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소동극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소동극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07/08/08

백기도연대 雨 - 쿄고쿠 나츠히코 / 이길진 : 별점 2.5점

백기도연대 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솔출판사

일본에 있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은 직역하자면 "백가지 그릇 무리의 당연한 자루" 정도 되려나요? "백가지 그릇과 관련된 이야기 책"이라는 뜻으로 짐작됩니다만....

어쨌거나 이 책은 쿄고쿠 나츠히코의 다른 작품들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출연했던 괴물탐정 에노키즈를 주인공으로 한 중편집입니다. 그런데 화자인 전기배선공 모토시마부터가 원래 교코쿠도 시리즈의 주요 인물인 소설가 세키구치와 너무나 유사할 뿐더러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중심축은 추젠지 (교코쿠도)가 맡고 있기 때문에 교코쿠도 시리즈와 별다른건 없더군요. 에노키즈의 기묘한 언행이 보다 업그레이드되어 묘사될 뿐, 그의 특수한 능력, 즉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 역시 여전하고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기존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요소가 전혀 없는, 스핀오프로 보기에는 애매한 작품이었습니다. 에노키즈의 괴이한 능력이 십분 발휘되는 작품을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웠어요.

그래도 실려있는 3편의 중편 - <나리가마- 장미 십자탐정의 우울>, <가메오사 - 장미 십자탐정의 울분>, <야마오로시 - 장미 십자탐정의 분개> - 중 첫번째 이야기는 절대로 추리물이라 볼 수 없는 왁자지껄한 소동극이지만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는 대충 추리물의 얼개를 갖추고 있으며 제대로 된 쿄고쿠 나츠히코 스타일 추리소설이라서 그러한 작풍에 기대를 가진 저같은 독자에게는 꽤 만족스럽기는 했습니다. 중편들이라 너무 장황하고 긴듯한 묘사가 다른 장편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어 읽기는 수월했다는 장점도 있었고요.
특히 개인적인 베스트인 세번째 작품 "야마오로시"는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아주 괜찮은 트릭과 여러가지 사건들이 잘 맞물리는, 단서도 명확한 상당히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장편물에서도 지나치게 방대하다 느껴졌던 요괴나 주술에 대한 정보를 잔뜩 나열하는 부분은 중편분량 작품임에도 전혀 줄지가 않고, 캐릭터의 묘사 역시 비슷한 분량이라 사건에 대한 내용이 많이 축소되어 묘사된다는 단점이 눈에 많이 거슬리네요. 정통 추리물로는 많이 부족한 작품이 되어 버렸거든요. "탐정소설"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만큼 "이건 추리물이 아니야!"라는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요괴 이야기 등은 아무리 봐도 억지로 집어넣은 것 같은 티가 나서 영 별로였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던, 또한 쿄고쿠도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확실히 2% 정도 부족해 보였어요. 괜시리 에노키즈를 끌어들이느니 그냥 쿄고쿠도, 즉 추젠지의 이야기를 중편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아울러 번역, 특히 교정에서의 실수가 눈에 제법 뜨였던 것도 감점 요소 였습니다. 책 자체는 신경을 많이 썼지만 좀 더 세심한 교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2014/01/06

베이커 스트리트 살인 - 아서 코넌 도일, 마틴 H 그린버그 외 / 정태원 : 별점 2.5점

베이커 스트리트 살인 - 6점
아서 코넌 도일 외 지음, 마틴 H. 그린버그 외 엮음, 정태원 옮김/단숨

"홈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후대 작가들이 쓴 단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파스티쉬 앤솔러지. 7년 전에 출간되었던 "베이커가의 살인"과 같은 책으로 표지와 구성이 미묘하게 다르긴 하나 내용은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형태로 재출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이전 판본의 편집과 구성,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들거든요. 코난 도일 경의 글이 앞에 위치한 배치라든가 디테일한 디자인 등 전체적인 구성이 더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어른의 사정이 있는 거겠죠?

여튼, 내용 리뷰는 같은 책이니 당연히 이전 리뷰와 거의 동일합니다. 서문 및 각종 에세이들의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수록 단편 11편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고, 고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띄어 선뜻 권해드리기는 좀 어렵다는 것까지 말이죠. 특히나 "홈스"라고 번역된 이름은 아무리 읽어도 영 어감이 별로더군요....

그래도 나이가 들고 취향이 약간 바뀐 탓에 예전 리뷰에서 좋게 평했던 작품보다 시원찮게 평가했던 작품이 더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괜찮았던 작품은 아래의 세 작품입니다.

"홈스를 태운 마차"
우연히 홈스를 태우게 된 마부를 화자로 한 슬랩스틱 소동극에 가까운 유쾌한 소품. 추리는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지만 유쾌한 분위기에 더해 마부의 고민까지 깔끔하게 해결하는 전개가 좋았습니다.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
실존 인물인 "천일야화"의 작가 리처드 경을 등장시키고 당대로서는 최첨단 문물인 코닥 카메라, 그리고 역사적 사실은 투탄카멘의 무덤을 엮어 그려낸 괜찮은 역사추리물입니다. 진상을 추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홈스가 실재 역사와 교묘하게 엮이는 전개가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체셔 치즈 사건"
트릭은 번역으로는 알 수 없는 일종의 삼행시 같은 것이고 설정과 전개는 예전에 읽었던 데이비슨 포스트의 "대암호"와 유사하지만 시대와 장소를 잘 살린 덕에 차별화되는 높은 설득력을 갖게 된 괜찮은 작품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앞서 권해드리기 좀 어렵다고 쓰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보장하는 만큼 셜록 홈즈의 팬들이시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26/08/21

희극비기극(喜劇悲奇劇) - 아와사카 쓰마오: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대 화물선을 개조한 공연용 배 '우콘호'에 시치로는 마술사로 고용되어 조수 마코토와 탑승했다. 그러나 연예인 혹부리 곤타와 세가와 박사가 연달아 살해당하고 말았다. 시치로 일행은 피해자들 모두가 거꾸로 읽어도 똑같이 읽히는 '회문' 이름을 가졌다는걸 알아냈다. 시치로는 전처 우타코, 조수 마코토(모리 마리모라는 예명)가 다음 피해자가 될까 걱정하면서 점차 사건에 깊숙히 휘말리게 된다...

일본 작가 아와사카 쓰마오의 장편 추리소설입니다. 본격 추리와 아와사카 쓰마오 특유의 소동극이 결합된게 특징입니다. 거꾸로 읽어도 똑같이 읽히는 회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당한다는 설정도 독특하고요. 목차의 모든 소제목도 회문으로 구성되어 있을만큼 회문을 전편에 걸쳐 적절히 써먹고 있기도 합니다.

첫 피해자였던 논 레논(None lenon)이 진범이었고, 그 정체는 그랜트였다는 전개도 좋습니다. 그랜트와 레논은 동일 인물이었으며,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역할을 번갈아 연기하고 있었다는건데, 이를 마술이라는 소재로 드러내는게 아주 기막힙니다. 

우선 레논의 특기 마술은 얼굴을 가린 채 선보이는 독심술인데, 이는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드러내지 않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세 장의 거대한 트럼프를 이용한 마술 리허설도 진상과 연결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바꿔치기 마술이었지만, 곤타만은 그 공연을 유난히 높게 평가했습니다. 곤타는 무대를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트럼프 안에 사람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범해 보였던 바꿔치기가 실제로는 불가능한 조건에서 이루어졌다는걸 알아챈 것이지요.

그랜트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결정적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사건 당시 배 안의 전화는 계속 불통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바킨 단장은 전화로 곤타의 방에 불려갔다가 살해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전화는 배 밖에서 걸려 왔어야 합니다. 당시 상황을 모두 파악하면서 외부에서 바킨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던 사람은 그랜트뿐이었고요.

