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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9

나의 차가운 일상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1.5점

나의 차가운 일상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범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는 우연히 알게된 지인 이치노세 다에코가 자살 시도 후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낼 약속을 했기에 나나미는 그녀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걸 믿지 않았고, 누군가 다에코가 쓴 '수기'를 나나미에게 보낸 뒤 나나미는 다에코 사건을 혼자서 파헤치기 시작했다. '수기'는 다에코가 친구 도모요가 식물인간이 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회사를 옮겨가며 조사에 나섰고, 어렸을 때 부터 독살을 반복해 왔던 범인 세누마 도루가 누구인지 찾아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범인인줄 알았던 세누마 도루는 다에코 사건과 관계가 없다는게 드러났고, 나나미 앞에서 세누마 도루마저 살해당하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뷰작이었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후속 장편. 작가와 이름이 똑같은 '와카타케 나나미'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이야기입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일상계 단편, 그리고 단편이 모여 하나의 큰 사건을 이야기하는 연작 구성이었던 반면, 이 작품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장편에 가깝습니다. 지인의 사고에서 촉발된 조사가 거대한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방아쇠가 되고, 결국 비참한(?) 결말로 이어지는 내용이니까요.
전작은 꽤 성공적으로 국내 시장에 소개되었으며, 재판까지 이루어졌던 반면 후속작은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읽고나니 왜 소개가 늦어지고 그 존재도 알 수 없었는지 알겠더군요.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고, 여러 사건들 - 세누마 도루가 벌인 독살 사건들, 이치노세 다에코 자살 미수 사건, 세누마 도루 살인 사건 - 이 모두 따로 놀고 있어서 내용도 정리되지 않은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와카타케 나나미가 수사에 나선 계기가 된 다에코 자살 미수 사건과 세누마 도루가 독살범임을 밝혀내는 다에코의 수기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세누마 도루를 살해한 것도 다에코 사건과 무관하게 가족이 저지른 범행이고요. 다른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들이 파생되는게 아니라, 그냥 우연찮게 전혀 다른 사건들이 한 인물 주변에서 일어났을 뿐입니다. 이런 우연이 한 번에 겹친다는 것, 그리고 자살 시도와 불합리한 죽음이 너무 많다는건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각 사건들의 세부 요소들도 제대로 짜여져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치노세 다에코의 '수기'가 좋은 예입니다. 이치노세 다에코가 세누마 도루의 수기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이에요. 세누마 도루가 누나 이시하라 사와코에게 주었던걸 사무실에서 우연히 입수하여 복사를 했다는데 말도 안돼요. 사와코는 분신 자살을 선택하여 동생과 수기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했을 정도인데 수기를 그렇게 허술하게 놔 두었다? 그럴리 없지요, 애초에 연쇄 독살범이 버젓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자기 범행을 고백하는 수기를 남긴 것 부터가 말이 안되고요.

다에코 자살 미수 사고를 일으킨 이가라시의 동기도 불분명합니다. 다에코를 놓치기 싫어서 그랬다는데, 그와 다에코의 관계가 이런 엄청난 사건을 불러올 정도였는지 독자는 알 수가 없거든요. 단순히 '놓치기 싫었다' 정도로 간주하기에는 지나치게 치밀한 범행이라는 인상도 지우기 힘듭니다.
이가라시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추리만으로 자백한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자백도 결국 '다에코가 자살했다'는거라 허무했습니다. 결국 와카타케 나나미의 진상 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거잖아요. 자살 동기도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세누마 도루 살인 사건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누나 이시하라 사와코는 동생이 연쇄 독살범이라는걸 수기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동생의 범행으로 가족이 고통받을까 두려웠다면, 수기를 입수한 뒤 바로 죽였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범행이 계속되어 체포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구태여 한참 기다렸다가 죽일 이유는 없습니다. 마침 도루가 와카타케 나나미와 만나고 있던 그 시점에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사와코가 도루를 죽였다는 증거가, 와카타케 나나미가 담배를 피우는걸 알고 있었다는 것 뿐이라는건 비약이 심했습니다.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는걸 보지 않아도 냄새로 알 수 있으니까요.

캐릭터들도 별로였습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와카타케 나나미는 불행과 사고를 불러온다는 점에서는 하무라 아키라와 비슷한데, 시종일관 진지하고 어두워서 호감가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짜증만 유발하는 다른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성격들이 괴퍅하고 모가 나 있는 탓에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대표적인건 세누마 도루입니다. 정신병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심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이상 체질을 가지고 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나마 밀실이었던 다에코의 방에서 가스가 누출되었던게 아니라, 그 전 노래방에서 가스 호스를 다에코 입에 직접 물려 가스를 흡입하게 하고, 술에 취한 것 처럼 위장해서 집으로 옮겼던 이가라시의 범행 정도만 괜찮았어요. 그리고 동행들과 집의 가스를 단속한 뒤 문을 잠겄던 겁니다. 나중에 이동할 때 가스 냄새가 나는 향수를 조합하여 뿌린 뒤, 그 때 집에 들어가서 가스를 누출시켰고요. 가스를 언제 흡입했는지는 밝혀내기 힘들고, 순전히 냄새로만 판단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괜찮은 트릭이었다 생각되네요.

하지만 이 트릭 외에는 말씀드렸듯 건질게 없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후속작이라고는 하지만, 제목 외에는 관련성을 거의 찾을 수 없으며 완성도, 재미, 수준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습작 수준의 작품으로 작가의 팬이 아니리시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2010/12/15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3점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하자키 시에 위치한 주택지 '빌라 하자키 매그놀리아'의 비어있는 3호실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는 얼굴과 손이 뭉개져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빌라 주민들의 다양한 생각이 오가던 와중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고 떠벌이고 다닌 5호의 아케미마저 다음날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자키 시(市) 시리즈" 1탄입니다. 바다 옆 작은 소도시 하자키 시를 무대로 한, 이른바 "코지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으로 2탄인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를 먼저 읽었더랬죠. 코지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력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쨌건, 이 작품도 역시나 "헌책방..."과 마찬가지로 수다스럽고 왁자지껄한, 유머러스한 추리물로 읽는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탐정역인 형사반장 고마지와 부하 형사 히토쓰바시의 대화가 특히 압권이죠.

사소한 대화와 에피소드들 모두가 결국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 교묘하게 사건의 내용과 단서가 엮인 전개도 좋습니다. 산길에서 발견된 "팬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에요. 그냥 날려간 빨래인 줄 알았는데, 나름 사건과 연관이 있었거든요. 이노 게이코의 협박 사건 등 두 개의 사건을 하나로 묶어서 전개하다가, 결국 결말에서 두 건의 사건이 전혀 별개라는게 밝혀지는 아이디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작가의 장점이 잘 부각된 작품입니다. 유머러스한 분위기, 교묘하게 배치된 복선과 단서에 따라 결말에 이르는 복잡하면서도 명쾌한 구성이라는 장점 말이죠. 덧붙이자면 "누구나 죽이고 싶어하는 여자" 캐릭터를 만드는 솜씨는 확실히 와카타케 나나미를 따라올 작가가 없을 것 같아요. 그만큼 묘사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부분에서 살짝 기대에 미치지 못한건 조금 아쉽습니다. 두 건의 살인이 벌어지는데, 빌라에서 의문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은 너무 뜬금없었을 뿐더러 '사고'에 가까운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인 아케미 살인 사건은 범인의 알리바이에 우연과 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 마쓰무라 켄에게 어머니가 전화를 걸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보다 빨리 해결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아울러 첫 번째 사건은 경찰이 가지고 있는 정보 없이는 해결하기가 불가능했고, 아케미 살인사건 역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마지막에서야 제공된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썩 공정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의 두 개의 반전도 지나친 사족으로 여겨졌고요.

그래도 앞서 말한 장점과 더불어 책의 구성과 번역도 훌륭하고, 시리즈답게 이어지는 캐릭터들, 그리고 헌책방 '기토당'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하무라'라는 직원이 등장하는 등 작가의 팬으로서 즐길 거리도 많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지치고 무료한 일상에 즐거움을 주는, 그야말로 '킬링 타임용' 재미에 최적화된 작품입니다.

2009/12/05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시작

마츠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하권이 새로 나왔기에 구매차 방문한 인터네 서점을 둘러보다가 구입한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충동구매에 가까웠는데, 다행히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 자체의 구성이 신선한 덕분입니다.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이라는 중편 이야기가 총 6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펼쳐지며, 이 중편의 각 장이 끝나면 곧바로 다이도지 케이가 경찰관을 은퇴한 뒤 벌어지는 단편 에피소드들이 이어져서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단편 에피소드들이 중편 "최후의 사건"에 등장했던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중단편집이지만 일종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끔 한 것으로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물론 와카타케 나나미가 단편들을 엮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맥락을 갖추게끔 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아이디어이기도 하고요.

또 전직 경찰관이지만 지금은 작가(?)로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다이도지 케이라는 주인공은 물론,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범죄자들 모두 매력적입니다. 이상하게 사건에 엮이게 되는 다이도지 케이의 상황들도 재미있고요. 관련된 사건들 전부가 상상을 뛰어넘을만큼 황당하지만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 그리고 일상물로 여겨질만큼 평범하지만 희한하게 느껴지는 재미난 캐릭터들 모두 작가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선보입니다.

또 그동안은 작가의 단점이라 할 수 있었던 요소들, 즉 본격으로 치기에는 좀 구성의 짜임새가 없고(이건 제가 단편집만 읽은 탓이 크겠죠), 즉흥적으로 보이는 장난스러운 설정과 묘사들이 단편집이라는 형태에서는 외려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약간은 억지스러운 트릭들이지만, 작품 분위기가 일상계면서도 황당한 상황들이라서 이야기에는 더 잘 어울린 느낌이에요. 작가의 팬으로서는 전작들과 어느정도 연결되는 세계관도 즐길거리였고요.

결론적으로 근간 읽은 추리소설들 중에서는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코지 하드보일드" 라는 조금은 기괴한 장르명으로 소개되고 있던데, 일상계의 탈을 어느정도는 뒤집어 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코지,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하드보일드 탐정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뭐 그다지 과장된 소개는 아닙니다. 코지 계열의 팬이거나 가벼운 유머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팬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1.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경찰관 다이도지 케이는 상사 고이즈미 무사시와 함께 30대 초반 여성 살해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피해자인 자유기고가 후지노 유키의 신변을 조사하던 다이도지는 그녀에게 일을 의뢰했던 적이 있는 출판사 직원인 소꿉친구 히코사카 나쓰미를 찾아가는데.... 

총 6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중편입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 즉 아내의 비참한 뺑소니 사고와 범인을 일부러 놓아준 경찰서 내부 G반 인간들, 그리고 다이도지를 작가의 길로 끌어들이는 히코사카 나쓰미나 원숭이 조지와 같은 곁다리 등장인물이 다른 단편 에피소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집의 밑그림과도 같은 작품이죠.

그러나 아무래도 단편 에피소드들을 위해서인것 같은 무리한 이야기 전개도 약간 거슬리고 내용도 설명적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크게 두드러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트릭 역시 중요한 단서가 말장난에 가까운 등 공감하기 어려웠고요.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책의 뼈대라는 점에서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 죽어도 안 고쳐져

작가가 된 다이도지 케이는 경찰시절 겪었던 얼간이 범죄자들을 다룬 "죽어도 안 고쳐져"라는 책을 발표하고 강연회를 가졌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자칭 트레이시라는 범죄자가 다이도지를 협박하며 자신이 뒤집어쓴 누명을 벗겨줄 것을 강요하는데... 

아주 유쾌하면서도 기발한 소동극입니다. 범죄의 천재로 자부하는 스킨헤드 범죄자 트레이시 로즈라는 캐릭터의 등장부터 유쾌하고, 트레이시가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밀실 살인 사건은 추리적으로 완벽해서 흠잡을데가 없습니다. 게다가 다이도지가 전세를 역전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하드보일드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해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단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이 이야기를 꼽겠습니다.

* 덧붙이자면, 책 뒤의 해설에서 트레이시 로즈는 포르노 출신 배우라고 하는데, 저는 80년대 헤비메탈 밴드에서 따온 이름인줄 알았습니다. 메탈 쪽이 더 이미지가 비슷한 것 같은데 말이죠...

3. 원숭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죽어도 안 고쳐져"에서 자신을 우습게 다루었기 때문에 딸이 가출했다고 소매치기 원숭이 조지가 우긴 탓에, 다이도지 케이는 딸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후 찾아온 경찰에 의해 원숭이 조지가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조금은 미묘한 작품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처럼 유머러스한 전개로 재미있게 읽히기는 하지만 범죄가 우발적이고 트릭도 별것 없으며 무엇보다도 증거가 빈약하다는 단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의 활약이 발군이라서 평작 수준은 됩니다.

4. 죽여도 안 죽어

다이도지 케이에게 한 추리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검토해 줄 것을 부탁해 왔다. 경찰관 시절 경험을 살려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작품의 살인계획이 현실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데.... 

편지로 긴장감을 높여주는 전개가 독특한 작품으로 깔끔한 이야기 구성에 반전도 확실한 편이라 즐길거리가 많은 에피소드입니다. 추리적으로 "증거"라는 것이 빈약하고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이 크긴 한데 워낙에 아이디어가 돋보여서 단점도 묻혀가는 느낌이랄까요. 확실히 단편은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네요.

