홍수전이 선교사에게 받은 "권세양언"이라는 전도서가 결국은 이 난의 원인인데, 성서의 내용을 중국식으로 열정적, 예언적으로 바꾼 탓이 크다는 내용도 충격적이었어요. 그야말로 혹세무민이 따로 없는 것이니까요.

영국 - 줄루 전쟁에서는 줄루왕 케츠와요가 끝까지 영국군과 협상하려 했으나, 영국이 협상 조건으로 내놓은 줄루족 부대가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할 수 없어서, 결국 파멸적인 울룬디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네요. 전사들에게 체면과 자부심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확실히 나았을 겁니다. "캄 브레이커"의 명대사가 떠오르네요. "패배를 인정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진정한 사나이인거야!"

마지막 멕시코 혁명 이야기는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실제로는 잘 알지 못하는 판초 비야가 누구인지,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줘서 좋았습니다. "비바 사파타!"로 유명한 사파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판초 비야와 사파타가 손을 잡았더라면,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멕시코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태여 약간의 단점을 들자면 아무래도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쪽 역사에 많이 치중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모든 이야기들이 익히 알고 있던 것이라도 새로운 시각, 다양하고 화려한 도판으로 상세하게 설명되기에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번의 긴 추석 연휴를 즐겁게 보내게 해 준 일등공신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당분간 전쟁사 책은 안 읽어도 되겠어요.

덧붙이자면, 인터넷 교보문고 특가로 5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하여 기쁨 두 배였습니다. 정가로 구입해도 후회가 없었을 텐데!

2013/09/21

두산 베어스 "ㅎ" 라인업

재미삼아 두산 선수들 중 이름에 'ㅎ' 자가 들어가는 선수로만 꼽아본 라인업입니다.

이렇게 보니 내야는 정말 뎁스가 어마어마하네요. 그에 비해 외야는 좀 횡하고요. 5선발 및 필승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투수진보다야 조금 낫지만... 히메네스야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김승회 선수가 정말 아깝습니다.

외야는 국해성 선수가 어떻게든 올라와주고, 투수진은 성영훈 선수가 빨리 복귀해 주는 것이 중요하겠어요. 군대 간 최현진, 이현호 선수가 한 단계 성장해서 돌아와 주어야 함은 물론이고요. 어차피 재미로 하는 것이니 뭐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

내야 :

  • 1루수: 김재환
  • 2루수: 김동한 (김재호)
  • 유격수: 김재호 (손시헌)
  • 3루수: 최주환 (허경민)

포수 :

  • 최재훈 (박세혁)

외야수 :

  • 민병헌
  • 김현수
  • 정진호 (군대)

지명타자 :

  • 홍성흔

투수 – 선발 :

  • 유희관
  • 핸킨스
  • 김상현
  • 이현승 (군대)

필승조 :

  • 오현택
  • 정재훈

패전처리 (?) :

  • 서동환
  • 이정호
  • 이혜천

마무리 :

  • 홍상삼

순서의 문제 - 도진기 : 별점 2.5점 (그러나 강추!)

순서의 문제 - 6점
도진기 지음/시공사

현직 판사이시기도 한 추리소설가 도진기씨의 단편소설. 한국 작가로는 보기 드문 정통 본격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러나 변호사 고진 시리즈 장편(이거라던가 이거)은 트릭은 인상적이었지만 전개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워낙에 트릭이 뛰어난 작가라서, 차라리 트릭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단편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역시, 이 책은 그러한 저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작품별 편차가 커서 평균이 깎였지만, 뛰어난 작품은 한국 추리문학 역사에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한국 추리문학을 많이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순서의 문제"

대리운전을 하는 주인공 진구에게 한 손님이 원주 터미널에서 전화 한 통만 걸어주면 50만 원을 준다는 알바를 제의했다. 의뢰를 수락한 진구는 알바의 이면에 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서 그것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전 법대생이자 철저한 이성주의자인 주인공 김진구가 첫 등장하여 거액이 얽힌 범죄의 진상을 밝혀내고 범인을 협박하는 이야기. 안티히어로 스타일의 주인공 캐릭터가 독특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서 단순히 원주에서 전화를 건다는 사실과 집주소, 주변 탐문에서 시작하는 개인적인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개됩니다. 강현의 동기인 이른바 '순서의 문제'가 적절하게 사용된 것도 마음에 들고요. 트릭도 순간이동 트릭을 두 가지나 복합해서 사용하고 있어서 풍성합니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시체를 이동시키는 방법의 설득력이 약간 낮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강현을 협박하는 장면이 작위적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단점은 사소할 뿐이며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대모산은 너무 멀다"

진구가 여자친구 혜미가 목격한 지하철의 수상한 남자의 행적을 가지고 순수한 추리를 펼쳐보이는 안락의자 탐정물.

추리적으로 논리정연하고 그럴듯하기는 하나 정말로 그것이 사실로 맞아떨어졌다는 것은 좀 억지스럽더군요. 자기 얼굴이 할퀴었다고 손을 잘라서 버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정말이지 몇 명이나 될까요? 그것도 잘 모르는 산으로 버리러 간다... 솔직히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진구의 추리는 그럴듯하나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추피추의 꿈"

진구가 혜미와의 마추피추 여행에서 비행기를 놓친 뒤의 이야기를 다룬 일상계.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려우나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결국 목적지는 같다는 콜럼버스적인 마인드가 돋보였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티켓다방의 죽음"

해미의 외숙부가 출장 중 여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결과는 자살. 그러나 보험금 문제가 있어서 혜미의 부탁과 보험금의 20%를 조건으로 진구는 타살 여부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진구의 목적은 진상을 밝히는 게 아니라 외숙부 양문요가 자살한 게 아니라는 걸 경찰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라는 설정부터가 독특합니다. 

