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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하나씨의 간단요리 1,2 - 쿠스미 마사유키 / 미즈사와 에츠코 : 별점 2.5점

하나씨의 간단요리 1 - 6점
쿠스미 마사유키 지음, 미즈사와 에츠코 그림/미우(대원씨아이)
하나씨의 간단요리 2 - 6점
쿠스미 마사유키 지음, 미즈사와 에츠코 그림/미우(대원씨아이)

"고독한 미식가"로 잘 알려진 쿠스미 마사유키가 원작을, 미즈사와 에츠코가 만화를 맡은 일상계 구루메 만화입니다.

쿠스미 마사유키의 작품들을 보면, 대체로 일상계와 평범한 먹거리 들을 조합하여 친숙함으로 어필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독신자가 이런저런 상점가 가게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사 먹는 "고독한 미식가", 은퇴한 직장인이 혼자서 이런저런 음식을 사먹거나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는 "방랑의 미식가", 샐러리맨이 주로 혼자 이자카야를 돌아다니며 술을 먹는 "황야의 미식가" 모두 그렇지요. 이 작품 역시 남편의 단신 부임 탓에, 가정 주부 혼자 생활하고 식사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주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30세의 젊은 여성이며, 말버릇이나 호들갑스러운 행동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덕분에 주로 아저씨 대상의 일상계스러운 소소한 매력으로 승부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주인공 하나코씨의 귀여운 매력과 적절한 개그, 유머가 더해져 있지요. 특정 장면만 보면 '개그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요.
하나씨 주변 인물들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차이점도 큽니다. 친구 미즈키를 비롯해서 하나씨의 친정 부모님,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서점 사장님, 이웃집 동거인 죤 & 요코 등등 모든 주변 인물들이 나름의 존재감을 가지고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든요. 덕분에 이야기도 풍성해질 뿐 아니라 보다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또 다른 주역인 음식들 역시 밖에서 먹는 한 끼 식사나 술안주 가 주로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정말 혼자 사는 여성이 먹음직한 음식들이 소개된다는 차이를 보입니다.
집에서 해 먹는 과정이 대충이라는 현실적 감성도 잘 살립니다. 단팥죽에 떡을 구태여 넣어 먹고,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은 명란 덮밥 레시피에 가다랑어포를 추가는 약간의 어레인지는 확실히 주부스러웠고요. "포만감과 만족감이 죄책감과 패배감으로 돌변해 가는 오후..."라는 대사와 같이 다이어트에 신경쓰는 장면과 같은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어요. 몇몇 밖에서 사 먹는 음식들도 주부, 30대 젊은 여성 분위기가 물씬 묻어납니다.

그러나 작화 면에서는 좀 아쉽습니다. 그림으로는 세계 챔피언급인 다니구치 지로, 음식 만화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츠지야마 시게루에 비교하면 확실히 묘사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는 하나씨 표현에 어울리지만, 또 다른 주인공인 '음식'에는 적합하지 않았고요. 대체로 사먹거나 정말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 중심이기는 하지만, 딱히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음식이 없던 건 작화 문제가 컸습니다. 맛있는걸 먹고 행복해하는 하나씨 표정만으로는 많이 부족하지요. 이게 얼굴만 잡히는 포르노도 아니고...
또 어쩔 수는 없었겠지만 하나씨의 수다에 대한 번역이 부실해 보이는 것도 눈에 거슬렸어요. 뭔가 라임을 활용한 아재개그 스타일 말장난이 중심인데, 적절히 번역하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조금 더 맛을 살려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리, 음식만화지만 캐릭터의 매력과 스토리적인 재미가 결합되어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확실히 많아요. 나름의 매력이 있기도 하고요. 요리 만화를 좋아하신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에 이런저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드라마, 거기에 더해진 여러가지 음식 이야기.라는 주요 키워드만 놓고 보면 "아빠는 요리사"와 똑같습니다. 본인의 히트작 "고독한 미식가"를 벤치마킹한 "방랑의 미식가"나 "황야의 미식가" - 이쪽은 "술한잔 인생한입"도 많이 참조한 것 같습니다만 - 도 그러한데, 인기 히트작을 참조하여 새로운 파생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결과물만 좋다면야 뭐 나쁘지야 않죠.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까요. 허나 "아빠는 요리사"가 수십년간 이어온 장기 연재작으로 가족 구성과 분위기가 전통적인데 반해, 이 작품은 남편의 단신 부임으로 강제 독신 신세가 된 하나씨를 비롯, 옆집에서 동거하는 존과 요코, 결혼도 하지 않고 애인과 아기부터 가지게 된 친구 미스즈 등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실히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2017/03/30

피자의 지구사 - 캐럴 헬스토스키 / 김지선 : 별점 2.5점

피자의 지구사 - 6점
캐럴 헬스토스키 지음, 김지선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의 '~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권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치즈의 지구사"는 많이 실망스러웠었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이 책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피자라는 음식의 발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발전하여 세계화가 되었는지를 통사적으로, 시대순으로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거든요. 각 시대별 대표 피자와 주요 변곡점도 확실하게 체크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제목 그대로 이 책 한권만 읽어도 피자의 역사에 대해서는 대충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피자의 시작과 초기 발전 과정을 다룹니다. 당연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요. 최초의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재료를 얹어 구워서 만드는 납작한 빵은 신석기 시대에서도 둥그런 반죽을 구워 먹었다고 할만큼 흔했으니까요. 그러나 누가 먼저 둥글납작한 빵을 그릇으로 만들고 그 위에 소스를 얹거나, 다른 음식을 담는다는 발상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나마 비슷한게 고대 그리스의 빵 '플라쿤토스'입니다. 토핑을 바로 빵 위에 올려 굽는 것이지요. 빵을 접시나 그릇으로 사용하여 요리를 담아낸다는 기본 개념은 피자와 같습니다.
이후 이탈리아에 토마토가 재배되고, 18세기에 드디어 피자에 토마토가 쓰이기 시작합니다! 나폴리에서 19세기에 빈민들을 위한 음식으로 인기를 끌게 되고요. 마침내는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아내 마르게리타 여왕이 나폴리에 방문해 '마르게리타' 피자를 대접받은 후 본격적으로 성장해서, 2차대전 후 인구 이동과 함께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나가게 됩니다.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보잘것 없는 음식이었지만 이민과 관광이 붐을 이루며 널리 전파된 것이죠.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토핑으로 변주가 일어나자 피자의 기원을 자처한 나폴리의 전통 피자 요리사들이 정통 나폴리 피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통나폴리피자협회 (VPM)를 결성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VPN이 인정하는 정통 나폴리 피자는 마르게리타, 마리나라, 마르게리타 엑스트라 피자 뿐이라는데 엄격한 지침을 따라서 만들어야 한다니 꼭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2장은 미국으로 이주한 나폴리 이민자들을 통해 피자가 미국에 뿌리내리며 대중화되는 과정 - 2차대전 이후 군인, 이민자들에 이해 미국에서 피자 소비가 대중화되고, 피자헛과 같은 피자 체인점과 냉동 피자가 속속 등장하면서 거대 산업을 이루게 되는 - 을 담고 있습니다. 이민자 요리들을 자체적으로 재조형하여 미국 음식을 만들어 낸 방식이 피자에도 제대로 발휘되어 더 이상 이탈리아 전통 에스닉 푸드가 아니라 미국이 사랑하는 음식이 된 것이지요. 산업화되며 대량생산, 규격화, 지속성이라는 3대 원칙을 포함해서요.
하지만 1장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고 피자헛, 도미노 등 체인점과 냉동 피자 산업 등 산업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소개됩니다. 그래도 '시카고 피자'의 유래는 기억에 남네요. 텍사스 출신 아이크 슈얼이 오픈한 레스토랑 '우노'에서 선보인 딥디시 피자가 최초라고 하는데, 예전 삼성동 KOEX 우노에서 먹어본 적이 있기 때문으로 덕분에 아주 오래전 옛 추억이 잠시 떠올랐답니다.

3장은 피자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피자헛의 세계 진출, 각 지역별 특별식, 엔터테이먼트 ("닌자 거북이"와 같은)와 결합하여 피자 자체가 유행이 되는 과정 등이 소개되며, 마지막 4장은 피자의 미래라는 제목인데 별 내용은 없습니다. '토핑 재료에 제한이 없는 한 피자는 영원할 것이다, 그 독특한 특성과 함께'가 전부니까요. 페이지도 10페이지가 안 될 만큼 짤막합니다. 딱히 언급해드릴게 없네요.

그리고 주영하씨의 "피자, 한국 정복의 역사"가 부록처럼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처럼 한국에 피자가 진출한 과정을 통사적으로 상세하게 소개한 글입니다. 책 성격에도 부합할 뿐더러 내용도 충실하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형적인 주영하씨 음식관련 미시사 글이었어요. 뒤에 실린 진짜 부록인 다양한 피자 레시피도 집에서 만들기는 힘들겠지만 읽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내용이었고요.

이렇듯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있으면서도 식욕까지 불러일으키는 좋은 책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3장, 4장 내용이 좀 부실해서 감점하지만 피자를 좋아하신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읽고나서 가장 안타까운건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피자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산업화한 미국식 피자라는 것입니다. 저렴하고 빠른, 패스트푸드 측면에서 피자 체인점의 역할은 분명 있겠지만 나폴리 사람들이 사랑한, 여왕에게 마친 마르게리타 피자만큼은 쉽게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한식 요리점에서 퓨전 한식만 팔고 정작 김치는 내어놓지 않는 것과 다를게 없잖아요?

2020/04/24

초콜릿의 지구사 - 사라 모스, 알렉산더 바데녹 / 강수정 : 별점 2.5점

초콜릿의 지구사 - 6점
사라 모스.알렉산더 바데녹 지음, 강수정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의 출판사에서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라는 주제로 간행하고 있는 'oo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 권. 모두 열 권의 시리즈가 출간되어 있습니다. 저도 소장용으로 모으고 있지요. 리뷰를 올리는 건 이 책으로 여섯 권 째네요.

전반적인 시리즈의 컨셉은 비슷합니다. 일단 해당되는 주제의 음식, 또는 재료를 어떻게 먹기 시작하였고, 그 뒤에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통사적으로 훝어봅니다. 그리고 그 음식이나 재료가 우리 식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미칠 것인지를 고찰하며 마무리 됩니다. 그 뒤에는 주영하가 저술한 해당 음식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서술한 부록, 해당 음식과 재료로 만드는 요리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고요. 음식, 재료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비슷합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하여 초콜릿의 재료인 카카오를 언제부터 어떻게 먹기 시작하였는지를 마야와 아즈텍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정복 이후 유럽으로 전파되어 세계화 되는 과정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거든요. 마야, 아즈텍 유물이라던가, 각종 문헌과 사료를 바탕으로 충실한 도판과 함께 설명해주기 때문에 설득력도 높고요. 이를 통해 처음에는 의학적 효과와 최음제 등의 용도로 쓰이다가,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얻게 된 이후 18세기 초에는 이미 현대의 핫 초콜릿과 비슷한 레시피가 등장하였으며, 18세기부터는 프랑스와 잉글랜드 아침 식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으며 온갖 레시피가 쏟아져 나오는 등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 볼만 한 건 사드 후작과 초콜릿의 관계였습니다. 사드 후작이 감옥에서 초콜릿을 원한건 이게 계급을 상징하는 일종의 사치품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논리이지요.

