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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0

I의 비극 - 요네자와 호노부 / 문승준 : 별점 3.5점

I의 비극 - 8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네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합병해 인구 6만을 유지하고 있는 난하카마시에는 모든 주민이 고령으로 사망하거나 요양센터로 떠난 후 아무도 살지 않게 된 마을 ‘미노이시’가 있다. 새롭게 취임한 시장은 타지역에서 이사 오는 주민을 지원하자는 취지의 ‘I턴 프로젝트’를 시작, 업무를 전담할 ‘소생과’를 신설하며 마을을 되살리기 위한 행보를 이어간다. 공무원 만간지는 소생과로의 전보를 일종의 좌천이라고 여기면서도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을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과연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 '알라딘 책 소개 인용'

요네자와 호노부의 연작 단편집. I턴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하는 서장에 이어, I턴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이주한 이주민들에게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6편의 단편이 이어지고, 결국 I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종장으로 마무리됩니다.
각 단편별 소개와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장 : 가벼운 비"
이주민 구노는 약 30m 떨어진 이웃 아쿠쓰 집이 마당에서 바베큐를 하면서 큰 음악을 틀어 힘들어했다. 그런 구노는 어느날 만간지 등을 초대하여 저녁 시사를 대접했고, 구노가 잠깐 자리를 비우고 아내가 크게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아쿠쓰 집 2층 커튼에 불이 붙는 화재가 일어났다.

남편 구노의 취미는 무선 조정 헬리콥터로 소개되기에, 누가 보아도 구노 씨가 저지른 범죄임이 분명했습니다. 아내의 연주는 헬리콥터 조작 소리를 감추려했던게 뻔하고요. 다만, 헬리콥터에 발화성 물질을 매달아서 2층 커튼에 불을 붙였을 거라 생각했는데, 창고에 쌓여있던 왕겨를 헬리콥터 풍압을 이용해 날렸다는건 생각도 못 했습니다. 공무원들 앞에서 이웃집이 위험하다는 걸 알리는 의도였다면 이게 더 좋네요. 단서들이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전개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매일 일찍 퇴근하는 것만 생각하는 무능력해 보이던 과장이 탐정 역을 수행하면서 멋진 추리쇼를 선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통쾌했으며, 아쿠쓰 씨가 음악을 틀었던 이유는 구노 씨 헬리콥터 소음 탓이었다는 반전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층간 소음 보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인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싶네요.
I턴 프로젝트의 문제가 거의 다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도 연작 단편집의 서두를 열기에 적합했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장 : 얕은 저수지"
젊은 이주민 마키노 씨는 마을에서 잉어 양식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물을 둘러쳐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양식장 속 잉어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진상은 양식장 덮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들이 잉어를 가져갔던 것이지요. 만간지가 출장을 간게(그래서 현장에 즉각 출동하여 도움을 주지 못하게 만든 것) 과장의 진짜 의도와 연결되기 때문에 연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마키노씨가 현장만 지켜보았어도 이유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추리물보다는 일종의 일상계 코미디, 시트콤 느낌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3장 : 무거운 책"
이웃 책 아저씨 집에 놀러 가겠다고 한 아이 하야토가 실종되었다. 책 아저씨 구보데라 씨는 나고야 출장 중이었다.

