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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9

야당(2025) - 황병국 : 별점 2.5점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마약 수사의 뒷거래
모든 것은 야당으로부터 시작된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 이강수(강하늘)는 검사 구관희(유해진)로부터 감형을 조건으로 야당을 제안받는다. 강수는 관희의 야당이 돼 마약 수사를 뒤흔들기 시작하고, 출세에 대한 야심이 가득한 관희는 굵직한 실적을 올려 탄탄대로의 승진을 거듭한다.

한편,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박해준)는 수사 과정에서 강수의 야당질로 번번이 허탕을 치고, 끈질긴 집념으로 강수와 관희의 관계를 파고든다.

마약판을 설계하는 브로커 강수,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관희, 마약 범죄 소탕에 모든 것을 건 상재.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이해관계로 얽히기 시작하는데… (공식 시놉시스)

올해 개봉해서 간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범죄 스릴러극입니다. 연휴에 감상하였습니다. 

좋은 흥행 성적이 이해가 되더군요. 시종일관 관객을 몰입시키는 전개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덕분입니다. 특히 이강수와 오상재 복수극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유튜브 생중계가 일품이에요. 굉장히 대담하면서도, 구관희와 조훈의 추악한 거래를 전국민에게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로 통쾌함을 선사해 주니까요. 생중계를 눈치챈 구관희 일당이 다급하게 블라인드를 내리는 장면은 완벽한 마무리였다 생각되고요. 이 생중계를 마지막 순간까지 감춘 구성은, 마지막에 터지는 반전으로서의 효과를 극대화 해 줍니다. 

등장인물 설정도 좋습니다. '야당'이라는, 전혀 몰랐던 직업(?)을 주요 소재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에 더해, 검사가 절대악이자 최종 빌런으로 대통령 선거의 흐름까지 뒤흔든다는 설정이 최근 현실과 맞닿아 있어 묘하게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구관희 검사에 대한 약간이지만 나름 복잡한 설정도 잘 그려져 있고, 강하늘과 유해진의 연기도 이를 잘 뒷받침해 줍니다.

하지만 단점도 뚜렷합니다. 우선 이강수라는 인물의 설정이 다소 납득이 어렵습니다. ‘야당’이라는 직업 특성상 은밀하게 움직여야 할 그가, 마약사범들과 경찰 앞에서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현실성이 떨어져요. 아무리 구관희 검사라는 뒷배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언제 비명횡사해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고, 이런 경솔한 면모는 이후 등장하는 치밀한 복수극과도 어울리지 않아서 인물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대선후보 아들로 구관희를 설득해 강수, 상재, 수진의 인생을 망치고 복수심을 품게 만든 조훈은 더 최악이에요. 요즘 시대에, 대선후보 아들이 저렇게 오만방자하고 막나간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잘 나가던 배우였지만 마약으로 인생을 망친 수진은 뻔한 설정이라 진부했고요.

이강수와 오상재가 꾸미는 작전도 설득력이 다소 부족합니다. 조훈의 마약 투약 장면이 담긴 영상을 USB에 담아 야당 의원에게 전달하려다 실패하는 설정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메일이나 클라우드 같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수단이 있는데 굳이 USB를 사용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거든요. 이건 오상재가 체포되는데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듀폰 라이터를 이용한 도청 장치 역시 마찬가지에요. 라이터가 영화 속에서 너무 자주 비춰져서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폐인이 되었던 이강수가 마약을 끊고, 체력을 키워 복수에 나서는 과정은 설명이 더 필요했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게 수위 높은 장면들도 다소 과합니다. 마약 복용 후 벌어지는 난교 장면이나 과도한 살인 묘사는 굳이 이 정도까지 노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장면을 빼고 수위를 조절해 15세 관람가로 개봉했다면 흥행에는 더 도움이 되었을겁니다.

그래도 별점은 2.5점입니다. 인물 설정의 허술함과 작위적인 장치들, 과도한 수위는 몰입을 저해하지만 재미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킬링타임용 범죄극을 원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2016/01/23

마약 밀매인 - 에드 맥베인 / 박진세 : 별점 2.5점

마약 밀매인 - 6점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추위가 몰아치는 12월의 어느 날, 순찰경관 딕 제네로가 시체를 발견했다. 자살로 보이지만 부검 결과 타살로 밝혀졌고, 카렐라는 피해자인 마약 밀매인 아나벨의 구역을 이어받은 '곤조'라는 마약 밀매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한편 범행 현장에 있던 주사기에 남은 지문 문제로 87분서의 번스 경위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데...

에드 맥베인87분서 시리즈로 카렐라 결혼 직후 이야기입니다. 비교적 초기작으로 "경관혐오"와 같은, 1957년에 발표된 작품이네요. "노상강도"에 이어서요.

그간 읽어본 바로는 에드 맥베인 작품은 초기작이 훨씬 좋았기에 나름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세 명이나 죽고, 카렐라마저도 총에 맞아 중태에 빠지는 등 강력 사건이 계속 이어지지만 이야기가 너무 간단한 탓입니다. '조무래기 마약상 아나벨이 살해당하고 형사들이 아나벨의 구역에서 마약을 파는 마약상을 쫓는다. 그의 별명이 '곤조'라는 것을 알아낸 뒤, '곤조'를 잡아서 사건을 해결한다'가 전부거든요. 별거 아닌 이야기를 억지로 장편으로 늘린 느낌입니다.

그리고 범행 동기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아나벨을 살해한 이유부터 문제에요. 번즈 경위의 아들 래리가 아나벨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라는걸 가지고 번즈를 협박해서 편하게 마약 거래를 할 속셈이었다는데, 곧바로 수사를 통해 '곤조'의 존재가 드러나기 때문에 별 의미 없는 협박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 번즈를 협박하기 위해서는 ‘래리가 정말 범인일지도 모른다!’라는 의심을 독자와 번즈 모두에게 잠깐이라도 심어주었어야 합니다. 그럼 이야기가 조금은 복잡해졌겠죠. 허나 번즈가 래리의 마약 중독을 알아내고 훈육 (구타?)하던 밤에 마리아 에르난데스 살인을 저지렀기 때문에 이 역시 물 건너가 버리고 맙니다. 범인의 협박 계획 역시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요. 최소한 번즈는 자기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마리아 에르난데스 살인은 아예 이해 불가입니다. 마리아에게 래리와 말다툼했다는 증언을 강요하다가 수틀려서 살해했다는데, 래리의 존재는 범인 자신만이 알고 있어야 협박이 가능했습니다. 경찰들에게 래리의 존재를 알리면 얻을 게 하나도 없지요. 그런데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해서 무덤을 파는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작중 등장하듯 살인이 버릇이 된다는 이유라면 너무 억지스럽죠.

그래도 전통의 시리즈 중 한 편이고, ‘그랜드 마스터’의 작품인 덕에 볼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경관혐오"의 ‘더위’만큼이나 ‘추위’가 정말 생생하게 묘사되는 등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확 와 닿는 생생한 묘사는 여전히 압권이에요. 초기작답게 지나치게 적나라하지도 않고요. 번즈 경위가 아들 때문에 고뇌하는 장면, 그리고 카렐라가 곤조와 대치할 때의 묘사도 아주 멋졌습니다.

간단한 이야기 구조라 이렇다 할 건 없지만 추리적으로도 딱 한 가지, 경찰 끄나풀 대니 김프가 곤조를 찾아내는 과정만큼은 그럴싸했습니다. 이 바닥에서 곤조를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중독자들이 그에게서 마약을 사려고 했을까? 그건 아마도 그놈이 이 구역에 있는 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죽은 아나벨의 마약 루트를 물려받았을까? 그건 적어도 그놈이 아나벨을 개인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추리해나가는데 설득력 높은, 잘 짜인 이야기였어요. 곤조가 사실은 굉장히 어린, 순진해 보이는 청소년이었다는 나름의 반전도 상당히, 아주 괜찮았고요. 외려 보다 잘 써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쉽게 소모한 듯싶어 좀 아쉽더군요.

마지막으로 어마어마한 추위와 잔혹한 사건이 이어지지만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맞는 시점에서 범인을 체포하여 사건은 해결되고, 래리의 마약 중독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고, 곤조의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카렐라가 살아난다는 완벽한 해피 엔딩도 좋았어요.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작품은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이라든가 "영국식 살인" 등 많지만 이 작품 역시 한자리 차지해도 좋겠다 싶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기대보다는 못해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읽을 만합니다.

2020/10/11

개의 힘 1,2 - 돈 윈슬로 / 김경숙 : 별점 2.5점

개의 힘 1 - 6점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황금가지
개의 힘 2 - 6점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돈 윈슬로의 대장편 범죄 소설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30주년 기념 킹 오브 킹 순위'에 해외편 무려 2위로 선정되어 있어서 관심을 두던 책입니다. 하지만 1, 2권 합쳐 1,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기가 죽어 손대지 않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한 추석 연휴 집콕 동안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1,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쉽게 읽히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맛이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마약 단속 국장 아트 켈러,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파트론 아단 바레라의 20여년에 걸친 악연과 대결을 그리는데, 실제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대한 역사를 거의 그대로 각색했습니다. 여러 카르텔, 여러 보스가 얽힌 이야기를 바레라 가족 중심으로 풀어내었을 뿐입니다.

우선 작품 내에서 콘도르 작전 당시 마리화나 재배지가 초토화되고, 당시 보스였던 돈 페드로의 사망, 뒤이어 티오 미겔 앙헬 바레라가 사업을 코카인 운송으로 바꾸며 조직 보스인 파트론이 되면서 조직을 3개로 나누는 건, 실제로 시날로아 카르텔이 아마도를 보스로 하는 후아레스 카르텔, 아레나요가 보스인 티후아나 카르텔, 그리고 엘차포가 보스인 시날로아 카르텔로 분리된 역사와 거의 흡사합니다.
여기에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이 생산한 코카인 유통을 도맡게 된 걸프 카르텔이 급성장하여 4대 조직이 되는데, 작품에서는 티오의 조카 아단 바레라가 지능적인 코카인 유통 혁신을 통해 카르텔 실권을 손에 쥐는 모습으로 그려지고요. 1985년 미국 요원 키키 카마레나 고문 살해 사건도 작품 안에서 어니 요원이 납치되어 고문받다가 살해되는 이야기로 거의 그대로 등장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아단, 라울 바레라 형제와 게로 멘데스 사이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항쟁은 시날로아 카르텔 보스 엘차포와 티후아나 카르텔 보스 아레나요 형제 간에 실제로 벌어졌던 전쟁을 거의 그대로 따 왔습니다. 대표적인게 아레나요 형제가 잘생긴 킬러 클라벨을 시켜서 시날로아 카르텔 2인자 엘구에로의 아내 레이하를 유혹하게 만든 겁니다. 레이하는 유혹에 넘어가 클라벨, 어린 아들, 딸과 함께 사랑의 도피를 떠나지만 클라벨에게 모두 살해되고 맙니다. 그 뒤 엘구에로는 레이하의 목과 아들, 딸이 다리에서 내던져지는 장면이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받게 되지요. 이 이야기는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만 바뀐 채 거의 그대로 등장합니다. 아단 바레라가 사주한 킬러 파비안이 게로 멘데스의 아내 필라르를 유혹한 뒤 그녀와 아이들을 살해하는 이야기로요.

작품 내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후안 신부 살해 사건 - 공항에서 바레라에게 살해당하지만, 바레라와 게로 멘데스간 전쟁에 휘말려 죽은걸로 처리되는 - 도 아레나요 형제와 엘차포 간 총격전에서 티후아나 대교구장 포사다스 오캄포 추기경이 휘말려 사살된 사건과 똑같습니다. 작품에서는 후안 신부가 멕시코 정부와 여러 관계자가 마약 조직과 관계된 증거를 가지고 있어서 살해된 걸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실제로 오캄포 추기경 역시 티후아나 카르텔과 살리나스 대통령간 결탁에 대해 폭로하려다 살해된 걸로 알려졌지요. 게로 멘데스가 성형 수술을 받고 모습을 바꾸어 재기하려다가 아단 바레라 측 킬러에 의해 살해되는 이야기도, 후아레스 카르텔 보스 아마도가 1997년 성형수슬을 받다가 사망한 역사를 따 온 듯 하고요.

