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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7

로그 메일 - 제프리 하우스홀드 / 이나경 : 별점 2.5점

로그 메일 - 6점 제프리 하우스홀드 지음, 이나경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고위층 명사가 유럽 어딘가의 독재자를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 진짜로 죽이려고 했던건 아니고, 심심풀이로 벌인 게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독재자의 부하들은 체포한 그에게 모진 고문을 가한 뒤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 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는 천신만고 끝에 영국으로 돌아오지만, 독재자의 부하들이 여전히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불명예를 걱정한 그는 국가의 도움을 받지않고 홀로 도주하여, 과거 추억이 어려있던 도싯 지방에 은신처를 마련하는데....

2차 대전 직전인 1939년 출간된 전설적인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여러 미스터리 랭킹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작품으로, 국내에는 상당히 늦은 2019년에 출간되었지요.

사실 저는 제목만 보고 최첨단 IT 소재물이라고 착각해 왔었습니다. Log mail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알고보니 Rogue Male 이더라고요! 외톨이 수컷, 일본식 표현으로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와 비슷하겠지요? 일종의 사냥감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끔은 흉폭함과 야성을 드러내는 주인공에게 딱 들어 맞는 제목입니다.

명성답게 서스펜스, 긴장감은 발군입니다. 외국에서 망신창이 상태로 이름모를 낚시꾼, 그리고 영국 배의 일등 항해사 베이너의 도움을 얻어 귀국한 뒤, 도싯 지방의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에 위치한 은신처로 이동하기 위해 여행하는 부부로부터 사이드카가 달린 자전거를 구입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고, 은신처 위치가 좁혀질 위기에 처하자 경찰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다른 곳을 은신처처럼 만들어 위장하고, 결국 외국 비밀 요원 퀴브-스미스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좁은 공간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과정 모두 읽는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여러가지 잘 안배된 설정들도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대표적인게 주인공이 고문을 받아 '눈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정입니다. 이 상처 때문에 사람들 눈에 띄게 되어 원래 계획이었던 시골 마을에 몰래 숨어드는게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글라스로 가려도 누구나 눈에 이상이 있다는걸 눈치채버리고 말거든요. 비교적 초반에 비밀요원 중 한 명을 죽이는 바람에 영국 경찰들에게도 쫓기게 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주인공의 눈 이상이 전국에 알려졌을 뿐더러, 외국 정보요원들 뿐만 아니라 영국 경찰들도 주인공을 체포하려 해서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주인공의 실력과 의지, 인내력만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조력자 - 특히 미녀 - 를 만나 도움을 얻는 헐리우드 스릴러스러운 전개는 전무합니다. 처음 탈출할 때 외국인 낚시꾼과 일등 항해사 베이너가 선선히 도와주는 장면같이 운에 의지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허용 범위 안쪽입니다. 낚시꾼은 독재 반대파일 수 있으며, 베이너의 경우는 주인공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라는 설정 덕에 도와주었을 거라는 암시를 주는 식으로 합리적인 설명도 덧붙여져 있으니까요.

쫓고 쫓기는 대결 구도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치밀하고 끈기있는 추적으로 주인공의 은신처를 알아낸 퀴브-스미스 대령은 라이벌로 손색이 없습니다. 더 놀라왔던건 만만치 않았던 영국 경찰의 수사력 묘사였습니다. 도싯 시골 숲 속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있던 주인공에게 거의 한끝발 차이로 육박해 올 정도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맞부닥치는 바람에 정면에서 도주극을 벌이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요. 이런 상대방들의 추적을 통해 원래 사냥꾼이었던 주인공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상황을 잘 알려주는 묘사들도 몰입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몇가지 앞, 뒤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독재자 암살 시도가 그러한데요, 주인공은 일관되게 단지 자기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퀴브 -스미스에 의해 은신처에 산채로 감금당한 뒤에 갑자기 약혼했던 연인의 복수를 위해서라는 동기가 튀어나옵니다. 이럴거라면 처음부터 당당히 죽일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인이 남의 나라 지도자를 쏘려고 했다가 잡혔는데, 이게 왜 외교 문제가 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게임에 불과했다는 말을 외국 정보부에서 선선히 받아들여서 사고사로 죽이려 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주인공은 상당한 고위층으로 보이기에, 당연히 좋은 협박거리(?)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흥미로운건 사실이지만, 경찰 추적이 근처에 이른 탓에 가짜 은신처를 만든 뒤 그 곳에 숨어있다가 도주한 것처럼 꾸미는 장면은 과했습니다. 도주 경로와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일부러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경찰 바로 옆에 숨는 묘기를 부릴 것 까지는 없었어요. 은신처를 감추려다가 본인이 위기에 처하는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잖아요. 또 그렇게 잘 숨을 수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은신처에서 숨어 있는게 더 나았을테고요. 게다가 이 시도는 퀴브 -스미스에 의해 숨겨두었던 사이드카가 드러나, 은신처 바로 근처까지 퀴브 -스미스가 찾아왔을 때의 행동과는 반대라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퀴브 -스미스가 근처 농장을 다 뒤져서 오솔길이 은신처라는걸 알아냈다고 추리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앞서 경찰이 나타났을 때 처럼 다른 곳으로 도주했다고 위장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도주했어야 했습니다. 시간도 충분했었고요. 하지만 은신처에 틀어박혀 숨어있는 방법을 택했다가 산채로 감금당하고 마는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주인공을 은신처에 가둔 퀴브 - 스미스가 바로 그를 죽이지 않고 회유하는 척 연기를 하는 장면도 이상합니다. 바로 죽이지 않는 이유를 영 모르겠더라고요. 영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받기 위한 목적은 전혀 와 닿지도 않아요. 별로 대단한 서류가 아니라는건 주인공과 퀴브 -스미스의 대화로 이미 드러날 정도이고, 주인공 서명 정도를 위조하는게 그리 어려울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탓입니다.

주인공이 영국 정부와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도 21세기의 한국 독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불명예가 예상된다는데, 도대체 무슨 불명예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주인공이 "사실 내가 아는 영국인 중에 그가 가져온 망할 문서에 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거부하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고집 때문에 거부할 것이다."며 서명을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도 퀴브-스미스와의 마지막 대결이 아쉬웠습니다. 총이 없어서 고대 로마의 노포와 비슷한 무기를 직접 만들었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퀴브 스미스가 환기구를 막았던 자루를 빼다가 주인공이 쏜 화살에 맞고 죽는건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환기구로 고개를 내민다는건 영 석연치 않으니까요. 물론 직전에 주인공이 서명을 하겠다며 퀴브-스미스를 구워 삶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총이 없다는걸 퀴브-스미스가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내용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퀴브-스미스가 예상하지 못한 무기를 사용하는 식으로 끌고가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최소한 주인공과 자웅을 겨룬 라이벌에게 어울리는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명성이 자자한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장점도 아주 명확하고요. 그러나 지금 시점의 한국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낡은 느낌도 들어 감점합니다. 

이런 작품은 아무래도 영화로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과거 2번이나 - 그 중 한 편은 흑백 고전 영화 시대의 거장 프리츠 랑 감독이고, 또 다른 한편은 명배우 피터 오툴 주연 - 영화화 되었더군요. 곧 베네딕트 컴버비치 주연으로 다시 영상화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합니다.

2018/04/06

히틀러의 비밀 서재 - 티머시 W.라이백 / 박우정 : 별점 3.5점

히틀러의 비밀 서재 - 8점
티머시 W. 라이백 지음, 박우정 옮김/글항아리

히틀러가 남긴 장서들이 보관되어 있는 의회 도서관, 공공 기록 보관소, 민간 보관소 등을 저자가 직접 찾아다니며 뒤져본 후, 히틀러가 관심을 가졌거나 혹은 영향을 끼쳤을 책들을 골라 소개하는 책입니다. 

'책이 수집가를 보존하며 수집가가 소멸된 뒤에는 그 삶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히틀러의 장서를 통해 히틀러라는 인물의 실체를 알려주려는 시도만큼은 무척 독특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게 이 리뷰를 쓰면서 제 책장을 쭉 훝어 보니, 정말 저라는 인물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있는 책장이구나 싶더라고요. 요리 관련 서적 20%, 역사서 20%, 과학 관련 서적 10%, 장르문학 30%, 만화책 20% 정도의 구성인데 이 블로그 리뷰 비율과도 비슷하고 실제 제 관심사와도 같으니까요. 장서가 수집한 사람의 취향과 관심사를 개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목차는 열개 항으로 나뉘며, 중요한 책도 열 권이지만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책들은 그 외에도 많은데 이 중 히틀러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관심을 가졌던 책들을 분류하자면 크게 네 가지입니다.
우선 히틀러의 사상과 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거나, 최소한 그러한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첫 번째입니다. 오스보른의 "베를린", 직접 쓴 "나의 투쟁", 그랜트의 "위대한 인종의 쇠망", 권터의 "독일 민족의 인종적 유형론", 그리고 그 스스로 자기 최면에 걸릴 수 있도록 한 스벤 헤딘의 "대륙 전쟁 속 미국" 등입니다.
두 번째는 히틀러라는 인물이 형성되는데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 혹은 히틀러에 대해 증언한 인물들이 관련된 책입니다. 히틀러의 정치 인생 초반에 그를 후원하고 이끌었던 유명 작가 에카르트의 "페르 귄트", 유명 영화인 레니 리펜슈탈이 선물한 "피히테 전집" 이 대표적입니다. "피히테 전집" 은 리펜슈탈과 히틀러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목적 외에도, 피히테라는 철학자가 히틀러에게 끼친 영향도 약간이나마 설명된다는 점에서 첫 번째 분류와도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고요.
세 번째는 책 자체가 목적이나 수단이 되어 히틀러 주변에서 움직인 경우입니다. 히틀러가 싫어했다는 로젠베르크의 "20"과 이에 맞서 나치와 카톨릭을 결합시키려 했던 후달의 "민족사회주의의 기초"는 각각 책 소개와 함께 실제 히틀러 주변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일화가 함께 소개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총통이 실무, 그리고 공부를 위해 읽은 책입니다. "슐리펜", "프리드리히 대왕"과 같은 전기와 각종 전쟁사나 전술 및 각종 무기 관련 서적들 처럼요.
이러한 책들을 히틀러의 성장 과정 순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그가 점차 어떤 사상, 철학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상도 대략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역사서라고 보아도 무방하고요.

항상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후대 역사가의 사료를 통해서만 접했던 히틀러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반가왔습니다. 접근 방식이 신선한 덕분입니다. 용감하고 전우애 넘치는, 독일 제국에 충심을 다 한 군인, 생사의 기로에서 짧은 쾌락에 탐닉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은 노력가, 제대로 된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방대한 독서로 자신만의 이론과 세계를 완성하고 이를 토대로 누구와도 토론이 가능했던 천재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무기 관련 연감을 통독하여 후일 할더에게까지 한 방 먹였다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독재자이고 살인자라고 해도 16,000권이 넘는 장서를 읽고, 중요한 내용은 기억하고 담아두었다가 써먹었다니 흉내도 내기 힘든 일이긴 하지요. 세계와 맞 상대할 수 있었던 제국을 십 년 이상 철권통치한 인물이 보통 인물일리야 없겠지만, 제 생각보다도 훨씬 뛰어날 뿐 아니라 엄청난 노력가라는 점에서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성기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반신반인이더라고요. 물론 말도 안되는 민족주의에 우생학을 결합시켜 유대인을 학살한 잔혹한 독재자의 모습, 스스로를 유럽 대륙의 구원자로 생각한 과대망상 독재자의 모습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독서법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책을 제대로 독파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특정 관념을 형성한 뒤, 책의 목차와 색인을 살펴 쓸만한 정보를 조금씩 모으는 방식입니다. 때로는 결론부터 읽기도 할 정도로 책의 내용을 깊숙히 이해하기보다는 필요한 정보만 집중적으로 습득하는 방식인데, 논문을 쓸 때의 방식과 비슷하네요. 스스로의 목표나 관념이 명확하다면 나름 효율적일 수는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나 실제로 책의 목적, 그리고 광고 문구 - 1만 6000권 장서 중 단 열 권이 역사를 바꿨다 - 에 부합하는 내용인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소개되는 절반 가까이의 책들이 최상의 혈통인 아리아인의 혈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우생학적 관점, 이 때문에 유대인을 말살해야 한다는 반유대인주의 형성에 관련되어 있는 탓이 큽니다.
게다가 몇몇 책들은 히틀러가 소장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읽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에요. 이래서야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책을 선정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특정 인물을 구체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단편적인 정보일 뿐이고요.
물론 반유대주의가 히틀러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허나 이렇게까지 억지스럽게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었어요. 더 다양한 책들로 다양한 분석을 해 주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제임스 쿠퍼의 "가죽 장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카를 마이의 "사막 횡단", 스벤 헤딘의 모험담 등 평소 즐겼다는 모험 소설들도 여러 권 언급되는데, 이런 책들을 좀 더 분석하는 게 더 취지에 맞는 방향이 아니었을까요? 아울러 서재에 각종 추리 소설도 꽂혀 있었다는 증언이 있는데 과연 어떤 책이었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최소한 제목 정도는 알려주었어야 했어요. 이것도 추리 소설 홀대의 하나인지 궁금하네요.