5. 추락과 붕괴

논픽션 작가 이소베 다카히토의 유고를 이어쓸 것을 본의아니게 떠맡은 다이도지 케이는 고카 악이라는 화산지대에 위치한 이소베의 별장을 찾아가는데... 

사건은 별게 없고 트릭도 무지하게 간단하지만 이소베라는 작가와 연관된 인물들의 악의가 거침없이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이러한 평범한 악의의 극대화는 작가의 특기이기도 하죠. 전개도 합리적이라 무난한 수준의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6. 도둑의 엉뚱한 원한

하자키 문화센터에 강연차 방문한 다이도지 케이는 2인조 강도에게 납치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곤경을 해결하고 사건의 복수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물어보는데... 

앞선 이야기들과 동일한 구성, 즉 다이도지 케이가 희한하게 사건에 엮이게 된다는 전개이지만 2인조 강도단이 이야기한 사건의 내용만 듣고 진상을 밝혀내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들과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사건도 앞선 에피소드들에 비한다면 일상계에 가까운 내용이라 가볍게 읽기에 편했고요. 단서와 복선들도 공평해서 합리적으로 전개되기에 추리적으로 만족스러운, 여러모로 평균 이상의 괜찮은 이야기입니다.

2020/06/20

어두운 범람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2.5점

어두운 범람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엘릭시르

여름에는 추리 소설이지요. 좋아하는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단편집입니다. 재미와 완성도 모두 무난하고 평이했습니다. 전체적인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 5편에 대한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리 남자" 

하무라 아키라는 모토미야 하루로부터 군마현 이카호 온천 근처에 외따로 위치한 할아버지 집에 놓여있는 어머니의 유골 항아리를 회수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심령 연구가 히다리 슈지로로 사후 폐허가 된 그 집은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한 상태였다. 폐가가 된 히다리 슈지로의 자택을 방문한 하무라 아키라는 유골 항아리를 찾다가 '파리 남자'의 습격을 받아 지하실로 떨어졌고, 그 곳에서 예전 안면이 있던 작가 아사쿠라 교스케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굉장히 짧은 이야기이지만, 본격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빼어납니다. 모토미야 하루의 오빠가 과거 하무라 아키라, 아사쿠라 교스케의 취재 당시 동행했던 카메라맨 오사무였으며, 그가 '파리 남자'라는 진상을 추리하기 위한 단서가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굉장히 짧은 분량임에도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의 대사를 적절히 분배하여 단서와 정보를 전달하는 솜씨도 탁월하고요. 아사쿠라는 오빠 일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오빠가 일하다가 다쳐서 다리가 불편하다는 모토미야 하루의 말을 통해 당시 카메라맨이 하루의 오빠였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파리 남자'로 보인건 방독면 때문이고, 이는 그 집에서 화산 가스가 나오기 때문인데 이를 별 거 아닌 듯 했던 TV 속 뉴스 묘사등으로 범인의 동기, 즉 그 집 주변이 '온천 지대'로 확인되어 단순 매각이 아닌 개발을 원했다는걸 풀어내는 추리도 일품입니다.

물론 억지가 없지는 않아요. 아사쿠라에게 심령 스폿으로 공동묘지 터를 추천한건 그 땅의 소유주일 수 밖에 없다는 추리가 그러합니다. 아사쿠라가 인터넷 등 다른 루트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고 있으니까요.
또 집을 동생에게서 빼앗으려고 했다는 동기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유골함이 없다고 모토미야 하루가 집의 매각 계획을 철회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즉, 하무라 아키라를 습격해서 계단에서 밀어 떨어트릴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아사쿠라의 시체도 결국 모토미야 하루의 증언을 통해 행선지가 드러나면 영원히 감출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단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작위적인 전개, 약간의 억지는 아쉽지만 항상 위험에 처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공정한 좋은 작품입니다.

"어두운 범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단편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대단치는 않습니다. 일단 이소자키가 다섯명이나 죽이는 폭주를 저지를 때 부상을 입었던 "죽지 않는 남자" 후쿠모토 다이키치의 옛 여자친구가 유코라는걸 알아내고, 펜레터를 보낸건 유코가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 다다노부라는걸 알아내기까지 사용된 페이지는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아요. 그만큼 전개가 빠르며 추리의 여지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부각시키는건 이소자키가 왜 폭주를 저질렀는지? 유코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입니다. 다다노부는 이소자키의 범행 전날 밤, 태풍이 불어올 때 유코는 사라졌는데 사실은 이소자키가 그녀를 죽이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폭주를 저지른게 아닐까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다다노부의 계략이었습니다. 전일본이 미워하는 범죄자 이소자키에게 팬레터를 보낸건 누구인지 변호사가 흥미를 갖게하여 그 집을 조사하게 만들고, 그 때 시체를 발견하게 만든겁니다. 목적은 유코의 보험금이었습니다. 실종자에게는 보험금이 나오지 않으니 시체가 발견될 필요가 있었거든요.

이렇게만 보면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이소자키가 범행을 저질러 수감된 뒤 그의 아버지가 목을 맨 곳에 시체가 있었다는건 애시당초 말이 안됩니다. 자살 당시 현장 조사는 철저히 진행되었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시체를 가져다 둔 건 이소자키가 아닌게 뻔하지요. 또 트렁크에 넣었다 한 들, 조사를 하면 사체가 오랫동안 묻혀있었다는 것도 바로 들통날테고요. 그럼 시체를 유기한 제 3자가 있다는 뜻이니 이소자키의 범행은 여러모로 불가능합니다. 즉, 다다노부의 계략은 헛점 투성에 불과해요. 아울러 이 과정을 통해 이소자키가 왜 폭주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유코의 백골에 많은 골절이 보여서 다다노부가 말한, 휠체어를 탄 어머니 범행설의 신빙성을 떨어트린다는 결말과, '나' 역시 다다노부처럼 노모 때문에 미칠것 같은 상황인데 다다노부의 범행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범행을 결심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은 꽤 모골 송연하기는 합니다.
이런 점을 본다면, 정통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기묘한 맛' 류에 가까와 보이기도 합니다. 고령자 부양 문제가 핵심 소재이며, 동기라는 점에서는 사회파 추리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테고요. 이렇게 인간 본성의 어두움을 사회 문제와 함께 덜컥 내놓는건 와카타케 나나미의 특기이기도 하지요.

범인의 계획이 헛점 투성이라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이지만, 추리 외에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게 아닌가 싶네요.

"행복한 집"

착하고 성실해 보였던 사람이 악당이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사실은 범죄로 가득했다는, 하드보일드스러운 설정을 기묘한 블랙 코미디 느낌의 묘사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런 작풍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미나미 하루히코는 바로 전작인 "어두운 범람"에도 출연했었고, 잡지를 위한 취재로 하자키 시의 헌책방에서 일한다는 독신 여성을 만나는 등 작가의 팬이라면 반가운 요소가 많았습니다. 또 고령자 부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점도 전작과 마찬가지인데, 아무래도 작가가 고령자 부양이라는 현실에 직면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나'가 고령자 부양에 대해 떠올리는 내용은 경험자가 아니면 모를 내용이라 생각되거든요.
추리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없지만, 범인 마쓰바라 사야카와의 취재에서 그녀가 수상하다는 단서는 모두 알려주는 등 정보 제공만큼은 본격물에 가깝게 공정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완성도는 미흡합니다. 내용에서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력만큼은 인정받는, 한창 때인 편집자 세쓰코가 공갈 협박에 횡령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동기부터 불투명합니다. 그녀의 죽음이 마쓰바라 사야카의 범행 때문인지도 명쾌하게 드러나지도 않고요.
미나미 하루히코의 역할 역시 모호한건 마찬가지에요. 그가 세쓰코를 위해 협박 대상을 물색한 조사자인지, 아니면 공범자인지도 잘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마쓰바라 사야카가 범인이라면, "cozy life"의 취재에 선뜻 응한 이유도 모르겠고, 그녀가 마쓰바라 할머니를 죽이고 집을 차지했다면 "cozy life"에 자신의 집을 독자 투고 형태로 소개해달라고 보낼 이유도 없었을겁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특유의 작풍을 잘 느낄 수는 있지만 이러한 점들 때문에 감점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야나기 무네요시의 "수작업의 일본"이 읽으면 잠이 오는 특효약이라는데, 국내에 출간되면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요새 불면증이 생겨서요.

"광취"

가리야 마나부의 1인칭 독백같은 이야기입니다. 처음 어린 시절 이야기는 공손하게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면서 반말로 강하게, 협박조로 총을 들이대며 수녀들에게 이야기하는게 드러나는 구조가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특별하지는 않으며, 전개는 억지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리야 마나부가 수녀들에게 분노를 터트릴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인간 쓰레기인 가리야 마나부의 아버지입니다. 오기와라 미나코가 사생아 분지를 낳고 수녀원에서 쫓겨난건 그 탓이지, 수녀들의 잘못은 아니죠. 수녀원에 돌아가고 싶은 미나코의 소원을 죽은 뒤에도 받아주지 않은 수녀원 측의 처사가 문제가 없는건 아니지만, 이는 분지의 유괴 사건 후 마나부가 언론에 그 이유 - 미나코가 유일하게 수녀원에 들어갈 수 있었던건 어린아이의 실종 때 자원 봉사로 카레를 대접했을 때 뿐이라 분지가 유괴를 저지른 것 - 를 공개했다면 원만하게 해결될 수도 있었을겁니다. 구태여 총까지 들이밀면서 장황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이유는 없어요.

마지막 분지가 만든 카레 재료의 정체가 무엇이냐는게 반전처럼 등장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 장르 문학을 좀 읽어본 독자라면 미나코의 사체가 카레집 '파라다이스 로스트'에 놓여져 있다는 묘사에서 충분히 떠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오기와라 히로시"어머니의 러시아 수프"가 바로 떠올라서 새롭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인물을 등장시켜 나름의 가족애를 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러시아 수프의 정체가 '파라다이스 로스트'의 특제 카레와 정체라는 반전과 똑같으니까요.
허나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는 절박한 굶주림이라는 이유가 명확하지만, 이 작품에서 미나코의 사체를 재료로 쓸 이유는 딱히 없어서 그만큼 와 닿지도 않습니다. 이유를 좀 더 모골송연하게 끌어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으로서는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독특함과 읽는 재미는 좋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도락가의 금고"

하무라 아키라가 "조용한 무더위"에서처럼 '살인곰 서점'에서 일하게 된 시작을 알리는 단편으로 지방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모두 디자인이 다른 일본 전통 민예 장난감 고케시의 줄무늬를 금고를 여는 암호로 썼다는 트릭이 등장합니다. 트릭 아이디어도 꽤 기발하며, 고우다가 미스터리와 고케시 양쪽 모두의 매니아라는 설정이 덧붙여져 있어 설득력은 높은 편입니다. 후처가 고케시 장인의 여동생이었다니, 장인에게 시켜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을테니까요.

하지만 암호 고케시를 찾는 하무라에게 고케시 진열장을 넘어트려 상처입힌 범인의 정체는 너무 뻔했습니다. 후쿠시마 별장에는 관리인이 있는데, 그 관리인이 고케시를 만들었던 장인이자 고우다의 매형 안도였다니 이래서야 추리의 여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게다가 안도 측에서 하무라를 다치게 만든 동기도 불분명합니다. 안도는 고케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암호 고케시 본체 없이도 금고를 여는게 가능했으며, 하무라가 고케시를 가지고 오기 전에 이미 금고를 열어 속의 원고를 빼돌렸으니 하무라와 고케시는 없어도 되니까요.

고우다가 남긴 원고의 내용이 고우다를 배신했던 후처의 언니와 그 연인의 동반 자살과 같은 내용이었다는 결말만큼은 섬찟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안도가 이 원고를 대충 읽었으면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설정 구멍으로 보이네요. 안도는 원고가 무엇인지 아는 것으로 보아 읽어본걸로 보이는데, 내용이 자기 동생의 자살이 위장된 살인일 수 있다는걸 모를 수는 없지요. 즉, 설정만 놓고 보면 안도는 고우다가 오래전 에로 소설을 썼다 정도가 아니라, 살인자일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즐길 거리가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2010/10/02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3.5점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 8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편집자로 일하던 아이자와 마코토는 실직 후 바다를 찾아왔다가 익사체를 발견했다. 어쩔 수 없이 하츠키시에 머물게 된 마코토는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주인 베니코의 간단한 테스트를 통과한 뒤, 그녀의 취업 제의를 받아들였다.

한편 그녀가 발견한 익사체는 하츠키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에다 가문의 히데하루로 밝혀져 장례 준비가 진행되는데, 그 와중에 마에다 가문의 현 주인 마치코마저도 어제일리어에서 살해되고 마는데...

소도시 하자키를 무대로 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라 주저 없이 선택했는데, 읽고 나서야 두 번째 작품이라는걸 알았네요. 

그런데 이 작품, 정말 재미있습니다!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가득한 것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가 수사와 추리의 과정에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범인과 동기가 이치에 맞는 등 본격 추리적인 요소에 아주 충실합니다.

거기에 더해, 아이자와 마코토가 초반에 겪는 호텔 화재 사건이나 마코토와 치아키의 전화 통화, 베니코 여사의 옛날 이야기 같은 사소한 단서들이 모두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덕분에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거나 복잡한 느낌 없이 추리 소설의 재미를 가득 느낄 수 있었어요.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 역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시끌벅적하면서도 황당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지만, 적절히 수위와 템포를 조절하며 작품과 어울리도록 녹이는 부분에서 작가의 내공이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코토가 처음 어제일리어를 방문한 뒤, 베니코 여사와 펼치는 '고딕 로맨스 퀴즈' 등 고딕 로맨스 소설에 얽힌 다양한 떡밥들은 매니아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해 더욱 흥미로웠고요.

