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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6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 세스지 / 전선영 : 별점 2점

영화까지 발표되었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의 작가 세스지의 신작입니다.

전작은 여러 형식의 기록들을 이어붙인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괴이 현상의 실감을 높였는데, 이번에는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을 따릅니다. 때문에 형식은 유사하지만 별로 실감나지는 않았어요. 여러 기록들도 작중에서는 모두 심령 현상이 일어난 해당 장소와 관련된 괴담을 '날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괴이한 심령 현상들도 복수라고 볼 수 있는, 일종의 '윤회'라는 식으로 풀어가는데 깔끔한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등장인물들의 개별 서사도 이야기에 충분히 녹아들지 않고, 주어진 떡밥들 역시 모두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작가의 욕심이 지나쳐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섬찟한 부분도 있지만, 여러모로 전작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상세한 괴담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태 오두막

유튜버 이케다와 팬북을 출간을 진행 중이던 고바야시는 재생 횟수가 많았던 동영상에 그럴싸한 괴담을 날조해서 꾸며 넣기로 했다. 출판사가 혹하게 만들이 위해서였다. 첫 번째 대상은 '변태 오두막' 촬영 영상으로, 산 속의 이른바 '변태 오두막'은 누군가 도촬한 듯한 사진이 널려있는 기묘한 곳이었다.
날조에도 리얼리티가 필요하다는 고바야시의 주장으로, 이케다는 '변태 오두막'처럼 '인형'을 버린 폐가를 취재했던 유튜버와의 인터뷰를, 고바야시는 '변태 오두막' 속에서 발견된 사진에 대한 추가 취재를 진행하는데..

괴담 내용은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변태 오두막은 누군가를 저주하려는 사람들이 저주의 대상 사진을 집어 넣는 곳이었습니다. 유키에는 불륜 상대의 아내 료코가 이혼해 주지 않아서 그녀를 저주하려고 오두막에 사진을 집어 넣었고, 이후 료코는 자살했습니다. 자살 후 유키에의 딸 유카에게 료코가 윤회하여 빙의해 버렸기 때문이지요. 료코 사진이 '정화' 의식 때에는 부풀어 올라 있었다는 묘사는 확실히 섬찟했고요.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찾아낸 정보라고 설명되기 때문에, 현실감이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인터뷰,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드러내는건 전작과 비슷했지만 전작보다는 더 소설 느낌이 강했던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진상을 유키에의 독백으로 마무리한건 문제입니다. 유카가 마지막에 말한건 맥락 상 "용서 못해"일텐데, 이를 표현하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네요. 이 진상은 맥락적으로도 이상해요. 변태 오두막의 저주가 통해 료코가 죽었다면, 료코의 영혼 역시 저주로 죽는게 맞지 않을까요?

유키에의 독백말고 그냥 그녀가 딸을 방치하여 죽였고,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후일담 기사 정도로 마무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천국 병원

유령을 볼 수 있다는 괴담 작가 호조가 '천국 병원'에 대한 괴담을 찾아냈다. 폐암으로 연명 치료 중이던 할머니가 그만 편해지기를 바랬다는 한 소설가의 고교 시절 추억담으로, 이후 소설가는 자살했다...

앞부분 소설가의 회고는 괴담이라고 보기 어려운 담담한 이야기로 실망스럽지만, 뒤이은 청년들이 병원에서 벌인 담력 시험 체험기는 오싹합니다. 천국 병원의 막혀있던 병동에서 '괴이'를 마주쳤다가 쫓기는 과정의 서스펜스, 그리고 일행을 쫓던 머리가 커지던 괴이가 들고 있던 친구 휴대전화 번호로 아직도 전화가 걸려 온다는 후일담까지 완벽했던 덕분입니다.
마지막에 소설가의 회고를 틀어서 진상, 즉 소설가는 할머니가 미워했던 양녀였고, 소설가는 사신과 거래하여 할머니를 죽게 만들었다는 진상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울러 병원이 '제로 자기장'에 위치해서 괴현상이 많이 발생한다는 설명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합리적이거나 설득력이 높지는 않지만, 단순 괴담에 그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니까요.

그러나 소설가가 할머니를 저주로 죽게 만든게 그리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문제입니다. 할머니는 나쁜 사람으로 그려진 탓에, 그냥 보면 정의구현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소설가가 저주의 역풍을 맞은 듯한 현실은 별로 와 닿지 않네요.

어리석은 세 사람

등장인물들의 과거 - 이케다는 과거에 호감을 품었던 유코를 저주로 죽게 만들어서 유령을 쫓는 유튜버를 하게 되었다, 호조가 유령을 볼 수 있어서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하다가 교생을 자살하게 만들었다 등 -가 펼쳐집니다. 책 전체로 보면 징검다리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뒤에 이 과거가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냥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윤회 러브 호텔

러브 호텔에 그려진 괴상한 벽화와 여러 소문에 대해 논의하는게 대부분인데, 대체로 굉장히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마무리하는게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스토커 피해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죽은 여성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지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 여성은 순수한 피해자에 불과한데, 스스로 스토커 게이이치에게 뭔가 잘못했다고 여기는 묘사는 불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뒤로 가면 갈 수록 이야기가 이상해지는 느낌이에요.

불확실한 괴이

앞서 날조를 위해 만들었던 이야기들 모두 고바야시의 음모였다는게 드러납니다. 유령을 믿지 않는 이케다가 유령에 홀리게 만드는게 목적이었지요. 이케다에게 뭔가 괴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책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세사람"처럼 각자의 사정과 과거가 펼쳐지는 징검다리 이야기입니다.

한낱 패밀리 레스토랑

이케다에게 달력 일정에 유코의 기일이 기입되었고, 기분 나쁜 장난 전화가 걸려왔고, 움직일리 없는 유튜브 동영상 속에 괴이한 여성의 움직임이 나타났고, 자주 보던 버튜버의 화면이 기이하게 바뀌는 등의 괴이 현상이 일어났다...

이케다의 괴이 체험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앞서 선택되었던 괴담들 모두가 일종의 '윤회'를 다룬, 괴이가 다시 태어난다는 괴담이었다는게 설명되기 때문에, 책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부분이지요.

한낱 옛날 이야기

세 명 모두 누군가를 죽였었다, 그리고 죽였던 여자들이 유령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유령에 홀렸던 이케다가 신관인 호조 아버지의 도움으로 벗어나고, 책은 출간이 결정된다는 결말입니다. 앞서 그들이 각자 보았던 괴이들은 각자가 죽였던 피해자들이었다는게 밝혀지고요.

윤회에 관련된 로쿠부 살해 괴담을 이방인의 피가 필요했다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만큼은 참신했는데 회수가 안 된 떡밥이 너무 많고 - 이케다는 유코를 죽이지 않았는데 무엇에 홀린건가? 호조의 교생 선생은 어떻게 죽었는가? 윤회는 모든 저주의 대상에 해당하는가? 등 -, 등장인물들의 일이 모두 잘 풀린다는 결말은 허무합니다. 최소한 고바야시는 이케다를 괴이에 홀리게 만들려는 악의가 있었던게 분명하니, 이 작자만큼은 벌을 받으면 했는데 말이지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2017/07/08

좀비 - 조이스 캐롤 오츠 / 공경희 : 별점 2.5점

좀비 - 6점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포레

Q_는 얼마전 저지른 흑인 소년 성추행 건으로 정기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유명 교수의 아들로, 변태적인 싸이코로 진화한 뒤 '전두엽 절제 수술'로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일종의 성노예 좀비를 만들 꿈을 꾸는데...

명성이 자자했던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입니다. 스티븐 킹이었나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가 현대를 대표하는 공포, 호러 소설 중 한편으로 극찬했었기에 평소 관심을 두던 차에,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본 결과는 제 생각과는 굉장히 달라서 의외네요. 실제로 좀비가 등장하는 크리처 호러를 생각했는데 작품은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같은, 변태 싸이코 살인마범죄극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재미가 없던건 아닙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에서 봄직한, 무의미한 범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차이점도 있고요. 예를 들어, "내 안의 살인마"의 주인공 루 포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즉 그냥 '죽이고 싶으면' 죽입니다. 즉, 무계획적이고 돌직구같은 범행이지요. 그러나 Q_의 범죄는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수행한다는 점이 독특했어요. 

들은 바 대로 묘사력도 대단합니다. 특히 범죄 행위에 대한 묘사들은 그야말로 발군입니다. 가장 상세하게 묘사되는, '다람쥐'를 잡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디테일이 지나쳐서 쉽게 모방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세세한 디테일 - Q_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먹는 음식이나 입고 있는 옷, 기타 여러가지 설정들 - 을 적재적소에 그려내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드러나고 부각되게 만드는 솜씨도 훌륭해요. 

아울러 전두엽 절제 수술로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하는 '좀비'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쉽사리 사람을 사귀지 못하고, 본인에게 별다른 매력도 없는 싸이코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설득력이 높습니다. 물론 대학을 수차례 다닐 정도로 기본적인 지성은 갖춘(것으로 보이는) Q_가 전두엽 절제 수술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는다는건 다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만, 미친 놈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가야겠지요. 최소한 '최면술' 따위나 실제 좀비 전설의 원전인 '부두교 주술'보다는 과학적이긴 하고요.
260여 페이지에 여백도 많아서 읽기 쉬웠다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별다를 것이 없는 범죄극에 딱 맞는 적절한 분량이었어요.

그러나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살인마"도 별로 제 취향이 아니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주인공 Q_ (쿠엔틴인데 1인칭 시점에서는 항상 Q_로 묘사됩니다)가 상상 이상의 변태이며, 범죄도 혐오스럽기 그지 없는 탓입니다. 하드고어적인 내용만 보면 "살육에 이르는 병"과 별로 다를게 없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 Q_의 동성애 취향, 그리고 기껏 전두엽 절제술로 만든 좀비를 만들어 성노예로 부릴 것이라는 목표도 너무 싸구려 성인물같아서 역겨웠고요. 

엽기적인 변태 싸이코가 등장하더라도 "내 눈에 비친 악마"에서처럼 별다르게 범행에 성공하지 못하고 파멸하는 전개라면 모를까, 이렇게 살아있을 가치가 전무한 주인공이 벌이는 엽기 행각이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또 앞으로도 성공할 것 같다는 마무리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Q_가 자신이 관리하는 하숙집 외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다면 충분히 오랫동안 들통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치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거장의 매력은 충분히 살아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또 읽어 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3/07/29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 우타노 쇼고 / 이연승 : 별점 2점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 4점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우타노 쇼고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 이런 류의 기획물은 그리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원작을 이야기와 별 관계없이 무리하게 집어넣는 등 억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에도가와 란포와 상관없는 독립된 작품으로 발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의자? 인간!>>
인기작가 스즈카는 창작 동반자였던 아키히로를 차버리고 부유한 간부급 공무원 하라구치와 결혼했다. 아키히로에게서 사람을 써서 접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5년 뒤, 아키히로가 문자를 보내왔다. 지난 5년간 그가 어떻게 복수를 계획하여 실행해 왔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즈카의 소파 속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고, 스즈카가 문자를 보내자 정말로 소파 안에서 진동이 울려왔다.....


<<인간 의자>>에서 따 온 이야기. 의자 안에 남자가 들어간다는 설정을 따왔고, 비현실적인 인간 의자 제작과 안에 들어가는 과정, 방법에 대한 디테일은 유사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원작에서 인간 의자가 변태의 집요함을 그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여기서는 복수를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즈카가 궁지에 몰리는 심리 묘사도 범인의 서간문으로만 이루어진 원작과의 차이점인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말로 이르는 빌드업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충분했고요.

다만 진상, 그리고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아키히로는 의자에 여벌 휴대폰을 넣어놓고 전화를 걸면 진동이 오게 했을 뿐으로 실제로 안에 들어가 있던건 스즈카의 남편 하라구치였다, 그래서 아키히로가 의자 안에 있다고 굳게 믿은 가즈키가 의자를 난도질해서 하라구치는 죽고 말았다는건데 억지스럽고 뻔했기 때문입니다. 아키히로가 "나를 죽이세요"라는 메시지를 이렇게나 장황하게 보낼 이유가 없으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스마트 폰 속 여자와 여행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괴담물 (?). 현대 문명의 이기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일종의 다른 세계(사후 세계?)와의 연결고리로 활용하고 있는건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자신이 너무 사랑해서 죽여버린 아이돌 그룹 멤버의 인공지능을 만들고, 인공지능을 학습시킨다는 설정도 꽤 참신했습니다.