그래도 한 인물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 보게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는 추천작입니다. 취지에 딱 들어맞는다고 보기는 좀 어렵고, 신뢰성 측면에서도 다소 부족하지만 읽는 재미도 쏠쏠하니 히틀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별점은 3.5점 입니다.

덧붙이자면, 책장이 소유자에 대해 대략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요새는 사람들이 정말 책을 안 사고, 안 읽는 시대죠. 모든 컨텐츠 소비가 스마트 폰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수십년 뒤에는 "스마트 폰 로그로 분석한 누구누구" 와 같은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2/12/25

엔진의 시대 - 폴 인그래시아 / 정병선 : 별점 3점

엔진의 시대 - 6점
폴 인그래시아 지음, 정병선 옮김/사이언스북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자동차들에 대해 시기별로 소개해주는 책입니다. 자동차를 만든 주역이 누구인지와 함께 자동차가 출시되었던 당시 상황, 사회적 분위기를 엮어서 성공했다면 왜 성공했는지,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지와 그 외 어떤 후폭풍(?)을 불러 왔는지 등 관련된 이야기를 무려 47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15편의 이야기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당대를 대표했고, 큰 인기를 끌었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읽다보니 시대와 트렌드, 유행이라는 것에 대해 식견을 넓힐 수 있었었어요. 자동차야말로 소비재의 끝판왕 격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요. 미국 중심의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고, 소개되는 도판과 책의 편집이 그닥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여러모로 독서였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15편의 소개 중 인상적이었던 몇 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짤막하게 소개드리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모델 T대 라살" 

자동차를 일반인도 소유할 수 있게 한 포드의 모델 T의 등장, 그리고 곧 돈이 있는 사람들은 고급진 무언가를 찾게 되었지만 모델 T의 디자인 개선을 등한시했던 포드가 시장을 잃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모델 T의 개발 과정도 상세하지만, 무엇보다도 헨리 포드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접근이 돋보였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독재자로 그가 벌였던 여러 행각이 가감없이 소개되며, 차를 개발했던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는 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조금 놀랐던건 모델 T는 완벽해서 더 개량할게 없다고 포드는 믿었다는데, 소개되는 내용을 보니 실제로도 그러했다는 점입니다. 보기에는 아름다웠던 라살이 지금은 거의 잊혀진 차라는 것도 그 사실을 증명하지요.

"쉐보레 콜벳" 

제네럴 모터스가 업계 최초로 자동차 디자인을 강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얼의 등장, 매년 디자인을 바꿔 차를 출시하고, 양산하지 않는 프로토타입 개발 등의 혁신적인 조치로 자동차 업계를 리드하는 과정과 콜벳의 아버지 아르쿠스-둔토프와 콜벳의 성공적인 역사를 알려줍니다. 얼은 독재자였지만 확실히 시대를 읽는 눈은 있었나봐요. "학교를 지나치는데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하지 않으면 다시 제도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새겨들을 명언입니다.

"1959년식 캐딜락" 

쉐보레의 업계 선두 지위를 빼앗아 온 크라이슬러의 '테일핀' 전성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쉐보레가 따라할 수 밖에 없었던 테일핀의 탄생과 그 유행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말로 아무런 맥락이 없더군요. 쓸데없지만 멋있다고 생각되어 유행한 경우인데, 아무래도 2차 대전 후 고도 성장기를 맞아 풍요와 화려함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그걸 대표하는게 바로 엘비스의 핑크 캐딜락이기도 하니까요.

"폭스바겐 비틀과 마이크로 버스" 

테일핀과 같은 화려함과 속물 느낌의 감성과 반대되는, 그래서 지식인들의 아이콘이 된 폭스바겐의 비틀과 마이크로 버스의 탄생과 2차 대전 후 하인츠 노르트호프가 회사를 이끌며 살아남아서, 결국 미국 시장까지 진출 후 성공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후 폐허 상태에서 복구하는 폭스바겐의 분투도 볼만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에서의 성공적인 광고 프로모션이 기억에 남습니다.

"쉐보레 콜베어 : 소비자의 반란" 

에드워드 콜이 주도했던, 미국인을 위한 비틀이었던 콜베어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콜베어의 오버스티어링 문제 (뒷바퀴 미끌림)로 변호사 찰스 네이더의 주도로 고발과 조사가 시작되어 결국 미국의 소비자 운동이 출범하게 된 콜베어의 사건을 설명해줍니다. 미국에서의 소비자 보호법 - 징벌적 손해배상 등 - 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인, 쉐보레 콜베어의 코너 조향 문제가 설명됩니다. 결국 쉐보레가 후기 모델에서 개선 방안을 도입했기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결말은 다소 씁쓸했습니다.

"포드 머스탱 : 아이아코카와 신세대 미국인" 

자동차 세대 교체의 아이콘이었던 머스탱과 함께 그 성공 비결을 알려 줍니다. 1960년대 ~ 70년대 초반의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자동차 소비 전면에 나서며 "누구나 원하는 자동차"로 멋진 디자인, 저렴한 가격, 다양한 옵션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네요. 현대차의 이른바 '옵션질'은 역사가 증명하는 탁월한 마케팅 기법인 셈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 자서전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리 아이아코카의 활약도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당시는 자서전의 시대였었는데, 저도 아이아코카 자서전과 척 예거 (최초로 음속을 돌파했던 비행사) 자서전 두 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재미있었어요.

"폰티액의 GTO : 들로리안의 염소" 

두 가지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하나는 머스탱과 전혀 다른 '상남자'를을 노린 들로리안의 머슬카 폰티액의 전성기, 다른 하나는 폰티액의 아버지로 '들로리안 모터스'를 만들었던 업계의 풍운아 들로리안의 흥망성쇠이지요. "백 투더 퓨처"의 타임머신으로도 유명한 들로리안의 DMC-12는 청설모의 카툰을 통해 그 탄생과 멸망(?) 과정을 잡해 보았었는데, 훨씬 자세하고 깊이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혼다 어코드 :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전통적인 미국 차와 달랐고, 디트로이트 문화와도 전혀 달랐던 일본차 어코드와 혼다가 어떻게 미국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미국내 양산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어코드의 성공 이면에는 독재자같았던 혼다 소이치로를 제어할 수 있었던 2인자 후지사와 다케오가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로왔습니다. 후지사와 다케오 덕분에 문제가 있었던 공랭식 엔진이 아닌 수냉식 엔진을 탑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때 후지사와 다케오가 혼다 소이치로와 독대하며 했던 말이 대박이네요. “혼다, 어떤길을 갈 건가? 자네는 회장인가, 아니면 엔지니어인가?” 인데, 기업 회장이면 엔지니어로서의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참고로 이때 개발된 엔진이 CVCC 엔진으로 별다른 장치 추가 없이 미국에 새로 제정된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하는 유일한 엔진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혼다의 성공담을 이 책에서는 "애플 컴퓨터"의 첫 등장과 비슷하다고 언급하는데,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에요. 

또 그간 읽었던 일본 회사의 성공담은 판타지 "시마 과장"은 제껴두더라도 도요타 자동차 성공담처럼 세일즈맨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판매와 마케팅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갔었는데, 일본인 관리자가 미국인 직원을 채용하여 그간 디트로이트의 관행을 깨는 수평적 조직을 만들어 미국 내 생산 기지를 만드는데 성공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신선했습니다.

"크라이슬러 미니밴" 

앞서 말씀드렸던 리 아이아코카의 또다른 히트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래전 읽었었던 자서전에서도 언급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베이비 부머 세대인 '사커맘' 들이 아이들 여럿을 나르듯 가족이 함께 이동하는데 필요한, 외장이 작으면서도 내부가 큰 그런 차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그리는데, 상품기획자라면 관심있게 볼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새로운 소비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걸맞는 기존에 없었던 제품을 내 놓는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으니까요.

"BMW3 시리즈" 

마케터, 상품기획자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내용. BMW 3 시리즈가 '보보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건 그들의 기호에 부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보보들은 화려하지만 저속한 것들은 가지려 하지 않는다.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쓴다는 인상도 줄 수 있는데, 당연히 싫다. 그들은 희소성을 추구한다. 대중이 몰라야 하고, 디자인이 탁월해 삶이 더 편하고 특별해지는 물건이라면 금상첨화다.……… 그들 중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이아몬드 목걸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찬의 주최자가 사용하는 샐러드 분배용 포크에 아프리카적 감수성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고 화제로 삼는 행위라면 정말이지 멋지다." 라는데, 지금 말로 따지면 '홍대병' 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뜻이겠지요? 우리말로 '하차감'이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뜻도 될 테고요. 이들을 위한 차는 독일차 BMW 3였다는게 결론인데,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자동차는 특정 계층 이상에서는 어느 정도 허영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는 의미도 되니까요.

2011/05/15

세상에 이런 만화가?! (1) - 패미코만도 류 (ファミコマンドー竜)

웹 서핑 중에 발견한 황당 만화가 있어 소개합니다. 제목하여 최강권사전설 패미코만도 류! (最強挙士伝説 ファミコマンドー竜) 1989년 패미코믹 (ファミコミック)에 연재되었던 만화입니다.

-줄거리-
199X년 핵전쟁에 의해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직면했고 지하 대피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아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한 그들에게 단 하나의 오락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패미콤 게임이었다!
그리고 결국 패미콤 게임으로 우열을 가르는 엄격한 신분제도와 모두를 지배하는 독재자 매드 크로스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포의 시대의 구세주. 그것이 류!
류는 패미콘살법 콘트롤러 쌍절곤으로 전투원들을 제압하고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싸운다!
마침내 마을의 독재자 매드 크로스와의 최종 대결!
"받아라 폭렬패미콤!"
"패미혼살법 아룡란격타!"

폭발하는 매드 크로스. 그는 로봇이었던 것이다. 해방된 사람들.
"어쩐지 게임을 잘 하더라..."

그리고 석양과 함께 엔딩.
"류 상은 이제부터 어디에?"
"어딜까나. 패미콤 게임의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마지막으로 류의 명언 소개
"패미콤은 사람을 지배하는 도구가 아니야! 즐기기 위한 것이다!"

