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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0

드라큘라 그의 이야기 - 레이몬드 맥널리, 라두 플로레스쿠 / 하연희 : 별점 3점

드라큘라 그의 이야기 - 6점
레이몬드 맥널리.라두 플로레스쿠 지음, 하연희 옮김/루비박스

드라큘라라는 컨텐츠의 실체에 대해 다루는 책입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흡혈귀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인 루마니아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 드라큘라의 자취를 추적해 나가는 전반부, 그리고 브람스토커를 중심으로 흡혈귀와 드라큘라 컨텐츠에 대해 다루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에서는 실제 왈라키아 공국을 방문하여 현지 답사도 진행하고, 거의 남아있지는 않지만 유적의 자취도 탐색하는 노력에 더해 방대한 당시 사료들을 조사하여 드라큘라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깊이와 디테일은 가히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지요. 잔인무도했다는 몇 가지 에피소드들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대기 자체가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그의 일대기를 소개하자면, 드라큘라는 어린 시절 발칸 반도를 집어심킨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볼모로 잡혀가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그 와중에 형은 산채로 생매장 당하는 등의 아픔도 겪고요. 몇 년 뒤 탈출하여 트란실바니아의 후냐디의 도움으로 왈라키아 군주 자리에 오른 뒤, 동맹인 트란실바니아의 색슨족들을 가혹하게 제압합니다. 왈라키아 인들을 위해서였지만 이 때 벌인 잔혹한 학살 때문에 생긴 악명이 그를 지금과 같은 불멸의 존재로 만들게 되었죠. 이후에는 투르크와 큰 전쟁을 벌입니다. 다뉴브에서 대승을 거두지만 병력 규모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던 탓에 험준한 산림을 이용한 유격전, 전염병을 이용한 세균전과 보급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청야전을 펼칠 수 밖에 없었고,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끝에 이웃나라 헝가리로 동맹을 요청하러 탈출하지만 무려 12년간 헝가리 왕국의 포로로 세월을 보냅니다. 헝가리 왕국은 꼭두각시 군주를 통해 왈라키아를 지배하에 두고, 투르크와 휴전을 통해 평화를 강구하려는 속셈이었을거에요.헝가리에서 러시아 정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드라큘라는 투르크의 지원을 받는 왈라키아 군주 바사라브 3세를 쓰러트리기 위해 출진하여 전투를 벌이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며 삶을 마칩니다.

보시다시피 일생 자체가 포로, 배신, 전쟁으로 이루어진 인물입니다. 후대에 드라큘라로 알려지게 된 이유인 잔혹한 통치 방법도 이런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공포로 충성심을 잡아두지 않으면 자리가 위태롭다고 여긴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왈라키아 주민들에게는 비교적 괜찮은 군주였다는군요 그 유명한 말뚝형의 대상은 주로 언제든 반기를 들 수 있는 지역 유지인 보야르와 그 일당들, 왈라키아에서 새력을 펼치는 게르만계, 그리고 당연히 오스만 제국과 이웃 나라의 병사들과 포로들 등이었다고 하니까요. 자신에게 충성하는 주민들만 평양에 모아놓은 북한 정권을 보는 듯 합니다. 덕분에 악명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군주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요.

말뚝형으로 대표되는 잔혹함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가득합니다. 터번을 벗지 않으려는 오스만 제국 사신의 머리에 터번째 못을 박았다던가, 말뚝형에 꽂힌 시체 냄새가 지독하다고 불평한 귀족을 가장 높은 말뚝에 꽂아 세워 놓았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전설인줄로만 알았던 황당한 이야기가 많은데 출처도 명확히 소개해주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아무리 전설이라도 당대 문헌에 이 정도로 많이 소개되었다면 꽤나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들일테니까요. 과연 후대에 잔혹한 흡혈귀의 모델이 될 법한 인물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의외였던건 영화와는 다르게 드라큘라는 엄청나게 독실한 신자였다는 겁니다. 수도원을 세워 헌금을 하고, 죽는 순간에 진실로 참회하면 모든 죄가 사하여진다고 믿었다는데 솔직히 가당치도 않지요. 그렇다면 수도사까지 말뚝형에 처한건 또 왜였는지 궁금하네요.

이러한 드라큘라의 일대기와 발자취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흡혈귀에 대한 유럽의 전설과 민담,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의 무서운 이야기 등을 거쳐 본격적인 흡혈귀 문학에 대해 소개해주는 후반부가 이어집니다. 내용의 핵심은 브람스토커와 그의 대표작 "드라큘라"이기는 한데, 그 외에도 조세프 셰리단 르 파누의 "카르밀라"라는 흡혈귀 이야기의 고전 걸작,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의 탄생과 폴리도리, 뒤마, 플랑쉬 등이 발표한 다양한 흡혈귀 이야기도 연대별로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카르밀라"는 얼마전 읽었던 "요녀전설"과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흥미로왔으며, 브람스토커의 작품도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건 아니고 다양한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드라큘라'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재창작해 낸 아이디어 덕분에 불멸의 명성을 얻은 듯 한데,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브람스토커 이후의 다양한 흡혈귀 관련 컨텐츠 소개는 현대 컨텐츠까지 쭈욱 계속되고요. 재미는 물론 어떻게 '흡혈귀'가 호러 소설의 소재로 등장하여 널리 퍼졌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보기드문 자료라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잘 알려져있지 않은 관련 컨텐츠 소개가 소설 뿐 아니라 영화에 이르기까지 폭 넓고 풍성해서 마음에 쏙 들었어요.

책의 마지막은 부록입니다. 지도를 비롯한 드라큘라의 일대기 및 관련된 당대 자료들의 번역본, 그리고 흡혈귀 관련 영화 소개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고 문헌 목록까지 합치면 부록의 분량이 100페이지 정도나 될 정도로 풍성하며, 그 수준도 깊고 방대하여 빼 놓기 힘들 정도의 귀한 자료임에는 분명합니다. 왜 부록으로 뺐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흡혈귀 컨텐츠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자료적 가치가 높은 서적입니다. 도판도 아주 충실하니까요. 장르 문학 매니아로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장르 문학, 그 중에서도 호러, 또 그 중에서도 흡혈귀 관련 장르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6/04/09

그들이 본 임진왜란 - 김시덕 : 별점 2점

그들이 본 임진왜란 - 4점 김시덕 지음/학고재

17~19세기 일본 에도 시대 베스트셀러였다는 오제 호안의 "다이코기", 하야시 라잔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호리 교안의 "조선정벌기", 그리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유행한 장편 역사 소설 "에혼 다이코기"를 통해 당시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주제가 흥미로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지부터 시작하여, 전쟁의 전초기지인 나고야성 건립,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중심으로 한 전쟁 서사, 명나라 원군의 출정과 화의 시도, 정유재란과 히데요시의 죽음, 그리고 전쟁의 종결까지를 순차적으로 설명해 주는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아 특별히 새로운 정보는 없었습니다. 시각의 차이는 존재해도, 역사적 사실 자체는 크게 다르게 다루어지지는 않은 탓입니다.

그래도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통역에 대한 설명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전쟁 중이니만큼 통역은 필수였고, 쓰시마번의 소 요시토시가 보유한 통역뿐 아니라 점령지에서 확보한 인력도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고려말에 대하여"라는 한국어 회화집이 존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 길인가", "곧이 이르라", "나이 몇이고", "자식 있는가" 같은 질문형 문장부터, "피리 부는가", "장인인가", "글 하는가"처럼 포로 중 유능한 인물을 식별하기 위한 문장들, "잘 씻으라", "술 덥혀라", "이거 가지고 있어라" 등 포로를 부리기 위한 표현, 그리고 "사람 많이 죽였다", "네 목 벨 것이야"처럼 위협적인 문장까지 수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전 상황에서 상당히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씁쓸했던건 여성을 성폭행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고운 각시 더불어 오라", "옷을 벗으라" 같은 문장이 회화집에 있었다는 설명은 읽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로 진출하여 '오란카이'라는 말을 듣고 '오랑캐'를 상대하겠다며 여진족 지역을 침공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 당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을 공격해 승리한 전투가 문헌상에 "세루토스"라는 거인을 이긴 전투로 묘사되는데 '세루토스'는 절도사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측 문헌이긴 하지만, 조선군 인물의 활약도 일부 언급됩니다. 유극량을 비롯해 송상현, 류성룡, 신각, 곽준, 곽재우 등이 기록되어 있고, 이순신은 아예 '영웅'으로 칭해집니다. 물론 이러한 서술은 일본군의 우수함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그럼에도 조선 인물의 언급 자체는 반가웠습니다. 행주산성 전투에 이가 지역의 닌자가 투입되었다는 기록도 꽤 신선하게 느껴졌고요.

다만 이 책에서 묘사된 전쟁은 삼국지의 장면처럼 과장되고 영웅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특히 가토 기요마사는 영웅으로 이상화된 반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에도 시대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전한 고니시가 할복하지 않고 처형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당시의 유교적 가치와 충돌했다는 해석이 붙습니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사료적 가치 측면에서는 그리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깊이 있는 내용도 부족하고,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다고 하기에는 다소 평이해서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 책 보다는 "징비록" 정도만 읽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4/05/09

2차 대전 잠수함 이야기들 - 10년 20일 / U-333 : 각 별점 3점

10년 20일 - 6점
칼 되니츠 지음/삼신각
U-333 - 6점
피터 크레머 지음, 최일 옮김/문학관

2차대전 당시의 잠수함 U보트에 관련된 책 2권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한 권은 U보트, 독일 잠수함 전대의 사령관이자 훗날 해군 총 사령관, 그리고 히틀러의 뒤를 이은 3제국 최후의 총통으로 연합군에 항복한 칼 되니츠 제독의 회고록 “10년 20일”이고 다른 한 권은 U보트의 함장 피터 크레머의 “U-333”입니다.
같은 시기, 같은 분야의 전투에서 역량을 발휘한 두 명의 회고록으로 각각 나름의 재미도 충분하나 비교해서 읽는게 훨씬 재미있더군요.

일단 "10년 20일"은 되니츠 제독이 사령관이었던 것 만큼 스케일이 훨신 크더군요. 잠수함을 한척 단위의 전투가 아닌 여러 척으로 그룹을 묶어 수송선단을 공격하는 이른바 “늑대떼 전술”을 비롯, 각 바다를 쪼개서 지역별로 함정을 배치하며 활동기간을 늘리기 위한 “젖소” 잠수함의 도입 등 전략적인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이에 반해 피터 크레머 함장의 “U-333”은 스케일 보다는 실제 전투에서의 활동들, 수송선단의 추격  및 공격에서의 회피, 폭뢰공격으로 침몰해 가는 함정의 운영 등 실질적 전투 활동의 디테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당연히 자료적 가치도 높아서 두 책 모두, 전투 이외에도 잠수함의 성능이나 독일의 여러 공격 무기 (어뢰 및 대공포 등)와 연합군의 대잠무기, 잠수함 건조 방법 및 훈련 방법 등 잠수함 부대에 관한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은 동일하고요.