진구가 벌이는 여러 가지 작전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흉기 집중 효과를 응용하여 목격자인 다방아가씨 유현아에게 다른 사람 사진을 보여주어 증언을 헛갈리게 하고, 외숙부 양문요가 첫 자살을 시도할 때 1/3 남아있던 청산가리가 시체 발견 시에는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타살설을 주장하는 식인데 경찰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럴 듯 했습니다.

결국 노력이 벽에 부딪힌 뒤 우연히 얻은 단서를 바탕으로 진상에 접근하는 과정과 보온병을 이용한 작전 역시 탁월했고요.

단점이라면 여관주인 여춘길이 5만 원권을 1만 원권으로 바꾸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우연에 의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여춘길 방에 침입했을 때 관련된 단서를 발견했다는 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더 깔끔했을 것 같습니다. 여춘길이 1만 원권으로 바꾼 동기도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어요. 지폐에 청산가리를 묻힐 생각을 하느니 돈을 숨긴 장소에 숨어 있다가 미행하는 게 더 설득력 있는 행동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마지막에 첫 등장에 보여준 지폐를 이용하여 극적 반전과 함께 독자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결말도 아주 좋은, 완성도 높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신 노란방의 비밀"

살인범에게 납치당했다가 탈출한 소녀 은비의 증언은 그곳이 노란색 방이었다는 것.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의 집은 노란색과는 거리가 멀어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는데...

공감각을 가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소리와 시각의 치환을 다룬 소품. 제목은 거창하나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벌이는 느낌이라 딱히 와닿지는 않았어요. 외려 진구의 과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더 재미있었던, 쉬어가는 작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뮤즈의 계시"

진구, 해미는 살인 사건의 증인으로 재판정에 섰다. 해미의 직장 동료 김주희와 그의 동거남 하성남의 집들이 파티 때, 하성남의 아내 선혜영이 살해된 사건 재판이었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시체를 옮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구, 해미와 함께 있으면서 살인을 저질렀는지? 라는 두 가지 수수께끼를 만든 트릭이 돋보입니다. 특별한 곳에 위치한 집과 그 집의 구조도를 잘 이용한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이 이용되었는데 아주 괜찮았거든요. 결정적 단서가 되는 USB 음악 재생 아이디어는 정말 기가 막혔고요. 트릭의 정교함과 아이디어는 고전 황금기 걸작에 비교될 만 합니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해서 팬에게 서비스하는 모습도 좋았고, 작가의 경험을 잘 살린 법정 장면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과연 살해 현장에서 시체를 옮겼다는 것을 현대 법의학이 알아내지 못했을까? 하는 작은 의문이 생기기는 하나,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최고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환기통"

보석 도둑을 쫓던 경비원이 살해된 사건의 진상을 다룬 소품.

진구와 해미가 처음 만나게 된 당시에 벌어졌던 사건을 그리고 있는데 트릭은 실제 사건 현장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명되었더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기에 그다지 눈여겨볼 건 없습니다.

오히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과정이라던가(어차피 체포되었으니까), 환기통 안에서 구멍을 내었는데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등 어색한 부분이 거슬릴 뿐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3/09/19

전쟁의 재발견 - 김도균 : 별점 2점

전쟁의 재발견 - 4점
김도균 지음/추수밭(청림출판)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전쟁을 몇 개의 테마로 묶어서 엮은 전쟁-미시사 서적.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장. 세계사를 뒤흔든 천재적 조직술_ 군대의 재발견
전장에서 꽃피운 사랑―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군대, ‘신성대’
수천 년 이어온 베트남 저항정신의 상징―고대 베트남의 여성 전사, 쯩 자매
오스만튀르크의 전성기를 구가한 ‘병정개미’―술탄의 친위대 예니체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를 향한 열망―미국 최초의 흑인 부대, 54연대
독일군의 밤잠을 설치게 한 ‘밤의 마녀들’―소련 여성 폭격기 연대
붉은 꼬리의 검은 조종사들―아주 특별한 흑인 비행대대, 터스키기 비행대
소련의 보이지 않는 사단―히틀러도 감쪽같이 속은 소련군의 동원 제도
일본의 피를 이어받아 미군을 위해 싸우다―일본계 2세로 편성된 미군의 442연대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소련의 죄수 부대, 형벌 대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귀신도 울고 가다―미국의 땅굴전 특수부대, ‘터널 래츠’
전사는 죽어서도 전사다―전사자의 여로
힘들고 지친 병사들의 로망, 핀업걸―전장의 엔터테인먼트

2장. 인류의 문명을 비약시킨 천재적 기술_ 무기의 재발견
세계 대변혁을 일으킨 작은 금속 조각―중세 봉건시대를 연 등자
스멀스멀 피어오른 노란 안개의 정체―영혼 없는 한 과학자의 비극과 독가스
대량 살상을 부른 속도에 대한 열정―보병을 참호 속으로 밀어 넣은 기관총
독일군의 오금을 저리게 한 철갑 괴물―지상전의 왕자, 전차의 탄생
‘크기’가 승패를 가른다―대함거포주의의 산물, 드레드노트
소리 없이 다가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다―해전의 필살 병기, 어뢰
전쟁을 가장 비인도적으로 만든 주인공―숨은 살인자, 지뢰
무인 폭격기, 미사일의 공포―나치 독일의 보복 병기, V-1과 V-2
빗나간 열정이 만든 인류 최대 재앙―현대판 ‘다모클레스의 칼’, 원자폭탄
군견 칩스가 훈장을 빼앗긴 사연―주인을 사랑한 군견의 죄
금강산도 식후경?―군 사기와 직결된 전투 식량의 역사
전장에서는 죽음에도 순서가 있다―야전 의료 시스템의 역사
‘뽕’ 맞은 전사들―전쟁의 우울한 이면, 약물

