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0/11/29

리라장 사건 - 아유카와 데쓰야 / 김선영 : 별점 3점

리라장 사건 - 6점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리라장이라 불리는 건물에 일곱 명의 학생이 피서차 방문했다. 서로 친구들이었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갈등이 있었다. 그런 그들을 대상으로 한 무서운 연쇄 살인극이 시작되는데...

아유카와 데쓰야의 1958년도 발표 작품입니다. "필독 본격 추리 30선"이나 "동서 미스터리 베스트 100" 같은 리스트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전 본격물이지요. '판타스틱'에서 주최한 이벤트 덕분에 읽게 되었습니다. 리뷰에 앞서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들에게 닥친 연쇄 살인이라는 기본 설정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전형적인 일본 고전 본격물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도 1958년이라는 발표 시기 때문에, 기존 고전 본격물과의 차이점도 몇 가지 눈에 띄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리라장'이라는 장소의 존재입니다. 보통 이런 유형의 연쇄 살인은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클로즈드 서클' 형태로 전개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경찰이 수시로 오갑니다. 심지어 경찰이 리라장에서 함께 거주하기까지 하는 파격적인 설정을 선보입니다. 경찰의 수사 과정이 탐정보다 훨씬 비중이 높고, 반대로 탐정은 니조와 호시카게 류조의 두 명을 등장시키면서도 이들의 매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묘사도 특이했고요.

이런 점을 본다면 고전 본격물에서 트릭의 핵심만 남겨두고 작위성을 덜어낸, 고전 본격물에서 근대 사회파 추리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를 드러내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1950년대로 여전히 고전 본격물 쪽에 더 치우쳐져 있지만, 이후 1960년대에 접어들면 다카기 아키미쓰의 "야망의 덫" 등 장르의 주류가 점차 사회파 미스터리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과도기적인 모습에서 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우선, '리라장'이라는 장소와 스페이드 카드로 대표되는 작위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용의자가 축소되고 특정될 수밖에 없는 외딴 별장의 휴가 여행을 범행 무대로 삼기보다는, 도쿄에서 사고로 위장해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더 합리적인게 당연한데 말이지요. 탐정 캐릭터의 매력이 희박한 것도 고전 본격물에서 중요한 요소가 빠진 느낌이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또한, 이 작품의 핵심인 알리바이 트릭은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편이지만, 살로메 - 유키타케 살인 사건 이후에는 그렇게 정교하게 짜여 있지는 못합니다. 사건의 전개도 우연과 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요. 예를 들면, 알리바이부터가 경찰 수사의 부실함이 원인이었고, 하나 씨의 증언을 경찰들이 초반에 무시한 것, 하나 씨의 증언을 남편이 듣지 못한 것, 니조가 조사를 핑계로 입을 다물면서 사건이 이어지게 된 것 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찰이 상주하는 리라장에서 연쇄 살인이 계속 벌어진다는 것은 솔직히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특히 마지막 사건의 경우, 범인이 아비코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애초에 범행을 저지르지 않고 경찰에 사실을 알리는 것이 더 현명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가능 범죄를 또 저지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기본이 되는 트릭 자체는 상당한 수준이며, 초반부 살로메-유키타케 사건까지는 몰입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야기가 너무 확장되면서 사족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졌고, 무리한 전개가 많아진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런 점에서 명성과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네요. 물론, 기대가 너무 컸던 탓도 있겠지요. 개인적으로 니조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마무리했더라면 더욱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책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판형도 마음에 들고 표지 디자인도 세련되었으며, 앞부분의 등장인물 소개, 중간중간 포함된 약도, 뒷부분의 해설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옛날 추리 문고 스타일이 떠오르는데,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2010/11/26

'iPad 전용 신문' 머독-잡스의 동침, 성공할까?

자주 찾는 블로그에서 생각해볼 만한 기사가 있어 가져왔습니다. 원문 링크는 "iPad 전용 신문, 머독-잡스의 동침, 성공할까?"입니다.

루퍼트 머독이 잡스와 손잡고 iPad 전용 주간지를 창간한다는 이야기로, 핵심은 "독자들이 매주 0.99달러를 결제할 수 있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냐? BEP점을 통과하려면 주당 57만 명이 1년간 결제해야 한다. 물론 광고의 도움이 전혀 없다는 전제에서다. 그의 구상대로 50만 부를 넘어서 광고까지 붙는다면 1년 안에 BEP점을 넘을 수 있다. 가능할까?"라는 점인 것 같습니다. 당장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다른 블로거님께서 "아이패드 전용 뉴스 서비스 The Daily 평가: 흐르지 않는 정보"라는 글을 통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시기도 했고요.

그러나 저는 "The Daily"가 비록 실패하더라도, 향후 출판 시장이 필연적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 판단되기에 시장 선점과 노하우 축적을 위해서라도 적절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실패한다고 해도 기술과 데이터베이스, 각종 인프라는 그대로 남을 것이고, 미디어 황제 머독은 이러한 자산을 투자 금액 대비 몇 배로 활용할 수 있는 인물이니까요.

그나저나 국내 잡지사들도 빠르게 대비해야 할 텐데, 현재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앱을 개발해 배포한 뒤 '우리도 새로운 미디어에 진출했다!'라고 자부하며 안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디지털 출판은 기존 종이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디어임을 인지하고, 지금이라도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기본적인 인프라 확보는 물론, 태블릿 환경에 맞는 새로운 기획을 시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이고,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가는데 혹시 저에게 투자하실 분 없나요? 

2010/11/25

뉴욕을 털어라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 이원열 : 별점 3점

뉴욕을 털어라 - 6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이원열 옮김/시작

도트문더는 출소 직후 옛 친구이자 친적인 켈프로부터 '큰 건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신성시하는 에메랄드를 훔쳐내는 것. 도트문더는 이를 위해 운전수, 장비 담당, 자물쇠 담당을 추가하여 5인 팀을 구성하여 에메랄드를 훔쳐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순간의 실수로 장비 담당인 그린버그가 보석과 함께 체포되고 말았다. 이후 에메랄드를 되찾기 위해 교도소, 경찰서, 정신병원, 은행 지하금고를 차례로 털게 되는데...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대표작 중 한 편으로, 국내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하기 어려웠던 만큼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 작품의 테마는 '보석 절도'로, '케이퍼 소설'이라는 장르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드가상 수상 작품집 4"에 수록된 작가의 단편 "도둑들"과 주제와 분위기 모두가 비슷한데, 계속해서 꼬여만 가는 사건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주인공들의 모험, 마지막에 악당에게 한방 먹이는 반전에 이르는 과정이 유쾌하고 통쾌해서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습니다. 또한, 계획이 계속 변경되며 업그레이드되는 덕분에 여러 편의 소설을 한 번에 읽는 듯한 풍성함도 느낄 수 있었고요. 비슷한 설정의 일본 작품 "황금을 안고 튀어라"가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한 전개였던 반면, 이 작품은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양국 작가들의 특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같아 흥미로웠습니다.

주인공이자 절도 팀을 이끄는 리더 도트문더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치밀한 계획, 과감한 실행력과 더불어, 세탁기에서 잔돈을 훔치고 슈퍼마켓에서 음식물을 훔치는 등 소시민적인 면모까지 갖춘 독특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획이 꼬이는 과정과 이후 진행되는 과정에서 운과 우연의 개입이 많고, 작위적인 설정이 잦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완벽한 범죄 계획'이라는 테마에 비하면 밀도가 많이 낮아 보였어요.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고 그린버그가 체포되는 원인이 '유리 케이스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정부터 어설펐고, 변호사 프로스커가 보석을 빼돌린 과정이나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이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것도 아쉬웠습니다. 

