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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8

라스트 차일드 - 존 하트 / 박산호 : 별점 3점

라스트 차일드 - 6점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년 전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인 앨리사가 실종된 이후 조니의 가족은 풍비박산났다. 앨리사 실종을 남편 탓이라 여긴 엄마 캐서린 때문에 아빠는 집을 나가버렸고, 마을의 실력자인 켄은 그 틈을 노려 엄마를 마약 중독자로 만든 뒤 엄마와 조니에게 폭행을 행사했다. 조니는 이런 고난을 피하기 위해 책에서 읽은 인디언 주술에 의지하며 홀로 군 전체를 돌며 앨리사 찾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조니 앞에서 한 남자가 추락사하는데 그는 죽기 전 "내가 그녀를 찾았어."라고 말했다. '그녀'가 앨리사라고 생각한 조니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자비스의 집으로 숨어드는데...

최근 읽었던 추리 소설들은 대부분 완성도가 그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최근 평이 가장 좋은 듯한 작품을 골라보았습니다. 사실 미국산 장편 범죄 스릴러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요.

그런데 다행히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꽤나 긴 분량이지만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끌만한 요소가 많은 덕분입니다. 조니와 엄마 캐서린에게 닥친 불행과 사건 수사 현황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만 지나면 곧바로 온갖 사건이 이어지기도 하고요. 데이비드 윌슨이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죽는데 죽기 전 조니에게 실종된 아이를 보았다고 말한 사건에서 시작해서 거대한 흑인 레위 프리맨틀의 등장, 또다른 소녀의 실종, 조니가 몰래 유력한 용의자 자비스의 집에 잠입하다가 죽을 뻔 하는 등 강력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거든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죽는 사람만 해도 무고한 목격자였던 데이비드 윌슨과 연쇄 어린이 납치 살해범인 자비스와 미첨, 조니 가족을 괴롭히던 켄 홀웨이, 순수한 신의 사자 레위 프리맨틀까지 무려 다섯 명에 이를 정도이며 전개도 그만큼 긴박하고 박진감 넘칩니다. 등장인물들의 선악 구분도 명확하며,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도 깔끔하며 권선징악을 담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를 무대로 현대적이고 성인 대상의 "허클베리 핀"이나 "톰 소여의 모험"을 그려낸 듯한 묘사들도 인상적입니다. 인디언 신앙을 추종하여 독수리 깃털 등의 부적을 손수 만드는 조니는 곧바로 톰 소여를 떠오르게 합니다. 동생을 찾기 위해 미지의 장소인 허쉬 아버로 떠나는 모험에 유일한 친구 잭과 함께 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고요. 조니가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디테일도 좋습니다. 엄청난 역경에 처해 있지만 그걸 이겨내는 소년의 심리 묘사는 정말로 발군이에요.

그러나 범죄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사건들이 우연에 의해 작위적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강한 탓입니다. 데이비드 윌슨이 조니 앞에서 유력한 증언을 남기고 죽은 것 부터가 그러합니다. 실종된 소녀의 시체를 발견했다가 살해당하는 피해자가 실종된 소녀의 오빠를 죽기 직전에 만난다? 지나친 우연입니다. 조니가 어린이 납치범 자비스에게 죽을 뻔 했을 때 납치되었던 소녀 티파니가 마침 탈출해서 자비스를 쏴 죽인다는 상황도 완벽한 우연과 행운이며, 조니가 잭과 함께 허쉬 아버로 향했다가 레위 프리맨틀을 만난 것도 우연입니다. 이렇게 만나지 못했더라면 레위가 켄을 죽이고, 잭이 레위의 말을 듣고 앨리사 실종 사건의 전말을 조니에게 털어놓는 결말도 이루어지지 않았을테지요.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아쉬운건, 잭이 레위의 "No crows"라는 말을 듣고 앨리사 시체가 숨겨진 '노스 크로제 광산'을 떠올리는게 와 닿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노스 크로제'를 약자로 '노. 크로즈'라고 표기했기 때문이라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원어민이라면 이해가 되었을까요? 저에게는 차라리 "No crows"에서 '크로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는게 더 와 닿았을 것 같네요.

또 경찰이 한심할 정도로 하는게 없습니다. 어린이 납치범 자비스가 죽은 것, 탈옥수 레위 프리맨틀을 발견한 것, 앨리사 실종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 것 모두 조니의 활약 덕분입니다. 경찰이 유일하게 추리력을 발휘하는 건 조니가 어린이 납치범 자비스의 공범이 '경찰' 이라고 착각한걸 토대로 '경비원'인 미첨이 범인이라는걸 알아채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경찰인 크로스가 음주 운전을 하다가 앨리사를 차로 치어 죽인 아들을 위해 시체를 유기한 앨리사 실종 사건의 협력자이자 데이비드 윌슨 살인범이기까지 합니다! 그가 시체만 유기하지 않았어도 조니의 아버지도 죽지는 않았을테고 가족도 풍지박산은 나지 않았을테니 조니 시점에서는 모든 사건의 원흉입니다. 심지어 조니의 유일한 친구인 아들 잭을 협박해서 조니에게 진상을 말 못하게 하고, 궁지에 몰린 잭이 아버지 살인 미수까지 범하게 만드니 작품 최고의 악질입니다. 이래서야 경찰은 없는게 더 나아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레위 프리맨틀이 켄을 죽인게 일종의 기적처럼 묘사되며, 이 모든게 조니의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는 기독교적 사고 방식이 근저에 깔려있는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구태여 넣을 필요없는 완벽한 사족이었습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풍은 다르지만 토머스 H 쿡의 작품들이 떠오를 만큼 재미와 문장력을 모두 갖춘 좋은 작품이기는 합니다. 추리적으로 별 볼일 없기 때문에 약간 감점하지만, 이 정도라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되네요.

2017/10/14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 박연선 : 별점 2.5점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 6점
박연선 지음/놀(다산북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수생 강무순은 얼마 전 할아버지를 잃은 할머니 감시(?)차 시골 마을 두당리에 유배(?)되었다. 아흔이 넘어도 건강한 할머니와 함께 익숙하지 않은 시골 생활을 보내던 중, 우연히 15년 전 마을 소녀 4명이 한꺼번에 사라진 실종 사건과 당시 할머니 집에 와 있던 그녀가 어떤 식으로든 실종 사건에 관련되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강무순은 마을의 유력자인 경산 유씨 종가댁 후계자 "꽃미남"과 함께 당시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게 되는데....

유명 드라마 작가라는 박연선의 작품입니다. 이쪽 바닥(?)에서의 입소문이 제법이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입소문이 날 만 하더군요. 재미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는 덕분입니다. 특히 드라마 작가답게 대사가 아주 찰지고 현란합니다. 주인공 강무순이 억지스러운 시골 유폐 생활을 한탄하는 독백은 개중에서도 백미입니다. 좀 지루해질만 하면 중요한 변곡점이 등장하는 식의 전개, 사연이 있으면서도 개성적인 캐릭터들도 드라마 작가로 다져온 솜씨를 발휘해서 독자를 사로잡고요.
한국적인 묘사들도 좋습니다. 두당리라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세세한 소품, 그리고 설정들을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 디테일이 아주 빼어나거든요. 마을의 중심에 있는 경산 유씨 종가집과 마을 사람들, 농사와 식사 등 모두가 충실하게 묘사되고 있으니까요. 또 묘사를 묘사로 끝내지 않고 전개에 슬쩍 끼워 넣는 솜씨도 탁월해요. 명아주라던가 바랭이 풀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에 녹아들어가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전개, 묘사에 더해 이야기의 핵심 미스터리도 흥미롭습니다. 15년 전 마을 소녀 4명의 실종 사건이 중심인데, 이것을 강무순이 당시 묻었던 보물 상자와 결합시켜 전개함으로써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수수께끼가 하나씩 드러나는 것도 앞서 말씀드린 주요 변곡점과 합쳐져 독자의 관심을 계속 잡아 끌고요. 이는 보물 지도 속 "다임개술"이라는 기묘한 말과 보물 상자 속 소품들이 무엇인지가 이 소녀들 실종 사건과 연결되는 덕분으로,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4명의 소녀가 실종된 것은 모두 개별적 사건이라는 진상도 엄지 척입니다. 아,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그 중에서도 황부영 실종에 대한 진상은 정말이지 최고에요. 지극히 한국적인 비극적 가족 관계를 이야기에 잘 녹여낸 아주 괜찮은 이야기였거든요. 이것만 따로 떼어서 이야기를 한 편 꾸며도 충분히 좋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좋은 추리 소설, 장르문학이냐고 하면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강무순이 종가댁 꽃미남과 벌이는 조사는 모두 진상과는 무관한 헛된 노력일 뿐이며,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별다른 추리는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소녀들 실종 사건은 모두 우연하게 해결되니까요.
우선 유미숙을 발견하는 것은 단순한 미행의 결과에 불과합니다. 목사댁 조예은의 사체가 발견된 것도 우연이고요. 황부영 사건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도 억지스러운 작위적인 설정 - 강무순이 우연히 만난 황부영을 기억하고, 또 우연히 당시 사진을 찍어 조사가 가능했다는 두 번의 우연이 겹친 것 - 에 의해 해결되기에 더욱이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솔직히 우연히 만난 여성의 엄지손가락을 기억하여 그 여자가 황부영이 아닐까?를 떠올린다는 것 부터가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이지요.
유선희 실종 사건의 진상도 별로이며, 황부영을 통해 알아낸 정보가 도화선이 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게다가 진상은 모두 당사자(황부영, 종가댁) 입을 통해 직접 듣는다는건 부실한 추리 구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유선희를 임신시킨 진짜 악당이 안체부였다는 진상입니다. 아무런 복선도, 단서도 없이 드러나기 때문에 뜬금없기가 이루 말할 수 없네요. 최소한 안체부와 꽃돌이가 닮았다는 정도의 단서라도 제공해 줬어야지요.

그 외, 강무순이 타임 캡슐로 묻은 뱃지와 목각인형을 얻은 경로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 설명이 부실한 것도 감점 요인입니다.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 21세기를 무대로 한 작품이 30년 전 "전원일기" 당시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시골 마을과 캐릭터 설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는 잘 되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러한 단점을 덮을만큼 압도적인 재미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본격물 애호가가 아니라면 미스터리 쪽으로도 나름 즐길 만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는 본격물 애호가라 감점 했습니다만 한국 추리 소설, 장르 문학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꼭 권해드리고 싶네요.

2018/05/26

속삭이는 자 1,2 - 도나토 카리시 / 이승재 : 별점 2.5점

속삭이는 자 1 - 6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속삭이는 자 2 - 6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본 작품의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섯 명의 소녀들이 차례로 유괴된 후, 여섯 명 소녀의 절단된 팔이 발견되었다. "아돌프" 라고 명명한 범인의 도전에 게블러 박사가 이끄는 연방 경찰의 행동 과학 수사팀은 총력을 다해 응했지만, 소녀들의 시체가 한 구 씩 차례로 발견되었고, 발견된 장소와 얽힌 추악한 범죄가 함께 드러나며 수사팀은 서서히 와해되는데...

이탈리아 출신 범죄학자의 장편 소설 데뷔작입니다. 회사 동료인 Y리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Y리님 감사해요!).

천재적인 범죄자와 경찰과의 대결은 굉장히 많이 보아온 물릴대로 물린 설정입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여러 편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모방작은 아닙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범죄자 "아돌프"가 여섯 명의 조력자와 함께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두 번째 시체 발견 장소인 옛 고아원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주 기가 막힙니다. 왜 고아원에 시체를 유기했는지? 에 대해 오래전 고아원에서 빌리라는 소년이 살해된 사건을 밝혀내고, 진범 로널드 더미스가 누구인지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들거든요. 로널드 더미스가 "그"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진짜 흑막을 드러내는 연출도 괜찮고요.

작가로서의 첫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전 편에 걸쳐 치밀한 복선과 단서를 배치하는 전개도 인상적입니다. 실종 아동을 찾는 전문가로 팀에 투입된 밀라를 적대시하는 로사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이죠. 이는 로사가 발견되지 않은 여섯 번째 실종 아동의 어머니로 유괴 사건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반전으로 이어지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아울러 여섯 번째로 실종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샌드라가 최초의 목표였으며,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실종 아동은 모두 샌드라의 조건에 맞춰 고른 것 - 때문에 모두 비슷한 또래의 외동 딸들임 - 이라는 이론도 아주 괜찮았어요. "ABC 살인사건"같은 아이디어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못한 만큼, 다른 작품 속 트릭으로 사용해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나 이렇게 사체가 발견된 장소와 얽힌 다른 사건이라는 설정에 대한 작가의 욕심은 지나쳤어요. 두 번째 실종 아동이 발견된 사건까지는 앞서 말씀드렸듯 아주 괜찮지만, 세 번째 실종 아동과 관련된 조지프 록포드, 네 번째 실종 아동과 관련된 펠더 사건은 그 규모와 잔혹성 모두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탓입니다. 어린 시절 동료 고아를 죽인 고아 소년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허나 엄청난 거부가 30여 명의 동성애 상대들을 모두 죽여 저택 인근에 매장하거나, 별볼일 없는 고아 출신 일용직 노동자가 고급 주택가에 거주하는 일가족을 6개월 동안 지배하며 학대하다가 잔혹하게 살해한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이 두 사건 모두 다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본 이야기와 비교해도 더 자극적이고 규모가 절대로 작지 않은 사건이라 본말전도가 된 느낌도 들고요. 

