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중국요리에 대한 글을 날짜를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관련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중국요리에 대한 글을 날짜를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관련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25/08/02

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대하여 - 도리스 되리 / 함미라 : 별점 2.5점

독일 여성 영화 감독 도리스 되리의 요리 관련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접한 음식과 사람들, 그 안에서 느낀 단상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요리 소개나 맛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음식과 문화, 기억, 철학이 뒤섞인 글들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많아서 일기같다는 느낌도 많이 들고요.

놀랐던건 저자의 방대한 식견입니다. 김치에 대한 언급이 대표적이에요. 한국의 김장을 단순한 발효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을 만드는 레시피’라고 표현하는데, 외국인이 쓴 글에서 김치가 아니라 김장을 이 정도로 이해하고 언급했다는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유에 대한 글에서 부처가 고행으로 쇠약해졌을 때 젊은 여인이 건넨 우유로 생명을 구했다는 불교 일화를 인용하고, 두부를 이야기할 때 일본 선종의 도겐 젠지의 말을 함께 소개하는 부분을 보면 독일 사람이 이런 정보를 대체 어디서 얻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글 사이사이에 동물이 급격한 변태를 겪는 이유가 ‘더 많은 먹이를 먹기 위해서’라는 과학계 이론같은 여러 정보들이 등장하는 것도 볼거리입니다. 예를 들자면 바움쿠헨이 일본에 전해진 과정은 의외로 전쟁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네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독일인 유흐하임이 전쟁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이송된 뒤 굽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뉴욕의 대표 음식으로 언급된 ‘루스 앤 도터스’의 비알리와 베이글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이 가게는 1907년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조엘 루스가 세 딸과 함께 1935년 창업한 곳이라는 군요.

간단한 레시피도 몇 가지 소개됩니다. 독일에서 품종 보호 정책으로 사라졌다는 ‘린다’ 감자를 활용한 감자샐러드는 감자를 껍질째 삶아 얇게 썰고, 여기에 양파, 식초, 설탕, 식용유를 넣어 만듭니다. 한 번 도전해보고 싶네요.
연두부 반쪽과 아보카도 반쪽을 함께 갈아 얼굴에 바르라는 피부 관리용 레시피도 새로왔고요. 아보카도가 저렇게 쓰기에는 좀 고가라 도전은 꺼려집니다만..

이외에도, 커피 유행에 대한 단상처럼 공감할 만한 일상적 시선도 있어서 좋았고, 책의 만듦새도 깔끔합니다. 선명한 일러스트, 판형, 종이질과 인쇄 및 장정 모두 빼어나거든요. 어른들을 위한 선물용 책으로도 괜찮겠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글루텐 프리나 환경오염, 미세 플라스틱 같은 주제를 다룬 글들은 다소 단조롭고 설명 위주로 흘러가는 탓에 흥미가 떨어집니다. 전체적으로 정보는 많지만 글마다 담고있는 내용, 수준의 편차도 있는 편이고요. 그리고 '요리'나  '식문화', '음식', '미식' 등의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일상적인 요리 이야기보다는, 음식에 얽힌 문화나 개인적 사유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5/04/19

금병매 살인사건 - 야마다 후타로 / 권일영 : 별점 1.5점

금병매 살인사건 - 4점
야마다 후타로 지음, 권일영 옮김/스토리텔러

원제는 "妖異金瓶梅 (요이 금병매)". 중국 고전 "금병매" 속 인물들과 설정으로 본격 추리극을 만든 15편의 독특한 단편들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주로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을 질투하여 없애는 반금련의 계획이 그려지며, 탐정역은 서문경의 난봉꾼 친구인 응백작이 맡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리스트(대표적으로 이거)를 통해 언급되던 작품이지요. 국내에 출간되었다는걸 몰랐었는데, 얼마 전 알고 읽게 되었습니다. 

특징이라면 본격 추리물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역사 소설 느낌도 난다는 점입니다. "금병매" 세계관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 덕분이지요.

그러나 추리물로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수록작 거의 대부분의 동기가 "반금련의 질투"이며, 핵심 트릭 대부분도 "반금련의 변장"으로 의외성과 설득력도 거의 없는 탓입니다.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에 뒤로 가면 갈수록 지루해지고요. 

게다가 마지막 몇 작품은 아예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반금련이 서문경을 너무 사랑한 탓에 사건을 일으켰고, 반춘매와 응백작, 심지어 무송까지 금련 주변 인물들도 모두 금련을 사랑했다는 결말은 황당하고요. "메이지 단두대"에서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는데, 차라리 이게 추리 소설에는 더 어울렸습니다. '사랑' 때문이라는건, 호색한 서문경이 주인공인 "금병매"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대부분이 별로였고, 지루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금병매"와 "수호지"를 바탕으로 쓴 팬픽 정도에 불과한 느낌입니다. 다만 딱 한 작품, "인어등롱"만큼은 빼어납니다. 작품에 반복되는 반금련의 질투로 인한 살인과 억지 변장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적당히 현실적이고 "금병매" 세계관과도 잘 어울리는 덕분입니다. 궁금하시다면 이 작품 한 편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는 "저택의 사육제" 정도 말고는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딱히 "금병매"의 애독자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이런 작품까지 꼼꼼하게 번역, 소개해 준 출판사와 번역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이 작품보다는 "메이지 단두대" 쪽이 훨씬 낫습니다. "메이지 단두대"가 제대로 소개되는게 더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붉은 신발"

서문경의 부인 둘이 다리가 잘려 죽었다. 범인은 또 다른 부인 손설화로 의심되었다. 몽유병 증세가 있던 설화가 과형이라는 다리를 잘라 집행하는 사형 집행 과정을 본 뒤, 원한이 있었던 두 부인을 살해했다고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문경의 친구인 난봉꾼 응백작은 여성 다리에 대해 성적 집착을 가지고 있는 하인 내왕야가 범인이라고 추리했다. 죽은 부인들의 다리를 가져다 놓고 옮긴 과정이 설화의 짓으로 보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그러나 응백작은 장례식 날, 송 부인과 봉 부인의 발이 바뀐걸 보고 이 모든걸 꾸민 진범은 반금련이라는걸 알아챘다.  

반금련이 자신을 얕잡아 보는걸 절대 용서하지 않는 독부라는걸 잘 알려주는 에피소드입니다. 동기 때문입니다. 반금련은 송 부인의 발이 자기 발보다 작다는걸 공개적으로 과시해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송 부인의 발을 봉 부인 발과 바꿔친 후, 장례식에서 송 부인 발이 자기보다 크다는 말을 남기려고 다리를 옮겼던 겁니다.

그러나 범행이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반금련 혼자 다리를 잘라 옮기는게 가능했으리라 보이지도 않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미녀와 미소년"

서문경이 총애하는 두 명의 미소년 화동과 금동은 사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금동이 반금련과 정을 통하자, 화동은 이를 서문경에게 고해 바쳤다. 서문경은 반금련에게 탁랍형을, 금동에게는 궁형(거세형)을 내렸다. 형을 받은 금동은 동굴에 갇혀 화동을 원망했는데, 어느날 동굴 앞에서 화동이, 집 안에서는 금동이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서문경이었습니다.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는건, 서문경이 사체를 업고 날랐기 때문이고요. 사체를 업고 옮길 수 있는건 서문경 밖에 없다는걸 밝혀내는 응백작의 추리는 괜찮았습니다.  전족을 한 여자들에게는 무리였으니까요.

하지만 반금련이 두 남자에게 질투하여 모두를 죽이려고 짜낸 계책이라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금동이 거세된 뒤에는 죽일 이유가 없어졌으니까요. 또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반금련이 화동으로 변장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였습니다. 서문경이 이를 몰라보았다는건 말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반금련이 질투로 살인을 저지르고, 반금련이 먼저 상대방을 유혹하며, 반금련의 변장은 천하무적이라는 설정은 이후 모든 단편에서 반복되는데,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염마천녀"

양산박 도적 소탕 실패에 책임을 지게 된 사돈 양 제독 탓에, 딸과 사위 진경제는 서문경의 집으로 도피했고 서문경도 함께 근신하는 신세에 놓였다. 서문경은 이 와중에 사위 진경제의 몸종 주향란을 새로이 일곱번째 첩으로 들였다. 그러나 진경제와 주향란은 이미 정을 통하던 사이였다. 반금련은 잔경제를 유혹했지만 들통난 뒤, 진경제는 서문경의 저택 우리에 갖혔다. 그리고 도성의 일이 정리된 날, 누군가 주향란의 혀를 물어 뜯었는데...

주향란의 혀를 물어 뜯은건 누구일까?라는 후더닛 물인데, 특별한건 없습니다. 당연히 반금련이니까요. 정액을 발라 남자 냄새를 풍겼다는 일종의 변장 트릭이 등장하지만, 변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자마다 유혹하고 다니는 반금련을 그냥 놔두는 서문경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저택의 사육제"

지현의 색기 넘치는 부인이 서문경 저택을 방문했다.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서였다. 반금련은 그녀를 덮칠 계획을 서문경에게 알려주었다. 연회에서 술게임을 해서 취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술에 너무 취한 임부인은 2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임부인이 떨어져 죽은건 반금련의 계획이었고, 그녀의 시체를 지현의 부하들에게 고기 구이로 속여서 먹였다는 내용입니다. 솔직히 엄청나게 뻔하지요. 하지만 여러 음식 및 작가 특유의 광기어린 분위기의 묘사는 좋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란꽃 살인"

유명 화가 소용면이 서문경의 처첩 초상화를 그려주는 날, 새로운 일곱번째 첩 양염방이 벌에 쏘였다. 반금련이 건네 준 모란 꽃 때문이었다. 그 뒤 자기 때문에 자살한 소자허의 원혼이 보인다며 난동을 부리던 염방은 반금련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소용면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양염방이 독살당하는데...

스스로 벌에 쏘인 반금련이 양염방인 척 연기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일부러 벌에 쏘인 상처가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있으려고 머리카락이 잘린 척 했다는건 괜찮았어요.

그러나 변장 트릭이 너무 허황됩니다. 소용면만 있던 것도 아니고, 서문경과 응백작 및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변장한 반금련을 수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몰라봤다는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돈에 환장한 사내"

인색하기로 유명한 서문경의 생약가게 부지배인 한도국이 어느 날, 아내의 전남편 송철곤을 모두에게 소개했다. 송철곤은 납을 은으로 만드는 비법을 완성했다고 주장했고, 철곤에게 속은 서문경은 가마를 만들고 거액의 은도 투자했다. 그런데 가마에서 풀무질을 하던 중, 서문경은 한도국의 아내이자 유명한 추녀 요금에게 급작스럽게 음심을 품게 되었다. 그 뒤 한도국에게 요금을 아내로 달라고 제안했는데, 요금은 철곤 도사의 블꽃쇼 도중 화살에 맞아 죽고 도사도 가마 안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었다...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송철곤 도사의 연금술 사기,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 맞이, 철곤 도사의 불꽃쇼와 새부인 요금 살해 사건, 철곤 도사 살해 사건, 한도국 살해 사건이 차례로 벌어지는 탓입니다. 

철곤 도사의 연금술 비법은 당연히 사기인데, 나름 기발한 점이 있습니다. 가마 앞에서 음탕한 행동을 하면 은이 납으로 변한다고 말한 뒤, 풀무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약을 탄 술을 먹여 음란한 짓을 하도록 유도했던 것이거든요. 이게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 맞이로 이어지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전별금'이라는, 한도국이 송철곤을 죽인 이유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극히 수전노스러운 동기로, 제가 여태 보아왔던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본 적 없던 동기였던 덕분입니다.

그러나 핵심 트릭은 어처구니없네요. 삶은 달걀을 억지로 밀어넣어 목을 막아 죽였다는 방법도 황당하지만, 대충 만들어 자동으로 발사되게 만든 화살이 형편좋게 요금의 등에 맞았다는 것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이에요. 도사를 살인범으로 모는 것도 과연 잘 되었을지 의문이고요. 한도국이 돌아온 뒤, 반금련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죽는 결말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도주해야 했던 사람이 구태여 반금련을 만나 사지로 걸어들어갈 이유는 없으니까요. 요금 이야기를 빼고 사기에만 집중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여인의 향기"

서문경과 반금련에게 원한을 품은 호걸 무송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문경 가족은 저택에 숨어있기로 했다. 심심했던 반금련은 향기로 여자 맞추는 게임을 제안했는데, 게임 도중에 무송이 쳐들어왔다. 서문경은 기생 이계저와 함께 관 속에 숨은 뒤 험한 꼴을 당한다... 

모든건 응백작과 반금련이 힘을 합처 꾸며낸 연극이었습니다. 소란 틈에 응백작은 돈을 훔치고, 반금련은 기생 이계저를 쫓아내기 위해서요. 거대한 무송은 응백작 어깨 위에 반금련이 올라타 연출했지요.

살인이 아니라 일종의 장난으로 경쟁자 이계저를 쫓아냈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보다는 조금 낫더군요. 무송이 엮이는 설정도 흥미로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림 속 미녀"

여섯째 부인 이병아가 죽은 뒤, 서문경은 애틋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한 편, 반금련은 금동의 여동생 춘연을 몸종으로 들인 뒤, 금동이 죽은 사건의 진상을 말해주는데....

춘연에게 옻독을 옮겨, 춘연을 덮치려 한 서문경이 혼비백산하게 만든다는 반금련의 계획이 등장합니다. 이병아 초상화에 장난을 쳐서, 이병아에 대한 마음을 없애려는 목적으로요. 

죽은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동기는 독특했는데, 방법이 잔혹하고 유치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자신이 죽인 남자의 여동생마저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요. 별점은 1점입니다.


