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ng.egloos.com 의 이사한 곳입니다. 2021년 1월, 추리소설 리뷰 1000편 돌파했습니다. 이제 2000편에 도전해 봅니다. 언제쯤 가능할지....
2023/01/15
한밤의 지하철 공포미스테리 걸작선 - 정태원 편역 : 별점 2점
고 정태원 님께서 편역한 앤솔러지입니다. 서두에서는 공포를 다룬 미스테리 작품을 모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다 그런건 아닙니다. 공포 보다는 서늘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기묘한 맛'에 더 가깝다거나, 아예 블랙 코미디스러운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는 탓입니다. 질 드레'를 '지르도 레'처럼 번역한걸보면 일본어 판본을 번역한 듯 하며, 그런걸 보면 정식 허가를 받고 출간된 책은 아닐 것으로 여겨지네요.
그래도 유명한 추리 소설 전문가 정태원 님이 편역한 책 답게, 작품별 작가 소개와 작품들의 출처를 대체로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다는건 좋았습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작품들이 고루 포함된 점도 장점이고요. 수록작 13편 중 눈여겨 볼 만한 좋은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아내가 불륜 상대와 자살한 뒤, 홀로 남은 아들을 외국에서 키우다가 아들이 이미 미쳐버렸다는걸 깨닫는 <<길고 어두운 겨울>>입니다. 아들을 말도 통하지 않는 베이비시터에게 맡겨두고, 일본에서 가져온 똑같은 동화책만 계속 읽는걸 방관했는데, 알고보니 동화책은 잘못 제본된 책이었고 아들은 동화책을 읽는게 아니었다는게 - 그냥 멍하니 같은 자세로 있었던 것 -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이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위한 빌드업도 탄탄하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였어요. 작가 소노 아야꼬는 경력을 보면 이런 장르물을 발표했을걸로 생각되지 않는 작가인데 다른 작품도 궁금해집니다.
아내가 낳은 딸을 없애기로 결심한 남자가 어두운 공간에서 마녀의 시체라며 토막난 무언가를 건네준다는 <<10월 게임>>도 등골 서늘한 결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레이 브래드버리 작품다왔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소 뻔했지만 <<오리 대신에>>, <<비만클럽>>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리 대신에>>는 짤막한 분량으로 깜짝 반전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비만클럽>>은 살찌워진 남편이 사람들에게 먹힐 때 일종의 특권으로 조리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데 '산채로 먹힘'을 선택한다는 발상이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내용의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기묘한 맛' 쇼트쇼트로는 우수한 편입니다.
조숙하고 다소 정신나간 아이가 어른을 없앤다는 설정의 <<식용 거북이>>와 <<살인유전>>은 각각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빼어난 묘사력, 스탠리 엘린의 반전 구성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식용 거북이>>는 예상 가능했다는 점에서, <<살인유전>>은 서사를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있으나 평균 수준은 됩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앤솔러지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들이 문제라 생각됩니다. '공포'를 다룬 장르물에 적합한건 사실입니다만, <<피의 책>>이라는 작가의 단편집에 이미 수록된 작품들을 그대로 수록해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는 기쁨은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최소한 여러 단편집에서 대표작만 엄선하여 수록했어야 했는데, <<피의 책>> 수록작 중에서 최고의 작품들인지도 솔직히 미심쩍었습니다. <<한밤의 지하철>>은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이라는 영화로 재탄생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으로 기승전결은 확실하고 화끈하게 달려주는 괜찮은 작품이라 예외로 치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거인을 만들고 자멸한다는 <<언덕에 마을이>>와 암세포가 사악한 크리쳐로 변해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영화관의 악령>>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기괴한 상상력 외에는 건질게 없었으니까요. 결과물도 재미보다는 혐오쪽에 가까왔습니다. <<영화관의 악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형과 사투를 잔혹한 묘사로 버무린게 전부라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신 투명인간>>은 존 딕슨 카의 정통 추리물로 작품 수준을 떠나 왜 이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러물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작품인데 말이지요. 추리적으로도 영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전에는 평균 이상이라 호평했었는데, 번역의 문제였을까요?
<<아내 살인 되돌리기>>, <<살고 싶어했던 여자>>는 양산형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로 많이 흔해빠진 설정과 전개를 보여주는데다가 별로 무섭지 않은 등 감점 요소가 많았습니다. <<두 병의 소오스>>는 걸작이라는건 분명하나 이 앤솔러지에서는 빼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네요. 워낙에 많은 이런저런 앤솔러지에 수록된만큼 신선함도 떨어질 뿐더러, 공포와는 좀 거리가 있는 '기묘한 맛'에 가까운 작품이니까요.
그래서 전체적인 별점은 2점입니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정식 출간된 좋은 앤솔러지가 많아진만큼, 다른 책을 구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어차피 절판된지 오래라 구해보시기도 힘드실거에요. 알라딘에서는 책 검색조차 되지 않는군요.
2014/02/27
반전 - 아이작 아시모프 외 / 박준형 : 별점 2.5점
지금은 절판된 앤솔러지입니다. 하우미스터리의 벼룩시장을 통해 구입하였습니다.
약 20여년 전 출간되었는데, 편저자가 여러 단편집을 읽은 뒤 멋진 반전이 있는 작품만 엄선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작권 개념은 없이 출간되었으리라 생각되는데, 모두 1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 노래하는 종
- 황금알을 낳는 거위
- 반중력 당구공
- 제왕
- 면책특권
- 완전한 죽음
제프리 아처
- 뉴욕에서의 하룻밤
- 구식 사랑
- 깨어진 습관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크리스티나 브랜드)
- 이 집에 축복 있으라
- 메리 고 라운드
- 너무나 선량한 남자
- 살인 게임
소개 작가의 면면만 보아도 화려하죠? 작품들도 반전을 테마로 한 앤솔러지답게 "기묘한 맛" 류의 작품들이 많은데 모두 기본 이상은 해 줍니다.
아시모프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국작가의 작품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극히 영국적인 사고방식(지나칠 정도의 계급의식과 체면치레)이 작품에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도 독특했어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미 다른 앤솔러지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8편입니다... 결국 딱 5편만을 위해 구입한 셈이죠. 그런데 그 5편 중 가장 기대가 컸던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크리스티나 브랜드)의 작품 4편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수록작들의 가치만 놓고 보면 별점 3점 이상은 충분하겠지만, 읽지 않은 5편만의 평균 별점은 2.3점.. 조금 올려도 2.5점밖에는 못 주겠네요. 어렵게 구한 고서당 류 책인데,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덧붙이자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는데 선정된 단편이 모두 가장 우수하고 뛰어난 반전을 가진 작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프레데릭 포사이스, 제프리 아처의 작품은 작품의 수준을 떠나 반전만 놓고보면 여기 수록작보다 뛰어난 작품이 많거든요.
때문에 혹 관심있으신 분들께는 여기 수록된 작품들이 전부 수록된 작가별 단편집 쪽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이 책이나 원래 단편집이나 절판된 것은 마찬가지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니까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이미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했던 유명 단편.
"달과 지구의 중력 차이는 몸이 기억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는 과학 상식에 바탕을 둔 추리가 돋보이는 SF 추리물입니다. 1954년에 발표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에요.
또 외계환경공학자이지만 우주선도 타지 못하는 천재인 웬델 어스 박사 캐릭터가 인상적이라 찾아보니 역시나 시리즈가 있더군요! 다른 웬델 어스 시리즈도 읽고 싶은데 과연 언제나 가능할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시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읽었었던 작품.
그런데 반전은 없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대한 과학적인 고찰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단편집 성격과는 거리가 멉니다. 별로 재미있게 느껴지지도 않았고요. 어려운 과학 이론을 소설처럼 쉽게 쓰는 작가의 능력은 잘 보여주지만, 보편적으로 인기를 끌 작품은 아닙니다.
"반중력 당구공"
프리스와 브룸이라는 앙숙이 등장하여 "반중력"을 구현하는 쇼장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작품. 반중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 뛰어나고 그곳에 들어간 당구공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설득력이 넘칩니다.
무엇보다도 반전이 앤솔러지 취지에 부합할만큼 괜찮아서 마음에 드네요. 결국 브룸의 거의 모든것을 차지하게 된 프리스 박사의 순간적 기지가 그것인데 과학적일 뿐더러 복선에도 충실하고 나름 여운도 남기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프레데릭 포사이스 작품들"
단편집 "마지막 에이스"를 통해 접했던 작품들. "황홀한 죽음"이 "완전한 죽음"으로 제목이 바뀐 것 말고는 동일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에이스"에 수록된 작품들 중 최고작은 아니라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제왕"만큼은 다시 읽어보니 11년전에 읽었을 때와 다르게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당시는 제가 결혼 전이고 지금은 결혼 후이기 때문이겠죠. 왠지 저도 모리셔스로 떠나고 싶어집니다.
"제프리 아처 작품들"
역시나 단편집 "포기하기 힘든 유혹"을 통해 접했던 작품들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작품이 실려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구식 사랑"에는 반전은 등장하지도 않고요. 여기 수록된 작품들보다는 "포기하기 힘든 유혹"을 권해드립니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크리스티나 브랜드)"
"이 집에 축복 있으라"
자기 집에 어느날 찾아온 부부, 그리고 그날 밤 낳은 부부의 아들이 "예수"라고 확신하는 노부인에 대한 이야기. 평범한 일상 속 광기와 광기가 충돌한다는 설정의 "기묘한 맛" 류 단편으로 서늘한 느낌은 확실히 전해줍니다.
그러나 죠셉, 마를린 부부의 사고방식은 좀 이해가 안되네요. 메이스 부인과 본 부인을 처치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요? 단지 시점의 문제지... 아기가 있다고 집을 얻기 힘들다는 것도 너무 오버가 심한 것 같고 말이죠.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메리 고 라운드"
포르노 사진을 둘러싼 스캔들과 살인을 다룬 작품. 협박자가 협박하던 재료 (포르노 사진)가 협박자를 살해한 범인을 통해 다시 협박에 사용된다는, 약간 윤회와 같은 구성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부모들의 범죄를 알고 있었다라는 결말은 좀 약했어요. "그때문에 언젠가 이득을 볼지도 모른다"라는 구절을 조금 더 강조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냥저냥한 평작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너무나 선량한 남자"
기묘한 정신병을 가진 남자를 그린 짤막한 소품.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병적, 범죄적으로 비튼 작품이랄까요? 솔직히 이해도 잘 안되고 공감도 안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
"살인 게임"
범죄자와 범죄 피해자의 아이들을 돌봐온 인격자 재미니 변호사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수수께끼와 같은 절규 -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사라졌어! 긴 팔!" - 를 남겼다. 곧바로 출동한 경찰은 방문이 잠긴 재미니의 5층 사무실에서 그의 시체를 발견했다. 창문은 막 깨진 듯 흔들리고, 칼에 찔린 상처에서는 아직 피가 나고 있었지만 범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뒤이어 비슷한 전화를 남긴 경찰 한 명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어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지게 되는데...
기묘한 밀실트릭이 등장하는 본격물. 초, 중반부에 유력한 용의자를 한명씩 등장시킨 뒤, 용의자가 가능했을 범죄의 방식을 논하는 문답식 전개 방식이 독특했습니다. 한니발 렉터를 연상케하는 탐정역의 노인도 인상적이었고요. 마무리에서 노인이 쟈일스의 할아버지일 것이라는 여운을 짙게 남기는 것도 작위적이기는 하나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쳤다 보기 어렵습니다. 트릭이 너무 별로이기 때문이죠. 우선, 전화 목소리가 피해자를 가장한 범인의 목소리였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반칙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경찰들이 같이 출동한 동료가 누구인지 몰랐을거라 단정하는건 경찰을 너무 물로 보는 느낌이고요. 작위적이고 우연에 의지한 전개(갑작스러운 비에 레인코트를 입지 않은 것을 목격하고 알리바이에 이용한다던가)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작가의 이름값이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많이 처지는데,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라는 명성은 장편에서만 유효한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2006/12/05
추리특급 - 엘러리 퀸 엮음 / 정성호 : 별점 2점
| 추리특급 앨러리 퀸 엮음, 정성호 옮김/제삼기획 |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단편 중 추리적 요소가 강한 것들만 모아서 엮은 앤솔러지입니다.
기획의도는 좋습니다. 순문학가들이 미스터리 단편을 발표 했다는 것도 나름 의의가 있는 일이고 그러한 풍토는 사실 부러운 일이기도 하니까요. 작품들도 나름 재미있고 괜찮은 수준들이고, 작가들도 시대별로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으며, 작품들마다 새로운 요소들이 많아 신선한 느낌도 많이 전해 줍니다.
그러나 제목 만큼의 "추리" 요소가 있는 작품은 딱 한편뿐 이라는 것 뿐이라는 문제는 큽니다
추리의 범주는 전형적인 고전적 트릭물에서부터 "범죄"에 관련된 묘사가 등장하는 것까지 굉장히 그 폭이 넓습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요. 그렇기에 이 작품들이 추리소설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엘러리 퀸이 선정했다고 해서 "광의"의 미스터리보다는 "협의"의 미스터리, 즉 정통 추리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들이 실려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솔직히 다른 작가들이 썼다면 너무 겉멋만 부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묘사에만 집착하고, 애매한 상황 설정으로 끝나는 작품들이 대부분일 뿐더러 거진 다 소품 성격이 강해서 영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윌리엄 포크너의 "칵테일의 비밀"은 정통 추리물이라고 할만 하더군요. 이 작품이 이 앤솔러지의 베스트라 할 수 있고, 싱클레어 루이스의 "완전한 변신"도 나름 추리적 성향이 강해서 추천할 만 합니다. 그 외에는 추리적인 요소를 조금이라도 기대하고 본다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들입니다. 그냥 이런 저런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군을 한번쯤 스쳐지나간 것으로 위안 삼아야겠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완전한 변신 - 싱클레어 루이스
뛰어난 배우이자 유능한 은행원인 제스퍼 홀트는 1년간 은둔자 쌍동이 형 존으로 위장한 이중생활을 계속하며 은행에서 돈을 빼돌리고 자기 자신을 지워버릴 계획을 세운다.
초중반까지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몫 단단히 잡은 뒤 자기 자신을 지워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여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흔하지만 이 작품은 그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그리고 설득력있게 표현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막판에 심리적으로 주인공이 붕괴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허무해서 결말이 그다지 명쾌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추리물 성향이 가장 짙은 작품 중 하나이긴 합니다.
