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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1

고스트 스토리 상/하 - 피터 스트라우브 / 조영학 : 별점 2.5점

고스트 스토리 - 상 - 6점
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밀번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오래도록 살아온 노인들의 모임 ‘차우더 클럽’이 있다. 클럽 멤버인 에드워드가 돌연사한 이후, 남은 멤버 4명은 자신들이 겪었던 무서운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소일하지만, 점차 그들의 괴담이 실체를 가지고 현실화되는 것을 감지한다. 이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에드워드의 조카 단 원덜리를 초대하여 까닭모를 저주의 진상을 밝히려 하는데...

스티븐 킹이 자신의 저서 "죽음의 무도"에서 현대를 대표하는 호러소설 중 한 권으로 꼽아 극찬한 작품입니다. 저도 그 덕분에 읽게 되었죠.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스티븐 킹의 과찬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낚였어요.

제일 큰 문제는 이야기의 흐름이 혼란스럽고,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중반부까지는 차우더 클럽을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유령 괴담이 펼쳐지다가, 이후 유령들이 실제로 등장하여 물리력을 행사하는 부분에서는 크리쳐물, 마지막 리키 - 단 - 토미 3인방과 유령들의 한판 승부는 갑자기 퇴마물로 돌변하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기묘한 대비가 저에게는 썩 좋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전반부는 혼란스럽고 지루했으며, 후반부는 빠른 템포의 호러 액션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흐름이 부조화스럽게 다가왔거든요.

스토리 자체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우선, 유령이 주인공들을 습격하는 이유부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최초 그들이 ‘그녀’를 죽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애초에 사고를 유발한 것이 그녀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또한, 파워 밸런스도 엉망이에요. 초월적인 힘을 지닌 강력한 유령들이 칼과 도끼에 쓰러진다는 결말은 솔직히 황당하더라고요. 특별한 퇴마 도구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불필요한 등장인물들의 묘사가 지나치게 많아 읽는 내내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리키의 아내 스텔라 호손인데, 이 바람둥이 할망구는 비중에 비해 도무지 하는 일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잠깐 활약하기는 하지만, 너무 작위적인 전개로 보일 뿐이었어요. 이런 불필요한 묘사들만 덜어냈어도, 1,2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절반 정도는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수십 년의 세월과 여러 등장인물이 얽힌 장대한 서사를 매끄럽게 끌고 나가는 솜씨는 제법 훌륭합니다. 결말까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도 갖추고 있고요.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너무 길 뿐더러, 전개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커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별로 무섭지도 않았습니다...

2011/08/27

셜록 2 - 권교정 : 별점 2점

셜록 2 - 4점 권교정 지음/학산문화사(만화)

1권에 이어 읽게된 2권. 홈즈와 왓슨의 첫 만남에서 왓슨의 결혼식까지 두 친구의 관계를 매력적이고 디테일한 심리묘사로 그려낸 이야기가 절반 정도, 그리고 그 뒷부분에 '보헤미아의 스캔들' 전반부가 수록되어 한권으로 이루어진 구성입니다.

왓슨의 결혼식 이야기는 순수하게 작가의 창작임이 분명할텐데 셜록 홈즈 시리즈 팬도 위화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더군요. 유쾌한 대사가 넘쳐나는 등 캐릭터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작가의 작풍이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캐릭터를 원전 훼손없이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솜씨가 역시도 일품이에요 레스트레이드를 고독한 찌질남으로 그려낸 센스는 정말이지 최고!

그러나 결혼식 이야기는 사건은 하나도 없는 일상의 스케치에 불과할 뿐입니다. 길이도 길어서 극적인 긴장감을 느끼기는 어려웠어요. 이는 솔직히 큰 단점입니다. "엠마"가 아니라 홈즈 시리즈이니까요. 너무 많이 나간 느낌이랄까요? 또한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아쉬움은 홈즈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별볼일없는 "보헤미아의 스캔들"이 선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나마도 절반 정도만 선보이는 탓도 큽니다.

때문에 권교정 작가의 팬, 그리고 빅토리안 일상계 팬이라면 볼만한 작품이기는 하나 추리만화로서는 의문이 많이 남네요. 이야기가 마무리 될 다음권과 합쳐서 별점을 주는 것이 옳겠지만 이 권만의 별점은 2점입니다.

아울러 초판 특전이라고 클리어 우편엽서 세트가 들어있는데 별 쓸데도 없는 것을 왜 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비싸보이는 클리어 엽서 대신에 책 값을 할인해 주는게 더 기쁠것 같아요.