게다가 수사팀 본부에서 다섯 번째 소녀가 발견된 이유가 팀 내부에 있는 배신자이자 유괴의 조력자인 로사를 고발하는게 아니라, 수사팀의 실질적인 리더인 고란 게블러 박사가 저지른 살인을 폭로하는 것이라는 반전도 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작품 전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불필요한 반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앞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묘사된 게블러 박사의 일상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도 조금 입맛이 썼어요. 좋은 아이디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이렇게 까지 해서 독자를 속일 필요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과한 이야기들도 나름 재미는 있어서 그렇다 쳐도, 사건의 진짜 흑막이자 진범인 "속삭이는 자"에 대한 설정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누군가를 조종해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실제로도 여러 사건들이 있다고 하고, 저자도 범죄학자 출신이라 이런 사건들을 토대로 창작한 것으로 보이지만 작품 속에서 선보이는 그의 모습, 행적은 모두 모호하고 어떤 건 초능력에 가까운 탓에 설득력이 낮습니다. 물론 몇몇 디테일이 없지는 않습니다. 로널드 더미스(와 펠더)는 어린 시절부터 세뇌했다고 설명하며, 방법도 조지프의 회상에서 살짝 선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몇마디 말, 연극적인 무대 묘사에 그칠 뿐이라 별로 그럴듯 해 보이지는 않더군요. 알렉산더 버먼처럼 특별하게 세뇌하지 않고 약점을 잡고 흔드는 게 더욱 현실적으로 보였어요. 

그리고 그나마 방법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이 네 명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유괴할 타겟을 골라내었으며, 어떻게 실행범 빈센트 클라리소를 한 달만에 감방에서 교육시켜 원하는 대로 범행을 저지르게 만들었는지는 아예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이게 사건의 핵심인데, 결국 범행은 증명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리니까요. 여기에 더해 아돌프가 고란 게블러 박사가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완전 억지입니다.
심지어 마지막 교도소에서의 모습은 자신의 DNA 정보를 절대로 흘리지 않는다는 식이라 그냥 전능한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렇게 전능한 범죄자의 비법(?)이 소개되지 않는 점에서는 마에카와 유타카의 작품들이 떠오르는데 좋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겠죠. 이럴 바에야 로널드 더미스가 진범인 서스펜스 스릴러로 끌고가는게 모든 면에서 훨씬 나았을 겁니다.

또 반전에는 욕심을 냈지만 캐릭터 설정은 그렇지 못한 것도 옥의 티입니다. 고란 게블러 박사와 밀리 형사 모두 이런 류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레오 타입이라 굉장히 식상해요. 토마스 해리스, 제프리 디버 등 유명 작가들의 두뇌파 남성과 행동파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 속 캐릭터들과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차별화를 두기 위한 여러가지 설정, 예를 들어 밀라가 과거 유괴된 경험이 있고 고통에 무감각한 캐릭터라는 식의 설정도 무리수에 불과합니다. 고통에 무감각한 캐릭터치고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왜 이런 설정을 넣었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여러모로 욕심이 너무 과해서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재미를 선사해 주는 만큼 소일거리를 찾으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8/07/15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0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한 때에는 엄청나게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어느덧 손을 놓게 된 C.M.B인데, 오랫만에 본가 방문했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실망스럽네요. 모두 네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일상계 추리물인 "소우야 군의 실종" 외에는 마음에 드는, 평균 이상의 작품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가지고 있던 Q.E.D 쪽에 집중하는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에 확신만 심어줍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드림 캐쳐"

악몽을 막아주는 '드림 캐쳐'를 만들기 위해 장기 휴가를 내고 떠난 코하루의 남자 친구 다카오가 회사 동료로부터 소송당했다. 거액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코하루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박물관 전단지를 통해 드림 캐처를 아는 듯한 신라에게 도움을 청했다.
신라의 추리를 통해 일행은 알라스카로 향하는데...

주인공이 신라가 아니라 코하루와 다카오라는 전개, 그리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핵심 소재인 알라스카 원주민이 만든다는 부적 드림 캐처라는 소재는 독특합니다. 같은 몽골리안이라 원래 인디언인 다카오를 일본인으로 착각했다는 아이디어도 괜찮고요.

그러나 그 외의 이야기는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기대했던 추리물이 전혀 아닌 탓이 큽니다. 다카오를 찾던 일행이 그리즐리 곰과 맞서 싸운다는 모험물적인 전개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나마 유일한 추리 요소인, 다카오만 열 수 있던 서랍 속 공금이 사라졌다는 사건도 진상이 허무하기 그지 없어요. 망치로 책상의 뚜껑(?)을 땄다는 거라서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국적 풍광의 모험물일 뿐으로 평범 이하의 졸작입니다.

"소우야 군의 실종" 

대학 합격 후 도쿄로 상경한 츠가루에게 소우야라는 친구가 생겼다. 그러나 소우야는 츠가루에게 말도 없이 급작스럽게 사라지는데...

사라진 대학생을 찾아 나서는 일상계 추리물인데, 추리적으로는 여러모로 풍성합니다. 우선 소우야의 실종과 관계 있어보이는 여성 나루토의 행적을 찾는 과정이 괜찮아요.

  1. 그녀가 편의점에 온 이유는? 집이나 학교, 직장이 가까와서. 그런데 항상 정장 차림이었으니 직장이 가까웠을 것이다 
  2. 그런데 5월 이후부터 오지 않은 이유는? 다른 편의점이 근처에 생겨서, 혹은 오기 싫은 이유가 생겨서, 혹은 갓 입사하여 신입 연수를 본사로 왔다가 연수가 끝나 돌아가서 등... 

이렇게 추리가 이어지는데, 비약이 없지는 않지만 만화에는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소우야의 실종은 실종이 아니라 자의적인 것이며, 이는 츠가루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일 뿐이라는 진상도 좋았어요. 자기 중심으로 기준을 정하고 타인을 평가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인데 이를 잘 풀어낸 덕분입니다. 마지막의 하코네 관련 그림 퀴즈도 보너스로서 평균 이상은 하고요.

한마디로 좋은 일상계 청춘 추리물로 이번 권의 베스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Joker"

바르셀로나의 대부호 베르나르도가 결혼식 날 칼에 찔렸다. 현장에 있던 마우는 용의자로 몰리자 신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영국의 미술가 오웬 죤스와 그의 대표작이라는 트럼프 카드 그림이라는, 오랫만에 제대로 된 박물학 소재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오웬 죤스 소재는 이야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추리적으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광대일을 하는 하비가 다른 곳에 계속 있었는데, 베르나르도 결혼식에도 같은 복장의 광대가 있었다는 상황에서 왜 하비와 동생 리카르도의 알리바이만 강조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3의 인물이 개입된게 당연하잖아요? 바르셀로나 경찰은 다 바보인가...

딱 한 가지, 마우가 처음 찾아올 때 일으킨 교통 사고가 중요 단서가 된다는 복선은 괜찮았지만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주는건 무리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피터 씨의 유산"

1억불이 넘는 유산의 행방을 알리지 않고 죽은 피터 씨의 유산을 찾기 위해 마우와 신라가 나선다는 이야기로 피터 씨의 취미, 수집품이 유산과 연결되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피터 씨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도 그런대로 괜찮고요.

하지만 전개면에서는 아쉬움이 큽니다. 우선 색을 내는 재료들로 구성된 수집품이라는 단서는 흑백 만화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비슷한 소재로 쓰여진 요네자와 호노부"북관의 죄인" (in "덧없는 양들의 축연") 과 비교해 보아도 설명이 너무 부족했고요. 만화라면 소설보다 시각적인 단서를 주는게 더 쉬웠을 텐데,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전무하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또 피터 씨 사건의 진상에 대한 추리는 피터 씨가 죽기 직전 심던 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아들 엔조의 증언 하나만이 단서인데, 비약이 너무 심합니다. 그 꽃이 무엇이며, 그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는 건 재판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밝혀졌을 부분으로 시간도 오래 지난 시점에서 이를 가지고 범인 취급하는 건 말이 안됩니다. 빠져나갈 부분은 얼마든지 있었을 거에요. 엔조의 죄책감이 이로 인해 터져나간다는 뒷 이야기도 너무 작위적이었고요.
아울러 피터 씨가 가족들에게 이야기 하나 않고 벌이는 취미 행각도 좋게 보이지는 않더군요. 이래서야 실제로는 가족을 사랑한 것이었다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전혀 와 닿지 않으니까요. 살아있을 때나 잘할 것이지....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과 소재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전개가 아쉬워서 감점합니다.

2022/10/15

이별의 수법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5점

이별의 수법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근무하던 탐정사무소가 폐업한 탓에 빈둥거리다 미스터리 전문서점 ‘살인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하무라 아키라. 위험한 구석이라곤 없는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그녀의 불행은 멈추지 않는다. 뇌진탕과 갈비뼈 골절, 폐 손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말기 암으로 입원해 있던 왕년의 스타 배우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얄궂게도 그녀는 하무라 아키라에게 20년 전 가출한 자신의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하무라는 실종 직후 딸의 행방을 좇았던 탐정을 찾아가지만, 그 탐정 또한 20년 전에 실종되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의뢰인의 6촌 조카는 교살당했으며, 의뢰인의 집에서 일했던 두 명의 가정부의 행방마저 묘연하다. 왕년의 배우를 둘러싼,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잦은 살인과 실종 사건들. 20년 전 실종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들 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탐정은 왜 사라졌을까? 하무라 아키라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오래된 비밀과 마주한다. (출판사 제공 소개)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장편. '살인곰 서점' 시리즈가 국내에 출간된지는 꽤 되었는데, 이 작품이 살인곰 서점 시리즈 중에서는 첫 작품입니다. 해설을 읽어보니 시리즈 연착륙을 노리고 단편집부터 발간했던게 이유였다는데, 독자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 처사입니다.

작품은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답게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 스타일 그대로입니다. 별 것 아닌 의뢰로 보였는데, 조사가 진행되면서 의외의 사건으로 발전해 나가며 그 와중에 거친 (?) 액션이 폭발한다는 이야기거든요. 일반인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속 이야기가 많았던 다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와는 다르게 정통, 본토 (?) 하드보일드 냄새를 물씬 풍긴다는 점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과거 유명 여배우이자 유력 정치인의 접대부 (?)였던 의뢰인, 의뢰 대상인 실종된 여배우의 딸은 유력 정치인의 손녀 + 강간 피해자 + 연쇄 살인범, 딸이 저지른 연쇄 살인의 끝은 어머니 살해라는 내용이니까요. 스케일은 본토 못지 않아요. 제목부터가 <<기나긴 이별>>스러웠는데, 알맹이도 만만치 않았던거지요.

다행히 이런 스케일 크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잘 그려내고는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와 그녀가 조사하는 인물들이 현실적으로 잘 묘사된 덕입니다. 전개도 매끄러우며 하무라 아키라의 조사 과정도 아주 현실적이에요. 경찰이 아닌 일반인 탐정이 가능했을 조사의 최고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남다른 하무라의 눈썰미와 추리력은 여전하고, 사소한 단서들로 진상이 드러나는 구조도 잘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 사건 외에 함께 진행되는 사건들의 완성도도 높아요.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계기가 되었던, 백골 발견 사건처럼요. 살아있는 줄 알았던 아내 에이코가 알고 보니 변장한 남편이었고 백골이 에이코였다는 트릭인데 꽤 그럴듯했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탐정 이와고 사건의 진상도 설득력 높아서 마음에 들었고요. 장편 속에서 지나가는 사건으로 등장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했을, 완성도 높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하무라 아키라 2기 살인곰 서점 시리즈의 막을 여는 작품답게 백곰 탐정사 설립 유래도 등장하고,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 등 팬으로 즐길거리도 많아서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읽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2016년 발표 당시 이런저런 리스트에서 베스트 10 안에 포함된건 - 주간문춘 베스트 미스터리 10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6위 등 - 당연하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전개 중간중간마다 억지스러운 부분이 눈에 걸리는 탓입니다. 우선 후부키가 하무라에게 딸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 것 부터가 억지입니다. 과거 시오리가 사라졌던건 후부키가 시오리의 살인 행각을 알고난 뒤 시오리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후부키는 시오리가 죽었고,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가 사체를 처리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녀 주변에 시오리를 닮은 누군가 (알고보니 진짜였지만)가 출몰했기 때문에 그 진상을 알기 위해 사건을 의뢰했다는데, 이건 말도 안됩니다. 20년 전에 시오리를 처리했다는 충직한 비서 야마모토는 건재했으니까요. 그냥 야마모토에게 연락해서 진상을 알아보면 될 일이었어요!
야마모토가 시오리와 관계를 가진 탓에 미안해서 연락을 못 받았다는 묘사가 있지만, 그랬다면 의뢰는 비서를 찾아달라는걸로 족합니다. 시오리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면, 탐정의 조사를 통해 과거의 연쇄 살인이 드러날지도 모르잖아요. 20년 전 처럼 시오리 친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실제로 하무라는 시오리의 부친이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그녀가 사라진 이유 등 모든 진상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억지스러운 의뢰였습니다.

시오리의 연쇄 살인도 하무라의 조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만, 급작스러울 뿐더러 비현실적인 사건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이건 시오리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그녀의 캐릭터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탓입니다. 고등학교 때 성폭행을 당했었다는 과거 언급이 전부인데, 이 아픈 기억이 연쇄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전혀 설명되지 않고, 범행에 대한 묘사도 전무하기 때문이지요. 그나마 야마모토의 여동생 유코는 그녀가 시오리를 도발했다는 말이라도 나오는데,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는 대체 왜 죽인건지도 모르겠어요.
후부키가 시오리의 최종 목표였다는 것도 의문입니다. 그럴거라면 과거에 가정부와 이모 할머니를 살해했을 때 같이 죽이려 했어야지요. 또 시오리가 입원 중이었던 병원을 몰래 빠져나온지도 3주 정도 지났다고 설명되는데, 왜 주위만 맴돌고 진작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뚱뚱한 시오리가 후부키를 덥치고, 그걸 막는 하무라와의 사투는 지나칠정도로 전형적이면서 크리쳐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어서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고요.
매니저 야마모토의 복수 - 성폭행을 저질러 시오리를 연쇄 살인마로 만든 안자이에 대한 - 도 뜬금없었고, 20년 전 1990년대에 이렇게 많은 죽음이 제대로 조사되지 못한 이유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단순 실종이나 자연사로 위장한 이모 할머니 사건이야 그렇다쳐도 명확한 살인 사건이었던 하나 사건, 유코 사건은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을텐데 그 경과는 대충 넘어갑니다.

