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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7퍼센트 용액 - 니콜라스 메이어 / 정태원 : 내게는 별점 4점!

셜록 홈즈의 7퍼센트 용액 - 8점
니콜라스 메이어 지음, 정태원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각한 코카인(이른바 7퍼센트 용액) 중독에 빠진 홈즈는 악의 원흉으로 지목한 모리어티 교수를 응징하기 위해 집착했다. 홈즈의 중독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왓슨은 치료를 위해 유명 의사 프로이드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왓슨의 머리로는 홈즈에게 들키지 않고 그를 프로이드와 만나게 하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왓슨은 홈즈의 형 마이크로포드와 상의하여 홈즈를 프로이드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게 할 계획을 짜냈다....

출간 전 부터 셜록 홈즈 팬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작품입니다. 셜록키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는 파스티슈 작품인 덕분입니다. 홈즈 완역본은 물론, 다른 파스티슈물들까지 출간되고 있는(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 베이커가의 살인 등등등) 최근 몇년 사이의 홈즈 붐에 비하면 출간이 오히려 뒤늦은 감이 듭니다. 그래도 출간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반갑습니다. 일본어 문고판으로 구입해 놓긴 했는데 잠깐 보니 문장이 너무 답답해서 독서를 미루던 차였기에, 국내 출간되자마자 곧바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읽고나니 과연 유명할만 하더군요. 저같은 홈즈 매니아들이 푹 빠질 수밖에 없는 디테일한 설정과 다양한 잔재미들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우선, 기본적인 이야기 설정부터 셜록 홈즈 첫번째 시즌의 마지막 이야기였던 모리어티 교수와의 사투, 그리고 이른바 "라이헨바흐의 비극" 에 관련된 놀라운 진상을 전해줍니다. 런던 범죄계의 나폴레옹인 모리어티 교수라는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더불어 이 사건 자체가 왓슨이 날조한 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와 또 다른 사건이 이 소설의 핵심 내용이거든요. 아울러 현대 정신의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관련되어 있는건, 셜록 홈즈를 가공의 인물에서 현실로 끌어내 줍니다. 이러한 현실 세계와의 크로스오버는 다른 셜록 홈즈 파스티슈 작품에서도 많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둘의 만남이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 셜록 홈즈의 추리 방식과 유사하다는걸 이야기에 잘 녹여내고 있어서 작위적이지 않고 설득력있습니다. 팩션같은 느낌도 좋았고요.

그 외에 셜록 홈즈가 처음 만난 프로이드에 대해 추리하는 장면, 후반부 주요 사건인 바론 부인 낸시 슬레이터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등 명탐정 홈즈스러운 추리법도 원전에 충실해서 추리적인 가치도 높습니다. 여러 고정 캐릭터들 - 모리어티를 비롯하여 마이크로포드 홈즈, 허드슨 부인, 위긴스, 토비 등등등 - 의 등장 및 충격적인 홈즈의 과거사가 밝혀지는 과정도 팬으로서 무척이나 반가웠고요. 다양한 당대 문물이 뒤섞이지만 난잡하지 않고 외려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가끔 하는 묘사도 수준급입니다. 기타 여러가지 사항들을 자세하게 주석으로 설명하는 친절함도 책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셜록 홈즈와 당대에 대한 디테일을 차치하더라도, 작품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재미가 뒷받침 되는 것 역시 명성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셜록 홈즈에게 닥친 위기를 왓슨이 친구로써 고민하고 그것을 극복하게 도와주는 전반부도 재미있지만, 작게는 한 미국여인을 도와주고 크게는 유럽에 임박한 전쟁을 막아낼 목적으로 활약하는 홈즈가 그려지는 후반부는 그야말로 모험 소설로 손색없는, 활극적인 재미마저 선사해주고 있기에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저같은 홈즈 매니아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작품입니다. 후반부 활극이 좀 홈즈스럽지 않았던 점, 그리고 전쟁 위기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 모리어티 교수에 대해 이후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 점 등 약간의 감점 요소가 있지만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셜록 홈즈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국내 추리문학계를 위해 헌신하신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과 후기도 놓치지 마세요.. 

아울러, 이 책을 읽고 경성판 셜록 홈즈 파스티슈라 할 수 있는 "경성탐정록"도 읽어 주시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2007/01/05

베이커가의 살인 - 코난 도일 외 / 정태원 : 별점 2.5점

베이커가의 살인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자음과모음

홈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후대 작가들이 쓴 단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앤솔러지. 홈즈의 팬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서슴없이 구입했습니다. 후배 작가들이 존경을 나타내기 위한 책의 컨셉은 앨리스 피터스 추모 단편 앤솔러지 "독살에의 초대"와 유사하나 이 책은 전 작품이 모두 "홈즈"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차이점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컨셉뿐인 팬 서비스용 기획 도서가 아니라 내용도 풍성합니다. 일단 앞부분에는 유명한 셜로키언이라는 대니얼 스타샤워의 서문과 홈즈의 아버지인 코난 도일이 직접 쓴 "셜록 홈즈에 대해 말하다"라는 에세이가 실려있고 추리 단편도 11편이나 실려있습니다. 책의 뒷부분에는 셜록 홈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두개의 짤막한 에세이가 이어지고요.

일단 서문과 코난 도일의 에세이, 기타 에세이들은 재미도 재미지만 자료적 가치가 꽤 높은 글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단편은 작품들이 너무 천차만별이라 수준이 좀 고르지 못합니다. 물론 좋은 작품은 상당한 수준이라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솔직히 기대 이하인 작품도 몇개 있더군요. 단편을 쓴 11명의 작가들 중에서 제가 아는 작가는 에드워드 D 호크밖에는 없지만, 작가 소개를 보니 다들 한가닥 하는 작가들이라 나름 기대를 갖게 했는데 좀 예상외였어요.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홈즈 시리즈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인데 현대 작가들이 그러한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아쉽더군요. 캐릭터들은 원본 그대로를 거의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데 전개나 분위기가 별로 유사하지 않아서 왠지 이질감이 조금 느껴졌거든요.
그래도 역시 명불허전이랄까... 추리물로서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트릭이나 전개는 깔끔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홈즈 시리즈 원작이 추리적으로는 좀 실망스러운 작품이 많은데 이 단편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네요. 저의 베스트는 "주 경계의 민들레 사건"과 "놀라운 벌레" 였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대부분 추리물로서는 완성도는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도 이번에는 뭔가 좀 이상하고 작품들 수준 편차도 있는 편이라 선뜻 권하기가 망설여지긴 하지만 홈즈 팬인 저는 즐겁게 읽은 편이며, 홈즈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을만한 좋은 작품들이긴 합니다. 자료적 가치도 있고요. 뭐니뭐니해도 등장한지 한세기를 넘기는 늙은 명탐정이 후대 작가들에게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다음 번에는 설홍주도 이러한 작품집의 말석이나마 차지한다면 참 좋겠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케이프타운에서 온 남자 : 스튜어트 M. 카밍스키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앨프레드 도나베리라는 인물이 홈즈를 찾아오기로 한 날은 태풍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그의 이혼한 전처가 찾아와 자기의 새 남편 존과 그가 마주치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을 홈즈에게 하고, 도나베리와의 만남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존이 도나베리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저자는 일찌기 에드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가네요. 그러나 이 작품은 홈즈의 추리법을 흉내만 내었을 뿐, 그다지 좋은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홈즈 시리즈의 특징도 잘 잡아내지 못했을 뿐더러 추리적 요소들도 적절히 사용되지 못한 범작입니다.

주 경계의 민들레 사건 : 하워드 엥겔
왓슨은 홈즈의 요청으로 같이 슈르즈버리행 기차를 탄다. 이유는 곧 교수형 당할 운명인 전 육군원수 윌리엄 경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것. 사건은 윌리엄 경이 아내를 독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홈즈는 슈르즈버리에 도착하자마자 왕성한 활동을 벌여 진상을 밝혀내게 된다.
홈즈와 왓슨의 여행, 당시의 판결제도와 교수형 집행인의 등장 등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으로 사건 전개도 깔끔하고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결말과 범인이 코난 도일스럽지 않다는 것과 홈즈가 범인을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이 "깜짝쇼"에 의존하고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제목과 사건과의 연관성이 참 마음에 드네요.

세넨 코브의 사이렌 : 피터 트레메인
요양차 콘월 반도의 폴두 베이 근처의 오두막에 왓슨과 머물던 홈즈는 고대 콘월어 연구를 취미삼아 논문을 집필하던 중 젤바트 트레보소 경이라는 인물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는 근처 암초에서 사이렌에 이끌려 3척의 배가 좌초한 사건의 해결을 의뢰하며 홈즈는 곧바로 왓슨과 함께 트리벤스로 향한다.
정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묘사한 작품으로 상당히 진기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켈트 역사학자이기 때문인지 쓰잘데 없는 묘사가 너무 많은 것이 단점이네요. 코난 도일 경이었다면 똑같은 이야기를 보다 깔끔하고 함축적으로 썼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트릭 덕에 기본 이상은 해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피 묻지 않은 양말 : 앤 페리
왓슨은 친구 헌트의 초대를 받는다. 그러나 도착한 직후 헌트의 딸 제니가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유괴의 뒤에 모리어티 교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자 왓슨은 홈즈를 부르게 된다.
모리어티 교수가 등장한다는 것 이외에는 큰 사건은 없는 작품입니다. 트릭도 괜찮긴 한데 현실성이 좀 떨어져 보이고요. 제목대로 피묻은 양말 자체는 그런데로 괜찮았지만 단지 그 정도일 뿐이었습니다. 너무 긴듯한 느낌에 내용 전개도 깔끔하지 않은 것이 전통적인 홈즈 스타일에서 약간 빗겨난 듯해서 그냥저냥한 범작이라 생각되네요.

익명 작가 : 에드워드 D 호크
어느날 스트랜드 매거진의 편집인이 한 익명작가를 찾아줄 것을 의뢰하러 찾아온다. 홈즈는 곧바로 그 작가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나 그 뒤 그 작가의 집 근처에서 타살된 시체가 발견된 것을 알게된다.
단편의 명수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입니다. 이 작가의 홈즈물은 아주 짧은 꽁트를 한편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작품은 제대로 된 단편이네요. 전통적 홈즈물의 분위기를 초중반에는 물씬 풍기는 것이 제대로 된 홈즈팬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끔 하는데 후반부에 약간 어설퍼져서 아쉽습니다. 제대로 멜로드라마를 구성했다면 정말 전통에 가까운 작품이 되었을 텐데 흐지부지, 너무 서둘러 끝나는 경향이 있다 보여지거든요. 덕분에 애매한 결과물이 되어 버려 조금 아쉽습니다.