연쇄살인의 배경이 된, 과거 사이비 종교 집단에 전염병이 퍼졌는데, 근처를 지나던 무일푼으로 궁지에 몰렸던 바킨 단장과 산엔자이 극단원들이 환자들을 돕는 대신 마약으로 독살하고 금품을 빼앗은 사건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이를 통해 범인 그랜트는 사이비 종교 집단 교주로 현재의 살인들은 산엔자이 극단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복수극이었던게 밝혀지는데, 동기에 대한 설득력도 높습니다. 아울러 앞서 결정적 조건으로 보였던 회문 이름은 단순히 회문을 좋아했던 바킨 단장이 단원들 예명을 지어서 생긴 우연의 일치였다는 상황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아와사카 쓰마오 특유의 좌충우돌하는 희극적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곤타의 시체가 들어 있는 호랑이 탈 인형이 엉뚱한 곳으로 배송되면서 벌어지는 대소동이 대표적입니다. 끔찍한 살인 사건과 황당한 상황이 한데 어우러져 제목처럼 희극과 비극이 뒤얽힌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주인공 시치로가 아주 별로입니다. 아내가 떠난 뒤 알코올 중독에 빠진 별 볼 일 없는 마술사라는 설정, 조수 마코토와 전처 우타코를 둘러싼 관계 모두 진부합니다.

범인을 밝혀내는 논리적인 추리 과정과 다르게 개별 살인에 사용된 트릭들도 모두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레논이 칼에 찔려 죽은 것처럼 꾸민 방법이 대표적입니다. 배의 근육과 지방을 등 쪽으로 이동시켜 칼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는데, 아무리 레논이 인도에서 특별한 수행을 했다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입니다. 세가와 박사를 사고사로 위장한 라이터 트릭 역시 가스 라이터에서 나온 불꽃이 사람을 태울 정도로 강하게 번진다는 전제에 의존하고 있어서 비현실적이에요. 인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망할 정도의 사고가 될리는 없었을 겁니다.

곤타와 타마하의 시체가 뒤바뀐 과정도 별볼일 없어요. 당시 시체에 손을 댈 수 있었던 인물이 사실상 그랜트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랜트가 진범이라는 사실도 비교적 일찍 짐작할 수 있어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과거 미국의 사이비 종교 집단과 관련된 외국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커지는데, 주요 인물 가운데 그 조건에 맞는 외국인은 사실상 그랜트뿐이니까요. 

그래도 '회문'과 마술이라는 소재의 사용과 추리적인 전개, 흥미로운 과거의 범죄 등 재미있는 요소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개별 트릭의 완성도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회문과 마술을 결합한 색다른 본격 추리소설을 찾는 독자라면 추천드립니다.

2015/05/20

멀리 돌아가는 히나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멀리 돌아가는 히나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고전부 시리즈" 네번째.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단편집입니다. 가을, 겨울을 거쳐 봄방학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고 있죠.

각 이야기별 줄거리 및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은 간략하게"

가미야마 고등학교 7대 불가사의 중 첫 번째라는 "비밀클럽의 권유 메모"를 찾는 내용입니다. 소박한 학교 관련 일상계 소품으로 추리적으로도 별다른건 없습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시체를 숨기려면 전쟁터에"라는, 브라운 신부 단편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에서도 인용되었던 격언이 핵심이지요.

그래도 이야기 서두에 등장하는 음악실 괴담에서부터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호타로의 행동이 잘 연결되는 결말 부분의 반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상계도 이런 반전이 가능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에요. 사토시도 의외로 정곡을 찔러서 만만한 남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요. 여기에 음악실 괴담까지 해결해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풍성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추리지만 이런 게 고등학교 무대에 적합한 트릭이겠죠. 여기가 뭐 부동고교도 아니니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일상계 왕도를 걷는 작품이에요. 시리즈 팬에게 여러 가지 재미를 선사해 주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대죄를 짓다"

수학선생님이 진도를 착각한 이유에 대한 아주 짤막한 이야기. 진상은 소문자 a와 d를 착각했다는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것입니다. 그냥 화를 낸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지탄다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하지만 그것도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과연 화를 내는 것도 에너지 낭비인 건지 좀 궁금하네요. 별 내용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정체 알고 보니"

고전부원들이 온천 여행을 떠나는데 숙소인 여관에서 지탄다와 마야카가 목매달아 죽은 시체의 유령을 본다는 이야기. "고전부" 시리즈 추리의 핵심, 즉 "신경쓰이는" 지탄다를 납득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게 잘 드러납니다. 진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추리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전달되는 단서들을 조합하여 나름의 합리적으로 설명해주기는 합니다. 유카타를 말리기 위해 헤어드라이어를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뭐 그런 변수까지 다 등장시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겠지요.

"고전부" 시리즈의 핵심을 꿴다는 측면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기억이 있는 자는"

"10월 31일, 역 앞 고분도에서 물건을 산 기억이 있는 자는 지금 즉시 교무실 시바자키한테 와라." 라는 교내 방송에 대한 호타로의 추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누군가가 한 말을 추리해서 의외로 숨겨져 있는 범죄에 대한 진상을 파헤친다는 건 "9마일은 너무 멀다"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진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호타로가 지탄다를 납득시켜 승부에 이기기 위한, 순수한 추론일 뿐이거든요. 몇 가지 증거, 즉 방과 후에 호출 방송을 한 것, 학생지도부가 아니라 교감이 불렀다는 것, 10월 31일이라고 날짜를 지칭한 것, 방송을 두 번 반복하지 않은 것 등만 가지고 추론을 이끌어내는 호타로의 솜씨는 인상적이지만 진상이 위조지폐와 관련된 범죄라는 것은 비약이 너무 심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새해 문 많이 열려라"

새해 참배에서 창고에 갇히게 된 호타로와 지탄다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소동극. 너무 추운 날에 남녀 단 둘이서 신사 창고에 갇힌다는 설정은 만화스럽습니다. 궁지에 몰리고 별다른 수단이 없는 둘이 가진 몇 가지의 소품을 최대한 활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펼쳐지는 과정은 일종의 모험담이라고 봐도 될 테고요. 이전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팥을 담은 주머니 양 끝을 묶어 전달했다"는 고사를 효과적으로 써먹는건 좋았습니다. Side라는 부제로 구분하여 이바라와 사토시 시점, 호타로와 지탄다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는 "이니시에이션 러브" 같은 전개도 독특했고요.

그러나 유실물이 무녀 아르바이트 중인 마야카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운에 의지한 작전이라는 것, 창고에 갇힌 시점에서 지탄다의 체면을 그렇게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었을지 잘 납득이 안 된다는 것, 무엇보다도 "고전부" 시리즈의 핵심인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계로 보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제 초콜릿 사건"

이바라 마야카가 사토시에게 주려던 초콜릿이 고전부실에서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별 건 없지만 고등학생의 순진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 즉 집착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면 더 편한 마음으로 지내던 사토시가 마야카에게 집착해야 하는 딜레마를 다룬 이야기라 생각하고 보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별로라 잘 와닿지는 않더군요. 특이한 캐릭터를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이런 류의 평범한 일상계 사랑이야기에는 적합한 캐릭터들은 아닌 탓입니다. 일상계라면 보다 일상계다운 주인공이 나와 주는 것이 훨씬 좋았을 거예요. 또 에너지 절약 주의, 즉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는다는 호타로만큼이나 특이한 사상을 가진 사토시 같은 고등학생이 실존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기도 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멀리 돌아가는 히나"

표제작. 제목 그대로 히나 축제에서 히나 인형(으로 분장한 지탄다)이 다리에 생긴 문제로 멀리 돌아가게 된 경위를 밝혀내는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그러나 이 추리는 곁가지일 뿐이고 내용은 히나 인형 옆에서 우산을 받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호타로와,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밝히는 지탄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전 편의 사토시의 심리묘사보다는 호타로 묘사가 괜찮아서 그런대로 괜찮게 읽혔습니다. 사토시는 3인칭이고 호타로는 1인칭인 덕분입니다. 훨씬 말랑말랑하고 귀엽고, 여튼 좋았어요.