하지만 설정을 빼면 <<어느날 갑자기>> 등에 나오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는 단순한 괴담에 불과합니다. 기승전결도 애매하고, 이야기에서 합리적인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는 탓입니다. 남자마저도 사후 세계에 속한 인물이라는 결말도 어정쩡했고요. 보다 독특한 반전 정도는 나와주는게 좋았을거에요. 환상 소설에 가까운 원작에 현대적인 설정을 덧붙였을 뿐, 새로움을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D의 살인 사건>>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이지만 주로 흥신소 의뢰로 먹고 사는)인 '나'는 도쿄 뒷골목 거리에서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친해진 초등학생 세이야와 함께였다. 피해자 노조미는 SM 플레이를 즐기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보였는데, 밀실에 가까왔고 접근 가능했던 인물들도 제한적이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세이야가 범인일 것이라 추리했다. 목격자 두명의 증언 - 범인이 입은 옷을 각각 주황색과 검은색이라고 다르게 말한 - 이 근거였다. 사건 당시 세이야가 입고있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티셔츠는 주황색과 검은색 양쪽 모두에 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원작에서 다소 변태적인 성행위 도중 살해당한 피해자, 밀실에 가까운 현장, 범인의 옷을 서로 다르게 말하는 목격자라는 소재를 따 와서 현대적으로 재 구성한 작품.
'나'의 추리는 좋았습니다. 옆 건물과 좁게 붙어있던 창문으로 초등학생은 충분히 침입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었고, 목격자의 증언이 달랐던 이유라며 제시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티셔츠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세이야를 범인이라고 지목하는건 솔직히 무리였습니다. 동기가 설명되지 못하니까요. '나'가 제시한, 성범죄를 저지르려다가 살인까지 저질렀다는건 너무 억지스러웠습니다.
진상은 더 억지에요. HR 기기 등 가상 현실을 활용하여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다가 사망했다는건데, 가상으로 채찍질 같은 자극을 주는 기기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있다손 쳐도 사람이 죽을 정도의 충격을 줄 수는 없습니다. 안전 기준이라는게 있을테니까요. '비가시 광선' 때문에 옷이 두 가지 색깔로 보였다는 것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티셔츠만큼이나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요.
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장비를 해체하고 숨겼다는 마사코의 행동도 말이 안됩니다. 그래봤자 SM플레이를 즐긴 흔적을 숨길 수는 없었거든요.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다 '실수로' 죽었다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살해당했다'는게 낫다고 여겼을 수는 있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 단순 변사가 살인 사건으로 확대되어 버린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혹시라도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쓰게되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게다가 세이야가 '나'에게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나'에게 아동 성 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씌운다는 마지막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배신감을 느꼈다는걸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뒤의 설득력없는 추리와 결말을 덧붙이지 말고, '나'의 추리로 이야기를 끝내는게 바람직했습니다. 동기만 좀 합리적으로 만들어서요. 이 인물 구도에서 합리적인 동기를 만드는건 불가능해보입니다만.

<<오세이 등장을 읽은 남자>>
스무살 가까이 차이나는 어린 여성과 결혼 후 실직해 기둥서방처럼 얹혀사는 타로는 그 탓에 치매에 걸린 장인어른 고스케를 떠맡아 돌보게 되었다. 그게 끔찍하게 싫었던 타로는 란포의 소설 오세이 등장을 읽은 뒤, 고스케를 사고로 가장하여 살해할 음모를 꾸몄다. 소설처럼 고스케를 의류함에 넣고 질식사시킬 속셈이었다. 치매 탓에 유아 퇴행 현상을 일으키던 고스케가 했음직한 행동으로 의심을 살 이유는 없었다.
아내의 파리 출장에 맞춰 범행을 결의한 타로는 사전 조사차 직접 의류함 안에 들어갔다가 갇히고 말았다. 고스케가 별 생각없이 다른 물건들을 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타로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서 아내와 통화할 수 있었다. 아내는 직접 구조를 요청하겠으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타로가 나이가 많은 탓에 평소에 스마트폰에 대해 무지했고,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는 설정이 핵심입니다. 아내 유코가 원래 자기 것이었던 타로의 폰을 원격잠금하고, 회선도 정지시켜 통화를 못 하게 막아서 죽게 만든다는 트릭이 사용되었거든요.
이렇게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데다가, 나름의 트릭까지 사용된 점 만큼은 좋았습니다.

문제는 유코가 타로에게 품었던 살의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유코가 진작부터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설명은 있는데, 이를 살의로 이어지게 만드는 설명은 좀 부족했어요.
치매 노인 탓에 의류함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늙은 치매 노인이 의류함 뚜껑 위에 무언가 덮어놓았다고 뚜껑을 열지 못한다? 저는 잘 와 닿지 않더라고요. 뭔가 다른 이유 - 자물쇠를 잠갔다던가 - 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치매 노인이 평소에 무언가를 잠그는 (?) 행동을 많이 했다는 식의 설명이 덧붙여졌다면 더욱 좋았을테고요.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해서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원작과도 유사하고, 현대적인 설정과 트릭을 효과적으로 사용한건 분명합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치매 노인 관련된 복수극은 오가와라 히로시의 <<냉혹한 간병인>>이 아직까지는 최고네요.

<<붉은 방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붉은 방에 모여 일탈을 즐기는 일곱 명의 남자들.
에도가와 란포의 붉은 방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상영되는 극장에서 실제로 사건이 일어났다. '죄를 물을 수 없는 살인'을 저질러온 T역의 배우가 공포탄이 아닌 실탄에 맞은 사건이었다. 관객 중에 경찰이 있어서 곧바로 수사가 시작되었고, 관객들은 모두 중요 참고인이 되었는데....


사건도 연극의 일부로 마지막 공연에서 선보인 특별 부록이었다는 이야기. 비교적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관 투입과 수사가 지나칠 정도로 빨랐고, 이후의 과정이 모두 작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포일러를 막을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스포일러를 이용하여 관객들에게 더 충격을 주려고 했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흥분했던 관객이 무대로 난입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결말은 영 아니었습니다. 역시나 연극으로 여긴 관객의 반응 등 볼만한 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없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깔끔했을거에요. 이 결말 탓에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음울한 짐승의 환희>>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자의 육체만 생각하는 변태였지만, 스스로를 철저하게 통제하여 교육자로 잘 살아오고 있었다. 어느날 산책 중 이상형인 여자 유키를 알게되어, 그녀가 운영하는 북유럽풍 잡화점 락카우스의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두달 쯤 뒤, 내가 란포에 대해 잘 알고있다는걸 알게 된 유키가 도움을 청해왔다. 오에 슌데이라는 발신자가 트위터 DM으로 그녀에게 버림받았었는데, 그녀를 다시 발견하여 복수한다는 글과 에도가와 란포의 귀한 초판본,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는 글을 연달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짐작가는 사람이 없냐는 질문에 유키는 20년 전 사귀었던 여자 후배 가야코 이야기를 꺼냈다....


'그'라는 3인칭에서 '나'로, 다시 '그' 전환되는 시점이 급작스럽고 미묘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 의도인지, 번역 오류인지 헛갈리네요.
여튼 변태인 '그'가 카메라를 설치해 유키를 협박하는 한편, 착한 단골로 위장하여 조력자 위치에 올라가지만 유키에게 정체가 드러나버리는 일련의 과정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키의 펜던트가 카메라였고, 그 때문에 '그'의 범행이 발각되는 결말은 억지스러웠습니다. 카메라를 몸에 달고다닐 이유가 딱히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키가 알고보니 트랜스젠더라서 살해했다는 일종의 반전도 신선하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영화 <<크라잉 게임>>이 발표되었을 때 정도의 시기였다면 모르지만요. 지금은 그렇게 대단한 트릭이라고 보기는 힘들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비인간적인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나는 마니와 가즈키를 유혹하다가 가즈키는 '시짱'이라는 피규어를 사랑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분노가 폭발한 나는 가즈키를 속여 집에 침입한 뒤 시짱을 부숴버렸다. 그리고 가즈키가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신의 옷 주머니에 부서진 인형 머리가 들어 있었다고 했다.....
라는 증강현실 게임 엔딩을 접한 나는 다시 가즈키를 골라 게임을 시도했다. 그런 나를 방해한건 남편 가즈키였다. 게임에 빠진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가즈키와 다툼을 벌이다가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출소 후 70세 노인과 혼인 관계를 맺고 조용히 살게 된 나는우연찮게 노인 스나무라 다케오에게 교도소 주문에 대해 털어놓았다. 노인은 혼자서 주문에 대해 조사한 뒤,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주문에 등장하는 단어는 모두 1990년에 방영된 TV 프로그램이었고, 주문은 방송 채널 번호를 이용하는 암호문이었다. 암호문은 특정 지역을 의미했고, 노인은 그 곳에 무언가를 숨겼으며 그건 1990년에 일어났던 흉악한 강도사건의 절도품이라고 추리했다.
하지만 방문한 장소는 이미 신축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기괴한 사이버 애정극에서 시작해서 암호 해독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은 짤막한 쇼트쇼트 블랙 코미디로 이어지는 독특한 작품. 수록작 중 유일하게 원작을 접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호 해독은 재미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구전되는 '행운을 불러오는 주문'이 90년대 당시 TV 프로그램의 명칭이었다는 아이디어도 좋고, 이걸 어떻게 글자로 치환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잘 그려지고 있거든요. 노인은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끈기있게 도전하여 풀어낼 수 있었다는 설정도 좋고요. 암호문을 풀어낸 뒤, 암호문이 가리키는 장소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추리역시 합리적이었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를 조사해서 밝혀내는데 아주 그럴싸하게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야기가 따로 논다는 겁니다. 특히 화자인 유리나가 겪은 게임 속 사건이 그러합니다. 재미는 있는데, 암호 해독 이야기와 별로 관계는 없어요. 유리나가 감옥에 간 이유인 남편 살해 동기에 불과하거든요. 이렇게까지 펼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란포의 원작을 너무 의식한 것 같아요. '비인간적인 사랑'을 이렇게 무리하게 삽입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차라리 두 개로 분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만큼 두 이야기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보물이라 생각했던 증권이 버블 지나면서 파산한 회사라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는 결말도 뜬금없었을 뿐더러, 어디서 많이 보아왔던 결말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다른 설정은 다 없애고, 나이 많은 노인과 함께 사는 손녀딸이 교도소 자원 봉사를 갔다가 주문을 들었다는 정도로 풀어나가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상한 설정과 앞과 뒤의 곁가지 이야기는 불필요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을 살해해서 복역 후 출소한 유리나가 오갈데 없어서 나이 많은 노인과 결혼했다는 설정은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라도, 남편 살인범과 함께 살고 싶을까요? 젊은 여자가 필요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일본에서는 흔히 있는 상황인지 궁금해집니다.

2023/09/10

소문 - 오기와라 히로시 / 권일영 : 별점 2.5점

소문 - 6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모모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짓 소문을 퍼트려 - WOM (Word of Mouth), 입소문 - 경쟁사의 매출을 떨어트리고, 특정 제품의 판매를 신장시켜온 '컴사이트'의 대표 쓰에무라는 '뮈리엘'이라는 향수 브랜드를 위해 죽인 여자의 발을 가져가는 살인마 레인맨은 뮈리엘 로즈 향수를 뿌린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런데 실제로 고등학생 등 젊은 여성들이 살해당하고 발목이 사라진채 유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내를 잃은 뒤 고등학생 딸을 키우는 형사 고구레는 사건 수사에 투입되어 나이어린 신참 여성 경부보 나지마와 한 조가 되어 피해자들이 컴사이트에서 주도해서 레인맨 소문을 퍼트렸던 뮈리엘 향수 아르바이트를 했다는걸 알아냈다. 그리고 쓰에무라의 오른팔인 아소를 체포했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결정적 단서는 컴사이트 압수 수색에서 발견된 '카드 브레인스토밍' 자료였다.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레인맨 설정을 이야기한 사람이 있었으며, 그는 광고회사 직원 니시자키라는게 밝혀지는데....

오기와라 히로시의 장편. 2000년대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었던 작품입니다. 수년전 재간되었네요. '일본 미스터리 역사상 최고의 반전' 운운하는 띠지에 혹해 읽게 되었습니다.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 타율도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고요.

