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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인류사를 가로지른 스마트한 발명들 50 - 알프리트 슈미츠 / 송소민 : 별점 2점

인류사를 가로지른 스마트한 발명들 50 - 4점
알프리트 슈미츠 지음, 송소민 옮김/서해문집

제목 그대로 저자가 선별한, 인류사에서 중요한 50개의 발명이 소개되고 있는 과학사 - 미시사 책입니다. 

이런 류의 특정 발명이나 아이템들을 소개하는 책은 그동안 몇 번 읽어보았는데, 비교해 볼 때 그렇게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몇몇 부분은 나쁘지 않았어요. 

첫 번째는 현재의 시점으로 앞으로의 방향을 언급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백열등이 LED로 바뀌고 있고,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로 바뀌는 식입니다. 대체 에너지를 중요 발명으로 언급하는 등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내용과 항목도 눈에 뜨이고요.
또 새롭거나 독특한 시각, 내용의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그 중 첫번째는 기계 베틀 항목에서 기계베틀, 즉 직조기가 발명된 후 기계 보조원으로 전락한 직조공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름 전문직이었으나 하루 아침에 쓸모없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자 1844년 폭동을 일으켰고, 결국 11명이 총살되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는데 현재의 AI의 발전 방향을 보면 이런 일이 조만간 여러 산업분야에서 벌어질 것으로 보여서 남일 같지가 않더군요. 제가 봐도 앞으로 10년 내 필요없어질 기술이 한두개가 아니니까요. 대표적인 것은 다들 아시다시피 우선은 운전일테고, 이후 여러 분야로 확산될텐데 저부터도 걱정이네요.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두 번째는 섭씨와 화씨의 어원입니다. 섭씨는 온도 측정 눈금을 고안한 '셀시우스'의 이름을 딴 것이고 화씨는 '파렌하이트'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데 저는 처음 알았네요. '셀시우시'가 중국 발음으로 '섭이사'가 되었고 그래서 '섭씨'가 되었다는데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지만 '불란서', '화란'과 비슷한 방식이죠? 외래어의 유입과 적용은 참으로 재미난게 많은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컨베이어 벨트 기술 항목에서 소개된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라는 인물 소개입니다. 이력을 보니 인간 공학의 시조와 같은 사람으로 이른바 '테일러리즘'을 만든 장본인인데 아직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죄송스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제가 UX를 업으로 한지 10년이 훨씬 넘어가는데 공부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반성이 되네요. '예전에는 인간이 첫 번째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시스템이 첫 번째 위치에 있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보면 정말로 이 바닥의 선구자적인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전공 분야 공부도 빼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좋았던 부분은 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전체적인 단점을 상쇄하기에는 아쉬움이 더욱 많아요. 가장 큰 단점은 앞서 말씀드렸듯 뻔하다는 것에 더해 깊이 역시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류의 책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몇 페이지 안에서 해당 발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량에 비해 잘 요약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해당 주제에 대한 시작점 정도에 불과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소개되는 주제별로 레벨이 너무 다르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은 점입니다. 어떤 것은 특정 발명품 한 가지만을 다루는데 - '안경', '나침반', '지퍼', '백열등', '자동차' 등등 - 어떤 것은 그 분야 전체를 아울러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 '도구', '무기', '약', '악기' 등 - 이는 앞서 말씀드린 깊이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발명품으로 주제를 좁히는게 그나마 적은 분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도구'는 그 자체가 발명이기에 언급되는게 이상할 뿐더러 무기, 약, 악기 등과 마찬가지로 몇 페이지로 요약될 이야기는 아닌 탓입니다. 무기 관련 책은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만 시대별, 분야별로 10권 가까이 될 정도니까요. 마찬가지로 '컴퓨터' 항목 안에 반도체와 인터넷 이야기까지 우겨 넣은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인터넷은 분리했어야죠.

마지막으로 단점으로 꼽기는 좀 어렵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인류사를 가로질렀다 하기 어려운 발명도 몇 개 속해있다는건 불만스럽습니다. 진공청소기가 우리 인류사에 그렇게 대단한 역할을 수행했을까요? 또 지퍼가 없었다면 세상이 굉장히 살기 불편해졌을까요? 이 발명으로 우리들 삶이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인류사'라는 표제 하에 소개되기에는 너무 미미한 발명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유사한 다른 책들과 비교했을때 이 책만 특별히 좋아보이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모로 추천드리기는 좀 어렵네요.

마지막으로 이 책에 소개된 50개의 항목을 레벨을 맞추어 상세하게 분류하고 재정의하여 저만의 인류사 대표 발명을 꼽아봅니다.

불, 바퀴, 말과 글, 수학과 수체계, 배와 보트, 유리, 돈, 렌즈, 나침반, 인쇄술, 천문학, 달력, 전기, 증기기관, 항공, 철도, 화약, 전신과 전화, 백열등, 자동차, 사진, 냉장기술, 합성수지, 컨베이어벨트 기술, 라디오와 텔레비전, 페니실린, 핵에너지, 컴퓨터와 반도체, 인터넷, 피임, 인공지능, 로켓.

빠진 것은 도구, 화장실, 도자기, 기계 베틀, 온도계, 통조림, 자전거, 진공청소기, 음반과 CD, 취사 조리기, 영화와 영화관, X-레이, 지퍼, 악기, 세탁기, 레이저, 대체에너지, 위성 네비게이션입니다. 무기는 화약으로, 약은 페니실린으로, 컴퓨터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분리하였으며 로봇은 인공지능으로 바꾸었고요. 화장실과 도자기, 온도계, 취사조리기는 추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2014/08/22

과학편집광의 비밀서재 - 릭 바이어 / 오공훈 : 별점 2.5점

과학편집광의 비밀서재 - 6점
릭 바이어 지음, 오공훈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과학자들의 비밀스러운 작업이 연상되는 제목과는 다르게, "발견과 발명"에 대해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그리스의 헤론,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같은 발견도 일부 실려 있지만, 90% 이상이 발명과 특허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다기보다는 순전한 '재미'로 선정된 것들도 제법 많은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독서에서 재미를 중시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발명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습니다.

워낙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어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흥미로웠던 부분만 소개해 봅니다.

유명인들의 발명을 소개하는 항목에서는 링컨이 출원한 특허가 재미있었습니다. 모래톱에 올라간 배를 쉽게 뜨게 만드는 것이라는데, 실용적이지는 않았지만 정말 성공했다면 ‘대통령 링컨’이 아닌 ‘발명가 링컨’으로 더 알려졌을지도 모릅니다. 성공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링컨으로서는 다행이었겠네요.

지금은 굉장히 유명한 발명품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는 친숙한 물건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우리가 겨울에 쓰는 방한용 귀마개는 1873년 미국 메인주 파밍턴 출신의 15세 소년 체스터 그린우드가 발명하여 특허 출원했고, 19세가 되던 해부터 본격적으로 생산하여 큰 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그가 죽을 때 연간 30만 개의 귀마개를 생산). 브랜드명은 "챔피언 귀마개"(champion ear protector)라고 하고요. 백 년이 넘은 유서 깊은 발명품인데, 이것도 특허가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수정액, 이른바 ‘화이트’ 발명 관련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타자 실수가 잦았던 비서 베트 그레이엄의 발명으로, 그녀는 이것을 리퀴드 페이퍼라 이름 붙여 판매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아들 마이클 네스미스는 60년대를 풍미했던 팝밴드 몽키스의 멤버였다고 하니 참으로 복받은 가족이네요.

복사기 발명은 지금도 유명한 제록스(Xerox)의 창업담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체스터 칼슨이 1938년 최초로 건식복사에 성공한 뒤 할로이드사가 이 아이디어를 사들였고, 홍보를 위해 그리스어 '건조한'이라는 의미의 xeros와 '그리다'라는 의미의 graphos를 합쳐 '제로그라피'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회사 이름도 제록스로 바꾸고 최초의 복사기 모델 A를 1949년에 출시하며 지금의 제록스가 탄생했다고 하네요.

우연한 발명품을 소개한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공감미료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사카린과 아스파탐의 발견이 순전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거든요. 물론 우연이라도 이상한 점을 감지하고, 그 이유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우연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을 기회로 바꾸는 데는 분명한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실패한 발명가들의 이야기는 꽤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고무맨 굿이어는 이 바닥의 끝판왕이라 불릴 만하더군요. 무려 5년간 가난과 싸우며, 가족까지 잃어가며 ‘가황’이라는 고무 강화 방법을 찾아냈지만 가난 탓에 특허권을 매각한 뒤 셋집에서 20만 달러나 되는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지금의 "굿이어" 타이어 사명으로라도 이름이 남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말 안타까운 인생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귀마개 하나로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평생을 바쳐도 실패하는 게 현실이겠죠. 역시 세상은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도 있는 법입니다.

여튼, 이러한 많은 재미난 발견과 발명 관련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각 이야기별 분량도 세~네 페이지 정도로 짧아서 심심풀이 삼아 읽기 딱 좋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2/03/12

워 사이언티스트 - 토머스.J.크로웰 / 이경아 : 별점 3점

워 사이언티스트 - 6점
토머스 J. 크로웰 지음, 이경아 옮김/플래닛미디어

역사 속에 길이 남은 전쟁 무기를 개발한 과학자들을 다룬 미시사 서적. 기원전부터 현대에 걸친 기간 동안 전쟁의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 25개의 무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하늘이 내린 무기 - 칼리니쿠스의 액화
  • 투석기, 갈고랑쇠, 살인 광선 - 아르키메데스의 기이한 전쟁 무기
  • 최초의 생물학 무기 - 한니발의 독사 항아리
  • 하늘을 날며 춤추는 화약 - 위백양의 진천뢰
  • 신에 맞선 행위 - 제갈량이 개량한 연발 석궁
  • 르네상스 시대의 만물 수선공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관총
  • 결집된 화력 - 마랭 르 부르주아의 부싯돌식 방아쇠
  • 천재의 노력 - 데이비드 부시넬의 잠수함
  • 매우 부도덕한 행위 - 윌리엄 콩그리브의 로켓
  • 안전하고 영양 많은 - 니콜라 아페르의 통조림 식품
  • 권총 - 새뮤얼 콜트와 서부를 이긴 리볼버
  • 죽음의 상인 - 알프레드 노벨과 다이너마이트
  • 군을 무용지물로 만들다 - 리처드 개틀링의 기관총
  • 느리지만 효과적인 -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 석류를 닮은 - 수류탄을 완성한 윌리엄 밀스
  • 화학을 악용하다 - 프리츠 하버의 독가스
  • 불타는 관 - 라이트 형제가 만든 최초의 군용기
  • 캐터필러 이동 요새 - 랜슬롯 드 몰의 탱크
  • 전염병 지역 - 이시이 시로와 세균전 과학자들
  • 세계의 파괴자 -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 구조 임무 - 최초의 헬리콥터를 만든 이고르 시코르스키
  • 반향을 기다리며 - 레이더를 발명한 로버트 왓슨와트
  • 달을 향하여 - 베르너 폰 브라운의 V-2 로켓
  • 가장 도덕적인 무기 - 새뮤얼 코언의 중성자탄
  • 총알 잡기 - 스테파니 크월렉의 방탄 섬유

이런 류의 책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워낙 잘 알려진 무기들 - 예컨대 다빈치의 무기들이나 다이너마이트, 독가스, 원자폭탄 등 - 도 포함되어 있어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약점은 존재하나, 무기보다는 발명자를 중심으로 소개해 주면서 다른 유사 도서와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발명자의 신상과 개인사, 말년과 후일담까지 소개해주는 꼼꼼함도 좋았어요.

