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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1

책 정리하는 법 - 조경국 : 별점 2점

책 정리하는 법 - 4점
조경국 지음/유유

저는 독서가 취미인 애서가입니다. 그 탓에 쌓이는 책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 계획 때문에 최근에는 고민이 더욱 늘었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인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제만 보면 딱 저의 고민을 해결해 줄, 그런 책이라 생각되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완벽하게 기대를 배신당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요. 저자가 이 책의 독자가 누구인지를 망각한 탓입니다. 머리말 서두에서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분명 자신만의 특별한 책 정리법이 있을 겁니다."라고 쓴 걸 보면, 저자도 이 책은 어느 정도 책을 소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독자라는걸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으로서 저자만의 특별한 노하우 공유를 기대했고요.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정말이지 '초보자' 수준의 지식을 설명하고 나열하는데 그칠 뿐입니다!

그나마 제목과 연결고리를 가질만한 내용은 4부인 "서가의 다양한 형태들" 정도입니다. 직접 만드는게 최고라며 사이즈 등 여러가지 팁을 소개해 주고 경량랙 등 기성품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 덕분입니다.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이라며 추천하는 이케아 빌리 시리즈도 눈여겨 볼 만 하더군요. 다음에 이사갈 때 저도 한 번 고려해 봐야겠다 싶을 정도로요.
7부인 "책을 싸는 이유와 노하우"에서 맥도날드의 포장용 봉투가 완벽한 책싸개라고 알려주는 부분도 실용적인 팁이라 인상적이었어요. 튼튼하기도 하고 가벼우면서도 색깔도 무난하니 괜찮다는 이유인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으로 애용할 듯?

하지만 괜찮은 팁과 노하우 공유는 이 정도에 그칩니다. 다른 내용들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 수준에는 걸맞지 않는 초심자용 내용이 많아요. 예를 들어 4부인 "책 정리하는 법"은 제목만 놓고 보면 책의 핵심인데, 책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자신만의 정리법이 있을테고 저 역시 그러한만큼 딱히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어요. 그냥 헨리 페트로스키의 방식, 십진분류법, 분야별 분류, 작가별 정리, 출판사별 정리 등 다양한 방식만 나열될 뿐입니다. 책 목록 정리법도 '비블리'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추천하며 마무리하는데 이 역시 새로운 내용도 아니며 딱히 땡기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에 책을 정리하는 최후의 방법이라며 소개되는 다양한 책 처분법 역시 새로운 내용은 전무합니다. 기증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팔거나 헌책방에 파는 등의 방법이 소개되는데 책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는 애서가라면 당연히, 누구나 알 내용이에요.

저자 본인 기준에 맞추어져 있어서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완벽한 서재의 조건 중 180*80 센티미터 크기의 책상이 필요하다는 게 대표적입니다. 서재는 책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허나 그런 것 치고는 책상이 너무 크잖아요! 차라리 이 책에도 등장하는 일본의 유명 애서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방 안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의자 주변의 반경 1미터 남짓이면 충분하다"는 완벽한 서재 쪽이 더 공감갑니다. 공간을 좁게 구성하는게 책을 보관하는 기능에는 훨씬 유용한게 당연하니까요. 이어지는 자신의 책상, 독서대, 스탠드, 커튼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모두 저자의 기준일 뿐이고요.
제목과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은 것도 문제인데 2부인 "남의 서재 엿보기"는 저자가 과거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의 서재를 찾아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어 쓴 내용으로 책 정리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저자의 헌책방을 열기까지의 과정도 재미는 있지만 단순한 개인사 에세이라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어요.

마지막으로 도서출판 유유의 책 답게 내용과 분량에 비하면 높은 가격도 매력을 떨어트립니다. 저는 전자책으로 약 7,000여원에 구입했는데 종이책은 200쪽에 불과한 분량임에도 정가가 무려 12,000원입니다! 도판도 모두 흑백에다가 특별한 일러스트가 사용되지도 않았고, 양장본도 아닌데 이 가격은 정말 미친게 아닌가 싶어요. 종이책은 모르겠지만 전자책은 1/3 분량이 유유 출판사 책 소개에 할애되어 있는데 이건 또 뭔가 싶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쉽게 읽힌다는 점, 그리고 드물지만 유용한 팁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가격과 전체적인 수준을 고려한다면 권해드릴만한 책은 아닙니다. 사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저자의 머릿글에 모두 나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이렇게 길게 쓸 필요도 없었어요. 책 정리법의 핵심은 "책 욕심을 버리는 것" 이며, 그렇지 못하면 내가 가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내 정리법은 공간을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서가별로 여러가지 기준을 세워서 정리한다... 는 짤막한 글인데 이게 정말 전부입니다. 이 책 본문에 소개되는 실제 책 정리에 대한 디테일은 그만큼 별 볼일이 없습니다.

2025/12/14

포즈랑의 투자 이야기 - 포즈랑 : 별점 2점

전업 투자자로 활동하며, 13년 동안 70배 넘는 수익을 거두었다는 포즈랑 님의 생생한 투자 경험담과 실전 노하우를 담은 재테크 서적입니다.
저자가 실제로 시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실패와 성공 사례, 그 과정에서 깨달은 원칙과 노하우를 차분하게 기록하여 알려줍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가치 투자'는 상승 가능성이 큰 기업을 사전에 분석해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방법으로, 이를 위해 투자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와 투자 요령, 그리고 실제 사례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습니다. 

저자의 몇몇 원칙은 참고할 만 합니다. 종목을 결정하면 포트폴리오 내에서 얼마의 비중을 채울지를 정하고, 주가와 상관없이 다음 날 장 마감 전까지 절반을 매수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이후 주가가 오르면 속도 조절, 떨어지면 더 빨리 채우고, 다 채웠는데도 더 떨어진다면 아이디어가 유효하다면 비중을 더 늘린다는 식입니다. 단순한 듯 보이지만, 종목을 고를 때부터 확신을 가지고 판단해야 가능한 전략이지요. 저도 지정가를 낮게 잡아서 매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확신이 있다면 이렇게 매수해 봐야겠어요.

매도 시점에 대한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한 수익 구간까지는 기다리고 버틴다는게 원칙인데, 이 역시 종목을 골랐을 때 수익에 대한 목표도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이 외에도 현실적인 투자 조언이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PBR은 보지 말고 PER만 간단하게 보라, 장기적으로 상승 여력이 크다고 판단한 종목은 비중을 10% 이내로 묵혀두어라, 어느 정도 성과가 나면 일부 수익을 실현해 다른 종목으로 분산하라, 인생이 바뀔 만큼 주식을 많이 사면 위험하다, 주가가 떨어질 때 추가 매수를 할 수 없는 종목이라면 애초에 매수하지 말라, 시장이 모두 하락할 땐 함께 빠지지만 상승장은 각자 오른다 등 실전에 적용할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유튜브 주식 방송 좀 그만 보고 공부의 양을 늘려라”는 말은 완전히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펀드매니저와 개인 투자자의 차이를 짚으며, 개인은 잘못된 결정 몇 번으로 자산을 잃고 나락으로 갈 수 있으므로 추천이나 루머에 휩쓸리지 말고 반드시 본인이 정보를 확인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도 투자 초보자에게는 인상 깊을 조언이고요. 그 외에도 심리를 다스리는 법 등 유용한 조언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핵심은 저자가 실제로 가치 투자를 할 때 기업을 분석하고 발표한 방식입니다. 재무제표, 10년간 손익과 최근 분기 실적, 사업 모델, 투자 아이디어, 리스크, 결론 순으로 정리된 자료의 목차는 실제 발표 예시와 함께 소개되어,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최소한 이 정도는 공부해야 진짜 ‘투자’라고 할 수 있다는 말도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선 이 책은 전업 투자자 기준에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유용하지만, 일반 직장인 투자자가 그대로 따라 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자도 분명히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하면 일반 직장인은 차라리 액티브 ETF 같은 상품을 이용하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전체의 구성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목차와 편집 방식이 마치 개인 투자 일지를 그대로 옮긴 듯한 인상이어서, 읽는 동안 조금 산만하게 느껴졌습니다. 중요한 내용들이 중간중간 섞여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아서, 정보 전달력 측면에서도 아쉽고요.

생생한 투자 기록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도 있었지만, 재테크 서적으로서는 유용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자의 투자 접근 방식과 일반 투자자로서의 입장 차이가 큰 탓입니다. 직접 투자를 고민하고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8/01/27

궁극의 문구 -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 김보화 : 별점 3점

궁극의 문구 - 6점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지음, 김보화 옮김/벤치워머스

최근 문구 관련 책을 꽤 자주 읽는군요. 이 책은 공대 출신 디자이너로 1999년 "TV 챔피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식 '문구왕' 에 등극한 이후, 문구왕으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저자의 문구 리뷰집입니다. 저자의 화려한 프로필은 블로그를 참고하세요.

책은 130여 페이지 정도의 얇은 분량으로, 문구왕이 직접 써 보았던 정말로 괜찮은 문구 68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당 문구의 장점과 가격 등 상세 정보가 소개되어 정보로서의 가치는 아주 높고요(이후 8종의 추가 문구까지 더하면 76종!). 직접 그린 일러스트도 꼼꼼해서 볼 만 합니다.
짤막한 리뷰지만 곳곳에서 문구왕 다운 디테일도 돋보입니다. 톰보우의 유성 다색 볼펜 리포터 4 소개에서 '4색 노크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아이디어를 콕 짚어 이야기하는 식으로요. 이렇게 색별로 다른 형태를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구현하는건 앞으로 정말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몇몇 칼럼들, 그리고 문구왕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부분도 많이 공감되었고요.