그 외에도, 헬기를 동원한 경찰서 습격이라는 대형 사건을 일으켰지만 별 탈 없이 작전을 완료한다는 지나치게 유쾌한 설정과 '최면술'을 이용하는 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앞부분의 치밀했던 계획과 비교하면 다소 허술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에요.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로 유쾌하게 읽히는, 스트레스 해소용 화끈한 범죄 모험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케이퍼 무비'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책 옆날개에서 소개된 영화가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예고편도 바로 확인할 수 있더군요. 확실히 영화화하기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0/11/24

그러고보니....

생일입니다.

짤방과는 다르게 아내와 함께 보낼 예정인데 분위기도 그렇고 몸 상태도 별로 안좋네요.

앞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꽁트 - 우리 동네 이야기

이거 참 황당해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네? 내 얘기 좀 들어봐.

우리 동네에 인간말종 노숙자 같은 동네왕따 상거지가 한 명 살고 있어. 근데 얘가 내 친척이야. 오래전에 대판 싸우고 의절하기는 했지만. 어쨌건 그래서 우리 옆집에 터 잡고 살고 있어. 문제는 담뱃값 좀 달라, 소주 먹고 싶다, 이러면서 가끔 행패를 부리는 거야. 고성방가는 물론이고 우리 집에 돌을 던지든가 빈병을 던지든가 하는 식으로.

그래도 얼마 전까지 불쌍하기도 해서 좀 챙겨줬기 때문에 조용했었어. 그런데 최근에는 화가 나기도 하고 돈도 아까워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거든? 그랬더니 역시나 다시 뒤숭숭하더라고. 최근에는 가족문제도 좀 있는 모양이고.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는 아예 작정하고 소주병을 나한테 바로 던지더라고! 정통으로 맞아서 피도 나고 눈이 핑 돌데? 이건 좀 심하잖아! 나도 열받아서 병을 바로 집어던지는 식으로 맞섰지. 녀석도 맞은 것 같긴 한데 얼마나 다쳤는지는 잘 모르겠고... 솔직히 지금 아파 죽겠고 마음 같아서는 아예 잘근잘근 밟아서 반 죽여버린 다음에 동네에서 영원히 쫓아내고 싶어. 자랑은 아니지만 싸우면 당연히 내가 이길 것 같긴 하거든.

그런데 싸워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문제야. 일단 쟤 칼 갖고 있어. 나도 다칠지 몰라. 게다가 얘가 가끔 동네 사람들한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빈 통 안에 휘발유 들어 있다. 나 건드리면 확 불 싸지르고 나도 죽을 거다 하는 식으로 얘기하고 다니곤 했거든. 동네 경찰 아저씨가 몇 번 확인하고 수거도 해 가기는 했는데 아직도 저 통 안에 뭐가 있는거 같아. 혹 쫓겨나기 전에 불이라도 확 싸지르면 어떡해? 우리 집과 내 가족은 물론이고 최신식 삼성 TV와 현대차, 기타 등등 전재산이 날아가면 나도 망하는 거잖아.

그렇잖아도 어제 한판 싸웠다는 소문 도니까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근처에 가지 말라고, 우리 집 애랑 놀지 말라고 주의주는 판이라 동네에서 큰소리 좀 치는 형님들에게 도움은 청해봤는데 별 소용 없더군. 가끔 저 상거지 깡패 돌봐주는 옆집 중국집하는 형님도 웬만하면 좋게좋게 넘기라고 하고 있고 우리 집 앞에 CCTV 설치해준 쌀집 아저씨 (별로 고맙진 않아. 관리비나 전기료는 내가 내니깐) 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느냐고 하더라고. 하긴 그동안 경찰이나 형님들도 어쩌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뭐가 바뀔리는 없겠지.

하아~ 이럴 거면 속은 엄청 쓰리지만, 그냥 담뱃값이나 주면서 달래줄걸 그랬나 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 노숙자 깡패 원수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2010/11/23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 - 로이스 그레시 외 / 유나영 : 별점 2점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 - 4점
로이스 그레시, 로버트 와인버그 지음, 유나영 옮김/한승

이전에 읽었던 "셜록 홈스의 과학"이 아주 좋았기에 읽게 된 시리즈 책입니다. 

"셜록 홈스의 과학"이 셜록 홈스를 등장시켜 과학 수사를 설명했듯이, 이 책도 '007 - 제임스 본드'와 그 작품을 통해 첩보·스파이의 역사와 발전사를 다룰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시리즈로 묶였을 뿐, 책의 성격이 너무나 달라서 아차 싶었습니다. 본드카, 총기와 폭발물, 핵전쟁, 첩보 장비 등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구들과 악당들, 그리고 악당들의 음모를 약간의 과학적 상식을 섞어 분석하는 내용이더라고요. 그러나 밀도 높은 분석을 제공한다기 보다는, "007 - 제임스 본드" 영화에 충실한 해설서에 가깝습니다.

물론 덕분에 "007"이라는 시리즈, 특히 영화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본드 소설과 영화에 등장했던 화려한 장비나 다양한 본드카에 대한 설명은 읽는 재미가 넘쳤고요. 과학적 분석도 몇몇 이야기는 꽤 흥미로왔어요. 세균전과 화학전에 대한 짤막한 설명, 실제로 제작되었던 007용 도구(특히 '자이로콥터'!)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마지막 부록으로 포함된 '마티니의 과학 - 제임스 본드의 마티니' 부분도 인상적이었고요.(관련 기사: 여기)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007 - 제임스 본드"라는 하나의 장르물에 대한 팬 사이트 해설 모음집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007" 시리즈의 팬이 아니라면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려울거에요. 다양한 도구들에 대한 도판 하나 제대로 실려 있지 않은 것도 불만스럽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10/11/22

24시간 7일 - 짐 브라운 / 하현길 : 별점 2점

24시간 7일 - 4점
짐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비채

다나는 미국 TV 리얼리티 쇼 "24시간 7일"에 참가하게 되었다. 쇼가 열리는 곳은 자메이카와 아이티 사이의 무인도 '바사섬'으로, 무인도였지만 쇼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였다. 그러나 쇼가 시작되자마자 참가자 12명을 제외한 모든 스태프가 괴바이러스로 사망하고, 참가자 12명도 시청자 투표를 통해 1명씩 바이러스에 의해 희생될 운명에 빠졌다. 방송은 차단되었지만, 인터넷과 위성방송 수신기를 통해 중계가 계속 되었고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이 사건의 추이를 검토하며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데...

도서출판 비채의 트위터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작품입니다. 비채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줄거리 소개대로 무인도에 고립된 리얼리티 쇼 참가자들이 생존을 위해 싸워나간다는 내용은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의 공식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앞서 접했던 일본 작품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게임을 어떻게든 설득력 있게 만들려는 배경 묘사가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리얼리티 쇼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컨트롤'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과, 그가 이 게임을 진행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해 줍니다.

반면 이 장르의 핵심은 '참가자들이 어떻게 생존을 위해 싸워나가는지?'라는걸 잊은 듯합니다. 이 장르물은 대체로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보장하기 때문에, 이를 넘어선 무언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면 흥미진진한 두뇌 게임이나 참가자 간의 갈등이 잘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찾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참가자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시청자'들의 투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시청률 경쟁이 낳은 비윤리적인 미디어의 행태를 비판하는 의도를 담고 있겠지요. 문제는 게임 참가자들이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는겁니다. 그래서 긴장감과 재미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약간의 게임 요소, 그리고 시청자를 현혹하기 위한 작전이 등장하지만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졌어요.

