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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5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사이먼 싱 / 이원근 : 별점 5점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10점
사이먼 싱 지음, 이원근 옮김/영림카디널

이전에 읽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저자가 쓴 암호의 역사와 원리에 대한 책입니다. "경성탐정록"의 자료로 쓸 까 하고 구입한 책이죠. 목차는 1.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암호 대결/ 2. 암호 - 그 신비의 바다 / 3. 보이지 않는 암호 전쟁 / 4. 사라진 언어 / 5.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암호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 물건입니다. 정말 재미있더군요. 암호도 수학이 근간이 된 과학이기에 딱딱하고 지루하게 쓰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암호의 역사를 주요 이슈별로 나누어 생성 방법과 해독 과정, 역사에 미친 파장 등을 재미있게 써서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재미 뿐만이 아니라 암호에 대하여 상세하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이거 한권 읽으니 암호 전문가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더라고요.^^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유렵과 영미권이 이야기의 중심이라 암호 해독에 동참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점이겠죠. 상세한 내용 이외에도 풍부한 도판과 암호문의 여러가지 예문들, 다양한 부록도 실려 있기에 정말 별점 5점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암호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적극 권해드립니다.

1장에서는 제목처럼 메리 여왕의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 음모에 대한 암호문을 중심으로 암호의 기원부터 중세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요 이슈인 메리 여왕 관련 이야기는 한편의 짤막한 역사 첩보 소설을 보는 것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였고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고대 암호의 기원부터 스파르타와 로마의 암호 이야기 등도 재미있었습니다. 추리소설 트릭으로 써먹음직 했고 말이죠.
 
2장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이슈, 즉 그 당시 해독이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비즈네르 사이퍼" 와 아직도 그 수수께끼가 밝혀지지 않은 미국의 보물 관련 암호문 "빌 사이퍼" 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비즈네르 사이퍼의 아이디어와 그 해독방법도 흥미진진했지만 모험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빌 사이퍼"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였습니다! 아직도 해독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창작으로 날조된 문서로 보입니다만...

3장은 독일의 이른바 "이니그마" 시스템에 관련된 이슈가 중심입니다. 해독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이니그마 시스템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해독하기 위한 폴란드와 영국의 암호해독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재미는 물론 그간 궁금했던 이니그마 시스템에 대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복잡한 기계이지만 명쾌한 도판과 상세한 설명으로 그간의 궁금증이 싹 가셨거든요.

4장은 영화 "윈드토커"로 잘 알려진 미국 나바호 인디언 암호병에서 시작해서 이와 유사하게 "다른 언어"를 이용한 암호문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언어 해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짐작대로 "로제타 스톤"과 고대 이집트 언어의 해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이 잘 표현되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몰랐는데 샹폴리옹 혼자서 이론을 만들고 해독한건 아니더군요.

5장은 현대 암호 시스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열쇠"를 중심으로 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암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데 사실 여기서부터는 원리는 수학이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작성과 해독의 영역에 들어갈 뿐더러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리는 것은 없어서 재미는 가장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소수"를 이용한 열쇠 만들기에 대한 내용은 경성탐정록에 써먹어 봄직한 이야기라 개인적으로 횡재한 느낌이었어요.^^

2006/01/14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별점 2점

ロシア紅茶の謎 (講談社文庫) (文庫)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講談社

범죄 심리학 조교수이자, 실제 사건에서의 활약으로 "임상 범죄 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천재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 시리즈 단편집. 아리스가와 아리스(저자)의 첫번째 단편집이기도 합니다. 그의 "국명 시리즈"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책에는 전부 6개의 단편과 작가 해설 등이 담겨있습니다.
일본 여행 가서 구입한 책으로 장편이 아니라 단편집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번역 한번 해 볼까 하고 삽질하느라 걸린 시간도 있어서 이래저래 거진 한달이 걸렸네요.... 2006년 들어서는 처음으로 완독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만화책은 수도없이 읽었지만서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 이하였습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고도 불리우는 신본격 작가라서 굉장히 기대했는데 말이지요. 이유는 작품 대부분이 "트릭을 위한" 이야기들이라 트릭에 매몰된 듯한 느낌인 탓입니다. 트릭도 만들기 쉬운 암호 미스테리가 많아서 별로였고요. 표제작이며 작가 스스로 마음에 든다는, 이른바 국명 시리즈인 "러시아 홍차의 비밀"이 제일 어처구니 없고 수준이하였다는 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또한 탐정역의 히무라 히데오의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것도 감점 요인입니다.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에는 단편이라는 특성상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겠지만, 잘난척 하는 천재라는 고전적 스테레오 타입 그대로의 인물이라 새로운 면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신본격답게 문제-해결이 명확하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것은 좋았습니다. 용의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단서에 대한 범위를 좁혀줌으로써 이해를 돕는 추리만화 타입의 전개도 쉽게 읽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요.

결론내리자면 그냥저냥한 평작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 자체는 제법 괜찮은게 있고, 뛰어난 작품도 분명있기는 합니다. 위에 말한 단점은 장편을 보면 많이 상쇄될 것도 같고요. 다음번에는 장편에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 3개월은 걸리겠지만....

개인적인 베스트는 "동물원의 암호"와 "팔각형의 함정" 입니다.

작품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동물원의 암호 :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육사. 그는 죽기 직전 암호로 된 쪽지를 남긴다. 그 암호는 퍼즐광이었던 피해자가 공들여 만든 것으로 암호를 해독하면 범인을 알 수 있으리라는 판단 하에 주인공 컴비는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해독에 도전하는데...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자체가 무척 괜찮습니다. 기발하면서도 수긍이 가는 그런 암호거든요. 일본 거주자가 아니면 풀기 힘들다는 약점은 있지만 말이죠. 내용 전개도 명쾌하고 논리적이라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 중 하나였습니다.

2. 지붕 밑의 산보자 :
하숙집 주인이 살해되는데 경찰 조사로 발견한 그의 일기에서 그가 하숙집 지붕을 밤에 돌아다니는 변태적인 취미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숙인들 중 인근 연쇄 강간마로 짐작되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 밝혀진다. 그런데 하숙인들을 암호화된 이니셜로 표기하고 있어서 정체를 모르는 상태. 연쇄 강간마이자 하숙집 주인 살인 사건의 범인인 그 하숙인을 찾기 위해 두 컴비가 나선다.
역시 암호 트릭입니다. 이 작품은 암호 자체는 무척 간단한 편이라 정교한 맛은 좀 없더군요. 그래도 에도가와 란포의 동명 단편을 응용한 센스와 마지막의 살짝 등장하는 반전은 무척 좋았다 생각됩니다.

3. 붉은 도처 (稻妻) :
한 여인이 투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히무라 히데오의 제자인 학생이 목격자로 나서 그 여자가 방에서 밀려 떨어졌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 여자의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
밀실 트릭물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정교함은 떨어지는 편이고 작품에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너무 적어서 이상할 정도였어요.

4, 룬의 가르침 :
외국인 기자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요청받아 찾아간 히무라 히데오. 그는 피해자가 손에 쥐고 죽은 "룬 문자판" 4개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주력한다.
이 책의 단편들 중에서 전개가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 히데오의 방에 놀러간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책상위에 놓여진 룬 문자판을 보게 되자 히무라 히데오가 그것에 관련된 사건을 들려주는 셜록 홈즈물 스타일의 전개로 이루어지거든요. 트릭은 역시나 일본 독자들만이 풀 수 있는 암호인데 평이하기도 하지만 좀 억지성이 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룬 문자"라는 요소가 왜 들어갔나 싶게 쌩뚱맞아서 의아했는데 책 뒤의 작가 후기를 보니 "고대문자"에 관련된 트릭 추리물을 써 달라는 의뢰의 결과물이더군요. 뭐 그냥저냥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5.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인기 작사가 독살 살인 사건에 참여한 컴비. 아무도 그의 찻잔에 독을 주입할 기회가 없었던 상황에서 사건의 해결에 도전한다.
표제작이자 국명 시리즈라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에서 이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트릭도 억지에다가 범인이 왜 그런 트릭을 썼는지에 대한 타당성 자체가 불분명 합니다.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상황" 이라고 해서 자기 자신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어차피 제일 의심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는데.... 본격물의 정도를 벗어나 너무 트릭에만 집착한 씁쓸한 결과물로 보입니다.

6. 팔각형의 함정 :
아리스가와 아리스 원안의 추리극을 상연하는 연극 예행 연습에 초대된 두 컴비는 실제로 살인 사건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게 실제로 있군요! 만화에서만 보던 "추리극" 공연과 관객이 함께 하는 범인 맞추기 이벤트라는 연극을 위해 아리스가와 아리스(작가)가 실제로 원안을 제공했던 연극 각본의 소설화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도 본격물에 걸맞는 깔끔하고 완벽한 구성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도 아주 약간을 제외한다면 수긍할 만 했고 범인이 왜 그렇게 트릭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합당하며 범인을 알게 되는 단서 역시 이치에 맞거든요. 일종의 문제편 격인 서술 뒤에 "독자에게의 도전장" 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연극으로 본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12/01/23

이니그마 - 로버트 해리스 / 조영학 : 별점 2.5점

이니그마 - 6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톰 제리코는 선배 앨런 튜링의 소개로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 부서에 배치된 후, 독일군 기기 중 가장 어려운, 4중 회전자를 채택한 이니그마 "샤크"를 해독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건강을 해친 톰은 요양을 떠났지만, 고작 3주 후 샤크의 체계가 바뀌어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업무 복귀와 동시에 옛 연인 클레어의 행방을 뒤쫓다가, 그녀의 방에서 훔쳐낸 암호문을 발견하는데...