당연히 몇몇 제품은 리뷰 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인데,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제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 펜텔 멀티 8. 8종의 심을 가진 색연필 샤프펜슬 : 3,800엔(국내 판매가 약 34,000원)이라는 가격은 좀 비싸지만 딸아이 필통에 넣어주고 싶네요. 
  • 펜텔 사인펜 : 이전에 써 본 적 있습니다. 별 감흥없이 사용했었는데 문구왕 왈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는, 이 바닥의 컵누들, 포카리스웨트, 오로나민C라고 하는군요. 1963년에 발표된 세계 최초의 휴대용 수성펜으로, 지금까지 디자인을 유지하고 발매되는 원조라는데, 이런 역사적 의미만으로도 다시 구입하고 싶어집니다.
  • PIROT 캡리스블랙 : 펜촉이 클립 쪽에 달려 주머니에 꽂고 다녀도 잉크가 흐르지 않는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2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 단종되었다는 현실의 벽은 높지만 실물을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 몰스킨 노트, TOMBOW MONO 지우개, A-Type 커터칼, D형 디자인 나이프, 3M 스프레이 풀 시리즈, 3M 테이프들, 국내에서는 '날크립'으로 알려진 OHTO 슈퍼 그립 등 친숙한 문구 소개도 아주 반가왔습니다.

그러나 몇몇 리뷰는 지나칠 정도로 '오덕' 스럽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크게 "쓰다", "지우다", "자르다", "붙이다", "엮다", "재다", "정리하다", "그 외" 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 중 "쓰다"와 "지우다" 외 다른 분류 속 제품 들은 일반 가정에서 일반인이 쓰기에는 좀 과하다 싶은 제품들이 제법 되는 탓입니다. 테이프 커터, 게이지 펀치, 날짜 스탬프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제품이 제법 많은 점도 아쉬웠어요. 설명만 읽어도 몇몇 제품은 소장 의욕이 불타오르는데 구할 방법이 없네요. 문구왕의 쇼핑몰에서 국내 배송도 지원해 주면 좋겠지만 힘들겠지요.

하지만 단점 보다는 재미, 가치가 워낙 뛰어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문구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이렇게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쓴 리뷰집은 대체로 한 번 읽어볼 만 한 것 같습니다. 전문가의 노하우를 저렴하게 훔쳐(?)올 수 있으니까요.
물론 원하는 정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블로그, SNS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떤 정보가 진짜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 과잉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기에, 지금은 이렇게 진짜배기 전문가가 공인한 정보의 가치가 더욱 높아 보입니다.

2020/12/27

문구상식 - 와다 데쓰야 / 고정아 : 별점 2점

문구상식 - 4점 와다 데쓰야 지음, 고정아 옮김/홍시

모으는 취미도 없고, 그다지 많이 쓰지도 않지만 문구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이전 "문구의 과학" 리뷰 글에서 언급했듯 친숙하지만 놀라운 창조물로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는걸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구의 과학" 외에도 "궁극의 문구", "문구의 모험" 등 문구 관련된 여러 책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문구의 대명사인 연필 관련 서적도 여러 권 읽었고요. 이 중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긴, 일종의 논픽션인 "그래, 나는 연필이다"와, 거대한 농담과 같은"연필 깎기의 정석"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문구에 대한 미시사적 접근, 혹은 특정 문구에 대한 소개나 저자의 문구 사용에 대한 노하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책도 문구에 대한 소개와 노하우를 담고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들에 비하면 재미도 없고, 내용에 대해 공감하기도 힘들었어요. 

물론 건질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다른 책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붙임쪽지'에 대해 한 단락을 할애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풀어놓는 부분이 괜찮았어요. 저도 책을 읽을 때, 읽고 나서 리뷰에 사용하기 위해 포스트잇이나 투명한 필름형 붙임쪽지를 붙여 놓는 편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저자 의견에 공감되는 점이 많기도 했고요. 저도 저자의 말대로 투명한 필름형 붙임쪽지가 왜 3색 이상 컬러로 구성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파일링' 단락도 볼 만 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저자와 같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지는 않지만 기본 개념 자체는 배워볼 만한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쌓이는 자료는 1차적으로 '즉시 분류'한 뒤, 여유가 생길 때 제대로 분류하라던가, 데이터로 저장할 경우 폴더명의 계층화와 파일명에 신경쓰라는 이야기는 충분히 업무에 적용해 봄 직 했습니다. 

소개되는 문구도 많지는 않지만, 몇 가지는 흥미가 갑니다. 첫 번째는 펜텔 오렌즈 샤프입니다. 0.2mm 두께로 경도 B나 2B로 쓰면 부드러우면서도 가늘고 섬세한 글씨를 쓸 수 있다는데 하나 구입하고 싶어졌어요. 가격도 저렴하다고 하니까요. 파카 조터 볼펜은 제가 진급 축하 선물로 받았던 거라 소개 자체가 반가왔고요. 풀과 테이프, 양면 테이프의 장점만 모았다는 '풀 테이프'는 정말 유용해 보여서, 곧 찾아서 구입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내용 외에는 다른 책에서 접했던 내용도 많고, 관심없는 분야 소개도 많은 탓에 지루했습니다. 지워지는 볼펜 프릭션, 샤프심이 회전하는 샤프 쿠루토가, 몰스킨 노트 등은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입니다. 만년필에 대한 항목은 인터넷이나 다른 책을 통해 알 수 있던 내용보다도 못했고요.
그나마도 필기구 류는 관심있는 분야라서 열심히 읽었는데, 노트와 수첩은 정말 지루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문구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이유인 '놀라움과 노력'을 느끼기 힘든 내용들인데다가, 제가 '노트 필기'를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식적인 자리는 회사에서 배포하는 무료 수첩이나 다이어리를 이용하고, 업무 시에는 주로 이면지에 스케치나 노트를 하거든요. 그나마도 그때그때 PC로 바로 옮길 뿐더러, 대부분은 이미 PC나 스마트폰으로 바로 디지털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고요. 비싸고 전문적인 노트는 필요가 없어요. 유명한 '몰스킨 노트'도 한 번 써 봤지만, 저한테는 가성비가 최악인 물건이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제품 중 리히트 랩의 '트위스트 노트'는 그래도 혁신, 참신함이 도입된 결과물로 보이기는 하는데, 이 역시 저에게는 가성비가 좋을리 없겠지요. 아울러 도판이 전무하다시피한 것도 큰 약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다른 문구 관련 서적에 비해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런 책을 좀 많이 읽은 탓이 큰데, 이제 이 쪽 분야도 당분간 좀 접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9/10/26

위작 X 미술시장 - 켄 페레니 / 이동천 : 별점 3점

위작 X 미술시장 - 6점 켄 페레니 지음, 이동천 옮김/라의눈

위작 전문가 켄 페레니의 자서전입니다. 1949년에 태어난 켄 페레니가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전성기 때 범죄자 토니 마사치오와 어울리며 예술가 톰 달리를 만나 예술에 눈을 뜨고, 판 메이헤른의 책을 읽고 위조를 시작한 뒤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수많은 위조 작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을 본인 스스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책은 기막히게 재미있습니다.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들이 압권이기 때문입니다. '허구는 실화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정말이지 맞는 말이에요. 톰 달리와 앤디 워홀, 유명 변호사 로이 콘, 유명 컬렉터 지미 리코, 피카소의 딸 팔로마 피카소 등 실존 인물들이 등장해서 팩션같은 재미도 전해주고요.게다가 켄 페레니가 저지른 수많은 범죄들은 하나, 하나가 한 편의 이야기로 충분할 정도로 기승전결이 완벽한데, 이런 범죄들이 400여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빼곡하게 실려있다는 볼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실존하는 위조범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30여년간 위조를 하면서 발전시키는 기술과 위조 분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어떤 젯소와 어떤 캔버스를 써서 어떻게 오래된 듯한 흔적을 남기는지에 대한 노하우도 아낌없이 공개해주고 있으니까요. 공개해 봤자 어차피 따라하기는 힘든 영역이긴 하지만요.
대표적인 노하우는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 때 이런저런 공통 요소들을 조합한 패턴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당연히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많아요. 그림에 흔히 보이는 작은 까만색 덩어리는 바니시의 당분에 끌린 집파리 싼 파리똥 축적물이라는게 좋은 예입니다.

초창기 켄이 영향을 받은 예술가인 톰 달리를 비롯하여 오드리 비어즐리, 제임스 엔서, 히로니뮈스 보스, 피터르 브뤼헐, 브라이스 마든, 벤자민 웨스트를 비롯하여 지미의 영향으로 현대 미국 회화를 방대하게 위조할 때 연구했던 현대 미국 화가인 캐틀린, 찰스 버드 킹, 인먼, 존 F 피토, 라파엘 필, 존 F 프랜시스, 레비 웰스 프랜시스, 제임스 E 버터스워스, 안토니오 제이콥슨, 제임스 바드, 마틴 존슨 히드, 윌리엄 아이콘 워커, 안토니오 제이콥슨, 세베린 로센, 레비 웰스 프렌티스, 그리고 FBI의 추적으로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영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위조를 시작했을 때 손 대었던 영국 수렵파 화파 화가들인 조지 스터브스, 존 우턴, 존 프레드릭 헤링 주니어. 제임스 세이무어, 존 노스트 사토리우스, 토머스 스펜서, 존 프레드릭 헤링 시니어, 존 E 퍼넬리와 영국 해양화가인 토마스 휘트콤, 찰스 브루킹, 토마스 버터스워스, 니콜라스 캔디 등 실존 유명 화가들에 대한 언급도 상세합니다.

