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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9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이나가키 히데히로 / 조홍민 : 별점 2점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4점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글항아리

에도와 관련된 식물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읽은 책입니다. 소갯글도 그럴듯하고, 만든 모양새도 예뻐서 집어들게 되었네요.

그런데 생각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에도 시대, 즉 도쿠가와 막부 시대 뿐만이 아니라 일본 각지, 다양한 시대를 망라하여 여러가지 식물 관련 정보를 전해주거든요. 에도 시대로 한정하면 내용이 많지 않은건 당연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래서야 제목과의 괴리감이 너무 큽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니라서 큰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었어요. 딱히 식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 탓에 더욱 그러했죠.

또 등장하는 해석도 과장되거나 오버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에도가 인분을 기반으로 벼농사를 지어서 오물 통제가 가능한, 완벽한 '에코 - 리싸이클링 도시' 였다고 이야기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금 남은 오물 잔류물도 바다에 영양을 공급하여 전설의 황금어장 '에도마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설득력이 낮습니다. 인분을 비료로 쓴 곳이 일본, 에도에 한정된 것은 아니잖아요? 닌자들이 직업 특성 상 각종 식물, 약재에 능통한 전문가들이었다고 설명하는 부분도 오버스럽기는 마찬가지고요.

물론 분량도 길고 주제가 독특한만큼 볼만한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한 닌자 이야기 중, 닌자가 '호로쿠다마'라 불리는 화약 장착 수류탄을 무기로 이용했는데 그 재료가 식물 쑥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초석은 질산칼륨의 결정으로, 닌자는 쑥에 오줌을 뿌려 흙 속에 묻은 후 미생물을 발효시켜 오줌 속 암모니아와 쑥에 함유되어 있는 칼륨을 반응시켜 질산칼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대단해요.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 성을 축성할 때, 과거 조선 출병 시 농성전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다다미의 심으로 짚 대신 토란 줄기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일종의 보존식으로 벽에는 박으로 만든 박고지까지 발라 넣었다고 하네요. 지금 구마모토의 명물인 가라시렌콘(삶은 연근 구멍에 물에 갠 겨자와 된장 섞은 것을 넣고 밀가루와 콩고물을 묻혀 튀긴 향토요리)의 재료인 연근 역시 구마모토 성 해자에 비상 식량으로 재배되고 있었다니, 조선에서 어지간히 고생했나 봅니다.

하지만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 역시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출처나 자료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서 대체 무슨 사료를 기반으로 이야기하는지 불분명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대표적인게 전국 시대 무장들이 어떻게 초식만 먹고 싸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무장들은 하루에 현미 5홉 정도를 먹었는데, 단백질도 없이 이 정도 식사로 갑옷을 입고 어떻게 전투를 할 수 있었나?를 전투민족 파푸아뉴기니인들과 연결시켜 설명하거든요. 파푸아뉴기니인들도 바나나와 타로, 토란 등 식물만 먹는데, 이를 통해 전국 무장들이 파푸아뉴기니 사람들 처럼 장내에서 질소를 흡수해 채내에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과학적으로 증명 되지 않은 추론에 불과한 내용이지요. 발상은 재미있지만 여러모로 무리였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랑했던, "맛의 달인"에서도 간혹 언급되던 '핫초 된장'의 유래와 같이 내용 자체가 부실한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건질 것은 이름의 유래밖에는 없어요. 이에야스가 태어난 오카자키 성으로부터 8정 떨어진 핫초 마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데 이건 사실이겠지요. 그러나 그 외 된장의 특성에 대해서는 딱히 대단한게 없습니다. 핫초 마을은 야하기 강 자연 제방 위에 위치해 된장 만들기에 필요한 용천수가 충분했고, 야하기 강을 통해 수로 운송도 용이해서 된장이 발달할 수 있었다. 아울러 핫초 된장 제작에는 성을 쌓는 기술도 응용되어 있는데, 찐 콩을 동그랗게 뭉쳐 누룩균을 묻힌 된장 덩어리를 직경 2미터 정도의 거대한 삼나무 통에 채워 넣고, 된장 덩어리와 같은 무게가 될 정도의 돌을 눌러 쌓아 숙성시키는 것으로 이것은 성의 석벽을 쌓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 정도 환경을 갖춘 지역이야 널리고 널렸을테고, 제작 방식도 축성 기술을 응용했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인데 너무 억지로 대입시킨 느낌입니다. 예컨데 순창 고추장에 대한 설명 - 기후상 습지가 많은 분지 지역이라는 특성 덕분에 고추장 발효가 활발해져서 다른 고추장에 비해서 장맛이 깊고 빛깔 또한 곱다 - 정도의 설득력이 있지는 않아요. 이런 이야기가 '식물'을 이야기하는 책의 주제와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기획의도와 주제, 만든 모양새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만 내용은 별로 기대에 미치지 못햇습니다. 단점도 많으며 내용에서 딱히 신뢰가 가지도 않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2017/07/02

식물 이야기 사전 - 찰스 스키너 / 윤태준 : 별점 2점

식물 이야기 사전 - 4점
찰스 스키너 지음, 윤태준 옮김/목수책방

120가지 식물들에 대한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전해지는 전설이나 재미난 일화를 모아서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하나하나의 호흡이 굉장히 짧습니다. 길어야 2~3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이야기들입니다. 짧은 건 반 페이지 짜리도 있고요.

이런저런 정보들이 많으리라 기대했는데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내용이 재미가 없는 탓이 큽니다. 식물, 꽃이 많아서겠지만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대체로 비슷해서 지루하거든요. 슬픈 사랑의 결과로 연인이 꽃이나 식물이 되었다, 신의 저주 등으로 꽃이나 나무가 되었다는 식인데 이름만 다르지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내용도 중구난방입니다. 항목들의 정리부터가 모호해요. '곡식' 이라는 큰 주제로 벼, 귀리, 수수 등을 모아 소개하는 항목이 있을 정도니까요.
수록된 이야기도 전설이면 전설, 실제 역사면 역사라는 식으로 보다 명확하게 카테고리를 구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심지어 도판도 하나 없습니다! 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항목별로 똑같거나 유사한 구성에 적절한 도판이 필수라 생각합니다. 이런 건 일본 친구들이 잘 하는데 말이죠. 솔직히 사전이라는 표현은 가당치도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 실정과 정서와 맞지 않는 식물들이 많은 것도 아쉽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봄직한 것들은 별로 등장하지 않아요. 서구권 신화, 전설, 일화 비중이 높습니다. 동양권 이야기는 그나마 일본 이야기가 많은 편인데 좀 과한 점이 없지 않고요. 국화 이야기에서 국화와 아무런 관계없는, 단지 이름이 '오키쿠'인 인물의 전설을 가져다 인용하는 것이 대표적이에요. 재미있기는 하지만 이래서야 '사전'이라는 취지에 많이 어긋나지요.

그래도 워낙에 많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기에 재미있는 것들도 제법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몇개 소개해 드립니다. 우선 처음 알게 된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개암이 헤이즐넛입니다. 개암은 북유럽에서는 굉장히 '신령스러운' 나무로 요술지팡이의 재료이자 일찌기 '다우징' 용으로 많이 쓰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식물학자 린네가 이것이 그냥 전설일 뿐이라는 것을 밝히는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숲 속에 돈을 숨겨두고 친구에게 개암나무 가지로 찾아보도록요. 뭘 이런걸 실험 씩이나 했는지.... 여튼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서 아담을 불쌍하게 여겨 신이 전해준 것이 개암나무 지팡이라는 등, 잉글랜드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 건물은 개암나무 가지를 엮어 지었다는 등 기독교 쪽에서도 알아주는 나무더군요.
이와 정 반대되는 식물은 '금작화'입니다. 유다에게 팔려가기 직전 예수의 기도를 방해한 것은 금작화가 내는 소리였고, 헤롯왕에게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은신처를 알려준 것도 금작화와 이집트 콩이라고 하니까요. 마녀가 타는 빗자루도 금작화 가지로 만든다니 중세 시대에 멸종되지 않은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보리수 열매가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라는데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딘의 우주수 위그드라실이 물푸레나무라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그동안 선악과가 사과라고 알고 있었는데 성경에는 명확하게 종류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니 의외였습니다.
동방 박사가 바친 '유향'은 발삼나무 수액을 말려 만든 약재라는군요. 수천년 된 전설의 약재인데, 무슨 효능이 있는지는 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요리 관련 이야기도 몇가지 기억에 남습니다.
타비스톡 애비의 수도사들은 맛있는 사과주를 만들어 수도사를 모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톡 쏘는 맛이 너무 강했어요. 와인과 섞어서 부드럽게 만들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수도원장이 사과주를 부드럽게 만드는 공정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키작은 절름발이 노인 한 사람이 나섰죠. 그런데 한 수도사가 노인이 뭐하나 궁금해서 몰래 훔쳐보니 악마였다지 뭡니까. 그래서 놀란 수도사가 술통에서 잠자던 악마에게 사과주를 쏟아 붓자 노인은 저주를 퍼부으며 하늘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화난 노인이 발한 열기 때문에 사과주가 펄펄 끓었고, 식어버린 사과주를 먹어보니 그 맛이 천하일미! 그때부터 모든 사과주를 불타는 유황에 부어 만든다고 합니다.
단풍당 (maple sugar)를 발견하게 된 것은 한 인디언 여성의 귀차니즘 때문이랍니다. 어느날 그녀가 사슴고기를 요리하다가 물을 떠오기 귀찮아서 단풍나무 수액을 채워 넣고 불에 올린 것이죠. 그 다음 잡담을 즐기다고 돌아와보니 수액이 모두 날아가버리고 사슴고기는 끈적끈적해 버렸습니다! 남편에게 혼날게 두려워 도망갔는데 밤에 돌아와보니 남편이 딱딱하게 굳은 고기를 열심히 먹고 그녀를 칭찬했다고 하네요. 아마 일종의 '사슴고기 강정' 이 되어버린 것이겠죠? 쉽게 구할 수 있는 단풍나무 꿀을 고기에 발라먹으면 비슷한 맛이 날 것 같습니다.
그 외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도 인상적입니다. 1월 6일 밤 딱총나무 가지를 꺾고 나무에게 허락을 구한 후, 대답이 없으면 침을 세 번 뱉는다. 꺾은 가지를 가지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마법진을 그리고, 주위에 특정 꽃과 산딸기 등을 늘어놓은 다음 한가운데에 선다. 악마가 나타나면 힐다의 지팡이(딱총나무 가지)로 가리키면 복종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한번 시도해 봐야 겠네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질 항목에서 소개되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이사벨라, 로렌조 커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둘의 사랑을 방해한 오빠들에게 로렌조가 죽자 이사벨라는 로렌조의 시신에서 머리만 잘라내어 화분에 숨기고 바질을 심어 소중하게 가꾸었다는 내용이거든요. 머리가 들은 화분이라니! 괴담에서나 봄직한 이야기인데 이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한 것도 놀랍기만 하네요.

이렇게 읽을만한 부분도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14,000원에 가까운 가격도 과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냥 인터넷을 통해 접해도 충분한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2007/12/03

걷는 식물 트리피드 - 존 윈담 / 이영재 : 별점 2.5점

걷는 식물 트리피드 - 6점
존 윈덤 지음, 신영희 옮김/고려원(고려원미디어)

 빌 메이슨은 식량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재배하는 식물 트리피드의 연구원으로 트리피드의 독채찍때문에 눈을 다쳐 병원에 입원한다. 그가 눈 치료를 받던 어느날 밤, 화려한 유성우가 나타나고 그 다음날, 유성우를 본 모든 인간들은 모두 실명하게 된다. 세계는 붕괴하고 트리피드가 인간을 습격하는 세기말의 상황. 빌은 장님들의 세계에서 앞을 보는 몇몇 인물들과 조우하고, 그들 중 여류 소설가 조젤라와 함께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꿈꾼다.

세기말을 다룬 근미래 디스토피아 SF입니다. 아주 예전에 읽은 기억은 있었지만, 회사 동료들과 잡담을 하다가 화제가 되어 다시 읽게 되었네요.
그나저나... 아동용으로 국내에 출간된 책을 읽었는데 다시 읽다보니 아동용으로 보기에는 무척 문제가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세기말적인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는 차치하고서라도, 유성우를 본 뒤 장님이 된 사람들이 벌이는 행각은 "나는 전설이다"의 좀비들과 다를 바 없는 잔인한 군중심리와 자기합리화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살벌한 묘사도 많은 편이고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장님이 되건, 좀비가 되건, 결과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주제, 즉 "나만이 정상인 사회"에 대한 묘사라는 점에서 "나는 전설이다"와 좋은 비교가 됩니다. 이 작품은 정상인 사람들이 제법 많이 살아남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해피엔딩이라는 차이는 있지만요. 
이렇게 세기말적 상황에 대한 묘사, 그리고 함께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 당시 유사 SF들의 특징이기도 해서 유별난건 없지만, 이 작품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두가지, 유성우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님이 된 독특한 상황 설정과 더불어 이러한 파괴된 세계의 인간들에게 가장 큰 위험으로 다가오는 식인식물 "트리피드"의 묘사 덕분입니다. 세다리로 이동하며 독째찍으로 사람을 습격하는, 그리고 서서히 지능을 갖춰 나가는 이 괴기식물에 대한 묘사가 워낙 강렬하여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싶네요.