아울러 히나 인형이 돌아가게 된 계기 역시 일상계답게 괜찮았습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럴듯했거든요. 공정한 정보 제공도 돋보였고 말이죠. 별점은 3점. 묘사, 전개, 추리적인 부분 모두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일상계 작품다운, 평범하게 재미있는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챙겨볼 만한 시리즈임에는 분명해요. 이 시리즈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호타로와 지탄다의 관계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해집니다. 후속권이 빨리 나와주면 좋겠네요.

2014/05/07

CMB 박물관 사건목록 2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CMB 박물관 사건목록 23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24권까지 출간되었다는 말을 이전 리뷰에서 했는데 이제서야 23권을 읽게 되었네요. 확실히 요새는 읽는 속도가 떨어졌어요. 특히나 신간을 챙기기가 쉽지 않군요. 

이번 편에는 총 4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네 번째 코테에
  • 아시즈리 계란말이 가게
  • Nobody
  • 그라운드

항상 그래왔듯 강력사건 - 일상계가 반반인 구성입니다. "네 번째 코테에", "Nobody"는 강력사건이고 다른 두편은 전형적인 일상계거든요.

수록작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네 번째 코테에"

신라가 지인의 부탁으로 환상의 코테에 (미장이 기술로 그린 회반죽 그림)를 찾기 위한 조사에 나선다는 내용.

환상의 코테에는 미장이 장인 쿄지로가 본인 최고 걸작이라 선언했던 것으로, 그가 부호의 별장 벽 4면에 만들었으나 불타버려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조사하려는 사람에게 불행이 닥쳐 저주에 걸린다는 소문까지 있고요.

그런데 신라가 밝혀낸 진상이 꽤 놀라우며 그럴듯합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추구한 쿄지로가 자신의 기술로도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하자, 결국 여성 그 자체를 코테에로 만들었다는 것이거든요. 현대물 중 여성을 수집한다는 변태스러운 작품이야 여럿 있고, 포우의 "검은 고양이"라던가 란포의 고전 변격물도 떠오를 정도로 흔한 설정이지만 이를 에도시대와 코테에로 변주했다는 것이 신선했습니다. 작가가 평상시 보여주지 않던 스타일이라 더 의외성있게 다가왔던 것 같네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네번째 코테에의 파편이라는 증거도 적절히 제시되어 설득력을 높여주며, 코바씨 습격 사건이라는 곁가지 사건이 줄거리에 잘 녹아들어 있다는 점, 욕심내지 않고 짧게 마무리한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시리즈 최고의 장점 중 하나인 박물학적 지식과 추리의 결합이 오랫만에 절묘하게 이루어졌다는 것도 좋았어요. 이래야 CMB지!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간만에 본 상당한 완성도를 지닌 수작입니다.

"아시즈리 계란말이 가게"

계란말이를 사러 간 신라 일행이 주인이 부재 중인 가게 안에 우연히 들어간 뒤 난장판이 된 가게 상황을 놓고 이런저런 추리를 한다는 일상계.

유머러스하고 즐거운 소동극으로 남겨진 증거들에서 극단적인 상황만 예상하는 이웃 사람들의 추리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묘사도 아시즈리씨가 도둑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하이킥 연타,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은 프로레슬링으로 그려지고 있는 식으로 대놓고 개그스럽고요.

그러나 핵심 단서라 할 수 있는 "다.스.케.테"라는 글자가 작위적인 것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일종의 암호 트릭인데(당연하겠지만) 일본어라 국내 독자가 즐기기에는 무리일 뿐더러, 설정 자체가 억지스러웠거든요. 국내용으로 변주한다면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도지마롤", "와인", "주스", "슈크림"을 사러가기 위한 앞글자만 적어놓은 장보기 메모가 "도-와-주-슈"가 된다는 식인데... 설득력있게 와 닿지는 못했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Nobody"

밀매조직 소속으로 살인혐의로 체포된 3명의 용의자 중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힌다는 내용.

여러모로 평균 이하였어요. 일단 핵심 트릭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서 프로 청부업자들이 시신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설정. 오랫동안 피를 모아 놓는다는 설정 모두 설득력이 낮은 탓입니다. 피해자 카를로의 도주가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이런 이야기에 억지로 "자바 코뿔소의 뿔"을 집어넣어 CMB스럽게 만드려는 꼼수를 부린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고정 캐릭터인 쿠지라자키 경감이 신라에게 사건을 의뢰한다는 설정도 경찰이 왜 고교생에게 이런 것을 부탁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내용도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시체가 없다면 기소할 수 없다는 것도 옛말이죠. 우리나라도 얼마전에 유명한 "시체없는 살인사건"이 남겨진 증거만으로 살인 혐의가 인정되어 유죄가 선고되기도 했으니까요. 일본의 판례는 좀 다를 수 있지만 누군가 죽었다는 것이 명백하다면 충분히 법원에서 살인혐의를 인정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점수를 줄만한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그라운드"

물바다가 된 학교 운동장에 얽힌 사연이 드러나는 일상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던 학교를 무대로 한 일상계입니다.

그런데 사건의 발단이 되는 운동장 사건은 야구부 감독이 21세기 출전권을 노린 꼼수라는 것이 비교적 초반에 밝혀지고, 이후에는 신라 - 타츠키 컴비가 주축이 되어 벌이는 간단한 사기극이 전부입니다. 감독의 행동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도 문제네요. 엄연한 범죄행위에 당한 것을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불가였거든요. 이런 유치한 사기극에 걸려들 정도의 인물이니 그럴만도 한건가?

여튼, 추리적 요소는 없는 그냥 학원 드라마에요. 타츠키 아버지의 활약 정도만이 인상적일 뿐이네요. 시리즈의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별점은 2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체 평균 별점은 약 2.5점. 수작과 졸작이 섞여 있는데 그래도 전부 평작인 것 보다는 마음에 듭니다. 다음 권에도 최소한 한편의 수작이 있는 구성이었으면 합니다.

2009/12/10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하 - 마쓰모토 세이초 / 미야베 미유키 / 이규원 : 별점 3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하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 (이후 "여사" 생략) 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의 마지막권입니다. 이번권은 전부 3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조영일씨의 해설이 덧붙여져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두개의 장은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제 7장 "제목 짓기의 묘"는 작품을 읽기전에 제목을 보고 여사님이 내용을 먼저 상상해 보았다는 설명부분이, 제 9장의 마쓰모토 세이초 상 수상 작가에게 자신만의 마쓰모토 세이초 베스트 단편을 묻는 기획이 좋았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편들에 비하면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거장의 발자취를 착실하게 뒤쫓는 기획 의도는 당연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번권은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보기에는 좀 아니다 싶은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던 탓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물론 작품의 수준은 높고 그 문학적 성취는 두말할 필요 없는 좋은 작품들임에는 분명합니다. 단 제 기대하고 달랐다는 것이죠...
작품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7장 | 제목 짓기의 묘
과다 지불한 중매 사례비
시골 마을 지주의 딸 노처녀를 놓고 벌어지는 한판 사기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사님이 나름의 상상을 펼친 설명부분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제 개인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면 노처녀가 과연 잘생긴 부잣집 아들에게 넘어가지 않고 계속 지조를 지켰다면? 이라는 이야기로 끌고가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조금은 유쾌한 소동극이 되겠군요^^

그리고 작품과 별개로, 당시 화폐 가치를 잘 모르겠지만 1960년 대졸 초임이 15,000엔이라고 하니 지금의 약 1/10로 치고, 요걸 기준으로 손해배상으로 청구한 금액은 80만엔이니까 약 1억원. 큰 금액이긴 하지만 무려 4명의 사기꾼들이 장기간 공들인 작전에 비하면 좀 처지는 금액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네요.^^

살아 있는 파스칼
아내의 히스테리로 살의가 싹뜬 화가의 이야기로 도저히 "단편" 컬렉션에 들어갈 작품이 아닌 왠만한 중편 이상 길이의 기나긴 작품입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을 작품과 잘 결합시켜 전개하는 구성은 탄탄한 편이지만 내용에 알맹이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왜냐면 결국은 주인공 화가의 고단한 결혼생활과 그간 있었던 여성편력이 긴 내용의 대부분이라 결국 사건 자체에 관련된 내용은 너무나 짧고, 또 추리물로 보기에는 해결 부분이 합리적이지가 않아서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마지막에 등장하는 증거는 정말이지 너무나 빈약한게 아닌가 싶어요. 차라리 그림의 완성도를 놓고 따지는 심리적인 서스펜스로 결말부분을 끌어갔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말이죠...