칵테일의 비밀 - 윌리엄 포크너
떠돌이 조엘 플린트는 마을의 은둔자같은 프리첼 영감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마을에 정착하지만 2년 뒤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고 자수한다. 그러나 그가 곧바로 탈옥하여 종적을 감추고 프리첼 영감은 광기가 더 심해져 마을 사람들을 거부한채 지내다 결국 농장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결심을 하게 되는데...
이 앤솔러지 유일의 정통 추리물입니다. 중간중간 묘사가 장황하고 캐릭터를 심리 분석, 묘사하는 것이 지나치긴 하지만 범죄의 과정과 동기, 결말까지 매끄러운 작품입니다. 범인의 한순간의 실수로 사건이 들통나는 것은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약간 문제가 있지만 이 정도 사소한 문제는 덮어줄 수 있을 정도로 극 전개가 명쾌한 정통파 추리 단편입니다. 배경 설정과 등장인물이 약간 엉클 애브너 스타일이라는 것도 재미를 주는 요소였고요. 포크너라는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네요.
몸값 - 펄 벅
켄트는 아내 알린, 딸 베티와 아들 브루스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간다. 그러나 딸이 유괴되고 몸값을 요구하는 메모가 발견되면서 그는 악몽과도 같은 며칠을 보내게 된다.
유괴에 대한 이야기로 유괴된 아이의 가족, 특히 아버지에 대한 디테일하고 감수성이 넘치는 묘사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때문에 지옥과도 같은 상황에 대한 설득력은 강하지만 범죄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의 보여주는 것이 없습니다. 사건의 해결 역시 추리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멀고요. 범죄물에 가까운 소품이라 생각됩니다.
기적적인 복수 - 버나드 쇼
가족 사이에서 광인으로 취급받는 제노는 추기경으로 있는 아저씨의 부탁으로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기적 사건에 대해 조사해 줄 것을 요청받는다. 기적은 그 마을의 소문난 무신론자인 브림스턴 빌리가 마을 묘지에 매장당한 날 밤에 다른 모든 무덤이 강 건너편으로 옮겨간 사건. 즉 그와 같은 무신론자와 같은 땅에 누워있는 것을 거부한 묘지의 의지라는 것이었다.
버나드 쇼의 유머가 넘치는 소품입니다. 주인공 캐릭터의 성격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작품에서 표현된 것 처럼 광인에 가까운 인물이기에 더더욱 작품에 활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문제의 원인이기도 해서 약간 반칙같기도 하지만 마지막의 반전도 기가 막히네요. 단, 기적에 대한 묘사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유머와 재치 면에서 탁월한 작품이었습니다.
불과 그림자의 저주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음..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도 없는 너무나 짧은 꽁트로 청교도 병사들이 카톨릭 사제단을 학살한 날 밤에 벌어진 괴이한 복수극입니다. 뭐나 논하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짧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코르시카 섬의 악몽 - 버트란드 러셀
N교수의 친구인 나는 교수의 비서인 X양이 코르시카 섬에 여행갔다온 이후 그녀가 뭔가 깊은 고민에 휩싸인 것을 알고 N교수를 대신해서 코르시카 유력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장난스러운 작품입니다. 솔직히 버트란드 러셀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이 앤솔러지에 실리지도 못할 치졸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사건은 장황하고 허황되며 결말은 어처구니 없고 맥이 빠지는 그런 단편으로 작가 이름만 뺀다면 그냥 습작 수준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작품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유령의 숨결 - 루디야드 키플링
인도 제국에서 근무하는 임레이가 어느날 불가사의하게 실종된 이후 그의 방갈로에 스트릭랜드가 이사온다. 화자인 "나" 역시 사업차 방문했다가 그 방갈로에 같이 기거하게 되며 그 이후 방갈로에 나타나는 유령때문에 그곳을 떠날 결심을 하는데...
키플링의 전형적인 인도 제국을 무대로 한 작품으로 사건의 동기가 기발하긴 하지만 나머지는 그냥저냥인 작품이었습니다. 유령이 나타나 자기에게 일어난 범죄를 고발한다는 설정도 지금 읽기에는 좀 고리타분하기도 하고요.
이웃 - 존 갤스워디
이 작품도 굉장히 짧아서 줄거리를 요약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른 순간의 격정을 기록한 소품입니다.
살인 - 존 스타인벡
짐 무어는 유고슬라비아 여자인 젤카와 결혼한다. 그녀는 완벽한 주부이지만 짐은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수시로 바람을 피우러 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농장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듣게 되는데...
존 스타인벡은 사실 굉장한 작가죠. 그러한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이 의외일 정도로 마초적이고 유머러스한, 이색적인 작품입니다. 작가의 사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초적인 요소가 너무 심하게 드러났다 생각되어 굉장히 재미나게 읽긴 했지만 뭔가 뒷맛이 조금 씁쓸하기도 합니다.
2005/09/27
에드가상 수상 작품집 2 - 정태원 편역 : 별점 3점
![]() | 에드가상 수상작품집 2 - ![]() 정태원 엮음/명지사 |
아주 예전에 사긴 했지만 분실한 듯 해서 외근차 광화문에 나갔다가 우연찮게 들린 교보문고에서 발견, 구입한 책입니다. 예전에는 만원 이하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사니 만 오천원이나 되더라구요? 아까와라.... 다시 읽다보니 기억나는 작품이 너무 많아 더 돈이 아까왔습니다...
그러나 책 자체만 놓고보면, 역시나 충실합니다. 다만 트릭보다 드라마와 극적 구조에 더 비중과 가치를 두는 경향이 서서히 보이는, 고전 황금시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역활을 하는 작품들이 많더군요. 저같은 고전 퍼즐 트릭 본격 추리물 팬에게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이만한 수준의 단편을 한권에 모아놓은 앤솔러지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해로 비롯된 비극을 다룬 소품. 그닥 특이한 점은 없지만 서늘한 느낌이 드는 도회적인 분위기가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
로얄드 달의 "여주인"
아토다 다카시의 "나폴레옹 광"이 연상되는, 로얄드 달 특유의 기묘한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 이런저런 앤솔러지에 많이 수록되어 있는 걸작. 별점은 4점입니다.
존 더람의 "호랑이"
일종의 청소년 범죄극이라 할 수 있는데, 60년대 당시 미국 문화를 잘 대변하고 있는 점 외에는 별로더군요. 추리물로 보기도 좀 어렵고요. 에드가상을 어떻게 수상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에이브람 데이비슨의 "라호아 병영 사건"
과거 라호아 병영에서 있었던 사건을 추억하는 한 노인의 회고담. 좋은 소재에 내용도 흥미진진하나 반전이 예상 가능한 것이라 막판에 힘이 좀 달린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단편으로서의 미덕은 잘 살아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데이빗 엘리의 "요트 클럽"
스텐리 엘린 분위기도 좀 나는 서늘한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다른 앤솔러지에도 수록되어 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서늘한 반전을 위한 앞부분의 묘사가 좀 지루한 편입니다. 보다 짧게 줄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패트릭 퀜틴의 "운없는 남자"
그야말로 "미국적"인 느낌이 가득한, 아내를 죽이고 새 출발을 꿈꾸지만 계속해서 실패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반전도 제법 괜찮습니다.
로렌스 트리트의 "살인의 H"
정통 경찰 수사 - 형사물로 사건과 전개는 흥미진진한데 사건이 밝혀지는 것이 순전히 우연에만 의지하고 있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는데 트릭면에서 아쉬움을 주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셜리 잭슨의 "악의 가능성"
좋은 작품입니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에 인간의 잔인한 내면을 투영한 캐릭터가 압권으로 이 작품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 생각되네요. 시골마을이 배경인 잔잔한 소품으로 짧지만 인상적인, 단편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리스 데이브스의 "선택된 것"
일종의 범죄물인데 도저히 무슨 이야기인지... 한 남자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따라가는 과정같은 것은 루스 렌들의 "내눈에 비친 악마"와 비슷한데 내용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편입니다. 시점변화가 많은 독특한 스타일때문이긴 합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에드워드 D 호크의 "직사각형의 방"
불가능 미스테리의 대가 에드워드 D 호크의 불가능 미스테리가 아닌 심리물로 레오폴드 경감 시리즈입니다. 좀 썰렁하긴 하지만 인상적인 반전이 돋보이는 수작이죠. 단편의 대가다운 호흡 조절을 엿볼 수 있는, 짧지만 인상적인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워너 로우의 "세계를 속인 남자"
가상 역사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갱과 서머셋 모옴 등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여 좌충우돌하는 유머스러움이 잘 살아 있는 유쾌한 작품으로 마지막 반전까지 숨쉴틈 없는 재미를 가져다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니 고갱 작품이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별점은 4점입니다.
조 고어즈의 "잘 있거라 고향아"
드라마로 특이한 맛은 없습니다. 범죄물이긴 한데 에드가상을 탈 만한 이유를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M.F 브라운의 "리가 숲의 짐승은 더 난폭하다"
"몽환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정신사나운 이야기로 심리 묘사와 두서없는 내용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어수선한 작품. 60년대 히피문화의 하나인 "마약"에 의한 의식 흐름을 다룬 작품들과 유사한 스타일로 핵심 뼈대 자체는 날이 잘 서 있긴 합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04/03/30
오후 3시 까지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외 / 정태원 : 별점 3점
| 오후 3시까지 - |
그동안 좀 뜸했었네요. 너무나도 지독한 독감에 걸리고 회사일도 바쁜 나머지... 오랫만이니만큼, 예전에 구입했었지만 읽지 않고 쌓아 두었던 책들 중에서 읽기 쉬워보이는 단편집을 골라 보았습니다.
이 책은 알프레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에 수록된 단편 중 13편을 엄선하여 편집한 앤솔러지입니다. 짤막하게 작품별로 소개해드리자면
"하인리히 헤런은 어디에?"
흑마술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공포 스릴러(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추리적인 요소는 약하고 반전도 그냥 그렇지만 섬뜩한 이야기를 괴담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전개는 제법 괜찮았습니다.
“낡은 부적”
순문학 느낌 강한 단편. 보험사기를 다룬 심리물인데 끔찍한 사건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점점 붕괴되어 가는 사람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다룬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피가 낭자한 잔인한 묘사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이는?”
일종의 완전 범죄를 다룬 범죄물. 잔인하다기 보단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마음에 안드는 버스기사 택시로 쫓아가서 때려주기”와 비슷한 이야기랄까요. 여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후 3시 까지”
수록작 작가 중 유일하게 아는 작가인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아브라함 레빈 형사 시리즈 단편. 심리 서스펜스물입니다.
어떤 남자의 자살을 막으려는 레빈 형사의 심리를 한정된 짧은 시간동안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소품 느낌이 강하긴 하나 작가의 명성에 값하는, 읽는 재미는 충분히 넘치는 작품이었습니다.
“막다른 길”
전형적인 미국 헐리우드 형사물 스타일의 하드보일드 드라마.
나름대로 비비 꼬아놓기는 했지만 전형적이고 뻔한 이야기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리모트 컨트롤”
암살자의 완전범죄를 위한 변장, 그리고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꽤 재미있으며 치밀한 점이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아요. 2% 정도 아쉬웠달까요?
“이중살인”
불륜 상대가 변태 성욕자에게 살해된 후, 아내를 변태 성욕자를 가장해서 살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반전의 묘미가 상당합니다. 반전 하나때문에라도 읽어볼 가치 충분한, 괜찮은 단편이었어요.
“산타바바라에서 생긴 일”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브릿지”를 소재로 하여 사기와 살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밀한 브릿지 묘사외에는 건질게 별로 없고 특히나 결말부분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브릿지를 잘 안다면 즐길거리가 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수준이하였던 작품입니다.
“지하철에서 생긴 일”
한 선원의 과거 항해에 대한 회상으로, 예전 배에서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1등 부 기관사 폴란스키와 그의 그리스인 조수, 그리고 의사 출신이라는 수수께끼의 남자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범죄 서스펜스물이라기 보다는 잔잔한 소품에 가까운 작품으로 교훈적이기는 하지만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였습니다.
“해리 해스팅스 방식”
해리 해스팅스라는 작가와 한 도둑이 벌이는 재미난 이야기.
아이디어 자체가 워낙 기발하고 글 전체가 유머스러워서 쉽게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추리 단편에서 보기힘든 결말도 마음에 들고요. 이 앤솔러지 전체를 통틀어 베스트로 꼽고싶은 추천작입니다.
“도시의 풋내기”
독특한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 해결사와 현상금 사냥꾼을 섞어놓은 듯한 주인공의 캐릭터가 정말 괜찮습니다. 동시에 벌어지는 두가지 사건을 하나로 묶어 처리하는 깔끔한 이야기 구조도 좋았고요.
“동업자”
두 동업자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고용했다가 자멸한다는 작품. 유머스럽고 가벼운 소품입니다.
“2차선”
우연히 지방국도에서 만난 대형 트럭에게 쫓기게 된 운전사를 그린 서스펜스 물.
제가 옛날에 봤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듀얼”과 굉장히 비슷해서 조사해 봤더니 원작이 맞더군요. 영화보다는 덜 했지만 글이라는 수단으로 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서스펜스를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결말부분은 조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말이죠.
이렇게 전체적으로 걸작들은 아니지만 평균작 이상의 작품들로 구성된 괜찮은 앤솔러지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매거진도 집에 몇권 있는데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역시 머리를 식힐때는 추리 단편만한게 없는 것 같아요.
2013/09/09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아놀드 베넷 외 : 별점 1.5점
|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
도서출판 한스미디어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추리소설 앤솔러지. 유명 고전 작가들의 단편은 물론이고 초창기 추리 이론까지 풍성하게 실려있습니다.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1권은 읽은 작품이 너무 많고 지나치게 고전 취향이라 2권부터 구입하게 되었네요. 2권 역시 다른 책에서 읽어본 작품이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워낙에 목차가 괜찮고 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전 황금기 작품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기에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번역입니다. 일본어 중역 느낌이 물씬 날 뿐더러 그 자체가 별로 매끄럽지 않아 읽기 힘들었어요. 악명 높은 동서 추리문고 최악의 번역도 이거보다는 좋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고전 황금기 걸작이 아닌 몇몇 현대 일본작가 작품이 섞여 있는 것도 기획 의도가 모호해 보여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기획의도만으로 3점은 충분하지만 번역은 용서가 안되네요. 좋은 기획의도가 번역 때문에 다 망가진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한스미디어의 다른 작품들은 괜찮았었던 것 같은데 대관절 영문을 모르겠군요.
