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귀신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귀신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14/05/02

처녀귀신 - 최기숙 : 별점 3점

처녀귀신 - 6점
최기숙 지음/문학동네

우리의 전래 이야기 중 귀신에 촛점을 맞추어 이야기 속의 숨겨진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낸 역사-문화서입니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여자, 처녀귀신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자도 여성이고 조선시대는 여성이 아무래도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겠죠. 

"한국의 학교 괴담"과 비슷하게 당대 전래되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저자의 해석을 자세하게 덧붙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국의..."와는 다르게 내용이(학술서치고는) 비교적 쉽게 쓰여져 있으며 생각도 못했던 파격적인 해석이 몇 가지 등장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에게 혼례란 성인식과 동일시 된 것으로 처녀귀신은 미처 성인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 실패자의 표상이라는 해석, 여자귀신은 억울하게 현실에서 쫓겨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라는 해석 등은 아주 새로왔습니다. 장화홍련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죽어버린 사또들은 자기만 아는 비겁한 소인배였다는 뜻이겠죠?

귀신들이 관리나 전도유망한 청년을 찾아가 하소연하는 합법적 절차를 존중한 이유 역시도 참신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뭐가 부족해서 스스로 복수하지 않았느냐는 것인데, 이는 사대부 남성이 즐겨 읽던 야담 속 이야기가 많아서 관리의 능력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하네요.

또 전래 이야기의 재해석도 소개되는데, 인삼장수 최가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건장한 사내귀신이 수절하던 최가 어머니를 찾아와 겁탈하고, 그 후 귀신이 올때마다 재물을 가져와 부자가 되었다. 어느날 여자가 귀신에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게 뭐냐고 물었고 노란색이라고 답하자 집안을 온통 노랗게 칠하고 귀신을 쫓았다"라는 이야기로, 청상과부가 부자가 되자 이를 기이하게 여긴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과부가 부자가 된건 사내와 성관계를 맺은 대가로 재물을 얻은게 분명하고, 부자가 된 여자는 남자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서 약점을 캐서 관계를 정리한 뒤 남자를 매몰차게 거절했을 거라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럴듯해요!

다만 뒷부분에서 자살자를 다루면서 귀신보다는 자살에 이르게 된 당시 사회상 해석에 치중한건 아쉽습니다. 제목 및 앞부분 내용과 살짝 거리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독특하고 새로우며 재미도 있는 좋은 책입니다. 170여 페이지 정도되는 짤막한 분량, 책의 장정과 디자인도 좋았고요. 가격도 괜찮은만큼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04/09/26

귀신이 산다 - 김상진 : 별점 1점


추석 개봉 영화들 중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차승원 영화는 기본은 항상 해 준다는 기대와 김상진 감독의 영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설정이나 초반부 전개는 제법 그럴싸해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자기 집 갖기가 평생 소원인 주인공 박필기(차승원)가 드디어 집을 장만하지만 그 집에 귀신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 웃음거리도 충분하고 귀신과의 사투나 차승원이 대항하는 방법, 여러 자그마한 에피소드들이 볼만하거든요.

하지만 거기까지, 중반 이후 차승원이 우연히 번개를 2번이나(!) 맞고 식스센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막나가기 시작합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디아이"를 소지하게 된 차승원! 귀신을 볼 수 있는 직장 상사 장항선의 충고와 도움으로 귀신 장서희를 오히려 데리고 놀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급속히 힘을 잃습니다. 일단 초반부의 강력한 장서희의 파워가 전부 사라져 버리며 이야기가 모순이 생기기 시작하며 후반부의 악덕 부동산 업자와의 한판 대결은 귀신들린 부동산 업자 부하들이 소림 무공인지 뭔지로 날라다니면서 화려한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남기남 류의 전개까지 보여주더군요.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마지막의 장서희가 남편의 유령과 승천하는 장면은 Ghost (사랑과 영혼)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베낀 어처구니를 물말아 먹은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막판 후반부는 졸음이 쏟아져 헤어나기 어려웠어요.
그나마 연기라도 좋았으면.. 싶지만 장서희의 연기는 그야말로 바닥 수준으로 몸서리가 쳐지네요. 거기에 CG와 특수효과는 왜 이리 후진거야?

한국 코미디 영화의 대부라는 김상진 감독의 작품 수준이 이정도까지 떨어지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이젠 한국의 왕정감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네요. 차승원이라는 괜찮은 배우를 데리고 이 정도 영화밖에 못찍었나 하는 생각에 아쉽기만 합니다.

한마디로, 최근 제가 관람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쓰레기급입니다. 아니 역사상 가장 쓰레기 급 중 하나죠. 돈보다도 왠지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스타들이 출연하는 추석 특집 TV극 수준의 작품으로 저만의 미스터리 영화 흥행 차트 ("색즉시공", "조폭마누라")에 추가되어야 할 영화입니다. 그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지인들의 관람을 힘 닿는대로 적극 저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정말이지.......도대체 왜 흥행이 잘 되는 거죠?

2021/06/18

눈물점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점

눈물점 - 4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인 미시마야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입니다. 모두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번 권 부터는 전작에서 시집간 오치카를 대신해서 도미지로가 괴담을 듣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런데 전작에서부터 예견된 이 교체는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결과물은 역시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냥 괴담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한량이라서, 괴담 이야기를 듣는 진지한 목적이 사라져 버린 탓입니다. 괴담 이야기에 대한 별다른 책임감도 느낄 수 없었고요. 그 외에도 전작들에 비하면 괴담들의 섬찟함이나 무서움이 훨씬 덜한 편이라는 점, 그리고 가장 대작인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이 특히 지루했던 점 등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도미지로로의 주역 교체에 대해 갖고 있던 불안감이 현실이 된 만큼, 이후 이 시리즈를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눈물점" 

도미지로에게 어린 시절 소꿉친구였던 하치타로가 찾아왔다. 그는 과거 자신의 집이었던 두부가게 '마메겐' 일가족을 파괴했던 눈물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과거 마메겐에서는 형수들과 누나가 남자 가족을 잇달아 유혹했었다. 마지막에 큰 누나가 아버지를 유혹하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큰 누나의 '눈물점'을 잡아 뜯어 잘근잘근 씹어버렸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가출한 뒤 죽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악령이 눈물점 형태로 여자에게 씌워지면, 남자를 유혹하게 된다는 뻔한 이야기인데다가, 악령이 '마메겐' 여자들에게 씌워져 가문을 박살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답답합니다. 아버지가 사과했다던가, 가출했다던가 하는걸 미루어보면 뭔가 여자에게 원한을 산 듯 한데, 암시만 줄 뿐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냥 재수없게 귀신에게 씌웠다라고 한다면, 아버지가 가출해서 죽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창피해서? 그렇다면 눈물점의 여자가 아버지가 죽은 자리에 귀신으로 나타날 이유는 없지요. 어머니가 가족이 흩어지는걸 허락한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하치타로의 부인은 얼굴이 점투성이었다는 결말과, 어린아이답지 않게 똑똑했던 막내 누나 치이 캐릭터는 괜찮았습니다. 치이는 눈물점이 수상하다는건 알지만, 이를 방관하는걸로 그려지는데, 차이가 주도적으로 활약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갔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아무래도 단점이 더 많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시어머니의 무덤" 

꽃놀이 철, 비단 장사집 노부인 오하나가 찾아와 고향 벚꽃 마을에서 있었던 무서운 과거를 이야기해주었다. 마을에는 묘지 언덕에서 꽃놀이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오하나의 집 가가리야의 여자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 가가리야 증조 할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다가 자살한 뒤 가가리야 여자들은 꽃놀이 때 묘지 언덕에 오르면 죽는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가가리야에 며느리 오케이가 들어온 뒤, 당찬 그녀의 주도로 가가리야 여자들은 묘지 언덕 청소를 위해 꽃놀이 전날 묘지 언덕에 올라갔다. 그 때 무언가에 씌인 어머니가 며느리를 죽였고, 그 뒤 행복했던 가족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과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내렸다는 저주에 대한 괴담. 미야베 미유키가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 꾼인지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꽃놀이 묘사에서 시작해서 평화로왔던 벛꽃 마을 묘사, 말괄량이 며느리 등 저주와는 관계없어 보이는 시시콜콜한 내용을 재미있게 묘사하다가, 과거 증조 할머니의 저주와 그 저주의 재림이 이어지는 클라이막스까지 달려가는 전개가 절묘하고, 호흡과 긴장감도 최고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의 "눈물점"처럼 저주에 대한 이유 설명이 없지 않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증조할머니가 비정상적으로 며느리를 미워해서 생겨난 것으로 설명되고 있거든요. 물론 왜 미워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합니다. 며느리 뱃속 아기까지 죽인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심지어 그 저주가 미워하는 대상인 며느리가 죽고 나서도 몇 대를 이어서 내려올 까닭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정도라도 설명이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괴담이나 퇴마물에서 저주는 어쨌건 이유가 명확해야 이야기가 성립되니까요. 저주를 없애기 위해서, 혹은 저주 때문에 죽거나 피해를 받더라도 이유를 알아야 하는 탓이지요.

그러나 이 괴담이 현실화된 과정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벚꽃 마을 사람들 행동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마을의 유력자인 가가리야 가문 며느리가 꽃놀이 때 저주로 비참하게 죽었다면 꽃놀이를 계속 그 곳에서 하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최소한 위험한 묘지 언덕을 오르는 계단은 보수했었어야 합니다. 이래서야 저주로 인한 죽음을 그냥 가만히 기다린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너무 설득력이 없어요. 

마지막에 도미지로가 오하나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어깨의 손자욱은 밀기 위함이 아니라 안아주기 위함이다."라고 말한 것도 멋지기는 하지만 도미지로가 말해서 별로 어울리지 않더군요. 결혼도 안 했고, 당연히 아이도 없으며 여자도 아니고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고 아픈 경험도 딱히 겪어본 적 없는 도미지로가 한참 어른인,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오하나에게 할 말은 아닌 듯 싶었거든요. 도미지로가 이야기를 듣는 역할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제 생각이 더욱 굳어지게 만든 결말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괴담으로의 재미는 확실했고, 미시마야 시리즈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지만 단점도 명확해서 감점합니다.

"동행이인"

이번에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 미시마야를 찾아온 건 나이 쉰 살의 파발꾼 출신 지배인 가메이치였다. 그는 파발을 위해 달리던 어느날 들러붙었던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귀신이 그에게 들러 붙었던 이유는, 귀신 간키치처럼 가메이치도 당시 처자식을 잃고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작품들과 장, 단점이 완전히 반대인 작품입니다. 장점이자 차이점이라면, 귀신 및 기타 기묘한 현상에 대한 설명이 완벽하다는 점이에요. 가메이치에게 귀신이 달라붙은 이유는 줄거리 소개와 같고, 간키치가 귀신이 되어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앞에 나타난건 더 이상 울지 않는다는걸 보여주기 위함이고 (얼굴이 없으므로), 얼굴없이 가메이치를 뒤 쫓을 때 고개를 계속 끄덕이던건 울고 있어서였습니다. 아버지 찻집에 벼락이 떨어진건 단순히 운이 나빴기 때문이고요. 물론 여관 부뚜막에서 화재를 일으킨 이유는 애매합니다만, 이 정도면 귀신에 관련된 거의 모든 현상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해 준 셈이지요. 

파발꾼 이야기답게, 당시 에도에서 도카이도를 통해 가는 지방과 길에 대한 풍부한 묘사도 특징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시대물이지만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전해주네요. 파발꾼과 파발 업무에 대한 세세한 설명도 좋았고요.

하지만 전혀 무섭지 않다는 단점은 큽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치유에 대한, 감동 계열의 이야기인 탓입니다. 솔직히 이게 괴담인가? 싶을 정도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괴담이라면 일단 무섭고 봐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 

정체 불명의 저택에 여섯 명의 사람이 모였다. 괴저택은 죽을 죄를 지은 사람들을 모아 신처럼 그들을 가지고 놀 속셈이었다. 과거 예수교를 믿었었지만, 기도에 보답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참한 일을 겼었던 저택 주인의 분노와 원념 탓이었다. 올곧은 무사 긴에몬이 지휘했지만 여섯 명은 차례대로 비참하게 죽어갔고, 결국 긴에몬, 진자부로, 오아키 3명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최후의 힘을 모아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저택의 심장부인 불타는 화산 장지문을 뚫고 나갔다. 그 때 긴에몬은 저택 주인인 검은 무사와 싸운 뒤 용암에 삼켜졌지만 진자부로와 오야키는 살아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저택에서의 일로 건강을 해친 진자부로는 죽기 전 이 경험을 도미지로에게 이야기해 주는데...

한 편의 장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분량을 자랑하는 대작.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모인 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는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을 연상케 합니다. 제가 명명한 명칭인데 (원조!), 이 장르는 보통 서로 경쟁해서 이겨야 살아남는 방식, 또는 갇힌 공간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탈출하는 방식 중 한 가지 방식을 따릅니다. 특정한 룰을 따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고요. 

이 작품에서의 룰은 "6명 중 5명이 죽어야 탈출할 수 있다", 즉 최후의 한 사람만 탈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택은 초반에 이를 노골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첫 번째 방식, 즉 사람들간의 아귀다툼과 생존경쟁으로 진행되나 싶었어요. 그러나 의외로 이야기 전개는 두 번째 방식이더군요. 서로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니까요. 이는 인격자이자 참 리더인 긴에몬의 존재 덕분입니다. 하긴, 한 명만 살아남는다면 검술에 능한 무사를 하녀와 부잣집 마나님, 도박에 미친 한량과 주정뱅이 목수, 약국집 후계자가 이길 수 있을 턱도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요.

문제는 탈출하는 방법을 합리적으로 밝혀낸다는, 이러한 전개의 핵심 재미요소를 간과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저택에 갇히고, 죽을 위기에 처한건 모두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이며, 제령이나 퇴마의 방법도 합리적이지 못한 탓입니다. 애초에 이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합리적인 설명이 없으니, 없애는 방법이 합리적일리 없지요. 마지막 탈출도 모 아니면 도 방식으로 우격다짐에 불과했고요. 

또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하다보니 별로 무섭지도 않다는 점도 단점이에요. 차라리 첫 번째 방식으로 서로 살아남고자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식으로 전개하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건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호러물에 꽤 잘 아울리는 방식이니까요. 미시먀야 시리즈 초반에 비슷한 이야기가 몇 편 있었지요. 이 시리즈도 점점 인간미,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걸 알려주는 이야기가 많아지는걸 보면, 미야베 미유키도 나이를 먹었구나 싶네요. 아울러 이런 전개로 반전이라면 반전인, "진자부로는 죽을 죄를 짓지 않았다"는 설정을 잘 살리지 못한 것도 유감스러웠습니다.

이야기도 다른 작품들에 비교하면 지루합입니다. 저택이 악의를 드러내는 과정까지가 너무 긴 탓입니다. 우선 오아키가 한텐을 보내어 에둘러 이야기거리가 있다고 요청하는 시작부터 진자부로의 이야기까지의 분량 낭비가 심하거든요. 괴저택의 기묘한 디테일도 어린아이들 동화같은 내용과 분위기라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내용에서 불거지는 "예수교" 설정도 전개에는 불필요한, 분량 낭비였습니다. 저택 주인의 원한과 분노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설득력있게 그려지지도 못했어요. 꽤 괜찮은 설정이었는데, 불필요한 정보로 낭비된 느낌이 들어 아깝더군요. 화자인 진자부로도 등장 인물들 중 가장 호감가지 않는 인물이라 읽는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가진 재주도 없고, 용기도 없고, 별다른 계획도 없으면서 일행 마사키치를 질투하는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진자부로가 도박에 미쳤다는 묘사도 지나치게 많고요. 엄연히 진자부로가 도미지로에게 해 주는 이야기이니만큼, 이런 쓸데없는 묘사들은 좀 걷어내는게 좋았을거에요.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도미지로가 최악이라는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교 관련 천조각이 들어간 한텐을 한 번 만났던 골동품 가게에 맡기는 행동 때문입니다. 여러 명의 목숨이 걸려 있을 물건인데, 굉장히 무책임했어요. 이야기 때 무슨 과자를 먹을지 정도의 고민도 하지 않은 듯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래서야 오야키가 '미시마야의 괴담회는 단순한 놀이일 뿐'이라고 일갈해도 할 말이 없겠지요. 제 생각도 오야키와 같습니다.