"아름다운 눈동자"

새로 들인 여섯째 부인 유여화는 눈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유여화가 반금련과 서문경이 사랑을 나누는걸 엿보다 시력을 잃는다는 내용인데, 거울을 이용한 트릭이라는게 너무 뻔했습니다. 노골적으로 거울을 강조하고 있는 전개 탓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유여화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하더라도, 이미 서문경은 흥미를 잃었다는데 그런 여자를 해할 필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질투심이라면, 왜 자기보다 먼저 처첩이 된 이전 부인들은 죽이지 않고 가만 두는지 납득이 되지 않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낙인 찍힌 미녀들"

새 부인 빙금보가 진주를 훔쳤다는게 밝혀져 쫓겨났다. 대식국에서 온 조오라 공주는 등에 십자가 낙인이 찍혀, 기독교를 포교하고 다니는 신하 알 무타츠와 함께 돌풍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두 개의 사건과 트릭이 등장합니다. 빙금보가 깜깜한 곳에서 진주를 훔친 방법은,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는게 전부라 시시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불에 달군 무언가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공주 등에 낙인을 찍은 트릭은 새로왔습니다. 화상이 아니라 얼음을 이용해 만든 동상이었다는게 진상이에요. 이를 풀어내기 위해 공주가 흠뻑 젖었다는 상황도 잘 설명되고 있고요. 대식국 출신 승려가 기독교를 포교한다는 독특한 설정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편을 섞은 술을 마셨다 하더라도, 동상을 입을 정도로 얼음 위에 오래 정자세로 누워있는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마지막에 급작스러운 돌풍이 승려와 공주를 데리고 갔고, 반금련의 몸에 십자가 상처를 남겼다는 결말도 억지스럽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검은 젖가슴"

반금련은 서문경이 눈을 가린 채 시력을 잃은 유여화의 몸을 탐닉하는걸 목격했다. 그 뒤, 반금련은 유여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서문경이 새 첩 갈취병에게 푹 빠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의 눈을 멀게한게 반금련이라는걸 알아챈 유여화는 복수에 나섰지만, 오히려 죽은건 갈취병이었다. 왜 갈취병이 반금련이 방에서 자고 있었고, 왜 그녀의 시체가 유여화 방에 나타났을까?

유여화가 실명했다는걸 이용해서 위치를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트릭인데 솔직히 너무 뻔했어요. 손가락 촉감에 자신있다는 서문경을 비웃듯, 반금련이 갈취병인 척 했다는 일종의 변장 트릭도 뻔한건 마찬가지였고요. 이젠 지겹기까지 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얼어붙은 환희불"

서문경이 자기 탓에 죽은 사람들의 귀신을 본다고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반금련은 서문경과 함께 퇴마를 위해 태산에서 수행 중인 수도승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송이 이끄는 양산박 무리와 마주쳤다. 무송은 서문경과 반금련을 쫓아온 것이었다. 반금련의 활약으로 둘은 목숨을 건지지만, 여자로 변장한 낭자 연청의 화살에 죽을뻔한 서문경은 그 뒤부터 여자를 두려워하게 되는데...

죽음 앞에서 당당한 반금련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반금련은 모야차가 인정할 기개를 보여 목숨을 건지거든요. 이 부분은 수호지 설정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수호지는 억지로 끼워넣은 느낌이 강합니다. 게다가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네요. 여자에 흥미를 잃은 서문경과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낭자 연청을 가장하여 죽게 만들었다? 이젠 정말이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네요. 별점은 1점.


"여인 대마왕"

서문경의 장례식, 반금련은 불륜을 저지르던 첩 향초운과 상대남 유포를 잡아 죽이자고 제안했다. 이 기회에 유산을 노리는 버러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불륜남녀와 함께 서문경 사체가 목이 베인채 발견되는데...

불륜남녀와 서문경 사체의 목을 자른 이유가 기발했습니다. 반금련이 자기 혼자 서문경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꾸민 짓이었거든요. 처음 무덤으로 향한 서문경의 상여 속 사체는 서문경 머리와 유포의 몸이 붙어 있었습니다. 반금련은 무덤에서 나중에 서문경의 머리만 빼 온 뒤, 특별한 장례도 없이 매장된 유포의 몸으로 위장한 무덤에 합쳤고요. 

반금련이 서문경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극진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중국 전통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등, 이 작품만 놓고 보면 평작은 됩니다. 다만, 반금련의 서문경에 대한 '사랑'이 당쵀 납득이 되지 않는게 문제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연화왕생"

무송이 나타나 모야차와 함께 반금련의 몸종 춘매를 협박했다. 수비부 책임자 주수와 결혼한다는 반금련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히려 반금련은 이 기회를 이용해 무송의 복수를 끊어버릴 계책을 짜냈다.

반금련의 죽음, 그리고 무송이 결국 반금련에게 반하고 만다는 최악의 설정이 등장합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네요. 별점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반금련"

방춘매는 주수비의 아내가 된 후, 주수비가 청하현 모든 남자를 양산박 토벌 작전에 징집하도록 만들었다. 모든건 반금련을 음탕하다 조롱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춘매의 계획대로 남자가 없는 귀부인들은 음탕한 축제에 빠져들었다. 결국 주수비가 토벌 작전에서 죽은 뒤, 거란군은 남자가 없는 청하현을 덮쳤다. 그러나 응백작은 얼음에 재워둔 반금련의 시체로 무송 일행을 꿰어내어 청하현을 구했다.

줄거리만 보아도 황당하기 그지 없지요? 춘매가 금련에게 이렇게까지 충성을 바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귀부인들이 남자가 없다고 삽시간에 음탕한 축제에 빠져든다는 설정도 어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얼음에 재워둔 반금련의 사체를 보고 아직 그녀가 살아있다 여긴 무송과 양산박 일행이 거란군을 물리친다는 마지막 장면은 제가 뭘 읽고 있는지도 모르게 만드네요. 역시나 별점은 없습니다. 아니, 별점을 준다면 마이너스에요.


"인어등롱"

앞서의 "낙인찍힌 미녀들"을 일부 수정한 이야기. 진주를 훔치는 트릭은 동일한데, 범인만 갈취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의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진주를 훔친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잔혹한 서문경이 갈취병 뱃속의 진주를 낚시로 꺼내려다 그만 낚시바늘이 취병의 위에 박히는데, 반금련은 갈취병에게 염주를 먹게 하여 그 무게로 바늘을 빼게 만드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또 이 모든 건,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부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금련이 갈취병의 아름다운 치아를 부수기 위해 꾸민 계획이라는 반전도 돋보였습니다. 새로운 처첩을 이 정도 계책으로 쫓아내고, 아름다움을 훼손시키는 정도가 확실히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새로 들어온 처첩이 계속 죽어나간다는건 말도 안되잖아요?

제 기준으로는 수록작 중 가장 빼어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4/12/28

사카나와 일본 - 서영찬 : 별점 3점

사카나와 일본 - 6점
서영찬 지음/동아시아

에도시대부터 현대까지 해산물이 일본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을 다루며,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의미까지 조명하는 책. 총 570여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을 6장 34항목으로 나누어, 항목별로 해당되는 해산물, 어식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정어리는 에도 시대 서민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생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급 무사 사카이 반시로의 일기에서도 모두 42회 나올 정도로 서민들이 가장 자주 소비하던 음식이자, 당시 가난과 서민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재료였습니다. '서민이 자주 먹는 밥반찬은 무엇인가'라는 테마의 '반즈케'에서도 생선 부문 1위는 이와시(정어리)였다고 하고요.
단순히 식탁 위의 먹거리일 뿐만 아니라, 어비(생선 비료)로 활용되어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력의 증가는 화폐 경제를 발달시켰고, 쌀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무라이 정권 체제 기반인 석고제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정어리의 활용은 단순한 생선을 넘어 일본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지요.

다시마는 일본 경제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 중요한 해산물로, ‘다시마 길’이라 불리는 무역 루트를 통해 일본 상업 경제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홋카이도의 다시마가 교토와 오사카로 수송되던 이 루트는 일본 자본주의의 씨앗을 뿌린 경제적 기초였습니다. 한 차례 항해로 현재 화폐 가치로 따지면 1억 엔 정도를 벌어들였다니 대단하네요. 사쓰마번은 불법적인 대중국 다시마 무역으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무기류를 수입하며, 이 무기가 훗날 막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즉,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일본 역사를 바꾼 거대한 동력이었던 것이지요. 조금 과장된 느낌이지만 재미있는 발상이었어요.

쿠사야는 독특한 냄새와 풍미를 가진 일본 전통 발효 생선입니다. "어시장 삼대째"를 통해 단순한 건어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쿠사야액'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그리고 쿠사야는 해산물이 사회에 영향을 끼친 사례와는 달리, 당시 열악한 환경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생존 방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근대 이전 유배지로 알려진 이즈제도와 고토열도에서는 자원이 부족해 소금물을 재활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쿠사야액이 만들어지고 쿠사야가 탄생하게 되었거든요. 이는 단순히 발효 음식을 넘어, 생존 전략으로서의 음식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덴푸라는 에도 시대에 스시, 소바와 함께 미식을 대표하던 외식 메뉴였습니다. 값이 싸고 맛이 좋아 에도의 삼미(三味)로 꼽힐 만큼 큰 인기를 끌었지요. 덴푸라와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적 일화 중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습니다. 건강을 중시하던 이에야스는 교토에서 유행하던 도미튀김을 처음 맛보고 지나치게 많이 먹는 바람에 복통을 겪었고, 이후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군요. 그 외 덴푸라가 =일본 음식 문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다수 소개됩니다.

명절 음식으로 서일본에서는 방어가, 동일본에서는 연어가 명절 요리로 소비되며, 이는 지역적, 계절적 특성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방어는 도야마만에서 잡혀 염장되어 집합지인 내륙의 히다, 그리고 주요 소비처로 운송되었으며 귀족과 무사 계급에게 주로 소비되었습니다. 도야마 - 히다 - 다카야마 - 마쓰모토 - 니가타를 이은 U자 모양 지역이 서일본 방어와 동일본 연어를 구획하는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두 갈래 방어 길은 수백 년간 지탱되면서, 각자 고유한 문화가 나뉘는 경계선으로 자리매김하였고요.

가쓰오부시는 2차 대전 당시 남태평양에서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가쓰오부시의 본고장 야이즈는 어선이 징발되면서 마을 기간산업이 존폐 위기에 몰린 탓에, 남태평양의 마리아나제도, 팔라우 공화국, 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셜 제도를 포함하는 남양군도로 집단 이주해 가다랑어 잡이와 가쓰오부시 제조를 이어나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난요부시'가 이때 탄생한 것이지요. 야이즈부시와 태평양전쟁 군납에 얽힌 일화도 있습니다. 1942년 해군은 항공대 식량으로 쓰려고 가쓰오부시 가루를 압축해 만든 사각형 조각에 대해 야이즈 업자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업자는 습기와 기온에 따라 부스러질 수 있으니 캐러멜처럼 말캉말캉하게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제안대로 납품 계약이 체결되었고요. 군납 제품명은 '반키리 가쓰오부시'로 '적군 만 명을 벤다'는 의미였습니다.
한편 난요부시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전황이 악화하면서 남양군도의 야이즈 주민은 수시로 징집돼 전장에 투입되어 죽어갔습니다. 결국 야이즈 주민 620명이 남양군도로 건너가 286명이 전사했고, 46%는 영영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패망은 자업자득이지만, 어민들은 좀 안됐군요.

그 외에도, "술 한잔 인생 한입"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던 장어 먹는 날 '도요노우시노히'의 유래, '청어 소바'의 유래 등 재미있는 정보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도판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생선의 생김새, 특징과 소개된 요리들의 실제 모습과 조리법을 그림과 사진으로 설명해주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겁니다. 방어길과 다시마길은 지도가 함께 있었더라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테고요.

또 해산물을 단순한 식재료로 다룬 내용도 많은데, 이 경우는 스시, 타코야키, 사시미나 라멘의 유래처럼 이미 잘 알려진 게 많아서 다소 지루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짚어주는 부분도 애매한 게 제법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동과 서를 나누는 방어길입니다. 히다에서 왜 동쪽으로는 방어를 옮기지 않았을까요? 나가노에서 니가타까지의 거리와 도쿄까지는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요. 단순히 동쪽에서는 연어를 먹는 걸로 정해져 있었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이 주제 하나를 더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면,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에 버금가는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보였는데 아쉬웠어요.

그래도 일본의 해산물과 엮인 문화사 서적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읽을거리임에는 분명합니다. 해산물이 일본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한 독자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9/18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5 - 토마토수프 / 문기업 : 별점 2점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5 - 4점
토마토수프 지음, 문기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전권에서 민다나오 섬을 떠난 시그넛 호는 새로운 동료인 에라스모를 만나 프리타스 섬으로 보물을 찾는 항해를 떠난다. 그러나 폭풍우로 보물 탐사를 포기했고, 해적질과 여행에 질린 댐피어와 일부 동료들은 동인도에 남게 되는데...

이번 권에서는 풀로 콘도르 섬에서 광둥성 남해안을 거쳐, 대만과 루손 사이의 바탄 제도 , 보루네오 섬 남단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아, 다시 수마트라까지의 장대한 항해가 펼쳐집니다. 조금만 더 올라왔다면 '조선'도 볼 수 있었을텐데 약간 아쉽네요.

