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4/11/28

그래서 누구라는건지?

"kt, 이대형·용덕한 낙점… 특별지명 9명 발표"

오피셜 기사에서는 오현택 선수가 아니라 정대현 선수로 발표되었네요.

정대현 선수는 개인적으로 유희관 선수의 약간 다운그레이드 버전 정도로 보이며, 딱히 터질 만한 포텐셜이 있는 선수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두산 입장에서는 싸게 잘 막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KT는 어떤 점을 보고 이 선수를 지명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래도 정대현 선수라면, 선수 본인에게는 다소 미안하지만 팀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정대현 선수의 무운을 빕니다.

그리고 이대형 선수는 정말로 지명되었군요. 이건 참... 충격적입니다.

정말인가? 두산베어스 20인 외 지명

"두산 베어스 20인 예상"

오피셜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련 기사가 떴습니다.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LG - 배병옥 / 삼성 - 정현 / 롯데 - 용덕한 / 두산 - 오현택 / SK - 김상현 / 한화 - 윤근영 / NC - 이성민 / 기아 - 이대형

제 분석에서도 오현택 선수는 20인 보호 명단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었는데, 아무래도 정재훈 선수를 보호한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변진수, 오현택, 김재환 선수 중 한 명이 지명될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베어스 팬들의 예측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KT 입장에서는 김성배 선수급으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수라 생각합니다. 마무리 투수로 중용될 가능성도 있고요. 앞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두산 역시 이번 사태를 계기로 10억 원을 잘 활용해 전력 보강에 충실해야겠지요.

그나저나 이대형 선수의 이적은 정말 충격과 공포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기아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2014/11/26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 별점 3점

노년의 알츠하이머 환자인 전직 연쇄살인마가 화자로 등장하여, 딸과 결혼하겠다는 신세대 연쇄살인범과 대립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최근 가장 잘 팔리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으로 알고 있는데,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습니다. 어디선가 관련 리뷰를 본 뒤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네요.

중반부까지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도 설정의 흡입력이 강한 덕분입니다. 기억이 토막나고 과거와 현재, 현실과 광기가 뒤섞이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전개도 인상적이었고요. 굳이 비교하자면, 단기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는다는 영화 "메멘토"를 소설로 풀어 쓴 느낌입니다.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책장이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킬러가 주장해 온 모든 기억, 다시 말해 소설 대부분의 전개가 사실은 허구였고 그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광기였다는 식의 결말은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는 아쉬웠던 점입니다. 진상에 대한 복선이 조금만 더 정교하게 배치되었더라면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작가의 의도도 그러하지 않았을 테니 이런 점을 지적하는 것 자체가 과한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킬러와 신세대 킬러의 대결이라는 설정 자체가 매력 넘쳤던 만큼, 이 이야기를 본격 추리-스릴러로 풀어냈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알츠하이머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인이 원거리 공격에 능하다거나, 몇 가지 장치들이 추가되었다면 균형이 맞는 구도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죠.

하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스릴러물 관점에서 접근했기에 최고점을 주기는 어려웠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젊은 한국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고, 전개와 묘사에서도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았으니까요.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11/25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6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첫 번째 이야기는 "곤돌라"입니다. 잘나가는 요리연구가가 금전을 요구하며 협박한 처남을 살해하는 사건으로, 범인의 시점에서 범행 과정이 먼저 그려지는 도서 추리물입니다. 

사고사로 위장하는 전개에서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이 사용되는데, 추리적으로는 큰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피해자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느낌이 없어서 감정 이입이 어려웠고, 피해자가 죽지 않은 경우에 대한 대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전체 트릭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곤돌라를 바꿔치기하는 트릭은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경찰들이 이 정도도 밝혀내지 못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스키를 신고 있었다는 증언을 뒤집는 장면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냥 우겨도 뒤집을 수 있는 확증이 없는 상황이니까요.
아울러 Lionheart님 리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타츠키가 보험 조사원으로 수사에 나서는 설정도 이상했어요. 범인이 어린 소녀 조사원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준다는걸 납득하기도 어려웠고요.

그래도 타츠키가 범인의 증언 속 맹점을 짚어내는 장면, 그리고 정전 상황에서 피해자가 보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꽤 괜찮았습니다. 마지막에 피해자가 반지를 삼켰다는 사실도 인상 깊었는데, 이는 결정적인 증거이자 피해자의 마지막 의지이기도 해서 강하게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다만 C.M.B의 특징인 박물학적 정보도 없고, 신라가 "경이의 방"으로 안내한 대가조차 없어서 "Q.E.D"에 더 어울렸을 에피소드입니다. 스핀오프 시리즈가 존재할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두 번째 이야기는 "라이온 랜드"입니다. 케냐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은 마사이 전사 사건과 핵심 증인인 소년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기억을 지워 슬픔을 잊게 만드는 초원의 전통 의사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연구진들의 조사 방식과 사자 생태계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이 C.M.B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렸고, 슬픔을 지우는 약이 있다는 설정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비슷한 설정은 많지만 아프리카라는 특이한 무대 덕분에 신선하게 느껴졌고, 악어의 습격에서 벗어나는 장면 등 신라의 의외의 활약도 인상 깊었습니다.

추리적인 측면에서도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사자의 반복된 습격을 단서로 진범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논리적이며, 소년 하가가 살아남고 전사 오딘가가 창을 이상하게 들고 있었던 이유, 하가가 밀렵을 도운 동기들도 모두 제대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굳이 1, 2부로 나눌 만큼 긴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1부 정도로 마무리했더라면 더 응집력 있는 이야기였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징조"입니다. 신라가 우연히 구입한 목걸이를 계기로 펼쳐지는 문화대혁명 관련 이야기입니다. 추리 요소는 거의 없지만, 실제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 문화대혁명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학습만화적 구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모까지 폭행했던 집단 광기와, 당시 중국의 정치·사회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아주 뛰어났어요. 

