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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2

복수의 심리학 - 스티븐 파인먼 / 이재경 : 별점 2.5점

복수의 심리학 - 6점
스티븐 파인먼 지음, 이재경 옮김, 신동근 추천/반니

복수에 대해서 생물학적, 역사적, 사회적 사례들과 함께 설명해 주는 인문학 서적입니다.

생물학적 사례는 책 서두에 설명된 2000년 사우디아라비이아에서 있었던, 비비 원숭이가 인간에게 덤벼들었던게 대표적입니다. 비비 원숭이와 침팬지를 통해 복수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하고요. 삶의 목적이 패권과 짝짓기라면, 이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보복믄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인간 영장류와 다르지 않다네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집단이 훨씬 크고, 삶의 목적과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도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한 개인적 응징은 사라지고, 국가가 공정과 냉철을 원칙으로 대신 복수를 하게 된게 현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법 체계인 것이지요.

뒤이어 종교, 문학, 사법 체계, 여성 대상 범죄 등 여러가지 복수의 역사와 실제 사례가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종교에서 복수는 대체로 신의 것이며, 대부분 종교 교리는 복수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힌두교는 카르마, 즉 업과 윤회가 공통 사상이라서 남을 해치면 내게도 화가 미치게 됩니다. 기조 사상인 아힘사는 비폭력과 불살생을 표방하고요. 그래서 폭력적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불교에서 보복 행위는 적은 남이 아니라 내 속에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에요. 그러나 이 모든 영적 이상은 세속 정치에 의해 엇나갑니다. 사람들은 교리와 경전을 각색해서 복수를 정당화하지요. 종교간, 종파간 분쟁과 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으며,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증오와 분노만 가득한 선동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이 쯤 되면 교리와 경전은 없고, 지도자들 개인의 복수심만 남아 있는 상황이지요. 이 책을 읽으니 종교를 믿을 이유가 없다는 신념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 외에도, 소프클레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가 깊다는 서두에서 시작된 문학에서의 복수에 대한 소개는 흥미로왔습니다. 중세 결투와 종교 재판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 16세기 이후 지역 공동체가 국가 대리인 역할로 법을 집행했던 상황에 대한 설명 등에서, 법 집행이 복수나 보복일 수 있다는 견해도 굉장히 그럴듯했고요. 이와 반대로, 특정 지역 부족간, 가족간 보복이나 명예 살인, 갱단의 보복은 영역과 위상을 지키기는게 전부인 후진적 발상이라는 설명도 와 닿더군요. 여성 대상 범죄와 여성들의 복수는 사회 체제가 미개하고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는 소개에서는, 우리나라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참고로 리벤지 포르노와 학교 내 총기 사고. 학교 총기 사건 방지는 교사와 학교 상담사, 학부모 역할이 중요하다. 심리적 위축과 같은 위험 징후들을 경계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답니다. 직장 내 복수 사례에서는 큰 사건은 물론 상대방 커피에 침을 뱉는 류의 자잘한 복수까지 망라하고 있는데. 콜 센터나 식당, 항공사 등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복수 사례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재 정치가 끝나고 복수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르지만 새 정권이 통치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지난 정권 지지층 반발을 피하는데 급급해서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은 뼈 아팠습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경우니까요. 일제 강점기 때 친일 부역자들과 독재자 전두환과 그 일당은 제대로 처벌해서 정의를 바로 세웠어야 했습니다. 책에 나온 스페인 프랑코 정권 피해자가 "화해의 미덕은 믿지만, 반성과 사죄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고 했는데, 말 그대로죠. 사면 따위는 사치였습니다. 정치 보복 역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아왔기에 남 이야기 같지 않더군요. 그 중에서도 "인신 공격은 대중매체가 정치를 사유화하는 경향이 강한 풍토에서 더욱 극성을 떤다. 이 점에서도 미국이 선두다. 토머스 제퍼슨이 애덤스 뒷통수를 친 사건이나 최근의 도널드 트럼프가 좋은 예이다." 라는데, 언론의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기사가 많은 우리나라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언론의 보복이 민주주의 투사들과 맞장을 떠 온 역사도 마찬가지에요. 책에서는 토머스 제퍼슨과 랜돌프 허스트의 언론을 이용한 여론 조작, 그리고 루퍼트 머독이 호주 정치에 개입한 악질적인 사례가 언급되는데, 우리나라 사례를 추가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에요.

하지만 재미있고 인상적인 내용이 많음에도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복수가 필요하다는건 잘 전달하고 있기는 한데, 제목처럼 '복수'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을 잘 담고 있느냐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요. 법 집행을 광의의 복수로 보는 시각도 그럴듯하지만, 이건 심리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심리학적으로 풀려면 피해자와 법 집행에 의해 처벌받는 가해자와의 관계와 그 심리를 보다 자세하게 다루었어야 했어요. 그 외의 이야기들도 사례는 재미있지만 심리학적인 부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책의 부제인 "사람들이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정의도 없습니다. 관련된 사례, 그리고 일종의 교훈?만 존재할 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06/19

악스 - 이사카 고타로 / 김해용 : 별점 2.5점

 

악스 - 6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이야기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문구회사 영업사원이자 공처가면서 한 아이의 아빠인 미야케는 사실 '풍뎅이'라는 별명의 유명 킬러였다. 그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에 지친데다가,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마쓰다와 나노무라와도 거리가 멀어진 탓에 은퇴를 결심했다. 그러나 문제는 관리자인 '의사'였다. 의사가 가족에게 보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뎅이는 보복을 막으려고 여러가지 준비를 했지만, 결국 선수를 친 의사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10년 후, 풍뎅이의 아들 가쓰미는 우연히 아버지에게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걸 눈치채게 되었다. 몇 안 되는 단서를 더듬어 아버지 소유의 맨션을 찾아내지만 '의사'와 엮여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이사카 코타로 장편소설. 킬러들이 나오는 무언가 시리즈의 후속작이라는군요. 전작은 읽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특징이라면 킬러물과 일상계라는 두 장르를 오가고 있는데, 일상계 비중이 훨씬 높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그야말로 '일상' 이야기 쪽으로요. 킬러물과 일상성을 결합한 작품으로는 <<살인해드립니다>>가 있기는 한데, 이 작품은 아예 킬러 업무와 상관이 전혀 없는, 풍뎅이의 아내와 가족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킬러가 타겟을 죽이고 해치는 이야기보다요.
특히 '풍뎅이'가 어떻게 하면 아내와 트러블이 없을지 항상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킬러 업무보다 오히려 아내의 대화에서 훨씬 큰 긴장감이 느껴지게끔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풍뎅이'가 아내와의 대화를 계속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여러 권의 노트에 대화를 기록하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감동스러울 정도였고요. 
저 역시 따라하고 싶은 노하우도 가득해요. "결점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개선을 약속한다. 그것이 가장 원만하게 해결하는 지름길이었다." 처럼 말이지요. “저는 19 년의 결혼 생활을 통해 배웠습니다 . 아내의 말에는 어쨌거나 힘들겠다는 말이 최고라는 걸요 . 불평은 물론이고 의문형의 말에 대해서도 ‘힘들겠는걸’ 하고 말하는 게 아내를 가장 잘 위로하는 방법이죠."라는, 풍뎅이가 처음 만난 마찬가지로 공처가인 친구 마쓰다의 말도 심금을 울립니다. 밤에 아내를 깨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야식은 어육 소시지라는 등의 디테일들도 빛납니다.

단순히 가정 문제 뿐 아니라 '공정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성품 등 풍뎅이라는 인간에 대한 세밀하면서도 깊이있는 묘사는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생길 정도로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대화의 내용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요 . 인사를 하고 뭔가 말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스포츠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종교 같은 거니까 말이에요 . 아무래도 딱딱해질 가능성이 있잖아요 . 그런 점에서 날씨 이야기는 비교적 안전하죠.” 라는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때문에 기절한 상대를 죽이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작위적인 설정도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친구가 없지만, 친구 같은 주변 인물들이 서서히 생겨나고, 가족에 대해 새삼 곱씹게 되면서 은퇴를 결심하고, 그로 인해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없애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일종의 성장기스러운 맛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10년 후, 아들 가쓰미가 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과정도 추리적으로 볼 만 했고요.

그러나 일상계스러운 모습의 강조로 인해 킬러로서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너무 약해졌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의사'와의 대결부터 굉장히 시시했어요. 아무리 지인이라 하더라도 나노무라 앞에서 헛되이 자살을 택한다는 것도 그렇고, 확실치도 않은 의사의 단독 행동을 노리고 함정을 파는 계획도 그렇게 잘 짜여졌다고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간단한 석궁 발사 장치가 10년이나 아무 탈 없이 맨션에 잘 설치되어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문을 연 의사를 쏘아 죽인다는건 설득력이 낮았고요. 또 석궁 장치 설정에 대한 힌트를 주지 않아서, 아들 가쓰미가 문을 먼저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을 주지 못한건 실수였다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단점도 있지만 독특한 재미만큼은 확실했습니다. 다른 시리즈도 읽어보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킬러의 지극히 평밤한 일상을 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너무 사람을 잘 죽이고, 인간다움이 없는 탓에 보스가 억지로 1년간 사람을 죽이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시킨 <<더 페이블>>의 사토 아키라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가끔 일상 속에서 킬러의 기술을 드러내는 모습도 비슷했으니까요. 물론 풍뎅이는 일상 생활 자체를 아예 모르던 사토 아키라와는 다르게 평범한 영업사원이기도 해서 일상 생활에 능숙하다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에필로그(?) 같은 걸 보면 풍뎅이도 원래는 사토 아키라와 같이 사회 생활을 시작했나본데, 저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차별화되어서 훨씬 좋았습니다. 풍뎅이의 사회 생활 적응기는 분명 <<더 페이블>> 스러울터이니....

2009/07/12

본의 아닌 낚시글.... 일단 다시 정리해서 올립니다.

빈볼 관련 단상

제 표현의 실수로 어떤 선수가 잘 했냐 아니냐... 그런 논쟁으로 흘러가기에 다시 정리해서 올립니다.

1. 프로야구 투수라면 몸쪽 공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위협적으로.
동감입니다. 하지만 그러다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야구 역사에는 몸에 맞는 공으로 죽은 선수도 있습니다. 선수생명이 위협받은 선수는 부지기수고요.

2. 투수의 제구력은 완벽하지 않다.
동감입니다. 어떤 투수가 100% 원하는 코스로 원하는 공을 꽂아넣겠습니까? 기계도 아니고... 매번 등판 시, 이닝 마다, 심지어 공 하나하나마다 다른 것이 제구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몸쪽 공을 위협적으로 꽂아 넣을 때라면 보다 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이러한 몸쪽 공은 투수 본인 스스로 공을 던지는데에 있어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몸쪽 공 제구도 못하는 또라이라고 표현한 것은 분명 실수이며 해당 선수와 구단 팬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몸쪽 공 제구를 완벽하게 하는 투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위의 이유는 모든 투수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겠죠. 올 시즌 유별나게 빈볼 시비가 심하며 크게 다치는 선수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정말로 누군가, 어떤 선수가 실수건 고의건간에 불행히도 크게 다쳐서 선수 생명이 위협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전에라도 공감대를 형성해서 되도록 신중한 투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덧붙여, 이러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승부의 장이기에 "보복" 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되고요. 댓글을 남겨주신 nonface님의 말씀대로 피의 크보가 될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지금 당장 필요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야 서로의 피해의식도 줄고 동업자 정신이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21:00 수정 - 키세님 말씀대로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리그라면 사구가 좀 더 줄지도 모르겠네요. 타자 봉중근 - 김광현 선수도 보고 싶고 말이죠. 뭐 미국이나 일본리그 보면 별 차이는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7월 3일 아침 추가 수정 - 이 글과 이전 글 모두 다른 그 어떤 부상이나 플레이 중의 사고와 관계없이 "빈볼"과 "사구"에 대해서만 주제를 잡고 쓴 글입니다. 아울러 제 응원팀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전 해결책으로 "보복"이라는 것을 생각한 것 뿐이거든요. 제 응원팀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는 없는.. 그러한 방안으로 말이죠. 제 생각에 대한 링크하나만 첨부할께요. 최훈 카툰입니다.