2004/03/24

웰컴 투 더 정글! -The RunDown- 피터 버그 : 별점 2점

웰컴 투 더 정글 - 4점 피터 버그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을 지녔지만 언젠가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여는 게 꿈인 최고의 '회수전문가' 벡(드웨인 존슨). 단 한번의 실패도 없는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인 그에게 최고의 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의뢰를 받게 된다. 베일에 쌓인 보물을 찾겠다고 정글로 간 트라비스(숀 윌리엄 스코트)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수락한 벡은 위험천만의 황금도시 '헬도라도'로 떠난다.
생각보다 쉽게 트라비스를 찾아내는데는 성공하지만 신비의 보물 '가토'의 존재를 아는 그는 동행을 거부하고 게다가 정글의 독재자 헷쳐(크리스토퍼 월켄)마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벡과 트라비스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신비의 여인 마리아나가 나타나면서 일은 점점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하는데…

인디아나 존스의 뒤를 잇는다! 라는 거창한 카피와 함께 분위기도 비스무레하게 흉내낸 액션영화. 개인적으로 “더 락 (드웨인 존슨)”의 팬이기때문에 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슈퍼스타 프로레슬러인 더 락의 액션연기는 확실히 남다른 점이 있기는 하더군요. 이연걸류의 화려하지만 가벼운 액션이 아닌 묵직하고 중량감 느껴지는 정통 “스트롱스타일” 액션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런 액션 연기는 정말 간만에 보네요. 간간히 프로레슬링 기술도 섞어서 보여주는 것도 팬으로서의 재미였어요^^ (초반 나이트클럽 격투씬에서는 “락바텀”!까지 보여주더군요)
또한 “회수전문가”라는 직업이나 총을 절대 쓰지 않는다는 신념같은것으로 포장된 벡이라는 캐릭터가 꽤 멋집니다. 트라비스역의 숀 윌리엄 스콧도 허풍세고 말도 많지만 의외로 행동파인 촐랑이로서 괜찮은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친구 캐릭터는 영화마다 거의 다 비스무레 하군요.

하지만 캐릭터와 액션을 뺀 나머지가 너무 별로에요. 다른 모든 이야기는 그냥 액션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중간 다리로서나 존재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액션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정말로 부실합니다. 스토리의 밀도가 굉장히 떨어지는 문제 탓이 큰데, 벡부터가 왜 레스토랑을 열고싶어 하는지, 왜 총을 쓰기를 싫어하는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소개부터 빠져있고, 트라비스가 어떻게 가토가 있는 곳을 아는지 같은 보물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마저도 배재한체 영화가 진행됩니다. 암호풀이나 지도찾기 같은 기초적인 부분도 없는 보물찾기 영화라……  사실 마지막에 벡과 트라비스가 같이 떠나는 장면조차도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정글의 독재자를 물리치는 정의의 히어로를 그릴 작정이었다면 보물찾기나 중간에 나오는 게릴라 이야기같은 것을 다 빼고 차라리 그 시간을 캐릭터 소개로 돌리는 것이 현명했을 듯 싶네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스트롱 근육맨과 대학중퇴 천재, 비쥬얼부터 차이가 나는 꽤 괜찮은 컴비의 그럴듯한 액션 버디 무비 한편이 나올 뻔! 하다가 말은 영화입니다. 별점은 2점. 그래도 락의 팬이라면 꼭 보시길. 초반부에 아놀드가 살짝쿵 우정출연 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2010/09/02

익스펜더블 (2010) - 실베스타 스탤론 : 별점 3점

용병팀을 이끄는 바니 로스는 한 섬나라의 독재자를 암살하라는 정부 요원의 의뢰를 받고 조사 차 섬에 잠입했다. 하지만 정체가 발각되어 탈출할 수밖에 없었고, 접선책이었던 독재자의 딸을 두고 떠난 것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다시 목숨을 걸고 섬으로 향한다.

이 영화는 액션 영화 팬이라면 누구나 기다려왔을 법한 작품입니다. "람보와 코만도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소룡과 성룡이 붙으면 누가 강할까?" 같은 이야기를 하며 80~90년대를 보낸 세대라면 더욱 반가울 만한 마초 액션 영화의 결정판이지요. 영화의 스타일 역시 철저히 80년대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깊이 있는 스토리나 개연성을 고민할 필요 없이, 오직 액션 자체만을 즐기면 되는 전형적인 무뇌 액션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한 여성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도, 악당들이 주인공 앞에서 일렬로 달려와 총에 맞는 이유도, 배신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받아들이는 이유도 굳이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것은 오직 액션의 쾌감이기 때문입니다.

액션의 완성도만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경험을 선사하며, 80~90년대 영화 특유의 묵직한 타격감을 제대로 살려냈습니다. 스탤론, 제이슨 스태덤, 이연걸, 랜디 커투어, 미키 루크로 구성된 주인공 팀과 이에 맞서는 에릭 로버츠, 돌프 룬드그렌, 스티븐 오스틴, 게리 다니엘스의 악당 팀 조합은 액션 영화 팬들에게 꿈의 대결을 선보입니다. 특히, 실사판 "북두의 권"에서 켄시로 역을 맡았던 게리 다니엘스의 등장과, 스톤 콜드 스티븐 오스틴이 최종 보스로 나서 랜디 커투어와 벌이는 격투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바니 로스가 목숨을 걸고 구하려 하는 장군의 딸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 숙녀물 AV에서 볼 법한 이미지가 강해 감정이입이 어려웠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기대했던 그대로의 영화였습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오로지 액션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여러모로 힘들고 지친 날,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에 딱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 역시 액션 영화는 이런 맛에 보는 것 같습니다.

2026/03/29

캐시 아웃 (2024) - 렌들 에멧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페이드 에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전설적 도둑 메이슨은 FBI 잠입 수사관 아멜리아에게 푹 빠졌다가 체포될 뻔한 다음 은퇴를 택했다. 그러나 자신을 뺀 일당이 동생 숀의 주도로 벌이던 암호화폐 강탈 작전에 문제가 있다는걸 알고 현장으로 향했지만, 곧바로 경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메이슨은 협상 전문가로 나타난 아멜리아와 밀땅을 벌이면서도, 안전하게 탈출하기 위한 플랜B를 고민하여 결국 회심의 카드를 손에 쥐게 되는데...

넷플릭스에 떴길래 별 생각없이 감상한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본 존 트라볼타는 반갑더군요. 잔혹하거나 무겁게 끌고 가지 않아서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존 트라볼타와 크리스틴 데이비스의 중년 로맨스도 귀여워요.

그러나 그 외에는 뭐 하나 건질게 없습니다. 은행을 노리는 케이퍼 무비 장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범죄 계획이 케이퍼 무비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형편없는 탓이 큽니다. 숀의 계획이라고는 은행장을 데리고 개인 금고를 여는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 이후의 전개 역시 치밀한 준비나 단계별 장애물 돌파가 아니라, 우연과 억지로 상황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메이슨 일당은 개인 금고 안에서 특정 숫자가 찍힌 사진을 확보하고, 그것이 살리자르라는 거물 독재자의 비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 금고 속 사진에 표시된 숫자로 거대한 국제적 비밀에 접근한다는 설정부터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고, 애초에 그런 민감한 자료가 왜 그런 방식으로 보관되어 있었는지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침 은행장이 개인 서버가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설정도 뜬금없고, 그가 메이슨 일당을 그 장소까지 안내하는 상황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냥 모른다고 우겼으면 됐을텐데 말이지요.

결말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음의 결정체입니다. 메이슨 일당은 결국 경찰 특공대에 포위되고, 정상적인 범죄 영화라면 이 지점에서 가장 치밀한 탈출 설계나 마지막 반전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플라워스라는 살리자르의 부하를 불러낸 뒤, 그와 협상하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정리해 버립니다. 그것도 메이슨의 요구가 꽤 무리한데도 불구하고 플라워스가 이를 선뜻 들어주는 식이라서, 관객 입장에서는 긴장감보다 허탈함이 먼저 듭니다. 수많은 경찰과 특공대가 현장에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입을 막았는지, 어떤 식으로 사태가 수습되었는지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요. 

또한 경찰에게 포위된 상황임에도 느릿느릿한 전개는 분통터질 정도이며, 액션도 뭐 하나 눈에 띄는게 없습니다. 공간도 작은 은행 내부가 거의 전부라 돈을 들인 티도 나지 않아요. 한마디로 별점 1점도 아까운 완벽한 망작입니다. 케이퍼 무비의 외형은 빌려 왔지만, 장르를 이루는 핵심인 계획의 정교함, 실행 과정의 묘미, 반전의 설득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시하고, 진행 과정도 엉망진창이며, 중요한 설정과 결말까지 납득하기 어려워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는 전무합니다.

2024/01/28

사라진 근대건축 - 박고은 : 별점 3점

사라진 근대건축 - 6점
박고은 지음/에이치비프레스

여러가지 근대 건축물 중 지금은 사라졌거나, 그 원형을 찾기 힘든 건축물들을 당대 사진과 자료를 통해 알려주는 건축사, 미시사 서적. 

목차는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그리고 군사 정권과 발전 국가 시대로 구분하고 있는데, 해당 시기별로 많은 건축물을 일람하며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몇몇 건축물 - 일제 강점기의 조선 총독부 청사 (구 중앙청), 조선 신궁, 반도 호텔과 발전 국가 시대의 자유 센터, 그리고 중앙 정보부- 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이 건축물들이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와 남은 유적과 잔해를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고요. 남산 조선 신궁의 경우, 광복 다음날 일본인들이 주요 건축 부속물 수거 후 일본으로 옮겼고, 남아있던건 한국인들이 파괴했다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참배길은 돌계단은 일부가 서울특별시교육청 과학전시관 남산분관 옆으로 옮겨져 남아있다고 하네요.
이 건축물들의 디자인, 양식과 같은 주요한 특징 소개도 상세합니다. 특징적인 곡선 지붕 등 자유 센터를 대표하는 형태는 건물 후면부로, 이는 위정자가 주 출입구로 들어와 건물 후면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서서 건물 후면 아래 광장에 모인 궁중들 위에 군림하는 듯한 효과를 노렸다는군요. 레니 리펜슈탈의 나치 정권 홍보 영화가 떠오르는데, 역시 독재자들이 생각하는건 어디나 다 비슷한가 봅니다.
사진 자료들도 풍성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반도 호텔 영빈관 사진입니다. 일제 강점기 후 이승만 대통령 지시로 외국인 전용 영빈관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호텔을 리노베이션했다는데, 실내 사진이 굉장히 세련되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외 여러 일화에 대한 소개도 많습니다. 반도 호텔은 일본인 대재벌 노구치 시타가우가 조선호텔에 숙박하려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문전박대당한 탓에 조선호텔보다 큰 호텔로 바로 앞에 만들게 되었다는 건설 비화가 대표적입니다.
한국 전쟁 때 인천 상륙 작전을 위해 서울 폭격이 진행되었는데, 이 때 주 일본 대학민국공사 김용주가 맥아더와 면담하면서 폭격에서 보호할 구역을 논의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고궁, 남대문, 을지로 지역 정도가 무차별 폭격의 대상이 되지 않은건 이 면담 덕분이겠지요. 다른 건축물들을 보호하지 못했고, 파괴된 건물들도 재건하지 못했던건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아쉽지만,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었겠지요.

다만 소개 건축물들이 두서가 없고, 중앙 정보부 소개가 지나치게 긴 등 편집의 문제는 있습니다. 도판이 중요한 책인데 도판 인쇄질도 그리 좋지는 않고요. 해상도 낮은 원본 사진을 그대로 사용한 탓인데, 이런 사진은 후보정을 거쳐 보다 선명하게 소개해주는게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사라져버린 근대 건축물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책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3D, 가상 현실처럼 구현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도 재미있것 같습니다.

2012/01/17

머니볼 - 베넷 밀러 : 별점 2점

원작을 굉장히 재미있게, 인상적으로 읽었고 영화의 평도 좋아서 보게 된 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과는 사뭇 다르더군요.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원작은 빌리 빈이 폴 데포스데타와 함께 2002 드래프트에서 제레미 브라운으로 대표되는, 다른 경쟁팀이 주목하지 않는 선수들을 상위 픽을 사용하여 영입하는 과정이 중심입니다. 이 드라마틱한 드래프트야말로 그동안 계속 정립해온 머니볼 이론을 완성하여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 변화의 장 그 자체인 것이죠.