25개의 병기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칼리니쿠스의 액화", 즉 그리스의 불에 대한 이야기와 새뮤얼 콜트의 리볼버, 로버트 화이트헤드의 어뢰, 윌리엄 밀스의 수류탄이었습니다.

그리스의 불은 다른 문서 등을 통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 비밀무기와 그 제조법이라는 게 정말로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런 비밀은 보통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딱 한 가지, 공기와 접하면 자연발화하는 물건은 아니었을 테니(그렇다면 과학을 넘어 마법의 영역이겠죠?) 따로 불을 붙였을 텐데, 그렇다면 공격하는 쪽도 리스크가 있는 만큼 방법이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합니다. "호기심 해결사"에서 해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그리고 새뮤얼 콜트는 이른바 "육혈포" 발명 뿐 아니라 사업가적인 수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뢰의 발명자 로버트 화이트헤드가 특허권을 팔지 않고 발명의 비밀을 독점하였으며, 그의 발명을 모방한 경쟁자들은 여지없이 실패하였다는 부분도 재미있었고요. 셜록 홈즈 시리즈의 비밀 설계도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의 손녀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잠수함 함장 폰 트라프와 결혼하여 일곱 아이를 남겨두고 사망한 뒤, 폰 트라프가 견습 수녀 마리아와 결혼한다는 후일담(?)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류탄 이야기에서는 수류탄 자체보다는 "척탄병"의 어원을 알게 된 것이 더 큰 수확이었습니다. 손으로 폭탄을 던진다는 한자어 그 자체에 충실한 명칭이라니... 그나저나 프리미어 리그 스토크시티의 가공할 드로잉 능력을 갖춘 인간 기중기 로리 델랩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전쟁 때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척탄병이 되었을 거예요. 아니, 야구선수들이 더 적당할려나요?

이렇듯 재미있는 기획이고, 세세한 정리와 소개는 정말이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사이언티스트로 포장하여 소개한 경우가 제법 있다는 것은 취지와는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고대의 예가 특히 많은데, 제갈량이나 한니발 같은 경우겠죠. 물론 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고, 등장한 발명품들이 전쟁의 양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기에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만... 오히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입니다. 많기는 한데 정작 중요한 무기 도판은 거의 없는 탓입니다. 석궁(쇠뇌), 화승총, 로켓, 수류탄 등 기본적인 도판 몇 장이 구조나 원리를 더욱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무기들이 많은데 말이지요. 이 책에서 설명하는 무기 중 제대로 된 도판이 등장하는 무기는 부시넬의 잠수함, 개틀링의 기관총, 화이트헤드의 어뢰, 시코르스키의 헬리콥터 정도뿐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도판만 조금 더 충실했더라도 별점은 1점 정도 더 높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전쟁이나 병기 관련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2023/07/14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 박병욱 : 별점 3점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 6점
박병욱 지음/굿플러스북

유명한 작품, 작가에 대해 소개한 뒤 그와 관련된 특허, 지식 재산권 등에 대해 알려주는 인문학 서적. 모두 2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허와 지식 재산권을 유명한 미술 작품과 작가를 통해서 소개되도록 유도하는 구성은 그럴듯합니다. 어려운 길을 조금이나마 쉽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 주니까요. 하지만 작품과 작가에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억지스러운 항목이 더 많았습니다. 거미와 거미 관련 신화에서 시작해서 큰 거미 조각상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마망으로 이어지다가 작품이 위치한 도시 빌바오에 대한 소개, 여기서 스파이더맨 웹 슈터 특허 이야기로 넘어가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과 빌바오,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특허 이야기는 세 페이지 정도 분량에 그쳐서 책 취지에도 맞지 않고요. 고흐 이야기를 하다가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리는 씨는 밀 씨일 거라고 한 뒤 몬산토의 종자 분쟁 이야기로 넘어가는 '고흐, 밀레, 그리고 몬산토와 권리 소진', 샤갈에 대해 한참 소개하다가 그의 대표작 <생일>에서 생일 노래 분쟁으로 넘어가는 '마르크 샤갈의 <생일>과 Happy Birthday to You' 등 대부분의 항목이 그러합니다.
단순히 지식 재산에 관련된 항목을 그렸기 때문에 소개된 항목들도 많아요. '앤디 워홀의 '5'와 지식재산 관리'에서 앤디 워홀 작품은 콜라를 소재로 한 그림이 필요해서 소개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작품과 현대 팝아트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콜라 지식 재산 관련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지요.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 파리 거리>에 돌로 포장된 도로가 그려져 있다고 해서 도로 포장 특허 이야기를 끌고 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관계없는 특허가 소개된 경우도 있습니다. '루벤스의 <촛불을 든 노인과 소년>과 특허 소송을 할 수 있는 자격'은 뜬금없음의 절정입니다. 바로크 양식과 명암 대비 효과에서 촛불 집회로, 그리고 LED 촛불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브 클라인의 IKB와 색채 상표'의 경우는 색깔도 상표 출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데, 이브 클라인은 IKB의 제조법을 출원한거라 성격이 전혀 다르고요. 이에 비하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시작해서 셀카봉 특허 소개로 이어지는건 기발해서 마음에 듭니다. 참고로, 셀카봉은 미놀타의 기술자 우에다 히로시가 만들었다고 하네요. 무려 1984년에 출원했답니다. 기술이 아이디어를 따라오지 못한 좋은 예입니다. 돈을 번 사람은 따로 있다니까요.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도 많습니다. 튜브 물감의 발견이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건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야외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지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튜브 물감의 초창기 제품과 이전의 돼지 방광 물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던건 수확입니다. 도판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확인이 가능한 덕분입니다. 재미있는건 튜브 물감이 먼저였고, 튜브형 치약은 무려 30년 뒤에 나왔다는 사실이지요. 아마 지금처럼 치아 관리가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 짐작됩니다. 또 튜브 물감의 특허권자 존 랜드가 튜브형 치약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게 대박이었어요. 튜브형 치약으로 포스터가 특허를 받기는 했지만, 이는 특허가 독점권이 아니라서 가능했습니다. 즉, 존 랜드의 특허를 침해한게 맞다는겁니다. 존 랜드가 특허 출원당시 튜브형 용기에 담기는걸 '물감'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유체'라고 명기했던 덕분인데, 앞으로 특허를 출원할 때 유념해야겠습니다.

코카-콜라 특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은데, 영업비밀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네요. 2006년 코카-콜라의 라이벌인 펩시콜라는 코카-콜라의 직원으로부터 코카-콜라의 레시피를 수백만 달러에 팔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안을 받은 펩시콜라는 오히려 이러한 불법행위를 코카-콜라 측에 알려 주었고, 제안을 한 코카-콜라 고위 임원의 비서 등 직원 3명은 150만 달러를 받으려고 나왔다가 FBI에 의해 체포된 뒤 영업비밀을 훔친 죄로 8년 형을 선고 받았다고 하네요. 또 콜라의 상표권과 관련한 소송을 살펴보면, 1988년 코카-콜라는 라이벌인 펩시콜라와 캐나다에서 소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코카-콜라가 사용하는 필기체와 동일한 "Cola" 글씨를 펩시콜라가 사용했기 때문이지요. “Cola"는 일반적으로 청량음료인 콜라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인데, 당시 캐나다 법원은 이러한 일반명사라도 코카-콜라가 사용하고 등록한 글씨체를 똑같이 모방하여 사용하면, 일반 소비자가 펩시콜라를 코카-콜라로 혼동할 수 있으므로 상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반명사인 "Cola"만으로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Coca-Cola"는 단순히 특정한 제품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인식되지 않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다른 콜라와 제품의 출처를 구별할 수 있는 식별력이 있으므로 상표로서 등록이 가능했던 겁니다.

생일 축하 노래는 큰 돈이 오간게 핵심인데, 최초 저작권 등록을 거쳐 1988년에 워너/채플 뮤직이 저작권자 써미 컴퍼니를 2,5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저작권이 이전되었는데, 인수 당시 저작권 평가액은 500만 달러였습니다. "Happy Birthday to You”는 1935년 미국에서 저작권 등록이 되었으므로, 등록된 때로부터 95년이 지난 2030년까지 저작권이 유효하고요. 워너/채플 뮤직은 2010년 이 노래를 한번 연주할 때마다 700달러의 로열티를 받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이 노래로 워너 뮤직이 벌어들인 저작권료는 5,000만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어 역사상 가장 많은 저작권료를 번 노래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서, '7급 공무원'에서 남자 주인공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위해 지불한 저작권 사용료는 무려 12,000 달러였다고 합니다. 이거 참 부럽네요.
 