하지만 주요 사건의 깔끔한 해결에 비해 다른 사건들은 정리가 다소 부족하다는건 아쉬웠습니다. 특히 마치코-구도가 얽힌 하쓰호 살해 및 유기 사건이 그렇습니다. 구도가 하쓰호를 죽인 이유도 명쾌하지 않았고, 시체 유기에 대한 진상은 다소 억지스러웠거든요. 이 때문에 마치코 역시 유언장을 폐기하려면 차라리 불을 지르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하거든요. 유언장도 없애고, 생사가 불분명한 하쓰호의 행방을 파악할 수 있어 재산 상속에 문제가 없어지니 1석 2조가 되니까요. 어차피 자신이 직접 죽인 것이 아니니, 마치코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구도가 마코토를 습격하면서까지 사체를 처리하려 했던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사건은 종결된 상태였으니까요. 이런 행동은 무리수였습니다. 차라리 고마지 반장의 추리로 밝혀내는 식으로 처리하는게 더 나았을 거에요.

덧붙이자면, 히데하루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와 그가 복수를 결심한 이후의 행동들 역시 다소 뜬금없었습니다. 복수 방법도 어설펐지만, 마이와 시노부가 얽히는 과정이 순전한 우연에 불과하다는 점은 앞선 정교한 장치들과 비교한다면 너무 쉽게 처리된 듯 합니다.

하지만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5점! 이상하게 단점을 리뷰에 상세하게 적기는 했는데, 장점이 훨씬 더 월등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빨리 1권을 구해 읽어야겠네요.

PS: '코지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치고는 너무 강력한 사건이 등장하며, 전형적인 일본의 콩가루 집안 재산 싸움이 펼쳐지는 점이 의외였습니다. 이런 작품도 코지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2011/07/27

명탐정은 밀항중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2점

명탐정은 밀항중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노블마인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쇼와 시대 초기 국제 여객선을 무대로 한 연작 단편집입니다. 설정에 걸맞게 많은 등장인물과 특이한 장소, 상황을 이용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각 작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작가 특유의 연작 단편 분위기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습니다. 시끌벅적한 소동은 정도가 과했고, 무엇보다도 추리적으로 너무 부족해서 좋게 평가할 점이 거의 없네요. 작가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블랙코미디 요소는 어느 정도 살아있었지만, 단순히 웃음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나은 선택이겠지요.

그나마 스즈키 류자부로의 기묘한 여행기가 에필로그와 연결되는 아이디어는 괜찮았는데, 마지막 부분에서의 작위성이 너무 심해서 전체적인 인상을 망쳤습니다. 처음부터 노리고 썼다는 티가 너무 많이 났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적인 요소가 너무 빈약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이긴 하지만, 최근 작품들은 만족스럽지 못하군요. 추리소설 애호가나 작가의 팬, 그 누구에게도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이라도 만회해 주었으면 좋겠네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살인자 출범하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발생한 기묘한 살인사건. 범인이 하코네호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문기자 후지키의 추적이 펼쳐진다는 이야기.

문제는 후반부의 갑작스러운 진상이 흐름을 망친다는 겁니다. 진범의 독백으로 범인이 누구인지 독자에게 알려주는데, 배경 설명도 부족하고 관련된 단서도 거의 없어 당황스러울 뿐이었어요. 이런 전개라면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 어렵죠. 별점은 1점입니다.

"아가씨 승선하다"

어딘가의 앤솔로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정확히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남작가의 딸이 벌이는 탈출 소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난스러운 소동 자체는 즐길 만했지만, 핵심 트릭이 단순한 말장난이라는건 아쉽습니다. 그래도 탈출을 막기 위한 주변 인물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가상했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고양이는 항해 중"

항해 중 발생한 살인사건과 그에 대한 진상을 다룬 작품인데, 기본 설정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닮았다 해도 남자가 여자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을까요? 이 정도면 변장이 아니라 변신이죠. 애초에 이렇게 변장을 할 계획이었다면 구태여 살인사건을 일으켜 복잡하게 만들 필요도 없었을 테고요. 점수를 줄 여지가 전무합니다. 별점은 0.5점입니다.

"명탐정은 밀항 중"

표제작으로, 전통적인 트릭인 1인 2역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작가 특유의 일상계스러운 분위기와 등장인물들 간의 밀고 당기는 심리 묘사가 괜찮았어요. 길치인 탐정역의 삼장스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요. 일상계적인 요소, 설득력 있는 트릭, 유쾌한 캐릭터와 심리 묘사가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유령선 출몰"

승객들이 선상에서 괴담회를 열고 발표한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범인을 옭아맨다는 독특한 구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특정 무대에서 펼쳐지는 괴담회라는 설정은 에도가와 란포나 고사카이 후보쿠 등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쇼와 시대 초기라는 작품 배경과 잘 어울렸어요. 

문제는 전개와 결말이 너무 진부했다는 점입니다. 결말이 조금만 더 신선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뻔한 내용이라 아쉽더군요. 현대 독자가 읽기에는 어중간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선상의 악녀"

아이의 일기장을 통해 전개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던 소품입니다. 결말도 깔끔하게 마무리되었고요. 그러나 설정이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점은 아쉬웠어요.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만한 깊이 있는 고민이 더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이별의 뱃고동"

항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벌어진 가면무도회에서의 ‘장난’을 파헤치는 이야기와 주요 등장인물들의 결말을 그리는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소소한 일상적인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과연 이게 이야기로서 의미가 있는 사건인가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평범했습니다. 대미를 장식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작품이었어요. 그래도 깔끔하게 마무리되는건 좋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실 이 단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가면무도회에서의 기상천외한 분장이었습니다. 온몸을 종이로 둘둘 말고 벽에 머리를 기대 서 있는 분장, 과연 무엇일까요? 정답은 ‘피사의 사탑’!

2009/10/21

의뢰인은 죽었다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의뢰인은 죽었다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과 "네 탓이야" 로 친숙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신작 단편집. "네 탓이야"의 주인공 프리터 하무라 아키라 주연의 단편 9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읽고난 감상으로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은 생각하고는 많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편집은 제가 기대했었던 "추리물"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이야기의 전개나 구조는 추리물적인 성격이 강하고, 대체로의 내용들도 범죄와 호러를 근간에 깔고 있는 등 광의의 의미로서 추리물이라고 부르기에는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도 범죄가 등장하고 그 범죄를 파헤쳐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던가, 교묘한 범인의 트릭을 간파해서 진범을 찾아낸다는 등 전통적인 추리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죠. 작가의 전작을 통해 이러한 추리적인 요소를 많이 기대했던 저에게는 정말 뜻밖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하고 달랐다고는 해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작품들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죠.

먼저 전통적인 추리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표제작이기도 한 "의뢰인은 죽었다"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갑자기 날아온 난소암을 알리는 통지서에 당황하던 여자가 우연찮게 알게된 하무라에게 관련된 내용을 물어본 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어 하무라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통지서라는 존재 자체가 좀 작위적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동기"와 일련의 과정이 아주 합당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짜여져있는 좋은 작품으로 충분히 기대에 값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단편인 "시인의 죽음"에서부터 등장하는 하무라의 친구 아이바 미노리가 탐정역을 소화하는 이색작 "여탐정의 여름 휴가"도 제목 그대로 여름휴가를 보내는 호텔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설정부터 완전 고전 영국식 추리물 티가 팍팍나는, 단순하지만 "복선"과 "단서", 그리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던 것이, 이러한 추리물을 포함해서 이 단편집의 작품들은 일관되게 "자살"이라는 죽음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는 것과 이러한 자살 행위 뒤에 "인간의 악의"가 굉장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들고 싶네요. 그것도 친족이 관련된 사소하지만 무서운 악의를 말이죠. 정도가 지나쳐서 작가가 친족에게 큰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쨌건, 이러한 악의가 사소한, 또는 일상속에 묻힌 사건 배후에 깔려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살짝 소름이 돋는 내용들로 짜여져 있기에 굉장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앞서 언급한, 친구 아이바 미노리의 약혼자였던 공무원이자 시인이었던 인물의 자살 사건 뒤에 감추어진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아버지의 속셈을 그린 "시인의 죽음"과 한 평범한 주부가 의뢰한 그녀 친구의 급작스러운 자살사건에 대한 이야기인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가 대표적으로 이 두 작품은 그야말로 일상계 악의 범죄소설이라 명명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사소한 악의가 타인에게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철저하게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 외에도 은인과 불륜관계에 빠진 아내를 데리고 귀향한 화가에 대한, 조금은 뻔한 내용이지만 충분히 설득력있는 일상계 호러물 "철창살의 여자"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작위적인 무대장치와 작중에 "수없이 많은 모델이 견디지 못해서 교체되었다" 라는 설정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모델들이 알 수 밖에 없으니까요) 충분히 공포를 안겨다 주는 작품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경우는 실제 등장하는 그림이 비쥬얼로 보여지는 영상물로 작업된다면 정말 모골 송연한 전연령(?) 호러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드라마화라도 되면 좋겠는데....
작가 특유의 인칭과 시점을 오가는 묘사력이 잘 표현된 "아베마리아"도 좋은 작품이었고요.

아울러 주인공 하무라의 독특함. 그 어떠한 일이라도 방관자적이면서도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같은 집요함도 재미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전작 "네 탓이야"와 비교한다면 단독 주연(?) 이면서 연륜이 쌓인 덕인지 훨씬 캐릭터가 확실해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정말 실존할 것 같은 여탐정 캐릭터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단, 일종의 스토리라인을 설정한 듯 첫번째 작품인 "짙은 감색의 악마"와 마지막 작품 "편리한 지옥"이 서로 연결되며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데 이 두 작품이 단편집과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 하나는 아쉽습니다. 평범한 일상속에서의 악의라는 테마를 일관되게 끌고나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일종의 "마인"과도 같은 악역의 생뚱맞은 등장으로 일상성과 평범함, 그리고 악의라는 중요 이야기축이 통째로 무너져 버려서 혼란스러워지더군요. 예를 들자면 그런대로 괜찮은 추리물이었던 "케이조쿠" 에서 "아사쿠라"라는 마인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 그대로였어요. 그냥 하무라라는 캐릭터와 일상에서의 악의만 가지고도 충분히 이야기가 가능했는데 왜 이러한 악역이 등장해서 이야기에 개입했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이름값은 하는 작품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작품은 하무라 아키라가 등장하는 첫 장편이라는데 특유의 일상성을 잘 살린 작품이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2022/05/29

나쁜 토끼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점

나쁜 토끼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는 가출 소녀 미치루를 찾는 의뢰를 수행하던 중 칼에 찔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해결한 덕분에 로열 할리우드 호텔 체인 회장 다키자와의 의뢰를 받았다. 미치루의 친구이기도 한 딸 미와를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고압적인 다키자와 때문에 조사는 난항을 겪었지만, 미치루의 도움으로 공통의 친구였던 아야코가 미와 실종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아야코는 마약 중개인에게 살해당했고, 소녀들의 공통 친구인 가나도 실종되는 등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하무라 아키라도 납치당해 감금당하고 마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첫 장편. 국내 소개된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초기작이 지금 소개되는게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불행은 이 작품에서도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단순한 가출 소녀를 집으로 데려오는 간단한 의뢰에 미친 강간마 탐정이 끼어드는 바람에 격투 끝에 발이 부러지고, 친구가 교제하는 남자가 사악한 혼인 빙자 사기범이라는걸 알게 되고, 또 다른 실종 소녀를 찾는 의뢰는 자기 밖에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처음부터 고생하다가 납치 당해서 이틀 동안이나 갖히게 되고 마지막에는 사냥 게임의 사냥감으로 죽을 뻔 하니까요. 이 정도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도 불행과 고생으로는 1, 2위를 다툴만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건질건 없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억지스러운 설정입니다. 비교적 현실적이며, 일본의 현실에 잘 어울리는 하드보일드물이라고 여겨지는 후기작 - 특히 살인곰 서점 시리즈 - 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에요. 부유하지만 고압적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다키자와 가족과 다이라 가족 묘사부터가 그러합니다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흉내내고는 있는데, 캐릭터들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이었거든요. 딸의 소유물은 마음대로 내다 버리면서 거액의 용돈을 주고 남자와 만나는건 아무렇게 생각하지도 않는 다키자와, 어린 시절 유괴당한 뒤 죽고만 아들을 못 잊어 딸을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다이라 미치루의 엄마 등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들이 한 가득입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불행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자기만 아는 괴물로 묘사되는 것 역시 읽기도 불편했고 현실적이지도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범인들이 버젓이 사람을 죽이고, 납치하고, 경찰서에서 유력한 용의자가 눈에 젖가락을 꽂는 방법으로 자살한다는 식의 전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현대물"이기 때문입니다. 개중 백미는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명사들의 모임 '28회'에서 사람을 사냥감으로 하는 게임을 했다는 진상이었습니다.
사실 사냥꾼이 사람을 사냥한다는 소재를 가진 장르 문학은 많이 있습니다. 자기 소유의 섬으로 난파해 온 생존자들을 사냥하는 게임을 즐긴다는 내용의 <<가장 위험한 게임>>이 우선 떠오르네요. SF <<불사 판매 주식회사>>에서도 고용한 인간 사냥꾼들과 승부를 펼치는 이야기가 등장하고요. 이 작품처럼 나름 상류층 사람들 모임에서 친목 행사로 사람 사냥이 벌어진다는 설정의 작품도 있습니다. 바로 단편 <<요트클럽>>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처럼 막 나가지는 않아요. <<불사 판매 주식회사>>은 이야기가 허구라는게 이미 시대 배경 등으로 등장하고, <<아주 위험한 게임>>은 개인 소유의 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벌이는 게임입니다. <<요트클럽>> 역시 망망대해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박 승객들을 사냥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나마 말은 되고요. 그러나 현대 일본에서 노숙자도 아니고, 평범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사냥 게임을 한다? 그것도 여러차례에 걸쳐서? 아무리 봐도 억지스러우며 설득력도 낮습니다.
노나카가 이 사냥 게임 사냥감으로 쓰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유혹에 빠지기 쉽고 시끄러운 주변 인물이 없는 젊은 여자를 찾고 있었다 하더라도, 친구 딸의 친구를 끌어들인다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최소한 다른 연줄을 활용하는게 맞았어요. 이 건을 계기로 사기가 파토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러했고요.