3장. 극한의 상황에서 꽃피운 천재적 리더십_ 전투의 재발견
한니발, 세계 최강 로마군을 전멸시키다―포위 섬멸전의 교과서, 칸나에전투
포위한 군대가 포위당하다―카이사르의 알레시아 공방전
‘신의 도리깨’, 유럽을 내리치다―유럽인의 황색 공포, 레그니차전투
십자가와 코란, 역사적인 첫 대결을 펼치다―레판토 해전
영국군 역사상 가장 졸렬한 전쟁―무능하기 그지없는 지휘관과 발라클라바전투
아메리카 원주민 최후의 저항―완벽한 승리와 치졸한 복수, 리틀빅혼전투
역사상 가장 값비싼 따귀 한 대―일파만파의 교훈, 타넨베르크전투
외로운 섬을 지켜낸 영국인 ‘최고의 시간’―‘나치 팽창’의 마지막 방어선, 영국전투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승리하다―명절의 허를 찌른 베트남전 구정 공세

4장. 인간을 극한으로 몰고 간 천재적 심리술_ 군가의 재발견
켈트인의 아련한 독립의 꿈―〈스코틀랜드 더 브레이브〉
레드 코트, 줄루 전사들의 창을 꺾다―〈할렉의 사나이들〉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국가―〈라 마르세예즈〉
한 급진주의자의 죽음이 부른 거대한 전쟁―〈존 브라운의 시신〉
파리를 핏빛으로 물들인 코뮌의 슬픈 봄―〈체리가 익을 무렵〉
피어보지도 못한 칠레 민중의 혁명가요―〈벤세레모스〉
영광과 피투성이는 한 끗 차이―〈라이저 위에 피〉
그림자 전사들의 연가―〈발라드 오브 그린베레〉

이렇게 총 4장으로 구분되는데 1장, 2장, 4장이 괜찮았어요.

1장에서는 술탄의 최정예 부대 예니체리의 흥망성쇠를 그린 이야기는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이,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흑인 부대였던 54연대를 다룬 이야기는 영화 "글로리 - 영광의 깃발"이 떠올라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소련의 형벌부대나 월남전의 미군 땅굴전 특수부대 터널 래츠 등이 인상적이었고요.

2장을 통해 고대 바이킹 전사 베르세르크의 종교 의식에 광대 버섯을 먹인 순록의 오줌이 사용되었다는걸 처음 알았네요. 광대 버섯의 암페타민이 축적되어 환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데, 중독자들이 들으면 꽤나 솔깃할 정보로 보입니다.

4장은 "군가"라는 주제부터 굉장히 이색적인데, 해당 군가가 발표된 시기와 이유를 상세하게 그리는 시도가 아주 좋았습니다. 노예해방론자인 광신자 브라운의 이야기를 다룬 "존 브라운의 시신",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의 최후를 그린 "벤세레모스" 등이 그중 마음에 들었고요. "군가"로 보기 힘든 노래가 함께 실려 있다는 점, 그리고 웨일즈의 군가를 다루면서 줄루 전쟁 이야기로 이어지는 "할렉의 사나이들"과 같이 군가와 실제 내용의 연관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약간의 단점은 있지만, 독특한 주제를 다루었기에 양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많이 접했던 유명 전쟁사 내용을 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3장과 부실한 도판은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도판은 그렇잖아도 부실한데 한 장짜리 이미지를 4장으로 약간의 톤을 조절하여 복사하여 실어놓은 기이한 편집으로 실려 있어서 더 짜증났어요. 딱히 보기 좋은 것도 아니고 디자인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닌, 그야말로 삽질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4장 하나만큼은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주제이지만, 전반적으로 자료적인 가치는 낮습니다. 내용이 지나치게 간략하고 요약되어 있으며, 도판이 부실한 탓입니다. 진지한 전쟁사를 원하시는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짤막하게 심심풀이로 읽을거리로 적당한 책입니다.

2013/09/17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 1,2,3 - 에드 브루베이커 / 스티브 엡팅 / 최원서 : 별점 2점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 1 - 4점
에드 브루베이커 지음, 최원서 옮김, 스티브 엡팅 그림/시공사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가 법원 앞에서 저격당해 죽는다. 윈터솔저 벅키와 팔콘이 힘을 합쳐 죽음에 대한 진상을 파헤치는데...

"시빌 워" 직후, 아이언맨과의 싸움을 멈추고 체포당한 캡틴 아메리카가 살해당한 뒤 윈터솔저 벅키가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작품. 레드스컬의 음모와 엮어 흥미진진하게 진행됩니다.

캡틴의 연인이었던 샤론 카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음모와 레드스컬이 노리는 것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의외의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의 복선이 치밀하다는게 장점입니다. 주요 등장 히어로인 벅키, 팔콘, 블랙 위도우 등은 초인이라기보다는 전투에 능숙한 병사의 느낌이기도 해서 슈퍼 히어로물이라기보다는 하드보일드 액션 스릴러 느낌을 강하게 주는 점도 좋았어요. 쩌리, 또는 주인공 친구 정도의 역할로 보인 팔콘의 활약은 놀라웠고 마지막 레드스컬의 최후도 꽤 마음에 든 부분입니다.