그런데 두 책 중 개인적으로는 되니츠 제독의 일대기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도자가 누구이건 맡은 바 명령에 충실하게, 설령 그 상황이 타개하기 어려울 지라도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여 난국을 타개해 나가며 아울러 소신을 굽히지 않는 진정한 독일 군인의 표상이랄까요? 처칠이 언급했듯이 되니츠에게 개전 초기 운영 가능한 U-보트가 100척만 더 있었더라면, 아니면 종전 직전에 실전 배치 되기 시작했던 최신예 잠수함 XX1, XX2, 발터 잠수함 등이 그에게 1년이라도 먼저 보급되었더라면.. 하는 가정이 성립될 만큼 - 물론 피터 크레머 함장의 회고처럼 이미 1944년 겨울부터는 잠수함 전대에 미래란 없었다는 것이 정확했겠지만 - 매력적인 인물로 읽으면서 그에게 매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세계 전사에 기록될 만큼 유능한 희대의 명 제독인 듯 싶어요.
허나 세세한 재미를 따지자면 실제 전투상황이 강조되는 한편의 영화 같은 “U-333”쪽이 더 낫기도 합니다. 동기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종전까지 포로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운좋은” 함장 피터 크레머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전과는 좀 떨어지는, 생명력이 좀 강한 함장이어서 그런지 (에이스들은 거의 죽거나 포로가 되어 버렸죠) 전투가 뭔가 격침을 시킨다던가 하는 호쾌한 맛은 떨어지지만 영화 “U보트”에서 볼 수 있었던 실제 연합군 대잠무기에 대한 공포, 잠항과 부상을 반복하며 벌어지는 긴장감, 잠수함 고장에 따른 위기 등이 잘 그려져 있거든요. 이런 부분은 영화가 이 책에서 많은 부분 모티브를 얻지 않았나 싶더군요. 아울러 뒷부분에는 되니츠 제독의 일대기가 요약되어 부록으로 실려 있어서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더 컸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두 책 모두 3점. 약 820척의 U보트 중 718척이 침몰되었고 39,000명의 우수하고 잘 훈련된 승조원 들 중 32,000명이 목숨을 잃은 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손실을 기록한 독일 잠수함 부대, 그리고 그 부대원들이 끝까지 희생을 다하며 충성한 해전사 희대의 명 제독 칼 되니츠와 실제 승조원으로 2차대전 개전부터 종전까지 활약한 U보트 함장 피터 크레머의 회고록이니 만큼 2차대전에 관심있으시다면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영화 “U보트”나 다시 한번 구해 봐야 겠네요.

그나저나, 개인적으로는 종전과 동시에 연합군에게 인수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자침시킨 독일 잠수함 부대원 들 중 일부가 최신예 함과 기술을 가지고 다른 부대원, 기술자들과 더불어 히틀러의 비밀 자금과 함께 어딘가에서 세력을 키운다는 “라스트 바탈리온” 같은 이야기가 꿈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덧 : 되니츠도 인정했지만 히틀러라는 인물의 카리스마와 인물 장악력은 정말 남다른 데가 있었던 것 같더군요. 그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되도록 떨어져 있어야 했다.. 고 까지 인용했을 정도거든요.

2021/05/21

n분의 1의 함정 - 하임 샤피라 / 이재경 : 별점 4점

n분의 1의 함정 - 8점
하임 샤피라 지음, 이재경 옮김/반니

여러가지 상황과 게임을 예로 들어 게임 이론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는 교양서입니다. 

게임 이론은 참가한 선수들간에서 누군가의 결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어떤 결정을 할지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선수들의 목표는 본인의 이득 최대화이고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여서 책 소개만 보고 흥미가 동했었는데, 읽다보니 의외로 수학 이론 책 치고는 재미까지 있어서 놀랐습니다.

재미있는 이유는 게임 이론에 대해 여러가지 실제 게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죄수의 딜레마'를 비롯하여 '공갈협박범 딜레마' '최후통첩 게임', '남의 떡 역설' 등 제목만 보아도 어떤 게임인지, 어떤 전략을 쓰는지 두근두근하게 만들거든요. 

'최후통첩 게임'은 두 사람이 정해진 돈을 나누는 게임입니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겠다고 제안한 뒤, B가 수락하면 각자 제안대로 돈을 나눠 갖고, B가 거부하면 둘 다 한 푼도 못 받는 룰입니다. 재미있는건, 남자는 상대 여자가 미인이라고 해서 딱히 더 후하지 않았지만 여자는 매력적인 남자에게 훨씬 후한 제안을 했다는 실험 결과였습니다. 저자는 여자들은 1회성 게임을 시리즈 게임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현실세계에서는 여성이 이런 성향 때문에 남성보다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우위를 점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행동과 대처가 상대에게 장기적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성향은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매우 중요하고 각장 환영받는 자질이기 때문이랍니다. 한 번 만남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기일회 정신은 이미 낡아버려 시대에 맞지 않는 걸까요? 또 이른바 '뒷끝을 남기지 않는' 남자들 성향이 오히려 장기적 전략에는 해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추측 게임'을 통해 예상과 다른, 황당한 결과가 초래되는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0부터 100까지 숫자를 고르라고 한 뒤, 이 숫자의 평균을 내고 0.6을 곱한 결과에 가장 근접한 숫자를 고른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여기서 수학적으로, 전략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은 '0' 입니다! 사람들이 무작위로 숫자를 고른다고 한다면, 평균은 50이니 50에 0.6을 곱한 30이 정답이지요. 하지만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해서 30을 고른다면? 18을 선택해야 합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계속 진행되어 정답이 0이 되는 거지요. 하지만 결과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게임 참가자들이 모두 현명하고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현명하고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감정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감정이야말로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이지요.

'내시 균형'에 대한 상세하고 다양한 설명도 흥미로왓씁니다. 내시 균형은 상대의 전략에 대응하는 나의 최적 전략과, 나의 전략에 대응하는 상대의 최적 전략이 일치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몇 명의 간수가 대량의 포로를 이송하는게 가능한 이유도 바로 내시 균형 덕분이라네요. 포로들이 단체로 탈추하거나 폭동을 일으켜 공격하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만 시도한 누군가는 죽거나 다치게 되겠지요. 즉, 내 입장에서 내시 균형은 탈주나 폭동이 일어날 경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죄수의 딜레마'야 말로 내시 균형의 가장 좋은 예입니다. 상황 종료 후 자신의 선택과 결과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배신을 선택하는게 최적의 전략이기 때문이에요. 상대가 침묵하거나 배신하거나, 배신한 쪽만 후회할 일이 없으니 당연합니다.

'내시 균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표'를 명확히 세워야 한다는 내용은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사랑의 작대기와 같은 룰의 '쌍쌍 파티'를 통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지요. "나는 누가 봐도 최고인 A와 파트너가 되어야겠다!"라는게 목표면 무조건 A에게 표를 주어야 합니다. 대안은 없으니까요. 반대로 "나는 최악인 Z만 피하면 된다!"라는게 목표면 Z 바로 위의 Y에게 표를 주는게 최적의 전략이고요. 각자 무엇을 먹던, n분의 1로 식대를 지불하는 상황도 마찬가지에요. 목표가 "나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겠다!"인지, "나는 A를 꼭 먹겠다!"인지, 아니면 "나는 무조건 돈을 적게 내겠다!"인지에 따라 주문하는 메뉴가 달라지게 되겠죠.

하지만 내시 균형 전략이 적용될 수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자원자 딜레마'가 그러합니다. 이는 n명의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을 때, 최소 한 명이 자원자로 나서면 전원이 두둑한 상금을 받지만 자원자는 상금에서 위험 비용을 제한 금액을 받는 상황 속 딜레마를 뜻합니다. 이 게임에서 내시 균형 전략에 따라 자원하지 않는다면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혼합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네요. 또 내시 균형 전략에 따른 해법이 오히려 최적의 해법과 상극인 상황도 존재합니다. '여행자의 딜레마'라고 부르는데, 두 명에게 5달러에서 100달러까지 원하는 대로 돈을 써 내라고 하고, 둘이 같은 금액을 쓰면 같은 금액을 주지만 금액이 다를 경우는 낮은 금액을 쓴 사람에게 5달러를 더 주고 높은 금액을 쓴 사람에게서 5달러를 공제한다는 딜레마입니다. 여기서 내시 균형에 따른 최적 전략은 5달러를 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를 극대화하는게 우선 목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면 99달러를 써야합니다. 99+5달러가 최선이니까요. 하지만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서 98달러를 쓰고... 이런 생각이 반복되어 결국 둘 다 5달러를 써 내는 선택만이 후회가 남지 않게 됩니다. 뭔가 익숙한 상황이 많이 떠오르네요.

죄수의 딜레마를 연장한 게임에서 필승 전략인 '팃포탯' 전략도 기억해 둘 만 합니다. 이 전략은 출발은 신사적으로, 두번째 게임부터 상대가 직전에 했던 행동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줄까가 아니라, 상대가 내게 먼저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해서 행동하라는건데, 실제 상황에서도 많이 통용될 수 있는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사슴 사냥 게임처럼 신뢰와 협력이라는, 그야말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게임 이야기라던가 통계 관련 이야기, 도박장에의 전략 등 눈여겨 볼 만 한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도박은 한 번에 과감하게 가는게 좋다네요. 내가 불리한 게임은 게임 횟수를 최대한 죽이는게 맞는 전략이라면서요. 나름대로 그럴듯합니다. 영국 정치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했다는 말대로인 거지요. “절벽 사이를 두 번에 나누어 뛰는 것만큼 위험한 짓도 없다 단지 수학 이론서나 교양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필요한 전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좋은 독서였고요. 목차가 잘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드는건 아쉽지만, 그 외에 별로 흠잡을 부분은 없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마지막 장에 요약되어 있는, 주옥과 같은 게임이론 가이드라인 중 몇가지를 공유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 협상에 임할 때 유념해야 할 세 가지
첫째, 아무런 합의 없이 회담이 결렬될 가능성을 참작해야 한다.
둘째, 게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자신의 노선과 마지노선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

- 게임의 수학적 해법을 너무 믿지 말 것. 수학적 해법은 질투심, 모욕감 같은 중요한 감정들과 그것들이 만드는 변수를 간과하기 일쑤임.

- 어떤 결정이 됐든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만약 모두가 나처럼 생각한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 한 번쯤 자문해볼 것. 동시에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것.

- 목표가 단순히 이기는 것이라면, 괜히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고 상황을 복잡하게 풀면서 곁길로 빠지지 말 것.