또한 지나치게 헐리우드스럽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등장 인물들과 스케일 모두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느낌이거든요. 불치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여주인공 다나(밀라 요보비치?)와, 전직 비행기 조종사로 뛰어난 육체와 지능을 갖춘 저스틴(매튜 맥커너히?)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설정은 진부합니다. 결말 또한 너무나 완벽하게 정리된, 그야말로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 같았고요. 거창한 스케일도 겉보기에는 화려할 뿐, 결국 속이 빈 강정처럼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바사섬이 공격받는 상황에서 탈출한 생존자들이 '헬리콥터'로 미사일을 피한다는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거대한 작전이 미국 정부 모르게 진행된다는 설정부터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여러 복선과 단서들이 단순한 '떡밥'처럼 보인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이야기를 촘촘하게 구성한 후, 그에 맞춰 단서를 배치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장치로 넣은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요. '컨트롤'의 계획 역시 허술합니다. 참가자 중 누군가가 섬을 탈출하거나, 미군이 섬을 초토화시키는 방식으로 개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고,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허점이 많았습니다. 전개에 중요한 요소였던 '컨트롤의 협력자'에 대해 방송에서 오판한 로릭 박사에 대한 후속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컨트롤'의 동기와 사건의 배경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퍼즐 천재로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터커는 매력적이었고, 기본적으로 스릴과 서스펜스가 보장되는 장르물에 미디어 비판 요소를 결합하려 했던 시도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아무래도 작가의 욕심이 지나쳤던게 아닌가 싶네요. 장르물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미디어 비판에 집중하고 스케일을 줄여서 설득력 있게 진행하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현재의 결과물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헐리우드식 스릴러일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이벤트로 읽게 된 도서라 보다 좋은 평을 남기고 싶었지만, 솔직한 리뷰를 남기는 것이 맞겠지요. 아마 앞으로 이벤트 당첨은 힘들 것 같습니다...

2010/11/18

명탐정 코난 69 - 아오야마 고쇼 : 별점 2점

명탐정 코난 69 - 4점
아오야마 고쇼 지음/서울문화사(만화)

총 네 개의 에피소드가 실려있습니다. 이 중 세 개가 완결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시골 온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그립니다. 11년 전에 익사했던 초등학생의 아버지인 온천 여관 주인이 살해당합니다. 그런데 범인은 '갓파'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군마현의 맹한 경찰 야마무라 경위가 등장하는 것 이외에는 건질게 전혀 없는 에피소드였어요. 트릭, 동기 등 추리적 요소가 모두 별로였던 탓입니다. 
트릭은 피해자를 익사하게 만든 '물'을 어디에 숨겼는지가 핵심인데, 용의자 소지품만 철저하게 검사하면 끝날 사건이었습니다. 용의자가 단 2명으로 압축되는 상황에 이르면, 범인이 빠져나갈 방법도 없었고요. 동기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모리 탐정을 구태여 범행 현장에 부른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한마디로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려운 졸작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온천으로 여행을 떠난 코난과 아가사 박사, 소년 탐정단 일행이 온천 안 밀실에서 작가가 살해당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비하면 동기는 그런대로 합리적이었습니다. 트릭도 나름대로 설득력있었고요. 물론 예전 걸작 에피소드에 비하면 한참 처지기는 합니다. 범인이 범행 이후에 했던 행동 때문입니다. 특히 '반지'라는 단서를 처리하지 않은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왜 경찰이 주요 용의자의 신체 검사를 꼼꼼히 행하지 않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워낙에 별로였던 최근 코난 에피소드 중에서는 그나마 괜찮았다는 점, 그리고 소년 탐정단의 유쾌한 모습이 재미를 주기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에피소드는 모리 탐정이 CF에 출연한 인연으로 참석한 과자 회사 창립 파티에서 벌어진 회사 사장의 독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트릭이 보잘것 없고 억지스러워서 역시나 실망스러웠습니다. 미각을 이용한 트릭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이 없더라고요. 동기도 작위적이고요. '화이트데이'라는 이벤트에 대한 소소한 잔재미 이외에는 다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렇게 세 개의 에피소드가 전체 5.5점이니 평점은 1.8점... 반올림하면 2점이기는 한데 권해드릴만한 수준은 아니네요. 아이디어가 없다면 이쯤에서 슬슬 관두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별로였습니다. 다음 권에서는 조금이라도 만회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2010/11/17

심야 플러스 원 - 개빈 라이얼 / 최운권 : 별점 3점

심야 플러스 원 - 6점
개빈 라이얼 지음, 최운권 옮김/해문출판사

영국인 루이스 케인은 2차 대전 당시 '칸톤'이라는 암호명으로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도와 활약했었던 인물로, 대부호 마간하르트를 리히텐슈타인까지 호송해달라는 옛 동료였던 변호사 멜랑의 의뢰를 받았다. 그러나 보디가드로 고용된 그와 유럽 No.3의 총잡이 하베이, 그리고 마간하르트와 그의 비서 재먼이 떠나는 여정은 단순한 호송이 아니었다. 곧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킬러들이 등장하고 경찰의 추적도 시작되는데...

개빈 라이얼의 1급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입니다. '호송' 이라는 특이한 주제도 좋지만,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주인공이자 호송의 중심 인물 루이스 케인이 과거 레지스탕스 때의 다양한 경험과 인맥을 살려 난관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정말로 리얼합니다. 알콜 중독과 싸우는 총잡이 하베이의 캐릭터 역시 묵직한 매력을 전해주고요. 또한 자신의 머리와 몸에 의지하여 상대방 킬러들과 두뇌 싸움을 벌이며 위기를 벗어나가는 과정에서의 서스펜스도 대단했습니다. 고전적이면서도 아날로그적으로 고전 명작의 향취가 물씬 납니다.

험난한 호송 과정의 묘사 뿐인 단순한 모험 서스펜스 스릴러에 머물지 않습니다. 리히텐슈타인으로 향하는 마간하르트의 '목적'과 그에 따르는 반전이 여러 개의 복선을 통하여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 정교함도 갖추고 있습니다. 덕분에 끝까지 손에 땀을 쥐면서 읽을 수 있었네요. 그 외의 묘사들, 특히 프랑스에서 리히텐슈타인까지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여정의 디테일 역시 재미를 더해 주었고요.

그러나 범인의 계획이 허술하다는 약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무려 1천만파운드라는 돈이 걸려있는데(1파운드 = 2,000원으로 계산하면 무려 2백억원!), 마간하르트를 죽이기 위해 벌이는 작전이 너무 쪼잔하고 스케일이 작기 때문입니다. 호송의 중간 과정에서 케인 일행에게 너무 많은 기회를 준 것도 의문이고요. 마지막으로, 마간하르트가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었다면 범인의 계획은 실패하였을 것이라는 점에서(합법적으로 주주 모임을 연기할 수 있었을테니) 운에 기댄 측면이 많다는건 분명 단점이겠지요.