작위적이며 불필요했던 요소들도 너무 많아요. 가면을 쓰고있던 딸 미와를 사살한게 아버지 다키자와였다는게 대표적이지요. 하무라 아키라를 납치해서 이틀 동안 가두어 놓는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정황을 보면, 감금 장소에 시체를 묻었다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을거에요. 범인들의 범죄 행각을 보면 하무라 아키라 한 명 더 죽인다고 해도 죄상이 달라질 것도 없고요. 사건이 커질걸 우려했다? 미와와 가나의 실종은 경찰도 알고 있었습니다. 고아나 다름없는 가나야 그렇다쳐도, 대기업 회장 다키자와의 딸 실종은 이야기가 다르지요. 이래저래 하무라 아키라를 죽여서 입을 막는게 당연했습니다.
이외에도 하무라의 친구 미노리가 혼인 빙자 사기범 우시지마 준타와 교제하면서 일어나는 트러블, 도토종합리서치 사원 세라가 일으킨 트러블들도 불필요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보통 정통 하드보일드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이는 트러블 들이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요란스럽기만 할 뿐,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냥 분량만 차지할 뿐이지요.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었습니다. 노나카가 범인이라는걸 추리해 낸 것처럼 그려지지만, 당연히 노나카밖에 용의자가 없게끔 이야기가 흘러갔기 때문에 대단한 추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독자가 함께 고민해볼 만한 단서도 딱히 제공되지 않으며, 제목이자 게임의 유래가 되는 동요의 존재는 억지스럽기만 했습니다. 대부분의 수사는 탐문, 그리고 관계자들 증언을 통해서 나아가고 있어서 탐정이 딱히 필요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물론 볼만한 부분이 없는건 아닙니다. 하무라 아키라라는 독특한 탐정에 대한 묘사만큼은 발군이에요. 그녀에 대한 세세한 일상 묘사로 소심하면서도 정의로운 그녀의 매력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미와의 엄마 아스미가 자살한 탓에 노나카가 궁지에 몰리는 과정이라던가, 미치루가 발가락을 잘 쓰는게 특기라는 극 초반의 복선도 잘 활용되고 있고요. 악당들이 모두 몰락하고 만다는 결말은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후반부 작품들 수준에는 확연히 미치지 못합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9/08/04

조용한 무더위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3점

조용한 무더위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와카타케 나나미의 '유능하지만 불운한' 여성 사립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입니다. 하무라 아키라가 백곰 탐정사 탐정이자 미스테리 전문 서점 '살인곰 서점'의 거의 유일한 아르바이트 생으로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벌어진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 여섯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는 마흔을 넘긴 나이를 제외하고는 독신에다가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산다는건 여전하네요. 나이 탓에 어깨 근육통 등 건강에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탐정으로서 꽤 유능합니다.

읽기 전에는 아무래도 일상계에 가까울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현재 모습을 보면 딱히 대단한 사건에 휘말릴걸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처럼 내용과 사건들이 상당히 묵직해서 의외였습니다. "파란 그늘"만 들치기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이며 그 외의 작품들에서는 강력 범죄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작품별로 분류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조용한 무더위" : 살인 미수
  • "아타미 브라이튼 록" : 불법 약물 제조에 살인과 사체 은닉
  • "소에지마씨 가라사대" : 살인과 감금
  • "붉은 흉작" : 호적 도용과 살인 강도
  • "성야 플러스 1" : 살인 사건

이런 강력 범죄들이 왁자지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일어나고, 시니컬한 하무라 시점의 묘사가 더해져 독특한 재미를 안겨다 주는 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도 잘 살아 있습니다. 진지한 주인공이 자신도 휩쓸린 대소동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우디 알렌이 연상되는 블랙 코미디 스타일이지요. 역시나 시리즈의 매력인 평범한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악의'도 곳곳에서 드러나고요. 추리적으로도 잘 정리되어서 깔끔합니다.

무엇보다도 '미스테리 전문 서점'이라는 '살인곰 서점'이 주요 무대이며, '살인곰 서점'에서 매월 벌이는 '미스터리 투어'가 이야기의 핵심 소재 중 하나라는게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굉장히 반가왔습니다. 여러 추리 소설과 작가들이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파란 그늘"에서 사건의 진상은 작 중 언급되는 "레베카"의 티 타임 비밀 레시피에 얽힌 진실이 드러난 덕분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에서 피해자가 영국 추리 소설을 읽었다는 수상한 증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고요. "성야 플러스 1"은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이 핵심 소재 중 하나로 사용됩니다. 마지막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살인곰 서점 점장 도야마의 입을 빌어 작 중 등장하는 작품들을 소개해주는 부분도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와 추리 모두 충분한 수준이며, 추리 애호가의 덕심(?)을 잘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추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은 작품이에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란 그늘" 7월

단편집을 개시하는 첫 단편입니다. 더위에 대한 하무라의 푸념에서 대형 교통사고로, 그리고 '뱀녀'의 행방을 쫓다가 그녀가 택배 배달원과 손을 잡은 들치기범이라는게 밝혀진다는 전개가 빠르면서도 설득력 높게 진행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무라가 범인의 대략적인 인상 착의와 차림새, 범인이 이동한 방향이라는 몇 안되는 단서로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도 꽤 설득력 높고요. 평범한 인간의 '악의'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발 벗고 나서는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어가는 피해자의 가방을 훔치는 범죄가 그러하지요. 모친의 애끓는 호소에도 가방을 버렸다고 하지만 정작 돌려달라고 한 레시피 노트를 연인에게 선물한 사실을 밝히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 추리 모두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이어지는 작품들에 기대를 갖게 만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책을 쓴 입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핵심인 쓰구미의 노트에 수록되었던 소설 "레베카"와 관련된 레시피가 진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책에는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는 레시피 속 비밀 재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맛일지 아주 궁금하네요. 서점 점장인 도야마가 기획한 7월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달콤한 미스터리 페어" 라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추리 소설에 관련된 레시피 책들도 소개되는데 그 중 "Len Deighton's Action Cookbook"은 꼭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작가 렌 테이턴의 레시피인데 레몽 머랭 파이 레시피가 실려 있는 등 디저트 부분이 충실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스터리 티 파티 계획도 발군이에요.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과자들을 죽 늘어놓고 티 파티를 열다니! 아, 이런 서점이 집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한 무더위" 8월

전편에 이어 무더위가 이어집니다. 무더위가 일종의 흉기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자치회장은 어머니를 열사병에 걸리게 할 속셈이었거든요. 이 아이디어는 실제 뉴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설득력도 강합니다. 계절 묘사도 발군입니다.

하지만 범행을 위해 자치회장이 무리하게 거리를 비운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남의 집 에어컨 소리를 귀담아 들을 이유는 없죠. 또 거리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있을 수도 있는 등 어차피 통제는 불가능하니까요. 하무라의 탐정일이 수월하게 풀린다는 것도 좀 과했습니다. 진상을 깨닫게 되는, 자치회장의 볼펜은 순전히 우연이었다는 점도 감점 요소죠. 이런 부분은 조금 더 정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 9월

하무라 아키라가 이동하는 모든 이야기가 그렇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이동이 잦아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악의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이 있는 범죄 모의라는 점, 그리고 과거의 수수께끼를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 시점에 밝혀낸다는 고전적, 왕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다른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를 깔끔하게 전개하는 솜씨는 대단합니다. "브라이튼 록"이라는 소설을 시타라 소가 읽은 시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이를 본인이 발로 뛰어 얻어낸 정보와 엮어 진상을 도출하는 하무라의 활약도 눈부실 정도에요. UFO에 미친 부동산업자, 바퀴벌레를 키우는 전 상사맨같은 독특한 등장인물들도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묘사와 맞물려 재미를 더해줍니다.

하지만 결말이 '그래서 어쨌는데?' 수준으로 마무리 되어서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수십년 전 사건으로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하무라가 자신이 애써 진상을 밝힐 필요도 없었다는 점에서는 이게 최선이었겠지만요. 그 외 추리적으로도 '자백'에 의존할 뿐이라 - 다른건 몰라도 시타로 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백이 아니라면 알아낼 도리가 없었으니 - 조금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에지마씨 가라사대" 10월

하무라가 서점에서 전화와 인터넷만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니 현대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작 중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학자 탐정' 으로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재미있어요. 이런저런 지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은 동일하니까요. 추리 애호가를 위한 정보도 한 가득입니다. '학자 미스터리 페어'라는 페어의 주제는 심심하지만 그만큼 소개되는 작품들이 친숙해서 마음에 들더군요. '싱킹 머신' 반 두젠 교수를 비롯한 다양한 학자, 박사들이 등장하거든요. 또 피해자가 리모델링 업자라는 걸 듣고 '딕 프랜시스의 주인공이 이런 일을 했었는데' 라고 생각하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지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너무 뻔해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은퇴한 변호사가 리모델링 업자에게 판 저택이 동기일거라는게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하무라의 추리대로 저택에 사체가 묻혀 있었다는 결말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변호사 조카가 호시노 구루미를 살해한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설퍼요. 운 좋게 용의자가 소에지마씨로 특정되었을 뿐, 용의자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궁지에 몰린 소에지마씨가 무라키를 감금하여 인질극을 벌인다는 설정도 지나쳤습니다. 이런 류의 소동극이 작가의 장기이기는 한데, 자극이 자니치다 보면 무덤덤해지는 법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붉은 흉작" 11월

하드보일드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드보일드 작가가 의뢰인인데다가 주요 소재가 "붉은 수확"과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다카노바바의 저주받은 땅이니까요. 심지어 고가 간타가 오기 노보루를 살해한 흉기도 '얼음 송곳'입니다!
삼천만엔이라는 거금을 가지고 있지만 드러내 쓰지도 못하고 홀로 약간의 사치만 부리면서, 죄책감에 몸부림치다가 죽어간 불쌍한 남자가 주인공이며, 그의 평생의 은인은 광인이 되어 저주받은 땅에서 살아간다는 설정도 하드보일드스러웠어요. 냉정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작가 선생의 한 마디는 화룡 정점이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애매합니다. 가짜 츠노다 지로가 자주 다니던 지압원에서 의료 보험증 사본을 입수하여 '고가 간타'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그 곳에서 고가 간타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 참고인이었던 츠다 지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일사천리이기 때문입니다. 오기 노보루가 지녔지만 사라진 삼천만엔을 츠다 지로가 손에 넣었을 거라는 추리는 딱히 중요한 요소는 아니고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드보일드라는 의미 외의 가치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성야 플러스 1"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에서 따온 제목이죠. "심야 플러스 1"은 서스펜스 가득한 모험물인데 이 이야기 속 하무라에게 닥친 시련도 "심야 플러스 1" 못지 않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부탁을 들어주고 임무를 완수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모습은 성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에요.
그런데 조금 의아했던건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굉장히 두려워 한다는데,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하무라에게 폐를 끼치는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무라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작 중 하무라가 부탁받은 심부름을 수행하기 위한 여정의 정도는 지나친 편입니다. 중간의 여정들은 딱히 재미있지도 않고요. 솔직히 중간 과정들은 불필요했습니다.
소노다 씨가 "심야 플러스 1"의 가짜 사인본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책 도둑들이 사인본을 노린다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려워요. 하무라의 말대로 옥션에서 2백불 정도면 살 수 있는데 노상강도짓을 할 이유는 없지요.

추리적으로도 별 내용은 없습니다. 백골 사체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어차피 본 편 정보로 추리가 가능한 사건은 아닙니다. 고이시바라 미야코 할머니와 사위의 칼부림 역시 억지스러운 요구에 불과할 뿐이고요. 오히려 사위가 딸을 살해한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더라면 말이 되었을텐데 말이죠. 책을 날치기한 2인조의 경우는 앞서 말씀드렸듯 사건 자체의 현실성이 약해서 추리의 여지도 부족합니다.

