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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7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3점

악의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발견자 중 한 명인 노노구치 오사무는 히다카의 오랜 친구인 아동 소설가이자 전직은 교사였다. 마침 사건을 맡은 형사인 가가 교이치로의 교사 시절 동료이기도 했다. 노노구치는 자신의 직업을 살려 사건에 대한 견해를 일종의 수기로 작성했고, 가가는 이 수기를 빌려 읽으면서 진범이 누구인지를 추리해 내는데....

가가 형사 시리즈입니다. 1996년 발표된 작품이네요.

범인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와 가가 형사의 기록이 교차 편집되는 전개 방식과, 진범과 알리바이 조작 트릭이 앞부분 1/3 지점에서 밝혀진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렇게 진범이 빨리 밝혀지는 전개는 작품을 완벽한 와이더닛 계열로 만들고요.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아니라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작품의 나머지 2/3는 온전히 노노구치의 동기와 숨겨진 진상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왜?"가 정말로 대박입니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노노구치가 교묘하게 수기와 증언을 조작해서 수사의 방향을 의도한 대로 흐르게 만드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제일 첫 부분의 고양이 죽이기에서부터 히다카의 캐릭터 형성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는게 좋은 예입니다.

또 노노구치가 고스트 라이터가 아니며 그의 증언이 모두 거짓이라는건 눈치채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히다카의 작품은 사실 자신이 쓴 것이다!라는 명예욕이 아니라, 오래전 중학생 때 있었던 여학생 성폭행 사건과 왕따 사건이 진짜 동기라는 결말은 상당히 놀라웠어요. 이 동기를 밝히는 데 가가가 수집하는 여러 가지 증언들이 토대가 되는 식으로 등장하는 장치와 단서들이 교묘하게 짜여져 있고요. 결정적 단서가 나이든 폭죽 장인의 증언이었다는 것 처럼요.
진범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숨기는 노노구치의 수기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작품 전체가 거대한 서술 트릭이라는 것도 비슷하네요. 여튼, 한 편의 추리물로의 완성도가 아주 높은 편입니다.

아울러 가가가 고등학교 교사를 2년 했는데 그만두게 된 계기가 왕따 사건이었으며, 그 왕따 사건이 본편 이야기와 슬쩍 엮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졸업"에서는 분명히 교사를 지망했었는데, 왜 갑자기 형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린 거죠. 개인적으로는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을 억지로 등교시킨 가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역시나 선생에는 맞지 않는 캐릭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단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일단 계획이 지나치게 노노구치의 시점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히다카 하츠미의 사진을 경찰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렇지 않고 경찰이 멍청해서 노노구치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의 대비책이 없거든요.

또 베껴 쓴 노트만 가지고 자신이 작품을 썼다고 주장하는건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오래 활동한 프로 작가가 아무런 증거나 데이터 없이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테고, 그만큼 많은 작품이라면 충분히 히다카가 썼다는 증거나 관련해서 증언할 인물은 여럿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도 히다카 리에가 그렇게 증언하기도 했죠. 아내라는 것 때문에 증언의 가치가 폄하된 감이 없잖아 있는데 이런 증언 몇 개만 모여도 노노구치의 급조한(?) 데이터 정도는 눌러버릴 힘은 충분했을겁니다.

마지막으로 노노구치의 수기에 오류가 많다는 것을 독자에게 공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은 점도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물론 이 점은 이 작품이 후더닛 계열의 정통 본격물이 아닌 만큼 큰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그 외로, 가장 큰 동기인 "악의"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긴 합니다. 노노구치의 속내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탓이 큰데 독자가 읽은 그의 속내, 즉 수기는 모두 거짓이라 딱히 와닿을 수가 없거든요. 오랜 시절 쌓아온 열등감과 거기에서 비롯된 악의라는 게 아주 설득력 없지는 않지만 본인이 아닌 남의 입으로 듣는 정보일 뿐이니까요. 또 아무리 "악의"가 쌓였다 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요? 어차피 자신이 시한부 인생으로 얼마 살지 못하면 과거 사건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니 이렇게 복잡한 계획을 짤 필요도 없었을 테고 말이죠.

물론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는 헤아릴 수 없는 법이니 딱히 단점은 아닙니다. 시티헌터 사에바 료의 아버지이자 유니온 데오페의 총수도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 어차피 이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했었죠 (아마도.... ).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앞서 말해드린 노노구치의 계획에 지나치게 의존한 플롯에 약간 감점합니다만 여태까지 읽었던 가가 형사 시리즈, 아니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의 재미와 깊이가 있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추리 애호가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런 걸 보면 어린 시절 나쁜 놈은 커서도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군요.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힌 놈을 옛 동창이자 친구였기 때문에 다시 받아준 히다카의 말로를 보면 역시나, 확실히 사람은 가려서 사귀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05/08/14

핑거포스트 1663 - 이언 피어스 / 김석희 : 별점 3.5점

핑거포스트, 1663 - 보급판 세트 - 8점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서해문집

1663년, 크롬웰의 철권 통치가 무너지고 왕당파가 다시 세력을 잡아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른 직후, 옥스퍼드에 다 콜라라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자 의학 교육을 받은 이탈리아인이 방문했다. 그는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보일을 비롯하여, 의사 로어, 사학자 우드 등 여러 분야 학계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사교 활동을 활발히 벌이는데, 그러던 와중 대학의 교수인 그로브 박사가 독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여러 증거를 통해 스스로 죄를 인정한 그로브 박사의 전 하녀였던 사라 블런디가 교수형을 당하는데 20년 뒤 다 콜라의 수기가 발표되자, 이를 반박하는 프레스콧의 수기, 월리스 박사의 수기, 그리고 제임스 우드의 수기가 계속 이어지며 서서히 20년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예전의 "옥스퍼드의 4증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을 때 부터 무척이나 읽고 싶었던 작품. 재간되었기에 잽싸게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지만 전부 4편의 수기로 각각의 수기는 하나의 작품으로 독립되어 있어서 흡사 4편의 연작들을 읽는 느낌을 줍니다. 덕분에 생각보다는 읽기가 편했고요. 

순서대로 본다면 첫번째 "다 콜라"의 증언은 이야기의 첫 시작 답게 중요 등장인물과 20년 전 옥스퍼드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술하는 소갯글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콜라의 "수혈법"에 대한 내용의 비중이 큰 편이고요. 때문에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도 표면적으로만 훝고 지나갈 뿐이라 사라 블런디의 범행인지 아닌지에 대한 입증조차 해 주지 않습니다. 첫 번째 수기만 읽는다면 독자는 영국의 암울한 날씨와 문화, 요리에 대한 편견만 강하게 가질 것 같아요. 외국인 시각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있으니까요. 

두 번째 "프레스콧"의 증언 수기에서부터 먼저 첫 번째 수기의 거짓을 많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콜라라는 인물이 스스로 묘사한 것과 다른 점이 많았다는걸 밝히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살인 사건보다는 프레스콧의 아버지 제임스 프레스콧 경이 관련되어 있던 왕당파와 의회파간의 음모, 배신 행위를 비중있게 다룬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프레스콧이 명예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가 배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수기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음모론적인 이야기가 많이 가미되면서 점차 흥미진진해지는데, 특히 프레스콧의 아버지가 보냈던 "암호 편지"의 중요성이 처음으로 대두됩니다. 

 물론 모든 수기와 사건의 계기가 되는 그로브 박사 살인 사건의 정황에 대한 프레스콧 시각에서의 자세한 묘사도 들어 있습니다. 요약한다면, 지나친 광기에 시달리던 프레스콧은 성직록을 노리던 자신의 친구 켄이 그로브 박사를 독살했다고 믿지만 스스로의 광기가 사라 블런디의 주술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사형시키기 위한 조작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의 "월리스 박사"의 증언 부터는 앞서 나왔던 두 증언의 오류를 파헤치고 스스로 그것에 살을 입혀가는 단계입니다. 암호 해독 전문가로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광범위한 정보 조직을 구성한 월리스 박사라는 인물에 맞게끔 왕당파와 의회파에 대한 음모론에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콜라라는 인물의 정체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진행해 나갑니다. 

또한 이러한 음모론적인 내용에 맞춰 여러 귀족들간의 역학관계와 과거의 역사까지 들춰내어 결국 첫 번째와 두 번째 수기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사라 블런디에 대한 사형 선고의 실질적 배경, 즉 필연적 선고였다...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마지막 "제임스 우드"의 증언은 실질적인 마지막 증언으로 앞서 세 개의 수기를 모두 읽은 후 본인 스스로 조사한 진상을 첨가하여 발표한 진실입니다. 여기서 충격적인 몇가지 사실이 밝혀지며 나름의 반전도 꽤나 있는 추리소설로 따진다면 일종의 "해답편" 격인 내용인데, 여러 사실들을 종합하고 앞부분에서 빠져있던 여러 내용들이 보충되며 앞부분 수기에서 대두된 몇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 즉

  1. "그로브 박사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2. "마르코 다 콜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3. "사라 블런디의 그날밤 행동의 진상과 그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4. "암호편지는 어디에 있는가? 또 그 내용은 무엇인가?"
  5. "왕당파의 제임스 프레스콧 경 배신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완벽한 증언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렇게 알려진 시대에 대해 음모론적인 이야기를 넣어가며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이 보통 작업은 아니라 생각되는데 이 작품은 상당히 성공한 편이며, 무엇보다 4명의 증언이라는 독특한 구성을 통해 독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선별적으로 판별하게끔 하는 트릭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입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잘 짜여져 있어서 탄탄한 전개를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고, 탄탄한 고증에 기초한 17세기 영국의 문화를 바로 옆에서 느끼는 듯한 묘사도 압권입니다다. 

영국인이었다면 실존인물들과 역사적 배경까지도 100%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정도 수준까지는 아니기에 조금 복잡하고 지루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국인이 아니더라도 지적인 흥분과 더불어 읽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증언과 수기의 발단이 된 마르코 다 콜라의 첫번째 수기의 작성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콜라는 이 모든 것을 묻어 버렸어야 하는 입장이었을 텐데 괜히 발표해서 영국에 있는 관계자들의 반박글만 잔뜩 만들게 했잖아요? 이 점은 다 읽고 난 이후에도 그다지 석연치가 않습니다. 때문에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읽고 나니 이상하게 영화 "메멘토"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결과를 먼저 알고 그 진행되는 상세한 내용을 나중에 알게되는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일까요?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4번 수기는 제일 나중에 읽어야 하지만 나머지 수기들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충분한 재미를 느낀 만큼, 작가의 다른 작품도 구입해 보아야 할 것 같군요.

그리고 또 한가지 지적한다면 1,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1권 후반에 작품 전체에 대한 역자 후기격의 글이 들어있는데 일종의 스포일러를 제공함으로써 김을 약간 빼 놓더군요. 당연히 2권 후반에 들어가는게 맞지 않았을까요? 번역도 좋은 편이고 장정도 예뻐 마음에 들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PS : 이제 이런 류의 작품 소개에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 어쩌구 하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네요. 이 작품은 핑거 포스트일 뿐이지 장미의 이름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작품이니까요.

2019/11/01

진범의 얼굴 - 마에카와 유타카 / 김성미 : 별점 1.5점

진범의 얼굴 - 4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여년 전, 2008년 하치오지 시 가와구치 초의 주택가에서 토다 하야토와 미도리 부부가 실종되었다. 여러가지 증언, 정황 증거로 떠오른 유력한 용의자는 토다 하야토의 형 타츠야였다. 그러나 타츠야는 기소 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토다 하야토의 사망을 명백히 증명할 수 없어서,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스기야마 기자는 이 사건의 심층 탐사 보도를 나선 뒤, 타츠야가 진범이며 공범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품기 시작했다. 이는 불량 청소년 기무라와 도가시의 증언으로 진짜라는게 판명되었다. 하지만 기무라와 도가시 모두 시체로 발견되고 마는데...

"크리피" ,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이라는 두 편의 범죄 스릴러로 접해 보았던 작가 마에카와 유타카의 장편입니다. 전에 읽었던 두 편은 모두 주위 사람들을 일종의 세뇌 상태로 만들어 범죄로 끌어 들이고 조종하는 범죄자가 등장했는데, 이 작품은 탐사 보도 전문 기자가 화자로 등장하며 10여년 전인 2009년 벌어졌던 '가와구치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나간다는 내용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르포르타쥬 느낌의 전개와 비교적 현실적인 설정 덕분에 전작들보다 설득력은 높습니다. 그러나 재미는 오히려 부족합니다. 애초부터 스기야마는 타츠야가 진범일 것으로 생각하고, 실종된 동생 부부의 사체를 은닉할 시간이 없었던 이유를 공범이 존재했다고 추리하거든요. 이후 이야기는 이 추리를 뒷받침하는 과정에 불과하며, 결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타츠야가 진범이라는건 곧바로 불량 청소년인 기무라와 도가시의 증언에 의해 밝혀지게 되니까요.
그 뒤 범죄를 일으킨 4인조의 우두머리 하야마에게 위협을 느낀 기무라는 범행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이 담긴 USB를 보험삼아 준비했다가 살해당하고, 도가시 역시 미심쩍은 사고로 죽습니다. 다행히 공개된 USB를 통해 범행 장소를 특정한 경찰은 하야마의 절 고엔지를 수색하지만, 시체를 발견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타츠야가 곧바로 진상을 스기야마에게 고백한 뒤 자살하기 때문에 여기서 가와구치 사건은 끝난거나 다름 없습니다. 즉, 드라마에서 별다른 긴장감을 느끼기 힘들어요.
무려 일곱명의 관계자가 병사와 사고사를 비롯하여 자살 등으로 사망한 대형 사건이지만, 타츠야 범인설이 거의 진짜였다는 진상이라는 점도 허무합니다. 진짜 흑막으로 하야마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동기와 수법을 짐작하기 어려운 모호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오지 않는게 나았고요. 

추리적으로도 특기할 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스기야마가 공범의 존재를 추리하는 것, 그리고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인 '베레모 남자'의 베레모는 짧은 헤어스타일도 가릴 수 있는 모자다, 그래서 베레모 남자의 머리는 짧을 것이며 이는 하야마를 가리킨다는 추리가 전부인데 사건 해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이 추리가 없었어도 어차피 제 발로 찾아온 범인의 증언으로 진상은 밝혀졌을 테니까요.