하지만 고전적이고 묵직한 스릴러의 참맛을 잘 전해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0/11/16

셜록 홈스의 과학 - E.J 와그너 / 이한음 : 별점 4점

셜록 홈스의 과학 - 8점
E. J. 와그너 지음, 이한음 옮김/한승

제목만 보면 셜록 홈즈가 등장해 다양한 과학 상식을 설명하는 교양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일부를 인용하며 당시 과학 수사—즉, 법과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법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미시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총 1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주 자세한 내용까지 다루지는 않지만 과학 수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한, 다양한 사건 사례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 자료적 가치와 재미를 모두 충족시키는 보기 드문 책이었습니다. 특히, 모든 내용을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에피소드나 대사를 인용하며 설명하는 방식이 홈즈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요소였습니다.

다만, 과학 수사 초창기에서 셜록 홈즈의 전성기, 즉 20세기 초반까지의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 그 이후의 발전상을 심도 있게 알기는 어렵다는 점, 그리고 참고도서로 보기에는 도판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별점은 4점. 과학 수사의 역사에 대해 이만한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과학 수사에 관심 있으시거나 다양한 사건 사례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께 꼭 추천드립니다.


"사자와의 대화"

시체를 분석해 범죄를 해결하는 법과학의 역사를 다룹니다. 사망 시간의 추정, 부검 및 해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19세기 후반 헝가리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린 하녀가 실종된 후 유대인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박해받던 중, 익사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나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깨끗하게 보존되어 실종된 하녀가 아닐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세밀한 부검을 통해 뼈의 성숙도로 나이를 판정한 결과, 시신이 깨끗했던 이유가 피부의 진피층이 떨어져 나간 것과 강물이 차가워 시신이 3개월 동안 잘 보존되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야수 이야기와 검은 개"

"바스커빌가의 개"를 토대로,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고대 민담과 전설에서 비롯된 수상한 사건들을 설명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평이했지만, 마지막에 소개된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사건에서 주인이 살해된 현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앵무새의 부리에서 살인자의 피를 채취해 범인을 잡았다는 내용이었는데, 용감한 앵무새가 범인을 공격한 덕분이었습니다!

"옥에 티"

곤충과 범죄 수사의 연관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이 왜 "옥에 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야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파리가 잡은 범인"을 함께 읽어보시면 더욱 흥미로울 것입니다.

"독살의 증거"

제목 그대로 독살 사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또한, 시체에서 독을 검출하는 방법, 특히 비소 검출 기법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얼룩끈"에서 뱀의 이빨 자국을 통해 해결한 사건을 예로 들며, 피하 주사 흔적을 발견해 독살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서를 실제 사건과 연결해 설명해 주니 더욱 흥미로웠거든요.

"변장과 수사관"

비도크를 중심으로 변장과 관련된 실제 사례를 소개합니다. 비도크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가짜 경감 듀"로 유명한 크리픈 사건(정부를 아들로 변장시켜 도주했던 사건)도 다루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심하게 절뚝이는 범인을 잡기 위해 그의 변장을 간파하고, 범인이 특수 구두를 신었을 것이라고 추리한 사립탐정 헨리 고다드의 활약이었습니다.

"범죄자의 초상"

범죄자의 신원 파악을 위한 방법의 발전 과정을 소개합니다. 초기에는 문신이나 흉터를 기록하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이후 사진술, 베르티용 측정법을 거쳐 지문 감식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마지막에 소개된 사건이 인상적이었어요. 1920년대 리옹에서 대낮에 열린 창문을 통해 여러 물건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이랑이 모두 수직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범인은? 놀랍게도 원숭이였습니다! 한 편의 추리 소설 같은 이야기였네요.

"오물"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는 먼지와 오물에 대한 법과학적 분석을 다룹니다. 1904년 독일에서 벌어진 재봉사 살인 사건에서는 범인의 손톱 밑 찌꺼기를 긁어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관련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중 놀라운 사건은 자신을 흡혈귀라 주장한 영국의 존 조지 헤이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피해자를 황산에 녹여 증거를 없앴다고 확신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작은 조약돌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 조약돌은 피해자의 담석이었고, 담석은 황산에 녹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기막힌 반전이야말로 현실이 소설보다 놀랍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화, 의학, 살인"

19세기 범죄 수사에 영향을 미친 여러 기상천외한 이론들이 등장합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언급된 '골상학'이나 '범죄 유전 이론'을 비롯해, 자위행위가 해롭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등장한 황당한 치료법들, 흡혈귀에 대한 미신, 살해당한 사람의 망막에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 보존된다는 믿음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2010/11/14

위험한 호기심 - 알렉스 보즈 / 김명주 : 별점 4점

 

위험한 호기심 - 8점
알렉스 보즈 지음, 김명주 옮김/한겨레출판

그동안 진행된 여러 심리 실험 중 흥미롭고 의미 있는 것들만을 짧게 요약하고 정리한 책입니다. 심리 실험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와 비슷하지만, 실험의 의미나 후일담까지 자세히 분석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례를 최대한 많이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진지한 실험뿐만 아니라 가십성 실험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되도록 짧고 재미있게 요약해 놓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충실한데, 이것이 단점은 아닙니다. 충분히 재미있었고, 예상보다 유익한 내용도 많아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너무나 유명한 '스키너의 상자', 홀로코스트의 이유를 탐구한 '충격적인 복종 실험', 영화 "익스페리먼트"의 원형이 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키티 제노비스 살인 사건에서 착안한 '구경만 하는 구경꾼' 등 이미 알고 있던 실험들이 많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고 인상적인 실험'을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죠.

내용의 깊이는 부족하지만, 흥미롭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만큼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유형의 심리학 실험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책에 실린 실험 중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페스팅거의 실험"

지구 종말을 예언한 도로시 마틴과 그의 추종자 집단에 잠입하여, 예언이 실패로 끝난 뒤의 상황을 기록한 실험입니다.

사이비 종교를 통해 집단의 믿음을 탐구했으며, 결론적으로 믿음은 끈질기고, 오히려 오류를 먹고 더욱 강해진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다미선교회의 '휴거 사건'이 떠오르더군요.

"지상 최후의 생존자는?"

핵전쟁 이후 바퀴벌레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SF적 주장을 실험을 통해 뒤집었습니다. 바퀴벌레에게 방사능을 쬐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바퀴벌레는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지 못하며, 오히려 벌의 한 종류인 '기생봉'이 방사능에 가장 강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와인 / 콜라 시음 맛 대결"

와인이든 콜라든, 사람이 '시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뇌는 혀로 느끼는 정보보다 시각 자료를 더 신뢰한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와인의 경우, 병을 먼저 보여주면 아무리 전문가라도 화이트 와인에 색소를 탄 것을 전형적인 레드 와인으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또한, 순수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펩시와 코카콜라의 맛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맛'은 혀보다 광고나 시각적 요소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콜라 브랜드들이 광고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는 이유가 이해되네요.

"모차르트 이펙트"

음악이 성인의 시공간 능력을 일시적으로 향상시킬 수는 있어도, 아이들의 지능이나 학습 성취도를 높인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즉, 모차르트 음악을 이용한 아동 교육 사업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입니다.

"코끼리 기억 실험"

'코끼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서양 속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특정 무늬를 선택하면 먹이를 주는 방식으로 학습을 시킨 후, 1년 뒤 같은 실험을 진행했더니 코끼리는 67%의 확률로 정답을 맞혔다고 합니다. 기억력이 상당히 뛰어난 동물임이 입증된 셈이죠.

"기억 전이"

뇌를 먹으면 기억이 옮겨진다는 가설을 검증하려 한 실험입니다. 성공적으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잠깐이나마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을 보며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한 에피소드("오메가의 성찬")가 떠올랐습니다... 웩!