그러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새옹지마 이야기는 흐름상 다소 뜬금없었고, 결말도 다소 뻔하게 느껴지는건 조금 아쉽네요. 목걸이에 상징성이라도 더했더라면 더 좋은 마무리가 되었을 것 같고요. 그래도 하지만 박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C.M.B다운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첫 번째 편을 제외하면 C.M.B의 특성인 박물학적인 정보 전달도 잘 되는 편이고요. 이 정도면 다음 권도 기대해볼 만합니다. 다만, 추리적으로는 다소 아쉽긴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전 리뷰에서도 지적했지만 타츠키의 공기화는 이제 심각한 수준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트릭 증명에 한몫했고,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협박자를 물리치는 활약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히로인이라기보다 보디가드 역할일 뿐입니다. 캐릭터 재정립이 정말로 필요해 보입니다.

2014/11/24

큐이디 Q.E.D 48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큐이디 Q.E.D 48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큐이디 4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50권을 향해 달려가는 전통의 시리즈입니다. 이전처럼 47권을 건너뛰었는데, 왜 이렇게 발간 속도가 빠른지는 모르겠네요. 여하튼, 이번 권에는 아래와 같은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리인"으로, 얼굴을 알 수 없는 복면 작가의 유일한 편집 대리인이 살해당한 뒤 가나의 사촌이 견습임에도 불구하고 대리인 대행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룹니다. 살인사건이 등장하므로 일상계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야기는 무난하고 잔잔하게 전개됩니다. 중심 내용이 복면 작가의 원고를 받아오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얼굴을 모르는 작가라 하더라도, 21세기에 누군가를 죽이고 그 사람인 척 살아간다는 핵심 트릭과 전개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극단적인 개인화가 진행된 탓에, 이웃과 소통이 없어서 몰래 들어와 사는 것 정도는 가능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공인인증서나 카드 비밀번호를 모르면 경제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니 장기간 생활은 힘듭니다.
추리적으로도 자살 사건의 모순—왜 높은 나무 가지에 올라갔는가—는 나름 그럴듯하지만, 너무 명백해서 경찰이 이를 놓쳤다는 설정은 문제입니다. 시체를 숨기는 장소에 대한 트릭도 실제 가능했을지 의문이며, 결국 발견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고요. 트릭이나 동기를 몰라도 범인을 쉽게 유추할 수 있고, 경찰 수사로도 충분히 밝혀낼 수 있다는 점—지문 감식 등을 포함하여—도 큰 단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과 전개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도착의 론도"처럼 설정을 한 번 비트는 시도가 있었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살인사건 없이 원고의 행방을 추적하는 일상계로 꾸미는 편이 더 깔끔했을 것 같네요.

두 번째 이야기는 "파이하의 화집"으로, 모로코 왕국의 똑똑하고 당찬 소녀 파이하가 우연히 밀입국 선에서 발생한 마약 밀수 사건에 연루되지만, 이를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알렌과 에리 커플이 등장한건 좋았는데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사건의 진상이 너무 단순했던 탓입니다. 그리고 설정이 전혀 현실적이지 못했습니다. 선장을 죽인 뒤 일부러 총격을 유도했더라도, 배가 나포되면 부검을 통해 선장의 사망 원인이 드러날테고 마약도 결국 회수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이런 사건에 구태여 토마를 끌어들인 알렌의 행동도 이해하기 어렵고요.

블로그 이웃 Lionheart님 리뷰처럼 유럽 전역을 종횡무진하는, 항상 열정적이며 자신을 믿는 파이하의 매력과 행동력은 감탄스럽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건질 것이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권의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에 못 미쳤을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평균 이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연속으로 강력사건이 벌어지는 구성도 별로였고요. 오히려 일상계 에피소드가 수록되었더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다음 권에서는 "Q.E.D"의 진짜 매력이라 할 수 있는 일상계 이야기가 등장해주기를 바랍니다.

2014/11/21

허큘리스 (2014) - 브랫 래트너 : 별점 2.5점

[블루레이] 허큘리스 : 극장판 & 확장판 - 6점
브렛 래트너 감독, 존 허트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모험으로 신격화된 영웅 "허큘리스"와 그의 동료들은 트리키아의 왕 코티스에게 고용되어 반역자 레수스와의 전쟁에 나섰다. 그러나 승리하자마자 허큘리스는 진짜 악당이자 흑막은 코티스 왕이었다는걸 깨닫는데...

한때 할리우드에서 잘 나갔지만, 최근에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브렛 래트너 감독의 신작입니다. 화려하고 발랄한 액션 영화에 강했던 감독이라 고대 서사물, 이른바 에픽 영화에는 어울릴까 걱정스러웠는데, 의외로 화면은 꽤 깔끔했습니다. 전사, 궁수, 예언자 Munk(창을 다루는), 도적(단검), 광전사, 음유시인 등으로 구성된 허큘리스 파티원들이 각자의 특기를 살려 벌이는 전투 장면도 잘 만들어져 있고요. 특히 중반부, 급조된 군대를 이끌고 벌이는 야만인과의 전투에서 종족(?) 특성을 잘 활용한 전개가 인상 깊었습니다. 박빙이었던 전세가 전차 두 대에 썰리며 허무하게 끝나는 장면은 다소 당황스러웠지만요.

액션 외에도 "허큘리스가 신화 속 존재가 아니라 실존 인물일 수 있다"는 설정도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허큘리스의 모험은 괴물을 상대한게 아니라 가면을 쓴 인간들과의 싸움이었다는 식으로 설명되는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오히려 이 설정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캐스팅도 적절합니다. 허큘리스 역의 드웨인 존슨, 일명 더 락은 비주얼적으로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트로이"의 브래드 피트나 에릭 바나는 최강의 전사로 보이지 않았었는데, 드웨인 존슨은 실제로 혼자서 사자 한 마리쯤은 때려잡을 것처럼 보이니까요. 아무래도 영화 특성상 연기력보다는 이런 외모가 훨씬 중요하지요. 그 외 캐스팅도 존 허트(코티스 왕 역), 단역에 가깝지만 조셉 파인즈(에우리스테우스 왕 역)가 등장하는 등 나름 충실합니다.