이외에 건질만한 부분도 없다시피 합니다. 사회파스러운, 사회 고발과 같은 동기도 등장하지 않아요. 범인 일당이 미도리에게 품은 비정상적인 성욕에 의한 잔인한 범죄에 불과한 탓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유기한건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요. 또 이 과정에서 학교의 부교장이며 절의 주지인 인텔리 인격자 하야마가 비정상적인 성도착자로 살인집단의 리더였다는게 밝혀지는 부분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그가 딸 리하에게 품은 성욕과 소유욕은 솔직히 불쾌하기까지 했고요.

이후의 에필로그가 그나마 약간 사회 고발스럽기는 합니다. 스기야마가 10여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 취재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책을 쓸 계획을 하야마에게 밝히자 하야마는 딸과 딸의 약혼자를 죽이고 자살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주요 관계자였던 타츠야의 변호사 하마나카가 스기야마에게 '너야말로 범인이다. 너의 집요한 추궁으로 하야마를 신경 쇠약으로 몰고갔기 때문이다. 가와구치 사건의 진범은 너다!"라고 비난하며 마무리되는데 여기서 '취재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 를 생각하게 만드니까요.

그러나 그럴 의도였다면 책의 내용 모두가 타츠야가 진범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취재 결과를 거기에 끼워맞춘 스기야마의 음모라는 식으로 풀어나갔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유력한 몇몇 증언, 타츠야가 본인이 진범 중 한 명이라며 범행의 진상을 고백한 증언과 하야마의 딸 리하와의 인터뷰 등은 모두 스기야마 혼자 입수한 정보로 얼마든지 가공이 가능했으니 충분히 그렇게 쓸 수 있었을거에요.
그러나 가장 유력한 증언이었던 초반부 기무라와 도가시의 증언은 편집자 스가이와 함께 들었고, 동영상이라는 증거가 있어서 이렇게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진범 일당 모두 죽어 마땅한, 잔인 무도한 범죄를 일으킨 놈들이고 취재로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솔직히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인권은 사람에게나 있지 이런 짐승들한테 있는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없고 범죄물, 그 외 사회 고발 등 다른 가치도 거의 없는 망작입니다.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7/03/19

벙어리 목격자 - 애거서 크리스티 / 원은주 : 별점 3점

벙어리 목격자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어리석은 낙천주의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쉽게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는 게 보통이었다. - 에밀리 아룬델이 누군가 자신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의 묘사

살인의 특징은 살인자의 기질을 암시해 주기 때문에 범죄의 실마리를 잡는 데 있어 필수야. - 포와로.

마켓 베이싱의 리틀 그린 하우스에 거주하는 부유한 노부인 에밀리 아룬델은 조카들과 함께 한 부활절 연휴 때 계단에서 떨어져 다쳤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고, 애견 밥이 가지고 놀던 공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챈 에밀리 아룬델은 포와로에게 편지를 보냈고, 무려 두 달 이 지나서야 이를 받은 포와로는 마켓 베이싱으로 향했지만 에밀리 아룬델은 이미 한 달 전에 사망했다...

몸 속 필수 영양소 중 하나인 고전 본격물 성분이 많이 부족해져서 집어든 여사님 장편입니다. 제게는 탄수화물급 영양소거든요. 바로 전 읽었던 "도서관의 살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제대로 된 고전 본격물을 선택했습니다. 의도는 아니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후더닛물이더군요. "도서관의 살인"과 마찬가지로요.

포와로가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 이유인 노부인의 의뢰 편지가 그녀가 사후 발송되었다는 도입부부터 무척 흥미롭습니다. 뒤이어 다양한 등장인물의 증언들로 진상에 접근해 가는 과정 역시 고전 본격물다운 공정함을 자랑하고요. 무엇보다도 고전 본격물의 핵심인 동기 부여와 이에 따라 용의자들이 속출하는 전개가 대단합니다. 주요 관계인인 찰스와 테레사 남매, 벨라와 타니오스 부부 모두 유산 상속에 혈안이 된 것으로 묘사되어, 누구 한 명 용의선상에서 빠지지 않는 덕분입니다. 심지어 찰스와 테레사의 어머니는 남편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람이라는 설정까지 갖췄으며, 그 외 등장인물 모두 수상한건 마찬가지에요. 이미 유산을 상속받은 로슨 양이 심령술에 빠진 이상한 노처녀로 그려지는 식으로요. "도서관의 살인"에서 가장 부족했던게 바로 이겁니다. 이런게 본격물이죠!

하지만 이러한 점은 본격물이 갖춰야 할 기본 요소에 불과합니다. 정말로 탁월한건 증언과 인물 묘사가 결합되어 독자를 교묘하게 함정에 빠트리는 전개입니다. 놀랍게도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증언은 모두 진실이에요. 하지만 말을 한 사람이 워낙 수상한 탓에 독자들 모두 "이 사람 말은 못 믿겠는데?"라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뒤이은 증언들도 부정하게 되어 결국 진상에 이르지 못하게 되지요.
찰스 아룬델이 한 말이 대표적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에밀리 아룬델을 만났을 때, 그녀가 수정한 유언장을 보여주었다는 증언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모두 찰스가 돈 때문에 심한 짓도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식으로든 에밀리 죽음에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유언장을 미리 보았다는 증언은 자신이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리라는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에밀리를 죽일 동기가 없다고 위장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게다가 여동생 테레사와의 다툼은 증언의 신빙성을 더욱 떨어트리고요.
이야기 전체가 이런 구성이라서 저는 함정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런게 본격물이죠!

세세한 디테일로 범인을 드러내는 점도 본격물스럽습니다. 타니오스 부인이 테레사를 따라, 하지만 보다 저렴하게 옷을 구해 입었다는 묘사와 에밀리 아룬델의 가족들에 대한 설명, 주치의 그레이너 박사가 후각을 상실했다는건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단순한 설정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뭐 하나 허투르게 활용되지 않아요. 로슨양이 거울로 본 브로치는 이니셜이 반전되어 있을 것이며 그것은 아나벨라 타니오스의 약자다, 브로치는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싸져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테레사 패션을 따라하는 벨라가 서슴없이 구입했다. 벨라는 화학 교수의 딸로 인을 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레이너 박사는 인 중독의 뚜렷한 징후인 입에서 나는 마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는 식으로 모두 추리에 이용되니까요. 심지어 아무 의미 없어보였던 로슨 양의 강령회 관련 증언까지도요. 그녀는 에밀리 양이 강령회 때 빛나는 심령체에 의한 "후광을 둘렀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모두가 정신나간 소리라고 치부했지만, 포와로는 그것이 '인관성 호흡'이라는 것을 간파하거든요. 이런게 본격물이죠!

트릭도 괜찮습니다. 간이 나빴던 피해자에게 인을 투여하여 간견병과 별 차이 없는 예후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건데, 굉장히 현실적이었어요. 로널드슨 의사의 자연사 확진 판정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기는 하나 에밀리가 평소 유사 증상을 오래 앓고 있던 환자라 충분히 걸어볼만 한 도박이었으니까요. 피해자가 자주 먹던 캡슐 중 하나에 투입하여 일종의 시한 장치를 만든 것도 그럴듯했고요.

또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완역판이라 주장하는 판본으로 읽었는데, 확실히 번역도 한층 높은 완성도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포와로의 프랑스 어를 섞는 말버릇도 맛깔나게 잘 살려 놓았으며, 헤이스팅스와의 재담도 재미있게 그려져 있거든요. 헤이스팅스가 이렇게나 유머러스하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등장인물들을 모두 수상쩍게 그리는 묘사가 과해서 읽는 내내 짜증이 난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이게 왜 문제냐 하면, 실제 범인은 아니지만 제발 죽어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포와로의 추리가 진상에 도달하여 진범을 밝혀내기는 하는데,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심약한 타니오스 부인이 시체를 재검시하자는 포와로의 주장에 겁을 먹고 자살을 하지만, 실제 재검시를 했어도 사인을 밝히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설령 실제 사인이 밝혀졌다고 해도 타니오스 부인이 그랬다는 증거도 없고요. 로슨양이 거울을 통해서 목격한, 타니오스 부인이 계단에 장치를 설치했다는 증언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었을거에요. 마침 범인이 딱 좋게 자살했을 뿐, 제대로 범인을 옭아매었다고 보기는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뭐 이런 점도 본격물이기도 합니다만.

하여튼,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장, 단점 모두 고전 본격물스러운 작품입니다. 저와 같이 고전 본격물 성분(?)이 부족해 지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책 뒤 소개글처럼 "훌륭한 평균작품보다도 잘못 쓴 크리스티 작품이 더 낫다" 이니까요. 이 작품은 잘 못 쓰지도 않았고요.

2022/09/03

파기환송 - 마이클 코넬리 / 전행선 : 별점 1.5점

파기환송 - 4점
마이클 코넬리 지음, 전행선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방검사장 게이브리얼이 미키 할러에게 특별 검사 자리를 제안했다. 아동살해범으로 유죄 선고를 받고 20년 이상 수감되어 있었지만, 스스로 사법 투쟁을 벌여 파기 환송을 만들어낸 제이슨 제섭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 당시 발견되었던 정액이 DNA 분석 결과, 제이슨 제섭의 것이 아니었다는게 결정적 이유였다. 앞으로 60일 이내에 검찰은 그를 무죄 방면할지, 재심할지 결정해야 했다.
게이브리얼은 사건을 재심하기를 원했지만 특별 검사제를 시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미키 할러가 필요했다. 미키는 전처 매기를 차석 검사로, 이복형 해리 보슈를 전담 수사관으로 임명하는 조건으로 사건을 받아들였다.
재판을 위해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하던 미키의 팀은 세라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걸 알아챘다. 사건 당시 13살의 나이로 제섭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그녀는 현재 실종 상태였다. 해리 보슈는 수사를 통해 세라를 찾아냈고, 그녀를 증언대에 세우는데 성공하는데....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이후 이어지고 있는 마이클 코넬리의 미키 할러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이전 작에서 언급되기는 했었지만, 미키 할러가 '특별 검사'로 변신하여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변호사 클라이브 로이스와 맞서 싸운다는 설정 변주가 독특했습니다. 전처인 검사 매기 맥퍼슨, 그리고 작가의 또 다른 인기 시리즈 주인공 해리 보슈와 함께 하는 '드림팀' 구성도 볼만했고요.

그러나 내용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특히 제이슨 제섭 사건 재판은 분량에 비하면 정말로 아무 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조사가 이루어진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세라의 증언 - "제이슨 제섭이 동생을 납치한 바로 그 사람이다", "정액이 묻었던 옷은 원래 내 옷으로, 양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탓에 정액이 묻었었다." - 가 증거의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이를 뒤집기 위한 클라이브 로이스의 카드도 별볼일 없습니다. 세라의 전 남편인 에디 로만을 증언대에 세워, 당시 양부가 멜리사를 죽였으며 이를 숨기기 위해 세라에게 거짓 증언을 시킨 거라는걸 폭로하려 했는데, 이 시리즈 내내 반복되어 왔던, '검찰 측 거짓 증인' 이나 '교도소 내 밀고자' 를 통한 물 흐리기 작전과 똑같아서 식상했어요. 게다가 미키 할러가 법정에서 에디 로만을 무너트리는건 전작들보다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에디 로만의 현재 동거인 소니아 레이예스를 법정 안에 데리고 들어온게 전부니까요. 그녀를 본 정도로 에디 로만이 증언을 완벽하게 번복한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녀가 있거나 없거나 에디 로만의 증언이 바뀔 이유가 딱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클라이브 로이스의 작전은 배심원들에게 의심의 씨앗만 심으면 충분했는데, 이렇게 전적으로 증언을 번복할 이유 역시 없고요.

추리, 범죄, 스릴러물로도 기대 이하입니다. 멜리사 사건의 진범이 제섭이고, 초반 재판의 키 포인트로 보였던 정액이 양아버지 것이었던 이유는 세라가 성폭행 당했기 때문이라는 등 주요한 수수께끼 모두는 세라의 증언으로 밝혀지거든요. 세라는 제섭의 얼굴을 24년이 지났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고, 양아버지 정액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설명할 수 있었으니까요. 때문에 추리의 여지는 전무합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억지로 다른 수수께끼를 집어 넣었는데 억지스럽기만 했습니다. 제섭이 재판 전, 한 밤중에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따라 프랭클린 캐니언 등의 공원에 몰래 방문해서 촛불을 피운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수수께끼가 대표적이에요. 제섭은 연쇄 살인범으로 자기가 죽였던 피해자들이 묻혀있어서, 그걸 기념(?)하는 행동이었다고 주장하고, 이를 해리 보슈의 지인인 FBI 심리 분석관 레이철의 분석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뒤, 자기의 실수를 깨닫고 피해자를 살해했던걸 어떻게 연쇄 살인과 연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동 살해범이 이전에도 범행을 저질러왔던 연쇄 살인마라는건 당황스러울 정도로 전형적이었을 뿐더러, 설령 그렇다쳐도 중요한 재판을 앞두고 자신의 범행이 드러날 수 있는 곳을 어슬렁거리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묻혀있는 시체를 제섭과 연결시킬 수 없으니 일단 묻고 가자는 미키 할러의 주장은 용납할 수도 없었고요. 그게 제섭의 범행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종된 여자들과 그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동정심이 있다면 만사 젖혀두고 시체를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제섭이 해리 보슈의 집 앞에 머물렀던 이유, 은밀한 거처를 만들었던 이유 등도 딱히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전개도 시원치 않습니다. 우선 미키 팀이 피해자의 언니 세러를 찾아내서 인터뷰하는 부분이 작품의 1/3 정도 지점이라 그 이후 제섭 사건에 대한 흥미는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제섭이 진범이라는게 확실하니 당연하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미키 팀이 에디 로만의 증언을 박살내 버린 후, 좌절한 제섭이 자기 변호사 팀과 감시하던 SIS 요원들을 사살하고 도주한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법정물이나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헐리우드 영화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섭이 도주 후 딱히 하는 것 없이 사살당하는 장면도 허무했고요. 복수를 노린 것도 아니고, 뭔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단지 숨어있으려고 했던 것 뿐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제섭의 도주로 중반부에서 엄청나게 치밀하고 복잡하다고 설명되었던 SIS 감시 시스템이 별볼일 없이 무너져버렸다는 것 역시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제섭이 총을 손에 넣었다는걸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4명이나 제섭에게 살해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SIS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해리 보슈의 등장이라던가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은 나름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결말에서 제섭이 도주해서 사건을 키우지 않았다면, 배심원 중 한 명이 반대해서 - 심지어 미키 할러의 의도로 재판 초기에 바뀐 배심원 -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았다는 나름의 반전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단점이 훨씬 더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이 시리즈도 이제 더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2022/09/11