"수면 학습 효과"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수면 학습은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구리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주는 메시지를 들려주었더니 개구리 점프 대회에서 늘 우승했다는 실험 결과도 있었다고 하네요. 저도 자기 전에 영어 회화 파일이라도 틀어봐야겠습니다.

"검은 가방 사나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복면의 사나이를 통해 인간 심리를 분석한 실험입니다.

개인이 익명의 존재가 되면 반사회적인 행동을 더 쉽게 하며, 주변 사람들 역시 익명의 존재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쉬워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익명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면 강한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특성도 있다고 하네요.

이 실험을 보니 '슈퍼히어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껴집니다.

"물에 빠진 주인을 구하라"

'명견 래시'에서 착안한 실험으로, 주인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연출하고 개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결과는… 멍멍이는 주인의 생명을 구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결과일까요?

"타인의 물건"

미국 CSI 등에서 흔히 등장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몸에서 타인의 음모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검증한 실험입니다.

과학수사국 직원들이 자신의 배우자와 관계를 맺은 후, 음모를 수거하여 분석한 결과, 타인의 음모가 발견된 확률은 17.3%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달되는 경우보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두 배 더 많았다고 하네요. 다소 애매한 수치군요.

2010/11/12

금요일 밤의 미스터리 클럽 - 구지라 도이치로 / 박지현 : 별점 1.5점

금요일 밤의 미스터리 클럽 - 4점
구지라 도이치로 지음, 박지현 옮김/살림

시부야에 있는 니혼슈 전문 바 '숲으로 통하는 길'. 그곳에서 바의 마스터, 경시청 경부 구도, 술을 못하는 범죄 심리학자 야마우치는 자칭 '야쿠도시' 트리오를 이루며 다양한 화제로 수다를 나누다가, 매주 금요일만 나타나는 사쿠라가와 하루코라는 미모의 여성과 어울리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녀는 미궁에 빠진 사건을 듣고 곧바로 해결하는 알리바이 깨기의 명수였다...

"행각승 지장스님의 방랑"과 유사하게, 니혼슈 전문 바를 무대로 한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설정 자체는 매우 고전적이지만, 니혼슈 바라는 공간적 특징을 살려 각 에피소드마다 맛있는 술과 요리, 안주가 등장하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다양한 잡학 지식이 펼쳐지는 부분에서는 "심야식당"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추리 요소를 결합한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특히 술과 요리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에피소드를 '...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설정하여 사건을 동화와 연결시킨 점도 나름대로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추리소설로는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트릭이 단순한 탓이 가장 큽니다. 모든 사건이 알리바이 트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대부분 우연과 운에 의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몇몇 트릭 장치는 지나치게 유치했고요. 게다가 '알리바이'만 강조될 뿐, 기타 현장 조사나 탐문 수사는 거의 생략되어 있습니다. 경찰이 보다 철저하게 수사했다면 쉽게 해결될 사건도 많습니다. 즉,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추리 퀴즈'에 가깝습니다.

또한 니혼슈와 다양한 요리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예능, 광고, 가수 등과 관련된 대화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비중이 크고, 이로 인해 사건 자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해집니다. 이러한 잡학 정보가 캐릭터들의 개성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불필요한 요소였습니다.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작가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동화와 사건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억지스러웠습니다. 동화 속 숨겨진 진실을 사건과 엮는 방식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기존에 출간된 "어른들을 위한 그림동화"와 같은 책들에서 다루어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신선함이 부족했거든요.

결론적으로, 읽기 쉬운 짧은 에피소드 구성과 술과 안주, 요리에 대한 묘사, 다양한 잡학 지식이 흥미로울 수는 있지만,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부족합니다. 차라리 요리책으로 나왔다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정말 읽을 책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가볍게 읽어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의 비밀"

등장 요리: 조개구이, 송이버섯구이 (숯불에 구워 간장으로 양념) 

등장 니혼슈: 아즈마이치 (東一), 하루가스미 (春霞) - 아키타현의 향이 풍부한 다이긴조슈 

사건: 도미사와 이시라는 과자 회사 사장이 자택의 간이 소각로에서 타 죽은 채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두 명이지만,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로, 사망 시간을 조작하는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합니다. 트릭 자체는 유치하고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여러 단서가 모여 결말에 이르는 전개는 비교적 탄탄했습니다. 동화의 내용을 사건과 연결하는 방식도 효과적으로 활용되었고요.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빨간 모자의 비밀"

등장 요리: 날치 튀김 (신선한 미야케지마 산 날치와 참마를 다져 튀긴 요리, 레몬즙과 간장을 곁들여 섭취) 

등장 니혼슈: 사쿠라가와 (桜川) - 도호쿠 남부 지방에서 빚은 과일향이 나는 다이긴조슈

사건: 71세의 할머니와 21세의 손녀딸이 살해당했다. 사인은 모두 교살이며, 용의자는 손녀딸 이즈미의 남자친구 미타무라와 이즈미 계모의 애인인 백수 시모이였다. 그러나 시모이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사망 추정 시각의 공백을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범인이 알리바이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즉, 순전히 우연과 경찰의 부주의한 수사로 인해 꼬였을 뿐인거지요. '시각 실인증'이라는 개념은 흥미로웠지만,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브레멘 음악대의 비밀"

등장 요리: 돼지고기 소시지 구이

등장 니혼슈: 아즈마이치 (東一), 오토코야마 (男山), 센주시라뵤시 (千壽白拍子) - 야마다니시키 100%를 원료로 시즈오카 효모로 빚은 술. 첫맛은 깨끗하고, 뒷맛은 산뜻함

사건: 악단 '사계'의 멤버 세 명이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죽었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까지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기에 사고로 여겨지는데...

"명탐정 코난"에서도 사용된 팩스를 이용한 방화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정교하지 못하고, 기화하는 수면제라는 설정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신데렐라의 비밀"

등장 요리: 생굴 (간장과 레몬을 곁들여 섭취)

등장 니혼슈: 시라마유미 (白真弓) - 기후현 히다의 명주

사건: 캐슬 호텔 오너의 아들 조 다쿠야의 애인 요시노 리호코가 절벽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가 추락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기에 사망 시각은 확실했다. 그런데 유력한 용의자 조 다쿠야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고전적인 시체 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부실하게 진행되었고, 알리바이 또한 범인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우연'에 의한 것이기에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백설공주의 비밀"

등장 요리: 애플파이, 자오우 산기슭에서 직송된 화이트치즈 (와사비 간장 소스), 샐러드를 곁들인 호로새 훈제구이 (마요네즈 소스)

등장 니혼슈: 시라유키 (白雪) - 효고에서 생산된 명주. 마쓰오 바쇼, 치카마츠 몬자에몬 등이 즐겨 마셨음

사건: 유키코는 계모 도모미로부터 살충제가 든 애플파이를 선물받았다. 그러나 파이를 먹기도 전에 둔기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차로 1시간, 오토바이로 30분이 걸리는 장소를 순간 이동하듯 이동하는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연에 의지한 알리바이이며, 범인의 행동이 눈에 띌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점이 문제였습니다. 경찰 수사가 조금만 철저했다면 알리바이 없이도 쉽게 해결될 사건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비밀"

등장 요리: 광어회

등장 니혼슈: 메이보 (明眸) - 아이치현 세토산

사건: 채팅 사이트에서 바람잡이로 활동하던 네코다 마사미가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인 가라바는 사망 추정 시간에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공원에서 데이트 중이었다는 알리바이 증명 사진을 경찰에 제출했다.