이후 19세기 들어 기계화를 통한 대량 생산으로 비로서 초콜릿이 대중적인 기호품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때 즈음부터는 과거의 사치품이 아니라 영양가 높고 저렴한 간식이자 음식이 된 거죠. 따뜻한 가정의 이미지와 일체화 되어서요. 현대에 접어들어서는 온갖 세계의 초콜릿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공정 무역, 서아프리카의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을 통한 카카오 산업의 어두운 부분과 같은 문제와 함께 여성성과 남성성, 쾌락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는 초콜릿의 상징성, 그 이미지에 대한 고찰을 끝으로 글은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다른 'OO의 지구사'와는 좀 다르게 각 시대별로 초콜릿이 무엇을 상징했는지?라는 '이미지'에 집중했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아무래도 단순한 먹거리라기 보다는 기호품에 가깝기에 이렇게 접근했을텐데,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패션이나 시계, 쥬얼리나 와인과 유사한데, 초콜릿과 잘 어울린다 싶기도 하거든요. 시계도 쿼츠라는 기술이 탄생한 뒤, 일반화되었지만, 고급 명품 초콜릿 '그랑 크뤼' 처럼 기계식 시계 카테고리가 아직 건재한 것과 같은 이치지요. 다양한 마케팅으로 구축된 '이미지'가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통사적인 측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너무 이미지 측면에 집착한 탓입니다. 그리고 제 컨디션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잘 읽히지 않더라고요. 찬찬히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봐야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또 언제나 본 편 이상의 기쁨을 안겨다주었던 주영하의 부록도 이번에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한반도에서의 초콜릿 도입과 발전 및 '발렌타인 데이' 등 초콜릿으로 탄생한 문화 현상을 함께 다루기에는 10페이지를 갓 넘는 분량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깊이있는 접근이 아쉽네요. 레시피도 이번에는 눈여겨 볼 만한게 없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초콜릿이라는 음식, 재료보다는 그 상징성과 이미지에 대한 고찰이라는 측면은 좋았지만 재미와 다른 부분의 가치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2012/04/15

뜻밖의 음식사 - 김경훈 : 별점 3점

뜻밖의 음식사 - 6점
김경훈 지음/오늘의책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먹어온 먹거리들을 음식 색깔에 따라 블루, 레드, 옐로우, 블랙 & 화이트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책. 우리의 오랜 먹거리 목차를 구태여 영어로 한 이유는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건 역사와 요리, 음식이라는 저의 미시사적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주제의 책이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음식이나 요리가 아니라 먹거리가 되는 재료 자체에 주목했기 때문에 다른 유사 서적에서 많이 보아왔던 주제들 - 김치나 갈비 같은 - 이 없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순히 재료의 역사에만 치중하지 않고, 주요 요리들의 레시피를 소개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그림이 곁들여진 것은 아니나 꽤 구체적이라 한 번 해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 이러한 점들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몇 개 소개해드리자면,

  1. 매실을 예전에는 국의 조미료로도 썼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제호탕 만드는 법도 눈여겨봐 둘 만했습니다.
  2. 박하로 박하주와 박하차 만드는 법은 꼭 한 번 따라 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박하잎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박하주 - 소주 1리터에 잘게 썬 박하잎 50그램을 넣어 2개월 밀봉 후 마심. 박하차 - 깨끗이 씻은 박하잎을 물에 넣고 오래 끓인 다음 체로 찌꺼기는 걸러내고 꿀이나 설탕을 섞어 마심.
  3. 오미자로 만드는 중국 사천성의 태수 여경대의 전설적인 정력제 독계산! 나이 70에 자식을 여럿 낳고, 결국 버린 약을 수탉이 먹고는 암탉 등에 올라 내리지 않아 암탉의 벼슬이 다 벗겨져 독계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하는데, 육종용 3푼, 오미자 3푼, 토사자 3푼, 원지 3푼, 사상자 4푼을 빻아서 체에 받혀 분말로 만든 것을 하루에 한 스푼씩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 재료들, 갖고 싶다...
  4. 산수유는 남자 몸에 참 좋은 게 맞더군요. 그중 정력 증강에 탁월하다는 산수유주! 산수유 열매를 잘 말린 뒤 5~6배 정도의 소주를 붓고 3개월간 그늘에서 보관하면 된답니다. 와우!

그 외의 다른 먹거리들도 재미있게 소개되고 있으니, 이런 류의 미시사 서적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6/09/27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2026) - 이우형, 김만희: 별점 2.5점

"흑백 요리사 시즌 2" 후 오랫만에 챙겨본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입니다. 티빙을 통해 감상했습니다.

특징이라면 참가자들이 요리 실력만 겨루는게 아니라, 실제 손님을 상대로 음식을 판매하고 매출을 겨룬다는 점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장사할 장소와 찾아오는 손님을 분석한 뒤 어떤 메뉴를 얼마에 팔지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요리 실력뿐 아니라 외식업 경영자로서의 감각이 중요하다는 건데 이 설정이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심사도 특이합니다. 심사위원이 음식을 먹은 뒤 맛과 완성도를 평가하는 여타의 요리 서바이벌과는 다르게 실제로 손님이 돈을 내고 음식을 사 먹은 결과의 매출과 별점을 겨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가격이 비싸거나 장소에 어울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비교적 평범한 음식이라도 가격과 서비스 속도, 손님의 취향을 잘 맞추면 좋은 매출을 올릴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전문 셰프 못지않게 요식업 사업가들의 활약을 보는 재미가 큽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연복 셰프의 활약도 반가웠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면서 경쟁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관록을 느낄 수 있었고, 결국 결승 문턱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참가자들이 앞서 설명드린대로 메뉴와 가격, 판매 전략을 치밀하게 고민하는 것과는 달리, 이연복 셰프는 그야말로 맛있는 중식을 만들어 파는 데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요.

예상과 실제 결과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첫 대결에서 두끼 떡볶이 대표가 컵 떡볶이를 5,000원에 판매한다고 했을 때, 상당히 잘 팔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가격 부담도 크지 않고 다른 음식을 먹은 손님이 입가심이나 간식처럼 추가로 구입하기에도 좋은 메뉴니까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판매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장사와 실제 현장에서의 소비자 선택은 꽤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려줍니다. 확실히 장사가 쉽지 않네요.

다만 프로그램이 뒤로 갈수록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가'에 초점이 지나치게 맞춰지면서 초반의 재미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특히 데이터를 강조한 우승팀 Hungry가 마지막 전주 한옥마을 대결에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메뉴로 선택한게 대표적입니다. 전국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하고, 최대한 빠르게 음식을 제공해 고객 회전율을 높이는 한편 여러 가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전략이었지요. 장사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실제로 승리까지 거두었지만,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메뉴 자체가 주는 의외성이나 참신함이 거의 없어서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요리 경연이 아니라 장사 대결이기 때문에 이런 전략도 실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음식 프로그램에서 기대하게 되는 새로운 메뉴나 예상하지 못했던 조합을 구경하는 재미가 사라진다는 문제가 발생하지요. 제작진이 장사 능력을 평가하면서도 특정 전략이 지나치게 유리해지지 않도록 예상 가능한 핸디캡이나 조건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변수를 만들기 위해 고객의 별점을 반영한 방식도 취지 자체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특별히 불만이 크지 않으면 낮은 별점을 잘 주지 않는 편이고, 별점 자체도 사람마다 기준이 크게 다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음식이 별점 5점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음식도 4점에 그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제작진이 별점 기준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으면 평가의 의미가 커졌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맛과 양이 가격에 적절하면 3점, 현재 가격보다 2,000원을 더 지불해도 먹고 싶다면 4점, 5,000원을 더 내도 좋을 정도라면 5점처럼 가격 대비 만족도를 기준으로 안내하는 방법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정확한 기준이 있었다면 매출 경쟁과 별점 평가가 서로 보완되는 장치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리 대결에 실제 장사라는 요소를 결합했다는 점은 신선합니다. 그러나 독특한 음식과 셰프들의 창의적인 요리 대결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그런 면에서의 재미는 찾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요식업에서 메뉴, 가격, 회전율 같은 요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하다면 그럭저럭 볼 만합니다.

2020/09/30

중화미각 - 김민호, 이미숙, 송진영 외 : 별점 3점

중화미각 - 6점
김민호.이민숙.송진영 외 지음/문학동네

다양한 중국 음식에 대해 써 내려간 음식사, 문화사 서적이자 넓게 보자면 일종의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책입니다. 바로 얼마 전 읽었던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와 비슷해요. 전문 연구자들이 각종 음식에 대해 사료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개인의 느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요. 이 책이 훨씬 가볍고 쉽게 쓰여졌다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목차는 크게 전채, 주요리, 식사류, 탕, 후식, 음료, 간식으로 구분되며 각 항목별로 많게는 5종, 적게는 1종의 요리와 음료가 소개되면서 마지막 '연회 차림표'까지 모두 열 아홉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음식에 대한 전문적인 글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오향장육"을 소개하는 첫 번째 글에서 잘 알 수 있어요. 오향장육의 현재 생김새와 구성, 주요 재료 소개, 오향장육 본고장인 산동 소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 오향장육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는 주요 재료 소개에 그치는 탓입니다. 산동성 소개도 재미는 있었지만, 무송이 호랑이 때려잡는 이야기 비중이 높아서 이게 오향장육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고요.

그래도 건질게 없는건 아닙니다. "량반황과"에서 식초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은 좋았습니다. 음식 재료로서의 식초보다는 '초'라는 한자어는 깨끗하고 가난한 선비를 가리킨다던가, 동양화 소재로 자주 쓰이는 "삼산도"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유가 소동파, 도가 황정견, 불가 스님 불인이 각각 식초를 맛보고 짓는 표정이 다르다는 고사를 통해 유가, 도가, 불가의 인생관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솔직히 와 닿지는 않았지만, 이런 생각도 있었구나 싶었거든요.
"농어회"에서는 중국 회의 역사와 회의 조리에 대한 여러가지 고사, 시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진나라 관리 장한이 초가을 농어회와 순채탕이 그리워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향한 뒤, 그가 모시던 왕과 측근이 모두 반란군에 의해 죽었다는 고사를 통해 '순갱노회 (순로지사)'라는 4자성어가 남아 있을 정도라는데, 중국에서도 진나라 때 부터 회를 먹었다니 놀랍네요. "쑹수구이위"를 통해 소개해주는 중국 물고기 요리, 그 중에서도 잉어 요리에 대한 정보도 좋습니다.