발명의 실험을 위해 공개되었던 도로 포장 특허 소송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발명이 공지되기는 했지만 예외적인 상황이라 특허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선출원주의와 선발명주의의 차이도 잘 알 수 있었고요

항상 궁금했던,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미리 머릿 속으로 발명한 뒤 출원한 경우?'에 대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바코드 특허가 대표적으로, 바코드가 특허 출원된 후 보호 기간이 만료될 때 까지 스캐너 등이 개발되지 못해 사업화하여 수익을 올릴 수 없었다는군요. TV와 전자책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이런 발명을 했다면 주변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출원을 미루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꿀팁도 전해줍니다. 일단 출원하고, 개량과 주변 기술에 대한 특허를 지속적으로 취득하면 된다네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또 바코드 특허를 통해 현대 특허 괴물의 모태인 '레멜슨'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레멜슨은 기술적 문제 등으로 상업적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점을 간파하여 주변 기술이 성숙될 때까지 등록을 미루다가 마지막에 등록한 뒤 침해 소송을 벌인 인물이라지요. 세상에는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상표권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지명이나 일반적인 명칭 - 랩 - 같이 식별력이 없는 상표는 당연히 누구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천안 호두과자'가 아마 등록되지 못했었지요? 그러나 '오랜 기간동안 어느 하나의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상표를 사용하여 그 상표를 보면 누가 만들어 파는 제품인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현저하게 인식되어 혼동할 우려가 없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상표 등록이 가능한데 대표적인게 우리나라는 K2, 유럽은 4 핑거 킷캣입니다. 색채만의 상표도 마찬가지로 아래의 요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1. 타인의 상품과 구분되는 식별력을 가질 것.
  2. 색깔 자체에 기능성이 있으면 안됨. 예를 들어 분홍색 붕대는 피부색과 비슷한 기능성이 있어서 출원 불가.
이는 패션업계에 사례가 많더라고요. 크리스찬 루부탱의 빨간 하이힐 밑창, 그리고 티파니의 푸른 상자와 쇼핑백이 대표적입니다.

건축물도 지식 재산권으로 보호될 수 있을지도 평소에 궁금했었는데, 당연하지만 기존 건축과 구별되는 독창적인 건물의 경우만 인정된다고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즉, 일률적인 아파트는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보호되려면 어느 정도 예술성이 요구된다고도 하니까요.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표현된 창작물에만 인정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라는데, 이를 특허 기관에서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또 저작권은 '아이디어'를 보호하는게 아니라 '표현;을 보호한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디어나 컨셉이 유사해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이 다르면 저작권을 침해한게 아니라는데,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애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정량적으로, 수치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보이니까요.

이런 내용들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건 분명한 장점입니다. 특허, 지식 재산권 이야기만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만큼, 구태여 미술 작품을 통해 소개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1/06

필요의 탄생 - 헬린 피빗 / 서종기 : 별점 3점

필요의 탄생 - 6점
헬렌 피빗 지음, 서종기 옮김/푸른숲

냉장고 도입에 따른 가정의 변화를 알려주는 과학사, 미시사, 인문학 서적.

냉장고 도입의 역사는 얼음과 아이스박스에서 시작됩니다. 가정 내에서 얼음을 사용한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되었더군요.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는 귀족들 계층에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일반 가정에도 보급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유명한 19세기 영국의 만국 박람회에 여러가지 제빙기의 등장 후 모든게 바뀌었습니다. 얼음을 언제든지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열리자 저온 유통 체계가 자리잡아서 식료품 공급망에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한 마디로 신선한 식품들이 계절과 지역에 상관없이 전 세계 곳곳에서 값싸게 거래되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가정용 냉장고가 도입된건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유럽보다도 보급은 훨씬 빠르고 광범위 했습니다. 이유는 20세기 초 근교 주택이 성장하여, 미국의 주택 크기가 계속 커진 덕이 큽니다. 그래서 실내에 냉장고를 충분히 설치할 수 있었거든요. 반면 유럽의 주택 크기는 그대로라 냉장고 크기는 작을 수 밖에 없었을 뿐더러, 영국의 경우는 식품 저장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가정 내에 냉장고를 들이기가 여의치 않았다고 하네요. 1953년에도 영국 전체 가구의 5% 정도만 냉장고를 보유했다고 할 정도로요. 그러나 이후 신규 주택 단지에 냉장고가 기본 설치되고, 중앙 난방의 보급으로 식품 저장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등의 이유로 냉장고 보급은 가속화되었습니다. 음식의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한 각종 첨가물이 금지된 것도 한 몫 단단히 했습니다. 건강을 강조한 광고도 이런 분위기를 이끌었고요. 심지어 1950년대 뉴질랜드에서는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은 우유를 파는게 범법행위에 해당하기도 했다니, 보급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겁니다.

그 외에도 냉장고 문 안쪽에 선반을 단 발명 특허는 사장될 뻔 했다던가, 선반 특허를 반격했던 회전식 선반은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사장되었다, 냉장고 소리를 감추기 위해 라디오를 다는 발명도 있었다는 등 소개되는 냉장고 관련 잡학들도 재미있었어요. 그 중 냉장고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발명은 최근에서야 여러가지 센서와 칩으로 가능했을 기술같은데, 이미 1970년대에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이용해서 구현했다는게 놀라왔습니다.

'냉장고'하나만으로 미국과 유럽의 주거 환경, 가정 내 상황, 그리고 미국의 교외화 현상 등을 설명할 수 있다는게 인상적이었던 독서였습니다. 냉장고와 냉동 기술이 핵심 이유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영향을 미쳤다는건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렇게 하나에 대해 깊이 파고 들면, 관련된 다른 것들에 대해 이해하기 쉬워진다는게 미시사의 묘미가 아닐까 싶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1/06

문구의 과학 - 와쿠이 요시유키 & 와쿠이 사다미 / 최혜리 : 별점 3점

문구의 과학 - 6점 와쿠이 요시유키 & 와쿠이 사다미 지음, 최혜리 옮김/유유

문구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문구에 대한 책은 좋아합니다. 친숙한 소재가 알고 보면 얼마나 놀라운 창조물인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읽었던 "문구의 모험" 과 비교하자면, "문구의 모험" 은 14종의 문구가 어떻게 발명되고, 어떻게 현대에 이르렀는지를 상세하게 소개해주는 역사서라면, 이 책은 수십 종의 문구에 대해 2페이지에서 4페이지 정도로 짤막한 분량을 할애하여 작동 원리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매뉴얼입니다.

그런데 길이도 짧고, 모든 문구에 대해 1 페이지의 도해가 수록되어 이해를 도와주기 때문에 읽기가 아주 편합니다. 본문의 이해를 돕도록 간략화하여 구조를 잘 알려주는 방식이 좋아요. 다루고 있는 문구의 종류도 쓰는 것, 지우는 것은 물론 지우고 붙이고, 자르고 묶고, 측정하고 보관하고, 마지막에 종이에 이르기까지 방대하여 재미있는 내용도 많고요. 몇 가지 기억에 남은건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에서 연필을 최초로 사용한건 도쿠가와 이에야스임.
  • 연필 모양에 육각형이 많은 이유는 잘 굴러가지 않으며, 세 손가락으로 쥐고 쓸 때 3의 배수가 쥐기 쉽기 때문. 기능이 형태를 결정한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예네요.
  • 색연필이 둥근 이유는 색연필 심이 부드럽기 때문. 육각형으로 만들면 심까지 거리가 짧아지는 지점이 생긴다(균등하지 않다). 그래서 잘 부러질 수 있다.
  • 최초의 샤프심은 흑연으로 만들어서 지름이 1밀리미터가 넘었음. 흑연과 점토 성분으로는 가늘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샤프심은 플라스틱 수지와 흑연을 원료로 하여 가늘게 만들 수 있다는데, 신기하네요. 왜 연필은 플라스틱 수지를 쓰지 않는 걸까요?
  • 고성능 샤프에 있는 후레후레 기능은 가볍게 흔들면 심이 계속 나오는 기능이라고 합니다. 쓸 때 자동으로 계속 심이 나오는 건가요? 한번 써보고 싶네요. 심지어 미쓰비시 연필의 구루토가 샤프는 쓸 때마다 샤프심을 9도씩 회전시켜 항상 일정한 굵기로 쓸 수 있도록 한다고 하니, 샤프의 세계도 참으로 심오합니다. 샤프를 발명한 히라노 다카아키의 전기를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 지워지는 볼펜의 원리는 특수 잉크임. 지우개로 문자를 지울 때의 마찰열에 반응하여 잉크가 무색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종이를 냉동고(영하 20도)에 넣어두면 다시 원래대로 글자가 돌아온다는데, 아 이건 정말 대단해요! 추리 소설에 인용해도 됨직한 멋진 이야기입니다.
  • 사인펜은 수성 잉크 펠트펜에 대한 펜텔의 상표명인데 일반 명사가 된 것.
  • 블루 블랙 잉크(만년필에 사용하는) 지우개는 잉크 화학 반응을 이용. 브루블랙 잉크 속 철이 검은색으로 변하며 산소와 결합하는데, 이 산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수산을 사용한다.
  • 셀로판 테이프의 셀로판 필름은 목재의 섬유로 만든 천연 필름임. 셀로판이라는 용어부터가 식물 섬유를 구성하는 셀룰로오스와 투명하다는 의미의 프랑스어 Transparent를 합성한 명칭.
  • 우표의 접착 성분인 초산비닐수지가 들어 있는 껌을 초콜릿과 함께 씹으면 껌이 녹아버리는데, 초콜릿에 함유된 유지가 초산비닐수지를 녹이면서 일어나는 현상임.
  • 베르누이 커브를 이용한 가위날이 있는데, 자르는 동안 두 가윗날이 이루는 각이 30도를 유지하도록 만든 것.
  • 커터칼은 일본에서 처음 만듬. OLFA (올파) 1956년. 유리조각과 판 초콜릿에서 아이디어를 얻음.
  • 커터 매트는 사실 칼날을 보호해 주는 도구임. 종이를 받치고 자르면 칼날이 쉽게 상함. 커터 매트는 말랑말랑한 층이 칼날을 보호해줌.
  • 스테이플러 침의 단면 비율은 정해져 있음. 3:5
  • 전자계산기와 전화기 키 배열이 다른 이유 : 계산기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2와 1을 붙여놓은 것이며 전화기는 오래전 다이얼식 전화기 숫자 배열을 응용하여 0과 1을 배치한 것.
    둘의 키 배열은 아주 오래전 "어둠의 인형사 사콘" 에서 트릭으로 써먹었던 소재이지요.
  • 정규와 자는 다름. 정규는 선을 긋는 용도이며 자는 길이를 재는 것. 삼각정규는 삼각자. 전형적인 일본식 표현이죠? 그런데 삼각자의 가운데 구멍은 쉽게 집어들기 위해 공기가 빠져나가라는 용도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 인감, 인주가 문구로 소개되어 있는데 일본식 정의인지 좀 궁금합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문구점에서 파니 문구라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겠죠. 그런데 인주는 수은과 유황을 합성한 주 (유화수은) 를 송진, 밀랍, 아주까리 기름 등과 잘 섞어서 반죽한 것이라는데, 수은은 독약이니 인주를 먹으면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한 번 조사해보고 싶어집니다.
  • 지퍼는 일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에 있는 회사에서 1927년 자크인 이라는 이름으로 첫 생산. 여기서 자크라는 말이 유래. 자크는 일본어로 돈주머니를 뜻하는 긴차쿠에서 유래된 말. 어원이라는게 알고보면 참 허무한게 많아요. 이 역시 마찬가지.
  • 모조지의 이름 유래는 의외였습니다 정말로 "모조" 해서 만든거라 모조지거든요. 다이쇼 시대, 오스트리아에서 제조한 종이를 모조한 것이 유래인데, 또 재미있는건 사실 메이지 중기 당시 대장성 인쇄국이 제조한 종이 (국지) 를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된 것을 보고 모조지를 만든거고, 이를 다이쇼 시대에 역수입해 또 모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모조된 종이를 모조한거죠. 제대로 부르려면 "모조모조지"라고 해야겠네요.
이외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해요. 일본인 저자가 일본 시장, 환경을 중심으로 적었기에 용어, 그리고 설명해주는 내용이 조금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단점은 있지만 얻는게 더 많았던 독서였어요.
유유 출판사 책 답게 좀 과한 가격은 문제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문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3/09/02