흡혈귀에 물린 자국 : 빌 크라이더
연극계의 거물 헨리 어빙경의 비서로 일하는 스토커라는 인물이 홈즈에게 무서운 사건을 의뢰한다. 여배우 릴리의 아들 로빈이 흡혈귀에 물린 것 같다는 것. 홈즈는 왓슨과 함께 서리주의 별장으로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브램 스토커가 사건 의뢰인으로 등장하는 이색작입니다. 또한 서두의 홈즈의 추리쇼에서 시작해서 영국의 전원풍경, 괴상한 사건, 기발한 트릭이 어우러진 전형적 홈즈물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재미난 작품이기도 하고요. 트릭은 억지성이 있고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억이 있는게 단점이긴 한데 워낙 작품이 재미나고 전통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홈즈를 태운 마차 : 길리언 린스콧
홈즈를 우연히 태우고 셀러딘 스퀘어로 향한 마부는 사실 악당 조직에게서 런던 제일의 쥐잡는 개를 도박을 위해 훔쳐서 가지고 가고 있던 중으로 셀러딘 스퀘어에서 벌어진 대 소동의 한가운데에 말려 들어가게 되는데...
홈즈나 왓슨이 아닌 한 마부를 주인공으로 한 색다른 작품입니다. 마부의 성격 묘사나 심리 묘사가 디테일하고 대사들이 톡톡 튀는 재미를 전해주기는 하는데 덕분에 홈즈물이 아닌 전혀 다른 패러디 작품으로 보이더군요. 추리적으로도 크게 눈여겨 볼 점은 없었습니다. 주인공 마부 캐릭터 덕에 보는 내내 즐겁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다지 알맹이는 없네요.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 : 로렌 D 에슬먼
유명한 탐험가 리쳐드경이 찾아와 투탄카멘의 묘에 대해 적혀있는 중요한 양피지 사본을 찾아줄 것을 의뢰한다. 범인은 패터슨이라는 조수일 것이라는 심증이 강하지만 증거가 없는 상태.
"천일야화"를 쓴 리쳐드 프랜시스 버튼경이 사건의 의뢰인이고 투탄카멘의 묘에 대한 사본이 등장하는 등 역사 미스터리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작품입니다. 뭐 역사적인 사건이야 이 작품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재미는 있더군요. 초반부 리쳐드 경의 변장이 좀 뜬금없어서 억지스러운 것이 좀 거슬리고 트릭 역시 별로 대단치는 않을 뿐더러 솔직히 헛점이 너무 많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잘 묘사하여 그럴듯한 역사 미스터리물로 창조해 내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체셔 치즈 사건 : 존 L 브린
체셔 치즈라는 런던의 전통적인 술집. 한 미국인이 죽어가는 영국인 친구가 남긴 헌시를 가지고 체셔 치즈 안에서 모이는 "포틴 클럽" 에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한 뒤 홈즈를 찾아와 이유를 묻게 되는데....
순전히 죽어가는 영국인이 남긴 "헌시" 자체를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작품입니다. 각 행마다 숨겨져 있는 단서와 정보를 모으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무척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지만 아쉽게도 가장 중요한 트릭이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함으로 인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쉽더군요. 그래도 상당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암흑의 황금 : L.B 그린우드
셜록 홈즈는 황금을 놓고 악한 탐험가 바커가 노리고 있는 피그미 족의 보호를 위해 애슐리 경의 콩고 여행에 보디가드로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왓슨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왓슨은 자신도 변장을 하고 뒤따라갈 결심을 하게 되는데...
단연코 이 앤솔러지 최악의 작품입니다! 홈즈 시리즈의 특징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캐릭터만 잠시 빌어온 아프리카 여행기 수준의 글입니다. 기껏 아프리카까지 갔는데도 불구하고 모험이라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고 페미니즘 성격이 강한 이상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게다가 추리적 요소도 전무하고 이야기도 맥락이 없어요. 솔직히 이 책에서 아예 빼 버리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놀라운 벌레 : 캐럴라인 휘트
마담 타소 밀랍인형 전시관에서 홈즈 인형을 만들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온다. 왓슨과 방문한 그 전시관에서 웨스트오버라는 인물의 인형을 보고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그 뒤 신문에서 웨스트오버의 돌연사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살인혐의는 없어 잊고 살던 중 웨스트오버 가문의 한 하녀가 찾아오는데...
시골 부자의 독살사건에 더불어 마담 타소 밀랍인형관에 실제로 전시된 홈즈와 왓슨 인형에 대한 진짜같은 이야기가 잘 조합된 수작입니다. 동기가 확실한 살인이라는 측면에서 정통 추리물의 궤도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사건의 전개와 해결 모두 깔끔하고 홈즈스러움이 팍팍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약 분석 같은 것은 너무 현대적이라 조금 이질감이 느껴지긴 하더군요. 그래도 충분한 재미는 안겨다 줍니다.

2006/12/03

셜록 홈즈 전집 8 : 홈즈의 마지막 인사 - 아서 코난 도일 / 백영미 : 별점 2점

셜록 홈즈 전집 8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황금가지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아니 아예 관심조차 없어도 누구나 아는 명탐정 셜록 홈즈는 알지요. 탐정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꾸준히 읽어 왔습니다. 전집은 이미 중학생때 다 읽었고, 이런저런 문고본으로 많이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간만에 찾아간 헌책방에서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전집을 발견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구입하여 다시 읽어보게 되었네요. 나름 최근 구상중인 창작 추리소설 작업에도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 황금가지 버젼은 삽화가 굉장히 충실해서 이래저래 소장가치는 충분하다 생각되거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단편집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실려있는 8편의 작품 대부분이 다른 시리즈 단편들과 너무 비슷한데 수준은 낮은 탓입니다. 개인적인 홈즈 단편의 최고 걸작이자 베스트는 "붉은 머리 클럽"인데, 엇비슷하기는 커녕, 처지는 작품이 많습니다. 특히 가장 마지막 단편인 "마지막 인사"는 단지 홈즈와 왓슨 캐릭터를 이용한 모험물에 지나지 않아서 대미를 장식하는 단편으로는 너무나 별로였어요. 그다지 색다르거나 신선한 작품도 실려 있지 않고요. 때문에 홈즈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를 놓고 본다면 이러한 평가는 온당한 것은 아니겠죠. 무려 1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본다면 너무 순진하거나 유치한 플롯일 수 있고, 작위적이고 뻔한 내용에 별다른 트릭도 없지만 작품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재미는 아직도 변하지가 않았거든요. 이러한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홈즈라는 캐릭터의 힘이겠죠. 아직도 계속 재생산되고 패러디되는 굴지의 명탐정 홈즈와 조수 왓슨이라는 캐릭터 설정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거든요.
그래도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1. 등나무 집 :
홈즈에게 스콧 에클스라는 신사가 급하게 찾아와 자신에게 일어난 황당한 사건 조사를 의뢰한다. 사건은 그가 최근에 사귄 친구인 스페인계 미남자 가르시아의 이른바 "등나무 집"이라고 불리우는 저택에 초대받은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그가 저녁을 먹은 뒤 잠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저택이 텅텅 비어 있었다는 것. 그러나 가르시아는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홈즈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나선다.
홈즈 시리즈의 특징인 "평범한 사람에게 닥친 황당한 상황"이라는 소재를 그런대로 잘 살렸다고는 생각되지만 이후의 전개가 굉장히 부실한 작품입니다.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한 간단한 트릭이 나오지만 그다지 효과적인 트릭은 아니고 부두교 등을 집어 넣은 것은 너무 과했다고 보여지거든요. 홈즈물의 전형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는 범작 수준이었습니다.

2. 소포상자 :
수잔 쿠싱이라는 독신 여성 앞으로 소포 상자가 도착하는데 그 상자안에는 인간의 귀 2개가 들어있다는 엽기적 사건이 일어나고 홈즈는 레스트레이드의 부탁으로 사건 조사에 착수한다.
역시 홈즈 시리즈의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그러나 시작은 좋았지만 결국 알맹이 없게 끝나는 내용보다 외려 서두의 왓슨의 생각을 추리해 내는 홈즈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레스트레이드의 "뻔뻔한" 활약 역시 재미있었고요.

3. 붉은 원 :
하숙집을 운영하는 워런 부인이 최근 찾아온 기묘한 하숙인에 대해 사건 조사를 의뢰하기 위해 찾아온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설정이지만 수수께끼의 하숙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홈즈의 추리 과정은 정공법이면서도 무척이나 확실해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단순한 이야기를 정통 추리물로 바꾸어 놓는 기본 아이디어가 상당히 좋네요. 그러나 코난 도일 경은 아이디어가 막히면 "비밀 조직"을 가져다 붙이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부한 내용 전개로 마지막에 완성도가 떨어진 것이 안타깝습니다.

4. 브루스파팅턴호 설계도 :
영국이 국운을 걸고 개발하는 신형 잠수한 브루스파팅텅 호의 설계도 보관과 관련이 있는 병기창 사무원 캐도건 웨스트가 시체로 발견되고 그의 주머니에서 잠수함 설계도 7장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가장 중요한 3장은 사라진 상태. 캐도건 웨스트가 설계도를 빼돌려 팔아 넘기려 하다가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잃어버린 설계도를 찾기 위해 국가를 위해 일하는 홈즈의 형 마이크로포트가 홈즈에게 직접 사건을 의뢰한다.
마이크로포트 홈즈가 등장해서 사건을 의뢰한다는 설정 이외에는 이전에 발표되었던 단편인 "해군 조약"과 유사한 설정과 소개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그러나 시체가 발견된 장소를 추리해서 살해된 곳, 그리고 범인을 추리하는 내용은 확실히 홈즈다운 부분이라 생각되고 마지막까지 내용 전개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진부함을 상쇄시키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5. 빈사의 탐정 :
허드슨 부인에게서 홈즈가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 찾아간 왓슨. 홈즈는 왓슨에게 자신의 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인 컬버튼 스미스를 불러 줄 것을 부탁한다.
너무너무 뻔해서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홈즈의 위기상황 자체는 굉장히 이색적이며 특이한 설정이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가 너무 진부하며 추리적인 요소가 거의 없거든요. 추리물보다는 홈즈라는 캐릭터에 기댄 성격이 더 짙은 소품이라 생각되네요.

6. 프랜시스 카팍스 여사의 실종 :
명문 귀족의 후예인 미모의 독신여성 프랜시스 카팍스 여사가 실종된 사건이 벌어지고 홈즈는 왓슨에서 그녀의 행적을 쫓아 자신에게 보고해 줄 것을 부탁한다. 왓슨은 온 유럽을 돌면서 그녀의 뒤를 쫓다가 그녀의 실종에는 그녀 앞에 나타난 야만인과 같은 남자의 존재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온 유럽을 헤집고 다니는 듯한 스케일은 굉장히 크지만 범죄 자체는 그다지 특출난 것은 없습니다. 중반 이후까지 왓슨이 좌충우돌 하는 모습만 등장할 뿐 실제로 본격적인 추리 이야기는 이야기 후반에만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추리적 요소 역시 지금 보기에는 너무 낡고 진부해서 공감이 좀 덜 가긴 했습니다. 홈즈가 한번 패배할 뻔 했다는 것 하나는 굉장히 특기할만하나 그 이외의 알맹이는 별로 없는 작품입니다.

7. 악마의 발
홈즈는 건강 때문에 콘월 지방으로 요양을 떠난다. 그러나 그 지방의 트리대닉 와사 저택에서 불가사의한 사건이 벌어진다. 하룻밤 사이에 카드놀이를 즐기던 세 남매 중, 오빠 2명은 미쳐버리고 여동생은 사망한 사건. 홈즈는 사건 수사에 뛰어들지만 곧바로 가족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던 모티머까지 하룻밤사이 똑같은 죽음을 맞게 된다.
역시 홈즈물의 전형적 작품으로 상당히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가장 중요한 흉기와 살해 방법에 대해서는 그다지 과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신뢰가 가지는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8. 마지막 인사
1차 대전이 벌어지기 직전, 독일 황제의 비밀 첩보원인 폰 보르크는 자신의 비밀 요원인 앨터몬에게서 마지막으로 확보할 암호체계에 대한 문서를 받고 영국을 떠나 독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일종의 첩보물이긴 한데 단편집 말미를 장식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적 요소는 전무하고 홈즈 말년의 모습이 약간 묘사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실망만 안겨준 작품이거든요. 제대로 된 추리물로 대단원을 장식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2009/07/11

홈즈 시리즈의 parody와 pastiche의 역사

일본 추리관련 사이트에서 읽고 느껴지는 것이 있어 번역해 올립니다. 수많은 의역이 있지만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참고로, 글을 올리는 요지는 "경성탐정록"은 결코 parody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섭니다.^^ 차라리 pastiche나 오마주에 가깝죠. 과연 설홍주와 왕도손 이름이 달랐다면, 홍진호와 광수였더라도 패러디라는 말을 들었을까요? 홈즈 형태의 추리물 (명탐정과 화자이자 조수가 등장하는 형태의 본격추리 장 / 단편) 자체가 하나의 장르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유사품이나 팬픽으로 평가절하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일본 미스터리 / 추리소설 데이터베이스 aga-search로 부터>