1950년대에 발표된 것이라 작품 자체는 지금 읽기에는 낡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 작품은 "식물"을 주 적으로 내세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직도 신선함을 안겨주는 고전이라 생각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동용이 아닌 정식 완역본으로 나오면 묘사가 더 살벌할 것 같은데, 궁금해지는군요.

덧붙이자면 영화화하기 아주 좋은 소재라 생각되어 조사해 봤더니, 진작에 영화화되었으나 트리피드를 일종의 "괴수화" 한 몬스터물로 각색한 듯 합니다. 그만큼 강렬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덕분에 영화는 별로 기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2018/12/29

술 취한 식물학자 - 에이미 스튜어트/ 구계원 : 별점 3점

술 취한 식물학자 - 6점
에이미 스튜어트 지음, 구계원 옮김/문학동네

부제인 "위대한 술을 탄생시킨 식물들의 이야기" 그대로 술을 만들때 사용되는 다양한 식물들에 대해 소개하는 책입니다. 친숙한 사과나 보리, 포도, 쌀 등 고전적인 술의 원료에서 시작하여 바나나와 카사바와 같은 이색적이고 독특한 재료들,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 꽃과 나무, 열매들, 견과류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재료가 망라되고 있습니다. 이 재료로 만들어진 술들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관련된 칵테일 레시피도 50여가지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요. 집에서 재배할 수 있는 재료인 경우, 그 재배법까지 실려있고요.

분량도 400여 페이지를 훌쩍 넘어서 볼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마시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 술에 대한 소개입니다. 켄터키 버번이 첫 번째입니다. 켄터키가 지금과 같은 버번의 땅이 된 이유가 아주 매력적으로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옥수수가 재배하기 쉬웠고 초기 이민자들이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출신이라 증류기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맑고 시원한 샘물이 솟아나는 풍부한 석회암 매장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석회수는 지하에서 솟아 나올 때 1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는데, 이 온도는 냉각과 응결 과정에 꼭 맞는 완벽한 온도라네요. 석회수의 높은 알칼리성과 풍부한 칼슘, 마그네슘, 인산 함유도 맛을 더해주는 요소고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꼭 한 번 구입해야겠어요.
담배로 만든 술인 프랑스의 "페리크 리쾨르 드 타박"도 맛보고 싶습니다. 니코틴을 완벽하게 제거했다는데 과연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합니다. 참고로 담배로 고급 술집에서 수제로 "시가 비터즈"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는 담배와 향신료를 알코올 도수 높은 증류주에 우려내는 것으로 지나치게 많은 니코틴이 함유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군요.
포틀랜드 증류업자 스티븐 매카시의 갖은 노력으로 완성된 미송 증류주도 탐납니다. DOUGLAS FIR BRANDY 라는 술인듯 한데 1년에 250상자만 제조하는 술 치고는 가격도 5만원대로 저렴하군요. 우리나라에서 구하려면 그 배를 주어도 구하기 어렵겠지만요.

갖가지 토막 상식도 재미를 더합니다. 금주법 시행 당시 캘리포니아의 포도 재배 업자들은 "과일 벽돌"을 팔았다고 합니다. 포토를 말려서 압축한 뒤 와인 제조용 효모와 묶은 상품으로 물을 더하면 양조가 시작되는 물건이었다는군요. 아이디어가 정말 빼어나죠?
또 프랑스 포도나무는 19세기 포도나무뿌리진디에 의해 초토화 된 후 미국 포도나무와 접목하여 살아남은 것이며, 현재의 칠레 와인이 포도 나무 뿌리 진디 이전의 포도나무로 만들어진 와인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유 외에도 칠레 와인을 사랑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은 셈입니다.
호밀이 맥각균에 감염되면 LSD 성분이 생기고, 이 맥각중독이 중세의 무도병의 원인이라는것도 마찬가지로 처음 알았고요. 마약 중독자라면 호밀 재배를 시도해봄직 하겠네요.
"그로그"는 영국에서 선원들에게 럼을 배급할 때 홀랑 마셔버리지 않게 물과 라임 주스, 설탕을 섞어 배급한 음료입니다. 그런데 럼이 많이 희석되었다는 선원들의 의심이 커지자 비중을 증명하기 위해 럼과 화약을 섞어 불을 붙이는 테스트를 했다는군요. 대략 57% 정도의 알코올이 함유되어야 불이 붙었다는데, 이 테스트 결과를 "프루프 Proof" 로 제시한 것에서 현재의 프루프 단위가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즉 57%의 알코올이 함유된 병은 100 프루프인 것이죠. 미국에서는 더 간략화해서 50%의 알코올이 100 프루프고요.
그 외에도 중국 요리에 많이 사용하는 "팔각"은 허브 리큐어에도 사용되지만 독감약 "타미플루"의 원료이다, 스위트 우드러프라는 여러해살이 풀의 "달콤한 풀내음"은 잠재적 독성 성분인 쿠마린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표시이다는 등의 설명도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풀내음에 대한 설명은 정말 맞는 말인지 궁금하네요. 달콤한 풀내음을 가진 풀은 많으니까요. 의외로 우리나라 들판에도 독초가 가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록된 칵테일 레시피도 볼게 많은데, 감자로 만든 보드카인 스웨덴의 칼손스 골드 보드카로 만든 "블랙 골드"는 심플함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칼올드패션드 글래스에 얼음을 채운 후 그 위에 칼손스 골드 보드카 1과 1/2온스를 붓고 후추를 갈아 뿌리는게 전부거든요. 상당히 터프한 느낌인데 맛이 궁금하네요.
사케 칵테일은 니코리 사케 4, 망고 복숭아 주스 2, 보드카 1, 도멘 드 캉통 진저 리큐어 소량을 잘 섞은 뒤 칵테일 잔에 따르고 셀러리 비터즈 한 방울을 떨어트려 만듭니다. 대충 느낌은 복숭아맛 호로요이 느낌이 아닐까 싶군요.

이렇게 많은 정보가 수록된, 술과 관련된 식물의 백과사전이라 해도 무방한 책으로 술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소장가치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단순 정보의 나열 뿐이라 읽는 재미가 덜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5/02/24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 로버트 템플 / 과학세대 : 별점 3점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 6점
로버트 템플 지음, 조지프 니덤 서문, 과학세대 옮김/까치글방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저본으로 하여, 중국이 3,000년 동안 세계 최초로 이룩한 발명과 발견을 200여 점의 도판과 함께 농업, 공학, 수학, 의학, 음악, 물리학, 수송, 전쟁기술 등 100가지 항목으로 편집해 소개하는 책입니다. (책 소개 인용)

중국 고대 발명품과 발견에 대한 일종의 백과사전. 이런 류의 '읽을 수 있는 백과사전'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책인데, 이 책도 기본적인 재미는 물론 설득력을 높여주는 도판이 많이 실려 있어 더욱 매력적이었습니다. 수록 항목도 100가지나 되어 내용도 풍부했고요.

내용이 많다 보니 요약은 어렵고, 인상 깊었던 것 몇 가지만 적어보겠습니다.

  • 복동식 피스톤 풀무 :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기계같은 느낌의 이름인데 피스톤을 밀고 당길때 모두 바람이 나오게 하는 것이 전부인 일종의 자동 밸브. 그러나 이 단순한 발명품이 기원전 4~5세기 (!)에 등장한 덕분에 중국의 모든 산업 (특히 제철과 같은 야금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하니 허투루 볼건 아닙니다.
  • 크랭크 핸들 : 지금도 이런 저런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레바퀴 측면에 막대기를 끼워 손잡이로 삼아 돌리게 만든 발명품. 비슷한 것을 서양에서 생각해 내기까지는 무려 1,10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단순한 것인데... 의외였어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었을까요?
  • 천연 가스 채굴 : 기원전 1세기에 이미 천연 가스를 채굴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순전히 인력으로 평균 900미터에 달하는 구멍을 팠다는 것 (주로 소금 채굴을 위해), 여기서 나오는 가스를 잘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고안 역시 대단했습니다. 잘만 활용했더라면 고대 중국을 무대로 한 스팀 펑크 스타일 SF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대나무에 저장한 천연가스를 활용한 동력원!
  • 칠 : 옻칠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소재인데 일종의 니스로 플라스틱과 같다고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태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특유의 보존력, 강도, 내구성을 볼 때 그렇구나 싶기도 했어요.
  • 성냥 : 여태 서양의 누군가 개발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초는 북제 왕조의 여관들이 유황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 성 호르몬 추출 : 소변에서 성 호르몬을 추출했다는 것이 기원전 125년전의 회남왕의 서적에 적혀있다고 합니다! 불을 이용한 승화, 강제 증발 이외에도 증류수를 넣은 뒤 태양열로 자연 증발시켜 얻었다고 하네요. 아울러 남녀 소변을 구별하여 제조하고 싶은 호르몬 종류에 따라 소변 혼합 비율을 바꾸었기 때문에 결과물인 "추석"은 어느 경우는 안드로겐 (남성 호르몬)이 많았고 어느 경우는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이 많았다고도 합니다.
  • 지리 식물학 : '특정 광물질이 많아 다른 식물들은 잘 자라지 못하는 토양에서도 번성하는 식물들을 가지고 탐광하는 것'으로 이런 학문이 있다는 것부터 처음 안 사실입니다. 고서 "산해경"에 "혜당은 금광 근처에서 자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근거이며, 이후 1421년의 "경신옥책"에서는 금은 순무에, 은은 수양버들에, 동은 인도산 괭이밥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한 학문으로 자리잡은 듯 합니다. 광물의 미량원소가 실제로 특정 식물에 존재하며 거기서 추출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 참고로 예전에 전파과학사 문고 "과학사의 뒷얘기"에 실려있던, 토마스 챌러너 경이 요크셔에서 명반석 광상을 발견한 것이 유럽 최초의 지리식물학적 탐광 사례라고 합니다. 1600년 경의 일이죠.
  • 지진계 : "갤러리 페이크"에도 나왔던, 용 입의 구슬이 두꺼비로 떨어지는 기계로 도판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실제 어떻게 동작했는지까지 알려주네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지진"과 "단순 진동"을 어떻게 구분했는지는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지진계 옆에서 아이가 뛰어놀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 인쇄 : 중국에서 인쇄는 대단히 활발했다고 하는데 10세기 어느 불교도 문집은 지금도 40만부 이상이나 남아있다고 합니다. 당대에는 얼마나 찍었을지 상상도 안되네요. 40만부 이상 남아있는 것이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하더라도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있을지도 궁금하고요. 인쇄에 관련된 상세한 설명 - 인쇄에는 유실수를 사용한다. 침엽수에 포함된 수지는 먹이 균일하게 칠해지는데 방해 작용을 하기 때문 등 - 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으로 "대나무"가 서양에서는 나지 않아서 중국의 획기적인 신기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시각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만큼 튼튼하면서도 속이 비어있어서 가벼운 재료가 없었기 때문으로, 대표적인 예로는 선박의 "활대"를 들고 있는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도 있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일단은 재미없는 부분은 너무 재미없다는 것, 그리고 조지프 니덤의 원저를 베이스로 새롭게 추가하고 엮은 내용이라고 하는데 억측이 상당히 많아서 모든 것을 믿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해당 기술이나 발견의 시기를 단어나 문장 몇마디 가지고 굉장히 오래전 것으로 정의한다던가, 유럽에서의 발견도 중국인에게서 유래되었다고 추측하는 식입니다. 대표적인 것인 사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가 중국인이 먼저 개발했던 석궁을 보고 도시 방어용 무기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 중국에서 "대진"이라고 불리운 시리아와 교역을 하였다는 것을 증거로 대는 정도인데 이 정도는 증거도 뭐도 아니죠. 지리 식물학 이야기에서 고서 "산해경"에 "혜당은 금광 근처에서 자란다"라고 기록된게 근거라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근거치고는 많이 약해요. 실제 혜당이 뭔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말이죠. "문자"에 쓰여진, "옥이 묻힌 곳에는 나뭇가지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글이 단순 지리 식물학이 아니라 식물의 생리적 상태까지 간파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고요. 이런 억측은 우리에게는 동북공정과 같이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어서 더욱 신경이 쓰이네요. 이 책에 따르면 불국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중국에서는 자기들 유물이 건너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아울러 내용에서 단순 년도만 표기하지 말고 해당 시기 중국의 왕조는 무엇이었을지 정도만이라도 함께 써주는 배려가 없는 것도 아쉬웠으며, 번역도 괜찮은 편이지만 장기 이야기에서 "포"를 "로켓 소년"이라고 번역한 것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한국어로 재 번역할 때 당연히 걸러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을까요? 중국 장기는 뭐가 조금 다른건지...

