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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1

의뢰인은 죽었다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의뢰인은 죽었다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과 "네 탓이야" 로 친숙한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신작 단편집으로, "네 탓이야"의 주인공이었던 프리터 하무라 아키라 주연의 단편 9편이 실려있습니다.

읽고난 감상으로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은 생각하고는 많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편집은 제가 기대했었던 "추리물"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이야기의 전개나 구조는 추리물적인 성격이 강하고, 대체로의 내용들도 범죄와 호러를 근간에 깔고 있는 등 광의의 의미로서 추리물이라고 부르기에는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도 범죄가 등장하고 그 범죄를 파헤쳐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던가, 교묘한 범인의 트릭을 간파해서 진범을 찾아낸다는 등 전통적인 추리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죠. 작가의 전작을 통해 이러한 추리적인 요소를 많이 기대했던 저에게는 정말 뜻밖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하고 달랐다고는 해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작품들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죠.

먼저 전통적인 추리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표제작이기도 한 "의뢰인은 죽었다"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갑자기 날아온 난소암을 알리는 통지서에 당황하던 여자가 우연찮게 알게된 하무라에게 관련된 내용을 물어본 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어 하무라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통지서라는 존재 자체가 좀 작위적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동기"와 일련의 과정이 아주 합당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짜여져있는 좋은 작품으로 충분히 기대에 값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단편인 "시인의 죽음"에서부터 등장하는 하무라의 친구 아이바 미노리가 탐정역을 소화하는 이색작 "여탐정의 여름 휴가"도 제목 그대로 여름휴가를 보내는 호텔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설정부터 완전 고전 영국식 추리물 티가 팍팍나는, 단순하지만 "복선"과 "단서", 그리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던 것이, 이러한 추리물을 포함해서 이 단편집의 작품들은 일관되게 "자살"이라는 죽음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는 것과 이러한 자살 행위 뒤에 "인간의 악의"가 굉장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들고 싶네요. 그것도 친족이 관련된 사소하지만 무서운 악의를 말이죠. 정도가 지나쳐서 작가가 친족에게 큰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쨌건, 이러한 악의가 사소한, 또는 일상속에 묻힌 사건 배후에 깔려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살짝 소름이 돋는 내용들로 짜여져 있기에 굉장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앞서 언급한, 친구 아이바 미노리의 약혼자였던 공무원이자 시인이었던 인물의 자살 사건 뒤에 감추어진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아버지의 속셈을 그린 "시인의 죽음"과 한 평범한 주부가 의뢰한 그녀 친구의 급작스러운 자살사건에 대한 이야기인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가 대표적으로 이 두 작품은 그야말로 일상계 악의 범죄소설이라 명명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사소한 악의가 타인에게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철저하게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 외에도 은인과 불륜관계에 빠진 아내를 데리고 귀향한 화가에 대한, 조금은 뻔한 내용이지만 충분히 설득력있는 일상계 호러물 "철창살의 여자"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작위적인 무대장치와 작중에 "수없이 많은 모델이 견디지 못해서 교체되었다" 라는 설정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모델들이 알 수 밖에 없으니까요) 충분히 공포를 안겨다 주는 작품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경우는 실제 등장하는 그림이 비쥬얼로 보여지는 영상물로 작업된다면 정말 모골 송연한 전연령(?) 호러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드라마화라도 되면 좋겠는데....
작가 특유의 인칭과 시점을 오가는 묘사력이 잘 표현된 "아베마리아"도 좋은 작품이었고요.

아울러 주인공 하무라의 독특함. 그 어떠한 일이라도 방관자적이면서도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내 조사에 봐주기는 없다"같은 집요함도 재미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전작 "네 탓이야"와 비교한다면 단독 주연(?) 이면서 연륜이 쌓인 덕인지 훨씬 캐릭터가 확실해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정말 실존할 것 같은 여탐정 캐릭터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단, 일종의 스토리라인을 설정한 듯 첫번째 작품인 "짙은 감색의 악마"와 마지막 작품 "편리한 지옥"이 서로 연결되며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데 이 두 작품이 단편집과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 하나는 아쉽습니다. 평범한 일상속에서의 악의라는 테마를 일관되게 끌고나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일종의 "마인"과도 같은 악역의 생뚱맞은 등장으로 일상성과 평범함, 그리고 악의라는 중요 이야기축이 통째로 무너져 버려서 혼란스러워지더군요. 예를 들자면 그런대로 괜찮은 추리물이었던 "케이조쿠" 에서 "아사쿠라"라는 마인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 그대로였어요. 그냥 하무라라는 캐릭터와 일상에서의 악의만 가지고도 충분히 이야기가 가능했는데 왜 이러한 악역이 등장해서 이야기에 개입했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이름값은 하는 작품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작품은 하무라 아키라가 등장하는 첫 장편이라는데 특유의 일상성을 잘 살린 작품이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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