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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4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 잇폰기 도루 / 김은모 : 별점 2점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 4점
잇폰기 도루 지음, 김은모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세 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단서가 없어서 수사가 난항을 겪던 와중에 진범 '백신'이 다이요 신문의 기자 잇폰기 도루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인간은 바이러스이며 자신은 백신이라며 잇폰기 도루와 다이요 신문 지면을 빌린 토론을 제안했다. 잇폰기 도루는 범인의 체포와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토론에 응했고, 적자로 치닫던 다이요 신문의 경영도 급속도로 회복했다. 그리고 백신이 불특정 다수에게 '살인 예고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발표된 뒤, 잇폰기에게 에바라 요이치로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자신의 집에 배달되었던 예고장을 들고....

신인작가 잇폰기 도루의 작품입니다. 제 27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에서 "시인장의 살인"에 뒤이은 우수상 수상작이었다고 하네요. 드라마로까지 제작될 정도니 꽤 인기를 끈 듯 합니다. 정통 본격물 애호가로서 '아유카와 데쓰야 상'의 권위를 잘 알고 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신문사 내의 조직 체계와 구성, 신문이 제작되는 과정, 신문사의 경영 상황 등 신문에 관련된 디테일한 묘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작가가 61년 생으로 오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데뷰했다는데, 분명 신문사에서 일했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전성기 정통 사회파 추리물이 연상될 정도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며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대조'를 통해 양 쪽 모두를 극대화시키는 수법을 사용한게 독특했어요. 신문이 수행해야만 하는 사회적인 역할과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과의 대조, 백신의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는 주장과 그걸 뒷받침하는 여러가지 광기와 추악함 설명과 함께 에바라 요이치로 시점에서 에바라 가족의 끈끈한 사랑을 대조시키는 식입니다. 아울러 연쇄살인범이 신문 기자와 신문 지면을 통해 토론을 벌인다는 아이디어도 흥미로왔으며, 살인범 에바라가 잇폰기 도루에게 집착한 이유가 아들 요이치로의 친부였기 때문이었다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요소를 잘 살렸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개의 핵심인 '토론' 부터가 문제니까요. 비슷한 주장이 반복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인 내용까지 인용해가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척은 하지만, 길게 묘사될 내용은 아니었어요. 신문에 실렸을거라 생각되는 글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보다는 백신의 성명을 기자와 각계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식의 기사 형태가 더 설득력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전개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왜 토론을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부터 부족합니다. 에바라가 잇폰기에게 구태여 연락을 해서 요이치로의 친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이 부분을 뺀다 하더라도 전개에 별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에바라가 과거 아동 학대의 피해자로 잘 성장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암에 걸린 아내의 사망으로 갑자기 분노가 폭발했다는 동기도 별로 와 닿지 않네요. 여러 등장 인물들이 모두 가정 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불필요한 일종의 맥거핀일 뿐입니다.

아유카와 데쓰야 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기대해 볼 만한 정통 본격물적인 요소도 기대 이하입니다. 진범이 에바라였다는 반전 자체만큼은 나쁘지 않아요. 잇폰기에게 보낼 편지를 아들 요이치로가 봤다고 착각한 나머지, 살인 예고장을 보냈다는 식으로 둘러댔지만 자기가 받은 예고장과 실제 보낸 예고장의 시기가 일치하지 않은게 발목을 잡는다는 상황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예고장을 언제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독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는게 문제에요. 이 탓에 독자들은 공정하게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이래서야 정통 본격물로 보기는 힘들지요. 

불특정 다수라 생각했던 피해자들의 연결고리가 '상수리 나무집'이라는 아동 보호 센터에 맡겨진 아이가 있었다는 결정적 단서를 경찰과 취재한 기자들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 역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족들 신상부터 파악하는게 수사와 취재의 기본이 아닐까요? 물론 저 단서만 가지고 진범 에바라를 찾아내는건 힘들었겠지만, 최소한 동기만큼은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에바라가 게가사와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행했던 여러가지 공작은 눈여겨볼만 했지만, 교수의 알리바이가 없었던건 어떻게보면 '운'의 영역이고, 신문사에서 협박 전화를 걸었던게 발각되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벽하게 누명을 씌웠는데, 잇폰기 도루의 추리만 듣고 경찰도 에바라가 범인이라고 여긴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범행 현장에 남겨졌던 담배 꽁초의 DNA는 게가사와 교수의 것이었고, 게가사와 교수 연구실에서 백신이 편지를 보낼 때 썼던 봉랍과 스탬프가 발견되었으며 그 외 여러가지 증거들 모두가 게가사와 교수가 범인임을 가리키니까요. 백신의 편지보다 훨씬 명확한 증거잖아요?

또 사회파 추리물같았던 부분도 변죽만 올리고 끝나서 아쉽습니다. 특히 적자를 보던 다이요 신문이 살인범과의 토론으로 돈을 벌어서 기사회생한다는 딜레마를 잘 끝맺지 못한 탓이 커요. 괜히 다이요 신문 관계자가 범인이 아닐까하는 분위기만 살짝 풍기는게 전부거든요. 이런 사회파스러운 내용과 정통 본격물스러운 내용이 잘 결합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아니, 완벽하게 분리된 다른 이야기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아예 사회파다운 이야기로 풀어내던가, 아니면 보다 본격적인 요소를 도입하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양 쪽 모두에서 기대 이하인 이도저도 못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2019/08/10

봉제인형 살인사건 - 다니엘 콜 / 유혜인 : 별점 2점

봉제인형 살인사건 - 4점
다니엘 콜 지음, 유혜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쇄 살인 방화범 칼리드 체포 과정에서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가 복직한 형사 울프는 무려 여섯 명의 사체를 꿰메어 만든 '봉제 인형 살인 사건' 수사를 맡게 되었다. 범인은 울프의 전처인 기자 안드레아를 통해 여섯 명의 살인을 더 예고했다. 경찰은 예고 살인을 막기 위해 애썼지만, 공개된 명단 속 인물들은 차례로 살해당하고 말았다. 울프와 수사팀은 이 모든 사건이 칼리드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채나 범행을 막지는 못했고, 경찰 대학을 나온 브레인 에드먼즈가 혼자만의 조사를 통해 울프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는걸 밝혀내는데...

최근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지요. 여섯 명의 사체를 결합해 만든 '봉제 인형' 이 등장하는 서두도 강렬하지만, 경찰의 눈 앞에서 피해자들이 차례대로 살해되는 과정과 경찰의 수사가 숨돌릴 틈 없이 진행되는데 속도감과 흡입력은 상당합니다.

그러나 재미 외의 요소는 부족합니다. 싸구려 펄프 픽션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어요. 많은 부분에서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는 탓입니다. 별다른 재산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홀로 행동하는 범인 매스가 어떻게 놀라운 범행을 계속 벌일 수 있었는지부터 전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보통 이렇게 전능한 악당의 경우, 경찰 관계자이거나 본인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든 - 머리가 좋다던가, 돈이 많다던가, 초능력이 있다던가... - 대단한 능력을 갖춘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작품 속 매스는 정신병을 앓고있는 퇴역 군인에 불과합니다. 턴블 시장을 살해하기 위해 그의 천식 흡입기를 어떻게 바꿔치기 했는지? 갈랜드 기자를 죽이기 위해 연극에 사용한 보호대를 어떻게 바꿔치기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요.
특히 천식 흡입기는 그나마 그렇다쳐도, 갈랜드 기자가 죽은 것 처럼 꾸미기 위한 작전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보호대를 쓰고 어떤 연극을 할 지 매스는 알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울프가 희생자로 예고된 상황에서는 울프가 개인 행동만 벌이지 않았어도 범행을 성공할 방법이 없었을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꼭 이 연쇄 살인이 아니더라도 봉제 인형을 만들기 위해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인물들을 납치하여 토막낸게 시체 발견 시점까지 사건화 되지 않은 이유도 알기 어렵습니다. 피해자들이 부랑자나 노숙자도 아니고, 파트너급 변호사나 경찰 등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말이지요. 그 전부터 매스는 이른바 '악마의 거래'로 살인 행각을 계속해 왔지만, 아무도 정체를 몰랐다는 설정도 어이가 없습니다. 그만큼 영국의 치안이 허술하다는 이야기일까요? 이 정도면 정말 사람 살 곳이 아니네요.

추리적으로도 볼만한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범인을 후반부에 알아내기는 하는데 앞 부분의 수사는 별 관련이 없거든요. 에드먼즈의 프로파일링으로 도출된 인물상에 해당하는 인물을 DB를 통해 뒤지다가 사진 속 눈동자를 보고 범인임을 직감한다는데, 이럴거면 앞에서 벌였던 온갖 수사는 대체 뭔가 싶습니다. 왜 진작에 이렇게 수사를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사건 전개도 혼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울프를 주인공으로 하여 피해자들의 정체를 알아내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밝히는 과정, 예고된 범행을 막는 과정이 한참 펼쳐지다가 갑자기 에드먼즈 쪽으로 시점이 이동하여 울프가 진범이 아닐까? 라는 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럴거면 애초부터 시점을 울프가 아니라 에드먼즈 쪽으로 했어야 말이 됩니다. 에드먼즈 시점으로 전개되는 과정이 훨씬 흥미롭기도 하니까요. 정신병원에서 울프가 벽에 새겨놓은 피해자들의 이름을 드러내는 장면만큼은 아주 괜찮았는데 많이 아쉽네요. 울프의 수사는 현재로, 에드먼즈의 수사는 과거를 뒤지며 결국 두 시점이 하나로 합쳐지는 식으로 했더라면 설득력도 높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내용에서 불필요한 부분도 너무 많습니다. 자극적인 뉴스로 시청률을 올리려고 혈안이 된 방송국장 엘리야와 그 밑에서 수족처럼 일하며 양심과 싸우는 울프의 전처 안드레아 이야기는 정말이지 쓰잘데 없어요. 이런 매스컴의 행각을 지적한 다른 컨텐츠에서 흔하디 흔하게 보아왔던 스테레오 타입의 재탕일 뿐 아니라 실제 이야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안드레아의 개입은 사건을 혼란스럽게만 만들 뿐입니다.
에밀리 벡스터 형사와 울프의 친구 이상 연인 이하라는 설정에 할애한 분량도 마찬가지입니다. 등장해서 하는거라곤 울프와 울프 주변 여자들과의 감정 싸움 말고는 없는데 이러느니 없어도 될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싸구려 매스컴의 행태는 대폭 줄이고, 울프 주변의 여자 관계도 모두 쳐냈다면 이야기는 절반 정도 분량으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거기에 에드먼즈 시점에서 썼다면? 1/3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한때 유행처럼 쏟아졌던 '전능한 살인마의 예고 연쇄 살인'을 별 생각없이 재탕한 결과물입니다. 에드먼즈가 활약하는 부분만큼은 흥미를 자아내지만 그 외에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네요. 딱히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2023/07/21

우중괴담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2점

우중괴담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미쓰다 신조가 직접 듣고 기록했다는 다섯 편의 괴담이 수록된 단편집. 다 그런건 아니지만, ' 이 이야기는 <<노조키메>> 1부의 바탕이 되었던 체험담을 이야기 해 주었던 작가가 해 주었던 이야기다'라는 식으로 설명되어 조금 더 현실감을 부여해 주는게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전해들은 괴담'인 탓에 이야기의 설명이 부족하고, 기승전결도 애매한게 많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완성된 단편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소설'로 완성하기는 시간이 걸리니, 괴담이라는 핑계로 빠져나간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드네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찾아온다는 것도 그간의 미쓰다 신조 과담들과 비슷해서 식상했고요. 무서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런 이유로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작품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은거의 집>>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시골의 외딴 집에 맡겨졌었다. 할머니 홀로 밭을 돌보며 생활하던 집은 주변에 기묘한 결계같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주일을 머물며 일곱살이 되는걸 기다려야만 했다. 울타리 밖을 나가면 안되고, 본명이 아니라 '도리쓰바사'라 불리우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누군가와 절대 이야기를 나누어선 안되고, 휘파람을 불면 안되는 등의 몇가지 규칙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었던 '나'는 집을 찾아온 아이와 친해졌다. 아이의 필사적인 요청으로 '나'는 울타리를 넘어 아이를 따라갔다가 무언가에 잡힐 뻔했다. 할머니가 주었던 부적을 잃어버린 탓이 컸지만, 입고있던 기모노의 힘으로 겨우 탈출했다. 그러나 집 안에 '무언가'가 함께 따라 들어왔고, 결국 할머니마저 '무언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다행히 '나'는 일곱살이 되는 날 아침을 맞아 아버지와 함께 돌아왔다....


전형적인 괴담입니다. 왜 일곱살이 될 때까지 이상한 규칙을 따르며 결계 안에 있어야 하는지, '무언가'의 정체는 무엇인지 , 할머니는 누구였고 어떻게 되었는지 등 핵심 설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그런 체험을 했다는게 전부입니다. 체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던 '나'가 미쓰다 신조에게, 자기 손자가 곧 일곱살이 되는데 밤마다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는 이야기 - 즉 손자에게도 똑같은게 찾아올거라는 의미 - 로 마무리되는 일종의 에필로그도 설명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리고 괴담치고 별로 무섭지도 않아요. '무언가'가 집 안에 들어와 와글와글하며 휘파람을 부는 장면, '나'를 밤새 지켜주던 할머니가 '무언가'에 사로잡힌 뒤 결계인 모기장 밖에서 나에게 얼굴을 쓱 들이미는 장면 등은 묘사에 심혈을 기울이기는 했는데 밋밋했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휘파람을 분다던가, '무언가'의 실체를 좀 더 그려주었다면 더 나았을텐데 말이지요. 
설정도 어디선가 본 듯해서 신선하지도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예고화>>
미쓰다 신조는 아이들의 사망사고에 있어서, 아이들이 생전에 그린 그림들 중 사고사를 암시하는 그림 '예고화'에 관심을 가지던 중, 초등학교 교사 구보타 나오트의 체험담을 듣게 되었다.
구보타 나오토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는데, 다쓰토라는 학생이 그린 그림이 미래의 사고를 예지한다는걸 알아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다쓰토의 그림은 구보타 나오토를 노리기 시작했다. 이전 그림과는 다르게, 나오토의 시점으로 그려진 그림은 명백한 사고를 예고하고 있었다. 구보타 나오토는 그림 수업을 중지하는 식으로 저항했지만, 나오토가 개인적으로 그리는 그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나오토는 살아남기 위해 온수풀 수업에서 다쓰토를 익사시킨 뒤 다른 학교로 옮겨갔다...