그런데 요리에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어서 실망했습니다. 이래서야 '맛있는 모험'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중국 차, 황주 등이 등장하기지만 '차'나 '술'을 요리라고 부르기는 힘들지요. 이미 완성된 제품이기도 하고요. 대왕 조개살 요리는 전권에서 등장했었던 해산물 요리들과 다르지 않아 식상했고, 바탄 제도 원주민들이 만든 염소가 씹어 삼킨 위장 안의 풀을 삶은 것과 다진 물고기 살을 섞은건 요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두 가지 정도만 인상적이었는데, 첫 번째는 매너티 고기입니다. 맛있다는게 신기했거든요. 하지만 그냥 삶은 고기 말고 좀 더 요리같은 요리를 보여주는게 좋았을 듯 합니다.
두 번째는 '메로리'입니다. 판다누스 나무열매를 익힌 뒤, 과육을 깎아내 반죽하여 굳힌 것입니다. 맛은 잘 모르겠지만, '건망고'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 외에도 '다마르'라는 나무 수액을 이용한 역청 만들기같이 재미있는 정보가 없지는 않습니다. 여러 원주민들 - 바탄 제도 원주민의 생활과 식습관, 오스트레일리아 어보리진의 무소유(?) 삶 등 - 도 잘 묘사되고 있고요.
댐피어가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버린 뒤, 함께 낙오한(?) 동료들과 일종의 요트로 먼 수마트라로 향하는 결말도 괜찮았습니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는건 분명한데, 과연 어떻게 될지? 다음 권을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맛있는 모험' 부분이 부실하니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무리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8/24

식탁 위의 중국사 - 장징 / 장은주 : 별점 2.5점

식탁 위의 중국사 - 6점
장징 지음, 장은주 옮김/현대지성

제목만 보면 여러가지 중국 요리를 통해 중국사의 단편을 엿보게 해 주는 미시사 서적같은데, 읽어보니 생각과는 살짝 달랐습니다. 여러가지 요리에 대해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해 주는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생각대로 당시 시대상과 역사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탄탄한 사료 기반 설명들 덕분입니다. 대표적인게 개고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국 요리에 대해서는 "다리 4개 달린 건 책상과 의자 빼고 다 먹고 다리 둘 달린 건 사람빼고 다 먹으며 하늘의 전투기, 땅위의 탱크, 바닷속의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있을 정도로 온갖 식재료를 먹기 때문에 개고기도 식용으로 널리 퍼졌으리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요. 오래 전에는 가장 많이 사육한 가축이자 춘추전국 시대에는 제사에 쓰였고, 심지어 유방의 부하 번쾌는 구도(개잡이)였을 정도로 널리 먹었지만 현재는 알려진 조리법이 극단적으로 적을 정도로 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는 북방 유목민이 개를 좋아했는데, 북망 유목민 세력이 강해지면서 서서히 개고기 식용 습관이 쇠퇴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육조시대 때부터 '개를 먹으면 벌이 내린다'는 동물관, 식습관이 등장했고 이후 당대, 송대에 지속적으로 쇠퇴하다가 유목민 왕조인 원대에는 심지어 개고기가 몸에 나쁘다는 이론마저 득세하여 개고기 식용 습관을 거의 끝장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명대 기록에 따르면 개고기는 천한 사람들만 먹는 음식으로 전락했다네요. 세력의 변화에 따라 식문화마저 변해버린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돼지고기 인기가 떨어지고 양고기 인기가 높아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흉노족의 남하, 그리고 거란의 요나라 세력이 중원에 미친게 원인이니까요. 거란족은 평소에 양고기를 많이 먹고 제사에도 사용할 정도라, 이 식문화가 중원에 전파된 것이지요.
원래 중국인들은 알곡을 먹었는데, 밀가루를 먹게된건 한대. 장건의 서역 방문으로 전래된게 아닐까라는 추측도 그럴싸 했습니다. 마르코폴로에 의해 국수 문화가 이탈리아에 전파되어 스파게티가 되었다는 설과 왠지 비슷하네요. 물론 이 설은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속설로 널리 퍼진건 그만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인데 장건 서역방문설도 설득력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특정 요리로 주요 세력이나 외교를 엿볼 수도 있고, 고대에 회가 많았던 이유에 대한 설명처럼 당시 시대 상황을 요리로 알려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음식을 가열하려면 손이 많이 갔으며, 고대에는 그릇도 전부 도기라서 찌거나 조리는 조리법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도기는 열 전도율이 낮아 가열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생식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즉, 고대에는 '에너지'를 잘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는 겁니다(당연하지만요).

요리와 음식, 재료별 사료를 통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습니다. 몇가지를 소개해드리자면,
'노나라 애공은 공자에게 복숭아, 기장법을 먹도록 권했다. 공자는 먼저 기장밥을 먹고 그 다음 복숭아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일동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다. 기장밥은 먹는게 아니라 복숭아털을 벗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기장은 오곡 중 가장 으뜸이라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도 최상의 제물로 쓰입니다. 하지만 복숭아는 여섯 가지 나무 열매 중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군자는 천한 물건으로 귀한 물건을 벗길 수는 있으나, 그 반대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공자의 말주변을 잘 알 수 있는 고사네요. 그런데 기장 밥으로 복숭아 껍질을 어떻게 벗기는 것일까요? 궁금합니다.
 
완탕과 교자의 차이도 재미있었습니다. 우선 교자피는 둥글고 완탕피는 사다리꼴입니다. 물교자는 삶아서 그대로 접시에 담아 먹지만, 완탕은 간을 한 국물에 넣어 먹고요. 완탕은 피에 간수를 넣지만 교자는 소금을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자는 소를 넣고 피를 붙이지만 완탕은 먼저 붙이고 비튼다는데, 이 마지막 차이점은 그림으로 설명해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먹어본 완탕은 피에 소를 넣고 붙이는 방식은 똑같았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갈공명의 만두 기원설은 속설이라고 합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교자는 당대 발굴된 것으로, 투루판 지역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사료들에 등장하는 '혼돈'은 완탕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대 문서에 나온 조리법을 보면 교자라고 하고요. 의외로 군교자(군만두)는 비교적 최근 음식입니다. 남송 중궤록에 언급되어있다고 합니다.

상어 지느러미는 연골 부위로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급 요리가 된 건 질 좋은 육수로 걸쭉함을 더해 육수의 진한 맛이 연골에 스며들고 지느러미 사이에 배게하여 만들어낸 농후한 맛과 독특한 혀의 감촉 때문입니다. 젤라틴같은 매끄러움과 야들야들함에,삶아도 남아있는 연골 탄력을 통해 환상적 식감을 제공하지요. 그러나 의외로 역사는 40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고, 전국에 퍼져 진미로 극찬받은건 청나라 중기로 겨우 300년 전이라고 합니다. 요리법이 고도로 발달해야 하는 요리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역사가 짧은건 북경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북경오리의 원형은 오래되어야 남송 시기이며, 재료인 진압이라는 품종 사육도 명대에나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북경오리를 만든 원조집 편선방은 1869년 개점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북경오리점 전취덕은 1901년 개업했고요. 흔하디 흔해서 오래되었을 것 같은 피단도 명 말기에나 등장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피단의 식용 역사는 고작 300여년 전에 그친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젓가락 사용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이라던가 -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쓰지 않았다. 음식을 집을 때만 젓가락을 사용했다. 국도 채소가 든 것은 젓가락으로 먹지만,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예기"에 쓰여 있다. - , 원래 다양한 요리법이 있었지만 '볶음'요리가 중화 요리의 대세가 된 조리법의 흐름과 같이 재미있는 주제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목차가 연대순이 아니고, 설명도 두서가 없는게 많은건 아쉽습니다. 이렇게 쓸 바에야 그냥 "중국요리 백과사전"처럼 특정 요리에 집중해서 설명해주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판이 거의 전무하다는 단점도 크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07/01

삼개주막 기담회 - 오윤희 : 별점 2점

삼개주막 기담회 - 4점
오윤희 지음/고즈넉이엔티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포나루에 있는 , 과부 주모가 세 아이와 함께 운영하는 삼개주막을 찾은 손님들이 하는 기담 내지 괴담을 엮은 단편집입니다. 모두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후기를 무대로 하고 있으며, 한국적인 소재들이 등장하는게 눈길을 끕니다. 묘사도 마음에 들고요. 특히 여러 한국 요리 묘사가 좋습니다. 실제로 주막에서 먹었음직한 요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숙소와 주막을 겸하는 객주집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마음에 들고요. "열녀" 속 등장인물인 허씨 가문의 아이 율이가 후일 장사의 귀재인 허생전의 허생이 되었다던가, 주막집 장남 선노미가 연암 박지원의 기담회의 이야기 꿈이 된다는 등 실제 역사와 고전을 버무리는 팩션 스타일 전개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괴담치고는 섬찟함이 부족하다는건 문제입니다. 단순한 치정극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탓입니다.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라던가, 인간이 더 무섭다는 식으로 공포를 자극하는 이야기는 전무합니다. "열녀"에서 허씨 가문 도련님이 본 건 그네를 타는 미모의 아낙이 아니라 목을 맨 형수 정씨의 사체가 흔들리는 모습의 환영이었다는 정도만 눈여겨 볼 만한데, 이는 오노 후유미의 "귀담백경" 속 "마음에 들다"와 똑같은 설정이라서 "귀담백경"을 읽은 저의 공포심을 자극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미 아는 내용에서 무서움을 느낄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네를 타는 아낙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다"보다 오히려 못하기도 하고요.

이야기들도 앞서 설명드린 몇몇 요소를 제외하고는 딱히 한국적인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특별히 시대 배경을 따른다기보다는 일본 괴담물에서 보았음직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배경으로, 특정 가게를 찾은 손님으로부터 듣는 괴담물이라는 설정부터가 미야베 미유키에도물의, 그 중에서도 '미시마야' 시리즈와 너무 비슷하지요. 선노미가 괴담을 그림으로 그린다던가, 기담을 이야기하는 이야기꾼 역할을 맡게된다는 것도 미시마야 시리즈와 유사하고요. 이야기를 도맡아 '듣는' 역할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는걸로 역할만 반대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설정도 공양을 겸해 그림을 그리는 미시마야보다는 빈약해 보였고요. 

또 첩의 저주로 자기가 사산했다고 생각한 정실 부인이 첩과 첩의 아이를 죽였는데, 그 이후 정실 부인이 낳은 딸이 첩의 환생이었다는 "첩의 환생", 과거 보러 가는 길에 우연히 찾은 폐가가 알고보니 과거 보러가던 원래 친아버지인줄 알았던 양부의 모함으로 멸문지화를 당했던 친부 집이었다는 "과거 보러 가는 길", 유괴된 아이가 '고독'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이다가 죽은 뒤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는 "유괴된 아이"는 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이계록" 등의 중국 괴담이 바로 떠올랐어요. 

수록작 중 독한 시어머니가 남편을 잃은 며느리를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꾸며 '열녀' 칭호를 받으려 했다는 "열녀"정도만 조선을 무대로 했다는 인상을 주지만, 앞서 말했듯 그네를 타는 여인의 환각 등 다른 일본 괴담물에서 이미 접했던 설정이 등장해서 그리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이리저리 꼬인 가족 관계를 남발하는 전개도 좋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과거 보러 가는 길"의 선비 세진의 아버지가 알고보니 친아버지가 아니라 원수였다던가, "열녀"의 정씨 남편은 전처의 아들이라 시어머니가 도련님을 더 챙겼다던가, "옹기장의 꿈" 속 옹기장이 박씨의 아들 희동이는 알고보니 옹기장이의 친동생같은 제자 덕배의 씨였다던가, 심지어 주막집 맏아들 선노미까지 도망친 노비의 아이였다는 식인데, 너무 지나치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의 아류작으로만 보입니다. 조선 후기를 무대로 했다면 더 한국적인 소재가 등장했어야 했습니다. 별로 무섭지도 않아서, 딱히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저도 다음 권은 읽어볼 생각이 별로 들지 않네요.

2022/02/19

결국 소스 맛 - 은상 : 별점 3점

결국 소스 맛 - 6점
은상 지음/북오션

프리랜서 번역가, 작가인 저자가 집에서 요리들을 하면서 떠올린 이야기를 적은 에세이집입니다.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고,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고, 시사적인 화제를 피하자"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쓰기 원칙을 지켜서 썼다고 합니다. 소스가 주제인 이유는 본인의 요리가 소스로 맛이 좋아졌기 때문이고요. 소스 때문에 삶이 풍족해졌다고 표현하기도 하니, 소스 사랑이 남다르네요.

음식에서 이런저런 연상을 떠올리고, 음식에 대한 소개와 레시피로 이어지는 구성은 다른 먹부림 에세이들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유머가 가득해서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간히 보이는 재치가 대단하거든요. 감자탕은 단지 시간만 들이면 된다면서 등뼈 핏물 빼는 시간, 초벌로 삶아 내는 시간, 푹 익히는 시간을 "워킹 데드"와 "빅뱅 이론", "저스티스 리그" 한 편 시간으로 설명하는 식으로요. 저자의 소설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에요. 

음식을 보고 떠올리는 연상들도 독특했습니다. 저자의 직업 특성 때문인 듯 한데, 대표적인건 'LA 북창동 순두부 연신내점'을 보고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떠올렸고, 거기서 직업병처럼 번역의 문제를 떠올리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참고로 결론은 그 나라 사람에게 맞게끔 바꾸는게 맞다는 것인데 저 역시 동감하는 바입니다.

수록된 레시피도 많을 뿐 아니라, 저자가 집에서 만든 요리들이 주제라서 모두 집에서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게 큰 장점입니다. 바로 오늘 저녁에 시도해 봄직한 요리들도 있을 정도에요. 굴소스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면서 소개하는 중국 요리들이 대표적입니다. 고추잡채는 피망 세 개, 파 한 개, 양파 반 개, 잡채용 고기 300그램, 전분 한 스푼, 굴소스가 있으면 만들 수 있답니다. 야채들은 채를 썰고 기름에 파를 볶다가 돼지고기, 그리고 간장이나 맛술을 한 스푼 넣습니다. 어느정도 볶아지면 굴소스 한 스푼, 피망, 양파 채 썬 것을 넣고요. 피망이 숨이 죽으면 전분물을 뿌리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뿌리면 끝이라고 합니다. 거의 다 집에 있는 재료라서 당장이라도 도전해 보고 싶어집니다. 또 이 준비물에 게맛살, 버섯 약간, 계란 두 개만 있으면 중국식 계란탕도 만들 수 있다니 대박이에요. 기름에 파를 볶다가 향이 올라올 때 버섯, 양파 등을 굴소스와 같이 볶다가 물을 붓습니다. 간을 보고 싱거우면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게맛살을 찢어 넣고 계란도 풀어서 넣고요. 마지막으로 후춧가루와 참기름을 뿌린 뒤 전분물을 넣어 걸쭉하게 만들면 끝! 저 중국식 계란탕 아주 좋아하는데, 다음에 한 번 해 봐야 겠네요.

그 외 저자가 소개하는 소소한 팁들도 기억해 둘 만 했습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케첩 뿐 아니라 우유를 적당량 넣는게 좋다던가, 김치찌개를 끓일때 신김치가 없어서 맛이 나지 않을 때는 타바스코 소스를 넣으면 좋다는 것들입니다. 타바스코 소스는 단맛, 신맛, 짠맛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김치찌개를 잘 보조해 준다는군요. 단, 찌개를 끓이는 도중에 넣어야 특유의 향이 살짝 날아간다고 하네요.