- 게임에서 내가 ‘불리한’ 입장에 있을 때는 되도록 게임의 횟수를 줄여야 함. 약자에게는 한판승이 가장 승산이 높다. 위험을 회피하려 애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2004/12/02

스탈린그라드 전투 - 김종화 저 : 별점 2.5점


재미교포 김종화씨의 저술로 도서출판 세주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파울루스 장군의 독일 제 6군, 그리고 추이코프의 소련 제 62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죠. 초반부의 독일군의 파죽지세와 소련 62군의 소모전, 그리고 소련의 우라누스 작전에 따라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되어 버린 독일 제 6군의 처절한 반격과 그 종말이 그려집니다.

일단 자료적인 가치가 상당하네요. 당시 독일 제 6군에 소속되었던 부대들의 마크에서 시작하여 독일군 지휘관 계보, 소련군 지휘관 계보로 그 뒤를 잇고 당시의 작전 계획과 비교적 상세한 지도들로 전술사적인 가치를 높여주고 있거든요.
또 대충의 간략한 이야기로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당시 상황을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자세히 설명하는 본문 역시 흥미진진하며 여러가지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전에 읽었던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에 이 전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로 지휘관들의 고집과 무식함이 특출나다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그 중에서도 상명하복에 충실했던 예스맨 파울루스에게 거의 모든 책임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과 그 후일담까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는 33만 제 6군이 전멸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쨌건 5만 정도는 탈출, 12만 정도가 포로로 잡혔더군요. 포로중에 6천명정도만 결국 귀국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관심있는 분야라 상당히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제일 먼저 소련군의 비인간적이고 무식한 부분을 강조하며 승리의 요인 역시 물량과 인원이었다고 폄하하는 듯한 시각입니다. 전사도 역사의 일부인데 이러한 주관적인,편향적인 시각으로 저술하다니 저자의 수준이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균형잡히지 못한 논조에 더해 일본책을 그대로 번역한 듯한 읽기가 상당히 따분한 문체 역시 높은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의 수준을 낮추고 있습니다. 비교적 충실한 사료들과 증언, 증거들에 비해 도판의 수준이 많이 열악한 것도 아쉽고요.

그래도 간만에 읽은 2차대전사로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 책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여기서 파울루스가 몇번에 걸친 기회를 전부 손에 넣어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했더라면? 그래도 소련의 우라누스 계획에 막혀 결국 전선을 내어 주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전선이 너무 길어져서 그것을 방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겠죠. 전쟁이 더 길어질 수는 있었겠지만 제 3제국의 영광은 결코!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설 "Fatherland"는 정말 꿈일 뿐이죠)

2005/07/07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 레너드 위벌리 / 박중서 : 별점 4점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뜨인돌

유럽에 위치한 가로 5Km, 세로 8Km의 초미니 독립국 그랜드펜윅. 이 공국은 일찌기 그 주권을 인정받은 독립국가로 와인 수출로 주 수입원을 충당해 왔으나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와인에 물을 섞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쟁에 휩싸였다. 선거결과 희석당과 반희석당은 동수의 의원이 선출되어 논쟁은 답보상태에 빠졌고, 지도자 글로리아나 12세 대공녀는 난국 타개를 위해 강대국 미국에 선전포고 할 것을 제안받았다. 요지는, 미국은 패전국에게 엄청난 원조를 해 주므로 월요일에 선전포고를 해서 목요일쯤 점령당하고, 금요일에 그 차관으로 부흥시키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랜드펜윅의 선전포고는 장난으로 치부되었고, 결국 그랜드팬윅은 미국에 공격부대를 보냈는데 마침 뉴욕은 그때 가상 공습을 대비한 민방위 훈련으로 텅텅 빈 상태여서 그랜드팬윅의 사령관 털리 배스컴은 콜럼비아 대학에서 당대 최고위력의 폭탄 Q폭탄과 개발자 코킨츠 박사를 포로로 잡고 귀환하였다. 그리고는 Q폭탄의 존재로 말미암아 그랜드팬윅은 세계 정점의 강대국이 되는데....

국내에 50여년만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 성인들을 위한 풍자 소설입니다.

일단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랜드팬윅 공국의 설정이 치밀하고 유머러스해서 그 묘사만 따라가도 즐겁게 읽을 수 있거든요. 선전포고 장면에서부터 읽는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20세기에 아직 장궁과 갑옷으로 무장한 24명으로 이루어진 군대의 미국 정벌기라는 아이디어는 정말 높이 살 만 합니다. 심지어 전투를 벌이는 장면까지 등장하며 귀환할때에는 포로와 노획물, 거기에 희생자까지 더한 완벽한 모습까지 보여주는 부분은 정말로 감탄스러웠어요. 미국과 소련, 영국등 강대국의 행위에 대한 통렬한 풍자 역시 유머로 포장해서 읽는 사람을 너무나 즐겁게 해 줍니다. 

아울러 이상적인 국가로 그려진 그랜드팬윅의 모습이야말로 성인들을 위한 환타지에 걸맞는 설정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말해 즐겁고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디테일도 잘 살아있는, 그야말로 성인들을 위한 동화랄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미국에 대한 묘사가 완전한 비판이나 풍자보다는 이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쉬우며, 냉전시대에 발표된 풍자소설답게 내용은 지금 읽기에는 약간 낡은 감도 있고 엔딩이 너무 이상적인 해피엔딩이라 약간 허무하다는 것은 아쉽지만 충분히 납득할 만 한 수준입니다. 최소한 그랜드펜윅 공국만큼은 행복해 질 권리가 있거든요. 미국을 이긴 나라이니까!

덧 1 : 약간 스탠리 큐브릭의 블랙 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가 연상될 정도이니만큼 영화화하기 무척 좋은 소재라 생각되며 당연히 영화화가 되었다지만 저는 아쉽게도 감상하지 못했네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꼭 보고 싶습니다.

덧 2 : 원제대로 "생쥐, 울부짖다 (Mouse that roared)"라고 출간되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은데 너무 설명적인 번역 제목이 붙어서 약간 아쉽긴 하네요.

2020/01/05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 카리야 테츠 / 김숙이 : 별점 2점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 4점
카리야 테츠 지음, 김숙이 옮김/창해

제목만 보면 "맛의 달인"의 엑기스만 모아놓은 책 같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화의 원작자 카리야 테츠가 저술한 음식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맛의 달인"에 수도 없이 등장했던, 여러가지 요리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풀어놓는 식의 이야기들입니다. 지금의 꽁치는 모두 냉동이고 너무 일찍 잡아서 예전의 맛이 나지 않는다, 지금의 닭고기와 돼지고기는 그냥 인공적으로 만든 단백질에 불과하다.. 같은 식으로요. 때문에 일부 글들은 뻔하고 지루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사고방식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독특해서 재미있는 부분도 제법 됩니다. 예를 들자면 돈은 꽤나 번 것 같은데 다 먹어버려서 남은게 없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데 그곳의 진짜 맛있는 두부는 한국인 할머니가 만든다는 등입니다. 도쿄대 출신인 것도 처음 알았고요. 

아울러 "맛의 달인" 원작자 다운 음식 관련한 프로페셔널한 에세이도 괜찮았어요.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우선은 35만엔 짜리 "최고의 라면" 이야기를 꼽겠습니다. 값비싼 중국산 화퇴와 자연산 닭의 칭탕에다가 최고의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국물을 내고 조미료는 당연히 천연 간장에 구슈의 다네가시마 흑돼지 최상급 로스를 숯불 화로에 구워 올린 라면이라고 합니다. 재료비, 교통비를 모두 감안한 가격이 35만엔이라고 하는데 한번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다음으로는 5밀리 정도로 얇게 썬 가지를 넉넉히 참기름을 두룬 팬에 센불로 볶은 뒤 간장으로 마무리하는 가지 참기름 볶음입니다. "맛의 달인" 31권에 나오는, 제 기억으로는 가지 공포증이 있는 나카마츠 반장과 후쿠이 차장 아들에게 먹이던 요리였는데 만화로 볼 때보다도 더 집에서 해먹고 싶은 생각이 이 들게 만든게 의외였습니다. 아무래도 글이 그림보다 분위기, 식감, 느낌을 전달하는데 있어 상상력을 자극할 여지가 더욱 많기 때문인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글을 읽으니 만두만들기도 도전해보고 싶어지더군요. 작가의 가족처럼 피까지 만드는 것은 무리겠지만요. 또 "맛의 달인" 12권에 등장한 중국식 파이 "로빙"이 원래 있거나 유명한 요리가 아니라 순전히 작가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맛의 달인"에서는 뭔가 대단한 중국 전통 가정요리처럼 묘사되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에세이와 연관된 "맛의 달인"에 등장한 그림들이 충실히 실려있을 뿐 아니라 본문에 나온 음식이 맛의 달인 어느 권에 나오는지 부록이 실려있는 등 "맛의 달인" 팬에게는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내용은 딱히 새로운 것은 없으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에세이집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1.05 추가 ----이전에 읽었었던 걸 모르고, 다시 리뷰를 작성했었습니다. 별점과 내용에 대한 인상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개인 아카이브 차원에서 추가합니다.

"맛의 달인"의 원작자 카리야 테츠의 미식 관련 에세이집. 본문 내용은 "맛의 달인"과는 크게 관련은 없습니다. 하지만 "맛의 달인"에 소개되었던 요리들이 많이 등장하고, 삽화는 모두 "맛의 달인" 속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어서 아예 떨어트려 놓고 생각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자 카리야 테츠의 생각이나 행동거지가 '우미하라'로 대표되는 "맛의 달인" 이라는 작품에서 특정 음식과 맛을 고집하는 '맛꼰대' 그대로라서 더욱 그런 느낌이 짙어요. 예를 들어 요새 꽁치,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등등 (등장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는 먹을게 못된다, 옛날 친환경으로 길렀던 재료들에 비하면 음식도 아니다라는 주장이 책 전체에 가득하거든요. 좀 더 전문적인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나 때는 말이야~"와 다를바 없는 꼰대스러운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실망이 컸습니다. 게다가 이 주장에 등장하는 브로일러 닭, 응고제 글루코노델타락톤을 사용한 두부가 맛이 없다는건 "맛의 달인"에서도 여러 번 써 먹은 주제라서 딱히 흥미로운 내용도 아니고요. 이럴 바에야 그냥 "맛의 달인"을 보는게 낫죠.