단순한 괴담은 아니고, 하나의 완성된 호러 단편입니다. 저주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기승전결도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 저주의 방법 - 다쓰토의 그림
  • 저주의 대상 - 다쓰토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들 : 통학로에서 사납게 짖는 개, 자기를 귀찮게 하는 반장, 어머니를 독차지하는 아픈 할머니, 그리고 구보타 나오토
  • 해결방법 - 그림을 고쳐서 대상자를 바꾼다
덕분에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지 않고 대충 넘기는 괴담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이야기를 들은 미쓰다 신조가 체험담 속 몇몇 단어와 변화 포인트를 짚어내어 다쓰토의 어머니와 구보타 나오토가 불륜관계라는걸 밝히는 부분은 추리 소설같은 느낌도 전해주고요.
'예고화'라는, 실재 존재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그림으로 저주를 내린다는 발상, 그리고 피해자 시점으로 그려졌던 그림에 다쓰토를 그려넣어 저주의 대상을 바꾸었다는 결말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쓰토가 죽은 뒤에도 나오토가 저주를 다시 겪었다는 일종의 에필로그는 불필요했습니다. 첫 번째 저주 - 물에 빠지는 것 - 는 다쓰토가 피해자가 되어 끝난 저주인데, 이게 다시 되풀이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설명이 부족했어요. 나오토는 저주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 차라리 그림으로 싫은 사람을 없애게 되었다는 식으로 흘러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데스노트? 하지만 그림은 사람을 그려넣는게 제한적이니...) 이렇게되면 단편 분량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겠지만요.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였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모 시설의 야간 경비>>
센바는 신인상 수상 뒤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며 창작에 매진하기 위해 야간 경비원을 하게 된 센바는 종교시설 광배회의 야간 경비를 맡게 되었다. 기묘한 공원같은 '십계원' 순찰을 하다가 괴이한게 따라오는 체험을 한 뒤, 이에 대해 광배회 관계자와 이야기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십계원'에서 연달아 자살 사건이 일어나서 출입 금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경비의 목적은 야간 경비들이 체험했던 괴현상을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센바에게 정식 임금 외 사례금까지 제안했고, 센바는 창작을 위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5일 째 순찰날, 센바는 '십계원'에 나타난게 경비원 연수 때 동기인 이사코라는걸 알게되는데...

미쓰다 신조가 작가 센바 아츠오에게 들은 전형적인 괴담으로, 센바 아츠오가 겪은 끔찍한 체험이 대부분입니다. 괴담답게 십계원 괴현상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사코가 왜 십계원을 떠도는 괴이가 되었는지 등은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괴상한 오브제로 가득차있는 십계원의 묘사와 센바의 체험담도 박진감이 넘쳐서 읽는 재미는 있지만, 설명이 없으니 결국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무엇보다도 이전에 십계원 경비를 맡았던 경비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사코처럼 사라져버린 경비들이 있었다면 소문이 나지 않는게 불가능하니까요.
 
센바가 이사코를 처음 인지했던게 '보살계'였고, 뒷걸음질치다가 '불계'까지 들어왔다는게 뭔가 중요한 포인트처럼 묘사되는데 이것도 좀 이상했어요. 십계원의 끝이 '불계'라서, 괴이 이사코가 십계원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불계도 엄연히 십계원 내부이니, 여기서 쉽게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다른 '계'에 있어도 가능했겠지요. 물론 센바가 있었던 경비실이 불계 내부에 있어서, 괴이가 경비실을 들어오려고 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비실만 십계원 밖에 설치하면 경비원 보호 문제는 해결됩니다.
아울러 광배회가 사례금까지 지불하면서 야간 경비를 맡겼다면, 왜 2인 1조로 경비를 돌게 하지 않았을지?도 의문입니다. 괴현상 수집이 목적이었다면 괴현상을 수집하는 이유도 설명되었어야 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기묘한 공간 덕분에 읽는 재미는 제법 괜찮았지만, 설명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부르러 오는 것>>
대학생 아이다 나나오는 매년 오봉 때 할머니가 홀로 다녀왔던, 나메라의 오이노쇼 씨 집에 향전 바치는 행사를 맡게 되었다. 할머니가 아팠던 탓이었다.
기차와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시골의 대저택에 찾아간 나나오는, 향전만 바치고 바로 돌아와야 한다는 약속을 어기고 창고를 찾아가 2층에 있는 사람을 불러달라는 한 노파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 뒤, 오봉마다 나나오의 집에 '무언가'가 찾아와 나나오를 불렀고, 나나오가 없자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할머니, 어머니를 잃은 나나오는 결혼한 뒤 성이 바뀐 덕분에 더 이상 '무언가'의 부름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미쓰다 신조는 경찰 간부 출신으로 유령 따위는 없다는 철저한 현실주의자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 올렸다.
지역 유지 아마노가의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교사 부부가 이사를 간다며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부인만 홀로 집에 있을 때, 기분 나쁜 초인종 소리와 함께 누군가 찾아오는데 실제로는 아무도 벨을 누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척을 하자 부엌문을 노크하기 시작해서... 이사를 간다는 이야기였다.


본편인 아이다 나나오 이야기는 전형적인 괴담입니다. 나나오가 겪은 체험이 전부에요.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시골 마을에서 모시던 무언가에 씌워져서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식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제가 읽은 비슷한 이야기만해도 열 편은 넘을거에요.

그러나 아버지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답게 논리적인 추리를 내 놓거든요. 부인만 혼자 집에 있을 때 유령이 아니라 집주인 아마노 영감이 찾아왔다는 거지요. 그걸 피하려고 집에 없는 척을 하니 아예 문까지 두드리게 되었고요. 그래서 남편과 의논했지만, 집주인이고 지역 유지라 험담을 할 수도 없으니 이사를 하면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퍼트리려고 했다는 겁니다. 아주 그럴듯하지요? 
이런 식으로 '현실주의자 경찰이 괴담을 파헤친다!'는 이야기였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중괴담>>
미쓰다 신조는 예전에 알았던 장정가 마쓰오로부터 괴담을 들었다. 그는 장정을 맡은 교정지를 산책로에 있는 정자에서 읽곤 했는데, 그곳에서 비오는 날 한 노인으로부터 괴담을 듣게 되었다. 노인의 어렸을 때 이야기로, 당시 그는 사냥꾼 할아버지가 두고 간 도시락을 전해주러 사냥 오두막에 갔다가, 폭우가 쏟아질 때 오두막 밖에서 들여보내달라는 한 여인의 부탁을 받았었다. 여인이 들어오기 직전, 위기의 순간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구해주었지만, 그 뒤 할아버지는 사냥꾼 오두막에서 혀가 뽑힌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쓰오는 또다시 비오는 정자에서 이번에는 어린 여자아이를 만났다. 아이가 마쓰오에게 한 이야기는 아빠와의 그림자 놀이였다.
그 뒤는 아이 아빠가 학교 선생으로 학교 숙직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흰 형체를 쫓느라 시간가는줄 모르다가 숙직실에 돌아가니 아내가 와 있었고, 아내와 밤을 보내려고 했는데 숙직실로 집에 있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고 그 뒤 아내가 임신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차례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은 마쓰오는, 다음날 가족과 관계된 누군가가 실제로 해를 입었다고 했다....

표제작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여러 명으로 부터 들은 괴담을 마쓰오가 겪은 체험과 합쳐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단순 괴담보다는 훨씬 복잡한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담이 중심이라는건 다른 이야기들과 다를게 없지만, 다른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르게 노인과 그 가족들이 마쓰오에게 이야기를 해 준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주기는 합니다. 마쓰오의 가족 구성이 노인의 가족 구성과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인과 그 가족들이 마쓰오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해 줄 때마다, 원래는 마쓰오 가족이 해를 당했어야 했지요. 그런데 마쓰오가 별거 중이라 홀로 나와 살고 있던 탓에 마쓰오 주변 사람들이 대신 해를 입게 된 겁니다.
마쓰오가 미쓰다 신조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 준 이유도 그가 이미 괴이 쪽에 속해있었다고 설명해 줍니다. 마쓰오 사무실의 책들이 전부 낡은 것이었다는 단서로 이를 알아내는 미쓰다 신조의 추리도 돋보였고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해서 마쓰오 가족에게 해를 입히려고 한 이유는 설명이 없습니다. 누군가 마쓰오 가족에게 원한을 품고 저주를 내렸던 걸까요? 마쓰오가 미쓰다 신조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 줬어야 하는 이유도 없고요. 이 논리대로라면 미쓰다 신조 주변의 누군가도 해를 입었어야 했는데 (괴담을 들었으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마쓰오가 언제 괴이 쪽에 속하게 되었는지, 이후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이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하기만 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단순 괴담보다는 낫지만, 뭔가 부족하고 애매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었습니다.

2023/09/08

살인을 예고합니다 - 애거서 크리스티 / 이은선 : 별점 2.5점

살인을 예고합니다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을 예고합니다. 시각은 10월 29일 금요일 6:30 P.M. 장소는 리틀 패덕스. 친구들은 이번 한 번뿐인 통지를 숙지하기 바랍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치핑 클래그혼의 온갖 가십이 실리는 신문 「가제트」에 기묘한 광고가 떴다. 이웃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약속이나 한듯 정해진 시각에 리틀 패덕스를 찾아왔다. 그리고 6시 30분에 방안의 불이 꺼지고 누군가 침입했다! 곧이어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은 쓰러진 침입자를 보았다. 리틀 패덕스의 주인 블랙록 양을 쏜 뒤, 스스로에게 총을 쏴 사망한 듯 했다. 하지만 크래독 경위 등 경찰 관계자들은 미심쩍음을 느꼈고, 마을을 방문한 미스 마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블랙록 양의 친구이자 동거인 버너 양의 독살, 마을 주민 머거트로이드 양의 교살 사건이 이어지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중 두 번째로 읽은 작품. 미스 마플 시리즈인데, 세인트 메리 미드가 아닌, 또 다른 시골 마을 치핑 클래그혼이 무대입니다.

살인을 예고하는 광고를 실으면서 시작되는 도입부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였어요. 이에 대한 설명 - 좀도둑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강도짓을 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 도 꽤 그럴싸했고요. 경찰 관계자들이 미심쩍어 하지만 않았어도,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한 번에 털려고 했던 창의적인 강도가 실수로 쏜 총에 맞아 죽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처리되었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전후 식량과 의류가 배급제로 이루어지고, 때문에 마을 내에서 물물교환이 버젓이 이루어지던 시대 배경도 흥미로왔습니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 누구나 리틀 패덕스에 드나들 수 있어서 다들 용의자가 되어 버리고 말거든요. 힘들었던 시대에 있었던 일까지 작품에 효과적으로 반영시키는건 정말이지 거장다운 솜씨라 할 수 있겠지요. 감탄을 금치 못하겠어요.

본격 추리물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공정함 측면에서도 만점을 줄 만합니다. 블랙록 양이 사건을 꾸몄다는걸 처음 마을 주민들이 리틀 패덕스에 모일 때의 대사로 명확하게 알려주는 덕분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리틀 패덕스에 모인 마을 주민들 모두가 석탄 배급 중임에도 불구하고 중앙 난방을 돌린걸 언급하는데, 벽난로 불을 때면 간접 조명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범행을 저질러야 했던 블랙록 양은 어쩔 수 없이 중앙 난방을 돌렸던 겁니다! 불을 꺼지게 만든 장치도 가구에 남은 담뱃자욱, 바뀐 조명등, 물이 없어 말라버린 제비꽃 등으로 확실하게 설명되며, 레티셔 블랙록과 샬럿 블랙록 신분이 뒤 바뀌어 있다는 것도 도라의 말실수 - 어떨 때는 레티, 어떨 때는 로티라고 부르는 - 를 비롯하여 스위스에서의 수술, 항상 목에 거는 가짜 티 나는 진주 목걸이 등의 여러가지 단서로 알려줍니다. (레티와 로티는 한국 독자에게 그다지 유용한 단서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핍과 에마의 정체가 이란성 쌍둥이지만 둘 다 여자아이였다는 사소하지만 나름대로의 반전도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헛점이 많은 편입니다. 범인 블랙록 양의 계획부터 안이했습니다. 경찰들이 엄연한 강도 살인 사건을 이렇게 쉽게 덮을리는 없는데 말이지요.
기발했던 '살인 광고'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기는 했지만 현실성이 부족했습니다. 경찰들도 지적하듯이 마을 주민들을 한 곳에 모아 봤자 강도가 얻을 수 있는 잇점은 많지 않아요. 오히려 마을 주민들이 다른 곳에 모이기를 기도하고 빈 집을 털 생각을 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동네 이웃 집을 방문하는데,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나 거액의 현금을 들고갈리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마을 주민들이 모인 탓에, 블랙록 양이 총소리가 났을 때 자리에 없었다는걸 머거트로이드 양이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좀 바보같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빠릿빠릿한, 아니 보통 수준의 지적 능력만 갖추고 있었더라도 초반부 머거트로이드 양 증언으로 블랙록 양의 계획은 실패하고 체포되었을 거에요. 
한마디로 말해 살인 광고는 증인만 늘린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광고없이 셰르츠를 집으로 오라고 속이고 살해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었어요. 증인이야 버너 양, 가정부 미치면 차고 넘쳤을테니까요. 동거하는 조카들도 있고.