몇몇 작품은 걸작이지만 대부분 다른 책에서 훨씬 좋은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라진 기억" | 배리 퍼론
극작가 애닉스터가 완벽한 밀실살인 트릭을 생각했는데, 교통사고로 트릭을 잊어버린 탓에 술집에서 트릭을 알려주었던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
교통사고로 딱 필요한 기억만 상실한다는 작위적인 설정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꽤 그럴듯한 전개, 그리고 마지막에 애닉스터가 상황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남자에게는 애닉스터만이 유일한 위험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서늘한 반전류의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
"살인!" | 이넉 아놀드 베넷
명백한 살인사건인데, 경찰이 수사 결과 몇몇 남겨진 단서를 통해 자살로 결론 내린다는 내용의 소품. 솔직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심리 묘사에 대한 번역에 문제가 많았던 것 같은데 제대로 된 번역으로 다시 읽고 싶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피트 모란, 다이아몬드 헌터" | 퍼시벌 와일드
"탐정 피트 모란"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그때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번역이 너무나 별로인 탓에 작품마저도 후지게 느껴지는 기묘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실망하신 분들께서는 "탐정 피트 모란"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번역 때문에 별점을 주기조차 어렵네요.
"골초는 빨리 죽는다" | 이자와 모토히코
"역설의 일본사" 말고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상을 많이 수상했던 유명 작가의 단편.
두 명의 대화로만 전개되는 형식과 담배로 촉발된 살의라는 설정은 독특한데, 결말이 너무 심하게 별로였습니다. 반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좀 어이없는 결말이었거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먹이" | 토마스 테셔
이형 생물체가 등장하는 크리쳐 호러물. 스티븐 킹의 비슷했던 작품(한 소년의 아버지가 점액질 괴물이 된다는 이야기)와 비슷한데, 이 작품은 "애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비극적 결말이라는게 차이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라서 평하기는 어렵지만 공포도 아니고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결말에서 반전이 돋보이는 것도 아닌 그냥저냥한 소품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콜 Y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제가 개인적으로 번역했던 작품이죠. 읽어보니 원작을 "직역"한 번역으로 읽기가 어렵더군요.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3점인 좋은 작품인데 안타깝네요. 솔직히 제 번역과도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녀들의 쇼핑" | 쓰쓰이 야스타카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해본 적 있는 이색작.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부들이 강도단을 조직한다는 내용입니다. 작품 자체의 수준은 그냥저냥이지만, 작가 특유의 섬뜩한 풍자 하나만큼은 인상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대사가 백미!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살의" | 다카기 아키미쓰
역시나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했던 작품으로, 굉장한 걸작입니다. 이른바 "일사부재리" 원칙의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는데, 마지막 반전까지 빼어난 단편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살의"라는 말이 들어간 작품들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은 하나같이 괜찮네요.
"아버지" | 토마스 H. 쿡
토마스 H. 쿡의 장편은 몇 권 읽어보았지만 단편은 처음입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만 장편 못지않은 묵직함이 잘 전해지는 묘사가 아주 좋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무대 뒤의 살인" | 에드워드 D. 호크
총 3편의 초단편 Short-Short로 이루어진 작품.
예전에 읽었던 "4페이지 미스터리"와 유사하나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3편의 이야기 모두 논리정연하면서도 예상을 뒤집는 정통 추리물이거든요.
첫번째 작품은 사진 필름 원판을 가지고 협박하는 협박자가 살해된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런저런 논리 퍼즐에서 많이 보았던, 다섯 번째 남자마다 처형당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는 이집트 전시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입니다.
첫번째 작품은 에스터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돋보였어요. 특히나 1만 2500달러라는 애매한 비용과 30분이라는 시간 공백을 설명하는 게 제법이었거든요.
마지막 작품은 살인사건은 전혀 상관없는 동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반전이 인상적이었고요.
결론내리자면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명성에 걸맞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오번 가문의 비극" | 매슈 핍스 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단편 미스터리 시리즈인 "프린스 자레스키" 시리즈!
그러나 별로 건질 게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프린스 자레스키 설정은 너무나 만화 같았고 사건도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아버지가 광인이 된 것을 왜 숨겨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고 사건 현장 윗층에서 과학교실을 열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조작을 하는 것도 와닿지 않았어요. 그냥 본인이 자살하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었을 텐데 말이죠.
한마디로 수준 이하의 작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것은 물론 번역까지 별로라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불도그 앤드류" | 아서 체니 트레인
터니게이트 - 애플보이 사이의 영토 분쟁에서 불도그 앤드류가 지나가던 터니게이트를 문 뒤 기소되어 법정에 선다는 법정극.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좀 무리지만 유머스러운 일상계 법정극으로는 충분히 읽을 만 했습니다.
재판장의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약간의 반전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번역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마크 트웨인이 연상되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내의 외출" | 자크 푸트렐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이 책에 수록된 제목은 "녹색눈의 괴물"이죠). 당대 보기 드문 일상계로 가치 높은 수작입니다.
그러나 별점을 주기 민망할 정도로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서 도저히 읽을 맛이 나지 않네요.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A 분장실의 수수께끼" | 자크 푸트렐
역시나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것과 같은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 여배우의 증발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장치적으로는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가 선보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핵심이 "최면술"이라는 게 문젭니다. 당시 최면술이 마법처럼 받아들여진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물로 생각되는데 지금 읽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떨어지니까요. 번역 역시 수준 이하였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알리바바의 주문"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윔지 경 단편.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던 "검은별"과 동일한 스타일의 모험극. 추리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거의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오필리어 살해" | 오구리 무시타로
"흑사관 살인사건"의 오구리 무시타로가 쓴, 범죄학자이자 탐정 노리미즈 린타로가 등장하는 단편. 셰익스피어 스타일 연극 무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무대 장치를 이용한 기계장치 트릭에 더해 심리적 착각을 이용한 트릭이 등장하죠.
현실적이지 못한 트릭,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학적인 전개와 묘사, 거기에 동기까지 애매하여 전체적인 완성도가 낮습니다. 정통추리물로 보기도 어려웠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의 마음은 찢어졌어" | 크레이그 라이스
"스위트홈 살인사건"의 크레이그 라이스가 쓴 단편. 주인공인 술꾼 찌질이 변호사 말론은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네요.
의뢰인인 사형수 폴 파머 자살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폴 파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끊어지지 않았어"를 단서로 마지막에 추리쇼까지 펼쳐 보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추리물입니다.
정통파답게 추리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초반부 딕슨 의사와의 대화로 병원에서 탈옥한 죄수가 있다는 단서를 전해주는 등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도 좋았고요.
메들레인 스타가 그냥 폴 파머와 결혼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텐데 성공 확률이 낮은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옥의 티이긴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1/19
유령 열차 - 아카가와 지로 / 한성례 : 별점 2.5점
![]() | 유령 열차 -
아카가와 지로 지음, 한성례 옮김/씨엘북스 |
아카가와 지로의 작품은 제법 많이 접해 왔습니다. 리뷰를 올린 작품은 "마리오네트의 덫",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 시리즈인 "공포서클", 그리고 단편집 "네이비 블루 스토리"와 몇몇 앤솔러지 뿐이지만,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는 서울 문화사를 통해 국내에 출간된 작품들은 다 읽었으며, 그 외에도 SF라고 할 수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딸" 등을 읽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이 수준 이하였습니다. 도저히 유명 작가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오네트의 덫"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제 리뷰에도 썼듯이 3류 소설의 교과서같은 책이었지요. 그래서 작가의 그 어떤 다른 작품도 읽지 않으리라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약 8년여, 설 연휴 때 읽을만한 가벼운 작품을 찾다가 이 작품이 얻어걸렸네요. 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읽은지도 오래 되어 나쁜 기억이 희미해지기도 했지만, 그나마 단편들은 읽을만 했던 기억 때문이지요. 예전에 읽었던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이라는 괜찮은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곳에 따라 비"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아있기도 했고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우노 경부와 대학생 유키코 컴비가 꽤나 유쾌해서 다른 시리즈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었는데, 바로 이 단편집이 이 컴비가 활약하는 데뷰작이자 작가의 데뷰 단편집이기도 했거든요.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터리 100선에도 당당히 실려 있기도 하고요. "마리오네트의 덫"의 순위가 더 높은걸 보면 영 신뢰가 안 가는 리스트이기는 하지만요.
하여튼,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다행히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록작 대부분이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상황들이 기발한 덕이 큽니다. 범행 동기 등 세세한 부분의 설득력도 높은 편이며, 트릭도 반전도 제법이에요.
무엇보다도 두 커플의 캐릭터가 아주 좋습니다. 부인과 사별한 중년 경감 우노와 젊은 여대생 유코 커플을 조합했다는 점도 이색적인데,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게 톡톡튀고 발랄한 유코의 묘사가 괜찮습니다. 상당히 개방된 연애관과 성의식은 시대를 앞서간 감이 있네요.
그러나 수준 이하의 졸작도 수록되어 있는 등 작품의 편차가 크다는건 아쉽습니다. 여러모로 단점도 많이 띄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령 열차"
8명의 승객이 운행하는 기차에서 사라진 깜쪽같이 사라졌다는 불가능 범죄를 그린 단편입니다. 아내와 사별한 독신 경감 우노 교이치와 여대생 유키코 컴비의 기념할만한, 그리고 아카가와 지로에게도 기념할만한 데뷰작이죠.
그러나 사건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위증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도 그리 어려운 수수께끼가 아니에요. 달랑 세 명의 마을 주민(이와유다니 역 역장, 기차 기관사, 차장)이 승객들이 분명히 탔다고 증언했을 뿐이라서 이 세 명이 입을 맞춘다면 탑승, 혹은 운행 과정에서의 승객 소실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도 8명의 사람들이 승객으로 위장하여 탑승한 뒤, 기차 뒤에 매달아 놓았던 대차를 타고 탈출한게 진상이고요.
8명의 승객이 여관에서 독버섯을 먹고 죽었으며, 쇠락해가는 마을 관광이 치명상을 입을까 두려워 한 마을 유지들이 합심하여 시체를 숨긴 뒤 공작을 벌였다는 동기는 나름 그럴듯합니다. 식사 문제를 우노와 유코의 입으로 드러내는 등 약간의 복선도 존재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손님이 사고사로 죽은걸, 기차를 탔다가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진걸로 무마한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차라리 시체를 태운 뒤 기차 사고같은걸 일으키는게 현실적이잖아요.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입을 맞춘 뒤, 등산을 갔다는 등으로 둘러대던가요.
또 승객 소실은 번거로운 연극 없이, 그냥 세 명(아니, 여관 주인인 고지마까지 네 명)만 함께 증언해도 성립했을텐데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을 대역으로 동원한 것도 이상합니다.
아울러 수수께끼의 영역에서 이와무라 미와를 살해하고, 유코마저 납치하는 실제 범죄가 우노 경감앞에서 벌어진 뒤에는 범인들이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는 점에서 결말은 많이 아쉽습니다.
기념할만한 데뷰작이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유괴범의 배신"
닛타가 '봉투에 들어 있지도 않고, 접혀 있지도 않은' 협박장을 들고 있었던 이유에 대한 추리는 괜찮습니다. 배달온걸 본게 아니라, 자기가 만든 협박장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보고 있었다는 추리인데 상당히 그럴듯해요. 유괴 사건은 조작이며, 닛타가 자신의 과거를 협박하던 니시오를 죽이려는게 목적이었다는 진상은 바로 이 추리에서 출발하는데, 추리와 동기와 진상이 잘 어우러집니다.
또 협박장이 들어있던 우편함 속 신문 투입 날짜를 통해 협박장이 집 안에서 넣어진걸 알아챈다던가, 이 협박장의 '딸'이 마사코가 아니라 니시오의 딸 마치코였고, 니시오가 닛타로부터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자주 빌려가는 이유는 책 속에 넣어둔 현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는 세세한 추리들도 괜찮았어요.
그러나 닛타가 과거 살인을 저질렀던 과거로부터 면죄부를 얻기 위해 마사코마저 살해했다는 전개는 너무 극단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훗날 막장 3류 드라마의 제왕이 된 아카가와 지로의 편린이 여기서도 엿보이네요.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낮은 편이라 별점은 2점입니다.
"얼어붙은 태양"
한 여름 태양이 작열하는 휴양지에서 얼어죽은 이로누마의 시체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트릭이랄건 없습니다. 범인의 의외성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로누마를 냉동고로 유인해 가두어 죽게 만든건 다케나카 부인의 어린 세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냉동고를 대충 관리하여 책임을 지는게 두려웠던 관리인 노인이 사체 유기를 도운 것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과 범인의 의외성 외에는 건질만한 내용이 없다는 겁니다. 협박의 대상이 다케나카 부인이 아니라 오다 여사였다는 의외의 진상은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해요. 또 관계자들과 며칠간 휴양지에서 만났을 뿐인 우노 경감과 유코가 어째서 그들을 도와 이로누마 죽음의 진상을 감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다케나카 부인이 선의의 피해자이고, 오다 여사 역시 마찬가지라고 해도 경감이 할 일은 아니잖아요? 아이들도 조금만 크면 자신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알게 될 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유코와 우노 경감 컴비의 알콩달콩 시츄에이션은 즐거웠습니다. 거사(?)를 치루려 할 때마다 방해받는 상황 묘사도 아주 코믹해서 즐거웠고요. 추리적으로는 별로라도 두 컴비의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없지는 않은,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역시, 이 시리즈는 유쾌하고 해피 엔딩이어야 제 맛인거 같아요. 별점은 2점입니다.
"비옷을 입은 시체"
앞서 총평에서 언급했었던, 다른 앤솔러지에서 재미있게 읽었다는 단편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그런데 "비옷을 입은 시체"라는 제목은 영 별로네요. 이전에 읽었던 "곳에 따라 비"라는 제목이 더 근사했어요.
여튼,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비가 오지 않는데도 비옷 등을 차려입었기 때문에 동일범에 의한 연쇄 살인이라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모두 개별적인 범행이었다는 기본 아이디어가 좋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이 비옷을 입은 이유도 설득력있고요.
젊고 싱그러운, 그리고 현재와 하나도 다를게 없는 대학 축제가 배경인데, 휴대전화가 없어서 집으로 전화를 할 수 밖에 없는 고전적인 설정이 등장하는 것도 이채로왔던 점입니다. 공공장소에서의 키스를 경범죄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옛 시절의 모습이고요. 이런게 고전의 맛이 아닌가 싶어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좋은 단편입니다.