아서 코난 도일이 탄생시킨 셜록 홈즈 작품은 성전이라고도 하는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이 있지만, 이외에 여러 작가들이 홈즈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크게 나누어 parody와 pastiche로 구분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parody는 특정 작품과 명탐정을 희화화하고 풍자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린 것을 가르키며, pastiche는 원작 자체를 충실하게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홈즈의 첫번째 parody가 등장한 것은 단편 "보헤미아의 스캔들"이 발표된 이듬해인 1892 년, <아이들러 매거진> 5 월호에서였습니다. 발표한 사람은 영국 최초의 외국인 탐정 유진 발몽의 창조자이자 도일의 친구이기도 했던 "로버트 바" 로, ""Detective Stories Gone Wrong : The Adventures of Sheroaw Kombs (세로우 콤즈의 모험, 훗날 베그럼의 괴사건으로 제목 변경) "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도일의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지금에도 이러한 parody와 pastiche가 계속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은 홈즈의 인기를 말해 준다고도 할 수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작품 중에서 특히 중요한 3편의 작품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할 작품은, 도일이 1927년 5월에 "쇼스콤 올드 플레이스"를 발표한 뒤 홈즈 시리즈의 집필을 중단했던 이듬해, 1928년에 발표된 미국 작가 오거스트 덜레이의 작품으로, 홈즈를 꼭 닮게 묘사한 캐릭터 "솔라 폰즈" 가 활약하는 시리즈입니다. 현재 장단편 합쳐 전부 70편의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다음 작품은 1952년부터 "코리어즈" 지에 연재되었던 12편으로, 도일의 아들인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본격황금기 시대의 거장 존 딕슨 카가 합작한 단편집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1954년)입니다. 이 작품들은 홈즈의 작품 중에서 이름만 등장했던, 소위 "언급되지 않은 사건" 12편을 그리고 있습니다.
딕슨 카는 이전에 유족들이 공인한 코난 도일의 전기인 "코난 도일"을 발표했었는데 이 때의 인연으로 도일의 아들 에이드리언과 알게되어 함께 이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현대 추리소설계에서 단편의 명수로 알려져 있는 미국 작가 로버트 L 피쉬 Robert L. Fish)가 창조한 "슈록 홈즈" 시리즈를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사후 미국 탐정작가 클럽 (MWA)에서 그 해에 발표된 최우수 처녀 단편을 선정하여 수여하는 "피쉬 상"이 창설될 정도로 뛰어난 단편작가였던 피쉬가 쓴 이 parody 시리즈는 1960년에 "EQMM (엘러리 퀸즈 미스테리 매거진)"에 "애스콧 타이 사건 (The Adventure of the Ascot Tie)"이 발표된 이래, 사망하는 1981년까지 전부 32편이 발표되었습니다.

그 외에 장편으로는 홈즈가 은퇴한 뒤의 사건을 그린 H.F 하드 (H F Heard)의 "꿀맛 (A Taste for Honey)"과 홈즈 parody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니콜라스 메이어의 "7퍼센트 용액 (The Seven-Per-Cent Solution)"이 유명합니다.

단편으로는 열렬한 셜록키언으로 알려진 추리 작가이자 평론가인 빈센트 스타렛트의 "진본 <햄릿> 사건"과 발표 당시에는 코난 도일 명의로 발표되었던 "지명수배남" , 그리고 미국 본격 황금 시대의 거장 엘러리 퀸이 편찬한 선집 "셜록 홈즈의 재난 "에 수록된 단편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단편집에는 모리스 르블랑,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 안토니 버클리, 스튜어트 파머, 안토니 바우처 등 쟁쟁한 멤버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최근에는 본격 작가로 유명한 여류 작가 쥰 톰슨 (June Thomson)이 발표한 일련의 pastiche들이 셜록키언들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4편의 단편집이 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홈즈 parody와 pastiche 외에도 홈즈의 형인 마이크로포트가 활약하는 작품들, 홈즈의 숙적 천재범죄자 모리어티교수가 활역하는 존 가드너의 "범죄왕 모리어티의 생환", "범죄왕 모리어티의 복수", 심지어 홈즈의 자손이 활약하는 작품들까지 있기에 이 모든 작품들을 통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홈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열의가 전해져 오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대로 읽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셜록키언이라는 것이겠죠.^^

2009/03/03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 아서 코난 도일 /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 승영조 : 별점 4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 8점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승영조 옮김/북폴리오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1004쪽이라는 방대한 분량, 그리고 분량에 걸맞는 무게를 자랑하는 책이기에 읽는 것 자체가 좀 힘들더군요. 태어나서 읽은 책 중 두껍기로는 순위를 다툴 것 같습니다... 어쨌건 이 책은 명탐정의 대명사인 진퉁 고전 셜록 홈즈 시리즈 중 첫번째, 두번째 단편집인 "셜록 홈즈의 모험" 과 "셜록 홈즈의 회고록" 두개의 단편집에 더불어 작품별 상세한 주석, 관련 자료 등을 추가하여 편집한 책으로 두 단편집 모두 진작에 완독했지만 관련 자료가 워낙에 풍성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두 단편집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셜록 홈즈 시리즈이기도 했고 말이죠.

일단 몇가지 아쉬운 점을 먼저 짚어 보자면, 일단 셜록 홈즈 작품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불친절한 주석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습니다. 초반에 범인을 밝혀 버리고 다른 작품 범인도 알려주는 주석이 많다는 것이 그러하고요, 또한 홈즈와 왓슨을 "실존인물"로 단정짓고 주석과 관련 자료를 첨부한 것도 읽다보면 좀 혼란스럽고 "그래서 뭐가 어쨌는데?" 라는 짜증이 날 정도로 너무 세세한 부분에서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설명하는 주석도 많더군요. 연구자나 셜록키언을 위한 책이니 감안해야겠지만 왓슨을 "제임스"라고 부른 것에 대한 방대한 논의 같은 것은 정말이지 필요없는 내용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보기엔 그냥 작가의 실수일 뿐인데...
아울러 구입 당시에 먼저 이야기했던 종이질 같은 책의 완성도가 미흡한 것 역시 아쉬웠습니다. 종이질야이 그렇다 치더라도 책을 다 읽을때 쯤 되니 책의 무게 탓인지 제본이 끝부분에서 깨져 나가기 시작했거든요. 이럴거면 왜 이 두께로 냈는지 조차 의심스러워요. 차라리 여러권으로, 최소한 "모험"과 "회고록"을 나눠 2권으로 내 놓았어도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거 아닙니까? 두께 탓에 폼은 나지만 그 외의 보관, 휴대, 독서, 완성도는 모두 떨어집니다...

불만이 좀 길긴 한데 그래도 "돈 값은 한다" 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정가가 아니라 제가 구입한 금액인 17,800원일 때 만족도가 보다 상승하긴 하겠죠. 페이지당 약 17원밖에 안하는 저렴한 가격이 일단 매력적이니까요. 또한 작품들 모두 새롭게 번역되어 다른 판본들과는 다른 맛을 전해 줄 뿐 아니라 셜록 홈즈가 활약한 19세기 후반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각종 도판 및 주석, 여러 셜록키언과 셜록 홈즈 연구자들의 짤막한 논문과 주장 등을 책 한권에서 셜록 홈즈 이야기 본편과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여러 연구자들이 셜록 홈즈 "정전 (이른바 카논)" 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논하며 작품의 단점이나 불합리성을 지적한 부분, 고증에 대해 지적한 부분들은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사람 입장에서 정말 눈여겨 볼 항목들이었고요. 예를 들자면 제가 최고 걸작이라 생각하고 있던 "붉은 머리 클럽"의 맹점 -"붉은 머리 클럽을 해산한 시점의 불합리성 / 은행에 보관한 금화의 불합리성 등" - 을 지적한 부분에서는 정말이지 무릎을 칠 만 하더군요.

그 외에도 홈즈 영상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비롯하여 얼룩끈에 등장한 독사는 무엇이었나에 대한 연구나 홈즈와 왓슨의 권총 연구와 같은 작품에 관련된 셜록키언들의 갖가지 짤막한 논문들과 홈즈 연표까지 실려 있어서 거의 셜록 홈즈 백과사전이라 칭할만 합니다. (물론 나머지 2, 3권까지 갖춰야 진정한 백과사전으로서의 기능을 다 하겠지만요...) 덧붙여 대표적인 셜록키언, 셜록 홈즈 연구자로 추리소설가 도로시 L 세이어스, 도널드 녹스의 예가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고 제가 이미 구입해서 가지고 있는 베어링 굴드의 셜록 홈즈 평전이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팬이자 소장자로서 기분좋은 일이기도 했고요. (이 책 헌책방에서 어렵게 구했더랬죠)

한마디로 "정전 (카논)" 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팬들은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입니다. 팬으로서 이런 책이 존재하고 출간되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니까요. 그래도 정가대로 2, 3권이 출간된다면 과연 구입하게 될 것인지는 심각하게 고민할 부분이긴 합니다.... 1권을 40% 할인 가격에 파는 것을 이미 봐 버렸으니....

2005/08/29

셜록 홈즈의 사생활 (The Private Life of Sherlock Holmes ) - 빌리 와일더 : 별점 3점

벨기에인 발라동 부인은 홈즈에게 실종된 공기 펌프 전문가 남편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마이크로포드가 홈즈에게 이 사건 조사는 멈추라고 했지만, 이를 거부한 홈즈는 발라동 부인, 왓슨과 함께 스코틀랜드 인버네스로 향했다. 이 곳에서 홈즈는 네스호에 출몰하는 괴물과 사건의 연관성을 눈치했고, 결국 진상을 알아내게 되는데...

셜록 홈즈 영화. 꽤 유명한 작품이긴 했지만 이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2시간이 넘는 상당히 긴 상영시간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부분 20여분은 캐릭터 소개, 유명 발레리나의 신랑감 찾기(?) 등의 쓸데 없는 이야기로 소비하고 있는 탓에, 실제로는 약 1시간 40여분 정도 분량입니다.
내용은 오리지널 스토리인데 상당히 괜찮습니다. 추리적으로 돋보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잘 짜여진 편이거든요. [실종된 공기 펌프 기사 --> 사라진 난장이 곡예사들 --> 카나리아 --> 호수의 괴물] 로 연결되는, 단서들이 하나씩 모아 추리해 내는 이야기가 홈즈 특유의 방식을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고요. 홈즈가 단서를 찾기 위한 과정의 묘사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 정도면 홈즈 팬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 했습니다.

또 오리지널 스토리다운, 영화만의 독특하고 기발한 묘사와 설정도 재미 요소 중 하나입니다. 제목대로 "사생활"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홈즈가 한 여자에게 휘둘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건 독특했어요. 그 외에도 마이크로포드의 "디오게네스 클럽"을 영국의 정보기관처럼 묘사한 것, 왓슨이 좀 바보같은 유머 캐릭터로 희화된 것 등 소설과는 차별화된 볼거리가 많습니다. 완고한 할머니로 등장하는 빅토리아 여왕의 묘사, 당시의 디테일을 잘 살린 의상과 배경, 소품들 역시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홈즈역의 배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홈즈 배우는 제 마음 속에서 제러미 브렛으로 이미 굳어져 있는 탓도 크겠지만, 홈즈에 걸맞지 않게 잔망스럽고 촐랑대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영 별로더군요. 1970년대 영화답게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고요.

그래도 유머스러운 내용과 여러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에 홈즈의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많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모든 홈즈 팬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09/03/25

셜록 홈즈 전집 3 바스커빌 가문의 개 - 아서 코난 도일 / 백영미 : 별점 3점

셜록 홈즈 전집 3 - 6점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황금가지

홈즈에게 의사 모티머가 찾아왔다. 모티머는 그의 친구이자 환자였던 찰스 바스커빌 경의 죽음과 바스커빌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저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찰스의 후계자 헨리 경의 처우에 대해 물어보았다. 셜록 홈즈는 데번주 다트무어 황무지에 위치한 바스커빌 가의 저택으로 향하는 헨리 경에게 왓슨을 보호자 겸 주변 환경에 대해 조사하는 역할로 동행시켰다. 왓슨은 황무지에서 접하는 기묘한 사건들을 꼼꼼히 보고서로 작성하여 홈즈에게 보내는 와중에,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는데...