또 사건을 꾸밀 때 블랙록 양을 향해 총을 쏜 걸로 위장한건 너무나도 큰 실수였어요. 수사하다보면, 그녀가 벨 괴들러의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라는게 드러날테고, 그렇다면 용의자로 유산을 노리는 벨 괴들러 동생의 자녀들 - 핍과 에마 - 이 떠오르는게 당연했습니다. 흉기인 권총도 마을 주민 이스터브룩 대령의 소장품을 훔쳤다는게 밝혀졌다면, 죽은 강도 세르츠가 그 총이 있다는걸 알고 훔쳤을리가 없으니 - 불가능한건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겠지요 - 용의자는 마을 주민으로 더욱 좁혀졌을테고요. 그냥 아무데나 총을 쐈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는데, 왜 자기한테 총을 쏜 것처럼 꾸몄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범행 자체의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셰르츠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기전에, 괴들러의 유산을 받을 때 까지만이라도 버티는게 상식적이니까요. 실제로 협박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지레짐작으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건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불필요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설명도 많습니다. 특히 블랙록 양의 가정부 미치는 타고난 거짓말장이에 과대 피해 망상증 소지자로 등장할 때마다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라서, 빨리 피해자가 되기를 바랄 정도였어요. 제가 블랙록 양이라면 리틀 패덕스에 강도가 든 걸로 꾸밀 때, 미치를 죽이고 셰르츠가 실수로 죽인걸로 위장했을 겁니다....

그래도 동기에 대한 설명만큼은 확실하고, 공정함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전 본격 추리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완전 공략>>에서는 따분하다는 이유로 별점 2점을 주었던데, 다소 지루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2점은 다소 가혹해 보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9/08/03

살인 카드 게임 - 제임스 패터슨 / 조은아 : 별점 1점

살인 카드 게임 - 2점
제임스 패터슨 지음, 조은아 옮김/북플라자

내 소개를 하지. 이름은 딜런. 저명한 심리학 교수지. 어느 날, 아름답고 당찬 여형사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지. 그녀는 대뜸 내게 피 웅덩이 위에 쓰러진 피해자의 사진을 보여주었어. 맙소사, 사진 속 모습이 얼마나 참혹한지 역겨움이 들 지경이었어. 그녀는 범인이 시신 옆에 트럼프 카드 ‘킹’을 두고 갔다고 설명했어. 남기고 간 카드로써 다음 희생자를 예고하는 연쇄 살인 게임이 시작된 거야. 나는 그녀를 도와 범인을 잡는 수사에 참여하기로 했지. 그런데 빌어먹을! 놈은 그런 우리를 비웃듯이 교묘한 방법으로 살인을 계속 저질렀어. 과연 이 살인 카드 게임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미국의 인기 작가 제임스 페터슨의 신작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아주 오래 전 몇 권 읽어보았는데, 사실 좋았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른 만큼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살짝 기대를 했지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역시나 실망이었습니다. 그냥 실망도 아니고 왕실망이었어요.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와 주인공이 대결하는 작품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살인마가 특정 소재 - 동요라던가, 타로 카드라던가... - 로 살인 예고를 한다는 작품도 많고요. 무작위로 보였던 피해자들에게 무언가 공통점, 패턴이 있다는 이야기도 굉장히 흔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에 무언가 특별한걸로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차별화된 재미 요소는 전무합니다.
그나마 주인공만 조금 독특한 정도입니다. 딜런 라인하르트 교수는 예일대의 이상 행동 분석 교수로 정신 감정 전문가이자 전직 CIA요원, 거기에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는 게이 부부의 남편! 이라는 설정이니까요. 파트너격인 엘리자베스 니덤은 게이마저도 반할만한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에 뒤지지 않고요. 그런데 이게 재미요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헐리우드 영화같기는 한데 이야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탓입니다.

또 이렇게 캐릭터를 구성하기 위한 여러가지 이야기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해서, 정작 본 사건 이야기는 구멍 투성이입니다. '트럼프 카드'로 다음 피해자를 예고한다는 핵심 설정부터 억지스러워요. '클로버 킹'이 뉴욕 클럽의 왕으로 군림했던 두번째 피해자를 나타낸다는 것, 그리고 '하트 퀸'이 여성 흉부외과 전문의를 가리킨다는 정도만 아슬아슬하게 설정과 어울리며 그 외에는 전부 무리수입니다. 예를 들어 하트 2가 두명의 불륜 남녀를 가리킨다? 그 대상자는 뉴욕에 수만명은 될 겁니다. 킹스맨 재판 관련자라는 조건이 걸리더라도 둘의 불륜을 어떻게 알아낼까요? 최소한 경찰은 알아내기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래도 억지스럽지만 피해자들을 어떻게든 알아내기는 합니다. 허나 범인보다 앞서가고자 할 때마다 간발의 차이로 항상 범인이 앞선다는 식상한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너무 뻔해서 놀랄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렇게 범인에게 계속 뒤진다면 경찰이 딜런 교수에게 협조를 요청할 이유도 없습니다. 실제로 딜런 교수가 사건 해결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어요! 피해자들 모두 악인들로 킹스맨에게 재판받았다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진범이 엘리야 티미츠라는걸 눈치챈 뒤 그라임스 기자에게 달려간 정도만 경찰보다 빠른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건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엘리야 티미츠는 그라임스 기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킹스맨 판사가 범인이 아니라는게 밝혀진다면 그의 자동차, 옷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엘리야 티미츠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나는건 시간 문제였고요.
마지막에 시장을 구하는 활약? 범인이 죽기전 '나를 야구장으로 데려다 주오'를 부르고 손목에 문신이 새겨졌다는 정도로 무언가 행동을 벌인다는건 억지 아닐까요? 그야말로 작위적인 전개의 끝판왕입니다. 딜런 교수의 유일한 활약은 총상을 입은 엘리자베스를 구한게 전부에요.

범인 엘리야 티미츠의 설정과 그의 범행들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에 특별한 연줄도 없고, 대단한 기술을 배우지도 않은 흑인 청년이 어떻게 이런 복잡하고 거대한 살인 계획을 경찰보다 앞서 실행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무합니다. 그냥 어릴 때 부터 다이너마이트와 피를 가까이하면서 살았는게 고작입니다. 전직 경찰이었다, 전직 무슨 요원이었다는 등으로 어떻게든 설득력을 갖추고자 하는 시도도 없습니다. 등장도 급작스러워서 반전의 묘미도 없고요.

한마디로 독서에 들인 시간이 아까운 수준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리뷰를 쓰기도 아깝지만 다른 피해자 (?) 분들을 막기 위해 몇 자 적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제임스 페터슨의 소설은 손에 대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2012/01/16

밀실살인게임 2.0 - 우타노 쇼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밀실살인게임 2.0 - 6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호인 다섯명. 반도젠 교수, 두광인, aXe, 쟌가, 044APD. 이 커뮤니티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추리하는 '리얼탐정놀이' 커뮤니티였다.

저는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야구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두 분야 모두 정통파를 좋아하지요. 추리는 정통파 본격 미스터리, 야구는 정통파 강속구 완투형 에이스 투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보니 멸종해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어쨌건 이러한 야구 시각으로 본다면, 우타노 쇼고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라기 보다는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입니다. 잘 짜여진 플롯과 동기, 복잡한 인간관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와중에 트릭을 통한 두뇌게임이 펼쳐지는 고전적인 본격물보다는 기발한 트릭과 그에 따르는 전개에 치중하는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제가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은 트릭이 중심인 기교파 소품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게 나쁜건 아니에요. 이러한 방식으로도 역대급 작품이 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같은 강력한 결정구가 있으니까요. 다른 구질(작품)들도 충분히 제 몫을 하며, 팬들에게도 항상 기쁨을 주는 유형이니까요. 실제 야구에서도 이런 투수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꾸준하고 성실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이죠. 팔색조 조계현 선수처럼요.

이 작품 역시 이러한 비유에 딱 맞는 작품입니다. 트릭이 풍성하고 설정을 독특하게 가져가며 등장인물 캐릭터에도 트릭이 숨어 있는 등 특유의 화려한 퍼즐러, 트리커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기교파로서의 단점 또한 도드라져서 안타깝습니다. 트릭, 즉 변화구의 각도와 위력은 좋았지만 동기와 설득력, 이야기 전개라 할 수 있는 제구가 영 꽝이었던 탓입니다. 온전히 트릭을 위해 짜맞춰진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였거든요. 트릭이 없다면 작품으로 성립이 힘들 정도입니다. 이래서야 소설보다는 추리 퀴즈에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또한 아무리 사회부적응 잉여 오타쿠들이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얼굴도 모르는 인물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역시도 불가능합니다. 실제 범행 과정에 소요되는 돈과 노력,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미디어에 보도된 미궁에 빠진 사건을 아마추어 추리 애호가들이 모여 추리한다거나, 각자 생각한 트릭을 문제로 낸 뒤 서로 해결하기위해 머리를 짜내는 이야기 쪽이 훨~씬 좋았을거에요. 이편이 보다 스트라이크에 가까웠겠죠. 지금의 결과물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면에서는 헛스윙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공 자체는 볼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트릭이 비록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전개면에서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녀야 완성도를 인정받을테니 당연한 결과겠죠. 볼의 위력이 좋아도 도망다니는 투수보다는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진짜 투수인 처럼요. 그래도 트릭만큼은 괜찮은 부분이 있었던만큼 다음 투구에서는 보다 제구력이 동반된 피칭을 기대해 봅니다.

이하 에피소드 상세 소개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1.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

이야기의 시작. 다섯 명의 멤버가 접한 살인 사건 보도. 그들은 사건이 살인게임이라는 것을 직감한 뒤 진상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살인게임 동호인이 많다는 설정 자체도 넌센스에다가 아무리 오타쿠 추리 매니아들이더라도 추리를 하는 과정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단편집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닥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에피소드입니다. 트릭도 별다른 것은 없고 순수한 수사와 추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자의 공정한 참여가 차단되는 측면이 강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딱 한 가지, 달력에 예고를 남기는 것이 단지 날짜와 술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 장소인 맨션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달력처럼 구성된 맨션의 체크된 날짜와 호수를 일치시켜 범행을 저지른다는 게 솔직히 말이나 됩니까... 애시당초 일반인에 가까운 커뮤니티 멤버가 도출 가능했던 연관된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를 경찰이 모르고 넘겼을 가능성도 낮고요. 

놀라운건 이 에피소드가 멤버들의 범행이 아닌 조사와 추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Q2. 밀실 따위는 없다.

Q1에서 반도젠 교수가 낸 수수께끼와 그것을 응용한 두광인의 수수께끼에 대해 다루는 간단한 소품.

수수께끼 수준이라 딱히 언급할 것은 없습니다. 밀실살인은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 성립한 것으로, 밀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aXe의 발언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공감가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Q3. 살인마 잭 더 리퍼, 삼십 분의 고독

Q2에서 범행을 예고한 쟌가가 토막살인으로 밀실을 만든 뒤 그것을 모두가 추리하는 이야기.

다리 두 개를 문에 놓아둔 것만으로 밀실이라는 설정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 두 쪽이 문에 기대어져 있다 한들 문을 여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핵심 트릭은 충분히 한 번 정도는 써봄직한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했습니다. 시체를 훼손한 이유도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또 다른 작품 속 트릭이라 할 수 있는 온도계를 이용한 미끄럼틀 아이디어도 나쁘지는 않았고 말이죠. 물론 트릭대로 잘 됐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시체 속에 숨어 있었다는 트릭을 이용할 것이면 더 교묘한 밀실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피해자와 딸만 가지고 있는 열쇠를 이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충분히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텐데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트릭은 괜찮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Q4. 상당한 악마

Q3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두광인의 귀축 단두살인사건 예고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핵심 트릭은 두광인이 화상 채팅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특정 장소를 보여주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었고요. 커뮤니티 멤버가 일종의 증인이 되어 두광인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는걸 증명하게 된다는 발상의 전환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핵심 트릭이 그닥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잘 됐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피해자 루카가 통화 중 실수 한 번만 하더라도 모든 게 틀어질 테니까요. 또 두광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괜찮았지만 이 커뮤니티처럼 위험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과 반전이 합리적 전개보다 우선한 나쁜 사례죠. 별점은 2점입니다.

Q5. 세 개의 빗장

aXe군이 공들여 준비하고 있다는 트릭을 이용하여 구현한 눈 속의 밀실살인이 수수께끼로 던져지는 에피소드.

눈이 그친 이후에도 피해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제시되나, 시체가 발견된 곳은 발자국 하나 없는 쓰레기장 한가운데의 전화박스 형태의 박스였습니다. 박스는 세 개의 빗장이 걸려있는 이중밀실이었고요. 이를 위해 aXe군이 계속 이야기하는 정교한 장치 트릭이 선보입니다.

이런 류의 트릭은 극 중 aXe의 입을 통해 말해지듯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들어서 실효성이 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이 작품처럼 순수하게 트릭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설정에는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소와 도구가 잘 맞아떨어진 괜찮은 트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치의 정교함에 대한 묘사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 단서 제공이 필요해서 만화에 더 잘 어울렸겠지만, 평작 수준은 되는 에피소드라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추리 게임의 필요도 없이 진상은 이미 밝혀졌을 텐데,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

Q6. 밀실이여. 잘 있거라

멤버 중 명탐정 역할을 담당한 044APD가 낸 수수께끼. 관리인과 현관 자물쇠로 잠긴 이중밀실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트릭은 범인이 피해자이며 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신데렐라의 함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핵심 트릭인 밀실살인 외에도,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암호 트릭까지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 확실히 풍성합니다.

그러나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일반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거기에다가 044APD와 마미야가 동일인물이라는 진상은 정말 트릭을 위한 것일 뿐, 동기 측면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배달해서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트릭은 화려하지만 그 외의 것은 뭐 하나 합리적인 것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트릭은 아닌데, 트릭이 아깝네요.

2007/03/05

비밀의 문 - 김래성 : 별점 2.5점

비밀의 문
김래성 지음/명지사

정말 오랫만에 올리는 추리소설 리뷰네요. 그간 NDSL에 빠져 살다가 회사에 기계를 반납한 뒤 겨우 원래의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무섭다 NDSL!)