2003/12/15

열혈남아 (몽콕하문) - 왕가위


대만에 살고 있는 아화는 홍콩에 있는 병원에 진찰을 받기 위해 소화의 집에 며칠 묵게 된다. 소화는 어린시절 부터 조직에서 잔뼈가 굵은 중간보스다.한편 창파는 동생 하서가 당구내기에서 돈을 잃자 그들과 내기를 두다가 행패를 부리고 쫓기다 두들겨맞는다. 아화는 소화와 영화를 보러가려다 피를 흘리고 온 창파를 보고 소화가 범죄 조직에 있음을 알게 된다.소화는 창파의 보복을 하고 그 역시 상처를 입고 집에 돌아오는데......

그의 상처를 돌봐주는 아화.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아화는 편지를 남기고 란타우 섬으로 돌아간다. 창팡의 의동생인 아서의 결혼식 피로연이 돈이 없어 너무나 초라해 화를 내는 아서의 장인과 다툰 창파는 우울해한다. 그런데 창파가 피로연을 위해 꾼 돈을 갚으라는 토니는 비열하게 이자까지 당장 갚으라고 하고 소화는 또다시 그가 뒤를 봐주는 식당 주인을 협박해 돈을 건내주고 도망친다. 이들의 두목은 화해를 하게 하지만 소화와 토니 사이는 더욱 벌어진다.

비오는 날 우연히 만난 마벨이 결혼했다는 말에 쓸쓸히 헤어진 소화는 아화를 찾아간다. 아화를 늦게 까지 기다리던 소화. 소화는 아화와 어색한 만남 후, 금방 헤어진 두 사람은 결국 떠나가는 소화를 따라 달려온 아화와 뜨거운 키스를 한다.한편 소화가 자리를 비우자 빚을 갚기위해 어묵장사를 하던 창파는 자신을 괴롭히는 토니의 차를 부수다 잡히고, 아화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소화는 동생을 찾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나온 창파와 도망치나 곧 토니 일당에게 잡혀 무참히 맞고 쓰러진다.창파는 자신이 동생 자격이 없다며 자신을 잊으라고 그의 곁을 떠나고 소화는 아화에게 돌아가 치료를 받는다.

한편 경찰에 잡혀간 조직원이 경찰의 회유에 넘어가 조직의 내막을 불게 되자 그를 해치우려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두목은 창파가 일을 맡겠다해서 사례금을 건네준다.....

대학교때 한창 씨네마 키드였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신입생때였는데 그때는 장차 영화판에서 일할것을 꿈꾸며 책들과 잡지, 비디오 테잎을 모으며 남들은 보지도 않는 감독들의 필모그래피를 외우고 살 때였죠.

그 당시 저를 지배했던 영화중 하나가 "열혈남아"입니다. 지금은 일반인들도 많이 아는 거장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신인이었던 왕가위 감독의 데뷰작으로, 국내에서 한창 홍콩 영화 붐일 때에도 흥행에 실패한, 정말 매니아만 알고 있던 영화였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의 연기와 더불어 (물론 만자량 형님의 악역연기 역시 빛을 발하지만) 왕걸의 멋진 주제가, 그리고 홍콩의 네온과 야경을 담은 왕가위 특유의 화면이 어우러져 저에게 이유 모를 가슴저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스토리나 화변빨 때문이 아닌 그야말로 뭔가의 "필링" 때문이었죠. 그래서 저는 어렵게 구한 복사 비디오테잎을 가지고 보고 또 돌려보고 했던 영화였습니다. 줄 잡아 10번은 족히 넘어 볼 정도로요.

그러던 작품도 나이가 들고 세월이 지나며 잊고 있었는데 DVD로 새롭게 출시되었다는 정보를 접하고 주저 없이 구입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감동이 줄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그런데 보고 난 결과는 아쉬움이 큽니다. 또렷한 화질로 탱탱한 시절의 배우들과 홍콩의 풍경을 보는것은 좋았지만, 왕가위 감독 특유의 색감이나 (촬영은 크리스토퍼 도일은 아니지만) 스텝 프린팅도 여전하지만.... 제가 보았던 당시 버젼이 아니더라고요.

그 멋진 왕걸의 주제가를 다 짤라 버리고 이상한 노래들도 채워져 감동이 밀려오던 공중전화 박스 장면도 감흥이 오지 않더군요. (탑건 주제곡 "Take My breath away"의 중국어 버젼이었습니다....ㅜ.ㅜ) 마지막 엔딩도 장만옥이 감옥으로 바보가 된 유덕화를 찾아오는 부분이 빠졌고요, 자막의 이름과 내용도 약간씩 차이가 나는, 옛날의 그 버젼이 아니었습니다.

듣기에 옛날 버젼은 대만판, DVD버젼이 홍콩판인거 같은데 제발 대만판을 돌려줘~! 도대체 왕걸의 노래를 자른것은 정말루 정말루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버럭!)

제가 10여년전에 보았을 때와 당연히 필링이라는 것, 감동의 깊이라는 그 정도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왕걸의 주제가는 정말 너무 아쉽습니다. 공중전화 키스씬을 너무나 기대하고 있었는데요.... 예전에 어렵게 구했던 mp3라도 들으면서 아쉬움을 달래야 겠습니다.

열혈남아 DVD : 1988. 라이브DVD. 98분

2013/09/19

전쟁의 재발견 - 김도균 : 별점 2점

전쟁의 재발견 - 4점
김도균 지음/추수밭(청림출판)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전쟁을 몇 개의 테마로 묶어서 엮은 전쟁-미시사 서적.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장. 세계사를 뒤흔든 천재적 조직술_ 군대의 재발견
전장에서 꽃피운 사랑―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군대, ‘신성대’
수천 년 이어온 베트남 저항정신의 상징―고대 베트남의 여성 전사, 쯩 자매
오스만튀르크의 전성기를 구가한 ‘병정개미’―술탄의 친위대 예니체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를 향한 열망―미국 최초의 흑인 부대, 54연대
독일군의 밤잠을 설치게 한 ‘밤의 마녀들’―소련 여성 폭격기 연대
붉은 꼬리의 검은 조종사들―아주 특별한 흑인 비행대대, 터스키기 비행대
소련의 보이지 않는 사단―히틀러도 감쪽같이 속은 소련군의 동원 제도
일본의 피를 이어받아 미군을 위해 싸우다―일본계 2세로 편성된 미군의 442연대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소련의 죄수 부대, 형벌 대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귀신도 울고 가다―미국의 땅굴전 특수부대, ‘터널 래츠’
전사는 죽어서도 전사다―전사자의 여로
힘들고 지친 병사들의 로망, 핀업걸―전장의 엔터테인먼트

2장. 인류의 문명을 비약시킨 천재적 기술_ 무기의 재발견
세계 대변혁을 일으킨 작은 금속 조각―중세 봉건시대를 연 등자
스멀스멀 피어오른 노란 안개의 정체―영혼 없는 한 과학자의 비극과 독가스
대량 살상을 부른 속도에 대한 열정―보병을 참호 속으로 밀어 넣은 기관총
독일군의 오금을 저리게 한 철갑 괴물―지상전의 왕자, 전차의 탄생
‘크기’가 승패를 가른다―대함거포주의의 산물, 드레드노트
소리 없이 다가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다―해전의 필살 병기, 어뢰
전쟁을 가장 비인도적으로 만든 주인공―숨은 살인자, 지뢰
무인 폭격기, 미사일의 공포―나치 독일의 보복 병기, V-1과 V-2
빗나간 열정이 만든 인류 최대 재앙―현대판 ‘다모클레스의 칼’, 원자폭탄
군견 칩스가 훈장을 빼앗긴 사연―주인을 사랑한 군견의 죄
금강산도 식후경?―군 사기와 직결된 전투 식량의 역사
전장에서는 죽음에도 순서가 있다―야전 의료 시스템의 역사
‘뽕’ 맞은 전사들―전쟁의 우울한 이면, 약물

3장. 극한의 상황에서 꽃피운 천재적 리더십_ 전투의 재발견
한니발, 세계 최강 로마군을 전멸시키다―포위 섬멸전의 교과서, 칸나에전투
포위한 군대가 포위당하다―카이사르의 알레시아 공방전
‘신의 도리깨’, 유럽을 내리치다―유럽인의 황색 공포, 레그니차전투
십자가와 코란, 역사적인 첫 대결을 펼치다―레판토 해전
영국군 역사상 가장 졸렬한 전쟁―무능하기 그지없는 지휘관과 발라클라바전투
아메리카 원주민 최후의 저항―완벽한 승리와 치졸한 복수, 리틀빅혼전투
역사상 가장 값비싼 따귀 한 대―일파만파의 교훈, 타넨베르크전투
외로운 섬을 지켜낸 영국인 ‘최고의 시간’―‘나치 팽창’의 마지막 방어선, 영국전투
전투에서 지고 전쟁에서 승리하다―명절의 허를 찌른 베트남전 구정 공세

4장. 인간을 극한으로 몰고 간 천재적 심리술_ 군가의 재발견
켈트인의 아련한 독립의 꿈―〈스코틀랜드 더 브레이브〉
레드 코트, 줄루 전사들의 창을 꺾다―〈할렉의 사나이들〉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국가―〈라 마르세예즈〉
한 급진주의자의 죽음이 부른 거대한 전쟁―〈존 브라운의 시신〉
파리를 핏빛으로 물들인 코뮌의 슬픈 봄―〈체리가 익을 무렵〉
피어보지도 못한 칠레 민중의 혁명가요―〈벤세레모스〉
영광과 피투성이는 한 끗 차이―〈라이저 위에 피〉
그림자 전사들의 연가―〈발라드 오브 그린베레〉

이렇게 총 4장으로 구분되는데 1장, 2장, 4장이 괜찮았어요.

1장에서는 술탄의 최정예 부대 예니체리의 흥망성쇠를 그린 이야기는 "환관탐정 미스터 야심"이,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흑인 부대였던 54연대를 다룬 이야기는 영화 "글로리 - 영광의 깃발"이 떠올라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소련의 형벌부대나 월남전의 미군 땅굴전 특수부대 터널 래츠 등이 인상적이었고요.

2장을 통해 고대 바이킹 전사 베르세르크의 종교 의식에 광대 버섯을 먹인 순록의 오줌이 사용되었다는걸 처음 알았네요. 광대 버섯의 암페타민이 축적되어 환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데, 중독자들이 들으면 꽤나 솔깃할 정보로 보입니다.

4장은 "군가"라는 주제부터 굉장히 이색적인데, 해당 군가가 발표된 시기와 이유를 상세하게 그리는 시도가 아주 좋았습니다. 노예해방론자인 광신자 브라운의 이야기를 다룬 "존 브라운의 시신",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의 최후를 그린 "벤세레모스" 등이 그중 마음에 들었고요. "군가"로 보기 힘든 노래가 함께 실려 있다는 점, 그리고 웨일즈의 군가를 다루면서 줄루 전쟁 이야기로 이어지는 "할렉의 사나이들"과 같이 군가와 실제 내용의 연관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약간의 단점은 있지만, 독특한 주제를 다루었기에 양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많이 접했던 유명 전쟁사 내용을 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3장과 부실한 도판은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도판은 그렇잖아도 부실한데 한 장짜리 이미지를 4장으로 약간의 톤을 조절하여 복사하여 실어놓은 기이한 편집으로 실려 있어서 더 짜증났어요. 딱히 보기 좋은 것도 아니고 디자인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닌, 그야말로 삽질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4장 하나만큼은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주제이지만, 전반적으로 자료적인 가치는 낮습니다. 내용이 지나치게 간략하고 요약되어 있으며, 도판이 부실한 탓입니다. 진지한 전쟁사를 원하시는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짤막하게 심심풀이로 읽을거리로 적당한 책입니다.

2007/10/26

코리안 시리즈 3차전 - 두산 패배와 난투극

 아.. 요새 야구때문에 다른 일상생활이 힘드네요.

