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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2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 박승애 : 별점 3점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박승애 옮김/노블마인

이곳 저곳에서 평이 좋길래 구입해 본 젊은 일본 작가의 청춘 추리물로 다섯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 연작집. 막 고등학교에 진학한 주인공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첫 에피소드에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뒤 두번째 에피소드부터 제목 그대로 "봄철 딸기 타르트"와 연관되어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지니는, 그러면서도 각각 일상 속의 소박한 사건들을 다루며 한편으로 완결되는 스토리가 있는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책입니다..

일단 장점이라면 일상 속 사건임에도 추리적으로 괜찮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몇몇 부분에서의 트릭과 아이디어가 꽤 재미나더라고요. 그러니 2007년판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순위에도 등장했겠지만요. 전부 비슷비슷한 수준이지만 연작성격을 떠나서 제일 마음에 들은 이야기는 "도둑맞은 딸기 타르트" 였습니다. 그 외의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사실 일상 생활속에서 사람들이 강력 사건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이렇게 일상 속의 자질구레하면서도 소박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외려 현대 추리 소설에 더욱 잘 어울려 보이기도 했고요.
아울러 탐정역을 소화하고 있는 주인공 커플 역시도 "소시민이 되고 싶다" 라는 장래희망마저도 소박한, 명탐정의 전형을 깨버리는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도 정감가는 요소였습니다. (참고로 소시민이 되고 싶다는 고바토의 꿈은 추리력 과시에 의해 외려 손해를 본 과거의 트라우마라는 설정이던데 이 역시 QED의 한 에피소드와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너무 만화적인, 그림이 훨씬 어울리는 트릭이 많다는 점입니다. 만화 버젼이 연재되고 있다는데 만화 쪽이 그림만 마음에 든다면 외려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정도로 만화에 더욱 어울리는 소재들이었거든요. 책 뒤의 해설에도 나오지만 고등학교 1학년 커플이 탐정역으로 등장한다던가, 학교 또는 일상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만화 "QED"와 굉장히 닮아 있기도 하고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시리즈 첫 작품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가 읽기에는 좀 너무 어린 취향이 아닐까 싶어서 이후의 시리즈를 계속 사 볼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추리물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초심자, 그 중에서도 20대 아래의 나이층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네요.

그런데 표지가 너무 유치한 것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이거 무슨 아동용 동화책도 아니고...

1. 가방 찾기 대소동
고등학생이 된 후 진정한 소시민으로 거듭나려는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 그러나 고바토의 초등학생 동창 겐고를 만나면서 그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겐고는 너무나 정의감이 투철한, 앞장서기 좋아하는 열혈남아였던것. 겐고가 한 여학생의 가방 도난 사건의 조사를 요청하면서 고바토는 다시금 추리의 세계로 뛰어든다.

2. 도둑맞은 딸기 타르트
오사나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봄 한정 딸기 타르트를 실은 자전거를 도둑맞은 뒤, 고바토는 오사나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신문부인 겐고가 의뢰한 미술부의 수상쩍은 그림의 수수께끼 풀이에 도전한다.

3. 맛있는 코코아를 타는 법
주말에 오사나이와 만나던 고바토에게 겐고가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는 전화를 하고, 찾아간 둘에게 겐고는 맛있는 코코아를 대접하며 그 비결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겐고의 누나 치사토는 부엌에서 겐고가 어떤 방법으로 코코아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을 궁금해 하며 애를 태우는데...

4. 커닝페이퍼의 비밀
오사나이에게서 시험 도중에 깨진 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고바토는 잠깐의 조사로 병이 깨진 이유를 알게 된다.

5. 딸기 타르트의 복수
자전거를 훔쳐간 이웃 고등학교 학생 사카가미를 우연히 발견한 오사나이와 고바토. 오사나이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고바토는 오사나이 신변을 걱정하여 겐고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선뜻 도와주지 않으려는 겐고에게 고바토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추리한 자전거 도난 사건의 진상을 털어놓고 결국 사건을 해결한다.

2014/10/07

보틀넥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보틀넥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사가노 료는 동급생 스와 노조미가 추락사한 곳에서 실수로 떨어져 버렸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같은 장소지만, 유산되었다는 누나 사키와 죽어버린 노조미가 살아 있는 또 다른 평행우주의 세계였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청춘 성장기, 혹은 청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작가 특유의 주인공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눈에 뜨입니다.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최대한 은근하게 살아가자는, 회색이 되고 싶어하는 "소시민 시리즈"의 고바토나 "고전부 시리즈"의 오레키 호타로가 연상되는 1인칭 주인공인데, 이러한 성격 탓에 문제가 발생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제목 그대로 '보틀넥(병목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랄까요. 이런 점에서, 주인공이 가진 문제에 대해 자각하고 반성의 의미로 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다른 시리즈 주인공들과 달리, 사가노 료는 별다른 추리력이 없고 탐정 역할은 누나 사키가 맡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거든요. "추리력 없는 소시민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또 적절한 분량에 쉽게 읽힌다는 장점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완전히 건질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로를 위험하게 가로막은 은행나무를 둘러싼 이야기나, 노조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부분에서는 특유의 일상계 추리물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후미카라는 캐릭터가 설득력을 가질 만큼 충분히 묘사되지 않아 다소 아쉽지만요.

사키가 현명함과 행동력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지만 그 결과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는 결말도 끔찍하고 충격적이에요. 자신은 최선이라 생각했고 아무런 악의도 없었지만, 결국 주변 인물들이 자신으로 인해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건 저주와도 같지요.

그 외에도 실제 지명을 작품에 잘 녹여낸 묘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정 미스터리"가 연상될 정도로 그곳에 살았거나 가 본 적이 있다면 무척 반가웠을 장소들이 상세하게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노조미가 추락사했다는 "도진보", "가나자와의 21세기 미술관", 와카마쓰정, 무로우 사이세이의 시비 등이 있습니다.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자주 등장하는 자스코(Jasco)도 실제로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이러한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 외에는 딱히 특기할 만한 점이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평행우주"라는 SF적 설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료와 사키를 대비하여 그들의 세계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며, 별다른 설명이나 과학적 근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솔직히 추리물을 기대했는데 정작 접한 것은 청춘 반성, 성장기였기에 실망한 탓이 큽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리물"을 좋아하신다면 굳이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8/07/01

쓰리 빌보드 (2017) - 마틴 맥도나 : 별점 2점


딸이 강간 살해당한 후 8개월, 피해자의 어머니 밀드레드는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 서장 윌러비를 비난하는 대형 옥외 광고를 게시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윌러비 서장의 편이며, 심지어 윌러비 서장은 췌장암으로 죽어가고 있던 상황.... 

언뜻 보았던 영화 소개만 보고 관심이 가던 차에, 출장 중 비행기에서 감상했습니다.

공권력이나 불합리한 관습, 법률에 도전하는 소시민의 소소한 반항을 다룬 영화는 많습니다. 깐깐한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대항하는 청춘 영화 대부분이 유사한 장르라고 해도 무방할 터이고요.
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는 아시다시피 대체로 코믹한 느낌인데 반해 이 작품은 굉장히 묵직합니다.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의 인생도 딱히 별 볼일 없는 시궁창이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라 할 수 있고요. 

등장 인물도 몇 명 안되고, 무대가 되는 장소도 별 게 없는 그야말로 소품인데, 시작 이후 등장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이 소소하지만 흥미로와서 중, 후반부까지는 그런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상 등을 휩쓴 밀드레드 역의 프랜시스 맥도맨드를 비롯, 윌러비 서장 역의 우디 해럴슨 등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굉장했어요.

그러나 가면 갈 수록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윌러비 서장이 자살한 이후부터는 아주 막나가는데, 각본을 직접 쓰기까지 한 감독의 생각이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우선 서장 스스로가 밀드레드에게 편지를 보내 광고 때문에 자살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힙니다. 하지만 왜 밀드레드에게만 편지를 보냈을까요? 공개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밝히지 않아서 불필요한 오해와 싸움이 더 벌어지게 만드는게 서장의 의도였을까요? 윌러비 서장은 유서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굉장한 인격자로 묘사되는데 왜 마지막에 이렇게 분란을 일으키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딕슨이 서장 자살 후 홧김에 광고판 주인인 웰비를 폭행한 건 나쁜 짓이지만 밀드레드가 경찰서에 불을 지른걸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을 넘었다면 밀드레드 역시 소시민이나 피해자라 할 수 없어요. 범죄자일 뿐이죠. 소소한 시민의 반항이 범죄로 치닫는 과정을 그리려는 의도였다면 이 역시 밀드레드의 방화에 공감할 수 없어서 그다지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윌러비의 유서로 거듭난 딕슨이 진범을 잡는데 전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실패한 후, 밀드레드와 손을 잡고 강간범을 때려 잡는 자경단으로 나선다는 마지막 결말은 더 가관입니다. 분노에서 비롯된 공권력에 대한 작은 반항, 그리고 이에 따르는 갈등을 다루다가 갑자기 사랑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히어로물로 변질되어 버린 셈이잖아요? 이러느니 차라리 저능 경찰 딕슨의 활약으로 범인을 체포하는 헐리우드식 엔딩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여전히 꿈도 희망도 없는 현재에 주인공들이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폭주해 버린다는 결말보다는 그래도 분노가 해소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는 정리될 수 있었을테니까요. 아니면 아예 맘먹고 블랙 코미디처럼 막 가거나, 아예 꿈도 희망도 없이 무너져 버리게 하던가 하는 극단적인 선택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연기도 좋고 여러모로 인상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중반 이후의 전개와 결말 때문에 대폭 감점합니다. 추천드리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하네요.

2008/10/08

인사이트 밀 (incite Mill)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3점

The Incite mill 인사이트 밀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차를 구입하려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잡지를 뒤적이고 있던 평범한 대학생 유키 리쿠히코. 그런 그에게 갑자기 등 뒤에서 한 미녀가 말을 걸어왔다. 그 여자와 함께 들여다본 잡지 귀퉁이에 실려 있던 광고에는 시급 112,000엔, 엄청난 고액의, 엄청나게 수상한 아르바이트가 실려 있었다.
'연령과 성별 불문. 일주일 기간의 단기 아르바이트. 어느 인문과학적 실험의 피험자. 하루의 구속 시간은 24시간. 인권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24시간 피험자를 관찰한다.' 수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엄청난 시급에 눈이 멀어 망설임을 이기고 연락을 넣은 유키는 지정된 장소 ‘암귀관’을 향한다. 참가자는 열두 명. 그리고, 등 뒤로 육중한 문이 닫힌 순간, 열두 명의 운명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을 향해 치닫는다.


2008년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에서 10위를 차지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 소설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몰입하여 하루만에 읽어버리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리소설 매니아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작중의 설정 및 트릭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또한 일상계 추리소설을 발표해 왔던 요네자와 호노부의 전작과 유사하게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일상인, 소시민들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귀기 위해 중고차를 사려고 아르바이트에 응모하는 주인공이라니.. 정말 생동감이 넘칩니다.

하지만 분명 단점도 존재합니다. 제일 큰 단점은 모든 상황과 설정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겠죠. 애당초 비밀의 조직에서 거액의 돈으로 아르바이트를 모집한 뒤 잘 기획된 폐쇄된 공간에 일단의 무리를 집어넣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만화적이잖아요. 법과 돈을 초월한 의문의 조직, 잘 짜여진 룰과 상황에 어울리는 최적의 무대, 이건 완벽하게 만화 “라이어 게임” 판박이죠. 게다가 이 비밀의 조직이 행하는 실험(?)의 이유조차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르바이트 잡지에 광고를 실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있는 이상 관련한 수사가 진행된다면 분명히 꼬리가 잡혔을 텐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되지 않는 점은 작가 스스로 쓰고싶은 부분만을 위해 억지로 가져다 붙인 설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앞서 말한 생동감 있는 소시민 캐릭터도 "스와나"라는 초슈퍼 엘리트 냉혈 미인 때문에 빛을 잃는 면도 없잖아 있고요. 인터넷 지인이신 decca 님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작위성이 매력이라고 하시던데 작위적인것도 정도껏 해야죠.... 제게는 만화를 소설로 억지로 각색한 느낌이 더 컸습니다.

또한 이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과정 역시 합리적인 이야기 진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일단 한명 죽이면 몇배, 범인을 밝히면 몇배 식으로 배율을 정해놓고 살인 게임을 유도한다고 하는데, 사실 제일 힘이 센 인물이 한명만 동료로 끌어들여 연쇄살인을 뚝딱 저지른다면 곧바로 게임이 끝나고 엄청난 거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물론 양심에 호소하며 그러한 상황을 방지코자 하는 애매한 묘사가 나오긴 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지죠. 작중에서도 결국 범인은 “2명”을 살해하는 상황인데 “2명”과 “10명”의 차이가 과연 존재할 지 의문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한 4~5명 살해하고 감옥에 갇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가장 안전한 곳은 감옥이니 만큼 살해에 따른 보너스 수입과 안전을 손에 넣는다면 괜찮은 방법이었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사건이 너무 “트릭”을 위해 작위적으로 짜여진 것도 껄끄럽더군요. 이 소설에서 진정한 이유를 가진 살인(?)은 첫번째 살인밖에 없으며, 이후 벌어진 살인은 전부 우발적이고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물론 중간에 있는 두건의 살인은 확실한 동기가 나중에 밝혀지기는 하지만 살인이 벌어지는 상황이 우연과 우연이 결합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작위적이었고, 극적인 결말을 위해 가져다 붙인 티가 많이 납니다. 우연과 우연이 결합되는 상황 역시 중간에 등장하는 “어디에 가나 3인 이상 이동” 이라는 그럴듯한 설정에 발목을 잡힌 듯 무리수를 둔 느낌까지 들고요.