특히 마음에 든 건 "호떡"입니다. 당나라 백거이가 쓴 호떡이 등장하는 시에서 시작하여, 곡물가루로 반죽해 발효시키지 않고 화덕에 구운 '병'의 역사와 그 발전 과정, 발전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한 분류 - 기름에 지진 젠병, 쪄는 증병, 튀겨낸 유병, 화덕에 구워낸 소병, 뜨거운 국물과 같이 끓여 낸 탕병 등 -, 당 이후 송, 청의 사료를 통한 '병'의 여러가지 조리법들, 마지막으로 어떻게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래었는지까지, 그야말로 '호떡' 이라는 길거리 음식에 대한 한 편의 깊이있는 미시사로 손색없는 글인 덕분입니다. '병'이 어떻게 발효를 거쳐 푹신하고 달콤하며 기름진 한국식 호떡으로 변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가 없는건 조금 아쉬웠지만 "중화미각" 이라는 책에서 한국식 호떡 이야기를 깊이있게 다루기는 어려웠겠지요. 이 부분만 보강된다면, "호떡의 역사"라는 별도의 책으로 팔아도 충분할, 좋은 글이었습니다. 

호떡과 비슷한, 과자 이야기들도 괜찮은게 많습니다. 후식에서 소개되는 "장원병" 이야기도 역사와 깊이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장원병의 시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소년이 무려 49일이나 표류하게 되었는데, 어느 요리사가 준 과자만 전혀 상하지 않아서 그걸 먹고 목숨을 부지한 뒤 장원급제를 하였던 일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바삭한 껍질에 마른 견과류와 달콤한 소가 필수인 장원병이 오랜 기간 상하지 않는건 이해가 됩니다만, 정말로 상온에서 49일을 버틸지는 잘 모르겠네요. 여튼 이 후 장원병은 널리 퍼져서, 지금은 행운과 부귀영화를 상징하게 되었다니 중국에 가면 한 번 맛 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맛보다는 의미와 상징적인 측면에서 말이지요.

"반도 복숭아"에서 중국에서의 복숭아의 의미와 우리나라에서 그 의미가 달라진 것에 대한 고찰은 개인적으로 아주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복숭아가 에로틱한 느낌을 줄까? 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사했던 적이 있는데, 이 글에서 '보수적인 유교적 가치관' 때문일 거라고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왜 조선 시대에서 복숭아가 여성의 욕망과 에너지를 상징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건 조금 아쉽더군요. 중국에서 복숭아가 여신 서왕모의 이미지이기 때문일까요? 그런 설명을 조금 더 보강해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산양뤄우"와 "훠궈"라는 탕 요리 소개도 다른 곳에서 흔하게 보았던건 아니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익히 알고 있었던 요리들이 많이 등장하는건 단점이기는 합니다. "북경오리구이", "동파육" 이 대표적입니다. 요리법과 역사가 상세하게 소개되는 편이지만, 거의 모든 중국 요리 소개서 (이런거) 에서 소개될 정도로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접했던 이야기라 신선함이 떨어집니다. 물론 "동파육"에서 실제 해당 요리와 상관없는 동파 소식의 인생과 그의 시를 소개하는 식으로 차별화 요소를 가져가고 있기는 한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책 취지에는 많이 어긋난 내용이었다 생각되네요.
"만두"에서의 만두의 여러가지 종류에 대한 소개도 단순한 형태와 만두소에 따른 분류가 전부라 깊이가 부족했고요. "짜장면"도 차별화된 컨텐츠로 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백주와 약주", "용정차" 역시 중국술과 차에 대한 방대한 책들에 비하면 딱히 내세울 내용은 없어요. "용정차"에서 "삼국지" 속 유비가 구하려고 했던 차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 정도만이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훠궈"도 앞서 좋다고 설명드리기는 했지만 말미에 중국에서 훠궈 먹는 방법을 소개한건 어색했어요. 솔직히 필요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나마 "마파두부"는 굉장히 널리 소개된 소재임에도 다행히 '두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두부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되거든요. 마파 두부도 흔한 진 마파의 조리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천 요리의 핵심인 '두반장' 소개로 다른 마파두부 컨텐츠들과는 조금은 다른 내용을 선보이고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다른 유명 요리들도 이렇게 다른 디테일을 파고 들었다면 더 나았을 겁니다.

그래도 재미와 자료적 가치도 적당하며, 책의 빼어난 만듦새도 좋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중국 요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03/12

치즈의 지구사 - 앤드류 댈비 / 강경이 : 별점 2점

치즈의 지구사 - 4점 앤드류 댈비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에서 간행한 음식들에 대한 미시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디자인, 제목이 마음에 들어 몇권 구입한지는 좀 되었지만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세계의 유명 치즈를 모아 놓은 치즈 보드를 가지고 각 치즈별 유래, 역사를 설명해 주는 챕터부터 시작됩니다. 12개의 치즈가 올라가 있는 치즈 보드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리와 모짜렐라라던가 고르곤졸라, 파르미자노 레자노, 체더 등 친숙한 치즈들이 많아 즐겁게 읽었습니다. 간혹 사먹는 브리가 중세 말 유럽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는 치즈 중 하나였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심지어 프랑스 사람들의 과장이 아니라 이탈리아와 영국 저자들도 인정했다니, 앞으로 더 열심히 먹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치즈'에 대해 통사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4000년 경 중앙 유럽과 남동부 유럽에서 낙농업으로 전환이 일어나고 젖 짜기가 이루어진 후,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젖을 안정적이며 고정적인 식량원인 치즈로 만드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는 치즈의 시작, 그리고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치즈 역사가 소개됩니다.
기원전 3000년 이집트 지역 유물에서 발굴된 유기물 흔적이 치즈였다는 등 사료가 바탕이 된 상세한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당대 치즈 요리 레시피가 소개되는 것도 볼거리에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포싯 - 가루치즈를 와인에 섞어 만든 것 - 이 대표적입니다. "오디세이아"에서 키르케가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을 환영하며 대접하는, 치즈와 보리죽, 노란 꿀을 프람니아 와인에 섞은 포싯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변하게 만든 음식이라 더 기억에 남는데, 레시피만 보면 약간 치즈 수프 비슷할 것 같네요.

세 번째 챕터에서는 '지속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온갖 다양한 치즈 제조법을 소개해 줍니다. 지역과 시대별, 재료별(양젖, 소젖, 염소젖 및 동물성과 식물성으로 구분되는 레닛 등) 로 구분된 다양한 치즈들이 소개되는데 이 역시 아주 상세합니다. 좋은 치즈의 여섯 가지 특징 등 읽을거리도 많고요.

마지막 챕터에서는 세계가 치즈를 소비하는 방법이 다루어지는데, 당연하겠지만 주로 다양한 음식들과 레시피 소개가 중심입니다. 시칠리아의 미식가 시안 아르케스트라토스의 레시피, 소크라테스의 채식 식단 등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레시피가 가득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약처럼 먹었다는 일화나 치즈가 언어별로 무엇을 상징하는지?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것도 좋았고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있지는 않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200여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읽기 힘들고 이해도 어려울 정도였어요. 이유는 통사적인 내용보다는 각각의 치즈를 중심으로 파고드는 내용이 많은 탓입니다. 통사적으로 접근한 챕터도 고대 이집트에서 로마까지의 초창기 부분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고요. 이래서야 "~의 지구사"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치즈에 대해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상세한 이야기를 전해 준다는 점은 마음에 들지만, 연대순으로 주요 변곡점마다 존재했던 치즈를 보다 상세하게 알려주는게 훨씬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네요.

2017/07/29

라멘의 사회생활 - 하야미즈 겐로 / 김현욱, 박현아 : 별점 3점

라멘의 사회생활 - 6점
하야미즈 겐로 지음, 김현욱.박현아 옮김/따비

라멘이 현재의 위치를 점하게 된 이유를 다양한 사회 현상과 연결하여 설명해주는, 식문화서이자 미시사-사회사 서적입니다.

뻔한 라멘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라멘의 발전을 주변 환경 및 사회의 흐름과 함께 엮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 설명이 상당히 그럴듯하고 이치에 합당한건 물론이고요.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대세가 된 이유로 전후 극심한 식량난을 든다던가(쌀 부족으로 인한 밀가루 음식의 발전), 전쟁 전부터 있었던 '지나 소바', '주카 소바' 등의 명칭이 '라멘'으로 통일된 것은 닛신 식품의 텔레비전 광고 덕분이라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삿포로 미소 라멘이나 규슈 돈코츠 라멘은 모두 각자 독립적으로 발전한 음식이지만 이 모든게 '라멘'이라는 명칭으로 통일된건 역시나 텔레비전 광고 때문이며 이러한 지역적 특산물 라멘은 원래부터 있던게 아니라 관광지화 되면서 그 지역의 유명 라멘이 순식간에 퍼져 굳어진 것이라는 등 새로운 분석이 가득합니다.
안도 모모후쿠의 '치킨 라멘'이 포드의 T형과 마찬가지로 대량 생산하는 공업 제품으로 접근하여 성공했다는 시각도 독특했어요. 여기서 피터 드러커의 그것과 유사한 '데밍'의 피드백 방법론이 도입되었다는 것도 그러하고요.
이런 내용을 "사자에 상", 마쓰모토 레이지의 최초 소년지 장기 연재 출세작 "사나이 오이동", 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등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 "아사마 산장 사건"와 같은 당대 유명 사건 등과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가 쉽다는 것 역시 큰 장점입니다. "사자에 상"의 경우는 무려 1948년 연재된 에피소드를 가지고 설명할 정도라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흔하게 접했던 라멘의 유래에 대해서도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나름의 '고급' 정보들도 눈에 띕니다. 메이지 시대 중기 요코하마나 나가사키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길거리 음식 '난킹 소바'로 일본에 들어온 후, 도쿄 아사쿠사의 중화요리 식당 '라이라이켄'에서 지나 소바를 처음으로 내 놓았으며, 이 때 아사쿠사 말고 다른 지역에서 지나 소바의 침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이동식 포장마차 "차루메라"라고 소개하면서 에도가와 란포가 이동식 포장마차를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의외네요.