경찰과 일종의 게임을 벌이는 엽기 변태 연쇄 살인마와 형사의 대결이라는 설정의 작품은 많습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 범죄 스릴러와는 다른 점은 경찰 수사가 정말 '발로 뛴다'는 겁니다. 어딘가의 천재가 활약하는게 아니라요. 고구레가 딸 뻘인 여자 아이들과 어울려 단서를 모으고, 나지마가 지인들을 동원하여 '레인맨' 소문이 퍼진 경로와 위치, 날짜를 수집하여 도식화하는 등의 과정은 굉장히 실감났습니다. 고구레의 말 그대로, '과수원에 벌레 먹은 사과가 있다면, 해야 할 일은 나무에 매달린 사과 가운데 벌레 먹은 사과를 찾는 일이 아니라 땅바닥에 엎드려 사과를 골라내는 일'인 것이지요. 덕분에 소문을 낸 원흉이 컴사이트의 쓰에무라라는게 밝혀지는 과정도 설득력이 충분했고요.
고구레와 나지마가 마지막에 발견된 피해자 발에 칠해진 패디큐어를 보고 펼치는 추리도 좋았습니다. 고구레는 범인이 왼손잡이라고, 나지마는 발톱에 범인 지문이 남아있을거라고 추리하는데 설명이 아주 그럴듯했거든요. 패디큐어 색깔이 다른건 범인이 색맹이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수사 관계자가 모인 수사본부에서 마지막 스커츠 차림으로 발을 들어 올려 설명하는 장면도 극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짜임새도 발군입니다. 범인 니시자키가 왼손잡이라는걸 앞서부터 설명한다던가, 세 번째 발견된 피해자 미사키 야스요가 니시자키와 함께 살던 '사키'였고, 그녀가 이미 죽었음을 치밀하게 복선으로 깔아둔 전개 - 예를 들어 '냉장고에서 악취가 났다. 사키가 또 음식물을 썩힌 것이다' 등 - 에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청 캐리어와 출세는 포기한 관할서 형사라는 캐릭터, 두뇌와 실무로 나누어진 캐릭터 구도도 흔해 빠졌지만, 본청의 경부보인 나지마가 더 나이가 어린 여성이라는 점과 둘 다 남편, 아내를 잃은 편모, 편부 가정이라는 등의 세세한 설정을 덧붙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줍니다. 상당히 디테일하게 짜여져 있어서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사건 이면에 존재하는 WOM 이론도 흥미로왔습니다. 한 명이 WOM으로 정보를 전파하는 평균치는 일주일에 대략 2.5명, 대략 한 달 만에 10만명 가까운 사람에게 퍼진다는 데이터는 놀라왔고요. 실제로 쓰에무라처럼 괴소문을 퍼트려 매출을 떨어트리는 행위는 암암리에 있어 왔기에, 남의 이야기같지 않았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이지만, 바로 옆 경쟁 점포를 음해하려고 했던 '밤식빵 쥐 혼입 조작 사건' 같은 것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죠.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떤 정보가 진실인지를 알아내는게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보았던 만화 <<로켓맨>>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하지만 카드 브레인스토밍 자료와 사체에서 발견된 지문으로 범인이 니시자키라는게 밝혀지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는 재미가 떨어집니다. 전개를 보면 니시자키는 딱히 의도적으로 범행을 숨기려거나 과시하려고 했던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체포되지 않은건 운이 좋아서 - 그리고 경찰이 멍청해서 - 였을 뿐입니다. 심지어 알 수 없는 이유로 고구레 앞에 나타나 직접 정보를 제공하기까지 했는데 말이지요. 즉, 이런 류의 작품에서 핵심인 '천재 범인과 경찰과의 두뇌 게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경찰의 수사만 있는 셈이에요.
물론 경찰과 게임을 펼치는 천재 범인이라는 만화적인 설정이 좋은건 아닙니다. 그러나 니시자키가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이유를 단지 정신이 이상한 변태라고 설명한건 아쉬웠습니다. 도화선이 된 '사키'의 존재도 억지스러웠고요. 변태 정신병자의 클리셰만 모아 놓아서 진부했는데, 그나마 클리셰의 재미 요소는 빼 먹은 셈입니다.

띠지에서 광고했던 반전도 그닥입니다. "마지막 4글자에 모든 것이 뒤바뀐다!"의 4글자는 '기나오싹'입니다. 고구레의 딸 나츠미가 만든 말이지요. 즉, 쓰에무라를 살해한건 나쓰미였다는 것이지요. 사회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약간의 사회파적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생각됩니다. 작 중 고구레가 피해자들 부모를 만나며 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 역시 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다는건 말 그대로 기나오싹 - 기분 나쁘고 오싹하다 - 했거든요. 굉장히 자상한 아빠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건데, 세대 차이를 충격적으로 드러내는데는 적당했습니다. 나츠미가 잦은 외박을 한다던가, 머리 색깔이 바뀌었다는 등의 복선도 충실히 설명되고요.
그러나 이 반전은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궁금증만 더 키운다는 점에서 별로였어요. 평범한 여고생들이 어떻게 쓰에무라 집에 침입해서 살인을 저질렀고, 시체를 토막까지 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4글자라는걸 띠지에서 강조하는건 일종의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기나오싹이 작중에서 좀 비중있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띠지가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는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의 호토리가 미스터리를 읽는 방법을 따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답게 흡입력은 높습니다. 잘 짜여져 있기도 하고요. 반전 운운하는 마케팅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2012/07/01

프로파일러 노트 - 로이 해이즐우드 / 허진 : 별점 3점

프로파일러 노트 - 6점
로이 해이즐우드 지음, 허진 옮김/마티

FBI의 프로파일러 출신인 지은이 로이 해이즐우드가 실제 프로파일링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사건과 범인들에 대해 분석한 책입니다. 각 사건마다 상세한 설명 및 범인을 뒤쫓는 방법과 과정, 법정에서의 증언 및 판결까지 완결되도록 수록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개요만 놓고 보면 "FBI 심리 분석관"과 유사하지만, 이 책에서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과 여러 가지 범죄 이론 및 분석과 더불어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제 강력범죄들이 많이 소개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그 수사 과정이 디테일하게, 스토리가 있게 펼쳐지기에 흥미로운 범죄 - 사건 관련 논픽션을 읽는 느낌도 전해주고요. "범죄자는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행동에 옮긴 환상을 매춘부들과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을 소개하며, 실제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한 사건에서 근처 매춘부들을 탐문하여 범인을 검거한 예를 드는 식입니다.
역시 비슷한 류인 "마인드 헌터"보다는 더 전문적이고, 하나의 완결된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요.

몇 가지 재미있는 내용을 소개해 드리자면, 어떤 의식적 범죄자들은 순응적 피해자, 주로 아내나 여자친구를 대상으로 자신의 환상을 실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순응적 피해자의 다섯 단계 (가학적 변태성욕자가 단번에 알아보는)가 있다고 하네요.

1. 감정적 트라우마로 인해 쉽게 영향을 받는다. (경험이 없고 순진하고 우유부단하거나, 최근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거나...) 의존성 인격장애가 있다. 즉,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과도한 욕구가 있는,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유형이다.

2. 유혹. 가학적 변태성욕자들은 표적으로 삼은 여성이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 후, 무자비한 행동을 가한다.

3. 두 번째 단계 이후 아내나 여자친구가 윤리적 범위를 넘도록 조종한다.

4. 여성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5. 처벌. 여성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다.

이 단계를 통해 한 여성을 만나 그녀를 사로잡은 뒤 일탈을 한 번 경험하게 만들고, 이후 그녀의 체중을 늘리는 등 사회적으로 고립시킨 후 완전히 마음대로 조종했던 사건을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추리소설을 쓴다면 꽤 도움이 될 만한 내용 중 하나는 "프로파일러는 범죄자의 시각으로 범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범죄자가 피해자를 숲 한가운데 2미터 정도 깊이에 묻었다면, 왜 그랬을까요? 범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첫째, 시체가 발견되지 않기를 원하고, 둘째, 필요한 육체적 노동을 신경 쓰지 않으며 (심지어는 즐길 수도 있고), 셋째, 분명히 야외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한 방송국에서 기획했던 살인마 잭의 프로파일링에 대한 내용은 추리 애호가로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코스민스키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하네요! 주요 용의자로 부각된 여러 인물들을 전문가들이 배제하는 이유가 합리적이어서 흥미롭게 읽혔고, 방송도 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도 많고, 유사한 서적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부분이 있기에 프로파일링과 범죄 수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된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4/20

귀등의 섬 1~4 : 산베 케이 : 별점은 2점. 앞부분은 4점짜리였지만...

귀등의 섬 1 - 4점 산베 케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코코로는 어머니를 잃고 눈에 장애가 있는 여동생 유메와 함께 귀등의 섬에 있는 고아원 학교 "귀등 학원"으로 전학왔다.  귀등학원은 아이들과 교사까지 전원 함께 사는 기숙학교로 교직원 4명, 학생은 6명이 전부였다...

주인공이 코코로와 유메인 데다가, 무대가 되는 학교 이름이 귀등 학원이라니 무슨 AV물 같기도 한데, 이 작품은 주인공 코코로를 비롯한 아이들이 섬과 학교에 대한 불편한 진실 - 학원이 아이들에게 걸려있는 보험금으로 운영된다는 것! - 을 눈치채게 된 뒤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면서 벌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다룬 정통 클로즈드 서클 스릴러 만화입니다.

고립된 섬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음모, 그것에 말려드는 주인공들을 다룬 소설은 많지만 일단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멤버들은 분명 독특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들 설정들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코코로는 곤충 박사, 유메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귀가 밝음, 슈우는 뛰어난 두뇌 보유했다는 식인데, 이런 특기들이 탈주 과정에서 선생들과 벌이는 추격전에서 잘 활용되어 위기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묘사도 아주 좋습니다. 변태 선생을 대표로 하는 "어른들"의 혐오스러운 분위기, 배후에 숨겨져 있는 음모를 서서히 보여주는 디테일들, 예를 들면 들어가면 안되는 방에 적혀있는 무서운 경고문구 -"살려줘, "살해당한다" 등 - 라던가 열리지 않는 책상 서랍안에 가득한 핏자국 등이 그러합니다. 아울러 이렇게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 역시 일품이고요. 한마디로 초반부에는 걸작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정말 두근두근하면서 읽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지막 권에서 모든걸 망쳐버립니다! 결국 죽은 사람이 거의 없고 악당은 지옥으로 간다는 어거지 해피엔딩도 별로지만, 실제적인 음모나 공포는 전무한 단순한 착각에 의한 사고였으며 진정한 악인은 변태 선생 하나였을 뿐 나머지는 다 오해였다라는, 앞부분의 스릴과 서스펜스를 전부 뒤집는 같잖은 결말은 제 인생 최악의 결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요. 아... 정말 이게 뭔가요. 차라리 진정한 흑막은 정기선을 운항하는 할아버지라고 하던가...

작가의 동글동글하면서 육덕진 그림체도 좋았고 빠른 전개와 긴장감을 자아내는 연출도 높이 평가할 만 한데 마지막 권이 모든걸 허사로 만들어 버려서 별점은 2점입니다. 1~3권까지는 4점은 충분한데 마지막권이 빵점 그 이하로 완전 말아 잡순 케이스죠. 혹시 마지막권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영원히 봉인해두시고 앞부분의 좋은 기억만 간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2004/03/30

오후 3시 까지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외 / 정태원 : 별점 3점

오후 3시까지 - 6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정태원 옮김/글사랑

그동안 좀 뜸했었네요. 너무나도 지독한 독감에 걸리고 회사일도 바쁜 나머지...  오랫만이니만큼, 예전에 구입했었지만 읽지 않고 쌓아 두었던 책들 중에서 읽기 쉬워보이는 단편집을 골라 보았습니다.

이 책은 알프레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에 수록된 단편 중 13편을 엄선하여 편집한 앤솔러지입니다. 짤막하게 작품별로 소개해드리자면

"하인리히 헤런은 어디에?"
흑마술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공포 스릴러(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추리적인 요소는 약하고 반전도 그냥 그렇지만 섬뜩한 이야기를 괴담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전개는 제법 괜찮았습니다.

“낡은 부적”
순문학 느낌 강한 단편. 보험사기를 다룬 심리물인데 끔찍한 사건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점점 붕괴되어 가는 사람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다룬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피가 낭자한 잔인한 묘사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이는?”
일종의 완전 범죄를 다룬 범죄물. 잔인하다기 보단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마음에 안드는 버스기사 택시로 쫓아가서 때려주기”와 비슷한 이야기랄까요. 여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후 3시 까지”
수록작 작가 중 유일하게 아는 작가인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아브라함 레빈 형사 시리즈 단편. 심리 서스펜스물입니다.
어떤 남자의 자살을 막으려는 레빈 형사의 심리를 한정된 짧은 시간동안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소품 느낌이 강하긴 하나 작가의 명성에 값하는, 읽는 재미는 충분히 넘치는 작품이었습니다.