고전적인 트릭인 '시계 앞에서 찍은 사진'을 활용한 알리바이 조작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트릭이 조잡하고 유치한 수준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해당 시간대의 탐문 수사만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쉽게 해결될 사건이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비밀"

등장 요리: 참치와 방어조림

등장 니혼슈: 히카리 백춘 (白春) 다이긴조 - 과일향이 나는 미주

사건: OL 노하라 유메코가 음독 자살했다. 그런데 그녀는 자살 직전까지 중학교 동창인 탤런트 히키다 신지에게 줄 스웨터를 뜨고 있었다.

일종의 원격 살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범죄성이 낮고, 이러한 이유로 사람이 죽을 가능성이 적어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치사량' 개념을 활용한 추리는 흥미로웠지만, 그 외의 요소들은 미흡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의 비밀"

등장요리 : 소 혓바닥 요리, 돼지고기 조림, 수제 로스햄, 흑돼지구이 - 사쓰마 자연 방목 흑돼지 로스를 간장에 절여 숯불에서 구운 것. 양파 슬라이스 곁들임

등장 니혼슈 : 와카다케 (若竹),

고시노칸바이 (越乃寒梅) - 매화의 명소에서 만들어진 니가타의 명주. 지방술 붐의 선두주자.

사건 : 보모 쓰키오리 아즈미 살해사건. 자택에서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직장 동료인 모토야 마사카즈였다.

경찰의 무능함이 부각되는 조잡한 알리바이 트릭입니다. 용의자 핸드폰 통화 내역이나 주변 탐문 수사만 했더라도 뻔하게 드러났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트릭의 핵심이 변장이라는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차라리 1:1 비율의 사진을 오려 붙였다고 하던가... 점수를 주기 힘든 졸작입니다. 구태여 점수를 주자면 1점입니다.

"꼬마 요정과 구둣방 할아버지의 비밀"

등장요리 : 도오바찜 - 돼지고기를 간장, 미린, 설탕을 넣고 푹 끓여 찐 요리. 슈토 (酒盜) - 토사 명물 가다랭이 젓갈. 기본 안주임.

등장 니혼슈 : 덴구마이 (天狗舞) - 이시카와 현의 저온 장기숙성 준마이슈

사건 : 지난 1년간 시부야를 휘저으며 보석만 훔치는 괴도 S89호가 '요정의 구두'라는 100캐럿 다이아몬드를 훔쳤다. 하루코는 S89호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편'이어야 하지만... S89호의 정체도 어이가 없을 뿐더러 증거라고 들이대는 것들도 설득력이 약해 추리 소설로서의 가치가 전무합니다. 그냥 마지막 편이라는 의미 이외의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10/11/09

타블렛의 도래에 따른 국내 중소업체의 미래

'태블릿PC 틈새시장 도전장 국내 중소업체 “우리도 뛴다”' 라는 기사를 보고, 그리고 최근 포스팅 된 몇몇 분들의 글을 읽고 적어봅니다.

일단 타블렛 시장 전망부터 알아보죠. 가트너 리포트에 따르면 전체 PC성장을 견인할 만큼 커진다고 하는군요. 곧이곧대로 이러한 전망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미 700만대를 넘게 판 디바이스 시장이 한번에 쓰러지리라 믿는게 더 어리석겠죠? 주요 경쟁상대로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있습니다만, 타블렛은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시장을 제대로 공략한 물건이기에 두 제품과의 차별점이 뚜렷합니다. 상대적으로 대형 화면에다가 배터리 용량도 당연히 여유가 있기 때문에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한 용도로는 스마트폰에 앞서고 휴대성, 즉시성 측면에서 노트북에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건 단순히 가격의 문제가 아니죠. 물론 저 개인적으로도 향후에는 타블렛과 노트북이 하나로 합쳐지는 흐름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의 일은 아닐 것으로 판단됩니다.
때문에 경쟁 제품들의 출시, 그에 따른 가격경쟁과 더불어 전용 앱-컨텐츠 시장의 확대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보일 겁니다. 한마디로 시장전망은 밝습니다.

어쨌건 애플이 창조하여 거의 장악한 이 시장에 삼성이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안드로이드 차기 버전이 등장하면 LG도 출시한다고 하는 등 2011년부터는 본격적인 경쟁 시대가 열리겠죠. 하지만 이 경쟁 시대에 국내 중소업체가 낄 자리는 없다는 것이 솔직한 제 생각입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성능과 가격에 있어서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모바일 단말 원가의 핵심부터 보자면 LCD - 메인칩셋 - 낸드플래시 메모리입니다. 이 3종 세트는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자체적으로, 혹은 계열사를 통해 수급할 수 있기에 가격적으로도 대기업을 상대하기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LCD를 제외하고는 국내 대기업들의 현재 주력인 '스마트폰'과 동일한 것입니다. 당연히 대기업들은 스마트폰을 생산하며 부수적으로 타블렛을 제조하는 것이 가능하고 물량 조절도 손쉽겠죠? 타블렛의 판매가 부진하다면 스마트폰 쪽으로 재고를 돌리면 되니까. 덧붙이자면 포팅이나 개발이 여러모로 더욱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고요.
하지만 국내 중소업체는 스마트폰을 제조할 여건이 안되기에 상기 부품을 전부 타블렛 용으로 구매하여 제조, 생산, 판매해야 합니다. 유동성 측면에서 상대가 안되겠죠. 또 스마트폰의 경우 10만대 이상의 물량은 기본이니 대량 구매를 통한 가격 하락의 잇점이 큰데 국내 중소업체가 과연 한번에 얼마나 구매를 할 수 있을지도 솔직히 의문이에요. 한 2만대 물량이 고작이 아닐까 싶으니까요.

애플이 주도하고 대기업들이 반격을 준비하는,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중소업체의 선택은 그래서 몇가지 없습니다. 그럼 그것들을 하나씩 분석해보죠.
일단 가끔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 컨텐츠 차별화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컨텐츠 제공업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중소기업 단말에 올인하는 전략을 펼리가 없죠.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있는 업체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컨텐츠를 쥐고있는 회사라면 자사 단말에 올인할 수도 있지만 국내 중소업체는 그런 회사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며 EBS 강의 컨텐츠 어쩌구 하는데 웹 베이스로 컨텐츠 제공 시장이 이동하면, 포팅이 필요없는 상황이 된다면 이게 무슨 경쟁력을 가지는지 전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게임? 결국 컨텐츠와 같은 이슈겠죠. 메이저 업체 - 플랫폼 중심으로 컨텐츠가 제공될겁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화면 사이즈를 줄이는 등으로 휴대성을 높이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5인치 이하가 된다면 강력한 경쟁상대인 스마트폰과의 변별력이 없습니다. 타블렛의 가장 큰 장점은 화면의 크기잖아요. "현재 나오고 있는 7인치 태블릿 무리들은 ‘DOA(도착 즉시 사망·Dead On Arrival)’의 운명이 될 것이며 (7인치 태블릿PC) 제조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이 너무 작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고 내년에 크기를 늘리게 될 것”이라고 잡스가 말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 7인치보다 작은 화면? 이건 말도 안돼는 얘깁니다. (개인적으로는 7인치가 아슬아슬한 타블렛의 허용범위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뭐... 타블렛이 굉장히 디자인을 많이 타는 제품은 아니니 의미가 없고 가격경쟁력은 앞서 말했듯 원가면 - 개발비 측면에서 경쟁력을 전혀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이통사의 보조금도 받을 수 없는 등 악재만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시장을 놓고 본다면 중국산 제품과의 가격경쟁력 승부에서도 이길리가 만무하고요. 성능은 둘째치고서라도 중국제품은 정말 겁나게 쌉니다!