어쨌건 저쨌건, 3차전은 두산으로서는 최악의 경기였습니다. 김명제 선수는 비교적 호투하고 내려갔는데 이대수 선수의 적시 실책 3개로 인해 무려 7실점 하며 경기가 막장으로 흘러가버렸네요.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빈볼 시비 이후 나온 난투극이었는데 요 부분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코멘트 하자면, 제가 보기에는 이전 정근우 타석때의 빈볼은 그렇다 쳐도 김재현 선수에게 나온 빈볼은 그 이전 홈스틸 상황에서 김재현 선수 배트에 공이 맞고 흘러서 채상병 선수가 놓친 것에 대한 보복성(?)으로 보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공의 궤적이 좀 변한 듯 싶었거든요. 또한 6회 7:0 상황이라면 도루 등은 자제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매너일텐데 홈스틸을 강행한 것에 대한 분노 표시일 수도 있고요. 이른바 7:1로 불리우는 저반의 사정역시 두산 선수들의 분노를 불러왔을 겁니다.

이유야 어쨌건 빈볼이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벤치 클리어링 사태 이후 두산 일부 선수들에게 집중된 폭행 장면을 담은 사진 몇장은 리오스 선수와 김동주 선수의 분노를 폭발시킨 계기가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여간 6회에 9:0이면 사실 SK의 불펜을 생각할때 게임은 끝났죠. 이후에는 1득점 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내용 없이 게임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거의 게임 막판에 보여진 고영민 선수의 슬라이딩 도루는 이후 두산 경기 스타일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

두산이 3차전에서 얻은 것이라면 임태훈 선수를 아꼈다는 것, 생각보다 이혜천 선수 볼이 괜찮았다는 것, 그리고 선수단이 분노모드로 결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점 정도이고 잃은 것은 선역의 이미지가 퇴색한 것과 이대수 선수의 불안한 모습으로 인한 내야 수비의 견고함이라 보여집니다.

오늘 4차전에서 제대로 열받은 리오스의 분노투와 김동주의 분노타, 그리고 임태훈 선수의 깔끔한 계투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만 이기면 혹 7차전까지 가더라도 리오스 선수를 다시 기용할 수 있으니 두산이 유리해 지겠죠.

지나친 흥분은 자제하고 멋진 경기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두산 화이팅!

2009/07/08

2009.7.7 두산베어스 대 SK 와이번스 잠실경기 요약 - 오늘은 제발 비가 내리길!

아악~!!! 비가 안와!!!!

<두산베어스의 여신 한채영! 파울볼 유저 Epilogue님의 사진>


저의 걱정을 비웃듯 4-2로 이겼습니다. 겨우겨우 이긴 경기긴 하지만요^^;;

수훈갑은 SK타선을 2점으로 틀어막은 투수진 모두와 김현수 - 김동주 선수겠죠. 투수진은 강력한 SK 타선을 잘 봉쇄했고 김현수 - 김동주 선수는 모든 타점을 합작했으니까요. 아울러, SK의 거의 모든 찬스를 끊어먹은 이호준 선수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좋았던 점은 정수빈 선수의 부활과 실패를 딛은 이용찬 선수의 깔끔 마무리를 들고 싶습니다. 아쉬점이라면 5번 이원석 - 지명 민병헌 선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인데 최준석 선수가 정상 기용이 여전히 어렵다면 차라리 3번 민병헌 - 4번 김동주 - 5번 김현수 라인업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도 어쨌건 5연패를 끊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임태훈 선수의 투구이닝과 투구수가 심각해 보이기에 오늘은 선발이 세데뇨 선수이니만큼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아예 지려면 시원하게 지던가, 아니면 제발 비가 좀 왔으면 하네요.

아! 그리고 손시헌 선수도 쾌차했으면 합니다. 덧붙여 전 사실 이재우 선수가 보복성 빈볼을 던져줬으면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더라도 팀의 센터라인 모두가 몸에 공을 맞고, 그중에 한명은 실려나갔더라면 팀의 의지는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요?

어쨌건 파이팅 허슬!두!

2023/06/23

까마귀의 엄지 - 미치오 슈스케 / 유은정 : 별점 2.5점

까마귀의 엄지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케자와는 실수로 직장 동료 빚을 떠앉은 뒤 사채를 끌어쓰다가 몰락하고 사채업자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채무자의 남은 돈을 쥐어짜는 일이었다. 그러다 한 편모 가정의 어머니가 자살한 뒤 다카자와는 충격을 받고 조직의 비밀 서류를 빼돌려 경찰에 신고했다. 조직은 괴멸되고 두목 히구치는 체포되었지만, 다케자와는 보복을 당해 열두살 딸 사요를 잃고 말았다.
7년이 흘러 다케자와는 똑같이 사채로 아내를 잃은 데쓰와 팀을 이루어 자잘한 사기를 저지르며 먹고 살았다. 다케자와 때문에 자살한 여자의 딸들 - 마히로, 야히로 - 과 그 남자친구 -간타로 - 와 우연찮게 동거하던 중, 다케자와를 노리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히구치의 복수임을 직감한 다케자와는 도망치려 했지만, 데쓰와 마히로, 야히로, 간타로의 조언과 도움으로 반격을 결심했다.
도청 장치를 설치한 선불폰을 이용하여 사채 조직의 계좌 정보를 빼낸 뒤, 도청 탐지 업체를 위장하여 조직에 잠입하여 금고 속 현금을 털 계획을 세웠고, 5명 모두가 역할을 맡고 실행에 나서는데....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여태까지 모두 일곱 권 읽어보았습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좋았지만, 그 외는 대체로 그냥저냥이었어요. 서술 트릭과 무리한 설정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던 탓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이런저런 랭킹에서 추천했고, 아베 히로시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된 적이 있는 대표작이기에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크게 심각한 사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전반부, 유쾌한 범죄를 그리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에서 묘사되는 다케자와와 데쓰의 과거는 사채가 원흉이 된 가족의 파멸이라는 점에서 <<화차>>를 떠오르게 만드는데, 중반 이후 분위기는 돌변합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개성을 뽐내며, 비교적 유쾌하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외눈박이 원숭이>>와 비슷하게요. 또 다케자와 일당이 히구치 조직의 돈을 빼돌리려고 한탕 작전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은 <<스팅>>이나 <<뉴욕을 털어라>>와 같은 케이퍼 소설 -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범죄를 유쾌하고 가볍게 다룬 소설 - 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고요.

그런데 전반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다케자와가 빚을 진 이유는 본인 실수입니다. 무고한 소시민이 사채의 늪에 빠져든게 아니라요. 일종의 사기를 당한거긴 하지만, 누구 탓을 할 건 못됩니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죠.
게다가 딸마저 잃고 좌절한 다케자와가 '사기'로 먹고 살게 되었다는건 최악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등쳐먹는 사기꾼이야말로 사채업자보다 더 나쁜, 최악의 인물 아닌가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들, 현재의 사기 행위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잘한 범죄를 통해 기획력, 행동력을 선보이며 마지막 큰 '한탕'을 계획할만한 인물이라는걸 설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던 설정이라 생각되는데, 감정이입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사기꾼 주인공이 나올 수는 있어요. 다만 그럴거라면, <<스팅>> 처럼 대놓고 범죄물로 그리는게 나았을겁니다. 괜히 사채업자의 피해자라는 설정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야기와 별 관계도 없고요.
자잘한 사기 행각 - 은행에서 출금한 손님의 현금을 빼돌리는 사기, 데쓰와 다케자와가 처음 만날 때 데쓰가 저질렀던 자물쇠 교체 사기, 전당포를 이용한 사기 등 - 도 재미는 있었지만 치밀하고 잘 짜여진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외눈박이 원숭이>>가 떠오르는 다소 과장된 인물 설정도 감정이입을 방해합니다. 다케자와와 데쓰 외에는 비현실적인 인물들인 탓입니다. 화룡정점은 마술사 간타로입니다. 말투와 행동 묘사 모두가 도저히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같지 않았어요.

그래도 후반부 한탕 작전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그럴싸한 단계를 거치면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분이지요. 흥미진진하기도 하고요.
  1. 일당은 싼 가격으로 유혹하여 히구치의 사채 조직이 도청 장치를 심어놓은 선불폰을 구입하게 만들었다.
  2. 도청으로 사채 조직의 계좌 번호를 빼 낸 뒤, 이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어 계좌 속 현금을 사무실에 보관하게 만든다.
  3. 도청 감지 업체를 위장하여 사무실에 잠입한 뒤, 금고 속에 도청 장치가 있다고 속여 금고를 열게 만든다.
  4. 장난감 총을 진짜처럼 보이도록 속여 돈을 강탈한다.
  5. 달아나던 마히로가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것 처럼 위장하고 돈을 빼돌린다. (돈이 들었던 봉투를 바꿔치기 함)
알고보니 작전은 히구치가 이미 알고 있었으며 히구치가 모든걸 용서하고 끝낸다는 마무리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들 과거를 잊고 각자의 인생을 사는 완벽한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일당이 저지른 행위는 엄연히 범죄이니만큼 이 정도로 마무리되는게 현실적이었겠지요.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가짜 총까지 동원해서 돈을 훔치려고 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일당 중에 마술사가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봉투를 바꿔치기하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계획대로 히구치 조직이 연극에 속아넘어갔다 하더라도, 금고에 돈을 돌려 놓을 때 봉투가 바뀐걸 알아챘을테니까요. 저 연극이 그렇게 시간을 많이 벌어주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불법 추심 사채업체라 하더라도, 돈을 훔쳐 달아나던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고 그냥 돈만 회수하고 물러난다는 것도 애매했습니다. 돈을 어떻게 모았건 간에, 모은 돈을 도둑맞았으니 엄연히 피해자입니다. 구태여 몸을 사릴 필요는 없어요.

다행히 마지막 반전이 이 단점들을 한 방에 해결해 줍니다. 다케자와 일당이 모든걸 걸었던 한탕 작전은 데쓰가 꾸민 연극이었다는 반전입니다.
데쓰는 마히로, 야히로 자매의 아버지로 자기가 집을 떠난 뒤 아내가 자살한 것에 대한 복수, 다케자와에 대한 연민 등이 겹쳐 남은 사람들이 모든걸 털고 새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이런 일을 벌였던 겁니다. 그는 굉장한 경력과 실력의 사기꾼으로 연극에 사용한 거액의 돈은 진짜 히구치에게 사기쳐서 확보했고요. 그래서 다소 어설퍼보였던 작전, 그리고 이상할정도로 낭만적이었던 결과 - 히구치가 모든걸 용서하고 놓아주는 - 가 설명됩니다. 다케자와가 '사기꾼'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전반부도, 사기는 나쁘다는걸 확실하게 알려주며 마무리되어서 납득할 수 있게 만들고요.
데쓰가 모든걸 꾸몄다는걸 교묘하게 이야기 속에 숨겨서 진행한 것 역시 감탄스러웠습니다. 초반, 데쓰가 애너그램에 능하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다케자와가 데쓰의 사기를 눈치챌 때부터 모든 부분에 관련된 단서를 교묘하게 삽입하고 있으며, 이를 마지막에 드러내는 솜씨는 절묘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그냥 케이퍼 범죄물로 끌고가는게 훨씬 좋았을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한 번 읽어볼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영화가 궁금하네요.

2025/03/23

법정유희 - 이가라시 리쓰토 / 김은모 : 별점 2.5점

법정유희 - 6점
이가라시 리쓰토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토대 로스쿨에는 '무고 게임'이라는 학생들이 진행하는 모의 공개 법정이 있었다. 여기서 판사 역할을 하는건 학교 최고의 천재 유키 가오루였다. 