재미도 있고, 기억해 둘 만한 레시피도 많은 좋은 독서였습니다. 물론 정식 레시피로 보기에는 재료나 조리 과정에 대한 소개가 빈약했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정 내 소스들을 망라하고 있지도 않고요. 그러나 이건 요리책은 아니니 큰 단점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1/11/21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가라시마 노보루 / 김진희 : 별점 3점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6점
가라시마 노보루 지음, 김진희 옮김, 오무라 쓰구사토 사진, 최광수 감수/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맛의 달인 걸작 에피소드 중 하나인 '카레 전쟁' (24권) 편에서 카레 전문가 교수님으로 출연했었던, 인도 역사 교수가 쓴 식문화사 책입니다. 한방약을 카레에 섞어 먹곤 한다던 그 교수님이지요. 전공 분야라는 인도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다년간의 인도 유학 경험과 학자다운 방대한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인도 요리가 무엇이며, 왜 지역별, 문화별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은 왜 '카레'라는 요리가 생겨났으며,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인도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인도 식문화가 영국에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는건 다른 책들에서도 소개되었던 내용인데, 카레 가루가 생겨난건 영국에 생 스파이스가 없어서였다, 밀가루를 버터로 볶아 만든 루는 볶은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코코넛 크림 등으로 조리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걸쭉함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는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교수님이 등장하셨던 "맛의 달인" 에서도 소개되었던 '커리'의 어원에 대한 추론은 다시 읽어도 흥미로왔어요. 영어 '커리'는 16~17세기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이 기록한 '카릴'에서 유래되었을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칸나다어와 타밀어 커리는 야채와 고기라는 뜻인데, 왜 당시 사람들은 수프를 부어먹는 식사를 인도인들이 '카릴 이라고 부른다고 썼을까요? 저자는 당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인은 수프를 부은 밥 요리 이름을 물었는데, 인도인들은 수프에 들어있는 건더기, 즉 야채와 생선과 고기에 대해 묻는다고 생각해 대답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하지요? '캥거루' 어원 가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는 저자의 추론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도 요리와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찰이 이어집니다. 특징이라면 앞서 '커리'의 어원 추론처럼 어원, 요리 유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북인도의 긴 후추를 피랄리라고 하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 당시 그리스로 가져간게 현재 영어 페퍼의 어원이 되었다는 식으로요. 저자가 역사 학자인 덕분이겠지요. 

각 지방 및 요리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요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확실히 연구자가 썼구나 싶은 부분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도 식문화는 남인도에서 성립된 스파이스를 혼합하여 맛을 내는 '카레 문화'와 우유를 기름, 버터, 요거트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요리에 활용하는 북인도의 '우유 문화'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적절하게 융합되어 구축되었다고 합니다. 근거는 7-8세기 남인도 힌두교 사원에 남아있는 신에게 올리는 식사 관련 글귀에 등장하는 재료 - 밀라구 (후추), 만질 (강황), 지라가 (커민), 시르 카두구 (겨자), 코타말리 (코리엔더) - 목록이고요. 이건 현대 카레에 가장 중요한 스파이스로 꼽는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 후추, 겨자'와 동일합니다. 즉, 당시 남인도에는 커리의 원형이 이미 존재했다는 뜻이지요. 반면 북인도에서는 불교에서 석가에게 우유죽을 공양했던 고사에서 보듯, 우유 식문화가 탄생했고요. 이런 지역에 따른 대립은 카레, 우유 뿐 아니라 밀과 쌀 중 무엇이 주식인지, 재료가 고기인지 생선인지, 논베지테리언인지 베지테리언인지 등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됩니다. 북인도는 밀 생산 지역으로 쌀이 아니라 로티라고 부르는 밀가루 빵이 주식이라는게 대표적인 예이고요. 

이런 역사와 지역, 문화를 통한 요리 구분이 굉장히 상세한게 큰 장점으로, 심지어 '자이나교 요리'까지도 별도로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이나교는 철저한 불살생으로 베지테리언 요리로 유명한데, 우리도 인도 요리점 요리로 친숙한 '파니르'가 대표 요리더군요. 파니르는 끓인 우유에 식초를 넣어 굳힌 코티지 치즈이고, 이걸 카레 소스로 끓여낸 요리이지요. 여기에 시금치를 넣은게 '팔락 파니르'고요. 

무굴 제국의 궁정 요리도 별도 항목을 할애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정복 세력이 인도로 침입한 것이라, 그 역사적 배경이 다른 인도 요리와는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우선 무굴 요리의 시작은 유목민의 캐러밴 요리로 케밥이 그 원점이라네요. 무굴 제국의 이름도 몽골에서 유래했고, 그들은 원래 아프가니스탄 유목민 출신이니 중앙 아시아 유목민 문화가 그들의 바탕인 건 당연합니다. 여기에 2대 황제가 이란에 망명했던걸 계기로 페르시아의 맛과 정취가 더해졌고요.

특정 지역에 독특한 식문화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 설명도 그 깊이가 남다릅니다. 남인도 케랄라 식문화 소개가 좋은 에에요. 이 곳은 원래부터 후추와 카다몬이 자생하였던 향신료의 천국이었는데, 이후 남서 해상 무역 중계 기지라 남동아시아에서 클로브, 넛맥이, 스리랑카에서 시나몬이 운반되어 향신료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및 서방 지역과도 관계가 깊어서 이미 1세기에 그리스도 포교가 이루어졌고, 유대교 성당인 시나고그도 있었으며, 무슬림도 거주하면서 커피 재배 등에 종사했을 정도로 국제 도시이기도 했고요. 중국배 역시 12세기 경부터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15세기 초에는 정화의 선단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이라면 향신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외부 식문화도 많이 유입된 요리가 생겨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스리랑카 신할족은 북인도 왕자의 후예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언어와 전통은 북인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식문화는 가까운 남인도 카레와 밀착되어 있으며 특징은 매운 맛, 그리고 몰디브 피쉬의 사용, 코코넛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스리랑카의 식문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맛의 달인의 '카레 전쟁'의 스리랑카 요리 소개 부분과 똑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몰디브 피쉬를 절구로 빻는 장면은 사진까지 똑같더라고요!

소개되는 요리들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요리는 빈달루입니다. 어원은 포르투갈 요리 카르니 드 비나달로스의 비냐달로스라네요. 이게 인도식 발음으로 변형되었던 거지요. 16세기 초에 포르투갈이 고아를 점령했을 때 전래되었던 요리라고 합니다. 처트니도 영국식 잼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힌디어로 '다'라는 뜻의 '차트나'가 어원인 인도 요리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외 정 요리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몇몇 요리는 레시피도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칠리,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와 후추가 듬뿍 들어간다는 라삼 파우더로 만든 라삼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을 듯 싶더군요. 타밀어로 '후추 주스'라는 뜻이라니, 매콤한게 딱일거 같아요.

이런 내용들 소개에 이어, 책은 현대 인도 요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됩니다. 인도 요리란 어디까지나 스파이스와 우유를 주요소로 하는 요리의 총칭이며, 원래 다양한 지방에서 자기들끼리만 먹었었지만, 지방 요리가 인도 전체로 퍼져 현대 인도 요리가 된 것이라고요. 이를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라고 말합니다.

카레, 커리 뿐 아니라 '인도 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 준 좋은 책입니다.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라, 근거가 확실한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썼다는 점이 돋보였고요. 목차가 조금 두서가 없다는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하지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커리와 인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글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고요.

그나저나 일본에 좋은 카레 책이 많이 나오는걸 보면, 확실히 카레에 진심인 나라가 맞긴 맞나보네요.

2021/04/24

삼귀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삼귀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괴담듣는 아가씨 오치카가 주인공인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 네 번째 작품입니다. 대충 읽다보니 순서를 건너 뛰었네요. 그래도 읽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살짝 안 읽은 이야기가 소개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괴담 이야기 한 개가 한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원래도 연재물이기도 하고요. 

별로 무섭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 접해 보았던 설정이 많았다는건 전작과 동일합니다. 그래도 나름의 변형이나 상세한 설정, 묘사가 좋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단, 새로운 등장인물과 함께 시리즈의 큰 변화를 암시하는 마무리는 여러모로 불길합니다. 다음 권에서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해주면 좋겠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미망의 여관" 

고모리, 오사키, 요노 세 마을은 매년 봄, 마을에서 모시는 신인 아카리님을 깨우는 초롱 축제를 열어왔다. 하지만 영주님이 세살짜리 딸을 잃었다는 이유로 축제를 금지하자, 농사를 위해 축제를 멈출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누시의 손님으로 마을에 머물고 있던 화가 이와이 세키조의 제안을 따르기로 뜻을 모았다. 나누시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유폐시켰던 별채를 초롱으로 만들자는 안이었다. 그러나 이와이 세키조의 진짜 계획은 따로 있었다. 그는 죽은 자신의 어린 아들과 아내에 대한 회한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 초롱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축제날, 별채에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그림이 어우러져 초롱처럼 밝혀지자 저승과의 문이 열리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별채에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만든다는 괴담은 많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돌아온다는 식의 전개가 대부분이고요. 고전 "원숭이 손",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가 대표적입니다. 

이 작품도 기본 설정은 동일하지만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글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덕분에 단순한 아류작들과는 수준을 달리 합니다.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만드려는 이와이 세키조의 계획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실제로 돌아온 뒤 벌어지는 대소동, 그리고 돌아온 망자들을 극락으로 돌려보내는 마무리까지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회한, 애정과 연민이 절절이 묻어나는 에피소드들도 감동적이었고요. '집착하지말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와이의 계획이 '여러 지방에서 지내는 제사를 조사해봤는데,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열심이었다'는 데에서 착안했다는건 좀 이상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제사는 망자를 잘 먹여서 돌려보내는게 목적이니 그럴듯한 착안인건 맞아요. 그런데 이건 죽은 사람, 망자들이 잘 돌아온다는 뜻이잖아요? 이전에 죽은 사람의 그림을 아무리 열심히 그려봤자,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는다는 이야기와는 정반대인거지요. 이 말 때문에 3개의 마을을 동원해가면서, 마을 축제급으로 애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아카리 님의 신통력이 뭔가 작용했다는 식으로 조금 설득력을 갖추어 주었더라면 완벽했을텐데 아쉽습니다. 작품에서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 망자들을 불러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일 뿐이에요. 망자들에게 저승으로 가는 통행증을 주는걸로 만사해결되는 결말도 운이 좋았던 것에 불과한건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 만큼은 확실했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식객 히다루가미" 

후사고로는 십년만에 방문했던 고향에서 에도로 돌아오는 길에서 아귀 히다루가미에게 씌워진 뒤, 히다루가미에게 먹을걸 주기 위해 과식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히다루가미는 중요한 손님을 끌어들이는 능력으로 후사고로가 도시락 장사로 성공하도록 도왔고, 후사고로는 '다루미야'라는 도시락 가게를 크게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과식으로 히다루가미가 살이 찐 탓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자, 다루미야는 여름에는 가게를 접고 휴식 기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십년 뒤, 다시 후사고로가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히다루가미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장례식에서 들었던 스님의 독경 탓이었으리라...

열심히 일하면 도깨비도 도와줘서 복이 온다는 전래 동화같은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괴담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후사고로가 도시락 가게 다루미야의 주인인 덕분에, 여러가지 요리들이 등장해서 즐거웠습니다. 이야기도 뻔하지만, 히다루가미가 살이 쪄서 집이 무너질뻔하는 등 위기를 불러와서 '다이어트'를 위해 가게를 쉰다는 설정은 조금 특이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좀 극단적이다 싶기는 했습니다만, 한번 뭔가를 한다면 극단적으로 하는게 에도 마인드?라는 생각도 드네요. 소품같지만 여러 볼거리가 많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삼귀" 

구리야마 번의 에도 가로였던 무라이 세이자에몬이 오치카를 찾았다. 대략 이십여년전, 그가 겪었던 괴상했던 일을 이야기해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죗값으로 깊은 산 속 호라가모리 마을 산지를 맡았을 때의 일이었다. 살기 힘든 호라가모리 마을은 위, 아래 마을로 나뉘어 있었다. 마을에서 수습하기 어려운 환자를 솎아낼 때, 다른 마을 손을 빌릴 목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부터, '오니'가 나타나 솎아내기를 맡게 되었다. 동료 산지기 스가의 아내와 아이가 솎아내기를 당한 뒤, 무라이와 스가는 오니를 쫓게 되는데...

무라이가 산지기가 되기 전 서두는 장황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구리야마 번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은 특히 과했고요. 다행히 진짜 괴담인 호라가모리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윗 마을과 아랫 마을로 나뉜 이유가 섬뜩하더군요. 기근이 닥친 마을에서 아이들을 잡아 먹기로 했는데, 자기 아이는 잡아 먹을 수 없어서 나무 상자에 넣고 교환했다는 중국 괴담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 죽음을 도맡는 '처형인'이 있는게 일반적이지 않을까요? 단지 입을 줄이는 정도의 소극적인 방법으로 끈질기게 가혹한 삶을 이어나간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무엇보다도 오니의 정체가 설명되지 않은건 아쉬웠습니다. 단지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산의 분노라고 하기에는 애매했습니다. 오니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윗 마을에 환자가 생기면 아랫 마을 촌장이 가서 죽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계속 이어졌을겁니다. 오니는 아무런 댓가 없이 촌장들의 죄책감만 줄여준 셈으로, 오니는 그나마 마을이 유지되도록 도운, 유익한 지박령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형편좋은 요물이 있을리 없지요. 마을 사람들의 원념이 모인 결정체였다던가 같은 설명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무라이와 스가가 오니를 추격하다가 마지막에 오니가 빈 껍데기라는걸 알게 되는 정도에 그칩니다. 무라이가 '이 슬픔과 분노를 어찌할까'라고 생각하는건 그냥 멋드러질 뿐, 설명되는건 없어요. 오니가 뭔가 이유라도 외치며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도 - 사라졌다면 더 나았을텐데 말이죠.