과학사의 뒷얘기 4 : 과학적 발견 - A.섯클리프 외 / 신효선 : 별점 2점

과학사의 뒷얘기 4 - 과학적 발견 - 4점 A. 섯클리프 외 지음, 신효선 옮김/전파과학사

"옛 추억 전파과학사 문고"

1,2,3권은 수십년 전에 이미 읽었기에 있는지도 몰랐던 4권부터 읽게 되었습니다. 

4권의 부제는 "과학적 발견", '새로운 것이 어떻게 발견, 발명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널리 퍼지게 되었는가?'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1. 최초의 압력솥
  • 2. 유별난 스테이크 굽는 법
  • 3. 한 접시의 감자
  • 4. 튤립광 시대
  • 5. 콩에 얽힌 기담
  • 6. 애플파이와 열의 전도
  • 7. 병맥주의 효시
  • 8. 담배는 만병 통치약
  • 9. 보라빛 속에서 태어나
  • 10. 두가지 식물 염료
  • 11. 두 수도승, 누에알을 훔쳐내다
  • 12. 국왕을 위해 면양을 훔쳐내다
  • 13. 정부를 위해 고무의 씨앗을 훔쳐내다
  • 14. 음악을 잘하는 못대장장이
  • 15. 도기와 자기
  • 16. 셰필드의 칼 대장장이
  • 17. 현수교 위에서는 발을 맞추지 말라
  • 18. 플림솔의 마크 - 만재홀수선
  • 19. 초기의 증기기관
  • 20. 기관차, 길에 나오다
  • 21. 탱크의 비밀
  • 22. 일식, 월식의 공포
  • 23. 우리에게 열하루를 돌려다오
  • 24. 콜롬부스와 달걀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과학적 발견 이외의 것들도 많이 실려있습니다. 감자와 담배가 전래된 과정, 네덜란드의 튤립광 시대를 다룬 부분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티레의 쇠고둥에서 보라색을, 섀프런과 꼭두서니에서 오렌지색과 붉은색을 추출하여 천연 염료로 쓴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또한, 산업스파이 행위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볼거리입니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못 만드는 기계를 바이올린 연주자로 가장하여 2년 동안 친분을 쌓은 뒤 설계도를 그려 귀국했지만, 중요한 핵심 설계도가 빠져 있어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자 다시 잠입하여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자르기 전에 물을 뿌린다'를 알아낸다는 이야기처럼요. 이 이야기가 실재인지, 아니면 허구인지도 저자가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실재로 있었음직한 이야기라고 하네요).

그 외에도 와트의 증기기관에 대한 상세한 설명, 탱크의 탄생에 대한 비밀 등 진짜 발명 이야기도 많습니다. 현수교 위를 행진하던 군대가 발을 맞추어서 공진현상이 일어나 현수교가 무너진 사건 같은 황당한 이야기는 보너스 같은 느낌이고요.

아울러 책 뒤 번역자의 말도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최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번역에 신경 쓴 노고도 감탄스럽지만 번역한 해가 1973년이기 때문입니다! 무려 40년 전, 저와 같은 나이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책 자체의 완성도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뒤로 갈수록 그렇잖아도 형편없었던 인쇄가 더 엉망이라 글자 자체가 번지고 어떤 페이지는 반쯤은 흐릿하게 인쇄되는 등 기본적인 부분이 부실한 탓입니다. 웬만한 복사집 제본책보다도 못한 결과물이에요. 책 뒤를 보니 2006년에 13쇄를 찍은 이후의 기록이 없고, 원래의 가격을 칼로 파내고 8,000원이라는 가격 스티커를 붙여 놓았던데 원가 천 원 이하의 재고본을 쌓아놓고 저 같은 호구에게 책을 팔아서 연명하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마저 듭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내용만 본다면 8,000원이라는 가격은 그다지 과하지 않고 저만의 옛 추억을 되새기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지불할 만한 가격이지만 이래서야 남에게 권하기는 어렵겠습니다.

2004/09/17

배꼽티를 입은 문화 - 찰스 패너티 / 김대웅 : 별점 2.5점

배꼽티를 입은 문화 - 6점
찰스 패너티 지음, 김대웅 옮김/자작나무
"문화의 171가지 표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일종의 잡학 서적입니다.

목차만 보아도 흥미로운 내용이 무척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면
  • "신부를 약탈하던 풍습"
  • "약탈한 신부를 어디에 숨겼을까?"
  • "비오는 날에만 돈을 건다"
  • "낙타를 타고 온 산타크로스"
  • "향수의 원료는 무엇일까?"
  • "파리의 비키니 수영복 대회"
  • "턱시도의 어원은 늑대"
  • "부채는 계급의 상징"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바셀린 사나이"
  • "한 애처가의 발명품"
등등 역사적인 풍습이나 미신에 관한 유래, 친숙한 발명품이나 상품의 기원과 제조법 등 역사와 문화, 과학, 풍속 등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잡학과 상식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이전에 읽어보았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잡학사전"이나 "책속의 책" 비스무레한 책이랄까요?

워낙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탓에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71가지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책이 구성된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 이런 흥미진진한 내용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죠.
특히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각종 물건의 발명사였습니다. 지퍼나 바셀린, 밴드에이드, 운동화, 아이보리 비누 등등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듯 쓰고 있지만 실제로 그 기원에 대해 잘 몰랐던 여러 상품들의 이면에 있는 발명사가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다만 역사적인 배경이나 유래, 어원 같은 것은 저자의 광범위한 조사에 물론 기인한 것이겠지만 좀 단편적인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유추하는 식의 내용도 상당히 많아서 약간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너무 짤막해서 부실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잖아 있고요.

그래도 재미와 지적인 만족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05/16

문구의 모험 - 제임스 워드 / 김병화 : 별점 2.5점

문구의 모험 - 6점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어크로스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라는 부제처럼 우리에게 친숙한(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문구들에 대해 조망하는 잡학 서적입니다. 종이 클립에서 시작해서 디지털 시대의 문구까지, 모두 14개의 챕터에서 설명해 줍니다. 특정 항목의 소소한 역사를 다루었다는 면에서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주제별로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해당 문구가 어떻게 고안되어 일상 속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그리고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깊이와 수준이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해당 문구의 역사를 조망하는 미시사적 구성도 탁월하고요. 볼펜과 만년필을 다룬 항목을 예로 들자면,

  1. 이집트에서 검댕과 물로 만든 잉크를 갈대 솔로 찍어 파피루스에 글을 남김
  2. 6세기 이후 깃털 펜 등장. 거친 표면의 파피루스보다 부드러운 양피지 등이 발달하자 가는 선을 그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 진 것. 이후 19세기까지 사용.
  3. 로마시대부터 금속제 펜촉이 등장하였으나 가공이 힘들고 비쌌음. 이후 19세기에 금속제 펜촉으로 교체.
  4. 19세기 후반 워터맨의 만년필 등장
  5. 1945년 미국에서 최초로 볼펜 판매 시작. 이후 볼펜의 문제점을 개선한 다양한 볼펜들 출시.

의 순서로, 볼펜과 만년필이 발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변곡점을 단계별로 상세하게 짚어줍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앞서 '잡학 서적'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관련된 잡학도 충실히 풀어내고 요. 워터맨이 만년필을 발명한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진, 워터맨이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할 때 중요한 계약 시 펜에서 잉크가 새는 바람에 잉크 얼룩이 번져 계약서를 새로 바꾸는 동안 고객이 가 버리고 만 일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부 거짓말이라고 명확하게 짚어주는 식으로요. 이러한 일화, 잡학들 모두 명확한 사료를 통해 검증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인사들이 사용하는 연필들에 대한 소개 - 조지 루카스는 딕슨 타이콘데로가, 스티븐 킹의 "다크 하프" 속 작가 조지 스타크가 쓰는 연필은 베롤 블랙 뷰티, 존 스타인벡이 가장 좋아한 연필은 블랙윙 602(블랙윙의 팬은 많다. 기획자 넬슨 리들 / 작곡가 퀸시 존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품에도 등장 / 만화가 척 존스 등) - , 형광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 일본의 호리에 유키오가 사인펜을 만들고, 카터가 파이버팁 사인펜에 형광 잉크를 적용한 '하이-라이터'를 출시하고, 독일의 슈반호이저가 잉크와 디자인을 개선한 '스타빌로 보스'를 출시 - 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친숙한 제품이 다수 등장하는 것도 반가운 부분입니다. 볼펜은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고민을 통해 개발된 물건인데, 그 중 기존 볼펜의 문제점을 개선한 새로운 볼펜이 바로 BIC 크리스털 펜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그 외의 제품으로는 몽블랑 만년필, 몰스킨 노트, 스타빌로 형광펜 등이 있습니다.