또 곁가지 사건 중 친구인 줄 알았던 악녀 마미가 얽힌 사건은 비중은 제일 큰 반면 내용은 별게 없어서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이벤트를 가장한 불법 카지노 운영 방식에 대한 추리는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순진한 사기 피해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무라를 속여넘긴 프로 범죄자이자 일종의 생활밀착형 사이코패스 마미 묘사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에 계속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의 확장형이기도 한데, 이후 시리즈가 생활밀착형으로 방향을 전환하게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만큼은 분명합니다. 단점을 잔뜩 언급하기는 했지만 읽는 동안에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나쁜 토끼>>의 비현실적인 세계관에서 생활밀착형 하드보일드인 살인곰 서점 시리즈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작가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9/21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하빌리스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의사 데지마 하쿠로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었다. 어머니 데이코는 병원 재벌 야가미가 후계자 야스하루와 결혼해서 이복동생 아키토를 낳았다. 이후 하쿠로는 야가미가와 연을 끊고 데지마 성을 쓰게 되었고, 어머니마저 16년 전 고향 집에서 사고로 죽고나서는 가족과 아예 멀어졌다.
그런데 동생 아키토의 아내라는 미녀 가에데가 나타나 아키토가 실종되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쿠로는 가에데를 도와 오랫만에 야가미 가문 사람들과 이모 준코 등 친척들을 만나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에 수수께끼가 얽혀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2016년에 발표했던 장편. 적당한 분량에 꽤 많은 수수께끼를 담아내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대충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성공한 사업가인 아키토의 실종
  2. 가즈키요의 기묘한 추상화와 야스하루의 연구
  3. 데이코 살해 사건의 진상
  4. 데이코가 물려받았다는 귀한 유산의 정체
여기에 야가미 가문의 유산 상속 문제, 그리고 데이코가 고향집의 존재가 더해져 이야기는 아주 풍성합니다.

핵심 수수께끼 중 하나인 가즈키요의 그림과 야스하루의 연구에는 뇌과학, 그 중에서도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사용되어 재미를 더해줍니다. 과학과 관련된 최신 소재를 작품에 녹여내는데 능숙한 히가시노 게이고답더군요. 뇌를 자극하여 의도적으로 서번트와 같은 천재를 만들어내는게 가능하다는 이론으로 하쿠로의 친부 가즈키요는 뇌종양에 걸린 뒤, 야스하루의 생체 실험에 가까운 치료를 받고나서 '서번트 증후군'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소수의 분포에 법칙성이 있음을 증명'하는 그림 '관서의 망'을 그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진상은 세 번째 수수께끼인 데이코 살해 사건의 진상, 그리고 네 번째 수수께끼인 데이코가 받은 유산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수학자였던 데이코의 동서(하쿠로의 이모부) 겐조가 그림을 알아보고 탐냈고, 이를 알아챈 데이코의 입을 막으려 그녀를 살해했던겁니다. 마지막 데이코가 받은 유산은 '관서의 망' 이고요.

또 겐조가 범인으로 드러날 때, 최소한 야스하루의 보고서를 고향집에 가져다 놓을 수 있었던건 겐조밖에 없다는 추리는 아주 괜찮습니다. 유마가 보고서를 발견하기 전, 하쿠로가 왔을 때 보고서는 없었습니다. 보고서를 가져다 놓은 범인은 왜 진작에 가져다 두지 않있을까요? 그 이유는 고향집이 있다는걸 그날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겐조밖에 없습니다. 하쿠로가 방문하여 진작에 어머니로부터 받았다는 거짓말과 함께, 준코 이모에게 어머니의 유품인 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겐조는 16년전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기에 앨범이 고향 집에 있었다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이코가 하쿠로에게 앨범을 줄 수는 없으니, 하쿠로는 고향 집에서 앨범을 가져왔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겐조는 고향집이 그대로 있다는걸 그날 알아챘고, 보고서를 건네주어 하쿠로 일행이 고향집에서 손을 떼게 만든 뒤 '관서의 망'을 독차지할 속셈이었던 겁니다. 꽤 잘 짜여진 추리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수수께끼와 이와 관련된 설정들은 모두 별로입니다. 아키토가 실종된 이유부터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겐조가 아키토를 납치하려 했는데 그걸 사전에 알아챈 경찰이 아키토가 실종된 척 하고 아키토의 아내를 가장한 수사관 가에데를 사건에 투입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공개 수사로 전환해서 주모자를 체포했어야죠. 그랬다면 데이코의 고향집과 '관서의 망'도 불타지 않고 남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수수께끼는 거의 모두 겐조의 자백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도 추리 소설로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안드는건 주인공 하쿠로입니다. 첫 눈에 가에데에게 반했다치더라도, 엄연히 동생의 아내입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은 최악이에요. 심지어 동생은 실종 상태인데 말이지요. 야가미 가문의 유마가 가에데에게 추근거리는걸 불쾌해하고 방해하지만, 하쿠로도 그에 뒤지지 않게 추근거리는 상황이라는걸 본인만 모르더라고요. 동물 병원에서 일하는 가게야마와의 관계도 뭔가 싶고요. 한마디로 '발암' 캐릭터였습니다.
가에데도 만만치 않아요. 비현실적이며 애매한 탓입니다. 팜므 파탈도 아니고,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활약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목의 '위험한 비너스'는 가에데를 의미하는 듯 한데, 그 정도 비중과 현실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하쿠로라면, 그녀의 주장을 절대 믿지 않았을겁니다.
이런 별로인데다가 비현실적인 커플을 주인공으로 삼느니 아키토를 주인공으로 해서, 아키토가 재력과 힘을 손에 넣기 전인 중학생 쯤 시기에 어머니 살해 사건과 아버지 그림의 행방을 쫓는 이야기를 그려내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키도 크고 미남인데다가 천재이니까요. 하쿠로는 조력자가 어울리는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기본적인 재미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주인공과 기본 설정이 문제일 뿐이지요. 당연히 영상화되었던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네요. 영상물에 더 어울리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주연이 츠마부키 사토시!

2022/05/29

나쁜 토끼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점

나쁜 토끼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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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무라 아키라는 가출 소녀 미치루를 찾는 의뢰를 수행하던 중 칼에 찔렸지만, 이 사건을 해결한 덕분에 로열 할리우드 호텔 체인 회장 다키자와의 의뢰를 받게 되었다. 미치루의 친구이기도 한 딸 미와를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고압적인 다키자와 때문에 조사는 난항을 겪었지만, 미치루의 도움으로 공통의 친구였던 아야코가 미와 실종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아야코는 마약 중개인에게 살해당했고, 소녀들의 공통 친구인 가나도 실종되는 등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결국 하무라 아키라도 납치 후 감금당하고 마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첫 장편입니다. 국내 소개된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초기작이 지금 소개되는게 조금 뜻밖이네요. 

하무라 아키라의 불행은 이 작품에서도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가출 소녀를 집으로 데려오는 간단한 의뢰에 미친 강간마 탐정이 끼어드는 바람에 격투 끝에 발이 부러지고, 친구가 교제하는 남자가 사악한 혼인 빙자 사기범이라는걸 알게 되고, 또 다른 실종 소녀를 찾는 의뢰는 자기 밖에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처음부터 고생하다가 납치 당해서 이틀 동안이나 갖히고, 마지막에는 사냥 게임의 사냥감으로 죽을 뻔 하니까요. 이 정도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도 불행과 고생으로는 1, 2위를 다툴만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건질건 없습니다. 오히려 억지스러운 설정 문제가 도드라집니다. 비교적 현실적이며, 일본의 현실에 잘 어울리는 하드보일드물이라고 여겨지는 후기작 - 특히 살인곰 서점 시리즈 - 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에요. 부유하지만 고압적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다키자와 가족과 다이라 가족 묘사부터가 그러합니다.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흉내내지만 캐릭터들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입니다. 딸의 소유물은 마음대로 내다 버리면서 거액의 용돈을 주고 남자와 만나는건 아무렇게 생각하지도 않는 다키자와, 어린 시절 유괴당한 뒤 죽은 아들을 못 잊어 딸을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다이라 미치루의 엄마 등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들이 한 가득입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불행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자기만 아는 괴물로 묘사되는 것 역시 읽기 불편했고 현실적이지도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범인들이 버젓이 사람을 죽이고, 납치하고, 경찰서에서 유력한 용의자가 눈에 젖가락을 꽂는 방법으로 자살한다는 식의 전개도 억지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현대물"이기 때문입니다. 개중 백미는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명사들의 모임 '28회'에서 사람을 사냥감으로 하는 게임을 했다는 진상입니다. 

사실 사냥꾼이 사람을 사냥한다는 소재를 가진 장르 문학은 많이 있습니다. 자기 소유의 섬으로 난파해 온 생존자들을 사냥하는 게임을 즐긴다는 내용의 "가장 위험한 게임"이 우선 떠오르지요. SF "불사 판매 주식회사"도 고용한 인간 사냥꾼들과 승부를 펼치는 이야기가 등장하며, 단편 "요트클럽"은 이 작품처럼 나름 상류층 사람들 모임에서 친목 행사로 사람 사냥이 벌어진다는 설정이고요. 하지만 이 작품처럼 막 나가지는 않아요. "불사 판매 주식회사"은 이야기가 허구라는게 이미 시대 배경 등으로 등장하고, "아주 위험한 게임"은 개인 소유의 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벌이는 게임입니다. "요트클럽" 역시 망망대해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박 승객들을 사냥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나마 말은 됩니다. 그러나 현대 일본에서 노숙자도 아니고, 평범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사냥 게임을 한다? 그것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아무리 봐도 억지스러우며 설득력도 낮습니다. 

노나카가 사냥 게임 사냥감으로 쓰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유혹에 빠지기 쉽고 시끄러운 주변 인물이 없는 젊은 여자를 찾고 있었다 하더라도, 친구 딸의 친구를 끌어들인다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최소한 다른 연줄을 활용하는게 맞았어요. 이 건을 계기로 사기가 파토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러했고요.

작위적이며 불필요했던 요소들도 너무 많아요. 가면을 쓰고있던 딸 미와를 사살한게 아버지 다키자와였다는게 대표적입니다. 하무라 아키라를 납치해서 이틀 동안 가두어 놓는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정황을 보면, 감금 장소에 시체를 묻었다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을 거에요. 범인들의 범죄 행각을 보면 하무라 아키라 한 명 더 죽인다고 해도 죄상이 달라질 것도 없고요. 사건이 커질걸 우려했다? 미와와 가나의 실종은 경찰도 알고 있었습니다. 고아나 다름없는 가나야 그렇다쳐도, 대기업 회장 다키자와의 딸 실종은 이야기가 다르지요. 이래저래 하무라 아키라를 죽여서 입을 막는게 당연했습니다.

이외에도 하무라의 친구 미노리가 혼인 빙자 사기범 우시지마 준타와 교제하면서 일어나는 트러블, 도토종합리서치 사원 세라가 일으킨 트러블들도 불필요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보통 정통 하드보일드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이는 트러블 들이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요란스럽기만 할 뿐,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냥 분량만 차지할 뿐이지요.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었습니다. 노나카가 범인이라는걸 추리해 낸 것처럼 그려지지만, 당연히 노나카밖에 용의자가 없게끔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대단한 추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독자가 함께 고민해볼 만한 단서도 딱히 제공되지 않으며, 제목이자 게임의 유래가 되는 동요의 존재는 억지스럽기만 합니다. 대부분의 수사는 탐문, 그리고 관계자들 증언을 통해서 나아가고 있어서 탐정이 딱히 필요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물론 볼만한 부분이 없는건 아닙니다. 하무라 아키라라는 독특한 탐정에 대한 묘사만큼은 발군이에요. 그녀에 대한 세세한 일상 묘사로 소심하면서도 정의로운 그녀의 매력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미와의 엄마 아스미가 자살한 탓에 노나카가 궁지에 몰리는 과정이라던가, 미치루가 발가락을 잘 쓰는게 특기라는 극 초반의 복선도 잘 활용되고 있고요. 악당들이 모두 몰락하고 만다는 결말은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후반부 작품들 수준에는 확연히 미치지 못합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1/11/14

Q.E.D Iff 증명종료 16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1.5점

Q.E.D Iff 증명종료 16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의 두 번째 시즌이라고 할 수 있는 iff도 16권 째입니다. 그런데 수록된 두 편의 이야기 모두 억지스러운 설정과 전개로 점철된, 수준 이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시계탑"은 그나마 추리적으로 약간 볼만합니다만 현실성이 부족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또 두 편 모두 Q.E.D 시리즈일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도 감점 요소에요. 토마와 가나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내용만 보면 '지나가던 명탐정이 수수께끼의 괴사건을 해결한 뒤, 제 갈 길을 간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 애정을 담아서 이 정도이지, 팬이 아니었다면 그 이하 별점도 가능했을 졸작이었어요. 읽다가 힘이 다 빠질 정도였는데, 후속권에서는 부디 만회해주기만을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편 모두 스포일러가 그렇게 의미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시계탑"

시계탑이 있는 건물에 저렴한 애프터눈 티 세트를 파는 카페가 생겼다. 가나들은 열광했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기업가 데마키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로 바뀌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큰 적자를 보던 끝에, 데마키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투자자 다이바가 실종되고 데마키가 도망가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조사해보니, 시계탑이 있는 건물에서 지난 60년간 2건의 살인 사건, 3건의 실종 사건이 있었다는게 밝혀지는데....

