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식문화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식문화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21/11/21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가라시마 노보루 / 김진희 : 별점 3점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6점
가라시마 노보루 지음, 김진희 옮김, 오무라 쓰구사토 사진, 최광수 감수/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맛의 달인 걸작 에피소드 중 하나인 '카레 전쟁' (24권) 편에서 카레 전문가 교수님으로 출연했었던, 인도 역사 교수가 쓴 식문화사 책입니다. 한방약을 카레에 섞어 먹곤 한다던 그 교수님이지요. 전공 분야라는 인도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다년간의 인도 유학 경험과 학자다운 방대한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인도 요리가 무엇이며, 왜 지역별, 문화별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은 왜 '카레'라는 요리가 생겨났으며,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인도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인도 식문화가 영국에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는건 다른 책들에서도 소개되었던 내용인데, 카레 가루가 생겨난건 영국에 생 스파이스가 없어서였다, 밀가루를 버터로 볶아 만든 루는 볶은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코코넛 크림 등으로 조리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걸쭉함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는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교수님이 등장하셨던 "맛의 달인" 에서도 소개되었던 '커리'의 어원에 대한 추론은 다시 읽어도 흥미로왔어요. 영어 '커리'는 16~17세기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이 기록한 '카릴'에서 유래되었을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칸나다어와 타밀어 커리는 야채와 고기라는 뜻인데, 왜 당시 사람들은 수프를 부어먹는 식사를 인도인들이 '카릴 이라고 부른다고 썼을까요? 저자는 당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인은 수프를 부은 밥 요리 이름을 물었는데, 인도인들은 수프에 들어있는 건더기, 즉 야채와 생선과 고기에 대해 묻는다고 생각해 대답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하지요? '캥거루' 어원 가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는 저자의 추론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도 요리와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찰이 이어집니다. 특징이라면 앞서 '커리'의 어원 추론처럼 어원, 요리 유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북인도의 긴 후추를 피랄리라고 하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 당시 그리스로 가져간게 현재 영어 페퍼의 어원이 되었다는 식으로요. 저자가 역사 학자인 덕분이겠지요. 

각 지방 및 요리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요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확실히 연구자가 썼구나 싶은 부분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도 식문화는 남인도에서 성립된 스파이스를 혼합하여 맛을 내는 '카레 문화'와 우유를 기름, 버터, 요거트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요리에 활용하는 북인도의 '우유 문화'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적절하게 융합되어 구축되었다고 합니다. 근거는 7-8세기 남인도 힌두교 사원에 남아있는 신에게 올리는 식사 관련 글귀에 등장하는 재료 - 밀라구 (후추), 만질 (강황), 지라가 (커민), 시르 카두구 (겨자), 코타말리 (코리엔더) - 목록이고요. 이건 현대 카레에 가장 중요한 스파이스로 꼽는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 후추, 겨자'와 동일합니다. 즉, 당시 남인도에는 커리의 원형이 이미 존재했다는 뜻이지요. 반면 북인도에서는 불교에서 석가에게 우유죽을 공양했던 고사에서 보듯, 우유 식문화가 탄생했고요. 이런 지역에 따른 대립은 카레, 우유 뿐 아니라 밀과 쌀 중 무엇이 주식인지, 재료가 고기인지 생선인지, 논베지테리언인지 베지테리언인지 등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됩니다. 북인도는 밀 생산 지역으로 쌀이 아니라 로티라고 부르는 밀가루 빵이 주식이라는게 대표적인 예이고요. 

이런 역사와 지역, 문화를 통한 요리 구분이 굉장히 상세한게 큰 장점으로, 심지어 '자이나교 요리'까지도 별도로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이나교는 철저한 불살생으로 베지테리언 요리로 유명한데, 우리도 인도 요리점 요리로 친숙한 '파니르'가 대표 요리더군요. 파니르는 끓인 우유에 식초를 넣어 굳힌 코티지 치즈이고, 이걸 카레 소스로 끓여낸 요리이지요. 여기에 시금치를 넣은게 '팔락 파니르'고요. 

무굴 제국의 궁정 요리도 별도 항목을 할애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정복 세력이 인도로 침입한 것이라, 그 역사적 배경이 다른 인도 요리와는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우선 무굴 요리의 시작은 유목민의 캐러밴 요리로 케밥이 그 원점이라네요. 무굴 제국의 이름도 몽골에서 유래했고, 그들은 원래 아프가니스탄 유목민 출신이니 중앙 아시아 유목민 문화가 그들의 바탕인 건 당연합니다. 여기에 2대 황제가 이란에 망명했던걸 계기로 페르시아의 맛과 정취가 더해졌고요.

특정 지역에 독특한 식문화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 설명도 그 깊이가 남다릅니다. 남인도 케랄라 식문화 소개가 좋은 에에요. 이 곳은 원래부터 후추와 카다몬이 자생하였던 향신료의 천국이었는데, 이후 남서 해상 무역 중계 기지라 남동아시아에서 클로브, 넛맥이, 스리랑카에서 시나몬이 운반되어 향신료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및 서방 지역과도 관계가 깊어서 이미 1세기에 그리스도 포교가 이루어졌고, 유대교 성당인 시나고그도 있었으며, 무슬림도 거주하면서 커피 재배 등에 종사했을 정도로 국제 도시이기도 했고요. 중국배 역시 12세기 경부터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15세기 초에는 정화의 선단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이라면 향신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외부 식문화도 많이 유입된 요리가 생겨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스리랑카 신할족은 북인도 왕자의 후예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언어와 전통은 북인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식문화는 가까운 남인도 카레와 밀착되어 있으며 특징은 매운 맛, 그리고 몰디브 피쉬의 사용, 코코넛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스리랑카의 식문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맛의 달인의 '카레 전쟁'의 스리랑카 요리 소개 부분과 똑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몰디브 피쉬를 절구로 빻는 장면은 사진까지 똑같더라고요!

소개되는 요리들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요리는 빈달루입니다. 어원은 포르투갈 요리 카르니 드 비나달로스의 비냐달로스라네요. 이게 인도식 발음으로 변형되었던 거지요. 16세기 초에 포르투갈이 고아를 점령했을 때 전래되었던 요리라고 합니다. 처트니도 영국식 잼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힌디어로 '다'라는 뜻의 '차트나'가 어원인 인도 요리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외 정 요리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몇몇 요리는 레시피도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칠리,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와 후추가 듬뿍 들어간다는 라삼 파우더로 만든 라삼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을 듯 싶더군요. 타밀어로 '후추 주스'라는 뜻이라니, 매콤한게 딱일거 같아요.

이런 내용들 소개에 이어, 책은 현대 인도 요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됩니다. 인도 요리란 어디까지나 스파이스와 우유를 주요소로 하는 요리의 총칭이며, 원래 다양한 지방에서 자기들끼리만 먹었었지만, 지방 요리가 인도 전체로 퍼져 현대 인도 요리가 된 것이라고요. 이를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라고 말합니다.

카레, 커리 뿐 아니라 '인도 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 준 좋은 책입니다.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라, 근거가 확실한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썼다는 점이 돋보였고요. 목차가 조금 두서가 없다는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하지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커리와 인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글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고요.

그나저나 일본에 좋은 카레 책이 많이 나오는걸 보면, 확실히 카레에 진심인 나라가 맞긴 맞나보네요.

2018/11/24

일본의 식문화사 - 이시게 나오미치 / 한복진 : 별점 2점

일본의 식문화사 - 4점
이시게 나오미치 지음, 한복진 옮김/어문학사

선사 시대( 정확하게는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식문화를 정리한 책입니다. 특정 요리나 특정 시기만을 다루지 않고 통사적으로 전반적인 식문화사를 다루고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몇가지 기억에 남았던 부분을 꼽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몬 시대 초 2만 명 정도였던 일본 열도의 인구가 조문 시대 중기 26만여명 까지 늘어났는데, 그 이유는 도토리, 상수리 나무 열매 및 각종 견과류가 식량 자원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수리 나무 열매는 동일 면적 대비 생산량으로 따지면 생산량이 많은 벼의 1/8에 해당될 만큼 생산량이 많아서 유용했다고 하네요. 이는 발굴된 당시 인골이 충치가 많은 것으로도 증명됩니다.
쌀이 주식으로 도입된 이유는 벼가 몬순 아시아에 적합하고 수확량이 많을 뿐더러 토양 침식이나 연작 장애가 없다는 농학적 장점에 더해 칼로리원이며 단백질도 우수하다는 영양학적 장점이 큰 덕분입니다. 부식물 없이 인체 유지를 위한 단백질을 쌀만으로 섭취하려면 체중이 70kg인 사람의 경우 조리하지 않은 쌀을 하루에 약 0.8kg 먹어야 하는데 이는 위장에 부담을 줍니다. 그러나 위장에 일단 채워두는게 가능했기에 유용했습니다. 이만큼을 밀가루로 섭취하려면 3kg을 섭취해야 하는데 이는 위장에 넣어두기 불가능한 양이라네요. 여튼, 이를 위해 농번기에 일본 농민은 하루에 1.5kg씩 쌀을 먹기도 했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고봉밥으로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식육의 공급은 여러모로 부족했고, 유제품 역시 거의 활용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기록에 남은 유제품은 '소'입니다. 유즙을 1/10로 졸인 음식입니다. 추측으로는 우유를 은근히 가열하여, 표면에 떠오른 막을 반복하여 걷어내 만든 유피일거라네요.

그리고 9세기 경에 현재에 계승된 전통적인 일본 요리의 기본적 조리법이 확립되었다고 합니다. 차이점이라면 기름을 이용하는 요리법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육식을 하지 않아 동물성 지방, 버터를 이용할 수 없었고 식용유를 짤 수 있는 깨 등의 작물은 매우 비쌌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름진 맛이 진하고 품위없다는 인식이 정착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회의 형식도 같은 시기 확립되었는데, 공적 질서를 중시하는 전반부 음주가 끝나고, 자리를 바꾸어 예를 찾지 않는 2차회가 이어지는 2부 구성입니다. 현대와 똑같은데 이러한 형식이 헤이안 시대에 이미 확립된 것이라니 재미있네요.

그리고 다회, 가이세키 요리 등 지금도 친숙한 여러가지 용어가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네덜란드나 포르투칼 요리에서 비롯된 '난반 요리' 설명이 특히 재미있습니다. 서양식 요리를 일본식으로 변경한 아이디어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가사키의 '히가도'는 참치, 무, 당근, 고구마를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간장으로 맛을 낸 조림 요리로 원래는 소고기를 기름에 볶은 조림 요리라고 합니다. 소고기 대신 붉은 빛의 참치로 변경하고, 기름을 많이 쓰지 않는 일본 요리처럼 소테 과정을 빼고 조림 요리로 변화시킨 겁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전통적 식문화의 완성, 그리고 근대에 외국 요리가 대거 도입되며 일어난 변화로 식문화사를 정리하는데 이 과정도 난반 요리와 유사한 점이 엿보입니다. 대표적인게 우스터 소스의 사용입니다. 간장을 만능 조미료로 사용했던 전통적 식문화에 기반하여, 쌀밥에 어울리는 우스터 소스를 서양 간장으로 이해하여 이를 적극 활용하게 된 것이지요. 중국 요리가 일본적으로 변형되고, 여기서 '시나 소바'가 '라면'으로 변화하는 과정도 같은 시각으로 설명합니다. 시나 소바는 원래 돼지고기와 닭뼈 스프에 구워서 조린 돼지고기를 얹고 후추를 뿌려 먹은 면 요리인데, 소바와 우동 등 전통적인 면류를 야식용으로 행상이 팔았던 것 처럼 야식으로 시나 소바가 활발히 팔리면서 일본적으로 변형된게 계기라고 말이죠. 그리고 예를 든 건 고명으로 차슈 외에 멘마, 나루토말이, 다진 파를 얹은 것입니다

이러한 식문화 역사가 1부 분량이며 2부에서는 식문화, 즉 예법과 용품, 조리법, 조리 기술 등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법과 용품에 대한 내용은 딱히 흥미롭지 않았으며, 조리법 등을 소개하며 사시미, 스시, 스키야키, 두부, 라멘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다른 관련 서적에서 익히 보아왔던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30여 페이지에 불과한 3부인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본 식문화에 대한 소개는 정말 볼 내용이 없었고요.