이런 오랜 연구와 위조 과정을 거치며 가면 갈 수록 실력이 늘어서 1993년 마틴 존슨 히드의 "브라질의 보배" 위작은 경매에서 판매되었다는 기사가 '런던 타임즈'에도 실리고, 1994년 그린 최고의 위작인 히드의 "팻 보이"는 모든 전문가의 감정까지 통과하여 무려 71만 달러에 경매에서 판매되기까지 합니다. 마침내는 그가 가공의 화가를 내세워 그린 작품들, 심지어 위작가 켄 페레니의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고 하니 이 정도면 위작계의 미켈란젤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네요.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켄 페레니가 저지른 범죄 들은 위조 관련 범죄를 제외하고는 모두 절도, 사기 행각이며 별로 치밀하지도 않은 즉흥적인 범죄가 많습니다. 사회 통념과 정의를 깨트리는 파격이라는 재미로 보기에는 단순히 '돈'을 노리고 저지른 단순 범죄에 불과하고요.
켄 페레니가 '천재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거리의 잡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 역시 당연하지만 썩 개운하지 않았어요. 이런 인간이 잘난척 떠벌이는 무용담을 수백 페이지나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인생이 너무 잘 풀립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 의해 인생이 바뀌고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탓입니다. 실화라고 하니 할 말은 없지만 소설이라면 이렇게 쓰면 욕을 먹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에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위조, 위작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면 도판이 보다 충실한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번역도 오타가 많아서 불만스러워요. 

그래도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자서전이자 논픽션임에는 분명합니다. 켄 페레니가 동네 잡범이라도 최소한 위작 계에서의 위치는 인정해 줄 수 밖에 없기도 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위조와 위작 사기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0/01/15

I LOVE COFFEE and CAFE 아이 러브 커피 앤 카페 : 별점 2점

I LOVE COFFEE and CAFE 아이 러브 커피 앤 카페 - 4점
이동진 지음/동아일보사

커피에 대한 관심이 있던 차 우연찮게 읽게된 책입니다.

하지만 읽고난 느낌은 한마디로 별로였습니다. 예비 바리스타들을 위한 입문서에 가까운 책으로 실용서처럼 쓰여져 있기에 별다른 재미도 없거니와, 그나마도 인터넷 등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정보들 뿐인 탓입니다. 책을 저술한 이동진이라는 전문 바리스타의 노하우 및 생각을 단편적으로 접할 수 있다라는 것 이외에 별다른 가치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약간의 가치도 정보도 책의 절반 분량일 뿐입니다. Part 3과 Part 4는 사실 전혀 도움이 안되는 무가치한 항목이라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Part 3은 레시피 모음일 뿐 아무것도 아니고, Part 4는 "지금 뜨고 있는'HOT'카페를 엿본다"는 카페 소개글인데 인터넷 뒤지면 하루에 10꼭지는 충분히 쓸 수 있는 내용으로 보이거든요. 여성지 부록을 돈주고 사본게 아닌가 싶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요. 이 책에서 기대한게 이런 내용은 아니었는데...

결론내리자면 별점 2점입니다. 12,000원짜리 책이 무려 50% 할인된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게 이 책의 현실이죠. 제 돈주고 사보지 않은게 다행이라 생각되네요.

2017/08/20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 시노다 나오키 / 박정임 : 별점 2.5점

제목 그대로, 평범한 직장인 시노다 과장이 무려 23년간, 1990년 ~ 2013년까지 매일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록한 일종의 그림 일기를 바탕으로 만든 책입니다. 알라딘의 신간 소개글을 인상적으로 읽고 기억에 담아 두었다가 구입하였습니다. 참고로, NHK의 "사라메시(샐러리맨 식사)"라는 프로그램에 투고하여 방송된 후, 우연찮게 출판사의 눈에 띄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내용은 정말 별게 없어요. 뭘 먹었는지에 대한 기록(가격을 포함해서)과 약간의 단상, 그림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라고는 전무합니다. 본인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상의 기록을 위해 적은 것이니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림이 생각 이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시작부터 아예 재능이 없던 사람이 아닌데, 이십여년간 꾸준히 그려오다 보니 정말로 그림이 좋아지더라고요.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10년 (1만시간)을 투자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을 증명한달까요? 물론 1만 시간의 법칙은 최근 그 실체가 부정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오랫동안 한우물을 파서 노력한 결과라는걸 직접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그림이라면, 컬러링을 조금만 보완한다면 음식을 소재로 한 책 삽화는 충분히 그릴 수 있을 듯 합니다. 자료를 조금 찾아보니 실제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뷰도 한 모양인데, 시노다 과장이 정말 제대로 힘을 줘서 그린 그림이 보고 싶네요. 

그리고 직장인이고, 가정이 있고, 그날 그날 먹을 것에 대한 선택이 나름 원칙이 있다는 점(이번 달은 돈까스 덮밥이다! 라고 정하면 정말 돈까스 덮밥만 찾아다니면서 먹습니다!) 에서는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식사 방식"도 떠오르고, 가끔 엿보이는 소박한 일상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나고야 주민으로, 나고야 중심의 음식과 다양한 문화를 언급하는 것도 독특했고요. 주니치 드래곤즈의 팬으로 경기 관람 후 먹은 음식, 또 우승 축하를 기념하는 음식을 먹는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식탐 여행"에서도 언급되었던 명물 '안카케 스파게티'가 언급되는 것 역시 반가왔습니다. "배빵빵 일본 식탐 여행"에서와는 다르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게 기억에 남습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맛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만요.

23년간 외식을 경험한 인물답게 저자가 좋아하는 단골집 소개는 물론, 기차 여행에서의 에키벤 소개와 같은 노하우도 몇 가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신 오사카역의 팔각 도시락을 최고의 도시락으로 치는데, 오사카에 가면 한번 먹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손으로 쓴 느낌" 그대로 번역 출간한 국내 출판사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드라마가 없다는 점은 단점이지만 그래도 볼만한 점은 많습니다. 무언가 하나의 행동을 20년 이상 꾸준히 이어간 열정, 노력은 별점 따위로 평가할 수 없을 터이고요. 평범한 사람의 식도락을 멋드러진 그림으로 감상한다는 점에서는 일상계 구루메 만화와 별 다를게 없지 않은 만큼, 이런 류의 만화, 서적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기분좋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저도 이 블로그를 운영한지가 14년 째인데, 앞으로 6년 더 해서 20년이 지나면 책을 한 권 낼 수 있을까요? 누굴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글들은 아니지만...

2021/12/04

모리나가 요우의 프라모델 미궁 일지 1 - 모리나가 요우 / 대원씨아이 : 별점 2.5점

모리나가 요우의 프라모델 미궁 일지 1 - 6점
모리나가 요우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일러스트레이터 모리나가 요우가 월간 아머 모델링지에 연재했던 일러스트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거의 10년에 걸친 연재분 중, 모형 그 자체에 집중했던 기사들을 골라 모아 놓았다고 합니다.

일러스트 에세이라는 말답게 이 바닥의 고전이자 교과서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잡상노트" 스타일로 그림과 글이 빼곡하게 가득 차 있습니다. 작화와 채색도 흡사하고요. 모델지에 연재했다는 공통점도 있으니 일종의 아류작으로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하지만 "잡상노트"는 모델지 연재물임에도 불구하고 프라모델과는 별 관련이 없으며 각 편마다 완결되는 이야기가 많았던 반면, 이 책 수록 에세이들은 각 회차별로 특정 프라모델을 주제로 하여 여러가지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을 쏟아내는 구성이 많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주제가 되는 프라모델은 연재 잡지의 특성, 그리고 모리나가 요우의 전작들을 미루어봤을 때 예상했지만 전부 밀리터리 모델이며, 그 중에서도 탱크 모델 비중이 압도적인 편입니다.

아무래도 직업이 모델러라기 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라 그런지, 모델링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본인이 특정 모델을 만들면서 느꼈던 단상이 주인데, 당연히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지금으로 따지자면 유튜브의 모델 관련 동영상 컨텐츠와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물론 평범한 초보는 아닙니다. 소개된 저자의 디오라마를 보니 상당한 실력자로 보이니까요. 거의 풀 스크래치 빌드로 만든 인형들 수준이 아주 놀랍거든요. 인형 색칠은 꽤 괜찮은 노하우를 공유해주기도 하는 걸로 보아, 특히 인형 분야에서는 상당한 레벨의 실력을 갖춘 걸로 짐작됩니다. 그 외에도 어떤 에세이에서는 모델러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만들다 만 프라모델' 정리법을 소개하고, 다른 에세이에서는 최근 핫한 인기 모델을 리뷰하고, 또 다른 에세이에서는 직접 페리스코프 가드를 자작하는 과정이나 사용하는 도구 이야기 같은 정보를 알려줍니다.

모델 제작 뿐 아니라 여행기나 유명 모델러 인터뷰까지 등장할 정도로 다루고 있는 범위가 넓은데, 특히 39회 시즈오카 하비쇼 탐방기가 기억에 남네요. 브라스 밴드가 와서 공연했다는게 좀 깼거든요. 이어지는 1/16 RC 소개는 대체 얼마나 큰지 한 번 보고 싶어졌고요. 