동급생들이 졸업하고 약 일 년 뒤, 가오루의 친구였던 구가 기요요시는 메일을 받았다. 무고 게임이 다시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에 적힌 시간에 모교를 찾은 구가는, 가오루의 사체와 피투성이인 동급생이자 친구 미레이를 발견했다. 살인범으로 기소된 미레이는 구가에게 변호를 의뢰했다. 사실 미레이와 구가는 어린 시절 보육 시설에서 함께 했던 친구로 함께 치한 사기를 치고 살았던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일본 신예 작가가 쓴 법정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만장일치로 제62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했으며,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3위와 신인상, 2020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3위에 랭크되는 등 수상이력이 아주 화려합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 속에서 꽤 많은 사건이 벌어지지만, 핵심은 유키 가오루 살인 사건입니다. 사실 사건은 가오루의 자작극이었어요. '일본 검찰이 실수를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법정에서 증거를 공개'하려고 미레이를 끌어들여 자살(?)했던 겁니다. 이 계획 안에 여러가지 법률 이론과 지식을 효과적으로 녹여낸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고요. 작가가 현직 법조인인 덕분이지요. 특히, ‘동해보복’ 이론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정당한 죗값'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가오루는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미레이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정당한 재판을 하지 않은 사법기관도 같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죗값은 두 측이 아버지의 무고함을 밝히는 것으로 치러져야 한다고 판단해서 계획을 실행했던 것이지요. 단순히 미레이의 생명을 노리거나 미레이에게만 죄를 묻는 복수를 넘어서는, 진지한 법학도가 생각할만한 타당한 동기였습니다. 법적으로도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을 뿐더러, 작 중 가오루의 언행으로도 동기를 설득력있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진상을 마지막까지 숨기면서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구가가 계획한 ‘무고의 제재’ 전략도 그럴듯 했습니다. '무고 게임'에서 심판자가 부정을 저질렀음이 증명되면 심판자 본인도 벌을 받는다는 규정을 지키기 위해, 가오루가 자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로스쿨 학생들이 즐기는 모의 법정 ‘무고 게임’ 설정이 가오루 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도록 잘 짜여진 점도 큰 재미 요소입니다. 미레이를 도청하고 협박한 사람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과정도 추리적으로 나쁘지 않고요. 법정에서의 공방도 긴장감 넘치도록 잘 묘사됩니다.

법정에서 사건 당시 촬영된 영상이 공개되어 미레이의 무죄가 밝혀진 후, 사실 가오루는 죽을 생각이 없었고 미레이가 살해했다는 반전도 강렬합니다. 미레이와 구가가 과거에 저질렀던 치한 치한 사기 및 상해죄에서 구가를 보호하기 위해 미레이는 가오루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는 앞선 회상과 법정 장면을 통해 충분한 설득력을 갖춥니다. 구가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겠다고 결심하는 결말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요.

그러나 치밀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진행되지만, 결국 미레이의 무죄는 사건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으로 증명된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너무 명확한 증거라서 다른 계획은 어차피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또, 비디오 카메라가 사건 현장에 장치되어 있었다는데 이를 어떻게 숨겼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 비디오 카메라에서 뺀 SD 카드에 암호가 설정되어 있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카메라를 치우고, 바로 SD 카드를 빼서 구가에게 전달하면서 암호화를 했다는건데 말도 안돼지요. 더불어, 비디오에 반전을 위한 결정적인 장면인 ‘미레이가 가오루를 살해하는 순간’만 찍히지 않았다는 점도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가오루의 계획에도 허점이 많습니다. 미레이와 구가는 오랜 시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구가가 미레이를 보호하기로 결심했다면 가오루가 남긴 미레이의 유죄를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 - 동영상 외 녹음 파일 등 - 는 무의미해집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구가는 검찰이 기소하기 전에 SD 카드 속 동영상을 검찰에 제공하여 불기소 처분을 받아내려 했을 테니까요. 가오루의 계획은 처음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 증거들은 은사인 나쿠라 교수에게 맡기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오루가 저지른 죄에 적절한 벌을 선택할 수 있는 심판자가 되기 위해서 무고 게임을 만들었고, 패자에게 벌을 선고하면서 죄를 인정하고, 벌을 결정하는 경험을 쌓았다는데 이건 좀 억지였어요. 가오루의 계획은 적절한 벌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사심이 담긴 판결에 가까왔으니까요. 가오루가 법에 미친 천재라는 설정을 선보이기 위한 장치로만 무고 게임을 사용하는게 바람직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 해결이 동영상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단점은 크지만,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한 번에 읽게 만들 정도의 강한 흡입력은 충분합니다. 이런 재미 덕분에 영화화까지 되었겠지요. 어떻게 요약해서 영화로 만들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다면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2011/08/06

파이 바닥의 달콤함 - 앨런 브래들리 / 성문영 : 별점 2.5점

파이 바닥의 달콤함 - 6점 앨런 브래들리 지음, 성문영 옮김/문학동네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라비아 들루스는 우표광인 아버지 들루스 대령, 그리고 사이가 나쁜 언니 둘과 함께 벅쇼 저택에 사는 11세 소녀이다. 유일한 취미이자 관심사는 화학 뿐인 그녀 앞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전날 밤 그녀의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인 수수께끼의 사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흥미진진한 사건, 그녀는 직접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출판사 문학동네 덕분에 읽게 된 따끈따끈한 신작입니다. 리뷰에 앞서 문학동네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영국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조숙한 11세 화학 천재 소녀 플라비아 들루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세 자매의 막내로, 큰언니는 음악 (피아노), 둘째 언니는 (문학)이라는 예술적 특기가 있는 반면, 자신만의 실험실을 갖추고 다양한 독약을 만들어 낼 정도의 화학 천재라는 설정의 플라비아를 생동감 넘치게 잘 그려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왠지 "오 나의 여신님"의 스쿨드가 떠올랐어요. 사건 수사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막무가내 행동파의 모습은 정통 하드보일드 탐정과도 닮아 있고요. '소녀이자 화학 천재, 그리고 외로운 하드보일드 늑대!' 이러한 기묘한 조합에 성공했다는건 확실히 대단한 성취입니다. 그러니 시리즈로 계속 발표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제 취향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어른인 척, 아는 척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플라비아는 그런 캐릭터의 대표격이라 도저히 호감을 가질 수 없었거든요. 그야말로 작은 악마 같더라고요. 만나면 꿀밤을 먹여주고 싶을 정도로요.

또한, 모험물로서는 괜찮은 수준이지만 지나치게 장황한 부분이 있고, 사건의 설득력도 많이 부족합니다.

추리적으로는 주요 사건이 결국 당사자들의 고백에 의존하는 것과 용의자가 너무 적어 딱히 언급할 게 없습니다. 본페니가 도요새를 파이 속에 숨겨온 이유와 왜 들루스 대령에게 우표를 팔려고 했는지도 잘 설명되지 않고요. 또한, 당시 사건에 관련된 인물을 들루스 대령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보만 제공하면 보브 스탠리의 정체도 쉽게 폭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계획된 범죄라고 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사실 죽일 필요도 없었죠. 본페니가 나가는 걸 봤다면 여관에 투숙한 뒤 짐을 뒤지면 됐을 테니까요. 여기에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희귀 우표 "얼스터 보복자"는 설정이 너무 황당해서 유머로 받아들여야 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과거에 벌어졌던 트와이닝 선생 자살 사건의 트릭은 괜찮았지만, 단서가 잡힌 과정이 플라비아가 되는 대로 행동하다가 얻어걸린 우연이었기에 역시나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한마디로, 재미는 있지만 빠져들기는 힘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평입니다. 어른들이 읽기에는 좀 아동 취향이고, 아이들이 읽기에는 무거워 보여서 독자층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궁금하네요. 저보다는 조금 어린 청소년~20대 독자들 취향의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웨스팅게임"과 비슷합니다. 재미도 있고, 소녀 캐릭터도 잘 살아 있으며, 완벽한 해피엔딩까지 삼위일체를 이루었지만, 진지한 추리의 맛이 부족하고 너무 어린 취향이었다는 점에서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10/07

방황하는 칼날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방황하는 칼날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하빌리스
<<아래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번 생긴 ‘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령 가해자가 갱생하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악’은 피해자들 속에 남아, 영원히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나가미네가 아내와 사별 후 홀로 키워왔던 딸 에마가 강간 살해당했다. 좌절한 나가미네에게 범인이 도모자키와 스가노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메시지 속 주소로 도모자키의 집에 잠입한 나가미네는 에마가 강간당하는 동영상을 확인하고 분노에 휩싸여 도모자키를 잔혹하게 죽였다. 그리고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스가노가 있다는 나가노 현으로 향했다. 도모자키 살해범이 나가미네라는걸 알아낸 경찰 역시 그의 뒤를 쫓는데....

우연찮게 제 구글 홈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 소갯글이 떳길래 잠깐 찾아보았다가 급 호기심이 생겨 구독 중인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무섭다 알고리즘!

작품은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도 가벼운 형을 선고받는게 과연 옳은지를 비판하는 사회파 범죄 소설입니다. 미성년자 범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극도로 흉악하게 설정한 덕분에 읽는 내내 나가미네에게 감정이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딸이 강간 살해당했다면 어떤 아버지가 가만 있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 상황의 동영상까지 보았다면 피가 꺼꾸로 솟는다 정도의 말로는 부족한 분노에 휩싸이는게 당연합니다. 때문에 범인들 - 특히 도주한 스가노 - 이 나가미네에게 합당한 응징을 받기 원하며 응원하면서 읽었습니다. 
미성년자 범죄에 대해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네요. 요새처럼 아이들 성장이 빠른 시기에 오래전 잣대를 기준으로 판단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저는 중학생부터는 성인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관용 원칙으로요. 하긴 그래봤자 술을 먹어서 심신 미약이었다던가, 초범이라던가, 깊이 뉘우치고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빠져나올 놈들은 다 빠져나오는게 현실이라는게 더 씁쓸하기는 합니다만.
최근 언론에 언급되는 여러 학부모들의 민원(?)과 같이, 미성년자 범죄자들의 부모들의 눈 뜨고 못 볼 작태들도 잘 묘사됩니다. 이런걸 보면 미성년자 범죄는 그 부모도 함께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역시 무관용 원칙으로요.

하지만 나가미네가 결국 응징에 실패하고 경찰에게 사살당한다는 결말은 씁쓸했습니다. 이 마지막 장면, 그리고 경찰 수사 과정과 경찰들의 생각을 통해 경찰의 자괴감 -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어떤 보복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나?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 ‘악’을 벨 힘을 가지고 있나? - 을 잘 드러내기는 하나 독자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어요.
특히 경찰 히사쓰카 반장이 나가미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는 반전은 최악이었습니다. 자수를 결심했던 나가미네가 사살당한건 히사쓰카 반장이 준 정보 탓입니다. 이렇게 애매한 정보만 전달하고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하기 보다는 직접 수사를 뛰는 마노, 오리베와 같은 부하들을 설득해서 더 적극적으로 나가미네를 도와주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어요. 과거 유사 범행의 수사를 맡았던 경험 때문이었다는 동기도 별로 와 닿지 않고요. 
정보를 나가미네의 핸드폰으로 보내는 것도 당황스러웠어요. 잠깐이라도 핸드폰을 켜서 메시지를 확인하면 현재 위치가 바로 추적되지 않나요? 경찰이 이 정도 수사도 하지 않는다는건 솔직히 억지스러웠습니다.

짜임새도 헐겁습니다. 중간에 매스컴이 단순히 화제와 시청률을 위해 보도를 벌이는 장면은 그냥 뻔한 이야기를 답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펜션 여주인 와카코가 나가미네에게 협력자가 된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나가미네에게 협력자가 필요했던 상황도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은신처를 제공받으며 스가노 추적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그녀 없이도 이야기를 풀어갈 방법은 많았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없으면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스가노가 폐업한 펜션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걸 깨닫는게 훨씬 자연스러웠을거에요.
그리 기대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추리적인 요소도 거의 없습니다. 나가노에 있던 나가미네가 범인 스가노에게 안도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아이치에서 편지를 보냈다는 정도만 약간 머리를 쓸만 했을 뿐입니다.

한국 영화 소개를 보니 제가 언급한 단점들을 인지했는지 보다 명확하게 이야기를 정리한 듯 하더군요. 펜션 여주인 와카코의 존재를 지우고, 직접 수사에 뛰어든 형사가 정보 제공도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결국 나가미네가 사살당하는건 변함이 없던데, 자수해서 집행유예를 받은 뒤, 스가노를 끝없이 추적한다는 결말은 어땠을까 싶네요. 다른 피해자 가족들과 연대해서요. 스가노 같은 녀석 때문에 인생을 망칠 이유는 없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몇 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 법이고요. 살아서 스가노와 그 일당, 가족들에게 영원한 지옥을 선사하는게 복수로서 더 의미가 있었을겁니다. 지금의 죽음은 그냥 개죽음이니까요.