이전에도 등장했던 타나바타 형사가 재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사건은 원래 시계탑 건물에 거주했던 화가 오키 실종이 원인이었습니다. 오키는 시계탑 주인 하토야 가문의 딸 하라코와 사랑에 빠졌었는데, 이를 반대하던 하라코의 오빠 히카루와 만난 후 사라졌었지요. 당시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수색을 진행했지만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고, 사건은 오빠가 말한대로 오키가 돈을 받고 떠난 걸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믿지 못했던 하라코는 시체를 찾기 위해 시계탑을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샅샅이 뒤진 끝에도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자, 살인 사건을 저지를만한 사람에게 건물을 빌려줬습니다. 그들이 살인 사건 후 시체를 숨긴 곳에 오키의 시체도 있을거라 생각해서요. 즉, 일종의 집단지성?에 기댄 셈입니다.

하지만 너무 어설픈 설정입니다. 건물을 빌리려는 사람 중 누가 살인을 저지를지를 어떻게 예상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건물에서 살인이 일어나게 만든 뒤 범인들이 숨긴 시체 실종 사건으로 처리된 시체들)를 따로 가져다 버리는 것보다, 돈을 써서 전문가에게 시체 찾기를 요청하는게 더 상식적일 겁니다. 애초에 범인이 시체를 숨길만한 곳을 조사 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오키의 시체가 시계의 동력 역할을 하는 돌 주머니를 이용하여 감추어졌다는 진상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시계탑 기둥을 조사하지 않았을리가 없으니까요. 설령 사건 직후에는 못했다 하더라도, 시계가 작품에서처럼 동작 이상을 일으켰다면 시체는 당연히 발견되었을겁니다. 그러나 토마가 나설 때 까지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시계를 정기적으로 관리했다는 언급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아울러 주머니에 감추어진 시체가 백골이 될 때까지 들통나지 않았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졌어요. 거주자도 있었고, 이런저런 가게가 있었는데 아무런 냄새나 흔적 없이 시체가 자연스럽게 백골이 될 리가 없잖아요. 하긴, 시체가 수십년간 돌 주머니 줄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 자체가 완전 억지입니다. 사건이 대충 무마된 후에, 살인을 저질렀던 히카루가 직접 시체를 없애는게 당연하니까요. 하라코 본인이 건물 안에 범인들이 숨겨놓은 시체를 그대로 놔 두지 않고 따로 처리해 버렸던 것처럼요. 오빠 히카루가 오키의 시체를 진작에 처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근거는 전혀 없어요.

토마와 가나가 사건에 휘말린 이유도 설명이 부족하며, Q.E.D 특유의 학습 만화스러운 부분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서 Q.E.D 시리즈가 맞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의미있는 정보는 게스트 하우스 사업이 실패한 원인 - 외국인 여행객들은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역이 가까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식사도 쉽고 싸게 할 수 있게 편의점이 가까와야 한다, 목욕탕에 문제가 있다는 클레임을 무시하면 안된다 - 을 아르바이트 아가씨가 읆조리는 정도만 눈에 뜨였을 뿐입니다.

그나마 소소한 추리, 시계탑 건물에 관련된 나쁜 소문을 없애기 위해 자기 소유 회사가 운영하는 가게를 오픈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려 했다면, 왜 계속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 다른 사업자에게 임대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괜찮았습니다. 다이바 실종 사건에서 사용되었던 무거운 우물 뚜껑에 시체를 묶어 놓았다는 시체 은닉 트릭도 기발했어요. 경찰도 뚜껑이 너무 무거워서 내려 놓지 않고, 옆으로 살짝 옮겨 놓고 우물 속을 조사해서 들키지 않았다는건데, 상황만 놓고 보면 꽤 그럴듯했으니까요. 출동한 경찰조차 무거워서 완전히 내려 놓지 않은 뚜껑을 짧은 시간 동안 혼자서 내려놓고, 시체를 위에서는 안 보이도록 묶은 뒤 다시 혼자서 올려 놓았다는건 여러모로 무리라고 생각되긴 합니다만.

하여튼 별점은 1.5점입니다. 수준 이하의 이야기였습니다.

"마드무아젤 클루조" 

파리 프루니에 미술관에서 "달과 거북이"가 도난당했다. 프루니에 관장의 요청으로 실수투성이 마리안느 클루조 경부가 사건을 맡게 되었다. 범인이 요구했던 50만 유로는 전달 과정에서 사라졌지만, 다행히 그림은 그림 애호가 루이 오규스트의 도움으로 미술관에 무사히 반환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널리 보도된 탓에 프루니에 미술관은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클루조 경부 혼자의 원맨, 아니 원우먼쇼가 펼쳐지는 작품으로 오규스트가 수상하다는걸 눈치챈 뒤 그를 미행하여 그가 원래는 배우였다는걸 알아낸다던가, 돈이 든 가방에 일부러 홍차를 쏟아서 나중에 가방이 바뀌치기된게 아니라는걸 증명한다는 식으로 사건 해결은 모두 그녀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냅니다. 때문에 이 작품은 Q.E.D 시리즈일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토마가 하는 일은 전무하다시피하며, 가나가 우연히 크루소 경부와 엮여서 수사에 동행한다는 것도 억지스럽기만 하니까요. 프랑스 경찰이 생면부지의 일본인 관광객?과 수사를 벌인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추리적으로도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그림 도난과 그림값을 빼돌리는 두 건의 범행이 벌어지는데, 두 개 다 추리가 필요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림 도난 사건은 인기없는 미술관에 손님을 끌기 위한 프루니에의 계획이라는게 처음부터 공개되거든요. 오규스트의 정체는 추리가 아니라 미행으로 알아내고요. 배우라는 오규스트의 정체는 미행이 아니었어도 경찰 조사로 쉽게 알아낼 수 있었겠지만요.

'경부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실수 투성이인 클루조 경부 캐릭터도 추리 소설에서는 너무나 흔해빠진 설정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왜 새 캐릭터를 등장시켰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름부터 당대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에서 따온 듯 싶은데, 뭔가의 콜라보레이션 기획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미술품 도난에 대한 짤막한 정보가 공유되는 것 외에는 건질게 하나도 없는, 전작은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형편없는 졸작입니다.

2016/09/03

크리피 - 마에카와 유타카 / 이선희 : 별점 2점

크리피 - 4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외딴 주택가에 거주하며 가끔 TV에 출연하던 범죄심리학 교수 다카쿠라는 제자 린코와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사인 고교 동창생 노가미가 연락해서 8년 전 일어났던 미제 사건인 혼다 일가 실종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노가미는 다카쿠라의 집까지 직접 찾아올 정도로 열의를 보였지만, 실종된 후 다카쿠라 옆집 노모녀 화재 현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뒤 다카쿠라의 옆집 니시노 일가의 수상쩍은 가족 관계가 점차 불거졌고, 결국 니시노의 폭주가 일어나는데...

격조했습니다. 인륜지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중대사인 "이사"를 하느라 지난 한 주간 정말 정신없이 보냈네요.

어딘가의 멋드러진 소개글을 보고 읽게 된 작품입니다. 작가 마에카와 유타카의 출세작이지요. "검은 집"처럼 평범함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싸이코패스의 가공할 범죄를 그리고 있습니다. 약간의 미스터리가 가미되어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초~중반부는 인상적입니다. 다카쿠라가 거주하는 주택 단지 구성이 8년 전 히노 시에서 일어난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 현장과 유사하다는게 드러나고, 옆집 남자 니시노와 가족이 뭔가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다가 갑자기 그 집 딸이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그 뒤 급작스럽게 옆집 남자가 돌변하여 폭주하는 과정까지는 정말 대단합니다. 너무나 평범해 보였던 니시노가 식칼을 집어들고 광기를 보이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백미입니다.

알고 봤더니 옆집 남자 니시노가 모든 연쇄 살인의 범인인 "위장 살인마"이며, 그의 정체는 사건을 추적하다가 실종된 후 결국 사체로 발견된 형사 노가미의 형 야지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전개도 괜찮았어요.

하지만 좋았던 중반부를 지나 노가미가 유서처럼 남긴 편지를 통해 야지마의 범행이 일목요연하게 밝혀진 후부터는 힘이 빠져버립니다. 370페이지라는 분량에서 240~50페이지 정도가 되면 진상이 밝혀지는데, 이후는 완전히 사족입니다. 너무 일찍 답을 정해놓고 이야기가 흘러가버리니 재미가 있을 리 없지요. 이렇게 쉽게 밝혀질 것을 뭐 이리 질질 끌었나 싶을 정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수사도 어설펐고요.

게다가 마지막 반전 — 야지마가 죽인 줄 알았던 노가미는 사실 전처 소노코가 죽였다, 야지마는 뒷처리를 도와준 것일 뿐이다, 편지 역시 소노코가 쓴 것이다 — 는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정의감을 불태운 줄 알았던 노가미가 형 야지마 못지않은 쓰레기일 뿐이었다는건 독자를 우롱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진상을 밝히는 다카쿠라의 추리도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문제도 크고요. 소노코의 양녀 유가 사실은 실종된 여고생 미오였고, 야지마는 이미 소노코에 의해 살해된 뒤였다는 나름의 해피엔딩(?)을 그리기 위한 억지 전개에 불과합니다.

이외에도 야지마가 구태여 오와다 옆집에 살면서 정보를 캐내 스토커 짓을 한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뭔가 있는 것으로 보였던 주인공 다카쿠라와 여대생 린코의 플라토닉한 사랑 이야기는 야지마와의 최종 대결에서 오와다가 죽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온 것 이외의 가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린코는 비중에 비하면 하는 것이 너무 없거든요. 비중을 볼 때 다카쿠라의 불륜 상대가 아니라면 최소한 범죄 심리학 전문가로서 뭔가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위장 살인마"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한 가족에 침입하여 가장 행세를 하며 가족들을 한 명씩 차례로 죽이는 악의 천재 야지마의 능력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 점입니다. 작품의 설득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야지마가 어떻게 가족들을 지배했는지를 보다 자세하게 서술했어야 합니다. 작중 묘사된 정도로는 설득력이 너무 약해요. 다카쿠라가 잠깐 설명한 대로 공포와 협박, 좁은 공간의 3가지가 갖춰져 마인드 콘트롤이 용이했다 하더라도, 외부 활동을 했음이 분명한 아들과 딸이 잠자코 오랜 기간 그의 말을 따랐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이지가 않는 탓입니다. 비슷하게 싸이코패스의 치밀한 범죄가 그려지는 작품들 — 앞서 말씀드린 "검은 집"을 비롯해서 — 은 동기는 물론 범행 과정에 있어서도 범행의 현실성을 높게 그리고 있는데 말이지요. 확연히 비교되는 단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역대급 초반부를 지녔지만 중반부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해서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좋은 리뷰로 존경해 마지않는 정윤성님의 리뷰에 100% 동의하는 바입니다.

조금 조사해보니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으로 영화가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불필요한 요소 (린코, 반전 등)를 다 쳐내고 범죄 심리학자 다카쿠라와 형사 노가미 (그리고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다니모토)가 악의 천재 야지마와 대결하는 구도를 보다 선명하게 그려낸다면, 즉 선–악 구도를 명확하게 각색한다면 소설보다는 훨씬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3/12/06

오시리스의 눈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이경아 : 별점 3점

오시리스의 눈 - 6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만장자이자 이집트학의 권위자인 존 벨링엄이 친척집에 방문한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실종되었다. 근처에서 실종 당일 몸에 지니고 있었던 스카라베 장식만이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2년 후, 의사 버클리는 왕진 중에 존의 동생 고드프리를 진료하게 된 인연으로 그의 딸 루스와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존의 실종과 그의 기이한 유언으로 인해 궁핍해진 고드프리와 루스를 돕기 위해, 그리고 불거진 유산 문제로 버클리는 은사인 손다이크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뒤이어 늪지대에서 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되는데...

오스틴 프리먼의 명탐정 손다이크 박사가 활약하는 장편. 1911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이 책까지 나오다니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네요.

국내 출간된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작품입니다(그래봤자 서너권이지만...). 대표작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네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미있거든요. 사건은 딱 한 개, 존 벨링엄 실종 사건 뿐인데 복잡한 유언장을 엮어서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두 개의 트릭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트릭 두 개 모두 지금은 널리 알려진 단순한 것이지만 사건에 딱 맞게 적절하게 쓰여 감탄을 자아내고요. 단순해서 설득력도 높습니다. 특히, 제목에서부터 중요하게 언급하는, 고대 이집트 유물을 이용한 기상천외한 사체 은닉 트릭이 볼거리입니다. 지금은 흔한 수법이지만 작품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원조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하여 트릭을 파헤쳐 진상을 밝혀내는, 고전 "정통 본격물"다운 미덕도 장점입니다. 추리의 과정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넘치는 것은 당연하고요. 과학 수사로 유명한 손다이크답게, 시대를 앞서간 증거 수집 방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X선을 이용하여 미라의 내부를 촬영하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니까요.

아울러 중간중간에 버클리와 루스의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가 적절하게 삽입되는 식의 완급조절도 아주 탁월합니다. 이러한 연애이야기는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과도 비슷해요. "붉은.."에서 화자였던 저비스가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격상(?)되었을 뿐, 그의 후배인 버클리가 동일한 역할로 등장하여 읽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애정 행각을 큰 비중으로 펼친다는 점에서요. 저는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적인 면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인데 출간 시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낸 것 같네요.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로, 출간 시대를 고려하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의 동기가 설득력있게 그려지지 않은 점입니다. 유언장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유언장의 맹점을 이용해 거금을 확보할 생각으로 잔꾀를 부렸다는 설정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명되지 않거든요. 그의 말대로 사건의 발단이 애시당초 완전한 우연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유언장의 맹점을 활용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전혀 모르겠어요. 작중 손다이크 등의 입을 빌어 설명되듯 "그의 동생에게 유산을 남겨주기 위한" 목적의 유언장인데 말이죠. 벨링엄을 살해하고 시체를 다른 곳에 숨길 생각이었을까요?