그 외 신변잡기성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최근 이사온 곳 근처에 프라모델 샵이 없어서 모델 취미를 등한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며, 어린 시절 슈퍼카 열풍에 대한 회고도 와 닿았습니다. 저 역시 '카운타크' 를 동경하던 세대이니까요. 워터라인 모델 때문에 어린 시절 군함 바닥이 평평한 줄 알았다는 글은 저도 공감이 가더군요.
 중학생 때부터, 나이가 들어 노안이 온 지금까지를 관통하는 일종의 회고담도 많은데, 그 중 연륜을 느끼게 하는 디테일들도 좋았어요. 왕년의 스타로 야마구치 모모에를 언급한다던가, 80년대 이야기 중에 나가이 마리코가 스쳐 지나가는 식인데, 여러모로 반가왔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공들여 그린 에세이라는건 분명하나, 잡지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보는 데에서 오는 한계는 명확했기에 감점합니다. 소개되는 모델을 연계해서 볼 수 없다는 단점이 굉장히 컸기 때문입니다. 관련 도판 정도는 실어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아주 전문적인 내용으로 보기도 어렵고, 아주 초심자가 관심 갖기에는 좀 애매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선뜻 추천해 드리기도 애매하고요. 저자의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2009/11/03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는가 - 가스가 마사히토 / 이수경 : 별점 3점

100년의 난제 :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 - 6점
가스가 마사히토 지음, 이수경 옮김, 조도상 감수/살림Math

언젠가 EBS에서 방영 예고했던 동일한 내용의 다큐를 놓쳐서 무척이나 안타까왔었는데, 간만에 본가에 가니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NHK PD 가스가 마사히토가 쓴 책이 있어서 읽게 되었네요.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책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푸앵카레 추측"이 무엇인지와 이 수학상의 어마어마한 난제를 어떻게 풀게 되었는지를 약 반세기에 걸쳐 관련 인물들과 이론을 추적하며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 푸앵카레 추측을 푼 수학자 페렐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중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수학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라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했지만, 이 추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우주공간"에서 끈을 당긴다... 라는 것 정도만 머리에 집어 넣어도 이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화된 다큐멘터리에 근거한 책이다보니, 여러가지로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군데군데 묻어나고 있거든요. 이러한 고등수학을 쉽게 설명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이 책은 상당한 수준으로 잘 해내고 있습니다. 이쪽 바닥의 명저인 과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이 연상될 정도로요. 그 외의 Q.E.D에서나 접해봤던 필즈상 이야기라던가 이런저런 친숙한 용어들도 반가운 부분이었고요.

그러나 두 번째 이야기, 즉 수수께끼의 수학자 페렐만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어려운 수학상의 난제를 해결하고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필즈상과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 내건 상금 100만불까지 거부하고 현재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은둔하며 사는 페렐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피상적인 정보만 쫓을 뿐, 결국 페렐만이 왜 상과 상금을 거부했는지와 지금 뭐하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채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때문에 김이 확 빠져버렸어요. 수수께끼만 나열한채 해답없이 끝나는, 2권짜리 추리소설에서 전편만 본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첫 번째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었으며 이런저런 아이디어 같은 것도 얻을 수 있던 만큼 자료적 가치도 있기에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는 것은 명확합니다. 재미없고 실망스러웠던 두 번째 이야기도 이런저런 상상의 여지가 많아 최소한의 흥미거리는 되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페렐만 박사는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요? 푸앵카레 추측을 발판으로 뭔가 다른 새로운 증명에 돌입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왠지 푸앵카레 추측을 해결하며 쌓은 노하우를 통하여 지구, 아니 우주를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연구를 하고 있을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이런이런... 만화를 너무 많이 본건가......

2010/10/31

에드워드 권의 Yes Chef (예스셰프)를 보고

주말에 우연히 메가TV에서 전편을 몰아본 요리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 자체는 흔한 서바이벌 오디션과 다르지 않아 특별히 새로운 점은 없었지만, 나름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요리'라는 세계가 예전에 잠깐 몸담았던 '디자인' 업계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업종 모두 오너 셰프와 오너 디자이너의 명성과 경력이 중요하고, 그러한 오너를 흠모하여 직원들이 입사한 뒤 매우 하드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더군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도제식 문화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기에, 방송을 보면서 옛 생각이 떠올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제식 문화는 몸으로 기술을 익히고 체득하기 쉽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바로 지적받고, 유사한 업무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장인들이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에드워드 권이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던 '아이디어'나 '창조성'을 배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이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새로운 작업을 찾아다니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하드한 업무에 쫓기다 보면 그런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 방송이었습니다.

2021/11/06

위스키와 나 - 타케츠루 마사타카 / 김창수 : 별점 2점

위스키와 나 - 4점
타케츠루 마사타카 지음, 김창수 옮김/워터베어프레스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자서전입니다. 300년 전통의 사케 양조장 셋째 아들로 태어나 오사카 공업 고등학교 양조학과 졸업 후 셋츠 주조에서 근무하던 중, 아베 사장의 도움으로 영국 유학을 떠나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지에서 위스키 양조 기술을 익히고 귀국하여 오사카 근처 야마자키에 산토리 증류소를 만들고, 10년이 자나 독립하여 홋카이도 요이치에 증류소를 세워 니카 위스키를 만들어 내고 성장시켰던 전과정에 대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많이 부실합니다. 특히 타케츠루가 일본에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고,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소개는 정말로 부실합니다. 2년 남짓했던 유학 생활 이야기 비중이 거의 전 인생을 바쳤던 일본에서의 위스키 제조 분량과 맞먹을 정도니까요.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던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고, 위스키를 만들어 내는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테고, 당연히 극적인 이야기도 많았을텐데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독립해서 닛카 위스키를 만들 때의 이야기도 부족한건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위스키 숙성 기간에는 주스를 팔아 회사를 유지할 생각이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던가, 순수한 스카치 위스키만 만들겠다는 고집을 꺾고 2등급 위스키를 만들어서 이름을 알리며 닛카 위스키가 시장에서 서서히 입지를 굳히는 과정은 요약만 읽어도 굉장히 흥미로왔는데, 자세한 설명은 없어요. 그냥 몇 년도에 무슨 위스키를 출시했다, 가 전부일 뿐입니다. 성공했다는 결과도 수치적으로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아 답답했고요.

몇 가지 역경이 등장하기는 하나 '좋은 사람들 도움으로 위기를 쉽게 넘길 수 있었다'는 일화가 대부분인 것도 문제입니다. 별다른 애로사항없이 쉽게 진행된 느낌이 드니까요. 입사 직후 징병 검사에서 신체 건강했음에도 '알코올'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면제를 받았고, 그 덕에 고작 2년 근무 경력으로 발탁되어 영국에 장기 유학을 떠난 것이라던가, 유학 도중 독일 잠수함 탓에 위험에 처했지만 다른 배가 침몰했고, 2차 대전 때에도 가족 모두 무탈하게 넘긴 등 '운이 좋았다'는 걸 강조하는 에피소드들도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운 만으로 이렇게 성공할 수는 없는건 당연합니다. 보다 상세한 닛카 위스키 성공담이 선보였어야 했습니다. 홋카이도에서의 곰 사냥, 돗돔 낚시에 대한 회고보다는 말이죠. 지금 쓰여있는 것만 읽으면, 땅짚고 헤엄첬다는 느낌이 들 뿐입니다.

그리고 읽다보니 과연 이 사람이 존경할만한 사람인지도 살짝 의문이 들었어요. 우선 거액의 유학 비용을 대주고 위스키 공부를 밀어준 셋츠 주조를 너무 쉽게 떠난 것 부터가 이상했거든요. 셋츠 주조가 경영 환경이 악화되어 정통 위스키를 못 만들게 되었을지라도, 셋츠 주조에 남아 일하며 은혜를 갚는게 당연하잖아요? 셋츠 주조의 아베 사장은 타케츠루를 유학보내준건 물론이고 누구나 반대하던 리카와의 결혼도 성사시켜주었을 정도의 은인이니까요. 정통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공부를 시켜준건 고맙지만, 앞으로 정통 위스키를 만들지 않는다니 나는 그만 두겠소!라니, 배은망덕도 정도가 있어야죠. 

10년 계약이 끝나자마자 토리이 씨를 떠나 독립하기 위해 산토리 증류소를 그만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10년 계약이었으니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돈으로 무려 200만엔이라는 거액을 투자해서 타케츠루에게 일본 최초의 증류소를 만드는 노하우를 쌓게 만들어준 회사입니다. 그런데 계약이 끝나자마자 독립해서 경쟁 회사를 창업한다? 이게 도의상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심지어 산토리 증류소는 위스키 판매가 부진해서 경영 환경이 좋지도 않았다는데 말이지요. 위스키 제조에 모든걸 건 장인치고는, 시장 요구와 상황에 너무 쉽게 굴복한 것도 실망스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실제 위스키 제조에 대한 정보 역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제조 과정이 짤막하게 소개될 뿐, 그 외의 정보나 지식은 별로 언급되지 않는 탓입니다. 그나마도 거의 스쳐지나가는 식이에요. 예를 들어, 거친 하이랜드 몰트와 중성의 그레인 위스키를 가교 역할인 로우랜드 몰트와 함께 섞어 최고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 수 있었다는 설명은 있지만, 하이랜드 몰트, 그레인 위스키, 로우랜드 몰트의 제조법 등의 상세한 정보는 없습니다. 어떤 재료를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일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술을 만들어 나갔는지 등에 대해 상세하게 그렸던 만화 "명가의 술" 정도의 디테일을 기대했는데, 무척 실망스럽네요.
부록처럼 이어진 글에서, '위에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매일 마실 때는 미즈와리가 좋다, 비율은 위스키 1에 물 2 정도이며 너무 차가와지면 안되므로 온더락은 추천하지 않는다'가 제일 유익했던 위스키 관련 정보입니다. 위스키는 즐기는 것이며, 즐기다 보면 취하는 것이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진심으로 식사와 술을 즐기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군요.