NAFTA 이후 멕시코 경제가 파탄나고, 마약 사범들이 나라를 거덜내는 과정도 실제 역사와 거의 동일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실제 카르텔간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된 엘차포는 체포된 뒤 멕시코 감옥에서 7년여간 편안하게 수감생활을 하다가 탈옥했다는 정도입니다. 작품에서 아단 바레라는 미국 정부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연방 감옥에서 복역하는 결말이거든요.
그 외의 모든 디테일들, 예를 들어 은이냐 납이냐, 코카 콜라냐 펩시 콜라냐와 같은 협박 문구라던가, 마약 수송용 지하 땅굴, 대형 여객기 수송 등도 모두 실제 조직 이야기에서 따 왔으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이렇게 실제 마약 카르텔 이야기를 극화했기 때문에 설득력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이럴거면 아트 켈러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구태여 소설로 만들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마약 전쟁 이야기 외의 이야기는 모두 재미가 없기 때문이에요. 바레라를 뒤쫓는 아트 켈러 이야기만 해도 간단한 도청, 정보원에 의지할 뿐이고 기껏 티오와 아단을 체포해봤자 모두들 기가 막히게 빠져나가는 탓에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하니까요.
또 소설로 만들면서 추가된 요소들도 거의 대부분 지루하고 뻔합니다. 이런 마약 전쟁의 뒷 배경에 중남미 지역에 공산주의 세력이 확산되는걸 경계한 미국의 자금 투입과 원조가 있었다는 음모론이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그랬으리라 짐작되는 설득력있는 설정인건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식상하지요. '케르베로스'. '레드 미스트' 운운하며 뭔가 있어보이게끔 노력은 하지만, 다른 이야기에서 흔히 보아왔던, 미국이 돈을 주고 키워낸 용병단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CIA 국장 존 홉스가 이게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은폐하려고 난리를 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미국은 이미 그 이상의 추문을 수도 없이 들켰잖아요.
또 이 설정이 사실이라면, 아단 바레라가 콜롬비아 반군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댓가로 마약을 손에 넣으려는건, 파멸의 지름길에 발을 담근 셈입니다. 구태여 들쑤셔서 체포할 필요도 없었어요. 아울러 어차피 미국이 돈을 대지 않아도, 바레라 가문이 멸족해 버려도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누군가 권력을 잡고 마약을 여전히 유통할 겁니다. 실제로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요. 흑막이니, 음모니 하는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모두 기대 이하입니다. 후안 신부와 유일하게 정의로운 멕시코 폭력 경찰 라모스 정도만 독특함과 생생함이 느껴질 뿐, 다른 인물들은 평면적이며 단순한 탓입니다. 특히 실제 인물을 따오지 않은 창작 캐릭터들 문제가 심각해요. 고급 매춘부 노라를 한 번 볼까요? 그녀는 멕시코 대 지진 때 '우연히' 알게 된 후안 신부와 친분을 맺습니다. 그 뒤 '우연히' 만난 아단의 정부가 되는데 아단의 사주로 후안 신부가 살해된 뒤, 여러가지 정보를 아트에게 제공한다는 설정입니다. 아단이 노라에게서 푹 빠져서 온갖 사업상 기밀을 전해주고, 심지어 사업 이야기에 동참시키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노라 설정에만도 우연이 여러개 겹쳐있지만, 티오와 게로 멘데스, 아단 바레라 모두 여자에게 푹 빠져서 파멸한다는 설정은 황당하기만 할 뿐입니다.
아일랜드 낭만 킬러 칼란도 한 번 볼까요? 그는 우연히 킬러가 된 뒤, 멕시코에서 아단의 목숨을 '우연히' 구해주고, 아단과 게로 멘데스 전쟁에 끼어들어 아단의 사주로 후안 신부가 살해되는걸 '우연히' 목격하게 됩니다. 그 뒤 '우연히' 받은 청부로 정보원이 된 노라를 보호하다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에요. 마지막에는 아트를 죽이는 킬러로 고용되었다가 노라의 진심을 알고 고용주들을 쓸어버리고요. 이렇게 억지스럽고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갈거라면 솔직히 안 나오니만 못했습니다.
게다가 칼란도 그렇고, 엘 티부론 파비안도 그렇고, 청소년 때 이미 타고난 킬러라는게 증명되었다는데 이 역시 설득력이 없습니다. 특수 훈련 한 번 받지 않은 애송이들인데 말이지요.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어야 할 아트 켈러도 이런 류의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스테레오 타입에 그칩니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마약 전쟁에 대한 사명감으로 가족을 저버리고 일에 몰두한다는 설정인데, 별다른 매력이나 특이함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노라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는 정도만이 의외였어요. CIA 국장 존 홉스와 그의 오른팔인 인간 백정 군인 살 스카키 이런 작품에 나오는 악덕 CIA 국장과 그 부하와 전혀 다를 바 없어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만큼은 확실하지만 실화에 끼얹은 부분이 대부분 기대 이하, 함량 미달이라는 감점합니다. 흔하디 흔한 미국 음모론과 헐리우드식 설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일각에 존재하는 높은 평가를 이해하기는 힘드네요. 이 작품보다 실화 논픽션이 훨씬 재미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일종의 종교단체를 만들어 활동한 엘차요와 '라 파밀라이' 이야기를 소설로 만드는게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요? "돈을 위해 살인하지 않고, 여성과 어린아이를 해치지 않을 것이며, 민간인을 약탈하지 않을 것이지만, 죽어 마땅한 놈들은 모두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마약을 재배하고 만들지만 절대로 마을과 멕시코 내부에는 판매하지 않고 미국에만 판다는 나름의 정의를 가진 기묘한 세력이거든요.

2024/02/16

61시간 - 리 차일드 / 박슬라 : 별점 2점

61시간 - 4점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버스 사고로 사우스다코타의 한 시골 마을에 머무르게 된 잭 리처에게 마을 경찰 부서장 피터슨이 도움을 요청했다. 마약 거래 사건의 증인 재닛 솔터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잭은 군대 내 후임에게 전화하여 마약 거래를 하는 폭주족들이 머무는 옛 군사 시설의 용도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한편, 노부인 재닛의 경호를 맡아 분투하였다. 그러나 결국 피터슨과 재닛 모두 살해된 뒤에서야 리처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범인은 경찰서장 홀랜드였다.
리처는 홀랜드를 처단한 뒤, 사건의 흑막인 사악한 마약상 플라토마저 없애기 위해 옛 군사 시설에서 한 판 승부를 준비하는데.....


전직 엘리트 군인인 거한 잭 리처가 활약하는 리 차일드의 베스트셀러인 잭 리처 시리즈 14번째 작품.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입니다. 이번 설 연휴는 '잭 리처 week'로 정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에 있던 군사 시설에 2차 대전 때 지급되었던 환각제가 대량으로 보관되어 있었고, 시설의 원래 정체는 핵전쟁 이후 생존한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고아원이었으며, 육군 시설이 아니라 공군 시설이라서 잘 닦인 활주로가 함께 있었다는 등의 스케일 크면서도 대담한 설정이 돋보입니다.
잭 리처가 제대로 된 추리를 선보이는 것도 이채로왔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의 후임인 110 부대장 아만다를 도와 후드 기지에서 탈주한 대위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뉴스를 방송하는 곳, 그러면서도 경찰을 피해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특정한 뒤 버스 터미널 옆 모텔에 머물고 있을거라고 추리하지요. 과장되기는 했어도 그럴듯했습니다.
피터슨 부서장을 살해한건 경찰이라는걸 곧바로 알아채고, 제닛 솔터마저 살해당한 뒤 범인이 홀랜드 서장임을 깨닫는 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초 사이렌이 울렸을 때 재닛 솔터의 집에 처음 나타난게 서장이었다는 등 서장이 앞서 범했던 실수들을 근거로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사실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범인이 될 만한 사람은 홀랜드 서장밖에는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의외성은 없었지만요(범죄행위에 가담했던 인상을 준 마이애미 출신 경찰은 떡밥치고는 너무 노골적이었어요).

이런 추리와 함께 곁들여지는 살을 에일듯한 사우스다코타 주의 겨울 묘사도 대단했습니다. 재닛 솔터의 사체를 목격한 잭 리처의 얼굴 피부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묘사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얼마나 추워야 공기중 미세한 얼음 알갱이들이 얼굴에 수천개의 상처를 내는게 가능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네요. 잭 리처가 '무숙자(無宿者)'임을 잘 드러내는, 갑작스럽게 방문한 마을에서 사건에 휘말린다는 도입부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제닛은 플라토의 부하가 마약을 거래하는걸 목격했다는 증언을 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통해 폭주족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 플라토는 제닛을 살해하려고 했고요. 그런데 제닛을 살해하면 상황이 바뀔까요? 마약 거래보다 살인이 훨씬 중죄이고, 심지어 증인에 대한 계획 청부 살인은 차원이 다른 범죄에요. 게다가 경찰 부서장 피터슨마저 살해했으니 이 정도면 지방 정부 중심의 단순 조사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정부 기관이 나서야 할 상황이에요. 이보다는 차라리 수감된 폭주족을 자살하라고 시키는게 더 나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라토가 어차피 러시아인을 물먹일 생각이었다면, 제닛을 살해했다면서 말로 대충 떼우고 일을 진행했어도 됐습니다. 러시아인이 손에 넣은 마약 창고가 텅 비었다는걸 알게 되는게, 약속했던 목격 증인을 실제로는 살해하지 않았다는걸 알게 되는것보다 더 정도가 약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어차피 신뢰를 잃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계획을 진행할 이유는 없어요.
전개 내내 언급되는 61시간이라는 시간 제한도 솔직히 왜 독자에게 알려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독자가 시간 제한 때문에 긴장을 느낄만한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플라토가 일방적으로 정한 시간이 흘러갈 뿐인 전개이고, 잭 리처가 시간 때문에 위기에 처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무엇보다도 눈이 오지 않는 찰나에만 활주로에 플라토의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당연히 날씨는 미리 예측할 수 없고요. 그런데 어떻게 시간 제한을 사전에 정해 전개한단 말입니까? 이건 완전 넌센스입니다.

잔혹한 난장이 악당 두목 플라토도 강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글쎄요, 아무리봐도 잭 리처의 상대로 보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마약이 보관된 지하 벙커(?)의 높이가 낮아서 키가 작은 플라토가 조금 유리했다는 건 있지만, 애초에 가진 역량과 피지컬 차이를 뒤집을 수 있어 보이지 않았거든요. 플라토가 마약과 귀중품을 직접 수습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어이가 없었고, 이 와중에 배신자들이 나타나 그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인기있는 헐리우드 영화 클리셰는 다 가져다 붙인 느낌만 들더군요. 플라토의 최후도 시시하기 짝이 없고요.

마지막에 플라토를 죽인 잭 리처가 어떻게 벙커에서 탈출해서 남은 잔당과 장비를 박살내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영 별로였어요. "탑건 매버릭"에서 훈련만 줄창하다가, 진짜 작전은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않고 매버릭 부하 시점에서 '성공했다'고 언급하고 끝내면 어떻게 될까요? 난리가 날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무난하기는 한데,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6/07/04

Q.E.D Iff 증명종료 30 - 카토 모토히로

"Q.E.D."의 시즌 2라고 할 수 있는 "iff"의 마지막 권입니다. 

이전 권에서 토마가 가나에게 고백하길래 이번 권을 마지막으로 시리즈가 끝날 줄 알았는데, 작가의 말에 따르면 "Q.E.D. UNIV"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진다고 합니다. 최근의 폼은 작가의 최전성기가 지났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시리즈가 계속된다는 것은 반갑네요.

이번 권에도 언제나처럼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편은 비교적 가벼운 입시 부정 사건이고, 한 편은 살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두 편 모두 기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자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레스티지"

하버드에 합격한 가나는 브라이언 교수와 학장으로부터 입시 부정 관련 사건 조사를 의뢰받았다. 자동차 부품 회사 사장 넬리 게레로가 기부 입학을 위해 천만 달러 수표를 보냈는데, 아들 야엘이 불합격하고 자살했다며 학교를 고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학교는 수표를 받지 못했다.

넬리가 마약 카르텔로부터 생명을 위협받자, 입시 컨설턴트 시퍼가 천만 달러 수표를 학교로 보내지 않고 자신이 챙기려고 했던 것이 수표 분실 사건의 진상입니다. 그녀는 야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학교에 수표를 돌려주었지만 들통나 버리고 말았지요. 그러나 진짜 진상은 넬리가 야엘을 마약 카르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죽은 것으로 위장시켰던 것입니다.

진상은 나쁘지 않지만 과정은 영 별로입니다. 야엘의 위장 자살과 시퍼가 학교에 들키지 않고 숨어들어 수표를 반납한 일은 경찰과 학교 측 조사가 미흡한 탓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습격한 마약 카르텔을 가나가 공격해서 물리친다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시리즈 특유의 정보 제공도 기부 입학에 대해 약간 알려주고 끝날 뿐입니다. 제목의 "프레스티지"도 명예와 환상을 의미하는데,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문이 닫힐 때"

암호화폐 투자 실패로 모든 것을 잃은 간호사 허버트는 투자 회사 사장 체스터 피멜 살해 혐의로 검거되었다. 그러나 현장에는 체스터의 혈액만 낭자할 뿐, 시신은 없었다. 시신 없는 상태로 기소된 허버트의 재판이 시작되는데...

허버트가 체스터의 혈액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풀어내는 추리는 좋습니다. 안티에이징 클리닉에서 허버트와 체스터가 만났다는 것이 단서가 되거든요. 젊은 시절에 채혈했던 피를 주입하는 요법을 위해 확보했다는 것인데, 실제 미국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꽤 높습니다. 체스터 살인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기 위한 체스터의 작전이었다는 진상도 괜찮고요.

교살한 체스터의 사체를 숨긴 방법도 앞서 나온 복선과 이어집니다. 마약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키트에 대한 복선으로, 체스터의 사체를 마약 중독 사망자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개에 헛점이 너무 많습니다. 체스터의 변호사가 노력해서 허버트를 재판정에 세웠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허버트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체스터의 부재로 인한 암호화폐 폭락이 멈추지도 않을 테니까요.