역시나 물만두님의 리뷰집을 읽고 흥미가 생겨 읽게 된 작품입니다. "그들의 조국"으로 데뷔한 로버트 해리스의 두 번째 작품으로, 45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첫 작품은 가상 역사물이었지만, 이 작품은 2차대전 당시 영국 정보부 블레츨리 파크를 무대로 한 팩션입니다. 이전에 영화로 먼저 접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와는 달리 디테일이 확실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니그마와 블레츨리 파크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는데, 소설은 이니그마에 대한 고증과 암호를 풀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거든요. 암호 해독에 관심이 있다면 자료 삼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설명해 줍니다. 실제 이니그마 해독 과정이 중심이라 독자가 암호 해독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완성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또한,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 축인 '이니그마 해독'과 '클레어 실종에 대한 미스터리' 중에서 클레어 실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는데,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를 균형 있게 전개하는 것도 좋았어요. 거대 수송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단서를 알아내야 하고, 그 단서가 되는 것이 수송 선단을 발견한 U보트의 통신 암호라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그로 인한 서스펜스 (명확한 시간 제한이 생기므로)를 영화보다 훨씬 설득력 있고 박진감 있게 서술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이야기가 너무 길고 늘어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주인공 톰 제리코의 불안한 심리 묘사와 옛 연인 클레어와의 관계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습니다. 클레어에 대한 비중이 커진 탓에, 진짜 여주인공인 헤스터의 존재가 묻혀버린 것도 문제입니다. 제리코가 클레어의 룸메이트 헤스터와 함께 클레어의 실종에 얽힌 진상과 중요한 단서를 포착하는 전개는, 영화에서 초반에 간결하게 처리한 것처럼 소설에서도 요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밀도 있는 상세한 묘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부분은 장황한데 반해, 중반 이후 결말까지는 너무 빠르게 전개되는 느낌이 있어 강약 조절이 실패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확실하게 정리하며 마무리되기는 하지만, 마치 연재 종료를 갑작스럽게 통보받은 만화의 엔딩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한, 폴란드인 푸코프스키가 가족을 위해 카틴 숲 학살 관련 암호문을 몰래 해독하려 했다는 동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애초에 암호문 내용이 카틴 숲 사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에필로그에서 클레어가 스파이로서 해당 메시지를 중개했다고 설명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작품 내에서 해당 암호문은 해독조차 시도되지 않았다고 묘사되며, 가장 뛰어난 암호 해독 전문가인 제리코조차도 해독이 기적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어려운 암호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클레어가 사실 위그램이 심어놓은 블레츨리 파크 감시용 스파이였다는 설정은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나름 반전 요소일 수는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꼭 필요하지는 않으며 퍼그에게 의도를 가지고 암호를 전해주었다는 점도 현실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애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퍼그의 배후를 찾기 위한 작전이었다면,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이 암호 때문에 퍼그가 독일 쪽에 붙으려 한 것이라면, 차라리 단순한 미행이나 감시를 붙이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U보트를 뒤쫓는 암호 해독 요원들의 시간 제한이 있는 작전과, 또 다른 음모가 복합적으로 펼쳐지는 서스펜스와 재미는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에, 알리스테어 맥클린 스타일 (짧고 임팩트 있게)로 쓰였다면 더욱 만족스러웠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덧붙여, 영화와 소설 둘을 비교한다면 영화 쪽이 더 낫습니다. 일반 독자나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 해독 장면보다는, 클레어의 실종과 그 비밀을 파헤치는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보거든요. 결말 또한 영화 쪽이 깔끔하고요.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 시종일관 을씨년스럽고 어두운 분위기의 원작보다는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톰 제리코가 마지막 퍼그와의 추격전 이후 요양할 때 읽었다는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목록은 인상적이었습니다. "13인의 만찬", "명탐정 파커 파인",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목사관 살인사건" 등, 작중 주인공이 읽는 책들이 제 취향과도 묘하게 어울려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2024/10/27

종이학 살인사건 - 치넨 미키토 / 권하영 : 별점 2점

종이학 살인사건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권하영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범인 및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준세이 의대 부속 병원 조직 검사실 병리의 치하야의 아버지 미노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병리해부를 유언으로 남겨서 치하야는 동기이자 지도의 시오리의 보조로 해부에 참석했다. 그런데, 아버지 위에는 암호가 새겨져 있었다. 암호는 28년 전 어린 아이들을 노렸던 미제 연쇄살인극 '종이학 살인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진나이 양의 시신이 숨겨진 곳을 의미했다.
둘은 이를 몰래 알리려 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28년 전 형사였던 아버지의 동료 사쿠라이 형사와 진범을 찾아내려 나섰다. 그와 함께 다시 연쇄 살인극이 일어났고, 현장에는 28년 전과 똑같이 '종이학 살인사건' 범인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유리탑의 살인"으로 이름을 날린 치넨 미키토의 장편 소설. "유리탑의 살인"처럼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연쇄 살인마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그래도 아래와 같이 '위 속에 암호를 새겼다.'는 독특한 설정은 흥미로왔어요. 덕분에 이야기 중반까지 흥미를 잘 잡아줍니다. 
치하야, 시오리가 의사이며 특히 시오리가 병리해부를 맡은 병리의라는 설정도 잘 써먹고 있습니다. 미노루가 생전 유전병인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는걸 알아내는 식으로요.

뼈가 약해지는 구루병은 X염색체 변이가 원인으로 100% 딸에게 유전됩니다. 즉, 키도 크며 격투기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튼튼해서 구루병을 앓지 않는 치하야는 미노루의 친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노루의 친 딸은? 목이 부러진채 발견된, 28년 전의 피해자 진나이 양으로 알려진 시신의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 구루병 탓에 급작스럽게 딸이 죽어 혼란에 빠졌던 미노루의 아내가 진나이 양을 유괴했고, 범인이었던 야기누마(타치바나) 와카코가 이 사건을 연쇄 살인극이 하나로 위장했던 겁니다. 알리바이를 통해 혐의를 벗기 위해서요. 마침 유괴 사건을 엮어 미노루를 협박하기도 해서 운 좋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요. 범인을 놓아준 죄책감에 경찰을 그만 둔 미노루는 더 이상의 범행을 막기 위해 와카코를 계속 감시해왔고, 미노루가 죽자마자 와카코는 범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여러모로 전작보다 못합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많이 부족해요. 범인을 추리할 만한 단서는 없다시피 하거든요. '미노루가 경찰을 그만둔 뒤,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무언가를 감시했다' 정도만 의미있는 단서입니다. 그 외의 단서들은 모두 쓸모가 없어요. 핵심 증거와 단서들은 모두 마지막에 범인이 치하야를 납치하며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후 독자에게 공개됩니다. 시오리가 알아낸 아버지의 유전병이라는 단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특했던 '위에 암호를 새긴다는 설정'도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작품에서처럼 위궤양으로 암호가 지워질 수도 있는 등 변수도 많아요. 차라리 변호사에게 사쿠라이 형사에게 전해주라고 편지를 남겼으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암호로 남길 이유도 없었고, 암호의 내용도 불합리합니다. 마지막 사건의 시신 위치를 알린다 한 들, 이는 진상과 연결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냥 범인 이름을 써 놓지 않았을까요? 범인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에 피해자도 두 명이나 생겼는데 말이지요. 암호 해독도 특별한게 없고요.

전개도 어이가 없습니다. 둘이 암호를 곧바로 경찰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 시신 발굴 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 사쿠라이와 비밀 수사를 하는 이유 모두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경찰 수사도 많이 어설픕니다. 특히 가장 어이가 없었던건, 이전 수사 담당자 이노하라가 타치바나 사장의 자식이 마지막 사건에서만 알리바이가 없었다고 알려주는 장면이었어요. 모든 연쇄 살인이 단독범의 소행일리 없는데, 마지막 알리바이가 없다고 유력한 용의자를 그냥 풀어주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려 다섯 명의 아이가 살해된 사건인데, 경찰이 너무 안이한거 아닙니까? 범인이 유괴한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운다는 설정도 많이 접했던것이라 식상합니다. 이에 대한 정보도 많이 전해주고요.

이렇게 위에 새긴 암호, 병리의, 유전병 정도의 소재를 제외하면 연쇄 살인범과 형사의 대결을 그리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와 흡사합니다. 범인의 정체도 반전처럼 등장하지만 굉장히 뜬금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 뒤의 이야기들은 모두 설득력낮고 억지스러우며, 뻔했다는 점에서 위에 암호를 새기는 상황을 떠올리고, 전체적인 얼개없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간게 아닌가 싶네요. 

2004/10/15

다빈치 코드 - 댄 브라운 : 별점 3.5점

다빈치 코드 1 - 8점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문학수첩
다빈치 코드 2 - 8점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문학수첩

루브르 박물관장 소니에르가 살해된다. 그가 남긴 다이잉 메시지로 인해 소니에르와 만날 약속을 했었던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살인 용의를 뒤집어 쓰지만, 프랑스 암호해독 요원이자 소니에르의 손녀인 소피 누뵈의 도움으로 경찰의 포위망에서 빠져나온다.
도주 중 소니에르가 죽기 직전 남긴 메시지를 해독한 둘은 소니에르가 스위스 은행 비밀 금고에 숨겨놓은 암호상자를 찾아내게 되며, 랭던의 친구이자 성배 전문가 티빙 경의 도움을 얻어 경찰과 정체 불명의 알비노의 사나이 등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수수께끼의 진상을 파헤쳐 나가는데...


올 여름을 강타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좀 늦게서야 읽게 되었네요. 읽기 전에는 "장미의 이름"류의 역사 추리물로 생각했었는데 과거의 유물에 대한 실마리를 현대의 주인공이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디 에이트"와 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단, 전개면에서 흠잡을데 없기는 하나 역사적인 비약도 심하고 각종 설에 대한 근거가 희박하다는 단점은 존재합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알기로는 초대 성당 기사단장 뷔용의 고드프리아는 본국에서 상속순위에서 밀려 자기가 지배할 영지가 없자 영지를 만들 목적으로 말도 안돼는 "성전"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서양과 카톨릭 중심의 세계관을 기본으로 했다는 것도 조금은 거슬리는 점이었습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의 핵심인 "예수가 사실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후손을 낳았다! 때문에 성배는 마리아 그 자체다!" 라는 어찌보면 해묵은, 그리고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논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줄거리가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어요. 예전 마틴 스콜세즈의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에서 이미 한번 본 적 있는 설이기도 하고 말이죠.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승"의 정체도 뻔해서 김이 좀 빠지는 편이에요.