이렇게 기대에 미치지 못한 2부, 3부의 내용 외에도 책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도판이 부실한 점은 그렇다 쳐도 번역이 너무 엉망입니다. 보다 쉽게 쓸 수도 있었을텐데 너무 어렵고, 맞춤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 오탈자도 많은 탓입니다. 번역을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 요리 전문가가 했기 때문으로 보여지는데, 요리 전문가가 각종 용어에 대해서는 훨씬 잘 알 수 있기야 하겠지만 "제 2의 창작" 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번역의 역할을 너무 간과했습니다. 어찌되었건 20,000원이라는 가격에 어울리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국가의 식문화를 통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으로 인상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완성도에 걸맞는 가격은 아니라서 감점합니다. 같은 이유로 권해드리기는 어렵네요.

2020/09/26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고영 : 별점 3.5점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8점
고영 지음/포도밭출판사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이 읽고 먹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대로, 음식문헌 연구자인 저자가 본인이 경험했고, 맛보았던 식문화먹거리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놓은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크게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그리고 "온전한 밥 한 그릇"이라는 세 개의 대 분류로 구분됩니다.
이 중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에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 가치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인 "온전한 밥 한 그릇"은 주로 저자의 '느낌'과 단상이 가득한,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 많고요.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주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식문화,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탓이지요. 단순히 이미 널리 알려져있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가 음식문헌 연구자인 덕분에 본인의 연구가 바탕이 된, 깊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오래전 한시와 옛 문헌의 한 토막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일 첫 글인 "융도, 두 자의 뭉클함"를 보자면, 김려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의 소개와 해설을 토대로 당시 먹거리에 대해 일람하다가 '융도'라는 두 글자에 주목합니다. 융도는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의 접경지대에서 나는 벼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조생종 벼인데, 보리를 먹어 치우고 벼를 수확하기 전 식량의 징검다리 역할과 냉해를 견디는 품종 확보를 목적으로 조선은 세종 때 도입 육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소개합니다. 시 한 구절에서 이러한 전문적인 역사 관련 지식까지 풀어내는 그 식견이 사뭇 놀랍습니다.

이 책 덕분에 옛 문헌 속 이런저런 몰랐던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세종 때의 문헌 "산가요록"을 통해 우리에게는 일찍이 다양한 김치가 있었다는 소개처럼요. 복숭아 김치, 살구 김치, 수박 김치 등이 있었다는데, 그 맛이 사뭇 궁금해지네요.
일본 헤이안 시대 중기 수필집 "침초자"에 소개된 아마즈라와 13~14세기 원나라의 갈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빙수의 원형 이야기, 제빙 기술이 발달하여 1910년대 조선에서도 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나 빙수 먹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빙수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광수 소설 "무정"에서도 빙수를 먹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널리 퍼졌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와인에 대해 최초로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는 1720년 북경 천주당에서 와인을 맛보고 "소림과 대진현이 또 나를 어떤 방으로 이끌었다. 탁자에 수정병이 하나 있는데, 높이는 세 자(약 30.3cm)쯤이고 술이 떠 있는 듯 담겨 있었다.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데 술맛이 감미로우면서도 상쾌하고 이채로운 향이 코를 찔렀다. 마시고 난 다음에는 그저 조금 취기가 오를 뿐이고 취하지는 않았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이기지가 이후 와인 제조법을 물어보아 남긴 기록을 보면, 이 와인은 '포트 와인' 이었습니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북경 천주당의 예수회 신부들이 먼 북경까지 포도주를 옮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설명됩니다. 도수가 높아야 쉽게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꽤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포트 와인은 높으면 도수가 20도를 넘어가는 제법 센 술이라 마시고 나면 취할텐데, 이기지는 술이 꽤 셌나 봅니다. 이 뒤 다른 자리에서 포도주 세 잔을 거푸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글은 뒤에 조선 땅에 상륙한 여러가지 외국 술에 대한 글로 이어집니다. 각 글이 항목별로 분리가 되어 있기는 해도, 와인과 브랜디 등 각종 서양 술, 맥주, 사케와 정종, 청주 등의 일본 술,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등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항목만 따로 떼어 놓아도 충분히 가치있는 술에 대한 미시사 문헌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그만큼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풍성한 사료를 통해 깊이를 더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냉면 먹방"에서 소개되는 냉면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흔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당대 여러 기사들을 통해 냉면 먹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조망해 주기 때문입니다. 단지 '겨울에 평양 냉면'을 먹었다는게 전부가 아닌 것이지요. 1936년 "조선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냉면 미각의 절정은 삼복 (더위) 이전' 임이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매일신보" 1936년 기사에서도 여름 관청, 회사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는 불이 날 지경이라고 소개되었다고 하고요. 그러나 지금과 다른 점은, '경성 냉면은 평양 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으며', '냉면을 주문하면 20분은 기다릴 각오'를 했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패스트 푸드가 아니었던 겁니다.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을 통해 풀어놓는 우리나라 소금 산업의 역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굽는 방식의 제법을 사용하였는데, 일본이 조선 강점 시기에 한국 해안에 대단위 천일 염전을 조성한게 대단위 소금 산업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금을 만드는 염호가 옛부터 고단하고, 노비나 군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 중국 산동 출신 노동자를 대거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네요. 이후 중국 노동자들의 파업, 퇴사 이후 1930년대에는 조선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요. 고되고 힘든데다가 사회적 인식까지 부족한, 지금의 염전 노예 사건의 단초가 이렇게 일본에 의해 강제된 천일염 제조 산업 초창기부터 있었다는게 참 가슴 아픈 사실이네요.

그러나 이렇게 정보 전달 측면에서 우수하며,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글들에 비해 저자의 느낌,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은 좀 별로입니다. 저자의 생각 - 식문화와 먹거리는 빈부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한다 - 도 옛 문헌을 통해 먹거리가 빈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였다는걸 소개하면서, 이런 격차가 그나마 평등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알려주는데 비슷한 주장의 반복이 많은 편입니다. 이러한 격차가 현대에도 이어지는걸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지나치게 과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보 전달 측면의 글들은 별점 4점도 아깝지 않으나, 비슷비슷한 에세이 류의 글로 약간 감점합니다. 저자의 음식 관련 미시사, 문화사 전문 서적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네요.

2014/12/02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박상현 : 별점 3점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6점
박상현 지음/따비

저자가 규슈 지역을 다년간 수차례 방문하여 직접 발로 뛰면서 맛본 다양한 요리들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책입니다. 

요리들의 과거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설명해 주는 부분은 만화까지 망라하는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간략한 미시사, 통사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요리들의 현재는 현재의 맛이 어떠하며, 대표적인 가게는 어디에 있는지가 중심입니다. 때문에 일종의 맛집 탐방기이자 여행기로 읽히기도 하는데, 지금 해당 요리가 해당 지역에서 어떤 의미로 이해되는지를 설명하는 식문화 해설서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특히 요리의 발전 과정에서 일본, 그리고 규슈라는 지역 및 문화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 부분을 짚어내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메밀국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가 '고도의 숙련'이라서 단순한 반복작업에서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에 열광하고, 장인들이 대접받는다는 것입니다. 반복작업이 핵심인 탓에 재료가 천차만별이고 아이디어가 많이 가미될 수 있는 스시나 라멘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까지 소개하니 정말 장인의 메밀국수를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또 새롭게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여러 가지 요리들이나 상품들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요리'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이자 '상품'으로, 저자의 말대로 '스토리'와 '경험'을 파는 것들입니다. 온천 마을에서 명물 음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온타마란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무엇이 되었건 온천 달걀만 올려서 먹을 수 있으면 되는 기획 상품으로, 온타마란돈을 찾아다니는 여행 코스마저 개발되었다는군요. 현대에 새롭게 발굴한 식문화 상품인 셈이지요. "맛의 달인"이나 "신장개업" 등의 만화에 흔히 나오는 단순한 지역 특산 별미 음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제 직업이 일종의 경험 디자인이라 그런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그 외에 문체도 깔끔하고 사진과 편집도 완벽한 수준이라 읽는 재미를 더해주며, 저자가 맥주를 사랑한다는 것이 글 전반에 묻어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면 술 한잔이 빠질 수 없지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맛집 소개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거의 절반 정도의 분량이 평범한 블로거의 일본 맛집 탐방기와 다를게 없거든요. 사진만 봐도 맛있어 보이고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제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돈가스의 탄생"이나 황교익, 주영하의 책들처럼 음식에 대한 통사나 미시사적인 시각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졌지기를 바랬는데 말이지요.

또 제목 그대로 "규슈"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지방에 대한 소개는 부족합니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규슈만 돌아다녀도 일본의 식문화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목부터가 "규슈를 먹다"인데 다른 지방 먹거리가 없다는 단점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일 수 있고요. 하지만 그래도 진짜 맛있는 음식은 도쿄에 많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도 진짜 맛있는 회는 산지가 아니라 서울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또 도쿄 쪽이 실제 방문할 기회나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하고요.

아울러 가격 역시 쉽게 권해드리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책의 완성도와 만듦새는 훌륭하나, 비례해서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합니다. 조금만 더 저렴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와 의미, 자료적 가치를 모두 포함하는 책이기에 식문화나 음식 역사 관련 서적, 혹은 맛집 구루메 기행과 같은 책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덧 : 이 책을 통해 스시장인 지로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로의 스시를 먹어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21/01/10

일본요리 뒷담화 - 우오쓰카 진노스케 / 장누리 : 별점 2.5점

일본요리 뒷담화 - 6점
우오쓰카 진노스케 지음, 장누리 옮김/글항아리

제목이 꽤 강렬해서 관심이 갔던 책. 저자는 일본 최초 요리점 중 하나 우오쓰카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고물상을 운영하는 등 자신만의 삶을 산 괴짜 우오쓰카 진노스케입니다. <<격식 파괴 요리책 한 그릇 더!>>의 원작가로 더욱 친숙한 인물이지요. <<한 그릇 더!>>에서는 싸게, 쉽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 책은 일본 식문화 전반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을 담고 있습니다. 뒷담화라기보다는 일본의 식문화에 관련된 여러가지 주제를 '교육'이라는 큰 틀로 묶어 풀어내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건강하게 먹는 방법에 대한 교육, 제대로 된 일본 요리와 식문화에 대한 교육, 음식에 대해 정확하게 정보를 파악하는 교육 등이 수록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습니다. 에세이 형식으로 읽기 쉬웠으며, 흥미로운 내용도 제법 많았던 덕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치회에 대한 이야기처럼 일본 요리에 대해 알려진 상식들을 깨는 이야기들이 제일 좋았습니다. 원래 참치회는 굉장히 쌌고, 특히 대뱃살은 거의 버리는 재료였는데, 전후 사람들이 진한 맛을 추구하면서 대뱃살 인기가 폭발해서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고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이미 1915년에도 대뱃살은 최고급 재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도 시대나 다이쇼 시대에는 보존, 유통 기술이 부족해서 지방이 많아 상하기 쉬운 대뱃살을 유통하기 어려웠을 뿐으로, 보존과 유통 기술이 발달하면서 원래도 맛있었던 대뱃살이 각광받게 된 것이라네요. 입맛이 변한게 아니라요.
고래 고기 이야기는 충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맛의 달인>>에서도 일본 전통 식문화라고 강하게 주장했었는데, 고래 고기도 원래 잘 먹지 않았다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1939년 잡지에 실린 기사를 통해 1935년 남극 빙해 지역 포경 시작 전까지 대다수 일본인에게 고래고기 요리법이나 맛은 익숙하지 않았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래 된 일본 고유 풍습이 아니라는 거지요. 잡지 기사 하나만으로 근거를 삼는건 좀 애매한데, 과연 뭐가 맞는건지 자료를 더 찾아보고 싶어지는군요. 이전에 썼던 글을 아예 고쳐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옛 일본에서는 회를 찍어먹을 때 술을 졸여서 조미료로 썼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이리자케'라는 조미료로 우메보시, 술, 가쓰오부시를 졸여서 만듭니다. 짭쪼름하면서도 시큼 달큼할 것 같습니다. 한 번 시도해보고 싶군요. 맛술에 액젓, 식초를 조금 섞으면 비슷할까요?
마지막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신토불이'는 원래 '인과응보'와 같은 뜻의 불교 용어라고 하네요! 이를 1907년 일본 육군의 이시즈카 사겐이 일본인은 일본 식자재를 일본 전통적인 방식으로 먹자며 제안한 사상의 슬로건으로 유명해진게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인줄 알았는데, 정말 의외였어요.