“막다른 길”
전형적인 미국 헐리우드 형사물 스타일의 하드보일드 드라마.
나름대로 비비 꼬아놓기는 했지만 전형적이고 뻔한 이야기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리모트 컨트롤”
암살자의 완전범죄를 위한 변장, 그리고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꽤 재미있으며 치밀한 점이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아요. 2% 정도 아쉬웠달까요?

“이중살인”
불륜 상대가 변태 성욕자에게 살해된 후, 아내를 변태 성욕자를 가장해서 살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반전의 묘미가 상당합니다. 반전 하나때문에라도 읽어볼 가치 충분한, 괜찮은 단편이었어요.

“산타바바라에서 생긴 일”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브릿지”를 소재로 하여 사기와 살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밀한 브릿지 묘사외에는 건질게 별로 없고 특히나 결말부분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브릿지를 잘 안다면 즐길거리가 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수준이하였던 작품입니다.

“지하철에서 생긴 일”
한 선원의 과거 항해에 대한 회상으로, 예전 배에서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1등 부 기관사 폴란스키와 그의 그리스인 조수, 그리고 의사 출신이라는 수수께끼의 남자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범죄 서스펜스물이라기 보다는 잔잔한 소품에 가까운 작품으로 교훈적이기는 하지만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였습니다.

“해리 해스팅스 방식”
해리 해스팅스라는 작가와 한 도둑이 벌이는 재미난 이야기.
아이디어 자체가 워낙 기발하고 글 전체가 유머스러워서 쉽게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추리 단편에서 보기힘든 결말도 마음에 들고요. 이 앤솔러지 전체를 통틀어 베스트로 꼽고싶은 추천작입니다.

“도시의 풋내기”
독특한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 해결사와 현상금 사냥꾼을 섞어놓은 듯한 주인공의 캐릭터가 정말 괜찮습니다. 동시에 벌어지는 두가지 사건을 하나로 묶어 처리하는 깔끔한 이야기 구조도 좋았고요.

“동업자”
두 동업자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고용했다가 자멸한다는 작품. 유머스럽고 가벼운 소품입니다.

“2차선”
우연히 지방국도에서 만난 대형 트럭에게 쫓기게 된 운전사를 그린 서스펜스 물.
제가 옛날에 봤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듀얼”과 굉장히 비슷해서 조사해 봤더니 원작이 맞더군요. 영화보다는 덜 했지만 글이라는 수단으로 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서스펜스를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결말부분은 조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말이죠.

이렇게 전체적으로 걸작들은 아니지만 평균작 이상의 작품들로 구성된 괜찮은 앤솔러지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매거진도 집에 몇권 있는데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역시 머리를 식힐때는 추리 단편만한게 없는 것 같아요.

2010/03/17

도시전설 세피아 - 슈카와 미나토 / 이규원 : 별점 2.5점

도시전설 세피아 - 6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노블마인

제가 일본 추리 - 호러 단편집을 워낙 좋아라하기 때문에 진작부터 관심이 있던 단편집입니다. 일본에서는 TV용으로 영상화되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별다른 입소문도 없고, 커뮤니티나 추리, 호러 애호가들 사이에서 언급조차 되지않은 탓에 구입해 읽을 생각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온 뒤 찾아간 집근처 산본 중앙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기에 바로 대여하여 읽어보게 되었네요.

총 5편의 호러 취향 단편이 실려있는데, 기이한 변태들의 이야기가 많은 전형적인 일본식 호러, 스릴러 단편들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을 받았다는 것이 허명은 아닐 정도로 설정이 참신한 작품도 있고, 재미와 반전도 잘 갖추고 있는 편입니다.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도 괜찮고요. 

그러나 이러한 재미와 설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야기 전개에서 작위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건 크게 거슬립니다. 앞부분 수록작들은 상대적으로 괜찮은데, 뒤로 갈수록 이러한 단점이 두드러지는데, 적절한 수위를 조절이 필요했습니다. 

전체적으로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앞부분 수록작들만 놓고 본다면 3점은 충분한데, 뒤로 갈수록 힘이 딸리기에 감점했습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올빼미 사내"를 꼽습니다.

"올빼미 사내"

도시전설에 매료되어 스스로 전설이 되고싶어한 주인공이 자칭 올빼미사내로 변장하고 나타나 살인을 저지른다는 이야기를 1인칭 서간문 형태로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변태적인 상상력이 실제 범죄로 발전한다는 이야기는 작중에서 주인공이 언급하는 그의 멘토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과 유사해서 참신한 맛은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전형적인 설정이니까요. 그러나 괴담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인터넷을 활용하는 등의 요소가 곁들여져 설득력을 확보하는 점,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전설의 구체화를 위해 변장을 하고 벌이는 마지막 범죄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지는 결말이 아주 괜찮았습니다. 작위적인 내용은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어제의 공원"

절친 마치의 사고사를 알게된 초등학생 엔도가 우연히 자신이 사건 직전의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마치를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는 타임슬립SF입니다만... SF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일상적이고 타임슬립의 원인이나 이유가 해명되지 않기에 판타지로 보이기도 합니다. 

소소한 이야기인데 사건을 막으려 노력할 때마다 더 큰 사건이 벌어진다는 설정이 그간의 타임슬립과 타임 패러독스물을 재치있게 피해가는 참신함이 돋보여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작위적인 반전이 등장한다는 것이 옥의 티이긴 한데 역시나 별점 3점은 충분한 작품입니다. 영상화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덧붙이자면 이러한 작위적 반전보다는 차라리 성인이 된 엔도가 다시 타임슬립하게 되어 마치의 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결말이 어떨까 싶긴 한데, 이것도 작위적이었을까요?

"아이스맨"

25년전 요양차 내려간 외할아버지 댁에서 냉동된 갓파 흥행사와 함께 알 수 없는 사건에 흽쓸렸던 가츠키의 이야기인데, 25년전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흥행사가 선보이는 얼음속의 정체불명 갓파 시신, 갓파 흥행사의 어리지만 영악하고 속을 알 수없는 딸 논코, 어마어마한 체구의 갓파 흥행사 등 등장인물도 개성이 넘칠 뿐 아니라 사건의 전개과정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덕분입니다. 

하지만 25년 뒤의 현재 시점에서의 결말이 너무 시시합니다. 뻔할뿐더러 밝혀지는 것도 없고 주인공의 기묘한 심리상태 역시 설득력이 전무한 탓입니다. 계속 언급하는 이 단편집 전체의 문제이지만 작위적인 결말이 특히나 별로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과거 시점의 분위기로 계속 달려주었더라면 걸작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쉽습니다.

"사자연" 

제목 그대로 죽은 사람과의 인연을 다루는 심리 스릴러물입니다. 여류화가 가나에 린코가 인터뷰하는 형식의 일인칭 소설로 그녀가 푹 빠졌던 기미히코라는 자살한 청년과 그녀와 똑같이 기미히코에게 매료된 시노부라는 두명의 여성의 이야기로 광기어린 집착과 그에 따르는 파멸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고 분위기 있었던 기미히코 이야기로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막판에 길을 잘못들어도 유분수지 난데없는 지박령 이야기로 끝맺어서 도저히 높은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작품 역시 기미히코 이야기로만 잘 마무리했더라면 4점은 충분했습니다.

"월석"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마네킹을 다룬 소품으로 호러라기보다는 심리 썰렁 드라마입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야기의 전개가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고 좀 두서가 없어 보이며 속시원히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차이점이 있는데, 작위적이지 않아서 이야기가 담백하고 깔끔합니다. 일종의 정신적 성장과 강함을 보여주는 마무리도 괜찮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01/30

페스티발 (2010) - 이해영 : 별점 1.5점

경찰 장배는 여자친구 지수에게 온 소포에서 바이브레이터를 발견한 뒤 스스로의 남성상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한편 같은 동네 주민인 순심은 딸인 자혜와 어렵게 살아가던 중, 동네 철물점 주인 기봉과 둘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자혜 역시 사랑하는 오뎅장수 상두의 환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다가 상두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변태"라고 불리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변호를 특유의 유머러스한 시각으로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는 작품으로, 감독의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와 비슷한 느낌을 전해 줍니다.

그러나 "섹시 코미디"를 표방한 작품치고는 하나도 웃기지 않는다는건 확실한 단점입니다. 변태들의 이야기가 하나로 묶이지 않고 각각 개별 에피소드로 전개되는 것도 산만해서 영 별로였고요. 평범한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졌을 고민(?)을 극대화해서 표현한 신하균 - 엄지원 커플 이야기, 그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고 용기 있게 전진하는 심혜진 - 성동일 커플 이야기로만 압축해서 각각을 길게 끌고 나가는게 훨씬 감독의 의도를 잘 살릴 수 있었을겁니다. 욕심이 지나쳤던 것 같아요.

이러한 애매모호한 작가 의식이 한국 장르 영화(?)의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장르물답게 목적에 보다 충실했으면 합니다. 의식과 신념은 그다음에 녹여낼 부분이잖아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5점. 의도도 좋고 영화 완성도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미디 영화가 웃기질 않고 섹시 코드 역시 섹시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거의 없으니 점수를 줄래야 주기가 힘드네요. 야하면서도 웃기는 영화를 원하신다면 다른 영화를 보시길 바랍니다...

2023/08/25

폭탄 - 오승호 / 이연승 : 별점 2.5점

폭탄 - 6점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진상,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시 정각. 아키하바라 쪽에서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겁니다." 술에 취해 자판기를 훼손해 인근 경찰서로 붙잡혀온 남자가 왠지 촉이 온다며 내뱉은 이 말에 귀 기울인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술이 덜 깼나?" 하는 비아냥은 10시 정각에 폭발 사고 신고가 들어오며 서늘한 공포로 변한다. 남자가 히죽거리며 말을 잇는다. "제 촉대로라면 지금부터 총 3회, 이다음에는 한 시간 후에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가벼운 상해 사건이었던 이 건은 금세 최우선 순위로 격상되고, 본청 형사들이 취조실로 들이닥친다. 베테랑 형사들을 앞에 두고 남자는 선문답을 연상케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아홉 개의 꼬리'라는 퀴즈 게임을 제안한다. 어쩔 수 없이 제한 시간을 두고 그와 마주 앉아 절박한 게임에 참여하게 된 경찰. 허술한 주취자로 생각했던 남자가 "하지만 폭발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 될 것 없지 않나요?" 하며 싱글벙글거리고, 사건의 전모가 예상을 가히 뛰어넘는다는 것이 밝혀지며 취조실에는 오싹함이 감돈다. 이들은 폭발을 막을 수 있을까. (출판사 제공 줄거리 인용)

<<도덕의 시간>>, <<스완>>의 작가 오승호의 따끈따끈한 신작. 작년 거의 모든 일본내 추리, 미스터리 랭킹을 휩쓸었던 화제작이었지요. 천재 범인과 경찰의 대결을 독특하게 변주한 점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제가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빼어난 덕분일 겁니다. 
별볼일 없는 사고뭉치 노숙자로 보였던 스즈키가 폭탄 테러의 핵심 인물로 드러나는 도입부부터 굉장히 흥미로우며, 스즈키가 경찰에게 심문을 받으며 내 놓는 퀴즈(?)는 대부분 말장난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고, 설명도 그럴듯합니다. 전설의 동물 구단 이야기로 지역은 '구단시타', '신의 말씀과 회문, 그리고 탁점'이라는 힌트로 '신문지'를 떠올리게 해서 구단시타의 조간신문을 배달하는 곳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정답을 이끌어내는 식으로요.
스즈키와 진범 다쓰미 일당과의 연결 고리를 더듬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에요. 스즈키가 일부러 남긴 핸드폰이라는 단서와 도도로키 형사의 심문 중 나온 하세베 유코의 이름을 통해 가족들을 찾게되는 수사 모두 다쓰미의 마지막 거주지로 연결되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습니다. 다쓰미 시체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한 것도 단순히 경찰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쓰미의 사인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목적이었다는 것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스즈키의 퀴즈로 역을 알아낼 수 없었던건, 그도 어떤 역에 폭탄이 설치되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좋았습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스즈키는 다쓰미 일당이 아니었고 진범임을 자처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는 반전도요. 다쓰미의 모친 아스카가 아들의 테러를 알고 살해한 뒤 스즈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도 셰어 하우스에 다쓰미가 데려왔던 네 번째 인물, 그리고 스즈키가 노숙자 시절 알고 지냈던 신참 노숙자, 스즈키의 드래곤즈 모자 등으로 차분히 단서와 복선을 설계하여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진범 다쓰미 일당이 계획했던 폭탄 테러 방법도 기발했습니다. 일당 중 한 명인 야마와키의 주류 배달업이라는 직업을 활용하여 음료수 형태로 가공한 폭탄을 자판기 안에 넣었다는데, 이래서야 경찰의 수색으로 찾아내지 못한건 당연하겠지요. 결국 정해진 시간이 되어 순환선 야마노테선의 주요 역들이 차례대로 폭발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고요. 이건 영상화되면 꼭 한 번 보고 싶을 정도에요.