하여튼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몰입해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완성도와 결말 부분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덧붙이자면, 범죄자 가족이라고 모두 고통받아야 하는지? 에 대해서 히가시노 게이고 자신이 <<편지>>를 통해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범죄의 종류와 범죄자 상황을 다 고려해서 선별적으로 비난하기는 불가능하니, 참 어려운 이야기지요....

2009/07/12

빈볼 관련 단상

어제 SK 송은범 선수가 던진 공을 맞은 진갑용 선수가 아쉽게도 거의 시즌 아웃이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최근 이런 경기가 잦은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전에도 썼지만 미국식 해결책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죠. 우리팀 손시헌이 머리에 공을 맞는다면 나주환에게 헤드샷. 뭐 이런거요. 이런 전략이 모든 팀에게 공통적으로 통했다면 이런 논쟁 자체가 아마 사라졌을거에요.

* 생각과는 전혀 다른 본의 아닌 낚시글이 되어 글을 이동합니다. 이글루스라는 열린 공간에 올리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표현이 많았네요. 삭제할까 했지만 댓글도 소중한 의견들이고 공감되는 것도 많아 삭제하지는 않겠습니다. 아울러 경박한 표현으로 실례를 끼친 특정 구단과 선수분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덧글 금지 설정이 적용이 안되네요.... 이후의 덧글은 윗글에 달아주세요.


프로야구 투수가 몸쪽 던지다가 공좀 맞출 수 있다! 뭐 이런 글도 봤는데 그건 동감입니다. 리오스가 두산 있을때 사구가 많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하지만 리오스 선수 사구 맞고 심각한 부상으로 결장한 선수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네요. 리오스 선수는 약빨이다 뭐다 말은 많지만 제구는 좋았거든요. 
그런 논리라면 제구가 개판인데 주구장창 몸쪽으로 찔러 넣는, 그것도 머리쪽으로 찔러 넣는 또라이가 프로야구 투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죠. 그러고 머리에 정통으로 때려먹이고 미안하다면 단가? 이런 또라이짓이 계속된다면 어쩔 수 없이 보복가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150km 넘는 광속구 이원재를 빨리 콜업해서 이럴때 써먹는게 좋지 않을가 싶기도 하네요. 제구력 안좋은 투수이기도 하니 변명하기도 좋을것 같습니다.

덧붙여, 두산 용덕한이 삼성선수 헤드샷 한건 사과안함? 뭐 이런 글도 어디서 봤는데 그건 삼성과 두산 문제지 두산과 SK 문제는 아닌데 왜 끌고 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잘못한 플레이라 생각하며 앞서 말한 논리대로 당시 용덕한 선수가 공을 몸에 맞던가 했더라도 할 말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글을 쓴 이유는 진갑용 선수의 안타까운 부상때문이지만 애시당초 손시헌 선수 사구에대해 불만이 많았던 지라 글을 적게 된 것이니 만큼 오해하지 말아주시길...)

작금의 상황에 대해 SK팬이라고 해서 무작정 피해의식 느끼지말고 이런 사건이 유독 SK와의 경기에서 최근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많이 나오는 점에 대해서 이유를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할겁니다.

2024/07/20

I의 비극 - 요네자와 호노부 / 문승준 : 별점 3.5점

I의 비극 - 8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네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합병해 인구 6만을 유지하고 있는 난하카마시에는 모든 주민이 고령으로 사망하거나 요양센터로 떠난 후 아무도 살지 않게 된 마을 ‘미노이시’가 있다. 새롭게 취임한 시장은 타지역에서 이사 오는 주민을 지원하자는 취지의 ‘I턴 프로젝트’를 시작, 업무를 전담할 ‘소생과’를 신설하며 마을을 되살리기 위한 행보를 이어간다. 공무원 만간지는 소생과로의 전보를 일종의 좌천이라고 여기면서도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을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과연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 '알라딘 책 소개 인용'

요네자와 호노부의 연작 단편집. I턴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하는 서장에 이어, I턴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이주한 이주민들에게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6편의 단편이 이어지고, 결국 I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종장으로 마무리됩니다.
각 단편별 소개와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장 : 가벼운 비"
이주민 구노는 약 30m 떨어진 이웃 아쿠쓰 집이 마당에서 바베큐를 하면서 큰 음악을 틀어 힘들어했다. 그런 구노는 어느날 만간지 등을 초대하여 저녁 시사를 대접했고, 구노가 잠깐 자리를 비우고 아내가 크게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아쿠쓰 집 2층 커튼에 불이 붙는 화재가 일어났다.

남편 구노의 취미는 무선 조정 헬리콥터로 소개되기에, 누가 보아도 구노 씨가 저지른 범죄임이 분명했습니다. 아내의 연주는 헬리콥터 조작 소리를 감추려했던게 뻔하고요. 다만, 헬리콥터에 발화성 물질을 매달아서 2층 커튼에 불을 붙였을 거라 생각했는데, 창고에 쌓여있던 왕겨를 헬리콥터 풍압을 이용해 날렸다는건 생각도 못 했습니다. 공무원들 앞에서 이웃집이 위험하다는 걸 알리는 의도였다면 이게 더 좋네요. 단서들이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전개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매일 일찍 퇴근하는 것만 생각하는 무능력해 보이던 과장이 탐정 역을 수행하면서 멋진 추리쇼를 선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통쾌했으며, 아쿠쓰 씨가 음악을 틀었던 이유는 구노 씨 헬리콥터 소음 탓이었다는 반전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층간 소음 보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인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싶네요.
I턴 프로젝트의 문제가 거의 다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도 연작 단편집의 서두를 열기에 적합했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장 : 얕은 저수지"
젊은 이주민 마키노 씨는 마을에서 잉어 양식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물을 둘러쳐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양식장 속 잉어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진상은 양식장 덮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들이 잉어를 가져갔던 것이지요. 만간지가 출장을 간게(그래서 현장에 즉각 출동하여 도움을 주지 못하게 만든 것) 과장의 진짜 의도와 연결되기 때문에 연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마키노씨가 현장만 지켜보았어도 이유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추리물보다는 일종의 일상계 코미디, 시트콤 느낌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3장 : 무거운 책"
이웃 책 아저씨 집에 놀러 가겠다고 한 아이 하야토가 실종되었다. 책 아저씨 구보데라 씨는 나고야 출장 중이었다.

구보데라 씨 집에 이전에 살던 주민이 대전 당시 홀로 방공호를 만들었고, 아이가 방공호로 숨어든 탓에 실종되었다는게 진상입니다. 방공호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는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마을 사람들이 방공호에 대해 아무도 몰랐다는건 이상했어요. 아이가 실종된 시점에서 대형 사고가 될 수 있으므로 빠른 조치가 필요했는데, 만간지가 방공호에 대해 추리하고 현장 수색에 나설 때까지 과장 등이 방관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억지가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4장 : 검은 석쇠"
유미코 씨는 마을 주민들에게 여러가지 갈등을 야기하고 있었다. 불합리한 논리로 아마추어 무선이 취미인 이웃 게이토의 안테나 철거를 요청했고, 휘발유에 납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집 앞 자동차 통행을 막았으며. 다른 이웃 이치로에게 이상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을 축제에서 독버섯을 먹고 실려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버섯을 따왔던건 게이토 씨였다. 하지만 구운 버섯은 모두가 함께 먹어서, 그녀에게만 독버섯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몸에 안 좋다는건 무엇이든 피하는 유미코 씨의 습관을 이용한 범행이었습니다. 탄 음식이 좋지 않다는걸 알려준 뒤, 탄 자국이 있는 구운 버섯 사이에 찐 버섯을 섞어두어 그걸 먹게 했던 것이지요. 트릭은 아주 탁월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비합리적인 습관을 이용했다는 점에서는 억지가 없지는 않고요.
그래도 이 습관과 버섯 요리, 동기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앞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덕분에 꽤 설득력있게 전개됩니다. 일상계 본격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 손색없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5장 : 깊은 늪"
사건이 아닌, 이주 정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입니다. 고령화, 인구 감소로 사라져 가는 지방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사건이 등장하지 않아서 심심하며, 딱히 점수를 주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종장에서 밝혀지는 프로젝트 실패 계획의 동기라는 점에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6장 : 흰 불상"
나가쓰카 씨는 유명 행각승 연구의 불상이 있는 와카타 부부를 설득하여 불상을 보거나 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노이시 시의 장래에 도움이 될거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와카타 부부는 거절했다. 빌려주었을 때 입을 손상과, 불상이 놓여진 곳에서 옮겨지는걸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불상이 무언가 이상하다며 와카타 씨가 원래 놓여져 있던 위치를 조사해달라는 부탁에 만간지와 간잔이 응했다. 그러나 불상이 놓여져 있던 별채에서 만간지는 영문을 모른 채 갇혔고, 불상도 가짜로 바꿔치기 당했다. 범인은 나가쓰카 씨였다.


과학적인 트릭이 사용된 작품. 간잔이 드라이아이스를 가지고 와서 기화시켜 실내 기압이 증가되었고, 넓은 문에 압력이 가해졌던 탓에 왠만한 힘으로는 열리지 않았던 겁니다. 미닫이 창문은 기압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아 쉽게 열렸고, 창문을 열 때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준 것은 밀려나가는 실내 공기였습니다. 만간지에게 쏟아졌던 비정상적인 졸음이 증거입니다. 실내 산소가 부족해졌다는 뜻이니까요. 트릭 자체는 꽤 기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유를 알기 어려운 괴현상을 일으킨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공식적으로 경찰 수사를 하는게 이주민 퇴거 목적에는 더 부합했으리라 보입니다. 바뀌치기된 불상은 과장이 나가쓰카 씨에게 전해준 것이라 범인이 드러나는건 어렵지 않았을테고요.
간잔이 집 근처에 화재가 발생했다는걸 만간지에게 알린 것도 잘못입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탓에, 우연이었지만 만간지가 산소 부족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트릭을 이야기가 뒷받침하지 못해서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래된 일본 가옥들이 추운 이유는 방습 기능을 우선했기 때문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기밀성이 낮은 탓이라네요. 그런데 기밀성이 맞으면, 기압 변화도 일으키기 힘든거 아닐까요?

"종장 : I의 희극"
마지막 남았던 이주민 마루야마 씨가 전출 신청을 하러 찾아왔다. 과장과 만간지, 간잔은 마지막으로 미노이시를 찾아 상태를 점검했다. 그 곳에서 만간지는 과장과 간잔이 이주민들을 떠나도록 강제하였다는 추리를 밝힌다. 방화의 증거는 간잔이 찾아냈고, 잉어는 공무원들 방문이 늦어 전멸했다. 방공호 입구 위치는 니시노 과장이 알고 있었다. 탄 음식에 발암 성분이 있다고 한 것은 간잔이다. 엔쿠불 복제품은 니시노 과장이 건넸다.
이유는 시장 공약으로 I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지만, 난하카마 시에는 미노이 시를 유지할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장과 간잔이 흑막이라는 추리의 근거와 과장과 간잔의 동기, 즉 시의 비용 문제는 소방차와 구급차가 찾아오는데도 수십 분이 걸리고, 초등학교가 없어서 교통편도 마련되어야 하고, 눈이 오면 제설하기 위한 비용도 새로 편성되어야 한다는 등 모두가 앞서의 단편에서 설명됩니다.
일종의 반전이라면 반전으로 연작의 마무리로서도 좋았지만, 울림을 주는 메시지가 강력합니다. 시골 마을이 없어지고,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등은 모두 우리나라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서 와 닿을 수 밖에 없었네요.