하지만 아주 좋은 영화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전개에 헛점이 많은 탓입니다. 첫째, 돈 받고 싸우는 용병인 허큘리스가 왜 정의감을 앞세워 쓸데없는 전쟁을 벌이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둘째, 코티스가 악역으로 밝혀지는 과정과 그 이후의 전개입니다. 반란군을 제압하려고 용병을 고용한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으며, 강해진 군대를 바탕으로 제국을 건설하려는 건 군주로서 자연스러운 욕망입니다. 그런데도 코티스가 악역으로 설정되고, 허큘리스가 그를 제거하면서 제국의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전개는 납득이 어렵습니다. 트리키아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허큘리스가 철천지 원수가 아닐까요?
또한 아리우스를 볼모로 허큘리스 일행을 협박하는 장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코티스가 이미 아리우스를 후계자로 인정한 상태라면 죽일 이유도, 협박이 성립될 이유가 없습니다. 공주의 행동도 납득하기 어려워요. 아리우스가 좋은 왕이 될 거라고 믿는다면 코티스를 막지 말고 그냥 제국을 건설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더 이득이니까요. 결과적으로 허큘리스가 돌아와 코티스를 물리치지 않았더라도 전세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며, 괜히 동료 한 명만 죽은 셈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허큘리스가 신화적인 영웅으로 거듭나는 연출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전투 중심의 전개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지는 바람에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실전 이종 격투기 시합을 하다가 갑자기 프로레슬링으로 변해버린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연출 자체는 나쁘지 않고, 제작비가 적절히 쓰인 흔적도 있으며, 흥미로운 아이디어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다소 부족하며, 서사적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그래도 머리를 비우고 즐기는 킬링 타임 용에는 적절하며, 더 락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트리키아 군대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는 허큘리스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If you smell~”을 외칠 것 같았습니다. 에우리피데스나 코티스에게 락 바텀을 날려주었더라면 아주 좋은 팬 서비스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웰컴 투 더 정글"처럼 말이죠.

2014/11/20

맹독 - 도로시 L. 세이어즈 / 박현주 : 별점 2.5점

맹독 - 6점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 추리소설가 해리엇 베인은 전 애인 필립 보이스를 비소로 독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녀에게 반한 피터 윔지경은 배심원 합의 실패로 생긴 한 달간의 유예 기간을 이용해 그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드는데...

귀족 탐정 피터 윔지경 시리즈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36위로 선정되어 있지요.

시리즈가 워낙에 유명해서 이전에 두어 권 읽어본 적은 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작품은 예상 외로 재미있더군요. 그동안 제가 이 시리즈를 재미없게 느끼게 만들었던 가장 큰 원흉인 피터경이 이번에는 꽤 친근하게 다가온 덕이 큽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중간중간 유식한 티를 내는 인용 문구, 과시적인 소비 행태, 그리고 첫눈에 반했다는 이유 하나로 해리엇 베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사 중의 신사,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여성 판타지를 집대성해 놓은 비현실적이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 속성은 여전합니다. 그래도 이번엔 꽤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서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보다는 훨씬 낫더라고요. 공부 잘하고 돈도 많은 엄마 친구 아들이지만, 허술한 데도 있고 유쾌해서 밉지 않은 친구처럼 느껴졌거든요. 연예인으로 따지자면 유희열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여신님"의 베르단디를 여성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이런 것일까 싶은데, 남성 독자인 제게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당대 인기 시리즈 주인공다운 매력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작품 뒤 해설을 보니, 도로시 세이어즈 여사 본인이 작중 해리엇 베인처럼 농락당하고 버려진 경험이 있었고, 이 작품에서 그 반대의 이상향을 심혈을 기울여 투영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수긍이 갑니다.
그 외 등장인물들도 인상적입니다. 못하는 게 없는 집사 번터의 활약도 눈에 띄였고, 종교로 개심한 전직 금고털이 빌은 완전 씬 스틸러 수준이었습니다. 이제 평범한 열쇠장수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인물인데, 피터경이 칭찬하자 “이런 승리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정말 유쾌했어요.
이러한 캐릭터 묘사는 번역의 힘도 커 보입니다. 이전에 "동서추리문고"로 읽었던 다른 작품들도 제대로 번역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들 외에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물로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탓입니다. 마지막에 피터경이 "비소 과자"를 대접하며 벌이는 추리쇼는 꽤 기발하고 재미있지만, 그 외의 추리 전개는 고전 황금기 걸작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범인의 정체와 동기가 작품 초반에 드러나버리고 마니까요. 

경찰 수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피터경 홀로 사적인 네트워크와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수사하여 해결한다는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결정적 역할은 머치슨양이나 클림슨양 같은 피터경의 부하들이 맡고, 단서를 밝혀내는 과정에서도 우연이 너무 많이 작용하는 문제도 큽니다. 머치슨양이 자물쇠 따기를 직접 배우는 디테일은 좋았지만, 클림슨양이 유언장을 발견하고, 머치슨양이 비밀 공간을 발견하는건 거의 우연에 의한 것이었거든요.

트릭은 "어떻게 비소를 먹였는가?"라는 한 가지 뿐인데, 이 역시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핵심은 독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는건데, 이런 이론이 실제로 가능한지 부터가 의문이에요. 오히려 몸에 독이 축적되어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실 해밋의 단편  "파리 종이"와 비교해도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몇몇 작위적인 설정도 눈에 거슬립니다. 몰래 어쿼트의 모발을 입수하여 비소 검사를 한다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미 유언장 위조라는 정황증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당연히 체포 후 정식으로 모발 검사를 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피터경의 귀족 마인드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피터경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대표작이라는 점과, 여성 부하들의 활약을 여성 첩보원처럼 그려낸 부분은 인상적이며 007 시리즈처럼 경쾌한 진행은 시대를 앞서간 듯한 매력이 있지만, 추리적인 완성도 면에서 부족하기에 감점합니다. 작품 수준만 놓고 보면 동 시기에 크리스티 여사와 자웅을 겨뤘다는 것이 솔직히 잘 믿기지 않네요. 귀족 탐정이라는 캐릭터가 인기의 비결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읽은 피터 윔지경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아직 피터경 시리즈를 읽지 않으신 분들께는 입문작으로 추천드립니다. 특히 여성 독자분들에게는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4/11/19