제목의 '뒷담화'에 가까운 쓴소리들도 일부 실려 있습니다. 지금은 옛날과 같은 '단란한 식탁'은 없는 시대이다, 지금의 현미는 다이쇼 이전 현미와 다르며 에도 시대 사람들은 백미에 치우친 극단적 편식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현미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등이 그러합니다. 이 중 '장수한 사람들이 먹은 식품을 예로 들어 이런걸 먹어야 장수한다!'는 억지라는 주장은 굉장히 와 닿더군요. 10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이라면, 아무래도 태어난 곳에서 줄곧 먹어온 음식은 한정적이었을게 뻔하다는 논리인데 그럴듯해요.
많지는 않지만 <<한 그릇 더!>>와 같은, 간단한 비법 레시피들도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이소'에서 1000원으로 구입 가능한 재료'로 만든 요리들은 <<한 그릇 더!>> 그 자체더라고요.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던건 아닙니다. 보존식을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낭비되는 재료 소모를 줄이자는 주장이 그러합니다. 전통을 지키고, 더 맛있고 영양가 있게 음식을 먹자는 취지는 알겠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주장이라 생각되었거든요. 이미 조리는 극도로 단순한 형태로 제한하는 상품들이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빠르고 편한 조리가 더욱 각광받는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니까요. 이런 주장을 펼치느니, 차라리 유기농으로 재배한 재료를 전통 방식으로 조리하여 밀키트나 통조림, 레토르르 형태로 제공하는 기업체를 스스로 차리는게 나을겁니다. 햇볕에 쬔 고기가 맛있다면, 직접 만들어서 팔면 되잖아요?
또 지금은 제철인 음식이 없는데, 제철 음식을 먹자는 주장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사시사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농작물 재배 방식이 발전되고, 해산물은 양식이 가능해진 덕분입니다. 반대로 이를 제철에만 먹는다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요. 해당 계절에 작황이 불량하면 그 해에는 특정 작물을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양식없이 조업으로만 해산물을 채취한다는건 더 말이 안되지요. 해산물 자원 씨가 마르고, 가격도 폭등할게 뻔합니다. 제철이 없어짐으로 음식과 재료에 고마와하는 마음이 희박해진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현대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오히려 최대한 기술을 활용하여 먹거리를 제공하는게 먹는 것 만큼은 빈부격차를 최소화하는게 제대로 된 발전 방향이라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일본 관점에서만 쓰여졌다는 것도 우리 입장에서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단 레시피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파는건 별로 없어 보여서 재현은 어려워 보이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저자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 없고, 근거가 더 보강되어야 하며 일본 시각으로만 쓰여진 글들도 제법 많아서 감점합니다. 일본 요리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면, 딱히 권해드릴 책은 아닙니다.

2014/03/12

한중일 밥상문화 - 김경은 : 별점 2.5점

한중일 밥상문화 - 6점
김경은 지음/이가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음식 비교를 통해 문화적 고유성과 유전자를 탐색한다는 취지의 책입니다. 같은 재료를 다르게 조리하거나, 같은 조리 방식이지만 다르게 진화한 것 같은 비교 가능한 주제들로 엮여 있습니다. 식은 밥을 요리해 먹는 것의 대명사가 한국에서는 비빔밥이고 중국에서는 볶음밥이라는 차이, 김밥과 스시의 차이, 누룽지를 이용한 숭늉과 누룽지탕의 차이, 빈대떡과 전병(라이빙), 오코노미야키를 비교하여 소개하는 식으로요.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은 요리와 식문화 중심이기 때문에 꽤 재미있습니다. 새로 알게된 정보도 제법 됩니다. "가이세키(회석) 요리"의 명칭 유래처럼요. 누룽지탕의 유래, 고추에 관련된 쓰촨과 후베이 출신 혁명 동지들의 일화 등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마음에 들었어요.

중국 4대 미인 요리도 처음 알게 된 것인데, "서시설"은 서시가 희생된 바닷가에서 잡히는 사람의 혀를 닮은 조갯살 요리. 상하이의 "귀빈계"는 포도주로 간을 한 암탉 요리로, 양귀비가 사람을 홀리는 것처럼 취하게 만든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초선두부"는 모두부와 미꾸라지를 함께 끓인 추두부탕이고요. 간교한 동탁은 미끌미끌 미꾸라지, 하얗고 부드러운 두부는 초선으로, 두부로 미꾸라지를 요리했다는 직선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왕소군의 "소군오리"는 당면으로 오리탕을 끓인 음식이라네요. 상상이 잘 가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단순히 해당 국가에서 그 음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며, 문화적 고유성과 유전자를 탐색한다는 취지에 걸맞는 수준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음식 진화 방향에 대한 배경은 객관적이라 보기 어려운 탓입니다. 학술적 근거도 명확하지 않고요. 

책 소개에 - 한ㆍ중ㆍ일 DNA음식, 국민음식이 된 유래와 재료는 물론 음식을 대하는 그 나라 국민의 태도, 정치에 투영된 음식문화, 식생활과 습관 그리고 미용(美容)과 보양식 등을 동원하여 그 흔적과 함께 3국 국민성을 찾아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존이라는 보편적인 욕구가 독창적 요리로 발전, 각 국 고유의 음식문화로 정착되고 이웃나라와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규범과 정치적 이해 그리고 권력의 기호 등에 의해서 설정된 규칙이 독특한 ‘밥상문화’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 라고 언급되는데, 대체 저런 시각과 논리가 어디에 등장하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럴 바에야 요리, 식문화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과 관련된 에피소드만 실어주는 게 훨씬 나았을 거예요. 딱히 요리를 비교해서 뭔가 얻어낼 게 없다면 말이죠. 요리 자체가 문화적, 사상적, 역사적으로 강한 의미가 있지도 않으니까요. 아예 주제를 좁혀서 그 주제에 맞는 음식, 요리, 식문화만 걸러내는 게 낫지, 어렵게 주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해봤자 사실 와닿지도 않을 뿐더러 그러한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어려운데 왜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슷하게 접근했던 주영하 씨의 "챠폰 쟘폰 짬뽕"이나 "음식 전쟁 문화 전쟁"이 떠오르네요.

주영하, 윤덕노 씨의 저서 내용이 인용되는 등 다른 곳에서 읽은 내용도 적지 않고, 오히려 다른 콘텐츠에서 소개한 것과 다른 정보를 전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특히 "자장면", "짬뽕" 이야기는 아무리 3국을 비교하기 쉬운 소재였다 하더라도 너무 많이 알려진 것이라 후발주자 위치에서 또 소개하기에는 적절치 못했습니다.

소를 잘 먹지 않은 중국과 한국에서 소는 그만큼 중요한 가축이었다고 이야기한 뒤, 바로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소를 세분화하여 먹는다고 소개하는 식의 전개도 좀 어이가 없더군요. 중국이 김치의 종주국임을 주장한다던가, 일본의 기무치도 호시탐탐 김치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던가 하는 식의 국수주의적인 글도 문화사와는 별 상관이 없지 않나 싶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으나 앞서 이야기한 대로 특정 재료, 음식을 주제로 하여 3국의 차이와 소소한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식문화를 재미와 함께 전달하는 취지의 책이 더 나았을 겁니다.

2023/11/19

식민지의 식탁- 박현수 : 별점 4점

식민지의 식탁 - 8점
박현수 지음/이숲

일제 강점기 시대 발표되었던 문학 작품들을 통해 당시의 먹거리, 식문화 및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고찰하도록 해 주는 미시사, 식문화, 인문학 서적.

일제 강점기 시대는 관심이 많아서 예전부터 이런저런 미시사 서적을 읽어왔었는데, '문학 작품'을 가지고 식문화를 조망하는 책은 처음 봤습니다. 크게 10개의 작품으로 목차는 구분되어 있는데, 실제로 등장하는 작품은 훨씬 더 많습니다. 이광수의 "무정", 이상의 "날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유정의 "동백꽃", 심훈의 "상록수" 등 누구나 아는 유명 작품들에서 이름 모를 작품까지 그 폭도 굉장히 넓고요. 
샌드위치, 우동, 설렁탕 등의 요리와 관부 연락선 내 식당, 선술집, 카페와 바, 시골 주막, 백화점과 호텔, 명치제과 등의 장소, 그리고 요리의 가격과 그 유래, 당시 레시피까지 심도깊게 알려줘서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여러 작품들에서의 해당 요리와 장소에 대한 묘사를 뽑아내어 생생하게 알려줌은 물론이고, 관련된 다른 자료들도 충실히 소개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래서 선술집이 술 한 잔을 시키면 안주 하나가 공짜였다, 서울 시내에서 약수를 돈을 받고 팔았다, 당시 '지짐이'는 찌개와 국 사이에 위치한 국물 요리였다,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위스키 중 하나는 '화이트 호스'였다는 등 새롭게 알게된 지식도 많습니다. 김남천의 "사랑의 수족관" 속 묘사를 통해 당시 커피에 설탕을 넣어 먹는게 일반적이었다는 것도 그러하고요. 하긴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다방' 이란 곳에 가면 항상 설탕 단지가 놓여있었지요.
또 조선 최고의 고급 식당이었다는 조선호텔의 1936년 정통 코스 순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가짓수가 다소 부족하지만, 지금 보아도 손색없는 구성이더라고요. 1936년에 조선에서 자몽 소르베라니!
  1. 애피타이저 : 콘소메와 레터스 샐러드
  2. 메인요리 : 오리간 구이와 로스트 비프
  3. 디저트 : 자몽 소르베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아침, 점심, 저녁 각각 1원 50전, 2원, 3원 50전으로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45,000원에서 105,000원 정도라는 가격도 꽤 상식적이고요.
그 외에도 송이 산적 레시피는 새송이 버섯으로 대체해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지는 등, 제 흥미를 끈 내용은 굉장히 많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작품 속 인용하는 부분으로 분석하여 알려주기도 하는데, 심훈의 "상록수"에서 동혁과 영신을 초대한 백 선생이 입만 살아있는 속물이었다는건 그녀가 대접한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등으로 알 수 있다는 식입니다. 농촌 계몽을 부르짖지만, 본인은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 그걸 과시까지 한다는걸 잘 드러내기 때문이거든요. 어린 시절 "상록수"를 읽었을 때에는 카레라이스가 '새로운 화양절충'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걸 몰랐었기에 저런 은유나 비유를 잘 알 수 없었는데, 확실히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느냐가 작품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영신이 일본에 갔다 온 뒤, 선물로 가지고 온 바나나를 잘게 썰어 아이들에게 먹여주었던 장면만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귀했다는건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으면 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거지요. 조금 부끄럽네요. 앞으로 좀 더 책을 생각하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다른 일제 강점기를 소개하는 책들과 겹치는 내용이 많은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바와 카페는 이미 많은 책을 통해 접했었습니다. 이 책처럼 문학 작품을 이용하여 소개해 준건 아니지만요. 낙랑파라 역시 마찬가지고요. 또 시골 주막의 풍경 등은 주제와 조금 벗어나는 이야기였으며, 가끔 저자의 주장이 뭔가 촛점을 벗어난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있다는건 단점입니다. 샌드위치와 된장찌게의 비유에서 갑자기 레비스트로스의 요리의 삼각형으로 튀는 부분처럼요. 그냥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점이 훨씬 더 많은 책인건 분명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식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5/31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 김동진 : 별점 2.5점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 - 6점
김동진 지음/위즈덤하우스

제목 그대로 조선에서의 소고기 식문화에 대해 고찰하는 책입니다. 