물론 과장과 간잔의 계획대로 잘 흘러갔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마지막 남았던 마루아먀 씨가 전출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제설 비용은 그대로 들었겠지요. 전출은 완결을 위한 다소 편의적이었던 마무리인 셈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종장으로 마무리되는 이 작품의 전체 별점은 3점입니다. 보기드문 '일상계' 사회파 추리물 수작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6/07

리뎀션 - 안데슈 루슬룬드, 버리에 헬스트럼 / 이승재 : 별점 1.5점

리뎀션 - 4점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베트 그랜스 경정은 손님을 걷어차 뇌출혈을 일으키게 만든 밴드 가수를 체포했다. 그런데 존 슈워츠라는 가수의 여권은 위조였다. 가수의 정체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존 메이어 프레이였다. 존 메이어 프레이는 오하이오의 사형수였는데, 6년 전 탈옥했었다. 그가 무죄라고 믿었던 교도관 버논 및 사형 폐지 연합의 도움 덕분이었다. 버논은 식사에 독을 섞어 건강 이상을 유발시킨 뒤, 사형 폐지 연합 소속 의사가 마취제 등을 투여하여 존의 사망을 위장했었다. 시체 운반 부대를 통해 교도소에서 빠져나온 존은 러시아 등을 거쳐 위조 여권으로 스웨덴에 입국할 수 있었다.
존의 생존을 알아낸 미국 정부는 송환 후 사형 집행을 원했다. 스웨덴은 사형과 같은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개인의 송환요구는 거부하고 있었지만, 미국과의 관계에 금이 갈까 우려하여 존을 러시아로 추방하는데 합의했다. 존은 러시아에서 곧바로 미국으로 끌려가 사형 집행을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사형제를 반대하던 교도관 버논의 계획이었다...


모르는 스웨덴 컴비 작가의 범죄 스릴러. 에베트 그랜스 경정 시리즈 중 하나로 내용의 핵심은 교도관 버논이 엘리자베스 피니건을 살해하고 존이 사형 선고를 받도록 만든 음모입니다. 존이 사형 집행을 당한 다음에, 자신이 진범임을 밝혀 체제를 뒤흔들 생각으로요. 사형 제도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사형과 같은 '동해보복'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자살할 때 에드워드 피니건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조작하여 에드워드를 살인 사건의 피고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버논이 계획을 밀고 나가던 중간에 존을 불쌍히 여겨 교도소에서 탈옥하게 만든 과정도 재미있었습니다. 약물로 심장에 일시적으로 이상을 일으킨 후, 교도소에 고용된 같은 편 의사들이 존을 언뜻 보기에 죽은 것처럼 마취시키도록 만들어서 사망 선고를 내렸고, 그 뒤에는 시체 안치실에 집어 넣었다가 부검 절차를 핑계로 시체 운반 부대에 넣고 빼돌리는 과정 모두가 설득력있게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송환되면 죽을게 뻔한 존의 처리(?)를 놓고 고민하는 스웨덴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도 흥미로왔습니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딜레마는 항상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소재이니까요.

하지만 작품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해 살인 사건을 조작하여 무고한 사람이 사형당하게 만든 뒤, 이를 폭로한다는 핵심 계획부터 영화 "데이비드 게일"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게일은 강간 살인죄로 사형을 당했는데, 알고보니 그가 살해했다는 피해자는 자살했었습니다. 피해자는 데이비드 게일의 공범이었고요. 이 사실은 게일의 사형 집행 직후에 드러납니다. 사형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였지요.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죠. 게다가 이 작품은 이보다도 훨씬 못합니다. 데이비드 게일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피해자로 알려진 콘스탄스도 불치병에 걸려 자살했던 공범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버논은 무려 세 명 - 사형 선고를 받은 에드워드까지 - 이나 죽게 만든 살인범입니다. 버논의 존재가 사형 제도가 유지되어야 하는 근거인 셈이지요. 살인마가 사형 제도 폐지를 논한다는건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큰 문제입니다. 누가 보아도 살해당했던 엘리자베스 피니건의 아버지 에드워드 피니건은 작 중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입니다. 그가 존에게 엄청난 복수심을 불태우는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작가들은 에드워드 피니건을 복수심 때문에 제 정신을 잃은 변태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버논은 꽃다운 청소년 두 명을 희생시킨 살인범입니다. 에드워드 피니건마저 자신을 죽인 살인자로 조작한건, 에드워드가 그가 사랑했던  앨리스와 결혼한 것에 대한 복수로 보이고요. 그런데 작 중 버논은 시종일관 나름의 정의와 신념을 굳게 지키는 정의로운 인물처럼 등장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에드워드가 사형 선고를 받고 존이 갇혔던 사형수 동에 감금되었다는 에필로그도 억지스럽습니다. 끈을 이용하여 자살 후 총이 튕겨 나가도록 만들고, 끈은 까마귀가 먹어치우도록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미국 경찰이 '초연 반응' 정도를 검사하지 않을리 없어요. 존이 자살한게 아니라 살해당했다는걸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을겁니다. 설령 수사가 미비하여 에드워드가 버논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썼다고 치죠. 그래도 딸을 살해한 범인을 직접 처단한 아버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버논이 그의 딸을 살해했다는건 이미 밝혀진 다음입니다. 납득하기 어려워요.
다른 인물들도 엉망이거나 별볼일 없습니다. 기껏 목숨을 건진 존이 분노를 참지 못해 사건을 저질러 정체가 드러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솔직히 이렇게 멍청하다면 죽어도 싸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와 가족과의 이야기는 너무나 뻔해서 지루했고요.
에베트 그랜스도 영 마음에 드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하는게 거의 없습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지 주변 인물들에게 화를 내는 것,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뇌손상이 온 아내(?) - 전작을 읽지 않아 이 설정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은 안 됩니다만 - 안니에 대해 신경쓰는 것 밖에는요. 나이 많고 화도 많은, 붙임성 없는 거구의 경찰이라는 인물 설정도 "메그레" 경감과 똑같습니다. 그나마 독특한건 스웨덴 가수 시브 말름크비스트의 광팬이라는 것 뿐입니다. 마리안나 헬만손 경위도 이런 상사 밑에서 일하는 미모의 여성 형사의 스테레오 타입에 그칩니다.

그리고 버논의 계획은 스웨덴 형사 에벤트 그랜스와 별 관계도 없습니다. 오히려 에베트 그랜스가 존의 무죄를 믿고 송환에 반대할 까닭도 없지요. 한 국가의 고위 경찰이 남의 나라 사법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게 더 이상하니까요. 한마디로. 스웨덴 형사 에베트 그랜스 시리즈일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에베트 그랜스의 등장 부분을 거의다 잘라내고, 존과 버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며도 충분했어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탈옥에 대한 디테일 외에는 전부 꽝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04/04/09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 벤 메즈리치 / 황해선 : 별점 3점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 6점
벤 메즈리치 지음, 황해선 옮김/자음과모음
3학년이 된 MIT 전기공학도 케빈은 같은 학교를 중퇴한 피셔와 마르티네즈에 이끌려 ‘동부의 라스베가스’ 애틀랜틱시티로 첫 원정 도박에 따라 나선다. 짧은 시간에 800달러를 딴 것은 우연한 불행의 단초가 아니라, 그를 도박판에 끌어들이려는 치명적 유혹이었다. 
블랙잭 비밀 조직은 뛰어난 두뇌를 지닌 데다 ‘중국계’라는 자격 요건을 갖춘 그를 발탁한다. '동양계 큰 손'이 도박장에서 오히려 어색하지 않다는, 인종적 선입견마저도 철저히 계산에 넣은 것. 조직은 블랙잭의 모든 것을 학구적으로 파헤쳤고, 조직원들은 리더인 MIT 퇴직 교수 로사를 사교(邪敎)집단 교주처럼 숭배했다. 케빈은 카지노를 유린하는 체계적 분업인 '스포터(spotter)', '고릴라', '빅 플레이어' 같은 도박사 수련 단계를 밟아 최고 지위에 오른다. 

평일엔 캠퍼스 모범생, 주말엔 욕망의 천국 라스베가스의 승부사로 위태로운 두 겹의 생활은 짧은 기간 전업(專業) 갬블러 생활을 했지만, 졸업 후 시카고 투자은행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 되었다. 변장하고 가명을 쓰거나 어리숙한 척 연기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한판 수입 40만달러, 수익률 80% 

이후 조직은 '공룡'으로 커가면서 내홍을 겪고, 케빈을 끌어들였던 피셔가 앞장서 은사인 로사 교수로부터 '젊은 세대의 독립'을 선언한다. "도박사가 해야 할 가장 중대한 결정은 떠나야 할 때를 결정하는 것일세…" 자신이 최저점에 위치해 있다는 승부처에서의 자기 합리화가 중대 결심을 미루게 한다는, 피셔의 고별사가 복선(伏線)으로 깔린다. 

승승장구하던 새 팀에게 그림자 같은 미행이 뒤따른다.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것을 도박사로서의 덕목으로 강요하는 라스베가스의 불문율 탓에, 팀은 시카고나 슈리브포트(루이지애나)로 활동 공간(카지노)을 넓히고 철저한 준비로 라스베이거스를 역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철옹성' 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은 라스베이거스가 고용한 사립 탐정들의 추격과 보복, 그리고 단 25,000달러에 조직의 비밀을 판 배신자 때문에 피 끓는 20대의 5년을 불살랐던 라스베이거스. 1년에 20번 왕복하며 매주말 40시간, 시간당 60판, 모두 4만8000번의 피 말리는 승부를 치렀던 케빈의 삶은 라스베가스를 떠나 벤처기업에 취직함으로써 현실로 돌아온다.
블랙잭(숫자 합계가 17~21 사이에서 높은 패를 쥔 쪽이 승리하는 딜러와의 1대1게임)의 허점을 공략하는 묘수인 '카드 카운팅(card counting)'으로 1990년대 중 후반에 실제로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서 수백만 달러를 땄다는 MIT 출신 천재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비교적 자세하게 쓰여진 카드 카운팅 방법이 가장 인상적으로 실제로 도전의식(?)을 불태우더군요. 낮은 점수의 카드를 +1, 높은 점수의 카드를 -1로 하여 그 숫자를 순간적으로 더해서 지수가 높아질 때 판에 뛰어들어 딜러와 승부한다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그 때가 높은 점수 카드가 많이 남았을 때라는 거죠. 그 외에도 순간적으로 여러명의 카드를 분석하여 계산한다던가, 카드 셔플 시 특정 카드의 위치와 순서를 추적한다던가, 팀을 여러 명으로 나누어 운영함으로써 카드 카운팅의 위험을 최소화 하는 방법 등의 여러가지 노하우까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학적인 게임이라는 블랙잭, 펼쳐진 카드로 다음에 나올 카드를 예상할 수 있다는 확률의 법칙이 수학 천재들에 의해 분석되었기에 거의 완벽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카지노 측이 더 현명하여 자동으로 카드를 섞는 기계나 여러 감시 장치의 도입으로 이러한 방법에 따른 위험을 줄이고, 카드 카운터를 세심하게 적발하는 등 몰락의 과정도 충실히 묘사됩니다. 실제로 불법도 아니고 단지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을 뿐인 천재들에게 카지노가 가한 응징은 좀 무자비하더군요. 물론 그들의 파워..를 막기에는 멤버들의 힘이 너무나 미약했던 탓이 크겠지만요.