그러나 좋은 부분은 일부일 뿐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의 정보만 실려있으므로,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2024/01/20

나는 배당투자로 매일 스타벅스 커피를 공짜로 마신다 - 송민섭 : 별점 3점


유튜브 '수페TV' 운영자가 자기 노하우를 설명하는 투자 설명서. '수페TV'는 구독하면서 좋은 정보를 많이 접했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배당 투자의 개념은 간단합니다. 배당주 중심으로 10년 이상 월 복리로 장기 투자하여, 10년 뒤 안정적인 배당금을 받자는게 전부니까요. 하지만 실제 투자를 하려면 막막합니다. 어떤 주가 좋은 배당주인지, 어떻게 장기 투자를 하면 되는지는 알기 힘든 탓입니다. 
이 책은 이런 초보 투자자를 위해 여러가지 종목과 주요 ETF 및 투자 시뮬레이션을 설명해 줍니다.

이 중 고배당과 배당성장을 구분해서 투자해야 한다는게 가장 도움이 된 정보였습니다. 1억원을 고배당 왕족주 4종목 - 알트리아 (MO), 애브비 (ABBV), 엑슨모빌 (XOM), 리얼티인컴(O) - 과 고배당 ETF JEPI 중심의 고배당 포트폴리오, 그리고 SHCD 중심 (50%) 배당성장 포트폴리오 - 나머지는 ASML홀딩 (ASML), 로우스 (LOW), 펩시 (PEP), 프로로지스 (PLD) - 에 각각 투자했다면, 10년 뒤 고배당 월 배당금은 96만원, 배당성장은 92만원이 됩니다. 고배당은 전체 배당률 평균 5.92%, 5년간 연평균 배당 성장률 평균은 4.56%이며 배당성장의 배당률 평균은 3.27%, 5년간 연평균 배당성장률 평균은 13.78% 기준이고요. 이를 통해 단기 자금을 운용할거라면 고배당 포트폴리오를 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20일 이동 평균선 이하가 좋다는 배당주 매수 타이밍이라던가, 투자자 목적에 맞는 포트폴리오 소개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실용서라서 그동안의 기준으로 별점을 주기는 좀 애매합니다만, 제게는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기에 배당 투자에 관심있는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독서 클럽 멤버들이라면 혐오할 책이긴 합니다만....

아울러 책을 읽고 앞으로 어떻게 투자를 이어갈지 고민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이 책에서처럼 개별 종목을 분석해가면서 투자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변동성을 쫓아갈 자신이 없고, 개별 종목 투자에 실패했을 때의 자괴감도 견디기 힘들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에 하던대로 ETF인  SCHD와 S&P 500의 비중을 1:1로 하여 적립식 투자를 이어가되, 몫돈이 생긴다면 JEPI를 담아볼 생각입니다. 

2012/07/23

ラクガキ·マスタ- 描くことが樂しくなる繪のキホン - 요리후지 분페이 : 별점 3점

일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요리후지 분페이의 일러스트 에세이집. 절친한 옛 회사 동료 JP군의 선물입니다.

제목 그대로 "낙서"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유감없이 펼쳐 보이면서, 낙서의 실력을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책이죠. 대단한 알맹이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저 역시도 낙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편에 가득한 요리후지 분페이의 일러스트도 큰 기쁨이었고요.

재미도 있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요리후지 분페이의 진가를 잘 알 수 있는 책인 만큼 국내에 꼭 번역,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책도 아주 예뻐서 나오기만 하면 잘 팔릴 것 같아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1/18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 현태준, 이우일 : 별점 2.5점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 6점
현태준. 이우일 지음/시공사

조만간 일본 여행계획을 잡고 있던 차에 관심가던 책이라 덜컥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담배를 끊은 후에는 여러가지 책에 손이 많이 가네요.

이 책은 만화 등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출신 저자 두명이 반씩 여행기를 써서 모아놓은 책입니다. 약 1주일간의 도쿄 여행이라 그다지 정보가 많은 전문 여행기가 아닌 일종의 꽁트형식의 재치있는 단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자 두명이 전문분야를 활용하여 실어놓은 사진과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습니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2명의 기행문이라 비교해서 보는 맛도 있고 길이도 짤막짤막한 편이라 보기도 편하더군요.

앞부분의 이우일씨의 글들은 일종의 대중문화 매니아, 만화가,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용이 많아서 참 좋았습니다. 시부야와 나카노 브로드웨이에 대한 설명은 꼭 이번에 써먹고 싶어졌으며 추천한 잡지 Best도 몇권 구입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더군요. 그 밖의 미술관과 넌센스 머신, 롯폰기 힐스 등에 관련된 독특한 시각과 묘사로 이루어진 글들은 공감도 가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현태준씨의 글은 반대로 너무나! 특이했습니다. 문체부터 이색적이긴 하지만 크게 3부분 "물건 싸게사기", "먹거리", "빠찡코"에 집중되어 있는 내용이라 이우일씨와 확실히 구분되더군요. 벼룩시장을 중심으로 한 "싸게사는" 나름의 노하우는 퍽 유용할 것 같긴 했습니다.

실용성 여부에 있어서는 여타 여행 안내서에 비해 떨어지겠지만 어차피 이 책을 사는 제일의 목적은 "재미"일 테고 저같이 나름의 쓸만한 정보를 발견하는 독자도 있을테니 한번쯤 구입을 고려해 볼 만 하겠네요. 하지만 약간 취향이 매니아적인 부분에 편중되어 있긴 합니다.

단 한가지! 올컬러라 값이 비싼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차피 절반씩 나눠서 작업한 만큼 이우일-현태준 버젼을 구분하여 독자가 골라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아이디어가 아쉽더군요 (사실 전 현태준씨 버젼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03/20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 요리후지 분페이 / 서하나 : 별점 2.5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 6점
요리후지 분페이.기무라 슌스케 지음, 서하나 옮김/안그라픽스

오래 전에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글을 남겼었고, 몇 권의 책을 읽기도 했던 일본의 디자이너 요리후지 분페이의 에세이입니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이너라는 업과 디자인이라는 일에 관련된 여러가지 생각과 가치관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현업 디자이너로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중 특히 요리후지 분페이의 대학시절 은사가 한 말은 디자이너로서 새겨 들어야 할 것 같아요. "디자인은 감성적이지 않고 과학적이다"는 말입니다. 감각적으로 좋다고 느끼는 것은 아무런 가치없는 자기만족일 뿐이며, 무언가를 만든다면 왜 그걸 하는지를 언어로 쌓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은사가 전투적으로 커뮤니케이션했던 전공투 세대였기 때문에 그랬을거라는 부연 설명이 살짝 덧붙여져 있지만, 세대를 떠나 맞는 말입니다. 최소한 왜 만드는지는 생각하고 만들어야하는건 당연합니다. 단지 예뻐서, 멋져 보여서가 아니라요. 요리후지 분페이도 가슴 속 깊이 새겼는지, 이 책을 통해서 자기가 만든 다양한 작업물에 대해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작업도 몇 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다양한 요소를 모듈화하여, 이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일러스트를 만들고 그 모듈 킷의 사용료를 받는다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조합 가능한 일러스트라는 아이디어는 흔합니다. 제 대학 졸업 작품도 비슷했었지요. 시기상으로 따져보면 거의 동시기라 뭔가 으쓱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를 실행에 옮겨 상용화했다는건 아주 참신했어요. 제 아이디어는 머리, 몸, 다른 유닛을 조합하여 무궁한 몬스터를 만들어낸다는, 비교적 작은 범위의 딱히 효용성 없는 결과물이라 상업화에 성공한 요리후지 분페이의 작업물과 비교하기도 어렵고요. 