안드로이드만 포팅시키면 기본적으로는 제조사가 할게 별로 없는 단말이기에 중소업체들의 도전도 이어지겠지만 결국 노트북 시장이 그러했듯 가격 경쟁력과 성능, 그 어떤 것도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제품으로 극히 일부의 얼리어답터를 제외한 Mass Market 진입은 불가능할 겁니다. 앞으로는 애플을 중심으로 대기업이 주도하는 중고가 시장과 중국 제품이 대부분인 저가 시장으로 확실히 시장이 양분될 것으로 보이네요.

그럼 국내 중소업체들은 앞으로 뭘 해야 하냐고요? 그건 저도 모르죠. 하지만 남들 다 한다고 해서 시작하거나, 할게 없어서 한다거나 보다는 차라리 보다 참신한 제품으로 승부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뭘까요...

메모리아노이즈의 유전현상 - 카도노 코우헤이 / 아키요시 후우린 : 별점 2.5점

메모리아노이즈의 유전현상 3 - 6점
카도노 코우헤이 지음, 아키요시 후우린 그림/학산문화사(만화)

"소울드롭의 유체연구 1~3" - 카도노 코우헤이 / 아키요시 후우린 : 별점 2점

사립탐정 하야미 미츠루는 모리나가 - 세가와 가문의 이혼 중재를 위해 모리나가 가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폭탄 투척 사건이 발생했고, 그는 중요 참고인으로 떠올랐다. 한편, 모리나가 가에서 발견된 '페이퍼 커트'의 예고장으로 인해 서컴 보험회사의 조사원 이사 슈운이치와 로봇 탐정 센죠 마사토, 그리고 페이퍼 커트를 쫓는 히가시오리 나오세 역시 한자리에 모이는데...

전작 "소울드롭의 유체연구"에 이은 '소울드롭' 시리즈의 두 번째 만화. 전작과 동일하게 '페이퍼 커트'를 쫓는 이사-센죠 컴비와 나오세의 이야기와 함께, 또 다른 범죄가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전작보다는 훨씬 낫더군요. 전작에서 가장 큰 불만 요소였던 무수한 떡밥 중 '캐비닛 워크'의 존재와 '소울드롭'이라는 개념, 그리고 '페이퍼 커트'인 아메야의 사고 방식이 약간이나마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20년 전 모리나가 당주 부인의 토막 살인 사건의 전말을 밝혀가는 과정도 추리적으로 상당히 괜찮어요. 특히 '원숭이 손'의 전설과 '페이퍼 커트'의 설정을 연결한 점은 이야기 전체를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유기적으로 묶는 역할을 해 줍니다. 순전히 인간관계를 통해 숨겨진 진상을 끄집어내는 전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고요.

다만, 20년 전 사건이 밝혀진 계기가 기대하기 어려웠던 사체의 일부가 발견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순전히 우연인데다가 범인으로 알려진 아오야기가 부인의 머리를 들고 배회한 이유유도 설득력이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별점은 2.5점. 하지만 이 평가는 전작을 읽었다는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작품만으로는 타당한 별점을 매기기 어렵습니다. "환영박람회"처럼 설정과 떡밥을 깔아두면서도 각 에피소드마다 차분하게 마무리되는, 단품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어야 했습니다. 전작을 읽지 않고서는 단독 작품으로서 성립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큰데, 앞으로 후속작이 나와 이야기가 완결된 후 제대로 평가하고 싶네요.

2010/11/08

소울드롭의 유체연구 1~3 - 카도노 코우헤이 / 아키요시 후우린 : 별점 2점

소울드롭의 유체연구 3 - 4점
카도노 코우헤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보는 사람에 따라 모습을 바꾸고 감추는 괴도 '페이퍼커트'. 그러나 사실 그의 정체는 '케비닛 센스'라고 불리는 킬러로, 특정인에게 목숨과 같은 가치를 지닌 물건을 훔쳐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를 쫓는 서컴 보험회사의 조사원 이사 슈운이치와 로봇 탐정 센죠 마사토는, 페이퍼커트가 범행을 예고한 요절한 천재 가수 미나모토 시즈쿠의 트리뷰트 라이브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자칭 '포카드'라는 또 다른 훼방꾼이 나타나는데...

'페이퍼커트'와 로봇 탐정이라는 설정에서 SF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지는 미스터리 초자연 스릴러물. "부기팝"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카도노 코우헤이의 원작을 만화화한 작품으로, '소울드롭'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합니다.

페이퍼커트의 존재 자체가 환상적인 요소를 띠다 보니 정통 추리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단서를 모아 결론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나름 합리적입니다. 

다만, 페이퍼커트의 예고장을 '모른다'고 했다는 결정적 증언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너무 쉽고 뻔하다는 점은 아쉬웠고,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복잡하고 화려해 보이는 설정과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 이야기가 끝난다는 점, 그리고 뛰어난 작화에도 불구하고 빠른 전개와 많은 대사를 효과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탓입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흐름이 산만하고 복잡한 느낌이 강하거든요. 제목조차 직관적이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단점이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작가의 팬이거나 추리 만화를 모두 찾아봐야 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2010/11/07

셜록 홈즈가 틀렸다 - 피에르 바야르 / 백선희 : 별점 3점

셜록 홈즈가 틀렸다 - 6점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여름언덕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에 읽고 상당히 놀랐던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의 또 다른 추리비평서입니다. 이번에는 "바스커빌가의 개"가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심리학적인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은 셜록 홈즈가 아니라 코난 도일입니다. 코난 도일이 자신의 창조물이기도 한 셜록 홈즈에 대한 부담감, 즉 '홈즈 컴플렉스'에 시달린 나머지 그를 '죽게' 만들었고, 이후 부활시키는 과정에서도 부담을 느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명은 작품 속 단서들을 근거로 치밀하게 분석하여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이 매우 그럴듯하고 흥미로왔습니다.

예를 들어,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홈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추리 과정에서 무책임함과 오류를 드러낸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 홈즈에 대한 부담감이 그를 '개'에 비유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바스커빌가의 개'와 '베이커스트리트의 개'라는 이름이 발음상 유사성을 통해 대칭점에 놓이게 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기발했고요.

그러나 기대했던 소설 속 진범 찾기 부분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물론 스태플턴이 진범이 아니라는 근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앞서 언급한 '홈즈 컴플렉스'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에 '인'을 바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고, 결국 '이득'을 보는 인물이 베릴밖에 없다는 이유도 너무 큽니다. 또한, 베릴의 동기인 '스태플턴에 대한 복수'와 '바스커빌가의 유산'을 노린다는 설정에는 헨리 바스커빌이 베릴에게 반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헨리 바스커빌이 베릴에게 반한건 이전 찰스 바스커빌 사건과 무관합니다. 즉 이는 예상하기 어려운 인과관계로 보였습니다. 아울러 저자는 찰스 바스커빌 사건을 거의 사고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 역시 설득력이 낮습니다. 차라리 진범이 베릴이 아니라 공범이었고, 나중에 베릴이 배신했다는게 더 설득력 있었을 겁니다.

전체적으로 흥미롭지만,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와 비교하자면 신선함이나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재미가 다소 떨어집니다. 심리학적인 분석도 코난 도일보다는 셜록 홈즈 쪽을 진행하는 편이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웠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셜록 홈즈 팬이라면 읽어볼 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로 만족하는게 나을겁니다.