물론 전문가스러운 이야기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버블 시대 방송국 지원으로 완벽한 라멘을 만든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함수 (칸스이 / 감수)를 넣지 않고 밀가루와 달걀만으로 반죽한 뒤 홍콩 전문가를 통해 면을 뽑고, 중국햄 화퇴와 닭으로 상탕을 낸 뒤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일본식 맛을 더하고, 숙성 간장으로 간을 한 뒤 고명으로는 흑돼지를 구워 만든 차슈를 얹어 만들었다네요. 재료는 모두 자연산, 최고급을 사용했기 때문에 한 그릇 만드는 비용은 35만엔!이라고 하고요. 35만엔으로 왜 라면을 먹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두부의 부자가 왜 "썩다"라는 의미의 한자를 썼는지에 대한 고찰도 재미있었습니다. 치즈 만드는 과정과 연결하여 '유부'라는 말에서 유자 대신 콩 자를 붙여 만든 말일 수도 있다는 설인데 꽤 그럴듯했습니다. 관련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질 정도였어요. 사시미의 어원도 충실한 자료 조사를 통해 잘 설명해 주고 있고요. 레시피도 틈틈이 실려있는데 가지 참기름 볶음도 간단해서 해 먹어봄직 하고, 집에서 만두를 만드는 이야기를 하면서 소개하는 '로빙' 레시피도 볼 만 합니다. "맛의 달인" 12권에서도 등장했던 바로 그 요리인데,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언젠가 꼭 도전해 보겠습니다. 만드는 김에 "맛의 달인" 60권에 등장했던 중화식 파호떡도 함께 만들어 보면 좋겠죠.

그러나 이런 류의 이야기는 극소수일 뿐더러, "맛의 달인"에 등장했었던 이야기가 많다는 약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구태여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맛의 달인" 팬을 위한 책이긴 한데, "맛의 달인" 팬이라면 딱히 읽어볼 필요가 없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지닌 책입니다. 2권까지 나왔던데 구입해 볼지 말지가 고민이네요. 어차피 절판되기는 했지만요.

2009/11/05

군청학사 - 이리에 아키 : 별점 4점과 3점들

군청학사 1 - 8점
이리에 아키 글.그림/중앙books(중앙북스)

군청학사 2 - 6점
이리에 아키 글.그림/중앙books(중앙북스)

군청학사 3 - 6점
이리에 아키 글.그림/중앙books(중앙북스)

아. 정말 간만에 재미있게 읽은 단편집입니다. 제목이 왠지 멋있는데 푸르른 청춘들이 모여든 장소를 의미한다네요. 내용은 꼭 그런것만은 아닌데 좀 의아하긴 하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니 엠마의 모리 카오루를 연상하신 분들이 많던데 저 역시도 비슷한 화풍과 섬세한 심리묘사를 몇컷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솜씨 등 유사한 분위기를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단지 그 정도로만 규정하는 것은 섭섭한 일이겠죠. 여러 작가의 장점들이 많이 떠올랐거든요.

첫 번째로 연상된 작가는 카페 알파의 아시나노 히토시입니다. 왠지 모르게 느슨하고 나른한 느낌과 정적인 분위기. 조용한 와중에도 독자의 흥미를 잡아끄는 섬세함과 디테일, 그리고 부드럽게 그린 그림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연상된 작가는 카와하라 유미코입니다. "전략 밀크하우스"보다는 단편집에서 선보였던, 전형적인 중세풍 판타지를 비롯해서 로맨틱 코미디, 청춘드라마, 학원물 등 쟝르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면서도 그 수준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대단한 능력 때문입니다. 저는 약간 코믹한 분위기의 단편들이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다른 작품들도 허투루 보기 힘들정도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랍더군요. 

세 번째로 연상된 작가는 백귀야행의 이마 이치코입니다. 이유는 이마 이치코의 오리엔탈 판타지에서 느껴졌던 복잡한 설정과 진한 여운, 그리고 특유의 코믹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진지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가가 굉장히 유쾌한 인물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작품들에 짙게 배어있는 유머 덕분에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로 연상된 작가는 아토리 케이코입니다. 단편 중심이라는 것과 밝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여유있는 화풍으로 그리고 있다라는 것이 정말 놀랄만큼 유사하죠. 아토리 케이코 보다는 조금 더 스케일이 큰 이야기들이 많고 드라마를 강조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말이지 비슷했어요. 아토리 케이코는 이미 고인이 되신지라 더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없다는것이 안타까왔는데 이리에 아키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지 않을까 기대도 많이 됩니다.

다섯 번째로는 섬세한 심리묘사, 그리고 유머와 더불어 일상속에서 디테일을 잡아나가는 분위기가 왠지모르게 요시나가 후미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었기에 언급하고 싶네요. 작풍과 표현 방식은 전혀! 전혀 다르지만 뭔가 감수성이랄까? 그런게 좀 비슷했던것 같달까요... 

마지막으로 연상된 작가는 TONO입니다. 구태여 작품을 고르자면 "카오루씨의 귀향"인데 기발하고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꾸며나가는 것과 유머가 작품에 전체적으로 녹아있다는 것이 비슷했습니다. 판타지에 강점을 보이는 것도 유사했고요.

하지만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이 고르게 완성도가 높다고는 하지만 2권의 "북의 십검"같이 별다른 특색없는 이야기도 있고, 첫 번째 이야기 외에는 그닥 새롭지 않은 핑크 초콜릿 에피소드 연작은 좀 지루했습니다. 

또한 별다른 이야기 전개 없이 특정 상황에만 집중한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보다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압축해서 전달하기도 하지만 여운만 가득할 뿐 이야기가 애매한 에피소드들도 눈에 띕니다. 예를 들자면 1권의 "이계의 창"이나 "숲으로" 를 들 수 있습니다. "박명"도 여주인공이 사실은 장님이었다 정도의 작은 반전이라도 선보이는게 더 좋았을 거에요. 아울러 3권은 전체적으로 1, 2권에 비해 작화나 구성에 힘이 떨어져 보여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개인적인 베스트 에피소드로는 1권에서는 "포로공주"와 "선생님 저는"을, 2권에서는 "니논의 사랑"을, 3권에서는 "빨간 지붕의 집"을 들고 싶네요. 별점은 1권은 4점, 2권과 3권은 3점입니다. 2권은 너무 평범했던 "북의 십검"이 절반 이상 분량이라 점수가 깎였고, 3권은 앞서 이야기한데로 1,2권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져서 감점했습니다. 

그래도 대체로 평균이상은 하는 작품들임에는 분명한만큼 수수하면서도 여유롭고, 그러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즐시기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일단 1권부터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2016/12/16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 - 구이 료코 (쿠이 료코) / 김완 : 별점 3점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 : 쿠이 료코 작품집 - 8점
구이 료코 지음, 김완 옮김/㈜소미미디어

"용의 학교는 산 위에"만큼의 긴 제목을 지닌 쿠이 료코의 단편집으로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용의 학교는 산 위에"는 영 아니었지만, 그래도 팬심으로 구입했는데 다행히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발상도 기발하며, 모두 길이에 걸맞는 완결성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서랍 속 테라리움"과 비교하자면, 의외성은 덜하지만 완성도가 더 높은 편이에요. 쇼트쇼트와 일반 단편의 차이점처럼요.

작품별 편차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쿠이 료코 팬들께는 적극 추천드립니다.

"용의 소탑"

바다 나라와 산 나라의 전쟁을 가로막는 국경 지대 용의 새끼가 부화하여 둥지를 떠날 때까지,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머물렀다. 교류가 끊긴 양국은 기본적인 물자 보급에도 문제가 생겼고, 마침 산 나라에 포로로 잡혔던 청년 '사난'은 소금을 가져다 준다는 약조 후 풀려나는데...

전형적인 중세풍 세계관에 ''이 등장하는 식으로 약간의 판타지가 결합된 시대물로, 막강하면서도 기묘한 존재 탓으로 적대하던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는(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힘을 합치듯이), 왕도스러운 내용입니다.
그러나 쿠이 료코스러운 변주가 딱 하나 들어간 덕분에 독특한 매력을 전해 줍니다. 바로 '교역'입니다. 전형적인 이야기에 딱 한 가지의 설정 추가로 독특함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던전밥"과 똑같네요. 결국 사난과 유르카가 하나가 된다는 해피엔딩도 마음에 들었고요.

등장하는 크리쳐는 '용'이라기보다는 그리폰 같았다는건 조금 이해가 안되지만,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인어금렵구"

누가 봐도 인어인 기묘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무대로 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는 않아요. 인어가 멀리 떨어진 학교로 가고 싶어하고, 주인공은 그것을 도와준다. 그리고 그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라는, 한여름날 짧은 만남 이후 추억과 여운을 남기고 각자의 길을 간다는 전개는 전형적인 "보이 미트 어 걸" 그대로고요. 이 와중에 약간의 성장기 느낌을 전해주는 것 역시 동일합니다.

그러나 "용의 소탑"이나 "던전밥"처럼 '인어'라는 설정이 추가되어 독특한 매력을 풍깁니다. 이 설정에 더해 비교적 짧은 분량 안에서 '서로 다르기에 마음을 전하기 힘들다'는 주제를 설득력 넘치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깔끔하면서도 흑백톤 위주의 작화 역시 이야기에 꼭 맞아 떨어져서 마음에 들었고요.

한마디로 익숙한 주제에 약간의 변주를 더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최고치로 발휘된 작품. 별점은 4점입니다.

"나의 신"

중학교 입시를 앞둔 소녀가 갈 곳을 잃은 물고기 신을 어항에서 키운다는 이야기로 신은 별다른 능력이 없고, 소녀는 입시에서 떨어진다는 현실적이면서 일상적인 결말이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이야기만 놓고 보면 딱히 대단할 것은 없는 소품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늑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늑대인간이 주인공인 드라마로 남녀 관계가 아니라 모자 관계 설정이 신선했습니다. 늑대인간이 실제 인간 세계에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상세한 설정들도 인상적이고요.

단, 지나치게 일상계스러운 내용으로 주인공 케이타의 약간은 철없는 행동이 사건, 드라마의 전부라는 것은 조금 시시했습니다. 그만큼 설득력은 높았지만, 이만큼의 상세한 설정을 만들었다면 더 극적인 이야기를 전개해도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무일푼 뱌쿠로쿠"

천재 화가 타카가와 뱌쿠로쿠가 무일푼이 된 후, 자신이 그렸던 사자, 호랑이, 용 등을 실체화시켜 큰돈을 벌고자 한다는 시대극 판타지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일본화를 모티브로 한 작화입니다. 붓을 주로 사용한 듯한데 정말로 빼어나고 시원시원한 구도도 돋보인 덕분입니다. 뱌쿠로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위작의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나중에 아들이 그린 그림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한마디로 쿠이 료코라는 작가의 넓은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 자식이 어여쁘다고 용은 운다"

왕자 준이 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용의 비늘을 얻으려 나섰다. 길 안내를 맡은건 마을 이방인 준이었다.
용을 잡으러 가는 험한 길에서 병사들은 계속 낙오되었고, 결국 부상당한 왕자만 남았을 때 준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왕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기에 그것을 복수하려 한다는 것...

뻔한 복수극으로 의외성도 없고, 이야기도 좀 막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용의 알과 자식을 동일시하는 전개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처집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누타니 일족"

초능력 가문 이누타니 일족의 집에 소년 탐정 도다이치 코우스케가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실수로 일족의 초능력이 들통날 위기에 처해 그것을 숨기려 하나, 오히려 도다이치 코우스케는 연쇄 살인극으로 의심하며 겉잡을 수 없이 폭주하는데...