오래전에 아동용 번역서로 읽었었던 작품인데 인터넷 서점 중고 코너에서 황금가지판 완역본으로 싼 값에 팔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구입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셜록 홈즈 장편 중에서는 제일로 치는 작품이기도 하고 이래저래 옛 생각도 나고 해서 말이죠.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었습니다. 십여년 만에 다시 읽었지만 역시나 좋은 작품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고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역시 셜록 홈즈 단편의 미덕을 장편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았기 때문에 팬이라면 항상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겠죠. 홈즈물의 가장 큰 특징인 "약간의 단서를 통한 의뢰인의 정체 추리"부터 장편에 걸맞는 길이로 상세하면서 설득력있게 표현되며, 사소한 사건에서 중대한 의미를 드러내는 여러가지 장치들 - 예를 들자면 헨리 바스커빌 경의 구두 도난 사건 같은 - 역시 잘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추리"적인 요소에 더불어 고딕 호러와 같은 마견 이야기, 잔인무도한 탈옥수, 그리고 그에 따르는 황야에서의 모험 역시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어서 재미를 더하고요.
또한 약간의 반전도 있어서 단편보다 즐길거리가 훨씬 풍성합니다. 

그러나 단편으로 끝낼 수 있는 이야기를 홈즈가 왓슨에게 혼자서 조사를 시킨다는 설정과 황량한 데번주 다트무어의 풍광을 설명하는 부분 등을 통해 길게 늘려놓은 티가 나긴 합니다. 어차피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장편이라기 보다는 중편 길이의 작품이라 크게 지루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왓슨을 혼자 보낸 이유의 타당성이 부족한 탓에 이래저래 압축한다면 더 내용을 줄일 수 있는 작품이긴 하거든요.

또 추리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좀 있는데. 예를 들자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설정이기도 한 이른바 "마견"의 사육 및 조련에 대한 내용이 아예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추리적으로 이상하거나 부족한 부분은 결말 부분에서 홈즈가 공들여서 직접 설명해 주기 때문에 어느정도 납득할 만 합니다만 왜 저 거대하고 무서운 개의 사육과 조련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악당도 셜록 홈즈가 작중에서 라이벌 급으로 칭찬하는 것에 비하면 포스가 떨어져서 그다지 강렬하지 못합니다.
이런 소소한 단점들은 어차피 이 작품 자체가 홈즈 시리즈를 도일경 스스로 끝낸 뒤 "돈생각"이 나서 쓴 중편이기도 해서 완성도가 최전성기 걸작에 비하면 처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요.

하지만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인과 트릭, 그리고 동기에 대한 설정 및 전개 등 모든 부분에서 거장의 풍모를 느끼게 해 주는 홈즈 시리즈 최고 작품 중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개인적인 별점은 3점이지만 저같은 독자가 이러한 별점을 다는 것이 죄송스러운,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부족한 부분이나 단점이 눈에 뜨이더라도, 거의 한세기가 지난 이 고전에는 항상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2020/09/25

에놀라 홈즈 3 기묘한 꽃다발 - 낸시 스프링어 / 김진희 : 별점 1.5점

기묘한 꽃다발 - 4점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북레시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 병원에 갖힌 환자 키퍼솔트는 자신은 의사 왓슨이라고 주장하지만, 수간호사는 다른 병동에 셜록 홈즈도 있다며 그의 말을 일축했다. 그러나 그는 진짜 왓슨 박사였다. 한편 밖에서는 왓슨 박사 실종에 대해 셜록 홈즈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에놀라 홈즈가 사건에 뛰어드는데....

셜록 홈즈와 마이크로포트 홈즈, 왓슨 박사 등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홈즈의 여동생인 에놀라 홈즈가 활약하는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최근 영상화도 되었다고 해서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북 대여가 세 번째 작품만 가능하더라고요.

이런 류의 작품들 중 기대를 충족시킨건 별로 없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마찬가지로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추리적으로는 영 아닙니다. 애초에 추리라는걸 보여줄 여지가 거의 없어요. 에놀라가 마음먹은대로 신통방통하게 전개되는 탓입니다.
우선 왓슨을 구해주기로 마음 먹은 뒤, 에놀라는 왓슨의 집을 방문하는데 그 곳에서 협박을 의미한다는 (순전히 에놀라 생각이지만) 꽃다발을 발견합니다. 꽃다발이 또 올거라고 확신한 에놀라는 왓슨 자택 맞은 편 집에 방을 구해 감시하는데, 바로 다음날! 꽃다발이 정말로 보내져 오지요. 에놀라는 꽃다발을 가져온 덜 떨어진 심부름꾼 소년으로부터 의뢰인 신사가 코가 없어서 가짜코를 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짜 코를 취급할 법한 변장 도구를 파는 상점에 찾아가 가짜 코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상점 주인인 페르텔로트 부인은 엄청난 적의를 보이며 그녀를 쫓아내지요. 당연히 그녀는 범인과 관련이 있었고, 에놀라는 곧바로 그녀 집에 잠입했다가 페르텔로트와 그녀의 동생 플로라의 대화를 엿듣고,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게 됩니다.
이렇게 에놀라 의식의 흐름대로 사건이 흘러가고, 해결되는걸 보면 탐정이 아니라 무당이라고 하는게 옳아요. 이야기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모험물에 가깝고요.

그러나 모험물이라면 극적인 서스펜스, 스릴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에놀라의 쓸데없는 심리 묘사와, 그리고 그녀와 어머니간 애증과 같은 불필요한 설정들에 대한 설명이 많은 탓에 그런건 느끼기 힘듭니다. 이런 불필요한 설명은 에놀라가 왓슨 박사의 집에 찾아갈 때 까지의 전체 분량 중 1/5 가량을 소모할 정도입니다. 전개도 답답하고요. 

에놀라 홈즈 캐릭터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여성의 능력을 억합하던 당대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여, 스스로 행동하는 독립적인 여성을 그려내는게 의도였던 듯 한데, 작중에서는 그냥 전형적인 말괄량이 왈가닥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남자들은 단순한 얼간이들이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보면 멍청이가 된다' 는 등의 언급은 왜 등장하는지 의문이며, 코르셋에 이런저런 장비를 넣고 다닌다는 '소년 탐정단' 스러운 설정, 변장으로 미녀와 못난이 아가씨를 오간다는 설정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그래도 이런 단점들은 참아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셜록 홈즈를 독선적이고 무능하며 관찰력 떨어지는 인물로 그려낸건 정말이지 유감입니다. 에놀라의 들러리, 병풍 역할에만 그려낸건 에놀라 홈즈 시리즈이니 당연하다 쳐도,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여성에 대해 논리적 사고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는 식으로 이상하게 몰고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성 대상으로는 탐정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는데 이 무슨 망발인지 모르겠어요. 저자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어보기나 한 걸까요?
셜록 홈즈가 에놀라는 한 번 보고 눈치 챈 수상한 꽃다발에 대해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꽃말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설정 역시 홈즈 팬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에놀라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모리스 르블랑뤼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헐록 숌즈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멋대로 망가트렸던게 떠오르네요. 이는 코난 도일의 분노를 샀고, 모리스 르블랑은 욕을 먹었던 행위였습니다. 원전에 기댄 주제에 원전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이런 제멋대로 각색은 정당한 창작자의 행위는 아니에요.

물론 유명세답게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 대한 충실한 묘사는 좋았어요. 몇 개 등장하는 암호 트릭 중 에놀라의 어머니가 에놀라에게 보낸 메시지 암호도 괜찮았고요. 그냥 읽으면 Alone part part alone이라는, 외로움에 사무친 문구로 보이지만 거꾸로 읽으면 에놀라! 함정을 조심해! 라는 의미가 되니까요. 이름을 잘 활용한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또 결정적 단서가 되는, 왓슨 부인에게 전해져 온 꽃다발은 꽃말로 볼 때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추리는 바로 직전에 읽었던 "남은 날은 전부 휴가"와 겹쳐서 조금 신기했습니다. 확실히 여성스러움이 넘쳐나는 단서라 시리즈 취지와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꽃다발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스파라거스에서 A spear of Gus라는 문장을 뽑아내어 아우구수투스 (거스) 키퍼솔트라는 이름으로 연결하는 과정도 깔끔합니다. 그러나 명확한 꽃말도 아니고, 이런저런 민속적인 의미나 꽃이 피는 장소 등을 결합해서 저주의 의미라고 풀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범인은 플로라라서 아우구수투스의 창이라는건 딱 맞는 표현은 아니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처음에 '키퍼솔트는 코가 없어서 가짜 코를 연구하다가 변장 도구를 다루는 상점을 열게 되었고, 왓슨 박사에게 원한을 품은건 코 절단의 집도의였기 때문'이라고 추리한 것과 '키퍼솔트의 아내 페르텔로트에게 플로라라는 정신병자 여동생이 있는데, 그녀는 어린 시절 쥐에게 코를 뜯어먹힌 뒤 정신병을 갖게 되었으며, 키퍼솔트에 의해 정신병원에 보내졌지만 언니의 도움으로 돌아온 뒤 키퍼솔트를 죽이고 그로 변장해서 살아온 것' 이라는 진상도 꽤 재미있는 편이었어요. 참고로 플로라가 왓슨 박사를 정신 병원에 가둔건, 플로라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이라네요.

그러나 장점 보다는 단점이 훨씬 크게 느껴져서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홈즈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면, 좀 더 정교한 트릭으로 승부하는 본격물이어야 했습니다. 최소한 홈즈를 존중이라도 하던가요. 두 번 다시 이 시리즈를 읽어 볼 일은 없겠습니다. 책 보다는 차라리 영상화한 쪽 결과물이 훨씬 좋으리라 확신이 드는데,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 쪽을 챙겨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9/04/28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 승영조, 인트랜스 번역원 : 별점 3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6점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현대문학

거의 10년 전에 읽은 뒤 읽게 된 주석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 5권째 책입니다. 이전에는 1~2, 3~4가 합본이었는데 어느 순간 분리되어 출간되더군요. 독서보다는 소장 목적으로 구입하였는데 다음에 읽자, 다음에 읽자 하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셜록 홈즈 전설의 시작인 장편 1, 2작 "주홍색 연구"와 "네 사람의 서명"이 본편 분량에 육박하는 상세한 주석과 함께 47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는 구성은 전 권들과 같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주홍색 연구"는 전설의 시작으로 부끄러움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 놀랐습니다. 홈즈의 첫 등장 등 캐릭터 묘사부터 흥미를 자아낼 뿐 아니라 등장하는 추리 하나 하나가 모두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 장편은 단편보다는 못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성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분명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놓친게 너무나 많았던 듯 하네요.
뭐니뭐니해도 제일 압권은 셜록 홈즈의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경찰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 앞에서 마부를 부른 뒤, 그가 범인이라고 폭로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추리 소설 여명기의 작품이 지금도 능가하기 어려운 추리쇼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탄복할 수 밖에 없어요. 이 추리쇼에 비하면 현재 시점에서 소설, 만화, 영화 등에서 펼쳐지는 온갖 추리쇼는 잠자는 코고로 수준의 억지스럽고 과장된 연극에 불과합니다.