"선인촌 마을 축제"
유코의 졸업 축하 여행을 떠난 둘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나오키 형사의 초대로 그의 고향이라는 선인촌 마을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너무나 착한 사람들만 사는 마을이지만, 촌장의 부인이 우노를 유혹하고 수상한 남자가 자기 형이 이 마을에서 수상한 죽음을 맞았다고 말한 뒤 이리에 물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추리 소설은 아니고, 모험 소설에 가까운 작품인데,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지와 같은 시골 마을, 그곳을 우연히 연락도 없이 방문한 손님들, 너무나 착해서 손님들이 원하는걸 다 들어주는 주민들, 손님들과 함께 보낸다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마을 축제.... 이 정도 단서가 주어지면, 손님들을 제물로 1년에 한 번 마을 주민들이 미쳐 날뛰는 광란의 축제가 벌어진다는건 보나마나지요. 공포 영화의 서브 장르인 포크 호러(Folk Horror)와 똑같으니까요. 집단적인 종교의식이나 미신때문에 외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영화들이요.
둘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과정도 운과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를 꿈꾸던 처녀가 도와줘서 탈출하는거야 떡밥이 있었다 쳐도, 마지막 순간에 방송국 헬기 사다리를 잡고 도주에 성공한다는건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경찰인 나오키 형사도 마을 출신으로 공범이었다는 점은 독특했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는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차라리 수록되지 않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2021/09/25
좀비 연대기 - 로버트 E. 하워드 외 / 정진영 : 별점 2.5점
![]() | 좀비 연대기 -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책세상 |
근대 시기 유명 장르 소설가의 좀비 관련 중단편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작가들의 명성과 장르 문학치고는 고전급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 성격은 유사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낡은 느낌이 강했던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는 다르게, "지옥에서 온 비둘기"라던가 "좀비 감염 지대"같은 시대 초월 명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최초로 '좀비'라는 말을 만들고, 아이티 부두교 좀비 설정을 확립했다는 "마법의 섬"과 같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작품도 눈여겨 볼 만 하고요. 크리쳐 호러물 외에도 저주받은 저택, 호러 모험 액션, 판타지에 SF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장르 스펙트럼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열 두편의 수록작 중 수준 이하 졸작도 제법 됩니다. 발표된지 100여년이 다 되어가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요. 그리고 제목에서 기대했던, 우리가 지금 '좀비'라고 하면 떠올릴 몬스터가 등장하는 작품도 없습니다. 아이티 등 열대 섬나라에서 부두교 주술 등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려 노예처럼 부렸다는 초기 좀비 전설에 기반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이게 단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일한 설정을 그대로 반복한 판박이같은 작품이 많다는거지요.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클래식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그런 앤솔러지였습니다. 좀비라는 크리쳐의 창작 초기 설정과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옥에서 온 비둘기"
그리스웰과 존 브래너는 비둘기 떼가 날아가버린 폐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밤중에 공포스러운 휘파람 소리에 잠을 깬 그리스웰은 2층으로 올라간 뒤, 도끼에 맞아죽은 브래너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도망쳤다. 도망치던 그리스웰을 구해준 보안관 버크너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수수께끼와 브래너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자 늙은 부두교 주술사를 찾아갔지만, 주술사도 뱀에 물려 죽었다.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버크너와 그리스웰은 흉가에서 하룻 밤을 보내지만, 그날 밤 그리스웰은 악령에게 홀려 2층으로 향하는데...
좀비물이라기 보다는, 저주받은 저택 장르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죽은 브래너의 습격, 마찬가지로 사람을 습격해 죽이는 실비아 블래슨빌 모두 시체가 되살아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복수를 위해 부두교 주술로 저주한게 원인이고, 사람을 잡아먹지도 않으니, 저주물에 더 가깝고요.
저주받은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다가 악령에게 습격받는 초반부 묘사는 지금 읽기에는 다소 진부하고 심심했지만, 버크너 보안관 등장 이후부터는 아주 재미있었어요. 특히 버크너가 브래너의 시체를 발견한 뒤의 전개는 추리 소설을 떠올리게 해서 독특했습니다. 상황은 그리스웰이 범인일 수 밖에 없어요. 둘만 있던 흉가에서 한 명이 도끼에 머리를 맞아 죽었으니까요. 그러나 버크너는 그리스웰의 옷에 피가 전혀 튀지 않았던 점, 그리고 그리스웰이 범인이라면 죽은 버크너가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주장을 했을리 없다는 이유로 추가 조사를 벌입니다. 그리고 핏자욱을 따라 2층의 사건 발생 현장으로 이동한 뒤, 무언가 이상한 존재가 얽혀있다는걸 알게 되지요. 단서를 통한 추리,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수사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밀 방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3명의 가족이 목을 메고 죽어 있었다는, 흉가 블래슨빌 저택에 얽힌 진상도 오싹했습니다. 사람들을 습격해 죽였던 괴물 '주벰비'가 실비아 블래슨빌을 원망했던 혼혈 하녀 조안이 아니라, 실비아 블래슨빌이었다는 반전도 충격적이었고요. 조안은 주벰비가 되는 검은 술을 자기가 먹지 않고 주인에게 몰래 먹였던 겁니다. 이거야말로 진짜 복수네요.
믿음직하고 용감한 보안관 버크너와 겁 많은 애송이 그리스웰의 조합도 반 헬싱 교수와 조나단 하커 관계와 좀 비슷한데, 전형적이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 딱 맞는 조합이더군요. 무서움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겁쟁이와 사건을 해결하고 악령을 응징하는 용감한 보안관이 조합되니, 두려움과 공포, 액션과 정의의 응징을 다 얻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딱 한 가지, 너무 옛스럽게 쓰여졌다는 건 좀 아쉽습니다. 공포를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여러모로 부족한 묘사가 특히 거슬렸어요. 오래된 폐가, 몰락한 가문, 뱀으로 상징되는 저주의 주술,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령, 도망쳤던 생존자가 남긴 일기 등 모든 면에서 미쓰다 신조의 "흉가"가 떠오르는데, 공포를 자아내는 묘사와 전개는 전혀 미치지 못했거든요. 미쓰다 신조가 같은 작품을 썼다면 훨씬 무섭게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차라리 지금 방식으로 영상화하면 훨씬 대단한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좋은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검은 카난"
커비 버크너는 고향 카난에서의 긴급 호출을 받고 귀향하다가 혼혈인 마녀의 유혹을 받았다. 최면에 걸렸던 버크너는 운 좋게 정신을 차리고 습격한 거구의 흑인 세 명을 물리쳤다. 마을에 도착한 버크너는 마을 흑인들이 모두 도망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조사를 통해 늪지대에 사는 괴인 솔 스타크가 배후에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조사 중 버크너는 마녀의 최면에 걸려 솔 스타크의 본거지로 본의 아니게 끌려가게 되었고, 친구 브랙스턴이 그를 돕기 위해 따라가는데....
부두교 주술사가 카난이라는 마을을 장악하려 하지만, 마을 지도자 버크너가 이를 물리친다는 호러 액션 활극입니다. 마녀의 최면, 주술로 만든 물고기 인간같은 공포스러운 요소가 등장하지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버크너 시점의 심리 묘사만 있는 탓이 큽니다. 버크너 캐릭터는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쾌남 영웅 스타일이라 공포를 크게 느끼지 않거든요. 공포에 사로잡힌 묘사도 잘 와 닿지 않더군요. 마녀와 괴물들이 총에 맞으면 죽는다는 것과, 최면술말고는 주인공을 크게 위협하지 못한다는 것도 작품이 무섭지 않은 이유이고요.
그래도 모험 활극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주인공 버크너는 전작의 버크너 보안관의 선조, 혹은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은데, 버크너 유니버스도 한 번 제대로 소개되면 좋겠네요.
"천 번의 죽음"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건 아버지와 그 부하들이었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나도 물에 빠져 죽었었지만 아버지의 연구 덕분에 살아났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이고 되살리는 식으로 연구를 계속하는데....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는 SF 호러 범죄물을 잭 런던이 썼다는건 특이했지만, 내용은 평이합나다.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건 "프랑켄슈타인" 에서부터 내려온 고전적인 설정이니까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섬에 틀어박혀 생체 실험을 한다는건 "닥터 모로의 섬"과 똑같고요. 물론 생체 실험의 대상이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로, 그가 반복적인 죽음과 소생을 거듭한다는 설정으로 확실히 차별화되기는 합니다. '폭력에 의하지 않고, 신체 장기에 아무런 훼손이 없는 죽음은 단지 생명의 보류 상태'라며 죽음과 소생을 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점도 독특했어요.
하지만 차별화 요소를 잘 살렸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독약, 질식 등으로 수차례 죽음을 맞는 고통이 잘 그려내지 못한 탓입입니다. 생체 실험의 고통을 극명하게 그려냈다면 호러물로 충분히 값했을텐데 말이지요. 과학적인 설명도 그럴듯해 보일 뿐, 실상 알맹이 없는 서술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갖은 노력 끝에 물질을 원소 상태로 되돌리는 장치를 개발했고, 이를 이용하여 아버지와 그 부하들을 없애고 탈출한다는 결말은 최악이네요. 아버지의 흑인 부하들이 자기 방으로 한 명씩 차례로 들어올 때 마다 없애고, 마지막에는 방에 들어선 아버지를 없앴다는데, 이럴 바에야 그냥 방에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칼로 찌르는게 빨랐을겁니다. 특별한 장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고, 피해자들도 한 명씩 들어와 사라질 정도로 감시가 느슨했는데 왜 진작에 탈출하지 않은건지도 이유를 모르겠고요. SF스럽게 만들기 위한 억지 장치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엄청난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보였던 아버지의 최후라기에는 너무 허무했고요.
유사한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는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호러물로는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가 부족했고, 결말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노예에게 소금은 금물"
나는 아이티 호텔에서 머물다가, 호텔에서 일하는 노파 마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지역 주민들과 호텔 직원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과거 아이티 독립 전쟁 당시 '소금을 먹지 마라'는 금기를 어겼다가 시체가 된 연인 트레생에 대해 말해 주는데...
뒤에 수록된 "좀비와 함께 걷다"를 읽어야 설정이 이해가 되는 작품입니다. "좀비와 함께 걷다"에 따르면, 좀비는 소금을 먹으면 자신이 죽었다는걸 깨닫고, 무덤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트래생은 물론 마리도 진작에 죽었던 좀비였다는 뜻이고요. 트래생이 흑인 해방 등의 의식을 가질 정도로 똑똑했던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노예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였다니, 다른 좀비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고 보면 되겠지요.
문제는 이 설정 외의 특별한 내용은 없다는 겁니다. 마리도 좀비였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고요. 죽었다는걸 깨달은 좀비들이 무덤으로 폭주하는 장면 묘사 정도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귀환자들의 마을"
좀비 전설이 있는 열대 섬마을에 어느날 미모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에게 유혹당한 파파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괴담 소설로 유명한 라프카디오 헌의 단편인데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좀비와 다른, 열대 섬나라 좀비에 대한 설명과 파파가 관련된 이야기가 아예 별개로 진행되어 혼란스럽고, 별다른 내용도 없는 탓입니다. 섬마을의 여러 풍광에 대한 관능적이면서도 상세한 묘사를 걷어내고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한, 두페이지로도 충분했을 이야기입니다. 수록작 중 최악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나트에서의 마법"
조티크 대륙의 절반이 사막인 나라 지라의 왕자 아다르는 노예 상인 샤라그에게 납치된 약혼녀 달리리를 찾아 여러 왕국을 헤멨다. 그러다 그녀가 향했다는 요로스 왕국으로 가는 상선에 탑승했지만 항해 중 폭풍에 휘말렸고, 상선은 사악한 섬 나트로 표류하다가 침몰했다. 달릴리의 구조로 홀로 살아남은 아다르는 나트의 마법사 우두머리 바카른을 만나, 그녀는 바카른이 되살려낸 익사자라는 걸 알게 되는데....
"코난 더 바바리안"을 연상케 하는 작품. 존재하지 않는 고대 왕국을 무대로 마법사와 영웅이 등장해서 대결을 펼치는 고대 판타지라는 점에서요. 그런데 결말이 예상 외라 놀랐습니다. 영웅 포지션인 아다르가 권력과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바카른의 두 아들 음모에 가담하여 바카른을 죽이려다고 되려 찔려 죽고 말거든요. 그리고 바카른의 아들에 의해 되살아나 좀비가 된다는게 끝입니다. 달릴리와 뭔가 관계가 이루어진다던가, 정의가 이루어진다던가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던 족제비 괴물은 어떻게 되는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이런 이유로 방대한 설정으로 이루어진 긴 서사물의 일부만 수록된 느낌입니다. 최소한 아다르와 달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주었어야 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아이티 공화국 헌법에 좀비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는 말에서 시작해서, 아이티에 진짜 좀비가 있다는 다양한 증언들이 이어지는 작품. 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의 파운드 푸티지 영화같은, 페이크 논픽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좀비는 소금을 먹지 않고, 좀비가 소금 맛을 보면 죽었다는걸 깨닫고 열일 제쳐놓고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무덤으로 향한다는 설정에 기반한 경험담이 이어질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화이트 좀비"
아프리카 엔스와지 지방의 행정관 제프리 에일럿은, 어느날부터 느껴지는 악취 탓에 겁에 질렸다. 안개 자욱한 어느날, 결국 에일럿은 쓰러지고 말았다. 그를 돌봐준 신부는 과거 에일럿과 함께 했던 전우 싱클레어의 미망인이 수상하다고 말했고, 에일럿은 탐문과 잠복 끝에 그녀가 부두교 주술로 시체들을 조종하는 현장을 목격하는데...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아프리카를 부대로 부두교 주술이 등장하는 이색작입니다. 서술은 장황하지만, 정작 내용은 에일럿이 잠복해서 부두교 좀비 축제? 현장을 목격하고, 거기서 싱클레어의 모습을 확인한 뒤 부두교 주술솨를 쏴 죽인다는게 전부입니다. 악취라던가 불길한 안개 등의 설정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신부의 존재도 불필요했어요.
게다가 좀비 사건의 원인, 결과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싱클레어 부인이 부두교 주술에 빠져 시체를 되살렸는지는 아프리카의 심장 운운하며 농장 관리 목적이었다고 소개되지만 명확하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싱클레어를 되살릴 이유도 없었고요. 에일럿이 악취를 느낀 이유 역시 밝혀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딱히 아프리카일 이유를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묘사만으로 작 중 무대가 아프리카처럼 느껴지지도 못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할로 맨"
한 남자가 아프리카로부터 15년만에 영국으로 찾아왔다. 그는 부두 거리를 헤메다 모모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모모는 자신이 15년 전에 죽여 매장했던 고팍이 자기 식당으로 들어오는걸 보고 경악했다. 고팍은 표범 인간이 자신을 깨웠다며, 자기를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모모가 자신을 죽였기 때문이라면서. 식당에 고팍이 머문 뒤, 식당은 서서히 망해갔고, 딸 버블스마저 고팍에게 홀려 생기를 빼앗기자 모모는 고팍을 또 다시 한 번 죽일 결심을 하게 되는데....