그러나 영화에서는 드래프트는 언급도 되지 않고, 2001년 시즌이 끝난 뒤 데이먼, 지암비, 이스링하우젠이라는 스타 선수를 자유계약으로 놓친 후 몇 명의 선수 보강만으로 2002년 기적과도 같은 20연승을 이루어낸다는 줄거리로 흘러갑니다. 도저히 영화로 어떻게 찍어야 할지 감도 안 오는 드래프트 현장보다 야구 시합이 중심이 된건 콘텐츠 속성상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처럼 선수 몇 명 바꿨다고 믿을 수 없는 연승을 한 것처럼 그리는 것은 솔직히 말도 안 됩니다. 프로야구 매니저 게임에서도 불가능할 거예요. 게다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2002년의 오클랜드는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루저들의 팀도 아니었습니다. 배리 지토, 마크 멀더, 팀 허드슨이라는 투수 3인방이 건재했고, 미겔 테하다와 같은 타선의 구심점도 있었던, 충분히 지구 우승을 노려볼 만한 탄탄한 전력의 팀이었어요!

게다가 빌리 빈 캐릭터도 불만입니다. 야구계의 혁명가이자 독재자,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에서는 따뜻한 가장이자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인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따뜻한 도시 남자 이미지가 브래드 피트의 상큼한 외모와 함께 전형적이고 뻔한 야구 영화 장면들로 반복되며 강조되는데, - 예를 들자면 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락커룸에서 벌이는 일장 연설이나 데이빗 저스티스에게 팀의 구심점이 되어주기를 요청하는 장면, 미안함이 어린 방출 통보, 그리고 경기를 보지 않는 신조를 깨고 츤데레 아가씨처럼 몰래 관객석에서 게임을 지켜보는 장면들 - 이건 아니죠... 쉽게 이야기하자면, 단장이 된 제리 맥과이어 필이거든요. 원작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그나마 머니볼 이론을 야구를 잘 몰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살짝 보여주는 부분은 괜찮았고 경기 장면도 좋긴 합니다. 중간중간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스타 선수들도 반갑고요. 한마디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면 썩 괜찮은 야구 영화이긴 해요. 하지만 원작과의 괴리가 너무 심하고 각색도 심해서 원작 팬으로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2/07/10

킹은 죽었다 - 엘러리 퀸 / 이희재 : 별점 1.5점

킹은 죽었다 - 4점
엘러리 퀸 지음, 이희재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택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퀸 부자는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습격당했다. 그들은 군수 산업계의 거물 킹 케인 벤디고의 부하들이었고, 케인의 동생 아벨이 형의 살해 협박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방법은 마땅치 않았지만 '워싱턴'의 지시도 있어서, 퀸 부자는 아벨과 함께 킹이 지배하는 섬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작은 도시였고, 킹은 그 섬의 독재자였다. 

엘러리의 조사로 킹에게 보내진 협박장은 킹의 둘째 동생 유다의 짓이라는게 드러났다. 유다는 발각된 뒤에도 반드시 형을 예정된 시각에 죽이겠다고 말했기에, 퀸 부자는 완벽한 밀실 안에서 일하는 킹과 자기 방에 갖혀 있는 유다를 각각 범행 시각까지 직접 감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정된 자정 12:00, 자기 방에서 유다는 빈 총을 밀실을 겨냥해 쏘았고, 곧이어 킹이 밀실 안에서 총에 맞은채 발견되고 마는데...

엘러리 퀸의 장편 추리 소설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 소개되었던 작품이지요. 여름 더위를 잊어볼까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대를 놓아버린 '국명 시리즈'와는 다르게, 그래도 읽을만했던 '라이츠빌 시리즈' 와 이어지는 작품이기도 했고,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불가능 범죄 상황이 정말로 호기심을 자아냈던 탓입니다. 밖에서 빈 총을 쐈는데, 밀실 안의 사람이 총에 맞는다니!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만화라 해도 설득력이 없어보일 설정들입니다. 군수 산업계의 거물로 전 세계적인 위세를 떨치는 킹 케인 벤디고와 그가 머무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섬에 있다는 어마어마한 제국에 대한 묘사는 황당함이 지나치다 못해 어이가 없습니다. 일개 군수업자가 순양함과 잠수함 여러 척을 포함하여 육,해, 공군을 갖추고 있고, 비밀 섬은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르지만 최소 몇 천~ 몇 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 같다니까요. 후대 007 시리즈의 악당들 비밀 기지 정도는 애저녁에 능가합니다. 킹이 알고보니 남미 혁명과 2차 대전을 일으키게끔 획책했다는 뒷부분 설명도 어이가 없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작품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긴 것도 문제에요.

게다가 왜 이런 설정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의 핵심은 어쨌건 킹이 밀실에서 살해당할 뻔한 트릭이 전부이며, 나머지는 전부 곁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007의 닥터 노 같은 빌런을 상상해서 이야기를 썼나 싶어 조사해보니 오히려 "닥터 노" 보다도 빨리 발표되었던데, 영문을 알 수가 없군요.

기대했던 밀실 트릭 역시 별볼일 없었습니다. "완벽한 밀실에서 한 남자가 총에 맞았는데 총은 밀실 안을 아무리 뒤져도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상황인데, 정작 트릭은 "총을 잘 숨겨 두었었다!"가 전부거든요. 즉, 엘러리 퀸과 퀸 경감의 수색이 실패했을 뿐입니다. 물론 유다 말고도 충신으로 보였던 아벨, 그리고 킹의 아내 칼라 모두가 공범이었다는 진상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총을 숨겼던 장치가 술병이라는 것도 유다가 섬 곳곳에 술병을 숨겨두었다는걸 사전에 잔뜩 설명함으로써 독자에게 잘 숨기고 있고요. 이 술병이 유일하게 밀실 밖으로 나간 물건이었다는 것 역시 독자에게 공정하게 설명합니다. 즉, '공정함'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탐정의 실수에 기반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워낙 커서 좋은 트릭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킹과 유다, 아벨 형제의 고향이었던 라이츠빌에서의 여러 증언을 수집하여 알아내는 동기도 괜찮은 편이지만,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지 '수영을 잘해서 동생 아벨을 구해주었다는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곁다리 이야기가 너무 많았어요. 또 앞 부분에서 킹이 수영을 못한다는걸 크게 강조한 탓에 독자들도 뭔가 이상하다는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술병'처럼 정교하게 존재를 숨기는데 실패한 셈이지요. 그리고 킹이 과거 거짓말을 했다 한들, 그게 아벨의 살의에 불을 붙인 이유가 되는지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차라리 유다처럼 킹이 악당이라서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는게 더 말이 될 것 같아요. 두 형제와 칼라가 손을 잡은 이유 역시 설명되지 않고요. 그녀가 킹을 두려워했다는 묘사는 있지만, 살인은 다른 이야기잖아요?

게다가 아벨과 유다, 칼라가 다시 킹을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하고(이는 퀸 경감에 의해 바로 들통납니다), 섬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떠난 뒤 섬을 날려버리는게 결말은 제가 읽어왔던 작품 중 수위를 다툴 정도로 엉망입니다. 이렇게 쉽게 자살로 위장해 죽일 수 있었는데, 왜 퀸 부자를 강제로 데려와서 기묘한 밀실극을 펼쳤을까요? 일부러 자기들 범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지요. 이 결말 탓에 밀실 트릭의 존재 이유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나마 딱 한 가지, 유다가 범행 예고 시각에 자기 방에서 빈 총을 쏘고, 그 시간에 킹이 아내 칼라에게 총을 맞는 장면의 묘사만큼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유다를 감시하는 엘러리의 시점에서, 유다의 행동이 굉장히 광기어리게 묘사되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이외수 작가의 "꿈꾸는 식물"에서 정신분열자인 둘째 형이 벽을 통과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단점이 워낙 많았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책을 읽고 굉장히 흥미가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아쉬움과 부족함이 더 많이 느껴지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기대해 봄직했던 트릭마저도 시원치 않았으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2025/04/04

미친 항해 - 마이크 대쉬 / 김성준, 김주식 : 별점 4점

미친 항해 - 8점
마이크 대쉬 지음, 김성준.김주식 옮김/혜안

마이크 대쉬가 집필한 역사 논픽션입니다. 1628년, 암스테르담을 출항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 바타비아 호가 이듬해 6월, 현재의 소호주 해안 인근 암초에 충돌하여 난파한 뒤 생존자 사이에서 벌어졌던 벌어진 대규모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2002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BBC History Magazine과 History Today 등의 권위 있는 역사 전문 매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항해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선장이었지만, 직급상 최고 책임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관리인 '대상인' 프란시스 펠사아르트였습니다. 선장 야콥스와 펠사아르트 사이의 갈등은 여자 문제 등으로 항해 중부터 깊어졌고, 이러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가 바로 '부상인'이자 전직 약제사였던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였습니다. 그는 선장을 꼬드겨 선상 반란을 모의했는데, 바타비아 호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면서 계획이 꼬이게 됩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펠사아르트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자바섬으로 떠난 틈을 타서 코르넬리스는 생존자들의 리더가 된 후, 체계적인 학살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식량과 식수를 가지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면서, 반항할만한 불순분자들을 없애기 위해서였지요. 펠사아르트가 구조대를 이끌고 보물을 회수하러 돌아오면, 그 배를 점령해 해적 생활을 하려는 계획으로요. 그래서 병자와 노약자, 반대 세력을 중심으로 약 115명에 달하는 이들을 죽였습니다. 

계획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회수할 보물이 많기에 구조대 인원이 많지 않을거라는 코르넬리스 생각대로 구조대가 움직였거든요. 그러나 말라 죽으라는 의도로 다른 섬으로 보내졌던 위이버 헤이스와 건장한 남성들이 우물을 발견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생존에 성공하고, 코르넬리스의 학살을 알게된 후 방어 거점을 구축하자 상황은 급변합니다. 코르넬리스는 친위대를 이끌고 위이버 헤이스를 속이려다가 사로잡혔고, 코르넬리스의 후임이 일당들과 함께 위이버 헤이스 섬을 공격하여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대상인 펠사아르트의 구조선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나 소설이라고 해도 억지스럽다고 할 것 같은데, 정말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놀라웠어요. 여튼, 위이버 헤이스와 코르넬리스 세력은 각각 펠사아르트의 구조선으로 사람을 보냈고, 빨리 도착하는 쪽이 승리하는 싸움에서 위이버 헤이스가 이겨서 폭도들을 모두 사로잡으며 코르넬리스의 음모는 막을 내립니다.