그래도 관련된 사료도 충실하고 도판도 만족스러운 수준일 뿐더러 첫 발견 시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은 수긍이 가기에 아주 폄하하기는 어렵군요.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 50% 할인 가격에 구입했기에 더 만족감도 크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책보다는 영상 다큐멘터리로 보는게 더 낫지 싶긴 하네요.

2018/08/04

공정드래곤즈 1~3 - 쿠와바라 타쿠 : 별점 2점

[고화질] 공정 드래곤즈 03 - 4점
쿠와바라 타쿠 지음/대원씨아이(만화)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입니다. 백종원 씨를 비롯, 여러 셰프들이 스타덤에 오른지 오래이며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는 온갖 예능들도 넘쳐나고 있고, 무엇보다도 맛있게 먹는 모습만으로 스타가 된 사람들마저 등장하고 있으니까요.

만화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요리 만화는 등장한지 오래되긴 했습니다. 빵이나 카레, 중화요리, 초밥, 도시락, 와인, 술 등 요리사가 주인공이며 특정 요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만화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은 주로 주인공의 직업과 소재가 특이한 배틀물 - 고전 "맛의 달인"의 '완벽과 최고'의 대결처럼 - 에 머무른 작품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여러가지 다양한 장르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음식과 요리를 소소한 일상, 인간 드라마와 결합시키거나, 평범한 음식을 실존하는 평범한 식당에서 평범하게 먹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로 전개하는 '음식을 소재로 한 소소한 일상계'입니다. 앞서는 "심야 식당", 그리고 뒤에는 "고독한 미식가"가 대표적인 예이며, 이외에도 영상화 된 작품만 해도 "하나 씨의 간단 요리", "와카코와 술", "라멘 너무 좋아 코이즈미 씨", "음식의 군사" 등 수도 없을 정도로 그 인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두 번째로 현재 음식 만화에서 작지만 확실한 인기를 몰고 온 분야는, 판타지 세계관과 음식 소재를 결합한 '이세계 미식물'입니다. 쿠이 료코가 "던전 밥" 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장르는 "던전밥"처럼 이세계의 몬스터를 재료로 친숙한 음식을 만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이세계 주점 노부" 등 처럼 현대(그 중에서도 일본) 요리를 그러한 음식을 잘 모르는 이세계 주민에게 소개한다던가, 아예 현대 일본인이 이세계로 이동하여 자신의 요리 실력으로 현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맛없는 밥 엘프와 유목생활", "이세계에서 카페를 개점했습니다" 등으로 아이디어가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세계'가 아니라 현대 요리사가 전국시대로 타임 슬립한다는 "노부나가의 셰프" 와 같은 이야기도 유사 장르로 포함시킬 수 있을테고요.

서론이 좀 길었는데, 이 만화는 이러한 '이세계 미식물' 장르에 속한 작품입니다. 그 중에서도 원조 "던전 밥" 의 특징을 많이 따릅니다. 용을 사냥하는 용 사냥꾼들이 용을 재료로 이런저런 친숙한 음식들을 만든다는 점에서요. 이세계 전문직 종사자의 평범한 식단을 테마로 했다는 점에서는 '일상계 음식 만화'의 한 범주로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아류작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포룡선 퀸자자호를 타고 용을 사냥하는 사람들과 사냥 과정에 대한 디테일 - 용이라고 불리우긴 하지만 크툴루 신화 속 크리쳐가 연상되는 "용", 고전적인 비행선인데 용을 잡기 위한 다양한 장비(작살총, 봄랜스, 창과 이런저런 와이어, 후크들, 오토자이로)를 갖춘 퀸자자호, 포룡 과정에서 하늘에 떠 있는 퀸자자호 내부에서의 식사와 빨래와 같은 생활 묘사 등등등 - 이 펜터치 중심의 고전적이면서도 빼어난 작화로 그려져 있어서 큰 재미를 선사해 주는 덕분입니다.

그런데 1권은 용 사냥꾼이 용을 사냥하고 그 부산물을 조리해 먹는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2, 3 권부터는 세계관이 긴 호흡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나가더군요. 단편으로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2권은 용의 거래로 먹고 사는 마을 '퀀 시'에 기항한 퀸자자호가 마을에서 깨어나 폭주하는 용을 사냥하는 이야기에 승무원 지로의 짤막한 사랑 이야기가 곁들여지며, 3권은 사냥 중 지상으로 떨어진 타키타가 지상의 사냥꾼에게 구조된 후, 자신을 따르게 된 새끼 용을 무리에게 돌려보내 준다는, 한 권에 한 편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구성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변화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이세계 미식물' 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 일상계 이세계 사냥 판타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이야기도 딱히 새롭거나 재미있지도 못합니다. 전형적인 설정의 전형적인 이야기였을 뿐입니다. 그나마 용잡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 어우러지는 2권은 조금 낫지만, 3권은 전형적인 나우시카류의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고기에 푹 빠진 미카는 "던전밥"의 라이오스와 유사한 등, 퀸 자자호의 승무원들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캐릭터라는 점이 더해져 식상해도 너무나 식상할 따름입니다.
용 고기가 무슨 색깔이며 구울 때는 어떻고, 날로 먹으면 어떤지 등 기본적인 특성조차 소개되지 않고 이런저런 요리를 선보인다던가, 뒤로 가면 갈 수록 특별한 요리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전개를 보면 판타지 구루메 만화를 그려달라는 편집부의 요구를 따르는 척 하면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그려나가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뭐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많을테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3권까지는 그래도 어찌어찌 읽기는 했는데, 다음 권을 읽게 될 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러고보면 저와 같은 이세계 미식물 팬을 위해서 지브리에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를 활용하여 비슷한 컨텐츠를 내 놓으면 좋을 것 같네요. 나우시카 세계관에서 오무를 가지고 만드는 요리 등이 등장하면 참 재미있지 않을까요? 서둘러라 지브리!

2020/11/28

형사의 눈빛 - 야쿠마루 가쿠 / 최재호 : 별점 2점

형사의 눈빛 - 4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야쿠마루 가쿠가 쓴 단편집으로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한 편 한 편이 완결되는 이야기이지만, 긴 이야기가 포함된 연작 구성이라는 점입니다. 긴 이야기는 주인공이자 탐정역인 나츠메 노부히코가 형사가 된 계기가 된, 나츠메 딸의 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단편별로 사건이 조금씩 설명되며 마지막 수록작인 "형사의 눈물"에서 진상이 드러나는 구성이지요. 나츠메 노부히코는 범죄 아동을 담당하는 법무부 직원이었지만, 30세에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고 6년간 파출소에서 일한 뒤 형사가 된 집념의 사나이죠. 추리력도 만만치 않고요. 작품 내내 '인간미'를 느끼게 만든다는게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완성도는 그닥입니다. 사건들 대부분 증거가 명확하고, 범인들의 자백도 잘 이루어지고 있어서 추리할 여지가 많지 않은 탓입니다. 나츠메 형사가 펼치는 약간의 추리는 볼거리이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 추리가 사건 해결에 영향을 미치는건 별로 없다는 거지요. 오히려 이렇게 추리력을 드러내기 위해 억지스럽게 전개한 이야기들이 많은 편입니다.
설정과 동기가 극단적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죽이려 한다던가, 아동 대상 잔혹 범죄가 등장하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절반에 가깝거든요. 흥미를 잡아 끄는 설정에 능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부족했던 작가의 전작들이 떠오른데 전작들보다도 못해요. 설정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분량이 덕없이 부족한 단편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무라이스" 

방화로 히데아키가 죽었다. 그러나 사실혼 배우자인 케이코의 아들 유우마는 덤덤했다. 친아빠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연립 주택 근처에서 벌어졌던 연쇄 방화 사건 범인 소행으로 의심되었지만, 나츠메 형사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의외의 진상을 추리해내는데...

케이코가 진범이며, 원래는 아들 유우마가 목표였다는 반전은 인상적입니다. 정부의 육체에 빠져 재혼에 걸림돌이 된 아들을 살해하려 한 거지요.

그러나 반전을 드러내는 추리는 모두 억지스럽습니다. 현장에 남아있던 오므라이스가 단서가 된다는 것 부터 그러합니다. 나츠메 형사는 케이코가 히데아키가 집을 비운다는걸 이미 알고 있어서 수면제가 든 오무라이스를 유우마 용으로 한 개만 준비했다고 추리합니다.
그러나 히데아키가 애인 시즈카에게 만나자는 보낸 문자 메시지를 케이코가 봤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케이코에게 그날 늦는다고 메시지를 보냈다면 모를까요. 즉, 히데아키가 집을 비울거라는걸 알았다는건 순전한 상상입니다.
또 유우마는 히데아키를 싫어해서 그가 있으면 집에서 저녁을 먹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녁을 한 명분만 준비한게 이치에 맞지요. 아들 유우마가 어머니의 살의를 눈치채었을거라는 추리도 마찬가지에요. 수면제 오므라이스가 자기 몫이었다는걸 유우마가 확신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케이크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한 환자 야스오카 씨 손에 서툰 주사자국이 많았던게 단서가 된다는 묘사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주입구(?) 역할을 하는 주사 바늘은 고정시키고, 링겔액만 바꾸는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마지막에 케이코가 흔들려 진상을 고백하는 장면도 영 설득력이 없었어요. 끝까지 버텨 정상참작을 받는게 현실적이니까요. "일년 반만 기다려"처럼요. 아울러 젊은 새 애인의 육체에 빠진 탓이라는 일본 AV스러운 동기도 그저 그랬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모로 추리적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빨간 줄" 

코이데 신이치는 일하던 이자카야에서 막 해고되었다. 11년 전 삼촌을 살해했던 전과자였기 때문이었다. 그 뒤 함께 사는 조카 하루나의 친구 요코세의 아빠가 살해되는데...

범인은 신이치의 누나 나오코였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던 요코세를 구해주려다가 살인을 저질렀던 겁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추리는 약합니다. 별다른 단서가 없는 탓입니다. 누나 나오코가 요코세의 집에서 벌어진 사망 소식을 듣고, 피해자가 요코세가 아니라 그 아빠임을 확신하고 반문한게 증거다? 턱도 없는 주장입니다. 어차피 나오코가 자수해서 범행이 드러나서 추리의 여지도 거의 없고요.
11년 전 사건도 누나가 진범이었고, 신이치가 위증했다는 반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딱히 증거도 없고, 작위적이에요. 모든 남자가 아동 성범죄자에 아내와 딸을 구타하는 인간 말종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물론 누나 나오코를 위해 거짓으로 자수한 신이치의 위증을 나츠메 형사가 곧바로 밝혀내는 장면은 괜찮았습니다. 신이치가 인형 뽑기에서 뽑았다는 인형이 결정적 증거가 되지요. 신이치가 말했던 시간에는 기계 안에 없는 인형이었거든요. 인형 뽑기 경품 교체 시간은 수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정보로, 꼼꼼한 수사가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잃어버린 심장"

마츠시타 마사유키는 7개월 전, 아들 토모키를 사고로 잃었다. 그 뒤 아내 사에코를 질책하다가 이혼 서류를 남겨 놓고 그 길로 출근하던 회사를 지나치고 노숙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속한 노숙인 무리의 리더 쇼우가 살해당하는데...

쇼우에게는 오래 전 괴롭히던 학우를 죽였던 과거가 있었는데, 얼마전 TV에 나왔을 때 피해자 가족에게 발견되어 타겟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범인은 같은 노숙자인 나카 씨였고요.

그런데 그닥 신선하지는 않았습니다. 흉기인 술병에 나카 씨 지문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추리할 여지도 없고요. '힛츠미'라는 요리를 나카 씨가 모르는걸 보고, 나카 씨로 변장한 가짜라는걸 알아채는 "절대미각 식탐정"스러운 추리만이 볼거리였습니다. 이 추리는 사건 해결에 딱히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요. 

여러모로 추리물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자존심"

수사 1과 형사 나가미 와타루는 나츠메 형사와 파트너가 되어 연립주택 살인 사건 해결에 나섰다. 둘은 피해자 사쿠라이 아야노가 다녔던 직장에서 몇 가지를 알아냈다. 그녀가 직장을 옮긴건 전 남자 친구가 괴롭혔기 때문이며, 지금은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며 번민했다는데....