근거가 확실하여 신뢰가 가도록 쓰여진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조선 시대때 소고기를 정말 많이 먹었다는걸 증명해 주는데, 그 양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세종 때에는 무려 소가 15만 여 마리에 달했다니 놀라울 정도지요. 맛은 물론 몸에도 좋아서 성찬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전쟁 때 병사들에게 베푼 '호궤'의 중심이 소고기였다는 걸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양도 어마어마해서 숙종 때에는 군졸 한 명 당 0.81kg 부산물 제거 시 400g 정도 할당되었고, 술은 소고기 한 근당 술 다섯 홉까지 지급했다니 군 생활도 나름 할 만 했을 것 같네요. 소주 한 병이 2홉이니 고기에 술 2병 반이면 괜찮은 셈이잖아요? 이 양은 영조 때는 2.44배 등으로 이후 계속 증가했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우역 (소 전염병)이 퍼지면 소가 죽을게 뻔해서 일찌감치 잡아서 먹었던게 소고기 식문화가 널리 퍼지고 전형화된 이유라는 것 역시 재미있는 이론이었고요.

이러한 조선 시대 소고기 식문화 관련 자료는 물론이고, 후반부에 소개되는 다양한 소고기 요리들도 볼거리입니다. 당연히 당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15세기는 주로 "산가요록"을, 16세기는 "촌가구급방", "수운잡방", "묵재일기"를, 17세기는 "음식디미방"을, 18, 19세기는 "산림경제" 속 요리와 조리법을 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비슷한 요리들도 있지만, 지금은 잊혀진 요리와 조리법들이 더 눈길을 끕니다. 어떤 요리들은 상당히 맛있을거 같아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600여년 전 요리인 육면, 토장, 양 식해가 대표적입니다. 육면은 고기를 솔잎처럼 가늘게 썰어서 깨끗이 씻어 밀가루 또는 메밀가루를 반복해 묻혀 끓는 물에 삶는 국수 요리입니다.
토장은 밀가루 한 되와 고운 쌀가루 한 홉, 녹두가루 한 홉을 물로 반죽해 밀판에 놓고 밀어 길이 두 치(약 6센티미터)에 너비 한 치 반(약 4.5센티미터)으로 자릅니다. 이를 대광주리에 담아 끓는 물에 익혀 물에 담가 차갑게 식히고, 들깨즙에 간장을 넣고 여러 가지 향채와 맛있는 고기, 계란면, 표고 등을 섞어 먹습니다. 일종의 냉 비빔국수인 셈이죠.
양식해는 양을 먼저 물에 깨끗이 씻어 둥글게 조각내어 후추를 갈아 넣고 물이 펄펄 끓을 때 양을 잠깐 넣어 반만 익혀 꺼낸 것을 차게 식힌 뒤, 소금을 살짝 뿌리고 진밥 한 사발과 누룩 한 움큼을 고루 섞어 버무려 항아리에 담아 기름종이로 봉하고 재[灰] 속에 깊이 묻어두었다가 꺼내어 썰어먹는 일종의 젓갈입니다. 고춧가루를 더해도 괜찮을 듯 싶네요.

지금도 흔하게 먹는 소고기국과 곰국의 조선 시대 레시피도 인상적입니다. 소고기국은 "산림경제"를 통해 그 유래가 사슴고기국임을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요리의 흐름을 아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조리법을 보면 지금의 소고기국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고기를 소금과 술, 식초를 써서 담그고 기름과 후추를 넣어 볶은 뒤 국을 만드는 식이며 내장 등의 고기도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고춧가루를 넣으면, 지금의 내장탕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반대로 곰국은 끓는 물에 넣고 뭉근한 불로 오래 익히는 지금 방식과 똑같다는 것도 재미있고요. 그 외 요리들 소개 모두 나름대로 볼 만 했습니다.

또, 당시의 소고기는 대부분 늙은 소의 고기였기 때문에, 이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들도 인상적입니다. "음식디미방"에서는 소고기를 삶을 때 살구씨 빻은 것과 떡갈나뭇잎을 넣는게 비결로 소개됩니다. 처음부터 고기를 물에 넣지 말고, 펄펄 끓을때 넣는 것도 비법으로 이는 "수운잡방"에서도 소개된 방법입니다.
"음식디미방"에서는 질긴 고기는 산앵두나무를 함께 넣고 뽕나무로 때서 삶으라고도 하고요. 저자는 조사를 통해, 살구씨는 굳은걸 풀어주는 성분이 있고 떡갈나뭇잎은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타닌이 함유되어 있으며, 산앵두나무 역시 굳은 것과 부은 것을 풀어주는 성분이 있어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해 주었을거라고 알려줍니다.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는건, 보관 방법과 오래된 고기의 조리법도 비중있게 소개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상한 고기의 경우, "당추자唐秋子에 구멍을 서너 개 뚫는다. 말만한 크기의 고기에 (당추자) 서너 개를 같이 넣고 삶으면 상한 것 같지 않다."며 조리해 먹을 정도입니다. 이는 소고기의 유통양이 적고 희귀했다면 관심가질 일이 없는 항목일테지요.

그러나 이러한 레시피들의 효과에 대해서 실제로 실험을 통해 증명한건 없으며, 단지 추정만 있는건 아쉽습니다. 또 소고기를 먹어야 장수했으며, 소고기를 먹지 않아 단명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는 등의 항목과 같이, 저자 입맛에 맞추어 가공된 자료가 많다는 것도 거슬렸던 점이고요. 이렇게 일반화 시킬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전반적인 내용이 학술적 자료에 근거한, 논문과 같이 쓰여져 있어 읽는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였어요.

조선 시대 소고기 식문화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꼭 한 번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는건 분명하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좀 더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를 수록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2021/03/19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 별점 2.5점

조선의 미식가들 - 6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조선 시대, 음식과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문인과 그들의 글 속 주요 요리를 소개해주는 식문화, 미시사 서적. 당시 음식,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을 '미식가'라 칭하고 있는 셈으로, 모두 15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의 냉면
  •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 "어해 중에서 으뜸이다” 김려의 감성돔식해
  •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전순의의 동치미
  •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아주 좋다” 이시필의 열구자탕
  •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 “지금 엿집에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김유의 엿
  • “먹으면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파했다” 조극선의 두붓국
  •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덕무의 복국
  • “잠깐 녹두가루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쓰나니라” 장계향의 어만두
  •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빙허각 이씨의 강정
  • “갓채는 물을 짤짤 끓여 부으면 맛이 좋으니” 여강 이씨 부인의 갓

주로 선비, 사대부들이 쓴 산문이나 시조, 편지 속에서 음식, 요리를 주제로 쓴 글을 찾아낸 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분석하고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도문대작"을 쓴 허균이나 채소에 대한 시조를 남겼다는 목은 이색 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조선 선비들이 음식에 대해 쓴 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대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또 귀양가서 쓴 글이 많다는게 이채롭더군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귀양가서 험한 음식을 먹다보니, 예전에 먹었던 맛난게 생각나 글로 남긴 경우도 있지만, 귀양가서 처음 보는 먹거리와 음식에 대해 글을 남긴 경우요. 전자의 경우는 허균, 후자의 경우는 조선 후기 김려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 속 글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김려가 현재 마산 지역인 '우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쓴 글로 당시 어떤 생선으로 어떻게 젓갈을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최고의 젓갈이라는 감성돔을 비롯하여 볼락, 삼치에 붕장어까지 젓갈로 만들었다니 신기합니다. 당시 이런 물고기들이 많이 잡혔으며, 어민들도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젓갈을 담궈 시장에서 팔았다는걸 증명하기도 하고요. 꽤 거대했던 산업으로 짐작되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많이 사라진듯 하여 무척 아쉽습니다. 함께 소개된 홍게로 만든 포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귀양지에서 처음 본 먹거리와 음식은 귀양지 특성 상 해산물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귀양지에서 먹는 음식인데 등장하는건 지금은 쉽게 먹기 힘든 고급 재료들이더라고요. 과거 원나라가 고려를 방문했을 때, 원나라에서는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전복 등을 일반 백성들이 쉽게 먹는걸 보고 놀랐다는데, 딱 그 심정입니다. 3면이 바다라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조 때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옥이 남긴 글로는 당시 고추가 널리 전파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옥이 워낙 고추를 좋아해서 직접 심어 먹었을 뿐 아니라, 고추를 많이 먹으면 풍이 들거나 눈에 좋지 않다는 세간 속설을 반박하는 글까지 썼다니 고추 사랑이 정말 어지간했던것 같습니다. 인조 때 조극선이 남긴 글은 '연포회'라는 행사가 성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연포회가 왜, 어떻게, 어디서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연포회에서 먹었다는 두붓국 레시피도 꽤 자세합니다. 지금 만든다면 굴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육수에 연두부를 넣어 먹으면 비슷할거 같아요. 조극선은 닭고기를 써서 만든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선비다움을 유지하라는 '잔소리' 가득한 이덕무의 글은 꼬장꼬장했을 당시 선비들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고요.

잘 몰랐던 당대 요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습니다. 영조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먹었다는 '이중탕'에 대한 소개가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재료는 인삼과 백출, 건강포, 감초인데 영조가 조선조 최대 수명을 자랑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감동적즙이 무엇인지도 소개해 줍니다. 감동즙은 젓갈의 일종으로 국물이 젓갈보다 넉넉하여 즙이라고 불렀으며, 김창업은 감동이 '자하젓'과 같다고 했다네요. 새우젓에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현재 풍습과도 비슷한데,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비슷한 법이겠지요?

현재도 재현 가능할 정도로 레시피 소개도 충실합니다. 목은 이색이 남긴 한시 "새벽에 한 수를 읊다" 를 볼까요? “기름에 두부를 튀겨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고, 여기에 파를 넣어서 향기를보태네, 잘된 멥쌀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깨끗이 닦은 그릇들은 눈에 환히 빛나누나"로, 두부 요리 레시피가 아예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쉬움과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허균과 "도문대작"은 이쪽 분야에서는 너무 많이 접한 소재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미식가를 꼽을 때 허균을 꼽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몇 년 전에 읽었던 "조선의 탐식가"들과 내용면에서도 많이 겹칩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이라던가, 사대부 가문 부인들이 가문의 레시피를 기록했던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는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선정이라 생각되고요. 도판도 그냥저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은 가치있지만 단점도 있어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여기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현재 네이버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관심이 가시더라도 네이버를 통해 먼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8/24

식탁 위의 중국사 - 장징 / 장은주 : 별점 2.5점

식탁 위의 중국사 - 6점
장징 지음, 장은주 옮김/현대지성

제목만 보면 여러가지 중국 요리를 통해 중국사의 단편을 엿보게 해 주는 미시사 서적같은데, 읽어보니 생각과는 살짝 달랐습니다. 여러가지 요리에 대해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해 주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생각대로 당시 시대상과 역사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탄탄한 사료 기반 설명들 덕분입니다. 대표적인게 개고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국 요리에 대해서는 "다리 4개 달린 건 책상과 의자 빼고 다 먹고 다리 둘 달린 건 사람빼고 다 먹으며 하늘의 전투기, 땅위의 탱크, 바닷속의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있을 정도로 온갖 식재료를 먹기 때문에 개고기도 식용으로 널리 퍼졌으리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요. 오래 전에는 가장 많이 사육한 가축이자 춘추전국 시대에는 제사에 쓰였고, 심지어 유방의 부하 번쾌는 구도(개잡이)였을 정도로 널리 먹었지만 현재는 알려진 조리법이 극단적으로 적을 정도로 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는 북방 유목민이 개를 좋아했는데, 북망 유목민 세력이 강해지면서 서서히 개고기 식용 습관이 쇠퇴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육조시대 때부터 '개를 먹으면 벌이 내린다'는 동물관, 식습관이 등장했고 이후 당대, 송대에 지속적으로 쇠퇴하다가 유목민 왕조인 원대에는 심지어 개고기가 몸에 나쁘다는 이론마저 득세하여 개고기 식용 습관을 거의 끝장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명대 기록에 따르면 개고기는 천한 사람들만 먹는 음식으로 전락했다네요. 세력의 변화에 따라 식문화마저 변해버린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돼지고기 인기가 떨어지고 양고기 인기가 높아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흉노족의 남하, 그리고 거란의 요나라 세력이 중원에 미친게 원인이니까요. 거란족은 평소에 양고기를 많이 먹고 제사에도 사용할 정도라, 이 식문화가 중원에 전파된 것이지요.
원래 중국인들은 알곡을 먹었는데, 밀가루를 먹게된건 한대. 장건의 서역 방문으로 전래된게 아닐까라는 추측도 그럴싸 했습니다. 마르코폴로에 의해 국수 문화가 이탈리아에 전파되어 스파게티가 되었다는 설과 왠지 비슷하네요. 물론 이 설은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속설로 널리 퍼진건 그만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인데 장건 서역방문설도 설득력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특정 요리로 주요 세력이나 외교를 엿볼 수도 있고, 고대에 회가 많았던 이유에 대한 설명처럼 당시 시대 상황을 요리로 알려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음식을 가열하려면 손이 많이 갔으며, 고대에는 그릇도 전부 도기라서 찌거나 조리는 조리법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도기는 열 전도율이 낮아 가열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생식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즉, 고대에는 '에너지'를 잘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는 겁니다(당연하지만요).