뼈단지 풍경
마쓰모토 개인의 과거사를 다룬 듯한 서정적인 산문입니다. 할머니의 뼈단지를 찾기위한 고향 방문과 유년시절의 추억을 담담하게 펼쳐놓는 작품으로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거장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산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추리물은 아니지만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제8장 | 권력은 적인가
데이코쿠 은행 사건의 수수께끼─『일본의 검은 안개』에서
종전 직후 벌어진 데이코쿠 은행 강도사건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이 사건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해왔던 사건으로 은행 직원에게 해독제를 가장하여 독극물을 먹인 범행 방법도 놀랍지만 작가가 펼쳐놓는 배후에 731 부대가 있었다! 라는 음모이론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서술되어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나름의 근거에 기반한 추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 구조는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어요.

까마귀
별볼일없는 인간으로 강경하게 노조활동을 하다가 모든 것을 잃은 인물과 엘리트 출신의 노조 간부로 회사와 타협한 인물. 두명의 이야기입니다. 격한 묘사를 걸쳐 의외의 결말로 귀결되는 작품으로 프레드릭 포사이스 단편집 "마지막 에이스"의 첫 단편을 연상케하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생뚱맞고 동기가 불투명하며 사건 자체의 설명이 전혀 되고 있지 않은 등의 약점도 많기에 범작으로 보입니다. 아마 작가 스스로도 "노동운동"의 양면성에 대한 고발 측면이 강한 글을 쓰고 싶었던 탓이 너무 컸던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제9장 | 마쓰모토 세이초 상 수상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사이고사쓰
사이고사쓰, 즉 사이고 다카모리가 만든 휴지조각과도 같은 지폐에 얽힌 사연을 그려낸 일종의 역사물로 시대의 혼란과 그 와중에 한몫을 챙기려는 암투, 그리고 시기와 질투가 작가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보통 이상의 흡입력을 가지는 좋은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작품은 이렇게 써라! 라는 교과서적인 텍스트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국화 베개─누이조 약력
한 하이쿠 여성 작가의 일대기를 그려낸 작품인데 누이라는 작가가 광기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약간 부족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썩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 작품을 선정한 작가의 소갯글 처럼 "연극" (그것도 1인극 형식) 에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불의 기억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남자가 언뜻 떠올린 기억만으로 과거를 추리해내는 일상계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소품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높고 모든 과정이 합리적이라 이 단편집에 속한 추리물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은 작품입니다. 아주아주 간단하지만 깊이있는, 정말이지 원숙한 맛이 물씬 풍깁니다.

2011/12/18

아버지의 백드롭 - 나카지마 라모 / 한희선 : 별점 2.5점

아버지의 백 드롭 - 6점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사고뭉치 아빠들의 좌충우돌 소동극으로, 훈훈하고 유쾌한 결말로 끝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나카지마 라모의 꽁트 네 편을 모아놓은 소품집. 추천을 받아 읽어보았습니다. 

호러 단편집 "인체모형의 방"과 오컬트 모험물 "가다라의 돼지"라는 두 편의 장르물로 먼저 접했던 작가라서 이러한 일상계 소품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니 네 편 모두 그다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르물과 유사하더군요. 작가 특유의 블랙 코미디 성향이 잘 드러나 있는 것도 역시나 싶고요.

그러나 일상계 소품에서 기이한 비현실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단점이긴 합니다. 모든 것이 과장된 만화 같으니까요. 예를 들어 기본 설정부터가 그렇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거구의 프로레슬러였다는 점은 아다치 미츠루의 "슬로우 스텝"이 바로 연상되고, 진기한 애완동물을 아들들에게 건네주어 자존심 싸움을 하게 만든다는 설정은 "도라에몽"의 한 에피소드 같았습니다.

또한, 유쾌하기는 하지만 기승전결이 쉽게쉽게 이루어지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백드롭"에서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어 보였던 우시노스케가 별다른 복선도 아니었던 복근의 수비력으로 승리한다든가, 연예인 밧타의 뜬금없는 방송국 신인상 수상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설득력 없는 이유로 극적인 드라마가 성립되는 것은 다소 생각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뭐, 피식하며 즐기라는 취지의 작품이니만큼 깊게 생각하며 읽을 필요는 없겠지요. 작가의 창작 의도도 그저 마음 편하게 즐기자는 것일 테고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소품으로는 제격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07/11

몽인 - 우라사와 나오키 / 서현아 : 별점 2점

몽인 (일반판) - 4점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서현아 옮김/학산문화사(만화)

온갖 사기를 당한 뒤 자살을 생각하던 아빠와 카스미는, 우연히 까마귀 '마리아'의 인도를 받아 '불연' 이라는 곳을 찾았다. 그곳의 정체는 프랑스를 찬양하는 괴인이 소장인 '프랑스 연구소'였다. 소장은 아빠에게 루브르 미술관에서 페르메이르의 '레이스를 짜는 소녀'를 숨기는 작전을 실행해주면, 위작을 팔아 거액을 나누어주겠다고 유혹했고, 소장의 말에 넘어간 부녀는 마지막 비상금을 털어 프랑스로 향했다. 그리고 소장이 세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오랫만에 본 우라사와 나오키의 한 권짜리 단편입니다. 어딘가에서 추천 글을 읽고 구입해 보았습니다. 

굉장히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대소동이 일어나고, 본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폭주해서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결말은 유쾌했습니다. 좀 오래 전 헐리우드 소동극을 보는 느낌으로, 조금 낡은 듯한 그림하고도 잘 어울렸고요. 옛 사랑이 아련하게 그려지는 결말도 나쁘지 않아요.

아카츠카 후지오의 오마쥬 만화로 볼 수도 있다는 독특함도 인상적이에요. 소장은 아카츠카 후지오의 "오소마츠 군" 속 주력 캐릭터인 이야미 (아래)의 오마쥬로 보이니까요.


이 캐릭터를 아는 팬분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었으리라 생각되네요. 소장과 카스미가 대화를 나누며 보여주는 티키타카는 이 만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범죄물로는 함량 미달이었던 탓입니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를 짜는 소녀"를 살짝 숨겨 놓은 뒤, 위작을 고가에 팔아 넘긴다는 계획은 언뜻 보면 그럴듯해요. 하지만 관광객들에게 마스크를 나누어 준 뒤, 부부젤라 소리로 그걸 쓰게 해서 소동을 일으킨 사이 그림을 숨긴다는 실제 작전이 너무 어설픕니다. 루브르가 그렇게 보안이 허술할리가 없지요. 설령 숨기는게 가능했더라도, 모든 장소는 CCTV로 감시되고 있었을테니 바로 들통났을테고요. 게다가 프랑스어도 못하며 일본에서도 사기만 당하다가 미래가 없어진 찌질남과 어린 딸이 실행범이라면, 훨씬 치밀한 준비와 실행을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결말도 급작스럽고 작위적입니다. 운과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으니까요. 비버리 대통령 마스크가 대박이 났다 한들, 아빠가 재기하는건 불가능했을거에요. 물론 이런 결말이 옛 헐리우드 영화스럽기는 했습니다만....