이러한 난파 후 서사만으로도 영화나 소설로 각색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흥미진진합니다. 코르넬리스가 생존자들의 리더가 된 후 학살을 지시하며 독재자로 거듭나는 과정은 '이세계 전생물'로 바꾸어 보아도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종교와 조직(동인도 회사)가 절대적인 사회에서 독자적이면서도 설득력있는 종교론과 조직에서의 직위를 무기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든다는게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저자 마이크 대쉬는 방대한 사료 조사와 기록 분석을 통해, 사고 외에도 각 인물의 생애와 심리, 사회 구조적 배경까지 책에 촘촘히 담아냅니다.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가 처한 시대와 개인적 몰락, 종교적 배경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기업 구조와 식민 경영 방식에 대한 설명 역시 뛰어납니다. 실제로 코르넬리스의 생애만 따로 정리한 분량이 35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깊이 있는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관련 인물들의 후일담이 꼼꼼하게 조사되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놀라운 수준입니다. 코르넬리스의 아내에 대해서까지 최대한 조사해서 수록했을 정도니까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무역, 당시 항해에 대한 전반적인 모든 설명 역시 상세합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항해 중 먹거리 설명을 예로 들자면, 우선 바다 고기를 낚으면, 누가 고기를 낚든 매일 맨 처음 낚은 고기는 선장의 몫이었고 그 다음 12마리 정도는 상인과 사관들의 몫으로 돌아갔으며, 전례에 의거하여 인정된 순서에 따라 고기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선원들은 신선한 음식을 먹는게 거의 불가능했겠지요. 그래서 선원들은 거의 전적으로 통조림에 든 고기와 콩, 건빵으로 알려진 딱딱한 빵인 비스킷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경우는 음식의 질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갓 도축한 돼지와 소를 사들여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피도 빼내지 않은 채 바닷물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에 넣어 보존 처리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처리된 고기는 쌌지만, 아주 짜서 조리를 하려면 청수에 담가 짠 맛을 빼내야 했는데, 항해 중에는 한정된 식수를 절약하기 위해 바닷물에 넣어 끓였다는군요. 얼마나 짰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말린 생선도 싣고 다녔는데, 대구가 대부분이었다네요. 말린 대구는 스튜로 끓여서 역 시 말린 완두콩이나 강낭콩과 함께 먹었고요. 그 외 먹거리들 모두 형편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타비아 호 선원들은 당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잘 먹고 잘 마신 편이라는게 충격적입니다. 부과된 노동을 충분히 감내할 정도의 칼로리를 섭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 외에도 가혹했던 항해에 대한 설명 등 재미있는 정보가 그야말로 넘쳐납니다.

이렇게 재미와 역사적, 자료적인 가치 모두 빼어난데, 코르넬리스가 이단 사상에 빠지게 된 과정에 대한 추측이라던가, 후일담 이후 코르넬리스가 정신병자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 비중이 지나치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백인들 후예가 살고 있을거라는 추측도 마찬가지고요. 섬에서의 학살도 논픽션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극적인 이야기를 그렇게 잘 묘사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또 책의 디자인과 구성도 옛스러워서 읽기 불편했고, 도판도 좋은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충격적인 실화를 방대한 자료로 치밀하게 재구성한 뛰어난 논픽션입니다. 난파에 대한 논픽션을 세 권째 읽게 되었는데 - "바다 한가운데서", "메두사 호의 조난" - 대체로 기본 이상은 해주는 장르인 것 같네요.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04/16

피너츠 완전판 6 : 1961~1962 - 찰스 M.슐츠 / 신소희 : 별점 2.5점

피너츠 완전판 6 : 1961~1962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피너츠 완전판 제 6권입니다. 구입한지는 꽤 되었는데 이제서야 리뷰 올립니다.

이번권의 특징은 익숙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10년 이상 연재된 덕이겠죠. 특히 친숙한 캐릭터 설정에 기반을 둔 게 많습니다. 어디가나 빠지지 않는 라이너스의 담요 관련 개그를 비롯하여 찰리 브라운의 야구팀, 찰리 브라운의 연날리기, 자신이 예쁘다고 믿고 슈뢰더에게 계속 대쉬하는 루시, 라이너스와 할로윈 호박 대왕, 찰리 브라운의 펜슬팔 친구, 라이너스의 천재성 등의 이야기들이 그러합니다. 너무 반복되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뻔하지만 약간의 변주로 또다른 재미를 끌어내는 솜씨가 워낙에 탁월한 덕분입니다. 아래의, 라이너스가 담요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합리화하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입니다. 라이너스의 담요 설정에 그의 천재성을 결합하고, 마지막으로 루시와의 대립관계까지 끌어들인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뻔한 이야기만 등장하는건 아닙니다. 천연 곱슬머리를 자랑하는 프리다와 그녀의 고양이,  라이너스가 안경을 끼는 것, "빨간머리 소녀", 스누피가 고양이를 증오(?)하지만 새들과는 친구로 지낸다는 설정, 라이너스와 낙엽들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처음 등장합니다. 슈뢰더와 친구들이 진짜 베토벤 생일 파티를 하는 것도 처음 봤네요. 찰리의 동생 샐리가 학교 가기 싫어하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설정은 꽤 오래 끌고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의외로 한번 유치원 갔다오고 나서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하며 치료되는게 조금 의아했습니다. 학부모들 반발이 우려되었던 것일까요? 참고로 이번 권에서는 샐리가 굉장히 귀엽더군요. 한번 보세요. 완전 귀염덩어리 아닙니까?

이외에도 라이너스와 함께 호박밭에서 호박 대왕을 기다리는 에피소드 등등 곳곳에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스누피의 비중도 높습니다. 새들과 친구로 지내는 독특한 모습이 인상적이며 그 외에도 찰리 브라운에게 어리광을 부린다던가 - 찰리 브라운이 업어주지 않으면 자러 가지 않음 -, 루시를 무서워하는 등 새로운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땅바닥에 귀를 바싹대고 있는 것 뿐이라고!", "일단 언론의 동정을 사고 나면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지" 등의 대사들도 주옥같고요.

이러한 많은 에피소드들 중 개인적으로 베스트 에피소드는 찰리 브라운을 응원하는게 위선이라는 것을 깨닫는 라이너스와 루시, 다른 팀원들 - 우린 경기장에 나가서 '힘내, 찰리 브라운. 할 수 있어!'라고 외치기 힘들어. 네가 사실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말이야 - 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선의라는 감정으로 포장하고 있는 온갖 위선들도 이것과 별로 다를게 없으니까요.
샐리의 유치원 공포증을 찰리 탓으로 돌리며 루시가 하는 말은 베스트 명대사입니다. "모든 세대는 사진의 문제에 대해 직전 세대를 탓할 수 있어야 하지. 그런다고 뭐가 해결되진 않지만 기분은 좀 나아지니까!"라는 말인데 "나를 비난하라"고 후계자들에게 일렀던 소련 독재자들 유머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뻔하기에 지루하고, 아주 새로운 무언가가 없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작가 스스로 여러가지 설정을 던지고, 그 중에서 인기있는 설정을 뽑아서 여러가지로 변주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프리다 관련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새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천연 곱슬머리를 자랑하거나, 스누피에게 토끼나 쫓으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에요. 그리고 인기가 떨어지면 도태되어 사라질테고요.

이는 가혹한 연재 일정에 대처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생존 전략일 수는 있습니다. 그만큼 효과가 있었기에 작품도 전설이 되었을테고요. 하지만 매일매일 연재물로 본다면 모를까, 이렇게 책으로 모아서 한번에 읽게 되면 아무래도 반복, 복제가 눈에 많이 뜨일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팬이라면 놓치기 어려운, 선물과 같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반복, 복제는 거슬르기에, 한번에 읽지 말고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읽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오타가 하나 눈에 뜨입니다. 137페이지의 "블랙 버드 선장"은 "블랙 비어드 (검은 수염)"의 명백한 오타로 생각됩니다. 일어 중역본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2021/04/02

복수의 심리학 - 스티븐 파인먼 / 이재경 : 별점 2.5점

복수의 심리학 - 6점
스티븐 파인먼 지음, 이재경 옮김, 신동근 추천/반니

복수에 대해서 생물학적, 역사적, 사회적 사례들과 함께 설명해 주는 인문학 서적입니다.

생물학적 사례는 책 서두에 설명된 2000년 사우디아라비이아에서 있었던, 비비 원숭이가 인간에게 덤벼들었던게 대표적입니다. 비비 원숭이와 침팬지를 통해 복수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하고요. 삶의 목적이 패권과 짝짓기라면, 이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보복믄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인간 영장류와 다르지 않다네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집단이 훨씬 크고, 삶의 목적과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도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한 개인적 응징은 사라지고, 국가가 공정과 냉철을 원칙으로 대신 복수를 하게 된게 현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법 체계인 것이지요.

뒤이어 종교, 문학, 사법 체계, 여성 대상 범죄 등 여러가지 복수의 역사와 실제 사례가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종교에서 복수는 대체로 신의 것이며, 대부분 종교 교리는 복수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힌두교는 카르마, 즉 업과 윤회가 공통 사상이라서 남을 해치면 내게도 화가 미치게 됩니다. 기조 사상인 아힘사는 비폭력과 불살생을 표방하고요. 그래서 폭력적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불교에서 보복 행위는 적은 남이 아니라 내 속에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에요. 그러나 이 모든 영적 이상은 세속 정치에 의해 엇나갑니다. 사람들은 교리와 경전을 각색해서 복수를 정당화하지요. 종교간, 종파간 분쟁과 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으며,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증오와 분노만 가득한 선동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이 쯤 되면 교리와 경전은 없고, 지도자들 개인의 복수심만 남아 있는 상황이지요. 이 책을 읽으니 종교를 믿을 이유가 없다는 신념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 외에도, 소프클레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가 깊다는 서두에서 시작된 문학에서의 복수에 대한 소개는 흥미로왔습니다. 중세 결투와 종교 재판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 16세기 이후 지역 공동체가 국가 대리인 역할로 법을 집행했던 상황에 대한 설명 등에서, 법 집행이 복수나 보복일 수 있다는 견해도 굉장히 그럴듯했고요. 이와 반대로, 특정 지역 부족간, 가족간 보복이나 명예 살인, 갱단의 보복은 영역과 위상을 지키기는게 전부인 후진적 발상이라는 설명도 와 닿더군요. 여성 대상 범죄와 여성들의 복수는 사회 체제가 미개하고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는 소개에서는, 우리나라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리벤지 포르노와 학교 내 총기 사고. 학교 총기 사건 방지는 교사와 학교 상담사, 학부모 역할이 중요하다. 심리적 위축과 같은 위험 징후들을 경계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답니다. 직장 내 복수 사례에서는 큰 사건은 물론 상대방 커피에 침을 뱉는 류의 자잘한 복수까지 망라하고 있는데. 콜 센터나 식당, 항공사 등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복수 사례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재 정치가 끝나고 복수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르지만 새 정권이 통치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지난 정권 지지층 반발을 피하는데 급급해서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은 뼈 아팠습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경우니까요. 일제 강점기 때 친일 부역자들과 독재자 전두환과 그 일당은 제대로 처벌해서 정의를 바로 세웠어야 했습니다. 책에 나온 스페인 프랑코 정권 피해자가 "화해의 미덕은 믿지만, 반성과 사죄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고 했는데, 말 그대로죠. 사면 따위는 사치였습니다. 정치 보복 역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아왔기에 남 이야기 같지 않더군요. 그 중에서도 "인신 공격은 대중매체가 정치를 사유화하는 경향이 강한 풍토에서 더욱 극성을 떤다. 이 점에서도 미국이 선두다. 토머스 제퍼슨이 애덤스 뒷통수를 친 사건이나 최근의 도널드 트럼프가 좋은 예이다." 라는데, 언론의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기사가 많은 우리나라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언론의 보복이 민주주의 투사들과 맞장을 떠 온 역사도 마찬가지에요. 책에서는 토머스 제퍼슨과 랜돌프 허스트의 언론을 이용한 여론 조작, 그리고 루퍼트 머독이 호주 정치에 개입한 악질적인 사례가 언급되는데, 우리나라 사례를 추가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에요.

하지만 재미있고 인상적인 내용이 많음에도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복수가 필요하다는건 잘 전달하고 있기는 한데, 제목처럼 '복수'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을 잘 담고 있느냐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요. 법 집행을 광의의 복수로 보는 시각도 그럴듯하지만, 이건 심리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심리학적으로 풀려면 피해자와 법 집행에 의해 처벌받는 가해자와의 관계와 그 심리를 보다 자세하게 다루었어야 했어요. 그 외의 이야기들도 사례는 재미있지만 심리학적인 부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책의 부제인 "사람들이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정의도 없습니다. 관련된 사례, 그리고 일종의 교훈?만 존재할 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7/11/30

피닉스 - 에이모스 어리처 & 일라이 랜도 / 김성종 : 별점 2점

피닉스 - 4점
에이모스 어리처 & 일라이 랜도 지음, 김성종 옮김/해문출판사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친미 성향의 이집트와 손잡은 이스라엘에게 경고하기 위해 내각의 핵심 인물이자 전쟁 영웅 "모세 다얀" 장군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리비아 정보부는 이를 위해 3명의 프로에게 암살을 의뢰했다. 한명은 사교계의 여왕으로 패션 모델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마담 샤를로트, 그리고 또 한명은 저널리스트인 깁스코프, 마지막 한명은 정체불명의 사나이 피닉스!