이렇듯 단점이 좀 많고 아쉬운 부분도 많은 작품이라 비록 굉장히 재미있긴 하지만 자신있게 추천하기는 좀 애매한 작품입니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2사 1,2루 찬스에서 타점없이 진루만 가능한 짧은 안타를 친 격이랄까요. (번트안타?) 그래도 저는 손에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들 정도의 재미를 갖췄기에 별 3개 주겠습니다. 아무리 단점이 많고 만화같은 설정이라도 재미가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요. 뭔가 속편을 암시하는 결말인데 속편이 나온다면 재미는 유지한채 보다 정교하고 철저한 설정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2021/12/11

불온한 잠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점

불온한 잠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최신작입니다, 2019년 12월 발표되었습니다. 2020년 초에 하무라 드라마가 방영되었기 때문에 일부러 간행 일자를 맞춘 듯 합니다. 통상 2년 정도 기간을 두고 발표되었던 시리즈 이전 작들에 비하면, 중간 기간이 확연히 짧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시리즈 이전 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별로였습니다. 사건들은 대부분 억지스러웠으며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거든요. 전작에 비하면 많아진 극적 소재들 - 폭발, 유령 빌딩과 그라피티, 총격 사건, 산사태 등 - 도 대체로 비현실적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라는 별명을 강조하기 위한 지나친 상황과 인물 설정들도 억지가 심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와카타케 나나미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미디어 믹스의 유혹, 편집부의 요청이 지나쳤던게 아니었나 싶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거품 속의 나날"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옛 기치조지의 마담 사쓰키는 하무라 아키라를 자택으로 불렀다. 그녀가 돌보던 친구 딸 하루카가 곧 출소하는데, 자기에게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하루카는 마약에 취해 저지른 방화로 불륜남을 사망케해서 7년형을 받았었다. 하루카를 교도소에서 태우고 돌아오던 중, 수상한 2인조가 하루카를 납치하려다 실패했다. 경찰은 하루카가 죽게 만들었던 불륜남 다케이 소지로가 무언가 위험한걸 밀수했었고, 아직 그게 발견되지 않았다고 알려주는데...

하루카와 하무라 아키라, 악의 조직이 서로 쫓고 쫓기는 과정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세계관 그대로입니다. 재미도 있고요. 특히 하루카가 수상한 조직에 쫓기다가 도망가서 '무언가'가 있음직한 장소로 향하는 과정, 하무라가 그녀를 뒤쫓다가 조직과 마주치는 등의 장면은 "몰타의 매"를 연상케 합니다. 비싼 값어치가 있는 보물을 여러 명이 노리고, 여자와 탐정이 한 팀인줄 알았는데 여자가 뒷통수를 친다는 설정이 똑같으니까요. 

물론 하루카는 전혀 미인도 아니고, 머리도 나쁘며 하무라 아키라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소시민인데다가, 악의 조직도 사람을 죽이기 보다는 '손을 믹서기에 실수로 넣어 버리는' 정도의 조직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현대 일본에 하드보일드 세계관을 풀어놓으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요. '무언가'가 고작 거북이었다는 진상도 황당했지만, 현대 일본이 무대인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을 테고요. 악당들이 거액과 시간을 들여, 폭행을 가해가며 노려왔지만 정작 경찰은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을 그런 물건으로 딱 적당하다 싶었거든요. 멸종 위기종으로 약효가 좋다고는 해도, 수많은 관계자들 손을 갈아가면서 찾을 필요가 있나 싶기는 했습니다만.

하지만 이 작품이 진짜 하드보일드구나! 싶었던건, 악의 조직과의 문제가 일단락된 다음입니다. 사쓰키가 죽기 전, 하루카를 데려와 달라고 탐정을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7년간 면회는 커녕, 영치금 한 번 넣어준 적이 없었고, 하루카는 사쓰키를 두려워했는데 말이죠. 정답은, 사쓰키는 하루카에게 복수를 하려고, 그녀가 도망가지 않고 자신에게 오도록 탐정에게 의뢰했던 겁니다. 이를 위해 앞서의 복선이 드러나는 장면은 서늘합니다. 사쓰키가 장갑을 끼고 있었던 이유가 대표적이에요. 사쓰키는 하루카 때문에 손가락을 믹서에 넣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밖에도 친구가 하루카를 임신했던 탓에 좋았던 관계가 깨졌었고, 하루카의 불륜으로 사업도 큰 손해를 보았던 등도 복수의 이유였고요. 이렇게 애정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순수한 복수심이 대폭발하는 마지막 장면은 정통파 하드보일드 물임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어요.

그러나 멀쩡한 회사 대표였던 사쓰키 손을 갈아버렸다면,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이렇게나 무식하고 무서운 무법천지란 말일까요? 하루카가 훨씬 젊고 힘도 좋을텐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죽음을 맞는 결말도 납득이 가지 않았고요. 또 물론 집을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를 과하게 의식한게 분명해 보여서 좀 별로였습니다. 앞서의 소시민스러운 하드보일드 느낌을 망쳐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 범죄물 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함직한 수작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새해의 미궁" 

하무라 아키라는 12월 31일, 하청 알선업자 사쿠라이를 통해서 철거 예정인 빌딩의 경비를 맡게 되었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빌딩이었다. 고생 끝에 경비를 마친 히무라에게 경비 사무소 사무원 사나에가 실종된 경비원 구도 쓰요시를 찾아 달라고 의뢰했다. 구도 쓰요시는 회사 몰래 유령 빌딩 견학회를 열었던 사실이 질책받고 도망가 버린 상태였다. 하무라는 구도와 악연이 있다는 예술가 사촌 라이카의 집에서 구도를 발견하는데...

라이카가 빌딩 개발업자 관계자와 함께 경비 중이던 구도를 협박해서 유령 빌딩에 침입했던 이유는, 독자들도 비교적 쉽게 추리할 수 있습니다. 라이카가 이구치라는 그라피티 아티스트에게 푹 빠저 있었다는 정보가 초반에 제시되는 덕분입니다. 해체 직전의 빌딩에 경비원을 둔 건 빌딩 안에 값나가는 무언가가 있다는걸 개발업자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 사실을 눈치했던 회사의 누군가가 이구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라이카를 현장에 불렀던 거라는 추리는 덕분에 쉽게 떠올릴 수 있었어요. 아마 그 누군가는 직품을 확인한 뒤 몰래 빼 낼 계획이었을테지요. 

그러나 진상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개발업자인 산도 개발의 오키타 부장이 이구치 그라피티가 있다고 사기쳐서 한 몫 챙기고 있었던 겁니다. 이구치 그림은 없었던 거에요! 이렇게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맛도 좋고, 덕분에 사건의 복잡도도 높아져서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개는 여러모로 억지스러웠어요. 일단, 앞서 말했던 '누군가'에 해당하는 오키타 부장의 부하 후치가미가 아라카와, 라이카에게 이구치 그라피티에 대한 정보를 흘린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뭘 위해서 그랬을까요? 그림을 빼돌릴려고? 작 중에서 설명되지만, 건물 속 그라비티를 훔쳐내는건 현실성 없는 이야기에요. 벽을 해체하는게 그리 쉬울리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달리 돈을 만들 방법도 없고요. 후치가미가 속수무책으로 실종된걸 보면 딱히 협박이 목적이었던걸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리고 라이카는 이구치의 작품이 없다는 걸 알았을겁니다. 그런데도 시간을 들여 누드 사진을 찍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녀도 사실은 이구치 작품이 뭔지 잘 몰랐다는걸 의미하는 걸까요? 설령 그렇다쳐도, 작품 전개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라이카가 사진가 아라카와에 의해 빌딩 안에서 살해당했다는게 가장 억지스러웠습니다. 경비원이었던 구도를 반 협박하다시피해서 들어오기는 했지만, 라이카와 아라카와가 빌딩에 잠입한건 그리 대단한 죄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숨기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아라카와는 이구치 그림이 없다는걸 알고, 오키타 부장 패거리에게 잡히면 죽을 거라고 추리했을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오키타 부장 패거리가 자기들 얼굴을 목격했던 경비원 구도를 살려둔 이유가 설명이 안되지요.

사소해 보였던 의뢰가 대기업이 엮인 대형 사기극과 이어지지만, 하무라가 받은 의뢰는 사기와는 별로 관계가 없었습니다. 살인 사건은 우발적인 범행이었고요. 사건 해결도 추리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우연에 가까왔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 물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도망친 철도 안내서" 

하무라 아키라는 병원에 입원한 도야마의 지시로 '철도 미스터리 페어' 준비를 도맡게 되었다. 페어의 메인은 수집가 미노와로부터 빌린 "ABC"였다. 유명 작가 가미오카의 장서로 '94식'이라는 총기 난동 현장에 있었다고 알려진 책이었다. 그러나 페어 와중에 누군가가 하무라를 전기 충격기로 기절시킨 뒤 책을 훔쳐가 버렸다...

진상은 책이 가짜였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집가 미노와는 손자를 시켜 책을 훔쳐냈던 거지요. 나중에 가짜와 바꿔치기 되었다고 할 속셈으로요.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는 실마리를 더듬어나가는 과정은 하드보일드물 스타일입니다. '철도 미스터리 투어'를 준비하면서 소개되는 열차 관련 미스터리 작품들의 목록들도 현란하고요.

그러나 그 밖에는 딱히 건질게 없던, 그닥인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아주 별로에요. 살인곰 서점에서 책을 훔처간 범인은 CCTV를 통해 누구인지 밝혀지고, 진상은 범인에게서 듣는게 전부니까요. 심지어 94식 사건의 관계자 구라나 마호코의 손자 구라노가 절도 미스터리 페어의 하이라이트인 경매회를 덥쳐서, 진상을 모든 이들에게 폭로하기까지 합니다!

무슨 회사 내부의 알력 어쩌구는 억지로 가져다 붙힌 설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뿐, 하드보일드인지도 잘 모르겠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요약이 힘들 정도로 알맹이가 없었던 졸작입니다.

"불온한 잠" 

서점 단골 시나코씨가 11년 전, 자신 소유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하라다 히로카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누군가를 찾아, 유품을 전해 달라고 의뢰했다. 예전 히로키의 이웃 이와오 하쓰에 할머니가 탐문 수사 중이었던 하무라를 습격해 목을 졸랐고, 그녀가 히로카를 증오해서 위협했던게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히로카의 과거를 계속 추적하던 하무라는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얹혀 사는걸 반복해 왔다는 걸 알아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있던 생활 습관이었다. 그녀 어머니 이치카는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 집에 히로카를 보내어, 그녀가 그 집의 모든걸 독차지하여 살게 해 왔었다...

표제작, 하라다 히로카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정통 하드보일드스럽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단서를 수집하여 과거로 한 발 더 나아가고, 그러면서 숨겨져 있던 추악한 진실을 알게된다는 전개니까요. 간단해 보였던 의뢰가 범죄로 얽혀있고, 등장 인물들도 기묘하게 얽혀있는 내용도 마찬가지에요. 이거야말로 하드보일드다라는 느낌을 담뿍 전해줍니다. 

반면 수사 대상인 하라다 히로카에게 아무런 개인적 감정을 품지 않고, 의뢰 내용을 수행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죽을 뻔 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모습은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복수와 같은 개인 감정 때문도 아니고, 수사 중 위험에 휘말려 살아남기 위해서도 아닌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탐정은 처음 봤거든요.

그런데 원래 의뢰는 '연고 없이 사망한 사람의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고향까지 찾아갔지만, 사채 탓에 모든 사람들이 미워했다는 걸 알아냈다면 의뢰는 끝난 거에요. 히로카의 어머니 이치카가 '먼 모래'의 마담 아치요에게 돈 때문에 살해당했건, 히로카 옆집의 이와오가 사망한 히로카의 돈을 빼돌렸건, 그건 의뢰와는 무관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가 아치요와 이와오를 찾아갈 이유는 아니에요. 또 찾아가 봤자 이치카와 히로카의 돈이 둘에게로 흘러갔다는 증거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경찰 신고도 무용지물이었을테고요.

게다가 이렇게 하무라 아키라가 이야기를 끝낼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끝은 내기 위해 작가는 천재지변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토사 붕괴로 뉴타운이 휩쓸리고, 아치요와 이와오마저 실종되었다는 결말인데 작위적이고 허무하기로는 그야말로 끝판왕 격이에요. 차라리 하무라 아키라가 야치요에게 추리를 털어놓고, 원래 의뢰대로 유품을 전해주고 가는게 더 하드보일드스럽고 괜찮았을 겁니다.

하무라의 수사도 히로카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었다는게 밝혀지는 도입부는 괜찮았지만, 이후 기타노의 아내도 식칼로 하무라를 죽이려 했다던가, 히로카가 거쳐간 세 번의 거주지를 방문했고 기타노는 직접 만났음에도 마지막까지 '사채에 대해 증언을 얻지 못한다는 등 억지가 많더군요. 이치카, 히로카 모녀가 살던 오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채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모녀를 적대시 했었지요. 히로카의 정체 (사채업자)는 널리 알려져 있는게 당연했습니다. 최소한 불륜 상대로 오해받는 것 보다는 말이지요. 하루카가 시나코 씨 소유의 좁고 낡은, 거지같은 집에서 혼자 머무르다 죽음을 맞았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원칙대로였다면 채무자 이마이 집에 머물며 왕처럼 지냈어야죠. 돈도 많았을 텐데...

이렇게 독특함은 있지만, 단점들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6/03/24

안녕 요정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안녕 요정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인 모리야 미치유키, 다치아라이 마치(센도), 시라카와 이즈루, 후미하라 다케히코 4명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유학 온 여학생 마야와 만나 그녀가 떠날 때까지 2개월간 함께 여러 일들을 겪었다. 그러나 2개월 후 전쟁이 일어난 유고슬라비아로 마야는 모두의 걱정을 뒤로 한 채 귀국하고 말았다.
편지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편지는 오지 않았고, 남은 친구들은 그녀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국 중 어디에 머무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힘을 모으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입니다. 긴 호흡의 이야기 속에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는 구성이지요.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놓치지 않고 찾아 읽는 편입니다. 작품들이 대체로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며, 추리적인 면에서도 합격점을 줄 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분야에서는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내놓기도 했고요.