그리고 아카츠카 후지오에 대한 오마쥬도 범죄물에는 전혀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이야미는 이상한 말투로 프랑스를 찬양하는 과장된 모습만 보여주거든요. 개그만화 캐릭터이니 당연하겠지만, 덕분에 이야기의 비현실성만 커졌을 뿐입니다. 그나마 정체가 무엇인지, 목적이 무엇인지도 밝혀지지도 않고요. 본인이 직접 프랑스어로 가서 계획을 실행하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없어요. 여권이 없는 듯한 암시 정도에 그칩니다. 이럴거라면 소장은 등장하지 아니함만 못했습니다. 트럼프를 풍자하는게 분명했던 비버리 대통령도 많이 억지스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허술한 이야기 구조는 조금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적합해 보입니다. 범죄물 말고, 이야미의 사랑 이야기에 주력하는게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구태여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09/12/05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시작

마츠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하권이 새로 나왔기에 구매차 방문한 인터네 서점을 둘러보다가 구입한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충동구매에 가까웠는데, 다행히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 자체의 구성이 신선한 덕분입니다.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이라는 중편 이야기가 총 6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펼쳐지며, 이 중편의 각 장이 끝나면 곧바로 다이도지 케이가 경찰관을 은퇴한 뒤 벌어지는 단편 에피소드들이 이어져서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단편 에피소드들이 중편 "최후의 사건"에 등장했던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중단편집이지만 일종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끔 한 것으로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물론 와카타케 나나미가 단편들을 엮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맥락을 갖추게끔 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아이디어이기도 하고요.

또 전직 경찰관이지만 지금은 작가(?)로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다이도지 케이라는 주인공은 물론,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범죄자들 모두 매력적입니다. 이상하게 사건에 엮이게 되는 다이도지 케이의 상황들도 재미있고요. 관련된 사건들 전부가 상상을 뛰어넘을만큼 황당하지만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 그리고 일상물로 여겨질만큼 평범하지만 희한하게 느껴지는 재미난 캐릭터들 모두 작가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선보입니다.

또 그동안은 작가의 단점이라 할 수 있었던 요소들, 즉 본격으로 치기에는 좀 구성의 짜임새가 없고(이건 제가 단편집만 읽은 탓이 크겠죠), 즉흥적으로 보이는 장난스러운 설정과 묘사들이 단편집이라는 형태에서는 외려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약간은 억지스러운 트릭들이지만, 작품 분위기가 일상계면서도 황당한 상황들이라서 이야기에는 더 잘 어울린 느낌이에요. 작가의 팬으로서는 전작들과 어느정도 연결되는 세계관도 즐길거리였고요.

결론적으로 근간 읽은 추리소설들 중에서는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코지 하드보일드" 라는 조금은 기괴한 장르명으로 소개되고 있던데, 일상계의 탈을 어느정도는 뒤집어 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코지,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하드보일드 탐정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뭐 그다지 과장된 소개는 아닙니다. 코지 계열의 팬이거나 가벼운 유머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팬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죠.

1. 다이도지 케이 최후의 사건

경찰관 다이도지 케이는 상사 고이즈미 무사시와 함께 30대 초반 여성 살해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피해자인 자유기고가 후지노 유키의 신변을 조사하던 다이도지는 그녀에게 일을 의뢰했던 적이 있는 출판사 직원인 소꿉친구 히코사카 나쓰미를 찾아가는데.... 

총 6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중편입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이도지 케이의 과거사, 즉 아내의 비참한 뺑소니 사고와 범인을 일부러 놓아준 경찰서 내부 G반 인간들, 그리고 다이도지를 작가의 길로 끌어들이는 히코사카 나쓰미나 원숭이 조지와 같은 곁다리 등장인물이 다른 단편 에피소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집의 밑그림과도 같은 작품이죠.

그러나 아무래도 단편 에피소드들을 위해서인것 같은 무리한 이야기 전개도 약간 거슬리고 내용도 설명적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크게 두드러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트릭 역시 중요한 단서가 말장난에 가까운 등 공감하기 어려웠고요.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책의 뼈대라는 점에서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 죽어도 안 고쳐져

작가가 된 다이도지 케이는 경찰시절 겪었던 얼간이 범죄자들을 다룬 "죽어도 안 고쳐져"라는 책을 발표하고 강연회를 가졌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자칭 트레이시라는 범죄자가 다이도지를 협박하며 자신이 뒤집어쓴 누명을 벗겨줄 것을 강요하는데... 

아주 유쾌하면서도 기발한 소동극입니다. 범죄의 천재로 자부하는 스킨헤드 범죄자 트레이시 로즈라는 캐릭터의 등장부터 유쾌하고, 트레이시가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밀실 살인 사건은 추리적으로 완벽해서 흠잡을데가 없습니다. 게다가 다이도지가 전세를 역전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하드보일드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해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단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이 이야기를 꼽겠습니다.

* 덧붙이자면, 책 뒤의 해설에서 트레이시 로즈는 포르노 출신 배우라고 하는데, 저는 80년대 헤비메탈 밴드에서 따온 이름인줄 알았습니다. 메탈 쪽이 더 이미지가 비슷한 것 같은데 말이죠...

3. 원숭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죽어도 안 고쳐져"에서 자신을 우습게 다루었기 때문에 딸이 가출했다고 소매치기 원숭이 조지가 우긴 탓에, 다이도지 케이는 딸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후 찾아온 경찰에 의해 원숭이 조지가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조금은 미묘한 작품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처럼 유머러스한 전개로 재미있게 읽히기는 하지만 범죄가 우발적이고 트릭도 별것 없으며 무엇보다도 증거가 빈약하다는 단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이도지 케이라는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의 활약이 발군이라서 평작 수준은 됩니다.

4. 죽여도 안 죽어

다이도지 케이에게 한 추리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검토해 줄 것을 부탁해 왔다. 경찰관 시절 경험을 살려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작품의 살인계획이 현실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데.... 

편지로 긴장감을 높여주는 전개가 독특한 작품으로 깔끔한 이야기 구성에 반전도 확실한 편이라 즐길거리가 많은 에피소드입니다. 추리적으로 "증거"라는 것이 빈약하고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이 크긴 한데 워낙에 아이디어가 돋보여서 단점도 묻혀가는 느낌이랄까요. 확실히 단편은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네요.

5. 추락과 붕괴

논픽션 작가 이소베 다카히토의 유고를 이어쓸 것을 본의아니게 떠맡은 다이도지 케이는 고카 악이라는 화산지대에 위치한 이소베의 별장을 찾아가는데... 

사건은 별게 없고 트릭도 무지하게 간단하지만 이소베라는 작가와 연관된 인물들의 악의가 거침없이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이러한 평범한 악의의 극대화는 작가의 특기이기도 하죠. 전개도 합리적이라 무난한 수준의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6. 도둑의 엉뚱한 원한

하자키 문화센터에 강연차 방문한 다이도지 케이는 2인조 강도에게 납치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곤경을 해결하고 사건의 복수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물어보는데... 

앞선 이야기들과 동일한 구성, 즉 다이도지 케이가 희한하게 사건에 엮이게 된다는 전개이지만 2인조 강도단이 이야기한 사건의 내용만 듣고 진상을 밝혀내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들과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사건도 앞선 에피소드들에 비한다면 일상계에 가까운 내용이라 가볍게 읽기에 편했고요. 단서와 복선들도 공평해서 합리적으로 전개되기에 추리적으로 만족스러운, 여러모로 평균 이상의 괜찮은 이야기입니다.

2021/06/25

Q.E.D Iff 증명종료 14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14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각 걸작과 졸작으로 극명하게 수준이 갈립니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났던 권은 많지 않았었는데 말이지요.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억엔과 여행하는 남자" 

파자마 차림으로 1억엔을 든 채 배회하던 남자가 발견되었다. 기억을 잃은 그는 '우라시마 타로'라는 남자로 밝혀졌다. 교통 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였는데 아내가 죽은 뒤 의식을 회복했으며, 1억엔은 사고 배상금으로 집에 놓여져 있던 돈이었다. 