2011/08/24

수상한 라트비아인 - 조르주 심농 / 성귀수 : 별점 3점

수상한 라트비아인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열린책들

메그레 경감은 국제적인 범죄자 라트비아인 피에트르를 뒤쫓다가 기차 안에서 그의 시체를 발견했다. . 메그레는 곧바로 사건 직전 목격했던, 피에트르와 똑같이 생긴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경감 시리즈 제1작. 용감한 출판사 열린책들의 무모해 보이기도 한 ‘전집’ 기획을 통해 드디어 국내 첫 완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전 "조르주 심농 버즈북"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많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쉽고 편하게 작품을 써 내려가는 심농의 솜씨가 잘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우직하면서도 깊이와 존재감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메그레 경감의 캐릭터는 물론이고, 복잡하고 다층적인 인물들의 심리 묘사, 을씨년스러운 배경 묘사까지 모든 점에서 프랑스적이면서도, 이를 단 몇몇 단어만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야기도 명쾌한 편이라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대단한 트릭이나 정교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잠복과 추적을 중심으로 한 우직한 수사 과정과 메그레 경감의 인간적인 매력이 어우러져 읽는 재미는 충분히 선사합니다. 

사건의 진상이 결국 피에트르 (한스)의 자백에 의존한다는건 추리소설로서 적절한 전개는 아니었지만, 이를 단점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작품처럼, 추리소설과 정통 문학의 경계선상에 있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전개 방식이 많이 프랑스식이며, 다소 올드한 느낌을 준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프랑스식이라는 점은 "서양 골동 양과자점"에서 오노가 이야기했던 프랑스 영화 분위기 비스무레한 것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중심이 되고 심리묘사 위주라 전개에 혼란스러운 부분이 일부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는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노엘 칼레프, 토마 나르스작 등의 프랑스 작가 소설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지요. 예전에는 번역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 보면 프랑스적인 전통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겠네요.

올드하다는건 작품 발표 시기를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사건들이 전반적으로 극적인 장치 없이 심리적 요소에 기대고 있으며, 드라마적인 요소가 지금 기준으로는 얄팍하게 느껴지기에 현대 독자들은 낡은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두 명의 피에트르’라는 설정의 진상이 너무 뻔하게 마무리된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지, 작품 자체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빠르고 자극적인 탄산음료 같은 추리소설과는 달리, 느림의 미학을 전하는 와인 같은 작품이라고 할까요. 차분하게, 여유롭게 읽을 때 더 빛을 발하는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또한, 고전 황금기 시대의 유명한 캐릭터인 메그레 경감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만 ‘추리소설’적인 재미를 기대하는 분들께는 적극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점은 유념해 주세요.

2011/08/22

트라이앵글 (2009) - 크리스토퍼 스미스 : 별점 2.5점

자폐 증상이 있는 아들과 단둘이 살아가는 미혼모 제스는 친구들과 함께 요트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풍랑에 휩싸여 난파했고, 친구 헤더는 실종되었다. 일행은 가까스로 대형 선박을 만나 탑승했지만, 그곳에는 단 한 명의 승무원도 보이지 않았다. 제스는 까닭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는데...

2009년 가장 뛰어난 반전 스릴러 영화라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네요.

그런데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 속 살인극을 다룬 일종의 타임 패러독스물이었거든요. 이런 류의 영화는 "나비효과"가 이미 한 차례 방점을 찍고 간 적이 있기에 신선한 느낌은 덜했습니다.

그래도 신경 써서 꼼꼼히, 정성들여 만들기는 했습니다. 앞뒤 복선이 절묘하게 이어져 있고, 반복되는 사건의 우연성과 연속성이 겹쳐지는 장면들은 아주 괜찮았거든요. 목걸이가 떨어지는 장면이나, 수많은 메모지를 비교하는 장면 같은 연출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영화 마지막까지 몰입시키는 힘은 상당합니다. 주인공 제스가 어느 시점의 제스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등, 복잡함 속에서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점 역시 높이 평가할 만하고요.

한정된 세트가 중심인 저예산 영화치고는 괜찮은 장면도 많고, 주인공 제스의 외모와 몸매도 기대 이상으로 빼어납니다. 그야말로 굿!

하지만 별다른 설명이나 설득력있는 요소 없이 사건이 전개되는건 솔직히 불만입니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현실적인 요소가 없는건 매한가지지만, 이래서야 사건의 해결이나 끝맺음을 바랄 수 없는 탈출구없는 불편한 현실만 남을 뿐이니까요.

결론적으로, 더운 여름 긴장감을 느끼며 보기에는 적절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점이 없어 2%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빠져나갈 곳 없는 절망 가득한 배드엔딩도 개인적으로는 취향이 아니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빌워 / 시크릿 인베이전 : 별점 4점 / 1.5점

Civil War 시빌 워 - 8점
마크 밀러 지음, 최원서 옮김/시공사
시크릿 인베이전 Secret Invasion - 4점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지음, 이규원 옮김/시공사

할인 판매가 떴길래 냉큼 구입해 읽은 시공 그래픽노벨 시리즈.