이 작품 역시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그것도 전형적 일상계로, 왕도라고 부를 수 있는 구성이에요. 정말로 있을 법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추리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라면 이즈루의 이름 유래를 알아내는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진위 여부를 알 수 없고, 너무 소소해서 추리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의 이야기도 있다는 겁니다. 허나 지방 소도시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는 이 정도가 딱이겠지요. 오히려 이러한 소소한 이야기를 추리 소설로 만드는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해드리자면, 제일 처음 등장하는건 첫 만남에서 마야가 이야기한 "일본인은 비에 익숙해서인지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펴지 않고 잡고 뛰어간 남자" 사건입니다. 모리야는 '우산은 고장 난 것이고, 남자는 불에 타지 않는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달려나간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경성탐정록"의 "소나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마야가 신사 근처 구 시가지에서 들은 젊은 2인조가 남긴 수수께끼의 대사 "죽을 것 같으니 신사에 가자. 곤란하다. 떡을 만들어 간다 어쩌구"의 의미를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모리야는 2인조의 정체가 끈끈이로 새전함을 털려는 도둑들이라고 추리합니다.
일본식 대화를 가지고 풀어낸 것이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번역이 아쉬웠어요. 일본어의 뉘앙스를 살리기는 힘들었겠지만, 우리 식으로 "먹고 죽을래야 먹을 것도 없고, 끈끈한 떡이나 준비해야지" 정도로 풀어낼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세 번째는 묘지 앞 공물이 홍백 만주와 붉은 샐비어라는 기이한 물건인 이유를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진상은 그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경사였다는 겁니다. 일상계의 왕도라 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떡은 홍백인데 꽃은 붉은 것밖에 없다는 상황을 통해 추가적인 이야깃거리를 뽑아내는게 특히 괜찮았고요. 개인적으로 추리로만 따지면 이 작품 속 베스트 에피소드라 생각됩니다.

네 번째는 마야 이별 파티에서 시라카와의 이름인 "이즈루"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재미 여부를 떠나 일본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 별로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야와의 짧았던 추억담 이후, 현 시점에서 모리야가 그동안 제공된 정보를 종합하여 결국 마야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국 중 어디로 돌아갔는지를 알아내는 것으로 작품 속 추리는 마무리됩니다. 정교하기는 하지만 작품 내에서 전체적으로 흩뿌려진 단서를 모아 결론을 내는 것으로, 추리라고 하기는 조금 어렵지 않나 싶었어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에 가까웠달까요?

이렇듯 소소한 이야기에 소소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으로 심심하다 여겨질 수 있긴 하나 제가 워낙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작자의 다른 유사 시리즈와 비교해 본다면 뚜렷한 차별화 요소나 매력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와는 주인공들이 정반대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모리야는 본인의 에너지를 투자하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인물이거든요. 처음 본 마야를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학교에서의 궁도부 활동, 마야와 함께하는 시간들, 거기에 본인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도서관에 없는 책을 구입해 공부하는 열의까지 모든 면에서 말이지요. 또 다른 주역 센도는 굉장히 차갑고 냉정한, 일종의 "쿨 뷰티"로 성숙한 학급 위원장 느낌이고요.
하지만 "고전부 시리즈"와 "소시민 시리즈"는 의욕 없는 무채색 주인공들이 매력 포인트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모리야는 너무 뻔해서 매력 포인트를 찾기 힘들었어요. 센도 역시 다른 캐릭터들이 수도 없이 연상되는 스테레오 타입이었고요. 마야는 외국에서 왔다는 것을 제외하면 "고전부 시리즈"의 지탄다와 다르지 않습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수시로 메모장을 꺼내어 메모한다는 모습은 "신경 쓰여요~"와 똑같아요.

또 비교적 무거운 내용 역시 이전 두 시리즈와는 다르기는 하나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냥 일상 속 청춘물과 달리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위해 아낌없이 배우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려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힘든 탓입니다. 다치아라이를 통해 밝혀지는 진상, 즉 마야는 이미 죽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지만 허무할 뿐이고요. 청춘의 노력은 무익할 뿐이라는 허망함을 전해주려는 의도였을까요? 도무지 모르겠네요.

아울러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를 작품 속에 녹이기 위해 1992년을 그리는데, 1992년에 대학교 1학년이라면 저와 동갑이라 동질감은 느껴지긴 합니다만, 나이와 시점 모두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딱히 1992년일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역시나 불필요한 설정이었습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 주인공들을 통해 성장기 느낌을 주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지만, 이 역시 어설픕니다. 모리야가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유고슬라비아로 가고자 했던건 젊은 치기에 가깝고, 대학생이 된 후 다시 가려고 하는 것은 오기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추리물이기는 합니다만, 추리의 밀도가 낮고 캐릭터의 매력도 떨어지며 드라마도 재미없기에 감점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이야기에 신경을 쏟지 말고 그냥 "고전부 시리즈"의 에피소드로 써먹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왜 별도의 이야기를 파생시켰는지는 모르겠네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유고슬라비아 홍보대사쯤으로 임명된 뒤 쓴 작품이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2023/02/18

책과 열쇠의 계절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3점

책과 열쇠의 계절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요네자와 호노부청춘 학원 추리 단편집. '고전부'나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탐정의 역할입니다. 이 시리즈는 두 주인공인 호리카와와 마쓰쿠라가 각자 추리를 펼치며 서로를 보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약간 버디물스러운 느낌도 들어요. 뛰어난 관찰력과 독특한 발상의 추리력을 갖춘 호리카와는 뻔한 고등학생 탐정 캐릭터인 반면, 모든걸 의심하면서 추리를 시작하는 마쓰쿠라의 독특함은 나쁘지 않았고요.

또 두 주인공이 도서위원이라서 대부분의 이야기에 주제가 되는 책이 등장한다는 것도 차이점인데, 저 역시 독서 애호가(?)인지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상계로 한 획을 그은 작가답게 평범한 일상계로는 우수한 시리즈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913><913>>
도서위원 호리카와 지로와 마쓰쿠라 시몬은 선배 우라가미로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과거 둘이 에도가와 란포의 <<흑수조>> 속 암호를 풀었던 모습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일요일, 우라가미 선배 집에 방문한 둘은 할아버지 서재 방에 놓여져 있었던, 어울리지 않았던 책들이 단서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마쓰쿠라는 정보를 바로 공개하지 않고 따로 조사가 필요하다며 호리카와와 밖으로 나온 후, 그가 생각했던 의심을 털어놓는데...


등장하는 책은 많지만, 중요한건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가 되는 책들

마쓰쿠라의 의심은 우라가미 선배가 후배 둘에게 금고를 열어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무엇인지에서 시작됩니다. 가족이 정당한 유산 상속인이라면 금고를 여는 전문가를 부르면 됐으니까요. 그래서 마쓰쿠라는 우라가미 선배와 선배의 가족은 금고를 그렇게 쉽게 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추리합니다. 선배 집에서 대접받았던 차는 시판차와 똑같은 맛이었는데 그걸 끓여서 따로 찻주전자에 내 놓은 이유, 화장실을 간다고 했을 때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 이유 등 기묘했던 행동은 그 집이 선배 가족의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찻잎이 어디있는지는 모르지만 살고 있는 척을 해야 해서 차를 끓여 내 놓았고,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건 집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닐까봐 걱정했던 것이었지요.
할아버지의 단서는 이상한 책의 분류 번호에 대한 것으로, 그것을 통해 금고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를 이용하여 선배 가족의 정체를 밝히는 작전을 펼친 것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책 4권의 3자리 분류 번호를 50음도로 변환하면 모두 6자, "타스케테쿠레 (살려줘)"라는 말이 된다고 조작하는 방식으로요. 이 작전으로 선배와 선배 가족의 눈을 돌린 틈에, 마쓰쿠라가 집 안을 조사하여 노인을 발견하고 구해내게 됩니다.
금고 안 내용물은 할아버지 그림과 가족 앨범이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눈에 뜨이기는 합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던건 서재방에 단서가 있고 그건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서재방의 책 중 다른 책들과 사뭇 다른 책이 있다는건 어른이 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금고 번호가 도서 분류 기호라는건 어른이 된다고 알 수 있는건 아니고요. 즉 할아버지가 말했던 단서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선배 가족이 금고를 열기 위해 후배를 부른 것도 이상했어요. 저 같으면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정도로 끝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은 아쉬웠습니다.

<<록 온 로커>>
도서위원 컴비 둘은 함께 미용실을 찾았다. 함께 가야 40% 할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점장이 "귀중품은 '반드시' 지참하실 것"을 말했고, 이걸 이발 중 이야기하는걸 저지했다, 그리고 곧 종료 시간이라고 말하고 난 뒤 염색이 필요해 보이는 손님을 받았다는 등의 단서를 조합하여 마쓰쿠라는 미용실에 최근 도난 사건이 있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 점장이 함정을 팠다는 추리를 펼칩니다. 호리카와는 마쓰쿠라의 도움으로 둘의 예약을 받았던 곤도가 범인이라는걸 알게 되고요. 이 작전을 모르는 사람을 점장이 의심하고 있으니, 그걸 모르고 예약을 받은 곤도가 범인이라는 추리로요. 이는 결국 사실로 밝혀집니다.
마쓰쿠라의 추리에 이어 호리카와의 추리가 이어지는 티키타카가 볼만했고, 마지막에 범인 곤도가 도주하는걸 저지할 수도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던건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한 감성을 느끼게 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평범한 일상계로는 적절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일본의 미용실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비해 남자 둘이 미용실을 가는게 굉장한 금기인 것처럼 묘사되는게 신기했습니다.

<<금요일에 그는 무엇을 했나>>
기말고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후배 도서위원 우에다 노보루가 호리카와와 마쓰쿠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주 금요일, 학교에 누군가 침입하여 교무실 앞 창문이 깨졌는데 그걸 보고 학생지도부 요코세 선생이 노보루의 형인 불량 학생 우에다 쇼가 시험 문제를 훔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요코세 선생은 이른바 '명탐정' 같은 사람으로, 무슨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학생 누군가를 아무런 근거없이 범인으로 지목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에다 쇼가 그 날, 밤 늦게 돌아왔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둘은 우에노 쇼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형제가 같이 쓰는 방을 수색하는데...


등장하는 책은 <<파랑새>>. 유리창을 깬 원인이기도 한 새와 연결되는 장치. 헌책방에서 산 이름을 알 수 없는 애장판 만화도 중요한 단서 중 하나. 그 외에도 노보루가 관심있어하는 책으로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한 판타지 시리즈가 언급됨.

추리를 통해 밝혀낸 우에다 쇼의 알리바이는 가족과 별거 중인 아버지 병문안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있어서 그 사실을 숨겼던 것이지요.
우에다 쇼의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라이켄'이라는 라면집 쿠폰을 찾아낸 뒤, 이상할 정도로 좁았던 집 등의 단서를 통해 아버지가 별거 중이라는 노보루의 답변을 끌어내어 우에다 쇼의 그날 행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완벽한 일상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사건을 맡아서 끌어가는 과정과 결말이 다소 석연치 않습니다. 우에다 노보루의 부탁부터 억지스럽습니다. 왜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는지 모르겠어요. 작중에서도 우에다 혼자서는 도저히 알리바이를 찾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호리카와에게 부탁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호리카와가 딱히 알리바이 찾기로 이름을 떨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친한것도 아니니까요.
호리카와가 부탁을 선뜻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에초에 우에다 쇼는 증거가 집에 있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설령 부탁을 받아들인다 해도 집을 뒤지느니 우에다 쇼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게 더 나은 해결책이었어요.

이에 대해 마쓰쿠라의 추리 - 우에다 노보루가 형의 퇴학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도 좁고 어차피 형은 아버지랑 살 터였기에. 그래서 알리바이 증거를 찾아내서 없애려고(형을 퇴학시키기 위해)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는 인간 관계가 깨져도 무방한 사람이었으니까 - 는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형의 퇴학을 바란다면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이 이상적입니다. 구태여 알리바이를 찾아내고, 또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늘린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애초에 학교에서 퇴학당할 정도의 위기에 처한다면, 증거 유무와 관견없이 병문안 당사자였던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도 않았을테고요. 모든 상황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마쓰카와의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한 주장으로 보이지만, 이전에 보여줬던 추리력과 상반될 정도의 비합리적인 주장이라서 오히려 캐릭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리창을 깬건 마쓰카와였다는 결말도 별로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없는 책>>
3학년 선배 고다가 자살한 뒤, 자살한 선배의 친구 하세가와가 도서실에 나타났다. 그는 고다가 책 사이에 유서를 넣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라며, 빌렸던 책을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둘은 하세가와의 빌린 책에 대한 언급을 통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걸 알아채는데....


등장하는 책은 이와나미 문고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자살론>>.

극히 적은 정보만 가지고 원하는 책을 찾아준다는 이야기는 서점이나 도서관이 무대인 작품에서는 굉장히 많습니다. 아예 이런 내용이 핵심인 <<서점원 하야미>>라는 만화가 떠오르네요. 이번 이야기는 이런 류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반전과 함께 여운도 남기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세가와가 찾아달라고 하며 알려준 핵심 정보는 고다가 책을 읽다가 덮었는데 책 등이 보였고, 밑에 바코드 스티커가 있었다는 겁니다. 고다가 좋아했던건 소설책이고요. 그런데 현장 조사를 통해 하세가와는 고다의 오른쪽에 있었다는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일본의 소설책은 대부분 세로쓰기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므로, 책을 읽다가 덮으면 하세가와의 위치에서 책 등과 스티커를 함께 보는건 불가능합니다. 즉, 하세가와의 말은 거짓말이었던 것이지요.
마쓰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를 날조하려는 속셈이었다고 하세가와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호리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는 육필이라 위조할 수 없고, 오히려 유서를 받은 뒤 친구가 자살한 탓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은밀하게 유서를 드러내려고 했던 거라고 추리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묵직한 내용에 추리적으로도 좋았으며, 두 주인공의 차이를 강하게 드러내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고, 무조건 나쁜 의도일 것이라 짐작한 마쓰카와의 잘못과 이를 반박하는 호리카와의 말이 대미를 장식하거든요.
선배 교실에 가서 불필요한 연극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는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옛날 이야기를 해줘>>
마쓰카와는 호리카와에게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숨겨두었던 현금을 함께 찾아보자고 부탁했다. 그간 호리카와의 추리력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내 놓았던 과거의 단서들를 함께 검토하다가 과거 마쓰카와 가족에게 차가 한 대 더 있었다는걸 추리해내었고, 둘은 결국 그 밴을 찾아내는데...