수사 과정에서 두 형사는 피해자 친구라는 아가씨 미우를 만납니다. 남자같은 화물 운송업을 하고, 복싱 도장까지 다니는 남자같은 아가씨였지요. 그런데 알고보니 범인은 그녀였습니다. 미우는 성정체성 장애로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야노와도 '남자로서' 진지하게 사귀었고요. 그러나 육체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어서, '바람을 피우던' 아야노를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살해한거지요. 설정은 꽤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추리는 역시나 억지스럽습니다. 나츠메 형사는 미우가 '남성적'이라는 말을 듣고 흥분한걸 보고 그녀가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있다는걸 눈치챘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여자 치고는 남자같다는 의미의 말을 들어서 흥분한거라면서요. 그러나 그냥 끼워맞춘 이야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싫다던가, 남자 자체를 싫어했다던가, 남자같다는 말을 듣고 불쾌할 이유는 수도없이 많은데, 하필이면 가장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을 추리한다는건 이상하지요. 게다가 권투 스파링을 통해 그녀가 마음만큼은 남자라는걸 알아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만화에나 나옴직한 발상이에요.

'카이'라는 피해자 애인 이름에 대한 추리는 나쁘지 않아요. 미우라는 이름을 뒤집어 우미 (海), 그리고 카이로 이어졌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 역시 미우가 범인임을 밝혀낸 다음 끼워맞춘거라 대단한 추리로 보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아버지의 휴일" 

요시자와 아츠로는 아내 아키코가 7년 전 병으로 죽은 뒤, 아들 류타와 함께 살아왔다. 어느날, 그는 귀가하다가 류타가 수상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걸 목격했다. 그리고 류타가 금속 케이블 절도단에 속한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증거들이 집에서 발견되었다. 요시자와는 친구 나츠메와 상담한 뒤, 나츠메와 함께 류타를 미행하는데...

결국 경찰에 의해 류타는 체포됩니다. 류타는 진짜로 금속 케이블 절도단에 속해 있던 거지요. 류타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약간의 반전은 있습니다. 이는 집에 단서를 보란 듯이 놔 두었으며, 공중 전화로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는 정황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공중 전화 신고는 시간과 장소만 특정되면 별다른 추리가 필요한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려운, 나츠메 형사가 왜 형사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연작 단편의 가교 역할에 불과한 이야기였습니다. 딸 에미가 연쇄 테러 사건으로 식물인간이 된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모습이 어떻든 미래의 가능성을 믿으라면서"며 자기 딸 에미도 지금 누워 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거라는 희망을 드러내는 나츠메의 말은 울림을 남기고요.

하지만 별점은 1.5점입니다.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군요.

"흉터" 

고등학교 상담 교사 타나베 쿠미코는 결석, 자해를 반복해 온 유카가 걱정이었다. 결국 유카는 자살 시도를 하고 입원하는데, 다음날 학교로 나츠메 형사가 찾아 왔다. 학교 학생이 상해 치사 사건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해 치사 사건 피해자인 사와무라는 유카의 몹쓸 사진을 찍고 협박해 왔습니다. 유카는 지하철에서 무고한 사람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우고, 돈을 갈취하는 사기에 가담했지만 그 때마다 죄책감에 자해를 했습니다. 그러다 이 범행의 피해자로 모든 걸 잃은 이와사키 씨가 진상을 알게 되어 상해 치사 사건을 일으켰던 겁니다.

그런데 이 모든건 유카와 이와사키 씨가 한 자백으로 설명됩니다. 계속 반복되듯, 나츠메 형사가 특별히 추리력을 발휘할 부분이 없어요. 이래서야 추리물은 아닌 셈이지요. 나츠메가 형사가 된 건 딸 아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범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은 아니었다... 는 심리 묘사 정도만 볼만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형사의 눈물"

츠카모토 세이지와 쿄코 부부는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세이지는 자기가 괴롭혔던 오오타를 만났다. 오오타는 세이지가 어린 아이를 망치로 때리는걸 목격했다며 협박하기 시작하는데....

작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으로 나츠메 형사 딸이 식물인간이 된 사건의 범인이 밝혀집니다. 불량 학생이었던 세이지는 나츠메로부터 진심어린 충고를 듣지만, 오히려 짜증과 증오가 일어나 그 딸을 테러했던 겁니다. 오오타는 이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 협박했고요.
하지만 사진에 함께 찍혀 있었던 여성 목격자가 쿄코라는 진상은 조금 의외였어요. 그녀는 세이지를 좋아해서 신고를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오오타가 일으킨 모방 범죄로 여동생 야스코를 잃고 만 거지요. 이를 통해 오오타에게 협박당해 농락당하다가, 야스코를 죽인건 오오타라는걸 알고 그를 살해한게 오오타 사건의 진상입니다. 

자기가 신고만 했다면 동생은 죽지 않았을 거라는, 쿄코가 놓인 기구한 상황만큼은 인상적입니다. 빠져나가기 힘든 생지옥 상황은 야쿠마루 가쿠의 특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쾌했습니다. 세이지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탓입니다. 세이지가 현재 시점에서 개과천선한 괜찮은 청년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그가 과거 오오타를 괴롭혀서 히키코모리로 만들었고, 에미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범행을 저지른건 사실입니다. 이런 놈이 최소한 죗값을 치루지 않고 행복하게 살 자격 따위는 없어요. 오오타를 만나 협박당하는 정도는 형벌로 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자수할 생각 없이 살해할 결심을 한다는건 쓰레기라는걸 재차 인증한 셈입니다.
물론 오오타 역시 죽어 마땅한 범죄자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오오타가 범죄를 저지른건 세이지 탓이 큽니다. 세이지가 저지른 테러를 모방한 범죄니까요. 그런데 오오타와는 다르게 세이지는 나쁜 녀석이 아니고, 그냥 궁지에 몰렸던 것에 불과하다고 전개하니, 영 와 닿지 않아요. 가혹한 왕따 가해자들 시점으로 그들이 정당하다는 식으로 묘사한 "콜드 게임"만큼 불쾌한 묘사였습니다.
오오타를 죽인 진범인 쿄코 역시 딱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신고하지 않아서 여동생이 죽은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두 부부가 각각 살인과 과거 폭행으로 형을 받는다면, 남겨진 딸은 어떻게 하나요? 끝까지 무책임한 모습에서 일말의 연민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이지는 어린 아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계획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동기도 보복 목적에 가깝고요. 이는 비난 동기 살인 미수에 해당되며, 가중 처벌 요소가 많습니다. 18년 이상에서 무기 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어요. 그나마 나츠메 형사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던가, 초범이며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등의 감경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15년 이상은 선고받을 중범죄죠. 쿄코는 피해자가 친족을 살해했다는 명확한 귀책 사유가 있어서 참작 요소가 많기는 하나 최소 3년은 복역해야 할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복역하고 나와서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정상적으로 딸을 양육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모두 살인자인 셈인데, 왕따나 안 당하면 다행일겁니다. "편지"에서처럼, 살인자 가족이 피해를 받고 사는건 당연하고요.

전개도 우연, 억지가 많이 겹쳐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마침 세이지가 오오타를 살해 결심한 날, 쿄코가 오오타를 살해했다는 것 부터 그러합니다. 애초에 오오타가 쿄코를 농락하고 있었다면 구태여 세이지를 찾아가 협박을 할 필요도 없었어요. 얻을게 없으니까요. 과거 세이지가 범행을 저지르던 순간과 목격자를 적절하게 사진에 담았다는 설정도 작위적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쿄코가 놓인 생지옥 상황만큼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좋은 부분이 없네요. 아니, 불쾌하고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나츠메 형사가 세이지를 사살하는 결말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16/05/14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 오노 후유미 / 정경진 : 별점 2.5점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 6점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오노 후유미의 일상계 호러 단편집으로 모두 6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이 오래된 집으로 이사온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와 마주치는데, 이것을 '영선 가루카야'라는 상호의 수리점 목수 오바나가 약간의 수리를 통해 해결해 준다는 동일한 구조를 갖추고 있고요. 

일상계 호러물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싶을 정도로 일반인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으로 담담하게 묘사한 장면들이 인상적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문가의 일상계 퇴마(?)물이라는 점에서는 "충사"와 비슷한 느낌도 드네요.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사하고요. 대체로 그곳에 있는 존재들을 인정하고 어르고 달래는 수준이라는 해결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일상계'인 덕분에 독자를 몰입시킬만한 요소는 확실히 부족합니다. 지나치게 담담하거든요. 흥행(?)을 위해서라면 충격적인 설정이나 이야기를 한두편 선보이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호러 매니아 기준으로는 맹숭맹숭한 순정물에 불과한 작품들로 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호러 및 괴담물 초보자에게 권해드립니다.

이야기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뒤뜰에서"

쇼코는 고모에게서 물려받은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런데 서랍장으로 막혀있는 미닫이 방의 문이 스스로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랍장을 치우고 정리하던 날 밤, 쇼코는 여자 형체의 무언가가 그곳을 통해 기어나오려는 것을 목격하는데...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유령의 첫 등장, 고모가 예전에 미닫이를 아예 막은 적도 있지만 긁는 소리가 집안 전체에 울려 견디지 못했다라는 일화 등 섬찟한 부분도 제법 있고요. 오바나가 등장한 후 설명하는 진상 - 유령은 위협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이 말라서 그런 것이다 - 이 앞부분의 거리 묘사 및 방의 과거 수리 이력과 엮여 드러나는 전개도 깔끔합니다.

한마디로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는 차고 넘치는 작품. 수록작 중 가장 무서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천장 위에"

오래된 무가 저택에 사는 고지는 어머니가 천장 위에 누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치매를 의심했다. 천장 수리 후 아이들에게도 무언가가 나타나자, 고지는 천장을 수리한 목수 구마다에게 연락했다. 구마다는 '영선 가루카야'의 오바나와 함께 찾아오는데...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깔끔한 맛이 부족합니다. 천장에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왜 나타나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말도 설명 없이 옛날부터 있던 일종의 봉인을 원상복구 시키는게 전부고요. 뭐 이게 현실적인 것일 수는 있지만 독자로서는 많이 아쉽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방울 소리"

조모의 집으로 이사온 유코는 비오는 날마다 정체불명의 상복입은 여자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몇년간, 그 거리의 집들에 정체모를 상복입은 여자가 찾아오면 집안 사람 중 누군가 죽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상복입은 여자의 이동 경로의 마지막은 유코의 집이었다!

작품들 중 유일하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죽이는) 무언가가 나옵니다. 이대로라면 유코가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지요. 그런대 전개는 담담해서 묘한 맛이 느껴집니다.

허나 이러한 묘한 괴리감이 작품에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가장 무서울 수 있었던 작품인데, 소재를 허투루 낭비한 느낌이에요. 작가가 원한 것이 이러한 담담함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곧 죽을 예정인 유코마저 담담하게 묘사한건 실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무언가의 정체는 끝까지 불분명해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개운한 맛도 부족하고요.

그나마 해결책은 마음에 듭니다. 맞서 싸우는게 아니라 그냥 순응하는 것으로 '그것'이 그냥 지나갈 수 있도록 우회로를 내어준다는건데,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현실적이라는게 좋았어요. 오래된 거리가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문의 위치가 바뀐 탓에 문제가 일어난 것이라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요.

이렇듯 단점, 장점이 명확한데, 그래도 평작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이형의 사람"

할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한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이사온 마나카는 언제부턴가 집 안 어딘가의 공간에서 노인의 유령을 만나기 시작했다...

마나카가 할아버지 유령을 만나는 장면의 묘사들은 섬찟한데 그 뿐입니다  나머지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네요. 집안에서 학대받았다는 할아버지의 유령의 정체도 진부했어요. 오바나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아서 이게 같은 시리즈인가 싶기까지 했습니다. 해결책 역시 구마다와 오바나가 집을 수리한  나타나지 않더라... 가 전부이고요.

이래저래 부족함만 많이 느껴진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만조의 우물"

마리코는 결혼과 함께 조모가 살던 집을 물려받아 살게 되었다. 남편 가즈시가 취미로 정원 우물을 복구한 뒤, 정원수와 식물이 모두 죽어나가고 집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오는데...

정원의 식물들이 죽은 이유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 특이했던 작품입니다. 이유는 우물물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라서 물을 준 식물들이 죽었다는 겁니다. 해결 방법도 '우물을 메워야 한다'는 단순명쾌하며 현실적이라서 다른 작품들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에요.

허나 집 안에 들어온 것이 무엇인지 등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 단점도 여전합니다. 그냥저냥한 평작 수준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리 밖"

이혼 후 딸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온 마미는 친정 식구에게 쫓겨나다시피 오래된 고택을 빌려 살게된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아이의 유령을 보게 되는데...

호러물의 기본 공식 중 하나인 '이형 존재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는 작품.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전부터 있었으며, 유령 때문에 이전 거주자가 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꼴보기 싫은 딸자식을 치워버리기 위해 싸다는 이유만으로 유령 집에 살게 만든 친정 식구들의 행동이 그것입니다. 시골이라 더 이웃 눈치를 본다는 설정도 살짝 들어가 있기는 한데 여튼, 어딜가나 참 사람이 무섭다 싶더군요.