짤막하게 스쳐지나가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엠블렘에 대한 아이디어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도쿄는 물의 도시이고, 스포츠에서 땀은 빼 놓을 수 없고, 재생이 중요한 시대 환경을 감안하여 1964년 도쿄 올림픽 엠블렘을 색깔만 파란색으로 바꾸어 재활용하는게 어떨까? 라는 건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디자인에 부가되는 이야기를 풀어내어 설명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중요해져 버린 시대 비판을 위해 든 예였지만, 2021년 올림픽 엠블렘으로 사용되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디자이너 요리후지 분페이가 풀어놓는 본인의 경력들도 흥미로왔습니다. 디자인 업무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실력만 가지고는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경제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여 피터 드러커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일화에서는 확실히 남다른 부분이 느껴졌고요. 저도 30대에 한 3~4년 정도 디자인 에이전시 사무실을 운영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의 요리후지 분페이보다도 나이가 많았음에도 이런 발상은 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놀기 바빴었지요. 심지어 기껏 읽은 피터 드러커 관련 책은 이거 하나밖에 없고요. 많이 반성이 됩니다. 당시 읽었던 다른 책을 통해 '참신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면, 그 아이디어만으로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자세를 본받아, 그렇게 일하려 노력했다는 것도 대단해 보였고, 본인 작품을 예로 들어가며 자기의 디자인론을 펼쳐나가고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노하우를 참고할 만한, 프로 현업 디자이너로서의 조언들도 제법 됩니다. 그 중 아이디어를 형태로 만들어 나가는 방법론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별로 특이한건 아니었습니다. 생각이 막히면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라는 등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니까요. 그러나 슬럼프가 왔을 때는 방법이 없으니 가장 안정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면서 슬럼프를 벗어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건 괜찮은 조언이었어요. 홈런보다는 번트라도 대라는 건데,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굉장히 유용할 조언이었다 생각됩니다. 여러 관련 부서, 담당자와 소통할 때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라는 조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뒤에, 너무 자세하게 적으면 상대방이 생각을 하지 않게 되니 문제라고 바로 자기 말을 뒤집기는 하는데, 자세히 설명해서 나쁠건 없지요. 저도 한 때 디자이너에 대한 선민의식이 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많이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요리후지 분페이 말에 동의하는게 하나 있습니다. 전문가에게 맡기면서 정작 인쇄 감리처럼 현장에 가서 지켜보는건 확실히 이상해요. 당연히 믿고 맡겨야지요. 그림은 생각이 20%, 작업이 80%인데 디자인은 반대라는 이론도 좀 특이했고, 북 디자인은 관심이 많은 영역이 아니라서 기억에 많이 남지는 않지만 디자이너의 재능이라는 부분은 상당부분 알고리즘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의견도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작가가 이 책을 왜 썼는지를 언어화해 두고, 이 책과 어떻게 만나고 싶은지를 상상한다는건 다른 디자인 작업에도 써 먹음직한 내용이었어요. 이는 '경험 디자인'과 같은 맥락이라 생각되네요. 잘 팔리는 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큰 제목' 이라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대단한 실력을 갖췄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디자이너를 본 적이 없다던가, 서로간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는 '인사하기' 라던가, 디자인을 포함해 어떤 것을 창조하는 일은 그 사람이 안고 있는 커다란 불안을 원동력으로 한다는 등의 경험이 뒷받침된 말들도 염두에 둘 만 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건 아닙니다. 내용에 두서가 없을 뿐더러, 유명 디자이너가 썼고, 본인 디자인 방법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도판이 지극히 부실하다는 큰 문제가 있는 탓입니다. 컬러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 소개된 작품에 대해서는 도판을 모두 수록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소생활"이라는 책을 만들 때 이야기를 꽤 길게 이어가는데, 정작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그 결과물은 함께 소개되지 않는건 너무하다 싶어요. 북 디자인이 책 표지만 있는건 아닌데, 표지만 잔뜩 도판으로 수록한 것도 문제이며 북 디자이너로서의 생각을 잔뜩 풀어놓지만 이 책의 디자인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용에서 설득력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이 책 디자인처럼 저자와의 간극이 느껴지는 결과물은 그 외에도 제법 많습니다. 픽토그램 활용한 디자인이 대표적이에요. 솔직히 좋은지 잘 모르겠더군요. 다리 사이의 구멍이 왜 그렇게 큰 완성도를 가져다 주는지 저는 알 수 없었거든요. 본인 스스로 픽토그램은 수도 없이 손 봤다면서, 그 다음에 바로 광고 카피 문구 자간에는 일부러 손을 대지 않았다고 말하는 맥락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후배 디자이너로서 경외감을 가지고 읽을 만한 부분도 없지 않고요. 그러나 단점도 확실하고, 취향도 많이 탈 것 같아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20/09/19

남은 날은 전부 휴가 - 이사카 고타로 / 김소영 : 별점 3점

남은 날은 전부 휴가 - 6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이사카 고타로의 단편집입니다. 그다지 많이 읽어 본 작가는 아닌데, e-book 대여가 가능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단편집인데 구성이 특이합니다. 수록작 모두 화자도 다르고, 시점도 다르고, 주요 등장인물들도 모두 다르지만, 돈만 주면 뭐든 하는 해결사 미조구치-오카다 컴비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연작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성만 특이한게 아니라, 작품들도 독특한 발상으로 가득차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백수가 된 오카다가 이제 인생의 남은 날은 모두 휴가, 바캉스다라는 의미의 제목부터가 그러합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자! 보다 훨씬 와 닿는 멋진 제목이라 할 수 있어요. 작품 속에서 장 뤽 고다르의 "작은 병정"이라는 영화 속 대사라고 하는데 참 적절하게 잘 써 먹었다 싶더군요.

물론 수록작 중 "남은 날은 전부 휴가"와 "불길한 횡재"는 그 자체만으로 완성된 작품은 아닙니다. 설정에 대한 소개, 수록작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 뿐이지요.

그래도 나름의 재미도 분명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 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아빠의 불륜으로 이혼하게 된 가족의 마지막 날, 아빠에게 친구가 되자는 전화 메시지가 날아왔고, 가족은 충동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사람과 하루를 함께 보내기로 결정했다. 메시지를 보낸건 해결사 오카다였다. 상사 미조구치가 조직에서 발을 빼려면 전화 메시지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화자는 가족의 고교생 딸 사키로, 미조구치와 오카다 및 주요 설정에 대해 소개하는 도입부 격 작품입니다. 문제는 사키 가족과 드라이브와 식사를 즐긴 오카다가 조직을 배신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미조구치 씨 일당에게 끌려간 뒤, 세 가족만 차에 남는 결말이라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 어렵다는 거지요. 사실 여기서 다른 사건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사키 등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아서 당황스럽더라고요.

가족이 친구가 되는 과정, 오카다의 여러모로 독특한 시각 등은 볼거리이지만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성가신 어른의 오지랖" 

미조구치와 오카다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유다이라는 가정 폭력 피해 아동을 알게 되었다. 아빠에게 폭행당하는 유다이를 구해주기 위해 오카다는 기묘한 작전을 구상하는데...

오카다가 자신이 협박하던 불륜남 곤도와 함께 유다이의 아빠 사카모토가 폭력에서 손 떼도록 만드는 귀여운 작전이 펼쳐지는 일상계 추리, 범죄, 사기극입니다.

사실 오카다의 작전은 유치합니다. 성인이 된 유다이가 미래에서 사카모토를 찾아와, 유다이 폭행을 그만두지 않으면 성인이 된 유다이 때문에 지옥을 맛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연극이 전부거든요.

그러나 이 연극을 위해 터미네이터, 타키온 입자 등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사카모토에게 주입시키는 과정, 그리고 문 닫은 슈퍼마켓을 엉망으로 만드는 다른 의뢰를 활용하고 유다이와 이미지가 비슷한 곤도에게 연기를 시키는 등의 디테일은 빼어납니다. 혹시라도 사카모토가 유다이를 죽일 수 있어서 미리 그에 대해서도 확실히 선을 긋는 등 계획도 나름 정교하고요.

덕분에 뻔하고 유치하더라도 설득력은 있는 편이에요. 유치하지만 맘 먹고 이렇게 속이겠다고 덤비면 저라도 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불길한 횡재"

'나'는 미조구치와 오타라는 남자들에게 납치당했다. 그들이 훔친 차로 이동하던 중, 다나카 중의원이 칼에 찔린 탓에 시작된 검문에 걸렸지만 미조구치는 훔친 차의 번호를 외워 말하는 노하우로 검문을 빠져 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트렁크에는 거액이 있었고, 차 번호도 잘못 외웠었다. 경찰은 왜 미조구치 일당을 놓아준걸까?

수수께끼는 흥미롭습니다. 이에 대해 미조구치 등은 검문하던 경찰이 차에 돈을 숨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놓아주고 몰래 숨겨둔 휴대폰 GPS로 위치를 추적하여 돈을 회수할 생각이었다고 추리하지요. 그러나 사실로 밝혀지는건 없습니다. 고작해야 돈이 든 가방 속 휴대폰 정도만이 근거가 될 뿐이고요. 때문에 첫 번째 이야기보다는 낫지만 마찬가지로 완성된 이야기로 볼 수는 없어요.

결말도 석연치 않습니다. 미조구치와 오타가 GPS 추격을 피해 거액을 나누어 달아나는건 그렇다쳐도, '나'도 놓아준다는건 말이 안되거든요. 의뢰인이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거라는(죽었을테니) 그녀의 말만 듣고 놓아준다는건 프로로서는 있을 수 없을 일이잖아요. 최소한 보스인 부스지마의 허락은 받았어야 합니다. 

또 그녀의 납치는 다나카 중의원의 의뢰였고, 이유는 그녀가 불륜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다나카 중의원 암살 계획의 일부로, 흉기를 은닉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실제 습격한 사람, 흉기를 숨기는 사람 등 여러 명이 역할 분담을 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아이디어만큼은 나쁘지 않았지만, 예전 "소년탐정 김전일" 등 다른 작품에서 접했던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연작을 이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용 작품이라는 느낌입니다.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 

초등학교 4학년 생인 '나'는 해외에서 극비 임무를 수행 중인 아빠와 통화 중에 아빠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빠가 유미코 짱이 위험하다, 학교에 페인트 낙서가 되어 있지 않냐고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아빠에게 말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유미코 짱이 담임인 유미코 선생님이라고 생각한 '나'는 페인트 낙서를 한 오카다에게 이러한 내용을 물어보았고, 오카다는 유미코 선생님이 정말로 위험하다고 말해주는데...

오카다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어났던 사건을 그린 나름 본격 추리물입니다. 화자는 오카다의 친구 '나'이고요. 아빠가 '나'를 몰래 감시하는 것과, 유미코 선생님 스토커 이야기의 조합이 절묘하며, 이야기 앞 뒤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오카다가 페인트 낙서를 한 이유는 유미코 선생님의 욕이 적혀 있었기 때문, 아빠가 이 사실을 알았던 건 그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던 등산이 취소되었기 때문인 등 앞선 기묘한 행동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됩니다. 참고로, 아빠는 불륜으로 이혼했고,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스파이라고 꾸몄던 겁니다. '나'를 보기 위해 쌍안경으로 몰래 관찰했고, 그래서 유미코 선생님 욕이 쓰여져 있는걸 알게 되었던 거지요. '나'를 관찰하던 아빠를 오카다와 '나'는 스토커로 착각했고요.
아빠가 주변 사물을 무기로 이용한다고 스파이인척을 할 때 했던 말을, 나중에 오카다가 위기에서 탈출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는 등 - 칼로 위협하던 스토커를 향해 거울로 햇볕을 반사시켜 눈을 부시게 만듬 - 복선 활용도 완벽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연작 단편집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게 문제네요. 자체만으로도 완벽할 뿐더러 오카다 외 다른 등장인물이 나오지도 않으니까요. 오히려 미조구치의 부하 오타가 영화감독이 된 '나'를 찾아가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는 에필로그가 사족처럼 추가된건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별점은 4점! 이 단편집 수록작 중 최고입니다.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

오타 후임으로 미조구치의 파트너가 된 다카다는, 뒷 차를 고의적으로 충돌하게 만들었다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미조구치 문병을 갔다. 미조구치는 뒷 차를 협박하다가 뒷 트렁크에서 권총을 발견했고, 피해자가 달아나다가 여파로 다른 차에 치였었다. 조직의 보스 부스지마 빌라에 총격이 가해졌고, 뒷 차 운전수가 유력한 용의자라는걸 알게 된 조직은 미조구치와 다카다에게 용의자 색출을 지시하는데...