그래도 저택이 악의를 드러낸 뒤, 이노스케가 딸을 사창가에 팔아먹은 죄를 고백하고 검은 무사에게 참살당하는 장면에서부터 생존자들이 탈출할 때까지 달려주는 부분만큼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괴현상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묘사가 탁월하고, 괴저택과 그 안의 괴이 현상에 대한 상상력도 빼어난 덕분이지요. 에도 시대에 대한 디테일도 역시나 최고 수준으로, 특히 예수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어땠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교라는 말만 듣고도 도미지로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을 통해, 평범한 사람이 예수교를 얼마나 배척했는지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작품은 이전에 본 적도 없네요. 신불을 믿는 사람이 예수교 교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그럴듯하게 설명되고 있고요. 현재와 사뭇 다른 당대 상황에 대한 설명과 묘사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마사키치가 이노스케가 죽은 뒤 충격으로 미쳐버렸다는 설정이 대표적이에요. 온갖 자극에 익숙해진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로는 정신이 무너지지 않겠지요.

이렇게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무섭지도 않았고, 설명도 부족하며, 도미지로의 부족함이 두드러진 작품이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1/12/18

일곱 명의 술래잡기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2.5점

일곱 명의 술래잡기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시도쿄의 생명의 전화 자원봉사 상담원 누마타 아예는 "다~레마가 죽~였다 ..." 라는 섬뜩한 전화를 자정 경에 받았다. 어린아이가 놀이를 하는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전화는 곧이어 자살을 결심했다는 남자로 연결되었다. 다몬 에이스케는 자살할 생각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 신사를 찾았다가, 옛 추억이 떠올라 당시 함께 놀던 친구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전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목을 맬 요량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그를 포함해 여섯 명 뿐이어서 월요일부터 한 명 씩, 다섯 명의 옛 친구에게 전화를 걸은 뒤 토요일에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이후 다몬이 실종되었고, 친구들도 괴전화를 받은 뒤 한 명씩 차례로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유준, 사야에 토시까지 죽고, 사건 해결을 위해 힘을 함친 다츠요시와 고이치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일곱번째 친구 '사카야노 요시코'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요시코와 관련되었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미쓰다 신조의 장편 소설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호러가 아니라 정통 추리물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탐정역인 하야마 고이치가 호러물 설정으로만 보였단 '다레마의 귀신 들린 아이'가 실존했고, 그 사건과 자기들의 어린 시절 놀이가 어떻게 엮였는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꼼꼼하면서 합리적인 덕분입니다. 

여기서 과거, "오오니타 군"을 "오오타 군" 이라고 말하는 식으로 세 번째 음절을 빼먹고 말했던 요시코의 버릇을 떠올려 요시코가 '사카야노 요시코'라고 말한건 사실 '사카X야노 요시X코", 즉 "사카나야노 요시히코"라고 말했던 거란걸 걸 밝혀내는 추리도 굉장했고요. 

오오니타가 남겼던, TF라는 일종의 다이잉 메시지를 이용하는 추리도 깔끔합니다. 이건 완성된 메시지가 아니며, TEL을 쓰려고 했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전화 상담을 했던 누마타 야예가 진범이었다는게 여기서 드러나게 되지요. 

이어지는 누마타 아예의 범행 동기와 과정도 이치에 맞습니다. 아무리 30년 전 일이라고 해도, 금쪽같았던 아들이 사라지고, 남편이 자살한 사건에 관련된 아이들에게 살의를 품는건 당연합니다. 범행을 실제로 저질렀던 '귀신 들란 아이'도 나쁘지만, 이 범행 사실을 알고도 침묵했던 아이들도 큰 잘못을 한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연쇄 살인극에서 오오니타를 마지막에 죽이려 했던 이유가 그가 술래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인상적이었어요. 술래는 처음부터 엔카쿠, '귀신 들린 아이'가 뒤에 있다는걸 알고 있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제일 악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습니다.

물론 미쓰다 신조의 작품답게, 마지막에 하야마 고이치가 추리쇼를 펼치기 직전까지는 호러물로의 가치도 높습니다. 연쇄 살인극이 마타테 시에서 아직도 두려움의 대상인 다레마 가문의 귀신 들린 아이, "다~레마가 죽~였다 ..."는 동요와 결합되어 섬뜩함을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동일한 "다~레마가 죽~였다 ..." 놀이를 하다가 술래가 뒤를 돌아보자,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는 이야기를 가지고 공포스럽게 풀어낸 솜씨도 절묘했어요. 그래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친구들을 한 명 씩 술래가 잡았던 거지요, 설득력 넘치면서도 호러물에 딱 맞는 그런 상황과 이야기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기억은 봉인되고 말았다는 지극히 편의적인 설정입니다.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친구들 모두가, 그것도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비교적 고학년인데 요시코가 납치되는걸 보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모두 똑같이 기억을 잃었다? 말도 안돼죠. 게다가 "다~레마가 죽~였다 ."는 동요를 듣자 봉인이 풀리고 다시 기억을 떠올린다는건 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설정도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입니다. 마타테 시에 아직도 영향력을 끼치는 다레마 가문과 그들의 융성과 몰락을 가져왔단 다레마 신사의 다루마, 몰락의 상징같은 잔혹했던 후계자 '귀신 들린 아이' 등의 설정은 이런 류의 작품에서 너무 많이 보아와서 식상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였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공정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에 다몬 에이스케가 생명의 전화에 걸었던 전화 내용 묘사가 그러합니다. 사실을 적시하는 것 처럼 쓰여 있지만, 이 전화 내용만 가지고 상담원 누마타 야에가 자기 아들의 실종과 죽음이 다몬 에이스케와 친구들과 관계가 있다는걸 알아채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한게 분명합니다. 즉, 애초부터 공정함과는 거리가 먼 설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처음에 "다~레마가 죽~였다 ."는 노랫소리가 들려온 것도 설명되지 않고요. 

또 야에의 범행도 세세한 면에서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구호단체 직원들보다 먼저 현장을 찾아가 다몬 에이스케를 살해한 첫 번째 범행이 대표적입니다. 현장에 누군가 출동한다는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범행을 저지른다? 이보다는 어차피 자살을 앞두고 있었다면, 자살하도록 놔두고 친구들 정보를 빼 내는게 훨씬 손 쉬운 방법입니다. 그가 구조를 받는다면, 그 뒤에 죽여도 되고요. 다른 범행들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며, 범행 전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서 "다~레마가 죽~였다 ."를 들려준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범행 과정 전반에 죽은 요시히코의 원념이 도왔을거라는 지극히 미츠다 신조스러운 설정이 덧붙여져 있습니다만, 이건 합리적인 추리물과는 거리가 멀지요. 

엔카쿠 다카야키 경부가 다레마가의 귀신 들린 아이였다는걸 밝히는 마지막 추리쇼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근거는 오오니타가 남겼던 TF라는 메시지로, 이는 TE를 쓰다가 만 것으로 사건 관계자 중 TE라는 이니셜을 가진 엔카쿠 다카아키 경부밖에 없다는게 요지였지만 이건 TEL을 쓰려고 했다는 거니까요. 이 이니셜을 엔카쿠 경부와 엮을 필요는 없었어요. 이런저런 디테일로 그가 사건 해결에 소극적이었다는걸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그가 요시히코 등을 납치해서 죽였던 다레마가의 귀신 들린 아이였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비약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된 추리라고 하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에 나타나 하야미 고이치와 대면한다는 지극히 작위적이면서 편의적인 상황 설정은 둘째치고서라도요.

그 외에도 다레마 신사에 모셔진 다루마의 정체라던가, 다몬 에이스케가 전화를 하려고 했던 일곱번째 친구가 누구인지 결국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에요.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는 '맥거핀'의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불필요하고 진부했던 설정을 일부 제외하고, '귀신 들린 아이'가 엔카쿠 경부였다는 비약을 잘 정리했더라면 훨씬 간결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8/15

동궁(2026) - 최정규: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건이 연못 귀신의 저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연못 귀신의 원한은 자신을 모함해 죽인 대왕대비를 향한 것이었고, 왕과 동궁에는 원한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왕이 왕이 될 수 있던건 왕의 생모인 숙빈이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벌였던 독살 덕분이었고, 숙빈은 대왕대비와 연못 귀신의 원한을 이용해 진실을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나지요.
하지만 이 과거의 사건 역시 현재 세자들의 죽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지금의 악귀는 얼마 전 죽은 세자였거든요. 결국 죽은 세자가 형제를 독살해 왕이 되려 했고, 이를 알아챈 왕이 세자를 죽이면서 원한이 시작되었다는 진상이 밝혀집니다.
이렇게 반전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못 귀신 - 대왕 대비 - 숙빈 최씨 - 세자로 주적이 계속 바뀌는 구성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선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왕 역의 조승우와 대왕대비의 연기는 감탄이 나오며 영상도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을 유지하면서 왕의 곤룡포와 생강 옹주의 화려한 한복을 강하게 대비시키는 장면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의상과 세트도 보기 좋게 갖춰져 있으며, 꺼먹살이의 귀여운 존재감도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어요.

하지만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은 조금 거슬립니다. 초반 영안군을 습격한 존재가 연못 귀신처럼 묘사된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연못 귀신은 영안군을 습격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또 이는 진상과도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귀매의 눈을 얻은 구천이 어떻게 되었는지, 저쪽 세계에서 어떻게 돌아왔는지와 같이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제법 되고요. 

무엇보다 가장 큰 단점은 액션입니다. CG도 과하지만 액션이 최근 다른 작품들에 비해 화려함, 강함, 속도감 모두 부족한 탓입니다. 특히 마지막 세자와 구천의 대결은 90년대 오래된 홍콩 영화 와이어 액션처럼 보입니다. 세자와 구천 모두 무술에 능하다는 설정도 없어서 이런 육탄 대결에 대한 설득력도 약하고요.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궁중 미스터리와 반전이 많은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추천드립니다.

2020/02/07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 - 모로호시 다이지로 : 별점 3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 - 6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그럭저럭 좋아합니다. 작품들의 편차가 큰 탓에 선뜻 읽게 되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이 단편집은 스스로가 선정한 단편들을 모아 놓았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오랜 만화가 경력 기간 중 발표했던 작품들에서 뽑았다면 전부 기본 이상은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목차는 크게 3장, "제 1장 신이 된 인간, 혹은 귀신이 된 인간" 과 "제 2장 기괴한 사건이 일어나다", "제 3장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다"로 나뉘며, 목차별로 각각 1장에 세 편, 2장에 두 편, 3장에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 대표 시리즈들이 적절히 선정되어 있으며, 작가의 평상시 작풍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작품까지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대에 값합니다.

국내에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이는 '자선 단편집' 특성 상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이 정도면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팬에게는 충분히 어필할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도원기"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출세작인 중국 호러 판타지 중 한 편입니다. 도연명이 원량, 잠과 함께 복숭아 나무에 숨겨진 마을에서 불로장생을 꿈꾸지만,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정신을 차린다는 이야기로 속세의 모든 것을 내려두고 불로 장생을 꿈꾸는, 즉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신이 되고 싶었지만 신이 되지 못한' 인간들의 종말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연명은 그들과 함께 하려다 헛된 꿈을 꾸고 말고요.

내용 자체는 굉장히 평이합니다. 불로장생 마을은 요상한 요물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요물이 사라지자 모두 백골로 화했다는 전개는 뻔하디 뻔하니까요. 그러나 마을의 비밀을 더듬어 나가는 과정은 꽤 긴박감이 넘치며, 도연명의 본명이 도잠, 자는 연명 또는 원량으로 일행이었던 원량과 잠도 그 자신이었다는 반전은 독특합니다. 

1980년 발표 작품인데, 작가 자신의 스타일이 충실히 구현된 좋은 작품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진수의 숲"

오랫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산책 중 신사 근처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를 하다가 기묘한 시대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누군가에게 잡혀 왼쪽 눈이 뽑혀 나간 뒤 신사에 감금되었는데, 이는 1년에 한 번, 인신 공양에 이용되는 '두옥'이라는 신령의 권속인 산 제물로 선정된 까닭이었다. '나'는 신사를 탈출하여 숲에 숨어 사람들을 잡아먹으며 버티다가, 스스로 '귀신'이 되었다는걸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현대'로 이동하는데...

'귀신이 된 인간'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일본 전통 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인신공양의 대상으로 신령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귀신, 도깨비가 된다는 이야기를 현실감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요괴 헌터" 느낌이랄까요? '한쪽 눈이 빠진' 상태와 도깨비를 연결시킨 아이디어도 좋아요.

그러나 아쉬운건 결말이 다소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된 뒤 다시 타임 슬립하여 현대로 돌아온다는건 안이한 발상이 아닌가 싶거든요. 딱히 반전도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복수 클럽"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통해 맞이하는 갖가지 불행들이 사실은 '복수 클럽' 때문이라는 내용의 작품. 불특정 다수가 회원이라서 상관없는 사람의 복수를 대행시킨다는 설정은 꽤 그럴듯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귀신이나 이세계 이야기, 설화나 SF적인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순수하게 현대 사회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사회 풍자극이자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이런 작품은 정말이지 처음 보네요.

그러나 반대로, 왜 이런 작품을 많이 그리지 않았는지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작화라던가 전개 방식이 영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후지코 후지오의 "웃는 세일즈맨" 같은 형식에 더 적합한 아이디어라 생각이 되더라고요. 더 웃기거나, 더 극적인 반전이 있는 쪽으로 가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3.5점.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약간 아쉽습니다.

"모가지괴"

"이계록"에 수록되었던 중국 설화 이야기로 안정적인 작화와 전개 모두 괜찮은 수작입니다. 별다른 반전이야 없지만 원전이 되는 이야기가 그러한 탓이겠죠.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왜 "이계록"에서 이 작품을 선정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살아있는 목 사건"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중에서도 대표작이죠. 기괴하면서도 일상에 맞닿아 있고, 또 은근히 웃기기까지 한 좋은 작품입니다.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대충 손가는대로 그린 듯한 작화도 이야기의 멋을 잘 살려줍니다. 누가 뭐래도 작가의 최고 대표작 중 한 편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연못의 아이"

남아메리카 오지의 차크타 호수에서 동물처럼 지내는 두 남녀가 발견된 후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인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 아이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애매하며, 여자 쪽은 헐리우드의 총아가 되지만 남자는 목동으로 살다가 자살한다는 결말도 뜬금없는 탓입니다. 딱히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으며 흥미롭지도 않은 졸작이에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이의 놀이"

어린이들이 몰래 키우던 무언가가 그 아이를 대체한다는 내용인데 단순한 일상계 호러는 아닙니다. 사춘기나 '철 든다'는 특정 시기의 변화를 이러한 존재의 대체로 설명하려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주인공이 이런 변화를 너무 쉽게 수긍하는건 좀 석연치 않았습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걸 더 극적으로 그려내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또다른 "바디 스내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역립 원인"

직립 원인의 미싱 링크로 역립 원인이 있었을 거라는 황당한 아이디어의 꽁트. 별점을 주기 애매한 쉬어가는 소품입니다.

"꿈꾸는 기계"

사람들은 모두 꿈만 꾸고, 일상 생활은 기계로 대체된 사회를 그린 SF인데, 1974년 발표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와 너무나 똑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서 블랙 코미디 요소를 빼고, 액션만 넣는다면 "매트릭스"인 것이지요. 한마디로 시대를 20년이상 앞서간 작품이에요.

그러나 작화가 이야기와 영 어울리지 않다는 문제와 함께, 전개가 약간 아쉽습니다. 도시가 정지해버리는 결말도 너무 안이하고요. 한 발자욱을 더 못 나간 느낌이랄까요? 오토모 가즈히로가 그려내었더라면 영원히 이름이 남을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거에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21/04/29

금빛 눈의 고양이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금빛 눈의 고양이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중간중간에 놓친 권이 있어서 제가 읽은 걸로는 세 권 째네요. 언제나처럼 네 편이 아니라 다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열리지 않는 방"은 굉장했습니다.. "벙어리 아씨"도 성내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사건에 대한 진상은 꽤 볼 만 했고요.