"시빌 워"부터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시의적절한 리얼리티 쇼 비판(?)에서 시작해 항상 궁금했던 초인들의 거침없는 자경활동에 대한 해결책으로 '초인 등록법안'이 발의되는 과정과, 그 법안에 대해 찬반으로 나뉜 초인들이 맞붙게 된다는 극적인 전개가 미려한 그림과 함께 박진감 있게 펼쳐져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도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라는 찬반 양측의 리더 아래, 찬성 측의 미스터 판타스틱, 행크 핌, 쉬 헐크, 센트리 등과 반대 측의 스파이더맨, 루크 케이지, 데어데블, 블랙 팬서, 골리앗 등 마블의 주요 캐릭터가 총망라되어 있어 팬으로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 외에도 영 어벤져스, 타이그라, 비전, 팰콘 등 수많은 히어로들과 '썬더볼트'라는 이름 아래 결집한 불스아이 등의 빌런까지 등장하니, 마블 팬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이벤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주요 이슈만 모아놓기는 했지만 스토리가 크게 튀는 부분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는 것도 강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크릿 인베이전"은 아쉽기만 합니다. 거의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복제가 가능한 스크럴의 침입을 다루는데, 정작 스크럴의 계획이 무엇인지 애매해서 이야기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더군요. 일단 유전적으로 완벽히 복제가 가능하다면 능력도 동일하게 가져올 수 있으니 1:1 승부에서는 박빙이어야 정상인데, 그 부분을 애매하게 처리했고 애당초 "보디 스내처"처럼 천천히 잠식하여 장악하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텐데, 별로 유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변신도 하지 않고 정체를 드러낸 채 전면전을 벌인다는 계획도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종족의 위기에서 지구를 손에 넣으려는 계획 치고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요.

그 외에도 급작스러운 닉 퓨리의 등장이라든가, 마지막 마블 보이의 뜬금없는 상황 종결 장면, 와스프를 이용한다는 스크럴 반전 카드의 무가치함, 총질만 조금 했을 뿐인 노먼 오스본의 급부상과 권력 찬탈 등, 이 책만 놓고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래도 전체 이슈를 한 권으로 요약하는 데 실패했달까요.

게다가 그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데생과 펜 터치도 거칠고, 구도 자체가 문제가 많아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이야기의 중심도 영 어벤져스와 이니셔티브, 코만도스 같은 신진 세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고요.

히어로와 빌런이 손을 잡고 거대 악과 맞서 싸운다는 아이디어는 좋았던 만큼, 차라리 스크럴이 복제한 히어로들을 무찌르기 위해 빌런들이 들고일어난다는 설정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한마디로 토니 스타크의 추락, 노먼 오스본의 권력 찬탈이라는 중요한 이벤트가 발생한 것 외에는 건질 게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시빌 워"는 별점 4점, "시크릿 인베이전"은 별점 1.5점입니다. "시빌 워"만 추천드립니다.

2011/08/20

Smart Keyboard PRO - 스마트 키보드 프로 : 별점 3.5점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메모나 일정은 물론 리뷰까지도 작성하곤 합니다. 그런데 구글의 안드로이드 기본 키보드는 키 자체가 작고 키 배열도 저와는 잘 맞지 않아서 오타가 심했습니다. 더욱이 세로 모드로는 거의 사용하기 힘들 정도였죠. 그래서 최근에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별도로 구입할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알게된 것이 바로 이 앱 'Smart keyboard Pro - 스마트 키보드 프로'입니다. 기본 자판은 물론 한글 단모음키도 제공되는 깔끔하고 큼직한 배열에 더블탭과 롱탭을 활용하여 키 전환을 최소화하는데다가 다양한 터치 인터랙션을 제공하는 등 세세한 부분 모든 것이 마음에 듭니다. 측정한 것은 아니지만 타이핑 속도만 놓고 따지면 거의 PC 수준에 근접하는 듯한 체감을 불러 일으킬 정도에요.

유료 어플로 지금 가격은 약 3,000원인데, 안드로이드 환경에서 글 작성할 일이 많다면 추천합니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는 것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고 편리한 선택이기도 하니까요. 한자 입력이 어렵긴 하나 다른 단점은 찾아보기 힘든, 그야말로 키보드의 종결자 앱! 별점은 3.5점입니다.

죽음의 무도 - 스티븐 킹 / 조재형 : 별점 3점

죽음의 무도 - 6점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황금가지

사람들이 환상, 공포 등 장르물에 열광하는 이유를 재치 있게 써 내려간 에세이집.

장르물의 팬이라면 즐길 거리가 많은 이야기라 재미도 있었지만, 장르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료적인 가치가 크다는 것이 이 책 최고의 장점입니다. 스티븐 킹이 스스로 선정한 걸작 호러 영화와 소설 및 TV 쇼 등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다른 서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 많거든요. 관련된 다양한 일화와 에피소드도 가득하고요. 이러한 점에서는 이쪽 바닥에서 잘 알려진 로저 코먼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호러는 별로 취향이 아닌 저 역시도 들어보거나 접해 보았던 전설적인 걸작,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시리즈나 로저 코먼 감독의 작품, "로즈마리의 아기" 등의 익히 알고 있던 콘텐츠가 스티븐 킹의 시각을 통해 소개되는 점이 반가웠습니다. 특유의 입담으로 독자에게 해당 콘텐츠를 보거나 읽고 싶게 만드는 솜씨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러한 장르물 팬의 영원한 숙제인 "똥덩어리들에서 금을 찾는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에 갈채를 보낼 수밖에 없어요. 팬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잘 드러나 있달까요.