스완 - 오승호 / 이연승 : 별점 2.5점

 

스완 - 6점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형 쇼핑몰 고나가와 시티 가든 스완을 '엘리펀트'라 자칭한 2인조 테러범이 습격했다. 그들이 대량의 사제 총기를 무차별 난사한 탓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 때 여고생 이즈미는 범인에게 협박을 받아서 쳐다본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고, 이 사실이 학교 친구 고즈에의 증언으로 기사화된 탓에 오명을 뒤집어 쓰고 말았다.
얼마 후, 변호사 도쿠시마가 스완 사건 생존자들을 모은 비밀 모임에 이즈미를 초대했다. 사건 당시 사망했던 기쿠노 할머니의 아들이 어머니 죽음의 진상을 알고 싶다며 만든 모임이었다. 몇 번의 모임에서 참석자들의 증언을 통해 서서히 사건 당일의 진상, 그리고 그들이 각자 숨기고 있었던 진실이 드러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추리 소설계에서 부쩍 유명해진 재일교포 작가 오승호 (고 가츠히로)의 작품.
2명의 테러범이 일으킨 총기 난사 사건, 그리고 그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았는데 사망한 피해자 요시무라 기쿠노의 아들이 진상을 밝히기 위해 당시 생존자들 몇 명을 불러 그들의 증언을 수집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거대한 스완 내부 구조의 상세 설정, 그리고 정교하게 짜여진 테러범들과 피해자, 생존자들의 동선이 가장 먼저 눈에 뜨입니다. 단지 공들여 만들어진 것에 그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면서도 서서히 진상을 드러내도록 잘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쿠노 할머니가 왜 스카이라운지에서 3층으로 이동했는지, 왜 비상계단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던 고즈에와 유키오와 함께 스카이라운지로 돌아가지 않았는지에 대해 거의 분 단위로 밝혀지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참석자들의 증언으로 서서히 진상에 이르는 과정이 정말 좋았어요. 지적인 쾌감과 함께 독자가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솜씨가 일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존자들이 증언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각자 무엇을 숨기고 거짓말을 했는지? 라는 또 다른 수수께끼 풀이도 볼거리입니다. 생존자 중 도산 - 오다지마와 이쿠노는 각각 피해자인 누군가의 죽음에 큰 책임이 있었고, 가장 정의로운 척 했던 꼰대 호사카 할아버지가 기쿠노 할머니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걸 지루하지 않게, 합리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덕분이에요.
이 과정에서 오다지마의 거짓말은 연인 하마야를 감싸기 위해서였다는게 밝혀지고, 이를 통해 진상을 추리해내는 도쿠시마 변호사의 활약도 눈부셨습니다. 하야마는 오다지마가 걱정되어 비상 계단으로 내려가다가 총에 맞았는데, 스카이라운지에 도움을 요청한 탓에 기쿠노 할머니가 내려왔던게 할머니의 이유를 알 수 없던 동선에 얽힌 진상이지요. 하야마가 깜짝 등장하여 증언을 더해주는 등 사건의 중요한 열쇠들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추리물로서의 가치도 적절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멤버 중 가장 주변인으로 보였던 하타노가 사실은 스카이라운지에서 사살당해 죽었던 아이 유키오의 아버지였다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하타노와 이즈미 등을 통해 선과 악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우선 추리적으로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테러범들이 찍은 동영상에 대한 정보가 독자들에게 공유되지 않는 탓입니다. 때문에 독자들은 생존자들의 증언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으니까요. 유키오가 얼굴 앞 뒤에 총을 맞은건 고즈에가 방패로 써서 그렇다는 반전도 그리 인상적이지는 못했어요. 추리의 여지도 없습니다. 이는 결국 이즈미의 기억이 전부라는 의미거든요.
고즈에가 총에 맞은 상황에 대한 진상도 마뜩치 않습니다. 고즈에는 이즈미를 괴롭히던, 학폭 주동자였습니다. 사건 후 이즈미에 대해 고발하는 인터뷰를 해서 이즈미의 현재를 더 지옥처럼 만들기도 했지요. 그러나 사건 경과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고즈에는 위험에 처한 이즈미를 구하기 위해 구태여 밖에서 스완으로 들어왔던 의리녀입니다. 또 범인 니와가 총을 쐈을 때 '이미 죽은' 유키오의 시체를 방패로 삼았다는 이유로 자살을 시도했던 마음 여린 소녀이기도 하고요. 즉, 앞서의 학폭 주동자와 너무 상반된 모습이라 전혀 다른 두 명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품에서 계속 언급하는 백조와 흑조, 오데트와 오딜은 이즈미와 고즈에가 아니라 고즈에 한 명 안에 포함된 두 개의 인격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에요.
기쿠노 할머니의 응급처치를 호사카 할아버지가 질타했던 탓에, 그렇잖아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할머니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할머니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기 어렵게 만드는 작위적인 설정에 불과해 보였거든요.

설정과 묘사에서 '스완', 즉 백조와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도 과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했던 대형 쇼핑몰 이름부터 시작해서, 테러의 주 현장이었던 백조, 흑조 광장와 이즈미가 사랑하는 발레 '백조의 호수' 속 백조, 흑조 이미지와 엮는 여러가지 묘사들은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마지막에 한 단계 성장한 이즈미가 스완에서 홀로 백조의 호수 연기를 펼친다는건 어이를 상실케 했고요. 영상화를 염두에 둔 장면 같은데, 여러모로 실소만 자아내는 장면이었어요.
그 외에도 여러 명의 관계자들이 모여 증언을 하는데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던가, 살아남은 이즈미가 언론에 의해 여러 명을 희생시킨 희대의 악녀가 되어 버렸다던가 하는 흔한 설정이 많은 것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래도 흔한 설정을 무대와 상황에 대한 변주를 통해 독특하게 그려내고, 비교적 정교하게 짜여진 전개로 지적 쾌감을 가져다 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작가가 왜 최근에 '핫' 한지를 잘 알 수 있었어요. 단점은 있지만 재미와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3/04/22

침저어 - 소네 게이스케 / 권일영 : 별점 2.5점

침저어 - 6점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예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사 2과 소속 후와 경부보는 일본의 국회의원인 중국 공작원 - '침저어' - 멕베스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수사에 가담했다. 곧 거물 정치인 아쿠타가와 의원이 유력한 멕베스 후보로 떠올랐다. 아쿠타가와의 비서 이토 마리가 중국 공작원으로 의심받는 우춘시엔과 만났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이토 마리가 실종되었고, 그녀의 노트북에서는 비밀 문서인 요코다 페이퍼까지 발견되어 혐의는 더 짙어졌다.
망명 요청을 한 중국 외교관 류잉캉의 증언으로 후와는 멕베스는 조작이라 여기게 되었지만, 수사본부를 장악한 고미 일당은 아쿠타가와가 멕베스이며, 후와는 중국 밀정인 두더쥐로 생각했다. 후와는 어쩔 수 없이 멕베스 사건 지휘자 도쓰이 관리관에게 직접 보고했고, 류잉캉의 증언으로 또다른 거물급 정보원 '시벨리우스'를 체포해서 멕베스 조작설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이에 고미는 직접 류잉캉을 심문하러 나섰지만, 중국 공작원들에게 습격당해 류잉캉은 빼앗기고, 고미마저 치명상을 입었다. 후와의 직속 후배이자 부하 와카바야시는 이 사건이 자기 탓이라 자책했고, 그가 두더쥐였다는게 밝혀졌다.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포섭되었었다. 그리고 사라져버린 와카바야시의 행방을 찾는 무리에 후와마저 납치당했다.
풀려난 후와는 도쓰이 관리관에게 베이징의 책략을 폭로했다. 알고보니 멕베스는 아쿠타가와 겐타로가 맞았고, 류잉캉의 증언을 포함한 모든 건 이를 들통나지 않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첩보 미스터리. 일본에서 국제적인 정보전이 펼쳐진다는 설정이 특이했는데, 흡입력은 상당합니다. 거물 공작원 멕베스가 누구인지, 멕베스의 존재 자체가 가짜가 아닌지, 경찰 내부의 두더쥐는 누구인지 등 다양한 수수께끼가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국회의원으로 대표되는 입법부와 경찰 조직간의 역학 관계, 고미 일당과 후와 경부보간의 알력 다툼 등 여러 갈등도 재미를 더해주고요.

하지만 기본적인 이야기 전개에서 헛점이 느껴지는건 아쉽습니다. 우선, '멕베스'의 존재가 드러난건 수사본부 발족 2개월 전 미국에 망명했던 중국 고위층 인물 후샤오밍의 증언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 증언 자체가 가짜라고 여기게끔 공작을 벌이고요. 그래서 류잉캉에게 거짓 증언을 시켰죠. 목적은 당연히 멕베스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 번째는 왜 아쿠타카와의 비서 이토 마리가 우춘시엔과 만나는걸 방치했냐는 것입니다. 수사가 2개월 뒤에 시작되었으니, 이 만남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멕베스가 아쿠타카와가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그건 조작이었다!'보다는 '멕베스는 조작으로 누구인지 실체가 없다!' 쪽이 훨씬 안전한 선택입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왜 이토 마리를 납치해서 살해하고 노트북에 비밀 서류가 있다고 조작했냐는 것입니다. 마리는 중국이 죽인걸로 보이는데, 앞서 말했듯 중국은 멕베스라는 존재 자체가 가짜라고 여기게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쿠타카와가 의심을 살 단서를 조작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래서야 아쿠타카와에게 수사가 집중될 뿐입니다. 게다가 이토 마리의 만남은 후와의 수사로 문제가 없다는게 밝혀졌습니다. 자료는 '두더쥐' 와카바야시에게 넘겨주었으니 중국도 그 사실을 입수할 수 있었고요. 도대체 중국은 무슨 생각이었던걸까요?
일본측 목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아쿠타카와가 멕베스라는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쿠타가와는 이중 스파이였으니까요. 수사에 나서지 않으면 중국이 이상하게 여길테니 외사과를 투입하기는 했지만, 아쿠타가와의 정체가 드러날 수사를 진행할 필요는 없었어요. 드러난 증거로 소모적인 수사만 시키다가, 멕베스가 조작된 정보라는 것만 고미 일당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고 수사본부를 해산하면 됐습니다. 물론 이토 마리가 실종되고 노트북에서 기밀 정보가 발견된 이상, 누가 보아도 아쿠타카와를 수사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사를 중지시키는건 어려워졌긴 했습니다만. 더더욱 중국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지는군요.
차라리 멕베스는 다른 누군가라고 후샤오밍이 명확하게 말했고, 중국은 그 사실을 숨기려고 "멕베스는 아쿠타카와다!"라고 속이기 위한 작전을 펼쳤으며, 일본은 "아니, 우리는 차라리 후샤오밍의 증언 자체가 조작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래"라고 받아치다가 후와에 의해 "알고보니 멕베스는 OOO이었다!"라고 드러나는 전개가 단순하지만 더 설득력있었을 겁니다.

이런 알 수 없는 양국 행태에 비하면 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와카바야시의 두더쥐 활동은 차라리 깔끔한 편이기는 합니다. 일본측 - 도쓰이 관리관 - 이 와카바야시도 이중 스파이로 이용했다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요. 문제는 와카바야시를 커뮤니케이션이 지극히 떨어지는 기묘한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도무지 감정이입하기 힘들었습니다. 다른 인물들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후와 경부보는 일본 하드보일드물에 흔하디 흔한 한 마리 고독한 늑대, 고미 일당은 전형적인 깡패 형사들이고 그 외 인물들도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운 탓입니다. 모든걸 알아챈 후와가 지인이자 어둠의 실력자 왕 영감의 도움으로 탈출하고 사라지면서, 뭔가 후속작에 대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도 진부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단점을 잔뜩 언급하기는 했지만, 재미는 있습니다. 첩보물로의 미덕은 잘 살아있고요. 란포상 수상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재미삼아 한 번 읽어볼 만은 합니다. 

덧붙이자면, 뒤에 함께 수록된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소감이 놀랍습니다. 작가는 명문대 와세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그 이유가 "빤한 인생을 살기 싫다" 였다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망해가는 사우나, 어두컴컴한 만화 카페 등에서 일했고 만화 카페에서조차 급여와 직책이 오르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껴 사표를 냈다니 놀랍습니다. 1967년 생이니 이런 결심을 했을 때에는 이미 일본에서도 버블 경제는 끝나서 그렇게 만만한 삶을 살기는 힘들었을텐데 말이지요. 또 정작 발표한 작품은 비교적 뻔하다는걸 보면 인생관, 가치관과 결과물이 비례하는건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2021/08/14

사일런트 페이션트 -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 남명성 : 별점 3점

사일런트 페이션트 - 6점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해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리 상담사 테오 파버는 그로브 병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화가 앨리샤 치료를 맡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의자에 묶인 남편을 총으로 사살했고, 그 뒤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직 자화상인 "알케스티스"만 남겼을 뿐이었다. 

앨리샤와의 첫 면담에서 그녀는 테오를 폭행했지만, 이윽고 그녀도 테오에게 마음을 열며 자신의 일기장을 건네주었다. 테오는 그녀의 형부인 맥스, 사촌인 폴, 친구인 장 펠릭스 등과 만나서 얻은 정보와 일기장 내용을 조합하여, 그녀의 정신병의 원인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냈던 교통사고에 있다는걸 알아냈다. 이런 치료를 통해 앨리샤는 다시 말문이 트였다. 그리고 테오에게 남편을 죽인 사람은 집을 감시하던 정체불명의 인물이라고 말해주었지만, 테오는 물론 병원장 디오메디스 교수 등 모두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앨리샤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는데...

영국을 무대로 한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이자 서술 트릭이 사용된 추리물입니다. 