또 이 동기를 독자는 마지막 순간에서나 알 수 있다는 점도 정통 본격물로는 약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동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으니, 독자가 범인을 추리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손다이크 박사의 추리대로 범인은 그 사람일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혐의를 둘만한 설정이 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아울러 이집트 미라 안에 시체를 넣는다는 생각도 기발하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었을것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으로 묘사되는데 그러한 작업을 할 시간과 장소가 있었다면, 다른 식으로 처리하는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었겠죠. 예를 들어 염산같은걸로 녹인다는 식으로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쓰여진 시대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재미를 생각한다면 별점 3점은 충분하죠. 저와 같은 고전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책도 예쁘게 잘 나왔지만 뒤의 해설 역시 꽤 풍성해서 좋네요. 무엇보다도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 연재로 유명한 유영규 기자가 쓴 글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2012/01/19

다잉 아이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1.5점

다잉 아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 '양하'의 바텐더 신스케는 손님에게 습격당해 머리에 중상을 입고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회복한 뒤, 사건의 원인이 자신이 일으킨 1년 반 전의 교통사고에 대한 복수라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들었다. 그러나 신스케는 그 사고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신스케는 어렴풋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물만두님의 리뷰 때문에 읽게 된 책. 

그런데 물만두님의 극찬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물만두님의 극찬 요지는 양심 없는 가해자들에 대한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짙다는 것인데,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범인인 우에하라 미도리는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고, 동승자이자 사후종범인 기우치는 미쳐버린 약혼녀의 뒷치닥거리나 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으니 사는 게 지옥일 텐데, 양심 없이 사는 가해자라는 건 어울리지 않잖아요.

물론 사고를 잊고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던 또 다른 가해자인 신스케와 에지마에게 복수의 철퇴를 내려 경종을 울린다는 해석도 가능하긴 합니다. 그러나 진범이라 할 수 있는 에지마가 걸려든 것은 순전한 우연 - 신스케 살인미수가 루리코의 잠복과 겹친다는 - 에 불과하다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게 아닌가 싶어요. 이래서야 경종을 울린다기보다는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니까요.

또 우연이 많이 개입되어 있고, 무리하고 작위적인 설정이 많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단 죽어가는 피해자의 눈이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는 기본 설정부터 작위적입니다. 게다가 우연찮게 머리를 맞고, 우연찮게 사고 및 사고와 관련된 일들만 잊어버렸다... 참 편한 설정이기는 합니다만 말도 안 되죠.

그 외에도 유니버설 맨션이라는 루리코의 거처를 알게 된 순간 경찰에 신고만 해도 범행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 출동한 형사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출동한 뒤 우연찮게 실종된다는 것과, 왜 경찰은 형사가 실종되었는데 핸드폰 통화 내역과 발신자 조회도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중간에 신스케가 발견한 레이지의 SF 소설 같은 일기, 신스케의 애인 나루미가 남자가 없었다는 증언과 그녀의 실종을 대비시키는 전개 등 작위적인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요.

무엇보다도 루리코가 신스케를 유혹하고 정사를 나눈다는 설정은 정말이지... 뭔지 모르겠습니다. 미모의 여자가 몸까지 바쳐가며 초호화 맨션에서 같이 살 것을 요구한다니! 이런 복수라면 오히려 환영하는 피해자가 더 많을 것 같아요.

그냥 순수한 원한과 복수를 서스펜스 스릴러 형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의도였을까요? 그렇다면 범인보다도 범행을 지켜보기만 했던 목격자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던 "살인 더하기 다섯"처럼, 미나에 사건의 원인인 고용인을 막 다루는 후카미 집안 사람들도 같이 응징했어야 하는 게 더 합리적이었을 것 같은데, 이건 뭐 신스케에 대한 복수극도 아니고 대체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서두의 죽어가는 미나에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와 더불어 '원한의 눈길'이라는 지극히 동양적이면서도 신비한 동기를 서스펜스 스릴러로 포장한 작가의 능력은 인정합니다. 신스케의 사고 - 루리코의 등장 - 나루미의 실종 - 기우치와의 만남 - 감금과 탈출 등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느껴지는 재미도 탁월하고요. 그러나 작가의 장점인 트릭과 플롯의 조화는 사라지고, 작위적인 설정과 우연으로 점철된 전개, 불필요한 자극적인 묘사로 싸구려 펄프 픽션 느낌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네요. 좋게 봐줘도 흔해빠진 서스펜스 스릴러물 정도니까요.

물만두님의 리뷰는 경애하는 바이지만, 이 작품만큼은 분명하게 다른 견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에서는 최악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20/08/23

백사당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별점 3점

백사당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겸 편집자 미쓰다 신조는 다쓰미 미노부라는 남자의 괴이한 체험을 들은 뒤, 그가 쓴 원고를 건네받았다. 그런데 그 원고를 읽은 미쓰다 신조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 둘 씩 괴이한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젊은 여성 편집자 다마가와는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미쓰다 신조는 이 현상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는 다쓰미 미노부를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교토에 있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집에서도 괴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실종된 다마가와는 돌아온 뒤 눈 앞에서 자살하는 등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는데....

직전 "사관장"에 이어 읽은 미쓰다 신조작가 시리즈 3부작 마지막 작품입니다. 읽고 나니 "사관장"을 읽고 든, 미완성같다는 느낌이 맞았더라고요. "사관장"은 이야기의 도입부이자 전편이고, 이 "백사당"으로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하나의 긴 장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백사당"을 통해 "사관장" 속 중요한 수수께끼들의 진상이 밝혀지거든요. 일본에서는 '작가 시리즈 3부작 전편 (사관장)'과 '작가 시리즈 3부작 후편 (백사당)'으로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 중 하나만 읽게 되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만해도 깜빡 그럴 뻔 했습니다.

하여튼, 작품은 미쓰다 신조가 겪은 괴기 체험에 기반을 둔 '작가 시리즈'답게 공포의 마물 '마모우돈'이 실제한다는걸 전제로 하고 있긴 한데, 놀라운건 이야기 속 일어났던 괴이한 현상이 모두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된다는 점입니다. 작 중 친구 소후에 고스케의 말에 따라서 - "초자연 현상은 해석할 방법이 없으니,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는건 확실하게 일어났다고 인정되는 현상만 상대하는" - 요. 덕분에 그야말로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 정의에 딱 들어맞습니다. 

이 지론에 의하면, 결국 "사관장"에서의 수수께끼는 백사당에서의 아버지 실종과 새어머니 실종, 두 개의 사건만 확실히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두 사건에 대해서만 합리적인 해석이 될 수 있도록 파고듭니다.

첫 번째 수수께끼인 할머니 탕관 의식 도중 실종된 아버지 사건에 대한 탐정역인 아스카 신이치로의 추리는, 아버지는 새어머니 도미 씨에게 살해당했고 그 시체는 관 속에 숨겨져 있었다는 겁니다. 도미 씨가 백사당에 들어올 수 있었던건, 자물쇠가 잠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요.
우선 도미 씨는 탕관을 도와주겠다며 백사당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뒤, 탕관 후 이물질을 배출하기 위한 탕관구를 통해 죽은 할머니의 시신을 분해해 버리고 관 속에 대신 아버지의 시신을 넣었습니다. 그 뒤 백사당 입구 옆 공간에 숨어있다가, 다미 할멈이 백사당 안으로 들어올 때 몰래 탈출했다는 추리입니다.
백사당이 밀실이기는 하지만, 탕관을 하기 위해 설치된 탕관구라는 특이한 구멍의 존재와 요철 모양으로 입구 옆에 공간이 있는 구조라는 점을 잘 활용한 멋진 트릭이었어요.

마물에 의한 기억상실 정도로 치부되었던 도도야마 산에서의 체험도 알고보니 추리적으로도 잘 짜여져있으며, 정교한 극적 반전이 등장해서 무척 인상적입니다.
단서는 이전에 등장했던, 도도야마 산을 올랐던 사람들 이야기들입니다. 혼자서 산을 찾았던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는데, 두 명이 방문하면 둘 다 무사하거나, 한 명만 무사하거나, 둘 다 죽었으며 세 명 이상이 올라가면 대부분 죽었다는게 그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이를 통해 두 명 이상이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게 아닐까라는 추리가 이어집니다.
"사관장"에서는 아이들끼리 도도야마 산을 올라가기로 결심했었는데, 할머니 장례로 흐지부지되는 듯한 묘사가 나왔었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 모두 도도야마 산에 올라갔던 겁니다! 그 중 한 명이 경찰 서장의 아들인 전학생 미쓰다 신조였고, 미쓰다 신조는 도도야마 산 정상 신당에서 다쓰미 미노부를 만났는데 둘이 정신적으로 뒤바뀌어 버리고 만 것이에요. 무언가 습격한게 아니라 둘이 급작스럽게 만난걸 계기로 정신이 바뀐 채 기억을 잃은 겁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미쓰다 신조와 다쓰미 미노부가 엮이게 되었으며, 미쓰다 신조가 무언가에 쫓기는 현상이 일어났고, 결국 미쓰다 신조가 다우군 다우초를 제 발로 찾아 햐쿠미가 은거방 격자 안에 갇히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진상의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관장"에서 친구가 된 전학생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등 이를 서술 트릭처럼 활용한 전개도 돋보입니다. 아,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늙어 보이는 다쓰미 미노부가 사실은 미쓰다 신조들과 동년배라는 것 역시 서술 트릭의 일종으로 마지막 진상이자 반전의 순간 충격을 극대화하는데 일조합니다. 다쓰미는 마모우돈에게 정기를 빼앗긴 탓에 폭삭 늙어버렸다는 설정인데, 이 설정은 작품 속 또 다른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 6년전 아이들 실종 사건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모우돈이 정기를 빼앗으며 나라에서부터 다쓰미가 사는 교토까지 이동하면서 벌어진 일이거든요. 마모우돈은 아이들의 정기 덕분에 아름다운 여자로 탈바꿈 하게 되었고요.

전편에서 설명이 부족했거나 설명되지 않은 부분을 보완해 주는 내용도 많습니다. 다쓰미 미노부가 겪었던 할머니의 학대는, 말 그대로 '첩의 아이'에게 명문가 대가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분노라고 이전 리뷰에서 설명드렸었는데, 이 작품에서의 보충 설명에 따르면, 햐쿠미가 당주들은 모두 여성 편력이 심하고, 여성들에게 원한을 많이 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대로 햐쿠미가 당주들에게는 여성들의 저주가 씌워졌다는군요. '나'인 다쓰미 미노부(햐쿠미가에서 다쓰미가의 양자로 보내져 성이 바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던거지요.
아울러 스나가와가 살았던 집 폐허에서 만난 무언가는 스나가와의 할아버지의 원령인건 당연한데, '왜 원령이 나타나서 햐쿠미가를 원망하는지'는 전편에서는 설명되지 않았죠. 이 작품에서 원령의 존재는 앞서 설명드린 도도야마 산 체험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아이들끼리 도도야마 산을 올라갔다가 이상해졌는데, 마침 스나가와는 함께 올라가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스나가와가 아이들이 산에 올라가도록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결국 마을 사람들이 스나가와를 죽였지요. 그 뒤 스나가와의 부모는 자살하고 할아버지도 굶어죽은 시체로 발견되어 원한이 남게 된 것이고요. 스나가와가 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원한이 사무칠만한 비참한 죽음인건 분명합니다.

이외에 이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괴이 현상에 대한 묘사들도 좋습니다. 다쓰미의 "사관장" 원고를 읽은 미쓰다 신조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인데, 특히 여성 편집자 다마가와가 자살하는 순간 입에서 쏟아낸 방언, 기묘하게 남긴 메시지는 섬찟할 뿐 아니라 미쓰다 신조와 다쓰미 미노부가 동일 인물이라는걸 드러난다는 복선으로도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가 마모우돈을 만난 순간 두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스륵 스륵 스륵...' 의 표현도 섬찟하며, "사관장" 초반 할머니가 강제로 곰팡이 슨 만주를 먹이는 장면과 겹치는 스나가와 할아버지 원령의 전병 대접과 원한의 토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눅눅한가...')