호러 장르를 대하는 작가의 유머러스한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이 점에서는 호러 매니아인 제 친구의 지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극한의 공포 영화는 극한의 코미디와 일맥상통한다"라는 지론인데, 스티븐 킹 역시 똑같이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요.

또 창작에 임하는 자세를 살짝살짝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큰 인기와 함께 많은 상을 수상해 온 거장의 글이라 그런지 설득력이 넘치기도 하고요. "재능 있는 사람과 성공하는 사람을 갈라놓는 것은 수많은 작업과 학습, 즉 꾸준히 실력을 연마하는 과정이다. 재능이라는 것은 엄청난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르지 못하는 무딘 칼이다. 몹시 엄청난 힘을 가했어도 그 칼은 사실 조금도 자르지 못하고 때리고 부수는 일만 하고 있다."라는 말, 정말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하나의 일관된 글이 아니라 이곳저곳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전체적인 통일성이 좀 떨어져 보였고, 번역의 문제인지 특유의 장광설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죽음의 무도'라는 표현도 일관성이 없어 보였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죽음의 무도는 죽음과 함께 추는 왈츠다. 우리가 이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라고 하면서 피할 수 없는 매력을 강조하다가, 마지막에서는 "공포 장르는 죽음의 무도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꿈의 춤이다."라고 하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600페이지가 넘는 두께도 상당히 부담되는 부분으로, 한 호흡으로 읽기에는 벅찼고요.

그래도 거장의 장르물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에세이라는 점에서 추천합니다. 스티븐 킹이 선정한 호러 영화·소설 100선이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영화는 좀 힘들더라도 국내에 출간된 책들은 찾아서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1/08/17

유리기린 - 가노 도모코 / 권영주 : 별점 1.5점

유리기린 - 4점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노블마인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모의 여고생 안도 마이코가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괴한에게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그 뒤, 그녀가 살해당하기 전날 같은 괴한에게 위협당했던 마이코의 친구 나오코 등 그녀의 주변 인물에게 마이코의 죽음과 관련된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무지개집의 앨리스", "나선계단의 앨리스"로 접했던 일상계 미스터리 작가 가노 도모코의 연작 단편집입니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소녀적인 감성으로 가득 찬 일상계 연작 미스터리'입니다. 여고생 안도 마이코의 생각과 그녀가 창작한 동화가 전편에 걸쳐 선보이는 구조이며, 그녀의 성장통과도 같은 외로움이 사건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소녀적인 감성은 영 취향도 아니고, 이러한 감성에 대한 이해력도 떨어져서 썩 재미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또한, 이러한 감성적인 요소 외에도 추리적인 부분에서 의 문제도 큽니다. 특히 동기 부분이 깔끔하지 못합니다. 핵심 사건인 안도 마이코 살인사건의 동기부터 불분명하며, 다른 자질구레한 사건들 대부분도 동기가 애매합니다. 왜 범인이 나오코를 처음에 노렸어야 했는지? 왜 저주의 편지를 보냈어야 했는지? 왜 공원 놀이터에 칼을 묻었는지? 등의 이유 중 뭐 하나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거든요. 감성에만 기대고 있어서 추리적으로 놓친 부분이 너무 큽니다.

그리고 일상계 미스터리가 특기인 작가의 작품치고는 살인사건이 다루어진다는 점이 의외인데, 일상 속에서 평범하지만 흥미로운 사건보다는 극적이니 소설로 전개하기에 훨씬 쉬웠겠지요. 허나 이런 무거운 사건은 작가의 천성과는 잘 맞지 않네요. 안도 마이코 살인사건과 연관된 이야기 말고, 다른 소소한 이야기들이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더라고요. 예를 들자면, 지하철에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고가의 도자기를 들고 있던 노인과 일부러 부딪쳐 도자기가 깨진 사건의 진상을 다루는 "3월 토끼", 고양이와 비둘기 시체 다음에 꽃 속에서 라이터가 발견되는 "어둠의 까마귀" 같은 이야기 말이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고, 일상계스러운 분위기가 빛나는 몇몇 디테일은 좋았지만, 일상계도 정통 미스터리도 아닌 애매모호한 정체성에 억지로 키운 스케일과 작위적인 설정, 그리고 추리적으로 많이 부족한 평균 이하의 작품입니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1/08/15

탐정 피트 모란 - 퍼시벌 와일드 / 정태원 : 별점 1.5점

탐정 피트 모란 - 4점
퍼시벌 와일드 지음, 정태원 옮김/해문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업은 운전수지만 통신으로 탐정 교육을 받으며 나름대로 좌충우돌 활약을 펼치는 피트 모란을 주인공으로 한 유머 단편집입니다. 통신 교육을 받는 과정을 제목으로 하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도 선정된, 초창기 황금기 시절 단편의 강자 퍼시벌 와일드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클로버의 악당들"도 그렇고, 여러 커뮤니티에서의 평도 좋았으니까요.