요리와 음식, 재료별 사료를 통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습니다. 몇가지를 소개해드리자면,
'노나라 애공은 공자에게 복숭아, 기장법을 먹도록 권했다. 공자는 먼저 기장밥을 먹고 그 다음 복숭아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일동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다. 기장밥은 먹는게 아니라 복숭아털을 벗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기장은 오곡 중 가장 으뜸이라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도 최상의 제물로 쓰입니다. 하지만 복숭아는 여섯 가지 나무 열매 중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군자는 천한 물건으로 귀한 물건을 벗길 수는 있으나, 그 반대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공자의 말주변을 잘 알 수 있는 고사네요. 그런데 기장 밥으로 복숭아 껍질을 어떻게 벗기는 것일까요? 궁금합니다.
 
완탕과 교자의 차이도 재미있었습니다. 우선 교자피는 둥글고 완탕피는 사다리꼴입니다. 물교자는 삶아서 그대로 접시에 담아 먹지만, 완탕은 간을 한 국물에 넣어 먹고요. 완탕은 피에 간수를 넣지만 교자는 소금을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자는 소를 넣고 피를 붙이지만 완탕은 먼저 붙이고 비튼다는데, 이 마지막 차이점은 그림으로 설명해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먹어본 완탕은 피에 소를 넣고 붙이는 방식은 똑같았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갈공명의 만두 기원설은 속설이라고 합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교자는 당대 발굴된 것으로, 투루판 지역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사료들에 등장하는 '혼돈'은 완탕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대 문서에 나온 조리법을 보면 교자라고 하고요. 의외로 군교자(군만두)는 비교적 최근 음식입니다. 남송 중궤록에 언급되어있다고 합니다.

상어 지느러미는 연골 부위로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급 요리가 된 건 질 좋은 육수로 걸쭉함을 더해 육수의 진한 맛이 연골에 스며들고 지느러미 사이에 배게하여 만들어낸 농후한 맛과 독특한 혀의 감촉 때문입니다. 젤라틴같은 매끄러움과 야들야들함에,삶아도 남아있는 연골 탄력을 통해 환상적 식감을 제공하지요. 그러나 의외로 역사는 40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고, 전국에 퍼져 진미로 극찬받은건 청나라 중기로 겨우 300년 전이라고 합니다. 요리법이 고도로 발달해야 하는 요리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역사가 짧은건 북경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북경오리의 원형은 오래되어야 남송 시기이며, 재료인 진압이라는 품종 사육도 명대에나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북경오리를 만든 원조집 편선방은 1869년 개점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북경오리점 전취덕은 1901년 개업했고요. 흔하디 흔해서 오래되었을 것 같은 피단도 명 말기에나 등장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피단의 식용 역사는 고작 300여년 전에 그친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젓가락 사용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이라던가 -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쓰지 않았다. 음식을 집을 때만 젓가락을 사용했다. 국도 채소가 든 것은 젓가락으로 먹지만,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예기"에 쓰여 있다. - , 원래 다양한 요리법이 있었지만 '볶음'요리가 중화 요리의 대세가 된 조리법의 흐름과 같이 재미있는 주제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목차가 연대순이 아니고, 설명도 두서가 없는게 많은건 아쉽습니다. 이렇게 쓸 바에야 그냥 "중국요리 백과사전"처럼 특정 요리에 집중해서 설명해주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판이 거의 전무하다는 단점도 크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01/09

가스트로노미 - 나가오 켄지 / 김상애 : 별점 3점

가스트로노미 - 6점
나가오 켄지 지음, 김상애 옮김/비앤씨월드

제목인 가스트로노미는 '식을 즐기기 위한 광범위한 지식'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구르망은 미식가를 뜻하는 단어고요. 브리야 사바랭은 "가스트로노미를 논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된 고도의 지식이 요구되며, 이러한 지성을 겸비한 (혹은 겸비했다고 여겨지는) 상류 계급만이 이 새로운 단어의 배후에 펼쳐지는 풍부한 세상을 이해하며 얻을 수 있다"고 했다네요. '상류 계급'이라는 말만 빼면 "맛의 달인" 등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원형인 셈이지요. 저 역시 이렇게 가스트로노미를 논하는 구르망이 되고 싶네요. 

하여튼, 이 책은 '가스트로노미'를 논하기 위해서는 현대 프랑스 요리를 알아야 한다는 대 전제 아래에서,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되짚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프랑스 요리는 왕실과 귀족 문화 중심으로 토양을 다지며 발전해 오다가 17세기 라 바렌이 쓴 "프랑스 요리사"로 '오트 퀴진'(고급 요리)의 씨앗이 뿌려지게 됩니다. 기본 요리와 부이용, 허브 등을 조합하여 풍부하고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처음 도입되었지요. 요리가 조직화되고 간소화된 덕분입니다.
라 바렌 이후 요리사들은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누벨 퀴진'(새로운 요리)라고 불렀고, 그 뒤 17세기부터 부르주아가 세력을 얻으면서 그들이 동경하던 귀족 문화 모방 유행에 따라 식탁 문화 역시 부르주아에게 전파, 보급되며 확장되었습니다.
18세기에 유명 요리사 므농, 라 샤펠 등에 의해 이런 문화들이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지다가 18세기 후반, 드디어 레스토랑이 출현했습니다. 귀족들이 누리던 식문화를 식당에서 먹을 수 있게 된 거지요. 화려한 인테리어와 조명, 정중한 접객과 서비스, 세련된 오트 퀴진이 조합된 레스토랑에 드나들던 상류층들로부터, 앞서 말한 '가스트로노미'가 탄생하였고요.
여기에 불을 붙인건 프랑스 혁명이었습니다 .혁명으로 귀족들이 몰락하자 고용 요리사, 파티시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부르주아들이 이권을 차지하여 사치스러운 오트 퀴진 레시토랑이 성황을 이루게 된 덕분입니다.

이후 정통 구르망을 자처하면서 고급스러운 식문화를 전파하고자 했던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가 가스트로노미에 대한 여러가지 기획, 식사회를 거치며 "식통 연감" 등을 발표하며 시작된 '미식 문화' '미식 저널러리즘'은 브리야 사바랭의 "미각의 생리학"이 성공하면서 뿌리내렸습니다. 이들에 의해 '구르망' 이 폭음폭식이 아닌 고상한 단어로 포장되게 되었고, 식 저널리즘은 19세기에는 여러 저널리스트 및 발자크나 뒤마와 같은 인기 작가들에 의해 대중화되어 널리 퍼졌습니다. 이런 흐름은 현대의 "미슐랭 가이드"까지 이어졌고요. 이들에 의해 '가스트로노미'를 위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제공됨으로써, 가스트로노미 역시 더욱 활성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나폴레옹은 탈레랑을 이용해 외교에 요리를 적극 활용하였는데, 탈레랑의 큰 힘이 되어준건 '요리사의 왕' 앙토넹 카렘이었습니다. 카렘의 노력으로 요리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고, 카렘이 쓴 "19세기의 프랑스 요리예술"을 통해 그가 구축한 프랑스 요리 체계가 수많은 요리사들에게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요리 왕국 프랑스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렘이 죽은 19세기에도 카렘의 제자 아돌프 뒤글레레와 줄 구페 등에 의해 카렘의 요리도 계속 발전해 나갔습니다. 특히 뒤글레레의 제자격인 위르뱅 뒤부아는 러시아 외교관 오를로프 공의 메트르 도텔 (수석 요리인)으로 일하면서 러시아식 식사 제공법을 보급시켰습니다. 프랑스식은 많은 요리를 한꺼번에 식탁에 나열하는 반면, 러시아 식은 1인분씩 나눈 요리를 코스 순서에 따라 한 품목씩 제공하는 방식이었지요.

프랑스 요리사들의 활약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프랑스 요리의 우위는 전 유럽에서 이미 확고한 것이 되었으며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등장으로 현대 요리계에서 불멸의 지위를 확립하고 있는 프랑스 요리가 정립되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에 따르면 에스코피에는 본인 능력도 있었지만 '아첨' 하는 능력이 빼어나 요리의 황제 자리를 차지했다고 되어있는데, 아첨도 능력이지요.
참고로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유명 요리사들과 구르망들 - 타이방, 라 바렌, 앙투안 보빌리에, 브리야사바랭, 카렘, 에스코피에 - 이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에 등장하고 있어서, 비교해서 읽어보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상세히 알려주며, 주요 요리사와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도판도 꽤 괜찮은 편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 요리에 대한 '가스트로노미'를 과시하는데에는 더 없이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에 소개된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 이야기를 응용하여 김태권이 썼던 짤막한 글을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에서 접해 보았는데, 이 책 쪽이 훨씬 상세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김태권 씨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부록처럼 실려있는 단편 소설인 "바르드 알 딘 왕자의 타르트레트"도 재미있었습니다. 앙토넹 카렘이 정체불명의 흑인 여자가 만든 타르트레트를 맛보고 겪게 되었던 기묘한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타르트레트 레시피는 대법관 캉바레세르, 파르마 공이 어린 시절 사랑했던 디아나와 함께 만들었던 것이었지요. 카렘이 흑인 여자를 시켜 만찬에 타르트레트를 내 보낸 덕분에 파르마 공은 디아나의 어린 딸을 만나 돌봐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 자체는 특별할게 없지만, 1840년대에 이미 요리사가 이렇게 대중적인 지명도와 인기를 얻을 정도였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타르트레트'는 소형 타르트를 의미한다는데, 살짝 소개되는 재료를 볼 때 별 맛은 없을 듯 하지만 이 당시에 이미 이런 디저트를 이야기 소재로 삼았다는 것도 놀랍고요. 확실히 프랑스가 요리 강국이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2013/09/09

에도의 패스트푸드 - 오쿠보 히로코 / 이언숙 : 별점 2점

에도의 패스트푸드 - 4점
오쿠보 히로코 지음, 이언숙 옮김/청어람미디어

17~19세기까지의 에도막부 전성기 때의 다양하게 발달한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식문화 및 일종의 미시사 서적입니다. 제목 그대로 포장마차에서 다루었던 다양한 패스트푸드는 물론, 가이세키 요리로 대표되는 요리집 요리까지 당대의 식문화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에도라는 도시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이 담뿍 포함된 것 역시 매력적이고요.