전 편이 본격 추리물이었다면, 이번 이야기는 본격물의 한 갈래인 암살물입니다. 화자는 미조구치의 새 파트너 다카다로, 부스지마를 암살하려고 하는건 미조구치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독립하려던 오카다가 처단당했다고 생각하고, 그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지요.

부스지마는 병원 별실에서 휴양 차 입원 중인데, 음식은 전용 엘리베이터로 부하가 받아 시식 후 전달하며, 방문자는 2~3명의 경호원으로 부터 몸 수색을 받는 철통의 보안에 놓여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미조구치가 이러한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부스지마를 습격하기 위한 작전이 상세하게 펼쳐지고요.

어설프지만, 한 번 정도는 먹힐 만한 작전이 상당히 볼거리입니다. 작전은 이전 뒷차 추돌 사고 때 부터 시작되었었습니다. 빌라 총격을 사주하여, 미조구치가 범인을 알고 있다고 조직이 생각하게 만든 뒤 미조구치는 다카다에게 미조구치와 친한 입원환자 '선생님'이 암살범이라고 생각하도록 함정을 팝니다. 협박장에 붙어있는 파슬리 스티커의 의미를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다카다의 조사로 파슬리의 꽃말 중 하나가 '죽음의 전조'라는게 밝혀지며, 이를 통해 협박과 꽃말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이 연결됩니다. 그리고 '선생님' 병상에서 의사로 변장하기 위한 가운을 발견하며, 동기로 선생님'의 아들 부부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우연찮게 들려오고요. 그래서 다카다가 '선생님'을 암살범으로 오해한다는 건데, 읽으면서는 굉장히 작위적이라고 느껴졌었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싸 했을 것 같습니다. 앞 뒤가 척척 잘 맞아 떨어지니까요.
이를 통해 다른 경호원들이 '선생님'을 잡으러 떠난 사이, 부스지마 병실에 남아있게 된 미조구치는 음식 전용 엘리베이터로 권총을 반입하는데 성공하지요. 

마지막 작품 답게, 앞서의 이야기들이 모두 관련되어 있음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도 좋았어요. 미조구치가 오카다를 찾아다녔던 것, 단 것을 좋아하는 미조구치가 자주 찾는 맛집 블로그, 부스지마 암살 계획에 여러명이 관련되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 등은 모두 앞서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내용들인 덕분입니다. 미조구치의 작전에서 다카다가 '선생님'을 범인으로 착각하게 만든 수법 중 하나는 "성가신 어른의 오지랖"에서 오카다가 쓴 방법과 같고요. 누군가에게 그럴듯하게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무심결에 듣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여기에 2년 전 처음 만나기 전 부터 미조구치와 오카다가 알고 있었다는 설정은, 미조구치가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에 등장했던 애드벌룬 감시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들어 재미를 더합니다. 그러고보니 "조만간 전화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올 거라고 하지만 그런건 꿈이지 현실감이 없다. 전화를 가지고 다녀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밖에서 전화 통화를 할 바에야 직접 만나러 가는게 낫다. 꿈을 꾸기보다 주위의 현실을 봐야 한다"는 애드벌룬 감시인의 장광설은 그 파격적인 발상과 강한 자기 주장이 미조구치와 꼭 닮아있기는 하지요.

결말도 흥미롭습니다. 죽기 직전 부스지마는 오카다가 살아있다며, 맛집 블로그인 '사키의 블로그' 운영자가 오카다라고 알려 주거든요. 미조구치는 다카다에게 블로그 운영자에게 메일을 보내라고 지시한 뒤, 3분 내 답이 오지 않으면 총으로 부스지마를 쏴 죽이겠다고 하는데 3분 뒤 다카다의 폰이 울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오카다일까요? 아니면 계속 날라오던 스펨 메일일까요? 열린 결말인데,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미조구치가 8분과 10분에 대한 표현으로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다던가 하는 독특한 발상과 묘사도 많은데, '단지 나는게 걷는거보다 낫다'가 아니라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남자가 하늘을 날아와서 '네가 좋아!'라고 말하는' 상상을 하다니 이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기만 합니다.

마무리로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미조구치의 파트너가 오카다 - 오타 - 다카다로 바뀌는데 일부러 이름이 비슷한 사람을 채용한건지 궁금해집니다.

2014/02/17

바다 한가운데서 - 나다니엘 필브릭 / 한영탁 : 별점 5점!

바다 한가운데서 - 10점
나다니엘 필브릭 지음, 한영탁 옮김/중심

1920년 실제로 일어났던 미국의 포경선 에식스호의 조난을 둘러싼 이야기로 아주 오래전, 딴지일보였었나... 에서 소갯글을 읽은 뒤 관심을 가지게 된 책입니다. 그러나 폭풍 절판되어서 얼마 전까지는 도저히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원하는 헌 책을 구입하는 노하우는 제법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헌책방은 물론 근처 도서관 어디에서도 구할 방법이 없었더랬죠. 그런데 얼마 전 알라딘에 중고도서 매물이, 심지어 "알라딘 직배송"으로 저렴하게 떴길래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이 책을 찾아 헤맨 시간이 거의 10여 년이라 손에 들어오니 그야말로 감개무량했습니다.

사실 이전의 책 소갯글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표류한 에식스호의 선원들이 결국 식인까지 저지르며 살아남는 과정에 대한 처절함, 그리고 그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최초 표류 시 보트의 방향을 "식인종"이 살고 있으리라 여겨진 소시에테 제도가 아니라 남아메리카 쪽으로 잡은 탓이 크다는 아이러니함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으로, 어떻게 보면 자극적인 소재에 끌린 탓입니다.

그러나 책 자체는 생각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총 300여 페이지의 분량 중 거의 절반은 에식스 호 선원들의 처절한 표류와 생존기이지만, 그 외의 약 절반은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디테일에 할애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19세기 초의 낸터컷이라는 포경의 도시와 포경이라는 조업에 대해 다큐멘터리와 같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점입니다. 당시 포경을 위한 원양 어업의 과정, 어장, 실제 포경의 방법, 잡은 고래의 처리 등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디테일이 한가득이에요. 지도와 사진 같은 도판도 기대 이상이고요.

그리고 에식스호가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침몰하게 되고 이후 처절한 표류가 허먼 멜빌의 굴지의 걸작 "백경"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허먼 멜빌은 "백경" 출간 1년 뒤에 실제로 낸터컷을 방문하여 에식스호의 선장이었던 폴라드와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니 이 사건과 사건을 다룬 회고록이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물론 당연하게도 표류, 생존에 대한 디테일도 최고입니다. 생존자들이 다음에 먹힐 사람을 결정하기 위한 투표를 했다던가, 뼈만 남은 잔해를 뒤지고 빠개어 골수까지 빨아먹었다는 등의 처절한 행위뿐 아니라 가장 먼저 죽은 4명의 선원이 흑인이었다는 것, 결국 살아남은 최후의 5인은 이른바 "낸터컷 출신자"뿐이었다는 불편한 사실도 가득합니다. 그리고 굶주림과 갈증이 인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 및 굶주림으로 체지방이 극한으로 떨어진 살코기를 섭취하면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순 살코기보다는 적당히 기름이 낀, 마블링 좋은 고기가 더 맛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그 외에도 실제 바다에서 있었던 각종 사고들의 사례를 들어 함께 설명해 주는 것도 아주 좋았던 부분이에요. 유사한 조난자들이 시체를 다른 방법으로 활용(낚시의 미끼로 사용함)하여 전원 생존한 사례를 함께 설명해주는 식으로 말이죠. 덧붙이자면 바다 사나이들이 왜 바다에서 식재료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는 참으로 의아한 부분이지만, 이 책에 따르면 그들이 조난하게 된 바다가 극단적으로 물고기들이 없는 해역이었다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재수가 없었던 거죠.