아무리 길거리 마약 중독자의 시신이라도, 살해당한 시신을 마약 키트로만 검사하여 매장한다는 것도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최소한 근처에 유명 투자자의 시신없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면, 근처 시신들은 철저하게 조사하는게 당연합니다.

허버트가 변호사를 살해하려 한 척 해서 체스터 사건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는 발상도 납득이 되지 않아요. 두 사건은 관계가 없으니까요. 변호사를 살해하려고 했다고 해서, 체스터를 죽이지 않았다는건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있는 발상은 있지만,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멍이 많아 감점합니다.

그래도 마지막 키스 씬은 마음에 듭니다. 무려 80권의 연재 끝에 결국 성사된 데다가, 토마가 얼마나 괜찮은 녀석인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려진 덕분입니다.

2024/08/31

테스카틀리포카 - 사토 기와무 / 최현영 : 별점 2점

테스카틀리포카 - 4점
사토 기와무 지음, 최현영 옮김/직선과곡선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로스 카사솔라스를 지휘하던 네 명의 카사솔라 형제는 신흥 세력 도고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셋째 발미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고 말았다. 겨우 멕시코를 탈출한 발미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은신하며 재기와 복수를 위한 자금 마련에 골몰하다가 일본인 심장외과의 스에나가와 만났다. 스에나가의 제안으로 발미로는 일본인 아이의 심장을 밀매하여 이식하는 새로운 비지니스를 시작했고, 이를 위해 일본으로 거처를 옮겨 자신만의 조직을 새롭게 꾸몄다.
한편, 멕시코 어머니와 일본인 야쿠자 사이에서 태어난 히지카타 코시모는 부모의 방임 하에 자라다가 부모를 모두 살해하고 소년원에 갔다. 그곳에서 우연찮게 발미로의 눈에 든 코시모는 발미로의 아들처럼 대우받으며, 그로부터 고대 아스테카의 역사와 주술에 대해 전수받았다.


일본인 작가가 멕시코 마약 조직과 일본인 장기 밀매 조직 범죄를 결합하여 선보인 범죄 스릴러.
마약 조직 범죄에 대한 부분은 특별한건 없습니다. 이 분야는 "개의 힘"이 압도적으로 꽉 잡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발미로가 도고 카르텔의 추적을 피해 지구를 반바퀴 돌아 자카르타에 몸을 숨기는 과정, 일본인 장기 밀매 브로커가 '심장 이식'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사업을 펼치는 과정, 일본에서 발미로가 자신만의 조직을 만드는 과정은 모두 설득력 높게 잘 설명됩니다. 다른 데에서 보기 힘든 내용이라 신선하다는 장점도 크고요. 특히 범죄 조직이 일종의 인권 단체의 탈을 뒤집어 쓰고, 모든게 선의라고 착각하고 있는 직원을 앞세워 무호적 아이들을 모은 뒤, 아이들을 수용하는 비밀 시설에서 심장을 적출하여 도쿄 근처 항구에 정박한 거대 크루즈 내 비밀 수술실로 드론을 통해 옮긴다는건 스케일도 크면서 잘 짜여진,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아스테카 문명과 신들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입니다. 특히 '아스테카의 신들은 백인 문명에 잡아먹인 채했던 것이다, 그들은 지금 전 세계에 마약을 뿌려 복수하고 있다'는 발상은 새로왔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잘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장대한 이야기의 90% 가까운 분량이 발미로(엘 코시네로)가 복수를 결심하며, 스에니가와 손을 잡고 일본에 범죄 조직을 재건하는 내용인데, 정작 스에나가의 배신으로 말미암은 발미로 조직의 몰락은 나머지 10% 내에서 서둘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스에나가가 배신한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며, 앞서 온갖 훈련을 통해 인간 병기로 키워낸 발미로의 킬러들이 스에나가 한 명에 의해 산소 결핍으로 모두 죽고만다는 내용도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심장 밀매 비지니스도 설득력있게 설명되고는 있으나 과연 이게 산업으로 성립할까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입니다. 그렇게 수요가 많을 시장이 아니니까요. 어느정도 수요가 있다 치더라도, 발미로가 마약 카르텔을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으는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아스테카의 제물로 바치던 심장과 비즈니스를 억지로 엮은 느낌입니다.
 
그 외에도 아스테카의 주술을 이야기에 엮은건 모두 별로였습니다. 이야기에 잘 녹아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탓입니다. 마약 카르텔의 보스가 아스테카 주술에 깊이 빠져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지만, 머나먼 일본에서 태어난 소년이 이 주술에 감복해서 아스테카의 무기인 마쿠아우이틀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푹 빠진다는건 억지스럽기만 했어요. 
발비로가 믿는 '연기나는 검은 거울'은 '일식'을 의미하므로,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코시모가 '신'이 되어 홀로 남은 '전사' 발미로를 죽인다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꽃 전쟁'에서는 심장을 제물로 바쳐야 하니 발미로는 코시모를 죽일 수 없다, 하지만 코시모는 발미로가 죽을지 안 죽을지 운명에 맡긴다는 코시모만의 편의적인 설정부터 말이 안된다고 생각되거든요. 주술을 엮으려면, "가다라의 돼지"의 아프리카 주술 수준 정도로 이야기에 포함시키는게 좋았습니다.
코시모의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 마지막에 코시모가 어떻게 도주했는지 등 설명없이 대충 넘어가는 것도 너무 많아요. 마약 중독자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서 별점은 2점. 볼만한 부분도 있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전설없는 땅"처럼 잘 알지 못하는 이국에 대한 상세한 설정만 장황할 뿐입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7/01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19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19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

전통의 시리즈. 하지만 이번 권은 굉장히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점.
두 편의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도플갱어>>
마약 단속국 수사관 아처가 끔찍한 숯덩이 소사체로 발견되었다. 아처의 매형인 FBI 수사관 아스트로는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시채들이 발견된걸 계기로 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사건을 일으킨건 마약 조작에서 '마법사'라고 불리우는 남자라는걸 알아냈다. 마법사는 6명의 단계를 거치면 누구나 연결된다는 6단계 법칙도 무시하는 수수께끼의 존재로, 죽을 때 자신의 얼굴을 본다는 '도플갱어'라는 마법을 써서 사람을 죽여왔다.
마법사와의 연결고리라는 중학교 교사 크랩마저도 아스트로 앞에서 불타죽고 마는데....

국경 지대에서 소사체가 연달아 발견된 이유가, 미국 내 FBI를 움직이기 위한 마법사의 계획이었다는건 그럴싸했습니다. 마약 수사관 토러스가 정보를 마법사에게 넘겨주다가 도망쳐서 숨어있었기 때문입니다. FBI가 움직여서 진상이 드러나면 토러스는 도망칠 수 밖에 없고, 그 때 토러스를 잡아 죽인다!는 간단한 계획이었던거지요. 언제나 말하지만, 간단한게 최곱니다.
마법에 걸린 자는 죽기 직전 자기 모습을 보는데 사인은 실혈사,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으며 사후 불태워져 마법 흔적이 남지 않는 마법 '도플갱어'의 정체도 놀라왔습니다. 피해자 얼굴 가죽을 벗겨 앞에 걸어 두었던겁니다. 비슷한 고문을 <<개의 힘>>에서 보긴 했었는데, 끔찍함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네요.

그러나 이외의 내용은 점수를 주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전개가 엉망인 탓이 큽니다. 마약단속국의 제이미 부장이 계획 - 끄나풀을 잡겠다 - 을 아스트로에게 밝히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고, 토마가 갑자가 나타나서 진상을 밝히는 것도 비상식적입니다. 마약 범죄로 5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은 강력 범죄에 일본 고등학생이 뛰어들어 수사를 돕는다는게 말이 될리가 없잖아요?
또 마약 수사국은 마법사의 끄나풀이 누구인지 알아내서, 위치추적기를 통해 마지막 위치에 폭격을 가해 모두 없애버릴 생각이었기에 끝까지 마법사가 누구였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데,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들거든요.

Q.E.D 특유의 현학적 장치로 6단계 법칙, 무한 연분수가 등장하는데, 이 역시 억지스러웠습니다. 특히 6단계 법칙이 절대적인 것처럼 설명되는건 어이가 없어요. 6단계 법칙이 성립하는건, 케빈 베이컨처럼 '골'이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마법사'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연결되는 사람을 찾아봤자 아무 의미 없지요.
같은 이치로, 무한하게 이어져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사실은 식 속에서 같은 식이 반복되고 있을 뿐인 무한연분수를 몇 십명의 연결에 대치시킨 것도 말도 안됩니다. 중간 단계의 누군가가 동일 인물이라서 단계가 무한해진 것이라는데,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보다는 방정식에서 변수가 잘못되어 (지인인줄 알았는데 범인이더라) 오답이 나왔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죽은 중학교 교사 크랩이 무한연분수를 죽기 전에 남겨 단서가 되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애매한 단서를 남기느니 토러스가 끄나풀이라는걸 어딘가에 적어놓는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여러모로 Q.E.D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졸작이었습니다.

<<봄바람>>
대부호인 점술가 기소 사쿠라가 요트에서 떨어져 죽은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스무살이나 어린 호스트 출신 남편 세이지였다. 사건이 일어났던 요트에서 함께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이지는 항해 도중 아내에게 떠밀러 바다에 빠졌었고, 아내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10km이상 떨어진 곳에서 구조되었다는 알리바이가 있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사고사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세이지가 저지른 살인 사건처럼 여겨 조사한다는 설정이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기소 사쿠라 사체 후두부에 타박의 흔적이 있었고, 나중에 발견된 요트 활대에 혈흔이 있있다는건, 바람 탓에 활대에 머리를 맞고 바다에 빠졌다는 사고사로 보기에 충분한 증거입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던 것도 갑작스러운 사고였다면 충분히 설명되고요.
그래도 요트 안에 다른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조사 결과로 사건은 조금 재미있어집니다. 이를 통해 세이지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 사쿠라가 상대방인 아카네를 살해해 요트에 사체를 숨겼다는 진상이 드러나거든요. 세이지도 살해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그 때 바람 탓에 움직인 활대에 맞은 뒤 정신을 차리고 자살했던 겁니다. 이를 통해 세이지의 다소 이상했던 증언과 아카네의 행방불명 등이 모두 밝혀지는 전개는 깔끔했어요.

다만 사쿠라의 동생 모모코가 숨어있었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그럴 이유를 모르겠네요. 배에서 둘의 이혼 이야기를 듣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사고가 정황이 농후한데 요트를 저렇게나 샅샅이 조사할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사해서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한들, 그게 사건 당시일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특별한 증거로 보이지도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괜찮은 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추가되어있는 이상한 설정은 마음에 들지 않네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좀 더 합리적인 전개를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2020/09/01

익명의 전화 - 야쿠마루 가쿠 / 최재호 : 별점 1.5점

익명의 전화 - 4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 담당도 아니었던 아라이 사건을 수사하다가 누명을 쓰고 경찰에서 쫓겨난 아사쿠라는 그 뒤 가족과도 등을 돌렸다. 그러나 딸 아즈사가 유괴당한 뒤, 유괴범을 홀로 잡으려다가 유괴범들의 목적이 3년 전 사건의 진실이라는걸 알게 되는데...

흥미를 자아내는 설정, 몰입감을 주는 전개로 다수의 인기 작품을 발표한 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도 도입부만큼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은 탓입니다.
3년 전, 마약에 취해 사고를 일으켜 유치원생을 포함한 7명을 사망케 한 아라이 사건의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라이 사건을 몰래 수사하다가 경찰 조직에 의해 인생을 망친 경찰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 경찰을 만나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다시 떳떳해지자고 설득하는게 순서일겁니다. 그런데 대뜸 유괴부터 한다? 대체 어디서 나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유괴범들이 나오미와 아사쿠라가 몸값을 들고 뺑뺑이 돌게 만들 이유도 없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몸값은 아라이 사건의 진상이라고 요구하면 되니까요. 경찰인 치하루가 유괴범 중 한 명이었으니, 뺑뺑이를 통해 경찰 신고 여부를 파악할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이 과정에서 아사쿠라가 유괴범으로 몰리기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생겨서 조사만 불편해지고,1억이라는 돈을 낭비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1억은 마약상에게 준거라 동정의 여지도 없고요. 

뺑뺑이 과정도 복잡하게 서술하여 치밀해 보이지만 나오미가 범인이 준, 거는게 불가능한 핸드폰을 가지고 범인에게 휘둘리는 장면에서 메모를 적어 역무원이나 건물 경비원에게 줄 생각은 왜 못했는지 등의 단점만 눈에 띕니다. 유괴극이니 반드시 몸값 전달하는 장면이 등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등장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아사쿠라가 이미 남과 같은 자신에게 처음 전화가 걸려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 나오미가 경찰에 신고하려는걸 막는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건 마찬가지에요.