그래도 하무라의 불운을 잘 드러내고 있고, 중간중간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아서 왁자지껄한 블랙 코미디로 본다면 괜찮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고이시바라 미야코와 사위 사이에서 벌어진 칼부림입니다. 정말 급작스럽게 말려들었는데 미야코 할머니가 하무라의 가방을 잡고 놔주지 않는 등의 황당한 상황이 이어지거든요. 이를 슈톨렌이 해결한다는 결말도 재미있었고요. 그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다 극복하고 모두가 원하는 상황으로 매조지하는 결말도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행복해지는게 크리스마스의 핵심요소이긴 하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지만 재미 만큼은 확실합니다.

2007/06/30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와카타케 나나미 : 별점 3점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간만에 구입해서 읽은 추리 단편집입니다. 중간중간 괴담이나 호러도 섞여 있다는 점에서 정통 본격물이라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전체적으로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없는 단편집이죠. 원래는 제가 자주 찾는 추리 동호인 사이트인 "하우미스터리"에서 이 단편집의 제일 첫 단편을 어떤 분이 번역하셔서 올린 것을 읽고 호감을 가지고 있다가 정식으로 출간되었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설정이 좀 독특한데, 중견 기업 회사 사보의 편집자로 일하게 된 시오타케 나나미 (저자)가 아는 선배를 통해 의뢰한 추리작가의 단편을 1년동안 사보에 싣는다는 설정으로, 이 단편들은 전부 작가의 실제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과 매월 해당 월에 맞는 주제를 가지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거의 마지막 작품까지는 앞서 말했듯 괴담 등 다양한 작품이 섞여 있을 뿐 아니라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좀 부족한, 설득력이 약한 작품들이 많아 그냥 저냥한 단편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이야기에서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복선과 트릭이 밝혀지는 전개로 구성되는,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가 있더군요. 조금은 변칙적이고 일본에 너무 많이 특화된 트릭이기에 순수하게 해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는 정말이지 높이 사고 싶네요. 제가 좋아하는 일상의 소박한 사건들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들었고요. QED 일상 버젼의 소설판 같다고나 할까요? 아울러 번역 역시 완벽한 수준이었습니다. 번역 후기까지 아주 깔끔하거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소박하고 경쾌한 이야기이니 만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에 추리소설 애호가가 아닌 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추리소설의 매력에 빠지는 팬들이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각 단편별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첫 단편 "벛꽃이 싫어"
제목 그대로 벛꽃에 관련된 사건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주인공의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라는 것, 세세한 사물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주인공의 추리법이 제대로 보여진다는 것, 그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의 소박한 사건이 바탕이라는 시리즈의 특징을 전부 갖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두번째 단편 "귀신" :
제대로 된 사건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의 상상속에서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품으로 기발함이 돋보입니다. 약간 호러틱하기도 하고요. 소박한 공포가 느껴졌어요

세번째 단편 "눈 깜짝할 새에" :
상점가 야구팀 경기에서의 야구 사인을 둘러싼 암호 트릭으로 설정이 아주 돋보였습니다. 트릭은 일본적인 트릭이라 전혀 해독할 수 없었지만 아이디어는 인상적이었어요. 특유의 소박함과 기발함이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네번째 단편 "상자 속의 벌레"
주인공의 사촌여동생에게서 듣는 기묘한 이야기. 여고생들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벌레에 관련된 묘사가 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 소품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일종의 소실 트릭인데 트릭 자체는 소박하지만 장치와 설정면에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솜씨가 괜찮았어요.

다섯번째 단편 "사라져가는 희망"
심리 묘사 위주로 구성된 전형적 호러 스릴러라고 할 수 있는 특이한 단편입니다. 이야기의 완성도나 전개는 솔직히 기대 이하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단편집에서 가장 중요한 단편입니다. 이유는 맨 뒤 "조금 긴 듯한 편집 후기"라는 단편에서 밝혀지니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여섯번째 단편 "길상과의 꿈"
역시 호러에 가까운 단편. 일종의 꿈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별로 언급할 부분은 없지만 전체 단편집에서의 장치적 요소로서 나름대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곱번째 단편 "래빗 댄스 인 오텀"
이름 맞추기 게임에 관련된 단편으로 소박한 일상의 느낌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라 재미가 좀 반감되더군요. 그래도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여덟번째 단편 "판화 속 풍경"
선배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주인공의 추리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는 무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거든요. 사건 해결의 중요한 요소가 "후각" 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 하나 그 외에는 별로 건질게 없는 범작입니다.

아홉번째 단편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과거의 사건을 듣고 추리하는 아주아주 전형적인 안락의자형 탐정물. 조금은 공포스럽고 무서운 과거사의 재발견처럼 서술되다가 막판 깜짝 반전이 있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조금 반칙에 가까운 서술트릭이지만 깔끔하게 잘 풀어낸 점이 좋더군요.

열번째 단편 "정월 탐정"
자신이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는 친구의 부탁으로 해결에 나선 주인공이 의외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작품. 맨 마지막 해설편을 제외하고는 가장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트릭도 명쾌하고 결말 역시 깔끔하더군요. 좀 미국적인 스케일이 느껴지는 트릭으로 왠지 친숙하기도 했습니다.

열한번째 단편 "밸런타인 밸런타인, 봄의 제비점"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수다로 진행되는 독특한 서술방법을 지닌 단편으로 밸런타인 데이라는 이벤트에서 하나의 추리물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기발함이 돋보였습니다. 트릭은 좀 시시하고 설득력이 약간 떨어지는 편이지만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네요. 또 막판에 살짝 깜짝 반전(?)이 있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열두번째, 마지막 단편 "봄의 제비점"
"제비점" 이라는 일본적 소재로 이끌어 내는 작품인데 그닥 설득력은 없었습니다. 너무 장치를 많이 마련한 느낌이 들었어요. 인쇄소 이야기는 빼는게 어땠을까 싶은데... 소재와 복선에서 결말까지 이끌어내는 전개는 좋았지만 약간 아쉬움도 남네요.

마지막 :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
드디어 1년에 걸친 연재가 끝나고 나나미가 작가와 상봉하여 단편에 얽힌 수수께끼와 복선을 추리하여 작가에게 밝히는 내용인데 앞부분에서 간과하고 지나갔던 수많은 복선과 단서들, 그리고 그 결론에 대한 것이 워낙 신선할 뿐 아니라 이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아이디어 자체가 워낙 기발하여 이 단편집의 가치를 몇배는 높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좀 이야기를 대충대충 넘어가는 편인데 마지막 단편을 읽고 정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더군요. 이렇게 작품을 구성한 작가의 아이디어에는 정말이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2022/10/15

이별의 수법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5점

이별의 수법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근무하던 탐정사무소가 폐업한 탓에 빈둥거리다 미스터리 전문서점 ‘살인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하무라 아키라. 위험한 구석이라곤 없는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그녀의 불행은 멈추지 않는다. 뇌진탕과 갈비뼈 골절, 폐 손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말기 암으로 입원해 있던 왕년의 스타 배우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얄궂게도 그녀는 하무라 아키라에게 20년 전 가출한 자신의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하무라는 실종 직후 딸의 행방을 좇았던 탐정을 찾아가지만, 그 탐정 또한 20년 전에 실종되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의뢰인의 6촌 조카는 교살당했으며, 의뢰인의 집에서 일했던 두 명의 가정부의 행방마저 묘연하다. 왕년의 배우를 둘러싼,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잦은 살인과 실종 사건들. 20년 전 실종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들 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탐정은 왜 사라졌을까? 하무라 아키라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오래된 비밀과 마주한다. (출판사 제공 소개)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장편. '살인곰 서점' 시리즈가 국내에 출간된지는 꽤 되었는데, 이 작품이 살인곰 서점 시리즈 중에서는 첫 작품입니다. 해설을 읽어보니 시리즈 연착륙을 노리고 단편집부터 발간했던게 이유였다는데, 독자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 처사입니다.

작품은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답게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별 것 아닌 의뢰로 보였는데, 조사가 진행되면서 의외의 사건으로 발전해 나가며 그 와중에 거친 (?) 액션이 폭발한다는 이야기거든요. 일반인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속 이야기가 많았던 다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와는 다르게 정통, 본토 (?) 하드보일드 냄새를 물씬 풍긴다는 점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과거 유명 여배우이자 유력 정치인의 접대부 (?)였던 의뢰인, 의뢰 대상인 실종된 여배우의 딸은 유력 정치인의 손녀 + 강간 피해자 + 연쇄 살인범, 딸이 저지른 연쇄 살인의 끝은 어머니 살해라는 내용이니까요. 스케일은 본토 못지 않아요. 제목부터가 <<기나긴 이별>>스러웠는데, 알맹이도 만만치 않았던거지요.

다행히 이런 스케일 크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잘 그려내고는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와 그녀가 조사하는 인물들이 현실적으로 잘 묘사된 덕입니다. 전개도 매끄러우며 하무라 아키라의 조사 과정도 아주 현실적이에요. 경찰이 아닌 일반인 탐정이 가능했을 조사의 최고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남다른 하무라의 눈썰미와 추리력은 여전하고, 사소한 단서들로 진상이 드러나는 구조도 잘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 사건 외에 함께 진행되는 사건들의 완성도도 높아요.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계기가 되었던, 백골 발견 사건처럼요. 살아있는 줄 알았던 아내 에이코가 알고 보니 변장한 남편이었고 백골이 에이코였다는 트릭인데 꽤 그럴듯했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탐정 이와고 사건의 진상도 설득력 높아서 마음에 들었고요. 장편 속에서 지나가는 사건으로 등장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했을, 완성도 높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하무라 아키라 2기 살인곰 서점 시리즈의 막을 여는 작품답게 백곰 탐정사 설립 유래도 등장하고,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 등 팬으로 즐길거리도 많아서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읽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2016년 발표 당시 이런저런 리스트에서 베스트 10 안에 포함된건 - 주간문춘 베스트 미스터리 10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6위 등 - 당연하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전개 중간중간마다 억지스러운 부분이 눈에 걸리는 탓입니다. 우선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딸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 부터가 억지입니다. 과거 시오리가 사라졌던건 후부키가 시오리의 살인 행각을 알고난 뒤 시오리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후부키는 시오리가 죽었고,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가 사체를 처리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녀 주변에 시오리를 닮은 누군가 (알고보니 진짜였지만)가 출몰했기 때문에 그 진상을 알기 위해 사건을 의뢰했다는데, 이건 말도 안됩니다. 20년 전에 시오리를 처리했다는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는 건재했으니까요. 그냥 야마모토에게 연락해서 진상을 알아보면 될 일이었어요!
야마모토가 시오리와 관계를 가진 탓에 미안해서 연락을 못 받았다는 묘사가 있지만, 그랬다면 의뢰는 비서를 찾아달라는걸로 족합니다.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면, 탐정의 조사를 통해 과거의 연쇄 살인이 드러날지도 모르잖아요. 20년 전 처럼 시오리 친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실제로 하무라는 시오리의 부친이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그녀가 사라진 이유 등 모든 진상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억지스러운 의뢰였습니다.

시오리의 연쇄 살인도 하무라의 조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만, 급작스러울 뿐더러 비현실적인 사건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이건 시오리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그녀의 캐릭터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탓입니다. 고등학교 때 성폭행을 당했었다는 과거 언급이 전부인데, 이 아픈 기억이 연쇄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전혀 설명되지 않고, 범행에 대한 묘사도 전무하기 때문이지요. 그나마 야마모토의 여동생 유코는 그녀가 시오리를 도발했다는 말이라도 나오는데,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는 대체 왜 죽인건지도 모르겠어요.
후부키가 시오리의 최종 목표였다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럴거라면 과거에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를 살해했을 때 같이 죽이려 했어야지요. 또 시오리가 입원 중이었던 병원을 몰래 빠져나온지도 3주 정도 지났다고 설명되는데, 왜 주위만 맴돌고 진작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뚱뚱한 시오리가 후부키를 덥치고, 그걸 막는 하무라와의 사투는 지나칠정도로 전형적이면서 크리쳐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고요.
매니저 야마모토의 복수 - 성폭행을 저질러 시오리를 연쇄 살인마로 만든 안자이에 대한 - 도 뜬금없었고, 20년 전 1990년대에 이렇게 많은 죽음이 제대로 조사되지 못한 이유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단순 실종이나 자연사로 위장한 이모 할머니 사건이야 그렇다쳐도 명확한 살인 사건이었던 하나 사건, 유코 사건은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을텐데 그 경과는 대충 넘어갑니다.

또 곁가지 사건 중 친구인 줄 알았던 악녀 마미가 얽힌 사건은 비중은 제일 큰 반면 내용은 별게 없어서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이벤트를 가장한 불법 카지노 운영 방식에 대한 추리는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순진한 사기 피해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무라를 속여넘긴 프로 범죄자이자 일종의 생활밀착형 사이코패스 마미 묘사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에 계속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의 확장형이기도 한데, 이후 시리즈가 생활밀착형으로 방향을 전환하게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만큼은 분명합니다. 단점을 잔뜩 언급하기는 했지만 읽는 동안에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나쁜 토끼>>의 비현실적인 세계관에서 생활밀착형 하드보일드인 살인곰 서점 시리즈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작가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7/24

녹슨 도르래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3.5점

녹슨 도르래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터리 전문서점 ‘살인곰 서점’의 점장 도야마 야스유키를 만나, 서점 일을 도우며 탐정 일을 계속한 지 3년째. 하무라 아키라는 전에 없던 생활고로 고생 중이다. 살인곰 서점이 일주일에 사흘만 열게 되면서 수입이 대폭 줄어든 탓이다. 다른 대형 탐정사에서 하청을 받아 입에 풀칠을 해보지만, 이렇게 들어온 일들은 대개 위험 부담이 크고 돈도 되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이번에야말로 편한 건수라며 일이 들어온다. 의뢰 내용은 일흔네 살 할머니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것.