오히려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주목했던 부분은 다빈치가 남겼다는 여러 성배에 관한 코드를 풀어내는 부분과 극 중에 등장하는 여러 암호 풀이 트릭입니다.
특히 암호 트릭은 정말 대단해요. 초반의 소니에르가 죽어가는 몇십분 (한 20분?) 동안 남긴 다이잉 메시지 (13-3-2-21-1-1-8-5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O, Draconian devil!) 오, 불구의 성인이여(Oh, lame saint!)’) 그리고 성배를 찾기 위한 단서가 들어있는 키워드 암호 2개, 마지막으로 성배가 있는 장소를 알리는 암호 1개, 전부 이렇게 4개가 등장하는데 그 수준이 정말 발군이거든요. 4개의 암호가 수열, 애나그램, 글자 치환 변환법같은 암호 해독법은 물론 다빈치와 각종 상징들, 성경, 성배, 성당 기사단 등 거의 모든 역사적 배경을 아우르며 종횡무진하고 있기 때문으로 그 완성도와 재미가 실로 대단합니다.
영어권 독자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트릭이라 그 진정한 재미를 조금은 놓치는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상당히 이면에 얽힌 내용이 복잡하면서도 맞아떨어지는 점이 절묘해서 보기드물게 참신하고 멋진 암호트릭이라 생각되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단점은 있기에 감점했습니다만 재미 하나만큼은 분명한, 고급스러운 읽을거리로서 손색없었던 작품입니다. 딱 한가지 궁금한 점은 교황청이나 카톨릭 계의 반응이 궁금하더군요.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인지라.... (오푸스데이의 공식 반응은 이미 발표되었다는데 아직 자세히 읽어보지는 못했네요)

PS : 책이 이왕 두권으로 분책해서 비싸게 팔려고 나온 것이라면 앞부분에 소설속에 등장하는 자료들에 대한 도판 정도는 서비스로 실어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PS2 : 대체 인디애나가 찾은 성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2023/12/03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대생 나오코는 친구 마코토와 함께 펜션 마더구스를 찾았다. 1년 전 마더구스의 밀실인 방에서 자삻했던 오빠 고이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펜션은 방마다 '마더 구스' 동요가 쓰여진 패널이 걸려져 있었는데, 이 동요들이 암호라는걸 눈치챈 둘은 암호 해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손님 중 한 명인 오오키가 추락사했고, 이는 교묘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게 드러났다.
결국 암호를 풀어낸 둘은 오빠 죽음의 진상과 범인을 밝혀내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가면 산장 살인사건"의 또다른 번역본이라 생각했었는데, '마더 구스' 동요를 이용한 암호 트릭이 등장한다는 광고글을 보고 착각을 깨우친 뒤 읽게 되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볼거리가 많다는게 장점으로 외딴 산장이라는 무대에서부터 시작해서,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이 등장하고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밝혀지는건 오오키를 살해한 원격 조종 트릭인데 '다리를 대신할 수 있는 판자를 썩은 것으로 바꿔치기해서 추락하게 만들었다'는 간단명료함도 좋았지만, 단순히 장치 트릭에 그치지않고 이를 범인이 특정될 수 있는 중요 단서로 활용하는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판자와 비슷하면서도, 사람이 올라가면 부서져 떨어질 판자를 고르는건 상당히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하므로, 목재에 대한 전문가가 범인이다!는 논리인데 꽤 합리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빠 고이치가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던 밀실 살인 트릭은 '범인은 방에 숨어 있었다'는 단순한 것이지만, 공범을 활용한 변주가 괜찮았습니다. 먼저 구루미가 침실 창문과 문을 잠그고 다카세가 창문도 잠겼다는걸 확인하게 합니다, 그리고 구루미는 창문을 통해 탈출했고요. 에나미는 다카세에게 다시 고이치를 불러오라고 시킵니다. 이 때 문이 잠겼다는걸 다시금 다카세에게 확인시키고 마지막으로 에나미가 열려있던 창문으로 침입하여 창문을 잠근 뒤 방 안에 숨어서 밀실을 만들었던 겁니다. 에나미 혼자 실행도 가능한 트릭이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당연히 눈에 띄였겠지요. 구루미가 산장 펜션 종업원이었던 덕분에, 때맞춰 다카세를 피해자 방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도 있었고요. 이 때 구루미와 에나미가 포커가 아닌 백개먼을 했다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단서와 정보 제공도 공정한 편이에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 트릭이 별로였어요. 쉼표를 활용해서 문장을 이어 붙이는 것까지는 나름대로 말이 되지만, '말을 반대로 바꿔야 한다', 즉 '다리가 부서지는게 아니라 세워지는것' 이라는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탓입니다. 분명 중간까지는 나름 논리적으로 풀리는데, 그 뒤는 완전 국문학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건 억지스러워요. 마더 구스 동요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갑자기 휴게실의 마리아 - 알고보니 마녀 - 조각상이 필요했다는 것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와닿지 않는건 암호 해독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 노을이 질 때, 부서진 다리가 그림자 이어지는 곳'이라는 결과를 1년 전에 손에 넣었던 범인들이 왜 1년을 기다렸을까요? 여름이라도 그림자의 변경 추이만 관찰해도 겨울 철 그림자가 어디 위치하는지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구루미는 몰랐다쳐도 에나미는 이과계 연구원이라는 설정인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설령 에나미가 측정에 실패해서 겨울철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치죠. 그래도 1년 중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을 때 보물을 파내려고 시도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정 그 날짜가 필요했다면, 장소만 사진을 찍어두던가 해서 표시하고 나중에 파내면 되었습니다.

오빠 고이치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한건 밀실 트릭만큼은 앞서 설명했듯 괜찮은 부분이 없지 않으나, 밀실을 만들어야 했을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밀실이라서 자살이다!'라기보다는, 원래 노이로제가 있었고 펜션 손님들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는 정황이 자살설의 핵심 근거였습니다. 즉, 밀실은 자살설에 무게를 더해주기는 했지만 절대적인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노이로제에 대해서는 범인을 비롯한 펜션 손님들은 아무도 몰랐었는데, 단지 밀실이라는 상황만으로 자살로 몰고가려 했던건 비현실적입니다. 에나미가 나오코와 마코토에게 '오빠는 살해당했다'며 접근한 행동도 납득이 가도록 설명되지 못하고요. 이는 나오코과 마코토가 에나미를 의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했습니다.

그 외에도 구루미가 최초 보석상 가와사키를 살해한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던가, 영국 여자가 아들을 죽게 만든 마스터에게 복수와 경고의 의미로 암호를 남겼다던가, 보석상의 혼외자가 다카세였다던가, 보석은 가짜였다던가 하는 등의 에필로그도 별로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손님 중 한 명인 가미조가 보석상 가족의 요청으로 이 사건을 3년이나 추적했던 탐정(?)이라는 설정도 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활약을 기대했는데, 하는거라곤 마지막에 구루미의 범행을 밝히는 것 뿐이라는 것도 좀 허무했어요. 일종의 맥거핀에 낚인 셈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초기작답게 여러가지 시도는 돋보이나 단점 또한 많아서 감점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2024/01/10

인페르노 (2016) - 론 하워드 : 별점 1.5점

"암호를 풀지 못하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전세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주장한 천재 생물학자 ‘조브리스트’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기억을 잃은 채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눈을 뜬다. 담당 의사 ‘시에나 브룩스’의 도움으로 병원을 탈출한 랭던은 사고 전 자신의 옷에서 의문의 실린더를 발견하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묘사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원본과 달리 지옥의 지도에는 조작된 암호들이 새겨져 있고, 랭던은 이 모든 것이 전 인류를 위협할 거대한 계획과 얽혀져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데…

거대한 음모를 밝혀낼 유일한 단서
단테의 지옥은 소설이 아니라 예언이다!


연초에 볼거 없나 싶어 넷플릭스에 들어갔다가 충동적으로 보게 된 작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이은 로버트 랭던 시리즈 제 3탄으로 "천사와 악마"는 원작만 읽고 영화는 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로버트 랭던 교수가 기억을 잃은 채 여러 조직에게 쫓기면서 암호를 풀어나가는 중반부까지는 흥미로왔는데, 시에나가 조브리스트의 연인임을 밝힌 이후부터는 아쉬움 투성이입니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많이 부족했고요.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건 왜 랭던 박사를 기억 상실처럼 속여서 암호를 해독하게 만들었냐는 것입니다. 바이러스를 없애려고 하는 WHO는 바이러스에 대해 아무런 단서가 없었어요. 조브리스트는 자살했으니 시에나가 랭던 박사를 속여서 암호를 풀게 하지 않았다면, 바이러스의 위치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을겁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앞당기기 위해서 위치를 알아내야 했다고 설명되는데, 앞당겨야하는 합당한 이유는 정작 설명되지도 않고요.
조브리스트가 바이러스의 위치를 구태여 암호로 남긴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위치도 영원히 숨겨놓는게 당연하잖아요? 단테의 신곡 속 지옥을 활용한 암호로 남긴 이유도 알 수 없으며, 해석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바이러스를 둘러싼 짤막한 액션도 별로였습니다. 톰 행크스가 소화하기에는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보인 탓이지요. 흐름상 바이러스가 유출되지 않을거라는 확신도 들어서 긴장감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유명 건물들과 작품들을 활용한 배경은 멋있었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네요. 단점만 가득한 작품으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03/12/15

ENIGMA - 마이클 앱티드

예전에 다운받아 놓고 잊어먹고 있었던 영화입니다. 오랫만에 CD를 정리하다가 발견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사뭇 다른 영화더군요. 일단 2차대전을 배경으로 독일군의 전설적인 암호장치 "이니그마"를 해독하는 해독팀 ("블래처리파크" 라고 하더군요) 소속의 주인공이 등장하길래 2차대전물이구나 싶었는데 일종의 추리 스릴러물이더라고요.
주인공 제리코는 암호 전문가로 애인이었던 클레어와 사이가 틀어진것을 계기로 신경쇠약에 걸려 요양중이다가 독일이 갑자기 암호코드를 바꾸는 바람에 재투입된 요원입니다. 하지만 재투입 되자마자 클레어는 사라지고 제리코는 우연히 클레어의 방에서 사라진 암호비문을 입수, 클레어의 룸메이트 헤스터와 함께 클레어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독일군의 U-보트 대선단이 연합군 수송선단을 노리기 시작하여 제리코는 호위함을 내주고 코드를 입수하는 작전으로 암호해독을 하게 됩니다.... 라는 간략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두개의 큰 흐름, 2차대전에서의 암호 해독과 사라진 애인의 비밀이라는 두가지의 큰 흐름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앞에 나왔던 복선들과 더불어 이 모든것이 하나로 합쳐지며 끝나게 되지요.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극장에서 보기에는 스케일이나 호흡이 조금 작고 지루한 면도 있지만 혼자 가만히 보기에는 괜찮은 영화였다 생각되네요. 추리물로서의 특징도 가지고 있으니만큼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니그마"라는 장치에 관련된, 암호해독에 관련된 내용은 그닥 비중이 있지는 않습니다. 원작소설이 있나본데 한번 구해 읽어보고 싶네요.