그러나 왜 레드스컬이 과거의 캡틴 아메리카의 짝퉁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는지(어차피 복면이면 부하 중 아무나 시켜도 되잖아요?), 샤론의 임신이 왜 그렇게도 중요하게 언급되는지, 닥터 둠의 기계를 어떻게 쓰려고 한 것인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점은 아쉽습니다.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 같은데 이 작품 하나만으로의 완성도는 저해하는 요소였습니다. 이는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최소한 레드스컬이나 졸라가 누구인지, 윈터솔저의 과거는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슈퍼 히어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라 자부하는 저조차도 솔직히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아울러 작화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시크릿 인베이젼"보다는 나으나 굉장히 거칠고 올드한 느낌의 펜선은 영 적응이 안 될 뿐더러, 캐릭터가 누가 누군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탓입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내용 자체는 독특해서 뻔한 슈퍼히어로물에 질린 독자에게는 충분히 환영받을 수 있는 소재지만 한 편만으로 완결되기에는 부실한 작품이었습니다. 최소 2배 정도의 분량의 설명이 덧붙여졌어야 했습니다.

2013/09/16

아리아드네의 실

"아리아드네의 실"

간만에 접한 한국 현대를 배경으로 한 깔끔한 소품. 작가는 국내 최대의 추리 애호가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터리"의 운영자인 decca님이십니다.

초반부 PC 통신에서의 스무고개를 매개체로 한 동호회 "아리아드네의 실" 탄생과정이 상당히 흡입력 있고,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의 "여고형" 캐릭터도 꽤 인상적인 작품이에요. 중간중간 헛점이 존재하지만 충분히 재미삼아 읽어볼 만한 작품이기에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분량도 적당하고요.

아울러 이왕 네이버 웹소설에서 "장미빛 인생""강호십삼수"도 함께 찾아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 크리스 피어스 / 황보종우 : 별점 2점

전쟁으로 보는 중국사 - 4점
크리스 피어스 지음, 황보종우 옮김/수막새

상나라에서부터 청나라까지, 모든 중국 통일 왕조의 흥망성쇠를 왕조별 주요 전쟁과 함께 소개한 역사서입니다. 이쪽 바닥에서 유명한 오스프리 시리즈의 중국 관련 몇 권을 합본한 책이지요.

장점이라면 주요 전쟁 중심으로 요약이 잘 되어 있어서 읽기가 수월하다는 점, 그리고 오스프리 특유의 디테일한 일러스트 및 풍부한 도판입니다. 전쟁 중심으로 쓰여졌기에 각 시대별 부대의 유형, 주요 무기와 전략이 알기 쉽게 소개되는 것도 좋았고요.

서양의 시각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인지 독특한 부분도 몇 가지 눈에 띄였습니다. 최대 판도를 기준으로 설명하기에, 당나라가 청나라 이전에는 중국 최강의 군대를 갖춘 국가였다고 설명하는 식이거든요. 결국 여러 왕조가 멸망한 것은 지나치게 넓은 국토 탓으로(지방 군벌의 발호) 보는 시각 역시 다른 역사서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었고요.

그러나 확실히 방대한 중국 역사를 300여 페이지로 정리한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왕조별 흥망성쇠를 전쟁만 가지고 해석하는 것은 단편적 시각이라 생각되고요. 예를 들면 전통적으로 한족이 기병을 양성할 수 없었던 이유로 군마 양성에 적합한 오르도스 초원지대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내용 거의 전편에 걸쳐 펼쳐지는데,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결과물입니다. 방대한 중국 영토에 군마 양성에 적합한 평지가 과연 또 없었을까요?

그리고 번역하면서 생긴 문제로 보이는데 중국식 발음과 한국식 한자 발음이 뒤섞인 기묘한 본문 역시 몰입을 방해합니다. 동관, 산해관은 한국식 발음과 허베이, 푸저우라는 중국식 발음이 공존하는 식이거든요.

마지막으로 이러한 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을 지도가 부실한 점은 많이 아쉬워요. 대략의 대표 세력도 정도만 실려 있을 뿐 실제 주요 전쟁이라고 소개하는 곳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요충지인 산해관이나 동관 등 주요 전장이 된 곳은 시대와 상관없으니 전도 형식으로 맨 앞이나 뒤에 삽입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요약이 심한 나머지 깊이를 다 잃어버린 그런 책이었습니다. 읽는 재미는 있지만 역사서다운 맛이 부족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전쟁으로 보는 삼국지"처럼 역사를 바꾼 큰 전쟁만 다루는 식으로 전쟁 그 자체에만 집중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2013/09/12

가지 - 구로다 이오우 / 송치민 : 별점 3점

가지 - 상 - 6점
구로다 이오우 지음, 송치민 옮김/세미콜론
가지 - 하 - 6점
구로다 이오우 지음, 송치민 옮김/세미콜론

예술성 강한 만화에 대한 뛰어난 리뷰로 유명한 블로거 대산초어님이 추천하신 만화. 이 작품의 에피소드 중 하나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안달루시아의 여름"도 꽤 괜찮게 감상하였던 기억도 있어서 얼마 전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읽었을 때에는 "으응?" 이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림체도 독특했고, 일상계에서 스포츠물과 SF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이야기도 매력적인데 딱히 와닿는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빵 터지는 대단한 극적 장치나 독자를 사로잡는 확실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라서 2% 부족해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이 작품의 진가를 알 것 같습니다. 약간 모자란 데서 오는 여유로움이라고나 할까요? 시골 마을에서 가지농사를 짓는 낙향한 지식인의 표상 같은 다카시, 집안이 쫄딱 망해서 시골 마을 친척 집으로 낙향한 뒤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여고생 아야, 편한 삶만을 추구하는 프리터 사나에, 젊은 나이에 은거자가 되고 싶어하는 아리노, 우승과는 거리가 있고 애인마저 친형에게 빼앗긴 프로 자전거 선수 페페 등 부족하고 어설퍼 보이는 인물들이 가지 농사를 짓거나 캐치볼을 하러 가는 식으로 소소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이 와중에 예상을 뒤집는 일종의 역전극이나 반전을 보여주는 덕분에 뿌듯함도 느낄 수 있고요.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는 것이겠죠.