이후 아사쿠라가 아라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은 더 가관입니다. 현직 경찰 시절에 몇일에 걸쳐 조사해도 밝혀내지 못했던 진상을, 경찰에 쫓기는 수배자 신세로 하룻밤만에 알아낸다?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기꾼 범죄자 키시타니의 도움이 있기는 하지만, 현역 경찰 신분에서 발휘할 수 있는 수사력과는 비교하기 어렵지요.
조사 방법도 스스로를 미끼로 내걸어 경찰의 움직임을 떠 본다던가, 급작스럽게 카라키를 불러낸 뒤 먼 곳에서 쌍안경 관찰로 의중을 파악한다던가, 일부러 아라이의 공범이었던 이와키가 속한 조직에게 잡혀간다는 식으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계획과는 무관한 즉흥적인 발상 투성이입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도 맞으면서 버티는 '몸빵' 밖에는 없고요.

진상을 알아낸 것도 아라이의 공범인 전직 경찰 이와키를 찾아내 이야기를 듣는게 전부인데, 역시 어처구니 없습니다. 사고는 도주하던 아라이가 경찰의 총에 맞아 일어났으며, 아라이는 유력 정치인 니시자와를 협박하던 범인이었기 때문이라는게 겁니다. 니시자와는 매춘부 아케미와 마약을 하다가 아케미가 죽게되자 아는 경찰을 통해 사건을 무마시키켰는데, 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던 거지요. 그래서 니시자와와 연결되었던 경찰이 무리해서 협박범을 잡으려다가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니시자와의 관계 여부를 떠나서 일곱 명이나 죽은, 그것도 희생자 중에 어린 유치원생이 포함된 사건을 덮는다는게 21세기에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총소리를 들은 증인이 분명히 있었고, 당시 수사를 하던 아사쿠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는데 말이죠. 게다가 생존한 유치원 버스 운전사 미카미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살해했다? 이 정도면 거의 국가에서 움직여 조작한 수준입니다. 주택가에서 차량 추격 중 총질을 한다는 헐리우드 영화스러운 발상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또 이 진상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어색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사건 은폐에 앞장서던 카라키가 나오미에게 위증을 강요하는 대화는 다 녹음되었고, 카라키가 아사쿠라를 협박하는 영상까지 찍혀 완벽하게 외통수에 몰리게 되기는 하지만 , 7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은 사고를 덮었는데 고작 이 정도 사건을 덮지 못한다는건 설득력이 약한 탓입니다. 아사쿠라가 이와키로부터 확보한 증거도 빈약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최소한 니시자와와 아케미가 함께 마약을 하고 정사를 나누던 비디오 테이프는 확보했어야 했습니다. 지문이 묻은 마약 봉투와 영수증 따위는 증거가 될 수 없어요. 봉투와 영수증의 지문이야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잖아요? 솔직히 증거로서의 효력은 없습니다.
설령 증거가 된다고 한 들, 니시자와가 마약을 했다는 증거이지 그가 아케미 사건, 그리고 아라이 사건에 관계되어 있다는 증거도 아닙니다. 사건 은폐에 앞장섰던 장인 마사타카가 아사쿠라의 호소에 개심해서 자수한다는 끝맺음은 최악 중 최악이고요.

그 외에도, 유괴 수사를 벌이는 와중에 유괴 아동의 어머니인 나오미가 태연하게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돌아다니는 전개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괴와 상관없는 제3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조력자로 등장하는 토다의 존재도 불필요했습니다. 나오미가 아사쿠라의 진심을 알게되는 계기가 된 증언을 한 게 전부니까요. 이는 치하루가 해도 되는 역할입니다. 토다의 과거도 뻔하디 뻔하고요. 단순한 분량 늘리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재미와 설득력, 현실성 등 뭐 하나 갖추지 못하고 흔해빠진 설정들로만 이루어진 졸작입니다. 찾아서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5/08/24

스펜서 컨피덴셜 (2020) - 피터 버그 : 별점 1점

경찰 스펜서는 부패한 상관 보일런을 폭행했다가 5년 동안 수감되고 말았다. 스펜서의 출소 직후 보일런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선량한 경찰 테렌스가 누명을 썼다는걸 알게 된 스펜서는 룸메이트 호크와 함께 잔상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이 범죄 조직과 함께 대량의 마약을 유통한 자금으로 카지노 '원더랜드'를 개장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걸 알아내는데...

로버트 B. 파커가 창조한 보스턴 사립탐정 ‘스펜서’ 시리즈 중 하나인 에이스 앳킨스(로버트 B.파커 사후 원작을 이어서 쓰고 있는 작가)의 "원더랜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장편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로 범죄 스릴러, 액션, 버디 코미디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어느 쪽에서도 두드러지 못합니다.

특히 기대했던 범죄 스릴러, 수사물로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일단,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수사는 전개상 거의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단서들은 스펜서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우연히 제공해 주니까요. 예를 들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도청 파일을 피해자 테렌스의 아내가 스펜서에게 직접 전해주는 식으로요.
스펜서의 옛 파트너 드리스콜이 악당이라는 사실도 너무 쉽게 밝혀집니다. 초반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이쑤시개 조각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추측이 가능한 수준이라 긴장감 있는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패한 옛 파트너, 마약 조직, 조직 내부의 은폐 구조 등 설정들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요.

전개 또한 뻔하고 치밀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간 보스급인 벤트우드에게 쳐들어가서 물고문을 통해 마약 운송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럴 거라면 은밀한 수사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지요. 게다가 정보를 털어놓았다면 악당들도 운송 시간을 바꾸는건 당연한데, 예정대로 운송하다가 마약 트럭을 스펜서에게 탈취당하는건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스펜서 캐릭터도 원작 붕괴 수준입니다. 원작에서는 문학에 조예가 깊어서 시니컬한 말투, 심리 묘사 측면에서 복잡한 면을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는 그냥 말빨(?)좋은 전형적인 마초 헐리우드 경찰, 형사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액션에서라도 화끈했어야 했는데, 작중 대부분 장면에서는 적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만 반복될 뿐입니다. 이럴거라면 권투에 일가견이 있다는 설정은 왜 덧붙였는지 모르겠어요. 마크 월버그도 그리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 아니고요.

액션은 다른 부분에서도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격투 장면들 모두 속도감이나 위력이 느껴지지 않는 탓에 맨손 액션의 쾌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호크가 덩치를 활용해 마지막에 잠깐 활약하긴 하지만, 이 역시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워 액션적 재미는 떨어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의 절정부입니다. 부패 경찰과 범죄 조직이 결탁한 악의 무리와 대단한 결전을 벌여야 할텐데, 스펜서가 트럭을 몰고 악당 본거지에 돌진한 뒤 호크가 몇 명을 때려눕히는 걸로 결전은 대체로 마무리됩니다. 스펜서와 드리스콜의 1:1 맞짱은 너무 작위적이라 어이가 없더군요. 부패 경찰들 때문에 보도도 못하고 사건이 은폐되었었는데, 스펜서와 호크의 활약 이후 사건이 대대적으로 폭로된다는 결말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래도 너무 바보같아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건 오히려 장점이기는 하네요. 몇몇 유머 코드는 피식 웃게 해 주기는 하고요. 거인 호크, 조력자 헨리 캐릭터는 캐스팅이 좋습니다. 완전한 권선징악 마무리도 후련했고요.

다만 이 정도 장점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보완해주기엔 턱도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범죄물로서도, 수사극으로서도, 액션 영화로서도 건질게 없는 졸작입니다. 원작인 탐정 스펜서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는 쓰레기로 에필로그에서 후속작, 시리즈의 여운을 남기는데 어림도 없지요. 소리없이 망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2021/05/16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2 - 카토우 모토히로 / 학산문화사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2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카토우 모토히로QED 스핀오프CMB 42권입니다. 스핀오프가 42권이나 나오다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나는군요.

이번 권에는 총 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월하미인"과 "재규어의 숲"은 건질게 없는 망작이었습니다. "시체가 없어!"가 그나마 괜찮았고요. 그런데 앞서 두 작품이 너무 형편없어서 반대급부로 점수를 더 얻은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1.8점... 2점인데, 여러모로 딱히 권해드릴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첨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월하미인" 

연기자 지망생 야마자키 칸타는 고등학교 동창 후지 하루카와 동창회에서 재회하여 관계를 진전시켜 나갔다. 그러나 후지는 번창하던 빵집을 접고 귀향을 결심했다. 어머니 병간호 때문이었다.

추리물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조언하는걸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인생 교훈이 담겨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드라마가 별로 인상적이지 않아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교훈 자체만큼은 와 닿기에 약간의 점수를 더하여 별점은 1.5점입니다.

"재규어의 숲" 

남아메리카의 대농장의 딸 아나는 숙부 알렉스와 재규어 관찰 중 시체를 발견했다. 정황 상 피해자 리카르도는 마약 조직에 의해 살해된 걸로 추정되었는데, 경찰 수사로 리카르도가 5일 전, 지역 사면 라라로부터 죽음의 예언을 받았다는게 드러났다. 

라라를 찾아간 알렉스에게, 라라는 아나의 아버지인 농장주 마테우스 산토스에게 죽음이 다가왔다는 예언을 하고, 결국 마테우스는 리카르도가 같은 위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마침 재규어 관찰을 위해 산토스 농장에 방문했던 신라와 타츠키는 아나와 동행했다가,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받는데...

무려 2회를 할당해서 전개한, CMB치고는 비교적 긴 호흡의 이야기지만 건질게 없네요. 특히 추리적으로 그러합니다. 우선 리카르도가 죽은 이유는 마약 조직에 의한 것이니 수수께끼고 뭐고 없습니다. 마테우스 사건에서 마테우스가 죽을 때까지 숨기고 있었던 비밀은 무엇인지?와 마테우스 산토스가 왜 살해되었는지?와 두 가지 수수께끼가 불거질 뿐입니다. 

이 중 첫 번째는 마테우스 산토스가 마약조직의 보스였다는게 진상인데 너무 뻔했습니다. 전개 과정에서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요. 두 번째 진상은 마약조직 보스로서 운송을 방해하는 사람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었는데, 농장주로서 사건 현장을 얼쩡거리다가 보스의 얼굴을 모르는 부하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으로 허술할 뿐더러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가 떠오르는 진부한 이야기였습니다. 재규어 관련 이야기는 억지로 삽입된 느낌이 강해서 역시나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고요.

이 작품에서 점수를 줄 만한건 앞서 말씀드렸던 아나의 추리 정도? 그리고 약간의 잡다한 지식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시체가 없어!" 

경제학자이자 인력파견회사 회장인 우메나카의 집에서 피투성이의 남자가 손에 식칼을 든 채 나오다가 체포되었다. 40분 전 남자가 침입하고 그 10분 뒤 현관으로 나왔다는게 밝혀졌고, 곧바로 경찰은 수색 영장을 가지고 우메나카의 집을 수색했다. 피투성이의 남자 베트남인 닷트는 연인 마이가 실종된 뒤, 인력파견회사 책임자 다카마츠와 트러블을 일으켰었던 동기가 있었기에, 우메나카 집에 다카마츠의 시체가 숨겨져 있으리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데...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만한 유일한 수록작입니다. 특히 동기 측면에서 아주 그럴듯했습니다. 닷트는 일부러 경찰이 출동해서 우메나카 자택을 수사할 수 밖에 없도록 자기 피를 뿌려가며 사건을 키운 것이었습니다. 정제계 실력자인 우메나카에 대해 고발해봤자, 외국인 말을 듣고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한거지요. 그럴듯하죠?

그러나 우메나카, 다카마츠가 여성들을 감금하고 있던 방을 경찰이 찾아내지 못한건 억지스러웠어요. 아래와 같이 지하 와인 저장고 문을 열면 방문이 숨겨진다는, 일종의 사각이라는건 꽤 괜찮은 발상이자 트릭인건 맞습니다. 하지만 너무 허술해요. 들어온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먼저 나간다던가, 평면도만 확인해도 바로 알 수 있으니까요. 이를 발견하지 못한건 경찰의 부실 수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카마츠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메나카 집 안에 휴대전화가 있다는걸 드러내는 것도 억지입니다. 현대인이 휴대전화를 챙기지 않고 몸을 숨긴다는건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나마 읽을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12/17

밤에 걷다 - 존 딕슨 카 / 임경아 : 별점 2점

 

밤에 걷다 - 4점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로크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리 경시청 총감 방코랭은 스포츠 스타 살리니 공작으로부터 신변 보호 요청을 받았다. 아내 루이즈의 전남편 로랑이 협박 편지를 보낸 탓이었다. 로랑은 정신병으로 입원했다가 의사를 죽이고, 성형 수술을 한 뒤 도주 중인 위험인물이었다.
공작 부부를 만나러 페넬리의 가게에 방문한 방코랭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한 밀실에서 목이 잘린채 살해된 공작의 시체를 발견했다. 뒤이어 유력한 용의자였던 공작의 친구 보트렐르도 목이 베여 살해되고 말았다.
로랑은 어떻게 유럽 대륙을 건너 밀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깜쪽같이 사라졌을까?


존 딕슨 카의 앙리 방코랭 시리즈 장편. 데뷰작이기도 합니다. 괴이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그리고 정신병자 살인마가 괴이한 상황에서 사람 목을 베어 죽이는 간담 서늘한 묘사들은 고딕 호러물 느낌도 전해줍니다. 같은 시리즈인 <<해골성>>과 비슷하게요.