거절하려 했지만 일당을 올려준다는 말에 하무라는 덜컥 의뢰를 받아들인다. 그렇다. 그 의뢰는 분명 손쉬운 의뢰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행을 하던 중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위를 올려다본 순간, 그 할머니가 하무라 아키라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그녀의 불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그 끝에 과연 구원은 있을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와카타케 나나미사립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장편입니다. 여러가지 사건이 등장하지만, 하무라 아키라가 히로토의 의뢰를 받아들여 그가 '스카이랜드'에 간 이유를 밝혀내려는게 핵심입니다. 

완벽한 하드보일드 물이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인륜도 저버린 비정한 범죄가 연이어 벌어지며, 연관이 없어보였던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이 전부 관련되어 있으며, 관계자들은 모두 선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전개 모두 완벽합니다. 아버지는 죽고, 자신은 겨우 살아남은 교통 사고 때, 왜 아버지와 '스카이랜드'에 갔는지?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히로토의 평범하고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의뢰가 하무라 아키라의 조사를 통해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결말도 하드보일드스럽고요. 제가 읽었던 이전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는 모두 단편이라 미쳐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장편으로 읽으니 확실히 하드보일드를 지향한다는게 잘 느껴졌습니다.

사건에 대해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로토가 아버지와 스카이랜드에 가게 되었던 이유는, 스카이랜드에서 대마를 흡입하고 난동을 피운걸 사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마 흡입은 친구 류지와 함께 했고, 이 일로 취직이 취소될까 겁낸 류지의 가족이 히로토 부자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두 부자를 브레이크와 엑셀을 헛갈려 차로 치었다는 노인 호리우치는 류지의 외할아버지였지요. 그러나 류지는 죽지 않고 살아났고, 치료를 받으며 탐정을 고용하자 사고를 위장하여 불을 질러 살해했던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까지 히로토의 죽음은 히로토의 아버지 미쓰타카가 각성제를 밀매했던 증거를 없애기 위함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실제로 이 각성제 밀매와 관련된 인물들의 범죄 행각도 하나 둘 씩 밝혀지고요. 그래서 독자는 하무라 아키라와 함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립니다. 일종의 미스디렉션인데 수법이 교묘해요. 읽으면서 히로토의 죽음이 흐릿해지고, 각성제가 진짜 범행 동기로 보이니까요.

복잡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재미있게 써 내려간 작가의 필력도 대단합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생생함 덕이 큽니다. 본의아니게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며 마지막에는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온 류지의 모친 때문에 자신의 소유물 중 유일한 고급품인 오리털 이불과 다이쇼 시대 책장까지 망가져 버리는데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 이라는 이명에 잘 어울립니다.
다만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니고, 탐정으로서의 능력도 괜찮은 편입니다. 수사 방법도 설득력있고 등장하는 소소한 추리들도 좋아요. 히로토의 대학교 버디인 '분페이'의 정체나 마키무라 하나에의 정체를 알아내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여러가지 단서들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히로토의 친구 이즈시가 아이돌 콘서트에 참석했던 영상이 그를 협박하는 도구가 되는 식으로 복선도 잘 짜여져 있고요.

마지막에 수록된, "조용한 무더위"에서처럼 작 중 등장했던 여러 추리 소설들에 대해 소개해주는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라는 부록도 반가왔습니다. "소년탐정 칼레"는 어린 시절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구입해봐야겠더군요. 그 외 작품은 엘러리 퀸 등 극소수 유명 작가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번역이라 슬프네요.

그러나 너무 복잡한 구성, 지나친 하드보일드 분위기를 따라해서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리카의 존재입니다. 그녀는 미쓰타카의 첫 사랑으로, 집안의 반대 때문에 부유한 의사 다쿠마와 결혼한 뒤에도 미쓰타카와 리미 사이를 방해하기 위해 골몰하다가 미쓰타카, 리미 부부가 공갈범 사토 가즈히코를 죽이게끔 유도하고, 이후 미쓰타카를 협박하여 마약 밀매의 길로 끌어들인 인물입니다. 그녀 때문에 여러 명이 죽고 파멸해버린, 한마디로 말해서 하드보일드 작품들에 흔하게 등장하는 절대악, 흑막, 팜므 파탈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존재가 현재의 사건 - 히로토가 죽은 화재 사건 - 에 영향을 미치는건 없거든요. 미쓰타카가 죽은 이후 그녀가 직접 히로토를 괴롭히러 나타날 이유도 없고요. 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었던, 히로토는 상관할바가 아니니까요.

또 하무라 아키라가 중요한 단서처럼 언급하는, 그녀의 병원에 전시된 사토 가즈히코의 해골도 과거 범죄의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이미 죽어버린 미쓰타카에게 건네받은 일종의 선물이라고 주장하면 그뿐이거든요.
도비시마 이치코가 하무라 아키라에게 약을 먹여 교도소에 집어넣는 행동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마약 밀매에 대한 조사가 윗 선까지 닿아 있었다면, 구태여 이런 수작을 부릴 이유는 없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말대로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도 있었을테고요.
이런건 하드보일드에 흔하게 등장하는, 경찰 조직과 탐정의 알력, 다툼을 묘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나마 이치코를 응징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행동만 볼거리였어요.

물론 이 무서운 여자들의 행동은 이 작품만 놓고보면 말이 안되는건 아닙니다. 이 두 여자에 더해, 마지막에 하무라 아키라를 죽이려고 찾아온 류지의 모친 등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여성들 모두가 지나칠정도로 이기적이고, 극도의 자기 합리화가 가능한 인물들인 탓입니다. 모두들 자기 행동은 아무 문제가 없다, 잘못은 너 (하무라 아키라)와 피해자 (히로토 등) 가 저지른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게 별로 현실적인 설정은 아니지요. 게다가 마리카와 이치코 모두 딱히 등장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한 무리수였어요.

마지막으로, 큰 문제는 아니지만 사랑의 도피로 사라졌다는 히로토의 어머니 리미의 정체가 히로토의 먼 친척이라고 자칭한 하나에라는 것도 뜬금없었어요. 미쓰타카가 죽고 히로토는 겨우 살아남은 상황에서, 자신이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거짓말을 유지해가며 먼 발치에서 아들을 지켜본다는건 설득력이 낮지요. 사토 가즈히코의 죽음이 지금에 와서 다시 드러날 이유도 없고요. 하나에의 정체에 대해서 던져주는 이런저런 단서들도 좀 부족한 편입니다. 이 역시 불행한 운명에 빠진 가족이라는 하드보일드 서사를 그냥 따라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를 현대 일본으로 끌고 온 작품들 중에서는 충분히 손에 꼽을만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가치는 재미에 있습니다. 단편인줄 알고 집어들었는데, 한 번에 몰입해서 읽을 정도였거든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조금 불필요한 곁가지들을 정리했더라면 별점 4점 이상도 충분했을겁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이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12/11

불온한 잠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점

불온한 잠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최신작입니다, 2019년 12월 발표되었습니다. 2020년 초에 하무라 드라마가 방영되었기 때문에 일부러 간행 일자를 맞춘 듯 합니다. 통상 2년 정도 기간을 두고 발표되었던 시리즈 이전 작들에 비하면, 중간 기간이 확연히 짧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시리즈 이전 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별로였습니다. 사건들은 대부분 억지스러웠으며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거든요. 전작에 비하면 많아진 극적 소재들 - 폭발, 유령 빌딩과 그라피티, 총격 사건, 산사태 등 - 도 대체로 비현실적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라는 별명을 강조하기 위한 지나친 상황과 인물 설정들도 억지가 심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와카타케 나나미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미디어 믹스의 유혹, 편집부의 요청이 지나쳤던게 아니었나 싶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거품 속의 나날"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옛 기치조지의 마담 사쓰키는 하무라 아키라를 자택으로 불렀다. 그녀가 돌보던 친구 딸 하루카가 곧 출소하는데, 자기에게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하루카는 마약에 취해 저지른 방화로 불륜남을 사망케해서 7년형을 받았었다. 하루카를 교도소에서 태우고 돌아오던 중, 수상한 2인조가 하루카를 납치하려다 실패했다. 경찰은 하루카가 죽게 만들었던 불륜남 다케이 소지로가 무언가 위험한걸 밀수했었고, 아직 그게 발견되지 않았다고 알려주는데...

하루카와 하무라 아키라, 악의 조직이 서로 쫓고 쫓기는 과정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세계관 그대로입니다. 재미도 있고요. 특히 하루카가 수상한 조직에 쫓기다가 도망가서 '무언가'가 있음직한 장소로 향하는 과정, 하무라가 그녀를 뒤쫓다가 조직과 마주치는 등의 장면은 "몰타의 매"를 연상케 합니다. 비싼 값어치가 있는 보물을 여러 명이 노리고, 여자와 탐정이 한 팀인줄 알았는데 여자가 뒷통수를 친다는 설정이 똑같으니까요. 

물론 하루카는 전혀 미인도 아니고, 머리도 나쁘며 하무라 아키라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소시민인데다가, 악의 조직도 사람을 죽이기 보다는 '손을 믹서기에 실수로 넣어 버리는' 정도의 조직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현대 일본에 하드보일드 세계관을 풀어놓으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요. '무언가'가 고작 거북이었다는 진상도 황당했지만, 현대 일본이 무대인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을 테고요. 악당들이 거액과 시간을 들여, 폭행을 가해가며 노려왔지만 정작 경찰은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을 그런 물건으로 딱 적당하다 싶었거든요. 멸종 위기종으로 약효가 좋다고는 해도, 수많은 관계자들 손을 갈아가면서 찾을 필요가 있나 싶기는 했습니다만.

하지만 이 작품이 진짜 하드보일드구나! 싶었던건, 악의 조직과의 문제가 일단락된 다음입니다. 사쓰키가 죽기 전, 하루카를 데려와 달라고 탐정을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7년간 면회는 커녕, 영치금 한 번 넣어준 적이 없었고, 하루카는 사쓰키를 두려워했는데 말이죠. 정답은, 사쓰키는 하루카에게 복수를 하려고, 그녀가 도망가지 않고 자신에게 오도록 탐정에게 의뢰했던 겁니다. 이를 위해 앞서의 복선이 드러나는 장면은 서늘합니다. 사쓰키가 장갑을 끼고 있었던 이유가 대표적이에요. 사쓰키는 하루카 때문에 손가락을 믹서에 넣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밖에도 친구가 하루카를 임신했던 탓에 좋았던 관계가 깨졌었고, 하루카의 불륜으로 사업도 큰 손해를 보았던 등도 복수의 이유였고요. 이렇게 애정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순수한 복수심이 대폭발하는 마지막 장면은 정통파 하드보일드 물임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어요.

그러나 멀쩡한 회사 대표였던 사쓰키 손을 갈아버렸다면,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이렇게나 무식하고 무서운 무법천지란 말일까요? 하루카가 훨씬 젊고 힘도 좋을텐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죽음을 맞는 결말도 납득이 가지 않았고요. 또 물론 집을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를 과하게 의식한게 분명해 보여서 좀 별로였습니다. 앞서의 소시민스러운 하드보일드 느낌을 망쳐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 범죄물 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함직한 수작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새해의 미궁" 

하무라 아키라는 12월 31일, 하청 알선업자 사쿠라이를 통해서 철거 예정인 빌딩의 경비를 맡게 되었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빌딩이었다. 고생 끝에 경비를 마친 히무라에게 경비 사무소 사무원 사나에가 실종된 경비원 구도 쓰요시를 찾아 달라고 의뢰했다. 구도 쓰요시는 회사 몰래 유령 빌딩 견학회를 열었던 사실이 질책받고 도망가 버린 상태였다. 하무라는 구도와 악연이 있다는 예술가 사촌 라이카의 집에서 구도를 발견하는데...

라이카가 빌딩 개발업자 관계자와 함께 경비 중이던 구도를 협박해서 유령 빌딩에 침입했던 이유는, 독자들도 비교적 쉽게 추리할 수 있습니다. 라이카가 이구치라는 그라피티 아티스트에게 푹 빠저 있었다는 정보가 초반에 제시되는 덕분입니다. 해체 직전의 빌딩에 경비원을 둔 건 빌딩 안에 값나가는 무언가가 있다는걸 개발업자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 사실을 눈치했던 회사의 누군가가 이구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라이카를 현장에 불렀던 거라는 추리는 덕분에 쉽게 떠올릴 수 있었어요. 아마 그 누군가는 직품을 확인한 뒤 몰래 빼 낼 계획이었을테지요. 