"젊은 여자에게는 가치가 있지만 젊은 남자에게는 없다"와 같은 나름 인생에 대한 촌철살인 명대사가 가득한 것, 붓과 펜을 자유롭게 활용한 그림도 매력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붓 쪽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한 매력이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 가지요리가 먹고 싶어지는 것은 덤이겠죠. 참고로 요리는 채다인님의 블로그를 참고하세요.

덧붙이자면 에도에서 첫물 가지 때문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얼마 전 읽었던 "에도의 패스트푸드"에 등장하기도 해서 더 와 닿았습니다. "에도의 패스트푸드"에서는 쇼군의 명령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긴 했습니다만....

2013/09/11

중세의 뒷골목 풍경 - 양태자 : 별점 3점

중세의 뒷골목 풍경 - 6점
양태자 지음/이랑

한국인 양태자 박사가 꼼꼼하게 조사한 중세 유럽의 갖가지 문화와 풍속을 소개하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결혼, 구혼, 성문화, 패션과 유행, 도박, 술, 장례문화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딱딱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소개하는 주제마다 적절한 도판으로 이해를 도와주는 것도 좋고요. 이 점은 바로 전에 읽은 "에도의 패스트푸드"와는 정반대이지요. 짧은 분량이지만 핵심을 전달하는 글솜씨가 빼어난 덕입니다. 

출처로 밝히는 사료도 굉장히 방대합니다.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중세 유럽의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실려 있는 내용 모두가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몇 개 소개하자면, 먼저 당시 있었다고 널리 알려진 '영주의 초야권'을 다룬 항목입니다. 저 역시도 존재했던 역사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현재도 찬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검증되지 않는 사실이라고 하네요.

또 성문화 항목(네,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죠)이 흥미를 당기는데, 실려 있는 '남성 성기능 보충약(정력제)' 처방 몇 개 소개해 보겠습니다.

  1. 금어초를 씹어 먹는다.
  2. 절인 생강을 먹는다.
  3. 튤립의 뿌리, 일반 양파, 지중해 지방에서 나는 아니스, 파, 회향풀, 엉겅퀴, 사프란 등도 권장

이른바 '최음제'도 등장합니다. 소박하면서도 현실적인 처방입니다.

  1. 노란 순무
  2. 파슬리와 당근
  3. 가지과의 독초인 사리풀

이외에도 소매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옷의 유행 등 새롭고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추천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중세 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필독서라 생각되네요. 이런 좋은 책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쓰였다는 게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2013/09/09

에도의 패스트푸드 - 오쿠보 히로코 / 이언숙 : 별점 2점

에도의 패스트푸드 - 4점
오쿠보 히로코 지음, 이언숙 옮김/청어람미디어

17~19세기까지의 에도막부 전성기 때의 다양하게 발달한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식문화 및 일종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제목 그대로 포장마차에서 다루었던 다양한 패스트푸드는 물론, 가이세키 요리로 대표되는 요리집 요리까지 당대의 식문화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에도라는 도시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담뿍 포함된 것 역시 매력적이고요.

주제답게 다양한 요리에 대한 소개가 압권인데, 예를 하나 들자면 "맛의 달인"의 두부 승부 편에서도 등장했었던, "두부백진"에 실린 최고등급의 두부요리 "절품"에 대한 것입니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절품 7종 : 아게나가시(튀긴 두부), 매운 맛 두부, 두부 산적, 탕 두부, 유키게메시, 구라마 두부, 신노우동 두부
  • 아게나가시 - 튀긴 두부를 탕 두부처럼 다시마를 우려낸 국물에 조린 것
  • 매운 맛 두부 - 매운 맛은 생강의 매운 맛
  • 두부 산적 - 두부를 2.5센티미터의 네모로 썰고, 다시 두께 1.5센티미터로 썰어 꼬치에 3개씩 꽂아 갈색이 날 때까지 구운 뒤 꼬치를 빼고 뚜껑 있는 도자기 그릇에 담아 겨자, 식초, 된장으로 만든 소스를 뿌리고 겨자 열매를 얹은 것
  • 탕 두부 - 두부를 갈분탕에 따뜻하게 데워서 날간장을 끓이고 가다랭이포를 넣어 걸러낸 뒤 파, 당근 간 것, 겨자 가루를 넣은 요리.

그러나 단점도 확실해요. 너무 재미가 없어요. 좀 재미있게 여러 가지 도판을 곁들여가며 소개해 줄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이른바 4대 패스트푸드인 덴푸라, 니기리즈시, 메밀국수, 장어구이에 대해 소개하는 초반부는 나름 괜찮았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논문 느낌이 들 정도로 학술적인, 그냥 정보의 나열에 불과해서 읽기가 힘들어집니다.