그러나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덧붙여진 설정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미지로가 이야기를 몰래 듣는 역할을 넘어서서, 이야기를 오치카와 함께 듣고 난 뒤, 관련된 그림까지 그린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애초에 오치카가 괴담을 듣게된 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미지로는 부잣집 도련님이자 한량으로 괴담은 재미삼아 들을 뿐이에요. 이래서야 시리즈의 기본 전제가 흔들리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심지어 이번 권 결말에서 오치카가 시집을 가게 되어 도미지로가 공식적으로 괴담을 듣는 역할을 물려받게 되는데, 더 이상 시리즈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외에도 이전 권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들, 소품들이 많아서 별로 무섭거나 섬찟하지도 않았다는 문제도 큽니다. 이전부터 반복되어왔던 문제인데, 뻔한 설정이 많고 의외성 부족하다는 단점도 여전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열어서는 안 되는 방"은 아주 좋으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열어서는 안 되는 방"

인기밥집 돈부리야의 주인 헤이키치가 흑백의 방을 찾아와 옛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원래 철물상인 미요시아의 막내 아들로 부모님과 3남 3녀로 이루어진 대가족이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헤이키치가 10살 때 소박맞고 집에 돌아왔던 누님 오유가 아들이 보고 싶어서 소금을 끊고 애매하게, 하지만 절실하게 기원한 틈에 요물이 파고 들고 말았다. '행봉신'이라 자칭한 요물은 집 골방에 자리잡은 뒤, 소원을 이루려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가족 일부의 일탈이 시작되고, 행복했던 대가족은 헤이키치를 제외하고 모두 목숨을 잃고 마는데...

악마나 요물이 사람의 욕망을 가지고 논다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바로 전편의 "오쿠라 님"도 비슷한 설정이었지요. 하지만 "오쿠라 님"은 비젠야를 도와준건 맞는 반면, 이 작품의 행봉신은 소원을 빈 사람에게 비참한 말로를 가져다 준다는, 전통적인 재앙신 전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뻔하지만은 않습니다.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덕분입니다. 행봉신을 통한 소원 성취가 비참한 말로를 맞는 두 가지 이유처럼요. 첫 번째는 '등가교환' 이에요. 무언가를 얻으려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하는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간과합니다. 두 번째는 '소원이 애매하다'는걸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게 장녀 오유가 이혼당한 뒤, 시댁에 빼앗긴 아이를 보고싶다는 소원입니다. 어떻게 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없이 그냥 아이를 돌려달라고 빌었고, 행봉신을 집 안에 끌어들인 죄책감에 자살하자 아이가 돌아오게 되었다는 결말이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비열하게 이용해서 무조건 최악의 결과를 만드는 술수에 걸려든 셈이죠. 다른 가족들의 소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글을 읽으니 로또 당첨된 사람들 말로가 좋지 않다는 뉴스가 떠오릅니다. 비슷한 이치인것 같아요. 요행을 바라지 말고,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게 맞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네요. 하지만 이왕 살 거라면, 막연히 1등을 바라지 말고 1등이 된 뒤 어떻게 할 지 계획을 잘 세워두는게 바람직해 보이고요.

여튼 오랫만에 괴담이라는 주제에 충실했던 작품이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행봉신에 의한 행복했던 대가족의 파멸 과정은 충분히 섬찟했어요. 에도라는 시대 상황과 소원들을 맞물려 묘사한 솜씨도 일품이었습니다. 설정이 뻔하고 결말이 좀 시시했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다 용서가 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벙어리 아씨"

데릴 사위인 종이 도매상 미노야의 후사노스케가 친모 오세이를 모시고 흑백의 방을 찾았다. 오세이는 귀신을 부르는 '몬모 목소리'의 소유자로, 자신이 젊었을 때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몬모 목소리 때문에 고향인 아사히 마을을 떠난 뒤, 이런저런 경험 끝에 영주 측실 딸 가요히메의 요강 담당 하녀가 될 수 있었다. 오세이는 성에서 선대 영주의 장자 잇코쿠의 망자와 친해졌고, 잇코쿠가 때문에 가요히메가 목소리를 잃었다는걸 알게되었다. 그래서 잇코쿠를 둘러 싼 죽음의 진상을 알아낸 뒤, 잇코쿠가 성을 떠나 성불하고 가요히메가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데....

귀신이 잘 꼬이는 "백귀야행"의 리쓰를 비롯 (몇 권까지 읽었더라....), '귀신을 부르는 체질'이라는 설정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목소리'가 귀신을 부른다는 설정으로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목소리는 단순한 설정 수준에 그칩니다. 잇코쿠가 죽은 이유를 알아내고, 성불시키는 과정에서 몬모 목소리의 역할은 별로 없거든요. 오히려 몬모 목소리로 귀신이나 망자, 요괴를 불러내도, 오세이를 도와주는 쪽이라 딱히 저주나 괴로운 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수호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니 이래서야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해도 무방하지요.

그래도 잇코쿠의 죽음을 둘러 싼 진상만큼은 재미있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잇코쿠는 선대 영주의 장자이자, 측실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실이 아들 구니카즈를 낳자, 성은 잇코쿠파와 구니카즈파로 쪼개져 다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정실은 에도에 거주하고, 측실은 현지 성에 거주하던 탓이었지요. 그런데 다툼 중 잇코쿠가 갑작스럽게 죽어서 이런저런 의혹을 낳았는데, 알고보니 측실의 아버지이자 잇코쿠의 할아버지 센자에몽이 잇코쿠를 독살했다는게 진상이었습니다. 가문의 충신이자 영주의 오른팔로 성주 대리까지 맡았던 할아버지가 가문의 단결을 위해 손자를 죽인겁니다. 그 뒤 사실을 알게 된 딸도 죽고, 스스로도 할복해 버리고 말았고요. 현재 영주는 이렇게 잇코쿠 죽음과 관계가 있는 구니카즈이기 때문에, 잇코쿠가 성을 떠나야 가요히메가 목소리를 되찾을 거라는 설정도 꽤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잇코쿠가 성을 벗어나기 위해 '그릇'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오세이가 백방으로 노력해서 초대 영주의 영웅담을 그린 인형극 인형을 써먹는다는 결말도 괜찮았고요.

그런데 잇코쿠 사건 이야기는 재미는 있었지만, 솔직히 와 닿지는 않았어요. 모시는 가문이 중요하다고 해도, 가족보다 소중한건 없을텐데 말이죠. 측실이더라도 손자는 엄연히 영주의 피를 이었으니, 손자 편을 들어 주도권을 갖는게 당연하지 않나요? 주군의 가문이 자기 피붙이보다 중요하다는건 지극히 일본적인 발상이었다 생각됩니다. 또 잇코쿠 사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개도 지루했습니다. 특히 체질 탓에 어린 시절을 외지에서 보낸 오세이의 파란만장한 청춘은, 성에서 일하게 된 상황을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한 빌드업에 불과해서 이렇게까지 길게 묘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요괴를 불러오는 목소리를 타고 났기에 고향에서 더 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귀가 먼 노부부의 하녀로 일하게 되면서 그 분들의 수화를 익혔다. 노부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수화 기술 덕분에 벙어리 공주님이 계신 성의 하녀로 뽑혔다.'가 전부니까요.

아울러 도미지로가 그림을 그린 뒤 인상을 그림에 남긴다는 설정도 이 작품에서 첫 등장하는데, 앞서 말씀드렸듯 이런 설정이 덧붙여지는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도미지로가 추가된 것 부터가 별로에요. 첫 등장했을 때는 비젠야를 찾는데 남다른 행동력을 보여주면서 나름 활약했지만, 그 뒤는 그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게 전부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가면의 방"

어느날, 소녀 오타네가 괴담 이야기를 하겠다며 미시마야를 찾아왔다가 무례를 범한 끝에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다음날, 소녀는 공동주택 관리인에게 끌려와서 오치카와 도미지로에게 '가면의 집'에서 겪었던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곳은 악의 결정체인 가면을 봉인하여 지키는 저택으로 오타네는 하녀로 고용되었었다. 악인만이 가면의 행동을 보고 들을 수가 있어서 좀도둑 오타네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작 석달여만에 오타네는 가면의 꾀임에 넘어가 가면이 도망가는걸 돕고 마는데...

세상에 재앙을 불러 온다는 가면이 쌓여 있는 저택이라는 설정이 신화나 전설을 연상케했던 작품. 그래도 가면을 악당만 볼 수 있다는 설정은 신선했습니다. 덕분에 화재가 일어났던 가게 아들과 주변 사람들이 '사람 얼굴'을 보았다고 주장했다는 결말도 그럴싸 했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재미를 느낄만한 극적 요소는 별로 없었습니다. 가면이 오타네를 유혹해서 도주한 뒤, 화재를 일으켰다는 전개는 예상 가능했거든요. 오히려 가면이 무엇이고 가면을 지키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등에 대한 정보는 쏙 빼 놓고 있으며, 가면이 달아날 수 없게 방에 파수꾼을 세워 놓으면 되지 않나? 와 같은, 설정상 헛점이 눈에 더 많이 뜨여서 별로였어요.

이렇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고, 딱히 에도물일 이유도 없어 보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기이한 이야기책"

다른 무사의 약혼녀와 사랑의 도피를 한 탓에 고향에도 돌아갈 수 없던 도망 무사 쥬베에는 일류 세책방 잇센도로부터 책 필사를 부탁받았다. 수상했지만 100냥이라는 거금에 홀려 고민 끝에 수락했다. 빚을 갚고 홀로 남은 딸과의 삶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쥬베에는 책 필사를 하면서 자신의 남은 수명을 알게 된 뒤, 자주 왕래하던 세책집 효탄고도의 주인에게 딸의 안녕을 부탁하는데....

세책집 효탄고도의 작은 주인 간이치가 흑백의 방에서 들려준 이야기인데 여러모로 "가면의 방"과 비슷합니다. 구멍투성이라는 점에서요. 잇센도가 필사를 맡긴 책의 정체도 알 수 없고, 책 내용이 무엇인지도 전혀 알려주지 않거든요. 간이치가 잇센도 책 필사를 했었고, 덕분에 스스로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있다는걸 암시해 주기는 하지만 이 역시 속 시원하게 드러나지는 않는건 마찬가지입니다. 또 이 이야기를 들은 오치카가 간이치와 결혼할 결심을 한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전에 연심을 품고 있다던가 하는 묘사도 없이, 간이치가 남은 수명을 알고 있고, 그래서 뭔가 세상만사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다는게 드러난 이유의 전부라서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노안'이나, 조금 원숙해 보이는 사람이 오치카 취향이었나....

하여튼 여러모로 설명이 부족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금빛 눈의 고양이" 

오치카 결혼식으로 미시마야는 분주해졌다. 도미지로의 형 이이치로도 파견나갔던 가게에서 겸사겸사 잠깐 돌아왔고, 그는 도미지로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둘이 어렸을 때 겪었던 기묘한 고양이 마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

미시마야에서 일할 뻔 했지만, 손을 다쳐서 포기하고 말았던 여성 삯바느질꾼 오킨의 생령이 고양이 마유가 되었었다는 이야기. 도미지로와 미시마야 가족들의 젊은 시절이 그려지는 소품입니다. 그냥 귀여운 고양이로만 남았다면 나름 훈훈한 추억담이었을텐데, 오사토가 낳았던 갓난 아이를 죽일 뻔 했다는 전개로 이야기가 무거워진건 아쉽습니다. 자기 대신 삯바느질 일꾼 자리를 차지했던 오사토에 대한 원망이 쌓였다면 오사토를 직접 노렸어야죠. 갓난아기를 죽이려고 한 건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잖아요.

이 작품의 존재 의미는 도미지로가 흑백의 방에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는걸 확정하는 것 뿐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4/09/05

시실리 2Km - 신정원 : 별점 2점


조직의 다이아몬드를 들고 튄 석태(권오중 分)는 우연한 교통사고로 시실리라는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된다. 시실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를 확인하려 들어간 화장실에서 어이없는 사고로 쓰러진 석태를 본 주민들은 석태의 코에서 발견한 다이아몬드 하나를 나눠 가지기 위해 석태를 안쓰는 방 벽에 묻어버린다.
한편, 조직의 명으로 석태를 쫒던 양이 (임창정 分)는 휴대폰 위치추적으로 겨우겨우 시실리까지 당도한다. 자꾸만 부인하는 마을 주민들과 음산한 동네 분위기, 그리고 귀신 목격 사건으로 질겁하여 그곳을 떠날까 했던 양이는 현장에서 석태의 키티 양말 한 짝을 발견하고 석태가 이곳에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결국 석태의 시체를 찾아내고 다이아몬드를 전부 회수하는데 성공하나 다이아몬드를 보고 눈이 뒤집힌 농기구로 무장한 마을 주민에게 기습당해 궁지에 몰린 양이는 도망치다가 귀신 송이(임은경)과 친해지고 송이의 죽음과 마을 주민들의 과거를 알게 되는데...

이런 저런 일 와중에 시간이 남아서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된 영화입니다. 마침 흥행도 괜찮게 하고 있고 임창정이라는 배우는 꽤 좋아하는 편이라서 선뜻 보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영화는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히 초반부의 석태가 벽에 묻히는 장면이나 양이 일당이 시실리로 쳐들어와서 벌이는 행각들, 석태가 묻힌 벽에 대못을 박으면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웃음의 조화는 대단하고, 임창정의 칼잡이 양이 연기도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냅니다. 귀신 송이의 돌연한 출연과 그 공포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도 그 공포스러운 상황을 코미디로 반전시키는 부분 역시 뛰어납니다.

하지만 양이 일당이 다이아몬드를 찾아내고 마을 주민들이 습격하는 중반 이후부터 영화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합니다. 비록 농기구로 무장했고 기습을 했다고는 하지만, 조폭들이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요. 무엇보다도 송이의 과거를 양이가 알게되면서 신파조로 갑자기 돌변하는 전개가 심하게 당황스럽습니다.(거기에 그 음악이라니!)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귀신 송이의 빙의 작전과 마을 주민과의 한판 승부를 가장 싼티나게 찍은 연출이나 다이아몬드를 삼킨 양이의 배를 가르려던 마을 주민들이 양이의 말 몇마디에 서울 금고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찾아 나서는 부분에 이르면 역대급 쓰레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평화로운 마을의 주민들이 사실은 엄청나게 사악한 존재들이었다... 라는 테마는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었으며 긴장과 공포, 웃음을 함께 가져다 주는 이야기 진행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지만 제작사의 의도였을까요? 중반 이후의 예상가능하면서도 당황스러울 정도의 뻔하고 유치하면서도 싼티나는 전개로 영화의 재미와 밀도가 뚝 떨어져 버려 아쉽습니다. 조금 더 잔인하게, 그렇지만 확실하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더라면 한국 영화사에 길이남을 보기드문 컬트 무비의 반열에 올랐으리라 생각되지만 결과적으로 "만들다 만 영화"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05/01/21

분신사바 - 이종호 : 별점 2.5점

분신사바 - 6점 이종호 지음/황금가지

서울에서 아버지의 고향인 Y시로 전학온 유진은 왕따때문에 고통받다가 자신과 더불어 "왕따패밀리"인 희선, 정섭과 같이 한밤중에 교실에서 "분신사바" 주문으로 귀신을 불러 자기들을 괴롭히는 4명을 죽여달라는 소원을 빈다. 한편 아이들의 담임인 한재훈은 새로 근무하게된 미모의 여성교사 은주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은주는 자신과 가까이 한 사람에게는 모두 불행이 닥친다고 경고한다.
이후 4명의 학생이 차례로 자살같지만 자살이 아닌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계속되는 괴이한 현상을 통해 유진과 은주는 각자 자기 자신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무언가 사건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사끝에 아이들의 죽음에 30년전 마을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재훈은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점차 마을은 두려움과 공포로 광기에 휩싸이게 되며 드디어 폭주하게 되는데...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의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꽤 알려진 호러소설가 이종호씨의 작품입니다. 원작에 대한 평이 좋았던 기억, 그리고 괜찮은 기획이라 생각되는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의 한권으로 나오기도 했고 책의 장정과 디자인도 깔끔한 편이라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다 읽고 떠올린 첫 단어는 아쉽게도... "진부함"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호러라는 쟝르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이제 나오기 힘든걸까요? 전체적으로 어디선가 본듯한 내용과 장면으로 구성된 책으로 신선한 느낌 보다는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강하더군요.
이야기 배경에서 "여고"와 "왕따"를 중심으로 흘러가며 일종의 "한"을 다루고 있는 것은 기존 호러물(여고괴담 등)에서 많이 보여졌던 요소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왕따 학생이 귀신을 불러 저주를 걸다가 스스로 자멸해 나가는 설정 역시 너무나 흔하디 흔한 설정이죠. 다만 "분신사바"라는 주문으로 귀신을 부르는 방법이 약간 독특할 뿐이에요.
또 "Y시"라는 폐쇄적인 한 마을, 그리고 마을에서 30년전에 벌어진 한 사건에 대한 과거의 업보를 짊어지고 두려워하는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외딴 마을에서의 마을내 좀비들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와 폭주 이야기인 오노 후유미의 "시귀" 등에 를 연상케 하고요.