이외에도 재미있는 정보가 많습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에 대한 설명이 그 중 인상적이었어요.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처음 만든 사람은 이리에 시게타라고 전해지는데, 그는 종전 직후에 아쓰기 비행장에 내린 더글라스 맥아더가 처음 머물렀던 요코하마의 호텔 뉴그랜드의 셰프였습니다. 그가 미군 병사가 가져온, 스파게티에 토마토 케첩을 뿌렸을 뿐인 간이 전투 식량에 피망과 햄을 넣어 이 요리를 발명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이것이 미군 점령기를 지나 미국 것을 일본식으로 변형시킨 새로운 문화가 도래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우리로 따지면 "부대찌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특산물 라멘" 이야기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전통이고 뭐고 없는 음식으로, 관광지로 해당 지역이 유명해지면서 삽시간에 유명해졌을 뿐이라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진주 냉면'과 같은 동일, 유사 사례가 많지요.

라멘이 지금과 같은, "라면 요리왕"에 나오는, 장인이 요리하는 음식으로 발전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누벨 퀴진 및 슬로푸드 운동과 결합하여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도 누벨 퀴진의 특징은 현대 라멘집과 정말 딱 들어맞더군요.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며 지방의 서민적 음식 문화를 중시한다는 점에서요. 구체적으로는 식재료의 풍미를 살리는 것과 전통보다 요리사의 창의력을 중시하고 그 지방의 제철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라면 요리왕"에 등장하는 라면 장인 세리자와의 "라면 세류보"가 바로 떠오릅니다. 오너 셰프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말린 은어의 풍미를 살린 담백한 맛, 진한 맛 라면이 대표 요리라는 점에서요.

중간에 장인 정신으로 무기를 만든 탓에 미국의 생산성에 뒤져서 전쟁에 졌다는 난데없는 이야기는 황당했고 '라면 지로'에 대한 이야기는 분량에 비하면 알맹이는 별로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아, 도판이 극히 드문 편임에도 가격이 16,000원이라는 것도 단점이고요.
그래도 장점이 더 많습니다. 재미있는 정보, 새로운 시각이 가득 담겨 재미있게 읽었어요. 라면, 아니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7/05/20

진짜? 가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본 음식 이야기 - 타무라 코지 / 유태선 : 별점 1.5점

진짜? 가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본 음식 이야기 - 4점
타무라 코지 지음, 유태선 옮김/어문학사

e-book으로 구입해서 읽게 된 책으로, 여러가지 신기한 일본 음식을 주로 소개해 줍니다. 심도깊게 한가지 주제를 파고든건 아니고, 그냥 음식에 대한 신기한 정보들을 짤막하게 나열하는 식입니다. 덕분에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그다지 깊이는 없어요.
그래도 모두 13장, 26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라 인상적인게 없지는 않습니다. 주로 초, 중반부에  재미난 정보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항목만 몇가지 소개드리자면,

  • 일본에서는 노른자가 진한 붉은 빛을 띄는 것이 고급 달걀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 파프리카, 천연 색소, 인공 색소를 사료에 섞는다는군요. 
  • 가나자와의 식품 개발회사가 비지, 두부, 생선 연육을 섞어 인공 장어구이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껍질까지 신경을 써서 특허 기술을 이용하여 모양과 식감을 생생하게 재현했다는데 정체가 궁금합니다.
  • 참치캔 참치와 두부, 참마 가루, 달걀 흰자를 으깨 섞은 후 김 위에 올려 구워 만드는 간단 인공 장어 레시피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집에서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수준의 레시피이니 만큼 기회가 되면 도전해봐야겠습니다.
  • 홋피는 "술한잔 인생한입"을 통해 익히 접했던 맥주 모양 음료죠. 1948년에 발매되었으며 알코올 성분이 0.8%로, 보통 소주와 홋피를 1:5로 섞어 알코올 도수 5% 정도의 음료를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이름의 유래는 '진짜 홉을 사용한 진짜 논 비어'라는 의미로 '홋비'라고 명명했지만 발음이 어려워 '홋피'가 되었다고 하네요.
  • 같이 먹으면 안 좋은 식품은 "와하맨"에서 개그의 하나로 사용된 적도 있습니다. 튀김+수박은 설사를 유발하고, 무+당근은 무의 비타민 C를 당근의 아스콜비나제가 파괴하는 등 여러가지 조합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장어+매실장아찌는 소화불량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같이 먹으면 좋다는군요.
  • 음식점에서 물을 서비스하는걸 일본 특유의 서비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래는 다이쇼 시대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을 위해 커피를 마실 때 마다 입가심을 위한 물을 제공한 것이 시초라고 하네요.
  • 일본의 유파 '시조류호초도 (호초시키)' 소개를 통한 심도깊은 정통 일본요리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요리 순서, 레시피, 차림법 등 그 디테일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 은어 뼈 바르는 방법이 일본 전통 곡예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걸까요? 심지어 천연 은어만 가능하고 양식 은어로는 불가능하다는데, 어떤 것인지 한번 보고 싶군요.
  • 이런 저런 책에서 많이 봤던 '운수가 좋은 차 줄기' 관련 정보도 새롭습니다. 차의 줄기가 좀처럼 서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자 줄기가 찻잔에 들어가는 것 부터 흔치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인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몇몇 정보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중한 것이기도 하죠.

그러나 고기감자는 도고 헤이하치로가 만들게 했다, 마가린은 나폴레옹 3세가 만들게 했다 등 다른 책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많고, 음식에 관련되었다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폭넓은 정보들 - 음식에 관련된 기념일들을 무려 30여페이지에 걸쳐 소개하는 등 - 이 수록되어 있는 등 중복과 낭비도 심한 편입니다. 심지어 젓가락 사용 방법에 대한 설명도 7페이지에 달할 정도입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주제와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점이 더 크기에 감점합니다.

2018/09/30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구스미 마사유키 / 최윤영 : 별점 2점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최윤영 옮김/인디고(글담)

국내에는 "고독한 미식가" 원작가로 잘 알려져있는 구스미 마사유키의 음식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고독한 미식가" TV 시리즈를 보신 팬이시라면 에피소드가 끝나면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가게에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구스미 마사유키의 모습이 친숙하실테지요. 고기구이, 라면, 돈가스 등 모두 26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전부 저자가 특정 음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를 털어놓으며, 맨 마지막에 아주 짤막한 4컷 만화로 마무리되는 구성이고요. 하나의 음식 이야기 전부 해서 10페이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을 뿐더러 만화 외의 그림도 많아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조금 특이했던 것은 음식에 대해 확고한 자기 생각이 있으며, 이와 다른 스타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컵라면은 갑자기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원조 닛신 컵누들이 제일 좋다. 이런 저런 맛을 낸다는 본격파 따위는 필요없다. 건방지다'면서 본격적인 라면이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 먹으라고 하는 식으로요. 자기 주장이 과하고 일방적이라 좋게 보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타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라 재미있었습니다. 몸에 좋고 맛있는 것 보다는 정크 푸드를 가끔이지만 찬양하는 모습 등 그 외에도 소타츠와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이런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라면 피곤하겠지만, 그냥 지켜본다면 재밌게 감상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먹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체계와 룰도 재미있었습니다. 고양이 맘마는 대체로 단무지 두 조각이 나오는데 마지막 밥 한 입과 단무지 반 조각이 남도록 조절하여 함께 입에 넣어 음미하는게 마무리이다, 돈가스 조각을 먹는 순서와 돈가스를 맛있게 먹으려면 돈가스 양의 최소 다섯배의 양배추가 필요하다는 등 처럼요. 돈가스 관련된 내용은 "음식의 군사" 에 등장했던 내용과 조금 비슷하기도 합니다.

간단힌 레시피도 몇 가지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도 양배추 요리가 가장 땡깁니다. 밤새 뼈 째로 푹 고아 만든 토종닭 수프를 걸러낸 후, 여기에 십자로 칼집을 넣은 양배추를 통째로 넣어 소금으로만 간 한 후 통냄비로 한 시간 정도 푹 끓여낸 수프입니다. 누룽지밥에 유자 후추를 살짝 뿌려 먹으면 맛있다는데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닭 백숙 육수로 끓여내면 되려나요? 간단하게 치킨 스톡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볼만한 내용이 적지 않지만, 만화였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구스미 마사유키라는 작가가 아니라 허구의, 가상의 캐릭터였다면 보다 마음 편하고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거든요. 너무 자기 주장이 센 부분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또 딱히 건질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라 권해드리기는 조금 애매하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2/09

요리하는 조선 남자 - 이한 : 별점 3점

요리하는 조선 남자 - 6점
이한 지음/청아출판사

주로 조선 시대 서적에서 발췌한 내용들로 구성된 요리 관련 미시사 서적입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요리는 남성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꽤나 뿌리깊은데 제목이 그러한 상식을 깨고 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유교가 지배한 조선 시대에서 과연 남자가? 하는 호기심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제에 걸맞을 만큼 조선 남자들이 요리를 했다거나,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내용은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나 편지, 일기와 기타 저서에 음식 이야기가 조금 등장한다고 요리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지요. 그나마도 "오늘 뭘 먹었다.." 정도에 그치고요. 

게다가 주로 등장하는 일화들은 정약용을 필두로, 귀양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귀양가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당대 선비들은 대체로 먹을 것을 논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물론 스스로 개고기 레시피를 만들 정도로 먹보였다는 초정 박제가, 맛있는 회를 먹고 시를 한수 지은 목은 이색, 성호사설의 저자 이익 등 귀양과는 무관한 몇몇 선비들의 일화도 수록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비중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무척 작습니다. 

때문에 제목이 내용과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네요. 실제로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이래서야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 즉 '조선시대에는 남자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라는 상식을 뒤집기는 힘들어요.

이렇게 제목에 대한 기대는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다행히 음식 관련된 미시사 책으로는 꽤 볼만 합니다. 음식별로 유래나 기원, 당시 레시피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레시피에 대해 몇가지 예를 들자면, 당대 불고기라 할 수 있는 '설하멱적'의 양념은 간장과 참기름으로 고기를 숯불로 굽다가 끓어오르면 찬물에 집어 넣고, 다시 숯불로 굽는 것을 3번 반복했다, 앞서 소개했던 초정 박제가의 개고기 조리법, 조선 시대의 생선회 만드는 법 - 물고기 꼬리와 내장, 껍질을 제거하고 얇게 저며서 종이 위에 살짝 말렸다가 실처럼 가늘게 썰고, 무를 얇게 다져 베에 짜서 곱게 만든 뒤 생채를 회와 섞어 접시에 놓고, 여기에 겨자와 고추, 식초를 뿌린다 -, 냉면의 역사와 다양한 레시피들, 쌍화점 찐빵 '상화'의 레시피 등이 그러합니다. 이 중 상화는 정말로 손이 많이 가서 놀랐습니다. 돈 주고 사먹는게 당연했겠어요. 