여러 책이 등장하지만 핵심은 아버지 밴 안에 있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

보물찾기 이야기인데 마쓰카와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호리카와가 잡아낸 마쓰카와의 이야기 속 단서 - 동생이 멀미를 했다는 것 - 라는 착안점은 좋았습니다. 그때까지 마쓰카와는 당시 탔던 차가 렌트카라고 생각했는데, 동생의 멀미는 담배 냄새 때문이라는걸 깨닫고 담배 냄새가 나는 차를 렌트할리가 없었다는걸 깨닫게 되거든요. 결국 그 차는 빌린 차가 아닌 아버지 차였다는 추론에 이르게 됩니다. 또 이 추리는 자동차로 여행을 가다가 동생이 심하게 멀미를 했었다는 별게 아닌 추억담이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는 점과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잊고있던 기억을 떠오르게끔 도와주는 정도의 도움을 줄 뿐이라는 점에서 완벽한 일상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뒤 차를 찾아내는 과정, 그리고 차 속에서 발견한 열쇠의 '501호'가 어디인지를 추리하는 과정도 그럴듯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책'이 중요 단서로 사용된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차 안에 굴러다니던 헌 책이 도서관 '제적본' 책이라는걸 알아낸 뒤, 도서관이 위치한 도시의 5층 건물을 검색한다는 것으로 도서위원인 아이들의 특기가 발휘된 것은 물론이고, 그 도시는 차로만 갈 수 있다는 등의 설정이 덧붙여져 있어서 여러모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일상계 보물 찾기로는 더할나위 없긴한데 딱 한가지 억지가 있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라면 당연히 주차비를 냈을테니, 주차비를 내는 누군가는 차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누군가가 그렇게 했던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 그 누군가가 몇 년 동안 차를 뒤져 그 안의 보물을 가져가지 않았을리도 없겠지요. 즉, 자동차가 주차장에 장기 주차되어 있었다는게 밝혀진 순간 보물찾기는 끝났어야 마땅합니다. 이걸 바로 떠올리지 못한건 이상해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친구여, 알려 하지 마오>>
호리카와는 도서관 검색을 통해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돈을 도둑맞은 피해자가 아니라 돈을 훔쳤던 가해자였다는걸 알아낸다. 단서는 마쓰카와 시몬, 레이몬 형제 이름과 이에 대해서 마쓰카와가 '3/5이다'라고 했던 말이었다. 시와 예 (레이)는 중국 고전 5경에서 따왔으니 아버지 이름도 그럴 것이다라고 추리하여 아버지 이름을 검색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도 전편에서 독자가 가졌던 의문을 그대로 가지고, 자신의 추리 결과로 도서관에서 기사를 검색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월 정액 주차장에 남겨져 있었던건 누군가 돈을 계속 냈다는 의미라는 추리는 저와 같은데요, 호리카와는 왜 돈을 계속 냈을까?에서 또 다른 추론을 얻어냅니다. 주차장에 놓여진 차를 처분할 수 없었던건 그 안의 열쇠 때문이었고, 열쇠를 지금 당장은 회수할 수 없었다는 처지였다고요.
그리고 줄거리 요약처럼 '오경'의 한자를 통해 마쓰카와 아버지 이름을 추측하여 검색한 결과,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절도범이었다는걸 알게됩니다. 즉, 마쓰카와의 아버지는 지금 구속 수감 중이라 열쇠를 회수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여기까지의 추리는 기가 막힌데 그 뒤는 특별히 추리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뒷부분은 마쓰카와가 돈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해 반론하는 호리카와 사이의 자기 주장 대결이 대부분이에요.
마쓰카와가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평소에 돈을 아끼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 이유 등 약간 사회파스러운 분위기가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 약점이란 건 그런 거야. 약점 하나로 세상은 변해….. - 어차피 고등학교 2학년 생이 하는 이야기니 그렇게 깊이있는 이야기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호리카와 역시 이상론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뿐이고요.
이야기는 마쓰카와가 그 돈을 찾으러 후미쿠라 정에 가서 건물들을 뒤졌는지, 그래서 돈을 찾았는지 밝혀지지 않고,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마쓰카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호리카와 시점에서 마무리됩니다. 아무래도 마쓰카와가 돈을 찾으면 더 이상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을텐데, 어떻게든 마쓰카와가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돌아와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추리도 괜찮았고, 대단원의 막을 장식하기에는 나무랄데 없는 깔끔한 전개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18/11/10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 하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세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하 세트 - 전2권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이후 헤어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각각 다른 이성 친구와 교제하게 되었다. 오사나이와 교제하게 된 신문부 열혈 부원 우리노는 매달 벌어지는 연쇄 방화 사건에 집중하여 사건을 다룬 기사를 교내 신문에 발표했다. 기사를 통해 몇 개월간 다음 방화 장소를 예언하고 맞춘 우리노는 신문부의 손으로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우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일상계 추리물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처음 알림 소시민 시리즈 신간(이라고 하기는 작년에 나와서 좀 어색하지만 제 기준으로는)입니다. 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은 아동용 동화같은 커버 일러스트로 충격을 주었는데, 예쁜 일러스트의 양장본으로 재출간된걸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거의 전작 출간이 되었을 정도의 인기 작가라는걸 여실히 보여주네요. 이런 추리, 미스터리 장르물의 인기에 저도 약간이나마 기여(?) 하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뿌듯하기도 하고요.

하여튼, 이 작품은 시리즈 1편인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보다는 2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 더 비슷합니다. 조금 긴 호흡의 긴 이야기가 핵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요.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거주하는 기라시에 매달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화가 일어나고, 이를 쫓는 신문부 후배 우리노와 이에 얽히게 된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이야기가 시간으로 따지면 2학년에서 3학년까지 거의 9개월에서 10개월 동안 펼쳐지거든요.

그런데 방화사건 쪽 주인공은 우리노이며 그와 교제하게 된 오사나이가 양념처럼 등장할 뿐입니다. 고바토가 다른 여자 친구 나카마루와 교제하며 일상계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어요.
이러한 고바토의 일상계는 다른 일상계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사건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카마루와 함께 데이트를 가던 코바토가 만원 버스에서 누가 버스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추리하고, 나카마루가 이야기해 준 자신의 오빠에게 있었던 기묘한 도난사건에 대해서 추리하고, 헤어지기 직전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하는게 아닌가하고 추리하는 정도입니다. 이 중 버스 이야기는 추리에 비하면 분량이 과할 정도로 길어 별로였고, 토마토 이야기는 정말로 스쳐 지나갑니다. 그래도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나카마루의 오빠가 3일간 여행 갔다 온 후 집에 유리창에 깨져있고, 누군가 침입했지만 없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묘한 도난사건 이야기만큼은 꽤 괜찮았습니다. 그동안 오디오 알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랐다는건 말이 안되고, 설령 이런 일이 생겨도 집 주인을 부르지 무단 침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요. 전부 다 소소하고 심심하지만, 담백한 덕분에 일상계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그런데 연쇄 방화 사건 이야기는 불만입니다. 물론 추리적으로는 나름 번득이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특히 연쇄 방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는 괜찮습니다. 우리노가 다음 번 방화 장소를 추리해 낸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노의 친구이자 범인인 히야가 우리노의 기사를 보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건데 상당히 의외성이 있어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밀정"에서도 등장했었던, 간단한 트릭으로 용의자를 좁히고 진범을 추리해 내는 과정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의 전편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고, 온갖 추리를 펼친 우리노의 마지막 추리쇼를 박살내기 위한 오사나이의 복수극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복수를 위한 오사나이의 공작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해있던 우리노와 통화했을 때 고의로 기차 소리를 들려주어 현장 근처로 오해하게 만들고, 범행 현장 근처에 서점에서 책을 산 영수증을 우리노의 눈에 띄는 곳에 놔 두는 식인데 우리노가 이를 추리해낸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의도가 불분명한 탓입니다. 마지막 순간 추리쇼를 펼친 우리노에게 면박을 주고 재기불능 수준의 창피를 주기 위해서? 복수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모든게 작위적입니다. 또 정통 추리물이라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우리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는 그런 인식이 전무하다는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잘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구리킨톤을 먹으며, 오사나이가 우리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이후라고 추리해내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멋대로 오사나이에게 키스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깔끔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복수를 꾸밀 정도의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또 우리노는 명예욕은 있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좋은 녀석인데, 이쓰카이치의 기사로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전개는 작가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동일한 느낌의 또다른 일상계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였던 듯 합니다. 고바토가 마지막에 추리를 통해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던가, 오사나이는 대단한 행동력과 책략을 갖춘 팜므파탈로 묘사된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요. 소시민을 꿈꾸는 고바토 죠고로와 회색을 신봉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의 캐릭터부터가 완벽하게 겹치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이지요. 아마 시리즈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고바토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펼치고, 오사나이는 추리를 위한 각종 작전을 짜내고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으로 묘사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큰 변화가 작품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바토야 그렇다 쳐도 오사나이 캐릭터 변화가 문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억지스러운 복수극 전개가 모두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한 발자욱 물러나 사건을 추리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만 해서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일상계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구성은 좋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해요. 억지스럽게 설정까지 바꾸어 가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느니 그냥 고전부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20/12/25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 루스 렌들 / 홍성영 : 별점 3점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 6점
루스 렌들 지음, 홍성영 옮김/봄아필

루스 렌델이 쓴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중심의 단편집입니다. 수록된 대부분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무언가에 몰입, 집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상은 열쇠, 시계, 저택과 같은 사물도 있고, 여장이나 동물로 변장하는 등의 독특한 취미도 있지요. 주인공들은 결국 그 때문에 파국을 맞게 되는데, 파국을 맞는 장면이 마지막 몇 줄로 정리되는 반전 묘미가 빼어난 작품이 많습니다. 등골 서늘한 반전을 짤막한 문장으로 펼쳐보인다는 점에서 '기묘한 맛' 장르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정교하게 계획된 범죄가 등장하는 "휘파람 부는 남자"와 "늪지 저택, 펜 홀"은 등장 인물들 심리와 주변 배경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중심이기는 하지만, 잘 짜여진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었고요.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시대에 조금 뒤처진 느낌도 들고, 반전도 뻔한 작품들이 많다는건 아쉽습니다. 대표적인게 표제작인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겠지요. "헤어가 살던 집", "아버지의 날" 등도 예상하기 쉬운 내용이었고요. 

하지만 뻔하더라도 독자를 몰입시키는 구성과 전개, 묘사가 빼어나서 한 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닌 거지요.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남성 공포증이 있는 여자와 장난삼아 여장을 즐긴 남자가 겪는 파국을 그린 작품.

원제는 The New Girlfriend인데, 영화 때문에 제목이 바뀐걸가요? 여튼 여장한 데이빗을 진짜 여자로 생각하는 크리스틴의 심리 묘사가 볼거리였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데이빗이 크리스틴과 함께 하기(?) 위해 남자로 돌아오자, 그를 살해한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습니다. 크리스틴이 남편 외 남성에 대해 갖는 혐오가 앞서서 상세하게 설명된 탓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조금 찾아보니 영화는 기본 설정만 따왔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로 각색했더군요. 저는 영화 결말보다는 원작 결말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푸른 히아신스 향기" 

아내 캐서린이 불륜 뒤 임신하자 이혼하고 40년간 해외를 떠돌던 남자가 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 번 캐서린을 찾아 나섰고, 결국 그녀를 만났지만 그녀는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다시 그녀를 찾아가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나 그가 죽인건 알고보니 그녀의 딸이었다.

남자가 캐서린에게 집착하는 디테일한 심리 묘사가 일품입니다. 이를 통해 그녀에 대한 살의와 살인이라는 직접적 행위가 설명되고요. 죽인 여자가 캐서린이 아니라 그녀의 딸이었다는 반전 역시 대단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과수원 울타리"

나는 공습을 피해 엘라 이모가 사는 인치필드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엘라 이모가 남편이 징집된 틈에 병가를 받고 돌아온 조종사 데니스 클리프턴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걸 알아챘다.
밤에 총 소리를 들은 어느 날 아침, 나는 나무에 매달린 허수아비를 데니스 클리프턴의 시체로 오인해 소동을 일으킨 뒤 런던으로 쫓겨났다. 엘라 이모도 아이를 낳다가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곳에서 머리에 산탄총을 맞은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 작품도 '나'의 심리 묘사가 빼어난 작품입니다. 또 어린 시절 추억을 회고하면서 그려내는 영국 시골 풍경에 대한 묘사도 좋고요.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불륜으로 긴장감을 싹 틔우고, 이를 목 매달린 시체 (허수아비)로 터트리는 전개도 거장답습니다.

그런데 에필로그처럼 그려진 마지막 반전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발견된 유골은 데니스 클리프턴일겁니다. 그렇지만 데니스 클리프턴은 전시에 병가 중인 군인이었습니다. 그가 실종된게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을까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불륜을 알고 입을 맞췄다고 하더라도 전시라는 상황이면 문제가 되었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헤어가 살던 집" 

살인 사건이 일어난 탓에 싸게 나온 집을 구입한 노먼은 아내 리타와 함께 이사왔다. 10여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계속 신경을 쓰던 노먼과 리타는 욕실 창문이 자꾸 열리는걸 가지고 다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리타를 거의 죽일 뻔 한 노먼은 다시 이사를 마음먹은 뒤, 헤어 사건이 알고보니 자기와 같이 욕실 창문이 열린 탓이라는걸 알게 되는데...

스트레스와 긴장이 쌓이면 사소한 일로 살의가 폭발하는 심리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일상 속 이야기처럼 그려내었다는게 특징입니다. 살의가 우리 삶에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잘 알려준다고 할 수 있네요. 일상 속 사소한 문제로 폭발한 살의라는 점에서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활자 잔혹극 (유니스의 비밀)"과도 비슷하고요.