여기에 더해 아이가 등장하는 장면이 호러영화 스타일로 묘사된 것이 이채로왔습니다. 자동차 후방 카메라 등을 활용한 장면들이 그러한데 글로만 읽어도 섬찟한 맛이 있었어요. 차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운 시골 마을의 환경과 유령을 엮은 설정도 마음에 들었고요,

딱 한가지, 학대로 아이가 죽었다라는 뻔하디 뻔한 설정만 뺀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은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3/08/06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관람

지난 달의 '젊은 모색 2023' 전시회에 이어, 이번 달에도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관람하였습니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입니다.
동산방화랑의 설립자 동산 박주환이 수집하고 그의 아들 박우홍이 기증한 작품 209점 중 90여점을 선별하여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조명하고 있는 전시입니다.

주로 한국화 중심으로, 근대에서 현대까지의 한국화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남종 화단의 명맥을 이었다는 허백련의 그림을 비롯하여 김은호, 이상범, 박승무, 이용우, 최우석 등의 산수화나 매화도 등은 익히 알고 있던 조선시대의 그림 바로 그것입니다.
노수현의 <<추경>>은 공들인 인왕산의 바위 암벽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근대 회화라 그런지, 의외의 디테일도 재미있었습니다. 아래의 이용우의 작품 속 작은 인물과 같이요.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 다름 단계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렇게 나무들을 '마계'의 식물들처럼 묘사한 이유가 조금 궁금해지더군요. 이용우의 작품 외에도 아래와 같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마계의 식인 식물같은 나무들이 눈에 뜨였거든요. 조금 손을 대고 가공하면 현대적인 게임 일러스트로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근대 초기를 넘어, 중기 이후 작품들이 이어지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운보 김기창의 <<매>> 였습니다. 상당히 큰 그림인데,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된 배경, 큰 붓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나무와 깃털, 거기에 엄청나게 디테일한 매의 얼굴 묘사가 잘 어우러지는게 아주 멋졌습니다. 거장이 왜 거장인지를 알려주네요.
운보 김기창이 아니더라도, 아래와 같이 디테일한 부분에서 서양화에 뒤지지 않는 작품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한국화의 저력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한국 전쟁 이후, 현대로 접어들면서는 서양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동양화의 번짐과 같은 효과로 원근법, 일렁이고 출렁이는 물과 바람을 표현한 아래의 작품들은 한국화임에도 굉장히 현대적으로 보입니다.
현대적인 한국화라면 빼 놓을 수 없는게 아래의 <<신몽유도원도>>였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현대적으로 재 해석한 작품이라는데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뒤지지 않는 원색적이면서도 오묘한 색 표현이 아주아주 빼어나다고 생각되거든요. 영화 <<바비>>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핑크핑크하면서도 현대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시리즈라는게 충분히 이해되더라고요. 저도 한 점 걸어두고 싶을 정도였어요.
전형적인 산수화 스타일이지만 거친 마띠에르를 느낄 수 있는 <<북한산>>도 또 다른 현대적 한국화이면서도, 제 마음에 쏙 든 작품입니다. <<신몽유도원도>>가 다소 여성적이라면, 굉장히 남성적인 작품이라서 두 작품을 같이 전시하면 여러모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외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굉장히 눈이 즐거웠던 전시였습니다. 한국화에 애정이 깊은 컬렉터가 엄선하여 수집한 작품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남다른 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딱 한가지, 한국화임에도 불구하고 액자로 설치된 작품이 많았다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조명이 반사되는 탓에, 온전히 그림을 감상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유리없이 감상하고 싶네요.

2018/10/13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티격태격, 와우각상쟁 - 권오길 : 별점 3점

오랜 생물학 지도 경험이 있는 저자가 우리말 속담, 고사성어, 관용구에 서린 생물들에 대해 쉽게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입니다. 딸아이가 커가면서 속담에 관심을 많이 가지길래 저도 공부나 해 볼까 해서 구입하였는데, 의의로 굉장히 재미있더군요.

속담, 옛말 자체는 잘 알려져 있지만, 잘 몰랐던 등장 생물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청출어람"이 "쪽빛"에 관련된 이야기라는건 누구나 알 겁니다. 하지만 쪽이 "상떡잎식물 마디풀과의 한해살이 풀로 동양에서는 남, 서양에서는 인디고라고 부르는 염료 식물이다. 천연 염료인 쪽은 석회와 잿물을 써서 산화, 환원 과정을 거쳐야 비로서 쪽빛을 얻을 수 있다. 자체에 방충, 방부 기능이 있다..." 는건 잘 몰랐는데 이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식입니다. "결초보은"도 뜻은 누구나 알지만 이 풀은 우리나라에서도 자라는 "그령"이다, "부평초"는 우리가 흔히 보아온 "개구리밥"이다, "용 빼는 재주"의 용은 녹용을 뜻한다 등도 처음 알았네요.

몰랐던 속담이나 옛 말을 접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가물치 콧구멍이다"라는 속담처럼요. "코빼기도 안보인다"는 뜻입니다. 가물치 콧구멍은 실제로 잘 보이지 않는다네요. 아울러 우리의 민물고기 가물치가 흘러들어간 일본, 미국 등에서 가물치는 여전히 먹이사슬 최상단으로 다른 생물들을 압살하고 있다니 나름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제목에도 사용된 "와우각상쟁" 역시 처음 들은 말인데, 달팽이를 옛날에 그 느린 행동을 소에 빗대어 "와우"라고 불렀으며, 더듬이 넷이 서로 째려보고 다툰다고 생각하여 "와우각상쟁"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집안, 식구끼리 다투고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유래를 처음 알게 된 옛 말도 있습니다. "뚱딴지 같은 소리"에서 뚱딴지가 대표적입니다. 저는 처음 알았는데 '돼지감자'이며, 국화과 해바라기속에 드는 여러해살이 풀로 꽃, 줄기, 잎이 하나도 감자같지 않은데 감자꼴 덩이 뿌리가 달려있는 게 그 유래일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야말로 엉뚱함 그 자체인 셈이죠. "호박꽃" 이 왜 박색의 대명사인지에 대한 유래도 재미있습니다. 옛부터 곡식을 심기 힘든 곳곳에 호박을 심어서, 너무나 흔하게 꽃을 보게 된 탓이라네요. 호박꽃이 못나 보이지 않아 유래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속이 다 시원합니다. 그 외에도 "꿩 대신 닭" 은 평양 전통 요리 꿩만둣국을 만들 때 만두소를 꿩고기로 채워야 하지만 구하기 힘들어 닭고기로 채운 것이 유래, "밴댕이 소갈머리"는 밴댕이가 그물에 걸려 잡히면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파닥파닥 날뛰다가 금세 제 풀에 죽어버리는 습성이 유래입니다. 몸집에 비해 내장이 별로 없어서 해부학적으로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깨알같은 해석도 재미있었어요. 사마귀 이야기에서 사마귀의 다른 말인 '버마재비'의 유래는 '무서운 범 아저씨', 즉 '범 아재비'를 소리나는대로 적었다던가 "옹고집"은 아주 고집스러운 매에서 따온 "응應 고집"에서 생겨났다는 등의 어원 유래도 인상적이었고요.

먹을 수 있는 생물의 경우 요리법 등에 대해서도 짤막하게나마 소개해 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편에서 된장 담그기에 대해 아주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처럼요. 앞서 설명드린 밴댕이 이야기에서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뉴월 제철에는 밴댕이 회가 정말 맛있다는데,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요리, 맛에 대해 나름의 이론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가재는 게 편" 에서 똑같은 종이라도 민물보다 바다의 것이 더 맛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그러합니다. 바다 생물은 고농도의 짠물에 살기 때문에 몸에 단백질, 지방과 같은 양분을 많이 저장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라네요.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이 가득한데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는 교양 서적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추억이 담뿍 담긴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졌다는 점입니다. 쉽게 읽힌다는 장점은 있지만 교양, 과학 서적으로의 형식이 갖추어졌더라면 저같은 고연령 독자에게는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은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설명하는 식이라 제가 읽기는 조금 거북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두번째는 도판이 부실하다는 점입니다. 위에 소개해드린 생물들의 도판이 멋스러운 일러스트, 최소한 디테일한 사진으로라도 곁들여 졌더라면 정말 좋았을텐데 몇몇 '삽화' 가 전부입니다. 공들여 그린 그림이지만 아동용 도서 삽화 수준이라 생물에 대해 디테일하게 알려주는 도판이라고 보기는 힘들어요.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한 멋진 책입니다. 제. 딸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권해주고 싶을 정도이며, 후속권인 "소라는 까먹어도 한 바구니 안 까먹어도 한 바구니" 를 바로 구입할 정도로요. 그리고 저자의 글을 토대로 최불암 할아버지가 옛 말과 생물을 소개하는 탐방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지역에 가서 특정 옛말, 속담에 관련된 이것저것을 찾아보고 마지막에 해당 소재를 재료로 한 음식을 먹는 형식이라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소한 저는 보고 싶습니다.

2010/05/03

Q.E.D 35권 / CMB 13권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은 3점과 2점

Q.E.D 큐이디 35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운송회사에서 일어난 강도사건을 다룬 "두 용의자", 미스터리 동호회와 연극부가 함께 토마가 쓴 탐정물을 크리스마스에 공연한다는 "크리스마스 선물" 두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두 용의자"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범인이 사장의 동선을 다 파악하고 있던 만큼 아침에 조금만 일찍 나왔어도 훨씬 돈을 훔쳐가기가 쉬웠을텐데, 왜 어렵게 일을 벌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용의자가 저질렀던 과거의 다른 사건 이야기는 쓸모없는 단순한 사족일 뿐이었고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추리의 논리 중 하나인 '아침에 출근하여 사장을 확인한 이유'는 두명의 용의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어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크리스마스 선물"은 학교가 무대인 Q.E.D의 전형적인 일상계 작품입니다. 에나리 "퀸"을 비롯한 미스터리 동호회 캐릭터들의 오랫만의 등장으로 등장인물도 풍성하고, 토마가 쓴 탐정물 "오각관 살인사건"과 연극을 방해하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겹쳐서 진행되는 전개도 재미있었습니다. Q.E.D의 학교무대 일상계 추리물은 항상 기본 이상은 해 준다는 것이 "증명종료" 되었달까요. 추리적으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오각관 살인사건"의 핵심 트릭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유치했지만(심지어 토마가 썼다고 보기에는!) 연극이라는 설정과 작품에 딱 어울린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두 작품 합쳐서 평점은 2.75점... 이지만 3점으로 하죠. 두 번째 이야기가 아주 좋았기에 다음 권이 기대되니까요.

CMB 박물관 사건목록 13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무려 4편이나 되는 이야기가 실려있는 13권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여름 풀"은 공터에서 가족과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노인이 뭘 했는지를 공터의 식물들로 추리해내는 이야기. 식물들의 생태와 이른바 린네의 "꽃 시계"라는 것을 알려주는 박물학적 정보 전달 측면에서는 괜찮았습니다.그러나 결론 없는 추정에 불과한 신라의 추리, 그리고 사건성이 전무한 전개는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안개 산장"은 여름 학교에서 조난당한 신라 일행이 잠깐 머물게 된 산장에서 과거의 인기극단 O-ZAP의 리더 츠키야마의 목졸려 죽은 시체와 만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경찰이 도착하면 어차피 모두 밝혀질 이야기를 억지로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로 만든 느낌이 강했습니다. 결말도 심심했고요. 별점은 역시나 2점.

세 번째 작품 "아사도"는 학교 축제에서 아르헨티나 소고기 요리 "아사도"를 내놓기로 한 신라 일행이 축제의 말썽꾼들을 퇴치(?)하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일상계 작품인데, 핵심 이야기의 사건성이 약해서 그냥 학원물에 가깝습니다. "아사도"의 행방에 대한 잠깐의 추리가 더 나아보일 정도였으니까요. "아사도"라는 요리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 정도가 수확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 작품 "오르골"은 친숙한 고정 캐릭터인 마우의 등장도 반가왔고, 오르골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박물학적 정보 전달 역할에 더 없이 충실했으니까요. 하지만 오르골에 관련된 오래된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결론이 단지 "오해"로 와전된 것에 불과했다는 건 추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오르골 이야기는 확실히 재미있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총점 평균은 2점입니다. 풍성하긴 했지만 실속은 별로 없었네요. 작가가 Q.E.D 쪽에만 집중해 주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밀도가 약한데, 후속권에서의 분발을 기대해봅니다.