앨리샤 시점에서 사건 전부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까지를 보여주는 부분과, 테오 시점에서 테오가 앨리샤의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아내 캐시의 불륜을 알고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과정이 뒤섞여 전개되는데, 앨리샤의 일기는 사건 전부터이므로 과거 시점입니다. 당연히 독자들은 테오 시점의 묘사는 모두 현재라고 생각하게 되고요. 하지만 테오 시점의 묘사는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있었다는게 사용된 서술 트릭의 핵심입니다. 테오가 앨리샤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부분만 현재에요. 아내 캐시의 불륜을 의심하다가 뒤를 밟고, 결국 불륜남의 집을 덮치는 이야기는 모두 앨리샤 일기와 동일한 과거 시점이지요. 그리고 앨리샤와 테오의 과거는 서로 만나게 된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즉, 엘리샤 일기 속 정체불명의 남자이자 진범은 테오였던 겁니다. 

사실 화자별로 병행 전개되는 이야기의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걸 숨기다가, 마지막에 드러내면서 반전으로 이어지는건 "이니시에이션 러브"로, 한 명의 화자 시점의 이야기지만 시간이 다른 이야기 두 개가 진행되는 이야기라는건 "통곡"으로 이미 접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섞어서 진행하는 작품은 처음인데, 독자가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솜씨도 일품이라 감탄했습니다. 트릭을 알고 나서 돌이켜보면, 두 이야기가 전혀 섞이지 않게끔 확실히 구분되어 있을 뿐더러, 캐시 이야기에서의 테오는 명백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식으로 나름 서술 트릭에 대한 단서도 제공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속을 수 밖에 없었어요.

또 남편에게 배신당한 뒤 말을 잃은 알케스티스 공주 이야기는 단순히 상징인줄 알았는데, 그게 앨리샤에게 실제로 닥쳤던 일이었다는 진상도 꽤 그럴싸했습니다. 테오는 앨리샤의 남편 가브리엘이 아내 캐시의 불륜남이라고 확신하고, 집을 덥쳐서 앨리샤와 가브리엘을 포박한 뒤 가브리엘에게 누굴 살릴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지요. 이 때 가브리엘이 자기를 살려달라고 이야기한게 앨리샤의 과거 - 어머니와 함께 타고 가던 차가 사고가 나서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가 앨리샤가 죽었어야 했다고 절규했던 - 상처를 헤집어 폭발시켰던 겁니다. 그래서 테오가 사랑을 비웃으며 떠난 뒤, 앨리샤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가브리엘도 죽인거지요. 

맥스, 폴, 장 펠릭스 등 앨리샤 주변 인물들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는게 하나씩 밝혀지는 앨리샤의 일기 내용도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였습니다. 앨리샤가 테오를 처음 만났을 때 공격했던 이유는, 테오가 침입자였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은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하지만 조금 과장된 심리 묘사와 비정상적인 등장인물들이 많다는건 아쉽네요. 두 화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주변 인물들 (특히 앨리샤) 모두 수상하고, 비정상적입니다. 앨리샤의 일기도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며 흥미를 더해주는건 맞지만, 그냥 읽으면 혼란스러워요. 명백한 사실은 테오가 앨리샤 집을 감시하다가 침입해서 사건을 일으킨 것 뿐입니다. 그 외의 내용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잘 모르겠어요. 증거도 일기 외에는 전무하고요. 피해망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또 일기를 읽고 당사자들을 찾아가서 추궁하는 테오에게 거의 모두가 사실을 털어놓는다는건 작위적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 앨리샤를 치료했던 적이 있다고 일기장에 쓰여있다며 테오가 크리스티안을 추궁할 때 처럼요. 크리스티안은 그로브에서 앨리샤 치료를 맡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앨리샤가 자신이 아는 정신과 의사 이름을 대고 거짓말을 할 가능성은 왜 생각해보지 않은걸까요? 테오야 지은 죄가 있으니 앨리샤의 모든 증언을 믿는다 쳐도, 병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걸 믿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침입한 이후 가브리엘을 죽인게 테오인지 앨리샤인지, 캐시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건 맞는지, 그 불륜 상대남이 가브리엘이 확실한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테오의 심리 상태도 극히 불안하고, 마리화나도 피우는 탓에 1인칭 시점 묘사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이니까요.

테오가 앨리샤의 입을 막기 위해 약물 과다 복용을 위장하여 피하 주사를 놓아 죽이려 했다는 결말도 석연치 않습니다. 앞서 테오가 이끌어 내었던 앨리샤의 증언 - "앨리샤는 범인이 아니고, 그 집을 감시하던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범인" - 은 디오메디스 교수 등을 통해 부정됩니다. 그냥 봐도 제 정신으로 한 증언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정신병이 있는 환자의 이 정도 증언 따위가 테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이 증언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테오라고 주장한다는건 인정될리 없습니다. 뭐 앨리샤의 말문이 트인게 위협이라고 생각되어 살의를 품었을 수는 있습니다만... 구태여 피하 주사 자국을 찾았다는걸 밝힐 필요는 없었습니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다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타살이라는걸 부각시켜 얻을게 별로 없으니까요. 

혐의를 크리스티안에게 뒤집어 씌운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크리스티안이 과거 앨리샤를 진료했다는걸 숨겼다는게 살인 동기라는데, 이를 증명하는건 모두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앨리샤의 증언과 일기장은 실체는 남아 있지 않았고, 오로지 테오의 증언만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티안을 옭아매는건 무리입니다. 앨런 형사가 일기장을 찾았다며 테오를 찾아와 그가 범인이라는 페이지를 읽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앨리샤의 몇 안되는 짐에서 일기장을 찾지 못하고 경찰에게 빌미를 준 테오의 행동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 일기가 증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그녀의 증언은 이미 정신과 의사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했는데, 일기가 진실일 이유는 없잖아요. 일기는 굉장히 설득력있게, 잘 정리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일기 전체가 거대한 거짓말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최소한 테오가 범인이라는걸 밝히기에는 많이 부족했어요. "열심히 치료해 주었는데, 뒷통수를 맞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테오의 주장을 뒤집긴 힘들었을겁니다.
캐시가 연극도 포기하고, 정크 푸드만 먹는 돼지가 되었다는 결말도 불륜남 가브리엘이 죽은 탓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이디어도 좋고 전개도 일품입니다. 비정상적인 심리 묘사가 많고, 결말이 석연치 않아 감점하지만 추천합니다. 색다른 추리 스릴러를 찾으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4/09/14

가연물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가연물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리드비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 가쓰라 경부를 주인공으로 한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추리 소설 동호회인 하우 미스터리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이 자리를 빌어 관계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작가 최초의 경찰 수사 본격 추리물인데, 손대는 거의 대부분의 장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뽑아냈던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치고는 평이한 수준이었습니다. 경부 캐릭터도 진부한 스테레오 타입이고요. 
하지만 "목숨빚"만큼은 빼어납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낭떠러지 밑"
눈밭에서 조난당한 두 사람 중 한 명이 목을 무언가에 찔려 살해당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심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끝이 날카로운 말뚝 같은 걸로 목을 찔러 살해했다는 감식 결과를 보았을 때에는 흉기가 고드름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고의가 아니었다면, 낭떠러지에서 고드름이 떨어져 운 나쁜 피해자 목에 꽂힌 사고일거라 여겼지요. 하지만 다행히 그렇게 뻔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피해자 목에 혈액이 응고되는 반응이 있었다는 감식 결과를 토대로, 이는 다른 사람의 혈액이 들어갔을 때 일어나는 반응이니 범인 미즈노의 혈액이 포함된(?) 흉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즉, 흉기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에 부상당해 튀어나온 미즈노의 팔 뼈였다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흉기는 신선한 편이고, 이에 이르는 추리와 단서 제공 모두 공정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경찰 수사물'에 잘 어울리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흉기가 뭐든 범인은 미즈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기소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기 - '고드름'이 흉기였다고 주장해도 될테지요 - 때문입니다. 수사가 아니라 '추리'에 방점을 둔 느낌입니다. 거장 반열에 오른 작가라도 처음 시도하는 경찰 시도물이라서 다소 혼선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흉기 트릭도 신선하지만 현실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엄청난 정신력이 아니면 실현 불가능했을 방법이니까요. 아울러 수사 기계같은 냉정한 가쓰라 경부의 묘사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다른 작품들 속 냉정한 수사 반장들 - 대표적으로는 "제 3의 시효" - 과 차별화되는 점이 없는 탓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요?

여러모로 평범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졸음"
유력한 강도 치상 사건 용의자 다구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경찰은 다구마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교차로에서 발생한 사고 원인이 다구마의 신호위반일 경우, 체포 영장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 새벽 3시 일어난 다구마의 교통사고를 무려 네 명이나 목격했고, 그들은 모두 다구마가 신호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쓰라 경부는 다구마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즉 신호 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데...

처음에는 다구마가 교통사고를 빙자하여, 상대방 미즈우라와 신분을 바꿔 도망쳤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런 황당하면서도 뻔한 이야기는 아니더군요.
'거짓 증언 부수기' 설정의 작품으로, 피해자나 가해자와 전혀 관계없는 목격자들이 우연히 똑같은 거짓 증언을 하게 된 과정의 설득력이 높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불성실한 근무 태도로 언제 해고될지 모를 교통 정리원과 편의점 직원이 하필 사고 시점에 졸고 있었기 때문에, 의기투합해서 졸았다는걸 숨기려고 거짓 증언했다는건 말이 되니까요.

그런데 전개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바로 가쓰라 경부의 확신 - 네 명 모두 거짓 증언을 한 것이다! - 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누가 봐도 다구마는 바로 체포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아니, 경찰 수사를 위해서는 증언이 없었더라도 체포 영장을 청구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난 사건의 목격 증인이 네 명이나 되고, 이들의 증언이 일치해서 불신을 품었다? 말도 안됩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또 응급실 의사와 게임 클랜의 리더인 대학생도 졸아서 위증에 동참했다는건 과했습니다. 이 둘은 빼고 교통 정리원 가마타와 편의점 직원 고가가 입을 맞추었다는 정도로 끝내는게 깔끔했을 거예요. 의사와 대학생은 사고를 보지 못했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뿐더러, 거짓 증언에 똑같이 동참할만한 접점도 마땅치 않으니까요.

이런 단점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목숨 빚"
유명 관광지에서 절단된 사람의 팔이 발견되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나머지 사체 부위들도 발견했다. 피해자의 신원은 노스에 하루요시로 밝혀졌다. 곧 피해자가 오래 전에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미아타무라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었고, 경찰은 미야타무라를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미아타무라의 흉기에 대한 증언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가쓰라 경부는 납득하지 못하는데...

앞서와 마찬가지로 범인이 명확한 상황에서 가쓰라 경부가 의문을 품는 과정의 설득력은 약합니다. 특히 '사체를 절단하는 커다란 수고에 비하면 사소한, 치아를 뽑거나 부숴서 신원을 알아내지 못하게 하지 않은 것이 수상하다'고 하는건 억지스러웠어요. 사체 전달은 옮기기 편해서라는 이유가 더 클 테니까요. 유명 관광지에 사체를 흩뿌린게 이상하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급했다거나, 길을 잘 몰라 실수하는 등 이유는 여러가지 있습니다. 범인이 확실하다면 수상하다고 생각할 까닭이 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빚과 노모의 간병을 감당할 수 없었던 하루요시가 자살한 뒤, 이를 살인으로 위장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긴 미야타무라가 현장을 조작했다는게 충격적인 진상이 모든 문제를 덮어줍니다. 우리도 직면한 문제인 '부양하기 힘든 고령 인구의 증가, 중년의 노후 보장 없는 은퇴, 취직도 못하는 삼포세대 젊은이'라는 3대에 걸친 사회 현상을 정면으로, 그것도 제대로 된 추리물로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파 본격 추리 수사물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그리고 앞서 억지스럽다고는 했지만, 가쓰라 경부가 수상하다고 여긴 상황들이 진상에 딱 들어맞는건 추리물다와서 좋았어요. 우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광지의 사체를 버린 이유는 빨리 발견되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사망이 확인되어야 보험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사체의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 흉기에 대한 거짓말도 같은 이유입니다. 미야타무라는 '노스에 하루요시를 살해했다'는게 진실로 여겨지기를 바랬으니 이렇게 주장할 수 밖에요.
사체를 토막낸 이유가 하루요시의 사체에서 '목을 맨 자국'이 드러나지 않게 숨기기 위해서였다는 트릭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다만, 독자에게 하루요시 사체 중 목의 중간부 일부가 사라졌다라는걸 정확하게 알려 주지 않은건 조금 아쉬웠지만요.

그래도 여러모로 볼만했던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연물"
월요일 심야부터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잇달아 발생하여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잠복수사 결과 몇 명의 용의자가 떠올랐지만, 잠복근무 시작 후 방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자 잠복 중인 형사가 범인에게 들킨 거 아니냐고 상관이 가쓰라 경부를 질책했다. 그러나 가쓰라 경부는 범인이 이미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를 내놓았고, 어떤 목적으로 방화를 저질렀는지 동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인 오노하라가 버린 쓰레기에서 착화에 쓰인 잡지가 발견되는데...


후더닛보다는 와이더닛 물인데, 왜 표제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수록작 중 가장 처지거든요. 범인의 동기가 하찮을 뿐더러, 납득하기도 어려운 탓입니다. 화재에 대한 나쁜 기억 때문에 돌발적인 화제를 막으려고 안전한 방화를 저질렀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범인은 그냥 수사를 통해 체포하기 때문에 추리의 여지도 거의 없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진짜인가"
이제사키 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권총을 가진 범인이 농성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게 점장 아오토와 아르바이트 생 유노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가쓰라 경부는 아오토와의 통화로 유노가 범인에게 살해당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범인 시다는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파르페를 사주려고 가게를 찾았는데,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아들에게 견과류가 들어 있는 파르페가 서비스되어 화가 난 뒤 다툼이 시작된걸로 보였다. 유노는 파르페에 대해 시다에게 설명하지 않은 직원이었다.