허나 도판이 부실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최소한 소개된 제품의 도판은 빠지면 안 되었을텐데, 극히 일부 제품만 도판이 선보이거든요. 앞서 예를 든 볼펜과 만년필 항목에서도 소개된 도판은 빅 크리스털 볼펜, 파커 만년필에 불과합니다. 비중있게 소개된 다양한 볼펜들(파커 조터, 피셔 우주펜 등)과 몽블랑 만년필 등은 글로만 설명됩니다. 한마디로 표지에 있는 도판이 거의 전부인 셈이지요. 충실한 도판, 혹은 도해와 함께 보다 상세하게 사전적으로 설명하는 구성이었다면 훨씬 마음에 들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정보가 소개됨에도 불구하고, 큰 재미를 느끼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문구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가 아닌 탓이지요. 평범한 일반인이 만년필의 역사나 구조 같은 것에 호기심을 갖기는 힘드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특정 분야에 대해 엄청나게 깊이 파고든 점은 확실히 대단하나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그런 책입니다. 문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필독서일테지만 (그리고 아마도 이미 구입해서 읽어보셨겠죠), 그렇지 않으신 분들께는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2022/04/03

플레인 센스 - 김동현 : 별점 3점

플레인 센스 - 6점
김동현 지음/웨일북

비행기 개발의 역사가 아니라 '비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알려주는 인문학 서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범죄, 사건, 사고에 관심이 많은 탓에 사고 사례 소개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책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비행기 납치 사례들 소개부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하이잭' 단어의 의미에서부터 시작해서, 보안승무원이 기내에서 테러범을 사살했던 1971년의 김상태 대한항공 월북 기도 사건, 베트남전에서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받을 정도로 능력있는 해병대원이었던 라파엘 미니첼로가 월급 횡령에서 비롯된 실망감에 미국에서 비행기를 납치해 모국 이탈리아로 향했던 1969년 TWA 85편 납치 사건, 무려 넉 대의 여객기를 같은 시기 피랍했던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 (PFLP) 비행기 납치 사건, 일본 적군파가 평양으로 향하기 위해 납치했던 1979년의 요도호 사건, 평범한 오타쿠가 비행기 납치를 시도해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 했던 1999년의 니시자와 사건 등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꼼꼼하게 수록되어 있는 후일담들도 마음에 듭니다. 예를 들어 라파엘 미니첼로는 미국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탈리아에서 국민적 영웅이 되어 곧바로 석방되었고 본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기까지 했다는군요.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 납치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은 정예 요원에게 사복을 입혀 비행기에 탑승시키는 스카이마샬 제도를 도입했고, 그 외에도 테러를 막기 위해 좌석에서 승객에게 독극물을 주사하는 인젝션 키트나 납치범을 쉽게 격리할 수 있는 부비트랩 플로어 등의 발명이 이어졌다고 하고요. 니시자와 사건도 결국 니시자와가 지적했던 하이재킹 방지 정책이 실행되었다네요. 911 이후에는 국가의 안전이 더 우선시되어 테러범에게 납치된 비행기의 영공 진입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모두 인터넷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를 일종의 통사처럼 시대순으로 모아놓은 구성도 좋았습니다. 덕분에 어떻게 비행기 납치가 시작되어서,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끔찍했던 비행기 사고에 대한 사례 소개도 충실합니다. 저 역시 몇 년 전 까지는 출장 등으로 비행기를 자주 탔었기 때문에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네요. 언제든 저에게도 닥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집중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더라고요. 과냉각된 적란운 속으로 비행기가 진입했을 때, 비행기가 거대한 응결핵이 되어 순식간에 얼어붙은 탓에 추락하고 만 에어프랑스 447편 사고는 정말 무섭더군요. 기내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15분 내로 긴급 착륙하지 못하면 다 죽는다는 이야기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많은 승객들이 타고있을 비행기 내에서의 화재 진압이 왜 어려운지가 궁금했었는데, 외부 공기를 유입하기 위한 여압 시스템 때문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연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어서 순식간에 일산화탄소 중독에 빠진다니 무섭습니다. 화재 현장을 빠져나가기도 불가능하니, 정말 죽을 수 밖에 없겠어요. 그동안 있었던 기내 화재로 인한 사고들은 많은 경우 기내 흡연 탓에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황당했고요. 저도 아주 오래전, 90년대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 기내에서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나는데 얼마나 무식한 짓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리튬 배터리 폭발로 인한 화재 사고가 많다고도 하는데, 앞으로 편한 마음으로 비행기 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울러 비행기를 탈 때의 주의 사항도 몇 가지 알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건 산소 마스크가 내려왔을 때 바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압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산소 공급이 순식간에 끊어지므로 산소 마스크를 바로 쓰지 않으면 곧바로 의식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산소 마스크가 떨어지면 재빨리 뒤집어 쓰고 볼 일입니다. 사고는 아니지만, 랜딩 기어에 숨어서 밀항하려다가 떨어져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끔찍하더군요. 14세 소년 키이스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우연히 찍혔다는 아래 사진 이야기가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 외에도 스튜어디스의 탄생이라던가 콜사인, 웨이포인트 등 여러가지 비행 관련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여기서는 기장 출신 실무 전문가다운 노하우가 빛납니다. 항공 통신에 대한 소소한 디테일들처럼요. 한국과 미국의 사고 방식의 차이를 들며 원할한 무선 교신을 위한 팁을 알려주고 있거든요. 이런건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겠지요. 여객기의 양대 산맥인 보잉사와 에어버스사의 간략한 역사와 콩코드 취항 등으로 알아보는 여객기의 발전 과정과 항공사별 대표 기종 소개도 흥미로운 정보였습니다. 도판도 충실하며, 보잉과 에어버스사 기종의 차이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두 회사의 차이도 인상적이에요. 보잉은 인간의 판단이 더욱 중요하다는 쪽이고, 에어버스는 반대로 인간의 조작을 컴퓨터가 모두 모니터링하고 제한한다는데, 앞으로는 에어버스 쪽이 대세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들었습니다. 링크 트레이너 등 다양한 비행기 시뮬레이터 개발의 역사를 이 책처럼 상세하게 알려주는 책도 또 없으리라 생각되고요. 한마디로 비행에 관련된 모든 것을 모아 놓은 종합 선물 세트같은 책이에요. 간만에 좋은 독서를 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좀 과하기는 했습니다. 위도, 경도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요약해서 풀어놓지는 못했고,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한 린드버그의 모험담도 억지로 수록한 느낌이었거든요. 이야기 목차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2012/10/27

샤프를 창조한 사나이 - 히라노 다카아키 / 박영진 : 별점 1점

샤프를 창조한 사나이 - 2점
히라노 다카아키 지음, 박영진 옮김/굿모닝북스

일본 샤프의 창업자이자 "샤프 펜슬"을 발명한 하야카와 도쿠지의 일대기.

빈민촌 혼죠 후카가와에서 자라며 가혹한 새어머니의 학대에 시달린 유년 시절, 소학교 중퇴 후 시작한 도제생활, 스승의 사업 실패 후 야시장 장사까지 해 가며 보은, 독립의 시작이 된 특허 상품 벨트 버클 도쿠비죠 개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친가족과 재회, 최초의 샤프 펜슬 탄생, 성공의 와중에 닥친 관동대지진으로 전 가족을 잃은 일, 이후 라디오로 재기 성공.... 등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그러나 흔해 빠진 용비어천가식 미담에 불과합니다. 당대 인물들 중 고생 안 해본 사람은 없을 터라 고생담이 딱히 와닿지도 않지만, 뛰어난 장인으로 기술에 특화된 인물이라는 점도 특별함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당시 일본 기업가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을테니까요. 이야기 중 친구이자 라이벌이라고 소개된 마쓰시타 고노스케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소니의 이부키 마사루도 그렇고.

지진으로 모든 가족을 잃은 상처가 있다길래 순애보 같은 개인사를 기대하기도 했는데, 내연의 처와 평생을 함께 했으며 정작 하나 뿐인 딸은 또 다른 애인이 낳았다는 시마 과장스러운 가족사도 역시나 싶더군요.

그나마 조금 특이한 것은 바보스러울 만큼 착했다는 점인데, 기업가로서의 성공에는 발목을 잡을 뻔한 일이 많은 만큼 본받을 일은 전혀 아니더라고요. 뭐, 이러한 일화도 굉장히 과장되었을 것이라 생각되긴 하지만요.

어쨌거나 샤프 자체가 무너져버린 지금 읽기에 적합한 책은 아니며, 딱히 남는 것도 없는 전형적인 1세대 기업가 성공담이었습니다. 회사에 굴러다니기에 읽었지만, 이런 케케묵은 성공담보다는 차라리 "소니 침몰"처럼 샤프의 몰락을 다룬 책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20/03/01

포크를 생각하다 -비 윌슨 / 김명남 : 별점 3.5점

포크를 생각하다 - 8점
비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까치

포크를 비롯한 여러가지 주방 기구, 조리 도구들을 통해 식탁조리역사를 돌아보는 미시사, 문화사, 요리사 서적입니다. 

냄비와 팬, 칼, 불, 계량, 갈기, 먹기, 얼음, 부엌의 8개 주제로 나뉘며, 주제별로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큰 맥락은 같습니다. 주제 모두 지금의 부엌은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고작해야 반세기 남짓한 상황의 결과물일 뿐이다, 세상에 완벽한 기술은 없다, 그렇지만 기술의 발전이 꼭 요리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명제를 이런저런 기구와 도구들을 통해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기술의 혁신을 폄하하지는 않습니다. 고대 로마의 '모르타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모르타리아는 다양한 허브와 양념을 절구로 섞어 만든 혼합물로 노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요리인데, 지금은 이 요리는 몇 초 안에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맛은 대단하지 않아요. 고된 노동이라는 양념이 맛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노동과 노력을 없앤 혁신에 대해서는 저자도 높이 평가합니다. 이러한 기술 혁신 과정에 있었던 온갖 시행 착오도 재미있습니다.
주물팬, 알루미늄팬 등 수많은 팬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팬이 무엇인지를 여러가지 측정을 통해 밝혀낸다던가, 계량을 위한 가장 완벽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는 등 기술 발전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여러가지 호기심에 대한 답들, 그리고 중세에는 조리 시간 측정을 '주기도문을 세 번 외우는 동안'처럼 기도 시간으로 명시했으며, 온도는 오븐 안에 손을 넣어 느껴지는 아픔으로 측정했다는 등의 도구 발전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이런저런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가득합니다.

그동안 몰랐던 여러가지 도구의 역사를 알게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샐러드 채소를 나이프로 자르지 않는 이유는, 오래전 나이프는 강철제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비네그레트 소스와 강철날이 만나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요.
우리에게 친숙한 형태의 자동 토스터는 찰스 스트라이트의 발명품으로, 1921년 수직으로 튀어오르는 용수철과 조절 가능한 타이머에 대한 특허를 냈다고 하고요. 직장 카페테리아에서 번번이 탄 토스트를 내놓는데 질려서 내 놓은 발명이라는데 "오므라이스 잼잼"에 써 먹음직한 이야기네요.