타로는 아내 나오코가 언제나 오르골로 쇼팽의 이별의 곡을 울렸으며, '오토구치를 찾으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다는 걸 기억해내었고, 토마의 조사로 오토구치 마사요시는 실존 인물로, 그가 지방검사 시절에 담당했던 우라시마 긴지 살인 사건 피고인이 우라시마 타로였다는게 밝혀졌다. 그는 나오코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 주장을 했지만 오토구치 검사가 가져온 CCTV 영상으로 거짓이 밝혀져 15년 형을 선고받았었다. 12년 뒤 석방된 그는 4년만에 자살을 시도해서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오래전 있었던,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의 범죄 드라마이자 본격 추리물이자 복수극입니다.

우선 토마는 우라시마 긴지 사건 재판의 진상에 대해 추리해냅니다. 우라시마 타로가 갔던 에비스 카페 주차장이 범행 현장 주차장과 같은 형태였던걸 이용하여, 우라시마 타로가 현장에 있었다고 오토쿠치 검사는 증거를 조작했던 겁니다. 토마는 사진 속 가로등과 그림자 위치로 이 추리를 증명해 내고요. 그리고 이를 통해 지금의 수수께끼, "우라시마 타로에게 일어난 일은 정확하게 무엇이며, 1억엔이 왜 남겨져 있었고, 나오코는 왜 오토구치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남겼는지"를 풀어냅니다. 그 답은, 이 모든건 오토구치의 증거 조작을 알아낸 나오코의 복수였다는 겁니다. 

지금의 우라시마 타로는 오토구치 검사였고, 나오코는 오토구치가 조작으로 이겼던 재판에서의 형량만큼 그가 형을 살도록 하기 위해 26년간 약을 먹여 재운 겁니다! 1억엔은, 국가에서 죄가 없는 사람이 형을 살았을 때 보상금에 기초한 금액이고요. 하루에 대략 1만엔이니, 365일 곱하기 26년하면 대충 1억엔인거지요. 나오코가 마지막에 남긴 메시지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떠올려 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오토구치가 검사 시절 선고했던 형량의 총합인 26년과, 오토구치가 기록에서 사라진지 올해가 26년 째라는 점 등으로 증명됩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이라서 본격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반전이 드러나는, 우라시마 타로가 사진을 보고 자기가 오토구치였다는걸 깨닫는 장면도 아주 좋았습니다. 사진 중심이라는 점에서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자기 딸이 미도라는걸 깨닫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만화라는 매체에 어울리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이 끔찍한 진상을 담담하게, 웃는 얼굴로 밝히다가 가나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는 토마의 모습은, 토마 소라는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잘 드러난 명장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소중한건 가나 뿐이라는 이야기니까요. 가끔 보면 이 친구는 정말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싶어요. 사회적인 공감이 결여되어 있는걸로 느껴지거든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전개 과정에서 약간의 헛점은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헛점은 오토구치의 실종이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냥 기록에서 사라졌다고만 언급되고 있거든요. 아무리 옷을 벗었어도 전직 검사인데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건 말도 안되지요.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닐테고요. 또 26년간 약으로 잠들어 있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오토구치였다는 '기억'을 잃은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의 우라시마 타로는 자살했는데, 그 역할을 오토구치에게 맡길 때 시체를 어떻게 했는지도 설명되지 않아서 좀 아쉬웠어요.

그래도 완성도는 손색이 없는 좋은 작품입니다. 타나바타 형사의 재등장도 반가왔고요. 별점 4점은 충분합니다.

"메모리" 

MIT 출신 수학자 황성이 사망 후, 양자 암호에 대한 핵심 기술을 남겼는데, 이 기술을 러시아와 중국, 미국 정부가 노려서 대 소동극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작이 아주 빼어나서 기대가 컸는데, 아쉽게도 부응하지는 못했습니다. 세계 초 강대국 3개국이 가담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유치한 첩보전이 그려지는 탓입니다. 토마와 가나의 변장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던가, 가나가 강대국 정보부원들의 습격을 격투와 함정(?)으로 저지한다던가, 3개국이 USB를 확보하기 위해 유원지에서 대소동을 벌인다던가 하는 전개 모두 유치하기 짝이 없네요. 토마가 애초에 가짜 USB를 넘겨줘서, 3개국 정보기관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진상도 유치하기는 마찬가지고요.

약간 등장하는 추리적인 요소도 실망스럽습니다. 황성이 토마의 데이터를 훔치려고 했지만 훔치지 못했던 방식에 대한 소소한 트릭 - 몰래 작은 USB를 노트북 후면에 꽂아 두고, 누군가 USB를 연결하면 그쪽 연결은 없이 후면 USB가 연결되게 함 - 은 일견 그럴듯해보이지만 설득력은 낮아요. 노트북으로 필요한 데이터를 탐색하여 USB로 복사하는 과정에서 보통은 자기 USB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니까요. 황성이 사망전 머물렀던 산장 벽걸이 시계에서, 멈춘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장소에서 USB를 발견한다는 일종의 암호 트릭도 유치합니다. 구태여 암호 트릭을 풀지 않았더라도, 주변만 수색했어도 정보기관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을테고요.

황성이 러시아에서 태어난 조선족으로 중국 칭화대에서 공부했으며 여동생 황해심이 한국의 친척에게 보내졌다는, 우리에게는 비교적 친숙한 설정의 인물이라는건 재미있었습니다. 일본도 토마가 손에 넣은 USB를 입수하기 위해 움직이는데, 이 과정에서 전작에 등장했었던, 단맛을 좋아하는 내각 조사실 소속 나시다가 재 등장하는 것도 반가왔고요.

하지만 대체로 점수를 줄 부분은 없는 졸작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23/09/15

꽃밥 - 슈카와 미나토 / 김난주 : 별점 2점

꽃밥 - 4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예문사

공포 소설에 가까운 환상 소설 <<도시전설 세피아>>로 접했던 작가 슈카와 미나토의 단편집. 몰랐는데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수상 이력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부 주인공 화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오사카 변두리 어딘가에 있는 서민가 뒷골목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웃간 소통이 많고, 아이들끼리는 항상 어울려 놀곤 했던, 우리나라로 따지면 <<검정 고무신>>이 떠오르는 그런 시대 그런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이 접하게 된 다소 기이하고 환상적인 경험들이 그려지는데, 환생, 성불하지 못한 영혼과 같이 뻔한 것도 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묘사는 나오키 상을 수상할만하다 싶고요.

그런데 소년, 소녀가 묘한 경험을 한 뒤 한 뼘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이 겪은 경험은 기억에 깊숙한 자국을 남기기는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뻔하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래서 어쩌라고?'처럼 기승전결없는 단순한 추억담이에요. 그들이 겪은 기묘한 경험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고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으려던 작가의 의도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답답했습니다. 별다른 설명없이, 기승전결없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괴담물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결말은 명확해서 괴담물보다는 이야기로서 완성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결말은 모두 추억과는 별 관계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닙니다. 장르 문학 팬이 평가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를 알아봤자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요.

<<꽃밥>>
초등학생인 여동생 후미코가 열병을 앓고 난 뒤, 스물 한 살 때 살해당한 시게타 기요미라는 여자의 환생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기요미의 집을 보러가자고 졸라서, 나는 후미코를 데리고 히코네라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요미의 아버지가 딸이 살해당할 때 튀김을 먹고 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곡기를 끊었다는걸 알게 된 후미코는 기요미가 어릴 때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밥을 기요미의 아버지에게 전해준다...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 표제작. 후미코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초, 중반부는 사뭇 흥미진진했습니다. 후미코가 노트에 시게타 기요미 가족 이름을 써 둔 것, 어린 아이임에도 보이는 기묘한 행동들로 공포물스러운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약간 <<오멘>>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아직 어리지만 여동생을 끔찍히 아끼고 가족으로 여기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과 추억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이런 부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하지만 환생임을 밝히고 난 뒤, 아버지에게 꽃밥을 전해준다는 최루성 가족 드라마스러운 전개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뻔했어요! 결말도 예상대로였고요. 뻔하고 무난한 탓에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도까비의 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쿄에서 오사카 서민촌으로 이사온 나 (유키오)의 주변에는 또래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중 모두가 은근히 따돌리던 한국인 형제가 있었다.
나는 형제 중 동생 정호와 친해졌지만 몸이 약했던 정호는 그 해 여름 죽고 말았다. 그리고 마을에 정호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 중에 한국인 형제가 있다는 설정은 반가왔습니다. 도까비 라는 제목도 도깨비에서 따 왔으며,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고추를 문에 걸어둔다는 한국적인 설정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실제 작가 유년 시절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여튼 읽으면서, 정호 귀신 소동은 몸이 튼튼하고 강했던 정호의 형 준지가 자기들을 왕따시킨 마을에 대한 작은 복수극일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정호의 도까비가 소동을 일으켰고, 이유는 원래 정호의 몸 상태 - 몸이 아프고 약해서 방에만 있었다 - 때문이었다는건 의외였어요. 그래도 죽은 뒤 아프지 않고 자유로와져서 온 마을을 싸돌아다녔다는 건 꽤 신선했습니다. 유키오의 장난감으로 신나게 논 뒤, 드디어 성불하게 되었다는 결말도 그럴싸 했고요.