죽은 자가 돌아왔다가, 다시 죽음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찾는다는 내용의 작품.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무서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무서운 포인트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단 모모 시점의 심리 묘사가 부족해요. 과거에 저지른 죄로, 손을 씻고 가족과 열심히, 단란하게 살아가던 소시민에게 지옥문이 열린 상황인데, 고팍의 존재를 너무나 쉽게 인정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묘사에서는 절박함이나 어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내용도 불분명한 부분이 많습니다. 왜 표범 인간이 고팍을 되살렸는지, 고팍이 영국에는 어떻게 왔는지 등이 모두 드러나지 않아요. 버블스의 생기를 빼았는다는 것도 대충대충 넘어가고요. 결말도 허무합니다. 결국 고팍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걸로 마무리되는데, 이럴 거였다면 왜 진작에 없애지 않았는지 의문이에요.
여러모로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만 물씬 났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시체들"
나는 농부 폴리니스로부터 아이티 지역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 들었다. 다른건 유럽과 흡사했지만, 이 지역에만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좀비였다. 나는 좀비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좀비"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는 작품으로 아이티에서 사람들이 단단한 대리석 무덤에 묻히고 싶어하고, 자기 집 마당에 묘를 만들고, 사람들 왕래가 많은 길가나 도로변에 무덤이 많은 이유로 좀비를 설명하는 등, 좀비를 실존하는 것 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아이티 형법을 증거로 내미는 장면도 그런 장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폴리니스가 해 준 늙은 추장 조제프가 데려온 좀비 이야기는 이 책에 앞서 수록되어 있는 다른 아이티 좀비 이야기들과 똑같습니다. 좀비가 소금기를 접한 뒤 다시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최후까지요. 좀비가 되었던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조제프에게 복수를 했다는 결말 정도만 차이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원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발표 당시에는 굉장히 새롭고, 무서운 이야기였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잘 짜여져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이 작품을 다른 유사 작품들보다 앞서 수록하지 않은 이 책의 문제가 너무 커 보입니다. 지금 책의 구성은, 후대의 아류작으로 원조의 가치가 퇴색되는 셈이거든요.
하여튼, 원조라는 역사적 가치를 더해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투셀의 창백한 신부"
흑인 부자 마티외 투셀은 스무살은 어린 혼혈 아가씨 카미유와 결혼했다. 그리고 첫 번째 결혼 기념일에 투셀은 카미유를 시체와 함께 하는 파티에 초대했고, 카미유는 미쳐버리는데....
화자가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를 쓴 글 형태로, 화자의 말대로 '흐지부지되었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결말이 없거든요. 투셀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셀이 파티가 연 의도가 무엇인지, 시체들은 누구였는지, 아내에게 1년간 비밀을 지키다가 갑자기 시체 파티에 초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아요. 그렇다고 딱히 무섭지도 않았고요.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는 문제가 많았던 소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점비"
그랜빌리 씨는 1차 대전에서 폐를 다친 뒤, 서인도 제도 세인트크로이 섬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다. 섬에서 친해진 제프리 다 실바와 럼주 칵테일을 함께 하던 어느날, 그랜빌리 씨는 '점비'에 대해 물었고 다 실바는 자기가 젊었을 때 목격했던 일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신학교를 나온 집사 출신이라는 작가 이력이 특이했던 작품. 이런 이력이라면 좀비가 실제 있는 것 처럼 묘사되는 작품은 쓰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그러나 작품은 작가 이력만큼 특이하지는 않습니다. 다 실바가 친구 이베르센이 죽은 날, 이베르센의 유령을 만나고, 밤길에서 공중에 떠 있는 점비를 목격하고, 이베르센 집에서 개 인간을 만났다는 체험담이 이어질 뿐으로, "내가 했던 무서운 체험" 류의 기승전결없는 괴담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점비'나 개인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없고요.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줄 래야 줄 수가 없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 감염 지대"
고든 파넘 박사는 아발론 섬에서 불사에 관련된 연구를 하다가, 죽은 시체를 되살리는 혈청을 개발했다. 마침 섬에 닥친 화산 폭발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자, 박사는 혈청을 이용하여 그들을 되살릴 생각을 하는데...
부두교 주술로 되살아난 시체가 아닌, 과학의 힘으로 되살린 좀비가 등장하는SF 호러물입니다. 앞서 잭 런던의 단편과 비슷한 소재이지만, 되살리는 과정을 나름 과학적으로 잘 설명해 주는게 큰 차이점이자 볼거리입니다. 특히 인체는 기계와 같다는 등의 고든 파넘 박사의 생명에 대한 이론이 아주 재미있고 풍성했어요. 이 이론과 박사가 여러 동물로 진행하는 실험으로 이야기 여러 개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예를 들어 '불멸성을 부여받은 실험체들이 번식을 통해 불멸성 유전을 증명했지만, 태어난 실험체들이 태어난 상태를 유지할 뿐이었다'는 이야기는 별도의 단편으로 꾸며도 재미있겠더라고요.
시체가 되살아나지만, 영혼과 두뇌가 없이 본능만 남은 상태라 야수로 돌변한다는 발상도 아주 좋았어요. 이들이 죽지 않는 상태로 군대, 경찰을 휩쓸어버리고, 잘려진 손발이 꿈틀대며 잘린 조각들이 엉망으로 붙어 괴물이 되어버리는 묘사도 일품이었고요. 절대 죽지 않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화산 폭발을 이용하여 우주 공간으로 날려버린다는 아이디어도 신선합니다. 스케일이 정말 남달라요.
물론 화산 폭발을 사람이 제어한다는건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기에,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이 정도 허풍은 충분히 허용범위 안쪽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아니 시대를 초월한 끔찍한 아비규환을 그려낸 SF 좀비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영화로 나와도 아주 근사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20/11/1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로버트 바 외 / 이정아 : 별점 2.5점
![]() |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 모래시계 외 - 로버트 바 외 지음, 이정아 옮김, 박광규/코너스톤 |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두 번째 권입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문학의 초기인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발표되었던 단편들이 수록된 앤솔러지입니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과 마찬가지로 정가 할인되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탐정들 등장이 많은게 이채롭습니다. 유명한 외젠 발몽, 마틴 휴잇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 탐정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산사나이, 자연인 명탐정 노벰버 조와 초창기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는 독특해서 인상적이더군요. 플랙스먼 로우는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수록작들 수준이 모두 높지는 않습니다. 셜록 홈즈의 영향을 짙게 받은, 모방작이 많은 탓입니다. 시대와 유행에 충실했지만, 뛰어넘지는 못한 셈이지요. "두 개의 양념병"이라는 걸작이 수록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수준 이하 작품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가 인하된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에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거브 탐정, 일생 일대의 사건"
파일로 거브는 마대 자루에 꿰메어진 채 익사한 헨리 스미츠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 그의 활약을 모든 리버뱅크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끊어진 전구를 쥐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는데...
도배 및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통신 교육으로 탐정이 된 파일로 거브가 활약(이라고 쓰고 좌충우돌이라고 읽는)하는 시리즈 단편입니다.
통신 교육을 받은 탐정은 "탐정 피트 모란"이 유명합니다. 그런데 피트 모란은 겉에 드러난 것들만 1차원적으로 해석하는 단순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민따위는 하지도 않지요. 당연히 추리보다는 코미디가 핵심인 이야기 들이었고요. 이 작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탐정에 대한 희화화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요. 마을 주민 모두가 변장이라는 걸 알아채는 변장을 한 뒤 탐문 수사에 나선다던가, 파일로 거브가 펼치는 수사를 마을 주민 모두가 지켜본다는 등의 묘사 등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피트 모란" 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웃음거리를 제외하면, 나름대로는 추리물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 기묘하게 죽었던 헨리 스미츠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피해자가 쥐고 있던 전구였으며, 거브 탐정은 피해자가 "어디서 전구를 갈았는지?"를 파악한 뒤 피해자의 작업실로 올라가 전구를 가는 동작을 따라하다가 진상을 알게 되거든요.
피해자는 자신이 만든 '양고기 자동화 포장 기계'로 넘어져 마대 자루로 포장된 뒤 강물로 던져졌던 겁니다. 단서를 찾고, 추리한 뒤 추리를 검증한다는 순서만큼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 셈이에요. 추리라기 보다는 겉에 드러난 단서를 '추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넓은 범주의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는 아니며, 흡사 "월레스 앤 그로밋"을 연상케 하는 황당무계한, 일종의 다고베르트 머신같은 기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도 언급되긴 했는데, 단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서만 점수를 받았을 뿐입니다. 당연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
로드 던세이니가 1934년에 발표했던 작품으로 장르 문학을 사랑하시는 모든 애호가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실 고전 걸작 단편입니다. 마지막의 의외성이 돋보이는, 이른바 '기묘한 맛' 장르의 대표작이지요.
이전에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정통 추리물 성격이 강할 뿐더러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량이 충실해서 놀랐습니다. 이는 마지막 반전을 훨씬 돋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상세한 묘사를 통해 반전을 탐정역인 린리 씨가 룸 메이트인 스메더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은근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스메더스는 살인 용의자 스티거가 구입했다는 양념 '넘누모'를 파는 행상인이라서 린리씨는 샐러드에 뿌려먹게 넘누모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스메더스는 거절합니다. "고기와 짭짤한 음식에만 뿌려 먹는 겁니다"며, 잘 모르고 채소에 뿌려 먹더라도 "두 번은 안 하죠"라고요. 이 말로 진상이 드러납니다!
2주일 동안 고기를 어떻게 보존했을지, 뼈와 정말 먹을 수 없는 내장 같은 부산물은 어떻게 처리했을지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도 후대에 많은 영향을 준 고전 걸작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4.5점입니다. 린리 씨와 스메더스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백작의 사라진 재산"
외젠 발몽 시리즈 단편으로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에도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트릭이 황당해서, 이전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주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래시계"
버트럼 이스트퍼드는 골동품상에서 오래된 모래 시계를 구입했다. 시계는 30분 정도 지나면 시간이 멈추는 문제가 있었다. 그날 밤, 모래 시계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 버트럼 앞에 옛날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그 모래 시계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190여년 전 자신이 참전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는데...
표제작으로 저자는 '외젠 발몽' 시리즈 작가인 로버트 바인데, 작품은 외젠 발몽 시리즈와는 관계없는 역사 판타지입니다.
일단, 모래 시계 소유권을 주장하던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해 준 전쟁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중위는 장군으로부터 기습 공격 작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걸 몰라서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작전 실패 후 체포되었습니다. 장군은 '모래 시계 모래가 다 떨어지면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리를 떠나고요. 그러나 모래 시계가 멈춘 탓에 총살을 집행할 수 없었고, 장군도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총살 지시를 철회한다는 내용입니다. 긴박하면서도 왠지 모를 유머, 여유가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그러나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았어요. 캐스퍼 센토어 중위가 어떻게 버트럼 앞에 나타났는지부터 이유 불명이니까요. 왜 모래 시계가 파괴되고 중위는 사라졌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야 버트럼 이스트퍼드가 꾼 꿈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그래서 점수는 2.5점입니다. 여러모로 마무리가 아깝습니다.
"일곱 명의 벌목꾼"
노벰버 조를 벌목꾼 막사 책임자 클로즈 씨가 찾았다. 작년에 나타났던, 벌목꾼을 대상으로 강도 행각을 벌이는 검은 가면이 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클로즈 씨로부터 범인 체포를 부탁받은 조는 파트너 쿼리치와 함께 막사로 향했다. 다음날, 강도를 막기 위해 여섯 명이 뭉쳐 떠났던 인부들이 강도를 당했다며 돌아 오는데...
탐정 노벰버 조 시리즈 단편입니다. 노벰버 조는 깊은 산 속에서 일하는 벌목꾼이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이지요.
전개 방식은 셜록 홈즈와 동일합니다.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펼쳐 범인을 잡아내니까요. 여섯 명 벌목꾼이 차를 마셨던 주전자를 깨끗이 씻은 행동 등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 힘든 사소한 일이 단서가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이 마신 차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었고, 그걸 숨기기 위해 주전자를 씻었던 겁니다.
그러나 자질구레한 단서가 범인을 드러내는건 아닙니다. 범인을 드러내는건 돈을 숨겨 놓았을 막사를 해체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덕분이거든요. 이에 놀란 범인을 현장에서 잡는게 전부입니다. 차에 수면제가 들어있던건 분명해서, 그걸 씻으나 안 씻으나 별 차이가 없었고, 범인이 특정 시간에 개울가에서 무슨 짓을 했건 별로 중요한 단서가 아니에요.
결론적으로 완성도는 그닥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미치지 못해요. 벌목꾼이라는 직업이 유용하게 사용돼지도 못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부여한 가치도 역사적 중요성과 초판본 희귀성 뿐입니다. 엘러리 퀸도 '오지 탐정' 이라는 개념 도입만 높이 평가한 셈입니다.
"유령 저택의 비밀"
잘 생각해보게.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말이지. 또한 거기에 덧붙여 이 단 하나의 발자국까지 잘 생각해보게 뭔가 번쩍하고 해답 같은 게 떠오르지 않나?"
심령학에 정통한 '퇴마 탐정' 플랙스먼 로우가 등장하는 단편. 심령 현상도 과학과 추리로 풀어낸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톡톡 두드리는 소리, 흐물흐물한 물체 그리고 밴 뉘센 씨가 트리니다드섬에 살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걸 추리해 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고요.
그러나 진짜 유령이 나온거라는 결말 만큼은 영 별로네요. 이 정도까지 추리로 풀어내었다면, 사람이 꾸민거라는 진상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이디어는 좋고, 추리도 볼만하지만 앞서 설명드렸듯 진상, 결말 때문에 감점합니다.