2003/03/24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 - 0. 헨리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별점 2.5점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 - 4점
0. 헨리 외 지음, 정태원 옮김/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제목 그대로 암호 미스터리를 다룬 단편을 모아놓은 앤솔러지입니다.
기획은 좋지만 영문권 암호 미스테리이기 때문에 한국어권 독자가 그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재미있게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은 조금 아쉽고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춤추는 인형'같은것은 이 단편선에 끼기에는 너무 유명하고 알려진 것이고 그 외에도 모험소설이나 유머소설같은 작품들이 끼어 있는 등 단편 선정이 무슨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그러나 접하기 힘들었던 오스틴 프리맨의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단편인 <문자조합 자물쇠>, 엘사 베이커의 탐정 덱스터 드레이크 시리즈 단편인 <미카엘의 열쇠>와 같은 작품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엉클 애브너 시리즈로 유명한 멜빈 데이비슨 포스트의 <대암호>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단순한 암호 트릭물이 아니라 지금의 서술 트릭물의 원조격의 풍모까지 느껴지는 작품이었거든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절반의 성공이었달까요? 기획 자체는 괜찮았고 영어를 잘 하신다면 읽는 재미가 두배 이상이 될 듯 하니 영어에 자신이 있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04/24

명탐정 코난 71 - 아오야마 고쇼 : 별점 2점

명탐정 코난 71 - 4점
아오야마 고쇼 지음/서울문화사(만화)

명탐정 코난 70 - 아오야마 고쇼 : 별점 1.5점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두 이야기 평균한 평점은 별점 2점. 전권보다는 낫기는 한데 아직 부족합니다. 일상계스러운 이야기가 더 괜찮다는 것이 증명된 만큼 적절히 비중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치바 형사의 첫사랑 러브레터 답장을 찾는 "추억의 VHS - 13년을 건너 뛴 메시지"로, 13년 전 비디오 테이프에 남겼다는 답장을 코난과 소년 탐정단 일행이 찾아준다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소소한 재미가 있습니다. 과연 13년 전에 수성펜으로 남긴 글이 제대로 남아있을까 하는 의문이 약간 있지만 추리도 그럭저럭 괜찮았고요. 무엇보다도 쩌리 치바 형사마저도 러브라인을 만들어 주는 작가의 세심한 배려에 감탄했습니다. 이제 이 만화에 싱글은 없어요! 아가사 박사님, 시라토리 경위에 이어 치바 형사까지 첫사랑이라는 떡밥으로 인연을 만들어 주다니... 얼척없지만 오래된 팬으로서 기쁘기는 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코난과 코고로, 란 일행이 런던 여행을 가서 폭탄 테러 사건에 말려들게 된다는 "홈즈의 제자"입니다. 꽤 긴 호흡의 이야기입니다. 무려 9개의 에피소드를 소모했는데, 이번 권에서 마무리되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길기만 길 뿐 내용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초반 전개는 런던 셜록 홈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갖가지 소재들을 암호 트릭과 짜 맞추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인데 암호 트릭의 수준이 너무 유치했습니다. 런던 관광 안내 책자를 보는 기분까지 들었어요. 이 암호 트릭보다는 후반부 폭탄 테러 장소에서 세계 랭킹 1위의 테니스 스타 미네르바 글래스가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이 더 교묘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테러의 방식과 동기도 설득력이 약했어요. 복수가 목적이라면 그냥 폭발시키면 될 것을 왜 암호문으로 장난질을 한 건지도 모르겠고, 고생해서 암호를 만든 다음에 한 일이 고작 아이들에게 단서를 나눠주는 정도라니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셜록 홈즈 매니아들이 즐길만한 내용 구성은 괜찮았지만 전개가 너무 황당해서 도저히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암호 트릭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고, 수수께끼가 남아있어서 이야기 결말에 따라 점수는 조정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당장의 별점은 1.5점입니다.

홈즈에 이렇게까지 얽메이지말고, 예전에 셜록 홈즈 동호인들이 모인 오프라인 모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처럼 순전히 소재로만 접근하는게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2025/03/01

명탐정 코난 :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2024) - 나가오카 치카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에서, 괴도 키드가 히지카타 토시조에 썼다는 일본도를 훔치려 했다. 이 칼들을 모으면, 오노에 재벌 선대가 남긴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핫토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키드는 칼을 훔쳐갔지만, 암호를 풀 수 없어서 코난 일행에게 돌려주었다.

이 때 오노에 가문 변호사가 살해되었고, 경찰은 모리 탐정, 핫토리와 함께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보물 찾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보물을 노리는 무기 상인 카도쿠라가 오노에 선대로부터 칼을 맡았던 전직 사범 후쿠시로를 납치했고, 괴도 키드를 쫓던 나카모리 경부도 카도쿠라에게 저격받아 중상을 입고 마는데...

"흑철의 어영"에 이은 명탐정 코난 극장판 시리즈의 27번째 작품입니다. 일본의 유명 관광지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전설적인 보물과 연쇄 사건이 얽힌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추리적으로는 꽤 흥미롭습니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한 암호가 등장하는데, 전통 일본도의 구조와 히지카타 토시조가 남긴 시집, 하코다테의 오릉곽 등 실존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몰입감을 높이며, 사라진 성릉도 대신에 히지카타 토시조가 칼싸움 중 남겼다는 자국의 본을 떠서 코등이를 만드는 이야기는 팩션같은 재미도 줍니다. 덕분에 2차 대전 당시 숨겨진 무기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도 그럴듯하게 포장됩니다.

주 무대인 오릉곽은 물론, 여러 하코다테의 실제 명소들이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코다테 뿐 아니라 모미지가 좌충우돌하면서 다른 홋카이도의 명소를 보여주기까지 하고요. 덕분에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라 '여정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엔딩에서는 실제 사진이 보여지는데, 꼭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판 코난 특유의 비현실적인 액션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케이블카 선로를 따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리거나, 비행기 날개 위에서 검술 대결을 펼치는건 고속 열차가 탈선하거나,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고 침몰하는 것에 비교하면 소소한 편이지요. 실제 명소들이 무대인 덕분이기도 할 텐데,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성이 유지된다면 좋겠습니다.

시리즈 팬으로는 핫토리 헤이지가 핵심 멤버로 활약한다는게 좋았습니다. 제 최애 캐릭터 중 한 명이거든요. 핫토리가 카즈하에게 고백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 모미지의 훼방으로 고백에 실패하는 장면 등은 충분히 즐길만 했고요. 신이치와 괴도 키드가 닮은 이유(알고보니 사촌간!)가 밝혀지는 쿠키 영상도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괴도 키드 세계관과 엮을 필요는 없어 보이긴 했지만요.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이야기가 너무 허술합니다. 초반에는 칼을 훔치려는 키드와 핫토리, 코난과의 대결이 펼쳐지고, 그 뒤에는 보물을 찾으려는 암호 해독이 진행됩니다. 이 이야기만 중심으로 전개해도 차고 넘쳤을 텐데, 경찰이 개입하게 하기 위해 변호사 살인 사건을 삽입한건 무리수였습니다. 애초에 범인이 저지를 이유가 없었던 사건이기도 했고요. 키드 역시 칼을 훔치려다가 돌려준 이후에는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없어서, 계속 등장하는건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동기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전황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했던 무기라 하더라도, 21세기에 경제적 가치를 가질리 없습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무시하고, 악당들이 경찰에게 총질을 하고 일본 대도시에서 폭탄 테러를 하면서까지 이를 찾아다니는 전개는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다른 이야기도 이 때문에 여러모로 이상하고요. 차라리 금괴가 보물이라는 설정을 밀어붙이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암호 풀이의 과정은 좋지만,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은 많이 허술했습니다. 트릭은 성릉도의 코등이(?)의 모양이 오릉곽과 동일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먼저 기구를 띄운 뒤 칼을 바라보면서 오릉곽과 코등이의 형태가 일치하는 고도를 찾아냅니다. 기구 고도에 위치하는 장소는 하코다테 산 밖에 없으니, 하코다테 산의 이 고도 위치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건데, 실존하는 장소에 기반한 트릭이라는건 장점이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기구를 띄우는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면 고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칼을 세우는 위치에 따라서도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요. 기구에서 산을 가리키는 정확한 방향을 모르면, 이 역시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래서야 '하코다테 산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라는 말과 별다를게 없어서,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암호를 풀 필요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평작은 된다 싶네요.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2004/02/03

스파이의 역사 1 : 작전편 - 20세기를 배후 조종한 세기의 첩보전들 : 별점 4점

스파이의 역사 1 : 작전편 - 8점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이창신 옮김/이마고
이 책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스파이들과 그 정보전을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워낙 소재가 독특하고 제 취향에 맞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목차와 내용을 잠깐 소개해드리자면,
“제1부 기만작전: 사상 최대의 속임수”는 가공의 저항 자유 조직을 만들어 서방세계를 속인 소련과, 쿠바인을 스파이로 고용했던 CIA를 역이용하고 농락하는 쿠바와 같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속여 먹는 이야기입니다. 무적으로 느껴지는 CIA의 멍청하고 한심한 일면을 다루고 있어 상당히 통쾌하게(?) 읽었습니다.
“제2부 암호와 감청 전쟁: 보이지 않는 스파이들”은 주로 2차대전을 다루고 있는 편으로 에니그마와 일본 암호 해독 등 서로의 암호를 해독하여 전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명한 에니그마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상당히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다루고 있네요. (물론 “암호의 세계”라는 이 분야의 바이블 같은 책이 있습니다만…)
“제3부 반역작전: 내부의 적을 색출하라”는 제목 그대로 조직 내부의 스파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원자폭탄 관련 정보를 입수하게 되는 소련과 소련의 최 고위층 비밀 요원 “톱해트”의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흡사 영화 같습니다.
“제4부 두더지작전: 미로 속의 첩보 게임”은 역사속에 묻혀진, 그리고 역사의 희생양이 된 몇몇 스파이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발렌베리” 사건이 인상적입니다. 스웨덴의 명문 출신이자 인도주의자였던 외교관 발렌베리가 어떻게 누명을 쓰고 죽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가슴 아프기도 하고요.
“제5부 실패한 작전: 첩보역사상의 대실수들”은 실패로 끝난 작전들이 나옵니다. 일본과 미국의 진주만을 둘러싼 암투라던가, 동유럽의 공산화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가 실패하는 CIA이야기도 있고 태평양의 한 섬을 둘러싼 미-일 간의 첩보 공방전 이야기 등이 실려 있습니다.
“제6부 성공한 작전: 대규모 작전의 눈부신 성과들”은 성공한 유명한 스파이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미국의 “배신자” 워커일가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잡혔을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같은 곳에서 특집으로 낼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그 외에도 영국의 엘리트 5인방 스파이 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7부 무의미한 작전: 첩보역사상 최대의 코미디”는 제목 그대로 무의미 했던 정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 뿌리기 위해 만든 반체제 우편물과 우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그 우표 (반은 해골, 반은 히틀러)가 수집가들 사이에서 굉장히 고가에 거래된다는 이야기까지, 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재밌네요.
이렇게 역사적 정보전과 유명 스파이들을 다루고 있는데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부분은 역사책, 그 중에서도 2차대전 물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부분은 미스터리물 같다는 점도 흥미로왔고요. 읽고나니 스파이와 정보전의 중요성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네요. 역사를 움직이는 “흑막”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고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역사서적으로의 가치와 재미를 모두 갖춘 보기드문 책입니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이나 유명한 (영화로도 나왔죠) “뻐꾸기 알” 이야기가 없는게 조금 의아하지만, 2편을 계속 읽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2006/06/26

극한추리 콜로세움 (極限推理コロシアム) - 스포일러 있습니다!