음식들의 유래, 기원도 볼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수나라 사람들이 고려 사신에게 아주 비싸게 돈을 주고 사들인 채소라 '천금채'라 불리었다는 채소가 바로 상추라는 것, 조선 시대 초기에는 설날에 떡국을 먹지 않고 도소주와 엿을 먹었다는 것 등등 다양한 일화 등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책만의 독특한 시각과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떡국 떡을 동전처럼 동그랗게 썰다가 지금처럼 어슷썰기로 한 이유는 더 적은 횟수만 썰어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든 맛있는 떡이라는 뜻의 "임씨의 절미"라는 말이 "인절미"가 되었다는 전설처럼 "변씨 만두"도 조선 시대 궁중요리 중 하나였던 병시, 즉 물만두가 민가에 전해지며 병시라는 이름이 변씨로 바뀌어 "변씨 만두"가 되었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인절미 어원에 대한 전설은 저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만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도 인용되었었죠) 허구라니 좀 의외였어요.

이렇게 음식 관련 미시사 서적으로의 가치는 충분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위에 언급한대로 제목에서 불러 일으킨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책의 디자인이 조금 아쉽기에 감점하지만,  한국 음식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8/11/30

위스키의 지구사 - 케빈 R. 코사르 (주영하) / 조은경 : 별점 2.5점

위스키의 지구사 - 6점
케빈 R. 코사르 지음, 조은경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눈에 띌 때마다 한 권씩 사 모으고 있는,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된 "~ 지구사" 시리즈의 한 권입니다. 

이번에는 제목 그대로 위스키의 역사를 다루는데, 위스키란 곡물을 발효시킨 후 증류하여 만든 술이라는 정의에서 시작하여 기본적인 제조 방법의 소개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위스키의 기원이 무엇이며 "위스키"라는 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등 실제 역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위스키'가 '우스키', 즉 '생명의 물'을 뜻으로 '오스케바'라고 발음되는 게일어를 영어화한 것이라는데 재미있네요. 어원부터가 '생명의 물' 이라니!

다음은 맨 처음 위스키를 만들었다는 스코틀랜드, 경쟁자였던 아일랜드, 신대륙 미국에서의 국가별 위스키 역사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싱글 몰트 위스키는 저도 무척이나 좋아하는터라 소개가 반가왔습니다. 그다지 잘 알려져있지 않은 아일랜드 위스키의 역사도 흥미로왔고요. 아이리시 위스키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데 로크스 (locke's)라는 싱글 몰트 위스키는 구할 수 있다면 한 번 구해보고 싶네요. 미국 위스키의 역사는 정착민이 처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등 전반적으로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이 위스키 애호가라는 등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괜찮았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 전쟁 당시 군대에 항상 충분한 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데 무척 놀랐네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던걸까요? 이후 알 카포네 등으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금주법 시대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고요. 그리고 "21" 이라는 제목으로 현재의 위스키 시장과 상황을 설명하며 내용은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지구사' 뒤에 한국의 음식 문화 전문가 주영하 씨의 한국 위스키의 역사가 특집으로 부록처럼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본편보다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처음에 위스키를 발음대로 '유사길' 이라는 한자로 표시했다는 내용부터 대한 제국 시절의 유통 과정, 일본 강점기 시기 위스키 시장의 확대와 위스키 원액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유사 위스키'의 등장, 그리고 해방 후 상황으로 이어지는 내용 모두 말이죠. 아무래도 우리 역사에 관련된 내용이라서 그랬던 것 같네요.

이렇게 대충이나마 통사적인 접근도 가능하고, '지구사'라는 말에 걸맞게 각 국가별 현황에 대해서 다루어 주기 때문에 위스키에 대해 대충이나마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만족했습니다. 서양 중심의 역사만 서술된 것은 분명 아쉬운 점이지만 주영하 씨의 글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기도 하고요. 위스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으시다면 읽어보실 필요가 없겠지만, 이쪽 분야를 좋아하시거나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05/29

술 한잔 인생 한입 - 酒のほそ道 1~27 (미완) - ラズウェル細木 : 별점 2.5점

제목을 번역하자면 "술의 좁은 길"! 

평범한 샐러리맨인 주인공 岩間宗達 (이하 종달이)를 중심으로 술과 안주, 술집과 기타 술을 먹는데 관련된 모든 상황에 집중하여 한편당 4 ~6 페이지 정도로 짤막하게 전개되는 본격 "음주 만화" 입니다.

다른 음식 - 미식 만화와 다른 점은 종달이가 하이쿠를 좋아하고 에도 문화를 좋아하는 긍지있는 呑兵衛(술꾼)을 자처하는 덕에, 술과 안주, 요리 이외의 다른 음주 문화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긴 술과 안주, 제철음식은 다른 만화에서 워낙 많이 다루기도 했으니 특별한게 없기도 할 테고요. 

음주문화에 대한 에피소드는 정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술잔이나 술을 데우는 방법, 안주를 먹는 방법 같은 기본적인 것은 물론이고 술집 의자를 6종으로 분류하여 논한다던가, 술집 간판(노렌)의 소재와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한다던가, 술집 안의 화장실의 위치, 비어홀과 비어가든의 차이, 술을 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등 정말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술먹는데 있어 운치를 다루는 에피소드도 좋습니다. 도심 건물 속에 위치한 술집에서의 "달구경 술"에 대한 에피소드가 대표적입니다. 고층 건물들 사이라 보름달을 볼 수 있는건 술집 앞마당에서 고층 건물 - 건물 사이의 작은 공간을 보름달이 스쳐지나가는 몇 분 동안 뿐이라는 이야기인데, 도심 속 술꾼들의 운치가 정말 제대로 느껴졌거든요. 

또 종달이가 워낙 평범하고 가난한 샐러리맨인지라 그닥 비싸거나 특별한 요리가 등장하지 않는 것도 장점입니다. 직접 해 먹는 요리들도 정말 간단해서 설득력있었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종달이가 술꾼으로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잘난척 좋아하는 캐릭터로 묘사되지만 그 철학과 잘난척이 딱히 성공하거나 우월하게 묘사되지 않는게 아주 좋았습니다. 미식 만화에 흔히 등장하는, 자신의 미각이나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눌러버리는 괴물같은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인 셈이지요. 그래서 굉장히 친근했어요.

연재가 장기화되면서 동어반복적인 에피소드가 많아진다는건 감점요소이고, 제법 많은 지방과 해외 별미 음식을 다루는 에피소드들은 다른 뻔한 요리 만화스러워서 별로였습니다. 한편당 분량이 워낙 짧아서 단행본에는 다양하게 취재한 자료들, 각종 정보들을 함께 실어놓았는데, 그 탓에 온전한 만화책이라기 보다는 약간은 정보지같은 성격을 띄는 것도 만화의 팬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내용이 많은 만큼 정식 출판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 라즈웰 호소키의 작화 역시 구성적으로 완벽한 편안하고 따뜻한 그림체로 음식과 안주의 묘사도 뛰어나거든요. 음식 - 요리 - 술 만화에 관심 있으시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2020/01/23

카레라이스의 모험 - 모리에다 다카시 / 박성민 : 별점 3점

카레라이스의 모험 - 6점
모리에다 다카시 지음, 박성민 옮김/눌와

카레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저자가 카레의 정체를 탐구하고, 뒤이어 일본식 카레와 카레라이스의 형성 과정에 대해 고찰한 음식사, 문화사, 미시사 사적입니다.

읽으면서 "맛의 달인" 24권의 '카레 승부' 편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카레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인도까지 가서 카레가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영국으로 찾아가 카레 가루의 원형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 구조가 완전히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의 형성 과정을 깊숙히 파고든다는 점은 차이점이지만 스리랑카는 카레에 몰디브 피쉬라는 가다랑어 종류 건어물을 사용한다, 카레의 맛이 부족하면 한방약을 털어서 섞어 먹으면 좋다는 등 "맛의 달인"에도 등장했던 이야기가 뒤에도 계속 등장합니다. "맛의 달인" 24권이 출간된건 1990년이며, 이 책이 언제 출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런저런 카레 서적을 발표하며 '카레왕' 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저자이니, 이 책에 등장했던 전개와 이야기들이 원조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당연히 책이기 때문에 "맛의 달인" 보다 카레에 대한 정보 제공은 훨씬 자세하며 정보의 폭도 넓고 깊습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들도 돋보이고요. 일본에서 시판되는 카레를 조리해서 인도인에게 먹여본다는 도입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실제로 인도인들도 꽤 맛있어 했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인도의 여러 향신료를 조합하여 만든 요리를 '카레'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맛의 달인"에 이미 나왔던 내용이지만, '카레'의 어원은 타밀어에서 무언가 끼얹어 먹는 소스를 의미하는 '카리'에서 왔거나, 힌디어로 향이 강하고 맛있는걸 뜻하는 '터카리'라는 말에서 왔거나, 아니면 옛 인도 북부의 요리 이름인 카디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재미있었습니다. '캥거루' 어원에 대한 전설처럼, 영국 지배 시기에 영국 관리가 인도인들에게 먹는 요리를 물어보았는데 그들이 맛있다고 한 '쿠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던 설은 거짓말이라는 디테일까지 완벽했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한 시기의 이야기라면 18세기 이후 이야기인데, 커리가 처음 영어 문헌에 등장한건 1598년이기 때문이라네요.
그 외에도 인도인들도 카레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던가 - 등장하는 요리사인 쟈인 씨는 국물이 있는 요리라고 하지만 마살라, 즉 향신료를 조합하여 사용하는 요리는 모두 카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 매운 맛의 기본은 특별한 향신료가 아니라 고추와 후추가 중심이며 인도에서 카레를 만들 때 양파를 카라멜라이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등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가득합니다.