그러나 진짜 도까비였다는건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복수극으로 생각했던 탓입니다. 너무 추리, 범죄 소설에 뇌가 찌들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요정 생물>>
오사카 변두리 주택가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세쓰코는 정체불명의 상인으로부터 '요정 생물'을 구입하게 되었다. 키우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처럼, 아빠의 부하로 잘생긴 훈남 다이스케가 찾아왔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엄마와 함께 도망가 버렸고, 세쓰코는 요정 생물을 죽여서 버렸지만, 그 뒤 아빠의 다른 부하 지로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긴 뒤,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요정 생물이라는 기묘한 존재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환상 소설에 가깝습니다. 요정 생물의 계란 프라이같은 생김새와 키우는 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 - 물은 사흘에 한 번 갈아줄 것. 물에 티스푼 절반 정도의 설탕을 풀 것. 강한 햇볕을 쬐면 안되고, 더운 곳에 두어도 안됨. 병을 바꿀 때는 같은 크기로. 병이 커지면 덩치도 커진다 - 등을 통해 <<그렘린>>과 비슷한 크리쳐 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알고보니 어린 소녀가 '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요정 생물'과의 접촉에 직접적으로 비유하여 전개하는 작품이더군요.

디테일한 설정이 뒷받침된 요정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로였습니다. 엄마와 다이스케가 불륜을 저지를거라는건 너무 뻔했으며, 성적인 소재를 일본 특유의 변태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느낌이라 즐겁게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세쓰코가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도 와 닿지 않았고요. 왜 요정 생물이 세쓰코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은걸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참 묘한 세상>>
아키라의 백수 삼촌이 죽었다. 술에 취해 육교를 건너다 계단에서 떨어진 탓이었다. 그런데 장례식 후 화장터로 향하던 영구차가 멈춰버렸고, 관을 꺼낼 수도 없게 되었다. 영문을 모르던 어른들은 당황했는데, '나'는 삼촌의 애인이었던 가오루 씨를 부르면 될 것이라 여겼다...

장례식에서 난봉꾼 망자의 관 이동을 놓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 사실혼 관계의 아내 외의 애인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는 반전은 살짝 깼고, 이 여자들이 모두 친구가 된다는 결말도 유쾌합니다. 제목 그대로 참 묘한 세상이에요. 하지만 딱히 재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쿠린바>>
40년 전, 나는 어린 나이로 '오쿠린바'인 먼 친척 할머니의 조수가 되었다. 오쿠린바는 주문으로 사람의 혼과 몸의 연결을 끊어 죽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임종하면서 나에게 주문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그 일을 잇지 않기로 결심했다.

줄거리 요약은 단순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오쿠린바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화가 여러개 소개되며, 주문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주문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듣게 만들어야 효과가 있으며, 중간까지 들려주면 살아있지만 나머지를 듣게되면 바로 죽는다는 등으로요. 
하지만 일화들은 모두 비슷비슷했고, 설정도 작 중 그렇게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합니다. 그냥 오쿠린바 할머니의 또다른 회고로만 설명되며, 주인공 화자 미사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재미있고 극적인 드라마로 끌고 나갈 수 있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함 그 자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얼음 나비>>
수십년 전, 오사카 변두리 거리 동네에 살았던 나(미치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왔다. 친구가 없는 탓에 묘지에 놀러갔다가 18살이라는 누나 미와와 친해졌다. 그녀는 아픈 동생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타지로 나와 일하고 있다고 해다. 그리고 겨울에도 살아남는 신비한 나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겨울에도 살아있는 나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과 사라져버린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신비로운 상황이라는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겨울 나비를 보고 미와와 헤어지는 미치오의 모습은, 청춘의 환영인 메텔을 떠나보내는 테츠로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서정적인 버젼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겨울 나비에 대한 묘사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미와가 유령이 아니라면 몸을 팔고 있을 거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결말은 둘의 파국이라는게 너무 뻔해서 의외성도 없었고 진부했습니다.
환상 소설 측면으로 보아도 '겨울 나비' 자체는 실존하는 것이기에 딱히 언급할게 없네요. 마지막에 함께 본 나비는 환상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특별히 장르 문학적으로 바라볼 부분은 없어요.
그 외에도 미치오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 설명되지 않고, 미와와의 이별 후 급작스럽게 마사히코가 친구가 되자고 이야기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럴 바에야 왕따 설정은 빼고 그냥 외로운 아이였다고 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9/08/04

조용한 무더위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3점

조용한 무더위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와카타케 나나미의 '유능하지만 불운한' 여성 사립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입니다. 하무라 아키라가 백곰 탐정사 탐정이자 미스테리 전문 서점 '살인곰 서점'의 거의 유일한 아르바이트 생으로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벌어진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 여섯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는 마흔을 넘긴 나이를 제외하고는 독신에다가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산다는건 여전하네요. 나이 탓에 어깨 근육통 등 건강에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탐정으로서 꽤 유능합니다.

읽기 전에는 아무래도 일상계에 가까울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현재 모습을 보면 딱히 대단한 사건에 휘말릴걸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처럼 내용과 사건들이 상당히 묵직해서 의외였습니다. "파란 그늘"만 들치기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이며 그 외의 작품들에서는 강력 범죄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작품별로 분류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조용한 무더위" : 살인 미수
  • "아타미 브라이튼 록" : 불법 약물 제조에 살인과 사체 은닉
  • "소에지마씨 가라사대" : 살인과 감금
  • "붉은 흉작" : 호적 도용과 살인 강도
  • "성야 플러스 1" : 살인 사건

이런 강력 범죄들이 왁자지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일어나고, 시니컬한 하무라 시점의 묘사가 더해져 독특한 재미를 안겨다 주는 이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도 잘 살아 있습니다. 진지한 주인공이 자신도 휩쓸린 대소동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우디 알렌이 연상되는 블랙 코미디 스타일이지요. 역시나 시리즈의 매력인 평범한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악의'도 곳곳에서 드러나고요. 추리적으로도 잘 정리되어서 깔끔합니다.