구보데라 씨 집에 이전에 살던 주민이 대전 당시 홀로 방공호를 만들었고, 아이가 방공호로 숨어든 탓에 실종되었다는게 진상입니다. 방공호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는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마을 사람들이 방공호에 대해 아무도 몰랐다는건 이상했어요. 아이가 실종된 시점에서 대형 사고가 될 수 있으므로 빠른 조치가 필요했는데, 만간지가 방공호에 대해 추리하고 현장 수색에 나설 때까지 과장 등이 방관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억지가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4장 : 검은 석쇠"
유미코 씨는 마을 주민들에게 여러가지 갈등을 야기하고 있었다. 불합리한 논리로 아마추어 무선이 취미인 이웃 게이토의 안테나 철거를 요청했고, 휘발유에 납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집 앞 자동차 통행을 막았으며. 다른 이웃 이치로에게 이상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을 축제에서 독버섯을 먹고 실려가는 사고가 일어났다. 버섯을 따왔던건 게이토 씨였다. 하지만 구운 버섯은 모두가 함께 먹어서, 그녀에게만 독버섯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몸에 안 좋다는건 무엇이든 피하는 유미코 씨의 습관을 이용한 범행이었습니다. 탄 음식이 좋지 않다는걸 알려준 뒤, 탄 자국이 있는 구운 버섯 사이에 찐 버섯을 섞어두어 그걸 먹게 했던 것이지요. 트릭은 아주 탁월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비합리적인 습관을 이용했다는 점에서는 억지가 없지는 않고요.
그래도 이 습관과 버섯 요리, 동기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앞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덕분에 꽤 설득력있게 전개됩니다. 일상계 본격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 손색없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5장 : 깊은 늪"
사건이 아닌, 이주 정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입니다. 고령화, 인구 감소로 사라져 가는 지방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사건이 등장하지 않아서 심심하며, 딱히 점수를 주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종장에서 밝혀지는 프로젝트 실패 계획의 동기라는 점에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6장 : 흰 불상"
나가쓰카 씨는 유명 행각승 연구의 불상이 있는 와카타 부부를 설득하여 불상을 보거나 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노이시 시의 장래에 도움이 될거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와카타 부부는 거절했다. 빌려주었을 때 입을 손상과, 불상이 놓여진 곳에서 옮겨지는걸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불상이 무언가 이상하다며 와카타 씨가 원래 놓여져 있던 위치를 조사해달라는 부탁에 만간지와 간잔이 응했다. 그러나 불상이 놓여져 있던 별채에서 만간지는 영문을 모른 채 갇혔고, 불상도 가짜로 바꿔치기 당했다. 범인은 나가쓰카 씨였다.


과학적인 트릭이 사용된 작품. 간잔이 드라이아이스를 가지고 와서 기화시켜 실내 기압이 증가되었고, 넓은 문에 압력이 가해졌던 탓에 왠만한 힘으로는 열리지 않았던 겁니다. 미닫이 창문은 기압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아 쉽게 열렸고, 창문을 열 때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준 것은 밀려나가는 실내 공기였습니다. 만간지에게 쏟아졌던 비정상적인 졸음이 증거입니다. 실내 산소가 부족해졌다는 뜻이니까요. 트릭 자체는 꽤 기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유를 알기 어려운 괴현상을 일으킨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공식적으로 경찰 수사를 하는게 이주민 퇴거 목적에는 더 부합했으리라 보입니다. 바뀌치기된 불상은 과장이 나가쓰카 씨에게 전해준 것이라 범인이 드러나는건 어렵지 않았을테고요.
간잔이 집 근처에 화재가 발생했다는걸 만간지에게 알린 것도 잘못입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탓에, 우연이었지만 만간지가 산소 부족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트릭을 이야기가 뒷받침하지 못해서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래된 일본 가옥들이 추운 이유는 방습 기능을 우선했기 때문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기밀성이 낮은 탓이라네요. 그런데 기밀성이 맞으면, 기압 변화도 일으키기 힘든거 아닐까요?

"종장 : I의 희극"
마지막 남았던 이주민 마루야마 씨가 전출 신청을 하러 찾아왔다. 과장과 만간지, 간잔은 마지막으로 미노이시를 찾아 상태를 점검했다. 그 곳에서 만간지는 과장과 간잔이 이주민들을 떠나도록 강제하였다는 추리를 밝힌다. 방화의 증거는 간잔이 찾아냈고, 잉어는 공무원들 방문이 늦어 전멸했다. 방공호 입구 위치는 니시노 과장이 알고 있었다. 탄 음식에 발암 성분이 있다고 한 것은 간잔이다. 엔쿠불 복제품은 니시노 과장이 건넸다.
이유는 시장 공약으로 I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지만, 난하카마 시에는 미노이 시를 유지할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과장과 간잔이 흑막이라는 추리의 근거와 과장과 간잔의 동기, 즉 시의 비용 문제는 소방차와 구급차가 찾아오는데도 수십 분이 걸리고, 초등학교가 없어서 교통편도 마련되어야 하고, 눈이 오면 제설하기 위한 비용도 새로 편성되어야 한다는 등 모두가 앞서의 단편에서 설명됩니다.
일종의 반전이라면 반전으로 연작의 마무리로서도 좋았지만, 울림을 주는 메시지가 강력합니다. 시골 마을이 없어지고,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등은 모두 우리나라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서 와 닿을 수 밖에 없었네요.

물론 과장과 간잔의 계획대로 잘 흘러갔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마지막 남았던 마루아먀 씨가 전출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제설 비용은 그대로 들었겠지요. 전출은 완결을 위한 다소 편의적이었던 마무리인 셈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종장으로 마무리되는 이 작품의 전체 별점은 3점입니다. 보기드문 '일상계' 사회파 추리물 수작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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