비교적 독특한 사건이 등장하는 작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인질을 븥잡고 농성을 벌이는 사건은 웬만한 작품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지요. "스완"이 약간 비슷하지만, 결은 전혀 다르고요. 또 이런 작품에서 중요한 '인질범과의 협상'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오로지 가쓰라 경부의 추리에 의한 의외의 진상이 밝혀지는 구조가 돋보였고, 여러 명의 증언을 모아 진상을 추리해내는 전개, 가게 안 장난감 가게에서 타는 물총이 시다가 들고 있는 권총과 비슷하다는 단서 등 여러 가지 정보와 단서들 모두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상도 재미있었습니다. 사건은 아오토 점장의 자작극이었습니다. 치정 문제로 유노를 살해한 직후, 시다가 사무실로 들이닥쳐 범행이 들키자 시다의 아들을 인질로 삼아 시다가 범인이고 자신은 피해자인 척 농성하는 연극을 시켰던 것이지요. 나중에 구출 직전 시다와 아들은 살해할 생각으로요.

그런데 조리 담당으로부터 사건 당시 오징어 먹물 파스타가 조리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추리해냈다는건 와 닿지 않았어요. 오징어 먹물 파스타 조리 시간을 감안하여, 시다가 항의차 점장을 찾은 뒤, 한참(약 10분?) 지나서 도망치라는 큰 소리가 나왔다는건 그리 큰 단서나 증거로 볼 수 없습니다. 짜증이 쌓여 한참 있다가 폭발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살해 현장을 무마하기 위해 농성이라는 연극을 벌인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억지가 많아 감점합니다. 

2012/03/09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조세핀 테이 / 권영주 : 별점 3점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6점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검은숲

어느 봄날 오후 4시, 로버트 블레어는 이제 그만 퇴근할까 생각 중이었다.

40줄에 접어든 독신 변호사 로버트 블레어는 어느 날 퇴근 직전에 사건 의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프랜차이즈 저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는 매리언 샤프였다. 의뢰 내용은 샤프 모녀가 유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유괴당했다고 주장하는 소녀 베티 케인의 디테일한 증언 때문이었는데...

아직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인 18세기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을 현대물로 재창조한 독특한 픽션입니다(현대물이라고 해도 작품이 쓰여진 1948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요.). 이런 저런 리스트에서 고전 걸작으로 선정되었던 유명한 작품으로, 장르와 성격은 다르지만 실제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진리는 시간의 딸"과 비슷합니다.

이런 저런 리스트에 선정될만큼의 재미는 확실히 갖추고 있습니다. 추리물, 법정물로서의 가치는 낮을지라도, 중요한 증언(첫 진술의 허점, 베티의 유혹에 대한 증언, 파트타임 도우미의 위증)을 밝혀내는 수사 과정과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은 충분한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거기에 더해 최근에 보기 드문 짜증나는(!) 영국인 심리 묘사와 캐릭터 설정, 재치 있으면서도 지적인 영국식 대사, 자존심 강한 영국 신사 스타일의 해피엔딩 등, 고전 영국 본격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길 거리가 한가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눈 색깔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독특한 (짙은 청색 눈: 성적으로 문란 (매리언 샤프), 연푸른색 눈: 말주변 좋은 거짓말쟁이 (핼럼 경위)) 설정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아, 이 얼마나 영국적인가요!

그러나 비록 억지스러운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팩션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진리는 시간의 딸"에 비하면, 이 작품의 추리적 완성도는 많이 부족합니다. 이유는 유괴 사건의 핵심인 베티 케인의 주장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관만 슬쩍 본 저택 내부의 배치나 가방에 대한 증언이 너무 상세하고 정확해서, 단순히 때려맞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원래 사건에서도 증언이 핵심 요소였고, 작중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베티 케인의 카메라 같은 기억력, 당시 영국 저택들의 유사한 구조, 가구, 장비 등)으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를 설득하기에는 많이 부족해요. 사건이 뉴스화된 이후에는 채드윅이나 그의 부인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물론 불륜이기에 드러낼 수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하지만, 작중 설정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한마디로 그녀의 증언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였고, 초반 몇 발자국만 운이 좋았을 뿐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게 과연 사건성이 있나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증인인 코펜하겐의 호텔 주인이 등장하는 장면 역시 극적이기는 하나, 결국 운과 우연이 겹친 결과일 뿐이라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이런 전개 때문에 추리적인 서사는 보잘것없고, 법정 드라마적인 요소만 살아 있는 묘한 구성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또한 영국식 관용어구의 사용이 지나쳐 "버터를 입에 물어도 녹지 않는다"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다소 과한 느낌이었습니다. 찾아보니 "순진한 척하면서도 뒤로는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풀어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번역자가 영국적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한 의도였겠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단점이 명확하지만, 실제 있었던 미해결 사건을 토대로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하여 창작한 픽션이라는 점과,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만큼은 뛰어납니다. 

저와 같은 고전 영국 본격 미스터리 팬들이나, 조셉린 테이, 프랜시스 아일즈,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012/10/19

신참자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3점

신참자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가가 형사가 주인공인 단편집. 모든 단편들이 중년 이혼녀 살인사건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각각 작게나마 연관되어 있는 - 가가 형사가 수사 도중 선물하고 다니는 선물이 두 번째 단편에 등장하는 닌교야키나 다섯 번째 가게의 케이크라던가, 일곱 번째 단편에서 피해자 전남편과 술을 먹는 가게가 두 번째 단편의 주 무대라던가 하는 식이죠 - 연작 단편집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모순된 증언을 밝힐 수 있다면 아무리 기묘해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점에서(예를 들자면 케이크 가게와 피해자 아들을 연결시키는 진상 같은 부분) 홈즈의 귀납 추리법이 떠오르는데, 고전 추리물 애호가로서 정말이지 무척 반가왔습니다. 이러한 추리법이 다양한 지역 주민들의 모순된 증언 이면의 진실을 파헤친다던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단순한 진실을 밝혀낸다는 일상계 작품에 사용되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실제로 있음직한 소소한 사건을 셜록 홈즈가 풀어가는 느낌이랄까요?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꼬여있던 인간관계가 해결된다던가, 감정의 응어리가 풀린다는 치유계스러움, 피해자 아들 고우키의 성장물 스러움도 지니고 있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고우키가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에서는 잔잔한 감동도 전해주고요.

덧붙이자면, 실존하는 지역인 니혼바시 고덴마쵸의 여러 가게들을 무대로 펼쳐진다는 점도 꽤 인상적이었어요.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듭니다. 저도 지역 특산물이라는 닌교야키나 아몬드 푸딩 위에 패션프루트 젤리를 얹은 젤리는 한번 사 먹어보고 싶어지더군요.

그러나 몇몇 이야기는 비약이 심하고 정보를 공정하게 전달해주지 않으며, 중반부까지의 이야기, 즉 지역 주민들의 거짓 증언을 밝혀내는 이야기들은 많이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아무리 고집이 세고 입이 무거워도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앞에서 태연하게 거짓 증언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또 피해자의 자금 관계를 조금만 철저하게 조사했더라면 보다 쉽게 진상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수사가 발품, 탐문으로만 진행된 것도 납득하기는 어려웠고요.

그래도 결론은 수작입니다. 재미와 함께 추리적인 요소도 잘 갖추고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가가 형사 시리즈는 묵직한 정통 추리물 + 복수극 느낌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뿐이었는데, 아주 상반된 분위기라 의외였지만 저는 이쪽 분위기가 훨씬 마음에 드네요.

수록작 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센베이집 딸"

용의자의 옷차림에 대한 증언과 가가 형사의 관찰(거리를 지나다니는 직장인들의 옷차림)을 바탕으로 비약이 심하지만 논리적인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이 고전 추리 스타일이라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그러나 살인사건이라는 강력 사건 수사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라는 점에서는 설득력이 별로 없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릿집 수련생"

피해자의 집에 있던 닌교야키에 얽힌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사건과는 하나도 관계가 없다는 점과 추리적인 요소가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아쉽지만, 실제 있음직한 일상계스러운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사기그릇 가게 며느리"

피해자의 집에서 발견된 주방 가위를 사기그릇 가게 고부갈등과 연결시킨 작품. 식사용 가위라는 말을 주방 가위로 오해했을 것이라는 진상을 시어머니의 여행과 연결시킨 전개가 깔끔합니다. 이 정도면 완벽한 일상계가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케이크 가게 점원"

피해자가 자주 들린 케이크 가게 - 피해자가 갑자기 연고도 없는 고덴마쵸로 이사 온 이유 - 피해자의 아들이 동거하는 연인의 집이라는 연결고리를 풀어내는 이야기. 철모르는 피해자 아들 고우키의 인간적인 성장이 돋보입니다. 피해자가 이사 오게 된 계기가 순전히 우연이었다는 점에서 정교함이 떨어지나, 은행이 많다는 묘사를 통해 공정하게 독자에게 정보를 전해준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번역가 친구"

시체를 발견한 피해자 친구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이야기가 중심으로,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치유계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의 사기그릇 가게에서의 증언이 주요 소재로 쓰인다는 점에서 연작물 특성을 많이 보이는 것도 특징이고요. 드라마는 잔잔하니 좋은데, 추리적으로 별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청소회사 사장"

피해자의 전남편이 등장하여 가족 간의 응어리를 풀어낸다는 작품으로, 역시나 치유계입니다. 반지에 대한 묘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보기는 좀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민예품점 손님"

유일하게 한 편으로 완결되지 않는 작품으로, 마지막 이야기를 위한 복선 및 정보 제공 성격이 강한 작품입니다. 별점을 단독으로 주기는 좀 애매하네요.

"니혼바시의 형사"

범인을 밝혀내는 대단원 격인 작품으로 전편인 "민예품점 손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깔끔한 마무리는 좋은데, 진상과 동기가 너무 평범해서 앞부분의 수사가 왜 필요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서 조금 맥이 빠집니다. 그래도 흉기를 찾아내는 부분이 현실적이면서도 정교해서 괜찮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4/11/28

실화극장 죄와 벌 - 주병진 강간치상 사건 -

2000년 11월,(주)좋은사람들의 대표이사 겸 개그맨으로 유명한 주병진이 여대생을 강간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팬들은 물론 동료 연예인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을 받았던 그는 이 사건으로 그 동안 쌓아왔던 명예를 하루아침에 잃고 말았다.


#여대생,개그맨 주병진에게 강간당해 경찰 신고
2000년 11월 19일 새벽,한 여대생이 개그맨 주병진에게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신고를 했다. 경찰 진술서에서 강민지(당시 26세,실명)는 눈물로 호소를 했다.
H호텔 가라오케에서 평소 서로 알고 지내던 언니 김자영(예명),후배 신희수(예명)와 술자리를 갖던 중 민지는 호텔에서 나와 집에 가려는 자신을 주병진이 데려다주겠다며 호텔 주차장의 차로 끌고 가 뒷자석에 강제로 밀어 넣어 저항하는 자신을 폭행한 후 강간을 했다고 주장했다.

#벤츠 승용차 안에서의 진실
강간을 당했다는 강민지의 주장에 주병진 측은 다음과 같이 맞섰다. 자신의 차가 주차된 위치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호텔 현관 앞이었고, 또 강민지는 스스로 차 뒷자석에 탔으며 서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대립되면서 사건은 법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강민지는 재판 중에 진술을 여러 번 번복하고 주병진에게 합의금까지 받았음을 폭로한다. 그녀는 주병진이 2억으로 합의를 요구, 강간이 아니었다는 진술을 하기로 했으나 무고죄가 두려워 모든 사실을 밝힌다고 말했다

#합의금으로 강간사실 무마,주병진 징영선고
사건의 쟁점이 강민지가 스스로 조수석에 타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느냐는 것, 또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갖고 주병진이 그저 뺨을 두드려서 생긴 상처인가 폭행을 한 후 강간을 한 것인가를 두고 법정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병진이 강민지에게 합의금을 준 사실은 결정적으로 불리한 작용을 했다. 실제 정액이 채취되지 않은 사실과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호텔 벨맨 등의 증언이 있었다.그러나 재판부는 강간치상에 대한 합의금 사실을 인정하며 주병진에게 징역2년6개월, 집행유예4년을 선고한다.

#순진한 여대생이 술집 여 종업원? 강민지 꽃뱀의 의혹
그러나 1심 판결 후 강민지에 대한 소문과 제보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변호사 앞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강민지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녀는 순진한 여대생이 아닌 술집 종업원이고, 현재 술집에 종사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에 주병진의 동료,선,후배인 이휘재,이성미,김자옥은 강민지를 잠복 추적하며 진실을 밝히려 한다. 결국 강민지는 룸살롱에서 이휘재와 마주치게 된다.

#강민지의 정체는 무엇인가?
주병진은 항소심을 준비하던 중 변호사로부터 강민지가 학생이 아닌 룸살롱 여직원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변호인 측은 자긴의 신원에 대해 거짓 진술 한 것은 신빙성이 없음을 주장하며 강민지가 소속되어 있다는 룸살롱을 찾아가 주인을 증인으로 신청한다. 이에 검사 측은 강민지가 학교에서 제적당한 것을 몰랐기 때문에 학생인 줄 알았고, 피해자가 술집에 나가는 것은 개인 사생활일 뿐이고 프라이버시임을 주장하며 첨예한 대립을 한다.

#궁지에 몰린 강민지,자신의 동생과 비슷한 수법 사용
변호인 측은 당시 사건 현장을 재현하며 상황을 예로 들며 차 뒷좌석에서는 강간을 당하기가 힘들다는 점, 그리고 강제로 강간을 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옷이 찢어지지도 않은채 멀쩡했음을 증거로 들었다. 이에 검사 측은 피해자가 주병진과 동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면 가방을 맨 채로 있었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양측의 팽팽한 주장 가운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증인으로 출석한 한 룸살롱 주인 최범수(가명)의 증언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강민지의 동생(예명)에게 이와 같은 방법에 의해 강간범으로 몰렸다가 무명을 벗었다며 증언대에 섰다.

#재판정을 뒤흔든 충격적 폭로, 그리고 증거 조작
뿐만 아니라, 1심에서 증언을 했던 강민지 친구들의 증언 번복은 관계자를 놀라게 했다. 이들은 1심에서의 증언과는 달리, 피해자 강민지가 친구 신희수(예명)를 시켜 자신의 얼굴을 때리게 해 상처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강민지가 이 대가로 친구에게 이천만원의 돈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강민지가 위장 자살을 계획했다는 새로운 증언까지 내놓았다. 게다가 강민지는 처음 주병진으로부터 받은 합의금 2억을 법정 증인으로 출석한 친구들과 분배,이태리 명품 여행에 모두 탕진한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주병진은 무죄 판결을 받고 강민지는 해외 불법 체류로 행방이 묘연한 상태에서 지명 수배중이다.