세계적인 과학수사 - 콜린 에번스 / 김옥진 : 별점 3점

세계적인 과학수사 - 6점
콜린 에번스 지음, 김옥진 옮김/가람기획

과학 수사, 법의학 관련 서적입니다. 건당 길어야 열페이지를 넘지 않도록 요약되어 있어서 전체 분량은 450페이지를 조금 넘는 정도네요. 크게 아래의 15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1. 프로파일링
  2. 시신의 신원확인
  3. 혈청학
  4. 사망시각
  5. 독극물학
  6. 탄도학
  7. 사망원인
  8. 문서감정
  9. DNA분석
  10. 폭발물과 화재
  11. 지문감식
  12. 법인류학
  13. 치의학
  14. 흔적증거
  15. 성문

"과학" 수사가 주제인 덕분에 가장 오래된 사건도 19세기 후반 사건입니다. 특정 사건으로 인하여 해당 기술이 유명해진 것들이 많기 때문에, 주로 20세기 초반까지의 사건들이 주요하게 다루어지고요. 20세기 후반 유명 범죄도 몇건 있기는 하지만, DNA 분석과 같은 신기술이거나 너무나도 유명해서 빼기 어려웠던 사건들에 한합니다. 주제로 삼은 15개 항목의 대부분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실제 사건을 통해 그 실효성이 검증된 것들이니 당연하겠지요.

익히 알고 있던 사건도 많지만, 관련하여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코와 반체티 사건은 일종의 인종차별, 정치적 탄압으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탄도학으로 범행에 사용된 총알이 사코의 총에서 발사된게 증명되었다는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놀랍게도 사코가 범인이라는 뜻입니다.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도 범인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해 왔었지만,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사다리와 용의자 하우푸트먼의 집에서 발견한 재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명백한 흔적 증거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입니다. 모호한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이 정도면 범행에 깊이 관여한 것은 분명하기에 유죄판결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20세기 초중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노리고 벌였던 사건들도 인상적입니다. 독극물 검사를 빠져나가기 위해 동공을 일부러 확장시키기 위한 아트로핀을 투입했던 로버트 뷰캐넌 사건, 남편을 독살했는데 남편에게 가져다 주던 커피를 실수로 흘린 것 때문에 발목이 잡힌 에바 레이블런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니벌 알모도바르 사건과 같은 조금 어설픈 알리바이 공작들도 몇 개 눈에 띄이고요. 시대를 막론하고 범죄자들의 생각은 다 비슷한 것 같네요.
또 팬암의 여승무원 헬레 크래프츠 살인사건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범행을 재구성할 때 유력한 용의자인 남편 리처드가 냉동고와 나무분쇄기를 구해 놓았었다는 점에서 영화 "파고"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나비성"이었나 "적색등"이었나.. 여튼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 중 하나에서도 분쇄기로 시체를 갈아버리는 트릭이 등장했던 기억도 났고요. 여튼 수사관들이 나무분쇄기로 시체를 뿌린 서토닉 강을 샅샅이 뒤져 소량이지만(책에 따르면 인체의 1/1000 정도) 사체를 찾아내어 범인을 유죄로 만들 수 있었다니 다행일 뿐입니다.
그 외에도 작업복 한 벌 분석을 통해 범인의 모습을 거의 실제처럼 묘사해 낸 도트레몽 형제 사건, 침대에서 발견한 1cm 정도의 털 한가닥으로 범인이 밝혀진 낸시 티터턴 살인사건, 방문자를 대접한 형태로 봤을 때 아주 친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피해자의 옷과 범인의 옷에서 발견된 흔적 증거로 범인을 잡아낸 로저 페인 사건 이야기 등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러한 수록 사건들 중 최고를 꼽자면 프레더릭 스몰 사건입니다. 집에 큰 불을 질러 범죄 흔적을 지워버리려 했지만 방바닥이 먼저 타올라 아내의 시신이 침실에서 지하실로 떨어져 발목을 잡힌 사건인데, 이유는 범인 스몰의 인색함 때문입니다. 본인 스스로 싸구려 판자로 지하실 천정의 일부를 다시 만들었는데, 바로 그곳으로 굴러 떨어져 버린 것이거든요! 큰 범행을 앞둔 인간이 쪼잔하게, 인색하게 굴면 안되는 법입니다. 특히 살인에는 돈을 들여야죠. CMB 20권의 에피소드에서 처럼요.
남편 살해를 완벽하게 저질렀지만 의사가 사고가 아닌 폐기종으로 진단한 사망확인서 때문에 스스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사건 수사를 진행하게 만든 스텔라 니켈 사건도 비슷한데, 스텔라는 조금이나마 돈을 받은 시점에서 포기했었어야 합니다. 하긴 도박판에서 돈을 조금 딴 시점에서 일어난게 가장 힘들다고는 하니까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허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너무 요약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개략적으로 훝어본 뒤, 정말 깊은 관심이 생기는 사건은 별도의 다른 책을 찾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안내서와 같은 역할 정도에 그칩니다. "손과 낵" 사건이 궁금하다면 타블로이드 전쟁을 찾아보는 식으로요. 덧붙이자면 이전에도 언급했던 가람기획의 책 답게 번역이나 책의 만듬새는 약간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풍성하고 재미도 있으면서도 자료적 가치도 높은 책이 도서정가제 실행을 앞둔 할인 열풍으로 5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되고 있으니 고맙기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네요. 이런 류의 책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그나마 잡힌 사건만 수록되어 있는데 용케 빠져나간 범죄자는 얼마나 많을까요?

2014/11/18

가문의 영광

카카오 모바일 백일장 응모작입니다. 2천자 정도 되는 초단편 공모전으로 오래전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가지고 퇴근길에 뚝딱 써서 응모한 것이죠. 당연히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오랜만에 글이라는 것을 써 보았기에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짧은 만큼 한번 읽어보시고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뼈대 있는 가문의 3대 독자는 제법 많다. 그러나 광호처럼 용이 승천하며 춤을 추니 온 백성이 기뻐했다는 태몽과 태어나는 순간에 하늘에 상서로운 빛을 뿜는 무지개가 걸려 출생을 반긴 아이는 드물 것이다.