주제답게 다양한 요리에 대한 소개가 압권인데, 예를 하나 들자면 "맛의 달인"의 두부 승부 편에서도 등장했었던, "두부백진"에 실린 최고등급의 두부요리 "절품"에 대한 것입니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절품 7종 : 아게나가시(튀긴 두부), 매운 맛 두부, 두부 산적, 탕 두부, 유키게메시, 구라마 두부, 신노우동 두부
  • 아게나가시 - 튀긴 두부를 탕 두부처럼 다시마를 우려낸 국물에 조린 것
  • 매운 맛 두부 - 매운 맛은 생강의 매운 맛
  • 두부 산적 - 두부를 2.5센티미터의 네모로 썰고, 다시 두께 1.5센티미터로 썰어 꼬치에 3개씩 꽂아 갈색이 날 때까지 구운 뒤 꼬치를 빼고 뚜껑 있는 도자기 그릇에 담아 겨자, 식초, 된장으로 만든 소스를 뿌리고 겨자 열매를 얹은 것
  • 탕 두부 - 두부를 갈분탕에 따뜻하게 데워서 날간장을 끓이고 가다랭이포를 넣어 걸러낸 뒤 파, 당근 간 것, 겨자 가루를 넣은 요리.

그러나 단점도 확실해요. 너무 재미가 없어요. 좀 재미있게 여러 가지 도판을 곁들여가며 소개해 줄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이른바 4대 패스트푸드인 덴푸라, 니기리즈시, 메밀국수, 장어구이에 대해 소개하는 초반부는 나름 괜찮았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논문 느낌이 들 정도로 학술적인, 그냥 정보의 나열에 불과해서 읽기가 힘들어집니다.

일본의 여러 가지 요리의 역사와 그 발전상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읽으실 가치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미시사 서적으로의 기본적인 재미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4/12

밀크의 지구사 - 해나 벨튼 / 강경이 : 별점 2.5점

밀크의 지구사 - 6점
해나 벨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oo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책이 워낙 예뻐서 눈에 뜨이는 대로 한 권씩 구입해 두기는 했는데, 처음에 읽었던 몇 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카레왕추천으로 읽은 "커리의 지구사"가 아주 좋아서, 나머지도 계속 읽어볼까 하여 집어들게 되었네요.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처럼 밀크, 즉 우유가 우리 식문화에 자리잡은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일 첫 단락은 왜 인류가 동물의 젖을 먹어야 했으며, 언제부터 젖을 먹기 시작했는지입니다. 동물의 젖을 먹게 된 이유는, 가축을 키우면 그 젖을 식량으로 쓰는건 타당한 이치라고 설명됩니다. 쥐와 고양이, 돼지 젖을 먹지 않은 이유는 먹을 만큼 젖을 짜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고요.
이후 알려주는건 인류가 언제부터, 어디서 우유를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최근 연구결과로는 기원전 7,000년 또는 그 이전에 현재의 터키 지역 쪽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 각종 문명, 문화권에서 젖을 어떻게 짜서 먹었는지 등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각 문화권에 있었던 독특한 레시피, 유제품에 대해서도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우유를 끓여먹으면 소화하기가 훨씬 숴워져서 고대 인도에서는 뭉근하게 끓인 뒤 강황가루나 후춧가루, 계피 조각, 생강 가루를 넣어서 먹었다는군요. 몽골의 말젖 발효주 아이락 만드는 법, 베두인의 낙타젖은 물과 1대 3의 비율로 희석하면 맛이 좋다는 대 플리니우스의 레시피 등도 수록되어 있고요.
참고로 동물의 젖을 요리의 재료로 쓴 역사도 당연히 오래 되었습니다. 기원전 1750년 경 바빌로니아 설형 문자 기록에 따르면 밀크나 신 밀크를 새끼 염소 스튜 등에 사용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고기와 밀크를 함께 먹지 않았습니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된다는 이유라는데, 나름 타당하네요. 이러한 고대 문명에서의 우유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고대 로마까지 이어집니다. 여기까지가 서두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뒤에서부터는 근대 이후부터의 시기가 핵심으로 다루어집니다. 우유 수요가 증가하여 현대적인 우유 산업이 생성된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기 위함이지요. 우선 17세기 이후부터 시골 동네에서 우유를 꾸준히 먹고, 도시에서도 우유 수요가 증가하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이는 인구 증가와 시장 활성화 덕분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우유 시장이 커진 19세기의 우유는 위험한 식품이었다고 하네요. 지저분한 낙농장에서 비위생적인 운송 과정을 거쳐 냉장도 하지 않은 채 저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유의 양을 늘리고 색깔, 맛, 향을 위해 온갖 첨가물을 넣어 더욱 위험했어요. 이후 19세기 후반 저온 살균법이 보균되면서 겨우 현대적인 우유 보급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우유 시장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듭니다. 탄산음료 시장이 성장했고, 우유가 사실은 해롭다는 이야기도 계속 확산된 탓이지요. 우유의 유해성에 대한 담론은 우유가 여러가지 처리 과정을 거치기에 불거진 이야기로, 처리 전의 생유를 마시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긴 하나 당장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군요. 여기서 "은수저"에서 하치겐이 생유를 먹고 맛있음에 전율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우유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야쿠르트, 밀크티 등 각종 음료 시장도 성장하고 있지만 낙농업은 환경에 문제를 일으키므로 우유 소비를 줄이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흔하게 먹는 우유 한 잔에 얼마나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고민이 담겨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네요. 앞으로의 고민까지 말이죠.

뒤에는 언제나처럼 부록으로 주영하가 쓴 한국에서의 우유 문화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놀랐던 점은, 한국 우유 산업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11년에 이미 생산과 판매 모두 법령으로 확립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본 열도의 우유업이 한반도에 그대로 투입되었기 때문이죠. 일본에 우유 산업이 발전한건 일찌기 산업화된 유럽과 미국의 우유 기술을 도입하여 홋카이도 개척 당시 낙농 사업을 펼쳤으며, 19세기 후반에 서구화를 위한 서구 추종 분위기에 육식과 함께 편승한 탓이었고요. 심지어 조선총독부에서 젖소를 직접 도입할 정도로 우유 공급을 권장했다고 합니다. 조선 국민들을 전쟁에 써먹기 위한 육체 개조 목적이었지요. 하여튼 이렇게 근대적인 우유 산업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확립되었습니다. 지금의 서울우유협동조합부터가 1937년 경성우유동업조합으로 시작했다고 하니까요. 우유에 대한 식문화 만큼은 다른 서방 선진국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유 소비량은 1997년 이후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의 이유와 마찬가지겠죠. 젊은 층 인구 감소를 보면, 앞으로는 더 줄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애초에 근대화, 서구화를 위해 도입되었다는 목적을 돌이켜 보면, 이미 서구 문화권과 다름없는 현재 시점에서 우유 소비량이 더 증가한다는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뒤 마지막은 우유에 대한 몇 가지 레시피가 실려있는데 수 페이지에 불과하고, 내용도 별다를건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유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대단한 깊이는 없지만, 가볍게 읽기도 좋았고요. 충실한 도판과 함께 해당 음식의 역사에 대해 한 번 훝어준다는 이 시리즈 컨셉에 충실하거든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0/02/14

커리의 지구사 - 콜린 테일러 센 / 강경이 (주영하) : 별점 4점

커리의 지구사 - 8점
콜린 테일러 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지구사"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고 있는 식문화 역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이 전에 시리즈 중 세 권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죠(위스키, 치즈, 피자). 그런데 예쁘게 잘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내용은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시리즈는 구입했지만 그동안 손대지 않고 있던 차에, 얼마전 읽었던 "카레라이스의 모험"을 읽고 급작스럽게 땡겨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습니다. 커리에 대한 역사는 물론, 세계화된 과정과 세계속 커리 요리들, 그리고 커리의 현재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커리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채소와 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카릴 혹은 카리라는 남부 인도 요리가 영어로 '커리'로 변형되고, 이 말이 일반적인 인도 요리를 가르키는 말로 굳어지게 된 것이라고요. 중국 요리를 서양에서 '찹 수이'라고 퉁쳐 말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인 셈이죠.
그리고 원래 인도 아대륙에는 강황, 생강, 카마린드, 인도산 후추라는 자생 향신료가 있었는데, 인도 상인들이 다양한 국가와 교역을 하면서 온갖 외국 요리들이 인도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 뒤 포르투칼과 영국 등의 침략, 식민지 운영을 통해 서양 요리가 인도 요리, 재료와 결합되며 18세기 말에는 영국인들에게 '커리'라는 말과 요리가 일반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커리의 오랜 세월을 거친 발전 과정도 상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인도 뿐 아니라 인도인들이나 다른 교역을 통해 커리가 전파된 이웃 국가들의 커리 요리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습니다. 영국은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식민지 운영 국가는 물론 카리브 해, 모리셔스, 스리랑카, 피지 및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커리가 어떻게 전파되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가지 요리들의 명칭과 상세한 소개는 물론, 유명 요리의 경우 간략한 레시피까지 수록되어 이해를 도와주는데 미국 남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리 중 하나라는 영국식 인도 음식 컨트리 캡틴 치킨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수록된 '리델 박사의 컨티리 캡틴 치킨' 레시피는 1849년 출간된 서적에서 인용된 것인데 현대 커리 레시피와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양파를 채 썰어 버터에 갈색이 될 때 까지 볶다가 잘게 썬 닭고기와 소금, 커리 가루를 뿌리고 볶은 후 수프를 부어 끓이면 됩니다.

상세한 설명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아요. '탄두리 치킨'이 파키스탄 난민 쿤단 랄 구즈랄에 의해 만들어진지 고작 70여년 밖에 되지 않은 레시피라는 것입니다! 버터 치킨 역시 쿤단 랄 구즈랄이 만들었다니 그리 오래 된 요리가 아닌건 마찬가지고요. 탄두리 화덕의 역사와 함께 하는 오래된 레시피라 생각했는데 의외였어요.

마지막에 수록된, 주영하 님이 쓴 한국 커리의 역사도 자료적 가치가 무척 높습니다. 일본인들에 의해 20세기 초반 전파된 후, 1930년대 이후는 일반화되었고 해방 이후 1960~70년대에는 이미 직장인들의 주된 점심 메뉴로 자리잡았으며, 같은 시기에 인스턴트 카레가 발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과정이 도판과 함께 충실히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지구사" 시리즈다운 판형과 디자인도 마음에 들며, 풀 컬러로 수록된 도판과 각종 자료도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과연, 카레왕이 추천할 만 합니다. 카레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카레라이스의 모험 - 모리에다 다카시 / 박성민 : 별점 3점

2017/02/19

풍미 갤러리 - 문국진, 이주헌 : 별점 2점

풍미 갤러리 - 4점
문국진.이주헌 지음/이야기가있는집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처럼 그림에 그려진 음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림과 그려진 시대, 화가 등도 같이 소개하는 책이라 생각하고 집어든 책입니다.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소개하면서 당시 유럽에서 일반적인 젖소는 어떤 품종이었고, 그 젖소에서 따른 우유의 맛과 특징은 어떠했으며, 우유를 왜 따랐으며 어떻게 해서 먹었는지 등을 정리한 후 대표적인 요리와 먹은 사람, 관련된 문화나 역사, 혹은 풍습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식으로요.
그러나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음식과 식문화는 중요하게 소개되지 않는 탓입니다. 음식은 음식물을 그린 정물화, 푸줏간이나 고기가 그려진 그림, 수확에 대한 그림, 부엌이 등장하는 그림 커피에 대한 그림, 빵이 그려진 그림 등으로 나누기 위한 카테고리 분류 기준에 불과해요.
물론 그림에 대한 미학적, 예술적인 분석 측면에서는 괜찮긴 합니다. 신선하게 느껴진 부분도 없지 않고요. 그러나 미술평론가 이주헌씨 분량에 한합니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법의학자 문국진씨 부분은 여러모로 애매했습니다.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본인 주장이 많았던 탓입니다. 과일을 먹는 소년들을 그린 에스테반 무리요의 "과일 먹는 소년들"을 '식물의 카니발리즘으로 탄생되는 카니발 현장'이라고 주장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소박한 그림이 카니발리즘과 상관있다는 주장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어서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를 소개하며 식인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전개로 이어지니 실로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몇몇 볼만한 부분은 있지만 제목과 제 기대에 어울리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저와 같은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이럴 바에야 문국진씨의 전문 분야를 살려 죽음에 대한 그림을 분석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눈 주변의 부종, 눈의 충혈, 술의 부작용으로 변형된 얼굴, 굳어진 표정'을 근거로 압생트를 과음한 것 같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훨씬 좋았거든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역시 소크라테스가 먹은 식사와 독에 관련해 상세하게 정리해서 전달해 주는 것이 괜찮았고요. 당시에는 독당근을 사용하여 사형을 집행했다, 독당근의 독성분은 코니인이다, 여름날 가뭄이 져 뜨거울 때에는 구름이 낀 날 보다 독성이 2배로 높아진다던가 하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가득합니다.