극한추리 콜로세움(極限推理コロシアム)

프리터 코마가타, 경찰 카가, 프로그래머 데부치, 백수 이다, 번역가 타키모토, OL 요시와라, 그리고 시노자키라는 일곱명의 사람들이 어느날 이상한 저택에 갖히게 된다. 이 저택은 "여름저택"이라고 불리우는 공간으로 영문을 모르던 그들앞에 그들을 이 저택에 가둔듯한 인물에게서 수수께끼의 메시지가 전송된다. 그들이 이제 차례로 죽어갈 것이며 그 범인을 밝혀내면 천만엔의 상금과 함께 저택에서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 문제는 그들 사이의 범인만이 아니라 또 다른 공간인 "겨울저택"에서의 범인까지 밝혀내야 한다는 것. 그날밤 OL 요시와라가 살해되어 연쇄살인이 시작되고 매일 아침 한번씩 있는 겨울저택과의 통신과 유일한 힌트로 주어진 "동상"이라는 단어를 놓고 코마가타는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데...

일본의 추리소설상 중의 하나인 메피스토상을 수상한 소설이 원작인 TV 미니시리즈입니다.

기본 설정은 영화 "큐브"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전혀 접점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인물들이 특정 공간에 갖힌채로 빠져나가기 위한 노력을 벌인다는 설정이거든요.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큐브와는 달리 이 특정 공간은 일종의 "게임"을 위한 공간이고 그 게임을 클리어 했을 때는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이겠죠. 이 게임이 바로 추리 게임인 것이고요.

추리적으로 본다면 7명의 사람들밖에 없는 폐쇄된 공간에서의 밀실 트릭과 "힌트"로서 주어진 단어를 해독하기 위한 암호해독 트릭의 두가지 트릭이 메인 트릭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해결을 위한 정보는 시청자에게 비교적 공정하게 전달됩니다.

하지만 밀실 트릭의 경우는 맨 처음 겨울저택과의 통신을 통해 두개의 저택이 동일한 평면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살인자의 침입 경로를 알아낸 시노자키의 증언을 통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개의 저택이 다른 곳에 위치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건물에 다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 뻔했어요. 더군다나 신발자국 등을 대조하는 부분은 사족인데다가 과잉 친절이라 보이고요.
암호 트릭은 일단 일본어를 잘 모르면 풀 수 없는 트릭인데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양쪽에 공평한 암호라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문제가 도드라집니다. 일단 두 저택의 힌트를 모두 알아야 풀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좋았고 "동상"이라는 힌트에서 양쪽 저택에 있는 것이 "아르마딜로"와 "바다코끼리"라는 것도 재미난 설정이었어요. 그런데 겨울저택의 힌트는 "가장 젊은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키바"라는 젊은이라는 것인데, 이 두가지 정보만으로 범인을 특정한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키바", 즉 "어금니"의 갯수로 범인의 수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여름저택"의 동상은 아르마딜로가 아니라 어금니가 없는 그 어떤 동물이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해당되는 암호가 과연 신빙성을 가질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아르마딜로라는 특이한 동물의 동상이라는 것에 집중하게 해서 본질적인 의미를 흐리게 하려는 작가의 생각은 충분히 알겠지만, 이런 점에서 썩 잘 된 트릭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흔치않은 정통파 추리물로 기대하고 보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는 빈약하고 얄팍한 부분이 많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원래 설정이나 이야기전개가 너무 말도 안돼서 황당한데 결말 부분, 즉 살아남은 모두의 기억을 지운다는 등 하는 이야기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실망스러웠고요.
나름대로 긴장감과 지적 흥분을 가져다 주는 부분은 있고 "겨울저택"과의 정보 공유가 오갈때의 두뇌싸움 등 볼만한 요소는 제법 있기 때문에 킬링타임용으로 잠깐 즐기는 수준이 딱 맞다고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2/06/25

심야의 손님 - 오쿠라 데루코 / 이현욱 외 : 별점 1점

심야의 손님 - 2점
오쿠라 데루코 지음, 이현욱 외 옮김/위북

잘 모르는, 전전(戰前)세대 일본 추리 작가의 2차 대전 전~후를 아우르는 대표 단편 일곱 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입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나쓰메 소세키,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문하에 있던 작가로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득력 있게 파헤치는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 어쩌구 하는 홍보 문구에 낚여서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나 형편없고 졸렬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아니 제가 읽어왔던 천 권이 넘는 책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졸작이었어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선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전무합니다. 심령 호러와 같은 작품도 있는데, 스릴이나 긴박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서 섬찟한 느낌도 전혀 받을 수 없고요. 홍보 문구에서 이야기하는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있는 인과 관계 역시 단 한 작품에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금 읽기에는 의외성없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로 진행된다는 단점도 큽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읽어볼 가치는 전무합니다. 활동기에도 유명하지 않았으며 지금 시점에서 그 이름이 완전히 잊혀진 작가는 역시나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혹시나 궁금하시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천식"

명문가 후지와라 가문의 후계자 기미타카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등장합니다. 알고보니 후계자 기미타카는 살해되었었고, 범인은 친모였어요. 친모는 후지와라 가문과 어울리지 않는 평민 출신인 탓에 친척들에게 멸시를 당해왔었는데, 기미타카가 성장하면서 범죄자가 되어가자 자신이 질타를 받을 걸 우려하여 살해했다고 하네요.

아니, 아들이 범죄자가 되건 말건 친모가 아들을 살해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살해한 뒤, 아들을 미이라로 만드려고 불상 속에 사체를 집어넣었다는 설정은 또 왜 들어간걸까요? 에도가와 란포를 따라한 유치한 발상에 불과합니다. 설득력이 없다는것도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이러한 진상은 기미타카의 친모가 남긴 편지로 드러날 뿐이라 추리의 여지도 전무합니다. 별점을 주자면 0.5점입니다.

"공포의 스파이"

구 백작 마쓰오카 본가에서 장남 가즈오가 사라집니다. 진상은 동생 가오루가 형수에게 반해서, 형수와 가문을 손에 넣기 위해 형을 납치했다는 겁니다. 가즈오는 시베리아 파병 당시 소련 스파이로 일할 걸 서약했었다는 약점이 있었다는군요. 

소련 스파이 설정도 어처구니가 없지만(전후에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진범을 밝히는 과정도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못합니다. 조사나 추리 없이 그냥 마지막에 "얘가 범인이에요"라는 식이거든요. 이 작가가 추리 소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글을 썼다는 확신이 듭니다. 역시나 별점은 0.5점입니다.

"요물의 그림자"

비밀 암호를 몸에 지니고 여객선을 타고 이동하던 화자가, 여객선에서 만난 중국인 부녀로부터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내용입니다. 아파보이던 딸은 원래 죽어서 장례까지 치뤘었는데, 하인이 손에 낀 반지를 훔치려 시체 손가락을 자를 때 깨어났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이 중국인 부녀가 약을 써서 화자로부터 암호를 빼앗는 전개로 이어지고요. 

왜 딸이 죽었다가 살아났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 어떻게 암호가 화자에게 있는줄 알고 접근해서 빼앗는지, 그리고 무엇에 대한 암호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 등 이야기의 완성도 자체가 한없이 낮습니다. 그냥 중국인 부녀 이야기만 "공포 특급" 정도에 수록될 짤막한 1~2페이지짜리 괴담으로 풀어내는게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요 괴담만 그나마 읽을만해서 별점은 1점입니다.

"마성의 여자"

특별한 능력으로 남편 혼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알아내는 야스코의 이야기입니다. 혼조는 야스코의 감시와 집착에 질려 그녀를 살해하지만, 야스코의 영혼이 혼조와 하나가 되어 발광한다는 결말입니다. 

자기가 증오해서 죽인 피해자가 '초능력자'여서, 그녀의 영혼이 나의 영혼과 합쳐진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랄까... 하지만 이를 제대로 풀어내지도, 마무리짓지도 못해서 완성도는 낮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심야의 손님"

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부호 아리마쓰 다케오 살해 사건에 엮이는 걸로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아리마쓰 다케오를 죽였던 건 탈옥수인 의적 오고시였고, 그는 다케오의 양녀 미와코를 돕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던 거지요. 다케오가 과거 미와코의 친부 조지를 함정에 빠트렸었는데, 그 당시 상황이 담겼던 레코드가 남아있어서 오고시는 미와코를 도울 결심을 했다고 설명됩니다.

그런데 요코가 하는건 전혀 없습니다. 요코에게 '심야의 손님'인 의적 오고시가 찾아와 진상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왜 사립탐정이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아리마쓰가 이 레코드를 진작에 없애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누군가를 함정에 빠트린 범인이 그 핵심 증거를 집에 잘 숨겨두고 보관해 둔다? 설득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네요. 이 쯤 되면 작가가 도대체 생각이라는걸 하고 글을 쓰는지 의심이 될 정도에요. 별점은 0.5점입니다.