호라가모리 마을 묘사가 탁월하고, 윗 마을과 아랫 마을에 얽힌 비밀에 대한 진상은 흥미로왔지만 오니의 정체 등 상세 설정이 개운하게 설명되지 않는 단점은 큽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오쿠라님" 

흑백의 방에 찾아온 손님은 향료가게 비젠야 미녀 3자매의 막내 오우메였다. 그녀는 오치카에게 자기 가게에서 모시는 수호신 오쿠라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오쿠라님은 가게의 안녕을 돕고, 화재와 같은 재앙에서 가게를 지키며 가게 여주인과 딸들이 모두 미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신이었다. 그러나 큰 재앙에서 가게를 지킨 뒤에는 딸 들 중에서 한 명이 오쿠라님이 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그 말대로 오우메가 15세가 되었을 때, 큰 화재에서 비젠야가 무사한 뒤 오우메의 언니 오기쿠가 새로운 오쿠라님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집의 수호신이 사실은 신이 아니라 불행을 가져다 주는 요물이었다는 괴담은 많습니다. 그래도 설득력있게 수호신을 그려낸 묘사도 좋고, '수호신'의 존재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젠야의 오쿠라님은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거든요. 집을 지켜준건 분명하니까요. 이를 위해 오쿠라님이 딸 중 한 명이라는 진상도 으스스했는데, 생각해보면 딸 중의 한 명을 무조건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몇 대에 걸쳐 큰 재앙이 닥쳤을 때 바치는 정도라면 꽤 합리적인 거래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간의 설정 변주 외에 재미를 느낄만한 부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말도 뻔했고요. 이 이야기를 해 준 오우에는 사실 '생령'이 찾아온 거라는 진상도 별로였습니다. 비젠야의 마지막 데릴사위가 딸을 잃는건 참을 수 없다며 스스로 오쿠라님의 가호를 끊어버린 결과도 영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행동 자체는 이해가 되지만, 문제는 비호를 잃자 그간의 재난들이 모두 한꺼번에 몰려와 비젠야가 삽시간에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는데, 이런 기본적인 정보가 비젠야에서는 전승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이런 점에서 오쿠라님 괴담보다는 미시마야의 둘째 도미지로와 세책점 후계자 간이치를 비중있게 등장시키기 위한 발판 역할의 작품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문제는 새 등장인물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특히 한량으로 재미삼아 괴담에 관심을 가지는 도미지로는 최악입니다. 괴담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로 접근할건 아닌데 말이죠. 그나마 간이치가 과자 종류를 맞출 때 추리력을 살짝 선보이는건 인상적이었지만, 오우메와 비젠야 행방을 찾는 과정에서는 딱히 두드러지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새로운 인물들과는 반대로 반대로 이전에 오치카 상대역으로 보였던 아오노 리이치로가 결혼과 귀향이라는 이유로 퇴장하는 결말도 급작스러워서 당황스럽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이었습니다.

2021/02/28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윤덕노 : 별점 3점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6점
윤덕노 지음/더난출판사

음식 관련 식문화사, 미시사 서적. 관련 서적을 많이 저술해 왔던 윤덕노 씨의 근간입니다. 주로 우리나라 역사나 일화 속 음식과 요리들을 다루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목처럼 고대사부터 근대사까지의 중국 역사에서 요리 관련된 이야기들을 뽑아내어 소개해 줍니다.

요리에 대한 단순한 소개보다는 그럴듯한, 그리고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었던 역사적 사실을 뽑아내는 글들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조개가 높은 가치를 가졌었다는걸 "삼국지"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사료를 통해 우선 소개한 뒤, 그 이유로 옛날 중국의 주요 도시들이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탓이었다고 설명하는 식입니다. 물론 단지 거리 문제만은 아닐 수 있겠지만, 뭐든 구하기 힘들면 가치가 높아지는건 당연하니 그럴듯한 발상입니다.

당나라 이전 가 유행하지 못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저자는 우선, 당나라 이전은 북방이 남방에 비해 문화적으로 월등하게 발전했던 시기였다고 해석합니다. 당시 북방 민족은 차보다 낙농 제품을 더 선호했습니다. 차나무는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 접하기도 쉽지 않았고요. 그러다가 당나라 때 강남의 발전, 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호방한 북방 호족 문화가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정신을 맑게 하는 차가 대접받는 남방 문인 귀족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지요. 차의 대 유행은 이런 역사적 흐름이 맞물린 덕분이라는군요.

남북조 시대, 남제 출신으로 북위에 투항 후 대장군을 지낸 왕숙이 양고기와 물고기를 비교했던 일화도 마찬가지에요. 북위의 수도 낙양은 허난성에 위치한 중원의 중심인데, 이 곳까지 북방 유목민 음식이 널리 퍼졌다는 뜻으로 남북조 시대부터가 호한 胡漢 융합이 시작된 시기로 보는 좋은 증거라고 하거든요. 충분히 설득력있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항상 궁금했던, 왜 중국에서는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많이 먹고 대접받는지?에 대한 설명도 실제 역사와 잘 맞아 떨어져서 재미있었습니다. 돼지고기가 황제 수랏상에 오른건 명 태조 주원장 때가 처음인데, 그 이유는 주원장이 탁발승 노릇까지 했던 밑바닥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송, 원나라 때 귀족, 부자들은 주로 양고기를 먹었습니다. 돼지고기는 주로 가난한 서민이나 하층민이 먹었고요. 그런데 주원장이 황제가 된 뒤, 자기 입맛에 맞는 돼지고기를 수랏상에 올리게 했고 이후 돼지고기를 제일 좋아하던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하여 중국 육식 문화에서 돼지고기의 자리는 확고 부동해졌다고 하네요.

그 외 중추절 토란이나 오리고기를 먹는 풍습이 원나라 때, 몽골인을 죽이는 심정에서 비롯되었다던가, 도삭면은 몽골족이 한족으로부터 식칼을 압수해서 어쩔 수 없이 쇳조각으로 만들었던 상황에서 유래되었다는 고사도 역사와 음식을 잘 배치하여 설명한 사례라 생각됩니다. 몽골족은 한족으로부터 주방용 식칼을 압수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팩트 체크도 확실해서 마음에 들고요.

역사적인 의미보다는, 여러 일화나 명언 등에 관련되어 있는 요리들도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강남 귤이 강북 가면 탱자 된다'는 고사를 예로 들며, 이 강은 화이허강이며, 귤과 탱자는 아예 다른 종류이고 강북에서 귤 재배가 되지 않는건 북방 한계선이 화이허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는 것 처럼요. 

국수가 장수를 의미하는 음식이 된 유래도 기억에 남네요. 이는 그만큼 밀이 비싸고 고급 음식이었다는 증거라고 합니다. 보통 생일날에는 평소와 달리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기 마련이니까요. 송나라 이후는 밀이 흔해졌지만, 숲이 많은 북방에서 평야 지대인 남방으로 밀려난 탓에 찌는 요리법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그럴듯했습니다. 화덕에 구울 때는 화력이 센 장작이 필요한데, 숲이 없는 남방에서는 볏짚이나 밀짚과 같은 농업 부산물 혹은 낙엽을 연료로 쓴 탓에 연료 소비가 적은 수증기를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지요. 

복날과 보신탕의 유래도 가치있는 정보였습니다. "사기"에 근원을 둔 역사적인 행사와 음식이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호떡은 군것질거리나 값싼 길거리 음식이 아니라 황제가 먹기에 손색없는 고급 음식이었다는 이야기도요.
조조, 수양제, 장한, 소동파 등 수많은 권력자와 문인들을 사로잡았던 송강 농어의 정체가 정약용을 포함한 조선 학자에 따르면 '꺽정이'라고 하는데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지금은 보호종이라고 하니 먹을 기회는 그다지 얺겠지만요. 그런데 고려, 조선인들은 그다지 즐겨 먹지 않았는데 중국에서는 왜 이렇게 요란을 떨었는지 아주아주 궁금해집니다. 

그 외에도 동짓날 팥죽을 먹는 이유 등 여러모로 쓸만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내용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저자가 만주족이 돼지고기를 선호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제사를 지낼 때 돼지고기를 썼다는 이유 뿐입니다. 그런데 이 책 다른 부분에서 송나라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은건, 주변 강대국인 요와 금으로부터 받은 문화적 영향 탓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목민은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아예 먹지도 않았다는 이유로요. 만주족도 말갈, 여진의 후예로 유목민에 가까운데 왜 돼지고기를 선호했을까요?

또 남송에서 찌는 요리가 발달한건 연료가 부족했던 탓이라는 이유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찌거나 볶거나, 연료 차이가 크게 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직화'인 경우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중국 요리에 직화 요리가 많지도 않으니까요. 이렇게 저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모호한 부분은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리고 크게 3개 단락으로 구분해서 시대별로 목차를 구성해 놓았는데, 어수선하고 정리가 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통사적으로 목차를 구성하여 해당 시기에 대해 여러가지 요리들을 일람하도록 하는 구성이 훨씬 보기 좋았을것 같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독서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중국 요리와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021/01/22

채소의 인문학 - 정혜경 : 별점 2점

채소의 인문학 - 4점
정혜경 지음/따비

한민족, 한식과 채소의 관계를 다룬 식문화, 인문학 서적입니다. 한국인이 채소를 언제부터 먹어왔는지, 누가 먹었는지, 채소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1부 "한국인에게 채소는 무엇인가"는 아주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채소별로 주요 특징과 역사를 소개해 주는 2부 "한국인의 상용 채소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고요.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단군 신화 속 쑥과 마늘 중 마늘은 시기적으로 보아 달래나 명이나물일거라고 합니다. 현재의 마늘은 이후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채소가 일찍부터 재배가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고려 후기 이규보가 '가포육영 (집 채마밭에서 지은 여섯 수의 시)'이라는 제목으로 오이, 가지, 순무, 파, 아욱, 박에 대한 시를 읆을 정도였다는군요. 

거래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조선 후기에는 본격적으로 상품화되어 널리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우하영이라는 학자는 "미나리 두 마지기를 심으면 벼 열 마지기 심어서 얻는 이익을 올리고 채소 두 마지기를 심으면 보리 열 마지기를 얻어 수확하는 이익을 올릴 수 있다"라고 기록했다는데, 미나리가 엄청 고급 채소였나 봅니다. 

조선에서의 채소 인기를 알려주기 위해 소개되는 여러 유명인물들의 글과 삶도 상세해서 자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율곡 이이는 동초를 좋아했다던가, 허균의 "도문대작"속 많은 채소들을 소개하는 식입니다. "도문대작" 속 방풍싹을 쌀가루에 넣어 끓이는 방풍죽은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다산 정약용도 강진 유배 시절 두부, 부추, 아욱국과 미역국, 녹차를 즐겼다고 하고요.

"토지", "미망" 등 여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흥미롭습니다. 이 중 "미망"에서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주는 '삘기'라는 간식거리가 인상적이었어요. 띠의 새로 난 순으로 뽑아서 씹으면 껌처럼 질겅질겅하게 씹히며 달짝지근한 물이 나온다고 소개되고 있는데, 그 맛이 실로 궁금합니다. 현대가 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게 정말 많다는 생각도 함께 드네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싱아는 줄기와 잎에서 신 맛이 나는 채소라고 하고요. 그 외 "식객"과 "대장금"까지, 다루고 있는 콘텐츠의 폭도 넓습니다.

그런데 3부부터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다양한 채소 조리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만큼은 나름 자료적인 값어치는 있습니다. 디테일만큼은 좋았으니까요. 또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튀김, 튀각, 부각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건 수확이었고요. 옷을 입혀 튀기는건 튀김 옷을 입히지 않고 튀기는게 튀각, 부각은 그 중간 형태라고 정의되는군요. 몰랐습니다. 쌈문화의 역사도 볼 만 했던 정보였고요.
하지만 3부 후반부의 '고조리서를 통해 본 채소 요리법의 세계'는 제목 그대로 고조리서인 '제민요술' 등에서 번역하여 인용한 조리법이 전부입니다. 시대별, 나라별, 채소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등은 전혀 소개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소개된 내용을 보면 "증보산림경제" 속 개발가법이라는 요리는 중국 요리법과 유사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부분을 파고드는 깊이가 아쉬웠습니다. 아주 약간 시대별 특징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대단한 내용은 없습니다. 구성도 종류, 주재료, 간단한 조리법으로 구성된 표 형태라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고요. 

4부, 5부는 더 별로입니다. '채소를 먹으며 오래 살 수 있고, 채소가 음식의 미래다'는 주제도 뻔하지만, 내용도 모두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거나 단순한 번역에 불과한 탓입니다. 장수인이 채소를 즐긴다는 것도 조사는 했다지만, 데이터는 수록되어 있지 않아서 수긍하기 어려웠고요. 아무리 당연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조사를 해서 그 결론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조사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정리해서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전체 약 390여 페이지 정도 분량 중 절반 정도만 기대에 값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1/01/16

스파이스 - 잭 터너 / 정서진 : 별점 2점

스파이스 - 4점
잭 터너 지음, 정서진 옮김/따비

스파이스, 즉 향신료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그리고 왜? 향신료가 이렇게 큰 인기를 끌고 교역 대상이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식문화사이자 미시사 서적입니다.

이 중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왔습니다. 책이 향신료 교역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그리스, 로마 시대 부터가 아니라 콜럼버스, 바스쿠 다 가마 등 포르투칼과 스페인 탐험가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 읽다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니까요. 모험과 탐험 이야기이니까 당연하겠지요. 특히 다 가마가 인도 캘리컷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간단한 제노바어와 카스티야어를 할 수 있던 튀니지인을 만났던 순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 튀니지인 : 빌어먹을, 당신네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지?
  • 데그레다도 (처음 외지인과 접촉하는 사람) : 우리는 그리스도인과 향신료를 찾아서 왔다.

이 엄청난 대모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후 포르투칼인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캘리컷에 포격을 퍼붓고 잔인하게 포로를 죽였다는데, 유럽인들의 자기 중심적인 논리가 극초기부터 작용했다는건 씁쓸하네요. 그들이 '미개인' 이라고 불렀던 신대륙이야 그렇다쳐도, 그들 이상의 문화와 문명을 가진 다른 세계는 대화를 통해 협조를 구하는게 마땅했습니다. 하긴, 이런 자국 중심 논리는 지금도 없어지지 않았지요.