그런데 정작 추리와 진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정통 추리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다쓰미 미노부와 미쓰다 신조가 할머니 묘를 파서 관을 확인해 본 결과, 관 속의 뼈는 그냥 할머니 뼈였습니다. 즉, 도미 씨의 살의를 눈치챈 아버지 나오호 씨가 입구 옆 공간에 숨어있다가 다미 할멈이 들어오는 틈을 타 도망갔다는게 진상이라 좀 허무했어요. 다미 할멈이 다쓰미 미노부를 위해 꾸민 일로 당주 나오호씨가 도망치는 큰 소동이 일어나면, 체면을 중시하는 도미 씨가 아들을 본가에서 내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다쓰미 미노부를 아꼈던 다미 할멈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일이라 합리적이기는 한데, 추리적으로 재미는 없습니다.
또 이 진상이 사실이라면, 도미 씨와 하룻밤 밤 백사당에 갇혀 있었을 때 무사했던게 설명 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리고 두 번째 수수께끼에 대한 추리는 명백히 문제가 있습니다. 아스카 신이치로는 도미 씨 장례식에서 탕관을 하던 다쓰미를 습격한건 단순한 환청과 환각이었으며, 다음날 아침 백사당을 찾은 다미 할멈은 쓰러진 다쓰미를 보고 충격을 받아 죽었다고 추리합니다. 이를 발견한 두 명 숙부와 고모는 도미 씨 시체를 탕관구를 통해 없애고 다미 할멈의 시체를 도미 씨 관에다 넣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나'가 멀쩡한만큼, 다미 할멈은 고령으로 인해 백사당에서 자연사한걸로 이야기하면 되는데, 이렇게까지 무리한 트릭을 감수해가며 고모와 숙부들이 다미 할멈의 죽음을 숨길 이유는 없습니다. 앞서 첫 번째 수수께끼의 진상이 단순 도망이라면, 이러한 트릭을 고모와 숙부들이 급조해서 떠올릴 이유도 없고요.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우선은 미쓰다 신조 및 친구들의 말로가 조금 불분명하다는겁니다. 단순 실종으로 퉁치고 끝내는건, 이야기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느낌입니다.
햐쿠미가가 백마리 뱀에서 가려 뽑은 뱀신을 모신다던가, 그 외 이런저런 스쳐지나가는 괴담들같이 뭔가 있어보였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던 묘사도 많습니다. 아버지 나오호 씨가 마지막 순간, 미쓰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등장해서 살짝 폼을 잡다가 바로 정기를 빨려 리타이어 해 버리는 장면도 단지 나오호 씨의 말로에 대해 알려주는 것 외의 역할은 없는 불필요한 이야기였고요.
마모우돈이 다쓰미 미노부의 몸을 한 미쓰다 신조와는 잘 지내면서, 미쓰다 신조의 몸을 한 다쓰미 미노부는 햐쿠미가에 감금한 이유도 모르겠네요. 전의 사건들을 보면 미쓰다 신조를 납치하는건 일도 아닌데, 왜 이리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지도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추리를 펼쳐보이는 탐정 역인 미쓰다 신조의 친구 아스카 신이치로의 캐릭터는 특별한 매력이 없어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모든 탐정들이 괴상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평범해서 작품에 많이 묻혀요. 탐정은 아니지만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친구 소후에 고스케도 등장하기 때문에 비중과 존재감도 흐릿한 편이고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도조 겐야 시리즈로 만드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전작과 합쳐 1000페이지를 훌쩍 넘는 어마무시한 분량도 부담스러웠고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백사당에 관련된 거의 모든 수수께끼는 완벽하게 풀린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더운 여름 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2012/01/23

이니그마 - 로버트 해리스 / 조영학 : 별점 2.5점

이니그마 - 6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톰 제리코는 선배 앨런 튜링의 소개로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 부서에 배치된 후, 독일군 기기 중 가장 어려운, 4중 회전자를 채택한 이니그마 "샤크"를 해독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건강을 해친 톰은 요양을 떠났지만, 고작 3주 후 샤크의 체계가 바뀌어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업무 복귀와 동시에 옛 연인 클레어의 행방을 뒤쫓다가, 그녀의 방에서 훔쳐낸 암호문을 발견하는데...

역시나 물만두님의 리뷰집을 읽고 흥미가 생겨 읽게 된 작품입니다. "그들의 조국"으로 데뷔한 로버트 해리스의 두 번째 작품으로, 45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첫 작품은 가상 역사물이었지만, 이 작품은 2차대전 당시 영국 정보부 블레츨리 파크를 무대로 한 팩션입니다. 이전에 영화로 먼저 접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와는 달리 디테일이 확실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니그마와 블레츨리 파크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는데, 소설은 이니그마에 대한 고증과 암호를 풀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거든요. 암호 해독에 관심이 있다면 자료 삼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설명해 줍니다. 실제 이니그마 해독 과정이 중심이라 독자가 암호 해독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완성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또한,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 축인 '이니그마 해독'과 '클레어 실종에 대한 미스터리' 중에서 클레어 실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는데,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를 균형 있게 전개하는 것도 좋았어요. 거대 수송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단서를 알아내야 하고, 그 단서가 되는 것이 수송 선단을 발견한 U보트의 통신 암호라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그로 인한 서스펜스 (명확한 시간 제한이 생기므로)를 영화보다 훨씬 설득력 있고 박진감 있게 서술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이야기가 너무 길고 늘어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주인공 톰 제리코의 불안한 심리 묘사와 옛 연인 클레어와의 관계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습니다. 클레어에 대한 비중이 커진 탓에, 진짜 여주인공인 헤스터의 존재가 묻혀버린 것도 문제입니다. 제리코가 클레어의 룸메이트 헤스터와 함께 클레어의 실종에 얽힌 진상과 중요한 단서를 포착하는 전개는, 영화에서 초반에 간결하게 처리한 것처럼 소설에서도 요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밀도 있는 상세한 묘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부분은 장황한데 반해, 중반 이후 결말까지는 너무 빠르게 전개되는 느낌이 있어 강약 조절이 실패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확실하게 정리하며 마무리되기는 하지만, 마치 연재 종료를 갑작스럽게 통보받은 만화의 엔딩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한, 폴란드인 푸코프스키가 가족을 위해 카틴 숲 학살 관련 암호문을 몰래 해독하려 했다는 동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애초에 암호문 내용이 카틴 숲 사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에필로그에서 클레어가 스파이로서 해당 메시지를 중개했다고 설명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작품 내에서 해당 암호문은 해독조차 시도되지 않았다고 묘사되며, 가장 뛰어난 암호 해독 전문가인 제리코조차도 해독이 기적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어려운 암호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클레어가 사실 위그램이 심어놓은 블레츨리 파크 감시용 스파이였다는 설정은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나름 반전 요소일 수는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꼭 필요하지는 않으며 퍼그에게 의도를 가지고 암호를 전해주었다는 점도 현실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애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퍼그의 배후를 찾기 위한 작전이었다면,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이 암호 때문에 퍼그가 독일 쪽에 붙으려 한 것이라면, 차라리 단순한 미행이나 감시를 붙이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U보트를 뒤쫓는 암호 해독 요원들의 시간 제한이 있는 작전과, 또 다른 음모가 복합적으로 펼쳐지는 서스펜스와 재미는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에, 알리스테어 맥클린 스타일 (짧고 임팩트 있게)로 쓰였다면 더욱 만족스러웠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덧붙여, 영화와 소설 둘을 비교한다면 영화 쪽이 더 낫습니다. 일반 독자나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 해독 장면보다는, 클레어의 실종과 그 비밀을 파헤치는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보거든요. 결말 또한 영화 쪽이 깔끔하고요.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 시종일관 을씨년스럽고 어두운 분위기의 원작보다는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톰 제리코가 마지막 퍼그와의 추격전 이후 요양할 때 읽었다는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목록은 인상적이었습니다. "13인의 만찬", "명탐정 파커 파인",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목사관 살인사건" 등, 작중 주인공이 읽는 책들이 제 취향과도 묘하게 어울려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2026/01/04

루드비히, 퍼즐로 푸는 진실 (2024) : 별점 4.5점

유명 퍼즐작가로 필명이 '루드비히'인 존 테일러에게 형수이자 소꼽친구 루시로부터 경찰인 쌍둥이 형 제임스가 실종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정황은 제임스가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 몸을 감추었다는걸 알려주었다. 루시는 존에게 제임스인척 경찰서로 출근해서 존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출근한 존 앞에 여러 불가능 범죄가 잇달아 펼쳐지는데....

영국 BBC에서 제작한 총 6화 구성의 추리 드라마 첫 번째 시즌입니다. 

가장 큰 매력은 독특한 설정입니다. 퍼즐 천재인 '루드비히' 존을 주인공 탐정역으로, 범죄 속 트릭들을 퍼즐의 일종처럼 선보이거든요. 존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하나의 ‘퍼즐’로 인식하며 본격적으로 해결에 나서고요. 마술사 탐정까지는 봤었는데, 퍼즐 전문가 탐정은 처음 보네요.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입니다. 퍼즐 제작에만 몰두하며 사회성과 현실 감각이 부족한 존이 갑작스럽게 경찰 역할을 맡아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묘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집니다. 형수 루시와 조카 헨리도 제임스 실종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요. 그러고보니 존과 제임스 형제에 아들 이름은 헨리라니, 가족 자체가 영국적이군요. 
카터를 비롯한 경찰 동료들, 다른 등장인물들도 진지한 상황 속에서 영국식 유머를 자연스럽게 섞어내어 극을 재미있게 만들어 줍니다. 가족과 동료애가 끝까지 이어지는 것도 요사이 보기드문 미덕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적으로도 빼어납니다. 1화에서는 여러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교차 분석해 논리적으로 범인일 수밖에 없는 인물을 드러냅니다. 시청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서 추리에 직접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퍼즐 전문가의 해법으로는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2화에서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 퍼즐 트릭이 사용됩니다. 존은 사진을 통해 벽지가 미세하게 이동한 점을 알아채고, 벽지 뒤 벽을 뚫어 숨겨진 시체를 찾아낸 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요. 피해자 사기꾼에게 사기당한 일행들이 단체로 범행을 저지르고 은폐했던건데, 앞서 등장한 여러가지 단서들로 설득력있게 설명됩니다.

3화는 두 개의 전혀 무관해 보이는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는 ‘병렬 퍼즐’이 등장합니다. 관광 가이드 살인은 갑작스럽게 행해진 것으로 추리하고, 그 이유를 관광 코스를 직접 도는 방법으로 발품을 팔아 증명해내는데 수사와 진상 모두 깔끔하게 이어집니다.

4화는 체스말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범은 장치 트릭을 활용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다섯 명의 동료들 작업 위치가 순차적으로 바뀌도록 유도해서, 피해자가 원했던 위치에 가도록 만든 뒤 장치를 통해 추락사하게 만든거지요. 존은 이를 '역행 제스' 퍼즐로 풀어냅니다. 이 퍼즐 자체가 루드비히' 존이 처음 만들었다고 소개되는데, 현재의 체스판 상태를 보고 이전 수를 맞추는 퍼즐이에요. 즉, 이전 수를 맞춰가면서 최초에 수를 둔 사람을 알아내 범인을 밝혀냅니다. 
퍼즐을 활용한 추리도 깔끔하지만, 피해자를 발전기가 있는 위치로 이동시킨 뒤 쇼트가 나가도록 배선을 망치고, 발전기를 가동하면 피해자가 감전되어 추락사하게 만든 장치 트릭도 합리적입니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범인이 원하는 흐름대로 움직였던 것도 이전부터 자주 그래왔다는 설정이라 설득력있고요.
마지막에 발전기에 물을 뿌려 놓은 탓에 범인의 DNA가 묻은 물통을 확보했지만, 범인이 “자기는 1층에서 버렸다”고 주장하자 5층 현장에서만 쓰레기 수거장 안으로 투입 가능하다는 점을 추리쇼처럼 밝혀내는 장면도 볼만합니다.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에피소드입니다.

5화는 '밀실 살인' 트릭이 등장하는데, 꽤 그럴듯합니다. 주말 내내 잠겨있던 교장실에서 교장이 살해된채 발견되는 사건인데, 존은 범인이 밀실 안에 계속 있었다!는 대담한 추리를 내 놓습니다. 이를 발견하는 단서가 교장실 쓰레기통에 있던 '변색되지 않은 사과 조각'이라는 디테일도 인상적입니다. 누군가 교장실에 최근까지 있었다는 증거인데, 영상물에 잘 어울리는 디테일이었습니다. 존의 학창 시절 과거, 그리고 노인이라도 쓸모없는게 아니라는 메시지도 좋았고요.

6화는 루시의 살인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잡는 이야기인데, '루시가 집에서 가져간 칼로 사망한 피해자'라는 결정적 증거를 뒤집는 추리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범인이 막 피해자 폴라를 칼로 찔렀을 때 루시가 자기 칼을 들고 그 집에 들어섰습니다. 범인은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식탁 뒤로 숨었고, 루시가 쓰러진 폴라를 보고 자기 칼을 내려 놓은 뒤 그녀에게 다가가자 범인은 루시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으로 빠져나가면서 칼을 바꿔치기 했던 겁니다.
정통 본격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싶을 멋진 트릭이며, 증거도 확실하게 제시됩니다. 범인은 바꿔치기한 루시의 칼을 폴라 부엌 칼꽂이에 꽂아두었는데, 이 칼에서 루시나 존의 지문이 나오면 바꿔치기했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이러한 각각의 사건들과 함께 제임스 실종 사건에 대한 조사와 추리도 계속 이어집니다. 결국 존은 제임스가 남긴, 누구나 들으면 스스로 떠났다고 생각할 메시지에서 암호 해독 키를 찾아내어 암호를 풀어내어 단서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체가 드러났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경찰의 고문역으로 일하며 형을 계속 추적할 존의 모습으로 총 6화의 시즌 1은 마무리 됩니다. 

1화와 2화, 3화 사건은 경찰 수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 듯 싶고, 경찰이 너무 무능하게 그려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제임스와 폴라, 싱클레어 등이 관련된 진짜 음모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제임스가 암호로 창고 위치를 남긴 이유와 사라진 이유를 창고에 남기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재미와 추리 모두 빼어난 좋은 드라마였습니다. '루드비히'라는 주인공 필명에 어울리는, 베토벤 음악의 적절한 활용과 촬영도 좋고요. 시즌 2가 빨리 나오면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2004/11/04

화성 여대생 실종 사건

요새 매스컴에서 많이 인용되는 화성 여대생 실종 사건에 대한 현재까지의 개요입니다. 주변분들 정말 걱정 많으시겠습니다. 꼭 범인을 검거했으면 좋겠네요. 제가 "구석의 노인"은 아니지만 어떤 단서라도 찾을 수 있으면.. 하고 검토해 보았는데 어렵군요. "강남에서 목격된 납치 여성"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 지고 있지 않는게 좀 이상합니다. 중점 수사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말이죠....
이젠 공개수사로 전환하였고 경찰도 노력하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합니다.