이런 류의 책 치고는 나름대로 교훈적이기도 한데, 보안회사에 인터뷰 차 찾아간 케빈이 카드 카운팅의 우월성을 입증하며 카지노를 나서는 마지막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도박은 하지 않고 그동안 잃어 왔던 것을 되찾기 위해 애쓰지만 한편으로는 카드 카운터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인데 과연 케빈은 도박의 유혹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은 것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여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도 높이 평가할만 하고 꽤 재미있게 읽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수학과 도박, 확률 이론에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덧 : 하나 못 마땅한 것은 카지노에서 큰 금액을 베팅하는 인물은 “동양인” 이라고 하는 설정이더군요. 한국계 가명도 당연히 등장하고요. 졸부 아들들이 얼마나 돈을 흥청망청 써대길래…

2004/07/15

괴인 20면상 / 소년 탐정단 - 에도가와 란포 : 별점 2점

이 작품들은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가 변격물에서 벗어나 아동 취향 소설을 시도한 작품입니다. 당대 소년소녀들에게 초인기이었으며 현재까지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쥬의 대상이 되는 “20면상”이라는 괴도와 “고바야시 소년”, “탐정의 7가지 도구” 등이 처음으로 등장하죠. 관심이 있던 차에 우연히 원어 소설을 구입하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추리문고로 간행된 책으로 아마노 요시타카가 일러스트를 맡았죠. 일어실력이 부족해서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동향 책이라 그런대로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구한 만화가 두꺼운 장편인 소설대비 내용 축약이 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둥 줄거리는 잘 따라가고 있어서 함께 읽으니 서로 보완이 되어서 좋았어요. 소설보다는 아무래도 만화가 이해가 훨씬 잘 되니까요.
<괴인 20면상>
대부호 하시다 가문에서 입수한 “로마노프 황제의 6개의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20면상이 범행 예고장을 보낸다. 하시다 가문은 경비 강화는 물론 오랫동안 가출하여 외국에서 생활한 장남 소우이치의 귀국까지 겹쳐 부산한 나날을 보낸다. 소우이치는 장남으로서 20면상이 예고한 날에 같이 보석을 지킬 것을 아버지에게 약속하지만, 실은 그가 변장의 명수 괴인 20면상이었다! 20면상은 보석을 가지고 도망가던 중 둘째아들 소우지가 몰래 설치한 덫에 걸려 상처를 입자 보복으로 소우지를 납치한다.
이에 하시다 가문은 명탐정 “아케치 고코로”에게 소우지 구출을 의뢰하게 된다. 아케치의 부재로 임시로 사건을 맡게 된 조수 고바야시 소년이 소우지를 구출하지만, 대신 20면상에게 사로잡히게 되는데…..

<소년 탐정단>
할아버지의 유산인 저택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는 소년 미야세 후지오에게 한밤 중에 괴한이 찾아와 침대를 떠나지 말 것을 강요한다. 후지오의 아버지와 가정부는 연극이라 여기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아케치 고코로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아케치는 현장에 남겨져 있던 “5+3, 13-2”라는 수수께끼의 문자를 토대로 미야세 가문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게 된다….

일단 “괴인 20면상”은 모험소설적인 측면이 강한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추리적인 요소는 별로 없네요. 란포 자신도 쉽게 쉽게 쓴 느낌이고 말이죠. 란포 특유의 변격물 취향이 어느정도 풍기는 20면상의 분위기는 독특한 맛이 있어서 좋았습니다만 그 외에는 전부 그닥... 이었습니다. 20면상이 치밀하거나 완벽한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변장의 괴물”같은 묘사로만 이루어진 점이라던가, 아케치 고코로와 20면상 모두 고바야시 소년의 들러리 역할만 한다던가, 지나치게 뤼뺑-홈즈의 스타일을 차용한 점 등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에 비하면 “소년 탐정단”은 아동 모험소설 류의 묘사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란포 특유의 묘사와 암호 트릭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상당히 추리성이 강해서 훨씬 낫더군요. 특히 초반부의 암호 트릭은 제법 괜찮았어요. 한마디로 아동 모험소설과 추리소설과의 절충을 효과적으로 이루어 낸 작품이랄까요?
그러나 중반 이후의 섬에서의 보물의 위치를 찾는 트릭은 란포의 전작 “고도의 마인”에 등장한 트릭을 아동 눈높이에 맞춰 고쳐쓴 것에 불과해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결론내리자면, 추리적인 완성도도 별로고 기본적으로 아동용 소설이라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현재까지 끊임없이 패러디되는 란포의 캐릭터들의 전형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낡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재미는 충분히 제공하는 만큼 한국어판의 출판을 기대해 봅니다.

2009/04/24

SK-롯데 빈볼 시비 관련 단상

로저 클레멘스의 빈볼강좌

저는 로저 클레멘스의 이론을 지지합니다. 고의적이건 아니건 잘잘못을 떠나서 팀의 중심타자이자 주장이 강속구 헤드샷에 맞아 쓰러졌다면, 보복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거죠. 팀 내에서도 플래툰으로 출장하고 있는 한물간 빵재홍 따위보다는 정근우, 박경완 정도를 제대로 날려버렸어야 하는건데 그게 좀 아쉬울 뿐이네요. 하여간 SK는 뭐 이런 사건 터지면 빠지는 일이 없는 완전 공공의 적입니다... 선배에게 욕설은 기본에다가 개념도 없고... 맞지도 않았는데 쌩쑈를 하지를 않나...

혹시나 반대하시는 분들은 입장을 바꿔서 WBC때 우쓰미한테 용큐 선수가 헤드샷 맞았을 때의 국민 반응을 생각해 보시길. 두산 팬으로서는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의 기억도 떠오르네요. 그때는 지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아주 발광을 하더니만. 쩝.

덧붙여 조성환 선수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근성이 아주 마음에 드는 선수였는데 막 빛을 보기 시작한 때에 큰 부상을 당하게 되어 가슴이 아프네요. 나이도 있는 만큼 더 걱정도 되고요. 빨리 털고 일어나 그라운드에 복귀해 주었으면 합니다.

2020/10/10

루팡의 딸 - 요코제키 다이 / 최재호 : 별점 1점

루팡의 딸 - 2점 요코제키 다이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으로 불리우는 수사 1과 형사인 카즈마의 가족은 모두 경찰이며, 심지어 키우는 개 까지 은퇴한 경찰견인 경찰 집안. 그와 교제하는 하나코는 도서관 사서로 위장했지만 가족 모두가 도둑인 도둑 가문의 딸이었다.

카즈마가 결혼을 전제로 하나코를 가족들에게 소개시킨 얼마 뒤, 카즈마와 수사 1과는 한 살인 사건을 맡게 되었다. 피해자는 처참하게 구타당해 죽은 고령의 노인으로 얼굴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여러가지 단서로 경찰은 피해자의 신원이 '다테시마 마사오'라는걸 알아냈다. 이 사실을 뉴스로 접한 하나코 가족은 피해자가 신분을 감춘 할아버지 미쿠모 이와오라는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경찰은 피해자가 '다테시마 마사오'로 위장한 이와오라는걸 알아내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지만, 카즈마는 시체에 남겨져 있었다는 손수건을 단서로 진상을 알아냈다. 이 사건은 50년 전 성폭행 미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성폭행 미수범은 카즈마의 동료 마키 형사의 할아버지 에이스케였다. 이와오에게 쫓기던 에이스케는 손자 마키를 시켜 그를 죽이려 했는데, 마키의 착오로 진짜 다테시마 마사오가 살해되었다. 그래서 이와오와 와이치는 마사오의 죽음을 이용하여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웠다...

일본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만화적인 설정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그냥 봐도 "세인트테일"이 바로 떠오르지요. 그래도 카즈마가 하나코를 소개한 날, 그녀가 며느리로 적합한지 아닌지에 대해 가족회의 하는 등 나름 설정을 살린 요소들은 재미있었습니다. 형사인 아버지는 감으로 그녀가 착해서 마음에 든다고 하지만, 과학 수사대 요원인 어머니는 '착하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설정에 따른 재미는 소소할 뿐, 전개와 내용 모두 지나치게 만화적이고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추리적으로도 건질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오를 죽인건 누구인가?' 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가기는 하는데, 동기가 말도 안되고 제공되는 단서도 공정하지 못하며, 범인도 급작스럽게 드러나는 탓입니다. 동기는 이와오가 50년 전 성폭행 미수범이 누구인지 알게 되자, 성폭행 미수범이 자신의 손자를 시켜 이와오를 살해한 거랍니다. 증거는 이와오가 '범인의 눈을 보면 안다'라는 말 밖에 없는데 무려 50년 전 성폭행 미수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것도 손자를 시켜서? 심지어 손자 마키도 능력있는 형사로 전통있는 경찰 집안 출신이라 나름대로 출세가 보장되어 있는데 할아버지가 시킨다고 살인을 저지른다? 뭐 하나라도 말이 되는게 있어야지, 이래서야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키가 범인임을 알아채는 과정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마사오를 살해한 마키 형사를 이와오가 쫓다가, 그의 손수건을 훔쳐 마사오의 시체에 남겨 놓은게 가장 큰 증거가 되는데, 손수건을 훔쳐낼 정도로 쫓았다면 지갑을 훔쳐내는 등으로 신원을 밝혀낼 수도 있던거 아닐까요? 왜 손수건을 훔쳐내는 정도로 만족했을까요?
그리고 성폭행 미수범이 마키 에이스케라는걸 안 이상, 이렇게 복잡하게 범인을 밝혀낼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마키 에이스케를 협박(?)하면 될 일이었어요. 

또 손수건에 'M'이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게 단서라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카즈마는 신원을 감춘 미쿠모 이와오가 자신의 이니셜을 새길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테시마 마사오의 이름도 M으로 시작되니 별로 이상한건 아닙니다. 아울러 손수건에 지문이 남아있다면 모를까 손수건이 마키 형사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도 없고요.

범행을 밝혀내는 카즈마 결혼식에서의 몰래 카메라 생중계 역시 지극히 만화적입니다. 촬영이 가능했다면, 구태여 생중계를 할 이유는 없지요. 이건 하나코와 헤어진 뒤, 충동적으로 선택한 에미리와의 결혼을 어떻게든 파토내려는 카즈마의 수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카즈마는 솔직히 죽어 마땅한 나쁜 놈으로 이래서야 주인공으로는 실격이지요. 속편에서 에미리에게 처절하게 보복당해도 할 말이 없어요. 

그 외에도 카즈마가 하나코가 도둑 집안의 딸이라는걸 알게 되는 과정, 카즈마가 단 며칠 사이에 수십년 전 부터 활약해 왔던 천재 강도단 L을 사로잡을 증거를 모은다는 전개 등 모두가 작위적이며 어설프고, 만화적입니다.
 또 아무리 나쁜 사람들 물건만 훔치고 라며 포장하고 있지만, 도둑은 분명한 악당인데도 우리 편인양 포장이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반에 중국 강도단이 보석상을 턴 뒤, 그 강도단을 미쿠모 가족이 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간 과정이 하나 끼어 있을 뿐 보석상을 턴건 마찬가지잖아요? 할아버지 이와오가 죽은 걸로 알고 있는 가족이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와 희희낙락하는 묘사도 이해가 잘 안되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입니다. 세세한 묘사는 전부 들어내고 캐릭터에 집중한 빠른 호흡과 전개 덕분에 읽기는 편했지만, 그 외에 건질건 하나도 없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읽어 볼 가치는 전무합니다. 작가가 쓴 다른 작품들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군요.

2017/05/28

허즈번드 시크릿 - 리안 모리아티 / 김소정 : 별점 2점

허즈번드 시크릿 - 4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마시멜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드니에서 딸 셋, 남편 존 폴과 행복하고 무난하게 살고 있는 성공한 주부 세실리아는 어느 날 존 폴의 비밀 편지를 다락에서 발견했다.
레이첼은 30여년전 살해당한 딸 쟈니에 대한 회한으로 평생을 보내온 할머니로 쟈니의 죽음 이후 남편, 아들과 멀어진채 살아왔는데 아들 부부가 유일한 위안인 손자 제이컵과 함께 뉴욕으로 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테스는 남편 윌, 사촌 펠리시티와 함께 광고회사를 하는, 아들 한명이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어린 시절부터 펠리시티와 떨어진 적이 없는 단짝이었는데, 급작스럽게 남편과 펠리시티가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을 들었다.

실수는 사람의 영역이고, 용서는 신의 영역이다. - 알렉산더 포프.