물론 "Y시"를 떠나서는 불행한 죽음을 맞게되어 "Y시"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저주같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여 점차 공포를 더해가고 과거의 비밀이 겹쳐지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구조는 괜찮아요. 현재와 과거를 잘 접목하면서도 혼란스럽지도 않고 깔끔하게 진행되니까요.
하지만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은주가 춘희로 돌변하여 살인귀로 변신하는 장면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섹스에 칼부림 난도질까지 등장하는 식으로 강도가 점점 더 세지면서 사람이 죽어나가야 진정한 공포물이 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저는 잔잔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평생 쫓아다니는 저주가 더 공포스럽지 않았나 생각되거든요. 또 30년동안 환생과 빙의를 하며 유지해 온 복수의 한이 풀리는 것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호러물식 엔딩같이 너무 쉽고 작위적이었다고 보입니다. 허무하기도 하고요. 거기에 마지막의 에필로그는 나올 필요도 없었던 안일한 끝맺음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작품이라고 보기 힘든 세련된 문체와 깔끔한 장면묘사로 이루어져 있어 더 흥미진진했던 것 같네요. 이러한 점은 작가가 PD출신인 덕이라 생각됩니다. 장면묘사에 대해 상당히 강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영화적인 서술방식으로 구체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읽기가 무척 편하고 즐거웠던 것도 좋았어요.
또 첫 머리의 상당히 영화적이지만 충격적이었던 "분신사바하는 펜을 잡은 또 다른 손!"에 대한 묘사, 여타 호러물에서 보기 힘들었던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씌운 후 불에 태워 질식사 시킨다는 굉장히 참신한 살인방법, 그리고 무당 춘희와 딸 인숙의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의사소통 방법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공포와 함께 읽는 재미를 전해줍니다.

한마디로! 한번 손에 잡으니 한번에 읽게 되는 정도의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소설 그대로 콘티를 짜서 찍었어도 보통 이상은 해 줬을 것 같은데 영화가 너무나 평이 안좋고 어설픈 장면이 많아 우스개로까지 전락해버린것이 불가사의합니다. 감독도 호러계에선 나름 유명한 안병기 감독이라 한번 보고싶긴 하지만 너무나 무참한 평들을 보고 참는 중이죠.^^ 저자가 PD출신인데 직접 감독을 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PS :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이라는 기획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지만 종이를 좀 가벼운걸 썼으면 책 두께가 2/3으로 줄었을것 같은 아쉬움이 살짝쿵 생깁니다.^^

2025/04/06

집이 없어 (전 270화) - 와난 : 별점 3점

웹툰은 잘 몰랐는데,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진 인기작이더군요. 별로 볼 생각은 없었지만, 아래 유튜브에서 만화 매니아이신 부부께서 추천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고해준이 어머니의 죽음 뒤, 갈 곳이 없어져(집이 없어)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학교 별관에서 우연찮게 만나 앙숙이 된 백은영과 함께 지내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둘의 관계는 날이 서 있지만, 여러가지 사건, 사고를 함께 겪으며 점차 신뢰를 쌓아가지요. 단순히 두 주인공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김마리, 박주완, 강하라 등 주변 인물들의 사연까지 함께 엮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요.

장점이라면 뛰어난 몰입감입니다. 등장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불행 포르노' 느낌도 들 정도로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들이 대부분입니다. 주로 거기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는 전개로 이루어져 있고요. 그런데 이에 대한 묘사가 정말 일품입니다. 고해준과 백은영은 물론, 주변 인물들의 서사 모두 그런 맛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흡입력이 대단했어요.

귀신이 나오는 학교 별관에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상계 에피소드들도 흥미로운 편이고, 박주완과 강하라 이야기처럼 반전이 있는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반면,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주요 인물 5인방 대부분 - 특히 백은영 - 이 스스로 사고를 일으켜서 짜증을 유발시킨다는 점입니다. 서로간에 극단으로 치닫는 관계도 보통 이런 발암 행위로 촉발되고요. 도대체 참을성, 배려 따위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 지더군요.

그리고 고해준, 백은영, 김마리 모두 가정 폭력으로 인한 아픔이 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도 뻔한 설정으로 일관되어 있고요. 고해준과 백은영의 갈등도 반복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후반부에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백은영이 한 일에 대해 고해준이 오해하고, 이로 인해 다투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탓입니다. 

고해준이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도 그리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했으며, 결말도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해주었던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하면 너무 쉽게 간 느낌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현실적인 불행과 인물 간의 신뢰 회복 과정을 성장기 형태로 강렬하게 그려낸건 높이 평가하지만, 비슷한 설정과 이야기의 반복과 결말은 조금 아쉽네요. 책으로 출간된다면, 이야기를 조금 쳐내고 정리하면 더욱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17/06/10

일곱 가지 이야기 - 가노 도모코 / 박정임 : 별점 2.5점

일곱 가지 이야기 - 6점 가노 도모코 지음, 박정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열아홉살 대학생 이리에 고마코는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가 사에키 아야노에게 팬레터를 써서 보냈는데, 마침 자신 주변에서 일어났던 기묘한 사건을 함께 곁들였다. 사에키 아야노는 직접 추리한 결과를 고마코에게 답장으로 보내주는데...

일상계 미스터리로 유명한 가노 도모코의 단편집입니다. 작가의 다른 단편집은 그동안 몇 권 읽어보았는데 평균적으로 별로였습니다. 이야기도 재미없고 추리적으로도 그닥이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이 책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생각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일단 구성이 독특해요. 제목 그대로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가공의 책에 수록된 이야기 한 개와 주인공 고마코가 만나는 일상계 사건 하나가 조합되는 식인데, 이렇게 엮이는 작품은 거의 처음 본 것 같거든요. 물론 가공의 이야기와 본편이 엮이는 작품이야 제법 있지만, "일곱 가지 이야기" 수록작에 대해 고마코가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한 후 실제 일상 속에서 그 이야기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다는 전개 방식은 독특합니다. 가공의 소설 "일곱 가지 이야기"도 일상계 추리물이고, 고마코가 접하는 사건 역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그야말로 더블 일상계라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고마코가 탐정역인 사에키 아야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의 추리를 답장으로 받는다는 일종의 '서간문 추리소설' 이라는 점도 역시 독특한 점입니다.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지나치게 작위적인 이야기들이 제법 많습니다. 게다가 이게 과연 추리물인가 싶을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해요. 아무리 일상계라 하더라도 요네자와 호노부 등 다른 일상계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민망하다 싶은 수준의 이야기가 많은 탓입니다. 7편의 단편 속 수수께끼가 2개씩이니 모두 14개의 일상계 추리물이 담겨있는데, 추리적으로 깔끔하고 괜찮다 싶은건 한 네 편, 그러니까 30%도 안될 정도입니다.
이럴 바에야 억지로 두 작품을 연결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평범한 대학생 고마코와 동네 오빠 (?) 세오 컴비의 일상계 추리물, 그리고 하야테와 아야메 아가씨의 전원풍 일상계 추리물 두 편으로 나누어 발표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있고 독특한 일상계 작품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각 단편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박 주스의 눈물"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수박 귀신"으로, 하야테 소년이 밤새 수박밭을 지키지만 결국 수박이 도난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수박 귀신"은 이야기 시작으로 나쁘지 않지만, 본편에서 '수박 주스'라는 소재로 "수박 귀신"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여러모로 무리였습니다. 고마코의 친구 미아이네 집에서 키우는 개와 혈흔을 연결시키는 과정도 너무 작위적으로 짜여진 티가 나고요. 좀 긴 이야기였다면 복선처럼 잘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단편이다보니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단서가 드러나더라고요. 아이가 푸딩을 달라는 말로 어머니가 집에 없다고 추리하는 것 역시 비약이 심한 등, 이래저래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모야이의 쥐"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모야이의 쥐"인데 별로였습니다. 금으로 만든 쥐가 가짜였다는 것은 그다지 신선한 내용은 아니었거든요. 독자가 추리할만한 정보도 부족하고요. 

그러나 본편 이야기는 빼어납니다. 독특한 문양 중심의 추상화가 위, 아래가 뒤집혀 전시된다는 진상이 아주 그럴듯했기 때문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 장의 사진"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파란 하늘"로 하야테와 친구들의 파란색 그림물감이 없어진 사건에 대한 진상을, 본편 이야기에서는 고마코의 어린 시절 사진을 훔쳐간 친구가 그것을 돌려준 이유가 무엇인지를 추리합니다. 

두 편 모두 일상계다운 아주 좋은 이야기였어요. 무엇보다도 가족간의 사랑과 추억을 다루고 있는 따뜻한 이야기라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친구가 사진에 찍혔다는 작위적인 우연은 옥의 티지만 단점은 사소합니다. 수록작 중 최고로 별점은 3점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하늘색 나비"로 하야테와 친구들의 열광을 불러왔던 한 친구의 대형 파란색 나비 표본이 사실은 가짜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본편은 기묘한 노부인의 행동을 다루고 있고요.

그런데 두 이야기가 잘 연결되지는 않으며, 노부인이 꽃을 심으려 한다는 것은 쉽게 추리할 수 있는 등 그다지 건질 건 없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1만 2천년 전의 직녀성" 

더위를 피해 천체 투영관을 찾아간 고마코가 전편에서 만났던 남자 세오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일곱 가지 이야기" 속 "대숲이 불탄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전개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 간 오갔던 연애 편지를 찾는 "대숲이 불탄다"는 솔직히 추리물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근처를 찾아보는게 당연하니까요.
본편도 추리적으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장난감 공룡 애드벌룬이 한밤중에 백화점 옥상에서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유치원으로 이동한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인데 당연히 공중에 뜨게 만들어서 날려보낸 것이지요. 의외성이 부족하며 추리의 여지도 없어요. 얼음으로 눌러 놓았다는 등의 디테일은 있지만 대단치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민들레"

친구 후미의 부탁으로 초등학교 여름 캠프에 자원 봉사자로 참여하게 된 고마코가 특이한 아이 마유키를 전담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마유키는 모든 꽃, 심지어 민들레까지 하얀 색으로 칠해버리는 특이한 아이라는 설정이지요.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하야테 아버지 어린 시절 친구가 빌려간 보물 상자와 푸른 수국이 등장하는 내용의 "내일 피는 꽃"이 함께 엮이고요. 

그러나 알루미늄에 반응하여 수국이 파랗게 변하는 것은 "푸른 제라늄" 등에서 익히 많이 사용되었던 소재라서 시시합니다. 추리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이고요. 본편의 핵심 수수께끼는 '하얀 민들레'의 정체에 대한 것으로,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실제로 있다는 것이 진상이므로 이 역시 추리라고 할 게 없네요. 가면 갈 수록 점점 추리물에서 멀어져 가는 듯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일곱 가지 이야기"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고양이 절에서 얻어온 새끼 고양이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으로 모성애를 강조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본편은 마유키를 매개로 사에키 아야노, 일러스트레이터 아소씨 등 관계자 모두가 만나는 대단원이고요. 

마지막 이야기로는 괜찮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유키가 어머니의 양육권 포기를 단념하게 만들기 위한 깜찍한 실종 자작극이 핵심으로 추리의 요소는 거의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9/15

꽃밥 - 슈카와 미나토 / 김난주 : 별점 2점

꽃밥 - 4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예문사

공포 소설에 가까운 환상 소설 <<도시전설 세피아>>로 접했던 작가 슈카와 미나토의 단편집. 몰랐는데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수상 이력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부 주인공 화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오사카 변두리 어딘가에 있는 서민가 뒷골목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웃간 소통이 많고, 아이들끼리는 항상 어울려 놀곤 했던, 우리나라로 따지면 <<검정 고무신>>이 떠오르는 그런 시대 그런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이 접하게 된 다소 기이하고 환상적인 경험들이 그려지는데, 환생, 성불하지 못한 영혼과 같이 뻔한 것도 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묘사는 나오키 상을 수상할만하다 싶고요.

그런데 소년, 소녀가 묘한 경험을 한 뒤 한 뼘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이 겪은 경험은 기억에 깊숙한 자국을 남기기는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뻔하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래서 어쩌라고?'처럼 기승전결없는 단순한 추억담이에요. 그들이 겪은 기묘한 경험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고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으려던 작가의 의도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답답했습니다. 별다른 설명없이, 기승전결없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괴담물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결말은 명확해서 괴담물보다는 이야기로서 완성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결말은 모두 추억과는 별 관계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닙니다. 장르 문학 팬이 평가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를 알아봤자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요.

<<꽃밥>>
초등학생인 여동생 후미코가 열병을 앓고 난 뒤, 스물 한 살 때 살해당한 시게타 기요미라는 여자의 환생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기요미의 집을 보러가자고 졸라서, 나는 후미코를 데리고 히코네라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요미의 아버지가 딸이 살해당할 때 튀김을 먹고 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곡기를 끊었다는걸 알게 된 후미코는 기요미가 어릴 때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밥을 기요미의 아버지에게 전해준다...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 표제작. 후미코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초, 중반부는 사뭇 흥미진진했습니다. 후미코가 노트에 시게타 기요미 가족 이름을 써 둔 것, 어린 아이임에도 보이는 기묘한 행동들로 공포물스러운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약간 <<오멘>>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아직 어리지만 여동생을 끔찍히 아끼고 가족으로 여기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과 추억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이런 부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하지만 환생임을 밝히고 난 뒤, 아버지에게 꽃밥을 전해준다는 최루성 가족 드라마스러운 전개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뻔했어요! 결말도 예상대로였고요. 뻔하고 무난한 탓에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도까비의 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쿄에서 오사카 서민촌으로 이사온 나 (유키오)의 주변에는 또래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중 모두가 은근히 따돌리던 한국인 형제가 있었다.
나는 형제 중 동생 정호와 친해졌지만 몸이 약했던 정호는 그 해 여름 죽고 말았다. 그리고 마을에 정호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 중에 한국인 형제가 있다는 설정은 반가왔습니다. 도까비 라는 제목도 도깨비에서 따 왔으며,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고추를 문에 걸어둔다는 한국적인 설정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실제 작가 유년 시절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여튼 읽으면서, 정호 귀신 소동은 몸이 튼튼하고 강했던 정호의 형 준지가 자기들을 왕따시킨 마을에 대한 작은 복수극일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정호의 도까비가 소동을 일으켰고, 이유는 원래 정호의 몸 상태 - 몸이 아프고 약해서 방에만 있었다 - 때문이었다는건 의외였어요. 그래도 죽은 뒤 아프지 않고 자유로와져서 온 마을을 싸돌아다녔다는 건 꽤 신선했습니다. 유키오의 장난감으로 신나게 논 뒤, 드디어 성불하게 되었다는 결말도 그럴싸 했고요.

그러나 진짜 도까비였다는건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복수극으로 생각했던 탓입니다. 너무 추리, 범죄 소설에 뇌가 찌들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요정 생물>>
오사카 변두리 주택가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세쓰코는 정체불명의 상인으로부터 '요정 생물'을 구입하게 되었다. 키우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처럼, 아빠의 부하로 잘생긴 훈남 다이스케가 찾아왔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엄마와 함께 도망가 버렸고, 세쓰코는 요정 생물을 죽여서 버렸지만, 그 뒤 아빠의 다른 부하 지로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긴 뒤,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요정 생물이라는 기묘한 존재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환상 소설에 가깝습니다. 요정 생물의 계란 프라이같은 생김새와 키우는 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 - 물은 사흘에 한 번 갈아줄 것. 물에 티스푼 절반 정도의 설탕을 풀 것. 강한 햇볕을 쬐면 안되고, 더운 곳에 두어도 안됨. 병을 바꿀 때는 같은 크기로. 병이 커지면 덩치도 커진다 - 등을 통해 <<그렘린>>과 비슷한 크리쳐 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알고보니 어린 소녀가 '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요정 생물'과의 접촉에 직접적으로 비유하여 전개하는 작품이더군요.