추리적으로는 밀실의 제왕 존 딕슨 카다운 밀실 살인 사건이 서두부터 등장하여 눈길을 잡아끕니다. 펠리니의 가게 3층의 방은 앞, 뒷문 모두 감시가 확실했고 (심지어 문 하나는 방코랭이 직접 감시!), 창 밖으로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으며 비밀 통로도 일체 없었던 완벽한 밀실이었고,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도 완벽했거든요. 트릭이 무엇이었을지 아주 궁금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지명수배범인 로랑이 국경을 건넌 방법에 사용된 트릭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륙에서 공작을 살해한 뒤, 공작으로 변장하고 국경을 건넌 것으로, 간단해서 현실적일 뿐 아니라 단서들 제공이 아주 공정했던 덕분입니다. 유럽 대륙을 갔다온 이후 공작이 180도 변했다는 증언과 단서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거든요. 공작이 마약 중독자였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초반부 공작의 짐은 국경에서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와 연결하여 '공작이 마약 밀수를 했다'는 식으로 독자를 이끌지만, 알고보니 스포츠맨 공작은 마약 중독일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단서였지요.
탐정으로서 매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방코랭의 추리법에 대한 소개 등도 추리 애호가로서 볼 만 했습니다. 지식이나 경험없이 타고난 통찰력만으로 수사관이 될 수 없다며, 과학 수사 기법을 비롯하여 분석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일갈하는데, 시대를 앞서간 생각이었어요.

벨 에포크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는 배경 설정도 볼거리였습니다.. 공작 등 귀족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며 마약을 빨면서 검술 대결을 펼치는데, 자동차를 타고다니고 전기불이 존재하는 이색적인 세계의 풍광이 잘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분명 존재했던 과거인데 이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라서 이런 곳이라면 명탐정과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이 있어도 자연스러울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제 강점기 당시, '마굴'이라 불렸던 상하이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딕슨 카의 다른 걸작들에 비하면 많이 처집니다.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너무 커요. 밀실 트릭부터가 알고보면 별게 아니었거든요. 설명도 부족했고요. 공작 (으로 변장했던 로랑)은 이미 11시경에 부인에게 살해당했고, 11시 30분에 목격된 공작은 보틀레르의 변장(?)이었다는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문제는 카드룸 입구를 지켜보는 경찰 눈에 뜨이지 않고 흡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카드룸 문은 벽 때문에 홀에 서 있는 그 누구라도 문을 볼 수 없었다나요. 그렇다면 이건 밀실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런걸 현장에 있었던 명탐정 방코랭이 몰랐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게다가 이 중요한 사실이 독자에게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맨 첫 장에서 약도가 제공되기는 하나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보틀레르가 아무런 변장도 하지 않고 로랑처럼 보였던 이유, 루이즈 부인 몸에 반드시 튀었을 핏자욱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 설명되지 못한 점도 너무 많습니다. 보틀레르가 가발이라도 썼더라면 모를까, 여러모로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처음에 등장해서 살해당했던 살리니 공작은 변장한 로랑이었다는 트릭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나고 얼굴이 닮았다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아니고, 이 당시 성형수술 수준은 별볼일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옛 친구야 안 만났다쳐도, 공작 가문의 오래된 변호사 키라르의 눈까지 속였다는건 지나쳤어요.
또 변장에 성공했는데, 자기 자신을 협박하는 편지를 써서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한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경찰과 게임을 하고 싶었던 것 같지도 않고, 그나마 생각해 볼만한건 자기 과시지만 그걸 위해서는 잃는게 너무 많아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방코랭의 추리대로 루이즈 부인을 살해하고 도주할 생각이었다면, 경찰을 부를 이유는 없었어요.

루이즈 부인의 자백만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그닥이었습니다. 첫 번째 범행은 그렇다쳐도, 보틀레르를 살해할 때의 증거는 이미 방코랭이 차고 넘치게 모은 것으로 보여서, 구태여 자백은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남자들에게 농락당한 기구한 인생이라는게 잘 그려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용한 남자들을 깔끔하게 살해한 팜므 파탈로 보기에는 범행이 허술해서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가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게다가 루이즈 부인이 모든 트릭과 살해 방법을 스스로 말하는 탓에, 방코랭은 별로 하는게 없다는 문제도 큽니다. 모든 트릭을 알아챘다고는 하지만, 정작 하는거라고는 루이즈 부인의 자백에 추임새를 넣는 것 밖에 없어서 이게 과연 명탐정인가 싶더라고요. 물론 진짜 공작의 시체를 발견하고, 루이즈 부인이 진범이라는걸 알아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명탐정이라면 마지막 루이즈 부인 자백에서도 뭔가 존재감을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런 점이 방코랭을 다른 딕슨 카의 명탐정들만큼이나 기억에 남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네요.
화자인 미국인 제프 역시, '사랑꾼' 으로의 모습 말고는 아무런 활약을 보이지 못해서 인상이 흐릿한건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절판된지 오래인데,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번역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독성도 떨어지는 편이고요.
오래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봅니다. 제가 읽었던 딕슨 카 작품 중에서는 최악입니다.

2020/06/12

Q.E.D Iff 증명종료 6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Q.E.D Iff 증명종료 6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만 읽던 와중에 확인해 보니, 본가인 Q.E.D도 2부격인 iff가 어느새 9권까지 나왔네요. 

이번 권은 한 편의 일상계와 한 편의 강력 범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Q.E.D 전통의 구성이지요. 보통 한 권에 4편 정도의 이야기를 수록하여 빠르게 진행하는 CMB와는 다르게, 한 개의 이야기를 보다 긴 호흡으로 디테일하게 전달해 주는게 QED의 특징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두 편 모두 이렇게 길게 늘일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디테일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지루하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특히 첫 번째 이야기인 "지구에 떨어졌다 말하는 남자"가 심합니다. 미국에서 마약 조직간 항쟁에 휩싸인 와타루의 이야기와 자신이 '외계인' 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먼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던 탓입니다. 사이먼이 토마와 30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웜홀을 통해 지구로 이동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어요. 이보다 낫기는 했지만 "추락" 역시 여러모로 썩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에나리와 그 일당이 대학에 진학해서 여전히 탐정 동호회 놀이를 하고 있다는 등 오랜 팬으로서 반길 요소가 없지는 않았지만 추리적으로는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음 권에서는 분발해 주면 좋겠네요.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지구에 떨어졌다 말하는 남자"

1986년, 모리타 리사는 미국에서 도미니코를 만나 결혼하지만, 이혼 후 양육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었다.
10년 후, 리사의 아들 와타루는 가난한 환경 때문에 마약 판매 조직의 일을 하게 되었지만, 4년 뒤인 14살 때 마약 조직간 항쟁에 휘말려 총상을 입고 버려졌다.
현재, 대학에서 미스터리 연구회를 만든 에나리와 홈즈, 멀더는 수수께끼를 찾다가 멀더의 할머니에게 찾아온 이상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금발의 남자 사이먼이 스스로 우주인이라고 말하며 할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족은 사이먼이 의절한 고모인 리사의 아들 와타루라고 생각하고 모발을 습득하여 DNA 검사를 진행하는데...

서두에 나오는 미국에서의 잔혹한 갱단간 싸움이 멀더 모리타의 가족과 관련된 일상계로 이어지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핵심 수수께끼는 사이먼의 정체입니다. 우선, 사이먼이 와타루라면 외계인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산이 탐난다면 더더욱 본인이 와타루라는걸 밝히는게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왜 외계인이라고 주장할까요? 별다른 사기를 치거나, 할머니 돈을 훔쳐 달아나는 것도 아니니 그 정체는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DNA 검사 결과를 통해 할머니와 사이먼은 조손 祖孫 관계라는게 드러나서 사이먼은 와타루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리사와 와타루는 모두 사망했다는게 확인되었다고 통보되어 사이먼의 정체는 미궁에 빠지고 말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이먼은 와타루가 맞습니다. 토마의 추리에 따르면 리사와 와타루가 죽었다고 알려진건 갱단 조직 재판의 증인으로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의해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지나치게 묵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별로 와 닿지도 않네요. 비슷한 주제로 만화를 거의 90여권 가까이 (CMB 포함) 발표하다 보니, 일본 내에서의 이야기로는 이제 한계를 느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미국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일본 일상계 안에 가져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그리고 이 진상이 와타루가 '외계인'을 자칭할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딸과 의절하고 원조를 거절하여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게 만든 할머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게 목적이었다면, '외계인' 이라는 수상쩍은 주장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정체에 대한 의심만 불러오니까요. 수상쩍은 남자를 집에 들인 것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부탁 때문이지, 외계인이라는 사이먼의 주장은 문제만 일으켰을 뿐이에요. 

또 에나리와 그 일당(?) 들, 토마와 가나의 활약도 거의 없고 주어진 정보에 따른 안락의자 탐정 역할만 마지막에 수행하기 때문에 이야기도 딱히 재미있지 않았어요. 현학적인 재미를 전해주는 부분도 '외계인' 사이먼과 웜홀 등에 대해 논하는게 전부로 이야기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없어서 영 별로였습니다.

이 보다는 차라리 백화점에서 사이먼이 미행을 따돌리고 사라진 방법이라던가, 열쇠가 없는데 집에 들어온 방법에 대한 일상계다운 추리가 더 볼 만 했습니다. 특히 가족 중 유일하게 집에 돌아오지 못한 '리사'를 위해, 그녀가 열쇠를 숨겨두던 곳에 열쇠를 여전히 두고 있었다는 건, 트릭으로서도 괜찮지만 가족 간의 정을 드러내는데 꽤 효과적이라 마음에 드네요.

그래도 긴 이야기에서 건질게 이 정도라면 많이 부족하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평균 이하의 지루한 이야기였습니다.

"추락"

TV 인기 드라마 프로듀서인 에코다 와타루가 빌딩에서 떨어져 죽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옥상에서 탈출하려다가 떨어져 죽은 사고사로 처리되었지만, 한 가지 의문을 남겼다. 왜 그는 직접 탈출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일까?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문이 위에서부터 차례로 잠겨서 아무도 올라갈 수 없었던 상황을 풀어낸 트릭은 괜찮았습니다. 경비가 위에서부터 문을 잠그고 순찰하면서 내려온다는 시간차를 이용한 것이지요.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 높아서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이 트릭 외에는 모든 부분, 진상과 동기, 진범의 정체 등 모든게 다 엉망이었습니다. 일단 사건부터 보면, 범인이 똑똑해보이지만 문제가 너무 많아요. 에코다의 죽음을 사고사로 위장하기는 했지만 너무 많은 의문이 남게 되니까요. 특히 탈출하기 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건 바보같은 경찰도 바로 눈치챌 정도로 이상했으며, 토마의 현장 조사를 통해 에코다 와타루가 오른손에 쥐고 있었던 옥상 난간의 콘크리트 조각의 위치는 왼손 쪽이라는게 밝혀지는 것도 범인이 들인 공에 비하면 많이 어설펐습니다.

에코다를 아래쪽 창문으로 들어오라고 유도했다는 상황도 영 이해가 되지 않아요. 조금 기다린다고 얼어 죽을 날씨도 아닌데 건물 옥상에서 아래 층 창문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한다? 저는 죽어도 못합니다. 차라리 창문으로 들어오라는 범인에게 경비를 불러달라고 하는게 현실적이잖아요? 

수갑으로 묶여있던 여배우 츠루미 안나가 진범이라는 것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1층에 있던 각본가 온다가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다는걸 증명했다는게 중요한 근거로 사용되는데, 온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건 증명되지 않았으니까요.
Q.E.D에서 자주 써 먹는 인기 소재인 '모든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상황' 에서 증언만으로 진범을 찾아내는 이야기인데, 이 작품에서는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온다와 신인 여배우 츠무기, 미술 책임자 가즈야가 입을 맞추면 츠루미의 이상한 계획보다는 더 그럴싸한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때문에 온다보다는 1층에 아르바이트를 왔던 가나가 있었다고 설명하는게 더 바람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나의 범행 동기도 설득력이 낮아요. 에코다가 미성년 매춘을 했다는걸 알고, 그의 스캔들 때문에 중요한 배역을 놓칠까봐 살해했다는데 그가 죽었다고 스캔들이 표면화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프로듀서의 사망이 스캔들로 해고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문제가 덜하리라는 보장 역시 없고요. 에코다가 스캔들로 해고될 경우, 각본가가 미는 배우 츠무기에게 배역을 빼앗길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에코다가 사망한 경우도 마찬가지니 구태여 모험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심지어 어느정도 성과가 있는 여배우라고 묘사되는 안나가 직접 범행을 저지른다?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무리봐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억지투성이 이야기였습니다. 이 실망감을 다음 권에서는 보란 듯이 만회해주면 좋겠네요.

2004/10/06

플레치 - 그레고리 맥도널드 : 별점 3점


민완기자 I.M 플레처 (통칭 플레치)는 해변가의 마약 밀매에 관한 특종 기사를 위해 거리의 떠돌이로 변장하고 조직과 친해진다.
그러던 어느날, 콜린스 항공 회사의 사장이자 젊은 거부 앨런 스탠윅으로 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D-Day는 1주일 후. 
플레치는 마약 밀매 기사에 대한 압력을 받으면서도 앨런 스탠윅에 대한 자신만의 조사활동을 펼쳐 나가며 동기와 자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해답을 서서히 찾아나가게 된다.