이러한 카레의 정체에 대한 탐구 뒤 펼쳐지는 일본식 카레의 형성에 대해 심도있는 고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문화권에 완전히 이질적인 요리가 도입되어 국민 요리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제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맛의 달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우선 소개되는건 일본 카레의 기원입니다. 문헌상 가장 오래된 카레 조리법인 "서양요리지남" 속 카레는 개구리! 카레였으며, 야채로 파를 사용했다는군요. 이 책이 나온 19세기 후반에는 일본식 카레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으며, 양파, 감자, 당근이 생소한 채소였기 때문입니다. 1879년 간행된 "서양과채조리법" 속 파는 “오니언” 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고, 다른 책에는 “아니언”이라는 표기도 있었으며 “뿌리를 식용으로 하며, 겉의 껍질을 벗기고 잘 씻는다”라고 주석이 달린걸 보면 파 역시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던 재료가 아니었을테고요. 이러한 개구리 카레 스타일의 카레 요리법이 1900년대 초반까지 퍼지게 되는데, 지금과 다른 점은 카레 가루를 넣은 소스로 고기를 익힌 요리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인도식과는 다르게 카레 가루를 쓰고, 밀가루로 걸쭉하게 만들었다는게 특징이지요.
지금과 유사한 카레 요리법인 걸쭉한 카레 루에 고기와 함께 양파, 감자, 당근을 함께 넣어 볶고 끓여 만드는 방식은 다이쇼 시대 이후 확립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이러한 레시피로 카레를 조리하여 배식한게 결정적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조리법의 역사와 함께 저자는 카레가 일본의 국민 요리가 된 이유를 추적합니다. 우선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시스템을 받아들여 국가를 개조하던 와중에 육식이 유행하게 됩니다. 대표 요리인 규나베가 널리 퍼진 뒤, 카레가 일본인에게 서양 요리의 입문격 요리로 알려지고요. 이유는 이미 익숙한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고, 고기도 규나베처럼 작게 썰어 넣어 부담스럽지 않았던 덕분입니다.
그 뒤 '1. 레스토랑, 식당 등의 메뉴에 등장한다. -> 2. 잡지, 서적(현재라면 TV)과 같은 미디어에서 요리법 또는 '요즘 이런 요리가 유행'이라는 말 등이 소개된다. -> 3. 일반 가정의 식탁에도 등장하게 된다.' 라는 외부 요리 수용 단계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도입 초기의 소스형에서 스튜형으로 조리법도 바뀌고요. 소스형 카레는 주재료가 고기지만, 가정 요리로는 요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지 않도록 고기는 적게, 그리고 밥에 국물을 끼얹어 먹는 식의 음식으로 발상을 전환한게 그 이유입니다.
그 결과가 본래의 서양 요리와는 다른 일본풍의 양식 '카레라이스'인 것입니다. 그 뒤, 일본 카레 가루 제조와 카레 루의 판매, 인스턴트화 등을 거친게 현재의 일본 국민 요리 카레라이스입니다.

이렇게 일본 카레라이스에 대해서만 연구한 결과물이라는건 아쉽지만, 카레가 아니라 그 어떤 요리라도 다른 문화권에 흡수될 때에는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런 의미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구성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카레왕께서 추천한 참고 도서인 "카레의 지구사"도 빨리 읽어봐야겠군요.

2017/06/03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 이시야마 아즈사 / 김은모 : 별점 3점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 6점
이시야마 아즈사 지음, 김은모 옮김/북폴리오

구루메, 미식, 음식 관련 만화 홍수의 시대입니다. 꾸준히 사 모으는 몇몇 작품들("술 한잔 인생 한입" 등)을 제외하면 눈길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너무 많아서 조금 피로감도 느껴집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한 권으로 끝나며, 풀 컬러에 동화 일러스트같은 따뜻한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 구입해 보았습니다.

그림 관련 일과 아르바이트로 나날을 보내는(듯한) 평범한 처녀 작가의 하루하루의 끼니 소개 만화로, 주로 야식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단한 드라마 없이 먹거리에 집중하는게 특징이고요. 먹거리에 관련된 짤막한 추억, 에피소드와 그날 그날 만든 먹거리에 대해 소개하고 맛있게 먹는 게 전부거든요. 

하지만 꽤 재미있었어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뭐 그리 큰 드라마가 있겠습니까. 이 작품처럼 야식으로 뭘 먹을까에 대한 고민이 그날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게 현실적이지요. 맛있는 걸로 세계 평화가 찾아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마음에 듭니다. 유사 작품들과 비교하면 '혼밥', '집밥'이 주요 소재라는 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라는 점, 레시피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차별화 요소도 확실하며 작화도 좋은 편이에요.

레시피들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집에서 해 먹음직한 것들이 대부분인 덕분입니다. 오븐 등 거창한 도구도 쓰지 않고 전자레인지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설거지가 귀찮아 알루미늄 호일을 적극 사용하는 것도 제 스타일이고요. 두께 있는 재료도 넣을 수 있는 '토스터'를 사용하는 레시피가 간혹 있기는 한데, 이 역시 프라이팬으로 대체 가능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저자도 그렇게 소개하더군요.
등장 레시피 중에서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우동 겉을 물로 적시고 사발에 넣어 랩을 씌운 후 전자렌지에 5분 돌려 맛국물 + 참깨 + 파 + 후리카케 + 날계란 조합으로 먹는 간단 우동! 입니다.

혼밥 야식 이야기 외에도 "여러 가지 야식 편"이라는 제목으로 밖에서 사 먹었던 음식들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뒷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데,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흔해 빠진 형식이지만 역시나 따뜻한 그림이 잘 어울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컬러 일러스트 느낌을 주는 먹거리 이야기와는 다르게 모두 펜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만화 작화인데, 약간 "카페 알파" 느낌도 나서 저는 이 쪽 작화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구루메, 미식, 음식 만화의 홍수 속에서 소박하게 자신의 위치를 가져갈 수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0/02/14

커리의 지구사 - 콜린 테일러 센 / 강경이 (주영하) : 별점 4점

커리의 지구사 - 8점
콜린 테일러 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지구사"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고 있는 식문화 역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이 전에 시리즈 중 세 권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죠(위스키, 치즈, 피자). 그런데 예쁘게 잘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내용은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시리즈는 구입했지만 그동안 손대지 않고 있던 차에, 얼마전 읽었던 "카레라이스의 모험"을 읽고 급작스럽게 땡겨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습니다. 커리에 대한 역사는 물론, 세계화된 과정과 세계속 커리 요리들, 그리고 커리의 현재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커리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채소와 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카릴 혹은 카리라는 남부 인도 요리가 영어로 '커리'로 변형되고, 이 말이 일반적인 인도 요리를 가르키는 말로 굳어지게 된 것이라고요. 중국 요리를 서양에서 '찹 수이'라고 퉁쳐 말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인 셈이죠.
그리고 원래 인도 아대륙에는 강황, 생강, 카마린드, 인도산 후추라는 자생 향신료가 있었는데, 인도 상인들이 다양한 국가와 교역을 하면서 온갖 외국 요리들이 인도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 뒤 포르투칼과 영국 등의 침략, 식민지 운영을 통해 서양 요리가 인도 요리, 재료와 결합되며 18세기 말에는 영국인들에게 '커리'라는 말과 요리가 일반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커리의 오랜 세월을 거친 발전 과정도 상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인도 뿐 아니라 인도인들이나 다른 교역을 통해 커리가 전파된 이웃 국가들의 커리 요리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습니다. 영국은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식민지 운영 국가는 물론 카리브 해, 모리셔스, 스리랑카, 피지 및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커리가 어떻게 전파되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가지 요리들의 명칭과 상세한 소개는 물론, 유명 요리의 경우 간략한 레시피까지 수록되어 이해를 도와주는데 미국 남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리 중 하나라는 영국식 인도 음식 컨트리 캡틴 치킨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수록된 '리델 박사의 컨티리 캡틴 치킨' 레시피는 1849년 출간된 서적에서 인용된 것인데 현대 커리 레시피와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양파를 채 썰어 버터에 갈색이 될 때 까지 볶다가 잘게 썬 닭고기와 소금, 커리 가루를 뿌리고 볶은 후 수프를 부어 끓이면 됩니다.

상세한 설명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아요. '탄두리 치킨'이 파키스탄 난민 쿤단 랄 구즈랄에 의해 만들어진지 고작 70여년 밖에 되지 않은 레시피라는 것입니다! 버터 치킨 역시 쿤단 랄 구즈랄이 만들었다니 그리 오래 된 요리가 아닌건 마찬가지고요. 탄두리 화덕의 역사와 함께 하는 오래된 레시피라 생각했는데 의외였어요.

마지막에 수록된, 주영하 님이 쓴 한국 커리의 역사도 자료적 가치가 무척 높습니다. 일본인들에 의해 20세기 초반 전파된 후, 1930년대 이후는 일반화되었고 해방 이후 1960~70년대에는 이미 직장인들의 주된 점심 메뉴로 자리잡았으며, 같은 시기에 인스턴트 카레가 발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과정이 도판과 함께 충실히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지구사" 시리즈다운 판형과 디자인도 마음에 들며, 풀 컬러로 수록된 도판과 각종 자료도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과연, 카레왕이 추천할 만 합니다. 카레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카레라이스의 모험 - 모리에다 다카시 / 박성민 : 별점 3점

2020/01/12

중국요리 백과사전 - 신디킴, 임선영 : 별점 2.5점

중국요리 백과사전 - 6점
신디킴.임선영 지음/상상출판

부제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진짜 중국 음식'으로, 중국요리의 정석이라고 하는 8대 요리 - 루차이 (산둥요리), 촨차이 (쓰촨요리), 웨차이 (광둥요리), 쑤차이 (장쑤요리), 저차이 (저장요리), 민차이 (푸젠요리), 샹차이 (후난요리), 후이차이 (후이저우요리) -와 기타 지역별으로 대 분류를 나눈 뒤, 각 분류별 주요 요리를 3~4페이지씩 할애하여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90개가 넘는 요리에 여러가지 기타 정보가 방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각 요리별 소개는 말씀드린대로 3~4 페이지 분량에 불과해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주로 그 맛과 유래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어서 불필요한 설명도 별로 없고요.
또 8대 요리에 대한 설명이 요리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루차이, 즉 산둥 요리의 핵심은 육수로 "군인의 창, 요리사의 탕"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쓰촨의 매운 맛은 화자오와 고추가 조화된 '마라'의 맛이며, 광둥 요리는 제철 음식과 식재료의 궁합을 중하게 생각한다. 장쑤 화이양 요리에서는 칼을 절묘하게 쓰는 요리가 많다. 저장 요리는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식입니다.

'딤섬'을 소개하며 그 종류 - 빠오, 자오, 까오, 펀, 퇀, 쑤 등 - 를 알려주는 것처럼 음식의 종류는 물론, 중국 4대 민물고기는 '황하의 잉어, 송강의 농어, 흥개호의 대백어, 송화강의 쏘가리'이며 저장 요리의 3대 보물은 '룽징차, 사오싱 황주, 진화햄'이라는 등 재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샤오롱빠오는 워낙에 존엄하기에 초간장에 적신 생강채를 만두에 가져가는게 원칙이라는 식문화 관련 내용 등 관련되어 소개되는 정보가 실로 깊고 범위 또한 넓으며, 처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배추의 탄생이 천여년 전 중국 장강 이남에서 즐겨 먹던 채소 숭차이가 북방에 전해졌는데, 추운 날씨에서 잘 자라지 않자 북방에서도 잘 자라는 순무 우징과 교배시킨게 유래라는 이야기 등이 그러합니다.
전세계에 퍼진 화교의 요리가 주로 푸젠과 광둥 요리인 이유도 그럴듯 했어요. 중원지역 한족들이 청나라의 침략 때문에 푸젠 지방으로 피난을 간 뒤, 난징조약으로 홍콩이 개방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간게 계기라고 하네요. 나가사키 짬뽕을 만들어 낸 천핑순도 푸젠 사람이었죠.