마지막으로 사건에 대한 에필로그도 충실합니다. 폴라드 선장이 조난 후에 다시 포경선의 선장이 되고 , 같이 조난당했던 2명의 선원이 함께 배를 타는 최대급의 신뢰를 얻지만 또 난파당하여 바다 사나이로서의 생명이 끝난 뒤, 낸터컷에서는 하위 계급인 자경단원을 하며 지역사회에 공헌하며 살았다, 1등 항해사로 조난 중에 나름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선보인 체이스는 이후 당당히 선장으로 활약했지만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는 등 모든 생존자들의 후일담도 빠짐없이 알려주거든요. 심지어 "낸터컷"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서술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나저나, 이런 사고를 겪고도 결국은 다시 바다로 나가다니...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삶이네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명성에 걸맞는 가치와 재미를 가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간 이 책에 대한 갈망을 감추지 못하고 유사한 책을 몇 권 구해 읽어보았으나 모두 완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하거나 중반에 종교적인 내용 같은 삼천포로 빠지는 책들이었는데 확실히 원조는 다르네요. 10여 년을 기다려 입수했을 때의 기쁨까지 감안하여 별점은 5점! "2000년 최우수 논픽션" 등 여러 논픽션 관련 상을 수상했다는 이력은 허언이 아닙니다. 이런 좋은 책이 나오자마자 절판된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아쉽기만 합니다. 해양 조난, 식인, 포경 (그리고 "백경")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어떻게든 구하셔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 삶에 대한 인간의 의지는 무한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저라면 어땠을까요? 저 역시 폴라드 선장처럼 조카를 잡아먹어서라도 살아 남았을 겁니다. 꼭 살아남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니까요. 책 내용에서 밝혀지지는 않지만 저는 이러한 원초적인 생존 본능은 돌아갈 곳에 대한 갈망이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2006/10/25

타이포그래피 에세이 - 에릭 슈피커만 & E.M 진저 / 김주성, 이용신

타이포그래피 에세이
에릭 슈피커만 외 지음, 김주성.이용신 옮김/안그라픽스

밑에 썼던 "디자인 기하학"과 같이 얇지만 디자인 관련 학과생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짤막한 내용들을 다양한 예제를 모아 소개하고 있는 책으로 타이포의 흐름이나 분위기, 간단한 타이포와 편집 디자인에 대한 노하우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많은 도움을 줍니다. 특히 한장, 두 페이지로 하나의 주제를 간략하게 마무리하고 있어서 쉽게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알찬 정보를 제공한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너무 쉬운 주제로 때우고 있는 부분도 제법 있고, 영어 타이포에 대한 내용만 있다는 것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외의 내용, 특히 풀 컬러로 실려있는 예제만 보아도 13,000원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내용을 지닌 책이니 이쪽 분야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구입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수업을 들었던 김주성 교수님이 번역을 하셔서 그런지 더 친근감이 드는군요.

제가 학교 다닐때 읽었더라면 저도 편집 디자인에 대해 보다 흥미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2019/07/21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의 교과서 - 요시다 히로시 / 동소현 : 별점 3점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의 교과서 - 6점
요시다 히로시 지음, 동소현 옮김/다산4.0

일본의 기획자가 알려주는 책을 내는 방법론입니다. 왜 책을 써야 하는지?에서 시작해서 어떤걸 써야 하는지, 어떻게 출판사와 기획자를 설득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저도 그동안 책 한 권 내볼까 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린 적이 있는데 제 생각이 얼마나 짧고 어설펐는지 알게 되었네요. 이 책에 따르면 제가 어떤 걸 써야했는지부터 불분명했더라고요.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위해 나만이 가진 가치와 테마를 찾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로 시작하지만 상세한 방법론이 뒤를 잇습니다. 우선은 '책으로 쓸만한건 좀처럼 있을 법 하지 않은 일, 즉 'USP' (Unique Selling proposition)이며 나만의 USP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질문은 다음의 3가지'입니다.

  1. 어렸을 때 부터 좋아했던 일은? (지속성)
  2.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일은? (집중)
  3. 남들이 별로 하지 않는 일 중에 하고 있는 일은? (탁월함)

여기서 핵심은 세 번째 질문입니다.

쓰고 싶은 분야를 찾는 5개의 고리는 

  1. 돈 : 진귀한 수집품 관련 등
  2. 시간 : 오랜 시간을 들여 쌓은 경험
  3. 전문성 : 면허나 가업, 지역 정보 등
  4. 네트워크 : 정보와 인맥
  5. 라이프워크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 열정

이고요.

그리고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를 알아야 하며, 자신의 인생을 포지셔닝 해야 합니다. 현재를 알고 목표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으며, 내 위치를 알아야 어떤 글을 쓸지가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위치에 해당하는 타입은 카리스마 형, 대가형 (전문가 스타일), 장인형 (달인 스타일)의 세 가지가 있는데 전문가는 노하우를 갈고 닦으며 연구하는 연구자, 장인은 한 가지 일만 파고들어 목적을 달성하는 인물을 말합니다. 카리스마형은 자기계발서, 대가형은 비즈니스 관련 도서(수단이나 방법 방식, 실무, 학문, 정보를 알려주는), 장인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의 스킬이 담겨 있는 전문 서적이 어울리고요. 그럴듯하죠?

이에 따라 제가 쓸만한 분야, 방향을 뽑아본다면, 저는 어렸을 때 부터 추리 소설 읽는 걸 좋아했습니다. 또 남들이 별로 하지 않는 블로그에 서평 올리기를 16년 넘게, 매년 수 십권씩 꾸준히 하고 있고요. 즉, 저의 USP는 추리 소설 서평이 되겠지요. 쓰고 싶은 분야 항목에서도 오랜 시간을 들인게 각종 도서들의 서평입니다.
하지만 이를 자기 계발서나 정보서로 포장하기는 조금 힘들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의 스킬이 담긴 책으로 써야 할겁니다. 추리 소설 중심의, 다른 책들 서평을 결합한 그런 책이요. 예를 들자면 "추리 소설 속 요리" 같은 식이겠지요.

이렇게 쓰고 싶은걸 찾은 뒤, 어떻게 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만드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매력적인 프로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기획서"가 가장 중요하다는군요. 그리고 직접 "황금 기획서"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무려 17개 항목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죠.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면 다음의 순서입니다.
'제목, 부제, 메인 카피, 책의 내용, 저자명, 저자 프로필, 감수자, 감수자 프로필, 기획 의도, 기획 배경, 예상 독자, 유사 경쟁도서, 유사 경쟁도서와의 차별 전략, 사양, 원고 마감 예정일, 기타 희망사항, 마케팅.'
여기서 제목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에요. 잘 나가는 책의 비결은 제목이 80%, 장정 (제본 + 디자인)이 20%라고까지 하니까요. 보다 자세하게는 '제목은 0.3초, 부제는 3초, 카피는 30초만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고 합니다.

그 뒤에도 글을 쓸 때의 법칙 등이 이어집니다. 여기서는 '처음과 마지막 세 줄을 정성들여 써라.' 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런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많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가장 큰 수확은 책을 쓰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여러가지 답이 있지만 '책은 공간적인 확장성 뿐 아니라 시간적인 확장성도 있다. 20년이 지나도 50년이 지나도 자녀와 손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게 가장 와 닿았습니다. 책을 통해 친지와 후손들이 저를 추억할 수 있다면, 책은 꼭 한 권 정도 쓸 만 할겁니다. 절판이 되거나 잊혀질 수 있지만, 최소한 그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계속 남아있을테니까요.

이렇게 책을 내야겠다는 의욕에 불을 지폈다는 점에서 별점은 3점입니다. 실용적인 가치도 높은 만큼 책을 내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정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8/10/14

중국집 - 조영권, 이윤희 : 별점 3점

중국집 - 6점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CABOOKS(CA북스)

경력 26년의 피아노 조율사인 저자가 조율 등 업무를 위해 전국 각지로 출장을 다니며 해당 지역 유명 중국집을 탐방한 글과 사진, 그리고 글을 바탕으로 한 만화와 함께 엮은 맛집 탐방기입니다.

전국 출장을 다니며, 업무가 끝난 후 극심한 허기를 느끼고 식사를 하는 한편 한편의 구성은 "고독한 미식가"와 비슷하지만 차이점도 큽니다. 저자 조영권씨의 피아노 조율 업무가 중국집 식사와 같은 비중으로 설명된다는 점, 아무 식당이나 찾아가는게 아니라 '중국집' 만 찾아간다는 점입니다. 특히 피아노 조율에 대한 디테일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워낙 전문가, 장인들의 세계를 다룬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런 류의 다른 작품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심오하면서도 복잡하고, 저자만의 노하우가 드러나는 부분들이 많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간단한 선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구도와 투시 모두가 꼼꼼한 만화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이야기의 핵심인 중국집 탐방도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을 망라하고 있는 덕분에 볼륨도 풍성하고, 밑반찬이 뭐가 깔리는지에서부터 시작해서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재료와 레시피에 대한 상세한 소개에 더해진 저자 나름의 요리별 분석과 맛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어서 쉽게 읽힙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짜장면의 역사와 물짜장을 비롯한 다양한 짜장면들의 소개, 탕수육의 부먹과 찍먹의 유래는 중국집에서 배달이 시작되었던 70년대에 탕수육 배달할 때 시간이 지나면 바삭함이 사라지기 때문에 튀김과 소스를 별도로 배달하며 생겨난 것으로 원래는 소스와 함께 볶아나오는게 맞다, 충청도 물쫄면을 소개하며 인천에서 시작된 쫄면이 경부선을 타고 지방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라는 추측 등 오랜 맛집 블로거다운 식견이 느껴지는 글들도 재미 요소고요.

하지만 '혼밥' 이기 때문에 특별한 요리없이 대부분 볶음밥, 짜장면, 짬뽕과 만두 정도만 먹는건 조금 아쉬웠어요. 많이 먹어도 면 요리에 만두 한 종류 곁들이는 정도거든요. 이왕 지방까지 내려가 먹는 거라면 좀 더 다양하게 이것저것 먹어 보아도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아무리 볶음밥만으로 그 중국집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래서야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또 책의 디자인, 만듦새는 나쁘지 않으나 저자의 글을 만화로 옮긴 내용은 사진이 전무한 편집은 영 별로였어요. 인천 신성루의 자춘결을 먹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으로 뭔가 맛있어 보이는 요리인데 그림만으로는 그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아 안타까왔습니다. 그 외에도 '인발루' 소개에서 첫 페이지 글이 두번째에도 다시 나오는 오류와 가로형 사진이 세로로 편집된 부분은 눈에 거슬렸던 부분입니다. 혹 재판을 찍는다면 수정되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피아노 조율의 세계와 중국집의 식사 메뉴 탐방이라는 굉장히 독특한 두가지 세계를 하나로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독보적인 부분도 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맛집 소개글이나 미식 블로그를 자주 찾으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