2004년 10월 27일 :
K대 2년 N양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이 PM 08:30, 에서 3Km 떨어진 경기도 화성의 한 스포츠 센터 (화성 복지관) 에서 1시간 동안 초급반 수영 강습을 받은 후, 집에 들어가겠다는 휴대 전화 메시지를 남긴 후 연락 두절. 어머니가 PM 11:00경 화성서 태안 지구대에 신고.

2004년 10월 28일 :
AM 07:30 경 화성 복지관과 반대편으로 4.2Km 떨어진 모 아파트 식당 앞길에서 휴대 전화 발견. 이어 N씨의 집과 휴대 전화가 발견된 식당 앞 사이 도로변에서 검정색 가디건, 보라색 티셔츠, 청바지,브래지어,운동화(왼쪽),운동화(오른쪽) 등 N씨의 유류품이 100 ∼700m간격을 두고 발견.

N씨의 귀가길과 유류품이 발견된 도로는 43번 국도로 향하는 편도 1차선 도로로 보통리 저수지를 둘러싸고 카페와 식당 등이 연이어 있어 일반인이나 아베크족 차량 의 왕래가 적지 않은 곳.

경찰은 최소 2명이상이 차량을 이용해 N씨를 납치한 것으로 보고 N씨 주변인물과 동네 우범자 등을 상대로 수사중. 특히 화성 연쇄 살인 사건 피살체가 발견된 곳과 반경 5Km 내의 사건 집중 발생 지역인 점을 중시, 화성사건과의 관련여부에도 주목하고 있음.

한편 같은날 AM 08:30 경 서울 강남의 한 주유소에서 검은색 뉴 그랜저 한대가 3만원 어치 주유를 하는 과정에서 뒷 좌석에 납치된 듯한 여성이 타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으나 차량은 차적 조회 결과 등록되지 않은 대포차로 판명되었고 목격된 여성이 N모양과 같은 긴 머리라는 것과 실종 사건 발생 바로 다음날 목격되었다는 점을 중시하여 연관성 집중 조사 중.

2004년 10월 29일 :
경찰은 경진여객 소속 34번 시내버스에 설치된 CCTV를 통해 27일 PM 08:25 N씨가 태안읍 화성복지관 정류장에서 승차하는 장면이 찍혀있음을 확인. N씨가 청바지에 셔츠, 점퍼 차림에 가방을 메고 있었으며 탑승 10분 뒤인 오후 8시35분께 하차하는 모습도 확인됨.

경찰은 화성복지관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정거장이 융.건 릉 정류장(4분15∼37초)을 한 정류장 지난 와우리공단정류장(5분20여초)인 것으로 실측을 통해 확인.

경찰은 N씨 가족의 진술을 통해 N씨가 평소 수영을 마치고 버스를 탈 경우에는 와우리공단 정류장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집에 온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

이에 따라 경찰은 N씨가 와우리공단에서 집에 오는 사이 또는 집근처에 도착해서 납치 등 범죄피해를 당했을 것으로 추정, 태안과 봉담 등 납치 의심 장소 일대를 운행하는 화성 지역 택시를 상대로 사건 당일 N씨의 승차여부 조사 중.

2004년 10월 30일 :
경찰은 집 근처 도로에서 발견된 A씨의 청바지에서 혈흔 및 모발이 발견됐고 엉덩이 부분에 흙이 많이 묻어 있으며 상의에는 발견지점 에서 자라지 않는 풀이 묻어 있는 점으로 미뤄 범인이 제3의 장 소에서 범행을 한 뒤 옷가지를 나중에 버린것으로 추정 중. 혈흔 및 발견된 모발 8점의 정밀 감식 의뢰.

유류품 감식 결과 옷에 붙어 있던 풀은 음지에서 자라는 주름 조개풀임을 확인. 발견된 풀을 근거로 실종 직후 인근 야산을 거쳐갔을 것으로 보고 집중 수색.

또한 속옷 등이 집에서 2Km 떨어진 보통리 저수지 밑 둑에서 추가 발견. 저수지 수색 작업 병행 진행.

2004년 10월 31일 :
30일 속옷 등이 발견된 정남면 보통리 저수지에서 보통리 마을 방향으로 1.2 Km 떨어진 도로변에서 N양의 수영복과 수영모, 물안경 등 추가 유류품 발견. 이에 따라 범인들이 차량으로 이동하며 유류품을 유기한 것으로 추정.

이후 발견 장소에서 1Km 떨어진 곳에서 쇼핑백 추가 발견.

2004년 11월 1일 :
N양의 최후 목격자로 보이는 여성의 CCTV확보. N양이 하차한 정류장에서 함께 버스에서 내린 것으로 확인된 여성이 수원 영통 그랜드 백화점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 것을 확인. 목격자 신원 확인에 주력.

2004년 11월 2일 :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시내버스 CC(폐쇄회로)TV를 정밀분석한 결과 여대생이 하차할 당시 형상이 뚜렷하지 않은 남자 1명이 와우리공단 정류장에서 여성 1명과 함께 내려 여대생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는 것을 확인. 경찰은 최초 경기경찰청에서 분석할 당시에는 CCTV 화질이 좋지 않아 남자의 형상을 잘 분간할 수 없었다고 설명. 이어 남자의 신원을 밝히는데 수사력 집중.

경찰은 이와 함께 속옷 등 유류품 발견지점 인근인 화성시 봉담읍 보통리저수지 물을 빼 수색작업을 벌이기로 하고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수문을 열고 물빼기 작업에 착수.

2004년 11월 3일 :
N양과 함께 내린 여성 신원 확인. 이 여성이 교통카드 (신용카드 겸용)로 버스 요금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CCTV 정밀 분석을 통해 밝혀낸 후 교통 카드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카드 사용자 신원 확인.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이 30대 여성은 함께 내린 여대생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

2004년 11월 4일 :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서 목격 여성 상대로 최면 수사 진행.

2024/08/09

폭포의 밤 - 미치오 슈스케 / 김은모 : 별점 2.5점

폭포의 밤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청미래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연작 단편집. "절벽의 밤"에 이은, '안 된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수록작들은 독립적인 단편이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제 1장 "묘진 폭포에서 소원을 빌어서는 안 된다"에서 벌어진 여고생 히리카 실종 사건은 마지막 제 4장 "소원 비는 목소리를 연결해서는 안 된다"와 곧바로 이어집니다. 4장에서 히리카의 사체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 3장 "그 영상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3장에서 지기는 자신을 학대하던 아들 다카시를 살해한 뒤, 사체를 요메가 숲에 묻은 것처럼 경찰을 속인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사실은 자기 집 바닥에 사체를 숨겼지만요. 하지만 집 바닥에 사체를 묻으려다가 오히려 히리카의 사체를 발견했던겁니다. 다카시가 히리카를 살해하고 은닉했던 것이지요. 지기는 히리카의 사체를 요메가 숲에 암매장하였습니다. 다카시 사체를 요메가 숲에 묻은 척 했던 건 경찰을 속이려는게 아니라, 히리카의 사체를 찾게 만들어서 히리카 부모에게 진상을 알려주려던 마음이었고요. 

다만 2장 "머리 없는 남자를 구해서는 안 된다"는 독립적인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1장에서 살아난 것처럼 보였던 모모카가 살해당했다는게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 목적보다는 2장의 주인공인 초등학생 신을 4장에서 활약시켜 경찰에게 히리카 사건 진상을 알게 하도록 만든 목적이 더 큽니다. 전개에 필수적인 징검다리 역할인 셈이지요.
 
이렇게 사건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미고오리 시와 묘진 폭포, 가쿠레이 산과 등산로, 무쿠로 다리, 고코 강, 요메가 숲 등 시의 주요 장소들을 무대로 사건이 일어나고, 묘진 폭포에 소원을 비는 행위가 진상으로 이어지며, 서로 다른 사건들이지만 수사를 맡은건 모두 구마지마 형사라는 식으로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벽의 밤"과 같은 시리즈답게 '사진'을 이용하여 진상을 드러내는 장치도 삽입되어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습니다. 1장에서는 시점과 상황을 속이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3장은 일부러 시간 제한이 있는 블랙박스 메모리를 남기는 아이디어가 괜찮았어요. 4장은 다카시의 폭주와 히리카 실종 시점의 일치, 히리카 핸드폰이 잠깐 켜졌던 이유 등에 대한 진상이 설득력있게 밝혀지고요.

각 단편별로 조금 더 내용과 의견을 덧붙이자면,
1장은 제일 처집니다. 모모카가 언니 히리카의 행방을 우연히 발견한 부계정 SNS를 통해 추리해내는건 볼만 합니다만 그 외 전개는 다소 식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산장 관리인 오쓰키가 냉동고 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오쓰키 어머니는 실종된게 아니라 아버지가 살해했다는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흥미를 반감시킵니다. 그렇다면 이를 눈치챈 모모카에게 위험이 닥치는 서스펜스라도 잘 표현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좋지 못합니다. 오쓰키 캐릭터를 잘 표현하지 못한 탓입니다. 아버지가 죽여 은닉한 모친의 사체를 모모카가 발견했다고 그녀를 바로 살해할만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 외 단서들 - 오쓰키가 만든 눈인형, 모모카가 입고있던 옷 사진 - 도 평면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이 없으면 진상을 완전히 알아내기 어렵다는 단점이 큽니다. "절벽의 밤"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장난같이 여겨지는 장치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오쓰키를 뻔하더라도 전형적인 단순한 '산장 살인마'로 그리고, 사진의 역할은 배제하는게 서스펜스 스릴러로는 더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장은 신의 삼촌이 은둔형 외톨이가 된게 어린 시절 물놀이 사고에서 아버지를 죽게 만든 트라우마라는게 드러나는 일상계에 가까운 소품입니다. 다소 무서운 진상 - 삼촌이 자살하고 말았다는 - 을 사진으로 보여주어서 단점이라 할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주요 사건과는 관계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사진을 빼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더라면 더 완성도 높은 단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3장은 지기 씨가 아들을 살해했다며 자수했지만 사체가 발견되지 않아 풀려나고, 이는 지기 씨 부부가 의도했던(?) 완전 범죄였다는 범죄물입니다. 경찰과 범죄자의 두뇌 배틀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지기 씨가 '딱 한 가지 했다는 거짓말'을 형사 구마지마가 알아채고, 이를 통해 다카시의 사체를 찾아내려 하지만 이도 지기 씨의 계획이었다는 전개이니까요. 이야기는 흥미롭고 결말도 깔끔합니다. 다른 작품과의 연결없이 단독으로 읽어도 기승전결이 완벽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딱 한 가지, 정황 증거와 자백까지 있는데 시체가 없다고 용의자를 풀어주는건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4장은 1장의 히리카 사건, 3장의 다카시 사건이 한데 이어져 대단원에 이르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앞에서 설명드린 그대로입니다. 특별한 추리없이 지기 씨의 아내 지에코의 회상으로만 진상이 밝혀져서, 흥미롭지만 추리적인 맛과 정교함이 부족한게 아쉬웠습니다. 신이 지에코를 구한 뒤, 히리카 사건의 핵심 열쇠가 되는 핸드폰을 가져다 주는 결말은 앞서의 복선 - 빌린 물건은 제대로 된 상태로 돌려줘야 한다 - 로 설명되는 등 정교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건 좋아요. 하지만 신과 지에코가 엮이는 과정은 작위적이고, 목소리를 잃은 신이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다시 말문이 트였다는건 유치하기까지 합니다. 별로 고민한 느낌을 주지 못해요.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 보다는 구마지마 형사의 추리와 활약으로 해결하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등장인물들이 폭포에 빈 소원은 모두 이루어졌지만 그 대신 모모카, 히리카 자매가 모두 죽었다는 결말도 안타까왔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체적인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평이하지만 "절벽의 밤"보다는 좋았어요. "절벽의 밤"은 '사진'을 사용한 실험이 지나쳤는데, 여기서는 이야기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는 덕분입니다. 시리즈 1작은 평균 이하, 2작은 평균 수준은 돼니 3작은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5/11/29

내 시체를 찾아주세요 - 호시즈키 와타루 / 최수영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터리 작가 아사미는 개인 블로그에 불치병에 걸려 자살할 생각이니 자신의 시체를 찾아달라는 글을 올리고 사라졌다. 뒤이어 블로그에 예약 갱신으로 시어머니의 치부와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벌였던 동반 자살극에 대한 진상을 그린 소설을 차례로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아사미의 남편 마사타카와 아사미의 편집자 사오리는 자신들의 불륜이 드러나지 않을까, 그리고 아사미가 다른 무언가를 고백할까 두려워하며 필사적으로 블로그 패스워드를 찾았지만 실패했고, 결국 마지막 갱신글로 동반 자살극의 진상과 사오리의 치부가 드러났다. 모든걸 잃은 사오리는 마지막 글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마사타카가 은거하는 별장으로 향하는데...

유명 작가의 자살과 자신의 시체를 찾아달라는 블로그 글로 시작되는 구성이 인상적인 장편 범죄 복수 스릴러입니다. 