하지만 전개와 결말은 다소 뻔했습니다. 별다른 반전도 없고요. 창문 문제가 살의를 촉발할 수 있다는걸 이웃은 알고 있던걸로 보이는데, 이웃에 대해서 반전 형식으로 풀어내었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뇌물과 부패" 

니컬러스는 여자에게 홀려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엄청난 덤터기를 쓸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아버지를 해고했던 아버지 회사의 보스 소렌슨이 식사비를 대신 지불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소렌슨이 아내가 아닌 젊은 여자와 함께 있는걸 목격했던 탓으로 여긴 니컬러스는 식사비를 돌려주기 위해 다음날 소렌슨을 찾아갔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니컬러스를 협박범, 그리고 바보 취급을 할 뿐이었다.

며칠 뒤, 소렌슨의 아내가 살해된 채 발견되고 소렌슨은 식당에서 그를 목격했던 니컬러스만이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상황에 처하는데....

소심한 소시민이지만 자존심만큼은 갖춘 니컬러스가 펼치는, 자신을 무시했던 소렌슨에 대한 복수극입니다. 독자가 니컬러스에게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니컬러스가 울분을 쌓아가는 과정을 차분히 그려낸 전개가 돋보입니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빌드업'이 완벽해요. 이러한 빌드업을 완성하는 마지막 니컬러스의 한 마디, "보지 못했습니다. 절대로요."가 작품의 백미고요. 소시민의 잔혹 복수극이자 일상계라는 독특한 작품의 정체성도 인상적입니다.

식당에서 소렌슨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조금은 작위적인 설정은 아쉽지만, 그 외에는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수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휘파람 부는 남자"

매뉴얼 밑에서 페인트 공으로 일하는 제레미는 영국인 불법 체류자이자 좀도둑으로, 일하던 중 모르는 집 열쇠를 줍게 되었다. 이 집을 털어서 인생 역전을 꿈꾼 제레미는 집 열쇠에 적힌 주소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집은 매뉴얼의 본가였고, 잽싸게 도망치던 제레미는 이 모든게 매뉴얼의 복수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매뉴얼이 결혼할 여자인 루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게 들켰기 때문이었다...

허술해 보이는 쿠바 이민자가 영국인 좀도둑을 가지고 놀면서 제대로 복수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몇 줄로 드라마틱한 반전이 완성되는, 오 헨리 스타일의 반전물이기도 하고요. 반전을 통해 매뉴얼이 이상하게 돈이 많았다는 복선도 회수되지요. 

개인적으로는 호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느낄 수 없는 영국인 제레미가 죗값을 치룬다는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만큼 밉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묘사력은 정말이지 부럽네요.

그런데 제레미가 집을 터는 동안, 제레미 짐 속에 마약을 숨긴 뒤 세관에서 걸리게 만든것 자체는 엄청난 복수이기는 합니다만 너무 복잡하고 거창한 복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제레미가 집을 털 생각을 하지 않았거나, 집 주소를 알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물론 매뉴얼은 다른 복수를 준비했겠지만, 여러모로 손이 너무 많이 가는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나팔꽃 시계" 

트릭시는 데본셔에 사는 친구 시빌에게 놀러갔다가 그곳 갤러리인 아티팩트에서 충동적으로 나팔꽃 시계를 훔쳤다. 시계는 그녀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고, 시계를 알아본 친구 미비마저 사고를 위장해 살해했다. 시계를 몰래 돌려 놓으려는 시도마저 실패하자 트릭시는 순간적 광기로 시계를 부숴버리는데....

특정 물건에 대한 충동적인 집착이 파국을 불러온다는 심리 드라마입니다. 주인공이 노인이며, 시계 때문에 그녀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파국이 일상 속에서 전개되는 일상계 속성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 합니다. 마지막에 쓰러진 트릭시가 "똑딱똑딱, 나팔꽃 시계 소리"라고 말하는 장면도 대단했어요. 그녀 정신이 붕괴했다는걸 이렇게 한 마디로 표현하는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전개와 결말은 다소 뻔하다는 단점은 어쩔 수 없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늑대탈" 

'나'는 임박한 결혼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연극에 쓰는 늑대탈을 쓰면 자신을 잊을 수 있다는걸 알아챘다. 같은 취미를 숨기고 살던 어머니와 함께 하게 되자, 늑대탈을 쓰는 행위와 늑대가 될 때 야생으로 깊이 들어가던 행위는 점점 폭주하게 되었다. 마침내 약혼녀 모이라가 양가죽 외투를 입고 찾아온 날, 야생동물 두 마리가 양을 덮치고 만다....

두 마리의 야생 동물이 바닥에 쓰러진 양을 덮쳤다는 것이다. 는 마지막 문구는 섬뜩했습니다. 전형적인 '기묘한 맛' 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모이라를 먹은 건지도 살짝 궁금해지고요.

그러나 정신병자가 쓰는 글이라는걸 계속 알려주고, 늑대탈을 쓰면 늑대가 된다는 행동 묘사가 상세해서 반전의 묘미는 약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분명 어딘가에서 읽었던 작품이라 신선함도 부족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늪지 저택, 펜 홀" 

프링글과 친구들은 아버지 친구 리던 씨가 사는 늪지 저택 펜 홀 근처로 캠핑 여행을 떠났다. 리던 씨는 저택 관리를 위해 모든걸 걸었지만 돈과 인력,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리던 씨 아내 플로라는 저택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물건에만 집착했다. 때문에 저택 내부는 쓰레기장같아 보였다.
태풍이 불어 포퓰러 나무가 쓰러진 다음날, 나무 구덩이에서 오래된 유물이 발견되고 이를 좋아하는 플로라는 발굴에 나섰다. 그러나 리던 씨가 해체하던 쓰러진 나무가 구덩이로 떨어져 그녀는 깔려 죽고 마는데...

서로 다른걸 원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사고로 죽어버립니다. 당연히 남편이 사고처럼 위장해서 저지른 범행이고요. 이렇게 내용은 굉장히 뻔합니다. 하지만 이를 어린 아이인 프링글 시점에서 은근히 드러내는 묘사만큼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직접적으로 죽이는걸 본건 아니지만,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을 묘사하는 식이거든요. 

그리고 본 편 이야기보다도 오히려 늪지 저택 펜 홀과 숲에 대한 묘사가 훨씬 굉장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작나무 줄기는 은색, 너도밤나무는 백랍색, 플라타너스는 회색과 노란색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굉장히 상세하면서도 맛깔나는 묘사였어요. 작가의 필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아버지의 날" 

테디는 처제 가족과 그리스 섬으로 여행왔다. 처제의 남편 마이클은 아내 린다가 아이들과 함께 자신을 떠나는걸 두려워하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이클이 아내를 처치하고 아이들을 독차지한다는 이야기인데, 절벽에 떨어질뻔했던 테디와 아내 앤의 사고를 묘사하여 이어지는 사고와 연결시키는 전개는 너무 뻔했습니다. 수록작 중에서 가장 뻔한 이야기였달까요.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지만 이혼이 만연한 세상에 두려워하는 마이클의 강박증 설정은 괜찮았지만, 테디 시점에서 묘사해서 그렇게 극적으로 묘사되지는 못한 것도 아쉽고요. 더 광적인 에너지가 느껴졌으면 했는데, 지금의 작품은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본 탓에 조금 무미건조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케판다로 가는 초록길" 

나는 인기없는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 아서 케스트렐과 친구였다. 그러나 그가 발표했던 15권에 달하는 '칼리나스 연대기'는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아내 엘리자베스만 읽었을 뿐이었다. 아서는 어느날 '나'에게 런던 외곽선이 폐쇄되고 생긴 아름다운 산책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엘리자베스와 함께 산책을 나섰지만, 그가 이야기한 풍경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서는 혹독한 비평이 신문에 실린 뒤 자살을 택했다. 바로 그 날, '나'는 알 수 없는 사명감에 아서를 찾아왔다가 귀가하던 중 아서가 이야기했던 산책로를 발견하는데...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가 다른 사람에게도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작가들이 꿈 꿔볼만한 일종의 판타지 작품. 장르 문학을 쓰는 작가에 대한 세간의 푸대접에 불만을 품고 쓴 글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아서가 만들어낸 산책로의 아름다운 묘사가 빼어납니다.

하지만 다른 수록작들과 비교할 때 극적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특별한 반전도 없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11/13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 - 기타쿠니 고지 / 문승준 : 별점 2점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 - 4점
기타쿠니 고지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변호사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도시타는 가난한 동네 변호사로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의뢰 해결이 주 업무라 법정 다툼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정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보다는 일본 추리 소설 시장에서 나름대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특정 분야 전문가가 소시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일상계 추리 단편집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다른 전문가 - 서점 점원, 헌책방 주인, 요리사, 화과자 장인, 시계 수리 전문가, 사진가, 바리스타, 라쿠고가, 복화술사, 호텔리어, 심지어 스님까지 - 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각자의 직종과 관련된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반해, 이 작품은 그냥 동네 사람들의 다양한 의뢰를 받기 위해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설정한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법률 전문가스러운 느낌이 별로 들지 않거든요. 도시타는 화자이자 커뮤니케이션 담당일 뿐, 탐정 역할은 도시타의 동생 리쓰가 담당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리쓰 캐릭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일단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고,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도시타' 에 관련된 말을 하는 루틴이 있고, 현재 상황과 분위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해야 하는 말은 반드시 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닙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를 떠오르게 만드네요. 결은 좀 달리하지만 엄청나게 머리가 좋다는 설정마저도 똑같고요. 그러나 우영우만큼 호감가게 묘사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문가 일상계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었습니다.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독특함에 목숨을 건 나머지 이상한 만화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만 거지요. 또 추리한 결과를 형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없는데, 여기에 무뚝뚝하고 무례한 행동에 더해져 굉장히 비호감이었어요. 다른 캐릭터들도 글래머 소꼽친구 간호사 사키, 여자를 밝히는 스님 마루메, 전 야쿠자 출신이자 현 카페 주인인 이모부 등 비현실적이거나, 호감가지 않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요.

그래도 추리적으로 괜찮았다면 나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수록된 네 편의 단편들 모두 그렇게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이야기 전개가 리쓰 캐릭터처럼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이 많았던 탓입니다. 입 안에 넣은 치과 치료용 충전물이 라디오처럼 동작한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따뜻한 인간 드라마 중심의 전형적인 일상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문가 일상계로 보기에는 전문성, 일상성 모두 떨어지며 추리적으로도 그닥이라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한 가지 꼽자면 일본에서도 변호사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도? 딱히 영상화 되었다는 소식도 없고, 후속권도 출간되지 않았으며 국내에서도 금새 절판된걸로 보면 다른 분들의 평가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되네요.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울러 '고양이'는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시피 한 수준이므로 집사분들께서는 낚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1화 "못된 며느리와 낙서 소동" 

고토에 아줌마는 도시타에게 며느리 험담 끝에 며느리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고토에 아줌마가 돌아간 후, 리쓰는 그녀의 섬망성 기억 상실을 눈치챘다. 형제는 사태 수습을 위해 며느리 에가와 씨를 만나러 갔다가 ,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던 낙서 소동에 휘말리는데...

진상은 알고보니 고토에 할머니의 병을 낫게 하려고해 며느리 에가와가 마당에 자생하는 디기탈리스 잎을 떼어 말린 뒤 몰래 먹였다는 겁니다. 고토에 할머니는 디기탈리스 잎의 부작용으로 치매와 비슷한 용태를 보인거지요. 

그런데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디기탈리스가 심장병에 효과가 있지만 독성 또한 강하다는건 정보 검색으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자동 완성으로 '디기탈리스 중독'이 함께 뜰 정도로요. 이걸 약재로만 알고 먹였다? 설득력이 약합니다. 자기 험담만 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살의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때문에 이를 효심으로 포장하는 마무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도시타가 제대로 된 변호사였다면 며느리를 경찰에 신고하는게 맞았어요. 추리를 하기 위한 정보 제공도 빈약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고요.

차라리 낙서 소동 쪽이 추리적으로는 조금 더 낫습니다. 다른 낙서들과는 그림이 달랐고, 키가 작은 사람이 그렸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은 꽤 그럴싸했거든요. 하지만 진상은 앞서 사건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초등학교 3학년생이 새가 부딛힐까봐 '버드 스트라이크'를 리카 씨네 가게 쇼윈도에 그렸다는게 전혀 와 닿지 않은 탓입니다. 쇼윈도가 그 가게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테고, 1층 건물 쇼윈도에 새가 날다가 부딛힐일이 그렇게 많을리 없으잖아요. 애초에 범인 신지의 집 창문에 새가 부딛혀 죽은 것부터가 작위적이지요. 이를 리쓰가 맨션의 깨진 창문만 보고 바로 알아챘다는 추리도 비현실적이고요.

또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이야기를 억지로 결합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화 "협상 상대는 요통으로 고생하는 전과자" 

도시타 형제는 연립 재건축을 앞두고, 퇴거를 거부하는 임차인을 설득하는 의뢰를 받았다. 리쓰는 찾아간 임차인 아라키 데쓰조의 집 안에서 '사취'가 나는걸 느꼈고, 여러가지 주변 정보들을 조합하여 그가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는걸 추리해 내는데...

길고양이를 돌본다는걸 훔쳐온 쓰레기 봉투 속 내용물을 통해 추리하는 과정, 그리고 사취는 길고양이가 물어온 쥐의 시체였다는 진상까지의 전개와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퇴거를 불응했던 이유가 유치원에 드는 햇볕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작위적이지만 나쁘지는 않았고요.