개인적으로는 냉장고 이야기에서 건네는 화두가 의미심장했습니다. 베이컨이나 훈제 요리 등은 냉장 기법이 등장했더라면 등장하지 않았을 요리들인데, 왜 이런 요리를 우리는 지금도 먹고 있는 걸까요? 건강을 생각한다며 '저염 베이컨'이 등장한지도 오래 되었는데, 따지고 보면 '저염' 이라는건 보존에는 걸맞지 않으니 애초에 베이컨에 적절치 않은 방식이지요. 이러느니 그냥 고기를 사다가 조리해 먹는게 더 낫고요. 이는 익숙한 요리법, 요리가 한번 실생활에 침투하면 변하기가 정말로 쉽지 않다는걸 잘 증명할 뿐 아니라, 기술이 발전한다고 요리가 따라서 발전하지도 않는다는 좋은 예인 셈입니다. 배달 문화가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지만, 배달에 최적화된 음식이 등장하고 있지는 못한 최근 트렌드와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요구르트"는 또 이와는 정확하게 반대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영국인들이 먹던 유제품 디저트는 우유에 쌀, 타피오카 등을 넣어 미지근하게 먹는 우유 푸딩이었는데, 1950년대 이후 우유 푸딩은 거의 사라지고 요구르트가 수십억 달러의 시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요구르트가 냉장고 문 선반에 놓아두면 보기가 좋다는 이유 때문에요. 기술의 발전이 전통 요리를 없애고, 새로운 요리의 유행을 만든 예인 셈이지요. 좋은 방향은 아닌 듯 하지만요.

그 외에도 생각할 거리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요사이 부드러운 음식을 많이 먹는 탓에 어린 아이들의 턱 뼈와 근육 발달이 더뎌진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작게 잘라 먹기 시작한 250여년 전 부터 피개교합(위 앞니가 아래 앞니보다 살짝 튀어나온 상태)이 등장하였으며, 지금은 대세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지 농업 도입 시기가 아니라 서유럽에서는 18세기 말에 들어서야 지위가 높은 사람들부터 피개교합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이는 식탁에 나이프와 포크가 도입된 시기와 일치하고요. 즉, 이전에는 입에 음식을 넣고 입으로 끊어내었지만, 나이프를 이용하여 이런 방식이 종말을 고했으며, 나이프가 무뎌지면서 음식은 더 부드러워졌기 때문에 더더욱 씹을 필요가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큰 칼로 모든 음식을 잘게 잘라 만드는 중국에서는 피개교합이 800~1,000년 일찍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이 이론은 설득력이 높습니다.
또 불을 이용한 조리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리처드 랭엄의 "요리 본능"을 통해서도 접했던 내용이지만 이 책은 불이 어떻게 부엌 안으로 들어와 가두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라마다의 조리 환경 차이가 생긴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영국이 '로스팅' 강국이 된 이유는 땔나무가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요. 로스팅 기술이 워낙 빼어나 영국의 로스트 비프는 최고였지만, 로스팅 기술이 한물 간 뒤 영국 요리사들은 뒤쳐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의 영국 요리가 나쁜 이미지가 생긴 원인이 아닌가 싶군요. 불, 즉 열원에 대한 이야기의 끝 마무리가 '전자 레인지'라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불에 대한 통제가 핵심이었던 역사가, 결국 불 없는 요리로 귀결되었다는 뜻인데, 내연 기관이 결국 전기 모터로 바뀐다는 이야기와도 같은 이야기겠지요?

이렇게 흥미로우면서도, 깊이있는 글들이 많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저자의 개인 의견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은 더 객관적인 시각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약간 에세이 느낌도 들거든요. 또 도판이 거의 없는데 이건 분명한 약점이에요. 도구의 변천사를 그림으로 설명해주는 페이지가 있었더라면 아주 완벽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와 교양 양쪽을 만족시키는 좋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식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03/07

심판의 날 - H.G 웰스 / 도서출판 불새 : 별점 2점

심판의 날 - 4점
H. G. 웰스/도서출판불새

"타임머신"으로 잘 알려진 SF소설의 선구자 H.G. 웰즈의 작품. 국내 미발표 SF를 엄선하여 번역 출간하는, 용기 있는 출판사 도서출판 불새의 e-book 단편집으로(날아오르라 주작이여~!) "심판의 날", "시간탐험대", "에피오르니스의 섬"이라는 총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재미는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SF 소설이 아니라 신학, 풍자소설이 아닌가 여겨지는 작품 성격 탓입니다. 소개된 홍보문구와 작가의 이름에서 기대한 결과물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목요일의 남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심판의 날"은 최후의 날에 벌어지는 신의 심판을 우화처럼 풀어낸 작품인데, 아무리 착한 인물이라도 흠결이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장황하게 펼쳐 놓았을 뿐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시간탐험대"는 흉가로 이사 온 박사가 온갖 수상한 행동을 벌여 마을 사람들이 그를 타도(?)하기 위해 들고 일어나지만, 박사가 그들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타임머신을 발명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결말은 제목으로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박사가 살던 저택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의 괴이한 진상(사실은 박사가 범인일지도 모른다?)은 나름 여운을 남기지만, 반전으로 보기엔 약하고 설명도 부족해서 아쉬웠고요. 아울러 전개 역시도 너무나 장황하고 지루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에피오르니스의 알"은 그나마 재미 면에서 제일 괜찮았어요.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에피오르니스의 알을 발견한 모험가가 무인도에 표류한 뒤 알이 부화하고, 새가 커지면서 모험가를 위협하여 어쩔 수 없이 죽여야만 했다는 내용인데 나름 그럴듯했습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강대국과 식민지의 관계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렇게 별점 평균은 1.6점이나, 국내 초역되었다는 것과 역사적 의미를 더하여 별점은 2점으로 하겠습니다. 권해드리기는 조금 어렵습니다만 불새 출판사의 건투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24/05/05

우리 역사 속 수학 이야기 - 이장주 : 별점 2점

우리 역사 속 수학 이야기 - 4점
이장주 지음/사람의무늬

제목 그대로 우리 역사 속 수학에 대해 소개해주는 수학사 서적. 조선 이후 역사 속 유명 수학자를 소개하는 1부와 삼국시대부터 수학을 통해 이루어진 여러가지 성취를 알려주는 2부 구성입니다. 이를 통해 서양 중심의 수학사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옛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았고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는걸 알려줍니다.

1부는 세종대왕이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실제로 수학 서적을 펴내거나 수학 관련 활동으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역관 등 중인 계층이 수학을 공부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세종이 공자의 말을 빌어 수학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수학적인 사고가 위대한 사상과 발명의 큰 축이자 기초이니, 위대한 발명가가 수학자이기도 했다는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헤이그 밀사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이상설이 수학자이기도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구한말에서 개화기에 이르는 시기에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수학 교육과 보급에 노력했다는건, 그가 얼마나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라 할 수 있겠지요. 확실히 당대 조선 제일의 천재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나 봅니다.
2부는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과 여러가지 문헌을 통해 우리 수학이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지 알려주며, 문헌에 소개된 문제들을 현대적으로 풀어 소개해줍니다. 덕분에 함께 따라 푸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죠.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신라 포석정의 주사위 주령구에요. 6개의 사각형 면과 8개의 육각형 면으로 이루어진 주사위로, 굴려서 나온 벌칙을 따라 해야 한다는건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학적으로 '두 종류 이상의 정다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꼭짓점에 모인 면의 배치가 서로 같은 준정다면체'로 각 면의 넓이가 모두 동일하다고 합니다! 주사위는 모든 면의 확률이 공평해야 하지만, 애써 14개의 면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을텐데 이를 적용한 주사위를 놀이기구로 썼다는건 신라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일 겁니다. 지금도 이를 손으로 만드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조선 시대 수학 서적을 통해, 당시에 어떻게 방정식과 제곱근을 푸는지를 알려주는 부분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이치에 맞게 풀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이런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도판도 충실합니다. 청소년용 도서답게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2부에서 문체가 들쭉날쭉한건 아쉬웠습니다. 3인칭으로 '소개'를 진행하다가 갑자기 1인칭으로 강의하듯 문체가 바뀌는 부분이 있는데 거슬렸어요. 계속 출간되려면 교정이 필요해보입니다.
역사 속 수학을 바라보기에는 내용 구성이 부실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200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신라 이야기 약간 외에는 전부 조선의 이야기라면 '우리 역사 속'이라고 말하기는 다소 애매하잖아요? 그나마도 뒤로 가면 갈 수록 역사 속 수학 소개보다는 수학 문제 풀이의 비중이 높아지고요.

그래도 청소년들이 가볍게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이라고는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8/18

물건의 탄생 - 앤디 워너 / 김부민 : 별점 3점

여러가지 일상 속 물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미시사 만화책입니다. 욕실, 옷장, 거실, 주방, 카페, 사무실, 마트, 술집, 야외라는 8개 항목의 대분류로 구분된 4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 생활 속에 맞닿아 있는 사소한 물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불과 수 십년 전만 해도 대세였던 고리가 달린 캔 뚜껑 따개를 누가 만들었는지, 지금과 같이 뚜껑이 떨어지지 않게끔 누가 개선했는지 알려주는 식으로요. 덕분에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들의 비중이 높고요. 문제는 그 중에서도 면도기, 고양이 모래, 비단, 찍찍이(벨크로), 옷핀, 슬링키, 전자레인지, 볼펜, 종이, 포스트잇, 종이봉투, 인스턴트 라면, 아이스크림 콘, 감자칩, 철조망의 15종은 이미 다른 책에서 상세하게 접한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또 220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으로 머릿말, 참고 문헌, 감사의 말 등을 제외하면 이야기 하나 당 4페이지를 갓 넘는 정도라 그다지 밀도가 높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만화로서 꽤나 재미있는 덕분입니다. 별 것 아닌 이야기에서 나름 드라마를 뽑아내어 전개하고 있어서, 이야기 하나하나가 만화 한 편으로 볼 만 하거든요. 유머러스하게 전개도 즐거웠고요. 흑백 톤으로만 그려져있지만 정확한 뎃셍으로 그려진 작화도 이야기에 딱 맞아 떨어집니다. 이런 부분은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와는 다른 명확한 장점이죠. 