"일본 동백꽃 아가씨"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입니다. 과거 미모로 '일본 동백꽃 아가씨'라고 불리웠던 히가시야마 씨 부인이 실종됩니다. 부인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유명 가수가 제대로 간호받지 못하던 부인을 직접 돌보기 위해 납치했던게 진상이고요. 

다른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추리의 여지는 전무합니다. 히가시야마 씨에게 그렇게 부인을 돌볼거라면 자기에게 맡기라고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범인이었거든요. 이래서야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부인에게서 과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절절했기에, 고풍스러운 로맨스물로서의 가치가 약간 있을 뿐입니다. 별점은 1점 정도?

"사라진 영매"

가쓰다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내가 죽은 뒤 아내의 영혼을 불러오는 영매 레이코에게 푹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과거에 썼던 별거 아닌 편지를 발견한 탓에 폭주하여 레이코를 살해한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이 막장 단편집의 화룡정점입니다. 영매 레이코의 능력, 가쓰다가 폭주한 이유, 사체를 은행 대여금고에 맡겼다는 설정 등 뭐 하나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니까요. 당연히 무섭지도 않아서 심령 호러물로의 가치도 전무합니다. 가쓰다가 아내, 레이코와 화자인 S 부인 모두가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반전이라도 잘 살렸더라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당연히 잘 살리지도 못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05/11/16

O.헨리 미스터리 걸작선 꼭두각시 인형 - O.헨리 / 서계인 : 별점 3점

꼭두각시 인형 - 6점
0. 헨리 지음/지문사
이 책을 추리 관련 쟝르로 구분해야 할려나... 단편의 제왕 O.헨리의 미스터리 성향의 단편만 모아놓은 단편집입니다.

흔하게 접하는 "마지막 잎새"류의 작품이 아니라 제가 접해 보지 않은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목차는 크게 3개로 구분되는데 이것저것 다양한 이야기가 섞여있는 "사형수의 꿈" 챕터, "사기꾼 제프 피터스" 시리즈 챕터, 그리고 "명탐정 샘록 죤스" 시리즈 챕터입니다. 이 중 처음 접한 "사기꾼 제프 피터스"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사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짤막하게 담고 있는데 유머와 위트, 반전이 제법 괜찮은 시리즈더군요. "샘록 죤스" 시리즈도 인터넷 상의 번역으로 접해보긴 했었지만 정식 책으로 읽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홈즈를 제대로 패러디하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일어 중역본인지 영문 직역본인지는 모르겠지만 번역이 깔끔합다는 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캐롤웨이의 암호"는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에 실려있기는 하지만 번역이 당쵀 이해 불가능한 수준이었던데 반해, 이 책은 최소한 내용전달은 확실하게 해 주고 있거든요.

개인적인 베스트는 추리적인 요소로 따진다면 간단한 보물 찾기 트릭이 등장하는 "숨겨진 보물", 특이한 인물 바꿔치기 트릭이라 할 수 있는 "X양의 고백", 여태 본것중 가장 기발하며 미국적이기 까지 한 암호 미스터리 트릭인 "캐롤웨이의 암호", 자신의 범죄를 증명하려는 범인이 등장하는 "허영과 모피", 그리고 괜찮은 착상의 보석 절도 트릭물인 "부정의 증명"을 꼽고 싶으며 사기꾼 제프 피터스 시리즈 중에서 "사기꾼의 양심"과 "외딴섬의 사업가", 제일 기발한 사기극인 "돼지의 윤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홈즈의 귀납법 추리방식을 여지없이 비꼬면서도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는 샘록 죤스 시리즈는 다 괜찮았어요. O.헨리 특유의 반전이 잘 살아있는 작품으로는 "추수감사제의 두 신사"와 "평화의 옷"을 꼽고 싶네요.

결론내지라면, 전체적으로 O.헨리 특유의 유머와 조크가 넘치면서도 나름 반전과 추리적 요소가 번뜩이는 작품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집이었습니다. 제가 워낙 단편이라는 분야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20세기 초반의 미국을 잘 대변하는 O.헨리 특유의 짤막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작품이 가득하니 누가 읽어도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9/03/12

웨스팅 게임 - 엘렌 라스킨 / 이광찬 : 별점 3점

웨스팅 게임 - 6점 엘렌 라스킨 지음, 이광찬 옮김/황금부엉이

제지회사를 설립하여 백만장자가 된 새뮤얼 웨스팅이 은둔생활 끝에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된
 뒤, 새뮤얼 웨스팅의 변호사가 "선셋 타워" 에 입주한 사람들과 고용인들로 구성된 16명의 유산 상속인을 불러모아 그의 유언을 발표했다. 
"새뮤얼 웨스팅은 살해되었으며 상속인들 중 범인이 있다, 상속인들은 두명씩 팀을 이루어 팀마다 단어 몇개씩의 단서를 받는다, 단서를 풀어내어 범인을 밝혀내면 새뮤얼 웨스팅의 전재산 200만달러를 상속받게 된다"는 유언의 내용에 따라, 그들은 이른바 "웨스팅 게임" 에 참여하게 되는데...

과거 에이브 (ABE) 문고를 통해 접했었던 "샘 아저씨 유산"이 재 출간된 작품입니다. 일단 줄거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막대한 상금을 걸고 벌이는 게임" 이라는 주제를 볼 때 "인사이트 밀" 이나 "극한추리 콜로세움" 과 유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 역시 비슷하고 말이죠.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첫째로 추리적인 요소는 좋았습니다. 지나치게 "미국 중심"의 단어를 이용한 암호 트릭이라 암호해결에 동참하기 힘들다는 것은 아쉽지만 모든 팀과 독자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면서 각 팀마다의 암호 해석과정도 보여주면서 차분히 스텝업을 해 나가는 전개는 지속적인 흥미를 유지시킵니다. 암호를 통해, 그리고 작중에서 조사되어 독자에게 공유되는 정보들과 합쳐져 도출되는 결론 역시 합리적인 편이며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던 요소들을 통해 드러나는 마지막 결론까지 상당히 깔끔한 편이라 만족스럽더군요.
두번째로는 인물들에 대한 캐릭터 성이 확실히 부여되어 읽기가 편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죠. 일종의 게임-배틀물과 마찬가지라서 각 팀의 팀원들을 부각시켜야 독자들이 팀마다의 레벨을 부여해가며 평가할 수 있을테니 작가도 상당히 공을 들인 부분 같은데, 총 8팀 (실제 게임 참가는 7팀) 의 구성원이 굉장히 천차만별이지만 전체적인 레벨과 비중이 작품 내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격인 터틀 보다는 판사 - 수위 팀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마지막으로는 작품이 무겁지 않고 밝고 가볍게, 그리고 경쾌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들고 싶네요. 청소년용에 딱 맞는달까요. 그만큼 수위도 적당하고 결말도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앞서 예를 든 두 작품의 가장 큰 단점 - 만화와 같은 상황이 기본적인 설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 - 처럼 이 작품 역시 왜 웨스팅이 이러한 게임을 벌이는지, 왜 이 사람들이 유산 상속인으로 선택되었는지, 최초에 1만달러를 주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설정의 핵심 요소들에 대한 설득력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똑같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예를 들었던 일본 작품들처럼 마냥 황당한 공상의 세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면죄부를 주기는 힘들 정도로 타당성은 부족했습니다.  뭐 이정도 단점이야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일종의 동화와 같은 이 작품의 세계관에 비추어 본다면 단점으로 치기 어렵겠지만요.

어렸을때는 재밌게만 읽었었는데 이 나이 먹고 읽으려니 단점까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뭔가 세월을 실감하게도 하네요. 심각한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작품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겠죠. 외려 제가 구입해서 읽었다는 것이 주책맞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작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별 3점은 충분합니다. 그만큼 재미 있다는 것은 확실하고 저에게는 점수 이상의 추억을 생각나게 해 준 작품이니까요. 청소년 용 추리소설을 찾으신다면 강추합니다.

2004/05/19

본인방 살인사건 - 우치다 야스오 : 별점 2.5점

본인방 살인사건 - 6점
내전강부/범조사(이루파)

고고한 인품으로 소문난 일본 바둑계의 노장 다카무라 본인방이 친구 세가와 9단의 제자 우라카미 8단과의 천기위 방어전을 끝낸 직후 변사체로 발견된다. 천기위전의 주최 신문사인 대동신문사의 고노에 기자는 다카무라 본인방의 마지막 대국이었던 천기위전의 기보를 정리하다가 기보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낸 뒤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며, 고집세고 우직한 성격의 우라카미 8단도 그 과정에 동참하여 본인방 죽음의 배후에 얽힌 연쇄 살인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게 된다…

과거 <빙설의 살인>으로 접했던 우치다 야스오의 데뷰작입니다. 그간 제목은 자주 봤지만 별로 관심이 없던 차에 헌책방 순례(?)중 우연히 실물을 보고 싼 가격에 별 생각없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왠걸! <빙설의 살인>은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 탐정 아사미 시리즈인데도 불구하고 완전 기대 이하였었는데 이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작품에서 보기 드문, 사상 초유의 암호 트릭은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독특할 뿐더러 "바둑"과 실제 프로 바둑시합에 있는 제한시간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이 정말 신선하거든요.
하지만 암호 트릭이 오히려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트릭 하나에 소설 전체가 좌우되는 느낌이 강하거든요. 작가 스스로 걸작 트릭이라고 생각했는지 소설 전체에 걸쳐 사용한 탓으로 막판에는 조금 힘이 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중반보다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한번 더 터트려 주는게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고 데뷰작인 탓에 전개 등 많은 부분이 어설픈 덕에 암호 트릭이 돋보인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범행 동기도 그닥 와 닿지 않고, 동기 및 배후를 풀어나가는 전개도 매끄럽지 못한 등 초짜티를 풀풀 내고 있으니가요.
아울러 사회파 분위기를 어설프게 따라가면서 무언가 해결을 봄직하다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버리는 결말 부분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나마 해피엔딩이라는 점 하나는 괜찮았습니다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깔끔한 분량에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고스트 바둑왕> 등으로 어느정도 알려진 일본 프로 바둑의 세계를 예전에 굉장히 독창적인 트릭과 함께 보여준 부분은 높이 사고 싶네요. 그러나 아쉬움도 적지 않기에 감점합니다.