일본의 여러 가지 요리의 역사와 그 발전상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읽으실 가치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미시사 서적으로의 기본적인 재미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아놀드 베넷 외 : 별점 1.5점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4점 아놀드 베넷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도서출판 한스미디어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추리소설 앤솔러지. 유명 고전 작가들의 단편은 물론이고 초창기 추리 이론까지 풍성하게 실려있습니다.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1권은 읽은 작품이 너무 많고 지나치게 고전 취향이라 2권부터 구입하게 되었네요. 2권 역시 다른 책에서 읽어본 작품이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워낙에 목차가 괜찮고 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전 황금기 작품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기에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번역입니다. 일본어 중역 느낌이 물씬 날 뿐더러 그 자체가 별로 매끄럽지 않아 읽기 힘들었어요. 악명 높은 동서 추리문고 최악의 번역도 이거보다는 좋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고전 황금기 걸작이 아닌 몇몇 현대 일본작가 작품이 섞여 있는 것도 기획 의도가 모호해 보여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기획의도만으로 3점은 충분하지만 번역은 용서가 안되네요. 좋은 기획의도가 번역 때문에 다 망가진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한스미디어의 다른 작품들은 괜찮았었던 것 같은데 대관절 영문을 모르겠군요.

몇몇 작품은 걸작이지만 대부분 다른 책에서 훨씬 좋은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라진 기억" | 배리 퍼론

극작가 애닉스터가 완벽한 밀실살인 트릭을 생각했는데, 교통사고로 트릭을 잊어버린 탓에 술집에서 트릭을 알려주었던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

교통사고로 딱 필요한 기억만 상실한다는 작위적인 설정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꽤 그럴듯한 전개, 그리고 마지막에 애닉스터가 상황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남자에게는 애닉스터만이 유일한 위험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서늘한 반전류의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

"살인!" | 이넉 아놀드 베넷

명백한 살인사건인데, 경찰이 수사 결과 몇몇 남겨진 단서를 통해 자살로 결론 내린다는 내용의 소품. 솔직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심리 묘사에 대한 번역에 문제가 많았던 것 같은데 제대로 된 번역으로 다시 읽고 싶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피트 모란, 다이아몬드 헌터" | 퍼시벌 와일드

"탐정 피트 모란"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그때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번역이 너무나 별로인 탓에 작품마저도 후지게 느껴지는 기묘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실망하신 분들께서는 "탐정 피트 모란"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번역 때문에 별점을 주기조차 어렵네요.

"골초는 빨리 죽는다" | 이자와 모토히코

"역설의 일본사" 말고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상을 많이 수상했던 유명 작가의 단편.

두 명의 대화로만 전개되는 형식과 담배로 촉발된 살의라는 설정은 독특한데, 결말이 너무 심하게 별로였습니다. 반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좀 어이없는 결말이었거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먹이" | 토마스 테셔

이형 생물체가 등장하는 크리쳐 호러물. 스티븐 킹의 비슷했던 작품(한 소년의 아버지가 점액질 괴물이 된다는 이야기)와 비슷한데, 이 작품은 "애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비극적 결말이라는게 차이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라서 평하기는 어렵지만 공포도 아니고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결말에서 반전이 돋보이는 것도 아닌 그냥저냥한 소품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콜 Y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제가 개인적으로 번역했던 작품이죠. 읽어보니 원작을 "직역"한 번역으로 읽기가 어렵더군요.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3점인 좋은 작품인데 안타깝네요. 솔직히 제 번역과도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녀들의 쇼핑" | 쓰쓰이 야스타카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해본 적 있는 이색작.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부들이 강도단을 조직한다는 내용입니다. 작품 자체의 수준은 그냥저냥이지만, 작가 특유의 섬뜩한 풍자 하나만큼은 인상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대사가 백미!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살의" | 다카기 아키미쓰

역시나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했던 작품으로, 굉장한 걸작입니다. 이른바 "일사부재리" 원칙의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는데, 마지막 반전까지 빼어난 단편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살의"라는 말이 들어간 작품들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은 하나같이 괜찮네요.

"아버지" | 토마스 H. 쿡

토마스 H. 쿡의 장편은 몇 권 읽어보았지만 단편은 처음입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만 장편 못지않은 묵직함이 잘 전해지는 묘사가 아주 좋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무대 뒤의 살인" | 에드워드 D. 호크

총 3편의 초단편 Short-Short로 이루어진 작품.

예전에 읽었던 "4페이지 미스터리"와 유사하나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3편의 이야기 모두 논리정연하면서도 예상을 뒤집는 정통 추리물이거든요.

첫번째 작품은 사진 필름 원판을 가지고 협박하는 협박자가 살해된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런저런 논리 퍼즐에서 많이 보았던, 다섯 번째 남자마다 처형당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는 이집트 전시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입니다.

첫번째 작품은 에스터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돋보였어요. 특히나 1만 2500달러라는 애매한 비용과 30분이라는 시간 공백을 설명하는 게 제법이었거든요.
마지막 작품은 살인사건은 전혀 상관없는 동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반전이 인상적이었고요.

결론내리자면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명성에 걸맞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오번 가문의 비극" | 매슈 핍스 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단편 미스터리 시리즈인 "프린스 자레스키" 시리즈!

그러나 별로 건질 게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프린스 자레스키 설정은 너무나 만화 같았고 사건도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아버지가 광인이 된 것을 왜 숨겨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고 사건 현장 윗층에서 과학교실을 열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조작을 하는 것도 와닿지 않았어요. 그냥 본인이 자살하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었을 텐데 말이죠.

한마디로 수준 이하의 작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것은 물론 번역까지 별로라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불도그 앤드류" | 아서 체니 트레인

터니게이트 - 애플보이 사이의 영토 분쟁에서 불도그 앤드류가 지나가던 터니게이트를 문 뒤 기소되어 법정에 선다는 법정극.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좀 무리지만 유머스러운 일상계 법정극으로는 충분히 읽을 만 했습니다. 재판장의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약간의 반전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번역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마크 트웨인이 연상되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내의 외출" | 자크 푸트렐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이 책에 수록된 제목은 "녹색눈의 괴물"이죠). 당대 보기 드문 일상계로 가치 높은 수작입니다.