2020/07/18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 윤덕노 : 별점 3점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 6점
윤덕노 지음/청보리

다수의 음식 관련 서적을 발표한 윤덕노 작가의 책으로 주로 우리나라의 음식 관련 속설이나 상식에 대해 풀어주고, 짚어주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했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제목이 대표적인 예로 장모님이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 준 이유는 닭은 양기가 넘치며, 씨암탉은 알을 낳으니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고사상에 돼지 머리를 놓는 이유는 고사 자체가 돼지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인간의 재물과 영화를 담당하는 신이며, 높은 신에게 사람의 소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는군요.
냉면에 무가 들어가있고, 중국 면 요리는 단무지가 반찬인 등 국수와 무를 같이 먹는 이유는 옛 사람들은 밀이나 메밀에 몸에 좋지 않은 맥독이 있다고 믿어서 이를 중화시키기 위함이고요. "동의보감"에도 무는 체한 것을 빨리 내려주고 메밀 국수의 독을 풀어준다고 적혀 있지요. 무에 소화 효소가 풍부해서 나온 이야기일 겁니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의 "고려도경"에 왕족, 귀족만 양과 돼지를 먹고 가난한 백성들은 미꾸라지, 전복, 조개, 왕새우 등을 잘 먹는다고 적혀 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지금과 반대니까요. 미국에서도 오래 전에는 랍스터가 가장 싸구려 음식 재료였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하네요.

과거 복날에는 보신탕, 육개장, 팥죽, 연계백숙, 닭찜을 먹었다는데 그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음양오행의 조건에 맞춰 더위를 이길 수 있어야 하며, 음식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성질, 즉 귀신을 몰아내고 질병을 예방하는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져야 했거든요. 개고기를 복날에 먹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초복, 중복, 말복은 모두 경일로 쇠에 해당하는 날이라 개는 불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신탕을 먹으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불은 쇠를 달구고 녹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닭은 흙의 성질을 지닌 탓에 더위를 물리칠 수 없어서 따뜻한 성질을 지닌 인삼을 더한게 복날에 먹는 삼계탕의 유래인 것이고요. 귀신을 몰아내거나 하는 속성이 없는 소고기로 만든 육개장에 고춧가루를 넣어 시뻘겋게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삼계탕은 현대에 들어 개발된 음식이며, 고춧가루의 전래도 그리 이른 시기는 아닌 만큼, 여름과 복날에 삼계탕, 육개장을 먹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테니 다 나중에 끼워 맞춘게 아닌가 싶군요.

숙주 나물의 숙주라는 이름 유래는 저도 신숙주로 알고 있었는데, 이는 속설이며 한나라 때 사전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콩을 '숙두'라고 하였기 때문에, 콩에서 나오는 싹은 숙두나물이 되었답니다. 그럴듯하네요.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에서 유래된게 아니라, 순수 우리말인 신체의 일부를 나타내는 '도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추론도 꽤 합리적이에요.

우리의 식문화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도 많습니다. '생선회'는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먼저 즐겼다는 주장처럼요. 현존하는 문헌 중 생선회에 관한 첫 기록은 고려 중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며, 동 시기 중국 송나라에서도 생선회가 유행하였는데 이는 일본 문헌에 '사시미'가 처음 등장한 1399년보다 최소 150년 이상 앞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증거라고 하기에는 좀 빈약하지만, 한 번 생각해볼만한 내용으로는 보입니다. 그 외에도 밥 짓는건 조선 사람이 최고라던가, 조선은 두부 왕국이었다는 등의 재미난 기록에 얽힌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재미있지만, 다양성과 재미 측면에서는 이 책이 가장 좋았습니다. 초기작인 덕분에 온갖 재미있을만한 아이디어를 가득 채워넣은게 아닌가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1/09/19

커피인문학 - 박영순 : 별점 2점

커피인문학 - 4점
박영순 지음, 유사랑 그림/인물과사상사

커피의, 그리고 커피가 관련된 역사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식문화 관련 인문학 서적입니다.

커피의 간략한 역사부터 시작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커피는 에디오피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예멘을 거쳐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졌고, 오스만 제국 시기에 베네치아를 통해 유럽에 상륙하여 대중화 되었습니다. 164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이후 각국에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는 곳에 관련된 시설들이 생겨나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간판도 없어서 사람들이 '커피'라는 말로 그 장소를 특정한게 '커피'를 뜻하는 '카페'가 마시는 공간까지 아우르게 된 이유입니다.

커피 추출법은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 시대부터 기록이 전해진다는군요. 지금까지 전해지는 '터키시 커피' 방식으로 '체즈베'라는 도구에 볶아 빻은 커피콩을 끓여내는 방식이지요. 이후 유럽에서 가루를 걸러내기 위한 필터를 도입했고,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 생크림을 얹거나 우유를 가미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1711년에 천주머니에 원두가루를 채워 '우려내기' 방식으로 마시기 시작했고요. 1908년에는 독일의 멜리타 벤츠가 드립법을 창시했고, 1906년 이탈리아에서는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표했습니다. 1933년에는 비알레티의 모카포트가 발명되었고요. 1938년, 아킬레 가치아가 드디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현대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어 내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와 함께 커피에 관련된 일화도 소개해줍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라던가, 볼테르는 하루에 40~50잔의 커피를 마셨고, "커피가 독이라면, 그것은 느리게 퍼지는 독일 것이다"는 말을 남겼는데, 실제로 84세까지 장수했다고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루소, 탈레랑, 나폴레옹,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 여러 유명인들이 등장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커피가 대중화 된 이유는, 일본인들이 우유 먹기를 힘들어하자 메이지 정부에서 커피에 섞어 마시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소소한 역사도 재미있었고요.

그리고 미국의 독립, 조선의 커피 음용이나 우리나라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커피 역사도 알려준 뒤, 각 주요 커피 산지에서 커피가 재배된 역사와 현재를 다루는 이야기가 책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크게는 브라질과 자메이카, 파나마, 르완다와 우간다, 하와이, 콜롬비아 순입니다. 이를 통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건, 대공황 등 여러가지 이유로 추락한 자메이카 커피 산업에 1960년대 일본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부터였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일본은 명확한 품질 관리와 최고 등급 커피의 세계 시장 유통을 인위적으로 조절했고, 커피 생두를 오크통에 담아 파는 고급화 전략으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세계 최고급 커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맛도 맛이지만,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 외 파나마 게이샤 커피의 역사와 르완다 커피의 감자맛 결함, 하와이와 콜롬비아 커피의 역사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다보니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특정 음료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유명 산지와 주요 결과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으니까요. 그러나 책의 완성도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커피에 대한 과대평가가 너무 심하다는 겁니다. 이런 시각은 "커피견문록"에서 이미 접했었지만 그 정도가 더욱 심해요. 커피가 프랑스에서 계몽 사상을 일깨운 각성제로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냈고, 미국에서 커피가 독립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건 커피 때문이다라는 식이거든요. 뒤로 가면 갈 수록 더 가관입니다. 조선에서 모던 보이들 중심으로 커피하우스 개업이 이어졌지만, 주권 회복을 위한 시대적 각성과 독립을 위한 저항심을 기르는 커피와 카페의 역할이 작동한 사례가 발굴되지 않았다면서 아쉬워하는데, 대관절 커피가 독립 운동과 무슨 상관이랍니까?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는. 뭐라 언급하기도 어려운 억지스러운 발상이었습니다. 커피에 계몽의 힘 따위는 없습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커피가 아니라 카페인의 힘이에요. 이런 각성이 중요하다면, 다른 각성제도 다 마찬가지겠지요.

목차가 명확히 정의되지 못하고 두서없이 섞여있는 구성도 아쉽습니다. 각 주요 산지의 커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커피가 선악과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식이에요. 재미있는 주제이고, 한 번 볼 만 했지만 이는 커피 역사 부분에 포함시켰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심지어 같은 주제 안에서도 두서가 없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우간다 커피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우간다 로부스타는 로부스타 중에서도 품질이 좋기로 소문나 인스턴트 커피용보다 에스프레서 블렌딩용으로 인기가 높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우간다 로부스타종은 인스턴트 커피의 주 원료로 이용되고 있다는 글로 마무리되지요. 뭐가 맞는걸까요?

도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커피로 그렸다는 일러스트도 구태여 필요했을지 의문입니다. 잘 알려진 사진이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많고, 내용에 꼭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며, 그리 잘 그린 것 같지도 않거든요. 실제 그림에서는 커피 향이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인쇄된 책으로 보는데 커피로 그렸어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커피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고,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인 건 맞지만, 단점도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많은 커피 관련 책을 읽어봤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두드러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7/29

라멘의 사회생활 - 하야미즈 겐로 / 김현욱, 박현아 : 별점 3점

라멘의 사회생활 - 6점
하야미즈 겐로 지음, 김현욱.박현아 옮김/따비

라멘이 현재의 위치를 점하게 된 이유를 다양한 사회 현상과 연결하여 설명해주는, 식문화서이자 미시사-사회사 서적입니다.

뻔한 라멘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라멘의 발전을 주변 환경 및 사회의 흐름과 함께 엮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 설명이 상당히 그럴듯하고 이치에 합당한건 물론이고요.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대세가 된 이유로 전후 극심한 식량난을 든다던가(쌀 부족으로 인한 밀가루 음식의 발전), 전쟁 전부터 있었던 '지나 소바', '주카 소바' 등의 명칭이 '라멘'으로 통일된 것은 닛신 식품의 텔레비전 광고 덕분이라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삿포로 미소 라멘이나 규슈 돈코츠 라멘은 모두 각자 독립적으로 발전한 음식이지만 이 모든게 '라멘'이라는 명칭으로 통일된건 역시나 텔레비전 광고 때문이며 이러한 지역적 특산물 라멘은 원래부터 있던게 아니라 관광지화 되면서 그 지역의 유명 라멘이 순식간에 퍼져 굳어진 것이라는 등 새로운 분석이 가득합니다.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포드의 T형과 마찬가지로 대량 생산하는 공업 제품으로 접근하여 성공했다는 시각도 독특했어요. 여기서 피터 드러커의 그것과 유사한 '데밍'의 피드백 방법론이 도입되었다는 것도 그러하고요.
이런 내용을 "사자에 상", 마쓰모토 레이지의 최초 소년지 장기 연재 출세작 "사나이 오이동", 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등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 "아사마 산장 사건"와 같은 당대 유명 사건 등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가 쉽다는 것 역시 큰 장점입니다. "사자에 상"의 경우는 무려 1948년 연재된 에피소드를 가지고 설명할 정도라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흔하게 접했던 라멘의 유래에 대해서도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나름의 '고급' 정보들도 눈에 띕니다. 메이지 시대 중기 요코하마나 나가사키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길거리 음식 '난킹 소바'로 일본에 들어온 후, 도쿄 아사쿠사의 중화요리 식당 '라이라이켄'에서 지나 소바를 처음으로 내 놓았으며, 이 때 아사쿠사 말고 다른 지역에서 지나 소바의 침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이동식 포장마차 "차루메라"라고 소개하면서 에도가와 란포가 이동식 포장마차를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의외네요.