집에서 주말에 뒹굴거리다가 우연히 케이블 TV를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 방송한 것이니 상당히 옛날 방송이군요.

1심과 항소심을 1, 2부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는데 상당히 드라마로서 긴박감이 있었고 실존 인물들이 실명으로 (물론 대역이지만) 등장하고 당시 자료화면을 많이 써서 사실감을 높인 것도 좋았습니다.

궁금했던 사건이었는데 결말을 잘 몰랐었기때문에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1차적으로 주병진이 거액으로 합의하려한 사실때문에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되었는데 항소심에서 여자측의 치밀한 작전이 서서히 드러나며 결국 무죄로 판명되게 되었습니다. 완전범죄(?)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여자측이 별로 득될것이 없었던 재판까지 끌고간 행동과 여자측의 숨겨진 과거가 밝혀진 것이 불리했고 결정적으로 친구들의 배신(?)이 치명타가 되어 버렸네요.

주병진의 문란한 사생활과 돈으로 해결하려한 처음의 행위는 분명! 잘못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을 몰고가면 멀쩡한 사람 강간범 되는게 정말 순식간일 것 같습니다. 어쨌건 꽃뱀한테 잘못 걸린 주병진씨는 앞으로 액땜한 셈 치고 열심히 사시길 바랄 뿐입니다.

PS : 옛 듀스의 김성재 사건도 재 조명 되면 좋겠는데 말이죠... 전 아직도 그 애인이었던 여자의 범행이라 믿고 있습니다.

2021/02/05

Q.E.D Iff 증명종료 13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1.5점

Q.E.D Iff 증명종료 13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이번 권은 일상계에 가까운 이야기 한 편에, 국제적인 거대 강력 사건 한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평균 별점은 1.5점밖에는 못 주겠네요. 이전 권이 워낙 좋아서 기대가 컸는데 많이 아쉬운 결과였습니다. 다음 권에서 만회해 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에피소드별 상세 소개는 아래 리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 풍경" 

거액의 빚을 진 가이바시라 사장은 채권자 3명을 카루이자와에 있는 별장으로 초대했다. 상환 계획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에비사와 유리는 가이바시라 사장이 채권자들을 거실에 모아 놓은 뒤, 천장을 무너뜨려 죽이겠다는 계획을 이야기하는 상황을 우연히 목격했다. 이 때 비서 이카다가 못견디겠다며 직접 천장을 무너트리고 사장은 천장에 깔리고 말았다. 

그녀는 곧바로 경찰을 불렀지만 천장에 깔려있을 사장 사체는 발견하지 못했다. 뒤이어 사채업자 다코는 사장을 비서 이카다가 차로 들이받았고, S은행 채권회수 담당자 카니에도 이카다가 사장을 칼로 찌른 뒤 우물에 던져 넣는걸 목격했다는게 밝혀진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경찰이 시체를 발견 못한 탓에, 유력한 용의자였던 비서 이카다는 풀려나게 된다. 에비사와 유리의 부탁으로 토마는 사건 해결에 나서는데...

Q.E.D에 많이 등장했던, '서로 다른 증언 속 진실 찾기', 즉 증인 중 한 명이 범인이나 중요 관계자였고, 증언 중 거짓말이나 미묘하게 숨긴 부분을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더군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부러 증인들을 속이기 위해 연출한 연극이라는게 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극에 헛점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은행 직원 카니에 앞에서 벌인 살인 연극이 그러했어요. 카니에가 현장에서 도망쳐서 경찰에 바로 신고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카다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던가,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면? 연극이라는건 바로 밝혀졌을겁니다. 다코가 목격했던 자동차 사고 역시 가이바시라 사장 대신으로 인형을 써서 자동차 사고를 위장했다는데 그렇게 잘 되었을 것 같지 않고요.
무엇보다도 각자 개인 행동으로 산책을 나선 채권자들이 연극을 그렇게나 딱 맞게 목격했다는 상황이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연극을 벌인 동기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카다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가이바시라 사장이 가입했던 생명보험으로 빚을 값으려면, 시체가 필요했습니다. 반대로 채권자에게 "더이상 빚은 절대로 값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기 위함이었다면 연극은 불필요했어요. 개인 사업자인 사채업자는 손을 뗄 수 있었다 치더라도, 은행 직원이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고 증언한다고 해서 은행 빚이 탕감된다는건 불가능하니까요. 현재와 같이 '죽음이 확인되지 않은 실종 상태'를 의도했다면, 그냥 숨어버리면 되잖아요?

그나마 무너진 천정에서 가이바시라 사장이 탈출한 트릭, 가이바시라 사장이 어디에 숨었는지? 에 대한 추리는 볼 만 했습니다. 트릭은 집 구조를 잘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였고, 가이바시라 사장이 숨은(?) 오래된 별장 굴뚝 속이라는 장소는 앞서 여러가지 복선으로 설명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건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불필요하고 작위적이며 무모한 연극에 불과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특이점의 여인" 

토마와 가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심장병 약 강도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약 25억엔에 달하는 약이 강탈당한 사건이었다. 유로폴 수사 담당자 브루스트는 신라의 친구로, 신분 조회 중 신라에게서 토마와 가나를 (특히 가나) 잘 대접하면 사건이 빨리 해결될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범인 중 한명인 해들리가 자수했다. 그는 르쥬라는 여인이 모근 계획을 꾸몄으며, 그녀 말대로 행동해서 약을 훔첬지만, 훔친 듀랄루민 케이스 안에는 약 대신 잡지 몇 권만 들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그의 증언에 따라 다른 일당도 한 명씩 체포했다. 그러나 르쥬와 약의 행방은 밝혀내지 못하는데....

이야기 전체가 문제 투성이입니다. 제일 앞단에 있는 사건부터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르쥬가 운송업자를 변장하고 만나서 진짜 서류를 손에 넣은 뒤, 다시 자기가 운송업자로 변장하고 약을 손에 넣었다는건데, 변장 만능 주의도 지겹지만 방금 전 건네준 서류를 동일하게 위조해서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설명이 안 될 뿐더러, 가방을 운송업자 앞에서 바꿔치기하는게 별로 쉬워 보이지 않은 탓입니다.

게다가 르쥬는 자신이 직접 약을 빼돌리는걸 계획했던게 분명합니다. 이 계획이 실패했더라면, 뒤의 습격 계획은 불필요했습니다. 변장이나 위조 서류가 들통난 순간, 도주하거나 체포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약을 빼돌리는게 성공했다는 전제로, 단지 서류를 바꿔치기 하기 위해 악당 3명을 끌어들여 운송 차량 습격을 계획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건 아예 말이 안되지요. 왜 화근을 남긴답니까? 말이 되려면 서류가 얼마나 큰 증거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또 강력한 팜므 파탈로 보였던 르쥬가 단순한 방심으로 쉽게 목숨을 잃었다는 결말도 허무했으며, 제목도 그냥 수학 이론을 등장시키기 위한 무리수에 불과해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르쥬가 물리학, 수학 이론인 특이점과 같기 때문에 특이점을 복소적분으로 나누어 해석하듯, 잘 모르는 부분만을 떼어내 생각해야 한다는 토마의 제안은 일견 그럴듯하지만, 수사는 평범하게 증언을 토대로 사건을 되짚어 나갈 뿐이니까요.

그나마 해들리가 르쥬를 죽였고, 사체를 토막내어 3명이 운송 차량 습격에 이용했던 증거품을 숨길 때 각각 나누어 넣어두었다는 진상만큼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은닉 장소, 그리고 이를 밝혀낸 토마의 추리 역시 꽤 그럴싸 했고요. 토마의 추리는 돈이 필요했던 해들리가 왜 자수해서 수사에 협조했는지? 부터 시작됩니다. 돈이 필요했다면, 약을 가지고 있을 르쥬를 추적하는게 당연하니까요. 결국 르쥬에게서 약을 회수하기는 불가능했고, 그 이유는 그녀를 이미 살해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되면 이야기가 성립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살인에 대한 모든 증거도 숨긴 마당에, 살인을 감추기 위해 자수를 한다? 그럴리가 없지요. 해들리가 자수하지 않았다면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졌을겁니다. 즉, 이 모든게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한거지요.

나름 의외성있는 결말은 인상적이긴 하나 이렇게 단점과 약점, 무리수가 많은 탓에 그다지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4/03/28

Q.E.D 큐이디 4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Q.E.D 큐이디 46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큐이디 4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45권은 건너뛰고 46권 리뷰. 50권을 향해 달려가네요. 이번 권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실연"

애인 히로시를 소재로 한 만담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신인 만담가 아야메의 스승과 라이벌인 거장이 말다툼을 하다가 거액의 현금을 극장 안에 가져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도난의 위험성 때문에 현금이 담긴 지갑을 항아리에 수갑으로 묶어 놓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현금은 종이뭉치로 바꿔치기 되어 있었다...

여러 명의 증언을 토대로 그 속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설정의 일상계 작품입니다. 이 설정은 Q.E.D에 한두 번 등장한게 아니죠. 뻔했지만 여러 증언 속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은 여전한 재미를 선사할 뿐 아니라, 항아리에 지퍼를 수갑으로 묶어 놓은 지갑 속 현금을 어떻게 빼냈는지에 대한 트릭도 조미료 역할로는 충분했습니다. 츠노마루와 가메기치의 관계를 샘 로이드의 퍼즐로 설명하는 것도 탁월했고요.

하지만 아야메라는 캐릭터가 나와서 "실연"이라는 결말을 맞게 만든 것은 불필요한 장치가 아니었나 싶기는 합니다. 일종의 성장기나 통과의례로 보기에도 딱히 와닿지 않았고요.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가나와 토마를 끌어들이기 위한 역할에 불과했습니다. 

그래도 평균 수준의 작품은 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순례"

일본군과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시절,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내의 살인범 재판에 참석하게 된 외교부의 엘리트 우스이는 중국 남창에서 하노이까지 무려 1,000Km를 도보로 이동했다. 운 좋게 탈 없이 재판에 참석하게 된 그는 야마이에게 사형만은 선고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다. 이 사건을 일본의 논픽션 작가 우치보리가 취재했는데 원고를 끝내지는 못했고, 우치보리의 사후 원고를 발견한 딸이 진상을 추적하게 되는데...

여러 증언 속 진실을 찾아낸다는 전개는 "실연"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실연"보다도 증언 자체는 훨씬 심플해요. 우치보리의 편집자, 당시 우스이의 부하였던 하쿠로, 그리고 당시 베트남 일본어 통역사였던 구엔의 손녀 3명만 증언하는데, 3명 중 2명은 우스이의 도보 여행은 순례 따위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 하고, 1명만이 순수한 자애심에서 비롯된 순례였을 것이라 답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거짓말을 한 것이 누구인지 뻔해 보이죠?

그래도 역사적 배경이 있는 흥미로운 사건과 결합된, 약간은 역사 추리물 같은 전개는 탄성을 자아냅니다. 시대 배경 덕에 "스파이 활동"을 위한 여정이었다는 설득력 있는 이유가 확 와 닿기도 하고요. 아울러 독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하면서도 중요한 포인트를 흐리며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만드는 솜씨도 정말 일품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상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왜 범인인 야마이가 자살했는지가 핵심인데, 앞부분에서 하쿠로가 말했던 사건이 의외의 반전 요소가 되는 것이 좋았거든요.

원패턴의 내용이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단점이라고 말하기 힘들지요. 굉장히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전체 별점은 3점. 매너리즘에도 빠져 있고 패턴도 고정되었지만, 재미만큼은 여전하니 참 희한하네요. 다음 권도 기대가 됩니다.

덧붙이자면 사건에만 집중해서 토마와 가나의 관계 진전은 전혀 없이 공기화되고 있다는 점은 오래된 팬으로서 약간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이 둘의 관계도 약간이나마 진전이 있으면 좋겠네요.

2025/10/11

정체 (2024) - 후지이 미치히토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가족 살해로 사형 선고를 받은 카부라기는 자해 후 병원 이송 중 탈옥에 성공했다. 형사 마타누키는 카부라기를 집요하게 추적했지만, 카부라기는 계속 도주하다가 결국 '아오바 요양원'에서 발견되었다. 카부라기는 출동한 경찰들에 포위되자 요양원 동료 마이를 인질로 삼았다. 피해자 유족 요시코로부터 증언을 얻을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사형수가 탈옥한 뒤 수백일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소메이 타메히토의 소설이 원작이네요.

이야기의 중심은 사형수 카부라기의 도주극입니다. 카부라기가 이송 중 구급차에서 도주한 뒤, 일본 각지를 전전하며 체포의 위기를 피하는 과정이 아주 상세합니다. 변장과 마스크를 이용해 사람들 속에 섞여드는 모습도 설득력 있게 표현되고요. 또 도주 과정에서 카부라기가 인연을 맺은 여러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도 큰 울림을 줍니다.
드라마적으로도 잘 구성되어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도 안정적이어서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좀 달랐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의 도주극은 진범을 밝혀내는 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중반 이후에 또다른 일가족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체포되면서 카부라기가 누명을 썼다는 진상이 드러납니다. 반전도 없어서 관객 입장에서는 맥이 빠집니다. 요시코의 증언만으로 누명을 벗는다는 점도 시시했고요. 
때문에 초반의 스릴러적 긴장감은 뒤로 갈 수록 느슨해지고, 드라마적 색채가 강해집니다. 이는 요시코의 행방을 알아내고 증언을 이끌어내기 위한 카부라기의 노력이 그리 잘 묘사되지 못한 탓도 큽니다. 솔직히 마지막 증언 요구 장면은 '강요'로 보여서 영 별로였어요.

카부라기가 마지막 체포되는 모습은 앞서의 도주극과는 다르게 허술합니다. 오사카 공사장이나 사야카의 집에서 도주 후 변장할 때는 관객도 깜짝 놀랄 정도로 다른 사람처럼 보였는데, 요양원에서는 마이가 잠깐 찍어 올린 SNS로 덜미가 잡힐 정도로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탓입니다. 주연 요코하마 류세이 문제도 커요. 정체를 숨기고 도주를 이어가기에는 너무 잘 생겼으니까요. 보다 평범한 외모의 배우를 기용하는게 바람직했습니다.