제목(원전은 "이누가미 일족"이지요)과 설정부터 여러 작품을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으로 다양한 초능력을 지닌 가족들의 행동을 ‘살해당했다’고 오해해 진상을 추리하려는 탐정의 행동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나 싶을 정도로 기발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오렌지로드"에서 초능력을 감추려는 카스가 패밀리의 노력이 겹쳐져 왠지 모를 향수가 느껴진 건 덤이고요.
강대한 힘을 과신하다가 화를 부른 상황에서, 가장 쓸모없을 줄 알았던 아리사의 ‘입고 있는 옷을 파자마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반전도 돋보였습니다.

또 보통 소년 탐정이 사건에 뛰어드는 이유 — 자기와 관계도 없고 부탁한 사람도 없는데 왜 이렇게 애를 쓰지? — 에 대해 ‘자기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힘을 써야 할 때 쓴다’라는 슈퍼 히어로스러운 마인드로 알려주는 점도 괜찮았어요. 하기사 명탐정이 슈퍼 히어로와 다를 건 별로 없지요.
‘힘을 써야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쓴다, 그러나 힘을 과신하지 말라’는 주제 역시 여러모로 생각해볼 거리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다양한 장르물에 대한 깊은 이해에 더해 유쾌한 분위기, 적절한 반전, 심오한 주제까지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작입니다. 단점이라면 너무 짧다는 것과 결말이 약간 시시했다는 것 정도? 그래도 별점 4점은 충분합니다. 장르소설 애호가라면 이 작품만큼은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012/08/23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상)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5점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상 - 6점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하)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5점

먼저 읽었던 하권에 이은 상권.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4호 부검실
검은 정장의 악마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잭 해밀턴의 죽음
죽음의 방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그다지 무섭지 않으며 강한 심리 묘사가 중심이라는 특징은 하권과 동일합니다. 그래도 교훈적인 주제는 하권만큼 많지는 않더군요. 조금 더 재미에 치중한 작품들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 개인적인 베스트는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입니다.

<제 4호 부검실>
의식이 있지만 몸 전체가 마비된 주인공이 부검실에서 부검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것을 깨닫는다는 스릴러. 그에게 닥칠 부검이 언제 시작될 것인지에 대한 긴장감이 부검실 의사들의 유머러스한 대화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블랙코미디같은 느낌도 큽니다. 결말이 예상대로이긴 하나 코미디로 보면 괜찮은 듯. 별점은 2.5점입니다.

<검은 정장의 악마>
한 노인이 20세기 초엽, 자신이 아홉살 때 만났던 악마에 대해 털어놓는다는 내용. 너새니얼 호손의 <영 굿맨 브라운>에 대한 개인적 헌사이며 킹 본인은 별볼일 없는 결과물로 생각했지만 반응도 좋았고 상도 탔다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킹 의견에 동의합니다. 별볼일 없었어요. 호손 시대에 쓰여진듯한 오래된 감수성이 확실히 느껴지기도 했을 뿐더러 별로 무섭지도 않았거든요.
게다가 전개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악마가 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고 제대로 추격하지 않은 이유도 명쾌하지 못한 등 떡밥만 가득할 뿐이라서 말이죠. 중후반부 악마와의 추격전 하나만큼은 긴장감이 넘치지지만 단점이 워낙 명확하기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한 세일즈맨이 자살을 하려다 평생 모은 화장실 낙서에 대한 노트의 처리를 놓고 고민한다는 드라마. 탁월한 심리묘사에 화장실 낙서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잘 어우른 걸작 소품. 길이도 적당할 뿐더러 삽입된 낙서들이 참 적절하더군요. 그리고 열린 결말이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잭 해밀턴의 죽음>
딜린저 갱단의 일원이었던 잭 해밀턴의 죽음을 딜린저의 오른팔 호머 반미터가 회고하는 안티 히어로 물이자 신화이자 팩션. 실제로 있었음직한 생생함이 압도적입니다. 딜린저에 대해 모르면 즐기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지만...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창작 동기가 킹이 호머 반미터가 파리에 올가미를 던지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단지 그 정도의 소스로 이렇게나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꾸며내다니, 역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 하나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구나 싶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죽음의 방>
남미 한 국가 고문실에 잡혀온 미국기자 플레쳐의 탈출을 그린 모험물.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전개가 일품인, 서스펜스 하나만큼은 최고로 치고 싶은 작품입니다. 금연한 사람에게 담배를 피고 싶게끔 만드는 효과도 있는데 흡연 장려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결말은 그닥이나 흥미진진한 것은 확실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
<다크 타워> 시리즈의 번외편 단편이라고 합니다. 원전을 읽지 않아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느낌은 <북두의 권> + <트라이건> 정도 되려나요? 이 작품집에서 가장 긴, 중편에 가까운 길이를 자랑합니다.
일단 수녀들의 정체, 녹색 괴물들과 끔찍한 벌레들이 등장하는 등 호러 판타지로서의 묘사와 설정은 좋습니다. 그러나 포로가 된 히어로와 그를 돕는 비련의 히로인 그리고 둘에게 닥친 비극적 결말이라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조금도 더 나아간 것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이래서야 인어공주의 다크버젼일 뿐이죠. 물거품이 아니라 벌레가 되었을 뿐.
때문에 제게는 알맹이가 별로 없는 흔해빠진 호러 판타지였을 뿐입니다. 젤라즈니가 왜 대단한지 다시금 느끼게 해 주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사람을 자살로 유도하는 초능력을 가진 딩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관에 고용되어 안락한 삶을 누리지만 자신이 살인에 이용되었음을 깨닫고 탈출을 결심한다는 이야기.
설정도 흥미진진하고 이야기도 재미있기는 한데 영화로 따지면 기본 설정과 주인공 소개 후 막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할 때 끝나는 느낌이에요. 기-승 까지만 있다는 느낌? 그래서 완성도는 높이 쳐주기 어렵네요. 뒷부분을 따로 본다면 모를까.
덧붙이자면 작가 스스로 밝힌, 창작 동기인 잔돈을 버리는 청년에 대한 설명도 그닥 잘 되어 있지 않더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5/02/23

세인트 세이야: 더 비기닝 (Knights of the Zodiac) (2023) - 토마스 바진스키 : 별점 1점

"세인트 세이야"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 원작의 오랜 팬으로, 옛 추억을 되살리고자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장점이라면 주인공 세이야 역을 맡은 아라타 맛켄유의 비쥬얼, 그리고 일부 액션 장면입니다. '성투사'의 싸움답게 맨몸 액션이 펼쳐지는데, 세이야가 각성한 뒤 카시오스를 포함한 구라드의 부하들을 인형처럼 내동댕이치는 장면이라던가, 성투사 피닉스의 성의 액션, 마이록을 연기한 마크 다카스코스가 선보인 권총과 곤봉을 활용한 액션 등이 그러합니다. 원작 팬이라면 비교적 원작에 가깝게, 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구현된 마린의 등장은 만족할 만 하고요.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장점을 제외하면 영화의 완성도는 전반적으로 처참합니다. 우선, 무슨 이야기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이야는 마린에게 훈련을 받던 중, 알먼이 누나 패트리샤를 납치한 일당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훈련을 중단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갑자기 아테나를 데리러 온 구라드를 막기 위해 카시오스 일당과 싸웁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져서 전개가 엉성하고 난잡합니다. 아테나가 각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구라드는 아테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처럼 보였던 도스카라스가 구라드의 부하에게 한 방에 쓰러져 포로가 되는 장면도 황당했어요. 배우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각본이 별로라면 적어도 볼거리라도 화려해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CG 티가 강하게 나는 화면도 조악하고, 앞서 언급한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액션 연출도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맛켄유의 액션 연기가 어색해서 많이 거슬렸습니다. 그나마 볼만했던 액션 장면들은 성의를 입은 후에야 등장하는데, 이 점을 고려하면 주요 액션 장면에서는 대역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어야 할 성투사들의 싸움이 맛보기 수준이며 심지어 페가수스 유성권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원작 팬들이 가장 기대했을 대표적인 기술이 빠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덕분에 페가수스와 피닉스 성투사의 클라이맥스 대결 장면은 80년대풍 특촬 영화보다 못한 빔 공격 연출이 반복되면서, 원작의 느낌을 살리지 못하고 어설프게 마무리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영화의 완성도는 매우 낮습니다. 스케일을 줄이고 원작 초반부의 줄거리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성투사 변신 장면과 성투사들 간의 격투를 좀 더 멋지게 연출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별점은 1점인데, 솔직히 1점을 주기도 아깝습니다. 여러분들은 시간 낭비 하지 마시고, 이 작품은 쳐다도 보시지 말기 바랍니다.

2005/08/18

웰컴 투 동막골 - 박광현 : 별점 4점


1950년 11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때, 외딴 산속 깊은곳에 추락한 P-47D 미 전투기 조종사인 연합군 병사 스미스(스티브 태슐러)를 근처의 마을 동막골의 주민들이 그를 구해준 후 정성으로 돌봐준다. 한편 동막골에 살고있는 여일(강혜정)은 우연히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일행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동막골로 데리고 온는데 바로 그 때, 자군 병력에서 이탈해 길을 잃은 국군 표현철(신하균)과 문상상 일행이 동막골 촌장의 집까지 찾아 오게 되면서 양측 진영의 긴장감은 극도로 고조된다.

하지만 대치중 실수로 떨어트린 수류탄이 마을 곳간을 날려버리고, 인민군과 국군은 어쩔 수 없이 곳간을 다시 채워주기 위한 기간동안 동막골에 머물게 되면서 전쟁도 모르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동막골의 순진한 사람들과 서서히 하나가 되어간다. 그러나 동막골에 추락한 미군기가 적군에 의해 폭격됐다고 오인한 연합군은 주요 요충지 선상에 있는 동막골을 집중 폭격하기로 결정하고 스미스 구출대를 먼저 파견하지만 구출대와 어쩔 수 없는 교전 끝에 생포한 포로에게서 폭격 계획을 들은 3국의 연합군(?)은 폭격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한 작전을 준비한다....

6.25 전쟁때의 한국군과 북한군, 거기에 연합군까지 모이게 되는 상황이 영화의 주 내용인데 전쟁영화에서 이렇게 적대하는 양 진영이 하나로 화합하는 내용은 사실 2차대전 영화에서도 많이 나왔던 소재죠. 독일군-미군이 하나가 되는 영화도 있었고 미군-일본군이 하나가 되는 영화도 본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동막골"이라는 유토피아를 위해 양 진영이 마지막에 "하나"가 된다는 것이 차이점인 것 같네요. 그만큼 "동막골"이라는 공간이 누구나 이념을 버리고 하나가 되는 과정이 당연하다 여겨질 정도로 너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뭐 환타지이자 동화스러운 설정이긴 합니다만 잘 표현된 덕에 설득력도 강해요.