아울러 1/3이 다른 책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2/3는 새로운, 신선한 정보들이라 이러한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비롯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괜찮았어요. 1904년 흑인 여성 마담 C.J 워커가 샴푸로 대박을 쳐서 미국 최초로 자수성가한 여성 백만장자로 기록되었다는 이야기, 흑인 혼혈 청년 마첼리허르가 네덜란드령 기아나에서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후 구두 골 위에 가죽을 씌우는 라스팅 공정을 자동화하는 기계를 발명한 이야기, '요요'는 필리핀에서 유래되었는데 1915년 미국으로 이주한 요요의 달인 페드로 플로레스가 대량 생산을 처음 시작한 후 던컨이라는 미국인에 의해 전국적 인기를 얻지만, 이후 '요요'라는 말은 필리핀어로 장난감을 뜻하는 일상 용어라 제품명 저작권을 상실하고 결국 도산했다는 이야기, 감자칩을 과자의 왕으로 만든 사람은 서부의 감자 칩 여왕 로라 스커더로 그녀가 처음으로 바삭한 감자칩을 유통했다는 이야기, 1922년 흑인 발명가 개릿 모건이 신호등 특허를 출원했다는 이야기 등이 그러합니다.

수박 겉핥기 수준이라도 관련된 Trivia를 소개하고 있는 점도 괜찮았어요. 주로 후일담이나 관련된 이야기들인데, 몇 컷 되지는 않지만 본 편 만큼이나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발명품으로 돈을 벌지 못한 실패자들이 등장하는 장면처럼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많았던 "학습 대백과" 류의 만화가 떠오르는, 만화의 장점을 잘 살린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2021/09/19

커피인문학 - 박영순 : 별점 2점

커피인문학 - 4점
박영순 지음, 유사랑 그림/인물과사상사

커피의, 그리고 커피가 관련된 역사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식문화 관련 인문학 서적입니다.

커피의 간략한 역사부터 시작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커피는 에디오피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예멘을 거쳐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졌고, 오스만 제국 시기에 베네치아를 통해 유럽에 상륙하여 대중화 되었습니다. 164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이후 각국에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는 곳에 관련된 시설들이 생겨나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간판도 없어서 사람들이 '커피'라는 말로 그 장소를 특정한게 '커피'를 뜻하는 '카페'가 마시는 공간까지 아우르게 된 이유입니다.

커피 추출법은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 시대부터 기록이 전해진다는군요. 지금까지 전해지는 '터키시 커피' 방식으로 '체즈베'라는 도구에 볶아 빻은 커피콩을 끓여내는 방식이지요. 이후 유럽에서 가루를 걸러내기 위한 필터를 도입했고,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 생크림을 얹거나 우유를 가미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1711년에 천주머니에 원두가루를 채워 '우려내기' 방식으로 마시기 시작했고요. 1908년에는 독일의 멜리타 벤츠가 드립법을 창시했고, 1906년 이탈리아에서는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표했습니다. 1933년에는 비알레티의 모카포트가 발명되었고요. 1938년, 아킬레 가치아가 드디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현대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들어 내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와 함께 커피에 관련된 일화도 소개해줍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라던가, 볼테르는 하루에 40~50잔의 커피를 마셨고, "커피가 독이라면, 그것은 느리게 퍼지는 독일 것이다"는 말을 남겼는데, 실제로 84세까지 장수했다고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루소, 탈레랑, 나폴레옹,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 여러 유명인들이 등장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커피가 대중화 된 이유는, 일본인들이 우유 먹기를 힘들어하자 메이지 정부에서 커피에 섞어 마시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소소한 역사도 재미있었고요.

그리고 미국의 독립, 조선의 커피 음용이나 우리나라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커피 역사도 알려준 뒤, 각 주요 커피 산지에서 커피가 재배된 역사와 현재를 다루는 이야기가 책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크게는 브라질과 자메이카, 파나마, 르완다와 우간다, 하와이, 콜롬비아 순입니다. 이를 통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건, 대공황 등 여러가지 이유로 추락한 자메이카 커피 산업에 1960년대 일본 자본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부터였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일본은 명확한 품질 관리와 최고 등급 커피의 세계 시장 유통을 인위적으로 조절했고, 커피 생두를 오크통에 담아 파는 고급화 전략으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세계 최고급 커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맛도 맛이지만,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 외 파나마 게이샤 커피의 역사와 르완다 커피의 감자맛 결함, 하와이와 콜롬비아 커피의 역사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다보니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특정 음료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유명 산지와 주요 결과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으니까요. 그러나 책의 완성도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커피에 대한 과대평가가 너무 심하다는 겁니다. 이런 시각은 "커피견문록"에서 이미 접했었지만 그 정도가 더욱 심해요. 커피가 프랑스에서 계몽 사상을 일깨운 각성제로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냈고, 미국에서 커피가 독립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건 커피 때문이다라는 식이거든요. 뒤로 가면 갈 수록 더 가관입니다. 조선에서 모던 보이들 중심으로 커피하우스 개업이 이어졌지만, 주권 회복을 위한 시대적 각성과 독립을 위한 저항심을 기르는 커피와 카페의 역할이 작동한 사례가 발굴되지 않았다면서 아쉬워하는데, 대관절 커피가 독립 운동과 무슨 상관이랍니까?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는. 뭐라 언급하기도 어려운 억지스러운 발상이었습니다. 커피에 계몽의 힘 따위는 없습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커피가 아니라 카페인의 힘이에요. 이런 각성이 중요하다면, 다른 각성제도 다 마찬가지겠지요.

목차가 명확히 정의되지 못하고 두서없이 섞여있는 구성도 아쉽습니다. 각 주요 산지의 커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커피가 선악과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식이에요. 재미있는 주제이고, 한 번 볼 만 했지만 이는 커피 역사 부분에 포함시켰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심지어 같은 주제 안에서도 두서가 없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우간다 커피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우간다 로부스타는 로부스타 중에서도 품질이 좋기로 소문나 인스턴트 커피용보다 에스프레서 블렌딩용으로 인기가 높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우간다 로부스타종은 인스턴트 커피의 주 원료로 이용되고 있다는 글로 마무리되지요. 뭐가 맞는걸까요?

도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커피로 그렸다는 일러스트도 구태여 필요했을지 의문입니다. 잘 알려진 사진이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많고, 내용에 꼭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며, 그리 잘 그린 것 같지도 않거든요. 실제 그림에서는 커피 향이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인쇄된 책으로 보는데 커피로 그렸어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커피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고,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인 건 맞지만, 단점도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많은 커피 관련 책을 읽어봤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두드러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7/29

라멘의 사회생활 - 하야미즈 겐로 / 김현욱, 박현아 : 별점 3점

라멘의 사회생활 - 6점
하야미즈 겐로 지음, 김현욱.박현아 옮김/따비

라멘이 현재의 위치를 점하게 된 이유를 다양한 사회 현상과 연결하여 설명해주는, 식문화서이자 미시사-사회사 서적입니다.

뻔한 라멘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라멘의 발전을 주변 환경 및 사회의 흐름과 함께 엮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 설명이 상당히 그럴듯하고 이치에 합당한건 물론이고요.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대세가 된 이유로 전후 극심한 식량난을 든다던가(쌀 부족으로 인한 밀가루 음식의 발전), 전쟁 전부터 있었던 '지나 소바', '주카 소바' 등의 명칭이 '라멘'으로 통일된 것은 닛신 식품의 텔레비전 광고 덕분이라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삿포로 미소 라멘이나 규슈 돈코츠 라멘은 모두 각자 독립적으로 발전한 음식이지만 이 모든게 '라멘'이라는 명칭으로 통일된건 역시나 텔레비전 광고 때문이며 이러한 지역적 특산물 라멘은 원래부터 있던게 아니라 관광지화 되면서 그 지역의 유명 라멘이 순식간에 퍼져 굳어진 것이라는 등 새로운 분석이 가득합니다.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포드의 T형과 마찬가지로 대량 생산하는 공업 제품으로 접근하여 성공했다는 시각도 독특했어요. 여기서 피터 드러커의 그것과 유사한 '데밍'의 피드백 방법론이 도입되었다는 것도 그러하고요.
이런 내용을 "사자에 상", 마쓰모토 레이지의 최초 소년지 장기 연재 출세작 "사나이 오이동", 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등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 "아사마 산장 사건"와 같은 당대 유명 사건 등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가 쉽다는 것 역시 큰 장점입니다. "사자에 상"의 경우는 무려 1948년 연재된 에피소드를 가지고 설명할 정도라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흔하게 접했던 라멘의 유래에 대해서도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나름의 '고급' 정보들도 눈에 띕니다. 메이지 시대 중기 요코하마나 나가사키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길거리 음식 '난킹 소바'로 일본에 들어온 후, 도쿄 아사쿠사의 중화요리 식당 '라이라이켄'에서 지나 소바를 처음으로 내 놓았으며, 이 때 아사쿠사 말고 다른 지역에서 지나 소바의 침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이동식 포장마차 "차루메라"라고 소개하면서 에도가와 란포가 이동식 포장마차를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의외네요.

이외에도 재미있는 정보가 많습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에 대한 설명이 그 중 인상적이었어요.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처음 만든 사람은 이리에 시게타라고 전해지는데, 그는 종전 직후에 아쓰기 비행장에 내린 더글라스 맥아더가 처음 머물렀던 요코하마의 호텔 뉴그랜드의 셰프였습니다. 그가 미군 병사가 가져온, 스파게티에 토마토 케첩을 뿌렸을 뿐인 간이 전투 식량에 피망과 햄을 넣어 이 요리를 발명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이것이 미군 점령기를 지나 미국 것을 일본식으로 변형시킨 새로운 문화가 도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우리로 따지면 "부대찌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특산물 라멘" 이야기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전통이고 뭐고 없는 음식으로, 관광지로 해당 지역이 유명해지면서 삽시간에 유명해졌을 뿐이라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진주 냉면'과 같은 동일, 유사 사례가 많지요.

라멘이 지금과 같은, "라면 요리왕"에 나오는, 장인이 요리하는 음식으로 발전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누벨 퀴진 및 슬로푸드 운동과 결합하여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도 누벨 퀴진의 특징은 현대 라멘집과 정말 딱 들어맞더군요.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며 지방의 서민적 음식 문화를 중시한다는 점에서요. 구체적으로는 식재료의 풍미를 살리는 것과 전통보다 요리사의 창의력을 중시하고 그 지방의 제철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라면 요리왕"에 등장하는 라면 장인 세리자와의 "라면 세류보"가 바로 떠오릅니다. 오너 셰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말린 은어의 풍미를 살린 담백한 맛, 진한 맛 라면이 대표 요리라는 점에서요.