그나저나, 탐정 아사미 시리즈는 정말 괜찮은 작품인가요? <빙설의 살인>은 정말 실망스러웠는데 다른 작품들은 괜찮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트릭의 내용을 남깁니다. 흰색 글씨이니 드래그해 보시길.

다카무라 본인방은 우라카미 8단과의 최후의 대국에서 고심하다가 평범한 수를 두고 결정적 순간에 생각 없이 바로 대응하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바둑을 둔다. 고노에 기자는 이 기보를 분석하다가 우라카미 8단이 바둑의 "시간제한"룰, 즉 한 수를 두는데 걸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모르스 부호 암호를 남겼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2006/09/25

명탐정 코난 Movie 10 - 탐정들의 진혼가 : 별점 2.5점

모리 탐정과 란, 코난과 소년 탐정단은 새로 생긴 "미라클랜드"에 초대되었다. 일행은 관광에 나섰지만, 모리 탐정과 코난은 의뢰를 진행했다. 의뢰는, 의뢰가 되는 수수께끼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는 것과 한마디 암호, 더불어 그들의 ID는 폭탄이기 때문에 그날 저녁 10시까지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TAKA 3-5라는 암호에서 주소를 알아낸 뒤, 그곳에서 4월 4일에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우연찮게 똑같은 이유로 사건에 휘말린 핫토리와 만나 공동 작전에 들어갔다.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단서는 "YOU CRY"라는 암호에서 유추해낸, 한 동호회의 인물들이 연관된 사건이었다...

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코난 극장판 제 10기입니다. 그간 워낙 많이 실망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이 10기는 꽤 재미있더군요.

일단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나오는 올스타 캐스팅이라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모리탐정과 란, 코난과 소년 탐정단이라는 고정 멤버에 핫토리와 카츠하, 소노코, 괴도 키드와 하쿠바 사구루, 모리 부인, 핫토리의 아버지 헤이조와 오사카 경찰 여러분, 거기에 더해 거의 모든 경찰들 - 경부와 시라토리, 사토, 다카기, 요코미조 형사 - 까지 등장해서 코난 팬에게 확실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거든요. 또한 단순 등장이 아니라 모리 탐정이나 소노코 등도 각각 나름의 활약을 한다는 것 역시 팬으로써 즐거운 점이겠죠. 개인적으로는 핫토리의 아버지 헤이조와 소노코의 등장 장면, 사토와 다카기의 데이트 장면 등은 캐릭터를 정말 잘 파악하고 만들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구현해 놓았습니다.

또, 단순히 캐릭터만 나열하지 않습니다. 사실 캐릭터보다는 내용이 더욱 중요한데, 이 작품의 경우 이야기도 그간의 허술했던 다른 극장판과는 달리 나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사건의 주 설정인 시간 제한이 있는 미션은 하도 많이 등장해서 식상했지만, 여러가지 장치와 상황을 곁들여 진부함을 어느정도 피해가면서 재미와 긴박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는 추리물의 탈(?)을 쓰고 나온 작품답게 추리적인 부분, 특히 트릭도 이번에는 꽤 그럴싸합니다. 그 중에서도 시간차 살인 트릭 같은 경우에는 아주 제법이었어요. 단서도 공정하게, 관객에게 충실하게 전달해 주고 있거든요. 아울러 괴도 키드와 하쿠바 사구루의 관계, 마지막 남은 ID 패스의 수수께끼 같이 어느정도 관객이 생각해야 하는 장치는 그간 코난 애니메이션에서 보지 못했었던 부분인데, 이 여개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제공되는 단서가 너무 비약이 심했고(YOU CRY는 솔직히 억지에 가까왔습니다), 생뚱맞은 중간 전개, 즉 진범이 탐정들의 생명을 노리는 부분의 설득력은 부족합니다. 스나이퍼의 실력을 갖춘 살인범과 용병같은 해결사들, 총기를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다는 약점도 있고요. 이런 점에서는 제대로 된 추리물로 보기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아동용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무엇보다도 시간 제한 막판에 이르러 마지막 폭탄 해제를 위한 시스템 암호를 맞추는 부분은 굉장히 작위적이었어요. 시간도 시간이지만 복선이 굉장히 어설프더라고요.

그래도 그간 모든 면에서 형편없었던 아동용 모험극 수준의 코난 극장판에 비한다면 작화의 수준도 괜찮으면서 충분한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수작입니다. 최고의 수준은 아니지만 즐기면서 보기에는 적당한 수준이었기에 기회가 되시면 한 번쯤 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물론 코난 팬이라는 전제가 있지만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07/09

검은 수도사 - 올리퍼 푀치 / 김승욱 : 별점 3점

검은 수도사 - 6점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문예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숀가우 교구 알텐슈타트 성 로렌츠 성당의 신부 안드레아스 코프마이어가 독살당했다. 현장을 조사하던 지몬과 야콥 퀴슬은 성당 지하실에서 템플기사단장의 묘를 발견했다. 지몬은 신부의 여동생 베네딕타와 함께 암호 풀이를 통해 템플기사단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섰고, 야콥 퀴슬은 법원 서기 요한 레흐너의 지시로 도적단을 토벌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지몬과 베네딕타 사이를 질투하여 스스로 아우크스부르크로 여행을 떠나는데...

원래 남자들은 다 그래. 손에 쥔 걸로 만족하는 법이 없지. 하지만 조만간 다시 돌아온단다. 항상. -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 때문에 속상한 마리아에게 산파 스승 슈테흘린이 하는 말.

"왜 항상 그렇게 말이 많은 거야?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그냥 입 다물고 죽여." 나타니엘 수사를 죽이고 퀴슬이 하는 말. 나타니엘이 말이 좀 많기는 했습니다...

17세기 바바리아 지방을 무대로 한 역사 추리물 "사형 집행인의 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그런데 시대와 배경이 다를 뿐,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느낌이 물씬 납니다. 오래된 유물에서 하나씩 단서를 얻어 보물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보물이 예수가 못 박혔다는 십자가라는 종교적 장치가 핵심이라는 점에서요. 성당의 수장이 흑막이라는 점은 "천사와 악마"가 떠오르고, 성물을 찾는 조직과 핵심 성물이 십자가라는 설정은 "용오"의 한 에피소드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매력도 충분합니다. 우선 읽는 재미가 뛰어납니다. 지몬과 베네딕타 커플의 암호 풀이, 퀴슬의 강도단 추적, 마리아의 수도사 추적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잡한 이야기가 지루함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결말에 이르러 모든 내용이 유기적으로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약 500페이지라는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17세기 독일 바바리아를 무대로 한 묘사도 빼어납니다. 시대와 장소, 다양한 인물, 민초들의 삶 등 모든 요소에서 철저한 고증과 설득력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네요.

전작에서 이어지는 캐릭터들의 개성도 여전합니다. 특히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야콥 퀴슬의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집니다. 지성과 힘을 겸비한 먼치킨 캐릭터로 여전히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거든요. 특히 성 요한 예배당에서 천장을 타고 내려오는 결전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에요. 상상만으로도 전율을 자아냅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매력도 더해져 있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도적단 두목 한스 셸러와의 대화 장면에서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정도지요.

지몬 프론비저도 미워할 수 없는 뺀질 캐릭터로 톡톡튀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암호 풀이에서 보이는 대단한 활약은 조금 놀랍기도 했고요. 헐리우드식 버디 무비에서 흔히 등장하는 친구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활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사형 집행인의 딸" 마리아의 존재입니다. 아우크스부르크로 가는 여정에서 강도에게 돈을 빼앗기고, 우연히 만난 수도사를 미행하다 붙잡히는 등 민폐 캐릭터로만 그려지는 탓입니다.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를 질투하는 장면들도 불쾌하게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캐릭터인 베네딕타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좋은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이랬을 것이라는 묘사 등을 통해 마리아의 복제판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녀가 도적단의 일원이라는 반전은 굳이 필요했나 싶을 정도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단순히 안드레아스 신부의 여동생으로 설정해도 충분했을 텐데, 이야기를 지나치게 확장시켜 오히려 주된 흐름에 방해가 되었어요.

우연에 의존한 전개도 다소 거슬립니다. 마리아가 야코부스를 우연히 만나 미행하고, 다시 우연히 지몬과 베네딕타를 구하게 된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다른 인물들의 만남이나 사건 진행도 대부분 우연에 의존하고 있고, 결말에서는 곰팡이 슨 약초로 페니실린을 만들게 된다는 전개까지 등장하는데 이건 많이 억지였어요.

또한 암호 풀이는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그 해석도 흥미롭지만 독자가 함께 추리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지역 고유의 역사나 지명에 기반한 내용이기 때문인데, 이런 점은 이 작품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역사 모험물로 보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2/09/18

조커게임 - 야나기 코지 / 한성례 : 별점 2점

조커게임 - 4점
야나기 코지 지음, 한성례 옮김/씨엘북스

어딘가의 랭킹에서 트릭이 뛰어난 작품이라며 추천하고 있어서 구해 읽었습니다.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과 전혀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랭킹 탓에 특별한 게임과 관련된 본격 미스터리 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구 일본 제국 시대를 무대로 한 스파이물인데다가 심지어 단편 시리즈였기 때문입니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하는 몇가지 트릭은 분명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대 상황을 잘 살리고 있는 덕분입니다. <<조커 게임>>에서 헌병대가 외국 스파이의 집을 철저하게 뒤졌지만 마이크로 필름을 찾지 못한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스파이는 마이크로 필름을 천황의 사진 뒤에 숨겨 놓았던 것이지요. 일본 헌병대는 불경죄를 저지를까 두려워 사진을 만져보지도 못했던 겁니다.
<<로빈슨>>에서 완벽하게 암호를 전달했지만 본국이 가짜라는걸 알아채게 만든 트릭은 일정 간격으로 오타를 입력해야 되는 것이었고요. 간단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보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저 정도의 트릭으로 '빼어나다' 고 말하기는 힘들고요. 무엇보다도 작품 속 특수 정보 기관인 D기관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유치하고 진부한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마왕' 유키 중령은 물론이고, 등장하는 모든 D기관원들 모두가 평범한 인간을 뛰어넘는 슈퍼 스파이 - 스파이 패밀리 같은 - 로 그려지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봐도 만화 속 등장인물에 가까와서 현실감을 느끼기는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애니메이션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데, 여러모로 애니메이션으로 보는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그만큼 만화적이고 허구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후속작을 따로 책으로 읽어볼 계획은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커 게임>>
육군에 유키 대령 지휘 하에 스파이 양성 학교가 세워졌다. 훈련생들이 군인이 아닌 일반 대학 졸업생이었고, 전통적으로 스파이 활동을 무사도에 반하는 행위라 생각하여 이 학교와 조직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육군은 사쿠마 중위를 파견했다. 사쿠마 중위의 임무는 유키 대령 조직의 실수와 헛점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사쿠마는 학교 훈련생들의 기상천외한 입학 시험과 훈련 과정, 그리고 천황제를 부정하는 듯한 사고 방식에 경악하던 차에, 미국인 기술자 고든의 스파이 행위 증거를 찾기 위한 작전에 투입되는데...