또 카부라기를 돕는 주변 인물들의 동기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마이는 자기 부친도 누명을 썼다는 이유라도 있지, 오사카 공사장에서 만났던 카즈야(점프)는 카부라기를 경찰에 신고했었고, 사야카는 그냥 카부라기 얼굴에 반했을 뿐인데 왜 끝까지 믿고 따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성장했다는 장면은 완전히 사족이었고요. 이들보다는 상부의 명령에 의심을 품은 채 카부라기를 추적하는 마타누키 형사의 내적 갈등을 더 잘 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촬영과 연기 모두 뛰어난, 잘 만든 영화이지만 추리극으로서의 재미는 다소 부족합니다. 기대와 달리 드라마적인 무게가 강했어요. 이런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모를까,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2023/07/05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20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3.5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20 - 8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

19권에 이어 연달아 읽은 20권. 졸작이었던 19권에 비하면 월등히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특히 두 번째 작품인 <<위작 화가>>는 간만에 본 걸작입니다.
두 작품 평균한 별점은 3점인데, 두 번째 작품이 다 했어요. 이 작품만큼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팩트>>
투자자 드라고 서버는 전재산을 투자했던 배터리 연구소 화재로 은퇴한 뒤 보험금으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엘란드 장학금'을 받고 쥴리어드 입학 후,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우승했던 드라고의 딸 알리다에 대한 취재가 진행되던 중 과거 화재 사건에 얽힌 수수께끼가 불거졌다. 알리다는 화재는 공장에 걸려있던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고 그걸 숨기려 했던 도박꾼 삼촌 니노가 저지른 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녀 말고 그날 니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른 증언을 하는데 그 중에서 진실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이야기. 그간 Q.E.D에도 많았던 이야기인데,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알리다의 증언은 거의 100% 정확했다는 점에서요. 단지 니노 삼촌이 아빠로 변장했던걸 눈치채지 못했을 뿐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증언은 모두 거짓입니다. 진실을 말한게 누구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알리다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거든요. 반면 화재 덕분에 드라고는 더 큰 손실을 막고 은퇴할 수 있었고, 니노는 미술품을 빼돌릴 수 있었지요. 때문에 증언을 짜맞추어 진실을 더듬어가는 재미는 반감될 수 밖에 없습니다. 

거짓말을 완성하는데에는 변장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니노가 투자 때문에 출장갔던 형으로 변장하고 연구소에 나타나 화재를 저질렀던 거지요. 트릭은 형제라는 점에서 나름 설득력은 있습니다. 연구소 스탭 모두 니노가 있다는걸 눈치채지 못한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고요.
그러나 알리다에게만 정체를 들킨 이유가 석연치 않고, 밖에 있으면서 창문에 비친 모습으로 방 안에 있는 것 처럼 느끼게 했다는건 억지였습니다. 어지간히 눈치가 없지 않고서야 이게 말이나 될까요? 이 어설픈 트릭이 들통났다면 니노는 어쩔 셈이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또 드라고가 출장간게 왜 드러나지 않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큰 화재 사건에서 조사를 하지 않았을리 없는데 말이지요.

아울러 그녀가 처음 주장했던대로, 니노 삼촌이 그림을 빼돌리고 공장에 불을 지른건 사실이었습니다. 미술품을 판매한 돈을 이상한 장학금 명목으로 알리다에게 후원했다는 뒷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을 뿐입니다. 단지 그 정도를 더 알았다고 알리다가 성장한다는 마지막 장면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황상 장학금 정체도 대략은 알고 있던걸로 보였는데 말이죠. 그리고 장학금이 더러운 (?) 돈이었다 해도, 차이코프스키 콩쿨 우승은 스스로의 성과입니다. 폄하받을 이유는 전혀 없어요. 그녀가 한 걸음 더 못 나아가는건 사건의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진실은 별로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솔직히 저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엉성한 트릭과 전개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위작 화가>>
위작 화가 사라시나는 자기 그림을 진품인양 팔다가 폭력단 보스 타누키에게 쫓기게 되었다. 중간 판매상인 고교 동창 난치 탓이었다. 하지만 난치만 없으면 사라시나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며칠 뒤, 이즈에서 바다 낚시를 즐기던 토마 일행은 총성을 듣고 벼랑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보았다.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시계는 난치의 것이었다. 하지만 유력한 용의자 사라시나에게는 최소한 30분 이상 필요한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리고 타누키 보스마저도 총에 맞아 살해되는데....


추리적으로 여러가지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트릭을 위한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되어 만족도가 높았던 작품.
첫 번째 사건 진상은 사라시나가 난치와 짜고 난치의 죽음을 위장했다는겁니다. 사라시나가 총을 쏜 뒤, 인형을 바다에 던지면 절벽 밑에 숨어있던 난치가 인형을 회수하고 죽은 척 하다가 사람들이 내려오는 틈에 숨은 뒤, 위조 여권으로 외국으로 떠난다는 계획이었지요. 깊게 파헤치자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 예를 들어 목격자들 모두가 절벽 아래로 내려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위에서 누가 보고 있었다면 바로 들통나는 트릭이지요. -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사라시나가 6시 30분에 화상 츠키미를 만났다는 알리바이 트릭도 좋았습니다. 만났던 장소는 사건 현장에서 2시간 이상은 걸리는 곳이었는데, 사건은 5시 무렵에 일어났었기 때문에 알리바이는 완벽했지요. 하지만 토마는 만난 곳이 '4호 창고' 였다는데 주목합니다. 알고보니 창고는 1호부터 4호까지 있고, 모든 창고는 똑같이 생겼습니다. 츠키미가 4호라고 알았던 곳은 2호였고. 2호는 범행 현장에서 1시간 30분만에 올 수 있어서 범행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츠키미가 입력했던 네비게이션 주소만 확인해도 드러날 트릭인데, 사라시나는 렌터카를 타고 오라는 지시로 이 부분을 보완했어요. 설명이 조금 빠져있기는 한데, 이후 사라시나가 렌터카를 빌리던가 해서 네비게이션을 초기화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마지막 타누키 보스 살해는 알리바이라고 보기도 힘든, 당연한 결과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난치가 범인이었으니까요. 난치는 곧 떠난다면서 사라시나를 술집으로 보내고 범행을 저질러서 사라시나에게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었죠. 동기는 당연히 친구 사라시나가 위험에 처하지 않게 화근을 제거하기 위함이었고요.
이렇게 범행 동기와 전개 모두 설득력넘치고, 트릭도 좋습니다.

전개도 깔끔해요. 유령(?) 난치가 사라시나에게 술을 먹으러 권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아래와 같이 사라시나가 죽인 난치와 대화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라시나는 살아있는 난치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만화로만 가능한 일종의 서술트릭이 사용된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4.5점. 간만에 본 전성기 Q.E.D스러운 역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좀 씁쓸하네요. 난치가 죽은걸 위장하기 위해 진짜 총을 사용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총 소리만 나면 되는 트릭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둘은 진짜 총을 구했고, 난치는 그 총으로 타누키 보스를 죽였지요. 이 사실이 재판에서 드러나면, 조직에 의해 난치는 물론 사라시나까지 위험에 처하게 될 겁니다. 난치는 일을 키우지 말고 그냥 외국으로 가는게 답이었어요.

2014/01/27

세계대전 Z - 맥스 브룩스 / 박산호 : 별점 3점

세계대전 Z - 6점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의 저자가 쓰고, 브래드 피트의 영화로도 제작된 "월드워 Z"의 원작 소설입니다. 좀비 관련 소설은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나름 유니크한 책이었던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저자가 썼고 평도 좋아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무려 5년 전인 2008년에 출간되었으니 좀 늦은 감은 있습니다만...

장점이라면 단순한 크리처물이 아니라 일종의 재앙물로 접근하고 있는 점과 "논픽션" 스타일의 인터뷰 중심 전개를 통해 큰 현실감을 가져다 준다는 점입니다. "대공포"라고 불리는 좀비의 창궐과 그 이후 벌어진 극심한 혼란, 그리고 마지막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장대한 과정을 거의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인터뷰어를 등장시켜 전개하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극적인 효과도 더 크게 느껴집니다. 피난 행렬이 엄청난 교통 체증을 유발한 고속도로를 좀비들이 덮치는 과정에 대한 증언, 캐나다의 겨울을 이용하여 피난하려는 생존자들이 인육을 먹게 되는 과정에 대한 증언, 인도 히말라야의 교통로 차단 작전과 작전의 성공으로 끊긴 도로로 좀비들이 몰려와 절벽 밑으로 떨어지면서 물소리 같은 - 뚝뚝뚝 - 소리가 들린다는 증언 등이 대표적입니다. 인터뷰어의 증언이 아니라 일반적인 소설의 묘사 방식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와 닿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인터뷰어들이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이색적이면서도 현실성을 배가시켜 줍니다. 한 생존자가 동네 청년 총각파티를 해주기 위해 유일하게 동작하는 DVD 플레이어와 포르노를 몇 편 구했는데 러스티 캐넌이 회백색 BMW Z4 위에서 벌이는 정사 장면을 보고 "와우, 이런 차는 더 이상 안 만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장면은 정말 최고였어요!

또 작가가 나름 크리처를 상대로 한 위대한 전쟁이라는 주제를 시니컬한 유머로 변주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UN본부 회의에서 좀비에 대한 공격을 천명하며 감동적인 연설 - "인류로 돌아가는 길고 힘든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구상에서 한때 자부심에 넘쳤던 영장류의 퇴행성 권태를 택할 것인가? 그게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선택이다" - 을 하지만 그것을 들은 인터뷰어가 "전형적인 백인들의 헛소리. 궁둥이는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별을 잡아보겠다고 용을 쓰는 꼴. 이게 만약 백인 영화였다면 얼간이 몇 놈이 일어나서 천천히 박수를 치고, 거기에 화답해서 나머지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쳐대고, 누군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식의 인위적인 개지랄을 보겠지만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움직이지도 않았다"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말이지요(그간 제가 느껴왔던 감동이 백인 중심의 인위적인 개지랄이었다니 입맛이 좀 쓰네요.).

그 외에도 다양한 국가가 등장하여 세계 정세를 가상 역사 SF처럼 펼쳐나가는 전개도 꽤 흥미를 돋우는 부분입니다. 미국 중심이기는 하나 그래도 다른 국가들에 대한 안배도 공평한 편이거든요. 관련 자료는 인터넷에도 많이 등장하기에 구태여 소개드리지는 않습니다만, 한국이 등장하고 특히 북한은 인구마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잠잠한, 이른바 "땅굴도시" 속 좀비 국가가 되었으리라 하는 부분은 좀 오싹했습니다. 쿠바가 지형적 이점을 활용하여 완벽하게 좀비와 격리되어 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한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그러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좀비의 위험을 너무 과장되게 그렸다는 겁니다. 과거 그 어떤 전투와 전쟁에서도 압도적인 무기의 존재는 병력 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 무기와 전술이 "없다시피" 한 좀비와 초현대식 무기로 맞서 싸운 모든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고립된 건물이나 지하와 같은 특수 장소도 아니고 평원에서의 전투에서 그러한 결과는 사실 말도 안돼죠. 이 점은 엔위하키 미러의 6.1 현대 무기의 과소평가와 일치하니 참고하세요.

아울러 좀비가 사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체에게 달려드는데 다른 생명체(쥐라던가 개라던가..)는 왜 좀비가 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의아했습니다. 생명체 전부에게 좀비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더라면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텐데, 너무 대충 넘어간 것 같아요. 좀비의 목적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면, 결국 어느 정도 이상 좀비가 불어나면 더 좀비가 되는 사람은 없지 않나? 라는 의문도 마찬가지고요. 왜냐하면 살점은 다 뜯어먹힐 테니까요.

또 무의미하달까... 늘어지는 분량도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데커 플랜 같은 경우 꽤나 비중 있게 등장하지만 잔인하고 이기적인 생존본능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 외에는 등장하나 안하나 별 차이는 사실 없습니다. 전쟁에서 이런 이야기가 드문 것도 아니잖아요? 당장 우리만 해도 6.25 때의 한강 인도교 폭파와 같은 좋은 사례도 있고 말이죠. 뭐 최악은 뭐니 뭐니 해도 일본의 "방패회" 관련 서술이지만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추천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재미 하나만큼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니까요. 킬링타임용 독서로는 이만한 선택도 드물 것 같기에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 특히나 좀비에 대해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와 함께 읽으면 더욱 큰 재미를 느끼실 겁니다.

2020/01/10

Q.E.D iff 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Q.E.D Iff 증명종료 5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iff도 5권 째에 접어들었네요. 이번 권의 특징이라면 에피소드 두 편 모두 잔혹한 살인 사건(한 건은 미수입니다만)을 다루고 있으며, Q.E.D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냥 추리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그런데 왠걸, 아주 좋았습니다! 직전 4권에는 간만에 괜찮은 에피소드가 수록되었었다고 소개했었는데 4권의 첫번째 이야기가 장타였면, 이번 5권은 이야기 두 편 모두 장타 이상, 심지어 두 번째 이야기는 홈런 수준입니다. 타점은 2점! 별점은 3점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이븐 Even"

대학생 아시카가 렌은 산에서 조난당한 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사고 현장에서 테시마에게 차였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어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병원에서 렌의 산소마스크를 벗기려던 누군가가 도주하다가 막다른 복도에서 사라진 사건이 일어났다.
그 뒤 가나의 탐문 조사를 통해, 렌을 찼다는 테시마가 렌에게 십여만엔의 돈을 빌렸다는걸 알아낸다. 이 사실을 가나에게 알려준 센도는 테시마가 그 빚을 갚지 않기 위해 렌을 죽이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렌의 병문안을 왔던 또 다른 한 명인 코시모토는 테시마의 연인이었고, 테시마는 성인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렌의 독일어 노트가 독일어 시험을 볼 때 아주 유용했는데 독일어 시험지가 도난당했다는 사건 등이 연달아 밝혀졌고, 이를 토대로 토마는 진상을 추리해낸다.

등장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는 Q.E.D에서 흔하게 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 한 번의 증언이 전부가 아니라 가나의 탐문이 이어지면서 계속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며, 결국 세 명의 유력 용의자들이 모두 수상하게 만들어서 보다 정교한 느낌을 전해 줍니다. 테시마는 자신의 성인 클럽 아르바이트를 숨기기 위해, 코시모토는 연인에게 집적되는 남자를 죽이기 위해, 센도는 테시마를 살인범으로 몰기 위해서라는 동기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코시모토가 독일어 시험 문제를 훔치다가 렌에게 들켜서 그를 죽이려 했다는 진상도 괜찮고요. 