그러나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좋은 유머 소설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유머도 철자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멍청한 주인공의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결과라는 패턴이 대부분이라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아 보였습니다. "핑크 팬더"나 "겟 스마트", "형사 가제트", "미스터 빈" 같은 작품과도 비슷한 설정이라 차별화된 요소를 찾기 어려웠고요. 오히려 억지스러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책 뒷부분의 소개처럼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소설 형식을 띠긴 하지만, 오히려 이야기가 더 이상해집니다. 초반에는 멍청하지만 운이 좋은 피트 모란이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인데, 후반부로 가면 피트 모란은 그저 멍청하기만 하고 사건은 다른 사람들이 해결합니다. 이 변화로 인해 단편집의 성격이 모호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추리소설을 표방했더라도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차라리 "훈련을 쌓은 탐정이라면 99명은 그대로 지나치게 하더라도 100명째의 남자에게 수갑을 채우는 일쯤은 문제없지" 같은 피트 모란의 대사를 강조하며 초지일관 웃겨주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통신으로 탐정 교육을 받는다는 독특한 설정과 멍청한 탐정이라는 콘셉트는 흥미롭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태원 선생님의 유작이라는 점은 안타깝지만, 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다면 똑같이 단편집이면서 유머러스하면서도 추리소설 형식을 보다 제대로 갖춘 "클로버의 악당들"을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미행"

통신 교육 강좌로 미행을 학습한 뒤, 마을에서 실습하다가 우연히 마리화나 밀매 조직을 검거하는 데 일조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인 피트 모란의 캐릭터와 서간문 형식의 전개,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뜻밖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내용이 모두 잘 표현된 대표 단편입니다. 유머러스한 전개가 적절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리법"

사람의 특징을 보고 직업을 간파하는 전통적인 추리법이 주요 설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패러디적인 요소가 있지만, 오히려 추리법 자체는 정확했다는 결말이 다소 애매했습니다. 유머는 좋지만, 억지스러운 전개가 아쉬웠습니다.

"방화범"

피트 모란의 통신 강좌 선생인 주임 경감의 비교적 정확한 조언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역시나 억지스러운 전개가 거슬렸습니다. 당구가 문제였다면 당구대를 치우는 게 더 싸고, 빠르고 쉬웠을 텐데요...

"호텔 탐정"

피트 모란이 호텔 탐정으로 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헐리우드 코믹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딱히 인상적이지도, 그렇다고 빠지는 부분도 없는 소품이었습니다.

"협박장"

협박장 사건을 의뢰받은 피트 모란이 마을 목사의 사악한 계획(?)에 걸려든다는 이야기로, 이 작품부터 피트 모란이 실패하기 시작합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헌터"

파티에서 분실된 다이아몬드를 찾으려는 피트 모란의 활약이 눈부신 단편으로, 수많은 고전 단편물을 패러디하여 인용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용된 작가는 코난 도일, 에드거 윌리스, 길버트 체스터튼,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등으로, 피트 모란의 활약과 맞물려 상당한 웃음을 선사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이 단편집의 베스트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추리의 주역이 피트 모란이 아니라 하녀 마릴린이라는 점이 문제겠죠.

"지문 전문가"

'주임 경감'이 일선에서 활약하며 단편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다소 어이없습니다. 지문 채취로 범죄 용의자를 잡아 한몫 보려는 피트 모란의 계획부터가 말이 안 됩니다. 지문을 채취한다고 해도 그것을 검증할 방법 자체가 없으니까요.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도 이제는 힘이 많이 딸리는 느낌이랄까? 이 시리즈도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만듭니다.

2011/08/11

추리소설 500번째 리뷰 등록!

2003년 "구석의 노인 사건집"에서부터 시작한 추리소설 리뷰가 2011년 8월 11일 오늘, "검은 옷을 입은 신부"로 500번째가 되었습니다. 대략 8년이 걸렸네요. 1년에 60여 권을 읽은 셈이군요. 블로그 제목대로 1,000권 읽기 도전을 완료하려면 2019년은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멀어 보이기도 하지만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언젠가는 완료할 수 있겠죠?

500권째 리뷰를 쓰는 동안, 누추하고 마이너한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그림은 예전에 EST님이 보내주셨던 "블로그 6주년 축전"입니다. EST님께 특히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백만년만의 야구잡담 - 두산 베어스 몰락, 지금이라도 리빌딩하자!