민완기자 플레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 추리소설. 시리즈로 알고 있고 85년에는 코미디언 체비 체이스 주연으로 영화화까지 되었었던 인기 작품입니다. (영화 줄거리는 약간 다른 듯 합니다만)
그동안 현대 미국 장편들에 실망을 많이 한 터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고 웬지 설정이 너무 대중적이고 통속적일 것 같아 그동안 구입을 꺼려왔었는데 싼 값에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무척 재미있더군요! 무엇보다 플레치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듭니다. 이 친구는 정말 악당이에요. 이혼도 2번이나 했으면서 수당 한번 지급하지 않고, 욕을 입에 달고 살며 여자와 상사를 X같이 아는 마쵸근성에 자신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밥먹듯이 하는 거침없는 사나이거든요. 허나 독특한 유머가 잘 살아있어서 마음에 들어요.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도 초반에 1주일의 시한이 설정됨으로써 이야기 전체의 긴박감이 잘 살아나고 있으며, 플레치의 사건 해결을 위한 여러 조사도 상당히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사건의 진행을 위한 복선도 충분할 뿐더러 조사가 진행되어 갈 수록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독자를 끌어들이는 재미 역시 상당하고요.
또 초반에는 백만장자 앨런 스탠윅의 이야기로 진행되다가, 후반에는 곁가지였던 해변의 마약 거래 조직의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전환되는 과정도 좋습니다. 상당히 치밀하면서도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아울러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모든 악업을 남겨둔채 떠나는 플레치의 마지막 모습까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수준이 높은 명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마음 편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읽을거리로서의 미덕은 충분한 작품입니다. 현대 미국 장편에 대한 그동안의 제 편견을 불식시켜 주네요. 
너무 통속적이고 이야기가 너무 허무하게 끝나다는 등의 약점도 약간 있지만 주인공 플레치라는 캐릭터가 강렬해서 이정도 약점은 눈감아 줄 만 합니다. 위의 영화도 어떻게든 구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2009/07/08

파리의 밤은 깊어 - 노엘 칼레프 / 김두남 : 별점 2점

파리의 밤은 깊어 - 4점
노엘 칼레프 지음, 김두남 옮김/해문출판사

간만에 본업(?)인 추리소설의 포스팅인 것 같네요. 이번에 읽은 작품은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로 이미 접한 프랑스 작가 노엘 칼레프의 데뷰작인 "파리의 밤은 깊어" 입니다. 제 고전 선호 취향 탓에 집어든 작품이죠.

마약 운반책으로 일하며 사랑하는 약혼녀와의 행복을 위해 조직 탈출을 꿈꾸는 바스티앙은 자신이 속한 "아르메니아인" 조직의 라이벌 조직을 찾아가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대신, 자신의 탈출을 보장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라이벌 조직은 바스티앙의 축구공 대신 안에 "폭탄"이 들은 축구공을 주고 폭탄을 아르메니아인에게 가져다 주라고 시키지요. 하지만 바스티앙의 실수로 동네 꼬마들 축구공과 공이 바뀌어 버린 뒤, 파리 경찰, 범죄조직, 꼬마들, 병원 등 다양한 사람들과 얽히고 섥힌 하룻밤의 대 소동이 시작됩니다!

일단 읽으면서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줄거리 요약만 봐도 비슷하지요? 마약을 운반하는 운반책과 범죄조직, 그리고 시한 폭탄을 동네 꼬마들과 바람난 남편, 이탈리아인 떠벌이 트럭 운전사, 꼬장꼬장한 병원장과 간호사들을 한데 묶고,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해 보이는 일부터 시작해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는 사건들, 복잡한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묘사 등 기본 뼈대가 그야말로 형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똑같습니다. 또한 마약을 숨겨 운반하는 축구공에 대한 아이디어 말고는 추리소설이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범죄-서스펜스-스릴러 물이기 때문에 추리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추리적 요소가 없는 대신 폭탄을 찾고자 하는 경찰과 방송의 노력을 한발자국씩 빗겨나가는 폭탄 주인의 모습 같은 서스펜스 요소가 굉장히 강력하다는 것도 역시 동일하고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서스펜스들이 대부분 우연에 의지하고 있으며,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 비한다면 아무래도 범죄조직이 등장하고 살인 청부나 총격전 같은 묘사가 많기때문에 블랙코미디적인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유쾌함이 떨어지며, 마지막에는 결국 무고한 형사가 사망하는 등 뒷맛까지 찝찝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더군요. 무엇보다도 반전같지 않은 반전이 포함된 결말이 가장 큰 감점요소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하고 낡은 결말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50년대 프랑스 추리소설에 대해 관심이 없으시다면 챙겨보실 필요는 딱히 없을 것 같네요. 차라리 영화에 더욱 더 잘 어울렸을 것으로 보이기에 영화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혹 온다면 그때 챙겨보시는 것이 더 나을테고 말이죠. (그런데 영화가 나오려나...)

2007/08/27

천사의 이빨 B.T.A ((天使の牙 B.T.A., 2003) - 니시무라 료 : 별점 1.5점

마약과 형사 아스카는 연인이자 파트너인 후루요시에게서 인정받고자 남자뿐인 조직 안에서 힘들게 버텨가던 중, 급성장한 신흥 마약 조직 클라인의 보스 키미쿠니의 연인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둘 다 총기 난사로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극비리의 그녀의 뇌를 키미쿠니의 연인 칸자키 하츠미의 몸에 이식하는 수술이 시행되있고, 그녀는 하츠미로 재 탄생하여 조직에 잠입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는데...

신쥬쿠 상어의 아버지이자 일본식 하드보일드의 거장인 오사와 아리마사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원작 소설은 1996년 발표되어 그해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에서 10위를 차지했던 작품이더군요.
신쥬쿠 상어 시리즈가 아닐까 하고 봤는데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뇌 이식이라는 소재가 현실적으로 그려지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스타일을 추구한 촬영과 액션씬은 짜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또 아스카가 칸자키 히츠미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 벌이는 활동이나 액션은 사실 사건 해결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해서 개연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단지 "페이스오프"의 영향을 받은 심심풀이 땅콩형 맛보기 설정일 뿐입니다. 그만큼 알맹이가 없어요. 반전도 예상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고 추리적으로도 맨 처음에 스쳐가듯 등장하는 간단한 암호트릭 이외에는 그다지 건질게 없고요.

내용이 이렇게 별볼일 없다면 캐릭터의 외모나 연기, 카리스마로 극복해 주었어야 하는데 여자 주인공 2명 모두 작품에 어울리는 외모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아스카 역이야 경찰이니 그렇다 쳐도, 칸자키 하츠미라는 캐릭터는 대 마약 조직 보스조차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외모, 매력의 소유자로 그려지는데 실제 배우가 그러한 역할을 보여주기에는 어려운 외모였거든요.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얼빵한 조수(?) 이마이즈미가 강한 눈빛과 쫙 깔은 낮은 목소리로 분한 캐릭터는 특이했습니다만, 이 역시 특이하기만 할 뿐이고요.

한마디로, 오사와 아리마사의 팬이 아니라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팬이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원작을 한번 읽고 비교해 보고 싶긴 합니다.

참고로, T.A,T,U의 노래와 함께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 뒤에 등장하는 짤막한 에필로그는 속편을 예감케 하는 여운을 남기기는 하는데 영화가 망했는지 어쨌는지 속편은 존재하지 않네요. (물론 이 에필로그 역시 진부하기 그지 없습니다...)

PS : 그런데, B.T.A가 뭐의 약자일까요???

2005/07/24

아웃 오브 타임 (Out Of Time, 2003) - 칼 프랭클린 : 별점 3점


플로리다의 한 작은 마을, 베니언 키의 보안관인 매트(덴젤 워싱턴 분)는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 온 덕분에 동료들은 물론 주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 그는 유부녀인 앤(산나 라단 분)과 오래 전부터 내연의 관계에 있는 사이.
어느날 매트는 앤과 같이 찾아간 의사에게서 앤이 암에 걸려 6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앤은 매트에게 마지막 이별의 선물로 자신의 생명보험 100만달러의 수취인으로 매트를 지명한 서류를 주며 떠날 결심을 한다. 이에 매트는 앤을 돕고자, 그녀를 스위스의 대체의학 치료 센터에서 치료를 받게끔 하기 위해 자신이 압수한 마약 사건의 증거품인 경찰서의 공금 45만여 달러를 전해 준다.

하지만 은신처에서 연락하기로 한 앤은 연락이 두절되고, 다음날 앤과 그녀의 남편의 사체로 추정되는 살인 방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사건의 모든 증거는 매트가 살인사건의 제 1 용의자로 지목되는 방향으로 흐른다. 앤이 사실은 암이 아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매트는 동료 경찰들이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기 전에 마약 단속국에서 수금을 요청한 45만달러를 회수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초를 다투는 치열한 상황 속에서 동분서주하며, 그의 전 아내이자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알렉스(에바 멘데스 분)는 점점 수사망을 좁혀 가면서 조금씩 매트의 수상쩍은 행동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는데....

영화 감상은 오랫만이네요. 역시 여름에는 공포물도 좋지만 스릴러물도 좋죠. 2003년도에 개봉했던 덴젤 워싱턴 주연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모종의 음모에 의해 궁지에 빠지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영화나 소설, 만화는 사실 수없이 많습니다. 때문에 이런 작품들이 신선함과 재미를 주기 위해서라면 그 음모가 얼마나 치밀한지와 궁지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죠. 다행히 이 영화는 제법 성공하고 있는 편입니다.
초반 30여분간은 매트와 앤의 불륜에 포커스를 맞춰져 지루하지만 거금을 노리는 범인들이 매트를 범인으로 완전히 옭아매려는 작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정말 숨쉴틈 없이, 재미있게 진행됩니다. 와중에 매트가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해서 자신에게 집중될 수 있는 용의를 살짝살짝 빠져나가는 장면들 역시 놓칠 수 없는 부분이고요. 중반에 등장하는 GPS를 이용한 복선과 마지막에 마약 단속국에서 요청한 돈을 타이밍 좋게 넘겨주는 부분 역시 영화에 치밀함을 더해주는 요소로 잘 이용되고 있습니다.

감독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주연 배우들도 덴젤 워싱턴을 빼면 유명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닥 돈을 많이 들인 것 같지는 않지만. 검증된 배우 덴젤 워싱턴의 야자수무늬 셔츠로만 활약하는 시골 경찰 서장역의 연기를 비롯해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고(개인적으로는 나름의 악역 연기를 소화한 TV시리즈 슈퍼맨의 딘 케인의 모습이 이채로왔습니다) 뭔가 궁지에 몰린 사람의 아찔한 심리가 잘 표현된 연출도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범인들의 공범자가 쉽게 잡혀버려 가장 중요한 범죄의 요소인 "돈"을 너무 빨리 매트가 회수하게 되는 바람에 후반 밀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범인이 마지막에 찾아온 매트와의 최후 승부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총질부터 하는 것도 앞부분의 치밀함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고요.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흑인 팜므파탈역으로 영화사에 기록될 수 있었을 앤이 초중반까지는 남자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연약한 캐릭터에서 막판에 180도 돌변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바람에 성격이 애매모호해진 것이 가장 아쉬웠어요.

그래도 영화는 내용이 시종일관 깔끔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되서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킬링 타임용으로 가볍게 더운 여름날 한번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느낌이 예전에 봤었던 "블루 데블 (Devil In A Blue Dress, 1995)"과 너무나 분위기가 흡사하다고 느껴져 잠깐 조사해 봤더니 같은 감독이 연출했더군요. 역시나....하여간 이 "블루 데블"도 추천작입니다.

PS2 : 부하가 4명밖에 없는 시골 경찰 서장을 007처럼 표현한 저 포스터의 센스는 그야말로....