디테일한 설정이 뒷받침된 요정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로였습니다. 엄마와 다이스케가 불륜을 저지를거라는건 너무 뻔했으며, 성적인 소재를 일본 특유의 변태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느낌이라 즐겁게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세쓰코가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도 와 닿지 않았고요. 왜 요정 생물이 세쓰코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은걸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참 묘한 세상>>
아키라의 백수 삼촌이 죽었다. 술에 취해 육교를 건너다 계단에서 떨어진 탓이었다. 그런데 장례식 후 화장터로 향하던 영구차가 멈춰버렸고, 관을 꺼낼 수도 없게 되었다. 영문을 모르던 어른들은 당황했는데, '나'는 삼촌의 애인이었던 가오루 씨를 부르면 될 것이라 여겼다...

장례식에서 난봉꾼 망자의 관 이동을 놓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 사실혼 관계의 아내 외의 애인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는 반전은 살짝 깼고, 이 여자들이 모두 친구가 된다는 결말도 유쾌합니다. 제목 그대로 참 묘한 세상이에요. 하지만 딱히 재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쿠린바>>
40년 전, 나는 어린 나이로 '오쿠린바'인 먼 친척 할머니의 조수가 되었다. 오쿠린바는 주문으로 사람의 혼과 몸의 연결을 끊어 죽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임종하면서 나에게 주문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그 일을 잇지 않기로 결심했다.

줄거리 요약은 단순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오쿠린바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화가 여러개 소개되며, 주문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주문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듣게 만들어야 효과가 있으며, 중간까지 들려주면 살아있지만 나머지를 듣게되면 바로 죽는다는 등으로요. 
하지만 일화들은 모두 비슷비슷했고, 설정도 작 중 그렇게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합니다. 그냥 오쿠린바 할머니의 또다른 회고로만 설명되며, 주인공 화자 미사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재미있고 극적인 드라마로 끌고 나갈 수 있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함 그 자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얼음 나비>>
수십년 전, 오사카 변두리 거리 동네에 살았던 나(미치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왔다. 친구가 없는 탓에 묘지에 놀러갔다가 18살이라는 누나 미와와 친해졌다. 그녀는 아픈 동생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타지로 나와 일하고 있다고 해다. 그리고 겨울에도 살아남는 신비한 나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겨울에도 살아있는 나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과 사라져버린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신비로운 상황이라는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겨울 나비를 보고 미와와 헤어지는 미치오의 모습은, 청춘의 환영인 메텔을 떠나보내는 테츠로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서정적인 버젼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겨울 나비에 대한 묘사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미와가 유령이 아니라면 몸을 팔고 있을 거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결말은 둘의 파국이라는게 너무 뻔해서 의외성도 없었고 진부했습니다.
환상 소설 측면으로 보아도 '겨울 나비' 자체는 실존하는 것이기에 딱히 언급할게 없네요. 마지막에 함께 본 나비는 환상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특별히 장르 문학적으로 바라볼 부분은 없어요.
그 외에도 미치오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 설명되지 않고, 미와와의 이별 후 급작스럽게 마사히코가 친구가 되자고 이야기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럴 바에야 왕따 설정은 빼고 그냥 외로운 아이였다고 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6/01/18

엠브리오 기담 - 야마시로 아사코 / 김선영 : 별점 3점

엠브리오 기담 - 6점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서평이 기억에 남아 주말 동안 읽기 위해 집어든 책으로 에도, 아니 메이지로 보이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환상 문학 단편집입니다. 온천에 대한 여행기를 쓰는 길치 이즈미 로안과 그의 짐꾼이자 동료인 미미히코가 등장하는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대물 설정, 거기에 전부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괴담이라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이나 교코쿠 나쓰히코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 작품들보다는 환상 문학에 훨씬 가깝고, 교코쿠 나쓰히코의 작품들보다는 읽기 쉽고 명확한 내용이라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수록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나 리처드 매드슨 등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엠브리오 기담"은 일상계 크리처물, "라피스 라줄리 환상"은 윤회 판타지, "수증기 사변"과 "끝맺음"은 일상계 괴담, "얼굴 없는 산마루"는 일상계 드라마, "있을 수 없는 다리"는 전형적 괴담, "지옥"은 끔찍한 고어 호러,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는 괴담 분위기의 자살극으로 넓은 장르를 포용하기 때문입니다("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는 그냥 사족입니다). 

이렇게 많은 장르물을 포괄하면서도 대체로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점도 대단합니다. 코미디에서 호러까지 오가는 선배 작가들만큼의 넓은 변화 폭은 아니긴 하지만요. 이 정도면 이름 모를 작가 치고는 제법이라 생각했는데, 후기를 보니 야마시로 아사코는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이더군요. 솔직히 취향이 아니라 많은 작품을 찾아 읽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팔색조 매력은 여전한 듯 하여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초 서평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도 오츠 이치의 이색작이라는 소개 때문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놈의 기억력...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제법 있는 등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이 정도면 null괴담물로 기본은 해 주었으며, 오츠 이치의 단점이라 여겼던 만화적인 상상력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좋은 작품입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사족인 마지막 이야기를 제외한 별점은 3점입니다. 괴담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앞서 말씀드린 대로 수록 작품들의 장르가 천차만별이지만 절반 이상이 '괴담'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추리 / 호러' 장르로 분류합니다.

덧 2 : 저도 온천을 좋아하는데 딸아이가 좀 더 크면 온천이나 다녀봐야겠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끔찍한 경험은 사절입니다만 끔찍한 경험을 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가 그래도 온천을 다니는 것을 봐서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게 분명하겠죠.

단편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엠브리오 기담"

미미히코는 갓난아기 전 인간의 모습인 '엠브리오'를 우연히 구했다. 금세 죽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엠브리오는 살아남았고, 도박빚에 시달리던 미미히코는 엠브리오를 이용하여 돈 벌 계획을 세우는데...

인간의 태아(이전 단계)인 '엠브리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엠브리오에 대한 설정 - 하얀 애벌레 같아 허여멀건 몸뚱이에 볼록 튀어나온 배, 발달이 덜 되어 단순한 돌기에 지나지 않는 손발, 몸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머리에 점을 콕 찍은 듯한 눈, 도마뱀처럼 꼬리 같은 것까지 있고 갓난아기 피부와 내장 표면의 딱 중간 정도 피부로 쌀뜨물을 먹고 미지근한 물을 좋아한다 등등 - 이 실제 존재하는 생물처럼 상세하다는 것이 재미 요소입니다.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기묘한 상상력'이 크리처에 발휘된 환상 문학이지요.

다만 결말은 아쉽습니다. 아이를 원하는 부부에게 엠브리오를 넘겨 무사히 출산하게 하고, 수년이 지나 미미히코와 그 아이가 재회한다는건데, 공식대로라서 식상했던 탓입니다. 그래도 더 이상의 좋은 결말을 찾기는 어려웠으리라 짐작되며,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수준이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라피스 라줄리 환상"

도매 서점에서 일하는 린은 행수 어르신의 지시로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의 여행에 동행했다.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일행은 마침 발견한 마을에서 잠깐 머무는데, 다음날 촌장의 증손자가 고열로 쓰러졌다. 마침 린이 가지고 있던 약으로 아이는 생명을 구했고, 답례로 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라피스 라줄리(유리)'를 선물하는데...

린이 '라피스 라줄리'를 받은 이후, 인생을 되풀이한다는 윤회 판타지입니다. 윤회를 하면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내용도 잔잔하니 읽을 만한데, 작품의 핵심은 반전입니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촌장 노파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태어날 때 죽는 어머니를 위해 뱃속에서 탯줄을 스스로 목에 감는 방법으로 자살을 한다는 결말이거든요. 행복한 결혼 생활도 해 보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공부도 해 보았지만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것인데 참 절절했습니다.
다른 수록 작품과는 다르게 미미히코 시점이 아니라 린 시점 묘사라는 점도 특이했고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라피스 라줄리의 힘이 어디서 온 것인지 등 세세한 설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린은 이전 기억을 계속 쌓아나가기 때문에 환생할 때마다 강해질 수밖에 없는데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건 설득력이 약해 보였거든요. 미래도 읽을 수 있고, 그에 어울리는 공부도 한다면 세계를 바꿀 만한 재산이나 세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증기 사변"

로안과 미미히코는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뒤 산기슭 온천 마을을 찾아냈다. 둘은 마을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여관에 묵으며, 마을 온천을 밤에 찾아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밤에 온천에 몸을 담근 미미히코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로 죽어버린 유노카를 온천에서 만는데...

저승과 연결되어 있는 온천을 그리고 있습니다. 유령이 등장하는 괴담으로 죽은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 어린 시절의 추억과 유노카의 죽음에 대한 진상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잔잔한 일상계입니다. 마지막에 미미히코가 유노카의 모습을 떠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문제는 너무 잔잔해서 극적인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유노카의 죽음이 단순 사고보다는 드라마틱했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사실은 미미히코의 잘못으로 죽었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끝맺음"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묵어 가게 된 바닷가 마을. 그곳은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기묘한 곳으로 식재료마저 그랬던 탓에 미미히코는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해 아사 직전에 놓이는데...

모든 사물이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는 이토 준지스러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기묘한 작품입니다. 만화나 영화 같은 시각 매체로 발표되었더라면 굉장히 그로테스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상상의 여지가 더욱 많은 소설이 섬찟함을 느끼게 하는 데 더 좋긴 하겠지만요.

게다가 굶어 죽기 직전의 미미히코가 자신을 끔찍하게 따르던 닭 아즈키를 잡아먹고 살아난다는 결말도 마음에 듭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혼자 살아남기 위해 친구를 팔아넘기고 살아남는 왕따물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마을의 정체가 무엇인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조금 감점합니다만,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있을 수 없는 다리"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는 근사한 구름다리를 발견했다. 허나 마을에서는 구름다리는 이미 사십 년 전에 무너졌다고 했다. 둘의 말을 들은 숙소의 노파는 밤중에 넌지시 구름다리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구름다리가 무너졌을 때 아들을 잃었는데, 지나는 여행객들로부터 다리에서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미히코는 다리에서 노파의 아들을 발견하고 둘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감동적인 상봉을 기대했지만 실상 소년은 그야말로 '귀신'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는 존재였다는 반전이 돋보입니다. 이전 수록작인 "수증기 사변"과 비슷한 작품이라 생각하고 읽다가 깜짝 놀랐네요. 하긴 이게 귀신의 본모습이겠죠.

반전에 더해 묘사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소설보다는 영상화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귀신이 본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의 묘사도 좋지만, 특히 귀신이 노파를 데려가려고 하자 그녀가 미미히코를 붙잡고, 미미히코는 욕설을 하면서 노파를 어떻게든 떼어 내려 하는 처절한 묘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재미도 있고 반전도 있는, 괴담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얼굴 없는 산마루"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로안과 미미히코가 우연히 방문한 마을 사람들은 미미히코를 보고 놀랐다. 이유는 그가 사고로 죽은 마을 사람 모키치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미미히코가 자신과 똑같이 생기고 비슷한 인생을 살아간 모키치의 가족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는 일상계 소품. 잔잔하고 여운을 주는 내용은 좋았습니다.

허나 모키치의 아내 야에의 말을 듣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는 뻔한 결말, 그리고 미미히코가 모키치와 모든 면에서 똑같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건 단점입니다. 그냥 닮았다고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흉터까지 같다는 것은 무리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조금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입니다.

"지옥"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는 여행 중 강도를 만났다. 사로잡힌 미미히코는 신혼부부 후지와 요이치와 함께 축축한 구덩이 속에 갇혔다. 셋은 강도 가족이 던져주는 육포 조각을 먹으며 삶을 이어갔는데, 강도들이 한 명을 꺼내 준다고 제안해서 여성 후지를 올려 보냈다...

구더기 그득한 축축한 구덩이 감옥 묘사도 사람 잡는데, '후지가 빠져나간 뒤 육포가 아니라 신선한 고기가 던져진다'에서 시작되는 공포스러운 묘사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핵심은 강도 가족이 사람을 죽여 먹고, 가죽으로 생활용품 등을 만든다는 설정으로 스코틀랜드의 소니 빈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게 분명해 보입니다. 허나 단순히 영감을 얻은 수준은 아닙니다. 아이가 사람 얼굴 가죽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노는 등의 디테일이 잘 살아 있거든요.

이러한 묘사에 더해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미히코가 머리카락을 엮은 줄을 이용하여 요이치를 끌어 올렸던 밧줄을 회수하고, 구덩이에서 탈출하여 역으로 강도 가족을 구덩이에 쳐 넣는 데 성공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찾아가 보니 강도 가족이 구덩이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기에 뚜껑만 덮고 도망쳐 온다는 결말까지 정말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로 몰입감을 선사해 줍니다. 이런 류의 돌직구 고어 호러는 오츠 이치의 특기이기도 하죠. "ZOO - seven rooms"처럼요.

물론 해당 단편과 단점은 동일합니다. 왜 강도 가족이 포로를 잡자마자 죽이지 않고 귀한 육포를 먹여 가며 살려두는지가 설명되지 않는 점 등 세부 설정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제법 있는 탓입니다.

그래도 섬찟함과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은 수록작 중 최고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전 작품이 쉬어가는 느낌이라 공포심이 더욱 배가된 듯한데, 목차도 작가의 의도인지 살짝 궁금해지는군요.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

전편의 경험으로 미미히코가 여행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즈미 로안은 다른 고용인과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로안은 미미히코에게 동행인이 죽었다며,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주는데...

떨어진 빗을 줍는 것은 고통과 죽음을 줍는 것이기에 꼭 빗을 주워야 할 때는 발로 한 번 밟은 뒤 주워야 한다는 설정이 바탕입니다. 빗을 그냥 주웠다는 고용인이 머리카락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입에 들어 있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니 엄청난 양이 나왔다는 부분까지는 평범한 괴담입니다.

그러나 노파가 빗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거짓말로 그가 지어낸 이야기이며, 머리카락은 죽은 어머니의 것이라고 밝혀지는 결말이 아주 독특했습니다. 괴담을 너무 좋아한 청년이 자작극을 벌이면서까지 괴담이 되려 했다는 내용이니까요. 누군가의 이야기가 괴담이 된다는 점에서 "백귀야행"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단순 괴담이 아니라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결혼한 뒤 온갖 괴롭힘을 당하던 여자가 우연히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데...

이즈미 로안이 길치가 아니라 사실은 차원을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 텐구의 자식이라는 설정을 알려주기 위한 이야기.

단순한 설정 보강용이라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자를 괴롭히던 시댁에 뭔가 천벌이 내렸다는 이야기라도 있었더라면 완결성이 있었을 텐데요. 별점은 빵점입니다.

2020/08/29

흑사의 섬 - 오노 후유미 / 추지나 : 별점 3점

흑사의 섬 - 6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시키부는 오랜 고객인 논픽션 작가 카츠라기의 행방을 쫓아 그녀의 고향인 '야차도'라는 섬을 찾았다. 그녀가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탄 것은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섬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했으며, 마을에는 카츠라기의 원래 성인 하세가와라는 집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모두 마을 사람들의 방해라는걸 알아낸 시키부는 혼자만의 조사와 조력자인 마을 의사 야스다를 통해 시호가 참혹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시호가 '마두야차'의 심판을 받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유는 그녀가 마을 영주인 진료 가문의 후계자 히데아키를 살해한 범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섬 특유의 종교와 풍습에 시호가 죽었다면 그녀와 동행한 나가사키 마리라는 여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가사키 마리가 진료 가문의 마지막 남은 후계자라면 시호를 죽인 이유는 무엇인지? 마두야차와 진료 가문의 '슈고'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등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계속 더해지고, 결국 마지막 순간에 현재의 '슈고'인 진료 아사히에 의해 모든 진상이 빍혀지는데...

"시귀"와 이런저런 괴담 단편집으로 호러, 공포 소설 작가로 알고 있었던 오노 후유미의 본격 추리물입니다. 

외떨어지고 고립된 마을을 지배하는 가문과 그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토대로 풀어낸 본격 추리물은 일찌기 많이 접해 보았습니다. 일본 작품이라면 요코미조 세이시가 떠오르네요. "이누가미 일족" 등이 그러하니까요. 가문의 저주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가문의 상속자들을 죽게 만드는 "바스커빌 가의 개"도 마찬가지고요. 그만큼 고전적인 설정인데, 지금도 도조 겐야 시리즈, 민속 탐정 야쿠모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인기 설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장기간에 걸친 전통 관습의 과정이 핵심 트릭(의도한 건 아니지만)의 하나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됩니다. 전설을 직접적인 트릭으로 이용한게 아니라 일종의 심리 트릭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점이고요.