첩보물의 한 갈래이기도 한 암살물은 "자칼의 날"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이 작품도 나름 저명한 고전이죠. 솔직히 이쪽 쟝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간만에 간 헌책방에서 싸게 집어왔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전에 읽었던 책이더군요. ㅠ.ㅠ

국제적인 암살 음모에 고용된 정체를 알 수 없는 킬러와의 한판 승부라는 내용은 자칼과 유사합니다. 다만 자칼의 상대는 경찰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스라엘 정보부라는 정도의 차이 뿐입니다.
암살물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암살 과정의 묘사는 합격점을 줄 만합니다. 피닉스가 모세 다얀을 암살하기 위해 준비하는 여러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디테일도 살아 있습니다. 또한, 정체불명의 킬러에 대한 묘사 역시 슈퍼맨처럼 비현실적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읽었던 작품이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으로는, 이 작품의 번역자가 국내 추리소설의 거장인 김성종 선생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처럼, 작가분이 직접 번역한 점은 긍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번역도 매우 매끄러워 읽기 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들이 남습니다. 피닉스의 암살 준비 과정은 디테일이 살아 있지만, 방법론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은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고대상자"라는 유물에 대한 설정은 다소 간과된 느낌이었고, 70년대 작품임을 감안하더라도 수사가 지나치게 "제보"에 의존하는 방식은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결말 역시, 초반부터 잘 묘사해온 피닉스라는 캐릭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무한 마무리로, 큰 실망을 안겨줍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읽는 재미는 충분한 만큼 킬링타임용으로는 적당하다 싶지만, 작품이 지나치게 이스라엘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저처럼 이스라엘에 반감을 가진 독자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2010/08/06

헐크 : 플래닛 헐크 - Pagulayan, Carlo 외 : 별점 3점

헐크: 플래닛 헐크 - 6점
Pagulayan, Carlo 외 지음/시공사

'카페 <웹진 판타스틱> 오픈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게 된 그래픽 노블입니다. 리뷰에 앞서 좋은 기회를 주신 판타스틱 카페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괴물'과 '파괴자'로서의 헐크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게 특징인 작품입니다. 지구에서는 '괴물'로 인식되어 우주로 추방된 뒤 도착한 행성 사카아르에서 '구세주'로 거듭나는 이야기거든요. 도착 직후 힘이 약화된 상태에서 행성의 독재자 레드킹에게 제압당한 뒤, 검투사로 전락하였다가 자신의 강함으로 타인들의 신망을 얻고, 결국 레드킹을 쓰러트리고 행성에 평화를 가져 온다는 내용이니까요. "글라디에이터"나 "스파르타커스"의 헐크식 변주라고나 할까요? 때문에 모험 액션물로서의 가치도 확실하지만, '헐크'의 다른 시리즈와도 구별되는 독자적인 이야기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또 이러한 서사 - 모험물로서의 가치와 더불어 그동안 헐크 시리즈의 핵심 설정인 인간이냐 괴물이냐의 고뇌 대신 헐크만의 개인적인 고뇌, 즉 구세주가 아닌 파괴자로서의 자기 인식과 성찰이 잘 드러난다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 브루스 배너와 대비되는 괴물로의 야성이 강조되었던 그간의 헐크와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 동안의 '헐크'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에요.

그러나 문제도 있습니다. 우선 악당 레드킹이 아쉽습니다. 너무 단순해서 초딩스러운 찌질함이 부각되기 때문에, 행동에서의 악의도 느끼기 어려운 탓입니다. 고뇌하고 번민하는 헐크와 그의 동료들에 비하면 깊이가 없어도 너무 없어요. 설정은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 황제와 비슷한데, 코모두스 만큼의 배경 설정이나 음모 정도는 등장시켰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이래서야 압도적인 강함의 헐크에 대항하는 인물로는 보기 어려우니까요.
더 큰 문제는 행성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모든 갈등과 번민을 강함으로 해결해버린 진짜 황제의 결말입니다. 본인도 아닌 타인의 실수로 인한 행성의 종말인데, 급작스럽고 황당한게 흡사 강제 종료를 편집부로부터 지시받은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헐크의 평화로운 안주는 이후 마블 코믹스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므로 어떤 식으로든 끝을 냈어야 했겠지만 이건 답이 아니에요...

그래도 다른 작품과의 연계없이 한편으로 즐겁게 볼 수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작화도 최고 수준이며 번역 역시 매끄러워 마음에 들고요. 단순 화끈한 모험 액션물을 좋아하신다면, 헐크의 이색적인 모습을 한껏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추천하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6/15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 서중석 : 별점 4점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8점
서중석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웅진지식하우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색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역사서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국사"를 배울때만 해도 현대사에 대한 비중은 엄청 작았었고, 그나마도 독재정권하에서 대폭 손을 본 교과서였기 때문에 이러한 책을 읽으니 무척 신선하면서도 재미있어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조작된(?) 정보와 교육하에서 살아왔는지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일단 해방 이후부터 전두환 정권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권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습니다. 최근의 역사는 더 시일이 지난 뒤에 평가하겠다는 이야기일까요?

제일 앞머리는 해방 직후의 좌익, 특히 여운형의 활약에서부터 이승만의 과오와 6.25 전쟁, 그리고 4.19 까지를 조명하고 있는데 좌익과 우익을 어느정도 냉정하고 공평하게 보고 있는 시각이 돋보입니다. 자유당 정권의 수많은 부패와 과오가 눈에 띄네요. 그 이후는 장면 내각에 대한 냉정한 비판 뒤에 박정희 시대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비교적 공평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역사서로 냉정하게 평가 / 접근하고 있지만 역시나 박정희는 독재와 부정부패 말고는 별로 잘 한 것이 없군요. 우익이 찬양해 마지않는 경제성장은 미국의 자본을 들여와서 시녀노릇만 한 ("경제저격수의 고백"처럼) 것일뿐이죠. 그리고는 전두환 시대로 이어집니다. 전두환 역시 사리사욕을 위해 정권을 찬탈한 독재자라는 명확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특히 이 두 군사정부 시기에 집중하여 암울했던 국내 민주주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에 대한 짤막한 설명으로 끝납니다.
단순히 그 정권하에서의 행위만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사회현상과 민주화 운동에 관한 에피소드, 사건들도 제목대로 사진과 그림을 동원해서 디테일하게 접근하여 알려주는 방식도 마음에 드네요. 무엇보다도 그동안 보아왔던 다른 역사서들과 다른 공평한 시각이 눈에 띕니다.

책을 읽고나니 우리나라 근 현대사의 가장 불행했던 요소는 역시나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처벌이 없었다는 점(친일파- 이른바 혁명세력 등)과 여러 질곡의 시기에서 미국의 개입이 너무나 심했다는 점, 극단적 반공체제로 극우보수로 흘러갔던 정치 상황, 그리고 박정희 시대부터 커지게 된 이른바 지역감정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박정희와 전두환을 "前"대통령 취급하고 있는 역사관 자체가 잘못된 것이겠죠.

저야 그나마 우리나라가 민주화 되고 나서야 철이 든 셈이니 제가 무언가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겠지만 이러한 과오와 문제를 해결하는 몫은 결국 우리 세대로 이어지는 것 같네요. 앞으로 작은 것 부터라도 조금씩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가면서 올바른 역사의식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울러 자신이 보수우익이라고 자처하는 지지자들도 한쪽 방향으로 편중된 역사의식만 가질 것이 아니라 이런 책도 접하면서 보다 공평한 시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04/10/01

최고의 영화 250개중 내가 본것은?

IMDB 선정 최고의 영화 250 아까짱님 글에서 트랙백 합니다. 저도 꽤나 궁금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하고난 결과라면... 역시 최신작, 흥행작 순위가 높다는 것과 제 예상과는 다른 의외의 순위가 많았다는 것이죠.

히치콕은 역시 꽤나 고순위였고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생각보다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 이채롭네요.

상위권은 흥행작이 많아 본 작품이 많지만 갈수록 고전과 유럽 영화가 섞이며 확률이 떨어지는군요....

제가 본 영화는 붉은 색으로 표시했습니다. (2021.09.19) 생각보다는 본 영화가 많아서 즐거웠습니다. 뭐 볼 수도 있었지만 지루할 것 같아 포기한 영화도 있으니깐...

저만의 순위도 한번 작성해 보고 싶어집니다.

1. Godfather, The (1972) : 예상대로!
2. Shawshank Redemption, The (1994) : 좋은 영화긴 하지만 좀 의외이기도 합니다.
3. Lord of the Rings: The Return of the King, The (2003) : 이것도 좀 의외...^^

4. Godfather: Part II, The (1974)
5. Shichinin no samurai (1954) : 7인의 사무라이.. 이 정도일 줄이야...
7. Casablanca (1942) : 좋은 영화죠.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8. Lord of the Rings: The Two Towers, The (2002)
9.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The (2001)
10. Star Wars (1977) : 이것도 약간 의외군요.
13. Star Wars: Episode V - The Empire Strikes Back (1980) : 역시 의외...
14. Pulp Fiction (1994) : 타란티노가 14위! 대단하군요.
16.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 큐브릭 선생도 최근 흥행작에 많이 밀렸네요.
17. Raiders of the Lost Ark (1981) : 저는 사실 레이더스가 스타워즈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18. Usual Suspects, The (1995) : 제가 본 추리계열 영화중에서는 순위가 탑이군요. (위에 있었던 "이창"은 보질 못했으니)
19. Memento (2000)
20. Buono, il brutto, il cattivo, Il (1966) : 웨스턴 1위! 할만한 작품입니다.
21. 12 Angry Men (1957) : ㅎㅎㅎ 엊그제 본 작품인데. 좋네요.
22. North by Northwest (1959) : 히치콕 선생은 꽤나 사랑받는군요. 역시~
25. Psycho (1960) : 역시 히치콕!
26.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 Le (2001) : 아멜리에? 정말 의외에요!
28. Silence of the Lambs, The (1991) : 양들의 침묵, 좋은 영화죠.
30. C'era una volta il West (1968) : 옛날 옛적 서부에서, 각본에 다리오 아르젠토가 참여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32. American Beauty (1999) : 좋은 영화죠.
34. Matrix, The (1999) : 매트릭스는 생각보다 순위가 낮더군요.
43. Sen to Chihiro no kamikakushi (2001) : 10여계단 훌쩍 건너뛰어 센과 치히로라... 애니메이션 중 탑 순위군요.(솔직히 의욉니다)
44. Some Like It Hot (1959) : 마릴린 먼로의 걸작 코미디가 44위!
45. Boot, Das (1981) : 좋은 영화죠.
47. Singin' in the Rain (1952) : 역시 클래식, 좋은 영화입니다.
48. Chinatown (1974) : 제이크의 차이나타운..
50. L.A. Confidential (1997) : 역시 느와르
51. Se7en (1995)
59. Saving Private Ryan (1998) : 이 영화도 생각보다 순위가 낮은 편입니다.