최근 가장 핫한 베스트셀러인 책입니다.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지만 읽을거리를 찾다가 우연찮게 읽게 되었습니다. 세실리아가 존 폴이 남긴 비밀 편지를 발견하고 그 내용을 궁금해 하는 과정까지는 흥미롭습니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절반 정도 부분인데,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데 성공하고 있어요. 도입부의 판도라 상자 이야기와 엮이는 아이디어도 절묘하고요.
뒷 부분도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남편 존 폴이 과거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고백하는 편지에 대해 고민하는 아내 세실리아의 심리 묘사가 아주 준수한 덕분입니다. 특히 지역 공동체에서의 삶 때문에 피해자의 어머니인 레이첼과 얽히는 과정에서 세실리아의 긴장이 극으로 치닫는 장면이 아주 대박이었어요. 딸을 허무하게 잃은 레이첼의 심리 묘사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편집증과 같은 심리 상태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딸의 죽음 때문에 남편, 아들과의 관계가 파탄나버렸다는 묘사도 발군이고요. 시드니라는 낯선 공간을 무대로 했다는 점, 부활절 풍광과 핫 크로스번같은 디테일도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이야기의 핵심인, '아내가 어느날 남편이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알게 된다.'는 설정이 지나칠 정도로 흔해 빠진 탓이 큽니다. 때문에 작품이 살아남으려면 차별화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범인이 아니고 범인을 숨겨주고 있었다던가("레베카"), 아니면 남편이 아직도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연쇄살인마라던가 (스티븐 킹의 중편 "행복한 결혼 생활") 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 작품이 선택한 방법은 "섹스앤시티"나 "위기의 주부들"같은 미국 막장 드라마 설정을 가져온게 전부입니다! 등장하는 아줌마들 모두 머릿 속에 섹스 생각밖에 없어요! 기승전섹스, 생각의 단계가 이거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외 고부간 갈등과 불륜이라는 한국 일일 드라마 소재도 좀 섞여있는 정도고요. 제 취향과는 완전히 달라서 실망스러웠습니다.

또 레이첼이 쟈니의 죽음 이후 삶이 망가졌다는걸 세실리아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세실리아의 죄책감이 별로 부각되지 못합니다. 이래서야 세실리아 혼자만의 고민일 뿐이죠. 최소한 이전부터 친했다, 또는 잘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레이첼의 붕괴된 심리를 세실리아가 공유하는 전개였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없이 남편이 거의 30여년전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엄청난 문제처럼 부각시키니까 솔직히 설득력도 좀 많이 떨어집니다. 공소시효도 한참 지났을 뿐더러 범행을 저질렀을 때 까지의 삶보다 그 이후, 특히 결혼하고 함께 지낸 삶이 더 길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최소한 진심을 믿어주고 잊어버리는게 현실적일 테니까요. 존 폴은 그만큼 참회하는 인생을 살아오기도 했고요.

세실리아의 고민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레이첼이 피해자 포지션으로 확실히 와 닿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특히 아들 롭은 내버려뒀으면서 손자 제이컵에게 한없는 애정을 보이며 며느리를 미워하는 모습은 완전 비호감이기 때문입니다. 카드로 만든 집 운운하며 가장 중요한 카드가 제이컵이라 그 카드가 빠지면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손자이기는 하지만 부모가 직접 뉴욕으로 데려간다는데 뭘 어쩌자는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게다가 아이를 더 많이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니, 완전 우리나라 꼰대 시어머니 저리가라에요. 물론 직접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지만 심리묘사가 지나칠 정도죠. 이래서야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악역에 더 가까와 보입니다. 쟈니의 죽음으로 인한 안쓰러움보다는 악당이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 다했지요.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지막 결말입니다. 남편의 죗값으로 내 딸이 불구가 되었다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장면은 솔직히 어이가 없어요. 저라면 레이첼에게 남편의 죄를 고백하고, 남편에게 보복하라고 했을 겁니다. 그 대신 레이첼도 목숨을 내 놓아야겠지요. 레이첼의 행동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건 존 폴이지 어리고 귀여운 폴리가 아니니까요. 이런 식으로 풀어낸 결말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쟈니는 마르판 증후군이었고, 존 폴은 살인자가 아니었다는 에필로그는 더 최악입니다. 쟈니가 마르판 증후군이라는 설정을 밀고 싶었으면 단서를 최대한 제공해 줬어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테스와 윌 부부, 펠리시티 세 명의 삼각관계와 뒤이어 벌어지는 테스와 코너간의 일탈은 완전히 사족입니다. 테스가 불안증이 있고 펠리시티는 뚱뚱해서 둘만의 세계에 갖혀 살았다는 설정도 마찬가지고요. 코너를 극에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데 그런 것 치고는 분량이 너무 많았어요. 그렇잖아도 무지하게 긴데, 쓸데없는 이야기는 좀 잘라냈어야 합니다. 하긴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거 한개 뿐만이 아니죠. 지겹고도 지겨운 베를린 장벽 관련 잡담을 비롯해서 수도 없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중반까지 독자를 몰입 시키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이거보다는 우리나라의 범죄가 조금 들어간 막장 드라마들이("아내의 유혹"(?)) 더 재미있을 겁니다.

2020/10/08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 에릭 앰블러 / 최용준 : 별점 2.5점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 6점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영국인 추리 소설 작가 레티머는 터키 이스탄불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디미트리오스라는 범죄자의 시체를 보게 되었다. 래티머는 디미트리오스에게 강한 흥미가 생긴 나머지 디미트리오스의 행적을 좇아 유럽을 횡단해 가며 이런저런 조사를 벌이는데...

에릭 앰블러가 발표했던 스파이 소설의 고전입니다. 이쪽 바닥에서는 일찌기 걸작으로 인정받은 작품이지요. MWA 선정 베스트 미스터리 100 순위도 17위라는 고순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파이 소설로 알려진 바와 다르게, 범죄자를 쫓는 탐정 수사물로 보는게 맞습니다. 물론 래티머는 제대로 된 탐정은 아니고, 수사도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받아 추억담같은 이야기를 듣고 수집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옛 동화나 민요를 수집하는 민속학자 활동에 가깝지요. 차이점이라면 디미트리오스는 정말로 사악한 범죄자이며, 이야기되는 추억담은 모두 범죄라는 정도고요.

읽으면서 아직도 걸작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흔해빠진 스파이 소설이나 느와르, 하드보일드 물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고급스러움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빼어난 묘사들과 생생한 캐릭터들 덕분입니다. 유유부단하며 체면을 중시하는 속물이자 샌님인 주인공 래티머부터 눈부실정도로 생생해요.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맹이는 없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모습은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전해 줄 정도입니다. 탐정 수사, 모험물 주인공이 이렇게 평범하고 소심하기도 힘든데, 거의 백여년전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해 내고 있는게 놀랍네요.

조역들도 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죄물, 특히 느와르나 하드보일드에서 자주 등장했던 쌍욕을 하는 범죄자, 보자마자 사람을 죽이는 킬러, 여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마초와 폭력배들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사악한 범죄자 디미트리오스조차도 나름 신사적이며, 그를 등쳐 먹으려는 시시한 사기꾼 악당 피터슨조차 철학사를 옆에 끼고 사는 인물로 그려지는 등, 후대의 느와르나 하드보일드와는 캐릭터가 사뭇 달라요. 요즘 작품이라면 당연시되는 불필요한 정사 장면 묘사나 고어, 포르노에 가까운 혐오스러운 폭력 묘사 역시 찾아보기 힘들고요.

실제 등장은 마지막 몇 페이지에 그치는 디미트리오스의 존재감도 발군입니다. 그야말로 '씬 스틸러' 로 돈과 권력을 탐하는 순수한 악당이지만, 기묘한 조직력과 행동력, 관찰력이 잘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가난뱅이 악당 시절, 이웃이었던 프레베자를 범죄에 끌어들이며 한 말이 기억에 남네요. "내가 당신을 고른 건, 비록 당신이 무르고 감상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약삭빠르고 쉽게 흥분하지 않기 때문이야. 내가 그날 당신 방에 갔을 때, 나는 당신이 커튼에 돈을 숨겨 놓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당신 같은 사람들은 늘 커튼에 돈을 숨겨 놓거든. 낡은 수법이지. 하지만 당신은 초조한 눈으로 핸드백을 계속 주시했고, 그래서 나는 당신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았어." 라는데,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프레베자는 자기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 말에 넘어가 버리고 말지요.

디미트리오스의 여러 악행을 1920~30년대 유럽에서 일어났던 실제 역사에 잘 녹여낸 전개도 그럴듯합니다. 예를 들자면, 디미트리오스는 1922년 터키와 그리스 전쟁으로 벌어진 스미르나 대학살 당시, 피난민들 움직임을 이용하여 그리스로 도주했고, 1924년에 터키 지도자 케말 퍄사 암살 음모에 가담했었으며, 1926년에 유고슬라비아가 오트란토 해협에 설치한 기뢰 위치가 기록된 지도를 빼돌려 프랑스에 팔아먹으려고 했다는 식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약간 팩션 느낌도 전해 주고요.
래티머가 당시 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이스탄불에서 스미르나, 아테네, 소피아, 제네바를 거쳐 파리로 향하는 여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합니다. 그런데 구글 지도로 확인해보니 4,162Km에 달하는 거리더라고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렇게 긴 수사 여행을 떠나는 래티머도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긴 하네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 도드라지는 부분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수사는 별 볼일 없고 - 영국인 작가가 밝혀낼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 그칩니다. - 디미트리오스의 악행과 범죄는 모두 관계자 증언만 있는 탓입니다. 증거라고는 전무합니다.

그나마 딱 한 가지, 이전 디미트리오스를 협박했던 피서르가 살해된 후 디미트리오스로 위장된 경위를 설명하는 피터슨의 추리 정도만 볼만 했습니다. 여러명이 함께 요트 여행을 간 뒤, 다른 승객이 내릴 때 피서르에게만 따로 이스탄불로 함께 가자고 유혹했다는 추리지요.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피서르를 살해하고 자기 옷을 입혀 바다에 버린 후, 자신은 피서르의 이름으로 투숙한 뒤 떠난 겁니다.
다만 피서르가 자신이 협박하던 디미트리오스와 선뜻 단 둘이 항해를 떠났다는건 설명하기 어렵고, 역시나 증거라곤 하나도 없다는 문제는 큽니다.

또 래티머가 확인했던 사체가 사실은 디미트리오스가 아니라 피서르였다 한 들, 이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프랑스 경찰이 뭘 할 수 있지도 못해서 딱히 디미트리오스에게 위협이 될 사건도 아닙니다. 피터슨이 협박하자 디미트리오스는 살인으로 입을 막으려 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보였거든요. 

그리고 피터슨이 디미트리오스에게서 백만 프랑을 울궈낸 뒤, 당연한 보복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건 마찬가지에요. 온갖 범죄를 저질러 왔던 악당인데, 협박범을 그냥 놔 둘리 없잖아요? 래티머도 위험한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협박은 엄연한 범죄인데 래티머가 공범으로 함께 자리하는 전개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웠어요.

피터슨과 래티머를 궁지에 모는 데 성공한 디미트리오스가 래티머를 제압하지 못해 최후를 맞는 결말도 많이 시시했습니다. 래티머는 바닥 양탄자에 미끄러진 탓에 디미트리오스가 쏜 총알을 피할 수 있었고, 이어진 격투로 총을 빼앗는데 성공하는데, 이렇게 운과 우연에 의해 살아남는게 소시민 래티머에게 어울리기는 하지만 조금 더 정교한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고급스러움을 얻기 위해 도입한 장황하면서 옛스러운 묘사, 그리고 느릿느릿한 전개와 말투는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고급스러움의 반대급부로 지루함이 생겨난 셈이지요. 예를 들어 제목은 래티머가 디미트리오스를 처음 만났을 때 떠오른, '인간은 악마의 가면처럼 얼굴을 사용한다. 얼굴은 자기감정을 보충해 주는 감정을 타인의 가슴속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다.' 라는 상념에서 비롯된겁니다. 얼굴이 가면같다니! 멋지긴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걸작이었을테고, 지금 읽어도 멋진 작품이기는 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요소와 재미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감점합니다. '추리' 보다는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열린책들'에서 '세계문학' 으로 출간한게 이해가 됩니다.

덧 1 : 해설이 아주 좋습니다. 서점에서 뒷부분 해설만이라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덧 2 : 원래 "디미트리오스의 관"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해설에 따르면 원래는 "가면"이 맞다고 하는군요. 미국 출간 당시 제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관 보다는 가면 쪽이 작품에 더 적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