마을만의 신앙과 전설, 관습, 그리고 트릭을 조금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우선 마을에서는 '마두야차'님을 신으로 모십니다. 마두야차는 죄 지은 자를 심판하며, 마을을 지배하는 진료 가문은 오래전 야차산에 사는 사람 잡아먹는 귀신을 응징한 행자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귀신인 '마두님'은 아직도 진료 가에 붙잡혀 있어서, 진료 가문에서는 대대로 후계자가 아닌 셋째 아들이나 딸에게 마두님이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지키는 역할인 '슈고'를 맡게 해 왔습니다. 슈고는 어렸을 때 정해지고, 한 번 슈고가 되면 그만둘 때 까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게 관례입니다. 심지어 슈고로 있는 동안은 호적이 없어서 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없는 사람인거에요. 그렇게 이십여년 정도 슈고를 맡다가 성인이 되면, 다음 대 슈고에게 자리를 넘긴 뒤 신관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 관습을 이용하여 전 대 슈고이자 현재 진료 신사의 신관인 모리에가 슈고였을 때인 19년 전 나가사키 마리의 어머니 히로코를 깜쪽같이 살해했습니다. 섬 사람들이 '낯선 사람'을 목격했는데, 모리에는 슈고였던 탓에 집에 갇혀 있어서 사람들이 그 존재를 잘 몰랐던 덕분이었지요. 모리에는 사건의 진상을 감추기 위해 히로코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시호의 아버지 노부오도 잔인하게 토막 살해했습니다.
이는 섬의 마두 신앙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섬 마을 사람들은 노부오의 잔혹한 시체를 보고 이를 마두야차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사건을 끝난 일로 치부하여 그냥 덮어버리고 말거든요. 단지 신사에 심판을 의미하는 화살촉 한 대만 놓아두면 끝이었던 거지요. 

그 뒤 현재에 이르러, 모리에는 진료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였던 히데아키를 살해했습니다. 히데아키가 없으면 분가인 자신의 집이 종가를 잇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인 나가사키 마리가 종가를 잇게 될 수 있다는걸 알고난 뒤, 그녀마저 죽이고 완전범죄를 위해 19년 전 사건처럼 참혹하게 시체를 훼손했습니다. 섬 마을 사람들은 역시나 관례대로, 나가사키 마리가 히데아키를 죽여서 심판받았다 생각하고 대충 사건을 수습해 버렸고요.
이렇게 '슈고' 라는 관습을 활용해서 섬 사람이지만 낯선 사람이었다는 상황을 만든 트릭(우연이었지만), 그리고 마두 신앙을 활용하여 살인이라는 큰 범죄를 대충 수습하게 만든 일종의 심리 트릭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동기가 확실해서 범인을 특정하기 쉬운데, 비교적 초반에 발견된 시체가 카츠라기 시호라는게 증명되어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전개도 좋습니다. 시호와 동행했지만 사라진 나가사키 마리가 진료 가문의 후예라는걸 알게된 후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진료 가문의 부를 노리는 종가의 범행이라면 카츠라기 시호를 죽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와 함께 이런저런 용의자들도 부상하면서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일종의 '바꿔치기' 트릭도 잘 사용되어서 추리적으로 큰 만족감을 전해줍니다. 진상은 카츠라기 시호와 나가사키 마리가 고등학생이 되어 섬을 나갈 때 서로의 신분을 바꾸었던 겁니다. 여관에서 '나가사키 마리'를 찾는 전화를 받고 나가 살해된 건 섬에서는 시호였던 여자 마리였고, 섬에서 마리였던 시키부의 지인 '카츠라기 시호'는 당연히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도주했고요. 그리고 이 때문에 폐가가 된 시호의 옛 집에서 채취한 지문은 시체와 일치했습니다.
바꿔치기는 현재의 슈고이자 해결자 역할을 맡고 있는 아사히의 추리와도 연결됩니다. 섬 사람들은 모두 시호와 마리를 알아봤다고 합니다. 둘 다 어린 시절을 섬에서 보냈으니까요. 그러나 범인은 시호와 마리를 구분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시호를 죽였다고 생각했지요. 이에 아사히는 범인은 두 사람이 고등학생이 되어 섬을 떠난 뒤 태어났거나, 아니면 두 사람과 엇갈려 섬을 나갔다 돌아온 이로 한정된다고 추리합니다. 이런 섬 사람은 없으니, 범인은 당시 슈고였던 모리에일 수 밖에 없고요. 진료 가문의 정보를 이용하여 마리의 현재 신상을 캐 내어 후쿠오카에서 얼굴을 확인까지 했으니, 충분히 착각할 만 했습니다.

주인공인 시키부도 꽤 인상적입니다. 보통 폐쇄된 마을 공동체가 꺼리는 조사를 하는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공격당하는 탓에 어떻게든 도망다니면서 기회를 엿 봐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었죠. 그러나 시키부는 마을 사람들과 당당하게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여관 주인 오에가 자신의 짐을 손댄걸 알고, 일부러 수첩을 비닐 봉투에 넣은 뒤 현금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며 협박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분명 범인의 지문이 남아있을거라고 장담하면서요.
옛 하세가와 집에서 담배를 피다가, 가츠라기 시호가 버린 듯한 캐빈 꽁초를 줍는 장면처럼 탐정 역할도 충실하며, 범인은 이 섬 신앙을 잘 알고 있지만 섬 사람은 아닐 거라는 등 추리력도 쓸만합니요. 자신이 범행을 저지르면 마두님에게 심판받을 걸 두려워하는 섬 사람이 범행을 저지를리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그럴싸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 한 몸은 충분히 지킬법한 능력과 기본 이상의 추리력은 갖춘 능력자입니다. 2000년대 이후 작품인 만큼 고전들처럼 마을 사람들도 섣불리 그를 건드릴 수는 없었겠지만,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시키부의 캐릭터가 명확한 탓도 있을겁니다.

황량한 섬도 실제하는 듯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핵심 트릭으로 사용되는 마두야차 신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시키부가 이런 쪽에 관심이 많고 주술과 음양 오행에 박식한 나머지 섬에서 모시는 신인 '마두야차 (마두관음상에 뿔이 난 형태)'가 '해치'라는걸 깨닫는다는건 무리수로 보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시키부 시점에서 이런저런 상세한 정보를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잘 전해줍니다. 한 마디로 기대보다 훨씬 좋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핵심 트릭인 섬과 마두야차 신앙, 그리소 슈고 등 진료 가문과 관련된 풍습 모두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물론 오노 후유미가 공들여 설정을 잘 쌓아올려 놓은 덕분에 읽다보면 실제로 있음직하다는 설득력은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는 중반까지고, 아쉽게도 어린 소녀인 슈고 아사히가 후리소데 차림으로 나타나 모리에를 직접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마지막 장면 탓에 심혈을 기울였던 설득력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이건 정말이지 만화에서나 쓰임직한 장면이었어요.
물론 마두, 해치의 심판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노력은 가상합니다. 진료 가문의 행자가 사람 잡아먹는 귀신을 응징하고 가둔게 아니라, 귀신이 진료 가문의 핏줄이라서 슈고는 그러한 핏줄을 타고난 후예를 가두어 놓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막 나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사히가 슈고 입장에서 추리를 들려주는 정도로 충분했으니까요. 아니면 감히 해치를 사칭한 모리에에게 천벌을 내린건 슈고로서의 임무였다고 하던가요. 또 이렇게 마두를 사칭한 자에게 천벌을 내린 거라면, 대체 19년전 사건은 왜 가만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서?
슈고 전통의 진상 역시 그다지 의외성없고 만화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진료 가문에서 아사하기 살인귀의 핏줄을 타고 났다는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묘사도 없어서 그나마의 설득력도 존재하지 않고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부러진 용골"이라던가, "인어 공주", "앨리스 죽이기" 등 처럼 판타지 속 이야기로 풀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군요. "철가면" 이야기를 응용했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그 외 야스다가 나가사키 가문의 아들이었다는 등의 자잘한 설정은 나오지 않는게 좋았습니다. 너무 관련된 인물이 많이 엮여 작위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용의자를 늘리려는 의도였다는건 알겠는데, 지나쳤어요.

그래도 오노 후유미가 본격 추리물 작가로도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는건 여실히 보여준다는건 분명합니다. 남편 아야츠지 유키토도 긴장할만한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손에 땀을 쥐고 읽을만한 서스펜스와 치밀한 두뇌 게임 모두를 갖춘 만큼, 더운 여름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09/03

미스테리아 1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5점

미스테리아 13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 장르문학 전문잡지 미스테리아 최신간입니다. 창간 2주년 기념호라 그런지 특별 보급가이기도 하고, 항상 관심있게 찾아보던 주제인 "경성"을 특집으로 하고 있어서 구입했습니다.

특집인 "경성" 관련 기사들은 기대에 값합니다. 1930년대 경성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장르 문학'과 관련된 시각으로 설명해주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던 덕분입니다. "별건곤"에 실렸다는 경성 7대 특수촌이나 5대 마굴에 대한 탐사기는 충분히 하나의 작품 소재가 될 만큼 재미있었어요.
경성을 탐정 소설의 배경으로 바라보고 분석한 기사들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염마"에 등장하는 서광옥의 X별장은 "체신국 뒤로 해서 개천을 메워가지고 새로 낸 큰길을 단 후 누상동 큰거리에서 언덕 위에 지은 큰집을 찾았다"라는 묘사를 통해 '아방궁'이라 불렸던 친일파 윤덕영의 저택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여기에 더해 남촌과 북촌의 특수성과 같은 사회적인 부분, 아편굴과 같은 특수 장소와 같은 당대 경성에 대한 갖가지 디테일이 가득하여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박태원의 "최후의 억만장자"는 예전에 읽어봤던 작품으로 내용은 별 볼일 없지만, 삽화를 맡았던 월북 화가 정현웅의 그림은 마음에 들었어요. 목판화 스타일의 삽화는 지금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수준의 완성도니까요.

물론 이런저런 한국 추리 소설 역사서에 실려있는 내용에서 불과한 기사들도 제법 됩니다. 김동인의 "수평선을 넘어서"에 대한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얼마전 읽었던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에 수록된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주제에 맞춰 "경성"이라는 공간, 배경에 집중하지 않고, 당시 사회적 배경을 통틀어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이렇게 풀어내면 다른 유사한 컨텐츠와 변별력을 가지기 힘들지요.

그러나 특집 외의 기사들은 기대 이하의 결과물이 많습니다. 홍보 문구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8인에게 가상 표지를 제안했다는 "세상에 아직 없던 책"은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박철희의 "환상의 여인" 정도만 괜찮을 뿐, 그외 표지들은 실제 책이 출간되더라도 구매 욕구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에요. 요새 대학생들 과제도 이것보다는 나을 듯 한데, 차라리 왠만한 미술 대학 디자인 학과와 연계하여 결과물을 수록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미스테리아"의 핵심 컨텐츠인 리뷰 형태의 새 책 소개도 이번에는 그냥저냥입니다. 그닥 끌리는 책이 없더군요. 게다가 리뷰어 중 한 분은 직업이 "인형사, 자유기고가"라고 되어 있어서, 대체 이 리뷰가 무슨 기준인지도 헛갈립니다. 꼭 전문가가 좋은 리뷰를 쓴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니라, 비용을 들여 구입한 책의 리뷰라면 그만큼의 전문성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최소한 인터넷을 통해 잘 알려진 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잠깐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당쵀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겠더군요. 이 분이 소개하는 기타무라 가오루,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도 구태여 리뷰가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심지어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소시민'시리즈 최신간!). 이 잡지를 구해 읽어볼 정도의 독자라면, 이 두 작품은 딱히 리뷰가 필요없을테니까요. 새책 소개는 다른 곳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 독특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뒤 이은 영화 "불한당"의 감독 인터뷰 역시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감독이 SNS를 통해 실수했던 이력만 기억에 남을 뿐으로 이런 인물을 지면을 할애해가며 인터뷰를 한 이유를 모르겠거든요. "불한당"이 국내 범죄, 느와르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서 일까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별로 그랬을 것 같지도 않네요.

특집 외 기사들 중에서는 미스테리 속 음식에 대해 파헤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과 3편의 논픽션 정도만이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정은지의 컬럼에는 국내에는 소개된 적이 없는 형사 몬탈바노 시리즈를 소개하며, 작 중 등장하는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들의 소개가 곁들여지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신선했습니다. 제가 준비 중인 '장르 문학 속 음식 이야기'라는 컬럼과 비교되어 자극도 되었고요.
3편의 논픽션은 법의학자가 분석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살인 매뉴얼, 한강변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중 마지막 이야기가 가장 강렬합니다. 범인을 조작하려는 경찰의 노력에, 무고한 용의자가 겨우 혐의를 벗는 과정, 그리고 결국 미제 사건으로 범인은 커녕 피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결말까지 모두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이전 호들과는 다르게 수준 이하의 작품이 더 많네요. 우선 로스 맥도널드의 "사라진 여인"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루 아처 시리즈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기할 만한 점이 전무한 소품입니다. 루 아처가 묶은 모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루 아처가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인데 루 아처가 하나씩 손에 넣은 단서를 되짚어가면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라 추리의 여지도 없고 이야기도 원사이드하게 흘러갑니다. 선택지가 하나 뿐인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랄까요? 딱히 반전이 있는 진상도 아니고요. 이 정도면 평범 이하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국내작가 차무진의 "비형도"는 전개는 흥미로우나 좋은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런 단서나 복선도 없이 귀신들 사이에 어울린다는 결말이 영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물론 조상병이 살의를 품은 순간, 그 장소에 있던 귀신들 속으로 들어가 귀신들의 역할극이 벌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되기는 합니다만... 개연성도 없는 역할극이 전체 분량의 90%에 달하는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생각한대로 현실이 바뀌는 "열린 우주"라는 핵심 설정 및 이를 통해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은 아주 재미있었는데 아쉽네요. 하기사 좋았던 부분들도 여러모로 애매하긴 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학예사의 뿔테 안경이 아니라 "껌"이었어야 할 것 같고, 학예사가 목을 메다는 장면은 이게 뭔가 싶으니까요. 여튼, 이 역시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도 피터 러브시의 "오이스터 브라운이 저지른 범죄"는 아주 괜찮습니다. 펄, 오이스터 자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트리거의 의심을 독자에게 공유하게 만드는 전개는 정말로 일품이에요. 분명 언니가 사라졌는데 애써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오이스터의 행동의 이유는?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퇴비화 속도가 빨라지는 발효 촉진제를 산 이유는? 집에 아무도 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런 질문들은 가장 설득력 있는 추리, 즉 "펄은 죽었고 오이스터가 그녀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로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정말로 터무니없었고 황당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뒷통수를 칩니다. 거장다운 장난스러운, 그렇지만 또 서늘한 결말도 매력적이에요. 트리거가 어디로 갔는지 정말 아무도 몰랐을지, 그리고 트리거의 차가 집 앞에 있으므로 완벽한 인멸은 불가능 했으리라는 점에서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만, 거장의 실력만큼은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기사, 읽을 거리로 가득차 있는데 특집과 정말로 몇 안되는 기사, 한 편의 단편만이 기대에 값하기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면 2점 이상 주기는 힘들었을거에요. 식민지 경성, 그리고 그 공간을 무대로 한 장르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셔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2019/07/21

귀신나방 - 장용민 : 별점 1점

귀신나방 - 2점
장용민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 열일곱 살 소년을 살해했다. 소년은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흠잡을 것 없던 아이였다. 소년과 살인범은 아무 관계가 없어서 경찰은 살해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목격자 앞에서 소년을 죽인 오토 바우만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사형 집행일을 사흘 앞둔 날 그는 갑자기 특별 면회 요청을 하는데, 상대는 과거 전도유망했던 기자 크리스틴이었다. 갑작스럽게 사형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크리스틴은 바우만으로부터 도무지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국 작가 장용민의 장편 소설입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히틀러의 부활을 다루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한국 작가가 섣불리 손 댈 소재는 아니라 생각했으니까요. 또 히틀러의 부활에 대한 창작물은 굉장히 많아서 차별화를 통한 비교 우위를 가져가기도 쉽지 않을테고요. 예를 들어 히틀러의 머리 (뇌)만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몸에 이식한다는 "모레", 클론을 만든다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있지요.
이 작품에서는 요제프 멩겔레의 뇌이식을 통해 젊은이로 거듭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차별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방법만 조금 다를 뿐, 유대인 생체 실험을 통해 기술을 터득한 멩겔레가 주도하여 히틀러의 부활을 이끈다는 케케묵은 설정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나마 뇌이식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거의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부활까지는 히틀러의 뒤를 쫓는 비밀 조직 아디 헌터와의 악연 등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부활 이후부터입니다. 아담 휘슬러로 새롭게 태어난 히틀러가 미국 정복(?)을 위해 일으킨 사건들과 여러 계획이 펼쳐지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탓입니다.
첫 번째로 아담은 시골 마을에서 6명이 죽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심리 조작을 통해서요. 그런데 이 참극을 통해 그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원래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끼리 다 틀어지게 만든 것도 아니고, 악감정이 있던 두 집안 사이에 불똥을 튀긴 정도니까요. 경제학 서적을 독파해가며 자본주의를 통달한 세기의 악마가 하는 일 치고는, 그리고 사악함을 드러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합니다.