"쌍무지개 뜨는 언덕"과 "실락원의 별", "청춘산맥"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추리문학으로 등단한,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김래성 선생님의 단편집. 이전에 읽었었고 집에도 계속 있었지만 최근 "설홍주" 관련 이야기를 쓰다가 참고할까 해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말미에는 김래성 선생의 추리문학소론이라는 30년대의 강연자료까지 수록되어 있어서 자료적 가치는 무척 높습니다. 작품들도 20~30년대 분위기가 가득하고요.
아울러 긴장감을 이끌어 내는 솜씨와 극적 반전, 공포 등은 시대가 훨~씬 지난 지금 읽어도 낡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 과연!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선생님의 작가적 명성에 비하면 정통 추리 단편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와 굉장히 유사한 변격물이 대부분으로 추리물다운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은 거의 없거든요. 그나마 정통 추리에 가까운 작품은 "비밀의 문"과 "벌처기", 그리고 국내 최초의 추리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타원형 거울" 정도네요.
게다가 두 남자와 한 여자라는 상투적인 소재가 난무하고 등장인물들도 화가, 작가 등이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은 좀 쉽게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뻔했습니다. 지나친 통속성도 거슬리는 부분이었고요. 이러한 부분에서는 국내 후대 작가에게 안 좋은 쪽으로만 영향을 끼친 느낌이 물씬나더군요.

결론내리자면 자료 측면에서야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고 재평가받아 마땅한 작품들임에는 분명하나 추리문학의 효시라는 칭호에서 기대한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 진정한 고전이 되기에는 2% 정도 모자라 보이네요.

저의 베스트는 "타원형 거울" 입니다. 변격물 취향이라면 "이단자의 사랑"과 "악마파"도 아주 괜찮은 발상의 작품이긴 한데 제 취향은 아니라서...
1. 비밀의 문 :
살인광선을 개발한 강박사에게 괴도 그림자로부터 그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훔쳐가겠다는 편지가 배달된다. 강박사는 예고 시간까지 조수들과 함께 광선 설계도를 철통같이 지키지만 그림자가 정작 훔쳐간 것은 박사의 외동딸 영채였다.
범죄 예고, 유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가 등장하고 있으며 원래 방송극용 대본이었던 탓인지 김래성 선생 작품답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범죄(?) 이야기로 쓰여져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트릭은 별게 없지만 꽤 괜찮은 편이고요. 깔끔한 평작입니다.

2. 이단자의 사랑 :
병원 원장 김철하는 간호사로 일하던 애련과 결혼한 사이지만 애련의 전 애인인 시인 추강에게 그녀를 내어주고 대신 1년에 한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청을 하여 허락받게 된다.
전형적 변격물로 두 남자와 한 여자라는 이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설정을 극단적으로까지 묘사한 작품입니다. 내용은 지루하고 뻔하지만 마지막의 반전인 "고래고기" 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저희 아버지도 약 40여년전에 이 작품을 읽었는데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시고 계시더군요. 그만큼 당시에는 충격을 안겨다 준 획기적 발상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지금 읽기에는 좀 낡긴 했지만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3. 악마파 :
내가 여동생 루리와 함께 동경에 유학하던 시절 만났던 두명의 미대생 노단과 백추 두명은 루리를 사랑하게 된다. 부자집 아들이며 건장한 체구의 노단과 가난뱅이에 불구자이지만 천재적 화가인 백추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 백추가 "제전"에 그림이 입상한 기념 파티에서 벌어진 소동 이후에 행방을 감추게 되자 노단과 루리의 결혼을 허락한다.
역시 전형적 변격물로 화가로서의 창작 욕구를 위해 다른 것의 희생을 강요하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냥저냥한 드라마가 될 수 있는 소재인데 "악마파"라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화풍을 굉장히 잘 묘사하고 있어서 꽤나 실감나면서도 엽기스러운 이야기로 완성되었습니다. 김래성 소설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그런 작품입니다.

4. 백사도 :
백사도를 그린 동추라는 화가를 찾아온 나는 그에게서 그림을 그리게 된 처절한 과거사를 듣게 된다.
역시 화가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일종의 밀실 살인 트릭이 등장하긴 하는데 트릭 자체가 주인공의 "꿈"에서 풀린다는 내용이라 추리물로 보기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작품도 기본 이야기 뼈대는 좋은데 괴기함과 엽기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썩 마음에 들진 않네요.

5. 벌처기 :
나는 여류 화가로 행세하며 수많은 남자들과 어울리고 다니는 아내를 용서할 수 없어서 완전 범죄를 결심한다. 이미 한번 본 영화를 보러 간다고 속이고 집으로 되돌아간 나는 재빨리 아내를 살해하고 극장으로 돌아가지만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는데...
도서 추리 소설로 볼 수 있는 특이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고백에서 시작한 뒤, 변호사의 변론, 그리고 사건이 밝혀지게 된 결정적 증인의 증언이라는 세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특이하고요. 완전 범죄 계획 자체는 너무 조잡하고 유치하며 단서 역시 굉장히 뻔하지만 소설적인 구성이 기발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잘 묘사된 당시 시대 풍경을 읽는 것 역시 재미있었고요.

6. 광상시인 :
나는 아내를 잃은 뒤 정처없이 방랑하다가 그림 그리기 적당한 풍경을 찾아 잠시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시인 추암과 그의 아내 나나를 만나게 된 뒤 둘의 광기 가득한 요구와 사랑에 휘말리게 되며 추암이 나나를 살해한 뒤 시체를 안고 춤을 추는 모습을 목격한 뒤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3년뒤, 나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추암과 재회하는데...
이 작품역시 전형적인 변격물인데 멜로적인 성향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네요. 반전이 약간 충격적이긴 한데 전체적으로 좀 지루하고 심심해서 그냥저냥 평이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7. 타원형 거울 :
추리잡지 "괴인"의 발간인 백상몽은 잡지가 성공하게 되자 현상 공모를 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10년전 평양에서 벌어진 유명한 살인사건의 해결. 거금 300원의 상금을 내걸고 당시의 자세한 사건 현장과 개요를 잡지에 실은 뒤 독자들의 추리를 요청하는데, 10년전 사건의 용의자였던 유시영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추리를 써 내어 당당하게 당선한다. 그러나 유시영은 현상 공모 뒤에 숨겨진 또다른 무엇인가를 눈치채고 백상몽에게 서신을 보낸다.
김래성 선생님이 일본 유학 중 추리전문지에 발표한 국내 최초의 추리 소설. 이야기의 시작부터 상당히 독특해서 인상적이며, 트릭 역시 당시 기준으로 볼 때에는 독창적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유시영의 추리 이후 벌어지는 사건과 진범의 정체는 트릭이 공정하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보다 교묘하게 잘 꾸밀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도 자료적 가치는 충분하고 내용도 추리적 요소로만 놓고 본다면 괜찮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아야 하는 작품이겠죠.

8. 복수귀 :
박도순과 이철수는 의학 박사와 간호사 숙채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 이철수가 박도순의 논문을 훔친 뒤 도용하여 먼저 박사가 되고 숙채와 결혼하자 도순은 복수를 꿈꾼다.
역시나 남자 둘, 여자 한명이라는 지루한 설정의 반복. 또 여자의 심리 변화가 굉장히 급격하여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반전이 기발하긴 한데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9. 무마 :
나는 정통파 추리 작품으로 이름이 알려진 추리 작가로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량 허군을 통해 라이벌이기도 한 변경 소설작가 백웅이 관련된 엽기적인 살인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엽기적인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결말도 나름대로 깔끔합니다. 하지만 결말까지의 이야기 전개가 너무 쉽게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이한 것이 단점이네요. 비교적 평이한 수준의 소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2/03/18

완전살인 - 크리스토퍼 부시 / 남정현 : 별점 2점

완전살인 - 4점
크리스토퍼 부시 지음, 남정현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주요 신문사와 경시청에 '마리우스'라고 자칭한 인물이 '완전 살인'을 예고하는 편지가 배달되었다.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 속에 마리우스가 지정한 날짜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부유한 독신 노인 토머스 리치레이였다. 토머스 리치레이가 결혼을 앞둔 탓에,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할 위기에 빠진 조카들이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네 명 모두 알리바이가 완벽했었다. 줄랑고 회사 사장인 프랜시스 웨스튼 경은 회사의 새로운 중핵이 될 비밀 탐정부를 키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완전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회사의 두뇌 역할을 맡고 있는 수재 루드빅 트레버스와 전 형사부장 존 프랭클린을 투입하는데...

크리스토퍼 부시가 1929년에 발표했던 고전입니다. "고전 추리, 범죄 소설 100선"에서 추천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추리 소설의 초창기 황금기 발표작다운 면모를 과시합니다. 추천할만한 요소가 몇 가지 보이기도 하고요. 첫 번째는 트릭을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이 공정하다는 점입니다. 범인 프랭크 리치레이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었던 트릭은 변장한 대역을 내세웠던 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단서 모두는 작품 맨 앞 프롤로그 부분에서 제공됩니다. 대역이었던 플래이스가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와 영화배우 진 앨런의 대역을 찾는 오디션에 대한 묘사가 바로 그 단서거든요. 플래이스의 편지에서 사용되었던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암호 트릭도 인상적이고요. 

두 번째는 다양한 용의자를 드러내고,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계속 등장시켜서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 전개입니다. '마리우스'가 보낸 편지에서 시작해서, 범행이 일어나기 전 피해자 토머스 리치레이를 방문했던건 누구인지? 토머스 리치레이 주머니에 들어있던 협박장을 쓴 T.W.리처드는 누구인지? 등의 수수께끼가 계속 등장합니다. 수사 과정에서도 새로운 수수께끼가 드러나고요. 그야말로 고전 본격 황금기 작품의 기본은 해 줍니다. 

세 번째는 두뇌 역할의 부르주아 루드빅 트레버스와 발로 뛰는 유능한 수사관 존 프랭클린의 컴비 탐정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두 명이 컴비로 등장할 경우, 보통 한 명은 평범한 일반인 시각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두 명 모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꽤 신선했습니다. 이들이 사건에 뛰어든게 '회사 선전'을 위해서였다는 것도 굉장히 현대적인 동기였고요.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고전 명작이냐고 물으신다면, 제 답은 '아니오'입니다. 장점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래 된, 유통기한이 지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목의 '완전 살인'을 예고한 마리우스의 편지입니다. 괜히 경찰의 주목을 끌 이유는 없는데, 프랭크 리치레이가 왜 이런 편지를 보내서 자신의 범행을 널리 알려야 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아요. 경찰의 시선이 분산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이왕 살인을 저지르니, 사회적인 반향도 불러 일으켜보자고 여겼던걸까요? 하지만 프랭크는 자신의 완전 살인을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불쌍한 대역 배우 플래이스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만 잔혹한 범죄자입니다. 이런 사명감같은걸 가질만한 인물이 아니에요. 또 이 때문에 여론이 크게 움직였다는 묘사도 딱히 없고, 경찰도 빨리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은 등, 한 마디로 흥미를 자아내기 위한 목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불필요한 설정이었습니다. 

핵심 알리바이 트릭이 단지 변장이었다는 것도 맥이 빠집니다. 또 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찰리 채플린 급의 유명 배우 대역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는 것도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에요. 이 탓에 루드빅 트레버스의 주목을 끌고 말았으니까요. 프랭크가 자기와 꼭 닮은 누군가 - 플래이스 - 를 발견한 뒤 범행 계획을 꾸몄다는데 더 설득력 높았을 겁니다.

아무런 증거 없이 프랭크 리치레이를 몰아세운 뒤, 그가 자멸하는걸 노렸던 호워튼 총경과 존 프랭클린의 작전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플래이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프랭크의 알리바이가 조작되었다는걸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플래이스가 프랭크에게 살해당했다는 거라도 증명했어야 했는데, 시체조차 찾지 못했으니 이 역시 불가능했고요. 

프랭크가 둘에게 추궁당한 직후 곧바로 범인임을 자백할 이유 역시 마땅치 않습니다. 프랭크 본인 말대로 시한부였다면 더더욱요. 어차피 오래 못 살텐데, 뭐하러 범행을 인정한단 말입니까? 도주 후 시체로 발견되는 과정도 쉽게 흘러간 느낌이라 별로였고요. 차라리 호워튼 총경과 존 프랭클린이 선량했던 프랭크를 물에 빠트려 죽인 뒤, 범인임을 자백했다며 죄를 뒤집어 씌우는게 더 현실적인 전개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번역의 질이 심하게 떨어지는 동서 추리문고 출간 버젼이라 걱정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번역은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습니다. 앞서 괜찮았다는 암호 트릭이 사용된 편지는 나쁜 번역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지요. 번역 때문에라도 도저히 권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고전'인건 분명한데,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기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작가와 작품이 잊혀진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이런 류의, 명성은 약간 남아있지만 지금은 그 생명을 고해버린 작품은 이젠 그만 읽어야겠습니다.

2010/04/22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노리즈키 린타로 / 최고은 : 별점 2.5점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비채
-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

살아 있는 몸에 직접 석고를 발라 본뜬 조각을 만드는 라이프캐스팅의 대가로 일본의 시걸이라고 불리우는 조각가 가와시마 이사쿠는 은거한지 10년 만에 친딸 에치카를 모델로 한 석고상을 선보인다. 그러나 작품 완성 직후 이사쿠는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유작인 석고상의 머리 부분이 깨끗하게 잘려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조각상의 모델인 에치카에 대한 살인 예고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와시마 이사쿠의 동생 아쓰시와 친분이 있는 노리즈키 린타로는 우연하게 사건에 대한 의뢰를 받아 조사에 나서게 되는데...


간만에 읽은 추리소설이네요. 일본 신본격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대표작이기도 한 작품으로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인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하는 장편입니다. 그런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서 거의 2주일에 걸쳐 읽게 되었네요.

이유는 분량대비 지루했기 때문이에요. 등장인물과 배경설정 소개에만 거의100여페이지를 할애할 뿐 아니라 주요 사건은 가와시마 에치카 살인사건 하나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데도 정작 사건이 200페이지가 넘어서야 겨우 등장할 정도거든요. 물론 석고상 머리 도난 사건도 있지만 이것은 이미 앞부분에 노리즈키 린타로에 의해 범인이 밝혀질 뿐더러 살인사건과 연관된 맥락에서 설명되기에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게 맞겠죠. 여튼, 540여페이지나 되는 분량동안 꾸준히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은 부족했습니다.