2023/08/18

샘 호손 박사의 세 번째 불가능 사건집 - 에드워드 D. 호크 / 김예진 : 별점 1.5점

샘 호손 박사의 세 번째 불가능 사건집 - 4점
에드워드 D. 호크 지음, 김예진 옮김/리드비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한 정통 본격 미스터리 단편 시리즈. 1, 2편 반응이 괜찮았었는지 3편까지 출간되었네요.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출간 자체야 반길 일이지만 솔직히 수준은 영 아니었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아니 걸작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첫 번째 사건집에 비해 두 번째 사건집은 다소 처졌었는데, 3권은 아쉽게도 2권보다도 못했어요. 기대했던 불가능 범죄를 해결하는 본격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낮은 탓이 가장 큽니다. 트릭부터가 대체로 별볼일 없습니다. 변장, 자작극 트릭이 너무 많더라고요.수십편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아이디어가 고갈된게 아닌가 싶어요.
이야기 전개도 부실해서 대부분의 작품에서 동기가 헐겁습니다. 불륜과 질투가 너무 많아요. 고작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범죄를 저지르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동기가 설득력이 떨어지니 불가능 범죄'를 일으킬 타당성도 결여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대부분 수록작들이 평균 이하 수준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 시리즈도 이젠 더 읽을 일이 없겠습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묘지 소풍의 수수께끼>>
혼자 걸어가던 여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리에서 떨어진 뒤 사망한 사건이 등장하는데, 결론은 변장 트릭이었습니다. 피해자로 변장한 여자가 피해자인 척 물에 뛰어들은게 전부에요.
트릭도 변변찮지만, 이후 전개 과정도 문제입니다. 우선 증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옷을 갈아입는 여자를 보았다는 (변장 때문에) 술주정뱅이 묘지 관리인의 증언으로 유죄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거에요. 샘 호손이 직접 피해자 - 로 변장한 일당 - 가 샌드위치를 먹는걸 보았지만 피해자는 위장이 비어 있었다는 것도 증거로는 약합니다. 물에 빠진 뒤 토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단편집의 단점을 모조리 갖추고 있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유아 보호실의 수수께끼>>
밀실이었던 극장 내 유아 보호실에서 시장이 총에 맞은 사건인데, 트릭은 흔해빠진 자작극이라 특별한게 없을 뿐더러 동기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시장이 밀주 유통을 한다는걸 들켜서 협박범을 살해했다는건 말이 됩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총에 맞는 불가능 범죄로 자작극을 벌이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런 자작극을 벌인다고 협박범을 죽인 사건이 미해결이 될 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죽은 사람이 시장을 쐈을리 없으니까요. 보안관의 수사만 시작될 뿐이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치명적인 불꽃놀이의 수수께끼>>
독립기념일, 폭죽놀이를 즐기려던 정비소 형제가 불을 붙인건 다이너마이트였다. 형은 즉사하고 동생은 화상을 입었다. 밀봉된 포장에서 꺼낸 폭죽을 어떻게 다이너마이트로 바꿔칠 수 있었을까?

범인은 동생이었습니다. 포장에서 폭죽을 꺼낸건 동생밖에 없으니, 형이 자살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범인은 너무 뻔하지요. 마침 동생이 불을 붙이는데 계속 실패했다는 설명까지 있으니까요. 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렌즈 보안관의 추리는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정부 요원으로 가방한 밀주업자가 폭죽을 검사하는 척 하면서 바꿔치기 했다는데, 동일한 포장의 폭죽 상자를 미리 준비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보안관으로는 너무 수준 미달의 인물이 아닌가 싶네요. 
여러모로 평균 이하 수준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미완성 그림의 수수께끼>>
밀실인 아틀리에에서 테스 웨인라이트가 살해되었다. 가정부 밥콕 부인은 그녀가 라디오를 켜고, 전화를 받았다는고 말했는데.....

문을 닫고 마지막에 나온건 남편이고, 가정부가 들은건 오로지 '소리' 뿐이니 범인이 누구인지는 자명합니다. 라디오를 밖에서 켜고, 전화벨이 한 번 울리고 끊기게 만든 것도 별로 어려운 트릭으로 보이지 않았고요. 전화는 건 사람이 바로 끊으면 되잖아요? 읽으면서 라디오를 켠 건 발명왕이라는 마을 주민 대령의 발명품 덕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보다도 간단한 트릭 - 창고에서 퓨즈를 연결 - 을 사용했더군요.

그래도 테스가 전화를 받았다면 라디오를 끄지 않았을리 없다 - 나중에 밥콕 부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끄러워서 라디오를 끈것처럼 - 는 디테일 만큼은 좋았고, 샘 호손이 환자들에게 집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등 전작들보다 눈여겨 볼 부분은 조금 있기는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밀봉된 병의 수수께끼>>
금주법이 폐지되는 달 축배를 들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크레슨 시장이 독을 마시고 죽었다. 배달된 한 상자의 셰리주 중 시장이 딴 한 병에만 청산가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술을 배달했던 주류업자 얀시도 총에 맞아 살해되는데......

금주법 폐지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하여, 마을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인다는 묘사는 재미있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 하지요.
술 상자를 진작에 배달받았지만, 사건 당일 배달된 것 처럼 연극을 벌였다는 트릭도 수긍할만 했습니다. '파티'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라는건 시대 배경을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있었어요. 샘 호손도 죽이려 했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황당한 수준입니다. 시장 등 별장에서 시간을 보낸 멤버들이 마약중독자들이었다는 설정, 마약에 중독돠어 자살한 남편의 복수였다는 동기 모두가 어이를 상실케했거든요.
사람이 하품을 한 정도로 마약에 중독되었다고 추리한 샘 호손의 추리도 어거지였고, 밀봉된 병에 주사기로 독을 넣었다는 트릭도 별로였어요. 시장이 무슨 병을 잡을지 알고 있어서 독을 한 병에만 넣을 수 있었다는 것 역시 억지스러웠습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았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사라진 곡예사의 수수께끼>>
서커스단에서 공중 곡예 중이던 곡예사 한 명이 그물로 떨어지는 곡예를 한 뒤, 다시 기어올라갔지만 사라져버렸다. 그 뒤 서커스단 천막이 설치된 목장 주의 집에서 살해된채로 발견되는데....

곡예사가 사라진건 마캐팅으로, 분홍색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서 올라가는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트릭은 그럴싸했지만, 곡예사가 올라가기 전에 광대 무리가 몰려들었던걸 - 그래서 사라진 곡예사가 광대로 변장하고 빠져나갔다는걸 - 설명하지 않아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질투로 보이는 살해동기도 대충 얼버무리고 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담뱃잎 건조실의 수수께끼>>
제닝스 담배 회사 사장 재스퍼 제닝스의 아내 세라가 일꾼 로이 핸슨과 불륜관계라는 괴편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재스퍼는 담배 건조실에서 날카로운 칼에 목이 베어 살해당했다. 주변에 있었던 두 명 - 프레스콧과 핸슨 - 은 모두 범행을 부인했고, 둘에게서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제스퍼를 살해했을까?

읽으면서 <<마스터 키튼>>에 나왔던, 주변 사물을 흉기로 쓰는 킬러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담뱃잎을 흉기로 쓴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읽어보니, 흉기인 면도칼을 풍선에 실어서 건조실의 천장에 숨겼다는 장치 트릭이 사용되었던데, <<마스터 키튼>>이 더 괜찮지 않았나 싶습니다. 트릭이 애들 장난같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조사에 나서면 금방 드러날 트릭이기도 하고요.
어차피 범인은 함께 있었던 두 명 중 한 명인데, 가장 유력한 용의자 핸슨이 왜 이 때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눈에 갇힌 오두막의 수수께끼>>
새 차를 타고 에이프릴과 메인주로 드라이브 여행을 떠난 샘 호손은 하이킹 도중 오두막에 혼자 살고 있던 쇼터의 시체를 발견했다. 쇼터는 어떤 발자국도 없는 눈밭으로 둘러싸인 집 안에서 칼에 찔려 죽은 상태였다.

밀실 살인 사건인데 전화 설치 기사로 변장한 범인이 철제 케이블을 설치한 뒤, 케이블을 타고 집 안으로 이동했다는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어요. 행글라이더를 타고 날아들어왔다 수준입니다. 흉기를 두고가는걸 잊어서 자살로 위장하는데 실패했다는 상황도 황당했고요. 무슨 장난같은 느낌이에요.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도 아니고.... 중간에 앙드레가 범인일거라며 샘 호손이 펼치는 추리도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고요.

에이프릴이 휴양소 주인 앙드레와 결혼한다는 결말은 뜻밖이었고, 채광창에 햇빛이 들어온걸 단서로 - 눈이 쌓여있지 않았을 리 없다 - 그곳으로 범인이 들어왔을 것이라 여겨 추리를 시작하는건 좋았지만 그 외에는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천둥 방의 수수께끼>>
결혼한 에이프릴의 후임으로 고용된 간호사 메이는 이상할 정도로 천둥을 무서워했다. 어린 시절 천둥방(뉴잉글랜드의 오래된 가옥에 있는, 폭풍이 칠 때 가족이 대피하는 방)에 숨었던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폭풍이 찾아온 날, 행크 포스터가 살해당했는데, 그 아내는 범인이 메이라고 주장했다. 마침 메이는 폭풍이 칠 때진료실 안에서 혼자 쉬고 있었다. 샘 호손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건 단지 15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행크스라는 아내 브루나의 주장은 너무나 확고했고, 알고보니 메이의 부모님도 천둥방에서 행크처럼 망치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범인은 메이의 쌍둥이 남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풀어가는 전개가 말장난에 가깝습니다. 샘 호손은 메이에게 여동생이 있는지 물어보는데, 다들 없다고 하거든요. '남동생'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동생이 정신이상이라 살인을 저질렀다는 동기도 영 별로였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검은 로드스터의 수수께끼>>
노스몬트 은행에 강도들이 나타났다. 재빠른 대처로 강도들은 노스몬트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샘 호손은 처음에 중고차 판매원 행크가 범인이라고 추리했습니다. 하지만 은행원들이 작당했던 자작극이었다는게 진상이에요. 은행원들이 감금되었던 방이 뒷 골목과 통해있었던게 핵심이고요.

다른 수록작들보다는 비교적 추리적으로 괜찮고, 동기도 합리이었습니다 (상대적입니다). 샘 호손이 한 번 실패한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은행강도 사건을 꾸며낸다는게 비현실적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메리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노스몬트에 남아 샘 호손의 간호사가 된다는건, 그녀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걸로 보이는데 두고 봐야겠네요.

<<두 출생 모반의 수수께끼>>
병원에 식붕독을 일으킨 스트리터가 입원했다. 샘은 메리와 함께 식중독의 원인을 찾고자 매그놀리아 식당을 방문했다가 누군가 망치로 복화술사 인형을 망가트린 현장을 보았다. 마침 그날, 병원에서는 누군가 스트리터를 살해하려 했고, 다음날에는 상근 간호사 중 한 명인 애나가 잠긴 수술실에서 살해당한채로 발견되었다. 수술실 열쇠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 의사 엔들와이즈만 갖고 있었다.

스트리터가 벌인 자작극이라는건데, 자작극 트릭은 수록작에서 너무 많이 나와서 식상했어요. 시체 은닉은 보안관도 어려운 일이라 말할 정도로 비현실적 - 이동거리가 너무 멀다 - 인데다가 양 쪽으로 열리는 미닫이 문 잠금 장치에 대란 트릭은 글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정하게 정보가 제공되지 못합니다. 알고보니 애나와 스트리터는 이부형제였고 큰 땅을 상속받을 예정이었다는 동기도 억지로 가져다 붙인 느낌이고요. 무엇보다도 불가능한 상황을 억지로 만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빈사의 환자 수수께끼>>
샘 호손이 처방한 디기탈리스를 먹은 노부인이 사망했다. 샘이 실수를 했거나, 노부인을 안락사시켰을거라 생각한 의료협회는 의료 면허 박탈까지 1주일의 기한을 주었다.
샘 호손이 보는 앞에서 노부인은 어떻게 시안화합물을 먹였을까? 그리고 곧 죽을 사람이었는데 누가, 왜?


사탕이라는 증거가 비교적 초반에 제시된다는 점에서는 공정했지만, 그 외에는 딱히 언급할 부분이 없네요. 노부인이 유언장을 바꾸려고 해서 두려워했던 조카딸의 범행이라는 것도 진부했고요. 마을에서는 추리하는 의사로 유명한 샘 호손을 불러서 독살 과정을 지켜보게 만든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농가 요새의 수수께끼>>
농장을 요새처럼 꾸민 루디 프랑크푸르트가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잠긴 정문, 2미터 높이의 전류 울타리, 파수견, 게다가 집은 모든 문과 창문이 다 잠겨 있었다.

베를린 올림픽에 높이뛰기 선수로 출전을 준비하는 빌 크롤리가 범인이 아닐까? 는 추리로 전개되다가, 배달부 폴이 진범이라는게 밝혀지는 구성입니다. 추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이 꽤 합리적으로 사용된 덕분입니다. 폴은 루디를 죽이고 트럭에 실어 놓았었습니다. 그리고 샘 호손과 방문했을 때 집 안애 시체를 유기했던 것이지요. 루디가 배달을 지시한 물건들이 이미 집 안에 있었고, 개들이 폴의 트럭에서 짖어대었다는 등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그러나 동기는 영 와닿지 못합니다. 질투 때문에 빌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다? 지나치게 억지스럽습니다. 가문의 원수 정도는 되어야 저지를만한 범행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목적에 맞는 범행으로 보이지도 않아요. 그냥 묘한 불가능 범죄로 보일 뿐이니까요. 빌이 함정에 빠질 이유도 없습니다. 이 정도 트릭을 고안해 낼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면, 더 직접적으로 빌에게 죄를 물을만한 상황 - 최소한 빌의 운동화같은 증거라도 현장에 두는 등 - 을 꾸며냈어야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저주받은 티피의 수수께끼>>
188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카우보이 일을 했다는 벤 스노가 샘 호손을 찾아와 오래전 수 종족과 만났을 때 있었던 불가능 범죄를 이야기해 주었다.
일족의 추장이 머무는 티피에 저주가 걸려서 추장의 아내, 아들, 손자, 그리고 벤 스노가 보는 앞에서 또 다른 아들 흐르는 구름마저 죽고 말았다는 사건이었다.