아울러 오승호 작품답게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도 좋았습니다. 단순한 사회파 범죄물처럼 특정 이슈에 대한 범죄를 등장시키는건 아니고, 주로 스즈키의 입을 통해 누군가 폭발로 죽을 때 내가 슬퍼해야 하는가? 인간의 생명은 과연 평등한가? 동료가 아닌 적의 목숨은 없애도 괜찮지 않나? 이 세상은 정말 살 가치가 있는가? 이런 세상은 모두 망해버려야 하지 않는가? 등 작가가 생각하는 사회적인 여러가지 문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합니다. 덕분에 스즈키의 캐릭터성도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천재 범죄자이자,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있을 '조커'가 배 나오고 머리에 땜통까지 있는, 자기비하에 능숙한 노숙자 출신 아저씨라니! 다시 보기 힘든 빌런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작가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듯한 메시지가 과잉인 탓입니다. 다쓰미가 가족이 무너진 것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테러를 저지른다는 동기는 명확하고 설정도 참신했지만, 그 뒤 스즈키가 테러를 떠안는 동기도 잘 설명되지 못해서, 메시지 전달도 공허합니다. 다쓰미가 직접 별거 아닌 일로 가족을 붕괴시킨 일본 사회에 복수하겠다는 메시지를 외쳤다면 설득력이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애초에 남편과 아버지가 변태였다는게 사회적으로 가족이 모두 매장당할 일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범행 현장에서 자위 행위를 한 건 피해자들 입장에서 분통이 터질 행위인건 맞지만, 법률적으로는 죄라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거주지만 옮겨도 가족들의 생활이 무너질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억울했을 다쓰미에 비하면, 스즈키의 메시지는 사회 부적응자의 개인 주장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또 노숙자에 불과한 스즈키가 어떻게 고도의 심리 - 정보전을 엘리트 경찰들과 대등하게 벌이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유너바머' 정도의 배경은 있어야 할 인물 같은데, 노숙자라는 '현재'만 보여주다보니 그런 부분에서 설득력이 많이 부족해져 버렸네요.

그래도 스즈키는 독특한 매력을 뿜뿜해서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역으로서의 자리매김은 확실히 하고 있는 반면, 상대역인 경찰쪽 인물들의 매력은 부족하다 못해 없다시피 합니다. 도도로키 형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스타일이라서, 루이케는 정의와 사명감보다는 스즈키와의 게임에 심취해서, 기요미야는 심약하고 정서가 불안해서 스즈키에게 농락만 당하는 탓에 모두 맞상대로서의 격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때문에 스즈키와 1:1로 대결을 펼치는 재미를 전혀 주지 못합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 중요한 팽팽한 대결의 긴장감도 없다시피하고요. 마지막에 야마노테 선 폭탄 테러를 막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싶을 정도였어요. 
그 외에도 친구의 부상으로 폭주하는 순경 사라, 자리를 지키는데에만 급급한 쓰루쿠 등도 그야말로 뻔하디 뻔한 스테레오 타입이라 지루했습니다.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범죄로 다쓰미 가족 모두가 무너져 버린다는 것 같이 다른 작품에서 보아왔던 설정도 많습니다. 천재 범죄자와 경찰과의 두뇌 게임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가치관에 맞는 행동을 고집하여 조직 내에서 고립된다던가 (도도로키 형사) 하는 이야기는 질릴 정도로 많이 봤습니다. 잇달아 일어나는 범죄 탓에 일반 시민들이 경찰서로 몰려드는 묘사도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등에서 이미 써먹었던 것이고요.
 
변태 남편 탓에 이미 지옥을 맛 보았던 아스카가 또 고통을 겪고야 마는 결말, 에필로그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쓰미가 폭탄 탓에 산산조각이 나기 전 살해당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스즈키를 죽일 의도로 경찰서로 찾아오기는 했지만 폭탄도 없었고, 살의를 증명할 방법도 사라의 증언 말고는 딱히 없어 보이고요. 그녀를 어떻게 재판에 회부할 수 있을까요?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알겠지만 제게는 좀 애매했습니다.

2005/06/24

제 6계명 - 로렌스 샌더스 : 별점 3.5점

제6계명 1 로렌스 샌더스/고려원(고려원미디어)

빙햄 투자기관의 조사원 샘 토드는 손데커 박사라는 인물이 백만불의 후원금을 얻기 위해 신청한 연구의 조사를 위해 오지와 같은 시골마을 코번으로 떠난다. 손데커 박사는 그가 운영하는 요양기관과 연구소만이 마을을 먹여살리다시피 하는 탓에 쇠락해 가는 코번 마을을 그나마 지탱하는 유일한 인물로 남다른 카리스마와 설득력을 지닌 천재였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토드는 그가 하는 연구는 세포의 노화를 유발하는 X라는 요소를 배재하여 인간을 불멸, 불사의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토드는 요양소에서 불분명하게 사망한 인물들이 여럿 있다는 것과 요양소에서 일하던 노인이 어느날 알 수 없이 실종되었다는 사실 등 손데커 박사의 매력 뒤에 감추어진 수수께끼와 같은 여러 사건을 접한 뒤 박사와 그의 연구에 대한 의심이 깊어 가는데....


로렌스 센더스의 유명한 작품 "제 6계명"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전에 이미 "앤더슨의 테이프"와 "피터 S의 유혹"이라는 작품 2개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특히 "피터 S의 유혹이)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고 시드니 셀던과 비슷한 통속소설 작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죠. 그래서인지 유명한 작품이고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그동안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헌책방 쇼핑 도중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물건이네요!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한번에 쭉 읽어버리고 말았어요.

먼저 시니컬하면서도 냉정한 판단력의 주인공이 주로 탐문과 조사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과거 전성기 시절의 하드보일드 공식에 충실한 묵직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추리적인 부분과 스타일까지도 거의 유사하더군요. 그러나 단순한 모방작은 아닙니다. 기존 하드보일드의 사립 탐정이나 형사와 다른 다른 특이한 직업의 탐정이 주인공일 뿐더러 의학 스릴러라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재가 더해져서 현대적이고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그리고 하드보일드 분위기의 작품치고는 그다지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원래대로의 공식이라면 중요 증인들이 중간중간 계속 죽어나가면서 이야기가 연결되겠지만 이 작품은 중요 증인 한명을 제외한다면 마지막 부분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짐과 동시에 주범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한번에 죽어버린다는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내용 전개도 보다 깔끔하게 느껴졌어요.

미친 과학자가 불멸, 불사의 존재를 연구하다가 파국을 맞는다는 전형적인 줄거리 역시 나름의 과학적, 의학적 설득력을 지니는 요소들을 첨가하고 있어서 좋았는데 특히 미지의 세포 조직인 "X"라는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과정과 그 결과물은 나름 쇼킹합니다. 아주 옛날에 읽었었던 "엔젤딕"이라는 이현세 만화의 "미완의 변태"편의 에피소드가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이현세씨가 이 작품을 읽고 모티브를 얻었으리라는 강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복잡한 인간관계를 묘사함으로써 (물론 이러한 사소하고 큰 상관없은 인물들의 캐릭터 묘사가 재미있어서 그다지 늘어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만) 소설이 필요이상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는 하며 제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적 묘사가 제법 등장한다는 것은 좀 아쉽네요. 뭐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요.

어쨌건 결론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로렌스 센더스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전에 읽었던 작품들만 보더라도 실망스러운 부분은 많지만 그래도 "글재주는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작품은 전작들의 아쉬운 부분을 거진 걷어내고 재미까지 덧붙여졌을 때의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네요. 그야말로 포텐터진 유망주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또다른 걸작 시리즈라는 "대죄" 시리즈도 한번 구해봐야겠습니다.

PS : 저는 마지막 엔딩에서 주인공이 애인에게 전화하는 장면에서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엔딩과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상한 연상이네요...^^

2021/09/04

기묘한 러브레터 - 야도노 카호루 / 김소연 : 별점 2점

기묘한 러브레터 - 4점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즈타니 가즈마는 유키 미호코에게 30년만에 편지를 보냈다. 페이스북에서 그녀의 사진을 찾아서, 페이스북 메신저로 보내는 편지였다. 미호코와 가즈마의 편지 왕래를 통해, 오래전 있었던 그들의 과거가 하나 둘 씩 밝혀지는데....

가즈마와 미호코 사이의 페이스북 메시지로 전개되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처음 몇 번의 메시지는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하게 과거에 있었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메시지가 오가며 드러나는 과거 이야기들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둘은 결혼을 약속했었지만 미호코가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아서 결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고아가 된 가즈마를 키워 주었던 고모부가 가즈마와 약혼했던 의붓 사촌동생 유코와 옛날부터 육체 관계를 가졌다는 것, 미호코는 학비를 벌기 위해 소프랜드에서 몸을 팔았었다는 것 등이 하나씩 드러나거든요.

특히 마지막 반전은 놀랍습니다. 미호코가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던건 가즈마의 책상 서랍에서 실종된 소녀의 머리핀을 발견했던 탓이었습니다. 미호코는 이를 통해 가즈마가 소녀 유괴 살인범이라는걸 알게 되었지요. 가즈마가 30년 동안 연락하지 못했던건 미호코의 신고로 체포된 가즈마가 소녀 살인죄로 복역했기 때문이었고요.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었지만, 모범수였는지 30년만에 출소했던 겁니다.

그러나 이 반전을 드러내는 전개는 지나치게, 너무나 심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메시지만으로 이야기를 빌드 업 시키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애초에 말이 안되요. 처음 메시지를 받았을 때 이미 미호코는 가즈마가 소녀 살인범이라는걸 알고 있는데, 과거 아름다왔던 추억 이야기를 하면서 메시지를 이어나간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메시지를 삭제하고 페이스북을 탈퇴했을 겁니다. 설령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해도, 이 작품과 같이 억지로 비밀과 반전을 숨겨가며 진행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요.

가즈마가 소녀 유괴 살인범이라는게 드러나는 마지막 반전도 뜬금없었습니다. 앞서 별다른 복선이나 단서도 없었으니까요. 컴퓨터 쓰는데 능숙하지 않다 정도가 단서가 될리 만무합니다. 그냥 충격적이고 놀라운 반전을 위해 만들어낸 설정에 불과해 보였어요. 이 사실이 드러나는 과정도 미호코가 '우연히' 결혼식 며칠 전, 가즈마 책상 속에서 발견한 머리핀을 발견했기 때문이니 작위적이라는 점에서 똑같고요. 전통적인 편지라면 모를까, 페이스북 메신저로 보낸 글로는 보이지 않다는 것도 단점이에요. 훨씬 단문으로 작성되었어야 했습니다. 신기술(?)을 사용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요.