그 뒤 미국 연방 준비 위원회를 손에 넣겠다는 두 번째 계획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무려 800톤이 넘는 금괴의 댓가로 하는게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밀턴의 비서가 되는 것 뿐입니다! 2019년 7월 현 시세로 금 1kg은 6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48조의 현금성 자산으로 2019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20위권이에요. 현금성이라 투자 시 자본 증식과 대출 가능 규모를 감안하면 몇 배가 될 수 있고요. 한마디로 스스로의 돈과 능력으로 세계 금융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고작 비서가 되는게 다라니 이게 말이나 될까요? 비서가 되려는 목적도 루 게릭 병으로 죽어가는 밀턴에게 뇌수술을 알선하는 댓가로 밀턴의 주식을 넘겨받으는건데, 이를 위해서는 구태여 비서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경로건 간에 자신이 히틀러라는걸 증명만 하면 죽기 직전인 밀턴이 알아서 접근해 왔을 테니까요.
게다가 연방 준비 위원회 주식을 소유한다고 그가 미국을 지배하는게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연방 준비 위원회 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이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지배하는 대기업 회장이 되려는 계획이 더 설득력이 높아요. 2019년 현 시점에서 연준 위원장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보다 세계 파워 랭킹 순위가 낮으니까요. 아니면 직접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던가....

세 번째 계획인(두번째 계획에서 이어지는) 케네디 암살에 히틀러가 있었다는건 황당하고 어이없는 픽션의 정점입니다. 일단 케네디 암살의 이유는 그가 은본위의 새로운 화폐계혁을 단행하여 연준을 무력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케네디에게 알려준건? 히틀러입니다! 연준의 권력을 먹으려는게 계획인데, 연준에 괜한 위험을 가하고 그걸 또 스스로 이겨낸다? 이 쯤 되면 이야기의 합리성을 논하는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암살이라는 무모한 계획은 리스크도 너무 크고요.

거기에 더해 무리수 설정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옛 연인 에바 브라운, 그리고 그녀의 전생인 죠안나 이야기는 없으니만 못합니다. 사악한 카리스마만 희석될 뿐입니다. 등장하는 비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하는게 없기도 하고요.
하기사, 죠안나 설정은 그나마 낫지 연쇄살인범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든다는 설정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수부대 출신 킬러들을 불러모아도 시원치않을판에 왠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UFC 파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방법은 한니발 렉터를 표절한 천재 교수의 설명되지도 않는 수학 공식이고, 그들을 자기 부하로 만드는 방법은 히틀러가 혈혈단신 찾아가 말로 설득하는게 전부니 더 말을 해 무얼하겠습니까.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경찰 바우만의 집요한 추적도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고작해아 달라스 경찰서 형사인 그가 온갖 배후 정보에 손을 대 가면서 히틀러를 추적하는 과정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히틀러라고 확신하고 쏴죽인 애덤이 사실 히틀러가 아니라 뇌수술을 받은 밀턴이라는걸 정작 조사를 시작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크리스틴이 밝혀낸다는 이야기도 당황스러워요. 바우만의 반평생은 대체 뭔가 싶거든요.
작위적인 전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케네디 암살 현장에서 모사드 요원이 바우만을 구해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 정도 지켜봤으면 누가 흑막인지 당연히 알아채고 아담을 죽이거나 납치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총 한자루 전해주고 손을 터는건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히틀러는 살아있다는 극적인 진상이 귀신나방 이야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도 실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자신이 살아있는걸 아는 사람을 다 죽여놓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여기자 크리스틴 앞에서 살아있다는 암시를 남기고 떠난다? 그것도 직접 칵테일을 대접하는 등 있는대로 폼을 잡으면서?

이렇게 어디서 본듯한 설득력없는 설정, 전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계획들, 작위적인 수사, 개연성없는 전개라는 환장의 4종 셋트가 모인 망작으로 종이가 아까운 수준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가 희대의 망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를 발표한지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발전한 부분은 전무하네요.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2/02/04

금요일의 괴담회 - 전건우 : 별점 1.5점

금요일의 괴담회 - 4점
전건우 지음/북오션

한국 작가의 괴담 모음집입니다. 금요일에 리뷰 올리기 좋은 제목이네요. 모두 열 일곱 편의 괴담이 수록되어 있는데, 수록작 대부분은 괴담답게 기승전결보다는 괴이현상, 섬찟함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수록작 중에서 "여우고개", "열세 번째 계단"의 두 편은 아주 좋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범죄, 사건과 결합하여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모두 평균, 수준 이하입니다. 괴담치고는 별로 무섭지 않았던 탓이 가장 큽니다. 지나치게 짧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설명도 부족할 뿐더러, 설정 등에서 아무런 밀도를 느낄 수 없습니다. 미쓰다 신조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도록 기본 바탕은 깔아주었어야 했어요. 그리고 너무 뻔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체로 어디선가 접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할 뿐입니다. 최소한의 반전, 아니면 최소한의 새로움이라도 더해 주었다면 나름대로 가치가 있었겠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살리지 못한 측면도 없지 않아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여러모로 그리 권할만한 책은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용한 집" 

새로 이사온 집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끼다 독감에 걸려버린 규선에게 그 집에 살다가 요양원에서 죽은 노인의 가족이 찾아와 노제를 하고 떠났다. 그래도 이상한 꿈을 꾸는 등 괴현상이 계속되자, 규선은 빈 집을 찍울 수 있도록 핸드폰을 셋팅하고 외출했다. 나중에 확인한 핸드폰 영상에는 소리를 지르는 시커먼 형체가 찍혀 있었다... 

노망에 걸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노인의 원혼이 집에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낮습니다. 일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노인이 왜 집에 집착하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규선이 저주를 받을 이유도 딱히 없고요. 또 노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노제를 했다면 원혼이 사라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게 아니라면 구태여 노제는 전개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혼이 규선을 덮치는 결말도 예상 가능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여우고개" 

할머니는 어린 시절, 색연필을 훔쳤던 자기를 쫓아온 여우 '매구'를 매실의 힘을 이용하여 자기 대신 친구를 잡아가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무에 걸려있던 빨간 카디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카디건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다른 동료 할머니 3명이 카디건을 숨겼다고 오해하고 그들에게 농약 사이다를 먹이고 마는데... 

가끔 뉴스에 나오곤 했던 '농약 사이다' 사건을 '매구'라는 요물 여우가 배후에 있다는 괴담 형태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작품 속 매구는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고 죽게 만든다는 설정인데, 이를 정신이 나간듯한 할머니 시점의 끔찍한 묘사들과 잘 섞어서 설득력있게 그려낸 솜씨가 일품이에요. 한국식 사회파 호러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매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명확하게 하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할머니 친구가 실종된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할머니가 죽였다는 진상이 드러나는 식이었다면 말이 됐을테니까요. 지금처럼 매구가 있는지 없는지, 카디건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호한 상태로 끝나버리면 할머니가 나쁜게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인데, 이런 마무리는 호러물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싶거든요. 깔끔한 느낌도 들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 여름의 흉가" 

여름 한 철, 나는 호러 가이드로 일하면서 어머니처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그리고 강원도 흉가 체험을 한 어느날, 열정적으로 살라는 투어 멤버의 조언을 듣는데... 

손님을 가장하여 투어에 참가한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 정신차리고 열심히 살게 된다는, 성장물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한 명 더 있던 손님, 죽은 어머니의 영혼과 사진의 존재 등 전형적인 괴담 클리셰를 모아서 만든 이야기로 뻔한 내용에 주인공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자살하는 캐릭터" 

신작 게임 블라인드 테스트 중, 이상한 NPC가 발견되었다. 그 NPC를 참혹하게 죽여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다. 알고보니 개발팀에서 폭언을 듣고 자살한 신입 개발자 은정이가 NPC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 뒤 개발팀 멤버들이 하나, 둘씩 은정이가 게임에서 죽은 방식대로 죽어갔다... 

저주를 게임의 NPC를 통해 풀어낸건 참신했지만, 그 외에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작품입니다. NPC 목을 베어 죽였던 주인공 목에 금이 간다는 결말까지 뻔했습니다. 저주를 푸는 방법이라던가, 저주의 실체에 대해 보다 심도깊게 파고들었다면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한밤의 엘리베이터" 

여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배달원과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와 함께 갇히고 말았다. 엘리베이터는 곧 정상 가동되었지만, 찜찜함을 느낀 여자는 중간에 내려 계단으로 향했다... 

배달원이 여자를 쫓고 있었다는 결말인데, 너무 뜬금없을 뿐더러 흔해빠진 이야기라 반전의 묘사도 느낄 수 없습니다. 수십년 전에 보았던 영화 "캠퍼스 레전드" 도입부가 바로 떠올랐거든요. 한 여자가 주유소였나? 어딘가에 잠깐 들렀는데, 굉장히 수상해보이는 주인이 갑자기 쫓아오기 시작해서 부리나케 도망을 칩니다. 그러자 주인은 뒤에서 "차 뒷 자리에 누군가 숨어있단 말이야!"라고 소리친다는건데, 거의 똑같지요? 

게다가 이야기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캠퍼스 레전드"쪽이 훨씬 낫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양복입은 남자의 존재가 제도로 설명되지 않는 등 단점이 더 많은 탓입니다.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인형 뽑기" 

회식에서도 팀장에게 시달리던 세호는 우연히 인형 뽑기 기계를 마주쳤다. 기계에는 인형에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이름을 붙이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세호는 뽑은 인형에 팀장의 이름을 붙인 뒤 눈, 코, 입을 그리고 인형을 패대기쳤다. 다음날, 세호는 팀장이 사고로 인형과 똑같은 부분에 큰 부상을 입고 당분간 회사를 쉬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세호가 인형을 뽑아 자기를 괴롭히던 상사들에게 복수하지만, 세호도 부하 직원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하나의 이야기라는건 장점이지만 그 외는 그닥입니다. 진부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주받은 숲" 

미스터리 사이트에 무서운 숲 사진을 올리고, 그 곳에서 캠핑을 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가 회색 숲은 음기가 강하고 귀신이 많으니 도망치라는 글을 올렸지만 처음 글쓴이는 캠핑을 감행했고, 뒤이어 이상한 현상에 대한 글을 계속 올리기 시작하는데... 

미스터리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과 댓글들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파운드 푸티지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선보이고 있는 호러 영화 장르물을 글로 옮기면 이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저는 이 장르를 싫어합니다. '현실감'을 주는데 치중해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블레어 위치"가 대표적이지요. 이야기 결말도 보통 주인공이 사라지는 형태로 애매모호하게 끝나곤 했었지요. 이 작품 역시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고, 처음에 글쓴이, 구해주러 갔던 직업 군인, 숲에 대해 썰을 풀어놓는 박수무당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똑같습니다. 

이렇게 제가 싫어하는 점을 답습했을 뿐더러, 새로운 아이디어도 딱히 찾아보기 힘들어서 좋은 점수는 줄 수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화분" 

선미는 시장에서 빨간 색 꽃이 핀 화분을 사 왔다. 그리고 꽃에게 자기 소원을 이야기한 다음날, 소원이 이루어져 연적인 이 대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선미가 생기, 젊음을 댓가로 김 대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상한 꽃에게 소원을 빌지만, 마지막에 소원을 빈 목적이었던 김 대리마저 죽게 만든 뒤, 자기에게 꽃을 팔았던 할머니처럼 선미도 시장에서 화분을 팔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저주받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하늘의 별만큼 많습니다. 그 중에서 변별력을 가질 만큼의 새로운 이야기로 생각되지는 않네요. 김 대리가 죽고 만다는 결말은 괜찮았지만, 그 외는 평이했습니다. 소원은 이루어졌지만, 본인도 불행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결말도 뻔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열세 번째 계단" 

한 계단 씩 올라갈 때마다 피를 한 방울 흘리면, 열세 번째 계단까지 올라가서 뒤를 돌아볼 때 서 있을 여자 아이에게 소원을 말해주면 뭐든지 들어줄 것이다. 

전교 1등을 죽이면 자기가 전교 1등이 될 거라는 괴담의 파생형입니다. 여기에 성적 때문에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고요. 

짧은 분량 안에서 할 이야기는 다 하고 있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건 좋습니다. 1등 원석이가 계단에 소원을 빈 게 아니라, 노는 척 하면서 죽을만큼 공부했다는 진상이 특히 와 닿네요. 괴담을 현실로 만드는데 정말로 적절한 소재였다 생각되거든요. 부모를 죽이고, 원석이의 장난까지 알아버리자 완전히 미쳐버려 계단에서 여자 아이를 보게 된 주인공의 시점 변화도 탁월했고요.

주인공의 부모의 비정상적인 집착이 좀 더 묘사되었더라면, 그리고 부모를 죽인 주인공이 부모로부터 피를 받아 왔을텐데, 그 이야기를 더 무섭게 푸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기는 합니다. 부모 머리를 잘라왔다는 식이었다면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요? 좀 은근하게, 지나치게 흉칙하지 않게 묘사하는게 이 책 수록작들의 특징이기는 한데, 이 이야기만큼은 보다 엽기적인 묘사를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차피 범죄 자체가 극단적인 패륜 범죄이니까요.

그래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약간 사회파 느낌을 전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위" 

주인공 혜미가 가위에 눌린 이야기가 전부인 소품. 무섭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습니다. 괴담으로 보기에도 너무 알멩이가 없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외로운 아이 부르기" 

중학교 2학년 친구들 세 명이 몰래 학교에 숨어들었다. '외로운 아이 불러내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제목은 좀 있어보였지만, 알고보니 '외로운 아이 불러내기'는 '분신사바'와 거의 똑같더군요. 불러낸 외로운 아이가 질문을 잘못한 탓에 화가 나서 아이 하나를 데리고 가는게 전부인 이야기는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자유로 귀신" 

헌팅한 여자가 파주로 가자는 말에 남자는 차를 몰고 자유로를 탔다. 여자는 '자유로 귀신' 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했더니, 음주 운전 차량에 희생된 여자가 원혼이 되어 자유로를 음주 운전으로 지나가는 운전자들을 응징한다는 내용이더군요. 그렇게 완성도 높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어요. 별로 무섭지도 않고요. 함께 수록된 사진이 더 무서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음주 운전자는 죽어도 싸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어서, 그 부분에 약간의 점수를 더합니다. 모든 음주 운전자가 이런 귀신을 만나서 천벌을 받기를 바랍니다.

"유괴" 

지수는 아영을 데리고 놀이 공원에 갔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자기가 미래를 볼 줄 안다면서, 아이 앞날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수는 유괴범이었고, 아영이를 놀이 공원에 데리고 온 건 몸값을 받으러 왔던 거라는 진상이 반전으로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현실적인 범죄가 등장하는 범죄물로 유괴범 시점으로 바라본 유괴극이라는 아이디어는 꽤 독특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할머니의 존재는 도무지 뭔지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지수의 정체가 유괴범이라는걸 알아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미래를 본다는 능력과 별 상관도 없잖아요? 또 할머니가 아영이를 지수 몰래 데리고 가려고 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하니까요. 

별로 무섭지도 않았고,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점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요소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더블"

진수는 자기와 똑같이 생긴 남자를 두 번째 본 뒤, 옛 군대 선임인 박수무당 영우를 찾아갔다. 영우는 산 사람한테 붙어 영혼을 빨아먹는 악랄한 홉혼귀라며 부적을 한 장 써 주었다. 한 번 더 홉혼귀를 보면 죽는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세 번째로 홉혼귀를 마주치자, 영우는 분노에 휩싸여 그를 죽이고 마는데... 