게다가 가장 놀라왔던건 사건에 대해서는 세 명 모두, 즉 범인까지도 진실만을 이야기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렌이 테시마의 손수건 향을 맡고 있었다"는 코시모토의 증언은, 시험 문제를 훔치는 상황에서만 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정도입니다. 코시모토가 운동선수를 그만두고 MBA를 목표로 해외로 가려고 하는 상황도 마찬가지고요. 도주 목적이었던 것이지요.

등장하는 트릭은 변변치 않지만, 범인이 병원 막다른 목도에서 사라진 방법은 나름 그럴듯 했습니다. 옷을 집어 던진게 사람이 그 쪽 방향으로 뛰어간 것 처럼 보였다는 이유인데, 우연이라도 실제로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게 머리를 쓴 작위적인 트릭보다는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였거든요. 코시모토가 마라톤 선수라는 설정을 활용한 트릭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그런데 세세한 문제가 몇 가지 눈에 띕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병원에서의 살인 미수도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코시모토는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렌이 식물 인간이 된 게 아니라면, 언젠가 의식을 회복해서 코시모토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걸 증언할게 뻔하잖아요? 서둘러 해외로 도주하지 않은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이야기 결말을 보면, 토마의 추리 이후 머지않아 렌이 깨어나 사정청취를 한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렌의 노트가 있으면 독일어 시험에 큰 도움이 되는건 모든 학생이 알고 있으며, 연인 테시마가 그 노트를 빌렸는데 왜 독일어 시험 문제지를 훔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토마의 주장도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렌의 실족이 살인 미수라는 주장에, 코시모토는 왜 렌의 자살 미수가 아니냐고 물어봅니다. 토마는 병실에 누군가 침입해서 렌을 죽이려 했다는게 증거라고 이야기하죠. 자살 미수였다면, 누군가 침입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죽으려 했을거라고 단정하면서요. 그러나 바로 직전에 읽었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에 따르면, 자살을 실행했던 사람은 대부분 자살 시도 자체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통계적인 수준이지만, 토마의 단정은 섣부른 감이 없잖아 있는 셈이지요.

그래도 나름 합리적인 전개는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동안 졸작이 많았기에 이 정도면 평균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불완전한 밀실"

타카마츠씨가 밀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밀실 안에는 쓰러져있던 간호사 이타미 사요코가 곧바로 체포되었지만, 다행히 그녀는 풀려났다. 미즈하라 경감이 진짜 범행 장소를 알아낸 덕분이었다. 또 다른 범행 장소가 일찍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는 1년 반 전 발생했던 클럽 화장실에서 하치오라는 여성이 살해된 사건 탓이었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었던 이타미 다케오는 가혹한 취조를 받은 뒤 자살했는데, 당시 검사가 타카마츠씨였고 이타미 사요코는 다케오의 모친이었기 때문이었다. 명확한 동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초, 중반부까지는 '불완전한' 밀실 살인의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결국은 복수극이었다는 전개가 독특한 작품입니다. 복수극이었기 때문에 범인인 이타미 사요코는 불완전한 밀실을 만든겁니다. 본인이 용의자로 체포되기 위해서였지요. 이 과정은 지극히 합리적입니다.
또 도화선이 된, 1년 반 전의 하치오 살인 사건은 시체가 아직 살아있는 것 처럼 위장한 뒤, 문 뒤에 숨었다가 구경꾼인 체 한다는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아주 현실적이에요. 복잡하지도 않고, 상황에 대한 설득력도 높으니까요.

물론 CCTV도 있었을 테고, 현장에 있던 구경꾼들의 명단을 경찰이 입수하지 않았을 이유도 없다는 것, 그리고 클럽에 중년 이상의 여성이 숨어들어간게 들통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이타미 다케오였는데,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당연히 가족이나 청부 살인을 의심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악덕 커리어 경찰 미야코가 이타미 다케오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증거까지 조작해가며 그를 몰아붙였다는 이유로 상쇄됩니다. 또 복수귀로 변한 이타미 사요코가 미야코 살해로 복수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면도 아주 좋았고, 이 모든걸 예상했던 것으로 보이는 미즈하라 경감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아울러 본편과는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토마가 경찰청의 타나바타 경위를 처음 만났을 때 '경찰청 형사 분이시죠?'라고 알아채고 묻는 장면도 기억에 남네요. 가나와 타나바타는 토마가 말투, 신발에 묻은 흙같은걸로 대단한 추리를 벌였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미즈하라 경감이 토마에게 연락했던 것입니다. 추리라는게 그렇게 대단한건 아니라는 반증으로 보여 흥미로왔어요.

신 캐릭터 타나바타 경위의 등장은 불필요했다는 점, 미야코의 증거 조작 등의 행각은 아무리 만화지만 지나치다는 점은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명확한 동기에 트릭도 안정적이며, 전개까지 발군인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합니다.

2014/09/12

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 하시 몬도 외 / 페가나 : 별점 3점

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 6점
하시 몬도/페가나

"심령 살인사건"에 이은 페가나북스의 두 번째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입니다. 건승을 기원한다는 글도 남겼었는데 출간된 지 1년도 더 되었네요. 조금 무안합니다.

작가의 명성보다는 추리소설의 형식과 완성도를 기준으로 일본 근대 추리 단편의 걸작을 골라 수록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확실히 그에 걸맞게 좋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나 작품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분량도 적절하고 완성도도 괜찮습니다. 번역도 깔끔하며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요. 최소한 2,000원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다시금 페가나북스의 건승과 함께, 이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기를 기원합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방" - 하시 몬도

전전 홋카이도의 가혹했던 노동 현장(일명 문어방)을 무대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관리가 파견되어 노동자들로부터 고충을 듣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내용입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지하 강제 노역장이 연상되는 독특한 무대가 인상적이며, 발표 시기에는 금기시되었을 듯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현장 묘사도 짧지만 꽤 괜찮은 편이고, 극적 반전—사실은 정부관리가 파견되기 전 불평분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쇼였다—도 좋았고요.

한 번 정도 더 비틀어 주인공 화자가 진짜 정부관리 앞에서 또다시 실태를 증언하고, 그것조차도 쇼인지 아닌지 독자가 고민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깔끔한 단편이라는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덤불 속"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 원작 중 하나. 영화는 소설 "라쇼몽"의 무대 설정에 이 "덤불 속" 서사를 혼합한 구조라고 하죠.

여러 증언을 통해 진상을 밝히려는 전통적 추리물 구조를 갖추고는 있으나,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피해자 타케히로의 마지막 증언—빙의를 통해 전달된—때문에 더더욱 그러하지요. 다른 인물들이 모두 자기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만큼, 피해자의 증언이야말로 진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지기는 하지만요.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독창적 시도였음은 분명하겠지만, 지금의 독자에게는 그 울림이 약합니다. 유명세에 비해 감탄할 만한 요소도 많지는 않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세 광인" - 오오사카 케이키치

이전까지 몰랐던 작가인데 정말 인상적인 본격물이었습니다. 망해가는 정신병원을 무대로 세 명의 정신병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특징을 복선과 트릭에 훌륭히 녹여낸 솜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토록 복잡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인물이 과연 피해자의 주요한 특징을 간과했을까? 라는 의문은 들지만, 워낙 본격물로의 완성도가 높아서 이 단편집 중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을 느끼게 해주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꼭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진동마" - 운노 쥬자

화자인 "나"가 친구 카키오카 아키로의 기묘한 낙태 작전, 그리고 직후 닥친 폐질환에 대해 서술해나가는 이야기.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공명 현상을 이용해 자궁을 진동시켜 낙태를 유도한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매우 참신했습니다. SF 작가다운 상상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카키오카의 폐와 여성의 자궁 크기가 유사하다는 우연, 이를 기반으로 범죄를 계획하는 화자의 전개는 억지스러웠습니다. 또한 탐정이 갑자기 등장해 모든 진상을 설명하는 방식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사망보험금 수령이라는 단서도 억지로 끼워넣은 듯한 느낌입니다.

아이디어는 뛰어났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구성과 전개가 부족한데 전문 추리작가가 썼다면 훨씬 좋은 결과물이 되었을 듯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 - 하마오 시로

아내의 불륜 상대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된 인물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그 차량 운전자가 바로 첫 번째 피해자의 형이었다는 내용으로 치밀한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반전에서 모든 사고가 우연이었음이 밝혀집니다.

다양한 복선(특히 자동차 교체)이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등, 여러모로 모범적인 범죄물 단편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국내에 작가의 장편인 "살인귀"가 번역되어 있다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네요.

2005/03/23

아주 긴 일요일의 약혼 -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 김민정 : 별점 4점

아주 긴 일요일의 약혼 - 8점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지음, 김민정 옮김/문학세계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17년 1월,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격렬한 참호전을 벌이고 있던 솜전선의 최전방 참호 중 하나인 "해질녁 빙고"에 5명의 군인이 호송되었다. 그들은 자해 혐의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상부의 지시로 프랑스와 독일 참호 경계 지역에 맨몸으로 내던져졌다. 그리고 대 전투의 혼란 중에 모두 전사했다고 알려졌다.

5명의 군인 중 한명인 마네크의 연인 마틸드는 장애인이지만 아버지의 재력에 힘입어 당시 참호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마네크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하나 둘 씩 찾아내는 실제 참호 전 참전 병사들, 그리고 5명의 병사의 가족들의 증언에 힘입어 서서히 당시의 진상을 밝혀내기 시작하는데...

프랑스 작가 세바스티앙 자프리조의 장편소설. 프랑스 장편 소설답게(?) 길이가 만만치 않네요. 

정통 추리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 증언들을 종합하여 그 중에 놓여있는 진상을 찾아내는 과정에 더해 기초적이기는 하지만 암호 트릭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넓은 범위로 보면 추리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 작품처럼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들을 모은 뒤 그 속에서 하나의 진실을 찾아낸다는 소재와 설정은 많은 작품에서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주인공에게 장애인이라는 핸디캡이 있는 탓에 주로 "편지"로 증언들이 수집된다는 차이점이 있고, 덕분에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 됩니다.

1차대전 당시와 직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시대 상황을 잘 보여주는 상세한 묘사도 좋고, 독특한 성격의 주인공의 심리 묘사도 재미있을 뿐더러 나름대로 해피엔딩인 결말까지 완벽해서 상당한 길이에도 불구하고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 스토리인 마틸드의 마네크 탐색과 그것에 관련된 여러 반대 의견, 협박과 더불어 5인의 병사 모두 각각의 이야기와 설정이 자세하고 흥미진진해서 정말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거든요. 물론 프랑스(!) 소설 답게 묘사가 좀 장황해서 약간 지루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추리소설 강국 프랑스의 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나저나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비의 여행자"는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로 재 구성한 것을 읽었었는데 반해 이 작품은 소설을 영화화한 "인게이지먼트"라는 작품이 곧 개봉한다고 하니 아이러니컬하네요. 도대체 편지를 주 매개체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화 했는지 궁금해서라도 영화는 꼭 챙겨봐야 겠습니다.

덧붙여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거진 다 별명으로 불리는 탓에 머리 속에 담아두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옛날 추리 소설 스타일로 맨 앞머리에 등장인물 일람을 간략하게 정리해 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제가 나름대로 등장인물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혹 읽으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주인공과 그 가족, 협력자들

  • 마틸드 : 주인공. 어렸을 때 사다리에서 떨어져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 실뱅 : 마틸드의 운전수 겸 친구. 보호자
  • 베네딕트 : 실뱅의 아내. 요리사 겸 가정부.
  • 마티유 도네이 : 마틸드의 아버지. 건설회사 운영자.
  • 피에르 마리 루비에르 : 마틸드 집안의 변호사. 군관련 인맥으로 마틸드의 조사를 돕는다.
  • 제르맹 피르 : 사립탐정이자 조사원. "만능 해결사"

5인의 병사

  • 마네크 : 마틸드의 연인. 20살의 어린나이로 징집되어 자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참호 밖으로 내던져진 병사. 군대에서는 "블루에"로 통함.
  • 클레베르 부케 : 원 목수. "에스키모"
  • 앙주 바시냐노 : 형무소에 있다가 감형을 조건으로 전투에 참전한 건달. 애칭은 "니노" 별명은 (형무소에 있다가 징집되어서) "일반법"
  • 프랑시스 게냐르 : 노동운동을 하다가 참전. 별명은 "시수"
  • 브누아 노트르담 : 5명중 가장 강한 병사. 아내와 아들이 한명 있다. 별명은 "그 사람"

관련 병사들

  • 셀레스탱 푸 : 당시 참호전에 참전했던 병사. 요령있고 약삭빨라 별명은 "군의 무법자".
  • 뱅자맹 고르드 : 하사. 당시 참호전에 참전. 클레베르의 친구이자 원 동업자. 별명은 "건빵"
  • 위르뱅 샤르돌로 : 하사. 고르드 하사와 함께 "해질녘 빙고"의 5명의 죄수 인계 책임자. 이후 전사.
  • 다니엘 에스페란자 : 당시 병사들을 참호까지 호송한 담당자. 5명의 마지막 편지를 대신 보내준 인물.
  • 파부리에 대위 : 당시 "해질녘 빙고"를 비롯한 진지 책임자. 5명을 참호 밖으로 내던지는 행위를 혐오하며 상부를 비판.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
  • 장 자크 에스트랑쟁 중위 : "해질녘 빙고" 중대장.
  • 장 바티스트 상티니 : 당시 5인의 병사를 치료한 군의관. 이후 전사.
  • 아리스티드 포미에 : 마틸드와 마네크의 고향친구이자 마틸드의 전우.

병사 가족 및 친지들

  • 프티 루이 : 클레베르와 "건빵"의 친구. 술집 주인.
  • 베로니크 파사방 : 애칭 "베로", "에스키모" 클레베르의 연인이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헤어짐.
  • 엘로디 고르드 : 뱅자맹 고르드 하사의 부인.
  • 발렌티나 에밀리아 마리아 : 앙주 바시냐노의 애인.
  • 파올로 콘테의 미망인 : 발렌티나 에밀리아 마리아의 대모.
  • 테레즈 게냐르 : "시수"의 아내.
  • 로진 샤르돌로 : 샤르돌로 하사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