"레이커 실종 사건"
은행에서 수금을 담당하던 사원 레이커가 실종되었다. 그는 1만 5천 파운드를 지닌 채였다. 경찰은 그가 돈을 가지고 도주한걸로 판단했지만, 마틴 휴잇은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
사립탐정 마틴 휴잇 (휴이트) 시리즈 단편입니다. 마틴 휴잇은 셜록 홈즈 시리즈가 연재된 스트랜드 매거진 출신 탐정으로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이지요. 그래서인지, 작품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사건을 조사하여 추리 한 뒤, 경찰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내용이니까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한 결과가 의외라는 전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도 셜록 홈즈의 라이벌답게 추리적으로는 꽤 괜찮습니다. 수금할 때 레이커를 제대로 바라본 은행 직원은 거의 없었다, 은행 중 한 곳은 입구가 수리 중이었다는 수금 당시 정황, 그리고 레이커가 파리행 표를 살 때 본명을 댔고 독특한 우산만 채링크로스 역에 남겨졌다는 도주 정황을 통해 마틴 휴잇은 수금을 한 레이커는 변장한 가짜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합리적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의외성있는 반전이었을 테고요.
하지만 마틴 휴잇이 진범을 알아내는건 작위적입니다. 레이커 이름이 적힌 우산 속 광고지가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요. 광고지만 없었더라도, 이 범행은 완전 범죄가 되었을거에요. 광고 내용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범인들에게 진범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광고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최소한 암호 정도는 써 줬어야 합니다. 이럴 거라면 마틴 휴잇이 구태여 발품을 팔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신문 광고란 속 수상한 광고만 보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마틴 휴잇 캐릭터도 문제에요. 유명세에 비하면 별다른 매력은 없기 때문이에요. 이름만 바꾸면 셜록 홈즈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전형적이더라고요. 후대에 그나마 이름을 남긴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은 다들 차별화된 특징들이 있었지요. 도둑인 뤼뺑을 비롯해서 장님인 맥스 캐러도스,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는 안락의자 탐정 구석의 노인, 멋드러진 별명만큼은 길이 남은 밴 듀슨 (반 두젠), 법의학 탐정의 시조인 손다이크 박사처럼요. 물론 독특하다고 해서 역사에 길이 남는건 아닙니다. 아마추어 괴도 탐정 래플스처럼 지금은 잊혀진 존재도 허다하지요. 그러나 이는 작품 수준이 기대 이하였던 탓입니다. 마틴 휴잇 시리즈는 추리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만큼, 마틴 휴잇만의 개성과 매력을 더하지 못한게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셜록 홈즈 스타일을 잘 따르고 있는,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이야기지만 단점이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바다 건너온 살인자"
로프터스 디컨 씨가 자택의 하치만 성상 아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장은 거의 밀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고인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헨리 콜슨 씨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둘은 함께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헨리 콜슨 씨는 고인이 애지중지했던 '마사무네 검'이 사라졌다는걸 알아챘다. 그 검은 일본인 게이고 가나마로가 되찾기 위해 부탁과 협박을 반복했던 과거가 있었다. 가나마로는 원래 검의 소유주 아들로, 아버지 영전에 검을 바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헨리 콜슨 씨는 게이고 가나마로가 일본으로 돌아갈 표를 예약했다는걸 알아내는데...
아서 모리슨이 쓴 단편인데 의외로 마틴 휴잇 시리즈가 아니네요. 내용은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로, 마틴 휴잇이 등장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겁니다. 등장하는 명탐정 호러스 도링턴이 마틴 휴잇, 셜록 홈즈와 구분되는 특별한 매력이나 특기, 특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 했습니다. 추리가 진행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거든요. 약간의 범인 심리 분석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고요. 디컨 씨는 외출했다가 급한 용무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집 안에 있었던 누군가가 범인이었을테고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왔을까요? 경찰은 침실 창문을 주목했지만, 도링턴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침실 창문으로 들어왔다면, 디컨 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침실로 향했을테고, 그곳에서 범행이 일어났을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요. 그리고 도링턴은 하치만 성상이 집에 들어온 날 범행이 일어났고, 성상이 원래 있던 상점에서 물건이 없어지고 부서진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통해 '하치만 성상 안에 누군가 숨어서 잠입했다'고 추리하지요. 물건 안에 범인이 숨는 이야기는 많을테지만, 이 정도면 꽤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네요. 범인 카스트로를 특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볼 만 했습니다.
게이고 가나마로를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시킨 전개도 좋습니다. 앞서 피해자가 집착했다는 마사무네 검과 보라빛 옻칠 세공품 소개를 통해 가나마로가 한 말 - 큰 돈을 들여서 겨우 검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의미 - 의 뜻이 드러나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 여러가지 일본 물품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 했습니다.
물론 하치만 성상 무게에 대해 좀 대충 넘어가고 있기는 합니다. 사람 한 명 무게가 추가되었다면 이상함을 느끼는게 당연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카스트로가 다시 성상에 숨은 뒤 몰래 빠져나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한 몫 잡아서 도주 자금을 마련하는게 상식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단점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빼어난 점이 분명 있고요. 탐정이 조금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날 밤의 도둑"
프로비던트 은행 지점장 아일랜드가 텅빈 금고를 보고 혼절했다. 그런데 경비원 제임스 페어베언은 전날 밤, 지점장 아내인 아일랜드 부인이 지점장실을 향해 남편을 부르는걸 목격했었다. 아일랜드 부인은 그 사실을 부정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지점장이 지점장실 문을 통해 금고로 들어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건강을 회복한 뒤, 범행 시간에 있었던 완벽한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그리고 그의 재산 상태는 완벽해서 금고 돈을 훔칠 필요가 없다는게 드러나는데...
'구석의 노인' 단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아해서 여러 편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낯서네요. 이전 다른 단편집 수록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다른 단편집에서 빠진게 이해가 되더군요. 단순하고 뻔한 탓에 재미없고 지루했습니다. '지점장은 범인이 아니다', '지점장 아내는 거짓말을 해가며 누군가를 감싸주려 한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결론은 쉽게 추리할 수 있어요. 범인은 바로 아일랜드 지점장의 아들이었던 거지요. 아들이 사건 발생 후 은행을 바로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이 추리를 뒷받침하고요. 이 정도 사건을 구석의 노인에게 의지하는 버튼 양은 너무 무능력한게 아닌가 싶네요. 경찰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좋아하는 시리즈의 미번역 초역을 읽어보았다는 의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대리 살인"
작가는 M.M 보드킨입니다. 작가는 영국에서 판사까지 역임했던 법조인이었다네요. 그래서인지, 클라이막스는 법정 공방이더군요. 정식 법정은 아니고, 검시이긴 합니다만 배심원이 배석하고, 변호사가 반대 심문을 하는 등 정식 법정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법정 미스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밀실에서 구식 전장총이 발사된 장치 트릭입니다. 물병을 돋보기처럼 쓴 게 진상이고요.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으로 익숙한 트릭이지요. 엉클 애브너는 1918년 발표되었으니 이 작품이 원조일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작가 보드킨과 탐정 폴 벡이 포스트와 명탐정 엉클 애브너만큼 알려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원조로서의 영광은 커녕, 잊혀져 버린거지요.
읽어보니 잊혀진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 완성도가 별로인 탓입니다. 우선 쓸데없는 묘사가 많고 장황합니다. 에릭 네빌이 정원으로 나가 복숭아를 먹는 묘사가 2페이지에 걸쳐 설명될 이유는 없어요. 그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 트릭은 대충 넘어가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에릭 네빌이 압박에 못 이겨 자백하고 쓰러진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어요. 트릭이 간파되었다 하더라도, 실수인지 살의가 있었는지 증명하는건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에릭 네빌이 정말로 목이 말라서 물병을 그곳에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엉클 에브너 시리즈가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
2009/01/16
히치콕 서스펜스 걸작선 - 엘리너 설리번 / 이동민 : 별점 3점
| 히치콕 서스펜스 걸작선 - 엘리너 설리번/고려원(고려원미디어) |
예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다시금 읽고 포스팅합니다. 이 책은 한때의 추리소설의 명가 고려원 미디어에서 출간된 책으로, 알프레드 히치코크 미스터리 매거진, "AHMM"으로도 잘 알려진 유명 미스터리 잡지에 연재되었던 작품들 중에서 몇편을 모아서 출간한 앤솔러지입니다.
엘리너 설리번이라는 편집자로 짐작되는 인물이 선정하여 엮었는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뽑았는지는 설명되지 않더군요. 그러나 그 기준 자체가 "다양함" 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모든 작품의 성향이 다른 것이 큰 특징입니다. 예컨데 꽁트에 가까운 짤막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쟝르 역시 다양하여 심리 스릴러, 추리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종생물체를 다룬 호러까지 실려 있습니다. 작가군도 헨리 슬레사, 로버트 블록, 빌 프론지니, 잭 리치 와 같은 여러 앤솔러지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유명 작가를 비롯하여 모든 작품의 작가가 다르고요. 총 23편의 단편 대부분이 호러와 스릴러 성향이 강한 작품이라는 점, 대부분의 작품들이 "환상특급" 류의 단막극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발한 설정과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잡지의 취향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일정 수준이상의 재미와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데 먼저 추리 매니아로서 괜찮았던 작품 몇개를 뽑아보자면,
-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힘들지만 한 인간을 파멸시켜 나가는 과정의 기발함이 돋보인 "콧수염" - 제임스 M 길모어
- 인도를 무대로 한 독특한 범죄물로 아마츄어로 보인 의뢰자의 정체가 밝혀지며 이루어지는 극적 반전이 돋보였던 "경력자" - 제임스 홀딩
- 별것 아닌것 같지만 설정이 참신했고 후반부 반전이 아주 기발한 "죽음을 부르는 기자" - S.S 레펄티
- 교도소 교수형장을 무대로 한 아주 독특한 인간 소실을 다루고 있는 "애로먼트 교도소의 수수께끼" - 빌 프론지니
- 짤막하지만 단서를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잘 짜여져 있던 "스커비 박사의 추락" - 패트리샤 매튜
가 괜찮았습니다.
그 외의 "환상특급" 류의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는
- 기사를 "창조하는" 신문사가 등장하는 "사람이 개를 물었다" - 제임스 홀딩
- 굉장히 짧은 이야기 안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반전을 보여주는 "집에서 멀리 떠난 또 다른 집" - 로버트 블록
- 유머러스한 흡혈귀 이야기인 "키드 카듈라" - 잭 리치
좀 수준이 처지는 작품들도 몇작품 끼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는 고른 편입니다. 또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10여페이지 가량의 짤막한 이야기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5/03/16
SF 명예의 전당 1 - 아이작 아시모프 외 / 박병곤 : 별점 3점
| SF 명예의 전당 1 -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로버트 실버버그 엮음, 박병곤 외 옮김/오멜라스(웅진) |
SFWA (미국과학소설작가협회)가 생긴 후인 1964년 12월 31일 이전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회원들이 투표를 진행하여 가려 뽑은 작품들을 모은 앤솔러지입니다. 1965년 이전 작품 15편과 30위까지의 작품 일부를 더한 구성이며, 1권과 2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4권 세트 e-book을 종이책 대비 엄청 저렴한 29,700원에 팔고 있어서 구입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SF라는 장르에는 e-book이 가장 적합한 콘텐츠 형태가 아닐까 싶네요.
1권을 먼저 읽었는데, 수록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 어스름 Twilight - 존 캠벨
- 전설의 밤 Nightfall - 아이작 아시모프
- 무기 상점 The Weapon Shop - A.E. 밴 보그트
- 투기장 Arena - 프레드릭 브라운
- 허들링 플레이스 Huddling Place - 클리포드 D. 시맥
- 최초의 접촉 Firt Contact - 머레이 라인스터
- 남자와 여자의 소산 Born of Man and Woman - 리처드 매디슨
- 커밍 어트랙션 Coming Attraction - 프리츠 라이버
- 작고 검은 가방 The Little Black Bag - 시릴 콘블루스
- 성 아퀸을 찾아서 The Quest for Saint Aquin - 앤소니 바우처
- 표면장력 Surface Tension - 제임스 블리시
- 90억 가지 신의 이름 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 아서 클라크
- 차가운 방정식 The Cold Equations - 톰 고드윈
대충 봐도 SF계의 대가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작품의 수준도 당연히 높습니다. SF 작가들이 직접 선정한 고전 명작이니만큼, 작품의 수준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SF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 작품집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는건 아쉬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불필요하게 어렵게 쓴, 혹은 번역된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쉬운 말을 두고 굳이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역장", "정신인자", "윤충류" 등이 대표적입니다. 교황을 '로마 주교이자 사도 전승 카톨릭 성교회의 수장,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는 — 그러니까 교황은 —'이라고 장황하게 소개하는 묘사도 마찬가지고요. 배경이 되는 기본 설정 소개도 인색한 편입니다. "Coming Attraction" 같은 경우, 핵전쟁 이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가상 역사 SF인데, 단편적인 정보만 설명되는 탓에 전체적인 그림은 미루어 짐작만 가능할 뿐입니다.
SF가 장르적 특수성이 강해서 작가가 '독자가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작가의 잘난 척인지 모르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대중성은 떨어지고 읽기만 어려워지는 듯 한데 말이지요.
아울러 냉전 시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나 기계 문명과 신성을 빗대어 설명하는, 지금 읽기에는 낡은 소재가 많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먼 미래의 지구는 어떤 이유로든 멸망했고, 영원히 동작하는 기계가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는 "Twilight", 앞서 말씀드린 "Coming Attraction", 가상 역사 SF이자 기계 문명과 신성을 이야기하는 "The Quest for Saint Aquin" 등이 그러합니다. "Nightfall", "The Cold Equations" 같이 다른 앤솔러지에서 익히 접했던 작품들이 제법 된다는 것도 아쉽고요. 물론 이 책의 취지가 시대를 초월한 걸작들을 모아놓은 것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그러나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도 시대를 뛰어넘는 멋진 작품도 많습니다. 그중 제 개인적인 베스트 작품을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The Weapon Shop"
"우주선 비글호" 시리즈로도 유명한 밴 보그트의 작품입니다. 독재 정권에 이용해왔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충성만 하던 서민이 우연한 계기로 자유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빗대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가진 자들에게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낸다는게 정말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SF 뿐 아니라 정치 풍자극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일종의 먼치킨 같은 역할을 하는 "무기상점"이라는 아이디어도 참신하게 느껴졌고요. 시대를 초월한 걸작입니다.
"Arena"
외계의 두 종족 간 전면전이 벌어질 찰나, 지구인 주인공이 기묘한 장소로 소환됩니다. 그 이유는 전면전이 벌어지면 두 종족 모두 멸망하게 되므로, 신이 한 종족만이라도 남기기 위해 두 종족의 대표 전사를 소환해 생명을 건 전투를 벌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롤러 형태의 외계인과 1:1로 생명과 인류의 존망을 걸고 벌이는 전투라는 설정 자체가 매력적인데, 거장 프레더릭 브라운의 명성에 어울리는 전개도 압권입니다. 소환된 장소의 다양한 환경을 이용하는 과정과 마지막 승부에 활용되는 복선까지 잘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SF가 꼭 심오하게 인류의 미래, 신의 존재와 같은 주제를 다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재미를 위해 쓰더라도 이만큼의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존재 이유는 충분하지요. 별점을 준다면 5점입니다.