또한 본격물치고는 허술한 부분이 많이 눈에 뜨인다는 것도 단점이에요. 일단 범행 자체가 그러합니다. 에치카의 시체를 그냥 은닉하는 것이 상식선에서 올바른 일이었을텐데 목을 잘라가며 살인예고로 위장한다는 것은 말도 안돼죠.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인물은 도모토 슌, 우사미 쇼진, 가가미 부부, 가와시마 아쓰시 등 4~5명에 불과하기에 수사와 추리의 과정 역시 뻔할 뿐더러, 용의자가 좁혀지는 탓에 동기와는 별개로 막판에는 범인을 어느정도 추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가가미(거울) 를 통한 암시도 있지만 (솔직히 유치했지만) 전개나 분위기가 어차피 도모토 슌과 우사미 쇼진은 범인이 아니라는 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소거법만 가지고도 대충 답이 나오거든요.
무엇보다도 대단한 트릭보다는 꾸준한 경찰의 수사와 증언들의 조합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전개만 놓고 본다면 본격물이라기 보다는 수사물에 가깝지 않나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아울러 모녀가 아무리 닮아도 그렇지 소설에서처럼 꼭 닮을 수 있는지도 좀 말이 안되는것 같고 트릭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가가미가 성폭행으로 임신을 시키는 것이 과연 한방에 가능했을지? 도 의문이었어요. 임신시키는데 실패했더라면 될때까지 강간했을거라는 이야긴지.... 나원참....
그 외에도 가장 중요했던 증언 중 하나를 단순히 산부인과 의사의 착각 (초산일 것이다) 이라고 넘어간다던가, 애시당초 가와시마가 아내의 불륜을 너무 성급히 믿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등 뭔가 대충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많은 것도 옥의 티였습니다.

그래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조지 시걸의 라이프 캐스팅 기법 등 조각분야에서 소재를 차용하여 작품의 핵심 트릭을 구현한 솜씨가 특히 그러한데, 예술과 추리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순수한 픽션이기는 하지만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모녀상 연작에 담긴 의미와 데드 마스크를 통한 구현 같은 설정은 정말 탁월했어요.
추리적으로도 16년전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복잡한 관계속에서 빚어지는 인과관계만큼은 설득력있게 잘 짜여져 있고요. 아울러 엘러리 퀸 스타일을 표방한 만큼 독자에게 단서를 제대로 제공해 준다는 것 역시 본격물 애호가로서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점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더 크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졸문이지만 제가 번역해 놓은 작가의 단편이 완성도와 재미 측면에서 훨씬 좋아 보이는데, 작가의 단편집이 번역 출간되기를 바랍니다.

2013/03/17

매스커레이드 호텔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매스커레이드 호텔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도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피해자는 30세 전후의 회사원, 43세의 주부, 53세의 고등학교 교사였고, 사건 현장에는 수수께끼의 숫자가 남겨져 있었다.

45.761871, 143.803944
45.648055, 149.850829
45.678738, 157.788585

경찰은 이 숫자를 해독해내는 데 성공했다. 숫자는 다음 범행장소를 예고하는 메시지였다. 메시지에 의해 다음 범행장소로 예고된 곳은 최고급 호텔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었다.

경찰은 네 번째 살인을 막기 위해 호텔에 수사관들을 대거 급파하고 벨보이, 하우스키퍼, 투숙객 등으로 위장한 형사들이 잠복근무에 돌입했다. 닛타 형사도 호텔의 간판 부서인 프런트 직원으로 위장해 잠입 수사를 시작했다. 진짜 호텔리어처럼 보이기 위해 베테랑 호텔리어인 야마기시 나오미의 지도를 받으며, 둘은 사건 해결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최신 장편. 기둥 줄거리는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강력 사건이지만, 가운 절도, 장님인 척하는 할머니, 스토커에게 쫓기고 있다는 미인, 끊임없이 어이없는 클레임을 거는 손님이라는 일상계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다는 구성이 독특합니다.

또한 이 일상계 사건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트릭이 존재하고, 이 트릭들에서 힌트를 얻어 범행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 전개는 가가 형사 시리즈 "신참자"를 연상케 합니다. 단편 연작물 느낌을 주면서도 기둥 줄거리와 잘 엮어나가는건 판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상계물에 비하면, 본편 이야기인 연쇄살인사건 이야기는 많이 별로입니다. 일단 상관없는 살인들을 연쇄살인사건으로 위장하여 진상을 흐리게 만든다는 설정부터가 "ABC 살인사건"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이미 사용되었기에 뭔가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다는 문제가 너무 큽니다. "호그 연속살인" 정도의 임팩트는 줬어야 했을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암호도 억지스럽습니다. 연쇄살인처럼 보이게 하려면 "살인범 X" 같은 이니셜로도 충분했을 테고, 모방 범죄가 우려된다면 특별한 폰트와 사이즈 정도만 써도 충분했을 텐데 괜히 어렵게 꼬아놓기만 했으니까요. 호텔을 콕 집어 범행 장소로 지정할 이유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경찰의 주목을 끌어서 유리한 점이 뭐가 있을까요?

그 외에도 각 사건별로도 어설픈 점이 많아요. 예를 들면 오카베의 알리바이는 억지스럽습니다. 그때 옛 애인이 전화를 했으리라는 보장도 없을 뿐 아니라, 경찰에서 통화 내역을 조사했더라면 금방 진상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혼자만 PC를 사용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진상도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용이며 - "낯선 승객"이 생각나네요 -, 범인의 동기 역시 설득력이 떨어져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물론 닛타와 야마기시 나오미의 밀당도 재미나고 소소한 일상계 트릭들은 충분히 즐길 만했습니다. 호텔이라는 장소에서 일하는 여러 전문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제 별점은 2.5 점입니다. 차라리 호텔을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이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무리하게 장편을 만든 느낌이에요.

2026/09/19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10) 술병 속에 숨긴 비밀

추리 소설에서 술병은 꽤 익숙한 소품입니다. 이전에 와인병이 흉기로 사용된 작품을 소개해드리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술병은 무언가를 숨기는 역할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술병은 작은 물건을 감추기에 제법 괜찮습니다. 위스키나 코냑처럼 짙은 색 유리를 사용하는 병은 더욱 좋지요.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기 어려우니까요. 술이 어느 정도 들어 있다면 더 알아채기 쉽지 않을 테고요. 무엇보다 술병은 술을 담아두는 물건이라는 선입견이 강한 탓에, 책상이나 선반에 놓여 있어도 누군가 굳이 안을 확인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쿠라다 도모야의 장편인 "잃어버린 얼굴"에서는 이 점을 아주 잘 써먹습니다. 이야기 초반, 한 여성이 다세대주택 외부 계단 아래에서 쓰러진 채 발견됩니다. 그녀의 곁에는 깨진 산토리 올드, 둥글고 짤막한 검은 병 때문에 '다루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위스키 병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병에서는 여성의 지문뿐 아니라 이미 살해된 남성 야기 다쓰오의 지문까지 검출됩니다. 

여성은 야기에게 선물하려고 가져간 위스키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의 지문이 새로 가져온 병에 남아 있을 리 없습니다. 결국 그녀는 과거 야기에게 가져다준 술병을 그의 집에서 다시 가지고 나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자연스럽게 수사에서는 왜 굳이 사건 현장에서 위스키 병을 가져가려 했는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릅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야기가 술병을 단순히 술을 담는 용도로만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데이터를 작은 저장장치에 담아 검은 비닐봉지에 넣고, 그것을 위스키 병목 안쪽에 숨겨두곤 했습니다. 짙은 검은색 병이라 밖에서는 안쪽을 살펴보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했던 겁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형사 히노가 이 사실을 떠올리는 과정입니다. 히노는 야기의 단골 바에서 기네스를 마시다가, 잔 속에 노른자를 넣은 ‘옐로 선셋’이라는 칵테일을 받습니다. 이렇게 검은 맥주 때문에 잔 안의 노른자가 잘 보이지 않았던 점에 착안하여, 검은 위스키 병 속에도 무언가를 숨길 수 있다는 추리로 이어지거든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바텐더의 재치와 배려가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작품에 등장하는 산토리 올드는 일본 위스키의 역사에서도 꽤 유명한 술입니다. 1940년에 처음 완성됐지만 전쟁으로 출시가 미뤄졌다가 1950년에 정식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둥글고 검은 병 모양 때문에 '다루마'나 '다누키'라는 애칭으로 불렸고, 1950~60년대에는 성공한 뒤 마시는 고급 위스키라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고도성장과 함께 대중화되어 1970년대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위스키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요. 현재의 산토리 올드는 야마자키의 스패니시 오크통 원액을 키 몰트로 사용하는 블렌디드 위스키로, 강렬하고 거친 맛보다는 달콤한 향과 부드럽고 둥근 맛이 특징입니다. 지금도 특유의 둥근 검은 병을 유지한 채 판매되고 있는데, 실제 병을 보면 왜 작가가 무언가를 숨기는 장소로 이 술을 선택했는지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병의 특징을 활용한 작품도 있지만, '술병'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작품도 있습니다. 엘러리 퀸의 "킹은 죽었다"입니다. 작품의 무대는 억만장자 킹 벤디고와 그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거대한 저택입니다. 킹에게 살인 예고가 전달되고, 예고된 시각이 되자 동생 유다는 자신의 방에서 권총을 발사합니다. 하지만 유다가 쏜 총에는 실탄이 들어 있지 않았고, 철저하게 감시되고 있던 킹은 다른 방에서 실제 총탄을 맞습니다. 문제는 킹이 총을 맞은 방에서는 총도, 탄피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소품이 유다가 저택 곳곳에 숨겨둔 세공자크 V.S.O.P 코냑입니다. 피아노 현 위에서 여섯 병이 발견되는 것을 시작으로 체육관, 수영장, 당구장 등 어디에서나 짙은 녹색 술병이 튀어나옵니다. 유다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라서, 술이 필요할 때마다 그게 어디든 자신만 알고 있는 장소에서 병을 찾아냅니다.

처음에는 괴짜 부호의 기이한 습관처럼 보이는 이 술병들은 사실 사건의 트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작품을 읽을 재미를 크게 해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만, 범행 직후 유다가 술을 찾는 장면과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과정에서 술병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V.S.O.P는 ‘Very Superior Old Pale’의 약자로, 코냑의 숙성 등급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재 규정에서는 블렌딩에 사용된 가장 어린 원액이 최소 4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표시입니다. 따라서 오래 숙성된 코냑을 뜻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20년이나 30년 이상 숙성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코냑은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생산하는 브랜디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증류한 뒤 오크통에서 숙성시켜 만듭니다. V.S.O.P급 코냑은 일반적으로 어린 코냑의 거친 느낌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과일 향에 바닐라와 견과류, 향신료, 오크 같은 숙성향이 더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브랜드와 숙성 기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스트레이트로 천천히 향과 맛을 즐기기에도 좋은 등급입니다.

"잃어버린 얼굴"과 "킹은 죽었다"는 시대도, 분위기도 상당히 다른 작품입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술병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이용한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누구나 술병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 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 자체를 자세히 살펴볼 생각은 하지 않지요. 하지만 이 작품들은 눈앞에 계속 보였는데도 의심하지 않았던 물건이 사건의 중요한 열쇠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만드는, 마술의 '미스디렉션' 같은 트릭을 활용하여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다음에 바의 선반에서 오래된 위스키 병을 보게 된다면, 라벨보다 먼저 병 안쪽이 궁금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다루마, 즉 산토리 올드는 지금도 판매되고 있으니, 바에서 실제 병을 본다면 한 잔 주문하고 찬찬히 병 안쪽을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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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8

소울드롭의 유체연구 1~3 - 카도노 코우헤이 / 아키요시 후우린 : 별점 2점

소울드롭의 유체연구 3 - 4점
카도노 코우헤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보는 사람에 따라 모습을 바꾸고 감추는 괴도 '페이퍼커트'. 그러나 사실 그의 정체는 '케비닛 센스'라고 불리는 킬러로, 특정인에게 목숨과 같은 가치를 지닌 물건을 훔쳐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를 쫓는 서컴 보험회사의 조사원 이사 슈운이치와 로봇 탐정 센죠 마사토는, 페이퍼커트가 범행을 예고한 요절한 천재 가수 미나모토 시즈쿠의 트리뷰트 라이브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자칭 '포카드'라는 또 다른 훼방꾼이 나타나는데...

'페이퍼커트'와 로봇 탐정이라는 설정에서 SF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지는 미스터리 초자연 스릴러물. "부기팝"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카도노 코우헤이의 원작을 만화화한 작품으로, '소울드롭'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합니다.

페이퍼커트의 존재 자체가 환상적인 요소를 띠다 보니 정통 추리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단서를 모아 결론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나름 합리적입니다. 

다만, 페이퍼커트의 예고장을 '모른다'고 했다는 결정적 증언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너무 쉽고 뻔하다는 점은 아쉬웠고,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복잡하고 화려해 보이는 설정과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 이야기가 끝난다는 점, 그리고 뛰어난 작화에도 불구하고 빠른 전개와 많은 대사를 효과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탓입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흐름이 산만하고 복잡한 느낌이 강하거든요. 제목조차 직관적이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단점이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작가의 팬이거나 추리 만화를 모두 찾아봐야 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2015/04/13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7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7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아즈테카의 나이프"

컬렉션을 정리하여 자선활동 기금을 마련하려던 자산가가 살해당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유산 때문에 자선기금을 반대한 사업가의 후처가 범인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한없이 착해보였던 전처가 범인이라는 의외의 진상이 돋보였어요. 암요, 자기 자식을 위해서 나선 어머니가 가장 강한 법이기는 하겠죠.

하지만 나이프를 쳐다보는 자세에서 이어지는 살해방법이 트릭의 핵심인데 과연 그만큼 잘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녹음기 등을 이용한 범인의 공작 역시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경찰이 이 정도의 공작을 파악하지도 못한게 제일 큰 문제고요.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어서 별점은 2점입니다.

"폭파예고"

세계적 가전 메이커인 블루블루사 60주년 기념 전시회장이 폭파 예고를 받는다는 이야기로, 미국에 상장되었다는 블루블루사의 주식 특성을 이용한 범죄라는 점에서는 나름 기발했습니다. 거대한 공룡이 어떻게 걸었을까?라는 것에 대한 답을 전해주는 C.M.B 특유의 박물학적인 전개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이 에피소드 역시 진상은 경찰 조사를 통해 충분히 밝힐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공룡 화석 이야기도 내용과 잘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저냥한 범작으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행운"

잘나가는 게임회사 사장이 경리부장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다는 내용으로, 그가 얼마나 속물이며 자기만 아는 인물인지를 알려주다가, 결말에서 그가 혹독하게 대했던 지인들의 실제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반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트릭이 너무나 별로라는겁니다. 닫힌 문 뒤에 살짝 숨어 있다는, 숨바꼭질 수준의 트릭인 탓입니다. 이런 정도의 범행도 밝혀내지 못한다니 대체 경찰은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정도면 무능력이 아니라 거의 직무 유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말이지요.