덧붙여 촬영과 배경, 전개에 관한 모든 것이 디테일이 굉장히 좋습니다. 동막골 사람들이 등불로 쓰는 탈바가지(?)에서 시작해서 아담한 동막골의 모든 요소요소들이 마음에 들더군요.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요. 신하균 이 친구 최근에 부진하더니만 꽤 괜찮은 역할로 부활하네요. 임하룡의 연기도 이젠 완전 정극배우로서 물이 오른 것 같고 광녀역의 강혜정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 외에 조연들, 특히 동구역의 꼬마 등도 그 인물 자체로 밖에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움으로 영화를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원래는 장진감독이 각본을 쓴 연극이라죠? 그래서인지 대사들도 감칠맛있고 상황설정도 유머러스해서 영화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 역시 영화를 환타지-동화 스러운 분위기로 끌고 가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고요.

하지만 마지막에 동막골을 찾아온 연합군 구조대를 사살하고 연합군 폭격대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장면은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결국 유토피아와 하나가 될 수 있던 그들이 손에 피를 묻힐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왜 필요했을까요? 폭격에 대한 정보만 입수해서 어떻게든 폭격 지점을 바꾸기 위한 노력 정도만 살짝 보여주고, 아름다운 작전의 성공 후에 미소짓는 와중에 폭탄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말이죠... 막판에 너무 피가 난무해 버려서 환타지, 동화로서의 이미지가 많이 깨져버린 듯 싶네요.

그래도 저는 무척 재미있게 봤습니다. 한편의 동화로서 말이죠. 전쟁 영화들 특유의 적나라한 묘사보다는 따뜻하고 유머스러운 묘사가 넘쳐 보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별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올해 본 한국 영화 중에서는 최고였어요. 별점은 4점입니다.

PS :그런데 마지막 에필로그, 저는 왜 "죽이지 않았나?"에 대한 설명이 한번 나와줄 줄 알았는데 머리에 꽃을 꽂아주는 에피소드만 표현되더군요. 무슨 의도 였는지 약간 궁금하기도 한데, 사족 아니었을까요?

2005/03/06

제 5 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 커트 보네거트 / 박웅희 : 별점 4점

제5도살장 - 8점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아이필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주인공 빌리는 검안사로 성공하여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퇴원한 날 부터 자신이 예전 딸의 결혼식 날 머나먼 "트라팔마도어"행성인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다니게 된다. 빌리는 "트라팔마도어"로 납치된 이후 유럽의 전장에서부터 '현재'와 미래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초월적인 경험을 한다.

제목의 "제 5 도살장"은 드레스덴 폭격 당시의 미군 포로 수용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부제인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이 더 어울리는 것 같지만요.
그런데 이 책은 도대체 어떤 장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SF나 반전소설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작품이에요. 작가가 직접 경험했다는 2차 대전에서의 드레스덴 폭격에 대한 일화를 단순히 담아낸게 아니라 빌리라는 존재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닮아 있지만 결정적 파국, 즉 종말은 피할 수 없다는 종말론적 사고방식은 또한 기독교의 그것인데도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극중 주인공 빌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공 초월에 대한 소설적 접근은 엄청나게 새로우면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또한 재미도 있습니다. 짤막한 단상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소설을 이루는데 그 단상들의 등장인물들이 엄청나게 방대하고 사건들도 다양함에도, 또한 시간과 공간이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소설로 성립되는데 재미까지 있다는 점은 정말 놀라워요.
그리고 "트랄파마도어" 행성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정의! 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지는지에 대한 해답. 즉 복음서의 의도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것을, 나아가 낮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지만 실은 "누구를 죽이기 전에, 그자에게 든든한 연줄이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하라"라고 가르친다라는 부분은 너무나 멋집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종말은 피할 수 없으니 가장 즐거운 시간을 즐겨라"라는 사고방식도 왠지 공감이 가네요. 채근담이었나요? 흡사 군대 훈련소 시절 화장실 벽에 붙어 있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과 왠지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하긴, 이 책은 군대소설이기도 하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명성에 충분히 어울리는 좋은 작품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 작가 어쩌구 하는 선전문구가 꼭 필요했을지는 의문이나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에서 표현했던 "중간의 어떤 페이지를 열어도 멋진 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정말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영화화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뒷 해설에 나오는데,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하네요.

2020/08/16

소년탐정 칼레 2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햇살과나무꾼 : 별점 3점

소년탐정 칼레 2 - 6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논장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방학, 붉은 장미군과 흰 장미군의 처절한 (?) 전투가 벌어졌다. 흰 장미군이 빼앗은 붉은 장미군의 보물 '성상'을 지키기 위해 안데스는 에바 로타에게 성상의 위치를 옮겨놓을 것을 지시했고, 명령을 수행하던 에바 로타는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범인은 유일한 증인인 에바 로타를 없애고, 증거인 차용증을 회수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데...

1권에 이어 읽게 된 2권입니다. "녹슨 도르래"에서 도야마 점장이 추천한건 이 2권이기 때문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와 도야마 점장 모두 대단합니다. 제가 아동용 추리 소설 시리즈를 2권이나 사게 만들다니!

그런데 2권은 확실히 추천할만 하더군요. 1권에서 단점이라고 말씀드렸던 '장미 전쟁'이 이 작품에서는 글렌 할아버지 살인 사건복선으로 잘 활용되고 있거든요. 에바 로타가 차용증 때문에 다툼이 난 걸 알게된 것 부터 '장미 전쟁' 덕분이에요. 장미 전쟁 중 포로로 잡힌 안데스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글렌 할아버지 집 지붕에 올라가다가 할아버지와 손님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니까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빈 집 지주 저택에서 에바 로타가 범인과 맞닥뜨렸을 때 위험을 알린 방법도 '장미 전쟁'에서 사용된 일종의 암호인 '산적말' 이며, 범인을 지주 저택에 한 개 밖에 없는 열쇠 있는 방에 가두는 데 성공하는 것 역시 '장미 전쟁' 때 한 번 갇혔었기 때문이고요.
에바 로타에게 배달된 초콜릿에 이 들었다는게 밝혀지는 이유도 '장미 전쟁' 덕분입니다. 안데스가 전쟁의 핵심인 '성상'을 숨기려다가 먹지 않고 남겨두었던 초콜릿을 개에게 주었는데, 개가 다음날 크게 아파서 독을 먹었다는게 밝혀지기 때문이죠. 에바 로타와 칼레가 초콜릿을 왜 안 먹었는지는 설명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복선으로서 두말할 나위 없는 역할을 수행한 셈입니다. 

또 삼총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경찰을 불렀던게 '붉은 장미군'이라는건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칼레가 오줌이 마렵다면서 숲에 들어가, 한창 전쟁 중이라 숲에 숨어있던 '붉은 장미군' 식스텐 삼총사에게 부탁을 해서 경찰이 도착하게 된 것이지요. 주인공 삼총사 외에 다른 지원군은 없을 거라는 맹점을 잘 파고든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고리대금업자가 살해당한다는 강력 사건이 등장하는 탓에 이게 정말 어린아이용 작품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범인이 유일한 목격자인 아이들마저 죽이려는 흉악범이라는 묘사 역시 그닥이었고요. 살인보다는 차용증 절도 정도로 좀 가볍게 (?) 넘어갔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옛날이 이런 부분에서는 아동용이라도 가차없고 과격했던 듯 합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도야마 점장의 추천만큼의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3권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2012/04/30

혹성 탈출 - 피에르 불 / 이원복 : 별점 3점

혹성 탈출 - 6점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주)태일소담출판사

베텔게우스 계로 우주여행을 떠난 기자 윌리스 메루 일행은 지구와 거의 흡사한 환경의 "소로르"라는 행성에 착륙하여 그곳의 인류와 만났다. 그러나 소로르의 인류는 지성은 없는 원시 상태였고, 윌리스 일행은 고릴라가 인류를 사냥하는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곧이어 윌리스도 고릴라들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데...

70년대를 풍미했고 2000년대를 거쳐 얼마 전 프리퀄(또는 리부트) 신작이 나와 히트한 바로 그 영화의 원작 소설. 저야말로 이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세대입니다. 영화는 어렸을 때 TV에서 전편을 소개해 줄 때 감상하였고, 팀 버튼의 괴작도 극장에서 감상했거든요. 이렇게 워낙 많이 접하다 보니 원작 소설도 영화 올드 버전 1편의 내용과 거의 동일할 것이라 생각해서 썩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의외의 요소가 많더군요. 일단 제일 놀라웠던 것은 정통 SF라는 점이었습니다. 영화에서와 같은 모험물적인 속성은 거의 없는 작품으로, SF적인 디테일도 괜찮더군요. 항성 간 우주여행 등의 설정이 잘 묘사되어 있는 덕분입니다. 문명의 진보에 대한 이론은 솔깃하기까지 했고요.
게다가 SF 세계관 속에 인류의 무기력한 미래에 대한 풍자를 녹여낸 솜씨는 지금 읽어도 대단했습니다.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생각되는 부분 ("넌 너무 못생겼어!")도 기가 막혔고요. 전혀 낡아 보이지도, 유치해 보이지도 않는, 시대를 초월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러나 전개 면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가장 거슬렸던건 인류가 급격하게 몰락한 이유를 구태여 드러내려 한 부분이에요. "뇌 수술"을 통한 일종의 "빙의 현상"이라는 수단부터가 작가가 너무 쉽게 간 느낌이라 별로인데, 이유 자체도 단순한 무기력이라는 것이라서 와닿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설명하지 않는 게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죠.
두 번째는 앙텔 교수의 정신 붕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혼자 떨어져 몇 달 지냈다고 이 소설에서처럼 급격한 정신적인 퇴행이 이루어진다는건 말이 안 됩니다. 이 부분만큼은 영화에서처럼 뇌 수술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 외에 윌리스 메루의 이름부터 패러디의 의미가 있다는 등의 (이름은 율리시즈이지만 성은 물고기?) 원어 한정 풍자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도 조금은 안타까웠고요.

마지막 반전 두 개 (윌리스가 지구에 도착한 이후와 마지막 장면) 모두 상상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도 아쉽기는 한데, 이건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겠네요. 이 작품이 선구적인 작품이니까요. 단지 국내 정식 소개가 늦어서 손해를 본 것 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3점.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통할 만한 아이디어와 재미를 갖춘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이 바닥의 클래식으로, 장르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려요. 너무 늦게 출간된 것은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게 된 것에는 감사해야겠죠.