표제작이자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사쿠마 중위의 시점으로 첩보 기관 D기관에 대한 설정과 '마왕' 유키 대령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을 가장 잘 드러내는게 제목이기도 한 '조커 게임' 입니다. D 기관 훈련생들이 식당에서 여흥으로 즐기는 포커 게임으로 보이지만, 사실 식당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는 스파이 게임이지요. 누구나 누군가의 카드를 보고 정보를 줄 수 있는데, 그 정보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규칙입니다. 누구나 스파이가 될 수 있고, 누구도 믿으면 안된다는 D 기관의 룰을 잘 드러내는 게임이에요.

이러한 D 기관 설명이 중심이고, 고든이 스파이 행위를 했다는 증거물을 찾는 과정은 곁가지에 불과하지만, 이 과정에 약간의 트릭이 사용되고 있으며, D 기관원들이 천황제 부정 발언을 했던게 트릭과 연결되고 있어서 전개 구조 자체는 잘 짜여져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사쿠마가 주도한 수색 자체가 육군의 음모였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최초 수색을 지시했던 무토 중령은 필름을 발견하지 못했고, 고든의 부당한 수사에 대한 항의로 궁지에 몰렸던 상태였지요. 그래서 D 기관을 시켜 두 번째 수사에 나선 것입니다. D 기관도 수색에 실패하면 모든걸 뒤집어씌워 조.직을 와해시키고, 자기 실수를 덮으려는 목적으로요. 사쿠마는 무토 중령의 음모를 위한 버림돌에 불과했던 겁니다.

그러나 반전이 드러나는 과정은 억지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헛점도 많습니다. 무토 중령이 술집 게이샤에게 용의자 집 수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고든 본인이 사쿠마 중위에게 지금이 두 번째 수사라고 말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지 모르겠거든요. 유키 중령이 변장하고 무토 중령과 자리를 함께 했다는 등 작위적인 요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평작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유령>>
영국 총영사 그레이엄은 일본인 양복점 점원 가모와 체스로 친해졌다. 그러나 가모는 D 기관 조직원이었다. 그의 임무는 폭탄 테러 계획의 유력한 용의자 그레이엄 총영사에 대한 혐의를 확정하기 위한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
가모는 체스를 통해 총영사는 심증으로는 죄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총영사 관저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종이가 테러범 접선 장소에서 발견되었기에, 결정적 증거를 잡고자 철저히 미행했지만 별다른걸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새벽에 영사관에 잡입하게 되는데....


영사는 지령문을 옮기는 수단에 불과했다는게 진상입니다. 테러 조직은 영사의 우산 속 빈 공간을 활용해서 접선 장소에서 몰래 지령문을 전달받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영사가 테러 조직의 접선 장소와 동선이 겹쳤고요.

발상의 전환이기는 한데, 구태여 영사를 이용해야 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D 기관원 가모가 영어에 능통하고, 체스는 물론 미행과 잠입, 그리고 금고 털기에도 숙달된 슈퍼 스파이라는 묘사도 과장이 심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가모가 영사가 소싯적 저질렀던 악행을 고백한 일기를 읽은 뒤, 이걸로 영사를 협박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장면은 최악이었습니다. 촬영도 않고 다른 증거도 없는데, 단지 악행을 기억하고 있다는걸로 영사를 협박하는게 가능했을까요? 심지어 상대는 적국의 스파이인데 말이지요. 이게 통하려면 뭔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가모가 신분을 세탁하여 영사와 친분을 맺는 과정, 그리고 가모가 미행할 때 영사가 팁을 주는 행동이 자연스러운 정보 교환 방법이 아닐까 의심하는 장면 정도는 볼 만 했는데, 그 외에는 건질게 별로 없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로빈슨>>
D 기관원 이자와는 영국 런던에 잠입했지만 영국 첩보기관에 체포되었고, 자백 유도제를 맞아 비밀 암호 등을 털어놓고 말았다. 영국은 유키 대령에게 배반당했다는 이자와를 이용하여, 일본에 가짜 정보를 전달하여 혼란을 주려 했지만 이자와는 의식의심층 구조에 숨겨진 진짜 중요한 비밀은 털어놓지 않았었다. 그래서 D 기관은 이자와의 정보가 가짜라는걸 알아채는데...

앞서 소개해드렸던 , 암호가 가짜라는걸 알게된 이유는 꽤 괜찮았습니다. 스파이는 일본 남아의 사고 방식과는 다르다, 무조건 살아남아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유키 대령의 사고 방식도 스파이다워서 좋았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과장이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특히 자백제에도 넘어가지 않았던 방법이 말이 안됩니다. 의식의 표층과 심층을 구분하여 표층 정보만 입에 올리도록 훈련했다는데, 전혀 설득력있게 묘사되고 있지 못했습니다. 훈련 과정이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요. 하긴, 자백제라는 비과학적인 약도 마찬가지긴 하네요.
이자와 탈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프라이데이'의 존재도 이전에 설명 한 번 없어서 뜬금없었습니다. 이자와가 임무를 떠날 때 유키 대령이 <<로빈슨 크루소>> 책 한권을 선물로 주었을 뿐이니까요. 게다가 위기에 처했던 이자와가 동그라미에 십자가 기호가 그려진 암호를 보고 프라이데이의 존재를 깨닫는다는건 솔직히 가관이었습니다. 이 암호는 연금술에서 '미의 여신'을 뜻하고, 미의 여신 비너스는 천문학에서는 금성이며, 이는 일주일 중 제 6일, 즉 '프라이데이'를 가리킨다는데 어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국가 정보 기관들의 두뇌 싸움은 볼 만 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설득력이 낮았습니다.

<<마의 도시>>
상하이에 파견된 헌병 중사 혼마 에이지는 상사 오이카와 대위로부터 헌병대 내부 내통자 색출을 지시 받는다. 헌병대의 미야타 중사가 살해당했기 때문이어다.
그 직후, 오이카와 대위의 자택이 폭탄 테러를 당했고 혼마는 본국 '특고' 시절 안면을 텄던 신문기자 시오즈카로부터 제보를 전달받았다. 옛 동급생이자 D 기관원인 대학 동창 구사나기를 상하이에서 목격했다는 제보였다....


D 기관원이나 기관의 작전이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 이색작. 헌병대 중사 혼마의 수사와 추리가 이야기의 핵심인 탓입니다.
특별한 트릭은 없지만, 잘 짜여진 이야기가 돋보였습니다. 오이카와 대위는 아편을 빼돌리다가 미야타 중사에게 들켰고, 그래서 중사를 살해한 뒤 증거 은폐 목적으로 자택을 테러로 위장해 폭발시켰던 겁니다. D 기관은 시오즈카로 변장시킨 조직원을 시켜 혼마가 이 수사를 하게끔 유도했고요.

하지만 혼마의 추리는 증거가 없다는 문제가 큽니다. 오이카와가 도박장을 드나들었고, 빚이 있었다는 정도로 미야타 중사 살인사건 및 폭탄 테러 사건의 범인으로 몰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오이카와가 혼마의 질책 정도로 패배를 쉽게 수긍하는건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뒤 요시노 상병에게 총을 맞고 죽는 장면도 뜬금없었습니다. 요시노 상병은 오이카와에게 지시를 받고 움직이다가 폭발 때 죽고 만 게이 소년의 연인이었다는 설정인데, 설명이 부족했어요.

혼란스러웠던 상하이 분위기와 이런저런 묘사는 그럴싸했고 재미도 있었지만, 결말이 별로였기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더블 크로스>>
독일인 카를 슈나이더가 소련과 독일 양쪽에 정보를 제공하는 이중 스파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D 기관은 졸업 시험을 겸해 도비사키에게 임무를 맡겼다. 도비사키는 슈나이더가 어떻게 암호를 발송했는지 등을 밝혀냈고, 신병을 확보하기 직전 단계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슈나이더는 애인의 집에서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음독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범인은 사건 현장을 발견했던 슈나이더의 애인 노가미 유리코였습니다.
사건 당일 그녀의 알리바이는 완벽했습니다. 수 km 떨어진 극단 연습장에서 한창 연극 리허설 중이었고 그녀는 주역이라 연습장을 5분 이상 비우는건 불가능했는데, 차로 집을 왕복하는데는 최소 10분은 걸리는데다가, 슈나이더에게 유서를 쓰게하고 독이 든 와인을 마시게 하는데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 짜여진 알리바이 트릭물 처럼 보였던 설정과 전개에 비해 진상은 보잘것 없습니다. 슈나이더는 미리 독을 넣어둔 와인을 마시고 죽었던 겁니다. 바로 직전에 읽고 소개해드렸던 <<흑마술의 여자>> 트릭과 똑같네요. 유서는 전화를 통해 연극 대사로 위장해 쓰게 했다는, 추리 퀴즈 수준의 트릭이었고요. 노가미 유리코가 자택에 설치해두었던 전화 대신, 사람을 시켜 경찰을 부른 이유 - 유서를 옮겨 놓으려고 - 정도에 대해서만 약간의 추리가 등장할 뿐입니다.
유서(?)에 작게 쓰여져 있던 '더블 크로스'도 슈나이더의 즉흥적인 낙서에 불과하다는게 진상이라 허무했습니다. 그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의미였다는데, 그냥 맥거핀에 불과했어요.

오히려 본편 사건보다는 도비사키의 과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등을 버리며 홀로 살아가는 스파이가 될 수 없다는 도비사키의 결심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이 결심은 급작스럽게 등장합니다. 이 작품이 장편이었다면, 그래서 그가 노가미 유리코를 심문하면서 애정이 싹텄다던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갔다면 괜찮았을텐데 중간 과정 없이 결심만 등장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수록작 중 워스트로 추리물, 스파이물 양쪽 모두 별 가치가 없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