전반적으로 잔잔한 일상 드라마 느낌을 가득 전해주는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을 만 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3화 "만화가 지망생과 사라진 유언장" 

도시타는 이모네 카페 단골인 만화가 지망생 레논 씨의 사건 을 수임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형이 레논 씨가 유언장을 숨겼다고 주장해서 법정에서 다툼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레논 씨는 도시타에게도 유언장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형이 어머니가 유언장을 남겼다는 말을 녹음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수록작 중 유일하게 변호사가 활약할만했던 이야기입니다. 핵심은 '유언장은 어디에 숨겼나?' 라서 변호사가 나설만한 부분은 없지만, 레논 씨가 왜 유언장을 숨겼는지에 대해서는 법률적 해석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레논 씨가 어머니 장례식 초야 직후, 카페를 방문한 뒤 책꽂이 위에 있는 책을 떨어 트렸다는 점에 착안하여 카페의 만화책 중 한 권 안에 유언장을 숨겼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만화책에 대해 사소해보였던 레논 씨의 질문이 중요 단서가 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하지만 유언장 내용이 유산을 형이 아니라 레논 씨에게 전부 남긴다는 거라서 유언장을 숨기고 형과 유산을 반으로 나누려 했다는 동기가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바보같아도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그리고 이런 동기였다면 유언장을 숨기는게 아니라 태워버리는 식으로 없애는게 당연합니다. 유언장을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는 전개를 보면 더더욱요. 이는 유언장이 없을 경우 법률적으로 레논 씨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작가가 선택한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4화 "한심한 피고인과 소음 트러블" 

도시타는 마약용 주사기를 수백개 구입하려다 경찰에게 상처를 입힌 에비스 씨의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어떻게든 집행유예를 받으려고 도시타는 노력했지만, 에비스 씨는 거부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리쓰가 급작스럽게 증인 요청을 하여 판결은 연기되었다. 그 사이 도시타는 소꼽친구 사키의 소개로 이웃이 내는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도모코 씨를 만났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조사한 결과, 도시타 형제는 아무런 소음도 들을 수 없었다....

도시타가 국선 변호사로 선임되어 법정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법정에서 날선 공방이 펼쳐지는 법정 미스터리는 아닙니다. 왜 에비스 씨가 징역형을 받고 싶어하는지를 추리해낸 뒤, 진상을 파악하여 그의 갱생을 돕는다는 감동적인 (?) 인간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도모코 씨 이야기도 마찬가지에요. 소음 공해는 단순한 소재였고, 도모코 씨 남편이 정리 해고를 앞두고 회사에서 수모를 당하면서 근무하는 상황의 극복이 핵심이거든요.

드라마 모두 좋은 이야기에요. 문제는 추리적인 부분입니다. 에비스 씨 시간의 경우, 오래전 이혼한 아내가 키우던 아들이 칼에 찔린 뒤, 부모는 수혈이 안 되는 탓에 행인들로부터 피를 뽑으려고 주사기를 구입했다는 동기부터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딱히 추리를 할 부분도 없고요. 도모코 씨가 치과 진료를 받은 이후, 이빨에 채운 충전물이 우연히 방송을 수신하게 되어, 일종의 광석 라디오처럼 동작했다는 진상도 황당하기 그지없더군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극히 드물겁니다. 설령 실제 일어나더라도 입 안에서 소리가 나는걸 모른다는건 말도 안되겠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지막 이야기였는데, 아쉬움이나 여운을 남기기는 커녕 더 읽어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만 굳게 만들어 주네요.

2019/09/22

진실의 10미터 앞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3점

진실의 10미터 앞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프리랜서 기자인 다치아라이 마치가 등장하는 단편들을 수록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집입니다. 

다치아라이 마치는 '고전부'나 '소시민' 등 다른 시리즈 캐릭터에 비하면 지명도가 낮은 편입니다. 등장 작품이 "안녕 요정", "왕과 서커스" 두 편 뿐이며 그나마도 "안녕 요정"에서는 주인공이라고 하기 힘든 탓입니다.

작품 특징이라면 웃음기를 쫙 빼고 서술되고 있으며 살인이나 자살과 같은 강력 사건들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 모두요. 대부분 비극이거나 씁쓸한 뒷 맛을 남긴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이야기에 '기자' 라는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조금씩 다른 해석으로 실려있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이야기 속 다치아라이의 취재는 대다수 독자를 위해 진실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극소수의 독자를 위해 눈에 보이는 진실이 아닌 그 이면을 들춰내어 밝혀내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게된다는 내용이거든요.

이를 화자인 '나'가 다치아라이 마치인 "진실의 10미터 앞"에서 시작해서 '나'가 범인인 "정의로운 사나이", 다른 기자가 화자인 "고이가사네 정사", 3인칭 전지적 관찰자 시점인 "이름을 새기는 죽음", 그리고 취재에 동행한 제 3자가 화자인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와 사건의 주요 관계자가 화자인 "줄타기 성공 사례"와 같이 다양한 시점 변화를 통해 강조하는 솜씨도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묵직한 내용과 현란한 기교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 스스로 고교생 일상계에서 벗어나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싶었던 욕심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네요.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게 추리적으로도 꽤 괜찮습니다. 사소한 단서에서 진실을 끌어내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상당히 설득력이 높은 덕분입니다. 실제로 있음직한, 생활감 넘치는 단서와 전개는 작가의 특기인 일상계 추리물을 연상케 하고요. 전화 통화 내용만 가지고 자신이 찾는 인물의 소재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진실의 10미터 앞", 자살을 각오한 고교생 연인의 노트에 쓰여진 '살려줘'라는 글귀, 그리고 함께 죽지 않은 기묘한 현장에서 다른 사건과의 관련성을 눈치챈다는 "고이가사네 정사", 한 노인의 고독사 이면에 있는 진상을 그린 "이름을 새기는 죽음"이 특히 괜찮았습니다.

조금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없지는 않고, 기자 의식을 무리하게 집어넣은게 아닌가 싶은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일본 전국을 누비지만 기묘할 정도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이 나지 않는것도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약간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수작 단편집이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팬이시라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실의 10미터 앞"

나 다치아라이 마치는 사진기자 후지사와 요시나리와 함께 야나마시로 향했다. 도산한 벤처 기업 퓨처스테어 홍보 담당인 하야사카 마리가 실종되었는데, 그녀의 행방을 찾을만한 단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단서는 그녀가 여동생과 통화한 통화 기록 뿐으로, 다치아라이는 통화 기록을 토대로 야마나시의 명물 호토를 파는 가게 중 한 곳을 특정하여 그녀를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통화 기록 속에 숨겨진 몇 가지 단서를 통해 하야사카 마리의 행적을 밝혀내는 추리가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타이어 문제로 움직일 수 없다'에서 눈이 내린 지역을, '우동 같은 음식'으로 야마나시 명물 '호토'를, 술에 취했다는 말을 통해 호토와 술을 함께 밤 늦게까지 파는 가게를 찾고 '말도 잘하는 멋진 남자'에서 마지막 목격자인 외국인 가게 종업원을 찾아내는 이야기로 모두 이치에 합당하고 설득력이 높습니다. 추리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한 좋은 작품이지요.

하지만 숨은 그림 찾기같은 추리 외의 이야기 자체로는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하야사카 마리는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고, 관련된 기사도 쓰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작품들과 같은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에는 좀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정의로운 사나이"

막 투신 자살 사고가 일어난 지하철 플랫폼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짜증나는 여기자를 발견하는데... 

20여페이지 남짓한 소품인데 플랫폼 끝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투신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 아닐까 생각한 다치아라이의 재치는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민폐를 끼치는 인물에 대한 불쾌감'이라는 동기도 현대 사회에서는 충분히 있음직 하고요.

그러나 그 외의 내용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범인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다치아라이를 관찰한다던가, 다치아라이의 행동을 민폐로 여기고 불쾌해한다던가 하는 설정과 전개 모두요. 기자 의식을 다룬 부분도 짤막하게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중요한 내용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사건을 만나 기쁘다는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결국 밝혀지지도 않고요. 한마디로 가벼운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고이가사네 정사"

미에 현에서 고교생 2 명, 구와오카 다카노부와 가미조 마리의 동반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주간 심층"의 기자 쓰루는 현지 취재를 나서서 코디네이터 다치아라이와 함께 행동하게 되었다. 유언장에 남겨져 있던 '살려줘'라는 글귀와 고교 선생님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다치아라이는 이 사건이 의원 폭탄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고 이 정보를 쓰루와 공유하는데...

가족을 통해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여고생과 그녀를 돕지못해 좌절한 남고생이 함께 자살한다는 정사 사건 속 또다른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죽기를 원했던 둘이었는데, 왜 마리만 칼에 찔려 죽고 다카노부는 물에 빠져 교각에 걸린 사체로 발견되었는지?와 유언장에 남겨진 글귀, 그리고 현장에 남겨져 있던 와인 속 맹독인 '황린'을 통해 진상에 이르는 과정이 합리적이면서도 깔끔합니다. 그나마 믿을만하다 생각했던 '선생'이 사실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 쓰레기로 둘의 죽음을 자신의 범행 은닉에 이용했다는 진상과 결말은 굉장히 씁쓸하면서도 잔혹하고요.

다치아라이가 주변인처럼 그려지며 그녀가 취재하는 의원 폭탄 사건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왜 시모타키 선생이 의원들에게 발화 폭탄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요. 그래도 추리와 이야기 전개 모두 빼어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름을 새기는 죽음"

중학생 히노하라 교스케는 이웃집 노인 다가미 료조가 고독사한걸 최초로 발견했다. 얼마 뒤 프리랜서 기자 다치아라이 마치가 그를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하고, 교스케는 그녀의 취재에 동행하는데...

다가미 료조가 지역 신문에 투고한 글과 다른 사람의 투고글, 그리고 다가미 료조의 집에 남겨져 있던 엽서 필적을 통해 피해자의 아들 다가미 우노스케가 아버지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진상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다가미 료조가 '직함'에 연연하여 '이름을 새기겠다'는 사명감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정이 돋보입니다. 기묘하지만 아주 그럴싸하거든요. 실제로 직함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많은게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이를 노인 고독사와 연결하여 전개한 솜씨도 아주 일품이에요. 

아울러 다가미 우노스케가 쓰레기지만 그의 입을 빌어 다가미 료조 역시 나쁜 사람이라고 다치아라이가 결론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기자로서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멋졌어요. 진실도 좋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와 닿기도 했으니까요. 덕분에 교스케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한 발자욱 더 나아갈 수 있었을테지요.

실제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 속 사건과 독특한 아이디어가 잘 결합한 좋은 작품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 최고 작품으로 꼽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

'나'는 오래전 여동생의 친구였던 다치아라이 마치를 만나기 위해 시골 소도시 하마쿠라를 찾았다. 그리고 다치아라이가 취재하는 유아 살인사건 취재에 동행하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데...

"안녕 요정"의 핵심 인물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유학생 마야의 오빠가 등장합니다.
그는 다치아라이가 취재하는 마쓰야마 가린 살인 사건 취재에 동행하여, 그 과정에서 다치아라이와 같은 기자에 대한 실망감과 환멸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여주는 '눈' 역할이 아니라 사실을 가공하여 미력하나마 피해자를 구해주려고 노력하는 다치아라이의 진면목을 취재 동행을 통해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건보다는 다치아라이가 어떤 기자인지를 알려주는게 목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범인으로 지목된 마쓰야마 가린의 삼촌 마쓰야마 요시카즈의 수기가 일종의 암호라는 암호 트릭물인데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극 중 다치아라이의 말대로 추후 요시카즈가 사실을 고백하고 경찰이 수사에 집중한다면 밝혀낼 수 있는 수준의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다치아라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추리물로는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줄타기 성공 사례"

나가노 현 남부를 덮친 수해 현장에서 일흔이 넘은 도나미 부부가 극적으로 구출된다. 부부는 사흘 동안 콘플레이크를 먹으며 버틸 수 있었다. 현장 근처에서 가업을 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오바에게 다치아라이가 찾아와 도나미 부부에 대해 물어보는데...

한 여름에 콘플레이크를 무엇에 타서 먹었는지? 가 수수께끼로 등장하는데 이게 왜 수수께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콘플레이크는 꼭 우유에 타 먹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식품이잖아요? 게다가 그게 문제가 된다는 상황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노부부가 전기, 가스가 모두 끊긴 집에 고립된 상황에서 매몰된 이웃집에서 가동되는 냉장고를 사용한게 죄가 될까요? 그 집 음식을 전부 가져다 먹어도 괜찮았을텐데 말이지요. 이런 점을 굉장한 민폐로 여기고 미안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오열하는 노부부의 모습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바는 '행방불명된 사람의 집에 들어가 목숨을 연명한 부부는 비난받을거다' 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야기가 성립된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추리적으로도 별다른 내용이 없고요. 이 단편집의 워스트 단편으로 꼽겠습니다.

2024/01/05

검은 황무지 - S.A. 코스비 / 윤미선 : 별점 3점

검은 황무지 - 6점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네버모어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러가드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딸의 대학 등록금 등 급전이 필요해서 로니의 보석상 다이아몬드 강탈에 참여했다. 로니와 콴의 실수로 엉망진창이 된 와중에도 보러가드의 빼어난 운전실력 덕분에 다이아몬드는 훔쳐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뒷세계 거물 레이지의 것이었고, 레이지는 강도단을 붙잡아서 경쟁자 셰이드의 플래티넘 코일을 훔쳐오라고 협박했다. 보러가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코일을 성공적으로 탈취해 왔지만, 로니가 배신해서 코일을 빼돌렸고 보러가드의 사촌 켈빈마저 살해했다.
배신을 알게 된 레이지는 보러가드의 가족을 납치하려고 했고, 이에 보러가드는 로니와 레지 형제를 죽이고 코일을 되찾은 뒤, 가족을 지키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 레이지와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데....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을 통해 읽게 된 작품. 두뇌파 악당이 주인공이며, 그가 세운 계획에 따라 벌어지는 여러가지 범죄들이 이어집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는 피카레스크 하이스트 스릴러, 쉬운 말로는 악당 범죄 활극이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흑인 버젼의 "악당 파커"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피카레스크 물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주인공 보러가드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악당이기는한데,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건 모두 가족 때문이며 마지막에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 사라질 결심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가족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물론 마블 세계관의 킹핀처럼 '내 가족에게는 따뜻하지만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잔인한' 악당도 있지만 '보러가드'는 삶에 찌든 소시민으로 가족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탁월한 묘사는 이런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요. 반면 '버그'로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으로 범죄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괴롭힌 악당들에게 하는 복수는 처절합니다. 이렇게 악당 '버그'와 좋은 아버지 '보러가드'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이상하지 않게 잘 그려낸 솜씨가 탁월했니다.