2021/08/15

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유성운 : 별점 1점

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4점
유성운 지음/이다미디어

총 6장 구성으로, 이런저런 한국의 역사적 상황이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걸 알려주는 역사서입니다. 신라 4대왕 석탈해의 다파나국은 캄차카반도인가?, 고대 남부 한반도 왜의 위치는 한반도 남부를 포함할 수 있다, 처용은 페르시아 왕자일 수 있다, 金을 왜 금이 아니라 김이라고 읽게 되었나?, 왕건의 호남 차별론은 사실인가? 등 목차만 보아도 흥미로우며, 재미있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사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구성도 좋았고요. 도판들도 빼어나며 특히 제목처럼 지도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하자면, 金을 김이라고 읽게 된 이유입니다. 원래는 조선 왕가와 관련된 음양오행설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최근 설은 수, 당 시대만 해도 '금'에 가깝던 발음이 5대 10국을 거치며 '김'에 가까운 발음으로 변했기 때문이라는군요.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고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몽골 상류층 이름에 金이 많아서 발음 변화가 퍼졌다는 설인데 꽤 그럴싸했어요. 

왜 중국의 왕조들이 한반도를 완전히 정복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이른바 '실용적인 외교'를 잘 했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인 예로 서희가 거란과 강동 6주를 얻어낸 담판을 들고 있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국교를 위해서는 여진이 머무는 압록강 일대 확보가 필요하니, 그걸 달라는 요청이었다면서요.

하지만 당시 고려군은 이미 두 번의 승리를 거두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냥 말 만으로, 외교만으로 평화와 땅을 얻어낸건 아니지요. 이게 적합한 예인지는 아리송합니다. 이 보다는 항복하러 몽골로 향하던 고려 태자 왕전이, 몽케 칸이 급작스럽게 죽자 후계자 후보 중 쿠빌라이에게 미래를 걸었던 행동이 더 좋은 예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자료와 소문을 수집했다 하더라도 이건 순전히 '감' 이었다고 생각은 됩니다만... 

고려 말, 토지 개혁을 외치며 건국했던 건국 공신들이 결국은 자기들 잇속을 챙겼다는 이야기는 씁쓸했습니다. 공신 조준이 받은 표지는 현재 기준으로 약 124만 7,300평이나 된다니까요. 고려에서도 최고의 권문세족 가문이었던 조준이 혁명에 동참했던건 다 이런 이유가 있던 거지요. 왠지 청렴한 학자일 것 같은 퇴계 이황도 무려 36만평이 넘는 땅부자였다고 하니, 돈이 없으면 성공 못하는 세상인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것 같네요.

이외에도 17세기, 전 세계를 강타했던 소빙기 한파로 조선이 입었던 피해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부분이라던가, 조선에서도 서울 주택 가격은 100년 동안 10배 가량 뛰었다는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큽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치게 본인 생각이 많이 담겨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게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도공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이 일본에 남은건 비극이 아닐 수도 있다, 이들이 조선에 남았더라면 이런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시각이에요. 당시 끌려간 포로 일부는 조선 귀환을 거부했다는 사료를 토대로, 조선이 문제였다고 마무리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이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는 논리하고 똑같죠. 애초에 왜 끌려갔는지를 망각한 망발입니다.

이러한 친일적 시각은 왜의 위치에 대해 분석하며, 그들이 실제로 가야와 신라 이남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보는 내용 등에도 진하게 묻어 나옵니다. 아울러 역사적 상황이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다며 추가한 저자의 개인 의견들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사 도감에 이런 내용이 들어갈 이유도 없고, 그나마도 한 쪽에 치우쳐진 개인적인 시각이라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신진 사대부를 강남 좌파에 비유하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이런 내용이 포함된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알았다면 절대로 읽어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서로 볼 수 없습니다. 개인의 잡문에 가깝습니다.

2011/04/27

로빈슨 크루소 - 다니엘 디포 / 남명성 : 별점 4점

로빈슨 크루소 - 8점
다니엘 디포 지음, 남명성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펭귄 클래식 코리아에서 출간된 완역본입니다. 50% 세일행사 때 구입한 것입니다. 충동구매였는데 로빈슨 크루소의 파란만장 표류기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넘칠 뿐 아니라 나름의 교훈을 잘 전해주고 있기에 구입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동양적인 무송, 안빈낙도의 철학과 맥락이 같기도 하고요. 

또 두꺼운 분량에 걸맞게 옛날 아동용 책으로 보았을 때는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 정말 많은데, 하나하나가 모두 드라마틱하다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로빈슨이 제법 괜찮은 중산층 자식으로 나름 훌륭한 교육을 받았지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뱃사람이 되어 불운이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터키의 포로가 되어 2년 간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에 성공한 뒤 브라질에서 농장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별 의미없는 항해에 나섰다가 30여년을 살게 되는 카리브해의 무인도로 표류하게 되었다는 등 로빈슨 크루소의 인생역정이 정말로 드라마틱하게 그려지거든요.

그 외에도 프라이데이가 사실은 식인종 출신이라던가, 섬을 탈출하게 된 것은 영국배에서 일어난 선상 반란 진압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던가, 이후 브라질 농장을 처분하여 거부가 되어 표류했던 섬을 스스로의 영지로 삼았다는 후일담까지 새로운 내용이 무척 많았습니다.

아울러 아동용에서는 대충 넘어간 표류 생활 자체의 디테일도 발군이더군요. 그야말로 서바이벌 전문가 급의 내공이 보이는 것도 재미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물론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한 섬은 먹을 것과 식수를 구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고, 로빈슨 크루소도 난파한 배에서 이거저거 필요한 물건을 잔뜩 얻는다는 설정이 있는 탓에 베어 그릴스하고 비교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그래도 깨알같은 디테일은 놀라울 정도에요. 사냥, 농사, 집을 만드는 과정부터 여러가지 방법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과정이 그만큼 상세합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건 역시나 "담배파이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인데, 확실히 담배가 중독성이 강하긴 강한가봅니다.

그러나 쓰여진 시기가 18세기 초반인 만큼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만나는 유색인종은 모두 노예?)과 종교적 색체가 너무 짙은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이중 종교적인 부분은 쓰여진 시기와 로빈슨 크루소에게 분명 신이 필요했던 순간이 있었던걸 감안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읽기에 정도가 과했던게 문제입니다. 그래도 식인종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대해주며 학살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는 모습 등에서 약간이나마 진보적인 사고방식이 엿보인 것은 다행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저도 혼자서 표류하듯 떠나고 싶은 요즈음이라 좀 후하게 준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읽기를 잘 한것 같아요. 왜 지금까지 이렇게나 많이 읽히는 지를 잘 알려주는 완역본입니다. 아동용 모험물로만 접하셨던 모든 성인분들께 추천합니다.

2021/01/16

스파이스 - 잭 터너 / 정서진 : 별점 2점

스파이스 - 4점
잭 터너 지음, 정서진 옮김/따비

스파이스, 즉 향신료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그리고 왜? 향신료가 이렇게 큰 인기를 끌고 교역 대상이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식문화사이자 미시사 서적입니다.

이 중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왔습니다. 책이 향신료 교역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그리스, 로마 시대 부터가 아니라 콜럼버스, 바스쿠 다 가마 등 포르투칼과 스페인 탐험가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 읽다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니까요. 모험과 탐험 이야기이니까 당연하겠지요. 특히 다 가마가 인도 캘리컷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간단한 제노바어와 카스티야어를 할 수 있던 튀니지인을 만났던 순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 튀니지인 : 빌어먹을, 당신네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지?
  • 데그레다도 (처음 외지인과 접촉하는 사람) : 우리는 그리스도인과 향신료를 찾아서 왔다.

이 엄청난 대모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후 포르투칼인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캘리컷에 포격을 퍼붓고 잔인하게 포로를 죽였다는데, 유럽인들의 자기 중심적인 논리가 극초기부터 작용했다는건 씁쓸하네요. 그들이 '미개인' 이라고 불렀던 신대륙이야 그렇다쳐도, 그들 이상의 문화와 문명을 가진 다른 세계는 대화를 통해 협조를 구하는게 마땅했습니다. 하긴, 이런 자국 중심 논리는 지금도 없어지지 않았지요.

그리고 본격적인 향신료 무역 역사가 소개되는데, 로마 시대에 이미 인도와의 향신료 교역로가 개척되어 존재했다는건 놀랍더군요. 이집트가 로마의 속주라 홍해를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었던 덕분입니다. 홍해를 지나 아라비아 반도, 인도양을 지나 계절풍을 타고 서고츠 산맥 근처 항구에 기항하는 항로였습니다. 여기서 확보한 후추 및 각종 향신료는 로마 사회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가격도 우리 생각만큼 비싸지는 않더라고요. 후추 1파운드 (450g)가 자유 노동자 이틀치 일당이었다니, 대충 최저 시급을 9천원으로 계산하면 14만원 정도 되는 셈입니다. 100g에 3만 2천원 정도라면. 아주 대단한 사치품이라고 하기는 조금 어렵겠지요.
조금 의외였던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 향신료를 항상 과하게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도를 넘는 향신료 소비가 이어졌고, 이러한 향락, 사치 풍조가 로마 멸망의 원인이니, 향신료도 로마 멸망에 일조한 셈입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이 홍해 항로를 장악하며 직접 교역이 끊기면서 비잔틴, 이슬람 상인을 통해 향신료를 수입해 사용하다가 앞서 설명한 포르투칼과 스페인에 의해 대항해 시대가 열려 향신료 수입 무역이 재개되었으며, 포르투칼과 스페인의 패권이 네덜란드, 영국에 의해 무너지고 현재에 이르는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향신료가 이렇게 널리 사용되고, 큰 돈을 벌어다 주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몇가지 핵심만 요약하자면, 일단 유럽인들은 향신료가 파라다이스, 즉 지상낙원에서 자란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종교적 상상을 뛰어넘는 일종의 진리이자 신조에 가까왔다고 하네요. 즉, 향신료는 에덴 동산에서 온, 기쁨과 같은 의미를 가진 어휘였던 거지요. 향신료 중에는 이름이 아예 grains of paradise라는 것도 있었다니까요. (지금의 멜레구에타 후추입니다) 그래서 '향기' 를 이용하기 위해 종교적으로 굉장하 중요하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중세 의학의 중심이었던 체액론에서 향신료가 중요한 요소였던 탓도 큽니다. 건강, 그리고 '성' 측면에서 향신료가 치료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음식 부패가 심해서 냄새와 맛을 감추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 보다 새로 재료를 사는게 더 싸니 당연하겠지요. 오히려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순절이나 겨울철에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생선 등만 먹는 경우가 많아서 향신료가 어쩔 수 없이 사용되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향신료 와인은 당시 술의 품질이 굉장히 떨어져서 생겨났다고 하고요. 이외에 당연히 사치, 과시를 위해 쓰여진 측면도 존재했기에, 이런 이유들로 왕실에서는 많이 사용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비쌌고, 무역업자들에게는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죠.