딱 한가지 문제는 범인 제퍼슨 호프가 드레버와 스탠거슨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2부 이야기가 지나치게 장황하고 고전적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직 장편 추리소설 서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과도기였다는 점, 그리고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기에 단점이라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코넌 도일 경은 낭만적이고 웅장한 역사 서사극에도 능한 작가니, 이 부분도 재미가 있는 건 당연합니다. 모르몬 교도를 악습인 일부 다처제와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무법자 집단으로 묘사한 건 판단하기 조금 애매하지만요. 그러고보면 모르몬 교도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그렸던 건 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 밖에는 없었던 듯 싶네요.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다양한 주석 역시 재미를 더합니다. 왓슨이 제대하면서 가져온 군용 리볼버가 무슨 권총인지에 대한 심도깊은 조사와 같은 흥미로운 여러가지 당대 소품에 대한 소개, 그리고 당시 물가 등 다양한 당대 정보가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핫 한 잔이 4펜스로 이는 현재 구매력으로는 2,500원에 해당된다는 식으로 역자 주석도 꼼꼼해서 더욱 만족스러웠어요.
그 밖에도 "주홍색 연구"가 셜록 홈즈가 실제로 욕설 (damned)을 한 묘사가 등장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이야기 등 셜록키언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시시콜콜한 정보가 가득한데, 가장 눈길을 끈 건 제퍼슨 호프가 대동맥류를 앓고 있으며 솔트레이크 산에서 오랜 노숙 탓에 걸렸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마르판 증후군에 걸렸거나 매독에 걸린거라는 설을 제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뭘 이런 것 까지 조사했나 싶긴 한데 읽다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저 역시 말단이지만 셜로키언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네 사람의 서명"은 "주홍색 연구" 보다는 확실히 못합니다. 개 토미의 후각에 의존한 추적 외에 별다른 추리라는게 보이지 않는 탓이 큽니다.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제퍼슨 호프의 정체와 현재 뭘 하는지를 바로 알아내는 "주홍색 연구"에 비해, 의족 자국과 일반인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발자욱과 독침이라는 흉기는 범인이 의족을 했으며 작은 야만인과 함께 하고 있다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기도 하고요. 또 배가 어디 숨겨져 있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이야기가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것도 단점입니다. 셜록 홈즈의 능력에 대해 실망감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진범인 스몰이 체포되지 않고 버틴 기간(?)에 비하면 딱히 대단한 악당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의족을 했다는, "죤 실버"가 연상되는 묘사는 전형적이며, 사건에 얽히는 과정에서 그다지 뛰어난 지력을 발휘하지도 못해서 어떤 면으로도 셜록 홈즈의 상대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숄토 소령에 대한 복수심은 납득이 가지 않는건 아닙니다만 제퍼슨 호프와는 다르게 스몰은 어차피 악당으로 죗값을 치뤄야 하기에 복수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고요. 또 사이드킥이라고 할 수 있는 원주민 통가를 잔혹한 살인마로 묘사한 것도 지금은 누가 뭐래도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겠죠.
무엇보다도 왓슨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불호였어요. 의뢰인에게 첫 눈에 반하는 묘사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의 사랑 고백까지 지나치게 고전적이고 지루한 탓이 큽니다.

물론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초반부는 아주 흥미로와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고 마지막에 남는 그 하나가 진실이다' 라는 셜록 홈즈를 대표하는 금언이 등장하고, 왓슨이 물려받은 낡은 시계를 조사한 후 왓슨의 형에 대해 추리하는 부분은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아도 셜록 홈즈의 빼어난 추리력을 증명하는 명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세포이 반란을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끌고 들어온 솜씨도 여전히 나쁘지 않고, 추적극을 전면에 배치하여 모험물로의 재미는 충분한 펀이기도 합니다. 주석들 역시 기대에 충분히 값하고요. 셜록 홈즈가 뛰어난 권투 선수이기도 했다는 과거 이야기라던가, 홈즈의 뛰어난 변장술이 등장하는 등 팬으로서 관심가질만한 흥미로운 설정도 몇 개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본 편 이야기는 영 별로이기에 결론내리자면 합쳐서 평균 별점 3점입니다. "주홍색 연구"는 4점도 충분하나 "네 사람의 서명"은 2점도 과하죠. 그래도 어린 시절 읽었던 감상과는 다르게 "주홍색 연구"가 빼어난 수작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시대를 초월한, 셜록 홈즈의 시작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네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다른 판본으로도 많이 출간되었으니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홍색 연구" 만큼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9/01/05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존 딕슨 카 / 권일영 : 별점 3점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 6점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존 딕슨 카 지음, 권일영 옮김/북스피어

코난 도일 경의 막내아들인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추리 소설가 존 딕슨 카가 손을 잡고 발표한 셜록 홈즈 단편집. 이른바 "안작" 또는 "파스티쉬", 또는 "아포크리파" 등으로 불리우는 작품군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유는 도일 가문의 이름과 딕슨 카의 명성이 합쳐져 원작 수준의 명성을 획득한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총 12편의 단편 중 실제 공저작은 앞의 6편 뿐이며, 뒤의 6편은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단독작으로 명기되어 있습니다. 공저작 쪽 수준이 훨씬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볼때 에이드리언 도일의 글솜씨는 그닥으로 판단됩니다. 다른 작품이 전해지지 않은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명성만큼의 작품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원전을 의식한 구성 탓에 지루한 면도 있고, 기대했던 트릭의 귀재 딕슨 카의 맛이 거의 살아있지 못한 탓입니다. 홈즈 시리즈 자체가 이미 한세기를 훌쩍 넘긴 과거의 유물인 탓에 좀 낡아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딕슨 카라는 거장의 느낌도 나지 않는다는건 팬으로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다고 코난 도일 경의 원작 그대로의 느낌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좀 미묘하게 다르거든요. 확실한 원작과의 차이도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홈즈 등 주요 캐릭터의 성격이 약간은 다르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에피소드에 미녀 의뢰인이나 미녀 용의자, 미녀 악당이 등장한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이런 캐릭터적인 잔재미보다는 추리적인 곳에서 솜씨를 발휘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홈즈물로서만 바라본다면, "검은 준남작의 모험" 과 "애버스 루비의 모험" 이라는 두작품은 과거 전성기 홈즈 단편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홈즈물로의 가치와 재미, 수준을 갖춘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검은 준남작의 모험"은 역사적인 유물과 연계된 색다른 기계장치 트릭이 등장하는데 딕슨 카의 느낌도 살짝 전해주면서 시작부터 결말까지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으며, "애버스 루비의 모험"은 트릭 자체는 굉장히 쉽고 단순하지만 정통 홈즈물스러운 추리의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 두 작품이 저의 이 단편집에서의 베스트 작품입니다. 한편만 꼽으라면 "검은 준남작의 모험" 이고요.
그 외에도 전보를 가지고 부인의 정체를 추론하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수염을 이용한 트릭도 괜찮았던 "하이게이트 기적의 모험", 시계에 대한 공포를 가진 신사가 등장하는 "일곱 시계의 모험", 그야말로 홈즈물 스러운 "폭스 래스 저택의 모험" 도 추천작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물론 "공포의 데트퍼드의 모험" 같은 얼룩끈의 치졸한 아류에 불과한 쓰레기같은 작품도 실려 있긴 하지만요.

총평하자면, 홈즈 팬으로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원작에서 띄엄띄엄 제목만 소개되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쓰여졌다는 점은 원작팬으로서 점수를 안 줄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전에 읽었던 "베이커가의 살인" 과 비교한다면 훨씬 원작에 가까운 풍모를 보이고요. 앞서 말했던 몇가지 단점과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 등은 감점 요인이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솔직히 명성에 비한다면 2.5점 수준이지만 전 관대하니까요.

아울러 북스피어는 좋은 책들은 많이 내 주지만, 디자인과 번역에 좀 더 신경써 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표지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폰트와 일러스트 모두 지저분하고 난잡한 느낌만 가득 전해주는데 앞으로는 보완 좀 해주시길.

2011/02/15

셜록 - 권교정 : 별점 3.5점

셜록 1 - 8점 권교정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 아서 코난 도일 /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 승영조 : 별점 4점

킹교폐하 권교정의 작품으로 홈즈 시리즈 첫 단편집인 "셜록 홈즈의 모험"에 수록된 "독신귀족"을 극화한 만화입니다.

기둥 줄거리는 "독신귀족"과 동일하지만, 작가의 독특한 각색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홈즈와 왓슨의 관계를 보다 디테일하게 파고들어 미묘한 심리 묘사를 추구하는 방식이 눈에 띕니다. 최근 홈즈와 왓슨의 관계를 특정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권교정은 까칠한 천재 홈즈와 넉넉한 품성의 이해자 왓슨이라는 자신만의 시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특히, 둘의 우정과 왓슨의 결혼으로 인해 홈즈가 느끼는 상실감(?)에 대한 묘사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정적이고 대화 위주의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끌고 나가는 점도 좋았습니다. 소박하고 고즈넉한 연극적인 분위기가 작품과 잘 어우러진 덕분이겠죠. 원작을 깊이 이해하는 작가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작가 후기를 보니 "주석 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은 게 확실해 보이더군요.)

그러나 원작 단편의 분량에 비해 전체적인 호흡이 조금 길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메리 모스턴과 왓슨의 대화 장면이 지나치게 길게 전개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한 권 분량을 채우기 위해 다소 어거지로 집어넣은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록 홈즈를 소재로 한 만화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앞으로도 권교정만의 홈즈를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0/11/07

셜록 홈즈가 틀렸다 - 피에르 바야르 / 백선희 : 별점 3점

셜록 홈즈가 틀렸다 - 6점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여름언덕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에 읽고 상당히 놀랐던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의 또 다른 추리비평서입니다. 이번에는 "바스커빌가의 개"가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심리학적인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은 셜록 홈즈가 아니라 코난 도일입니다. 코난 도일이 자신의 창조물이기도 한 셜록 홈즈에 대한 부담감, 즉 '홈즈 컴플렉스'에 시달린 나머지 그를 '죽게' 만들었고, 이후 부활시키는 과정에서도 부담을 느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명은 작품 속 단서들을 근거로 치밀하게 분석하여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이 매우 그럴듯하고 흥미로왔습니다.

예를 들어,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홈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추리 과정에서 무책임함과 오류를 드러낸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 홈즈에 대한 부담감이 그를 '개'에 비유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바스커빌가의 개'와 '베이커스트리트의 개'라는 이름이 발음상 유사성을 통해 대칭점에 놓이게 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기발했고요.

그러나 기대했던 소설 속 진범 찾기 부분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물론 스태플턴이 진범이 아니라는 근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앞서 언급한 '홈즈 컴플렉스'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에 '인'을 바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고, 결국 '이득'을 보는 인물이 베릴밖에 없다는 이유도 너무 큽니다. 또한, 베릴의 동기인 '스태플턴에 대한 복수'와 '바스커빌가의 유산'을 노린다는 설정에는 헨리 바스커빌이 베릴에게 반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헨리 바스커빌이 베릴에게 반한건 이전 찰스 바스커빌 사건과 무관합니다. 즉 이는 예상하기 어려운 인과관계로 보였습니다. 아울러 저자는 찰스 바스커빌 사건을 거의 사고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 역시 설득력이 낮습니다. 차라리 진범이 베릴이 아니라 공범이었고, 나중에 베릴이 배신했다는게 더 설득력 있었을 겁니다.

전체적으로 흥미롭지만,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와 비교하자면 신선함이나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재미가 다소 떨어집니다. 심리학적인 분석도 코난 도일보다는 셜록 홈즈 쪽을 진행하는 편이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웠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셜록 홈즈 팬이라면 읽어볼 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로 만족하는게 나을겁니다.

2007/07/21

위대한 명탐정 바실 (The Great Mouse Detective) - 존 머스커 외 : 별점 3점

1897년 런던, 인형 기술자 플래버셤이 유괴당하고 그의 딸 올리비아가 세계 제일의 명탐정인 베이커가의 바실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하러 찾아온다. 우연찮게 올리비아를 도와주게 된 제대 군인 도슨 박사는 바실을 같이 찾아가지만 그는 소녀의 의뢰를 흥미없어 한다. 하지만 납치를 주도한 박쥐 이야기를 들은 바실은 사건이 자신의 최대 호적수인 악당 라티건 교수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곧바로 사건에 뛰어드는데...

최근 회사 신제품 성능 테스트로 묵혀놓았던 암흑의 유산들을 몰아쳐 보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이 작품은 디즈니의 86년도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실패작 "검은 가마솥" 의 후속작이라 별다른 홍보가 없어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보고나서 조사해봤더니 셜록 홈즈의 "마우스 월드" 버젼이라며 유명했던 원작이 있는 작품이더라고요. 애니메이션도 CGI 초창기 작품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나름 대작이고요.

홈즈의 주요 캐릭터를 동물(여기서는 쥐 세상입니다)로 바꾸어 놓았다는 설정만 본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탐정 홈즈"와 유사하지만, 제일 큰 차이점은 이 작품은 인간 세상에서의 쥐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바실이 사는 집이 베이커가의 홈즈의 집으로 묘사되고 있거든요. 그리고 추리적인 요소가 더욱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도손 박사를 처음 대면하는 바실이 도손 박사의 과거를 추리하는 부분, 올리비아가 납치된 뒤 현장에 있던 종이 쪽지의 냄새와 화학적 분석을 통해 단서를 찾아내는 부분 같은 것은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작화나 음악도 디즈니스러운 완벽한 수준으로 작품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셜록 홈즈를 제대로 패러디한 바실이라는 생쥐 캐릭터는 예상대로의 모습을 너무 잘 보여줘서 무척 즐거웠고, 와트슨의 대역인 도손박사 역시 마찬가지로 재미있었습니다. 아울러 꼬마 캐릭터 올리비아가 너무너무 귀엽습니다!