가즈마의 파란만장했던 과거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중학교 때 겪었던 부모님의 교통사고 사망, 자신만 바라보는 줄 알았던 약혼자 사촌 여동생은 아버지같은 고모부와 육체 관계를 진작부터 맺고 있었고, 미래를 걸었던 프로 연극인의 꿈은 부단장격인 미야와키의 자금 횡령으로 무너지고, 결혼을 약속한 연인 미호코는 몸파는 여자였다는 등인데, 이 모든게 한 사람에게 닥친다니, 현실적이지가 않아요. 다른 곁가지 이야기는 다 치우고, 미호코 이야기만을 가지고 풀어나갔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아울러 미호코가 몸을 판 행위에 대해서 당당한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몸을 팔기는 했지만 사랑이 없었으니 단순한 육체 노동에 불과했다는데, 이게 말이나 되나요? 그녀가 이 사실을 숨기고 가즈마와 결혼하려고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본인이 그렇게 당당했다면 결혼할 사람에게 숨기면 안되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같은 연극부 단원들도 많이 알고 있었다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가즈마 급은 아니더라도, 미호코도 인성이 쓰레기인건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뒈져버려라 변태 새끼!"라는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는, 시원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단점들이 명확해서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한 번에 볼 만한 재미와 짧은 분량을 갖춘, 킬링 타임용으로 적합하지만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0페이지 초반 분량에 12,000원이 넘어가는 가격도 과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4/20

권외편집자 - 츠즈키 쿄이치 / 김혜원 : 별점 3점

권외편집자 - 6점
츠즈키 쿄이치 지음, 김혜원 옮김/컴인

일본의 편집자이자 작가, 사진가인 저자가 자신이 출판계에서 쌓아온 경력을 털어놓는 에세이집.
지금도 발간되고 있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잡지인 'popeye'와 'Brutus'에서 시작하여, 독립후 사진까지 직접 맡아 취재하여 발표한 Tokyo Style, 일본의 기묘한 장소들과 같은 기사들과 기사를 토대로 발표한 책들, 지금은 e-mail magazine 작업을 진행한다는 저자의 출판 여정과 함께, 이러한 취재와 창작 과정에서 느꼈던 여러가지 감정들과 단상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집자'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기자, 작가, 사진가, 창작자로서의 작업이 훨씬 많은건 의외였습니다. 저자가 원하는 책을 만들지 않고는 못배기는 사람이라서 그렇기도 한데, 여튼 익히 알고있고 친숙한 편집자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직접 기획해서 만든 기발한 책들 소개도 인상적이었어고요. 아무도 안 만들 것 같아서 만들었다는데, 일본, 미국의 기묘하고 재미있는 장소라던가 러브 호텔 사진집 등 소개만 보아도 재미있는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 중 가장 흥미로왔던 책은 성인 잡지 독자 투고 일러스트에 주목하여 출간한 기획이었습니다. '핀카라타이소 (ぴんから体操)'라는 작가는 그 중에서도 특출났던 덕분에, 출간 후에 유명해져서 전시회까지 정기적으로 열린다고해서 어떤 작품인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보자마자 변태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승자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는 시선, 판매량과 관계없이 원하는 책을 내고야 마는 열정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책을 만들어도 먹고 살 수 있는 문화적 저변도 부럽고요. 물론 저자도 인세로 먹고 살지 못한다고 언급은 하지만, 이런 책을 여러 권 출간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요. (SF 전문 출판사 '불새'의 안타까운 최후가 겹쳐집니다)

백전노장다운 조언, 경험담도 새겨들을만한게 많습니다. 몇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내 돈 주고 구입하기'
무작정 인터넷으로 검색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머리와 주머니의 돈으로 판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미술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문을 두드리고 열어봐야 경험이 쌓인다.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머지않아 주변 의견에 흔들리지 않게 되고 좋다고 느낀 자신의 감각을 확신할 수 있는 날이 온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게 자신을 다져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 "현시연"의 마다라메의 말이 떠오릅니다.

속독이나 다독은 밥을 급하게 먹거나 과식하는 것과 같다. 편집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100번 읽은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 추리소설 1,000권을 넘게 읽었다고 우쭐했던 저를 반성하게 만드는 명언입니다. 추리 소설 중에 100번 읽을만한 책이 무엇일지 한 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록만 들을거야라고 고집부리다가 어른이라면 재즈를 들어야지 하다가 마지막에는 고급 노래방에서 언니들과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는 승자 그룹보다, 죽을 때까지 핑크 플로이드를 들으며 만족하는 패자 그룹이 훨씬 존경스러워졌다.
: 성인잡지 독자 투고 일러스트를 모아 책으로 만드는 사람다운 견해였어요. '병신같지만 멋있어!' 느낌의 말이기도 하지요. 패자들을 위한 멋진 헌사라 생각됩니다.

프로란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매일 그런 생각만 끝없이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대신해 철학자는 평생 동안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책을 읽는다. 이처럼 누군가를 대신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 먼 곳까지 가보는 사람, 맛을 연구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프로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일을 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 이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직장인이 그 업무의 '프로'라서 월급을 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기도 하니까요.

이외에 실제 책을 여러 권 출간한 '프로'다운 말도 많습니다.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대략적인 스케치를 하는 정도가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준비는 결과를 가정하고 단정짓는 과정이 아니라 기초를 닦아두는 과정이다." 처럼요. 미술 대학을 부정하는 말도 기억에 남네요. 저 역시 아득히 오래 전이지만 미대 졸업생인데, 솔직히 대학에서 예술이나 디자인에 대해서 무언가 배웠다는 실감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냥 그런 작업을 하는 공간과 같은 분야에 관심있는 친구들을 모아놓은 오프라인 모임에 가깝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전부가 다 볼만하고 좋은건 아닙니다. 꼰대스러움이 글 곳곳에 묻어나는건 별로였어요. 대표적인게 '기획과 여정도 처음부터 모든걸 꼼꼼하게 계획하지 않는게 좋다. 예기치 못한 만남은 예상을 뛰어넘은 장소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모든걸 꼼꼼하게 계획해야 하는 취재, 업무가 있는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는 MBTI가 J인 사람은 견디지 못할 상황이기도 하고요. 업무의 특성과 사람마다 개성이 모두 다른데, 자신에게 잘 맞았다고 남에게도 단정지어 이야기하는건 꼰대지요.
"그들의 삶은 세상에서는 패배자라 하고 부모에게는 근심거리가 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건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았다."와 같은 글도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알려주는게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리고 신선했던 취재들도 거듭되다보니 "수상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와 비슷해져서 식상해져 버리고 맙니다. 러브돌을 만드는 오리엔트 공업 이야기는 그냥 같은 취재더라고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인터넷 메일 형태의 매거진을 정기 간행하는 등 꺾이지 않는 저자의 열정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1/09/05

동경 표류일기 - 다쓰미 요시히로 / 하성호 : 별점 3점

동경 표류일기 - 6점
다쓰미 요시히로 지음, 하성호 옮김/북스토리

일본 극화의 창시자 다쓰미 요시히로의 대표작을 모은 단편집으로 아홉 편의 단편과 후기와 연보, 해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은 소년지에 발표되었다는게 믿기지 않는 어둡고 잔혹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데포르메 심한 기존 데즈카 만화 스타일에서 벗어나서,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어두운 이야기를 했다는게 극화의 본질이 아닌가 싶네요. 잘 그렸다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 이런 이야기를 끌고가는데 부족함 없는 작화도 잘 어울렸고요.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다소 진부합니다. 전쟁 직후, 가혹하고 냉정한 현실에서 발버둥치다가 결국 좌절을 맞는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인 탓입니다. 냉혹한 가족간 범죄가 기묘하게 드러나는, 약간 하드보일드 스타일 범죄극인 "지옥", 연애물이라 할 수 있는 "사육", 잔혹한 인간 드라마인 "도쿄 고려장", 터프한 복서가 승승장구하다가 마지막에 패배하고 만다는 스포츠 드라마 "조종" 등 장르는 다양하지만, 이야기 패턴이 대체로 동일하다는 약점도 크게 느껴집니다. 주인공이 좌절을 극심하게 느끼는 순간에 대한 포착과 묘사가 발군이라 이야기 설득력이 높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이 역시 반복되니 식상해 지더군요.

그나마 조금 특이했던건 "사람 있어요"와 "조종"입니다. "사람 있어요"는 그냥 실패하고, 좌절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창작 욕구를 잃었던 주인공 만화가는 진짜 그리고 싶었던건 성인 만화였다는걸 깨닫는다는 전개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결국 좌절을 맞는 - 화장실을 엿보는 변태로 전락한다 - 결말 때문에 이야기가 이상해져 버렸어요. 만화가가 '여자 화장실'에 숨어들었다는 뜬금없는 상황 설정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화장실 벽 낙서에서 따 온 이야기를 성인 만화로 그렸다가 인기를 끌지만, 원작자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런 점에서 다쓰미 요시히로라는 작가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좋아하고, 잘 하는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그리는건 능숙하지만 변주를 만드는 능력은 없어 보였거든요. "조종"은 내용 구성은 다른 작품과 별다를건 없지만, 비교적 현대적인 작화와 80년대 이현세의 "지옥의 링"이 떠오르는게 조금 신기했고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실 역사적인 가치를 생각해서 구입했는데, 이 정도면 재미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덧붙이자면, 뒤의 연표를 보니 수록작들 모두가 1970년 이후 발표되었더군요. 극화의 대부로 잘 알려져 있는 사이토 다카오의 "고르고 13"이 발표된건 1968년입니다. 데즈카 오사무만 해도 이미 이 때에는 이런저런 성인 극화를 그렸을 때이고요. 우리나라도 독재 시절이라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은 없었지만, '성인 만화'라고 부르는 고우영의 만화가 발표된 게 1970년대 초반이지요. 작풍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다룬게 극화라 친다면, 츠게 요시하루의 "치코"만 해도 발표된 게 1966년입니다. 다쓰미 요시히로의 작품들이 시대를 앞서갔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쓰미 요시히로가 설령 "극화"라는 말을 창시했다 하더라도, 이미 존재했던 장르에 이름을 붙였을 뿐인데 '극화의 창시자' 로 추앙받는건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하드보일드 장르의 거장은 해밋이나 챈들러이지, 그런 류의 작품을 하드보일드라고 명명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조금 재평가가 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2010/08/26

데드트릭 1,2 - 카린펜 (華倫変) : 별점 3점


나나모토서에 근무하는 순사장 이치모리 잇페이, 과학수사 연구소 수사관 도쿠가와 도쿠코, 그리고 변태 명탐정인 경시청 수사1과 경부 하다케야마 미치아키가 나나모토서 관할구역에서 발생한 기상천외한 범죄사건을 수사하여 해결하는 정통파 수사 추리만화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니고 원서로 구해봤죠.

슥 한번 훝어봤을때는 작화나 전개가 왠지 어설픈 부분이 많이 보여서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권을 읽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평범한 추리만화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추리강국 일본의 힘이겠죠?
범인이 앞부분에서 살짝 드러나는 도서 추리물 형태임에도 진상트릭은 끝까지 숨겨놓고 수사가 중심이 되는 본격 추리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제법이지만 독자가 추리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와 단서를 수사과정과 맞물려 제공하는 전개방식 역시 정통 본격 추리물에 걸맞는 수준이라 만족스러웠어요. 곳곳에서 느껴지는 추리라는 장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과학수사에 대한 세밀한 자료조사 역시 돋보이는 부분이었고요.

작화, 컷 구성 등 만화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며 캐릭터들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점 (주역인 도쿠코조차 전개에 사실 큰 필요가 없습니다), 1권에 비해 2권은 완성도가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아쉬우나 기대 이상의 신선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카린펜 (華倫変 かりんぺん)은 에로망가 출신 작가로 5권의 작품만 남기고 2003년 급성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하네요. 젊은 나이에 사망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 출간은 어려워 보이지만, 이 작품이라도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권 : "연속자궁 강탈 살인사건"
나나모토 고교 여고생과 양호 교사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두 사체 모두 자궁이 적출된 상태였다. 경찰은 나나모토 고교에서 발견된 육망성 표식 등을 근거로 '악마 숭배' 의식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것은 왕따이자 저주와 주술 등에 취미를 가지고 있던 2학년생 츠지모토 가즈야였다.

제목 그대로 '자궁 적출'이라는 잭 더 리퍼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연쇄살인극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연쇄살인극이 단지 악마 숭배나 잔혹함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진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용의자에게 사건을 뒤집어 씌우기 위한 주도면밀한 계획이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공정하게 독자를 속인다는 점에서 정통 고전 본격 추리물 성향을 잘 따른다고 할 수 있고요.
그 외에도 추리 애호가를 사로잡을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잭 더 리퍼 사건의 가설 중 하나를 채용한 진상이라던가, 탐정역인 하다케야마가 진범을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로 진상을 풀어낸다는 결말은 형사 콜롬보를 연상케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증거를 제시하라는 범인 앞에서 범인의 통화 녹음을 듣고 주변 소음으로 위치를 추적한 뒤, '공중전화'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공중전화에서 범인의 지문이 묻은 동전을 찾아내는 등의 과학에 기반한 철저한 수사도 볼거리였고요.

과연 자궁 적출이라는 행위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 등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유머 등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 작화면에서 세련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2권 : "도쿠코의 범죄"
연휴에 도쿠코에게 친구 미에가 찾아온다. 그녀와 술을 마시다 잠들어버린 도쿠코는 자신의 옷이 피에 젖어 있다는 것, 그리고 피로 물든 칼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4일 후 다카이라는 청년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고, 도쿠코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도쿠코 옷과 칼의 피가 피해자의 것이었고 그녀의 모발이 피해자 방에서 발견된 것!
도쿠코를 구하기 위해 이치모리는 하다케야마의 도움을 요청하는데...