진상은 티피에 사용되었던 협죽도 기둥 탓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겁니다. 흐르는 구름은 아내의 복수로 독살당했고요.
스쳐 지나가는 말로 '협죽도'라는 단어를 꺼낸다던가, 흐르는 구름의 아들에 대한 설명 등 주로 '말'로 단서가 제공되는데, 그렇게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늙은 추장 달리는 말이 죽지 않은건 단지 튼튼했다는 설명도 별로였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파란 자전거의 수수께끼>>
차도 트럭도 아무것도 안 지나간 길에서, 앞질러 가서 모퉁이를 돌은 앤젤라가 사라져버렸다. 현장에는 그녀가 타던 자전거만 남아있었다.

앤젤라가 숨을 수 있었던 옥수수밭의 존재를 초반에 잘 설명하지 않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남자친구 필 브륵스와 도피하려고 했다는 동기도 영 아니었고요. 그냥 도망가는 것과, 이런 실종 사건을 떠들썩하게 일으키는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어차피 경찰이 나서서 찾게 될 테니까요. 공들여 연극을 벌일 이유는 없어요. 차라리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가는게 나았을 겁니다.
필 브룩스의 말 실수가 단서가 되는 전개도 식상했으며, 브룩스가 앤젤라의 친구 주디마저 살해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친구라면 잘 설득해서 숨어있게 해 달라고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작 중 렌즈 보안관도 브룩스가 주디를 살해했다는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설득력없는 범행이었어요.
마지막 이야기라는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의 졸작이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4/08/23

괴물이라 불린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 김지선 : 별점 1.5점

괴물이라 불린 남자 - 4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머스 데커는 미해결 사건을 다루는 FBI 수사팀의 일원이 되었다. 팀의 첫 사건은 데커가 주목한, 고등학교 미식축구 스타 출신 사형수 마스 사건이었다. 멜빈 마스는 20여년 전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집행 당일에 찰스 몽고메리라는 사형수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주장하여 형 집행이 정지되었다.
데커와 수사팀은 몽고메리가 돈을 받고 위증을 했다는 증거를 찾아냈지만, 몽고메리는 사형 집행을 당했고 그의 아내도 폭발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데커는 마스의 부모 사진이 없는 것, 마스가 전국구 스타가 된 뒤 사건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하여 마스의 부모가 증인 보호 프로그램 대상자와 같이 의도적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마스의 아버지 로이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는걸 밝혀내는데...


특이한 능력을 지닌 수사관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수사하다가, 사건 배후에 거대한 국가적인 음모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챈다는 흔해빠진 스릴러.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이어지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 수사관으로 과잉 기억 증후군에 시달리는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입니다.

멜빈 마스 시점에서의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사형 집행 당일, 누군가 자기가 진범이라고 고백해서 살아났는데 그 누군가가 알고보니 진범이 아니었다면, 나는 다시 사형수가 된다는 뜻이니 매 순간 순간이 긴장될 수 밖에 없지요. 20년이나 버려두었다가 사형 집행 당일이 되어서야 그를 구해준 '누군가'의 의도도 흥미를 자아냅니다. 구해줄거면 더 빨리 구해주던가, 아니면 아예 죽게 내버려두는게 맞을텐데 왜 하필 이 시점에?
마스의 어머니가 말기 뇌종양이어서, 남편이 그녀가 편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준 뒤 살해당한 걸로 위장했다는 진상도 괜찮습니다. 원래 아버지 로이는 소싯적에 흑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테러에 가담했다가, 보험삼아 테러 증거물을 훔치고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스가 슈퍼스타가 되어 행적이 노출되자 다시 죽은척 몸을 숨기게 된 겁니다. 이는 마스의 부모님이 전국방송에 등장했던게 사건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추리와도 연결되며, 숨어 지내고 싶었지만 아들의 출세가 발목을 잡고 만 아이러니한 상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스 이야기 외 다른 모든 부분은 모두 기대 이하입니다. 너무 엉망이라서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우선 사건부터 설득력이 없어요. 마스에게 누명을 씌운게 아버지 로이였다는 것부터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약 조직의 성노리개였던 여자를 사랑해서 탈출했는데, 그 여자가 마약 조직 보스의 아이를 임신했었고 그게 마스였다! 더러운 놈에게 복수를 직접 하지 못했으니 그 자식에게 복수하겠다!는 동기인데 황당하기가 그지 없어요. 이걸 추리해내는건 더더욱 말도 안되니, 추리물로 볼 여지도 없습니다. 등장하는 단서라고는 마스의 어머니가 스페인어를 잘했다던가, 집에 은제품이 있었다(조직의 물건을 훔쳐서 나온것)는 정도인데, 이걸로는 턱도 없지요.
마스에게 최면을 걸어 들은 '초차'라는 말을 근거로 로이가 죽은 척 몸을 숨겼다고 추리한 것도 말이 안됩니다. '초차'는 콜롬비아 칼리 지방의 방언으로는 '주머니쥐'이고 주머니쥐는 죽은척한다는 이유인데, 근거도 빈약하고 억지로 가져다붙인 느낌만 전해줍니다. '창녀'라는 명확한 일반 명사가 있는 단어에 전 세계에서 딱 한 지방에서만 쓰는 방언으로 해석한다는건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20년만에 구해준 이유도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의 '아이는 구해달라'는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처구니가 없지요. 병주고 약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과거 마스 사건에서 마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사건 당일, 모텔 직원의 증언으로(나중에 위증일 수 있다는게 밝혀지지만) 마스가 집에 들러 범행을 저지를 시간이 있었다는건 증명됩니다. 그런데 마스가 사건을 저지를 동기는 제대로 증명되지 못합니다. 가정 불화가 특별히 언급되지도 않았는데, 얼마가 될 지도 모르는 미래의 계약금 일부 때문에 부모를 죽인다는게 그렇게 설득력있는 동기인가요? 누가 보아도 마스는 수천만불의 연봉을 받을 슈퍼스타가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어머니 루신다의 혈흔이 마스의 차에 남아있다는건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이전에 코피를 흘리거나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변호사만 잘 선임했어도 마스가 사형선고를 받을 일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로이가 마스에게 누명을 씌우는게 그렇게 철저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야기도 치밀함, 정교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지게 만듭니다.

데커가 NFL에서 뛰었던 미식축구 선수였고, 오래전 시합에서 마스와 겨루었다는 과거가 마스와 연결되어 사건이 시작되고, 결국 둘이 친분을 맺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데커의 독특한 특기(?)인 과잉 기억 증후군이 이 작품에서 하는 역할은 전무하다는 점에서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정체성을 흐립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팀을 꾸리지만 팀원들이 하는 역할도 없어요. 심지어 동료 대븐포트는 비교적 초반에 납치되어 멤버에서 빠지는데,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에요. 다른 멤버들도 별다르지 않습니다.
동료로 여겼던 마스의 변호사 올리버가 알고보니 과거 테러를 저질렀던 삼총사의 밀정이었다는 반전도 별로입니다. 올리버가 주장하던 마스를 위해 제기했던 소송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삼총사 중 한 명인 매클렐런과 함께 찍은 사진같은 억지 증거는 불필요했습니다.
로이가 소싯적 손재주(?)가 좋아서 폭탄을 만들어 테러에 가담했지만, 70대가 된 현재에도 신출귀몰하며 FBI와 거물 킬러들을 엿먹이는 전문가가 된 경력도 불분명하고, 죽기 전 데커에게 지갑을 남겨 도서관증 --> 대출한 책 --> 금고 열쇠로 이끄는 과정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과거 삼총사가 저질렀던 테러 증거가 황당할 정도로 상세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요. 뭐 하나 제대로 와 닿는게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초반부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질낮은 흔해빠진 헐리우드 스릴러로 마무리됩니다. 인기 요소는 잔뜩 집어 넣었지만 설득력도 낮고 정교함도 떨어지는 탓입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리즈가 이 뒤로도 몇 편 더 이어지는 듯 한데, 더 읽을일은 없겠네요.

2011/09/10

브릭 (Brick) - 리안 존슨 : 별점 3.5점

브랜든에게 전 여자친구 에밀리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브랜든은 그녀를 돕는데 실패했고, 그녀의 시체만 발견하게 되었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로 결심한 브랜든은 에밀리의 최근 동향을 확인했다. 그리고 에밀리가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학교 최상류층 브래디쉬와 로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데...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정통 미국식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스릴러물입니다. 예상보다도 너무나 완벽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일단 주인공 브랜든부터가 그러합니다. 샘 스페이드나 필립 말로가 현대 고등학교에 환생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거든요.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사교성, 몸으로 부딪혀 성과를 내는 행동력, 힘의 균형을 잘 이용하여 줄타기하는 솜씨 등이 딱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 그 자체입니다. "500일의 썸머"에서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그 외에도 독특한 이미지의 마약 조직 보스, 힘만 잘 쓰는 어깨 캐릭터, 전형적인 팜므파탈 등의 친숙한 캐릭터들도 하드보일드스럽게 적절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야기 역시 전형적인 하드보일드입니다.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되어 주인공이 여러 세력 간의 전쟁에 휩쓸려 들어가지만, 복잡한 관계를 하나로 정리하며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전개를 보여주니까요.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앞뒤가 딱 들어맞고 복선과 단서들이 적절히 제공된다는 점, 그리고 하드보일드의 단점인 '운에 의지하는 과정이 많다'는 점도 똑같습니다.

때문에 "요새 누구랑 점심 먹는 줄 알아?" "점심은 어려워..." 같은 고등학생다운 대사 외에는, 딱히 고등학교가 무대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독특한 세계관은 좋았지만,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했어요. 이왕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했다면, 살인과 마약 밀매 대신 조금 더 일상적인 범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사물함을 터는 도둑으로 몰린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이 학교 내 조직 간 암투에 뛰어든다거나, 조직적인 컨닝으로 내신 등급에 영향을 받게 된 여자친구를 위해 사건 해결에 나선다거나... 이게 더 괜찮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하드보일드 영화로 보기 드문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스토리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네요.

2025/09/12

사라진 탄환 (Balle perdue) (2022) - 기욤 피에레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노는 의동생 캉탱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이 개조한 클리오 차량을 이용해 상점을 털려다 붙잡혀 구속된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차량 개조 실력을 눈여겨본 경찰 샤라스가 그를 팀에 영입한다. 더 이상 마약 밀매 조직의 개조 차량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기대대로 샤라스의 팀은 계속해서 성과를 냈지만, 팀원 중 한 명인 야레스키가 마약 일부를 빼돌리는 것을 샤라스가 눈치채게 된다. 결국 야레스키는 샤라스를 살해하고, 그 죄를 리노에게 뒤집어씌운다. 도주 중인 리노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야레스키의 범행을 증명할 유일한 단서인 탄환이 박혀 있는 샤라스의 차, 르노21을 찾아 나선다.  

프랑스의 장편 액션 스릴러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누명을 쓴 주인공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유일한 증거물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걸 막으려는 진범과 충돌한다는 이야기로 정통 헐리우드 팝콘 무비 문법에 충실합니다. 별다른 복선이나 곁가지는 없고, 굉장히 단순하고 간결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이 영화만의 차이점이 있는데 그건 주인공 리노가 차량 정비사라는 설정입니다. 리노가 야레스키의 마지막 포위망을 뚫기 위해 1980년대 출시된 소형차 르노 21을 개조하고 결국 돌파하는 장면에서 이 설정은 잘 활용됩니다. 르노 21 앞에 거대한 구조물을 덧붙이는 식이었는데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위 포스터의 저 구조물인데, 포스터를 미리 안 봐서 다행이입니다). 그리고 이 르노21의 존재감도 발군입니다. 제목이기도 한 핵심 증거인 '사라진 탄환'이 바로 이 차량 안에 존재할 뿐더러, 이 차량을 경찰에게 전해주기 위해 직접 개조하여 몰고간다는 점 때문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으로 느껴질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먼저 느낀건 부족한 액션의 규모입니다. 리노가 경찰서에서 탈출하거나, 야레스키의 추격을 피해 도주하는 장면들은 리얼리티가 있고 처절하지만, 박진감과 시원시원함에서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리노가 차량 정비사니 별다른 액션을 펼치지 못하는건 당연한데, 최근 영화들은 전직 특수 부대원이나 전직 킬러가 워낙 많이 등장하다보니 심심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습니다. 솔직히 차량 정비를 배우기 전에 알제리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이다!는 설정 정도는 나와줄 줄 알았습니다.
절정부에서 벌어지는 카 체이스도 실망스럽습니다. 도심부에서 야레스키와의 일대일 추격전이 살짝 펼쳐지는 정도라 차량 수나 공간 활용, 폭발 등에서 헐리우드 영화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스케일 면에서 부족하니, 최소한 더 길게, 그리고 스케일을 아이디어 - 르노 21을 정비한 식으로 - 로 극복했어야 했습니다.

주인공 리노의 매력이나 동기 설명도 다소 부족합니다. 샤라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도주하며 진범을 쫓는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레스키가 리노에게 회유를 시도할 때 왜 리노가 끝까지 버텼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대단한 은혜를 받은걸로 생각되지는 않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마지막에서 야레스키가 도주에 성공하는데, 이를 쥘리아가 방조한 이유 역시 전혀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간결하고 집중력 있는 서사와 자동차라는 소재는 효과는 좋지만 강렬한 타격감과 대규모 스펙터클 측면에서는 아쉽습니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절하지만,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속편이 있던데, 더 볼 일은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