60. Raging Bull (1980) : 마틴 스콜세즈 영화도 생각보다 찬밥이네요.
61. Alien (1979) : 리들리 스콧 선생도 겨우 입성했네요.
63. Léon (1994) : "의외!"
64. Wizard of Oz, The (1939)
67. Sting, The (1973)
68. Modern Times (1936) : 채플린 선생도 너무 순위가 낮다고 생각됩니다. 쩝...
70. Reservoir Dogs (1992)
72. Clockwork Orange, A (1971)

73. 2001: A Space Odyssey (1968) : 스트레인지 러브에게 한참 밀리는군요^^
77. Amadeus (1984)
78. Great Escape, The (1963)
79. Finding Nemo (2003)
81. Jaws (1975)
83. Wo hu cang long (2000) : 와호장룡? 미국에서 히트친 덕을 단단히 본다고 생각됩니다.
84. High Noon (1952) : 멋진 웨스턴이죠.
85. Aliens (1986) : 카메론도 겨우 입성하는군요...
86. Braveheart (1995)

87. Metropolis (1927) : 프리츠랑의 고전. 사실 지금 보면 좀 지루하긴 합니다만...
88. Shining, The (1980)
90. Fargo (1996) : 코헨형제가 이제서야 등장하는군요. 역시 컬트
91. Donnie Darko (2001) : 음.. 전 사실 굉장히 지루했던 영화입니다만 순위는 생각보다 무지하게 높네요.
92. Strangers on a Train (1951) : 낯선 승객, 멋진 고전 스릴러라 생각됩니다.
93. Blade Runner (1982)
96. Sixth Sense, The (1999)

97. Great Dictator, The (1940) : 위대한 독재자
98. Nuovo cinema Paradiso (1989)
100. Mononoke-hime (1997) : 미야자키도 대단하네요.
101. Princess Bride, The (1987) : 음악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입니다.
107. Big Sleep, The (1946) : 솔직히 원작보다는 지루했습니다만...
109. Terminator 2: Judgment Day (1991) : 한 10년만 전이었어도 저 위쪽에 있었겠죠?
112. Forrest Gump (1994)
120. Glory (1989) :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남북전쟁 이야기입니다. 꽤 잘 만들고 좋은 영화인데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낮더군요.
122.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 이것 역시 보다 순위가 높아야 할 걸작이죠.
124. Unforgiven (1992) : "용서받지 못한 자"
126. Ben-Hur (1959) : 126위? 흠...
129. Star Wars: Episode VI - Return of the Jedi (1983) : 1,2와 차이가 엄청나네요. 뭐 좀 딸리긴 했어요.
130. African Queen, The (1951) : 재밌었습니다^^

132. Green Mile, The (1999) : 좀 지루했죠. 너무 길었어요!
140. Shrek (2001)
141. Back to the Future (1985)
143.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 : 흠...
145. Platoon (1986) : 올리버 스톤도 무지하게 낮군요.
149. Gone with the Wind (1939) : 아마 이거 안본 한국 사람 거의 없을것 같아요. 워낙 TV에서 많이 해줘서...
152. Wild Bunch, The (1969) : 상당히 충격적인 웨스턴이었습니다.
154. Young Frankenstein (1974) : 멜 브룩스도 이제야 등장하는군요.
155. Die Hard (1988)
163. Spartacus (1960) :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지 않네요.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164. Monsters, Inc. (2001)
167. Gladiator (2000)
168. Roman Holiday (1953)
171. Charade (1963) : 재미있었어요.
176. Ed Wood (1994)
177. Toy Story (1995)
178. Conversation, The (1974) : 솔직히 지루했다는....

179. All the President's Men (1976) : 연기파의 대결이라 흥미진진했던 정치드라마였습니다.
181. Brazil (1985) : 테리 길리엄도 그냥 저냥...
195. Stand by Me (1986) : 한참 건너뛰어 이 작품. 너무너무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입니다.
199. Being John Malkovich (1999)
202. Groundhog Day (1993) : 오잉? 너무나도 의외! 소품이라 생각했는데...
203. Terminator, The (1984)
207. Miller's Crossing (1990) : 잘 만든 느와르랄까.. 마음에 들었던 영화였습니다.
218. 39 Steps, The (1935) : 히치콕이죠^^ 전 원작보다 좋더라고요.
220. Bonnie and Clyde (1967)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제목으로는 더 멋진 듯...
222. Midnight Cowboy (1969) : 걸작이죠!
229. Untouchables, The (1987)
232. X2 (2003) : X맨 2군요.
235. Planet of the Apes (1968) : 리메이크작은 솔직히 쓰레기였습니다.
238. Die xue shuang xiong (1989) : "첩혈쌍웅!"
239. Others, The (2001)
248. Beauty and the Beast (1991)
249. Spider-Man 2 (2004) : 겨우 겨우...

2021/02/19

빵의 역사 - 하인리히 야콥 / 곽명단, 임지원 : 별점 3.5점

빵의 역사 - 8점 하인리히 야콥 지음, 곽명단.임지원 옮김/우물이있는집

이전 올렸던 "빵의 지구사" 리뷰에 댓글로 홍차도둑님이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된 세계사, 식문화 서적입니다. 새로 복간된 버젼은 아니고 예전에 절판되었던 버젼입니다. 

그런데 '빵의 역사'라는 제목과는 담고 있는 내용이 달라서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농사'와 '농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희생되고 숨겨진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부터 책이 쓰여진 2차대전 이후까지 주요 문명별로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담고 있는 내용이 무척 깊고 넓어서 간략한 리뷰로 정리하기는 불가능한 역작입니다만 저자 주장의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자면, 일단 처음 '빵'(효모로 부풀리는)과 '오븐'이 태어난 이집트는 모든게 신성화된 왕의 소유였습니다. 그래서 관료가 엄청 많을 수 밖에 없어서 농업에 기반을 둔 농업 국가였음에도, 모든 영광은 관료들이 차지했습니다. 농민들은 농노에 가까왔지만 신성화된 왕에게 소유됨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서 문명은 잘 유지되었지요.

반면 그리스 문명은 토지 특징 상 농업이 주가 될 수 없었습니다. 곡물은 주로 수입에 의존했어요. 저자는 '황금 양털 가죽'을 찾아 모험을 떠난 이아손과 영웅들은 곡물상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대신 목축이 주였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나 서사시에서 소유한 가축의 양과 질로 부유한지 아닌지가 결정되었다는걸로 알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하룻만에 아우게이아스의 마굿간을 청소한 신화도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걸 의미한다네요. 농부였다면 소중한 퇴비의 재료가 되는 마굿간 퇴적물을 물로 씻어 버렸을리가 없다는 이유인데,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솔론의 개혁으로 토지가 분배되었고, 그 덕분에 농민들이 아테네를 다스리게 됩니다. 사유지 확장을 금하고, 정해진 이상의 개인 토지를 몰수한 이 법은 소농들 권한을 강화시켜 아테네를 농업 민주 국가로 변모시켰고, 농민 신분도 상승했습니다. 대지와 곡식, 그리고 '빵'의 여신 데메테르를 숭배하는 엘레우시스교가 아테네의 국교가 될 정도로요. 엘레우시스교는 뒤이은 로마에서도 나름 건재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이 토지를 점차 장악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농지 분배를 받지 못한 뒤 로마 토지는 이윤이 많이 남는 축산업에 활용되고,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아프리카 정복지를 통해 수입되었죠. 그러나 반달족 습격으로 아프리카를 잃고, 유대 지방 곡물의 수탈이 시작되자, '농업인' 예수가 세력을 넓히지만 로마에 의해 살해당하게 됩니다.

로마가 식량 부족으로 동과 서로 나뉜 뒤, 북방 민족이 로마 제국 영지를 차지합니다. 목축 중심이었던 그들의 경제 활동이 농사로 바뀐 건 필연이었어요. 6인 가족의 중앙 아시아 유목민이 보통 환경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가축 300마리가 필요하다니, 굶어죽지 않으려면 당연했겠지요. 그러나 농사를 싫어하는 민족 특성으로 로마식 노예 제도가 이 때부터 뿌리내리게 됩니다. 그래도 중세 초기에는 지주는 농노를 잘 보살폈습니다. 일을 잘 하게 만들기 위함으로, 자유민들도 군복무를 하지 않고 안전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농노가 되었고요. 

농민들이 그나마 살 만 했던건 이 시기까지였습니다. 곧바로 가진자들의 수탈이 시작됐거든요. 도시 문명이 발달하며 도시민, 상인, 그리고 길드 소속 장인들 권리는 신장되었지만 농민들의 노동은 홀대받았습니다. 이는 '농사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저질러 낙원에서 쫓겨난 탓에 어쩔 수 없이 종사해야 했던 원죄'라는 기독교적 사고 방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탓으로 설명됩니다. 결국 13세기, 농민들에 의한 봉기가 일어났지요.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건 당시 종교 개혁이 이 농민 봉기와 관련이 있다고 해석한 부분입니다. 교회의 토지 수탈을 비판하던 종교 개혁가들이 농민 편에 섰기 때문이라는군요. 그러나 놀랍게도 종교 개혁의 핵심 인물 루터가 배신(?)한 탓에 봉기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루터의 교회도 수탈로 토지를 확보했을 뿐더러, 루터가 책임 전가를 겁내어 자기를 추종했던 농민 전쟁 참가자들을 배신했던 걸로 보입니다. 봉기 실패 이후 농민들은 더 가혹한 삶을 강요받게 되었고요.

저자는 농민들의 미대륙 이주를 이러한 처절한 삶을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즉 독립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지주와 농민 세력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요. 다른 국가들의 군대는 농민이 아니었지만 미국 독립군은 사실상 농민군으로, 전쟁에서 질 경우 모든걸 잃고 다시 도망쳐 나왔던 대토지 소유 제도 하에서 고통받아야 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박에 없었다는 해석이지요. 이 해석이라면 13세기 농민 봉기가 실패한 이유가 잘 설명되지는 않지만, 꽤 그럴싸했습니다. 농민들이 주도권을 쥐게 된 미국은 광대한 땅에서 농사를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여러가지 참신한 시도로 세계 최대의 농업 생산국이 되었고, 결국 빵이 풍부해서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다는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유럽 정국이 요동치고, 그들이 패권을 잃은 과정 역시 저자에 따르면 농민 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루이 14세 이후 농민을 포함한 민중이 이런저런 인쇄물과 매체를 통해 여러가지 '생각'을 접하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근대화에 접어듭니다. 그러나 일부 중농주의자들을 제외한 왕의 측근들이 농업보다는 상공업이 국가의 미래라고 생각했던 탓에, 기근과 가뭄이 닥쳐 방앗간에서 밀가루 생산이 멈추자 시민들이 빵을 달라며 혁명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마찬가지로 공업을 신봉한 탓에 무너졌습니다. 그는 백성과 군대가 잘 먹어야 한다는 현실 자체는 인지했지만,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곡물 수입이 막히자 패망한 거지요.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들이 일으켰다는 차이가 있지만, 노동자들은 농민들과 타협했습니다. 1921년 농민들은 농작물 세금만 납부하면 남은건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요. 스탈린이 러시아를 공업 국가로 만들기 위해 모든 토지를 국영화하고 농민들을 집단 농장 소속 농부로 만들었지만, 이는 스탈린이 그만큼 막강한 권력을 지닌 독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농민들보다 강했던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이렇게 세계 역사의 주요한 흐름을 농민들의 존재와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통해 풀어내는게 아주 신선했습니다. 그동안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이었으니까요. 각 시기별로 주요한 에피소드, 인물, 콘텐츠를 인용하여 설득력도 높이고요. 

그러나 유럽 중심의 역사만 다룬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한계와 약점이 느껴집니다. "빵"이 아니라 농민 중심으로 흘러간 문명사를 쓰려는게 의도였다면 당연히 중국 역사도 포함시켰어야 했습니다. "고문진보"만 보아도 농부의 노고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노래한 고시 - “봄에 곡식 한 알 뿌리면, 가을엔 만 알의 곡식 거두네. 천하에 놀리는 밭이 없는데, 농부들은 굶어 죽는다네 (春種一拉東, 秋收萬顆子, 四海無閑田, 農夫餓死)." - 가 등장하는데 말이지요.