2023/07/08

마션 - 앤디 위어 / 박아람 : 별점 3점

마션 - 8점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지구로부터 225,000,000km 떨어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조난을 당한 남성, 마크 와트니는 화성 탐사 계획에 참여한 식물학자로 1,000여 일 동안 아레스3 탐사선을 타고 무사히 화성에 도착한다. 예정된 탐사를 수행하던 엿새째, 예기치 못한 모래 폭풍에 휩쓸린 와트니와 일행들 사이에 교신이 끊겨버린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동료들은 두려움 속에 귀환하고, 모래 언덕에서 홀로 깨어난 그는 감자 몇 알과 함께 다음 탐사선이 올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이보다 더 최악의 생존기가 있을까? 하지만 이 똑똑한 과학자는 화성에 지구 작물을 심고, 물을 만들었으며 산소와 이산화탄소로 경작을 해낸다. 한편 나사 영상 담당 직원은 마크 와트니의 시체가 보일 줄 알았던 영상 기록을 통해 깨끗이 치워진 막사 근처에서 마침내 그의 생존을 확인한다. (알라딘 책소개에서 인용)

화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의 눈물나는 과학적인 생존기. 출간되어 이미 시장을 휩쓴지 오래지만, 이번에 유럽으로 향하는 장거리 비행용으로 좀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인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비교해 본다면, 정 반대, 대척점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화성에 고립된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전 지구가 힘을 합쳐 노력하는 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 한 명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 작품이 훨씬 낫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페트로바선, 아스트로파지라던가 비교적 손쉽게 외계인과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는 등의 비현실적인 설징이 바탕이 된 반면, 이 작품은 상식 선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위기가 찾아오는 극적인 전개도 이 작품이 우위에 있고요. 무엇보다도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라는 첫 문장부터 독자를 강하게 사로잡아요. 이어지는 화성에 홀로 남은 마크 와트니의 생존을 위한 분투도 엄청 흥미롭고요. <<로빈슨 크루소>> 등과 다름없는 순수한 모험물인데, 고전적인 생존 모험물과는 다르게 치밀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론의 전문성이 높아서 거의 하드 SF에 가까울 정도인데, 이를 이렇게 재미나게 그려내는건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됩니다.
또 마크 와트니 시점과 NASA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시점을 번갈아 가며 전개해 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느 한 쪽은 모르지만 다른 한 쪽은 알고 있는 위기 상황 - 예를 들어 NASA에서 관측한 모래 폭풍 - 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어 줄 뿐 아니라, 마크라는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마지막 마크 구조 순간의 감동이 극대화 되기 때문입니다.
유머 넘치는 마크 위트니 캐릭터도 아주 좋습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조차 유머로 대처하는 강한 멘탈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어요. 암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갖추고 있는 여러가지 지식과 기술도 적절했습니다.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로 '식물을 갖고 노는 전담 수리공'이라고 언급되는데, 덕분에 생존에 핵심이었던 화성 토양에서 감자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거든요. 각종 장비 수리 및 개조를 하는 모습, 심지어 '육분의'까지 자체 제작하여 화성에서 이동할 때 위치를 측정까지 하는걸 보면 단순한 공학자 수준은 아닌거 같아요. 하긴, NASA의 우주 비행사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하지만 구조 이후의 후일담이 없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마크 와트니의 구조 이후의 모습을 그려주었더라면 아주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발표 당시의 인기가 수긍이 가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할게 없어서 동료 우주 비행사 짐을 뒤져 크리스티의 전자책을 읽어본다는 디테일이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무척 반가왔습니다. <<백주의 악마>> 속 범인을 아예, 터무니없이 잘못 짚기는 했습니다만.

2023/05/27

당신의 과녁 - 고태호 : 별점 2점

당신의 과녁 5 - 4점
고태호 지음/3rdpost(써드포스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스무살 청년 최엽은 연쇄 살인범 석규남의 함정에 빠져 누명을 쓴 뒤,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다행히 석규남이 노환으로 죽고, 남은 가족들이 발견한 증거를 제출한 덕분에 17년 후 풀려났다. 
그러나 17년 만에 돌아온 세상은 지옥과 같았다. 연인은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가족은 생업을 잃고 갖은 욕을 먹었으며, 어머니는 무죄를 탄원하는 거리 시위를 하다가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였다. 이에 최엽은 연쇄 살인마의 손녀를 납치해 자기와 똑같이 17년간 감금하기로 결심했다.
죄책감으로 최엽의 협력자가 된 경찰과 당시 기자, 그리고 여동생과 절친 3인방은 최엽의 계획을 알고나서, 17년 감금할 시설 공사를 한다는 핑계로 최엽과 주말마다 어울렸다. 사회의 따뜻함, 가족의 온정 등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엽은 석규남의 손자 - 납치 대상의 남동생 - 으로부터 자기가 무죄라는걸 알고도 그 가족들이 증거 제출을 10년이나 미루었다는걸 알고난 뒤, 납치를 결행했다. 그러나 납치 대상이 여성 연쇄 납치범 일당에 납치당하는걸 목격한 최엽과 일행들은 납치범들을 뒤쫓아 결국 그들을 체포하고 납치 대상을 구해냈다....


간략한 줄거리 소개만 보고 혹해서 보게 된 웹툰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최엽의 심리 묘사입니다. 뎃셍력이 별로라 인물 형태가 계속 깨지며, 모든 묘사에서의 디테일이 부족해서 작화는 등 좋은 편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미묘한 심리 묘사는 놀라울정도로 탁월했습니다. 최엽이 분노하는 장면은 묘사의 달인 윤태호의 <<야후>>를 보는 듯한 섬찟함마저 느껴졌으니까요.
만화의 컷 구성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도 돋보입니다. 엣 연인을 다시 만나 각자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에게 아이가 있다는게 마지막 컷에서 드러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기대했던 복수극으로는 뜨뜻미지근한 탓입니다. 최엽의 복수 외길 전개가 아니라, 최엽이 친구들을 만나 다시 흉금을 터 놓게 되는 과정처럼 주변 인물들과 관계 복원을 이루는 출소자의 사회 적응기, 주변 인물들과 여러가지 즐거운 추억을 쌓는 일종의 일상 시트콤, 거기에 연쇄 부녀자 납치범들과 대결하는 액션 추적극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런 곁가지 이야기들이 비중만 놓고 보면 복수 자체보다 더 커요.
게다가 복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납치하려던 여자를 도리어 구해주게 된 뒤, 최엽이 복수를 포기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더 큰 악을 만나서 그들을 물리치고나니 모든게 허탈해졌다는 건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더 이상 위험에 빠트릴 수 없었던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이 과정에서 석규남 가족의 진심어린 사죄도 없고요.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한 뒤 식물인간이 되었던 어머니가 깨어난다는 말도 안되는 해피엔딩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너무 뜬금없었어요. 최엽이 겪은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이 정도는 줘야지!라는 작가의 의도일까요? 이런 애매한 해피엔딩보다는 차라리 화끈한 복수가 더 맞는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최엽 캐릭터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0cn가 넘는 거구의 근육질로 묘사되는데, 딱히 대단한 전투력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두뇌가 비상한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모은 것도 아니라서 강력 범죄를 계획하는 인물로의 설득력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맨몸 운동을 조금 한 정도로 세상과 맞서 싸우기는 어렵지요. 경찰과 기자라는 조력자, 그리고 죄책감을 느낀 검사의 유산 - 납치범을 가둘 일종의 별장 - 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흥미진진한 전개를 위해서는 최엽이라는 인물에게도 보다 설득력을 부여했어야 했습니다.
납치 계획도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만약 납치에 성공했었더라도 체포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납치가 핵심인 범죄물이 아무리 아니더라도,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기대했던 복수극이나 범죄 스릴러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더 글로리>> 류의 화끈한 복수극을 기대하고 보신다면 실망하실겁니다.

2021/09/18

재미있는 식물 산책 도감 - 하나후쿠 코자루 / 이태용 : 별점 1.5점

재미있는 식물 산책 도감 - 4점
하나후쿠 코자루 지음, 이태용 옮김/성안북스

'산책길에 만나는 풀꽃과 나무의 재미있고 비밀스런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계절마다 길에서 흔히 보는 꽃과 나무들 100종을 간단한 만화 한 페이지와 사진과 짤막한 소갯글 한 페이지로 알려주는 책.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만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구입했습니다. 도감류는 원래 좋아했고, 만화도 재미있어 보였으니까요.

일본의 들꽃이지만 민들래, 냉이, 강아지풀, 싸리, 억새, 칡 및 대부분의 나무들은 우리 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가 남편과 꽃가게를 하는 프로 원예가인 덕분에 전해주는 괜찮은 정보도 제법 많고, '석산'은 교배로는 번식을 못 해서 모두 같은 유전자를 지녔다던가, 마타리 뿌리에서 장 썩은 냄새가 나고, 때죽나무의 덜 익은 열매에는 에고사포닌이라는 유독 성분이 있다는 등의 내용은 흥미로왔었고요. 우리나라에는 흔치 않지만,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친숙해진 녹나무 소개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부분은 극소수일 뿐입니다. 우선 도감 측면에서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이 큽니다. '도감' 이라면 모름지기 그림으로 해당 주제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어야 할 텐데, 만화로 그려낸 그림은 도감으로 보기에는 부실했고,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은 절반 정도는 설명하는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도감'이라는 명칭을 붙인건 사기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깊이있는 정보를 알기도 불가능합니다. 사진을 빼면 반 페이지 정도에 불과한 분량으로 깊이있는 설명을 하는건 애시당초 무리니까요. 그나마의 설명글도 인터넷 사전 등에 있는 정보를 반복하는 내용 외 특별한 저자만의 정보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화도 영 별로에요. 꽃과 나무에 관련된 일상툰같은 이야기가 많았더라면 재미라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도감과 만화 양 쪽 모두 점수를 줄 여지가 없습니다.

2010/04/25

폐허 - 스콧 스미스 / 남문희 : 별점 3점

폐허 - 6점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비채

멕시코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던 제프 등 4명의 미국인 커플은 그곳에서 만난 독일인 마티아스와 그리스인 청년들과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마티아스가 유적 발굴팀을 따라간 동생 헨리히가 있다는 발굴현장으로 떠날때 즉흥적으로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도착한 유적지에 발을 디뎌놓는 순간 무장한 마야인 원주민들에 의해 포위되고 결국 인적없고 텐트 등만 놓여진 언덕위 공터에 고립되게 되는데...

"심플 플랜"으로 데뷰하여 초대박작가가 된 스콧 스미스가 13년만에 발표한 장편. 이미 북미지역에서는 대박을 이어간 작품이죠. (부럽...) 바로 전날 읽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와 비슷한 두께인 530여페이지의 책인데 이 책은 "잘린 머리..."와는 다르게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정말이지 손에서 떼기 힘든 재미가 넘치거든요.
사실 설정은 굉장히 뻔합니다. 특정 장소에 고립된 청춘남녀가 생명을 위협하는 크리쳐에 맞서 싸운다는 클로즈드 서클 설정의 작품은 널리고도 널렸죠. 개인적으로는 호수 위 뗏목위에서 기름막같은 아메바때문에 고립되는 대학생들이 등장하는 스티븐 킹의 단편 "뗏목/The Raft"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생명을 위협하는 이형 (異形) 괴물이 산성 식인 식물이라는 것이 일단 독특하고, 여행자들이 유적에 고립되는 방법과 이유도 비록 원주민들과 말이 통하지 않기는 하지만 분위기와 상황 묘사만으로도 나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충분히 차별화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스티븐 킹의 작품은 짤막한 단편이기에 위험상황과 괴물의 공격이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것에 반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상황묘사, 식인 덩굴의 업그레이드되는 공격방식 - 1. 살며시 접근 2.직접 공격 3.말과 향기로 심리공격 4.주인공들을 조정하여 공격 등 - 을 단계별로 자세하게 펼쳐놓아서 읽어나갈수록 업그레이드 되는 공포가 잘 살아있는 것도 이 작품만의 매력이겠죠.
아울러 긴 분량답게 캐릭터도 확실하게 형성해 놓은 것도 마음에 들더군요. 두뇌파와 행동파가 적절히 나뉘고 여자들도 나름의 생각들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등 이런류의 공포물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순진하고 멍청한 금발미녀와 덩치만 좋은 근육바보 미국 대학생 캐릭터는 아니니까요. 무엇보다도 말도 통하지 않는 그리스 청년 파블로를 주요 피해자로 내세운게 대박이에요. 말이 통하지 않는 극한의 상황 때문에 허리가 부러지고 다리가 절단되는 처절한 상황이 더 설득력있게 와 닿거든요.
그리고 역시나 뻔하긴 하지만 결말도 마음에 들었어요. 주인공들의 패배야 예상했지만 어떠한 방식인지가 궁금했는데 기대치만큼은 뽑아내주니까요. 젊은이들의 실수가 반복된다는 부분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읽는 중간에는 워낙 몰입해서 단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다 읽고 리뷰를 적으려 하니 몇가지 떠오르긴 합니다. 일단 식인 덩굴의 지능에 대한 묘사가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싶네요. 두뇌가 있고 약간의 소리를 흉내낸다는 것 정도가 좋았을텐데 식물이 "말"을 한다는 설정부터는 솔직히 오버로 보였거든요.
그리고 긴 고립의 기간동안 생명을 "유지"하려고만 하지 살아남기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의아한 부분이죠. 예를 들어 "소금"으로 원주민들이 식인 덩굴의 번식을 막는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소금뿌려진 흙을 가져오는 등의 방식으로 식인 덩굴의 위협을 뿌리치려는 시도는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마찬가지로 최후의 수단이긴 하지만 원주민들 사이로 탈주를 하기 위해 방패와 같은 방어막은 갖추려는 시도도 해봄직 했을텐데 말이죠.
아울러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양장본으로 출간한 출판사의 만행(?) 탓에 출퇴근할때 들고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운동이었어요...