범죄물로서도 평균 이상입니다. 일단 스릴러로서의 전개가 발군입니다. 보러가드에게 끊임없이 위기가 닥치는데 정말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연재물이었다면 다음 호를 기다리기 힘들었을 것 같을 정도였어요.
'하이스트' 물로서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코일 탈취 사건, 그리고 마지막 레이지와의 결전이라는 세 개의 큰 작전 모두 계획부터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세밀하게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모두 보러가드의 운전 실력이 핵심이라는 독특함도 좋았습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에서 고가도로로 도주한 뒤 뛰어내린다던가, 코일을 탈취할 때 코일이 실렸던 트럭을 더 큰 트럭 안으로 몰아 넣어 숨기는 식이거든요. 마지막에는 레이지를 끝장내기 위해 애차 더스터를 몰고 카 체이스를 벌이고요.
보러가드의 정비 기술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때에는 이산화질소식 촉매 시스템을 엔진에 장착해서 빠른 속도를 냈으며, 강철판을 용접하여 추락 시 충격을 흡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코일 탈취 때에는 달리면서 밴이 트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트럭 꽁무니에서 경사로가 나오도록 개조했고요. 레이지에게 준 벤에는 원격 조종 폭탄을 설치하여 폭발시켰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범행 과정에서 반전처럼 등장해서 재미를 더해주며, 설명도 충분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차는 차종에 대해 무조건 언급해줄 정도인데, 작가가 자동차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유물로 또 다른 주인공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더스터'는 무슨 차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보았는데, "Plymouth Duster"로 1970년대 생산된 자동차더군요. 전형적인 '아메리칸 머슬' 입니다. 보러가드, 아니 버그와 참 잘 어울리네요. 가족에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못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지만, 복수를 끝낸 뒤 폐차시킨다는 결말까지도 뭔가 미국적이고 마초적이었고요.

하지만 걸작 하이스트 소설로 보기에는 작전은 평이한 편입니다. 신기에 가까운 운전 실력이 알파이자 오메가로 그렇게 치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대단한 세력을 지닌 듯한 악당 레이지의 조직이 보러가드 한 명에 의해 괴멸되는 결말도 별로였습니다. 여기에서야 말로 수와 화력의 열세를 뒤집을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는데, 단지 '폭탄'으로 모든걸 해결한다는건 지나치게 시시했거든요. 악당 조직이 이 때 한 곳에 모두 모인다는 설정도 억지스럽고요. 최소한 보스 레이지가 직접 나서서 트럭을 찾으러 갈 이유는 없잖아요?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 스타일의 결말이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범죄 소설로서의 재미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덧붙이자면, 보러가드가 흑인이지만 인종 차별에 관련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떤 가치관, 사상은 전혀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오락물이거든요.

2009/04/06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 - 선대인 외 : 별점 2점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 - 4점
선대인 외 지음/한국경제신문

아버지가 보내주셔서 읽게된 일종의 "재테크" 책입니다. 짤막하게 내용을 요약하자면, 현재도 엄청난 공급과잉일 뿐 아니라 저출산 및 상대적으로 약화된 경제력을 가진 20-30대가 부동산 시장을 떠받칠 수 없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은 폭락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다양한 데이터와 사례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설명도 쉽고 자세해서 이런류의 재테크 - 경제 관련 책 치고는 상당히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 내용은 부동산이 대폭락하기를 바라는 저같은 30대가 생각할만한 내용으로 가득해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발달한 인터넷 재테크 사이트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나마 4장의 "전문가가 추천하는 금융상품 고급 정보"가 꽤 정보로서 가치가 있었습니다만 흔하고 쉬운 정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어차피 저같은 참새 소시민이 전세금 빼고 효과적인 재테크 한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고요. 저만해도 자산의 80% 이상이 전세금이니 뭐....

그래서 쉽게 읽긴 했지만 제값주고 사서 봤더라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현실적으로는 당분간 부동산 거품이 꽤 갈 것 같아요. 김정일이 미친척하고 강남에 미사일이나 하나 쏘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2020/09/23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9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9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스핀 오프로 시작한 C.M.B도 이제 40권 째를 향해 달려가네요. 네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편은 성장기, 한 편은 일상계이고, 나머지 두 편은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본격물입니다. 이 중 첫 번째 작품인 "상상 살인"은 아주 좋은데 다른 작품들은 그냥저냥입니다. 마우 주연의 이야기는 심지어 수준 이하이고요. 그래도 "상상 살인"의 하드 캐리 덕분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상상 살인"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이상과 다른 현실 때문에 괴로와 하던 디자인 회사 영업직 구보타 토미오는 출근길에 우연히 고등학생 시절 사귀었던 미와와 마주쳤는데 그녀와 왜 헤어졌는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토미오는 그녀와 헤어졌던 과거를 고치면, 미래의 나도 바뀔거라고 생각하는데....

사고로 위장한 살인이 등장하는 본격물입니다. 미와의 남편 아키요시는 몸을 내밀었던 베란다 발코니가 떨어져서 추락사하는데, 이게 사실은 계획된 조작에 의한 살인이었지요.

범행은 베란다 안전핀을 뽑는 간단한 조작이 전부이며, 아키요시가 베란다 쪽으로 몸을 내밀게 한 트릭 (물뿌리개 안에 중고 휴대폰을 넣어서 울리게 함)도 간단하다는 점에서 무척 현실적입니다. 이 휴대폰이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신라가 사건에 엮이게 되는 이유도, 피해자 아키요시가 떨어진게 신라가 눈독들이던 개구리 조각이기 때문이라는 우연도 재미있었습니다. 토미오가 확실하게 죽게 만들려고 조각을 베란다 밑으로 옮겨 놓아서 조각이 깨지고, 분노한 신라가 무보수(?)로 사건 해결에 나서거든요. 

무엇보다도 토미오가 2층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사람이 죽을리 없다며, 누군가 떨어진 아키요시를 죽였을거라고 주장하는 마지막이 기가 막힙니다. 이는 진범은 미와임을 암시하지요. 지극히 합리적이면서도 무서운 추론이라 소름끼칠 정도였어요.

그러나 회사를 그만 둘 정도의 결단력도 없는 토미오가 살인을 결심해 실행에 옮긴다는 전개는 조금 석연치 않았습니다. 상상한건 모두 이루어진다는 긍정맨 토미오 캐릭터와 범인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도 단점이고요. 미묘한 미친놈인데, 캐릭터 구축이 어설픈 탓입니다. 그냥 미와에게 마음의 빚이 있는 정도로, 그녀에게 도움을 주려다 폭주하는 소시민 정도면 적당했을텐데 말이지요.
덧붙이자면, 토미오의 범행을 밝히기도 어려울거라 생각되네요. 그가 베란다에 조작을 가하는게 목격되지 않았다면, 단지 물뿌리개 속 대포폰으로 살인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는 불가능해 보이거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추리물로는 나무랄데 없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팔레오파라독시아" 

고등학교 1학년 미쿠와 하야토는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여동생과 함께 외딴 산 속 숙부 집에서 황금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마침 숙부는 산 속에서 '팔레오파라독시아'의 화석을 발굴 중이었다.

신라는 학교 공부에 의미가 없다며 징징대는 하야토에게 '모두가 언제나 의미있는 답을 낼 수 없다, 하지만 답을 내기 전에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일갈합니다. 그리고 숙부가 화석을 발굴하는 상황을 이에 대입하지요. 답보다도 문제의 쪽을 오히려 모르고 있다는 뜻으로 말이죠. 일종의 성장기로서 나쁘지 않고, 항상 어린아이같은 신라가 명확한 인생관을 들려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하야토가 고생물학자로 선생님이 되었다는 결말 역시 그럭저럭 괜찮아요.

그러나 추리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위기에 처한 하야토가 '문제를 이해하여' 적합한 답을 내여 생존한다는 클라이막스는 작위적이었고요. CMB 특유의 현학적 재미 역시 '팔레오파라독시아'라는 동물에 대해 박물학 지식을 살짝 인용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미그라스의 모험" 

마우는 부호 브렌드가 밀실에서 책꽂이에 깔려 죽었을 때 쥐고 있던 책을 입수했다. 그 책은 90년대 발표된 판타지 소설 "미그라스의 모험"으로, 대신 미그라스가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이웃 제국과 맞서 싸우다가 패한 뒤,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별 볼일 없는 내용에 절망한 마우는 책을 방치하다가 도둑맞고, 브랜드 죽음의 진상을 조사하다가 그가 교통사고 합의 관련 분쟁에 휘말렸던걸 알게 되는데...

신라의 등장없이 마우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작품입니다. 브렌드가 죽은 밀실을 만든 트릭은 문 옆에 놓인 갑옷 기사를 이용한 장치 트릭인데 꽤 그럴싸합니다. 갑옷 기사가 들고 있는 칼을 돌리는 방식의 자물쇠 위에 잘 얹어 놓는 거에요. 그러면 칼 무게로 자물쇠는 돌아가고, 칼은 떨어져 제자리에 오게 되지요. 균형을 잘 맞춰야 겠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해 보이는 트릭이라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범인이 조카 시로노와였다는건 억지스럽습니다. 동기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탓입니다. 시로노와가 일으켰던 교통 사고를 브랜드가 합의해 주었었는데, 시로노와는 합의를 기사도에 반하는 행위라 생각해서 살해했다는게 동기죠. 그러나 기사도와 시로노와의 관계가 설명되고 있지 않아서 완전 뜬금 없었어요. 차라리 유산이 동기라면 모를까, 21세기에 기사도라니?
또 이를 극중 극 형태로 소개되는 미그라스의 모험과 연결시킨 전개도 그다지 와 닿지 않습니다. 미그라스가 가난한 마을에서 침략해온 제국군과 싸운다는 이야기인데, 전쟁을 하지 말라는게 왕의 명령이었습니다. 이렇게 싸워보지도 않고 협상을 한건 기사도 정신에 위배된다는거지요.
그러나 이 책 속에서 미그라스가 일으킨 전쟁으로 온갖 비극이 일어납니다. 마우의 말 대로 미그라스야말로 전쟁의 원흉이자 비극의 씨앗인 셈입니다. 도대체 이야기 어디에 기사도라는게 있는걸까요?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로노와를 협박해서 돈을 쥐어짠 뒤, 경찰에 넘기겠다는 마우의 사악함도 나쁘진 않지만, 설득력이 낮습니다. 아무리 피해자와 책의 관계를 밝힐 수 없었어도, 시체에 '기사도'를 의미한 책을 남겨놓은게 범인이라는게 증명되는건 아니니까요. 피해자가 어딘가에서 빌려왔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고작해야 시로노와가 마우에게서 책을 훔쳤다는 정도만 증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밀실 트릭은 괜찮았지만 그 외에는 전부 그닥이며, 특히나 판타지 소설을 우겨넣은건 아무리봐도 무리수였습니다.

그나저나, 작가가 왜 이렇게 마우에게 미련을 갖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지극히 만화적이며 딱히 매력도 없는데 말이지요. 제발 그만 좀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빈 터의 유령"

야스다 시노는 인터넷을 쓸 수 없는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다가, 사람이 지나갈 수 없던 곳에 갑자기 나타나 서 있던 사람을 목격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네코와리와 하츠키 등 친구들은 모두 현장을 방문했다가 그 '유령'을 목격하고 도망치는데...

오래전 추억 속 라면 가게를 다시 열기 위해 그 곳을 방문한 아저씨가 유령의 정체였으며, 우체통 때문에 사각이 생겨서 아저씨가 지나가는 걸 못 봤다는게 진상인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충분히 그럴싸한, 설득력 넘치는 아이디어로 동네 유령 이야기 진상으로는 아주 잘 어울렸어요. 추억 속 라면 가게, 편지 쓰기 등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도 풍성하고, 편지를 쓰기 싫어하는 시노가 이 사건에 대해 사진 중심으로 편지처럼 꾸며서 보낸다는 마지막 장면, 그리고 아저씨의 라면 맛이 별로였다는 에필로그까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트릭이 대단한건 아니고, 순전히 우연에 불과한 사건이라는건 분명합니다. 또 시노 혼자라면 모를까, 함께 갔던 친구들 모두 동일한 '사각'으로 아저씨를 보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낮아요. 그래서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신라가 경이의 방으로 안내하는데 요금을 받지 않는데, 친구들의 부탁이기 때문인지 불분명합니다. 캐릭터가 바뀐걸까요? 이런 설정마저 없어져 버린다면 정말로 Q.E.D와의 구분이 애매해지는데 말이죠.

2010/11/25

뉴욕을 털어라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 이원열 : 별점 3점

뉴욕을 털어라 - 6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이원열 옮김/시작

도트문더는 출소 직후 옛 친구이자 친적인 켈프로부터 '큰 건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신성시하는 에메랄드를 훔쳐내는 것. 도트문더는 이를 위해 운전수, 장비 담당, 자물쇠 담당을 추가하여 5인 팀을 구성하여 에메랄드를 훔쳐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순간의 실수로 장비 담당인 그린버그가 보석과 함께 체포되고 말았다. 이후 에메랄드를 되찾기 위해 교도소, 경찰서, 정신병원, 은행 지하금고를 차례로 털게 되는데...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대표작 중 한 편으로, 국내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하기 어려웠던 만큼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 작품의 테마는 '보석 절도'로, '케이퍼 소설'이라는 장르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드가상 수상 작품집 4"에 수록된 작가의 단편 "도둑들"과 주제와 분위기 모두가 비슷한데, 계속해서 꼬여만 가는 사건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주인공들의 모험, 마지막에 악당에게 한방 먹이는 반전에 이르는 과정이 유쾌하고 통쾌해서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습니다. 또한, 계획이 계속 변경되며 업그레이드되는 덕분에 여러 편의 소설을 한 번에 읽는 듯한 풍성함도 느낄 수 있었고요. 비슷한 설정의 일본 작품 "황금을 안고 튀어라"가 시종일관 무겁고 진지한 전개였던 반면, 이 작품은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양국 작가들의 특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같아 흥미로웠습니다.

주인공이자 절도 팀을 이끄는 리더 도트문더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치밀한 계획, 과감한 실행력과 더불어, 세탁기에서 잔돈을 훔치고 슈퍼마켓에서 음식물을 훔치는 등 소시민적인 면모까지 갖춘 독특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획이 꼬이는 과정과 이후 진행되는 과정에서 운과 우연의 개입이 많고, 작위적인 설정이 잦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완벽한 범죄 계획'이라는 테마에 비하면 밀도가 많이 낮아 보였어요.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고 그린버그가 체포되는 원인이 '유리 케이스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정부터 어설펐고, 변호사 프로스커가 보석을 빼돌린 과정이나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이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은 것도 아쉬웠습니다. 