그러나 진상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개발업자인 산도 개발의 오키타 부장이 이구치 그라피티가 있다고 사기쳐서 한 몫 챙기고 있었던 겁니다. 이구치 그림은 없었던 거에요! 이렇게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맛도 좋고, 덕분에 사건의 복잡도도 높아져서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개는 여러모로 억지스러웠어요. 일단, 앞서 말했던 '누군가'에 해당하는 오키타 부장의 부하 후치가미가 아라카와, 라이카에게 이구치 그라피티에 대한 정보를 흘린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뭘 위해서 그랬을까요? 그림을 빼돌릴려고? 작 중에서 설명되지만, 건물 속 그라비티를 훔쳐내는건 현실성 없는 이야기에요. 벽을 해체하는게 그리 쉬울리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달리 돈을 만들 방법도 없고요. 후치가미가 속수무책으로 실종된걸 보면 딱히 협박이 목적이었던걸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리고 라이카는 이구치의 작품이 없다는 걸 알았을겁니다. 그런데도 시간을 들여 누드 사진을 찍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녀도 사실은 이구치 작품이 뭔지 잘 몰랐다는걸 의미하는 걸까요? 설령 그렇다쳐도, 작품 전개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라이카가 사진가 아라카와에 의해 빌딩 안에서 살해당했다는게 가장 억지스러웠습니다. 경비원이었던 구도를 반 협박하다시피해서 들어오기는 했지만, 라이카와 아라카와가 빌딩에 잠입한건 그리 대단한 죄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숨기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아라카와는 이구치 그림이 없다는걸 알고, 오키타 부장 패거리에게 잡히면 죽을 거라고 추리했을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오키타 부장 패거리가 자기들 얼굴을 목격했던 경비원 구도를 살려둔 이유가 설명이 안되지요.

사소해 보였던 의뢰가 대기업이 엮인 대형 사기극과 이어지지만, 하무라가 받은 의뢰는 사기와는 별로 관계가 없었습니다. 살인 사건은 우발적인 범행이었고요. 사건 해결도 추리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우연에 가까왔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 물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도망친 철도 안내서" 

하무라 아키라는 병원에 입원한 도야마의 지시로 '철도 미스터리 페어' 준비를 도맡게 되었다. 페어의 메인은 수집가 미노와로부터 빌린 "ABC"였다. 유명 작가 가미오카의 장서로 '94식'이라는 총기 난동 현장에 있었다고 알려진 책이었다. 그러나 페어 와중에 누군가가 하무라를 전기 충격기로 기절시킨 뒤 책을 훔쳐가 버렸다...

진상은 책이 가짜였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집가 미노와는 손자를 시켜 책을 훔쳐냈던 거지요. 나중에 가짜와 바꿔치기 되었다고 할 속셈으로요.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는 실마리를 더듬어나가는 과정은 하드보일드물 스타일입니다. '철도 미스터리 투어'를 준비하면서 소개되는 열차 관련 미스터리 작품들의 목록들도 현란하고요.

그러나 그 밖에는 딱히 건질게 없던, 그닥인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아주 별로에요. 살인곰 서점에서 책을 훔처간 범인은 CCTV를 통해 누구인지 밝혀지고, 진상은 범인에게서 듣는게 전부니까요. 심지어 94식 사건의 관계자 구라나 마호코의 손자 구라노가 절도 미스터리 페어의 하이라이트인 경매회를 덥쳐서, 진상을 모든 이들에게 폭로하기까지 합니다!

무슨 회사 내부의 알력 어쩌구는 억지로 가져다 붙힌 설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뿐, 하드보일드인지도 잘 모르겠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요약이 힘들 정도로 알맹이가 없었던 졸작입니다.

"불온한 잠" 

서점 단골 시나코씨가 11년 전, 자신 소유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하라다 히로카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누군가를 찾아, 유품을 전해 달라고 의뢰했다. 예전 히로키의 이웃 이와오 하쓰에 할머니가 탐문 수사 중이었던 하무라를 습격해 목을 졸랐고, 그녀가 히로카를 증오해서 위협했던게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히로카의 과거를 계속 추적하던 하무라는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얹혀 사는걸 반복해 왔다는 걸 알아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있던 생활 습관이었다. 그녀 어머니 이치카는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 집에 히로카를 보내어, 그녀가 그 집의 모든걸 독차지하여 살게 해 왔었다...

표제작, 하라다 히로카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정통 하드보일드스럽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단서를 수집하여 과거로 한 발 더 나아가고, 그러면서 숨겨져 있던 추악한 진실을 알게된다는 전개니까요. 간단해 보였던 의뢰가 범죄로 얽혀있고, 등장 인물들도 기묘하게 얽혀있는 내용도 마찬가지에요. 이거야말로 하드보일드다라는 느낌을 담뿍 전해줍니다. 

반면 수사 대상인 하라다 히로카에게 아무런 개인적 감정을 품지 않고, 의뢰 내용을 수행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죽을 뻔 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모습은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복수와 같은 개인 감정 때문도 아니고, 수사 중 위험에 휘말려 살아남기 위해서도 아닌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탐정은 처음 봤거든요.

그런데 원래 의뢰는 '연고 없이 사망한 사람의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고향까지 찾아갔지만, 사채 탓에 모든 사람들이 미워했다는 걸 알아냈다면 의뢰는 끝난 거에요. 히로카의 어머니 이치카가 '먼 모래'의 마담 아치요에게 돈 때문에 살해당했건, 히로카 옆집의 이와오가 사망한 히로카의 돈을 빼돌렸건, 그건 의뢰와는 무관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가 아치요와 이와오를 찾아갈 이유는 아니에요. 또 찾아가 봤자 이치카와 히로카의 돈이 둘에게로 흘러갔다는 증거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경찰 신고도 무용지물이었을테고요.

게다가 이렇게 하무라 아키라가 이야기를 끝낼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끝은 내기 위해 작가는 천재지변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토사 붕괴로 뉴타운이 휩쓸리고, 아치요와 이와오마저 실종되었다는 결말인데 작위적이고 허무하기로는 그야말로 끝판왕 격이에요. 차라리 하무라 아키라가 야치요에게 추리를 털어놓고, 원래 의뢰대로 유품을 전해주고 가는게 더 하드보일드스럽고 괜찮았을 겁니다.

하무라의 수사도 히로카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었다는게 밝혀지는 도입부는 괜찮았지만, 이후 기타노의 아내도 식칼로 하무라를 죽이려 했다던가, 히로카가 거쳐간 세 번의 거주지를 방문했고 기타노는 직접 만났음에도 마지막까지 '사채에 대해 증언을 얻지 못한다는 등 억지가 많더군요. 이치카, 히로카 모녀가 살던 오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채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모녀를 적대시 했었지요. 히로카의 정체 (사채업자)는 널리 알려져 있는게 당연했습니다. 최소한 불륜 상대로 오해받는 것 보다는 말이지요. 하루카가 시나코 씨 소유의 좁고 낡은, 거지같은 집에서 혼자 머무르다 죽음을 맞았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원칙대로였다면 채무자 이마이 집에 머물며 왕처럼 지냈어야죠. 돈도 많았을 텐데...

이렇게 독특함은 있지만, 단점들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0/08/13

소문 - 고이케 마리코 / 오근영 : 별점 2점

소문 - 4점
고이케 마리코 지음, 오근영 옮김/북스캔(대교북스캔)

"아내의 여자친구"로 접해보았던 일본 여성작가 고이케 마리코의 단편집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싹트는 악의와 살의를 주제로 한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단편인 "팽이멈추기"는 너무나 활동적인 남편을 증오하고 조용한 삶을 찾고자 하는 아내의 살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억지가 너무 심하네요. 남편의 행동이 살의를 불러 일으킬만한 것이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니 논외로 치더라도, 남편을 이렇게나 증오한다면 이혼을 생각하거나 최소 별거를 염두에 두는게 상식적입니다. 중간 과정 없이 곧바로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미국 단편에서 많이 봄직한 ‘돈만 쓸 줄 아는, 성적인 매력도 사라진 아내에게 걸려있는 거액의 생명보험’ 이라는 동기라도 있었더라면 모르겠지만요. 

그나마 마지막 반전이 괜찮기는 했지만 기본 내용이 별로라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두 번째 작품 "재앙을 부르는 개"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은 같습니다. 유기견을 주워와서 키우게 된 이후, 다른 가족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불행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개를 버릴 결심을 한다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부터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작품에서 설명되듯 정신병원에 가 봐야 하는 수준이니까요.

게다가 주인공의 불륜, 거기서 촉발된 한 여인의 자살 시체 발견 이후 이어지는 반전은 우연과 억지가 어이를 상실한 수준입니다. 주인공이 남자이기 때문에 작가 특유의 섬세한 여성의 심리 묘사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감점 요소고요. 

자살 시체 발견 시의 묘사는 섬찟했던 만큼, 개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짤막한 도시 괴담 정도로 풀어나가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세 번째 작품 "쓰르라미 동산의 여주인"은 정통 범죄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주인공이 3류 탤런트인데다가 대부호의 첩과 엮여있는 만큼, 일상계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어렵지요. 그런데 이 작품이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나았습니다. 일상 속에서의 살의를 억지로 끄집어내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살의가 싹트는 상황이 더 설득력이 있는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뒤에 밝혀지는 진상과 반전도 서늘한 맛을 전해주고요.

‘남자를 잡아먹는 요부’ 이미지가 색다르게 구체화된 작품으로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의 현대화된 도시 버전 작품으로 보이기도 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 작품이자 표제작인 "소문"은 소문으로 인해 직업을 읽게 된 간병인 다마오가 자신을 흠모하는 대학생 게이타에 의해 비뚤어진 방향으로 폭주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수록작 중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싹트는 섬찟한 살의’라는 테마가 가장 설득력있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동기와 과정 모두가 설득력이 있는 덕분입니다. 주인공이 다마요에서 게이타로 옮겨가는 전개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고요. 노처녀나 중년 독신 여인이 사소한 이유로 폭주한다는 소설은 "유니스의 비밀" 등 많이 있긴 한데 이 작품은 외로운 일본 현대 사회의 일면을 느끼게 하는 여러 묘사와 함께 게이타라는 청년의 이상한 애정이 동기가 된다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책의 평균 별점은 2.25점.. 2점 입니다. 앞선 두 작품이 별로였으며, 기대했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싹트는 섬찟한 살의'라는 테마가 대체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지 못한 탓입니다.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 역시 크게 돋보이지 않았고요. 일상 속 악의라는 테마를 추리 소설로 구현하는건 아무래도 와카타케 나나미 쪽이 더 나아보이네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신작이나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2026/05/10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2) 달콤 미스터리 페어의 비밀 샌드위치

이번에 소개해 드릴 요리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조용한 무더위" 수록작인 "파란 그늘 7월"에 등장하는 샌드위치입니다. 아주 화려하거나 수상해 보이는 음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티타임에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얌전하고 소박한 샌드위치지요. 그런데 이 작고 평범한 음식이 뜻밖에도 사건의 실마리가 됩니다.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로, 하무라 아키라가 일하는 살인곰 서점의 도야마 점장이 기획한 ‘달콤 미스터리 페어’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디저트가 나오는 미스터리 소설을 모아 전시하고, 티파티까지 열겠다는 행사이지요. 이 중 한 편이 대프니 뒤 모리에의 "레베카"입니다. 맨덜리의 4시 반 티타임에는 버터를 듬뿍 넣은 크럼펫, 작고 귀여운 토스트, 따뜻한 스콘, 생강 쿠키, 엔젤 케이크, 오렌지 필과 레이즌이 든 케이크처럼 누구라도 혹할 만한 디저트들이 줄줄이 등장하니까요. 

그런데 정작 이 작품 속 핵심은 이런 화려한 디저트들이 아닙니다. 교통 사고로 사망한 피해자 쓰구미의 어머니는 서점을 찾아와, 딸이 "레베카"의 티파티를 열고 싶어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메뉴 가운데 하나로, 작품에 등장하는 비밀 재료를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 생각이었다고 덧붙이지요. 쓰구미가 준비했던 속재료는 커민 시드로 밑간한 병아리콩이었다고 합니다.

커민 시드는 향신료의 하나로 씨앗처럼 생겼고, 음식에 넣으면 조금 이국적이고 묵직한 향이 납니다. 카레에서 맡아 본 듯한 향이라고 생각하면 대체로 비슷합니다. 병아리콩은 고소하고 담백하며, 삶으면 포슬포슬하고 부드럽지요. 으깨면 샐러드처럼 만들기도 좋고요. 짐작컨대 삶은 병아리콩을 으깨고, 소금으로 약하게 간한 뒤 커민 시드를 섞었을 겁니다. 여기에 마요네즈나 버터를 조금 더해 부드럽게 만들고, 식빵 사이에 얇게 펴 발랐겠지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티타임 메뉴로는 꽤 잘 어울리는 샌드위치였을 거예요. 달콤한 과자들 사이에서 살짝 다른 결을 만들어 주기도 했을 테고요.
모양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티파티에 올릴 샌드위치이니, 두툼하고 투박한 형태였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부드러운 식빵 사이에 병아리콩 속을 얇게 넣고, 가장자리를 잘라낸 뒤 작고 단정하게 썬 형태였겠지요. 삼각형이거나 길쭉한 손가락 모양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맛도 좋았겠지만, 이국적이고 독특한 재료라는 점에서 누구나 쉽게 떠올릴 만한 샌드위치는 아닙니다. 그런데 도야마 점장이 티파티를 위해 찾은 과자 장인 MIHARU의 글에서, 커민 시드로 밑간한 병아리콩이 '레베카'의 비밀 재료 샌드위치 재료라며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쓰구미가 사고로 죽어 가던 때 레시피가 적힌 노트를 훔쳐간 범인이 MIHARU라는 걸 알려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보통 미스터리의 단서라고 하면 핏자국이라든가 이상한 쪽지, 누가 들어도 수상한 말 같은 눈에 띄는 걸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 대신에 티파티 메뉴에 들어갈 샌드위치 속재료라는 아주 사소한 디테일을 사용한다는게 인상적입니다.