마침 태어난 해가 나라가 둘로 나뉘는 전쟁이 일어나고 격변의 혁명기를 거치며 국가적인 탄압 때문에 일찍이 융성했던 그의 가문이 몰락의 정점을 찍은 해였기에 태어날 때부터 집안의 꿈과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였으며 그의 집을 우연히 방문한 수수께끼의 전도사가 신생아 광호를 보고 흠칫 놀라며 장차 이 나라의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예언한 것은 그에게 걸린 기대와 꿈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가문의 침몰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고조부의 현명한 경영을 '가혹하다'고 비난한 무지몽매한 소작농들과 그에 편승한 이들의 야합, 고조부가 돌아가신 뒤 그나마 남아 있던 재산을 조부가 모조리 쌀과 금으로 바꿔 월남한 후 십수 년 만에 가문은 그야말로 거덜이 나고 말았다.

장하게도 어린 광호는 개의치 않았고 출생에 얽힌 전설을 들을 때마다 자부심은 더욱 커져갔다. 이러한 자부심에는 그 스스로 어렸을 적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길을 잃은 후 혼자만의 힘으로 다시 돌아오는 등의 남다른 유년기와 성장기도 큰 몫을 담당했다. 그래. 이건 더욱 큰 성공을 위한 시련일 뿐일 거야.

허나 약속된 듯했던 빛나는 미래는 나이를 먹을수록 꼬여만 갔으며 가장 큰 이유는 뛰어난 인물을 수용할 수 없었던 무식한 독재국가의 망할 교육 제도 탓이었다. 어찌어찌 이름 없는 3류 대학이지만 대학에 합격하고 순탄히 졸업한 기쁨도 잠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시기하는 모종의 거대한 국가적 음모가 작용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회인이 된 광호 앞에 놓이게 된 현실은 순탄치 못했고 그의 입사원서와 이력서는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탈락할 뿐이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성공하려면 사업이지! 굳은 결심을 한 광호는 여러 정보를 종합하고 소개받은 뒤에 주위 사람들의 인망과 협조를 얻으면 성공할 수 있는, 두 단계 정도의 소비자만 확보하면 장기적인 고수익이 가능한 신종 사업에 몸을 의탁하였다. 주위에서 사기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뛰어난 안목, 선견지명에 질투하는 천한 것들에게 광호는 냉소를 남기고 찬란한 성공으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오호통재라! 광호의 차세대 사업은 대한민국 실정법과는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성공을 가로막고 음해하려는 조직이 국가적인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으리라. 이러한 국가적 음모와 맞서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주위의 도움이 필요했고 광호는 자금 융통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으나 국가에 대항하는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무력하게 쓰러지고 남은 것은 자석요 몇 세트뿐이었다. 광호는 절망했다.

어떻게 하면 가문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한 광호는 엄청난 이자지만 즉시 현찰을 융통해준다는 조직을 통해 천만 원이라는 자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문을 위한 마지막 비책을 가슴에 품고 길을 떠났다.

"형님 그 놈을 찾긴 찾았습니다만...."
"요점만 얘기하자구. 계룡산까지 가서 뭐한 거야?"
"그놈. 아무래도 미친 거 같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돈은 어떻게 된 거야? 정말 땅에 묻어 놓은 거였어?"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형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놈 따라 계룡산 어딘가로 하염없이 올라갔는데 땅이 어느 정도 파져 있는 구덩이 하나가 나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구덩이에 들어가서 파내기를 한 두어 시간 했나... 갑자기 구덩이에 드러눕더니 돈은 한 푼도 없다고, 파묻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라면서 비웃더라고요."
"이런 썅! 그걸 그냥 놔뒀어!"
"그럴 리가요. 삽으로 대가리를 날려버리고 그냥 그곳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구덩이 팔 수고는 덜었잖아요?"
"재수가 없으려니 나원참 별 거지 같은 꼴을 다 당하네. 뭐 할 수 없지. 액땜한 셈 치자고. 윤 실장 수고 많았어. 근데 도대체 그 새낀 거긴 뭐하러 가서 6개월이나 비비며 우리 돈을 거덜 낸 거야?"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미친놈 생각을 어찌 알겠어요."

--- 여보. 이 문자 메시지가 마지막이 될 것 같소. 3일 안으로 연락이 없으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시오. 그래도 묫자리는 거액을 들여 알아본 명당이니 우리 가족일은 잘 풀릴 거라오. 못난 남편의 마지막 노력이니 나중에 묘비나 세워주시오. 충남.... ---

어떠셨나요? 좀 더 소설처럼 썼더라면 읽기도 편하고 완성도도 조금이나마 나아졌겠지만, 글자수 제한 때문에 이상한 시놉 형태로 완성되어서 조금 아쉽네요.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 백일장은 시스템이 정말 거지 같아서 또 응모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 제가 써서 응모한 소설인데 공유도 제한적이고 검색도 안된다니....

덧 : 2025년 6월 13일, 챗 GPT로 생성한 일러스트도 추가합니다.

2014/11/17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가 출판사 신초샤와 함께 한 기획 기행문.

쥬신쿠라의 아코 낭사들이 기라 저택을 습격한 후 센가쿠지 절로 철수했던 길을 따라 걷기, 시중에 조리돌리기한 뒤 효수했다는 당시 루트를 따라 걷기, 하코네 관문을 돌파하여 나가기 등 실제 에도시대의 역사적인 일이나 풍습, 관습을 체험하며 따라 해 보는 재미난 기획물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뿐더러, 당시 있었던 실제 디테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조리돌리기 편에서 어떤 죄가 이에 해당되는지를 알려주는 식으로요. 에도시대에 관심이 많다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번역도 꼼꼼히 잘 되어 있으며 주석도 충실해 공부하면서 읽는 맛도 괜찮았어요. 글 자체도 맛깔나고 재미있게 쓰여 있고요.