최근 바빠서 야구를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의 분위기입니다. 달감독님이 사퇴한 이후 잠깐 정신 차리는 듯했지만, 역시나 현실은 시궁창. SK가 근래 볼 수 없는 부진으로 3위를 기록하고 있는 절호의 기회에, 4강 싸움은커녕 7위 싸움을 하고 있는 게 현주소입니다...

원투펀치를 제외하면 별 볼일없는 선발진, 완전히 망가진 중간계투진과 마무리, 전부 커리어 로우를 달리고 있는 테이블세터와 3-4-5 중심 타선이라는 완벽한 조합으로 팀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네요. 거기에 감독대행의 미숙한, 리빌딩도 아니고 당장의 승리도 아닌 애매모호한 선수 기용이 더해져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는 시즌을 만들어 주고 있더군요.

어쨌든 누가 역적인지를 꼽기도 힘들 정도로 모두가 부진한 상황이라 한숨만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임모시기 때문에 팀이 훅 갔다고 하는데, 솔직히 임모시기가 아무리 비중이 큰 선수였다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죠. 대체자로 노경은 선수가 잠깐 잘해주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역적 1순위라는 것에는 동감합니다만... 이혜천, 이현승, 페르난도 등 투수진의 문제아들은 그 외에도 많잖아요. 트레이드 마감 시한 전, 니퍼트 선수를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팔지 않은 프런트진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롯데나 삼성에는 잘 쳐서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설마 4강 싸움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김광수 감독대행이 용단을 내려 제대로 된 리빌딩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리빌딩의 중심에는 투수진 재건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죠. 김선우 선수에게는 무조건 6일 휴식을 주면서 관리해주고, 부상이 있던 정재훈 선수는 빨리 내려서 제대로 몸을 만들게 해야 합니다. 부족한 선발진에는 노경은 선수를 추가하고, 홍상삼과 서동환 선수도 불러올려야겠죠. 중간 계투는 별로 쓸모없는 이혜천, 이현승 등으로 돌려막더라도, 좀 지더라도 다양한 선발 투수를 테스트하고 발굴해야 하는 시기가 되어야 합니다.

타선은 다른 팬 여러분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듯, 윤석민 선수의 중용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겠죠. 두목곰의 은퇴 시기가 이제 정말 다가오고 있고, 군 입대를 앞둔 최준석, 이원석, 오재원 선수의 공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젊고 가능성 있는 타자를 수비력 부족 때문에 주전 기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김재환 선수의 부상이 안타깝기만 한데, 앞으로는 신인급 타자들을 꾸준히 기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성렬 선수도 이제는 좀 꾸준히 기용해 주고, 양의지 선수의 휴식도 챙겨주면서요.

제발 팬들에게 "올 시즌만 참으면 내년에 뭔가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전해주는 잔여 경기 운영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신임 감독 선임도 빨리 진행해야죠! 지금 감독대행의 작전을 보면 현기증이 난단 말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신부 - 코넬 울리치 / 홍연미 : 별점 2점

검은 옷을 입은 신부 - 4점
코넬 울리치 지음, 홍연미 옮김/페이퍼하우스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켄 블리스는 자신의 약혼 축하 파티장에서 추락사했다. 미첼은 자신이 거주하던 낡은 호텔방에서 독살당했다. 프랭크 모런은 자택 창고에서 질식사했고, 퍼거슨은 화실에서 화살에 찔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네 명의 죽음은 모두 한 여인과 관련이 있었는데...

서스펜스의 거장 코넬 울리치(윌리엄 아이리시)의 대표작입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헐리우드 서스펜스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가죠. 참고로, 저는 오랫동안 제목의 "신부(Bride)"를 "신부(Priest)"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작품을 요약하자면, 연인을 잃은 주인공 줄리의 복수극으로, 성별이 바뀌긴 했지만 사실상 "상복의 랑데뷰"와 동일한 플롯을 가진, 자가 복제 표절작 남매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복의 랑데뷰"보다는 확실히 처집니다. 총 5명의 인물에 대한 복수가 펼쳐지는데, 여자 혼자 별다른 준비 없이 몸으로 부딪히는 느낌이라 긴장감이 떨어졌고, 작가 특유의 서스펜스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엄청난 미모 외에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주인공 줄리의 캐릭터도 평범했고요.