그래도 단점이야 어떻게 되든 확실한건 처음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만드는, 그야말로 킬링타임용으로는 충분한 웰메이드 호러 스릴러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여름날 서늘한 기분을 느끼기에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이 책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잘 모르는 곳에 함부로 여행을 떠나지 맙시다!"

덧붙이자면,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루인즈"라는 영화도 있는 모양인데 원작 그대로만 찍어도 본전치기는 할 것 같은데 어떨지 궁금하네요. 평은 별로 좋지는 않은 듯 싶고 예고편을 살짝 봤더니 식인덩굴 움직임이 강조되어 뭔가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 같습니다만...

2026/07/11

악의 등교 - 원작: 산천, 각색: 팀 더 제이, 작화: 시원

김현성은 학폭 피해로 식물인간이 된 뒤, 정신만 남은 채 10년을 버티며 복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사건 발생 직전 시기로 회귀한 뒤, 10년을 준비한 계획에 따른 복수를 시작하는데...

흔해빠진 회귀 복수극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몇 개의 확실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김현성이 10년 동안 복수를 시뮬레이션 해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회귀 후 복수의 과정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집니다. 여기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뉴스와 사회 변화를 기억했다는 설정도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산 지역 건설 회사 후계자와 미래의 대권 후보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배경을 만드는 과정은 제법 치밀합니다. 

두 번째는 복수 자체입니다. 김현성은 가해자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1회성 응징이 아니라 아예 인생 자체를 무너뜨리거든요. 기껏 회귀했는데 복수는 시시했던 다른 회귀 복수물들에 비하면 훨씬 화끈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세 번째는 '대산'이라는 가공의 소도시가 무대라는 점입니다. 워낙 작은 도시라서 중앙의 통제가 잘 먹히지 않고, 지역 최고의 건설 회사가 도시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복수에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괜찮은 재미를 선사해 주는데, 아쉽게도 '골든 서클'과의 대결이 펼쳐지는 후반부는 영 별로입니다. 정재계 최상위층이 속해있는 “골든 서클”은 고등학생이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탓입니다. 그리고 김현성이 10년 동안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골든 서클에 대한건 과거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야기처럼 잘 풀렸으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이는 작품만의 좋았던 차별화 포인트를 내다버린 어리석은 전개입니다.

골든 서클이라는 조직의 설정도 황당합니다. 하는거라곤 학폭을 유도해 타겟의 학교 생활을 지옥으로 만드는 정도입니다. 이걸 국내 최상위 그룹 후계자가 이끈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사건의 증명 역시 학폭 주도자들의 현금 흐름만 추적해도 충분했을테고요. 

싸움 실력은 UFC 선수급이고, 공부는 수능 만점 수준인 김현성의 능력에 대한 설정, 명진건설의 고창범처럼 김현성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인물 설정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등, 그 외의 설정들도 문제는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수 장면만 놓고 보면 꽤 시원하지만, “골든 서클” 사건으로 키우지 말고 대산시 안에서 복수극을 마무리했다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6/09/18

교토 살인 여행 - 야마무라 미사: 별점 2점

야마무라 미사의 교토 부경 검시관 에나쓰 후유코 시리즈 첫 번째 단편집입니다. 

이야기의 완성도는 대체로 별로고, 주인공 에나쓰 후유코도 이런 류의 작품 속 등장인물의 전형을 전혀 탈피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절반 정도의 작품은 추리적으로 괜찮습니다. 나름대로 사용된 트릭도 나쁘지 않고, 현장에서 특유의 관찰력으로 '무언가 이상함'을 현장에서 느낀 후유카가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이 잘 짜여져 있는 덕분이에요.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상화도 여러 번 되었을 정도의 당대 인기작 중 하나로 읽어볼만은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괜찮았었던 작품에 대한 짤막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녀는 밀실에서 죽었다"

여중생이 밀실에서 살해당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열쇠는 책상 서랍 안에 들어 있었고요. 에어콘 배관을 빼기 위한 작은 구멍은 뚫려 있었지만, 너무 작아서 열쇠를 던져 서랍에 넣는건 무리로 보였지요. 하지만 범인은 속이 빈 빨래 장대를 구멍으로 집어 넣어 끝을 서랍에 위치시킨 뒤, 장대 안으로 열쇠를 넣어 떨어트렸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명확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면, 구멍이 트릭에 사용된게 분명해서 기발한 트릭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Nervous Breakdown" 중 입학 에피소드처럼요.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열쇠고리를 고정시킨 뒤, 고리에 연결한 끈으로 열쇠를 미끄러 떨어트린 뒤 고리가 열로 다시 원형 복구하면 끈을 회수하는 트릭이었습니다. 

오히려 트릭보다는 후유코의 관찰력을 선보이는 장면이 괜찮습니다. 빨래가 널린 방향이 사건 직후에는 반대라는걸 눈치채고 빨래 장대를 사용했다는걸 알아채는 장면입니다. 키가 큰 범인만이 빨래를 마당 쪽에서 널 수 있었으니까요.

"위장된 살인 현장"

전작처럼 후유코의 관찰력이 빚납니다. 식물의 성장 방향이 ‘최근까지 동쪽에서 빛이 들어왔다’는 흔적을 보존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범인이 사건 뒤 방의 구조를 바꿔 원래의 출입구나 사건 현장의 상태를 은폐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일종의 ‘과거의 방 배치를 기록한 증거’ 역할을 한 셈이지요.

"사라진 배우자"

기차에 치인듯한 여성 사체가 발견된 사건이 등장합니다. 검시 결과 살해당했다는게 밝혀지고, 그 여성이 이웃집 남편과 불륜 도피 중이었다는게 밝혀지면서 그녀의 남편, 이웃집 부인, 불륜 대상인 남성 세 명이 용의자로 떠오릅니다. 

범인인 이웃집 부인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빠칭코를 했고, 딴 구슬로 경품을 바꿨다는 증언의 오류를 찾아내 알리바이를 깨트리는 과정도 좋지만, 범인을 밝혀내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후유코의 관찰력, 눈썰미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열차에 끌려간 사람의 가방이 열리면서 내용물이 선로를 따라 흘러나온 것처럼 화장품이 군데군데 떨어졌는데, 처음에는 화장수, 그다음에는 파운데이션, 볼연지, 콤팩트, 아이라이너, 립스틱…… 이런 식으로 화장할 때의 순서대로 놓여 있었거든요. 이를 통해 후유코는 범인이 여자라는걸 직감합니다.

"목 없는 시체"

토막나서 목이 없는 사체가 발견되었고, 신분증 등의 유류품으로 피해자가 특정되었지만 알고보니 병원에서 빼돌린 사체 부위로 죽은 척 위장했다는 진상이 기발합니다. 과학 수사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고, 아무리 심각한 사고가 있었다 하더라도 사체 수습과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던 당시 시대 상황에서나 가능했던 트릭이지만요.

2025/11/02

일상 감각 연구소 - 찰스 스펜스 / 우아영 : 별점 3점

우리의 오감이 어떻게 일상에 영향을 주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과학, 인문학 서적입니다. 감각은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행동, 관계, 심지어 생산성과 건강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일상의 감각들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해킹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가지 팁들이 가득한데, 특히 실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팁들이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귀마개를 '오른쪽 귀'에 꽂아야 한다는 연구처럼요. 이는 수면 중 좌뇌가 경계 태세를 유지한다는 뇌의 편측성에 근거한 것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꽤 놀라웠습니다. 잠들기 전 발을 따뜻하게 해주는게 수면을 유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도 기억에 남고요. 자기 전 따뜻한 물로 샤워하거나, 발 밑에 뜨거운 물병을 두는 것만으로도 수면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진다고 하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면 시도해 볼 만 해 보이네요.

또 하나 흥미로웠던건, 운동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탄수화물 음료 헹구기’ 실험이었습니다. 단 몇 초간 입 안에서 단 음료를 헹구는 것만으로도 뇌가 에너지 유입을 예측하며 운동 성과가 향상된다는데, 우리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감각에 영향을 받는 존재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향기 하나, 소리 하나, 피부에 닿는 감촉 하나까지도 우리의 뇌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반응을 달리한다는걸 이만큼 잘 드러내는 실험도 없지 않을까 싶고요.

이렇게 과학적 실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고, 실용적인 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례가 가득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목차가 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은 들고, 도판이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기획, 마케팅 전문가들이 꼭 참고해야 할 도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주제별로 아래와 같이 간략히 정리하여 소개드립니다. 


공간과 감각

- 집의 냄새는 그 공간의 인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며, 바닐라나 커피 향은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반면, 반려동물이나 담배 냄새는 집값을 낮출 수 있다.
- 인간은 진화적으로 개방된 조망과 은신처가 있는 공간을 선호하며, 이는 실내 식물, 곡선 구조, 원형 테이블 등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이유로 설명된다.
- 원형 테이블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테이블보다 협동적 분위기를 만들고, 음악이 흐르면 사람들 간의 거리도 좁아진다.

자연 노출의 효과

- 잠깐의 자연 노출만으로도 기분과 건강, 집중력이 향상되며, 이는 용량 의존적이다.
- 숲 가까이 사는 사람은 실제로 뇌 구조에서 회백질 밀도가 높아지는 변화가 나타났고, 병원 창밖에 자연 경관이 보이는 경우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
- 자연의 시각 자극 외에도 자연 소리나 냄새 등 감각 자극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면과 환경

- 최적의 수면 환경은 조용하고 어둡고 서늘해야 하며, 온도는 16~24도 사이가 이상적이다.
- 잠자기 전 따뜻한 목욕은 심부 체온을 낮추고 수면 유도를 돕는다. 이때 이상적인 수온은 40~42.5도이다.
- 귀마개는 오른쪽 귀에 착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이는 좌뇌가 경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수면 중에는 간단한 학습이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으며, 좋은 수면은 창의성 향상에도 기여한다.
- 낯선 공간에서의 첫날 밤 효과는 진화적 경계 반응으로, 익숙한 향기나 소리로 완화할 수 있다.

소리와 경계 반응

- 운전자의 뒤에서 들리는 경고음이 가장 효과적인 이유는 뇌가 머리 뒤 공간을 감지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 자동차 문 소리, 대시보드 두드림, 방향 지시등 소리까지도 소비자의 감정과 신뢰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무실과 소음

- 개방형 사무실은 생산성과 만족도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으며, 소음이 특히 문제가 된다.
- 갈색 소음은 자연 소리보다 실제로 집중력 향상에 더 효과적이었으며, 자연 소리는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운동과 감각 피드백

- 빠른 템포의 음악은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며, 자신이 음악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면 그 효과가 더 커진다.
- 에너지 음료를 마시지 않고 입 안에서 헹구는 것만으로도 뇌는 에너지를 예측하고 운동 성과를 높인다.

매력과 진화심리

- 얼굴의 대칭성, 미소, 시선, 목소리, 피부색 변화 등은 모두 진화적 적합성 신호로 작용하며,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 남성은 여성의 엉덩이 움직임에, 여성은 남성의 상체 움직임(특히 오른쪽 무릎)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춤 관련 연구도 있다.
- 빨간색 옷이나 하이힐은 요추 곡률을 강조하며, 남성에게 성적으로 더 매력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

향기와 매력, 마케팅

- 링스 데오도란트처럼 쾌적한 향기는 사진 속 얼굴의 인상까지 바꿀 수 있으며, 뇌의 보상 중추가 활성화된다.
- 다카사고와의 협업 연구에서는 특정 향기가 여성의 나이를 더 젊게 보이게 만든다는 결과도 있다.
- 향기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약한 농도에서 더 효과적이며, 사람의 판단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소비 행동과 감각

- 레스토랑에서는 느린 음악이 손님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소비 금액을 증가시키며, 매장 온도가 낮을수록 제품을 더 고급스럽게 느낀다.
- 소비자가 듣는 음악의 국가 분위기에 따라 와인 구매 선택이 달라지는 등의 사례도 있으며, 감각 자극은 소비 결정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간단한 센스 해킹 방법

- 좋은 냄새가 나는 수건이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 샤워를 좋아한다면 냉수샤워를 해보자. 병가 일수를 줄일 수 있다.
- 주름을 일시적으로 제거하는 페이스 크림의 주요 기능은 향이다.
- 자연의 소리는 평온한 느낌을 주며, 새소리가 많이 들릴수록 더 효과적이다.
- 옆집이 시끄럽다면 같은 소리를 들으면 더 잘 잘 수 있다.
- 가족용 자동차는 스포츠 모드에서 빨간 조명과 엔진음을 키워 성능 향상 느낌을 준다.
- 실내 식물은 사무실 공기 오염을 줄이고, 깨끗한 공기는 업무 생산성을 높인다.
- 여성은 사무실에서 더 추위를 많이 타므로 온도를 높이면 생산성이 증가한다.
- 스트레스를 유발한 회의 뒤에는 다른 냄새를 맡아 정신 상태를 전환해보자.
- 개방형 사무실에서는 하루 평균 86분이 방해받는다. 배경음악을 들으면 생산성이 오른다.
- 패스트푸드점에서 빵 굽는 냄새는 고객의 구매 가능성을 높인다.
- 느린 음악이 흐를 때 쇼핑객은 돈을 더 많이 쓴다.
- 운동할 때 음악 속도를 10퍼센트 빠르게 하면 운동 효과와 즐거움이 향상된다.
- 테니스 경기에서 포효는 실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 관중의 소음은 심판의 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운동 중 웃으면 달리기 효율이 향상된다.
- 운동 중 7~8분마다 탄수화물 맛만 봐도 운동 능력이 증가한다.
- 스포츠 팀의 장비 색상을 검은색으로 하면 승률이 높아질 수 있다.
- 데이트 중엔 스릴러 영화를 보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사람의 나이는 냄새로 알 수 있지만, 성별은 알 수 없다.