그리고 본격적인 향신료 무역 역사가 소개되는데, 로마 시대에 이미 인도와의 향신료 교역로가 개척되어 존재했다는건 놀랍더군요. 이집트가 로마의 속주라 홍해를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었던 덕분입니다. 홍해를 지나 아라비아 반도, 인도양을 지나 계절풍을 타고 서고츠 산맥 근처 항구에 기항하는 항로였습니다. 여기서 확보한 후추 및 각종 향신료는 로마 사회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가격도 우리 생각만큼 비싸지는 않더라고요. 후추 1파운드 (450g)가 자유 노동자 이틀치 일당이었다니, 대충 최저 시급을 9천원으로 계산하면 14만원 정도 되는 셈입니다. 100g에 3만 2천원 정도라면. 아주 대단한 사치품이라고 하기는 조금 어렵겠지요.
조금 의외였던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 향신료를 항상 과하게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도를 넘는 향신료 소비가 이어졌고, 이러한 향락, 사치 풍조가 로마 멸망의 원인이니, 향신료도 로마 멸망에 일조한 셈입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이 홍해 항로를 장악하며 직접 교역이 끊기면서 비잔틴, 이슬람 상인을 통해 향신료를 수입해 사용하다가 앞서 설명한 포르투칼과 스페인에 의해 대항해 시대가 열려 향신료 수입 무역이 재개되었으며, 포르투칼과 스페인의 패권이 네덜란드, 영국에 의해 무너지고 현재에 이르는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향신료가 이렇게 널리 사용되고, 큰 돈을 벌어다 주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몇가지 핵심만 요약하자면, 일단 유럽인들은 향신료가 파라다이스, 즉 지상낙원에서 자란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종교적 상상을 뛰어넘는 일종의 진리이자 신조에 가까왔다고 하네요. 즉, 향신료는 에덴 동산에서 온, 기쁨과 같은 의미를 가진 어휘였던 거지요. 향신료 중에는 이름이 아예 grains of paradise라는 것도 있었다니까요. (지금의 멜레구에타 후추입니다) 그래서 '향기' 를 이용하기 위해 종교적으로 굉장하 중요하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중세 의학의 중심이었던 체액론에서 향신료가 중요한 요소였던 탓도 큽니다. 건강, 그리고 '성' 측면에서 향신료가 치료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음식 부패가 심해서 냄새와 맛을 감추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 보다 새로 재료를 사는게 더 싸니 당연하겠지요. 오히려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순절이나 겨울철에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생선 등만 먹는 경우가 많아서 향신료가 어쩔 수 없이 사용되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향신료 와인은 당시 술의 품질이 굉장히 떨어져서 생겨났다고 하고요. 이외에 당연히 사치, 과시를 위해 쓰여진 측면도 존재했기에, 이런 이유들로 왕실에서는 많이 사용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비쌌고, 무역업자들에게는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죠.

근대로 접어들면 후추는 수입이 늘어나며 꾸준히 가격이 하락했고, 상류층 관심은 좀 더 희귀한 향신료로 이동하였다고 합니다. 클로브나 넛메그같은 향신료로요. 넛메그를 손에 넣기 위해 네덜란드가 뉴암스테르담, 즉 뉴욕을 포기한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러시아가 알라스카를 미국에 판 것과 비슷한 멍청한 행동으로 소개되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그럴만 한 행동이었어요. 네덜란드가 넛메그로 벌어들인 이익은 원가의 2,000%에 달했다고 하니까요. 몇 년 장사를 잘 했다면, 다시 돈으로 뉴욕을 확보할 수도 있으리라 여겼겠죠. 

뒤이어 설탕, 차, 초콜릿, 커피 등에게 그 지위를 넘겨준 현재가 짤막하게 소개되고 책은 마무리됩니다. 스파이스 시대의 종말이 찾아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파이스가 흔해졌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 이후 탐욕을 금했고, 종교 시장에서 향신료는 퇴출되었으며, 근대에 접어들면서 향신료가 가지고 있었던 이런저런 신비로운 이미지는 모두 희미해지고 재료의 맛을 강조하는 레시피가 유행하는 등의 영향도 컸고요. 이 책에 언급된대로 지금은 향신료를 많이 쓴 요리는 왠지 모르게 후진적이라는 이미지가 덧 씌워져 있지요.

이렇게 큰 틀에서 향신료, 스파이스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문제는 단점도 크다는 겁니다. 제일 큰 단점은 지루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향신료가 널리 사용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엄청나게 지루합니다. 종교적, 의학적, 식문화적 등의 이유가 나열되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계속 반복되는 탓이에요. 주제별로 묶어서 핵심만 요약했어야 했습니다. 도판도 별다른게 없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디테일한 설명은 좋지만, 너무 세부적인 부분에 집착해서 거시적인 흐름을 보기 힘들다는 단점도 만만치 않습니다. 향신료가 인기가 있었다는건 반복된 설명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향신료 교역은 항로를 개척했던 몇몇 인물들과 몇몇 교역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만 소개될 뿐, 어떻게 항로와 무역 흐름이 진행되고 변화되어 왔는지가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국가간의 큰 흐름없이 세부적인 사건과 에피소드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포르투칼과 스페인이 향신료 교역을 직접 인도 항구에서 시도했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교역을 했을까요? 또 어떻게 이들의 패권을 네덜란드가 빼앗아 올 수 있었을까요? 다른 유럽 국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 와중에 인도양을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 그리고 동방의 맹주 중국은 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요?
또 항로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제대로 된 지도 하나 수록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에요. 읽으면서 계속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는데, 불편하기도 불편할 뿐더러 항로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지도는 없어서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분량은 방대하지만, 쓸데없이 길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직전 읽었었던 "외국어 전파담" 처럼 세계사적인 흐름과 합쳐서 더 큰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정리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구태여 권해드릴 만한 책은 아닙니다.

2020/11/19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7) : 조경규 만화들

돼지고기동동 - 6점
조경규 지음/송송책방

"오무라이스 잼잼"으로 유명한 조경규 작가가 꽤 오래전에 연재했던 웹툰입니다. 단행본은 올해 출간되었네요. 연재당시 다 봤었지만, 우연찮게 단행본도 구입하게 되어 리뷰를 남깁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하늘이네 가족이 친지, 이웃들과 돼지고기 요리를 해 먹는게 전부니까요. 남편이 요리를 전담하고, 아내는 밑준비와 밥을 짓는다는 역할 분담은 독특하지만, 평범한 한국인 가정답게 등장하는 요리 모두 평범합니다. 돼지 갈비를 이용한 김치 찌개, 삼겹살 구이, 돼지고기 앞다리살 불고기, 콩나물 밥이 등장하는데 누구나 집에서 한 번 해 먹어 봄직한 요리들이죠. 밖에서 사 먹는 요리도 순댓국과 감자탕이고요. 중국 식당에서 탕수육을 먹고, 회사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집밥'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제한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인지 작 중 "오무라이스 잼잼"을 그린 인기 만화가 조경규 씨!가 직접 등장해서 중국 요리 회과육을 선보이고, 아파트 반상회를 빙자한 요리 대결이 펼쳐지는 와중에 아파트 윗집 아가씨가 돼지고기 소시지로 만든 핫도그를 대접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던것 같아요. 요리 대결을 끝으로 마무리 되고 맙니다. 오래 연재되기는 좀 힘든 소재였어요. 

전개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별 내용도 없는데 힘을 주어 표현한 부분들이 그러합니다. 연재를 지나치게 의식한 듯한데, 영 작품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결말도 깔끔하고 하늘이네 세 가족의 화목한 모습도 귀엽고 볼거리이며, 이웃간의 훈훈한 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라 마음에 드네요. 딸 아이에게 선뜻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조경규 작가가 직접 등장하여 "오무라이스 잼잼"과 이어지는 세계관이라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 1 : "오무라이스 잼잼" 보다는 큰 판형이라는게 특이했습니다. 세밀한 그림을 감상하기 용이한 판형인데, 보통 웹툰에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조경규 작가 만화는 펜터치가 세밀한 덕분인지 큰 판형에도 잘 어울리더군요. 

덧 2 : 하늘이가 사랑하는 '삼통 파워'가 작중 세계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만화로 보이는데, '팬더 댄스'를 등장시키는게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조경규 유니버스'를 구축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오무라이스 잼잼 11 - 6점
조경규 글.그림/송송책방

딸아이가 좋아해서 계속 구입해서 읽어보고는 있지만, 어느 순간 리뷰를 쓰지는 않게 된 조경규 작가의 인기 일상계 식도락 만화입니다. "돼지고기 동동" 리뷰를 쓰는 김에 최신 권 리뷰를 올려 봅니다.

이전 권에 비해 조경규 작가와 가족들이 직접 겪은, 일상계스러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조경규 작가 가족이 메추리알 요리 파티를 하고, 식당에서 간 요리를 시켰는데 너무 많아서 당황했던 경험, 중국에 가서 마라샹궈를 먹는다던가, 홍콩에서 에그롤을 사기위해 분투했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식으로요. 나쁘지는 않은데, 이전처럼 특별한 경험에서 시작해서 요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개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인 "오무라이스 잼잼" 최고 매력 포인트인데 말이지요.
그나마 등장하는 것도, 오락실 기계를 사러 가서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룰을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코칩 쿠키처럼 멈출 수 없게 된다는 초코칩 쿠키 이야기같이 뻔하거나 억지스러운게 많았습니다. 아울러 음식들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알려주는 내용도 이전보다는 부족한 편입니다. 가족 일상계 중심 이야기니까요.

그래도 이야기 중간중간 소개가 없는건 아닙니다. 양꼬치를 위구르 족이 팔기 시작한게 대유행의 시초라던가 하이라이스의 유래, 도토리묵 묵사발 원조인 대전 강태분 할머니, 에그타르트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 볼만한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전 권과 비교하기 어려운 장점이 있는데, 단행본 구입한 보람이 느껴진다는 겁니다. 게임기가 등장하는 이야기 두 편이 웹툰에서는 삭제된 덕분입니다. 게임기가 불법 복제품이기 때문이라는데, 책에는 수록되는게 문제 없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출판물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라서 기뻤습니다. 

"오묘하고 잼있는 이야기"라는 만화 게임북 부록도 아주 좋았어요. 해가 지나면 쓸 일없는 달력이나, 용도도 불분명한 스티커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2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은 좀 세기는 하지만, 600페이지라는 볼륨과 풀 컬러라는 점에서 수긍할 만 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6)

2020/09/30

중화미각 - 김민호, 이미숙, 송진영 외 : 별점 3점

중화미각 - 6점
김민호.이민숙.송진영 외 지음/문학동네

다양한 중국 음식에 대해 써 내려간 음식사, 문화사 서적이자 넓게 보자면 일종의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책입니다. 바로 얼마 전 읽었던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와 비슷해요. 전문 연구자들이 각종 음식에 대해 사료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개인의 느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요. 이 책이 훨씬 가볍고 쉽게 쓰여졌다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목차는 크게 전채, 주요리, 식사류, 탕, 후식, 음료, 간식으로 구분되며 각 항목별로 많게는 5종, 적게는 1종의 요리와 음료가 소개되면서 마지막 '연회 차림표'까지 모두 열 아홉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음식에 대한 전문적인 글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오향장육"을 소개하는 첫 번째 글에서 잘 알 수 있어요. 오향장육의 현재 생김새와 구성, 주요 재료 소개, 오향장육 본고장인 산동 소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 오향장육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는 주요 재료 소개에 그치는 탓입니다. 산동성 소개도 재미는 있었지만, 무송이 호랑이 때려잡는 이야기 비중이 높아서 이게 오향장육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고요.

그래도 건질게 없는건 아닙니다. "량반황과"에서 식초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은 좋았습니다. 음식 재료로서의 식초보다는 '초'라는 한자어는 깨끗하고 가난한 선비를 가리킨다던가, 동양화 소재로 자주 쓰이는 "삼산도"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유가 소동파, 도가 황정견, 불가 스님 불인이 각각 식초를 맛보고 짓는 표정이 다르다는 고사를 통해 유가, 도가, 불가의 인생관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솔직히 와 닿지는 않았지만, 이런 생각도 있었구나 싶었거든요.
"농어회"에서는 중국 회의 역사와 회의 조리에 대한 여러가지 고사, 시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진나라 관리 장한이 초가을 농어회와 순채탕이 그리워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향한 뒤, 그가 모시던 왕과 측근이 모두 반란군에 의해 죽었다는 고사를 통해 '순갱노회 (순로지사)'라는 4자성어가 남아 있을 정도라는데, 중국에서도 진나라 때 부터 회를 먹었다니 놀랍네요. "쑹수구이위"를 통해 소개해주는 중국 물고기 요리, 그 중에서도 잉어 요리에 대한 정보도 좋습니다.

특히 마음에 든 건 "호떡"입니다. 당나라 백거이가 쓴 호떡이 등장하는 시에서 시작하여, 곡물가루로 반죽해 발효시키지 않고 화덕에 구운 '병'의 역사와 그 발전 과정, 발전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한 분류 - 기름에 지진 젠병, 쪄는 증병, 튀겨낸 유병, 화덕에 구워낸 소병, 뜨거운 국물과 같이 끓여 낸 탕병 등 -, 당 이후 송, 청의 사료를 통한 '병'의 여러가지 조리법들, 마지막으로 어떻게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래었는지까지, 그야말로 '호떡' 이라는 길거리 음식에 대한 한 편의 깊이있는 미시사로 손색없는 글인 덕분입니다. '병'이 어떻게 발효를 거쳐 푹신하고 달콤하며 기름진 한국식 호떡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가 없는건 조금 아쉬웠지만 "중화미각" 이라는 책에서 한국식 호떡 이야기를 깊이있게 다루기는 어려웠겠지요. 이 부분만 보강된다면, "호떡의 역사"라는 별도의 책으로 팔아도 충분할, 좋은 글이었습니다. 

호떡과 비슷한, 과자 이야기들도 괜찮은게 많습니다. 후식에서 소개되는 "장원병" 이야기도 역사와 깊이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장원병의 시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소년이 무려 49일이나 표류하게 되었는데, 어느 요리사가 준 과자만 전혀 상하지 않아서 그걸 먹고 목숨을 부지한 뒤 장원급제를 하였던 일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바삭한 껍질에 마른 견과류와 달콤한 소가 필수인 장원병이 오랜 기간 상하지 않는건 이해가 됩니다만, 정말로 상온에서 49일을 버틸지는 잘 모르겠네요. 여튼 이 후 장원병은 널리 퍼져서, 지금은 행운과 부귀영화를 상징하게 되었다니 중국에 가면 한 번 맛 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맛보다는 의미와 상징적인 측면에서 말이지요.