무엇보다도, 결국 엉뚱한 사람들을 오해로 죽여 나갔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게다가 복수의 원인이 된 줄리의 남편 닉 칼린의 죽음이 "동업자가 입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밝혀지는데, 그렇다면 닉 칼린 역시 어느 정도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어 복수 자체가 적반하장으로 느껴졌습니다. "상복의 랑데뷰"가 이 작품 발표 후 8년 뒤에 나왔다는 점을 보면, 작가 스스로도 단점을 깨닫고 보다 정교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했던게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미첼 사건에서 벽에 걸린 사진 등으로 사람을 분석하는 모습이나, 모런 사건에서 아이를 통해 정보를 캐내는 장면, 그리고 선량한 다른 사람들을 용의자로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줄리의 행동, 경찰이 줄리를 쉽게 포착하지 못했던 이유 등은 소소하게 건질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작가 특유의 문체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그들 한가운데에서 그의 얼굴은 깊은 연못 바닥에 가라앉은 흰 조약돌처럼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순백색 베일 아래쪽에는 조그마한 빨간 점 하나가 쉼표처럼 찍혀 있었다. 그녀는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 붉은 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었다. 마침표였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있더라도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동일한 플롯이라면 "상복의 랑데뷰" 한 작품만 읽어도 충분하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1/08/07

매혹의 클래식카 - 세르주 벨뤼 / 김교신 : 별점 2.5점

매혹의 클래식카 - 6점
세르주 벨뤼 지음, 김교신 옮김/시공사

19세기 후반 초기 자동차에서 시작해서 1992년의 BMW M3까지 100여년의 기간 동안, 시대를 풍미했던 자동차 50선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딱히 자동차에 대한 취미나 애정이 있는건 아닙니다. 하짐나 클래식카의 우아한 디자인을 좋아하며, 책 자체도 풀컬러 양장으로 그럴듯하게 출간되었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도판이 충실한 편은 아니며, 설명도 짤막한 요약에 그치는 탓에 18,000원이라는 정가를 전부 지불하고 산다면 아까웠을 것 같네요(저는 20% 할인가로 구입했습니다). 최소한 충실한 일러스트로 쿼터뷰 및 3면도 정도는 실어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클래식카를 좋아하기에 책의 후반부, 즉 70년대부터의 자동차는 딱히 끌리는 게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고요. 

그래도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멋진 클래식카들을 책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 하나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이탈리아 왕자가 몰았다는 아틸라 29/50 CH라던가 최초의 물방울형 자동차인 룸플러 트로프펜-아우토, 그야말로 아름다운 클래식카의 정점인 부아쟁 '뤼미뇌즈', 귀요미 피아트 500 토폴리노, 르 코르뷔지에의 실현되지 않은 도시형 컴팩트카 '맥시멈' 등 다양한 자동차들의 향연이 펼쳐지거든요. 꽤 재미있게 봤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터커"의 '터커 토페도'가 실려있는 것도 반가왔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자동차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책입니다. 덧붙이자면 읽다보니 미니어처를 소장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빠지면 안되는데...

2011/08/06

파이 바닥의 달콤함 - 앨런 브래들리 / 성문영 : 별점 2.5점

파이 바닥의 달콤함 - 6점 앨런 브래들리 지음, 성문영 옮김/문학동네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라비아 들루스는 우표광인 아버지 들루스 대령, 그리고 사이가 나쁜 언니 둘과 함께 벅쇼 저택에 사는 11세 소녀이다. 유일한 취미이자 관심사는 화학 뿐인 그녀 앞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전날 밤 그녀의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인 수수께끼의 사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흥미진진한 사건, 그녀는 직접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출판사 문학동네 덕분에 읽게 된 따끈따끈한 신작입니다. 리뷰에 앞서 문학동네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영국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조숙한 11세 화학 천재 소녀 플라비아 들루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세 자매의 막내로, 큰언니는 음악 (피아노), 둘째 언니는 (문학)이라는 예술적 특기가 있는 반면, 자신만의 실험실을 갖추고 다양한 독약을 만들어 낼 정도의 화학 천재라는 설정의 플라비아를 생동감 넘치게 잘 그려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왠지 "오 나의 여신님"의 스쿨드가 떠올랐어요. 사건 수사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막무가내 행동파의 모습은 정통 하드보일드 탐정과도 닮아 있고요. '소녀이자 화학 천재, 그리고 외로운 하드보일드 늑대!' 이러한 기묘한 조합에 성공했다는건 확실히 대단한 성취입니다. 그러니 시리즈로 계속 발표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제 취향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어른인 척, 아는 척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플라비아는 그런 캐릭터의 대표격이라 도저히 호감을 가질 수 없었거든요. 그야말로 작은 악마 같더라고요. 만나면 꿀밤을 먹여주고 싶을 정도로요.

또한, 모험물로서는 괜찮은 수준이지만 지나치게 장황한 부분이 있고, 사건의 설득력도 많이 부족합니다.