하지만 초중반까지 그럴듯한 홈즈 패러디를 보여주다가 막판에 액션물로 돌변하는 것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뭐 이 작품이 추리 매니아를 대상으로 한 작품은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겠지만 마지막 빅밴에서의 액션씬은 "홈즈의 마지막 인사"의 패러디이긴 한데 전체적으로는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느낌이 물씬 나서 그다지 새로운 맛도 없었고 박력도 부족해서 좀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아동용으로는 충분히 즐길 거리가 많은 제대로 된 홈즈 패러디 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직 보시지 못하신 분들이라면 한번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성인에게 안 맞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여러가지 즐길거리도 많고 시간도 70여분으로 짤막하니까요. 단, 홈즈 팬이 아니시라면 조금 실망하실지도...

2010/12/02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 - 아서 코난 도일, 레슬리 S 클링거 / 승영조 : 별점 3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 - 6점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승영조 옮김/북폴리오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권"에 이어 드디어 2권마저도 완독했습니다. 1권 못지않은 무게와 두께 덕분에 들고 다니기는 어려워서 침대에 모셔두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에 한 편씩 읽었습니다. 한 달 정도 걸렸네요.

2권 역시 1권과 마찬가지로 단편집 "돌아온 셜록 홈즈", "그의 마지막 인사", "셜록 홈즈의 사건집"에 실린 작품들을 상세한 주석과 자료를 추가하여 편집해 놓았습니다. 단편들은 이미 이전에 다 읽었지만, 관련된 다양한 주석과 해설, 여러 자료가 곁들여지니 보다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해서 좋았어요.

그러나 1권에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너무 '셜록 홈즈'와 관련된 사건 및 등장인물을 실존 인물인 것처럼 해석하는 주석은 과도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화는 신화대로 두면 좋을 텐데,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정체를 분석하고 다양한 학설을 덧붙이고 있거든요. 덕분에 불필요하게 내용이 길어지기도 했고요. 물론 이런 부분이야말로 이 책의 존재 이유이자 주요 재미 요소이니 비판은 온당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요. 저 역시 한 달 동안 즐겁게 읽었으니 만족합니다.

그래도 1권에 비해 자료적 가치가 높은 주석이나 해설은 다소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1권은 할인된 가격에 구입했는데 2권은 정가로 구매했다는 점(!)이 약간 아쉬웠습니다.(물론 제 개인적인 기분 문제이긴 합니다만...) 별점은 3점입니다. 셜록 홈즈의 팬이시라면 장식용으로라도 추천드립니다. 두 권이 나란히 책장에 꽂히니 보기만 해도 풍성하니까요.

덧붙이자면, 셜록 홈즈의 열렬한 팬이 아니라면 일반 단편집 세트를 구입하시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 한 권의 가격이면 전집 9권 풀세트를 장만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으며, 방대한 주석도 어떤 면에서는 허황된 논의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셜록키언'을 위한 책입니다. 그리고 주석이 많은 만큼 찾기도 어렵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이러한 스타일의 주석·해설서는 전자책으로 출간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네요. 검색의 용이성과 하이퍼링크 활용도가 훨씬 높아질 테니까요.

2010/07/17

셜록 홈즈 (2009) - 가이 리치 : 별점 3점


2009년 연말에 공개되었던 작품으로 그 동안의 "홈즈"라는 캐릭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깨는 파격적인 설정이 독특했습니다. 진지남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홈즈라기 보다는 뤼뺑이 연상되더군요. 원작팬에게는 반갑지 않을 수 있는 변화일 수도 있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려서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잘 삐지고 속좁은 옹졸남으로 나오는 왓슨, 팜므파탈 범죄자로 흡사 "루팡3세"의 후지코를 연상시키는 아이린 애들러 등의 변주도 새로왔어요. 레스트레이드 경감 역시 반가운 인물이었고요.

이러한 새로운 캐릭터의 구현 이외의 기본적인 이야기는 정통 셜록 홈즈 시리즈 전통에 충실한 편입니다.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추리를 하는 과정이 합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거든요. 여러가지 단서들을 추리하는 장면에서 단서의 결과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연출도 좋았고 말이죠. 한마디로 "추리 영화"라는 장르물로 본다면 완벽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약간 있습니다. 일단은 홈즈와 왓슨의 같잖은 사랑싸움(?)에 할애한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 가장 거슬렸어요. 쓰잘데 없는 묘사로 게이스러운 분위기만 잔뜩 자아내고 말이죠... 그리고 악당 블랙우드의 계획이 그닥 설득력이 없다는 약점도 있습니다. 구태여 목숨까지 걸면서 죽은척 했다가 다시 살아날 이유도 모르겠고 "청산가스" 배출 작전이 그렇게까지 거창한 장치가 필요했을지도 의문이거든요.

그래도 셜록 홈즈 시리즈의 팬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새로운 홈즈 시리즈의 출발이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조금 압축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 정도면 후속작이 기대되는 수준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5/12/11

불멸의 탐정, 셜록 홈즈 - 김재성 : 별점 3점

불멸의 탐정, 셜록 홈즈 - 6점
김재성 지음/살림

치과의사이자 추리 소설가, 아동 문학가인 김재성 씨가 쓴 셜록 홈즈 가이드북. 살림 지식 총서의 489번째 책입니다.

살림 지식 총서는 특정 주제를 설명하는 목적에는 충실하지만, 100페이지를 조금 넘는 제한된 분량 탓에 살짝 건드리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독자가 호기심을 느끼면 다른 전문 도서를 찾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진입문 역할이라서 별다른 불만은 없습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분량도 적절하고요. 그래도 자주 구입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 괜찮습니다. 짧은 분량임에도 셜록 홈즈에 대해 아주 잘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즈의 기원과 주요 캐릭터들, 주요 장단편 이야기와 저자 코난 도일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물론이고, 셜록 홈즈에 관련된 패스티쉬와 라이벌 탐정까지 소개하는 풍성한 구성을 자랑합니다. 셜록 홈즈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 초심자들을 위한 최고의 안내서라 생각됩니다.

저와 같은 기존 셜록 홈즈 애독자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인용된 작품도 거의 다 읽어본 것이라 새로운 정보는 없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또한 조금 더 체계적으로 목차를 분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그러나 분량과 가격을 고려하면 비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3/11/29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마이클 더다 / 김용언 : 별점 2.5점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6점
마이클 더다 지음, 김용언 옮김/을유문화사

퓰리처 상을 받은 평론가 마이클 더다가 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즈와 그의 창조자 코난 도일에 대한 일종의 헌사 에세이집입니다. 본인이 얼마나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다가 어린 시절 "바스커빌가의 개"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으로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 "계림문고"로 처음 홈즈의 단편 시리즈들을 접했던 제 기억과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홈즈의 단편을 하나씩 작은 소책자 형태로 낸 시리즈였는데, 정말이지 아껴가며, 두근대며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남자아이들이 모험, 공포, 추리물에 열광하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잃어버린 세계"로 대표되는 챌린저 교수 시리즈를 높이 평가한다던가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을 고이 보관하고 있다는 등, 저와 취향이 비슷한 점도 아주 반가웠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많지만, 만나면 바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개인적 경험담과 함께 여러가지 도일의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데, 이러한 소개글도 최고 수준입니다. 오랫동안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서평을 담당했고, 퓰리처상도 받은 전문 리뷰어인 덕분이지요. 서평으로 밥먹고 사려면 이정도는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독서 리뷰 중심의 블로거로서 많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그러면서도 또 이 책의 리뷰는 이 모양이니...). 하여튼, 이 책에서 추천하며 소개하는 여러가지 작품들은 방법만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보고 싶네요. 이런 류의 소갯글 멘트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여러분들이 부럽다"라는 말까지 등장하니 말 다했지요. 

방대한 소개 작품 중 우선 읽고 싶은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북극성 호의 선장", "249호 경매 품목"
  • 나폴레옹 시대 군인의 회고담이라는 "준장 제라르의 위업"과 "제라르의 모험"
  • 1922년에 도일이 잡다한 단편을 모아 출간했다는 총 6권짜리 "코난 도일 작품선"
  • 가장 궁금했던 "코르스코의 비극". "그들은 기독교를 포기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리고 갑자기, 답을 찾기도 전에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나고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결말을 찾아봐야겠어요.
  • 도일이 높이 평가했다는 다른 작품들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죠. 도일에게 세계 최고의 단편이었다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모래 언덕 위의 별장"
  • 열정적으로 추천했다는 러디야드 키플링의 "연대의 북 치는 소년들", "왕이 되려한 사나이"
  • 최고의 유령 이야기라고 극찬했다는 에드워드 불워-리턴의 "귀신 들린 집과 유령들"
  • 로드 던세이니의 "조켄스 시리즈" 소개도 멋드러집니다.

약간 우려되는건 소개된 작품 중 "아서 코난 도일, 미스터리 걸작선"에 실려있는 "사라진 특별열차"와 "시계를 많이 가진 남자"는 소개글만큼 뛰어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역시나 좀 입에 발린 소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뭐 세상사는 게 다 그렇겠지요.

코난 도일의 글솜씨가 좋았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확실히 시대를 초월한 거장에게는 남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번역본으로 접하면 그런걸 알기는 어러운데, 도일의 문체와 스타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서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에세이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특정 주제는 재미도 없고 별다른 흥미도 자아내지 못한다는 단점은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더다가 "베이커 가 특공대"에 초대된 뒤, 가입하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특히나 그가 특공대에 가입하면서 '랭데일 파이크'라는 호칭을 받은 뒤, 랭데일 파이크에 대한 디테일한 가공의 약력을 창작하는 것은 지나쳤습니다. 별 관심도 없는 인물인데다가, 창작한 약력이 너무 픽션과 현실을 오가고 억지스러운 인용도 많으며 당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즉 셜로키언이 아니라면 딱히 즐길거리가 없는 글이었습니다.

부제가 "셜록 홈즈로 보는 스토리텔링의 모든 기술"이라서 약간은 작법서에 가까운 정보가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거의 그렇지 않다는 것도 역시나 단점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홈즈와 도일의 팬이거나 장르문학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은 에세이집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감점합니다. 추천하기도 애매하네요. 단점도 명확하니까요. 코난 도일의 작법과 셜록 홈즈 작품들의 스타일을 철저히 분석한다던가, 국내 미발표 작품들 중심으로 이야기되었더라면 별점 5점도 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2021/01/23

주석 달린 셜록 홈즈 6 - 아서 코난 도일, 레슬리 S. 클링거 / 인트랜스 번역원 : 별점 2.5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6 - 6점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현대문학

드뎌, 주석 달린 셜록 홈즈 마지막 권을 읽었습니다. 1권을 읽고 리뷰를 올렸던게 2009년 3월이니 11년 걸려서 다 읽은 셈이네요. 감개무량합니다. 물론 다른 판본으로 다 읽었던 작품들이기는 합니다.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는 11년 전에 이미 리뷰도 올렸었지요. 그래도 이 판본은 '주석'과 화려하고 다양한 도판을 보는 재미가 크니, 그런 관점에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작품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는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작품 탓은 아니에요.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걸작이라고 하기 충분한, 뛰어난 작품이니까요. 기대했던 주석과 삽화도 풍성하고요. 특히 모티머 박사가 런던에서 외과대학 박물관을 둘러보았다는 대사에 달린, 외과대학 박물관에 대한 긴 주석이 인상적이었어요. 존 헌터의 개인 수집품을 영국 정부가 구입하여 만들어진 장소라는데, 존 헌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의 대니얼 버턴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에 추가되어도 좋을 주석이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이니셜이 L.L인 여자 로라 라이언스가 처음 언급되는 장면에 달려있는, 로라 라이언스가 1976년 2월 '플레이보이' 모델이었다는 주석은 이 책 주석의 방대함을 상징하는 주석이기도 하고요.
아래와 같은 홈즈가 머물렀을 움막과 비슷한 움막 구조도 등 삽화 외의 도판도 흥미로운 자료였어요.