아울러 미야베 미유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점들도 반가왔습니다. 의외로 유쾌한 분이더군요. 진중한 여사님 이미지와 달리 에도 토박이임을 강조하면서 자학개그를 펼친다든가, 함께 하는 멤버들에게 제멋대로 별명을 붙이는 등 유쾌발랄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작품 "혼조 후카가와의 기묘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물가에 가면 "스케키요의 다리"가 꽂혀 있을 것 같다는 추리소설가다운 코멘트도 좋았고, 편집자가 이야기한 가도카와에서 투자하는 관람형 설치물(스케키요의 다리가 위아래로 움직인다는 장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실제 설치되었다면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세 번째까지는 기획 의도에 충실한 산책 기행문인데, 이후에는 황거를 둘러보거나 유배지였다는 하치조지마로 바캉스 여행을 떠나는 등 내용이 다소 변질되어 아쉽습니다. 끝까지 제대로 달려주었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흐지부지 끝난 느낌이에요. 이렇게 마무리할 거였다면 중반에 나온 "독부 미유키" 설정을 끝까지 유지해서 다른 기획으로 이어갔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또한 지루한 부분은 정말 지루합니다. 본인들도 별 의미 없이 편해서 선택했다는 혼죠 7대 불가사의 탐방이 대표적입니다. 애초에 별거 없는 불가사의일 뿐더러, 현대에 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심령 포스트라도 찾으면 모를까, 본인들도 어딘지 잘 모르고 두서없이 돌아다니는 것뿐이니 딱히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이래서야 흔해빠진 "고독한 미식가"류의 구루메 탐방이 차라리 더 낫지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초기 기획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실망만 안겨준 후반부는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글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기행문이기는 하나 개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고 유머러스하다는 점에서는 "동경산책"이 연상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팬이라면 읽을 가치는 충분하고 에도 시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꽤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후보군이 너무 좁다!). 특히 일본 여행, 특히 도쿄를 앞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황거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군요.

덧붙이자면 우리도 둘레길 등 산책로가 급부상하고 있는데, 단지 경관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역사와 결합해 의미 있는 코스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식이 짧아 당장 추천하고 싶은 게 떠오르진 않지만요.

2014/11/14

데드맨 - 가와이 간지 / 권일영 : 별점 2점

데드맨 - 4점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작가정신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머리, 몸통, 팔, 다리가 사라진 시체 여섯 구가 차례로 발견되었다. 수사본부장을 맡은 가부라기는 동료들과 함께 수사에 주력하지만, 마지막 범행 후 4개월이 지날 때까지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수사본부로 자칭 “데드맨”이 보낸 이메일이 도착하는데…

작가의 데뷔작이며,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2012년에 수상했던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올드 타입 형사인 가부라기가 자신과 같은 타입인 마사키, 부호 형사 스타일의 뉴타입 히메노, 그리고 과학수사연구소의 프로파일러 사와다와 한 팀을 이루어 연쇄살인극을 수사해 나가는 수사물이지요. 

젊은 작가의 데뷔작답게 빨리빨리 속도감 있게 읽히는 맛은 있고, 선배 작가인 시마다 소지의 걸작을 인용하는 대담함도 눈에 띄는 점입니다. 여섯 구의 시체를 가지고 하나의 완성된 인간을 만든다는건, 작중에도 등장하지만 "점성술 살인사건"을 연상케 하거든요. 이러한 고전 걸작을 대놓고 인용하는 걸 보면 작가가 상당한 강심장이라 생각됩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나름 기대에 부응하기도 하고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뛰어난 부분이 많지는 않으나 “데드맨”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만큼은 괜찮습니다. 앞부분에서 제법 공을 들여 “아조트” 어쩌구 하며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설정이니만큼 결국 누군가가 그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적당한 수준으로 풀어내는 덕분입니다. “다니무라 시즈”의 정체 역시 나쁘지 않았으며, "데드맨"의 시력과 로보토미 시술을 엮은 설정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그 외에 프로파일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부분도 흥미로웠고요.

그러나 데드맨의 정체가 너무 뜬금없고, 시온이 여섯 명을 살해한 동기도 여러모로 무리가 따릅니다. 연쇄살인의 목적이 “데드맨”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해석부터가 문제인데요. 어차피 요양원에 갇혀 있는 신세라면 신문기사를 위조해서 보여주면 될 일 입니다. 여섯 건이나 범행을 저지르는데 들키지 않았다는 것도 순전히 우연에 가까운 만큼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물론 "복수"의 일환이기는 합니다만, 정작 복수의 주적은 따로 있고, 그를 죽일 수 있는 날짜까지(요양원 방문)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이러한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습니다.

또 “데드맨”의 정체 역시 급조하여 끼워 넣은 느낌입니다. 실종되어 기억이 엉망진창이 된 정의로운 형사가 갑자기 등장하는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시온이 어떻게 그 형사를 넘겨받아 재활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저라면 이렇게 가둬두고 괴롭히느니, 차라리 중간에 죽였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후반부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시온이 겐다에게 살인을 지시할 이유도 없고, 본인이 슌이라고 믿고 있는 겐다가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불명확합니다(본인이 시체를 조합한 인간이라 믿고 있다면 복수의 대상은 시온이었어야 하죠). 결국 겐다는 실패하고 시온이 직접 나선다는 결말은 어처구니를 잃게 만들고, 거기에 폭탄까지 등장하는 전개는 극적 긴장감을 높이려는 시도는 알겠으나,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 계속되어 몰입감을 떨어뜨릴 뿐입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동기에 대한 상세한 독백 역시 현실성은 떨어졌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단점이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동일한 캐릭터로 시리즈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던 만큼 후속작을 기대해보겠습니다. 후속작에서는 작가도 실력이 늘면 좋겠네요.

2014/11/13

세상을 바꾼 50가지 자동차 - 디자인 뮤지엄 / 권규혁 : 별점 3점

세상을 바꾼 50가지 자동차 - 6점
디자인 뮤지엄 지음, 권규혁 옮김/홍디자인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 - 디자인 뮤지엄 / 권은순 : 별점 4점"

전에 읽었던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와 같은 디자인 뮤지엄 시리즈입니다. 다른 관련 서적에서도 접해보았던 포드의 모델 T나 부가티 타입 35B,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폭스바겐, 시트로엥 2CV 등 유명차의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자동차로서의 가치보다는 오브젝트로서의 디자인에 집중하여 50개의 자동차를 선별하고 있기 때문에 성능적으로 돋보이지 않거나 심지어 문제가 많았다는 자동차들도 당당히 수록되어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예를 들자면 미래지향적이었지만 실패작이었던 다이맥시온이라든가(도판을 보니 흡사 잠수함같이 생겼더군요. 정말 시대를 많이 앞서간 듯).   알루미늄으로 만든 최초의 승용차였다는 메기 느낌의 파나르 다이나, 독일인이 만든 차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엔진 문제가 심각했다는 최초의 로터리 엔진 승용차 NSU Ro 80(스타일은 지금 보아도 남다른 데가 있는데 아쉽습니다)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다른 자동차 관련 서적들과는 다른 점이죠.