오래된 문헌과 자료에만 의지하는게 아니라 최신 정보에 기반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쓰촨요리 푸치페이펜이 '2017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올해의 애피타이저 상을 수상하였는데, 영문이름은 Mr and Mrs Smith였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푸치는 부부, 페이펜은 허파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허파가 아니라 여러가지 소 내장을 재료로 쓴다는군요. 데친 뒤 썰어낸 소 내장을 고추기름, 화자오, 깨, 참기름, 간장 등으로 양념하는 요리라는데 차가운 곱창볶음 비슷해 보입니다.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상세하지는 않지만 대략의 맛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수준의 레시피가 수록된 것도 마음에 듭니다. 불과 웍을 자유자재로 다루어야 하는 요리들이 많아서 집에서 해 먹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건 아쉽지만요. 이 중에서는 국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레시피들이 인상적입니다. 대표적인게 궈바오러우에요. 우리나라에 알려진 '찹쌀 탕수육'이라는 명칭과는 다르게 찹쌀은 중요하지 않고, Double Cooked Pork Slices라는 영어 이름처럼 두 번 나누어 튀기는게 핵심이라는군요. 1차로 고기를 약불에 오래 튀겨 익히고, 2차로 센 불에 빠르게 퀴겨 색을 입히는게 비결이라나요.

이렇게 많은 요리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먹고 싶었던걸 한 가지 꼽으라면 당나귀 고기 화덕 빵 샌드위치인 뤼러우훠사오를 꼽겠습니다. '천상에는 용 고기, 지상에는 당나귀 고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당나귀 고기를 육식 중 최고로 꼽는다니 그 맛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죠. 고기를 12시간 정도 끓여내는 동안 맛을 살리기 위해 제가 질색하는 중국 향신료도 거의 쓰지 않는다니 왠지 제 입맛에 딱 맞을 것 같고요. 당 현종이 제위 전 허베이성 허지엔에 들어 이 음식을 먹고 갔다는 등 유서까지 깊으니 호기심이 무척 동합니다.

또 이미 접했었던 요리가 소개되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유명하기 그지없는 동파육, 궁바오지딩, 마파두부, 샤오롱빠오, 훠궈, 탄탄멘 등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일테고, 그 외에도 국내에서 체인점으로 접했던 '꺼우부리빠오주 (구불리 만두)', 남경 출장 때 접했었던 차가운 오리 요리 '옌수이야', 옛날 구로동 중국인 거리에서 처음 먹어보았던 맵디 매웠던 닭볶음 '라즈지' 등은 나름대로 추억도 떠오르고, 그 맛도 떠올라서 읽는 내내 무척이나 흐뭇했거든요.

그러나 단점도 여럿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별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로 선정되어 소개되는 요리들이 무슨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겁니다. 단지 저자가 알고 있는 요리라서 소개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해당 지역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인지를 알 수 있는 근거가 전혀 등장하지 않아요. 북경 오리는 물론 거지닭, 불도장, 빠바오판, 딤섬, 동파육, 띠산센, 마라롱샤, 마라탕, 마파두부 등 몇몇 요리들은 그 유명세가 익히 국내에도 알려져 소개가 납득이 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요리들은 왜 그게 대표 요리인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연길 냉면이 여기 수록될 정도의 중국요리라는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연길 냉면이 중국 10대 면 요리에 선정되었다는게 이유라면, 다른 10대 면 요리는 왜 다 소개하지 않는지 그 이유도 불명확하고요. 심지어 마카오 에그타르트가 소개되다니,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네요.

또 중국 발음과 중국어 한자를 그대로 쓴 표기 방식은 정말이지 최악입니다. 발음이야 그렇다쳐도 원래 이름을 간체가 아닌 일반 한자체로 표시해주었다면 그래도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으로서는 초보자 수준의 짐작에 그칠 뿐이라 답답했거든요. 레시피도 가지된장볶음 장체즈 항목에서처럼 '집에서 따라할 수 있다', '오늘 당장 해 먹어 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정확한 분량과 그 방법을 소개하지 않은 건 좀 짜증이 나더라고요. 실제로 소개 자체가 간단해 보여서 양념 분량만 정확하게 알려주었더라면 도전해 보았을텐데 말이죠. 그 밖에도, 대분류별로 분량이 일정치 않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도판도 좋고 내용도 재미있지만 자료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조금 부족해 보여서 감점합니다. 재판이 나온다면 분류와 요리 선정에 있어서 학술적인 근거가 좀 더 뒷받침된다면 좋겠습니다.

2020/04/12

밀크의 지구사 - 해나 벨튼 / 강경이 : 별점 2.5점

밀크의 지구사 - 6점
해나 벨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oo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책이 워낙 예뻐서 눈에 뜨이는 대로 한 권씩 구입해 두기는 했는데, 처음에 읽었던 몇 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카레왕의 추천으로 읽은 "커리의 지구사"가 아주 좋아서, 나머지도 계속 읽어볼까 하여 집어들게 되었네요.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처럼 밀크, 즉 우유가 우리 식문화에 자리잡은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일 첫 단락은 왜 인류가 동물의 젖을 먹어야 했으며, 언제부터 젖을 먹기 시작했는지입니다. 동물의 젖을 먹게 된 이유는, 가축을 키우면 그 젖을 식량으로 쓰는건 타당한 이치라고 설명됩니다. 쥐와 고양이, 돼지 젖을 먹지 않은 이유는 먹을 만큼 젖을 짜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고요.
이후 알려주는건 인류가 언제부터, 어디서 우유를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최근 연구결과로는 기원전 7,000년 또는 그 이전에 현재의 터키 지역 쪽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 각종 문명, 문화권에서 젖을 어떻게 짜서 먹었는지 등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각 문화권에 있었던 독특한 레시피, 유제품에 대해서도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우유를 끓여먹으면 소화하기가 훨씬 숴워져서 고대 인도에서는 뭉근하게 끓인 뒤 강황가루나 후춧가루, 계피 조각, 생강 가루를 넣어서 먹었다는군요. 몽골의 말젖 발효주 아이락 만드는 법, 베두인의 낙타젖은 물과 1대 3의 비율로 희석하면 맛이 좋다는 대 플리니우스의 레시피 등도 수록되어 있고요.
참고로 동물의 젖을 요리의 재료로 쓴 역사도 당연히 오래 되었습니다. 기원전 1750년 경 바빌로니아 설형 문자 기록에 따르면 밀크나 신 밀크를 새끼 염소 스튜 등에 사용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고기와 밀크를 함께 먹지 않았습니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된다는 이유라는데, 나름 타당하네요. 이러한 고대 문명에서의 우유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고대 로마까지 이어집니다. 여기까지가 서두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뒤에서부터는 근대 이후부터의 시기가 핵심으로 다루어집니다. 우유 수요가 증가하여 현대적인 우유 산업이 생성된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기 위함이지요. 우선 17세기 이후부터 시골 동네에서 우유를 꾸준히 먹고, 도시에서도 우유 수요가 증가하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이는 인구 증가와 시장 활성화 덕분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우유 시장이 커진 19세기의 우유는 위험한 식품이었다고 하네요. 지저분한 낙농장에서 비위생적인 운송 과정을 거쳐 냉장도 하지 않은 채 저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유의 양을 늘리고 색깔, 맛, 향을 위해 온갖 첨가물을 넣어 더욱 위험했어요. 이후 19세기 후반 저온 살균법이 보균되면서 겨우 현대적인 우유 보급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우유 시장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듭니다. 탄산음료 시장이 성장했고, 우유가 사실은 해롭다는 이야기도 계속 확산된 탓이지요. 우유의 유해성에 대한 담론은 우유가 여러가지 처리 과정을 거치기에 불거진 이야기로, 처리 전의 생유를 마시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긴 하나 당장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군요. 여기서 "은수저"에서 하치겐이 생유를 먹고 맛있음에 전율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우유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야쿠르트, 밀크티 등 각종 음료 시장도 성장하고 있지만 낙농업은 환경에 문제를 일으키므로 우유 소비를 줄이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흔하게 먹는 우유 한 잔에 얼마나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고민이 담겨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네요. 앞으로의 고민까지 말이죠.

뒤에는 언제나처럼 부록으로 주영하가 쓴 한국에서의 우유 문화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놀랐던 점은, 한국 우유 산업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11년에 이미 생산과 판매 모두 법령으로 확립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본 열도의 우유업이 한반도에 그대로 투입되었기 때문이죠. 일본에 우유 산업이 발전한건 일찌기 산업화된 유럽과 미국의 우유 기술을 도입하여 홋카이도 개척 당시 낙농 사업을 펼쳤으며, 19세기 후반에 서구화를 위한 서구 추종 분위기에 육식과 함께 편승한 탓이었고요. 심지어 조선총독부에서 젖소를 직접 도입할 정도로 우유 공급을 권장했다고 합니다. 조선 국민들을 전쟁에 써먹기 위한 육체 개조 목적이었지요. 하여튼 이렇게 근대적인 우유 산업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확립되었습니다. 지금의 서울우유협동조합부터가 1937년 경성우유동업조합으로 시작했다고 하니까요. 우유에 대한 식문화 만큼은 다른 서방 선진국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유 소비량은 1997년 이후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의 이유와 마찬가지겠죠. 젊은 층 인구 감소를 보면, 앞으로는 더 줄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애초에 근대화, 서구화를 위해 도입되었다는 목적을 돌이켜 보면, 이미 서구 문화권과 다름없는 현재 시점에서 우유 소비량이 더 증가한다는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뒤 마지막은 우유에 대한 몇 가지 레시피가 실려있는데 수 페이지에 불과하고, 내용도 별다를건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유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대단한 깊이는 없지만, 가볍게 읽기도 좋았고요. 충실한 도판과 함께 해당 음식의 역사에 대해 한 번 훝어준다는 이 시리즈 컨셉에 충실하거든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0/02/23

그때, 맥주가 있었다 -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넨 / 이상원.장혜경 : 별점 2.5점

그때, 맥주가 있었다 - 6점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넨 지음, 이상원.장혜경 옮김/니케북스

유럽의 기나긴 역사에서 맥주가 중요한 대목을 장식했던 이야기들을 선별하여 소개해 주는 독특한 미시사, 음식사, 문화사 서적입니다. 역사 속 맥주가 관련된 특정한 사건을 수 페이지 정도 소개한 뒤, 해당 사건과 관련된 현대의 맥주를 마지막에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된 스물 네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취지에 걸맞는 내용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연히 맥주 때문에 역사의 흐름이 바뀐 이야기는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어떤 한 장면에서 맥주가 멋지게 등장하거나 활용된 정도를 기대한 정도이지요. 그러나 절반 이상의 이야기가 그렇지 못합니다. 단순히 유럽의 특정 역사를 소개하면서 '그 때는 아마 맥주를 마셨을거다' 정도에 그치는 탓입니다. 