"First Contact"
게 성운에서 우연히 조우한 지구인과 외계인 비행선. 서로 마음을 열어가면서도 결국 생명을 걸고 양쪽이 전투를 벌여야 할 것이라는 묘한 상황에 빠집니다. 그러나 다행히 놀라운 아이디어로 싸우지 않고, 서로의 정보를 공평하게 가지고 귀환하게 되지요.
외계인을 만났을 때의 딜레마가 잘 표현된 작품으로 완벽한 해피엔딩에 이르는 반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밝고 유쾌하게 쓰여졌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약간은 냉전 시대의 소산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시대를 뛰어넘는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The Little Black Bag"
미래에서 온 마법의 의사 가방을 놓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여러 가지 설정과 이야기가 한데 뒤섞여 있는데, 한 작품에 쓰이는 게 아깝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게 많습니다. 다만 미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바보"가 된다는 설정은 불필요해 보였어요. 그냥 미래에서 의사 가방이 보내지고, 그것이 사용되다가 살인 사건이 벌어져 동작이 취소된다는 정도만 등장해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작가의 욕심, 의욕이 지나쳤습니다.
그래도 읽는 재미는 뛰어나고 마지막 마무리까지 완벽합니다.
"Surface Tension"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밤 이야기"가 연상되는 식민화 우주선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호시노 유키노부 작품보다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식민화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기는 한데, 그 별에 가장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작품의 무대가 된 행성에서는 미생물 — 윤충류! — 로 인류가 탄생하게 되거든요. 이후 이러한 미생물 인류가 이른바 "외계"로 나가기 위해 나름의 "우주선"을 만들고, 살고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는 내용은 인류의 우주 진출과 비교되며,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여러모로 잘 짜여진 SF 모험물입니다.
다른 작품에는 불만과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은 충분합니다. SF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도 최소한 "Arena"만큼은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책 서두에 소개되어 있는, SFWA에서 가장 표를 많이 받은 15위까지의 작품은 알려드리며 리뷰를 마칩니다. 그런데 영문으로만 소개되어 있는건 이해가 안 되네요. 책에는 한글 제목으로 실어놓았는데 말이죠. 또 3위인 "Flowers for Algernon"은 영문 제목이 잘못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거기에 더해 이 작품들을 어떻게 1, 2권으로 나누었는지도 설명되지 않았는데, 여러모로 세심한 배려가 아쉽습니다.
- 1. "Nightfall" - 아이작 아시모프
- 2. "A Martian Odyssey" - 스탠리 와인봄
- 3. "Flowers for Algernon" - 대니얼 키스
- 4. "Microcosmic God" - 테오도어 스터전
- (동률) "First Contact" - 머레이 라인스터
- 6. "A Rose for Ecclesiastes" - 로저 젤라즈니
- 7. "The Roads Must Roll" - 로버트 하인라인
- (동률) "Mimsy Were the Borogoves" - 루이스 패짓
- (동률) "Coming Attraction" - 프리츠 라이버
- (동률) "The Cold Equations" - 롬 고드윈
- 11. "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 아서 클라크
- 12. "Surface Tension" - 제임스 블리시
- 13. "The Weapon Shop" - A.E. 밴 보그트
- (동률) "Twilight" - 존 캠벨
- 15. "Arena" - 프레드릭 브라운
2020/10/0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 신예용 : 별점 2점
![]() |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신예용 옮김, 박광규 기획.해설/코너스톤 |
1890년대 후반에서부터 1940년대 까지, 추리소설의 여명기와 황금기까지의 시기에 발표된 여러가지 단편들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이런 류의 앤솔러지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을 비롯하여 그동안 많이 접해보았지만, 국내에 비교적 소개되지 않았던 유명 시리즈 작품들 위주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퀸의 정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최소한 역사적 가치는 확실히 있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역사적 가치 외의 다른 가치를 느끼기는 함들었습니다. 너무 오래 전 작품인 탓입니다. 여러모로 설득력도 떨어졌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고전 본격 추리 애호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초창기 추리 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저같은 사람이 많이 없는지 재정가로 가격이 3000원 수준으로 떨어져서 가격도 착하거든요.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터들리 농장의 공포"
의사인 나에게 스터들리 부인이 찾아와 자기 남편의 병을 치료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스터들리 농장으로 찾아가 준남작과 만났는데, 준남작은 자신이 밤마다 유령을 보는 탓에 공포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준남작과 방을 바꾸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는데...
코난 도일이 "마지막 문제"를 발표하며 '스트랜드 매거진'에 셜록 홈즈 단편 연재를 중단했을 때, '스트랜드 매거진'이 구멍을 메꾸고자 투입한게 바로 이 작품이 포함된 '어느 의사의 일기 시리즈' 였다고 합니다. 제목 그대로 '어느 의사'인 핼리팩스 박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로 '퀸의 정원' 에서는 최초의 '의학 미스터리'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아쉽게도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작품 발표 계기, 그리고 연재 시점을 보면 정통 본격물의 시조 중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추리 소설의 여명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완성도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스터들리 준남작과 부인의 방은 옷장의 비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부인이 저승길 동행을 위해 준남작에게 밤마다 유령쇼를 펼쳤다는게 진상인데, '나' (핼리팩스 박사)가 침실을 바꾸고 유령을 목격한 뒤, 유령이 나타난 옷장을 수색한 것 외에는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가 변장만 하고 추리를 펼치지 않는다면, 이를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잖아요?
스터들리 부인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부인은 '나'가 준남작에게 두뇌 질환으로 환영을 보는 걸로 이야기해줄걸 기대했다는데,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가 유령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을거라 생각한건 영 납득이 가지 않네요.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아울러 '의학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본격 추리 소설 초창기 단편 중 한 편을 만나 보았다는 기쁨, 그리고 오스틴 프리먼의 손다이크 박사 이전에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 탐정이 있었다는 사료적 가치, 마지막으로 스터들리 부인이 유령을 만들어낸 장치가 배터리에 연결된 전등이라는 상당한 하이테크 제품이라는 점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금고실의 다이아몬드"
헤드와 친구 두프라이어는 둘의 세계적인 악녀 마담 콜루치가 다이아몬드 상인 칼튼의 파티에 초대된 걸 알고 파티 초대를 받아들였다. 마담 콜루치는 칼튼 부인의 전남편이 살아있다며 그녀를 협박하는 것과 동시에, 칼튼 부인을 시켜 빼돌린 로체빌 다이아몬드를 칼튼의 철벽 그곳에서 훔쳐낼 계획이었다....
L.T. 미드와 로버트 유스터스가 합작하여 1890년대 후반 발표되었던 연작 단편집 "일곱왕 연맹" 수록작이라고 합니다. 희대의 악녀로 비밀 범죄 조직 '일곱 왕 연맹'의 총수인 마담 콜루치와 과학자이자 탐정 노먼 헤드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시리즈라고 하네요.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역시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이해가 갑니다. 특히 이 단편은 그 수준이 아주 미흡해요. 내용부터 딱히 건질게 없거든요. 헤드와 마담 콜루치와의 대결이 등장하지 않는 탓이 가장 큽니다. 헤드의 활약이라고는 고작해야 칼튼 부인을 설득해서 전 남편에 대한 사실을 고백하라고 이야기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도 실패하고요. 게다가 다이아몬드도 놓쳐버리기 때문에 이래서야 명탐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못하는게 없는 희대의 악녀인 마담 콜루치 캐릭터는 분명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됩니다. 또 열쇠를 돌리면 비상벨이 울리는데, 울리지 않은 이유에 대한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칼튼의 열쇠를 조작해서 열쇠의 머리 부분만 헛돌게 만든 거지요. 즉, 열쇠를 돌려도 잠기지 않은거고, 당연히 다시 열어도 벨이 울리지 않은 것입니다. 열쇠를 돌릴 때의 저항감, 소리, 마지막으로 금고가 정말 잠겼는지 확인을 왜 안했는지 등 딴지를 걸자면 끝도 없지만, 열쇠 하나의 조작으로 모든걸 일이루어 낸, 대담한 발상의 트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작 단편을 이어서 다 읽는다면 모를까, 이 작품 하나만 읽고 점수를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더욱 많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 스페이드"
맥스 블리스가 협박 받고 있다는 전화를 스페이드에게 남긴 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샘 스페이드는 아는 형사 던디 등이 수사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대실 해밋이 쓴 샘 스페이드 단편입니다. 묵직하고 거친 사나이 매력을 담뿍 풍기는 이야기이며, 피해자의 딸이 몰래 만나던 불륜남, 광신도이면서 못생긴 가정부 에피 부인이 묘하게 엮여서 사건이 복잡해 지는 전개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과 다를게 없는데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다는게 놀랍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피해자의 동생 시어도어가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며, 시체에 놓여져 있던 '새 넥타이' 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 등은 본격 추리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거든요. 피해자는 옷을 벗던 중 살해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럴 경우 매고 있던 넥타이가 아니라 새 넥타이가 놓여져 있는건 이상하다는 이유입니다. 이를 발견한 스페이드의 눈썰미도 대단하지요.
샘 스페이드는 피해자로부터 전화를 4시 5분전 쯤 받았는데, 시어도어는 4시에 법정에서 결혼을 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에 대한 트릭도 간단하고 깔끔합니다. 시어도어는 3시 30분 쯤 피해자를 죽이고 법원으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전화로 자신이 피해자인 척 하고 전화를 걸은 겁니다.
물론 스페이드가 한 추리의 증거가 범인 시어도어 손에 난 상처 뿐이라는건 빈약합니다. 상처가 났다고 범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으니까요. 가정부 에피 부인도 손에 상처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특이한 상처도 아니고요. 손의 상처보다는, 법원에서 전화를 건 기록을 찾아서 시간을 대입해 보는 식으로 풀어갔더라면 더 깔끔했을 겁니다. 아울러 피해자가 시어도어에게 협박?의 댓가로 지불한 돈은 2만 5천불일텐데 2'억'으로 기입된 오타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와 본격 추리와의 결합에 성공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퀸의 정원'에 소개된 "샘 스페이드의 모험" 수록작으로 이 책은 역사적 중요성, 희소성은 물론 퀄리티까지 인정받고 있네요. 당연합니다.
"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시계"
8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로 "
당시에는 혹평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꽤 괜찮은 점도 많았습니다. 자브라스키 박사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인을 저지른 과정이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 덕분입니다. 흥분한 자브라스키 박사가 '층을 착각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우연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고요. 번역의 차이 때문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물론 우연에 의한 작위적인 범죄라는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는 물씬 납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별점 1.5점을 줄 작품은 아니에요. 다시 매긴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총알"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사장'에게 고용되어 돈 하나만 바라보고 일하는 사립 탐정 바이올렛과, 부유하고 젊은 사교계의 꽃 바이올렛이라는 설정이 재미나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해먼드 씨가 자신의 아기와 함께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는 총을 들고 있었고 가슴에 총을 맞았으며, 아기는 죽은 해먼드 씨의 손에 눌려 질식사했지요. 해먼드 씨 가슴의 총알은 그의 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근접 거리에서 손 총격은 아니었고, 해먼드 부인인 열린 창문을 통해 누군가 해먼드 씨를 쏘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해먼드 씨 몸 속 총알과 함께 해먼드 씨가 쏜 총알도 발견되었어야 했습니다. 바이올렛이 이 두 번째 총알이 어디있는지 추리해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해먼드 씨 몸속 총알은 해먼드 씨의 총에서 발사된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법과학의 수준은 많이 부족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앞서 거의 단언하다시피한 정황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본격 추리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총알을 아기가 삼켰고, 그것 때문에 질식한 것이었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해먼드 씨가 아니라 총알이 후두를 막은게 질식사의 원인이 된 거지요. 어디론가 사라진 총알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손 꼽을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이 진상 덕분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참고로, '퀸의 정원'에서는 A.K 그린 (애나 캐서린 그린)의 "미스터리의 걸작들" 이라는 단편집을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성'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아닌 듯 하네요. 가치가 크게 다를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급행열차 안 객실에서 르웰린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권총이 사라진 탓에 자살은 아니었는데, 객실 문은 1인치 정도 열린 채 쐐기로 고정되어 도저히 열 수 없었다. 남아 있던 승무원과 승객의 신분도 모두 확실했으며, 그들이 범인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열차를 떠났을 텐데, 객차의 앞 쪽 침대칸은 승객과 승무원 모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며, 뒷 쪽 3등칸에는 아이가 울어 달래러 나온 부부가 있었다. 객실 문 옆 승객이 바라보고 있었다. 범인은 열차를 어떻게 떠났을까?
고전 본격물의 걸작 "통"과 '프렌치 경감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F.W. 크로포츠의 단편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절반 가까운 내용을 F.W. 크로포츠 본인이 오랜 철도업 종사자라 쓸 수 있었을 상세한 기차 구조 설명에 할애하고 있지만, 열차의 구조와 얼마나 불가능한 범행이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탓입니다. 이런 기차 여행이 흔했던 발표 당시라면 모를까, 기차를 별로 타지도 않는 지금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더욱이 역부족이었어요. 차라리 만화라던가, 최소한 삽화 등으로 트릭을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범행이 밝혀지는건 추리의 결과가 아니라 범인의 고백이라는 점에서도 추리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친구 르웰린에게 연인을 빼앗기자 복수심에 저지른 치정 범죄라 트릭은 알 수 없어도 동기만 확인되면 범인은 충분히 체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경찰은 도대체 뭘 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한마디로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웠던 작품이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퀸의 정원'에도 소개되지 않았을 정도니 지금 와서 읽을 가치는 별로 없겠지요. "통"이나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살인자"
서밋 이라는 도시에 찾아온 맥스와 알은 식당에서 식사를 시킨 뒤, 사장 조지와 요리사, 그리고 손님 닉을 협박하며 그들의 목적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올레 앤더슨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올레 앤더슨은 식당 단골로, 킬러들은 그를 기다리는데...
미국 현대 문학 거장인 헤밍웨이의 작품인데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느낌이 나는 드라마거든요. 킬러가 등장해서 식당 관계자들을 협박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추리 애호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과 죽음을 의인화하여 드라마로 풀어낸 짤막한 꽁트라 생각됩니다. 2인조 킬러는 식당 관계자에게는 급작스러운 소나기와 다를게 없는 불운, 올레 앤더슨에게는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닉은 불운과 죽음 모두를 맛 본 뒤, 서밋이라는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하는걸 보면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일종의 이단자인 셈이지요.