중간에 장인 정신으로 무기를 만든 탓에 미국의 생산성에 뒤져서 전쟁에 졌다는 난데없는 이야기는 황당했고 '라면 지로'에 대한 이야기는 분량에 비하면 알맹이는 별로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아, 도판이 극히 드문 편임에도 가격이 16,000원이라는 것도 단점이고요.
그래도 장점이 더 많습니다. 재미있는 정보, 새로운 시각이 가득 담겨 재미있게 읽었어요. 라면, 아니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6/11/09

니콜라 테슬라 - 신과학 총서 4 - 마가렛 체니 / 이경복 : 별점 5점

니콜라 테슬라
마가렛 체니 지음, 이경복 옮김/양문

"프레스티지"를 보고 다시 필이 와서 잡게 된 니콜라 테슬라의 전기입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간 뒤 교류 발전기를 개발하고 이후 여러가지 프로젝트의 실패로 좌절을 겪다가 쓸쓸한 만년을 보내는 그의 출생에서부터 사망때까지의 일대기를 3자의 시선으로 여러가지 자료를 모아서 디테일하게 서술한 책으로, 한 천재 과학자의 일생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뭐니뭐니 해도 테슬라라는 천재이기도 하고 광인이기도 한 독특한 캐릭터가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점과 그가 고안하고 발명했던 여러가지 발명품들에 대한 서술이겠죠. 그가 예견한, 혹은 거의 "개발이 완료" 되었다라고 한 것 중에서 시대를 거의 100여년 앞서간 것은 로봇, 휴대전화, 해수차 발전소, VTOL-비행체, 인터넷 등 한두개가 아니기에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가 새롭게 설계한, 기존 모든 동력기관의 단점을 해소한 "테슬라 터빈" 같은 경우에는 출력과 효율이 놀라운 기기였지만 당시의 야금술로 엔진의 열을 견디는 재질을 구현할 수 없어서 얼마 전에야 다시 개발이 진행되어 대단한 성과를 보여준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힌 일이죠.

또 다른 포인트의 하나인 그의 광기에 대한 묘사 역시 자세합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동그란 물체"에 대한 공포심과 유명한 결벽증 같은 것은 제가 보기에는 분명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당대 사람들에게 보여진 이미지 역시 그러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신문등을 통해 실감나게, 때론 과장되게 그려진 그의 모습이 현대 여러 컨텐츠에서 접할 수 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전형을 제시하고 많은 영감을 준 것은 분명하겠죠.

그 외에도 다른 천재인 에디슨, 그리고 테슬라 스스로 "멍청이"라고 이야기했던 마르코니와의 분쟁같은 소소한 이야기들도 흥미진진합니다.

여러가지 발명품은 당시 시대를 너무나 초월했기에 당대의 인정을 받기 힘들었다는 천재의 불우한 삶이야 워낙 많은 인물들에게서 보여지는 부분이지만 테슬라는 천재성의 결과물이 누가 보아도 확연한, 현재까지도 테슬라가 보여준 그 현상을 규명하지 못한 것이 있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업적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고 잊혀졌다는 것이 놀랍더군요. 물론 테슬라 본인이 특허 관리를 좀 애매하게 했고 투자를 위해 사기(?)도 좀 치긴 했지만 납득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아마 말년에 점점 더 정신분열증(?)이 심해졌기 때문이겠지만요.

어쨌건 무척 재미있는 독서였습니다. 한 광기어린 천재의 일대기일 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를 반영하는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전기문학이지만 읽는 재미 하나는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그나저나... 이 책 역시나 재미, 그 외 여러가지 부분에 있어서 정말로 탁월한 책인데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왠지 테슬라 본인과 비슷하네요

2025/10/24

그거 사전 - 홍성윤 : 별점 3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지만 명칭이나 유래를 잘 알지 못했던 물건들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주는 책입니다. 원래는 매일경제 연재물입니다. 접할 때마다 흥미롭게 읽었는데, 책 한 권으로 묶여 나와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습니다. 

단순한 사물 설명을 넘어, 그것들이 가진 인문학적 의미까지 함께 풀어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집 반찬으로 자주 나오는 자차이를 소개하면서, 중국에서는 자차이의 지역별 판매량이 도시화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소비되는 반찬으로 도시 거주 인구수와 비례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지표 역할을 하는 음식이 놀랍게도 커피라고 하네요. 이처럼 단순한 사물에서 출발해, 관련된 사회적 맥락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성이 돋보입니다.
배달 음식 포장을 벗길 때 사용하는 랩칼을 다루면서는, 우리나라 배달 음식 문화의 역사가 함께 소개되고요. 과거 젓가락으로 그릇과 랩이 닿은 부분을 문질러 벗겨내던 '젓가락 신공' 소개는 저에게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초밥 사이에 넣는 인조 대잎에 대한 설명이 조지 오웰의 소설 "엽란을 날려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저자의 넓은 식견을 느낄 수 있었으며, 상표나 가격이 적힌 꼬리표를 고정하는 택핀 항목에서는 과거 서태지가 유행시키기도 했던, 흑인 문화에서 상표 태그를 떼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문화적 배경 설명도 인상적입니다. 여러가지 설 중에서도 '난 이렇게 대단한 물건을 새걸로 가지고 있다'는걸 자랑하고 과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건 확실히 그럴 듯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자부심의 표현이었다는 것이지요.

도어 스토퍼를 다루며 엘러리 퀸의 "용 조각 문 버팀쇠의 비밀"을 언급한 대목은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반가왔습니다. 참고로, 원래 문 버팀쇠는 여닫이창을 열린 상태로 고정하기 위해 받쳐 세우는 막대를 뜻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오역이라고 하네요. 문이 천천히 닫히도록 하는 현관문 위에 달린 장치는 도어 체크, 혹은 도어 클로저라는 것도 도어 스토퍼 설명에서 소개되고요.

뚫어뻥의 어원은 흥미로운데, 1980년대 백광산업이 출시한 '백광 트래펑'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수구 트랩에 펑크를 내는 도구라는 의미의 '트래펑'에, ‘뚫어’와 ‘뻥’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이 더해진 멋진 네이밍인데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게 오히려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어원이라면 사이펀 펌프로 알고 있던 기름 펌프의 정식 명칭이 '간장 츄르츄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정보입니다. 이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일본의 기발한 발명가 닥터 나카마츠로, 그의 엉뚱하면서도 놀라운 발명 인생에 대한 짧은 소개도 인상 깊었어요.

여러 익숙한 물건들의 명칭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수확입니다. 예를 들자면 중식당 회전 테이블의 '레이지 수잔', 신발끈 끝의 '애글릿', 끈이 통과하는 구멍인 '아일릿', 창문 잠금장치인 '크리센트', 마트 계산대에서 사용하는 막대는 '체크아웃 디바이더', 겨울 가로수에 묶는 볏짚은 '잠복소', 사원증 목걸이 끈은 '랜야드'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신장개업 가게 앞에서 바람에 춤을 추는 풍선 인형에도 이름이 있었는데, '스카이댄서'입니다. 원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인 예술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디어를 낸 예술가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민셜, 하지만 특허는 협업했던 풍선 예술가 가짓이 등록했다고 합니다. 가짓은 유대인이었다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습니다.

그 외에도 과일을 감싸는 포장재인 팬캡이나 과일망이 재활용이 안 된다는 사실, 회 밑에 깔린 천사채의 한자가 '천사(天使)'가 아닌 '하늘이 내린 채소(天賜)'였다는 등 짧지만 밀도 있는 정보가 가득하고, 단순한 설명을 넘어 인문학적인 부분도 전해준다는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핵심이 되는 '그거' 말고는 도판이 부실하다는건 단점입니다. 연재물로 접했던 독자에게 별다르게 새롭게 전해주는 정보도 별로 없고요. '그거' 종류에 따라 분량도 조금씩 다르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인문학, 잡학 서적이라 생각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볍게, 하지만 의미도 있는 독서를 원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04/01/20

사고뭉치! 피스 전기 만물상 1~24 - 노다 타츠키 : 별점 4점

타카가야라는 작은 마을을 무대로, 젊어서는 NASA 등에서 연구활동을 하다가 정착하여 전기 만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 피스 칸타로, 그리고 아버지 못지 않은 천재 발명광 피스 켄타로 부자를 주인공으로 한 명랑 과학 만화. 
피스 부자와 원래 스파이였던 엄마 사치코 여사와 컴퓨터 천재인 여동생 노리코, 막내 코스케로 구성된 피스 가족, 그리고 켄타로의 여자친구 리본소녀 모모코, P국의 스파이로 피스전기를 감시하는 아이짱, 아즈컴의 후계자 레이코, 자전거포 아들 노부와 애완동물 가게의 이누마루 등과 같은 여러 주변 인물들과 발명품들이 다양하게 그려집니다.

“근미래의 발명품”들이 주 소재인 만큼 어떻게 보면 "도라에몽"과 조금 유사한데, 도라에몽 보다는 더 현재 시점에 가까운 상태에서 만화가가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다 세련되고 과학적인 아이디어들이라고나 할까요? '아이보'같은 로봇 애완견 '파트라슈'나 만능 가사 도우미 로봇 '잡일군', '물이불' 같은건 시판해도 좋을 것 같더라고요.

아동만화답게 특별한 악역은 등장하지 않지만, 빌 게이츠를 패러디 한 범 지구적 대 기업 “아즈컴”과의 매상 경쟁이나 마을 사람들과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들, 그리고 매회마다 등장하는 기발한 이런 저런 새로운 발명품들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입니다.

저는 심각한 것, 우울한 것을 별로 즐기지 않습니다. 영화도 즐겁게 보고 나올 수 있는 것이 좋고 책도 그렇고 만화책도 그렇죠. 이 책이 비록 좀 유치하고 수준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전 읽으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동글동글한 작화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전 24권 완간되었는데 전반부는 이미 절판되었네요. 제가 못 구한 뒷부분 3권을 빨리 구해 봐야 겠습니다. 

참고로, 작가 노다 타츠키가 그린 불쌍한 밑바닥 클럽 축구 만화 "Go!Go! FC 오렌지"도 재미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즐기실 수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