인간 드라마로서는 제법 볼만했지만 추리적으로는 너무나 별로이기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러한 수록작들의 전체 평균 별점은 약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은데 추리적으로는 영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권에서는 경찰의 무능함이 너무 두드러졌네요. 특유의 박물학적인 정보가 딱히 제공되지 않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고요. 이전 권 리뷰에서는 추리는 그냥저냥이었지만 박물학적인 정보 제공은 그래도 괜찮았었는데 말이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겠지만 한 마리라도 제대로 잡아주면 좋겠습니다. 다음 권에서의 분발을 기대해봅니다.

2004/07/15

괴인 20면상 / 소년 탐정단 - 에도가와 란포 : 별점 2점

이 작품들은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가 변격물에서 벗어나 아동 취향 소설을 시도한 작품입니다. 당대 소년소녀들에게 초인기이었으며 현재까지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쥬의 대상이 되는 “20면상”이라는 괴도와 “고바야시 소년”, “탐정의 7가지 도구” 등이 처음으로 등장하죠. 관심이 있던 차에 우연히 원어 소설을 구입하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추리문고로 간행된 책으로 아마노 요시타카가 일러스트를 맡았죠. 일어실력이 부족해서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동향 책이라 그런대로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구한 만화가 두꺼운 장편인 소설대비 내용 축약이 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둥 줄거리는 잘 따라가고 있어서 함께 읽으니 서로 보완이 되어서 좋았어요. 소설보다는 아무래도 만화가 이해가 훨씬 잘 되니까요.
<괴인 20면상>
대부호 하시다 가문에서 입수한 “로마노프 황제의 6개의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20면상이 범행 예고장을 보낸다. 하시다 가문은 경비 강화는 물론 오랫동안 가출하여 외국에서 생활한 장남 소우이치의 귀국까지 겹쳐 부산한 나날을 보낸다. 소우이치는 장남으로서 20면상이 예고한 날에 같이 보석을 지킬 것을 아버지에게 약속하지만, 실은 그가 변장의 명수 괴인 20면상이었다! 20면상은 보석을 가지고 도망가던 중 둘째아들 소우지가 몰래 설치한 덫에 걸려 상처를 입자 보복으로 소우지를 납치한다.
이에 하시다 가문은 명탐정 “아케치 고코로”에게 소우지 구출을 의뢰하게 된다. 아케치의 부재로 임시로 사건을 맡게 된 조수 고바야시 소년이 소우지를 구출하지만, 대신 20면상에게 사로잡히게 되는데…..

<소년 탐정단>
할아버지의 유산인 저택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는 소년 미야세 후지오에게 한밤 중에 괴한이 찾아와 침대를 떠나지 말 것을 강요한다. 후지오의 아버지와 가정부는 연극이라 여기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아케치 고코로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아케치는 현장에 남겨져 있던 “5+3, 13-2”라는 수수께끼의 문자를 토대로 미야세 가문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게 된다….

일단 “괴인 20면상”은 모험소설적인 측면이 강한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추리적인 요소는 별로 없네요. 란포 자신도 쉽게 쉽게 쓴 느낌이고 말이죠. 란포 특유의 변격물 취향이 어느정도 풍기는 20면상의 분위기는 독특한 맛이 있어서 좋았습니다만 그 외에는 전부 그닥... 이었습니다. 20면상이 치밀하거나 완벽한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변장의 괴물”같은 묘사로만 이루어진 점이라던가, 아케치 고코로와 20면상 모두 고바야시 소년의 들러리 역할만 한다던가, 지나치게 뤼뺑-홈즈의 스타일을 차용한 점 등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에 비하면 “소년 탐정단”은 아동 모험소설 류의 묘사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란포 특유의 묘사와 암호 트릭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상당히 추리성이 강해서 훨씬 낫더군요. 특히 초반부의 암호 트릭은 제법 괜찮았어요. 한마디로 아동 모험소설과 추리소설과의 절충을 효과적으로 이루어 낸 작품이랄까요?
그러나 중반 이후의 섬에서의 보물의 위치를 찾는 트릭은 란포의 전작 “고도의 마인”에 등장한 트릭을 아동 눈높이에 맞춰 고쳐쓴 것에 불과해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결론내리자면, 추리적인 완성도도 별로고 기본적으로 아동용 소설이라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현재까지 끊임없이 패러디되는 란포의 캐릭터들의 전형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낡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재미는 충분히 제공하는 만큼 한국어판의 출판을 기대해 봅니다.

2004/09/14

명탐정 코난 - 은빛 날개의 마술사 : 별점 1.5점


모리탐정사무소에 연극배우 마키 쥬리(牧樹里)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온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스타사파이어 반지 '운명의 보석'을 훔쳐가겠다는 괴도 키드(キッド)의 범행 예고장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공연에 초대된 코고로와 란(蘭), 코난(コナン), 그리고 소년탐정단 일행앞에 괴도 키드는 대담하게도 신이치(新一)로 변장하고 나타났다.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 하에 막이 오른 연극 <왕비 조세피나>. 코난은 신이치로 변장한 키드의 범행 증거를 잡기 위해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마침내 정열적인 연극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 신이치가 사라지고, 급히 뒤를 쫓던 코난은 2명의 경비원 중 한 명이 키드라는 걸 알아채고 추격을 시작하지만 결국 놓친다.
하지만 무사히 스타사파이어를 지킨 코고로와 코난 일행은 쥬리로부터 감사 표시로 홋카이도(北海道) 하코다테(函館) 별장에 초대를 받는다. 코난 일행이 탄 대형 여객기가 예정대로 하코다테를 향해 이륙하자 곧 마키 쥬리가 살해당하는데....

이제 7번째 극장판인가요? 이 작품은 인기가 많은 서브 캐릭터 중 하나인 괴도 키드를 전면에 부각시킨 작품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허술하기 그지 없습니다. 극장판 시리즈는 점점 퀄리티와 내용의 수준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각본이 엉망이네요. 차라리 원작 만화에 있는 에피소드를 각색하는 편이 훨씬 나을 정도입니다.

일단 키드의 초반 범행 예고에서 시작해 키드와 코난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초반부, 비행기에서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중반부, 비행기가 기장의 중독으로 조종 불능상태에 빠지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 부분이 각자 따로 노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키드와 코난의 라이벌전을 그리려는 초반부 의도와는 달리 그나마 추리극이라 할 수 있는 중반부의 살인사건에서 괴도 키드는 방관자로만 등장할 뿐입니다.
추리도 문제가 많습니다. 먼저 초반부에서 키드의 교묘한 도둑질을 기대한다면 실망만 할 뿐이에요. 암호 트릭 자체는 괜찮았지만 그다지 효과적으로 쓰이지도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중반부의 살인사건은 트릭을 위해 다른 요소들이 전부 어거지로 짜맞춰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단 용의자들의 동기가 굉장히 약하고, 다른 방법도 많이 있었을텐데 용의자가 한정되는 비행기안에서 범행한 범인의 의도도 이해되지 않아요. 그나마의 트릭도 우연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어서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고요. 설득력이 떨어진달까요?
게다가 6번째 극장판 "미궁에 십자로"에서 지나치게 남용한 3D를 역시 많이 사용해서 작화나 전체적인 연출의 느낌이 좋지 못합니다. 셀과 3D를 조화롭게 사용하기에는 아직 멀은 것 같고 작화도 기존 TV 시리즈 수준 정도로 극장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네요.

물론 건질게 아주 없는건 아니라서 모리탐정의 개그, 키드가 신이치로 변장하고 나온다는 설정, 그리고 초반부의 추격전은 제법 재미있습니다. 마지막의 비행기 비상 착륙 장면은 흥미진진하고요. 

하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딱 방학특선 아동용 모험물 수준입니다. 추리라는 요소는 곁가지일 뿐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제가 점수를 줄 여지는 거의 없네요. 명탐정 코난의 팬으로서 다음 작품은 이런 아동용 모험활극 대신 좀 더 제대로 된 각본으로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2023/03/12

생피아크르 사건 - 조르주 심농 / 성귀수 : 별점 1.5점

생피아크르 사건 - 4점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그레는 생피아크르 성의 관리인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찾았다. 살인을 예고하는 편지를 받고 마음이 쓰인 탓이었다.
그리고 예고 편지에서처럼 생피아크르 성당 미사에서 백작 부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메그레는 백작 부인의 미사 경본에 끼워져 있었던 가짜 신문 기사가 일종의 흉기였다는걸 밝혀낸다. 그리고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고향 마들을 무대로 비공식적인 수사를 벌이기 시작하는데....


메그레가 비공식적으로 고향을 방문해서, 지역 유지였던 백작 부인 죽음에 얽힌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국내 출간된 메그레 시리즈의 13번째 작품입니다.
미사에 참석해서 자리에만 있었던 백작 부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장면은 메그레 시리즈답지 않은 본격물적인 냄새를 풍겨서 두근두근했습니다. 작품 내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인이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총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다! 누구도 백작 부인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매그레는 그녀에게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라고 하는 사건이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실망스럽습니다. 알고보니 미사 경본 사이에 끼워 두었던 도발적인 신문기사 때문에 심장마비를 일으켰던 겁니다. 백작 부인 아들이 자살했고, 그 이유는 모친 탓이었다는 가짜 기사였지요. 심장이 약했다니 위험했을 수는 있겠지만, 살인 흉기로 쓰기에는 부정확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냥 운에 맡겼을 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게다가 백작 부인과 아들 사이는 소원했고, 백작 부인은 정부에게 남은 재산을 가져다 바치고 있었으니 이런 기사로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도 의문이고요.
수사도 그다지 치밀하지 못합니다. 메그레가 정처없이 거리를 쏘다니다가 무언가를 본 뒤, 그걸 계기로 조사를 한다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치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즉흥적인 수사라는건 다른 메그레 시리즈와도 비슷하기는 한데, 비공식적인 고향 마을에서의 수사라 그런지 더 두서없이 느껴졌습니다. 자기가 예전에 살던 집, 어린 시절 알고 지낸 사람들 이야기가 마구 뒤섞이거든요.

마지막 사건 해결은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살해 동기가 있었던 사람들을 불러모은 모리스 백작이 일종의 추리쇼를 벌인 뒤, 범인을 도발하여 자백하게 만드는 내용으로 드라마틱하기는 합니다. 범인 에밀이 자제력을 잃을만한 분위기를 잔뜩 자아내는 연극적인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줄 여지가 전무합니다. 범인 에밀이 자폭할 이유가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에밀은 모리스 백작을 쏘고 자기가 범인을 죽였다라고 해명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증거도 없었는데, 긁어서 부스럼만 잔뜩 만든 셈이에요. 범인은 백작 부인의 정부 장 매테예아니면 모리스 백작인 것 처럼 분위기를 몰고가고 있었는데, 왜 법적인 효력도 없을 추리쇼에 압도되어 자제력을 잃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백작에게는 동기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유산으로 남은 푼돈 얼마라도 지키려고 했다? 너무 때늦은 행동이었을 뿐더러 실제로 남은 유산이 거의 없었다는게 이미 설명되고 있으니까요. 백작 부인의 정부 장 메테예가 범인인 것 처럼 몰고가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장이 돈줄을 억지로 끊을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이 백작 부인이 살해당할거라는 예언을 경찰에 보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그 예언 탓에 메그레가 사건에 뛰어들게 되었는데, 에밀 입장에서는 경찰이 없는게 더 나았을거에요. 구태여 장 매테예를 범인으로 몰아서 치워버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냥 백작 부인이 자연사한 것 처럼 보이게 만들고, 몰래 빼돌린 백작 부인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하면 되니까요. 백작이 추리쇼를 벌여 범인을 색출하려고 했을 수는 있지만, 공식적인 효력이 없는 거덜난 귀족의 마지막 발버둥에 동참해 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약간 고딕 호러물스러운, 고풍스러운 성에서 벌이는 추리쇼 분위기는 그럴싸했지만 추리물로 보기 힘든 기묘한 드라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차라리 좀 더 호러스럽게 끌고가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백작 부인의 사체가 벌떡 일어나는 식으로요!

2021/06/11

범죄 캘린더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1.5점

범죄 캘린더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엘러리 퀸 단편집으로 비교적 후기작입니다. 엘러리 퀸이 주인공인 라디오 드라마를 책으로 엮은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읽다보니 확실히 라디오 드라마구나 싶었습니다. 설득력있는 동기, 복선으로 뒷받침되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보다는 극적인 상황을 쉽게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도 정교하기 보다는 말로 전달하기 쉬운 트릭들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책으로 읽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트릭들은 추리 퀴즈 수준이고, 이야기 구조가 단순한 탓에 동기와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 대한 설득력도 낮은 탓입니다. "~ 모험" 이라는 제목 때문에 걸작 단편집이었던 "엘러리 퀸의 모험" 수록작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캘린더'라는 제목답게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한 편씩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해당 월에 이야기가 진행될 필요가 있었던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3월의 소득세 신고, 5월의 전몰 장병 기념일 정도만 특정 날짜와 사건이 연결되어 있을 뿐이에요. 10월의 할로윈과 12월 크리스마스에 사건이 벌어지는 두 작품은, 날짜를 사건과 무리하게 연결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망작이었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1.5점입니다. 라디오라면 모를까 책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믾지 않고, 권해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엘러리 퀸의 이름만 믿고 읽으시면 실망하실 거에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부자 모임의 모험" 

이스턴 대학교의 유서깊은 야누스 클럽의 멤버 빌 업다이크가 엘러리 퀸을 찾아왔다. 야누스 클럽은 13학번들로 이루어진 모임으로, 현재 생존자는 7명 뿐이었는데 그 중 3명이 최근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업다이크는 야누스 클럽 안에 5명으로 이루어진 내부자 모임이 20만달러라는 돈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자신과 또 다른 멤버 중 생존자가 모든 걸 갖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48시간 뒤, 빌 업다이크는 살해되고 말았다.