물론 추정 자체는 꽤 그럴싸 합니다. 문제는 사료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조금 맥주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야기들은 단지 등장인물들이 맥주에 관련된 직업에 종사했거나, 맥주 회사가 관련되어 있는 정도에 그치고요. 예를 들자면 난센의 북극 탐험은 단지 링그네스 양조장에서 탐험 비용을 후원했을 뿐입니다. 히틀러가 맥주집에서 바이에른 정부를 실각시키고 제국 정부를 수립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역사를 맥주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건 억지고요. 옥스퍼드 대학 문인들이 펍에서 열리는 문학 클럽에 참석하다가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 등을 발표하게 되었다는 것 역시 장소가 펍일 뿐입니다. 딱히 맥주와 관련이 있지는 않아요.
바이마르 공화국의 외무 장관 역할을 멋지게 수행했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의 이야기나 체코 대통령 하벨의 이야기는, 그 둘이 술집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는게 전부입니다.

그래도 맥주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들도 많고 시기적으로는 수도원에서 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했을 때 부터 현대까지, 장소로는 유럽 전역을 무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그 폭은 상당히 넓고 방대합니다. 덕분에 재미있는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들이 적지는 않은 편이에요. 

맥주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부터 살펴보자면, 30년 전쟁 당시, 목마른 스웨덴 왕 구스타브 아돌프가 농부로부터 맥주를 대접받은 후 커다란 루비가 박힌 금반지를 답례로 선사하고, 브라이텐펠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일화는 명백히 맥주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료로 증명되지는 않은 전설급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전설 후에도 해당 지역에서는 계속 맥주를 만들어 왔으며, 지금의 크로스티츠 양조장은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양조 시설 중 한 곳으로 대표작인 '파인헤르베스 필스너'는 라벨에 구스타브 아돌프의 초상화를 담아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400년 이상 된 전설 속 맥주라니 마케팅으로는 더할 나위 없네요.
1836년, 유럽 대륙 첫 철도 운송 화물이 뉘른베르크 레데러 양조장에서 퓌르트로 보낸 맥주 두 통이었다는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레데러는 현재도 독일 리데베르거 그룹의 계열사로 '레데러 프리미엄 필스'를 계속 출시하고 있답니다.
파스퇴르가 맥주 양조 분야에서 독일을 물리치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맥주가 중심입니다. 영국 위트브레드 양조장과 협력하여 최적의 열처리 온도가 섭씨 50~55도라는걸 알아내는 등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맥주에 관한 연구"라는 유럽 맥주 양조인의 경전과도 같은 책을 출간했다는 내용이니까요. 그런데 그의 맥주 실험의 가장 큰 수혜자는 프랑스가 아니라 코펜하겐의 칼스버그 양조장이라는게 재미있네요. 결국 칼스버그에서 파스퇴르의 꿈이었던 미생물없는 라거 맥주 효모 배양에 성공했다니 진짜 후계자인 셈입니다.

처음 알게 된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오줌싸게 소년 동상의 모델은 브라반트 공국의 수장인 어린 고드프리 3세로, 당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어린 나이로 출정했을 때 반란군을 향해 오줌을 싼 게 유래라는 설이 대표적입니다. 이 때, 유모가 맥주를 마시고 수유를 했거나 아니면 실제로 맥주를 마셔서 요의를 느꼈을 거라고 설명하는건 좀 억지스러웠지만, 나름 재미있었어요. 함께 알려주는 브라반트 공국의 중심지 브뤼셀의 전통있는 맥주 '램빅'도 아주 입맛을, 아니 흥미를 돋구고요.
스웨덴의 미식가 전쟁 영웅 요한 아우구스트 산델스 역시 이전에는 알지 못했었던 인물입니다. 1808년, 스웨덴과 러시아가 핀란드에서 벌였던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입니다. 다만 소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맥주 관련된 일화는 없습니다. 러시아 군 보급품을 털었을 때, 맥주도 함께 털었을거라고 추정하는게 전부죠. 그래도 지금 '산델스'라는 이름의 맥주가 산델스가 활약했던 핀란드 양조장 올비에서 양조되어 판매된다니 한 번 마셔보고 싶네요.

근현대사로 넘어오면서는 재미가 덜하지만, 1935년 투르 드 프랑스 경주에서 맥주 탓에 벌어진 순위 변경이라던가, 이탈리아 경제 성장기에 함께 발전한 페로니 맥주의 마케팅 전략, 아일랜드가 무섭게 성장하다가 리먼 사태 등으로 휘청일 당시, 카우언 총리의 기네스 맥주 사랑 등은 기억에 남네요. 특히 폴란드의 맥주 애호가 정당 이야기는 온갖 정당이 창궐하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연상케 해서 제일 인상적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기획 의도대로 완벽하게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알게된 이야기들이 많기도 하고, 저자들의 글 솜씨도 유쾌하기 때문이죠. 맥주 한 잔 하면서 읽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하는 맥주 리스트를 인용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파는 맥주는 한 개 씩 구입해서 마셔볼 예정입니다.

  1. 생 푀이엥 트리플 St-Feuillien Triple 벨기에 
  2. 칸티용 괴즈 100% 램빅 바이오 Cantillon Gueuze 100% Lambic Bio 브뤼셀 (벨기에)
  3. 아인베커 우어 보크 둔켈 Einbecker Ur-Bock Dunkel 아인베크 (독일) 
  4. 린데만스 파로 Lindemans Faro 블렌제비트 (벨기에)
  5. 우어 크로스티처 파인헤르베스 필스너 Ur-Krostitzer Feinherbes Pilsner 크로스티츠 (독일)
  6. 발티카 No.6 포터 Baltika No.6 Porter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7. A. 르꼬끄 포터 A. Le Coq Porter 타르투 (에스토니아)
  8. 올비 산델스 Olvi Sandels 이살미 (핀란드)
  9. 레데러 프리미엄 필스 Lederer Premium Pils 뉘른베르크 (독일)
  10. 위트브레드 베스트 비터 Whitbread Best Bitter 웨일스의 마고 (영국)
  11. 칼스버그 Carlsberg 코펜하겐 (덴마크)
  12. 링그네스 임페리얼 폴라리스 Ringnes Imperial Polaris 오슬로 (노르웨이)
  13. 그랭 도르주 뀌베 1898 Grain d'Orge Cubee 1898 릴 (프랑스)
  14. 레벤브로이 오리지널 Lowenbrau Original 뮌헨 (독일)
  15. 베를리너 킨들 바이세 Berliner Kindl Weisse 베를린 (독일)
  16. 크로넨버그 1664 Kronenbourg 1664 오베르네 (프랑스)
  17. 그래비타스 Gravitas 브릴 (영국)
  18. 스핏파이어 프리미엄 켄티시 에일 Spitfire Premium Kentish Ale 파버샴 (영국)
  19. 페로니 나스트라즈로 Peroni Nastro Azzurro 로마 (이탈리아)
  20. 크라코노시 스베틀리 레작 Krakonos Svetly Lezak 트루트노프 (체코)
  21. 지비에츠 Zywiec 지비에츠 (폴란드)
  22. 사라예브스코 피보 Sarajevsko Pivo 사라예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23. 기네스 드래프트 Guineness Draught 더블린 (아일랜드)
  24. 하이네켄 Heineken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17/12/09

페퍼로드 - 야마모토 노리오 / 최용우 : 별점 3점

고추의 발상지에서 시작하여, 고추가 전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을 그린 음식사, 문화사, 미시사 서적입니다.

농학 박사이자 민족, 민속학자로 화려한 이력을 지닌 저자가 직접 발로 뛰고 조사한 정보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용이 굉장히 충실하고 신뢰가 갑니다. 고추가 자생종에서 처음 재배종으로 바뀌게 된 남미에서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저자의 젊은 시절 박사 논문을 읽기 쉽도록 재구성했다고 하는데, 수록된 사진과 분포도 등의 도판만으로도 박사 학위는 충분히 딸만 하다 생각될 정도에요.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고추가 매운맛을 지니게 된 이유는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새는 고추를 좋아한다고 하네요. 씨앗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선택적으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랍니다.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고추는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식물로 기원전 8,000~9,000년 경부터 이용되기 시작하여 수천 년에 걸쳐 재배화되었습니다. 이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하여 후추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16세기 중반 무렵에는 스페인 곳곳에서도 재배가 시작되죠. 매운맛은 이런저런 편견을 불러일으켜 유럽 전역으로 퍼지지는 못했지만, 이탈리아 등에서는 널리 퍼지게 됩니다. 흔히 들어본 "페페론치노"가 바로 고추라는 뜻이죠.
또 고추의 하나인 파프리카는 헝가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헝가리에는 맛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는데, 이후 오스만 제국을 거쳐 식용 고추가 유입됩니다. 헝가리에서 고추를 "터키 후추"라고 부르는 게 가장 큰 증거죠. 그 후 덜 매운 고추를 선별해가는 과정을 거쳐 파프리카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파프리카는 1937년 얼베르트 센트죄르지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센트죄르지는 비타민 C를 연구하기 위해 이를 분리해내야 했지만, 감귤류에서 분리하는 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답보상태였는데, 우연히 저녁 식사로 올라온 파프리카를 실험한 결과로 다량의 비타민 C를 분리하는데 분리하여 성공하게 되었다고 하거든요. 수많은 국경과 시대를 넘어 대단한 결과를 가져온 멋진 이야기입니다.

이후 노예제 때문에 아프리카로 전해지는 과정, 대항해 시대를 거쳐 인도로 전해지는 등 세계화되는 과정 모두가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당연히 한, 중, 일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의 전래도 상세하고요. 여기서 몇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매운 요리로 유명한 사천 지방에서도 고추를 이용한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라는 점, 한국에서도 18세기나 되어서야 김치에 고추를 사용한다는 기술이 등장한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추는 중국에서 전래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전래하였을지 모른다는 것도 흥미로웠으며, 또 일본에서 왜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고추를 많이 먹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기 요리를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많이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거든요. 빨간색과 매운맛을 통한 일종의 '벽사 신앙'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이렇게 고추의 역사와 그 전파 과정, 그리고 나라별 특징 등을 모두 아우르는 고추의 집대성 같은 책입니다. 재배화 과정에 대한 내용은 조금 지루하고, 나라별 전파 과정과 레시피를 보다 상세하게 실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재미와 가치 모두 높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고추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당장 읽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