2022/01/14

디 아더 피플 - C.J. 튜더 / 이은선 : 별점 2점

디 아더 피플 - 4점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이브는 혼잡한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다가 앞 차량에 자기 딸 이지가 납치되어 타고 있는 걸 목격했다. 열띤 추격 끝에 차량을 놓친 게이브는 경찰로부터 아내와 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년 뒤, 장인 해리가 시신을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딸이 죽지 않았다고 믿던 게이브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전단지를 돌리는 삶을 살던 중, 친구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이지가 납치될 때 탔던 차를 기어코 찾아냈다. 차에서 가져온 노트로 응징받아야 할 사람을 대신 응징해 주는 다크웹 '디 아더 피플'의 실체도 알아냈지만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단서를 모두 빼앗겼다. 

한편, 게이브의 단골 휴게소에서 일하던 케이티는 앨리스라는 소녀 전화를 받았다. 케이티 언니 프랜의 딸이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앨리스를 보살피면서 그녀가 바로 이지였다는걸 깨달았다. 그러나 케이티 역시 습격을 받고, 겨우 탈출하는데....

이전 "초크맨"으로 접했던 영국 작가 C.J 튜더의 세 번째 장편입니다. 스티븐 킹 작품의 저열한 카피에 불과했던 "초크맨"에 큰 실망을 했던 터라 더 이상 읽을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리뷰들로 자주 찾는 블로그인 '추리문학쪼개기'에서 이 작품에 대해 호평한 리뷰를 읽고 관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네요.

전혀 모르는 차에 내 딸이 타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도입부는 흥미롭습니다. 극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게이브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 해리가 시체를 확인까지 했는데 이지가 과연 살아있는게 맞는지?라는 수수께끼도 거의 마지막까지 끌고 가면서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어 주고요. 디 아더 피플에 접속하기 위한 암호가 자동차에서 입수했던 성경책과 관련이 있었다던가, 장인 해리가 시신 확인을 하려는 게이브를 막기 위해 약을 썼다는 추리적인 장치들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따지고보면 딸의 납치를 목격한다는 것 부터가 작위적이에요. 우연히 살인 사건을 목격한 탓에 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작위적인걸로 치자면 첫 손가락에 꼽힐 만 합니다. 대체로 '모르는' 사람이 살해당했던 다른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게이브가 복수를 대행하는 디 아더 피플이 사건을 저질렀다는걸 알아낸 이후의 전개는 특히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게이브는 누가 살인을 의뢰했는지 바로 알아챘어야 했거든요. 그의 인생 통들어 이렇게 복수를 당할만한 사건은 어린 시절 음주 운전으로 이사벨라를 식물 인간으로 만들었던 사건뿐인데 이사벨라의 모친 샬럿은 이미 죽었으니, 남는건 오랫동안 이사벨라를 돌봤던 간호사 미리엄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샬럿으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게이브와 가족의 유산을 관리하게 되는 것도 미리엄이니 동기도 확실합니다. 매덕 경위가 이지가 살아있다는걸 납득한 순간, 이 사건을 꾸민게 누구인지 충분히 알려줄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 이 정도는 이후 경찰 수사로도 밝혀낼 수 있었을거에요. 

이렇게 중요한 이사벨라 사건, 그리고 이 사건 때문에 게이브가 거액을 물려받았다는걸 거의 마지막까지 드러내지 않는 전개는 추리물 애호가로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사건의 핵심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꽁꽁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알기 전까지 게이브의 아내가 살해당한 이유는 장인 해리 때문일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마침 해리는 저명한 의사이니, 의료 사고에 관계된 원한이 있을거라고요. 마찬가지로 프랜은 가족과 사이가 안 좋았으니, 아버지에게 성폭행같은걸 당해서 복수 의뢰를 했던거고 그 탓에 게이브 가족 살해를 거들다가 이지를 데리고 달아나게 된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리는 다 헛수고에 불과했어요. 재미 여부를 떠나 반칙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독자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는 탓입니다.

또 전개 도중 스티브가 게이브를 죽이지 않고 노트만 빼앗아 간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게이브는 습격했던 스티브의 얼굴을 봤는데 말이지요. 게이브가 다크웹 패스워드를 알고 있는 한 접속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구태여 힘을 써서 노트 따위를 훔쳐갈 이유는 없었어요. 차라리 패스워드를 바꾸는게 더 합리적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게이브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스티브가 케이티를 죽이려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게이브, 프랜, 케이티, 미리엄, 이지 등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는 전개도 좋다기보다는 혼란스러웠고, 중요 정보를 가리기 위한 꼼수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낯선 승객" 설정을 비공개 커뮤니티로 만든 것에 불과한 다크웹 '디 아더 피플' 설정도 어설픕니다. 친족이 아닌 아무나 디 아더 피플에 복수 의뢰를 할 수 있다? 뭐 그건 있을 수 있다 치죠. 그러나 복수 대상이 범행을 저지른 당사자였던 게이브가 아니라 가족이라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게이브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가 프렌과 이지를 죽이려다가 살해당한다는 것(같은 차를 몰고 있었던 것으로 증명됨)도 마찬가지입니다. 디 아더 피플은 다른 사람의 복수를 회원 누군가가 해 준다는게 기본 조건입니다. 정해진 킬러가 타겟을 해치우는게 아니라요. 그런데 게이브 가족 살인범도 그렇고, 나중에 게이브가 케이티를 스티브라는 동일 인물이 습격한다? 뭔가 잘못된 거지요. 설정 오류에요. 

디 아더 피플이 교도소 안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할 정도로 전능하다는 설정, 이 정도 조직이 신규 회원(?)을 알음알음 구두로 모집하는 설정 등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보다는 "원한 해결 사무소"나 "선악의 쓰레기"같은, 주어진 현실 내에서 맡은바 임무를 가하는 복수 대행업자가 나오는 만화가 더 현실적이라 생각됩니다. 

디 아더 피플에 대해 알고 있는 핵심 관계자 케이트와 게이브가 만났고, 케이트의 언니 프렌이 이지를 데리고 있었으며, 게이브를 돕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프랜의 의뢰로 죽은, 프랜 아버지를 과실치사로 죽게 만든 소년의 아버지였다는 인물 설정과 관계도 비현실적입니다.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은 억지가 지나쳤어요. 일단 그가 게이브에게 접근하여 프랜을 찾으려 했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이브 가족을 죽이는데 프랜이 협조했다는걸 알아낸 방법이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지를 납치했던 차를 찾아낸 방법 역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이지가 이사벨라와 영적 교감을 하다가, 마지막에 염동력(?)을 발휘해서 미리엄을 죽이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런 설정이 대체 왜 필요했던걸까요? 스티븐 킹의 빌 호지스 시리즈같은 싸이킥 스릴러를 생각한 듯 한데, 그만한 설득력도 없고 이야기에도 불필요했습니다. 이런 설정은 아예 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결말도 별로입니다. 게이브가 어린 소녀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죄를 지은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약 2년간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혼 위기였던 아내만 죽었을 뿐 딸은 무사히 돌아오고, 오히려 예쁘고 다정한 케이트와 함께 유산으로 물려받은 대 저택에서 행복한 미래를 살아갈 거라는건 개운하지가 않네요. 이 정도로 제대로 된 죗값을 치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가해자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류의 이야기인데,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읽히는 재미는 있지만 단점도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앞으로 이 작가 책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2/06/10

버드 박스 - 조시 맬러먼 / 이경아 : 별점 2점

버드 박스 - 4점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검은숲

4년 전, 갑자기 나타난 크리쳐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발광하여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자살했다. 생존을 위해 창문을 가리고 숨어 살던 임산부 멜로리는 언니 섀넌이 발광하여 자살해버린 뒤,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자들이 모여 사는 조지의 집으로 향했다. 조지는 죽었지만 리더 톰의 원만한 성품 덕분에 멜로리, 그리고 그 집에 있던 펠릭스, 줄스, 셰릴, 올림피아는 몇 개월 간 짧은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멜로리의 출산일에 그녀와 갓난 아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다. 비관주의자 돈이 다른 생존자 게리를 만난 뒤 세뇌되어, 집 창문을 가렸던 것들을 모두 치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4년 후 멜로리는 4살된 두 아이와 함께 거주지를 떠났다. 4년 전, 톰의 전화로 연결된 생존자 '릭'의 거처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험을 위해 그녀는 두 아이의 청각을 극도로 강화시키는 훈련을 해 왔다...

신예 작가의 SF 크리쳐물입니다. 

무언가를 본 뒤 발광한다는 소재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친 위험과 공포, 그리고 극복 방법을 실감나게 그려낸 묘사는 좋습니다. 폐쇄 공간에서 빚어지는 여러 긴장감도 잘 살아있고요. 단순히 '물을 뜨러 가는 행위', '배설물을 버리러 가는 행위'에서 긴장감을 빚어내는 솜씨에는 감탄했습니다. 

생존자들이 모여 사는 집은 수력 발전으로 전기가 공급되며, 마당에 우물이 있고 일단은 몇 개월 버틸만한 식량을 갖추었다는 식으로 생존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준 것, 그리고 "크리쳐를 보면 발광하기 때문에 집의 창문까지 모두 닫은 폐쇄 공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설정을 "다른 매체, 예를 들어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크리쳐를 보아도 발광한다.", "동물들도 크리쳐를 보면 발광한다."는 식으로 디테일을 보강한 것도 마음에 들어요. 비디오 카메라는 정말 생각도 못했었네요.

하지만 이외에는 볼 만한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소재부터가 너무 진부합니다. 기묘한 상황 탓에 사람들에게 재난이 닥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예를 들어 특정 현상을 바라본 사람들이 모두 실명한다는 설정은 "걷는 식물 트리피드"에 등장했었지요. 운 좋게 재난을 피한 생존자들이 최대한 조심하면서 살지만 위기가 닥친다는 전개 역시 크리쳐물 대부분에서 뻔하게 반복되어 왔던 것이고요. 좀비물 거의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잖아요? 

물론 보기만 해도 사람, 동물을 발광시키는 크리쳐의 특수한 능력만큼은 독특한 요소였고, 이를 작품 안에서 잘 부각시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쳐에 대해 어떤 과학적인 근거나 설명은 없이 주인공 멜로리의 시점에서의 경험만 나열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탓에 뒤로 가면 갈 수록 식상해지기만 할 뿐이니까요. 뭔가 살아남거나, 해결책은 없이 그냥 버티고 살아가는게 전부이니까요. 톰이 주도해서 활로를 모색하는 전개가 더 등장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개 몇 마리를 데려오는게 전부라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또 전개의 클라이막스를 차지하는 돈의 폭주에서, 게리가 크리쳐를 보았음에도 어떻게 멀쩡했는지 설명되지 않는건 정말 답답했습니다. 설명이 부족해도 정도껏 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멜로리와 올림피아가 임신했는데, 마침 그 둘이 출산할 때 돈이 폭주해서 모두가 죽는다는 작위적인 설정도 별로였고, 마지막에 멜로리가 안식을 찾게되는 피난처가 맹인 '릭'이 이끄는 맹인들 학교였다는 약간의 반전 역시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읽으면서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사느니 차라리 스스로 맹인이 되는게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별로 다르지 않은 엔딩이니까요. 의외성이 전무한 셈입니다. 나름대로 해피 엔딩이라는 점 만큼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반전 요소를 갖추려면 개인적으로는 릭이 멜로리와 아이들 눈을 멀게 만든다는 결말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앞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걸 보게 해 주고 싶다는 바람과 대조되면서 더 큰 울림을 가져다 즐 수 있었겠지요. 솔직히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소소한 일상계 크리쳐물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진부한 소재를 뻔한 전개로 풀어냈고, 결말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감점합니다.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화한 모양인데, 영화에 더 잘 어울릴 것 같기는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