그러나 별점을 주기 민망할 정도로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서 도저히 읽을 맛이 나지 않네요.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A 분장실의 수수께끼" | 자크 푸트렐

역시나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것과 같은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 여배우의 증발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장치적으로는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가 선보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핵심이 "최면술"이라는 게 문젭니다. 당시 최면술이 마법처럼 받아들여진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물로 생각되는데 지금 읽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떨어지니까요. 번역 역시 수준 이하였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알리바바의 주문"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윔지 경 단편.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던 "검은별"과 동일한 스타일의 모험극. 추리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거의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오필리어 살해" | 오구리 무시타로

"흑사관 살인사건"의 오구리 무시타로가 쓴, 범죄학자이자 탐정 노리미즈 린타로가 등장하는 단편. 셰익스피어 스타일 연극 무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무대 장치를 이용한 기계장치 트릭에 더해 심리적 착각을 이용한 트릭이 등장하죠.

현실적이지 못한 트릭,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학적인 전개와 묘사, 거기에 동기까지 애매하여 전체적인 완성도가 낮습니다. 정통추리물로 보기도 어려웠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의 마음은 찢어졌어" | 크레이그 라이스

"스위트홈 살인사건"의 크레이그 라이스가 쓴 단편. 주인공인 술꾼 찌질이 변호사 말론은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네요.

의뢰인인 사형수 폴 파머 자살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폴 파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끊어지지 않았어"를 단서로 마지막에 추리쇼까지 펼쳐 보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추리물입니다.

정통파답게 추리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초반부 딕슨 의사와의 대화로 병원에서 탈옥한 죄수가 있다는 단서를 전해주는 등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도 좋았고요.

메들레인 스타가 그냥 폴 파머와 결혼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텐데 성공 확률이 낮은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옥의 티이긴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3/09/06

포와로의 귀환?

"푸아로의 귀환?"

poirot 님 블로그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읽고 트랙백합니다.

크리스티 재단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위해 시도하는 것 같은데 그닥 성과를 얻으리라 생각되지는 않네요. 작가도 생소하고, 올드팬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내심 기대가 되기에 출간된다면 사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2013/09/03

라인업 - 켄 브루언 외 / 오토 펜즐러 엮음 : 별점 3점

라인업 - 6점 켄 브루언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박산호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추리애호가이자 편집자이기도 한 오토 펜즐러의 본업은 추리 전문 서점 주인입니다. 서점의 매출 증진을 위해 고민하던 오토는, 유명 작가들의 시리즈 캐릭터 전기나 프로파일을 제작하여 고객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것을 모은 결과물이고요. 자신의 영리 창출을 위한, 한마디로 사심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반응도 좋았고 팬들도 색다른 읽을 거리를 만나게 된, 윈-윈 기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스물한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켄 브루언의 잭 테일러
  • 리 차일드의 잭 리처
  •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 존 코널리의 찰리 파커
  • 로버트 크레이스의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 콜린 덱스터의 모스 경감
  • 존 하비의 찰리 레스닉
  • 스티븐 헌터의 밥 리 스왜거
  • 페이 켈러맨의 피터 데커와 리나 라자루스
  • 조너선 켈러맨의 알렉스 델라웨어
  • 존 레스크로아트의 디스마스 하디
  • 로라 립먼의 테스 모나한
  • 데이비드 모렐의 람보
  • 캐롤 오코넬의 말로리
  • 로버트 B. 파커의 스펜서
  • 리들리 피어슨의 루 볼트
  • 앤 페리의 토머스와 샬럿 피트
  • 더글러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의 펜더개스트
  •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
  •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의 프레셔스 라모츠웨

이중 제가 알고 있는 캐릭터는 겨우 절반 정도? 그 중 읽은 것은 더 적군요. 음.. 공부가 부족해요. 어쨌거나, 이 중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얼마 전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가 발표되기도 한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창작 비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유는 본인의 창작 이론이 명확하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 첫째 캐릭터가 왕이다. 독자들의 뇌리에 남는 것은 플롯이 아니라 캐릭터다.
  • 둘째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 세번째 캐릭터를 너무 구체적으로 설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같은 것이죠. 솔직히 세 번째 것은 좀 이해가 안되지만 어쨌거나 초인기작가의 발상은 한번 봐두어서 나쁠 건 없겠죠?

그리고 스티븐 헌터의 밥 리 스웨거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황당하게도 다른 책에서 플롯을 훔쳤다는 고백에서 시작하여 데뷔작 "탄착점"을 쓰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아주 재미나요. 실제 저격용 총을 사서 훈련도 하는 등 별짓을 다했더라고요. 이러한 것이 리얼리티를 보장해 준 것이겠죠. 밥 리 스웨거 시리즈는 "더블 타겟"이라는 영화로만 접해보았는데 이 정도 입담이라면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또 이런 류의 책이라면 작가로 성공하기까지의 고생담이 빠질 수 없을텐데, 고생담으로는 존 레스크로아트의 디스마스 하디 이야기가 최곱니다. 요약하자면, 문학도이자 밴드 활동을 한 뮤지션인 저자가 순문학 작가로 야심을 불태우지만 상업적으로 잘 풀리지 않아서 일종의 패러디를 통해 장르문학에 뛰어들고, 이를 성공시켜 그 돈으로 생활하면서 순문학 소설 (즉, 진짜 소설)을 쓰기 위한 발판 마련을 위해 첫 추리소설을 쓰나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합니다. 이 시점에 그는 원고를 네 개나 완성했는데 딱 하나만 출판되었고 그나마도 문고판 초판본이 전부라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이후 작가로의 삶을 포기하지만 병이 생겨 직장을 그만두었고, 마지막으로 전업 작가에 도전하여 시리즈를 발표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운 좋게도 2년 전 책이 대박이 나서 결국에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파란만장하다는 말이 잘 어울려요.