블로그 글, 마사타카, 아사미 시점을 오가면서 아사미가 정말로 자살한 것인지? 시체는 어디에 있는지? 라는 의문과 아사미 고교 시절 동반 자살극에 대한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는 전개는 흡입력이 뛰어납니다.
편집자 사오리가 마지막 블로그 글의 용어 선택이 평소와 다르다는 점을 알아채고 진상을 눈치챈 장면은 '편집자'라는 직업의 전문 지식을 활용한 추리라는 점에서 괜찮았고요.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는 낮습니다. 우선 주요 인물들의 설정부터 비현실적이에요. 모리바야시 아사미는 극단적인 학대를 겪은 뒤 고아로 자라 정상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남편 마사타카는 데이트 강간을 일삼고 아사미에게 질투심을 품은 채 얹혀 사는 인간 말종입니다. 사오리 역시 아사미에게 집착한 나머지 마사타카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설정이고요. 이렇게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과장되거나 극단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은 복수극으로 '아사미는 자살한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서 마사타카를 일부러 자극해 살인에 이르게 만들었다'인데, 복수로 보기에는 애매하고 부족합니다. 마사타카가 살인을 저지른 후의 계획이 전무한 탓입니다. 살인범으로 만든 뒤 파멸시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범행을 덮어주기 위해 자살로 가장한 블로그 글을 올리기까지 하니까요. 이렇게 되면 마사타카는 뻔뻔하게 아사미 증쇄본 수익, 그리고 실종 신고 7년 후에는 남은 유산으로 떳떳이 살아갈 수 있는데 이걸 복수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살해당하는 것만 목표였고 그 뒤는 상관없다’고 유서에 쓰여있는 걸로 퉁치고 끝내는데, 허무하기 짝이 없네요. 이보다는 정교하거나 복잡한 추가적인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아사미가 불러낸 사기꾼에게 속아 전 재산을 날린 마사타카의 어머니가 유산을 노리고 아들을 죽였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아사미가 실종 중에는 마사타카에게 유산이 상속될 수 없으니, 아들을 죽여봤자 헛짓거리였다!는게 밝혀지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물론 마사타카가 자살하기는 했지만, 이는 계획된게 아니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아사미가 사라진 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책은 큰 화제를 얻었고, 그에 따라 인세 수입도 늘어날 상황에서 마사타카같은 쓰레기가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것도 영 와닿지 않고요. 앞서 그의 내면을 묘사할 때 죄책감이 큰 인물로 그려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작중 마사타카가 아사미를 살해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그의 작품 혹평에 대한 분노와 증오인데, 그게 사람을 죽일 정도의 결정적인 트리거라는 것 역시 잘 설명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소설 속 소설인 "하얀 새장 이야기"도 중반까지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흥미를 이끌지만, 결말은 결국 동반 자살로 귀결될 뿐이라 추리적 가치는 없고, 아사미의 성격이나 내면을 깊이 있게 드러내지도 못해서 왜 삽입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친구들 이야기 설정도 새로운게 없어서 시시하니까요.

그 외에도, 마사타카가 블로그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아챈 방법도 대충이고, 사오리가 멍청하게 혼자 마사타카를 찾아가 살해당한 것도 비현실적이며, 아사미야 그렇다 쳐도 사오리 실종 이후에 경찰 수사가 시작되지 않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눈에 많이 띕니다. 사체 은닉도 그냥 잘게 나누어(?) 버렸다 정도로 넘어가는건 아니다 싶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흡입력 있는 출발과 일부 매력적인 장치는 있지만, 여러모로 비현실적이고 복수극으로도 미흡하여 완성도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4/06/17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드디어 최신권까지 따라잡았습니다! 

이번 권에는 모두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한 개를 빼고는 모두 일상계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약간 쉬어가는 느낌도 듭니다. 덕분에 편안한 맛도 나쁘지 않았고요. 반면 추리적인 정교함이나 짜임새는 부족했고, C.M.B에서 기대해봄직한 박물학적인 지식 공유는 부족한 편입니다.

그래도 충분히 볼만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타츠키가 완벽하게 공기화되었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타츠키가 "Q.E.D"의 토마에게 첫눈에 반해서 가나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한, 어떻게해도 구제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신라와 정신연령 등 전체적인 수준에서는 마우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탓에 신라하고는 커플로 엮기도 어려우니까요. "Q.E.D"는 그래도 커플링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가끔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등장하는데 "C.M.B"는 점점 꼬마 천재 추리극에 머무는 듯 하여 아쉽습니다.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뜻밖의 보물"

항상 뭔가 사건을 가져오곤 하는 동급생 친구(네코아리였나요?)의 부탁으로, 그의 사촌이 거금을 빌려가 짓고 있는 펜션에 숨어 있다는 보물을 찾는 이야기.

사촌이 펜션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보물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던 아가씨가 그 시골 마을로 귀향했기 때문입니다. 보물의 존재보다는 이러한 사촌의 사업 동기를 밝혀내는걸 좀 더 추리적으로 꾸미는게 좋았을 겁니다. 보물은 그냥 핑계일 뿐, 없어도 바뀔 게 없으니까 말이죠.

또 보물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는 맥락상 부동산 아저씨는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목욕탕 물을 대기 위해서는 수맥을 끊어야 했을 테고, 그러면 언젠가 밝혀졌을 텐데 괜히 이야기만 복잡해졌어요.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잔잔하면서도 유쾌한 드라마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딱히 즐길 거리가 없으며 C.M.B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 전달 역시 마지막 버섯 이야기가 잠깐 등장하는 것 말고는 없어서 감점합니다.

"백 스토리"

"활피가죽"으로 장인이 만든 가방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맞추는 경쟁을 한다는 이야기.

온갖 지식에는 통달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신라가 패배한다는 드라마가 제법 괜찮은 소품입니다. 그동안 건방진 꼬마 아이라는 인상이었기에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네요.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서 어른들의 결말(가방 판매)로 이어지는 전개도 좋았고요. 가죽 무두질 방법과 단테의 신곡에 대한 정보 제공도 마음에 듭니다.

추리적으로는 눈여겨볼 부분이 전무하지만 깔끔한 완성도는 인상적으로, 이번 권의 베스트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 아침, 8시 13분"

아침 출근길마다 실종된 것으로 알고 있는 여성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의 이야기.

기묘한 상황 설정과 여성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트릭은 나쁘지 않으나, 용의자가 명백한 실종 사건을 연극으로 꾸며서 진상을 밝혀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지만, 그래도 너무 비현실적인 설정이었어요. 게다가 신라에게 의지해서 작전을 꾸미다니 이래서야 경찰은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네요. 실종된 여성의 이름으로 장난친 것도 공정해 보이지 않았고요. 

이번 권 최악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향목"

향도를 배우는 남성이 유령을 목격한 사건의 진상.

간단한 장난에 가까운 일상계 소품으로 두 개의 수수께끼가 등장합니다. 유령 목격담과 향목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죠.
두 가지 모두 괜찮았습니다. 유령 목격담은 인간 심리를 잘 활용한 드라마인데, 최초 목격담은 거짓이었다는걸 제대로 설명해 주면서 두 번째 목격담의 진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향목의 정체도 C.M.B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 전달과 함께 의외의 진상을 밝혀주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사실 이렇게 사용되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딱 한 가지, 두 번째 유령 목격담이 과연 잘 되었을까라는 의구심이 조금 들기는 하나,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즐길 거리가 많은 이야기였어요.

2026/01/31

아사토호 - 니이나 사토시 / 김진아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쓰히의 쌍둥이 동생 아오바가 나쓰히와 아키토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나쓰히의 지도 교수 후지에다가 실종되었고, 교수를 찾던 친구 아즈사도 자살했다. 다른 실종 사건이 여럿 있었으며, 이 모든 사건은 '아사토호'라는 책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낸 나쓰히는 다시 재회한 아키토와 함께 '아사토호'의 정체에 대해 찾아 나섰다. 이 모든건 사람을 하나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천과 관련이 있었다...

신예 작가 니이나 사토시의 장편 소설입니다. 미스터리 호러 장르물이지요.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펼쳐져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쓰히와 아키토 앞에서 아오바가 신비한 천에 의해 사라진 뒤, 둘 말고는 아무도 아오바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 대학생이 된 나쓰히의 지도교수 후지에다의 실종과 교수를 찾던 아즈사의 기묘한 자살, 이 모든 것과 얽힌 책 '아사토호'에 관련된 수수께끼가 이어지는데 손을 떼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나쓰히와 아키토가 여러 자료를 토대로 아사토호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방불케합니다. 아사토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마쓰무라의 자서전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마쓰무라의 산장 위치를 추적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아키토는 기록의 증기 기관차에 탔던 시간과 버스를 탄 거리를 토대로 대략의 위치를 특정해내는 데 성공하고, 그 장소에서 결국 기요하라 병원까지 이어지는 단서들을 수집해 내어 진상에 도달하게 되니까요.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아사토호'에 대한 상세한 설정들도 굉장히 설득력 높습니다. 저자가 실제로 문학사 전공인 덕분이겠지요. 정말로 이런 책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연구자가 연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실감납니다.

추리적으로는 그 외에도 괜찮은 부분이 제법 많아요. 아키토가 영매사로서 선보이는 짤막한 에피소드처럼요. 일종의 콜드 리딩, 사전 답사와 의뢰인의 현황—신혼부부가 굳이 교외에 있는 단독 주택을 산 이유는?—을 토대로 추리를 통해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하지요.

호러 장르물로서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아즈사가 남긴 논문이 유서처럼 이어지는 장면이라던가, 후지에다 교수의 아내 미나미의 등장, 그리고 나쓰히가 사라지고 아오바가 나타난 시점에서 '아사토호'라는 책이 고전 걸작으로 널리 퍼졌고 결말까지 달라진 - 원래는 온나니노미야가 추녀였다는 한심한 결말이었는데, 아오바처럼 얼굴에 큰 상처가 있었다는 결말로 - 세계관으로 전환되는 부분 등은 꽤 섬찟했습니다.

모든 건 앞뒤가 딱 맞게 말이 되는 패턴이고, 이런 패턴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에는 반드시 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쓰히의 생각이 이 모든 것의 원인인 '천'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이라는 진상도 잘 풀어냈습니다. 단순 괴기현상으로 풀어낸 게 아니라,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고 말이 되는 설정을 집어넣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 해요. 나쓰히는 아오바와 아키토의 환상 속 존재였다는 진상과 이에 따른 시점 변화도 적절했고요.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천이, 천을 함께 본 사람들이 원하고 빠져드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데, 이야기의 결말을 잘 설명하지는 못하거든요.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아키토가 일으킨 사고로 크게 다쳐 흉터가 생긴 아오바가 상처 없는 나쓰히로 거듭난 건 해피엔딩입니다. 그런데 굳이 아오바에 대해 나쓰히와 아키토가 이상한 기억을 공유하고, 새롭게 추적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아즈사가 원한 건 연구자로서의 성공이었는데, 천이 심어준 건 좌절감이었고, 그녀는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성립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말이 되는 건 원했던 후지에다 교수를 차지한 미나미 이야기뿐입니다.

천을 본 사람들이 하나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일종의 다중 우주 세계관이라서 하나의 우주에 천을 본 사람들이 여럿 얽힌다는 것도 이상했어요. 하나의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들이 개입하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니까요. '천'이 만든 이야기에서 '천'의 진상을 밝히는 결말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요. 기껏 꿈 속에 데리고 왔는데, 이게 꿈이라는걸 밝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탓입니다.

마지막으로 천의 정체가 밝혀진 뒤의 분량은 많이 길고 애매했습니다. 아오바가 천과 일체화되어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는 장면이 특히 길었어요. 감정 과잉이라 여겨지기도 했고요. 이런 부분을 조금 더 정리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를 들자면, "메두사"처럼 환상은 환상처럼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실 만한 작품으로 추천드립니다.

2012/04/08

개는 어디에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개는 어디에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야 조이치로는 은행원이었지만 피부병으로 직장을 그만둔 뒤, 고향으로 돌아와 조사 사무소 "고야 S&R"을 차렸다. 잃어버린 개를 찾는 수준의 일을 맡을 생각이었지만, 처음 맡은건 도쿄에서 실종된 여자를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첫 번째 장편 추리소설입니다. 탐정이 등장하고 평범한 직장인의 실종 사건이 주요 사건이라는 점은 사회파 분위기가 느껴지고, 묘사와 설정, 캐릭터 등에서는 작가 특유의 일상계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첫 장편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전체적으로 뭔가 쓰고 싶은 건 많은데 제대로 마무리하지는 못한 느낌이 강합니다. 의도와 욕심에 비해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거든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큰건 의뢰된 사건의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쿠라 도코 사건은 동기부터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개인 사이트에 악성 댓글 좀 달았다고 살의까지 품게 된다? 물론 사쿠라 도코에 대한 폭행을 암시하는 묘사가 보이기는 하나 순전히 고야의 추정일 뿐입니다. 최소한 실종까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치더라도, 나머지는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비약이 너무 심했어요.

또 두 번째 사건인 고문서의 진위 및 정체를 파악은 구태여 탐정에게 맡기지 않아도 마을 도서관을 통해서 충분히 밝혀낼 수 있는 사건이라서 의뢰가 필요했을지도 의심스러웠어요. 고문서의 가치를 생각해볼 때 아무도 그 정체를 모른다는 것도 별로 현실적이지 않았고요.

이 두 사건이 하나로 엮인다는 것도 굉장히 작위적입니다. 책 뒤의 소갯글에서 "기묘한 접점"이라고 포장하는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대놓고 "이 두 사건은 관련되어 있다"라는 식으로, 별다른 고민 없이 쉽게 쓰여졌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우연이 많이 개입되어 있는 것도 단점입니다. 동네 야생견 퇴치 모임에서 우연히 사쿠라 도코의 절친을 만난다던가, 처음으로 사쿠라 도코가 다녔던 회사에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의 약혼자(?)가 전화를 받는다던가 하는 것들 모두가 그러합니다. 이렇게 운이 좋다면 탐정 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죠.

그 외에도 주인공 캐릭터인 고야 조이치로는 병약하고 의욕 없어 보이는 모습이 심심했고, 부하 한페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을 동경하는 인물이라 식상했습니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하드보일드 에그"와 거의 똑같았어요. 발표 시기를 보면 아무래도 "하드보일드 에그" 쪽이 먼저였을 것 같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허점이 많고, 그냥저냥한 일상계로 보기에도 애매한,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한 수준입니다.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