2010/11/06

선택의 심리학 - 배리 슈워츠 / 형선호 : 별점 2.5점

선택의 심리학 - 6점
배리 슈워츠 지음, 형선호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제목 그대로의 책입니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선택들, 그에 따라 좌우되는 심리(주로 '후회'), 그리고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한 원칙까지 담긴, 그야말로 '선택의 심리학'에 대한 종합 선물세트 같은 책이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연하다', '뻔하다' 싶은 내용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심리학적으로 분석한건 지나쳤습니다. 지루하기도 했고요. 또,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한 원칙 역시 결국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동양철학적 사고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케팅에 접목하면 유용할 법한 이론과 개념이 많다는 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선택의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후회도 커진다는 것(대안이 많을수록 후회가 커진다), 자기 자신이 받는 비용보다 남보다 얼마나 더 받는지가 중요하다는 점 등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활용할 수 있는 개념이라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이 책에 따르면 결국 모든 것은 선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에 최적화된 전략을 구축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요.

그러나 담고 있는 결론 자체가 뻔하기에, 아무리 이론이나 설명이 흥미롭고 유익하더라도 평이한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던 책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0/11/02

라블레의 아이들 - 요모타 이누히코 / 양경미 : 별점 4점

라블레의 아이들 - 8점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양경미 옮김/빨간머리

저명인사와 예술가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을 재현해 먹어본 뒤, 그 음식과 해당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총 25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 책입니다. 요리를 단순히 레시피와 결과물로만 보지 않고, 그 요리를 즐겼던 인물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제목은 음식 이야기를 즐겨 등장시킨 16세기 프랑스 작가 라블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식탐을 '그들이 선천적으로 품고 있던 세상에 대한 탐욕스러운 호기심과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여, 그들 모두가 라블레의 아이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등장인물과 레시피, 요리들 모두 동서고금의 다양한 문학과 예술에서 가져와 현학적인 재미가 넘쳐납니다. 복잡하거나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유명인사의 레시피를 재현한 사진과 그 맛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음식과 유명인사에 대한 에피소드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워 아주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종류의 요리와 디저트로 구성된 '미래파의 이탈리아 통합 디너 세트'였습니다. 조명과 벽지 등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미래파적 시각과 함께,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를 넘어 미각까지 결합시켜 요리를 예술로 승화하려는 시도가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이 요리에는 단순한 미학적 의미를 넘어, 결국 파시즘적 이데올로기를 나타내는 정치적 의미까지 담겨 있다니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그로테스크했던 권터 그라스의 장어요리,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어떤 것을 먹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과자 이야기 등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우스터 소스 요리는 가정에서 당장 만들어볼 수 있는 레시피라 직접 도전해 보고 싶어졌고요.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우스터 소스 설명 부분에서 사진이 잘못 편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전체적으로 번역과 사진의 완성도가 높다 보니 더욱 눈에 거슬리더군요.

그래도 별점은 4점. 뻔한 레시피 중심이거나 맛집 순례에 불과한 요리·미식 관련 에세이와는 달리, 개념 자체가 색다른 책이라 요리와 미식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덧붙이자면, 제가 썼던 '장르문학과 함께하는 음식 이야기'라는 짧은 칼럼이 부끄러워지더군요. 아무리 취미의 일환이라지만, 좀 더 보강하고 제대로 의미를 담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 칼럼은 재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2010/11/01

가다라의 돼지 - 나카지마 라모 / 한희선 : 별점 3점

가다라의 돼지 - 6점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아프리카 주술 전문가 오우베 교수는 과거 현장 탐사에서 딸 시오리를 사고로 잃은 뒤, 아내 이쓰미와도 마음을 닫은 채 술에 의존하며 방송 출연으로 시간을 보내는 '탤런트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우연히 한 방송의 아프리카 기획에 참여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케냐를 방문하고, 그곳의 주술사 마을에서 죽은 줄 알았던 딸 시오리를 발견했다. 시오리를 구해냈지만, 곧바로 그녀를 자신의 '키시투'(일종의 주술 도구)로 여기는 최강의 주술사 바키리의 복수에 직면하게 되는데...

7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그에 걸맞은 무게감으로, 읽기 전부터 독자를 압도하는 나카지마 라모의 대장편입니다. 일본 추리작가협회 장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작품은 크게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 : 오우베 교수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아내 이쓰미를 구하기 위해 마술사 미스터 미라클, 제자 도만과 함께 종교의 '기적'을 폭로하는 이야기

2부 : 오우베 교수 일가가 TV 프로그램을 위해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한 후, 케냐 최고의 주술사 바키리로부터 실종된 줄 알았던 딸 시오리를 구해내는 이야기.

3부 : 일본까지 찾아온 바키리와 오우베 일가의 최종 결전.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은 추리 소설보다는,   초능력과 아프리카 주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모험 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재미만 놓고 본다면 최고입니다. 1부에서 등장하는 '초능력', 특히 사이비 종교 교주가 공중 부양한다는 '기적'의 실체를 폭로하는 과정은 "신비의 사기꾼들"을 연상시키는 트릭물 같은 재미를 제공합니다. 또한, 2부에서는 케냐의 상세한 묘사와 긴박감 넘치는 탈출 장면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3부에서는 본격적인 주술 대결이 펼쳐지면서 트릭과 긴장감이 조화를 이루어 끝까지 몰입하게 해 주고요. 덕분에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작가의 전작인 "인체모형의 밤"과는 전혀 다른, 블랙 코미디 같은 분위기도 볼거리였고요.
엄청나게 디테일한 자료 조사를 통해 구축된 초능력과 주술에 대한 설명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를 압도하고 조종하는 바키리의 주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특히 후반부 오우베의 각성 이후 펼쳐지는 '초능력 대결'은 너무 과장이 심했어요. 오컬트와 초능력, 주술이 결국 '존재한다'는 식의 결말은, 앞서 철저하게 구축했던 과학과 상식에 기반한 초능력과 주술이라는 테마와도 동떨어진 느낌입니다. 또한, 여러 범행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일본만의 독특한 오컬트 문화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영향이 크겠지만, 이렇다 보니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조차 모호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목을 가져온 '마태복음'의 가다라 돼지 일화처럼 실제로 악령과 주술이 존재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스터 미라클의 말처럼 모두 트릭에 불과한 것인지...

또한, 마지막 방송국에서의 대결은 "서브리미널 광고 효과"와 집단 최면을 너무 과장되게 묘사하면서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봤던 초능력 소년 기요카와와 마술사 미스터 미라클이 너무 일찍 퇴장한 것도 아쉬웠던 부분이고요.

결론적으로, 1부는 작품의 테마와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도입부로서 아주 괜찮은 중편이었고, 2부는 아프리카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주술'이라는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낸 모험소설로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3부는 속도 조절 없이 너무 폭주해버린 느낌이 강합니다. 전형적인 B급 감성이 넘치는 데다가, 3부의 결말만 놓고 보면 이 방대한 작품이 '새로운 영능력 히어로 탄생'의 프롤로그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막 나가는 재미는 있었지만, 1부와 2부처럼 보다 진지하고 과학적인 접근을 유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재미는 있었지만, 모호한 방향성과 후반부의 급전개 때문에 선뜻 추천하기는 애매한 작품입니다. 1부는 별점 3점, 2부는 3.5점, 3부는 2점, 전체적으로는 대략 별점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