무엇보다도 '미스테리 전문 서점'이라는 '살인곰 서점'이 주요 무대이며, '살인곰 서점'에서 매월 벌이는 '미스터리 투어'가 이야기의 핵심 소재 중 하나라는게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굉장히 반가왔습니다. 여러 추리 소설과 작가들이 중요하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파란 그늘"에서 사건의 진상은 작 중 언급되는 "레베카"의 티 타임 비밀 레시피에 얽힌 진실이 드러난 덕분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에서 피해자가 영국 추리 소설을 읽었다는 수상한 증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고요. "성야 플러스 1"은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이 핵심 소재 중 하나로 사용됩니다. 마지막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살인곰 서점 점장 도야마의 입을 빌어 작 중 등장하는 작품들을 소개해주는 부분도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와 추리 모두 충분한 수준이며, 추리 애호가의 덕심(?)을 잘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추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은 작품이에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란 그늘" 7월

단편집을 개시하는 첫 단편입니다. 더위에 대한 하무라의 푸념에서 대형 교통사고로, 그리고 '뱀녀'의 행방을 쫓다가 그녀가 택배 배달원과 손을 잡은 들치기범이라는게 밝혀진다는 전개가 빠르면서도 설득력 높게 진행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무라가 범인의 대략적인 인상 착의와 차림새, 범인이 이동한 방향이라는 몇 안되는 단서로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도 꽤 설득력 높고요. 평범한 인간의 '악의'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발 벗고 나서는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어가는 피해자의 가방을 훔치는 범죄가 그러하지요. 모친의 애끓는 호소에도 가방을 버렸다고 하지만 정작 돌려달라고 한 레시피 노트를 연인에게 선물한 사실을 밝히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 추리 모두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이어지는 작품들에 기대를 갖게 만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책을 쓴 입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핵심인 쓰구미의 노트에 수록되었던 소설 "레베카"와 관련된 레시피가 진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책에는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는 레시피 속 비밀 재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맛일지 아주 궁금하네요. 서점 점장인 도야마가 기획한 7월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달콤한 미스터리 페어" 라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추리 소설에 관련된 레시피 책들도 소개되는데 그 중 "Len Deighton's Action Cookbook"은 꼭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작가 렌 테이턴의 레시피인데 레몽 머랭 파이 레시피가 실려 있는 등 디저트 부분이 충실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스터리 티 파티 계획도 발군이에요.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과자들을 죽 늘어놓고 티 파티를 열다니! 아, 이런 서점이 집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한 무더위" 8월

전편에 이어 무더위가 이어집니다. 무더위가 일종의 흉기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자치회장은 어머니를 열사병에 걸리게 할 속셈이었거든요. 이 아이디어는 실제 뉴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설득력도 강합니다. 계절 묘사도 발군입니다.

하지만 범행을 위해 자치회장이 무리하게 거리를 비운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남의 집 에어컨 소리를 귀담아 들을 이유는 없죠. 또 거리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있을 수도 있는 등 어차피 통제는 불가능하니까요. 하무라의 탐정일이 수월하게 풀린다는 것도 좀 과했습니다. 진상을 깨닫게 되는, 자치회장의 볼펜은 순전히 우연이었다는 점도 감점 요소죠. 이런 부분은 조금 더 정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타미 브라이튼 록" 9월

하무라 아키라가 이동하는 모든 이야기가 그렇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이동이 잦아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악의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이 있는 범죄 모의라는 점, 그리고 과거의 수수께끼를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현재 시점에 밝혀낸다는 고전적, 왕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다른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를 깔끔하게 전개하는 솜씨는 대단합니다. "브라이튼 록"이라는 소설을 시타라 소가 읽은 시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이를 본인이 발로 뛰어 얻어낸 정보와 엮어 진상을 도출하는 하무라의 활약도 눈부실 정도에요. UFO에 미친 부동산업자, 바퀴벌레를 키우는 전 상사맨같은 독특한 등장인물들도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묘사와 맞물려 재미를 더해줍니다.

하지만 결말이 '그래서 어쨌는데?' 수준으로 마무리 되어서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수십년 전 사건으로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하무라가 자신이 애써 진상을 밝힐 필요도 없었다는 점에서는 이게 최선이었겠지만요. 그 외 추리적으로도 '자백'에 의존할 뿐이라 - 다른건 몰라도 시타로 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백이 아니라면 알아낼 도리가 없었으니 - 조금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에지마씨 가라사대" 10월

하무라가 서점에서 전화와 인터넷만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니 현대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작 중 미스터리 페어의 주제가 '학자 탐정' 으로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재미있어요. 이런저런 지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은 동일하니까요. 추리 애호가를 위한 정보도 한 가득입니다. '학자 미스터리 페어'라는 페어의 주제는 심심하지만 그만큼 소개되는 작품들이 친숙해서 마음에 들더군요. '싱킹 머신' 반 두젠 교수를 비롯한 다양한 학자, 박사들이 등장하거든요. 또 피해자가 리모델링 업자라는 걸 듣고 '딕 프랜시스의 주인공이 이런 일을 했었는데' 라고 생각하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지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너무 뻔해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은퇴한 변호사가 리모델링 업자에게 판 저택이 동기일거라는게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하무라의 추리대로 저택에 사체가 묻혀 있었다는 결말도 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변호사 조카가 호시노 구루미를 살해한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설퍼요. 운 좋게 용의자가 소에지마씨로 특정되었을 뿐, 용의자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궁지에 몰린 소에지마씨가 무라키를 감금하여 인질극을 벌인다는 설정도 지나쳤습니다. 이런 류의 소동극이 작가의 장기이기는 한데, 자극이 자니치다 보면 무덤덤해지는 법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붉은 흉작" 11월

하드보일드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드보일드 작가가 의뢰인인데다가 주요 소재가 "붉은 수확"과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다카노바바의 저주받은 땅이니까요. 심지어 고가 간타가 오기 노보루를 살해한 흉기도 '얼음 송곳'입니다!
삼천만엔이라는 거금을 가지고 있지만 드러내 쓰지도 못하고 홀로 약간의 사치만 부리면서, 죄책감에 몸부림치다가 죽어간 불쌍한 남자가 주인공이며, 그의 평생의 은인은 광인이 되어 저주받은 땅에서 살아간다는 설정도 하드보일드스러웠어요. 냉정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작가 선생의 한 마디는 화룡 정점이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애매합니다. 가짜 츠노다 지로가 자주 다니던 지압원에서 의료 보험증 사본을 입수하여 '고가 간타'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그 곳에서 고가 간타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 참고인이었던 츠다 지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일사천리이기 때문입니다. 오기 노보루가 지녔지만 사라진 삼천만엔을 츠다 지로가 손에 넣었을 거라는 추리는 딱히 중요한 요소는 아니고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드보일드라는 의미 외의 가치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성야 플러스 1"

개빈 라이얼의 "심야 플러스 1"에서 따온 제목이죠. "심야 플러스 1"은 서스펜스 가득한 모험물인데 이 이야기 속 하무라에게 닥친 시련도 "심야 플러스 1" 못지 않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부탁을 들어주고 임무를 완수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모습은 성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에요.
그런데 조금 의아했던건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굉장히 두려워 한다는데,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하무라에게 폐를 끼치는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무라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작 중 하무라가 부탁받은 심부름을 수행하기 위한 여정의 정도는 지나친 편입니다. 중간의 여정들은 딱히 재미있지도 않고요. 솔직히 중간 과정들은 불필요했습니다.
소노다 씨가 "심야 플러스 1"의 가짜 사인본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책 도둑들이 사인본을 노린다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려워요. 하무라의 말대로 옥션에서 2백불 정도면 살 수 있는데 노상강도짓을 할 이유는 없지요.

추리적으로도 별 내용은 없습니다. 백골 사체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어차피 본 편 정보로 추리가 가능한 사건은 아닙니다. 고이시바라 미야코 할머니와 사위의 칼부림 역시 억지스러운 요구에 불과할 뿐이고요. 오히려 사위가 딸을 살해한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더라면 말이 되었을텐데 말이죠. 책을 날치기한 2인조의 경우는 앞서 말씀드렸듯 사건 자체의 현실성이 약해서 추리의 여지도 부족합니다.

그래도 하무라의 불운을 잘 드러내고 있고, 중간중간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아서 왁자지껄한 블랙 코미디로 본다면 괜찮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고이시바라 미야코와 사위 사이에서 벌어진 칼부림입니다. 정말 급작스럽게 말려들었는데 미야코 할머니가 하무라의 가방을 잡고 놔주지 않는 등의 황당한 상황이 이어지거든요. 이를 슈톨렌이 해결한다는 결말도 재미있었고요. 그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다 극복하고 모두가 원하는 상황으로 매조지하는 결말도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행복해지는게 크리스마스의 핵심요소이긴 하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지만 재미 만큼은 확실합니다.

홈