추리적으로는 주요 사건이 결국 당사자들의 고백에 의존하는 것과 용의자가 너무 적어 딱히 언급할 게 없습니다. 본페니가 도요새를 파이 속에 숨겨온 이유와 왜 들루스 대령에게 우표를 팔려고 했는지도 잘 설명되지 않고요. 또한, 당시 사건에 관련된 인물을 들루스 대령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보만 제공하면 보브 스탠리의 정체도 쉽게 폭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계획된 범죄라고 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사실 죽일 필요도 없었죠. 본페니가 나가는 걸 봤다면 여관에 투숙한 뒤 짐을 뒤지면 됐을 테니까요. 여기에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희귀 우표 "얼스터 보복자"는 설정이 너무 황당해서 유머로 받아들여야 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과거에 벌어졌던 트와이닝 선생 자살 사건의 트릭은 괜찮았지만, 단서가 잡힌 과정이 플라비아가 되는 대로 행동하다가 얻어걸린 우연이었기에 역시나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한마디로, 재미는 있지만 빠져들기는 힘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평입니다. 어른들이 읽기에는 좀 아동 취향이고, 아이들이 읽기에는 무거워 보여서 독자층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궁금하네요. 저보다는 조금 어린 청소년~20대 독자들 취향의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웨스팅게임"과 비슷합니다. 재미도 있고, 소녀 캐릭터도 잘 살아 있으며, 완벽한 해피엔딩까지 삼위일체를 이루었지만, 진지한 추리의 맛이 부족하고 너무 어린 취향이었다는 점에서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08/01

동기 - 요코야마 히데오 / 임경화 : 별점 2.5점

동기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임경화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이런저런 작품들로 접해본 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집. 딱히 큰 임팩트는 없는 작가라 별 관심은 없었는데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2007년판"에서 게스트들이 과거 18년 동안의 베스트 중 한 작품으로 꼽았기에 찾아서 읽게 되었네요. 제가 이런 류의 리스트에 굉장히 약하거든요.

이전에 제가 읽었던 작가의 작품은 장편 1편, 단편집 2권이었습니다. 단편집은 비교적 정통 사회파 추리 - 수사물 흐름을 따라갔던 반면, 장편 "사라진 이틀"은 섬세한 심리묘사와 전개, 설정은 탁월했지만 추리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이 단편집은 "사라진 이틀"과 비슷합니다. 사회파 작품으로 보기에는 사건 자체가 소소하고, 일상계라고 보기에는 좀 무거운 이야기들이며 특별한 수사없이 주인공의 심리를 쫓아가는 형태로 전개되기 때문에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요.

이러한 절묘한 균형은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묵직한 사회파 수사물이나 정통 추리물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실망감을 가져다 줄 겁니다. 작가의 다른 단편집 분위기를 기대했던 저도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표제작인 "동기"는 2001년 일본의 여러 추리소설상을 휩쓴 작품답습니다. 작가의 장점이 잘 살아있거든요. 전체 평균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동기" 한 작품만큼은 3.5점!입니다. 그 외의 다른 작품들도 섬세한 심리묘사 하나만큼은 탁월한 만큼 심리묘사를 즐기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단, 생각하시는 추리소설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점 명심해 주세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동기"

표제작. 경찰서 내에서 보관 중이었던 경찰 수첩이 대량으로 분실된 사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경찰 수첩의 중요성에 대한 설정은 잘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내용을 볼 때, 우리나라로 치자면 거의 총기 분실 사고 쯤 되는 대형 사고로 보이네요. 이 사건을 주인공 가이세의 심리묘사만으로 끝까지 끌고가는 전개가 아주 탁월합니다. 마지막 소소한 반전도 인상적이었고요. '일상계 심리 스릴러 사회파 수사물'이라는 쟝르가 있다면 충분히 교과서로 쓰일만 한 작품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4점을 줄 수도 있으나 용의자가 너무 적다는 것에서 살짝 감점했습니다.

"역전의 여름"

자초하기는 했지만 반쯤은 불운한 탓에 살인을 저지렀고, 복역 후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야마모토에게 살인 청탁이 들어온다는 이야기. 

추리적으로는 가장 눈여겨볼 요소가 많고 설정과 전개도 흥미진진했습니다. 문제는 완전범죄 계획 치고는 별로 설득력이 높은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고요. 야마모토가 어쨌건 잔혹한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기에 감정이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결말 역시 너무 좋게 마무리하려 한 느낌이 들어 별로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취재원"

한 지방지 여성 신문기자의 눈물겨운 분투를 다룬 드라마. 사건 수사를 다루고는 있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자신을 스카웃하려는 전국지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여기자의 고민입니다. 때문에 추리물이나 범죄 수사물로 보기에는 한참 거리가 있습니다. 취재원이 정보를 제공한 이유, 그리고 스카웃에 대한 나름의 반전이라면 반전이 있기는 한데,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밀실의 사람"

재판 중 졸았던 판사에게 닥친 위기를 그린 소품. 이게 좌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인지 이해도 안되지만, 판사 아내의 불륜이 원인이라는 결말도 너무 쉽게 간 듯 합니다. 추리물이나 수사물로 보기에도 문제가 많았고요. 무엇보다도 과거도 숨기고 결국 불륜까지 저질렀으면서 남편이 항상 법복을 입은 것 같다 어쩌구하는 편지를 남긴 판사 아내의 뻔뻔함 때문에 읽고나서도 기분이 나쁘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