이외에도 재미있는 정보가 많습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에 대한 설명이 그 중 인상적이었어요.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처음 만든 사람은 이리에 시게타라고 전해지는데, 그는 종전 직후에 아쓰기 비행장에 내린 더글라스 맥아더가 처음 머물렀던 요코하마의 호텔 뉴그랜드의 셰프였습니다. 그가 미군 병사가 가져온, 스파게티에 토마토 케첩을 뿌렸을 뿐인 간이 전투 식량에 피망과 햄을 넣어 이 요리를 발명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이것이 미군 점령기를 지나 미국 것을 일본식으로 변형시킨 새로운 문화가 도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우리로 따지면 "부대찌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특산물 라멘" 이야기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전통이고 뭐고 없는 음식으로, 관광지로 해당 지역이 유명해지면서 삽시간에 유명해졌을 뿐이라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진주 냉면'과 같은 동일, 유사 사례가 많지요.

라멘이 지금과 같은, "라면 요리왕"에 나오는, 장인이 요리하는 음식으로 발전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누벨 퀴진 및 슬로푸드 운동과 결합하여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도 누벨 퀴진의 특징은 현대 라멘집과 정말 딱 들어맞더군요.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며 지방의 서민적 음식 문화를 중시한다는 점에서요. 구체적으로는 식재료의 풍미를 살리는 것과 전통보다 요리사의 창의력을 중시하고 그 지방의 제철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라면 요리왕"에 등장하는 라면 장인 세리자와의 "라면 세류보"가 바로 떠오릅니다. 오너 셰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말린 은어의 풍미를 살린 담백한 맛, 진한 맛 라면이 대표 요리라는 점에서요.

중간에 장인 정신으로 무기를 만든 탓에 미국의 생산성에 뒤져서 전쟁에 졌다는 난데없는 이야기는 황당했고 '라면 지로'에 대한 이야기는 분량에 비하면 알맹이는 별로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아, 도판이 극히 드문 편임에도 가격이 16,000원이라는 것도 단점이고요.
그래도 장점이 더 많습니다. 재미있는 정보, 새로운 시각이 가득 담겨 재미있게 읽었어요. 라면, 아니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9/11/03

종횡무진 밥상견문록 - 윤덕노 : 별점 2.5점

종횡무진 밥상견문록 - 6점
윤덕노 지음/깊은나무

음식 관련 저서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다작가인 윤덕노의 2017년 발표작입니다. 전작들은 특정 요리, 음식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이 많았었는데, 이 책은 부제인 "같은 재료 다른 요리 한중일 음식 문화사" 처럼 특정 재료나 요리가 '한중일' 3개국에서 어떻게 다르게 조리해서 먹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고찰하여 설명해준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모두 여섯 개의 파트, 28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전복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중일 3개국 모두에서 최고의 귀한 재료로 인정받은 거의 유일한 재료라고 하네요. 중국에서는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이 아버지를 위해 전복 200개를 얻었다고 자랑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조선에서도 영조를 비롯하여 세종과 문종 등 왕들의 수라 단골 손님이었고요. 일본에서는 행운의 상징으로 쓰일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는군요. 전쟁을 떠나는 무사들이 신에게 바치는 세 가지 음식 - 얇게 편 전복, 말린 밤, 다시마 - 일 정도로 말이지요. 

밥을 지을 때 생길 수 밖에 없는 누룽지 역시 한중일 3개국에서 흔히 먹은 식재료입니다. 이 중 한국의 숭늉은 소화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하네요. 숭늉이라는 말이 한자어 숙냉 (熟冷)에서 비롯되었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이렇게 한국에서는 일종의 부산물로 생각하고 음식 재료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반면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누룽지탕'이라는 요리로 발전하였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처럼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주로 과자 재료로 활용했습니다. 중국인들의 요리에 대한 집념이 새삼 느껴집니다.

조기는 한국과 중국에서는 자주 먹는 생선입니다. 중국에서는 '황어'라고 부르는데 황금이 들어온다는 의미가 되어서 맛 이외에도 행운을 바라는 전통적인 재료로 많이 쓰인다네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어묵 재료로나 쓰는 잡어라니 좀 신기합니다. 온갖 해산물에 대해 최고의 맛을 끌어내도록 처리하여 만든다는 '에도마에' 전통이 왜 조기에는 해당되지 않았을지 의문이에요.

그 외에 가지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귀한 채소로 취급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유는 중국과 일본과는 다르게 신라시대부터 재배해서 풍부했던 탓이라는 설도 기억에 남습니다. 보통 외래종 산물은 중국을 통해 전해지는게 일반적인데 인도에서 신라로 바로 전해진 뒤, 다시 중국으로 이동했을 거라는 설을 다양한 사료로 증명하고 있거든요.

재료들 관련 이야기말고 조리된 음식을 가지고 풀어내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점심과 딤섬과 같은 식문화 자체를 다룬 이야기도 있고요. 이 중 송편과 월병, 츠키미당고의 관계가 재미있었습니다. 추석, 즉 보름을 기념하는 음식답게 월병과 츠키미당고는 모두 동그랗고 이름에도 달이 들어가는데 송편만 이질적이지요. 둥그렇지도 않고 이름도 소나무를 의미하니까요. 이건 송편은 추석 고유의 명절 음식이 아니었다는걸 의미한답니다. 또 솔잎으로 찌는 이유는 향 때문이 아니라 보관성을 높이기 때문이라네요.

합격을 기원하며 선물하는 엿, 찹쌀떡 이야기에서 이런 습관의 유래는 당나라부터였다는 설도 인상적입니다. 과거 제도는 수나라 때 부터 있었으니 그 이후부터 이런 전통이 생겼을 것이며 당나라 때로 확인된다는 거지요. 당시 합격 기원 음식은 돼지족발이었다고 하고요. 이유는 장원급제한 사람을 알리는 대자보는 붉은 글씨로 제목을 써서 주제 (朱題)라고 했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쭈티'입니다. 그런데 이게 돼지족발 발음과 같다는군요. 재미있죠? 그러나 중국에서도 지금은 찹쌀떡의 일종인 장원떡을 먹는다는군요. 합격죽도 먹는다고 하는데 이는 "맛의 달인"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약간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다른 글에서 많이 본 이야기가 더러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 스스로도 이런 류의 책을 열 권이 넘게 썼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짜장면이나 다꾸앙, 스키야키와 승기악탕 등의 이야기는 그만큼 많이 보아왔던 내용들이에요.
3개국은 무리였는지 한일, 한중과의 관계만 쓰여있는 소재들도 더러 있습니다. 신선로와 스키야키, 어묵과 오뎅, 한국식 짜장면과 중국의 짜장면이 그러합니다. 어쩔 수는 없겠지만 약간은 반칙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드네요. 이럴 바에야 주제를 줄여서 더 깊게 접근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누룽지'는 자포니카 종으로 밥을 하는 나라에서만 생기는 부산물이니 만큼, 그런 쌀로 밥을 만들게 된 이유라던가 전파 경로 등을 함께 알려주는 식으로 말이죠. 그게 더 깊이있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또 무리수를 둔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대표적인건 아귀가 우리나라, 중국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나름 고급 음식 재료로 꼽힌 이유입니다. 적당히, 많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이론인데,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잖아요? 차라리 많이 잡히지 않아서 귀하게 대접받았다면 모를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윤덕노의 다른 저작들처럼 부족한 도판, 그리고 왠지 모르게 조금 읽기 힘들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이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재미와 함께 나름 현학적인 욕심도 만족시키는 괜찮은 독서였다 생각됩니다. 한중일 요리 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01/27

오로지 일본의 맛 - 마이클 부스 / 강혜정 : 별점 2점

오로지 일본의 맛 - 4점
마이클 부스 지음, 강혜정 옮김/글항아리

영국인 요리사 출신 작가가 쓰지 시즈오의 "일본 요리 : 단순함의 예술"에 깊이 매료된 탓에, 현재 일본 요리를 탐구하고자 3개월 동안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도쿄를 비롯한 일본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가지 다양한 문화를 맛보고 즐긴 경험을 기록한 여행 에세이집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습니다. 여행 목적은 그럴듯했지만 내용이 목적에 딱히 부합하지 않는 탓입니다. 그냥 일본 이곳저곳 여행기와 식도락이 결합된 뻔한 여행기에 불과합니다.
또 색다른 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이색적인 체험을 쓰기는 했는데, 서양인 시각에서만 신기하고 재미있을 만한 체험이라는 문제도 큽니다. 일본에 이웃한 한국인 시각에서 봤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게다가 와패니즈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저자가 지나치게 일본을 맹신하는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본 요리 장인이 만든 튀김을 맛본 후, 엄청난 기술과 맛에 감탄하는 정도는 괜찮아요. 일본 튀김은 저도 좋아하니까요. 그러나 아지노모토사를 방문기를 통해 MSG의 무해함을 강조하며 합성 조미료를 전도하고, 쓰키지 시장 방문 경험의 마지막을 '장기를 팔아서라도 꼭 가봐야 하는 곳' 이라고 마무리 하며, 생 와사비야 말로 슈퍼 푸드로 그 맛에 중독되었다고 묘사하는 식으로 직접 찾아서 경험하고 맛본 모든 요리와 재료에 대해 끝없는 칭찬과 홍보가 지겹게 반복됩니다. 이러한 맛에 대해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일본 내 식문화를 소개하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특별한 내용도 없어요. 예를 들어 튀김이나 와사비, 가쓰오부시 등은 모두 "맛의 달인" 등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것입니다. 튀김의 핵심 비결인 밀가루 대충 풀기, 와사비 농원의 생육 환경과 강판에 가는 법, 가쓰오부시 제조법 및 전용 대패 모두 말이죠. 쓰키지 어시장은 "어시장 3대째"라는 더 길고 방대한 작품이 이미 존재하고요. 이는 일본 요리가 건강식이며 장수에 도움이 된다며 오키나와 요리와 장수의 비결을 탐구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나 "맛의 달인"에서 이미 등장했던 소재입니다. 그나마 오키나와의 새로운 소금 제조법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직접 '비스트로 스맙'을 찾아 가서 기무라 타쿠야 등을 만나고, 스모 연습장을 찾아가 챵코 나베를 직접 먹어 보는 식의 현장감 넘치는 경험담은 좋아요. 그러나 이 역시 방송이나 다른 여러가지 컨텐츠에서 보았던 내용에 반복에 불과하고, 저자가 신기하게 생각한 대부분은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에서는 새롭지 않습니다.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요리사들, 연예인들이 직접 스튜디오에서 요리를 해서 게스트에게 먹이는 등은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고래 고기처럼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고, 맛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도쿄를 벗어나서의 이야기들에서 조금 많이 드러나는 편이에요. 허나 고래 고기는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특유의 풍미가 있다고 언급되어 왔으니 색다를 것도 없고, 도쿄 이외의 장소에서의 에피소드는 음식, 요리 관련 이야기라기 보다는 외국인의 좌충우돌 여행기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비판적 시각은 일부일 뿐, 결국 글은 가이세키 요리나 오사카 패스트푸드를 극찬하는 기승전'일본맛있쪄'로 마무리되니 온전한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일본 최고의 회원제 레스토랑 미부에서의 놀라운 경험이 소개되는 마지막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일본 요리란 무엇인지, 그 진가를 제대로 체험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거든요. 맛을 떠나 일본 요리의 찬양이 반복되는 느낌이라 지루했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일본 여행 목적이기도 했던 일본 요리의 비결은 '재료 본래의 맛을 끌어내는 것' 이라는 것도 로산진 이래로 너무 많이 접한 내용이라 식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요리사다운 시각이 돋보이는 몇몇 디테일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숯불구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비결이 재료를 작게 만드는 혁신 덕분이라는 착안이 대표적이에요. 서구에서 초밥이 진짜 이유를 끌게 된 이유에 대한 주장도 신선합니다. 설탕, 소금, 식초로 이루어진 초밥 양념이 빅맥의 기본 양념과 동일하다는 것이죠.
또 저자의 재기발랄한 글솜씨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큽니다. 예를 들어 성게 맛에 대한 묘사도 제가 본 작품 중 최고로 꼽을 만 해요. 인어들이 바닐라 맛만 있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연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싶다는데, 정말로 멋드러진 발상입니다!

하지만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이 정도의 단편적인 장점만으로 덮을 수는 없습니다. 실망이 컸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책을 읽느니 "맛의 달인" 을 다시 정독하는게 정보와 재미 측면에서 더 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