포르쉐나 페라리와 같은 전통의 명가가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람보르기니가 2종(350 GTV, 미우라)이나 수록되었는데 말이죠! 람보르기니 창업자 페루초가 무덤 속에서 쾌재를 불렀을 것 같아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도판, 특히 컬러 도판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고 다른 도서들과 중복된 내용이 많기는 하나, 제작 취지에는 충실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오브젝트로서는 인상적인 차들이 가득 실려 있고, 분량도 적절해 읽기에도 편한 등 장점도 많은 책입니다. 가격도 50% 할인된 가격에 구입했기에 더욱 만족스럽네요.

2014/11/12

마카로니 구멍의 비밀 - 하라 켄야 / 이정환 : 별점 2.5점

마카로니 구멍의 비밀 - 6점
하라 켄야 지음, 이정환 옮김/안그라픽스

"디자인의 디자인"을 통해 접해 보았던 일본 디자이너 하라 켄야의 짤막한 수필 모음집입니다. 하라 켄야가 생각하는 디자인에 대해 일상생활 속 디테일을 통해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는 이야기들로, 주제별로 적합한 예를 드는 구성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미의식과 표면장력을 연결하며 노구치 이사무의 조각 "Water Stone"을 인용한다든가, 일상에서 접하는 디자인의 디테일을 이야기하면서 식탁에 오를 때에는 마요네즈 용기의 구멍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언급하는 식입니다. 디자이너가 의도한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에서는 사각형 두루마리 휴지를 예로 들고요. 이렇게 각각의 예시가 명확하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예만 들지 말고 도판도 함께 수록해 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완독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분량인 110여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디자인의 디자인"은 풀컬러로 도판이 수록되어 있는데도 이 책과 가격 차이는 얼마 나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분명히 재미있고 일상생활 속 디자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솜씨도 탁월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도판 없이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려는 기획 의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책 뒤에 몰아서 도판을 수록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2014/11/10

경성 모던타임스 - 박윤석 : 별점 2.5점

경성 모던타임스 - 6점
박윤석 지음/문학동네

수없이 읽어온 경성 관련 서적입니다. 특징이라면 픽션이라는 점입니다. 1920년대 경성을 "한림"이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 경성에 대한 상세한 정보 제공이 주 목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당대 묘사와 소개에 주력합니다. 특히, 1920년대 경성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압권입니다. 이 책만 읽어도 경성 시내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질 정도니까요. 어디를 지나 어디를 어떻게 가고, 어디가 어떻게 변했고 등등등 실제 당시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함직한 대사와 상황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장소적인 디테일 외에도 심훈이나 김기진, 한규설 등 당대 주요 인물들도 자세하게 설명되며, 고종의 장례와 만세운동과 같은 중요했던 사건도 짚어줍니다. 손병희가 이완용을 만세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만났다는 일화 등 재미있는 내용이 많은데, 개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독립운동 단체 내부의 내분 이야기입니다. 노론과 소론 등의 당파싸움이 독립이라는 큰 대의 앞에서도 우왕좌왕 파벌 만들기에만 급급하고, 해방 후에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편가르기하여 나라마저 쪼개놓는걸 보면 이게 정말 국민성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고종 승하 후 장례식에 대해 한국식도, 일본식도, 서양식도 아닌 기이한 형태의 장례식이었다고 묘사하는 것도 기억에 남고요.

이런 점들을 비추어 볼 때, 한마디로 픽션의 탈을 쓴 미시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어딘가의 연재물을 모아 놓은 탓에, 하나의 이어지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한림이라는 인물도 뜨문뜨문 등장하고 그와 얽히는 것 같았던 여급 하나코 역시 단순한 주변인물일 뿐이라 별다른 이야기도 없다면 구태여 이들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때문에 반 쯤 픽션에 걸친 형식보다는, 정말 각잡고 주요 인물들 시점으로 나누어 논픽션처럼 쓰는 게 훨씬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픽션으로서의 가치는 한없이 낮고 딱히 재미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우나, 자료적인 가치 하나만큼은 굉장합니다.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단순한 연구서들보다는 쉽게 읽히는 것도 분명하고요. 이 시대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11/07

TM Network 새앨범! QUIT30

그 멤버 그대로 7년만에 새 앨범! 10월 말에 나왔지만 지금 알았네요... 조금 늦었지만 포스팅합니다.

명곡이자 히트곡인 "get wild", "seven days war"의 작사 - 코무리 미츠코 / 작곡 - 코무로 테츠야 컴비의 신곡 "alive"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곡을 제대로 감상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TM Network스러워서 아주 좋네요.

오래된 팬으로서 무척이나 반가운데, 시대도 많이 지났으니 예전만큼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는 없겠지만 많이들 즐겨주었으면 합니다.

2014/11/06

족구왕 (2013) - 우문기 : 별점 3점

학점도 별로에 토익 점수도 없는 식품영양학과 복학생 홍만섭. 그는 주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진할 때 "족구"와 첫눈에 반한 캠퍼스 퀸 안나에게 젊음을 건다.

족구를 소재로 한 청춘 스포츠 판타지 영화입니다. 전공과 무관한 공무원 시험 준비에 이성 친구는 만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는 고단한 대학생들 모습에서 시대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드러냅니다. 만섭이 학자금 대출 문제로 등록을 하지 못하고, 캠퍼스 킹인 강민도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허세만 부릴 뿐 고시원에 거주한다는 등의 현실의 벽 역시 끝까지 해결되지 못하고요.

그러나 이러한 것을 '족구'로 대표되는, 무언가에 대한 열정과 젊음이라는 에너지의 분출로 보듬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청춘예찬"이라고 생각됩니다. 암담한 삶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것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은 항상 멋있고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또 이러한 열정 분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족구"이기 때문에 스포츠물로서도 제법 볼거리가 많습니다. 강력한 라이벌 → 위기 → 각성 → 조력자의 등장 → 필살기와 함께 결말이라는 전형적인 열혈 스포츠 왕도물인데, 왕도물다운 몰입감이 제법이며 족구 시합 장면도 마지막의 허황된 필살기 말고는 꽤 설득력 있게 구성되어 있거든요. 중반에 등장하는 창호와 만섭의 더블 킥 장면이 대표적이겠죠.