도쿠코가 범인일리가 없기 때문에, 독자는 미에가 범인임을 확실히 알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시각에 교통사고로 체포되었는데, 체포장소에서 범행장소까지는 차로 2시간이 걸려서 그녀는 범인일리 없다'알리바이 트릭을 어떻게 깰 것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촛점을 맞추게 되고요.

그러나 이 트릭은 특별한 조작이 있던건 아니었고, 경찰 수사의 헛점으로 철벽의 알리바이가 생겼다라는 설정이라 좀 별로였습니다.
오히려 도쿠코가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철저한 과학 수사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모발의 상태와 헤어 스프레이의 성분조사를 통한 오류 증명 -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은 두종류의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기에 같은날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 - , '곤약'은 위에서의 소화시간이 길기 때문에 사망시간 추정할 때 감안해야 한다는 것, 이문(耳紋)의 채집을 통해 범인 미에가 현장에 있었다는걸 증명하는 것 모두가 철저한 과학 수사에 기반합니다. 이런 류의 다른 컨텐츠들에 못지 않은 수준으로요.

설정과 내용에 비하면 지나치게 길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앞서 말했듯 경찰 수사의 헛점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알리바이가 핵심이고, 범인의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도 평작은 충분히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대로 된 편집자가 붙어서 보강했더라면 아주아주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이치모리군의 도전장"
이치모리가 자신이 신참때 해결한 사건을 도쿠코에게 풀어보라고 소개하는 이야기. 
밀실에서 소녀가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열쇠를 가진 사람은 경비원 뿐이었고, 처음에 아이 어머니와 조사할 때 방은 비어있었다. 다시 조사할 때 시체를 발견하였으나 경비원은 항상 아이 어머니와 함께였다. 범인은 경비원인데 어떻게 살해했나? 라는 문제였다. 
단서는 처음 시체 발견 시에는 모포가 뒹굴고 있었으나, 구급차를 부르고 돌아왔을 때에는 모포가 사라졌다는 것 뿐.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추리소설담이 펼쳐지는 소품으로 쩌리 이치모리가 낸 문제답게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습니다. 작중 토쿠코가 이야기하듯 흔해빠진 거울 트릭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장황한 이야기가 나름 재미를 줍니다. 특히나 본격물은 프로레슬링, 사회파는 아마레슬링이라고 비유하는게 기억에 남네요. 아마레슬링이 각본없는 진정한 승부지만 작위적인 프로레슬링이 훨씬 재미있다는 논리죠. '바보같지만 재미있어!'랄까요.

또 사건의 동기와 이후 이야기를 작위적으로 짜맞추는 이치모리의 모습에서 최근 추리만화를 풍자하는 느낌이 풍기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2/08/14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마이클 코넬리 / 조영학 : 별점 2점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4점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는 운 좋게 거물 부동산 업자 루이스가 한 여성을 잔인하게 폭행했다는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었다. 미키 할러는 루이스가 무죄라는걸 확신하여 변호에 임했지만, 어느 순간 루이스가 유죄일 뿐 아니라 과거 일어났던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루이스에 의해 조사원 라울이 살해당했고 유력한 증거마저 빼앗겼을 뿐 아니라, 라울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는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루이스는 이런 미키 할러를 협박하여 자신의 변호에 힘을 쏟게 만드는데....


마이클 코넬리의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엄청난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입니다. 매튜 매커너히 주연의 영화도 흥행에 성공했었고요. 작가가 생각했던 멋진 트릭과 설정을 아낌없이 쏟아붓기 때문에 시리즈의 경우는 첫 작품이 가장 뛰어난 경우가 많기도 하고, 이전에 읽었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에 대한 기억도 좋아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완독했네요.

그러나 이 작품은 별로였습니다. 일단 미키 할러 캐릭터부터가 별로에요. 정의로운 변호사와 악덕 변호사 사이의 애매한 무언가로 그려져 있거든요. 조금 자세하게 설명드리자면, 미키 할러는 의뢰인들이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무죄로 풀려나게 만드는데 빼어난 능력을 발휘하는걸로 묘사됩니다. "법은 진실과 아무 상관이 없고 타협과 개량과 조작만이 있을 뿐으로, 나 역시 무죄냐 유죄냐를 다루지 않는다" 면서요. 이 과정에서 "돈이 없으면 죄를 짓지 말라"며 엄청난 돈 욕심도 부립니다. 그렇다면, 루이스의 의뢰를 받아들일 때 그가 무죄임을 확신하고 변론에 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던대로 법의 헛점을 찾아내어 의뢰인을 빼내면 그만이지요.
같은 이유로 루이스가 연쇄 살인범이고, 미키 할러가 과거 사법 거래를 유도해 징역을 선고받게 만든 지저스 사건의 진범이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저스는 돈이 없었고, 루이스는 돈이 많으니까요. 피고만 풀려나게 해 주고 돈만 벌면 되지요.
게다가 앞서 여러 명의 마약 사범들을 무죄로 풀려나게 하는데에는 일말의 주저도,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않으면서 루이스에 대해서만 정의감을 불태우는 것도 앞 뒤가 맞지 않았어요. 이를 미키의 부친 말을 인용하면서 '무고한 사람'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식으로 포장하고는 있는데 이 정도로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물론 루이스가 라울을 살해했기 때문에 복수심을 갖는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는 미키 할러가 불필요한 정의감을 불태워 루이스의 뒷조사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즉, 주객이 전도된 상황인 것이지요.
그 외 다른 캐릭터들도 별로인건 마찬가지입니다. 변태 연쇄 살인마 루이스에 대한 설정이라던가 미키 할러와 전처이자 검사 매기와의 관계 등도 진부했습니다. 특히나 루이스의 경우는, 다른 작품들 속에서 숱하게 등장해왔던 두뇌파 연쇄 살인마들과 흡사했을 뿐더러, 다소 뜬금없이 살인마라는게 밝혀져서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설득력있게 그려냈어야 했습니다.

이야기도 작위적인 전개가 많아서 잘 짜여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루이스가 진범이라는걸 알아차리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미키 할러는 옛 의뢰인 지저스 사건의 피해자 마사 렌테리아와 루이스 사건의 피해자가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는걸 알아채고 루이스가 진범이라는걸 확신합니다. 허나 두 피해자가 그렇게 닮았다는 것 부터가 비상식적이고 작위적이에요. 루이스가 미키 할러의 총을 훔쳐 라울을 살해할 때 사용했다는건 작위적인 설정의 끝판왕 격입니다. 총은 루이스가 미키를 옭아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만약 미키 할러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루이스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미키 할러를 협박할 생각이었을까요?
미키 할러의 작전도 치밀하지 못합니다. 고작해야 법정에서 밀고자의 입을 빌어 루이스가 과거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드러내는 정도인데, 그 밀고자의 증언이 허술하다는건 이미 법정에서 미키 할러 자신이 증명해 버립니다. 경찰이 이 증언으로 보강 수사를 벌일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고요. 유력한 용의자였던 지저스가 사법 거래를 통해 이미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걸 자백해버렸는데, 경찰이 다시 수사에 나설만큼 한가할리도 없고, 심지어 담당 형사는 미키 할러를 미워하기까지 하는데 왜 다시 수사를 벌일까요?
루이스의 범죄 행각도 왜 진작에 체포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대충이었습니다. 루이스는 CCTV에 얼굴을 드러내고 당당히 피해자를 찾아가거든요.

그나마 전자 발찌로 모든 행적이 추적당하는 루이스가 어떻게 라울을 살해했는지? 에 대한 트릭은 하나만큼은 괜찮았습니다. 루이스의 어머니가 대신 범행을 저질렀다는 거지요. 상당히 설득력이 높을 뿐더러, 라울이 죽기 전 손가락으로 남긴 다이잉 메시지 - W, 즉 여자가 범인이다! 라는 것 - 와 연결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들이 더 많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이미 영상화가 되었으니, 소설보다는 영상화된 버젼을 보는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2006/01/14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별점 2점

ロシア紅茶の謎 (講談社文庫) (文庫)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講談社

범죄 심리학 조교수이자, 실제 사건에서의 활약으로 "임상 범죄 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천재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 시리즈 단편집. 아리스가와 아리스(저자)의 첫번째 단편집이기도 합니다. 그의 "국명 시리즈"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책에는 전부 6개의 단편과 작가 해설 등이 담겨있습니다.
일본 여행 가서 구입한 책으로 장편이 아니라 단편집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번역 한번 해 볼까 하고 삽질하느라 걸린 시간도 있어서 이래저래 거진 한달이 걸렸네요.... 2006년 들어서는 처음으로 완독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만화책은 수도없이 읽었지만서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 이하였습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고도 불리우는 신본격 작가라서 굉장히 기대했는데 말이지요. 이유는 작품 대부분이 "트릭을 위한" 이야기들이라 트릭에 매몰된 듯한 느낌인 탓입니다. 트릭도 만들기 쉬운 암호 미스테리가 많아서 별로였고요. 표제작이며 작가 스스로 마음에 든다는, 이른바 국명 시리즈인 "러시아 홍차의 비밀"이 제일 어처구니 없고 수준이하였다는 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또한 탐정역의 히무라 히데오의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것도 감점 요인입니다.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에는 단편이라는 특성상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겠지만, 잘난척 하는 천재라는 고전적 스테레오 타입 그대로의 인물이라 새로운 면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신본격답게 문제-해결이 명확하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것은 좋았습니다. 용의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단서에 대한 범위를 좁혀줌으로써 이해를 돕는 추리만화 타입의 전개도 쉽게 읽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요.

결론내리자면 그냥저냥한 평작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 자체는 제법 괜찮은게 있고, 뛰어난 작품도 분명있기는 합니다. 위에 말한 단점은 장편을 보면 많이 상쇄될 것도 같고요. 다음번에는 장편에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 3개월은 걸리겠지만....

개인적인 베스트는 "동물원의 암호"와 "팔각형의 함정" 입니다.

작품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동물원의 암호 :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육사. 그는 죽기 직전 암호로 된 쪽지를 남긴다. 그 암호는 퍼즐광이었던 피해자가 공들여 만든 것으로 암호를 해독하면 범인을 알 수 있으리라는 판단 하에 주인공 컴비는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해독에 도전하는데...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자체가 무척 괜찮습니다. 기발하면서도 수긍이 가는 그런 암호거든요. 일본 거주자가 아니면 풀기 힘들다는 약점은 있지만 말이죠. 내용 전개도 명쾌하고 논리적이라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 중 하나였습니다.

2. 지붕 밑의 산보자 :
하숙집 주인이 살해되는데 경찰 조사로 발견한 그의 일기에서 그가 하숙집 지붕을 밤에 돌아다니는 변태적인 취미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숙인들 중 인근 연쇄 강간마로 짐작되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 밝혀진다. 그런데 하숙인들을 암호화된 이니셜로 표기하고 있어서 정체를 모르는 상태. 연쇄 강간마이자 하숙집 주인 살인 사건의 범인인 그 하숙인을 찾기 위해 두 컴비가 나선다.
역시 암호 트릭입니다. 이 작품은 암호 자체는 무척 간단한 편이라 정교한 맛은 좀 없더군요. 그래도 에도가와 란포의 동명 단편을 응용한 센스와 마지막의 살짝 등장하는 반전은 무척 좋았다 생각됩니다.

3. 붉은 도처 (稻妻) :
한 여인이 투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히무라 히데오의 제자인 학생이 목격자로 나서 그 여자가 방에서 밀려 떨어졌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 여자의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
밀실 트릭물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정교함은 떨어지는 편이고 작품에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너무 적어서 이상할 정도였어요.

4, 룬의 가르침 :
외국인 기자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요청받아 찾아간 히무라 히데오. 그는 피해자가 손에 쥐고 죽은 "룬 문자판" 4개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주력한다.
이 책의 단편들 중에서 전개가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 히데오의 방에 놀러간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책상위에 놓여진 룬 문자판을 보게 되자 히무라 히데오가 그것에 관련된 사건을 들려주는 셜록 홈즈물 스타일의 전개로 이루어지거든요. 트릭은 역시나 일본 독자들만이 풀 수 있는 암호인데 평이하기도 하지만 좀 억지성이 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룬 문자"라는 요소가 왜 들어갔나 싶게 쌩뚱맞아서 의아했는데 책 뒤의 작가 후기를 보니 "고대문자"에 관련된 트릭 추리물을 써 달라는 의뢰의 결과물이더군요. 뭐 그냥저냥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5.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인기 작사가 독살 살인 사건에 참여한 컴비. 아무도 그의 찻잔에 독을 주입할 기회가 없었던 상황에서 사건의 해결에 도전한다.
표제작이자 국명 시리즈라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에서 이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트릭도 억지에다가 범인이 왜 그런 트릭을 썼는지에 대한 타당성 자체가 불분명 합니다.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상황" 이라고 해서 자기 자신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어차피 제일 의심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는데.... 본격물의 정도를 벗어나 너무 트릭에만 집착한 씁쓸한 결과물로 보입니다.