자기와 똑같은 사람에게 분노를 품고 죽였는데, 죽이고나니 하나도 안 닮았더라... 는 이야기. 홉혼귀다, 도플갱어다 하면서 뭔가 설정을 깔기는 하는데 그런게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허무한 결말이었어요. 진수를 홉혼귀가 쫓아다니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1킬로미터" 

한수는 이상한 문자 메시지를 따라가 어플을 하나 깔았다. 깔고나니 일종의 매칭 어플이었다. 한수는 어플에서 이상형인 박수희를 발견해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데... 

어플을 통해 젊은 남자를 납치한 뒤 고깃배에 태우는 범죄 조직이 등장하는데,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건장한 남자를 폭행 후 납치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어림반푼어치도 없지요. 마지막에 GPS로 위치를 확인하여 한수의 집까지 침입한다는 결말은 어이를 상실케 했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화장실" 

데이트 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을 찾았는데, 옆 칸에서 누군가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장실 안에 붙어있는 장기 매매 스티커 번호를 물어보았다... 

장기가 적출되는건 나였고, 이건 여자 친구의 음모였다는 이야기.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화장실 장기 매매 스티커를 이야기 전개에 활용한건 좋은 아이디어였는데, 그 외 모든 내용과 과정은 뻔하고 억지스러웠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그 목소리" 

윤미 일행은 도심 근교 펜션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울증 약을 건너 뛴 윤미는 남자친구 동민과 친구 영화가 윤미를 몽키 스패너로 처리할거라는 음모를 엿들었다...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아서 정신착란을 일으킨 윤미가 남자친구, 자기 친구와 그 남자친구까지 모조리 죽인다는 이야기입니다. 

피해자로 보였던 여주인공이 알고보니 가해자였다는건 많이 보아왔던 설정입니다. 그러나 이 설정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습니다. 윤미에게 우울증이 있다는게 밝혀지자마자 곧바로 살인으로 이어져버리니까요. 이런 급발진 전개 덕분에 아무런 복선이나 반전도 없어서 시시했습니다. 이야기의 설득력도 낮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26/09/11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 - 아오사키 유고 외 : 별점 2.5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데뷰 35주년을 기념하여, 젊은 작가 일곱 명이 '아리스가와 세계관'으로 발표한 단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세계관이지만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가 가장 많습니다. 또 다른 대표 시리즈인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명탐정 에가미 지로 등장 작품은 한 편 밖에 없고요. 행각승 지장 스님 시리즈도 한 편 있을 정도인데 말이지요.

하여튼, 꽤 신선한 기획인데 작품들 수준도 괜찮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젊은 작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덕분입니다. 대부분 아리스가와 월드를 충실히 구현한, 전통적인 신본격 추리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볍게 즐기기에 적당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끈, 밧줄, 로프" 아오사키 유고

야스미 노도카가 모아이 도자기 상으로 머리를 얻어맞아 살해당한채 발견되었다. 동기는 희귀 게임 카드이며 범인은 새시를 통해 시체를 밖으로 운반한 뒤, 바다로 시체를 내던진 것으로 보였다. 여러 현장 상황을 통해 범인은 자동 잠금장치가 설치된 아파트 주민 29명 중 한 명이며, 그 중에서도 당일 오전, 로프같은걸 버린 세 명 중 한명일 가능성이 높았다. 피해자가 죽기 전 로프 같은 것으로 묶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각자 버린 건 다용도 마끈, 안전용 수평 구명줄, 반사 소재 텐트 로프였다. 

히무라 히데오가 '필드 워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전형적인 신본격 단편입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 아오사키 유고답게 추리적인 부분은 완벽에 가깝습니다. 

히무라는 피해자가 둔기에 맞았을 때 안경을 끼고 있다는 것을 통해, 범인이 피해자가 깨어있을 때 침입했고 흉기로 위협했다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뭔가에 묶인 피해자를 나르는 범인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통해, 범인이 피해자 사체를 유기하기 직전에 묶은 끈을 회수했다고 추리하고요. 사체 유기가 실패했다는걸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기 때문에, 끈을 푸는 데에는 위협에 사용했던 칼을 사용했습니다. 다음날 범인은 토막난 끈을 버려야 했으며, 이는 쓰레기 버릴 때 종이 팩을 사용했다고 지적받았던 시나다의 행동과 이어집니다. 즉, 시나다가 범인입니다. 시나다는 매일 종이 팩 쥬스를 마시는 습관이 있어서 그게 재활용이라는걸 모르지 않았다는 것도 증거이고요.

사건과 범인이 로프를 그날 버린 이유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핵심 단서인 '로프'를 가지고 기둥서방 시나다의 유력한 동기였던 '동아줄'로 이어지는 일종의 언어유희적인 전개도 괜찮습니다.

다만 설정 자체가 조금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현대 법의학, 법과학으로 범인을 충분히 밝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수수께끼 풀이용 단편으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정통파 추리 소설에 대한 작가의 고민도 흥미롭습니다. 아래의 말을 빌어서, 추리 소설가의 필사적인 창작은 결국 AI도 만들 수 있는, 독창적인 요소가 없는 결과물일거라는게 요지인데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 '정보를 수집하고 검토해 논리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하는 일은 따지고 보면 그 해법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 "수수께끼 풀이 자체는 누가 설명해도 마찬가지인, 개성없는 장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애초에 누구나 풀 수 있는 수수께끼가 아니면 본격 미스터리로 성립할 수 없다는 딜레마도 있어. 결국 탐정 캐릭터들도 '모범 답안'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 걸지도 몰라."

물론 이 논리는 미스터리는 과학이 아니라 유사 과학이라는 히무라의 입을 빌어 작가 본인 스스로 타개하고 있기는 합니다. 탐정들은 미스터리의 신의 말을 전하는 선교사인데,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내 놓는 과학자와 다른 집단이라면서요. 그래도 AI도 만들 수 있다는 결과물이라는게 변하지는 않지만요...

"클로즈드 클로즈" 이치오 미치

아리스와 히무라는 여고에서 일어났던 교복 도난 사건 해결을 부탁받았다. 교복을 도난당한 다즈하라 시게오는 같은 3학년 부원인 고미야 리오와 반목이 있었다. 그러나 고미야는 이미 수개월 전 전학을 간 상황이었다. 

다즈하라가 고미야에게 교복을 빌려줬는데, 다른 친구에게 빌린 거울이 들어 있어서 도난 소동으로 발전했다는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추리적으로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은 없습니다. 히무라가 이렇게 추리해 낸 과정이 제대로 선보이지 않는 탓입니다.

또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팬에게서 만족감을 주지 못합니다. 아리스와 히무라가 여고에서 가짜 신분(?)으로 활동하는 일상계 추리물이라는 설정은 독특하지만, 둘의 대화와 전체적인 분위기가 모두 여성 작가가 쓴 듯한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더 건조하게 묘사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흉내내기에 불과해 보였어요. 수록작 중 최악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히무라 히데오에게 바치는 괴담" 오리가미 교야

도쿄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했던 아리스와 히무라는 그날 밤 찾은 바에서 서점 직원 쓰지와 합석하게 되었다. 쓰지는 둘에게 자신이 겪었던 괴담을 들려주었고, 히무라는 자신만의 추리로 괴담의 진상을 풀어냈다.

쓰지가 네 편의 괴담을, 그리고 마지막에 합류한 바 손님이 한 편의 괴담을 들려주어 총 다섯 편의 괴담이 선보입니다. 쓰지가 겪거나 들었던 괴담은 모두 추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 후배 하숙집에서 심야에 전자기기가 오작동하는 사건이 자꾸 일어났다. 심지어 어느 날은 한밤중에 탄내까지 났다.
    진상: 개조한 불법 무선기로 통신하는 장거리 트럭이 원인이었다. 심야에 발생한건 장거리 트럭은 고속도로 통행 요금이 할인되는 심야에 운행하기 때문이며, 탄내는 오작동한 전열기구 때문이었다.
  • 쓰지는 대학 시절에 동창과 숲에서 고개를 돌리며 짐승 울음 소리를 내었던 인형 탈을 보았다.
    진상: 몸은 땅 속에 묻힌 사람에게 인형 탈을 씌워 숲속에 방치해 둔 것이었다. 짐승 울음 소리는 재갈이 물려있던 탓이며, 비성수기 휴양지 산속이라는 현장이 근거이다.
  • 등산을 좋아하는 쓰지의 친구는 안개로 뒤덮인 산길에서 똑같이 생긴 오두막을 등산로에서 연이어 발견했다.
    진상: 그냥 오두막이 두 채 있었다.
  • 쓰지는 방학 때 고향 친구 가가와, 가가와의 선배 유모토와 함께 폐업한 유원지에서 담력 시험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유모토가 미러 하우스 안으로 들어간 뒤 사라져버렸고, 그를 찾으러 들어간 쓰지는 미러 하우스 속 거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형체를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주했다. 그 뒤 가가와와 유모토와는 연락이 끊겼다.
    진상: 고객을 놀라게 만드는데 사용했던 매직 미러를 이용하여 유모토가 쓰지를 놀라게 만든 장난이었다. 

첫 번째 괴담은 재미있고, 네 번째 괴담도 추리만큼은 그런대로 합리적이지만 다른건 별로입니다. 그리고 모두 진상을 증명할 수 없다는 문제도 크고요. 

이보다는 바 손님인 이토가 이야기한 진짜 괴담이 더 괜찮았습니다. 이토는 교통사고 현장에 놓여있던 시들어진 조화를 버리고 새로 꽃을 사서 갖다 둔 뒤, 원망하는 표정의 여자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선의로 행한 일인데 왜 귀신은 원망을 가졌을까요? 아리스의 추리는 '꽃이 문제였다'는 겁니다. 즉, 원래 놓여있던 시든 꽃이 귀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놓아둔 꽃이었다는 것이지요. 이 역시 증명할 수 없다는 문제는 있지만 의표를 찌르는 맛도 좋고, 아리스가 추리를 펼친다는 의외성도 좋았습니다.

그 외에 저는 잘 모르는 '심령 탐정'이라는 아리스가와 월드 속 다른 주인공이 언급되는 등, 헌정물로는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블랙 미러" 시라이 도모유키

'나'는 대학 미스터리 동호회 때 친구였던 가가미 에이지로부터 오랫만에 연락을 받고 만났다. 그 뒤, 경찰을 만나 에이지와 그의 형 고이치가 연루된 살인사건에 대해 들었다. 상황은 에이지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나'와의 만남을 진행한 것으로 보였지만, 알리바이 트릭은 완벽해서 깨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추리소설가를 꿈꾸던 '나'와, 경찰을 돕던 건방진 교수 히무라가 힘을 합쳐 알리바이를 깨는데 성공한다.

복잡한 시간표로 구성된, 전형적인 시간표 알리바이 트릭물입니다. 쌍둥이인 에이지와 고이치가 어느 시점에 교체하여 서로의 알리바이를 만든게 진상입니다. 핵심은 고이치가 엄지손가락을 절단한 뒤, 그걸 가지고 에이지가 고이치의 비밀금고를 열었던 것이고요. 이는 고이치가 범행을 저지른 뒤, 생수병 뚜껑을 따지 못해 머그컵으로 물을 마셨던 상황 등으로 추리됩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는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70년대라면 모를까, 지금은 CCTV가 여러 곳에 가득한데 자신의 노출을 이렇게까지 숨기면서 짜여진 시간표 동선대로 이동한다는건 말오 안되니까요. 히무라가 사건에 뛰어든 이유가 역에서 뛰어나가던 에이지와 부딪혔기 때문이었다는 우연도 작위적이고요.

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메타적인 설정은 나쁘지 않지만, 현재 가장 뜨거운 작가 중 하나인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치고는 영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의 수수께끼" 유키 하루오

추리 소설가인 '나'는 신작 구상을 위해 담당 편집자 미토베 씨와 함께 취재차 온천 휴양지를 찾았다. 그런데 그곳 식당에서 만난 점원 후쿠나가 아이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둘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후쿠나가의 사촌 아버지인 외삼촌 거처를 찾았고, 그곳에서 미토베 씨는 사촌의 행동을 추리해 내는데...

작품을 다 읽었지만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촌의 기묘한 언행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유명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무대와 설정은 아리스가와 월드가 아니라는게 특징입니다. 

추리는 사촌이 후쿠나가에게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서재에 있던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은 커버와 띠지만이며, 내용물은 다른 책으로 바뀌어져 있었기 때문이고요. 사촌은 별채에 침입하여 아버지의 만년필을 훔쳤습니다. 그러나 눈이 오는 바람에 별채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별채는 난방이 안되어서 너무 추웠던 탓에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을 난로에 태웠던 겁니다. 후쿠나가의 외삼촌은 모든 장서를 서재와 별채, 두 곳에 비치하였기 때문에 다음날 외삼촌이 돌아오기 전 사촌은 서재의 책을 별채로 옮기고, 때우지 않았던 띠지와 표지를 서재에 있던 다른 책에 씌워 위장했고요. 책은 새로 주문했지만 도착까지는 시간이 걸려서 당장 후쿠나가에게 책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안티인 척을 했던 거지요.

위의 추리를 위한 모든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되는 좋은 추리물입니다.  유명 작품은 물론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의 TV 방영까지를 작품 설정에 녹였다는 점에서 '헌정'이라는 취지에도 딱 들어 맞고요.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를 표방한 사촌의 주장은 헌정이라는 취지와 정 반대이기는 하지만, 이런게 또 기획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제가 읽었던 유키 하루오의 작품은 비현실적인 설정이 문제였는데, 소규모 일상계로 설정을 좁혀 놓으니 훨씬 낫네요.  

"행각승 지장 스님의 낭패" 아쓰카와 다쓰미

20년 전, 행각승 지장 스님의 이야기를 '에이프릴'에서 들은 멤버였던 '나'와 도코가와는 오랫 만에 한 잔 하기 위해 '풀스 메이트'라는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20년 전과 똑같이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각승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20년 전과는 다르게, 손님들의 공격과 의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풋내기였다.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은 그렇게 인기가 많은 작품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을 헌정물로 새롭게 써 낸게 좀 신기하네요. 일종의 '도라에몽 세계관'인 히무리 히데오 시리즈와는 다르게, 지장 스님이 활약한 20년 후인 현재를 무대로 협박범 구로사와가 살해당했는데, 사체는 피해자가 수집했던 나비 표본 수십 개로 둘러 쌓여 있었던 사건에 대한 추리가 펼쳐집니다.

나비의 이름이 범인을 특정하는데, 나비 표본 하나만 꺼내어져 있으면 범인이라는게 바로 드러나서 어쩔 수 없이 표본을 전부 꺼냈다는게 진상입니다. 범인은 나비 표본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모르는 아사기 유즈루였고요.

이 뒤에 등장인물의 이름, 수를 가지고 딴지를 거는 손님에게 진짜 지장 스님이 나타나 보강하는 추리를 펼치며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여러모로 추리 퀴즈에 가까우며, 작위적이고 설득력이 낮다는 점에서 원전과 비슷한 점이 많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시체의 실루엣은 말한다" 이마무라 마사히로

에이토 대학 추리 소설 연구회 멤버 5명은 고향 나고야로 취업 활동을 갔다 온 오다가 가져온 수수께끼 풀이에 나섰다. 오다가 만난 동향인 고바야시가 친구가 남긴 암호를 해독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학생 아리스" 시리즈! 이 시리즈 단편은 읽은 적이 없는데, 젊은 작가가 일종의 일상계로 풀어낸게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형식만 신선한게 아니라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고바야시의 친구 바토 씨가 남긴 낙서와 다이잉 메시지를 풀어내는 과정이 추리 소설 연구회 5명의 대화를 통해 펼쳐지는데, 정말로 모든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추리와 의견들을 내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토대로 드러나는 진상은 꽤 합리적으로 느껴져요. 대화로 일종의 추리 대결을 펼쳐나간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전작 "시인장의 살인" 속 학생 식당 메뉴 맞추기 게임도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고바야시와 바토가 헤어졌고, 이 사건은 바토가 고바야시가 계속 어울려 줄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벌인 일종의 게임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습니다. 결국 진상은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 탓이에요. 다이잉 메시지도 AOK로 읽히는데 이건 All-OK라는 추리 역시 근거없는 공허한 주장일 뿐이지요.

논리적으로 즐길거리는 많은데 다소 맥이 빠진다는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에가미 선배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 등 팬이라면 소소히 즐길거리가 있지만, 그리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