이와는 정 반대인 "콜린 덱스터와 모스 경감"에 대한 글도 인상적입니다. 독자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형태로 구성된 글인데 모스 경감 시리즈는 그냥 취미로 쓴 글이라는 것, 본인은 운이라고 말하는데 첫 작품을 수정 없이 당대 최고의 범죄소설 출판사에서 출판하게 된 일, 뛰어난 인재들 (앤서니 밍겔라!)과 배우들 (존 길구드에서 엘리자베스 헐리까지)가 포진된 유명 TV 시리즈로 방영되기까지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읽으면서도 다른 작가들과는 너무나 판이한 성공담은 정말이지 놀랄 정도였어요. 그만큼 작품의 질이 뛰어난 덕이겠지만요.

조금 장르는 다르지만 "람보"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월남전 당시의 분위기가 어떻게 창작에 반영되었는지가 아주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 덕분입니다.

몇 편의 픽션 형태의 글 중에서는 리들리 피어슨의 "루 볼트"가 최고였습니다. 루 볼트 형사가 경찰서 내부에서 일어난 1만 달러 반환 사건에 연루된 뒤 취조를 받는 과정에 대한 기록인데 ,볼트가 당당한 태도로 상대방을 교묘하게 옭아맨 뒤 빠져나가는 솜씨가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의외의 진상이라는 반전까지 있기에 한 편의 단편으로도 손색없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 외의 이야기들도 한번 읽을 가치는 충분해요. 프로 작가들의 창작과정은 읽는 것 자체가 공부죠. 별점은 3점입니다.

2013/09/02

과학사의 뒷얘기 4 : 과학적 발견 - A.섯클리프 외 / 신효선 : 별점 2점

과학사의 뒷얘기 4 - 과학적 발견 - 4점 A. 섯클리프 외 지음, 신효선 옮김/전파과학사

"옛 추억 전파과학사 문고"

1,2,3권은 수십년 전에 이미 읽었기에 있는지도 몰랐던 4권부터 읽게 되었습니다. 

4권의 부제는 "과학적 발견", '새로운 것이 어떻게 발견, 발명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널리 퍼지게 되었는가?'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1. 최초의 압력솥
  • 2. 유별난 스테이크 굽는 법
  • 3. 한 접시의 감자
  • 4. 튤립광 시대
  • 5. 콩에 얽힌 기담
  • 6. 애플파이와 열의 전도
  • 7. 병맥주의 효시
  • 8. 담배는 만병 통치약
  • 9. 보라빛 속에서 태어나
  • 10. 두가지 식물 염료
  • 11. 두 수도승, 누에알을 훔쳐내다
  • 12. 국왕을 위해 면양을 훔쳐내다
  • 13. 정부를 위해 고무의 씨앗을 훔쳐내다
  • 14. 음악을 잘하는 못대장장이
  • 15. 도기와 자기
  • 16. 셰필드의 칼 대장장이
  • 17. 현수교 위에서는 발을 맞추지 말라
  • 18. 플림솔의 마크 - 만재홀수선
  • 19. 초기의 증기기관
  • 20. 기관차, 길에 나오다
  • 21. 탱크의 비밀
  • 22. 일식, 월식의 공포
  • 23. 우리에게 열하루를 돌려다오
  • 24. 콜롬부스와 달걀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과학적 발견 이외의 것들도 많이 실려있습니다. 감자와 담배가 전래된 과정, 네덜란드의 튤립광 시대를 다룬 부분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티레의 쇠고둥에서 보라색을, 섀프런과 꼭두서니에서 오렌지색과 붉은색을 추출하여 천연 염료로 쓴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또한, 산업스파이 행위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볼거리입니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못 만드는 기계를 바이올린 연주자로 가장하여 2년 동안 친분을 쌓은 뒤 설계도를 그려 귀국했지만, 중요한 핵심 설계도가 빠져 있어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자 다시 잠입하여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자르기 전에 물을 뿌린다'를 알아낸다는 이야기처럼요. 이 이야기가 실재인지, 아니면 허구인지도 저자가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실재로 있었음직한 이야기라고 하네요).

그 외에도 와트의 증기기관에 대한 상세한 설명, 탱크의 탄생에 대한 비밀 등 진짜 발명 이야기도 많습니다. 현수교 위를 행진하던 군대가 발을 맞추어서 공진현상이 일어나 현수교가 무너진 사건 같은 황당한 이야기는 보너스 같은 느낌이고요.

아울러 책 뒤 번역자의 말도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최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번역에 신경 쓴 노고도 감탄스럽지만 번역한 해가 1973년이기 때문입니다! 무려 40년 전, 저와 같은 나이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책 자체의 완성도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뒤로 갈수록 그렇잖아도 형편없었던 인쇄가 더 엉망이라 글자 자체가 번지고 어떤 페이지는 반쯤은 흐릿하게 인쇄되는 등 기본적인 부분이 부실한 탓입니다. 웬만한 복사집 제본책보다도 못한 결과물이에요. 책 뒤를 보니 2006년에 13쇄를 찍은 이후의 기록이 없고, 원래의 가격을 칼로 파내고 8,000원이라는 가격 스티커를 붙여 놓았던데 원가 천 원 이하의 재고본을 쌓아놓고 저 같은 호구에게 책을 팔아서 연명하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마저 듭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내용만 본다면 8,000원이라는 가격은 그다지 과하지 않고 저만의 옛 추억을 되새기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지불할 만한 가격이지만 이래서야 남에게 권하기는 어렵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