1월의 야누스 클럽 정기 모임 날짜에 맞춰 벌어지는 이야기로 야누스 클럽이니, 내부자 모임이니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핵심은 암호 트릭입니다. 피해자 업다이크가 내부자 모임 멤버들 이름에 공통점이 있다는 말을 남겼었고, 그 말이 유일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 트릭은 미국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하지만 미국인이라면 쉽게 풀었음직한 트릭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멤버들 이름을 변주하자면, 황연세, 한국민, 양홍익, 김아주, 서인하인 식이지요. 업다이크의 경우는 부부의 이름을 합쳐 윌러임 앤 메리 칼리지라는 약간의 변주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이 역시 우리나라식으로 박성균, 최관이라는 식이니 딱히 정교한 장치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라디오에 적합한, 추리 퀴즈에 가까운 아이디어였습니다. 전개도 정교하지 못하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3명의 회원이 우연찮게 자연사한 뒤, 살의를 품었다는 동기를 잘 풀어내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대통령의 5센트 은화 모험" 

미모의 아가씨 마사 클라크는 전보로 엘러리 퀸과 죠지 워싱턴 관련 골동품 수집가 패치, 희귀 주화 수집가 체크 남작부인, 희귀 서적 수집가 쇼 교수를 불러모았다. 죠지 워싱턴이 남긴 칼과 은화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는 오래 전 죠지 워싱턴이 마사의 조상 시미언 클라크를 만났을 때 농장에 묻었던 물건들이었다.

2월 죠지 워싱턴 생일에 맞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추리적으로는 눈여겨 볼 부분이 전무합니다. 시미언 클라크가 남긴 일기에 따르면, 워싱턴이 당시 심었던 나무 중 하나 아래에 칼과 은화를 묻었다고 쓰여 있거든요. 이건 암호도 아닙니다. 당연히 별다른 트릭도 없어서 추리의 여지도 없고요.

이 말에 따라 마사 클라크 가족이 워싱턴이 심었다는 나무 12그루 밑을 모두 파 보았지만, 칼과 은화를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는 더 황당합니다. 원래 13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가 죽어 버린 탓이라는데 정삼각형 모양으로 간격까지 정확하게 심은 12그루의 나무는 멀쩡하고, 삼각형 한 가운데 심은 나무만 죽었다는건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게다가 13그루 나무를 심었다는 엘러리 퀸의 주장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미국 건국은 13개 주였기에 나무는 13그루를 심었어야 한다!"라는게 근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또 애초에 농장을 잃을 위기였다면, 나무 밑이 아니라 나무 근처 땅을 모두 파 보는게 정상 아니었을까요? 전개도 이상합니다. 이야기 처음에 패치 등 관계자들을 불러 모을 필요는 없었어요.

이런 문제 투성이의 본편 이야기보다는, 엘러리가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게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도입부가 추리적으로 더 볼만했습니다. 돈이 많지만 자동차를 소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인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엘러리의 비서 니키가 미인인 마사 클라크를 질투하는 묘사도 재미있었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네요. 추리물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이클 마군의 3월 15일 모험" 

퀸 경감의 옛 동료였던 사립탐정 마이클 마군이 엘러리를 찾아왔다. 3월 15일 소득세 신고를 앞두고 관련 서류를 도난당했기 때문이었다. 서류 도난 당시, 사무실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한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엘러리 일행은 다시 사무실에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사무실을 관리하는 카슨 부인이 참혹하게 살해된걸 발견하는데...

이야기 초, 중반부까지는 "왜 도둑은 소득세 신고와 관련된 서류를 훔쳐갔을까?"가 핵심입니다. 이는 마군의 서류 중에 사교계 지배자 벤돔 부인의 딸이 도벽이 있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으로 밝혀지고요. 이렇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기묘한 사건이 특별한 강력 범죄와 연결되는 전개는 재미있었습니다. 소득세 신고일이 3월 15일이고, 소득세 신고용 자료가 협박의 근거가 된다는 식으로 3월이라는 날짜와 이야기를 엮은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마군이 화재 소동을 일으킨 뒤 서류가 도난당한걸로 위장했고, 이를 카슨 부인이 눈치채 죽였다는 진상은 여러모로 불합리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엘러리를 찾아와 서류가 도난당했다고 하소연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앨러리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냥 강도가 살해한걸로 무마할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엘러리 말대로 벤돔 부인을 협박할 생각을 버리고 카슨 부인을 죽인거라면, 더더욱 서류가 도난당했다는걸 드러낼 필요는 없었어요. 협박할 생각을 버렸다면, 카슨 부인에게 불을 지른 이유를 둘러대는게 살인보다는 훨씬 나은 해결책이었을겁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누명을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게 오피스를 쉐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안일한 발상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 알리바이가 확실했다면 어쩔 생각이었을까요?

마군이 서류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한 시점보다 나중인 신문지가 들어있었던 증거는 명확했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아주 잘 만든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황제의 주사위 모험" 

퀸 경감은 엘러리, 니크와 함께 오랜 친구 짐 해거드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역으로 마중나온 짐의 아들 마크 해거드는 아버지 짐이 살해당했다며 10년 전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해거드 가족은 아버지를 쏜 건 가족 중 한 명이라며 지난 10년간 지옥처럼 살아왔다고 말했다. 엘러리는 짐이 죽었을 때 손에 쥐고 있던 '황제의 주사위'에 주목해서 범인을 알아내는데...

짐이 쥐고 있던 주사위는 일종의 다이잉 메시지였습니다. 두 개 중 한개가 항상 6만 표시한다는 의미로, 6번 피스톨에 의해 살해당했다는걸 의미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뒤는 가관이에요. 6번 피스톨은 왼손잡이가 잡기에 용이해서, 가족 중 유일한 왼손잡이인 딸이 범인이라는 추리가 펼쳐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총을 쏘는 것도 아니고, 꺼내는데 왼손잡이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할까요? 중요했다 한 들 이 정도로 딸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건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그 총은 '왼손잡이만 잡을 수 있었다'는걸 명확하게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그런 설명은 전혀 등장하지 않거든요. 칼리굴라와 주사위 속임수에 대해 이런저런 소개도 이야기에는 하등 상관이 없는 쓸데없는 잡지식에 불과했고요.

무엇보다도, 3월 마지막 날에 수수께끼를 풀어내며 이 모든게 퀸 경감과 니키, 해거드 가족이 함께 4월 1일 만우절에 엘러리 퀸을 속이기 위함이었다는 반전은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40년 전 결혼식과 10년 전 40번째 결혼 기념일에 선물을 드렸다는 모순은 말장난이면서도,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서 속임수같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입니다.

"게티즈버그 나팔의 모험" 

엘러리가 니키와 함께 한 충동적인 게티즈버그 여행 중에 자동차가 고장나버렸다. 그 때 잭스버그 군수 스트롱이 그들을 도와준 뒤, 마을에서 진행하는 남북전쟁 전몰장병 추모일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날 남북전쟁 생존자가 게티즈버그 나팔을 부는게 전통이었는데, 작년에 생존자 중 가장 고령이었던 케일럽이 나팔을 불다가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고령이었지만 건강했고, 다른 생존자 2명과 남북 전쟁 중 찾았던 보물에 대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군수는 수상쩍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전몰장병 기념일 아침에 또 다른 생존자 애브너 체이스가 뇌졸증으로 사망하고, 기념일에서는 나팔을 불던 마지막 생존자 잭 비글로마저 나팔에 묻힌 독으로 죽고 마는데...

어디선가 읽었던 작품. 4월 전몰장병 기념일에 맞춘 이야기는 깔끔합니다. 노인들이 이야기하던 거액의 보물은 휴지조각과 같은 남부 정부가 발행했던 지폐라는 설정도 좋았고, 애브너 체이스의 손녀 시시가 진범이라는 반전도 그럴듯했거든요. 이를 드러내기 위한 엘러리의 추리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잭 비글로가 마지막 생존자로 남게된건 애브너 체이스가 급작스럽게 사망한 우연 덕분이었다는게 핵심이지요.

하지만 이 추리로는 시시가 진범인지, 잭 비글로의 손자 앤디가 진범인지는 드러낼 수 없습니다. 앤디가 할아버지가 남긴 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기에, 그 돈을 보다 빨리 갖고 싶어서 할아버지를 죽였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즉, 엘러리는 그냥 용의자를 한 명 추가한거에 불과합니다. 이래서야 법정에서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도 본격 추리물로는 완벽한 얼개를 갖추고 있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전개되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약 손가락의 모험" 

트로이는 딸 헬렌 결혼식에 엘러리를 초대했다. 헬렌을 흠모했던 루즈 때문이었다. 그는 헬렌이 헨리 예이츠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의를 드러내다가, 이후 갑자기 변심해서 사죄하고 신랑 들러리로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심한 불안감을 느낀 트로이의 부탁으로 엘러리는 벨리 경사와 결혼식에 참석해서 루즈를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러나 식 직후 헬렌은 결혼 반지 속 독침에 의해 살해되고 마는데...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엘러리가 범행을 막지도 못했고, 경찰보다 범인을 찾아내는데 늦어버린 완벽한 실패담이라는겁니다. 엘러리는 루즈가 아닌 신랑 헨리 예이츠를 범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거는 결혼만 하면 헬렌의 유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결혼 반지는 왼손에 끼고, 압력을 가해 독침이 튀어나오게 하려면 왼손으로 악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범인이다! 라는 논리로 루즈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이 사실은 흉기인 반지 조사로 경찰이 밝혀내고요. 이렇게 엘러리는 체면만 구긴 셈이며, 사건은 경찰 수사를 통해 종료되기 때문에 추리물로는 볼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고, 이렇게 길게 풀어낼 필요도 없는 졸작입니다.

"추락한 천사의 모험" 

센터 저택에는 기괴한 키마이라 조각이 튀어나와 있었다. 현재 센터 제약 사장인 마일스의 아내 도로시는 니키의 친구로, 그녀가 니키에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걸 고백한 뒤 마일스가 저택 지붕에서 떨어진 키마이라 조각상에 깔려 죽을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조각상은 마일스의 동생 데이비드의 아틀리에 지붕 쪽에 위치했었다. 데이비드를 의심한 마일스는 엘러리 퀸에게 관련된 조사를 의뢰했고, 데이비드 아틀리에를 조사하기 위해 엘러리가 방문한 날 마일스는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다. 데이비드는 실종되었고, 도로시가 범행을 자백하는데...

도로시의 불륜 상대가 밝혀지기 전 까지, 범인은 데이비드 아니면 마일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드는 마일스만 없으면 센터 제약과 그 아내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마일스는 아내의 불륜에 대한 복수심으로 데이비드를 실종으로 위장해서 죽이고, 다친걸로 위장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비서 하트가 폭죽으로 알리바이를 만든 뒤 살해했다는 겁니다. 즉, 도로시가 사랑에 빠진게 마일스의 동생 데이비드가 아니라 비서 하트였다는 반전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상식을 깨는 맛은 괜찮았습니다. 7월 4일 독립 기념일과 '폭죽'을 연결한 아이디어도 좋았고요. 캘린더라는 주제에도 잘 맞을 뿐더러, 간단한 트릭이지만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드러내는 핵심 증거 중 하나가 '떨어진 키마이라 조각상'이라는 전개도 마음에 들고요.

물론 편의적인 전개를 위해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마일스가 총에 맞았을 때, 누가 쐈는지 보지 못했다는게 대표적이지요. 여기서 그가 죽지 않은 것도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작위적이고요. 차라리 죽는게 전개면에서는 더 깔끔했을거에요. 또 45Kg이나 되는 조각상에 데이비드를 죽인 뒤 매달아 물에 빠트리는게 혼자서 어떻게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가능했을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도로시가 자기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이유가, 하트가 총을 쏘는걸 목격했기 때문이었다는 설명도 잘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정통 본격 추리 단편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평작은 충분히 되는,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잘 짜여진 단편이었으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늘 귀의 모험" 

유명 탐험가 에릭슨은 결혼한 조카딸 잉가의 남편과 그 아버지에 대한 조사를 엘러리 퀸에게 의뢰했다. 잉가의 남편 홉스-왓킨스 부자가 에릭슨이 거주하는 섬에서 잉가와 자기를 살해하지 않을까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 섬에는 캡틴 키드가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고, 엘러리는 보물 찾기 핑계를 대고 섬으로 향하는데..

엘러리는 키드가 남겼다는 일종의 암호를 간단히 풀어내고 보물을 찾아내지만 그 보물은 키드가 묻은게 아니었다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그 증거가 보물 상자 속 '백금' 이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백금은 1900년대 이후 보석 셋팅에 이용되었기 때문으로, 박학다식한 엘러리에게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습니다. 보물은 홉스-왓킨스 부자가 훔친 장물로, 장물을 공식적으로 유통하기 위해 키드 전설을 이용했다는 앨러리의 추리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에릭슨이 죽기 전 쏜 총알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롱 존의 의족에 박혔기 때문이라는건 많이 뻔했습니다. 그리고 롱 존이 홉스-왓킨스 부자와 공모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가 에릭슨을 단순한 탐욕으로 죽였다고 보는게 타당할 수도 있어요. 보물을 묻은게 부자라는게 증명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에릭슨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는건 증명이 불가능했습니다. 롱 존이 자백한다 한들, 증거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롱 존을 이용해서 에릭슨을 죽이는 전개만 빠졌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좀 아쉽네요.

"세 개의 R의 모험" 발로 대학 학장 발로 박사는 엘러리 퀸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 문학을 가르치는 칩 교수의 실종 때문이었다. 니키와 함께 미주리 주에 있는 발로 대학을 찾은 엘러리는 칩 교수 방의 핏자국, 그리고 도서관에서 대출 된 책을 통해 교수가 6월 30일 밤에 살해당했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칩 교수가 여름을 보낸다고 알려진 아칸소 주 통나무집에서 칩 교수의 백골화된 사체와 그가 쓰던 추리 소설인 "세 개의 R의 모험" 원고를 발견하는데...