그 외에도, 헬기를 동원한 경찰서 습격이라는 대형 사건을 일으켰지만 별 탈 없이 작전을 완료한다는 지나치게 유쾌한 설정과 '최면술'을 이용하는 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앞부분의 치밀했던 계획과 비교하면 다소 허술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에요.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빠른 템포로 유쾌하게 읽히는, 스트레스 해소용 화끈한 범죄 모험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케이퍼 무비'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책 옆날개에서 소개된 영화가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예고편도 바로 확인할 수 있더군요. 확실히 영화화하기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9/04/14

율리스나르당 '체어맨'

 저는 기계식 시계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다 비슷하겠죠? 정교하면서도 태엽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 어떻게 보면 "장난감"이라고도 할 수 있어서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적인 느낌도 굉장히 끌리는 부분이고요.


이러한 꿈을 가진 저같은 사람을 위한 재미난 스마트폰이 등장했기에 몇자 적어봅니다. (기사원문보기)


이 제품은 1846년부터 오랫동안 시계를 만들어오던 스위스의 유명 명품 시계 메이커 율리스나르당의 기계식 하이브리드 스마트폰 "체어맨"으로, 기계식 시계의 명가답게 태엽을 감아 사용 에너지의 일부를 얻을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을 구현한 럭셔리 스마트폰입니다.

- 7.1cm(2.8인치) 멀티터치스크린
- 보안을 위한 지문 인식 기능
- 500만화소 카메라
- Wi-Fi 지원
- 키네틱 로터 시스템
- 로즈 골드, 로즈 골드&블루, 로즈 골드&스틸, 스텔스 블랙, 스틸&블루 등 다섯 색상


의 스펙이죠. 스펙으로 끌리는 부분은 없고 디자인도 앞모습이야 그냥 그렇지만... 시스루백 스타일의 뒷태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뒷태만 보면 정말이지 사고싶은 욕구가 화~악 일어나는군요. 무브먼트의 움직임이 보일 것 같은 멋진 뒷모습이에요. 태엽감는 용두도 제대로고 말이죠. 태엽을 감아서 와이파이를 쓸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디지로그! 자전거 바퀴를 돌려 후레쉬를 켜던 바로 그 감성! 멋져! 하지만 저 비싸 보이는 핸드폰을 들고 태엽 감아서 와이파이를 쓰는 모습이 좀 웃겨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어쨌건 정말이지 기계식 시계 매니아에게는 땡길 수 밖에 없는 물건이죠? 하지만 워낙 명품 메이커이고 한정판이라니 가격은 몇천만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기에 저같은 소시민은 언강생심, 군침만 삼킬 뿐입니다. 걍 한번 만져라도 보고 싶네요. 쩝. 그나저나.. 국내에 들어오기나 할지....

* 참고로, 현재의 갖고 싶은 시계 No.1은 이겁니다.


NOMOS 601 Tangomat + SapphireCrystalBack

기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심플한 독일식 디자인이 매력적입니다. 현재 300만원이네요. 흐...^^
그나마 이 정도는 꿈을 가지고 노력해 볼만 할 듯.

2008/07/17

가타부츠 - 사와무라 린 / 김소영 : 별점 3점

가타부츠 - 6점
사와무라 린 지음, 김소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이 작품은 총 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제목의 사전적 의미로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네요. 작가의 의도는 소박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싶어서 쓴 것이라고 하는데, 제목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소박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지만 뭔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성격의 소유자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들의 고지식함에 관련된 내용은 비록 소설이지만 일반 소시민이 가질 법한 집착이나 생각들이라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고요. 소박한 이야기답게 이야기의 스케일도 작아서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추리 단편집인줄 알고 구입했는데 추리하고는 거리가 좀 있지만, 구입을 후회되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신선한 이야기들이었다 생각되네요. 별 3개는 충분한 책입니다.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작품별로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첫번째 단편인 “맥이 꾼 꿈”은 유부남 유부녀가 우연찮게 만나 사랑에 빠져 불륜관계가 되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살을 결심하는 이야기입니다.
불륜 관계의 남녀가 남겨지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자살을 결심한다는 전개와 그들의 심리묘사가 소박하면서도 드라마틱 합니다. 각자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도 흥미진진했고요. 그러나 진부한 멜로드라마적인 설정과 마지막의 급작스러운 해피엔딩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제일 첫 작품이 제일 처지는 작품이라는 것이 좀 의아했네요.

두번째 단편 “주머니 속의 캥거루”는 쌍둥이 여동생 아코의 뒷치닥거리 때문에 일상이 꼬이는 주인공 다카모리의 이야기입니다. 최후의 순간에 여자친구와 아코 둘 중 한명을 선택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요. 제목이 의미하는 난폭한 캥거루를 제압하기 위해 캥거루에 주머니를 씌우듯, 아코를 돌봐주려 하지만 외려 그녀가 족쇄가 되어 자유의지를 잃는 과정이 담담하고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소박하지만 희한한 집착. 이 단편집의 명제를 잘 드러내 줍니다.

세번째 작품 “역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역 개찰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인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이상적인 기다리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 한 여자, 그리고 그녀가 기다린 남자였지만 그녀를 외면해 버린 남자에게 급작스런 살의를 품게 된다는 전개인데요. 독특한 취미가 인상적이고 이 취미를 통해 한 평범한 남자가 살의를 품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표현된 작품입니다. 평범함 속에 비일상적인 설정을 끌어들이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인 작품이기도 하고요. 가장 비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가장 끔찍한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마저도 소박하게 전개하는 솜씨가 참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네번째 작품 “유사시”는 아들에게 갑자기 닥쳐올 사고에 대한 강박증에 빠진 한 주부의 이야기입니다. 강박신경증에 대한 묘사도 세밀하지만 그러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반전이 인상적인 소품입니다. 정말로 소박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인데 디테일한 심리묘사로 반전까지 이르는 과정이 마음에 들더군요.

다섯번째 작품인 “매리지 블루 마린 그레이”는 사고로 인해 3년전 이틀의 기억이 없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의 고향을 찾는데 그 고향 바닷가의 풍경이 기억 나지만 왜 기억이 나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 수 없고, 3년 전 그 기억이 없는 날 그 장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30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딱 3일의 기억상실. 정말 소박하다 못해 눈물날 정도인 설정입니다. 3일의 기억 상실로도 사람이 극단적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라는 것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반전도 마음에 들었고요.

여섯번째 작품인 “무언의 전화 저편”은 한 연립주택 앞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당시 피해자 옆집에 살던 다루미 간토라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비명소리와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을 무시하고 나와보지도 않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현대 사회의 매정한 세태를 그리는 듯 하지만 우리 옆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와닿는 점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중간중간의 복선을 통해 마무리되는 결말도 깔끔하고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2023/06/23

까마귀의 엄지 - 미치오 슈스케 / 유은정 : 별점 2.5점

까마귀의 엄지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케자와는 실수로 직장 동료 빚을 떠앉은 뒤 사채를 끌어쓰다가 몰락하고 사채업자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채무자의 남은 돈을 쥐어짜는 일이었다. 그러다 한 편모 가정의 어머니가 자살한 뒤 다카자와는 충격을 받고 조직의 비밀 서류를 빼돌려 경찰에 신고했다. 조직은 괴멸되고 두목 히구치는 체포되었지만, 다케자와는 보복을 당해 열두살 딸 사요를 잃고 말았다.
7년이 흘러 다케자와는 똑같이 사채로 아내를 잃은 데쓰와 팀을 이루어 자잘한 사기를 저지르며 먹고 살았다. 다케자와 때문에 자살한 여자의 딸들 - 마히로, 야히로 - 과 그 남자친구 -간타로 - 와 우연찮게 동거하던 중, 다케자와를 노리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히구치의 복수임을 직감한 다케자와는 도망치려 했지만, 데쓰와 마히로, 야히로, 간타로의 조언과 도움으로 반격을 결심했다.
도청 장치를 설치한 선불폰을 이용하여 사채 조직의 계좌 정보를 빼낸 뒤, 도청 탐지 업체를 위장하여 조직에 잠입하여 금고 속 현금을 털 계획을 세웠고, 5명 모두가 역할을 맡고 실행에 나서는데....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여태까지 모두 일곱 권 읽어보았습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좋았지만, 그 외는 대체로 그냥저냥이었어요. 서술 트릭과 무리한 설정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던 탓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이런저런 랭킹에서 추천했고, 아베 히로시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된 적이 있는 대표작이기에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크게 심각한 사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전반부, 유쾌한 범죄를 그리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에서 묘사되는 다케자와와 데쓰의 과거는 사채가 원흉이 된 가족의 파멸이라는 점에서 <<화차>>를 떠오르게 만드는데, 중반 이후 분위기는 돌변합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개성을 뽐내며, 비교적 유쾌하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외눈박이 원숭이>>와 비슷하게요. 또 다케자와 일당이 히구치 조직의 돈을 빼돌리려고 한탕 작전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은 <<스팅>>이나 <<뉴욕을 털어라>>와 같은 케이퍼 소설 -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범죄를 유쾌하고 가볍게 다룬 소설 - 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고요.

그런데 전반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다케자와가 빚을 진 이유는 본인 실수입니다. 무고한 소시민이 사채의 늪에 빠져든게 아니라요. 일종의 사기를 당한거긴 하지만, 누구 탓을 할 건 못됩니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죠.
게다가 딸마저 잃고 좌절한 다케자와가 '사기'로 먹고 살게 되었다는건 최악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등쳐먹는 사기꾼이야말로 사채업자보다 더 나쁜, 최악의 인물 아닌가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들, 현재의 사기 행위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잘한 범죄를 통해 기획력, 행동력을 선보이며 마지막 큰 '한탕'을 계획할만한 인물이라는걸 설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던 설정이라 생각되는데, 감정이입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사기꾼 주인공이 나올 수는 있어요. 다만 그럴거라면, <<스팅>> 처럼 대놓고 범죄물로 그리는게 나았을겁니다. 괜히 사채업자의 피해자라는 설정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야기와 별 관계도 없고요.
자잘한 사기 행각 - 은행에서 출금한 손님의 현금을 빼돌리는 사기, 데쓰와 다케자와가 처음 만날 때 데쓰가 저질렀던 자물쇠 교체 사기, 전당포를 이용한 사기 등 - 도 재미는 있었지만 치밀하고 잘 짜여진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외눈박이 원숭이>>가 떠오르는 다소 과장된 인물 설정도 감정이입을 방해합니다. 다케자와와 데쓰 외에는 비현실적인 인물들인 탓입니다. 화룡정점은 마술사 간타로입니다. 말투와 행동 묘사 모두가 도저히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같지 않았어요.

그래도 후반부 한탕 작전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그럴싸한 단계를 거치면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분이지요. 흥미진진하기도 하고요.
  1. 일당은 싼 가격으로 유혹하여 히구치의 사채 조직이 도청 장치를 심어놓은 선불폰을 구입하게 만들었다.
  2. 도청으로 사채 조직의 계좌 번호를 빼 낸 뒤, 이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어 계좌 속 현금을 사무실에 보관하게 만든다.
  3. 도청 감지 업체를 위장하여 사무실에 잠입한 뒤, 금고 속에 도청 장치가 있다고 속여 금고를 열게 만든다.
  4. 장난감 총을 진짜처럼 보이도록 속여 돈을 강탈한다.
  5. 달아나던 마히로가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것 처럼 위장하고 돈을 빼돌린다. (돈이 들었던 봉투를 바꿔치기 함)
알고보니 작전은 히구치가 이미 알고 있었으며 히구치가 모든걸 용서하고 끝낸다는 마무리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들 과거를 잊고 각자의 인생을 사는 완벽한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일당이 저지른 행위는 엄연히 범죄이니만큼 이 정도로 마무리되는게 현실적이었겠지요.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가짜 총까지 동원해서 돈을 훔치려고 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일당 중에 마술사가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봉투를 바꿔치기하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계획대로 히구치 조직이 연극에 속아넘어갔다 하더라도, 금고에 돈을 돌려 놓을 때 봉투가 바뀐걸 알아챘을테니까요. 저 연극이 그렇게 시간을 많이 벌어주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불법 추심 사채업체라 하더라도, 돈을 훔쳐 달아나던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고 그냥 돈만 회수하고 물러난다는 것도 애매했습니다. 돈을 어떻게 모았건 간에, 모은 돈을 도둑맞았으니 엄연히 피해자입니다. 구태여 몸을 사릴 필요는 없어요.

다행히 마지막 반전이 이 단점들을 한 방에 해결해 줍니다. 다케자와 일당이 모든걸 걸었던 한탕 작전은 데쓰가 꾸민 연극이었다는 반전입니다.
데쓰는 마히로, 야히로 자매의 아버지로 자기가 집을 떠난 뒤 아내가 자살한 것에 대한 복수, 다케자와에 대한 연민 등이 겹쳐 남은 사람들이 모든걸 털고 새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이런 일을 벌였던 겁니다. 그는 굉장한 경력과 실력의 사기꾼으로 연극에 사용한 거액의 돈은 진짜 히구치에게 사기쳐서 확보했고요. 그래서 다소 어설퍼보였던 작전, 그리고 이상할정도로 낭만적이었던 결과 - 히구치가 모든걸 용서하고 놓아주는 - 가 설명됩니다. 다케자와가 '사기꾼'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전반부도, 사기는 나쁘다는걸 확실하게 알려주며 마무리되어서 납득할 수 있게 만들고요.
데쓰가 모든걸 꾸몄다는걸 교묘하게 이야기 속에 숨겨서 진행한 것 역시 감탄스러웠습니다. 초반, 데쓰가 애너그램에 능하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다케자와가 데쓰의 사기를 눈치챌 때부터 모든 부분에 관련된 단서를 교묘하게 삽입하고 있으며, 이를 마지막에 드러내는 솜씨는 절묘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그냥 케이퍼 범죄물로 끌고가는게 훨씬 좋았을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한 번 읽어볼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영화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