근대로 접어들면 후추는 수입이 늘어나며 꾸준히 가격이 하락했고, 상류층 관심은 좀 더 희귀한 향신료로 이동하였다고 합니다. 클로브나 넛메그같은 향신료로요. 넛메그를 손에 넣기 위해 네덜란드가 뉴암스테르담, 즉 뉴욕을 포기한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러시아가 알라스카를 미국에 판 것과 비슷한 멍청한 행동으로 소개되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그럴만 한 행동이었어요. 네덜란드가 넛메그로 벌어들인 이익은 원가의 2,000%에 달했다고 하니까요. 몇 년 장사를 잘 했다면, 다시 돈으로 뉴욕을 확보할 수도 있으리라 여겼겠죠. 

뒤이어 설탕, 차, 초콜릿, 커피 등에게 그 지위를 넘겨준 현재가 짤막하게 소개되고 책은 마무리됩니다. 스파이스 시대의 종말이 찾아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파이스가 흔해졌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 이후 탐욕을 금했고, 종교 시장에서 향신료는 퇴출되었으며, 근대에 접어들면서 향신료가 가지고 있었던 이런저런 신비로운 이미지는 모두 희미해지고 재료의 맛을 강조하는 레시피가 유행하는 등의 영향도 컸고요. 이 책에 언급된대로 지금은 향신료를 많이 쓴 요리는 왠지 모르게 후진적이라는 이미지가 덧 씌워져 있지요.

이렇게 큰 틀에서 향신료, 스파이스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문제는 단점도 크다는 겁니다. 제일 큰 단점은 지루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향신료가 널리 사용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엄청나게 지루합니다. 종교적, 의학적, 식문화적 등의 이유가 나열되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계속 반복되는 탓이에요. 주제별로 묶어서 핵심만 요약했어야 했습니다. 도판도 별다른게 없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디테일한 설명은 좋지만, 너무 세부적인 부분에 집착해서 거시적인 흐름을 보기 힘들다는 단점도 만만치 않습니다. 향신료가 인기가 있었다는건 반복된 설명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향신료 교역은 항로를 개척했던 몇몇 인물들과 몇몇 교역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만 소개될 뿐, 어떻게 항로와 무역 흐름이 진행되고 변화되어 왔는지가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국가간의 큰 흐름없이 세부적인 사건과 에피소드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포르투칼과 스페인이 향신료 교역을 직접 인도 항구에서 시도했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교역을 했을까요? 또 어떻게 이들의 패권을 네덜란드가 빼앗아 올 수 있었을까요? 다른 유럽 국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 와중에 인도양을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 그리고 동방의 맹주 중국은 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요?
또 항로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제대로 된 지도 하나 수록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에요. 읽으면서 계속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는데, 불편하기도 불편할 뿐더러 항로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지도는 없어서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분량은 방대하지만, 쓸데없이 길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직전 읽었었던 "외국어 전파담" 처럼 세계사적인 흐름과 합쳐서 더 큰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정리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구태여 권해드릴 만한 책은 아닙니다.

2021/07/04

태평양 전쟁 - 유진 B. 슬레지 / 이경식 : 별점 3점

태평양 전쟁 - 6점
유진 B. 슬레지 지음, 이경식 옮김/열린책들

저자 유진 B. 슬레지가 직접 참전해서 싸웠던 2차 대전 태평양 전쟁에서의 경험을 서술한 회고록이자 전쟁사 서적입니다. 책은 저자가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슬레지(별명은 이름에서 따온 "슬레지해머")는 샌디에이고 훈련소에서 여러 주에 걸친 가혹한 훈련을 받고 한 명의 해병대원으로 성장한 뒤, 제 1 해병사단 제 5연대 3대대 소속 박격포병으로 1944년 펠렐리우 섬에서의 격전, 1945년에 오키나와 전선에 투입됩니다. 그리고 운 좋게 부상없이 생환하였지요.

저자가 겪은 2차 대전은 고작 1년도 안되는 기간입니다. 실제 전선에서 싸운건 그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고요. 하지만 일본군이 반자이 돌격없이, 섬에 방어망을 철저하게 구축하여 저항했던 마지막 전선이기에, 그리고 한 곳은 땅을 팔 수도 없는 열사의 산호섬이고, 또 한 곳은 항상 비가 오는 진흙탕이었고. 일본군 병사들의 목적도 오로지 죽기 전 미군을 한 명이라도 죽이려는 생각이었다니 그 끔찍함과 고생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덕분에 560여 페이지에 달하는 꽤 긴 분량이지만 술술 읽힙니다.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생생함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요소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시체가 널려있던 전선 상황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일본군의 시신은 산호섬이라 묻을 수도 없어서 사방에 방치되어 있었고, 더운 날씨 탓에 바로 썩어들어가서 그 악취가 어마어마했다고 하네요. 당연하게도 파리도 굉장히 많았는데, 시체에 붙어있던 거대한 파리떼가 식사로 먹던 레이션에 달려들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섬뜩했고요. 이렇게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상상하기도 힘들, 그런 생생한 묘사들이 곳곳에 가득합니다.

전쟁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습니다. 일본군과 미군이 서로에 대해 갖는 증오심이야 뭐 서로 겪은게 있으니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각자 서로에게 집행하는 상상 이상의 폭력이 정말 충격적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일본군의 금니를 뽑으려고 입을 대검으로 찢었다던가, 기념품으로 일본군 포로의 손을 잘라 챙겼다던가, 일부러 일본군 시체에 대고 오줌을 쌌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숱하게 등장합니다. 저자가 미 해병대원이다보니 미군 시점의 이야기가 많은데, 일본군도 별반 차이가 없었겠지요. 

이와는 정 반대로, 전투를 겪으며 미치거나 피폐해지는 병사들에 대한 서술도 적지 않아요. 죽은 일본군의 반쯤 날아간 머리를 계속 개머리판으로 쳐 댔다는 미군 병사 이야기처럼요. 그동안 일본군은 거의 전멸했던 반면, 미군은 실종 포함한 사망자는 7,631명, 부상자는 3만 1,807명이라 큰 피해는 받지 않았다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부상자들이 복귀만 한다면 전선 유지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부상자 중 2만 6,221명이 정신적인 부상자라는 이 책의 설명을 읽고나서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정신적인 부상자들은 군 복귀는 물론, 일상 생활로의 복귀도 힘들 사람들이 많았을테니까요. 저자는 전투는 참가한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사람들은 그 끔찍한 흔적을 안고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정말 살아도 산게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요. 저자 역시 운 좋게 무사히 살아남기는 했지만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은건 분명하다는게 이런저런 회고와 묘사에서 여실히 드러나고요. 고작 20살에 불과한 저자와 비슷한 또래의 전우들이 겪기에는 지나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옥이었겠지요. 정말이지 전쟁은 무섭네요.

그래도 다행히, 멋진 전우들도 많고 그들의 활약으로 목숨을 건지거나, 죽음을 넘나드는 와중에 웃을 수 있는 여유도 보여지곤 하더군요. 담배를 피지 않던 슬레지가 펠렐리우 상륙 작전 직후에 바로 담배를 찾았다던가, 두 박격포병들이 거의 목숨을 걸고 싸운건, 탄약 상자 속 포탄 용기 안에서 발견한, 은색 립스틱을 바른 여자의 입술로 키스를 한 자국이 있는 사거리표 카드를 서로 갖겠다는 이유였다는 이야기처럼요. 이런 일도 없다면 진작에 다 미쳤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역시 20년도 더 지난 옛 군 생활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때 그 친구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려나....

이렇게 가치있는 회고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기승전결의 구조가 없다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회고록인 탓입니다. 각 시기별 경험들을 모두 이어 붙여 놓았을 뿐이니까요. 때문에 뭔가 정리된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등장 인물들도 두서없이 등장해서 죽거나, 사라지곤 하는 편이고요. 또 잔혹한 쓰레기였던 분대장 맥의 후일담이 궁금했는데, 등장 인물들 중 살아 남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후일담을 적어주면 좋았을 것 같네요.

그래도 일반 병사 시점에서 본 전쟁이라는 특이함에 더해, 생생함이 놀라운 수준이라 별점은 3점입니다. 태평양 전쟁, 아니 일반 병사의 전쟁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5/08/02

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대하여 - 도리스 되리 / 함미라 : 별점 2.5점

독일 여성 영화 감독 도리스 되리의 요리 관련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접한 음식과 사람들, 그 안에서 느낀 단상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요리 소개나 맛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음식과 문화, 기억, 철학이 뒤섞인 글들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많아서 일기같다는 느낌도 많이 들고요.

놀랐던건 저자의 방대한 식견입니다. 김치에 대한 언급이 대표적이에요. 한국의 김장을 단순한 발효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을 만드는 레시피’라고 표현하는데, 외국인이 쓴 글에서 김치가 아니라 김장을 이 정도로 이해하고 언급했다는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유에 대한 글에서 부처가 고행으로 쇠약해졌을 때 젊은 여인이 건넨 우유로 생명을 구했다는 불교 일화를 인용하고, 두부를 이야기할 때 일본 선종의 도겐 젠지의 말을 함께 소개하는 부분을 보면 독일 사람이 이런 정보를 대체 어디서 얻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글 사이사이에 동물이 급격한 변태를 겪는 이유가 ‘더 많은 먹이를 먹기 위해서’라는 과학계 이론같은 여러 정보들이 등장하는 것도 볼거리입니다. 예를 들자면 바움쿠헨이 일본에 전해진 과정은 의외로 전쟁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네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독일인 유흐하임이 전쟁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이송된 뒤 굽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뉴욕의 대표 음식으로 언급된 ‘루스 앤 도터스’의 비알리와 베이글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이 가게는 1907년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조엘 루스가 세 딸과 함께 1935년 창업한 곳이라는 군요.

간단한 레시피도 몇 가지 소개됩니다. 독일에서 품종 보호 정책으로 사라졌다는 ‘린다’ 감자를 활용한 감자샐러드는 감자를 껍질째 삶아 얇게 썰고, 여기에 양파, 식초, 설탕, 식용유를 넣어 만듭니다. 한 번 도전해보고 싶네요.
연두부 반쪽과 아보카도 반쪽을 함께 갈아 얼굴에 바르라는 피부 관리용 레시피도 새로왔고요. 아보카도가 저렇게 쓰기에는 좀 고가라 도전은 꺼려집니다만..

이외에도, 커피 유행에 대한 단상처럼 공감할 만한 일상적 시선도 있어서 좋았고, 책의 만듦새도 깔끔합니다. 선명한 일러스트, 판형, 종이질과 인쇄 및 장정 모두 빼어나거든요. 어른들을 위한 선물용 책으로도 괜찮겠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글루텐 프리나 환경오염, 미세 플라스틱 같은 주제를 다룬 글들은 다소 단조롭고 설명 위주로 흘러가는 탓에 흥미가 떨어집니다. 전체적으로 정보는 많지만 글마다 담고있는 내용, 수준의 편차도 있는 편이고요. 그리고 '요리'나  '식문화', '음식', '미식' 등의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일상적인 요리 이야기보다는, 음식에 얽힌 문화나 개인적 사유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