칩 교수가 쓴 추리 소설대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건 연극이어고, 엘러리 퀸은 발견된 시체가 백골이었다는걸 토대로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고작 10여주 동안 사체가 백골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동기는 칩 교수가 쓴 추리 소설 홍보를 위해서였지요. 유명 탐정이 헛다리를 짚은 이야기를 기사화할 생각이었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추리적으로 깔끔하고, 주어진 단서도 공정한 괜찮은 본격물이에요.

하지만 교수들이 꾸민 계획은 여러모로 부실했어요. 핏자국을 발견한 시점에 경찰을 부르지 않은 이유부터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제가 탐정이라면 먼저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했을 겁니다. 또 백골 사체가 이상하다는 근거도 빈약합니다. 사체를 백골로 만드는 무슨 방법을 썼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득력이 부족했기에 감점합니다.

"죽은 고양이의 모험" 

니키 포터 양은 저주받은 검정 고양이 모임 회합에 엘러리 퀸과 함께 참석했다. 10월 31일의 챈슬러 호텔에서의 비밀 회합은 니키의 친구가 개최한 할로윈 파티였었다. 파티 중 추리 게임을 하다가 참석자 중 한 명인 크롬비가 살해당했고, 동기는 그의 무분별한 여자 관계 때문으로 드러나는데...

핼로윈 파티에 대한 장황한 묘사를 빼면,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파티를 위해 복잡하게 꾸며놓은 호텔 방을, 불이 꺼져 있었던 추리 게임 당시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냐는 것이지요. 엘러리 퀸의 추리는 이 방을 꾸민 루시 트렌트가 범인이라는 것이었고요. 

하지만 방을 꾸몄다고해도 과연 어두운 상황에서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까요? 또 파티가 시작하고 한참 뒤에 추리 게임이 시작되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외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루시 트렌트 범인설은 이렇게 설득력이 약합니다. 복잡한 여자 관계가 동기인데, 정작 당사자가 아니라 그 동생이 복수했다는 설정도 영 와 닿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범행을, 세계 최고의 명탐정을 초대해서 추리 게임을 하는 동안 저지를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용의자가 될 만한 사람도 몇 명 없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추리 게임이라는 작 중 소재처럼, 추리 퀴즈 수준의 졸작으로 점수를 줄 여지는 전무합니다.

"비밀을 폭로하는 병의 모험" 

추수감사절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배달하던 엘러리 퀸과 니키는 우연히 방문한 프랑스 레스토랑이 마약을 밀매하고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캐리가 마약 밀매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그가 누명을 썼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체포하기 전에 마약을 건넨 웨이터가 살해되는데...

우연히 방문한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샤토 디켐"을 주문하니 마약이 나오고, 우연히 탄 택시에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택시 운전사가 흑막이라서 그가 레스토랑 웨이터를 살해했다는 내용의 작품. 우연으로 점철된 전개로 실소를 자아내는 졸작입니다. 작품이 아니라 입문자용 추리 퀴즈라고 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황태자 인형의 모험" 

입슨 양이 30년을 쏟아 부어 만든 인형 컬렉션인 '돌렉션'문제로 변호사 본들링이 퀸 부자를 방문했다. 컬렉션 중 가장 가치가 큰, 49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황태자 인형을 유명한 예술품 도둑 코머스가 훔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었다. 입슨 양 유언으로 돌렉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백화점 전시가 예정되어 있었고, 퀸 부자는 직접 경찰과 함께 철통같은 방어망을 구축했지만, 인형은 결국 가짜로 바꿔치기 당하는데...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예고장을 보내는 전설적인 괴도가 등장한다는 만화같은 설정의 작품입니다. 

진상은 간단합니다. 변호사 본들링이 도둑 코머스였던 것입니다. 그가 마지막에 인형을 직접 바꿔치기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본들링이 예고장을 보내면서까지 사건을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 꾸준히 예고장을 보내왔다면 모를까, 예고장을 보낸건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하니 더더욱 불필요한 행동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을 변장시켜 경찰의 시선을 끈 행동 역시, 대역들이 체포되면 금방 드러날 유치한 작전이었고요. 그냥 다이아몬드가 사라진다면 본들링이 무조건 혐의를 받을 테니 그 혐의를 돌리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본들링이 범인이라는 엘러리의 추리는 너무 당연해서, 그의 정체는 어쨌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요. 이런 위험을 짊어질 이유가 있었을까요?

산타클로스로 변장해서 인형을 지켰던 벨리 경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작품다운 왠지모를 유쾌함과 활기는 좋았지만, 추리 퀴즈 수준밖에 안 되는 작품이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중반에 잠깐 라디오 극본을 그대로 옮긴 듯한 부분이 있는데, 의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작품과 잘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라디오 극본이라는걸 알려주기 위한 의도였다면, 극본 전체를 부록처럼 수록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2025/07/13

기암관의 살인 - 다카노 유시 / 송현정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매니아 프리터인 사토는 아르바이트로 카리브 해의 외딴 섬 저택 '기암관'으로 향했다. 정해진 설정에 따라 연기를 하며 3일간 지내면 100만엔을 준다는 아르바이트였다. 사토에게는 반 년 전 사라진 일용직 친구 도쿠나가를 찾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기암관은 부호 미에이도 하루사다의 저택으로, 사토는 하루사다의 친구로 방문했다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여러 명이 방문한 기암관에서의 첫 날 밤, 쾌활했던 손님 텐가와가 밀실에서 살해당한채 발견되었다. 알고보니 이 모든 건 부자들의 유희를 위해 벌이는 진짜 살인 게임이었고, 사토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고전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어 집어든 작품입니다. 

특징이라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물의 설정을 작품의 핵심 소재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실제 살인을 포함한 추리 게임을 유료 서비스로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는 설정입니다. 추리를 즐기고 싶어 하는 부유한 클라이언트가 거액을 지불하고 사건을 의뢰하면, 회사는 추리 소설가가 만든 각본을 준비하고 배우를 모집해 실제 살인을 연출합니다. 이 회사는 전 세계에 지사가 있고요.

이야기는 영문도 모른 채 이러한 추리 게임에 참여한 뒤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사토와, 회사측 운영 담당으로 도서 추리소설처럼 모든 범행을 지휘하며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하는 고엔마의 시선이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사토는 평범한 프리터로, 3일에 100만엔이라는 고액 아르바이트로 고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설정된 조연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사람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부터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다행히 '추리 매니아'인 덕분에 여러 위기를 추리를 통해 해결하면서요. 여기서 생기는 딜레마도 재미있습니다. 직접 사건을 해결하면 고액을 지불한 클라이언트 탐정의 등장이 무의미해지는 탓에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딜레마지요. 때문에 조수 역할에 머무르며 단서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마지막 날 밤에는 모두 함께 밤을 보내자는 현실적인 대응도 시도합니다.
반면 고엔마는 이 게임을 기획한 회사 직원이자 운영 총괄로, 작가가 쓴 각본에 따라 전체 사건을 총괄하며 참가자들의 돌발 행동과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해 나갑니다. 클라이언트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며, 기획된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변수는 가능한 한 배제하고요. 그래서 사토가 무대의 흐름을 바꾸려는 조짐을 보일 때마다 이를 조용히 차단하려 합니다.
이러한 두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둘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대립도 선명하게 만드는 전개는 인상적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일종의 암호를 통해 예고되는 살인과 선보이는 트릭들은 만화적이지만 재미있기는 하거든요. 텐가와가 사망한 밀실 트릭은 '인간 의자'를 응용한 방식이며, 시즈쿠 사건에서는 목각상 머리를 활용해 밀실을 구성하는데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사체의 목을 잘라낸' 분위기와는 잘 어울립니다. 여러 고전 추리를 패러디하면서 어떻게든 범행을 대본에 어울리게끔 저지르는 악전고투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재미를 더해주고요.
사토가 기암관에서 벌어진 사건의 구조적 문제를 간파하고, 회사 관계자들 앞에서 그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결말도 볼거리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납득할 만한 주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작품 안에서 가장 논리적인 추리가 펼쳐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획된 시나리오가 실제 사건의 변수에 따라 계속 수정되며 혼선이 생기는 부분은 블랙 코미디같습니다. 원래 탐정 역할이었던 텐가와가 또 다른 클라이언트의 의뢰로 살해당하고, 범인 역할로 설정된 시라이가 예기치 않게 죽자 급하게 고사카를 새로운 범인으로 설정하는 식인데, 특히 고사카가 법의학자 출신이었다는 설정이 갑작스레 등장하는 장면은 제법 웃깁니다.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만화적인 설정에 더해 인물들이 전형적이고, 감정적으로 설득력 있는 묘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토가 마지막에 갑자기 천재 추리 작가로 변신하는 결말은 뜬금없고 어색합니다. 살인극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중계되고 있었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요. 이렇게 후반부에 억지스러운 장치들이 겹치는 탓에 몰입도가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시라이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 선장이 언급만 되고 등장하지 않는 점 역시 이야기의 완성도를 저해합니다.

사토라는 인물도 영 별로입니다. 그는 이전 일용직 동료인 사토나가의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이 아르바이트에 참여했고, 히로인 시즈쿠에 대해서도 동경의 감정을 품는걸로 표시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죽음을 알고난 이후에 특별한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복수심이나 애도는 거의 언급되지 않아요. 오히려 회사의 전속 작가가 되기 위한 포부를 밝히는 데 집중합니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보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했어요. 사토보다는 차라리 고엔마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교차 시점 구성과 일부 트릭은 인상적이지만, 인물의 설득력 부족과 과도한 작위적 설정은 큰 감점 요소입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7/30

이런 설정은 있을리 없다! 트릭이 변화하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오랫만에 소개드리네요. 국내 소개된 작품은 3편입니다. 이 중 '사쿠라다 리셋 3부작'은 라이트 노벨 같은데, 이미 절판되었고 중고 시세는 사악하네요. 구해 읽기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만,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겠지요.
그나저나 지나치게 일본 작품 위주라는건 좀 거슬립니다. 이런 류라면 '다아시 경 시리즈'를 빼 놓을 수 없었을텐데 말이죠


특수 설정 미스터리란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처음부터 설정으로 포함되어 있는 미스터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현실과 다른 물리법칙, 심령현상이나 초능력, 판타지나 공상과학과 같은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스터리의 트릭과 추리 논리에 특수한 설정으로 인한 구속력이 더해지는 것이 매력이다.

"마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 가모우 다츠야
19세기 영국을 연상시키는,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총 6편의 연작 미스터리. 이 세계의 마법에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며, 결코 무법천지가 아니다. 마법이 개입된 세계의 법칙에 따라 왕립 마법원 수사관인 데이븐포트가 논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앨리스 죽이기" - 고바야시 마스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의 주민이 된 꿈을 꾸는 주인공들. 꿈속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현실 세계에서도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들은 꿈속의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꿈과 현실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은 파격적이지만, 세계관은 매우 논리적이다.

"일곱 번 죽은 남자" - 니시자와 야스히코
주인공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같은 하루를 9번 반복하는 특이한 체질을 가진 소년. 그에게는 가끔씩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루프에 빠진 두 번째 바퀴에서, 첫 바퀴에서는 무사했던 할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말았기 때문. 주인공은 루프의 법칙에 따라 할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혀낸다.

"명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아쓰카와 다쓰미
탐정이 경찰 아래 움직이는 조직이 되어버린 세상. 증거를 조작해 죄를 면했다는 의혹으로 명탐정의 탄핵 재판이 열리는데........ 이 책의 특수 설정은 탐정 조직의 존재 뿐 아니라, 특수한 조건에서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환생한다는 것. 환생자도 참여하는 탄핵 재판의 행방과 사건의 진실이 복잡하게 펼쳐진다.

"고양이와 유령과 일요일의 혁명 (사쿠라다 리셋 3부작)" - 코노 유타카
주민의 절반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 '사쿠라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 주인공은 기억을 완전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그리고 여주인공은 세상을 3일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초능력자들로 가득한 마을에서 두 사람이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능력끼리 조합하는 퍼즐 같은 논리성이 매력적.

2009/11/03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는가 - 가스가 마사히토 / 이수경 : 별점 3점

100년의 난제 :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 - 6점
가스가 마사히토 지음, 이수경 옮김, 조도상 감수/살림Math

언젠가 EBS에서 방영 예고했던 동일한 내용의 다큐를 놓쳐서 무척이나 안타까왔었는데, 간만에 본가에 가니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NHK PD 가스가 마사히토가 쓴 책이 있어서 읽게 되었네요.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책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푸앵카레 추측"이 무엇인지와 이 수학상의 어마어마한 난제를 어떻게 풀게 되었는지를 약 반세기에 걸쳐 관련 인물들과 이론을 추적하며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 푸앵카레 추측을 푼 수학자 페렐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중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수학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라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했지만, 이 추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우주공간"에서 끈을 당긴다... 라는 것 정도만 머리에 집어 넣어도 이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화된 다큐멘터리에 근거한 책이다보니, 여러가지로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군데군데 묻어나고 있거든요. 이러한 고등수학을 쉽게 설명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이 책은 상당한 수준으로 잘 해내고 있습니다. 이쪽 바닥의 명저인 과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이 연상될 정도로요. 그 외의 Q.E.D에서나 접해봤던 필즈상 이야기라던가 이런저런 친숙한 용어들도 반가운 부분이었고요.

그러나 두 번째 이야기, 즉 수수께끼의 수학자 페렐만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어려운 수학상의 난제를 해결하고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필즈상과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 내건 상금 100만불까지 거부하고 현재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은둔하며 사는 페렐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피상적인 정보만 쫓을 뿐, 결국 페렐만이 왜 상과 상금을 거부했는지와 지금 뭐하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채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때문에 김이 확 빠져버렸어요. 수수께끼만 나열한채 해답없이 끝나는, 2권짜리 추리소설에서 전편만 본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첫 번째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었으며 이런저런 아이디어 같은 것도 얻을 수 있던 만큼 자료적 가치도 있기에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는 것은 명확합니다. 재미없고 실망스러웠던 두 번째 이야기도 이런저런 상상의 여지가 많아 최소한의 흥미거리는 되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페렐만 박사는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요? 푸앵카레 추측을 발판으로 뭔가 다른 새로운 증명에 돌입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왠지 푸앵카레 추측을 해결하며 쌓은 노하우를 통하여 지구, 아니 우주를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연구를 하고 있을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이런이런... 만화를 너무 많이 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