"반도 복숭아"에서 중국에서의 복숭아의 의미와 우리나라에서 그 의미가 달라진 것에 대한 고찰은 개인적으로 아주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복숭아가 에로틱한 느낌을 줄까? 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사했던 적이 있는데, 이 글에서 '보수적인 유교적 가치관' 때문일 거라고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왜 조선 시대에서 복숭아가 여성의 욕망과 에너지를 상징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건 조금 아쉽더군요. 중국에서 복숭아가 여신 서왕모의 이미지이기 때문일까요? 그런 설명을 조금 더 보강해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산양뤄우"와 "훠궈"라는 탕 요리 소개도 다른 곳에서 흔하게 보았던건 아니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익히 알고 있었던 요리들이 많이 등장하는건 단점이기는 합니다. "북경오리구이", "동파육" 이 대표적입니다. 요리법과 역사가 상세하게 소개되는 편이지만, 거의 모든 중국 요리 소개서 (이런거) 에서 소개될 정도로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접했던 이야기라 신선함이 떨어집니다. 물론 "동파육"에서 실제 해당 요리와 상관없는 동파 소식의 인생과 그의 시를 소개하는 식으로 차별화 요소를 가져가고 있기는 한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책 취지에는 많이 어긋난 내용이었다 생각되네요.
"만두"에서의 만두의 여러가지 종류에 대한 소개도 단순한 형태와 만두소에 따른 분류가 전부라 깊이가 부족했고요. "짜장면"도 차별화된 컨텐츠로 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백주와 약주", "용정차" 역시 중국술과 차에 대한 방대한 책들에 비하면 딱히 내세울 내용은 없어요. "용정차"에서 "삼국지" 속 유비가 구하려고 했던 차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 정도만이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훠궈"도 앞서 좋다고 설명드리기는 했지만 말미에 중국에서 훠궈 먹는 방법을 소개한건 어색했어요. 솔직히 필요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나마 "마파두부"는 굉장히 널리 소개된 소재임에도 다행히 '두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두부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되거든요. 마파 두부도 흔한 진 마파의 조리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천 요리의 핵심인 '두반장' 소개로 다른 마파두부 컨텐츠들과는 조금은 다른 내용을 선보이고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다른 유명 요리들도 이렇게 다른 디테일을 파고 들었다면 더 나았을 겁니다.

그래도 재미와 자료적 가치도 적당하며, 책의 빼어난 만듦새도 좋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중국 요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8/02

2020년 8월의 신라호텔 팔선 디너 코스

온 가족이 오랫만에 모여, 좋은 식사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의미있는 자리라 아버님께 의견을 여쭈었는데, 중국 요리를 선택하시더군요. 그래서 신라호텔 팔선에 디너 코스를 예약하여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선택한 코스는 아래의 '여의' 코스였습니다. 코스 이름이 특이해서 찾아보았더니, 불교 용어이기도 하고 '마음 먹은대로 된다' 는 뜻인데, 왜 이런 단어를 썼는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네요.
1. 제철 정선 전채
장어와 문어, 찌고 튀긴 듯 크리스피한 삼겹살과 버섯의 구성입니다. 단짠단짠인데 맛이 강하지 않고, 한 입에 먹기 좋아서 그야말로 전채라는 느낌이 드는 메뉴였어요. 나쁘지 않았습니다.
2. 캐비아 망태버섯 제비집.
제비집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는데 식감이 재미있더라고요. 맛은 담백, 무난했습니다. 그런데 망태버섯과 캐비아의 존재감은 무척 약합니다. 맛에 있어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를 정도였어요. 제가 둔감한 탓이겠지만요.
3. 홍소소스 청새리 상어 지느러미 찜.
이거 진짜배기 상어 지느러미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도 어느정도 있고, 쫄깃하지만 질기지 않은 신기한 식감에 소스도 부담없어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4. 고법 불도장
도가니, 전복, 오골계 등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는 불도장. 그러나 고명들보다도 묵직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게, 은근하게 간을 맞춘 국물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코스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5. 어향소스 길품 전복과 오룡해삼
코스의 마지막 요리인데 전복의 크기는 상당한 만족감을 주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소스맛도 특출나지 않고 전복의 맛도 크기에 비하면 그닥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어향 소스는 어향 가지로 아주 친숙하며, 오룡 해삼도 먹어본 적이 있어서 신선함이 부족하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리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6. 식사.
저는 짬뽕을 선택했습니다. 짜장, 짬뽕, 기스면, 볶음밥, 중국식 냉면 등이 가능합니다. 고명, 건더기 등 전부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재료 외에는 일반 중식당 짬뽕과 구분되는 맛은 아니었어요.
7. 디저트
멜론 반통, 그리고 가운데 씨를 파낸 곳에 감으로 만든 소스를 채워 넣었습니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역시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대단한 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손이 간 그런 디저트를 기대했거든요.
이렇게 코스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로, 가격에 비하면 맛이 만족스럽다고 여겨지지는 않네요. 제가 이 코스를 또 먹을 일은 아마도 없을 듯 합니다. 물론 가족 모임이라는 자리에는 아주 잘 어울렸으며, 어른들께서 좋아하셨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서비스는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었고, 룸 상태나 이런저런 디테일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혹시라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다른 코스 요리를 먹어볼 생각입니다.

2020/07/18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 윤덕노 : 별점 3점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 6점
윤덕노 지음/청보리

다수의 음식 관련 서적을 발표한 윤덕노 작가의 책으로 주로 우리나라의 음식 관련 속설이나 상식에 대해 풀어주고, 짚어주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했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제목이 대표적인 예로 장모님이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 준 이유는 닭은 양기가 넘치며, 씨암탉은 알을 낳으니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고사상에 돼지 머리를 놓는 이유는 고사 자체가 돼지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인간의 재물과 영화를 담당하는 신이며, 높은 신에게 사람의 소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는군요.
냉면에 무가 들어가있고, 중국 면 요리는 단무지가 반찬인 등 국수와 무를 같이 먹는 이유는 옛 사람들은 밀이나 메밀에 몸에 좋지 않은 맥독이 있다고 믿어서 이를 중화시키기 위함이고요. "동의보감"에도 무는 체한 것을 빨리 내려주고 메밀 국수의 독을 풀어준다고 적혀 있지요. 무에 소화 효소가 풍부해서 나온 이야기일 겁니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간 서긍의 "고려도경"에 왕족, 귀족만 양과 돼지를 먹고 가난한 백성들은 미꾸라지, 전복, 조개, 왕새우 등을 잘 먹는다고 적혀 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지금과 반대니까요. 미국에서도 오래 전에는 랍스터가 가장 싸구려 음식 재료였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하네요.

과거 복날에는 보신탕, 육개장, 팥죽, 연계백숙, 닭찜을 먹었다는데 그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음양오행의 조건에 맞춰 더위를 이길 수 있어야 하며, 음식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성질, 즉 귀신을 몰아내고 질병을 예방하는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져야 했거든요. 개고기를 복날에 먹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초복, 중복, 말복은 모두 경일로 쇠에 해당하는 날이라 개는 불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신탕을 먹으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불은 쇠를 달구고 녹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닭은 흙의 성질을 지닌 탓에 더위를 물리칠 수 없어서 따뜻한 성질을 지닌 인삼을 더한게 복날에 먹는 삼계탕의 유래인 것이고요. 귀신을 몰아내거나 하는 속성이 없는 소고기로 만든 육개장에 고춧가루를 넣어 시뻘겋게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삼계탕은 현대에 들어 개발된 음식이며, 고춧가루의 전래도 그리 이른 시기는 아닌 만큼, 여름과 복날에 삼계탕, 육개장을 먹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테니 다 나중에 끼워 맞춘게 아닌가 싶군요.

숙주 나물의 숙주라는 이름 유래는 저도 신숙주로 알고 있었는데, 이는 속설이며 한나라 때 사전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콩을 '숙두'라고 하였기 때문에, 콩에서 나오는 싹은 숙두나물이 되었답니다. 그럴듯하네요.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에서 유래된게 아니라, 순수 우리말인 신체의 일부를 나타내는 '도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추론도 꽤 합리적이에요.

우리의 식문화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도 많습니다. '생선회'는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먼저 즐겼다는 주장처럼요. 현존하는 문헌 중 생선회에 관한 첫 기록은 고려 중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이며, 동 시기 중국 송나라에서도 생선회가 유행하였는데 이는 일본 문헌에 '사시미'가 처음 등장한 1399년보다 최소 150년 이상 앞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증거라고 하기에는 좀 빈약하지만, 한 번 생각해볼만한 내용으로는 보입니다. 그 외에도 밥 짓는건 조선 사람이 최고라던가, 조선은 두부 왕국이었다는 등의 재미난 기록에 얽힌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재미있지만, 다양성과 재미 측면에서는 이 책이 가장 좋았습니다. 초기작인 덕분에 온갖 재미있을만한 아이디어를 가득 채워넣은게 아닌가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3/01

포크를 생각하다 -비 윌슨 / 김명남 : 별점 3.5점

포크를 생각하다 - 8점
비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까치

포크를 비롯한 여러가지 주방 기구, 조리 도구들을 통해 식탁조리역사를 돌아보는 미시사, 문화사, 요리사 서적입니다. 

냄비와 팬, 칼, 불, 계량, 갈기, 먹기, 얼음, 부엌의 8개 주제로 나뉘며, 주제별로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큰 맥락은 같습니다. 주제 모두 지금의 부엌은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고작해야 반세기 남짓한 상황의 결과물일 뿐이다, 세상에 완벽한 기술은 없다, 그렇지만 기술의 발전이 꼭 요리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명제를 이런저런 기구와 도구들을 통해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기술의 혁신을 폄하하지는 않습니다. 고대 로마의 '모르타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모르타리아는 다양한 허브와 양념을 절구로 섞어 만든 혼합물로 노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요리인데, 지금은 이 요리는 몇 초 안에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맛은 대단하지 않아요. 고된 노동이라는 양념이 맛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노동과 노력을 없앤 혁신에 대해서는 저자도 높이 평가합니다. 이러한 기술 혁신 과정에 있었던 온갖 시행 착오도 재미있습니다.
주물팬, 알루미늄팬 등 수많은 팬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팬이 무엇인지를 여러가지 측정을 통해 밝혀낸다던가, 계량을 위한 가장 완벽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는 등 기술 발전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여러가지 호기심에 대한 답들, 그리고 중세에는 조리 시간 측정을 '주기도문을 세 번 외우는 동안'처럼 기도 시간으로 명시했으며, 온도는 오븐 안에 손을 넣어 느껴지는 아픔으로 측정했다는 등의 도구 발전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이런저런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가득합니다.

그동안 몰랐던 여러가지 도구의 역사를 알게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샐러드 채소를 나이프로 자르지 않는 이유는, 오래전 나이프는 강철제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비네그레트 소스와 강철날이 만나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요.
우리에게 친숙한 형태의 자동 토스터는 찰스 스트라이트의 발명품으로, 1921년 수직으로 튀어오르는 용수철과 조절 가능한 타이머에 대한 특허를 냈다고 하고요. 직장 카페테리아에서 번번이 탄 토스트를 내놓는데 질려서 내 놓은 발명이라는데 "오므라이스 잼잼"에 써 먹음직한 이야기네요.

개인적으로는 냉장고 이야기에서 건네는 화두가 의미심장했습니다. 베이컨이나 훈제 요리 등은 냉장 기법이 등장했더라면 등장하지 않았을 요리들인데, 왜 이런 요리를 우리는 지금도 먹고 있는 걸까요? 건강을 생각한다며 '저염 베이컨'이 등장한지도 오래 되었는데, 따지고 보면 '저염' 이라는건 보존에는 걸맞지 않으니 애초에 베이컨에 적절치 않은 방식이지요. 이러느니 그냥 고기를 사다가 조리해 먹는게 더 낫고요. 이는 익숙한 요리법, 요리가 한번 실생활에 침투하면 변하기가 정말로 쉽지 않다는걸 잘 증명할 뿐 아니라, 기술이 발전한다고 요리가 따라서 발전하지도 않는다는 좋은 예인 셈입니다. 배달 문화가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지만, 배달에 최적화된 음식이 등장하고 있지는 못한 최근 트렌드와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요구르트"는 또 이와는 정확하게 반대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영국인들이 먹던 유제품 디저트는 우유에 쌀, 타피오카 등을 넣어 미지근하게 먹는 우유 푸딩이었는데, 1950년대 이후 우유 푸딩은 거의 사라지고 요구르트가 수십억 달러의 시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요구르트가 냉장고 문 선반에 놓아두면 보기가 좋다는 이유 때문에요. 기술의 발전이 전통 요리를 없애고, 새로운 요리의 유행을 만든 예인 셈이지요. 좋은 방향은 아닌 듯 하지만요.

그 외에도 생각할 거리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요사이 부드러운 음식을 많이 먹는 탓에 어린 아이들의 턱 뼈와 근육 발달이 더뎌진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작게 잘라 먹기 시작한 250여년 전 부터 피개교합(위 앞니가 아래 앞니보다 살짝 튀어나온 상태)이 등장하였으며, 지금은 대세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지 농업 도입 시기가 아니라 서유럽에서는 18세기 말에 들어서야 지위가 높은 사람들부터 피개교합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이는 식탁에 나이프와 포크가 도입된 시기와 일치하고요. 즉, 이전에는 입에 음식을 넣고 입으로 끊어내었지만, 나이프를 이용하여 이런 방식이 종말을 고했으며, 나이프가 무뎌지면서 음식은 더 부드러워졌기 때문에 더더욱 씹을 필요가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큰 칼로 모든 음식을 잘게 잘라 만드는 중국에서는 피개교합이 800~1,000년 일찍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이 이론은 설득력이 높습니다.
또 불을 이용한 조리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리처드 랭엄의 "요리 본능"을 통해서도 접했던 내용이지만 이 책은 불이 어떻게 부엌 안으로 들어와 가두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라마다의 조리 환경 차이가 생긴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영국이 '로스팅' 강국이 된 이유는 땔나무가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요. 로스팅 기술이 워낙 빼어나 영국의 로스트 비프는 최고였지만, 로스팅 기술이 한물 간 뒤 영국 요리사들은 뒤쳐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의 영국 요리가 나쁜 이미지가 생긴 원인이 아닌가 싶군요. 불, 즉 열원에 대한 이야기의 끝 마무리가 '전자 레인지'라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불에 대한 통제가 핵심이었던 역사가, 결국 불 없는 요리로 귀결되었다는 뜻인데, 내연 기관이 결국 전기 모터로 바뀐다는 이야기와도 같은 이야기겠지요?