게다가 "레베카"에는 이보다 더 눈에 잘 띄는 샌드위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맥심의 할머니가 티타임에 먹는 물냉이 샌드위치나, 맨덜리에서 먹는다고 언급되는 오이 샌드위치처럼요. 영국식 티타임을 떠올리면 바로 연상되는 익숙한 메뉴들입니다. 하지만 와카타케 나나미는 이런 샌드위치보다 조금 더 낯설고, 그만큼 더 고민이 필요한 ‘비밀 샌드위치’를 사건과 연결합니다. 그 솜씨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작의 디테일을 세심하게 읽어낸 것도 놀랍지만, 그것을 살인곰 서점의 이벤트와 엮어 하나의 미스터리로 다시 조립해 낸 방식이 무척 영리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미스터리는 종종 아주 작은 것에서 움직입니다. 맛있어 보이는 다과 목록 한가운데 툭 끼어 있는 샌드위치 하나, 언뜻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속재료 하나 같은 것에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떠올리면 화려한 케이크보다도 먼저 그 병아리콩 샌드위치가 생각납니다. 가장 수수한 음식이, 끝내 가장 또렷한 단서가 되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커민 시드로 밑간한 병아리콩 샌드위치 레시피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1. 병아리콩 준비하기
    삶은 병아리콩 1컵 정도를 준비한다.
  2. 향내기
    커민 시드 1작은술을 마른 팬에 약하게 볶아 향을 살린 뒤, 살짝 으깬다.
  3. 속재료 만들기
    병아리콩을 포크로 대충 으깨고, 소금 약간, 볶은 커민 시드, 후추 조금을 넣어 섞는다.
  4. 부드럽게 다듬기
    마요네즈나 버터를 1~2큰술 넣어 질감을 부드럽게 맞춘다. 너무 곱게 갈기보다는 약간 포슬한 느낌이 남는 편이 좋다.
  5. 샌드위치 만들기
    식빵 사이에 속재료를 얇게 펴 바르고, 가장자리를 잘라낸 뒤 삼각형이나 손가락 모양으로 작게 썬다. 티타임용이라면 한입 크기로 작게 만드는 쪽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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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3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1.5점

네코지마 하우스의 소동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코지마 섬'은 고양이가 우글대는 고양이의 낙원으로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섬에서 고양이가 칼에 찔린 채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고마지 반장은 자신의 알레르기 덕분에 기묘한 사건 뒤에 감춰진 마약 관련 범죄를 눈치채고 수사를 펼쳤다. 그러나 용의자 알베르토가 기묘하게 추락사하면서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지는데..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세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 이번에는 하자키시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양이의 천국 '네코지마 섬'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전 두 권에 비하면 많이 처집니다. 기발한 설정이라서 기대가 컸던 전대미문의 추락사고는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고, 쓰레기 더미 속 시체 역시 주요 사건과의 접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극적 반전이 별다른 복선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 점수를 주기도 어려웠고요. 몇몇 캐릭터는 단순히 이야기를 늘리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3억 엔'을 둘러싼 수수께끼와 '페르시아'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물건의 정체입니다. 허무하기 짝이 없었거든요. 이건 수수께끼도 뭐도 아닙니다. 차라리 보석이라도 하나 사서 숨겨놓았다면 모를까, 도피 중이면서 3억 엔짜리 융단을 어디서 어떻게 샀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는 곳곳에서 살아 있었고, 이전 시리즈와의 접점도 탐정역의 고마지 반장을 비롯해 '라디오 하자키'나 아야 - 마야 쌍둥이 자매의 등장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 즐길 거리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주요 사건은 깔끔하게 해결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유머소설을 읽는 느낌마저 드니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2010/06/16

은빛물결님의 '2010 일미문즐' Ver2.0

http://www.howmystery.com/zeroboard/zboard.php?id=c1&no=3733
http://blog.naver.com/silverwave86/40108276361

좋은 정보가 있어 퍼옵니다. 은빛물결님의 2010 출간 예정 일본 미스터리 소개입니다.

개인적인 구매 예정작은
하라료의 <안녕 긴 잠이여>
일본 하드보일드 탐정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사와자키 시리즈. 제목부터가 챈들러 느낌이 물씬 나네요. 전작들 모두가 수준 이상의 명작들이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도 구입해 읽을 예정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명탐정은 밀항 중>
현재까지 국내 출간 전작을 구매, 독파한 좋아하는 일본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 역시 빼놓을 수 없죠. 일상 미스터리와 유머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은 작가인데 평도 좋은 작품이니 만큼 기대가 큽니다.

아와사카 쓰마오 <아아이치로의 낭패>
말이 필요없는, 일본 미스터리 역대 순위에도 이름을 계속 올리는 걸작이죠. 제가 좋아하는 단편집이기도 하고 계속 흠모해 왔던 작품인 만큼 반드시 구입할 생각입니다.

아유카와 데쓰야 <리라장 사건>
역시나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 거장의 대표작이라면 미스터리 애호가로서 한권 정도는 소장하고 있어야겠죠?

그 외에 절판되어 애호가들이 눈물을 흘렸던 기리노 나츠오의 <얼굴에 흩날리는 비> 라던가 다카무라 카오루의 <석양에 빛나는 감> 같은 걸작의 재출간, <얼룩고양이 홈즈>나 <미로관 살인사건> 같은 유명 시리즈의 재간 및 인기 작가의 최신작, 인기작이 망라되어 있어서 리스트만 보아도 마음이 굉장히 뿌듯해집니다. 미스터리 붐이 이대로 계~속 된다면 좋겠습니다!

2021/01/24

추리 소설 1,000편 리뷰 분석

추리 소설 1,000번째 리뷰 등록!

염원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 올리기를 달성했습니다. 1,000편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요. 1,000편 업로드 기념 및 개인적인 자료 정리 차, 여태 읽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에 대한 간략한 데이터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리뷰 갯수 1,000 

당연하겠지요?

책 권수 1,049권 

"브라운 신부""크리시" 리뷰와 같이 여러 시리즈를 한 편 리뷰에서 정리한 경우도 있고, "그것" 처럼 작품 한 편이 여러권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리뷰 한 편으로 소개한 경우가 많아서 권수는 더 많습니다.

책 종수 1,008종 

권 수가 많은 이유에 더해, 중복하여 작성한 리뷰도 있어서 이를 빼면 최종적으로 리뷰한 책은 총 1,008종입니다.

국가별 

일본 454, 영미 394, 한국 63, 프랑스 29, 독일 13, 그외 55

예상대로 일본 작품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이며, 영미 작품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5%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국내 출간되는 작품들과 제 취향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르별 

본격물 성향 작품 리뷰가 357, 스릴러는 229, 경찰/수사 127, 일상계가 80, 호러 73, 하드보일드 69, 역사 추리 55, 모험물 54 순입니다. 본격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장르 불문하고 단편집은 137편의 리뷰를 작성하였고요. 

참고로 본격물이면서 수사물인 작품이거나, 본격물이면서 일상계인 작품 등 키워드는 중복하여 체크된 결과입니다.

별점별 

경성탐정록 두 편은 제외한 총 1,006 종의 책 별점 분포는 아래와 같습니다. 

5점 : 4, 4.5점 : 7, 4점 : 71, 3.5점 : 48, 3점 : 271, 2.5점 : 259, 2.4점 : 1, 2.3점 : 1, 2점 : 227, 1.5점 : 88, 1점 : 26, 0.5점 : 1, 0점 : 1, 없음 : 1

평균 이상 별점인 2.5점 이상 작품이 660종으로 전체의 2/3를 차지합니다. 꽤 괜찮은 작품들을 읽어왔었다는 의미지요. 나름 뿌듯하네요. 별점 5점을 받은 작품, Hall of Fame만 별도로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9마일은 너무 멀다"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도끼" 

"특별요리" 

* 특별요리는 2003년도 동서 버젼이었고, 2015년에 다시 읽었던 엘릭시르 버젼은 별점 4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책 별점과는 별개로, 단편집 단편별 중 별점 5점을 받았던 단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살의" (in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결산"위험천만한 게임" (in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우체국에서 생긴 사건" (in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사기꾼의 카드" (in "클로버의 악당들")

"새", "성모상" (in "대프니 듀 모리에") 

"국화의 먼지" (in "저녁싸리 정사")

"죽음" (in "악몽을 파는 가게 1") 

이 역시, 저의 고전 본격물 취향을 잘 드러내 주네요.

작가별 

1. 작가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히가시노 게이고 : 48
2. 애거서 크리스티 : 33
3. 요네자와 호노부 : 21
4. 스티븐 킹 : 18
5. 마쓰모토 세이초 / 엘러리 퀸 : 16
7.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
8. 요코미조 세이시 : 12
9. 와카타케 나나미 : 11
10. 아리스가와 아리스 / 에드 멕베인 : 10 
12. 미쓰다 신조 / 아서 코난 도일 / 조르주 심농 / 시마다 소지 : 9
16. 다카기 아키미쓰 / 미야베 미유키 : 8
18. 에도가와 란포 / 노리즈키 린타로 / 도진기 : 7
수많은 작가가 있지만, 공통 18위 까지만 선정합니다. 일본, 영미 작가가 많은건 국가별 순위와 동일합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심농이 12위에, 한국작가 도진기가 18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네요.

2. 작가별 평균 별점 순위 (5권 이상 작품을 읽은 경우)

1. 콜린 덱스터 : 6권 리뷰, 평균 별점 3.6666...
2. 로스 맥도널드 : 5권 리뷰, 평균 별점 3.6
3. 기리노 나쓰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3. 모리스 르블랑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5.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권 리뷰, 평균 별점 3.269...
6. 미쓰다 신조 : 9권 리뷰, 평균 별점 3.055....
7. 딕 프랜시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
8. 다카기 아키미쓰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8. 미야베 미유키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10. 마쓰모토 세이초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84375
11. 와카타케 나나미 : 11권 리뷰, 평균 별점 2.8181...
12. 우타노 쇼고 : 5권 리뷰, 평균 별점 2.8
13. 요코야마 히데오 : 6권 리뷰, 평균 별점 2.75
14. 코넬 울리치 : 5권 리뷰, 평균 별점 2.7
15. 아서 코난 도일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조르주 심농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기시 유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8. 엘러리 퀸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65625
19. 미치오 슈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83333
20 애거서 크리스티 : 33권 리뷰, 평균 별점 2.5757576
21. 에도가와 란포 : 7권 리뷰, 평균 별점 2.5714286
22. 요코미조 세이시 : 12권 리뷰, 평균 별점 2.541...
23. 미카미 엔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
비슷한 주제로 13년 전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순위가 대폭 바뀌었네요. 최소 2권 이상의 작품을 읽은 작가는 114명, 어느정도 평균을 낼 수 있는 수치인 5권 이상 읽고 리뷰를 남긴 작가는 33명입니다. 이 중 평균 2.5 이상 별점을 유지한 작가는 콜린 덱스터 외 24명입니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1군 소속 선수의 72% 정도가 평균 이상이었던 셈이니 굉장히 훌륭한 성적이지요. 25명에 들지 못한 8명 중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 시마다 소지, 스티븐 킹,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은 평균 2.4점대로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명성이 있는 작가는 확실히 이름값을 한다는 증거죠.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평균 별점은 2.32점인데,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유명한 대표작, 걸작만 추려서 읽은 경우는 별점이 높을테고 많이 읽을 수록 평균 별점은 불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크리스티 여사님 평균 별점이 비교적 낮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위권을 살펴보면, 5권 이상 읽은 작가 중 꼴찌는 6권 평균 별점이 2.083점인 니시무라 교타로, 전체 꼴찌는 읽은 작품 4권 별점 평균이 1.1점에 불과한 제임스 패터슨이었습니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모르겠지만, 두 번 다시 제임스 패터슨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탐정별 (5권 이상 읽은 작품만 뽑아봅니다)

1. 탐정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에르큘 푸아로 : 15권 리뷰
2. 엘러리 퀸 : 13권 리뷰
3. 셜록 홈즈 : 12권 리뷰
4. 긴다이치 코스케 : 11권 리뷰
5. 가가 (학생 ~ 형사) : 10권 리뷰
6. 87분서 : 9권 리뷰
7. 메그레 경감 : 7권 리뷰
8. 고전부 / 기디온 펠 박사 / 노리즈키 린타로 / 모스 경감 / 히무라 히데오 : 6권 리뷰
13.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시오리코 /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5권 리뷰
2. 탐정별 평균 별점 순위
1. 모스 경감 : 3.66666
2. 셜록 홈즈 : 2.958333...
3. 기디온 펠 박사 : 2.9166...
4. 엘러리 퀸 : 2.6923...
5. 긴다이치 코스케 : 2.6363...
6. 시오리코 : 2.6
7. 고전부 : 2.58333
8. 메그레 경감 : 2.5714...
9. 가가 (학생 ~ 형사) : 2.55
10. 에르큘 푸아로 /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2.5
13. 87분서 : 2.4444...
14. 히무라 히데오 : 2.41666...
15. 노리즈키 린타로 : 2.25
16.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2.2
입니다. 원탑 모스 경감 밑으로 셜록 홈즈, 기디온 펠 박사까지는 평균 이상의 빼어난 별점을 자랑합니다. 확실히 탐정은 영미권 탐정이 더 제 취향이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간략하게 추리소설 1,000편의 리뷰에 대한 요약 정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