그렇다면 뭐가 문제냐, 바로 번역입니다. 제목부터가 조금 미묘해요. '바스커빌 씨' 라니요? '바스커빌 가문'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 외 사소하고 자잘하지만 미려하지 못한 번역들이 눈에 많이 거슬렸습니다. 한가지만 예를 들자면, '우정에서 나온 필요성과 훌륭한 형사의 지배적인 성격 때문에 왓슨이 홈즈의 질문에 단순한 사실 진술로 대답하고 싶은 극도의 유혹에 굴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는 175번 주석의 긴 문장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대충 넘어간 설명도 너무 많습니다. 모티머와 헨리 바스커빌 경이 했다는 카드게임 에카르테에 대한 주석이 대표적입니다. 게임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기 때문입니다. "32장으로 된 피케 카드를 사용하며, 각 수트의 7부터 킹까지에 에이스를 더해서 구성되어 있다. 각 카드의 가치는 휘스트와 비슷하나 킹은 휘스트에서의 잭이나 에이스, 10보다 랭킹이 더 높다..." 라고 설명되는데, 수트는 뭐고, 휘스트는 뭔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이래서야 '주석'이 '주석'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지요.

다행히 "공포의 계곡" 번역은 훨씬 낫더군요. 최소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은 별로 없었습니다. 전체 분량의 2/3를 차지하는 19세기 후반, '맥도너'가 '죽음의 계곡'에서 악당 조직을 붕괴시키기 위해 싸웠던 모험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었고요. 19세기 후반 탄광 지대를 장악한 악의 조직,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정, 묘사가 상세하며, 더글러스이자 버디 에드워즈이자 맥머도인 주인공의 활약도 생생하게 잘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펜실배니아 탄광 지대에서 실재로 광부들을 좌지우지했던 '몰리 머과이어스'와, 그들을 붕괴시키기 위해 몰리 머과이어스에 잠입해 활약한 핑커턴 탐정 사무서 탐정 제임스 맥팔런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각색한 덕이겠지요. 정황상 맥머도가 스코러즈를 붕괴시키기 위해 잠입한 탐정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끝까지 숨겼다가 한 번에 터트리는 코난 도일 경의 솜씨도 돋보이고요. 핑커턴 탐정이 악당 조직을 괴멸시키기 위해 스스로 악당이 된다!는 이야기는 콘티넨털 옵과 같은 하드보일드 탐정 모험물의 원조로 보아도 무방할거 같아요.

하지만 문제는 '셜록 홈즈'라는 이름에서 기대해 봄직한 추리 측면에서 볼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모험 이야기는 물론,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앞부분 1/3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셜록 홈즈가 아령이 하나만 있는게 이상하다며 이를 통해 증거를 찾아내는, 추리적으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납득이 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어요. 바벨 플레이트 중 특정 무게가 한 개만 비어 있었다면 모를까, 아령이 한 개만 있어도 양쪽 근육을 단련하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잖아요? 2개를 한꺼번에 사용하는게 발표 당시의 상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되는 추리는 아니었습니다. 주석에서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더글러스가 자기를 죽이려 온 테드 볼드윈을 죽인 뒤, 시체에 옷을 입히고 자기가 죽은걸로 위장했다는 진상도 지금 읽기에는 많이 진부했어요. 그리고 계속되는 악의 조직으로 부터의 암살 기도를 막기 위해 연극을 벌인 거라는데,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테드 볼드윈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조직도 이상하다고 생각할게 뻔하니까요.

그리고 실화 바탕으로 설득력이 넘치던 맥도너의 과거 활약에 비해, 배후에 악의 조직이 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죽음의 계곡을 지배하는 악의 조직 '스코러즈'의 모태인 프리맨 조직의 다른 지부는 모두 정상적인 단체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코러즈가 와해된 뒤에는, 조직적으로 복수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몰리 머과이어스에 잠입하여 붕괴시켰던 핑커턴 탐정 사무소 탐정 제임스 맥팔런은 은퇴한 뒤 편안히 천수를 누렸다고 하지요. 맥도너의 모험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 코난 도일 경이 만들어낸 설정이겠지만, 여러모로 무리수였습니다. 차라리 테드 볼드윈의 개인적인 복수였다는게 더 설득력이 높았을 거에요.

아울러 이 시리즈에서 기대해 봄직했던 화려한 도판도 부족한 편입니다. 주석 외에는 다양한 출판물에 수록되었던 삽화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영국과 미국 버젼의 문장, 단어 차이에 대한 언급이 주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그래서 두 편 모두 종합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공포의 계곡"은 추리적으로는 조금 아쉽지만 작품 완성도와 재미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별도로 '주석달린' 책을 구입할 만한 가치가 부족하기에 감점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부실한 번역들, 그리고 기대했던 부가적인 정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황금가지 등 일반 출판사의 제대로 된 번역본을 읽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2020/11/1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로버트 바 외 / 이정아 : 별점 2.5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6점
로버트 바 외 지음, 이정아 옮김, 박광규/코너스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두 번째 권입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문학의 초기인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발표되었던 단편들이 수록된 앤솔러지입니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과 마찬가지로 정가 할인되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셜록 홈즈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탐정들 등장이 많은게 이채롭습니다. 유명한 외젠 발몽, 마틴 휴잇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 탐정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산사나이, 자연인 명탐정 노벰버 조와 초창기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는 독특해서 인상적이더군요. 플랙스먼 로우는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수록작들 수준이 모두 높지는 않습니다. 셜록 홈즈의 영향을 짙게 받은, 모방작이 많은 탓입니다. 시대와 유행에 충실했지만, 뛰어넘지는 못한 셈이지요. "두 개의 양념병"이라는 걸작이 수록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수준 이하 작품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가 인하된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에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거브 탐정, 일생 일대의 사건"

파일로 거브는 마대 자루에 꿰메어진 채 익사한 헨리 스미츠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그의 활약을 모든 리버뱅크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끊어진 전구를 쥐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는데...

도배 및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통신 교육으로 탐정이 된 파일로 거브가 활약(이라고 쓰고 좌충우돌이라고 읽는)하는 시리즈 단편입니다.

통신 교육을 받은 탐정은 "탐정 피트 모란"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피트 모란은 겉에 드러난 것들만 1차원적으로 해석하는 단순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민따위는 하지도 않지요. 당연히 추리보다는 코미디가 핵심인 이야기 들이었고요. 이 작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탐정에 대한 희화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요. 마을 주민 모두가 변장이라는 걸 알아채는 변장을 한 뒤 탐문 수사에 나선다던가, 파일로 거브가 펼치는 수사를 마을 주민 모두가 지켜본다는 등의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피트 모란" 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웃음거리를 제외하면, 나름대로는 추리물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 기묘하게 죽었던 헨리 스미츠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전구였으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어디서 전구를 갈았는지?"를 파악한 뒤 피해자의 작업실로 올라가 전구를 가는 동작을 따라하다가 진상을 알게 되거든요.
피해자는 자신이 만든 '양고기 자동화 포장 기계'로 넘어져 마대 자루로 포장된 뒤 강물로 던져졌던 겁니다. 단서를 찾고, 추리한 뒤 추리를 검증한다는 순서만큼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셈이에요. 추리라기 보다는 겉에 드러난 단서를 '추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넓은 범주의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는 아니며, 흡사 "월레스 앤 그로밋"을 연상케 하는 황당무계한, 일종의 다고베르트 머신같은 기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도 언급되긴 했는데, 단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만 점수를 받았을 뿐입니다. 당연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 

로드 던세이니가 1934년에 발표했던 작품으로 장르 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애호가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실 고전 걸작 단편입니다. 마지막의 의외성이 돋보이는, 이른바 '기묘한 맛' 장르의 대표작이지요.

이전에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정통 추리물 성격이 강할 뿐더러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량이 충실해서 놀랐습니다. 이는 마지막 반전을 훨씬 돋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상세한 묘사를 통해 반전을 탐정역인 린리 씨가 룸 메이트인 스메더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은근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스메더스는 살인 용의자 스티거가 구입했다는 양념 '넘누모'를 파는 행상인이라서 린리씨는 샐러드에 뿌려먹게 넘누모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스메더스는 거절합니다. "고기와 짭짤한 음식에만 뿌려 먹는 겁니다"며, 잘 모르고 채소에 뿌려 먹더라도 "두 번은 안 하죠"라고요. 이 말로 진상이 드러납니다!

2주일 동안 고기를 어떻게 보존했을지, 뼈와 정말 먹을 수 없는 내장 같은 부산물은 어떻게 처리했을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도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 고전 걸작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린리 씨와 스메더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백작의 사라진 재산" 

외젠 발몽 시리즈 단편으로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에도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트릭이 황당해서, 이전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주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래시계" 

버트럼 이스트퍼드는 골동품상에서 오래된 모래 시계를 구입했다. 시계는 30분 정도 지나면 시간이 멈추는 문제가 있었다. 그날 밤, 모래 시계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 버트럼 앞에 옛날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그 모래 시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190여년 전 자신이 참전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는데...

표제작으로 저자는 '외젠 발몽' 시리즈 작가인 로버트 바인데, 작품은 외젠 발몽 시리즈와는 관계없는 역사 판타지입니다.

일단, 모래 시계 소유권을 주장하던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해 준 전쟁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중위는 장군으로부터 기습 공격 작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걸 몰라서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작전 실패 후 체포되었습니다. 장군은 '모래 시계 모래가 다 떨어지면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리를 떠나고요.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 탓에 총살을 집행할 수 없었고, 장군도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총살 지시를 철회한다는 내용입니다. 긴박하면서도 왠지 모를 유머, 여유가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았어요.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어떻게 버트럼 앞에 나타났는지부터 이유 불명이니까요. 왜 모래 시계가 파괴되고 중위는 사라졌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버트럼 이스트퍼드가 꾼 꿈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그래서 점수는 2.5점입니다. 여러모로 마무리가 아깝습니다.

"일곱 명의 벌목꾼" 

노벰버 조를 벌목꾼 막사 책임자 클로즈 씨가 찾았다. 작년에 나타났던, 벌목꾼을 대상으로 강도 행각을 벌이는 검은 가면이 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클로즈 씨로부터 범인 체포를 부탁받은 조는 파트너 쿼리치와 함께 막사로 향했다. 다음날, 강도를 막기 위해 여섯 명이 뭉쳐 떠났던 인부들이 강도를 당했다며 돌아 오는데...

탐정 노벰버 조 시리즈 단편입니다. 노벰버 조는 깊은 산 속에서 일하는 벌목꾼이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이지요.

전개 방식은 셜록 홈즈와 동일합니다.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펼쳐 범인을 잡아내니까요. 여섯 명 벌목꾼이 차를 마셨던 주전자를 깨끗이 씻은 행동 등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사소한 일이 단서가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이 마신 차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었고, 그걸 숨기기 위해 주전자를 씻었던 겁니다.

그러나 자질구레한 단서가 범인을 드러내는건 아닙니다. 범인을 드러내는건 돈을 숨겨 놓았을 막사를 해체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덕분이거든요. 이에 놀란 범인을 현장에서 잡는게 전부입니다. 차에 수면제가 들어있던건 분명해서, 그걸 씻으나 안 씻으나 별 차이가 없었고, 범인이 특정 시간에 개울가에서 무슨 짓을 했건 별로 중요한 단서가 아니에요.

결론적으로 완성도는 그닥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미치지 못해요. 벌목꾼이라는 직업이 유용하게 사용돼지도 못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부여한 가치도 역사적 중요성과 초판본 희귀성 뿐입니다. 엘러리 퀸도 '오지 탐정' 이라는 개념 도입만 높이 평가한 셈입니다.

"유령 저택의 비밀" 

잘 생각해보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지. 또한 거기에 덧붙여 이 단 하나의 발자국까지 잘 생각해보게 뭔가 번쩍하고 해답 같은 게 떠오르지 않나?" 

심령학에 정통한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가 등장하는 단편. 심령 현상도 과학과 추리로 풀어낸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걸 추리해 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고요.

그러나 진짜 유령이 나온거라는 결말 만큼은 영 별로네요. 이 정도까지 추리로 풀어내었다면, 사람이 꾸민거라는 진상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이디어는 좋고, 추리도 볼만하지만 앞서 설명드렸듯 진상, 결말 때문에 감점합니다.