이렇게 흥미로우면서도, 깊이있는 글들이 많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저자의 개인 의견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은 더 객관적인 시각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약간 에세이 느낌도 들거든요. 또 도판이 거의 없는데 이건 분명한 약점이에요. 도구의 변천사를 그림으로 설명해주는 페이지가 있었더라면 아주 완벽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와 교양 양쪽을 만족시키는 좋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식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2/14

커리의 지구사 - 콜린 테일러 센 / 강경이 (주영하) : 별점 4점

커리의 지구사 - 8점
콜린 테일러 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지구사"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고 있는 식문화 역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이 전에 시리즈 중 세 권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죠(위스키, 치즈, 피자). 그런데 예쁘게 잘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내용은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시리즈는 구입했지만 그동안 손대지 않고 있던 차에, 얼마전 읽었던 "카레라이스의 모험"을 읽고 급작스럽게 땡겨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습니다. 커리에 대한 역사는 물론, 세계화된 과정과 세계속 커리 요리들, 그리고 커리의 현재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커리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채소와 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카릴 혹은 카리라는 남부 인도 요리가 영어로 '커리'로 변형되고, 이 말이 일반적인 인도 요리를 가르키는 말로 굳어지게 된 것이라고요. 중국 요리를 서양에서 '찹 수이'라고 퉁쳐 말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인 셈이죠.
그리고 원래 인도 아대륙에는 강황, 생강, 카마린드, 인도산 후추라는 자생 향신료가 있었는데, 인도 상인들이 다양한 국가와 교역을 하면서 온갖 외국 요리들이 인도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 뒤 포르투칼과 영국 등의 침략, 식민지 운영을 통해 서양 요리가 인도 요리, 재료와 결합되며 18세기 말에는 영국인들에게 '커리'라는 말과 요리가 일반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커리의 오랜 세월을 거친 발전 과정도 상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인도 뿐 아니라 인도인들이나 다른 교역을 통해 커리가 전파된 이웃 국가들의 커리 요리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습니다. 영국은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식민지 운영 국가는 물론 카리브 해, 모리셔스, 스리랑카, 피지 및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커리가 어떻게 전파되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가지 요리들의 명칭과 상세한 소개는 물론, 유명 요리의 경우 간략한 레시피까지 수록되어 이해를 도와주는데 미국 남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리 중 하나라는 영국식 인도 음식 컨트리 캡틴 치킨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수록된 '리델 박사의 컨티리 캡틴 치킨' 레시피는 1849년 출간된 서적에서 인용된 것인데 현대 커리 레시피와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양파를 채 썰어 버터에 갈색이 될 때 까지 볶다가 잘게 썬 닭고기와 소금, 커리 가루를 뿌리고 볶은 후 수프를 부어 끓이면 됩니다.

상세한 설명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아요. '탄두리 치킨'이 파키스탄 난민 쿤단 랄 구즈랄에 의해 만들어진지 고작 70여년 밖에 되지 않은 레시피라는 것입니다! 버터 치킨 역시 쿤단 랄 구즈랄이 만들었다니 그리 오래 된 요리가 아닌건 마찬가지고요. 탄두리 화덕의 역사와 함께 하는 오래된 레시피라 생각했는데 의외였어요.

마지막에 수록된, 주영하 님이 쓴 한국 커리의 역사도 자료적 가치가 무척 높습니다. 일본인들에 의해 20세기 초반 전파된 후, 1930년대 이후는 일반화되었고 해방 이후 1960~70년대에는 이미 직장인들의 주된 점심 메뉴로 자리잡았으며, 같은 시기에 인스턴트 카레가 발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과정이 도판과 함께 충실히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지구사" 시리즈다운 판형과 디자인도 마음에 들며, 풀 컬러로 수록된 도판과 각종 자료도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과연, 카레왕이 추천할 만 합니다. 카레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카레라이스의 모험 - 모리에다 다카시 / 박성민 : 별점 3점

2020/02/08

검은 유혹, 맛의 디아스포라 짜장면 -유중하 : 별점 2.5점

짜장면 - 6점
유중하 지음/섬앤섬

'디아스포라'는 익숙치 않은 단어네요.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로는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뜻하지요. 즉 이 제목은 '이곳 저곳에 퍼진 짜장면' 이라는 의미입니다. 근사한 발음에 비하면 뜻은 별 거 없군요.

그래도 다른 유사 도서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이면서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책이기는 합니다. 저자가 연세대학교 중문과 교수인 덕분이라 생각되는데, 그만큼 중국산 자료의 질과 양이 엄청난 수준입니다. '짜장면이 라면일지도 모른다'라는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화두에서 시작하고 있는 도입부에서부터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중국의 라미엔 (납면)에 대해 파고들 때 중국의 미식 대가인 양실추의 글이라던가, 안도 모모후쿠가 감수한 "문화면류학" 등 다양한 자료로 상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짜장면의 면이 노란 것은 라멘과 마찬가지로 칸스이, 즉 감수를 넣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고요.

그리고 중국의 복산, 지금의 옌타이가 신해혁명의 중심지였고, 상해로부터 인천을 거쳐 나가사키, 고베로 이어지는 국제 해운 항로의 중간 기착점이라서 화교 네트워크의 중심이었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한 뒤, 옌타이가 포함된 산동 지방의 요리와 재료들, 그 중에서도 파에 대해 자세히 알려줍니다. 중국 대파의 대명사인 산동 땅 장구의 '장구대총'과 짜장면을 만드는 춘장이 원래 파를 찍어먹는 '총장'에서 비롯되었다는 등의 이야기지요. 

그리고 왜 북경식 짜장면의 건조한 장이 전분, 꺼우치엔을 섞은 한국식으로 변형된 것일까?라는 의문을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풀어냅니다. 우선 1900년대 초반, 인천의 철로 부설 현장이 그려집니다. 산동에서 배를 타고 건너 온 쿨리들이 있는 공사 현장에서 그들의 주식인 만두, 대파, 춘장으로 식사를 때우던 중 특식으로 짜장면을 먹는 상황이지요. 국수는 랍면 비법으로 수타로 방금 뽑은 뒤 추운 날을 대비하여 짜장에 전분을 섞어 열기를 보존하여 만들어 먹었다는, 근거는 없지만 상황이 그럴듯해서 설득력이 넘칩니다.

내용 곳곳에 여러 문헌, 자료를 통해 이런저런 재료와 음식들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대표적인게 왜 중화면에 칸스이 (감수, 견수)를 넣었는지에 대한 설명이죠. 중국에 알칼리성이 강한 물이 있는 고장(서북부에서 동북부)이 있는 탓에 반죽에 알칼리성 물인 견수를 넣어 만들게 된 것이 유래입니다. 반죽이 발효되면서 산성이 강해진 상태를 중화할 뿐 아니라, 촉감이 매끄러워지고 탄력성이 좋아지기 때문이지요. 산성이 강하면 시큼해지니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중화면이 짜장면, 일본 라멘으로 각각 발전하게 된 것이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장수의 대명사라는 총폭해삼, 북경에서 맛 볼 수 있는 특선 요리 오어단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칸스이, 견수의 "견梘"이라는 한자어에 대해 깊숙히 들어가보는 등, 중문학과 교수다운 접근법도 좋았습니다. 저도 이런저런 자료 조사를 좀 하는 편이지만 어원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반성하게 되네요.

그러나 중반 이후는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이유는 두가지인데, 첫 번째는 짜장면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책 중간을 넘어가는 시점에서부터인데 서태후와 꿍빠오지딩, 노채와 폭 등으로 중국의 근대화를 설명하는 부분 모두가 그러합니다.
소개되는 내용도 공감하기 어려워요. 일부 문헌과 단어에서 '폭'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중국이 문약에서 무로 거듭나 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는건 지나친 비약이잖아요.

두 번째로는 작가 본인 스스로 '삼천포로 빠진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이야기가 두서없이 흘러가는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중국의 면문화와 짜장면이 옌타이를 중심으로 한 화교 네트워크에 의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분리, 발전한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서 알려주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온갖 잡다한 이야기가 흐름을 방해합니다. 저자의 군 생활 이야기, 중국 유학 시절 이야기, 한국의 지인 이야기 등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자료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건질게 있는데 내용이 혼란스러워 아쉽네요. 그래도 중국 요리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20/01/12

중국요리 백과사전 - 신디킴, 임선영 : 별점 2.5점

중국요리 백과사전 - 6점
신디킴.임선영 지음/상상출판

부제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진짜 중국 음식'으로, 중국요리의 정석이라고 하는 8대 요리 - 루차이 (산둥요리), 촨차이 (쓰촨요리), 웨차이 (광둥요리), 쑤차이 (장쑤요리), 저차이 (저장요리), 민차이 (푸젠요리), 샹차이 (후난요리), 후이차이 (후이저우요리) -와 기타 지역별으로 대 분류를 나눈 뒤, 각 분류별 주요 요리를 3~4페이지씩 할애하여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90개가 넘는 요리에 여러가지 기타 정보가 방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각 요리별 소개는 말씀드린대로 3~4 페이지 분량에 불과해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주로 그 맛과 유래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어서 불필요한 설명도 별로 없고요.
또 8대 요리에 대한 설명이 요리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루차이, 즉 산둥 요리의 핵심은 육수로 "군인의 창, 요리사의 탕"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쓰촨의 매운 맛은 화자오와 고추가 조화된 '마라'의 맛이며, 광둥 요리는 제철 음식과 식재료의 궁합을 중하게 생각한다. 장쑤 화이양 요리에서는 칼을 절묘하게 쓰는 요리가 많다. 저장 요리는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식입니다.

'딤섬'을 소개하며 그 종류 - 빠오, 자오, 까오, 펀, 퇀, 쑤 등 - 를 알려주는 것처럼 음식의 종류는 물론, 중국 4대 민물고기는 '황하의 잉어, 송강의 농어, 흥개호의 대백어, 송화강의 쏘가리'이며 저장 요리의 3대 보물은 '룽징차, 사오싱 황주, 진화햄'이라는 등 재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샤오롱빠오는 워낙에 존엄하기에 초간장에 적신 생강채를 만두에 가져가는게 원칙이라는 식문화 관련 내용 등 관련되어 소개되는 정보가 실로 깊고 범위 또한 넓으며, 처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배추의 탄생이 천여년 전 중국 장강 이남에서 즐겨 먹던 채소 숭차이가 북방에 전해졌는데, 추운 날씨에서 잘 자라지 않자 북방에서도 잘 자라는 순무 우징과 교배시킨게 유래라는 이야기 등이 그러합니다.
전세계에 퍼진 화교의 요리가 주로 푸젠과 광둥 요리인 이유도 그럴듯 했어요. 중원지역 한족들이 청나라의 침략 때문에 푸젠 지방으로 피난을 간 뒤, 난징조약으로 홍콩이 개방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간게 계기라고 하네요. 나가사키 짬뽕을 만들어 낸 천핑순도 푸젠 사람이었죠.

오래된 문헌과 자료에만 의지하는게 아니라 최신 정보에 기반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쓰촨요리 푸치페이펜이 '2017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올해의 애피타이저 상을 수상하였는데, 영문이름은 Mr and Mrs Smith였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푸치는 부부, 페이펜은 허파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허파가 아니라 여러가지 소 내장을 재료로 쓴다는군요. 데친 뒤 썰어낸 소 내장을 고추기름, 화자오, 깨, 참기름, 간장 등으로 양념하는 요리라는데 차가운 곱창볶음 비슷해 보입니다.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상세하지는 않지만 대략의 맛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수준의 레시피가 수록된 것도 마음에 듭니다. 불과 웍을 자유자재로 다루어야 하는 요리들이 많아서 집에서 해 먹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건 아쉽지만요. 이 중에서는 국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레시피들이 인상적입니다. 대표적인게 궈바오러우에요. 우리나라에 알려진 '찹쌀 탕수육'이라는 명칭과는 다르게 찹쌀은 중요하지 않고, Double Cooked Pork Slices라는 영어 이름처럼 두 번 나누어 튀기는게 핵심이라는군요. 1차로 고기를 약불에 오래 튀겨 익히고, 2차로 센 불에 빠르게 퀴겨 색을 입히는게 비결이라나요.

이렇게 많은 요리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먹고 싶었던걸 한 가지 꼽으라면 당나귀 고기 화덕 빵 샌드위치인 뤼러우훠사오를 꼽겠습니다. '천상에는 용 고기, 지상에는 당나귀 고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당나귀 고기를 육식 중 최고로 꼽는다니 그 맛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죠. 고기를 12시간 정도 끓여내는 동안 맛을 살리기 위해 제가 질색하는 중국 향신료도 거의 쓰지 않는다니 왠지 제 입맛에 딱 맞을 것 같고요. 당 현종이 제위 전 허베이성 허지엔에 들어 이 음식을 먹고 갔다는 등 유서까지 깊으니 호기심이 무척 동합니다.

또 이미 접했었던 요리가 소개되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유명하기 그지없는 동파육, 궁바오지딩, 마파두부, 샤오롱빠오, 훠궈, 탄탄멘 등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일테고, 그 외에도 국내에서 체인점으로 접했던 '꺼우부리빠오주 (구불리 만두)', 남경 출장 때 접했었던 차가운 오리 요리 '옌수이야', 옛날 구로동 중국인 거리에서 처음 먹어보았던 맵디 매웠던 닭볶음 '라즈지' 등은 나름대로 추억도 떠오르고, 그 맛도 떠올라서 읽는 내내 무척이나 흐뭇했거든요.

그러나 단점도 여럿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별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로 선정되어 소개되는 요리들이 무슨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겁니다. 단지 저자가 알고 있는 요리라서 소개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해당 지역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인지를 알 수 있는 근거가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북경 오리는 물론 거지닭, 불도장, 빠바오판, 딤섬, 동파육, 띠산센, 마라롱샤, 마라탕, 마파두부 등 몇몇 요리들은 그 유명세가 익히 국내에도 알려져 소개가 납득이 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요리들은 왜 그게 대표 요리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연길 냉면이 여기 수록될 정도의 중국요리라는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연길 냉면이 중국 10대 면 요리에 선정되었다는게 이유라면, 다른 10대 면 요리는 왜 다 소개하지 않는지 그 이유도 불명확하고요. 심지어 마카오 에그타르트가 소개되다니,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네요.

또 중국 발음과 중국어 한자를 그대로 쓴 표기 방식은 정말이지 최악입니다. 발음이야 그렇다쳐도 원래 이름을 간체가 아닌 일반 한자체로 표시해주었다면 그래도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으로서는 초보자 수준의 짐작에 그칠 뿐이라 답답했거든요. 레시피도 가지된장볶음 장체즈 항목에서처럼 '집에서 따라할 수 있다', '오늘 당장 해 먹어 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정확한 분량과 그 방법을 소개하지 않은 건 좀 짜증이 나더라고요. 실제로 소개 자체가 간단해 보여서 양념 분량만 정확하게 알려주었더라면 도전해 보았을텐데 말이죠. 그 밖에도, 대분류별로 분량이 일정치 않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도판도 좋고 내용도 재미있지만 자료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조금 부족해 보여서 감점합니다. 재판이 나온다면 분류와 요리 선정에 있어서 학술적인 근거가 좀 더 뒷받침된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