짤막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닥없는 우물"
전쟁 영웅인 노장 헤이스팅스 경이 고대 아랍 전설이 얽혀있는 오래된 바닥없는 우물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함께 있었던 보일 대위가 유력한 용의자로, 그는 헤이스팅스 부인과 불륜 관계였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놀랐던 체스터튼의 단편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사나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연작 단편 중 한 편으로, 시리즈 제목 그대로인 '너무 많이 아는 남자' 혼 피셔가 주인공입니다. 중동 어딘가에 있는 영국 식민지 공무원이지요.
눈여겨 볼 부분이 많았던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영국 제국 주의를 비판하는 시각, 영국 정부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게 인상적입니다. 브라운 신부가 아니라 식민지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쓴 이유가 명확해 보였어요. 신부님이야 아무래도 용서와 화해를 권했을테니, 이런 류의 독설에는 적합하지 않았을테지요.
추리적으로도 작가의 명성에 값합니다. 누가 보아도 보일 대위가 범인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게 진상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득력있게 설명되기 때문이에요. 특히 헤이스팅스 경이 먼저 보일 대위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가로 산책을 제의했다는게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게 좋았어요. 보일이 죽으면 시체를 우물로 던져넣을 생각이었던 거지요. 보일은 범인이 아니기에 시체 앞에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고요.
범인이 독을 마신건 순전히 회전식 책꽂이 때문에 찻잔이 뒤바뀌어 일어난 사고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
물론 충동적인 범행에 우연에 의해 벌어진 사고라는건 합리적인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단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를 설득력있게 포장한 솜씨는 과연 거장의 그것이었어요.
'너무 많이 아는 남자'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시카고의 여성 상속인"
롬니 프링글은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서 이상한 남자가 공들여 편지를 쓰는 광경을 본 뒤, 그의 편지 압지를 빼돌렸다. 암호와 같은 압지 문구 해독을 통해 '실링하머'라 자칭하는 남자가 런디 후작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손다이크 박사'로 잘 알려진, R.A. 오스틴 프리먼의 롬니 프링글 시리즈 단편입니다. '퀸의 정원' 분류에 따르면 엄청난 희귀본이라고 하네요. 롬니 프링글은 도둑이자 사기꾼인 안티 히어로인데, 이 작품에서는 협박자 실링하머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이 차분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링하머가 후작을 협박하는게 모두 이미 발표되었던 신문 기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무슨 범죄가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당연히 런디 후작이 형들과 아버지를 살해하고 작위를 물려받았을 줄 알았는데, 단지 그들이 '자살'했다는 진상도 협박거리가 될 걸로 보이지 않았고요.
롬니 프링글의 작전 역시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실링하머에게서 범죄의 냄새를 맡은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마지막에 경찰을 자칭하여 그를 잡아서 돈 지갑을 빼앗는 것도 여러모로 어설퍼보였거든요. 압지의 글귀 해독도 논리가 뒷받침 되어있는 암호 해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요.
경찰을 자칭하고 후작을 찾아가, 협박자에게는 현금을 주는게 낫겠다는 조언을 하는 장면만 조금 그럴듯 했을 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역서적 가치', '희소성'에 '퀄리티' 가치까지 부여받은 3관왕인데, 동의하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07/01/05
베이커가의 살인 - 코난 도일 외 / 정태원 : 별점 2.5점
| 베이커가의 살인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자음과모음 |
홈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후대 작가들이 쓴 단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앤솔러지. 홈즈의 팬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서슴없이 구입했습니다. 후배 작가들이 존경을 나타내기 위한 책의 컨셉은 앨리스 피터스 추모 단편 앤솔러지 "독살에의 초대"와 유사하나 이 책은 전 작품이 모두 "홈즈"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차이점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컨셉뿐인 팬 서비스용 기획 도서가 아니라 내용도 풍성합니다. 일단 앞부분에는 유명한 셜로키언이라는 대니얼 스타샤워의 서문과 홈즈의 아버지인 코난 도일이 직접 쓴 "셜록 홈즈에 대해 말하다"라는 에세이가 실려있고 추리 단편도 11편이나 실려있습니다. 책의 뒷부분에는 셜록 홈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두개의 짤막한 에세이가 이어지고요.
일단 서문과 코난 도일의 에세이, 기타 에세이들은 재미도 재미지만 자료적 가치가 꽤 높은 글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단편은 작품들이 너무 천차만별이라 수준이 좀 고르지 못합니다. 물론 좋은 작품은 상당한 수준이라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솔직히 기대 이하인 작품도 몇개 있더군요. 단편을 쓴 11명의 작가들 중에서 제가 아는 작가는 에드워드 D 호크밖에는 없지만, 작가 소개를 보니 다들 한가닥 하는 작가들이라 나름 기대를 갖게 했는데 좀 예상외였어요.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홈즈 시리즈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인데 현대 작가들이 그러한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아쉽더군요. 캐릭터들은 원본 그대로를 거의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데 전개나 분위기가 별로 유사하지 않아서 왠지 이질감이 조금 느껴졌거든요.
그래도 역시 명불허전이랄까... 추리물로서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트릭이나 전개는 깔끔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홈즈 시리즈 원작이 추리적으로는 좀 실망스러운 작품이 많은데 이 단편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네요. 저의 베스트는 "주 경계의 민들레 사건"과 "놀라운 벌레" 였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대부분 추리물로서는 완성도는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도 이번에는 뭔가 좀 이상하고 작품들 수준 편차도 있는 편이라 선뜻 권하기가 망설여지긴 하지만 홈즈 팬인 저는 즐겁게 읽은 편이며, 홈즈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을만한 좋은 작품들이긴 합니다. 자료적 가치도 있고요. 뭐니뭐니해도 등장한지 한세기를 넘기는 늙은 명탐정이 후대 작가들에게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다음 번에는 설홍주도 이러한 작품집의 말석이나마 차지한다면 참 좋겠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케이프타운에서 온 남자 : 스튜어트 M. 카밍스키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앨프레드 도나베리라는 인물이 홈즈를 찾아오기로 한 날은 태풍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그의 이혼한 전처가 찾아와 자기의 새 남편 존과 그가 마주치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을 홈즈에게 하고, 도나베리와의 만남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존이 도나베리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저자는 일찌기 에드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가네요. 그러나 이 작품은 홈즈의 추리법을 흉내만 내었을 뿐, 그다지 좋은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홈즈 시리즈의 특징도 잘 잡아내지 못했을 뿐더러 추리적 요소들도 적절히 사용되지 못한 범작입니다.
주 경계의 민들레 사건 : 하워드 엥겔
왓슨은 홈즈의 요청으로 같이 슈르즈버리행 기차를 탄다. 이유는 곧 교수형 당할 운명인 전 육군원수 윌리엄 경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것. 사건은 윌리엄 경이 아내를 독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홈즈는 슈르즈버리에 도착하자마자 왕성한 활동을 벌여 진상을 밝혀내게 된다.
홈즈와 왓슨의 여행, 당시의 판결제도와 교수형 집행인의 등장 등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으로 사건 전개도 깔끔하고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결말과 범인이 코난 도일스럽지 않다는 것과 홈즈가 범인을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이 "깜짝쇼"에 의존하고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제목과 사건과의 연관성이 참 마음에 드네요.
세넨 코브의 사이렌 : 피터 트레메인
요양차 콘월 반도의 폴두 베이 근처의 오두막에 왓슨과 머물던 홈즈는 고대 콘월어 연구를 취미삼아 논문을 집필하던 중 젤바트 트레보소 경이라는 인물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는 근처 암초에서 사이렌에 이끌려 3척의 배가 좌초한 사건의 해결을 의뢰하며 홈즈는 곧바로 왓슨과 함께 트리벤스로 향한다.
정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묘사한 작품으로 상당히 진기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켈트 역사학자이기 때문인지 쓰잘데 없는 묘사가 너무 많은 것이 단점이네요. 코난 도일 경이었다면 똑같은 이야기를 보다 깔끔하고 함축적으로 썼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트릭 덕에 기본 이상은 해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피 묻지 않은 양말 : 앤 페리
왓슨은 친구 헌트의 초대를 받는다. 그러나 도착한 직후 헌트의 딸 제니가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유괴의 뒤에 모리어티 교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자 왓슨은 홈즈를 부르게 된다.
모리어티 교수가 등장한다는 것 이외에는 큰 사건은 없는 작품입니다. 트릭도 괜찮긴 한데 현실성이 좀 떨어져 보이고요. 제목대로 피묻은 양말 자체는 그런데로 괜찮았지만 단지 그 정도일 뿐이었습니다. 너무 긴듯한 느낌에 내용 전개도 깔끔하지 않은 것이 전통적인 홈즈 스타일에서 약간 빗겨난 듯해서 그냥저냥한 범작이라 생각되네요.
익명 작가 : 에드워드 D 호크
어느날 스트랜드 매거진의 편집인이 한 익명작가를 찾아줄 것을 의뢰하러 찾아온다. 홈즈는 곧바로 그 작가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나 그 뒤 그 작가의 집 근처에서 타살된 시체가 발견된 것을 알게된다.
단편의 명수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입니다. 이 작가의 홈즈물은 아주 짧은 꽁트를 한편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작품은 제대로 된 단편이네요. 전통적 홈즈물의 분위기를 초중반에는 물씬 풍기는 것이 제대로 된 홈즈팬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끔 하는데 후반부에 약간 어설퍼져서 아쉽습니다. 제대로 멜로드라마를 구성했다면 정말 전통에 가까운 작품이 되었을 텐데 흐지부지, 너무 서둘러 끝나는 경향이 있다 보여지거든요. 덕분에 애매한 결과물이 되어 버려 조금 아쉽습니다.
흡혈귀에 물린 자국 : 빌 크라이더
연극계의 거물 헨리 어빙경의 비서로 일하는 스토커라는 인물이 홈즈에게 무서운 사건을 의뢰한다. 여배우 릴리의 아들 로빈이 흡혈귀에 물린 것 같다는 것. 홈즈는 왓슨과 함께 서리주의 별장으로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브램 스토커가 사건 의뢰인으로 등장하는 이색작입니다. 또한 서두의 홈즈의 추리쇼에서 시작해서 영국의 전원풍경, 괴상한 사건, 기발한 트릭이 어우러진 전형적 홈즈물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재미난 작품이기도 하고요. 트릭은 억지성이 있고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억이 있는게 단점이긴 한데 워낙 작품이 재미나고 전통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홈즈를 태운 마차 : 길리언 린스콧
홈즈를 우연히 태우고 셀러딘 스퀘어로 향한 마부는 사실 악당 조직에게서 런던 제일의 쥐잡는 개를 도박을 위해 훔쳐서 가지고 가고 있던 중으로 셀러딘 스퀘어에서 벌어진 대 소동의 한가운데에 말려 들어가게 되는데...
홈즈나 왓슨이 아닌 한 마부를 주인공으로 한 색다른 작품입니다. 마부의 성격 묘사나 심리 묘사가 디테일하고 대사들이 톡톡 튀는 재미를 전해주기는 하는데 덕분에 홈즈물이 아닌 전혀 다른 패러디 작품으로 보이더군요. 추리적으로도 크게 눈여겨 볼 점은 없었습니다. 주인공 마부 캐릭터 덕에 보는 내내 즐겁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다지 알맹이는 없네요.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 : 로렌 D 에슬먼
유명한 탐험가 리쳐드경이 찾아와 투탄카멘의 묘에 대해 적혀있는 중요한 양피지 사본을 찾아줄 것을 의뢰한다. 범인은 패터슨이라는 조수일 것이라는 심증이 강하지만 증거가 없는 상태.
"천일야화"를 쓴 리쳐드 프랜시스 버튼경이 사건의 의뢰인이고 투탄카멘의 묘에 대한 사본이 등장하는 등 역사 미스터리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작품입니다. 뭐 역사적인 사건이야 이 작품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재미는 있더군요. 초반부 리쳐드 경의 변장이 좀 뜬금없어서 억지스러운 것이 좀 거슬리고 트릭 역시 별로 대단치는 않을 뿐더러 솔직히 헛점이 너무 많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잘 묘사하여 그럴듯한 역사 미스터리물로 창조해 내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체셔 치즈 사건 : 존 L 브린
체셔 치즈라는 런던의 전통적인 술집. 한 미국인이 죽어가는 영국인 친구가 남긴 헌시를 가지고 체셔 치즈 안에서 모이는 "포틴 클럽" 에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한 뒤 홈즈를 찾아와 이유를 묻게 되는데....
순전히 죽어가는 영국인이 남긴 "헌시" 자체를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작품입니다. 각 행마다 숨겨져 있는 단서와 정보를 모으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무척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지만 아쉽게도 가장 중요한 트릭이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함으로 인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쉽더군요. 그래도 상당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암흑의 황금 : L.B 그린우드
셜록 홈즈는 황금을 놓고 악한 탐험가 바커가 노리고 있는 피그미 족의 보호를 위해 애슐리 경의 콩고 여행에 보디가드로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왓슨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왓슨은 자신도 변장을 하고 뒤따라갈 결심을 하게 되는데...
단연코 이 앤솔러지 최악의 작품입니다! 홈즈 시리즈의 특징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캐릭터만 잠시 빌어온 아프리카 여행기 수준의 글입니다. 기껏 아프리카까지 갔는데도 불구하고 모험이라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고 페미니즘 성격이 강한 이상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게다가 추리적 요소도 전무하고 이야기도 맥락이 없어요. 솔직히 이 책에서 아예 빼 버리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놀라운 벌레 : 캐럴라인 휘트
마담 타소 밀랍인형 전시관에서 홈즈 인형을 만들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온다. 왓슨과 방문한 그 전시관에서 웨스트오버라는 인물의 인형을 보고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그 뒤 신문에서 웨스트오버의 돌연사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살인혐의는 없어 잊고 살던 중 웨스트오버 가문의 한 하녀가 찾아오는데...
시골 부자의 독살사건에 더불어 마담 타소 밀랍인형관에 실제로 전시된 홈즈와 왓슨 인형에 대한 진짜같은 이야기가 잘 조합된 수작입니다. 동기가 확실한 살인이라는 측면에서 정통 추리물의 궤도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사건의 전개와 해결 모두 깔끔하고 홈즈스러움이 팍팍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약 분석 같은 것은 너무 현대적이라 조금 이질감이 느껴지긴 하더군요. 그래도 충분한 재미는 안겨다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