"레이커 실종 사건"

은행에서 수금을 담당하던 사원 레이커가 실종되었다. 그는 1만 5천 파운드를 지닌 채였다. 경찰은 그가 돈을 가지고 도주한걸로 판단했지만, 마틴 휴잇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

사립탐정 마틴 휴잇 (휴이트) 시리즈 단편입니다. 마틴 휴잇은 셜록 홈즈 시리즈가 연재된 스트랜드 매거진 출신 탐정으로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이지요. 그래서인지, 작품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사건을 조사하여 추리 한 뒤, 경찰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내용이니까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한 결과가 의외라는 전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도 셜록 홈즈의 라이벌답게 추리적으로는 꽤 괜찮습니다. 수금할 때 레이커를 제대로 바라본 은행 직원은 거의 없었다, 은행 중 한 곳은 입구가 수리 중이었다는 수금 당시 정황, 그리고 레이커가 파리행 표를 살 때 본명을 댔고 독특한 우산만 채링크로스 역에 남겨졌다는 도주 정황을 통해 마틴 휴잇은 수금을 한 레이커는 변장한 가짜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합리적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의외성있는 반전이었을 테고요.

하지만 마틴 휴잇이 진범을 알아내는건 작위적입니다. 레이커 이름이 적힌 우산 속 광고지가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요. 광고지만 없었더라도, 이 범행은 완전 범죄가 되었을거에요. 광고 내용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인들에게 진범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광고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최소한 암호 정도는 써 줬어야 합니다. 이럴 거라면 마틴 휴잇이 구태여 발품을 팔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신문 광고란 속 수상한 광고만 보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마틴 휴잇 캐릭터도 문제에요. 유명세에 비하면 별다른 매력은 없기 때문이에요. 이름만 바꾸면 셜록 홈즈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형적이더라고요. 후대에 그나마 이름을 남긴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은 다들 차별화된 특징들이 있었지요. 도둑인 뤼뺑을 비롯해서 장님인 맥스 캐러도스,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는 안락의자 탐정 구석의 노인, 멋드러진 별명만큼은 길이 남은 밴 듀슨 (반 두젠), 법의학 탐정의 시조인 손다이크 박사처럼요. 물론 독특하다고 해서 역사에 길이 남는건 아닙니다. 아마추어 괴도 탐정 래플스처럼 지금은 잊혀진 존재도 허다하지요. 그러나 이는 작품 수준이 기대 이하였던 탓입니다. 마틴 휴잇 시리즈는 추리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만큼, 마틴 휴잇만의 개성과 매력을 더하지 못한게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스타일을 잘 따르고 있는,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이야기지만 단점이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바다 건너온 살인자"

로프터스 디컨 씨가 자택의 하치만 성상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장은 거의 밀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고인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헨리 콜슨 씨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둘은 함께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헨리 콜슨 씨는 고인이 애지중지했던 '마사무네 검'이 사라졌다는걸 알아챘다. 그 검은 일본인 게이고 가나마로가 되찾기 위해 부탁과 협박을 반복했던 과거가 있었다. 가나마로는 원래 검의 소유주 아들로, 아버지 영전에 검을 바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헨리 콜슨 씨는 게이고 가나마로가 일본으로 돌아갈 표를 예약했다는걸 알아내는데...

아서 모리슨이 쓴 단편인데 의외로 마틴 휴잇 시리즈가 아니네요. 내용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로, 마틴 휴잇이 등장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겁니다. 등장하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이 마틴 휴잇, 셜록 홈즈와 구분되는 특별한 매력이나 특기, 특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 했습니다. 추리가 진행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거든요. 약간의 범인 심리 분석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고요. 디컨 씨는 외출했다가 급한 용무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집 안에 있었던 누군가가 범인이었을테고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을까요? 경찰은 침실 창문을 주목했지만, 도링턴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침실 창문으로 들어왔다면, 디컨 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했을테고, 그곳에서 범행이 일어났을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요. 그리고 도링턴은 하치만 성상이 집에 들어온 날 범행이 일어났고, 성상이 원래 있던 상점에서 물건이 없어지고 부서진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하치만 성상 안에 누군가 숨어서 잠입했다'고 추리하지요. 물건 안에 범인이 숨는 이야기는 많을테지만, 이 정도면 꽤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네요. 범인 카스트로를 특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했습니다.

게이고 가나마로를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시킨 전개도 좋습니다. 앞서 피해자가 집착했다는 마사무네 검과 보라빛 옻칠 세공품 소개를 통해 가나마로가 한 말 - 큰 돈을 들여서 겨우 검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의미 - 의 뜻이 드러나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 여러가지 일본 물품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 했습니다.

물론 하치만 성상 무게에 대해 좀 대충 넘어가고 있기는 합니다. 사람 한 명 무게가 추가되었다면 이상함을 느끼는게 당연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카스트로가 다시 성상에 숨은 뒤 몰래 빠져나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한 몫 잡아서 도주 자금을 마련하는게 상식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단점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빼어난 점이 분명 있고요. 탐정이 조금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날 밤의 도둑"

프로비던트 은행 지점장 아일랜드가 텅빈 금고를 보고 혼절했다. 그런데 경비원 제임스 페어베언은 전날 밤, 지점장 아내인 아일랜드 부인이 지점장실을 향해 남편을 부르는걸 목격했었다. 아일랜드 부인은 그 사실을 부정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지점장이 지점장실 문을 통해 금고로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건강을 회복한 뒤, 범행 시간에 있었던 완벽한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그리고 그의 재산 상태는 완벽해서 금고 돈을 훔칠 필요가 없다는게 드러나는데...

'구석의 노인' 단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아해서 여러 편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낯서네요. 이전 다른 단편집 수록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다른 단편집에서 빠진게 이해가 되더군요. 단순하고 뻔한 탓에 재미없고 지루했습니다. '지점장은 범인이 아니다', '지점장 아내는 거짓말을 해가며 누군가를 감싸주려 한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결론은 쉽게 추리할 수 있어요. 범인은 바로 아일랜드 지점장의 아들이었던 거지요. 아들이 사건 발생 후 은행을 바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이 추리를 뒷받침하고요. 이 정도 사건을 구석의 노인에게 의지하는 버튼 양은 너무 무능력한게 아닌가 싶네요. 경찰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좋아하는 시리즈의 미번역 초역을 읽어보았다는 의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대리 살인" 

작가는 M.M 보드킨입니다. 작가는 영국에서 판사까지 역임했던 법조인이었다네요. 그래서인지, 클라이막스는 법정 공방이더군요. 정식 법정은 아니고, 검시이긴 합니다만 배심원이 배석하고, 변호사가 반대 심문을 하는 등 정식 법정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법정 미스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밀실에서 구식 전장총이 발사된 장치 트릭입니다. 물병을 돋보기처럼 쓴 게 진상이고요.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으로 익숙한 트릭이지요. 엉클 애브너는 1918년 발표되었으니 이 작품이 원조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작가 보드킨과 탐정 폴 벡이 포스트와 명탐정 엉클 애브너만큼 알려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원조로서의 영광은 커녕, 잊혀져 버린거지요.

읽어보니 잊혀진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 완성도가 별로인 탓입니다. 우선 쓸데없는 묘사가 많고 장황합니다. 에릭 네빌이 정원으로 나가 복숭아를 먹는 묘사가 2페이지에 걸쳐 설명될 이유는 없어요. 그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 트릭은 대충 넘어가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에릭 네빌이 압박에 못 이겨 자백하고 쓰러진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어요. 트릭이 간파되었다 하더라도, 실수인지 살의가 있었는지 증명하는건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에릭 네빌이 정말로 목이 말라서 물병을 그곳에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엉클 에브너 시리즈가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

2010/11/16

셜록 홈스의 과학 - E.J 와그너 / 이한음 : 별점 4점

셜록 홈스의 과학 - 8점
E. J. 와그너 지음, 이한음 옮김/한승

제목만 보면 셜록 홈즈가 등장해 다양한 과학 상식을 설명하는 교양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일부를 인용하며 당시 과학 수사—즉, 법과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법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미시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총 1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주 자세한 내용까지 다루지는 않지만 과학 수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한, 다양한 사건 사례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 자료적 가치와 재미를 모두 충족시키는 보기 드문 책이었습니다. 특히, 모든 내용을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에피소드나 대사를 인용하며 설명하는 방식이 홈즈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요소였습니다.

다만, 과학 수사 초창기에서 셜록 홈즈의 전성기, 즉 20세기 초반까지의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 그 이후의 발전상을 심도 있게 알기는 어렵다는 점, 그리고 참고도서로 보기에는 도판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별점은 4점. 과학 수사의 역사에 대해 이만한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과학 수사에 관심 있으시거나 다양한 사건 사례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께 꼭 추천드립니다.

"사자와의 대화"

시체를 분석해 범죄를 해결하는 법과학의 역사를 다룹니다. 사망 시간의 추정, 부검 및 해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19세기 후반 헝가리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린 하녀가 실종된 후 유대인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박해받던 중, 익사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나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깨끗하게 보존되어 실종된 하녀가 아닐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세밀한 부검을 통해 뼈의 성숙도로 나이를 판정한 결과, 시신이 깨끗했던 이유가 피부의 진피층이 떨어져 나간 것과 강물이 차가워 시신이 3개월 동안 잘 보존되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야수 이야기와 검은 개"

"바스커빌가의 개"를 토대로,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고대 민담과 전설에서 비롯된 수상한 사건들을 설명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평이했지만, 마지막에 소개된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사건에서 주인이 살해된 현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앵무새의 부리에서 살인자의 피를 채취해 범인을 잡았다는 내용이었는데, 용감한 앵무새가 범인을 공격한 덕분이었습니다!

"옥에 티"

곤충과 범죄 수사의 연관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이 왜 "옥에 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야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파리가 잡은 범인"을 함께 읽어보시면 더욱 흥미로울 것입니다.

"독살의 증거"

제목 그대로 독살 사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또한, 시체에서 독을 검출하는 방법, 특히 비소 검출 기법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얼룩끈"에서 뱀의 이빨 자국을 통해 해결한 사건을 예로 들며, 피하 주사 흔적을 발견해 독살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서를 실제 사건과 연결해 설명해 주니 더욱 흥미로웠거든요.

"변장과 수사관"

비도크를 중심으로 변장과 관련된 실제 사례를 소개합니다. 비도크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가짜 경감 듀"로 유명한 크리픈 사건(정부를 아들로 변장시켜 도주했던 사건)도 다루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심하게 절뚝이는 범인을 잡기 위해 그의 변장을 간파하고, 범인이 특수 구두를 신었을 것이라고 추리한 사립탐정 헨리 고다드의 활약이었습니다.

"범죄자의 초상"

범죄자의 신원 파악을 위한 방법의 발전 과정을 소개합니다. 초기에는 문신이나 흉터를 기록하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이후 사진술, 베르티용 측정법을 거쳐 지문 감식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마지막에 소개된 사건이 인상적이었어요. 1920년대 리옹에서 대낮에 열린 창문을 통해 여러 물건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이랑이 모두 수직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범인은? 놀랍게도 원숭이였습니다! 한 편의 추리 소설 같은 이야기였네요.

"오물"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는 먼지와 오물에 대한 법과학적 분석을 다룹니다. 1904년 독일에서 벌어진 재봉사 살인 사건에서는 범인의 손톱 밑 찌꺼기를 긁어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관련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중 놀라운 사건은 자신을 흡혈귀라 주장한 영국의 존 조지 헤이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피해자를 황산에 녹여 증거를 없앴다고 확신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작은 조약돌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 조약돌은 피해자의 담석이었고, 담석은 황산에 녹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기막힌 반전이야말로 현실이 소설보다 놀랍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화, 의학, 살인"

19세기 범죄 수사에 영향을 미친 여러 기상천외한 이론들이 등장합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언급된 '골상학'이나 '범죄 유전 이론'을 비롯해, 자위행위가 해롭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등장한 황당한 치료법들, 흡혈귀에 대한 미신, 살해당한 사람의 망막에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 보존된다는 믿음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