그 외에도 "족구하는 소리 하고 있네"와 같은 대사들도 찰지고 코믹 요소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등장인물도 누구 하나 빠지지 않게 캐릭터가 확실히 잡혀 있는 등 디테일도 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어 수업 시간에 배트맨과 베인의 대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대학생다운 아이디어 같았어요.

하지만 학교 이사장 - 학교장의 대립 같은 요소 등 불필요해 보이는 부분 등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얻은 것은 없다는 결말(벤츠?)도 씁쓸했고, 무엇보다도 영어 수업시간에 고백한 대로 정말로 미래에서 왔다는 엔딩은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제작진의 의도가 이런 불순한 청년은 이 시대에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고,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는 판타지구나 싶기는 했습니다만, 이런 현실이 슬프네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오랜만에 보는 돌직구 같은 청춘물로 재미와 주제의식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꼼꼼히 따져보면 부족한 점도 제법 있지만 인생 뭐 있습니까, 복잡하게 살지 말고 좀 쉽게 좀 살아야죠.
어렵고 힘들더라도 젊은 청춘들이 짧은 한때나마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아울러 독립영화 제작사 광화문시네마의 건승을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2014/11/03

쿠드랴프카의 차례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3점

쿠드랴프카의 차례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가미야마 고등학교 축제에 참가한 고전부는 문집 "빙과"를 달랑 30부만 인쇄하려 했는데, 마야카의 실수로 200부가 인쇄되어 배달되었다. 고전부는 3일간의 축제 기간 중 200부 판매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던 중, 축제에 참가한 단체를 대상으로 장난같은 물건을 훔치는 "십문자" 괴도 사건과 얽히게 되는데...

요네자와 호노부고전부 시리즈 세 번째 작품. 학교 축제를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등장인물별로 1인칭 시점의 묘사가 이어지는 전개가 독특합니다. 덕분에 탐정역의 호타로는 "에너지 절약"이라는 신조에 맞는 여전한 삶과 모습이지만, 다른 고전부원들에 대한 비중과 묘사가 상당히 커지고 캐릭터별로 명확한 역할이 부여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주변인에 머무르는 듯했던 후쿠베입니다. 이른바 데이터베이스라는 역할에 충실한데 퀴즈 경연대회에서 준우승, 요리 대회에서 팀을 이끌어 우승하는 등의 활약으로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주위에 강하게 어필하며, 본인 스스로도 호타로에게 자극받아 사건 해결에 뛰어들 결심을 하는 등 확실히 "성장했다"는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큰 주제 중 하나인 ‘기대’라는 말에 가장 부합하는 고전부원인 셈이지요.
‘기대라는 것은 체념에서 나오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 괴로움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부담감보다 크다’는 문장은 후쿠베–오레키는 물론 안죠 하루나와 코치 아야코, 구가야마와 다나베 지로의 관계에도 대입되는 개념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기대’라는 말로 포장해봤자 결국 ‘질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마야카도 단순한 잔소리꾼이 아니며, 만연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선배에 대항하는 강한 자기 주장과 요리 대회에서의 활약이 인상적으로 그려집니다. 

반면 치탄다의 비중은 조금 애매했습니다. 그녀도 나름대로 부탁과 협상 등의 노력으로 성장한 것은 물론, 요리 대회에서의 활약상(기세두부)은 눈부시지만 실제로 고전부의 문제 해결이나 십문자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영화 상영하는 곳에서의 합동 판매는 실력자 이리스 선배와 안면이 있었던 덕분일 뿐이며, 그 외에는 벽신문부와의 교섭 등에서 실패만 거듭했으니까요. 십문자 사건이 불거진 후에는 그녀의 노력은 사실상 불필요했지요.

이러한 고전부원들의 활약에 더하여 추리물로도 괜찮습니다. "십문자" 사건이 일본어 50음도와 엮인 암호라는 설정은 딱히 새로울건 없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이 나쁘지 않았을 뿐더러 디테일한 소재와 복선을 잘 활용한 전개가 요네자와 호노부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특히 앞부분에서 언급된 동인 만화 "저녁에는 송장이"가 주요 단서로 활용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호타로의 추리뿐 아니라 그림을 그린 것이 누군지를 찾아내는 치탄다와 마야카의 활약, 필명인 안신인 타쿠하가 "아지무"라는 것을 밝히는 데이터베이스 후쿠베의 활약 등 고전부원들의 힘이 합쳐지는 모습도 인상적으로 그려지고요. 오랜만에 ‘4위일체’ 활약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몇몇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가장 아쉬웠던건 범행의 목적입니다. 십문자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까지의 추리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범행 목적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와닿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인물이 노력하지 않는 천재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는 동기야 이해가 되지만, 반쯤은 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취해가며 알릴 내용은 아니니까요. 또한 "쿠" 순서를 건너뛴 것이 이미 잃어버린 것이라는 식의 연결도 논리적으로 무리라 생각됩니다. 해당 작품의 원작 줄거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구가야마는 이해했을 수 있으나, 독자에게는 극도로 제한적인 정보에 불과했으니까요. 공정한 정보 제공 측면에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는 핵심 증거인 학원제 가이드 설명 페이지를 마지막에 공개한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들은 앞부분에 소개된 가이드만을 기준으로 추리를 진행했는데, 실제로는 다른 구성을 가진 페이지가 있었다는 건 반칙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고전부의 위기처럼 묘사되는 문집 200권도 판매가격 기준으로만 보면 약 4만 엔, 부원 1인당 부담은 1만 엔 수준으로, 큰돈이긴 해도 엄청난 위기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어른이라면 한 번의 술값 정도라서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물이라는 청춘 드라마적 전개에 더해, 일상계 추리물로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여러모로 다소 아쉬움은 있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뭐니뭐니해도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고전부원들의 시각으로 그려지는 학원제의 디테일, ‘빨간 클립 작전’을 연상시키는 "볏짚 프로토콜", 요리 시합에서의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승부 같은 잔재미도 풍부하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