또 농민들의 존재, 그들의 위치로 큰 세계사 흐름을 설명하려다 보니 억지스러운 점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미국 남북 전쟁은 북부가 곡물 생산량이 높아서 승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해석이에요. 유럽 역사에서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유대 민족에 대한 비중이 높다는 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저자가 유대인인 탓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엘레우시스교 축제에 대한 장황한 설명같이 지루한 이야기나 주제이기는 동떨어진 이야기 비중도 만만치 않다는 단점도 큽니다. 성찬 의식에 대한 견해 차이의 역사를 서술한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몰랐던 내용이라 신기하긴 했으나, 이 책 주제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생각되네요.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발표 시기가 오래된 탓에 최신 정보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약점이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사를 바라보게 해 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추천해주신 홍차도둑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빵의 지구사 - 윌리엄 루벨 / 이인선 : 별점 2.5점

2023/01/23

사키 - 사키 / 김석희 : 별점 2.5점

사키 - 6점 사키 지음, 김석희 옮김/현대문학

국내 첫 출간된 영국의 쇼트쇼트 대가 사키 단편선입니다. 무려 7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발표작 중 절반에 가까울 정도에요. 몇몇 작품은 이런저런 경로로 읽었었는데, 꽤 인상적이었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나쁘지는 않습니다. 시대를 앞서는 빛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많고, 기묘한 맛 스타일로 서늘한 느낌을 담뿍 전해주는 반전물, 피식거리게 만드는 웃음 가득한 작품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는 덕분입니다. 몇몇 작품은 걸작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에요. 번역도 좋아요. '께느른하다' 같은 단어까지 사용한 부분에서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열심히 사는 농부가 화가인 이복형을 보고 느끼는 감정인데, 몸을 잘 안 음직이고 게을러 보이는 상태를 잘 표현한 말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아주 좋았다! 라고 말하기도 애매합니다. 대부분의 작품들 등장인물과 소재가 비슷하고 자가복제한 작품이 많은 탓입니다. 적당한 신분의 어떤 인물이 속물이거나 허영심 가득해서, 혹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 탓에 낭패를 겪는다던가, 부르주아적인 습성으로 타인을 대하다가 예기치못한 상황에 처한다던가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한 거짓말로 문제가 발생한다던가, '소악마' 캐릭터의 원조격인 악동들이 어른들을 골탕먹이는 내용도 많고요. 그래서 읽다보면 지루해 집니다.
무엇보다도 지나칠 정도로 짜증나는 인물들 묘사, 지나친걸 넘어서는 과한 장난들은 거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키우던 고양이가 아무리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해도, 고양이를 죽인 이웃집 아이를 돼지 먹이로 주려고 한다는 "참회"가 대표적입니다. 지나치다 못해 끔찍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말 엄선된 몇몇 작품만 읽는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몇몇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깜빡 잊은 지명" 

길에 버려진 시체로 자신을 위장하려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뒤 털어 놓은 고백으로 기상천외한 발상과 온갖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주인공이 당장 체포되지 않는 이유가 그레이하운드들이 그를 쫓고 있고, 누가 먼저 잡는지에 대해 큰 내기가 걸려있었다는 묘사가 등장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화자가 자기가 사실은 죽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결론은 좀 억지스러웠습니다. 지명을 잊어버린 것은 사소한 문제일 뿐, 생김새 등 모든 면에서 이미 가짜라고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사냥 자루" 

사냥 클럽을 이끄는 펠러비 소령은 후핑텅 부인의 숲에서 오랫만에 사냥을 이끌 계획이다. 그러나 후핑턴 부인의 조카딸 엘리자베스가 데려온 러시아 청년 블라디미르가 여우를 먼저 사냥해 버리고 마는데... 

블라디미르의 사냥 자루가 눈 앞에 대롱대롱 매달러 있는 상황을 통해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가져 오는 작품으로 굉장히 전형적인 영국 부르주아스럽지만 긴장감만큼은 최고였습니다. 아쉬운 건 블라디미르가 잡은 건 사실 여우가 아니었다는 반전인데... 마지막에 슬며시 드러내는 것 보다는 조금 드라마틱하게 가져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발표 당시에는 먹혔음직 하나 지금은 좀 낡은 방식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생쥐" 

몸 속에 들어간 생쥐 때문에 시어도릭은 모르는 여자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위기에 처하는데.... 

지금 보아도 괜찮은 반전이 돋보입니다. 앞에 앉은 여자가 장님이었다는 암시, 복선을 제공해 주었더라면, 그리고 긴장감을 조금만 더 높여주었다면 쇼트쇼트 역사에 길이 남는 희대의 걸작 중 한 편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토버모리"

한 시골마을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참석자 중 한 명인 코넬리우스 에핀은 저택에서 키우는 고양이 토버모리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는 곧바로 사실로 밝혀지지만, 토버모리가 그동안 보고 들은 사람들의 말을 폭로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당황해했고, 결국 코넬리우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토버모리를 죽이는데 동의한다... 

영국 부르주아들의 가식을 비웃는 풍자물. 뒷담화, 불륜 등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하면서 서로 만났을 때에는 고상한 척을 하는 가증스러운 상태를 말하는 고양이라는 소재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유머러스한 전개도 돋보이고요. 코넬리우스가 코끼리에게 말을 가르치려다가 밟혀 죽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습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토버모리의 폭로가 기대만큼 화끈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인데, 발표된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이 정도가 한계였겠지요. 별점은 4.5점. 풍자 블랙 코미디계의 H.O.F (Hall of Fame)에 입성하기에 충분합니다.

"브로그"

마을 최악의 말 브로그를 소유한 멀렛 가족은 수년간의 노력으로 새로 이사온 펜리카드 씨에게 드디어 말을 팔아치웠다. 그러나 펜리카드 씨는 멀렛 가족의 딸 제시에게 호감을 드러냈고, 가족은 브로그가 사고를 쳐서 그 호감을 없애버릴까 노심초사하게 되는데....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가족)만 생각하는 가족의 이야기로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내용인 탓에 그리 높은 평가를 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래의 딱 한마디만큼은 기억에 남기에 소개해드립니다. 

“펜리카드가 그 말을 타고 밖에 나가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건 분명합니다.” 클로비스가 말했다. “적어도 제시가 그 사람과 결혼해서 남편한테 싫증이 날 때까지는 안 돼요. "

"허황된 이야기꾼들" 

잔돈푼을 구걸하려는 사람을 거창하면서 허황된 이야기로 단념시킨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뻔했지만 신사답게 구걸하는게 어떤 것인지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샤르츠 메테르클루메 교수법"

기차를 놓친 귀부인 칼로타가 자기를 가정교사로 착각한 부인을 따라가 그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이야기. 끔찍할 정도로 지나친 장난을 그리고 있는 소품으로 개그 콘서트에 어울릴법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리치는 방법이라며 허풍을 떤 제목의 교수법 아이디어만큼은 괜찮았어요. 로마 고대사의 사비니족 여인 납치를 실제로 실연하는 식으로 아이들을 가리지거든요. 다른 방식으로 녹여내었더라면 더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맹점"

에그버트는 삼촌 롤워스 경에게 대고모 할머니가 요리사 세바스티앙에게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입수했다. 하지만 롤워스 경은 증거인 편지를 벽난로에 태워버렸다. “요리사로는 아주 비범하기 때문." 이라며...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범죄물로 흥미롭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한 마디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지는 초단편 (쇼트쇼트)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참고로, 롤워스 경의 심정은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대고모가 살해당한건 먼저 세바스티앙을 자극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될 수야 없겠지만 컵에 든 커피를 얼굴에 끼얹은건 솔직히 심했습니다.

"평화 장난감"

전쟁 놀이에만 열중하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의회와 역사적 인물들 인형을 선물했지만, 아이들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또다른 전쟁놀이를 시작한다는 이야기. 다른건 모르겠지만, '평화 장난감'이라는 발상이 기발했습니다. 전쟁이나 파괴에 대한 장난감이 대세인 지금에도 먹힐만한 아이디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크리스피나 엄벌리 부인의 실종"

집안의 독재자였던 엄벌리 부인이 사라진 뒤, 남편은 매년 2천 파운드의 돈을 은밀하게 요구받았다. 부인을 돌려보내지 않는 조건이었다... 

마크 트웨인의 "붉은 추장의 몸값"과 비슷한, 기발한 발상의 유괴극.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부인이 사라졌는데 경찰이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건 조금 아쉽네요. 그리고 이런 상황이라면 엄벌리씨가 부인을 죽여서 마당 어딘가에 묻어버렸어도 무방했을터라, 차라리 그런 인상을 주면서 마무리하는게 더 나았을 듯 합니다.

"엉뚱한 침입자들"

평생을 원수로 지낸 울리히와 게오르그는 함께 나무에 깔린 뒤, 해묵은 원한을 청산하고 친구가 되기로 하는데... 

숲을 둘러싼 오래된 원한이 살의에까지 이르른 원수 두 명이 산중에 고립된 뒤 친구가 되기로 합니다. 그러나 둘은 구조대가 아니라 배고픈 늑대 떼들에게 둘러싸이고 만다는 반전이 인상적인 걸작 쇼트쇼트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메추라기 먹이"

인기없는 상점에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주인은 연극을 펼치는데... 

인기없는 마을 상점에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상점에 정체불명의 손님이 방문한 뒤 무언가 드라마가 벌어지는 것처럼 꾸민다는 이야기. 전략은 성공해서 마을 주부들의 호기심을 가게에 집중시키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SNS 를 활용한 페이크 다큐성 타겟 광고라고나 할까요?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임시 정원"

정원 자랑하기 좋아하는 밉살스러운 이웃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임시로 멋진 정원을 꾸며주는 서비스 업체가 등장하는 이야기. 결말은 다소 답답했지만, 역시나 독특한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브루주아들의 허영심 비판에 딱 맞는 아이디어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달력"

클로비스는 예언을 적은 달력을 18펜스에 팔 생각을 했다. 예언은 모두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애매한 것들이었지만, 조슬린이 사냥터에서 화를 당할거라는 예언은 성공하기 힘들어졌다. 조슬린이 절대로 말을 타지 않고 사냥터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상품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실하게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이비 점쟁이의 뻔한 수법을 특정 시기와 결합된 달력이라는 제품에 도입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거든요. 실제로 만들어 팔았어도 괜찮았겠다 싶을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불가피한 희생"

천 파운드가 넘는 돈을 잃은 딸이 그 댓가로 홀어머니를 채권자 도박꾼과 결혼시킨다는 이야기. 다른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부르주아 풍자를 잘 그려낸 소품으로 대단히 신선하거나 재밌다기 보다는, 주인공 딸이 이 책에 등장하는 속물 부르주아 중에서도 뻔뻔하기로는 첫 손가락에 꼽을만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네모난 달걀"

1차대전 참호에서의 참혹한 전투를 겪는 병사들의 위안은 술집과 카페가 합쳐진 공간 '에스타미네'에서의 한 때였다. 그곳에서 나는 자칭 양계업자를 만났다. 그는 품종 계랑을 통해 자기 양계장 닭이 네모난 달걀을 낳게 하는데 성공해서 거액을 벌었지만, 전쟁에 끌려온 뒤 양계장을 운영하는 고모가 돈을 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송 비용으로 수십 프랑을 요구하는데.... 

'나'의 마지막 말이 깨는 반전의 맛을 가져다 주는 작품입니다. 그는 휴가를 얻으면 '양계업자'의 고향에 가서 네모난 달걀 산업 현황을 확인하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말하지요. 그러자 '양계업자'는 자기 말이 사실이라면 어쩔 셈이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답하죠. "당신 고모님과 결혼하겠소"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울러 시키는 1차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했다는데, 그런 경력답게 굉장히 탁월한 참호 묘사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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