6. 팔각형의 함정 :
아리스가와 아리스 원안의 추리극을 상연하는 연극 예행 연습에 초대된 두 컴비는 실제로 살인 사건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게 실제로 있군요! 만화에서만 보던 "추리극" 공연과 관객이 함께 하는 범인 맞추기 이벤트라는 연극을 위해 아리스가와 아리스(작가)가 실제로 원안을 제공했던 연극 각본의 소설화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도 본격물에 걸맞는 깔끔하고 완벽한 구성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도 아주 약간을 제외한다면 수긍할 만 했고 범인이 왜 그렇게 트릭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합당하며 범인을 알게 되는 단서 역시 이치에 맞거든요. 일종의 문제편 격인 서술 뒤에 "독자에게의 도전장" 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연극으로 본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11/02/14

기묘한 생물학 - 한혜연 : 별점은 2.5점이지만 꾸준히 응원하렵니다

기묘한 생물학 - 6점
한혜연 글 그림/거북이북스

10여 년 전 "M. 노엘"이라는 당시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본격 정통 범죄 추리 수사물을 선보이며 제 눈을 사로잡았던 작가 한혜연의 신작입니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주저 없이 구입한 책으로, 지난주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서 진통하는 와중에 옆에서 읽었습니다. (크...)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풍성한 구성과 더불어 심리 - 호러 분위기가 강한 작품들이라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던 작가의 이력다운, 생물학적 이론이 담뿍 실려 있는 작품들이라는 것도 독특한 재미를 선사해 주고 있고요. 이렇게 전문지식을 특정 장르에 녹여낸 작품은 그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데, 한혜연 작가는 전문성과 재미의 경계선상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해낸 편입니다. 아울러 확연히 좋아진 그림 역시도 작가의 내공 상승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쉬움 역시 큽니다. 먼저, 설정 부분에서 생물학 전공자의 이론을 깊이 집어넣은 점은 인상적이지만, 설정 이외의 전개가 뻔한 작품이 많다는 것이 첫 번째 아쉬움입니다. 억울하게 살해당한 시체가 묻힌 밭의 작물을 먹은 사람들의 행동을 그린 "먹이연쇄"라든가, 기생충의 숙주 역할을 하는 에로배우의 인육 파티 이야기인 "완전변태"를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지금 읽기에는 너무 안일한 전개라 생각됩니다.

또한, 기둥 줄거리 이외의 설명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이 두 번째 아쉬움입니다. 너무 단편 분량에 얽매인 탓인지 모르겠으나, 전개가 굉장히 불친절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비가 오면 몸이 안 좋아지는 주인공과 물고기의 집단 죽음을 연관시킨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주인공과 물고기의 죽음을 연결하는 방식이 단순한 장면의 교차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래서 어쩌라고?" 랄까요.

마지막으로, 생물학 이론을 조금 무리하게 작품에 접목시키려 한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한성유전"의 경우를 보자면, 지극히 한국적인 설정이나 전개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았는데 "한성유전"이라는 설정을 끌어들이고 그 사례를 녹여내기 위한 전개는 억지스러웠습니다. "귀에 털이 많다"라는 이유는 좀 지나치잖아요? 귀 면도기나 잘 쓰면 될 것을 말이죠. 차라리 대머리였다면 모를까...

그래도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의 만화임에는 분명합니다. 실제 있었던 집단 자살 사건을 이론과 접목시키는 발상이 좋았던 "오페론의 유전자",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어 특이한 반전을 보여준 "Butterflies" 두 편만큼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대단했습니다. 좋았던 작품들처럼 "생물학" 본연의 이론을 실제 사건과 접목시키는 데에 보다 신경을 쏟았더라면, 아니면 너무 생물학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일상적인 분위기로 끌고 갔더라면 더 나았을 것 같지만, 현재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만화라 생각됩니다.

비록 아쉬움이 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척박한 한국 장르 만화 풍토에서 10년 넘게 전문성을 띄고 활동해 온 작가는 당연히 응원해야겠죠. 한국 심리 - 호러물에 관심이 많거나 작가의 팬이라면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단, 제목처럼 "기묘한" 느낌은 별로 없다는 것은 유념하시길.

2021/08/06

FoP 소설 : 산책하는 침략자 - 마에카와 도모히로 / 이홍이 : 별점 2점

FoP 소설 : 산책하는 침략자 - 4점
마에카와 도모히로 지음, 이홍이 옮김, 최재훈 그래픽/알마

축제에서 금붕어를 손에 넣은 할머니가 아들 부부를 살해하고 본인 몸도 난자하여 자살했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손녀 아키라는 심한 충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사건 취재 차 마을을 찾은 르포 기자 사쿠라이는 자기가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고교생 아마노를 만났고, 취재를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한편, 나루미는 남편 신지가 축제에 갔다가 금붕어 하나를 가진 채 병원에 입원한 뒤, 신지가 이전 남편과 전혀 다른 무엇이라는걸 알아챘다.

사람들로부터 '개념'을 빼앗는 외계인인 아마노와 아키라가 만나서 지구 정복을 계획하고, 이를 막기 위해 사쿠라이는 나루미, 신지와 함께 도망친다. 신지는 나루미로부터 '사랑'이라는 개념을 빼앗게 되는데...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마에카와 도모히로의 SF 소설로 별다른 정보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입부는 정말 대박입니다. 정확하게는 할머니가 축제에서 낚은 금붕어를 집에서 '회'라고 하면서 산 채로 잡아 먹고, 그 다음날 아들 부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장면까지요. 굉장히 짧은 분량 속에서 공포심과 흥미를 모두 불러 일으킨 덕분입니다. 

중반부까지도 그런대로 재미있습니다. 이른바 '외계인'들이 선보이는 독특한 능력 덕입니다. 외계인들은 대화하는 상대방이 특정한 단어의 이미지를 머릿 속에 떠올리면, 그걸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빼앗긴 사람은 그게 뭔지를 잊어 버리게 되고요. '개념'을 수집한다는 목적을 위해서인데, 이를 통해서 여러가지 해프닝이 벌어지게 됩니다. 나루미의 동생 아스미로부터 신지가 '가족' 이라는 개념을 빼앗아 온 뒤, 아스미가 가족에 대해 모든걸 잊고 아빠를 변태로 생각해서 경찰에 신고한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결말까지는 완전 별로였습니다. 외계인의 지구 침략 계획을 막기 위한 르포 기자 사쿠라이의 노력이 그려지는데, 하는건 외계인 아마노가 외계인 아카리를 만난 뒤 도망친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하는 일들 거의 모두가 즉흥적이라 치밀한 느낌은 전무합니다. 제법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제대로 된 설명도 부족합니다. 신지를 다른 두 외계인과 못 만나도록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외계인들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 처럼요.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인 나루미와 신지 이야기는 잔잔한 사랑 이야기일 뿐이라 지루합니다. 사랑 이야기가 나쁜건 아닙니다. 저도 아주 좋아하고요. 하지만 나루미에게서 '사랑' 이라는 개념을 빼앗은 신지가 새롭게 태어나서, 나루미를 위해 살아갈 결심을 하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 황당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잔혹한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야기 결말이 "사랑이 지구를 구한다"라니, 독서에 들인 시간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핵심 설정인 "개념 빼앗기"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앞서 아스미는 "가족" 이라는 개념을 빼앗긴 뒤, 가족을 아예 기억하지 못했지요. 의사는 아예 폐인이 되어 버렸고요. 하지만 신지에 대한 "사랑"을 빼앗긴 나루미는 멀쩡한 채로 신지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건 전개를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을 바꾼, 편의적 발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볼 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결론적으로는 수준 이하였습니다. 차라리 "기생수"처럼 개념을 빼앗는 외계인들의 냉혹한 행각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전개가 더 나았을거에요. 선한 마음을 가진 신지와 개념 빼앗기에 골몰하는 아마노, 아키라의 행각을 대비시키면서요. "개념" 빼앗기는 "죠죠" 시리즈에 등장했던 스탠드 능력과 흡사한만큼, "죠죠", 혹은 "기억파단자"처럼 두뇌 배틀처럼 그렸어도 괜찮았을 것 같고요.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메시지 전달이 핵심인 현재의 작품에는 전혀 맞지 않는 방향이었겠지만, 최소한 지금보다야 재미는 있었을 겁니다.

2015/04/15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 甘城ブリリアントパーク (2014) - 타케모토 야스히로 : 별점 2점

거품경제 시절, 마법의 나라 메이플 랜드는 인간의 즐거운 마음을 결정화한 아니무스를 수집하기 위해 테마파크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를 세운다. 아니무스가 마법의 나라 주민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파크는 쇠퇴했고, 연간 입장객 수 50만 이하가 5년 지속될 경우 경영권이 넘어가 파크가 없어지는 계약 때문에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에 신탁을 받은 메이플 랜드의 공주이자 파크의 지배인 라티파는 카니에 세이야를 지배인으로 위촉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의뢰를 받아들인 세이야는 지배인 대행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하는데...

정말 오랫만에 한 시즌을 전부 감상한 재패니메이션. 아동용을 제외하고 한 시즌 감상은 "UN-GO" 이후 3년만이네요.

일종의 판타지 코미디로 "브릴리언트 파크"를 중심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아우르는 설정이 재미요소입니다. 테마파크의 인형옷(?) 캐릭터들이 인형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긴 중년 아저씨 요정이라는 식으로요. 이 설정은 오래전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 등장했던 "베이비 허먼"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3인방(모플, 마카롱, 티라미)의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상상력과 행각은 베이비 허먼을 몇 단계 뛰어넘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세세한 설정, 떡밥이 회수되지 않고 이야기도 뜬금없이 전개되는 것이 많은 탓입니다. 일단 주인공 카니에 세이야에 대한 설정부터 문제가 많습니다. 오래전 아역 스타였다는 과거,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마력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은 작품과 별 상관이 없거든요. 한마디로 조금 치밀하고 똑똑한 정도인 고교생인데, 이래서야 파크 관계자들의 생존(?)을 건 몇 개월을 전적으로 일임하여 맡긴다는건 설득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고금동서의 모든 미연시를 공략해 온 "함락신"인 "신만이 아는 세계"의 케이마처럼 테마파크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세계 챔피언이다! 정도는 되어야 이야기 전개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러고 보니 케이마의 설정은 확실히 빼어난 데가 있군요.

그 외의 전개, 설정도 뜬금없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센토 이스즈의 총알 중 기억을 잊게 한다는 총알이 몇 개 없으니 잘 써야 한다는 설정은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생존이 걸려 있는 위기에 봉착해 있으면서도 보물 찾기를 나선다던가, 세이야가 앓아 누운 사이 학교를 책임진다던가, 수영장에서의 한판 활극이나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는 식으로 이런저런 사고를 치는 게 이야기의 대부분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이럴 시간이 있다면 길거리에 나가서 호객행위라도 했어야죠! 손님을 동원하기 위한 전략도 파격적인 할인(입장료 30엔) 등 큰 출혈을 감수하면서 벌이는 것들이라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런 쓰잘데 없는 중간 부분은 대폭 편집하고 한 3~4부작 정도의 OVA로 제작하는 게 더 나았을 겁니다. 1화 내용을 유지하고 중반부는 손님을 모으기 위한 행동들 중심으로 편집, 그리고 마지막의 축구 시합과 연계하여 한 번에 대역전을 노리는 결말 정도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게 이야기 완성도는 높았을테니까요.

그래도 각 에피소드별로 피식할 만한 요소와 돋보이는 설정 덕에 끝까지 보는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50만 명을 채우기 위한 시간제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긴장감도 제법이었고, 이야기 내용에 계속 등장하던(심지어 오프닝까지!) 악마 유딩 3인방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등의 복선도 깔끔했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의 13화는 그냥 캐릭터 개그로 밀고 가는데 이런 방향도 나쁘지는 않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